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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벨의학상 마셜박사는 ‘윌’ 광고모델

    노벨 의학상 수상자 배리 마셜 박사가 한국야쿠르트 광고 모델로 활동 중인 것으로 밝혀져 눈길을 끌고 있다. 노벨상 수상자가 광고 모델로 등장한 한국야쿠르트는 ‘마셜 특수’를 톡톡히 누릴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야쿠르트 관계자는 3일 “배리 마셜 박사가 지난 2002년 5월부터 지난 5월까지 3년간 기능성 발효유 ‘윌’의 모델로 출연했다.”며 “마셜 박사와의 광고 계약 만료기간은 내년 6월30일”이라고 말했다. 한국야쿠르트 관계자는 “현재는 윌 광고가 중단됐지만 마셜 박사의 광고를 조만간 재개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나 “계약 금액은 밝힐 수 없다.”고 덧붙였다. 당시 광고는 한국과 마셜 박사의 호주 연구실에서 촬영됐다. 마셜 박사는 이에 앞서 지난 2002년 4월 한국야쿠르트의 초청으로 방한,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은 위염·위궤양뿐만 아니라 위암도 유발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강연하기도 했다.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 “한국IT 과제는 ‘라스트 인치’ 기술”

    “최근 벨연구소에서 상대방의 냄새, 느낌 전달이 가능한 휴대전화 기술개발을 끝냈다. 곧 상용화를 거쳐 시장에 내놓겠다.” “한국IT의 과제는 사용자가 키보드 없이 PC와 호환하는 ‘라스트 인치(last inch·최단 PC 호환거리)’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노벨상 수상자 10여명을 배출한 벨연구소의 김종훈(45) 사장은 13일 대한상의 주최로 서울 삼성동 그랜드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열린 조찬 간담회에서 ‘IT기술이 산업 및 사회문화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주제강연을 통해 미래 모바일 기술을 제시하고, 한국IT의 향후 과제를 지적했다. 벨연구소는 세계적 통신장비업체인 루슨트테크놀로지스 산하 연구소이며, 김 사장은 지난 4월 취임 이후 첫 방한했다. 김 사장은 “한국은 브로드 밴드를 성공적으로 구축, 현재 IT 넘버원 국가가 됐으며 사용자 응용(어플리케이션) 기술도 세계적 수준”이라면서 “다음 과제는 PC와 사용자가 호환하는 등의 ‘라스트 인치’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전에는 브로드 밴드를 기반으로 얼마나 멀리 네트워크를 연결하는가와 관련한 ‘라스트 마일(last mile)’이 화두였으나 앞으로는 이용자가 키보드 없이 구두로 PC와 호환하는 ‘라스트 마일’ 기술 구현이 미래 IT의 지향점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벨연구소의 연구사업과 관련,“상대방이 있는 곳의 냄새를 맡는 휴대전화, 머리카락 굵기의 마이크로폰, 눈동자를 따라 움직이는 나노 렌즈 등의 나노 기술 분야를 적극적으로 발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이는 영화 ‘스타트랙’에 나오는 것처럼 ‘컴퓨터’를 외치면 PC에 전원이 들어오고 키보드를 입력할 필요없이 말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 사장은 1992년 비동기 전송방식(ATM) 통신시스템을 생산하는 ‘유리시스템즈’를 설립,98년 루슨트에 10억 달러를 받고 매각하면서 성공적인 재미 벤처사업가의 신화를 남겼다.정기홍기자 hong@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금호아시아나그룹 (2)지분·경영권 ‘교통정리’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금호아시아나그룹 (2)지분·경영권 ‘교통정리’

    금호아시아나그룹은 ‘형제경영’의 모범을 보이고 있는 기업이다. 최근 두산그룹이 형제간 분쟁에 휩싸이는 등 재계 일각에서 ‘피도 눈물도 없는’ 친족간 지분다툼을 벌이고 있는 것과 사뭇 대조적인 모습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잡음없는 형제경영은 박인천 창업주 회장이 생전에 그룹경영 원칙을 세우고,2세들이 이를 충실히 따른데서 비롯됐다. 박 회장은 2세들의 지분 분배와 관련해 ▲여러 사람이 관여하면 분란이 생기기 쉬우므로 남자들에게만 상속하고 ▲4자(5남 가운데 4남 종구씨를 제외한 성용·정구·삼구·찬구씨)합의 경영 형태로 형제간 합의아래 회장을 선임하고 ▲주요 사안에 대해서도 4자 합의가 최우선이지만 합의가 안되면 다수결 원칙에 따르고 그래도 결정나지 않으면 가장 손윗사람이 결정권을 갖는다는 원칙을 세웠다. ●“동생에게 물려주겠다” 1984년 그룹 총수에 취임한 고 박성용 명예회장은 평소에도 입버릇처럼 “동생에게 자리를 물려주겠다.”며 형제경영 실천의지를 보였다. 박 명예회장의 말에 반신반의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그는 실제로 65세가 되던 1996년 그룹창사 50주년을 맞아 동생 정구 회장에게 ‘대권’을 물려줬다. 이후 정구 회장이 65세이던 2002년 폐암으로 갑작스레 세상을 뜨자 3남인 삼구 현 회장이 회장직을 물려받았다. 결국 그룹의 두 형제는 65세에 동생에게 회장직을 물려주는 전통이 우연히 만들어진 셈이다. 올해 한국 나이로 61세인 삼구 회장이 65세가 되는 2009년에 회장직을 4남인 찬구(58) 금호석유화학 부회장에게 넘겨줄지 아직 미지수다. 그러나 대부분의 그룹 관계자들은 박 회장이 동생 찬구 부회장에게 회장직을 이양하는데는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재계 10대 기업으로 키워내 성용 명예회장은 박인천 창업회장의 49재를 지낸 1984년 8월3일 제2대 그룹 회장으로 조용히 취임했다. 선친이 타계한 지 얼마되지 않은 탓도 있지만 성격대로 요란한 취임행사나 이미지 구축을 위한 경영전략 발표도 일절 갖지 않았다. 서강대 교수로 재직했던 박 명예회장은 일찍부터 그룹 경영을 자문해 왔다. 그러다가 1973년 10월 부친의 ‘명령’에 따라 교단을 떠나 금호실업 사장으로 본격적인 경영참여를 시작했다. 이후 1979년 10월 그룹 부회장을 거쳐 10년만에 그룹 총수를 맡게 된 것이다. 성용 회장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경영이론에 밝은 ‘총수’였다. 미국 예일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버클리대에서 조교수로 일했다. 당시 3회 이상 논문 게재시 노벨상 수상도 가능하다던 세계적인 논문 권위지인 ‘인터내셔널 이코노믹 리뷰’에 두 차례에 걸쳐 논문이 실리는 등 미국에서 계량경제학자로 왕성한 연구활동을 벌였다. 그러다가 박정희 대통령 당시 해외 고급두뇌 유치정책에 따라 1968년 귀국행 보따리를 쌌다. 성용 회장은 부친의 권유로 정부에 몸담게 된다. 창업주 회장이 버스조합 이사장으로 있으면서 요금인상 문제로 당시 알고 지내던 이후락 청와대 비서실장과 김학렬 경제수석을 만나 성용 회장을 소개했고 그 자리에서 비서관으로 채용케 했다. 그는 대통령 경제비서관, 부총리 특별보좌관으로 재직하다 1971년 평소 원해 왔던 학계로 다시 옮겼다. 서강대 교수로 재직하며 부총리를 지낸 남덕우 전 총리, 이승윤 전 부총리 등과 함께 경제학계의 탄탄한 학맥인 ‘서강학파’를 형성했다. 이 때 교단에서 만난 제자들을 회사에 입사시키기도 했다. 박상환 금호생명 부사장 등이 박 명예회장의 ‘애제자’들이다. 이러한 박 명예회장의 독특한 경력은 당시 재계의 2세 경영인 중에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런 ‘아웃사이더’로서의 삶이 오히려 그룹을 경영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는 광범위한 인맥들을 형성했다. 그러나 박 명예회장이 취임한 1984년 그룹은 안팎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1980년 초 일어난 삼양타이어 분리파동과 때마침 불어닥친 경기불황의 여파 때문이었다. 그는 경제이론의 대가로서 현실 경영인으로서는 결심하기 힘든 단안을 내린다. 한보철강의 전신인 극동철강과 금호섬유를 매각하고, 삼양타이어와 금호실업을 통합해 상호를 ㈜금호로 바꿨다. 흑자기업인 광주고속은 금호건설을 합병했고, 금호화학과 한국합성고무를 합쳐 금호석유화학으로 재탄생시켰다. 취임 당시 9개사인 계열사를 4개로 줄이고, 비주력부문을 과감히 매각하는 등 경영내실화에 박차를 가했다. 또 석유화학분야를 그룹 주력 업종으로 성장시켰다. 당시에는 ‘구조조정’이라는 말 대신 ‘합리화’라는 표현을 썼다. 박 명예회장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체제 이후 한국경제의 최대 화두였던 구조조정의 선구자인 셈이다. 박 명예회장은 아시아나항공을 출범시키면서 취임 당시 6900억원이었던 그룹 매출을 1995년 4조원대로 끌어올리는 등 금호아시아나를 국내 10대 그룹 반열에 올려놓았다. ●두 세발 먼저 앞서간 이상적인 경영인 박 명예회장은 현실에 치우치기보다는 이상적인 경영관을 실현하려고 애썼다. 지금은 누구나 갖고 다니는 휴대전화가 ‘대박’을 터뜨릴 것이라는 예상을 했고, 집앞까지 배달해 주는 택배회사의 성공을 예견했다. 장성지 금호아시아나그룹 상무는 “명예회장님이 1990년대 초반에 이미 인터넷을 능수능란하게 다뤄 임원들에게 이메일로 지시사항을 보내놓고 답신 시간을 일일이 확인하셨다.”면서 “어떤 전자서류는 새벽 2,3시에도 결재하셨다.”고 회고했다. 박 명예회장의 이상적인 경영스타일은 음악, 미술 등 문화사업으로 이어졌다.1990년 금호 현악4중주단을 창단하고, 고가의 세계적인 명품 고악기를 사들여 한국을 빛낼 가능성이 높은 연주자에게 무상으로 대여해줬다. 비수익사업에 힘을 쏟는 박 명예회장의 경영스타일에 비판도 적지 않았지만 그는 “우리 기업도 미국의 카네기재단이나 일본의 소니그룹처럼 사회문화사업에 뛰어들어야 한다.”며 “당장은 돈이 부담스럽지만 장기적으로는 그룹 이미지를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뜻을 굽히지 않았다. 박 명예회장은 일선에서 물러난 뒤 1998년 예술의전당 이사장과 2002년 통영 국제음악제 이사장을 맡는 등 문화·예술 사업에 전념했다. 1997년 국민훈장 무궁화장,2002년에는 기업메세나 대상(대통령상)을 받았다. 박 명예회장의 예술사랑 덕분에 지난 5월 장례식에서는 예술인들이 그의 죽음을 누구보다 더 애통해 했다. 박 명예회장의 친구인 이승윤 전 부총리는 “박 회장은 단순히 선친으로부터 기업을 물려받은 2세 기업인이 아니라 전문지식을 지닌 뛰어난 전문경영인이었다.”고 회고했다. ●발로 뛰는 경영인 박 명예회장은 1993년부터 동생 고 박정구 회장에게 회장직을 넘기겠다는 뜻을 밝혔다. 박 명예회장은 “미국 CEO들은 환갑만 지나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다.”며 동생에게 총수직을 맡아줄 것을 수차례 요구했다. 형의 요구를 고사하던 정구 회장은 1996년 그룹 창사 50주년이 되는 해 박 명예회장이 “65세에 회장직을 물려주겠다는 약속을 지키고 싶다.”는 뜻을 거듭 밝히자 회장직에 올랐다. 순조로운 경영권 이양에 대한 보답 차원이었는지는 몰라도 정구 회장의 형에 대한 예우는 남달랐다. 성용 명예회장은 그룹의 자금사정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도 문화·예술 사업 등 이상적인 아이디어를 곧잘 제기했다. 수요와 공급 원칙에 철저히 따르는 동생 정구 회장으로선 형의 제안이 별다른 실익이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하시죠.”라며 무조건 따랐다. 그러나 정구 회장은 형과는 사뭇 다른 경영스타일을 보였다. 경제 이론을 중요시했던 형과 달리 본능적인 감각과 불도저식 추진력을 발휘하는 현장중심의 경영방식을 택했다. 이는 연세대 법학과를 졸업하자마자 22세에 광주여객 영업과장으로 회사에 몸 담으며 철저히 경영수업을 받아온 당연한 결과이기도 했다. 정구 회장은 취임하자마자 아주생명을 인수, 금호생명으로 변경해 보험업에 진출했다. 강원 설악과 전남 화순, 경남 충무, 제주 남원에 잇달아 콘도를 개장, 미래의 유망분야인 관광·레저사업 부문을 확대했다. 정구 회장이 재임때 가장 역점을 둔 사업은 중국 진출이었다. 항공·타이어·고속버스 분야를 중심으로 중국 시장을 개척했다. 정구 회장의 불도저식 경영은 1997년 이후 IMF 위기에서도 발휘됐다. 계열사간 합병·지분매각·청산 등을 통해 한계사업과 비주력사업부문을 과감히 접었다.1997년 당시 32개였던 계열사를 2001년 15개로 축소했다. 자본유치, 부동산 및 유가증권 매각, 유상증자 등을 통해 97년 말 966%에 달했던 그룹 부채비율을 2001년 말 360%로 낮추는 등 재무구조를 개선시켰다. 대부분의 그룹 임직원들은 3대 정구 회장이 풍부한 경험과 의리를 앞세우며 선 굵은 경영을 펼쳤던 경영인으로 기억하고 있다. ‘폭탄주’를 즐기던 정구 회장은 특유의 뚝심으로 IMF 파고를 넘었지만 2002년 폐암으로 운명을 달리했다. ●아버지를 쏙 빼닮은 셋째아들 정구 회장에 이어 4대 회장에 취임한 삼구 회장은 5남3녀중에서도 아버지 박인천 회장을 가장 닮은 아들로 꼽힌다. 수리에 밝고 매사에 적극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나이에 비해 생각하는 것이 젊어 ‘영원한 39(삼구)세’라는 별칭도 갖고 있다. 높은 결단력과 추진력을 겸비해 한번 결정하면 물러서지 않는 원칙론자이기도 하다. 이런 그의 성격은 그룹 창사 이래 최고의 실적을 내는 업적을 이뤄냈다.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약관 22세의 나이에 한국합성고무를 차릴 정도로 경영인으로서의 ‘끼’를 발휘했다. 그룹 총수이면서도 재무·관리·세무회계 등에 정통해 그룹의 세세한 재무상태까지도 훤히 꿰고 있다. 서구 금호아시아나그룹 고문은 “회장님이 업무면에서는 섬세하고 치밀해 한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지만 형님들을 모시거나 동생들을 보살피는 데는 넓은 포용력을 발휘한다.”고 말했다. 형들을 생각하는 박 회장의 정성은 극진했다.2004년 박성용 명예회장이 세계문화예술 발전에 공헌한 공로로 독일의 몽블랑 문화재단으로부터 ‘몽블랑 예술후원자상’을 받자 밤 11시에 형에게 달려가 깜짝 축하파티를 열어주기도 했다. 웬만한 주요 행사에는 바로 아래 동생인 찬구 금호석유화학 부회장을 반드시 동행토록 해 사소한 의사결정때도 동생의 의견을 듣는다. 삼구 회장은 잔정이 많다는 게 그룹 임직원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지난 1998년 당시 아시아나 사장이던 삼구 회장은 IMF를 맞아 전년도 입사자들이 1년간 무급휴가를 마치고 회사로 복귀하는 행사장에서 5분간 말을 잇지 못하고 계속 눈물만 흘린 사실은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그룹 제2의 중흥기 맞아 2002년 9월2일에 4대 회장에 취임한 삼구 회장은 IMF 이후 2004년까지 4조 9961억원의 구조조정 실적을 이뤄내는 자구노력으로 기업을 회생시켰다. 이 구조조정 기간에 공적자금을 지원받지 않고, 직원 감축없이 그룹을 살려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2004년에는 사상 최대 실적인 매출액 8조 5447억원, 경상이익 8140억원을 달성했다. 박 회장은 앞으로도 항공·고속 등 운수분야와 타이어, 석유화학 계열, 관광·레저, 금융 등의 기존 사업분야는 경영합리화를 통해 수익성을 극대화한다는 방침이다. 여기에 물류·레저사업을 상호 연계,2010년까지 재계 5위에 올라서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뒤에서 묵묵히 보좌하는 4남 4남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부회장은 미국 아이오와 주립대 통계학과를 졸업해 수치에 밝고 경제의 맥을 잘 짚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혹시 형인 삼구 회장에게 누가될까봐 뒤에서 묵묵히 돕고 있다. 전공을 살려 회사내의 재무상황을 꼼꼼히 챙기고 재무구조 개선에 앞장서 왔다. 찬구 부회장은 지난 1992년부터 2003년까지 구조조정본부 역할을 하는 비전경영실의 사장을 겸직하며 그룹에서 추진되고 있는 구조조정 사안들을 일일이 챙겼다. 그는 유연한 조직체계 및 관리체계를 구축해 금호석유화학을 합성고무부문에서 국내시장 점유율 1위, 세계 4위의 생산능력을 보유하는 기업으로 키워냈다. ●금호아시아나그룹 전문 CEO 아시아나항공 박찬법(60) 사장은 2001년 1월 대표이사직에 취임해 대규모 흑자 전환, 세계 최대의 항공제휴망인 ‘스타얼라이언스’ 가입 등의 성과를 올렸다. 철저한 원칙주의자로 정평이 나있다. 금호타이어 오세철(58) 사장은 1974년 금호타이어 입사 후 연구·생산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엔지니어 출신이다.‘현장중시’의 경영철학을 실천하고 있다. 금호산업 건설사업부 신훈(60) 사장은 지난 2002년 사장으로 취임한 이후 뛰어난 경영수완을 발휘,2004년 상장사 중 최고의 주가상승률을 이뤄냈다. 금호산업 고속사업부 이원태(60) 사장은 그룹내 손꼽히는 중국 전문가로 통한다.1993년부터 금호아시아나의 중국사업 전진기지인 북경대표처에서 근무하며 타이어, 항공, 고속 등 그룹의 중국 진출을 이끌었다. 금호석유화학 김흥기(59) 사장은 1973년 금호석유화학의 전신인 한국합성고무에 입사한 뒤 재무담당임원을 두루 거친 그룹내 재무전문가다. 금호피앤비화학 류명렬(59) 사장은 비상경영을 통한 획기적인 원가절감과 생산성 향상으로 연속 적자에 시달리던 회사를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흑자로 전환시켰다. 금호폴리켐 기옥(56) 사장은 재무통으로 금호타이어 경리부에서 출발해 회장부속실 근무중 아시아나항공 설립과 함께 직원 1호로 발탁되기도 했다. 금호미쓰이화학 김성기(61) 사장은 오랜 기간 미국 법인과 금호 미국 현지법인에서 수출·마케팅 업무를 담당한 미국 전문가다. 금호렌터카 김성산(59) 사장은 1960년 광주고속에 입사하여 40년간 장기근속한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산증인이다. 금호페이퍼텍 이삼섭(55) 사장은 종합무역상사인 금호실업에 입사, 금호건설을 거친 후 비전경영실부사장을 지냈다. 타이어, 항공, 고속, 건설, 화학 등 그룹 전 분야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다. 아시아나IDT 박근식(59) 사장은 IT출신이 아니지만 2003년부터 그룹 IT전문회사인 아시아나IDT대표를 맡고 있다. 사이버대학 IT관련 학과에 다니는 노력 끝에 전문가를 능가하는 실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복합물류 김종호(57) 사장은 외국어에 능통해 해외영업을 총괄하는 등 타이어 해외수출의 선봉장 역할을 해왔다. 인천공항에너지 류병률(59) 사장은 아시아나항공 서울지점장과 여객담당 임원 등 영업에서만 10년이상 근무한 영업통이다. 금호생명 박병욱(58) 사장은 한양대에서 ‘회사 시책이 보험설계사 마케팅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을 정도로 이론과 실무에 능한 수재형 CEO다. 금호종금 이기수(56) 사장은 30여년간 경리·자금분야에서 실무와 관리능력을 인정받았다. 아시아나CC 김창규(52) 대표이사 상무는 금호산업 레저사업부 대표도 겸직하고 있다. 그룹 전략경영본부 오남수(57) 사장은 현재 구조조정본부 역할을 하고 있는 그룹 전략경영본부의 실무 총괄 책임자다.1997년 시작한 그룹의 구조조정 작업에 줄곧 몸담아 왔다. 재계에서 손꼽히는 와인 애호가 및 전문가로 최근에는 ‘어너더 와인, 어너더 테이스트(Another Wine,Another Taste)’란 제목의 와인 가이드 포켓북을 발간하기도 했다 jrlee@seoul.co.kr ■ 재벌 혼맥의 허브… 삼성·LG등 사돈박인천 금호아시아나그룹 창업주와 2세인 5남3녀는 자식들의 혼사에 각별히 신경써 화려한 혼맥을 형성하고 있다. 금호아시아나가(家)는 2,3세들의 혼인을 통해 삼성,LG, 대우, 대상그룹과 사돈을 맺는 등 ‘재벌가 혼맥의 허브’로 부상했다. 박 창업주 회장의 장남인 고 박성용 명예회장은 아들 재영(35)씨를 구자훈 LG화재 회장 3녀인 문정(30)씨와 결혼시켰다. 재영씨의 장인인 구자훈(58) 회장은 구인회 회장의 손밑 동생 철회(75년 작고)씨의 3남이다. 박 명예회장과 구 회장이 자식들의 혼사로 인해 ‘사돈’ 관계를 맺게 된 것이다. 금호아시아나가의 장손인 재영씨의 처고모부인 박용훈(63)씨는 두산산업개발 부회장이어서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두산그룹과도 혼맥으로 연결돼 재계 명문가의 위상을 이어갔다. 박 부회장은 박우병 전 두산산업 사장의 장남이다. 2남 정구 회장의 장녀 은형(35)씨도 김우중 전 회장의 차남 김선협(36·포천아도니스CC 사장)씨와 혼인해 일가를 이뤘다. 금호아시아나가의 혼맥은 뭐니뭐니해도 3녀 현주(52)씨를 통해 빛을 발한다. 현주씨는 임창욱(56) 대상그룹 명예회장에게 시집갔다. 또 큰 딸인 임세령(28)씨를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아들 이재용(37) 삼성전자 상무와 결혼시켰다. 세령씨와 이재용 상무간의 결혼은 호남 집안인 금호아시아나가와 대상그룹, 영남집안인 삼성가가 사돈을 맺었다는 점에서 재계의 화제가 됐다. 또한 ‘미원-미풍 전쟁’을 벌였던 삼성과 대상그룹이 혼맥으로 합쳐졌다는 점에서 지대한 관심을 끌었다. 세령씨는 시어머니인 홍라희(60) 여사가 보광그룹의 장녀여서 홍석현(52) 전 중앙일보 회장과 홍석규(49) 보광그룹 회장을 시외삼촌으로 모시고 있다. 특히 박현주씨는 금호아시아나가가 남자들에게만 지분을 상속한다는 대원칙을 고수해 친정에서는 경영참가가 원천 봉쇄됐었다. 하지만 결혼 이후 전문 경영인으로 변신하고 있다. 박씨는 대상그룹 계열인 상암커뮤니케이션즈 대표로 활발한 경영활동을 하고 있는데 이어 9월13일 대상그룹의 지주회사인 대상홀딩스 등기임원에 선임될 예정이다. 옥중에 있는 남편 대신 시댁의 회사를 진두지휘할 것으로 보여 이목이 쏠리고 있다. jrlee@seoul.co.kr ■ 3대째 이어지는 원칙금호아시아나그룹의 철저한 동등지분 원칙이 3대째 이어지고 있다. 장자승계 원칙이 일반적인 다른 그룹과 달리 창업 2세 가구별로 똑같은 지분을 확보, 경영권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고 박성용 명예회장 등 금호 경영에 참여한 4형제는 공교롭게도 아들을 1명씩 두고 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지난달 4일 고 박 명예회장이 보유해온 계열사 지분 전량을 장남인 재영(35)씨가 상속했다고 공시했다. 이에 따라 박성용-정구-삼구-찬구로 이어져온 금호아시아나그룹의 형제경영 체제가 3세에서도 이어질 수 있는 틀이 마련됐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지분구조는 특이하다. 지주회사인 금호석유화학을 기준으로 창업 2∼3세들의 지분구조가 9.24%로 똑같다.2세 경영인 중 회사 경영과 무관한 5남 종구(국무총리실 경제조정관)씨를 빼고는 4명의 형제가 동일한 지분을 갖고 있다. 2세들이 작고하면 이 지분은 고스란히 3세 경영인들에게 상속돼 지분구조를 둘러싼 분란이 생길 틈이 없다. 재영씨는 그룹 지주회사인 금호석유화학의 보통주 136만 2512주와 우선주 8만 3251주, 금호산업의 보통주 35만 5000주, 금호종합금융의 보통주 3만 9070주, 금호페이퍼텍의 보통주 2585주와 우선주 4만 1087주를 받았다. 이로써 재영씨는 금호석유화학 지분 9.24%를 소유하게 됐다.2002년 작고한 정구 회장의 장남 철완(27)씨도 부친 지분 9.24%를 그대로 상속받았다. 이로써 사촌지간인 재영씨와 철완씨는 나란히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대주주로 떠올랐다. 그룹의 지주회사격인 금호석유화학의 최대 주주는 자사주 19.8%를 보유한 금호석유화학이고 재영, 철완씨는 2대 주주가 된 것이다. 이들은 금호산업과 금호종합금융의 지분도 똑같이 보유하고 있다. 금호산업 지분은 42.49%를 보유한 금호석유화학이 최대 주주로 있으며 재영, 철완씨가 1.87%씩 갖고 있다. 두 사람은 금호종합금융의 지분도 1%씩 보유했다. 이처럼 철저한 동등지분 원칙이 적용되는 것은 창업 2세 형제들이 그룹 지분을 똑같이 나눠 갖고 형제경영을 하는 것처럼 3세도 이같은 전통을 이어가겠다는 뜻에서다. 금호아시아나가(家) 3세들의 경영참여 시점도 관심거리다. 재영씨는 미국 LA에서 경영과는 동떨어진 영화 공부를 하고 있고, 철완씨는 국내에 있는 보스턴 컨설팅 그룹에서 경영수업을 쌓고 있다. 금호아시아나 그룹 관계자는 “재영씨와 철완씨가 지분 승계로 대주주가 됐지만 당분간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고 학업에 전념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jrlee@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이사람] ‘절연체에 전류 흐른다’ 첫 규명 ETRI 김현탁 박사

    3월25일은 ‘발견의 날’이다. 누가 정한 것은 아니지만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김현탁(47) 박사팀은 적어도 그렇게 여기고 있다. 올들어 세해째 조촐한 기념행사로 떡을 해서 다른 연구원들과 나눠 먹었다.2003년 이날 ‘모트 금속-절연체 전이(MIT)현상’을 세계 최초로 규명하고 실험에 성공한 것을 자축하는 자리다. 그도 그럴 것이 1977년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영국 이론물리학자 네빌 모트(작고)가 49년 MIT현상을 예견했으나 아무도 56년간 증명하지 못했던 물리학의 난제를 풀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벨상 감’이란 찬사가 나왔다. ●치열한 국제경쟁 김 박사는 “그날 밤 늦게였는데 실험에 성공하는 순간, 번개를 맞은 듯 온 몸에 전율이 흘렀다.”며 “세계 최초임을 알리기 위해 가장 먼저 인터넷에 띄웠다.”고 돌이켰다. 논문 출판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인터넷에 올린 다음날 물리학분야 인용지수 2위인 영국의 ‘저널(New Journal of Physics)’이 실험 논문을 요청해와 보내줬다. 저널은 10개월간의 심사와 치열한 논쟁을 거쳐 지난해 5월 그의 논문을 게재했다. 또 응용물리학 1위인 미국의 ‘레터(Applied Physics Letter)’는 지난 6월에 실었다. 이 분야는 연구 경쟁이 세계적으로 무척 치열하다. 스웨덴 왕립기술연구소는 지난 1월, 일본 와세다대학은 지난 3월에 각각 MIT현상 규명을 발표했다. 김 박사팀이 실험에 성공하고도 논문발표에 늦었다면 2등으로 처질 뻔했다. 이렇듯 경쟁이 치열한 이유는 전기와 디지털이 쓰이는 곳은 다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반도체 부피를 엄청나게 줄일 수 있다. 김 박사의 개가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92년 일본의 국립대학인 쓰쿠바(筑波)대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하면서 비롯됐다. 이후 논문까지 10년이 걸렸다. 하루 댓시간밖에 자지 않고, 주말을 반납한 덕분이다. 실험을 앞둔 날은 머리를 맑게 하기 위해 일찍 잤다. 주위에선 이런 그를 두고 “미쳤다.”고도 했다. ●MIT는 번개와 비슷한 현상 언론 보도로 들뜰 만한 지난 2일 오후 늦게 연구실에서 테스트 중이던 김 박사를 잠깐 만났다. 김 박사의 연구결과는 해외에서는 수차례 논문이 게재됐지만 국제 특허 출원과 설명 자료를 준비하는 시간이 오래 걸려 국내 발표는 지난 1일에야 이뤄졌다. 그는 “인터뷰하는 것이 물리학 연구보다 훨씬 어렵다.”며 자리에 앉았다. 쉽게 설명해 달라는 요구에 그는 “MIT 현상은 자연에선 번개와 비슷하다.”고 말했다.“하늘에서 번개가 생겨나면 전기가 통하지 않는 절연체인 대기층을 통과해 전기가 통하는 인간이 맞게 되는 것이죠. 이것을 엄청나게 작게 축소해서 실험한 것이지요.” 전자공학을 전공한 임주환 ETRI 원장은 “김 박사로부터 10시간 넘게 설명을 듣고서야 비로소 이해가 됐다.”고 말했다. ●가난한 광부의 맏아들 김현탁은 58년 강원도 삼척시 도계에서 6남매 중 셋째이자 장남으로 태어나 여섯살까지 살았다. 광부였던 아버지 김완규(작고)씨의 건강이 나빠져 외가 동네인 경북 포항시로 이사를 왔다. 포항초등학교 2학년 때인 아홉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어머니 안판례(작고)씨가 군밤장사, 떡장사 등의 행상을 하며 6남매를 뒷바라지했다. 어린 그도 어머니를 도왔다. 그는 “차 안에서 닥치는 대로 물건을 팔면서도 ‘다음에 커서 장사는 절대로 안 하겠다.’고 다짐했지요.”라며 기억을 더듬었다. 이후 포항 동지상고로 진학했다. 가족들은 장남인 그가 그 집안을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은행원이 되기를 바랐다. 은행원은 당시 상고생들에겐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그는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은행에 취직하기 싫습니다.”라며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등록금이 싸다는 이유로 국립대학을 결정했다. 여기서 물리학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키웠다. 72년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레온 쿠퍼 교수가 79년 이휘소 박사의 기념강연을 위해 서울대를 방문하자 대학 2학년이던 그는 이를 듣기 위해 부산에서 서울로 달려갈 정도로 물리학에 심취해 있었다.“내용을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대학자에게 흠뻑 빠져 있었든 거죠. 기억나는 말이라곤 ‘슈퍼세미컨덕터(반도체)’뿐입니다.” 자연과학도인 김 박사는 딱딱할 것 같지만 은근히 낭만적인 데도 있다. 대학시절 부인 이은희(원자력연구소 책임연구원)씨를 만났다.“도서관에서 자리잡아주면서 서로 공부를 독려한 캠퍼스 커플이죠.” 서울대 대학원에서 고체물리학 석사를 받았다. 이때 몸이 약해 허파꽈리가 터져 군 면제 판정을 받았다.‘먹고 살기 위해’ 84년 한국타이어 기술연구소와 시스템베이스를 다녔다. 학문에서 떠난 8년간의 외도(外道)였다. ●연구실에서 산 유학시절 직장을 다니던 중에도 그는 ‘훌륭한 물리학자가 되겠다.’는 열망이 수그러지지 않았다.34세인 92년 일본 유학을 결심, 노벨상 수상자 3명을 배출한 쓰쿠바대로 갔다. 공부에 방해가 될까싶어 부인은 데려가지 않았다.“제대로 공부하지 않으면 영원히 기회가 안 올지도 모른다.”며 그는 오전 6시부터 밤 12시까지 연구실에서 살았다. 연구실 최고령 학생인 그는 3년만에 전자재료 및 박막제조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땄다. 그리곤 바로 교수(文部敎官)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학생에서 교수로 신분이 바로 바뀌었다.40세인 98년 귀국,ETRI에 책임연구원으로 들어왔다. 이후 그는 국책연구과제를 수행하면서도 해마다 한 편의 논문을 썼다. ●그래도 연구에 매진하고파 물리학계의 화두는 68년 발견된 고온초전도현상이다. 이를 규명하려면 MIT현상을 먼저 해결해야 한다. 그도 실험할 때마다 전하(물체의 전기 양)는 1,2처럼 정수인데 1/2,1/3처럼 분수를 띠고 있었다. 몇년째 고민 중이던 2001년 어느날 그는 대전 엑스포공원에서 연구실까지 산책하다가 ‘분수전하’라는 영감을 받았고, 이는 측정 때문이라는 ‘측정효과’라는 개념을 더했다. 그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다. 김 박사는 “물리학은 창조적으로 발상하고 생각하는 학문”이라며 “자나깨나 이것만 생각했다.”고 말했다. “위에선 MIT트랜지스터를 상용화하는 것을 주문하지만 제 꿈은 고온초전도 현상의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것입니다.” 연구를 계속 고집하는 김 박사, 현재의 ‘돈 안되는 이공계 기피현상’은 곱씹어볼 만한 대목이다. 대전 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사진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 ETRI는 어떤 곳 ETRI는 일반 사람들에게 의외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쓰는 휴대전화의 원천기술인 CDMA를 상용화한 연구기관이다. 이를 돈으로 환산하면 66조 36억원으로 이는 CDMA 개발비 2223억원의 297배에 이른다. 국가경제 기여도는 204조 8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76년 설립된 ETRI는 과학기술부 산하 산업기술연구회 소관이다.1800명의 직원 가운데 석·박사급이 1600명을 차지하는 고급 두뇌집단으로 정보·통신·전기 분야의 최고급 국책 연구기관이다. 그동안 국제특허 3000여건을 비롯해 1만 5000여건의 특허를 냈다.1386건의 기술을 2700여 기업에 이전해 줬다. 우리나라를 IT 강국으로 이끄는 ‘기술의 젖줄’이라고 할 수 있다.ETRI가 요즘 연구중인 것으론 지능형 서비스로봇, 홈네트워크, 텔레매틱스, 차세대 이동통신, 차세대 PC, 디지털TV·방송, 디지털 콘텐츠 등이다. 최근엔 특히 개발된 기술을 상용화하는 데도 관심이 높다. ■ 그가 걸어온 길 ▲1958년 7월 강원도 삼척 도계 출생 ▲78년 경북 포항 동지상고 졸업 ▲82년 부산대 물리학과 졸업 ▲84년 서울대 물리학과 석사 ▲85년 한국타이어㈜ 연구원 ▲92년 시스템베어스㈜ 개발부장 ▲95년 일본 쓰쿠바대 공학연구과 공학박사 ▲98년 일본 쓰쿠바대 물리공학계 교수 ▲2005년 ETRI 책임연구원(현) ▲한국·미국·일본 물리학회원(현), 세계 3대 인명사전인 미국 마르퀴스 후스후(03∼05년), 미국인명연구소(ABI·02∼05년), 영국국제인명센터(IBC·02∼03) 등에 등재됐으며,IBC 2003년판에는 그의 전기가 기록돼 있다.
  • [사설] ‘포스트 반도체’ 시대 연 한국과학 쾌거

    한국의 과학자들이 또 한번 세계를 놀라게 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기반기술연구소의 김현탁 연구팀은 절연체를 전기가 통하는 금속체로 바꾸는 실험에 세계 최초로 성공했다. 금속과 절연체 간 전이 현상은 하나의 가설로 제시된 이래 지난 56년간 현대물리학이 풀지 못한 숙제였다.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에 이은 한국과학의 일대 쾌거라 아니 할 수 없다. 이 기술의 응용분야는 무궁무진하다. 차세대 디스플레이와 태양전지, 연료전지, 광소자, 열감지, 잡음 제거 등의 분야에서 향후 20년간 100조원의 미래산업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고 한다. 원천기술에 목말라 있는 한국에 ‘포스트 반도체’ 시대를 활짝 열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모트 교수는 1949년 ‘전기가 통하는 금속을 일정한 조건 하에서 전기가 안 통하는 절연체로 바꿀 수 있다.’는 가설을 제시했다. 이후 세계의 물리학자들이 연구에 매달렸으나 이번에 우리 과학자들이 최초로 이 가설을 실험으로 증명해 보인 것이다. 이에 따라 기존의 실리콘 반도체보다 훨씬 작은 극소형 반도체 개발이 가능해졌으며, 미래산업의 총아인 나노(10억분의 1m)기술산업의 실용화 시기를 크게 앞당길 수 있게 됐다. 일부 외신들은 “뉴튼의 만유인력의 법칙 발견 이후 최고의 연구성과”,“한국도 유력한 노벨상 후보자를 갖게 됐다.” 등으로 격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번 연구성과가 상용화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많은 과제들이 남아 있다. 각종 응용소자와 이들을 대량생산할 수 있는 원천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미국과 일본, 영국, 스웨덴 등은 이 분야에 우리보다 훨씬 많은 연구인력과 자본을 투입하고 있다. 초기 연구는 우리가 앞섰다고 하지만 언제 추월당할지 알 수 없다. 김현탁 연구팀의 그동안의 노력과 성과에 박수를 보내면서 더욱 연구에 정진해줄 것을 당부한다. 정부도 미래의 신성장 동력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김현탁 연구팀에 대한 특별지원체계를 마련해주기 바란다.
  • [국제플러스] 올 노벨상 수상자 10월 3~14일 발표

    |스톡홀름 AFP 연합|노벨재단은 올해 분야별 노벨상 수상자를 10월3∼14일까지 발표할 예정이라고 18일 밝혔다. 노벨상 가운데 가장 권위있는 평화상은 아일랜드의 록그룹 ‘U2’의 리드보컬 보노와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유력 후보로 떠올랐다. 보노는 아프리카 빈곤퇴치 노력에 헌신한 점이,IAEA는 일본 히로시마 원폭투하 60주년을 맞아 이란과 북한의 핵 프로그램 포기를 위해 노력한 것이 유력 후보에 오른 이유다. 평화상 후보로는 보노와 IAEA 외에 빅토르 유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 미하일 사카쉬빌리 그루지야 대통령, 쓰나미 참사 당시 지원 활동을 폈던 인도주의 단체들 등도 올라 있다. 올해 노벨상은 10월3일 의학상 수상자를 시작으로 4일 물리학,5일 화학,10일 경제학상,14일 평화상 수상자가 발표된다.
  • [씨줄날줄] DJ 달래기/이목희 논설위원

    동서양과 고금을 막론하고 최고의 장수는 복장(福將)이다. 변변한 능력이 없어도 느닷없이 동남풍이 적진으로 몰아쳐 승리를 거두는데야 어떡하겠는가. 용맹도, 지혜도, 리더십도 행운 앞에서는 꼼짝할 수 없다. 최근 국정원 도청파문이 나라를 흔들고 있다. 일각에서 제기하듯 참여정부 기획설이 맞다면 노무현 대통령은 대단한 지장(智將)이다. 반대로 “터지는데 어찌 막겠느냐.”는 항변이 사실이라면 복장이랄 수 있다. 노 대통령과 측근들은 새 시대를 열고 싶다는 희망을 수차례 밝혀왔다. 정치적으로 1987년 체제를 바꾸고 싶어한다.87년 체제는 1노(盧)3김(金)의 타협물이다.4인의 영향력이 사라져야 변화가 가능하다.4인 중 노태우·김종필씨와 달리 김대중(DJ) 김영삼(YS) 두 전직 대통령은 현 정국에서 일정 지분을 갖고 있다. 그런데 YS정권 당시의 도청테이프가 터져나오고,DJ정권에서 도청이 계속됐다는 정황이 포착됐으니 과거정리의 호기를 자연스레 맞이한 셈이다. 복장이라도 고민은 있다. 동남풍이 분다고 전쟁에서 바로 승리하는 것은 아니다. 화공(火攻)을 쓸지, 화살을 집중해서 날릴지 선택해야 한다. 이때 상대진영의 상황을 정확히 아는 게 필수적이다. 지금 YS진영의 대오는 많이 흐트러져 보인다. 하지만 DJ진영은 오히려 결집하는 양상으로 가고 있다. 여론조사 결과 열린우리당 지지도가 대폭 떨어지고 있다. 호남지역을 중심으로 한 DJ의 정치적 영향력이 건재함을 보여준다. 청와대와 여당이 급히 DJ 달래기에 나섰다.YS정권까지의 죄질이 더 나쁘다는 점,DJ정권에서 도청이 있었더라도 사소하며 DJ는 몰랐을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진사특사를 파견하고, 광복절 사면복권에 DJ의 두 아들을 포함시키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여권의 DJ 달래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DJ는 여든을 훌쩍 넘겼다. 섭섭함을 쉽게 풀기 어려운 연배다. 무엇보다 노벨상 수상의 프라이드를 꺾은, 이번 치욕을 만회할 여유가 없다.DJ는 어제 입원, 여권을 더욱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노 대통령 쪽도 선택폭이 좁다. 진상을 밝히라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거세기 때문이다. 의도했든, 안 했든 일정부분 과거는 정리될 수밖에 없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불법도청 파문] DJ 입원 시위 … 도청정국 새국면

    TEXT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입원으로 안기부의 도청 파문은 새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여권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긴장하는 분위기다. DJ의 입원은 도청정국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는 시각이 강하다. 최근 국정원이 국민의 정부 시절에도 도청이 있어 왔다고 발표한 이후 DJ측은 여권과 첨예한 기싸움을 벌여오고 있는 상황이었다.DJ측은 국정원 발표 이후 도청사건을 국민의 정부에 뒤집어 씌우고 있다며 강력 반발해 왔던 터다.노무현 대통령이 8일 기자간담회에서 “정치적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나에 대한 모욕”이라고 밝히자 “모독은 국민의 정부가 당했다.”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이를 뒷받침하듯 한 DJ 측근은 “마음의 병이 몸으로 옮겨진 것 같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이어 “평생을 인권과 평화를 위해 살아 왔다고 자부하고 있고 이로 인해 노벨평화상까지 탄 김 전 대통령이 도청의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전락하는 상황을 견뎌내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한 인사는 “도청정국으로 며칠 전부터 식사를 못하신 것으로 안다.”고 말해 DJ가 그동안 노벨상 로비설 등이 일부 언론에 여과없이 거론되면서 마음고생이 극심했을 것이란 관측도 제기됐다. 그동안 사태를 누그러트리기 위해 안간힘을 써온 여권은 DJ의 입원으로 사태가 악화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열린우리당 전병헌 대변인은 “본말이 전도된 답답한 현실도 김 전 대통령의 건강과 무관치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우리당은 가해자와 뒤바뀐 현실을 바로잡아 김 전 대통령의 건강이 쾌유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희상 의장과 배기선 사무총장은 즉각 대책모임을 가졌으며, 배 총장이 곧바로 DJ가 입원중인 신촌 세브란스 병원으로 문병을 갔다. 문 의장은 쾌유를 비는 난을 보냈다. 민주당측에서도 신낙균 수석부대표, 이낙연 원내대표, 유종필 대변인 등이 다녀갔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DJ의 입원으로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등 과거 국민의 정부 관계자들이 대거 문병을 올 것으로 보여 DJ의 진의와는 관계없이 ‘병상 정치’가 시작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그러나 DJ측은 “김 전 대통령은 이미 현실정치를 떠난 분”이라며 “병상정치는 가당치 않다.”고 일축했다.박준석기자 pjs@seoul.co.kr
  • 시민운동가 윤혜란씨 막사이사이상 수상

    |마닐라 연합|‘아시아의 노벨상’으로 평가받는 필리핀 막사이사이상의 올해 ‘떠오르는 지도자’ 부문 수상자로 한국 시민운동가인 윤혜란 복지세상을 열어가는 시민모임 사무국장이 선정됐다. 막사이사이상 위원회는 1일 라몬 막사이사이 전 필리핀 대통령의 이름을 딴 이 상의 수상자로 윤씨 및 태국의 존 웅파콘(정부 서비스)상원의원, 라오스의 솜바트 솜폰(지역사회 지도자), 인도네시아의 테텐 마스두키(공공봉사), 인도의 V. 샨테(공공봉사), 방글라데시 마티우르 라흐만(언론. 문학. 의사소통기술) 등 모두 6명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 [‘X파일’ 파문] “기자들 휴대전화도 도청”

    김영삼 정부 시절 국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의 전신)의 도청 사실을 언론에 알린 전 안기부 직원 김기삼(40)씨가 25일 SBS와의 인터뷰에서 “기자들의 휴대전화도 도청한 것으로 안다.”고 밝혀 파문이 언론계 전체로 확산되고 있다. 지난 22일 안기부 특수도청팀 ‘미림’의 해체와 관련,“김대중(DJ) 정부 시절엔 휴대전화 도청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던 김씨는 이날 또다시 “(휴대전화 도청을) 기술적으로 어떻게 하는지는 모르지만 다 하고 있다.”고 강조한 뒤 “지금은 조심해서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기자들의 노트북 컴퓨터도 해킹했다고 주장하면서 “정치부 기자들이 본사에 송부하는 그걸(기사를) 인터셉트하고 있다고 하더라.”며 “2000년 당시 전국의 해커들을 불러 기자들의 랩탑 컴퓨터 해킹 프로그램을 개발한다고 들었다.”고 폭로했다. 이에 대해 국정원의 한 관계자는 “휴대전화 도청 등은 기술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며 “김씨의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닌, 터무니없는 얘기”라고 말했다. SBS는 또 ‘X파일’ 유출 혐의를 받고 있는 전 미림팀장 공모(58)씨가 DJ 정부가 들어선 1998년 초 직권면직을 당하면서 수백개의 도청 테이프를 빼돌렸다가 1999년에 다시 압수됐지만 30∼40개는 회수되지 않았다고 또다른 전 국정원 직원의 말을 빌려 보도했다. SBS는 이어 공씨가 면직 1년 만에 서울 서초동에 정보통신회사를 차려놓고 경기도 분당에 47평짜리 아파트와 국산 최고급 차 3대를 굴리는 등 호화 생활을 누렸으며, 지난해엔 17대 총선에 출마한 여당 인사를 회사 대표로 영입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공씨는 1999년 ‘대통령의 결재 없이 국정원장 명의로 면직된 것은 위법’이라며 면직처분 무효 소송을 제기, 승소판결을 받고 2003년 복직했다가 명예퇴직 형식으로 국정원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공씨와 함께 국정원의 조사 대상에 오른 김씨가 미국에 정치 망명을 신청한 것과 관련, 국정원측은 “정치적 망명은 정치적 박해를 당한 증거가 있어야 수용되지만 김씨의 경우는 해당되지 않는다.”면서 “현재 인터폴에 수배 중”이라고 밝혔다. 김씨는 2000년 복무규정을 어겨 면직된 뒤 인터넷 등을 통해 DJ 노벨상 수상과 대북송금 의혹 등을 제기하기도 했다. 한편 국정원은 미림팀 외 다른 도청팀이 다수 운영됐다는 일부 언론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고 부인했다. 국정원은 26일 과거사진실규명위를 열어 ‘X파일’ 문제를 논의키로 했다.박정경기자 olive@seoul.co.kr
  • 노벨상 수상자 오에 겐자부로 피소

    |도쿄 이춘규특파원|2차대전 말기인 1945년 3월 구일본군 지휘관이 미군 상륙에 앞서 오키나와 주민에게 집단자살을 강요했다는 교과서 등 각종 출판물의 기록은 잘못된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노벨상을 수상한 오에 겐자부로가 피소됐다. 24일 산케이신문에 따르면 당시 수비대장과 유족들은 집단자살강요를 사실로 기록한 저자와 출판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키로 했다. 집단자살강요 사실은 정설로 인정돼왔으나 일본 사회가 전반적으로 우경화되면서 소송이 제기된 것 같다. 신문에 따르면 오키나와전투 당시 자마미섬 수비대장을 지낸 우메자와 유다카(88)와 도카시키섬 수비대장 아카마쓰 요시쓰구의 동생 슈이치(72)는 오사카지방법원에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낼 계획이다. 피고는 당시 집단자살강요를 다룬 ‘오키나와 노트’를 쓴 오에 겐자부로와 이 책을 비롯해 집단자살강요를 사실로 기술한 여러 서적을 출판한 이와나미출판사다.taein@seoul.co.kr
  • 괴짜 과학자, 냄새 맡는 순간을 잡다

    인간은 냄새를 어떻게 맡는가. 아직도 비밀에 쌓인 주제다. 학설은 두가지. 주된 설명은 냄새가 어떤 물질로 구성되어 있고 인간의 코는 이 물질을 감지하는 어떤 기관이나 세포로 이뤄졌다는 설명이다.‘루카 투린, 향기에 취한 과학자’(챈들러 버 지음, 강미경 옮김, 지식의 숲 펴냄)는 이 주된 학설에 반기를 든 루카 투린에 대한 책이다. 루카 투린은 냄새를 ‘진동’으로 파악한다. 기존 이론의 전체적인 냄새를 맡는 과정의 흐름을 제시했다면 루카 투린은 냄새를 인지하는 그 순간을 포착하고자 한다. 이 때문에 ‘네이처’지에 논문을 내고 2004년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기도 하지만 두가지 모두 다 고배를 마신다. 특히 2004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리처드 액셀과 린다 벅은 루카 투린 이론의 반대자들이다. 저자는 여기서 레바논계 이탈리아 사람으로 학계의 어디에도 제대로 소속되지 못한 괴짜 과학자에게, 기존 과학계가 명예를 안겨줄 수 없었던 것으로 해석한다.2만 2000원.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취임1년 맞은 로플린 KAIST총장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취임1년 맞은 로플린 KAIST총장

    인생의 진정한 본질은 무엇일까.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한 과학자에게 물었다.“회전목마에 가까이 다가가서 요요에 휘감겨버리는 것이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마음속에 두 가지의 서로 모순된 원초적 충동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하나는 사물을 본질적으로 단순화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본질을 통해서 심오한 의미를 찾으려는 것이란다. 아울러 “우리가 우주의 주인이지만 우주가 우리의 주인이기도 하다.”고 부연했다. 과학자는 또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시(詩)라면서 다음과 같이 인용한다.‘누가 바람을 보았는가/당신이나 나는 보지 못했다/그러나 나무들이 고개를 숙이는 것은/바람이 지나가고 있다는 뜻이다.’-크리스티나 로세티(영국시인,1830∼94년) 지난주 굵은 비가 쏟아지던 날 대전의 한국과학기술원(KAIST)을 찾았다. 로버트 베츠 로플린(55) 총장을 만나기 위해서였다.1998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로플린 총장이 최근 한국생활 1년째를 맞이했다. KAIST 본관 2층 총장실. 통역을 맡은 총장실 수석비서 이현경씨가 배석했다. 총장 책상 위에는 컴퓨터와 서류뭉치 몇개가 놓여 있을 뿐 생각보다는 단순하고 정리된 분위기였다. 로플린 총장은 때마침 일주일동안 여름휴가를 다녀온 직후였다. 자연스레 휴가 얘기부터 나왔다.“초등학교 선생인 아내와 함께 하와이에서 모처럼 휴가를 즐겼다.”면서 좋은 충전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며 특유의 함박 웃음을 지어보였다. #KAIST개혁 추진·예산확보 순조 이어 취임 1년을 회고하면서 “처음보다 전체적으로 안정됐다.”며 “예산 확보나 개혁안 추진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면서 “특히 국민, 과학기술부,KAIST 안팎의 교수와 학생들과 만나면서 대학의 비전에 대한 얘기도 다 잘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국어 실력이 궁금해졌다. 항상 ‘한국어 입문’ 책자를 들고 다닐 정도의 열정을 보여왔다.“아직 초보적 수준이다.(언어공부가)유소년 때 시작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내심이 필요하다.”면서 비서나 기사한테도 많이 배우고 있단다. 또 지나가는 버스의 행선지나 도로의 간판글씨 등을 읽을 수는 있으나 뜻을 이해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고 있다고 토로했다. 한국어뿐만 아니라 언어를 배우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며 독일어를 별 어려움 없이 구사할 때에도 지금처럼 똑같은 과정을 겪었다고 비유했다. #한국어 열심히 배우나 아직은 초보수준 한국의 정치와 생활문화에 대한 느낌을 묻자 망설임 없이 “(정치문화가)여타 다른 산업국가와 다른 점은 없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볼 때 현재 여야가 제대로 형성화(form)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독재정권에서 벗어난 지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에 시스템 구축이 100%가 안 됐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어 “(이런 상황에서)진보성향의 열린우리당이 먼저 형성화됐고, 또 (보수와)융합도 나름대로 잘 하고 있는 것 같다.”고 의미를 두었다. 한나라당에 대해서는 “(야당의)길을 제대로 만들어가고 있다. 이건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가 아니겠느냐.”고 했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인용하면서 “대중을 위한, 인민을 위한, 가진 자들을 위한 정당 등은 고대부터 내려온 정당의 형태”라고 설명했다. 우리의 생활문화와 관련,“가족중심의 성향이 매우 강한 문화”라면서 “미국이나 유럽, 중국보다도 가족 단결력이 훨씬 강하다.”고 했다. 아울러 “한국의 정체성이 다 형성되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복잡한 일, 즉 중국과의 관계, 일본의 식민지배 등의 영향으로 현재 기성세대들은 한국적 정체성이 부족한 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한국의 젊은이들은 나름대로 개성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미국이 유럽의 문화를 도입하면서 미국적 개성을 만든 것과 비슷하다는 것. #한국문화, 가족단결력 강하지만 정체성 부족 “한국인들은 원래 안 좋은 얘기하는 것을 아주 꺼려하지요. 하지만 젊은이들은 추악함을 감추는 것을 더 이상 바라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기성세대와의 간격을 인지하면서도 (추악함에 대해)표현하려고 하지요. 학부모들은 이에 대해 겁을 먹지만 이는 나라가 발전하면서, 사회가 투명해짐에 따라 생겨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생활에서 가장 어려운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생활에서는 별다른 어려움이 없다.”고 전제한 뒤 “미국에서는 학생들만 가르치면 되는데 한국에서는 행정까지 맡다 보니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특히 (KAIST내의)성문화된 법규나 연구기록, 원칙과 시행사항 등이 정비가 잘 안 돼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연구실적에 대한 평가나 더 나은 연구수준은 주도면밀한 기록풍토에서 이루어진다고 강조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이달말 국내 처음으로 전담변호사(General Counsel)제도를 두겠다고 밝혔다. 연구성과물 등 직무와 관련된 특허의 이익을 철저하게 연구자들에게 돌려 의욕을 북돋워주기 위해서라는 것. 전담 변호사의 자격 요건으로 ▲노동법 ▲지적소유권 ▲자산관리 ▲정부와의 관계 ▲관련법규 성문화 능력 등을 들었으며, 전문가 한 사람으로 시작하지만 점차 팀제로 운영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유럽과 미국의 대학에서는 오래 전부터 시행한 제도라고 귀띔했다. #더나은 연구 위해 전담변호사제 도입할 것 우리나라 과학교육 수준에 대해 “교육 자체는 뛰어나다. 그러나 노벨상 수상자는 왜 안 나오느냐고 할 때 교육투자만큼 결과가 부족하다.”면서 연구개발과 보상 등에 관해 성문화가 안 돼 있어 동기부여가 계속되지 않는 데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황우석 교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하자 “개인적으로 줄기세포 연구를 지지한다. 황 교수의 연구가 제대로 평가받으려면 이에 따른 보상과 파생되는 윤리의 문제 등 법적 뒷받침이 선결돼야 한다. 법규가 좋게 정비된다면 미국보다 앞설 수 있는 분야”라고 대답했다. KAIST의 사립화 논란과 관련해서는 “논쟁은 이미 끝났다. 일부에서 고의로 부풀리는 바람에 그렇게 됐다.”고 설명했다. 또한 “자산 매각 등을 통해 구조조정하자는 것이 아니다.”면서 “정부에서 학생공급을 하는 것이 아닌 학부모들이 원하는 비즈니스 모델로 바꾸는 체질개선 작업”이라고 역설했다.“어떤 조직이나 개혁을 하고자 하면 반발세력이 나타나게 마련이며 갈등의 기간은 이미 지나갔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진정한 개혁은 자신의 확고한 신념이 중요하지 참모가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다.”고 일부 참모들과의 불화설을 일축했다. 지난 4일 미 항공우주국(NASA)에서 실시한 혜성과의 충돌실험에 대해 “단지 물체를 쏴서 맞혔다는 것뿐이다.”고 더 이상 의미부여를 하지 않았다. 최근 그가 집필한 ‘새로운 우주’를 반쯤 읽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주와 나’‘나와 우주’를 설명한 부분에 대해 불교사상이 담겨 있지 않느냐고 했더니 “연구신념은 종교적 충동과 비슷하다. 뭐든지 정형화된 것은 없고 또 변한다.”는 말로 대신했다. #고교시절엔 대부분 실험실서 보내 캘리포니아 출생인 그는 어렸을 때부터 과학에 관심이 많았다. 하루는 변리사인 삼촌한테 우연히 레이저에 대한 얘기를 듣고 감동을 받기도 했다. 고교 때에는 반에서 중간 정도의 성적. 학교공부에 대한 흥미보다는 대부분 실험실에서 틀어박혔다. 졸업무렵 그의 과학적 평가가 인정돼 버클리대학에 진학했다. 만약 학력고사로 평가받았으면 대학진학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라고 전해진다. 대학에서 수학전공을 한 뒤 79년 MIT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전공 외에도 박식하고 다양한 취미를 가지고 있다. 한국생활 1년 동안 교향곡 2곡을 작곡할 정도로 수준급의 피아노 실력. 앉아 있을 때에는 늘 뭔가를 기록하고 집필하는 버릇이 있다. 또 철학 문학 음악 미술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관련 서적을 읽는다. 그래서 ‘살아 있는 다빈치’라는 별명이 붙었다. 특히 해킹방지 프로그램을 직접 만들어낼 정도의 컴퓨터 솜씨 또한 뛰어나다. 학교에서 관사까지는 15분 거리로 늘 걸어서 출퇴근한다. 주말에는 KAIST 앞 갑천 둑길에서 자전거 하이킹을 즐긴다. 식사는 한국식이다. 비빔밥 불고기 된장찌개 등을 직접 요리까지 한다. 무거운 짐을 번쩍 들어올려 ‘천하장사’ 못지않다는 얘기를 듣기도 한다. 로플린 총장은 늘 새벽 4시에 일어나 미국에서 온 이메일을 확인하면서 하루일과를 시작한다.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50년 캘리포니아 출생 ▲72년 캘리포니아 버클리대 수학과 졸업 ▲72∼74년 미 육군 포병 복무 ▲74∼79년 MIT 물리학 박사 ▲79∼81년 미국 벨연구소 연구원 ▲85∼89년 스탠퍼드대 부교수 ▲89∼2004년 스탠퍼드대 교수 ▲2004년.7월∼현재 KAIST총장 ▲상훈 IBM펠로(76∼78년),E O 로렌스물리학상(85년), 올리버 E 버클리상(86년), 프랭클린 물리 메달(97년), 노벨물리학상(98년, 분수 양자홀 효과 입증)
  • ‘노벨상’ 수상자 연대 강단에

    노벨상 수상자를 포함한 해외의 석학들이 내년부터 연세대 강단에 선다. 연세대는 12일 내년에 신설되는 언더우드 국제학부에 2002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쿠르트 뷔트리히 스위스 연방기술원 교수 등 해외 석학 5명을 석좌교수로 초빙한다고 밝혔다. 광우병 원인인 단백질 ‘프리온’ 구조를 세계 최초로 규명해낸 뷔트리히 교수는 국제학부 생명과학 전공에서 ‘구조생물학’을 가르친다. 또 기업전략 권위자인 데이비드 브래디 미국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석좌교수와 동아시아 문화사 권위자인 나오키 사카이 코널대 교수 등이 초빙돼 학부 과정의 경제학과 문화 등을 강의한다. 연세대는 “미국 아이비리그대학 수준의 글로벌 교육을 국내에서 제공하기 위해 여러 해외석학을 초빙하게 됐다.”면서 “최우수 교수진으로 국내에서 국제화를 이루는 대학을 만들어 가겠다.”고 밝혔다.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 [메디컬 라운지] ‘임신부 보호 캠페인’ 명칭 공모

    대한산부인과학회와 대한산부인과개원의협의회는 오는 8월26일로 예정된 ‘초기 임신부 보호 캠페인’을 위해 캠페인 명칭을 공모한다. 공모 기간은 오는 17일까지 여성의학 건강엑스포 홈페이지(www.healthywomen.co.kr)를 통해서 하면 된다. 발표는 8월 1일. 참가자에게는 8월 26∼28일 서울무역전시장에서 열리는 여성의학 건강엑스포 초대권 및 추첨을 통해 가정용 청소로봇 ‘룸바’를 증정한다.(02)545-8747.병원 측은 형광내시경을 이용한 폐암 검사가 백색광 내시경에 비해 3배 이상 암 조기 발견율이 높다고 설명했다. 서울아산병원은 파킨슨병 환자 치료의 전문성과 신속성을 높이기 위해 파킨슨병센터(소장 이종명)를 최근 개소했다. 센터에서는 신경과와 신경외과, 재활의학과 등 관련 진료과가 통합 치료시스템을 운영하며, 최근 의료보험 적용으로 각광받고 있는 ‘뇌심부자극술(DBS)’을 활성화할 계획이라고 병원측은 설명했다. 파킨슨병은 팔. 다리 또는 전신이 떨리고 뻣뻣해지며, 걷기 등 몸동작이 느려지고 중심을 잡지 못하는 대표적인 퇴행성 뇌질환으로 국내 환자는 10∼15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다국적 제약기업인 한국오가논㈜의 신임 사장 쿤 카렐 크라우트보스씨가 최근 취임했다. 네델란드 출신인 신임 크라우트보스 사장은 벨기에, 캐나다, 덴마크 등지에서 국제 세일즈 및 마케팅 총괄담당 등을 거쳤으며 최근에는 일본지사 부사장을 지냈다. 오가논은 네덜란드의 악조(Akzo)와 노벨상을 제정한 알프레드 노벨이 설립한 악조노벨 그룹의 제약 부문 업체로 세계 100여개 국에서 산부인과 및 정신·마취과 제품 등을 제조, 판매하고 있다. 한국쉐링은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을 주사함으로써 갱년기 증상을 치료할 수 있는 ‘네비도(Nebido)’를 국내에 출시한다. 네비도는 1회 주사로 약 3개월 동안 테스토스테론 농도를 정상 수준으로 유지시켜 호르몬 농도의 급격한 변화로 발생하는 ‘동요현상’ 등의 부작용이 없다고 회사측은 설명했다. 강동성심병원은 12일 이 병원에서 ‘밝은 세상 바라보기’를 주제로 백내장 공개 건강강좌와 무료검진 행사를 갖는다. 대상은 60세 이상 노인이며 선착순 120명을 대상으로 시력검사, 소변·혈압·안압·현미경·자동굴절검사 등을 무료로 해준다. 문의(02)2224-2441∼2. 영진약품은 항산화제인 ‘코엔자임Q10’이 10㎎ 함유된 드링크 ‘영진Q10’을 최근 출시했다. 이 제품은 산뜻한 과일향에 달지 않고 뒷맛이 깔끔해 누구나 편하게 즐길 수 있으며, 특히 설탕을 넣지 않아 당뇨병 환자도 부담없이 먹을 수 있다고 회사측은 설명했다. 가격은 100㎎ 한병에 1000원. 삼성서울병원 안과 김윤덕 교수는 미국의 안과학 교과서인 ‘안와(眼窩)종양 진단과 치료’ 2005년도판 저자로 참여, 누선(淚腺)종양 부문을 집필했다. 한국당뇨협회는 8월 24일부터 3박4일 일정으로 강원도 휘닉스파크에서 ‘제8차 의료진과 함께 하는 당뇨캠프’ 참가자를 모집한다. 한국로슈진단㈜ 후원으로 열리는 이번 캠프 참가 대상은 당뇨병 환자로 선착순 100명이며, 배우자도 참석할 수 있다. 참가비 18만원. 문의 문의 080-900-1119.
  • [일본을 다시본다] (7) 노벨상의 산실 교토대

    [일본을 다시본다] (7) 노벨상의 산실 교토대

    |교토 특별취재팀|2003년 10월 스웨덴 한림원이 각 부문별 노벨상 수상자를 발표하자 일본인들은 한숨을 내쉬었다.2000년부터 2002년까지 3년 연속 노벨화학상 수상자를 냈고 2002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까지 배출한 기세를 이어갈 것이라는 기대가 무너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4년 연속 노벨상 수상’이라는 기록 달성 여부와 관계없이 ‘잃어버린 10년’의 경기 침체가 노벨상 수상을 가로막지 못했다는 사실은 이미 3년 동안 입증된 다음이었다. 지금까지 일본인 노벨상 수상자는 모두 12명. 문학상과 평화상을 받은 3명을 제외한 자연과학계열 수상자 9명을 배출한 일본 학계의 저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궁금증을 풀기 위해 자연과학계열 9명의 수상자 가운데 1949년 일본인 최초로 노벨상을 수상한 유카와 히데키 교수를 비롯,5명을 배출한 교토대를 찾았다. ●방치에 가까운 연구풍토… 사회공헌 의식도 한몫 일본 최고 명문대 교토대와 도쿄대는 곧잘 비교되지만 규모 면에선 상당한 차이가 있다. 지난해 5월 현재 교토대의 학생 수는 학부와 석·박사 과정 통틀어 2만 2103명이지만, 도쿄대는 2만 8350명이다. 석·박사 과정만 놓고 보면 교토대 학생 수는 8828명으로 1만 2676명인 도쿄대보다 3326명이 적다. 졸업생 숫자로 보면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격차는 더 벌어진다. 하지만 자연과학계열 노벨상 수상자에 관한 한 교토대는 도쿄대를 5대 2로 한참 앞질러 가고 있다. “수도인 도쿄에서 떨어져 있어 국가 분위기와 상관없이 학문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됐다는 점과, 자유를 중시하는 학풍이 노벨상의 비결이라면 비결인 것 같다.”는 것이 교토대 기초물리학연구소 사사키 미사오(우주물리학) 교수의 말이다. 오이케 가즈오 교토대 총장과 석·박사 과정 학생들도 같은 생각이었다. 오이케 총장은 “자유로운 학풍과 산책하기 좋은 지형, 학문의 사회적 공헌을 중시하는 전통”을 ‘노벨상의 비결’로 꼽았다. 박사과정(우주물리학)의 히키다 와타루는 “어찌 보면 방치라는 느낌이 들 만큼 학생 개인의 자유에 맡겨두지만 책임은 철저하게 묻는다.”고 말했다. 대학원생들의 경우에도 지도교수가 논문 방향을 제시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자유와 학문의 사회 공헌을 강조하는 이같은 정신은 유카와 교수의 일본인 최초 노벨상 수상을 기념,1952년 교토대에 설립된 기초물리학연구소(유카와연구소)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초대 연구소장을 지낸 유카와 교수는 연구자들이 경제 문제를 걱정하지 않고 연구에 매진할 수 있게 지원하는 기관으로 만들 것을 강조했다고 한다. ●일본 물리학의 중심, 유카와연구소 유카와연구소의 특징은 교토대 외부의 연구자들에게 열린 공간이라는 점이다. 현재 연구소의 박사후과정(PostDoc) 23명의 과반수가 교토대 졸업생이 아니며 그 중 6명은 외국대학 출신 이방인이다.3∼4개월가량 머무는 방문연구원은 현재 16명으로 그 중 2명만이 일본 학자들이다. 이렇게 일본 각지와 외국에서 모인 물리학자들은 분야별로 우주, 소립자, 물성(物性), 원자핵 등 4개로 나뉘어 연구한다. 연구소측은 서로 다른 분야의 학자들을 같은 연구실에 배정, 분야간 교류가 쉽도록 배려하고 있다. ●서로 다른 분야 한 연구실 배정 교류 유도 오사카대에서 핵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박사후과정으로 유카와연구소에서 공부하고 있는 다카하시 도루는 “서로 다른 전공의 학자 4명과 같은 연구실에서 공부하기 때문에 사고의 폭을 넓힐 수 있다.”면서 “유카와연구소는 교토대 내에서도 특별한 자유가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유카와연구소에는 일본의 물리학자들이 수시로 모여든다. 물리학계의 사랑방인 셈이다. 기자가 찾은 날에도 인근 나고야대와 오사카대 등에서 온 학자들이 연구소에서 동료 학자들과 전공 관련 논의를 하고 있었다. 오사카대 박사후과정(우주물리학)에 있는 사고 노리치카는 “세미나와 같은 특별한 행사가 없어도 전국에서 관련 분야 학자들이 찾아와 1주일씩 머물며 논의하다 가기도 한다.”며 연구소를 찾은 이유를 설명했다. 일본의 유력한 차기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로 손꼽히는 물리학자 2명도 외부에서 유카와연구소를 찾아왔던 학자들이다. 교토산업대 이학부 마스카와 도시에 교수와 쓰쿠바 고에너지가속기연구기구 소립자원자핵연구소 고바야시 마코토 교수는 1960년대 유카와연구소에서 만나 공동 연구를 시작했다. 두 학자는 이어 73년 2월 연구소에서 ‘고바야시·마스카와 이론’이라는 소립자물리학 이론을 학계에 발표했고 노벨상감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해 노벨상 발표일에도 두 사람의 연구실과 집 앞에는 기자들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국비지원 중단… ‘기초학문 중시´ 풍토 흔들 하지만 현재 교토대와 유카와연구소는 법인화 후폭풍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난해 4월 정부가 국립대 법인화를 선언하고 국비지원을 중단하자 학문의 사회 공헌을 강조하며 기초학문을 중시하는 전통을 이어가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오이케 총장은 “노벨상을 받은 유카와 교수는 ‘대학마저 기초학문을 등한시하면 결코 안된다.’고 강조했다.”면서 “이런 교토대의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 어떻게든 경제적 지원을 하려고 한다.”며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사키 교수는 “생산성을 중시하는 것은 세계적인 경향”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없었다면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이용하는 자동차 네비게이션(자동항법장치)은 존재할 수 없었다.”며 기초학문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촉구했다. surono@seoul.co.kr ■ 오이케 총장이 말하는 ‘유연한 학풍’ |교토 특별취재팀| “자네 아직도 교토대에 있나? 그러니까 노벨상을 못 받는 것 아닌가. 하고 싶은 연구는 찾아다니면서 해야지.” 허연 수염에 백발이 인상적인 오이케 가즈오 교토대 총장. 올해 예순다섯인 그는 교토대가 노벨상의 산실이 된 비결을 묻자 1987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대학 친구이자 현재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인 도네가와 스스무 박사의 일화를 소개했다. 지난 59년 교토대에 입학한 오이케 총장과 도네가와 교수는 1학년 때 같은 학부 같은 반이었다. “(1학년을 마친 뒤) 저는 지구물리학으로 전공을 결정했고 그 사람은 화학과로 갔습니다. 그런데 화학과로 간 사람이 생물학 연구에 푹 빠져 4학년이 됐는데도 졸업 논문도 안 쓰고 이학부에 가서 바이러스 연구를 했지 뭡니까. 논문을 제출하지 않으면 졸업을 할 수 없었지만 학교에서는 그의 학구열을 높이 평가해 졸업을 시켜줬습니다. 학교를 마치고 그 친구가 미국과 스위스로 가서 연구를 할 수 있었던 건 교토대의 자유롭고 유연한 학풍 덕분이기도 했지요.”지난해 벳푸에서 열린 동창회에서 만난 도네가와 교수는 그에게 “자넨 교토대에만 있으니까 노벨상을 못 받는 거야.”라며 농담을 건넸다고 한다. 오이케 총장은 교토대 출신으로 지난 81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후쿠이 겐이치 교수가 밝힌 ‘노벨상을 받게 해준 두가지 습관’도 소개했다. 후쿠이 교수가 소개한 습관은 ‘아침에 눈을 떴을 때나 산책하면서 드는 생각들을 메모하라.’는 것과 ‘사색하기 좋은, 경사가 약간 있는 곳을 걸어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오이케 총장은 후쿠이 교수가 걸었다는 ‘철학의 길’이란 이름의 교토대 산책로를 언급하면서 “교토가 지형적으로 동쪽이 조금 높아 산책하기에 좋은 환경이라는 점도 노벨상 수상에 기여했다.”며 지구물리학자다운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그는 지난 72년 교토대에서 지구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교수와 부총장 등을 거쳐 2년 전 총장에 취임했다. 그는 역대 노벨상 수상자들의 업적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기초학문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노벨상 수상은 사람들에게 기초학문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교토대가 올해부터 중학생과 고등학생 대상 특별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것도 기초학문에 대한 중·고교생의 관심을 높이기 위해서다. 오는 9월부터 실시할 계획인 ‘주니어캠퍼스프로그램’은 일요일마다 교토대 교수들이 중학생들에게 기초학문을 강의하는 프로그램이다. 또 오사카대와 도쿄공대 등 5개 대학과 함께 공동으로 올해 내에 시작할 계획인 ‘오픈코스웨어(OCW·강의정보공개)’는 고등학생 대상 웹사이트 무료 공개강의다. 이 역시 기초학문 중심이다. 오이케 총장은 “노벨상의 비결이라고 한다면 자유와 여유를 강조하는 교토대의 연구 풍토와 사회에 대한 공헌을 강조하는 학풍이 아닐까 싶다.”는 말로 인터뷰를 끝맺었다. surono@seoul.co.kr ●특별취재팀 한종태 국제부장(팀장), 황성기 사회부장, 이춘규 도쿄특파원, 주병철(경제부)·손원천·이언탁(사진부)차장, 안미현(산업부)·김상연(정치부)·황장석(국제부)·유지혜(사회부)·정연호(사진부)기자
  • 괴짜 경제학/스티븐 레빗·스티븐 더부너 지음

    마약판매상은 왜 어른이 되어도 부모와 함께 사는 걸까? 미국에서 가장 수익이 높은 사업중의 하나인 마약거래. 저소득층 주택단지에서 조금만 어슬렁거려도 싸구려 코카인 ‘크랙’의 거래가 가능할 정도다. 그러나 크랙 판매상은 여전히 가난하게 살고 있다. 대부분 자기 집도 없이 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 마약 갱단의 조직을 파고 들어가면 갱단은 맥도널드사의 조직도와 하나도 다를 게 없다. 갱단에 중앙본부가 있고, 그 아래 수백개의 지부가 있다. 본부는 각종 변호사비용과 뇌물, 갱단이 후원하는 지역행사 지원에 돈을 써야 한다. 중간 관리책은 자신의 구역에서 크랙을 판매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는 대가로 수입의 일부를 이사회에 지불해야 한다. 거리에서 크랙을 파는 이들은 다른 경쟁관계에 있는 갱단으로부터 보호를 받기 위해 조직에 돈을 지불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갱단의 고위 간부는 큰돈을 만지지만 아래로 내려가면 갈수록 받는 돈은 줄어들게 마련. 거리 크랙상들의 시급은 최저임금 기준에도 못 미치는 3.3달러에 불과하다. 부모들에게 얹혀 살 수밖에 없는 처지인 것이다. 미국의 젊은 경제학자 스티븐 레빗. 그는 기존 경제학자들이 쓸데없는 짓이라고 여기는 ‘마약 판매상의 재정분석’을 통해 마약 판매상의 가난을 경제학적으로 고찰했다. 일상 생활속에 숨겨진 진실을 방대한 데이터로, 치밀한 통찰력과 과학적 논증으로 파헤쳤다. 그는 이외에도 ‘낙태의 합법화가 미치는 영향’‘승리가 전부는 아니다:스모경기에서의 부패’등 누구도 연구하지 않는 흥미로운 주제에 시간을 쏟아 부었다.2003년 미국 ‘예비 노벨상’이라고 부르는 존 베이츠 클라크 메달을 수상하고, 같은해 포천지 선정 ‘40세 미만의 혁신가 10인’에 선정됐다. ‘괴짜 경제학’(스티븐 레빗·스티븐 더부너 지음, 안진환 옮김, 웅진 지식하우스 펴냄)은 상식과 통념을 깨는 괴짜 경제학자의 세상 읽기다. 뉴욕타임스의 기고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더부너의 글솜씨가 더해져 난해한 경제학을 쉽게 읽히게 한다. 그는 ‘그 많던 범죄자들이 다 어디로 갔을까?’에 의문을 표시했다. 연구 결과 그는 1990년대 미국의 범죄율이 급격히 줄어든 이유는 사회의 완벽한 치안정책이나 총기규제, 경제번영 등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낙태의 합법화라는 뜬금없는 사건이 주요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원치 않는 출산은 범죄율을 높이지만 반대로 낙태의 합법화는 범죄율을 낮춘다는 설명이다. 저자는 현대의 삶을 지탱하는 초석은 ‘인센티브’라고 분석한다. 스모 선수와 교사가 결정적인 순간에 승부조작과 시험부정 행위를 저지른 것에 대한 설명은 인센티브로 설명했다. 또 우리가 아는 세상은 진실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범죄학자가 범죄율이 줄어든 것을 설명해내지 못하고, 교사가 부정행위를 저지르고, 돈이 선거의 승패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경제적인 잣대가 아니라 도덕적인 잣대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1만 2000원.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신혜수씨 등 한국여성 6명, 노벨평화상 추천후보에

    |제네바 연합|한국 여성 6명이 스위스의 민간단체가 추천하는 올해의 노벨평화상 공동추천후보 명단에 포함된 것으로 밝혀졌다. 스위스의 민간단체인 ‘노벨평화상 1000 여성 추천운동협회’가 29일(현지시간) 발표한 후보 1000명의 명단에 윤금순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회 회장 등 모두 6명의 한국 여성이 등재된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 여성으로는 윤 회장 외에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의 이현숙·김숙임 대표, 정유진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사무국장, 이철순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 대표, 신혜수 한국정신대대책협의회 상임대표 등이 올라 있다. 또 일본은 6명이 명단에 올라 있으며 이 가운데 송인도(82)씨가 포함돼 있다. 송씨는 종군위안부 출신으로 일본 내에서 전시에 자행된 여성에 대한 폭력은 물론 종전 이후의 가혹한 인종차별에 정면으로 맞서왔으며, 일본 정부의 사과를 요구하는 법정 투쟁을 전개한 공로가 인정돼 추천을 받은 것으로 돼 있다. 협회측은 1000명의 명단을 이미 노벨상위원회에 제출했다면서 곧 이들의 신상정보와 활동상을 수록한 책자를 만들어 올 연말 전세계에 배포하고 사진과 출판물을 소개하는 순회전시회도 가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노벨평화상 1000 여성 추천운동협회’는 역대 노벨평화상이 여성을 차별하고 있으며 이들의 노고가 조명을 받아야 한다는 취지 아래 지난 2003년 8월 스위스에서 14개국 여성대표들의 주도로 결성됐다.
  • “혈관 치료엔 산화질소가 특효”노벨상 수상 이그나로박사 방한

    “혈관 치료엔 산화질소가 특효”노벨상 수상 이그나로박사 방한

    “혈관의 건강을 걱정한다면 산화질소(NO)가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최근 국내 의학자들을 대상으로 산화질소의 약리적 특성을 강의하기 위해 방한한 1998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루이스 이그나로(64) 박사는 24일 서울 조선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자신의 노벨상 수상 계기이기도 한 산화질소의 효능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일산화질소로 알려진 산화질소는 동맥 내피세포에서 생성되는 분자로, 혈관을 확장시켜 혈류를 증가시키며 이를 통해 유연성과 운동능력 향상, 혈압 조절은 물론 혈전의 생성을 억제하는 물질이다. 이런 원리에 착안, 이그나로 박사는 최근 ‘루이스 이그나로 나이트웍스 비타민C·E·엽산’이라는 기능성 건강식품을 허벌라이프사와 공동개발, 미국에 이어 국내에서도 출시했다. 그는 최근 국내에서 ‘붐’을 일으키고 있는 산화질소 제제에 대해 “나이트웍스 자체가 약리성을 갖는 것이 아니라 이 약제가 체내에서 항산화 영양소인 비타민C·E, 엽산 등과 함께 작용해 산화질소의 약리성을 높여 심혈관질환의 문제를 개선하는 것”이라며 “이 약제에 포함된 아미노산 복합체는 체내에서 산화질소 생성에 관여하는 효소를 증가시켜 혈류 개선, 세포 활성화, 소화기능 개선 등의 효과를 나타나게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부의 우려와 달리 화학적으로 만들어진 산화질소를 기체 상태로 대량 흡입하는 방식이 아니라 체내에서 신체의 자발적인 기전에 의해 생성되는 산화질소는 부작용이 거의 없다.”며 “아직도 전 세계 의사들이 임상에서 산화질소를 방출하는 니트로글리세린을 이용해 심장 통증과 협심증의 증상을 완화하는 것에서도 산화질소의 기능을 확인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UCLA의대 약학과 교수로 재직중인 이그나로 박사는 1998년 산화질소 발견과 함께 이 물질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했으며 미국학술원과 예술과학원 회원이기도 하다.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만장일치 “황우석”

    황우석 서울대 교수가 ‘제1호 최고과학자’로 선정됐다. 과학기술부는 24일 서울 반포동 팔래스호텔에서 최고과학자위원회를 열어 최고과학자 후보 5명 가운데 황 교수를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임관 위원장(삼성종합기술원 회장)은 “황 교수는 난치병 환자의 체세포를 이용한 치료용 배아줄기세포 배양에 성공하고, 자신의 난자가 아닌 타인의 난자를 활용해도 면역거부 반응이 없음을 확인하는 등 연구성과가 높이 평가됐다.”면서 “최고과학자로 황 교수가 선정된 것을 계기로 세계의 미래를 한국이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지원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고과학자 제도는 연구의 우수성이 세계적으로 입증된 국내외 과학자에 대해 국가가 특별 지원하는 것으로 올해 처음 도입됐다.과기부는 매년 1∼2명씩 최고과학자를 선정해 최대 10명에게 1인당 연간 30억원 정도의 연구비를 최대 5년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연간 20억원의 연구비를 정부로부터 지원받고 있는 황 교수에게 10억원이 추가 지급된다. 일본의 연구소와 공동연구 프로젝트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도쿄를 찾은 황 교수는 ‘제1호 최고과학자’로 선정된 데 대해 “모든 공은 공동연구진에 돌린다.”고 말했다. 황 교수는 이날 도쿄 특파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우리의 연구는 완성이 아니고 아직은 미완성”이라며 “이 상은 국민에게 책임지고 연구를 마무리하라는 뜻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국내연구팀과 해외연구진의 긴밀한 공동연구체제를 구축하겠다.”면서 “5년내에 국민들이 원하는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이제부터 최고과학자 선정 이전보다 더 정진하겠다.”고 다짐했다. 한편 생화학 분야의 세계적 과학자인 김성호 미국 UC 버클리대 화학과 교수가 황 교수팀에게 공동연구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김 교수는 30대이던 지난 1973년 세포 내 전달 RNA의 분자구조를 처음으로 밝혀내는 등 현재 유력한 노벨상 후보자로 꼽히고 있다.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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