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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金大中대통령 노벨평화상/ 정부 부처 표정

    ◆총리실 이한동(李漢東) 총리는 13일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소식이 전해지자 직접 청와대를 방문,축하인사를 전했다. 이택석(李澤錫) 총리비서실장 등 일부 총리실 간부들은 중앙청사 근처 식당에서 조촐한 소주 축하연을 갖기도 했다. ◆외교통상부 오는 20·21일 서울에서 열리는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가 김대통령의 노벨상 수상을 축하하는 잔치마당이 될 것이라며무척 반기는 표정이다.벌써부터 오는 12월 10일의 노벨상 시상식을위한 업무 준비사항도 점검하는 분위기였다. 이정빈(李廷彬) 외교부장관은 “이번 수상은 김대통령께서 민주주의와 인권 신장을 위해 평생 가시밭길을 걸어오면서 헌신해온 데 대한국제사회의 인정”이라고 평가하고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김대통령의 열정이 민주주의를 신장시키고 세계평화와 안정에 기여하길 바란다”고 기대했다. 외교부는 현재 노르웨이에 상주하는 외교관이 2명뿐인 점을 감안,노벨상 시상식을 앞두고 직원의 추가 파견 문제를 검토하는 등 외교업무 준비에 만전을 기하는 모습이었다. ◆통일부 한결같이 환영하는 분위기였다.일부 직원들은 노벨평화상수상 소식을 알리는 TV를 지켜보다 일제히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노벨상 수상으로 대북 포용정책과 남북 화해·협력의 시대정신이 한층 탄력을 받으리란 기대다. 박재규(朴在圭) 통일부장관은 “김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인권과 민주화를 위한 김대통령의 오랜 노력에 대한 국제적 평가”라면서 “특히 취임 이후 추구한 대북화해·협력 정책과 남북공동선언에 대한 전 세계의 지지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김대통령의 개인적 영예를 넘어 정부의 대북정책과 남북공동선언을 지지해온 우리 국민이 함께 나눠야 할 영예로 생각한다”고강조했다. 홍원상기자 wshong@
  • 13일의 금요일 증시 ‘中東악몽’

    ‘13일의 금요일’.내우외환(內憂外患)에 시달리던 증시가 중동전운(戰雲)에 또다시 떨고 있다. ‘도대체 어디까지…’.오전 한때 종합주가지수 500선이 무너지자서울 여의도 증권사 객장에 나온 투자자들은 시퍼렇게 멍든 시세판앞에서 한숨을 쏟아냈다.오후들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노벨상 수상 가능성이 나오면서 낙폭을 좁혔지만 상승세로 반전되지는 못했다. ■일주일동안 시가총액 29조원 감소 종합주가지수와 코스닥지수는 닷새째 폭락했다.종합주가지수는 전날보다 10.11포인트가 떨어진 524.60으로 마감,연중최저치를 하룻만에 바꿨다.코스닥은 3.93포인트가 떨어진 80.02를 마감돼 80선을 겨우 지켰다. 지난 한주동안 거래소는 82포인트(13.4%),코스닥은 13포인트(13.9%)가 각각 떨어졌다.시가총액은 거래소가 213조9,720억원에서 192조290억원으로 22조가 줄었으며,코스닥이 50조170억원에서 42조9,160억원으로 7조가 줄었다.일주일동안 29조원이 허공에 날아간 셈이다. ■엎친데 덮친 악재들 폭락 원인은 한마디로 대형 악재들이 한주동안 한꺼번에겹쳤기 때문이다. 기술주에 대한 실적 악화와 고유가,유로화 약세가 지속되면서 미국나스닥과 다우가 하락세를 이어갔다.이에 따라 국내 시장에서 외국인들의 삼성전자 대량 매도가 이어졌고 주가가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무너졌다.엎친데 덮친격으로 중동의 화약고가 터지면서 기술적 반등의 기회마저 박탈했다. ■반등의 열쇠는 미국증시가 쥐고 있다 최근들어 증시 전문가들은 전망을 내놓기를 주저한다.향후 증시를 섣불리 예측하기 힘들 정도로안개속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등의 ‘열쇠’는 중동사태의 원만한 해결과 미국증시가 쥐고 있다.전문가들은 다우지수와 나스닥이 각각 1만포인트와 3,000포인트를 지지선으로 버텨주느냐에 따라 향후 국내주가 향방이 결정될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대우증권 이종우 투자전략팀장은 “과거의 예를 살펴봐도 중동사태의 영향은 오래가지 않았다”면서 “지금은 미국의 영향이 큰만큼 중동사태가 해결되더라도 미국시장이 얼마나 회복되느냐에 달려있다”고 전망했다. 강선임 조현석기자 hyun68@
  • 金大中대통령 노벨평화상/ 경제계 반응

    경제계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이 경기 둔화와주가 하락 등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 경제에 새로운 활력소로 작용하기를 기대하며 일제히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재계 전국경제인연합회와 한국무역협회 등 경제단체들은 김 대통령의 노벨상 수상이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의 이미지를 개선하는데 큰힘이 될 것이라며 반겼다.무역협회 김재철(金在哲) 회장은 “인권·환경·부정부패 등 우리나라에 대한 외국인들의 왜곡된 시각을 바로잡아 우리 제품의 수출과 외국인 투자유치에 긍정적 효과를 미칠 것”이라고 기대했다. 대한상공회의소 박용성(朴容晟) 회장도 “김 대통령의 인권신장과민주화 노력,남북화해 정책을 전 세계가 추인한 국가적 경사”라면서 “남북관계의 안정과 국가 신인도 제고로 외자유치에 큰 도움을 줄것”이라고 말했다.전경련은 공식 논평을 통해 “한반도에 전쟁의 비극이 사라지고 평화통일의 기틀이 다져지는 동시에 국민들의 인권과민생복리가 증진되는 밝은 사회를 꽃피우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현대는 김 대통령의 수상을 크게 환영하는 한편 남북경협을 주도해온 정주영(鄭周永) 전 명예회장의 숨은 노력에도 의미를 부여했다.LG는 “김 대통령의 수상으로 우리나라는 평화와 화해를 상징하는 나라로 기억됐으며 국제 사회에서 위상이 한 단계 더 높아지게 됐다”고평했다. ◆벤처업계 이번 수상이 자금난으로 시달리고 있는 업계에 새로운 전환점이 되어주기를 바랐다.정희자(鄭喜子) 한국여성벤처협회 회장은“김 대통령은 그동안 여성기업인을 위한 환경조성에 많은 애를 써왔다”면서 “앞으로 벤처기업인들이 더 큰 힘을 얻어 지금의 위기를슬기롭게 극복해 나갈수 있는 기폭제로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이금룡(李今龍·㈜옥션 사장) 한국인터넷기업협회장은 “남북평화의 실현은 물론,21세기 한국의 위상을 더욱 높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며 축하했다. ◆다양한 행사 김 대통령의 수상 사실이 알려지자 각 인터넷 사이트에는 축하메시지가 쇄도했다.인터넷 광고업체 ㈜KT인터넷은 이날 오후 6시부터 아이러브스쿨,MSN,라이코스 등 국내유명 사이트 350여곳에 일제히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축하합니다’라는내용의 배너광고를 실었다.두루넷이 운영하는 포털사이트 코리아닷컴은 수상 소식이 전해진 직후,김 대통령에게 ‘president@korea.com’이란 e-메일 주소를 헌정했다. LG텔레콤은 신규 가입자에게 10월 한달동안 100분 무료통화 혜택을부여하기로 했고,삼성 인터넷서점 ‘크리센스’는 김 대통령의 저서와 김 대통령이 좋아하는 책을 15∼25% 할인 판매하기로 하는 등 이번 노벨상 수상을 이용한 다양한 마케팅 행사도 줄을 이었다. 주병철 김태균 김재천기자 bcjoo@
  • 金大中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막후 주역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13일 노벨상의 꽃인 평화상을 수상하게 된데는 국내외 ‘도우미’들의 노력과 헌신이 크게 작용했다. 김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 주요 배경이 마지막 냉전지대로 남아있는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을 향한 거보(巨步)를 내딛게 한‘햇볕정책’과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었다는 점에서 이를 성사시킨 막후 인물들을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다. 임동원(林東源) 국가정보원장은 국민의 정부 첫 청와대 외교안보수석,통일부장관,국정원장을 거치면서 대북 포용정책을 기획·입안·실행에 옮긴 주역으로 꼽힌다.대북 특사로 남북정상회담 성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박지원(朴智元)전 문화관광부장관도 일등공신이다. 황원탁(黃源卓)전 외교안보수석은 98년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 위기와 99년 서해교전 사태로 야기된 포용정책의 시련기를 외교력으로 극복하고,지금의 남북관계를 있게 한 숨은 공로자다.또 김 대통령이 역사상 처음으로 수평적 정권교체를 실현,햇볕정책을 펼 수 있게 ‘온몸을 던진’ 민주화 동지들의 공도 적지 않다.민주당 권노갑(權魯甲)·한화갑(韓和甲) 최고위원과 김옥두(金玉斗) 사무총장,청와대 한광옥(韓光玉) 비서실장과 남궁진(南宮鎭) 정무수석,민주당 최재승(崔在昇)·설훈(薛勳)·문희상(文喜相) 의원 등은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으며 언제나 김 대통령 곁을 지켰다. 외국인사들의 조력도 빼놓을 수 없다.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작고한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전 일본총리는 포용정책이 위기에 직면할때마다 김 대통령을 물심양면 지원한 ‘원군’들이다.윌리엄 페리 미대북정책조정관은 지난해 북한을 직접 방문,포용정책이 본격화될 수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또 미국의 포글리에타 주이탈리아대사,남캘리포니아대 조지 타튼교수,윌리엄 커 신부 등은 노벨상 추천과정에서 톡톡히 한몫했다. 지난해에는 제프리 톰슨 뉴질랜드 국민당 당수,게리 우다드 호주 멜번대 교수,덴 히데오 일본 참의원 등이 김 대통령을 노벨상 후보로추천,김 대통령의 국제적인 지명도를 높이는 데 일조했다는 평가다. 한종태기자 jthan@
  • 金大中대통령 노벨평화상/ 상금·메달·상장 안내

    노벨상 수상자에게는 상금과 메달,상장이 지급된다.수상을 거부하면상금은 환수되나,수상자 명단에는 기재된다. ◆상금 상금은 부문별로 똑같이 지급되고 수상자가 여럿이면 나눠갖는다.올해는 900만크로나(약10억2,500만원)씩.노벨재단의 기금 운용수익에서 나오기 때문에 액수는 일정치 않다.첫 해인 1901년 15만800크로나로 시작해 23년 11만5,000크로나로 최저를 기록한 뒤 81년 100만크로나,99년 790만크로나로 해마다 증가했다. 재단은 노벨이 헌납한 기금 3,150만크로나를 초기에는 채권에만 투자했으나 53년부터 자산 운용 방식을 다각화,수익을 늘렸고 현재 분산 투자된 기금의 가치는 19억크로나에 이른다. ◆메달 직경 66㎜,무게 약 200g의 금메달.예전에는 23k 금이었으나 81년부터 18k에 24k 도금을 한다.앞면에는 노벨의 상반신 옆모습 초상과 출생·사망 연도(라틴어)가 조각돼 있다.평화상과 경제학상만 그림 형태와 글자 배열에 약간 차이가 있다. 그림과 문구가 새겨진 뒷면은 상에 따라 다르다.평화상은 남자 3명이 어깨를 맞잡고 있는 모습과 함께 ‘Pro pace et fraternitate gentium’(평화와 인류애를 위하여)란 문구가 새겨져 있다.수상자 이름이 뒷면에 적힌 다른 상과 달리 평화상과 경제학상은 측면에 깨알같이 써있다.메달 제작도 평화상만 노르웨이에서 맡는다. ◆상장 상장은 가로 20㎝,세로 33㎝ 크기.가죽 표지에는 수상자의 이름 이니셜이 금글씨로 씌어있고,상장을 펴면 왼쪽면에는 석판인쇄 그림이,오른쪽면에는 손으로 쓴 문구가 있다. 디자인은 상의 종류에 따라,또 수상자 개인에 따라 다르다. 김주혁기자
  • 金大中대통령 노벨평화상/ 후보추천의 역사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은 14번의 도전끝에 얻은영광이다.그의 후보 추천은 인생 역정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처음으로 노벨평화상 후보에 이름이 오른 것은 87년.빌리 브란트 당시 독일 총리의 지시로 사민당 의원들 및 김대통령과 친분이 있던 외국교수들이 독재정권에 맞서 한국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한 공로를 인정,후보로 추천한 것이 인연이 됐다.이 해에는 수상 가능성도 있었다.김 대통령도 “87년 대선 때 야권후보 단일화를 위해 후보를 김영삼(金泳三)씨에게 양보했다면 수상했을지도 모른다”고 회고했을 정도다.그뒤 김 대통령은 한해도 빼놓지 않고 노벨상 후보로 추천됐지만평화상과는 인연이 없는 듯했다. 92년 14대 대통련선거에 낙선한 뒤 정계은퇴를 했을 때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그러나 그해 평화상을 공동 수상한 넬슨 만델라 당시 아프리카 민족회의(ANC) 의장과 클라크 남아공대통령 등 쟁쟁한 후보들에게 밀렸다.이들 공동수상자와 마지막까지 경합을 벌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이 때까지만해도 후보 추천 사유는 독재정권에 맞서 싸운 한국 민주주의 신장.그러나 김 대통령이 아태재단 이사장으로 일하던 95년부터는 당시 국내 야당의원들이 추천작업에 가담했다.외국인과 국내 정치권 인사들을 양축으로 한 추천서가 노벨위원회에 보내지기 시작했다.후보추천 이유도 아시아 국가간 관계증진 및 인권신장이 추가됐다. 노력도 따랐다.전년도 평화상 후보 추천자들은 자동적으로 다음 해에도 심사대상에 오르는 것이 관례지만 “매년 달라진 상황을 심사위원들에게 확인시켜야 한다”는 이유로 아태재단이나 남궁진(南宮鎭)현 청와대 정무수석,민주당 권노갑(權魯甲)·한화갑(韓和甲)최고위원등 동교계 핵심인사들이 추천작업을 주도했다. 98년 대통령에 취임한 뒤 ‘햇볕 정책’을 추진하면서 노벨상 추천이유에 금강산 관광 등을 포함,‘남북관계 증진’이 새로운 항목으로추가됐다. 99년에는 남궁 수석의 주도로 의원 107명으로부터 서명을받은 추천서를 보냈다.이에따라 여권 일각에서는 수상에 상당한 기대를 걸기도 했다. 결국 87년부터 시작한 김대통령의 평화상 도전기는 한국의 민주화아시아 국가간 관계증진,인권문제로 연결되면서,남북관계 증진 등으로 13전(顚)14기(起)를 이루며 대단원을 마감했다. 강동형기자 yunbin@
  • 金大中대통령 노벨평화상/ 역대 수상자들

    새천년 첫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김대중 대통령을 비롯,1901년 첫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앙리 뒤낭(적십자사 창립),그리고 20세기마지막 수상자 ‘국경없는 의사회’등 역대 노벨평화상 수상자들은지난 한세기 인류평화를 위해 공헌한 얼굴들이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수상 이유는 한국전쟁이후 이어져온 남북한 대결 종식과 화해.분쟁지역의 평화적 해결에 대한 공로로 주어진평화상은 양쪽지도자에게 공동으로 수여된 것이 보통이지만 한쪽 지도자만이 단독수상한 예도 있었다. 역사적인 브란트-슈토프 회담을 성사시키고 동·서독 통일과 동유럽데탕트의 물꼬를 터 71년 수상한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는 김대통령처럼 단독수상자다. 79년 수상자인 ‘빈자의 어머니’테레사 수녀의 경우는 인류를 향한박애 정신을 실천한 예다.인도와 전세계에 ‘사랑의 선교회’등을 설립,한평생을 고아와 나환자를 위해 살았다.비폭력 평화주의자 티베트의 달라이 라마(89년)와 인권·독립운동가 동티모르의 벨로주교(96년)등 압제에 저항한 독립운동가에게도 노벨평화상의 영광은 돌아갔다. 개인뿐만 아니라 단체도 평화의 사도가 되는 영예를 누렸다.77년 국제사면위원회,88년 유엔평화유지군,99년 국경없는 의사회등이 평화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노벨평화상 수상자들의 이후 삶이 상처럼 평화롭거나 만인의추앙을 받는 것만은 아니었다. 폴란드 자유노조 지도자로 대통령까지 지냈으나 최근 고독한 야권인사가 돼버린 레흐 바웬사(83년 수상),러시아 국민들로부터 러시아 추락의 ‘주범’이란 비난을 받으며 강연활동과 해외 언론 출연 등으로생활비를 벌고 있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구소련 대통령(90년 〃)에게있어 노벨상 수상은 옛추억을 되새기는 것외엔 아무런 의미가 없을듯하다. 결코 화해할 수 없을 듯한 중동평화를 위해 노력,수상 당시 갈채를받았던 중동지도자들의 경우 비참한 최후를 맞기도 했다.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78년 〃)과 이스라엘의 라빈총리(94년 〃)의 경우국내 강경파들에 의해 암살당했다.그러나 역대 수상자들의 노벨평화상 수상 이후 삶이 어떠했든지 간에 그들이 역사를 움직였고 인류평화에 기여했음은 분명한 일이다. 이동미기자 eyes@
  • 金大中대통령 노벨평화상/ 李姬鎬여사 내조

    한국의 첫 노벨상 수상자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부인 이희호(李姬鎬)여사.이여사는 지난 38년 동안 영광과 절망의 순간순간을 김대통령과 함께 해온 평생 내조자이면서 동지였다. 1922년 서울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이여사는 이화여고와 서울대사범대를 졸업하고 당시로서는 드물게 램버스대,스카렛대 등 미국 유학까지 한 신세대 엘리트 여성이었다.귀국후 YWCA총무로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던 중 국회의원 선거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시고 첫 부인과사별한 채 전셋방에서 어려운 생활을 하던 김대통령과 운명적인‘만남’을 했다.주위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김대통령의 신념과 관용,멋에 이끌려 “내가 도와야 할 사람”이라는 믿음으로 결혼을 결심했다고 회고한 바 있다. 62년 이여사와 재혼한 이후 재선,3선 의원으로 성장한 김대통령은 71년 신민당 대선후보로 선출돼 거물정치인의 반열에 올라섰으나 고(故) 박정희(朴正熙)대통령의 정적이 되면서 납치-망명-투옥-연금으로이어지는 형극의 길을 걷게된다.당연히 이여사의 삶도 암울한 시련의늪으로빠져든다.이여사는 유신의 어두운 장막이 드리워진 72년부터김대통령이 신군부에 의해 사형언도를 받은 뒤 미국 망명길에 오르던82년까지의 기간을 ‘외롭고도 잊혀진 곳에 있었던 세월’로 기억하고 있다. 김대통령이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모진 고초를 받고 있다는 전언을접하고,이여사는 몸서리치는 불면의 밤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여사는 주저앉아 있을 수 없었다.김대통령이 옥고를 치르는 동안 자식들에게 엄친(嚴親)노릇도 해야 했고,감옥에 간 동지들의뒷바라지와 남은 가족들을 보살펴야 했기 때문이다.남편이 옥중에 있을 때는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편지를 보냈다. 이여사는 김대통령이 95년 정계에 복귀한 이후에는 측근들이 감히진언하지 못하는 얘기들을 귀띔해 줬고,영부인이 된 뒤에도 신문을자세히 읽고 김대통령에게 민심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그 뿐만 아니라 여성과 장애자 등 이 사회의 차별받는 사람들에게 각별한관심과 사랑을 바쳐왔다.이여사의 이런 노력이 김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으로 결실을 맺게 됐다고 청와대 관계자들은 말했다. 이도운기자 dawn@
  • 金大中대통령 노벨평화상/ 金대통령, 노르웨이放送 회견

    “정의는 당대에 승리하지 못하더라도 역사 속에서 반드시 승리한다는 신념을 갖고 살아왔습니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13일 밤 9시40분부터 10분동안 노르웨이 국영 TV인 ‘NRK’ 및 ‘TV2’와 잇따라 전화 인터뷰를 갖고 노벨평화상 수상 소감을 ‘아름답고 의미심장하게’ 표현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노르웨이 국영방송과 인터뷰를 갖는 것은 관례라고 한다.다음은 인터뷰 내용. ◆새 천년 첫 노벨평화상 수상을 축하합니다.이 상이 대통령에게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매우 큰 영광이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앞으로 인권과 민주주의,평화를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하라는 격려의 뜻으로 받아들입니다. ◆노벨상위원회의 발표에는 대통령이 인권에 대한 흔들림 없는 신념을 갖고 있다고 했는데,인권이 오늘날 국제정치에서도 여전히 중요한개념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렇게 생각합니다.세계 여러 곳에서 인권과 자유의 좌절이 있기도하지만 긴 눈으로 보면,또 역사의 눈으로 보면 인권은 진전하고 있습니다.남아공이나 동티모르의 전례에서 보듯 전 세계가궁극적으로 인권의 존엄성을 느끼게 될 것으로 믿습니다. ◆한 인간으로서 자신을 어떻게 정의하시겠습니까. 나는 일생을 두고 믿기를,정의는 당대에 승리하지 못하더라도 역사속에서 반드시 승리한다는 신념을 갖고 살아왔습니다.‘정의 필승’을 믿는 일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역사는 현세에선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반드시 옳은 일을 하는 사람,정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을 승자로만든다는 역사의 신앙을 갖고 살아왔습니다.그런데 이렇게 상을 수상하다니 현세에서 과분한 보상을 받는 것 같습니다. ◆시상식에는 참석하실 겁니까. 기꺼이 참석하겠습니다. 김상연기자 carlos@
  • 金大中대통령 노벨평화상/ 공동수상 못한 이유

    노벨 평화상 발표전 한때 일부에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의 공동수상 가능성이 제기됐었다.6·15남북공동선언 등 평화정착 노력의 파트너가 김위원장이기 때문이다. 실제 지금까지 서로 적대관계에 있으면서 평화의 다리를 놓았다는이유로 노벨평화상을 공동수상한 예가 적지 않다.78년 안와르 사다트(이집트)와 메나헴 베긴(이스라엘),94년 이츠하크 라빈(이스라엘)과야세르 아라파트(PLO) 등 역대 공동수상이 무려 11차례나 된다. 그러나 김위원장의 경우 올해는 애초에 수상 대상이 아니었다.노벨상은 매년 2월 후보추천을 마감하기 때문에 6월 이후 주목을 받게 된김위원장은 후보에 오르지 못했던 것.비록 후보였다 해도 북한이 아직 ‘테러지원국’이란 꼬리표를 달고 있기 때문에 수상 가능성은 희박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년 이후에는 김위원장이 평화상을 탈 가능성을 배제할 수없다.최근 북·미 고위급회담처럼 평화정착 노력을 가속화해 국제사회에서 ‘불량국가’의 이미지를 벗을 경우 수상 가능성은 그만큼 높아진다.한편 북한측은 13일 밤까지 공식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김상연기자 carlos@
  • 金大中대통령 노벨평화상/ 각국정부·정상 축하메시지 쇄도

    [워싱턴 최철호특파원·베이징 김규환특파원·도쿄·파리 연합] 모리 요시로(森喜朗) 일본 총리를 비롯,각국 정부와 정상들은 13일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에 대해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크게 이바지한 공로가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며 일제히 축하 메시지를 전했다. ◆미국 김대통령의 노벨상 수상이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며 한반도민주주의 발전과 평화 안정을 위해 일해온 업적이 인정받은 것은 당연하다는 입장.국무부의 한 관계자는 김대통령이 해온 민주주의와 한반도 평화에 대한 노력이 국제사회로부터 인정받은 것이라면서,단절성을 보여오던 한국에서의 민주주의 발전과정이 계속성을 갖고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본 모리 총리는 이날 “김대통령은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을 성공시켜 남북 화해와 협력을 향한 새로운 조류를 만들었다”면서 “이번 노벨상 수상은 이같은 빛나는 업적과 한국 발전을 위해 노력해온김대통령의 신념 및 열의가 평가를 받은 것”이라고 밝혔다.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외상도“30년에 걸쳐 김대통령과 친교를 맺어온 친구로서 감개무량함을 금치 못한다”면서 “나 스스로도 한·일관계의 가일층 발전과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전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외교부의 한 관리는 “김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은 지난수년동안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긴장완화와 평화,안정을 위해 간단없이 노력한 결과”라며 “이번 수상이 앞으로 한반도 평화와 안정체제 구축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그는 “김대통령의 평화상 수상으로 이제부터 대북 포용정책을 추진하는데 걸림돌이 제거돼 완전히 정착될 것으로 본다”며 “앞으로 남북통일을 앞당기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만 천수이볜(陳水扁)총통은 “진심으로 축하한다”면서 대만과중국도 남북한의 모습을 본받아 화해를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천총통은 이어 대만과 중국의 지도자들도 지혜와 창의성을 가지고있다면서,그들도 남북한 지도자가 지난 6월에 했던 것처럼 서로의 손을 맞잡고 새로운 역사를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축하인사와 함께 김대통령은 전쟁으로 고통스러워하는 한반도의 가장 어두운 시간에 희망을 가져온 인물이라고 평했다.리오넬 조스팽 프랑스 총리는 김대통령에게 보내는 축하 메시지에서 “김대통령이 수상하게 된데 대해 기쁨과 행복을 느낀다”고 말하고 “이같은 감정은 나뿐 아니라 프랑스 정부,프랑스 모든 국민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독일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는 김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을 축하하면서,과거 한반도와 같은 분단국이었던 독일은 북한에 손을 내미는 김대통령의 노력을 관심을 갖고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khkim@
  • 金大中대통령 노벨평화상/ 한국인 수상자’빈 액자’주인 찾았다

    한국인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를 기다리며 비워 둔 채 걸려있던 교보문고 내 액자가 드디어 주인을 찾았다. 서울 종로구 종로1가 교보빌딩 지하에 있는 교보문고는 13일 저녁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이 발표된 직후 종로출입구와 광화문출입구에 걸려있던 2개의 빈 액자에 김 대통령의 초상화를 채워 넣었다. 이날 내걸린 김대통령의 초상화는 가로 29.7㎝,세로 42㎝ 크기로 김대통령의 얼굴과 상반신이 찍힌 사진을 스캐너로 읽어 스케치효과를낸 것. 교보문고는 지난 92년 6월 재개장이후 매장내 두군데 입구에 아인슈타인등 역대 노벨상 수상자들의 스케치 초상화를 담은 액자 74개를전시해 왔는데, 이중 2개는 ‘한국인 노벨상 수상자를 위해 비워뒀음(Reserved for future Korean winners)’이라는 안내문과 함께 빈 채로 전시해 왔다. 교보문고 홍보실 김정환 주임(32)은 “지난 8년간 한국인의 노벨상수상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액자를 비워뒀었다”고 말하고 “김대통령의 수상 확정으로 드디어 빈자리의 주인이 생겨 기쁘다”며 환하게웃었다. 한편서울시내 각 대형서점들은 13일 김대중 대통령의 수상 소식이알려지면서 특별코너를 설치하고 김 대통령 관련 서적 확보에 들어가는 등 분주하게 움직였다.교보문고의 경우 두 개의 전시대를 마련해‘김대중의 3단계 통일론’(아태평화재단),‘김대중 옥중서신’(한울),‘나의 삶 나의 길’(산하) 등 김 대통령의 대표적인 저서를 비롯해 영부인 이희호 여사의 ‘내일을 위한 기도’(여성신문),‘나의 사랑 나의 조국’(명림당) 등 이희호 여사의 저서,강준만 교수의 ‘김대중 죽이기’(개마고원) 등 관련서적 60여종을 내놓았다.종로서적도서둘러 특별 전시코너를 마련했으며 골드북닷컴,을지서적, 씨티문고등 시중 대형서점들도 미리 확보해놓은 서적들을 판매대에 올리는 등분주한 모습을 보였다. 김주혁기자 jhkm@
  • 김대통령 노벨평화상/ 사선넘어 민족화해의 물꼬 트다

    온갖 풍상(風霜)과 비운(悲運),그리고 좌절과 고난….흔히들 다섯번에 걸친 죽을 고비와 6년간의 감옥살이,55차례의 연금,10년의 망명생활로 부른다. 그런 고통의 세월을 견디어,‘인동초’로 불리는 섬마을 소년이 한민족으로는 처음으로 노벨상을 받았다.그것도 세계 평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은 자랑스런 평화상을.민주주의와 인권,한반도의 평화를향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긴 여정을 세계가 노벨평화상이라는값진 명예로 보답한 것이다. ◆유년시절과 정치입문 제 79대 노벨평화상의 주인공인 김 대통령은1925년 12월3일 한반도 서남단의 작은 섬 하의도에서 가난한 농부였던 아버지 김운식(金雲植)과 어머니 장수금(張守錦) 사이의 네형제중둘째로 태어났다.그는 5년제였던 목포상업학교를 43년 졸업한 뒤 일제의 강제징집을 피하기 위해 해운회사에 취직한다.해방되던 45년 해운회사를 차려 불과 4∼5년만에 화물선 15척을 소유하는 상업수완을발휘,목포신문사까지 인수하는 촉망받는 청년실업가로 급성장하게 된다. 학창시절,웅변에 능했던 그는 정치에 뜻을 두고 54년 해운노조의 지지를 받아 3대 민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하나 낙선의 고배를 마신다.어찌보면 불운으로 점철된 그의 정치역정은 이 때 이미 예고되어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30대 초반이었던 그는 두번의 실패 끝에 61년 5월 강원 인제 보궐선거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되나,겨우 사흘만에 5·16 쿠데타로 국회가해산되는 바람에 당선 무효,정치규제라는 불운을 맞게된다.박정희(朴正熙)가 대통령에 당선된 63년 민주당 대변인이었던 그는 고향인 목포로 지역구를 옮겨 6대 의원에 당선,정연한 논리와 합법적인 의정투쟁으로 주목받는 정치인의 길을 걷는다. 그의 정치인생에서 커다란 절정중 하나는 라이벌인 김영삼(金泳三)전 대통령을 꺾고 40대에 제1야당인 신민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된 일.끝내 박정희(朴正熙)후보에게 패했지만,그의 정치적 위상은 당선에버금갔다. ◆정치적 고난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집권층의 탄압을 받게되는 고난의 신호탄이기도 했다.대통령 후보로 기자회견에서 언급한 통일정책과 남북한 동시 유엔가입 등 한반도외교정책은 뒷날 탄압의 빌미를제공하고,그 때부터 덧칠해진 ‘정치조작’은 그를 평생 괴롭히는 낙인으로 붙어다니게 된다. 국회의원 지원유세 도중,트럭 암살기도로 다리에 고관절 장애를 입었고,유신철폐를 주장하다 73년 여름에는 도쿄 납치사건으로 죽을 고비를 넘긴다.79년 이른바 ‘서울의 봄’에는 민주화를 이루려다 신군부의 집권으로 군사법정에서 내란음모 혐의로 급기야 사형을 언도받게 된다.당시 수형생활 도중 부인 이희호(李姬鎬)여사와 가족들과 2년여동안 나눈 엽서는 뒷날 ‘김대중의 옥중서신’으로 출간돼 수감문학의 백미(白眉)로 꼽힌다. 국제여론과 미국 정가의 압력으로 특별감형된 그는 가족과 함께 미국 망명길에 올라 미국내 ‘한국인권문제연구소’를 개설했고,하버드대 국제문제 연구소 객원연구원 생활을 하면서 ‘대중참여 경제론’을 완성한다. 85년 2월8일 미 망명생활을 청산하고 귀국길에 오른 그는 미 각계지도자 20여명과 트랩에서 내리자마자 곧바로 연행돼 가택연금 상태에놓이게 되나 김영삼 전대통령과 민추협 공동의장을 맡아 민주화운동을 주도한다.87년 6월항쟁으로 직선제를 쟁취했으나 야권후보단일화실패로 대선에서 패했고,5년뒤에는 3당합당으로 여당후보로 출마한김영삼 전대통령에게 패배,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영국 케임브리지대로유학길에 오른다. ◆수평적 정권교체와 IMF극복 통일방안 연구를 하다 93년 귀국,아태재단을 설립한 그는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 승리하자 95년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정계에 전격 복귀한다.이후 IMF 파고에서 ‘준비된대통령’이란 구호로 당선돼 헌정사상 첫 수평적 정권교체의 위업을달성,3전4기의 신화를 낳는다. 그러나 당선 다음날부터 ‘6·25 이후 최대 국난’인 IMF위기와 싸운다.외자유치를 위해 당선자 시절부터 외국인들을 만났고,취임 이후에도 그런 생활의 연속이었다. 200만명에 육박한 실업자들이 노숙자로 변했고,경제위기는 계속됐다.하지만 그의 헌신성은 사상 유례없는 ’금모으기 운동’을 이끌어냈고,금융·기업·공공부문·노사 등 4대 개혁을 강도높게 추진했다.또취임사에서 대북 3원칙을 천명하고,북한에 대한화해·협력정책을 일관되게 폈다. 하지만 소수정권의 한계는 취임초부터 정치불안정이 계속됐고,원내 안정의석 확보의 필요성을 느껴 민주당을 창당했으나 지난 4월 총선에서도 원내 제1당이 되지못해 여전히 정치적 어려움에봉착해 있다. 하지만 그의 열성적인 노력은 IMF 구제금융에 들어간 지 1년반만에약속대로 외환위기를 극복했고,현재 외환보유고는 1000억달러에 육박하고 있다.또 98년말 무역흑자가 사상 최고액인 400억달러를 돌파했고,국제신용기관의 한국의 신용등급은 상향조정되기에 이른다.실업자수도 80만명 선으로 줄어들었다. ◆남북정상회담 대북 햇볕정책 또한 결실을 맺기 시작해 금강산 관광에 이어 지난 6월에는 역사적인 평양 남북정상회담이 열려 ‘6·15공동선언’이라는 남북관계 대장전을 마련했고,남북이산가족 상봉,시드니 올림픽 공동 입장,비전향 장기수의 북송,경의선 복원공사 착수,남북 장관급 및 국방장관 회담으로 발전시켰다.한반도에 더이상 전쟁이 일어날 수 없도록 만들었다. 20세기 마지막 냉전지대인 한반도에화해와 협력의 물꼬를 튼 것이다.그가 평생을 준비해 온 3단계 통일정책의 1단계 완성을 향해 숨가쁜 걸음을 재촉하고 있는 셈이다. 양승현기자 yangbak@
  • 金大中대통령 노벨평화상/ 남북관계 전망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노벨상 수상으로 대북 포용정책이 더욱 탄력을 받고 진전되게 됐다.한반도 평화정착에 대한 포용정책의 기여와국제사회의 지지를 공식 확인,정책 수행을 위한 보다 좋은 조건을 확보한 셈이다. ◆대내외적 영향 우선 대내적으로 대북정책 수행의 입지 강화가 예상된다.대북정책 수행과 관련,김 대통령의 지도력 강화와 국민적 합의기반의 확대를 의미한다.국제사회의 지지확인을 통해 대북 포용정책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난과 비타협적인 태도의 해소도 기대된다. 자신감을 바탕으로 보다 적극적인 대북정책에 대한 국민적 합의도출노력도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국회 남북관계 특위 등을 통해 여야가 충분히 상의하는 방식으로 대북정책이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국제적으론 “남북평화·화해 흐름은 바꿀 수 없는, 또 바꾸어서도안되는 기조”임을 선언한 것과 다름없다.이같은 흐름은 북한의 국제사회 진출을 위한 분위기 조성과 각 국가들의 협조확대 도출에도 일조할 것이다. ◆대북정책 전망 이같은 상황속에서 정부의 대북정책은 기존 화해협력의 틀을 유지하면서 점진적으로 확대·강화돼 나갈 전망이다.‘평화유지’에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화해 프로그램’의 이행단계로의 진입을 뜻한다.각 분야에 걸친 ‘포괄적 접근’도 더욱 속도를 낼전망이다. 특히 남북교류협력 확대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낡은 법과 제도적 장치를 비롯한 각종 관행 및 냉전적 사고의 틀을 벗겨나가는 작업도 우호적인 여론에 힘입어 보다 탄력을 받을 수 있게 됐다. ◆통일방안 추진 김 대통령의 지적대로 통일방안이나 주한미군 문제등 주요 남북현안에 대한 국민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작업이 진전될것임을 의미한다.집권 하반기 동안 ‘국가연합단계’란 통일의 집을짓기 위한 ‘지붕을 올리는 작업’이 큰 틀에서 가속화될 것임을 뜻한다. 또 6·15선언이후 4개월여동안의 남북협상과 신뢰확대를 바탕으로일회성 행사보다는 교류협력을 제도화하고 정례화할 수 있는 차원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노력도 예상된다.경제공동체 실현을 위한 각종합의 등 제도적 장치 마련을 비롯,민간차원의 경협 촉진도 예상된다.정부 한 당국자는 “당면 현안을 풀어나가는 한편 전체적인 측면에서바탕을 다지는 작업이 병행돼 나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석우기자 swlee@
  • 金大中대통령 노벨평화상/ 각계인사 반응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 소식이 전해지자 각계 인사들은 ‘민족적 경사’라고 일제히 환영하면서 남북관계 발전에도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를 기대했다. ◆강만길(姜萬吉·67) 민화협 상임의장·고려대 명예교수=노벨평화상은 세계 평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하는 것이므로 김 대통령의 수상은 민족적인 경사다. 남북의 평화와 공존을 위한 노력을 전세계가 인정해준 것으로 봐야한다.현 정부가 있는 한 남북관계는 더 발전할 것이다. 남북간의 화해와 협력,평화를 위해 더욱 노력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것이다. ◆이기준(李基俊·61) 서울대 총장=김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으로김 대통령과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이 올라간 만큼 세계화의 무한경쟁 격류 속에서 민족과 국가의 방향타를 잡아가는 국가수반으로 책무는 더 무거워지리라 본다. ◆정원식(鄭元植·72) 전 총리=김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은 대단히 축하받을 일이다.이번 수상은 남북관계를 화해 무드로 이끈 공로를 인정받은 것으로 향후 남북관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기대된다. 수상을 계기로 남북관계의 화해 무드는 더욱 굳어질 것으로 본다. ◆김창국(金昌國·60) 대한변호사협회장=김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온 국민이 기뻐 할 일이다.50년간 진전이없던 남북의 벽을 허물고 새천년 평화의 장을 연 대통령의 역사적 업적이 평가를 받은 것 같다.김 대통령이 세계평화에도 기여하기를 바란다. ◆김동완(金東完·56)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노벨평화상은 온갖역경을 딛고 일어선 대통령과 우리 민족에게 주는 영광이다. 분단의고통을 치유하는 큰 약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노벨평화상을 받기까지특별히 개인이 받은 고통과 우리 민족이 받은 수난이 있었음을 잘 알기에 이번 수상이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일구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이종훈(65) 중앙대 총장=일본에서는 벌써 노벨상을 수상한 사람이9명이나 되는데 우리나라가 이제서야 노벨상을 받는 것이 조금 늦은감은 없지 않다.이제 우리 민족도 노벨상 수상국가라는 자긍심을 갖게 돼 자랑스럽다.김 대통령이 인권과 민주화를 위해 평생 살아온 분이라는 점에서 이번 수상은 그 결실이라고 본다. ◆이석연(李石淵·46) 경실련 사무총장=이번 수상은 남북관계에서 정부가 북한에 끌려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떨쳐버리고 국내 정국 현안에 대해서도 포용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갖는 계기가될 것으로 본다.대북관계에서도 국내 보수세력들이 우려하는 점까지포용하면서 북한문제에 보다 여유롭게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다만독선에 빠지거나 국내 정치에 정략적으로 이용하려 한다면 곤란하며아무리 노벨상을 받더라도 내치에 실패한 지도자는 국민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이상훈(李相薰·67) 재향군인회장=김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것은 반만년 우리 민족사에 큰 획을 긋는 쾌거이며,이번 수상을계기로 이 땅에 진정한 자유와 평화가 정착되기를 기원한다.하지만아직도 북의 군사력 증강이 지속되고 있으므로 군사적 긴장완화 조치가 있을 때까지 안보태세에 한치의 허점도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단병호(段炳浩·51)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노벨상 수상은개인의 영광이전에 민주주의와 통일을 향한 국민의 투쟁과 희생의결과로 본다.노벨상 수상이 사회발전에 좋은 영향을 끼쳐 국민의 기본권 보장과 민주주의 발전,빈부격차 해소 등에 큰 진전이 있어야 한다. 노벨상 수상자가 이끄는 국민의 정부에서 구속·수배 노동자 문제등 인권유린과 민권탄압이 더 이상 계속돼선 안된다. ◆김봉우(金奉雨·51) 민족문제연구소장=남북관계의 평화적 해결 노력은 어떤 관점에서 봐도 잘한 일이지만 대일관계나 내치 문제는 실책이 더러 눈에 띈다. 일본의 전후 사과와 배상문제 등을 당당하게 대응했으면 한다. 조태성 윤창수기자 window2@
  • 金大中대통령 노벨평화상/ 시민·시민단체 반응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새천년 첫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자국민들은 “민족의 큰 경사”라며 환호했다.시민들은 노벨평화상 수상이 남북 화해와 통일을 앞당기는 밑거름이 되길 바랐으며,경제가호전되도록 내치에도 더욱 신경써주길 주문했다. 13일 오후 6시 김 대통령의 수상 소식이 TV 속보로 방송되자 서울역과 강남고속버스터미널 등 대합실과 광화문,남대문,강남 네거리 등서울시내 곳곳에서는 많은 시민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TV나 뉴스속보판을 지켜보며 낭보를 반겼다. 한화그룹은 공식 발표가 나온 직후 김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을축하하기 위해 15분여 동안 서울 남산 교육과학연구원(옛 어린이회관) 앞에서 1,000여발의 폭죽을 터뜨려 가을 밤하늘을 화려하게 수놓았다. 최근 북한에 있는 오빠의 생존을 확인하고 상봉을 애타게 기다리는서옥희(徐玉熙·57·서울 도봉구 방학동)씨는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났을때 만큼 감격적”이라면서 “노벨평화상 수상을 계기로 경제가 빨리 호전되도록 내치에도 더욱 신경을 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구 산격초등학교 교사 최석민(崔碩珉·33)씨는 “김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은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것은 물론,우리나라에 대한 자긍심을 한층 고취시키는 산교육이 됐다”면서 “학생들에게 21세기 세계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더 큰 일꾼이 돼 주도록 당부하겠다”고 말했다. 연세대 식품공학과 3학년 오승현(吳承鉉·25)씨는 “우리나라의 대외 이미지도 평화로운 나라로 바뀌게 돼 경제에도 도움을 줄 것”이라면서 “이번 수상이 다른 분야에서도 노벨상을 받게 되는 계기가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시민단체들도 김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이 남북 화해와 통일을 향한 밑거름이 되길 바랐다. 경실련 통일협회 차승렬(車承烈) 부장은 “세계가 우리 민족의 통일에 대한 염원과 노력을 인정해 준 것이며 우리나라가 동북아와 세계평화에 일정 부분 책임지는 나라로 거듭 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인권운동사랑방,앰네스티 한국본부 등 73개 인권단체로 구성된 인권공대위 조영임(趙英壬·여) 간사는 “노벨평화상은 우리의인권이 개선됐음을 입증하는 것”이라면서 “대통령은 여기에 안주하지 말고인권법 제정,국가보안법 개폐 등 인권문제 해결에 더욱 노력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환경운동연합은 성명을 통해 “김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은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지구상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냉전을 극복하고 평화와 화해,공존의 토대를 마련한 점 등이 감안된 것 같다”면서 “수상이 자연과 인류의 평화 및 공존을 실현하기 위한 출발점이 되기를 기원한다”고 밝혔다.실향민촌인 강원도 속초시 청호동 아바이마을 주민들은 김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 소식이 전해지자 이산가족 상봉기회가 더욱 확대될 것으로 기대하며 환영했다. 전국종합·이창구 이송하 안동환기자 window2@
  • 金大中대통령 노벨평화상/ 朴晙瑩 청와대대변인 문답

    박준영(朴晙瑩) 청와대 대변인은 노벨평화상 발표 40여분만인 13일저녁 6시43분쯤 기자들에게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수상 소감을 전한 뒤 기자들과 일문일답을 가졌다. ◆평화상 수상이 향후 국정운영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는가. 국정운영과 평화상 수상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대통령께서는 그동안우리 경제가 어려웠을 때 만난을 무릅쓰고 극복을 위해 노력하셨고이 땅에 민주주의와 인권이 더 확산되도록 노력하셨다.그리고 지금우리나라는 아직도 경제를 건전하게,안전하게 정착시켜야 할 문제가남아 있다.대통령이 노벨상을 수상하신 것은 국가적으로,개인적으로영광이지만 국정운영과는 관계가 없고 묵묵히,담담하게 국정을 수행해나갈 것이다. ◆대통령이 국민에게 직접 소감을 밝히거나 기자회견을 할 계획이 있는가. 적절한 시기에 말씀하실 기회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노벨상 발표 순간 대통령의 표정은 어떠했나. 담담한 표정이셨다.대통령께서는 TV를 통해 수상결과를 아시게 됐다.대통령께서는 오늘 일과를 끝내시고 바로 관저에 도착하셔서 이희호(李姬鎬) 여사님과 함께 TV를 시청하셨다. ◆노벨상 위원회로부터 사전에 통보가 있었나. 전혀 없었다. ◆김대통령은 노벨상 발표후 누구와 무슨 말을 나눴나. 이여사님과 간단한 말씀을 나누시고 바로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로부터 축하전화를 받으셨다.그리고 이한동(李漢東) 총리와 청와대 비서실장 및 수석비서관들,경호실장,국정에 관여하신 분 중 축하하는 인사들이 관저에 가 축하인사를 드렸다. ◆상금은 어떻게 사용할 계획인가. 아직 아무런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나중에 밝히겠다. 김상연기자 carlos@
  • KBS’열린음악회’ 金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특별생방송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에 발맞춰 KBS는 일요스페셜 ‘노벨평화상 100년,20세기 희망의 증언’과 ‘김대중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기념 열린 음악회-평화의 대합창’을 긴급 편성해 방송한다. 먼저 ‘…희망과 증언’(오후 8시)은 노벨평화상이 갖는 의미를 집중 조명한 다큐멘터리다.20세기는 물질 문명이 급속도로 발전한 과학과 기술의 시대였다.인간의 삶의 질이 급속히 높아졌지만 동시에 두차례의 세계대전 등 전쟁과 폭력으로 많은 인명이 희생된 세기이기도하다. 때문에 물리,화학,문학 등 7개 분야 노벨상 가운데에서도 평화상은 가장 의미있는 상으로 평가되고 있다.더욱이 김 대통령의 수상은 20세기의 잘못된 역사를 청산한 새 천년의 첫 노벨평화상 수상이라는 데 큰 의미가 있다. 1901년 첫 노벨평화상 수상자는 국제 적십자사를 창설한 앙리 뒤낭이었다.반전·평화운동을 펼친 안드레이 사하로프 박사,동서 냉전 대결구도를 청산하는 데 공로를 세운 빌리 브란트 총리 등의 행적을 통해 전쟁과 대결을 청산하기 위한 인류의 노력을조명한다.또 테레사수녀,슈바이처 박사,국경없는 의사회의 활동을 통해 생명의 존엄성을지키려는 인간의 의지를 알아본다. 1980년대 이후에는 아웅산 수지,달라이 라마 등 제3세계에서도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나오고 있어 이 상의 의미를 더욱 높여주고 있다.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전운에 쌓여있는 시점에서 ‘인류의 평화’의참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본다.‘…평화의 대합창’은 녹화방송으로 진행됐던 ‘열린음악회’를 김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기념해 20분 늘려 80분 동안 특별 생방송한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S홀에서 이날 오후 5시 40분부터 진행될 이번 공연에는 이미자,조영남,인순이,양희은,송창식 등 매머드급 가수들이 총출연한다.이외에도 성악가 김동규,4인조 여성그룹 핑클,5명의개그맨으로 구성된 그룹 틴틴파이브 등이 출연해 ‘열린음악회’를온 국민이 즐길 수 있는 축하무대로 만들 예정이다. 이 프로그램의 백미는 ‘축하 사인판’이다.제작진은 서울역 광장,대학로 마로니에 공원,광화문 사거리 등 3곳에 축하 사인판을 마련해국민들이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축하하는 메시지를 적을 수 있는 장을 마련한다는 복안이다.생방송 도중 현장을 연결,국민들의 반응을 듣고 노래공연도 펼칠 계획이다.이외에도 프로그램 중간에 KBS1의 대하사극 ‘태조 왕건’에 출연하는 서인석,김영철,최수종,염정아 등 6명의 출연진이 나와 연예인 대표로 축하노래를 함께 부른다.제작진은 현재 박찬호와 시드니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들을 대상으로 출연을 섭외중이다.방청을 원하는 사람은 TV하단에 자막으로 나가는 전화번호로 신청을 하면 된다.(02)761-1671∼2. 전경하 장택동기자 lark3@
  • 金大中대통령 노벨평화상/ 숫자로 본 역대 노벨상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13일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노벨평화상수상자로 선정돼 그동안 한국인들이 느껴온 ‘갈증’을 씻었지만 아시아인의 수상은 여전히 ‘하늘의 별따기’다. 지금까지 노벨상을 받은 아시아인은 김대통령을 포함해 23명. 1901년 노벨상 제정이후 모두 670여명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역대 수상자 가운데 미국이 242명으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영국 90명 ▲독일 70명 ▲프랑스 48명 ▲스웨덴 30명 ▲스위스 20명 ▲러시아(구 소련) 17명의 순으로 나타났다.반면 아시아인은 전체의 3%를 겨우 넘는 수준. 아시아 국가 가운데는 일본이 9명이고 ▲인도 4명 ▲중국 3명 ▲동티모르 2명 등으로 나타났으며 베트남 티벳 미얀마 파키스탄이 1명씩노벨상을 안았다. 아시아인 수상자 중 평화상과 물리학상이 각각 7명으로 가장 많았고이어 문학상 4명,화학상 2명,의학상과 경제학상 1명 순이었다. 아시아인으로 처음 노벨상을 받은 이는 1913년 문학상을 받은 인도의시성(詩聖) 타고르였다.하지만 타고르의 수상에는 인도를 식민통치했던영국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져 순수한 아시아인수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지적도 있다. 이들 두 사람을 제외하면 지난 49년 물리학상을 받은 일본의 유카와히데키(湯川秀樹)가 최초의 아시아인 수상자로 기록될만 하다. 노벨상 중에서도 꽃이라 할 수 있는 평화상의 첫 수상자로는 73년 레둑토 월맹 총리가 헨리 키신저 미국 국무장관과 함께 선정됐으나 수상을 거부해 이듬해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일본 총리가 대신 영광을 차지했다. 임병선기자 bsnim@
  • [한반도를 평화 중심지로](1)수상 배경과 의미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제79대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다.그것은 단순히 개인적,혹은 국민적 ‘영광’에 그치지 않고 다방면에걸쳐 ‘변화’를 가져올 단초이다.수상 이유로 조명해 본 김 대통령의 사상과 국정철학,비전 등을 시리즈로 살펴본다. 김대중 대통령은 지난 99년 7월 ‘미국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라델피아 자유메달을 수상했다.이에 앞서 98년에는 유엔 인권협회가 수여하는 인권상을 받았다.모두 평화의 기초가 되는 민주주의와 인권신장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서다.국제사회에서 김 대통령은 실제로 민주주의와 인권신장의 지도자로 인정받고 있다. ◆인권 신장 올 노벨평화상은 김 대통령에 대한 국제사회 평가의 완결판이다.민주주의와 인권 신장 위에 20세기 마지막 냉전지대인 한반도에 평화 기운을 움트게 한 공로다.냉전체제에 의해 유린된 인권과좌절을 거듭한 민주주의를 소중히 가꾸고,크게 꽃을 피울 토양을 생명의 위협을 느껴가면서 마련한 때문이다. 노벨위원회도 수상 이유에서 이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실제 김 대통령은여러차례의 사면·복권을 통해 사형수를 감형하고이른바 ‘양심수’와 국가보안법 관련 수감자도 석방했다. 지난 9월초에는 남파간첩 등 사상범인 비전향 장기수 72명을 그들의 희망대로북송하기도 했다. ◆민주주의 실천 김 대통령은 취임한 뒤에도 국내는 물론 아시아지역의 민주주의와 인권 신장을 위해 끝없이 헌신해 왔다. 김 대통령은 임기중 달성할 5대 국정지표 가운데 첫 목표로 민주주의와 인권신장을 꼽았다.국내의 비판 속에서도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국정을 운영하려는 노력을 계속했고,또 자신을 탄압했던 군사정권 지도자들을 용서함으로써 ‘역사와의 화해’를 시도했다.또 기회 있을때마다 아시아의 민주주의 확산을 위해 심혈을 기울여왔다. 유엔 밀레니엄 정상회의 등 국제회의에서 연금중인 미얀마 아웅산 수지여사의 자유로운 활동을 위해 앞장섰고,한·일 정상회담 때도 미얀마 정부가 연금중인 수지 여사와 대화에 나서도록 한·일 두나라가 공동으로 촉구한다는 합의를 이끌어 내기도 했다. 특히 김 대통령이 재야인사였던 시절,리콴유 전싱가포르 총리 사이에 벌어진 ‘아시아의 민주주의 가치’ 논쟁은 김 대통령의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역설적으로 반증하는 유명한 일화로 꼽힌다.민주주의는 지역·인종·피부색과 관계없는 보편적 가치로,아시아에도 민주주의에 대한 오랜 전통을 갖고 있다는 논지를 폈었다. ◆대북 햇볕정책 “이제 한반도에 냉전이 종식되리라는 희망을 가질수 있게 됐다”는 게 노벨상위원회가 햇볕정책에 대해 내린 최종 평가다.남북정상회담이 그 기폭제가 되었음은 두말할 나위도 있다.그러나 햇볕정책은 탄탄대로만을 걸어온 것은 아니다.취임 이후 동해 잠수정 침투사건-서해교전-금강산 관광객 억류사건 등으로 숱한 좌초위기를 맞았다.금강산 관광객 억류사건으로 여론이 서서히 비판적 시각으로 들끓기 시작했고,남북차관급 회담이 결렬되는 등 난관에 봉착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 대통령은 늘상 얘기한 대로 ‘인내심을 갖고’ 햇볕정책을 추진,지난 6월 분단 55년만에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이는 한반도 냉전체제 해체의 물꼬를 트는 동력으로 작용,북한 조명록(趙明祿) 차수의 방미로 이어졌고,급기야 북한과 미국이 적대관계를 청산하는 데 합의하기에 이르렀다. 여기에 북한과 일본의 관계개선이 눈앞의 현실로 다가오는 등 한반도 새로운 질서가 태동중인 것이다. 양승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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