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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 노벨평화상 수상 오르타 새달 방한

    ◎5일부터 4일간… 강연·인권단체 면담 올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동티모르의 호세 라모스 오르타(46)가 지식정보연구포럼(대표 김철기·신한국당 중랑갑지구당위원장) 초청으로 노벨상을 수상한 직후인 다음달 5일 우리나라를 방문한다. 오르타는 기자회견과 지식연구포럼에서 주최한 세미나에 참석,「아시아의 민주화」에 대한 기념강연 및 만찬에 이어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등 인권단체 대표들과 만난뒤 8일 낮 출국할 예정이다. 김위원장은 『오르타가 「한국민주화에 감명을 받고 존경을 하고 있다.앞으로 한국의 격려에 힘입어 아시아의 민주화가 이뤄졌으면 좋겠다」며 초청을 수락했다』고 말하고 『김영삼대통령과의 면담을 희망하고 있으나 성사는 불투명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현재 호주에 망명중인 오르타는 인도네시아 식민지인 동티모르의 최대 독립운동단체인 「동티모르 레지스탕스연합(CNRM)을 이끌면서 독립투쟁을 벌이고 있다.〈박찬구 기자〉
  • 오르타,인니에 유화제스처/노벨평화상 수상자

    ◎“동티모르 논의 문호 개방” 【방콕 연합】 올해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동티모르 독립혁명운동 대변인 호세 라모스 오르타(46)는 14일 동티모르 21년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인도네시아정부에 화해를 제의했다. 동티모르의 카톨릭 주교인 카를로스 필리페 시메네스 벨로(51)와 함께 올해 노벨평화상 공동수상자로 선정된 라모스 오르타는 망명지인 호주의 시드니에서 태국신문 네이션과 가진 회견에서 동티모르 문제 해결을 위해 수하르토 대통령정부와 아무 조건없이 회담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 수하르토 방문 앞두고 딜리시 경찰병력 증강

    【딜리(동티모르) AFP 연합】 동티모르 독립운동지도자들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함으로써 동티모르 문제가 국제적인 조명을 받고 있는 가운데 수하르토 인도네시아대통령의 동티모르 방문을 앞두고 보안이 강화되는 등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15일 수하르토 대통령의 방문에 대비해 동티모르 중심도시 딜리에는 군과 경찰 병력이 증강 배치됐으며 시내의 치안이 강화됐다. 수하르토 대통령의 이번 방문은 지난 89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동티모르 방문에 맞춰 이곳을 방문한 이후 처음이다. 무르디오노 국무장관은 수하
  • 노벨평화상/벨로 주교·오르타/동티모르 독립운동의 상징적 2인

    ◎ㄼㅔㄹ로­인니 암살위협에도 국내 인권탄압 세계 고발/오르타­국제통으로 해외 저항단체 이끌며 독립로비 올해의 노벨평화상 공동수상자로 선정된 동티모르의 카를로스 벨로 주교(48)와 독립운동가 조세 라모스 오르타(46)는 전세계의 무관심속에서도 동티모르의 인권과 독립을 위해 목숨을 걸고 투쟁해온 동티모르 독립운동의 상징적인 두 인물. 동티모르는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에서 동쪽으로 2천㎞,호주 북서부 해안에서 500㎞ 떨어진 곳에 위치해있으며 주민 76만명 대부분이 가톨릭교도다.인도네시아는 지난 76년 포르투갈령 동티모르를 강제로 합병하고 곧바로 동티모르인들을 탄압하기 시작했다.합병된 지 불과 수년뒤 동티모르 인구의 3분의 1이 기아와 전염병,테러로 생명을 잃었다.인도네시아군은 91년 동티모르의 독립요구 시위때 시위자들을 무차별 학살했다.인도네시아 정부는 시위자 중 50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으나 인권단체들은 200명이 군에 의해 살해됐다고 주장했다. 1948년 동티모르의 바카우에서 태어나 양치기로 어린 시절을 보낸벨로는 지난 80년 성직자로 임명됐다.그는 82년 동티모르의 수도 딜리에 있는 파투마카 기술학교 교장으로 임명되기도 했으며 이듬해인 83년에는 동티모르의 사도 행정관이 됐다.주교가 된 것은 지난 88년이다.그는 인도네시아 점령군에 의한 동티모르인들의 체포와 폭력 행사에 대해 용기있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그는 인도네시아정부로부터 끊임없이 암살위협에 시달렸고 감시대상이었다.그는 여러 해에 걸쳐 동티모르에서 살해되거나 실종된 사람들의 목록을 작성,전세계 인권단체등을 통해 이를 폭로해왔다.85년에는 여성들을 강제 불임케하는 출산율 통제가 자행된 것을 비판하는 서한을 발표하기도 했다.그는 88년 케야르 전 유엔사무총장에게 편지를 보내 유엔이 동티모르의 장래에 대해 투표를 해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공동수상자인 오르타는 동티모르에서 「최고의 외교관」이란 평가를 받는 독립운동가.수도 딜리에서 태어난 그는 미국과 네덜란드·프랑스에서 국제문제와 정치학을 전공했으며 포르투갈어·영어·불어·스페인어등을 모두 구사할 줄안다.그는 동티모르가 인도네시아의 침공을 받기 직전 동티모르를 떠나 현재 동티모르 저항단체협의회를 이끌고 있다.그는 동티모르인을 대표해 전세계를 돌며 동티모르의 독립을 로비했으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비롯한 여러 유엔기관에서 연설했다.미혼인 그는 모든 문제를 대화로써 해결하려는 진정한 평화의 추구자라는 것이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의 일관된 평이다.〈유상덕 기자〉
  • 노벨상과 인터넷/신연숙 과학정보부 차장(오늘의 눈)

    해마다 10월이면 과학부 기자들은 계절병을 앓듯 한바탕 소동을 치른다.노벨상 수상자 발표 때문이다.노벨 문학상,경제학상,평화상도 있지만 과학분야는 물리학상,화학상,생리의학상등 3개 분야나 된다. 노벨 과학상을 요란하게 보도할 필요가 있느냐는 비판도 있지만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우선 노벨상 발표 보도는 신문들이,혹은 일반 대중이 과학자에 대한 경애심을 표현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라는 점이다.노벨상이 아니면 과학자의 얼굴이,순수하게 학문적 업적만으로 신문의 1면을 장식하는 일이 얼마나 되던가. 우리는 한 번도 노벨상 수상자를 내지 못한 나라에 살고 있다.일부에서는 「노벨상 콤플렉스」라고 폄하하지만 이 상에 대한 국민적 열망은 집중적인 과학기술 투자의 동인이 될 수 있다. 노벨상 수상자 발표는 스웨덴에서 하기 때문에 우리나라 시각으로는 대개 하오 7시에서 8시 사이에 이뤄진다.그러나 화학상만은 물리학상 발표뒤 같은 날 밤 9시에서 10시 사이에 발표돼 기자들은 애를 먹는다. 그런데 올해는 달랐다.주최측인 스웨덴 한림원이 인터넷에 홈페이지를 개설해 수상자 발표와 함께 관련 정보를 즉각 공개한 것이다.여느해 같으면 수상자 이름과 수상 업적만이 한두 줄 적혀 있는 짤막한 외신을 단서로 전화통에 매달려야 했으나 올해는 발표와 동시에 수상자의 상세한 이력,수상 업적,연구의 배경,연구의 파급효과,응용현황,관련 논문과 저서명들을 즉시 인터넷으로 받아 볼수 있었다.관련 그림과 표,수상자의 사진들까지 띄워진 것은 물론이다.그 덕분에 올해는 기자들이 세계 유수의 통신보다 더 신속히 충분한 자료를 가지고 여유속에 기사를 쓸 수 있었다. 정보화의 위력을 새삼 실감하며 만약 노벨상 시상에 정보분야가 있었다면 올해의 노벨상감은 단연 인터넷이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 올 노벨상 새달 7∼11일 발표

    【스톡홀름 AP 연합】 올해 노벨상 수상자 명단이 오는 10월 7일부터 11일까지 발표될 예정이라고 노벨 재단이 30일 발표했다. 노벨 재단은 10월 7일 의학과 생리학상 발표를 시작으로 8일에는 경제학상을,9일에는 화학상과 물리학상을,11일에는 평화상을 발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노벨 재단은 이어 올해 수상자들에게는 각각 지난해보다 약간 많은 7백40만 크로나(1백12만달러)의 상금이 지급된다면서 이에 따라 올해 지급될 상금총액은 4천4백40만 크로나(6백72만달러)라고 설명했다. 노벨 재단은 이밖에 수상자 선정비용으로 상금총액에 버금가는 4천2백20만 크로나(6백40만달러)를 사용한다고 덧붙였다. 노벨 문학상 발표일은 아직 공개되지 않고 있다.
  • 라모스 비 대통령·손주환 서울신문 사장 회견

    ◎APEC 의장국 원수로서 한국 언론과 첫 만남/“한국과 협의 없이 북과 수교 안해”/한국기업의 도로·항만 등 건설 큰 만족/외국인 투자 세제지원 등 혜택/남사군도 분쟁 무력해결 반대 ­바쁘신 중에서도 인터뷰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대통령께서는 오는 11월 필리핀에서 개최되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정상회담 등으로 매우 바쁘실줄 생각됩니다.우선 김영삼 대통령께서 보내는 정중한 안부를 전합니다. ▲나도 김영삼 대통령에게 안부를 전합니다.김대통령께서 11월 APEC 정상회담에 참석하시게 되면 다시 만나게될줄 압니다. ­대통령께서는 취임 이래 동남아시아국가들간의 관계증진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오셨습니다.대통령께서는 특히 한국전쟁에 참전하신 세계 유일의 외국국가원수로서 그동안 국제무대에서 한국의 이익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해주셨습니다.대통령께서 한국의 김영삼 대통령과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이 북한측에 제안한 4자회담과 관련,외국원수로는 제일 먼저 성명을 내고 이를 지지해주신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나는미육군사관학교인 웨스트 포인트를 50년 6월16일 졸업했는데 졸업동기생 6백70명중 나를 포함해 모두 1백14명이 한국전에 참전했고 그중 10%가 전사했습니다.필리핀군은 특히 제10대대의 희생이 컸고 52년 4월23일에 있은 율동전투에서 전공을 크게 세웠습니다.지금도 매년 4월23일이면 이 율동전투 기념식을 마닐라에서 갖습니다. ­북한은 김일성 사후에도 아직 태도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북한은 지금 심각한 경제난을 겪고 있습니다.그러면서도 군사비에 막대한 예산을 쓰고 있습니다.최근에도 20대의 전투용 헬기를 구입한바 있습니다.북한은 아마도 아시아 뿐 아니라 전세계 안보의 주요관심사가 됐습니다.필리핀 정부의 대북한정책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요. ▲필리핀은 한국정부와 긴밀한 협조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특히 북한정책에 관해서는 더욱 그렇습니다.정부관할 밖에 있는 인사들이 왕왕 북한과 접촉을 합니다만 우리정부가 한국과 협의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북한과 수교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입니다.필리핀은 특히 북한의 핵에너지가 평화적으로 쓰이도록 하기 위한 국제적인 노력의 일환으로 만든 KEDO(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에 적극 협력할 방침입니다.KEDO의 성공을 위해 모든 정책적인 지원과 재정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지원금도 내고 KEDO가 원활히 돌아가도록 협력할 것을 약속합니다. ­세계사의 중심이 아시아·태평양지대로 옮겨오고 있습니다.많은 미래학자들이 21세기는 아·태시대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이 새로운 변화의 시대에 필리핀은 어떤 역할을 할 것이며 앞으로 아·태지역의 역내국가간 관계는 어떻게 발전할 것으로 보십니까. ▲그 문제에 답하려면 하루종일 걸릴 질문입니다(웃음).세계의 중심은 지금 아시아와 환태평양지역으로 옮겨오고 있습니다.우리는 아시아와 태평양을 균형있게 연결시켜야 합니다.이 지역 국가들을 합하면 세계무역의 50%이상을 차지합니다.동남아시아는 5억 이상의 인구가 사는 지역입니다.그런 의미에서 APEC의 중심은 ASEAN(동남아국가연합)입니다.이런 추세속에서 필리핀은 한국과 함께 상호이익을 추구해 나가기를 희망합니다.그리고무엇보다도 이 지역 인적자원의 개발에 역점을 두어야 합니다.특히 한국은 인적자원의 질이 매우 높은 나라입니다.11월에 열리는 APEC정상회담에서는 이 인적자원을 개발하는 방안이 주요의제로 논의될 것입니다. ­ASEAN국가 중에서도 필리핀은 가장 민주화된 나라입니다.그러나 경제적으로는 그동안 많은 어려움을 겪었던 것도 사실입니다.개발도상국에서는 민주주의가 빠른 경제성장을 이룩하는데 장애가 된다는 견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의 관계를 어떻게 정의하실수 있겠습니까. ▲필리핀은 경제의 희생을 감수하면서도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왔습니다.이는 다른 아시아국가들과는 다른 접근방식이었습니다.한국,대만도 우리와 달랐고 싱가포르,인도네시아도 마찬가지였습니다.지난 1986년 피플혁명으로 마르코스 독재를 몰아낸 뒤 필리핀의 최우선 목표는 민주화였습니다.그리고 우리는 이제 이 목적을 달성했습니다.반면 다른 나라들은 경제성장을 이룩한 뒤 이제와서 민주화 작업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필리핀은 아시아국가중 가장 민주화된 나라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이제 우리는 예측가능한 투명한 사회를 만들었습니다.이를 바탕으로 우리는 이제 세계무대에 당당히 나설수 있게 됐습니다.반면 인도네시아 같은 경우를 보면 국민들의 귀를 막아 놓았다가 충격을 받으면 보다시피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리게 됩니다.우리는 투명해 두려울 게 없습니다.외국투자자들도 이 점을 알고 있습니다. ­반정부시위가 점차 도를 더해가고 있는 인도네시아 사태는 어떻게 전개될 것으로 보십니까. ▲인도네시아는 인구 1억9천만명에다 4개의 시간대를 가진 대국입니다.인도네시아는 우리의 좋은 이웃입니다.그동안 경제발전을 많이 했지만…잘 해결될 것으로 예상합니다…(더 이상의 언급을 자제). ­현행 필리핀헌법에 따르면 대통령중임이 금지돼있기 때문에 대통령께서는 1988년에 임기를 끝내고 물러나게 돼있습니다.현재 대통령단임 제한을 없애는 헌법개정문제가 필리핀정국의 주요 이슈로 등장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의회에서 요구하고 국민 대다수가원할 경우 대통령 단임제 철폐를 위한 개헌에 찬성하실 생각인지요. ▲나는 임기가 끝나면 물러납니다.개헌문제는 대통령의 소관도 아니고 국회에서 통과시켜야 되는 것입니다.그러나 연임여부에 관계없이 대통령 자리에 있는 한 나는 대통령이 할수있는 모든 노력을 바쳐 국정에 힘을 쏟겠습니다.(중임개헌여부에 대해서는 명확한 입장을 밝히기를 피했다) ­대통령께서는 취임이후 필리핀 남부의 민다나오 섬을 근거지로 독립을 추구하는 회교무장세력들에게 꾸준히 유화정책을 펴왔습니다.이 유화정책이 정말 결실을 거둔다면 대통령께서는 금년도 노벨평화상 수상후보에도 오를 것이라는 말을 들은바 있습니다.(라모스 대통령 웃음)이 유화정책을 담은 남부필리핀평화 및 개발위원회(SPCPD)의 첫번째 사업은 무엇입니까.그리고 민다나오 섬에 살고있는 회교주민과 기독교주민들간의 화합을 위해서는 어떤 조치들을 취하고 있는지요.(이 회견을 가진 8월1일자로 라모스 대통령은 이 유화조치의 일환으로 회교무장세력인 MNLF(모로전국해방전선)의 병사 7천5백명을 필리핀 정규군과 경찰에 편입시키기로 MNLF측과 합의했다) ▲민다나오 문제는 수백년동안 우리가 시달려온 문제입니다.정부와 회교무장세력간의 대결 외에 회교주민과 기독교 주민간의 충돌 문제도 있습니다. 나는 이 문제가 평화적으로 잘 해결될 것으로 믿습니다.회교주민과 기독교주민이 같은 기회와 평등한 대우를 누리도록 하는 게 정부의 방침입니다. ­필리핀을 비롯해 ASEAN회원국중 여러나라들이 스프라틀리(남사군도) 영유권 문제를 놓고 중국과 영토분쟁을 겪고 있습니다.이 문제에 대해 ASEAN회원국들이 집단적인 행동이나 의견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으로 보는지요. ▲스프라틀리군도는 필리핀의 팔라완섬에서 불과 1백㎞밖에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가장 가까운 필리핀영토에서는 60㎞ 떨어져 있습니다.지난해 중국과 무력충돌 직전까지 간적도 있습니다만 우리는 이 문제를 무력으로 해결하는 데 단호히 반대합니다.ASEAN회원국으로서 필리핀은 대화와 상호합의에 입각해 문제를 해결한다는 확고한 원칙을 세워놓고 있습니다. ­금년 11월 필리핀의 수빅에서 APEC정상회담이 열릴 예정입니다.이번 APEC회담의 의장국 국가원수로서 이번 정상회담에서 가장 주요한 의제는 무엇이 될 것으로 보십니까. ▲환경보존 및 보호문제가 최우선 의제로 다루어질 것입니다.지난달 각국의 APEC회의 관계자들이 마닐라에 모여서 환경문제에 대한 의견을 모은바 있습니다.해양오염을 초래하지 않고 지속적인 개발을 하는 문제,대도시의 교통난 해결책,대기오염 해결책 등 환경보존에 최우선권을 두는 것을 골자로 하는 선언문이 채택될 것입니다. ­장시간 회견에 임해주셔서 고맙습니다.(라모스 대통령은 회견을 끝내려는 공보장관을 수차례 제지했으며 자리에서 일어선 뒤에도 투자유치를 위해 준비해온 자료를 내놓으며 선채로 10여분간 회견을 더 계속했다) ▲필리핀은 외국자본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1백37개의 투자관련 법률을 만들었습니다.기본정신은 내국기업인이건 외국업체들이건 이들에게 자유로운 기업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면세,투자보장,과실송금 등에 있어 여러가지 혜택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나는 특히 한국기업의 진출에 대해 만족하고 있습니다.한진건설이 남부의 바탕가스에서 부두접안 및 관리시설을 건설중이며 민다나오에서는 1백㎞구간의 도로건설공사를 진행중입니다.우리 정책의 기본정신은 외국기업들이 와서 투자하고 물건을 생산하면 그 수익금은 다 가져가도 좋으니 나중에 시설만 남겨달라는 것입니다.감사합니다.(라모스 대통령은 이 인사말을 또렷한 한국말로 했다)〈정리=이기동 특파원〉
  • 국제테러단 핵 사용 우려/물리학자 단체들 경고

    【보스턴 로이터 연합】 국제적으로 유명한 한 물리학자단체는 23일 냉전종식과 함께 테러단체의 핵무기 입수 및 제조 가능성이 증가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85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국제 핵전쟁방지 물리학자 협회」(IPPNW)의 회장 래칠런 퍼로 박사는 이날 IPPNW의 핵무기에 관한 보고서가 발표된 후 가진 회견에서 『테러단체들이 특정한 정치적 목표의 달성보다는 무차별 대규모 폭력을 자행할 수 있다는 능력을 과시하려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 한국 「국가 청렴도」 높아졌다/「국제 투명성」 기관 분석

    ◎부패지수 5.02P로 상승 54국 중 27위 올라 【워싱턴 연합】 국제사회의 비즈니스맨들이 판단하는 한국의 「국가 청렴도」가 지난해에 비해 올해 다소 나아진 것으로 분석됐다. 이같은 사실은 전직 정·부통령,총리 7명과 전현직 장관 6명 및 노벨 평화상 수상자 등 모두 29명의 지도급 인사를 자문위원으로 지난 93년 5월 출범한 부패 퇴치 민간기관인 「국제 투명성」(Transparency International)의 워싱턴 사무소가 3일 공개한 「96년 TI 국제 부패 지수」에 의해 나타났다. 한국은 이 지수가 0.52포인트로 지난해 4.29포인트보다 다소 나아졌으며 전체대상 54개국중 27위를 기록했다.
  • 「다시 생각해 보는 베트남 통일」/이대용 전 주월공사

    ◎“분열과 부패가 월남을 멸망시켰다”/사회분열·전력저하 노린 프락치활동 경계를/「파리협정」 일방파기한 하노이 공산정권 책략은 교훈 공산국가와 맺은 어떠한 평화협정도 힘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종국에는 사문화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은 세계사의 교훈일 것이다. 이대용 전 주월공사는 29일 민주평통자문회의(사무총장 박상범)가 주최한 「한반도 통일과 안보」라는 제하의 세미나에서 그 실증적 사례를 제시했다.그는 이날 「다시 생각해보는 월남의 무력통일」이라는 제목의 주제발표를 통해 『세계 열강 모든 국가들의 외상이 파리에서 열린 월남전 휴전협정 조인식에 참석,이를 보증했으나 북월이 이를 지키리라는 것은 처음부터 오산이었다』고 지적했다.이 전공사의 발표요지는 다음과 같다. 73년 1월27일 파리 휴전협정이 체결됨에 따라 주월미군 철수가 시작됐다.나중에 북월의 거물급 비밀 공산프락치로 밝혀진 남월(베트남공화국)의 거물 정치인인 쭝 딘쥬의 각본대로 파리 휴전협정에 4+8=12개국이 서명했다. 당사국인 미국,남월,북월,남월 임시혁명정부의 외상들과 소련,중국,프랑스,영국 등 4대 강국과 폴란드,헝가리,캐나다,인도네시아 외상 등 모두 12개국 외상들이 조인에 참여했다.또 캐나다,폴란드,헝가리,인도네시아 등 4개국 대사와 장교 등 수백명으로 구성된 국제휴전감시위원단이 남·북월에 파견돼 임무를 수행했다. 파리 평화협상의 주역인 미국의 키신저박사와 북월의 레 둑토 정치국원은 노벨평화상 공동수상자로 선정됐으나 레 둑토만이 끝내 사양했다.그가 왜 수상을 거절했는지는 2년후에 북월이 파리 휴전협정을 일방 파기하고 남침을 감행한 이후에야 확인됐다. 북월은 휴전협정 조인후 불과 2년1개월여만에 협정문을 휴지조각으로 만들며 남월을 재침공,마침내 멸망시켰다.북월의 파리협정 체결은 미군을 남월에서 몰아내는데 목적이 있었지,이를 지킬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다. 남월의 멸망은 몇가지 귀중한 교훈을 남겼다.첫째,공산정권과 대치중인 분단국가는 초강대국의 방위공약을 받고 있다고 하더라도 독자적 방위력을 항시 보유하지 않는한 기습공격을 자초하게 된다는것이다. 둘째,국토면적이 좁은 분단국가는 외국군의 개입없이 전쟁을 치르면 단시일내에 승패가 결정되며 정치체제나 경제의 우월성이 공산군의 진격을 저지시키는데 별다른 소용이 없다는 점이다.이를 저지시킬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국민의 자유민주주의 수호의지와 전투력 뿐이다. 셋째,남월 각계각층에 침투한 공산프락치들이 정보측면에서 남월쪽을 장님으로 만들고,북월쪽은 남월을 꿰뚫어보는 예리한 힘을 갖는 천리안으로 만들었다.거국내각구성마저 유산시키는 등 남월의 분열이 군의 전투력을 마비시키는데 큰 몫을 했다. 넷째,부정부패 또한 망국의 주요 근원이었다.북월에도 부정부패가 만연했으나 조직된 저항세력이 없고 무섭게 잘 조직된 사회라 체제가 흔들리지 않앗다.그러나 남월의 자유민주주의체제하에서의 부정부패는 공산프락치가 자랄 수 있는 토양과 영양분을 제공하고,계층간의 갈등과 불화를 조성하고 군대의 전력을 저하시켰다. 다섯째,미국은 월남 현지 군사전선에서 얻은 승리를 워싱턴의 정치전선에서 모두 잃어버리는 어리석음을범했다.북월은 교묘한 술수로 워싱턴을 흔들어 최후의 승리를 얻어낸 것이다.〈정리=구본영 기자〉
  • 파 바웬사 조선소출근/“정부 연금지불법없어 생활비벌기위해 복직”

    작년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퇴임한 레흐 바웬사 전 폴란드 대통령(52)이 2일 옛 직장인 그다니스크 조선소에 전기공으로 복직해 첫출근했다. 자유노조 지도자 출신으로 노벨 평화상까지 수상한 바 있는 바웬사는 이날 아침 6시35분 운전사가 딸린 메르세데승용차를 타고 경호원들과 함께 조선소에 도착했다.이어 지난 1980년 공산당과의 협정아래 자유노조가 처음으로 합법화했던 역사적인 사무실을 찾았으며 878이란 번호가 찍힌 조선소 출입증도 새로 발급받았다. 정부로부터 연금지불을 거부당해 생활고를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그는 출근소감을 묻는 기자들에게 “생활비가 없어 일을 할수 밖에 없다”고 대답했다.하지만 궁핍한 자신의 처지를 드러내지 않으려는 듯밝은 표정만은 애써 유지하려 했다.
  • 한국 국가청렴도 중하위권/국제민간기관 분석 41개국중 27위

    ◎뉴질랜드 가장 깨끗… 인니 가장 부패 한국은 국제사회의 비즈니스맨과 경제 저널리스트들이 느끼는 「국가 청렴도」에서 중하위권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사실은 전직 정부통령 총리 장관 노벨 평화상 수상자 등 모두 29명의 지도급 인사를 자문위원으로,지난 93년 5월 출범한 부패퇴치국제민간기관인 「국제 투명성」(TI)의 워싱턴 사무소가 공개한 「95년 TI 부패도」에 의해 드러났다. TI 워싱턴 사무소의 자료에 따르면 「95년 TI 부패도」 조사대상에 포함된 41개국중 한국이 말레이시아,아르헨티나,대만 및 스페인에 이어 27위를 기록했다. 뉴질랜드는 『평점 9.55』로 조사 대상 41개국중 「가장 깨끗한 나라」로 인식됐으며 덴마크(9.32점)와 싱가포르(9.26)가 그 뒤를 이었다. 반면 브라질(2.70),베네수엘라(2.66),파키스탄(2.25) 및 중국(2.16)은 최하위권에 랭크됐다.인도네시아는 『평점 1.94』로 41개국중 「가장 부패한 나라」로 인식된 것으로 나타났다. TI 워싱턴 사무소 관계자는 『TI 인덱스가 해당국의 부패 정도를 나타내는것이 아니라 국제사회의 비즈니스맨과 경제 저널리스트들이 그 나라가 어느 정도 썩었다고 느끼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현재로선 95년 평점분이 최신 자료』라고 덧붙였다.
  • 클린턴­홀부룩 「보」 특사/노벨평화상 후보 올라

    【오슬로 AFP 연합】 빌 클린턴 미대통령과 리처드 홀브룩특사가 보스니아평화협상을 성사시킨 공로를 인정받아 올해의 노벨평화상후보에 올랐다고 노르웨이통신 NTB가 16일 보도했다. NTB는 정통한 소식통의 말을 인용,보스니아평화협상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슬로보단 밀로세비치 세르비아대통령과 프란요 투즈만 크로아티아대통령,알리야 이제트고비치 보스니아대통령 등도 후보에 올랐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 「독립국 건설의 꿈」 실현 단계로/총선이후의 팔 자치정부

    ◎「이」와 공존으로 중동평화 진전/예루살렘 분할·강경파 설득 과제 이번 총선결과는 한마디로 야세르 아라파트PLO의장이 추구해온 이스라엘과의 점진적 평화정착에 대한 팔레스타인주민들의 지지가 확고함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이번 선거가 지난 93년 제한적인 자치정부 구성을 주내용으로 이스라엘과 체결한 오슬로평화협정에 의거해 치러진 것이기 때문이다.일거에 이스라엘의 존재를 부정하고 팔레스타인 독립국을 건설하자는 과격 이상론 대신 아라파트가 주창해온 점진적 독립론이 마침내 주민들에 의해 지지를 받은 것이다.평화협정에 불만을 품고 선거보이콧을 내건 과격파들의 주장은 예상밖으로 철저히 외면당했다. 앞으로 「팔」인들은 아라파트의장의 주도하에 독립국가건설에의 길로 한걸음씩 나아가게 된다.자치의회의 의석 절대다수도 아라파트의 지지자들이 차지했다.하지만 앞에 놓인 난관 역시 한두가지가 아니다.우선 자치정부출범을 보는 기본입장에서 이스라엘측과 큰 차이가 있다.「팔」인들은 이를 독립국건설의 첫걸음으로 보는 반면 이스라엘은 어디까지나 평화적 공존을 위한 제한적인 자치허용이라는 시각을 갖고 있다.이 시각차는 오는 5월에 시작해 99년까지 끝내기로 한 동예루살렘등 이스라엘 점령지의 최종 지위협상때 장애로 작용할 것이다.「팔」측은 67년 중동전쟁때 빼앗긴 성지인 동예루살렘을 독립국가의 수도로 정하고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반면 이스라엘은 현재 자국 수도인 동서예루살렘을 분리할 의사가 아직 없다.출범하는 자치정부는 이들 영토의 지위문제가 타결될 때까지 존재하는 임시정부의 성격을 갖는다. 보다 불안한 장애물은 역시 이스라엘,「팔」양측에 엄존하는 강경파들의 존재이다.평화론자 라빈 전 이스라엘총리를 비롯해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미 이들의 손에 희생됐다.현재의 평화무드를 깨뜨리기 위해 언제 이들이 암살,테러등을 자행할지 모른다.이와 함께 자치지역의 경제회생,치안확보,유태인 정착민 이주등 크고 작은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물론 이런 예상되는 난관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계속돼온 양측의 뼛속깊은 원한관계에 비추어볼때 자치를 위한 선거가 성공리에 치러졌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중동평화의 엄청난 진전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같다. ◎아라파트는 누구/PLO 창설… 40년간 독립 투쟁/94년 노벨상 수상… 팔인에 신화적 존재 팔레스타인 선거에서 행정수반으로 당선된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장(66)은 많은 팔레스타인사람들에게 신화적 존재다.그는 이번 선거를 통해 팔레스타인의 새시대를 여는 위대한 지도자로 확고한 자리를 잡았다. 아라파트는 뛰어난 정치적 감각과 팔레스타인 독립을 위한 확고한 신념으로 마치 「신화속의 신」처럼 고통받는 팔레스타인인들을 29년간의 비참한 이스라엘 점령으로부터 해방시켰다. 그는 1950년대 카이로대학시절부터 팔레스타인을 위한 투쟁을 했으며 지난 68년부터는 PLO를 이끌어왔다.그는 40여년간의 투쟁생활중 여러번 위기를 맞았으나 『나는 잿더미속에서 다시 태어난 불사조』라는 자신의 말처럼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켰다.그는 걸프전당시 이라크를 지지,한때 국제적으로 고립되는등 위기를 맞았다.그러나 냉전후다시 싹트기 시작한 중동평화무드에 편승,중동평화의 중요한 파트너로 등장했다. 그는 이스라엘과의 비밀협상을 통해 지난 93년 오슬로협약을 맺고 94년 역사적인 중동평화협정에 서명,팔레스타인 자치의 길을 열었다.그는 그 공로로 94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아라파트는 그러나 하마스 등 강경파의 비난을 받고 있고 그의 꿈인 팔레스타인 독립을 위해선 앞으로도 많은 문제들이 남아있다. 하지만 그는 많은 팔레스타인사람들에게 미래의 희망으로 존재하고 있다.
  • 1995년에 사라진 별들

    ▷국내◁ ◎전 국무총리 진의종씨 해방후 상공부차관과 한전부사장을 거쳐 8대 총선에서 야당인 신민당으로 당선돼 정계에 입문.10대 선거에 낙선한뒤 10·26 이후 보사부장관으로 입각.11·12대 민정당의원으로 당선된뒤 대표위원과 국무총리를 지냈다. ◎의학박사 장기려씨 지난 25일 서울 백병원에서 86세를 일기로 별세한 「한국의 슈바이처」.서울대·가톨릭대 의과대학교수를 역임했으며 68년 영세민을 위한 최초의 의료보험조합인 부산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을 설립했고 79년 막사이사이 사회봉사상을 수상했다. ◎민법학자 안이준씨 지난 3월19일 서울 중앙병원에서 지병으로 별세 향년 65세.안교수는 서울 법대를 졸업하고 경희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은뒤 경희대교수로 재직했으며 민사법학회장을 지냈다.주요 저서로는 민법총칙,채권법 등이 있다. ◎법조인 김성일씨 법관의 정도로 일컬어졌으며 10월31일 상오 서울 강남성모병원에서 60세의 나이로 순직.그는 서울법대를 졸업한 후 천안지원 판사를 거쳐 대법원 재판연구관,제주지법원장을 역임했다.간결한 판결문 정착에 애썼다. ◎전 대법관 김갑수씨 강직한 대법관의 대명사로 꼽혀온 변호사.1월26일 하오 서울 삼성의료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향년 82세.김변호사는 경성제대 법문학부를 나와 평양법원판사를 거쳐 법무·내무차관을 역임했고 지난 60년 대법원장 직무대리 시절 군사정권에 맞서다 법복을 벗었다. ◎충남방적 이종성 회장 지난 70년 부실기업인 국안방적을 인수한지 10년도 안돼 오늘날의 충남방적으로 키웠다.81년에는 국민당에 입당,11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고 국민당의 부총재·전당대회의장 등을 거쳤다.공직자·기업인·정치인으로 거듭된 변신을 하면서도 성공을 거뒀다. ◎명창 김소희여사 우리 시대의 소리꾼.지난 4월17일 78세로 별세.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기능보유자로 우리 국악의 양갈래를 이루는 「동편제」소리의 대명사로 불리는 「국창」.그의 소리는 누구도 따를 수 없는 독보적인 존재로 제1회 한국국악대상,대한미국 문화예술상등을 수상했다. ◎추상조각가 문신씨 지난 5월24일 73세를 일기로 타계한 추상조각의 거장. 국내보다 세계화단에서 더 명성을 떨친 추상조각가로 90∼92년 미술의 본고장 유럽을 순회하며 가진 회고전에서 호평을 받았고 91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예술문학기사 훈장을 받았다. ◎작곡가 윤이상씨 세계적인 음악가이면서도 끝내 이역땅에서 유명을 달리 한 비운의 예술가.지난 11월4일 78세를 일기로 독일땅에서 서거한 그는 「현대음악의 5대 거장」으로 꼽힐 만큼 큰 족적을 남겼다.67년 동백림사건으로 「이데올로기의 멍에」를 쓰고 71년 독일에 귀화했었다. ◎작곡가 길옥윤씨 지난 3월 17일 68세로 별세한 우리 가요계의 대표적인 작곡가. 대표작으로는 「서울의 찬가」 「이별」 「빛과 그림자」 「4월이 가면」. 가요생활 50년을 통해 작사·작곡·편곡한 노래가 3천여곡이 넘는다. 서울 세종로공원에 「서울의 찬가」 노래비가 건립됐다. ◎소설가 김동리씨 지난 6월 17일 82세로 별세한 한국의 대표적인 소설가.60여년 작품활동을 통해 「무녀도」「황토기」「사반의 십자가」「을화」등 1백여편의 장·단편소설을 남긴 현대문학의 증인.서라벌예대 교수,한국문인협회장을 역임했다. ◎레슬링선수 송성일씨 위암으로 1월29일 타계한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1백㎏급 국가대표선수. 자신의 몸에 암세포가 번지는 것도 모른 채 위암으로 투병중인 어머니를 걱정하며 혼신의 투혼을 발휘,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냈다. ◎배구선수 김병선씨 대학졸업을 불과 4일 앞둔 2월21일 심장마비로 숨진 남자배구의 큰 별. 2m의 장신으로 성균관대학 1년 때부터 부동의 국가대표 센터로 활약하며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출전권을 따내는데 주역을 담당했다. ◎경제학자 고승제씨 함남 출신으로 학술원회원을 지낸 원로 경제학자.일본 릿교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한 뒤 서울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서울대·고려대·연세대 교수와 미국 컬럼비아대학과 시카고대학에서 연구교수를 지냈으며 한국경제학회 회장도 역임했다. ◎대림창업주 이재준씨 지난 39년 대림그룹의 모태인 부림상회를 세워 목재업과 건자재업에 진출한뒤 한평생 건설 외길을 걸어왔다.한국전쟁후 복구특수를 활용해 기반을 다졌고60년대 중반부터 해외건설사업에 주도적으로 나섰다.지난 88년 장남인 이준용 대림그룹회장에게 그룹 경영권을 넘겼다. ▷국외◁ ◎반전기수 풀브라이트 풀브라이트 장학재단의 설립자이자 베트남전 당시 「권력의 오만」을 출간,반전운동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했던 인물.지난 2월10일 워싱턴 자택에서 90세로 타계했다.미국의 베트남전 개입을 맹비난,미군의 베트남철수에 기여했다. ◎전 일 총리 후쿠다 지난 7월5일 노환으로 별세했다.그는 대장상과 외상 및 자민당 간사장을 역임한 뒤 76년 미키 다케오 전총리에 이어 67대 총리로 취임,중국과 평화우호조약을 체결하고 도쿄국제공항 개항등 현안을 처리했다.그는 86년 중의원 14선을 역임한뒤 90년 정계에서 은퇴했었다. ◎미 언론인 레스턴 미국 언론인들의 최고상인 퓰리처상을 두번이나 수상하는등 20세기를 대표하는 미국 언론인중의 한 사람.지난 12월6일 워싱턴DC의 자택에서 암으로 숨졌다.그는 뉴욕타임스에서 미국인들의 심금을 울리는 「제임스 레스턴 칼럼」을 연재,필명을 떨쳤다. ◎중 실용주의거두 진운 중국의 최고실력자 등소평과 함께 모택동사후 중국정치를 요리해온 인물.지난 4월10일 노환으로 90세에 사망했다.모택동으로부터 「당내 제일의 경제통」이라는 찬사를 받았지만 50년대부터 실용주의 경제노선을 지향,모와는 다른 길을 걸었다. ◎중동평화 상징 라빈 지난 11월4일 텔아비브에서 중동평화협상 지지집회에 참석중 극우파학생의 총격을 받아 사망했다.그는 군생활 28년을 거치는 동안 아랍세계와의 6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전쟁영웅이었으며 팔레스타인과의 공존을 모색한 평화노력으로 94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케네디 모친 로즈 1월 1백4세를 일기로 타계했다.그녀는 19 14년 조지프 페트릭과 결혼,케네디가와 인연을 맺은후 대사의 아내로서,대통령과 두 상원의원의 어머니로서 최상의 영광을 누렸으나 9명의 자녀중 두명의 아들이 총탄에 목숨을 잃는 암살의 비극을 겪기도 했다. ◎전 영국총리 윌슨 60년대와 70년대초 영국 노동당의 전성시대를 이끌었으며 79세를 일기로 삶을 마감했다.그는 29세때 하원에 진출한뒤 2년후 무역장관으로 취임해 최연소 입각기록을 세웠다.64년 총선에서 승리한뒤 총리 재임기간동안 줄곧 미국의 베트남 파병요청을 거부하고 반전무드를 조성해 영국노동당 시대를 주도했다. ◎전 일 부총리 와타나베 지난 9월 72세를 일기로 사망한 그는 『한일합방은 원만하게 체결됐으며 36년간 통치했지만 식민지 지배라는 말은 어디에도 없다』는 망언을 남긴인물.63년 고향에서 중의원에 당선된이래 대장상·당정조회장등 요직을 거쳤고 대북한 쌀지원 협상에서는 막후조정을 벌였다. ◎영국시인 스펜더 20세기 영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시인이자 지성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지난 7월 86세로 타계했다.그는 20세기 영국의 인도주의적 사상을 대표한 강력한 자유주의적 운동을 펼쳤으며 30년대 비평가들로부터 이 시대의 가장 저명한 3인 시인 가운데 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유고의 양심 질라스 공산주의의 모순을 비판한 저서 「새로운 계급」으로 유명한 티토치하 유고의 대표적 반체제인사.83세를 일기로 4월20일 심장병으로 사망.부통령에 올라한때 티토의 후계자로 지목되기까지 했으나 공산체제에 염증을 느껴 반체제 이론가로 변신했다. ◎백신개발 선구자 소크 1955년 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해 인류를 불구의 공포로부터 해방시킨 의료계의 선구자.80세를 일기로 지난 6월23일 사망했다.뉴욕대학 의학부를 졸업,면역학및 세균학을 연구했으며 「소크백신」개발 후에는 샌디에이고 소크연구소에서 다발성 경화증과 암연구에 몰두했다.
  • 미 러시모어산 4인의 대통령상(세계의 명소/걸작건축감상:26)

    ◎화강암 절벽 깎아 만든 세계최대 조각/14년 동안 작업… 쪼아낸 돌만 무려 45만t/작가 보글럼 완성 직전 숨져 아들이 매듭/햇살받은 모습 장관… 관광객 매년 2백만명 세계의 명소 최근 우리나라의 대통령을 역임했던 사람의 얼굴이 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의 표지로 크게 나온 것을 볼 수 있었다.눈에 고인 눈물을 손가락으로 찍어내는 모습이 표지 전체에 크게 확대되어 나타났었다.이 사람의 얼굴은 요즘 연일 국내외 매스컴에 등장하고 있다.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보게 되는 이 얼굴이 전직 대통령으로서 국민의 존경과 추앙을 받는 얼굴이 아니라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전직 대통령의 존경스러운 모습을 지켜볼 기회가 전혀 없었다.해방 후 50년이 지나는 동안 모두 여섯명의 전직 대통령이 우리의 역사에 기록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신문이나 방송매체에 이런저런 이유로 가끔씩 등장하는 이들의 얼굴은 어둡기만 하다.망명하기 직전의 얼굴,암살당하기 직전의 얼굴,대통령직에서 떠밀려나기 직전의 얼굴,국민에게 사죄하는 얼굴. ○로키산맥 발원지 위치 미국 중서부 지방에 사우스 다코타라고 불리는 주가 있다.크기는 우리나라의 두배 정도인데 인구는 약 70만명으로 우리나라 인구의 60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서쪽으로 로키산맥이 시작되는 곳에 위치하고 있고 주요 생산품이라고는 사료용 옥수수뿐인,미국에서도 가장 한적하고 외진 지역이라 할 수 있는 이곳에 놀랍게도 매년 2백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몰린다.사우스 다코타주 남서쪽 러시모어라는 산 어느 절벽에 미국 대통령의 자랑스런 얼굴들이 조각되어 있기 때문이다. 1927년에서 1941년에 이르는 14년동안 굿존 보글럼이라는 조각가는 거대한 화강암 절벽을 깎아내어 역대 미국 대통령 네 사람의 얼굴을 조각해 놓았다.미국의 국부로 칭송되는 조지 워싱턴,미국 독립헌장의 저자이며 초기 미국의 모든 제도를 완성시킨 토머스 제퍼슨,노예해방을 이룩한 미국 민주주의의 아버지 에이브러햄 링컨,그리고 20세기초 미국의 경제·외교 정책을 훌륭히 수행했고 그로 인해 노벨평화상까지 받았던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이 바로 이 자랑스러운 얼굴의 주인공들이다. 이 러시모어 대통령 얼굴상은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조각으로 제작 당시 깎아내어야 했던 돌의 무게가 45만t이나 된다.각 대통령의 얼굴은 그 길이가 각각 18m이고,6m의 코,옆으로 5m가 넘는 입,또 3m가 넘는 눈을 가지고 있다.이 얼굴에 비례한 크기의 전신상을 상상해 보면 그 높이가 1백38m에 이르게 된다.이 거대한 대통령 얼굴들이 짙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찬란한 동녘 햇살을 받아 밝게 빛나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라 아니할 수 없다. ○얼굴크기 18m 걸작품 보글럼은 당시 미국 최고의 조각가로서 특히 거대규모의 인물상 제작으로 유명했다.그는 정교하게 아름다운 형태보다는 단순하지만 거대한 덩어리가 더 큰 감동을 자아낼 것으로 믿는 조각가였던 것이다. 사우스다코타주에 미국의 훌륭한 역대 대통령의 인물상을 부탁받은 보글럼은 러시모어산에서 깎아지른듯한 화강암 절벽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이 절벽은 높이가 약 1백20m,폭은 약 1백50m가 되었다.여기에 보글럼은 우선 조지 워싱턴 대통령의 얼굴을 조각하기 시작했다.초대 대통령으로서 워싱턴의 얼굴이 가장 현저한 인상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워싱턴의 얼굴이 완성되기 시작할 때까지도 다른 세명의 대통령의 위치와 모습은 결정되지 않았었다.제퍼슨과 링컨,루스벨트 대통령의 순서로 그때그때 절벽의 모양과 화강석 바위의 형상에 맞추어 이들의 얼굴상이 제작되었다.그러다 보니 실수도 하게 되었다.제퍼슨 대통령의 머리는 처음에는 워싱턴 대통령 머리의 왼쪽에 만들기 시작했는데 하다보니 그곳의 바위가 너무 물러서 도리없이 워싱턴 머리의 오른쪽에 다시 만들어야했다는 숨겨진 이야기도 있다. 단단한 화강석 바위를 깎아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광부와 채석공을 동원해 다이너마이트와 착암기를 써서 우선 바위 덩어리를 달걀같이 둥그스럼하게 깎아내야 했다.이어서 이 덩어리를 얼굴 형상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은 끌과 정을 쓸 수밖에 없었다.연이은 작업으로 끌과 정은 금방 날이 무디어졌고 그래서 대장장이가 24시간 작업현장에 대기하고 있어야 했다.게다가 매일 아침 7백60여개의 계단을 힘들여 걸어 올라가 바위 꼭대기에 닿고,다시 거기서 줄을 타고 내려와 매달린 상태에서 석공작업을 해야했던 사람들의 노고도 이루 말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작업조건의 어려움보다는 엄청난 크기의 바위덩어리를 진흙덩이 마냥 이리저리 깎아내어 높이 18m의 얼굴을 입체적으로 정확하게 표현해 내는 일이 더 큰 어려움이었다.거대조각의 제작경험이 많은 보글럼은 아주 간단하지만 효과적인 도구를 개발해 내었다.그는 우선 실제 들어설 인물상 크기를 12분의1로 축소시킨 모델을 만들었다.이것은 실제 인물상의 1피트가 모델에서는 1인치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그다음 모델의 머리 한 복판에 오늘날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타워크레인 같이 생긴 포인터를 각도를 정확히 잴 수 있는 분도기와 함께 설치했다.포인터 끝에는 그 축을 따라 실을 끌어다가 추를 매달았다. ○대장장이 24시간 대기 추가 포인터에 매달리는 위치와 거기서부터 늘어뜨려지는 실의 길이를 조정하여 추를 얼굴 모델의 어느 한 지점에 닿게 하면 그 지점의 정확한 위치가 포인트의 회전각,추의 수평 위치,또 추의 높이로 정확히 측정될 수 있었다. 모델뿐만 아니라 실제 바위 덩어리 위에도 똑같은 모양의 포인트가 설치되었다.물론 이 포인트는 모델 포인트의 열두배 크기를 가진 것이었다.그래서 현장 한 구석에 지은 막사에 갖다 놓은 모델에서 한 지점을 측정하고 그것을 열두배로 키우면 여기에 대응되는 바위 덩어리 위의 지점을 정확히 표시할 수가 있게 된 것이다.이 단순한 측정방식은 14년동안 한치의 오차도 없이 훌륭하게 쓰여졌다. 1927년에 시작된 작업은 제작비의 조달이 어려워지면서 진행과 중단,재개를 거듭하게 된다.1941년 보글럼은 작품의 완성 직전 그만 죽고 만다.대신 굿존 보글럼의 아들 링컨 보글럼이 아버지의 과업을 그대로 이어받아 이 프로젝트를 완성하게 되는데 링컨 보글럼은 이미 15살 때부터 포인트 측정기사로서 아버지를 돕기 시작했다고 한다. 14년이란 기나긴 세월을 보내며,그 당시로서는 엄청나게 큰 돈이었을 1천6백만달러를 투자하며 아버지에서 아들로 대를 물려가며,또한 그 어려운 제작여건속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심혈을 기울여 미국의 역대 대통령 4인의 얼굴상을 만들수 있었던 것은 이들에게는 진정으로 존경하고 간직할 수 있는 대통령의 얼굴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둡고 참담한 전직 대통령의 얼굴들만이 남겨진 우리에게는 이들 미국민들이 부러울 수밖에 없다.퇴임한지 2백년이 지나서도 매년 2백만명의 관광객을 불러들여 어림잡아 2억달러,우리돈으로 1천6백억원의 관광수입을 해마다 올려주는 미국 전직 대통령의 빛나는 얼굴이 재임시절 5천억원의 돈을 국민으로부터 갈취한 우리 전직 대통령의 얼굴과 겹쳐져 우리를 슬프게 한다.
  • 아라파트도 위험하다/라빈 피살이후 주변서 우려의 소리

    ◎수차례 암살모면… 팔 극우파 살해경고/후계자 안정해져 유사시 혼란 심할듯 이츠하크 라빈 총리의 암살 이후 중동펑화에 대한 우려의 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이번에는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의장의 안전 문제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라빈 총리와 함께 노벨 평화상을 공동수상했던 아라파트 의장은 신변안전 문제로 라빈의 장례식에 참석하지도 못했다. 라빈 총리의 암살 직후 이스라엘과의 평화에 반대해온 팔레스타인 해방 인민전선­총사령부(PELP­GC)에서 즉각 『다음은 아랍의 입장을 배반한 아라파트의 차례』라고 경고,신변안전 문제가 이미 우려되기 시작한 때문이었다. 사실 아라파트에 대해선 이전에도 여러차례에 걸친 암살기도 사건이 있었고 서방에선 라빈 총리보다는 아라파트가 더 암살 위험이 높은 것으로 생가가혹 있었다. 팔레스타인 내에는 아직 아라파트의 뒤를 이을 뚜렷한 후계자가 정해져 있지 않아 그를 제거하면 팔레스타인 내부의 혼란이 극에 달하고 평화협상에 즉각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암살위험이 가장 큰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라빈 총리가 암살된데서 알 수 있듯이 맹목적 민주주의를 내세운 이스라엘과 아랍내 극우주의자들의 중동평화 과정에 대한 반발은 생각보다 훨씬 강한 형편이다. 중동평화 협상을 깨뜨리려는 이들의 시도가 라빈 총리 암살만으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상정할 수 있는 실정이다.
  • 라빈 암살 중동평화 구상에 큰 타격

    ◎「팔」자치 실행 지연 예상… 큰틀엔 변화 없을듯/군부지지 약한 페레스의 국론 수습이 변수 아랍세계와의 평화협상을 주도하던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총리의 충격적인 암살은 중동평화의 미래가 여전히 험난하고 불투명함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라빈총리는 암살되기 직전의 연설에서 『이스라엘과 아랍의 평화가 마침내 도래했다』고 선언하며 「평화의 노래」를 불렀지만 그 평화의 노래는 중동평화협상의 한 축이었던 그의 암살과 함께 아직은 먼 「미래의 노래」가 될지 모른다. 세계를 놀라게 한 라빈총리의 암살은 그를 대체할 만한 인물이 없다는 점에서 중동평화의 큰 타격이라 할 수 있다.또 중동평화협상을 주도해온 미국과 협상파트너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에게도 중대한 타격이 아닐 수 없다. 라빈총리는 자신의 높은 정치·군사적 신임을 배경으로 지난 93년 PLO와의 역사적인 평화협정을 맺은 후 많은 난관을 극복하며 중동평화를 적극 추진해 왔다.지난 9월에는 요르단강서안과 가자지구 자치지역확대 협정에 서명,그 지역으로부터이스라엘군이 철수중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우익세력은 평화를 위해 전쟁에서 빼앗은 영토를 돌려주는 라빈총리의 이른바 「평화와 영토의 교환」전략을 반대하고 있다.그는 영토반환에 반대하는 우익세력으로부터 강한 적대감을 받아왔다.암살범도 극우주의자로 알려지고 있다.암살범이 아랍인이 아니라 이스라엘 극우주의자라는 사실은 라빈총리의 중동평화 프로그램이 아랍세계와의 문제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국내에서도 적지않은 반발이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중동전문가들은 라빈총리의 암살로 PLO와의 자치확대협정 실행이 늦어질 것으로 예상한다.실제로 이스라엘은 요르단강서안으로부터의 이스라엘군 철수를 일단 중단했다.그러나 많은 변수가 있긴 하지만 라빈총리의 중동평화 프로그램의 큰 틀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총리 대행을 맡은 시몬 페레스 외무장관도 『우리 모두는 라빈이 시작한 평화의 길을 계속 걷기로 했다.그것이 고인이 남긴 마지막 유언』이라고 말해 라빈의 중동평화 프로그램을 계속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도 『중동평화는 라빈총리의 마지막 유산이 돼야 한다』며 중동평화의 실현을 위한 계속적인 지원을 다짐했다.클린턴행정부는 중동평화의 정착과 내년 대통령선거를 겨냥한 외교업적을 위해서도 이스라엘과 PLO와의 평화가 필요하다. 그러나 군부의 지지가 상대적으로 약한 페레스 총리대행은 라빈총리만큼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할 우려가 있으며 이스라엘의 국론분열도 평화협정의 적극적인 추진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있다. 중동평화의 정착을 위해서는 가장 민감한 이슈인 시라아와의 평화를 위한 골란고원의 반환문제을 비롯,팔레스타인 독립국가건설문제등 아직도 많은 과제들이 남아 있다.라빈총리가 암살됐다고 해서 이스라엘이 아랍세계와 첨예한 대결상태로 되돌아갈 가능성은 희박하다.그러나 중동평화 정착에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피살 라빈 누구인가/군경력 화려… 「Mr 안보」 강경 이미지/레바논전 종식·자치협정 성사 업적 라빈 이스라엘총리는 평화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용기로 「철권을 쥔 평화의병사」로 불렸다.오랜 군생활 경험이 그의 정치적 행동과 철학을 지배했으며 「미스터 안보」라는 강경 이미지를 쌓아왔다. 67년 3차 중동전쟁 때는 참모총장으로 이스라엘군을 총지휘,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시나이반도,골란고원을 장악하는 전과를 올렸으며 87년 팔레스타인인들의 반이스라엘 봉기 때 군에 강경진압을 지시,거센 비난을 받았다.총리대행에 임명된 페레스와는 정지척 숙적이면서도 현연정 파트너로 일하기도 했다. 68년(46세) 퇴역,워싱턴주재 대사로 부임했다가 74년 골다 메이어 총리정부에 노동장관으로 입각했으며 같은 해 6월 메이어의 사임으로 총리에 취임했다.77년 부인의 미국내 은행 불법계좌가 드러나 총리직에서 물러났으나 나중 페레스 총리가 이끄는 거국내각에 국방장관으로 복귀,레바논남부에 「보안지대」를 설치해 레바논전쟁을 종식시켰다.92년 총선에서 「평화와 안보」를 슬로건으로 승리를 엮어냈다. 그의 최대업적은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을 평화협상 파트너로 인정,93년 워싱턴에서 팔레스타인 자치원칙에 합의하고 94년 9월 마침내 중동평화협정에 조인한 것.이 때 중동평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페레스·아라파트와 함께 지난해 노벨평화상을 공동수상했다.그러나 이때부터 그는 국내 극단세력들로부터는 격렬한 비난을 받아야 했다. ◎총리대행 페레스 누구/라빈과 동지이자 숙적… 「평화 설계사」 이스라엘 총리대행에 임명된 시몬 페레스 외무장관(73)은 라빈 총리와 함께 협상을 통해 팔레스타인과의 평화를 이끌어낸 「중동평화의 설계사」로 주요 장관직을 두루 섭렵하며 지난 77년과 83년에 이미 총리직을 한 번씩 역임한 경험을 갖고 있다. 전형적 비둘기파로 평가받는 그는 라빈 총리와 함께 「중동평화」라는 대의명분을 위해 공동노력, 지난해 노벨평화상도 공동 수상했으나 개인적으로는 서로 엎치락 뒤치락하는 정치적 경쟁관계였다.92년 노동당 당권경쟁에서 라빈에게 패한 후 라빈 총리 내각에서 외무장관을 맡아 왔다. 23년 폴란드에서 태어나 11살 때 팔레스타인에 정착했으며 그의 재능을 알아본 벤 구리온의 도움을 받아미하버드대에 유학한 뒤 일찍이 정치에 입문,주요 장관직을 두루 거쳤다.두차례나 국방장관으로 재임하면서 군산복합체의 기초를 다지고 비밀핵무기 개발계획을 시작하는 등 막강한 군사력의 바탕을 마련했다.
  • 올 노벨 평화상 공동 수상

    ◎영국 반핵 운동가 로트블라트·국제 과학자회의 「퍼그워시」/핵무기 감축 공로 【오슬로 AFP AP 연합】 영국반핵운동가로 세계최초의 원폭개발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반발,유일하게 탈퇴한 과학자 조제프 로트블라트(87)와 그가 회장을 맡고 있는 반핵단체 「퍼그워시회의」가 금년도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결정됐다고 노르웨이의 노벨위원회가 13일 발표했다. 노벨위원회는 로트블라트와 퍼그워시회의가 「국제정치에서 핵무기가 차지하는 비중을 낮추고 장기적으로는 핵무기를 제거해온」 업적을 인정해 수상자로 결정했다고 선정 배경을 밝혔다. 로트블라트는 폴란드 태생의 물리학자로 지난 수십년간 군축과 세계평화를 위해 헌신해 왔으며 런던에 본부를 둔 퍼그워시회의는 지난 57년 7월에 창설된 이래 대량 살상 무기개발이 인류에 제기하는 위험을 논의하는 과학자들간의 회의를 주최해 왔다.
  • 잇단 핵실험에 경종 메시지/예상 뒤엎은 노벨평화상 선정 배경

    ◎“핵없는 지구촌 건설” 염원 반영/카터·메이저 등 유력후보 탈락 알프레드 노벨 사망 1백주년인 올해의 노벨평화상은 유력한 후보물망에 올랐던 쟁쟁한 인물들을 제치고 전혀 뜻밖의 인물과 단체에게 돌아갔다. 노벨위원회가 수상자를 발표하기 전까지만 해도 지미 카터 전 미대통령이나 북아일랜드 평화정착의 주역인 존 메이저 영국총리,알버트 레이놀즈 아일랜드 총리 등 유명인사 가운데서 선정될 것이라는 추측이 지배적이었으나 영광의 주인공은 무명에 가까운 반핵운동가 요세프 로트블라트와 그가 회장을 맡고 있는 「퍼그워시 회의」에 돌아갔다.로트블라트도 수상소감을 피력하면서 『내가 상을 받게 되리라고는 정말 예상하지 못했다』며 뜻밖이라는 반응을 나타냈다. 로트블라트와 퍼그워시회의의 수상배경에는 무엇보다 프랑스 등의 핵실험에 따른 반핵운동이 전세계적으로 번지고 있는 시기적 상황이 한몫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가 수상자 선정배경에 대해 『세계지도자들에게 세계의 핵무기 제거 노력을 강화하도록 고무할것을 바란다』고 밝혔듯이 로트블라트와 퍼그워시회의가 평화상을 수상한 것은 히로시마 원폭투하 50주년을 맞아 핵무기를 없애자는 국제사회의 염원에도 불구,최근 중국과 프랑스가 잇따른 핵실험을 실시해 이들 핵보유국들에 대한 항의 및 경고의 뜻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로트블라트의 수상이 발표되자 국제적 환경단체 그린피스,일본반핵운동가들 뿐 아니라 프랑스 정부도 일제히 축하의 뜻을 전했다. ◎노벨평화상 업적/로트블라트­반핵운동 헌신한 영국 학자/「퍼그워시」­핵추방 모토의 과학자 그룹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 요세프 로트블라트(87·영국)는 반핵운동에 평생을 바쳐온 핵물리학자.그와 함께 공동수상한 「과학 및 국제문제에 관한 회의」인 퍼그워시회의는 런던에 본부를 둔 반핵운동 단체다. 퍼그워시 회의는 57년 7월 캐나다의 퍼그워시에서 첫 회의를 열어 퍼그워시 회의로 불린다.88년부터 로트블라트가 회장을 맡은 이 회의는 45년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된데 대한 과학자들의 책임을 통감한 물리학자 11명이 주도해 원폭투하 10년만인 55년 핵절멸을 위한 러셀­아인슈타인 성명이 선언된 지 2년 뒤에 창설됐다.핵무기를 막기 위해서는 전쟁 자체를 없애야 하고,이를 위해 전세계 과학자들이 노력해 국가간 불신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 퍼그워시회의의 기본입장이다. 로트블라트는 폴란드 태생으로 바르샤바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뒤 영국으로 이주,리버풀대 런던대 물리학교수로 지냈으며 현재는 이 대학 명예교수로 재직중이다.로트블라트는 원자력,핵무기 증식,군축,핵물리학 등의 분야에서 30여권의 저서를 펴냈다. 그는 이같은 공로로 지난 92년에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상을 수상했고 폴란드와 독일로부터는 공로훈장을 받았다.그는 또 세계최초의 핵무기개발계획인 미국의 맨해튼계획에 참여했다가 반발,유일하게 사퇴한 과학자로 널리 알려졌으며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에게 남태평양 핵실험을 재개하지 말 것을 촉구하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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