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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佛 대통령 사르코지 당선] “니콜라 니콜라”연호하며 수천명 기쁨의 샹송

    |파리 이종수특파원|“10,9,8,…0, 니콜라 사르코지 53%” “와…삐이익, 쿵쿵” 6일 저녁 8시(현지시간) 프랑스 여당 대중운동연합(UMP) 당사가 있는 파리 8구 보에티 네거리. 당사 맞은편 건물에 걸린 대형전광판에서 출구조사 결과가 생중계되자 거리는 흥분의 도가니로 변했다. 수천명의 사르코지 지지자들의 열광적 환호가 이어졌고 나팔소리, 경적소리 등이 터져나왔다. 곧이어 프랑스 국가 ‘라 마르세예즈’를 합창하면서 푸른 풍선이 하늘로 올라갔고 국기가 펄럭였다. 거리는 어느새 푸른색으로 변했다. 당사 앞은 8시 이전부터 승리를 예감한 수천명의 인파가 몰려들었다. 유모차에 아이를 태워온 젊은 부부, 사르코지 선거운동 포스터를 새긴 티셔츠를 입은 젊은이들, 두 손을 꼭잡고 기뻐하는 노부부 등 모두가 신명난 표정이었다. 출구조사 결과가 나오자 곳곳에서 샴페인·포도주를 터뜨리면서 기쁨을 나눴다. 이윽고 사르코지가 도착했다. 그가 당사 옆 가보 콘서트홀에 마련된 임시 무대에서 당선 사례를 했다. 이어 “너무 감사하다.”는 말을 되풀이하면서 걸어나왔다. 지지자들은 손을 흔들며 “니콜라 니콜라”를 연호하면서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열성당원이라고 소개한 생클레르(20)는 “다수 국민의 선택이다. 너무 기쁘다.”며 “미래에 대한 계획과 인물의 승리”라고 소감을 들려줬다. 옆에 있던 주부 카테린 뒤샹(48)은 들뜬 목소리로 “너무 행복하다.”고 말문을 연 뒤 “이제 변화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말했다.vielee@seoul.co.kr
  • 암트랙 타고 美 캘리포니아 여행

    암트랙 타고 美 캘리포니아 여행

    미국 캘리포니아 체류일정 중 단 하루의 여유가 생겼다. 어디로 갈까. 미국의 전 대통령 해리 트루먼은 “당신이 탑승한 기차안의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그 나라를 진실로 경험하는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럼 서부지역 해안을 따라 달리는 기차여행을 해볼까. 애너하임에서 샌타바버라(Santa Barbara)까지 왕복일정이 미국의 전통적인 시골모습과 아름다운 태평양의 풍경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코스라는 말에 선뜻 기차여행에 나섰다. 소요시간은 편도 3시간 남짓. 아침 첫차를 타고 5시간 가량 샌타바버라를 둘러본 다음, 오후 4시 막차를 타고 오는 12시간 여정이다. 아침 8시 9분. 미국 프로야구 애너하임 에인절스팀의 연고구장인 에디슨필드 야구장 옆 암트랙 애너하임역. 상큼한 아침공기를 가르며 높다란 2층 객차로 구성된 암트랙이 미끄러지듯 플랫폼으로 들어왔다. 태평양과 인접해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선가.‘서프 시티’라는 이 지역 별칭에 걸맞게 기차 이름도 ‘서프라이너’다. 기관차를 제외하고 모두 5량.1층을 지나 전망좋은 2층칸으로 올라갔다. 좌석넓이는 새마을호 일반실 정도. 냄새없고 깨끗한 것이 마음에 든다. USA투데이를 읽는 직장인, 낱말맞추기 게임을 하는 어르신, 선 잠을 자는 뚱보 아가씨 등 우리네 기차안 풍경과 별반 차이가 없다. 단지 피부색과 체격이 조금 다르다는 것뿐. 서둘러 창가쪽 자리를 차고 앉았다. 기차가 목쉰 소의 울음소리 같은 기적을 울리며 애너하임역을 빠져 나갔다. 등받이에 한껏 몸을 기댄 채 차창밖 풍경으로 시선을 돌렸다. 들녘에서 채소를 수확하는 농민들이며 진고동색 나무 전신주 늘어선 길을 털털거리며 달리는 낡은 자동차, 그리고 지진 등 자연재해에 대비해 목재로 지어진 가옥들. 사람사는 냄새가 물씬 풍기는 모습들이다. LA 유니언역에 도착해 30분정도 쉬면서 대부분의 승객들을 내려놓은 서프라이너는 한결 가뿐해진 몸으로 샌타바버라를 향해 내달렸다. 대도시 LA에서 멀어질수록 기차는 점점 한적한 교외 풍경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길모퉁이 어디엔가 노래제목처럼 ‘호텔 캘리포니아’가 서있을 것만 같다. 창밖 좌우로 캘리포니아의 광활한 곡창지대가 펼쳐졌다. 벤추라에 가까워지자 왼쪽 창가에서 느닷없이 태평양이 뛰쳐 나왔다. 서부지역 기차여행의 백미가 바야흐로 시작되는 순간이다. 효도관광을 가는 우리네 부모들처럼 샌타바버라로 놀러간다는 백인 노부부 일행들이 박수를 치며 즐거워한다. 과연 넓긴 넓다. 대양(大洋)의 참모습이 여실히 느껴진다. 바다와 나란히 선 프리웨이는 말 그대로 자유를 찾아 쉬임없이 달리는 듯하다. 해변에서는 사람들이 쉬임없이 밀려드는 파도를 타고 서핑을 즐기는가 하면, 애견과 함께 모래밭을 산책하기도 했다. 세시간여 여행끝에 LA에서 북쪽으로 128km쯤 떨어진 샌타바버라에 도착했다. 도시를 포근히 감싸고 있는 해안선과 산타 이네즈 산맥 등 수려한 풍광과 온화한 지중해성 기후 덕에 부자들이 많이 사는 곳이다.18세기말 지어진 샌타바버라 성당을 중심으로 시가지가 형성되면서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유물과 박물관 역할을 한다. 해안선이 절경이라는 바닷가로 향했다. 샌타바버라역에서 도보로 5분거리. 바다를 향해 돌출한 스턴스 워프주변으로 20∼30m 높이의 야자수가 늘어서 있고, 그 아래 끝없이 펼쳐진 하얀 모래밭이 파란 태평양과 몸을 비비며 희롱하고 있다 샌타바버라 손원천 특파원 angler@seoul.co.kr # 여행팁, 모르면 손해 ● 애너하임에서 샌타바버라까지 왕복운임은 일반석 기준 50달러. 암트랙 패스를 이용하면 훨씬 저렴하다. 투어 마케팅 코리아(www.tourmktg.co.kr)에서 암트랙 패스 등을 판매하고 있다.(02)732-8301. 암트랙 한국어 홈페이지(www.amtrack.co.kr)도 둘러볼 만하다. 현지 여행사에서도 암트랙 표를 구입할 수 있다. 유사시에 신속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조은관광(www.jountour.com)213-382-3333. ● 도심과 부도심을 연결하는 메트로링크열차와 혼동하지 말 것. 또 가급적 밤에는 기차를 이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 기차 객실 좌석마다 전기 콘센트가 설치돼 있다.110V.2점식 플러그를 준비해 가야 한다. ● 샌타바버라 지역을 도는 셔틀버스가 오전 9∼10시까지는 30분, 오전 10시∼오후 6시까지는 10분 간격으로 운행된다.25센트. ● 샌타바버라역 주변에 자전거 대여점이 있다. 하루 30∼50달러선.
  • [건축가의 생활 탐험] 코펜하겐으로 가는 기차

    [건축가의 생활 탐험] 코펜하겐으로 가는 기차

    글 황두진 건축가 24세가 되던 해 여름의 어느 날, 나는 코펜하겐으로 가는 기차에 타고 있었다. 배낭 여행을 떠난 지 두 달이 거의 다 되어 슬슬 집으로 돌아갈 날을 헤아리던 중이었다. 인터넷은 당연히 없었고, 학생 신분이라 크레딧 카드 같은 것은 상상도 못했다. 여행자 수표를 복대에 넣어 배에 차고 다니던 시절이었으니 기차에서 잠을 잘 때면 마음 속 한 구석이 늘 불안했다. 당시만 해도 동구권과 구소련은 입국 자체가 불가능했다. 아니 입국이 된다 하더라도 귀국 후에 상당한 고통을 감수해야만 했다. 어떻게 알았는지 검은 옷의 남자들이 공항으로 모시러(?) 온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그리곤 집이 아닌 어떤 다른 곳으로 끌고 간다는 것이었다. 사회 곳곳에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두운 구멍들이 여기저기서 입을 벌리고 있던 시절이었다. 당시 나의 목표는 서유럽의 가장 북단까지 가본다는 것이었다. 인간의 문명과 자연이 만나는 곳까지 가고 싶었다. 물론 탐험이 아닌 여행을 하던 중이었으므로, 어디까지나 기차 등 대중 교통 수단을 이용한다는 전제가 있었다. 그래서 핀란드를 거쳐 스웨덴, 노르웨이를 차례로 가보고자 했다. 그러나 그 전에 나는 집안 문제 하나를 돌볼 필요가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나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살던 도시를 찾아가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 두 분은 우리 3형제에게 아주 가끔씩 엽서나 작은 선물 같은 것을 보내셨다. 무역 관계 일을 하시던 아버지가 유럽에 출장이라도 다녀오시면, 그 편에 좀더 푸짐한 선물 꾸러미를 보내주셨다. 나는 머리 속으로 당시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에서 편안하게 노후를 즐기시는 두 분의 모습을 그리곤 했다. 그러다가 우리가 어느 정도 성장하고 나니 엽서도 편지도 끊어졌다. 아니 그분들과의 연락 자체가 두절되었다. 유감스럽게도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그분들의 생사조차 알 길이 없다. 물론 우리 어머니가 70세를 훌쩍 넘기셨으니 두 분이 아직도 살아계실 리 없다. 코펜하겐 역에서 기차를 내린 후 나는 유명한 티볼리 공원을 찾았다. 그리곤 벤치에 걸터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우리나라의 일인당 국민소득이 3천 불 정도 하던 시절이었다. 반면 덴마크를 위시한 북구 국가들은 유럽 중에서도 소득이 가장 높은 편이었다. 이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풍요로운 사회가 내 눈앞에 여유롭게 펼쳐져 있었다. 다음 기차까지 두 시간 남짓 남아 있었다. 당연히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를 서둘러 찾아 나섰어야 했지만, 솔직히 나에게는 그분들의 주소조차 없었다. 아니 애초에 주소 같은 것은 있지도 않았다. 그분들은 이 도시에 살았던 적이 없다. 어린 시절, 우리는 어머니에게 왜 우리에겐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없는가’라고 물었다. 어린이들이란 의외로 집요한 데가 있다. 처음에 적당히 둘러대려 하셨던 어머니는 계속되는 질문에 결국 극단적인 방법을 썼다. 마침 벽에 세계지도가 걸려 있었다. 어머니의 눈높이에 어느 도시의 이름이 들어왔다. 그래서 어머니는 우리에게 이렇게 이야기하셨다. 그분들은 아주 먼 곳에 사신다고, 그래서 아버지는 가끔 들르시지만 너희는 어려서 갈 수가 없다고. 게다가 그분들은 나이가 너무 많아서 오시기도 힘들다고. 어머니가 한국전쟁 당시 홀로 남하했으며, 가족들이 아직도 원산 일대에 살고 있을 것이라는 말을 차마 할 수는 없으셨을 것이다. 북한에는 모두 머리에 뿔이 난 괴물들만 살고 있다고 가르치던 시절이었다. 사랑하는 가족들을 괴물로 만들기 싫어서 어머니가 만들어낸 거짓말에 아버지는 흔쾌히 공범이 되어 주셨다. 그래서 아버지가 다니던 회사의 유럽 지사에 계신 분들에게 부탁하여 가짜 엽서를 보내게 하거나, 아버지가 출장 때면 일정에도 없는 코펜하겐을 찾아 한 번도 뵌 적이 없는 장인장모를 만나고 오신 척했다. 우리 부모님은, 이를테면, 우리를 속인 것이다. 그러다가 우리가 성장하면서 우리는 서서히 사실을 알게 되었다. 두 분이 한 번도 우리를 불러다 놓고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라고 하신 적은 없다. 산타클로스를 믿지 않게 되면서 코펜하겐 이야기도 차차 머리 속에서 지워졌던 것 같다. 서서히 해가 지려하고 있었다. 다음 기차 시간까지 이제 30분도 남지 않았다. 나는 필기도구를 챙기고 가방을 다시 꾸린 후, 바닥에 돌이 깔려 있는 구도심의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코펜하겐에는 유난히 거리 악사들이 많았다. 느긋한 표정으로 음악을 듣거나 그들에게 동전을 주는 사람들 중에는 노부부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그들의 모습 위에 우리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모습이 자꾸 겹쳐지는 듯했다. 막상 찾아와 보니 코펜하겐은 정말 아름다운 도시였다. 그나마 그 사실이 내게 큰 위안이 되었다. 기차가 코펜하겐 역을 빠져나가면서, 나는 내 마음 속의 두 분에게, 그리고 내 어린 시절의 기억에 대해 인사를 전했다. ‘또 올게요’라고.     월간 <삶과꿈> 2007.03 구독문의:02-319-3791
  • [열린세상] 5월의 골목길/김형태 변호사

    [열린세상] 5월의 골목길/김형태 변호사

    오래전 대학시절,5월의 골목길은 참 좋았다. 고3짜리 영어 가르치러 가던 그 골목길에는 집집마다 담장 너머로 빨간 장미며 라일락들이 얼굴을 내밀었다. 어디 그 골목길뿐이었으랴. 산동네 손바닥만한 마당 한 귀퉁이에도 봉숭아며 수국, 분꽃이 키를 재며 제 자랑을 했다. 이제 다 사라졌다. 서울 어느 골목길을 가도 장미, 라일락은커녕 한뼘의 땅도 남김없이 다가구며 원룸 건물들이 들어섰다. 봄이면 라일락 향기에, 낮잠을 불러오는 여름 한낮 엿장수의 가위질 소리며 겨울날 눈송이 가득 찼던 고즈넉한 골목길은 이제 자동차들만 줄줄이 늘어서 있다. 마당 조금 남아 있는 우리집을 보고는 복덕방 아니 중개업소에서 성화다. 거기에 원룸 지으면 월수입이 얼만데 그냥 놀리느냐, 왜 바보짓 하느냐고. 돈은 우리를 그냥 놓아두지 않는다. 똑똑해져라. 이윤을 남겨라. 그래서 우리동네 골목길도 장미 한송이 찾아볼 수 없고 라일락 향기 꿈도 못 꾸는, 아주 똑똑하고 영악한 골목길이 되었다. 삼십년째 골목을 지키던 구멍가게도 엊그제 문을 닫았다. 초등학교때 돈 백원 졸라서 쪼르르 달려가 과자 사오던 그 가게가 없어진다니 딸아이가 제 일처럼 슬퍼한다. 인근에 대형마트가 문을 열어 노부부는 구멍가게에서 용돈 벌기도 어렵게 되었다.“학교 잘 갔다 왔니, 밥 먹었니. 엄마 어디 갔니.” 묻고 답하던 주인아줌마와 어린 딸 사이에 이어져 온 인연도 더불어 사라졌다. 얼마전 한·미 자유무역협정안을 타결하면서 대통령은 이랬다.“농업, 제약업 빼고 뭐가 손해라는 것인지, 누구도 제대로 답을 못 하더라.” 협정안의 구체적 내용이 나오지도 않은 상태에서, 그리고 구체적 내용이 나온다 한들 미국과 주고받은 득실의 크기를 가늠하는 것은 쉽지 않다. 수십배, 백배 큰 규모의 미국과 완전경쟁을 하게 되었으니 힘이 약하다고 관세나 규제를 통해 도와줄 수도 없게 되었다. 그런데 FTA의 득실을 세세히 따져 보지 않아도 분명하게 예측할 수 있는 결과가 두 가지 있다. 그첫째가 약자의 도태. 농촌이며 중소기업 그리고 밑천도, 머리도, 별다른 재주도 없는 서민들은 경쟁에서 도저히 살아남을 길이 없고 부자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자선에나 기댈 수밖에 없다. 정부는 노골적으로 폐업지원금을 주면 된다는 식으로 ‘베풀고 얻어먹는’ 시스템을 당연시하고 있다. 그러잖아도 최근 통계를 보면 중산층이 20% 이상 줄어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이 하층계급으로 내려선 터다. 현대자동차가 미국시장에서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그 돈은 주주인 외국인과 국내 부자들 사이에서만 돈다. 둘째 우리 사회의 모든 가치는 돈 하나로 통일되고 말 게다. 돈을 벌 자유만이 유일의 목표인 미국식 자본주의와의 경쟁속에서, 아니 그 체제로 귀속되면서 수천년 내려온 전통이 보존된 시골이며 없는 이들 사이의 끈끈한 정, 연대는 돈 앞에 사라질 수밖에 없다. 국가나 부자들로부터 얻어먹는 것이 아니라, 많이 못 벌어도 자존심 지니고 제 손으로 벌어먹는 것도 힘들어졌다. 고기를 먹인 소나 돼지, 닭을 먹지 않을 자유도 돈 앞에서는 더 이상 불가능하다. 우리 헌법에는 그러지 말라고 써 있다.‘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그런데 농민과 서민을 위해 규제와 조정을 하면 미국회사가 우리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걸어오게 되어 있다.“돈이 최고요, 완전경쟁 사회로 가자.”며 대통령이 마음대로 우리의 미래를 결정할 권한이 있는 걸까. 나는 월세수입 수십만원을 사양하고 장미꽃 핀 5월의 골목길을 걷고 싶다. 김형태 변호사
  • [이색거리 탐방] (7) 성북구 성북동길

    [이색거리 탐방] (7) 성북구 성북동길

    서울 성북구 성북동 뒷길에는 근현대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험난한 역사를 묵묵히 걸어온 선인의 발자취를 찾아 훌쩍 떠나보자.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시민문화 유산 최순우 옛집 성북동길에서 만나는 첫 문화유산은 최순우 옛집이다.1916년 개성에서 태어난 혜곡 최순우(1916∼1984) 선생은 고려청자 전문가로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냈다. 그는 1920년대 이 한옥을 지어 우리 것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뽐냈다. 미닫이창, 이름 모를 나무, 추녀 끝의 소방울, 백자 항아리…. 그의 대표적인 저서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도 이곳에서 집필했다. 특히 2002년 이 집은 헐릴 위기에 놓였으나 시민들이 되살렸다. 문화유산위원회가 민간모금운동을 펼쳐 집을 사들였고 1년여 보수공사 끝에 복원했다. 이후 ‘시민 문화유산 1호’라는 별칭을 얻었다. ●누에 풍년기원 선잠단지 최순우 옛집 건너편에는 선잠단지가 있다. 옷감짜는 일이 중요하던 시절 누에농사의 풍년을 빌던 곳이다. 매년 늦은 봄(음력 3월) 뱀날(巳日)에 왕비가 친히 참여하는 친잠례(親蠶禮)가 열렸다. 현재는 그 터만 남아 50여그루의 뽕나무가 자라고 있다. 지금도 동네 어른들이 매년 4월에 제사를 지낸다. ●조선시대 별장 성락원 선잠단지를 지나 성락원길로 올라가면 조선시대 별장 성락원(사적 378호)이 나온다. 의친왕 이강이 35년간 별궁으로 사용했던 곳이다. 물줄기가 폭포와 연못을 돌아 아름드리 나무가 빼곡한 정원으로 유유히 흐른다. 추사 김정희가 서쪽 암벽에 ‘장빙가(檣氷家)’라는 글씨를 남겼다. 개인소유라 방문할 수가 없다. 담 너머로 경치를 훔쳐보고 돌아섰다. ●환골탈태 길상사 성락원의 아쉬움을 길상사에서 위로받았다. 길상사는 1980년 말까지 삼청각, 청운각과 함께 최고급 요정의 하나였던 대원각 자리에 세워져 있다. 주인 고 김영한 여사가 법정 스님의 ‘무소유(無所有)’에 감명받아 7000여 평 대지와 건물 40여 동(약 1000억원)을 시주하면서 1997년 길상사로 환골탈태한다. 그래서인지 사찰이 조선시대 별장처럼 아늑하고 평화롭다. 숲 속을 걷듯 계곡물이 맑고 새소리가 정겹다. 일반인이 불교 경전과 수행법을 쉽게 체험하도록 ‘길상선원’을 개원했다. 덕분에 외국인 관광객의 필수 관광코스로 자리잡았다. ●최초의 사립박물관 간송미술관 성북초교 운동장을 가로지르면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사립박물관이 보인다. 고 전형필(1906∼1962) 선생이 33세 때인 1938년에 세웠다. 종로 부호의 아들이던 전 선생은 휘문고와 일본 와세다대학을 졸업한 엘리트였다. 그는 나라를 지키는 길은 문화재를 보존하는 것이라 생각, 가산을 쏟아부어 평생 민족문화재를 수집했다. 매년 5월과 10월에 전시회를 열 때만 출입이 허용된다. ●전통 찻집 수연산방 성북2동 동사무소 옆에 자리한 전통 찻집 수연산방은 상허 이태준 선생의 고택을 손녀가 개조한 곳이다. 전통 차를 마시며 한옥에 정취에 빠져들면 시간이 멈춘 듯하다. 라일락 나무 아래 놓인 둥그런 의자와 테이블이 운치를 더한다. 가장 인기 있는 자리는 사랑방 바깥쪽 자리. 담장 너머로 북악산 자락이 보이는 까닭이다. ●20세기 한옥 이재준가 이태준가 맞은편 덕수교회 안에는 이재준가가 있다.1900년대 지어진 건평 29.8평의 아담한 집이다. 사랑채 비슷한 별채의 안채와 이에 딸린 행랑채로 이뤄져 있다. 집터 주위의 수목은 마당 소나무와 어우러져 예스러운 멋을 풍긴다. 마포에서 젓갈장사로 부자가 된 이종상이라는 사람의 별장으로 소설가 이재준씨가 살았기에 이렇게 부른다. 교회가 관리하고 있어 주로 문이 닫혀 있다. ●만해 한용운 집 심우장 만해 한용운(1979∼1944) 선생의 집 ‘심우장’은 폭 1m 골목에 숨어있다. 만해가 3·1운동으로 3년 옥고를 치르고 나와 거처가 없을 때 주위 도움으로 지은 집이다. 그는 조선총독부가 싫어서 집을 남향이 아니라 북향으로 지었다. 마당에는 만해가 직접 심은 향나무가 있다.1944년 조국의 광복을 앞두고 그는 이 집에서 눈을 감았다. 방에는 만해의 글씨, 연구논문집, 옥중공판기록 등이 쓸쓸히 놓여 있다. ■ 북악스카이웨이와 서울 성곽 길 북악스카이웨이 산책로(3.2㎞)는 성북구민회관에서 성가정입구를 거쳐 북악골프장, 팔각정, 종로구 경계까지 이어진다. 처음에는 등산하듯 산을 올라 힘겹지만, 곧이어 북한산과 남산, 한강, 서울이 왼쪽과 오른쪽으로 번갈아가며 펼쳐진다. 숲 속길이 대부분이지만, 도로와 맞닿은 산책로도 있다. 매연이 싫다면 손수건을 준비하자. 아쉽게도 북악골프연습장 부근에서 산책길이 끊긴다. 성북구가 구름다리 설치공사를 시작했다. 서울 주위를 둘러싼 조선시대 성곽(4㎞)이 또 다른 산책로다. 바닥에서 쏘아올리는 야간 경관조명이 은은히 밤하늘을 비추면 평화롭기 그지없다. 돌계단이지만, 길 따라 쉼터가 많아 초보자도 걷기에 힘들지 않다.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노부부에서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는 10대까지 다양한 사람도 구경할 수 있다. 정상에 오르면 멀리 서울타워가 보이고, 성균관대와 창경궁이 손에 닿을 듯 가깝다.
  • 인간?신선? 33년째 무릉도원서 사는 노부부

    인간?신선? 33년째 무릉도원서 사는 노부부

    “이곳이 바로 도연명(陶淵明)이 말한 유토피아인 ‘무릉도원(武陵桃源)’입니다.” 중국 대륙에 33년동안 세속을 등지고 첩첩산중 깊은 산속에서 부부가 신선처럼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들은 중국 중부 후베이(湖北)성 언스투자주먀오주(恩施土家族苗族)자치주 리촨(利川)시의 심심유곡에서 생활하고 있는 친다이화(秦代華·67)·리차이메이(李才梅·65) 부부.이들 부부는 지난 1974년 아무도 찾을 수 없는 첩첩산중 심산유곡에 너새집을 마련,세속의 일들은 까마득히 잊은 채 농사를 지으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사실이 공개돼 주목받고 있다고 중경신보(重慶晨報)가 최근 보도했다. 지난달 26일 기자가 찾은 리촨시 치야오산(七耀山)의 첩첩산중 심산유곡.이 깊은 산골짜기에는 천인단애(千*斷崖)의 절벽이 우뚝 솟아있었다.절벽을 쳐다보고 있으면 아찔한 현기증을 일어날 정도였다. 절벽으로 올라가는 초입에서부터 허위단심으로 험난한 조도(鳥道)와 잔도(棧道)를 30여분 따라 올라가면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수 있을 만한 동굴이 나타난다.동굴 안쪽으로 얼굴을 들이밀자 눈앞에는 햇빛이 쏟아져 눈을 뜨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잠시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뜨니 험준한 산봉우리가 앞을 가로막았다.산봉우리에 난 좁장한 소로길을 이리 구불,저리 구불 한참을 걸어가니 좁은 동굴이 또다시 나왔다.이 동굴 속으로 들어가자마자 답답한 마음이 확 트이게 하는 개활지가 나타나고 그 앞에는 수백m 높이의 절벽이 기자 앞으로 몸을 던지듯이 맞는다. 이 절벽 앞에 난 자드락길을 따라가니 또다른 동굴이 나오고,동굴 속으로 발을 내딛자 싸리 울바자로 단장한 아담한 너새집이 기자를 가로막는다.싸리 울바자 너머로 집안을 슬쩍 엿보니,낯선 사람을 본 닭이 놀라 울기 시작하고 개가 짓는 등 너새집은 한바탕 야단법석이다.이곳이 바로 도연명이 염원하던 바로 그 이상향인 ‘무릉도원’이었다. 집안의 닭과 개짓는 소리를 들은 이들 부부는 농삿일을 준비하다말고 달려나와 손님들을 맞았다.하지만 33년만에 처음으로 사람들을 만난 탓인지,어딘가 어색해 한참을 우두망찰 바라만 보고 있었다. “이곳은 바로 청정무구한 세상입니다.특히 세사나 사람들과 다툴 일이 없으니 신선처럼 지낸다고 보면 됩니다.” 이곳이 ‘무릉도원’이라고 서슴없이 말하는 친씨는 “이곳에 온 사람은 당신들이 처음”이라고 털어놨다. 이들이 이곳에 온 것은 지난 1974년.당시 리촨시 보양(柏楊)진에 살고 있던 이들은 문화혁명(文化革命)의 광풍이 불던 막바지 시기여서 세상이 피폐할대로 피폐한 데다 형제는 많고 땅은 별로 없어 먹고 살기가 힘든 상황이었다.해서 이들 부부는 세상사를 잊어버릴 수 있는 곳으로 떠나 살기로 마음먹었다.부부 두 식구가 배불리 먹고 마음 편하게 살 수 있는 ‘낙토’를 찾아서…. 이들 부부는 괴나리봇짐을 메고 ‘무릉도원’을 찾아 먼 길을 떠났다.그러던중 첩첩산중 심산유곡의 해발 1200m의 고지에 고즈넉하게 자리잡은 이 삶터를 발견했다.부부는 여기가 삶과 죽음,사랑을 만끽할 수 있는 ‘낙토’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서의 생활이 부부에게는 마치 신선과 같은 생활 그 자체였다.두 사람이 먹을 만큼 농사짓고 세속을 등지니 마음이 정갈해지고,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부부는 6000여평의 임야를 개간해 농사를 짓고 양돈·양봉·양계 등으로 자급자족의 생활을 하고 있다.이들은 이곳을 스스로 두 사람만의 자유공간인 ‘정인곡(情人谷·연인곡)’이라고 불렀다. 부인 리씨는 “우리 부부가 이곳에 정착한지 33년이 지났는데.아직 한번도 바깥으로 나간 적이 없다.”며 “이곳 생활이 습관이 된 만큼 죽어도 세상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말했다.옆에 있던 친씨도 “그렇고 말고.”라고 아내의 말에 추임새를 넣었다. 온라인뉴스부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너와 긴 사랑 못나눠 미안하다”

    “너와 긴 사랑 못나눠 미안하다”

    “장호야 말을 해봐라. 아들아, 아들아, 장호야, 장호야….” 가슴 북받치는 설움으로 어머니 이창희(59)씨가 아들을 한없이 부르지만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고(故) 윤장호(27·다산부대) 하사는 말이 없었다. ●싸늘한 주검으로 만난 아들 1일 밤 쿠웨이트 무바라크공항 내 미군 공군기지인 제 5원정 항공지원단내 한쪽 편에서는 지난달 27일 아프가니스탄 바그람 기지 앞에서 발생한 폭탄테러로 숨진 윤 하사의 희생을 기리는 추도식이 열렸다. 추도식은 유해를 인수하러 이날 자이툰부대 교대병력을 위한 전세기 편으로 쿠웨이트에 도착한 부모 등 7명의 유족과 류홍규(공군 준장) 합참 인사부장을 단장으로 하는 유해인수단, 윤 하사가 근무했던 다산부대 장병, 송근호 주쿠웨이트 대사 등 2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숨진 아들을 직접 맞이하려고 10시간의 비행 끝에 7600여㎞를 달려온 노부부는 아들의 싸늘한 주검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고 윤 하사 어머니 여러번 혼절 윤 하사의 유해는 앞서 28일 밤 아프간 바그람 기지에서 미군 수송기(C-17)편으로 무바라크 공항내 미 공군기지인 제 5원정 항공지원단 내에 마련된 전구영현수집소(TMCT)로 운구됐다. 어머니 이씨는 “장호야, 엄마가 너와 길게 사랑을 나누지 못한 게 정말 미안하다.”면서 “이제 봉우리가 활짝 피는 꽃이 돼야 하는데 꽃도 피워보지 못하고 떨어졌다.”고 울먹였다. 이씨는 또 “장호야, 정말 잘해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용서해줘….”라면서 얼굴을 감쌌다. 이씨는 아들의 유해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여러 차례 혼절해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아버지 윤희철(65)씨도 “장호는 입대 후 처음에는 자이툰부대에 지원했다가 떨어져 다시 다산부대를 지원, 파병 길에 나섰다.”면서 “아들은 정말 용감하고 훌륭한 대한민국 최고의 군인”이라고 말했다. ●육군, 윤 병장 1계급 특진 윤 하사의 유해는 1일 저녁 아시아나 전세기편으로 쿠웨이트를 출발해 2일 오전 7시쯤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한다. 합참은 윤 하사의 장례를 5일쯤 원소속부대인 특전사부대장(葬)으로 치르는 방안을 유족과 협의하고 있다. 육군은 2일부터 4일까지를 조문기간으로 정하고 많은 장병들이 조문토록 할 방침이다. 이보다 앞선 1일 육군은 지난달 27일 아프가니스탄 무장세력의 폭탄테러로 숨진 윤장호 병장을 하사로 1계급 진급시켰다고 밝혔다. 육군 관계자는 “윤 하사의 소속부대 중대장이 1계급 진급 추서를 건의해와 지난달 28일 오후 육군 인사사령부가 심의, 진급 추서 명령을 하달했다.”고 밝혔다. 공동취재단·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깔깔깔]

    ●대단한 할머니 오랫동안 살면서 매일 부부싸움을 하던 노부부가 있었다. 할아버지는 싸울 때마다,“내가 죽으면 무덤을 파고 올라와서 당신 죽을 때까지 따라다닐거야.” 라고 말하곤 해서 이웃들은 할아버지가 악마의 마법을 연습한다고 두려움에 떨며 살았다. 어느날, 할아버지가 죽고 간단히 장례를 치렀는데, 할머니가 아무 걱정없이 친구들과 파티를 하기에 이웃들이 다가가 걱정스레 물었다. “할머니, 무섭지 않으세요?” 그러자, 할머니가 하는 말 “그 영감탱이, 열심히 땅 파라고 그래. 내가 관을 뒤집어서 넣어놓았으니까.”●살면서 공감하는 착각들 1. 인터넷 광고회사의 착각-광고창을 계속 뜨게 만들면 언젠가는 접속해주는 줄 안다. 2. 연애 안해 본 남자의 착각-상대방이 원하는 건 뭐든지 해줄 수 있을 줄 안다. 3. 남자의 착각-여자가 자기를 쳐다보면 자기한테 호감있는 줄 안다. 4. 여자의 착각-남자가 자기한테 먼저 말걸면 관심있는 줄 안다. 5. 모든 아기들의 착각-울면 다 되는 줄 안다.
  • [프렌치 리포트] (13) 파리 치안 안전지대 아니다

    [프렌치 리포트] (13) 파리 치안 안전지대 아니다

    주프랑스 한국대사관 홈페이지에 무심코 들어갔다가 이런 내용의 안내 글을 접했다. 지난 11일 이른 오후 RER(고속교외철도) C선 열차 안에서 한 흑인이 귀가 중인 한국인 여학생에게 다가와 시비를 걸었다. 놀란 여학생이 도움을 청하기 위해 휴대전화를 꺼내자 흑인은 휴대전화를 빼앗고 폭력을 휘둘렀다. 다행히 열차에 있던 프랑스인 승객의 도움으로 이 흑인은 경찰에 넘겨졌다. 대사관 측은 교외구간 열차 이용시 승객이 많지 않은 열차 칸에 머무는 것을 자제하고, 시비를 걸어오는 사람이 있으면 무슨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피할 것을 당부했다. 그날 전철 안에서 어떤 장면이 펼쳐졌을지는 안 봐도 상상이 간다. 그 여학생은 얼마나 놀랐을까. 낭만과 예술의 향기가 가득한 파리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리라 상상하기 힘들겠지만 실제로는 다반사다. 낮시간의 한가한 틈을 타 파리에서 교외로 연결되는 고속철도 안에서 요즘 이런 흉흉한 사건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지하철이나 도로, 카페나 식당 가릴 것 없이 곳곳이 지뢰밭이다. ●프랑스 범죄발생 작년 372만건 과장이 아니다. 내무부 발표에 따르면 2006년 한해 동안 프랑스 전역에서 발생한 범죄는 372만 5588건이었다. 전년도에 비해 1.3%감소한 것이지만 상해·폭행·강간·약취 등 개인에 대한 범죄행위는 총 43만 4183건으로 2005년보다 5.5% 증가했다. 파리에 여행 온 사람들에게 항상 당부하는 것이 있다. 소매치기를 조심하라는 것이다. 한국인과 일본인이 현금을 많이 갖고 다닌다는 것은 소매치기범들에게 ABC나 다름없다. 동양인들은 이들에게 1차 표적이 된다. 예전에는 집시 꼬마들이 몇명이서 떼를 지어다니면서 지갑 털이를 했다. 한 아이가 신문같은 것을 들고 와서 귀찮게 굴고, 이 아이랑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 다른 아이가 지갑을 슬쩍해 가는 것이다. 이 수법은 요즘의 범죄행태에 비하면 애교에 가깝다. 지금은 북아프리카나 아프리카계 젊은이들이 떼를 지어다니면서 강도, 폭행, 방화 등 각종 범죄를 저지르는데 흉기를 동원하고 여럿이 한꺼번에 달려들기 때문에 무척 위험하다. 아시아인을 주로 공략하는 소매치기범들은 프랑스의 관문인 샤를드골공항에서부터 ‘손님’들을 맞이한다. 대한항공이나 에어프랑스 등 한국인들이 많이 이용하는 항공기의 이착륙 시간이 이들의 주요 활동시간이다.10시간 이상 비행한데다 시차까지 달라져서 주의력이 떨어지고 긴장이 풀어지는 점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들은 2∼3명으로 조를 짜서 활동하는데 긴장감을 덜어주기 위해 젊은 여성도 끼어 있는 경우가 많다. 공중 전화를 걸거나, 잠시 지도나 안내판을 보고 있는 사이 발밑에 놓아 둔 가방을 들고 유유히 사라진다. 무언가 물어보는 척하면서 짐을 들고 가버리기도 하고 지갑을 털기도 한다. 공항에서 파리로 이동하는 길, 시내의 지하철 안에도 위험은 도사리고 있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대중교통은 RER B선인데 이 안에도 2∼3명씩 조를 짜서 활동하는 소매치기범들이 탑승해 동양인들에게 접근한다. 공항 리무진버스가 도착하는 중심가의 오페라 지역에서도 밤늦게 도착하는 승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소매치기 범죄가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다. 지하철의 경우 개선문과 샹젤리제, 콩코드광장, 루브르 등 유명 관광지를 연결하는 1호선에서 사고가 빈발한다. 출입문 가까이에 있다가 출발시점에 가방을 채서 달아나는 방법을 사용한다. ●2명이 탄 오토바이 접근하면 경계해야 유명 관광지일수록 사고가 많다. 에펠탑, 루브르 궁전, 베르사유 궁전 등 파리의 유명 관광지들은 사고빈발지역으로 꼽힌다. 거리의 화가들 때문에 낭만의 파리를 상징하는 몽마르트르 언덕이나 파리의 명물 벼룩시장은 사고가 많은 지역이니 특히 조심해야 한다. 두세명씩 조를 이룬 외국인들이 말을 걸어오거나 신체적으로 접근해 오는 경우 무조건 피하는게 좋다. 한 사람은 친절한 태도를 보이며 호의를 베푸는 척하고, 그 사이에 다른 사람이 소매치기를 하는 수법을 쓰기 때문에 아예 근접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피하는 방법이다. 파리 시내의 기차역도 소매치기범들의 활동지역이다. 소매치기범들은 역사 내에서 어슬렁거리다 기차에 올라타 출발하기 직전의 어수선한 분위기를 이용해 핸드백이나 가방을 슬쩍해 간다. 지난 해 보르도 출장길에 TGV안에서 일어난 일이다. 한 노부부가 지방에 있는 별장으로 휴가를 떠나는 길에 봉변을 당했다. 할아버지가 짐을 올리고, 할머니가 옆에서 자리정리를 하는 있는 사이에 의자 등받이에 걸어 두었던 손가방을 누군가 가져간 것이다.“손가방 안에 지갑과 휴대전화, 그리고 별장 열쇠까지 들어 있다.”며 난감해 하던 할머니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시내의 카페도 예외가 아니다. 이런 일도 있었다. 에펠탑이 바라다 보이는 트로카데로 광장의 노촌카페에서 특파원들 몇명이서 차를 마셨다. 차를 부지런히 나르던 점원이 우리들에게 “혹시 뭐 잃어버린 것 없느냐.”고 물었다. 옆 테이블에 수상쩍은 남자가 앉아 있었는데 갑자기 모습을 감췄다는 것이다. 살펴보니 우리 일행 중 한 명의 서류가방이 사라지고 없었다. 다섯 명이 눈 10개를 뜨고서도 발 아래 둔 가방 가져가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니 기가 막혔다. 가장 무서운 것은 2인조 오토바이날치기다. 파리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아는 친구의 차를 탄 적이 있다. 조수석에 앉아서 무릎 위에 핸드백을 올려 놓았더니 친구는 발 아래로 내려 놓으라고 충고했다. 돌이나 쇠망치 같은 흉기로 유리창을 깨고 무릎 위에 있는 핸드백을 채간다는 것이다. 설마 했는데 실제로 당한 사람이 주위에 있었다. 여행의 즐거움을, 이국생활의 낭만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항상 명심해야 한다.‘가방이나 핸드백은 의자 위에 두지마라. 승용차 문은 반드시 잠그고 유리창도 올려라.2명이 탄 오토바이가 접근하면 경계하라. 보도에서도 차도쪽이 아니라 건물 쪽에서 걸어라. 지하철에 탈 때에는 문쪽에 있지 말고 안으로 들어가라. 낯선 장소, 낯선 사람은 무조건 피하라….’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초호화 유람선 ‘사라진’ 승객들

    초호화 유람선 ‘사라진’ 승객들

    호화 유람선에서 승객들이 사라지고 있다. 자살인지 살인인지 사고인지 단서도 목격자도 없다. 미국 연방수사국(FBI)과 각국 경찰이 수사에 나섰지만 시신조차 발견되지 않았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18일 전 세계 초호화 유람선의 승객들이 감쪽같이 사라지는 ‘미스터리 사건’이 늘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 2일 초호화 유람선 ‘퀸 엘리자베스2호(QE2)’가 웅장한 자태를 드러내며 영국 사우스햄프턴 항구에 입항했다. 예정에 없던 ‘비상 정박’은 사빈이라는 독일 여성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현지 경찰이 배를 샅샅이 수색했지만 흔적도 찾지 못했다. 세계 크루즈 업계에 따르면 2003년부터 지난해 3월까지 유람선에서 사라진 승객은 23명. 이후 불과 1년도 안돼 10명의 승객이 다시 사라졌다. 모두 초호화 유람선에서 일어났다.2005년 5월12일 한 베트남계 미국인 부부가 카리브해를 운항하던 유람선 ‘카니발 데스티니호’에서 사라졌다. 바다 한복판에서 없어진 노부부를 찾기 위해 미국 해안경비대까지 출동했다. 부부는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유서도 없었다. 가족과 함께 탑승한 부부는 모두 건강했고 불화도 없었다. 재정적으로도 윤택했다. 노부부의 가족들은 자살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노부부가 여생을 베트남에서 보낼 계획을 세우며 행복에 빠진 때였다. 아들 마이클 팜은 실종사건 이후 ‘국제 유람선 희생자들’이라는 단체를 설립했다. 유람선에서 사라진 실종자들을 추적하기 위해서다. 미국 ‘국가안보 위협 및 국제관계위원회’ 위원장인 크리스토퍼 셰이드 하원의원은 “상식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실종 사건이 증가하고 있다. 유람선이 완전범죄의 무대가 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2003∼2005년 보고된 유람선 범죄 사건은 178건.FBI는 실제론 더 많이 발생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완전범죄가 의심되는 정황이다. 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녹색공간] 바그너 할아버지의 경고/ 이기영 호서대 식품생물공학과 교수

    2005년 6월, 모교인 베를린 공대에서 2주간 열린 ‘신재생 에너지 워크숍’에 참석하러 독일을 방문했다. 주말에 나는 유학 초창기에 살던 베를린 남부 첼렌돌프를 찾았다. 20년이 지난 오랜 기억을 더듬어 기다란 낡은 2층 연립주택 주변을 몇 번이나 돌았지만 모두 비슷비슷해 도저히 예전에 살던 집을 기억해낼 수가 없었다. 마침 한 노부부가 나와 바그너 할아버지의 옛집을 가르쳐 주었다. 헤르만 바그너. 바로 나의 인생을 바꿔놓았던 독일인 음악가. 그 노부부는 바그너 할아버지의 이웃으로 오랫동안 함께 살아왔기 때문에 그동안의 일들을 소상하게 말해 주었다. 음악명가 바그너가의 한 분으로 베를린 필하모니의 바이올리니스트였던 그는 100세까지 사시고 7년 전 돌아가셨다고 한다. 지금은 교직에서 은퇴한 딸이 그 집에 살고 있는데 바로 1시간 전에 휴가를 떠났다는 말을 듣고 아쉬움에 발길을 돌렸다. 1985년, 독일 유학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무렵, 바그너 할아버지는 갓 결혼한 가난했던 우리 부부를 1년간이나 집세도 안 받고 함께 살게 해 주었다. 할아버지는 당시 85세 고령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건강해 한 겨울에도 방의 창문을 조금 열어놓고 딱딱한 대나무 침대에 달랑 담요 한 장만 덮고 주무셨다. 매일 새벽 5시면 일어나 냉수마찰을 하거나 가부좌로 앉아 명상에 들어갔고 이어서 느린 동작의 중국식 기공체조를 했다. 대개 오전 11시경이나 돼야 간소하게 채식으로 식사를 했는데 키가 크고 마른 몸매였지만 매우 건강하셨다. 할아버지는 가끔 나를 불러내 뒤에 있는 공원에서 탁구를 치곤 했는데 어찌나 체력이 좋으신지 1시간이 넘도록 쳐도 지치질 않아 오히려 내가 먼저 약속이 있다고 둘러대고 도망쳐 나올 정도였다. 가끔 갓 결혼한 우리 부부를 저녁에 초대해 함께 유기농 식사를 나누었고 매달 제자 음악인들을 초청해 하우스 콘서트를 열었다. 할아버지는 독일인이면서 소시지는 물론 우유도 안 드실 정도로 지독한 채식주의자였다. 그는 과학의 발전을 바탕으로 제국주의로 발전한 배타적인 현대 서구 물질문명이 많은 자연친화적 소수 문명을 파괴해 왔다고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과도한 자원과 화석에너지 남용으로 지구의 생태계 파괴를 초래해 인류문명 전체를 파멸로 이끌어가고 있다고 경고하셨다. 동양 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파괴적인 현대문명의 대안으로 동양의 자연철학이 담긴 노자와 장자를 내게 가르쳐주셨다. 나는 동양인이면서도 서양철학에는 일찍이 눈을 떴으나 정작 동양철학은 아는 게 없어서 매우 부끄러웠다.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자연환경에 눈을 뜨게 된 나는 학위 내용도 주정폐수의 자원화 처리를 주제로 마쳤고 오늘날 노래 등 문화를 통한 환경운동을 하게 되었다. 요즘 기상이변의 심화로 지구촌은 점점 황폐화하고 있다.3년 전 미 국방부 기후변화 보고서인 펜타곤 리포트의 경고에 이어 얼마 전 환경운동가로 변신한 미국의 앨 고어 전 부통령도 직접 출연한 영화 ‘불편한 진실’에서 10년 안에 지구온난화로 인해 엄청난 재앙이 시작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영국 해양부는 북극 얼음이 녹으면서 북대서양 난류의 유입이 지난 20년간 30%나 줄어들어 이상기후가 심화되면 생태계 대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발표했다. 이미 재앙은 코앞에 와있을지도 모른다. 엘니뇨로 유례없이 따뜻한 겨울로 맞는 2007년은 역사상 가장 더운 해로 기록될 것이라는 보도이다. 평년 평균기온이 영하 10도이어야 할 모스크바는 요즘 영상 5도를 가리키고 있고 북극곰은 얼음이 얼지 않아 바다로 돌아가지 못하자 해안마을을 습격했다고 한다. 이제 바그너 할아버지의 경고대로 위기를 맞고 있는 우리는 노아의 방주를 준비해야 할지도 모른다.이기영 호서대 식품생물공학과 교수
  • 70대 노부부 “힘 있는 한 이웃사랑”

    70대 노부부가 하루도 쉬지 않고 5년 동안 폐품을 수집해 모은 1000만원을 불우이웃돕기 성금에 쾌척했다. 경남 진해시 경화동에 사는 김영권(75) 할아버지와 배추선(70) 할머니는 2002년부터 한푼씩 저축한 1000만원을 연말연시 모금운동을 하는 언론사에 기탁했다. 노 부부가 사는 집은 마당이 고물상을 방불케 할 정도로 폐지와 고철 등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폐품을 모으기 시작한 것은 10년 전인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육군종합정비창에서 퇴직한 김 할아버지는 병을 앓다가 한 스님으로부터 “이웃을 위해 열심히 봉사하라.”는 말을 들었다. 그날부터 길에 버려진 폐품을 주워 모으기 시작했다. 배 할머니는 “처음에는 구질구질한 폐품을 가져와 집 곳곳에 쌓아 놓는데 정말 싫었다.”면서 “나중에 고집스러운 남편의 진짜 뜻을 알고 난 뒤부터는 오히려 함께 돕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쇠약했던 김 할아버지는 매일 폐품을 모으면서 건강을 회복했다. 할머니도 폐품 수집을 거들었다. 노 부부는 2002년부터 적금을 넣듯이 폐품을 팔아 매일 1000∼5000원을 은행에 저금했다. 이렇게 모은 돈이 5년 동안 1000만원. 폐지가 1㎏에 30원인 점을 감안하면 하루 무려 200㎏를 모아야 6000원이기 때문에 모두 1825일을 한결 같이 저금한 셈이다. 동네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전모(65·여)씨는 “할아버지가 얼마나 부지런한지, 모아야 몇 푼 되지도 않을 텐데 그렇게 큰 돈을 모아 어려운 이웃을 도운 것에 감동받았다.”고 말했다. 김 할아버지는 노환으로 난청증세를 보이다 지금은 소리를 듣지 못한다. 그렇지만 그는 “남은 힘이 있는 동안은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열심히 폐품을 모아 돕고 싶다.”며 행복하게 웃었다.진해 이정규기자 jeong@seoul.co.kr
  • [함혜리 기자의 프렌치 리포트] (10) 위협받는 ‘가톨릭국가’

    [함혜리 기자의 프렌치 리포트] (10) 위협받는 ‘가톨릭국가’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파리의 아름다움은 절정에 이른다. 샹젤리제 양쪽에 늘어선 가로수에는 수십만개의 조명등이 반짝이고 거리마다 설치된 형형색색의 조명등과 상점의 크리스마스 장식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이즈음 갤러리 라파예트와 프렝탕 등 고급 백화점이 위치한 오스만 대로와 상점가는 가족들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기 위해 나온 사람들로 북적인다. 일년 중 가장 중요한 기독교 축일인 크리스마스를 가족과 함께 보내는 것은 프랑스인들의 오랜 전통이다. 직장을 위해, 학업을 위해 이곳저곳으로 흩어졌던 자녀들도 크리스마스가 되면 부모님 댁을 찾는다. 온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 거위간, 생굴, 칠면조 고기, 장작모양의 크리스마스 케이크 등으로 이어지는 성탄절 특식을 즐긴다. 밤을 새워가며 먹는다고 해서 레베이용(밤참)이라고 하는데 몇시간에 걸친 식사가 끝나면 각자 준비한 선물을 교환하며 덕담을 주고받는다. 그리고 마을의 성당에 가서 자정 미사를 드린다. 프랑스인들은 이렇게 가톨릭의 전통에 따라 크리스마스를 보낸다. 세례나 결혼, 장례 등 많은 예식이나 관습들은 종교적 방식을 따른다. 하지만 그뿐이다. 인구의 82%가 로마가톨릭인 나라지만 정기적으로 교회나 성당에 나가는 사람은 여성의 14%, 남성의 9%에 불과하다. ●가톨릭 국가 맞아? 프랑스에서 종교는 곧 가톨릭을 의미할 정도로 가톨릭이 지배적이다. 인종적으로 프랑스인이지만 가톨릭 신도가 아닌 경우는 신교도들이다. 프랑스의 신교도는 16세기 종교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대거 다른 나라로 이주했다. 따라서 프랑스에 남은 신교도는 95만명으로 2%선에 머문다. 이밖에 500만∼600만명(8∼9.6%)이 이슬람교도로서 대부분 북아프리카에서 이민 온 사람들이다. 유대교가 75만명 정도, 불교가 40만명 정도다. 대부분의 프랑스인들은 가톨릭 교인으로 태어나 가톨릭식 이름을 갖고, 자신을 가톨릭이라고 생각하며 산다. 따라서 프랑스에서 당신의 종교가 무엇이냐고 묻는 것은 바보 같은 질문이다.“당신의 인종이 무엇이냐?”고 용감하게 물어보는 것이나 다름없다. 종교와 관련해서 프랑스인에게 의미있는 질문을 하려면 “신자냐, 비신자냐?”를 묻기보다는 “실천교인이냐, 아니냐?”를 물어봐야 한다. 그러면 10명중 9명은 “나는 신자(croyant)이긴 하지만 실천교인(pratiquant)은 아니다.”라고 답한다. 믿기는 하지만 성당에 꼬박꼬박 가지 않는다는 뜻이다. 나아가 이슬람이나 유대교가 아니라는 뜻을 내포하기도 하다. ●쇠퇴하는 로마가톨릭 프랑스가 가톨릭 국가가 된 기원은 메로빙거 왕조의 클로비스가 496년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성직자들과 기독교 공동체의 지지를 받아 프랑크 왕국을 탄생시킨 것에서 찾을 수 있다. 클로비스의 개종은 로마 가톨릭에 기초한 유럽 탄생의 단초가 됐다. 프랑스에서 가톨릭은 역대 왕조의 흥망성쇠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종교뿐 아니라 국민들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이뤄왔다. 특히 교육과 행정은 가톨릭 교회를 중심으로 형성됐다. 프랑스에는 가톨릭 국가답게 정말 성당이 많다. 프랑스에는 3만 8000개의 교구가 있고 전국에 4만 5000개의 성당이 있다. 이들 교구 중 인구 500명 이하의 작은 교구도 1만 6000개나 된다. 파리 등 대도시의 광장에는 여지없이 커다란 고딕식 주교좌 성당이 서 있다. 시골 어디를 가나 마을에서 가장 높은 언덕 위나 중심에는 가톨릭 교회가 자리잡고 있다. 이들 가톨릭 교회는 오래 전부터 마을 공동체의 중심역할을 했다. 시청이나 면사무소와 같은 국가기관이 들어서기 이전에는 가톨릭 교회에서 호적을 관리했다. 학생들의 지도도 가톨릭이 담당했다. 현재 프랑스의 행정단위 중 가장 기초단위인 코뮌(commune)이 모두 3만 6551개인데 이 행정구역도 가톨릭 교구를 중심으로 정해졌다. 그러나 프랑스 대혁명 이후 지속적으로 정교(政敎)분리와 세속화가 진행되면서 이제는 성당을 정기적으로 찾는 사람이 매우 드물어 졌고 세력도 약해졌다. 웅장하고 유서깊은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도 크리스마스를 제외한 주일 미사에 가보면 빈자리가 수두룩하다. 성당을 찾은 교인들도 노부부나 할머니가 대부분이다. 젊은이들의 경우 종교와 거리를 두는 경향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젊은이들 사이에는 종교에 관심이 없거나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무신론자들이 상당히 많다. 국립통계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2005년 현재 15∼24세인 젊은이들 중 종교와 무관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여자 43%, 남자 47%로 높게 나타났다.1996년 조사(여자 30.3%, 남자 44.7%)에 비해 종교에 대한 회의론자들이 남녀 공히 늘어났음을 알 수 있다. ●갈등의 요인이 되는 이슬람 16세기 종교전쟁 당시 프랑스에서는 구교와 신교가 극렬하게 다퉜지만 현재 프랑스에서 사회 갈등을 유발하는 종교문제는 대부분 이슬람과 관련된 것이다. 프랑스는 다른 유럽국가들에 비해 무슬림(이슬람 교도) 인구 비율이 높은 편이다. 프랑스의 무슬림은 앞서도 언급했듯이 예전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북아프리카 출신이 70% 이상이다. 출신국별로는 알제리 35%, 모로코 25%, 튀니지 10% 등이며 이들은 주로 파리 릴 리용 마르세유 등 대도시의 외곽에 집단을 이뤄 살고 있다. 이민 2,3세들은 부모 세대의 종교와 문화를 그대로 답습하기 때문에 프랑스 국적을 갖고 프랑스식 교육을 받아도 프랑스에 완전 동화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수많은 논란거리를 낳고 사회갈등의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슬람 머릿수건과 같은 종교적 상징물을 학교에서 착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이 논란 끝에 채택된 것이나, 차별과 소외에 대한 불만으로 터진 2005년 가을의 교외지역 소요사태를 대표적인 사건으로 꼽을 수 있다. 무늬만 남은 가톨릭 국가에서 이슬람이 빚어내는 갈등은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연말 따뜻한 가족애 담은 광고들

    한 해를 마무리하는 모임이 많아 유난히 바쁠 때다. 이럴 때면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더욱 아련해진다. 이에 맞춘듯 부부, 부자, 시아버지와 며느리 등 가족을 소재로 삼은 광고가 눈에 많이 띈다. 이런 광고는 쉽게 이해되면서도 바로 공감이 가는 생활형이다. 광고회사 웰콤의 이지희 부사장은 18일 “유행의 첨병인 광고계에서 편하게 보고 웃을 수 있는 에피소드형 광고가 일상을 예리하게 끄집어내고 있다.”고 말했다. 하나금융그룹은 최근 금융연합작전이라는 이름으로 가족 소재의 광고를 내보내고 있다.‘맞벌이 부부’편,‘아름다운 노년’편이 하나금융그룹의 대표적 가족 소재 광고이다. ‘맞벌이 부부’편에서는 공원을 가로질러 유모차를 밀고 바쁘게 출근하는 맞벌이 부부의 일상을,‘아름다운 노년’편에서는 노부부가 한가로이 바닷가를 거니는 생활을 그리고 있다. 맞벌이 부부가 유모차를 밀고 갈 때, 또 노부부가 바닷가를 산책할 때 전문가들은 나무 뒤와 수중에서 이들을 위해 금융의 해결책을 찾는다. 느슨해지기 쉬운 광고 구성에 유머러스한 긴장감을 불러넣었다. 동서식품 미떼는 첫 장면부터 빙 둘러앉은 가족들이 나온다. 딸이 노란 머리 숱의 남자친구를 데려오자 아버지와 어머니는 눈이 휘둥그레진다.‘쉬이익∼’ 주전자의 물끓는 소리가 긴장감을 더한다. 물 주전자가 보글보글 끓자 부드러운 초콜릿이 녹아들어가면서 긴장된 분위기가 한층 부드러워진다. 그 때 ‘하우 올드 아 유?(How old are you?·당신 몇 살이야?)’라고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질문하는 아버지의 위트있는 멘트가 잔잔한 웃음을 자아낸다. SK텔레콤의 고객체험형 매장인 T월드 광고도 재미있다. 한가로운 휴일 장난꾸러기 아들과 아버지 사이에서 비롯되는 끔찍한(?) 사건이 소재다. 소파에서 편안하게 신문을 읽던 아버지에게 두 동강이 난 휴대전화를 들고 “아빠 두 개!”라고 외치는 아들. 무너져내리는 아빠의 표정이 압권이다. 하나로텔레콤의 하나TV광고는 가족 구성원 전체의 목소리를 모두 담았다. 애니메이션 영화를 보지 못한 꼬마와 드라마를 놓친 엄마의 속상한 마음을 생생한 표정으로 표현하고 있다. 내 마음대로 볼 수 있는 하나TV의 컨셉트를 잘 녹여내고 있다. 교보생명은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황당한 사연을 소개하고 있다. 식사를 하다 며느리를 부른 시아버지 앞에서 며느리는 ARS 상담원처럼 반응한다. 복잡한 서비스를 당혹해하는 노년층이 느낄 수 있는 상황을 깐깐한 며느리와 시아버지의 관계로 표현했다. 이지희 부사장은 “가족의 평범한 일상이 광고 소재로 부각되는 이유는 연말 연시라는 시기적 특성과 함께 여유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 [지금 천수만에선] 철세떼와 인간의조우…지역경제도 ‘푸드덕’

    [지금 천수만에선] 철세떼와 인간의조우…지역경제도 ‘푸드덕’

    천수만 철새기행전이 열리는 충남 서산시 부석면 간월도. 조류 인플루엔자 발생으로 전국이 시끄러운 가운데 철새기행전 폐막을 나흘 앞둔 지난달 30일 오후 1시쯤 탐조투어행 버스에 올랐다. 그러나 여성가이드로부터 “구경이 끝난 뒤 집으로 돌아가면 손발은 반드시 씻으라.”는 주의사항을 듣는 순간 탐조객들 사이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철새 배설물이 조류 인플루엔자를 옮길 수 있다는 얘기를 염두에 둔 조언이다. 안내자 김정은(40)씨는 “조류독감이 발생한 뒤 투어버스 한 대당 평균 20여명씩 타던 탐조객들이 15명 정도로 줄었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같은 차를 탄 강동희(71·충남 홍성군)씨는 “기분이 좀 찜찜하기는 하지만 그동안 수차례 왔어도 아무 문제 없었어.”라고 말한다. 철새기행전 관계자는 “조류 인플루엔자가 발생한 뒤에도 주말에는 탐조객들이 버스에 꽉꽉 찬다.”며 “신문이나 인터넷을 통해 예방법 등을 미리 알고 오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탐조객들을 안심시켰다. 이날은 안개가 좀 끼고 날씨가 흐렸다. 바람도 매서웠다. 서산A지구 담수호인 간월호로 들어가는 농장 입구를 버스가 지나자 다리 밑에서 말똥가리 한 마리가 찻소리에 놀라 ‘푸드득’ 날아올랐다. 안내자는 “이런 날은 맹금류를 많이 볼 수 있다.”고 알렸다. ●철새들의 낙원 천수만 버스의 좌우 창밖으로 보이는 논에서는 기러기가 수백마리씩 떼를 지어 앉아 먹이를 찾고 있거나 먼데를 쳐다봤다. 논에는 추수가 끝나 벼밑동만 바둑판처럼 줄을 지어 촘촘하게 박혀 있다. 기러기들은 찻소리에 한꺼번에 날았지만 채 10m도 못가 내려앉았다. 안내자 김씨는 “사람과 차에 익숙해져서.”라고 했다. 서산농장이 일반에 분양되고 철새기행전도 올해로 5회째를 맞으면서 사람과 차량의 출입이 잦아졌다.“이곳의 주인은 철새입니다. 여기에서 여러분은 손님일 뿐입니다.” 논길을 달리던 버스는 간월호 방향으로 틀어 호수변 탐조대에 멈춰섰다. 높이 3m, 길이 30m정도의 볏짚 탐조대로 철새를 보던 강씨는 “오늘은 적네. 날씨가 좋을 때는 철새들이 호수의 3분의1은 덮어.”라고 귀띔했다. 천수만의 철새탐조는 가창오리가 가장 많이 머무는 11월 초가 피크다. “이것 좀 보세요.” 안내자가 60배율 망원경을 탐조대 앞에 세우고 탐조객에게 손짓을 한다. 잿빛 기러기떼 속에 노란 황오리 4∼5마리가 먹이를 찾는 모습이 망원경으로 보였다. 탐조대를 출발해 호숫가 농로를 따라서 달리던 버스에서 강씨는 “저 그물을 못치게 해야 혀.”라고 말했다. 간월호변을 따라 그물이 연이어 쳐져 있었다. 붕어 등 먹이를 잡으려고 잠수했던 철새들이 걸려 죽는다는 것이다. ●지역경제 활성화 기여 서산시는 지난달 21∼23일 부산에서 열린 지방행정혁신 우수사례경진대회에 ‘철새조류 IT문화 콘텐츠구축사업을 통한 지역주민과 환경NGO간 대립과 갈등 극복사례’를 발표해 호응을 얻었다. 천수만 철새들의 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해 내년부터 홈페이지에 올린다. 일반인이 정보를 손쉽게 접근하고 이를 통해 서산의 이미지를 높인다는 것이다. 지난해 6월에는 행자부가 주관한 전국 자치단체 경영행정혁신평가에서 대통령상을 받았다. 조규선 시장은 “철새기행전은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조한 행사”라고 자랑했다. 경제적 효과도 크다. 철새가 조류 인플루엔자를 옮긴다는 소문이 퍼진 지난해와 올해는 재미를 보지 못했지만 2004년에는 15만 2400여명이 투어에 참가했다. 입장료 수입만 2억 6700만원. 탐조객들이 기행전 때 서산을 찾아와 뿌린 돈 45억원과 54억원의 지역 홍보효과에다 어리굴젓,6쪽마늘 등 특산물 판매량, 지역 이미지 제고 효과까지 합하면 모두 270억원에 이른다고 서산시는 밝히고 있다. ●철새를 보호하라 ‘복덩이’인 철새들의 먹이를 확보하기 위해 서산시는 2003년부터 ‘생물다양성관리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는 농지 소유자에게 보상을 해주고 벼나 보리를 남겨 먹잇감을 확보해주는 것이다. 올해는 모두 770㏊의 논을 계약했다. 시는 올해 간월호에 철새들의 휴식공간인 80평 규모의 인공섬도 만들어줬다. 또 간월호 입구에 경비초소를 세워 밀렵이나 무단 출입을 막고 있다. 탐조투어 버스는 상류에서 돌아 반대편 호숫가를 따라 내려와 출발지에 도착했다. 탐조대 2개를 거쳤다. 투어노선 길이는 35㎞,1시간반이 걸렸다. 기행전 안내자들은 “새 도감을 보여주며 ‘이 새 언제 오느냐. 그 때에 다시 오겠다.’고 말하는 외국인 노부부도 있고 암에 걸린 남편과 동행한 부인이 ‘남편이 오래 살 것 같다.’면서 돌아간 일도 있다.”고 전했다. 서산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매년 300여종 40만마리 찾아 천수만에는 해마다 300여종 40만여 마리의 철새가 찾아온다. 이들 중에는 뜸부기, 호사도요, 황새, 말똥가리 등 멸종위기야생동물 1급 11종과 2급 38종도 포함돼 있다. 10년간 천수만 철새를 관찰해온 김현태(38·서산농공고 생물과목) 교사는 “천수만은 가장 다양한 철새가 날아오는 국내 최대의 도래지로 겨울철새가 중심이다.”면서 “전 세계 가창오리 99%가 찾는 곳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한창 많을 때는 가창오리만 30만여 마리에 이른다고 한다. 그는 “흰꼬리수리 등 맹금류들도 많고 종류도 다양하다. 혹한이 몰아치면 더 많이 찾아온다.”고 설명했다. 여름에는 뜸부기, 해오라기, 백로, 후투티 등이 찾아오고 겨울에는 재두루미, 물닭 등 사시사철 철새들이 끊이지 않는다. 나그네새인 장다리물떼새, 호사도요 등도 찾아와 낙원을 만들고 있다. 천연기념물도 황조롱이(323호), 노랑부리저어새(205호), 원앙(327호), 재두루미(203호), 검은머리물떼새(326호) 등 37종이나 있다. 철새들이 많이 몰리자 너구리, 고라니, 족제비, 금개구리 등 희귀동물들도 많이 서식하고 있다. 지금은 거의 볼 수 없는 삵도 사는 것으로 조사됐다. 삵은 2년 전 조사 때 70마리가 발견됐다. 국내 최고 서식지로 손색이 없다. 삵의 배설물을 분석한 결과,40% 정도가 철새를 잡아먹은 것이었다. 김 교사는 “서산농장 일부가 일반인에게 분양되기 전에 비해 철새가 많이 줄었다.”며 “농민들이 친환경 농사를 짓고 주민들이 ‘철새의 가치’를 깨닫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가 차원의 보호대책이 빨리 세워져야 한다.”고 말했다. 서산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연중행사 계획… 간월도 숙박단지도” “철새기행전을 연중행사로 열려고 합니다.” 김원균 천수만철새기행전 위원장은 “내년 말까지 간월도 인근에 철새생태관이 지어지면 이같이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철새는 여름과 겨울에 모두 날아오고 텃새도 많기 때문이란다. 그는 “이를 위해 간월도에 숙박단지를 조성하는 방안을 시가 추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간월도 안에는 숙박시설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올해는 외국인 관광객이 많았다고 한다. 김 위원장은 “(외국인들이) 간월호 주변을 돌면서 ‘원더풀’‘베리굿’을 연발한다.”면서 “인공적인 청계천보다 수백배 낫다고 칭찬을 한다.”고 자랑했다. 이어 “외국에서는 1∼2종의 철새만 날아와도 호들갑을 떨면서 외국 관광객들을 끌어모으는 데 천수만은 세계적 철새도래지인데도 아직 그렇지가 않다.”고 아쉬워했다. 그러나 주민과 농지 소유자들의 의식변화에 대해서는 고무적으로 받아들였다.“지난해 조류독감으로 철새 탐조객들이 크게 줄면서 식당 등 영업에 타격을 입은 게 주민들의 의식을 변화시켰습니다.” 그는 “농지 소유자들은 간월호 인근에 해미비행장 등 부대가 있어 A지구는 개발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기행전이 땅 가치를 올려줄 것으로 믿고 있는 것같다.”고 귀띔했다. 이 위원장은 “서산마애삼존불, 대산공단, 수덕사, 안면도 등 주변관광지와 연계, 세계적 철새도래지의 명성에 걸맞은 기행전으로 키우겠다.”고 말했다. 서산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천수만 서산 해안과 안면도 사이의 바다를 일컫는다.1980년대 간척사업으로 4700만평의 서산AB지구가 생겼다. 간월도 남동쪽은 A지구, 북서쪽은 B지구다.A지구에 간월호,B지구에 부남호라는 담수호가 만들어져 있다. 간월호는 800만평이다. 서해안고속도로 홍성IC에서 빠져 20분이 채 안 걸린다. 간월도에는 별미인 꽃게장, 굴밥이나 회를 파는 서산횟집, 바다횟집, 오뚜기횟집 등이 있다.
  • [주말탐방] 용인 ‘노블 카운티’의 은퇴자들

    [주말탐방] 용인 ‘노블 카운티’의 은퇴자들

    경부고속도로 수원IC를 나서자마자 좌회전해 경희대 수원캠퍼스 방향으로 약 3㎞쯤 달리면 한국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노인 복지시설인 삼성 노블카운티가 한눈에 들어온다.2001년 개원 당시만 해도 주변이 허허벌판이었지만 최근 아파트가 속속 들어서면서 노블카운티는 아파트촌 한 가운데에 놓인 ‘섬’으로 바뀌었다. ●중산층도 입주 노려볼 만 6만 8000평에 540가구가 들어선 노블카운티는 고급 호텔을 연상케 한다. 잘 가꿔진 잔디와 평화로워 보이는 연못이 20층짜리 고층 빌딩 2개와 어우러져 방문객을 맞이한다. 이 곳의 하루는 산책로에서 시작된다. 정원의 단풍 나무들이 마지막 잎새를 떨어뜨리던 1일 아침. 노인들에게는 가장 위험한 환절기임에도 노블카운티의 산책로는 새벽 운동을 나온 입주민들이 내뿜는 열기로 가득 찼다. 다정하게 손을 잡고 산책로를 걸으면서 하루를 설계하는 노부부들, 단지내 텃밭에서 자란 배추, 무를 손질하는 입주민들, 잠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사우나로 달려와 땀을 빼는 노인들이 노블카운티의 아침 풍경을 장식한다. 노블카운티는 20년간의 산고 끝에 탄생했다. 정부의 수도권 규제정책, 노인복지 시설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반감 등으로 사업계획서가 여러 차례 반려되다 1996년 9월 첫 삽을 떴다. 하지만 외환위기의 역풍을 맞는 등 우여곡절 끝에 2001년 5월 1차로 270여가구가 입주해 개원했다. 개원 당시에는 5억원에 이르는 보증금이 다소 많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최근 부동산 가격의 급등으로 서울이나 수도권의 요지에 30∼40평형대 아파트를 보유한 중산층은 자녀를 출가시킨 뒤 입주를 노려볼 만하다. 안용성 기획마케팅 팀장은 “실제 입주자 500여명 가운데 퇴직 공무원, 교수, 군인 등 연금생활자들의 비중이 부쩍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제2의 인생을 살아가는 입주민들 삼성생명 공익재단이 운영하는 노블카운티는 국내 실버주택중 최고급 시설을 자랑한다. 실내에는 문턱을 없앴고, 복도는 미끄럼 방지 타일이 깔려 있다. 주요 동선에는 핸드레일이 설치됐으며 주방에는 가스레인지 대신 할로겐 레인지가 설치됐다. 방, 거실에는 위급상황에 대비해 호출버튼이 있다. 스포츠와 생활문화센터도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골프, 당구, 포켓볼, 서예, 컴퓨터, 영어회화는 물론 아쿠아로빅, 합창단, 소림기공 등 동호회가 50여개에 이른다. 매일 세 끼 식사를 제공하고 1주일에 2회 청소와 침구류 세탁도 해주기 때문에 여성 노인들이 가사에서 해방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60세 이상 노인들의 거주시설인 만큼 병원과 연계해 운영된다. 내과 외과 등 5개 과목이 개설된 클리닉이 있어 주기적으로 건강검진을 할 수 있다. 입원이 필요하면 연계 협약을 맺은 삼성의료원을 비롯해 분당서울대병원, 아주대병원들을 이용한다. 치매, 중풍 등의 만성질환자를 돌보는 요양시설인 너싱홈에는 가정의학과 전문의를 비롯해 20여명의 간호사가 24시간 입주민들의 건강을 챙기고 있다. 지역주민들과의 교감도 노블카운티측이 신경쓰는 부분이다. 노인들끼리만 어울려 살다 보면 잃기 쉬운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지역주민의 자녀를 대상으로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다. 스포츠센터와 문화공간도 지역주민들에게 개방한다. 임대로 운영되는 노블카운티는 72평,56평,46평 등 큰 평수도 있지만 대부분 36평형을 선호한다.36평형에 부부가 입주하는 경우 보증금이 4억∼5억원, 월 생활비는 240여만원이 든다.56평형은 임대보증금 5억∼6억원, 월 생활비는 285만원 수준이다. 공동으로 사용하는 공간이 많아 실제 전용면적이 전체 평수의 50∼60%밖에 안 되는 것은 단점이다. 입주자 김성수(72)씨는 “사회에서 만난 친구들보다 이 곳에서 사귄 친구들과 훨씬 친하게 지낸다.”면서 “취미와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있어 남을 배려하는 공동체 문화가 자연스럽게 형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용인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42세 연봉 7000만원 김부장 입주 플랜 서울에 38 평형 아파트 (시세 약 7억원)를 소유하고 있고 대기업에 재직중인 김모(42) 부장은 만 60세에 노블카운티에 입주하는 것을 목표로 은퇴플랜을 세우고자 한다. 노블카운티는 소수 부유층만을 위한 실버타운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연봉 7000만원 수준인 김 부장도 치밀한 은퇴플랜을 세운다면 그리 실현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우선 노블카운티의 가장 작은 평형인 36평형의 2인 입주보증금을 4억 5000만원으로 가정하자. 이 금액은 보유 아파트의 전세보증금(현재 시세 약 2억 8000만원)으로는 많이 모자라 55세에 받을 퇴직금을 추가적으로 보태야 한다. 김 부장의 연봉이 7000만원이고 연봉의 상승률이 약 5% 정도여서 55세 퇴직시점에서의 연봉은 1억 3200만원 정도가 될 것이다. 이 때의 퇴직금 예상액은 약 3억 800만원(1억 3200만원÷12개월×근속연수 28년) 정도로 추산된다. 문제는 매년 물가상승률만큼 인상될 것으로 예상되는 월 생활비 납부 부담이다. 현재 2인 기준 월 248만원의 생활비는 물가상승률 4.0%를 가정했을 때 김 부장이 60세가 되는 18년 뒤에는 월 502만원 정도로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은퇴 생활의 기간을 20년으로 가정한다면 은퇴 시점부터 매년 6024만원(502만원×12개월)가량을 20년 동안 생활비로 부담해야 한다.60세부터 20년 동안의 생활비를 물가상승률(4.0%)로 조정한 투자수익률(2.8846%)로 할인해 계산하면 은퇴 시점에 약 9억 600만원 정도의 자산을 마련해 놓아야 가능하다. 이제 60세 시점에 9억 600만원을 만들기 위한 플랜을 짜 보자. 지금부터 노블카운티 입주시점인 60세까지 매년 2665만원(매월 약 222만원)의 저축 및 투자가 필요한 것으로 분석된다. 그럼 이를 위한 투자 포트폴리오를 살펴보겠다. 은퇴 전 전·후반기, 은퇴기 등 크게 3단계로 나눈다.1단계인 은퇴 전 전반기에는 적극적인 운용을 통해 높은 수익을 추구하는 전략을 펴야 한다. 기간이 분산되는 분할투자이므로 주식형펀드, 해외주식형펀드, 파생상품펀드 등으로 시장수익률을 초과하는 수익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 2단계인 은퇴 전 후반기에는 어느 정도 종자돈이 마련됐고, 투자의 성과에 따른 수익의 변동이 커지기 때문에 수익 추구보다는 안정적인 위험관리 및 꾸준한 수익을 추구해야 할 단계다. 실물펀드, 인덱스펀드, 혼합형 펀드, 배당주펀드, 변액연금 등을 통해 자산을 키울 것을 추천한다. 3단계인 은퇴기에는 은퇴생활과 함께 자산을 키워나가는 단계이므로 가급적 안전성을 추구하며 고정적인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금융상품 투자가 적합할 것이다. 부동산펀드, 선박펀드, 즉시연금,ELD,ELS,ELF 등을 통해 운용할 것을 추천한다. ■ 도움말 삼성생명 FP센터 조재영 과장 ■ 입주민들 얘기 들어보니 “친구들이 노블 카운티에 입주한다고 하니까 한달만에 돌아올 줄 알고 아직 송별회도 못했어. 딱 석달만 살아보고 최종 결정하려고 주민등록 주소지도 며칠전에야 옮겼지.” 지난 7월 부산 해운대에서 살던 집을 정리하고 노블카운티에 입주한 이병일(74) 인서란(71) 부부는 자신들의 결정이 옳았다며 흐뭇해 한다. 이씨 부부는 “진작에 입주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을 정도”라면서 “이제는 우리 부부를 부러워하는 부산 친구들을 이곳으로 초대해 내가 멋진 송별회 겸 망년회를 열 계획”이라며 만족해 했다. 이씨는 대구에서 건설업을 운영하다가 98년 외환위기 때 사업을 정리하고 80세까지 노후설계를 짰다. 가족 몰래 유서도 써놓고 2남 2녀의 자식들에게 대강 재산 분배도 해 놓은 뒤 부산 해운대 앞 바다가 바라다 보이는 아파트에서 여생을 보내려 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인터넷에서 노블카운티의 시설을 발견하고 몇 차례 방문해 게이트 하우스에 묵어보는 등 고민을 거듭한 끝에 입주를 결정했다. 부인 인씨는 “하루가 얼마나 빨리 지나가는 줄 모른다.”면서 “가족들을 위한 빨래와 청소, 밥짓기 등 가사에서 완전히 해방된 게 무엇보다 기쁘다.”며 환하게 웃었다. 인씨는 50여개 동호회중에서 배드민턴, 포켓볼, 에어로빅, 수영 등의 스케줄을 소화하며 이 곳이 ‘여성의 천국’임을 실감하고 있다고 털어놓는다. 지난 2002년 입주한 김성수(72) 김종애(70) 부부도 노블카운티의 생활에 만족감을 표시했다. 부인 김씨는 “이제는 이 곳을 떠나 밖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게 됐다.”면서 “최근 부쩍 늙어버린 친구들과는 달리 4년 전보다 오히려 더 건강해 진 내 자신을 느낀다.”고 말했다.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62평에 살다가 분당을 거쳐 노블 카운티에 입주한 김씨 부부는 “요즘 아파트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라 압구정동 아파트를 지금까지 보유했으면 아마 15억원은 더 벌었을 것”이라면서 “그러나 돈을 잃은 대신 돈보다 몇배나 중요한 건강을 유지하게 돼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며 활짝 웃었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건보료 1100만원 안내려다 4억 손실

    9년 동안 건강보험료 1100만원을 체납한 노부부가 자신들 명의 부동산이 공매로 넘어가 4억여원을 손해 보자 소송을 낸 것으로 26일 확인됐다. 서울 강남에 10억원대 땅과 단독주택을 보유한 유모(61·여)씨는 1997년 9월부터 건강보험료를 한 차례도 내지 않았다. 수십 차례에 걸쳐 납부 독촉장을 보낸 건강보험공단은 2001년 11월 유씨 소유의 토지를 압류한 데 이어 지난해 7월에는 주택도 압류 조치했다. 공단은 결국 지난 9월 한국자산관리공사를 통해 압류한 부동산을 공매에 부쳤다. 시가 13억∼14억원에 이르는 이 부동산은 9억 6000만원에 김모씨에게 넘어갔다. 유씨는 김씨가 매수대금을 치르기 전에 밀린 건강보험료를 전액 납부하고 김씨와 한국자산관리공사, 공단을 찾아가 매각결정을 취소해 달라고 신청했으나 거절당하자 서울중앙지법에 매각결정을 취소해 달라며 소송을 냈다. 유씨는 “김씨가 매수 대금을 내기 전에 밀린 건강보험료를 냈으니 매각결정은 무효”라고 주장했다.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중장년 겨냥 노후+건강 ‘老테크 금융’ 봇물

    중장년 겨냥 노후+건강 ‘老테크 금융’ 봇물

    HSBC은행은 지난달 17일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HSBC 프리미엄 노후 플래닝 서비스’ 출시 행사를 가졌다. 이날 사이먼 쿠퍼 HSBC 한국대표는 “노후설계를 원하는 한국인이 100만명에 이른다.”면서 “노후준비 전문가 100명을 양성했다.”고 밝혔다. 외국은행이 국내 노후자금 시장 진입을 공식적으로 선포한 것이다.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안정적인 노후생활을 바라는 중·장년층을 겨냥한 금융상품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시중은행에서는 안정적인 수익을 추구하며 건강서비스가 가미된 장기 연금형 상품을 주로 팔고 있으며, 보험권에는 간병보험과 건강보험, 치명적 질병보험(CI), 상해보험 등 ‘실버보험’이 많이 출시돼 있다. 카드사들도 건강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다. ●은행권의 연금형 정기예금 정기예금은 원래 만기까지 예금액을 거치한 뒤 약정된 원리금을 지급받는다. 그런데 최근 은행들이 실버 시장을 겨냥해 출시한 연금형 정기예금은 매월 또는 일정 기간마다 원리금을 분할 지급한다. 우리은행의 ‘뷰티플라이프 정기예금’은 최장 8년 이내에서 1개월,3개월, 또는 1년마다 원리금을 나눠 지급받을 수 있다. 금리는 1년마다 바뀌며, 가입 후 1년이 지나면 0.1%포인트의 금리가 더 지급된다.3000만원 이상 가입고객은 입원의료 실비를 최고 3000만원까지 보장하는 보험상품에 무료로 가입할 수 있다. 하나은행의 ‘하나 셀프디자인 예금’은 목돈을 맡긴 뒤 매월 원리금 수령액과 만기 잔액을 중간에 자유롭게 바꿀 수 있다. 만기는 최대 31년이다. 가령 고객이 예치금 1억원을 만기 3년, 연 4.7%, 만기 수령액 5000만원으로 설계하면 3년간 매달 162만원을 받고 만기 때 5000만원을 받는다. 국민은행은 50세 이상 고객을 위한 ‘KB시니어웰빙통장’을 팔고 있다.5000만원 이상의 ‘고급형’과 5000만원 미만의 ‘일반형’으로 나뉜다. 고급형은 전문 의료진이 연 4회 의료상담을 해주고, 일반형은 전국 검진센터 이용시 5∼45%가 할인된다. ●보험·카드사도 실버 마케팅 실버보험은 치매나 중풍, 뇌졸중, 골절 등 노년층에 흔히 나타나는 질병에 걸렸을 때 간병자금을 지급한다. 여기에 건강관리비나 장례비 지급, 치매 등 특정질병 집중보장 등의 특약이 붙는다. 보장형과 연금형이 있는데 보장형은 보험료가 싸고, 연금형은 노후생활 자금도 보장받을 수 있다. 생명보험사와 손해보험사가 모두 판매한다. 교보생명의 ‘실버케어보험’은 배우자형 특약을 선택하면 한 건 가입으로 노부부 모두의 보장이 가능하다. 금호생명의 ‘스탠바이 실버케어보험’은 노인들이 진단없이 가입할 수 있는 게 특징이다. 카드사들도 건강 관련 서비스를 주요 혜택으로 부각시킨 특화 카드를 만들고 있다. 롯데카드는 전국 의료망을 갖춘 에버케어와 제휴해 헬스케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특화 카드를 내놓았다. 현대카드도 플래티늄급 카드에 건강검진 할인 서비스, 존스 홉킨스 등 해외병원 제휴 서비스 등을 다양하게 포함시켰다. 삼성카드도 여성 전용 플래티늄 카드 회원에게 다양한 건강 우대 서비스를 제공한다. ●혜택 대비 금리 등 따져봐야 그러나 노후 및 건강 관련 금융상품들이 ‘빛 좋은 개살구’는 아닌지 꼼꼼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자신에게 필요없는 건강 서비스는 수수료 인상이나 예금 금리를 깎아 먹는 역할만 하기 때문이다. 건강서비스가 부가된 예금 상품은 대부분 30만∼40만원짜리 건강검진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금리는 연 4%대 중반이다. 만일 연금형으로 원리금을 지급받기 싫은 고객이나 이미 건강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고객은 금리가 5%대인 일반 예금이 더 유리하다. 건강서비스 특화 신용카드 가입 전에도 연회비가 적정한지, 제휴를 맺은 의료기관의 위치가 거주지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등을 확인해야 한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오지로 떠나는 시간여행] (11) 충북 단양군 피화기마을

    [오지로 떠나는 시간여행] (11) 충북 단양군 피화기마을

    단양으로 들어가는 고개 위 국도변 휴게실에서 내려 보니 단양 읍내를 휘돌아 서쪽으로 흘러가는 남한강 줄기가 가을 가뭄으로 수량이 줄어 가늘게 보인다. 강줄기를 따라 이어진 계곡엔 낮은 구름 사이로 드문드문 보이는 원색을 잃은 단풍이 겨울 초입으로 들어선 계절을 말해주고 있다. 읍내 다리를 건너 초겨울 바람에 요란하게 흔들리는 강변 갈대를 뒤로하고 영월 쪽으로 가다 가곡면을 지나 소백산 줄기 끝에 자리 잡은 용산봉으로 접어드니 하늘만 보이는 좁은 계곡 사이로 ‘피화기 마을 가는 길’ 표지판이 가파른 산면을 따라 난 콘크리트길 옆에 서있다. 가파른 길을 한참 올라 산 정상 가까이에 가니 조금 경사가 완만한 곳에 슬레이트를 얹은 작은 토담집 몇 채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동네가 나타난다. 어릴 적 서당에 다녀 동네 선비라 존경받는 김경호(88)할아버지에게 특이한 동네 이름 내력을 물어보니 동네가 산중에 깊이 있어 화(禍)를 피하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피화기(避禍基)마을이라고 불리고 실제로 6·25전쟁 때 이곳에서 화전을 일구며 살던 사람들은 조금 떨어진 가곡면소재지 옆 대대리에 많은 군대가 주둔했어도 군인 한 번 못보고 전쟁 소식도 모르고 살았단다. 지금도 근동 사람들에게 피화기 마을길을 물으면 정확하게 알려 줄 수 있는 사람이 드물다고 한다. 나뭇짐을 한 짐 지게에 지고 산을 내려오며 “어떻게 오셨드래요?” 하고 검은 눈동자를 굴리며 묻는 장태일(73)할머니 얼굴을 보니 말투하고 얼굴 표정이 어디선가 본 듯한 착각에 빠진다. 자동차를 몰고 나타난 외지 사람을 대하는 동네 분위기도 익숙하다는 생각에 기억을 더듬어 보니 ‘동막골’ 영화에서 봤던 동막골 사람들과 너무 비슷하다. 깊은 산중 짧은 초겨울 해가 일찍 넘어가니 외지 사람이 왔다는 소식에 한 둘씩 손에 주전부리 거리를 들고 김경호 할아버지 댁으로 모인다. 오랜 세월 닳고 닳아 종이처럼 얇아진 화롯가에 모여 앉아 소주가 한 순배 돌자 옛 얘기를 꺼낸다. 부끄럽다며 한사코 손사래를 치던 김종례(81)할머니가 말문을 연다. 어릴 적 일제 말기에 동원되어 서울 노량진 근처에 있던 방직공장에서 일하다, 해방되어 인천을 통해 들어온 미군을 보고 놀란 얘기를 꺼내며 피화기 마을에 시집와 어려운 살림이었지만 편안했던 삶을 자랑한다.6·25전쟁 중 이곳으로 들어온 김경호, 정길녀 노부부는 일제 동원을 피하기 위해 어린 나이에 결혼해 평북 회천에 살다 전쟁 중 월남하여 이곳에 자리 잡고 십남매를 키운 얘기를 하며 눈가에 고운 미소를 짓는다. 한 참 동안 손가락을 움직이더니 외손과 친손자를 합치면 30명 정도 된단다. 마을 어른을 엄마, 아버지라 부르며 서울살이를 접고 귀향한 오석구(60)씨는 온갖 마을일을 돌보는 할아버지 마을청년이고 큰소리로 노래를 곧잘 불러 마을 어르신들을 즐겁게 해드리는 귀염둥이(?)이다. 구성진 노래에 화롯가에 모인 노인들이 서툰 몸짓으로 어깨춤을 춘다. 깊은 초겨울 밤 산골 토담집 사랑방 화롯가에서 짙은 사랑과 인정이 흐른다. 하룻밤 인연으로 처음 만난 외지사람을 어느새 ‘동생’ ‘동생’ 부르는 사람 좋은 오석구 씨가 산을 내려가려는 기자에게 서울에선 양심을 지키며 솔직하게 살기에는 너무 살벌하다며 고운 마음으로 살라며 손을 꼭 잡는다. 내려오며 바라보니 산등성이 넘어 숨어 있는 피화기 마을이 영화 ‘동막골’에서 봤던 마을과 똑같다. 사진 글 강성남기자 snk@seoul.co.kr
  • 고향에 10억 쾌척

    70대 노부부가 전재산이나 다름없는 10억원을 출연해 고향마을에 문화재단을 설립했다. 주인공은 한일·보람은행장을 역임한 이병선(李柄宣·72)씨와 약사 출신 부인 최길순(74)씨 부부. 부부는 최근 이씨 고향인 충북 영동군 매곡면 장척리에 장학사업과 불우이웃 지원을 목적으로 하는 (재)장척문화재단을 설립했다. 종자돈은 부부가 똑같이 5억원씩 나눠 출연했으며 이씨가 덤으로 해마다 1억원씩 보태 고향 후배들의 면학을 도울 예정이다. 행원으로 입사해 한일은행장과 한일리스회장, 한양투금사장을 거쳐 1993년 보람은행장으로 은퇴할 때까지 35년간 금융산업에 몸바친 이씨는 현역시절부터 고향마을에 남다른 애정을 쏟았다.15년 전 고향 후배를 위한 장학금 5000만원을 쾌척해 화제가 됐던 그는 해마다 마을회와 부녀회에 200만원의 성금을 내놓으며 향수를 불태웠다.영동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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