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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천쌀로 해주세요”…벤츠타고 무료급식소 오는 사람도

    “이천쌀로 해주세요”…벤츠타고 무료급식소 오는 사람도

    노숙인 무료급식소 ‘안나의 집’을 운영 중인 김하종 신부(63)가 급식 메뉴 등에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허탈감을 토로했다. 김하종 신부는 경기 성남시에서 20여 년째 노숙인 무료급식소 ‘안나의 집’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1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같은 상황을 전했다. 김 신부는 “어제는 노숙인 분들에게 도시락과 다음 날 아침으로 드실 빵도 드렸다”며 “그런데 한 할머니께서 빵 봉투를 받고 열어보시더니, ‘전 이런 빵 안 먹어요. 파리바게뜨 단팥빵 없을까요? 있으면 바꿔주세요.’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어 “어느 날은 어떤 할아버지께서 도시락을 받아가신 뒤 다시 오셔서 ‘신부님 이거 이천쌀 아니죠? 이천쌀 아니면 안 먹어요. 다음부터 이천 쌀로 밥 해주세요’고 말씀하셨다”며 “이외에도 불교 신자분들의 도움으로 이번 연도부터 물을 드리고 있는데 물을 받으시곤, ‘물이 너무 따뜻해! 다음부턴 시원하게 얼려서 줘’라고 말씀하시는 분도 있었다”고 했다. 김 신부는 “이런 요구를 들을 때마다 많이 당황스럽다”며 “위에서 말한 것처럼 메뉴판을 준비해야 하나 싶을 정도”라고 말했다. 김 신부가 이런 말을 하게 된 것은 그간 무료급식소를 운영하며 맞닥뜨린 황당한 상황들 때문이다. 지난해 벤츠를 타고 무료급식을 받아가려 한 이른바 ‘벤츠 모녀’ 사건 역시 김 신부가 겪은 황당한 일 중 하나다.“벤츠 타고 노숙자 무료급식소에 와 밥 달라고 해” 지난해 김 신부는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오늘은 아주 괴로운 날이다. 화가 나고 어이없는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라며 “흰 색의 비싼 차(벤츠) 한 대가 성당에 왔다. 그리고 할머니와 아주머니가 내렸다. 두 분은 태연하게 노숙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고 적었다. 김 신부가 이들에게 다가가 “따님도 계시고 좋은 차도 있으시기 때문에 여기 오시면 안 된다. 도시락은 노숙인분들을 위한 것이고, 아주머니와 할머니 때문에 다른 분들이 먹지 못한다”고 말렸으나, 이들 모녀는 “여긴 공짜 밥 주는 곳이지 않느냐”며 거듭 도시락을 받아가려 했다고 한다. 이에 김 신부는 “이분들의 행동과 말에 기분이 매우 나빴다. 자기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행동이고, 우리 친구들을 무시하고 배려하지 않는 말이기 때문”이라며 “요즘처럼 코로나 시기에 우리가 ‘모두’를 생각한다면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겠지만, ‘나’만 생각한다면 사회는 더 힘들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흰색 벤츠 차량을 타고 온 중년 여성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공개했다. 이 글은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소셜미디어) 등에 ‘벤츠 타고 노숙자 무료급식소에 밥 얻어먹으러 온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확산되면서 분노를 자아냈다. 김 신부는 “도시락, 간식, 후원 물품은 당연하게 있는 것들이 아니다. 많은 분의 후원, 그리고 봉사자, 직원분들의 사랑과 노고가 있기에 있을 수 있는 것”이라면서 “이 점을 알고 당연한 마음이 아닌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가 주셨으면 좋겠다”고 글을 맺었다.한편 로마 그레고리오 대학에서 동양철학 석사 학위를 받은 김하종 신부는 한국 철학과 역사에 매료돼 1990년 입국했다. 이후 한국 최초의 실내 무료 급식소인 ‘안나의 집’을 세워 소외계층에 무료급식과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사회적 자립을 지원했다. 위기 청소년을 위한 단기시설, 쉼터, 자립관 등을 운영하면서 청소년 탈선 예방에도 기여했다. ‘김하종’이라는 한국 이름도 가진 그는 소외계층을 도운 공로가 인정돼 2015년 법무부로부터 한국 국적을 부여받았다. 당시 빈첸조 신부는 “생을 마감할 때까지 한국인으로서 봉사하며 살겠다”고 말했다.
  • ‘퇴거유예 조치’ 퇴짜 맞은 바이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코로나19로 집세를 내지 못한 세입자를 내쫓지 못하도록 했던 ‘퇴거 유예 조치’의 기한을 연장하려 시도했지만 이번에도 무산됐다. 집세를 못 내는 360만 가구를 지원할 안전망 마련에 실패할 경우 노숙자 급증으로 코로나19 방역 전선에 큰 구멍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2일(현지시간) 성명에서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퇴거 유예 조치 갱신에 대한 법적 권한을 찾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바이든의 퇴거 유예 요청이 지난달 29일 공화당의 반대로 하원에서 무산된 데 이어, 행정기관도 권한이 없다며 거부한 셈이다. CDC는 코로나19 확산 우려를 이유로 지난해 9월 퇴거 유예 조치를 도입했고, 만료 기한(6월 30일)을 한 달간 연장했다. 하지만 연방대법원은 지난달에 의회 승인 없이 재연장은 불가하다고 결정했다.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 연속 증가로 노숙자 수가 약 58만명으로 늘어난 가운데 집세 연체자까지 거리로 쏟아져 나올 경우 코로나19 통제는 더욱 어려워진다. 뉴욕시는 이를 대비해 지난 5월부터 시내 노숙자 야영지들을 철거해 왔고, 주 의회는 지난달 28일 공원·도서관·학교 인근에서 노숙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로스앤젤레스와 워싱턴DC도 각각 바닷가와 시내 곳곳에서 노숙 텐트를 철거하고 있다. 특히 델타 변이가 백신 미접종자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돌파 감염도 나타나면서 미국의 누적 확진자는 3500만명을 넘어섰다. 바이든은 당초 7월 4일까지 성인 70%에게 최소 1회 백신을 맞히겠다는 목표를 이날 지각 달성했지만 “갈 길이 멀다”는 트윗을 게재했다. 지난달 미 인구조사에 따르면 퇴거 가능성이 있는 360만 가구 중 140만 가구(38.9%)는 2개월 내에 쫓겨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답했다. 상황이 급박해지자 백악관은 이날 성명을 내고 최소 향후 두 달간 퇴거 유예 조치를 연장하라며 주 정부를 압박하고 나섰다.
  • [기고] 자립준비청년 지원은 사회적 부모인 국가의 의무다

    [기고] 자립준비청년 지원은 사회적 부모인 국가의 의무다

    아동복지시설, 위탁가정에서 보호 중인 아동은 만 18세가 되면 보호가 종료되며, 살던 곳을 떠나 홀로 세상에 나와야 한다. 부모에게 충분한 지원을 받아도 어려운 자립을 보호종료아동은 국가로부터 강요받는다. 제대로 준비되지 않고 생활이 불안정한 상태에서 자립으로 내몰리다 보니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되거나 심지어 노숙자로 전락하는 경우도 있다. 보호 시작의 책임은 부모에게 있지만, 보호 종료의 책임은 사회적 부모인 국가에 있다. 정부는 가정으로부터 한 번 이탈된 아이들을 다시 버리는 셈이 되지 않도록 보호종료아동에게 새로운 단계의 보호를 시작해야 한다. 다행히 이들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자립정착금, 자립수당 등 경제적 지원 정책이 강화되고 있다. 최근 관계부처는 ‘보호종료아동 지원강화 방안’도 내놨다. 이들의 명칭부터 ‘자립준비청년’으로 변경하고, 청년세대인 이들의 자립준비에 대한 국가책임을 강조하였다. 보호종료아동은 이렇게 정부로부터 적지 않은 지원을 받지만, 일반 청년도 취업난, 주거불안 등으로 가정에서 독립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자립은 쉽지 않다. 삶의 길을 찾아가는 보호종료아동들의 속도와 방향은 똑같을 수 없다. 그 과정에서 누구라도 실패할 수 있다. 보호종료아동이 다시 진로를 변경하거나 재도전할 수 있는 두 번째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또한, 자립정착금, 자립수당, 경제교육, 심리정서적 지원 등을 분절적 방식이 아니라 통합적으로 제공하고, 세심한 개별 사례관리를 통해 맞춤형 자립을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를 위해서는 자립지원전담요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대개 보호종료아동 지원에는 찬성하지만 이들을 지원하는 전문인력의 처우 문제에는 무지하거나 인색한 경우가 많다. 매년 대상자가 누적되는 점을 고려하면, 전담요원 1명이 보호대상아동을 포함하여 약 85명 이상의 아동을 관리해야 한다. 보호종료아동에게는 경제적 지원과 더불어 인생의 크고 작은 문제를 상의할 수 있는 편안한 어른이 필요한데, 절대적으로 부족한 인력으로 이런 지원을 하는 것은 어려운 상황이다. 전담요원이 적절하게 배치된다면 보호종료아동과 충분히 의논하며 분절화된 지원을 개별 맞춤형으로 제공할 수 있다. 누구도 홀로 자립할 수는 없다. 자립은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게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 힘들면 도움을 요청할 수 있게 만들어야 가능하다. 보호종료아동도 예외가 아니다. 보호종료 전부터 충분한 자립준비 교육을 통해 자립은 아무 도움 없이 자립생활기술로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과의 관계와 도움 속에서 건강하게 의존하여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라는 점을 배워야 한다. 이번 지원강화 방안이 법률 개정과 예산 및 인력 확충을 통해 현실화되어 보호종료아동이 자립의 주체로서 건강하게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지길 바란다. 보호종료아동 지원은 국가가 베푸는 시혜가 아니라 사회적 부모인 국가가 지켜야 할 의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 다람쥐 쳇바퀴 돌 듯…물 위를 달려서 바다 건너려던 美 남성

    다람쥐 쳇바퀴 돌 듯…물 위를 달려서 바다 건너려던 美 남성

    물 위를 달려서 바다를 건너려던 미국 남성의 도전이 실패로 돌아갔다. 25일 폭스뉴스는 미국 플로리다에서 바다를 가로질러 뉴욕으로 가려던 남성이 멀지 않은 해변에서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24일 플로리다주 플라글러카운티보안관사무소는 해변에 수상한 원통형 선박이 떠밀려왔다는 여러 주민의 신고를 받았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다람쥐 쳇바퀴처럼 생긴 선박에서 ‘캡틴 버블’ 레자 발루치(49)를 발견해 구조했다.발루치는 바다를 건너 뉴욕으로 가기 위해 플로리다주 세인트어거스틴에서부터 항해를 시작했다. 달리기를 동력으로 하는 쳇바퀴 모양의 자력 수상 기구 ‘하이드로 포드’를 활용해 바다를 건널 예정이었다. 하지만 돌발 상황이 생겨 겨우 40㎞ 떨어진 팜코스트 해먹 해변에서 항해를 멈춰야했다. 발루치는 “자선기금 마련을 위한 항해에 나섰지만 몇 가지 문제가 발생해 부득이 해변으로 돌아왔다”고 밝혔다. 항해를 멈출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그는 “노숙자, 해양경찰, 경찰, 소방관을 위한 기금 마련도 내 목표 중 하나”라면서 “그들은 공공안전을 위해 일하며 시민을 돕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원칙에 따라 해경에 사건을 인계, 선박이 해상안전기준에 부합하는지 확인토록 했다.발루치가 ‘쳇바퀴’를 타고 바다를 건너다 발각된 건 이번이 벌써 세 번째다. 그가 '캡틴 버블'이라 불리는 이유다. 발루치는 2014년 플로리다에서 버뮤다까지 5개월간 1662㎞를 건너가겠다며 처음 바다에 뛰어들었다. 그는 “돈이 필요한 어린이를 위해 기금을 마련하고 미래에 대한 꿈을 잃은 사람에게 삶의 의욕을 심어주기 위해 이 프로젝트를 추진하게 됐다”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발루치에 따르면 하이드로 포드 안에서 달리는 건 공원에서의 달리기와 본질에서 다르다. 실내 최대 온도가 최대 48.8℃로 치솟는 터라 무척 덥고 습도도 높기 때문이다. 금세 탈수에 이르는 건 물론 숨도 끊기는 매우 위험한 일이다. 발루치는 항해 중 잡는 물고기와 미리 준비한 단백질 바로 영양을 보충하고 기구 안에 해먹을 설치해 잠을 자면서 체력을 유지해 ‘완주’할 예정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발루치의 원대한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해안경비대 경고를 무시하고 도전을 계속하던 그는 방향을 잃고 표류하다 체력이 바닥나자 스스로 위치추적기를 가동해 구조를 요청했다. 해안경비대는 HC-130 구조기와 MH-60 헬리콥터, 구조선 등을 몽땅 투입해 발루치를 구출했다. 구조 비용 14만4000달러(약 1억6500만 원)는 모두 납세자에게 전가됐다.2016년 두 번째 도전 역시 해안경비대 개입으로 일찌감치 좌절됐다. 당시 발루치는 “구명조끼에 위성 비상 전화, GPS 위치추적기까지 준비해 만약에 사태에 대비했다. 구조가 필요 없었다”며 아쉬움을 토로한 바 있다. 그리고 지난 24일, 버뮤다 대신 뉴욕으로 가려던 세 번째 도전마저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히면서 발루치의 무모한 도전은 위기를 맞게 됐다.
  • 미 서부 폭염에 수백명 사망… 백인·남성·고령·고립될수록 사망률 높아

    미 서부 폭염에 수백명 사망… 백인·남성·고령·고립될수록 사망률 높아

    ‘1995년 7월, 시카고에서는 섭씨 41도까지 올라가는 폭염이 일주일간 지속돼 700여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벌어졌다… 희생자는 대부분 눈에 잘 띄지 않는 노인, 빈곤층, 1인 가구에 속한 사람들이었다.’ 미국의 사회학자 에릭 클라이넨버그는 저서 <폭염사회>에서 폭염으로 인한 사망이 사회 불평등의 문제라고 진단하며, 근거로 사회적으로 고립된 소외계층이 주로 폭염에 희생된다는 통계를 짚어냈다. 지난달 말부터 2주 넘게 섭씨 40도가 넘는 폭염이 이어지고 있는 미국 서부에서도 현재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AP통신은 13일(현지시간)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 발표한 예비 보고서를 인용해 오리곤주에서 지난달 폭염으로 사망한 사람들을 살핀 결과 백인, 남성, 고령, 사회적으로 고립된 처지의 사람들이 많았다고 보도했다. 사망자의 평균 연령은 70세였으며, 냉방기가 부족한 상황에 오랫동안 고립된 것이 이들을 사망케 한 원인으로 꼽혔다. 오리건주의 큰 도시인 멀티노마 카운티에선 주민 71명이 더위 때문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데보라 카푸리 멀티노마 카운티 의장은 “특히 돌봄받지 못한 노인들이 폭염에 희생됐다”고 진단했다. 오리건주 전체로는 116명이, 근처 워싱턴주에선 최소 91명이 이번 폭염 때문에 사망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물론 갑작스러운 폭염에 대비할 냉방기계가 충분하지 않았던 게 수많은 사망을 일으킨 첫 번째 원인으로 꼽힌다. 북위 41도에 위치한 시카고나 북위 45도 지점인 포틀랜드에는 에어컨을 설치하지 않거나 설치된 에어컨이 고장나도 잘 관리하지 않는 집이 많다. 그런데 지난달 25~28일 기온은 에어컨 없이 견디기 어려운 정도인 섭씨 40도 이상으로 치솟았고, 심지어 포틀랜드의 낮 기온은 한 때 섭씨 47도를 기록했다. 이같은 더위에 고립이 겹치면서, 홀로 더위와 사투를 벌이다 숨지고 숨진 뒤에도 며칠이 지나서야 시신이 발견되는 참상이 벌어졌다. AP는 “포틀랜드 중심부에서 숨진 사례를 보면 4분의 3 이상이 1인 가구였고, 55%가 아파트나 공동주택에 살았으며, 90% 이상이 백인이고, 63%가 남성이었다”면서 “2명은 차량에서 숨진 채 발견됐는데, 그 중 1명의 차량은 냉방장치가 고장난 상태였다”고 묘사했다.‘고립’이 폭염 피해를 증폭시킬 수 있다는 점이 설득력을 얻으면서 보건 당국은 사람들이 더위를 피할 수 있도록 냉방 시설이 갖춰진 도서관을 개방하는 한편, 취약계층의 안부 확인에 사활을 걸고 있다. 당국은 복지 지원 프로그램에 등록되어 있는 취약 주민 수천명에게 전화와 문자 메시지를 보냈고, 부동산 관리자와 저소득주택 개발자들에겐 폭염 기간 동안 하루에 두 번씩 거주자의 안부를 묻도록 했다. 보건 당국 직원들은 팀을 짜서 물과 젖은 수건, 분무 장치, 전해질을 들고 노숙자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도시를 순찰하고 있다.
  • [여기는 남미] 가족에게 버림받은 108세 노숙자 노인에게 찾아온 기적

    [여기는 남미] 가족에게 버림받은 108세 노숙자 노인에게 찾아온 기적

    가족들에게 버림을 받고 길에서 살던 108살 할아버지가 사랑이 넘치는 새 가족을 만나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됐다. 우연히 길에서 마주친 낯선 노숙인 할아버지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어준 가족에겐 격려와 응원의 메시지가 쇄도하고 있다. 멕시코 토레온의 한 공원에서 노숙하던 할아버지 펠리페 레예스의 이야기다. 할아버지는 공원에 살면서 폐병을 모아 팔아 하루하루 끼니를 해결해 왔다. 몸이 불편해 지팡이에 의지하지 않으면 걷는 것조차 힘들었지만 할아버지는 노구를 이끌고 하루도 쉬지 않고 폐병을 주우러 다녀야 했다. 그런 할아버지에게 기적이 일어난 건 지난달. 유난히 더운 날 폐병을 비닐봉투에 담아 한 손에 들고 지팡이를 짚으며 길을 걷는 그에게 자동차 한 대가 멈춰 서면서였다. 자동차에서 내린 여자는 할아버지에게 "덥지 않으시냐"고 묻더니 할아버지에게 시원한 음료를 대접하고 싶다고 했다. 할아버지가 "(누구신지 모르지만 주신다면) 감사하게 받겠다"고 하자 여자는 지갑을 꺼내 돈을 건넨 후 잠시 머뭇거리더니 할아버지에게 "차에 타시라"라고 했다. 여자는 할아버지를 쇼핑몰로 모시고 가더니 새 옷을 사 입혀드렸다.이후 여자는 때로 찌든 옷을 벗어 버린 할아버지를 자신의 집으로 모셔갔다. 할아버지에게 따뜻한 식사를 대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낯선 여자의 집에서 몇 개월 만에 샤워를 한 할아버지는 여자의 질문을 받고 자신의 사연을 털어놨다. 알고 보니 할아버지에겐 자식이 11명이나 있었다. 할아버지에겐 어엿이 집도 한 채 있었다. 그런 할아버지가 노숙을 하게 된 건 자식들로부터 쫓겨났기 때문이었다. 할아버지는 "집을 차지하려고 자식들이 (나를) 집에서 쫓아냈고, 이후 줄곧 폐병을 주워 팔며 공원에서 살았다"고 말했다. 사연을 들은 여자와 가족들은 "우리가 새 가족이 되어드리겠다"며 할아버지에게 함께 살자는 제안을 했다. 자식들에게 버림을 받은 할아버지에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 셈이다. 베니타 데아르스라는 이름의 여자와 그의 가족들은 일면식도 없는 할아버지에게 왜 이런 호의를 베푼 것일까? 알고 보니 베니타는 이미 세상을 뜬 할아버지와 할머니에 대한 사랑이 각별했다. 생전에 조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아 행복한 추억이 가득했다. 베니타는 "(할아버지를 처음 만난 날) 남루한 옷차림에 폐병을 든 채 지팡이를 짚고 걸어가는 할아버지를 보자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생각나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면서 "차를 돌려 할아버지에게 말을 건 게 이런 인연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하늘에서 지켜보고 계실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생각해서라도 앞으로 (노숙인) 할아버지를 잘 모실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네티즌들은 베니타와 가족에게 응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고 있다. 한 네티즌은 "온통 흉악하고 나쁜 뉴스만 넘치는데 간만에 마음까지 훈훈해지는 뉴스를 접했다"면서 "아직 세상이 절망적이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 1조원 들여 환경미화 나서는 캘리포니아, 성공할까

    1조원 들여 환경미화 나서는 캘리포니아, 성공할까

    주 당국, 1만 1000개 일자리 창출도 가능 주장오는 9월 주민소환투표 앞두고 곱지 않은 시선도노숙자 정책도 거액 제안…공화측 “근본책 아냐”미국 캘리포니아주가 11억 달러(약 1조 2600억원)을 들여 쓰레기를 치우고 그래피티를 지우는 등 환경 정화를 시작했다. 노숙자에게 숙소를 마련해 주는 등 정상적인 삶을 살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도 추진된다. 샌프란시스코만 인근의 고속도로에서 7일(현지시간) 환경미화사업의 시작을 선언한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주 주지사는 “이것은 우리가 운전하면서 인지하던 것(더러운 환경)을 인정하기 위한 전례 없는 노력”이라고 말했다고 ABC방송이 전했다. 주 당국은 해당 사업으로 최대 1만 1000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노숙 경험자나 전과자 등은 3년간 지속되는 일자리를 우선적으로 얻을 수 있다. 이번 사업은 고속도로 인근에 있었던 노숙자 숙소들이 코로나19로 크게 확대되면서 시작됐다. 집을 잃은 이들이 소파, 매트리스 등을 들고 나왔다가 버리면서 쓰레기가 더욱 많이 쌓였다는 것이다. 지난해 공공장소의 쓰레기를 치우는 업체는 트럭 1만 8000대 분량을 수거했지만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다고 한다. 특히 캘리포니아주에만 16만 1000여명의 노숙자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뉴섬 주지사는 이들을 집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별도로 120억 달러(약 13조 7000억원)를 투입하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는 9월 주민소환 투표를 앞둔 상황에서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실제 공화당 주지사 후보인 존 콕스는 노숙자의 귀가 정책 전에 정신 건강을 체크하고 중독 치료 등을 먼저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주거지를 마련해주거나 집에 강제로 돌려보낸다 해도 근본적인 문제가 치유되지 않을 경우 다시 거리로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 마침내 아마존 CEO 자리에서 물러나는 제프 베이조스

    마침내 아마존 CEO 자리에서 물러나는 제프 베이조스

    ‘27년 간의 끝없는 확장’ 27년 전 아마존은 작은 온라인 서점으로 시작했다. 지금은 안 파는 물건이 없을 정도로 온갖 공산품과 서비스를 판매한다. 시장 조사업체 이마케터는 아마존이 온라인 소매 시장의 약 41%를 지배하고 있다고 했다. 발을 들여놓는 사업마다 기존 경쟁사들을 무너뜨리고 시장을 황폐화시키는 것과 관련, 아마존에 의해 무너지다는 ‘아마존드’(to be Amazoned)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블룸버그는 과거 ‘아마존의 끝없는 욕구가 어떻게 미국의 악몽이 되었는가’라는 칼럼을 싣기도 했다. 아마존은 클라우드 컴퓨팅 사업을 개척해 시장의 절반 가까이를 점유한 1위 사업자가 됐다. 영화·드라마를 제작하고 프로그램과 음악을 스트리밍으로 제공하는 엔터테인먼트 사업과 아마존 사이트를 이용한 광고업에도 뛰어들었다. 아마존은 미국 온라인 광고 시장에서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 세계 최대 소셜미디어 페이스북에 이어 이 시장의 3위 사업자다. 음성비서 ‘알렉사’가 탑재된 스마트 스피커, 스트리밍 기기 ‘파이어 TV’ 같은 스마트 기기들은 아마존의 베스트셀러 상품이다. 2010년 ‘아마존 스튜디오’를 설립해 아카데미상, 골든글로브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영화 ‘007 시리즈’ 제작사로 유명한 MGM 인수를 추진 중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아마존을 ‘제국’으로 표현했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가 5일(현지시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는 시점에 ‘제프 베이조스가 건설한 제국’이란 제목의 기사를 통해 그가 일군 제국을 구체적으로 소개했다. 아마존은 지난해 미국을 포함해 전 세계에서 50만명이 넘는 직원을 새로 채용했다. 수년내 미국내 최대 고용주인 월마트를 추월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내 아마존 직원만 95만명이고, 이 중 13만명은 사무직이다. 아마존은 전 세계 기업 가운데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에 이어 세 번째로 시가총액이 높은 기업이다. 베이조스는 5일 CEO직에서 물러나는 대신 아마존 이사회 의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지난 5월 아마존 연례 주주총회 등을 통해 “7월 5일 최고경영자(CEO)직에서 물러날 것”임을 여러차례 밝혔다. 5일은, “향수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그 날짜를 선택했다”고 했다. 베이조스는 앞으로 우주탐사와 자선 사업, 부동산과 새로운 장난감에 대한 투자 등을 즐기는 인생의 새 단계에 진입할 것이라고 한다. 베이조스는 아마존과 별개로 베이조스는 우주탐사 기업 블루오리진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이달 20일에는 이 회사의 첫 우주 관광 로켓 ‘뉴 셰퍼드’에 직접 탑승해 우주여행을 다녀올 예정이다. 베이조스는 기후변화 대처 등 자선·사회 사업도 확대하고 있다. 지난 해 2월에는 ‘베이조스 어스 펀드’를 통해 기후변화 대응에 100억달러(약 11조3000억원)를 내놓겠다고 서약했다. 또 노숙자·저소득층 교육을 지원하는 아마존 데이원 펀드 같은 사업도 하고 있다. 베이조스의 재산은 지난해 8월 2000억달러를 넘긴 것으로 평가됐다.
  • 땅 위 순교의 상처 땅 아래 스며… 그 땅에 기대어 살아가는 지금

    땅 위 순교의 상처 땅 아래 스며… 그 땅에 기대어 살아가는 지금

    특별한 장소를 기억하는 방법은 그 장소가 지닌 역사적 의미에 따라 달라진다. 88올림픽처럼 우리 역사에서 오래도록 자부심을 갖고 축하해야 할 곳에는 웅장한 상징물을 세우기도 하지만 위무해야 할 장소에는 추모비나 위령비를 세운다. 1784년 한국 천주교회가 창설된 이후 100년 넘도록 수많은 천주교인이 처형당한 ‘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성지라면 어떤 공간이어야 할까. 한국천주교의 성지 중 성지에 조성된 서울 서소문 역사공원에 2019년 6월 개관한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은 땅이 지닌 역사성과 상징성을 은유적으로 풀어내면서 아픈 역사를 추모하는 새로운 방식을 보여 준다. 도심의 대로에서 살짝 비켜 간 곳에, 그것도 도심의 자그마한 공원 지하에 들어앉아 있어서 사전 정보가 없으면 지나치기 쉽지만 엄청난 공간의 아우라를 지닌 곳이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이다. 설계를 맡았던 윤승현 중앙대 건축공학과 교수와 보이드아키텍츠의 이규상 건축가를 만나 이곳의 의미를 짚어 봤다.붉은 벽돌로 된 벽이 사방을 둘러싼 이 이국적인 곳은 한국 천주교인들에게는 성지 중의 성지로 꼽히지만 워낙 눈에 띄지 않는 장소였다. 박물관은 개관 6개월 만에 코로나19가 창궐하는 바람에 문을 닫아야 했으니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만도 하다. 윤 교수는 “천주교의 성지이기도 하지만 권력의 폭력성과 시대적 편협성에 반하는 항거의 상징적 장소임에도 지끔껏 이런 역사성과 장소성의 의미를 내포한 특별한 장소적 가치를 간과한 채 방치되고 있었다”면서 “숱한 애환이 서린 이 땅이 전달하는 메시지를 담아내는 일이 무엇보다 필요했다”고 의미를 전했다.●3인 건축가 ‘지하와 지상의 관계’에 초점 지금은 사라졌지만 돈의문과 숭례문 사이에 소의문(昭義門)이 있었다. 도성 축조와 함께 1396년 건립됐다가 1914년 일제강점기 때 철거된 소의문의 다른 이름은 서소문. 한양의 4개 소문(小門) 가운데 서쪽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강화군과 인천군으로 통하던 관문으로, 서소문 밖 네거리는 한강의 지천인 만초천(蔓草川·욱천이라고도 함)을 따라 일찍이 상권이 형성됐다. 늘 사람들로 북적이던 터라 조선 중기 이후 300여년 동안 국사범들의 처형장으로도 쓰였다. 처형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문이 시신을 밖으로 내가는 ‘시구문’이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1801년 신유박해부터 1839년 기해박해와 1866년 병인박해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천주교인이 신앙과 신념을 위해 순교했다. 그 숫자가 수만 명은 족히 될 것이라고 전한다. 이 장소는 1973년 서소문 근린공원으로 지정됐지만 경의선 철로와 서소문 고가 등으로 지역과 단절된 채 외딴섬처럼 버려졌다. 1996년 공원 지하에 중구의 재활용쓰레기처리장과 900여대의 공영 주차장이 건립되면서 순교자들의 신념을 담은 성스러운 장소라는 상징성에서 점점 더 멀어져만 갔다. 그러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에서 2011년 7월 국유지인 서소문 근린공원 일대를 역사공원으로 조성하고 박물관을 짓는 사업을 제안하면서 대역사가 시작됐다. 윤승현·이규상·우준승 팀이 현상 설계에서 당선돼 5년간의 ‘험난한 설계와 공사’ 기간을 거쳐 2019년 6월 완공됐다. “가장 공공적인 장소는 그 지역의 역사와 장소가 품은 깊이를 담아내 고유한 분위기로 펼쳐질 때 그 가치를 발휘할 수 있습니다. 한국 천주교의 성지로서 이 장소가 전하는 메시지를 충실하게 담아내는 것이야말로 천주교인들뿐 아니라 시민 모두에게 가치 있는 장소로 거듭나는 유효한 방법이라 생각했습니다.” 이규상 건축가가 말하는 설계의 방향이었다. 세 건축가는 장소의 종교적 상징성을 살리되 종교를 초월해 오늘을 사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공공의 공간으로 거듭나도록 과거와 현재, 기념성과 일상성을 대비하고 조화시키는 방식으로 디자인을 풀어냈다. 특히 기존의 근린공원과 재활용쓰레기처리장, 지하 4개층 3만 6000㎡의 공영주차장을 재편해 역사기념공간을 건립하는 작업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개념은 ‘땅 위와 땅 아래’, 즉 지하와 지상의 관계였다. “과거의 역사는 기억에 남고 현실은 삶으로 지속된다고 하지만 이 두 가지 개념은 별개의 것일 수 없습니다. 땅 위에서 벌어진 상처와 기념은 그 땅 아래로 스며들었고, 우리는 그 땅에 기대어 현재를 살고 있기 때문이죠.” 윤 교수는 “지상의 역사성을 담은 공원과 그에 기반한 지하 역사박물관은 불가분의 관계이고, 그들 간의 관계가 켜켜이 쌓인 시간의 흐름이 땅의 위아래를 넘나드는 공간의 흐름으로 전환되는 중요한 단초가 됐다”면서 ‘대지의 결속’을 설명했다. 그러니 이 역사적 공간의 답사는 지상의 공원에서 시작하는 것이 바른 순서다.서소문역사공원이라 이름 지어진 공원에는 천주교 박해 때 이곳에서 참수된 순교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현양탑이 서 있다. 순교자 현양탑은 원래 1984년 한국 천주교 창설 200주년을 기념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순교자 중 44명이 시성된 것을 기념해 세워졌다. 이후 서울시의 각종 시설물 설치 계획에 따라 부득이 철거했다가 1999년 새로운 순교자 현양탑을 세웠다. 공원에는 과거 처형장의 망나니가 피 묻은 칼을 씻었다고 하는 ‘뚜께 우물터’, 조각가 티머시 슈왈츠의 작품 ‘노숙자 예수 2013’도 설치돼 있다.추모의 기능과 장소의 의미들을 도시의 일상적 문맥 안으로 들여놓은 공원은 사방이 다양한 수종의 나무들로 녹색 띠를 이룬다. 중앙부는 잘 다듬어진 잔디광장에 지하에서 올라온 3개의 구조물이 서 있다. 붉은 벽돌과 거친 느낌의 노출 콘크리트, 내후성 강판의 물성이 각기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는 이 구조물은 지하 공간의 존재감을 알려 주는 동시에 지상의 빛을 지하로 끌어들이는 건축적 장치다. 윤 교수는 “원래 이 마당에 33m 높이의 메모리얼 타워를 배치해 자연스럽게 공원의 지반과 하늘과의 관계를 만들면서 작지만 알찬 역사공원으로서 존재감을 드러내도록 할 계획했으나 실현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공원을 가로질러 서남쪽 계단에 그나마 2층 높이 탑이 외부인들에게 공간의 존재를 알리는 표지 역할을 한다. 공원에서 계단을 내려가면 순교를 상징하는 조형물이 서 있는 박물관 입구가 나온다. 지하의 박물관은 종교적 공간이자 문화적 공간이다. 이 땅의 역사적 기록과 유물들을 전시하는 상설전시관과 기획 전시공간을 갖추고 있다. 공간은 다소 복잡해 보이지만 실은 무척 단순한 구조다.●주차장 격자모듈이 다층구조로 연결 윤 교수는 “기존의 주차장 일부 구조를 활용하다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철저히 주차장 공간의 효율적 측면만으로 고려해 설정된 격자모듈(가로 7.5m×세로 8m)이 공간의 기본 그리드(격자판)가 됐다”면서 “135개의 단위 입방체 격자판이 지하 2층과 3층에 다층적 구조로 연결되면서 끊임없이 증식 및 통합돼 가는 형식으로 전개되는데 각 단위 격자는 십자 기둥에 의해 독립적 공간이 된다”고 말했다.기해박해 때 순교한 성 정하상(정약용의 조카)을 추모해 만든 성 정하상 기념 경당은 방문자들이 이 장소의 본질적 의미를 체감하도록 만들어졌다.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완만한 내리막 경사를 따라 경당에 이르게 된다. 경당을 지나 순례길 같은 긴 길을 따라 내려가면 어둠이 짙게 드리운 기념 전당 ‘콘솔레이션 홀’에 이른다. 땅속 14m 깊이에 2m 높이로 떠 있는 가로 25m, 세로 25m, 높이 10m의 입방체 튜브는 ‘신념을 다한 위인들’을 위한 기념의 공간으로 존재한다. 그 한가운데로 한 줄기 빛이 쏟아진다. 이규상 건축가는 “공원에서부터 내려오는 이 빛은 이 장소에서 사라진 이들의 신념이 여전히 땅속 깊은 곳에서 영원히 비치는 것을 은유하면서 이 홀 전체가 박물관의 가장 소중한 전시물이 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어둠 속에서 한참을 있다 보니 빛이 그리워진다. 만초천을 상징하는 바닥의 희미한 빛을 따라가 문을 나서면 드라마틱하게 정방형의 하늘을 품은 광장이 나타난다. 가로·세로 각 33m, 높이 18m의 무표정한 붉은 벽돌에 둘러싸여 자연스럽게 시선을 하늘로 유도하는 하늘 광장이다. 압도적인 스케일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윤 교수는 “과거의 아픔이 하늘과 교우함으로써 영원히 빛나게 되길 기대하는 공간적 장치”라고 했다. 누군가에게는 묵상의 공간이 될 하늘 광장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정의를 향한 용기와 무한의 자유를 선사하는 것 같았다.함혜리 칼럼니스트
  • 끔찍한 기억, 망가진 몸뚱이…복지원 나와서 노숙인 됐다 [형제복지원 생존자, 다시 그곳을 말하다]

    끔찍한 기억, 망가진 몸뚱이…복지원 나와서 노숙인 됐다 [형제복지원 생존자, 다시 그곳을 말하다]

    <5> 1983~1987, 형제원 강제수용된 연생모씨 진술서‘낡은 옷 입었다’며 경찰이 형제원 보내모진 구타와 벌레 섞인 밥, 밤이면 성폭행 위협버스비 1만원 받고 퇴소 후, 서울역 노숙자 됐다 12년간 수용인원 총 3만 8000여명, 공식 사망자 513명. 1970~1980년대 국가 최대 부랑인 수용시설이었던 ‘부산 형제복지원’에서 벌어진 인권 유린 사태는 1987년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34년이 지난 지금,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이는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진상 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더는 기다릴 수 없다”는 생존자 13명은 지난달 20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에 나섰다. 법원에 낼 진술서를 쓰는 과정 또한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반드시 쓰여져야 할 글이었다. 서울신문은 매주 1명씩 이들의 증언을 기록으로 남긴다.●“망가진 제 인생, 누가 보상하나요” 홀로 쓸 수 없던 탄원서 “피고 대한민국은 형제복지원 피해자의 피눈물을 배상하라!” 지난달 20일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의 기자회견이 열린 서울중앙지법 앞. 구호를 외치던 한 남성이 구석으로 가 주저 앉아 눈물을 훔쳤다. 열다섯 나이에 형제복지원에 끌려가 1983년부터 1987년까지 수용된 연생모(53)씨다. 청소년기를 형제복지원에서 보낸 연씨는 구타와 성폭력, 굶주림에 시달렸다. 어느 날엔 벌레가 섞인 밥을 먹었고 어느 날엔 밥알 한 웅큼으로 허기를 달랬다. 열아홉, 연씨는 단돈 만원을 받고 형제복지원에서 퇴소했다. 시설 안에서의 인권유린이 세간에 알려지면서 형제복지원이 폐쇄되자 쫓기듯 나오게 된 것이다. 비로소 자유의 몸이 됐지만 새 삶을 살기엔 이미 몸도 마음도 상처가 깊었다. 연씨는 서울역과 영등포역에서 노숙인 생활을 오래했다. 연씨의 사례는 특별하지 않다. 이향직 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 대표는 “부산역 앞에서 형제복지원 진상규명을 위한 길거리 서명을 받았을 때 역 앞에 머무는 노숙인들로부터 ‘나도 형제복지원 출신’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4년 간의 형제복지원 생활로 인한 트라우마는 수십 년간 계속됐다. 쉰이 넘은 연씨는 지금도 불을 끄고는 잠에 들지 못한다. 시설에서의 일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숨이 가빠진다. 법원에 낼 진술서를 쓰면서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그는 지옥을 겪었다. 결국 그의 진술서는 다른 피해자들의 도움으로 쓰여졌다. 아래는 연씨의 진술서 전문. ※원문에서 일부 표현만 다듬어 그대로 옮겼습니다. [진 술 서] 제목: 형제복지원 피해자 진술서 성명: 연생모 진술내용: 판사님께 호소 드립니다. 저는 1983년 8월 어느 날, 부산에 놀러 갔다가 낡은 옷을 입고 돌아 다닌다는 이유로 경찰관에게 잡혀서 형제복지원 차량에 집어 던져졌습니다. 그 길로 형제복지원에 입소했습니다. 입소일부터 퇴소하는 날까지 매일 모진 구타와 고문과 같은 기합을 견뎌야 했습니다. 형제복지원 아동소대에서 한 달 동안 밥 먹고 선착순을 시켜서 물과 한 웅큼씩 손에 움켜진 밥알들로 버티기도 했습니다. (선착순대로 소대에 들어오는 순서 10등 안에 들면 안 맞고, 11등부터는 몽둥이 찜질에 몇시간 동안 고문 같은 기합을 당해야 하는 것) 각종 벌레들이 뒤섞인 음식들도 살기위해 먹어야 했고 밤에는 조장들의 성노리개가 되기도 했습니다. 1987년에 형제복지원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서울행 버스비라고 지급된 1만원을 받아서 퇴소할 수 있었습니다. 갑작스런 퇴소 이후에는 서울역과 영등포역 주변에서 오랜기간 길에서 노숙생활을 했습니다. 지금은 사회단체의 주선으로 서울 신림동(원룸)에 입주하여 살고있으나, 어린시절 온몸을 구타당해 나타나는 골병들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심각한 허리통증(디스크)이 저를 괴롭히고 있고, 밤에 불을 끄고는 잠을 못자고 수시로 과거의 기억이 생각나면서 숨이 막히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트라우마 증상으로 인하여 신경정신과에서 치료를 받고 약을 처방받아 먹고 있습니다. 배운것도 없고 망가질 대로 망가진 몸뚱이로 인하여 직장도 다닐 수 없는 상태라서 너무나 빈곤하게 살고 있습니다. 형제복지원에서 차단당한 제 인생을 국민의 마지막 보루인 법원을 통하여 배상받기 위해 소송을 하게 되었습니다. 부디 정당한 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길 간곡히 호소합니다. 형제복지원 피해자 연생모 형제복지원 사건, 어디까지 왔나 형제복지원을 운영한 고(故) 박인근 원장은 1989년 특수감금 혐의에 대해 무죄가 확정됐다. 2018년 문무일 전 검찰총장은 무죄 판결을 취소해 달라며 비상상고를 신청했지만 지난 3월 대법원에서 기각됐다. 다만 재판부는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했고 정부에서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당부했다. 형제복지원 사건과 관련해 국가를 상대로 첫 손해배상 소송에 제기한 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는 현재 2차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1차 소송에 참여한 13명은 모두 입·퇴소 증빙자료가 준비돼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은 이러한 증거가 없어 피해사실 입증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는 비용 부담 때문에 소송 참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피해자들을 위해 후원금을 모금하고 있다.
  • 尹 주춤하는 새… 몸 푸는 최재형·김동연

    尹 주춤하는 새… 몸 푸는 최재형·김동연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로 떠오른 최재형 감사원장이 조만간 거취를 표명할 것으로 보인다. 야권에선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대체하는 ‘플랜B’로 최 원장을 여기고 있으며, 여권에서는 감사원장의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점에서 견제 강도를 높이고 있다. 최 원장 측근인 강명훈 변호사는 20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조만간 결론 내릴 거 같다. 대권에 도전하는 방향으로 생각을 하고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지난 18일 최 원장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에서 ‘대선 출마 얘기가 나온다’는 질문에 “제 생각을 정리해 조만간에 (밝히겠다)”고 답했다. 최 원장은 40년 가까이 법관을 지내며 미담을 남긴 데다 감사원장 재직 기간에도 소신을 잃지 않았다는 평을 받는다. 이날 머니투데이 더300(the300)과 미래한국연구소가 여론조사업체 PNR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19일 전국 성인남녀 100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 포인트,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서 최 원장은 대선 지지율 4.5%로 여야 통틀어 5위를 차지했다. 윤 전 총장은 33.9%로 1위를 지켰지만 지난주 같은 조사에 비해 5.2% 포인트 하락했다. 여권에선 감사원장의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될 수 있다고 비판한다. 최 원장의 초등학교 동창이자 조국백서추진위원장을 맡았던 김민웅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는 “감사원장 현직을 가지고 대선을 생각한다면 그건 감사원장이라는 위치를 발판 삼아 하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 대권 주자인 최문순 강원지사도 “최 원장의 정치 선언은 민주주의의 원칙을 훼손하는 행위로 감사원장에서 사퇴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권주자인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도 이날 명동성당에서 노숙자를 대상으로 한 무료급식 봉사활동에 나섰다. 그는 “정치적 의도하고는 상관없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여야의 ‘러브콜’에 대한 질문에는 “코멘트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며 말을 아꼈다. 국민의힘 내 주자들도 본격 행보에 나섰다. 일찌감치 대선 도전을 알렸던 유승민 전 의원은 이날 대구에서 열린 지지 모임인 ‘희망22 동행포럼’ 창립 행사에 참석했다.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 “차라리 죽고싶어요” 유리조각 삼킨 12살 꼬마 [형제복지원 생존자, 다시 그곳을 말하다]

    “차라리 죽고싶어요” 유리조각 삼킨 12살 꼬마 [형제복지원 생존자, 다시 그곳을 말하다]

    12년간 수용인원 총 3만 8000여명, 공식 사망자 513명. 1970~1980년대 국가 최대 부랑인 수용시설이었던 ‘부산 형제복지원’에서 벌어진 인권 유린 사태는 1987년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34년이 지난 지금,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이는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진상 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더는 기다릴 수 없다”는 생존자 13명은 지난달 20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에 나섰다. 법원에 낼 진술서를 쓰는 과정 또한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반드시 쓰여져야 할 글이었다. 서울신문은 매주 1명씩 이들의 증언을 기록으로 남긴다. 귀가 중 경찰에 폭행당한 뒤 형제복지원으로“너 집 나왔지?” 1984년 당시 12살 꼬마였던 김의수(49)씨 앞에 경찰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친구 집에 놀다가 집에 가는 길”이라는 김씨의 말을 무시한 채 뒤통수를 때리고 정강이 걷어찼다. 그리고는 억지로 부암2파출소로 끌고 가 작은 손목에 수갑을 채웠다. 새벽녘에 몽둥이를 든 건장한 남자들이 들이닥쳤고 경찰들은 그들의 손에 김씨를 넘겼다. 그렇게 김씨는 ‘탑차’에 실려 형제복지원에 끌려갔다. 그곳은 지옥이었다. 매일같이 구타를 당했고 얼차려를 받아 몸이 성한 곳이 없었다. 극히 드물게 매를 맞지 않은 날엔 오히려 더 큰 불안감과 공포감이 엄습했다. 밤새 차가운 화장실 바닥에 앉아 아이들의 신발을 빨고 청소를 했다. 고통의 나날이 계속되자 어떤 날은 죽으려고 유리를 삼켰다. 다행히 목에 걸려 토악질로 뱉어냈다. 그렇게 3년의 세월이 흐르고서야 형제복지원을 나갈 수 있었다. 이미 호적은 말소된 상태였고 한동안 부모님도 찾을 수 없었다. 주민등록증을 재발급 받고 집을 찾으려면 관공서나 경찰의 도움이 필요했지만 또다시 형제복지원 같은 곳에 끌려갈까 두려웠다. 공장에서 일을 시작했지만 임금을 받지 못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래도 두려움에 신고할 수 없었다. 결국 한동안 노숙자 생활을 했다. 이후 우연히 가족을 찾았고, 가정도 꾸렸다. 하지만 김씨는 그 누구도 자신의 고통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고 느낀다. 구타로 얼룩진 온몸은 만신창이가 됐고, 정신적 트라우마로 우울증 약을 복용한다. 그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국가의 책임 인정과 잃어버린 존엄성을 되찾는 일이다. 아래는 김씨의 진술서 전문. ※원문에서 일부 표현만 다듬어 그대로 옮겼습니다. [진 술 서] 제목: 형제복지원 피해자 진술서 성 명 : 김의수 진술내용 : 1984년 2~3월경 저는 친구 집에서 놀다가 저희 집으로 귀가하던 길이였습니다. 저 멀리 순경과 방범대원이 보였고 그들은 길을 가던 저를 불러세웠습니다. 시간은 밤 8시경 정도 됐던 것 같습니다. 저는 순경 앞으로 걸어갔고 그들은 “너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친구네에서 놀다가 집으로 가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순경은 저의 뒤통수를 치며 말했습니다. “너 집 나온 것 같은데. 집 나왔지?” 라면서 저를 잡아끌고 가려 했습니다. 저는 저항을 했지만 그들은 구둣발로 제 정강이를 찼습니다. 그리고는 부암2파출소로 끌고 갔습니다. 저는 죄도 없는데 왜 그러느냐고 집으로 보내달라고 말했지만 그들은 저를 거꾸로 매달아서 콧구멍에 고춧가루 물을 붓는다는 협박과 함께 저를 구타했습니다. 그러다 한 순경이 저의 팔을 잡아서는 긴나무 의자에 앉히고는 의자 손잡이와 저의 한쪽 손에 수갑을 채웠습니다. 그렇게 저는 지쳐 잠이 들었습니다. 얼마쯤 잠이 들었을까. 웅성거림에 잠에서 깨었고, 앞을 보니 파란 운동복에 모자를 쓰고 몽둥이를 들고 있는 건장한 남자들이 보였습니다. 그들은 저를 가리키며 “저놈 데려가면 됩니까”하니 순경은 “데려가라”고 했습니다. 파출소에서 나와보니 검정색 형제원 탑차가 있었습니다. 차량 안에는 이미 나이가 든 술취한 아저씨와 아주머니, 저 또래의 이이들 잡혀 있었고. 그 사람들과 함께 형제복지원에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형제복지원에 끌려가 처음에는 신입소대에 머물렀고 소지품 검사부터 알몸 검사까지 받았습니다. 그렇게 형제원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두 달 정도 신입소대에 있으면서 형제원에 대한 수칙들을 배웠습니다. 찬송가, 주기도문, 군가, 애국가, 국민교육헌장, 재식 훈련 등을 배웠습니다. 배우다 조금이라도 틀리면 매를 맞고 기합을 받고 구타를 당했습니다. 어른의 큰 손으로 아이 뺨 때려 고막 터지기도...매일같이 반복된 폭행그런 기본적인 것을 배우고 난 후 다른 소대로 전방된다고 하며 피복 창고 앞으로 모이게 했습니다. 파란 운동 한 벌과 청바지, 티와 신발, 칫솔, 수건 등을 주었고 수용번호까지 받았습니다. 그렇게 아동 소대인 28소대로 전방됐습니다. 그곳에는 소대장, 분대장, 조장, 서무가 소대 안을 통제했습니다. 군대식으로 통제를 했지만 그곳은 지옥이었습니다. 하나가 잘못하면 단체로 기합을 받고 매를 맞았습니다. 지적 질을 당한 아이는 더 심한 기합과 구타를 당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불침번을 서야 하며 누가 도망 모의를 하는지 감시도 해야 했습니다. 사소한 것 하나라도 간부들에게 찍히거나, 밤에 이불에 오줌싸는 아이, 도망 모의를 해서 걸리거나 하면 꼴통으로 낙인찍힙니다. 그러면 다른 아이들보다 더한 고통을 받게 됩니다. 저는 늘 꼴통으로 찍혔고 심한 인권침해를 당해야 했습니다. 한 달에 20일은 잠을 제대로 잔 적이 없고, 매일같이 기합을 받고 밤새도록 침대 밑을 닦았으며 차가운 화장실 바닥에 앉아서 소대 아이들의 신발을 빨아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치질도 걸리고 감기도 자주 걸렸습니다. 그렇게 비염도 생겼습니다. 어른들의 손으로 아이의 뺨을 때리니깐 잘못하면 귀도 터집니다. 그 무렵 개금분교(형제복지원 내 운영된 학교시설)를 다녔습니다. 우리(형제복지원)가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대외적으로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개금분교는 형제원안에 있습니다. 제대로 된 공부는 늘 부족했습니다. 수업은 자주 빠지게 되었습니다. 기합을 받느라 수시로 강제노역을 해야했기 때문입니다. 강제노역은 이러합니다. 시멘트, 자갈, 모래 등을 날라야 했습니다. 그렇게 아동소대에서 2년, 5~6학년을 졸업했고 청소년 소대로 넘어갔습니다. 14소대로 넘어가서는 낮에는 봉제공장을 다녔고 밤에는 야학 공부를 했습니다. 다 형제원 안에서 다녔습니다. 기합을 주고 죽을 만큼 구타하는 것은 아동소대나 성인소대나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루라도 구타 안 당하면 오히려 더 불안...죽으려고 유리 삼켜 어린 나이에 지옥 같은 형제원에 끌려가서 잘 먹지도 못하고 강제노역 기합 구타를 당하니 몸 여기저기 성한 곳이 없을 지경입니다. 하루라도 기합이나 구타를 안 당하면 오히려 이상해서 무엇인지 더 불안했고 공포에 떨어야 했습니다. 고통스러운 날이 많으니 어떤 날은 죽으려고 유리도 삼켰지만 목에 걸려 토악질로 뱉어낸 적도 있습니다.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형제원에서 지옥 같은 일들을 당했고 하루하루 생존에 버텨왔습니다. 1987년 형제복지원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고 그해 6월경에 부산 송도 소년의집으로 넘어갔습니다. 그곳에 도착하여 저는 집이 있으니 보내달라고 했으며 큰집으로 귀가 조치되었습니다. 호적은 말소됐고 주민등록증도 없이 몇 년 동안 살아야 했습니다. 부모님이 이사를 가셔서 찾지를 못했습니다. 그렇기에 여기저기 몸이 아파도 일을 해야 했고 공장을 다니면서 일을 해주고도 돈을 제대로 지급받지 못했습니다. 가족 찾고 가정 꾸렸지만...그 누구도 고통과 트라우마 온전히 이해못해 돈을 달라고 하면 “주민증도 없는 것들”, “빨갱이로 신고한다”며 협박을 했기에 늘 일을 해주고도 도망 다녔습니다. 왜냐하면 또 다시 그런 곳에 잡혀갈까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노숙자 생활도 하게 됐습니다. 집을 찾거나 주민증을 만들려면 관공서나 경찰 도움을 받아야 했지만 저는 그들을 믿을 수 없었기에 그런 것은 포기하고 형제원에 있었단 사실조차 숨기며 살았습니다. 몇 년이 지나고 길거리에서 우연히 부모님을 찾게 됐고 같이 살게 됐지만 가족 간에 유대감이 없어 늘 다투기만 했고 융합은 잘 안 됐습니다. 배움이 부족했기에 학원을 다니며 검정고시를 준비했습니다. 중·고등 과정을 시험 쳤습니다. 그러던 중 연애를 고 아이 아빠가 되었지만 아이 엄마는 떠나버렸습니다. 이유는 제가 생활력이 부족하단 것이었습니다. 아이는 제 차지였고 홀로 아이를 키웠습니다. 가족이나 다른 사람들은 신체가 멀쩡하게 보이는 젊은 사람(본인)을 이해하지 못했습니. 제가 정신적·육체적으로 얼마나 힘이 들었던 사람인지 어느 누구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형제원 안에서 몇 년의 고통이 수십 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것 입니다. 휴유증은 이렇습니다. 머리를 많이 맞아서 두통이 심하며 왼쪽 귀는 터졌고, 알레르기 비염이 있고, 왼쪽 어깨와 왼쪽 엄지 마디를 다쳤습니다. 허리는 3. 4. 5번 디스크이며 성장기에 강제노역을 해서 고관절도 상했습니다. 왼쪽 무릎은 도망치다 4층 높이 되는 담에서 뛰어내려 물렁뼈가 좋지 않습니다. 오른쪽 아킬레스건도 큰 돌에 찍혔습니다. 물구나무를 서서 기합받을 때 (그들이) 저의 다리를 잡고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는데 맞은 편 침대 앵글에 찍혔습니다. 그래서 많이 걷거나 쪼그려 앉을 때 찢어질 듯 아픕니다. 정신적 트라우마로 우울증 약과 수면제를 복용하고 정신과를 다닙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이 소송은 저의 유일한 희망입니다. 지금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제라도 배상을 받아서 사회적 치료와 잃어버렸던 저의 존엄성을 찾아주십시오. 저의 아픔을 아들에게 대물림되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형제복지원 피해자 김의수형제복지원 사건 어디까지 왔나 형제복지원을 운영한 고(故) 박인근 원장은 1989년 특수감금 혐의에 대해 무죄가 확정됐다. 2018년 문무일 전 검찰총장은 무죄 판결을 취소해 달라며 비상상고를 신청했지만 지난 3월 대법원에서 기각됐다. 다만 재판부는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했고 정부에서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당부했다. 형제복지원 사건과 관련해 국가를 상대로 첫 손해배상 소송에 제기한 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는 현재 2차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1차 소송에 참여한 13명은 모두 입·퇴소 증빙자료가 준비돼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은 이러한 증거가 없어 피해사실 입증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는 비용 부담 때문에 소송 참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피해자들을 위해 후원금을 모금하고 있다. 이혜리 기자 hyerily@seoul.co.kr
  • 의무 접종대상인데… 폰 없어 백신 못 맞는 노숙인

    의무 접종대상인데… 폰 없어 백신 못 맞는 노숙인

    노숙자는 코로나19 백신 의무 접종 대상이지만 10명 중 3명만이 코로나19 백신을 맞은 것으로 조사됐다. 시민단체 홈리스행동은 16일 서울역 등 서울시내 주요 공공역사 6곳에서 지난달 13일부터 26일까지 노숙인 101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71명(70.3%)이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받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접종을 받았다는 응답률은 29.7%로, 실태 조사가 끝난 지난달 27일 기준 코로나19 취약시설 백신 접종 대상자의 1차 접종률(86.3%)과 큰 차이를 보였다. 정부는 지난 4월 ‘코로나19 취약시설 대상 예방접종 시행지침’을 발표하면서 ‘노숙인 거주 및 이용시설’ 이용자 1만 5543명과 종사자 1986명을 2분기 코로나19 백신 접종 대상자로 정했다. 백신을 맞지 않거나 못한 이유에 대해 미접종자의 43.7%(31명·복수응답 가능)는 ‘접종 후 이상반응 관리가 어려울 것 같아서’라고 답했다. 33.8%(24명)는 ‘백신 예방 접종에 관한 정보가 부족해서’라고 밝혔다. 홈리스행동은 “극도로 열악한 환경과 백신에 관한 정보 접근 제약이 결과적으로 접종률 저하로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본인 명의의 스마트폰을 소지하고 있다는 응답자는 10.9%(11명), 일반 휴대전화를 갖고 있다는 응답자는 8.9%(9명), 공인인증서·아이핀 인증이 가능한 사례는 1%(1명)인 것으로 조사됐다. 홈리스행동은 “백신 접종 예약이 주로 온라인을 통해 이뤄지고 연락처가 없으면 예약은 물론 접종 관련 안내조차 받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할 때 홈리스가 개별적으로 백신 접종을 받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최영권 기자 story@seoul.co.kr
  • 코로나19 백신 우선 접종 대상임에도 홈리스 10명 중 3명만 맞아

    코로나19 백신 우선 접종 대상인 노숙자 10명 중 3명만이 코로나19 백신을 맞은 것으로 조사됐다. 시민단체 홈리스행동은 16일 서울역 등 서울시내 주요 공공역사 6곳에서 지난달 13일부터 26일까지 노숙인 101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71명(70.3%)이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받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접종을 받았다는 응답률은 29.7%로, 실태 조사가 끝난 지난달 27일 기준 코로나19 취약시설 백신 접종 대상자의 1차 접종률(86.3%)과 큰 차이를 보였다. 정부는 지난 4월 ‘코로나19 취약시설 대상 예방접종 시행지침’을 발표하면서 ‘노숙인 거주 및 이용시설’ 이용자 1만 5543명과 종사자 1986명을 2분기 코로나19 백신 접종 대상자로 정했다. 백신을 맞지 않거나 못한 이유에 대해 미접종자의 43.7%(31명·복수응답 가능)는 ‘접종 후 이상반응 관리가 어려울 것 같아서’라고 답했다. 33.8%(24명)는 ‘백신 예방 접종에 관한 정보가 부족해서’라고 밝혔다. 홈리스행동은 “극도로 열악한 환경과 백신에 관한 정보 접근 제약이 결과적으로 접종률 저하로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본인 명의의 스마트폰을 소지하고 있다는 응답자는 10.9%(11명), 일반 휴대전화를 갖고 있다는 응답자는 8.9%(9명), 공인인증서·아이핀 인증이 가능한 사례는 1%(1명)인 것으로 조사됐다. 홈리스행동은 “백신 접종 예약이 주로 온라인을 통해 이뤄지고 연락처가 없으면 예약은 물론 접종 관련 안내조차 받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할 때 홈리스가 개별적으로 백신 접종을 받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최영권 기자 story@seoul.co.kr
  • 길가의 노숙자에게 자신이 가진것 준 미국 대학생 화제

    길가의 노숙자에게 자신이 가진것 준 미국 대학생 화제

    미국 플로리다의 한 대학생이 ‘선한 사마리아인’으로 세계 네티즌의 칭찬을 한 몸에 사고 있다. 마이애미 헤럴드는 15일 길가에서 자신이 가진 것을 노숙자에게 주는 한 대학생이 동영상 공유 사이트 틱톡에 포착됐다고 보도했다. 자바리 리차드슨이란 이름의 이 대학생은 틱톡 사용자에 의해 기부의 현장이 널리 알려졌다. 리차드슨은 차의 트렁크를 열어 길가에서 “어떤 것이든 도와주세요! 신의 축복이 있기를!”이란 팻말을 들고 있는 노숙자에게 옷, 신발 등을 모두 주었다. 틱톡 사용자는 기부의 현장을 기록하면서 “나는 이 청년을 모르지만 그는 널리 알려질 가치가 있다”고 남겼다. 일요일인 지난 13일 틱톡에 올라온 17초짜리 영상은 600만명 이상이 시청했으며, 110만개의 ‘좋아요’를 획득했다. 틱톡 사용자들은 대학생의 선행에 소름이 돋았다고 했다. 네티즌들은 “영상의 주인공은 누군가 자신의 행동을 지켜보고 기록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감동받은 마음을 털어놓았다. 리차드슨은 플로리다 A&M 대학의 4학년생으로 이사를 하는 중이었으며, 자신이 가진 물건을 팔기보다는 누군가 필요한 사람에게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면서 이후 틱톡 영상이 인기를 끌자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는 이어 “자라면서 어머니가 항상 어려운 사람들이 많으며 누구나 나처럼 축북받은 것이 아니라고 가르쳤다”면서 “어머니 말씀을 항상 새겼고, 모든 것은 눈깜짝할 사이에 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아시아계, 너희 나라로 돌아가!”…민족 불문 증오범죄 美서 확산

    “아시아계, 너희 나라로 돌아가!”…민족 불문 증오범죄 美서 확산

    민족 불문, 아시아계면 무조건 증오 대상으로 삼고 보는 미국 세태가 우려스럽다. 한국계건 중국계건 가리지 않고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탓에, 외출이 꺼려진다는 호소도 나온다. 8일에는 필리핀계 미국인이 당했다. 미국 ABC뉴스에 따르면 이날 아침 7시 20분쯤 뉴욕 맨해튼 지하철역에서 50대 필리핀계 남성이 괴한 주먹에 맞아 쓰러졌다. 익명을 요구한 피해자는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다른 아시아계 남성을 위협하던 가해자가 자신에게도 같은 말을 반복하며 주먹을 날렸다고 밝혔다.피해자는 “앞에 있던 아시아계 남성이 가까스로 자리를 피한 후, 가해자가 내게 시선을 돌렸다. 나를 궁지에 몰고 여러 차례 얼굴을 가격했다.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말도 빼먹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가해자 나이는 20~30대로 추정되며, 노숙자로 보이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금전을 노린 강도 행각이 없었던 것으로 보아, 증오범죄가 확실하다고도 말했다. 코피를 쏟아 마스크는 피범벅이 됐고, 얼굴에는 시퍼런 멍이 들었지만 두렵거나 화가 나지는 않는다는 게 피해자 설명이다. 그저 다른 아시아계 미국인의 피해가 걱정될 뿐이라며, 자신의 사례가 관련 범죄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피해자는 “(민족과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무작위로 범죄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게 우려스럽다”고 걱정했다.실제로 국적과 민족을 불문한 아시아계 증오범죄는 좀처럼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아시아계 이민자를 위한 이익단체 ‘AAPI(아시아·태평양계) 증오를 멈추라’가 낸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3월19일부터 올해 2월28일까지 1년간 미전역에서 보고된 증오범죄는 3795건에 달했다. 흑인이나 히스패닉 등을 상대로 한 증오범죄율은 6% 감소했으나, 유독 아시아계를 대상으로 한 증오범죄만 149% 급증했다. 지난달 19일 캘리포니아 산호세에 거주하는 50대 한인 남성 구모씨도 같은 피해를 봤다. 구씨와 주차 시비가 붙은 히스패닉계 백인 남성은 구씨 차를 부수고 폭행을 가했다. “중국인은 꺼지라”며 총격 협박도 했다. “나는 중국인이 아닌 한국인”이라는 구씨 항변에는 “아시아계는 전부 다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폭언을 퍼부었다. 지난해 3월 일리노이주 시카고에 사는 60대 중국계 남성은 여성 두 명에게 침을 맞고 “중국으로 돌아가라”는 말을 들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한국 카지노 드나들어” 실종 日코치 노숙자로 발견

    “한국 카지노 드나들어” 실종 日코치 노숙자로 발견

    KBO리그에서도 뛰었던 일본인 투수 카도쿠라 켄(47) 전 주니치 드래건스 2군 투수코치가 실종된 지 2주가 넘어 공원에서 노숙자로 발견됐다. 일본 잡지사 프라이데이는 2일 ‘카도쿠라 켄 실종의 진상’이라는 기사를 통해 카도쿠라가 요코하마의 공원에서 노숙하고 있는 모습으로 발견이 됐다고 보도했다. 매체는 측근의 말을 인용해 “카도쿠라가 나서지 못하는 것은 불륜이 원인”이라고 추측했다. 측근은 카도쿠라가 시나가와에서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기혼 여성과 부적절한 만남을 유지했었고, 실종된 상태에서 열흘 안팎으로 카와사키 호텔에서 단둘이 투숙을 하다 여성의 남편에게 걸렸다고 말했다. 남편이 카도쿠라의 불륜을 구단에 항의했고, 구단이 추궁하자 카도쿠라는 이를 인정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구단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같은날 닛칸 겐다이는 카도쿠라가 한국에 있는 카지노에 자주 드나들었고, 채무 문제로 인해 실종이 됐다고 보도했다. 3억엔(한화 약 30억원) 짜리 대저택으로 소개된 그의 자택이 2008년 준공 이후 두 차례 압류를 거쳐 최근 한국계 은행에 약 8000만(약 8억 2000만원)엔 저당권이 설정돼 있는 점도 언급됐다. 석간 후지는 “현역 코치가 시즌 중에 행방불명되는 전대미문의 미스터리한 사건이 발생한 가운데, 과연 진실이 밝혀질 것인가”라고 썼다.카도쿠라는 지난 15일부터 주니치 2군 선수단 훈련에 무단 결근하면서 사라졌다. 16일 가족들이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지만 2주가 되도록 행방을 알 수 없다. 카도쿠라가 쓴 문서가 지난 20일 전달됐고, 편지에는 ‘개인 사정으로 팀 코치직을 그만두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가족이 친필임을 확인한 뒤 주니치 구단은 퇴단을 결정했다. 지난 2009~2011년 SK 와이번스와 삼성 라이온즈 선수로, 2013~2015년 삼성 코치로 활약해 친숙한 이미지였던 카도쿠라를 국내 팬들도 걱정하고 있다. 그의 아내는 실종 전날인 14일 밤까지 화상전화로 평소처럼 이야기를 나눴던 남편이 하루아침에 사라져 충격이 큰 상태다. 그는 일본 후지TV ‘바이킹 MORE’와의 전화인터뷰를 통해 “정신이 없다. 이유도, 원인도 모르겠다. 설마 하는 느낌도 든다. 무슨 일이든 빨리 연락 왔으면 좋겠다. 혹시 근처에 계신 분들이 계시다면 빨리 연락해주길 바란다. 가족과 친구들 모두 기다리고 있으니 빨리 들어왔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그는 “사이도 정말 좋다. 언제나 함께였다. 꼭 옆에 있어줬으면 하는 사람이다. 소중한 존재”라고 애정을 드러내며 울먹였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아시아인 죽이는 게 내 전문”…美노숙자, 아시아계 여경 공격

    “아시아인 죽이는 게 내 전문”…美노숙자, 아시아계 여경 공격

    차이나타운서 “아시아인 죽인다” 위협검문하는 아시아계 여경마저 공격경찰 “행인들의 용감한 행동에 감사” 미국의 노숙자가 차이나타운에서 인종차별적 발언을 쏟아내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아시아계 경찰마저 공격했다. 경찰은 바닥에 넘어져 노숙자에게 깔리고 목조르기까지 당하는 수모를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1일 미국 지역방송에 따르면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경찰은 관내 차이나타운에서 한 남성이 인종차별적 위협 발언을 한다는 신고를 받았다. 이 남성은 “아시아인을 죽이는 게 내 전문”이라며 주변 사람들을 위협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이 공개한 감시카메라 영상을 보면 현장에 도착한 아시아계 여성 경찰은 노숙자에게 뒤돌아서서 머리에 손을 올리라고 명령했다. 경찰이 노숙자 등 뒤로 가까이 다가서며 무기를 가졌는지 묻는 순간, 노숙자가 몸을 돌리는 듯하더니 순식간에 그를 바닥으로 넘어뜨렸다. 노숙자는 경찰을 깔고 앉아 머리를 잡아당기고 목까지 조르기까지 했다. 경찰은 빈백건(bean bag gun·알갱이가 든 주머니탄)을 몸에 두르고 있었지만, 제때 손을 뻗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그 때 지나가던 행인들이 하나둘 달려와 경찰을 도왔다. 뒤이어 동료 경찰들이 도착해 노숙자를 완전히 제압했다. 갑작스런 습격을 받은 경찰은 경미한 상처를 입을 것으로 파악됐다. 한 행인은 “노숙자가 몸집이 큰 사람이었고, 손으로 (경찰관의 머리와 목을) 꽉 움켜쥔 채 풀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이 노숙자는 과거에도 노인과 경찰 폭행 등 혐의로 체포된 적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경찰은 노숙자를 증오범죄 혐의로 조사 중인지 밝히지 않았지만, 시민들에게 큰 도움을 받았다면서 공개적으로 감사를 표시했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안전 한국에 열광한 내 딸 앗아간 상습 음주운전자, 대만 유족 일상도 덮쳤다

    안전 한국에 열광한 내 딸 앗아간 상습 음주운전자, 대만 유족 일상도 덮쳤다

    “딸과 함께 한국의 한 카페에 있을 때였어요. 딸이 탁자 위에 스마트폰을 그냥 두고 주문하러 가길래 물었죠. ‘잃어버릴 수도 있는데 이렇게 두고 가도 되냐’고요. 딸은 ‘한국에선 아무도 가져가지 않는다’고 대답했어요. 한국은 안전한 나라라고 굳게 믿고 있던 딸에게 이런 일이 생긴 게 아직도 믿겨지지 않아요.” 지난해 11월 한국에서 유학 중이던 딸 쩡이린(당시 28세)을 음주운전 사고로 잃은 부모 쩡칭후이(69)와 스위칭(62)은 30일 서울신문과의 화상 인터뷰에서 딸을 보러 대만 치아이에서 한국을 방문했을 때 겪었던 일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코로나19 사태 전 두 사람은 딸을 보기 위해 여러 차례 한국에 왔었다.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딸은 캐나다 대학에 진학했고, 그곳에서 한국인 친구들을 만났다. 친한 친구의 초대로 한국에 방문한 딸은 오래지 않아 한국과 사랑에 빠졌다. 딸은 친절한 사람들과 깨끗하고 안전한 거리, 맛있는 음식에 대해 말하며 한국에서 학업을 이어 가겠다고 했다. 어렸을 때부터 신중한 성격이었던 딸의 선택을 두 사람은 적극 지지했고, 그렇게 딸은 한국에서의 유학 생활을 시작했다. 딸은 5년간 유학생활을 하면서 부모와 영상 통화로 안부를 나눴다. 서로의 건강을 살피고 안녕을 위해 기도하는 일은 가족들이 하루도 빼먹지 않고 하는 일이었다. 지난해 11월 6일은 딸이 약속이 있어 통화를 하지 못한 날이었다. 어머니는 딸에게 안부 문자를 보냈고, 딸은 “교수님께서 집에 모두를 초대해 저녁 식사를 같이했다”며 “잘 지내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몇 시간 뒤, 평소 같으면 집에 도착했다고 알려 왔을 딸에게서 아무런 연락이 오질 않았다. 어머니는 딸에게 “집에 잘 도착했니? 아침에 다시 답장 주렴”이라고 문자를 보냈다. ●믿을 수 없는 딸의 죽음… 가해자는 상습범 이튿날 아침 한국에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수화기 너머로 딸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들렸다. 두 사람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대성통곡했다. 한국 비자를 받기 위해 코로나 검사를 받았지만 가장 빠른 한국행 항공편은 사흘 뒤에나 있었다. 두 사람은 그동안 딸의 사고 소식이 제발 사실이 아니기를 간절히 빌었다. 전날 밤 11시 40분쯤 쩡이린은 서울 강남 논현로의 한 횡단보도에서 보행자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초록불을 보고 걸음을 내디딘 그녀를 친 건 제한속도 50㎞/h를 훌쩍 넘는 속도(80.4㎞/h)로 주행하던 한 차량이었다. 운전자는 혈중알코올농도 0.079%의 음주 상태였다. 면허 취소(0.08%) 수준이었다. 음주운전도 처음이 아니었다. 2012년과 2017년 음주운전으로 적발돼 각각 벌금 300만원과 100만원을 낸 전력이 있었다. 가해자가 음주운전자였다는 사실은 쩡이린의 부모를 분노케 했다. 게다가 음주운전으로 이미 처벌받은 전력이 있었다는 사실은 두 사람을 더욱 절망하게 했다. 가해자가 자신의 잘못에 대해 조금이라도 반성을 했었더라면, 음주운전의 위험성에 대해 한 번이라도 생각했더라면 술을 마신 채 운전하지 않았을 것이고 보물 같은 딸을 잃을 일도 없었을 터였다. 딸의 장례를 치르는 동안 딸을 지켜본 친구들과 교수들이 부부에게 많은 위로를 건넸다. 사람들은 딸의 심성이 얼마나 고왔는지, 주변에 얼마나 많은 사랑을 줬는지 말했다. 쩡이린의 부모는 “딸은 유치원 때 선생님이 태국과 미얀마 국경지대에서 많은 어린아이들이 힘들게 살고 있다고 말하자 곧장 집에 고이 모아 뒀던 용돈을 기부했다”며 “한국에서도 크리스마스 때면 노숙자들을 위해 장갑과 목도리, 음식을 보내면서도 나눌 것이 부족하다며 눈물짓던 아이였다”고 떠올렸다. 따뜻한 마음씨를 지닌 딸은 그렇게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다. ●형량 줄이려 일방적 용서 구하는 가해자 가해자는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위험운전치사)과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운전)으로 구속기소됐다. 올해 1월 열린 첫 공판에서 가해자는 자신의 혐의를 모두 인정하고 반성한다고 했다. 쩡이린의 부모가 딸의 친구를 통해 가해자를 엄벌에 처해 달라고 촉구한 청와대 국민청원이 게시된 지 열흘 만에 2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은 뒤였다. 가해자 측 변호인은 첫 공판에서 “대만 현지 변호사를 통해 (피해자 유족 측에) 계속 사죄하고 합의하려 하는데 만만치 않은 상황”이라면서 “재판을 마치기 전에 합의를 하겠다”고 했지만, 피해자 측 변호인은 “피고인 측이 저를 통해 편지를 보냈지만 피해자 유족분들은 편지 읽기를 원치 않아 전달하지 못했다”면서 “합의 여지도 없다”고 답했다. 쩡이린의 부모는 가해자 측의 접촉을 ‘괴롭힘’에 빗대며 합의할 의사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소중한 딸의 생명을 앗아 갔음에도 형량을 줄이려는 목적으로 일방적인 용서를 종용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어서다. 쩡이린의 아버지는 “재판 진행 과정에서 ‘합의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음에도 가해자는 현지 변호사를 선임해 유족과의 접촉을 지속적으로 시도했다”며 “내가 마취과 의사로 근무하는 병원에 찾아오는가 하면 우리 부부가 다니던 교회를 찾아와 지인들에게 두 사람의 거취를 묻는 통에 교회를 갈 수도 없었다”고 털어놨다. 합의가 여의치 않자 가해자의 아내가 직접 대만에 오기도 했다. 부부가 만남을 거절하자 가해자 측은 대만 현지 언론을 통해 ‘용서를 구하고 싶은데 유족이 만나주지 않는다’는 취지로 인터뷰를 했다. 쩡이린의 부모는 “딸을 잃은 슬픔을 가누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가해자 측은 일방적으로 우리 일상에 침범해 왔다”면서 “진정으로 반성한다면 감형을 위해 우리를 괴롭힐 것이 아니라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시력 핑계,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1심 재판 과정에서 유족들과의 합의에 실패한 가해자 측은 사고 발생 당시 불가피한 사정이 있었다는 논리를 펴기 시작했다. ‘왼쪽 눈에 꼈던 시력 교정용 렌즈가 돌아가 순간적으로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다’는 것이다. ‘오른쪽 눈은 각막이식 수술로 인해 렌즈를 낄 수 없었던 점을 참작해 달라’고도 덧붙였다. 재판부는 이러한 논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 눈이 건강하지 못했다면 운전에 더욱 주의를 기울였어야 했는데도 술까지 마신 채 운전을 한 건 오히려 비난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쩡이린의 부모도 황당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두 사람은 “눈이 보이지 않는데 길에서 뛰어다니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느냐”면서 “(가해자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은 채 수치를 모르는 변명을 하고 있다”고 분노했다. 검찰은 가해자에게 징역 6년을 구형했지만 재판부는 이보다 높은 징역 8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해자 유족이 용서할 뜻이 없음을 밝혔지만 사죄와 피해회복을 위해 노력한 점을 양형에 참작했다고 했다. 가해자 측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한 상태다. 2018년 12월부터 이른바 ‘윤창호법’이 시행되면서 음주운전으로 사망사고를 내면 최고 무기징역까지 선고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난해 7월 마련된 대법원 양형기준에서 권고형은 징역 4~8년(가중영역)이라 사실상 최고형이 징역 8년에 머물러 있는 상태다. 쩡이린의 부모는 검찰의 구형보다 높은 형을 선고한 판사에게 감사를 표하면서도 음주운전자에 대한 처벌이 더 강화되지 않으면 재발을 방지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두 사람은 아직도 밤에 제대로 잠들지 못 한다. 잠이 들었다가도 한밤중 깨어 눈물을 쏟는 날이 많다. 딸이 피를 흘리는 모습, 길을 건너다 쓰러지는 모습이 머릿속을 맴돌아서다. 어디에나 딸의 추억이 서려 있지만 이제는 딸을 볼 수도, 들을 수도, 안아볼 수도 없게 됐다. 영상 통화 화면 너머로 두 사람이 오열하며 말했다. “딸의 웃음소리로 가득하던 집엔 이제 딸을 그리워하는 부모만 남았어요. 사랑하는 딸이 더이상 아프지 않길 매일 기도합니다.” 민나리·김주연 기자 mnin1082@seoul.co.kr
  • [열린세상] ‘11월 집단면역’, 위기의 끝이 아니다/하대청 광주과학기술원 기초교육학부 교수

    [열린세상] ‘11월 집단면역’, 위기의 끝이 아니다/하대청 광주과학기술원 기초교육학부 교수

    백신 개발 소식이 전해질 때만 해도 끝이 보일 것 같던 코로나19 위기는 백신 공급 문제로 여전히 긴 어둠 속에 있다. 정부는 늦어졌던 백신 공급이 재개되면서 11월에는 70%의 국민에게 백신을 접종해 이른바 집단면역을 달성하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이틀 전에 한 정부 당국자는 이르면 9월에도 집단면역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정부가 집단면역 시점을 계속 언급할수록 국민은 지난해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 희망을 건 것처럼 집단면역에 새 희망을 걸 것 같다. 하지만 집단면역이 이 위기를 종식시킬 것이라며 그 수치와 시점을 못 박는 것이 적절한 것일지 의문이다. 집단면역은 자연적 감염이나 예방 접종을 통해 면역력을 가진 인구가 다수가 되면 바이러스가 감염시킬 숙주를 찾지 못해 전파되지 않는 상황을 말한다. 한국은 그동안 확진자들이 적었기 때문에 예방 접종으로 면역력을 가진 인구를 확보해야 하며 정부는 70% 접종을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미 대통령 수석 의료자문역인 파우치 박사가 집단면역에 필요한 접종 인구수를 발표 때마다 높이다가 최근 아예 집단면역 이슈를 잊고 최대한 많이 접종해야 한다고 말한 것처럼 이 계산은 정확한 것이 아니다. 지역별·연령별 차이, 사람들의 행동 양식, 바이러스의 변이 등에 따라 전염성이 달라져 구체적인 숫자로 말하기 어렵다. 집단면역을 달성하는 일도 쉽지 않다. 접종받은 사람이 무증상 상태로 다른 이들을 감염시킬 수 있고 면역력이 일시적이라서 다시 감염될 수도 있다. 이번에 인도에서 새 변이 바이러스가 나왔듯이 바이러스의 변이는 백신의 효능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 예상할 수 있듯이 집단면역에 이르지 못한 해외에서 다시 유입되는 일도 있을 것이다. 결국 집단면역이라고 부를 수 있는 단계로 가는 일은 많은 불확실성과 어려움 위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근본적으론 집단면역이 의미하는 바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바와 같지 않다. 집단면역에 이르면 모든 이들이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지 않거나 마스크를 벗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집단면역에 이르더라도 개인들은 여전히 감염될 수 있다. 대신 면역력을 가진 다수 덕분에 그렇지 않은 취약한 이들이 보호되고 감염이 발생해도 급증하지 않고 적절히 통제될 수 있을 뿐이다. 이런 상황임에도 정부는 ‘접종률 70%=집단면역=코로나19 종식’과 같은 등식을 연상시키며 백신 접종 총력전에 나서고 있는 듯하다. 이미 현장의 일부 보건의료 인력은 밀려드는 접종 대상자와 의심 증상 신고자들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 이달 말부터 일반인 접종을 시작하면 아마 목표 접종률 달성에 비협조적이라며 접종 거부자들을 향한 사회적 비난도 심해질 것이다. 사실 백신 접종을 거부하거나 망설이는 이들의 이유는 다양하고 복잡할 것이다. 몸의 자연적 회복력을 믿는 이들도 있고, 감염보다 백신 부작용을 더 우려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또 빈곤과 생계 문제 때문에 시간을 내기 어려운 이들도 있을 것이다. 이주노동자와 노숙자들의 상황은 짐작하기도 어렵다. 속도전처럼 접종을 추진하기보다는 세심하게 현장 인력과 접종을 망설이는 이들을 살피는 노력이 절실하다. 백신 접종을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거나 집단면역이 허상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집단면역의 시점을 못 박고 집단면역에 이르면 모두가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처럼 소통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11월에 집단면역이라고 부를 만한 시점에 도달해도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우리와 함께 계속 있을 것이다. 독감처럼 늘 우리 곁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사실 백신 접종의 목표도 바이러스의 소멸이 아니라 고위험군의 안전과 통제 가능성이다. 취약한 이들이 감염되더라도 중증으로 발전하지 않도록 하고 감염자 수를 관리 가능한 형태로 유지하는 것이다. 목표가 이렇다면 정부는 백신 접종에 총력전을 기울이겠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11월 집단면역’이 끝이 아니며 서로를 세심히 돌보는 연대의 노력이 앞으로도 필요할 것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바이러스와의 더 안전한 공존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을 시작했으면 한다. 이번 위기를 통해 공공의료와 필수노동의 중요성이 확인된 만큼 공공보건의료 체계를 확충하는 일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섰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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