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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대통령이 된다면

    내가 대통령이 된다면

    공약公約이 아니라 공약空約이라 합니다. 구체적인 정책, 실시 기한, 계량화된 목표 등은 여기엔 없습니다. 상투적인 구호나 비현실적인 정책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거리에서, 시장에서, 회사에서, 학교에서, 집에서 그리고 술자리에서 제 목소리를 내보지 못한 우리 이웃들의 갈증과 소박한 바람이 담겨 있습니다. 잘 가려듣고 누구를 찍을지 한번 생각해보시겠습니까?취재, 글 강성봉, 표세현, 박은애 기자 | 일러스트 홍원표 자연을 보호하고 경제도 살리는 비방이 있다 무엇을 하겠다는 것보다는 무엇을 하지 않을까를 먼저 고민하겠다. 다른 것은 몰라도 바다를 메워 땅을 만드는 일 따위는 하지 않겠다. 간척지로 땅을 조금 버는 것은 그보다 더 큰 해안선을 잃어버린다는 뜻이다. 자연이 만든 해안에는 땅 이상의 의미가 있다. 개펄은 생태계가 숨 쉬는 곳이고, 바다는 인간 정서를 순화시키는 관광자원이기 때문이다. 간척지에 카지노를 세워 돈 중독 환자들을 불러 모으는 것이 어떻게 건강한 지역경제에 보탬이 되나? 내가 대통령이라면 동해, 서해, 남해 인근에 버려진 한옥 마을을 보수하거나 신설해 100퍼센트 한국적인 관광자원으로 가꾸겠다. 참신한 마음을 가진 의욕적인 사람들이 그곳에 이주해 관광사업을 할 수 있도록 국가적 차원에서 재정을 지원해주겠다. 지방경제에도 도움이 되고, 청년실업과 인구분산에 상당한 기여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남해의 시골 마을은 전직 대통령만이 낙향하는 곳은 아닐 테니까. (천종태, 생물학자, 49세) 분유 값을 확 내리겠다 출산 장려를 위해 분유와 기저귀에 부과되고 있는 부가세를 감면하겠습니다. 정말 기저귀, 분유 값 비싸서 어디 아이를 키우겠어요? 제조회사는 프리미엄 운운하면서 비싼 제품만 선보입니다. 부모 입장에서 좋은 거 먹이고 싶어서, 별 효과 없다는 거 알면서도 비싼 제품을 사게 됩니다. 성분 표시를 정확히 하고 품질관리도 엄격하게 해서 가격을 내려야 육아비 부담이 줄어들 수 있습니다. (김효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차장, 38세) 나이가 뭔 죄냐 각종 시험, 자격증 나이 제한을 폐지한다. 또 방송이나 신문 기사에 나이 표기를 강력하게 금지하여 출연자나 취재원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할 것이다. 특히 전국노래자랑 같은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일본에서는 이런 경우가 없다. (유영주, 주부, X세) 북한산을 응급실로 긴급 이송하겠다 2007년 국립공원 입장료를 폐지하고 나서 도봉산 탐방객 수가 455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전년도에 비해 2.5배 이상 늘어났고 1983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후 최고의 증가율을 보였죠. 다시 말해 숲 속 등산로에 왕복 8차선 고속도로가 생기고 있다는 이야긴데, 34년 동안 도봉산 밑에서 걸인 생활을 해온 이봉철 씨가 “산을 아주 죽일 셈이냐”고 말한 것도 이해가 갑니다. 휴식년제 구간을 확대하고 등산객의 동선을 자연 친화적 등산로 쪽으로 유도해야 합니다. 제가 대통령이 된다면 북한산을 응급실로 보낼 것입니다. 한동안 편히 쉴 수 있도록~! (이진기, 거벽등반가, 38세) 우리나라에도 문화대통령 나올 때가 됐다 나는 문화대통령이 되겠다. 한 해를 시작하거나 끝맺을 때 음악회에 참석하여 문화를 향유하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많이 보여주고 싶다. 만날 싸우는 모습만 보여주면 지겹지 않겠는가. 또한 청소년 문화지원정책을 추진하겠다. 요즘 아이들이 놀 만한 공간이 너무 없다. 아이들이 공짜로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열린 공간을 각 도시마다 만들어야 한다. 더불어 디자인 작품집이나 문집 같은 문화활동 실적을 공증을 거쳐 제출하면 대학 입시에 도움이 되는 제도도 마련하겠다. (최봉희, 파주공업고등학교 교사, 44세) 고양이 밥통을 설치하라 분리수거장에 있는 음식물 수거통 옆에, 길고양이를 위한 밥통을 따로 마련하여 수거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밤새 고양이들이 쓰레기봉투를 물어뜯는 일도 사라질 것으로 봅니다. (김진학, 경비원, 62세) 풍경과 가옥만큼은 지방색이 필요하다 어느 정도 재정에 손실이 있더라도 농촌 지역의 보기 흉한 아파트들을 허물고 지역 특색에 맞는 주거단지를 개발할 것이다. 디자인의 지역적 특성화를 점진적으로 유도해서 경기도스러운 건물, 강원도스러운 건물, 충청도스러운 건물, 전라도스러운 건물, 경상도스러운 건물, 제주도스러운 건물을 지어 우리나라를 여행할 때도 다른 지역에 왔다는 느낌이 들 수 있게 만들겠다. (오영욱, 건축가, 32세) 재래시장으로 다시 오시라! 내가 여기서만 15년을 장사했는데 이렇게 힘든 적이 없어요. 이제 막바지까지 온 거 같아요. 딸 셋 키우느라고 집 융자까지 다 뺐어요. 남편은 지금 일을 못 구해서 집에 있는데 일자리 창출, 창출 그러면서 젊은 사람들 위주로 뽑을 게 아니고, 한 우물 파온 사람들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해요. 어려운 사람들을 기술적으로 양성하는 제도도 있어야 하고요. 지금 제 남편은 한 이틀 일 나가고 회사가 망해버려 월급 못 받고 쫓겨났어요. 노동청에 이야기하려 해도 시일이 너무 오래 걸립니다. 그 사람들도 돈 못 주니까 망한 거 아니겠어요. 이젠 자신감과 의욕도 상실하고 일하기가 무서운 거죠. 보수가 제대로 나와야 일할 의욕도 생기는 건데…. 내가 대통령이 되면 근방에 마을버스 돌도록 정류장도 만들고 주차할 수 있는 공간도 만들 거예요. 손님이 잘 다니도록 지붕으로 마무리하고, 시장 정리도 좀 하고요. 젊은 엄마가 유모차 끌고 나오면 편하게 장 볼 수 있게 말이죠. 친절해야 하고 물건이 좋아야 하는 건 우리 상인들의 몫이고요. (이화선, 재래시장 상인, 48세) 둘이 잘 맞으니까 같이 살아라 결혼 적령기의 젊은이들에게 아예 나라에서 짝을 정해주겠어요. (강승정, 대학원생, 26세) 먼저 노인들의 호주머니를 두둑하게 채워드리겠다 정치인들은 선거 때만 노인들의 표를 몰아가는 선심성 공략만 내세웁니다. 그리고 선거가 끝나면 형편이 어려워 제대로 말도 못 하는 노인들을 소홀히 대합니다. 아마 70퍼센트 가량의 노인들이 연금혜택을 못 받을 겁니다. 지역이나 계층 간의 소득 재분배보다 더욱 절실한 것은 세대 간의 재분배입니다. 오늘날 풍요로운 사회를 일군 이들이 바로 노인들이기 때문입니다. 주머니 털어 아이들을 교육시켰건만 지금은 젊은이들의 호주머니만 풍요롭습니다. 제가 대통령이 되면 노인 연금을 대폭 확대하겠습니다. (박재간, 저술가, 85세) 학교엔 기숙사를, 청소년에겐 자유를! 모든 고등학교에 무료 기숙사를 만들어 학생들이 자유롭게 머물도록 만들겠어요. 청소년들도 부모님 품에서 벗어나 우리들만의 세상을 누릴 권리가 있거든요. 당연히 B사감은 없어야죠! 자율 규칙으로. 귀찮게 하는 동생도, 컴퓨터 끄고 공부하라고 잔소리하는 엄마도 없는 세상에서, 친구들과 같이 생활하면서 고민도 이야기하고 스트레스도 팍팍 풀고 싶어요. 물론 같이 공부도 하면서 말이죠. (박종헌, 고등학생, 17세) 돈 안 되는 예술이라 홀대하면 쓰나 실험극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 실험극을 해서 먹고살 수 있도록 순수예술 분야에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하고 싶은 공연보다는 ‘돈이 되는’ 공연을 해야 하는 실정이다. 내가 대통령이 된다면 예술성을 추구하는 소수를 위한 정책을 마련하겠다. (변희철, 연극배우, 30세) 서울에서 부산까지 ‘한반도 대경사 사업’ 실시하겠다 내가 대통령이 되면 ‘한반도 대경사大傾斜 사업’을 시행할 것이다. 서울과 부산에 각각 높이 1킬로미터 정도의 탑을 쌓은 뒤 경사면으로 이을 것이다. 그 경사면으로 컨테이너를 밀어 떨어뜨려 물류를 수송하면 물류비가 엄청나게 줄어들 것이다. 문제는 나중에 어떻게 컨테이너를 멈추는가인데 이것도 다 방법이 있다. 운동에너지는 마찰면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감소한다는 법칙이 있기 때문이다. 즉 다시 말해 그냥 놔두면 된다는 것이다. 한반도 대운하 사업보다 이게 더 현실적이고 실현가능성이 높다. 현해탄이나 서해 너머로도 설치해서 일본과 중국 간의 물류 소통도 원활하게 하자. 아, 그리고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노동수용소를 만드는 것은 어떨까? 노동수용소라는 말이 좀 험하긴 한데, 별다른 곳은 아니고 일하고 싶은 사람들만 들어가서 일하는 곳이다. 허드렛일이라도. 또 학교에서 아이들 공부 안 한다고 때려잡는 것보다 진로 교육을 많이 시키는 것이 좋은 것 같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중점적으로 시키자. (김종대, 취업준비생, 30세) 누구나 평온하게 잠들 수 있는 나라가 좋은 나라다 나는 우리나라가 누구나 최소한의 잠자리를 가질 수 있는 나라가 되기를 바란다. 빈집이나 오래된 연립주택을 싸게 사서 장기간 노숙자에게 저가로 제공하는 공공임대주택 정책을 실시하거나, 정부에서 직접 개방형 노숙자 쉼터를 마련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쉼터는 빡빡하고 권위적이다. 공공성이 담보된 쉼터를 운영하면 노숙자들이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노숙자들이 집이 없는 게 문제가 아니다. 알코올 중독이나 도박 등 사회적 질병을 무상 치료하는 국가적인 시스템 마련이 더욱 중요하다. 한 가지 더 얘기하고 싶은 게 있다. 초·중·고등학교 독서 교육을 강화했으면 한다. 고전은 기본으로 읽고, 자기 분야별 관심사에 따라 별도로 읽는 것이다. 그리고 독서 능력을 테스트하는 프랑스의 바칼로레아와 같은 논술시험이나 에세이로 대학 입시를 대체하는 것은 어떨까. 아이들의 기본적인 인문 교육이 잘됐으면 좋겠다. (최준영, 성프란시스코대학 교수, 41세) 난 대통령 절대 안 해 영부인 시켜주면 모를까. (김현진, 대학 강사, 32세) 이런 공약도 있습니다 햇빛이 잘 들어오는 곳에만 집을 짓는 법을 시행하겠습니다. _최병준 핀란드 노키아 부사장이 오토바이를 몰다가 과속으로 걸려서 낸 벌금이 3억! 벌금에도 누진세를 적용한다. _한민영 승용차 위주가 아니라 화물 위주의 고속도로를 만들겠다. _이무림 철도역이나 버스 터미널에 관광안내소를 대폭 늘리고 거리엔 휴지통을 더 많이 마련하겠다! 5미터 당 한 개씩 배치할 거야. _임재영 전용면적 얼마 이상의 건물에 탁아소 설치를 의무화하여 엄마랑 아기랑 함께 출퇴근하는 명랑사회 이룩한다. _임수정 2~3년 근속자에게 반년 무급 휴가 제공, 단 세계일주 프리티켓 지급하여 근무의지 고취! _이재호 국민건강진흥을 위한 다이어트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은 어떨까? _강혜림(가명) 세금 내는 만큼 투표수 차등 배분, 방송국 드라마 편성 상한제 실시, 유명무실해진 공공질서 법률 강화하고 고속도로에서 고장 난 차량 주인에게 과태료를 물린다. 너무 파격적인가? _신원 밝힐 수 없음 * 취재와 사진 촬영에 협조해주신 시민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 [열린세상] 가진 자에 대한 평가/방은령 한서대 아동청소년복지학과 교수

    [열린세상] 가진 자에 대한 평가/방은령 한서대 아동청소년복지학과 교수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는 ‘가진 자’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부(富)를 축적한 사람, 공부 잘하는 사람, 높은 지위에 오른 사람은 요즘 부러움이나 칭찬보다 비난의 대상이 되기 쉽다. 그러다 보니 그것을 추구하는 사람조차 비난을 받는 경우가 있다. 더욱이 가진 자들의 성과는 사회의 몫이니 사회를 위해 다 내놓으라고 윽박지르기까지 한다. 사회적으로 소통이 안 되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물론 가진 자의 사회를 위한 도덕적 의무는 중요하다. 그러나 이것은 가진 것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이루어질 때 의미가 있다. 결실을 맺기까지의 과정이 성실하고 도덕적이라면, 부자가 되거나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오르거나 명문대를 다니는 것은 다 명예롭고 존경받을 일이다. 가난한 사람보다 부자가, 못 배운 사람보다 배운 사람이, 노숙자보다 직업을 갖고 일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 때 사회가 안정되고 발전함은 물론이다. 당연히 국가는 이것이 가능하도록 제도와 정책을 마련해야 하고 사람들이 꿈을 갖고 노력하도록 장려해야 한다. 간혹 성취과정이 부도덕하여 사회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한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다른 사람보다 더 열심히 노력해서 성취한 사람들이다.‘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이들을 비난하는 것은 온당치 않을뿐더러 사회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다. 공직자 재산등록 제도가 시작되던 초기에 재산이 마이너스로 등록된 어느 초선 국회의원에 관한 기사가 기억난다. 기사는 그가 그동안 변변한 집 한칸 마련하지 못하고, 돈이 없어 자녀를 제대로 공부시키지 못했으며, 생계를 이어가는 데 아직껏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당시 대중매체들은 그가 마치 영웅이라도 된 듯 떠들어댔고, 그 또한 자신의 가난함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부자가 된 과정이 부자에 대한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되듯이, 가난한 사람도 가난하게 된 과정에 따라 평가가 달라져야 한다고 본다. 가수 김장훈같이 열심히 노력하여 번 돈을 모두 사회에 기부하거나, 적은 수입을 쪼개서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느라 모은 재산이 하나도 없다면 이 가난은 매우 훌륭하고 가치로운 것이다. 또한 경제공황과 같은 상황에서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돈을 벌 수 없었다면, 가난에 대한 책임을 개인에게 물을 수는 없다. 보호자가 없는 노약자, 장애로 인해 일하기가 어려운 사람, 소년·소녀가장과 같은 경우 이들의 가난도 사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도와줘야 할 문제이다. 그러나 건강한 성인이 성실하게 일하기를 거부하면서 가난하게 지내는 사례는 좀 다르다. 요행을 바라거나, 사지가 멀쩡한데도 남의 도움만 받으려는 사람에게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사회가 무조건 도와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평소 내 생각이다. 더욱이 평생을 정치판에 뛰어들어 가정과 가족을 나 몰라라 한 경우는, 가장으로서 무책임한 것이지 가난을 자랑스러워하거나 사회가 칭찬할 일은 결코 아닌 것이다. 모든 일엔 과정과 결과가 있으며, 살아가면서 이것이 맥락적으로 일치하는 것은 인간에게 매우 중요한 경험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행한 과정과 결과에 대해 정당한 평가가 내려질 때 보람을 느끼게 되고 더욱 도덕적인 사람으로 성장하게 된다. 노력한 것보다 과분한 보상이 주어지는 것도 문제요, 노력한 것에 비해 보상이 너무 적은 것도 문제다. 부도덕하게 부자가 되고, 명문대를 나오고, 높은 지위를 얻게 되었다면, 당연히 그를 비난하고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이 진실되고 성실했다면, 그러한 성과를 이룬 것은 대단히 자랑스럽고 명예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의 명예를 존중하고 장려해 주는 성숙한 사회가 될 때 그들도 자신의 에너지를 사회를 위해 기꺼이 환원할 열정을 갖게 될 것이다. 방은령 한서대 아동청소년복지학과 교수
  • “부처 사무실배치부터 바꿔라”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장관 후보자들 앞에서 ‘발상의 전환’을 역설했다.19일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열린 ‘새 정부 내각 및 대통령실 워크숍’에서다. 사흘 전 청와대 수석 내정자들에게 “끊임없이 변화하라.”고 채찍질한 데 이어 거듭 ‘변화’를 주문하고 나선 것이다. 이날은 특히 사무실 자리 배치와 같은 시각적 변화를 ‘공직사회 변화’의 실례로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이 당선인은 “대통령이 공직사회를 변화시키자고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장관들이 자기 부처의 문화를 바꿔야 된다.”며 “사무실 배치와 같은 사소한 것부터 글로벌한 기준으로 바꿔보라. 너무 전통적 공직사회 기준으로 배치돼 있어 매우 비효율적이다.”고 했다. 그러면서 “통폐합 부처 중 제일 큰 지식경제부와 국토해양부 같은 곳일수록 많은 게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며 “우리부터 변화하면 산하기관은 자동적으로 그렇게 될 것”이라고 솔선수범을 강조했다. 그는 “지금 어떤 지방에 가보면 기초단체 청사가 서울시 청사보다 호화스러운 데가 많은데, 매우 비효율적으로 공간을 쓴다.”면서 “정부조직법이 바뀌어 작은 정부가 되면 뒤이어 16개 시·도의 조직 변화가 와야 하며, 이것은 자연히 기초단체까지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했다. 이 당선인은 “청계천 복원 당시 한 프랑스 사회학자가 제게 ‘복원되면 환경적·경제적 효과보다 큰 변화는 서울시민의 정서가 바뀌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것을 지금 체감한다.”고 했다. 이 당선인은 “명동에서는 어깨 한번 치고 가면 ‘똑똑히 보고 다니라.’면서 언쟁이 벌어지는데, 청계천에서는 그런 것을 못 봤다. 또 공원에서는 쓰레기 버리는 사람이 청계천에서는 안 버린다. 노숙자들도 청계천 교량 밑에서는 잠을 자지 않는다.”면서 “사회환경과 공직사회를 어떻게 바꾸느냐가 국민의 정서를 바꾼다.”고 했다. 그는 또 “대부분의 사람들은 월말까지 또는 연초까지 해보겠다 하는 식으로 하는데, 아날로그 시대에도 앞서가는 사람들은 그렇게 안 했다.”면서 “하루 중에서도 오전이냐 오후냐의 단위도 더 세분하는 게 디지털시대에 맞다.”고 철저한 시간관리를 당부했다. 그러면서 “국회가 일할 때 보면 하루종일 기다리다가 밤 12시 다 되어서 결정이 되는데, 정치만 예외이고 논리적으로 안 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서울광장] ‘국보 1호’를 비워두라/진경호 정치부차장

    [서울광장] ‘국보 1호’를 비워두라/진경호 정치부차장

    늘있었다. 앞으로도 죽 있을 줄 알았다. 한강처럼, 남산처럼. 그런 숭례문이 사라졌다. 출근길 매번 그 앞에서 차를 돌리면서도 올려다본 건 숭례문의 수려한 처마 끝이 아니라 그 앞에 매달린 신호등이었다. 숭례문은 그런 존재였다. 언제든 있을 테니까 보지 않는…, 보지 않아도 되는…. “세계적인 유산 숭례문을 시민의 품으로 돌려놓겠습니다.” 2002년 이명박 서울시장의 이 취임사를 숭례문은 어떻게 들었을까. 육백 성상(星霜)의 시련과 영화를 꿋꿋이 견뎌냈건만 하룻밤 화마(火魔)에 이리도 허망하게 무너질 것을 숭례문은 예감했을까. “노숙자들이 ‘확 불질러버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숭례문 개방은 바람직했지만 너무 경비가 돼 있지 않습니다. 탁상에서 답하지 마시고, 한번 현장에 나가보십시오. 한숨만 나옵니다. 잘못하면 조만간 누가 방화할 수 있습니다. 도와주십시오.” 지난해 2월 문화관광부 홈페이지 게시판에 오른, 경복궁을 스물아홉차례 답사했다는 스물두살 청년의 절박한 호소다. 시청역에서 쫓겨난 노숙자들이 숭례문 누각으로 몰려갔다는 얘기를 오세훈 서울시장은 한번이라도 들어봤을까. 나가보고, 들었는데도 숭례문은 무너졌을까. 문화재와 너무 친숙해서인지 제 집 안마당인 양 왕릉에서 가스불을 피워댄 문화재청장 유모씨는 멀쩡한 광화문을 뜯어 옮기기에 앞서 그 돈으로 숭례문 안에다 소화기라도 몇 개 더 갖다 놓겠다는 생각은 정말 하지 못했나. 티가 나지 않는 일이라 생각이 미치지 않았나. 유모씨가 낸 사표를 굳이 퇴임 이틀 전에 수리하겠다며 가슴에 품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의 심사는 대체 뭔가.“숭례문이 근 1세기 만에 다시 시민 품으로 돌아온 것은 뜻 깊은 일”이라며 자서전을 통해 자찬을 아끼지 않은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숭례문이 서둘러 시민 품을 떠난 지금 왜 한 줄의 자탄도 없나. 국민 가슴을 숯덩이로 만든 숭례문 잿더미 속에서 또 다른 절망의 불씨가 피어 오른다.“3년 안에 복원”,“국보 1호 유지”,“복원은 국민 성금으로….” 복원에 쓸 부재(部材)를 말리는 데만 3년 걸린다는데 무슨 재주로 3년 안에 복원인가. 그렇게 숭례문을 새로 지어 ‘국보 1호’라 외치면 불살라진 조선의 혼과 얼, 민초들의 숨결이 되살아나는가. 숭례문이 스러진 지 반나절도 안 돼 터져나온 국민성금 발상은 이번 숭례문 참화의 절정이다. 앞집 옆집 한푼두푼 모은 국민성금으로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터진 이 국가적 흉액을 국민 총화의 계기로 반전시키겠다는 역발상의 기민한 위기대응능력에 혀를 내둘러야 할지, 혀를 차야 할지 그저 헷갈린다. 무슨 철거가옥도 아닐진대 포클레인으로 숭례문 잔해를 거둔다는 소식엔 말문이 막힌다. 당장 가림막부터 걷어치우라. 지금은 복원을 말할 때가 아니다. 아니 복원이란 말로 재건(再建)을 가릴 때가 아니다. 숭례문 잿더미 속을 헤집어 복원 때 쓸 서까래 대들보 조각을 찾을 때가 아니다. 전통과 문화와 역사를 불태운, 천박한 우리의 자화상부터 끄집어 내야 한다. ‘국보 1호’를 영구 결번으로 비우고, 그 자리에 이 부끄러운 자화상을 담아 두자. 한없이 비정하고 그래서 가슴이 저미지만, 재건한 숭례문을 ‘국보 1호’로 둔갑시키는 자기기만은 버리자. 부끄럽지만…, 그렇게 부끄러워야 국보 2호,3호를 살린다. 숭례문은 죽었다. 진경호 정치부차장 jade@seoul.co.kr
  • 머리 숙인 서울 중구청장

    숭례문 관리 책임을 맡고 있는 서울 중구의 정동일 구청장이 13일 사과문을 통해 사죄의 뜻을 밝히고 숭례문 복원 및 문화재 보호에 적극 나서겠다고 약속했다. 정 구청장은 “국보1호 숭례문 관리책임자로서 책임을 통감한다.”면서 “수많은 외침과 전란 속에서도 600여년을 꿋꿋하게 버틴 숭례문을 지키지 못해 선조와 후손에게 죄를 지었다고 생각한다.”며 머리를 숙였다. 그는 또 “국민 여러분의 절망 속에서 나오는 따가운 질책을 뼛속 깊이 새겨, 이런 참사가 더 이상 재발하지 않도록 철저하게 문화재 점검을 실시함으로써 한치의 소홀함이 없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정 구청장은 지난 10일 화재 발생 직후 현장에 도착, 진화 과정을 지켜본 뒤 11일부터 소방서·경찰서 등 관계기관과 대책회의를 갖고 있다. 한편 중구는 이날 ‘노숙자들이 숭례문 누각에서 라면을 끓여먹고 술을 마셨으며 잠까지 잤다.’는 일부 언론보도에 대해 “전혀 사실과 다르다.”는 내용의 해명 자료를 냈다. 중구는 “숭례문의 주변과 양쪽 출입구 계단에 감지기가 설치돼 있어 누가 접근하면 경비업체 직원이 출동하는 동시에 구청 및 경찰에 연락돼 누각에서 절대로 잠을 잘 수 없다.”고 반박했다.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사라진 숭례문] 李당선인 “국민 가슴 아플것”

    [사라진 숭례문] 李당선인 “국민 가슴 아플것”

    초유의 ‘국보 1호’ 화재 소실에 대해 정치권은 11일 일제히 ‘비통한 심정’을 밝혔다. 문화재 관리대책 강화와 조속한 복원 작업의 착수를 강조하기도 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이날 오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이경숙 위원장, 김형오 부위원장 등과 함께 숭례문 현장을 방문했다. 이 당선인은 현장 관계자들의 상황보고를 듣고 “바닥에서 천장까지 굉장히 높은데 어떻게 사람이 올라가 불을 붙였느냐. 문이 열려 있으니 올라간 것 같다.”며 관리 소홀을 지적했다. 이 당선인은 복원 문제와 관련,“중건하는 것은 문제가 없을 테지만 화재가 났으니 국민의 가슴이 아플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전체적으로 사회가 혼란스러운 게 걱정스럽다.”고 밝혔다. 숭례문은 이 당선인이 서울시장 재임 중이던 2006년 3월 100여년 만에 공개됐다. 그러나 관리대책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상태로 공개됐다는 주장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대통합민주신당 손학규 대표 역시 화재 현장을 방문해 ‘참담한 심경’을 밝혔다. 그는 “2층이 붕괴되는 모습을 10m 앞에서 지켜 보았다. 국가 관리시스템에 커다란 문제가 있다.”면서 “국제적으로도 이렇게 부끄러운 일이 있을 수 없다.”고 개탄했다. 민주노동당 천영세 대표 직무대행은 “문화재 방재 시스템을 갖추는데 당 대책을 내놓겠다.”고 했다.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도 현장을 둘러보고 “문화재 관리가 이렇게 허술해서 되겠느냐.”며 안타까워 했다. 한편 국회 문광위는 이날 긴급 전체회의를 소집해 문화부와 서울시, 문화재청, 소방방재청을 상대로 책임을 추궁했다. 통합신당 우상호 의원은 “2004년 국정감사에 이어 2005년 4월 낙산사 화재 이후 또 다시 목조 문화재 보존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었다.”면서 “숱한 지적에도 안일하게 대처해 왔던 결과라는 점에서 분노를 느낀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한나라당 김학원 의원은 “지난해 2월 문화재청 홈페이지에 노숙자들로 인한 방화 가능성을 제기하는 글이 실렸는 데도 문화재청이 이를 방기했다.”며 “특히 문화재청이 전혀 사죄하는 모습이 없다.”며 질타했다. 한상우 박창규기자 cacao@seoul.co.kr
  • [사라진 숭례문] “밤새 흉물로” 망연자실

    [사라진 숭례문] “밤새 흉물로” 망연자실

    600여년 동안 서울의 상징물로 우뚝 서 있던 숭례문이 하루아침에 흉물스럽게 변한 현장에는 11일 내내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무너져내린 국보 1호에 대한 국민들의 안타까움이 날로 커지고 있는 가운데 벌써부터 본지 등 언론사로 복원 성금을 보내고 싶다는 독자들의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 숭례문과 각별한 인연을 가진 남대문시장 상인들의 안타까움은 더했다.‘되풀이되면 안 될 아픈 장면’이라며 휴대전화기를 꺼내 ‘흉물’로 변한 숭례문을 사진으로 담았다. 헌화를 한 김종희(여)씨는 “가슴이 아파 헌화를 하러 왔다. 원상복구를 한다고 해도 똑같은 나무로 할 수는 없지 않으냐.”며 안타까워했다. 서울대 조소과를 졸업했다는 40대 남성은 헌화와 함께 숭례문을 향해 절을 한 뒤 “숭례문을 보수할 때 몇백년 된 고목을 은사가 기증받고 그 나무로 개인전을 연 적이 있다.”면서 “세계 최고 수준의 목조 건축물이 타버려 가슴이 아프다. 올해 숭례문 추모 전시회를 열겠다.”고 밝혔다. 15년 동안 숭례문 지하상가에서 옷가게를 운영한 김호진(60·여)씨 역시 밤새 잠을 못 이뤄 퀭한 얼굴로 화재 현장을 찾았다. 눈가에는 여전히 눈물 자국이 남아 있었다. 2005년부터 ‘1사 1문화재 운동’의 일환으로 숭례문 청소를 했던 신한은행의 권창현 과장도 동료들과 화재현장을 찾았다. 권 과장은 “숭례문 바로 옆에 사무실이 있어서 역사의 향기를 느낄 수 있었는데 아침에 출근해 보니 어처구니없었다. 원형대로 잘 복구됐으면 좋겠다는 마음뿐”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사건을 예견이라도 한 듯 20대 누리꾼 김모씨가 지난해 2월24일 문화관광부 홈페이지 ‘나도 한마디’ 사이트에 방화 가능성을 경고하는 글을 올린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경복궁을 29차례나 탐사하고 중국에 유학중인 22살 청년이라고 밝힌 김씨는 ‘존경하는 장관님’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숭례문 근처에서 노숙자들이 ‘확 불질러버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면서 “존경하는 관리자님 탁상 위에서만 이 글에 답하지 마시고 실무자로서 이 나라를 사랑하시는 분으로서 한 번 현장에 나가보시죠. 한숨만 나옵니다.”라고 썼다. 임일영 신혜원기자 argus@seoul.co.kr
  • 숭례문 불… 누각 전소

    숭례문 불… 누각 전소

    대한민국 문화재의 자존심인 국보 1호 숭례문이 10일 밤 화재로 사실상 전소되는 어처구니 없는 일 이 발생했다. 소방방재청 관계자는 “8시50분쯤 남대문 경찰서 교통초소 근무자가 교통 폐쇄회로 카메라를 통해 화재를 포착해 보고했으며,9시쯤 소방차 60대와 소방관 190여명이 출동해 진화작업을 벌였다.”고 밝혔다. 하지만 초기 진압 실패로 숭례문 2층 누각과 지붕이 전소되고 1층 지붕의 중간부분이 붕괴되는 등 구조물이 심각하게 훼손됐다. 특히 ‘숭례문’ 현판이 불에 타는 것을 막기 위해 톱으로 잘라내는 과정에서 소방관의 실수로 현판이 바닥으로 떨어져 일부가 훼손됐다. 소방 관계자는 “문화재 훼손의 위험 때문에 화재 초기에 적극적으로 진압에 나서지 못해 불이 커졌다.”면셔 초기진압 실패를 시인했다. 화재 원인과 관련, 이 관계자는 “2층 누각 아래에 설치된 조명등 과열이나 누전에 의한 발화 가능성에 대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장에 출동한 남대문 경찰서 관계자는 “노숙자 1명이 숭례문에 들어갔다는 택시기사의 제보가 있어 방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경찰서측은 이날 밤 10시쯤 서울역 인근에서 방화 용의자와 인상착의가 비슷한 이모(53)씨를 붙잡아 조사를 벌였으나 이씨가 만취 상태여서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보 1호 숭례문은 1962년 국보 1호로 지정됐으며 서울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로, 조선 태조 7년(1398년)에 완성됐다. 현재의 건물은 세종 29년(1447년) 고쳐 지은 것이다. 1961~63년에 해체복원된 뒤 불이 나기는 처음이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종교계 설맞이 나눔과 자비 풍성

    종교계 설맞이 나눔과 자비 풍성

    설 명절을 전후해 종교계에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는 나눔 행사가 풍성하게 열린다. 천주교, 개신교, 불교 등 각 종교가 교구 차원의 단체 헌혈행사를 진행하는 것을 비롯해 목회자 연합단체와 불교 복지시설이 이주노동자와 노숙자를 위한 설 잔치를 마련, 소외 이웃들과 훈훈한 정을 나눈다. ●난치병 환자 돕기 헌혈 캠페인 혈액 부족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을 위해 천주교 수원교구가 진행하는 행사. 설 연휴 첫날이자 천주교 전례력에 따른 사순시기인 다음달 6일부터 부활시기인 5월25일까지 수원교구 모든 성당이 함께 한다.30일 수원교구 신학생 170명이 먼저 헌혈 봉사에 나서 다음달 10일부터는 각 성당에 헌혈차량을 보내 헌혈을 독려할 예정이다. 헌혈이 불가능한 이들을 위해 ARS(060-700-1566)를 통한 후원의 문도 연다. 특히 천주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에 동참하는 ‘사순시기’에 맞춰 18만여개의 사순절 헌금통을 마련한다. 캠페인을 통해 모인 혈액과 헌혈증서, 모금액은 수원 성빈센트병원에 전달되어 난치병을 앓는 가난한 환자를 돕게 된다.(031)268-3907. ●이주노동자 돕는 설맞이 잔치 천주교 서울대교구가 다음달 3일 오후 3시 혜화동 동성고등학교 대강당에서 2000여명의 이주노동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여는 ‘설맞이 이주노동자 잔치’. 필리핀, 몽골, 페루, 베트남 이주노동자들이 참여해 각국 전통무용, 밴드연주, 연극 공연을 펼친다. 이를 위해 각국 참가자들은 매주 일요일 나라별 공동체 미사가 끝난 뒤 연습을 해 왔다. 각국 공동체를 담당하는 외국인 신부들도 자리를 함께 한다. 서울대교구측은 “우리고유의 명절이지만 외국인들이 한 자리에 모여 고향소식과 함께 따뜻한 정을 나누는 자리로 마련했다.”고 밝혔다. 행사에선 서울대교구에서 준비한 선물도 전달한다. ●33개 교회 목회자 노숙자에 식사제공 개신교 사회봉사단체 한국교회희망연대(한희년)가 설 연휴인 다음달 6∼10일 서울역에서 노숙자를 위해 여는 잔치. 매일 오전 11시30분·오후 6시 등 두 차례에 걸쳐 노숙자들에게 식사를 제공한다. 하루 4000명씩 연인원 약 2만명에게 배식하며, 노숙자들에게 방한복 1500벌과 양말도 나눠준다. 설 당일인 2월7일 오전 11시 배식장소인 서울역 북서쪽 역전파출소 앞 지하도에서는 노숙자를 위한 예배 행사도 가질 예정. 한희년 회원 교회 33개 교회의 목회자 120여명이 직접 배식봉사에 나선다. ●불교 복지시설의 자비나눔 서울노인복지센터(관장 일문 스님)는 설 연휴 전날인 다음달 5일 공동 차례지내기를 시작으로 다양한 설맞이 행사를 연다. 지방써주기와 윷놀이, 제기차기, 투호 등의 ‘전통놀이마당’, 가족이나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사진을 찍는 ‘설빔 포토제닉’, 덕담을 뽑아 복주머니에 담아가는 ‘새해덕담뽑기’로 진행한다. 청담종합사회복지관(관장 혜성스님)은 이에 앞서 31일 설날맞이 ‘자비 떡국나눔행사’를 개최한다. 경로식당에서 떡국 공양을 올리고 결식가정에 떡국거리를 나눠준다.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김성호 전문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9) 천주교 작은형제회 고사카 빈첸시오 수사

    [김성호 전문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9) 천주교 작은형제회 고사카 빈첸시오 수사

    임진왜란때 왜장을 끌어안고 강물에 몸을 던진 논개의 고장 경남 진주. 한·일 과거사의 아픈 편린으로 인해 꾸준히 회자되는 이 진주시의 자그마한 칠암동성당(칠암동 496의14)엘 가면 짙은 밤색 수도복 차림의 일본인이 눈에 띈다.19년째 한국에 살며 의지할 곳 없는 노숙자며 독거노인을 돕는 데 몸바치고 있는 천주교 작은형제회 한국관구 소속 수사(修士) 고사카 빈첸시오(64·본명 고사카 요시히로·高阪淑皓·한국명 고명호).“일본보다 한국이 더 좋아 한국에 산다.”며 한국에 귀화한 빈첸시오 수사에게 한국은 한·일 과거사에 얽힌 아픔을 풀어가는 ‘숙제의 땅’이다. ●가난한 사람들의 ‘수호성인´으로 통해 칠암동성당은 한국에 있는 천주교 작은형제회 소속 본당 7곳 중 대표적 성당. 이 성당에 딸린 사제관에서 주임신부와 함께 살며 나눔과 베품을 묵묵히 실천하는 고사카 빈첸시오 수사는 한국 천주교계에서 남다른 신앙인으로 이름나 있다. 무소유의 ‘작음’과 ‘배려’를 생명처럼 새기며 사는 천주교 작은형제회. 이 수도회에서도 가난한 사람들의 수호성인으로 통하는 빈첸시오 수사를 따라 세례명을 빈첸시오로 택한 그가 헐벗고 의지할 곳 없는 ‘빈자(貧者)’와 함께 부대끼며 사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런데 수도자 빈첸시오에게는 신앙인의 삶에 더해 풀어야만 할 절실한 화두가 있다. 올겨울 들어 가장 추웠다는 지난 24일 오후 칠암동성당 사제관에서 기도 중 기자를 맞은 빈첸시오 수사는 “추운 날씨에 보잘것없는 사람을 찾아 먼 길을 왔다.”며 덤덤한 표정으로 찻물을 끓였다. 인근 칠암동, 망경동의 독거노인들을 위해 반찬거리를 만들어 신자들을 통해 배달하는 일을 막 끝낸 참이었다. 매주 목요일이면 어김없이 성당 지하의 주방에서 나물이며 김치 같은 반찬을 만들어 독거노인들에게 전달하기를 벌써 2년째. 이젠 이곳 독거노인들에겐 빈첸시오 수사의 손길이 들어 있는 반찬을 받는 게 가장 반가운 일상이 되었다. ●37살 수도회 입문… 빈민식당서 봉사의 첫발 일본 도쿄의 가난한 집 외아들로 태어난 빈첸시오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공장 일을 하는 어머니를 따라 도야마(富山)현으로 이사해 중학교까지 마친 게 학력의 전부이다. 중학교 졸업 후 16년간 주유소 일을 하며 홀어머니를 도와 어렵게 살았다. 천성이 선했던 때문일까.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을 볼 때마다 그냥 지나치지 못했으며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수도자들을 막연히 동경하게 되었다고 한다. 19살 때 도야마현 다카오카시의 작은형제회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지만 홀어머니 걱정에 수도자가 될 결심을 못한 채 흔들리던 중 화재를 당한 친구를 보고 불현듯 마음을 정했다. “공교롭게도 친구 집을 찾아가는 날 화재로 친구의 집이 모두 불탔어요. 세상의 모든 재물은 한 순간에 없어질 수 있지만 신앙은 영원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곧바로 작은형제회 수도회에 입회,5년 뒤 “일생토록 나를 온전히 하느님께 바친다.”는 성대서약(종신서원)을 하고는 수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37살 때였다. 독신서약을 하고 오사카 작은형제회에 몸을 담아 이 수도회가 운영하는 빈민식당 일이 평생 봉사의 시작이 될줄이야.5년간 노숙자며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급식을 하는 빈민식당의 주방일을 맡아하면서 노숙자들을 찾아가 주먹밥이며 이부자리를 나눠주고 몸이 아픈 사람들을 병원으로 데려다 주곤 했다. 한국과 인연을 맺은 것은 교토의 재일교포들과 만나면서. 교토 작은형제회 소속 신부들과 함께 일본 천주교 박해시대(1597~1797년) 순교자들의 자료를 모은 크리스천 자료관을 만들어 일하던 때였다. 그곳 ‘코리아 가톨릭센터’에서 재일교포 할머니들과 어울려 미사를 함께 올리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한국말을 배워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오사카에서 만난 재일 교포들이 과거의 아픈 역사 때문에 힘겹게 살고 있는 모습이 안타까웠어요. 아픈 상처를 어루만져 주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교토의 재일교포 할머니들을 만나면서 그들의 아픔을 진실하게 나누기 위해선 한국말을 알아야겠더라고요.” 작은형제회 일본 관구에 ‘한국에서 봉사하겠다.’는 뜻을 거듭 전했지만 번번이 무산된 끝에 결국 일본관구에서 한국관구로 적을 옮겨 한국행을 결행한 게 1989년. 정동 작은형제회 한국관구 본부 수도원에 머물면서 당시 퇴계로에 있던 코리아헤럴드 어학당에서 1년6개월간 한국말을 배웠다. 한국이름 고명호는 그때 만난 한국인 신학생의 도움을 받아 지은 이름. 일본 이름 숙호(淑皓)가 여성 이름이니 명호가 어떠냐는 제의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과거사에 대한 일본인들의 사과는 당연한 것” “처음엔 한국말만 배우고 귀국할 예정이었지요. 그런데 한국관구 수사들이며 주변의 한국인들에게서 일본인이 갖지 못한 따뜻한 정을 느꼈습니다. 일본인인 내가 한국인들을 위해 할 일이 있음을 그때 절실히 느꼈지요.” ‘한국에 살리라.’는 결심을 굳히고는 서울 제기동 자선식당인 프란치스꼬의집 주방 일을 시작했다. 이곳에서 하루 300∼400명씩 몰리는 노숙인들에게 한 끼 밥을 제공하기 위해 밥을 짓고 설거지를 하며 주방장 생활을 한 게 15년. 이후 2006년 1월 칠암동성당으로 옮겨 독거노인들을 챙기며 살고 있다. “사는 집, 입는 옷이 없는 사람보다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 채 먹을 것을 갖지 못한 사람이 제일 불쌍하지요.” 그래서 독거노인들을 향한 정이 더욱 깊단다. 여기에 과거 일본의 침략에 고통받은 한국인들의 상흔을 달래고 빚을 갚는다는 사명 아닌 사명이 자신에게 주어진 큰 숙제라고 한다. “한·일 과거사를 볼 때 한국인들이 일본에 나쁜 감정을 갖는 것은 당연할 수 있지만 미래를 생각하지 않은 채 과거에만 매몰되면 더 비극적인 결과를 낳는다고 봅니다. 과거사에 대한 일본인들의 사과는 물론 당연합니다. 저를 만나는 한국인들이 위안을 얻고 저를 통해 일본과 일본인이 참회를 할 수 있다면 큰 보람이겠지요.” ●평생 독거노인과 노숙자의 벗이 되고파 ‘남은 생동안 나를 필요로 하는 어디건 찾아가 몸을 아끼지 않겠다.’는 빈첸시오 수사. 요즘은 독거노인 반찬 대는 일 말고도 한 달에 한번씩 경기도 시흥의 양로원을 찾아 노인들의 벗이 되어 준다. 그런가 하면 역삼동의 신자들이 모이는 작은공동체를 찾아 일본어도 가르치고 신앙모임도 이끈다. 수도사의 길을 시작한 지 얼만 안 된 1980년 당시 오사카에서 만난 테레사 수녀의 한마디는 수도자 생활에서 잠시도 잊을 수 없는 화두가 되었다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바로 무관심입니다. 한국인들은 일본인들에 비해 관심받지 못한 채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더 많이 배려하는 것 같아요.” 실제로 일본에서 빈민식당을 운영할 때보다 제기동 프란치스꼬의집 주방장으로 있을 때 더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힘을 보탰고 일반인들의 도움도 더 많았다고 귀띔한다. 세상엔 관심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봉사할 게 너무 많다는 빈첸시오 수사. 정년퇴직 없이 평생을 봉사할 수 있는 수사라는 직업(?)은 복받은 직업이라며 두 손으로 수도복을 만져 보인다. “수도자로서, 아니 한 인간으로서 교만하지 않고 모든 사람들과 일에 정성을 다해 기쁘고 재밌게 살아가는 것이지요. 한국에서….” 진주 글 사진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고사카 빈첸시오 수사는 ●1944년 일본 도쿄 출생, 도야마현으로 이주 ●1963년 도야마현 다카오카시 성당에서 세례 ●1977년 천주교 작은형제회 수도회 입회 ●1982년 종신서원, 오사카 빈민 자선식당 운영 ●1987년 교토 크리스천 자료관 개관, 코리아 가톨릭센터서 봉사 ●1989년 한국으로 이주 ●1991∼2006년 서울 제기동 빈민식당 프란치스꼬의집서 봉사 ●2006년∼ 진주 칠암동성당서 독거노인 대상 봉사
  • 서울 노숙인 자립 능력 키운다

    서울시가 노숙인들의 자립 능력을 키워준다.28일 서울시에 따르면 노숙인에게 인문학 강좌를 통해 자립에 대한 동기를 부여하고, 자신감을 회복시켜 주는 프로그램 ‘희망의 인문학, 클레멘트 코스’를 개설한다. ‘클레멘트’는 미국에서 실시하는 소외계층을 위한 정규대학 수준의 인문학 강좌를 일컫는 말이다. 이 프로그램은 오는 3월20일부터 3개월 과정으로 연중 3차례(기별 120명) 운영된다. 노숙인들의 성공 사례와 건강강좌, 문화 체험 등도 함께 소개된다. 대학 교수와 유명 연예인, 창업성공 기업가 등 다양한 분야의 인사들을 초빙해 프로그램을 맡긴다. 프로그램을 주관할 전문교육기관을 다음달 18∼22일 접수받는다. 아울러 교육·훈련을 희망하는 노숙인에게 시립직업전문학교에서 무료로 위탁교육을 실시한다. 또 거리 노숙인에게 공익형 일자리에 참여하도록 도와준다. 신용불량 노숙인 300명에게 파산·면책과 관련한 무료법률지원 서비스를 지원한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오늘의 눈] 한국 노숙자와 인도 걸인/최종찬 국제부 차장

    며칠째 뚝 떨어진 영하의 수은주가 한강을 얼어붙게 만든 날 새벽4시 시청 앞 지하도에서 노숙자들이 잠을 자고 있었다. 찬바람이 불기 전보다는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이곳에서 잠을 청하는 노숙자들이 있었다. 달라진 것은 뼈에 스며드는 냉기를 막기 위해 이불 외에 박스로 얼기설기 집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지하도 한쪽엔 먹고 버린 컵라면과 소주병이 뒹굴고 있었다. 입구와 출구쪽에는 지린내가 칼바람을 무디게 하고 있었다. 추위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노숙자들을 보고 있노라니 지난해 가을 취재하러 갔던 인도에서 본 거지들이 생각났다. 인도 거지도 거리에서 먹고 자니 한국판 노숙자라고 할 수 있다. 인도 거지들은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번째 부류는 행인을 상대로 구걸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표정으로 손을 벌렸다. 대부분 어린 아이를 품에 안고 있었다. 인도IT의 메카 방갈로르에서 만난 할머니 거지는 손녀를 안고 있었다. 두 번째 부류는 재주를 부리며 그 대가로 돈을 요구했다. 아이를 서너명 거느린 여성 거지들이 대개 이런 유형이었다. 아이 하나는 전통북을 두드리고 다른 아이는 재주를 부렸다. 행인과 눈이 마주치면 돈을 요구했다. 마지막 부류는 싸구려 물건을 팔았다. 가족단위로 교통체증이 잦은 교차로나 관광지부근에서 책, 장신구, 지도 등을 팔았다. 뭄바이의 집단빨래터인 도비가트에서 만난 거지 일가족은 이런 유형이었다. 이들은 대개 시골에 집도 가지고 있었다. 인도 거지들의 노숙 생활은 한국 노숙자에 비하면 가히 천국이다. 적어도 추위 때문에 얼어죽을 염려는 없다. 거지로 산다고 손가락질 받거나 노숙하는 자리에서 쫓겨나지도 않는다. 신을 믿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생활을 비관하지 않는다. 해서 술도 먹지 않는다. 술과 추위에 취해 정신과 육체가 망가져 가는 한국 노숙자의 몽롱한 얼굴 너머로 밤에도 검은 눈을 반짝거리며 외국인에게 환한 미소를 짓는 인도 거지들이 오버랩됐다. 최종찬 국제부 차장 siinjc@seoul.co.kr
  • 노숙자로 전락한 퇴역미군 실상

    MBC ‘W’는 18일 오후 11시50분 ‘무방비 도시, 케냐 나이로비를 가다 외’편을 방송한다. 위기를 맞은 아프리카 케냐의 민주주의, 최초의 백인 게이샤, 퇴역 미군의 생활 등을 생생하게 전해 준다. ‘아프리카의 모범생’이라 불리는 케냐. 아프리카 민주주의의 표본으로 통했던 이 나라가 폭동에 휘말렸다. 지난해 12월27일 네 번째 대통령 선거일 이후, 국민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경찰이 최루탄과 총으로 맞서 지금까지 600여명의 사망자와 40만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이같은 소요의 원인은 케냐 대통령의 부정선거 논란 때문이다. 케냐 국민들은 “우리의 소중한 한 표를 도둑맞았다.”고 외치고 있다. 얼마 전 백인 게이샤 관련 기사가 인터넷을 달궜다. 게이샤 사회의 400년 전통을 깨고 정식 게이샤로 데뷔한 호주 출신 여성이 화제의 주인공이었다.일본에서도 신비에 싸여 있는 게이샤 사회에 이방인이 발을 들이게 된 사연은 무엇일까. 도쿄 아사쿠사에서 게이샤 생활을 시작한 최초의 백인 게이샤 사유키를 만난다. 미군의 퇴역 후 생활을 살펴보는 코너도 흥미롭다. 오늘날 미군은 전세계에 손길을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영향력이 막강하다. 이같은 활약에도 불구하고 미군의 퇴역 이후 생활은 안정적이지 않다. 한창 일할 나이임에도 사회로 복귀한 그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허드렛일뿐이다. 그나마도 여의치 않은 퇴역군인들은 노숙자로 전락하기까지 한다. 전쟁터에서의 스트레스로 정신 장애를 앓는 사례에서부터 사회부적응자로 내몰린 사례까지 미국 사회의 또다른 그늘이 돼버린 퇴역 군인들의 실상을 조명한다.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중국은 지금 ‘설날열차표’ 구하기 전쟁중

    “고향에 가기 위해서라면…” 최근 중국 각 지방 기차역에는 매일 수십만명의 사람들이 몰려들어 전쟁터를 방불케 하고 있다. 최대 명절인 춘절(설날)을 맞아 귀성 열차표 예매가 전국적으로 시작됐기 때문. 지난 13일 저녁 7시부터 대륙 각 기차역에는 베이징, 광저우 ,상하이 등지로 가는 열차의 예매가 시작됐다. 철도청 관계자는 “13일 하루 동안 베이징서역(北京西驛)에만 11만여명이 몰려들었다.” 며 “춘절을 전후해 전국 각지에서 1억7860만명이 이동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어 “학생에게만 국한되던 왕복 기차표 구매가 일반인까지 확대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몰리게 됐다.”며 “몇 일전부터 많은 시민들이 역 앞에서 노숙을 하는 등 경쟁이 치열했다.”고 전했다. 기차표 예매를 시작한 첫날인 지난 13일 베이징의 각 기차역에는 2000여명의 공안이 배치돼 안전사고에 대비했다. 한편 철도청 측은 귀성객과 관광객에게 비행기나 고속버스 등의 교통수단도 함께 이용해 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71@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이주노동자·중국 동포에 ‘나눔의 정’

    외국인 노동자와 중국 동포를 격려하는 대규모 축제가 열린다. 지난달 출범한 개신교 사회봉사단체 한국교회희망연대(한희년·상임대표 이철신 목사)가 13일 오후 2시부터 4시간에 걸쳐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개최하는 ‘2008 외국인 노동자·중국동포 희망축제’. 국내에 체류하는 동남아 이주노동자와 중국동포 등 5000명을 초청해 공연과 나눔행사로 진행한다. 한희년이 소외계층을 위한 첫 사업으로 마련한 이날 축제에서는 참가자들이 함께하는 예배에 이어 축하무대와 문화공연이 펼쳐질 예정. 김병찬 아나운서의 사회로 가수 주현미 등이 출연하며 스리랑카·태국·몽골·필리핀·방글라데시·인도·중국 등 각국 문화공연에 이어 행사 참가자들 모두에게 방한복 한 벌씩을 나눠준다. 한기총 대표회장과 한희년 상임대표가 사랑과 희망의 메시지도 전한다. 한희년측은 “한국인들도 미국과 독일 등에 나가 어려운 생활을 했던 지난날을 돌아보면서 국내의 외국인들을 위로하고 축복하기 위해 축제를 마련했다.”면서 “이 땅에서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외국인 이주노동자와 중국동포들이 따뜻한 마음을 갖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희년은 영락교회, 여의도순복음교회, 제자교회, 종교교회, 은평성결교회 등 국내 개신교계의 굵직굵직한 교회들이 연대해 지난달 10일 출범한 봉사단체. 출범하자마자 120개 회원 교회의 신자 1만 5000여명이 태안반도 기름제거 봉사활동에 힘을 보태는 등 어려운 이웃 섬기기에 나서고 있다. 설 연휴 기간인 다음달 6일부터 5일동안 서울역 앞에서는 노숙자들에게 떡국과 밥을 제공하는 나눔행사도 계획하고 있다.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수습기자, 서민을 만나다] “솟아라! 희망아” 새해 첫 새벽 거침없이 파이팅

    [수습기자, 서민을 만나다] “솟아라! 희망아” 새해 첫 새벽 거침없이 파이팅

    “서민여러분∼무자년(戊子年) 새해도 거침없이 파이팅!” 참 힘든 한 해였다. 주가가 하늘 높이 치솟아도 서울역의 노숙자들은 좀처럼 줄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짊어질 젊은이들은 구직난에 눈물을 머금었다. 정치인들이 ‘우리 서민, 우리 서민’ 그렇게 외쳐댔어도 서민들의 삶은 별반 나아진 게 없었다. 그러나 서민들은 2008년 새해 다시 ‘희망’을 말한다. 아무리 삶이 힘들어도 이들의 희망을 꺾을 순 없다. 이제 막 ‘진실의 펜’을 잡은 서울신문 장형우(사진 왼쪽)·신혜원(오른쪽) 수습기자가 새해 벽두 서민들을 만나 그들의 애환과 새해 희망을 들어 봤다. ●공무원시험 준비생 이재청씨 “형과 함께 합격할 겁니다” “새벽부터 고시원 식당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을 보면 독하게 공부하는 사람이 참 많다는 것을 느껴요. 올해는 꼭 취업해야죠.” 서울시 종로구 정독도서관의 정식 개관 시간은 오전 8시. 그러나 이재청(26)씨는 아직도 컴컴한 새벽 6시부터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씨는 지난해 8월 경상대학교를 졸업하고 9월부터는 본격적인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왔다. 이씨가 준비하고 있는 시험은 검찰 사무직 9급. 매일 새벽부터 밤 10시까지 도서관에서 공부하지만 일반 공무원 시험이 1년에 여러 차례 있는 것에 비해 검찰 사무직은 4월 한 번뿐이라 부담이 더 크다.“시험이라는 게 과정도 중요하지만 결과로 말하잖아요. 아무리 열심히 해도 합격이라는 결과물이 없으면 다시 1년을 준비해야 합니다.” 이씨는 지난 연말 단 한 번도 송년 모임에 참가하지 않았다. 벌써 두 번이나 낙방해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데다 공부의 흐름이 깨질 우려가 있어서다. 다행히 이씨의 옆에는 형이 있어 든든하다. 형 역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어 비슷한 애환을 가지고 있다.“형은 얼마 전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어요. 요즘엔 제 도시락도 손수 싸주고, 공부하다가 졸리면 깨워 주기도 하지요. 저와 시험 과목이 겹치는 부분은 서로 도움을 주기도 하니까 큰 힘이 되죠.” 이씨는 올해 꼭 합격해 부모님께 효도하고 싶은 생각이 절실하다. 두 형제를 서울로 올려 보내고 마음 고생하는 부모님을 생각하면 어느 새 눈시울이 붉어진다. 경남 진주에서 자신을 묵묵히 응원해 주는 여자친구에게도 늘 미안한 마음뿐이다. 이씨는 새 대통령에게도 한 마디 했다.“우리 같은 지방대 출신들은 취업하기가 더 힘듭니다. 부디 좋은 일자리를 골고루 많이 늘려서 지방대 출신들의 눈물을 닦아 주세요.” 신혜원기자 hyewon81@seoul.co.kr ●노량진 수산시장 박정식씨 “전세라도 옮기고 싶어요” 모두가 잠든 새벽 3시.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냉동수산물 도매를 하는 ‘꽁지머리’ 박정식(54)씨는 이 시간이 더 없이 바쁘다. 어촌에서 올라온 수산물 가격이 흥정 끝에 결정되고, 소매상인들에게 한창 팔려 나갈 시간이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경매가 끝나서야 겨우 말을 붙였다.“새해에는 꼭 사글세에서 전세로 옮기고 싶어요.” 한창 돈을 벌던 1997년. 갑자기 들이닥친 경제위기와 더불어 박씨는 사기까지 당했다. 이혼의 아픔도 겪어야 했다. 박씨는 “세상 모두가 나를 속여도 정직하게 살자.”고 결심했다. 앞머리칼을 몇 가닥만 길러 땋은 특이한 헤어스타일을 고수하는 이유도 정직하게 살고 싶어서다.“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머리모양이기 때문에 남을 속일 생각은 아예 못하죠.”외환위기 이후 수산물 시장의 경기가 계속 좋지 않아 노량진 시장에서도 상도의를 찾기가 힘들어졌다고 박씨는 전한다. 박씨는 지난해까지 매주 복권을 샀다. 남을 속이지 않고 돈을 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박씨는 “새해는 경기가 좋아져 더이상 복권을 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노래를 좋아해 항상 반주기를 틀어 놓고 일하는 박씨는 수산시장의 명물로 통한다. 어렵고 힘들어도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는 박씨는 이웃상인들에게도 큰 힘을 준다. 박씨는 태안 기름 유출사고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사태가 장기화되면 수산물 시장도 위태로워지기 때문이다. 박씨는 “큰 사고가 나면 꼭 못사는 사람들만 피해를 본다.”면서 “정부나 기업체나 사고가 나기 전에 미리 방지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고 말했다. 무역업을 하다 만난 베트남 출신 부인과 2005년에 결혼한 박씨에게는 3살된 늦둥이가 있다. 요즘 한창 말을 배우는 아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아들이 성장하면 베트남에 가서 한국인 아버지 밑에서 태어나 버려진 아이들을 돕고 싶습니다.”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서울신문 광화문지국 조한춘씨 “아픈 아내 회복되겠죠” “새해에는 서울신문에 기쁜 뉴스만 가득 실렸으면 좋겠습니다.” 살을 에는 듯한 겨울 바람이 휘몰아치는 새벽 4시. 조한춘(41)씨는 서울신문 광화문지국에서 바쁜 손놀림으로 배달할 신문을 정리하고 있었다. 매서운 추위에도 조씨의 이마에는 땅방울이 맺혔다. 조씨는 1985년 공부를 하고 싶어 맨손으로 상경했다. 조씨가 생활비 마련을 위해 선택한 것은 신문배달. 처음 서울역에 내렸을 때의 다짐대로 검정고시는 너끈히 통과했다. 성실한 생활로 결혼도 하고 집도 장만했다. 그리고 지금은 7살 명록이와 5살 윤태의 다정한 아빠이기도 하다.“23년 동안 아프지 않고, 결혼도 하고, 내집도 마련했으니 성공한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즘 조씨는 무척 힘들다. 지병을 앓는 부인의 건강이 악화됐기 때문이다.“새해에는 아내의 건강이 회복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런 기대를 하지 않으면 살 맛이 나지 않잖아요.” 조씨는 오전 1시부터 7시까지는 조간신문을,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까지는 석간신문을 배달한다. 일을 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었다.“97년 경제위기 뒤 10년간 배달부수가 40%나 줄었습니다. 그만큼 벌이가 안 좋아지는 거죠. 점점 일감이 줄어듭니다.” 그러나 조씨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조씨는 “사람들은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면 신문부터 끊는다.”면서 “그러나 어려울수록 신문을 통해 좋은 정보를 찾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씨가 지난해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남북정상회담. 기분 좋은 소식을 접하게 될 서울신문 독자들을 생각하니 여간 행복하지 않았다. 이 때만큼은 ‘신문 배달원이 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했단다.“대통령 부부가 반세기 만에 군사분계선을 걸어서 넘어가는 사진을 담은 10월3일자 신문을 배달할 때 가슴이 벅찼습니다.”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지하철 기관사 정흥세씨 “자살하는 사람 줄어야죠” “새해에는 생활고 탓에 지하철에 몸을 던져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줄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오전 5시50분 서울역에서 지하철 4호선 오이도행 첫 차의 운행을 준비하는 정흥세(51) 기관사의 표정에서 긴장감이 묻어났다. 지난해까지 운행 거리만 40만㎞.17년간 지구를 열 바퀴 돈 베테랑 기관사지만, 첫 차를 운전할 때는 어느 때보다 정신을 바짝 차리게 된다. 잠시 뒤 졸린 눈을 비비며 다가온 승객이 눈인사를 건네자 정씨도 밝은 미소로 답을 했다. 정씨는 “새벽 첫 차를 타는 사람들은 늘 정해져 있죠. 마음 편하게 하루 쉴 수 없는 노동자들이나 장사하는 서민들이에요. 힘들게 하루를 시작하는 분들을 정해진 시간에 목적지까지 모셔다드리는 것이 새해에도 변함없는 저의 임무죠.”언제나 몸은 고단하지만 ‘우리 아빠가 세상에서 가장 큰 차를 운전한다.’며 자랑스러워하는 두 딸의 응원과 손님들이 ‘고맙습니다.’,‘수고하시네요.’라고 건네는 말 한 마디가 정씨에게는 가장 큰 힘이 된다. 보람있는 순간도 많지만, 돌발 위험에 노출돼 있는 기관사들은 잠시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한다. 지상구간에서 사슴이나 개가 튀어 나오거나, 어린 학생들이 플랫폼에서 친구를 미는 시늉을 할 때면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느낌이다. 특히 지하철에 뛰어들어 자살하는 사람들 때문에 기관사들이 겪는 고통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제 동료는 자신이 운행하던 지하철에 사람이 뛰어들어 숨지자 6개월 동안 공황장애를 앓았어요. 끝내 그 친구도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했답니다. 남의 일이 아니죠.” 몇 년 전만 해도 지하철 4호선에서 1년에 3∼4명 꼴로 자살이 일어났지만 지난해에는 한 달에 한 명 정도로 늘었다고 한다.“올해는 경제가 좋아지고 사회 분위기도 밝아져서 생활고로 자살하는 사람이 줄었으면 하는 소망입니다. 무엇보다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야죠.” 신혜원기자 hyewon81@seoul.co.kr
  • [희망을 본 사람들] (7·끝) ‘개인회생’ 통해 재기 다지는 김철수씨

    [희망을 본 사람들] (7·끝) ‘개인회생’ 통해 재기 다지는 김철수씨

    “월급의 일부를 가져갈 수 있게 되면서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2억원의 빚을 개인회생 제도를 통해 부분 탕감받고 재기 의욕을 다지고 있는 김철수(37·가명)씨. 그는 2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은행과 카드회사, 제3금융권, 지자체 등 14개 채권자로부터 빚 독촉에 시달렸다. ●영국 유학생에서 2억원대 채무자로 “찜질방과 친구, 직장동료의 집을 전전긍긍했습니다. 최악이었죠.” 지금은 웃고 있지만 채권추심업자들에게 시달리던 2년 전을 생각하면 철수씨는 아직도 끔찍하다. 철수씨의 악몽은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철수씨는 2000년 7년간의 영국 유학생활을 접고 유럽에 많은 투자를 하던 국내 중소기업에 스카우트됐다. 그러나 회사의 무리한 투자로 철수씨가 입사한 지 4개월 만에 부도가 났다. 그나마 적금으로 모은 2000만원과 부모님의 집을 담보로 대출받은 3000만원으로 대학가의 호프집을 인수했다. 그러나 사업이라곤 전혀 경험이 없던 철수씨는 호프집 월세를 충당하기 위해 현금 서비스를 받기 시작했다. 결국 카드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급기야 연체를 막기 위해 사채까지 사용하기 시작했다.“금융회사들의 빚독촉과 사채업자들의 협박에 시달리며 차라리 죽을까 하는 생각도 수십 번씩 했습니다. 돈을 구하기 위해 이리저리 다니면서 노숙자로 지내겠다는 결심까지 했었죠.” ●살인적 빚 독촉에 가정도 파탄 호프집도 경매로 넘어간 철수씨는 2002년 한 자동차회사의 영업사원으로 취직했다. 그러나 회사생활도 만만치 않았다. 매일 걸려 오는 빚독촉 전화와 회사로 찾아온 사채업자들은 빚을 갚기 위한 자동차영업마저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살인적인 빚독촉에 가정도 파탄상태에 이르렀다. 아내, 아이와 따로 떨어져 지내야 했다. 부모님은 아들 빚으로 인한 불화로 이혼에 이르렀다. 불과 5년 만에 철수씨 개인이 속한 가정이란 작은 사회는 ‘빚’으로 무너져 내렸다. ●“이젠 적금 넣으며 미래를 설계해요” 하루하루 절박감 속에 생활하던 철수씨가 ‘희망’이란 끈을 잡게 된 것은 김관기 변호사의 상담 카페를 통해 알게 된 법원의 개인회생제도였다. 2005년 12월 2억원이 넘는 빚을 안고 살던 철수씨는 법원으로부터 매달 55만원씩 5년간 3300여만원만 갚으면 모든 빚이 사라진다는 결정을 받았다. 새로운 세상을 보는 순간이었다. 빚독촉도 끊기고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해졌다. 둘째 아이도 그 무렵 생겼다. 철수씨는 둘째를 복덩이라 불렀다.“그 녀석이 생기면서 모든 일이 술술 풀리는 것 같아요. 첫째는 아빠 엄마와 함께 고생해서 정이 가고 둘째는 좋은 일 생기면서 나와 좋고요.” 수입의 일정한 돈만 내면 나머지 돈은 생활비로 가져갈 수 있게 된 철수씨는 “열심히 일하면 많은 돈을 집으로 가져갈 수 있게 됐어요. 이제 작은 집을 마련해 보려고 적금도 넣고 있습니다.”라면서 환하게 웃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김성호 전문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7) 성남 노숙인급식소 안나의집 김하종 신부

    [김성호 전문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7) 성남 노숙인급식소 안나의집 김하종 신부

    경기도 성남시 안나의집(중원구 하대원동 102)은 성남과 서울 지역 노숙인들이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 있는 따뜻한 공간이다. 의지할 곳 없는 노숙인들이 밥 한 끼를 무료로 제공받는 ‘공짜 밥집´을 넘어 어려운 사람들끼리 정을 나눌 수 있는 흔치 않은 곳이기 때문이다. 지난 1998년 이 안나의집을 세워 9년째 운영하고 있는 김하종(50·본명 빈첸시오 보르도·이탈리아) 신부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노숙인들에게 한결같이 따뜻한 손을 내밀고 있는 이탈리아 출신의 신부. 소외된 이웃을 위한 사목에 뜻을 두고 18년간 한국에서 몸을 낮춰 어려운 이들에게 온정을 쏟고있는 유별난 현장 사제이다. ● 10년째 안나의집 운영… 하느님보다 더 고마운 ‘밥퍼 신부´로 통해 제17대 대통령 당선자가 확정된 지난 20일 오후 4시 성남시 성남동성당 바로 옆 안나의집 주변에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정처없는 노숙인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어 밥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시간 허름한 양철 가건물 1층 식당 안에선 김하종 신부와 자원봉사자 10여명이 손을 맞잡고 “오늘도 기쁜 마음으로 일하자.”는 기도와 함께 노숙인들을 맞기 위한 채비를 하고 있었다. 식당 문이 열리자 줄을 서 기다리던 노숙인들이 차례로 밥을 타서는 20여개 남짓한 길따란 식탁에 앉아 허기를 달랜다. 앞치마를 두른 김하종 신부가 식탁을 돌며 “맛있게 드세요.”라며 인사를 건네자 노숙인들이 연신 “고맙습니다.”라며 답례를 한다. 앞치마를 두른 채 노숙인 맞으랴 밥 푸랴 정신없이 바쁜 김하종 신부의 소중한 시간을 잠시 축냈다. 인터뷰를 하면서도 연신 노숙인들을 살피는 신부를 괴롭히는 것 같아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힘들지 않느냐.”고 묻자 신부는 그냥 웃는다. 이곳에선 하루 평균 400여명의 노숙인이 찾아와 저녁 식사를 한다. 토·일요일을 뺀 주 5일 동안 매일 오후 4시30분부터 3시간여 김하종 신부와 1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식사를 챙기느라 진땀을 뺀다. 찾아오는 이들은 대부분 성남지역과 서울의 노숙인들. 이 노숙인들에게 김하종 신부는 ‘하느님보다 더 고마운 밥퍼 신부’로 통한다. ● 난독증 딛고 신학대 입학… 동양철학 공부하며 한국에 관심 이탈리아 로마 근교, 인구 5만여명의 작은 도시 비데르보에서 태어난 김하종 신부는 어릴 때부터 난독증을 심하게 앓았다고 한다. 난독증이란 보통 사람들과는 달리 단어들을 조합해 문장을 이해하는 능력이 형편없이 낮은, 일종의 학습장애이다. 세계 각국 인구의 5% 정도가 중·경증의 난독증을 갖고 있으며 한국도 예외는 아니라고 한다. 김 신부는 암기는 물론 집중력과 이해력이 너무 떨어져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심한 열등감에 빠져 살았다.“나는 왜 이렇게 못났을까.” 열등감과 자괴감에의 반사였을까. 남에 대한 배려와 희생에 관심을 갖게 됐고 “봉사하며 살겠다.”는 뜻을 세워 비데르보 교구 신학대에 들어갔다. 신학교를 다니면서도 주말이면 장애인과 독거노인, 교도소 재소자들을 찾아 봉사활동에 몸을 바쳤다고 한다. 신학교를 졸업하면서 곧바로 ‘가장 버림받은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나라를 알린다.’는 오블라티 선교수도회에 몸을 담았고 5년 만인 1987년 사제서품을 받았다. 그런데 김 신부 역시 한국과는 어쩔 수 없는 인연의 업(業)이 있었던 것 같다. 고교시절부터 유독 아시아에 대한 관심이 많았었고 결국 로마대학교에 진학, 동양철학을 공부했다고 한다. 수도회 생활을 하면서 5년간 공부끝에 ‘라오스의 역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아프리카 세네갈에서 1년간의 봉사를 마친 뒤 이탈리아에서 2년째 사제활동을 하던 중 ‘한국에서 하느님의 종으로 살겠다.’는 서원을 수도회에 냈고 한국에 온 게 1990년. 서강대 어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울 무렵 한국어를 가르치는 강사와 함께 지은 이름이 김하종이다. 한국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신부의 성을 택하고 ‘하느님의 종’을 줄인 ‘하종’을 이름으로 삼았다. “내가 원해서 한국에 온 바에야 초심 그대로 철저하게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살겠다.”는 각오를 다졌고 서강대 어학당 시절 1년여에 걸쳐 어려운 이웃이 많이 사는 곳을 물색해 1992년 정착한 게 성남이다. 이후 성남 신흥동성당 보좌신부로 2년여 일한 게 교구 성당 사목의 전부. 보좌신부로 일하면서 한국의 수녀들과 당시 상대원동, 은행동 지역의 어려운 가정을 돌며 동사무소나 구청, 병원 관련 일들을 해결해 주면서 “내가 갈 길은 역시 어려운 이웃들의 손과 발이 되어 주는 것”이라는 현장사목을 택한 것이다. ● 어려운 이웃 많이 사는 성남에 정착 현장사목의 길 걸어 성남시 수정구의 위탁을 받아 ‘평화의집’에서 독거노인들에게 급식을 시작한 게 지금 안나의집의 시초이다.93년부터 오전엔 평화의집에서 급식을 하고 오후엔 어려운 가정을 돌며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다가 97년 무렵엔 아예 분당에 공부방을 내었다. 그러던 중 IMF사태가 터져 실직 노숙인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자 공부방을 사회복지사에게 맡기고 모란역 옆 뷔페 건물 한층을 빌려 노숙인 식당을 시작한 것이다. 1년여간 이곳에서 식당을 운영하다 보니 노숙인들이 감당할 수 없이 늘었다. 그래서 성남동성당 주임 신부에게 지금의 공간을 무상으로 얻어 안나의집을 시작했다. 안나의집은 처음 노숙인 식당을 하던 뷔페 건물 주인의 어머니 세례명을 딴 것이라고 한다. 말이 급식소이지 안나의집은 아주 허름한 2층의 양철 조립식 건물이다.1층에 주방과 식당이 있고 2층은 이런저런 용도로 쓰이는 공간이다. 왼쪽 비슷한 형태의 단층 조립식 건물에는 자원봉사자며 후원자들의 발길이 분주하게 닿는 곳이다. 이렇다할 지원 없이 매일 400여명에게 식사를 제공하려니 도움을 받을 만한 후원자들을 찾아다니며 궁색한 손을 내밀어야 한다. 번갈아가며 김 신부를 돕는 자원봉사자들의 손길이 여간 고마운 게 아니다. 김 신부도 식사준비며 설거지 같은 허드렛일을 닥치는 대로 한다. “흔히 노숙자를 일자리를 잃어 사회에서 도태된 사람쯤으로 쳐다보지만 이들은 대부분 어린 시절 어려운 환경에서 비롯된 성격과 심리, 정신 장애를 겪은 사람들입니다.” 똑같은 인간이고 하느님의 자녀들인데 남다른 고생길을 걸어야 하는 노숙인들에게 그래서 사랑과 온정이 더 절실하단다.“알량한 밥 한끼를 대접하기보다는 꺼져가는 영혼의 불씨를 되살리기 위해 매일 매일 밥주걱을 듭니다.” ● ‘난독증 알리기 본부´ 만들어 어려운 청소년돕기 앞장 내년이면 안나의집도 10년째. 그동안 일이 많이 늘었다. 가출 청소년을 수용하는 쉼터와 청소년 자립관 세 곳을 마련했고 특히 한국인들에게 난독증의 실체를 알리는 일은 빼놓을 수 없는 큰 일이 되었다. 어릴 적부터 자신을 그토록 괴롭혔던 번민과 자괴감의 뿌리가 난독증이었음을 알게 된 것은 한국에 온 지 7년이 지난 1997년. 우연히 ‘타임’지의 기사를 읽다가 자신과 똑같은 증상을 겪는 사람 이야기를 접하곤 삼성의료원을 찾아 난독증 장애 판정을 받은 것이다. “지금 돌이켜 보면 나보다 남을 더 먼저 생각하고 주저없이 행동으로 옮길 수 있었던 바탕은 바로 난독증이었던 것 같아요.” 2003년 마침내 교사와 대학교수, 의사 7명과 함께 ‘난독증 알리기 본부’를 만들었다. “내가 암기식 교육에 치우친 한국에 태어났으면 아마 도태된 채 아무 직업도 가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자신과 비슷한 어려움에 시달리는 청소년 돕기에 발벗고 나서 지난해 11월 처음 연세대 의대 음성언어연구소와 주한 이탈리아 문화원의 도움을 받아 국제 난독증 세미나를 열었고 올해 들어선 매월 대학 교수들을 모셔 난독증 자녀들의 부모를 위한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가난한 농민의 장남으로 태어나 부모의 만류를 뿌리치고 이역만리 한국 땅을 택해 험한 길을 걷고 있는 푸른 눈의 사제. 사제 서품 20년차의 보통 신부라면 이제 번듯한 자리에 올랐을 법한데 후회는 없을까. 인터뷰를 마치면서 던진 기자의 분별없는 물음에 오블라띠 선교수도회를 설립한 성 에우제니오 드 마제노의 임종사를 말없이 보여준다.“너희들 안에서 사랑, 사랑, 사랑하라. 그리고 모든 이들을 위해서 열정을 다해 사랑을 실천하라.” 성남 글 사진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김하종 신부는 ●1957년 이탈리아 비데르보 출생 ●1981년 비데르보 교구신학교 졸업 ●1982년 로마 오블라티 수도회 입회. 로마대학교 진학 동양철학 공부 ●1987년 사제서품, 로마대학교 졸업 ●1988∼1990년 세네갈 봉사, 이탈리아 사목 ●1990년 한국으로 이주, 서강대 어학당서 한국어 공부 ●1992년 성남 신흥동성당 보좌신부 ●1993년 독거노인 급식 시작, 어린이 영어 교육 ●1998년 모란에서 노숙인 급식, 노숙인급식소 ‘안나의집’운영 ●2003년 ‘난독증 알리기 본부’ 결성
  • “교회가 춥고 배고픈 이웃 찾아가야죠”

    “교회가 춥고 배고픈 이웃 찾아가야죠”

    ‘밥퍼 운동’의 최일도(50) 목사가 이끄는 다일공동체의 거리 성탄예배가 25일 20돌을 맞는다. 다일공동체의 거리 성탄예배는 최 목사가 장로회신학대의 대학원생이었던 1988년 노숙자 3명과 함께 예배를 드린 것이 출발점이다. 최 목사는 당시 등산용 버너와 코펠을 들고 노숙자들이 많이 모여 있던 청량리역 주변에서 라면을 끓여 주며 나눔의 정을 함께하는 사회운동을 시작했다. 최 목사의 ‘라면’은 노숙자에게 점심식사를 제공하는 ‘밥퍼’ 운동으로 발전했고, 이제는 연간 1만여명의 배식 자원봉사자들이 참여할 정도로 나눔 운동의 상징이 됐다. 최 목사의 거리예배도 5000명 이상의 노숙자와 유명 인사들이 함께 참가하는 크리스마스의 대표적 행사로 자리잡았다. 최 목사는 “예배당 문턱이 높아 교회에 갈 수 없는 소외된 이웃들을 교회가 직접 찾아가야 한다.”면서 “이 행사로 많은 노숙자들과 나눔의 정을 느끼고 싶다.”고 말했다. 거리 성탄예배는 25일 오전 11시 서울 동대문구 신답초등학교 이면도로에서 열린다.3000여명의 노숙자, 무의탁노인 등에게 식사와 방한복을 나눠 준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별난일 별난 사람들] (끝) (14) ㈜H&G 김동진 팀장

    [별난일 별난 사람들] (끝) (14) ㈜H&G 김동진 팀장

    김동진(47) 팀장은 하루 8시간을 화장실에서 보낸다. 자기 ‘볼 일´ 때문이 아니다. 사람들이 쾌적하고 편안하게 ‘볼 일´을 해결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기 위해서다. ●서울·경기 220개 설치… 하자보수·인테리어 책임 김 팀장은 이동화장실 제조·운영업체인 ㈜H&G에서 애프터서비스를 총괄하고 있다. 이 일을 시작한 지 올해로 6년째다.H&G는 국내 이동화장실 업계 최대 회사다. 내년 중국 베이징 올림픽에 이동화장실을 공급할 정도로 탄탄한 기술력과 운영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겨울이 되면서 김 팀장의 손길과 발길이 분주해졌다. 화장실 내 수도관 등의 동파(凍破)가 잦아지기 때문이다. 그는 H&G가 관리하는 전국 500여개 이동화장실 중 서울·경기지역 220개의 설치, 하자보수, 인테리어를 책임지고 있다. 김 팀장의 업무는 여명이 채 내리지 않은 새벽 4시30분에 시작된다. 개당 7∼10t에 이르는 이동화장실을 수시로 정해진 자리에 갖다 놓아야 하는데 이 일은 인적이 드물 때가 아니면 안 된다. 대형 크레인을 쓰기 때문에 차가 안 다닐 때 작업을 해야 하는 데다 환할 때에는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줄 수도 있다. ●불편사항 접수땐 심야건 주말이건 즉시 현장으로 이것보다 더 바쁘고 힘든 일은 유지보수다. 화장지가 없다, 변기·외벽이 파손됐다, 변이 안 내려간다 등 사람들의 요청이 있으면 심야건 주말이건 즉시 현장으로 달려가야 한다. 별의별 상황을 다 겪는다. 얼어버린 정화조 속 변을 녹이기 위해 몇시간씩 가열기를 붙들고 있기 일쑤고, 작업 중 배관이 터져 온몸에 오물을 뒤집어 쓰기도 한다. 영하의 혹한 속에 수도관 물을 뒤집어 써 옷에 주렁주렁 고드름을 달고 일할 때도 있다. 노숙자들이 전구를 빼가거나 취객들이 칸막이를 부수는 경우도 많다. 그는 요즘 화장실은 정말 좋아졌다고 말한다. 일정 온도 이하로 기온이 떨어지면 자동으로 난방이 가동되고 사람이 들어가면 전등과 음악이 자동으로 켜져 과거의 더럽고 음산한 공중화장실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고맙다고, 수고하신다고 격려해 줄 때가 제일 기분 좋습니다. 젊은 후배들은 이런 일 하는 것 창피하다고 숨기려 들지만 그럴 필요 있나요. 이 일 때문에 먹고 쓰고 애들 공부시키는 걸요. 정년 때까지 감사하는 마음으로 일할 겁니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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