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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재억 기자의 헬스토리 18] ‘추억의 구충제’ ‘산토닌’을 아세요?

    [심재억 기자의 헬스토리 18] ‘추억의 구충제’ ‘산토닌’을 아세요?

     우리 민족의 의약관은 ‘병을 치료하는 모든 처방은 자연 속에 있다’고 믿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의약관을 우리만 가진 것은 아닙니다. 중국과 일본은 말할 것도 없고, 아메리카 인디언이나 아마존의 인디오, 예전의 사라센인들과 그들이 프랑크족이라 불렀던 독일 등 유럽의 백인 사회에서도 통용되었던 믿음이었습니다.  물론, 현대 의학을 일군 서양의 주류 사회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역사를 바꾼 업적’으로 평가하는 아스피린도 실은 버드나무 추출물인 살리실산을 가공한 것이고, 인류를 구원한 항생제 페니실린도 플래밍이 우연히 곰팡이를 살피다가 찾아낸 것이지요. 동서양의 의약이 발원과 발상은 흡사했다고 봐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입니다. 물론,그 발상을 치료에 적용하기 위한 경로는 전혀 달랐고, 서로가 다른 길을 걸었던 탓에 결과도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나고 말았지만, 자연이라는 거대한 유기체는 그 안에 병과 약을 함께 갖고 있다고 믿는 사고방식만은 다르지 않았던 셈이지요.    베일 속 ‘비전(秘傳)’의 한의학 이후  그렇다고 제가 한의학 예찬론자는 아닙니다. 저는 의학을 볼 때 먼저 과학적 효과와 공공성에 주목하는 편입니다. 이런 시각으로 보는 한의학은 확실히 우리의 문명 체계가 작동하고 발전하는 과정에서 일정 부분 기여한 것이 사실입니다. 수많은 목숨을 살렸고,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을 덜었으니까요.  하지만 모든 약전이 한의사마다 제각각이고, 모든 약제와 성분 배합이 아직도 ‘비전(秘傳)’이라는 모호함 속에 감춰져 있어 애매하기 짝이 없으며, 그 모호성을 얄팍한 상술로 이용해 왔던 것도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입니다.  이런 문제 때문에 일부에서는 한의학의 표준화를 외치기도 하지만 많은 한의사들이 참여를 꺼리고 있습니다. 이유야 많겠지요. 그게 가능한 일이냐는 회의론도 있을 것이고, 총대는 누가 멜 것이냐는 현실론도 없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한의학도 ‘모호’와 ‘애매’의 베일을 벗고 상찬과 비판이 모두 가능한 공론의 장으로 나설 때라는 게 저의 믿음입니다.  예전, 시골 텃밭에 흔했던 당귀를 예로 들어보지요. 전래되는 한의서에 당귀는 ‘심한 기침으로 기(氣)가 위로 솟구치는 증상, 학질, 피부가 오싹오싹한 증상, 유산, 모든 종기나 부스럼, 금창 등에 끓여서 즙을 마신다’, ‘속을 따뜻하게 하고, 통증을 멎게하며, 어혈을 제거한다. 또한 풍사가 침범해 땀이 나지 않거나 습사로 저린 증상, 독한 사기가 침범한 증상, 몸이 차고 허한 증상을 치료하며 오장을 보하고 살집을 좋게 한다’, ‘구토를 멎게 하고 피로로 인한 쇠약, 한열왕래, 설사, 복통, 치통, 부인의 요통과 자궁출혈을 치료하며, 모든 허약한 증상을 치료한다’, ‘모든 풍병과 혈병을 치료하고, 모든 허약을 보충하며, 어혈을 제거하고, 새로운 피가 생성되게 하며, 위와 장이 차가운 것을 치료한다’ 등등 효험을 한, 두 가지로 정리하기조차 어려울 정도입니다.  그러나 지금 세상에 이런 식으로는 아무도 설득할 수 없습니다. 당귀의 어떤 성분이, 어디에, 어떻게 작용하고, 독성이나 부작용은 무엇이며, 그랬더니 치료율은 얼마나 되더라는, 이른바 서양 의학이 말하는 엄정한 임상시험의 결과가 함께 제시되어야 신뢰를 얻을 수 있습니다. 또 도대체 한방에서 말하는 기(氣)란 무엇인가도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한의사나 한의학자 등이 이런 문제를 모를 리 없지만 이런 경로를 밟아 약리성을 규명하는 문제는 여전히 지지부진합니다.     ‘의약 혁명’으로 각인된 ‘산토닌’  물론, 현대 의약도 이런 냉철한 비판에서 예외일 수 없습니다. 아직도 효능은 과대포장하고, 부작용이나 독성은 한사코 축소하거나 감추려는 약제도 적지 않고, 의사들 중에는 자기가 아는 치료법만을 고집해 다른 영역의 치료법을 백안시하는 못된 버릇을 고질병처럼 가진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아무튼, 자연에서 모든 치료법을 구하려 했던 이런 노력은 서아시아 일대에서 자생하는 시나쑥에서 특정 성분을 추출해 만든 ‘추억의 구충제 산토닌’으로 이어집니다.  아침을 거른 채 학교에 가 선생님으로부터 이 산토닌을 받아먹은 아이들이 “어지럽다”며 마치 외꽃처럼 노랗게 시들거리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전날,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신신당부를 하십니다. “낼은 회충약 먹는 날이니 밥 먹지 말고 와라. 대신 오전수업만 할테니, 절대 뭐 먹으면 안 돼”  속내 모르는 아이들은 그 ‘오전수업’에 현혹돼 일제히 ‘와’하고는 책보를 싸서 교실을 나섰는데, 지금처럼 배에 기름이 잔뜩 낀 것도 아니고, 먹는 게 너무 많아 항상 배가 더부룩한 터라 한 끼 정도 굶어도 티도 안 나는 때와 달랐습니다. 요즘 애들은 “그게 뭐지.”라고 할 그 밥냄새만 맡아도 회가 동하던 배고픈 시절, 막상 자고 나 아침을 거르자니 헛헛한 공복감을 이기기 어려워 몰래 감자나 고구마로 얼요기를 하고 학교에 간 놈들이 태반이었지요. 선생님이 정말 아무 것도 안 먹었냐고 물으면 “밥은 안 먹었다”며 얼버무리던 아이들의 겸연쩍어 하던 얼굴이 생각납니다.  그러나 한 끼 밥을 거른 건 일도 아닙니다. 사단은 산토닌을 받아먹은 뒤에 벌어졌으니까요. 마치 분필 가루에 설탕을 넣고 버무린 듯 퍽퍽한 산토닌을 씹어 삼킨 뒤 한식경쯤 지나면 아이들이 소금 맞은 지렁이처럼 축축 늘어지기 시작하지요. 끼니조차 거른 뱃속에서 지렁이 같은 회충 무리가 약에 취해 마치 오뉴월 무논에서 악머구리 들끓듯 준동을 해대니 가뜩이나 곯아빠진 아이들이 견뎌내지를 못한 것입니다. 어떤 놈은 그냥 책상에 머리를 누인 채 어지럽다며 가라앉고, 어떤 놈은 맨침을 질질 흘리며 배를 감싸쥐고 나뒹굴기도 했습니다.  참, 황당한 일도 있었습니다. 책상에 머릴 얹고 끙끙대던 한 여자애의 목구멍을 타고 ‘약 먹은’ 회충이 밀고 나오는 게 아니겠습니까. 화들짝 놀란 선생님이 들쳐업고 교무실로 달려갔는데, 교무실에 간들 뾰족한 수가 있을 리 만무하지요. 그냥 나무로 짜맞춘 간이 침대에 잠깐 누웠다가 오가는 선생님들 죄 한마디씩 해대는 게 면구스러워 “이제 괜찮다”며 털고 나와 다시 교실에서 한나절을 엎어져 있기도 했습니다.  그 와중에 수업이 되지 않는 건 당연하지요. 모두들 시들시들하니 선생님도 “그래. 부대낄테니 가만히 엎드려 있거라”시며 수업을 면해 주었지요. 그렇다고 숙제까지 면한 건 아닙니다. 선생님은 “낼 아침에 똥 눌 때 회충이 몇 마리 나왔는지 세어서 와라”는 엄명을 전합니다. 오전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타는 노을이 붉어서 더 먼 귀갓길이었습니다.    똥 속에서 회충 찾던 시절  다음날, 측간에 걸터앉아 볼 일을 봅니다. 어떨까 싶어 유심히 살피는데, 아니나 다를까 우동 면발 같은 허여멀건 회충이 연방 밀려나오는 게 아니겠습니까. 놀랍기도 하고, 또 남우세스러워 뭐라고 말도 못한 채 볼일을 본 뒤 선생님에게 대충 마릿수를 보고했습니다. 학교에 가는 길에 동무들끼지 정보를 교환한 터라 아이들 마릿수가 얼추 비슷합니다. 어떤 놈은 ‘여덟 마리’, 어떤 놈은 ‘아홉 마리’ 이런 식이지요. 어디 선생님인들 그게 ‘구라’라는 걸 모르시진 않았을 겁니다. 아니, 똥통 속으로 떨어진 똥을 누가 뒤지며, 안 그렇단들 구린 똥을 헤집으며 누가 징그런 ‘벌거지’ 수를 세겠습니까. 그러니 보고용으로 대충 마릿수를 집계한 것일텐데, 산토닌을 먹여놓고 회충의 마릿수를 세어 보고하라고 한 그 행정적 발상이 더 웃기는 일이지요.  그 시절엔 기생충에 대한 인식이 확실히 부족했습니다. 눈에 안 보이면 괜찮다고 믿는 미개함이 지배했던 때이니까요. 그러니 민물고기를 잡아 대충 씻은 뒤 회로 먹었고, 측간에서 퍼낸 곰삭은 시동(똥의 방언)을 척척 뿌린 밭에 무·배추·상추를 키워 먹었으니 그런 세상을 살아남은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기생충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지요.  그 때는 시동 뿌린 밭에 맨발, 맨손으로 들어가 흙을 일군 뒤 채독(菜毒)이 올라 손발은 물론 얼굴까지 퉁퉁 부어 오른 모습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었습니다. 먹고 사는 일이 절박하기도 했지만,나라 꼴이 우스워 누구도 기생충이 무섭다느니,어찌어찌 하면 감염 된다느니 하는 정보를 전해 주지 않았습니다.그러니 동네방네 ‘반공 방첩’을 새기고, 벽이란 벽마다 ‘때려잡자’느니 ‘무찌르자’느니 하는 살벌한 슬로건을 붉게 새겼으면서도 그보다 훨씬 현실적 위협인 기생충은 그냥 외면한 것이지요.    구충의 개가는 문명을 바꿨지만  산토닌이란 것도 그렇습니다. 그게 구충할 수 있는 기생충은 회충, 촌충, 편충 정도가 고작이어서 정작 무서운 디스토마류나 다른 흡충류에는 듣지도 않았고, 그나마 학생들에게만 줬지 일반인에게는 그림의 떡이어서 더 오래, 더 치명적으로 기생충에 노출됐을 많은 사람들은 정책 부재의 사각지대에서 수많은 종(種)의 기생충에 뜯어먹히다가 생을 마치기도 했을 것임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우리의 생활문화 자체가 기생충에 취약한 면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도 생활권의 특성에 따라 차이가 있을 뿐 수많은 사람들이 기생충에 감염돼 있다는 보고가 이어지고 있습니다만, 어찌된 일인지 전문적인 구충제를 먹거나 기생충 감염을 의심해 병원을 찾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회 등 생식을 즐기고, 무·배추·상추를 날로 먹으면서도 스스로 충분히 위생적이라고 믿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정부가 ‘퇴치’ 선언을 했던 결핵이 다시 창궐하고 있듯 기생충에 감염된 많은 사람들이 종국에는 이 병원, 저 약국을 전전하며 엉뚱하게 돈을 뿌리고 있지 않다고 장담할 수도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러니 근거 없이 자신하지 마시고 가족들 기생충 검사부터 해 볼 것을 권합니다. 마치 거대한 댐이 개미 구멍으로 무너지듯 건강도 아주 작고, 소소한 것에서 허물어지니까요.  마침, 어제 발표된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가 공교롭게도 기생충 감염 치료법을 찾아낸 미국 드류대 캠벨 명예교수와 일본 기타사토대 오무라 사토시 명예교수 등 3명이었습니다. 노벨상 위원회가 앞으로만 내달리는 생리의학 분야의 수많은 공적을 뒤로 하고 어떻게 기생충 연구자에게 상을 줄 생각을 했는지, 참 재밌는 일이기도 합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기생충과 함께 살 수 밖에 없었던 우리로서는 노벨상 수상자의 면면을 보면서 옛적 기억을 떠올리게 되는데, 그런 기억이 새삼스러운 것은 기생충 속에서 살아낸 우리의 삶이 그만큼 절실하고 절박했게 때문일 것입니다.  jeshim@seoul.co.kr
  • [커버스토리] 올해 노벨상 주인공은 누구

    [커버스토리] 올해 노벨상 주인공은 누구

    올해는 어떤 ‘깜짝 수상자’가 나올까. 오는 5일 노벨 생리의학상을 시작으로 엿새간 6개 분야의 주인이 가려질 수상자 발표를 앞두고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6일 물리학상, 7일 화학상, 9일과 10일 각각 평화상과 경제학상 수상자가 공개된다. 문학상 수상자 발표 날짜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나 관례상 8일이 유력하다. 이미 각계 인사들과 도박사이트들은 올해 수상자가 누가 될지를 놓고 그럴듯한 시나리오를 써내려가고 있다. 초미의 관심사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평화상 수상 여부다. 또 중국 소설가 모옌(2012년) 이후 3년 만에 아시아계 등 제3세계 작가의 문학상 수상이 점쳐지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평화상을 받는다면 역대 교황 중 첫 수상자가 된다. 종교인으로선 달라이 라마(1989년) 이후 26년 만이며, 가톨릭 성직자로선 테레사(1979년) 수녀 이후 36년 만이다. 또 10년 넘게 후보 명단에 이름을 올린 고은 시인이 막판 이변을 연출한다면, 114년 역사의 노벨상에서 김대중(2000년) 전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 한국인 수상자로 기록된다. 노벨상은 역대 수상자와 다양한 시상기관, 물리학·화학·생리의학 분야에서 활동하는 학자들로부터 추천을 받는다. 이를 기초로 각 수여 기관이 최종 수상자를 선별한다. 다만 각 부문 후보는 관례상 50년 동안 공개되지 않는다. ●역대 두 번째로 많은 평화상 후보 난립 노벨상 웹사이트에 따르면 올해 평화상 후보로는 기관 68곳, 개인 205명 등 모두 273건의 추천이 접수됐다. 이는 지난해 278건 이후 역대 두 번째로 많은 수치다. 일단 현재까지 가장 많은 사람이 꼽은 유력 후보는 프란치스코 교황이다. 세계 최대 베팅사이트인 영국의 베트페어(www.betfair.com)는 2일(현지시간) 프란치스코 교황이 가장 높은 4대1의 배당률을 기록하고 있다고 전했다. 교황은 올해 54년 만에 이뤄진 미국과 쿠바 국교 정상화의 숨은 중재자로 알려져 있다. 또 콜롬비아 내전 종식을 위한 정부와 반군 간 협상에도 영향을 미치는 등 국제 분쟁 종식과 인권 문제, 환경 문제까지 폭넓은 관심을 기울여 왔다. 이어 성폭행 여성 수천 명을 치료한 콩고 의사 드니 무퀘게(5대1), 많은 아프리카 난민을 구조한 무시에 제라이(13대2) 신부 등이 유력한 수상후보로 꼽힌다. 단체로는 러시아의 언론사 노바야가제타(8대1)와 일본 국민(평화헌법 9조를 지켜낸 일본 사람들·10대1)이 이름을 올렸다. 이 밖에 이케다 다이사쿠 창가학회 명예회장, 미 국가안보국(NSA) 내부 고발자 에드워드 스노든(이상 12대1)과 반기문(14대1) 유엔 사무총장 등이 거론됐다. 사이트 순위에는 없지만 역사적 이란 핵합의를 끌어낸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과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의 수상 가능성도 제기된다. AFP는 시리아 난민을 조건 없이 받아들이겠다며 난민 문제를 공론화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유력한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꼽았다. ●제3세계 문학인들 강세… 과학 분야에선 여풍 드세 ‘노벨상의 꽃’으로 불리는 노벨 문학상 후보로는 모두 198명이 추천받았다. 이 중 36명이 올해 처음으로 추천된 작가다. 베트페어는 우크라이나의 여성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5대1의 배당률로 수상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평가했다. 언론인 출신인 알렉시예비치는 체르노빌 원전 사고 증언록인 ‘체르노빌의 목소리: 미래의 연대기’ 등 다큐멘터리 형식의 산문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어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6대1), 케냐 소설가 응구기 와 티옹오(7대1), 미국 소설가 필립 로스와 조이스 캐럴 오츠(이상 10대1) 등이 뒤를 이었다. 우리나라의 고은 시인은 노르웨이의 욘 포세, 오스트리아의 페터 한트케(이상 18대1)와 함께 공동 9위에 올랐다. 평화상과 문학상은 대중의 관심이 상대적으로 크지만 변수가 많은 분야로 꼽힌다. 학계에서 확고한 공적을 인정받는 이들이 수상하는 경제·과학 분야와 달리 예측이 쉽지 않다. 도박사이트들이 따로 베팅 코너를 꾸리는 이유다. 노벨상 과학 분야 수상자를 예측해 온 톰슨 로이터는 지난달 25일 올해의 화학·생리의학·물리학·경제학 분야 예상 수상자 명단을 내놨다. 그런데 유독 여풍이 드세다. 톰슨 로이터는 “2002∼2014년 12년간 예상 수상자 명단에 오른 여성은 6명에 불과했는데 올해에만 4명이 포함됐다”고 밝혔다. 연구 논문 저자 중 여성 비율이 크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1950년대 초반 ‘X선 회절사진’으로 DNA 구조를 밝힌 영국의 로절린드 프랭클린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수상에서 배제됐던 때와는 크게 달라진 위상이다. 노벨상이 처음 시상된 1901년 이후 단지 17명의 여성만이 과학분야 수상자로 이름을 올렸다. 화학상에선 유전질환에 대한 잠재적 치료법을 알아내기 위한 유전체 편집기술인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을 개발한 에마뉘엘 샤르팡티에 스웨덴 우메아대 교수와 제니퍼 다우드나 미국 UC 버클리대 교수가 후보로 꼽힌다. 생리의학상에선 ‘단백질 펴짐 반응’이라고 불리는 메커니즘을 연구한 모리 가즈토시 일본 교토대 교수와 피터 월터 UC 샌프란시스코대 교수가 거론됐다. 물리학 분야에서는 극저온에서 존재하는 최초의 ‘페르미온 응축물’을 만든 데버러 진 미국 콜로라도 볼더대 교수 등이 언급됐다. 경제학 분야에선 정치적 판단과 시장의 관계를 밝힌 리처드 블런델 런던대 교수 등이 유력한 후보로 점쳐졌다. ●노벨상 선정 뒤에는 정치적 판단? 올해 노벨상 선정도 숱한 뒷얘기를 남길 것으로 보인다. 추악한 뒷모습을 그린 스웨덴 영화 ‘노벨스 라스트 윌’(2012년)처럼 말이다. 영화에선 거대한 다국적 기업들의 암투가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를 뒤바꿔 놓았지만 현실에선 정치적 고려가 당락을 가를 변수로 보인다. 역사학자로 25년간 노르웨이 노벨위원회 사무총장을 지낸 예이르 루네스타는 최근 펴낸 자서전에서 2009년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평화상 수상에 정치적 고려가 깔려 있었다고 폭로했다. 그는 “당선된 지 얼마 안 된 오바마에게 상을 준 것은 ‘앞으로 세계 평화를 위해 기여해 달라’는 취지였지만 심사위원들의 기대를 채워 주지 못했다”고 혹평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노벨상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해 막대한 부를 일군 스웨덴의 화학자 알프레드 노벨(1833~1896)이 남긴 유언에 따라 제정됐다. 노벨은 그의 유산 약 3100만 크로나를 스웨덴 왕립과학아카데미에 기부했고, 왕립과학아카데미는 유산을 기금으로 노벨재단을 설립해 1901년부터 노벨상을 수여했다. 노벨상은 애초 생리의학, 화학, 물리학, 문학, 평화 등 5개 부문에 수여됐는데, 스웨덴중앙은행이 1968년 노벨을 기리며 경제학상을 신설했다. 노벨상 수상자는 스웨덴 왕립과학아카데미(화학상·물리학상·경제학상), 스웨덴 스톡홀름의 카롤린스카의학연구소(생리의학상), 스웨덴한림원(문학상), 노르웨이 국회가 선출한 5인 위원회(평화상)가 나누어 심사한다. 노벨이 유서를 작성하고 노벨재단이 설립될 무렵 스웨덴과 노르웨이는 하나의 나라였다. 1905년 나라가 분리됐지만 심사 및 수여 기관은 바뀌지 않았다. 시상식은 노벨이 사망한 날인 12월 10일 개최되며, 평화상은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나머지 상은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수여된다. 수상자는 상장과 금메달, 상금을 받는다. 상금은 올해 부문당 약 800만 크로나(약 11억원)이며 한 부문 수상자가 다수일 경우 나눠 갖는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커버스토리] 올해 노벨상 주인공은 누구

    [커버스토리] 올해 노벨상 주인공은 누구

    올해는 어떤 ‘깜짝 수상자’가 나올까. 오는 5일 노벨 생리의학상을 시작으로 엿새간 6개 분야의 주인이 가려질 수상자 발표를 앞두고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6일 물리학상, 7일 화학상, 9일과 10일 각각 평화상과 경제학상 수상자가 공개된다. 문학상 수상자 발표 날짜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나 관례상 8일이 유력하다. 이미 각계 인사들과 도박사이트들은 올해 수상자가 누가 될지를 놓고 그럴듯한 시나리오를 써내려가고 있다.  초미의 관심사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평화상 수상 여부다. 또 중국 소설가 모옌(2012년) 이후 3년 만에 아시아계 등 제3세계 작가의 문학상 수상이 점쳐지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평화상을 받는다면 역대 교황 중 첫 수상자가 된다. 종교인으로선 달라이 라마(1989년) 이후 26년 만이며, 가톨릭 성직자로선 테레사(1979년) 수녀 이후 36년 만이다. 또 10년 넘게 후보 명단에 이름을 올린 고은 시인이 이변을 연출한다면, 114년 역사의 노벨상에서 김대중(2000년) 전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 한국인 수상자로 기록된다. 노벨상은 역대 수상자와 다양한 시상기관, 물리학·화학·생리의학 분야에서 활동하는 학자들로부터 추천을 받는다. 이를 기초로 각 수여 기관이 최종 수상자를 선별한다. 다만 각 부문 후보는 관례상 50년 동안 공개되지 않는다.  ●역대 두 번째로 많은 평화상 후보 난립  노벨상 웹사이트에 따르면 올해 평화상 후보로는 기관 68곳, 개인 205명 등 모두 273건의 추천이 접수됐다. 이는 지난해 278건 이후 역대 두 번째로 많은 수치다.  일단 현재까지 가장 많은 사람이 꼽은 유력 후보는 프란치스코 교황이다. 세계 최대 베팅사이트인 영국의 베트페어(www.betfair.com)는 2일(현지시간) 프란치스코 교황이 가장 높은 4대1의 배당률을 기록하고 있다고 전했다.  교황은 올해 54년 만에 이뤄진 미국과 쿠바 국교 정상화의 숨은 중재자로 알려져 있다. 또 콜롬비아 내전 종식을 위한 정부와 반군 간 협상에도 영향을 미치는 등 국제 분쟁 종식과 인권 문제, 환경 문제까지 폭넓은 관심을 기울여 왔다.  이어 성폭행 여성 수천 명을 치료한 콩고 의사 드니 무퀘게(5대1), 많은 아프리카 난민을 구조한 무시에 제라이(13대2) 신부 등이 꼽힌다. 단체로는 러시아의 언론사 노바야가제타(8대1)와 일본 국민(평화헌법 9조를 지켜낸 일본 사람들·10대1)이 이름을 올렸다.  이 밖에 이케다 다이사쿠 창가학회 명예회장, 미 국가안보국(NSA) 내부 고발자 에드워드 스노든(이상 12대1)과 반기문(14대1) 유엔 사무총장 등이 거론됐다. 사이트 순위에는 없지만 역사적 이란 핵합의를 끌어낸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과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의 수상 가능성도 제기된다. AFP는 시리아 난민을 조건 없이 받아들이겠다며 난민 문제를 공론화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유력한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꼽았다.    ●제3세계 문학인들 강세…과학 분야에선 여풍 드세  ‘노벨상의 꽃’으로 불리는 노벨 문학상 후보로는 모두 198명을 추천받았다. 이 중 36명이 올해 처음으로 추천된 작가다.  베트페어는 우크라이나의 여성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5대1의 배당률로 수상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평가했다. 언론인 출신인 알렉시예비치는 체르노빌 원전 사고 증언록인 ‘체르노빌의 목소리: 미래의 연대기’ 등 다큐멘터리 형식의 산문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어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6대1), 케냐 소설가 응구기 와 티옹오(7대1), 미국 소설가 필립 로스와 조이스 캐럴 오츠(이상 10대1) 등이 뒤를 이었다. 우리나라의 고은 시인은 노르웨이의 욘 포세, 오스트리아의 페터 한트케(이상 18대1)와 함께 공동 9위에 올랐다.  평화상과 문학상은 대중의 관심이 상대적으로 크지만 변수가 많은 분야로 꼽힌다. 학계에서 확고한 공적을 인정받는 이들이 수상하는 경제·과학 분야와 달리 예측이 쉽지 않다. 도박사이트들이 따로 베팅 코너를 꾸리는 이유다.  노벨상 과학 분야 수상자를 예측해 온 톰슨 로이터는 지난달 25일 올해의 화학·생리의학·물리학·경제학 분야 예상 수상자 명단을 내놨다. 그런데 유독 여풍이 드세다. 톰슨 로이터는 “2002∼2014년 12년간 예상 수상자 명단에 오른 여성은 6명에 불과했는데 올해에만 4명이 포함됐다”고 밝혔다. 연구 논문 저자 중 여성 비율이 크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1950년대 초반 ‘X선 회절사진’으로 DNA 구조를 밝힌 영국의 로절린드 프랭클린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수상에서 배제됐던 때와는 크게 달라진 위상이다. 노벨상이 처음 시상된 1901년 이후 단지 17명의 여성만이 과학분야 수상자로 이름을 올렸다.  화학상에선 유전질환에 대한 잠재적 치료법을 알아내기 위한 유전체 편집기술인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을 개발한 에마뉘엘 샤르팡티에 스웨덴 우메아대 교수와 제니퍼 다우드나 미국 UC 버클리대 교수가 후보로 꼽힌다. 생리의학상에선 ‘단백질 펴짐 반응’이라고 불리는 메커니즘을 연구한 모리 가즈토시 일본 교토대 교수와 피터 월터 UC 샌프란시스코대 교수가 거론됐다. 물리학 분야에서는 극저온에서 존재하는 최초의 ‘페르미온 응축물’을 만든 데버러 진 미국 콜로라도 볼더대 교수 등이 언급됐다. 경제학 분야에선 정치적 판단과 시장의 관계를 밝힌 리처드 블런델 런던대 교수 등이 유력한 후보로 점쳐졌다.   ●노벨상 선정 뒤에는 정치적 판단?  올해 노벨상 선정도 숱한 뒷얘기를 남길 것으로 보인다. 추악한 뒷모습을 그린 스웨덴 영화 ‘노벨스 라스트 윌’(2012년)처럼 말이다. 영화에선 거대한 다국적 기업들의 암투가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를 뒤바꿔 놓았지만 현실에선 정치적 고려가 당락을 가를 변수로 보인다.  역사학자로 25년간 노르웨이 노벨위원회 사무총장을 지낸 예이르 루네스타는 최근 펴낸 자서전에서 2009년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평화상 수상에 정치적 고려가 깔려 있었다고 폭로했다. 그는 “당선된 지 얼마 안 된 오바마에게 상을 준 것은 ‘앞으로 세계 평화를 위해 기여해 달라’는 취지였지만 심사위원들의 기대를 채워 주지 못했다”고 혹평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노벨상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해 막대한 부를 일군 스웨덴의 화학자 알프레드 노벨(1833~1896)이 남긴 유언에 따라 제정됐다. 노벨은 그의 유산 약 3100만 크로나를 스웨덴 왕립과학아카데미에 기부했고, 왕립과학아카데미는 유산을 기금으로 노벨재단을 설립해 1901년부터 노벨상을 수여했다. 노벨상은 애초 생리의학, 화학, 물리학, 문학, 평화 등 5개 부문에 수여됐는데, 스웨덴중앙은행이 1968년 노벨을 기리며 경제학상을 신설했다. 노벨상 수상자는 스웨덴 왕립과학아카데미(화학상·물리학상·경제학상), 스웨덴 스톡홀름의 카롤린스카의학연구소(생리의학상), 스웨덴한림원(문학상), 노르웨이 국회가 선출한 5인 위원회(평화상)가 나누어 심사한다. 노벨이 유서를 작성하고 노벨재단이 설립될 무렵 스웨덴과 노르웨이는 하나의 나라였다. 1905년 나라가 분리됐지만 심사 및 수여 기관은 바뀌지 않았다. 시상식은 노벨이 사망한 날인 12월 10일 개최되며, 평화상은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나머지 상은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수여된다. 수상자는 상장과 금메달, 상금을 받는다. 상금은 올해 부문당 약 800만 크로나(약 11억원)이며 한 부문 수상자가 다수일 경우 나눠 갖는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서울신문 보도 그 후] 새만금청 네덜란드 항우연과 협약… 항공우주 사업·기술 개발 청신호

    네덜란드 국립 항공우주연구원(NLR)과 노벨상 수상자를 3명이나 배출해 낸 ‘유럽의 매사추세츠공과대(MIT)’ 델프트 공과대학 부설연구소가 최근 새만금 경제자유구역 유치를 확정하고 내년 1월 문을 연다. 글로벌 항공우주연구소 유치 성공에 따라 서해안 항공우주 특화사업과 공동 기술 개발을 통한 국가경쟁력 강화에 청신호가 켜졌다. 30일 새만금개발청과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새만금개발청은 지난 15일 새만금 지역 내 호텔에서 델프트 공대 부설 첨단 비파괴 평가 연구 및 혁신센터를 새만금에 유치하기 위한 투자 협약(MOU)을 체결했다. 이날 협약식에는 이병국 새만금개발청장, 송하진 전북도지사, 문동신 군산시장, 델프트 공대 린제 베네딕투스 부학부장, 네덜란드 국립 항공우주연구원 에흐버르트 얀 스미트 본부장 등 40여명이 참석했다. 세종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겉도는 해외 석학 초빙 (하)해법과 대안] 외국은 인재 초빙 어떻게

    “천인계획을 바탕으로 한 985공정으로 전 세계 우수 인재를 중국으로 흡수하라.” 2000년대 들면서 중국은 해외 인재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 ‘천인계획’은 1000여명의 해외 석학과 우수 연구자를 초빙한다는 중국 정부의 인재 유치계획이고 ‘985공정’은 세계 일류대학 육성 프로그램이다. 해외 우수 인재들을 흡수해 미국을 뛰어넘는 인재대국으로 만들겠다는 중국의 야심이 숨어 있는 정책이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이나 유럽연합(EU), 중국, 일본 등 전 세계 국가들은 해외 우수 인력 유치에 공을 들이고 있다. 특히 중국은 정부 주도로 파격적인 재정 지원과 보상을 통해 전략 분야 우수 인재를 끌어들이는 데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2008년에 시작된 천인계획은 2018년까지 40~50개의 거점 연구센터를 만들어 1000명의 해외 고급 인력을 유치하고 해외에서 체류 중인 중국인 유학생을 불러들여 중국이 취약한 첨단 과학기술 분야나 금융 분야 수준을 높이겠다는 목표로 추진되고 있다. 천인계획과 함께 ‘111계획’도 있다. 해외 우수 인력 1000명을 유치해 세계 일류 수준의 대학 100개를 구축하겠다는 계획이다. 각 대학마다 1명 이상은 반드시 노벨상 수상자 등 해외 석학인 ‘학술대사’를 초빙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해외 인재들에게는 수당은 물론 국제여비, 거주비용, 의료비용 등을 지급하며 연구 관련 비용도 전액 제공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국방 분야 연구 수준을 높이기 위해 전 세계 우수 과학기술 분야 연구자들을 대상으로 한 ‘테마섹 리서치 펠로십’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연구자들에게 6년 동안 최대 100만 달러의 연구보조금과 높은 생활 거주 여건을 제공해 장기 체류를 유도하고 있다. 중국 이외에 미국이나 EU 등은 해외 석학이나 유명 연구자를 유치하기도 하지만 박사 학위를 받은 지 얼마 안 되는 포스트 닥터(post-doc) 연구자 등 성장 잠재력이 큰 신진 학자들을 유치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특히 선진국들은 자국의 연구 및 생활환경의 편의성을 최대한 활용해 인재를 끌어들이고 있다. 한국외대 기상사업단 김병수 박사는 “선진국들은 연구 수준이 이미 정점에 달한 석학들을 유치하기보다는 발전 잠재력이 큰 신진 학자들을 유치해 자국의 성장력을 높이는 데 관심을 갖고 있다”며 “선진국을 쫓아가야 하는 개발도상국이 아니라 선도형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발전 잠재력이 큰 연구자들이 모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SAT ACT학원 인터프렙 김윤식 선생님의 수학에세이 (상) - 한국과 미국 고등학교의 수학 교육 비교

    SAT ACT학원 인터프렙 김윤식 선생님의 수학에세이 (상) - 한국과 미국 고등학교의 수학 교육 비교

    한국에서 미국의 수학과 과학 교육에 대해 오해하게 만드는 것이 SAT이다. 한국의 수능이 SAT를 모델로 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SAT 범위가 곧 고등학교 교육의 범위인 것으로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SAT 수학 시험의 공식적인 범위는 최근의 학습진도에 따라서 보면 8학년(우리나라의 중학교 1-2학년 나이) 과정까지라고 할 수 있다. (ACT의 경우는 9학년 정도까지이다.) 그러나, SAT 수학이 미국 고등학교 수학이라고 믿으면 안 되는데, 그 이유는 실제로 미국 고등학교에서 받는 수학 교육은 어떤가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먼저, 미국 고등학교는 명문 고등학교와 그렇지 않은 고등학교의 학력 격차가 우리나라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현재 IVY 리그 대학의 자연계를 목표로 하는 학생들은 AP Calculus AB 또는 AP Calculus BC과정을 10학년 때 끝낸다. 이것은 미국 대학 1학년 1학기와 2학기의 수학이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대학에서 학점을 인정받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명문대 입학원서의 경우 AP 점수를 기입하는 공란이 9개 정도 되는데, 10학년 때 수학을 끝내야만 대입을 위한 성적 획득의 마지막 기회인 11학년 때까지 3과목으로 구성된 물리(2015년부터 Physics 1, 2, C Mechanics, C E&M으로 네 과목으로 확대)와 화학, 생물, 통계, 컴퓨터과학 등의 과학 과목들까지 충분히 끝내게 되기 때문이다. 10학년 때 좋은 점수를 받는 것을 목표로 하고 11학년 때는 성적이 낮은 과목에 다시 도전한다. 그렇게 해서 5점(A 학점) 만점에 3점(C 학점) 이상 받는 과목이 6과목 이상 되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미국의 명문고등학교에는 AP 또는 IB HL(AP와 같은 수준임) 및 honors(고급) 과정의 많은 수업들이 개설된다. 그래서 중상위권 대학을 목표로 하는 학생들은 얼마든지 대학 1학년 수준의 수업을 받을 수 있는 것이며, 이런 수업들이 얼마나 개설되느냐가 학교의 평가 기준이 되기도 한다. 이런 수업들이 잘 개설되지 못하는 고등학교의 학생들을 위해 이 과정을 대학이 직접 개설하기도 하는데, 거기에 참여하면 대입 정성평가에서 더 높은 점수를 받기도 한다. 요약하면, 상위권 대학에 진학하려는 학생들의 경우 AP Calculus 정도는 필수적인 것으로 고려되기 때문에 대학 입학 자체를 위해서도 우리나라 고등학교 수학보다 높은 수준의 미적분학을 공부하는 셈이다. 또한, 이런 대입에 직접 관련되는 내용 말고도 대개는 honors class들을 통해 깊게 공부한다. 고등학교만 비교하자면 이렇게 되겠지만 대학에서의 차이가 더 중요하다. 일단, 미국 대학생들은 군대 문제에서 자유롭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공부가 여유롭다. 미국의 명문대 자연과학 학부에서 4년 동안 배우는 것을 예컨대 우리나라의 서울대에서는 3학년까지 끝내고 4학년 때에는 미국의 대학원 과정을 공부한다. 다른 국내대학도 일단 비슷한 압박을 받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된 것은 대학 4학년을 마친 사람에게 공대 졸업자 정도로 실제 산업에서 응용할 수 있게 해 주기 위함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학생(남학생)의 경우 미국 대학에서 4년 배우는 것을 3년에 끝낸다고는 하지만 군대의 영향을 받는 기간이 2년 이상이 되면 결과적으로는 5년 이상이 걸리는 셈이다. (거기다 유학을 갈 경우 학제의 차이 때문에 1년을 더 뒤쳐지게 된다.) 이 모든 것을 고려하면 미국 명문대의 대학생들 학력과 한국 명문대의 대학생들 학력을 비교하기 미안할 지경이 된다. 한국의 여건이 너무 좋지 못하기 때문에. 한국 대학생들은 매우 열악한 환경 가운데 있는 학생들이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고등학교 시절부터 대학을 위해 표준화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명문 고등학교 학생들이 대학 과정 수업을 통해 마음껏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동안 한국의 고등학생들은 잡다하고 수준 낮은 교육 내용으로, 게다가 필요 없이 방대하고, 탐구가 아닌 안 틀리기 경쟁을 하도록 내몰려 있는 형국이다. 한국에서 수학의 천재가 될 자질을 갖춘 학생이 나타났다고 가정하면, 그가 가지고 있는 대학 이상 수준의 수학 과목 실력은 보통의 상위권 학생들과 같은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한편 다른 과목들은 문제 한두 개씩 틀려서 전체 등급이 내려갈 수 있다. 원하는 대학에 가지도 못하게 될 가능성도 많다. 반면 그 천재가 미국에 태어났다면 고등학교 때 마음껏 대학 수업을 받고 능력을 꽃피우게 될 것이다. 한국에서 노벨상이 왜 안 나오는지 의문이 풀릴 만 하다. 흔히 하는 오해가 한국 학생들이 고등학교 때는 수준이 높은데 대학에 가면 쳐진다는 것인데, 이는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것이다. 한국 고등학생들은 그냥 고문을 받고 있을 뿐 배우는 수준이 낮다는 것, 특히 대학교육에의 연계가 비효율적이고, 최근에는 특히 비효율적인 공부를 하고 있다는 것이 진실이겠다. 미국 수능에는 미적분 없다며 미적분을 안 가르쳐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명백한 오류이다. 그렇게 된 데는 미국 수능인 SAT가 8학년(한국의 중1 또는 중2)과정까지만 나오는 것을 보고 미국 고등학교 수학이 그 정도일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현실은 웬만한 미국 고등학교에서는 대학 1학년 미적분학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 수학을 쉽게 만드는 방향의 개선이 필요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한국 수학은 지나치게 어렵고 암기 과목화되어 있다. 지나치게 어렵다는 말이 수준이 높다는 뜻이 아니다. 현재 한국의 수학 참고서들을 평가하자면 큰 흐름 몇 개가 강조되기보다는 그 큰 내용들을 응용한 것들이 큰 흐름 사이에 끼어들어 복잡한 내용을 이루고 있다. 필수가 아닌 것들을 건너뛰면서 끝까지 갔다가 돌아오면 다 풀 수 있는데 처음 단계부터 양이 많아 암기 과목화되어 있는 것이다. 간혹 고등학교에서 미적분을 선택으로 배우게 하자는 사람들이 있는데, 만약 미국의 교육을 보고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미국의 교육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고려가 없는 교육과정 개편 때문에 지금 한국의 대학 수업이 파행을 겪고 있다. 자연계는 물론이고 상경계 학과에서도 학생들이 미적분을 공부하지 않고 대학에 진학하여 큰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수능인 SAT에서 왜 고등학교 수학 문제를 내지 않고 8학년(우리나라의 중학교 1-2학년 나이) 수학을 낼까 하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SAT와 ACT는 대입의 목적뿐 만 아니라 고등학교 졸업시험으로 활용되기도 하는, 즉 아무나 다 졸업시키려는 성격의 시험이기 때문이다.) 김윤식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졸업, 인터프랩 SAT물리, ACT수학/과학 담당
  • [겉도는 해외석학 초빙] 노벨상 수상 등 지명도만 보고 ‘묻지마 초빙’…중도 하차 반복

    [겉도는 해외석학 초빙] 노벨상 수상 등 지명도만 보고 ‘묻지마 초빙’…중도 하차 반복

    #1.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로플린(65)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2004년 7월 카이스트 총장에 임용됐다. 노벨상 수상자를 대학총장으로 유치한 것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국제화 시대에 걸맞은 카이스트를 만들 것이란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그렇지만 시작부터 카이스트 사립화와 종합대학화를 무리하게 추진해 논란을 일으키다가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한 채 중도하차했다. #2. 지방 국립대의 한 외국인 이공계 교수는 한국에서 강의를 한 지 2년이 지났는데도 학생들과 간단한 인사도 못할 정도로 한국어나 우리 문화에 관심이 없었고 학생이 지도교수 신청을 해도 다른 연구실에 떠넘기는 등 겉돌다가 임용된 지 3년째 되던 지난해 우리나라를 떠났다. ‘노벨상’에 대한 한국 학계의 갈망은 유난스럽다. 한 나라의 과학기술 수준을 반영하는 과학계 최고의 영예라고는 하지만 열망이 지나치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다. 이 때문에 대학이나 정부에서는 노벨상 수상자나 외국인 석학들을 ‘묻지마’ 식으로 채용했다가 중도 낙마하는 실패를 반복하고 있다. 해외석학 유치의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꼽히는 것이 로플린 전 카이스트 총장이다. 그가 임명되기 전에는 카이스트 총장은 학교 내부에서 승진하는 자리였다. 교수 호봉에 맞춰 연봉협상을 하기 때문에 통상 2억원 안팎의 연봉을 받았다. 로플린 전 총장은 혁신의 기대감에다 노벨상 수상자라는 경력까지 붙으면서 역대 최고액인 6억원의 연봉이 지급됐다. 하지만, 총장 취임 후 그는 기대와 달리 자신의 생각만 고집스럽게 밀어붙여 학교 내 구성원들은 물론 정부와도 불편한 관계를 유지했다. 재직 중 20회에 걸친 해외출장에다 긴 휴가 등 177일 동안 외국에 머물렀다. 그러나 우수한 외국인 연구자 및 교수진 확보, 외국 연구기관과 교류협력 등 성과를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카이스트의 한 교수는 “로플린 전 총장의 행정적 능력은 연구능력에 한참 못 미친다는 것이 당시 카이스트 안팎의 평가였다”며 “카이스트를 변화시키는데 여러가지 방법이 있었을 텐데 로플린 총장은 ‘사립화가 안 되면 사퇴하겠다’는 등의 무리수를 둬 조직 내부의 반감만 키웠다”고 말했다. 또 다른 내부 관계자는 “카이스트 총장의 경우 정부로부터 따 오는 예산 규모로 총장 능력을 검증받는 한국적 현실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무리하게 변화만 주장해 정부에서도 불편해했다”고 말했다. 그는 “로플린 총장은 조직이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자 외국 학회 등에 참석해서 ‘카이스트는 문제가 많은 곳’, ‘한국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기는 힘들 것’이라는 등 폄하 발언을 자주 했다는 이야기를 뒤늦게 듣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정부 평가와 각종 지표의 국제화 부문에서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해 연구 및 강의 능력을 검토하지 않고 머릿수 채우기에 급급한 것도 우수 외국인 교수진 확보에 실패하는 원인으로 꼽힌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 관계자는 “우리 사회 전반에서 세계화는 필연적인 만큼 대학들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야 하는 추세”라며 “외국인 교원 채용 현황 같은 것은 외부적으로 대학 위상과도 관계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채용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지방 사립대 공대의 아시아계 교수는 억양이 강한 영어로 강의를 진행해 학생들과 소통이 되질 않아 결국 수업이 폐강되고 지도학생과 조교를 구하지 못해 제대로 된 연구도 수행하지도 못하고 결국 1년 반 만인 올해 초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 서울의 사립대 A교수는 “외국인 교수 채용은 학과에서 인원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 정해 놓고 학과별로 할당하는 식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정작 필요한 교원을 채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외국인 교원 중에는 임용 후에도 우리나라를 발판 삼아 영어권 국가나 자국으로 돌아가려는 생각이 강해 지도학생을 받지도 않고 공동 연구도 진행하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전했다. A교수는 “교수회의에 들어가 보면 한국어에 익숙하지 않은 교수는 멍하게 앉아 있다가 나가고, 한국어에 익숙한 외국인 교수는 회의 주제와 무관하게 자기 불편한 점만 이야기해 제대로 된 교수회의가 진행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우수 외국인 연구자 유치에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는 외국 인재 유치 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울산대 정재훈 교수는 “일본에서는 해외 우수인력을 채용할 때 아예 해당 연구팀을 통째로 부르기도 한다”며 “연구팀 전체가 움직이면 사람뿐만 아니라 연구능력까지 한 번에 가져온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외대 기상사업단 김병수 박사는 “지난 정부에서 추진했다가 실패한 세계수준연구중심대학(WCU)이나 세계수준연구센터(WCI) 사업에서도 볼 수 있듯이 돈을 많이 주거나 다른 인센티브 제공을 통해 해외 우수인력이 우리나라를 찾도록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며 “연구 인프라 확충을 통해 우수 해외 연구자들이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에 더해 우수한 외국인 연구자들을 데려오는 것만큼 국내의 우수인력이 해외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유인하는 정책을 고려해야 할 때라는 지적도 있다. 서강대 화학과 이덕환 교수는 “외국인 연구자들을 초빙하는 대전제는 외국과 우리의 기술 수준 차가 크기 때문에 선진기술을 도입하자는 것”이라며 “최근 들어 한국의 연구수준이 외국과 크게 차이 나지 않게 된 만큼 우수한 국내 연구인력이 외국으로 빠져나가거나 한 번 외국에 나가면 돌아오지 않는 문제도 고민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겉도는 해외석학 초빙] 특강 2~3번에 연봉 2억 ‘노벨상 교수님’

    [겉도는 해외석학 초빙] 특강 2~3번에 연봉 2억 ‘노벨상 교수님’

    #1. 국내 S대 A교수는 얼마 전 해외 학회에서 얼굴이 화끈거리는 경험을 했다. 평소 알고 지내던 외국인 교수들이 대놓고 진지한 표정으로 부탁을 해 왔기 때문이다. 몇몇 교수들이 “한국 대학에 초빙교수나 석좌교수로 갈 수 있게 다리를 놔달라”고 했다. 외국인 교수에 대한 금전적 처우는 좋지만 강의 부담은 크지 않은 한국 대학에서 연구년 개념으로 쉬면서 일하고 싶다는 의미였다. A교수는 기자에게 “한국 정부나 대학들이 목적의식 없이 외국인 교수들을 경쟁하듯 초빙하고 있는 사실이 외국 학계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말했다. #2. 한 학회 실무자 B씨는 최근 개최했던 국제포럼만 생각하면 넌더리가 난다. 무조건 노벨상 수상자를 섭외해 초청하라는 지시에 골머리를 앓았다. B씨는 “노벨상 수상자만 모셔 오면 학회 홍보가 되는 것으로 생각한다”며 “그러다 보니 현재 학문 추세와 상관없이 거액을 들여서라도 수상자를 데려오라는 식의 주문이 포럼 때마다 되풀이된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예산 문제로 노벨상 수상자 초빙이 무산됐지만 다음 행사 때는 또 닦달할 것”이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대학과 연구기관들이 해외 석학들을 앞다퉈 국내에 불러오고 있지만 겉만 요란할 뿐 실속은 못 차리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고액을 들여 외국인 학자를 초빙하고도 홍보를 위한 ‘얼굴마담’이나 각종 평가지표의 국제화 부문에서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만 활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당초 외국인 연구자를 초빙하려고 했던 초심(初心)이 퇴색했다는 목소리도 학계 안팎에서 커지고 있다. 21일 교육부 등에 따르면 2002년 1454명이었던 국내 외국인 교수 영입 규모는 2007년 2919명으로 두 배가 됐고, 2013년 6130명으로 정점을 찍었다. 지난해 6034명으로 소폭 감소한 데 이어 올해에도 9월 현재 5961명으로 줄었다. 국내 대학이나 연구기관이 외국인 교수 1인당 투자하는 비용은 1년에 1억~2억원선이다. 주요 타깃은 노벨상 수상자이지만 실제 유치한 사례는 10명 안팎으로 소수에 불과하다. 오히려 해외 저명 연구자 타이틀을 가진 사람들을 주로 석좌 혹은 석학교수, 초빙교수 등으로 모시고 있다. 그러나 이들도 대부분 1년에 3~4차례 혹은 한번에 1주일 정도 국내에 체류하며 2~3번 특강을 하는 수준에 그친다. 2010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로 거론됐던 그래핀 분야의 석학 김필립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2012년 3월 서울대 초빙 석좌교수로 임용됐다. 김 교수는 하지만 공동연구나 대학원생 지도는 하지 않고 한 학기에 한 번씩 1년에 두 차례 서울대 특강만 진행할 뿐이다. 외국인 석학에게는 일반적으로 기본 연봉에다 방한 시 여행 경비와 국내 체재비가 제공된다. 연간 유지 비용은 1억~2억원 안팎으로 추산된다. 한 과학계 인사는 “노벨상 수상자들의 경우는 수상 시기나 연구 분야에 따라 다르지만 국내 체류 중 1회 강연에 5000~1만 달러 안팎의 강연비를 받는다”고 전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대학들이나 연구기관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얻겠다는 사전 계획이 없이 해외 석학들을 데리고 오기 때문에 비싼 돈만 주고 아무런 효과가 없는 특강이나 몇 번 하고 끝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연구 능력이나 국내 적응 등의 여건을 고민하지 않고 초빙 자체를 목적으로 하다 보니 중도에 떠나는 외국인 연구자도 속출한다. 건국대는 2009년 당시 19세였던 알리아 사버 박사를 공대 신소재융합학과 외국인 전임교수로 채용하면서 ‘최연소 교수로 기네스북 기록을 갈아치웠고 국내 연구에도 활력을 줄 것’이라고 대대적 홍보를 했다. 하지만 사버 박사는 정규 강의가 아닌 특강만 하다 한 학기 만에 되돌아가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남았다. 서남표 전 카이스트(KAIST) 총장은 “한국 대학의 경우 총장은 학교 내부에서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외부, 특히 외국에서 총장을 데려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다”며 “이런 사회적 폐쇄성은 대학이나 정부가 해외 석학을 데려오고 정착시키는 데 실패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외국인 연구자들의 유치 실패는 한국식 연구 시스템의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국내 연구 풍토에서 장기적 연구 내용보다는 단기적인 논문 생산 편수를 따지고, 연구자들에게 행정 업무까지 떠안기는 현실이 해외 우수 인재들을 중도에 떠나게 만드는 요인이라는 설명이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삶은 계란을 ‘날달걀’로 만드는 장치 개발...황당하다구?

    삶은 계란을 ‘날달걀’로 만드는 장치 개발...황당하다구?

    -"제약·정유업계 등 활용도 무궁무진" 삶은 달걀흰자를 다시 날계란 상태로 되돌릴 수 있는 장치를 개발한 호주 과학자가 독특한 연구 업적을 세운 과학자들에게 수여하는 ‘이그노벨’ 상을 수상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 등 외신은 18일(현지시간) 삶은 달걀흰자의 굳어진 단백질구조를 물리적 회전력을 이용해 원상태로 되돌리는 장치인 ‘VFD’(Vortex Fluidic Device)를 개발한 플린더즈 대학교 화학과 교수 콜린 래스톤의 업적을 소개했다. 계란 흰자에 열에너지가 가해지면 흰자위의 단백질이 서로 얽혀 젤 상태의 구조를 띄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삶은 달걀의 형태로 변하게 된다. VFD는 회전력을 이용, 이 단백질 구조를 다시 해체해 원래의 상태로 돌릴 수 있다고 교수는 설명한다. 다소 황당해 보이는 이 장치의 활용 가능성은 의외로 무궁무진하다. VFD를 사용하면 단백질 구조에 관련한 화학 처리에 보다 정교한 제어가 가능해진다. 이에 따라 제약연구에 있어 비용절감과 자원낭비 방지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교수는 “제약업계의 판도를 뒤집어놓을 발견이며 더 나아가 정유 및 식품 산업에도 활용 가능하다”고 말했다. 또한 VFD는 항암 화학치료제의 체내흡수 및 작용을 강화하는 목적으로 활용될 수 있을 전망이다. 이미 해당 장치를 이용해 자궁암과 폐암 치료에 활용되는 항암치료 화학제의 일종인 카보플라틴의 작용을 4.5배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이 개발된 것으로 알려졌다. 콜린 래스톤 교수는 이그노벨상 수상 소감에서 “달걀을 원상태로 되돌리는 것이 우리의 원래 목적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실험이 해당 기술의 중대함을 대중에게 알리는 역할을 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 교수는 이어 “관심을 받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이 연구에 참여한 사람이 나 말고도 많다는 점을 꼭 이야기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VFD는 교수 외에도 플린더즈 대학교 연구팀과 캘리포니아 대학교 어바인캠퍼스 연구팀이 동참해 개발한 것으로 전한다. 사진=ⓒ플린더즈 대학교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삶은 계란을 다시 ‘날달걀’로…”제약업계 판도 뒤집을 발견”

    삶은 계란을 다시 ‘날달걀’로…”제약업계 판도 뒤집을 발견”

    삶은 달걀흰자를 다시 날계란 상태로 되돌릴 수 있는 장치를 개발한 호주 과학자가 독특한 연구 업적을 세운 과학자들에게 수여하는 ‘이그노벨’ 상을 수상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 등 외신은 18일(현지시간) 삶은 달걀흰자의 굳어진 단백질구조를 물리적 회전력을 이용해 원상태로 되돌리는 장치인 ‘VFD’(Vortex Fluidic Device)를 개발한 플린더즈 대학교 화학과 교수 콜린 래스톤의 업적을 소개했다. 계란 흰자에 열에너지가 가해지면 흰자위의 단백질이 서로 얽혀 젤 상태의 구조를 띄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삶은 달걀의 형태로 변하게 된다. VFD는 회전력을 이용, 이 단백질 구조를 다시 해체해 원래의 상태로 돌릴 수 있다고 교수는 설명한다. 다소 황당해 보이는 이 장치의 활용 가능성은 의외로 무궁무진하다. VFD를 사용하면 단백질 구조에 관련한 화학 처리에 보다 정교한 제어가 가능해진다. 이에 따라 제약연구에 있어 비용절감과 자원낭비 방지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교수는 “제약업계의 판도를 뒤집어놓을 발견이며 더 나아가 정유 및 식품 산업에도 활용 가능하다”고 말했다. 또한 VFD는 항암 화학치료제의 체내흡수 및 작용을 강화하는 목적으로 활용될 수 있을 전망이다. 이미 해당 장치를 이용해 자궁암과 폐암 치료에 활용되는 항암치료 화학제의 일종인 카보플라틴의 작용을 4.5배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이 개발된 것으로 알려졌다. 콜린 래스톤 교수는 이그노벨상 수상 소감에서 “달걀을 원상태로 되돌리는 것이 우리의 원래 목적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실험이 해당 기술의 중대함을 대중에게 알리는 역할을 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 교수는 이어 “관심을 받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이 연구에 참여한 사람이 나 말고도 많다는 점을 꼭 이야기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VFD는 교수 외에도 플린더즈 대학교 연구팀과 캘리포니아 대학교 어바인캠퍼스 연구팀이 동참해 개발한 것으로 전한다. 사진=ⓒ플린더즈 대학교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이그노벨상 국내 수상자 3명은

    ‘흉내 낼 수도 없고, 흉내 내서도 안 되는 업적’에 시상하는 이그노벨상(Ig Nobel Prize). 노벨상을 패러디한 이그노벨상은 1991년 미국 하버드대에서 발행하는 유머 과학잡지 ‘있을 법하지 않은 연구 연감’(Annals of Improbable Research)이 과학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만든 상이다. 이그노벨상이란 이름은 ‘불명예스러운’이란 뜻의 단어인 ‘이그노블’(Ignoble)과 ‘노벨’(Nobel)을 합성해 만들어졌다. 그렇지만 주최 측에서는 “노벨상을 만든 알프레드 노벨의 먼 친척으로 소다수를 발명한 이그나시우스 노벨(가상의 인물)의 유산으로 상을 만들어 그를 기리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실재하지 않는 인물의 유산이기 때문에 이그노벨상에는 상금이 없다. 매년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되기 직전인 9월 2~3주 목요일에 하버드대 샌더스 극장에서 시상식을 갖는데, 역대 노벨상 수상자들이 참석해 수상작 심사와 시상을 맡고 있다. 시상 부문은 유동적이나 노벨상의 여섯 분야인 물리학, 화학, 생리의학, 문학, 평화, 경제학 분야에 생물학, 심리학, 우주 등 필요에 따라 4개 부문을 추가해 10개 분야에 대해 시상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노벨상 수상자는 2000년 평화상을 받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유일하지만, 이그노벨상 수상자는 세 명이나 있다. 가장 먼저 1999년 FnC코오롱의 권혁호씨가 ‘향기 나는 정장’을 개발, 환경보호상을 받았다. 향기 나는 정장은 향이 들어 있는 미립자 형태의 캡슐을 옷감 사이사이에 넣어 움직일 때마다 캡슐이 터지면서 향기가 나도록 한 것이다. 주최 측은 “향기 치료 기법인 ‘아로마 테라피’를 신사복에 응용해 땀 냄새나 불쾌한 체취를 막아 환경 개선에 이바지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2000년에는 통일교 문선명 교주가 대규모 합동결혼을 성사시킨 공로로 경제학상을 받았다. 주최 측은 문 교주가 1960년 36쌍을 시작으로 1968년 430쌍, 1975년 1800쌍, 1982년 6000쌍, 1992년 3만쌍, 1995년 36만쌍, 1997년 3600만쌍을 결혼시킴으로써 결혼식의 효율성을 높이고 꾸준한 성장세를 보여 산업 수준으로 만들었다고 평가하며 수상자로 선정했다. 1992년 휴거론을 주장하며 지구 종말을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다미선교회 이장림 목사가 도러시 마틴, 팻 로버트슨, 엘리자베스 클레어 프로핏, 해럴드 캠핑(이상 미국), 클레도니아 므웨린데(우간다) 등 5명의 종말론자들과 함께 1954년부터 50년 동안 인류 마지막 날을 매번 틀리게 예측했다는 이유로 2011년 이그노벨 수학부문상을 받기도 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벌에 쏘이면 가장 아픈 곳? 업적이 된 ‘기발한 상상’

    벌에 쏘이면 가장 아픈 곳? 업적이 된 ‘기발한 상상’

    벌에 쏘였을 때 가장 아픈 부위는 어디일까? 과거 이슬람 최고 지도자는 어떻게 900명 가까운 자녀를 둘 수 있었을까? 소금에 절인 돼지고기 한 조각은 코피를 멈추게 할 수 있을 것인가? 남녀가 키스를 한 뒤에는 어떤 유전자 분비물이 남을까? 제25회 이그노벨상 시상식이 17일 오후 6시(현지시간) 미국 하버드대 샌더스 극장에서 열렸다. 기발한 질문들에 대해 놀랍고 신기한 연구 업적을 내놓은 사람들을 위한 잔치다. 올해 이그노벨 생리 및 곤충학상은 벌에게 쏘였을 때 가장 아픈 신체 부위가 어디인지를 연구한 미국 코넬대 물리학과 박사과정 대학원생 마이클 스미스에게 돌아갔다. 그는 벌에게 쏘였을 때 고통스러운 정도를 알아보기 위해 자신의 몸 25군데에 직접 벌침을 놓았다. 그 결과 콧구멍과 윗입술, 성기 등 세 부분이 가장 아프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를 의학분야 국제학술지 ‘피어J’에 발표했다. 스미스는 “벌에 쏘이면 모든 부위가 다 아프지만, 사람의 얼굴 피부 다음으로 성기를 둘러싼 피부가 가장 얇아 통증을 크게 느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오스트리아 빈대 인류학자 엘리자베스 오버자우셔 교수와 카를 그라머 교수는 18세기 모로코 알라위 왕조의 술탄(최고 통치자)인 물레이 이스마엘이 888명의 자녀를 두게 된 경위를 컴퓨터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으로 분석해 지난해 ‘플로스원’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술탄이 여성들과 하루 동안 얼마나 많은 잠자리를 가져야 했는지를 분석한 결과 잠자리 횟수보다는 술탄의 생식 능력이 뛰어나 임신 성공률이 높았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얻어 올해 이그노벨 수학상을 거머쥐었다. 언어학자인 마르크 딩게만세 네덜란드 네이메헨대 교수와 동료들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할 때 자신의 오류를 어떻게 수정하는지에 대해 연구하다가 ‘응(Huh)?’이란 단어가 전 세계에서 공통적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밝혀냈다. 흔히 방금 들은 말을 다시 물을 때 무심코 내뱉는 이 단어는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 유럽, 아프리카 등 지역마다 발음에서만 조금씩 차이가 날 뿐 거의 유사하다. 연구팀은 언어나 문화적 배경에 상관없이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리면 사람들은 누구나 ‘응?’이란 말을 뱉음과 동시에 평균 1분 30초마다 질문을 던진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딩게만세 교수 등은 ‘응?’은 짧은 말이지만 자신이 이해를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전달함으로써 대인 커뮤니케이션에서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기능을 수행한다고 결론 내렸다. 딩게만세 교수는 이 연구 결과를 2013년 국제학술지 ‘플로스원’에 발표했는데 전 세계 20만명의 연구자가 읽어 그해 가장 많이 읽힌 과학논문으로 꼽히기도 했다. 그 덕에 딩게만세 교수 등은 올해 이그노벨 문학상의 주인공이 됐다. 이 밖에도 키스를 한 뒤 남은 유전자 분비물을 연구한 사람과 키스가 알레르기를 유발하는지 알아내기 위해 30명에게 키스를 시킨 과학자가 의학상을 수상했다. ‘닭에게 인공 꼬리를 붙이면 과연 티라노사우르스와 같은 공룡처럼 걷게 될 것인가’를 연구해 그렇다는 것을 밝혀낸 연구자에게는 이그노벨 생물학상이 돌아갔다. 뇌물을 거부한 경찰에게 추가로 돈을 얼마나 줘야 하는지를 몸소 보여준 태국 방콕경찰국은 이그노벨 경제학상을 차지했다. 올해 수상자들처럼 역대 이그노벨상 수상작들에도 기발한 아이디어가 넘쳐났다. 지난해에는 도저히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흐르는 어린아이들의 코피를 소금에 절인 돼지고기 한 조각으로 막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연구팀이 의학상을 수상했다. 밤샘을 잘하는 사람이 규칙적으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사람보다 머리는 좋지만, 자아도취가 심하고 사이코패스 성향이 강하다는 연구를 발표한 사람들은 심리학상을 받았다. 이그노벨상을 수상한 사람이 실제 노벨상을 수상한 경우도 있다. 안드레 가임 영국 맨체스터대 교수는 꿈의 신소재 ‘그래핀’을 만드는 데 성공한 공로로 콘스탄틴 노보셀로프 교수와 함께 2010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가임 교수는 노벨상을 타기 10년 전인 2000년에 이그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당시 네덜란드 네이메헨대 교수로 재직 중이던 가임 교수는 영국 브리스톨대 마이클 베리 교수와 함께 살아 있는 개구리를 자기장으로 공중 부양시키는 실험에 성공한 공로로 상을 받았다. 가임 교수는 2010년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된 뒤 노벨위원회와 가진 전화 인터뷰에서 “나에게는 노벨상과 이그노벨상이 똑같은 가치를 가진다”며 “사람을 웃게 해주는 이그노벨상 수상 경력이 부끄럽지 않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그노벨상은 반(反)과학성과 시대상에 대한 풍자적 성격도 강하다. 1999년에는 학생들에게 다윈의 진화론을 가르치지 못하도록 한 미국 콜로라도주와 캔자스주 교육위원회에 과학교육상을 시상하며 “뉴턴의 중력 이론, 패러데이와 맥스웰의 전자기 이론, 파스퇴르의 세균 이론 교육도 금지해 달라”고 비꼬기도 했다. 2013년 시상식에서는 주최 측이 부문별로 10조 달러(약 1경 860조원)의 상금을 주기로 했다고 했으나, 곧 “기준 화폐는 짐바브웨 달러”라고 밝혀 웃음을 유발한 적도 있다. 짐바브웨 달러는 경제개혁 실패로 연간 2억 3100만%의 물가 상승률 때문에 100조 달러가 발행된 적도 있었다. 2009년 사용이 중단된 100조 짐바브웨 달러는 우리 돈으로 4000원 정도였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이그노벨상 국내 수상자 3명은

    ‘흉내 낼 수도 없고, 흉내 내서도 안 되는 업적’에 시상하는 이그노벨상(Ig Nobel Prize). 노벨상을 패러디한 이그노벨상은 1991년 미국 하버드대에서 발행하는 유머 과학잡지 ‘있을 법하지 않은 연구 연감’(Annals of Improbable Research)이 과학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만든 상이다. 이그노벨상이란 이름은 ‘불명예스러운’이란 뜻의 단어인 ‘이그노블’(Ignoble)과 ‘노벨’(Nobel)을 합성해 만들어졌다. 그렇지만 주최 측에서는 “노벨상을 만든 알프레드 노벨의 먼 친척으로 소다수를 발명한 이그나시우스 노벨(가상의 인물)의 유산으로 상을 만들어 그를 기리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실재하지 않는 인물의 유산이기 때문에 이그노벨상에는 상금이 없다. 매년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되기 직전인 9월 2~3주 목요일에 하버드대 샌더스 극장에서 시상식을 갖는데, 역대 노벨상 수상자들이 참석해 수상작 심사와 시상을 맡고 있다. 시상 부문은 유동적이나 노벨상의 여섯 분야인 물리학, 화학, 생리의학, 문학, 평화, 경제학 분야에 생물학, 심리학, 우주 등 필요에 따라 4개 부문을 추가해 10개 분야에 대해 시상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노벨상 수상자는 2000년 평화상을 받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유일하지만, 이그노벨상 수상자는 세 명이나 있다. 가장 먼저 1999년 FnC코오롱의 권혁호씨가 ‘향기 나는 정장’을 개발, 환경보호상을 받았다. 향기 나는 정장은 향이 들어 있는 미립자 형태의 캡슐을 옷감 사이사이에 넣어 움직일 때마다 캡슐이 터지면서 향기가 나도록 한 것이다. 주최 측은 “향기 치료 기법인 ‘아로마 테라피’를 신사복에 응용해 땀 냄새나 불쾌한 체취를 막아 환경 개선에 이바지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2000년에는 통일교 문선명 교주가 대규모 합동결혼을 성사시킨 공로로 경제학상을 받았다. 주최 측은 문 교주가 1960년 36쌍을 시작으로 1968년 430쌍, 1975년 1800쌍, 1982년 6000쌍, 1992년 3만쌍, 1995년 36만쌍, 1997년 3600만쌍을 결혼시킴으로써 결혼식의 효율성을 높이고 꾸준한 성장세를 보여 산업 수준으로 만들었다고 평가하며 수상자로 선정했다. 1992년 휴거론을 주장하며 지구 종말을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다미선교회 이장림 목사가 5명의 종말론자들과 함께 1954년부터 50년 동안 인류 마지막 날을 매번 틀리게 예측했다는 이유로 2011년 이그노벨 수학상을 받기도 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벌에 쏘이면 가장 아픈곳은? ‘기발한 상상’ 업적이 되다

    벌에 쏘이면 가장 아픈곳은? ‘기발한 상상’ 업적이 되다

    벌에 쏘였을 때 가장 아픈 부위는 어디일까? 과거 이슬람 최고 지도자는 어떻게 900명 가까운 자녀를 둘 수 있었을까? 소금에 절인 돼지고기 한 조각은 코피를 멈추게 할 수 있을 것인가? 남녀가 키스를 한 뒤에는 어떤 유전자 분비물이 남을까? 제25회 이그노벨상 시상식이 17일 오후 6시(현지시간) 미국 하버드대 샌더스 극장에서 열렸다. 기발한 질문들에 대해 놀랍고 신기한 연구 업적을 내놓은 사람들을 위한 잔치다.   ●1991년 만들어…노벨상 수상자 공개전 발표 올해 이그노벨 생리 및 곤충학상은 벌에게 쏘였을 때 가장 아픈 신체 부위가 어디인지를 연구한 미국 코넬대 물리학과 박사과정 대학원생 마이클 스미스에게 돌아갔다. 그는 벌에게 쏘였을 때 고통스러운 정도를 알아보기 위해 자신의 몸 25군데에 직접 벌침을 놓았다. 그 결과 콧구멍과 윗입술, 성기 등 세 부분이 가장 아프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를 의학분야 국제학술지 ‘피어J’에 발표했다. 스미스는 “벌에 쏘이면 모든 부위가 다 아프지만, 사람의 얼굴 피부 다음으로 성기를 둘러싼 피부가 가장 얇아 통증을 크게 느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오스트리아 빈대 인류학자 엘리자베스 오버자우셔 교수와 카를 그라머 교수는 18세기 모로코 알라위 왕조의 술탄(최고 통치자)인 물레이 이스마엘이 888명의 자녀를 두게 된 경위를 컴퓨터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으로 분석해 지난해 ‘플로스원’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술탄이 여성들과 하루 동안 얼마나 많은 잠자리를 가져야 했는지를 분석한 결과 잠자리 횟수보다는 술탄의 생식 능력이 뛰어나 임신 성공률이 높았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얻어 올해 이그노벨 수학상을 거머쥐었다. 언어학자인 마르크 딩게만세 네덜란드 네이메헨대 교수와 동료들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할 때 자신의 오류를 어떻게 수정하는지에 대해 연구하다가 ‘응(Huh)?’이란 단어가 전 세계에서 공통적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밝혀냈다. 흔히 방금 들은 말을 다시 물을 때 무심코 내뱉는 이 단어는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 유럽, 아프리카 등 지역마다 발음에서만 조금씩 차이가 날 뿐 거의 유사하다. 연구팀은 언어나 문화적 배경에 상관없이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리면 사람들은 누구나 ‘응?’이란 말을 뱉음과 동시에 평균 1분 30초마다 질문을 던진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딩게만세 교수 등은 ‘응?’은 짧은 말이지만 자신이 이해를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전달함으로써 대인 커뮤니케이션에서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기능을 수행한다고 결론 내렸다. 딩게만세 교수는 이 연구 결과를 2013년 국제학술지 ‘플로스원’에 발표했는데 전 세계 20만명의 연구자가 읽어 그해 가장 많이 읽힌 과학논문으로 꼽히기도 했다. 그 덕에 딩게만세 교수 등은 올해 이그노벨 문학상의 주인공이 됐다. 이 밖에도 키스를 한 뒤 남은 유전자 분비물을 연구한 사람과 키스가 알레르기를 유발하는지 알아내기 위해 30명에게 키스를 시킨 과학자가 의학상을 수상했다. ‘닭에게 인공 꼬리를 붙이면 과연 티라노사우르스와 같은 공룡처럼 걷게 될 것인가’를 연구해 그렇다는 것을 밝혀낸 연구자에게는 이그노벨 생물학상이 돌아갔다. 뇌물을 거부한 경찰에게 추가로 돈을 얼마나 줘야 하는지를 몸소 보여준 태국 방콕경찰국은 이그노벨 경제학상을 차지했다.●이젠 창의성이 넘치는 이그노벨상 올해 수상자들처럼 역대 이그노벨상 수상작들에도 기발한 아이디어가 넘쳐났다. 지난해에는 도저히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흐르는 어린아이들의 코피를 소금에 절인 돼지고기 한 조각으로 막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연구팀이 의학상을 수상했다. 밤샘을 잘하는 사람이 규칙적으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사람보다 머리는 좋지만, 자아도취가 심하고 사이코패스 성향이 강하다는 연구를 발표한 사람들은 심리학상을 받았다. 이그노벨상을 수상한 사람이 실제 노벨상을 수상한 경우도 있다. 안드레 가임 영국 맨체스터대 교수는 꿈의 신소재 ‘그래핀’을 만드는 데 성공한 공로로 콘스탄틴 노보셀로프 교수와 함께 2010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가임 교수는 노벨상을 타기 10년 전인 2000년에 이그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당시 네덜란드 네이메헨대 교수로 재직 중이던 가임 교수는 영국 브리스톨대 마이클 베리 교수와 함께 살아 있는 개구리를 자기장으로 공중 부양시키는 실험에 성공한 공로로 상을 받았다. 가임 교수는 2010년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된 뒤 노벨위원회와 가진 전화 인터뷰에서 “나에게는 노벨상과 이그노벨상이 똑같은 가치를 가진다”며 “사람을 웃게 해주는 이그노벨상 수상 경력이 부끄럽지 않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그노벨상은 반(反)과학성과 시대상에 대한 풍자적 성격도 강하다. 1999년에는 학생들에게 다윈의 진화론을 가르치지 못하도록 한 미국 콜로라도주와 캔자스주 교육위원회에 과학교육상을 시상하며 “뉴턴의 중력 이론, 패러데이와 맥스웰의 전자기 이론, 파스퇴르의 세균 이론 교육도 금지해 달라”고 비꼬기도 했다. 2013년 시상식에서는 주최 측이 부문별로 10조 달러(약 1경 860조원)의 상금을 주기로 했다고 했으나, 곧 “기준 화폐는 짐바브웨 달러”라고 밝혀 웃음을 유발한 적도 있다. 짐바브웨 달러는 경제개혁 실패로 연간 2억 3100만%의 물가 상승률 때문에 100조 달러가 발행된 적도 있었다. 2009년 사용이 중단된 100조 짐바브웨 달러는 우리 돈으로 4000원 정도였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곤충침 150종 찔러 ‘고통지수’ 만든 과학자, 이그노벨상 수상

    곤충침 150종 찔러 ‘고통지수’ 만든 과학자, 이그노벨상 수상

    올해 25회째를 맞는 ‘이그 노벨상’에서 다시는 시도하기 어려운 독특한 실험과 연구를 실시한 과학자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수상을 거머쥐었다. 이그노벨상(Ig Nobel Prize)은 미국 하버드대학교의 과학잡지인 ‘애널스 오브 임프로버블 리서치’가 매년 다시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업적에 주는 상으로, ‘고상한’(noble)의 반대어인 ‘이그 노벨'(Ig nobel)을 응용해 지어졌다. 올해 수상자들 중 가장 ‘노고’를 인정받은 과학자는 곤충학자인 미국 애리조나주립대학의 저스틴 슈미트 박사다. 그는 벌 등 곤충의 침이 주는 통증의 정도를 연구하기 위해 150여 종의 각기 다른 곤충의 침을 자신의 몸에 직접 찔러 ‘고통 지수’를 제작하는데 성공했다. 슈미트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꿀벌의 침은 총 4단계 중 ‘고통 지수 2’에 해당하는 통증이 있으며, 총알 개미(세계에서 가장 큰 개미종중 하나이며, 곤충류 중 가장 고통스러운 수준의 침으로 유명)는 ‘고통 지수 1’에 해당하는 통증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코넬대학교 대학원생인 마이클 스미스도 이그 노벨상 수상자로 임명됐다. 그는 지난 해 신체 부위를 25곳으로 나눈 뒤 저스틴 슈미트 박사의 ‘고통지수’를 참고해 이를 수치화 했다. 두 연구의 다른 점은 슈미트 박사가 다양한 곤충으로 실험한 반면 마이클 스미스는 벌 만을 실험에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는 정확한 평가를 위해 각 신체부위마다 3번씩 벌을 잡고 쏘였고, 이 과정을 38일간 지속했다. 실험을 위해 벌에 쏘인 부위는 정수리와 팔, 다리, 손가락, 손바닥 등의 부위부터 옆구리와 가슴, 생식기 등까지 다양하다.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의 언어학자인 프란시스코 토레이라 외 2인은 이그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이들은 ‘허’(Huh)라는 발음을 내는 단어가 전 세계의 모든 언어에 존재하며, 심지어 같은 발음을 낸다는 것을 증명해냈다. 미국의 중국계 과학자 데이비드 후는 이그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모든 포유류가 소변을 배출해 방광을 비우는데 걸리는 시간이 21초라는 사실을 밝힌 연구로 뜻깊은 상을 수상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안보법 강행 막자” … 日시민 5만명 의사당 포위 심야 농성

    일본의 안보 관련 법안이 이번 주 참의원에서 강행 처리될 방침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이에 반대하는 시민 5만여명이 14일 도쿄 지요다구 국회의사당을 포위, 밤늦게까지 시위를 벌였다. 참가자들은 국회 앞 중앙 도로를 점거한 채 “전쟁 법안 폐지”와 “아베 정권 퇴진”을 주장하는 손팻말을 들고 나섰다. 이들은 이날부터 일주일 동안 낮과 밤에 국회의사당을 포위하는 시위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 오에 겐자부로 등은 “안보 법안이 통과되면 평화헌법 아래의 일본은 없어지고 만다”며 시위에 참가해 법안 저지를 호소했다. 시이 가즈오 공산당 위원장, 요시다 다다토모 사민당 당수 등 야당 대표들도 시위대에 모습을 보였다. 참가자들은 ‘전쟁 반대와 헌법 9조(전쟁포기) 파괴를 저지하기 위한 행동’을 강조했다. 도쿄 번화가인 신주쿠 등에서도 매주 금요일 밤과 주말 등에 1만여명의 시민이 아베 신조 총리의 안보 법제와 원전 재가동 반대를 외치는 시위를 벌였다. 그동안 시위는 오사카 등 지방으로 확산돼 왔다. 고교생과 유모차를 끈 젊은 주부들도 시위에 참가해 “전쟁 반대“, “아베 퇴진”을 외쳤다. 집권 자민당과 공명당 등 연립여당이 중의원·참의원 등 양원 모두 과반수 의석 이상을 확보하고 있지만 의회 밖에선 아베 정권의 독주에 반대하는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아베 정부는 이번 주에 집단자위권 행사를 골자로 하는 안보 관련 11개 법률 제·개정안을 참의원에서 통과시킨다는 방침을 세워 두고 있다. 15~16일 공청회, 17일 참의원 특별위원회 통과, 18일 참의원 본회의 통과를 목표로 하고 있다. 19일부터 23일까지 가을 연휴여서 그전에 법안을 처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아베 내각은 참의원에서 법안 가결이 어려우면 ‘60일 규정’에 따라 중의원에서 재가결해 법안을 성립시키겠다는 자세다. 중의원에서 참의원으로 법안이 송부된 시점부터 60일이 지나면 중의원에서 재적의원 3분의2 이상의 찬성으로 재가결해 법안을 성립시킬 수 있다. 안보 법안은 14일부터 ‘60일 규정’ 적용이 가능하다. 헌법학자 대다수가 집단자위권 행사를 담은 안보 법안은 위헌이라고 지적하는 가운데 이날 아사히신문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68%는 “이번 회기 내 안보 법안 통과는 필요하지 않다”고 밝혔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사이언스 톡톡] 지난주 래스커상 받은 3명 중 다음달 노벨상 주인공 나올까

    [사이언스 톡톡] 지난주 래스커상 받은 3명 중 다음달 노벨상 주인공 나올까

    반갑네, 난 앨버트 래스커(1880~1952)라고 하네. 독일 프라이부르크에서 태어나 갓난쟁이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 간 독일계 미국인이지. 직업은 광고 전문가야. 자선사업가로도 이름이 좀 났고.1898년 시카고에 있는 ‘로드 앤드 토머스’란 광고회사에서 사환으로 처음 일을 시작했어. 그때 광고대행사들은 그저 고객들이 가져온 광고를 신문이나 잡지에 그대로 싣도록 중개하는 일이 고작이었어.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그렇게 해서는 고객들을 사로잡을 수가 없겠더라고. 그래서 다양한 심리학적 방법과 연상작용 등을 동원해 소비자들이 물건을 사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지. 요즘도 캘리포니아 하면 ‘오렌지’, 부드러운 화장지하면 ‘크리넥스’가 연상되잖아? 그게 다 내 작품이야. 사실 광고 업무는 밤샘 작업도 많고 이런저런 정신적 부담이 심해 난 심각한 신경쇠약을 앓았다네. 결국 일보다는 건강과 가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회사를 해체하고 세 번째 아내인 메리와 함께 ‘앨버트 앤드 메리 래스커 재단’을 설립했어. 재단에서는 의료와 공중보건 분야 연구자들을 지원하고, 1946년부터는 우수한 의학자들에게 ‘래스커상’을 주기 시작했어. 좋은 일을 해서인지 고질병 같던 신경쇠약과도 작별할 수 있었다네. 처음에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래스커상 기초의학 부문 수상자 중 절반 정도가 우리 상을 받은 뒤 노벨상을 받더군. 그 덕분에 ‘예비 노벨상’, ‘미국의 노벨상’이라고도 불리게 됐지. 지난주에 올해 수상자들을 발표했어. 기초의학 연구부문에서는 스티븐 엘리지(왼쪽) 미국 브링햄여성병원 교수와 에블린 위트킨(오른쪽) 럿거스대 교수를, 임상의학 연구부문에서는 제임스 앨리슨(가운데) 텍사스대 앤더슨 암센터 교수, 공공서비스 부문은 국경없는의사회가 주인공으로 선정됐지. 앨리슨 박사는 면역계에서 T세포의 활성화를 조절하는 ‘CTLA4’라는 단백질을 집중적으로 연구해 T세포의 암 차단 능력을 높이는 방법을 찾은 공로를 인정받았어. 그의 연구 덕분에 전이성 흑색종이란 악성 피부암 환자의 수명을 10년이나 연장시킬 수 있게 됐다지 뭔가. 원래 전이성 흑색종 환자의 평균 기대수명은 1년 미만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그걸 10배 가까이 늘릴 수 있게 됐다니 참 대단한 연구야. 기초의학 부문의 엘리지 박사와 위트킨 박사는 인체가 DNA 손상을 탐지해 복구하는 방법을 연구했지. 국경없는의사회는 서아프리카에서 발생한 에볼라에 맞서 인도주의적 의료 봉사를 펼쳐 상을 받게 됐다네. 이제 노벨상 수상자 발표가 20여일 앞으로 다가왔구먼. 10월 5일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 발표를 시작으로 물리학상, 화학상 수상자가 차례로 발표될 텐데 누가 수상할지 궁금해지는군. 이번에도 래스커상을 받았던 연구자가 노벨상을 받을 수 있을까.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시론] 강물에 전통을 허하라/한무영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

    [시론] 강물에 전통을 허하라/한무영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

    물 분야의 노벨상으로 스웨덴 ‘스톡홀름 워터 프라이즈’라는 상을 꼽는다. 올해는 인도의 라잔드라 싱이 이 상을 받았다. 영국 식민지 시절 빗물을 버리는 방식의 개발로 계곡이 말라 농사를 못 짓던 인도의 시골 마을에 주민이 참여하는 빗물을 모으는 전통적인 방식을 도입한 덕분이다. 여러 개의 강을 되살리고, 1000여곳의 마을에 수자원을 복구해 생활수준을 향상시킨 공을 인정받았다. 지난 8월 말 열린 기념 세미나에 스웨덴 국왕 내외와 전 세계의 학자, 언론인이 참가해 물 문제 해결의 성공 사례를 축하했다. 참석자들은 물 문제는 지역적이며, 해결책도 지역의 전통에서 찾아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 각 지역의 전통들을 모으면 전 세계 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데 의견이 모였다. 이 행사에서 한국의 마을을 나타내는 동(洞=水+同)자에 담겨 있는 물 관리의 전통과 의미도 소개됐다. 동(洞)자를 파자(破字)하면 같은 물을 사용한다는 뜻으로, 물이 공동체 형성의 기본이라는 의미다. 물을 나타내는 수(水)가 먼저 나온 것은 마을을 계획하거나 관리할 때 물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다. 또한 개발 전후의 물 상태를 똑같이 해야 한다는 사회적 책임도 함께 담겨 있다. 동네에 내리는 빗물을 활용해 분산형의 빗물 관리를 하라는 선조의 지혜가 담겨 있는 것이다. 요즘 우리는 녹조, 홍수, 가뭄 등으로 강은 물론 시민들도 커다란 시련을 겪고 있다. 수천만 년 동안 흐르면서 문제도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최근 들어 인간의 활동으로 문제적 상황이 심화했으니 결자해지로 나서야 한다. 복잡한 문제인 것 같지만 해결 방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동(洞)자 철학을 이용하면 된다. 첨단기술에만 의존하지 말고, 상식 수준의 올바른 성찰이 먼저 필요하다. 녹조가 생기는 원인은 컵 안의 소금물로 비유할 수 있다. 물이 적을수록, 소금의 양이 많아질수록 짜지는 것처럼 강물의 양이 적거나 고여 있을수록, 오염원이 늘어날수록 녹조가 쉽게 발생한다. 정답은 물의 양을 늘리고 유속을 빠르게 하거나, 오염원을 줄이면 된다. 홍수는 하수도나 하천이 감당할 수 있는 양보다 큰 비가 내리면 발생한다. 도시 전역에 내리는 빗물을 한꺼번에 모아서 버리려니 그 시설이 커진다. 빗물을 다 버리고 나면 정작 가뭄에는 물이 없다. 수천억원짜리 홍수방지시설은 365일 중 보름도 사용하지 않는 고비용 저효율의 사례로 남고, 가뭄 때는 아무 도움도 못 준다. 수학능력 시험 당일 시차제 출근을 도입해 혼잡을 더는 것처럼 모은 빗물을 시차를 두고 흐르게 하면 큰돈 안 들이고 홍수와 가뭄을 줄일 수 있다. 결국 해결 방법은 빗물 관리다. 빗물을 버리는 도시에서 빗물을 모으는 도시로 바꾸어야 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 원칙만 지키면 된다. 첫째는 위에서 모으는 것이다. 높은 곳이나 상류 지역에 모으면 그 혜택은 아래쪽과 위쪽 모두에 돌아간다. 둘째는 강이나 하천 근처에 커다란 시설 한두 개 만들기보다는 전체 유역에서 작은 시설을 여러 개 만드는 것이다. 이 방법은 주민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조선시대 계획도시인 한양은 궁궐에 큰 연못을 만들었고, 성 내외에 논과 밭농사를 장려해 도시 전역에 빗물을 가두는 역할을 하게 만들었다. 한옥의 처마 밑에 떨어지는 물은 땅속으로 들어가게 했다. 한 방울의 빗방울도 인간에게 도움을 주지 않고 헛되이 바다로 흘러가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선조들의 생각이었을 것이다. 모두 다 동(洞)자 철학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물론 서울과 같은 현대 도시에 논을 둘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러한 빗물 관리 철학을 바탕으로 첨단의 기술을 가미하면 된다. 최근 서울시는 물순환안전국을 새로 만들었다. 물순환의 기본은 빗물 관리다. 새 패러다임에 걸맞게 제도, 예산, 시설 등을 고치자. 매년 빗물 모으기의 정량적인 목표를 정하고, 시민은 그것의 실현 여부를 확인하면서 참여하면 저절로 기후변화에 대비한 안전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몇 년 후 서울시가 물의 노벨상을 받아 올 것을 꿈꾸어 본다. 동(洞)자 철학을 만든 우리 선조와 후손의 합작품이 될 것이다.
  • [생명의 窓] 바이오 3D 프린팅과 장기 복사/이레나 이화여대 의대 방사선종양학과 교수

    [생명의 窓] 바이오 3D 프린팅과 장기 복사/이레나 이화여대 의대 방사선종양학과 교수

    현대 인간의 수명은 100년이 조금 못 된다. 유한한 인간의 삶을 생각하면 한 세기에 해당하는 100년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니다. 그런데 불과 한두 세기 동안, 인간의 생명체에 대한 인류의 관념 구조는 송두리째 바뀌었다. 1859년 다윈이 진화론을 발표한 이래, 1953년에는 왓슨과 크릭이 생명체의 정보를 담은 DNA의 구조를 밝혀냈다. 그리고 이제 진화론이나 DNA만큼 떠들썩하지는 않았지만 또 하나의 거대한 혁명이 예고된다. 바로 생명체의 3D 프린팅이다. DNA 분석과 3D 바이오프린팅 기술은 흥미로운 대조를 보인다. DNA 분석이 생명체에 대한 염기서열 단위의 미시적 해체라면, 3D 바이오프린팅은 세포 단위의 거시적 해체다. DNA 구조 분석이 귀납적 발견이었다면, 3D 바이오프린팅은 인간이 먼저 상상을 한 후 이를 현실화한 연역적 발명이다. 이들 기술은 해체 후 다시 조립한다는 의미에서 ‘창조적 파괴’라는 공통점이 있다. DNA 분석은 컴퓨터 디지털 혁명과 시기가 묘하게 맞아떨어졌다. 0과 1의 컴퓨터 정보 이론의 발전은 이제 빅데이터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그런데 생명체도 디지털 정보로 치환할 수 있다. 미국 스크립스 연구소의 롬스버그 박사팀은 인공 DNA를 복제하는 데 성공했다. 이 연구는 DNA 염기를 레고 블록처럼 사용해서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 수 있다는 이론 단계를 현실화 단계로 옮겨가는 데 기여하고 있다. 빅데이터를 다루는 기술이 발전하여 우리가 생명체를 구성하는 ‘신의 코딩’을 이해하게 된다면 인간에 의한 조작적 진화는 시간을 초월한 폭발성을 보일 것이다. 그렇다면 3D 바이오프린팅은 어떠할까. 3D 프린팅은 이미 생명 분야가 아닌 제조 분야에서 무서운 잠재력을 보여 주었다. 권총을 프린팅하거나 집을 프린팅하게 되면서 인간의 의식주와 사회에 획기적인 변화가 예상된다. 의학 분야에서 3D 프린팅이 사용되고 있다. 인공뼈 제작에서 시작하여 지금은 쉽게 가능성을 타진하기 어려운 분야까지 도전하고 있다. 바로 장기의 ‘기능’을 프린팅해 내는 작업이다. 어떻게 이 일이 가능한가. 프린터 원리는 기존의 아날로그 프린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세포 하나하나를 프린터의 잉크 방울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원하는 기능을 가진 세포를 기존의 잉크젯 프린터나 레이저 프린터, 또는 미세압출원리를 이용해서 형태 유지용 바이오페이퍼(생체재료 지지체)에 분사한다. 이 바이오페이퍼는 세포를 닮은 합성 폴리머다. 우리가 종이에 잉크로 프린트를 하는 것은 2차원의 평면이지만 사실 종이와 잉크도 두께를 가지고 있다. 이들 바이오페이퍼 사이에 자외선 등을 조사하여 세포들을 접착시킨다. 아직 오장육부 장기의 기능을 실현하는 것은 연구단계에 있지만 신장처럼 기능적 소단위(네프론)로 구성된 장기부터 단계적으로 현실화될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전망하고 있다. 인공 신장 프린팅의 성공은 거의 노벨상에 가까운 성과가 될 것이다. 영화 제5원소에서는 외계인의 몸 조각을 생명체 합성 장치에 넣어 아름다운 여인을 만들어 내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치는 외계인의 생체조직에서 DNA를 분석하여 생명체의 청사진을 알아낸 후, 그에 맞는 세포로 3차원적으로 프린팅해 내는 원리이다. 이제 과학 공상 영화는 더는 상상 속에 머물지 않을 것이다. 생명과학의 다각적 발전은 앞으로 신세계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미래가 기다려지는 이유이다.
  • [씨줄날줄] 순혈주의의 그늘/구본영 논설고문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패권 경쟁은 기막힌 반전을 거듭한다. 경제력과 문화적 성숙도에서 앞섰던 아테네는 강한 군사력의 스파르타에 허망하게 패배한다. 그게 끝은 아니다. 아테네가 꽃피운 그리스 문화는 나중에 로마 문화로 전승된다. 하지만 순혈주의를 고집하던 스파르타는 인구 감소로 역사의 무대에서 아예 사라졌다. “두 개의 서로 다른 사상 조류가 만나는 지점에서 가장 풍요로운 발전이 이뤄진다.” 언젠가 윤은기 전 중앙공무원교육원장의 책에서 읽었던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의 명언이다. 하긴 자연의 이치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한류와 난류가 만나는 해역에서 각종 어류가 풍부하게 번식하듯이 말이다. 역으로 말하자면 동종교배와 순혈주의를 고집하는 한 문명도, 자연도 반드시 쇠락하기 마련일 게다. 1996년 미국 동부의 한 주립대학교에서 연수할 때다. 세계적 언어학자인 놈 촘스키의 수제자 격인 젊은 교수가 재직 중이라는 얘기를 듣고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비리그 못잖은 신흥 명문인 모교 매사추세츠공대(MIT)를 지척에 두고 주립대에 뿌리를 내리다니 솔직히 이해가 안 갔다. 하지만 학생으로서 학부와 대학원, 그리고 학위 취득 후 몸담는 학교가 각각 다른 게 외려 미국 대학 사회의 대세임을 나중에 알게 됐다. 학문의 동종교배로 인한 경쟁력 저하를 막기 위한 차원임은 물론이다. 최근 한국 대학의 교수집단 동종교배 비율을 보면 서울대가 88%란다. 연세대가 76%, 고려대가 60%로 뒤를 잇는다. 미국 연구 중심 대학의 동종교배 비율은 10∼20%라고 한다. 이쯤 되면 한국 대학들의 순혈주의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혀를 찰 정도다. ‘윗물’이 이러니 ‘아랫물’인들 온전하겠는가. 요즘 서울대생 인터넷 커뮤니티인 ‘스누라이프’(SNULIFE)가 시대착오적 순혈주의 논란으로 후끈 달아오르고 있단다. 일부 서울대 졸업생들이 스누라이프의 익명 게시판에 소속 직장과 연봉을 언급한 글들이 다른 대학 인터넷 사이트에 유출된 게 불씨가 됐다. 누군가 ‘다른 대학 학부 출신 대학원생들이 관련 글을 유출했을 것’이라는 글을 올리자 상당수 ‘순수 서울대 출신’들이 ‘타 대학 출신 대학원생은 구성원으로 인정할 수 없다’며 거들면서다. 씁쓸한 풍속도가 아닐 수 없다. 타 대학 학부 출신들을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쫓아내야 한다는 철없는 주장까지 나왔다니 말이다. 어느 교수의 자탄처럼 우리 대학가 학벌지상주의가 인종주의에 버금갈 정도인가. 어쩌면 유교문화가 지배하는 한국에서는 이런 순혈주의가 더 큰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연구라고는 하지 않는 같은 대학 출신 선배에게 후배가 대체 무슨 말을 하겠는가. 우리 대학가가 노벨상을 대망하기 전에 학문의 동종교배와 순혈주의의 적폐에서부터 벗어나야 할 듯싶다. 구본영 논설고문 kby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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