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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얼룩덜룩’ 방치된 남산공원 백범 동상

    ‘얼룩덜룩’ 방치된 남산공원 백범 동상

    광복 70주년을 맞아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조명하고 기념하는 행사들이 잇따르고 있지만 정작 서울 시내에 세워진 독립운동가 동상은 새똥과 쓰레기 등의 각종 오물 속에서 악취를 풍기는 등 관리 사각지대에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21일 현재 서울시 각 공공부지에 설치된 동상은 모두 56개지만 관리 주체는 서울시와 자치구, 시설공단, 문화재청 등으로 쪼개져 있다. 이런 가운데 상당수 동상이 흉물처럼 방치돼 있다. 1969년 중구 회현동 남산공원에 세워진 백범 김구 선생의 동상도 곳곳이 부식돼 있다. 미술작품 보존가 권모씨는 “김구 동상의 경우 청동 안에 있는 여러 금속물이 부식되면서 얼룩덜룩 녹이 슨 상태”라고 진단했다. 김구 선생 동상의 관리 주체는 서울시이지만 예산 부족 등을 이유로 수년째 왁스 처리 등 보존 처리가 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시 동상 관리 기준 관련 조례에는 공공용지 내 동상의 경우 연 1회 상태 점검을 하고 시가 직접 관리하는 동상이 아니더라도 동상 관리를 지도하도록 규정돼 있지만 지켜지지 않고 있다. 옛 서울역사 앞에 세워진 강우규 의사 동상도 흉물처럼 방치돼 있다. 강우규 의사는 1919년 9월 2일 서울역 광장에서 일본인 총독을 향해 수류탄을 던진 독립투사로, 2011년 9월 2일 강우규의사기념사업회 측이 동상을 건립했다. 두루마기 차림에 오른손으로 수류탄을 투척하는 모습으로 만들어진 이 동상은 인근 노숙인들이 남긴 방뇨 자국과 새똥이 묻은 채 방치돼 있다. 민족문제연구소 관계자는 “서울시가 광화문처럼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장소에 있는 세종대왕상이나 이순신 장군상에 대해서는 매년 수천만원의 예산을 들여 관리하고 있지만 외진 공원에 있거나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의 동상 관리는 소홀히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동상의 인물 모두 나라와 민족을 위해 헌신한 분들인데 관리에는 차별을 두고 있는 셈”이라고 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각각의 관리 주체가 예산을 확보해 관리해야 하는데 동상 같은 경우 한번 만들어 두면 영구히 보존된다고 오인해 예산 우선순위 대상에서 밀리는 게 현실”이라고 털어놨다. 이 관계자는 “이번 기회에 서울 시내 전체 동상에 대해 전문가 점검을 실시해 상황이 심각한 동상부터 예산을 배정해 관리를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글 사진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 “걸인 10명 중 단 1명만 진짜 집 없는 노숙인”

    “걸인 10명 중 단 1명만 진짜 집 없는 노숙인”

    영국의 한 도시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실제로는 지인 또는 가족과 함께 집을 가진 사람인 것으로 조사됐다.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의 17일자 보도에 따르면 영국 잉글랜드 중북부에 있는 노팅엄 시 경찰은 길에서 구걸을 하는 구걸인 5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중 단 5명 만이 실제로 집이 없는 노숙자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1% 정도만이 구걸이 필요할 정도로 어려운 환경에 살고 있다는 것. 52명중 26명은 자신의 집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행인들이 거저 주는 돈으로 살고 있으며, 16명은 가족 또는 친구와 함께 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실제 집이 없는 5명을 제외한 나머지 7명도 쉼터 등의 보금자리에서 생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팅엄 길거리에서 지난 해 9월부터 구걸을 시작한 존 루스(43)는 “밤이 되면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는 구걸인이 많다”면서 “그들 일부는 내게 좌절감을 안긴다. 왜냐하면 도움을 주려는 사람들이 (자신의 집이 있는) 일부 구걸인들 때문에 도움을 줄지 말지 고민하기 때문”이라고 토로했다. 현지 경찰의 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인 52명 중 27명은 알코올 중독 등 술과 관련한 문제를 겪었으며, 5명은 정신질환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노팅엄 시 공무원들은 주택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행인에게 돈을 구걸한 이들에게 최대 200파운드(35만원) 상당의 벌금을 부과할 뜻을 밝혔다. 소식을 접한 일부 시민들은 해당 도시에서 구걸인들의 구걸 행위를 법적으로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이에 노팅엄시 노숙자 지원 센터 측은 “이번 조사가 사람들이 거리에서 구걸하는 노숙인을 돕지 말아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중요한 것은 정말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직접적인 돈이 아닌 자립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격려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앵벌이 왕초는 제 은인”… 노숙 장애인의 탄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지난 12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의 한 재판정. 한쪽 다리를 절뚝거리는 피고인은 판사에게 연신 허리 숙여 감사를 표했다. 이 사람은 장애인들에게 이른바 ‘앵벌이’를 시키고 구걸한 돈의 일부를 가로챈 혐의로 기소된 김모(64)씨. 이날 법원은 그에게 1심 형량(벌금 400만원)보다 크게 낮은 벌금 50만원을 선고했다. 12~13년 전 김씨는 동네 공원을 지나다 목발을 짚고 술 심부름을 하는 노숙인 손모씨를 보게 됐다. 빨리 걷지 못해 술이 늦게 도착하자 동료 노숙인들이 손씨를 때리고 괴롭혔다. 김씨는 손씨를 자기 집으로 데려왔다. 젊은 시절 전기공사 일을 하다 떨어져 양쪽 다리에 장애를 얻은 손씨는 이때부터 김씨와 함께 살며 앵벌이에 나섰다. 김씨가 모는 차가 사람이 붐비는 지하철역 근처에 멈추면 차에서 내려 행인들을 상대로 구걸을 시작했다. 비슷한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 2명을 더 내려준 뒤 김씨 자신도 다리에 고무 튜브를 끼우고 손수레를 밀면서 같은 일을 했다. 하루 일을 마친 뒤에는 개인들이 번 돈의 절반을 기름 값 등 명목으로 뗐다. 한 사람 당 3만원 안팎의 돈이었다. 김씨가 이 일을 시작한 것은 30여년 전. 경북 의성의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그는 18세 때 강원도 탄광촌에서 광부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1년도 되지 않아 석탄을 실은 수레가 왼쪽 다리를 덮치는 바람에 장애를 얻었다. 고향에서 실의에 빠져 있던 그는 서른이 넘어 서울로 올라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모아 앵벌이 전선에 뛰어들었다. 김씨는 장애인을 이용해 부당한 영리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지난해 재판에 넘겨졌다. 하지만 피해자로 지목된 사람들은 수사 과정에서 “김씨가 구걸 행위를 하도록 협박하거나 강요한 사실은 없다”고 하나같이 입을 모았다. 김씨와 손씨의 집을 방문해 가사를 도와주는 조모씨도 “김씨는 악한 사람이 아닙니다. 김씨와 피해자들은 그들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진술했다. 재판 과정에서 손씨는 “김씨에게 준 돈은 먹거리를 사는 데 보태기 위한 것”이라며 “김씨는 제게 은인이나 다름없는 사람”이라고 탄원했다. 다른 피해자들의 탄원서도 잇따랐다. 서울고등법원 형사6부(부장 김상환)는 장애인복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김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김씨와 피해자들 사이에는 차량과 도구를 제공하고 돈을 받는 관계를 넘어서 가족 같은 유대관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국가의 사회복지제도만으로는 장애인이 인간답게 살기 어려운 현실에서 서로 의지하며 각자 역할을 분담하는 과정에서 부득이 행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김씨 역시 의족을 찬 장애인으로 기초생활급여에만 의존하는 형편이어서 무거운 벌금형을 선고할 경우 피해자들의 생활까지 어려워질 수 있다”며 벌금 50만원을 선고했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노숙인 위해 재능 나누는 영등포

    재능 나눔으로 노숙인들의 생활 환경을 개선한다. 영등포구는 민간 건설사들과 함께 지역의 노숙인 관련 시설과 공공시설에 대한 환경개선 사업을 추진한다고 15일 밝혔다. 구는 지난 2012년부터 지역에서 공사를 하고 있는 대형 건설사들과 함께 무료로 ‘재능 나눔 환경디자인 개선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구 관계자는 “지역에 사업장이 있는 건설사들이 재능기부의 형태로 저소득층 가정이나 학교, 경로당 등 지역에 꼭 필요한 공공시설을 업그레이드시켜 주고 있다”면서 “지난해까지 13개 건설사들과 함께 관내 초등학교를 비롯한 교육시설과 복지시설, 공공시설 등 21개 시설의 환경개선 사업을 완료했다”고 설명했다. 올해 영등포구에서 재능을 나눌 기업은 현대건설, 현대아산, 롯데건설, 태영건설, 효성건설, 대보건설 등 6곳이다. 사업대상은 ▲시립 보현의 집 ▲노숙인 현장민원실 ▲영등포동 희망지원센터 ▲영등포공원 홈리스 상담소 ▲옹달샘드롭인센터 ▲푸드마켓 ▲나눔카페 ▲장난감 도서관 등 8곳이다. 구 관계자는 “이번에 생활 환경이 개선되는 8곳 중 5곳이 노숙인 관련 시설”이라면서 “노숙인 시설에는 주로 외벽 도색이나 집기류 지원, 도배 작업 등을 진행하고, 푸드마켓이나 나눔카페 등 공공시설은 조경이나 데크 등의 설치를 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올해 사업비는 총 9000여만원으로 비용은 전액 해당 기업이 부담한다. 지난달에는 올해 첫 사업으로 효성건설과 함께 시립 보현의 집 공용실 14개실과 1인실 10개실 등 총 24개실 633㎡에 대한 도배를 마쳤다. 구는 올해 사업이 마무리되는 대로 사업에 참여한 건설사들에 감사패를 전달할 예정이다. 조길형 구청장은 “이렇게 좋은 재능 나눔이 4년째 계속되고 있다는 것은 큰 의미”라면서 “이런 사업을 더욱 확대해 지속적으로 소외계층과 공공시설의 환경을 개선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세상이란 무대’로 돌아온 노숙인

    ‘세상이란 무대’로 돌아온 노숙인

    “저도 이제 어엿한 사회의 구성원이 된 것 같습니다.” 지난 7년간 노숙인 생활을 하다 뮤지컬 무대에 선 이재길(54)씨는 1일 배우 데뷔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이씨는 지난달 29~31일 청소년예술대안학교인 꿈이룸학교가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 소설을 5·18 민주화항쟁 배경으로 각색해 공연한 뮤지컬 ‘레미제라블 인 코리아’에 단역으로 출연했다. 뮤지컬에는 직업 배우들과 대안학교 청소년들이 주로 참여했다. 이씨가 맡은 역할은 기차역에서 신문을 보는 승객이나 치킨집 주인 같은 스쳐가는 역할에 불과했지만 끊임없이 연습에 매진했다. 이씨가 무대에 발을 들인 것은 서울시가 운영하는 노숙인 지원기관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의 도움 덕분이다. 지난 4월 이씨를 꿈이룸학교에 배우로 추천한 곳이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였다. 3년 전부터 이씨의 사회 복귀 노력을 계속 지켜본 결과다. 이씨는 일용직 근로자로 공사장 일을 찾아 경기와 강원 일대를 돌면서 노숙을 해 오다 2008년 서울역 광장으로 왔다. 그러다 3년 전 센터의 자활 프로그램에 참여해 사회복귀 훈련을 하게 됐고, 이제는 다른 노숙인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 앞으로 장애인 활동보조인이 되고 싶다는 이씨는 “내가 도움을 받았으니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존재로 살고 싶다”고 말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소방관 경찰 폭행 “20대女 흉기로 위협” 정신질환 가능성은?

    소방관 경찰 폭행 “20대女 흉기로 위협” 정신질환 가능성은?

    소방관 경찰 폭행 소방관 경찰 폭행 “20대女 흉기로 위협” 정신질환 가능성은? 며칠 새 지하철역에서 흉기로 행인을 위협하고 마트에서 종업원, 출동한 경찰과 싸운 현직 소방관이 체포돼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경기 의정부경찰서는 특수공무집행방해, 업무방해,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의정부소방서 소속 A(37) 소방사를 조사 중이라고 27일 밝혔다. A씨는 이날 정오께 의정부시내 한 마트에서 종업원과 말다툼하다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의 머리를 들이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앞서 23일에는 오전 9시쯤 지하철 의정부역사에서 흉기로 20대 여성과 남성 노숙인을 상대로 “죽이겠다”며 차례로 위협한 혐의도 있다. 피해 여성에게는 별다른 이유 없이 그랬으며 노숙인에게는 다른 노숙인이 어디 갔느냐고 물어봤다가 답변을 듣지 못하자 신경질이 나서 그랬다고 그는 경찰에서 진술했다. 이때 현장에서 바로 체포된 A씨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 같으니 치료를 받게 하겠다”는 아버지의 신원 보증으로 경찰 조사를 마치고 귀가했다가 나흘 만에 다시 범행을 저질렀다. A씨는 2012년 소방에 입문하기 전인 2003년과 2006년에도 공무집행방해죄로 벌금형을 받은 전력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욕망, 그 지울 수 없는 문신

    욕망, 그 지울 수 없는 문신

    얼핏 보기엔 럭셔리 잡지의 화보처럼 화려하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 보면 “어휴, 징그러워” 소리가 절로 나온다. 뱀 껍질, 송치, 타조 가죽, 추상적인 무늬를 한 다리와 다리가 엉켜 있고, 발 한 짝에 귀가 걸려 있다. 가슴과 배꼽을 드러낸 여성의 상반신에는 아름다운 꽃과 나비가 문신되어 있다. 이 토막난 신체들의 기이한 조합은 무엇이며, 이 기괴한 아름다움은 또 무엇일까. 서울 강남구 청담동 박여숙화랑에서 ‘섬바디(Somebody)’라는 제목으로 개인전을 열고 있는 작가 김준(49)은 “물질에 대한 인간의 탐욕을 작품에 담았다. 문신은 지울 수 없고, 그것은 마치 화려한 물질에 대한 거스를 수 없는 욕망과도 같다”고 말한다. 몸, 문신, 극도의 소비주의를 상징하는 뱀가죽과 송치 이미지를 활용한 그의 작품은 욕망을 부채질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이중성을 고발한다. 왜 ‘몸’인가. 작가는 “뭘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사람들이 가장 고민하는 것이 무엇일지 따져 봤다. 모든 게 몸과 관련 없는 것이 없었다. 먹고사는 문제도 몸을 보전하기 위한 것 아닌가”라고 답한다. 이런 몸은 대체 어디서 가져온 것이냐고 묻자 “모두 가짜”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사실 오래전부터 몸을 다뤄 왔다. 단지 표현방법만 달라졌을 뿐이다. 회화를 전공한 그는 남들이 다 하는 ‘캔버스에 오일’ 작업을 하고 싶지 않아서 천으로 신체 부위를 닮은 형태를 만들어 안료를 칠하고 그 위에 문신하듯이 바늘에 물감을 묻혀 그림을 그렸다. 그에게 ‘문신작가’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다. 아름답지도 않고, 장식적이지도 않은 작품은 충격은 줬지만 팔리지는 않았다. 옥탑방과 지하 작업실에 작품들이 쌓이면서 더이상 보관하기도 버거워지자 그는 결국 돈을 주고 작품들을 폐기 처분했다. “처분한 작품은 어디에 가 있는지 알 수 없죠. 노숙인이 팔 모양의 내 작품을 팔베개 삼아 자고 있는 것을 봤다는 사람도 있었어요. ” 재고가 쌓이지 않으면서 작업할 수 있는 방법을 찾던 그는 사이버 공간에서 해결책을 찾았다. 게임회사에 잠시 일하면서 컴퓨터를 켜고 끄는 것부터 배우며 디지털 작업을 시작했다. 2004년부터 10여년간 그는 3차원 공간에서 ‘3D Max’라는 프로그램을 이용해 ‘문신과 몸’에 대한 작업을 계속했다. 그는 가상현실을 무대로 등장하는 몸들의 다양한 변형과 조합을 통해 그만의 독특한 이미지를 구현해낸다. 붓 대신 픽셀로 만들어진 정교한 인체 모양에 피부를 입히고 그 위에 문양을 새겨 넣어 표현된 몸들은 가상의 이미지이지만 실제 살갗 같은 질감과 육신의 형태를 갖는다. 해를 거듭하면서 발전하는 첨단 기술과 능숙해진 작가의 기교로 이미지는 더욱 현란해지고 정교해졌다. 이번 전시에서는 컴퓨터로 프린트한 평면작업과 함께 3D애니메이션도 선보인다. 그의 3D 작업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각광받고 있다. 최근 런던에서 열린 한 경매에서도 그의 작품이 예상가를 훨씬 웃돌며 낙찰됐다. 작가는 그동안 미국, 중국, 영국, 이탈리아, 네덜란드, 프랑스, 인도네시아 등지의 미술관급 전시에 초대돼 활동했다. 이번 국내 전시와 함께 홍콩의 산다람타고르 갤러리에서도 개인전을 열고 있고, 베니스비엔날레의 병행전시 중 하나인 ‘프론티어 이메진드’에 출품해 주목받고 있다. 전시는 6월 21일까지. (02)549-7575 글 사진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이 모든 게 불평등 때문

    이 모든 게 불평등 때문

    불평등을 넘어/앤서니 B 앳킨슨 지음/장경덕 옮김/글항아리/512쪽/2만2000원 이따위 불평등/이원재 외 지음/북바이북/256쪽/1만5000원 “미국의 소득 및 부의 불평등이 10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에 근접했다.” 지난해 10월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 의장이 한 콘퍼런스에서 밝힌 말이다. 미국 연준의장이 불평등 문제를 공개 거론하기는 처음이다. 그런가 하면 미국의 퓨리서치센터가 지난해 글로벌 태도조사 프로젝트를 통해 ‘세계에서 가장 큰 위험’을 물은 결과 응답자들은 ‘불평등’을 압도적으로 꼽았다. 불평등 문제가 미국을 포함한 지구촌 최고의 화두로 떠오른 셈이다. 보수 주류경제학자들도 불평등의 심각성을 공공연하게 입에 올린다. 불평등은 왜 생겼고, 그 양상은 어떤가, 그리고 해결할 길은 없는 것일까. ‘불평등을 넘어’와 ‘이따위 불평등’은 그 어려운 화두를 정색하고 풀어낸 책들이다. ‘불평등을 넘어’가 ‘불평등 연구의 대가’인 옥스퍼드대학 너필드칼리지의 앳킨슨 특임연구원이 쓴 불평등 연구 총론이라면 ‘이따위 불평등’은 국내 불평등 관련 저술을 총괄해 한국사회의 민낯을 그려낸 서평 모음이다. ‘불평등을 넘어’는 돌파구 찾기에 비교적 낙관적인 주장을 펴고 있다. “부와 소득의 불평등이 한껏 심해지도록 내버려 두면 우리는 19세기형 세습자본주의로 돌아갈 수 있다.” 지난해 전 세계를 뒤흔든 ‘21세기 자본’의 저자 토마 피케티의 이 지론과는 조금 다른 입장을 견지한다. 미래는 우리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그 낙관론의 배경으로 불평등이 축소됐던 제1·2차 세계대전과 그 이후 25년간의 역사적 전력을 소개한다. 실제로 1914년과 1945년 최상위 소득자의 몫에 관한 자료를 보유한 8개국 중 대부분의 나라에서 1945년 전체 총소득 중 상위 1%의 몫이 18.6%에서 7.4%로 줄었다. 저자는 이 상황을 노동시장에 적극 개입한 정부의 역할과 미국의 뉴딜정책, 그리고 노동조합 강화를 들어 설명한다. 이 사례에 얹어 비교적 가까운 시기의 중남미 상황은 불평등 축소의 또 다른 교훈으로 소개된다. 중남미 17개국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2000년대 거의 모든 나라에서 불평등이 감소했다. 더 많은 교육을 받은 근로자들의 임금 프리미엄 감소와 정부의 누진적인 소득이전, 최저임금의 큰 폭 상승 등이 주요한 원인으로 꼽힌다. 하지만 각종 통계를 보면 1980년을 고비로 상황이 역전됐다. 이른바 ‘불평등의 회귀’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전대의 교훈을 다시 되살릴 수 있을까. 저자는 노력을 통해 불평등을 얼마든지 개선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강자가 주도하는 시장에 그저 맡겨 두고 방관할 게 아니라 제도적으로 적극 개입해 평등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공정경쟁에는 성과 일부를 지속적으로 재분배하는 게 필수라는 것이다. 특히 이 대목이 눈길을 끈다. “불평등에 대한 사고의 틀과 정책 패러다임을 바꿔야 하며, 무엇보다 기술변화와 시장의 힘, 그리고 세계화가 소득과 부의 불평등을 키우는 게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부터 버려라.” 이에 비해 다소 자극적인 제목의 ‘이따위 불평등’이 그린 한국상황은 암울한 편이다. 노숙인들이 겪어야 하는 삶의 비참함, 단지 돈이 없다는 이유로 치료받을 수 없는 현실, 노동의 주체이면서 노동현장에선 한사코 약자인 노동자들…. 한국사회에서 나름의 함의를 가진 경제학자, 사회학자, 교수, 언론인, 출판인, 작가 등 다양한 이력의 저자들이 쓴 25권의 서평을 통해 불평등 상황이 어떤 교묘한 책임 회피 과정을 통해 퍼지는 지를 세밀하게 포착해냈다.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사회의 불평등은 극도로 기울어진 운동장이 아니다. 그것은 마치 촘촘해 보이는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단번에 올라갈 수도 있지만 그 문이 누구에게 언제 열릴 지 모르는 일이며, 그 문이 언젠가 나에게 열릴 지도 모른다는 실낱 같은 기대 때문에 사람들은 불평등의 질서를 수호하는 가난한 문지기가 된다”(‘불평등 이전의 세계는 어떠했나’·이하영) 기획회의 편집위원회 명의의 책 서문대로라면 “하루가 멀다 하고 풍문으로 들려오는 갑질은 우리 사회의 불평등이 극한에 치달았음을 보여주는 방증”일 수밖에 없다. 그야말로 ‘불평등만 평등하게 누리는 세상’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책은 깜깜한 민낯 그리기에 멈추지 않고 ‘가장 아픈 곳이 몸의 중심’이라는 식의 희망 섞인 대안도 빼놓지 않고 있어 눈길을 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어느 공무원의 고백

    어느 공무원의 고백

    고등학생 아들을 둔 금융위원회의 한 국장급 간부는 올 초 아들의 학교 교실을 찾았다. 학부모가 직접 진행하는 진로 탐색 수업에 공무원을 소개하기 위해서였다.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이 간부는 자신이 속한 금융위 국·과장들의 프로필을 꼼꼼히 준비해 갔다. 프로필을 펼친 순간 그는 아차 싶었다. 죄다 ‘서울대’ 출신에 ‘행정고시’ 합격생들이었기 때문이다. ‘에이’ 하는 반응이 학생들 사이에서 터져 나왔다. 한 학생은 작은 목소리로 “서울대 안 나오면 금융위 공무원 못 하겠네” 하고 자조 섞인 냉소를 뱉어 냈다. 그 자신도 서울대 출신인 간부는 “조직 안에 있을 때는 별로 못 느꼈는데 막상 내 손으로 꺼내 놓고 비교해 보니 출신 성분 편중이 심하긴 하더라”라고 털어놓았다. 금융위는 정부 부처 중에서도 유난히 ‘경기고·서울대(KS)-행시’ 라인이 두드러진다. 전체 직원의 70% 정도가 고시 출신일 정도다. 공시생(공무원시험 준비생)들 사이에서 ‘비고시인들의 무덤’으로 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금융위에서 최근 ‘파격’이 벌어졌다. 지난 19일 비고시 출신이 3급 부이사관으로 승진 발탁된 것이다. 송재근(53) 금융위 감사담당관이 주인공이다. ‘KS’는 기본이고 서울대 상대나 서울대 법대 아니면 비주류로 취급되는 분위기 탓에 송 감사담당관의 승진은 ‘이변’으로까지 불린다. 금융위 과장급 이상 가운데 비고시 출신은 송 감사담당관을 포함해 2명밖에 없다. 비고시 출신인 한 사무관(5급)은 “엘리트 출신으로 무장된 조직에서 비고시 출신은 논외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면서 “이번 인사가 비고시 출신들에게는 상당히 고무적”이라고 전했다. 여기에는 인사에서도 혁신이 필요하다는 임종룡 위원장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특정 학벌과 고시 편중이 심하다는 안팎 비판 여론도 감안한 포석으로 보인다. 금융위 국장급 이상 14명 가운데 임 장관(연세대)만 빼고는 모두 서울대 출신이다. 5급 이상 사무관 111명 중 고시 출신만 67명이다. 송 감사담당관은 단국대 독어독문과를 졸업하고 1988년 7급 공채로 당시 재무부(현 기획재정부) 이재국에서 일을 시작했다. 금융위 축구단 감독도 맡고 있다. 사랑봉사단을 결성해 15년째 노숙인 무료급식소와 장애인 시설도 찾고 있다. 이런 안팎의 활약상이 인사에도 반영됐다는 후문이다. 송 감사담당관은 “비고시 후배들에게 희망을 준 것 같아 기쁘다”면서 “일찍 포기하는 후배들을 볼 때면 때때로 마음이 아팠는데 앞으로 금융위에서도 열심히 하면 과장, 부이사관, 나아가 국장도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노숙인 할머니에게 판잣집 지어준 남성 ‘감동’

    노숙인 할머니에게 판잣집 지어준 남성 ‘감동’

    노숙인 할머니를 위해 판잣집을 지어준 남성이 누리꾼의 호평 속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 지난 3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데일리뉴스는 바깥에서 노숙 생활을 하는 60대 할머니를 위해 집을 지어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한 남성의 사연을 소개했다. 보도에 따르면, 남편과 집을 잃고 10년간 노숙을 해온 할머니를 오랫동안 지켜봐 온 엘비스 서머즈(37)라는 남성은 할머니를 도울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고민했다. 그러던 중 버려진 재료들로 작은 집을 짓는 오클랜드의 한 남성의 사연에서 영감을 얻은 그는 지역 내 회사들을 설득해 500달러를 기부받았다. 장장 5일에 걸쳐 작은 판잣집 하나를 만든 엘비스는 이 집을 노숙인 할머니에게 선물했다. 비록 판자를 이어붙여 만든 작은 집이었지만, 노숙인 할머니에게는 더위와 추위를 피해 단잠을 잘 수 있는 아늑한 공간이 됐다. 다만, 현행법상 이 집은 72시간마다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엘비스는 집을 짓는 과정과 집을 선물로 받은 노숙인 할머니의 모습을 영상에 고스란히 담아 지난 23일 유튜브에 게재했고 영상은 현재 485만 건 이상의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엘비스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60대 할머니도 사람이다. 먼지 더미에서 자는 것은 옳지 않다”라고 말해 주위를 훈훈하게 했다. 한편, 엘비스는 더 많은 노숙인들에게 집을 지어주고자 ‘나의 작은 집 프로젝트(My Tiny House Project)’라는 캠페인을 시작했으며,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자금을 모집하고 있다. 그는 이 집을 짓는데 노숙인들을 고용할 계획이다. 사진·영상=Starting Human/유튜브 김형우 인턴기자 hwkim@seoul.co.kr
  • 꽃집 등 자영업 대상 신종 금융사기 주의

    꽃집을 운영 중인 50대 심모(여)씨는 지난 10일 주문을 받았다가 낭패를 봤다. 10만원짜리 꽃다발에 현금 190만원을 함께 넣어 포장해 달라는 요청을 받은 게 화근이 됐다. 주문액의 두 배가 넘는 500만원이 심씨 통장에 입금됐기 때문이다. 꽃집을 찾은 사기범은 주문한 꽃다발과 과다 입금된 310만원을 받아 유유히 사라졌다. 알고 보니 500만원을 입금한 사람은 사기범에게 속은 또 다른 피해자 A씨였다. A씨가 신고하면서 심씨의 계좌는 지급 정지되고 공범으로 의심받아 졸지에 수사까지 받았다. 신종 대포통장 사기 주의보가 발령됐다. 꽃집이나 금은방 상인 등에게 물건 가격보다 더 많은 돈을 보낸 뒤 그 차액을 돌려받는 수법이다. 금융감독원은 최근 자영업자들이 쓰는 상거래용 계좌가 보이스피싱 등 금융사기에 악용되는 사건이 다수 발생했다며 물건 가격보다 지나치게 많은 돈이 들어오면 주의해야 한다고 27일 경고했다. 심씨의 경우처럼 자신도 돈을 떼인 피해자이면서 자신도 모르게 범행 계좌를 제공하는 결과로 자칫 공범으로 몰릴 수 있다는 점에 특히 유의해야 한다. 기존엔 노숙인 등을 내세워 대포통장을 만들었지만 단속이 강화되자 이제는 선량한 상인들에게 거래대금인 것처럼 속여 정상계좌를 빌려 쓰는 수법을 쓰고 있는 것이다. 금감원은 이런 신종 금융사기가 꽃집뿐만 아니라 중고차 매매상 등을 표적으로 삼고 있다며 물건 가격보다 많은 금액이 입금되면 거래 금융사에 꼭 송금인의 인적 사항 등을 확인해야 한다고 안내했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 [씨줄날줄] ‘다시’ 염전노예/문소영 논설위원

    “최근 일어난 염전노예 사건은 정말 21세기에 있을 수 없는 충격적인 일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철저히 뿌리 뽑아야겠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2월 14일 법무부 등의 업무보고에서 이렇게 지시했다. 서울 구로경찰서 실종수사팀이 일주일 전쯤 소금 구매업자로 위장·탐문해 전라남도 신안군 신의도 염전에서 강제 노동을 하고 있던 시각장애인 김씨 등을 구출한 사건을 거론한 것이다. 구로경찰서의 업적으로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에 대한 인권침해에 직면한 시민은 경악했다. 서울신문도 2월 8일자 본란을 통해 ‘현대판 염전 노예’를 고발하며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한 인권침해·노동착취를 개선하라고 했다. 특히 경찰 등 공권력의 감시가 허술할 수밖에 없는 도서·산간 지역에서는 매의 눈을 가진 따뜻한 이웃들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인권 사각지대인 도서 지역에서 탐욕스런 염전 사업자들이 불법의 카르텔을 맺고 있다고 해도 선량한 공동체가 감시한다면 감금과 폭력, 불법이 판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당시 신안에서는 “한 사람 때문에 온 주민이 범죄자로 매도됐다”며 억울하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현대판 노예’ 염전 노동자의 실태를 고발한 지 1년 2개월이 지난 그제 서울신문이 그 이후를 추적했다. “세상으로 돌아왔던 ‘염전노예’ 세상에서 버림받고 돌아갔다”는 제목의 후속 보도는 처참했다. 대통령의 하명과 들끓는 여론에 발맞춰 지역 경찰들이 ‘섬노예’를 찾아내 관련자를 엄단했으나 취약계층의 인권과 복지가 공권력의 행사만으로는, 또한 단기간에 해결될 수 없다는 현실을 보여 주었다. 신안 현지에서 취재한 그 기사는 “전남 신안군의 한 섬에서 13년간 ‘염전노예’로 살았던 지적장애 2급인 김모씨가 지난해 정부의 일제단속으로 풀려나 전북 남원에 사는 누나와 재회했으나 누나가 염전 주인에게 연락해 다시 염전으로 보냈다”고 했다. 또한 기사는 “지난해 ‘염전노예’ 사건으로 해방된 지적장애인과 노숙인 등 염전 노동자 63명 가운데 40여명이 염전으로 되돌아가거나 노숙 생활을 하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사건 1년이 지난 현재 염전 노동자에 대한 폭행·감금 등은 줄었지만, 장시간 노동으로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월급 등 노동착취가 일어나고 있다”고 고발했다. 가족들이 왜 피붙이를 외면하느냐고 비난할 수 있을까. 핵가족으로 분화된 산업화 시대에 취약층의 돌봄을 가족의 몫으로 한정하기 어렵다. 이는 뇌혈관질환이나 치매를 앓는 부모 등을 돌보기 위해 국가가 2008년 7월부터 노인장기요양보험을 마련한 이유와 비슷하다. 현대 정부는 개인의 과도한 부담을 사회가 나눠 ‘품앗이’하도록 복지정책을 짜고 있다. 무엇보다 먹고살 수 있는 최소한의 자활책 등 구체적인 사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말로만 하는 인권옹호는 누군들 못하랴.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단독] 세상으로 돌아왔던 ‘염전노예’ 세상에서 버림받고 돌아갔다

    [단독] 세상으로 돌아왔던 ‘염전노예’ 세상에서 버림받고 돌아갔다

    김모(51·지적장애 2급)씨는 전남 신안군의 한 섬에서 13년간 ‘염전 노예’로 살았다. 지난해 당국의 일제단속 이후 섬에서 벗어난 김씨는 전북 남원에 사는 누나와 연락이 닿았다. 하지만 김씨가 없는 삶에 익숙해진 가족들은 그를 외면했다. 13년간 그를 노예처럼 부려 먹은 염전 주인에게 연락해 그를 또다시 섬으로 보냈다. 지난해 ‘염전 노예’ 사건이 불거진 신안군 신의도에서 구출된 지적장애인과 노숙인 등 염전 노동자(염부) 63명 가운데 40여명이 염전으로 돌아가거나 노숙 생활을 전전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1년여가 흐른 지금, 염부들에 대한 폭행·감금 등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월급을 받는 등 노동 착취는 여전했다. 7일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와 경찰, 노숙인 재활시설 등에 따르면 지난해 신의도에서 구출된 63명 가운데 현재 소재가 파악된 인원은 전남 무안과 서울의 노숙인 재활시설이나 공동생활가정(그룹홈)에서 사는 13명에 불과했다. 20여명은 염전으로 돌아갔다. 가족과 연락이 닿았지만 김씨처럼 염전으로 돌아온 경우도 있었다. 나머지는 무안, 광주 등의 노숙인 재활시설에 입소했거나 다시 시설을 떠났다. 염전의 열악한 노동환경은 여전했다. 신의도 염전에서 만난 A(38)씨는 매달 월급 120만원을 받는다고 했다. 하루 10시간씩 염전은 물론 텃밭 농사일까지 하는 점을 감안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염전 주인이 급여통장과 인감도장을 관리했고 임의로 돈을 빼서 쓴 기록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일제단속만으로는 ‘염전 노예’가 사라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국내 염전의 77%(850여곳)가 몰린 신안군의 염전들은 주인 대다수가 외지에 살면서 섬사람들이 임대하는 ‘소작농’ 형태로 운영된다. 통상 1정보(염전 넓이 단위, 약 3000평)에 1명의 염부가 작업할 만큼 고되고, 저임금 탓에 인력 부족에 시달린다. 장애인과 노숙인 등이 불법적으로 염전에 유입되는 까닭이다. 한편 염전 노예를 뿌리 뽑고자 지난해 2월 꾸려진 전남경찰청 도서인권보호특별수사대는 4월 말 해체됐다. 이 지역을 관할하는 목포, 영암 등 7개 경찰서마다 2~3명으로 구성된 인권수사팀이 있지만 염전 850여곳을 관리하기엔 부족한 실정이다. 신안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신안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 [단독] [염전 노예 그 후 1년] 아는 형에게 속아 염전으로… 2년 뼈빠지게 일했지만 손엔 담뱃값만…

    [단독] [염전 노예 그 후 1년] 아는 형에게 속아 염전으로… 2년 뼈빠지게 일했지만 손엔 담뱃값만…

    7일 전남 무안군의 한 노숙인 재활시설. 황토밭을 지나 언덕배기를 10여분 올라가자 시설 이름이 적힌 나무 팻말이 눈에 띄었다. 이곳에는 지난해 2~4월 신안군 신의도에서 구출된 ‘염전 노예’ 피해자 가운데 9명이 머물렀다. 하지만 1년이 흐른 지금 3명만 남았다. 오모(가운데·36·지적장애 3급)씨도 그중 한 명이다. 오씨는 중학교 졸업 후 아버지 친구가 운영하는 공장에서 1년간 일했다. 돈을 만져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아버지가 월급을 고스란히 챙겨 갔다. 공장에서는 동료들의 괴롭힘이 끊이지 않았다. 오씨는 견디지 못하고 집을 나와 서울 영등포역 근처에서 노숙을 했다. ‘아는 형’(직업소개소 브로커)이 일자리를 준다고 해 목포에 갔다. 이때까지 염전이 어떤 곳인지 몰랐다. 염전은 ‘지옥’이었다. 난폭한 주인과 ‘염부장’(염전 주인 대신 지적장애가 있는 염부들에게 작업 지시)을 만났다. 조금만 일이 서툴러도 손바닥과 주먹이 날아왔다. 염전에서 일한 2년간 받아야 했을 임금은 약 2000만원이지만 오씨 손에 쥐여진 건 담뱃값이 전부였다. ‘염전 노예’ 사건이 불거진 후 경찰의 도움으로 오씨도 자유를 찾았다. 20년 만에 경기 동두천에 사는 아버지와 형을 만났지만 가족들은 지적장애가 있는 오씨를 부담스러워했다. 결국 서울의 한 장애인시설에서 머무르다가 무안의 시설로 옮겼다. 그는 지난 1년간 양파를 담는 망을 만드는 작업을 했다. 개당 10원꼴로, 한 달에 10만원쯤 번다고 했다. 오씨가 일하던 염전 주인은 영리유인, 준사기, 폭행 등의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오씨는 밀린 임금을 받으려고 발달장애인지원센터의 법률 지원을 받아 민사소송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오씨를 품지 않았던 아버지는 염전 주인이 합의금 3000만원만 내놓으면 소송을 취하하겠다고 했다. 무안의 고아원 출신 나경철(가명·오른쪽·49·지적장애 3급)씨는 고교 졸업 후 축산과 양봉업에 종사하다가 서울로 올라와 봉제공장에 다녔다. 서른 살이 되던 1996년, 직업소개소를 통해 목포로 내려왔다. 나씨는 지난해 4월까지 18년간 노예처럼 일했지만 사실상 한 푼도 받지 못했다. 경찰 수사가 시작되자 염주는 형사처벌을 피하기 위해 나씨 명의의 통장을 만들어 1억 3000만원을 입금했다. 시설 측은 나씨가 자립하도록 돕고 싶지만 불어난 재산 탓에 또다시 나쁜 길로 빠질 가능성이 커 고심하고 있다. 백성석(가명·왼쪽·50)씨는 지적장애가 없는데도 염전에서 돈을 받지 않고 10년간 일했다. 어린 시절 부모를 잃고 옷 공장, 신문 배달 등 안 해 본 일이 없지만 20대부터는 서울 종로 일대에서 노숙 생활을 했다. 백씨는 사회성이 매우 취약하지만 검정고시로 중·고교 졸업장을 취득할 정도로 지적 수준은 낮지 않다. 무안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무안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 [단독] [염전 노예 그 후 1년] 일할 곳도 없고 해봤자 月 5만원… 가족은 염전 주인에게 “다시 데려가라”

    [단독] [염전 노예 그 후 1년] 일할 곳도 없고 해봤자 月 5만원… 가족은 염전 주인에게 “다시 데려가라”

    7일 오후 전남 목포시 호남동 목포역 인근 뒷골목. 여관과 여인숙 간판이 빼곡하게 내걸린 골목에 땅거미가 내려앉자 60~70대 여성들이 하나둘 나왔다. “놀다 가세요. 놀다 가. 방 있어.” 이들이 호객하는 대상은 오갈 데 없이 역전을 떠도는 인부들이다. 한 여인숙 주인은 “넉 달 동안 우리 집에 머물던 60대 ‘염부’(소금 만드는 일에 종사하는 인부)가 그저께 사라졌다”며 “(염전이 쉬는) 겨울 내내 밀린 방값, 술값을 염전 주인이 내주면 해마다 이맘때쯤 일하러 갔던 사람인데 야반도주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수십년간 김 양식장과 고기잡이배에서 일했다는 홍모(56)씨는 “염전이나 김 양식장 업주, 고기잡이배 선주들이 인력을 구할 때 소개비를 아끼려고 직접 와서 인부들과 얘기를 해 본 뒤 밀린 방값, 술값 등을 대신 내주고 데려간다”고 설명했다. ●가족에게 인계됐지만 한 달 만에 돌아오기도 신안군 염전에서 장애인과 노숙인 등 무연고자들에 대한 강제노역과 폭행, 임금 착취, 인권 유린 등이 불거진 지 1년이 흘렀다. ‘현대판 노예’ ‘염전 노예’라며 여론이 들끓었다. 불법 인력 유입의 창구로 목포 시내 직업소개소가 거론되면서 당국의 집중적인 단속이 이뤄졌다. 하지만 여관업으로 등록된 일부 숙박업소에서는 여전히 불법적인 인력거래가 이뤄지고 있었다. 직업소개소를 통하려면 인당 70만~100만원을 소개비로 건네야 하는 데다 얼마 버티지 못하고 떠나면 소개비를 날리는 셈이어서 염전 주인들이 이런 방식을 더욱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염전 주인들이 숙박업소를 통해 염전 인부를 구하는 방식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목포역 앞에서 40여년간 장사를 했다는 상인은 “장애가 없다면 누가 죽도록 일하고 돈도 잘 못 받는 염전에 가겠나. 염주들이 데리고 가는 사람은 누가 봐도 좀 부족해 보이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하지만 당국은 신고가 들어오지 않는 한 숙박업소까지 단속할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 경찰과 지방노동청이 지난달 3주간 합동으로 일제 점검한 결과 ‘염전 노예’ 사건이 최초로 불거진 신의도에서 지적장애가 의심되는 염부가 10여명 발견됐다. 또한 합동점검단이 조사를 한 염전 336곳 가운데 11곳에서 23명의 염부들이 총 1억 9000여만원의 임금을 받지 못한 사실이 드러났다. 경찰은 임금 체불 외에 폭행 등 다른 위법 행위가 의심되는 염주 5명을 상대로 내사에 들어갔다. 지난해 구출됐다가 염전으로 돌아온 염부들도 눈에 띄었다. 12년간 염전에서 일했다는 문모(51)씨는 경찰 조사 후 강원도의 가족에게 인계됐지만 적응하지 못하고 한 달 만에 염전으로 돌아왔다. 경찰 관계자는 “지적장애가 의심된다고 격리가 능사는 아니다”라며 “지난해 구출된 염부 중 다수가 신안 일대에서 또다시 염전 일을 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염전에서 일하는 지적장애인들의 임금 체불과 인권유린을 막으려면 장애인 인권단체 등 전문가를 참여시켜 상시적으로 염전을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난해 경찰 일제조사 때 지적장애인 진술 조력인으로 참여했던 박수인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팀장은 “그나마 노하우가 쌓인 경찰 인력이 정기인사로 교체된데다 현재 도서지역을 관할하는 경찰서 7곳에 2~3명씩 있는 인권수사팀에는 장애인 인권을 다룰 전문인력이 없다”며 “이들이 지적장애가 의심되는 염부들을 한두 번 면담한다고 해서 인권유린 등 위법행위가 있었는지 알아채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지적장애인 구출만 하고 사후대책 전무 지자체 등 당국의 사후 관리에 대한 아쉬움도 지적됐다. 염전 노예 피해자들이 생활해 온 노숙인 재활시설의 한 사회복지사는 “지난해 구출만 이뤄졌지 사후 관리나 대책은 전무했다”며 “지적장애인들이 일할 수 있는 보호작업장에 들어가려면 몇 개월을 기다려야 하고 임금은 5만~20만원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어 “피해자 대부분이 시설에서만 지내는 생활을 답답해하다가 자진해서 염전 주인에게 받아 달라고 연락할 정도”라고 전했다. 글 사진 신안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목포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 위조서류에 160억 대출… 서민전세자금 심사 구멍

    위조서류에 160억 대출… 서민전세자금 심사 구멍

    전·월세 대란으로 서민들이 고통받고 있는 가운데 서민 전세자금 대출 사기로 수백억원을 챙긴 이들이 무더기로 적발됐다. 서민 전세자금 대출액 대부분을 국가가 보증하기 때문에 시중은행들이 대출 심사를 허술하게 한다는 점을 노렸다. 서울남부지검 형사5부(부장 최성환)는 서민 전세자금 부당 대출 사범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을 벌여 가짜 재직증명서 등을 제출해 서민 전세자금을 대출받아 가로챈 서모(51)씨 등 123명을 사기 혐의로 구속 기소하고, 허위 임차인 한모(47)씨 등 158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6일 밝혔다. 한 사기 조직의 총책인 서씨는 허위 임차인과 임대인 모집 브로커, 서류 위조책 등과 함께 87회에 걸쳐 서민 전세자금 50억원 상당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서씨 일당을 포함한 서민 전세자금 대출 사기범들이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228회에 걸쳐 160억원을 챙긴 것으로 보고 있다. 서민 전세자금 대출은 무주택 서민의 주거 안정을 위해 국민주택기금과 은행자금을 낮은 이자로 대출해 주고, 정부투자기관인 한국주택금융공사가 대출금의 90%를 보증해 주는 제도다. 검찰 관계자는 “대출 사고가 발생해도 은행은 10% 정도만 손해를 보기 때문에 형식적인 심사만 거친 뒤 대출을 하는 등 도덕적 해이가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대출 광고를 보고 찾아온 노숙인 등을 허위 임차인으로 회유해 회사에 다니는 것처럼 꾸민 뒤 4대 보험 가입 증명서와 재직증명서 등을 위조한 것으로 조사됐다. 총책은 허위 임대인과 공인중개사를 통해 만든 가짜 증빙 서류를 허위 임차인에게 전달한 뒤 은행에서 대출금을 받도록 했다. 일부 허위 임차인들은 이 같은 사기 행각에 가담하기 위해 위장 결혼도 불사했다. 허위 임차인으로 범행에 가담하려 했던 신모(28)씨는 “30세 미만이면 배우자가 있는 가구주만이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설명을 듣고 브로커 소개로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A(25·여)씨와 혼인신고까지 했다. 검찰 관계자는 “전·월세 대란으로 서민들이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서민 주거 안정 정책에 심각한 왜곡을 초래한 범죄”라면서 “국토교통부와 주택금융공사 등에 문제점을 통보해 개선을 요청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땅에서도 쫓겨나... ‘바다 위’서 사는 청년 노숙자

    땅에서도 쫓겨나... ‘바다 위’서 사는 청년 노숙자

    아스팔트 생활을 접고 바다로 나간 브라질 청년 노숙인이 언론에 소개되면서 화제가 되고 있다. 해밀턴 쿤하 필호라는 이름의 30세 청년이 바로 그 주인공. 해밀턴은 브라질의 특급 도시 리우데자네이루에 터를 잡은 노숙인이지만 여느 노숙인과 달리 길에서 잠을 자진 않는다. 낮에 도시를 돌면서 생활하는 그는 잠자리에 들 시간이 되면 구아나바라만으로 풍덩 몸을 던진다. 잠깐 헤엄을 치면 물에 둥둥 떠있는 그만의 보금자리가 나타난다. 그만의 플로팅 하우스다. 플로팅 하우스는 플라스틱 폐품을 이용해 그가 직접 제작해 물에 띄웠다. 성인 한 명이 겨우 누을 수 있는 크기지만 비가 내려도 끄떡 없게 방수천으로 만든 천장(?)도 덮혀있다. 지붕(?) 위에는 빨간 플라스틱 통이 경광등처럼 설치돼 있다. 해밀턴은 밤마다 초에 불을 켜 통 안에 세워놓는다. 만약에 발생할지도 모르는 해상충돌사고를 막기 위해서다. 해밀턴은 바다로 나가기 전 구아나바라만 해변에 판지로 집을 짓고 살았다. 그런 그를 바다로 내민 건 브라질 경찰이다. 브라질 경찰이 불법 건축물(?)이라는 이유로 판지로 만든 그의 보금자리를 허물어버리자 갈 곳이 없어진 그는 플로팅하우스를 만들어 해상생활을 시작했다. 어쩔 수 없이 시작한 해상생활이지만 해밀턴은 플로팅하우스가 썩 마음에 든다. 해밀턴은 "불량배의 공격을 걱정할 필요가 없어 너무 마음이 편하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는 "집까지 헤엄을 치면 매일 씻는 게 되고 옷도 세탁이 된다"며 "시간이 나면 집을 넓혀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편 현지 언론은 "해밀턴이 브라질 노숙인 중 가장 경치가 좋은 곳에 자리를 잡은 행운아로 부러움을 사고 있다"고 보도했다. 사진=상파울로폴하 캡처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노숙인’과 바다!...플로팅하우스 띄운 브라질 30세 청년

    ‘노숙인’과 바다!...플로팅하우스 띄운 브라질 30세 청년

    아스팔트 생활을 접고 바다로 나간 브라질 청년 노숙인이 언론에 소개되면서 화제가 되고 있다. 해밀턴 쿤하 필호라는 이름의 30세 청년이 바로 그 주인공. 해밀턴은 브라질의 특급 도시 리우데자네이루에 터를 잡은 노숙인이지만 여느 노숙인과 달리 길에서 잠을 자진 않는다. 낮에 도시를 돌면서 생활하는 그는 잠자리에 들 시간이 되면 구아나바라만으로 풍덩 몸을 던진다. 잠깐 헤엄을 치면 물에 둥둥 떠있는 그만의 보금자리가 나타난다. 그만의 플로팅 하우스다. 플로팅 하우스는 플라스틱 폐품을 이용해 그가 직접 제작해 물에 띄웠다. 성인 한 명이 겨우 누을 수 있는 크기지만 비가 내려도 끄떡 없게 방수천으로 만든 천장(?)도 덮혀있다. 지붕(?) 위에는 빨간 플라스틱 통이 경광등처럼 설치돼 있다. 해밀턴은 밤마다 초에 불을 켜 통 안에 세워놓는다. 만약에 발생할지도 모르는 해상충돌사고를 막기 위해서다. 해밀턴은 바다로 나가기 전 구아나바라만 해변에 판지로 집을 짓고 살았다. 그런 그를 바다로 내민 건 브라질 경찰이다. 브라질 경찰이 불법 건축물(?)이라는 이유로 판지로 만든 그의 보금자리를 허물어버리자 갈 곳이 없어진 그는 플로팅하우스를 만들어 해상생활을 시작했다. 어쩔 수 없이 시작한 해상생활이지만 해밀턴은 플로팅하우스가 썩 마음에 든다. 해밀턴은 "불량배의 공격을 걱정할 필요가 없어 너무 마음이 편하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는 "집까지 헤엄을 치면 매일 씻는 게 되고 옷도 세탁이 된다"며 "시간이 나면 집을 넓혀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편 현지 언론은 "해밀턴이 브라질 노숙인 중 가장 경치가 좋은 곳에 자리를 잡은 행운아로 부러움을 사고 있다"고 보도했다. 사진=상파울로폴하 캡처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김종면 칼럼] 지금 ‘場外의 인문학’이 문제인가

    [김종면 칼럼] 지금 ‘場外의 인문학’이 문제인가

    인문학이 위기라고 하지만 그것은 대학을 중심으로 이야기할 때나 통용될 수 있는 말인지 모른다. 대학의 강단 인문학은 빈사지경에 이르렀지만 대학 바깥 인문학의 열기는 사뭇 뜨겁다. 인문학은 더이상 인문학 하는 사람의 전유물이 아니다. 위로는 기업의 리더를 위한 ‘CEO 인문학’에서 아래로는 노숙인을 위한 ‘거리의 인문학’까지 다양한 인문학 프로그램들이 시장에 나와 있다.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인문학 전파 움직임도 활발하다. 지난 13일에는 경상북도와 경상남도가 조선 성리학의 양대산맥인 퇴계 이황·남명 조식 사상 교류 협약을 맺어 정신문화 행정의 새로운 모델을 보여주기도 했다. ‘좌(左) 퇴계 우(右) 남명’으로 불리며 경상좌도(경북)와 경상우도(경남)의 학문을 대표한 두 거유(巨儒)가 세상을 떠난 지 500년 만에 처음 만난 셈이니 의미가 크다. 이런 것들이 다 인문학의 지반을 튼실히 하는 일이다. 중앙정부가 일머리도 모르고 인문정신 문화를 진흥하겠다고 섣불리 나서는 것보다 훨씬 낫다. 교육부가 올해 인문학 대중화사업 투자를 67억원으로 크게 늘렸지만 박수는커녕 비아냥을 듣는 것은 그만큼 정부 정책이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젊은 층을 겨냥해 지역 문화축제와 연계한 ‘청춘인문강좌’를 신설한다는데 이런 게 지금 시급한 현안이 첩첩이 쌓여 있는 교육부 수준에서 할 일인가. 인문도시를 25개로 확대한다는 것도 공허하기는 마찬가지다. 경북 칠곡 농촌마을에서도 주민들이 협동조합을 만들어 ‘인문학 마을 만들기’ 사업을 벌여 호응을 얻을 정도로 인문학 바이러스는 전국 골골샅샅이 퍼져 있다. 굳이 광고하듯 인문도시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여 내세우는 것 자체가 인문정신의 품격을 훼손하는 일이다. 교육부가 진정으로 고민해야 할 것은 장외 인문학 열풍과는 달리 구조개혁의 타깃이 돼 벼랑 끝으로 내몰린 대학 인문학의 미래다.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대학생의 취업이 인문학적 소양보다 우선”이라고 했다. 산업수요에 맞게 정원을 조정하는 대학에 재정을 대폭 지원하는 정책을 추진하겠다며 인문계 대학의 정원 감축도 시사해 왔다. 그러고서 인문학 대중화 사업을 벌이겠다니 무슨 갈라치기 전략도 아니고 한마디로 앞뒤가 안 맞는 처사다. 맥도 모르고 침통 흔드는 격이다. 대학 사회의 학문자본주의(academic capitalism)는 시대의 풍조다. 대학과 기업 간의 전통적 경계는 이미 무너졌다. 그런 만큼 대학도 시장과 친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도의 문제다. 취업지상주의의 포로가 돼 기업에서 원하지 않는, 돈 안 되는 학과는 하나둘 간판을 내리고 있다. 군대 갔다 오면 내 과가 남아 있을까 노심초사한다는 요즘 대학 풍속도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이런 뒤틀린 현실의 중심에 정부의 ‘대학정원 감축’ ‘특성화 대학’ 정책이 놓여 있다. ‘산업연계 교육 활성화 선도대학’ 사업이라는 것도 결국 대학을 순수 학문의 전당보다는 기업가형 대학, 나아가 취업사관학교로 만들어 가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마침내 “입학이 곧 취업인 대학을 만들겠다”고 당당히 포부를 밝히는 대학 수장도 탄생했다. 참으로 난감한 ‘웃픈’ 세상이다. 대학구조개혁 평가에서 낮은 등급을 받으면 입학 정원이 줄고 정부의 재정지원도 제한되니 대학으로서는 구조조정의 칼을 뽑을 수밖에 없다. 결국 취업률이 떨어지는 인문학과가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청년 취업이 아무리 지상 과제라 해도 그것을 구실로 정부가 대학 팔 비틀기식 정원 감축에 나서는 것은 온당치 않다. 강압적인 대학구조개혁 정책은 재고돼야 마땅하다. 대학평가에서 취업률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면 비중이라도 낮춰야 한다. 교육부는 인문학 대중화에 앞서 고사 위기에 처한 대학 인문학 활성화 방안부터 내놓아야 할 것이다. 대학이 인문학의 모판이 되고 베이스캠프가 되지 않는 한 우리 사회의 ‘유행성’ 인문학 열풍은 진정한 의미를 획득하기 어렵다. 인간다움을 채근하는 인문정신이야말로 인간 상실의 시대를 온전히 살아가기 위한 지혜다. 대학은 빵만으로 살 수 없다. 대학에 인문학을 허하라.
  • 뭍에서 온 야속한 그대 섬에서 난 유별난 그대

    뭍에서 온 야속한 그대 섬에서 난 유별난 그대

    ‘제주로 제주로’ 제주이주민이 줄을 이으면서 제주에는 요즘 ‘원주민 따로, 이주민 따로’라는 말이 생겨났다. 이주민이 넘쳐나는 제주의 시골 마을에서는 전통의 마을 공동체 문화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며 원주민들은 볼멘소리다. 하지만 이주민들은 제주 원주민들의 텃세에 쉽게 마을 공동체에 다가설 수 없다며 “정착하기 힘들다”고 투덜거린다. 지난해 전국에서 1만여명이 제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거센 제주 이주 바람의 속사정을 들여다봤다. ●원주민 따로 이주민 따로 서귀포 칠십리 바닷가의 한 마을, 바다 풍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이 마을에는 3~4년 전부터 “제주에 살겠다”며 찾아든 이주민들이 넘쳐 난다. 마을 주민 500여명 가운데 30% 정도가 타지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다. 이주민들이 찾아들면서 마늘밭과 감귤 과수원이 전부였던 시골마을의 풍경은 싹 바뀌어 버렸다. 이주민들이 만든 카페며 피자집, 게스트하우스, 민박집, 식당 등이 곳곳에 즐비하게 들어서면서 마치 관광단지처럼 변했다. 관광객의 발길이라곤 별로 찾아볼 수 없었던 이 마을에 올레길이 지나면서 ‘마을이 아주 아름답다’는 소문이 퍼져 도시 이주민들이 하나둘 찾아들기 시작했다. 시골 동네의 가옥이며 마늘밭, 감귤 과수원 등 부동산 가격도 덩달아 치솟았다. 이주민들에게 높은 가격을 받고 땅을 판 마을 주민들은 두둑하게 한몫을 챙겼다. 하지만 이주민이 늘어나면서 마을에는 낯선 풍경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 이주민은 수십년간 마을 사람들이 다녔던 동네길을 자신의 사유지라며 막아버렸다. 주민들은 갑작스레 길을 막고 나선 이주민의 처사가 야속했다. 60대 원주민은 “제주의 시골 마을에는 비록 사유지이지만 오래전부터 마을 사람들의 길이나 다른 용도로 이용하는 곳이 많다”며 “이주하자마자 말뚝부터 박고 내 것부터 먼저 챙기는 모습이 무척 섭섭했다”고 말했다. 50대 원주민은 “이주민들이 늘면서 마을길에서 부딪히더라도 누가 누군지도 잘 모른다”며 “일부 이주민들은 인사를 해도 받는 둥 마는 둥 해 기분이 나쁘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 마을 이장은 “이주민이 늘면서 원주민들이 이주민의 눈치를 살펴야 할 정도”라며 “원주민과 이주민 간에 불화가 없도록 하는 게 이장이 가장 신경 써야 할 일이 돼 버렸다”고 말했다. 역시 이주민이 늘어난 서귀포의 또 다른 마을에서는 지난해 이주민과 원주민 간에 폭력사건이 벌어져 경찰이 출동하기도 했다. 원주민들은 이웃 간에 큰소리 한 번 나지 않을 정도로 인심 좋은 마을이었는데 이주민이 늘면서 마을 분위기를 망쳤다며 이주민들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등 마을 분위기가 냉랭하다. 이주민에게 집을 빌려준 원주민은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만 했다. 이 마을 60대 원주민은 “폭력사건으로 주민들이 경찰에 출두하는 등 마을이 소란스러워졌다”며 “아예 이주민을 피하는 원주민도 많다”고 말했다. 이주민 간에 서로 민박 영업을 놓고 갈등을 빚어 원주민들이 불편해하기도 했다. 한 면사무소 관계자는 “다양한 이주민이 이사 오면서 조용했던 마을 분위기가 엉망이 됐다”며 “그렇다고 딴 곳으로 이사 가라고 할 수도 없고 난감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주민들이 마을 안까지 깊숙이 들어와 게스트하우스나 민박, 펜션 등을 짓고 영업을 하는 것도 원주민들은 불만거리다. 좁은 마을 안길에 관광차량이 수시로 드나들고 주차를 아무 곳에나 마구 하는 바람에 경운기가 제대로 다니지 못하는 등 불만을 호소하고 있다. 한 원주민은 “해가 지면 동네 개소리만 간간이 들릴 정도로 조용한 마을이었는데 외지인이 영업하는 게스트하우스 등이 마을 안 깊숙이 들어서면서 동네가 시끄러워졌다”며 “좀 조용히 해 달라면 원주민이 텃세 부린다며 도리어 큰소리를 치는 경우도 있다”고 하소연했다. ●제주 마을 공동체 문화 위기 제주 동부 중산간의 마을. 이곳도 아름다운 자연환경으로 2~3년 전부터 이주민들이 줄을 잇고 있다. 하지만 같은 마을이지만 위쪽은 이주민이, 아래쪽은 원주민이 주로 산다. 이들은 서로 소 닭 쳐다보듯 한다. 마을 이장조차 이제는 어느 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를 정도다. 제주의 시골마을에는 아직 제주만의 마을공동체 문화가 남아 있다.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마을제, 마을 경로잔치, 어버이날 마을 행사, 마을체육대회, 마을 축제 등에 주민들은 다들 흔쾌히 참여한다. 유별난 경조사 문화 탓에 이를 외면했다가는 같은 마을에서 살아가기가 힘들 정도다. 경조사 때면 주민들은 만사 제쳐 놓고 얼굴을 내밀고 품앗이를 한다. 마을회관에 주민들이 모여 마을 대소사를 의논하는 모습은 제주 시골마을의 자연스러운 풍경이다. 마을마다 공동체를 꾸려 가기 위해 주민 간 약속이라고 할 수 있는 향약이 아직 전해지는 마을도 있다. 시골 마을에서는 마을 공동 행사 등을 위해 가구당 연간 3만원 정도의 리세(마을회비)를 걷기도 한다. 하지만 도시에서 이사 온 이주민들에게 리세는 남의 일이다. 이 마을 이장은 “이주민들에게 설명해도 리세는 나 몰라라 하고 마을 행사에 얼굴을 보이는 이주민들도 거의 없다”며 “한 마을이라고는 하지만 원주민과 이주민이 완전히 따로 사는 셈”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서울에서 왔다는 70대 이주민은 “복잡한 도시를 떠나 노년을 제주에서 조용히 살고 싶어 이주했는데 원주민들의 지나친 관심이 스트레스이자 부담”이라며 “그동안 서로 살아온 방식이 다른데 갑자기 제주 원주민처럼 살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10여년 전에 서울에서 제주로 이주, 이제는 마을 이장을 맡고 있는 애월읍 소길리 한홍수씨는 “서로 다른 생활방식으로 살아왔던 이주민과 원주민 간 소통에는 시간이 걸린다”며 “이주민 스스로 적응 시기를 지나 자연스럽게 마을 공동체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기다려 주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숙하는 이주민도 덩달아 늘어나 골치 거지, 도둑, 대문이 없다는 삼무의 섬 제주는 예전에는 노숙인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한 다리 건너면 서로 다 안다는 좁은 사회인 탓에 아무리 형편이 어렵더라도 집안 망신시킨다는 소리를 들을까 봐 제주 사람에게 노숙생활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주민이 늘면서 이주 노숙인도 계속 늘어나 제주 사회가 골머리를 앓고 있다. 2년 전 수도권에서 이주, 숙박업소 등에서 일했던 김모(53)씨는 요즘 노숙생활을 한다. 타향살이의 외로움을 술로 달래고 도박에 손을 댔다가 빚만 늘어났고 직장도 그만둬야만 했다. 김씨는 요즘 제주시내 무료 급식소에서 끼니를 해결하고 재래시장 등지에서 노숙을 한다. 제주에서는 지난해 100여명의 노숙인이, 올 들어서는 20여명이 귀향 여비(여객선 요금)를 지원받아 고향으로 되돌아갔다. 시 관계자는 “뱃삯을 지원받아 고향에 돌아갔다가 다시 제주로 들어와 노숙 생활을 하는 경우도 있다”며 “외국인이 많이 찾는 거리에서 대낮부터 술을 마시고 소란을 피우는 등 제주 관광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나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주민으로 활기 찾는 시골마을 학교 이주민 따로 원주민 따로가 아니라 원주민이 이주민과 힘을 합쳐 마을에 생기를 불어넣는 곳도 있다. 제주시 구좌읍 송당마을은 제주 이주민들이 폐교 위기에 처한 마을학교를 되살려 냈다. 시골마을에서 학교는 단순히 공부를 하는 학교 이상의 의미가 있다. 원주민들의 어릴 적 추억이 고스란히 배어 있고 오순도순 서로 정을 나누는 마을 공동 행사도 학교가 중심이었다. 원주민들이 시내로 하나둘 떠나면서 마을 학교가 폐교 위기에 처하자 원주민들은 십시일반 성금을 내놓고 공동주택을 짓고 마을 이주자를 유치했다. 지난해 초등학생 자녀를 둔 이주민 12가구가 한꺼번에 마을로 전입했다. 폐교 위기였던 학교는 학생수가 종전 45명에서 62명으로 늘어났다. 서울과 경기, 전북 등 전국에서 이사 온 이주민들은 주민들이 제공하는 공동주택에서 집 걱정 없이 거주하며 원주민들과 어울려 산다. 송당초교 고희리 교감은 “전입생들이 원주민 자녀와 잘 어울리는 등 학교가 활기를 되찾았다”며 “원주민들도 자녀를 데리고 이주한 이들 이주민이 오랫동안 송당마을에서 함께 살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제주 이주는 아름다운 자연환경에서 여유롭게 노년을 보내겠다는 은퇴형 이주자와 제주 관광 경기와 개발바람 등에 기댄 생계형 이주자, 귀농자 등으로 나뉜다. 이들은 자신들의 처지에 따라 원주민 마을공동체 속으로 들어가거나 아예 나홀로 또는 이주민끼리 따로 사는 방식을 택한다. 제주 이주민정착주민지원위원회 위원인 안은주 제주올레 사무국장은 “이주자들이 혈연, 지연, 학연 등 제주 특유의 괸당 문화 속에서 사고하고 행동하는 제주 사람들의 삶에 동화되기는 어렵다”며 “대도시에서 밀려나 새로운 기회를 찾아 제주로 온 생계형 이주자들에게 제주사회가 관심과 함께 정착을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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