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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명의 보복/김홍명(굄돌)

    한때 유명한 정신분석의 프로이트는 말했다. 문명과 인간의 본능 사이에는 화해할 수 없는 갈등이 있다고 인간은 문명을 발달시키면서 온갖 문명의 이기를 즐길 수 있었다.이처럼 향락에 중독되어 더욱 더 향락을 확대하려고 노력하는 동안 인간의 본성은 그만큼 억압되고 내면에 갇히게 된다.마침내는 본능을 더욱 증대하려는 욕구가 원래의 본능 그것과 충돌하고,언젠가는 인간이란 본능이 제거된 식물로,아니면 인간억압적인 문명이 폭파되는 선택의 벽에 부딪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프로이트가 보았던 문명은 그 한 단계일 뿐인 자본제사회 그것이었다.봉건제사회에서는 자급자족적인 자연경제가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문명과 본능의 대립은 일정수준에서 안정을 이룰수 있었다.자본제사회에 들어오면서 인간의 본능은 인위적욕구의 혁명적 증대가 생산력의 비약적인 발전에 근거해서 가능하게 되었다. 인간이 자본축적에 정신을 잃게 되었을 때,자본은 인간을 자신의 노예로 소유할 수 있게 되었다.인간의 본능은 이제 자본의 본능,즉 자본의 논리로 전화된 셈이다. 그 하나의 예로 우리 주변의 자동차 홍수를 들수 있다.과거에 자동차는 우리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미국군용트럭을 따라다니며 휘발유 냄새를 맡기도 했을 만큼 우리의 환경은 이 엄청난 괴물의 후과(후과)를 느낄 수 없었다.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우리 주위에는 수많은 교통사고를 당한 사람들로 가득차 있다.좁은 골목마다 그나마 비좁은 길의 주차때문에 온갖 시비로 시끄럽다.자동차의 공해로 공기와 물이 죽음의 길로 우리를 인도한다.벌써 6백만대가 넘었다니 기름 한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이래도 되는가 싶다. 그러나 산업구조의 15%가 이미 자동차산업에 연계되었다.자동차산업 없이는 우리 경제는 있을 수 없다는 얘기이다. 좁은 땅덩어리 한국에서 더욱 가열차게 인간의 본능을 겨냥한 방아쇠를 당기고 있는 자동차를 찾아 헤매는 데서 문명의 보복이 두드러진다.
  • 일제징용 한인/유엔서 첫 증언

    【도쿄 연합】 일제에 의해 강제징용당했던 재일동포 유희선씨(74·오사카부문진시 거주)와 원폭피해자 이실근씨(64·히로시마시)가 오는 25일부터 5월4일까지 제네바에서 열리는 유엔 인권위에서 처음으로 피해상황을 증언한다. 인권위 현대판 노예제 분과위에서 있을 증언에 앞서 유씨는 이날 오사카 시내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일본 정부는 보상은 커녕 사죄도 하지 않고 있으며 일본의 사법부에서도 보상은 기대할수 없다』며 『수십만명에 이르는 강제징용피해자들을 대표해 유엔에 원통함을 호소하고 일본 정부의 책임을 국제적으로 재판해주도록 호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 전 이대생 3명/뉴스위크사에 승소

    ◎”「돈의 노예」 보도는 명백한 초상권 침해”/항소심서 원고에 2천만원씩 배상 판결” 지난 91년11월 「돈의 노예들,이화여대생」이라는 제목과 함께 사진을 실은 미국 시사잡지사 「뉴스위크사」가 사진속의 당시 여대생들에게 손해배상을 하게 됐다. 서울민사지법 항소2부(재판장 이재곤부장판사)는 30일 당시 사진에 찍힌 권모씨(26·경영학과졸)등 3명이 뉴스위크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 항소심에서 『한국의 과소비실태에 관한 기사와 함께 원고들의 정면사진을 실은 것은 초상권침해및 명예훼손』이라면서 『원고들에게 각각 2천만원씩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번 배상액수는 1심에 비해 1천만원이 줄어들었으나 초상권침해및 명예훼손의 대가로서는 전례없이 높은 액수다.흔히 교통사고로 사망한 경우 이와 비슷한 액수를 배상하고 있는 것에 비추어 이번 판결은 대학생이던 권씨등이 느껴온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인정한 것으로 해석된다. 원고측 고승덕변호사는 이와 관련,『돈의 액수보다는 무분별한 외국언론의 횡포를 응징했다는 점에더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뉴스위크사측은 지난해 7월 1심에서 패소했으나 배상책임이 없다며 항소하고 배상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판결로 사실상 재판이 종결됨에 따라 배상을 피할 수 없게 됐다.원고측은 이미 뉴스위크사 국내대리점의 잡지대금채권에 대해 법원의 압류결정을 받아놓고 있는 상태다. 한편 뉴스위크사는 이번 판결직후 한국대리점을 통해 배상금을 지급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 불 바스티유오페라단 서울 온다

    ◎새달 12∼17일 서울 오페라극장서 「살로메」 공연/가수·합창단 등 190명에 장비만 20t/현대적 해석가미,극적인 재미 높여/피아니스트 리히터협연 등 연주회도 세번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지휘자 정명훈이 이끄는 프랑스 바스티유오페라가 처음으로 내한해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살로메」를 4월12일부터 17일까지(14일은 없음) 서울오페라극장에서 다섯차례 공연한다.또 바스티유오페라 오케스트라는 오페라공연과 별도로 우크라이나 출신 세계 정상의 피아니스트 스비아토슬라브 리히터와 한차례 협연하는등 4월17일부터 19일까지 서울음악당에서 세차례 연주회를 갖는다.특히 17일 하오2시로 예정된 「청소년음악회」는 입장권 값을 외국교향악단 초청공연으로는 파격적인 1만5천원과 1만원의 두종류로 정해 청소년들의 부담을 크게 줄였다. 예술의전당이 기획한 바스티유오페라 초청공연은 공동주최자인 대한항공이 총 비용 17억원 가운데 10억원을 흔쾌히 부담해 성사된 것.지난 1989년 바스티유오페라단으로 이름을 바꾼 이후 첫번째 해외공연이다. 「살로메」는 바스티유오페라의 올 시즌 레퍼터리로 지난 7일 바스티유극장에서 막을 내렸으며 서울공연에는 1백90명에 이르는 가수와 합창단 오케스트라 스태프는 물론 20t에 가까운 장비와 의상 소품들이 공수돼 사용된다.또 유일하게 국내에서 만들어지는 무대세트는 바스티유극장의 기술감독 미셀 미예의 지휘 아래 이미 지난 1월 제작에 들어가 현재 완성단계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살로메」의 연출자는 정명훈과 콤비를 이루어 잇따라 성공을 거두어 온 앙드레 엥겔.예수가 활동하던 서기 1세기 배경인 이 작품에 주인공이 안경을 끼고 있는가 하면 극중 인물들이 라이터를 꺼내 담배를 피우고 신문을 보는등 새로운 해석을 가하고 있다.그러나 전체적으로는 낡은 이야기로 치부되는 것을 경계하고 긴장감을 치밀하게 고조시켜 극적인 밀도를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출연진으로는 「살로메」역에 카렌 허프스토트와 스테파니 선다인이 번갈아 나서며 「요하나안」역에 필립 졸,「헤로데스」역에 니겔 더글러스,「헤로디아스」역에 엘리자베스 본,「나라봇」역에 데온 반 데어 발트등이다.특히 한국인인 베이스 김명지와 소프라노 정옥순이 「첫번째 나사렛사람」 및 「노예」역으로 각각 나설 예정이다.뉴욕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명지는 파리공연에서 호평을 받았다고 한다. 한편 피아니스트 스비아토슬라브 리히터는 18일 연주회에서 정명훈이 지휘하는 바스티유오페라 오케스트라와 모차르트의 「피아노협주곡 18번」을 협연한다.올해 78세로 「금세기에 생존해 있는 마지막 거장」으로 불리는 리히터의 이번 내한은 많은 음악애호가들에게 바스티유오페라의 내한 이상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오케스트라 연주회의 레퍼터리는 18일 리히터와의 모차르트 협연과 19일 소프라노 김영미·바리톤 고성현과의 베르디 오페라아리아 협연을 제외하면 프랑스 작곡가 일색.18일은 포레의 교향적모음곡「펠리아스와 메리장드」와 생상의 「교향곡3번」,19일은 역시 생상의 「교향곡3번」과 베를리오즈의 「로마의 사육제」이다.17일의 「청소년음악회」에서는 차이코프스키의 환상적서곡「로미오와 줄리엣」과 생상의교향곡 3번」을 연주한다.이날은 바스티유오페라오케스트라에 앞서 서울주니어오케스트라가 출연,하이든의 「교향곡 80번」을 연주하는 순서도 마련됐다.3차례 연주회에서 모두 연주될 생상의 교향곡에 나오는 오르간 부분은 윤양희가 맡는다.공연문의는 580­1114.
  • 발라뒤르총리 “우울한 취임 1주”/불 학생 임금삭감 항의시위 확산

    ◎내년 5월 대선 앞두고 인기도 급락/노동단체·학부모 가세… 사회문제화 프랑스의 신춘정국이 학생 시위로 엄청난 몸살을 겪고 있다.유력한 차기 대통령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에두아르 발라뒤르총리의 정치적 입지가 흔들거릴 정도다. 3월들어 시작된 학생시위는 전국에 대규모로 확산되고 있다.25일의 시위는 파리를 비롯한 전국의 75곳에서 21만명 이상(리베라시옹지 추산)의 학생등이 참가했다.5번째 시위 가운데 최대규모다. 파리에서 3천3백여명의 진압경찰에 맞서 학생들이 돌과 화염병을 던져 경관 48명이 부상당했고 일부 과격학생들은 은행과 상점을 파괴하기도 했다.또 낭트시에서는 사제폭탄과 보도블록을 던지면서 경찰서를 습격했으며 무기판매 상점도 약탈했다. 학생시위는 노동총동맹(CGT),민주프랑스노동동맹(CFDT)및 노동조합(FO)등 노조단체와 일부 학부모까지 합세해 더욱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68년 5월 이후 최대로 꼽히는 이번 학생시위의 도화선은 발라뒤르총리의 고용증대정책. 프랑스의 실업률은 21.2%(3백30만명)로 유럽 국가 가운데 최대이고 4분의 1이 25세 미만의 청소년이다.이를 해결하기 위해 기업이 법정 최저임금(SMIC)보다 낮은 보수를 지급할 수 있도록 허용해 고용기회를 확대하려는 것이 발라뒤르총리의 소위 고용촉진정책(CIP)이다. 프랑스는 최하 5천8백86프랑(약 82만원)의 임금을 근로자에게 주도록 법으로 정하고 있다.새 정책에 따르면 기업은 이 최저 임금의 30∼80%만 지급하게 된다.나머지를 근로자에 대한 직업훈련에 사용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20세 전후의 젊은 학생들이 이 정책에 반대하는 이유는 사실상의 임금인하를 초래한다는 점때문이다.특히 바칼로레아(BAC)라는 어려운 대학입학자격시험에 합격한뒤 2년동안 전문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기존 최저임금의 80%정도의 최저임금을 받는다는 사실에 반발하고 있다. 학생들은 CIP가 「젊은이들의 노예제도」라고 주장하면서 『CIP의 완전 철폐』를 요구하는 플래카드를 들고 거리로 뛰쳐 나온 것이다. 노조단체 역시 그들이 그동안 투쟁하면서 쟁취한 최저임금 수준이 하향조정되는 일은 있을수 없다면서 연대시위를 벌이고 있다. 시위가 확산되자 발라뒤르총리도 젊은 학생들과 대화를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27일 알려져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그러나 CIP의 시행이 「생존의 고통」이라면서 단호한 입장을 보여온 그가 자존심을 어느정도 꺾을지는 미지수이다. 「CIP 사태」를 지켜보는 프랑스 국민과 언론의 시각은 예민하고 심각하다.바로 26년전 샤를르 드골 당시대통령을 하야시킨 「68년 5월」의 악몽이 재현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때문이다. 프랑스 언론들은 68년 사태가 정치에 대한 믿음과 희망에서 비롯됐던데 비해 이번 사태는 정치에 대한 비웃음과 절망에서 나온 차이점을 지적,심상치 않게 받아들이고 있다.최근 여론조사결과 발라뒤르총리의 인기는 7%가 떨어졌다. 오는 29일이 발라뒤르총리의 취임1주년이고 학생들은 31일 6번째 시위를 계획하고 있다.내년5월 대통령선거를 앞둔 발라뒤르총리가 최대의 정치적 위기를 맞고 있다.
  • 미,「발트하임 전범」입증자료 공개/“나치의 유태인박해·처형 관여”

    【워싱턴 AP 연합】 유엔사무총장을 역임한 쿠르트 발트하임 전오스트리아대통령이 2차대전중 나치의 민간인 박해와 전범 처형,수용소로 보낼 유태인 식별작업등에 『가담했거나 아니면 어떤 형태로든 간여했다』고 미법무부가 11일 뒤늦게 공개한 보고서에서 폭로했다. 지난 87년 미정부가 당시 오스트리아 대통령이었던 발트하임에 대해 입국 비자발급을 거부한 배경으로 작용했던 이 보고서엔 2차대전중 독일군 장교였던 그가 살인과 고문,추방등의 행위를 직접 저질렀음을 입증하는 내용은 들어있지 않다. 그러나 보고서는 만일 발트하임이 보고서 작성시기에 미국에 체류중이었다면 법무부가 그의 추방을 시도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나치 전범실태 조사를 위한 법무부 특별조사국이 작성한 2백4쪽의 보고서는 지난 6년간 일반에 공개되지 않았으나 연방법원의 명령에 따라 11일 처음 공개됐다. 보고서는 『42년부터 45년까지 발트하임중위가 민간인 수감자들을 노예로 쓰기위해 나치에 인도하고 민간인들을 강제수용소와 처형장으로 대거 추방하는데 가담했거나혹은 다른 어떤 형태로든 간여했다』고 폭로하고 있다. 발트하임은 또 그리스 도서와 유고슬라비아 반야 루카의 유태인들을 수용소와 처형장으로 이송하고 ▲반유태인 선전 활동 ▲수감 환자 박해및 처형 ▲인질과 기타 민간인들을 보복처형하는등의 범죄행위에 가담했다고 보고서는 밝히고 있다.
  • 세계 여성의 날 지구촌 여권신장 한목소리

    ◎남녀 기회균등 선언/유럽16국/여성인권침해 규탄/앰네스티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세계 각국에서는 여성의 인권신장을 주장하는 갖가지 기념행사가 성황리에 열렸으며 각 인권단체들은 성명을 일제히 발표했다. 우선 여성의 날 하루 전인 7일 유럽 16개국의 여성장관들은 벨기에에서 여성장관회담을 열고 남녀 기회균등원칙에 관한 선언에 서명하고 단합을 과시했다. 이 선언은 언론매체·광고등에서 여성들의 이미지를 부정적으로 고정화시키는 것을 비난하고 노령여성·빈민여성의 보건문제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음을 강조했다. 국제사면위원회는 이날 세계 각국의 정부가 여성의 인권을 보호하지 않고 있다고 규탄하고 『여성은 특히 정부의 정책으로 인한 인권 침해에 취약하다』고 강조했다.또 분쟁이 발생할 경우 정부는 여성의 인권침해를 막지 못하고 있으며 「정부 요원이나 보안관계자의 강간이 가장 흔한 사례」라고 지적했다. 인권감시위원회는 여성들에 대한 인권침해는 국제인권의 위반으로 분류돼야 하며 그같은 인권침해를눈감아주는 국가들은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미국무부는 아직도 일부 국가에서는 많은 여성들이 노예·전쟁 포로·할례및 강간에 희생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터키 멕시코 태국등에서 일부 개선이 있기는 하지만 제3세계 여성들은 여전히 힘든 여건속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특히 내전중인 보스니아에서는 강간이 흔히 자행되고 있으며 세르비아계는 강간을 전쟁무기로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 “중국인 1천만명 수용소서 노예생활”/「노개」 출감자 파리서 폭로

    ◎1천여곳서 미­유럽 수출품 제조에 혹사/서방 “인권개선” 촉구속 정치적파장 주목 중국에는 현재 최소한 1천83개 재교육수용소(강제노동수용소)에서 상품을 제조하고 있으며 이중 상당수가 미국과 유럽으로 여전히 위장수출되고 있다고 이 수용소 출신의 한 생존자가 2일 밝혔다. 「노개」(노동을 통한 개조)수용소로 불리는 이 수용소에서 19년을 보낸 해리 우는 이날 파리에서 기자들과 만나 프랑스도 감옥의 노예노동으로 만들어지는 상품의 수입을 금지하는 법률을 채택하는데 미국 영국과 동조,인권을 상업적·정치적으로 연관시키는 강력한 입장을 취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우의 이날 발언은 제퍼리 가튼 상무차관과 존 새턱 국무차관보등 미국 고위관리 2명이 중국을 별도로 방문,중국정부에 대해 인권을 과감하게 개선하도록 촉구하고 있는 시점에서 나온 것이어서 더욱 주목을 끌었다. 우는 대학생이던 지난 60년 23세때 「반혁명 우익분자」라는 이유로 체포돼 노개수용소에 투옥됐으나 기소되거나 재판을 받은적도 없다.현재 57세인 그는 지난79년까지 노개수용소에 갇혀 있었으며 지난 91년 기업인으로 가장,미국으로 건너가 지금은 캘리포니아주 밀피타스에서 살고 있다. 지난달 발간된 회고록 「모진 바람」에서 그는 약1천만명이 노개수용소에 투옥되어 있으며 이들중 상당수가 상품생산에 기여하기 위해 비인간적인 조건하에서 강제로 노동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노개연구재단을 설립,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 그는 또 미국세관이 최근 노개수용소 위장제품인 체인 호이스트 1백만달러 상당을 압류했다고 밝혔다. 우의 노력으로 미국 의류제조업체인 리바이­스트라우스와 야외용품 제조업체인 팀버랜드는 중국내 영업활동을 중지했으며 스포츠용품 제조업체인 리복과 체인스토어인 월마트및 시어스는 강제노동에 의한 상품생산을 하지 않는다는 규정을 삽입한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지난 1월 중국과의 상업적 거래를 증대한다는 대가로 대만에 대한 무기판매를 중지한다는데 동의하기도 한바 있는 프랑스측은 중국 인권개선을 위해 프랑스의 참여가 긴요하다는 우의 주장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 교육 살려야 나라가 산다/송자 연대총장,「신문로포럼」 주제발표

    평소에 우리나라 교육이 크게 변화되어야 한다고 앞장서 주창하고 있는 송자연세대 총장은 25일 아침 신문로포럼이 서울 조선호텔 그랜드볼룸에서 마련한 월례조찬회에서 「교육 살려야 나라가 산다」는 주제로 교육개혁의 방향을 제시한다.이 내용을 미리 간추려 소개한다. ○우리의 교육현실 한국을 방문하는 많은 외국의 석학들로부터 한국사회발전에 대한 입장을 들어보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점이 바로 교육문제이다. 한국의 미래는 교육이 가장 중요하며 21세기를 향한 선진화의 길은 교육을 통해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사회를 이끌어 가는데 가장 선진화되어야 할 분야는 바로 교육과 금융이라고 늘 생각해 오고 있으나 경쟁상대의 다른 나라와 비교할때 가장 낙후되어 있는 분야가 이 두 분야임을 부정할 수도 없다. 교육과 금융분야의 낙후원인은 자율성을 떨어뜨리는 정부의 강력한 규제와 보호 때문이다.물론 규제식 교육이 나라발전에 기여한 바는 많다. 그러나 변화하는 세계속에서 우리교육도 이제 바뀌어야 한다. 더이상 평준화 교육에 의한 표준화된 인간양성식 교육으로는 국제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획일화·평준화를 극복해야 하며 다양화,즉 다품종 소량생산 원리가 교육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오마하 겐이찌라는 일본 실업인은 일본이 국제경쟁에서 뒤지는 산업은 모두 정부의 규제가 강한 것들이고 자동차·전자산업과 같이 정부의 규제가 덜한 산업은 세계제일의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한국에 대해 『주입식 교육으로 실패한 일본을 닮지 말라 』고 충고한바 있다. 이말은 자율과 개성이 얼마나 큰 힘이 될 수 있는가를 강조한 것이다. ○교육개혁의 대전제 우리의 교육이 지금까지 잘못되었고 실수가 많았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이를 무리하게 중요시하여 과거에 발목을 잡힌다면 미래를 향한 교육개혁의 길은 더욱 험난하다. 입시부정이나 교육계의 「돈봉투」문제같은 비리를 어느정도 들추어내는 것은 잘못된 일을 바로잡기 위해 필요하기도 하지만 지나치게 사건화시키면 교육계 전체의 위신을 추락시켜 결국은 교육불신과 교육퇴조 현상을 초래한다. 여기에서 과거의 잘못에 대한 「교육대사면」을 통해 모두 다함께 앞을 보고 나아가자는 점을 강조하겠다. ○교육,왜 중요한가 과거에는 무력으로 남의 것을 빼앗고 인간노예를 잘 부려야 강국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인간노예가 아닌 인공노예,즉 로봇을 누가 잘 부리는가가 국가의 힘을 가름한다. 인공노예란 곧 소프트웨어이다.국제화·정보화시대에 소프트웨어를 누가 더 많이 창조해내고 잘 제어하는가에 국가의 미래가 담겨 있다. 인공노예를 부릴줄 아는 사람이란 창조적이고 다양한 사람이다.획일화되고 표준화된 사람은 인공노예를 다룰수가 없다. 소프트웨어를 창조하고 부릴수 있는 교육을 해야 한다.물적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는 우수한 인적자원의 중요성을 더이상 강조할 필요조차 없다. 과거처럼 획일화된 단순우수인력은 이제는 경쟁력을 유지할 수가 없다.결국 창조적이고 다양한 교육을 제대로 하는 나라가 승리한다는 결론이다. ○교육개혁의 방향 첫째,교육선택의 자유가 주어져야 한다.교육방법의 자유,교육기관 유형의 자유,피교육자 선택의 자유,교육기관 선택의 자유가 필요하다. 지금처럼 천편일률적으로 획일화되고 표준화된 교육으로서는 일부 학생을 제외한 대부분의 학생이 늘 2류 아니면 3류 의식밖에 가질 수 없다. 교육이 다양할수록 남과는 다른 위치에서 일류가 되는 사람을 그만큼 많이 배출할 수 있다. 둘째로 교육기회의 균등이다.우수한 교육을 받을 기회가 재산이나 다른 조건에 의해 편중되어서는 안된다. 특히 정부는 UR등에 의해 어려워진 농촌의 교육기회 평등화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셋째로 우리 교육은 국제화·세계화되어야 한다.우리나라에서 대학교육 이상을 받은 사람은 누구나 세계 어디서라도 큰 불편없이 살 수 있을 정도로 되어야 한다. 세계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세계시민」의 자질을 길러주어야 한다.
  • 탁월한 백제공장들(백제를 다시 본다:4)

    ◎“6∼7세기 문화선진”… 신라·일에 기술 전원/황룡사 9층탑·안압지 백제장인 손길/와·노반박사 일서 가람 짓고 향로 제조/금속공예·건축기술 당시론 최고수준… 장인들은 관인으로 대우 신라통일기 장인들의 탁월한 기량을 얘기할 때 흔히 거론되는 것이 이른바 만불산이란 공예품이다.신라 경덕왕은 당나라의 대종황제가 불교를 숭상한다는 소문을 듣고 공장에게 명하여 만불산을 만들게 했는데,「삼국유사」에는 그 모양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에 의하면 만불산은 한 발쯤 되는 가산에 험한 바위와 괴이한 돌,동굴을 장치하여 여러 구역을 만들었다.각 구역마다 춤추며 노래하는 사람의 모습과 각국의 산천형상을 새겨넣어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벌과 나비가 날고 제비와 참새가 춤을 추어 언뜻 보면 진짜인지 가짜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고 한다. ○궁남지 본떠 건립 그 뿐이 아니다.그 한가운데는 크고 작은 만불을 안치하고 주위에는 각종 장식품,천여구의 승려 조각과 누각 그리고 자줏빛 종을 벌여놓았다.바람이 불어 종이 울면 승려들이 모두엎드려 머리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하고 은은히 염불하는 소리가 나도록 기막히게 장치되었다고 한다.그리하여 이 만불산을 선물로 받은 대종은 『신라의 기교는 하늘의 조화이지 사람의 기교가 아니다』라고 깊이 탄복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같은 신라의 기술은 본래 백제로부터 전수받은 것이었다.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신라의 호국사찰 황용사 9층탑을 제작한 것은 백제의 기술자 아비지였다.신라는 삼국통일 직후 왕궁 옆에 못을 파서 안압지를 만들었는데,그 의장이나 기법은 모두 백제의 궁남지를 본뜬 것이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무왕 35년(634)3월에 궁성 남쪽에 못을 파고 물을 20여리나 끌어들여 궁남지를 만들었는데 못언덕에는 버드나무를 심고 못속에 인공섬을 만들어 방장선산에 비겼다고 한다.뒤에 못가에 망해루를 지어 국왕이 신하들과 더불어 이곳에서 연회를 즐겼다.이기백선생이 추리하듯 백제를 멸망시킨 직후 사비도성에 입성한 신라의 최고지배층은 이 궁남지와 망해루에 깊은 인상을 받았던 듯하다. 그리하여 당나라를 상대로 한창 피나는 전쟁을 치르는 긴박한 상황속에서도 서둘러 안압지와 임해전을 축조했다.앞서 얘기한 경덕왕때 황룡사 연기법사의 발원으로 화엄경을 베끼는 사경작업이 진행되었는데,16년전 세상에 공개되어 현재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 화엄경사경의 발문을 보면 광주,남원,장성,고부등 옛 백제지역 기술자들이 종이를 만든다거나 경문을 쓰는 일을 맡았던 것이다.백제는 그 지리적 조건에 힘입어 일찍부터 여러 지역의 다양한 문화를 흡수했다.건국 초기에는 북쪽에 인접한 낙낭군을 통하여 중국 한대문화를 받아들였다.낙랑군이 멸망된 뒤로는 고구려와 접촉했다.그런데 고구려는 중국 뿐아니라 만리장성 이북의 유목민족과도 접촉이 많았기 때문에 백제는 고구려를 통하여 야성적인 호주문화까지 받아들인 셈이다. 한편 백제는 남북으로 길게 뻗은 서해안을 끼고 있어 일찍부터 해상교통이 발달하여 바다 건너 양자강유역의 세련되고 우아한 중국 남조문화와 접촉했다.백제문화의 특징은 이처럼 각지에서 흘러들어온 외래문화에 끊임없이 자신의 독자적인 미의식을 가미하여종합하려고 한 점에 있다.삼국 중 가장 기름진 농경지를 확보하고 있어 비교적 여유있는 생활을 즐겼던 백제였던 만큼 느긋한 마음으로 풍요로운 예술을 꽃피울 수 있었다. ○기술자 박사 칭호 흔히 마르크스주의 역사가들은 고대의 기술자들을 한결같이 노예계급으로 보면서,삼국시대의 명품들은 어디까지나 지배층에 강제된 노예노동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주장한다.그러나 이는 명백히 잘못된 견해이다.삼국시대 및 통일기 신라의 기술자들은 국가로부터 전문 박사칭호를 부여받았을 뿐아니라 관등까지 받은 어엿한 관인신분이었다. 일본측 역사서인 「일본서기」에는 실로 많은 백제 기술자들이 등장한다.6세기 초 이래 백제로부터 일본조정에 유교경전이나 의학,역학,역학을 지도하기 위해 전문가들이 끊임없이 파견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일본에 불교를 전해준 뒤로는 사찰건물이나 불상,기와,향로를 제작하기 위해 노반박사,와박사 등이 파견되었다.현재 알려져 있는 수많은 금동제 불상이나 무령왕릉에서 나온 각종 금속제품을 통해서 알수 있듯이 당시 백제의 금속공예기술은 최고수준을 자랑하고 있었다. 서기 588년 일본왕실의 외척으로 권세가였던 소가(소아)씨가 법흥사(일명 비조사)건립에 착수했을 때는 실로 많은 백제의 일급 기술자들이 초빙되어 갔다.당시 일본에 건너간 노반박사 백매순은 덕장이란 관등을 갖고 있었는데,그는 문헌기록을 통해서 확인되는 유일한 백제의 금속공예기술자이다.한편 「원흥사가람연기변류기자재장」에는 그를 「누반사」백매순이라 표기하였는데 이는 그가 다름아닌 누금세공기술자였음을 말해주고 있다.누금세공이란 금판와 금입에 금판을 붙이는 방법이다. 사비시대의 백제는 대외관계에 있어서나 국내정치면에서 실로 다사다난한 때였다.하지만 문화적으로는 백제가 그동안 축적한 기량이 최대로 발휘된 일대 황금시대였다.바야흐로 국교의 지위를 차지한 불교가 이 시기 백제문화의 견인차 구실을 했다.한편으로는 도교사상이 스며들어 전란에 지친 사람들의 마음에 유토피아사상이 싹트게 했다. ○문화 견인차 구실 야심만만한 정복군주였던 무왕은 불교와 도교 모두에 심취해 있었다.그가 궁남지에 인공섬을 만들어 방장선산에 비긴 것은 도교사상에서 영향받은 것이다.한편 그가 전북 익산 금마에 미륵사를 창건한 것은 유명한 사실인데 이밖에도 그는 부소산성과 마주보고 있는 금강 대안의 울성산성 근처에 또 하나의 호국사찰을 완공했다.바로 왕흥사였다. 왕흥사는 오랜 공사끝에 무왕 35년(634)2월에 낙성되었는데,왕은 때때로 이 절을 찾았다.무왕은 먼저 금강 언덕에 있는 바위에서 멀리 부처를 바라보며 예불을 한다음 배를 타고 절에 가서는 법회에 모인 승려들에게 향을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향을 피워 부처와 보살을 공양하기 위해서였다. 삼국시대에 불교가 그토록 융성했음에도 불구하고 향을 피우는데 필수적인 이 시대의 향로가 발견되지 않은 것은 매우 기이한 일이었다.마침 작년 말에 부여 능산리에서 금동향로가 나온 것은 기적같은 느낌이 든다.의장의 풍부함이라든가 현란한 장식성으로 볼 때 문득 신라의 만불산을 연상케 하는 이 진품의 작가 이름을 알 수 없는 것이 끝내 유감일 따름이다. ◎백제 기술집단/노반박사는 금속공예의 명인/와박사도 뛰어난 녹유계통의 토기 만들어 우리는 오랫동안 일본의 기록을 통해 백제의 기술과 공장들의 모습을 가늠해 왔다.그러나 최근 이루어진 고고학 발굴에서 그 생생한 백제 기술의 실상을 비로소 가늠하게 되었다.그 대표적 케이스의 하나가 지난해 연말 부여 능산리 출토 금동용봉봉래산향로라 할 수 있다. 세기적 보물이기도 한 능산리 금동향로의 출현은 백제의 기술과 우선 노반박사의 존재를 떠올리게 했다.「일본서기」등과 같은 일본쪽 기록에 보이는 백제최고 기술집단의 하나인 노반박사는 금속공예의 명장이고,바로 능산리 금동향로를 제작한 기술진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이들의 활동은 불교미술에도 큰 영향을 끼쳐 불상이나 탑의 상륜부 등을 예술로 승화시켰다. 일본 나라(나양)의 이소노카미(석상)신궁에 비장된 백제전래품 칠지도는 백제의 금속공예술이 이미 상당 수준에 도달했음을 보여준다.새김글씨를 금으로 상감한 4세기경의 칠지도는 금속의 정련과 주조기술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따라서 6∼7세기경 사비시대 백제의 기술은 능산리 금동향로를 만들어낼 만큼 더욱 발전되었다.심미안적 세공에 의해 제작된 틀,소재의 정선,주조술,가공,도금술이 어울려 이룩한 걸작의 종합금속예술품이 능산리 금동향로인 것이다. 그리고 와박사 역시 넓은 영역에 걸쳐 활동한 공장이다.단순히 건축물의 지붕을 덮는 기와 뿐 아니라 테라코타불상,토기 제작에 관여했을 것이다.특히 삼국 가운데 기술적으로 가장 뛰어난 녹유계통의 토기를 만들어 낸 이들도 바로 와박사로 보여진다.녹유토기는 후대 고려청자의 모태를 어느 정도 이루었고,사비시대 백제의 대가람이었던 익산 미륵사 터에서 발견되고 있다.
  • 미에 이슬람문화 급속 확산/박물관·화랑등서 「문화전」 잇따라 열려

    요즘 미국 문화계의 두드러진 흐름중 하나는 이슬람문화의 급속한 확산현상이다.그 결과 회교권 하면 성전·인질극·테러를 먼저 떠올리던 미국인들의 의식도 자연스럽게 전환돼가는 양상이다. 이슬람 종교지도자들이 작년 1월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서,그리고 최근 미상원에서 기도회를 개최한 것은 미국에서 이슬람문화가 자리잡아가고 있음을 나타내주는 단적인 사례다. 그러나 이슬람에 대한 이해를 돕는데 기도회 등 공식행사보다 더 큰 기능을 하는 것은 예술분야다.박물관 화랑 등에서 줄지어 열리는 이슬람 문화전은 미국인들에게 있어서 이슬람문화에 대한 가장 좋은 교육의 장이 되고 있다. 문화전의 종류도 다양하다.팔레스타인인과 유태인 작가의 작품을 한곳에 모은 작품전이 있는가 하면 여성 작품전 및 코란 전시회도 있다.이들 문화전이 모두 이슬람이라는 종교적 색채를 강하게 띠고 있음은 물론이다.이슬람 문화의 모태는 역시 종교이기 때문이다. 국립 스미소니언 박물관의 새클러 갤러리는 14∼18세기중 이집트와 이란에서 발행된 코란을 한데모아 전시중이어서 특히 눈길을 끈다.「이슬람의 신성한 말씀」이라 명명된 이 전시회는 이슬람교도들의 혼이 공통적으로 코란에서 나옴을 입증하는 것이다. 워싱턴의 「메리디언 인터내셔널 센터」와 「내셔널」 박물관도 곧 이슬람 문화전을 열 계획으로 있다.「메리디언」박물관은 오는 3월 각각 6명씩의 팔레스타인인과 유태인 작가의 작품들을,「내셔널」박물관은 이달중 아랍 15개국 여성들의 작품 1백60점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같은 이슬람문화 붐은 미국의 인구통계로 볼때 이상한 일이 아니다.현재 미국내 이슬람교도수는 4백만에 이른다.게다가 이들은 가장 빠른 숫적 증가를 보이고 있는 소수민족 그룹이다.이같은 추세가 계속된다면 2천년대초에는 이들이 유태인수를 압도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슬람교도들은 아랍(12%) 아시아(26%) 아프리칸­아메리칸(42%) 등 다양한 출신성분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코란을 매개로 연결돼 있다.아랍어 또한 이들의 동질성을 두드러지게 하는 중요한 요소다.미국에서 태어난 아프리카 노예출신의이슬람교도들이 아랍어 이름을 고집하는 것도 자신들의 잃어버린 역사를 되살리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오늘날 미국에서 성행하는 이슬람교도들의 문화전 행사는 이슬람 민족들이 야만인이고 광신도이며 여성을 차별한다는 미국인들의 부정적 인식을 바꾸기 위한 목적을 띠고 있다. 이슬람교도들은 이슬람 문화붐을 이용,이슬람 최초의 진정한 성인은 여성이었으며 자신들이 전통문화를 가진 문화민족이라는 점을 과시하고 있는 것이다.
  • “백제역사·미술·음악사의 총합체”/「금동용봉향로」발굴의의를 말한다

    ◎“불교·도교사상에서 신앙·풍속까지 포용/“퇴폐로 내부붕괴” 기존의 시각 완전 불식/정밀투시촬영 통해 명문 찾아내면 획기적 자료 고대왕국 백제의 신비를 간직한 금동용봉봉래산향로의 출토는 무녕왕릉에 이은 백제강역 최대의 고고학발굴 성과로 꼽히고 있다. 백제의 마지막 도읍지인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서 출토된 이 향로는 특히 백제 후기 시대사연구의 귀중자료로 부각되었다. 이와 더불어 미술사 및 음악사·사상사·민속연구 등에도 큰 도움을 줄 것으로 학계는 전망했다. 그래서 서울신문은 이 향로의 발굴성과를 정리하고 학술적 의미를 부여하는 전문학자의 대담을 마련해보았다. ▲최몽용교수=한해가 저물어가는 마당에 부여에서 소위 박산로가 하나 나왔습니다.삼불 김원용선생이 돌아가신 것과 함께 올해 역사·고고학계의 큰 일로 기억될 것같습니다.이 박산로는 철저히 파괴되었으리라는 마지막 도읍지 부여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전혀 예기치 못했던 물건이 아닌가 합니다.해외에 내보내도 정말 손색이 없는 유물 하나를 건진 셈입니다.무령왕릉 발굴이후 최대의 경사입니다.그러나 나온 물건이 워낙 대단하다보니 유물에만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느낌입니다.박산로가 나온 배경도 좀 살펴봐야하지 않을까요. ▲이기동교수=그렇습니다.그동안 백제말기의 분위기는 퇴폐적인 것으로 묘사되곤 했습니다.그런데 문화는 국력에 비례하게 마련이지요.백제말기에 이런 탁월한 공예품이 나왔다는 점에 미루어보면 백제가 노쇠기에 접어들어 내부붕괴가 가속화되는등 지리멸렬해져 멸망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고구려의 경우도 말기인 6·7세기의 벽화를 보면 웅혼한 기상이 살아있어요.국력이 쇠퇴하면 미술이나 공예도 타락상을 보이는 법입니다.그러나 고구려나 백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특히 백제의 경우는 비록 전성기는 아니라 하더라도 한창 국력이 뻗어나가려는 즈음에 나당연합군의 공격을 받았다고 보아야 합니다. ▲최교수=중국 한대에 박산로는 왕통을 잇는다는 상징성을 지닌 물건이었습니다.태자를 지명할때 박산로를 주었지요.또 박산로는 귀족도 아닌 왕의 무덤에서만 출토됐습니다.이렇게 볼때 비록 7백여년의 시차가 있지만 능산리 박산로는 백제의 왕과 관련이 있다고 봅니다.박산로가 출토된 곳은 나성의 동문밖입니다.발굴유구를 보면 이 박산로는 그 자리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국가존망의 위기가 아니었으면 그런 곳에 묻혀있을리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이때문에 의자왕이 나당연합군에 패주하다가 묻었을 것이라는 추정이지요.당시의 다급했던 모습이 눈앞에 선합니다. ▲이교수=이 박산로의 제작시기는 6세기후반이라기보다는 7세기전반으로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물론 만들어놓고 오랫동안 간직했을 수도 있어요.하지만 백제말기에 해당하는 무왕과 의자왕시대는 사원의 건축이 활발했을뿐 아니라 공예도 융성했던 시기였습니다.박산로가 만들어진 시기도 그 연장선상에서 보아야할 것같습니다. ▲최교수=어떻습니까.이 향로가 앞으로 여러 방면의 학자들에게 일거리를 제공하지 않겠습니까. ▲이교수=그렇습니다.얼핏 생각해도 역사학과 미술은 물론 수많은 주악상은 우리 음악사를 규명하는데도 큰 도움이 되겠지요.여기에 불교와 도교사상등 신앙과 풍속까지를 포함했기 때문에 향로 하나가 수많은 과제를 안기고 있습니다. ▲최교수=얼마전 스위스에서 발견된 청동기시대의 미이라 하나가 생활연구에서부터 해부학까지 연구에 큰 진전을 가져온 것과 비슷하군요.이 박산로로 또 「백제의 얼굴」을 찾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지금까지 백제인의 얼굴이 드러나 있었던 것은 서산마애불과 산경문전 뿐이었어요.백제인의 얼굴이 부드러운 이미지를 지니고 있었던 것도 이때문이지요.부처님 얼굴이었으니까요.그런데 이 박산로의 인물상을 보면 악기를 타면서도 얼굴표정이 약간은 경색되어 있어요. ▲이교수=향로의 제작연대 추정과 무관치않은 지적입니다.그 시기는 결국 삼국항쟁의 마지막 고비였어요.장기간에 걸친 전란속에서 먹느냐 먹히느냐는 사활이 걸린 상황에서는 사람들의 얼굴에 긴장감이 나타나게 마련입니다.문화는 사회상을 반영하니까요. ▲최교수=한대 박산로가운데는 한사군설치의 주역인 무제의 형인 중산정왕의 능에서 1972년에 발굴된 것이 있습니다.기원전 154년에 즉위했다가 기원전 113년에 죽었지요.이것을 하한으로 이후 것은 중국에서는 나오지 않고 있어요.국립중앙박물관에는 유력자가 중국에서 얻어온 것으로 추정되는 낙랑시대 박산로가 있습니다.이것이 한반도에서 유일한 것으로 알려졌지요.한대 박산로와 능산리의 그것은 약 7백70년의 공백이 있습니다.둘은 몸체는 비슷하지만 뚜껑 위쪽의 봉황과 다리부분의 용은 완전히 다릅니다.그렇다해도 앞으로 능산리 박산로가 백제 것이냐 수입품이냐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결국은 백제가 그 주역으로 결론이 내려지리라는 생각입니다만.백제의 공예기술이 뛰어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은 이교수께서 깊이 연구하셨지요. ▲이교수=청동기시대의 청동기 장인은 왕이나 귀족에 버금가는 신분으로 대접받았습니다.신라의 경우에도 성덕대왕신종이나 황룡사종을 주조하는 전문기술자에게는 관직을 부여할 만큼 우대했어요.그들은 당당한 관인이었습니다.마르크스는 이들 기술자를 노예라고 생각했지만 절대 그렇지 않아요.제가 알기로는 백제의 경우는 공예가들에 대해 더욱 남다른데가 있어요.백제하면 와당이 떠오르지요.일본측 기록을 보면 6세기말 백제의 와박사와 노반박사를 초청했다는 대목이 있어요.노반박사는 뛰어난 금속공장에 대해 국가가 부여한 지위입니다. ▲최교수=사실 신라는 백제기술자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지요. ▲이교수=신라의 1급문화재라고 하는 것은 대부분 백제의 도움을 받았지요.황룡사탑을 백제의 아비지가 세웠다는데서도 알 수 있지요.경주의 안압지도 사실 사비성시대 부여의 궁남지를 모방해 만든 것입니다. ▲최교수=결국 그같은 백제의 기술자육성정책이 뛰어난 박산로를 만들 수 있게 했다는 결론으로 자연스럽게 이끄는군요.이제부터 문제는 박산로가 백제문화의 정수를 아낌없이 보여주었지만 그 기원을 어디서 잡아야 하느냐는 겁니다.냉정하게 백제문화가 어디까지가 본질적인 것이고 외부로부터는 얼마만큼의 영향을 받았느냐는 것을 따져보아야 하겠습니다. ▲이교수=백제의 역사나 문화에 있어 중요하게 고려해야하는 것은 그 지리적 위치입니다.육로로는 고구려를 통해 북방문화를받아들이고 바다로는 중국 특히 양자강이남 오·월의 문화를 받아들였어요.중국의 문화를 수입하는데도 북쪽의 야성적인 호주의 문화와 우아하고 섬세한 한주의 문화를 받아들여 융합시켰어요. ▲최교수=박산로에서도 백제적 요소가 많이 드러나지요.연화문과 산경문이 특히 그렇습니다.이것들은 백제의 심벌과도 같은 것이지요. ▲이교수=이 박산로를 보면 도교신앙이 의외로 백제의 민간이나 지배층에 유행하고 있지 않았나 생각됩니다.고구려의 경우 연개소문이 도교에 깊이 빠지는등 번창했다는 기록이 있으나 백제나 신라는 남아있는 기록이 없어요.그러나 백제에서 도교가 성행했다는 것은 여러가지 자료를 통해 추측만을 했을 뿐이지요.근초고왕의 북진의욕에 대한 막고해장군의 『분수를 알고 나아가지 말자』는 진언이 그것입니다.또 무령왕릉 지석의 「불종율령」도 좋은 예가 되지요.「불종율령」은 「왕은 법을 초월하는 존재」라는 식으로 글자 그대로 해석하기도 했지만 사실은 마치 「수리수리마수리」와 같은 상투적인 도가적 주언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일본의 우에다교수같은 학자는 일본의 고대도교도 백제에서 건너갔을 것으로 생각하더군요.능산리 박산로는 그 관계를 밝히는 유력한 물적자료가 될 것입니다.이처럼 사상적으로 볼때에도 이 향로는 백제의 진수를 보여주는데 모자람이 없습니다. ▲최교수=무령왕릉은 발굴결과 기록과 부합되었지요.이 향로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이교수=아직은 명문이 발견되지 않았다지요.그러나 명문이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칠지도와 일본 하치망의 인물화상경에서도 뒤늦게 명문이 발견됐지요.일본에 있는 가야의 환두대도에도 명문이 새겨져 있습니다.금속제품에는 이처럼 명문은 새기는 것이 상례입니다.능산리 박산로도 꼭 정밀투시촬영을 해보아야 합니다.여기서 명문이 확인된다면 그야말로 미술뿐 아니라 역사를 구성하는데도 아주 긴요한 자료가 될 것입니다. ▷긴급대담◁ □이기동 ◇서울대문리대 사학과 동대학원졸업 ◇경북대교수 ◇현 동국대교수 ◇저서:「신라골품제 사회와 화랑도」등 많음 □최몽용 ◇서울대문리대 고교학과 동 대학원졸업 ◇미하버드대 대학원(석,박사) ◇현 서울대교수 ◇저서:「한국문화의 기원을 찾아서」등 많음
  • 건국의 아버지 모택동/부국의 선각자 등소평/누가 더 위대한가

    ◎모 탄신 100주년 계기 중국서 논란/“민중해방 시킨 혁명가” 모 찬양/학생층/“중국사상 첫 기아 추방” 등 칭송/장년층 『모택동과 등소평중 누가 더 위대한가?』­요즘 중국신문들을 보면 오는 26일로 탄신 1백주년을 맞는 모와 내년이면 90장수를 누리게되는 등간에 누가 더 위대한가를 놓고 경연이라도 벌이는 것 같다.최근 들어 모에 관한 연구토론회 미술전 기념서적발행등 각종 추모행사들이 쏟아져나오면서 그동안 등의 독무대였던 중국신문들의 지면을 빼앗고 있기 때문이다. 11월중순까지만해도 중국신문들 지면은 등소평에 관한 기사로 홍수를 이루었다.82년 이후 등의 각종 연설 담화문을 모은 「등소평문선(제3권)」이 나오면서 매일 이 책의 내용을 소개하며 등이론의 위대함을 선전하는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였다.소 동구와는 달리 망당망국의 위기로부터 중국사회주의를 구출한 등의 선견지명에 모두가 감사의 박수를 보내는것 같았다.그래서 일부 서방신문들은 등에 대한 신격화를 추진하고 있지않은지 의심하기도 했다.이보다 앞서 2∼3개월동안은 또 등의 막내딸이 쓴 「나의 아버지 등소평을 각 신문들이 경쟁적으로 발췌,연재하며 등의 과거를 미화하는데 정신 없었다. 그러던중 11월 중순부턴 모가 서서히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처음에는 주로 『모택동과 티베트』『내 마음속의 모택동』등과 같은 제목의 토론회로부터 시작된 모추모사업은 『일대의 위인 모택동』이란 제목의유화 전시회,모 관련 영화 감상평가회,각종 기념도서출판,『중국에 모택동이 나타나다』란 제목의 기록영화 제작 방영,『모사상 연구토론회』등으로 끝없이 이어지고 각 신문마다 경쟁적으로 모에 대한 회상록등을 게재해 오고 있다. 모에 대한 찬양은 그가 위대한 사상가이자 혁명가였다는데도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그래서 19세기 중엽부터 서구와 일본의 제국주의 세력이 갈기갈기 찢어놓은 천하를 통일하고 봉건주의 노예상태나 다름없던 민중들을 해방시킨 그 공적은 아무리 찬양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식이다.다만 그가 집권후반 10년동안 문화혁명을 통해 중국사회,중국전통을 초토화시켜버린 과오에 대해서는 그다지큰 목소리들이 나오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요즘의 20대 젊은학생들은 모의 혁명사상을 높이 평가하는 경향이 있으나 문화혁명을 경험하고 굶주림을 경험한 장년층에서는 중국역사상 처음으로 기아를 추방하고 21세기 아시아태평양시대의 주역이 될만큼 중국의 경제력을 키워놓은 등의 업적을 더 높이 평가하는것 같아 보인다. 어쨌든 모에 대한 추모행사가 줄을 잇는 가운데 『모택동과 당외친구들』을 비롯한 모관련 서적 수십권이 쏟아져나와 북경에서 가장큰 왕부정 신화서점에서는 「모서적 코너」를 별도로 만들어 전시판매하고 있을 정도이다. 사회주의 우방인 북한이 모탄신 100주년기념우표를 발행한데 이어 반공의 선봉에 서 왔던 한국에서도 「모택동탄신1백주년기념」이란 글이 새겨진 2천원짜리 공중전화카드를 5백장 발매했다고 이곳 광명일보가 보도했다. 모의 얼굴이 새겨진 접시나 시계 기념메달 사진포스터등도 발매되고 있는데,등소평이 개혁개방을 통한 잘살기운동을 벌인 덕분에 중국 주민들이 이것들을 사들일 여유가 생겼다고 한 홍콩 신문은 지적했다. 그러나 1백주년기념행사 시리즈의 하이라이트는 중공고위 간부 전원이 참석하는 24일밤의 문화예술제에 이어 26일 인민대회당 기념대회때 강택민총서기의 연설이 될것 같다.그런가하면 모의 고향인 호남성의 소산에서는 지난 20일 모동상 제막식을 비롯,지금까지 무려 27차례나 각종 기념행사를 치르기도 했다. 모에 대한 이같은 대대적인 추모행사에 비하면 모를 흠모하는 열기가 그렇게 높은것 같지만은 않다.모두가 등이 제창해온 사회주의 시장경제에 매달려 돈벌이에 정신을 쏟다보니 그런지도 모른다.그런데도 이같이 많은 추모행사가 진행되고 있는데 대해 한 중국기자는 『모는 정신적 측면의 사상가인 반면에 등은 물질적인 경제의 반영을 중시하는 지도자다.요즘 중국사회가 너무 물질만능주의로 나가니까 당중앙에서는 정신분야의 영양보충을 통해 균형을 잡겠다는 생각이 든것 같다』고 풀이했다. 어쨌든 모는 『혁명의 천재요.건국의 아버지』인 반면에 등은 중국 역사상 처음으로 먹고 입는 문제를 해결한 『부국의 선각자』라는 두지도자의 서로 다른 역할이 모탄신 1백주년을 맞아 더욱 선명하게 부각되고 있는 것 같다.
  • “검은 서사시,연작회화 「대이동」 60점 눈길

    ◎흑인이주 역사적 배경 담아/제이콥 로렌스작… 워싱턴 필립스콜렉션서 전시 「검은 서사시의 연작」. 19세기 중엽 미국을 양분시키다시피 했던 남북전쟁은 노예해방을 반대한 남부의 패배로 끝났다.농촌인력의 핵심이었던 남부의 흑인들이 노예신분을 벗어난 기쁨도 잠시,이들은 공업화된 북부의 노동력을 메우기 위해 떼를 지어북으로 이동했다.흑인들은 극심한 가난과 백인들의 위협속에 낯선 북부로 밀려 가면서도 「더 나은」 미국을 꿈꾸고 있었다. ○미 회화계 큰감명 이같은 흑인들의 집단이주를 주제로 그린 「대 이동」연작 60점이 미국 워싱턴의 필립스 콜렉션에서 전시돼 시선을 모으고 있다.작가는 역사의식이 강한 흑인화가 제이콥 로렌스(Jacob Lawrence). 이 연작은 마치 고대 그리스 호머의 장편 서사시인 오디세이를 연상케하는강한 서사적 성격을 띠어 흑인뿐 아니라 미국 회화계 전체에 큰 감명을 주고있다. 그동안 미국의 흑인 문화를 다룬 그림들은 많았으나 로렌스처럼 적나라하게 역사적인 배경을 표현하지는 못했었다는 지적이다. 백인화가들은 흑인들을 지나치게 열등한 모습으로 묘사했고 반대로 흑인화가들은 흑인을 너무 미화했다는 것이다. 로렌스의 그림은 기법이 간결하고 색채가 선명한 점이 가장 눈에 띈다.그러면서도 정치적 벽화나 캐리커처 못지 않게 강한 역사의식을 압축해 전달하고 있다. 그는 단순한 선동가이기를 거부해왔다.그래서 사회주의 리얼리스트 화가들이 애용하던 캐리커처 수법은 쓰지 않는다. ○인종폭동 등 주제 감옥,황폐된 공동체,도시 슬럼가,인종 폭동,노동 캠프등 그의 주제들의 격렬함과 페이소스를 감안할때 그림의 이미지는 오히려 지나치게 자제된 느낌이다.과장이 없기에 더욱 날카로운 것이다. 그림 「그들은 매우 가난했다」는 극빈상태에 처한 남부 소작인들을 소재로 하고 있다. 한 남자와 여자가 빈 그릇을 바라보고 있고 벽에는 어마어마하게 큰 못에 빈 바구니가 걸려 있다.하지만 이 간결한 그림에도 감상의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1917년 뉴저지주 아틀랜틱시에서 태어난 로렌스는 흑인 이주민들이 모여 사는 뉴욕의 할렘가에서 어린 시절부터 줄곧 살아왔다.그는 20대 초반 할렘 아트 워크숍에서 젊음의 열정을 다 바쳐 미국내 흑인들의 진실한 역사적 배경을 얻기 위한 연구를 하고 또 이를 그림으로 표현했다. 흑인문화에 강한 자부심을 간직한 그는 「내가 곧 흑인공동체」라는 말을 자주 해왔다.그만큼 흑인사회를 폭넓게 체험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미국 회화 평론가들은 「대 이동」연작이 30년대 대공황 당시 성행했던 많은 정치적 벽화들보다 훨씬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또 지난날의 깊은 상처로 남아있는 미국계 흑인들의 역사적 경험을 가장 훌륭하게 치유하는데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있게 평가한다.
  • 쓰레기 종량제(외언내언)

    『주민이 쓰레기를 분리해 내 놓아도 청소차가 한꺼번에 쓸어 부어서 가져 가니 쓰레기 분리수거가 무의미해요.신문은 내가 직접 규격에 맞추어 묶어 내놓는데 그 모습을 보면 분통이 터집니다』『종이·유리·플라스틱·쇠붙이·부엌쓰레기등 쓰레기마다 분리수거함이 따로 있는데도 청소차가 오는날 또 재분류작업을 해야합니다.처음부터 철저히 해서 2중작업을 하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여간 불편하지 않아요』 서울 어느 단독주택의 가장과 아파트 주부의 이야기다. 서울시 전역에 「쓰레기분리수거제」가 실시된지 1년반이 돼가고 있는데도 이처럼 걸음마 단계에 머물러 있는터에 「쓰레기종량제」를 또 실시하겠다고 환경처가 발표했다.이제 갓 젖을 빨기 시작한 아기에게 이유식도 생략하고 밥을 먹이겠다는 성급한 발상이다. 물론 「쓰레기종량제」가 필요한 제도이긴 하다.그냥 쓰고 버리는 산업사회의 소비패턴을 고치기 위해선 「쓰레기종량제」가 실시돼야 한다.쓰레기의 재생이나 완벽한 처리보다 원천적으로 쓰레기의 양을 줄여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그 순서와 때가 있는 법이다.분리수거도 아직 정착돼 있지 않은 마당에 종량제까지 실시된다면 시민들은 쓰레기의 노예가 돼야 한다.그토록 시민에게만 부담을 강요하는 시책은 성공할 수도 없다. 환경보호 모범국인 독일에서는 쓰레기종량제 실시에 앞서 철저한 시민의식교육부터 시작했다.청소국에 소속된 엔지니어들이 유치원에 나가 환경교육을 실시하고 교사들에게 환경교육에 필요한 자료를 제공했다.이같은 어린이교육을 통해 부모를 교육하는 효과를 겨냥하는 한편 쓰레기수거 날짜,효과적인 쓰레기 처리방법,안내전화번호등 온갖 정보를 담은 책자를 발간하여 각 가정에 배포하고 쓰레기 처리에 공로가 큰 시민에게 주는 환경상도 제정했다. 우리도 종량제 실시에 앞서 쓰레기 수거체계의 합리화와 시민의식 전환부터 서둘러야 할것이다.
  • 젊은시인의 죽음/김정란 시인·상지대교수(굄돌)

    젊은 시인들이 자꾸 죽어간다.몇년 전에 28세의 기형도가 심야극장에서 심장마비로 죽었고 작년에는 30대 여성 시인 이연주와 석영희가 자살을 하더니,며칠 전에는 진이정이 35세의 나이에 결핵으로 죽었다.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폐병」으로 죽는단 말인가.더구나 그 젊은 나이에 이건 너무하다.결국 스스로 생의 끈을 놓아 버린 꼴이지 않는가.젊은 시인의 빈소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모두 얼이 빠져있었다.웬 수선이냐고,젊은 사람 죽는 거 생전 못보았느냐고 지청구를 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시인이 별거냐고,다른 젊은이들도 운나쁘게 죽고 있고 그들도 그런 운없는 친구들 중의 하나일 뿐이지 라고.아니,그래도 이건 뭔가 석연치 않다.그들의 죽음은 단순하지 않다.그것은 어떤 부적응의 극단적 표현인 것처럼 보인다. 기형도가 테이프를 끊은 이 시인들의 요절의 행렬은 뭔가 대단히 언짢은 여운을 남긴다.그가 비정상적으로 거대한 심장 때문에 오밤중에 숨을 거둔 그 심야극장이라는 곳은 얼마나 지독히 도시적인 공간인가.기형도의 시세계의 가장 커다란 특징은 타락한 도시에서 원초적 신화를 복원해 내는 것이었다.그러나 그는 도시의 독성을 이겨내지 못했다.그의 영혼은 벌써 도시의 악마성에게 휘둘릴대로 휘둘린 뒤였기 때문이다.이연주도 석영희도 진이정도 모두 도시의 타락한 공기속에서 시를 끌어내던 시인들이었다.그들은 도시의 탁한 공기와 정면대결 했다.그런데 도시는 그들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그것은 거대한 야만적인 신상처럼 그들을 발밑에 으깨어 버렸다.내가 싫어? 그러면 네 목숨을 내놔.날 집적대지 말란 말이야.적응하지 못하는 놈은 죽는거지.난 자유인은 싫어.난 노예들이 좋아.시인들의 사회적 가치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그들이 인간의 무수한 유형들 중에서 가장 자연에 가까이 있는 자들이라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을 것이다.그들이 죽어간다.나는 한없이 우울하다.나의 우울증은 한편에서 너무나 빤하고 경박한 대중문화의 스타들이 랄랄라 성공을 구가하고 있는 것을 바라보며 더욱더 깊어진다.유치해지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는 것일까.
  • 독 츠바이크「천재와광기」·일 가나모리「예술가의 사생활」번역서 나와

    ◎“예술가의 전재성 광기서 나왔다”/발자크·니체 등 행적통해 명작의 비밀 규명 세를 풍미한 예술가들은 천재인가 광인인가.인류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위대한 예술가들은 천부적인 광기에 시달렸으며 광기로부터 창작의 원동력을 얻어 인구에 회자되는 명작을 남겼음을 증언하는 흥미로운 2권의 책이 서점에 나왔다. 독일의 인기작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천재와 광기」(예하간)와 일본 기록문학가 가나모리 세이야(김삼성야)의 「예술가의 사생활」(한국문화사간)은 각각 9명,16명의 위대한 예술가들의 생애와 이들의 천재성을 밝히는 고뇌의 실체탐구를 통해 그들의 삶의 진실을 드러낸다. 「천재와 광기」는 뛰어난 소설가이면서 전기작가로 명성을 떨친 슈테판 츠바이크의 대표적 전기집.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이 책에서 지은이는 발자크,디킨스,도스토예프스키,휠더린,클라이스트,니체,카사노바,스탕달,톨스토이의 예술가적 삶을 「광기」라는 측면에서 예리한 감수성으로 기술하고 있다. 발자크의 삶과 디킨스의 삶,클라이스트와 니체의 삶은 저마다다르지만 이들에게 공통적으로 들어있는 것은 그들 내부에 살아 숨쉬는 열정,참되고 강렬한 삶에의 욕구,그리고 형상화의 창조적 열망이라고 지은이는 주장하고 있다.『발자크의 주인공들은 모두가 끝없이 불만스럽다.각자가 한결같이 세계정복자이자 변혁자,아나키스트이자 동시에 폭군이다.…도스토예프스키의 주인공들 역시 열성적이고 또한 망아적이다.…디킨스는 최초로 일상의 나날을 시적인 것으로 굴절시켰다』 츠바이크가 이 전기집에서 시도하는 것은 단순한 사실이나 기록의 재생이 아니라 천재적 예술가를 사로잡은 「광기」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요체를 이룬다.니체와 도스토예프스키는 병과 광기,그리고 천재와 인내심의 관계에서,톨스토이는 러시아의 대자연과 농부들과의 관계에서,그리고 휠더린과 클라이스트는 광기와의 투쟁에서 천재성이 비롯됐다고 분석한다. 니체는 병과 고통을 가장 잘 참아내는 자가 「천재」이자 「초인」이라고 부르짖었으며,톨스토이는 82세의 노령에도 말을 타고 15마일이나 질주하고 들판에서 농주를 마시며 신을 우러렀다.휠더린은 하늘의 소리를 지상에 전달하기 위해 피뢰침의 역할을 했다.클라이스트는 밀려오는 광기때문에 언제나 극단을 추구하다가 마침내 한 여인과 동반자살을 시도했다.「천재와 광기」에는 이같은 이야기가 원당희,이기식,장영은등 3명의 젊은 독문학전공자들의 세심한 번역에 의해 펼쳐진다. 일본의 기록문학연구가 가나모리 세이야의 「예술가의 사생활」은 제목에서 풍기는 흥미위주의 스캔들 캐내기가 아니다.「이솝우화」의 저자인 이솝은 아주 못생긴 노예였으며 노예의 신분으로 외교상 큰 공적을 세운 인물임을 밝히고 있다.또 대문호 셰익스피어가 가족에게 남긴 유산은 침대와 가구뿐이었다는 사실이나,베토벤은 보기 드문 구두쇠였으며 출연료나 식대문제에 있어 잔소리가 심했다는 흥미로운 사실이 공개된다.또 노름에 미친 도스토예프스키,마더콤플렉스에 빠져 동성연애자가 된 프루스트,복잡한 여자관계로 유명한 피카소등의 기행과 사생활을 통해 이들 천재들을 시달리게한 고뇌의 정체가 창작에 얽힌 비밀을 푸는 열쇠임을 알려준다. 홍경호교수(한양대·독어독문학과)는 「천재와 광기」해설에서 『이들 광기의 천재들은 어떻게 세계속에서 자신의 의지를 펼쳤고,그 의지의 오만불손한 형제인 충동과 욕망을 어떻게 삶의 투쟁속에서 구체적이고 생산적으로 형상화했는지,그리고 영혼의 위기와 충격뒤의 저 비극적 이완이 어떤 결실로 잉태되고 후세에까지 정신의 거대한 음영을 남길 수 있었는가를 이 책은 보여준다』고 풀이했다.
  • 군부의 민정이양 거부 응징조치/아이티 해상봉쇄 왜 했나

    ◎클린턴 정치도박으로 끝날 가능성도 18일 미국등 유엔의 대아이티 해상봉쇄조치 시한(한국시간 19일 낮 12시59분)이 다가오면서 카리브해 주변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유엔이 승인한 이번 무력봉쇄는 아이티군부가 지난 7월 유엔 중재하에 미국과 합의한 「민정복구」를 이행하지 않고 있는데 따른 것이다. 라울 세드라스등 아이티의 군정지도자들은 첫 민선대통령으로 7개월간 재임하다 91년 9월 쿠데타로 실각한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에게 오는 30일까지 정권을 넘겨주기로 협정을 맺었었다. 하지만 그에 앞서 15일까지로 시한이 잡혔던 세드라스의 사임은 불발에 그쳤고 지난 14일에는 법무장관이 피살되는 등 아이티사태는 무정부상태로 치닫고 있다. 아이티군부가 민정이양을 계속 거부하고 있는 것은 아이티의 뿌리 깊은 군부·독재통치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아이티에서는 지난 86년 당시 종신 대통령이었던 뒤발리에부자의 전제정치가 막을 내린 뒤 현재까지 6번이나 쿠데타 또는 비정상적인 정권교체가 이뤄져왔다.그때마다 지도부들은 정권획득의 정통성과 도덕성의 결여로 따가운 눈총을 받았고 핵심과제인 경제 또한 파탄일로를 걸으며 반복되는 국민적 저항에 부딪혔다. 그러던 지난 90년 12월 시민저항운동의 와중에서 아이티 역사 1백86년(노예해방운동으로 1804년 프랑스로 부터 독립)만에 처음으로 민주방식의 자유총선이 실시됐다.당시 37세의 해방신학자인 아리스티드신부가 경쟁자인 경제전문가 마르크 바쟁을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아이티는 모처럼 민주주의의 기틀을 다지는 듯했다.그러나 생각만큼의 경제회생이 따르지 않는 가운데 아리스티드의 개혁정책에 대한 군부의 불만이 다시 폭발,아이티의 민주주의는 7개월만에 군부에 의해 좌초됐다. 아이티군부가 민정이양에 동의하지 않고 있는 것은 지금까지 서방이 취해온 대아이티 봉쇄조치가 약효를 내지 못하고 있는데도 그 원인이 있다. 대아이티 봉쇄조치가 군사정권을 약화시키기 보다는 오히려 아이티의 빈곤을 심화시키면서 이 나라 국민들의 빈축을 사는 역기능을 한 때문이다. 관측통들은 따라서 18일 발효되는 이번 경제봉쇄조치도 아이티군부에 별다른 제재수단이 되지 못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더욱이 소말리아 사태에서 보듯 최근 미국의 국내여론이 『미국인이 위험한 지역에서는 손을 떼라』는 쪽으로 바뀌고 있는 것도 정권이양거부를 획책하고 있는 아이티군부의 버티기작전을 고무시키고 있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따라서 이번의 무력개입 압력도 소말리아사태로 인기도가 떨어진 클린턴행정부의 정치적 도박으로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 노벨경제학상 수상 포겔­노스의 업적

    ◎포겔교수/「양적 방식」 응용,경제변화 설명/사회제도­경제성장의 상관관계 밝혀 포겔교수는 신고전학파의 경제이론에 통계학을 접목시켜 「미국 철도의 경제성장에 대한 기여도」 등 사회간접자본 또는 사회제도와 경제성장 간의 상관관계를 연구한 공로를 인정 받았다. 과거의 사료들을 발굴해 18세기 미국의 출산율과 사망률,여성의 정치 참여도,이민율,인구이동,저축률 등을 알아내는데 크게 기여했다.저서로는 「미국의 철도망과 경제성장」,「경제사 연구」「미국경제사의 재해석」 「미국 노예제도의 경제학」 등이 있다. 지난 26년 뉴욕시에서 태어났으며 코넬대를 나와 존스 홉킨스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로체스터대·시카고대·하버드대 등에서 경제사를 가르쳤다.지난 82년부터 시카고대 대학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이번 수상으로 시카고대는 90∼93년까지 4년 연속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를 배출했으며,그는 이 대학의 7번째 노벨상 수상자가 됐다. ◎노스교수/서구산업화 과정 거래비용 측면 분석 노스 교수는 신경제학파 생산이론과 세계 경제의 제도적 변천사를 거래비용 측면에서 접목시킨 공로를 인정받았다.특히 1790년부터 1860년까지 미국 해상운송비용의 생산성과 수출입 가격,무역수지를 제도의 변천에 따라 분석한 이론은 「거래비용 경제학」을 낳은 초석이다. 1920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캠브리지에서 태어난 뒤 1942년 버클리대학에서 경제사를 전공한 노스 교수는 지난 82년부터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학의 교수로 일해왔다.워싱턴대학에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것은 노스교수가 처음이다. 스웨덴 왕립 과학아카데미는 노스 교수가 『지난 2세기 동안 미국과 유럽등 서구 선진제국의 산업화과정에 제도의 변화가 미친 역할을 거래비용 측면에서 분석,경제사와 경제이론을 성공적으로 접목시키는 데 크게 공헌했다』고 밝혔다. 「미국의 경제성장(1790∼1860)」「서구세계의 부상(신경제사)」「경제사의 구조와 변천」 등 다수의 저서와 「해상운송 비용의 생산성 변화의 원천」「재정과 제도의 변화 비용」등의 논문이 있다.
  • 한글날… 말과 글과 겨레를 생각한다(박갑천칼럼)

    일본의 대표적 문장가라고 말하여지는 작가 시가 나오야(지하직재:1883∼1971)는 패전직후 느닷없는 제의를 한다.일본말을 버리고 프랑스말을 쓰자는 주장이었다.『…일본국어만큼 불완전하고 불편한 것도 없다.이대로는 일본이 참다운 문화국으로 될수 없다』.글을 쓰는 작가의 말이었기에 충격파는 더 컸다고 할 것이다. 어쩌면 그는 프랑스의 언어학자 앙투안 메이에의 이른바 문명어론의 영향을 받았던 것인지도 모른다.메이에는 언어를 초월한 보편적 문명이 먼저 있는 것이지 언어가 문명을 창조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언어는 문명의 수단으로 되는 종속물이라는 논리이다.『…그러므로 문명을 짊어질수 있는 언어는 세계에 하나나 둘만 있으면 족하다』.노르웨이의 언어학자 알프 솜메르펠트도 그런 견해를 갖는 학자이다.그는 언어와 그 언어를 쓰는 민족사이에 「신비스런 연결의 고리」를 인정하는 독일적인 사고방식을 나무란다.『…언어는 다른 모든 것에 우선하는 사회사상이 아니다.…언어와 인종은 별개이며…언어란 의사전달기능이상의 것일 수없다.…』 그같은 학자들의 견해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민족과 그 민족의 언어가「신비스런 연결의 고리」로 되고 있는 현실을 부인하기는 어렵다.메이에의 조국 프랑스의 프랑스어에 대한 애정이 오늘날의 지구촌에서 가장 유별난 까닭도 거기에 있다.공산권이 붕괴되면서 독립을 요구하는 민족들이 하나같이 들고나오는 문제도 고유언어의 사용이었다.민족의 독립을 민족어의 독립과 동의어로 보는 것이 아니던가.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에서 아멜선생이 하던말­『설사 민족이 노예로 된다고 해도 제나라 말을 지키고 있는 한 감옥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과 같다』를 새삼 되뇌어보게 하는 오늘의 현실이다. 한나라 안에 같은 핏줄의 사람들이 살면서 더구나 같은 말과 글을 쓴다는 것처럼 행복한 일도 없다.우리가 바로 그런나라의 겨레이다.여러 민족이 어울리고 언어가 다름으로 해서 분규가 끊이지 않는 나라들을 우리는 보아온다.말과 글이 다르면 그렇게 남이 된다.나라의 허리가 잘려있다고는 해도 그게 같은데 어찌 남일수가 있겠는가. 오늘 한글날을 맞으면서 말과 글과 겨레의 「신비스런 연결고리」를 생각한다.그러면서 투르게네프의 산문시 「러시아어」를 웅얼거려본다.『의문스러운 날이나 조국의 운명을 생각하여 고뇌하는 날에도­너만이 내 지팡이이며 받침대여라.오,위대하며 굳세고 진실하며 자유로운 러시아어여,네가 없다면 나라안에서 일어나는 모든걸 보면서 어찌 절망에 빠져들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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