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색깔타령만 할 것인가
최근 여야의 입씨름과 저질 논쟁은 우리 정치문화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친일 의혹’‘창씨개명’등 상대방 비방으로 확전되는가 했더니 이제는 ‘사회주의 정책’운운으로 논란을 빚고 있다.
한나라당 김만제(金滿堤)정책위 의장은 현 정부의 기업규제,저소득층 지원정책,국민기초생활보장제 등을 “시장경제 원리에 역행하는 ‘낡은 사회주의 정책’이자 대중인기영합 정책”이라고 비난했다.김 의장은 “현 정부가 내세우는 신자유주의는 사회주의자들이 사회주의만으로는 안되겠다 싶어 시장기능을 가미한 것”이라며 ‘중도 좌파’라고 규정했다.그는 또 “경제적인 분배 효과와 이해 상충을정부가 해결하겠다는 것이 노사정위원회인데 이러한 발상부터가 대표적인 사회주의적 발상”이라고 비판했다.이에민주당은 “서구 민주국가들이 추구하는 사회복지정책을낡은 사회주의 정책이라고 한다면 한나라당은 특권층을 위한 정당이냐”고 되받으면서 “김 의장은 붉은 색만 보이는 색맹”이라고 반박했다.
우리는 신자유주의를 기본적으로 사회주의로 보는 김 의장의 시각에 동의하지 않는다.전세계 진보주의자들이 신자유주의가 ‘빈익빈 부익부’를 세계화한다고 공격하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서도 적절하지 않기 때문이다.뿐만 아니라 국민기초생활보장제는 외환위기 극복 과정에서 양산된실업자 등 저소득층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이고,공적자금 투입 또한 경제를 살리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 아니었던가.
여야 정치권이 최근 국민들에게 보인 행태는 상대방에 대한 무차별적인 흠집내기와 인신공격적인 막말 공방으로 일관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한국 정당사에 있어 정당간 경쟁은 늘 기(氣)싸움·세(勢)싸움 수준에서 맴돌았지 언제토론다운 토론,논쟁다운 논쟁을 해본 적이 없다.지금 여야간에 제기되고 있는 노동·소득분배 문제,국민연금,재벌정책,언론개혁,주5일 근무제,감세정책 등은 그야말로 당의이념적 성격과 정책 방향을 놓고 대토론을 벌일 만한 문제라고 본다.이런 본질적인 문제를 단순히 ‘낡은 사회주의’라는 색깔론으로 비방할 일은 결코 아닐 것이다.
사회민주주의와자유민주주의,진보와 보수,사회주의와 시장경제,서구복지개념의 수용과 시장논리의 조화 등 정치이념이나 정책노선의 스펙트럼을 놓고 여야 정당이 공개 토론을 할 수 있을 것이다.예를 들면,민주당이 서민,소외계층을 기반으로 한다면,한나라당은 보수층을 대변하는 정당으로서 노선과 성향을 분명히 해나갈 때가 왔다고 본다.저급한 말싸움이나 장외집회로 일방적인 정치선전을 하는 짓거리는 걷어 들이고,장내로 돌아와 국정운영의 비전 제시나 정책 토론을 통해 국민의 지지 확보 경쟁을 벌여야 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