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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번엔 ‘흰’… 한강 두 번째 맨부커상 후보 올라

    이번엔 ‘흰’… 한강 두 번째 맨부커상 후보 올라

    소설가 한강(48)이 세계적인 권위의 문학상인 맨부커상 인터내셔널상 후보에 또다시 이름을 올렸다. 2016년 소설 ‘채식주의자’로 이 상을 거머쥔 데 이어 두 번째로 후보에 오른 것이다.12일(현지시간) 맨부커상 운영위원회는 홈페이지에 한강의 ‘흰’(영문명 ‘The White Book’)을 포함한 13명의 1차 후보(롱리스트)를 발표했다. ‘채식주의자’에 이어 ‘흰’을 번역한 영국 번역가 데버러 스미스도 함께 후보에 올랐다. ‘흰’은 운영위원회가 심사한 전체 108편의 작품 가운데 1차 후보로 선정됐다. 소설과 시의 경계에 있는 작품 ‘흰’은 한국에서 2016년 5월 출간됐다. 강보, 각설탕, 달, 쌀, 백지, 수의 등 하얀 빛깔을 지닌 사물들에 대한 65편의 짧은 이야기를 시집처럼 엮었다. 지난해 11월 영국에서 출간된 이후 현지 언론과 출판계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작가는 “더럽히려야 더럽힐 수 없는 투명함이나 생명, 빛, 밝은 눈부심”을 썼다고 설명한 바 있다.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은 새달 12일 최종 후보(쇼트리스트)를 6명을 선정하고, 오는 5월 22일 최종 수상작을 발표한다. 상금 5만 파운드는 작가와 번역가가 나눠 갖는다. 맨부커상은 노벨문학상, 프랑스 공쿠르상과 더불어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힌다. 1969년 영국의 부커사가 제정해 영어로 쓴 소설 중 수상작을 선정하다가 다양한 문화권을 아우르지 못하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2005년부터 인터내셔널 부문을 신설했다. 인터내셔널상은 2015년까지 격년으로 작가와 번역가에게 공동으로 시상하다가 2016년부터 매년 시상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작가 한강, 또 맨부커 후보 올라… 두 번째 지명

    작가 한강, 또 맨부커 후보 올라… 두 번째 지명

    작품 ‘흰’으로 1차 후보 지명… 다음달 12일 최종 후보 6인 발표 소설가 한강이 생애 두 번째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수상에 도전한다. 한강은 2년 전 ‘채식주의자’로 이 상의 주인공이 된 데 이어 두 번째로 후보 지명이 됐다.맨부커상 운영위원회는 12일(현지시간) 홈페이지에 한강의 ‘흰’을 포함한 13명의 1차 후보를 발표했다. 2년 전 ‘채식주의자’로 한강과 함께 상을 받은 번역가 데버러 스미스가 이번에도 ‘흰’을 번역해 함께 후보에 올랐다. 소설과 시의 경계에 있는 작품 ‘흰’은 한국에서 2016년 5월 출간됐고, 영국에서는 출판사 ‘포토벨로 북스’에 의해 지난해 11월 출간됐다. 이 작품은 강보, 배내옷, 소금, 눈, 달, 쌀, 파도 등 세상의 흰 것들에 대해 쓴 65편의 짧은 글이 묶여있다. 지난해 영국에서 출간된 뒤 현지 언론과 출판계, 독자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맨부커 운영위원회는 다음 달 12일 최종 후보(shortlist) 6명을 발표할 예정이다. 최종 수상자는 오는 5월 22일 열리는 공식 만찬 자리에서 발표된다. 수상자와 번역가에게는 5만 파운드가 수여된다. 맨부커상은 노벨문학상, 프랑스 공쿠르상과 더불어 세계 3대 문학상으로 불리며 영미권에서는 노벨문학상에 못지 않는 권위를 지니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여성, 남성과 같은 돈 받고 같은 일하는 사회돼야”

    “여성, 남성과 같은 돈 받고 같은 일하는 사회돼야”

    “일부 국가에서는 여전히 여성들이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억압당하고 존중받지 못하며 남자에 비해 열악한 존재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성들이 남자로부터 독립하지 않는 한 한 나라의 민주주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여성이 남성과 동일한 봉급을 받고 동일한 직종에 근무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대중교통을 탈 때 혹은 외진 동네를 거닐 때 여성들이 두려움을 느껴서도 안됩니다. 여성들에게 겁을 주거나 두려움을 주는 일은 철저히 단죄해야 합니다.”노벨문학상 수상자이자 대표적인 지한파 프랑스 소설가인 장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가 3개월 만에 다시 한국을 찾았다. 지난해 말 발표한 서울 배경의 장편소설 ‘빛나-서울 하늘 아래’(서울셀렉션)의 독자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이번 방한에는 프랑스 출간을 앞두고 소설 속 실제 장소를 둘러보기 위해 프랑스 출판사 관계자와 기자단도 동행했다. 12일 오후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교보컨벤션홀에서 독자들과 만남의 시간을 가진 르 클레지오는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 불고 있는 ‘미투’(#MeToo·나도 피해자다) 운동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 “한국 뿐만 아니라 프랑스, 미국 등 발전 상황과는 무관하게 세계 모든 국가가 경각심을 가져야 할 때”라며 이같이 말했다. 한편 르 클레지오가 2001년 처음 방한한 이후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문학적 견해를 나누고 우정을 쌓아온 황석영 소설가가 대담자로 동석했다. 황 작가는 같은 질문에 “과거 독재정권 당시 독재자와 싸우다가 감옥을 들어갔다 나온 이후 사실은 나 스스로도 독재자의 방식을 체득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그 이후부터 작품을 통해 여성을 화자로 내세우고, 여성의 눈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역할 바꾸기’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여성의 분노, 수치감, 모욕감 등이 일상 속에서 목구멍까지 차오른 끝에 지금과 같은 미투 운동이 벌어지게 됐다”면서 “하나의 사회운동으로서 심화되어 깊은 토론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나부터 반성하겠다”라고 말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사설] 해외에 결백 주장한 고은, 부끄럼도 모르는가

    성추문에 휘말린 고은 시인이 영국의 한 언론을 통해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고 한다. 유력 일간지 가디언은 최근 블루덱스 북스라는 출판사를 통해 받은 고 시인 측의 성명서를 보도했다. 제기된 의혹들에서 자신의 이름이 거론된 것은 유감이지만, 상습 성추행 혐의는 단호히 거부한다는 게 성명서 요지다. 부끄러운 행동을 한 적이 없으니 집필을 계속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고 시인은 한 달여 전 최영미 시인의 폭로 이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오늘날에 비추어 성희롱으로 규정된다면 잘못했다고 생각한다”고 우회적으로 사과의 뜻을 밝혔을 뿐 공식 입장은 밝히지 않았었다. 따라서 이번 가디언 보도가 첫 공식 입장인 셈이다. 그는 성명서에서 “사실과 맥락을 쉽사리 파악할 수 없는 친구들을 위해서”라고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주장을 믿을 외국인 친구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하는 의문이 든다. 설령 억울한 점이 있더라도 그가 호소할 대상은 그의 수많은 독자와 국민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고 시인은 최 시인의 폭로 후 성추행 의혹을 사실상 인정하는 듯한 태도를 보여 왔다. “더이상 누를 끼칠 수 없다”면서 수원시가 마련해 준 집을 반납했고, 수원시의 고은문학관 건립 철회와 교육부의 교과서 시 삭제 방침에도 한마디 항의조차 못 했다. 그가 사실상 창립한 한국작가회의가 이사회를 소집해 그의 징계안을 처리한다고 하는데도 상임고문직을 사퇴했을 뿐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그가 정말 결백하다면 먼저 수원시나 교육부, 작가회의 등에 결백을 호소하고 항의했어야 옳다. 그가 생뚱맞게 해외 언론에 성명서를 보내니 ‘아직도 노벨문학상에 집착하는 것 아니냐’ 하는 조롱이 나돌고 있는 것이다. 고 시인은 자신의 대표작으로 ‘자작나무 숲으로 가서’를 꼽는다. 삶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담은 감동적인 시다. ‘어찌 삶으로 울지 않은 사람이 있겠느냐/오래오래 우리나라 여자야말로 울음이었다’란 구절이 있다. 겨울철 자작나무숲의 벗은 몸처럼 힘들게 살아온 여성들을 ‘슬픔엔 거짓이 없다’고 위로한다. 시어로는 여성의 슬픔을 달래 준다면서 정작 자신이 여성을 울린 역설을 고 시인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에게 조금이나마 부끄러움이 남아 있다면 지금이라도 위선적인 삶을 반성하고 여성들에게 용서를 구해야 한다.
  • [시론] 문학권력의 고백성사를 요구한다/최강민 문학평론가·우석대 교수

    [시론] 문학권력의 고백성사를 요구한다/최강민 문학평론가·우석대 교수

    2016년 10월 촛불혁명 이후 적폐청산은 시대의 화두가 됐다. 이 연장선에서 2018년 서지현 검사의 성폭력 범죄를 알리는 미투(#Me Too·나도 피해자다) 운동이 점화됐고, 최영미 시인은 고은 시인의 성폭력을 비판하는 문학계의 미투 운동으로 적폐청산의 도미노 게임에 참여했다. 문학의 윤리성과 저항성을 상징하던 고은은 숨겨진 괴물의 자화상이 폭로되면서 추락했다. 최영미가 이어받은 미투 운동은 문화계 전반으로 확산돼 현재진행형이다. 고은 시인의 성폭력이 오랫동안 은폐될 수 있었던 것은 고은을 포함한 문학권력과 낡은 문학 관행이 함께 작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은은 한국작가회의의 전신인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대표간사와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장을 역임했고, 오랫동안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된 문학권력이었다. 이러한 고은의 문학권력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한 것은 바로 창비와 한국작가회의다. 그동안 진보문학의 좌장 역할을 한 창비는 문학의 현실 참여, 삶과 문학의 진정성, 문인의 윤리성을 강조하며 한국문학을 변혁시켰다. 고은의 성폭력은 창비의 뒤풀이 모임에서도 있었다고 최영미는 증언하고 있다. 창비는 고은의 상습적인 성폭력 사실을 알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고은은 계간 창작과 비평의 지면에 시를 꾸준히 발표했고, 창비의 주요 행사에 초청됐다. 이것은 창비의 안이한 성폭력 인식과 묵인, 남성 문인들의 성폭력에 대해 관용적인 문학관이 함께 작용한 참사다. 고은의 성폭력 사건은 사회적 약자인 여성들을 옹호하는 페미니즘 책을 발간한 창비의 이중적 처신과 위선을 드러낸다. 파쇼적 보수정권과 대결하는 상황에서 고은의 성폭력을 묵인했다면 창비의 조직 보호 논리는 그들이 비판한 극우보수의 행태와 닮은꼴에 불과하다. 고은의 성폭력 사건은 한국문학의, 진보문학의 위기를 상징한다. 지난 2월 한국작가회의의 총회에서 최원식(계간 창작과 비평 전 편집주간) 이사장은 “부족한 저를 지난 2년간 이사장으로 허락해 준 고은 선생을 비롯한 고문단”에게 깊이 감사한다는 인사말을 했다. 고은의 성폭력이 폭로된 상황에서 한국작가회의를 대표하는 최원식은 고은 시인에게 감사의 말을 던졌던 것이다. 성폭력을 반대한다는 한국작가회의의 성명과 이사장의 엇박자 발언은 경악할 일이다. 이날 총회에서 초등학교 반장선거도 이렇게 하지 않을 법한 일들이 ‘관행’이라는 이름하에 진행됐다. 총회의 파행은 직선제 유무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적 절차에 따른 공정하고 합리적인 선거 집행이 부재했기에 발생한 적폐였다. 한국작가회의는 이사장과 사무총장을 선출할 때 민주주의 선거 원칙인 비밀선거를 하지 않았고, 출마의 변도 없었다. 선거는 공개적인 거수투표를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강행했다. 고은의 성폭력과 한국작가회의 총회는 쌍생아의 적폐였다. 유명 연예인의 성폭력은 당사자가 개인으로 국한되는 경우가 많다. 반면에 고은의 경우 개인을 넘어 문학권력, 악습의 문학 카르텔이 깊게 관련돼 있다. 그래서 추가적인 미투 운동이 쉽지 않다. 고은의 성폭력과 직간접으로 관련된 문인들과 문학권력은 고은 사건의 확대를 두려워한다. 이들 일부는 내부 고발자인 최영미의 개인 행실을 비판하는 마녀사냥의 꼼수 발언으로 대응했다. 고은과 방조자를 포함한 문학권력은 모두 유죄다. 이 시점에 필요한 것은 죄인이라는 각자의 인식 속에 진솔한 참회의 고백성사다. 고은은 최근 외신에 부끄러운 어떤 짓도 하지 않았다고 변명의 발언을 했다. 무죄라고 생각한다면, 고은은 최영미 시인을 즉각 고발하고 경찰의 조사를 받아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라. 존경받던 문인이 위선자로 밝혀진 것은 한국문학의 비극이자 역사의 아이러니다. 문학계의 미투는 적폐 관행을 폐기하라는 선언이자 질적 갱신의 필요성을 채찍질하는 절규다. 미투 운동은 남녀가 평등한 행복한 세상을 만들려는 자구적 움직임이다. 문인들과 문학권력은 이 선언과 절규에 뜨겁게 대답해야 한다.
  • “국제 위상 높인 성과 위에 한국문학 성찰 담겠다”

    “국제 위상 높인 성과 위에 한국문학 성찰 담겠다”

    순수 한국문학 전공자 첫 임명 “한국어 문학 전체로 시야 확장” “이제 단순히 번역보다 과연 ‘한국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이고 심층적인 물음을 되돌아봐야 하는 시점입니다. 그런 면에서 순수문학 전공자인 저를 선택한 배경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5일 한국문학번역원장에 선임된 김사인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교수는 이같이 소감을 밝혔다. 1996년 설립된 한국문학번역원의 원장은 그동안 외국문학을 전공하고 번역이나 한국문학 평론 분야에서 활동해 온 전문가들이 주로 맡아 왔다. 순수 한국문학 전공자가 이 자리를 맡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이날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지난 20여년간 한국문학번역원을 이끈 외국문학 전문가들의 노력 덕분에 몇몇 한국 작가들이 노벨문학상 후보군으로 거론될 만큼 한국 문학의 국제적인 위상이 높아졌다”면서 “그 성과 위에 한국문학의 성찰을 담겠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문학번역원은 그 명칭 때문에 단순히 문학 작품을 번역해 해외에 소개하거나 국내 작가의 해외 진출을 돕는 사업을 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 사명을 엄밀하게 말하면 ‘한국 문학의 세계화 전략본부’라고 볼 수 있다”면서 “그간 한반도 남부 지방, 특히 서울을 우리 문학의 영토로 여겨 온 우리의 시야를 한국어 문학 전체로 넓히고 문학 콘텐츠의 빈약함을 채울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1981년 시인으로 등단한 김 원장은 대전고, 서울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계간 실천문학 편집위원, 계간 창작과비평 편집위원, 한국작가회의 사무국장·시분과 위원장·이사·부이사장 등을 지냈다. 미국 아이오와대 국제창작프로그램(IWP)을 수료하고 미국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 교환교수·중국 중앙민족대 외래교수를 지냈으며 문학계와 활발하게 소통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한국문학의 해외 진출을 지원할 적임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김 원장은 시집 ‘밤에 쓰는 편지’, ‘가만히 좋아하는’, ‘어린 당나귀 곁에서’ 등을 펴냈고 문학평론가로도 활동하며 ‘박상륭 깊이 읽기’와 ‘시를 어루만지다’와 같은 해설서도 출간했다. 2015년부터 2016년까지는 창비 팟캐스트 라디오 ‘김사인의 시시(詩詩)한 다방’을 진행하기도 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성추행 논란 ’ 고은 시인 연내 광교산 떠난다

    ‘성추행 논란 ’ 고은 시인 연내 광교산 떠난다

    주민 반발ㆍ여성계 요구 겹쳐 최영미 시인 “공식 사과하라” 문단 내 성추행 논란에 휩싸인 고은(85) 시인이 창작 활동을 해 왔던 경기 수원시 광교산 ‘문화향수의 집’을 5년 만에 떠난다.수원시는 18일 “고은 시인이 고은재단 관계자를 통해 올해 안에 다른 장소로 이주하겠다는 뜻을 전해 왔다”고 밝혔다. 고은 시인은 2013년 8월부터 시가 광교산 자락에 마련해 준 문화향수의 집에 살면서 창작 활동을 해 왔다. 고은재단 측은 이와 관련해 “고은 시인이 지난해 5월 광교산 주민들에게 퇴거를 요구받는 등 반발을 겪으면서 수원시가 제공한 창작 공간에 거주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했고 이에 따라 이주를 준비해 왔다”면서 “자연인으로 살 수 있는 곳에 새로운 거처를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주는 연내 이뤄지지만 (일부 언론에서 보도한) 수원을 떠나기로 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도 전했다. 시는 고은 시인의 뜻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우선 올해 고은 시인 등단 60주년을 기념해 추진할 예정이었던 문학 행사를 잠정 보류하기로 했다.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시인은 경기 안성시에서 20여년간 거주하다가 수원시의 요청에 따라 2013년 장안구 광교산 자락으로 이사했다. 이 과정에서 시가 주택을 사들여 리모델링해 고은 시인에게 제공했으나 지난해 5월 광교산 주민들이 “우리는 47년간 개발제한구역과 상수원보호법 탓에 피해보는데 시인에게 특별지원하는 건 잘못됐다. 고은 시인은 광교산을 떠나라”고 요구했었다. 최근에는 성희롱·성폭력 피해를 고발하는 ‘미투’(#Me Too) 운동과 관련해 수원 지역 여성단체들이 “수원시는 고은 시인에 대한 지원을 전면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한편 지난해 12월 시 ‘괴물’을 통해 고은 시인으로 추정되는 원로시인 ‘En 선생’의 성추행을 폭로한 최영미(57) 시인은 지난 17일 페이스북 글을 통해 “저뿐 아니라 그로 인해 괴롭힘당한 수많은 여성들에게 괴물의 제대로 된 사과, 공식적인 사과와 반성을 원한다”면서 “문단 내 성폭력을 조사하는 공식적인 기구가, 작가회의만 아니라 문화체육관광부, 여성단체, 법조계가 참여하는 문화예술계 성폭력 조사 및 재발방지위원회가 출범하길 요청한다”고 밝혔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고은 시인, 정말 추하게 늙었다”…유승민, 교과서 시 삭제 주장

    “고은 시인, 정말 추하게 늙었다”…유승민, 교과서 시 삭제 주장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가 최영미 시인의 원로시인 성추행 폭로와 관련, 고은 시인을 강하게 비판했다.유승민 대표는 8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국회의원 연석회의에서 “현직 여검사의 고발에 이어 최영미 시인이 고은 시인의 문학계 성추행을 고발했다”면서 “매우 추악하고 충격적이다. 이런 사람이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됐다니, 대한민국 수치가 될 뻔했다”고 말했다. 유승민 대표는 “고은 시인에게 두 마디만 말 하겠다. 정말 추하게 늙었다. 그리고 권력을 이용해서 이런 성추행을 했다면 정말 찌질하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은 시인의 시를 국정 교과서에서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문학계에서 권력을 가진 남성 문인이 여성 문인이나 신인 문인에게 성추행·성폭행을 가한 것이 광범위하다면 한국 문학을 대표하는 자들이 인간 자격이 없고 존엄이나 양식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승민 대표는 “이런 사건은 용두사미로 끝나선 안 된다”면서 “검사 성추행 사건은 진상조사단이 공정하게 수사를 못 하는 만큼 상설특별검사제도 도입을 주장다”고 했다. 유승민 대표는 “여성 인권을 평소 주장하던 민주당과 정의당 의원들이 여기에 동참하길 바란다”면서 “당대표가 성추행 의혹을 받고 있는 자유한국당에는 기대하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사설] 최영미 시인의 ‘미투’, 가해자 반성 보고 싶다

    터질 게 터졌다. 최근 현직 여성 검사의 성추행 폭로로 시작된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문학계로 번지고 있다. 2016년 가을 문화예술계를 뒤흔들었던 ‘#문단_내_성폭력’ 폭로 운동이 대통령 탄핵과 대통령 선거에 묻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가 최영미 시인의 폭로로 다시 전면으로 떠올랐다. 최영미 시인은 계간지 ‘황해문화’의 지난 겨울호에 발표한 시 ‘괴물’에서 이름만 공개하지 않았지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돼 온 유명 원로 시인 ‘En’의 성희롱을 고발해 문단이 발칵 뒤집혔다. 최 시인은 그제 TV에 출연해 “술자리에서 젊은 여성 작가들을 상대로 성희롱, 성추행을 행한 문인이 한두 명이 아니며, 문단 전체가 방조하는 분위기였다”면서 “피해를 본 여성이 셀 수 없이 많다”고 폭로했다. 그는 문단의 성추행이 공공연한 이유로 원로와 신인 작가 간 권력관계를 꼽았는데 상당히 공감이 간다. 신인 문인들의 문단 진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중진 및 원로에 의해 저질러지는 성추행은 문단 권력 갑질의 또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최 시인의 폭로 직후 성추행의 당사자로 지목된 원로 시인은 언론에 “30년 전 일이라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오늘날에 비추어 성희롱으로 규정된다면 잘못된 행동이라 생각하고 뉘우친다”고 밝혔다. 자기반성에 그칠 사안이 아니라 최 시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거취를 밝혀야 한다. 이 와중에 한국시인협회 신임 회장의 성추문 전력이 알려지면서 반대 여론이 커지고 있다. 영화계에서도 성폭력 관련 파문이 번지는 등 ‘미투’는 문화계 전반으로 옮겨 가고 있다. 민주평화당 유성엽 의원실에 따르면 ‘영화인의 성평등 환경 조성을 위한 실태조사’에서 여성 응답자의 11.5%가 원하지 않는 성관계를 요구받은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남성 응답자의 2.6%도 같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성폭력은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폭로를 위한 폭로가 아니라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기 위한 ‘미투’ 운동은 계속돼야 한다. 확인된 성폭력에 대해서는 합당한 처벌이 내려져야 한다. 법 제도의 개선에 그칠 게 아니라 여성·약자에 대한 성폭력을 묵인·조장하는 조직 문화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여성과 약자가 겁먹지 않고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게 해야 한다.
  • En 옆에 앉지 마라… ‘#미투 ’ 詩도 울었다

    En 옆에 앉지 마라… ‘#미투 ’ 詩도 울었다

    최근 법조계에서 시작된 ‘미투’(#Me Too) 운동이 사회 각 분야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최영미 시인이 문단 내 성추행 행태를 폭로해 논란이 일고 있다.최 시인은 6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술자리에서 젊은 여성 작가들을 상대로 성희롱, 성추행을 행한 문인들이 한두 명이 아니며 문단 전체가 그런 문화를 방조하는 분위기였다”면서 “문단 내 피해를 본 여성이 셀 수 없이 많다”고 폭로했다. 그는 “객관적인 점수를 매길 수 없는 문학작품의 특성상 여성 문인이 권력을 쥔 남성 문인을 거절하면 문학상 후보에 오르지 못하는 등 여성 문인들은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덧붙였다. 앞서 그가 계간지 ‘황해문화’ 2017년 겨울호에 게재한 시 ‘괴물’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화제가 됐다. 이 시는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문단 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K의 충고를 깜박 잊고 En선생 옆에 앉았다가/Me too/동생에게 빌린 실크 정장 상의가 구겨졌다”는 내용으로 시작된다. 이어 “노털상 후보로 En의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En이 노털상을 받는 일이 정말 일어난다면,/이 나라를 떠나야지/이런 더러운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아/괴물을 키운 뒤에 어떻게/괴물을 잡아야 하나”라는 부분을 통해 해당 인물이 노벨문학상 후보로 자주 거론된다는 것을 암시한다. 당사자로 의심받고 있는 시인은 한 매체와의 통화에서 “30년 전 일이라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당시 후배 문인을 격려한다는 취지에서 한 행동이 오늘날에 비추어 성희롱으로 규정된다면 잘못된 행동이라 생각하고 뉘우친다”고 했다. 이에 대해 최 시인은 “당사자로 지목된 문인이 내가 시를 쓸 때 처음 떠올린 문인이 맞다면 구차한 변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상습범이다. 너무나 많은 성추행과 성희롱을 목격했고 피해를 봤다”고 반박했다. 문단 내 성폭력 문제는 2016년부터 SNS를 통해 공론화되며 꾸준히 거론돼 왔다. 김현 시인이 2016년 9월 계간지 ‘21세기 문학’ 가을호에 실린 ‘질문 있습니다’라는 글에서 문단 내 성폭력 문제를 처음 공개한 이후 문단 내 권력을 이용한 성폭력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크게 일었다. 최근 트위터의 ‘문단_내_성폭력 아카이브’ 계정에서는 또 다른 중견 문인 김모씨에게 성폭행 피해를 당했다는 피해자의 폭로 글도 올라와 논란이 되고 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최영미 시인 성추행 폭로...‘괴물’ 누굴까

    최영미 시인 성추행 폭로...‘괴물’ 누굴까

    최근 법조계에서 시작된 ‘미투’ 운동이 사회 각 분야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문단 내 성추행 행태를 폭로한 문인들의 과거 작품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6일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최영미(사진) 시인이 계간 ‘황해문화’ 2017년 겨울호에 게재한 시 ‘괴물’이 화제가 됐다.이 시는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문단 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K의 충고를 깜박 잊고 En선생 옆에 앉았다가/Me too/동생에게 빌린 실크 정장 상의가 구겨졌다”는 내용으로 시작된다. “몇 년 뒤, 어느 출판사 망년회에서/옆에 앉은 유부녀 편집자를 주무르는 En을 보고,/내가 소리쳤다 “이 교활한 늙은이야!“/감히 삼십년 선배를 들이받고 나는 도망쳤다”는 내용이 이어진다. “노털상 후보로 En의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En이 노털상을 받는 일이 정말 일어난다면,/이 나라를 떠나야지/이런 더러운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아/괴물을 키운 뒤에 어떻게/괴물을 잡아야 하나”라는 부분을 통해 해당 인물이 노벨문학상 후보로 자주 거론된다는 것을 암시한다. 시인은 지난달 30일 페이스북을 통해 최근 검찰 내 성추행 의혹을 폭로한 서지현 검사를 언급하며 다시금 문단의 성희롱 행태에 대해 지적했다. 그는 “문단에는 이보다 더 심한 성추행 성희롱이 일상화되어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 시절의 이야기를 지금 할 수 없다. 이미 나는 문단의 왕따인데, 내가 그 사건들을 터뜨리면 완전히 매장당할 것이기 때문에? 아니, 이미 거의 죽은 목숨인데 매장당하는 게 두렵지는 않다. 다만 귀찮다. 저들과 싸우는 게”라며 “힘없는 시인인 내가 진실을 말해도 사람들이 믿을까? 확신이 서지 않아서다. (중략)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래서 더 무시무시한 조직이 문단”이라고 적었다. 문단 내 성폭력 문제는 2016년부터 SNS를 통해 공론화되며 꾸준히 거론돼 왔다. 김현 시인이 2016년 9월 계간지 ‘21세기 문학’ 가을호에 실린 ‘질문 있습니다’라는 글에서 문단 내 성폭력 문제를 처음 공개한 이후 문단 내 권력을 이용한 성폭력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크게 일었다. 최근 트위터에서 운영되고 있는 ‘문단_내_성폭력 아카이브’ 계정에서는 최 시인의 시 전문과 함께 “문학이란 이름으로 입냄새 술냄새 담배 쩔은내 풍기는 역겨운 입들. 계속해서 다양한 폭로와 논의와 담론이 나와야 한다. 적어도 처벌이나 사람들 눈이 무서워서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하도록. 최영미 시인님 고맙습니다”라는 글이 올라왔다. 이 글은 현재까지 1400여회 리트윗 됐다. 네티즌들은 시인이 시에서 지목하는 인물로 짐작되는 시인의 실명을 언급하며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문단_내_성폭력 아카이브’에서는 또 다른 중견 문인 김모 씨에게 성폭행 피해를 당했다는 피해자의 폭로 글도 올라와 논란이 되고 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씨줄날줄] 황병기, 오에 겐자부로/황성기 논설위원

    [씨줄날줄] 황병기, 오에 겐자부로/황성기 논설위원

    199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에 겐자부로(83)에게 아들과 딸 두 자녀가 있는데 딸의 딸, 즉 손녀의 이름이 가야(伽耶)이다. 가야란 이름은 오에가 가야금의 명인 고 황병기 선생의 음악을 좋아했기 때문에 붙였다. 가야금(伽耶琴)의 가야에서 딴 것이다. 오에의 작품을 번역하면서 1995년 처음 그와 만나게 된 박유하 세종대 교수(일본문학)는 “십수년 전 오에 선생에게서 손녀 얘기를 듣고는 황병기 선생의 CD를 사서 드린 적도 있다”고 말했다. 오에는 일찍이 우리의 음악에 관심이 있었다. 일본의 음악평론가 아키 미쓰오는 ‘한국 음악의 선열함, 판소리를 듣다’란 1982년 글에 이렇게 쓰고 있다.“1980년 10월 도쿄 이케부쿠로에서 ‘판소리를 듣는 모임’이란 공연이 열렸다. 음악과 연극, 문학이 섞여 만들어 내는 판소리의 원초적인 우주론에 주목한 오에 겐자부로 등이 발기인이 되어 김소희라는 한국의 1인자를 불러 가진 공연이었다.” 오에는 2000년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와 가진 대담(요미우리신문)에서 장애인인 아들 얘기를 꺼내며 “아들은 인간의 말은 잘 이해 못 하지만 음악의 말은 정확히 이해합니다. 그가 음악을 열중해서 듣게 되어서 나와 아내에게 기쁨이 돌아왔습니다”라고 밝혔다. 음악이 치유의 능력을 지니는 것 같다는 오에의 관심은 황병기의 가야금 세계에도 미쳤을 것이다. 82세를 일기로 그제 타계한 황병기가 가야금을 접한 것은 1951년 피란지 부산에서였다. 그와 경기중·고 서울대학교를 함께 다닌 강신표 전 이화여대 교수는 “대신동에 차려진 경기중학교의 천막 교사와 집을 오가던 중 3짜리 병기는 학교 근처에 있던 고전무용소의 가야금 소리에 매료됐다”고 말한다. 강 교수 회고에 따르면 서울 가회동 황부잣집에서 태어난 황병기는 어릴 적 ‘영감쟁이’라 불렸다. 그는 “워낙 부잣집이라 과객도 많고, 가정교사도 있었던 때문인지 아는 것도 많았고 어린 나이에 달관한 듯한 태도였다”고 말한다. 중 1때 종로구 원서동 휘문고 옆 행림서원에서 구입한 버트런드 러셀의 ‘철학은 무엇인가’를 읽고는 친구 강신표에게 건넨 황병기였다. 황병기는 어느 인터뷰에서 ‘어떤 인물로 기억되고 싶으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나는 이제 죽겠죠. 그러면 그걸로 사라졌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유언에 제 무덤이나 비석이나 이런 걸 일절 만들지 말라고 했어요. 죽음 다음에까지 기억되고 그러는 것을 원하지 않아요.” 논어의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란 대목을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고 가야금과 더불어 살아온 명인다운 말이다.
  • [해외에서 온 편지] 태권도 기합처럼 강인한 카리브해의 개척자들

    [해외에서 온 편지] 태권도 기합처럼 강인한 카리브해의 개척자들

    트리니다드토바고 출신 노벨상 작가인 네이폴은 그의 작품에서 이민자의 후손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일에 몰두했다. 그는 종종 수도 포트오브스페인 주택가인 우드브룩 동네에서의 유소년 시절을 회상하곤 했다. 지금은 소설 속의 옛 정취는 거의 사라졌지만 가끔 고택이 즐비한 이 동네 골목길을 지나다 보면 당시 사람의 삶의 애환이 느껴진다.# 교민 20여명… 척박한 땅 개척한 카리브인 닮아 이 동네에는 45년 전에 이주해 온 한 교민 원로가 운영 중인 유서 깊은 태권도장이 있다. 빨간 벽돌과 태극마크가 선명한 이곳을 지날 때면 수련생의 우렁찬 기합 소리가 들린다. 아마 시간이 흐르면 누군가에 의해 이 또한 우드브룩 역사의 한 장면으로 기록될 것이다. 트리니다드토바고에 거주하는 우리 교민은 모두 20여명으로 십수년째 그 규모는 더 크게 늘지도 줄지도 않았다. 인구 10만명의 소국으로서 또 한 명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배출국인 겸임국 세인트루시아에는 한국인 한 가정이 십수년째 살고 있다. 세인트루시아 내에서 많이 알려져 있는데 이들을 만나면 외롭다거나 힘들다는 얘기보다는 주변 이웃의 생활 모습, 한국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 등을 소개하곤 한다.그 외 바베이도스와 그레나다에는 비교적 짧은 기간을 목적으로 거주하는 교민이 소수 있다. 지구상의 제일 반대쪽 작은 섬나라에까지 그 어디에라도 우리 교민은 개척자로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우리 교민과 겸임국 주민과는 차이점도 많지만 중요한 닮은 점이 있다. 카리브인은 수백년 전부터 노예로 끌려왔든 자발적으로 이민을 왔든 이 조그만 땅에 도착하는 시점부터 생존의 도전을 극복하여 왔고 이 땅의 주인이 되는 과정 내내 그런 모습은 변하지 않았다. 우리 교민도 다민족들 사이에서 거친 환경과 맞서 강한 저력으로 생존을 위한 고투를 전개해 오는 동안 당당하게 이 땅의 주인공이 됐다. 트리니다드토바고는 카리브해 열도의 맨 끝에 위치하고 있고 겸임국인 바베이도스, 그레나다, 세인트루시아, 세인트빈센트그레나딘 4국은 모두 서로 한 시간 이내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이들 겸임국은 모두 인구 10만~20만명으로 우리나라의 한 동네 규모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국제사회에서 주권국가로서의 모든 권리와 의무를 행사하며 존재감을 과시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또한 이들 섬나라는 아름다운 해안과 기후로 유럽과 미국으로부터 수많은 관광객이 찾아오고 있어 관광업이 주축 산업으로 기능하고 있다. 아쉽게도 유람선 관광객은 그 수가 아무리 많아도 큰 수입원이 되지는 못한다는 이면이 있다. 그래서 여타 산업이 별로 없는 이들 나라의 생존 문제는 여전히 불안한 편이다. 게다가 허리케인이나 지진 등 자연재해가 발생하는 경우에는 더욱 치열하다. # 자연재해ㆍ식민시대 이겨낸 강인한 섬나라 이들 소규모 섬나라 국민은 천성적으로 강인하고 자존심이 매우 강한데 오랜 노예 및 식민 고난기와 잦은 자연재해를 잘 극복해 온 저력, 뛰어난 체격 조건과 두뇌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자부심이 그 바탕에 있는 듯하다. 현지의 우리 교민도 특유의 강인한 저력을 발휘하며 각자의 터전을 닦았다. 비록 번잡한 문명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삶의 방식이지만 오늘날 번잡한 일상 속에서 우리가 잊고 지내는 것일 수도 있는 그러나 신글로벌 시대를 헤쳐 나가야 하는 우리 젊은 세대에게 꼭 필요한 개척정신을 이들이 앞서 몸소 구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 [씨줄날줄] 윤이상의 무덤/서동철 논설위원

    [씨줄날줄] 윤이상의 무덤/서동철 논설위원

    윤이상의 교항곡 5번은 1987년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초연했다. 베를린 750주년 기념행사의 하나로 위촉받은 오케스트라와 바리톤 솔로를 위한 작품이다. 지휘는 훗날 함부르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상임을 역임한 한스 젠더, 독창은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가 맡았다.5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진 교향곡 5번은 ‘평화의 교향곡’으로도 불린다. 베를린 출신의 유대계 시인으로 1966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넬리 작스의 시가 악장마다 쓰였다. 3악장 ‘호소’에는 이런 대목도 보인다. ‘복수의 무기를 밭에 버려라/ 그것들이 이제 조용해지도록/ 대지의 품 속에서/ 시와 곡식은 자매이거늘…’ 윤이상은 독일에 건너가기 이전에 이미 명망 있는 작곡가였다. 광복 이후 통영여고 재직 시절에는 시인 유치환, 김상옥과 ‘교가 지어주기 운동’을 벌여 통영초교, 욕지중, 통영여중고, 통영고 등 지역의 많은 학교가 혜택을 입었다. 부산 대신중, 부산고, 마산고, 고려대 교가도 지었으니 알려진 것만 20곡에 육박한다. 윤이상은 1958년은 현악4중주곡 제1번으로 독일 음악계에 데뷔했다. 1966년에는 독일 도나우에싱겐 현대음악제에서 대편성 관현악곡 ‘예악’으로 명성을 얻는다. 동백림간첩단 사건이 일어난 것은 이듬해였다. 1969년 독일로 추방된 윤이상은 1972년 뮌헨올림픽에서 오페라 ‘심청’을 초연하면서 ‘동양 정신을 서양 음악 기법에 담은 음악 세계’로 주목받는다. 윤이상이 ‘정치적 예술가’로 인상 지워진 것은 동백림 사건에 더해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광주여 영원히’(1981)와 분신자살을 모티브로 한 ‘화염에 쌓인 천사’(1994)처럼 정치 현실을 다룬 작품 때문이다. 특히 ‘나의 땅, 나의 민족이여!’(1987)는 평양에서 작곡되고 초연됐다. 윤이상은 나치의 유대인 박해를 다룬 넬리 작스의 시를 바탕으로 ‘오, 빛이여’, ‘밤이여 나누라’, ‘주는 나의 목자시니’ 같은 작품을 더 남겼다. 한국에서 넬리 작스의 작품을 놓고 정치적 편향성을 거론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의 진보와 보수 모두 그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것은 생각해 볼 문제다. 1995년 베를린에 묻힌 윤이상의 유해를 통영으로 이장하는 계획에 속도가 붙으면서 찬반 양론도 거세지고 있다고 한다. 우선 ‘죽어 고향 땅에 묻히고 싶다’는 소망이 꺾이는 일은 주인공이 누구든 없어야 한다. 이장을 추진하는 사람들에게도 세계적 음악가의 무덤일수록 소박해야 감동을 준다는 충고를 하고 싶다. 더구나 지금은 그의 작품이 생전보다 더욱 빛을 발하게 하는 노력이 중요할 때다. dcsuh@seoul.co.kr
  • 대작 뮤지컬 ‘게임의 룰 ’ 바뀐다

    대작 뮤지컬 ‘게임의 룰 ’ 바뀐다

    불황의 영향일까, 아니면 룰이 바뀌는 것일까.통상 보릿고개로 불리는 연초 뮤지컬 시장이 화려한 라인업으로 출격에 나섰다. 직전 해 11~12월 개막한 대작들이 신년에도 이어지는 게 보통이지만 올해는 1월부터 대형 뮤지컬들의 각축전이 본격화되고 있다. 지난 10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개막한 ‘안나 카레니나’는 러시아 라이선스 공연으로, 러시아 이외의 나라에서 선보이는 건 한국이 처음이다. 20억원이 투입된 작품은 톨스토이 원작에다 박칼린의 협력 연출, 옥주현을 전면에 내건 캐스팅으로 어필한다. 28일부터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3주간 앙코르 공연을 하는 세계 4대 뮤지컬 ‘캣츠’는 국내 관객 200만명을 돌파한 흥행 불패 작품이다. 새로운 버전의 원어 공연으로, 한국 관객들에게는 역동적인 군무와 강렬한 록 스피릿을 선사한다. 2014년 토니상 6관왕으로 작품성을 과시하는 ‘킹키 부츠’도 제작비 60억원을 쏟아부은 대작이다. 2014년 초연, 2016년 재공연에 이은 세 번째 무대여서 막강한 관객 장악력이 주목된다. 다음달 27일 샤롯데씨어터에서 개막하는 ‘닥터 지바고’는 2012년 초연 흥행 이후 6년 만의 귀환이다. 동명의 노벨문학상 수상작을 원작으로, 큰 감동을 전할 기대작으로 꼽힌다. 제작사들이 연초부터 대형 뮤지컬 작품들을 전면 배치한 건 다양한 시선이 엇갈린다. 2010년 이후 대형 뮤지컬 극장이 신설되면서 공연장 간의 경쟁이 격화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원종원 순천향대 교수는 “과거 소수였던 대형 무대들이 다양한 뮤지컬 전용관의 출현으로 작품 공급이 수요를 견인하기 시작했다”며 “연말 시즌에 집중해 온 대작들이 새해 초로 이동하며 뮤지컬 시장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빛 좋은 개살구’란 지적도 있다. 질적인 측면에서 올해 뮤지컬 시장의 정체 현상이 짙어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현재 발표된 연간 라인업 수만 따져도 평년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고, 대형 창작 뮤지컬도 빅토르 위고 소설이 원작인 ‘웃는 남자’(7월 개막) 하나뿐이다. 라이선스 초연 공연도 안나 카레니나와 마틸다(9월 개막) 두 편 정도가 눈에 띈다. 박병성 뮤지컬 평론가는 “최근 2년간 뮤지컬 시장이 정체기를 통과하고 있는데 올해도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며 “제작사들이 리스크가 큰 신작이나 창작 작품을 대거 줄이는 대신 흥행이 확실시되는 검증된 작품 위주로 정기 대관 시즌인 연초에 집중한 결과 외양만 화려해 보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씨줄날줄] ‘졸라 부자’/황수정 논설위원

    [씨줄날줄] ‘졸라 부자’/황수정 논설위원

    단어 하나로도 신구 세대가 가늠된다. ‘졸부’(猝富)의 뜻이 ‘벼락부자’라고 대답할 수 있으면 기성세대. 인터넷 세대라면 다르다. 십중팔구는 조건반사처럼 답한다. “졸라 부자.”웃지 못할 생활 속 에피소드들은 넘쳐난다. 중학교 교실에는 윤봉길 의사의 직업이 병원 의사(醫師)인 줄 아는 학생이 수두룩하다. 제 이름 한자들을 보고도 눈만 멀뚱거리는 대학생이 부지기수. 봉투의 한자 이름을 못 읽어 결혼 축의금을 누구한테서 받았는지 모른다는 해프닝도 있다. 한자 까막눈이들의 ‘실화’다. 교육부가 초등 교과서 한자 표기 정책을 없던 일로 돌렸다. 지난 정권에서 시행 의지를 강력하게 보인 바람에 찬반 논란이 들끓었던 정책이다. 그런 사안을 이제 와서 쥐도 새도 모르게 제 손으로 폐기한다니 할 말이 없다. 교육부의 폐기 이유는 이번에도 간단하다. 교과서에 한자가 표기되면 한자 사교육이 유발된다는 우려다. 재작년 한창 한자 병기를 추진할 때는 “사교육 부담은 걱정 없다”고 했다. 그 입찬소리가 귀에 생생하다. 돌다리도 백번 두들겨야 할 교육정책이 죽 끓는 냄비다. 교과서 한자 표기 논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한자 교육의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급진전했다. 가속 페달을 밟아 준 사람은 당시 황우여 교육부 장관. 반대 목소리들을 단박에 눌렀다. 초등 교과서에 많이 쓰이는 한자 300자를 고르되 교과서 여백에 음과 뜻을 표기하는 쪽으로 결론을 냈다. 교육정책이 이념의 프레임 속에서 갈지자 행보니 께름칙할 뿐이다. 새 정부 들어 교육부가 제 손으로 정책 방향을 튼다는 의심이 쏟아진다. 어제는 방과후 영어 금지, 오늘은 초등 교과서 한자 폐기. 자고 나면 손바닥을 뒤집으니 교육 현장은 어느 장단에 춤춰야 할지 혼비백산이다. 이러다가 내일은 한국사가 도마에 오를 판이다. 한국사를 대입 필수 과목으로 추진한 것도 지난 정부다. 장관 한 사람 바뀌었을 뿐 그 교육부가 이 교육부다. 뒤엎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최근 서울 소재의 소설을 쓰기도 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르 클레지오는 “사유의 폭을 확장할 수 있는 언어도구(한자)를 왜 제 손으로 버리려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의아해한다. 그런 고상한 말도 필요 없다. 당장 초등 5학년 사회 교과서를 한번 보고 다시 얘기하자. 한자 조어가 태반인 용어들은 아이들 눈에 난수표다. 용어 해설이 붙은 참고서가 필수인 이유다. 진보도 보수도 제발 더는 따따부따하지 말기를. 교육정책의 소비자는 누구도 아닌 학생과 학부모들이니까. 황수정 논설위원 sjh@seoul.co.kr
  • [헌책방 주인장의 유쾌한 책 박물관] 헌책 속 손글씨… ‘또 다른 나’를 만나는 설렘

    [헌책방 주인장의 유쾌한 책 박물관] 헌책 속 손글씨… ‘또 다른 나’를 만나는 설렘

    워낙 바삐 서두르다 보니 외출하면서 가방에 넣은 책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로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버스와 지하철이 생각보다 일찍 연결되어서 약속 장소에 나와 시계를 보니 상대방이 도착하려면 아직 30분이나 남았다. 그제야 내가 가방 속에 무슨 책을 넣었는지 궁금해졌다. 책과 관련된 일을 오래 해서일까. 어딜 가든지 책 한 권을 함께 데려가지 않으면 조금 불안하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책을 꺼내 맨 뒤쪽 면지를 보니 누군가 써 놓은 글씨가 일순간 눈을 사로잡는다. 거기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쓰여 있었다. “가방에 책이 없으면 불안하다.” 이 책의 전 주인이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나와 비슷한 사람이었던가 보다. 그이는 누구일까? 어떤 사람이기에 책이 없으면 불안하다고까지 말하는 것일까? 거기서 30분 동안 나는 온갖 상상력을 발휘해 나와 비슷할지도 모를 어떤 사람의 얼굴을 그려 보고 있었다. 정작 책은 한 문장도 읽지 못했다.올해로 헌책방 운영도 11년째를 맞이했지만, 그리고 다른 곳에서 직원으로 일하며 헌책방 일을 배운 것까지 더하면 11년 위에 몇 년을 더 얹어야 하지만 여전히 궁금한 것은 바로 이것이다. “왜 어떤 사람들은 새 책이 아니라 헌책을 더 좋아할까.” 이에 대한 답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공통된 것 중 하나는 헌책이 주는 특별한 질감이다. 여기서 질감이라고 하면 손으로 만져지는 감촉을 포함해서 오래된 책에서 풍기는 특유의 나무 냄새, 그리고 눈으로 볼 수 있는 이런저런 흔적을 말한다. 그렇다. 전 주인이 남긴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책은 헌책뿐이다. 사실 이 모든 것을 한마디로 ‘흔적’이라고 해도 좋다. 책은 생물이 아니기 때문에 제 스스로 흔적을 남길 수 없다. 책에 있는 흔적은 모두 사람이 그렇게 한 것이다. 누구인지 알 수 없지만, 그 책을 갖고 있었던 주인의 흔적이 책에 남아 있는 걸 발견하는 즐거움이 헌책을 만나는 특별한 즐거움이다. 책 속에 있는 흔적을 마주하다 보면 그 책의 예전 주인과 어떤 인연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본문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밑줄과 메모가 가득한 책을 보면 그 책으로 열심히 공부했던 성실한 어떤 사람 얼굴이 금세 떠오른다. 시처럼 멋진 문장을 면지에 남긴 것을 발견했을 때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건만 그이를 상상하게 되고, 어떤 때는 며칠 동안 그렇게 상상한 이미지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길을 가다 어디선가 본 듯한 사람이 스쳐 지나가면 저 사람이 바로 그이가 아닐까 하면서 가슴이 설레기도 한다. 책의 흔적에서 비롯된 이런 기분 좋은 설렘도 헌책만이 줄 수 있는 즐거움이다.●어떤 사람은 왜 헌책을 좋아할까 그날 내 가방 속에서 수줍게 얼굴을 내민 책을 확인하니 허만하 시인의 산문집 ‘낙타는 십리 밖 물 냄새를 맡는다’라는 제목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오래된 책은 아니지만, 표지를 감싸고 있는 종이커버 재질 때문인지 벌써 테두리 쪽은 빛바랜 자국이 선명하다. 책을 볼 때 항상 서지면을 먼저 보는 습관이 있다. 이 책은 솔출판사에서 2000년에 펴낸 것으로 초판은 10월 5일에 나왔는데 내가 가진 것은 2쇄 본이고 그 날짜는 10월 16일이다. 딱히 특별한 구석은 없는 책인데 초판을 내고 불과 열흘 만에 2쇄를 찍었다는 게 솔직히 부럽다.●“가방에 책이 없으면 불안하다” 다시 책 속에 누군가 써 놓은 글씨를 살핀다. “가방에 책이 없으면 불안하다.” 이 글을 쓴 날짜는 2002년 5월 23일이다. 이 날은 목요일이고 일주일 후면 한·일 월드컵이 개막하기 때문에 거리 이곳저곳에서 벌써부터 월드컵 열기가 느껴질 정도였을 것이다. 나는 축구에 큰 관심이 없었고 아직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기에 그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IT 회사에 출근했을 것이다. 그 외에 특별한 기억은 없다. 애써 특별함을 갖다 붙여 보자면 이날이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한 날과 같다는 것 정도일까. 어쩌면 이 책의 주인도 나처럼 축구보다는 책을 좋아했던 것 같다. 급히 외출을 했는데 가방 속에 책을 챙겨 넣는 걸 잊었던 것이다. 불안함을 이기지 못하고 근처 서점에 들어가서 산문집 한 권을 사들이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처럼 약속 장소에 도착하고선 책을 펼치고 면지 아래에 글씨를 쓴다. “가방에 책이 없으면 불안하다.” 오늘을 잊지 않기 위해 날짜도 써 둔다. 2002년 5월 23일. 이 독서가는 낙타가 십리 밖에 있는 물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것처럼 어디서든 책과 그 안에 들어 있는 문장의 향기를 잡아낼 수 있는 재능이 있다. 이 책을 나보다 먼저 읽었던, 내가 그려낸 상상 속 독서가는 바로 그런 사람이다. 이렇듯 말 없는 헌책은 내게 수없이 많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몇 해 전에는 이런 이야기를 모아 엮어 ‘헌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이 책에는 헌책방에서 일하며 느꼈던 보석 같은 즐거움들이 가득하다. 그리고 남다른 애정이 깃들어 있다. 보통은 책을 쓰고 난 다음 그 책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하지 않고 다음 책을 준비하는데 이 헌책의 흔적에 관한 책만큼은 여전히 내 마음을 사로잡고 떠날 줄 모른다. 헌책방에서 계속 일을 하다 보니 끊임없이 이런 인연과 만나기 때문이리라.‘아이들의 풀잎노래’는 양정자 시인이 교사로 일하며 써낸 진정성 넘치는 시들이 읽는 이들에게 큰 감동을 선물한다. 내가 갖고 있는 책은 창작과비평사에서 펴낸 1993년 초판인데 책 뒤표지 안쪽 면지에 누군가 긴 일기를 써놓았다. 그 내용을 읽어 보니 시집의 첫 주인은 시인과 마찬가지로 교사인 것 같다. 담당하고 있는 학급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빼곡한 손글씨 사이사이에 배어 있다. 한달음에 써내려 간 하루치 일기라곤 하지만 문장이 워낙 아름다워서 어쩌면 이 글을 쓴 사람이 양정자 시인 본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언제고 시인을 만나면 시집을 내보이며 함께 이야기 나눠 보고 싶다. ●보들레르가 ‘바우델아이레’? 어떤 독자는 최승자 시인의 ‘이 시대의 사랑’ 책 속 면지에 강렬하고 치열한 시어 곳곳에서 “Baudelaire의 냄새가 난다”라고 썼다. 나는 한동안 알파벳으로 쓴 이 작가의 이름을 “바우델아이레”라고 기억하고 있었다. 아무리 찾아봐도 그런 이름을 가진 시인은 없었다. 전공자들이나 알 만한 거의 알려지지 않은 르네상스시대 작가가 아닐까? 상상력이 지나치게 발동되어 바우델아이레라는 시인의 작품을 꼭 찾아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그러다 어느 날 우연한 기회에 다시 이 책을 보았을 때 깜짝 놀랐다. 그 이름은 다름 아닌 “보들레르”였던 것이다. 전에는 무슨 이유 때문에 보들레르를 알아보지 못한 것일까? 그것은 확실히 책이나 글의 문제가 아니라 내 자신에게서 비롯된 오해였기에 부끄러운 심정을 오랫동안 떨쳐버리지 못했다. 이런 일을 겪고 난 다음 나는 반성하는 자세로 보들레르의 시를 찾아 읽었다. 그리고 최승자 시인의 시들도 다시 천천히 곱씹으며 읽었다.●책이 주는 즐거움은 시대를 초월 알제대학의 철학교수인 장 그르니에는 깊이 있는 사색을 통해 아름다운 산문 작품을 여럿 발표했다. 하지만, 그가 유명해진 것은 알베르 카뮈라는 작가를 발굴해 냈기 때문이기도 하다. 장 그르니에의 책 중에서 ‘섬’은 카뮈가 쓴 서문이 들어 있어 많은 독자의 관심을 받았다. 카뮈는 ‘섬’의 원고를 처음 읽었을 때 너무나도 가슴이 벅찬 나머지 그대로 집까지 내달려서 방에 들어가 스승의 글을 읽었다고 썼다. 그것은 카뮈가 스무 살 즈음에 겪은 일이고 이 책을 읽은 후 자신도 글을 써 보겠다는 다짐을 가슴에 새겼다. 그는 훗날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한 무명의 독자도 카뮈와 같은 심정으로 민음사 이데아총서 시리즈로 펴낸 ‘섬’을 읽었나 보다. 그는 100년 전 카뮈가 그랬듯 “존재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과 두려움”을 온몸으로 체험하고 짧은 글을 남겼다. 이 문장은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겠지만 나중에 이 책을 읽게 될 또 다른 사람을 위한 마음의 선물이기도 하다. 책이 주는 즐거움은 시대를 초월한다. 헌책이라면 거기에 더해 이름 모를 또 다른 독자들과 친구가 되는 설렘을 만들어 준다. 어디 사는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나이, 성별, 종교, 가치관, 이념, 그 무엇도 상관없다. 우리는 헌책 속에 남겨진 여러 가지 흔적을 통해 하나로 연결된 인연을 나눈 것이다. 헌책을 읽는 것은 책과 사람의 만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거기 남겨진 흔적은 그 책을 가졌던 사람과 또 다른 사람이 만나는 거룩한 인연의 시작이다. 윤성근 이상한나라의헌책방 대표 ‘헌책방 주인장의 유쾌한 책 박물관’ 연재를 마칩니다.
  • “상상력 자극하는 서울, 빛나는 이야기 가득”

    “상상력 자극하는 서울, 빛나는 이야기 가득”

    “서울은 상상이 가능한 도시입니다.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가 공존하고 또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움직이는 도시죠.”200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프랑스 작가 장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77)가 서울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펴냈다. ‘빛나’라는 이름의 전라도 시골 출신 대학생이 처음 서울에 올라와 불치병을 앓는 40대 여인을 만나고 그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내용의 ‘빛나-서울 하늘 아래’(서울셀렉션)다. 14일 서울 종로구 한국출판문화회관에서 기자들과 만난 작가는 “지난 10년간 서울을 자주 오가며 뭔가를 쓰고 싶었는데, 여행기는 별로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해 소설을 썼다”고 집필 배경을 밝혔다. 소설에는 한국의 전통과 역사, 남북 문제, 세대 갈등 등 그가 관심을 기울여 온 주제가 어우러져 있다. 실제 들은 이야기도 많이 녹아 있다. 르 클레지오는 “경찰 출신의 남자가 어릴 때 38선을 넘어왔는데 어머니가 비둘기 한 쌍을 데려왔고 세월이 흘러 이들이 고향인 북한에 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고 이야기하는 내용이 한 예”라고 소개하며 “이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가 고향에 가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이 실현됐으면 하는 생각으로 썼다”고 했다. 번역은 송기정 이화여대 불문과 교수가 맡았다. 한글판과 영문판이 동시에 나왔으며 프랑스어판은 내년 3월 현지 출간된다. 독학으로 한국어를 배운 르 클레지오는 2007년 이화여대 초빙교수를 지내는 등 수차례 한국을 찾은 ‘지한파’ 작가로 유명하다. 여덟 살 때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접한 제주 해녀에 대해 애정을 품어 온 그는 2011년에는 명예 제주도민증을 받기도 했다. 제주 해녀들과 만난 이야기를 담은 그의 소설집 ‘폭풍우’(서울셀렉션)는 지난 10월 국내에도 출간됐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백년 동안의 고독’ 마르케스 유작들 온라인으로 볼 수 있다

    ‘백년 동안의 고독’ 마르케스 유작들 온라인으로 볼 수 있다

    ‘백년 동안의 고독’으로 잘 알려진 남미의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1927~2014)의 작품세계를 온라인으로 쉽게 볼 수 있게 됐다.미국 텍사스오스틴대 해리 랜섬센터는 지난 18개월 동안 마르케스의 자료를 모두 디지털화 해서 온라인에 게시했다고 12일(현지시간) 밝혔다. 이번에 디지털화해 공개된 자료는 마르케스 원고 초안을 비롯해 편지, 사진, 스크랩북, 연구자료, 회고록 등 2만 7000여 점이다. 특히 생전에 공개되지 않았던 32쪽 분량의 마르케스 회고록 후속편도 있다. 콜롬비아 태생의 세계적인 작가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알레호 카르펜티에르, 카를로스 푸엔테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홀리오 코르타사르와 함께 20세기 남미의 대표문학가다. 소설가이자 극작가, 언론인으로 활동한 마르케스는 정통 문학으로 성취하기 쉽지 않은 문학적 성취와 상업적 성과를 동시에 이뤄냈다. 대표작인 ‘백년 동안의 고독’은 남미의 삶과 분쟁을 반영해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내용으로 1982년 노벨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문학 자료보관소로 잘 알려진 해리 랜섬 센터는 2014년 11월 220만 달러로 그의 유품을 매입했고 이번에 온라인으로 공개된 자료는 절반 정도의 분량이다. 마르케스의 아들 로드리고 가르시아는 이번 공개에 대해 “이번 프로젝트는 전 세계 학자와 학생들이 아버지의 기록들에 폭넓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라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마르케스의 작품세계를 보기 위해서는 홈페이지(http://www.hrc.utexas.edu)를 찾으면 된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문학적 성향이 가장 높은 역대 대통령은... 40% ‘노무현’

    문학적 성향이 가장 높은 역대 대통령은... 40% ‘노무현’

    문학적 성향이 가장 높은 역대 대통령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꼽혔다.인터넷 문학전문매체 ‘문학뉴스’는 2018년 ‘책의 해’를 맞아 마케팅설문조사기관 마켓링크에 의뢰해 국민 1092명을 대상으로 지난달 23~27일 벌인 설문 조사를 벌여 이 같은 결과가 나왔다고 12일 밝혔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중 문학적 성향이 가장 높다고 생각되는 인물”을 묻는 질문에서 응답자의 39%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꼽았고 다음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29.8%), 문재인 대통령(11.4%) 순으로 나타났다. 또 “국내 작가들 중 첫 번째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온다면 누구라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는 38.6%가 고은 시인을 꼽았고 한강(23.8%), 황석영(19.9%) 작가를 꼽았다. ‘최근 한 달간 책을 읽은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64.1%가 ‘있다’ 35.9%가 ‘없다’라고 답했으며 평균 독서량으로는 한달에 1~2권이 59.4%로 가장 많았다. 그렇지만 전혀 읽지 않는다는 응답도 23.9%에 달했다. 한편 “친일 작가들의 작품이 교과서에 실려 있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그냥 놔두는 대신 친일 행적을 알리자’는 의견이 53.2%로 가장 많았고 ‘그대로 둔 채 배경을 알려 주자’는 의견이 46.2%, ‘적극적인 친일 작품도 실어서 알려야 한다’는 의견도 6.6%에 달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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