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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英서 철창에 갇혀 성노예로 산 중국소녀 구출

    英서 철창에 갇혀 성노예로 산 중국소녀 구출

    영국 버밍엄의 한 불법 윤락업소에서 동물 우리를 연상케 하는 철창에 갇혀 성매매의 노예로 살아 온 10대 중국 소녀와 베트남 소년이 구출돼 사회적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의 16일자 보도에 따르면, 중국 출신의 18세 소녀와 베트남 출신의 13세 소년이 끔찍한 환경에서 성매매에 이용되다 어린이구조단체에 의해 구조됐다. 베트남 소년은 그의 할아버지가 더 나은 삶을 살라며 영국으로 보내줬지만, 영국에 도착한 뒤 인신매매업자들에게 붙들려 강제로 성매매에 이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충격적인 사건은 세인트메리대성당 수녀원 소속의 헬렌 리안에 의해 알려졌다. 영국 내 불법체류 외국인 아이들을 위해 일하는 리안은 “우리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언제나 언급해왔지만 자꾸 감춰지기만 했다.”면서 “특히 철창에 갇혀 성매매에 이용돼 온 중국 소녀를 발견했을 당시엔 매우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이어 “13살 된 베트남 소년은 웨스트미들랜드에 도착하자마자 강제로 트럭에 실려 성매매업소로 이동됐다.”면서 “이러한 불법 성매매의 뿌리를 뽑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리안의 주장에 따르면, 버밍엄시티에서는 인신매매업자와 성매매업소가 손을 잡고 소녀들에게 약을 먹인 뒤 강제로 성매매에 종사하게 하는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으며, 피해자 대부분은 아시아나 아프리카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영국의 어린이 보호 단체인 바르나르도(Barnardo) 역시 지난 해 버밍엄이 영국에서 어린이들의 인신매매가 가장 ‘활발한’ 도시라고 지적한 바 있으며, 현재 이 단체는 성매매에 강제로 동원된 소녀 100명과 소년 5명을 보호하고 있다. 바르나르도의 한 관계자는 “국적을 불문하고 폭력과 성매매, 약물에 노출된 어린이들을 돕기 위한 모금과 프로그램 등을 진행하고 있다.”면서 “웨스트미들랜드 경찰과 손 잡고 이들을 보호하려 노력중”이라고 전했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물 알레르기’ 희귀병 여성 “약혼자와 키스도 못해”

    ‘수성 두드러기’(aquagenic urticaria)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는 20대 여성의 사연이 알려져 눈길을 모으고 있다고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이 14일 전했다. 영국 더비셔에 사는 레이첼 프린스(24)는 수성 두드러기라는 희귀병 때문에 수영을 하거나 세수를 하는 등 일상생활에도 큰 지장을 겪고 있다. 뿐만 아니라 차가운 음료수도 거의 마시지 못하고, 매우 소량만 간신히 섭취할 수 있으며 비가 오는 날에는 외출을 할 수도 없다. 물이 닿는 즉시 피부가 빨갛게 달아오르고 심한 통증을 느끼는 이 병은 전 세계에서 단 35명만 앓고 있는 것으로 보고된 희귀병이다. 프린스는 “이 병은 나를 매우 우울하게 한다. 타액(침)도 피부에 치명적이기 때문에 약혼자와 키스를 하는 일도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훗날 결혼한 뒤 아이를 가지고 싶지만, 혼자서는 빨래나 청소를 전혀 할 수 없기 때문에 이 또한 고민”이라고 덧붙였다. 약혼자인 리 워릭(26)은 “내가 그녀를 도와 설거지와 집안 청소 등을 모두 해야 하기 때문에 때로는 ‘노예’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녀를 포기할 생각은 없다.”고 애정을 과시했다. 한편 수성 두드러기의 정확한 원인과 치료법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영국 알레르기 협회의 린제이 맥마누스 박사는 “수성 두드러기의 원인은 여러가지로 나타난다.”면서 “물속 화학 성분에 대한 거부반응일 수 있다.”고 추측했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씨줄날줄] 찢어진 눈/최광숙 논설위원

    2005년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가 프랑스 파리 에르메스 매장에서 문전박대를 당한 적이 있다. 화장하지 않은 그녀를 알아보지 못한 점원들이 영업시간을 넘겼다며 제지한 것이다. 윈프리는 당시 상점 안에 사람들이 쇼핑을 하고 있었기에 자신이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했다고 생각해 엄청 화를 냈다고 한다. 만약 자신이 가수 셀린 디온,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였다면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명품 매장들은 명사들에게는 영업시간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 결국 에르메스는 윈프리에게 사과했다. 지난해 10월 크리스찬 디올의 디자이너 존 갈리아노가 유대인 모욕 파문으로 해고됐다. 그가 카페에서 한 커플을 유대인으로 지목하고 욕설을 퍼부은 데다 만취한 채 히틀러를 찬양하는 모습의 동영상이 한 언론에 공개되자 크리스찬 디올은 천재적인 디자이너를 가차 없이 잘라야 했다. 세계 30여개국에서는 인종·피부색·종교·성별 등에 따른 차별 또는 모욕 행위를 ‘증오범죄’(Hate Crime)로 분류해 처벌하고 있다. 하지만 선진국에서조차 차별은 여전히 존재한다. 하다못해 당초 백인 인형만 출시하던 바비 인형도 흑인·아시아·히스패닉 등 다양한 인종의 인형을 내놓고 있지만 사람들 마음속의 뿌리 깊은 차별 의식을 없애지는 못하고 있다. 얼마 전 심지어 미국의 한 초등학교 교사마저 “나무에 오렌지 56개가 있는데, 노예 8명이 똑같이 가져간다면 몇 개씩 가져갈 수 있나?”라는 수학 문제를 숙제로 내 인종차별이라는 비판을 받았으니 말이다. 최근 미국 애틀랜타의 한 스타벅스 매장에서 한국 교민 김모씨가 ‘찢어진 두 눈’이 그려진 음료 컵을 받아 한국인 비하 논란이 되고 있다. 보통 주문을 받으면 컵에 고객의 이름을 적는데 백인 종업원이 김씨의 컵에 ‘찢어진 눈’을 그려 건넸다고 한다. ‘눈이 찢어진’(chinky-eyed)은 서양에서 중국인을 비롯한 아시아인을 비하할 때 쓰는 표현이다. 앞서 지난달 뉴욕 맨해튼 파파존스 매장에서 직원이 한국인 고객의 영수증에 ‘찢어진 눈의 여성’이라고 표현해 문제가 된 적이 있다. 파문이 커지자 파파존스 본사는 해당 직원을 해고하고 트위터를 통해 공식 사과했다. 그나마 성의 있는 답변을 회피하는 스타벅스 측보다 낫기는 했다. 사실 남의 나라 일이 아니다. 우리도 지난해 한국으로 시집온 이주 여성이 목욕탕 출입을 저지당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낸 적이 있지 않은가.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결혼 50위·연애 33위… 1위는?

    은행이 더 위대할까, 연애가 더 나을까. 피임과 백신, 진화론, 하수도를 두고 위대한 순서대로 나열하라면? 명예와 희망을 두고 묻는다면, 어떤 게 더 대단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하면 아마도 ‘무슨 이따위 질문이 있나’이거나 ‘무슨 질문에 이리 일관성이 없나’라는 답문을 받게 될 것이다. 영국의 지성으로 통하는 베스트셀러 작가 존 판던은 ‘오! 이것이 아이디어다’(원제 The World’s Greatest Idea, 강미경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에서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았다. 판던 역시 “터무니없고 모순투성이의 치명적 결함 때문에 실패할 게 뻔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결국 시도했고 만들어냈다. 방법은 이랬다. 먼저 대중과학저술가 필립 볼, 다윈진화론 전문가 페른 엘스턴 베이커, 행동과학 전문가 딜런 에번스, 영국 왕립철학연구소장 앤터니 오히어 등 학계 최고의 전문가 11명으로 심사위원단을 꾸렸다. 이들을 중심으로 아이디어 50개를 추리고, 웹사이트를 열어 대중의 의견을 물었다. 수만명이 참여해 순위 투표를 하는 과정을 거쳐 나온 책은 집단지성의 결과물로 이해해도 좋겠다. 그렇다면 50위는 무엇일까. ‘결혼’이다. 사회 안전성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는 점을 높이 샀다. 결혼이 없었다면 성관계가 무한 경쟁의 대상으로 남아있을 테고, 결국 사회 전체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주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결혼보다 위대한 것이 연애(33위), 연애보다 나은 것은 자아(23위)이다. 해방을 향한 갈망이거나, 개인을 더 앞세우는 현대인을 투영하는 것으로 분석한다. 역사 속에서 꽤 오랫동안 인간의 가장 고귀한 덕목으로 꼽혔던 ‘명예’가 45위인 반면, 기대감만 부풀리고 끝날지라도 ‘희망’은 11위이다. 희망을 품는다는 것 자체가 현재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주는 긍정적인 영향이 더 크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대중의 의견을 차곡차곡 쌓다보니 복지국가(41위)가 자본주의(42위)보다 조금 낫고, 마르크수주의(27위)보다 민주주의(14위)나 노예제 폐지(6위)가 더 위대하다는 결과를 얻었다. 그럼 1위는? 바로 ‘인터넷’이다. 오만방자한 사람들이 하늘에 닿기 위해 바벨탑을 쌓다가 신의 분노로 뿔뿔이 흩어진 뒤(구약성서 창세기), 다시 인터넷을 통해 인류가 하나로 묶였으니 엄청난 아이디어라고 할 만하다. 책은 아이디어를 역순으로 나열했지만, 책을 읽다보면 실상 순위는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지도 모르겠다. 책이 가진 큰 의미는 ‘어떤 아이디어가 진정 위대한지 명확하게 가려냈다.’가 아니라, 인류가 가진 독창적인 아이디어의 근원과 변화, 현대사회에 미친 영향력을 음미하는 데 있다. 1만 6000원.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프로농구] 김승현, KBL 재정위원회서 서면경고… FA계약 문제점 짚어보니

    [프로농구] 김승현, KBL 재정위원회서 서면경고… FA계약 문제점 짚어보니

    김승현(삼성)이 9일 한국프로농구연맹(KBL) 재정위원회에 회부돼 경고조치를 받았다. 한 방송사 인터뷰에서 “자유계약(FA) 제도가 아니라 노예계약 제도다. 선수가 구단에 팔려가는….”이라고 말한 게 화근이었다. KBL은 “김승현이 불손한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했다.”며 깊이 반성하는 점을 고려해 징계 수위를 정했다고 설명했다. 파문은 일단락됐지만 김승현이 ‘노예계약’이라고 일갈한 프로농구 FA제도의 문제점을 짚어볼 필요는 있겠다. ‘자유계약’이란 명패가 붙어 있지만 자유가 전혀 없다. 현 규정상 FA 자격을 얻은 선수는 가장 높은 연봉을 제시하는 구단으로 가게 돼 있다. 영입 의향서를 낸 복수의 구단이 최고 연봉을 제시했을 때만 선수가 구단을 고를 수 있다. 선수 스스로 선택할 수 없어 ‘경매’란 말이 나온다. 선수들은 프로생활 중 겨우 한두 번 오는 FA 기회에도 구단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원 소속 구단과의 협상이 결렬된 뒤 다른 구단의 ‘콜’을 받지 못하면 2차 때는 구단이 칼자루를 쥐기 때문이다. 고액 연봉자는 사실상 이적이 막혀 있다. 연봉 순위 30위 안의 선수를 영입하려면 구단의 출혈이 상당하다. 보상 선수 1명(보호선수 3명 제외)에 영입 선수의 연봉 100%를 주거나 보상 선수가 없을 경우 영입 선수 전 시즌 연봉의 300%를 지급해야 한다. 뒷돈과 연봉 거품을 걷어낸다는 취지로 2007년부터 매년 강화됐다. 연봉상한 규정에도 허점이 있다. 2007년 FA 자격을 얻은 김주성(동부)은 ‘100억원설’이 돌 정도로 다른 구단의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몸값이 부담스러웠던 구단들은 ‘한 선수에게 샐러리캡의 40% 이상 줄 수 없다.’는 이른바 ‘김주성법’을 고안해 냈다. 김주성은 당시 샐러리캡(17억원)의 40%인 6억 8000만원을 제시한 동부에 잔류했다. 소속팀이 상한선을 제시하면 다른 구단과 협상조차 할 수 없다. 지금은 연봉 상한선마저 30%로 줄었다. 김주성도 5년 계약이 끝나는 다음 시즌부터 샐러리캡의 30%를 받게 돼 연봉이 줄어든다. 부자 구단이 선수를 싹쓸이할 가능성도 별로 없고 이적 거품도 꽤 꺼졌다. 하지만 FA시장은 얼어붙었다. 초특급 선수는 몸값을 제대로 평가받을 수 없고 샐러리캡의 정상화도 요원하다. KBL은 징계 논의보다 FA 제도의 불합리한 점을 손질하는 데 집중했어야 옳았다. 앞으로라도 그래야 한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美서 흑인 부를땐 “Black American”

    미국에서 흑인을 부를 때 인종차별 비난을 피하려면 ‘아프리카계 미국인’(African American)이라고 부르는 게 안전하다는 통념이 있다. 그런데 젊은층을 중심으로 아프리카계 미국인보다는 차라리 그냥 ‘흑인’(Black American)으로 불리는 게 낫다는 흑인들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고 AP가 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텍사스에 사는 회계사 숀 스미스는 “나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라는 말이 싫다.”며 “그 호칭은 실제 나의 정체성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부모가 미시시피와 노스캐롤라이나 출신인 그는 “부모님으로부터 아프리카에 대한 어떤 얘기도 듣지 못하고 자랐는데 왜 내가 아프리카계냐.”고 반문했다. 중미 자메이카 출생으로 어릴 때 뉴욕으로 이민 온 작가 호안 모건은 “나는 카리브해 출신 흑인인데 피부가 검다고 한 묶음으로 아프리카계라고 부르면 당혹스럽고 불쾌하다.”고 밝혔다. 미국의 흑인들은 노예 시절부터 ‘니그로’(스페인어로 ‘검다’는 뜻)라는 경멸적 호칭으로 불렸다. 그러다 1960년대 오랜 투쟁 끝에 ‘흑인’이라는 호칭을 쟁취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흑인’이라는 말은 나름대로 자랑스러운 호칭이었던 셈이다. 그러던 것이 1980년대 후반 흑인 지식인 사이에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더 정당한 호칭이라는 주장이 지배하면서 일순간에 ‘흑인’이라는 호칭이 경계의 대상이 됐다. 그러나 지난해 1월 NBC 여론조사에서 흑인의 42%가 ‘흑인’이라는 호칭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선호하는 응답은 35%였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헤겔철학은 ‘아이티 노예해방’ 영향 받았다”

    “헤겔철학은 ‘아이티 노예해방’ 영향 받았다”

    카리브해 연안의 생도맹그 섬에서 1791년 노예혁명이 일어났다. 1789년 프랑스혁명이 일어난 지 2년 뒤였다. 생도맹그 섬은 프랑스의 식민지였을 뿐만 아니라, 설탕 플랜트 산업을 통해 전 세계 식민지 중 가장 부유했던 섬이었다. 아프리카 부족전쟁에서 패배해 노예로 팔려왔던 아프리카 노예 50만여명은 자유를 위해 직접 투쟁에 나섰다. 1794년 생도맹그의 무장 흑인은 프랑스 공화국의 판무관으로 하여금 노예제 철폐를 기정사실로 인정하게 했고, 1794~1800년 영국의 침략군에 맞서 싸웠다. 투생 루베르튀르가 이끄는 흑인 군대는 영국군을 물리쳤고, 이것은 이후 세계 최초로 영국이 노예무역을 중단(1807년)하는 데 초석이 됐다. 생도맹그는 이후 나폴레옹군의 침략을 받지만, 1804년 1월 1일 최종적으로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선포했고, 노예제와 식민지의 종식을 이뤄냈다. 이로써 프랑스 혁명에서 ‘자유는 인간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라고 한 선포는 프랑스와 유럽을 넘어서, 전세계적으로 완성되는 단계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이 생도맹그 섬은 현재도 미국 등 강대국의 내정간섭으로부터 신음을 하고 있는 아이티다. 독일의 철학자 헤겔과 카리브해의 아이티가 무슨 연관이 있다고, 독일 비판철학과 프랑크푸르트 학파 전문가인 미국 철학자 수전 벅모스가 2009년에 ‘헤겔, 아이티, 보편사’(김성호 옮김, 문학동네 펴냄)라는 책을 펴냈을까. 벅모스는 1807년 펴낸 헤겔의 ‘정신현상학’에서 제시하고 있는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적 구상의 결정적 동기’가 동시대 지식인들의 말 못할 고민거리였던 생도맹그 섬의 노예해방에서 비롯됐다고 말한다. 흔히 아리스토텔레스의 고대 노예제를 ‘추상하면서’ 헤겔의 정신현상학이 나왔다고 후대 학자들이 분석하고 평가하고 있지만, 헤겔의 사유와 독서록 등을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 벅모스의 주장이다. 저자는 유럽 지식인들이 구독하던 월간지이자 발행 부수 3000부였던 ‘미네르바’가 1804~1805년 1년 동안 노예제와 노예혁명에 대한 기사를 무려 100건을 실었는데, 이 책을 정기구독한 헤겔이 생도맹그 섬에서 일어나는 일을 몰랐을 리 없다고 논증한다. 평생을 ‘레날주의자’로 산 헤겔은 레날(1713~1796년) 신부가 쓴 ‘두 인도의 역사’를 통해서도 카리브해 연안의 노예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고 한다. 여기서 두 인도란 오늘날 인도를 말하는 동인도와 카리브해 지역의 서인도를 말한다. 헤겔은 이후 1822년에 ‘법철학’에서 “노예로 태어나 주인이 나를 보살피고 기른다 하더라도, 그리고 내 부모와 조상이 모두 노예였다고 하더라도, 내가 자유의 의지를 갖는 순간, 즉 내 자유를 인식하게 되는 순간에 나는 자유롭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법철학’에서는 노예해방이 ‘인륜적 요구’로 등장하고, ‘주관적 정신의 철학’에서는 아이티가 직접 거론되는 것 등을 볼 때 이미 정신현상학을 쓸 당시 생도맹그 노예해방의 영향을 반영했다고 했다. 벅모스가 헤겔 철학에서 아이티의 영향을 강조하는 것은, ‘자유는 인간의 자연적 상태이자 양도할 수 없는 권리라고 선포한 바로 그 사상가들이 수백만명에 달하는 식민지 노예 노동자의 착취를 주어진 세계 일부로 받아들였다.’라고 당대의 철학자와 지식인을 비판하기 위해서다.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권리를 민족적으로, 인종주의적으로 한정했기 때문이다. 부조리한 일이 자신들이 사는 세계의 반대편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침묵하고, 외면했던 유럽 중심의 계몽주의와 서구 중심적 근대화에 대한 비판을 제기하는 것이다. 그들은 왜 노예제와 같은 반인륜적인 상황에 대해 침묵했는가. 그것은 상업자본주의에서 초기 산업자본주의로 넘어가는 18세기에 자신들에게 떨어지는 설탕같이 달콤한 이윤에 도취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저자가 더 경악하는 것은 당대의 침묵에 대해 헤겔을 연구하던 서양의 학자들도 무려 200년 동안 당대의 잘못을 지적하지 않고 외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럼 제목에 있는 ‘보편사’는 무엇인가. 저자는 서구 중심의 사이비 근대화에서 벗어나서, 보편적인 개념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고 말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이 가야 할 탈근대화의 방향은 제3세계적인 경험을 기반으로 인류 보편의 원리에 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세계화를 부르짖고 있는 한국에서는 ‘세계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라는 슬로건 대신 ‘지역적 특성을 통해 세계적 행동을 촉진할 것’이라는 제안이 유의미해 보인다. 최근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점령하라’와 같은 활동이 일어나는 현상을 볼 때 ‘인간은 자유의 몸으로 태어나 도처에서 사슬에 묶여 있다.’는 루소의 ‘사회계약론’ 역시 재해석돼야 할지 모르겠다. 신자유주의로부터 벗어날 자유, 자본의 강제로부터 억압된 자유의 해방 말이다. 이 책은 문학동네가 새롭게 기획한 인문총서 ‘엑스쿨투라’(Ex Cultura) 시리즈 첫 번째 책이다. 문화와 세계를 키워드로 다양한 현대 이론가들의 지적 지형도를 펼쳐보여 주겠다는 해외 저작 번역 시리즈다. 1만 8000원.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자살 물의’ 팍스콘 이번엔 ‘직원비하’ 구설수

    2년전 중국공장에서 직원 10여명이 잇따라 투신자살을 시도해 화제에 올랐던 세계 최대 전자부품 회사인 타이완의 팍스콘이 연초부터 구설에 올랐다. 궈타이밍(郭台銘) 회장이 춘제(春節·설)연휴를 앞두고 지난 15일 타이베이에서 열린 직원 야유회에서 “100만명의 동물을 매일 관리하느라 골치 아파 죽겠다”라고 말했다는 것. 24일 현지 언론매체에 따르면 궈 회장의 발언 내용이 알려지자 중국 네티즌들은 “팍스콘이 노동자들을 노예나 돈 버는 기계로 여기고 있다” 등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효율적 인사관리를 강조한 취지였다는 해명에도 불구하고 파장이 확산되자 궈 회장은 “직원들을 멸시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는 사과성명을 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41)‘검은 피부 하얀 가면’ 프란츠 파농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41)‘검은 피부 하얀 가면’ 프란츠 파농

    “나는 프랑스인입니다.” 파농이 학교에서 가장 먼저 배운 문장이다. 비록 프랑스 식민지 마르티니크 섬에서 흑인 노예의 후손이었던 아버지와 흑백 혼혈이었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완벽한 불어를 구사하는 중산층 집안에서 전형적인 프랑스식 교육을 받고 자란 파농이 스스로를 프랑스인으로 여기는 것은 당연했다. 1939년 로베르 제독이 이끄는 함대와 1만명의 군대가 마르티니크 섬에 도착한다. 조국 프랑스가 독일의 침공으로 위기에 처해 있지만 위풍당당한 함대는 자랑스러웠다. 다른 친구들처럼 파농도 그 함대와 군인들을 열렬히 환호하고 환영했다. 그러나 군인은 “자랑스러운 우리 프랑스 군인들”이 아니었다. 섬에 상륙한 프랑스 군인들은 호텔에서 창녀촌까지 모든 건물을 몰수했고, 공공시설에 흑백의 인종을 철저히 구분하는 칸막이를 쳤고, 조금이라도 항의를 하는 흑인들을 무지막지하게 두들겨 팼다. 노골적인 점령군의 행태!! 대부분의 마르티니크 흑인 주민들은 모욕을 느끼고 동시에 공포를 느꼈다. ●지배층 교육받은 흑인… 나는 누구인가 하지만 그들은 ‘진정한 프랑스인’이 아닐지도 모른다. 자유, 평등, 박애의 나라, 진정한 프랑스인이라면 인종주의적인 ‘나치즘’에 대항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는 가출을 감행하여 도미니카로 건너가 군사훈련을 받고, 자유프랑스군에 자원한다. 그러나 1944년 출정식 당일, 자부심에 가득찼던 마르티니크의 자원병들은 어떤 환송의식도 없이 밀항자나 나병환자들처럼 한밤중에 전함에 태워진다. 예전의 흑인 노예가 그랬던 것처럼. 배에서 내린 후의 상황은 더 처절했다. ‘자유프랑스군’ 제5대대는 철저히 피부색에 따라 위계화되어 군수품의 배급부터 의복, 야영시설까지 차별을 분명히 했다. 이 피라미드의 맨 위는 유럽의 백인 병사, 맨 아래는 세네갈 원주민 병사였다. 그럼 흑인이면서 프랑스 국적이었던 파농은? 소위 앤틸리스 제도의 의용병은 ‘유럽인’으로 분류되었다. 아프리카 출신 의용병들은 원통형의 모자를 썼지만, 파농은 유럽의 백인 병사와 같은 등급의 베레모를 썼다. 만약 베레모를 쓰지 않고 유럽인 막사를 출입하면 “호되게 엉덩이를 걷어 차였다.” 유럽인이되 늘 ‘모자’로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2등 유럽인, 하지만 아프리카의 흑인들과는 다른 우월한 흑인!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이 상황은 참전 내내 계속되었고 마침내 파농은 처절하게 깨닫는다. 자신은 프랑스인이 아니라는 것을. 당시 파농은 자신의 어머니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쓴다. “우리 아들은 대의를 위해 싸우다 죽었다는 식의 말로 위안을 삼지는 말아주십시오. 어리석은 정치인들의 방패일 뿐인 그런 거짓 이데올로기는 더 이상 우리를 환히 비춰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여기에 저의 갑작스러운 결정을 정당화해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전쟁은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온 파농에게 남은 것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뿐이었다. 완벽한 불어를 구사하지만, 결코 백인이 될 수 없는 ‘검은’ 피부색을 온몸으로 경험했지만, 파농은 ‘검은색은 아름답다.’는 네그리튀드의 사상에도 동의하기 어려웠다. 도대체 온전한 흑인이라는 게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 아름다운 아프리카 전통이라는 것이 있기나 한 것일까? 전쟁이 끝난 후 고향을 떠나 파리로 온 파농은 “파리에는 흑인이 너무 많아.”라며 파리를 떠나 리옹으로 향한다. 육체적 고향인 마르티니크를 떠나고 정신적 고향인 파리를 떠나면서 백인도 흑인도 될 수 없었던, 아니 되지 않기로 했던 파농의 최종 선택은 정신의학이었다. ●정신분석은 정치적이다 파농이 보기에 식민지배란 단순한 총칼의 지배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유럽의 백인 식민주의자들은 흑인들을 ‘비코’(새끼염소), ‘부뉼’(깜둥이), ‘라통’(쥐새끼), ‘믈롱’(멜론)으로 부른다. 물론 백인들이 흑인들을 우호적으로 대할 때도 있다. 그러나 그 때조차 그들은 “피부색에도 불구하고” 좋아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일상적으로는 흑인은 “피부색 때문에” 경멸당한다. 검은 것은 모두 ‘후진’ 것이다. 어떤 경우라도 ‘피부색’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옴짝달싹도 못하는 처지! 흑인의 무의식을 지배하는 타자는 백인이다. 그러나 백인의 무의식을 지배하는 타자는 결코 흑인이 아니다. 백인의 타자는 백인이다. 흑인의 거울은 백인인데 백인의 거울은 흑인이 아닌 상황. 이런 완벽한 비대칭성에서 흑인은 사라진다. 그는 아무렇게나 던져진 물건에 불과하다. 파농은 마르크스의 ‘소외’와 ‘사물화’를 이런 상황으로 이해했다. 정신착란은 이런 사물화의 한 극한이다. 말을 빼앗기고 삶을 빼앗긴 자들의 유일한 쉼터. 미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자들의 유일한 자유의 공간!! 정신분석은 미친 자를 정상인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 아니다. 혁명은 단순한 주권의 회복이 아니다. 무의식조차 식민지배자들에게 저당 잡힌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이 갇힌 덫에서 빠져나오는 것. 타자들이 서로에게 말을 거는 타자들의 공동체를 회복하는 것. 파농에게 이것은 정신의학의 과제임과 동시에 정치적 과제였다. 1953년 정신의학자가 된 파농은 또 다른 프랑스 식민지, 알제리로 간다. 그곳에서 그는 당시에 지배적이었던 두 가지 정신분석 담론과 대결한다. 하나는 “무의식은 역사가 없다.”는 프로이트의 보편주의 정신분석학이다. 그러나 파농이 몸으로 체득한 바, 프로이트는 틀렸다. “무의식은 역사가 있다.” 흑인들의 무의식은 식민 지배라는 역사와 식민 통치라는 구조 속에서 형성된다. 또 하나는 “정상적인 아프리카인은 전두엽 절제수술을 받은 백인과 같다.”라고 주장하는 인종주의적 정신분석. 그는 새로운 담론을 만들었고 정력적으로 일했다. 그리고 ‘검은 피부, 하얀 가면’, ‘앤틸리스의 아프리카인’ 등 쓰는 글마다 엄청난 논란을 야기했다. 또한 그를 백안시하는 동료 의사, 그를 미심쩍어하는 알제리 간호사들을 설득하여 정신병원-수용소라는 제도 자체를 변혁하는 활동을 전개한다. 다른 좌파 정신분석학자들과 함께 그가 사용한 ‘제도 요법’은 환자들을 좀 더 인간적으로 대우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광기’를 가두는 것이 아니라 ‘광기’를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도록 하는 것, 의사와 간호사, 환자가 함께 협력하여 환자가 광기의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것, 스스로 삶의 준거를 다시 찾게 하는 일. 자기가 자신을 해방시키는 일이었다. ●유럽과 결별하라! 당시 알제리는 민족해방운동이 활활 타오르던 제3세계 민족해방운동의 메카였다. 알제리민족해방전선의 투사들이 식민 통치자들의 악랄한 탄압에 맞서 몸을 숨기기에 정신병원만큼 안성맞춤인 곳이 또 있었을까? 그들의 대의에 동의했을 뿐 아니라 이미 몇몇과는 개인적 친분이 있었던 파농은 자신이 일하는 병원에 그들을 숨겨주기도 하고, 다친 투사들을 치료해주기도 했다. 파농의 병원이 프랑스 당국에 의해 ‘빨치산의 소굴’로 지목받는 건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시시각각 파농에게도 탄압의 손길이 뻗쳐왔다. 그곳을 떠날 때가 되었다. 그러나 알제리의 정신병원을 떠난 것은 단순한 탄압 때문은 아니었다. 파농이 보기에 그의 동료이기도 했던 프랑스의 좌파 정신의학자들에게는 식민지 문제가 부차적이었다. 그들은 식민지 상황과 개인의 광기 사이의 관계에 대해 진정으로 무지했다. 아니 무의식적으로 무시했다. 그 점은 사르트르도 마찬가지였다. 파농은 사르트르가 알제리 혁명과 관련하여 단호한 정치적 결단을 내리지 않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 프랑스인들과 파농은 결코 같은 길을 갈 수가 없었다. “유럽과 결별하라!” “프랑스인으로서의 ‘나’와 영원히 결별하라!” 파농은 “오늘날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가 있다. 그러나 조건이 있다. 유럽을 흉내 내고, 유럽을 따라잡겠다는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겠다는 조건이 그것이다.”라고 선언하면서 알제리를 떠나 튀니지로 가고 그곳에서 알제리 혁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다. 그는 알제리 민족해방전선의 기관지에서 기사를 쓰기도 하고, 알제리 임시정부의 외교관 자격으로 아프리카 신생 독립국과의 연대투쟁을 조직하려고 애쓰기도 한다. 그러나 투쟁의 과정은 동시에 시련과 갈등의 과정이었다. 그 자신이 프랑스 제국주의자에 의해 테러를 당하는 일은 오히려 부차적이었다. 그는 알제리 민족해방운동 안의 수많은 분파투쟁을 목도했고, 자신이 사랑하던 동지들이 적에 의해서뿐만 아니라 또 다른 동지들에 의해 처형되는 모습을 봐야 했다. 그 투쟁의 한가운데에서, 시련의 한복판에서 파농은 ‘백혈병’ 으로 서른 여덟 해의 짧은 생을 마감한다. 브리태니카 인명사전에 그는 “프랑스의 정신과 의사이자 사회학자”라고 소개되어 있다. 파농이 평생 프랑스인이라는 그 호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투쟁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죽어서 다시 프랑스인이 되어 버렸다는 그 사실은 역사의 어떤 아이러니, 어떤 ‘비극’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의 투쟁은 실패했는가? 그러나 그가 원한 것은 프랑스인이 아닌 다른 무엇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 어떤 것이든 자신을 억압하는 모든 것에 저항하는 것.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나는 내가 아니다.”라는 방식으로 살아내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렇게 사는 한 파농의 투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 아닐까? 이희경(문탁네트워크)
  • [커버스토리] 대한민국은 ‘돈봉투’ 공화국…여의도 떠도는 검은 돈

    [커버스토리] 대한민국은 ‘돈봉투’ 공화국…여의도 떠도는 검은 돈

    한나라당 고승덕 의원이 폭로한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을 계기로 정치권의 ‘뒷돈 거래’가 주목받고 있다. 정치 현장 곳곳에 ‘눈먼 돈’이 독버섯처럼 퍼져 있다. 4·11 총선을 앞두고 더욱 기승을 부릴 것으로 우려된다. 국회의원을 비롯한 총선 예비 후보들이 돈 봉투를 뭉텅이로 챙길 수 있는 기회는 출판기념회다. 정치후원금과 달리 출판기념회에서 내놓는 ‘봉투’는 규제의 ‘사각지대’다.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모두 액수 제한이 없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수입 내역을 신고할 의무도 없고, 회계 감사를 받을 필요도 없다. 그야말로 ‘묻지마 헌금’이다. 지난 하반기 이후 현역 의원의 90% 이상이 출판기념회를 연 배경이기도 하다. 한 여권 관계자는 13일 “기업과 공공기관 등 관련 기관이 많은 국토위·지식경제위·금융위 등이 ‘물 좋은’ 상임위”라면서 “최근 출판기념회 한 번으로 10억원 가까운 책값을 거둬들인 의원도 있다는 게 정설”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4월 총선에 서울 지역 출마를 희망하고 있는 여권의 한 공직자 출신 인사는 최근 불과 반나절 동안 개최한 출판기념회를 통해 1만명을 불러 모으기도 했다. 참석자들이 평균 10만원씩 들고 갔다 치면 이 인사는 순식간에 10억원을 모았다는 얘기가 된다. 게다가 이 중에는 기관이나 법인 단위의 뭉칫돈도 심심치 않게 들어 있다. 이런 실정이다 보니 정치인들의 ‘책값’은 법정 후원금의 연간 한도액 1억 5000만원(선거가 있는 해에는 3억원)을 웃도는 경우가 적지 않다. 여기에는 정부부처나 공기업 등 국민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혈세’, 기초단체장이나 지방의원 등으로 공천받기를 원하는 지역 정치인들의 ‘상납금’ 등도 섞여 있을 수밖에 없다. 2004년 정치자금법(일명 오세훈법) 개정과 함께 기업 후원금이 대폭 제한되자 출판기념회가 새로운 자금줄로 등장한 셈이다. 의원들이 이렇듯 정치 자금을 챙기는 ‘갑’의 위치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전당대회나 대통령 후보 경선 등 중요한 정치적 이벤트가 벌어질 경우 표를 끌어모으기 위해 돈을 뿌린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으나, 이번 돈 봉투 사건을 계기로 만천하에 드러났다. 특히 총선 공천을 앞둔 지금과 같은 시기는 비밀리에 돈 봉투가 오가는 이른바 ‘대목’으로 간주된다. 정치권 관계자는 “당내 경선에 대비해 지역별로 촘촘히 짜여진 당원협의회장 등에게 관리비·활동비 명목으로 자금을 지원하고, 이 자금을 통해 조직이 가동되는 구조”라면서 “수도권보다 지방에서 이런 현상이 더 두드러진다.”고 귀띔했다. 또 정치 신인 주변에는 주로 선거 브로커들이 ‘검은 유혹’의 손길을 뻗친다. 이들 선거 브로커는 해당 지역사회의 토착세력들이 대부분이다. 유권자 동원 능력을 과시하며 뭉칫돈을 요구한다. 최근 강완묵 전북 임실군수가 지난 2007년 선거 브로커에게 인사권과 이권을 약속한 ‘노예 각서’를 써 준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기도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아무리 깨끗한 정치를 하려 해도 현실 정치에 뛰어들면 공염불에 그치기 일쑤”라면서 “검은 돈을 주고받는 ‘먹이사슬’ 구조를 깨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최대 번영기 로마인의 삶 속으로 가상여행

    고대 로마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통치하던 기원전 27년부터 기원후 180년까지의 기간을 뜻하는 팍스 로마나(Pax Romana). ‘로마의 평화’로 불리는 이 팍스 로마나는 가장 평화로웠던 로마 전성기의 상징이지만 그 방대한 제국의 규모를 떠올리게 한다. 제국의 심장부인 로마에 들어섰던 개선문만 해도 40개. 여기에 포럼 12개, 도서관 28개, 일반 공중목욕탕 1000개, 신전 100개, 40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원형 투기장 2개, 2만 5000석 규모의 대형 극장 4개…. 로마시를 여행하다 보면 곳곳에서 고대 로마의 흔적들을 어렵지 않게 만나며 그야말로 도시 전체가 유적지라는 말을 실감케 된다. 어마어마한 건물의 잔해며, 찬란했던 문화 유산들. 때로는 흉물스럽게, 때로는 믿기지 않을 만큼 온전한 모습으로 다가오는 그 흔적들은 아쉽게도 먼 옛날의 도시 풍경만을 상상 속에 그리게 할 뿐이다. 정작 그곳에서 살아 숨 쉬었던 고대 로마인들을 더듬어 볼 생생한 체험에선 먼 채. ‘고대 로마인의 24시간’(알베르토 안젤라 지음, 주효숙 옮김, 까치 펴냄)은 과거의 것으로만 존재하는 죽은 공간과 흔적에 고대 로마인을 부활시켜 로마를 찬찬히 볼 수 있게 안내하는 흥미로운 책이다. 가장 넓은 영토를 보유하고 있었던 투라야누스 황제가 집권하던 기원후 115년의 로마. 제국의 국경선이 지구 원주의 4분의1에 달하는 1만여㎞를 뻗어 있었던 당시 로마의 주민은 150만명에 달했다고 한다. 책은 로마 제국의 최대 번성기였던 시절, 로마와 로마 주민들의 생활상을 서민의 입장에서 샅샅이 훑어내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상상 속의 화자가 여명의 시간부터 24시간 동안 로마 구석구석을 다니며 체험하는 실제 로마인의 삶. 그곳의 집이나 거리, 그리고 마치 군중들 사이에 서 있다고 착각할 만큼의 생생하고 사실적인 묘사가 돋보인다. 2000년 전 로마인의 하루는 놀랄 만큼 풍요롭고 여유롭다. 부자들의 저택에서 벌어지는 귀족 남성의 몸단장과 여성의 화장 비법, 그리고 그들을 위해 바쁘게 움직이는 노예들의 삶. 현대의 아파트와 흡사한 공동주택이며 상상을 초월하는 사교의 장이었던 공중목욕탕과 공중화장실, 거리의 포럼들…. 그런가 하면 죄인들을 공개 처형했던 콜로세움에서는 맹수와 인간, 그리고 목숨을 건 검투사들의 시합까지도 생생하게 재현돼 당시 로마인들의 충격과 흥분을 고스란히 맛보게 한다. 고고학 연구와 결과물을 토대로 구성한 가상의 공간과 가상의 인물들. 하지만 세세한 역사적 사실들을 들춰내 제공하는 과거로의 여행 길은 독자들의 상상에 따라 무한하게 뻗칠 수 있을 것 같다.1만 8000원. 김성호 편집위원 kimus@seoul.co.kr
  • “술 끊어라” 남편 쇠사슬로 묶어둔 부인 ‘충격’

    쉬지 않고 술을 마시다 쇠사슬에 묶여 있던 남자가 구사일생 풀려났다. 멕시코 북서부 바하 칼리포르니아 주의 멕시칼리에서 경찰이 쇠사슬로 침대에 묶여 지내던 노인을 구조했다고 현지 언론이 6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71세로 나이만 알려지고 이름은 공개되지 않은 이 노인을 침대에 묶어 놓은 건 다름 아닌 부인이었다. 주체하지 못한 음주욕 때문에 빚어진 사건이다. 노인은 지난해 크리스마스 전인 12월 22일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새해가 됐지만 노인은 술잔을 놓으려 하지 않았다. 부인이 “이제 그만 마시라.”고 호소했지만 남자는 말을 듣지 않았다. 술마시기 대회에 나간 듯 술을 들이키는 남편이 걱정된 부인은 쇠사슬을 가져다 노인을 침대에 묶었다. 남자가 노예처럼 묶여 지낸다는 사실은 동네에 입소문으로 퍼졌다. 이웃들은 남자를 걱정하다 따로 살고 있는 아들에게 SOS를 보냈다. 한걸음에 달려온 아들은 끔찍한 장면을 보고 바로 경찰에 신고, 도움을 요청했다. 경찰은 남자를 병원으로 옮기는 한편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 관계자는 “가정폭력혐의로 부인이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 한편 아들은 “아버지를 처음 봤을 때 마치 해적선에 묶여 있는 노예처럼 온몸이 쇠사슬로 묶여있었다.”고 말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 10원짜리 동전이 16억원에 팔려…

    10원짜리 동전이 16억원에 팔려…

    미국의 한 경매에서 약 220년전 주조된 1센트짜리 즉, 우리 돈으로 10원 정도 되는 구리 동전 한 개가 약 16억원에 팔려 화제다. 7일(현지시각) 미 지역 일간 ‘올랜도 센티넬’ 등 외신 보도를 따르면 플로리다 국제 고전학 컨벤션에서 열린 헤리티지 경매에서 1793년 주조된 1센트 구리 동전이 138만 달러(수수료 포함)에 익명의 입찰자에게 낙찰됐다. 이 동전은 미국이 처음으로 동전을 주조한 지난 1793년 필라델피아 조폐국에서 만든 것으로, 한 경매 관계자는 현재 이 해에 주조된 동전은 수백 개가 남아 있지만 경매된 동전은 시중에 한 번도 유통되지 않은 매우 희귀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경매된 동전은 앞면에 자유의 여신상 모습을 담고 있으며, 뒷면에는 여러 개의 반지가 연결된 사슬 모양을 하고 있어 ‘사슬의 센트’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사슬은 미국 각 주의 단결을 상징하고 있다. 하지만 사슬 모양이 미국 노예제도를 연상시킨다는 비난이 제기된 뒤 1센트짜리 동전 디자인이 바뀌면서 이 동전 주조는 중단됐다. 한편 이날 경매에는 이 동전 외에 1829년 주조된 5달러짜리 금화가 낙찰되는 등 총 6400만 달러에 달하는 낙찰 가격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해리티지 경매 사이트 캡처 윤태희기자 th20022@seoul.co.kr
  • [열린세상] 실패한 기업인에게도 기회를 줘야 한다/김관기 김&박 법률사무소 변호사

    [열린세상] 실패한 기업인에게도 기회를 줘야 한다/김관기 김&박 법률사무소 변호사

    개인채무자가 파산하면 재산을 채권자에게 배당하고 나머지 채무는 면책된다. 불운과 잘못된 선택의 결과로부터 벗어나는 새 출발이니 발본적 신용회복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정책은 금융업자가 신용을 제공할 때 상환능력을 심사하고 사후에 고객의 행동을 감시하게 하여 과다한 신용 창출을 억제한다. 또 회사 채무에 대하여 기업인에게 보증책임의 굴레를 씌우는 것에 대한 ‘제한’으로 작용한다. 조세 및 부양료 채무는 면책에서 제외되니 공익에도 부합하며 채무상환이라는 강제저축을 해소함으로써 내수를 진작하는 거시경제적 효과도 있다. 영국과 미국에서 발전되어 선진국에 정착된 이 제도를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도 시행하고 있는데, 2000년 329건에 불과하던 파산 신청이 2007년 15만 4039건으로 팽창하였고 초기 57%에 불과하던 면책률도 98% 이상으로 높아졌다. 가계와 기업이 국제적 무한경쟁에 적응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의 중심에서 엘리트 법관들이 내외의 반대를 극복하고 파산절차의 간소화와 신속성을 추구한 결과, 삶의 여백을 유린당한 빚의 노예가 해방되었고 투명인간처럼 제도 바깥을 떠돌던 낙오자들도 경제활동으로 돌아왔다. 채권자는 위협적 언동을 삼가게 되었고, 신용회복위원회는 변제조건을 현실적으로 조정해 주기 시작하였다. 순기능의 현저함에 남용이 우려된다는 목소리는 일시적으로 억제될 수 있었다. 그런데 2008년 파산신청이 줄기 시작하여 2010년에는 7만 7728건, 2011년 11월까지 6만 3386건으로 떨어져 2007년의 절반 이하가 되었고 면책률도 85%까지 낮아졌다. 가계부채가 900조원을 웃도는 상황에서 신용회복의 필요성이 줄이든 것은 아닐 테고 결국 원인은 파산신청을 심리적으로 억제해 왔기 때문으로 보아야 한다. 법원은 2007년 이후 제도 남용 방지를 명목으로 가족의 재산에 관한 사항도 명시를 요구하고 재산이 있는 경우 조사를 위한 파산관재인을 지정하고 있다. 그 주된 대상은 실패한 기업인과 의사 등 전문직업인이 되는데, 선별적 지정을 면책불허에 관한 법원의 의지로 생각하는 파산관재인의 지나친 활동은 많은 민원의 대상이 되었고, 당연히 가족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파산 신청을 채무자는 주저하게 되었다. 심지어 민사법상 요구되는 엄격한 증명 없이 채무자가 가족의 명의로 기업을 설립하여 실제로 운영하는 것으로 추정된다는 이유로 면책이 허용되지 않는 사례까지 생겨났다. 이쯤 되면 가족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고 고위 공직자의 가족재산공개거부권에 비교하면 차별이다. 제도의 남용이 있다면 구체적인 경우를 가려 형사처벌 등으로 배제하면 될 일이다. 가족의 재산에 관한 사항의 진술은 법률상 요구되지 않는다는 대법원의 태도에도 불구하고 유지되고 있는 이러한 관행의 근저에는, 파산보호는 장래에도 갚을 능력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시혜이고 고소득자는 제도를 이용할 적격이 없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 같다. 이것은 파산제도에 대한 오해이다. 파산제도는 인적 자본을 해방함으로써 높은 소득과 재산 축적을 통하여 다시 중산층과 부자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사실 서민은 파산제도로 얻을 것이 없다. 채무를 면하여 준들 그들이 저축하여 부자가 되겠는가. 다시 빚을 쓰고 영원히 빚을 갚는 것이 보통이다. 창업지원정책으로 기업활동에 가담할 수 있었던 사람들 대부분은 몇 년을 버티지 못하고 신용불량자가 된다. 이들의 재기 노력을 도덕 타락으로 비난하고 가족의 능력을 재산은닉이라고 강변한다면, 어느 누가 비난에서 자유롭겠는가. 인재가 넘쳐 흐르던 정보통신(IT)업계에서 사람을 못 구하고 공무원 학원에 애늙은이가 넘쳐나는 현실은 기업하다 실패하면 패가망신한다는 젊은이들의 인식을 반영한 것이다. 안철수씨도 기업활동의 실패를 딛고 재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그의 말은 파산제도가 기업인들에게 차별 없이 적용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실패를 허용하는 시장경제를 지탱하는 굳건한 안전띠로서 파산제도가 기업인에게 차별 없이 적용될 때 그들은 실패를 과거로 돌릴 수 있을 것이다.
  • [주말 영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MBC 일요일 밤 11시 50분) 1592년 임진왜란 직전의 조선. 전쟁의 기운이 조선의 숨통을 조여 온다. 민초들의 삶이 갈수록 피폐해져 가던 선조 25년. 정여립, 황정학(황정민), 이몽학(차승원)은 평등 세상을 꿈꾸며 ‘대동계’를 만들어 관군을 대신해 왜구와 싸운다. 하지만 조정은 이들을 역모로 몰아 대동계를 해체시킨다. 대동계의 새로운 수장이 된 이몽학은 썩어 빠진 세상을 뒤엎고, 스스로 왕이 되려는 야망을 키워 친구는 물론 오랜 연인인 백지(한지혜)마저 미련 없이 버린 채 세도가 한신균 일가의 몰살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반란의 칼을 뽑아 든다. 한때 동지였던 이몽학에 의해 친구를 잃은 전설의 맹인 검객 황정학은 그를 쫓기로 결심하고, 이몽학의 칼을 맞고 겨우 목숨을 건진 한신균의 서자 견자(백성현)와 함께 그를 추격한다. 15만 왜구는 순식간에 한양까지 쳐들어 오고, 왕조차 나라를 버리고 궁을 떠나려는 절체절명의 순간. 이몽학의 칼 끝은 궁을 향하고, 황정학 일행 역시 이몽학을 쫓아 궁으로 향한다. ●하바나 블루스(KBS1 토요일 밤 12시 55분) 쿠바 아바나의 무명 뮤지션인 루이와 티토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고 생활고에 시달리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 하나만으로 살아 가는 젊은이들이다. 자신들의 열정을 담은 첫 콘서트를 기획하던 중 실력 있는 신인을 찾으러 온 스페인의 유능한 음반 프로듀서를 만나게 되고 스카우트 제의를 받게 된다. 꿈에 부푼 두 사람은 평생 나가 보지 못했던 쿠바를 떠나 스페인 큰 무대에서 활동할 수 있다는 설렘으로 음반 준비를 시작한다. 그러나 자신들의 계약이 노예계약과 다름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루이와 티토는 고민에 빠진다. 루이는 부인과도 이혼의 위기에 놓이고 나라를 버려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린다. 하지만 티토는 자신들의 인생에 찾아온 절호의 기회를 잡아야 된다고 하면서 갈등을 빚게 된다. ●꼬마 유령 캐스퍼(EBS 일요일 오후 2시 30분) 유령이 출몰한다는 대저택 ‘윕스태프’에 두 소년이 잠입한다. 이들은 이 으스스한 곳에서 증명 사진을 찍어 친구들에게 자신들의 용기를 증명하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 유령이 나타나자 혼비백산해서 도망친다. 사실 이곳의 터줏대감은 꼬마유령 캐스퍼와 그의 삼촌들인 유령 삼총사다. 캐스퍼는 사람들과 친해지고 싶지만 다들 캐스퍼가 나타나기만 하면 기겁하고 도망치는 바람에 늘 외롭다. 그러던 어느 날 저택의 상속자인 캐리건과 그녀의 오른팔 노릇을 하는 딥스가 이곳에 숨겨진 보물을 찾기 위해 찾아온다. 그러나 이들도 역시 캐스퍼와 짓궂은 유령 삼총사의 등장에 기겁을 하고 도망친다. 그렇게 캐리건과 딥스는 유령을 쫓아내기 위해 ‘고스트 버스터스’에 철거반까지 동원하는데….
  • 딸 성폭행한 뒤 40만 원에 팔아넘긴 남자 쇠고랑

    10대 딸을 성폭행한 뒤 팔아넘긴 남자가 철장에 갇혔다. 멕시코 우익스킬루칸이란 도시에서 14살 된 딸을 성폭행한 뒤 대부에게 팔아넘긴 남자가 긴급 체포됐다고 현지 언론이 최근 보도했다. 짐승같은 짓을 한 아버지는 성폭행한 딸을 5000페소(약 40만원)에 팔아넘겼다. 돈을 주고 여자아이를 넘겨받은 사람은 아이의 대부였다. 대부는 아이를 노예처럼 부리며 또 성폭행했다. 검찰이 나서게 된 건 피해자 여자아이가 용기를 내 사건을 신고한 덕분이다. 대부에게 팔려가 성노예가 된 여자아이는 이웃들에게 사연을 털어놨다. 이웃들은 “무서워하지 말고 당장 신고를 하라.”며 여자아이에게 용기를 줬다. 용기를 얻은 여자아이는 인신매매사건을 다루는 특수검찰에 사건을 고발했다. 검찰은 딸을 성폭행한 뒤 팔아넘긴 아버지, 돈을 주고 여자아이를 넘겨받은 대부, 사건을 알고 있었으면서 모른 채 눈을 감은 여자아이의 오빠 등 3명을 긴급 체포했다. 아버지와 대부로부터 끔찍한 일을 당한 피해자 여자아이는 검찰의 후원으로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 위안부 할머니들 통한의 20년… 수요시위 1000회를 맞다

    위안부 할머니들 통한의 20년… 수요시위 1000회를 맞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세상을 떠나고 있다. 지난 4일 94세 최고령의 박서운 할머니에 이어 13일 김요지 할머니가 87세 나이로 별세했다. ‘하얀 저고리 검정치마 붉은 진달래, 조선 땅의 딸이 오늘 떨어진다. 또 진달래 지다.’라는 어느 시인의 노래처럼 피지 못하고 떨어지는 꽃잎이 되었다. 몽우리진 아픔, 맺힌 한을 터뜨리지도 풀지도 못한 채 세상을 떠난 것이다. 정부에 공식 등록돼 있는 234명의 할머니 가운데 생존자는 63명뿐이다. 올해에만 16명이 떠났다. “이대로는 눈 못 감겠다.”고 절규했지만 시간은 멈춰 주지 않았다. 평균 나이가 벌써 86세에 이르렀다. 1992년 1월 8일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시작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수요시위’도 14일 1000회를 맞는다. 무려 20년간이다. ‘추악한 일본의 역사’를 세상 밖으로 끌어냈지만 일본으로부터 제대로 된 사과조차 받지 못했다. 우리 정부의 대처도 무기력했다. 그래서 할머니들의 가슴은 더욱 미어지고 아프다. 할머니들은 분명하게 외친다.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진정성 있는 사과의 말 한마디 그거면 충분하다.”라고. 경기 광주시 퇴촌면 원당리 65번지. 일제강점기에 위안부로 끌려가 고통받은 할머니들의 보금자리 ‘나눔의 집’을 찾았다. 서울에서 승용차로 한 시간 걸렸다. 시골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안신권 소장을 만났다. 안 소장은 나눔의 집과 붙어 있는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국제평화인권센터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할머니 대부분이 노인성 질환, 성적 질환,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가 여전히 심각하다는 게 안 소장의 말이다. 일본군의 성 노예라는 참혹한 경험은 70년이 지난 지금까지 할머니를 분노케 한다는 것이다. 김화선(85) 할머니는 케이블 채널에서 일본인들의 격투기 보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한다고 했다. 나눔의 집에는 현재 8명의 할머니가 살고 있다. 각자 방을 따로 쓴다. 안 소장은 “자신의 상처가 지독해서 다른 할머니들의 말은 거짓말로 여기다 보니 서로 그렇게 친밀한 편은 아니다.”고 전했다. 이 또한 아픔의 후유증이다. 이 때문에 할머니들의 우울증은 더욱 심해졌다. 배춘희(88) 할머니는 인터뷰를 거절한 채 방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거실에서 박옥선(87) 할머니와 마주 앉았다. 박 할머니는 참혹했던 당시를 또렷하게 기억했다. 경남 밀양이 고향인 박 할머니는 15세 때 저녁밥 지을 물을 길러 동네 우물가에 갔다가 일본군 2명에게 잡혔다. 보내 달라고 울면서 매달렸지만 소용없었다. 높은 트럭에 태워져 어디론가 끌려갔다. 박 할머니는 쑥 들어간 정강이뼈와 흉터를 보이며 “그때 순사 군홧발에 차인 상처”라고 말했다. 다다른 곳은 중국의 모처 전쟁터였다. 일주일에 한 번씩 성병이 있나 없나 신체검사도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박 할머니는 진영이 포격을 당하자 뿔뿔이 흩어졌다. 인근에 ‘조선인 부락’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필사적으로 탈출했다. 산은 아주 가팔랐다. “도망치던 말도 산이 높아 오르지 못하고 아래로 곤두박질쳤다.”고 상황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박 할머니는 중국 헤이룽장성으로 빠져나와 머물렀다. 무려 60년을 뜻하지 않게 그곳에서 생활했다. 그러다 2001년 영구 귀국했다. 김군자(85) 할머니는 평소 언론과의 인터뷰를 거절했다. 하지만 수요시위 1000회 기념에 맞춰 특별히 문을 열어 줬다. 사진을 찍겠다고 했더니 빗질도 하고 녹색 스카프를 맸다. 김 할머니는 “일본군에게 폭행당해 한쪽 귀 고막이 터져 말을 잘 듣지 못하니 큰 목소리로 이야기해 달라.”며 나라 잃은 서러움 속에 당한 숱한 고초를 털어놓았다. 김 할머니는 “지금이 행복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웃음을 내보이진 않았다. “일본 정부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눈감기 전에 꼭 받고 싶다.”며 수십년간 한결같이 외쳐온 절규도 이젠 힘겨운 듯했다. 거동이 불편할 만큼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 1000회 수요시위에는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 김 할머니는 2007년 아름다운재단에 1억원을 쾌척했다. “내가 못 배운 게 한이 된다. 돈이 없어 공부하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 써 달라며 기부했다.”고 했다. 김 할머니에게 인사하고 떠날 때 박 할머니가 “다음에 또 와요.”라며 현관 앞까지 마중 나왔다. 그리고 손을 꼭 잡아 줬다. 이영준·김진아기자 apple@seoul.co.kr
  • [생명의 窓] 누비이불의 미학/차동엽 인천 가톨릭대 교수·신부

    [생명의 窓] 누비이불의 미학/차동엽 인천 가톨릭대 교수·신부

    자연세계에 ‘회색’이라는 색깔이 있다. 이 색깔을 두고 사람들은 묻는다. “이것은 흑인가, 백인가?” 어떤 사람은 말한다. “이것은 흑이야!” 어떤 사람은 말한다. “이것은 백이야!” 하지만 자연의 실재(實在)는 외친다. “아니야, 나는 ‘회색’이야. 회색이라고!” 비극은 사람들에게 있다. 아무도 그 색깔을 ‘회색’이라고 말할 용기를 내지 못하는 데 우리 시대의 아픔이 있다. 자연의 세계는 다채로움의 향연이다. 색의 측면에서만 보더라도 오만 가지 색채가 각각 자기 색깔을 뽐내는 가운데 이 모두가 어우러져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이렇거늘, 유독 대한민국 정치판에서는 흑과 백만 존재하는 듯이 경색되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런 문화에서는 회색만 입장이 난처한 것이 아니라, 빨주노초파남보로 대표되는 색의 스펙트럼 전체가 그 풍요로움을 잃고 흑백의 냉혹하고도 초라한 체제에 매몰될 수밖에 없다. 요즈음 정치 지형이 크게 요동치고 있다. 지각변동을 넘어 아예 새판짜기 수준이다. 정치 패러다임이 바뀔 형국이다. 이것은 위기가 아니다. 두 번 다시 없을 기회다. 차제에 대혁신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흑백논리가 아니라 스펙트럼 논리로 소통이 이루어지는, 그리하여 각계각층의 견해와 이권을 최대공약수로 담아낼 수 있는 정당문화가 새롭게 기반을 잡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이제 대한민국은 더 이상 중국과 일본 사이에 위치한 ‘끼여 있는 나라’가 아니다. 대한민국은 장차 통일을 이뤄 이 양국의 무등을 타고 세계를 호령할 날이 오리라는 원대한 비전을 품고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할 시점에 있다. 그 대전제가 정치발전이며 다채로운 국민 저력의 소통과 융합인 것이다. 하지만 현실과 이상의 괴리는 너무도 크다. 그래서 답답한 마음뿐인데, 1990년대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 지명전에 출마한 제시 잭슨 목사의 유명한 연설을 접하게 되었다. 순간 전율에 가까운 감동이 밀려 왔다. “나의 경쟁자 듀카키스의 양친은 의사와 교사였고 나의 부모는 하인이요 미용사였으며 경비원이었습니다. 듀카키스는 법률을, 나는 신학을 공부했습니다. 둘 사이에는 종교와 인종의 차이, 경험과 관점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이란 나라의 진수는 우리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듀카키스의 부친은 이민선을 타고, 나의 선조는 노예선을 타고 미국에 왔습니다. 우리들의 앞 세대가 무슨 배를 타고 미국에 왔든지 간에 그와 나는 지금 같은 배를 함께 타고 있습니다. 미국은 한 가지 실, 한 가지 색깔, 한 가지 천으로 만든 이불이 아니라 누비이불을 만들어야 합니다. 유년시절 어머니께선 털 헝겊, 실크, 방수천, 부대자루 등 그저 구두나 간신히 닦아낼 수 있는 조각천들을 모으셨습니다. 어머니는 힘찬 손놀림과 튼튼한 끈으로 조각천들을 꿰매어 훌륭한 누비이불을 만드셨습니다. 그것은 힘과 아름다움과 교양을 상징합니다. 이제 우리도 이른바 ‘누비이불’을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근 20년이 지난 오늘의 미국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희망사항을 전하고 있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신선한 영감을 주는 발상이었다. 거의 완벽한 짜임새와 철학으로 우리에게 귀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 세상에는 다채로운 존재들이 서로의 ‘차이’를 뽐내고 있다. 이는 ‘경험’과 ‘관점’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우리의 소명은 그것들로 ‘누비이불’을 만드는 것이다. 누비이불은 ‘힘’과 ‘아름다움’과 ‘교양’의 상징이다! 무엇보다도 마지막 말에 공감이 간다. 누비이불은 ‘힘’이다? 그렇다. 그것은 다름들이 연합하여 시너지를 분출하는 대자연의 다이내믹이다. 누비이불은 ‘아름다움’이다? 그렇다. 그것은 다름들이 어우러져 연출하는 예술의 극치다. 누비이불은 ‘교양’이다? 그렇다. 그것은 ‘다름’을 ‘틀림’으로 여기지 않는 관용의 발로다. 지금 우리 앞에는 ‘다름들’이 미결의 과제로 턱하니 태산처럼 가로막고 있다. 이 다름들을 꿰매어 누비이불로 만들 줄 아는 정치공학은 언제 우리 것이 될 것인지가 자못 기대되는 것이다.
  • [책꽂이]

    ●코메리칸의 뒤안길(손남우 지음, 그루 펴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방생’으로 등단한 작가의 연작 장편. 1부 ‘딱지를 위하여’는 외환위기로 고단한 나날이 연속되던 시기, 순간적 감정에 회사를 그만두고 미국으로 떠난 주인공이 불법 체류자로 살다가 우여곡절 끝에 영주권을 얻어내는 과정을 그렸다. 2부 ‘코메리칸 25시’는 쉰 살이 넘은 늦은 나이에 외국 생활을 시작한 작가가 미국에서 느끼고 보고 겪은 이야기를 각색해 엮은 콩트집. 미국 댈라스에 거주하는 작가는 “삶의 희로애락을 심각하기보다 재미를 더해 나름대로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9300원. ●프로이트 1, 2권(피터 게이 지음, 정영목 옮김, 교양인 펴냄) 인류에게 결코 치유될 수 없는 치명적인 심리학적 모욕을 한 프로이트. 인간을 정신의 주인이 아니라 무의식의 지배를 받는 노예로 끌어내린 그의 인생을 분석했다. 각 권 3만원. ●10년 후 세상(중앙선데이 미래탐사팀 지음, 청림출판 펴냄) 과학기술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발달 등으로 사회가 급속도로 변하고 있다. 과학기술은 앞으로 얼마나 더 발전하고 우리 사회는 어떤 변화를 겪게 될까. 또 가치관과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최재천 이화여대 교수,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 전상인 한국미래학회 회장 등이 참여해 10년 후 우리 세상을 진단했다. 1만 6000원. ●키워드로 읽는 동아시아(최원식 등 지음, 이매진 펴냄) 중국, 일본, 동남아시아 각국을 연구하는 학자 37명이 안중근, 마오쩌둥 사상 등 다양한 분야의 73가지 키워드로 동아시아의 현실과 미래를 진단한다. 1만 2000원. ●영어 단어 기억의 비밀(김윤환 지음, 미르에듀 펴냄) KBS 1TV ‘과학카페’에서 다뤘던 ‘영어 단어 기억의 비밀’이 방송에서 다하지 못한 이야기를 담아 책으로 나왔다. 단어부터 지배하라, 어원으로 암기하라, 정보를 부호화하라, 기억력의 기술을 개발하라 등 뇌 과학과 심리학까지 동원해 영어 단어 암기의 핵심 비법을 제시한다. 1만 3800원 ●족보와 조선사회(권기석 지음, 태학사 펴냄) 족보를 통해 조선시대 계보의식의 변화와 사회관계망을 고찰한 연구서.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학예연구사인 저자는 족보의 형성 과정과 초기 족보의 특징, 족보의 변화 발전 양상을 깊이 있게 들여다본다. 3만 5000원. ●알튀세르 효과(진태원 엮음, 그린비 펴냄) 프랑스의 구조주의 마르크스주의자 루이 알튀세르(1919~90)의 사상을 연구한 논문 모음집. 알튀세르에게서 사사한 마류세 피에르 릴 3대학 명예교수를 비롯한 국내외 연구자 논문 10편이 실려 있다. 3만 8000원.
  • 치안 어쩌고… 수사경찰 70% 보직 반납

    치안 어쩌고… 수사경찰 70% 보직 반납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전국 10만 경찰관을 비롯해 그 가족들까지 분노하고 있다. 검찰의 노예처럼 통제받고 간섭받게 되면 누가 수사한다고 하겠나.” 검·경 수사권 조정 ‘후폭풍’이 경찰 조직을 강타하고 있다. 국무총리실의 강제조정안이 ‘수사 경찰관 태업’이라는 초유의 사태에 직면할 정도의 큰 후유증을 낳고 있다. 항의 표시로 집단 행동에 들어간 경찰은 그들의 상징인 수갑마저 집단 반납했다. 25일 현재 70%에 이르는 수사경과의 경찰관이 “더이상 수사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최악의 경우 수사 경찰 모두가 수사경과를 포기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서울의 한 경장급 경찰관은 “우리 수사팀은 뜻을 모아 수사경과를 모두 반납했다.”면서 “오해를 받거나 무리한 집단 행동으로 비춰질 수도 있지만 이렇게라도 안 하면 일선 형사들이 이번 조정안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릴 길이 없다.”고 강조했다. 수사 경찰들은 수갑 반납, 수사경과 포기, 토론회 개최 등 집단 반발과 조정안 재논의 또는 형사소송법 재개정 압박을 가하는 투 트랙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동시에 정치권과 전직 경찰 등을 통해 압박을 가하고 있다. 경찰 수뇌부는 대통령령으로 된 수사권 조정안의 상위 법령인 형사소송법 재개정 운동을 벌일 태세다. 박종준 경찰청 차장은 이날 오전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입법예고 기간에 합리적인 조정안을 마련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면서 “다만 이런 절차가 잘 안 되면 국회 논의를 통해 형소법을 개정하는 등 선진화된 형사사법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수뇌부의 의지를 밝혔다. 퇴직 경찰들의 모임인 경우회도 24일 박 차장 등 현직 수뇌부와 긴급 회장단 회의를 열고 이른 시일 내에 경우회 명의의 성명을 발표한 뒤 총리실을 항의 방문해 입장을 전달하기로 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경찰들의 집단 행동이 본분을 망각한 것으로 민생치안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박흥식 중앙대 공공인재학부 교수는 “검찰과 경찰의 갈등으로 인해 국민들이 수사기관에 대해 부정적 인식과 불신을 갖고 치안 공백과 관련, 불안과 걱정을 갖는다는 측면에서 우려가 생긴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경찰청 관계자는 “수사 경과 해제 희망자가 있더라도 이를 즉시 해제하거나 다른 업무로 전환하는 것이 아닌 만큼 치안에 소홀히 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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