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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예 된 느낌” “국민투표 왜 했나”

    벨기에 브뤼셀에서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정상들이 13일 아침까지 밤샘 회의를 하는 동안 그리스 국민 역시 잠들지 못했다. 결국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가 고강도 긴축에 동의했단 결과가 나오자, 일주일 전 61%의 지지로 채권단의 긴축안에 ‘반대’를 외쳤던 시민들은 분노를 표출했다. 주말 동안 아테네 도심 노천카페는 만석이고 고급 차가 즐비했지만, 햇볕을 쬐는 사람들은 실상 실업률 26%의 현실과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하고 있었다. 11살 아이를 둔 마릴레나 무자키(35)는 “슈퍼마켓에 가면 식료품은 물론 우유도 떨어졌다”면서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 채 살 수 없다”고 호소했다. 청년들의 불안은 더 컸다. 아테네의 한 실업자 바실리스 시카(20)는 “마치 노예가 된 느낌”이라고 했고, 언어장애 치료사 마리오스 로지스(23)는 “왜 국민투표를 했는지 모르겠다”고 볼멘소리를 했다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가 전했다. 긴축안에 반대하는 여론이 국민투표로 확인됐지만, 부채 탕감은 없고 재정 긴축은 강화되자 청년들의 착잡함은 더했다. 하얗게 센 머리에 얼굴 주름이 깊은 한 연금 생활자는 “모든 게 걱정스러워 잠을 들 수 없다”고 AFP에 말했다. 그는 “2주째 계속된 자본 통제로 자동입출금기(ATM) 앞에 줄서는 게 일상이 된 상태”라며 “하루빨리 필요한 만큼 돈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기대 섞인 말을 했다. 그리스가 유로존에 남기를 바랐던 이들은 그렉시트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 속에서 체념을 보였다. 공무원인 스텔라 길바니는 “이렇게 될 걸로 믿고 있었다”면서 “좋든 싫든 이 방법밖에 다른 길이 없다”고 말했다. 그리스 민심은 양분되기 시작했다. 집권 시리자의 니코스 필리스 의회 대변인은 “유로존 지도자들이 그리스를 물고문하고 있다”면서 “독일은 지난 100년간 유럽을 세 차례나 찢어 놓았다”는 비난 성명을 냈다. 반면 보수 성향의 그리스 일간지인 타 네아는 “채권단과의 합의에 성공했지만, 연정의 신뢰 확보에는 실패했다”며 치프라스 총리에 대한 책임론을 제기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인분 먹인 교수 누구? 폭행 사주한 뒤 아프리카TV로 확인? ‘경악’

    인분 먹인 교수 누구? 폭행 사주한 뒤 아프리카TV로 확인? ‘경악’

    인분 먹인 교수, 폭행 사주한 뒤 아프리카TV로 확인? ‘경악’ 인분 먹인 교수  제자를 야구 방망이로 때리고 인분까지 먹인 교수에 네티즌들이 공분하고 있다. 경기도의 모 대학교 교수 A씨(52)는 자신이 대표를 맡고 있는 학회 사무국에 취업시킨 제자 B씨(29)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2년 동안 수십차례에 걸쳐 야구방망이 등으로 B씨를 폭행했다. A씨는 B씨가 전치 6주의 상해로 수술을 받게 되자, 손발을 묶고 얼굴에 비닐봉지를 씌운 채 40여 차례에 걸쳐 호신용 스프레이를 얼굴에 쏘아 화상을 입혔다. 인분을 모아 10여 차례에 걸쳐 먹인 혐의도 받고 있다. A씨는 외출 중일 때는 카카오톡 단체방에 “오늘은 따귀 OO대”라는 식으로 다른 제자 C씨(24) 등에게 폭행을 사주했고, 폭행 장면을 아프리카TV 인터넷 방송을 통해 휴대폰으로 실시간 확인했다. B씨가 이 같은 비위에도 A씨 곁을 머문 것은 교수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일말의 희망 때문이었다. B씨는 디자인 분야 권위자인 A씨가 과거 제자를 지방 모 대학에 교수로 채용하는데 도움을 준 것을 보고, 자신도 대학 교수가 되기 위해 엽기적인 A씨의 가혹행위를 참아왔다. A씨도 공증까지 만들며 B씨를 입막음 했다. A씨는 “너의 실수로 회사에 금전적 손해가 발생했다”며 20여 차례에 걸쳐 1억여 원의 채무이행각서를 쓰게 한 뒤 변호사를 통해 공증을 받았다. 경기 성남중원경찰서는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A씨를 구속했다고 14일 밝혔다. 경찰은 올해 5월 관련 첩보를 입수해 내사에 착수했다. B씨 휴대폰에 남아 있는 증거 자료로 A씨 등의 범행 일체를 자백 받았다. A씨는 범행을 부인하다가 증거가 제시되자 “잘못했다. 선처를 바란다”며 법원에 1억여 원을 공탁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또 가혹행위에 가담한 A씨의 제자 C씨(24) 등 2명을 같은 혐의로 구속하고, D씨(26·여)를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 관계자는 “교수 A씨는 D씨에게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30만원 정도의 월급을 지급해 왔고, 이 마저도 최근엔 주지 않았다”며 “임금을 착취하고 야간에는 잠을 재우지 않고 가혹행위를 일삼는 등 그야말로 현대판 노예처럼 부려왔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친구를 노예로 만든 고3… “존댓말 등 각서 어겼다고 수시 폭행”

    경남 함양경찰서는 8일 함양군 내 한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 같은 반 학생에게 노예각서를 쓰게 하고 각서 내용을 어겼다는 이유로 폭행을 했다는 신고가 접수돼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피해 학생의 아버지 A씨가 지난달 말 이 같은 사실을 신고해 관련자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하고 있다. A씨는 “지난달 아들이 같은 반 친구인 L(18)군의 강요에 못 이겨 노예각서에 서명했고 각서 내용을 지키지 않을 때마다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여러 차례 폭행을 당했다”고 밝혔다. A씨는 “L군이 강제로 서명을 받은 각서에는 ‘존댓말을 한다’, ‘자기 말을 충실히 듣는다’, ‘전화하면 무조건 나와야 한다’는 등의 내용이 적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동생이 이상하다는 딸의 말을 듣고 일기장을 봤더니 ‘학교에 가기 싫다. 자살하고 싶다’란 글이 적혀 있었다”고 전했다. A씨는 “아들이 지난해 L군과 같은 반이 돼 폭행을 당했는데 올해 다시 같은 반에 편성돼 학교폭력이 계속됐다”고 지적했다. 학교 관계자는 “지난달 말 도교육청에 이 같은 내용을 보고하고 학교폭력자치위원회를 열어 가해 학생에 대한 징계 절차를 밟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가해 학생과 학교 관계자 등을 불러 수사한 뒤 조치를 취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L군은 경찰에 “노예각서를 쓰지는 않았고 말로 약속을 하도록 한 사실은 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교육청도 이날 담당 장학관 2명을 해당 학교로 보내 조사를 하고 있다. 함양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바람과 함께 ‘남부연합기’ 사라진다

    바람과 함께 ‘남부연합기’ 사라진다

    인종차별의 상징으로 여겨져온 남부연합기가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의사당 마당에서 사라질 전망이다. 흑인 교회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던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상원은 6일(현지시간) 주 의사당 마당에 게양된 남부연합기 철거 법안을 37대3으로 통과시켰다. 남부연합기는 미 남북전쟁 당시 노예제 존치를 요구한 남부군이 사용해 인종차별의 상징으로 여겨졌으며, 지난달 17일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 흑인 교회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으로 9명이 숨진 이후 공공장소에서 퇴출하라는 압력을 받아 왔다. 상원을 통과한 남부연합기 철거 법안은 하원으로 넘겨졌다. 주 의회는 지난달 23일 철거 법안을 상정, 논의해 왔으며 상원에 이어 하원에서도 3분의2 이상 찬성하면 통과된다. 현지 언론은 “이르면 이번 주중 철거가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주 의회는 남북전쟁이 끝난 지 97년이 지난 1962년 의사당 지붕에 남부연합기를 게양했다. 이후 민권운동가들의 격렬한 반대운동으로 남부연합기는 2000년 구내 마당으로 옮겨졌다. 그 뒤로도 남부연합기는 ‘인종차별의 상징’과 ‘남북전쟁의 유산’이라는 이중적 평가 속에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흑인 교회 총기 난사 사건 이후 공화당 소속 니키 헤일리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지사가 남부연합기 철거를 공식 주장, 논란은 종지부를 찍게 됐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강제노동 아니다, “forced to work” 일본 ‘강제’ 빼고 물타기? ‘경악’

    강제노동 아니다, “forced to work” 일본 ‘강제’ 빼고 물타기? ‘경악’

    ’forced to work, 강제노동 아니다’ 일본 정부가 세계유산 등재가 결정된 산업시설에서 조선인에 대한 강제노동이 있었음을 인정한 것은 아니라는 황당한 주장을 펼쳤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은 5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에서 사토 구니 주유네스코 대사가 한 발언에 대해 “강제노동을 의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앞서 사토 대사는 세계 유산위 위원국들 앞에서 읽은 성명에서 “일본은 1940년대 일부 시설에서 수많은 한국인과 여타 국민이 본인의 의사에 반한 채 동원돼 가혹한 조건 아래서 강제로 노역했으며(forced to work)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 정부도 징용 정책을 싱행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 ‘forced to work’라는 표현에 대해 우리 정부는 ‘강제노동’으로 해석했으나 일본은 일어판 번역문에서 ‘일하게 됐다’라는 표현으로 강제성을 흐리는 이른바 ‘물타기’를 시도했다. 기시다 외무상은 “한일 사이의 청구권 문제는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며 “한국 정부는 이번 발언을 한일간 청국권의 맥락에서 이용할 의도가 없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전했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 역시 “’forced to work’라는 표현이 강제노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시다 외무상이 명확히 했다”고 보태기를 했다. 이어 “1944년 9월부터 1945년 8월 종전 때까지 사이에 ‘국민징용령’에 근거를 두고 한반도 출신자의 징용이 이뤄졌다”며 “이런 동원이 강제노동을 의미하는 것이 전혀 아니라는 점은 일본 정부의 견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마이크 혼다 미국 연방 하원의원은 “아베 정부의 전형적인 역사호도 시도”라며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세계 각국의 전쟁포로들이 산업혁명시설에서 ‘노예노동’을 강제 당한 사실을 완전히 인정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일본 마이니치 신문은 7일자 사설에서 “한반도 출신자가 이직의 자유없이 중노동을 강요당했던 역사를 일본이 눈 감아선 안 된다”고 비판적 견해를 내비쳤다. 다만 이 신문은 “강제징용 피해자의 청구권 문제는 한일 국교정상화 시점에서 끝난 것이고 이를 한국 정부도 인정하고 있다”며 “이번 사안이 정치문제회되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고 한 발 물러섰다. 한편 우리 외교부는 7일 홈페이지 팝업창에 “일본 근대산업시설의 세계유산등재에 ‘의사에 반하여 강제로 노역한 역사’를 반영”이라고 기재한 팝업창을 올렸다. 우리 정부는 사토대사가 발언한 ‘brought against their will’(의사에 반해), ‘forced to work’(강제노동)를 근거로 일본이 강제노역을 인정했다는 입장이다. 강제노동 아니다, 강제노동 아니다, 강제노동 아니다, 강제노동 아니다, 강제노동 아니다 사진 = 방송 캡처 (강제노동 아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日측 전쟁포로 역사 밝히도록 한국 등 관련국 모두 나서야”

    “일본이 산업시설의 모든 전쟁포로에 대한 역사를 밝히도록 한국뿐 아니라 관련국 모두가 나서야 합니다.” 미국 워싱턴DC 아시아 전문 싱크탱크인 아시아폴리시포인트(APP) 민디 코틀러 소장은 5일(현지시간) 서울신문에 보내온 이메일을 통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의 이번 결정은 이제 시작일 뿐”이라며 이렇게 밝혔다. 코틀러 소장은 미국 내 2차대전 전쟁포로 모임을 위한 지원 활동을 왕성하게 하고 있다. 코틀러 소장은 “유네스코의 압력은 아베 (신조 일본) 정부가 해당 시설의 기술을 수정하도록 촉진했다. 그곳에서 노예로 일하다 죽은 사람들이 속한 나라들이 나서 일본이 해당 시설의 전체 역사를 더 잘 밝히도록 해야 한다. 이제 시작이다”고 강조했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美 하원 6명 “유산위원회, 日 노예노동 인정하게 해야” 공개 서한

    美 하원 6명 “유산위원회, 日 노예노동 인정하게 해야” 공개 서한

    일본 산업혁명시설에 대한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의 세계유산 등재 결정에 앞서 미국 연방 하원의원들이 이를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나섰다. 미국 내 일본 문제 전문가와 미 전쟁 포로들도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마이크 혼다(민주·사진) 의원을 비롯한 미 하원의원 6명은 지난 3일(현지시간) 마리아 뵈머 세계유산위원회 의장 앞으로 연명서한을 보내 왜곡된 세계유산 등재에 대한 반대 뜻을 밝히면서 세계유산위가 일본 정부에 등재 신청을 수정하도록 공식 요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연명서한에는 혼다 의원 외에 크리스 깁슨(공화), 마크 다카노(민주), 짐 맥거번(민주), 대럴 아이사(공화), 찰스 랭걸(민주) 의원 등 민주·공화 양당에서 초당적으로 참여했다. 이들 의원은 서한에서 “일본의 이번 등재 신청에는 2차대전 당시 연합국 전쟁 포로의 역사가 포함돼 있지 않다”며 “‘일본군이 전쟁 포로를 노예 노동자로 사용했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한 해당 시설의 설명은 불안전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의원들은 “일본이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려는 8개 지역 중 5개 지역에 26개의 전쟁포로수용소가 있었다”며 “전쟁 포로들이 미쓰이, 미쓰비시, 스미토모, 아소그룹, 도카이 카본, 우베흥산, 신일본제철, 일본석유엔지니어링, 스미토모제철, 후루가와그룹, 덴카 등 일본의 거대 산업체에 노예 노동을 제공했다”고 지적했다. 이들이 특히 92대 일본 총리를 지낸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 가문의 소유인 아소그룹까지 공개로 거명한 데는 일본 정부에 보내는 암묵적 메시지가 담겨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앞서 2차대전 당시 일본군에 붙잡혔던 미 전쟁 포로 출신들도 세계유산위에 서한을 보내 전쟁 포로 기술 없는 유산 등재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문화 유랑기] ’엘 콘도르 파사’에 서린 잉카의 슬픈 꿈

    [문화 유랑기] ’엘 콘도르 파사’에 서린 잉카의 슬픈 꿈

    - 닮은 꼴 전봉준과 잉카 콘도르칸키의 운명 70년대를 풍미한 전설의 포크록 듀오 ‘사이먼 앤 가펑클’이 부른 노래 중 '엘 콘도르 파사'라는 노래가 있었다. 70년대라는 불확실하고 궁핍한 현실 앞에 가난과 불안 속으로 내동댕이쳐졌던 이 땅의 젊은이들 치고 이 노래에 귀 기울여보지 않은 사람이 없었으리라. 하지만 그 시대에는 인터넷도 휴대폰도 없던 때인지라 대개는 조그만 라디오로 지직거리는 채널을 맞춰가면서 들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노래는 우수에 찬 선율로 듣는 이의 가슴을 흠뻑 적셨을 뿐만 아니라, 가사가 전하는 메시지 역시 대중가요답지 않게 꽤나 철학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것이었다. 이 노래의 한국말 제목은 뜬금없게도 '철새는 날아가고'였던 것으로 기억한다('엘 콘도르 파사'의 엘(Eㅣ)은 정관사 the와 같고, 파사(pasa)는 pass라는 뜻이다). 하지만​ 그 노래가 사실 잉카의 토속음악을 뿌리로 한 것이라는 사실은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게다가 그 노래에는 명곡에 걸맞은 슬픈 내력이 있는데, 우리와 영 무관하지만도 않은 그 사연을 간단히 풀어보자. 알다시피 빛나는 문명을 자랑하던 잉카는 1533년, 천하의 몹쓸 스페인 악당, 전직 돼지치기인 프란시스코 피사로에게 허망하게도 하루아침에 멸망당하고 말았다. 1년의 길이를 365.2420일이라고 정확히 계산해낸 놀라운 천문학 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인구 2백만의 제국이 고작 6백 명의 서양 악당들에게 망하고 만 것이다. 500년 역사를 자랑하던 조선왕조가 일제의 몇 개 사단 병력에 멸망당하고 만 것과 흡사한 꼴이다. 피사로는 기습작전으로 잉카 황제 아타우알파를 사로잡고, 몸값으로 방 하나 가득 채울 금을 요구한 끝에 금을 다 받고도 반역죄를 뒤집어씌워 아타우알파의 목뼈를 부러뜨려 처형해 버렸다. 그러한 악행으로 천벌을 받았는지, 피사로 역시 비참하게 부하의 칼에 목이 베여 세상을 하직했다. 그래도 죽을 때는 자기 목에서 흘러나온 피로 바닥에 십자가를 그린 후 그것에 입맞추고 죽었다고 한다. 스페인 악당들에게 나라를 잃은 후, 인디오들은 스페인의 압제 아래 수백 년 동안 노예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슬픔과 분노가 폭발한 것이 1780년 페루의 농민반란이었다. 그러나 이 반란은 정복자에 의해 잔혹하게 탄압되고, 그 중심인물이었던 호세 가브리엘 콘도르칸키(투팍 아마루 2세)는 체포되어 처형당하고 말았다. 어쩌면 우리네 동학혁명의 전봉준의 운명과 그리도 닮았는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잉카 족이 한민족과 같은 뿌리라는 설도 있다.) 사람 사는 동네의 흘러가는 꼴들은 대략 비슷한가 보다. 농민혁명을 일으킨 콘도르칸키는 체포되어 사지가 잘려나가는 방법으로 잔혹하게 처형당했지만, 민중의 원망(願望)을 끌어안고 일어섰던 그의 존재는 스페인의 압제로부터 해방을 상징하는 빛나는 징표가 되었다. 그리하여 잉카의 후예들은 영웅이 죽으면 콘도르가 된다는 그들의 전설처럼 그도 역시 죽어서 콘도르가 되었다고 믿고 있다.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 뜻 콘도르(condor)’는 잉카 말로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라는 뜻의 새 이름으로, 하늘과 인간을 이어주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잉카 인들은 영웅이 죽으면 콘도르로 부활한다는 사상을 믿었다고 한다. 이 새는 중남미, 안데스 산맥 등에서 서식하는 매의 일종으로, 몸길이는 1.3m 이상이며 매과 중에서도 가장 큰 종으로 알려져 있다. 콘도르는 한번 사냥에 실패한 먹잇감은 다시 공격하지 않는다고 한다. ‘엘 콘도르 파사’의 원곡은 페루의 클래식 음악 작곡가인 다니엘 알로미아스 로블레스가 잉카의 토속음악을 바탕으로 해서 1913년에 작곡한 오페레타 '콘도르칸키'의 테마 음악이다. 그는 이 음악 속에 정복자의 무자비한 칼날을 피해 마지막 은거지 마추픽추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잉카 인들의 슬픔과 콘도르칸키의 운명을 표현해냈던 것이다. 원래 이 노래에는 가사가 없었지만, 후에 사람들이 구전되어 내려오던 콘도르칸키의 이야기를 노랫말로 만들어 붙인 것이다. 따라서 가사의 내용은 '나는 달팽이가 되기보다 참새가 되겠어' 운운하는 사이먼-가펑클의 것과는 전혀 다르다. 또 대개는 가사 없이 페루의 전통악기인 케냐와 삼포냐로 연주한 것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가사는 잉카의 언어인 ‘케추아’ 어이며, 내용은 콘도르칸키의 절절한 마음을 담은 것으로, 대략 다음과 같다. 오, 하늘의 주인이신 전능한 콘도르여,우리를 안데스 산맥의 고향으로 데려가 주오.잉카 동포들과 함께 살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그것이 나의 가장 간절히 바람입니다, 전능하신 콘도르여. 잉카의 쿠스코 광장에서 나를 기다려 주오.우리가 마추픽추와 와이나픽추를 거닐 수 있게 해주오. (페루 전통악기로 연주하는 '엘 콘도르 파사' 동영상...피리 같은 게 케냐, 팬플룻 같은 게 삼포냐) https://www.youtube.com/embed/CtUZzCe6-bk?feature 이광식 통신원 joand999@naver.com 
  • 창조, 마법 아닌 노동의 다른 이름

    창조, 마법 아닌 노동의 다른 이름

    창조의 탄생/케빈 애슈턴 지음/이은경 옮김/북라이프/416쪽/1만 6800원 사람들은 모차르트가 아름다운 음악들을 단지 통찰력으로 악보도 없이 작곡했다며 그의 천재성을 신화처럼 얘기한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모차르트 전기작가 오토 얀은 모차르트가 타고난 재능과 일생에 걸친 연습 덕분에 빠르고 능숙하게 작곡할 수 있었을 뿐 작곡 과정은 노동 그 자체였음을 증명해 냈다. 비단 모차르트뿐 아니다. 사람들은 위대한 예술가나 발명가, 세상을 바꾼 혁신가들이 눈부신 영감으로 가득하고, 누구도 갖지 못할 독창적인 시각과 미래를 읽는 천재성을 지닌 사람일 것으로 생각한다. ‘창조의 탄생’은 이런 신화가 왜, 그리고 어떻게 잘못됐는지를 밝히는 책이다. 저자는 21세기에 우리 삶의 방식을 완전히 뒤바꿔 놓은 ‘사물인터넷’을 창시한 정보기술(IT) 분야의 거두 케빈 애슈턴이다. 이 시대의 가장 위대한 크리에이터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그는 책을 통해 ‘창조란 전혀 특별한 일이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세상에는 새로운 것의 탄생을 둘러싼 신화가 늘 존재했다. ‘극히 소수의 사람들만이 창조를 할 수 있고 성공한 창조자라면 누구나 극적인 통찰력의 순간을 경험한다. 희귀한 소수만이 창조에 필요한 자질을 갖추고 있다’는. 저자 역시 이런 창조성 신화에 빠져 있던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러나 자신이 혁신적인 기술을 개발한 당사자가 되면서 우리 의식 속에 기정사실처럼 돼 있는 창조성 신화가 잘못됐음을 깨닫고 ‘창조’ 및 ‘창조성’의 본질을 탐구한다. 실제 그가 오랜 시간 경험한 바에 따르면 아이디어는 단계적으로 찾아왔고 사람들은 비난으로 반응했으며 실패를 거듭하는 동안 스스로 패배자의 기분을 수없이 맛봤다. 그는 “마법은 없었고 영감이 번쩍이는 순간도 없었으며 오로지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일을 해야 했을 뿐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창조가 비약을 일으키는 일이 아니라 마치 걸음을 걷는 것처럼 단계를 밟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창조는 목적지일 뿐 하나하나 하찮게 보이는 행동들이 오랜 시간 축적됐을 때 비로소 결과가 세상을 바꾸게 된다는 설명이다. 책은 모차르트부터 우디 앨런, 아르키메데스, 스티브 잡스 등 ‘새로움’을 만든 신화적인 인물들과 그들의 창조와 발명 뒤에 숨은 이야기들을 가감없이 들려준다. 고대와 중세, 현대를 넘나들고 예술, 과학, 철학, 기술, 산업 분야를 망라하며 창조성 신화에 가려졌던 진정한 창의성과 영감의 비밀을 밝힌다. 에드몽이라는 흑인 노예 소년이 수백년 동안 해결하지 못했던 바닐라 인공재배의 실마리를 풀어 낸 것을 사례로 우리가 창의적이라고 말하는 생각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일러 준다.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는 비약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그들은 비행기를 처음 생각해 낸 인물은 아니었지만 새처럼 ‘말을 날게 하겠다’는 생각으로 단계적 실험을 거듭하며 한 걸음씩 하늘로 걸어갔다. 추상회화의 선구자 바실리 칸딘스키는 기념비적인 작품 ‘하얀 테두리가 있는 그림’에 이르는 방법과 이론을 몇 년에 걸쳐 연구했다. 얼핏 보면 즉흥적으로 보이는 그림은 다섯 달 만에 완성한 스물한 번째 스케치를 기반으로 한 것이다. 100년 동안 존재했지만 보이지 않았던 헬리코박터균을 발견해 노벨상을 탄 로빈 워런의 경우는 ‘주목하는 눈’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창조성 신화가 깨지는 것은 섭섭할지 모르지만 창조는 어떤 영웅적인 인물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저자의 메시지는 다분히 희망적이다. “창조 행위는 마법이 아니다. 창조는 노동에서 나온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비틀어 보는 음악의 역사

    비틀어 보는 음악의 역사

    전복과 반전의 순간/강헌 지음/돌베개/360쪽/1만 5000원 일상에서 음악은 공기와 같은 존재다. 예술이 인간사를 반영하는 속성을 지닌다면 음악이야말로 당대의 정치, 문화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이 책은 음악에 미치는 사회적 분위기와 그 영향에 주목하면서 기존의 선입견들에 대한 전복과 반전의 사유를 시도한다. 저자는 재즈와 로큰롤을 단순히 새로운 음악적 장르의 출현으로 봐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여기에는 17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미국이 겪어야 했던 질곡의 역사가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재즈와 로큰롤은 노예의 후손인 하층계급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독자적인 문화를 한 번도 갖지 못했던 10대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문화적 권력을 장악한 혁명의 또 다른 이름이다. 1950년대 미국에서 로큰롤 혁명이 일었다면 1960년대 말 가난한 대한민국의 대학 캠퍼스에는 통기타 혁명이 최초의 청년 문화를 일군다. 통기타 음악은 순식간에 주류 음악을 점령했지만 박정희 정권은 이 청년 문화를 문화적 적대자로 규정하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이 밖에도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위대함에 대한 기존의 관념들 또한 전복과 반전의 사유를 거쳐 재해석된다. 또한 ‘사의 찬미’ 신드롬의 배후에 똬리를 틀고 있는 일본 제국주의 음악 자본의 음모를 파헤친다. 저자는 이 신드롬을 징검다리로 일본의 엔카 문화가 1935년 ‘목포의 눈물’을 통해 한반도에 상륙했으며 엔카의 한국 버전인 트로트가 주류 장르로 됐다고 주장한다. 오랫동안 음악평론가로 활동한 저자의 시공간을 넘나드는 폭넓은 문화사적 비평이 돋보인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문화 유랑기] 너무나 닮은 전봉준과 잉카 콘도르칸키의 운명

    [문화 유랑기] 너무나 닮은 전봉준과 잉카 콘도르칸키의 운명

    -’엘 콘도르 파사’에 서린 잉카의 슬픈 꿈 70년대를 풍미한 전설의 포크록 듀오 ‘사이먼 앤 가펑클’이 부른 노래 중 '엘 콘도르 파사'라는 노래가 있었다. 70년대라는 불확실하고 궁핍한 현실 앞에 가난과 불안 속으로 내동댕이쳐졌던 이 땅의 젊은이들 치고 이 노래에 귀 기울여보지 않은 사람이 없었으리라. 하지만 그 시대에는 인터넷도 휴대폰도 없던 때인지라 대개는 조그만 라디오로 지직거리는 채널을 맞춰가면서 들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노래는 우수에 찬 선율로 듣는 이의 가슴을 흠뻑 적셨을 뿐만 아니라, 가사가 전하는 메시지 역시 대중가요답지 않게 꽤나 철학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것이었다. 이 노래의 한국말 제목은 뜬금없게도 '철새는 날아가고'였던 것으로 기억한다('엘 콘도르 파사'의 엘(Eㅣ)은 정관사 the와 같고, 파사(pasa)는 pass라는 뜻이다). 하지만​ 그 노래가 사실 잉카의 토속음악을 뿌리로 한 것이라는 사실은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게다가 그 노래에는 명곡에 걸맞은 슬픈 내력이 있는데, 우리와 영 무관하지만도 않은 그 사연을 간단히 풀어보자. 알다시피 빛나는 문명을 자랑하던 잉카는 1533년, 천하의 몹쓸 스페인 악당, 전직 돼지치기인 프란시스코 피사로에게 허망하게도 하루아침에 멸망당하고 말았다. 1년의 길이를 365.2420일이라고 정확히 계산해낸 놀라운 천문학 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인구 2백만의 제국이 고작 6백 명의 서양 악당들에게 망하고 만 것이다. 500년 역사를 자랑하던 조선왕조가 일제의 몇 개 사단 병력에 멸망당하고 만 것과 흡사한 꼴이다. 피사로는 기습작전으로 잉카 황제 아타우알파를 사로잡고, 몸값으로 방 하나 가득 채울 금을 요구한 끝에 금을 다 받고도 반역죄를 뒤집어씌워 아타우알파의 목뼈를 부러뜨려 처형해 버렸다. 그러한 악행으로 천벌을 받았는지, 피사로 역시 비참하게 부하의 칼에 목이 베여 세상을 하직했다. 그래도 죽을 때는 자기 목에서 흘러나온 피로 바닥에 십자가를 그린 후 그것에 입맞추고 죽었다고 한다. 스페인 악당들에게 나라를 잃은 후, 인디오들은 스페인의 압제 아래 수백 년 동안 노예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슬픔과 분노가 폭발한 것이 1780년 페루의 농민반란이었다. 그러나 이 반란은 정복자에 의해 잔혹하게 탄압되고, 그 중심인물이었던 호세 가브리엘 콘도르칸키(투팍 아마루 2세)는 체포되어 처형당하고 말았다. 어쩌면 우리네 동학혁명의 전봉준의 운명과 그리도 닮았는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잉카 족이 한민족과 같은 뿌리라는 설도 있다.) 사람 사는 동네의 흘러가는 꼴들은 대략 비슷한가 보다. 농민혁명을 일으킨 콘도르칸키는 체포되어 사지가 잘려나가는 방법으로 잔혹하게 처형당했지만, 민중의 원망(願望)을 끌어안고 일어섰던 그의 존재는 스페인의 압제로부터 해방을 상징하는 빛나는 징표가 되었다. 그리하여 잉카의 후예들은 영웅이 죽으면 콘도르가 된다는 그들의 전설처럼 그도 역시 죽어서 콘도르가 되었다고 믿고 있다. 콘도르(condor)’는 잉카 말로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라는 뜻의 새 이름으로, 하늘과 인간을 이어주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잉카 인들은 영웅이 죽으면 콘도르로 부활한다는 사상을 믿었다고 한다. 이 새는 중남미, 안데스 산맥 등에서 서식하는 매의 일종으로, 몸길이는 1.3m 이상이며 매과 중에서도 가장 큰 종으로 알려져 있다. 콘도르는 한번 사냥에 실패한 먹잇감은 다시 공격하지 않는다고 한다. ‘엘 콘도르 파사’의 원곡은 페루의 클래식 음악 작곡가인 다니엘 알로미아스 로블레스가 잉카의 토속음악을 바탕으로 해서 1913년에 작곡한 오페레타 '콘도르칸키'의 테마 음악이다. 그는 이 음악 속에 정복자의 무자비한 칼날을 피해 마지막 은거지 마추픽추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잉카 인들의 슬픔과 콘도르칸키의 운명을 표현해냈던 것이다. 원래 이 노래에는 가사가 없었지만, 후에 사람들이 구전되어 내려오던 콘도르칸키의 이야기를 노랫말로 만들어 붙인 것이다. 따라서 가사의 내용은 '나는 달팽이가 되기보다 참새가 되겠어' 운운하는 사이먼-가펑클의 것과는 전혀 다르다. 또 대개는 가사 없이 페루의 전통악기인 케냐와 삼포냐로 연주한 것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가사는 잉카의 언어인 ‘케추아’ 어이며, 내용은 콘도르칸키의 절절한 마음을 담은 것으로, 대략 다음과 같다. 오, 하늘의 주인이신 전능한 콘도르여,우리를 안데스 산맥의 고향으로 데려가 주오.잉카 동포들과 함께 살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그것이 나의 가장 간절히 바람입니다, 전능하신 콘도르여. 잉카의 쿠스코 광장에서 나를 기다려 주오.우리가 마추픽추와 와이나픽추를 거닐 수 있게 해주오. (페루 전통악기로 연주하는 '엘 콘도르 파사' 동영상...피리 같은 게 케냐, 팬플룻 같은 게 삼포냐) https://www.youtube.com/embed/CtUZzCe6-bk?feature 이광식 통신원 joand999@naver.com 
  • 복거일 “암 판정 후 1년 안 돼 3권 썼다”

    복거일 “암 판정 후 1년 안 돼 3권 썼다”

    “문학을 여흥으로 여기는 세상이 와 독자들이 문학 작품을 많이 읽게 됐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선 문학이 변신을 해야 하는데 그 과정이 힘들다. 그 변신에 이번 작품이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다면 작가로서 사회적인 기여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소설가 복거일(69)이 장편소설 ‘역사 속의 나그네’(문학과지성사)를 전 6권으로 완간했다. 1989년 중앙경제신문에 연재를 시작한 뒤 이듬해 연재를 중단하고 한 권 정도 분량을 더해 1991년 3권으로 출간한 지 햇수로 25년 만이다. ‘역사 속의 나그네’는 21세기(2070년대) 인물 이언오가 백악기 시대로 시간 여행을 하려다 임진왜란 직전인 16세기 조선에 좌초해 사회를 개혁하는 이야기다. 첫 세 권은 조선 사회 구조나 속살을 드러내는 데 미흡했다는 평을 들었다. 작가는 이번에 추가한 세 권에서 모반을 일으켜 중앙정부와 싸우는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조선 내부의 속살을 드러냈다. 작가는 1일 서울 중구의 한 음식점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모든 사람들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그리고자 했다”고 했다. “조선은 노예제도로 인해 가난하고 약한 나라가 됐다. 세계 어느 나라도 우리나라보다 노예제도가 공고한 나라가 없었다.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까지 지배계층이 안 바뀌었다. 1000년이 넘으며 노예제도가 고착화됐다.” 작가는 2012년 간암 4기 판정을 받았다. “간암이라는 얘길 듣는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건 ‘역사 속의 나그네를 어떻게 하나’였다. 병원에서 나와 택시를 타며 생각했다. ‘역사 속의 나그네가 큰 빚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은 더 큰 빚이었구나.’ 20년이 넘도록 뒷이야기를 쓰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글을 마저 쓰기 위해 병원에 가지 않았다. “내일 죽는다면 사람의 정신이 맑아지고 집중이 잘 된다고 하는데, 닥쳐보니 실제 그렇더라. 세 권 쓰는데 1년이 채 안 걸렸다.” 작가는 “암은 그냥 놔두면 된다. 사람은 쉽게 죽지 않는다”고 했다. “건드리면 상처가 나듯 놔두면 오래갈 사람도 건드려서 문제가 된다. 살살 달래가며 글 쓰면서 버티려 한다. 작가는 어차피 글을 쓰지 못하면 살아도 사는 게 아니다. 나는 장편만 쓴다. 호흡이 긴 사람이라 쓰다가 막히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좀 든다. 1970년대 노벨상 후보로 오른 위대한 작가도 쓰다가 죽을까봐 글을 못 썼다.” 그는 시집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 “그동안 두 권 냈는데 두 권 더 내려 한다. 한 권은 생전에, 한 권은 사후에 내려 한다. 앞으로 소설은 하느님이 협조를 해주셔야 쓸 수 있다. 쓴다면 ‘역사 속의 나그네’ 연장선상에서 임진왜란에 대해 쓰겠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프로야구] 괜... 찮아요?…한화 권혁 올 시즌 투구 수 1180개

    [프로야구] 괜... 찮아요?…한화 권혁 올 시즌 투구 수 1180개

    한화의 마무리 투수 권혁(32)에게는 ‘마당쇠’, ‘노예’, ‘애니콜’ 등의 별명이 붙었다. 팀이 치른 73경기 중 43경기에 등판, 4승 6패 10세이브 4홀드를 기록하며 전천후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26~28일 문학 SK전에서는 세 경기 모두 나와 5와 3분의1이닝을 소화했다. 사흘간 투구 수가 110개에 달했다. 권혁의 잦은 등판이 투혼인지 혹사인지는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다. 그러나 지금 페이스라면 권혁이 올 시즌 데뷔 후 가장 많은 공을 던지게 될 것은 분명하다. 29일 현재 1180개의 투구 수로 팀 내 4위에 올라 있으며, 시즌이 끝날 때면 2000개를 넘길 것으로 보인다. 선발인 배영수(908개)보다 200개 이상 더 던졌고, 벌써 2013년(625개)과 지난해(554개)를 합친 것보다 많이 던졌다. 권혁은 데뷔 첫해인 2002년 2경기(4이닝)에서 68개만 던졌으나, 이듬해에는 23경기(39와 3분의1이닝) 동안 768개의 투구 수를 기록했다. 2004년에는 출전 기회가 한층 늘어 37경기(81이닝)에서 1510개의 공을 던졌다. 2004년은 권혁이 가장 많은 투구 수를 기록한 시즌이었고, 당시 보직은 한번 나오면 2~3이닝씩 던지는 롱릴리프였다. 갑자기 불어난 투구 수가 원인인지는 알 수 없으나 권혁은 2005년 팔꿈치 인대 수술을 받고 통째로 시즌을 날렸다. 2006년 복귀한 뒤로는 나오더라도 짧게 던지는 투수로 역할이 바뀌었다.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는 출전한 경기 수가 소화한 이닝보다 많은 투수가 됐다. 중요한 순간 한두 타자만 전문적으로 상대하는 원포인트 릴리프로 정착한 것이다. 김성근 한화 감독도 올 시즌 초반에는 권혁을 길게 쓰지 않았다. 3월 29일 목동 넥센전에서는 두 타자에게 8개만 던지게 했고, 4월 1일 대전 두산전에서는 한 타자만 상대시킨 뒤 바꿨다. 그러나 마무리로 낙점했던 윤규진이 어깨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권혁에 대한 의존도가 커졌고, 기용하는 시간도 크게 늘었다. 김 감독도 권혁의 고충을 알고 있어 남다른 애정 표현을 한다. 28일 경기에선 7회 내보낸 권혁이 만루 위기에 몰리자 직접 마운드에 올라가 어깨를 어루만져주며 격려했다. 23일 대전 넥센전에서도 실점 위기에 놓인 권혁의 얼굴을 만지며 긴장을 풀어줬다. 평소 칭찬에 인색한 김 감독이지만 28일 경기에서 승리한 뒤에는 “권혁에게 편하게 던지라고 얘기했는데, 잘 버텨줬다”며 격려하기도 했다.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 [새로운 50년을 열자] 되풀이되는 과거사 불화… 적극 외교로 日 우경화 저지 절실

    [새로운 50년을 열자] 되풀이되는 과거사 불화… 적극 외교로 日 우경화 저지 절실

    김외한, 김달선, 김연희 할머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3명이 일본의 사과를 받지 못한 채 이달 들어 별세했다. ‘독도를 한국이 불법 점거 중’이라고 표기한 일본 중학교 교과서는 2011년 4종에서 올해 4월 13종으로 늘었다. 일제강점기 일본이 약탈해 간 우리 문화재는 일부만 반환됐을뿐더러 국내에서 문화재 반환 운동이 시작된 이후에는 전시대에서 사라졌다. 한·일 수교 반세기. 50주년이란 숫자를 딛고 미래를 기약하기에 양국의 과거사 화해 성적은 초라하다. 오히려 국내 사정에 밀려 양국 간 화해 노력이 무위로 끝나고 많은 일이 반복, 재연됐다. 일본 총리가 전범을 합사한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나서는 행보는 1985년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 2000년대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로 이어졌다. 아베 신조 내각에서 “위안부는 전시 중 합법”이라는 취지의 발언은 아베 총리뿐 아니라 내각 장관들의 입을 거치며 반복됐다. 미래를 향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을 하는 양국이 한·일 수교 반세기를 계기로 관계 개선을 위한 외교적 전환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침략 전쟁을 금지한 일본 평화헌법 9조에 대해 한·일 시민단체가 공동으로 노벨평화상 수상을 추진하는 행보처럼 일본의 우경화를 저지할 여론 환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얘기다. 위안부 문제는 양국이 제자리걸음을 멈춰야 할 명분을 주는 상징적 이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28일 김연희 할머니의 별세 소식을 거론하며 “이제 위안부 생존자는 49명”이라고 전했다. 정대협이 전한 김연희 할머니의 삶은 해방, 한·일 국교 정상화, 한국의 경제 발전, 민주화와 같은 집단적 성취가 이미 망가져 버린 개인의 삶에 대리 만족을 줄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은유였다. 1932년생인 할머니는 국민학교 5학년이던 열두 살에 일본인 교장의 차출에 따라 일본으로 끌려갔고, 일본 도야마현의 비행기 부속 공장에서 9개월 동안 근무하다 아오모리현 위안소로 끌려가 7개월 동안 위안부 생활을 했다. 해방 뒤 귀향한 할머니는 결혼하지 않고 가정부로 일했으며, 정신병원 치료를 받아야 했다. 1965년 한·일 수교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개인적으로 보상받을 길을 차단하는 제약으로 작용했다. 일본 정부는 시종일관 성노예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수교에 맞춰 체결된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종결됐다고 주장했고, 이 문제가 국제적 이슈가 된 최근에도 아베 총리 등이 “위안부 문제는 정치·외교 문제로 삼아서는 안 된다”(2013년 의회 답변)거나 “위안부는 인신매매 희생자”(올해 언론 인터뷰)라는 식으로 일본 정부 차원의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위안부 피해자 단체는 최근 적극적인 대응 행보를 보여 주고 있다. 위안부 할머니들은 일본 정부가 7월까지 사과하지 않으면 미국 법원에 2000만 달러(약 220억원)의 집단 손해배상 청구를 낼 계획이다. 이미 2000년 미국 워싱턴 법정에서 패소한 전례가 있지만, 이후 르완다와 유고 내전 중 성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의 배상 책임이 인정된 국제 판례가 나왔기 때문에 승소 기대감이 생기고 있다. 최근 방한한 자이드 라아드 알 후세인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유엔의 위안부 문제 해결 의지를 밝히며 “위안부 피해자가 원하는 것은 그들의 고통을 인정하는 우리의 모습과 진정 어린 참회”라며 피해자인 개인을 향한 직접 사죄만이 고통을 치유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국제사회의 진일보한 인식을 드러냈다. 할머니들의 죽음이 위안부 문제 해결의 시급함을 더했다면, 독도 영유권 문제에서는 일본의 속도가 한국의 고민을 키우고 있다. 독도 자체가 하루아침에 사라질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멋대로 독도 주변에 영유권 선을 그어 국제분쟁화하는 일은 하루아침에 단행될 가능성이 있는 시나리오다. 일본 내에서 체계적으로 진행돼 온 ‘한국의 독도 불법점거’ 주장은 이를 위한 사전 단계로 볼 수 있다. 2000년 이후 독도 문제는 양국 불화의 ‘뇌관’이 돼 왔다. 2005년 3월 일본 시마네현 의회가 2월 22일을 ‘다케시마(일본이 독도를 부르는 말)의 날’로 제정하는 조례안을 가결하자,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날 침략을 정당화하는 행위”라고 반발했다. 2012년 8월 이명박 전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으로선 처음으로 독도를 방문하자 주한 일본대사가 본국으로 소환됐다. 한·일 네티즌끼리 독도 지명 표기를 놓고 여러 사이트에서 인터넷 청원 전쟁을 벌이는가 하면 독도 관련 공연을 한 한국 가수가 일본 입국을 거부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제사법의 영역에서 한국은 독도 문제에 대해 ‘조용한 외교’로 일관하는 중이다. 이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 뒤 일본이 1954년, 1962년에 이어 세 번째로 독도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과 대비되는 전략이다. 한국이 실효적으로 지배하는 독도는 영토 분쟁 지역이 아니어서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하면 긁어 부스럼이란 게 ‘조용한 외교’의 근간이 되고 있다. 문제는 한국이 차분하게 대응하는 동안 일본은 자국의 독도 편입 논리를 강단 있게 전파해 왔다는 데 있다. ‘1905년 무주지인 독도를 일본이 자국 영토로 편입시켰는데, 한국 정부가 1952년 1월 독도를 포함하는 이승만 라인을 일방적으로 설정해 불법 점거하고 있다’는 일본의 주장이 굳어지면, 한국 외교는 조용하게 있다 힘을 잃을 가능성이 있다. 독도연구소장을 지낸 김현수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적극적 외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 교수는 “독도는 이미 국제사회에서 분쟁도서로 인식된다”며 “독도 문제 언급을 피할 게 아니라 분쟁의 해결을 위한 한·일 간 진지한 교섭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위안부, 독도, 교과서를 둘러싼 갈등 국면에서 적극 대응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면 일제강점기 약탈 문화재 반환 이슈에서는 다소 다른 분위기가 감지된다. 문화재 반환이 성사되려면 현재 국면에서 받는 입장인 한국 못지않게 주는 쪽인 일본의 태도 변화가 중요한 변수가 되기 때문에 면밀한 대응이 요구된다. 한·일 수교 당시 박정희 정권이 반환을 요구한 문화재는 4479점으로 조선총독부가 일본으로 가져간 고분 출토품, 개인이 약탈한 문화재가 망라됐다. 수교 이듬해인 1966년 5월까지 한국으로 돌아온 약탈 문화재는 거북 모양 청자 주전자(보물 452호) 등 1432점에 불과했다. 개인 소유 문화재가 제외된 탓이다. 대표적으로 일본인 사업가 오구라 다케노스케가 1910~50년대 한반도에서 수집한 1100여점의 문화재, 이른바 ‘오구라 컬렉션’이 돌아오지 못했다. 한·일 협정 당시 개인 소장품이었지만 1982년 도쿄국립박물관에 기증된 유물들이다. 국내 시민단체인 문화재제자리찾기는 국제박물관협의회에 오구라 컬렉션 반환 청원서를 전달하고 도쿄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는 등 환수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소송이 제기된 직후 도쿄국립박물관에 전시됐던 한국 문화재들이 수장고 안으로 자취를 감추는 등 부작용도 적지 않다. 일본 법원도 한·일 협정으로 타결된 문제인 만큼 일본에 반환 의무가 없다는 입장이다. 문화재 약탈이 이뤄지고 이들 문화재가 어떻게 불법 경로를 통해 유출돼 일본으로 흘러들어 갔는지를 일본 정부에 소상하게 밝힐 수 있는 입증 자료 구비 등 한국 측의 빈틈없는 준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남부기 강제 철거한 흑인 여성운동가 체포

    남부기 강제 철거한 흑인 여성운동가 체포

    미국의 한 여성 흑인활동가가 남부연합기(이하 남부기)를 끌어내리다 체포됐다. 27일(현지시간) 미국 허핑턴포스트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의사당 앞 게양대에 내걸린 남부기를 강제로 철거한 브리 뉴섬(Bree Newsome)이란 흑인 여성이 경찰에 의해 체포됐다고 보도했다. 시민단체 ‘퍼거슨 액션’ 소속의 브리 뉴섬은 이날 오전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의회의사당 앞의 약 10m 높이의 게양대 위로 올라가 매달려 있던 남부기를 가지고 내려왔다. 남부기는 미국 남북전쟁(1861~65년) 당시 노예제 존속을 주장한 남부연합군이 사용한 깃발로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이 남부기는 지난 1962년부터 의사당 돔 지붕에 공식적으로 게양됐으며 전미 유색인 지위 향상 협회(NAACP)를 비롯한 민권 운동가들의 격렬한 반대운동으로 2000년 지붕에서 의사당 앞마당으로 옮겨진 것. 이런 남부기를 강제로 철거한 뉴섬은 아래로 내려온 즉시 경찰에 체포됐다. 브리 뉴섬은 “더는 기다릴 수 없어서 행동에 나선 것”이라며 “앞으로도 계속 남부기를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남부기를 내린 이유는) 올바른 일이기 때문이며 누군가 해야 할 때”라며 “오래 지속되고 있는 증오를 없애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브리 뉴섬이 끌어내린 남부기는 약 1시간 만에 다시 게양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내에서 남부기에 대한 반감은 지난 17일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에서 백인 우월주의자 딜란 루프(21)가 흑인 교회로 침입해 흑인 9명을 총살한 사건이 발생한 직후, 그가 총과 남부기를 들고 있는 사진이 퍼지면서 더욱 거세지고 있다. 사진·영상= The Tribe youtube 영상팀 seoultv@seoul.co.kr
  • 오바마, 금기어 ‘깜둥이’ 언급… 인종차별 탄식

    오바마, 금기어 ‘깜둥이’ 언급… 인종차별 탄식

    “공식 석상에서 깜둥이(nigger)라고 말했을 때 무례한 사람 취급을 한다고 인종차별주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미국은 인종주의를 아직 극복하지 못했다. 200~300년 전 일어난 일이 하루아침에 완전히 없던 일로 되겠는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흑인을 비하한 비속어를 쓰며 자국의 인종주의를 비판했다. CNN,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 주류 언론들이 단어 전체를 언급하지 못한 채 “오바마 대통령이 N으로 시작하는 비속어를 쓰며 비판했다”고 보도할 정도로 ‘nigger’는 미국에서 금기어다. 그의 발언은 코미디언 마크 마론이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 위치한 자택의 15.3㎡(4.6평) 규모 차고에 설치한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팟캐스트 방송이 공개되면서 알려졌다. 부츠를 신은 진행자와 양복 상의를 벗은 오바마 대통령이 진행한 파격적 형식의 방송이었고, 녹음 뒤 스튜디오에 오바마 대통령은 대통령 인장이 그려진 종이컵을 놓고 떠났다고 마론은 설명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인종차별주의 비판은 재임 중 여러 차례 나왔다. 올 들어 백인 경찰의 흑인 과잉 진압이 반복되자 오바마 대통령은 흑인 빈곤 문제를 퇴임 뒤에 할 일로 꼽으며 의지를 보여 왔다. 그러나 이날 팟캐스트 방송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무력감과 피로감을 드러냈다. 흑인 아버지를 둔 그는 “어린 시절에 비해 대놓고 흑인을 비하하는 태도는 줄었지만, 노예제도의 유산인 짐 크로법의 그늘은 여전하다”며 “미국인의 유전정보(DNA) 안에 인종주의가 들어 있다”고 개탄했다. 짐 크로법은 1955년 흑인 여성 로자 파크스가 백인 승객에게 버스 좌석 양보를 거부한 사건을 촉발시킨 흑백분리법으로 1965년 폐지됐다. 방송은 총기 규제 문제도 다뤘는데, 오바마 대통령은 의회를 집중적으로 비판했다. 그는 “미국총기협회(NRA)가 의회를 장악했기 때문에 2012년 26명이 희생당한 초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 이후에도 의회는 손을 놓고 있다”면서 “정말 넌더리가 나는 일”이라고 혹평했다. 미국 언론과 일부 흑인단체는 오바마 대통령이 백인우월주의 단체인 KKK나 쓸 법한 비속어를 쓴 자체를 두고 적절했는지 논란을 제기했지만, 백악관은 개의치 않는다는 반응이다. 조시 어니스트 백악관 대변인은 22일 브리핑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단어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어니스트 대변인은 “그 단어는 오바마 대통령이 오랫동안 고민하고 강조해 온 요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말한 뒤 “대통령은 찰스턴 교회 난사 사건의 희생자 추도식에 참석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새로운 50년을 열자- 수교 협상 주역에게 듣는다] “일제 36년, 우호 50년… 양국관계 하루 아침에 개선될 수 있어”

    [새로운 50년을 열자- 수교 협상 주역에게 듣는다] “일제 36년, 우호 50년… 양국관계 하루 아침에 개선될 수 있어”

    오재희(83) 전 주일대사는 23일 “한·일 관계가 역대 최악이라고 평가하지만 양국 관계는 하루아침에 개선되거나 국면전환을 가져올 수 있다”면서 “양국 관계는 대화를 통해 조정해 나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일 국교정상화 교섭 당시인 1965년 4월까지 외무부 조약과장을 지낸 뒤 제7차 수교협상에도 참여한 오 전 대사는 지난 19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히고 “중국침략이나 태평양전쟁 당사자인 중국, 미국보다 우리가 더 흥분해 일본을 감정적으로 비판하는 데 앞장설 필요는 없다”고 덧붙였다. →한·일 수교 50주년을 맞아 당시 협상에 참여했던 분으로 소회는. -당시 나는 33살이었다. 1965년 교섭하면서 몇 살까지 살까 생각은 안 했지만 협정이 50주년을 맞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흔한 얘기로 감개무량하다. 일제 식민통치 기간이 36년인데 길다면 긴 세월인데 한·일 양국의 국교정상화는 일제 36년보다 더 좋은 관계로 50년간 유지했다. 어찌 보면 그것도 하나의 역사 아니겠나. →협상 당시 가장 힘들었던 것은. -7차 수교협상만 놓고 보면 역시 대한제국과 일본 간의 모든 조약이 당초부터 무효라는 내용을 담은 한·일관계 기본조약 2조와 3조에 대한 협상이 가장 어려웠다. 정부는 식민지 통치뿐만 아니라 대한제국이 체결한 조약도 모두 무효라는 입장을 보인 반면 일본은 식민통치에 대해 국제적으로 승인도 받고 인정을 받았다며 유효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한국과 일본이 식민지 통치에 대한 역사인식의 괴리를 좁히는 것이 몹시 힘들었다. →한·일 수교를 이끌어낸 사람 중 한 명으로 최근 한·일 관계를 바라보면. -언론에서는 역대 최악이다, 비정상이라는 말을 쓰는 데 조금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사실은 한·일 관계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외교현안을 다루는 양국 정부의 교섭 스타일로 인해 마치 관계가 굉장히 나쁜 것처럼 인상을 주는 것 같다. 양국 관계는 하루아침에 개선되거나 국면전환을 가져올 수 있다고 본다. 한·일 양국을 둘러싸고 주변 정세가 변하는 것은 사실이고 이에 적응하거나 대응하는 방법이 조금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것은 근본적 문제가 아니고 대화를 통해 조정해 나가면 되는 문제다. →일부에서는 국교정상화 과정에서 위안부 문제 등을 간과해 불완전한 조약이라고 지적한다. -보기에 따라 그렇게 주장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옳지 않다. 원폭피해자, 사할린, 위안부 문제 등은 한·일 국교정상화 협상 당시 논의되지 않았다. 문제 자체가 그 당시에 없었던 것은 아닌데 논의할 여건이 되지 않았다. 원폭피해자에 대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처음 불거진 것은 1968년이었다. 일본 국내에서조차 원호대책이 전혀 없었다. 위안부 문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정신대 여성 중에 일부가 일본군의 성 노예로 고통받았다는 소문을 들었지만 실태를 알 수 없었다. 그러니 회담교섭과정에서도 제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마침 최근 위안부 문제를 둘러싸고 양국이 국장급 협의를 진행하는데. -이 문제가 쉬운 문제라면 벌써 해결됐겠지. 위안부 문제는 1991년부터 표면화됐다. 양국 간 외교현안이 된 것은 1992년 1월부터다. 이후 고노담화가 나오게 됐다. 최근 정부가 위안부 문제를 다시 거론하게 된 것과 관련해 그동안에는 왜 이 문제를 국민에게 거론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분명한 설명이 없이 애매하게 넘어갔다. 일본 정부와 국민에게도 적어도 왜 이 문제를 다시 거론하게 됐는지 알기 쉽게 얘기해서 우리 정부 조치의 정당성을 양국 국민으로부터 인정받아야 한다고 본다. 일본으로부터 그동안 가만히 있다가 왜 새삼스럽게 다시 재론하는지, 뭐가 문제인지에 대한 오해를 받을 수 있다. →일본은 자꾸 한국이 국교정상화와는 달리 다른 기준을 들이댄다고 불만이다. -입장이 바뀌면 그럴 수도 있지 않겠나. 이 문제는 양국 정부의 공동 책임이라고 본다. 고노담화 이후 위안부 할머니들 대다수가 아시아여성기금 수령을 거부하는 문제가 발생했는데도 양국 정부는 이를 가볍게 여기고 그냥 간과했다. 방치한 것은 잘못이다. 정대협이 이 문제를 국제문제화했는데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에 이 문제를 거론해서 주의를 환기하고 일본 역시 신경을 썼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일본으로서는 불만이겠지만 일본도 사태가 진전되도록 관심을 갖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은 한·일 국교정상화로 그럼 과거사 문제를 깨끗이 정리한 것인가. -과거사를 식민 통치로 봤을 때 한·일 기본관계 조약 2조에 대한제국과 일본 사이의 체결한 조약이 무효라는 점을 언급한 것은 결과적으로 일본 정부나 국민에게 과거 식민 통치의 불법성 문제가 상당히 한국 국민에게 심각한 문제라는 인식을 심어줬다. 간 나오토 담화 등은 우리 정부가 요청한 것이 아니고 일본 스스로 판단해서 한 것이다. 일본의 과거사 정리에 대해 100% 만족하진 않지만 역사인식에 있어서 일본 역시 많은 진전을 보이고 있다는 점을 평가해야 한다. →아베 신조 총리 집권 후 일본의 과거사 부정 움직임이 있는데. -일본 정부의 행동 하나하나를 구체적으로 논의하고 거기에 맞는 우리의 반응, 대응을 하는 게 좋겠다고 본다. 그냥 아베 총리가 과거사를 번복한다 이런 식으로 말할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예를 들어 우리와 관계없는 과거사가 있다. 중국 침략이나 태평양전쟁의 당사자는 중국과 미국이다. 일본이 난징 대학살을 부인하는 것에 대해 중국이 반발하는 것은 이해하는데 우리가 중국보다 강도나 빈도를 높여서 일본을 비판하는 챔피언이 될 필요는 없지 않나. 도쿄 전범 재판을 리뷰한다고 하는데 당사자인 미국보다 더 비판할 필요가 없다. 정부를 포함해 과거사 문제만 나오면 감정이 폭발해서 다른 문제까지 영향을 줘서 교류가 올스톱 되는 것은 옳은 반응이 아니다.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 “남부연합기 제품 OUT”

    미국 최대 유통업체인 월마트가 흑인 차별의 상징인 남부연합기와 관련된 상품을 판매하지 않기로 했다. 월마트는 “우리가 제공하는 상품들 때문에 누구도 감정이 상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며 이런 방침을 밝힌 것으로 CNN 등이 2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월마트는 남부연합 깃발은 물론 티셔츠 등 의류와 허리띠 등 남부연합기가 새겨져 있거나 이를 홍보하는 제품들을 온·오프라인 매장에서 모두 없애는 작업에 착수했다. 남부연합기는 미 남북전쟁 때 노예제 존치를 주장한 남부군이 사용한 것으로, 최근 흑인교회 총기 난사 사건 피의자인 딜런 루프(21)가 웹사이트에 올린 것이 드러나면서 논란이 가열됐다. 앞서 니키 헤일리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지사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남부연합기를 주 의사당 등 공공장소에서 게양할 수 없도록 하는 법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 주에서 깃발은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잔인한 과거 인종주의의 상징”이라며 “주 의사당 구내에서 그 깃발을 내릴 때”라고 말했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CNN 앵커 “깜둥이 발언 무엇이 문제냐” 생방송 피켓 논란

    CNN 앵커 “깜둥이 발언 무엇이 문제냐” 생방송 피켓 논란

    미국에서 오바마 대통령까지 나서 '깜둥이(Nigger)'라는 표현을 사용해 가며 인종차별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선 가운데, 이번에는 미 CNN 방송의 유명 사회자가 생방송 도중 '깜둥이'라는 글자가 적힌 피켓을 들고 이러한 용어의 사용 자체는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주장을 하고 나서 논란이 일고 있다고 미 언론들이 23일(이하 현지시간) 보도했다. CNN 방송의 유명 앵커인 돈 레몬은 지난 22일 밤, 생방송 도중 '깜둥이'라는 뜻을 상징하는 영어 단어 'NIGGER'라는 글귀가 적힌 피켓을 들고 방송에 등장해 "과연 이것이 여러분에게 공격적인가"를 되물었다. 레몬은 이어 이 글자 이외에도 흑인 노예제를 주장했던 과거 미국의 남부연합기도 들고나와 같은 질문을 시청자들에게 던졌다. 그는 생방송에 참석한 다른 토론자들과 논쟁을 벌이며 "무조건 이러한 단어를 금기어로 할 필요는 없다"며 "얼마든지 상황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단어이며, 특히 진실을 밝히는 일이 우리 언론인의 직업일 때는 더욱 그러하다"고 주장했다. 앞서, 이날 오전에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코미디언 마크 마론이 진행하는 팟캐스트 방송에 출연해 금기어로 되어 있는 '깜둥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가며 인종차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오바마는 "우리는 아직 인종차별에서 치유되지 않았다”며 “공개적으로 '깜둥이'(Nigger)라고 말하면 점잖지 못하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그 말을 쓰는지 여부가 인종주의의 존재 여부를 재는 척도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레몬도 단지 이러한 용어의 사용만으로는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점을 자신의 생방송에서 피켓을 들어가며 과감하게 밝힌 것이다. 그는 이어 "단지 남부연합기의 사용만으로 이것이 증오에 해당하는 행위라고는 볼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레몬의 이러한 급작스러운 행동에 시청자들의 비난이 봇물을 이뤘다. 한 시청자는 댓글에서 "그렇게 중요한 문제는 단지 깜짝 행동으로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며 레몬을 비난했다. 다른 시청자들은 "레몬이 나오면 채널을 돌리겠다"고 표현했으며, 일부 네티즌은 레몬이 든 '깜둥이'라는 피켓 사진을 포토샵으로 바꿔 "나를 해고하라"라는 페러디물을 인터넷에 올리기도 했다. 자신이 흑인이기도 한 돈 레몬은 지난 2012년부터 특정한 사실을 전할 때 굳이 금기어라고 해서 "깜**'(N*****)라고 말하기보다는 "깜둥이'(Nigger)라고 분명하게 말하는 것이 옳다는 주장을 줄기차게 펴왔다고 미 언론들은 전했다. 사진='깜둥이'(NIGGER)라는 글자가 적힌 피켓과 남부연합기를 들고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레몬 (CNN 방송 캡처) 다니엘 김 미국 통신원 danielkim.ok@gmail.com
  • “증오의 깃발을 치워라”

    “증오의 깃발을 치워라”

    “흑인 차별의 상징인 남부연합기를 내려라.” 21일(현지시간) 백인 청년의 흑인 교회 총기 난사 사건 현장인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과 주도 컬럼비아 등에서는 수천명의 군중이 모여 이렇게 외치며 항의 시위를 벌였다. 흑인 9명을 죽인 용의자 딜런 루프(21)가 자신의 웹사이트에 올려 논란이 된 남부연합기를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의회 앞에서 치워야 한다는 것이다. 남부연합기 퇴출 논란은 차기 대선 후보들을 비롯한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로도 급부상한 상황이다. ●남북전쟁 때 노예제 지지한 남부연합 깃발 남부연합기는 1861~1865년 미 남북전쟁 때 노예제도를 지지한 남부연합 정부가 사용한 깃발로,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의회 앞마당에 공식 게양됐다. 주 의회는 남북전쟁이 끝난 지 97년이 지난 1962년 ‘남부의 자존심’을 외치며 의사당 꼭대기에 남부연합기를 달았다. 그러나 2000년 민권운동가 4만 6000명의 시위로 게양대는 의사당 지붕에서 앞마당으로 옮겨졌다. 이 깃발은 남부 백인들에게는 문화적 정체성, 지역의 자존심을 대변하는 유산으로 대접받지만 흑인과 민권운동가들에게는 백인 우월주의의 상징물로 여겨진다. 논란의 대상이었던 남부연합기가 루프의 증오 범죄를 통해 다시 주목받으면서 정치권이 들썩이고 있다. 특히 보수층 표심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공화당에 남부연합기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가 골치 아픈 숙제로 떠올랐다고 이날 뉴욕타임스(NYT) 등이 전했다. 남부연합기 존폐 문제를 가장 먼저 공론화하고 나선 것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20일 “남부연합기는 박물관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의 유력 대선 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이와 관련한 최근 견해를 밝히지 않았지만 2007년 대권에 도전하는 과정에서 남부연합기가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공화당 대선 주자 간 입장은 상당히 엇갈린다. 남부연합기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이에 신경 쓰면서도 보수층의 눈치를 보는 모습이 역력하다. 젭 부시 전 플로리다주 주지사는 성명을 내고 “사우스캐롤라이나가 희생자 애도 기간이 끝나면 옳은 결정을 내릴 것으로 확신한다”고 밝혔다. 그는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2001년 플로리다주 주지사 시절 연합기를 플로리다주 의회 밖 게양대에서 떼어 원래 있던 박물관으로 보냈다”고 말했다.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도 “주 정부가 주민들을 위한 바른 선택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NYT는 “부시 전 주지사와 루비오 의원은 남부연합기 퇴출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교회 총기난사 이후 정치권 ‘뜨거운 감자’로 지역구가 사우스캐롤라이나인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남부연합기는 우리 일부이기도 하다”며 퇴출 여부에 대한 의견을 보류했다. 공화당 후보 출마를 선언한 칼리 피오리나 전 휴렛팩커드(HP) 최고경영자는 “남부연합기는 인종차별 증오의 상징”이라고 언급했으나 추가 의견은 보류했다.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도 “논쟁이 확산되더라도 결국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자체적으로 결정할 사안”이라며 말을 아끼면서도 “깃발에서 인종차별과 노예제가 아닌 조상의 희생과 남부 주의 전통을 기억하려는 이들도 있다”고 두둔했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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