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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시각] 상상 그 이상의 저출산 대책을 기대한다/김경두 정책뉴스부장

    [데스크 시각] 상상 그 이상의 저출산 대책을 기대한다/김경두 정책뉴스부장

    식상하다. 재고상품 천지이니 그렇다. 신상품은 가물에 콩 나듯 드물고, 파격 할인 제품도 해외 역직구나 온라인 매장보다 비싸다. 정부와 마지못해 참여하는 기업들, 그들만의 바겐세일이니 소비자의 발길을 붙잡을 수 없다.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를 꿈꿨던 코리아세일페스타의 현주소다.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다음달 내놓을 저출산 대책도 특별할 게 없다는 소식이 들린다. 기존 정책을 재구조화하는 게 뼈대라고 한다. 근본적인 틀을 바꾸는 것뿐 아니라 상상 그 이상의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어서 좀 우려스럽다. 우리나라는 지난달 처음으로 만 6세 이하 아동들에게 아동수당 10만원을 지급했다. 3년 전만 하더라도 ‘예산이 없다’고 기획재정부와 당시 여당(현 자유한국당)이 기겁했던 일이다. 아동수당은 2006년 위원회가 출범할 때부터 주요 대책 중 하나로 거론됐지만 12년이 지난 이제서야 어렵사리 첫발을 내디뎠다. 2006년부터 아동수당을 도입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이 맴돈다. 올 2분기 ‘출산율 쇼크’(합계출산율 0.97명) 탓에 정책을 가다듬기 위해 발표를 수차례 연기했던 지난 7월 저출산 대책도 재탕 수준에 머물렀다. 그나마 위원회가 만 8세 이하 자녀를 둔 부모에게 최대 2년간 하루 3시간을 줄여 일해도 월급을 다 주는 방안을 밀어붙였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고용 관련 부처에서 ‘기업 부담이 크고 이를 뒷받침할 예산도 만만찮다’는 이유에서였다. 논의 끝에 하루 1시간으로 쪼그라들었다. 이것만으로도 출퇴근 때 아이를 맡기고 데려오는 데 충분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인구 절벽’으로 국가 소멸 위기론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따질 거 다 따지는 대단히 침착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이러니 2006년부터 지난 12년간 130조원에 육박하는 천문학적인 돈을 쓰고도 합계출산율이 1.0명 밑으로 떨어진 것이다. ‘이 정도면 되겠지’라는 느슨한 마인드, 경제적 인센티브에 집중된 정책, 사회 곳곳에 자리잡은 여성 차별과 경력 단절, 얼어붙은 취업시장 등을 풀지 않고서는 헛돈만 쓸 뿐이다. 결국 이와 관련된 파격적이고 충격적인 대책들을 내놓지 않고서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초저출산 속도에 급브레이크를 걸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비싼 수업료를 내고 얻은 유일한 교훈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아이를 낳고 싶어도 쉽지 않은 난임 부부에게 호주와 이탈리아처럼 나이 제한이나 인공시술 횟수 제한 없이 과감하게 지원하고, 신혼부부 지원에 동거·사실혼 부부도 포함시키자. 불편한 진실이지만 ‘고아 수출국’이라는 오명도 걷어 낼 때가 됐다. 해마다 400명 안팎의 아이들이 해외로 입양되고 있다. 지난 60년간 무려 16만명이나 된다. 우리가 낳은 아이조차 우리 사회가 키우지 않으면서 저출산 극복을 말할 수 있을까. 이민자 수용도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인식만 바꾸면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는 다른 저출산 대책과 비교해 가성비 최고의 정책이다. 이젠 기술·전문직만 가려 이민자를 받아들이겠다는 생각을 접어야 한다. 그런 인재는 다른 나라에서도 탐낸다. 일본도 간병 인력이 부족해 이민자 문호를 활짝 열었다. 혹시라도 이 순간 상상 그 이상의 저출산 대책을 놓고 부처 간 힘겨루기가 이뤄지고 있다면 한 번쯤 떠올렸으면 싶다. 취업과 결혼 적령기에 있는 20, 30대가 ‘헬조선’을 부르짖고, 내 자식마저 노예로 만들고 싶지 않다고 외치는 현실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가 감내할 수 없다’는 이유로 반대한다면 그건 후대에 책임을 떠넘기겠다는 미필적 고의다. 위원회가 힘을 낼 때다. golders@seoul.co.kr
  • “고종 빼돌려 을사늑약 체결 막아라” 14

    “고종 빼돌려 을사늑약 체결 막아라” 14

    서울신문은 일제 침략 당시 독립운동가의 활약을 소재로 한 해외소설 두 편을 발굴했습니다. 글쓴이는 미국의 저널리스트 겸 시나리오 작가 로버트 웰스 리치(1879~1942)이고, 두 소설의 주인공은 대한매일신보와 코리아데일리뉴스(KDN)를 창간해 우리 민족 항일의식을 고취한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1872~1909·한국명 배설)입니다. 100여년 전 발간된 이 소설에는 베델뿐 아니라 ‘고종의 밀사’로 잘 알려진 호머 허버트(1863~1949), 노골적 친일 행보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사살된 더럼 화이트 스티븐슨(1851-1908), 조선통감부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1841~1909), 을사늑약 직후 자결한 충신 민영환(1861~1905) 등 역사적 인물이 대거 등장합니다. 작가가 실제로 조선에 와서 베델 등을 취재해 쓴 이 소설에는 고종의 연해주 망명 시도 등 극비 내용도 담겨 있어 관심을 모읍니다. 서울신문은 이 소설 가운데 하나인 ‘황제 납치 프로젝트’(1912년 12월 출간·원제 The cat and the king)를 번역해 연재 형태로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14회>“황제(고종)께서는 이제 떠나실 준비가 되신 것 같소이다. 폐하가 해외 망명에 호의적이실 때 얼른 서둘러 주시오. 왕께서는 처음 이 얘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일본인의 눈을 피해 중국으로 도망치려다 잡히면 그들이 내 심장을 도려내지 않을까’라며 매우 무서워 하셨소. 그때마다 화가(소녀)가 현악기로 황제의 마음을 달래 두려움을 없애준 덕분에 어렵사리 승낙을 받아냈소.” 민 대감이 숨을 고른 뒤 말을 이어갔다. “그녀는 붓으로 캔버스에 황제의 초상화를 그리면서 이토(이토 히로부미)가 꾸미는 대한제국 강탈 음모를 차근차근 설명했어요. 제국의 외교권을 빼앗기면 폐하께서도 결국 사슬에 묶인 채 일본 감옥에 끌려갈 것이고 한반도 역시 피로 물들 것이라고요. 백성들은 일본의 노예가 될 것이라는 것도 여러차례 강조했소. 이 모든 일이 경운궁을 수시로 드나드는 하기와라(훗날 2대 조선총독이 되는 하기와라 슈이치)의 코앞에서 벌어질 것이라고도. 그가 궁에 없던 날 무당 두 명이 황제가 먹게 될 사슴고기를 시식했다가 숨진 것이 우연이 아니었다고 전하자 황제께서는 공포로 전율하셨습니다. 결국 언제 없어질 지 모르는 불안한 옥좌에 가만히 앉아있기보다는 차라리 외국으로 도망치다가 죽는 편이 더 낫다고 결정하셨소.” 나와 베델(어니스트 토머스 베델)이 크게 기뻐하자 민 대감이 우리의 얼굴을 살피며 중얼거리듯 말했다.“그녀는 참으로 멋있는 여성이었소. 궁궐에 온 첫날부터 황제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니까. 폐하와 화가 그리고 나 이렇게 셋만 남아 조선 독립의 희망을 말하던 그 짧은 순간은 그간 이 나라의 수백년 황금기와도 맞바꿀 수 없는 귀한 시간이었소...다만 황제께서는 처음에는 이 생각(해외 망명)에 흥분했지만 지금은 다소 차분해진 상태입니다. ‘하루 빨리 조선을 떠나겠다’고 자신있게 말하다가도 갑자기 왕좌에 시무룩하게 앉아서는 ‘겁이 난다’고 무서워하기도 하고 있어요.” 민 대감은 희망과 절망의 표정을 오가며 비겁한 늙은 군주(고종)의 모습을 직접 연기해 보였다. “한 번은 군주께서 점쟁이들과 상의해 언제 떠나는 것이 가장 좋을 지 물어 보겠다고 제안했어요. 선악을 주관하는 신(神)들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는 절대로 중요한 일을 결정할 수 없다면서요. 그러자 소녀가 강하게 항의하듯 말했소. 폐하는 황제가 아니신가요? 이 세상의 주인이 아니십니까? 국가의 운명이 달린 문제를 고작 일개 무당들에게 맡기는 어리석음을 범하시겠다고요? 제가 초상화를 그린 분은 일국의 군주이시지 자신의 운명조차 스스로 결정짓지 못해 갈팡질팡하는 못난이가 아니었습니다...라고요. 그러자 폐하는 울음을 터뜨리셨고 자기 자신을 ‘멍청이’라고 부르며 괴로워했어요...지금 황제께서는 망명을 결심하신 뒤 비극과 희극 사이에서 감정이 심하게 요동치고 있습니다. 옆에서 지켜보기가 괴로울 정도로...” 조선의 유일한 애국자인 민 대감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우리에게 모든 것을 말해주려고 애썼다. 베델은 그에게 소녀가 구상한 황제 납치 아이디어를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황제의 내각대신 뿐 아니라 심지어 그에게 충성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자들에게도 우리의 계획을 절대로 알게 해서는 안 됩니다. 폐하께서는 신속한 탈출을 위해 세자(순종)를 궁에 그대로 두고 혼자 떠나셔야 합니다. 망명을 해야할 때가 되면 폐하를 무당 차림으로 변장시켜 주십시오. 궁은 세자와 신하들에게 맡기고 여성들이 드나드는 문을 통해 뒷문으로 빠져 나오십시오. 궁 바로 옆 사슴공원 한쪽 구석에 말을 대기시켜 놓겠습니다. 그러면 저와 빌리는 북문 바깥에서 기다리다가 황제를 모시고 요트가 정박된 강가로 이동하겠습니다. 북문은 평소 거의 쓰지 않는 문이니 일본의 감시망도 거의 없습니다. 화가도 황제와 동행해야 하기에 북문에서 함께 기다리게 하겠습니다. 그녀는 황제를 태울 요트가 어디에 정박해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만약에 일이 잘못돼 일본군에 계획이 노출돼도 정보를 알려줄 수 없게 하기 위해서죠.”그러자 민 대감이 자신있게 답했다. ”그렇다면 말은 내가 준비하겠소.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니까...북문에서부터 요트가 있는 곳까지 폐하를 말에 태워 호위하는데 당신들의 도움을 받아야겠소. 폐하는 서울을 떠나시는 길에 일본인들이 따라붙을까 무서워하실 것이오. 그렇지만 당신들이 폐하와 함께 있다면 기뻐하고 안심하실 것이 분명하오. 이제 조선의 운명을 두 손에 쥔 위대한 여인에게서 어떤 지시가 내려오더라도 따를 준비를 하십시다.” ‘황제 납치 프로젝트’는 15회로 이어집니다. 번역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평화의 소녀상’ 지킴이들 “욱일기 단 日 군함 입항 결사반대”

    ‘평화의 소녀상’ 지킴이들 “욱일기 단 日 군함 입항 결사반대”

    개천절인 3일 오후 3시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욱일기를 단 일본 함정의 제주 국제 관함식 참가 반대’ 집회가 열렸다. 이날 집회에는 ‘반아베 반일 청년학생 공동행동’ 소속 소녀상지킴이 20여 명이 모여 “군국주의 침략 상징인 욱일기를 단 일본 군함 국내 입항을 결사반대한다”고 목소리를 냈다. ‘반아베 반일 청년학생 공동행동’ 측은 “제주해군 국제 관함식에 욱일기를 단 자위대 구축함이 들어온다. 우리 민중의 정서를 고려해달라는 우리 측 요구에 일본정부는 ‘비상식적이고 예의 없다’는 망발로 답했다”며 “우리 민중의 분노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일본의 침략야욕이 계속되는 한 일본과의 관계에 진전과 평화는 있을 수 없다. 9월 평양 공동선언으로 형성된 동북아에 평화와 통일의 대세에 아베정부가 역행한다면 외교적으로 더욱 고립될 수밖에 없다. 일본이 과거의 잘못에 대한 사죄와 배상을 하지 않고서는 국제사회에서 떳떳하게 살아갈 수 없다”고 강조했다.최근 일본은 오는 10~14일 제주 해군기지에서 예정된 ‘2018 대한민국 해군 관함식’에 욱일기를 달고 오겠다고 밝혔다. 우리 해군은 일본에 욱일기 대신 국기와 태극기를 함께 달고 참가하기를 요청했지만, 일본은 이를 수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집회에 참석한 전가람(22, 소녀상 지킴이 )씨는 “욱일기가 가진 제국주의 의미와 군국주의 암시는 결국 일본이 재침략 야욕을 보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한 번씩 가졌으면 좋겠다”며 “우리가 욱일기에 대해 규탄하고 전쟁범죄에 대해 사죄를 요구하는 것은,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에 대해 완전 해결을 원하는 사람들의 염원이기도 하다”라고 밝혔다. 한편 ‘반아베 반일 청년학생 공동행동’는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천막 농성을 해온 학생 단체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사죄 배상과 매국적 한일합의 폐기를 위한 대학생 공동행동‘의 전신으로 평화의 소녀상 농성 1000일째를 맞아 단체 이름을 변경했다.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中 문화혁명 때 파괴된 삼학사비, 복제비마저 잡목에 묻힌다

    中 문화혁명 때 파괴된 삼학사비, 복제비마저 잡목에 묻힌다

    우리 민족 최대 치욕 중 하나를 꼽는다면 ‘삼배구고두’(3번 절하고 9번 머리를 조아리는 항복 의식)로 불리는 1636년 병자호란 때 인조의 남한산성 항복이다. 이때 침략국 청나라에 항복하거나 청과 화의를 맺는 것을 끝까지 반대하다 중국 선양(瀋陽)으로 끌려가 처형된 세 신하 오달제·홍익한·윤집이 있었다. 이들의 충절 및 절개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삼학사비’가 선양 외곽 한 창고와 풀숲에 방치돼 잊혀 가고 있다. 역사를 망각하면 미래가 없다고 한다. 선양에 방치된 삼학사비를 지난 22일 찾아봤다.●요녕발해대학 설립자 천문갑 학장 숨져 폐교 아스팔트 도로를 벗어난 택시는 덜컹거리며 10분여 인적이 끊긴 선양시 허핑구 경진로 재개발지역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막다른 길에 다다르자 왼쪽으로 폭 6m 철문이 나타났다. 그 너머로 예쁘장한 5층짜리 건물이 보였으나, 가까이 다가설수록 손질이 많이 필요해 보였다. 조선족이 설립하고 운영하는 중국 내 유일한 ‘요녕발해대학’ 본관이다. 설립자인 천문갑(조선족 과학자) 학장이 2009년 지병으로 숨지면서 문을 닫았다. 철문 안으로 들어서자 50대 후반 남성이 본관 안으로 안내했다. 쇠사슬로 잠금장치를 한 낡은 여닫이 쌍문을 열고 들어서자 작은 복도가 나왔다. 복도 양쪽 가득 종이 상자가 쌓여 있다. 왼쪽은 매점이다. 상자를 치워 가며 복도 끝 오른쪽 방문 앞에 이르자, 비로소 ‘전시실’이란 푯말이 보였다. ●발견된 비신은 요녕발해대학 전시실에 보관 잠기지 않은 문을 열고 들어서자, 벽면 가득 사진과 설명문이 붙어 있다. 그 한가운데 비스듬히 깨져 나간 육중한 비석이 붉은 테이블보 위 유리관 안에 누워 있다. 삼학사비다. ‘비두’라 불리는 머리 부분은 중국 문화대혁명기(1966~1976년) 때 훈허강변에 버려진 뒤 발견되지 않고 있고, 몸체 격인 ‘비신’만 발견돼 보관 중이다. 13년 전 사비를 털어 이 전시실을 꾸민 김용규(60) 전 요녕발해대학후원회 비서실장이 전등을 켜고 삼학사비 앞에 서서 한참을 묵념했다. 착잡한 그의 표정에서 삼학사가 느꼈을 망국의 설움이 보이는 듯했다.건물 밖으로 나와 왼쪽 풀숲을 더듬거리며 들어가 보니 거대한 비석이 나타났다. 높이 390㎝, 가로 83㎝, 두께 26㎝의 삼학사비 복제비이다. 2005년 허창무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와 계룡건설 도움으로 2개의 복제비를 만들었다. 1기는 그해 6월 국내로 옮겨져 8월 31일 천안 독립기념관 ‘겨레의 큰마당’에 세웠으며 다른 1기는 지금의 위치에 자리잡았다. 농가의 주춧돌로 사용될 뻔했던 원비(비신)는 앞서 봤던 요녕발해대학 내 전시실 유리관 안에 보관하고 있다. 복제비가 세워진 곳은 13년 전 깔끔했던 공원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아카시아 등 잡목과 사람 키보다 높게 자란 잡초로 뒤덮여 있다. 정문 경비원이나 학교 관리원이 한 시간이면 정리정돈할 수 있을텐데 안타깝다. 대학 설립자 유가족들이 삼학사와 삼학사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청태종은 1636년 조선을 침략해 2개월 만에 남한산성 삼전도에서 인조의 항복을 받아냈다. 철군할 때 약 60만명의 우리 백성을 포로 또는 노예로 끌고 갔다. 당시 조선 인구는 200만명 내외로 추정된다. 소현세자 부부와 봉림대군 부부, 항복하거나 화친을 반대한 오달제·홍익한·윤집 등 신하 셋(삼학사)도 선양으로 끌려갔다. 신하가 되라며 고문하고 회유하다 뜻을 이루지 못하자 처형했다. 청태종은 그러나 삼학사의 굳은 충절과 절개에 감동해 ‘삼한산두’(三韓山斗)라는 휘호를 내리고 비와 사당을 세워 매년 제를 지내 삼학사의 넋을 위로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삼한’은 조선을 의미하고 ‘산두’는 삼학사의 정신이 태산처럼 크고 북두칠성처럼 변함없이 빛난다는 뜻이다. 청태종이 세운 비는 세월이 흘러 청이 멸망하면서 사라졌다가 일제강점기인 1933년 오달제 선생 후손 등에 의해 머리 부분이 발견돼 1935년 10월 항일운동의 한 방법으로 다시 중건됐다. 이후 모택동 집권 후 문화대혁명을 거치며 다시 파괴돼 선양을 가로지르는 훈허강에 버려진 것으로 전해진다.●3년치 급여 털어 비신 구입… 재중건 뜻 못이뤄 한동안 잊혔던 비는 1990년 비신 부분이 중국 농민에 의해 발견됐다. 중국인이 밭갈이하다 발견한 바위를 주춧돌로 사용하려다 글자가 새겨져 있는 것을 알고 문밖에 내놨다. 중국 에서는 글이 새겨진 돌은 집 안에 두지 않는다. 길을 지나던 조선족 교원이 비문을 보고 중국 당국에 보관해 달라고 신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삼학사가 중국의 역사가 아니다”라는 이유로 거절됐다. 다행히 당시 랴오닝대학 교수이자, 중국 조선족과학자협회 천문갑 부이사장이 3년치 급여를 들여 구입해 보관해 오다 1992년 요녕발해대학을 설립하면서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천 학장은 선양 일대 동포 유지들을 모아 삼학사비 재중건 등을 위해 노력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주변 도움으로 복제비 2개만 만드는 데 그쳤다. 김 전 비서실장은 “순국열사들의 행적을 찾고 기억하는 것은 후손들의 마땅한 책무”라며 안타까워했다. 글 사진 선양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삼배구고두의 아픈 역사 반복 말아야”

    “삼배구고두의 아픈 역사 반복 말아야”

    “되찾고 지키기 위해 그동안 많은 분들이 고생했습니다. 그러나 정부도 국민도 관심을 두지 않으니….”중국 내 유일한 조선족 사립대학이었던 요녕발해대학과 삼학사비를 보존하기 위해 사재를 털어 가며 선양에서 15년을 보낸 김용규(60) 전 요녕발해대학후원회 비서실장이 지난 22일 삼학사비 비신 앞에서 묵념하며 한 말이다. 요녕발해대학은 설립자인 천문갑 학장이 2009년 지병으로 유명을 달리하면서 사실상 폐교됐다. 허창무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 등 국내 후원자와 해외동포들이 지원했지만 끝내 지켜내지 못했다. 김용규씨는 삼학사비만큼은 꼭 지켜내고 싶다고 한다. “불과 380년 전 조선의 왕이 3번 절하고 9번 머리를 조아리는 항복 의식인 삼배구고두를 하며 항복했고, 조선 백성의 약 30%에 달하는 60만명이 청에 노예로 끌려갔습니다. 그 아픈 역사를 반복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삼학사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는 “숙종 때 남한산성에 현절사를 세워 삼학사 충혼을 위로하고, 우암 송시열에게 명을 내려 ‘삼학사전’을 짓게 한 것으로 볼 때 삼학사 희생이 조선에 미친 긍정적 영향이 적지 않다”면서 이같이 강조했다. 김씨는 “천 학장 사망 후 후원회 역시 사실상 해체된 상황”이라며 “학교 운영이 중단되다 보니 삼학사비를 돌보는 사람이 없고, 관람하고 싶어 해도 자유롭게 보여 줄 수 없어 너무도 안타깝다”고 아쉬워했다. 그러면서 그는 “선양에 있는 삼학사비는 우리의 아픈 역사와 더불어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불굴의 정신을 후손들에게 전해 주는 교육의 장으로 손색이 없다”면서 “동북삼성 일대 우리 역사를 후손들에게 보여 줄 수 있는 복합 전시공간을 만들어 민족의 뿌리와 정체성을 지킬 수 있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 사진 선양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러시아 공동묘지에 아이폰 형태 묘비 등장

    러시아 공동묘지에 아이폰 형태 묘비 등장

    러시아의 한 공동묘지에 특이한 묘비가 등장해 추모객들을 놀라게 했다. 26일(현지시간) 러시아 매체 프로우랄(ProUral)에 따르면, 러시아 바슈키리아 공화국의 수도 우파에 있는 유즈노예 공동묘지에 152cm 높이의 아이폰 모양으로 제작된 묘비가 들어섰다.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묘비는 지난 2016년 1월에 불분명한 사인으로 숨진 여성 리타 샤미바(25)의 것으로 최근 그의 아버지 라이스 샤미바가 일찍 숨진 딸을 기리기 위해 설치한 추모비다. 생전에 리타가 좋아했던 아이폰 형태로 만들어진 묘비에는 리타의 사진이 새겨져있으며, 공동묘지에서 어느 묘비보다 훨씬 높이 솟아있다. 아버지 라이스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사인이 불명한 딸의 죽음을 비통해했으나 특이한 묘비를 세우게 된 연유에 대해서는 자세히 언급하지 않았다. 지역 비석 제작자 갤리울린은 “우리는 주문에 따라 묘비를 만드는 편인데 지난 추 처음으로 독특한 기념비를 보았다”며 신기해했다. 조문객 니콜라이 예브도키모프도 “처음에 환각인줄 알았다”면서 “지금까지 많은 묘비를 보았지만 이러한 형태는 처음”이라며 놀라워했다. 현지 언론은 “이전에 디자이너 파벨 칼리유크가 광고의 일환으로 비슷한 묘비를 만든 적이 있다”며 “실제 장의 전시회에서 그가 작품을 전시한 후 특이한 묘비에 대한 주문이 밀려들어왔다. 이 사례를 계기로 고인 추모차원에서 다양한 묘비가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사진=프로우랄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단체장 칼럼 / 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 행복 여주

    단체장 칼럼 / 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 행복 여주

    경기 동부권 12만여 시민이 행복한 삶을 꿈꾸며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벗 삼아 살아가는 곳이 여주시 이다. 여주는 수도권 시민의 핵심 젖줄인 팔당상수원을 보호하기 위해 수년간 개발이 제한된 덕분에 자연 환경이 잘 보존돼 있는 곳이다. 반면, 시민 삶의 개선을 발목 잡는 규제 때문에 지역발전도 답보상태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이제 새로운 삶의 가치가 여주에서 시작되고 있다. 사람과 자연이 어우러져 공생하는 공간에 행복이 넘치고 수도권 최고의 아이 키우기 좋은 곳으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어린 시절 아름다운 자연환경 속에서 무한한 상상력을 마음껏 펼치며 가장 쾌적하고 안전하게 자라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내고 있다. 대도시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며 오로지 일등만을 향해 달려야하는 강박관념으로부터 벗어나 사람과 사람이 만나 진한 인간미를 느끼고, 서로 소통하면서 원대한 인류애를 키우는 글로벌 인재를 육성하는 지역으로 탈바꿈 한다. 풍부한 감성을 되살려내고, 기계적으로 쉼 없이 돌아가는 현대인의 각박함으로부터 벗어나 사람이 진정으로 원하는 자유와 평화를 찾고 무한한 창조의 근원도 키워낼 필요가 있다. 고도 경제성장의 정점에서 사람이 사람으로 존중받지 못하고 물질의 노예처럼 되어가는 현상을 더 이상 바라보고만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다. 그동안 필자는 각박한 도시를 벗어나 여주에 살면서 귀중한 자연환경을 지켜내겠다는 일념으로 환경운동을 펼쳐 왔다. 4대강사업으로 파헤쳐지는 자연을 지켜내려고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한번 사라지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희귀 동·식물을 지키고 보호해 후세에 전해 주려는 한 가지 마음만 있을 뿐이었다. 그 덕택에 여주는 개발에 앞선 보존이 다른 지역에 비해 앞선다. 이것이 재산이다. 이 바탕 위에 ‘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 여주’가 시작된다. 경강선 여주~성남 복선전철 여주역 역세권개발을 학교와 복합 문화 공간, 휴식과 힐링이 가능한 사람이 행복한 장소로 태어나도록 추진하고 있다. 우리 아이들은 안전한 공간에서 부모와 함께 풍부한 감성과 창의성을 기르고, 어른들도 함께 체육관과 수영장 등을 고루 갖춘 복합문화공간에서 삶의 기쁨을 누리게 된다. 남한강변 청정 지대에서 분출하는 무한한 에너지가 아이들과 부모 및 모든 사람이 함께 향유할수 있도록 하는 청사진이 여주에서 그려지고 있다. 그 속에서 사람이 중심이 되는 행복 여주가 활짝 피어날 것이다.
  • [노예 취급에 연구비 유용까지… 부끄러운 민낯 드러난 학계] “조교야, 개 밥 챙겨라”… ‘갑질’ 교수님

    [노예 취급에 연구비 유용까지… 부끄러운 민낯 드러난 학계] “조교야, 개 밥 챙겨라”… ‘갑질’ 교수님

    논문 지도 학생에게 폭언·유리잔 투척 인건비 가로채 車보험 갱신 등 다반사전북대 A교수는 자신의 연구년(강의를 맡지 않고 연구에 집중하는 기간)을 맞아 영국으로 출국하며 대학원생인 조교 B씨를 불러 ‘임무’를 줬다. “내가 없는 동안 개밥을 챙겨 주라”는 것이었다. 그는 또 귀국 뒤 선물을 주겠다는 명목으로 자신이 논문 지도 한 학생들을 불러 회식을 열었는데, 이 자리에서 B씨에게 폭언을 하며 유리잔을 던지는 등 행패를 부렸다. 그는 교육부 감사에 적발돼 경징계 처분을 받았다. 대학원생 제자를 수년간 폭행하며 인분을 먹이거나 A4 용지 8만장 분량의 스캔을 요구한 일부 교수의 갑질 행태 탓에 국민적 공분이 커졌지만, 학교 현장에는 여전히 대학원생을 노예처럼 여기는 교수가 적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박경미 의원이 12일 교육부에서 제출받은 2017~2018년 대학 감사 결과 사례 자료에는 유명 대학 갑질 교수들의 민낯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벼룩의 간’ 수준인 학생 인건비를 가로챈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서울대 C교수는 대학 연구소가 펴내는 학술지의 편집장을 맡으면서 석사과정 학생인 편집간사들의 인건비 일부와 인쇄 지원금 등을 ‘편집장 수당’ 명목으로 매달 45만원씩 본인 통장에 입금하도록 했다. 이렇게 가로챈 금액은 1170만원이었다. 그는 자신이 참여한 학내 연구 프로젝트를 보조한 학생의 인건비도 가로채 개인 용도로 사용했다. 자신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의 자동차보험을 갱신했고 자택 공기청정기와 가족들의 선불 휴대전화도 샀다. 손목시계를 고치는 데도 썼다. 사적으로 쓴 돈은 모두 99건에 333만 8120원이었다. 중앙대 D교수도 최근 6년간 자신의 연구에 참여한 학생에게 지급된 인건비와 연구수당, 장학금 등을 빼돌려 쓰는 등 모두 3억 4204만여원을 사적으로 사용했다. 한양대 E교수도 2012년부터 5년간 석·박사 과정의 연구원 21명에게 돌아가야 할 인건비와 출장비 중 3735만원을 개인 용도로 썼다. 박 의원은 “갑질은 단순히 잘못된 문화가 아닌 범죄”라면서 “교육부가 철저한 실태 조사와 엄정한 처벌을 해야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노예 취급에 연구비 유용까지… 부끄러운 민낯 드러난 학계] 가짜 학회로 실적 쌓기… ‘저질’ 연구자

    [노예 취급에 연구비 유용까지… 부끄러운 민낯 드러난 학계] 가짜 학회로 실적 쌓기… ‘저질’ 연구자

    논문 발표 등 형식만 갖춰 연구비 타내 4대 과기원·서울대 등 1317명 참가 180명은 두 차례 이상… “연구비 환수”최근 5년 동안 ‘가짜 학술단체’인 와셋(WASET)과 오믹스(Omics)에 참가한 국내 연구자들이 무려 1317명에 이르고, 이 중 180명은 두 차례 이상 다녀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학회는 논문 발표와 출판 등 형식만 갖췄을 뿐 실체는 영리를 목적으로 한 ‘무늬만 학회’다. 정부의 연구개발(R&D) 지원을 받는 연구자들이 이들 학회에 참여한 뒤 실적으로 보고하는 등 세금 낭비의 온상인 셈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교육부는 12일 전국 238개 대학, 4대 과학기술원, 26개 정부출연연구기관을 대상으로 2014년부터 올해까지 와셋·오믹스 참가 실태를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대상의 40%인 108개 기관의 소속 연구자들이 두 학회에 참가한 적이 있었다. 4대 과기원은 모두 포함됐으며 대학 83개, 출연연 21개였다. 대학 중에서는 서울대 88명, 연세대 82명, 경북대 61명, 부산대 51명 등이 허위 학회에 참가했다. 또 카이스트에서는 43명,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는 26명이 다녀왔다. 과기정통부와 교육부는 기관별로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참가자에 대해 조사한 뒤 위반 행위가 적발되면 징계하도록 했다. 연구비 부정 사용자에 대해서는 한국연구재단의 검증을 거쳐 연구비 환수 등을 조치할 방침이다. 정부는 각 기관의 조사와 처분이 미진하면 재조사를 벌이고 정부 R&D 참여 제한 등 기관 단위로 제재할 계획이다. 유영민 과기정통부 장관은 “연구비 유용 또는 연구 부정이 드러날 경우 엄정 조치하고, 이른 시일 내에 ‘과학기술인의 건강한 연구문화 정착 방안’을 확정해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장세훈 기자 shjang@seoul.co.kr
  • “조교야, 개 밥 챙겨라”… ‘갑질’ 교수님

    “조교야, 개 밥 챙겨라”… ‘갑질’ 교수님

    논문 지도 학생에게 폭언·유리잔 투척 인건비 가로채 車보험 갱신 등 다반사전북대 A교수는 자신의 연구년(강의를 맡지 않고 연구에 집중하는 기간)을 맞아 영국으로 출국하며 대학원생인 조교 B씨를 불러 ‘임무’를 줬다. “내가 없는 동안 개밥을 챙겨 주라”는 것이었다. 그는 또 귀국 뒤 선물을 주겠다는 명목으로 자신이 논문 지도 한 학생들을 불러 회식을 열었는데, 이 자리에서 B씨에게 폭언을 하며 유리잔을 던지는 등 행패를 부렸다. 그는 교육부 감사에 적발돼 경징계 처분을 받았다. 대학원생 제자를 수년간 폭행하며 인분을 먹이거나 A4 용지 8만장 분량의 스캔을 요구한 일부 교수의 갑질 행태 탓에 국민적 공분이 커졌지만, 학교 현장에는 여전히 대학원생을 노예처럼 여기는 교수가 적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박경미 의원이 12일 교육부에서 제출받은 2017~2018년 대학 감사 결과 사례 자료에는 유명 대학 갑질 교수들의 민낯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벼룩의 간’ 수준인 학생 인건비를 가로챈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서울대 C교수는 대학 연구소가 펴내는 학술지의 편집장을 맡으면서 석사과정 학생인 편집간사들의 인건비 일부와 인쇄 지원금 등을 ‘편집장 수당’ 명목으로 매달 45만원씩 본인 통장에 입금하도록 했다. 이렇게 가로챈 금액은 1170만원이었다. 그는 자신이 참여한 학내 연구 프로젝트를 보조한 학생의 인건비도 가로채 개인 용도로 사용했다. 자신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의 자동차보험을 갱신했고 자택 공기청정기와 가족들의 선불 휴대전화도 샀다. 손목시계를 고치는 데도 썼다. 사적으로 쓴 돈은 모두 99건에 333만 8120원이었다. 중앙대 D교수도 최근 6년간 자신의 연구에 참여한 학생에게 지급된 인건비와 연구수당, 장학금 등을 빼돌려 쓰는 등 모두 3억 4204만여원을 사적으로 사용했다. 한양대 E교수도 2012년부터 5년간 석·박사 과정의 연구원 21명에게 돌아가야 할 인건비와 출장비 중 3735만원을 개인 용도로 썼다. 박 의원은 “갑질은 단순히 잘못된 문화가 아닌 범죄”라면서 “교육부가 철저한 실태 조사와 엄정한 처벌을 해야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영국 간 동안 개밥 좀 챙겨라”…교수 갑질 천태만상

    “영국 간 동안 개밥 좀 챙겨라”…교수 갑질 천태만상

    대학원생에 유리잔 던진 교수도 ‘경징계’ 학생 인건비 3억 빼돌린 교수도대학원생 10명 중 2명, “교수 개인 업무 지시받고 거부 못했다”전북대 소속 A교수는 자신의 연구년(강의를 맡지 않고 연구에 집중하는 기간)을 맞아 영국으로 출국하며 대학원생인 조교 B씨에게 불러 ‘임무’를 줬다. “내가 없는 동안 개밥을 챙겨주라”는 것이었다. 그는 또 귀국 뒤 선물을 주겠다는 명목으로 자신이 논문 지도 한 학생들을 불러 회식을 열었는데, 이 자리에서 B씨에게 욕설 등 폭언했고 유리잔을 던지는 등 행패 부렸다. 그는 교육부 감사에 적발돼 경징계 처분을 받았다. 대학원생 제자를 수년간 폭행하며 인분을 먹이거나 A4용지 8만장 분량의 스캔을 요구한 일부 교수의 갑질 행태 탓에 국민적 공분이 커졌지만, 학교 현장에는 여전히 대학원생을 노예처럼 여기는 교수가 적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박경미 의원이 12일 교육부에서 제출받은 2017~2018년 대학 감사 결과 자료에는 유명대 소속 갑질 교수들의 민낯이 담겼다. ‘벼룩의 간’ 수준인 학생 인건비를 가로챈 교수도 많았다. 서울대 C교수는 대학 사회발전연구소가 펴내는 영문학술지 편집장을 맡으면서 석사과정 학생인 편집간사들의 인건비 일부와 인쇄 지원금 등에서 ‘편집장 수당’ 명목으로 매달 45만원씩 본인 통장에 보내도록 했다. 이렇게 가로챈 금액은 1170만원이었다. 그는 자신이 참여한 학내 연구 프로젝트에서 보조원 역할을 맡은 학생의 인건비도 가로채 개인 용도로 썼다. 이 돈으로 자신의 SUV 차량의 자동차 보험을 갱신했고 자택 공기청정기와 가족들의 선불 휴대전화도 샀다. 손목시계를 고치는데도 썼다. 그가 사적으로 쓴 돈은 모두 99건에 333만 8120원이었다. 중앙대 D교수도 최근 6년간 자신의 연구에 참여한 학생에게 지급된 인건비와 연구수당, 장학금 등을 빼돌려 사적으로 쓰는 등 모두 3억 4204만여원을 사적으로 사용했다. 한양대 E교수도 2012년부터 5년간 석·박사 과정의 학생 연구원 21명에게 돌아가야 할 인건비와 출장비 중 3735만원을 개인 용도로 썼다. 이같은 교수 갑질은 대학 사회 도처에 퍼져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5년 대학원생 190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해 정리한 ‘대학원생 연구환경에 대한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 중 19.5%는 ‘교수의 개인적 업무를 지시받고도 이를 거부하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또 34.5%는 ‘교수 공동연구나 프로젝트 수행으로 인해 학업에 지장을 받고 있다고 답했다. 박 의원은 “갑질은 단순히 잘못된 문화가 아닌 범죄”라면서 “교육부가 철저한 실태조사와 엄정한 처벌해야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판빙빙 어디에? 장웨이제 실종 사건 수면 위로..“20년째 증발 상태”

    판빙빙 어디에? 장웨이제 실종 사건 수면 위로..“20년째 증발 상태”

    중국 배우 판빙빙의 행방이 3개월째 묘연한 가운데 장웨이제 실종 사건이 재조명 되고 있다. 판빙빙의 탈세 의혹은 중국 공영 방송의 토크쇼 진행자였던 추이융위안(崔永元)의 인터넷 폭로로 불거졌다. 지난 6월 당시 추이융위안은 “판빙빙이 이중계약서를 작성해 영화 촬영 4일 만에 6000위안을 받았다”고 주장했고 중국 당국은 판빙빙을 가택연금 한 상태로 탈세 혐의를 조사했다. 이후 판빙빙은 3개월 간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SNS 활동까지 중단하면서 자취를 감췄다. 촬영을 마친 드라마와 영화의 개봉은 모두 미뤄졌다. 이어 지난 7일 대만 ET투데이는 베이징의 고위급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판빙빙이 현재 감금된 채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 상태가 참혹하다”고 보도했다. 또 중화 매체 봉황망은 판빙빙의 사무실을 방문한 결과 사무실은 비어 있었고, 사무실 안에 모든 서류들 역시 치워진 상태였다고 보도했다. 판빙빙의 사무실이 있던 곳으로 알려진 ‘국가디지털영화산업단지’ 2층에는 수십 개의 영화사가 들어서 있으며, 판빙빙은 3개 사무실을 공유해 다른 영화사들보다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현재 여러 보도들이 쏟아지면서 망명설부터 파혼, 감금, 사망, 성노예설까지 온갖 추측들이 난무하고 있다. 한편 다롄TV 유명 여성앵커 장웨이제 실종 사건을 언급하며 판빙빙도 같은 일이 벌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장웨이제는 당시 정치인과 내연관계였으며 임신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1998년 실종된 후 현재까지 행적이 불분명하다. 이후 인체의 신비 전에 전시된 임산부 시신이 그녀일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 제기되며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안긴 바 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열린세상] 전복의 길목에서 협치를 생각하다/조성대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

    [열린세상] 전복의 길목에서 협치를 생각하다/조성대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

    지난 7월 말 청와대는 적절한 자리에 적절한 인물이면 ‘협치 내각’을 구성할 의사가 있다며 야당에도 입각의 기회를 주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여야 간의 공방이 가팔라지며 청와대는 결국 한 달 만에 협치 내각안을 철회하고 ‘나 홀로 개각’을 단행했다. 여야 간의 대치가 격하다. 이대로면 8월 청와대 회동에서 대통령과 여야 대표가 합의한 여·야·정 상설협의체의 11월 출범도 아슬아슬하다. 왜 상황이 협력에서 전복으로 반전된 것일까?거버넌스(governance)의 번역어인 협치는 시민들의 직접 참여를 포함한 정치권의 합의정치를 지칭한다. 직접민주주의가 대의민주주의로 대체된 이래 시민들은 루소가 날카롭게 지적했듯이 선거일에만 주인이 되고 나머지 날들은 노예의 삶을 산다. 협치는 이렇게 배제된 시민들을 정치의 장으로 다시 불러들이는 일이다. 대통령발 개헌안에 있던 국민발안이나 국민소환 제도는 시민이 대의제에 자극을 줄 수 있는 협치의 한 유형이다. 원전이나 대학 입시 분야에서 시도됐던 공론화위원회 실험은 제도의 실효성에 대한 논란에도 한발 더 나아간 협치 유형이다. 나아가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 추첨에 의한 선발, 숙의를 통한 결정을 추구하는 시민의회의 구상은 현실성 부족에도 협치의 이상적 모형이라 할 만하다. 한마디로 시민들로 하여금 참여하고 결정하게 하라는 것이 바로 협치다. 그런데 정치권으로 흘러들어간 협치는 모양이 다소 변형됐다. 시민의 참여는 사라지고 정당들만의 연합에 의한 정치로 의미가 좁혀졌다. 그들만의 리그라는 비판은 잠시 제쳐 두자. 이런 협치도 권장할 만하다. 130석의 다수당이 홀로 핏대 세우기보다 여러 정당이 모여 180석의 합의를 만든다면 타협이든 담합이든 더 바람직하다. 더 다양한 사회적 이해의 연대, 더 많은 국민 목소리의 반영, 더 큰 다수에 의한 더 많은 민주주의에 맞닿아 있다. 문제는 우리의 정치제도가 연합정치의 선순환을 힘들게 한다는 데 있다. 우선 대통령과 행정부는 승자 독식 기구다. 대통령에 당선되면 모든 행정 부처에 대한 통제권을 지닌다. 따라서 야당은 대통령에게 장관 몇 자리를 구하느니 다음 대선에서 정권을 탈환해 행정부를 독차지하자는 유혹을 뿌리치기 어렵다. 정당 체계는 더 문제다. 양당제에서 협치는 불가능하다. 승리한 당이 권력을 독점하는 제로섬게임이 기본 원리로 작용한다. 한국 정치도 기본적으로 양당제적 구심력이 강하다. 정책 결정에 180석을 요구하는 국회선진화법은 현실적 장애물이다. 야당의 입장에서 확실한 전리품 없이 여당이 주도하는 180석에 동참하는 짓은 손해 보는 장사다. 한국 정치에서 협치는 대통령과 집권당의 진정성보다 야당이 얼마나 유인을 느끼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그런데 자유한국당의 입장에서는 일고의 가치도 없다. 차기 대선에서 정권 교체가 줄 혜택이 더 크고, 따라서 협력과 전복의 갈림길에서 전복을 택한다. ‘한 놈만 팬다’며 소득주도성장론을 세금중독성장론이라고 죽어라고 패대는 이유다. 바른미래당에게도 집권당의 들러리를 서느니 보수 통합 이후의 권력 교체가 더 매력적이다. 그래서 내년 정계 개편을 바라보며 자유한국당과 보조를 맞춘다. 남은 것은 민주평화당과 정의당이 참여하는 이른바 개혁입법연대이지만, 다 합쳐 봐야 국회선진화법의 장벽을 넘지 못한다. 그 시도도 ‘편 가르기 정치한다’는 뭇매질을 견뎌야 한다. 정부와 여당으로서는 난감한 상황일 수밖에 없다. 결국 정치 개혁에서 희망을 찾아야 한다. 정치를 제로섬게임이 아닌 협력게임으로 만드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국회의원 연동형 비례제의 도입은 정당이 정계 개편에 숨죽일 필요 없이 자연스레 연합에 참여할 동인을 부여한다. 그 자체로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가 정치권 내에 반영된다. 여기에 대통령 결선투표제는 결선투표를 앞두고 정당 연합에 의한 공동정부를 유인하는 효과가 있다. 즉 온건한 다당제에서 대통령과 여러 정당이 공동정부를 구성해 더 큰 다수에 의한 정치를 실험해 보자는 것이다. 하나 더 덧붙이자면 시민공론화위원회를 일상화해 협치의 범위를 시민사회로까지 확대했으면 한다. 연대하는 정치, 시민 있는 정치를 바란다.
  • 스페인, 성매매 노조 승인 번복… ‘매춘 합법화’ 논란 재점화

    스페인, 성매매 노조 승인 번복… ‘매춘 합법화’ 논란 재점화

    노동부 오락가락 입장… 소송전 불가피 산체스 총리 “성매매 폐지 지지” 쐐기 스페인 정부가 성매매 종사자 노조 설립을 승인한 뒤 한 달 만에 이를 취소하기로 하자 매춘 합법화를 둘러싼 논란이 다시 불붙었다. 지난 6월 여성 인권 향상을 주요 과제로 내걸고 집권한 사회노동당 정부는 뒤늦게 성매매에 반대한다며 노조 설립을 취소하겠다고 밝혔지만 그동안 정부 내부에서조차 성매매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정립하지 못해 혼선을 빚은 것이 아니냐는 눈총을 받고 있다. 2일(현지시간) AFP통신에 따르면 스페인 노동부는 지난달 4일 관보를 통해 성매매종사자노동조합(OTRAS) 설립을 승인했다고 고시했다. 이에 따라 사회노동당 정부가 그동안 음지에 있었던 성매매를 양지로 끌어올려 합법화하기로 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다. 스페인에는 현재 성매매를 규율하는 법률이 없으며, 공공장소에서 성매매가 이뤄지거나 인신매매 등 범죄와 관련이 없는 한 당국이 매춘 행위를 단속하지 않고 묵인해왔다. 하지만 여성인 막달레나 발레리오 노동부 장관은 지난달 30일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성매매 노조 설립 신고에 기술적 문제는 없지만 노동부가 이 같은 노조를 승인했다는 소식을 뒤늦게 알고 충격을 받았다”면서 “나는 장관으로서 이 같은 승인을 내린 적이 없으며 (관료들에게) 속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성매매는 여성과 남성이 경제적 궁핍 등 문제로 타인에게 자신의 신체를 제공하면서 기본권을 어기는 불법행위”라고 규정했다. 하지만 노동부의 이같이 오락가락한 입장을 두고 정부가 성매매 노조 승인 결정을 성급하게 내렸다가 여성계의 반발이 거세지자 이를 철회한 뒤 혼선의 책임을 일부 관료들에게 전가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논란이 불거지자 페드로 산체스 총리는 이날 트위터를 통해 “우리 내각은 ‘페미니스트 내각’이며 불법 조직은 지지하지 않는다”면서 “성매매 폐지를 지지한다”고 쐐기를 박았다. 지난 6월 산체스 총리는 정부를 구성하면서 각료 18명 가운데 11명을 여성으로 채우는 파격 인사를 단행했었다. 스페인 정부는 이에 따라 이미 승인한 성매매종사자노조 설립 취소를 우선 추진할 계획이다. 다만 이미 정부가 설립을 승인했기 때문에 노조 측과 소송전이 불가피하다. 콘차 보렐 성매매노조 사무총장은 지난달 31일 “성매매 종사자들도 다른 국민들처럼 노동권을 보장받아야 한다”면서 “성매매를 철폐한다는 발상은 페미니즘의 장막 뒤에 숨어 궁핍한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럽 국가 가운데 네덜란드와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에서는 성매매가 합법화돼 있다. 여성운동가 마리사 솔레토는 이에 대해 “매춘은 직업이 아니며 여성을 노예화하고 남녀를 불평등한 상황에 고착시키는 행위”라고 반박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외교부 첫 1인 시위’ 김복동 할머니 “위안부 할머니 팔아 월급 받다니…”

    ‘외교부 첫 1인 시위’ 김복동 할머니 “위안부 할머니 팔아 월급 받다니…”

    일본군 성노예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이하 정의연)가 3일부터 9월 한 달간 서울 종로구 외교통상부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에 들어갔다. 비가 오는 이날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92) 할머니가 우비를 입고 휠체어를 탄 채 1인시위 첫 주자로 나섰다. 암으로 투병 중인 김 할머니는 닷새 전 수술을 받았다.그는 “제가 누워있으려니 속이 상해 죽겠는 기라. 아물 말이라도 한마디 해야겠다 싶어 나왔습니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 “어떻게 일가친척도 아니고 팔촌도 아닌 사람들이 얼굴도 모르고, 우리 보러 오지도 않은 사람들이 할머니들 팔아서 그 돈으로 자기들 월급 받는 것이 참 우습다”며 “전 세계 돌아다녀도 우리 같은 나라는 없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위로금을 받으려고 이때까지 싸웠느냐. 위로금을 1000억 원을 준다 해도 우리는 받을 수 없다”며 “우리가 돌려보내라고 했으면 적당히 돌려보내야 할 텐데 정부는 ‘해결해준다.’고 해놓고 아직도 해주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화해·치유 재단은 2015년 한·일 합의에 따라 일본이 출연한 10억 엔(약 100억원)으로 설립됐으나 합의에 대한 논란과 함께 10억 엔 반환과 재단 해산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현재 사실상 기능이 중단된 상태다.김 할머니는 일본 언론에서도 취재를 나왔느냐고 물어본 뒤 아사히 신문 특파원에게 “일본 정부가 과거 식민지 시대에 저지른 잘못을 뉘우치라는 이야기를 늙은 김복동이가 하더라고 신문에 내서 아베 (총리) 귀에 들어가게 해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나는 비참한 식민지 시대를 겪었지만, 아베는 말로만 들었지 겪어보지 못했다”며 “버틸 걸 버텨야지 자기네들은 무조건 안 했다, 우리는 모른다고 할 게 아니라 아베가 나서서 해결 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연합뉴스가 전했다. 김 할머니는 아베 총리를 언급하며 “대담하게 나와달라. 자신들이 했다는 발표만 해달라. 어려운 일이 아니다”며 “과거에 행한 일이 잘못된 일이라고 용서해달라고 하면 우리도 해 줄 수 있다”고 재차 사과를 촉구했다. 거동이 불편한 김 할머니는 빗속에서 30여 분간 외교부 청사 앞을 지키다 발길을 돌렸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남북한 시인 203명의 간절함… 詩는 이미 통일을 마중나갔다

    남북한 시인 203명의 간절함… 詩는 이미 통일을 마중나갔다

    “판문각 문이 열리자/한반도에 봄바람이 불었다/움츠린 생명들이 눈을 떴다/순간, 군사분계선은 푸른 옷을 입었다/오른손과 왼손이 하나의 손이 되었다/마주 잡은 손은 한라산 백록담에 꽃소식을 알렸다/중략/두 정상이 걸었던 그 다리/남북에 8000만개의 도보다리를 만들자/누구나 그 길을 걸으며/오늘을 이야기하자, 내일을 이야기하자.”(김희정 ‘도보다리- 4·27 남북정상회담에 부쳐’ 중) 남북한 시인이 통일에 대한 염원을 담아 함께 펴낸 시집 ‘도보다리에서 울다 웃다’(작가)가 출간됐다. 민족작가연합이 4·27 판문점 선언과 광복절 73주년을 기념해 남북한 시인, 비전향 장기수, 해외동포 시인 등 203명의 통일시를 모았다. 김준태, 이동순, 김승희, 김정란, 박라연, 신현림 등 남한 시인 151명과 최국진, 김영일, 김태룡 등 북한 시인 8명, 비전향 장기수 17명, 재일 조선인 12명, 해외동포 시인 14명, 해외 시인 1명과 더불어 신학철, 김봉준, 박방영 등 미술인 11명이 참여했다. 사용하는 언어의 모습은 약간 다르지만 분단의 장벽을 허물고 하나 되길 바라는 마음은 북한 시인들 역시 간절했다. 북한 시인들의 작품은 4·27 판문점 선언을 전후로 북한 신문 ‘통일신보’와 개인 시집을 통해 발표된 작품을 게재했다. “피줄을 따라 내뻗치는 불물인가/환희의 열기로 겨레의 가슴 달아오르고/분렬의 중압에 짓눌렸던 이 강토/드디여 활개를 펴고 머리를 치여드나니/아, 민족사가 맞이한 이 격동 이 감격.”(김태룡 ‘판문점의 신호총성’ 중) “일떠서라 겨레여/노예의 쇠사슬 끊어내치고/해방의 노래 부른 8·15처럼/분렬의 장벽 허물어버리고/통일의 노래 부를 8·15를 마중가자//오, 백두에서 한나까지 통일만세 울려갈/그날로 겨레를 떠밀어주며/8월은 뜨겁게 달아오른다/삼천리가 용암처럼 끓어오른다.”(김태룡 ‘통일의 8·15를 마중가자’ 중) 민족작가연합은 “4·27 판문점 선언의 이행으로 우리 민족의 꿈과 희망이 기다리는 시대, 희망찬 미래의 민족번영을 위해 우리 모두가 아낌없이 통일의 수호자가 되기를 간절히 노래하고 있다”면서 “이번 시집이 평화의 철길을 힘차게 달리는 기관차가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곽민수의 고대 이집트 역사기행] 낯선 이들에게도 박하지만은 않았던 고대 이집트인들

    [곽민수의 고대 이집트 역사기행] 낯선 이들에게도 박하지만은 않았던 고대 이집트인들

    낯선 이들에게 경계심을 갖는 것은 누구에게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나의 영역으로 다가오는 나와 다른 모습을 한 이들에게 배타성을 드러내는 것은 지극히 본능적인 반응이라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최근에 있었던 대규모의 외래인 유입에 대해 꽤 많은 수의 시민들이 우려를 표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사회적 문제로까지 확대되는 난민 문제는 대체로 최소한 수만 명 단위의 인구 유입과 관련된 만큼 겨우 500여명 정도의 난민을 ‘대규모’라고 하는 것이 조금 어색하기는 하지만, 겨우 수백 명 단위라고 하더라도 처음 겪는 외래인의 집단적 유입에 불쾌감과 공포심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을 갖게 되는 건 이해할 만하다.이런 배타적인 태도가 본능적이라 하더라도 이를 극복할 수 없는 것은 또 아니다. 본능은 인간의 실천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기제이지만, ‘인간다운 모습’이라고 할 만한 것들은 대부분 이 본능을 인위적으로 극복한 결과물이다. 인류 문명사는 동물적 본능과 그 본능을 넘어서는 가치 사이에서 방황하고 갈등하는 인간들이 만들어 내는 드라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이집트적인 것을 ‘우주적 질서’로 여기고 이를 토대로 외국인들을 평가했다. 그런 그들에게 자신과 다른 이들에 대한 경계와 거기에서 더 나아간 혐오는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집트인들은 이 경계의 본능을 어느 정도는 극복한 ‘인간다운’ 사람들이기도 했다. 그들은 외국인들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경계했지만, 일단 이집트로 이주해 온 외국인들에 대해서는 그리 배타적이지 않았다. 이집트인들은 스스로를 ‘나일강의 물을 마시는 사람들’이라고 규정했는데, 이는 ‘이집트인’이라는 집단 정체성이 생김새나 출신 지역보다는 ‘지금 같은 곳에서 함께 살아가는 것’과 더 관계가 깊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집트 중부 베니하산의 중왕국 시대 지역 태수였던 크눔호테프의 무덤 벽화에는 가족들을 이끌고 이집트로 들어오는 서아시아인들이 그려져 있다. 무덤의 주인은 자신이 그들을 환영했다는 사실을 뿌듯해하며 무덤 속에 기록으로 남긴 것이다. 이집트에서는 이집트로 이주해 오는 외국인들을 따뜻하게 맞이하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졌을 뿐만 아니라 외국 출신의 이민자가 사회의 최상위 계층에까지 이른 사례들도 확인된다. 구약성경 속의 요셉이라는 인물은 노예로 팔려 온 미천한 신분이었지만 능력을 인정받아 이집트 제2의 권력자인 총리가 된다. 널리 알려진 이 이야기가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해서 쓰인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지만, 비슷한 사례들을 역사 속에서 찾을 수는 있다. 예컨대 누비아 출신이었고, 아마도 보통의 이집트인들과는 생김새가 완전히 다른 흑인이었을 가능성이 큰 마이헤르프리는 파라오들만 묻힐 수 있었던 왕들의 계곡에 무덤을 만들 수 있는 특권을 받았다. ‘엘(El)의 하인’이라는 다분히 서아시아적인 이름을 갖고 있어서 그 지역 출신이거나 그 지역에서 이주해 온 가문 출신으로 여겨지는 아페르엘은 성경 속 요셉과 비슷하게 18왕조 시대 아멘호테프 3세의 치하에서 총리의 지위에까지 오른다. 비슷한 시기의 인물인 유야도 이름과 미라의 해부학적 특징을 근거로 할 때 오늘날 시리아 북부에 있었던 미탄니 출신일 가능성이 큰데, 그 역시도 굉장한 고위직에 올랐을뿐더러 그의 딸 티예는 아멘호테프 3세의 왕비가 되기도 했다. 국무총리 무함마드 살라흐, 기획재정부 장관 킬리앙 음바페, 교육부 장관 루카 모드리치, 과학기술부 장관 앨런 스미스 같은 내각 목록이 지금이야 한없이 어색하고 또 한편으로는 거부감이 들기도 하겠지만, 언젠가는 이곳 대한민국에서 그런 내각을 볼 수 있게 되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유럽 음식에 새겨진 이슬람의 흔적들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유럽 음식에 새겨진 이슬람의 흔적들

    서양 음식사에서 가장 극적인 사건은 언제였을까. 단골로 언급되는 순간은 1492년, 바로 신대륙이 발견된 해다. 미국의 역사학자 알프레드 크로즈비는 당시 벌어진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 간 인적, 물적 교류를 두고 ‘콜럼버스의 교환’이라 이름 붙였다. 말이 좋아 교환이지 실제로는 일방적인 수탈에 가까웠지만 어쨌든 유럽 세계와 신대륙의 문화적 충돌 이후 세계 식문화 지형도는 크게 변했다. 유럽, 그러니까 구대륙에서는 구경도 하지 못했던 토마토, 감자, 옥수수, 고추 등 신대륙의 작물이 유입됐고 이들은 이내 유럽인의 식탁을 점령했다.‘콜럼버스의 교환’은 문화 간 충돌이 대개 비극을 초래하기도 하지만 식문화의 관점에서만 보면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는 순간일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기후의 영향을 덜 받고 비교적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구황작물인 감자와 옥수수로 인해 유럽은 만성적 기근을 버틸 수 있는 길이 열렸고, 고추나 토마토 같은 작물은 식단의 다양성을 증가시키는 데 큰 몫을 했다. 피멘톤이라 불리는 고추는 포르투갈과 스페인 음식에서 빠지지 않는 재료 중 하나며 남미가 고향인 토마토는 비록 스페인 사람들이 처음 먹기 시작했지만 이제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존재가 됐다.신대륙 발견 말고도 식문화의 극적인 순간은 또 있었다. 두 문화 간의 뿌리 깊은 반목의 역사로 인해 자주 간과되는, 바로 기독교와 이슬람 문화의 충돌이다. 기독교 문화권으로 대표되는 유럽 음식의 근원을 찾다 보면 많은 부분이 이슬람 식문화와 연관이 있음을 종종 목도하게 된다. 유럽의 전통 음식 중 튀기는 요리, 달콤한 디저트, 증류한 술, 견과류와 말린 과일을 이용한 음식 그리고 형형색색 음식에 물을 들여 시각적인 효과를 주는 음식 등은 대부분 이슬람 문화에 빚을 지고 있다. 유럽에서 이슬람 문화의 흔적이 가장 깊게 새겨져 있는 곳은 이베리아반도와 이탈리아의 남쪽 섬 시칠리아다. 시칠리아는 약 200년, 이베리아반도는 무려 780년 동안 무슬림의 지배하에 있었다. 그런데 왜 하필 이 두 지역이었을까. 이유는 지도를 보면 알 수 있다. 두 지역은 유럽에서 북아프리카와 가장 가까운 곳이다. 무슬림들의 안마당이었던 북아프리카와 가깝다는 건 쉽게 건너갈 수 있었다는 것과 동시에 기후도 비슷하다는 의미도 된다.한국인이 외국에 정착해 살면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김치를 담그는 것이다. 배추와 고추가 있으면 좋으련만 없으면 직접 심고 키워야 한다. 낯선 땅을 점령한 무슬림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고향의 뜨겁고 건조한 기후와 비슷한 그곳에 그들이 먹는 작물을 심었다. 대표적인 것이 레몬과 오렌지, 가지, 아몬드, 대추야자, 쌀 등이다. 이베리아반도와 시칠리아 두 지역의 식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재료들이다. 스페인 발렌시아가 쌀로 만든 요리인 파에야와 오렌지로, 이탈리아의 시칠리아가 레몬과 아몬드로 유명한 건 이 때문이다. 이슬람 문화는 두 지역의 식문화에도 영향을 끼쳤다. 숨이 멎을 정도로 달콤한 디저트 문화는 무슬림이 남겨준 대표적인 유산 중 하나다. 달콤함에서 오는 쾌락을 죄악으로 여기던 기독교와 달리 이슬람 문화에서 달콤함은 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하나의 목표였다. 음식 역사학자 레이첼 로던은 무슬림을 두고 ‘현세의 쾌락을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지 않고 오히려 낙원에서 누릴 기쁨의 예시로 여겼다’고 설명한다. 과일과 벌꿀에서 달콤함을 얻은 기독교인들과 달리 무슬림들은 사탕수수에서 뽑아낸 설탕을 가공해 갖가지 디저트를 만들었다. 단맛에 눈뜬 유럽인들이 훗날 아프리카 노예를 동원해 신대륙에서 대규모 사탕수수 재배를 시작했고, 이를 계기로 인류가 ‘인권’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됐다는 걸 당시의 무슬림은 짐작이나 했을까. 무슬림이 남긴 또 하나의 유산은 증류기술이다. 증류는 무슬림들이 선호하는 향수나 의약품을 만들기 위해 사용됐다. 무슬림의 증류기술을 알게 된 유럽의 연금술사들은 액체를 증류해 새로운 물질을 만드는 데 열정을 다했다. 이런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 ‘생명의 물’로 불리는 독한 증류주였다. 지금이야 유흥을 위해 독한 술을 즐기지만 당시에는 다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기 위한 진귀한 약이었다. 위스키, 보드카, 테킬라, 코냑 등 오늘날 애주가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증류주는 아이러니하게도 술을 마시는 걸 율법으로 금한 무슬림의 기술과 연금술사의 황금을 향한 열정이 빚어낸 산물인 셈이다. 이 역시 무슬림들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말이다.
  • 국가배상 소송에 패소한 ‘신안 염전노예’ 피해자에 소송비 감면

    국가배상 소송에 패소한 ‘신안 염전노예’ 피해자에 소송비 감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가 1심에서 패소한 ‘전남 신안 염전노예 사건’ 피해자들이 물어야 할 상대 측 변호사 보수액을 75% 삭감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앞서 2015년 11월 전남 신안군 신의면 염전에서 노동력을 착취당한 장애인 8명은 정부와 신안군, 완도군을 상대로 “국가가 고의 또는 과실로 경찰권 및 사업장 감독권을 행사하지 않았고, 신안군과 완도군은 보호 의무를 충분히 이행하지 않았다”면서 “각각 3000만원씩 총 2억 4000만원을 배상하라”며 소송을 제기했다.2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 민사40부(부장 이종석)는 “변호사 보수의 소송비용산입에 관한 규칙에 의한 산정액 전부를 소송비용으로 인정하여 피신청인들에게 상환을 명하는 것은 공정이나 형평의 이념에 반하는 경우라고 판단한다”면서 “피신청인들의 감액 주장을 받아들여 본안 소송의 변호사보수액을 4분의 1로 감액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로 신안 염전노예 사건 피해자 7명이 개인별로 상환해야 할 소송 비용은 90만 4660원(총 723만 2625원)에서 22만 9660원(총 183만 2625원)으로 낮아졌다. 앞서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42부(부장 김한성)는 박모씨를 제외한 7명에 대해 지난해 9월 “공무원의 고의나 과실에 의한 위법한 공무집행이 있었다는 점을 구체적으로 주장하지 않거나 충분한 증거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후 변호인은 대한민국 정부와 완도군에 항소했지만 입증할 증거를 모으는 것이 어려워 신안군에 대한 항소를 포기했다. 그러자 신안군은 지난 3월 법원에 소송 비용 확정 신청을 청구했고, 서울지법 민사6부는 지난 5월 24일 피신청인들이 신청인에게 상환해야 할 소송비용이 각 90만 4660원이라고 확정했다. 이에 변호인은 항고했고 2심에서 22만 9660원으로 감면됐다. 신안 염전노예 사건의 법률대리인인 최정규 원곡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저희가 주장한 감액 이유 가운데 하나는 사익을 위한 소송이 아닌 공익소송이라는 점이었다”면서 “국가를 상대로 한 공익소송에서 패소한 사회적 약자들에게 청구된 과도한 소송 비용은 큰 제약으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이어 “2심 재판부가 공익소송이라는 점을 명시한 것은 아니지만, 이례적으로 소송 비용을 75%나 감면해준 판결”이라면서 “공익 소송에서 이 판결을 선례로 삼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의미를 설명했다.신안 염전노예 사건은 2014년 1월 신안군 염전에 감금돼 노동력 착취와 감금·폭행 등으로 혹사당하던 장애인 2명이 극적으로 구출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이후 정부는 민·관 합동 전수조사에 나서 63명의 염전노예 피해자가 발견됐고, 한국의 NGO가 유엔에 폭로하여 국제적인 문제가 되기도 했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IS 성노예’였던 난민 소녀, 독일서 IS 전투원과 ‘악몽의 재회’

    ‘IS 성노예’였던 난민 소녀, 독일서 IS 전투원과 ‘악몽의 재회’

    이슬람국가(IS)에 납치돼 성노예로 지내다 탈출한 뒤 가족과 독일로 넘어가 난민이 됐던 야지디족 10대 소녀가 길거리에서 과거 자신을 가두고 성적으로 학대했던 IS 전투원에게 발각돼 신변의 위협을 느껴 이라크로 되돌아간 사실이 전해졌다. 영국 더 타임스 등 주요 외신은 16일(현지시간) 쿠르드계 이라크 매체 바스뉴스를 인용해 최근 독일 남부 슈투트가르트에 있는 난민 캠프에서 머물던 한 야지디족 난민 소녀가 IS 출신 남성을 피해 이라크 북부 쿠르드 자치지역 쿠르디스탄으로 돌아간 사연을 전했다. 아쉬왁 하지라는 이름의 이 소녀는 4년 전인 2014년 8월, 이라크 북부로 진격한 IS에 의해 납치된 수천 명의 쿠르드족·야지디족 중 한 명이었다. 당시 15세였던 아쉬왁 하지는 가족과 함께 납치됐지만, 아부 후맘이라는 이름의 한 남성에게 100달러(약 11만원) 팔려 약 3개월 동안 이라크 북부와 시리아 지역에서 지냈다. 하지는 함께 팔려온 다른 소녀들과 함께 이 남성에게 거의 매일 밤 성적으로 학대를 받으며 이슬람교로 개종할 것을 강요받았다. 3개월쯤 지났을 무렵, 하지는 다른 소녀들과 함께 몰래 아부 후맘의 휴대전화를 빼돌렸고 자신의 오빠에게 극적으로 연락할 수 있었다. 오빠는 이들 소녀가 탈출할 수 있도록 한 가지 묘안을 떠올렸다. 소녀들은 그의 계획에 따라 신체 이곳저곳을 손톱으로 긁어 상처를 낸 다음 피부병에 걸렸다고 거짓말했다. 이에 따라 병원에 간 소녀들 중 한 명이 수면제를 하나 입수할 수 있었다. 이후 소녀들은 남성의 음식을 준비할 때 수면제를 탔고 남성이 잠이 든 틈을 타 탈출에 성공할 수 있었다. 하지는 이후 가족과 만났고 6개월 동안 이라크에 머물다 함께 독일로 넘어가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그녀는 슈투트가르트에서 살면서 노예 생활 중 생긴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완화하는 인도적 지원 프로그램을 받았고 슈퍼마켓에 취직해 일도 했다. 하지는 어느 날 누군가에게 미행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던 지난 2월 일을 마치고 집이 있는 난민 캠프를 향해 가던 중 한 남성이 차에서 내려 자신 앞을 가로막았다는 것이다. 하지는 “지난 2월 21일, 누군가가 나를 가로막았다. 그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봤을 때 몸이 굳고 말았다”면서 “날 감금했던 아부 후맘과 똑같이 무서운 턱수염과 못 생긴 얼굴을 하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그가 내게 독일어로 ‘너, 아쉬왁이지?’라고 추궁했을 때 난 곧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소녀는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에게 위험이 미칠 것을 두려워했다. 탈출 후 가족 대부분과 재회했지만 4명의 오빠는 여전히 행방 불명이며 언니 1명은 아직도 IS에 납치된 채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는 독일에서 남성에게 가던 길을 저지당했을 때 다른 사람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남성은 집요하게 따졌다. 그는 “아니, 넌 아쉬왁이 맞다. 난 잘 안다”면서 “내가 바로 모술에서 잠시 함께 있었던 아부 후맘”이라고 말했다. 이어 “네가 지금 어디서 누구와 살고 무엇을 하는지도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는 그 자리에서 도망쳐 남성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근처 시장에 몸을 숨겼다. 귀가 후 오빠에게 연락해 자초 지종을 말하고 다음날에는 난민 캠프 관리자에게 사실을 알렸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CCTV 영상에서 남성의 신원을 파악했다. 남성은 이라크 바그다드 출신으로 본명은 무하마드 라시드였다. 하지만 경찰은 이 남성 역시 난민 지위를 받은 상태이고 소녀에게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므로 해줄 수 있는 일이 거의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하지는 “경찰은 해당 남성도 나처럼 난민이므로 지금은 대응할 수 없다고 말했다. 만일 또 남성에게 저지당하면 여기로 연락하면 된다는 말과 함께 전화번호 하나를 건네줬을 뿐”이라면서 “문제는 남성은 물론 그의 일부 가족이 독일 안에 살고 있어 나는 물론 내 가족이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에 독일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다시는 독일에 가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슈투트가르트 지역을 관할하는 바덴뷔르템베르크주 경찰은 외신들의 코멘트 요구에 어떤 답변도 내놓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트위터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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