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노벨 문학상
    2025-12-15
    검색기록 지우기
  • 신지
    2025-12-15
    검색기록 지우기
  • 오세훈
    2025-12-1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842
  • “경제개혁… 민주화… ”세계 곳곳 선거열풍

    ◎소설가ㆍ일본계 2세후보 백중세 페루/총 4백의석 놓고 38개 정당 각축 불가리아/실권없는 「잠정의회」 8대1 경쟁 쿠웨이트 페루의 대통령 결선투표와 불가리아 및 쿠웨이트 자유총선이 10일 일제히 치러진다. 정치ㆍ경제개혁과 민주화를 숙제로 안고 있는 이들 나라의 자유총선 안팎 사정을 최종 점검해 본다. ▷페루◁ 노벨문학상 후보에까지 올랐던 소설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후보(54)와 농학자 출신의 일본계 이민2세인 알베르토 후지모리후보(51)간의 백중세가 예상되고 있다. 지난 4월8일 9명의 후보가 출마했던 1차선거에서는 요사후보가 27.6%를 득표,24.6%의 후지모리후보에게 근소한 차로 앞서 1위를 차지했으나 그후 이른바 「후지모리 선풍」에 밀려 후보사퇴까지 고려하는 등 열세에 몰렸다가 지난달 중순부터 맹추격전에 나서고 있다. 연간 2천%를 상회하는 인플레에 시달리고 있는 페루의 최대 선거쟁점은 경제문제. 요사후보는 비대한 관료체제의 재정비,적자국영기업의 민영화,세제개혁 등 충격적 경제개혁을 통해 만성 인플레를 연간 10%이내로 잡겠다는 등의 급진 개혁적인 공약을 내걸고 있다. 이에 반해 후지모리후보는 점진적인 경제정책 재조정을 통해 인플레율을 연간 1백%선으로 끌어내리고 외채문제를 일본 등에 호소,타개해 타가겠다는 입장이다. 요사후보는 후지모리후모가 뚜렷한 경제정책을 제시하지 않은채 시간을 끌며 유권자들의 막연한 기대감에 의존하는 유치한 전략을 펴고 있다고 비난하는 한편 후지모리후보는 급진적인 경제개혁은 서민층의 생활을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역공세를 펴고 있다. 요사후보는 국민들의 엄청난 희생을 강요하는 긴축경제정책을 지나치게 구체적이고도 솔직하게 밝힌 것이 서민층의 지지를 잃게한 요인이라고 판단,공무원 대폭감원 등의 구상을 철회하기도 했다. 지난 1일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방에서 강세를 보이는 후지모리후보가 도시지역에서 우세한 요사후보에 비해 4%포인트 정도 앞서가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지난 3일 실시된 두 후보의 TV공개토론에서 끝내 구체적인 경제문제 해결 방안을 제시하지 못한 후지모리후보가 열세를보여 그야말로 예측불허의 대접전을 예고하고 있다. ▷불가리아◁ 직선의석과 정당별 비례득표 의석 절반씩 총 4백석을 놓고 38개 정당 및 정치연합체들이 후보를 내놓고 있는 이번 선거는 44년만의 자유총선으로 지난해 민주화 개혁을 이룩한 동구제국 일련의 자유총선중 마지막 차례다. 과반수에 미달할 경우 결선투표는 17일에 실시된다. 최근 실시된 여러차례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집권 사회당(구공산당)이 41∼49%의 지지를 받아 최대 야당인 민주세력동맹(22∼26%)과 농민당(10∼15%)을 크게 앞질러 가고 있다. 야당측은 이같은 여론조사 결과가 정치현상을 조작한 것이라고 비방하면서 승리를 장담하고 있으나 홍보부족 등으로 힘이 부치는 상황이다. 지난해 축출된 지프코프 전공산당서기장의 실정으로 인해 1백억달러에 달하는 외채와 소비재부족 등 참담한 경제사정을 극복하기 위해 야당측은 서구식 시장경제도입과 사기업육성,기업과 농업분야에서의 모든 국가통제 제거 등 충격요법을 선거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이에 대해 사회당측은 야당이이번 선거에서 승리할 경우 대규모 실업과 사회불안 및 정치 불안정을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불확실성을 두려워하고 강력한 정부를 원하는 불가리아 국민성에 비춰볼 때 위로부터의 혁명을 착실히 수행해온 집권 사회당의 승리는 확실한 것 같다. ▷쿠웨이트◁ 임기 4년의 잠정국민의회 의원 50명을 선출하는 이번 총선에는 나선 후보가 4백여명. 입법권이 없고 다만 행정부측에 법률제안권만을 갖는 이 잠정국민의회는 허수아비 기구나 다름없다. 종전에는 입법권을 가진 국민의회가 있었으나 이 기구가 행정부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함에 따라 자비르알 아하마드 알 사바하 국왕이 지난 86년 『국가를 혼란에 빠뜨리려는 외국의 음모가 개입됐다』는 이유로 강제해산시킨 뒤 25명의 국왕임명직 의원을 추가시킨 잠정국민의회로 격하시켰다. 해산 당시 32명의 국민의회 의원을 포함,야당들은 이같은 격하조치가 국민의회의 입법권을 명시한 헌법에 위배되는 것이라며 대중집회 등을 통해 선거보이콧 운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수십명의 야당인사들이 구속되기도 했다.〈김주혁기자〉
  • 「본래적 예술」에 대한 믿음과 기대/김문환 서울대교수ㆍ미학(세평)

    비판적 합리주의라고 불리는 현대사상의 한 맥을 주도한 칼 포퍼의 「개방사회와 그의 적들」이라는 저서는 그가 히틀러에 의한 오스트리아 침공소식을 처음 접했던 1938년으로부터 1943년 사이에 씌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플라톤 등을 다루면서 『전쟁이나 그밖의 어떤 현대적인 사건들중 어느 것도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 책은 그러한 사건들과 그 배경을 이해하기 위한 시도였으며 문제들 중에는 전쟁이 승리로 끝난 후에 발생될 것처럼 보이는 것도 있다』 ○비판적 합리주의 공감 그러한 문제들의 예로 우리는 전체주의ㆍ권위주의ㆍ인종차별주의ㆍ부족주의 또는 그의 포괄적인 술어를 빌린다면 역사(결정)주의를 지적할 수 있다. 그가 아리스토텔레스나 헤겔에 이어 마르크스를 비판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였다. 그에 따르자면 『마르크스주의는 인간이 좀더 좋고 좀더 자유로운 세계를 만들어보려는 끊임없는 위험스러운 투쟁을 벌이는 사이에 만들어진 실수 가운데 하나』이다. 따라서 그의 이론에 대해서는 엄격한 합리적 비판이 요구된다는것이다. 그러나 그는 곧 이어 『그 이론이 지닌 놀라운 도덕적 호소력과 지적 매력에 대해서는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고 쓰고 있다. 작은 지면에 「개방사회와 그의 적들」의 집필동기를 이렇게 늘어놓는 것은 차마 함부로 비교될 것은 못되지만 이른바 민중예술에 대한 필자의 심정이 그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필자의 대학생활은 1962년부터 시작되지만 실질적으로는 군에서 제대한 1964년 여름부터이다. 이때 대학들은 이른바 한일국교정상화 반대운동,또는 6ㆍ3사태로 들끓었고 그 열풍이 지나간 2학기의 캠퍼스는 그야말로 마른 잎들만이 뒹구는 들녘과 같았다. 이 메마른 대지에 다시 싹을 틔우려는 여러가지 노력들중의 하나가 문화운동이었고 그 한가지 표현이 탈춤인 셈이었다. 향토의식 초혼굿이라는 행사가 그 대표적인 활동이었던 바,필자도 예컨대 연암 박지원의 소설을 각색한 작품에서 북곽선생이라는 역을 맡아 다가오는 추위와 맞서보기도 하였다. 1969년 서울신문의 서울문예평론 모집에 당선되었을 때,그 내용이 민속극을 다루는 것이 되었던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 마지막 귀절에서 필자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부정을 통한 긍정의 세계관,갈등과 모순을 날카롭게 의식하면서도 그것을 멋스럽게눙쳐 몸으로 받아치는 실감,모든 잡다한 것을 하나로 뭉뚱그려 너ㆍ나의 대립을 초극한 우리만을 있게 해주는 우리 민속극의 활개짓을 「오늘ㆍ여기」에서 펼쳐주는 창작적 민속극의 출현이다』라고 쓴 바 있다. 25살 청년의 치기가 아직도 묻어나지만 이러한 주장은 1970년대와 1980년대에 대학가를 풍미한 마당극의 출현을 마치 예감한 듯 싶기도 하다. 필자 스스로는 교회를 거점으로 삼은 창작적 민속극(판소리 포함)에 좀더 관심을 보이면서도 주변에서 이루어지는 그 비슷한 작업들도 비교적 열심히 구경한 셈인데 어느날 그만 벽에 부딪치고 만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되었다. 그것은 김지하의 「비어」를 읽었을 때였다. 대학시절의 인연도 작용하면서 그의 작품들에서 창작적 민속극의 가능성을 가장 확실하게 읽어내던 필자로서는 대연각 화재사건에서 힌트를 얻은 듯한 「고관」이라는 소품에서 비롯 그것이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될 위인들의 죽음일지언정 그 죽음이 한낱 분풀이를 위한 우스개감으로만 다뤄질 때 섬뜩한 느낌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동기의 순수성은 인정 그러면서도 그후 「민중의 소리」가 그의 작품이라고 소문이 났을 때 필자는 아직 만일 그것이 그의 작품이라면 그가 시인이기를 포기했거나,아니면 그것이 전혀 그의 작품이 아니거나 둘중의 하나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1976년 독일에 유학했을 때 그곳에서는 이 「민중의 소리」를 김지하의 작품으로 믿어 의심치 않아 이를 일어ㆍ영어ㆍ독어 등으로 번역하여 노벨문학상 후보작으로 추천하는 운동이 열성적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필자에게 의견을 물었을 때,필자의 대답은 한결같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이것이 단지 위작에 지나지 않는다고 확언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실망하거나 아니면 필자를 사이비 내지 사쿠라로 매도하기까지 한 일도 있다. 왜 나는 아무런 물증도 없이 그런 소리를 했을까? 그것은 결국 본래적 예술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많은 청년들이 밖에서 「피ㆍ피ㆍ피」를 외치는 와중에 명동성당의 한 부속건물에서 이루어진 문학강연에서 김지하 시인이 「살림」론을 차분하게 강연했을 때 필자는 그에게서 여전히 이러한 믿음이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눈시울을 붉힐 수밖에 없었다. 그는 역설한다. 『오늘날 우리는 생물학적인 죽음만이 아니라 정치ㆍ사회적인 죽임에 의해 희미해져가는 삶을 되살리는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문학도 그러한 살림의 일환이다. 그러나 살림은 규모가 있어야 한다』 ○신명과 품위의 조화를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민중예술을 주도하던 몇몇 일꾼들이 「현장」을 떠날 때,때마침 이른바 사회주의국가들에서 이는 개혁의 물결과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그것 봐라』 하는 음성이 제법 크게 들려온다. 그러나 필자는 그들의 「실수」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동기」마저 그릇되었다고 질타할 수가 없다. 그런 점에서 필자는 예술과 현실정치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다른 견해를 가지지만 칼 포퍼의 심정을 기본적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같은 맥락에서 필자는 바로 그 핵심적인 인물들의 자성에 힘입어 우리가 공허하지 않으면서 신명과 품위가 조화된 본래적인 예술작품들을 만날 수 있게 되리라는 기대를 갖는 순진한 관객일 뿐이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