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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 국무부 북한 96년 인권보고서

    ◎북 주민 75% 동요·적성층 분류/탈출자·정치범 약식재판 거친뒤 처형 북한에서는 초법적인 살인과 실종·고문·강제수용이 빈발하는 등 최악의 인권부재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고 6일 배포된 미 국무부의 96세계인권보고서가 밝혔다. 보고서는 또 김정일 체제하의 북한 주민중 75%가 동요층 및 적성분자로 분류돼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올해의 연례 인권보고서 가운데 북한에 관한 주요부분은 다음과 같다. ▲망명자들에 따르면 북한정권은 정치범,송환된 망명시도자,김정일에 대한 반란혐의가 있는 군장교 등을 예전과 마찬가지로 약식재판으로 처형하고 있다.「사회주의에 대한 반대」라는 애매한 형법조문을 걸어 사형이 언도되기도 한다. ▲북한은 최소한 20명의 일본인을 납치,억류하고 있는 것으로 일본 언론들은 추정하고 있다.중국과 러시아에 살고 있는 한인동포들에 대한 납치 의혹도 제기된다. ▲북한의 죄수들은 거의 일상적으로 고문당하고 학대당하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감옥의 고문·질병·기아와 해로운 환경의 방치로 사망했다고 믿을 만한소식통은 전하고 있다.노동자·학생·동료죄수들이 참석한 가운데 공개처형이 점점 빈번하게 실시된다.전가족이 같이 수감돼 「노동을 통한 재교육」의 혹독한 강제노역에 종사 된다.이들에게는 3년에 한번 밖에 의복이 지급되지 않으며 도망가지 못하도록 무거운 철 차꼬가 발에 채워진다.규칙을 어긴 죄수들은 똑바로 설 수도 없고 완전히 눕지도 못하는 「형벌 독방」에 수주일간이나 구금된다. ▲주민에 대한 구속·억류·추방이 북한정권 자의로 이뤄져 당국에 가족의 일원이 잡혀가더라도 위에서 말해주지 않는한 남은 가족들은 무슨 혐의인지조차 알 길이 없다. ▲북한정권은 지금도 주민을 「핵심」「동요층」「적성분자」 등 세가지로 분류하고 있으며 주민들을 당과 지도자에 대한 충성도를 따져 50여개의 구체적 범주로 세분한다.그 결과 전주민의 75%가 동요층 및 적성분자로 지목돼 있는 것으로 추산되며 적성분자층이 최소한 20%에 달한다고 망명자들은 입을 모은다.
  • 북 정치범 20만명 수용/통일원 「인권백서」

    ◎동구붕괴뒤 통제 강화… 배로 늘어/입북자 4백42명 억류 현재 북한내의 각종 정치범수용소에 수용되어 있는 수용인원은 2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지난 55년이후 강제납북돼 북한에 억류중인 남한출신 인사도 4백42명이나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통일원 산하 민족통일연구원(원장 이병용)의 「북한인권자료정보센터」가 25일 발표한 「북한인권백서」에 따르면 북한내에서 82년 무렵까지 8개 정치범수용소에서 약 10만명이 넘는 인원이 종신강제노역에 시달려왔으나 80년대말 동구권 붕괴이후 내부통제가 강화되면서 수용소와 수용인원이 이처럼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혀졌다. 이 백서는 북한주민 사이에 「특별독재대상구역」 「이주구역」 「종파굴」등으로 불리는 이들 정치범수용소에서 비인간적인 가혹한 대접을 받다가 죽어나가는 인원이 1개 수용소당 매년 수십명에서 수백명에 이른다는 첩보도 수록하고 있다. 수용소의 주요수용대상은 반당·반혁명·종파분자 등 김일성·김정일체제 위해분자를 비롯해 당정책위반자·자유주의성향자·불순북송교포 등이며 특히 최근에는 해외탈출기도자와 해외실정 유포자도 수용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백서에 따르면 지난 55년이후 지금까지 강제납북된 것으로 확인된 남한인은 모두 3천7백38명으로 이중 3천2백96명만이 송환되고 아직까지 4백42명이 북한에 억류돼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억류자중에는 동진호 선원 12명을 비롯,어부가 4백7명으로 가장 많으며 해군 I­2정 20명,대한항공 피랍억류자 12명과 지난 78년 노르웨이에서 납치된 고상문씨와 87년 오스트리아에서 납북된 이재환씨,지난해 중국에서 납치된 안승운목사 등이 포함돼 있다. 백서는 이밖에 러시아 북한벌목공의 인권실태에 관해 『경제적 궁핍과 인권침해를 피하기 위해 95년말까지 수백명이 우리 공관에 귀순의사를 타진해 왔다』고 전하고 『한때 1만5천명에 이르던 북한벌목공이 현재는 5천명수준으로 대폭 줄었다』고 덧붙였다.
  • 일 전쟁박물관 전몰자 추모장으로 변질/1억달러 들여 이달 착공

    ◎“일군 잔학상 전시… 과거사반성” 꿈 물거품/전시위안소·생체실험 자료 등 전시 못해 일본 정부가 지난해 「종전 50주년」을 맞아 과거사를 반성,청산한다는 차원에서 건립키로 했던 국립 전쟁박물관. 일본 각계의 시민단체들은 새 전쟁박물관에 제국주의 일본군의 잔학상을 전시,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교훈의 자료로 삼으려 했으나 이같은 바람은 허사로 돌아갔다. 1백20억엔(1억1천2백만달러)이 투입될 전쟁박물관 건립은 오랫동안 연기된끝에 빠르면 이달 착공된다. 그러나 이 박물관에는 어떤 메시지가 담겨야 하나? 외양보다 훨씬 중요할 수 밖에 없는 이 문제로 그동안 격렬한 논쟁이 있었지만 「최초의 완벽한 국립 전쟁사 전시장인 이 박물관은 전쟁기간중 있었던 어떠한 악행에도 관계없이 일본인 전몰자에게 경의만을 표해야 한다」고 결론이 나고 말았다. 즉 이 박물관에는 전시 「위안소」에서 성적 학대를 당한 수만명의 아시아여성들을 징발한 일,일본의 탄광과 공장에서의 노예와 같은 강제노역 혹은 일본군 군의관이 자행한 인체실험 등의자료들은 전시될 수 없게 됐다.『전시 역사에 대한 해석에 논쟁을 불러일으킬 자료는 전시되지 말아야 한다고 결정했다』고 후생성의 박물관사업 책임자인 카키하라 요지씨는 말했다. 후생성은 지난해 10월 문을 열어야 했던 전쟁박물관을 오는 99년까지 완공키로했다.또 이 박물관은 2차대전 당시 전범들을 포함한 전몰자들의 위패가 봉안된 신사 옆에 건립할 방침이다.
  • “공명선거 정착” 각 부처 보고내용

    ◎선거관여 공무원 초동단계서 엄벌­내무부/총선틈탄 불법 집단행동 발본색원­법무부/TV·언론매체 통해 지속적 캠페인­공보처 이수성국무총리 주재로 1일 열린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관계장관회의」는 70일 앞으로 다가온 총선을 공명정대하고 원활하게 실시하기 위해 각 부처의 계획 및 추진상황을 점검하는 자리였다. 이날 회의에서 김우석내무부장관은 선거사무관리와 지원,공명선거 계도방안을,안우만법무부장관은 부재자 투표를 잡음없이 치르기 위한 대책과 선거분위기에 편승한 불법·질서위반단속대책을 집중 보고했다. 또 안병영교육부장관은 선거사무인력과 시설지원,조해녕총무처장관은 공직자의 엄정중립대책,오인환공보처장관은 공명선거 홍보대책을 각각 보고했다. ◇내무부=이번 선거는 민선단체장 선출 등 본격 지방자치제 출범 이후 처음으로 실시되는 선거로 단체장의 중립이 공명선거의 관건이 된다.특히 예산집행과 행사참석,현장방문 등을 통한 음성적인 선거지원이 우려된다.각종 회의·대화·현장방문을 통해 중립실천을 주지시키고,선거법에 규정된 선거관여 금지사항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겠다. 단체장을 비롯,모든 공무원이 선거에 중립을 지키도록 분위기를 조성하겠다.단체장과 간부 공무원에 대한 감독을 강화할 것이다.선거에 관여하는 공무원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초동단계에서 엄정히 대처하겠다. ◇법무부=선거에 편승한 지역·집단이기주의적 불법집단행동과 불법집회·시위사범 등에 엄정히 대처하겠다.특히 공권력의 무력화를 노리는 폭력시위와 불법노사분규 등에 대해서는 즉각적인 공권력 투입으로 사태를 초기에 제압할 것이다. 전국 23개 「민생침해범죄 소탕추진본부」의 활동을 강화해 조직폭력배의 발호를 철저히 봉쇄하겠다.특히 「선거사범 전담수사반」과 합동으로 폭력배의 유세장 동원 등 선거개입을 사전에 차단할 것이다. 2월1일부터 4월30일까지를 행정법규 위반사범 특별단속기간으로 설정,불법건축과 환경오염,유흥업소 변태영업 등을 뿌리뽑겠다.이와 함께 전국 검찰청에 설치된 「부정부패사범 특별수사반」을 적극가동하여 담당공무원의 묵인과 금품수수 등구조적 부조리 척결에도 주력하겠다. 미결수용자,노역장유치자 등의 부재자 투표에 대한 의혹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부재자 신고 접수에서 투표소 설치,투표에 이르기까지 전 선거과정의 절차를 엄정시행하고 철저히 감독하겠다. ◇교육부=각급학교는 투·개표 및 합동연설회 장소를 제공하고,교원은 투·개표사무를 지원한다.그 결과 학교운동장이 연설회 장소로 사용되어 수업 분위기를 해치는데다 많은 수의 교원이 사전교육과 투·개표 등에 4∼5일간 참여,수업에 차질이 예상된다.지원에 나선 교원에 대한 예우 또한 대단히 미흡하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선관위로 하여금 적절한 대책을 강구토록 할 것이며 가능한 한 시민단체 등 자원봉사자의 활용을 요망할 방침이다.또 선거 유세도 토요일 하오나 일요일에 한하여 학교운동장을 사용하되 시설물의 파손·훼손이 없도록 하는 대책이 필요하다. ◇총무처=2월중 엄정한 선거중립자세와 행정공백방지,공직기강확립,적극적인 행정서비스,선거업무지원 등의 내용을 담은 공명선거를 위한 공직자 복무지침을시달할 계획이다.2∼3월에는 점검반을 편성,지시사항의 이행상황을 확인점검한다.또 정부의 대민접촉창구에 대한 운영실태도 점검,신속 친절한 민원행정의 기풍을 확립하겠다. 선거종사 공무원에 대해서는 밤샘 근무 다음날 휴무제를 철저히 실시토록 하겠다. ◇공보처=TV와 라디오·지하철·전광판광고,홍보영화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깨끗한 선거를 위한 캠페인을 펼칠 계획이다.TV를 중심으로 공명선거 캠페인을 계획해 시행토록 적극 협조하고,후보연설과 경력방송 등 통합선거법이 보장하는 범위안에서 공정한 선거방송이 이루어지도록 방송사와 협조해 나가겠다.「공선협」사업을 지원하는 등 시민운동단체의 공명선거운동을 지원할 방침이다.
  • 「영장보류」와 검찰·헌재 표정

    ◎검찰­“헌의결정 지켜보자” 관망속 애써 태연/헌의­“예고된 위헌신청… 1∼2개월안에 결정”/관련자­구속3인 “난 5·18과 무관” 억울함 호소 18일 장세동·최세창씨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가 보류되면서 5·18특별법에 대한 위헌시비가 본격화되자 검찰은 일단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지켜보겠다는 관망적 자세를 견지하면서도 곤혹스러워하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헌법재판소 관계자들은 위헌제청이 이미 예상됐던 일이라는 반응을 보이며 앞으로의 심리과정 등에 대한 검토작업에 들어갔다. ○…검찰은 전두환씨측의 5·18특별법 위헌제청이라는 「기습공격」으로 장씨 등 2명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가 보류되자 당황해 하는 모습. 그러나 이종찬특별수사본부장은 『5·18특별법은 제정 당시부터 끊임 없이 위헌소지와 관련한 잡음이 일었기 때문에 위헌문제는 언젠가는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할 사안이었다』면서 괘념치 않겠다는 뜻을 피력. 또 다른 검찰관계자는 『12·12와 5·18사건은 신군부측이 정권을 장악해 나가는 일련의 한 과정이고 관련자 대부분이 두 사건에 모두 연루돼 있기 때문에 관련자들의 사법처리에는 별다른 차질이 없을 것』이라고 자신하는 모습. ○…이날 상오 구속집행이 된 유학성씨 등 구속자 3명은 각기 대조적인 표정으로 억울함을 호소. 상오 10시52분쯤 서울지검 10층 조사실에서 1층 로비로 내려온 유씨는 굳은 표정으로 사진촬영 포즈를 취한 뒤 『나는 5·17과는 무관하다』고 짤막하게 항변했으며 곧이어 내려온 황영시씨도 『나는 5·18관련 회의에 참석은 많이 했지만 강경진압을 주도한 적은 없다』고 주장. 이들과 대조적으로 이학봉씨는 웃음을 띤 채 5분 남짓 손짓·몸짓을 곁들여 자신의 억울함을 주장했는데 『나에게 적용된 내란 혐의는 전혀 인정할 수 없다』면서 『이를 내란이라고 한다면 국가 위기 상황에서 누가 앞장서 일을 하겠느냐』고 언급. 이씨는 이어 장세동씨와 최세창씨가 풀려난 것과 관련,『동지들이 풀려나 기쁘다.특히 최세창씨는 건강도 좋지 않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한 뒤 구치소행 승용차에 탑승. ○…검찰은 구속영장발부가 보류된 장씨와 최씨에 대해 『귀가하는 마당에 보도진들에게 공개해 곤혹스럽게 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본인들의 의사를 물어 몰래 귀가시키기로 결정. 장씨는 상오 10시를 전후해 검찰청사를 빠져나갔으나 15분쯤 뒤 청사 지하1층을 통해 귀가하려던 최씨는 보도진과 조우. 최씨는 『영장이 보류된 데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미소를 지으며 『나쁠 것이야 없지 않느냐』고 말한 뒤 『오늘 바깥 날씨가 춥냐』고 여유를 보이기도. ○…헌법재판소 관계자들은 서울지법의 김문관판사가 위헌심판제청 신청을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지자 「예상했던 일」이라는 반응을 보이며 이날 상오부터 대책을 숙의. 한 관계자는 『법률적으로 이 사건 영장 판사 또는 담당 재판부가 위헌제청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사건 관련자가 직접 헌재에 헌법소원을 낼 수 있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이 사건에 대한 헌재의 판단은 이미 예고된 것이나 다름 없었다』고 설명. 이 관계자는 헌재의 결정 과정과 관련,『구속 사건에 대한 위헌 심판 제청 사건인데다 온국민의 관심이 집중돼 있고,국력의 낭비를 줄인다는 차원에서도 가급적 빨리 결정을 내릴 것』이라면서 『기왕에 상당히 검토를 마친 사건이므로 대법원을 거쳐 헌재에 사건이 접수된 뒤 빠르면 1∼2개월 안에 결정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헌재 관계자들은 12·12 및 5·18 사건에 대한 위헌제청신청 사건이 들어오기까지는 법보다는 물리력을 앞세우는 우리 사회의 잘못된 법인식이 팽배해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 한 관계자는 『지난해 11월말 5·18 사건 등에 대한 헌재의 선고를 앞두고 이 사건의 피해자들이 소취하를 해 헌재 결정이 무산된 것은 문제가 있었다』고 강조하고 『만약 그때 헌재가 결정을 내리고 그에 따라 특별법이 제정됐더라면 오늘과 같은 어려움은 없었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표시하기도. ○전씨 65회 생일맞아 ○…경찰병원에 입원 중인 전두환전대통령이 18일 5·18특별법에 대한 위헌제청이 법원에 의해 수요외면서 측근인 장세동·최세창씨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가 보류된데 대해 밝은 표정을 보였다고 가족과 측근들이 밝혔다. 특히 전씨는 지난 16일 65회 생일을 맞아 부인 이순자씨, 아들 재국·재용·재만씨와 딸 효선씨, 손자·손녀들, 이량우·석강진변호사 등의 생일축하 인사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최세창·장세동씨 「영장보류」 전말/전씨측 핵심 5인 구속에 위헌시비 제기/서울지법, 서류요건 미비 불구 신청 접수/영장 담당판사 14시간 숙고끝 “위헌제청” 12·12 및 5·18사건의 「역사적 의미」를 놓고 서울 서초동 검찰청사에서 밤낮 없이 공방을 전개해 왔던 전두환전대통령측과 검찰은 지난 17일 결전의 장소를 서울지법으로 옮겼다. 이학봉·장세동씨 등 5공실세 5명에 대해 구속영장이 청구되자 전씨측이 5·18특별법에 대한 위헌시비를 전격적으로 제기하고 나온 것이다. 전씨측은 제정된지 한달여가 지나도록 특별법의 위헌여부에 대해 별달리 문제제기를 하지 않다가 이 법으로 측근들이 무더기로 구속될 위기에 처하자 영장이 접수된 직후인 이날 하오 3시40분쯤 화급히 서울지법 2층 접수실을 찾아와 「위헌여부심판제청신청서」를 냈다. 법원이 위헌소지가있다고 판단,헌법재판소에 심판을 제청하면 이들에 대한 영장은 기각되기 때문에 전씨측과 검찰은 서로 물러설 수 없는 한판승부의 기로에 서게 된 것이다. 법원측은 장씨 등 영장청구 피의자 5명에 대한 변호인선임계가 제출되지 않는 등 서류상 요건이 미비했으나 별달리 문제삼지 않고 신청을 접수한 뒤 12·12 및 5·18사건 담당재판부인 형사합의30부(재판장 김영일부장판사)로 보냈다.전씨가 이미 12·12사건으로 기소됐고 장씨 등도 추후 기소될 예정이므로 심사주체가 30부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신청서를 받아든 재판부는 전씨는 이미 기소된 상태이므로 문제가 없지만 장씨 등은 영장심사단계에 있어 영장당직판사가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재판부는 이에 전씨측 변호인인 전상석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어 신청취지를 명확히 해달라고 요청했다.전변호사는 이날 하오 8시20분쯤 장씨 등 5명에 대한 변호사선임계와 함께 『신청목적은 검찰측의 영장청구가 합헌적인지를 가려달라는 것』이라는 보정서를 제출했다. 영장당직판사인 합의21부 김문관판사는 이때부터 9만여쪽의 수사기록과 5·18특별법의 위헌여부를 가리기 위한 숙고에 들어갔다.검찰이 보내온 위헌제청신청에 대한 의견서도 함께 검토했다.기자들이 판사실로 전화를 걸어 진행상황을 물어보면 『시간이 많이 걸릴 것같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18일 상오 5시20분.신청서가 접수된지 14시간여나 걸린 숙고 끝에 김판사는 12·12와 관련해 군형법상 반란죄로만 영장이 청구된 장씨와 최세창씨에 대해 『공소시효가 완성된 사람에 대해 소급해서 시효를 정지,배제하는 법률은 위헌소지가 있다』고 판단,영장발부를 보류하고 헌법재판소에 위헌심판을 제청했다. ◎5·18법 위헌심판 제청 결정문 ◇주문=피의자 장세동·최세창 영장사건에 대해 5·18 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제2조의 위헌여부에 관한 심판을 제청한다.신청인 이학봉·유학성·황영시의 위헌심판 제청신청을 기각한다. ◇위헌신청의 대상이 된 법률규정=5·18 특별법 제 2조 1항 「79년 12월12일과 80년 5월18일을 전후하여 발생한 헌정질서 파괴사범의 공소시효 등에 관한 특례법 제 2조의 헌정질서 파괴범죄행위에 대해 국가의 소추권행사에 장애사유가 존재한 기간은 공소시효의 진행이 정지된 것으로 본다」.제2조 2항 「제1항에서 국가의 소추권행사에 장애사유가 존재한 기간이라 함은 당해 범죄행위의 종료일로부터 93년 2월24일까지의 기간을 말한다」 ◇장세동·최세창의 신청에 대한 판단=헌법 제12조 1항은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진다.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 구속 압수 수색 또는 심문을 받지 아니하며,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처벌 보안처분 또는 강제노역을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헌법 제 13조 1항은 「모든 국민은 행위시의 법률에 의해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는 행위로 소추되지 아니하며,동일한 범죄에 대해 거듭 처벌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이러헌 적법절차 원리와 법률불소급의 원칙에 비추어 이미 공소시효가 완성된 사람에 대해 소급해서 그 시효를 정지 내지 배제하는 내용의 법률은 위헌이라 생각한다. ◇이학봉·유학성·황영시의 신청에대한 판단=신청자에게 적용된 반란중요임무 종사죄는 군형법 제5조 2호에 의하면 사형,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범죄로서 공소시효가 15년인 바 영장이 청구된 1월17일은 범죄행위가 종료한 때로부터 15년이 경과되었음이 기록상 명백하다. 이에 대해 검찰은 내란 등이 일단 성공하여 정치권력을 장악한 경우 그 공소시효는 정당한 국가기관이 그 기능을 회복한 이후부터 비로소 진행된다고 주장한다.즉 5·18 특별법에서 국가의 소추권행사에 장애사유가 존재한 기간인 범죄행위 종료일로부터 93년 2월24일까지 공소시효의 진행이 정지된다고 규정하는 것은 이같은 법리를 확인하는 것에 불과하므로 특별법이 합헌이라는 것이다. 검찰의 이같은 공소시효 관련 주장은 특별법이 제정되기 전에는 형사소송법 등 어떤 법률에도 없었다.그렇다면 군사반란죄의 경우 그 주도세력 등이 집권한 경우에는 공소시효가 정지된다고 볼 수 있는지 문제가 될 것이다. 형법상 내란죄는 헌법 또는 법률이 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 헌법 또는 법률의 기능을 소멸시키거나,헌법에 의해 설치된 국가기관을 강압에 의해 전복 또는 그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할 목적으로 폭동한 경우에 성립하는 범죄로서 신청인들에게 적용된 군형법상의 반란죄와는 여러가지 면에서 성격을 달리한다.즉 내란죄의 보호법익이 국가의 존립과 안전이라고 할 때,군사반란죄의 보호법익은 군대의 조직과 기율유지,전투력 유지 등이라고 보여지고 그 외에도 내란죄와는 목적·요건 등을 달리한다.결국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정면으로 유린하는 내란죄의 경우 국가권력의 장악에 성공한 내란행위자에 대해 국민으로부터 정당하게 국가권력을 위탁받은 국가기관이 그 기능을 회복하기까지 사실상 처벌되지 않는 상태가 지속된다면 공소시효가 그 기간동안 정지되는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회복이라는 또다른 헌법상의 요청에 의해 가능하다고 보더라도 성격을 달리하는 군사반란죄에 대해서까지 기존의 적법절차 원리나 법률불소급 원칙과의 부조화를 감수하면서 공소시효가 정지된다고 해석하기는 어렵다고 판단된다. 따라서 내란죄부분은 특별법과는 관계없이 아직 공소시효가 완성되지 않은 것으로 인정되므로 특별법의 위헌여부가 재판의 전제가 되지 않는 것으로 판단되고,신청인들에 대해 내란죄부분만으로도 구속사유가 있다고 판단되어 각기 구속영장을 발부하는 이상 피의사실 중 군사반란죄 부분 역시 더이상 재판의 전체가 될 수 없으므로 신청인들의 제청은 이유없다고 판단된다.
  • 지난2일 공포 일반­징계사면 모두 747만명 혜택/정부 최종집계

    지난 2일 공포한 일반사면과 징계사면 등 사면조치에 대한 실무작업을 벌인 결과,혜택을 입은 사람은 모두 7백47만여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법무부는 30일 사면조치된 사람은 일반형사사건 76만5천여명,통고처분·즉심 1백85만여명,징계사면 5만3천여명,도로교통법상의 벌점삭제 등 4백80만2천여명 등이라고 밝혔다. 또 집행면제된 벌과금과 범칙금의 총액은 5백18억원에 이르며 집행면제된 사람은 1백36만여명이다. 법무부는 죄명별 수혜자는 도로교통법위반자가 가장 많고 경범죄처벌법,향토예비군법,자동차관리법,자동차운수사업법위반 순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일반사면으로 수사중이거나 복역중인 사람 76명과 노역장유치집행중인 사람 2백명 등 2백76명이 석방되었으며 수배중인 1만8천여명이 수배해제됐다. 법무부는 이같은 조치결과를 전산화,해당자들이 즉시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 징용한인(외언내언)

    『주위를 자세히 보니까 창마다 쇠창살이 있고 셰퍼드 몇마리가 으르릉거리며 돌아다녔다.창고보다 못한 건물에 썩어 문드러진 다다미가 깔려 있었다.쓰레기통을 들쑤셔 놓은 것처럼 악취가 방안에 가득 넘쳐 흘렀다.…』1941년 일본 홋카이도 탄광에 끌려간 어느 징용 노무자의 수기다. 이렇게 열악한 환경 속에서 조선인 노무자들은 하루 12시간이 넘는 중노동을 강요당했다.조선인 노무자의 탈출을 막기위해 작업장주변 철조망에는 고압전류를 흐르게까지 해놓았다. 1940년부터 본격화된 일제의 조선인 강제징용은 경찰력을 앞세우고 전국 각지에서 실시되었다.「인간사냥」이었다.일본의 탄광·철도·댐 건설현장이나 군수공장으로 끌려가 강제노역에 종사했다.중국 동남아 남양군도에 이르기까지 일본군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끌려갔다. 종전직후 맥아더사령부에 제출한 일본정부의 비밀보고서에 의하면 강제 징용자의 수가 1백66만8천명으로 파악되고 있다.그러나 일본정부는 이들의 배상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공식문서가 없어 파악할 수 없다고 시치미를떼었다.태평양전쟁중 강제징집된 희생자 24만명의 명부가 93년에 돌아온 일이 있다.이는 실제 희생자의 일부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침략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끌려간 한국인 노무자에 대해 일본정부는 종전 50년이 넘도록 아무런 배상도 하지 않았다.배상은 커녕 전쟁당시의 저축금조차 안주고 있다.종군위안부에 대한 배상문제도 마찬가지이지만. 며칠전 일본 오사카지방법원은 「징용된 재일한국인의 보상거부는 위헌소지가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모처럼 들어보는 「양심의 소리」다.그동안 일본법정은 「일본 국적이 없기 때문에 재일한국인 징용자에 대한 보상은 불가」라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일본의 필요에 의해 끌려갔다가 종전과 더불어 내팽개쳐진 재일한국인.그들을 외면하는 일본은 몰염치한 부도덕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 극동의 관문 하바로프스크(시베리아 대탐방:39)

    ◎승무원들,중간역 「반짝 시장」서 돈벌이/차창밖엔 입영행렬… 징집제도 우리와 비슷/아루르주 경계 지나니 어느덧 극동지역에 밤 12시20분,치타역에서 블라디보스토크행 열차를 탔다.노보시비르스크를 출발해 블라디보스토크까지 가는 「로시아호 8번」 특급열차였다.출발지만 다를 뿐 모스크바발 「로시아 2호」와 「로시아 8호」는 같은 특급열차로 하루씩 번갈아 동시베리아를 지나간다. 역에서는 군사도시답게 입영하는 젊은이 수십명이 열지어 기차에 오르고 있다.러시아는 우리같이 의무병제도다.현재 복무기간은 18개월인데 옐친정부는 이를 2년으로 늘리는 계획을 세우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입대연령은 만 18세.15세가 되면 주거지에 신고를 하고 17세때 1차 신체검사를 받고 입대 직전 한번 더 신체검사를 받는다.징집면제제도도 있어 우리와 비슷한 면제대상기준이 마련돼 있다.부모 한쪽이 없거나 영세민,결혼해 자녀가 3명이상 혹은 어린 자녀가 있을 시,대학생 등은 입영이 면제된다. ○만 18세되면 군입대 간밤에는 계속 비가 내렸다.이튿날아침 7시30분.체르니세프스키역에 도착했다.어느덧 평원이 사라지고 조그만 언덕·강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동시베리아·극동지역의 전형적인 풍경인 「소프키」라고 부르는 낮은 산들이 나타나며 우리여행도 막바지에 이르렀음을 실감시켜주고 있다.차창밖 산천이 우리나라와 흡사한 모습을 띠기 시작했기 때문이다.기차는 북진을 계속,금광지대인 모고차를 지나 아무르주 경계를 향해 나간다.마침내 시베리아가 끝나고 극동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도중 실카강변에 있는 스레친스크시는 19 15년 시베리아철도의 아무르선이 완공되기 전까지 시베리아횡단철도의 종착역으로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당시 모스크바에서 싣고 온 화물과 승객은 이곳에서 실카강의 증기선으로 갈아타고 아무르강을 따라 하바로프스크로 갔다.이후 아무르노선이 완공되며 중요성을 상실,지금은 인구 불과 1만명의 쇄락한 도시가 됐다.하지만 지금도 이 스레친스크에서 모고차까지의 치타 동북부지역일대는 유명한 금광지대이며 식품가공·가구 등 소규모 산업지대가 만들어져 있다. 모고차시는 아무르선 건설 때 만든 도시다.아무르철도는 이 부근에서 아무르강을 따라 거의 나란히 달려 하바로프스크까지 연결된다.한때 모고차시는 시베리아 「금광의 수도」로 불릴 정도로 금광이 많은 곳이다.모고차란 도시이름도 「황금의 바닥」이라는 뜻의 예벵키어다.하오6시20분 마침내 치타주의 마지막역인 말러 코발리역을 지났다.「작은 대장장이」란 뜻의 이름이다.이로써 시베리아와는 작별을 고했다. 북동진을 계속하던 열차는 아무르주의 스코보로디노에서 남쪽으로 급회전해 하바로프스크로 연결된다.특히 치타에서 모고차까지 구간은 지난해 마지막으로 전철화된 곳이다.대시베리아철도중 하바로프스크에서 우수리스크까지는 유일하게 전철화가 안된 곳으로 현재 공사가 진행중이다.우수리스크부터 블라디보스토크 구간은 최근 전철화가 끝났다.실개천·나무·작은 들판등 대자연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식당음식 점점 비싸 식당칸의 음식값은 모스크바에서 멀어질수록 점점 더 비싸지더니 아무르주로 들어서며 똑같은 메뉴가 다시 10%이상비싸졌다.민망한 듯 식당칸 주인은 『중간도시에서 음식재료를 계속 사야 하는데 재료값이 동으로 갈수록 더 비싸지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오지수당으로 임금이 높아지면서 물가도 따라 오른 것이다. 아무르주에 이르러 아무르강은 마침내 대하로 변하며 중·러국경을 이룬다.마찬가지로 하바로프스크부터 아래쪽 연해주 남쪽으로는 우수리강이 양국국경이다.아무르주의 첫번째 역은 예로페이 파블로비치.하바로프스크주를 정복해 건설한 예로페이 파블로비치 하바로프스크장군의 이름을 딴 마을이다. 아무르주의 스코보로디노역은 북쪽 BAM철도의 수도로 불리는 튄다역으로 연결되는 교차역이다.그리고 튄다를 통해 야쿠츠공화국의 금광중심지인 알단지구로 연결된다.이 아무르∼야쿠츠철도는 1925∼37년에 건설됐다. 승객서비스에는 관심도 없던 우리 객실의 승무원 부부는 스코보로디노역에 기차가 도착하자 「본업」인 자기영업을 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노보시비르스크에서 싣고온 콜라·맥주·치즈·버터 등 각종 물건 수십상자를 웃돈을받고 이곳 상인에게 넘기는 일이다.빈병도 모아 넘기는데 러시아인은 기차를 탔다 하면 내릴 때까지 보드카를 마셔대기 때문에 빈병수입 또한 만만치 않을 것같다. ○동해까지 2천8백㎞ 밤중에 지난 스바보드늬역은 1912년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2세의 아들인 알렉세이왕자의 이름을 딴 알렉세예프스크이던 것을 혁명 뒤 「자유」라는 뜻의 스바보드늬로 바꾼 곳.제야강을 따라 남서쪽으로 블라고비센스크로 연결되며 한때 금광행정본부가 있던 곳이다.블라고비센스크는 아무르 제일의 도시로 중국과 국경인데다 항구도시란 이점으로 인해 활발한 국제무역도시가 됐다.겨울에 아무르강이 얼어붙으면 강을 걸어 양국 무역상이 오가는데 시베리아에서 제일 큰 중국시장이 성행하는 곳이기도 하다.아무르강은 제야강과 합쳐진 지점에서 동해까지 거리가 2천8백24㎞,그 이전의 상류까지 합하면 4천4백㎞를 흐르는 장강이다. 국민학생 수십명이 식당칸으로 우르르 몰려간다.여름방학을 맞아 부리야트·치타주에서 블라디보스토크해안의 사나토리(휴양소)로 가는 학생들인데 각학교에서 우수학생을 선발해 1개월동안 휴양소로 보낸다고 한다.인솔교사는 1개월 경비가 1인당 1백만루블인데 특별히 주정부와 후원하는 보험회사에서 반반씩 부담한다고 설명한다.소련시절에는 청소년동맹이다 해서 방학이면 무조건 국가경비로 단체여행을 보냈는데 이제는 돈 있는 집 자녀가 아니면 이런 장기여행은 꿈꾸기 힘들다. 아무르주를 지나 하바로프스 크라이(대주)로 진입하며 모스크바와의 시차는 1시간이 더 추가돼 7시간으로 벌어진다.곧바로 「유태인이 살지 않는」 유태인자치주 예브레이로 들어섰다.이곳 역시 웃지 못할 사연을 담고 있는 곳이다.
  • 재소자 TV시청 허용/법무부

    법무부는 10일 재소자들에게 TV시청을 허용하는 등의 내용을 골자로한 행형법 시행령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시행에 들어갔다. 개정안은 수형자가 사회복귀에 필요한 유익한 정보 및 지식을 습득할 수 있도록 교도소에서 관리·운영하는 방송설비등을 이용,라디오청취와 텔레비전 시청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법무부는 또 수형자에 대한 접견횟수를 ▲징역 수형자는 월1회에서 월2회로 ▲금고수형자와 노역장 유치자는 월2회에서 3회로 ▲미결수형자는 하루 1차례 접견이 가능토록 했으며, 서신은 원칙적으로 발송횟수에 제한을 두지 않기로 했다.
  • 크라스노야르스크(시베리아 대탐방:30)

    ◎절경의 스탈브이 자연공원… 기암 40개/일군 포로가 지은 스탈린식 건물 곳곳에/19세기 화가 「수리코프」는 이 고장의 자랑/예니세이강 유역에 목재 콤비나트 줄이어 목재산지 예니세이강의 도심 선착장 대합실은 49년 당시 소련에 억류돼있던 일본군 전쟁포로들을 동원해 지었다는 전형적인 스탈린식 건물이다.시베리아 전역에서 전쟁포로들을 동원해 지은 건물들을 많이 볼수 있었다.치타·연해주 등 동시베리아쪽에서는 일본군 포로들이 동원됐고 서부지역에서는 독일군 포로들이 동원됐다. 일제때 학병으로 끌려간 우리나라 사람들중에도 소련군포로가 돼 러시아땅에서 강제노역을 당한 사람들이 많다.김영삼대통령의 단골 러시아어 통역인 유학구씨도 학병으로 끌려갔다가 포로로 잡혀 하바로프스크에서 무려 4년여 강제노역을 했던 사람이다.그는 그곳에서 좌익활동을 해 전후 일본으로의 송환을 거부하고 소련시민이 됐다.이후 그는 소련의 연구소에서 한반도관계 일을 맡다가 한소수교 뒤 다시 한국국적을 취득해 지금 서울에서 살고 있다. ○유학구씨도강제 노역 그와는 달리 학술원회원인 동완 선생은 하바로프스크에서 유학구씨와 함께 포로생활을 했으나 일본으로 되돌아간 경우다.그는 어릴 때 부친을 따라 만주에서 성장하며 배운 유창한 러시아어 때문에 관동군 통역장교로 참전했다고 한다. 귀국 후 그는 오랫동안 한국외국어대 러시아어학과에서 후학을 가르쳤다.이 두 사람의 인생유전도 우리 근대사의 한 비극을 압축해 보여준다. 크라스노야르스크 동쪽의 이르쿠츠크는 시베리아 유형자들의 종착지였다.그래서 유형자들의 수도라고 불린다.따라서 그 직전 도시인 크라스노야르스크는 유형자들의 마지막 중간 기착지였던 셈이다.그리고 많은 유형자들은 이곳에서 유형생활을 마감하기도 했다.「파크로프스크(첫눈)」라는 이름의 18세기 사원을 지나면 시립 공동묘지가 있는데 데카브리스트(12월당원)들을 비롯,유형자들의 묘지가 대거 눈에 띈다.「파크로프스크」라는 이름은 첫눈 내리는 10월1일에 착공됐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보통 10월1일 첫눈이 내리면 이듬해 4월까지 겨울이 계속되고 1월 평균기온이 지금도 영하18∼20도로 내려간다.지난 겨울에는 예전같은 혹한은 줄어들었지만 대신 폭설이 많이 내렸다고 한다. 크라스노야르스크의 가장 자랑거리는 뭐니뭐니해도 자연공원 「스탈브이」봉이다.수력발전소로 가는 길 중간에 있는 약 40개의 기암 봉우리로 이루어진 자연공원이다.우리의 설악산에 비할바는 못되지만 산이 귀한 시베리아인들은 이 스탈브이를 한번 가보는 게 평생 꿈이라고 할 정도로 유명한 산이다.산세도 산세지만 사회주의 나라들의 공원은 역시 사람의 발길이 뜸해 오염되지 않은 게 제일 장점인 것같다.무료한 표정으로 앉아있던 공원입구 매표소 여직원은 엽서·안내책자 등을 종류대로 다 사고 싶다는 말에 신이 나서 먼지가 뽀얗게 쌓인 서랍을 이리저리 뒤졌다.이곳의 안내책자들은 사진기술은 괜찮은데 하나같이 종이질과 컬러 인쇄술이 조잡한 게 흠이다.얼음같이 찬 계곡물에 잠시 발을 담그니 쌓인 여행의 피로가 말끔히 씻겨지는 기분이다. ○유형자들 중간 기착지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특히 「클레시」라고 부르는 해충을 조심해야한다.작은 벌 모양으로 생겼는데 한번 물리면 뇌·신경조직에 치명적인 해를 가한다고 한다.공원 입구는 물론,크라스노야르스크 시내 곳곳에 클레시를 조심하라는 경고판이 나붙어 있다.스탈브이를 내려오면 예니세이강을 끼고 시내 초입까지 내내 목재 콤비나트가 줄줄이 들어 서 있다.뗏목으로 이동해온 목재들을 이곳에서 가공해 시베리아철도를 이용해 각 도시로 공급하는 것이다. 이곳 사람들의 문화적 자랑거리로는 19세기에 활동했던 이곳 출신 화가 수리코프를 빼놓을 수 없다.시내 한복판에 있는 전형적인 동시베리아 목재집을 박물관으로 꾸며 그가 쓰던 가구와 그림들을 전시해 놓았다.시베리아의 자연풍경과 여인·가족,특히 자연속의 사람을 즐겨 그린 수리코프에 대한 이곳 사람들의 자긍심은 대단하다. 크라스노야르스크가 우리에게 비교적 낯설지 않게 들리는 이유중 하나는 지난 88년9월 고르바초프가 이곳에서「크라스노야르스크 선언」이라는 새 아시아 군사외교노선을 천명한 때문이기도 하다.아시아에 탈냉전의 바람을 불어놓는 선언이라며당시 우리 언론들도 대서특필 했었다.고르비가 당시 이 선언을 발표했던 주당위원회 건물은 지금 주정부·주의회가 입주해 있고 정작 거리의 시민들은 이 선언에 관해 기억하는 사람이 없었다.하기야 고르비마저도 거의 잊혀진 인물이 됐으니. ○고르비 “탈냉전” 천명한 곳 시베리아에서 5월말은 졸업시즌이다.크라스노야르스크의 중심가인 칼 마르크스거리의 불러바르(도보)에는 졸업을 앞둔 여중생들이 들뜬 기분에 10여명씩 무리를 지어다니는 모습이 눈에 띈다.11학년제이니까 15∼16살쯤 되는 나이들이어서 화장도 짙게 하고 모두 숙성한 모습들이다.우리를 보더니 『우리는 졸업한다』『사진을 찍어달라』는 등 명랑하게 재잘거리며 지나간다. 러시아는 지금 학제도 큰 변혁기에 있다.지금까지는 국민학교 5년에 중학교는 6년,합쳐서 11년제였다.우리와 달리 국민학교·중학교가 따로 있는 게 아니고 같은 학교에 있으며 제도만 분리돼 있을 뿐이다.국민학교는 담임교사가 학급을 책임지고 모든 과목을 다 가르치는데 중학교로 가면 과목별 교사가 따로 있다.가장 큰 차이는 국민학교에는 시험이라는 게 전혀 없다가 중학교로 가면 과목별로 시험이 생겨난다는 점이다. 요즈음은 이 공립학교 대신 김나지움이나 리세라는 엘리트학교가 많이 생겨나고 있다.일명 「뉴(new)러시안」이라 불리는 신흥 부자들의 자녀들이 다니는 곳이다.시설도 좋고 교육의 질이 매우 좋지만 월학비가 5백∼1천달러에 이르니 일반국민들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이들 학교학생들과 일반 공립학생간의 위화감이 사회문제로 언론에 종종 등장하기도 한다. 중학교를 졸업하면 취직을 하거나 아니면 대학으로 진학한다.요즈음은 너도나도 취직하는 게 유행이다.대학은 우리같이 학부 4년,대학원 2년이 기본이다.그러나 의대의 경우는 예과 2년,인턴 2년을 합쳐 모두 7년제이고 공대 6년,법대 5년등 다양하다.이를 모두 미국·유럽학제로 일원화하는 문제가 요즘 큰 논란거리다.
  • “전쟁은 정당” 일 극우단체 시위/종전 50주년… 일·미·태 표정

    ◎워싱턴 공식행사 전무… 언론도 침묵­미국/10만여명 희생된 콰이강서 위령제­태국/일 각료 9명 전범위패 안치된 야스쿠니신사 참배 ○8천여명 추도식 ▷일본◁ ○…일본에서는 「종전기념일」로 불리는 15일 정부주관하에 「전국전몰자추도식」이 도쿄 기타노마루공원 무도관에서 일왕부처,무라야마 도미이치총리와 도이 다카코 중의원의장등 정부·국회관계자,유가족등 8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됐다. 조선인·대만인 등을 포함한 군인·군속 2백30만명,일반인 85만명등 3백15만명을 추도한다는 이날 행사에서 무라야마총리는 『그 전쟁에서는 많은 나라,특히 아시아 여러 국민에 커다란 고통과 슬픔을 주었다.이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여 깊이 반성과 애도를 표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무라야마내각의 각료 9명이 전범들이 봉사되고 있어 늘 말썽을 빚고 있는 야스쿠니신사를 참배. 올해 참배각료는 14일 미리 참배한 우라노 야스오키 과학기술처 장관을 포함,10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7명의 각료가 「개인」 자격으로 참배한데 비해 올해는수가 늘어났을 뿐 아니라 통산상,방위청장관등은 「공인」 자격으로 「공식참배」. 특히 히라누마 다케오 운수상은 이날 참배시 다른 각료들이 머리만 숙인것에 반해 「2례 2바교수 1례」의 신도식으로 참배해 「정교분리」를 규정한 헌법 규정과 관련해 물의 무라야먀 총리 등 연립여당 3당 당수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참배하지 않았으나 자민당의원 1백32명(대리참배 73명),신진당의원 36명(대리 20명)등 국회의원들도 대거 참배대열에 합류,정치권의 분위기가 지난해보다 「참배」쪽으로 기울고 있음을 보여줬다. ○배상 등 요구 시위 ○…오사카(대판)에서는 15일 한국유족,중국남경대학살 생존자,일본시민등 4백7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일본의 전쟁책임을 추궁하는 집회가 열렸다고 교도통신이 보도. 이날 집회에서 일제징용으로 남편을 잃은 유족 이김주(74·전남 광주)씨는 『일본인은 한국인을 소모품처럼 사용하고 버렸다』면서 사죄와 배상을 일본정부에 촉구. ○안보리 기념성명 ▷미국◁ ○…미국 수도 워싱턴에서는 태평양전쟁승리 50주년이 「망각」된 채 지나갔다.현지시간 14일인 승전일에 미국정부의 전승기념 공식행사는 물론 이에 대한 언급도 전무했다.이를 다룬 신문사설조차 없었다. 미국에서 태평양전쟁 승리는 일본의 미 진주만 기습(41년12월7일) 기념행사때 함께 축하되지만 언제나 종속적인 신세를 면치 못한다.진주만기습 50주년 기념행사는 4년전 미전역에서 성대하게 치러진 바 있다. 미국인에게 정작 8월은 원자폭탄 투하의 달로 더 기억된다.미국언론은 지난 6일 원폭 투하 50주년 당시 히로시마에 대한 연민의 정을 담은 대대적인 기획기사를 다뤘다. 한편 유엔 안보리는 이날 아시아지역 2차대전 종전 50주년을 맞아 3개항의 기념성명을 채택,국가간 신뢰구축과 협력을 통한 단결이 전쟁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길이 된다고 밝혔다. ○생존포로 등 참석 ▷태국◁ ○…2차대전당시 일본군의 포로로 잡혀 태국에서 철도부설을 위한 강제노역에 동원됐다가 숨진 연합군장병 1만6천여명과 아시아인 10만여명의 넋을 기리는 위령제를겸한 종전50주년 기념식이 15일 연합군 생존포로및 전일본군 병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콰이강의 다리가 있는 방콕서쪽 칸차나부리에서 거행됐다.
  • 유엔­세계 포로교환 논의/“세계 포로2천명 강제노역”/난민들 증언

    【사라예보 로이터 연합】 유엔과 보스니아 정부 및 세르비아계 대표들이 26일 전쟁포로 교환문제를 논의하고 있다고 알렉산더 이반코 유엔 대변인이 밝혔다. 이반코 대변인은 루퍼트 스미스 보스니아 지역 유엔군 사령관,세르비아계의 라트코 믈라디치 사령관,정부 대표들이 사라예보 공항에서 세르비아계에 의해 함락된 제파의 회교도 남자들과 정부군에 의해 붙잡힌 세르비아계 포로들을 서로 교환하는 문제를 토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네바 AFP 연합】 보스니아 스레브레니차에서 포로로 잡힌 약 2천3백명의 보스니아 회교 정부군이 세르비아계 수용소에서 강제노역을 행하고있다고 유엔 난민 고등판무관(UNHCR)이 목격자들을 인용해 25일 밝혔다. 난민고등판무관실의 존 레드먼드 대변인은 보스니아 병사들이 국경근처 바츠코비치 수용소에 갇혀있다면서 보스니아 북부 비옐이나 마을에서 세르비아계의 「인종청소」과정에서 추방된 난민들이 이를 목격했다고 전했다. 또 유엔 안전지대인 투즐라에 간신히 도착한 다른 난민들도 AFP통신에 스레브레니차에서 세르비아계에 의한 대량 학살이 자행됐다고 전했는데 이같은 소문은 아직 확인되지 않고 다.
  • 원로 연극인 장민호(이세기의 인물탐구:78)

    ◎평생을 연극으로 살아온 연기자의 대명사/파우스트 간판배우… 별명은 “파우스트 장”/이순신서 햄릿까지 어떤 배역도 무난히 소화/칠순이 눈앞에… 식을줄 모르는 열정으로 연기생활 『배우가 해야 할 최대 문제는 관객을 계속 끌고 나가는데 있다』고 뉴욕 메트로폴리탄 가수로 활약한 샬리아핀은 말한다.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연기에 대한 끝없는 욕심과 집념어린 정열을 불태우는 이가 있다면 국립극단의 원로배우 장민호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그는 평생을 연극으로 일관한 연기자의 대명사다.양심적이고 본질적인 그의 연기가 우리에게 주는 감동은 일시적인 경이감이나 전율만은 아니다.연기를 통한 인간정신의 승화를 그는 무대 곳곳에서 증명해 내고 있다.예의 「배우가 해야 할 최대 문제인 관객을 이끌어 나가는데」 한번의 실수나 실책이 있을 수 없다는 주의다. ○솔직하고 직선적 성격 그는 언제나 의욕적이다.성격은 명쾌하고 성급하며 솔직하고 직선적이다.항상 모범생과도 같은 이런 유의 성격이란 한가지 일에 몰두하면 끝장을 봐야만직성이 풀리게 마련이다.또한 철두철미하고 다혈질적인 기질로 인해 곧잘 흥분하거나 저항하거나 마찰을 빚기 십상일 것이다.그러나 「칼날처럼 날카롭고 정의감에 넘치건만」 막상 결단을 내려야할 순간에는 흑백을 가리거나 정면으로 대결하기보다 우회적인 유연성을 지니는 것이 남과 색다르다.이는 아마도 오랜 세월 어지러운 세파에 시달린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터득한 「삶의 지혜」일지도 모른다.또는 이북에서 혼자 월남해온 그로서는 사방의 적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해야 한다는 당연한 견제일 수도 있다.그래선지 국립극단에서 40년이 넘게 한 솥밥을 먹은 동료들도 『그의 속마음을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다만 무대에 서면 「온몸의 연기로 관객을 압도」하기 때문에 「배우가 연기를 잘한다면 모든 것은 침묵」일수밖에 없다. 그는 해방직후 황해도 신천에서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서울에 왔다가 연극배우가 된 케이스다.20세되던 해 원예술좌가 공연한 성극 「모세」에서 타이틀 롤을 맡으면서 연극에 입문,그로부터 10년후 하유상의 「딸들자유연애를 구가하다」로 「노역」을 완성시키면서 「성공적인 연기자」의 반열에 올라섰다.이후 「대수양」「세종대왕」「성웅 이순신」에서 완곡하며 기질이 장대한 성군,「오델로」「맥베스」「줄리어스 시저」의 다이내믹한 개성,「밤으로의 긴 여로」「안네 프랑크의 일기」「햄릿」에서의 차분하고 섬세한 내면 연기 등 그에게 돌아오는 모든 배역을 「생생한 극중 인물」로 부각시키는데 한치의 허술함을 보이지 않았다.그중에서도 「역을 최후로 완성시키는 것은 디테일이 아니라 전체적인 진실성」이라고 믿는 그가 평자들에게 어필된 것은 단연 괴테의 「파우스트」를 들수 있다. ○66년에 파우스트 초연 66년 서항석 역 이해랑 연출로 초연된 「파우스트」에서 그는 학문과 지식에 실망한 노박사 파우스트가 현세적 향락에 침몰되는 과정을 고뇌에 찬 연기로 그려내었고 두번째는 8년후인 74년,순결한 헬렌과의 사랑에서 미마저 구하지 못한채 이상향을 꾀하는 허탈한 파우스트,또다시 84년 한독 1백주년 기념공연에서 독일의 저명한 기싱이 연출한 세번째「파우스트」에서는 지금까지 축적된 파우스트의 진면목을 함축하여 관객은 감전된 듯 박수갈채를 멈추지 않았었다.그때 이 연극을 연출한 기싱은 『그는 인물을 스스로 움직이되 얼굴 표정이 아닌 눈빛만으로 이미 단숙을 성립하고 있다』고 했다.즉 「고정된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것을 붙들지 않으면 안된다는 긴박감에서 그는 감정을 절제하거나 적절히 노출하여 역이 가리고 있던 사상의 베일을 한장 한장 벗겨내고야만 것」이다. ­이것이 수많은 배를 띄우고 그리고 끝없이 높은 탑들을 불태운 얼굴이었던가.사랑하는 헬렌이여 단 한번의 키스로 불멸케 해다오.오! 그대는 무수한 별들의 아름다움으로 치장한 밤하늘보다 더 아름답구나­ 가슴속에 박힌 사랑을 고백하는 이 장면은 「드라마틱한 다이너미즘과 명쾌한 표현적 리듬,응축된 긴장감과 생명의 맥박이 충만」하여 이를 앞서 연출했던 이해랑씨는 『중진 장민호의 연기가 폭풍같은 성공을 거둔 근본 요인은 이러한 관념을 최후까지 지킨 지치지 않은 탐구의 결과』라고 못밖았다.이는 50년대 후반국산 영화붐으로 연극계가 부진하자 전 연극인이 분발하여 만든 「대수양」(김동인 작 박진 연출)을 보고 『그곳에 군계일학이 있었다』고 한 이진순씨의 지적과 맥을 함께하는 찬사이기도 하다.이로써 그는 「파우스트」간판 배우로서 평생동안 영광스러운 「파우스트 장」의 별명을 갖게 되었다. 배우는 무대위에서 기왕에 정해진 다양한 운명을 우리에게 보여준다.따라서 짙은 분장속에 감추어진 배우의 모습은 다시 그 자체가 그의 얼굴일수도 있다. 더구나 그의 묵직한 바리톤의 음색은 푸짐한 볼륨과 풍부한 음조의 변화,감정의 뉘앙스가 격하게 풍겨나와 어느 대목에서도 무기미를 느낄수 없는 것이 특징이다.마음속 깊이 스며드는 중후한 음의 압력은 라디오 드라마에서도 특출난 개성을 돋보여 67년부터 그가 해설자로 등장한 대하드라마 「광복20년」은 10년 장기 연속방송으로 장안의 성가를 높인바 있다. ○연출가로도 한때 활동 그는 배우일 뿐만 아니라 유치진의 「소」,체호프의 「봐냐 아저씨」를 무대에 올린 창조적 상상력이 풍부한 연출가이며연극적 감각과 지성을 겸비한 영화배우·TV탤런트이기도 하다.한때는 경화 프러덕션을 설립,그가 제작한 영화 「저 하늘에도 슬픔이」는 60년대 초반 전례없는 흥행을 기록하기도 했으나 「인생만사 만능은 없다」는 교훈과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는 진리를 절감하고 그는 고향에 돌아오듯 무대로 돌아왔다. 그후 그는 하고싶지 않은 일에 참여한 적이 없다.간혹 주변에서 자서전을 내라거나 대학에서 강의를 부탁해 오거나 방송 대담프로그램등에서 초청하면 일언에 외면한다.「배우는 무대에서 말할 뿐」,연기와 무관한 일은 그에게 모든 것이 무의미하기 때문이다.가족은 산행 동반자인 부인 이영애(63)씨와 출가한 남매가 있다. 지금도 젊은 후배 연극인들 사이에서 대사를 가장 잘 빨리 외우고 「내가 만약 저 역할을 맡으면 어떻게 소화할 것인가」를 간파하여 선명하고 강렬한 생명체를 그때마다 새롭게 탄생시킨다.또 주역에서 차츰 비켜나고 있지만 역이 크든 작든 「연기자는 계급이 없는 무관의 제왕」이라는 자부심과 열의로 자신의 위상과 예성을 의식하는 도도함으로 일관하고 있다. 다양한 인생편력을 체험하면서 자기의 가능성을 무한히 확대하려는 생의 충동은 그가 맡았던 파우스트의 일면이며 결국 「연극은 눈과 귀를 통해서 영혼까지 도달해야 된다」는 연극예술과 미와 환희를 이 세상에 가져다준,우리 연극사상 그는 투철한 한 존재에 틀림없다. 그리고 더이상 열띤 대사를 읊조리지 않아도 「오델로」의 이야고나 브루터스의 배반의 이미지를 물흐르듯 되살리는 경지에서 오늘도 그는 그만의 적광의 광채를 어두운 객석에 뿌리고 있다. 기 자 입 력 □연보 ▲1927년 황해도 신천 출생 ▲45년 월남,조선배우학교 졸업 ▲46년 서울중앙방송국 제1기 성우 ▲47년 원예술좌 입단,성극「모세」의 타이틀 롤로 데뷔 ▲50년 국립극장산하「신협」입단,유치진 작 연출「원술랑」 조우 작「뇌우」출연 ▲53년 국립극단 입단,오상원 작 「녹슬은 파편」이후 해마다 출연 ▲62년 드라마센터 개관 기념 셰익스피어 작 「햄릿」출연 ▲66년 괴테 원작 서항석 역 이해랑 연출 「파우스트」초연서주역,일본 일생극장 개관기념공연 참가 ▲67∼71년 국립극단 단장 ▲68∼89년 한국 연극협회 이사 ▲78년 세종문화회관 개관 기념 김의경 작 이진순 연출「북벌」 ▲79∼90년 국립극단 단장 ▲88년 조우 작 이해랑 연출「뇌우」 38년만의 재공연 주역 ▲현재∼예술원 회원,국립극단 원로배우,연극협회 자문위원 제1회 방송문화상(58년) 서울시문화상(63년) 한국연극영화예술상(68·73·78년) 연극평론가 협회상(79년) 대한민국예술상(81년) 목련장(82년) 대한민국 예술원상(88년) 예총예술문화상(89년) 연극­유치진 작 「자명고」(54년)를 비롯,「박쥐」「오델로」「느릅나무 그늘의 욕망」「딸들 자유연애를 구가하다」「인생차압」「시라노드 벨주락」「붉은 장갑」「세자매」「안네프랑크의 일기」「나의 고백은 끝나지 않았다」「뜨거운 양철지붕의 고양이」「빌헤름 텔」「죄와 벌」「결혼중매」「베니스의 상인」「이순신」(신명순 작 66년)「갈매기」「북간도」「수전노」「인종자의 손」「남한산성」「전쟁과 평화」「성웅 이순신」(이재현 작 73년)「세종대왕」「허생전」등 1백70여편과 영화 TV드라마 다수 출연.8월2일부터 「눈꽃」(11일까지 우봉규 작 김석만 연출 국립극장 대극장공연 예정).
  • 미·중/「해리 우」 파동 적대로 갈까

    ◎워싱턴의 대응/“미 여권 소지자 체포는 잘못” 엄중 항의/“계속 강경자세 고집땐 관계악화” 경고 미국은 중국이 미국국적의 해리 우씨를 사형까지 처할 수 있는 간첩죄로 기소하자 여러모로 분노가 앞서는 분위기다.우씨 사건의 진전에 화를 내는데 그치지 않고 중국이 최근 미국의 정책기조와 방향을 잘못 읽어 터무니없는 강경자세를 취하는 등 양국관계를 먼저 꼬이게 하고있다는 대국적 분석에서까지 중국을 탓하는게 조야의 주류를 이룬다. 오해를 살 소지가 있는 언행을 미국이 다소 했을수도 있겠지만 결코 「중국의 국익」과 관련해 미국의 본심은 중국으로부터 이번과 같은 적대적이거나 보복적인 대응을 받을 만큼 나쁘거나 악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이등휘 대만총통의 미국방문 허용건을 포함,최근 2∼3년사이의 미중관계 현안들에 대해 중국정부는 「내정간섭적」,「대중국정책의 기반파괴」 등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미국정부는 이 주장이 미국정책의 근본적인 의도를 부정적으로 읽은데서 나온 과잉반응이라고 보고 있다.이같은 행정부와 전문가들의 분석에 의회는 거의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윈스턴 로드 국무부 동아태차관보는 조우 웬종 대리대사를 불러 해리 우씨가 미국여권을 소지하고,적법하게 중국에 들어갔으며 위법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는데도 그를 체포한 뒤 소재도 알려주지 않고 미국영사와의 면담도 거절한 것은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잘못』이라고 엄중 항의한 뒤 그와 똑같은 톤으로 『중국정부는 미국정책에 대한 오해를 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미국정부는 우씨 사건등으로 중국과 사이가 틀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으며 아시아에서 떠오르는 경제적·정치적 거인에 대해 악감을 가진 것이 없다고 말하면서 『미국의 대중국정책 기조는 「참여적 관심」(engagement)이지 중국정부가 의심하듯 「적극적 견제」(containment·봉쇄)가 아니다』라고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견제가 아니라 관심이기 때문에 ▲이등휘 총통 방문허용 ▲중국과 사이가 좋지 않은 베트남과 수교추진 ▲이란·파키스탄에 대한 중국의 핵무기판매 저지 ▲세계무역기구 가입반대 ▲중국과핵경쟁국이 될 수 있는 인도와 미국간의 안보협력추진 ▲스프래틀리군도 분쟁으로 남중국해항해가 방해받아선 안된다는 미국의 선언 ▲홍콩접수 약속에 대한 관심표명 ▲중국인권상황 체크 ▲지재권보호압력 등이 내정간섭적이거나 기반파괴라는 주장은 틀린 말이란 것이다. 어쨌든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는 미·중관계는 곳곳에 지뢰가 깔려있는 형국이며 무엇인가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기 전에는 봉합에 이르기까지 적지않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북경의 입장/미의 대대만 정책에 강력한 불만 표출/“국가기밀 누설… 비공개재판 방침” 고수 중국정부가 미국 국적의 인권운동가 해리 우(중국명 오홍달)를 구속한 것은 미국에 대한 경고성 조치로 해석된다.미국의 대대만 정책에 대한 강력한 대처의지를 표현한 보복성 조치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로써 중국은 지호전 국방부장의 방미취소등 고위인사교류 중단,이조성 미국주재 중국대사소환이라는 1·2단계 보복조치에 이어 미국적의 인권운동가에 대한 인신구속조치까지내려 보복의 강도를 높여나가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해리 우씨에 대한 재판권행사 절차와 범죄행위 입증,판결내용 등과 관련,두나라는 서로 상반된 입장을 보이고 있어 갈등 수위는 한동안 높아갈 것으로 보인다.중국측은 국가기밀과 관련,비공개재판을 주장하고 있고 미국인인 우씨의 접견거부등 인권문제를 둘러싼 마찰도 빚어왔다. 중국은 관영 신화통신을 통해 지난8일 우씨가 중국경내에 불법잠입하는등 지난 91년이래 국가비밀 유출등 형사범죄활동으로 무한시 공안기관에 구속됐으며 법에 따라 처벌받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비밀문서사취,정보수집 등으로 최소 5년의 형을 선고받을 것이라는 중국측의 전망도 흘리고 있다. 중국정부는 미국의 대만정책에 대한 보복이 아님을 밝히고 있지만 죄목이나 인권운동가란점등에서 우씨의 구속은 미국에 대한 분명한 메시지로 해석된다.중국은 이등휘 대만총통의 미국방문 허용과 관련,「중·미관계의 기본을 흔드는 중대한 협정위반」이라며 「이로인한 악영향을 해소할 수 있는 미국측의 구체적인 조치」를 요구해 왔었다. 외교적으로 대만을 세계무대에서 고립시켜 존립공간을 줄여나가려는 중국정책에 이등휘 방문허용같은 미국의 부정적인 역할을 포기하고 대만의 세계무대 복귀외교에 타격을 줄만한 구체적인 행동을 취하라는게 중국 요구다. 중국외교부의 부부장급 고위인사는 「사태발전에 따라 강력한 대응도 취할 수 있다」며 중국의 강력한 의사를 미국에 전달했다고 밝혔다.그는 중·미관계는 앞으로도 계속 갈등관계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밝히면서도 갈등을 최소화하고 협력을 최대화하는 것이 중국의 입장이라고 밝혔다.경제적으로 중국도 미국을 필요로 하고 있어 극단적인 조치는 피하려 하지만 이 문제에 관한한 중국도 양보할 수 없다는 점에서 두나라는 정면충돌은 피하면서도 갈등의 정도를 쉽게 완화시키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또 두나라는 양쪽이 다 전권대사를 공석으로둔채 한동안 파행관계를 유지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해리 우」는 누구/중 교도소 인권탄압 폭로한 인권운동가 중국 공안당국에 체포돼 미·중국간관계악화의 또 다른 불씨가 되고 있는 해리 우(58·중국명 오홍달)는 중국의 교도소내 인권탄압실태를 고발하는데 앞장서온 중국계 미국인 인권운동가. 5번째 중국 방문을 위해 지난달 19일 카자흐쪽 국경초소를 넘다가 체포된 뒤 8일 간첩 혐의로 기소됐다. 37년 상해 출생.구소련의 헝가리 침공을 비난하는 등 반체제활동으로 인해 57년부터 19년동안 12개 수용소에서 강제노동을 했다. 지난 91년 부인과 함께 중국에 들어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인권사각지대인 교도소내의 장기매매와 강제노역 등 실상을 비밀카메라로 생생하게 찍어 미국 CBS방송의 「60분」 프로와 뉴스위크에 고발,전세계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미국 세관당국이 디젤엔진 양가죽 등 중국산수입품에 대해 재소자들의 강제노역에 의한 것이라는 이유로 압수할 때도 거의 전적으로 그의 정보에 의존할 정도다. 지난 85년 지질학 교수로서 처음 미국을 방문한 뒤 캘리포니아주 밀피터스에 정착,미국시민권을 갖고 중국교도소내 강제노동 연구재단을 설립,운영하고 있다.중국 인권문제와 관련,미의회·유엔인권위원회·유럽의회 등에서 수없이 많은 증언을 했다.
  • 제2부 시베리아 횡단철도/“출발” 모스크바(시베리아 대탐방:16)

    ◎총길이 9,288㎞… 러시아의 대동맥/시경계 벗어나면 별장 「다차촌」이 눈앞에/출발 1시간만에 차창밖은 침엽수림으로/철길따라 늘어선 「베료자」 숲은 “러시아인의 정서” 서울신문 창간50주년기념 특별기획연재물 「시베리아 대탐방」은 지난 주 15회로 1부를 끝내고 이번 주 16회부터 제2부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시작한다. 본사 이기동 모스크바특파원과 사진부 송기석 특파원이 20여일동안 이 열차를 탑승,철도주변의 모습과 자원,자연환경 등을 컬러사진과 함께 재미있고 생생하게 전할 예정이다. 시베리아 대탐방 제2부는 주2회 수요일과 목요일에 연재한다. 하오 2시 정각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하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기점인 모스크바의 야로슬라블역을 출발했다.출발한지 불과 35분만에 북부시경계를 벗어나 모스크바주(오블라스치)로 들어서자 곧바로 확트인 대지가 차창밖으로 모습을 드러낸다.그리고 대지와 숲 사이로 러시아인들이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재산목록 1호 「다차」촌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다차는 굳이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별장」이지만 호사스런 별장이 아니라 그곳에서 남새도 키우고 신선한 공기속에 이웃들과 보드카도 실컷 마시는 주말농장같은 곳이다. 다차의 어원은 러시아어 「다바치(받다)」에서 유래된 것.제정 러시아시절 황제 차르가 총애하는 귀족들에게 땅떼기를 선사한데서 나온 말이지만 소비에트시절 일반노동자들에게 골고루 보급돼 지금은 모스크바시민 70∼80%가 다차의 주인이다.5월부터 겨울이 시작되는 9월까지 매주 금요일 하오만 되면 다차로 향하는 시민들로 모스크바시의 외곽도로는 지독한 교통체증을 빚을 정도다.물론 주말이면 모스크바 시내는 완전히 빈도시가 되다시피 한다. 다차 마당에 나와 감자를 심는 사람들의 모습이 간간이 보인다.러시아인들은 봄 5월15일을 기준으로 감자씨를 뿌리기 시작한다.특별한 이름이 붙은 절기는 아니지만 이날이 지나면 혹독한 추위는 더 이상 오지 않는다는 속설 때문이다. 다차촌이 시작되며 러시아인들의 정서적인 심벌,「베료자」나무들이 나타난다.목재로 쓸 수 있는 나무는 아니지만 시베리아끝까지 줄곧 길동무가 될 나무들이다.우리의 백양목과 비슷한데 우랄에서 동시베리아까지 광범위하게 분포돼 있고 겨울이 물러가면서 연푸른 잎을 달기 시작하기 때문에 우리의 시베리아 횡단길에 계절의 경계를 알려주는 「잎의 화신」역할을 하게된다.우리에게는 베료스카로 더 잘 알려져 있지만 이는 베료자에 예쁘고 귀여움을 나타내는 접미사 「카」가 덧붙은 말이다. 다차촌은 모스크바 시경계를 중심으로 반경 2백50㎞까지 계속된다.그리고는 황량한 대지와 베료자숲이 계속되다가 다음 도시의 다차촌이 또 나타난다.대도시 주위에는 반드시 다차촌이 형성돼있다. 출발 한시간이 지나자 푸슈킨의 이름을 딴 푸슈키노역이 지나고 역한편에 증기기관차 시절의 유물인 사일로같이 생긴 물탱크가 지나간다.높이 20여m에 붉은벽돌과 나무로 만들어 지나는 증기기관차에 물을 공급하던 시설이다. 시베리아철도는 현재 공사가 진행중인 하바로프스크∼블라디보스토크간을 제외 하고는 전구간이 전철화됐다.따라서 물태크는 이제 역할이 없어진 철도의 장식품에불과하다. 우리가 탄 차는 종착역이 블라디보스토크인 「러시아2호」특급열차.방 하나에 침대 2개가 마련돼 있어 객차 한칸에 승객수는 20명안팎에 불과한 최고급 이다.격일로 홀수날만 모스크바를 출발하는데 종착역까지 계속 갈 경우 6박7일이 걸리기 때문에 좋은 이웃을 만나는게 보통 복이 아니다. 모스크바에서 야로슬라블까지를 시베리아철도의 제1구간으로 부르는데 이는 건설기간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이 구간은 두단계로 나누어지는데 첫째 구간은 모스크바에서 세르기예프 파사드까지로 1862년에 건설됐다.모스크바에서 시베리아로 뻗는 최초의 철도인 것이다.이 선은 1870년에 2단계로 야로슬라블까지 연장됐다.세르기예프 파사드는 당시 러시아제국의 종교적인 수도였다.지난 91년 이름이 바뀌기 전까지 볼셰비키의 이름을 딴 자고르스크로 불렸으며 모스크바에 들르는 한국인 관광객들이 반드시 들르는 명승지다.그 다음 야로슬라블은 종교적인 의미 외에도 모스크바에 있는 공장들을 볼가강으로 연결시키기 위한 산업적인 고려 때문에 건설됐다.이구간이 개통됨으로써 모스크바에서 생산된 각종 공산품들은 당시 가장 가까운 볼가강 항구인 이 야로슬라블을 통해 카스트로마·니즈니노보고르드·체복사리·카잔등 볼가강변의 크고 작은 도시들로 공급될 수 있었다. 그래서 한동안 시베리아행 열차의 종착역은 야로슬라블이었는데 이 때문에 모스크바의 시베리아철도 출발역 이름은 야로슬라블역이다.모스크바의 역 이름은 모두 행선지 이름을 따서 만든게 재미있다.예를들어 레닌그라드로 향하는 열차가 출발하는 역은 레닌그라드역이다.키예프로 가는 열차는 키예프역,백러시아로 가는 열차는 백러시아역…하는 식이다. 출발 1시간이 지나면서 차창의 풍경이 달라지기 시작한다.침엽수림이 나타나기 시작하며 침엽수·활엽수의 혼재상태가 이어진다.벌써 타이가(삼림지대)의 분위기가 나타나는 것이다.모스크바에서 멀어질수록,그리고 타이가에 가까워질 수록 침엽수의 몫이 더 많아진다. 계속되던 다차촌은 세르기예프 파사드를 기점으로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20년대 최대 출판단지(콤비나트)였던 프라우다신문이 종업원들을 위해 만든 다차촌 「프라브딘스키」역을 지나면서 다시 막막한 베료자숲이 대지를 수놓기 시작했다. ◎횡단철도란/수도 모스크바서 극동 블라디보스토크 연결/1891년 첫삽,25년만에 완공… 6박7일 걸려 시베리아 횡단철도는 모스크바에서 시작해 시베리아대지를 가로질러 극동의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총길이 9천2백88㎞에 달하는 세계 최장의 철로이다.특급열차로 달릴 경우 꼬박 6박7일이 걸리는 거리다.지구둘레의 3분의 1에 가까운 거리며 시간이 바뀌는 시간대만도 7개나 지난다.일명 「대시베리아철도」로도 불리는 이 철도는 제정러시아 때인 1891년5월19일 착공돼 25년만인 1916년 쿠즈네츠∼하바로프스크 구간을 끝으로 완공됐다.물론 많은 구간은 기존 노선을 보완해 연결했다.이 철도의 등장과 함께 지구의 최대 자원보고인 시베리아도 본격개발의 계기를 맞았다.인구유입이 촉진돼 철로변을 중심으로 잇따라 대도시가 등장했고 대학·도서관·극장등이 들어서 문화적 대변혁을 가져왔다. 특히 2차세계대전중 모스크바·레닌그라드등 유럽쪽에 있던 많은 공장·문화기관들이 이 철도를 따라 대거 시베리아로 옮겨져 이 지역의 현대화에 큰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지금은 최대 공업지대인 우랄지구·쿠즈네츠탄전·북부의 석유·가스산지를 유럽쪽으로 연결해 주는 러시아의 산업 대동맥 구실을 하고있다. 2차대전 종전 직후부터 전노선의 전철화가 시작돼 75년 거의 마무리됐으며 현재 공사가 진행중인 하바로프스크∼블라디보스토크구간을 제외한 전구간이 전철화됐다.현재 대시베리아철도는 연방철도부 산하에 반독립기구로 우랄철도부·옴스크철도부·사할린철도부 등 약 20개의 지방 철도부가 나누어 운영하고 있다.앞으로 전구간 복선화·전철화,그리고 바이칼∼아무르구간(BAM철도)완공과 함께 만성 적자를 탈피하기 위한 서비스 개선,경영합리화 등이 과제로 남아 있다. 현재 유럽으로 가는 우리나라 화물의 일부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 철도를 이용해 육로로 값싸고 빠르게 운송되고 있다.앞으로 남북관계가 원만히 풀리면 직접 육로로 유럽까지 연결해줄 철도가 바로 시베리아 철도라 이 철도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 더 하다.
  • 북한주민/중국교포/가짜친척 크게 늘어

    ◎교포,북에 친척있어야 「통행증」 받고/주민들은 중국산 생필품 싸게 구입 북한주민들이 중국교포와 「가짜친척」관계를 맺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중국연변 조선족 교포상인들에 의하면 최근 북중국경을 넘나드는 보따리 장사꾼들의 절반정도가 북한주민들과 가짜친척 관계를 형성,상호도움을 주고 받고 있다.북한주민들과 중국교포 보따리 장사꾼들이 서로 가짜친척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첫째는 중국 연변에 거주하는 교포들이 보따리 장사차 북한을 방문하려 하면 반드시 북한에 거주하는 친척이 있어야만 중국당국으로 부터 「통행증」을 발급 받을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북한주민들은 중국 교포상인들이 방북시 자신들이 먹을 것보다 더 많은 양의 식량을 가져와 장사를 끝내고 돌아갈 때 남는 식량을 주고 가는데다 이들이 가지고 들어온 각종 생활필수품을 보다 값싸게 얻을수 있어 가짜친척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특히 중국교포들과 가짜친척관계를 맺어 놓을 경우 외화벌이 사업차 중국으로 밀입국 할 경우 어느정도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북한주민들이 중국 교포상인들과 가짜친척 관계를 맺고 있는 주요이유 중의 하나이다. 이처럼 일부 주민들이 중국 교포들과 짜고서 허위로 친척관계를 맺고서 방북시 각종 편의를 제공하고 또 탈북 수단으로 이용함에 따라 북한은 이를 근절시키기 위해 적발된 자에대해 「입당」제한 및 강제노역 처분 등을 부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진정한 일꾼들/김영화 한림대교수·영어학(굄돌)

    친지중에는 매주 목요일 재활학교에 가서 지체부자유아를 돕고 있는 가정주부가 있다.그날은 운동화에 편안한 복장으로 가서 맡은 아이들을 푸근히 안아주고 온다고 한다.그렇게 좋은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주위사람에게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좀처럼 얘기하려 들지 않아 가까운 사람들조차 그런 사실을 몇년이 지난 후에야 알게 되었다. 컴퓨터 바이러스백신을 연구해서 무료로 보급하는 한 컴퓨터 애호가는 자신이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문화유산을 즐기며 살 듯 그러한 문화유산의 한 일부분을 자신도 제공하고 있다는 데 기쁨을 느끼며 그런 만족감만으로도 충분한 보상을 받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하고 있다. 사랑의 모금함이라는 방송프로에서는 인기연예인들이 생산작업현장에서 노역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그날의 임금을 모금함에 넣는다.단 하루의 노동이지만 열심히 땀흘리며 일하는 모습과 힘들여 일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감사와 감탄과 존경의 마음표시까지 모두 감동스러운 장면을 볼 수 있다.일상적으로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생산의 현장을보면서 그처럼 고된 작업을 맡아주는 사람이 있기에 우리 경제가 그런대로 현상을 유지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제임스 조이스의 「하숙집」이란 단편에 보면 하숙생 중에서 점찍어놓은 사윗감이 마음에 드는 이유 중의 하나로 그가 다른 사람과는 달리 소란스럽지도 목소리가 크지도 않은 신중한 친구라는 점을 들고 있다.
  • 영생교 「신도 살해」 재수사/검찰,관련자 3명 조사

    ◎“사체 용인에 암매장” 진술 받아/실종자 17명도 본격조사 방침 서울지검 강력부는 6일 지난해 「시한부 종말론」과 헌금강요·강제노역 등으로 물의를 빚은 영생교(교주 조희성·63)측이 개종한 신도를 보복살해한 뒤 암매장했다는 혐의를 잡고 본격수사에 나섰다. 검찰은 이날 영생교 신도였던 한승태(46)·정광조(32)·박삼룡(42)씨 등 3명을 연행,조사한 결과 『84년 신도 소문종씨(당시 23세)가 개종한 데 대해 보복하기 위해 영생교측이 소씨를 납치,살해한 뒤 경기 용인군 기흥읍 고매리 쓰레기매립장에 암매장했다』는 진술을 받아내고 소씨의 사체발굴작업에 나섰다. 검찰은 영생교에서 개종했다가 실종된 사람들의 가족으로부터 이같은 제보를 받고 박씨 등을 연행조사했다. 검찰은 또 그동안 「영생교실종자대책위원회」측이 주장해온 영생교측에 의한 신도살해혐의가 구체적으로 드러남에 따라 영생교 실종자 17명에 대한 수사를 본격화하기로 했다. 영생교 교주 조씨의 운전사였던 한씨와 정씨 등은 검찰에서 『84년10월 다른 종교로 바꾼 신도소씨를 대전에서 신도 3∼4명과 함께 승용차로 납치,경기 부천에 있는 영생교본부 밀실까지 끌고가자 다른 신도들이 소씨를 마구 때려 숨지게 하고 암매장했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이에 따라 한씨등을 살인혐의로 긴급구속하고 살해 및 암매장경위에 대해 집중추궁하고 있다. 검찰은 그러나 한씨와 정씨가 『소씨의 납치와 암매장에는 가담했으나 살해에는 참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또 이들이 교주 조씨로부터 납치살해를 지시받은 데 이어 살해 뒤에는 신원확인이 어렵도록 화학약품을 이용한 사체처리방법,암매장처리 등까지 직접 들었다고 「실종자대책위원회」가 주장함에 따라 조씨의 배후조종부분에 대해서도 조사하고 있다. 검찰은 이와 함께 영생교가 맹신자 40명으로 구성된 「배교자처단팀」을 운영하며 영생교를 탈퇴한 신자들을 보복해왔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이 조직의 책임자였던 나모씨(53)의 신병확보에도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한편 영생교 교주 조씨는 신도들에게 헌금을 강요하고 폭력을 행사한 혐의로 구속기소돼지난해 12월 항소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 구동독 미술작품 42점 일반공개

    ◎베를린 역사박물관서 4월14일까지 전시회/공산주의 정부가 주문… 화가들 강제 노역/작품엔 예술성 지키려는 고민흔적 역력 공산 동독 시절 당의 주문에 따라 그려진 회화작품 42점이 베를린의 역사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다.이 전시회는 동독의 42년 공산통치 시절을 대표하는 작품들을 엄선,시대에 따른 미술세계의 특징이나 표현기법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제공한 것으로 평가된다. 노동운동과 계급투쟁을 고증하기 위한 자료로 만들어진 이 작품들은 예술도 사회통치를 위한 하나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공산사회의 속성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그러나 공산당의 요구대로 그림을 그려 계급이 없다는 공산사회에서 때로는 영웅이나 귀족과 같은 대우를 받으며 호의호식했던 동독 미술인들이 예술가로서의 고집을 바탕으로 예술적 세계를 지켜내려 애쓴 흔적도 담고 있어 그들이 겪어야 했던 방황과 고민·혼돈의 한 단면을 드러내기도 한다. 동독이 공산국가의 합당성을 나타내는 그림들을 요구하기 시작한 것은195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당으로부터 공산운동의 당위성을 입증하는 전시회 개최를 명령받은 당시의 베를린 역사박물관장은 실제로 그같은 작품들이 한 점도 없는데 고민하다 화가와 조각가들에게 이같은 주제로 작품을 만들 것을 주문했다.1백20여명의 작가들이 역사박물관으로 소환돼 공산통치를 합법화시키기 위한 작업에 투입됐다.빌리 콜베르크,막스 링그너,빌리 지테 등이 이때의 대표적 작가들이다. 이 가운데 함부르크에서의 시민봉기 사건을 계급투쟁으로 묘사한 콜베르크의 「함부르크 봉기에서의 탤만」(1954년작)은 사회주의적 새 역사의 방향을 제시한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았다.그러나 이 작품은 마치 탤만은 옛 황제처럼 그와 얘기를 나누는 시민들은 황제의 수행원들 같은 느낌을 주고 있어 「국민들의 삶에 밀접하게 연관된 예술」을 기치로 내건 공산당의 의도와는 동떨어진 인상을 풍긴다. 60년대 들어 공산당국은 작가들을 산업현장 일선으로 투입하기 시작했다.「어머니의 귀향」 「국기에 대한 맹세」 등 이 시대의 작품들은 현실성을 띠기 시작했으나 예술적·미적으로는 동독 42년간 가장 낮은 점수를 받을 수 밖에 없을 것으로 평가된다. 이같은 사회주의적 현실주의는 76년 지크하르트 길레의 「휴식과 구조물을 세우는 사람들」이 등장하면서 동독 미술세계에서 사라지게 됐다. 이번 전시회는 독일에서 동독 당시의 미술에 대한 재평가가 시작됐음을 보여준다.이밖에도 동독에서 마지막 문화장관을 지낸 헤어베르트 쉬르머는 동독미술의 완전한 이해를 위해 이미 1만2천여 작품의 목록을 만들어놓고 있다.이 전시회는 오는 4월14일까지 계속된다.
  • 무역­노동문제 연계논의 가시화/블루라운드(BR) 발진 채비

    ◎죄수 등이 만든 제품 무역 제재/선진국 중심 다자규범화 추진 블루 라운드(BR)가 새로운 다자규범화 채비를 하고 있다.BR는 노동문제를 무역과 연계하려는 다자화 논의로,선진국들이 오래 전부터 주장하던 메뉴이다. BR의 다자화 작업은 코 앞에 닥쳐있다.선진국들은 지난 해 마라케시 우루과이 라운드(UR) 각료회의에서 환경문제와 함께 노동문제를 UR 이후의 새로운 다자이슈로 공식화할 것을 주장했다. BR는 그동안 국제노동기구(ILO)를 중심으로 논의돼 왔다.ILO는 다음 달 이사회에서 무역과 노동문제를 집중 논의한다.선진국의 협의체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오는 5월 각료회의에서 「무역 고용 및 국제적으로 인정된 노동기준과의 관계」에 관한 보고서를 채택한다. BR는 국제적인 기준보다 낮은 노동조건에서 생산된 제품이나 이를 생산하는 국가에 무역제재를 가하는 다자규범이다.죄수나 어린이가 만든 제품은 일반 근로자가 생산한 제품보다 가격경쟁력이 높으므로,그만큼 무역제재를 해야 한다는 발상에서 출발한다. 선진국이 생각하는 BR는프랑스의 룽게 통상장관이 마라케시 회의에서 한 발언에 잘 나타나 있다.『죄수의 강제노역으로 생산된 제품이 정상적인 임금으로 만들어진 상품과 똑같이 취급돼서는 안 된다.중국의 경우 2천만명의 죄수가 있으며 이는 프랑스의 전체 경제활동 인구와 맞먹는 숫자이다』 노동조건을 문제 삼아 무역을 규제하는 사례가 없었던 건 아니다.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에는 죄수노동으로 생산된 제품에 대한 수입규제 조항이 있었다.그러나 다자 차원에서 문제된 적은 없다. BR는 인권보호와 정치·경제적 차원에서 제기되고 있다.아동노동과 강제노동의 관행을 규제,개도국의 근로자 권익을 보호한다는 명분이다.한편으론 개도국 상품의 국내 시장잠식을 막아 실업문제를 풀고 국내 사양산업을 보호하려는 목적도 있다. 개별국가 차원에서는 노동과 무역문제를 연계한 사례들이 많다.미국은 80년대 중반 이후 GSP(일반 특혜관세) 제도를 노동문제와 연계,운영하고 있다.93년 6월 인도네시아와 태국 등 10개국을 노동권 보호가 미흡하다는 이유로 GSP 연례재심 대상국으로 선정,이 중 모리타니의 수혜자격을 박탈했다. 중국과는 92년 죄수노동 상품의 대미수출 금지를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미 의회도 무역과 노동문제의 연계를 지지한다.지난 해 3월에는 게파트의원이 「블루·그린 301조」법안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유럽연합(EU) 각료이사회도 지난 해 신 GSP제도를 노동권 보호와 연계 운영키로 결정,올해부터 죄수노동과 강제노동국에 대해 GSP 수혜를 철회할 수 있도록 했다. 물론 아세안 등 개도국은 무역과 노동의 연계를 반대한다.개도국의 수출을 막고 자신들의 경쟁력을 높이려는 선진국의 보호무역 수단이라며 반박한다.지난 1월에 열린 제 5차 비동맹국가 및 개발도상국가 노동장관 회의도 무역­노동 연계 반대성명을 채택했다. 우리나라는 80년대 이후 근로조건이 대폭 개선돼 BR의 영향은 별로 없을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개도국에 진출한 기업들은 불리해질 수 있다.UR에 이어 환경과 인권 보호의 명분을 업은 선진국의 통상공세가 가속화 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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