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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4일 사귀고 30년 그리워하는 무슬림 청년의 삶을 바꾼 사랑

    44일 사귀고 30년 그리워하는 무슬림 청년의 삶을 바꾼 사랑

    2006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터키 출신 소설가 오르한 파묵(58)이 수상 이후 처음 발표한 장편소설 ‘순수 박물관’(전 2권, 이난아 옮김, 민음사 펴냄)이 국내에서 출간됐다. 기본적으로 사랑 이야기다. 지금까지 이슬람의 전통적 민족주의와 서구 민주주의 등 새로운 가치의 충돌, 인류 문명의 본의 등을 주로 써 오던 파묵으로서는 처음으로 쓴 남녀간 사랑에 대한 본질적 탐구다. 파묵이 “내가 쓴 가장 부드러운 소설”이라면서 “장차 나의 것 중 기억될 작품이 될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스스로 높은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최근 터키 이스탄불에서 파묵을 만난 번역자 이난아씨에 따르면 파묵은 “회교국인 터키는 남녀가 쉽게 한자리에 있을 수도, 만나서 사랑에 대한 생각들을 나누고 관계를 발전시킬 수도 없었던 나라였다.”면서 “단지 사랑을 찬양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사랑에 대해 성찰하도록 하는, 무척 무거운 면이 있는 소설”이라고 말했다. 소설은 부유한 집안 출신으로 약혼녀가 있는 청년 케말이 우연히 가난하고 먼 친척인 퓌순을 만나 44일의 시간을 보낸 뒤 헤어지고 나서 30년에 걸쳐 퓌순을 그리워하는 과정을 회상하듯 그려낸다. 첫 문장에서 ‘그때는 그게 사랑인지, 행복인지 미처 몰랐다.’고 말을 떼며 말이다. 퓌순이 사라진 뒤에야 사랑을 깨닫고 순결, 성, 우정, 결혼, 행복 등 가치를 고민한다. 미친 듯 그녀를 찾아 헤매는 것으로 삶의 내용과 이정표가 송두리째 바뀐 케말은 그녀와 추억이 담긴 물건을 모으고 이를 전시할 박물관을 설립을 준비한다. 실제 파묵은 이르면 오는 8월 말, 늦어도 연내에 이스탄불에 ‘순수 박물관’을 개관할 예정이다. 책 속에 박물관 입장권이 숨겨져 있다. 성실한 독자에게 파묵이 주는 선물이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25일 TV 하이라이트]

    ●책 읽는 밤(KBS1 밤 12시30분) 해마다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라틴아메리카 문학계의 거장, 카를로스 푸엔테스의 소설 ‘모든 행복한 가족들’과 함께 우리 시대 가족들의 초상에 대해 28명의 열혈독자들, 전문가와 함께 이야기한다. 작가의 발견 코너에서는 베스트셀러 ‘여자생활백서’로 40만명의 독자를 사로잡은 작가 안은영이 함께한다. ●1대 100(KBS2 오후 8시50분) TV, 스크린, 뮤지컬을 넘나드는 대한민국 대표 파워우먼. 그녀의 퀴즈도전기가 시작된다. 거침없는 입담을 자랑하는 배우, 박해미가 첫 번째 도전자다. 전 세계를 여행하며 얻은 넓은 학문과 식견으로 놀라운 예심점수를 기록한 ‘먼 나라 이웃 나라’의 저자, 이원복 교수는 두 번째 도전자로 나선다. ●볼수록 애교만점(MBC 오후 7시45분) 우연히 선호의 의사가운을 입게 된 하룡. 사람들이 자신을 의사로 착각하고 대하는 게 달라지자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 하룡에게 주리가 의사 행세를 하면 안 된다고 하자 하룡은 어떻게든 가운을 입으려고 애쓴다. 한편, 규한은 술에 취한 여진을 집까지 업고 오고, 옥숙은 두사람이 보통사이가 아닐거라 생각한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SBS 오후 6시10분) 귀여운 외모와 애교로 소문난 얼짱 5살 양예서. 그러나 순식간에 돌변하는 아이의 두 얼굴.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동생을 괴롭히고 어른 머리 꼭대기에 앉으려고 한다. 또 토끼인형에 집착해 물고, 빨고, 무슨 일이 있어도 손에서 놓지 않는다. 달콤한 얼굴 뒤에 숨겨진 살벌한 진실을 밝힌다. ●60분 부모(EBS 오전 10시10분) 60분 부모를 통해 2006년부터 지금까지 자녀 양육에 관한 궁금증을 해결해 주고 있는 임상심리 전문가 조선미 박사. 밖에서 그는 어떤 모습일까. 조선미 박사와 함께하는 아주 특별한 시간. 조 박사의 일과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또 아이를 키우면서 흔히 가질 수 있는 궁금증을 해결하는 시간을 갖는다. ●멜로다큐 가족(OBS 오후 11시) 오늘도 정겨운 시골길을 달리며 막걸리를 만들며 배달하는 순만씨네 양조장 이야기를 소개한다. 경북 예천군 용궁면에는 50년 넘게 전통 막걸리를 만들어 온 권순만(64), 조정희(51)부부가 살고 있다. 전국 팔도에서 오는 손님들로 북적거리는 권씨 양조장. 오늘도 손님들이 공짜술로 흥겨워하는 양조장을 찾아간다.
  • [사설] 한·일병합 100년, 일본 지식인 105명의 자성

    100년 전 일본이 한국을 강제로 병합한 행위에 대해 “군대 힘으로 실현한 제국주의 행위로 불의부당하다.”는 한·일 지식인 214명의 공동성명은 의미가 크다. 병합 100년을 맞아 어제 서울과 도쿄에서 동시에 성명을 냈다. 많은 정치인들이 과거사를 근본적으로 반성하지 않는 일본에서는 좌우 갈등 유발 등 파장이 클 것 같다. 실제로 여론 동향에 민감한 일본 언론들은 성명 보도에 소극적이었다. 일본 지식인들의 결단이 빛나는 이유다. 그래서 병합조약 무효 성명은 양국관계 발전의 새로운 이정표가 되어야 한다. 일본에서도 침략과 병합, 식민지 지배의 역사를 근본적으로 반성하는 시대가 꼭 와야 한다. 일본 측에서는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를 비롯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 사카모토 요시카즈, 미야자키 이사무 등 지식인 105명이 참여했다. 성명은 “한국병합은 대한제국의 황제로부터 민중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의 격렬한 항의를 군대의 힘으로 짓누르고 실현한 제국주의 행위이며 불의부정한 행위다.”고 선언했다. 한국의 독립운동 역시 불법이 아니라는 취지의 내용도 포함시켰다. 독립운동가들의 역사적 복권인 셈이다. 미국 의회는 하와이 병합의 전제가 된 하와이 왕국 전복 행위를 100년째에 해당하는 1993년 불법한 행위였다고 인정하는 결의를 채택했다. 일본 측도 병합 100년째인 올해 진실한 반성을 하는 것이 역사적 순리다. 양국 지식인들은 5개월간 용어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고 격론을 벌여 공동성명을 다듬었다. 한국 및 일본 측 안을 5차례나 통합하고 절충한 끝에야 어렵게 이뤄냈다. 일부 일본 지식인들은 절충안에 수긍하기 어렵다며 막판 서명을 철회하기도 했다고 한다. 올바른 역사의식 위에 과거를 직시하며 미래로 가는 일이 그만큼 힘들다는 얘기다. 그래서 일본 지식인들의 용기있는 행동이 구체적인 성과로 이어져야 한다. 지식인들이 촉구한 대로 올해 8·15광복절 등을 전후로 한·일 양국 정부의 공동성명이나 일본 총리의 사과담화 발표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이 일본 내 극우파들로부터 백색테러를 각오하고 성명에 참여한 일본 지식인 105명을 보호해 주는 길이기도 하다.
  • [부고] 日 反戰작가 이노우에 히사시

    [부고] 日 反戰작가 이노우에 히사시

    │도쿄 이종락특파원│일본의 반전주의 소설가 겸 극작가 이노우에 히사시가 폐암으로 9일 오후 별세했다. 75세. 도쿄 소피아대 재학 당시 작가로 입문한 이노우에는 나오키상을 비롯해 여러 문학상에서 입상했고, 1984년에는 극단 ‘고마쓰자’를 창립했다. 전쟁 경험을 토대로 반전·반핵 활동가로도 이름을 알린 그는 2004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 오에 겐자부로 등 여러 지식인과 일본의 헌법을 수호하기 위한 시민단체인 ‘9조 모임’을 만들어 활동했다. ‘9조’는 헌법에서 평화조항을 담은 9조를 일컫는다. 2004년 일본 문화예술계에 기여한 사람에게 주는 문화공로자상을 받았고, 2003년부터 2007년까지는 14대 일본 펜클럽 회장을 역임했다. 대표작으로 히로시마 원자폭탄 폭격을 경험한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를 그린 희곡 ‘아버지와 산다면’, ‘기리기리 사람들’ 등이 있다. jrlee@seoul.co.kr
  • ‘고도를 기다리며’ 어떻게 썼을까

    ‘고도를 기다리며’ 어떻게 썼을까

    스물 두살, 아무런 영예도 없던 시절, 사뮈엘 베케트는 더블린에서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최초의 직업을 갖는다. 고등사범학교 영어 강사직이었다. 파리에서 영어를 가르치던 그는 평생의 스승이자 친구인 제임스 조이스를 만나게 된다. 조이스에게 헌정하는 글을 쓸 정도로 조이스를 사랑했던 베케트는 조이스와 같은 위대한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강한 열망에 사로잡힌다. 그러나 베케트는 소설뿐 아니라 시, 드라마, 평론, 희곡 등 다양한 영역의 글쓰기에 관심이 있었다. 프루스트에 대한 비평서를 출판하는가 하면, 1930년에는 첫 시집 ‘호로스코프’를 출판한다. 1930년대 초반 당대를 휩쓸었던 트리스탄 차라와 같은 초현실주의자와의 교유를 통해 다양한 예술적 세계를 경험하기도 한다. 늘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는 법. 파리에서 강사를 그만두고 영국으로 간 그는 단편집을 출판하지만 실패하는 좌절을 겪는다. 이후 독일 등 유럽을 여행하고 아일랜드로 돌아온 베케트에게 이번에는 더욱 더 감당하기 힘든 이야기가 전해진다. 프랑스가 독일에 의해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실제로 레지스탕스 활동에 가담하기도 한 그는, 어수선한 유럽의 사정 속에서 가장 왕성한 창작 시기를 맞이한다. 1946년에서 1949년 사이, 베케트는 중요 저작 세 권을 쏟아낸다. 3부작이라 불리는 ‘몰로이’, ‘말론 죽다’, ‘이름 붙일 수 없는’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 기간에 극심한 무력감이 그를 괴롭힌다. 소설쓰기의 괴로움 때문이었다. 그는 잠깐동안 소설쓰기를 중단하고, 머리를 식힐 겸 희곡 한 편을 쓰는데, 그것이 바로 ‘고도를 기다리며’이다. 노벨상을 받기 전까지, 자기 스스로도 졸작이라고 말하곤 했던 작품이 훗날 노벨문학상의 영예를 안겨준 것이다. 고통 속에서 작업했던 소설 대신, 휴식의 의미로 써냈던 작품이 노벨문학상이라는 영예를 안겨주었다니, 참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 [고전 톡톡 다시 읽기] (9) 사뮈엘 베케트 ‘고도를 기다리며’

    [고전 톡톡 다시 읽기] (9) 사뮈엘 베케트 ‘고도를 기다리며’

    아일랜드에서 태어난 사뮈엘 베케트는 1969년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희곡으로 노벨 문학상을 받으며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한다. 그는 노벨문학상 시상식에 가지 않았다. 평생 ‘고도(Godot)’가 뭐냐는 질문에 시달린 베케트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는 ‘고도’에 대한 대답 대신, 자신의 연극을 웃으면서 봐달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죽은 지금도 사람들은 여전히 ‘고도’에 대한 의미 찾기를 계속하고 있다. ‘고도’가 대체 무엇이기에. ‘고도를 기다리며’의 무대 장치는 ‘시골길, 나무 한그루’ 뿐이다. 그곳에 구두를 벗으려고 낑낑대는 에스트라공(고고)과 그의 친구 블라디미르(디디)가 있다. 그들은 작은 무대 안에서 끊임없이 말을 주고 받으며 고도를 기다린다. 밤이 되자, 한 소년이 고도의 소식을 가지고 온다. 오늘은 오지 못하지만, 내일은 꼭 오겠다는 소식을. 2막이 끝날 무렵까지 ‘고도’는 오지 않는다. 또 다시 나타난 소년은 1막에서와 비슷한 말을 남기고 사라져 버리고 고고와 디디가 나무 앞에 선 채로 극은 끝난다. 사실 ‘고도를 기다리며’는 ‘고고와 디디가 고도를 기다린다.’는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다. 그렇다면 고고와 디디는 기다리는 동안 무엇을 했을까. 고고는 벗겨지지 않는 구두를 벗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디디는 고고의 잊어버리는 습관에 절망하다가도 금세 또 고고와 장난에 빠져들기도 한다. 서로 질문하고, 욕하고, 싸우고, 모자를 바꿔 쓰고, 목이나 매자는 이야기를 밥먹듯 하면서도 그들은 죽지 않고, 여전히 고도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그들 앞에 나타난 포조와 러키! “나는 포조라고 합니다.” 를 잘못 들은 고고가 말한다. “자신이 고도라잖아.” 아니라고 짜증을 내는 디디를 뒤로한 채 고고가 중얼거린다. “보조…보조….” 끊임없이 반복되는 고고와 디디의 말장난! ●고도 의미찾기는 이제 그만! 확실히 고고와 디디는 말놀이에서는 탁월한 재주를 가지고 있다. 서로가 한 말을 따라하거나, 어느 순간 그 말을 뒤집고, 또 다시 역전시킨다. 그들은 그저 생각나는 대로, 흘러가는 대로 대화하는 것 같다. 어떻게 보면 그들의 대사는 공놀이 같기도 하다. 내게 오는 공을 받고 싶으면 받고, 받기 싫으면 “나는 가겠네.”라면서 안 받으면 그만이다. 베케트식의 말놀이. 이 말의 유희는 사실 아무런 의미가 없다. 고고와 디디는 오직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재미있기 위해서만 말을 주고 받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베케트의 작품은 의미를 찾으려 하면 할수록 의미를 알 수 없다.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순간, ‘고도를 기다리며’는 곤혹스럽고 힘든 극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만일 고고와 디디의 대화에서 의미 찾기를 포기한다면, 그들의 반복되는 말장난과 움직임 속에서 재미를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베케트는 등장인물들의 계속되는 말놀이를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이 집착하는 의미를 전복시키려 애썼던 것은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유일하게 의미 있어 보이는 것이 한가지 있다. 문제의 ‘고도’이다. 하릴없이 구두와 씨름을 하고, “가자.”고 말하면서도 그들이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여전히 ‘고도’를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고고와 디디는 결국 자기 길을 못 떠나고 ‘고도’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수많은 연구자들과 비평가들이 애를 썼다. 프랑스의 유명한 소설가인 로브그리예는 ‘고도’를 ‘신(God)’으로 단정지었는가 하면, 어떤 이는 고고와 디디가 바로 ‘고도’라는 답을 내놓기도 했다. 1953년, 프랑스의 바빌론 극장에서 ‘고도를 기다리며’를 처음 연출한 로제 블랭이 베케트에게 ‘고도’가 뭐냐고 물었을 때, 그는 병사의 군화를 뜻하는 프랑스어 고디요(Godittot)나, 고다스(Godasse)를 뜻한다고 답했다고 한다. 베케트의 대답은 ’고도‘를 더욱 더 미궁 속에 빠뜨렸을 뿐이다. 실체도 없이 고고와 디디를 기다리도록 만드는 ‘고도’는 꼭 시간을 닮았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시간이란 무엇일까. 인간의 시간은 정해져 있음, 즉 유한하다. 시간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시간이 흘러가는 것에 그토록 목을 맬 수밖에 없다. 이 미지의 ‘고도’라는 작자 역시 극이 끝나도록 도착하지도 않으면서, 끝끝내 고고와 디디를 묶어놓고 있지 않은가. 만일 ‘고도’가 시간의 속성과 비슷하다면, 고도는 이미 도착했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과거가 이미 도착한 것이고, 미래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렇다. 하지만 시간을 과거와 현재, 미래로 구분할 수는 없다. 현재는 붙잡으려고 하는 순간, 곧바로 과거가 되어버리고, 미래는 도착하는 순간, 현재가 되어버린다. 우리가 시간을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은, 우리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는 것뿐이다. ●삶의 허무 버리고 오늘을 잡아라 1막의 마지막 장면에서처럼, 2막에서도 고고와 디디는 여전히 그곳에 서 있다. 차라리 기다리기 위해서, 살아가기 위해서 그들은 자신들의 말이나 행동을 지연시킨다. 고고와 디디에게 중요한 것은 어쩌면 ‘기다리며’가 아닐까. 기다리는 동안, 그들은 말을 주고 받고, 작은 무대 이곳저곳을 왔다갔다하면서 자신들이 살아 있음을, 시간을 보내고 있음을 인식한다. 그래서일까, 극이 끝나는 마지막 순간에도 그들은 “가자.”고 말하면서도 제자리에 멈추어서 고도를 기다리고 있다. 블라디미르:자? 그럼 가볼까? 에스트라공:응. 가세나. (그들은 꼼짝도 않는다.) 때때로 고고와 디디에게 찾아오는 죽음과 허무처럼, 삶의 의미나 목적이 우리를 찾아와 괴롭힌다. 더 나은 미래만을 위해 살고 있는 우리는 어쩌면 단 한번도 삶을 가져보지 못한 것은 아닐까.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가 삶의 부조리함과 무의미함을 허무적으로 보여준다는 평가 역시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삶이 허무하다고 해서, 삶을 잃어버려서는 곤란하다. 삶이 부조리하고 무의미할수록, 삶은 발견되어야 하지 않을까. 베케트의 조언처럼 고도를 ‘신’으로 대입하는 식의 의미 찾기 대신, 고디요나 고디스가 될 수도 있다는 식의 유희를 만드는 삶의 놀이를 만들어내는 것이 어떨까. 삶의 유희, 그것이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고고와 디디가 기다리는 동안 발견한 것이다. 박혜선 영상인문제작소 이닥(IDAG) 연구원
  • 손바닥 위에 쓴 가와바타의 삶

    일본의 전통시 하이쿠(俳句)는 한 줄 문장 안에 우주를 담아낸다고 한다. 극히 짧은 형식으로 커다란 감동을 준다는 점에서, 시에 하이쿠가 있다면 소설에는 콩트가 있다. 콩트는 단편소설보다 더 짧은 이야기로 한 손바닥에 써질 정도의 분량이란 뜻에서 ‘장편(掌篇)소설’로도 불린다. 일본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이며 ‘설국’으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1899~1972)는 일생동안 콩트를 썼다. 그가 40여년 동안 남긴 175편의 콩트는 여러 평론가, 연구자들에게 ‘가와바타 문학의 고향’, ‘가와바타 문학을 여는 열쇠’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그가 남긴 짧은 소설들이 ‘손바닥소설’(문학과지성사 펴냄)이란 재치있는 이름으로 번역돼 나왔다. 가려뽑은 68편의 손바닥소설들은 보통 원고지 15장 내외, 적게는 2장, 길어도 30장을 넘지 않는 짧은 분량다. 하지만 짧은 호흡 안에서도 가와바타 야스나리 문학의 특징들은 고스란히 살아난다. 서정적인 문체도 그대로다. “많은 작가들이 젊은 시절에 시를 쓰지만, 나는 시 대신 손바닥소설을 썼다.”는 작가의 고백처럼 그의 손바닥소설에는 시와 같은 아늑함이 있다. 가와바타는 보통 콩트에서 기대하는 기발한 반전이나 재치·풍자보다는, 차분하고 애수에 젖은 분위기를 통해 삶의 비의(秘意)를 포착해 낸다. 이야기는 사랑과 이별, 그리움 등 남녀 간의 심리나 애정을 소재로 한 것이 많다. 주로 그가 20대 초반에 쓴 것들로, 서정적 문체와 맞물리며 여리고 감성적인 장면들을 많이 만들어 낸다. 부모, 부부, 아이 3대째 폐병을 앓지만 “당신과의 결혼 덕분에 행복하다.”고 병상에서 서로 말하는 부부, 보름 동안 임시 아내로 함께 했던 항구의 남자들에게 편지를 쓰는 여인 등이 그런 예다. 가와바타의 삶과 서로 통하는 자전적 내용의 작품들도 많이 보인다. ‘어머니’라는 작품에서는 부모의 죽음을 처연한 어조로 전한다. 또 첫사랑 소녀 이야기를 그린 ‘양지’에서는 어릴 적 부모를 잃고 남의 집 신세를 지게 되면서 늘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는 버릇이 생겼음을 고백하고 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예술인가 외설인가… 금기 넘은 작품들

    선사시대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상(像)부터 인도의 카마수트라, 그리고 금서의 굴레에 갇혀 있던 20세기 채털리 부인 혹은 21세기 장정일의 거짓말까지…. 금기(禁忌)는 욕망을 부른다. 억압은 폭발적인 창조의 에너지를 잉태한다. 태초의 성애(性愛)가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약속했듯 아름다운 몸의 관능과 애욕의 표출은 원천적인 창조적 예술 행위와 직결된다. 그러나 불행히도 관능에 대한 욕망은 2500여년의 세월 동안 동서고금 인류 역사가 새겨놓은 ‘금기 목록 1호’에서 이름을 빼놓지 않았다. 사랑은 아름다움의 뒤를 쫓는다. 또한 존재를 달뜨게 하는 예술 창조의 열정은 사랑을 향해 전폭적인 열정을 쏟아붓게 마련이다. 그 사랑이 금기의 대상으로 몸을 뒤틀었으니 터질 듯한 창조의 욕망은 불을 보듯 뻔하다. ‘예술과 외설’이라는 위태로운 줄타기를 해오던 금기와 억압의 봉인(封印)이 풀렸다. ‘에로티카’(커넥션즈 에디션 엮음, 김은규 옮김, 쌤앤파커스 펴냄)는 전 세계 갤러리와 도서관, 개인의 소장품으로서 오랜 세월 금기로 치부되며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그림, 소묘, 사진 등 미공개 에로티시즘 작품 400여점을 공개한다. 또한 이를 보카치오, 카사노바, D H 로렌스, 헨리 밀러, 오스카 와일드, 파블로 네루다 등의 시, 소설 등 문학 작품과 함께 소개하며 봉인을 활짝 벗겼다. 실제로 외설 시비를 겪으며 금서로 묶였던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연인’이나 헨리 밀러의 ‘북회귀선’, ‘남회귀선’ 등은 시대의 억압을 뚫고 이제는 당당히 고전의 반열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는 순수한 혁명과 낭만적인 사랑을 노래하는 와중에 ‘외로운 신사’라는 시편에서 성애의 욕망을, 거침없이 그러나 아름답게 드러낸다. 엮은이는 서문에서 “활력을 고양하는 에로티카와 파괴적인 에로티카의 차이점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잔혹하고 폭력성에 중독된 사람이라면 다른 책을 집어들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미공개 작품 400여점은 지나치게 노골적이다. 지하철이나 도서관, 회사 등에서 이 책을 읽다가 주변에서 쏟아지는 눈총과 수군거림에 대해서는, 당연히,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3만 5000원.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문학 韓流 대륙을 적신다

    문학 韓流 대륙을 적신다

    중국의 내로라하는 문예지가 한국작가들로만 꾸민 특집호를 만들어 화제다. 그동안 부분적으로만 소개돼온 한국 문학에 대한 중국 문단의 높아진 관심을 반영한다. 중국 최고 권위의 문예지 가운데 하나인 ‘쭤자(作家)’는 4월호 전체를 평소보다 두 배 이상 두툼한 분량의 한국문학 특집호로 만들었다. 새달 23일 발행 예정이다. 이 같은 사실은 얼마 전 중국어 번역 및 감수 작업이 끝나면서 알려졌다. 중국 문단에서 활동 중인 소설가 겸 번역가 박명애씨가 번역을 맡았고, 지난해 초 국내에 소개된 장편소설 ‘감언이설’을 쓴 중국 소설가 리얼(李?)이 감수했다. ‘쭤자’는 중국 문인들의 필독서로 꼽힌다. 위화(余華), 모옌(莫言), 리얼, 왕안이(王安憶) 등 노벨문학상에 바짝 다가선 것으로 평가받는 당대의 중국 작가들이 세계 문단에 중국 문학을 소개하는 통로로 꼽기도 한다. 특집호가 엄선한 한국작가 작품은 신경숙, 박범신, 이승우, 한강, 김연수 등 소설가 16명의 중·단편과 신경림, 신달자, 도종환, 정끝별, 김기택 등 시인 12명의 대표시 28편. 세대별, 작품세계별로 안배한 흔적이 엿보인다. 작품마다 작가사진, 약력, 약평 등도 일일이 달았다고 한다. 최근 몇 년 동안 한·중 문학 교류가 활발해지고는 있지만 몇몇 개별 작가의 작품을 번역, 소개하는 정도에 그치는 실정이다. 게다가 중국 출판업계의 특징상 베이징에서 출판되면 상하이나 다른 지역 서점에 소개되지 않기 일쑤였고, 그 반대 역시 마찬가지였다. ‘쭤자’에서도 지난해 한국 시(8편)와 소설(2편), 평론(2편) 등을 일부 소개하기는 했지만, 한국 문학의 실체를 파악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문학이 중국 문단에 전면적으로 소개된다는 점은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는 게 국내 문단의 평가다. 아시아 속 한국 문학의 위상을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는 반응이다. 김태성 한성문화연구소 대표는 22일 “그동안 양국의 문학 교류가 이벤트성 행사에 그쳤고, 중국 문학의 국내 소개에 비해 한국 문학의 중국 소개는 부족했다.”면서 “중국에서도 한국 문학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만큼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말했다. 박명애씨는 서울신문과의 국제전화에서 “중국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하며 세계 문단의 중심으로 진출하려는 움직임은 국가적 과제에 가깝다.”면서 “한국 특집호는 우리 문학의 위상을 다른 방식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쭤자’를 세계 문단 중심부 진출과정의 디딤돌이자 건널목으로 활용할 만하다는 얘기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용어 클릭] ●쭤자(作家) 1956년에 창간됐다. 민간 잡지가 아닌 중국 정부가 발행하는 월간 문예지다. 매달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등 세계 6개국 언어로 번역 출간된다. ‘중국 문학의 노벨상 프로젝트’ 창구 역할을 담당한다.
  • 인생 별거 아니야 각자 잘 사는거지

    이 세상은 개판이며 앞으로 달라지지 않는다. 역사는 재난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악순환의 연속이다. 인간은 믿을 게 못 되며 모든 걸 망쳐 놓는 존재다. 어둠 없이는 빛이 없고 고통 없는 행복도 없다. 전쟁과 빈곤은 사라지지 않는다. 부정부패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평소 이런 생각을 가졌다면 당신은 분명 비관주의자다. 신문을 펼쳐도 TV를 틀어도 미소짓게 하는 소식보다,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뉴스가 많은 요즘, 누구라도 한두 번 정도는 비관적인 생각을 할 것이다. ●저명인사들의 생생한 낙관론 낙관주의자를 자처하는 한 남자가 있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하고 프랑스 인시아드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MBA)를 받은 뒤 컨설팅 분야 등에서 일하다가 2001년부터 글쓰기와 코미디에 뛰어든 사람이다. 바꿔 말하면 변변한 직장이 없는 백수라는 이야기. 서른이 넘어서도 절대 비관주의자인 아버지에게 얹혀살고 있다고 고백한다. 이 남자, 로렌스 쇼터(39)는 2006년 여름 어느 날 침대에서 분연히 뛰쳐나온다. 세상의 모든 우울한 뉴스와 비관주의자들 때문에 낙관주의가 집중포화를 받고 있다는 생각에, 이 세상에 숨어있는 멋진 낙관주의자들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비밀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다. 이름하여 ‘낙관주의 프로젝트’. 스스로 낙관주의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해본 것도 아니다. 그저 ‘낙관적으로 살아갈수록 당신의 삶이 나아진다.’는 낙관주의 제1법칙을 품고 무조건 들이댄다. 첫 인터뷰 시도는 덴마크 통계학자 비외른 롬보르. ‘회의적 환경주의자’라는 책으로 유명한 롬보르는 그러나, 이메일로 일언지하에 인터뷰를 거절한다. 이어 생태환경산업 에덴 프로젝트 최고경영자(CEO) 팀 스미트를 만났지만 “쓸데없는 짓”이라고 무시당한다. 2005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해럴드 핀터는 알고 보니 와인을 빼놓고는 모든 면에서 비관주의자였고, 두뇌집단 ‘서스테인어빌러티’의 공동창립자인 존 엘킹턴은 비관주의의 최고봉이었다. 이러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전 유엔 미국 대사 존 볼턴, 할리우드 여배우 애슐리 주드, 매킨지 CEO 이언 데이비스, ‘대륙의 딸들’을 지은 작가 장융, 노벨평화상을 받은 남아공 성공회 신부 데즈먼드 투투, 영국 보수당 당수 데이비드 캐머런 , 버진그룹 회장 리처드 브랜슨 등 숱한 저명인사들에게 낙관주의에 대한 저마다의 생각을 듣게 된다. “사람들은 사실 그다지 비관적이지 않다. 대부분 지구 온난화에 대해 쥐뿔도 관심이 없지 않으냐.”(팀 스미트) “11시간 얼어붙을 듯한 바닷물 위에서 표류했는데, 낙관적이지 않았더라면 죽고 말았을 것이다.”(탐험가 스티브 브룩스), “믿음이 있으면 모든 것을 분명하게 볼 수 있는 힘이 생긴다.”(르완다 학살 생존자 임마꿀레), “낙관주의보다 희망을 찾아라.”(데즈먼드 투투) 이렇게 해서 나온 책이 ‘옵티미스트’(정숙영 옮김, 부키 펴냄)다. 주류 언론인도 아니고, 이름난 작가도 아닌 저자의 인터뷰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자잘한 인맥을 동원하고 적당히 둘러대고 허풍도 섞어가며 불가능할 것 같았던 일을 성사해 내는 모습을 보면 절로 감탄이 인다. 책 속에 재치와 익살이 가득해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한 백수의 좌충우돌 인터뷰기 우여곡절 끝에 처음부터 목표로 삼았던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을 만나 겨우 한마디를 나누고 “우리는 결국 이겨내 왔다.”는 강연을 듣는 것으로 프로젝트는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2년 동안 세상을 돌며 얻은 깨달음은 거창하지 않고 오히려 평범하다. 어찌 보면 저자에게 낙관주의 프로젝트는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과정이었는지도 모른다. 저자는 “세상에는 언제나 어둠과 빛이 존재한다. 인간들은 언제나 실수를 저지른다. 나쁜 소식은 언제나 들려오기 마련이다. 좋아지는 것도 있고, 나빠지는 것도 있다. 이제 그런 거 신경쓰지 않는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각자 알아서 잘살면 된다.”고 말한다. “우리는 우리의 밭을 가꾸면 된다.”는 볼테르의 소설 ‘캉디드’의 마지막 문장처럼 사람은 그저 자신의 자리에서 나름대로 살아가면 된다는 것이다. 1만 3500원.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포크록의 전설’ 밥 딜런 온다

    ‘음유 시인’ 밥 딜런(69)이 데뷔 48년 만에 처음으로 내한공연을 펼친다. 3월31일 오후 8시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다. 그래미 평생 공로상을 받았고, 4년 연속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올랐으며, 노랫말이 미 연방법원 판결문에 인용되기도 했던 밥 딜런이다. 그는 인종차별 반대, 반전 반핵 등 사회성 짙은 음악을 끊임없이 발표하며 1960~70년대 시대의 양심으로 자리매김했다. 또 철학적인 가사와 진솔한 메시지로 시대와 세대를 뛰어넘어 전 세계 많은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밥 딜런은 특히 포크 록이 결합된 새로운 음악 장르를 개척한 혁명가로도 평가받는다. 그가 그동안 발표한 스튜디오 앨범은 34장, 라이브 앨범은 13장, 싱글은 58장이나 된다. 2000명이 넘는 음악가가 그의 음악을 다시 부르기도 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밥 딜런은 1982년 작곡가 명예의 전당에, 1988년에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으며 2000년에는 폴라음악상을 받았다. 또 미국 음악잡지 롤링스톤이 선정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아티스트에서 비틀스에 이어 2위에 오른 바 있다. 밥 딜런은 일본에서 3월12~29일 12차례 공연을 치른 뒤 한국을 방문한다. 20t에 달하는 장비가 공수되며 12명의 밴드, 20명의 스태프가 함께 내한한다. 티켓판매는 17일부터 시작될 예정이다. (02)3141-3488.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주류가 된 아웃사이더 작가들

    세계 문학의 주변부, 이른바 아웃사이더 작가들의 입을 통해 인류 보편을 사유하게 한다. 인종 문제, 여성 문제, 역사적 사실의 문제 등 주변부의 특수성으로 인식되던 것들이 궁극적으로는 인류 전체의 핵과 맞닿아 있음을 확인시켜 준다. 문학평론가 겸 번역가인 왕은철 전북대 영문과 교수가 지난 10년간 직접 인터뷰했던 세계의 유명 작가 9명의 얘기를 담은 ‘문학의 거장들’(현대문학 펴냄)을 내놓았다. 왕 교수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케이프타운대, 미국 워싱턴대 객원교수 등으로 머무는 동안 현지 작가들과 직접 만나 인터뷰를 했고, 전화나 이메일을 통해 인터뷰를 보완했다. 공교롭게 혹은 필연적으로, 9명의 작가는 모두 아웃사이더들이다. 나딘 고디머와 J M 쿠체, 안드레 브링크는 모두 남아프리카공화국이라는 제3세계에 속한 작가다. 또한 흑인의 대륙에 사는 백인 작가들이다. 반면 찰스 존슨, 낸시 롤스, 나타샤 트레서웨이, 하진(哈), 할레드 호세이니 등은 모두 미국에 사는 유색인종 작가다. 세나 지터 내스런드는 작품을 통해 여성성에 천착해 왔다. 그럼에도 이들은 모두 인간 존재의 본질적 비의(秘意)를 좇았던 것이 인류의 보편적 사유로 승화되며 화려하게 비상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고디머는 1991년에, 쿠체는 2003년에 각각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브링크는 마틴 루터 킹 기념상, 레지옹 도뇌르 훈장 등을 받았고 1979년 이후 계속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중국 출신으로 전미도서상을 받으며 미국 문단의 중심에 우뚝 선 하진이며 불교적 철학을 작품 속에 담아내 전미도서상, 미국학술원상 등을 받은 흑인 소설가 존스, 퓰리처상을 받은 트레서웨이 등이 문학의 역할, 작가의 숙명을 이야기한다. 한국에서 쉬 만나기 힘든 이들도 포함된 만큼 함께 곁들여진 왕 교수의 작품 해설, 작가론도 눈에 쏙쏙 박힌다. 왕 교수는 “주변부에 해당하는 작가들을 인터뷰하는 일은 내게는 배움의 과정이었다.”고 말한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美·쿠바 손잡고 헤밍웨이 저택 보존

    美·쿠바 손잡고 헤밍웨이 저택 보존

    쿠바 정부와 미국 민간단체가 미국의 대문호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저택과 유물을 보존하는 데 협력하기로 했다고 AFP통신이 21일(현지시간) 현지 언론을 인용해 보도했다. ●아바나서 20㎞… 134년 된 별장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헤밍웨이는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서 20㎞ 떨어진 저택 ‘핀카비히아’(스페인어로 전망 좋은 집이라는 뜻)에서 20년 넘게 지냈다. ‘노인과 바다’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등 명작들도 이곳에서 탄생했다. 쿠바의 국가문화유산사무소의 마르가리타 루이스 소장은 미국의 핀카비히아재단과 헤밍웨이 유적 보존과 복원에 협력하기로 정식 합의했다고 밝혔다. 1961년 헤밍웨이가 사망한 뒤 쿠바 정부는 핀카비히아를 박물관으로 지정했다. 지은 지 134년 된 저택은 오랫동안 풍상에 시달려 지붕은 새고 벽이 금 가고 나무기둥이 썩는 등 붕괴 위기에 처했지만 예산이 부족해 보수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 헤밍웨이의 유산을 보호하기 위해 설립된 핀카비히아재단은 쿠바와 40년간 경제교류를 단절한 미국 정부에게 예외적으로 저택 복원에 필요한 자금과 기술을 지원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요청했다. 쿠바와 긴장관계를 유지했던 조지 부시 전 행정부는 2004년 6월 헤밍웨이 저택이 복원되면 쿠바 공산정부의 관광수입이 늘 것이라며 이 요청을 거부했다. 그러나 버락 오바마 정부가 들어서면서 1년전부터 양국 사이의 문화교류가 증진됐고 이 덕분에 쿠바 정부와 재단 측의 협력에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편지·작품 초본 등 희귀 유물 보관 핀카비히아에는 헤밍웨이가 쓰던 옛 가구와 9000권의 장서, 예술작품, 유명인사와 주고 받은 편지와 작품 초본 등 희귀한 유물들이 보관돼 있다. 재단은 헤밍웨이 유적 보존에 200만~300만달러(약 23억~34억원)의 비용이 들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오달란기자 dallan@seoul.co.kr
  • [책꽂이]

    ●보여지는 부모 바라보는 자녀(시드 케슬러·엘렌 케슬러 지음, 장지윤 옮김, 에이케이디자인 펴냄) 자녀는 부모의 등을 보고 자란다고 한다.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자녀가 바른 길을 가길 원한다면 먼저 부모의 의식과 행동이 올바라야 한다. 저자는 이러한 점을 강조하는 한편, 과학과 철학과 유기적으로 얽힌 삶의 완벽한 체계를 제시하며 자녀 교육에 있어 어떻게 적용할지 그 방법론을 세밀하게 풀어낸다. 9000원. ●인물지-제왕들의 교과서(박찬철·공원국 지음, 위즈덤하우스 펴냄) 위나라 조조의 신하 유소(劉邵)가 쓴 인사 교과서다. 출신과 허명(虛名)만 앞세운 인사가 아닌 능력 위주의 인사를 했던 조조의 능력주의를 포괄하며 인사의 적재적소 배치 원리를 만들 수 있는 체계적 체제를 정리했다. 인재를 알아보고, 분류하며, 용인(用人)하는 것을 12장으로 풀어냈다. 2만 7000원. ●암탉 한 마리(케이티 스미스 밀웨이 지음, 김상일 옮김, 키다리 펴냄) 무담보소액대출, 이른바 ‘마이크로 크레딧’을 통해 개인의 꿈과 공동체의 희망을 일궈낸 실제 사례를 동화로 옮겼다. 아프리카 가나의 한 마을 가난한 소년이 빌린 돈으로 닭 한마리를 사서 이를 키워내고 이후 양계농장을 만든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9800원. ●당신에게 노벨상을 수여합니다(노벨재단 엮음, 전 3권) 지난해 노벨 화학상, 노벨 생리·의학상, 노벨 물리학상의 스웨덴 스톡홀름 콘서트홀 시상식에서의 연설 전문을 실었다. 20세기 과학의 역사와 21세기 과학의 미래 등 인류와 함께 발전되어온 과학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문학상, 평화상 등에 쏠리곤하는 대중적 관심 언저리에서 수상자 이름 정도만 겨우 알려진 상황에서 과학 관련 노벨상의 성취물을 확인할 수 있다. 각권 2만 2000원. ●주말이 기다려지는 행복한 섬여행(박상건 지음, 터치아트 펴냄) 서해와 남해, 그리고 동해까지 점점이 박혀있는 섬 45곳 이야기다. 홀로 찾아야 좋을 섬, 함께 떠나면 더욱 좋을 섬, 생태학습에 좋은 섬, 역사 공부를 충실히 시켜주는 섬 등 섬 여행의 정보와 배울 거리가 두루 갖춰져있다. 섬(전남 완도) 출신 저자답게 글편마다 파도와 바다에 대한 애정이 듬뿍 배어있다. 1만 7000원.
  • 카뮈 전집, 23년만에 완역

    1987년 산문집 ‘결혼·여름’이 나올 때만 해도 그저 프랑스의 앙가주망 지식인의 한 사람인 알베르 카뮈(1913~1960)에 대한 평범한 번역서 정도였다. 하지만 이후 소설 ‘이방인’이 나오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무려 23권에 이르는 카뮈의 모든 저작 리스트가 책에 ‘출간 예정’으로 소개됐다. 그리고 꼬박 23년의 세월이 흘렀다. 김화영 고려대 명예교수가 최근 ‘시사평론’(카뮈 지음, 책세상 펴냄) 번역을 마치면서 이 지난하고 방대한 노작(作)에 마침표를 찍었다. 카뮈와 관련된 모든 책은 책세상과 독점계약이 돼 있기 때문에 카뮈 전집의 상당수는 국내 초역이고, 완역이다. 카뮈 타계 50주년이 되는 2010년 1월4일을 얼마 남겨놓지 않고 이뤄낸 성과다. 그동안의 고단함은 고스란히 김 명예교수의 몫이다. 그는 국내에서 대표적인 카뮈 연구자로 꼽힌다. 1974년 프랑스 프로방스 대학에서 카뮈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원전에 충실한 번역과 대중의 눈높이에 맞는 해설 등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유려한 글쓰기가 그의 강점이다. 40대 중반의 피끓는 젊은 문학평론가였던 그는 카뮈와 함께하며 어느덧 일흔을 앞둔 노() 학자가 됐다. 그는 서문을 통해 “카뮈의 책 가운데서도 내가 유난히 좋아했던 산문,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온전한 번역이 나와 있지 않은 책을 번역한다는 즐거움에서 시작한 일이었다.”고 술회했다. 프랑스 식민지 알제리에서 태어난 카뮈는 20세기의 대표적 지성으로 평가받는다.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고 있었던 1942년 소설 ‘이방인’을 발표, 프랑스 문단의 총아로 떠올랐다. 신문기자이자 레지스탕스 활동에도 적극 가담하며 실천적 지식인의 표상이 됐다. 1957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카뮈는 1960년 1월4일 교통사고로 숨졌다. 카뮈 20권 전집에서 빠진 마지막 3권은 ‘시사평론’ 2·3, ‘알베르 카뮈·장 그르니에 서한집’이다. 책세상 측은 “이 책들에 대한 한국 독자의 관심이 너무 떨어져서”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씨줄날줄] 초밤/김성호 논설위원

    문학의 묘미야 무궁하겠지만 현실을 뛰어넘는 은유의 상상과 비유는 그 으뜸이라 할 것이다. 한 줄의 문장과 한 마디 시어가 세상을 바꾸고 사람을 변하게 만든 예는 허다하다. 그런가 하면 원뜻을 제대로 읽지 못해, 혹은 의도적으로 바꿔낸 가공의 영화나 작품들은 옳지 않은 결과를 부르고 원작자의 증오를 낳기도 한다. 그래서 무릇 문학인들은 과학자 못지않은 냉철함과 절제를 갖출 것이 요구되며, 실제로 많은 문학인들은 뼈를 깎는 담금질을 감내한다. 정교한 문장과, 뺄 것도 보탤 것도 없을 만큼 정제된 단어며 시어는 문학을 문학답게 만드는 생명이요 요체다. 주옥 같은 우리의 문학작품들이 노벨문학상에서 먼 것도 번역의 한계로 인한 핵심의 불완전한 전달 탓이 클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문학인들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것으로 완전한 문학의 그릇을 만드는 데 얼마나 충실한 것일까. ‘문학의 변절, 문학인의 외도’라는 비난에서 자유로운 창작자나 학자들이 얼마나 될까. 4년 전 고은 시인은 문학인들을 향해 뼈아픈 말을 남겼다. “취기와 광기를 저버리는 것은 시인에게는 죽음”이라며 시인들이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꾸짖었다. 가슴에서 우러나지 않는 어설프고 표피적인 창작 풍토를 겨냥해 술이라는 수단을 택했지만, 그것이 시인에게 술 마실 것만을 권한 생뚱맞은 권주가인 것일까. “누가 뭐라 해도 또 혁명의 시대일수록 문학하는 젊은이들이 술을 더 마시기를 권장한다.”고 일갈한 김수영 시인이며, 술에 취해 지었다는 술(酒)시 ‘목마와 숙녀’의 박인환 시인이 앓았던 고뇌도 다름아닌 문학 순리를 지키기 위한 아픔으로 흔히 회자된다. 원로평론가 유종호 전 연세대 석좌교수가 우리 문학계에 쓴소리를 다시 던졌다. 최근 펴낸 문학평론집 ‘시와 말과 사회사’에서다. 정지용 시 ‘촉불과 손’ 속 시어 ‘초밤’이 원뜻 ‘저녁’과는 달리 결혼 첫날밤으로 흔히 오해되는 것처럼 우리 문학은 의도된 왜곡과 오해투성이란다. 문학인들의 책임 방기로 인한 왜곡과 오해가 어찌 이 시어들뿐일까. 우리 문학판의 오류와 왜곡은 도가 넘었다는 목소리가 넘쳐난다. 이제 고은 시인의 ‘권주가’에 화답할 때도 된 것 같은데.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씨줄날줄] 연희 창작촌/이춘규 논설위원

    서울 연희동 연희궁터에 ‘연희문학창작촌’이 관심과 기대 속에 문을 연 지 40일이 흘렀다. 문인들은 대환영, 대만족이다. 현재 작가 19명이 집필활동을 하고 있다. 낮에는 직장생활을 하거나 개인용무를 처리한 뒤 저녁이나 주말 창작촌을 활용하기도 한다. 1개월, 3개월, 6개월씩 고르게 이용한다. 18~19일 겨울문학축제로 지역과의 소통에도 나선다. 작가들이 격리되었던 개인만의 공간에서 모두에게 열린 공간으로 나왔다. 입촌 문인들은 글쓰기를 집중적으로 할 수 있어 진짜 작업공간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호평한다. 도심이어서 집중이 안 될 수도 있음을 일부 우려했다. 하지만 가까운 공간에서 일상생활을 하면서도 안정적으로 작품활동에 몰입할 수 있어 좋다고 말한다. 오직 창작에 전념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얘기다. 현재도 많은 문인들의 창작활동 현실은 열악하다. 정식 등단하지 못한 문학 지망생들은 말할 것도 없다. 창작활동에 집중할 작업공간을 확보하지 못해 서울 등지의 오피스텔을 전전하거나 수도권 외곽 작품실 등을 떠돈다. 연희 창작촌은 떠돌이들의 둥지가 됐다. 3개월 예정으로 입촌한 소설가 조용호는 “참 괜찮다.”고 평했다. 창작촌 밖의 소설가 신경숙은 창작촌이 한국 문학의 수준을 높이고 저변을 확대해 줄 것으로 낙관했다. 역기능도 거론되고 있다. 척박한 환경에서의 고통스러운 생활이 문학의 자양분이 되는 데 창작촌이 작가들의 헝그리 정신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문학의 권력화에 대한 지적도 있다. 이에 신경숙이나 소설가 성석제 등은 “말도 안 된다.”며 펄쩍 뛰었다. 실제 일본 등 문학선진국엔 문인들의 공익성 창작공간이 오래됐는데 역기능은 없었다. 지방자치단체가 만든 문인들의 첫 번째 전용 창작공간으로서 역할이 기대되는 연희문학창작촌. 문인들은 “좋은 작품을 탄생시키는 산파역이 될 것이다. 기대해 보시라.”고 행복하게 말하고 있다. 박범신 창작촌 운영위원장의 말대로 연희문학창작촌이 노벨문학상의 산실이 되길 꿈꿔 본다. 다른 지자체로도 문학창작 공간이 번져 가고 있다니 한국문학의 장래에서 희망을 본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1회 ‘구상문학상’ 김형영 시인의 ‘나무 안에서’

    ‘정녕 나무는 내가 안은 게 아니라/나무가 나를 제 몸같이 안아주나니/산에 오르다 숨이 차거든/나무에 기대어/나무와 함께/나무 안에서/나무와 하나 되어 쉬었다 가자.’올해 영등포구가 제정한 구상문학상 본상을 받은 김형영(65) 시인의 신작 ‘나무 안에서’의 일부다. 구상문학상은 구상(1919~2004) 시인 탄생 90주년을 맞아 영등포구와 (사)구상선생기념사업회가 함께 구 시인의 작가정신을 널리 알리기 위해 마련했다. ‘초토의 시’로 잘 알려진 구 시인은 1974년부터 2004년 타계할 때까지 여의도 시범아파트에 살았다. 영등포구가 구상문학상을 제정한 것은 이 같은 인연 때문이다.김 시인은 ‘나무 안에서’를 통해 인류애를 잘 드러내 구 시인이 추구하던 생명과 평화사상을 충실하게 계승했다는 게 영등포구의 설명이다. 김 시인은 상금 5000만원을 받게 되며, 동시에 미국 오하이오주립대의 도움을 받아 영역 시집도 발간하게 된다. 신인상은 정진혁(49) 시인의 ‘간잽이’(외 49편)에 돌아갔다. 최근 시단에서 신예로 각광받는 정 시인은 폭넓은 시적 소재를 참신하고 다양한 언어로 형상화하는 직관력을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또한 시적 소재를 다루는 능력이 뛰어나 한국문학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했다. 정 시인에게는 상금 2000만원과 창작집 발간의 기회가 주어진다. 구 시인은 두 차례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고 프랑스문인협회가 선정한 세계 200대 시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금성화랑무공훈장과 국민훈장동백장, 대한민국문학상, 대한민국예술원상, 금관문화훈장 등을 받았다. 구상문학상 시상식은 28일 당산동 영등포 아트홀에서 열린다.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세계 현대문학의 편식증 고칠 기준선 제시하겠다”

    “세계 현대문학의 편식증 고칠 기준선 제시하겠다”

    #장면 1 지난달 8일 노벨문학상이 발표되는 순간, 국내 문학계는 술렁거렸다. 작품 소개는커녕 이름조차 생경한 루마니아 출신의 독일 여성 작가 헤르타 뮐러가 수상자로 선정됐기 때문이다. 출판사들은 그제서야 부랴부랴 판권을 알아보고 번역을 준비했음은 물론이다. 발표 직후 곧바로 책을 냈던 예년과는 다른 양상이다. 뮐러의 작품은 내년 상반기쯤에야 다섯 권 정도가 국내에 소개될 예정이다. #장면 2 신문사 문학담당 기자에게는 일주일이면 30~40권의 해외문학 신간이 쏟아진다. 국적 불문, 장르 불문, 나오는 작품마다 ○○신문 선정 베스트셀러, ○○상 수상 등 화려한 타이틀이 달려 있다. 세계화 시대 국내·외 동시 출간되는 작품들이 많고, 온갖 미사여구로 포장되고 있어 그만큼 옥석(玉石)을 가리기가 쉽지 않다. 국내 문단이 세계 문학의 주된 흐름과 점점 거리가 멀어지는 한 요인이다. 박맹호(75) 민음사 회장의 뚝심이 다시 한 번 빛을 발했다. 그는 23일 “세계 현대 문학의 편식증(偏食症), 걸식증(乞食症)을 해결할 구체적 기준선을 제시하겠다.”고 선언했다. 허투루 하는 장담이 아니다. 1998년 첫걸음을 뗀 뒤 꼬박 11년 동안 230권을 엄선하고 700만부가 팔려나간 세계문학전집을 낸 그다. 그런 그가 다시 한 번 야심찬 세계문학 시리즈의 대장정을 시작했다. 지금까지의 세계문학전집을 내로라하는 고전(古典) 문학으로 엮었다면, 새로운 시리즈는 ‘모던 클래식’이라는 이름을 붙여 1990년대 이후 세계문학 중 ‘미래의 고전’이 될 당대(當代)의 문학 작품들로 구성된다. 노벨문학상 수상작을 보지 못하는 현실을 바꿔냄과 함께, 제대로 검증된 해외 현대 문학을 읽을 수 있도록 한다는 복안이다. 올 한 해만 50권 정도가 줄줄이 나올 예정이다. 박 회장은 이날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미래의 고전은 전통과 현대의 충돌, 중심부와 주변부의 갈등 등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인류 앞에 더욱 흔들림 없는 중심을 지키면서 어둠 속에 한 줄기 빛 같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작품들로 엮일 것”이라면서 시리즈 출간을 알렸다. ‘모던 클래식’ 1번의 영광을 안은 작품은 2006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터키 오르한 파무크의 ‘내 이름은 빨강 1·2’다. 그는 이 작품으로 프랑스 최우수 외국문학상, 이탈리아 그린차네 카보우르상, 인터내셔널 임팩 더블린 문학상 등을 받았다. 뒤를 이어 일본계 영국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가 인간 복제의 윤리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나를 보내지마’와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조너선 사프란 포어), ‘키친’(요시모토 바나나), ‘핏빛 자오선’(코맥 매카시) 등 10권이 1차분으로 나왔다. 특히 ‘나를 보내지마’를 비롯해 ‘달콤한 내세’(러셀 뱅크스), ‘오렌지만이 과일은 아니다’(지넷 윈터슨)는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품들이다. 장은수 민음사 대표는 “각 대륙별·언어별 작품을 엄선할 기획위원들을 선정, 문학성과 문학사적 유의미성 등을 감안한 작품을 차례로 내놓을 계획”이라면서 “90년대 이후 활동하는 국내 작가들도 포함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문화의 향기 흐르는 안성

    문화의 향기 흐르는 안성

    속절없이 깊어만 가는 가을이다. 소슬한 바람이 불면 애써 묻어뒀던 가슴 속 애잔함이 스멀스멀 새어나온다. 더이상 멈칫거릴 수 없다. 세상은 남자의 가을을 단순히 치기어린 감상(感傷) 정도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매일 잔소리로 들볶던 아내라면 남편을 위해, 용돈타령 일삼던 자식이라면 아버지를 위해, 장가 안 가서, 아들을 안 낳아서 늘 걱정이던 노모라면 아들을 위해,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기를 원하는 애인이라면 자신의 남자를 위해, 뭔가 슬쩍 눈감아 줘야 하는 계절이다. 간단히 배낭 꾸리고 꼭꼭 씹어 읽을 시집 한 권 집어넣고 떠나는 나만의 여행을 가져보자. 멀리 떠나도 좋지만 가까워도 나쁘지 않다. ‘지금, 여기’의 나는 ‘그때, 거기’의 나로 인해 만들어진 모습이다. 가을은 나를 직시(直視)하는 여행의 시간이다. 이것저것 재지 말고 훌쩍 떠나라. 중요한 것은 한 걸음, 한 걸음 나를 찾아가는 그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남자의 가을이다. 안성이 바로 안성맞춤이다. 서울에서 한 시간 남짓이면 닿는 가까운 곳에 있다. 코스는 칠장사, 또는 석남사 들러 고삼 호수 언저리가 좋다. 멀리 떠나도 금세 돌아와야 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그리 바쁘게 돌아다니지 않아도 애써 하룻밤 머물러 볼 필요가 있는 곳이 있다. 안성이 바로 그런 곳이다. 물안개 자욱히 피어오르는 고삼 호수의 새벽 풍경은 꼭꼭 묻어둔 인생의 비의(秘意)를 다시금 되새겨보게끔 만든다. 가을 남자의 여행에 빠트릴 수 없는 절실한 것 아닌가. 늘 그렇듯 중요한 것은 무엇을 보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보느냐다. 한 걸음 한 걸음씩 뚜벅뚜벅 걸어야 한다. 빛바래고 너덜너덜한 표지의 박두진 시집을 들고 아련했던 문청의 기억을 떠올려볼 수도 있다. 그러다가 운이 좋으면 어느 숲 어귀에서, 호수 언저리에서 ‘해’ 또는 ‘호수’를 떠올리며 박두진의 시 감성을 맞닥뜨릴 수도 있다. 고은의 시집 또한 어떤가. 23년에 걸쳐 쓰였으며 30권 완간으로 치닫고 있는 ‘만인보’ 중 아무거나 하나 움켜쥐고 다니다가 고은의 사람들을 나의 사람으로 끄집어내는 것도 즐거운 일이 되겠다. ●조병화·박두진… 시인들의 흔적을 따라서 안성은 시인의 고향이다. 어디를 가도 조병화(1921~2003), 박두진(1916~1998)의 흔적이 곳곳에 묻어 있다. 박두진은 이곳에서 나고 자랐다. 시인이자 화가였던 조병화 역시 안성에서 태를 묻고 뼈를 묻었다. 조병화의 거의 모든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난실리 조병화 문학관에는 그의 육필 원고, 만년필, 모자, 럭비공(그는 럭비를 무척 좋아했다.) 등 여러 유품, 생활했던 공간 등이 잘 보존돼 있다. 며느리 김용정씨가 대표로서 문학관을 관리하고 사람들을 안내한다. 늘 공개하지는 않는 집필실을 김 대표를 따라 들어가 보니 마치 글을 쓰다가 잠시 자리를 비운 듯 책상 위에는 원고지와 펜이 놓여 있고, 옷걸이에는 코트와 모자가 편안하게 걸려 있다. 벽난로를 좋아했다는 시인의 취향대로 문학관 실내마다 벽난로가 만들어져 있다. 추운 겨울밤 창밖의 삭풍 몰아치는 소리 중간중간에 타닥타닥 나무 타는 소리 섞이면 참 운치있었겠구나 하는 부러움이 슬며시 든다. 안타깝게도 박두진의 문학관은 아직 온전히 마련되지 않았다. 안성문예회관 자료실에 관련 자료들이 있고 시비(詩碑)가 세워져 있는 정도다. 아쉬움을 달래려 금광면 오흥리 생가를 찾았지만 이곳 역시 이정표 되는 간판만 있을 뿐 외부인에게 친절한 내용을 갖고 있지는 않다. 오후 저물어가는 햇살에 반짝거리는 금광호수만이 그 어느날 시인의 발걸음을 말없이 기억해 내고 있는 듯했다. 뿐이랴. 매년 노벨문학상을 발표하는 10월 즈음이면 문학기자들이 진을 쳤다가 아쉬움에 발길 돌리던 시인 고은이 지내는 곳이 있다. 벌써 십수년 넘게 살고 있으니 아예 안성 사람이 다 됐다. ●고즈넉한 칠장사 은행나무길 걸어보셨나요 칠장사는 여러 얘깃거리를 품고 있는 아주 재미있는 절이다.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칠장리 칠현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다. 게다가 산 속에 푹 안겼으면서도 내려다보이는 넉넉한 전망까지 함께 갖고 있어 그저 휙 둘러보는 맛도 충분하다. 칠장사까지 다다르는 길은 호젓하기만 하다. 17번 국도에 올라선 뒤 차창 열고 상쾌한 공기를 10분 남짓 들이켜다 보면 칠장사 외곽 주차장과 함께, 제법 예술을 이해할 법한 근사한 일주문과 은행나무길이 나온다. 대웅전 바로 아래쪽까지 차로 갈 수 있지만 이곳에서 내려 천천히 걸어오르는 것이 칠장사를 즐기는 첫걸음이다. 평일임에도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알고 보니 이곳은 대구 팔공산 갓바위 못지않은 수험생들의 단골 기도 장소란다. 천안 살던 ‘과거 수험생’ 박문수가 한양 가는 길에 하룻밤 묵으며 시험을 잘 보게 해달라며 기도를 올리고 잠이 들었는데 그날 밤 꿈에 시험의 시제(試題)를 보았다고 한다. 장원급제는 당연지사였다. 이른바 ‘몽중등과시(夢中登科詩)’의 전설이다. 수능시험을 코앞에 둔 수험생들의 어미들은 혜소국사비 앞의 나한전에 모여 치성을 드리고 있다. 이 밖에 갓바치 스님의 제자였던 임꺽정이 공들여 깎았다고 전해지는 ‘꺽정불’ 이야기, 어린 궁예의 활 연습장 터, 혜소국사에게 교화돼 일곱 도적에서 일곱 나한으로 해탈한 이야기 등 천천히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석남사 역시 여름철 무성하던 물과 사람은 간데없고 고즈넉하다. 석남계곡 물줄기를 따라 만들어진 차 한 대 간신히 지나갈 길을 굽이굽이 돌아가면 오밀조밀 예쁜 가람배치를 보여주는 석남사가 나타난다. 경내에서 노스님을 만나면 누군지 몰라도 일단 살갑게 인사하고 한 말씀을 구해 보라. 주지인 정무 스님의 재미있는 말씀과 맛난 차를 얻어먹을 수 있다. 이때 즈음이면 슬슬 혼자보다는 누군가 함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치민다. ■가족과 함께라면 훌쩍 떠난 것이 가족에게, 애인에게 미안했다면 아쉬워하지 말라. 미리 가족 여행 답사 다녀왔다고 씩씩하게 얘기하면 된다. 나를 찾을 수도 있는 절대적 모색의 시간을 만들 수도 있는 곳이지만 아이와 함께 즐겨도, 애인과 서로 어깨 나눠주며 다니기에도 모두 좋은 곳이지 않은가. 사실 그들 역시 당신의 짧은 일탈을 충분히 이해하고 눈감아주고 있다. 고독과 사색의 공간이었던 칠장사가 아이들과 함께라면 오랜 시간의 역사를 한 몸에 지니고 있는 이야기 보따리가 되고 박두진, 조병화 등 시인의 순수함과 아름다움은 함께 읊조려도 충분히 흥겨운 것들이다. 특히 너리굴 문화마을은 하룻밤 머물면서 즐길거리가 가득하다. 천연비누 등 각종 문화예술 체험 프로그램이 많다. 사슴 목장과 산책로 등은 자연 생태계를 바로 곁에서 볼 수 있어 더욱 좋다. ‘대안미술공간 소나무’가 만든 호랑이가 우글우글하는 복거 마을도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곳이다. ●여행 Tip 매주 토요일 안성시에서 운영하는 당일치기 시티투어가 있다. 남사당 공연, 각종 볼 곳들을 둘러볼 수 있다. 또한 역시 매주 토요일 그린투어가 진행된다. 관광보다는 주로 인삼조합, 포도농원, 배농장, 한우농장 등 농촌체험이다. 시티투어는 1만 8000원(어린이 1만 5000원)이고, 그린투어는 2만원(어린이 1만 7000원)으로 오전 9시 서울남부터미널 앞에서 출발한다. 예약 (02)588-7464. 글 사진 안성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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