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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한길 “이익추구 계파는 정치 폐해”

    김한길 “이익추구 계파는 정치 폐해”

    김한길 민주통합당 의원은 25일 “우리 당에 계파가 없다고 말하면 너무나 분명한 거짓말”이라며 “가치지향적 계파는 긍정적일 수 있지만 이익을 추구하는 계파는 정치에 큰 폐해”라고 밝혔다. 5·4 당대표 경선에 출마한 김 의원은 이날 한 라디오인터뷰에서 “현실적으로 위원회를 구성해도 계파를 고르게 포진시켜야 한다는 게 반(半)공식적이었다”면서 당내 계파를 설명했다. 김 의원은 “계파 패권주의를 극복해 정상적인 정당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이 혁신의 핵심”이라면서 “인적변화도 큰 혁신을 상징한다”고 말했다. 당내 비주류의 좌장으로 꼽히는 김 의원은 “비주류는 계파가 아니라 주류가 되지 못했거나 주류가 되기를 거부한 사람”이라며 “언론에서 저를 비주류의 좌장 격이라고 하는 것까지는 이해하지만, 좌장이라는 데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친노(친노무현) 범주류의 ‘반(反)김한길 연대’ 움직임에 대해서는 “김한길 하나 잡겠다고 민주당이라는 초가삼간을 다 태우는 그런 우를 범하지 않길 바란다”면서 “아직은 모르지만 소위 주류라고 말해지는 분들이 워낙 강고한 세력이기 때문에 그분들이 하나로 뭉치면 제가 겁이 난다”고 덧붙였다. 그는 4·24 서울 노원병 재·보선에 출마한 안철수 예비후보에 대해서는 “우리 정치를 혐오하고 조롱의 대상으로 삼는 국민에게 편승해 정치를 왜소화하고 헐뜯는 것에 동조한 것이 안 후보의 중요한 패착”이라면서 “정치를 깎아내리는 게 아니고 제대로 만들려면 새 정치의 모습을 제시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안 후보의 입당도 거듭 주장했다. 김 의원은 “안 후보가 민주당에 입당하는 것이 좋다”며 “안 후보 혼자 새 정치를 가꿀 수 있다고 생각해선 안 되고 그가 별도 세력화될 때 반길 세력이 누군지 잘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효섭 기자 newworld@seoul.co.kr
  • 차기 대권주자 빠진 채… 민주 전대 ‘2부 리그’ 가능성

    차기 대권주자 빠진 채… 민주 전대 ‘2부 리그’ 가능성

    김한길 민주통합당 의원이 24일 계파 패권주의 청산과 당 혁신, 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 지지 세력을 흡인하는 야권 재편을 내걸고 당 대표 출마를 선언했다. 이로써 5·4 전당대회에서 당권 도전을 공식화한 인사는 이용섭·강기정 의원에 이어 3명으로 늘었다. 추미애·신계륜·이목희 의원 등의 출마 검토설도 나돌고 있다. 차기 대표는 대선 패배 뒤 꾸려진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를 잇게 된다. 민주당의 새 지도부에는 이로써 범야권 차기 주자들은 나서지 않은 ‘2부 리그’로 치러질 공산이 커졌다. 문재인 전 민주당 대선 후보나 범야권 리더를 자처한 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 박원순 서울시장 등 유력한 차기 주자급들은 각자 사정 때문에 못 나선다. 손학규 민주당 상임고문, 안희정 충남지사, 김두관 전 경남지사 등 차기 주자급들도 웅크려 있는 상태다. 따라서 차기 지도부는 안 전 교수의 등장 뒤 제기된 야권 분열 가능성을 차단, 범야권을 하나로 묶어 1부 리그로 분류되는 차기 대권 주자들에게 당을 정비해 넘겨주는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풀이된다. 박근혜 정부가 집권 초 예상 외로 뒤뚱거리고, 본격 정치를 선언한 안 전 교수의 파괴력도 예상보다는 못해 공황 상태에서 일시 벗어나기는 했다지만 민주당은 여전히 비상 체제다. 전당대회 이후에도 당 재건 작업과 야권 재편 과정 등 고통스러운 암중모색이 이어질 수밖에 없는 처지다. 차기 지도부가 당을 추슬러 범야권의 드림팀을 꾸리는 기반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현재까지 민주당 당권 도전자들은 김한길 의원을 포함해 스스로는 대권 도전 의지를 밝히지 않았다. 당의 재정비와 혁신 목청을 내고 있다. 민주당 내 비주류의 대표주자 격인 김 의원은 이날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계파 패권주의 청산을 주장했다. 혼자만의 단출한 기자회견을 열면서 무계파임을 보여 주었다. 김 의원은 “계파의 이익, 이해를 당과 국민의 이익, 이해보다 앞세우는 정치는 끝장내야 한다”고 강조, 친노(친노무현) 주류의 패권주의를 겨냥했다. 야권 재구성 주도의 뜻도 피력했다. 동시에 안 전 교수와의 인연도 숨기지 않아 자신이 야권 재구성의 적임자임을 부각하는 모습이었다. 안 전 교수가 지난해 9월 자신의 모친상 때와 미국으로 출국 전 전화를 걸어와 사적인 통화를 했다는 것이다. 나아가 야권 재구성을 위해 “안 전 교수도 함께할 수 있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이처럼 더 큰 민주당 구축을 통한 야권 재구성 의지를 밝힌 것은 안 전 교수가 세력화에 성공할 경우 민주당이 소멸되거나 제2야당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당내 동요를 차단하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인다. 진보개혁 세력, 중간 세력을 엮는 대통합 추진 의지다. 전략기획통으로 꼽혀 온 김 의원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권유로 정계에 입문한 뒤 15∼17대 국회의원을 거쳐 18대에는 불출마를 선언했고, 지난해 19대 총선에서 재입성했다. 이춘규 선임기자 taein@seoul.co.kr
  • 北 핵위협 등 긴박한 상황 반영 출범 25일 만에 ‘안보라인’ 세팅

    22일 김관진(64) 현 국방부 장관이 유임되면서 새 정부 출범 이후 25일 만에 ‘안보라인’이 최종 완성됐다. 김병관 전 후보자가 각종 의혹을 사면서 군 기강과 사기 저하를 우려했던 군 내부에서는 뒤늦게나마 안도하는 분위기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직후 과거 정부에서 임명한 장관을 유임시킨 사례는 2003년 2월 노무현 정부 출범 당시 김대중 정부의 정세현 통일부 장관 유임 이후 10년 만에 처음이다. 김 장관은 기자들과 만나 “북한이 도발하면 훈련된 대로 응징할 것”이라며 “국방개혁을 꾸준히 추진하고 2015년 12월을 목표로 전시작전권 전환을 일정대로 추진한다는 것이 기본 입장”이라고 말했다. 김 장관의 유임에 따라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김 장관,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으로 이어지는 안보라인이 모두 육군사관학교 출신으로 채워졌다. 남 국정원장이 육사 25기, 김 실장이 27기, 김 장관이 28기로, 이들 3명은 모두 군 시절 ‘작전통’으로 불리며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을 역임했다. 전북 전주 출신인 김 장관은 서울고와 육사를 졸업한 이후 3군사령관, 합참의장 등 군의 주요 요직을 거쳤다. 국방 개혁에 강한 소신을 가진 그는 2010년 12월 취임 이후 아덴만 여명 작전, 전투형 부대 육성 등을 성공적으로 이뤘다는 평이다. 부인 김연수(60)씨와 3녀.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시론] 상설특검을 위한 6가지 제언/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시론] 상설특검을 위한 6가지 제언/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박근혜 대통령의 선거 공약이기도 했던 특별감찰관 제도와 상설특검 제도에 대해 지난주 국회에서 여야까지 합의하면서 국민들의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특별감찰관이 ‘경찰’이라면 상설특검은 ‘검찰’로 기능하면서, 기존 검찰이 수사할 경우 공정성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할 수 있는 대통령 친인척 및 행정권력 고위층, 특히 고위 검찰간부들에 대한 수사를 하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이 계획이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다음 몇 가지 가이드라인을 충족시켜야 할 것이다. 첫째, 수사와 기소는 국민의 생활을 철저하게 파괴할 수도, 든든하게 보호할 수도 있는 매우 강력한 공권력 행사이고 인구 5000만이 되는 나라에서 이 권력의 행사를 검찰총장이라는 1인의 통제 하에 둔 곳은 없다. 이 정도 인구가 되면 대부분 연방제나 지방분권을 통해 기소권과 수사권이 분산되어 있다. 일부러라도 ‘분권’ 두 글자를 마음에 새기고 ‘작지만 강한 대한민국 제2의 검찰’을 만든다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둘째, 진정한 분권은 단순히 검찰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제2의 검찰’을 행정권력의 영향력으로부터 분리시켜야 의미가 있다. 검찰이 개혁대상이 아니라 검찰을 둘러싼 권력환경이 개혁 대상임을 잊지 말자. 유럽은 입법부가, 미국은 사법부가 행정권력을 견제하지만 이런 장치가 거의 없는 우리나라에서는 검찰이 시시콜콜 대통령편을 들 것임은 명약관화하다. 위에서 말한 검찰총장을 정점으로 하는 전일(全一)한 피라미드 구조의 진짜 수혜자는 대통령이었다. 대통령이 검찰총장의 임명에만 적절히 간여하면 전국의 모든 검사들을 평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감사원, 경찰, 검찰, 국정원 등 사정기관을 아무리 만들어도 이들이 서로의 고위층을 사정한다거나 대통령 친인척을 사정하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특별감찰관·상설특검이 “대통령 휘하의 제5의 사정기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즉, 특별감찰관·상설특검의 임명에 대통령의 입김이 전혀 작용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실질적인 임명권자는 국회가 될 수도 있고 사법부가 될 수도 있다. 국회에서 다수당이 전횡할 수도 있고 대법원장도 대통령이 임명한다는 한계가 있지만, 적어도 지금처럼 대통령이 안살림 챙기듯이 간여할 수 있는 상황보다는 훨씬 진일보한 것이 될 것이다. 셋째, 검찰이 예외적으로 대통령 편을 적극적으로 들지 않던 때도 있었다. 노무현·김대중 시절이다. 한정된 숫자의 법률가 집단의 엘리트로 인정받는 검사들은 특권층으로서의 정체성을 획득하게 되고 보수 성향의 대통령이 선출될 경우 과도한 충성을 하게 된다. 변호사 정원제 폐지를 전제로 도입된 로스쿨 제도가 원래 취지대로 운영되도록 감시를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넷째, 상설특검은 실제로 ‘상설’(常設)이 되어야 한다. 상당한 기간의 임기가 보장되어 제대로 된 수사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감사원장이나 대법원장처럼 대통령 임기를 횡단할 수 있는 정도의 임기가 보장되어야 상설특검 설치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다섯째, 특별감찰관·상설특검제 성공의 핵심은 ‘인지수사권’이다. 상설특검과 특별감찰관 모두에게 인지수사 및 인지조사 권한이 있어야 한다. 국민에게 신뢰를 주는 진정한 ‘상설특검’은 인지수사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상설특별검사제도는 이제 ‘특별’한 것을 ‘상설’한다는 형용모순이 거슬리지 않게 ‘상설’이란 글자는 빼버리고 ‘특별검찰청’이라고 부르면 어떨까? 여섯째, 검사들을 설득해야 한다. 검사는 직업이다. 헌법이 정한 기소권과 수사권을 행사하는 직업이다. 검사들이 일할 정부기관을 작게나마 하나 더 만든다는 자세로 임하고 검사들도 그렇게 받아들인다면 평검사들이 싫어할 이유가 없다.
  • SNS선거운동 금지 합헌 등 기본권 침해 논란

    SNS선거운동 금지 합헌 등 기본권 침해 논란

    박한철(60·사법연수원 13기) 헌법재판소장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하면 1988년 헌재 출범 이후 최초의 검사 출신 수장이 된다. 박 후보자는 21일 지명 직후 헌재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공안검사 출신이라는 우려의 시선에 대해 “과거 경력은 별 관계가 없다. 법률가로서 경험을 가지고 다양한 시각으로 헌재 사건을 보면서 바람직한 결론을 내느냐를 고민해 왔다”고 밝혔다. 박 후보자는 검찰에서 대표적인 공안통으로 통한다. 2008년 3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대검찰청 공안부장으로 재직했다. 광우병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참가자들에 대한 수사는 물론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을 낳은 ‘미네르바’ 사건도 지휘했다. 현재 판결의 보수화를 우려하는 이유다. 박 후보자는 2011년 2월 헌재 재판관으로 온 뒤에도 국민의 기본권보다 국가 공공질서를 우선하는 보수적 입장을 견지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 서울광장 추모 행사에 앞서 광장 전체를 전경버스로 에워싸 시민 통행을 막은 조치에 대해 ‘합헌’ 의견을 낸 게 대표적이다. 당시 헌재는 참여연대가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한 이 사건에서 재판관 7(위헌)대2(합헌) 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했다. 당시 합헌 의견을 낸 재판관은 박 후보자 외에 앞서 헌재 소장 후보자로 지명됐다 중도 낙마한 이동흡씨였다. 그는 헌재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인터넷 매체를 이용한 선거운동을 금지하는 공직선거법 조항에 대해 한정 위헌이라고 결정했을 때도, 이 전 재판관과 함께 ‘합헌’ 의견을 냈다. 박 후보자는 당시 “SNS와 인터넷상 표현 행위가 무제한 허용되면 선거 과열로 연결돼 유권자의 의사를 왜곡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었다. 박 후보자는 개인의 기본권 보호에 대한 신념을 드러내기도 했다. 전자발찌 부착 명령을 소급 적용할 수 있는 법 조항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헌재 결정이 내려졌을 때 박 후보자는 “형 집행을 마친 사람에게 전자발찌 부착 명령을 소급 적용할 경우 형사 제재가 종료됐다고 믿는 사람들의 신뢰이익을 침해한다”며 위헌 입장을 피력했다. 재산은 지난해 3월 공개 기준으로 10억 2700만원이다. 재산의 대부분은 박 후보자와 아내 윤복자(57)씨의 예금으로 박 후보자는 8억 2600만원, 윤씨는 1억 7900만원을 신고했다. 박 후보자는 2009년 노인요양시설 건립을 위해 불교재단 법보선원에 기부한 서울 서초동 아파트에서 전세로 살고 있다. 재산 신고 당시에는 전세금으로 20 00만원을 신고했지만 최근 전세 계약 만료에 따라 보증금 2억 2000만원, 월세 100만원에 재계약했다. 병역은 육군 병장으로 만기 전역했고 자녀는 없다. 박 후보자는 2011년 헌법재판관 인사청문회를 통과한 만큼 이번 청문회에서도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검찰 퇴직 후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약 4개월간 고문료 등으로 2억 4500만원을 받은 게 재점화될 수 있다. 박 후보자는 헌재 소장에 오르더라도 헌재 소장 임기 규정 없이 재판관 임기만을 6년으로 정한 헌재법에 따라 3년 10개월 임기의 소장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경우 박근혜 대통령은 임기 후반에 새 헌재 소장을 임명하게 된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최지숙 기자 truth173@seoul.co.kr
  • [명사가 걸어온 길] 6. 민주화의 사제(하) 함세웅

    [명사가 걸어온 길] 6. 민주화의 사제(하) 함세웅

    우리 나이로 일흔둘. 오랜 삶의 길을 걸어온 함세웅 신부지만 지난 일보다 지금의 일에 대해 더 들려주고 싶어 했다.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그에게 도움을 청하는 이들이 많다. 현역에서 은퇴했지만 숨 고를 틈조차 없이 활동하는 이유다. 함 신부를 찾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핍박받는 이들이 널려 있다는 증거다. 그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박종철군 고문 사망 사건(1987년)의 진실을 세상에 알려 정치 민주화를 이끈 지 올해로 26년이 됐지만, 경제민주화, 남북 화해·통일, 역사 바로 세우기 등 그가 나서야 할 일들은 수북이 쌓여 있다. 이 때문에 노(老) 신부의 마음은 바빠 보였다. 지난 15일 서울 마포구 도화동 인권의학연구소에서 함 신부를 다시 만나 민주화 이후의 삶에 대해 인터뷰를 이어 갔다. 민주화 이후 함 신부와 사제단에 전국민적 시선이 다시 쏠린 건 2007년 10월 김용철(55) 변호사의 삼성 비자금 폭로 사건 때였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정치 민주화의 물꼬가 터진 지 꼬박 20년째 되던 해다. 삼성그룹 구조본부 법무팀장 출신인 김 변호사가 “내 이름의 계좌에 삼성 비자금 50억원이 관리되고 있다”고 말문을 열며 시작된 사건은 17대 대선을 한 달여 앞둔 한국 사회에 큰 소용돌이를 몰고 온다. 10월 29일 서울 제기동성당에서 열린 기자회견 때 사제단은 “김 변호사의 양심선언을 계기로 경제정의민주화 운동을 해 나가겠다”고 선언했다. 사제단의 고문인 함 신부도 회견 자리를 지켰다. 그는 김 변호사를 처음 만난 그해 10월 18일 당시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그날 김 변호사가 가까운 친구 등과 저를 찾아왔어요. 그는 자신이 삼성 탓에 당했던 고통을 쏟아냈어요. 예컨대 삼성에서 나온 뒤 검사 출신 선배와 변호사 사무실을 운영했는데 삼성이 압력을 가한 까닭에 사건을 못 맡고 있다는 등의 얘기였습니다. 그러면서 비자금 조성 등 삼성의 불법적 행위에 대해 털어놨어요. 얘기를 다 듣고는 저와 동료 사제들이 김 변호사를 나무랐어요. ‘삼성에서 간부를 지낸 당신도 결국 공범자인데 이런 문제를 가지고 왜 왔느냐’고 했죠. 그랬더니 ‘저도 반성하고 있습니다’라고 해요. 삼성을 위해 일하면서 잘못한 일은 인정하지만 삼성이라는 기업과 그 책임자가 저지른 범죄가 워낙 크니까 자기고백을 통해 삼성의 범죄도 고발하고 싶다는 거예요. 우리 사회가 이러한 문제를 모두 알아채고 정화시켰으면 좋겠다는 취지였어요. 김 변호사는 당시 삼성이 자신을 해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제가 물었죠. ‘김 변호사, 당신 감옥 갈 각오 돼 있소?’라고요. 그랬더니 ‘돼 있습니다’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럼 같이 하자’고 했죠.” 이후 사제단은 김 변호사를 보호하며 삼성의 비자금 조성과 사회 전방위로 진행된 불법 로비의 수법, 검찰·언론계·관계와의 유착 의혹 등 파괴력 있는 폭로를 이어 갔다. 함 신부와 사제단은 이 사건이 단순히 거대 재벌의 비리를 폭로하는 차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경제민주화의 신호탄으로 삼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그러나 우군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검찰과 언론은 물론 믿었던 노무현 정부까지도 사건에 대해 무관심으로 일관했다고 한다. “삼성 돈의 힘이 컸어요. 부끄럽게도 노무현 정부는 삼성에 이미 예속돼 있었어요. 노 대통령은 물론 그 아래 참모진도 몇 명 빼고는 모두 삼성 편에 서 있었습니다. 어렵게 특검까지 끌고 갔지만 특별검사가 삼성에 종속된 사람이었어요. 특검은 의혹 대부분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내렸고 일부 조세포탈 및 배임 등의 혐의에 대해서만 기소했어요. 결국 우리가 폭로한 삼성의 불법 행위는 대부분 무죄 판결이 나고 삼성 SDS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 헐값 발행에 대해서 이건희 회장의 배임 혐의를 인정해 유죄판결을 내리는 등 법의 심판이 일부 있었지만 이마저도 넉달 만에 대통령이 특별사면을 해 줬습니다. 삼성이 우리 사회 전반을 다 돈으로 관리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체감했어요. 그때가 기업민주화와 경제민주화를 할 절호의 시기였는데…. 몇몇 기자들이 비아냥대며 ‘신부님이 이건희 회장 비자금을 오히려 찾아준 셈이에요. 이건희씨에게 감사받아야 해요’라고도 했어요. 마음이 아팠습니다.” 정계나 법조계, 언론계와 달리 자본권력으로부터 가장 자유로울 수 있는 천주교단은 사제단에 큰 힘이 돼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러나 함 신부의 설명은 달랐다. “교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신자 가운데 삼성에 다니는 간부들이 많고 대기업으로부터 사회복지 후원금을 많이 받으니까 기업의 불법성을 고발하지 못해요. 어찌 보면 교회는 기업이 흘리는 떡 부스러기를 집어먹고 사는 거죠. 정진석 추기경이 서울대교구장이었을 당시 김 변호사를 도왔던 전종훈(57) 신부에게 안식년을 명분으로 3년이나 성당을 맡기지 않았어요. 권한을 남용한 것이고 부끄러운 일이죠. 신부들이 삼성비리 폭로에 앞장서니까 거북해하는 사람들이 많았죠” 함 신부와 사제단은 정계 등의 인사들로부터 ‘왜 삼성 같은 기업을 몰아세우느냐’는 원성을 많이 들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함 신부는 “우리도 국제적 기업인 삼성이 잘되길 바랐다. 다만 건강한 기업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희망한 것이다. 불의한 오너 일가가 적은 자본으로 기업을 사유화하면 안 된다는 확신이 있었다”고 말했다. 결국 김 변호사의 양심선언 결과는 사제단의 애초 계획과는 엇나갔다. 하지만 김 변호사는 자신의 회고록에 “열병같은 진실을 끌어안고 괴로워하는 이들을 만나면 나는 말한다. ‘사제단이 있다’고…”라고 적을 만큼 함 신부와 동료 사제들에 게 깊은 경의와 신뢰를 표했다. 함 신부가 지난해 8월 사제 생활에서 공식 은퇴한 뒤 가장 공을 들이는 프로젝트 중 하나는 ‘김근태 기념 치유 센터’ 건립이다. 그가 이사장으로 있는 인권의학연구소가 지난해부터 추진 중인 사업인데 고문 등 잘못된 공권력 탓에 정신적 상흔을 껴안고 사는 이들을 위한 치유 시설을 만들려는 계획이다. 함 신부와 이화영 인권의학연구소장의 노력 속에 건립 계획이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다. 한국 현대사의 대표적 고문 피해자이자 ‘민주화의 대부’인 고(故) 김근태 전 의원의 이름을 내걸었다. 함 신부가 고문 피해자 문제에 다시 관심을 가진 것도 김 전 의원 때문이다. “1970~1980년대에는 정부기관으로부터 고문당한 분들 이야기를 듣고 마음 아파 밤잠을 설친 적이 많았어요. 그런데 수십년을 들으니까 저도 고문 피해의 무서움에 대해 무감각해지는 거예요. 김 전 의원한테도 마찬가지였어요. 김 전 의원과는 1980년대 만나 30년을 가깝게 지냈거든요. 우리들은 그에게 ‘민주화 선봉가로 앞장서라, 더 뛰어라’, ‘왜 그렇게 행동에 신중하냐’라고 채근하고 등을 떠밀었어요. 그런데 2011년 12월 30일 김 전 의원이 돌아가신 뒤 그가 서울 남영동의 경찰 대공분실에서 전기 고문 등을 받아 평생 후유증을 앓은 사실이 재조명됐잖아요. 그제서야 ‘아, 우리가 김 전 의원이 고문당한 사실을 잊고 지냈구나. 사선을 넘나든 분께 위로와 치유를 주기보다는 너무 가혹하고 모진 주문만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문을 견뎌 냈던 김 전 의원같은 분들 덕에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의 열매를 맛보고 있잖아요. 동시대를 사는 모든 사람이 김 전 의원 같은 분께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공권력 피해자와 그 자녀들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한 센터 건립을 위해 힘을 모아야겠다고 생각한 거죠.” 그는 또 지난 1월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으로 취임하는 등 역사 바로세우기에도 힘을 보태고 있다. 함 신부는 진보정치 진영의 원로다. 지난해 18대 대선 때도 재야원로회의에 참석해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후보 측에 여러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대선 결과는 그가 바랐던 것과는 정반대였다. 대통합을 강조하는 박근혜 정부에 대한 평가를 부탁했다. “대(大)자가 들어가면 항상 거짓이 있어요. 통합은 진실과 정의를 바탕으로 이뤄져야 해요. 신학적으로 예수님의 구원론을 통합원리와 해체원리로 설명하거든요. 통합원리는 사랑, 용서, 자비, 은혜, 상생 같은 것이고 해체원리는 회개, 갈등, 뉘우침, 고발 같은 것이에요. 둘 다 예수님의 가르침이지요. 큰 집을 지으려면 잘못 지어진 집을 허물고 땅을 파야 해요. 이것이 해체 기능이에요. 그런데 아무런 기초작업 없이 큰 집만 짓겠다는 것은 거짓이죠. 다시 말해 우선 박근혜 대통령이 잘못된 과거를 뉘우치고 청산해야 화합과 통합을 이룰 수 있는 거예요. 구호는 구호일 뿐 정치가 될 수는 없어요.” 함 신부는 야권에도 애정 어린, 그러나 따끔한 질책을 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저에게 이런 얘기를 했어요. ‘열린우리당 의원의 절반은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의원과 똑갚습니다’라고요. 성향과 관계없이 정치꾼인 거예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고 야권 내 권력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정신 못 차리는 것이 가슴 아프죠. 정치인 본연의 소명대로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야당 정치인이 됐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정권교체는 저절로 이뤄지겠죠. 한 시민으로서 저도 야당 의원들을 달래고 채찍질하며 끌어가야겠죠.” 함 신부에게 “세간의 평가처럼 스스로를 진보주의자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진보, 보수로 구분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진짜 보수주의자는 진보주의자일 수밖에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모순된 답변인 듯 들려 재차 물었다. “보수와 진보를 지금처럼 나누는 언론의 인식이 잘못됐어요. 원래 보수라는 단어는 뜻이 좋아요. 한자로 ‘보전하고 지킨다’는 것이니까요. 즉 그리스도인으로서는 하느님의 진리를 지키고 보전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하느님 가치를 지키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앞으로 나아가게 돼 있어요. 결국 참된 진리를 지키고 보전하면 진보주의자가 되는 거죠. 언론이 말하는 보수는 수구라고 생각해요. 역사를 왜곡하고 친일·반민족 행위를 칭송하는 사람이 어떻게 보수겠어요.” 사회 약자의 편에 서서 한평생을 산 함 신부에게 “희망을 잃고 좌절하는 젊은이들이 많은데 행복해질 수 있는 비책이 없느냐”고 물었다. “우선 ‘어려움아, 놀자’라고 생각하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해요. 요즘 신학에서는 하느님을 근엄하고 초월적인 존재로만 인식하지 않고 인간과 함께 뛰어 노시는 하느님, 우리 가운데 함께 계신 신으로 인식하거든요. 두 번째로는 우리보다 어렵고 억울한 사람을 생각해 보는 거예요.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을 바라보면 ‘벌거벗겨진 채 십자가에 매달려 죽어 가는 것이 얼마나 수치스러우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분이 사회에 주신 메시지는 아마 ‘그래, 나 억울한 사형수다. 네가 힘들고 억울해도 나보다 억울하냐. 난 죽었잖아. 넌 그래도 살아 있잖아’ 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 청년들 가운데 피자를 10분 빨리 배달하려다 사고로 숨진 이도 있고 제철소에서 일하다가 용광로에 빠져 세상을 떠난 이도 있잖아요. 나보다 어려운 사람에게 희망을 줄 수 있도록 찾아나서야 할 것 같아요” 인터뷰를 마친 뒤 젊은 기자는 “종교·사회의 원로에게 살아가면서 힘이 될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곧바로 함 신부의 답이 돌아왔다. “원로? 나 원로 아녜요. 아직 청춘이지(웃음).”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민주 친노 핵심도 “노원병 무공천”

    민주통합당이 4·24 재·보궐선거에서 서울 노원병 보선에 후보를 내야 한다는 주장과 무(無)공천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엇갈리고 있어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이런 가운데 민주당의 노원병 공천을 주장해온 것으로 알려진 친노(친노무현)·주류 측에서 ‘노원병 무공천’ 주장이 나와 기류가 급격히 변화되는 조짐이다. 친노계 핵심으로 분류되는 김태년 민주당 의원은 17일 보도자료를 내고 “제1야당인 민주당이 선거에서 후보를 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지만 야권의 대표로서 연대의 정신, 통합의 가치를 지켜내야 하는 소임 또한 막중하다”면서 “민주당은 어렵지만 노원병에 후보를 공천하지 않는 결단을 내렸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 의원의 이런 주장에 대해 친노 그룹의 기류가 무공천 쪽으로 쏠리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김 의원의 주장은 비주류 측의 무공천 주장과 궤를 같이한다는 점에서 당 지도부의 결정이 주목된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국정철학 4대악 척결”… 문재인의 사람 평가 속 의외의 낙점

    “국정철학 4대악 척결”… 문재인의 사람 평가 속 의외의 낙점

    “3배수 안에 들기는 했지만 솔직히 의외다. 문재인 사람 아니었나.” 박근혜 정부의 첫 경찰청장 후보자로 이성한(57) 부산지방경찰청장이 발표된 15일 오전 경찰 고위간부들의 분위기는 뒤숭숭했다. 의외의 카드라는 판단에서다. 이 후보자는 경찰 내부에서 박 대통령과 별다른 인연이 없는 사람으로 분류돼 왔다. 오히려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치안비서관실에 파견됐다는 경력 때문에 ‘문재인 쪽 사람’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했다. 하지만 오히려 박 대통령의 측근으로 분류되지 않은 점이 강점으로 작용했다는 평이다. 이날 이 후보자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새 정부의 국정 철학인 4대 악 척결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서울 출신으로 홍익고, 동국대 경찰행정학과를 졸업하고 1983년 간부후보생 31기로 경찰에 입문했다. 경남 거창·강원 태백·서울 수서 경찰서장, 청와대 치안비서관실 파견 근무, 경북경찰청 차장, 충북경찰청장 등을 거쳐 지난해 2월 치안정감인 부산경찰청장에 올랐다. 이 후보자가 인사청문회를 통과하면 서울·경기 등 수도권 지방청장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승진한 몇 안 되는 총수가 된다.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추진력으로 밀어붙이기보다는 일단 관망하며 추이를 지켜보는 관리자형의 색채가 강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검·경 수사권 조정 등 민감한 부분에서 경찰의 목소리를 대표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재산은 충북경찰청장이던 지난해 3월 기준 10억 2200여만원이다. 본인과 부인 공동 명의로 사들인 서울 송파구의 아파트(7억 1100만원)와 본인 명의 아파트 임차권(6억 9000만원) 등이 주요 재산이다. 이 후보자의 부인 신인애(51)씨는 지난해 여름부터 충북 청주의 한 상가에 2~3평 남짓한 분식점을 지인과 함께 운영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학군장교(ROTC 17기) 출신으로 9사단에서 중위로 28개월 만기 제대했다. 김정은 기자 kimje@seoul.co.kr
  • 절반의 도전

    절반의 도전

    민주통합당 국회의원 127명 가운데 초선 의원은 전체의 43.3%인 55명이나 된다. 무시 못할 집단이다. 이들 초선 의원들은 지난해 6월 개원 협상이 늦어지자 “일하고 싶다”며 개원을 촉구해 활력을 불어넣는 듯했다. 현실의 벽은 높았다. 연말 대선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여야가 대치할 때 소신 있는 행동을 하기보다는 거수기 역할을 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대선 패배 뒤 당이 주류, 비주류로 갈려 다투는 과정에 초선들의 목소리는 없었다. 초선 의원들은 개별 혹은 집단으로 정책토론회 개최 등을 통해 존재감을 보이려 했지만 주목받지 못해 위기감도 점차 높아 갔다. 이들 초선들이 14일 집단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민주당이 최대 위기를 맞은 시기다. 대선 패배 뒤 계파 간 책임 논쟁으로 국민이 외면하는 가운데 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까지 대선 패배 책임 논쟁에 뒤엉켜 들며 5·4 전당대회 흥행도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다음 총선을 생각해야 하는 초선 의원들에게는 최악의 위기다. 진선미 의원 등 민주당 초선 의원 33명이 이날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5·4 전당대회에서 독자 후보를 내는 것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어떤 계파에도 속하지 않을 것임도 선언했다. 국민들에게 구태 정치의 상징으로 비치는 계파정치에서 벗어나겠다는 것이다. 당내 나머지 22명의 초선에 대해서도 계속 참여를 설득하기로 했다. 이들은 “이번 전당대회는 당의 미래를 놓고 치열하게 논쟁하는 혁신 전당대회가 돼야 한다. 이번마저 친노(친노무현)-비노 경쟁, 계파 간 갈등, 선거 책임 논쟁으로 시간을 빼앗겨서는 안 된다”면서 “국민의 눈높이에 맞으면서도 당의 변화를 가장 잘 추동할 새 인물을 집단적 숙의 방식으로 정해 직접 출마시키거나 후보들 중에서 가장 적합한 인물을 택해 돕겠다”고 말했다. 당내 유력 인사들에게도 계파로 묶거나 줄을 세우지 말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구태 정치에 염증을 내는 여론을 대변했다. 신선했다. 하지만 성명에 참여한 의원 다수가 친노, 주류 측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이들의 집단 행동이 범주류 측 후보가 전당대회에 나서게 될 경우 범주류 연합 전선 구축을 도모하는 전위대적 움직임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이춘규 선임기자 taein@seoul.co.kr
  • 절반의 교훈

    절반의 교훈

    국회의원들이 지난해 거둬들인 후원금이 1인당 평균 1억 5072만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모금 한도인 3억원의 절반 수준으로, 총선과 대선이라는 ‘선거 특수’를 누렸다고 보기는 어렵다. 정치 불신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14일 공개한 ‘2012년도 국회의원 후원금 모금액’ 현황에 따르면 제19대 의원 298명의 모금 총액은 449억 1466만원이었다. 2011년 모금액 310억 3900만원에서 44.7% 늘었다. 의원들의 연간 모금 한도는 1억 5000만원이지만 지난해처럼 총선이나 대선 등 전국 단위 선거가 있는 해에는 2배인 3억원(재선 이상은 4억 5000만원)까지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18대 총선이 있었던 2008년 모금액 634억 429만원에 비해서는 29.2% 감소했다. 정당이나 의원에 따른 ‘쏠림 현상’도 두드러졌다. 새누리당 의원 153명의 모금액은 1인당 평균 1억 6334만원(총 249억 9158만원)으로, 민주통합당 의원 126명의 평균 모금액 1억 4595만원(총 183억 9058만원)보다 1739만원(11.9%) 많았다. 진보정의당 의원 7명과 통합진보당 의원 6명의 평균 모금액은 각각 1억 148만원(총 7억 1040만원), 6997만원(총 4억 1985만원)으로 집계됐다. 통합진보당의 경우 지난해 불거진 ‘종북 논란’이 후원금 모집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해석도 나온다. 모금 한도인 3억원을 채운 의원은 전체의 7.7%인 23명이었다. 민주당 박지원 의원이 3억 1773만원으로 1위에 올랐다. 모금액 상위 20위에는 새누리당 13명, 민주당 7명으로 ‘여대야소’ 형국을 보였다. 앞서 2011년에는 민주당 11명, 새누리당 7명으로 ‘여소야대’ 현상을 보이기도 했다. 모금액이 1억원을 밑도는 의원도 전체의 43.3%인 129명에 달했다. 실적이 저조한 하위 20위에는 재력가인 새누리당 정몽준 의원(1693만원), 노무현 정부에서 총리를 지낸 민주당 이해찬 의원(500만원)과 한명숙 의원(2390만원) 등도 포함됐다. 무소속 현영희 의원의 후원금은 유일하게 ‘0원’이었다.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비례대표 의원직을 내놓은 박근혜 대통령은 1억 7554만원(상위 112위),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문재인 의원은 1억 7479만원(상위 116위)으로 ‘평균 이상’의 실적을 거뒀다. 국회 상임위원회나 지역구 활동과 관련해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개인이나 기업 등으로부터 후원금을 받은 의원들도 상당수다. 새누리당 김영우·김도읍·김근태·정수성 의원, 민주당 신계륜·추미애·이인영 의원, 진보정의당 심상정 의원 등은 같은 당 소속 지역구 지방 의원들로부터 300만원 이상 고액 후원을 받았다. 새누리당 류지영·강석호 의원은 각각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500만원), 장형진 영풍그룹 회장(500만원)에게서 후원금을 받았다. 민주당 김성곤·원혜영 의원도 각각 홍석조 보광훼미리마트 회장, 이규석 풀무원생활건강 사장에게 500만원씩 받았다. ‘묻지 마 기부’ 관행도 여전했다. 연간 300만원 초과 기부자의 경우 인적 사항을 기재해야 하나 이를 제대로 지키지 않는 경우도 상당했다. 300만원 초과 기부 총 3296건 중 5.5%인 182건은 직업이나 생년월일, 주소 등을 기재하지 않았다. 회사원이나 자영업 등 구체적인 직업을 알 수 없도록 기재한 경우도 1617건(49.1%)에 이르렀다. 한편 전체 의원 300명 중 새누리당과 민주당 비례대표인 김영주, 최민희 의원은 별도 후원회를 두지 않아 명단에서 빠졌다. 장세훈 기자 shjang@seoul.co.kr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김천식 前차관 “남북관계 막장으로 가고있다”

    김천식 前차관 “남북관계 막장으로 가고있다”

    이명박 정부에서 대북 비밀 접촉을 주도했던 김천식 전 통일부 차관이 14일 이임식을 끝으로 28년간의 공직 생활을 마무리하며 통일정책을 둘러싼 당파적 갈등에 일침을 놨다. 그는 이임사에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통일정책에 대한 여러 가지 평가가 있었다면서 “통일 문제라는 의미의 수준에 맞는 비평이 없는 것은 아니나 때로는 엉뚱하기도 하고 파(派)와 당의 잣대로 사리에 맞지 않게 국익을 재단하는 경우까지 있었다. 이것에 동조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대북 포용 정책을 주도한 김대중·노무현 정부와 대북 강경 정책을 폈던 이명박 정부 간 극심한 정치적 갈등으로 5년 내내 소모적 논쟁을 벌여 온 점을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주요 보직을 두루 거치며 정책, 교류 협력, 회담 등을 섭렵했고 2000년 제1차 남북정상회담을 막후에서 도우며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과 이명박 정부 5년간 대북정책의 최전선에 섰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선 이른바 ‘K 실장’이란 이니셜로 대북 비밀 접촉 주역으로 활동했고 북한이 2011년 5월 폭로한 중국 베이징 비밀 접촉 당사자로 이름이 공개되기도 했다. 그는 현 남북 관계에 대해 “분단 질서가 녹슬어 푸석거리고 있다. 현실 속에서 시퍼렇던 분단 대결은 이제 무대 위에 올려진 소극(笑劇)이 됐고 지금은 막장을 향해 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김한길 “당주인 자리에 계파주의가 앉았다”… 친노 맹공

    5·4 전당대회 출마가 유력한 비주류 측 김한길 민주통합당 의원이 “당의 주인이 있어야 할 자리에 계파 패권주의가 들어앉아 있다”며 주류인 친노(친노무현) 진영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김 의원은 14일 서울 여의도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친노 측이 당 대표 시절 삭제한) 당헌 1조 2항을 이번 당헌 개정 과정에서 반드시 되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1조 2항은 ‘민주당의 당권은 당원에게 있고 당의 모든 권력은 당원으로부터 나온다’는 문구다. 김 의원은 “정당정치는 우리 헌법이 요구하는 정치 질서다. 당원이 주인이 아닌 정당은 이미 정당이 아니다”라면서 “당원은 의무가 있고 지지자는 아무런 의무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당이) 지지자 중심으로 가면 정당의 존립 자체에 대한 의문이 생길 수 있다”고 덧붙였다. 5·4 전당대회 출마 여부는 정부조직법 개정안 협상이 끝나고서 밝힐 것으로 보인다. 김 의원은 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와의 연대도 주장했다. 김 의원은 “민주당은 의석 127석을 가진 실존하는 제1야당이고 (민주당과) 안 후보의 고민이 상당 부분 겹치기 때문에 그 고민을 공유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했다. 김효섭 기자 newworld@seoul.co.kr
  • 檢, 상고심까지 완패… ‘정치검찰’ 꼬리표만

    2009년 12월 서울중앙지검이 전 정권의 국무총리였던 한명숙(69) 당시 노무현재단 이사장에 대한 수사에 착수하자 민주당 등 야당과 일부 시민단체는 이명박 정부의 전형적인 표적수사라며 반발했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곽영욱(73) 전 대한통운 사장은 한 전 총리에게 돈을 줬다고 진술하고, 한 전 총리는 돈 봉투의 존재를 전혀 알지 못한다고 맞서면서 “돈을 받은 의자를 기소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검찰은 수사 초기부터 1·2심 법원 판결 때까지 유죄 입증을 자신했지만 결국 모두 완패해 ‘정치검찰’ 소리를 듣는 역풍을 맞았다. 재판의 쟁점은 곽 전 사장에 대한 강압 수사 여부와 진술의 진위에 집중됐다. 사건 수사에서 피의자의 자백을 결정적 근거로 삼는 검찰은 자신이 한 전 총장에게 돈을 줬다는 곽 전 사장의 자백을 근거로 한 전 총리의 유죄를 자신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곽 전 사장이 검찰의 강압 수사 탓에 거짓 진술을 했을 가능성을 지적했다. 당시 1심 재판부는 곽 전 사장의 진술이 “자유스러운 상태에서 이뤄지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또 “검사는 곽 전 사장을 압박해 생사의 기로에 섰다는 느낌을 갖도록 했다”고도 지적했다. 뇌물 공여에 대한 진술을 번복해 온 곽 전 사장에 대한 검찰 수사가 뇌물 공여를 부인할 때에는 밤늦게까지 진행되고, 일시적으로 뇌물 공여를 인정한 날에는 조사가 일찍 끝난 점도 재판부는 강압수사의 근거로 들었다. 곽 전 사장 진술의 신빙성 부족은 한 전 총리의 승소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1심 재판부는 곽 전 사장의 진술에 대해 “한 전 총리에게 돈을 줬는지 여부와 액수에 관한 진술이 계속 바뀌고 일관되지 못해 신빙성이 의심스럽다”고 판시했다. 당시 김준규 검찰총장은 1심 판결 직후 대검찰청 간부회의를 소집해 “거짓과 가식으로 진실을 흔들 수는 있어도 진실을 없앨 수는 없다”고 반박했고, 검찰은 항소했지만 2심 재판부의 판단도 1심과 같았다. 검찰은 대법원 상고심에 마지막 자존심을 걸었지만 판결은 뒤집히지 않았다. 이날 대법원의 판결이 나오자 한 전 총리는 보도자료를 내고 “정치탄압으로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람이 더 없기를 바란다”면서 “검찰개혁은 반드시 이뤄져야 하며 새 정부에서는 국민 앞에 당당히 설 수 있고 신뢰받는 검찰이 되기를 국민과 함께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에 반해 검찰은 극도로 말을 아꼈다. 대검 관계자는 “당시 증거와 진술 등을 토대로 기소했지만 사법부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내린 이상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않으냐”면서 “현재 서울고법 형사6부에서 진행 중인 한 전 총리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이 어떻게 처리되느냐가 최대 관건”이라고 말했다. 한 전 총리는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에게서 9억여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2011년 10월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고 이에 검찰이 항소를 한 상태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씨줄날줄] 정치와 영화/최광숙 논설위원

    1936년 베를린 올림픽 공식 기록영화인 ‘민족의 제전’에서 가장 긴 시간이 할애된 대목은 바로 손기정 선수의 역주 장면이다. 독일의 천재 여성감독 레니 리펜슈탈. 손 선수와 친구사이이기도 한 감독이 손 선수의 가슴에 일장기가 달려 있다는 사실을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손기정 골인 장면’은 스포츠사에서 손꼽히는 명장면으로 남게 됐다. 히틀러의 총애를 받은 리펜슈탈에겐 ‘나치 협력자’와 ‘영화사상 가장 뛰어난 다큐멘터리를 만든 예술가’라는 상반된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그가 히틀러의 의뢰로 제작한 나치 전당대회 기록영화 ‘의지의 승리’와 베를린 올림픽 2부작 ‘민족의 제전’과 ‘미의 제전’은 당대 최고의 선전영화였다. 하지만 그의 혁신적인 영화기법과 영상미는 영화사의 한 획을 그었다는 찬사를 받았다. 이렇듯 영화는 직간접으로 정치 메시지를 담아내는 도구로 활용돼 왔다. 베니스· 칸·베를린 등 3대 영화제는 시대정신과 정치의식이 투영된 영화들에 높은 평점을 매긴다. 부시 대통령 부자 일가와 오사마 빈라덴 가문 간의 30년에 걸친 사업적 유착관계를 그린 ‘화씨 9.11’이 그 한 예다. 마이클 무어 감독은 이 영화에서 부시를 ‘가장 바보 같은 사람’이라고 쏘아붙이기도 했다. ‘태극기 휘날리며’ ‘실미도’ 등 우리 전쟁영화도 정치상황을 빼놓곤 얘기하기 어렵다. 장이머우 감독의 ‘연인’ 같은 중국 로맨스 영화 주인공들도 종종 정치적 한계상황에 갇힌 불쌍한 존재로 묘사된다. 우리 대통령들은 영화를 정치 마케팅의 수단으로 활용해온 측면이 없지 않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영화에 가장 관심을 보인 이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정계 은퇴 선언 후 영국에 체류하다 돌아온 김 전 대통령이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를 보면서 영화는 또 한번 인기를 끌었다. ‘대통령 관람효과’다. 재임 중 영화를 가장 많이 본 대통령으로 꼽히는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창동 감독을 초대 문화관광부 장관에 임명하면서 만만찮은 ‘문화권력’을 키워내기도 했다. 최근 정치를 재개한 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링컨’을 감명 깊게 봤다고 한다.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노예제 폐지와 남북전쟁에 회의적인 각료와 정치인들을 설득하는 링컨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는 것이다. 어디 안 전 교수뿐이겠는가. 새 정부가 출범한 지가 언제인데 정부조직법 개정안도 처리하지 못하는 정치권을 보면서 많은 국민은 링컨의 설득과 통합 리더십을 떠올렸을 것이다. 모쪼록 정치인들이 이 영화를 새겨 보고 정국 타개의 ‘정답’을 찾았으면 한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민주 혁신방안 ‘무늬만 혁신’

    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가 정치 재개를 선언한 뒤 불안감에 휩싸인 민주통합당이 당 혁신안을 발표하는 등 뒤늦게 ‘혁신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하지만 계파 해체를 주문하는 수준의 ‘무늬만 혁신’에 그쳤다는 비판이 나온다. 또한 혁신위원회가 당 공식기구인 전당대회준비위원회의 결정 사항에 반기를 드는 등 친노(친노무현)·주류의 이해관계를 대변한 부분도 혁신안 취지를 무색하게 한다. 민주당 혁신위원회는 13일 국회에서 열린 ‘국민 신뢰 회복을 위한 민주통합당 혁신 방안’ 발표토론회에서 계파 갈등을 없애고 당헌·당규 개정을 공직후보 등을 선출하기 1년 전에만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의 종합적인 당 혁신 방안을 발표했다. 혁신위는 계파구조 해체를 위해 단일성 집단지도체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또한 특정 계파의 입김을 차단하기 위해 당직 또는 공직후보 선출에 앞서 최소 1년 전에 규칙을 확정토록 했다. 하지만 당 혁신의 최대 과제인 계파 청산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은 제시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토론회에 참석한 진성준 의원은 “당의 위기를 극복하는 근본적이고 파격적인 처방인가 하는 점에서 다소 미흡하다”면서 “자발적으로 계파를 정파로 전환하도록 결단하라고 촉구하는 데 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혁신안은 2002년 국민 경선제 이후 문호를 개방한 개혁 정당 모델을 추구하다 멈춘 것 같다”고 평가절하했다. 대선 후보와 당 지도부 경선 선거인단에 ‘민주서포터스’를 도입하기로 한 부분도 논란이 됐다. 당원 역차별 가능성과 함께 불과 3개월 전에 등록하면 선거인단 자격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난해 대선 경선의 모바일 선거인단 동원 논란을 재연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안철수, 바람과 함께 돌아온다

    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가 정계 복귀를 위해 귀국하기 하루 전인 10일 직접 영향권에 들어선 민주통합당은 물론 간접 영향권에 들어간 새누리당까지 촉각을 곤두세웠다. 정치권은 다시 일기 시작한 ‘안철수 바람’이 정치권 빅뱅으로 연결될지 잔뜩 긴장한 채 추이를 주시하고 있다. 안철수 바람이 태풍으로 변할지, 미풍에 그칠지는 향후 다양한 변수에 의해 갈릴 전망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는 안 전 교수가 4·24 서울 노원병 보궐선거에 출마해 신당을 창당할 경우 민주당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지지율을 보일 것으로 나타났다. 그를 중심으로 하는 정계 빅뱅이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정치라는 것이 여러 변수가 작용해 가변성이 크다고 하지만 현 상황은 예사롭지 않다. 그가 원내 입성에 성공해 강력한 대중 호소력을 이어 갈 경우 쏠림 현상이 가속화될 수 있다는 전망이 많다. 안 전 교수가 신당을 창당할 경우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부터 민주당과의 본격 경쟁이 불가피하다. 야권 세력의 중심이 안 전 교수에게로 옮겨질 수도 있다. 민주당과 안 전 교수가 한편으론 협조하면서도 또 한편으로 사생결단식 경쟁을 해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민주당의 한 인사는 이날 “공당으로서, 제1야당으로서 노원병에 후보를 낼 것”이라면서도 “안 전 교수는 2017년 대선까지 함께 가야 할 존재”라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민주당의 5·4 전당대회 당권 투쟁 양상도 안 전 교수의 정계 복귀를 계기로 변하고 있다. 안 전 교수와의 관계 설정과 대선 패배 책임론 공방을 놓고 친노(친노무현) 주류와 비주류 간 셈법이 복잡해졌다. 재보선 열흘 만에 치를 전당대회의 흥행과 관련해서도 비상이다. 안 전 교수의 국회 입성 여부와는 별개로 국민의 시선이 한동안 안 전 교수에게 집중될 것도 민주당에는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재보선에서의 야권 연대 성사 여부도 관심사다. 노원병에서는 안 전 교수의 출마 입장 표명에 이어 진보정의당 노회찬 공동대표의 부인 김지선씨도 출마를 선언하는 등 판세가 복잡하게 엉켜들고 있다. 민주당도 후보를 내겠다고 하지만 야권 후보 난립으로 새누리당 후보가 승리할 경우 대선 당시 안 전 교수의 지원을 받은 민주당으로선 비난을 감수해야 하는 처지다. 따라서 민주당은 안 전 교수가 귀국한 뒤 재·보선 문제에 대한 양측의 입장 조율을 시도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면충돌할 경우 새누리당에 어부지리를 안기고 공멸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양측이 절묘한 절충점을 찾아내 상생의 야권 재구성을 이뤄낼지 주목된다. 이춘규 선임기자 taein@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경복궁 야간 지킴이로 새 삶 사는 ‘시라소니 이후 최고 주먹’ 방동규 씨

    [김문이 만난사람] 경복궁 야간 지킴이로 새 삶 사는 ‘시라소니 이후 최고 주먹’ 방동규 씨

    “나를 주먹, 건달, 협객, 뭐라고 해도 상관없지만, 그냥 뜨거운 내 인생을 찾아 자유로운 삶을 추구했을 뿐이오.” 이 시대의 낭만 협객이라고나 할까.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시라소니 이후에 최고의 주먹, 한번에 17명과 맞서 싸운 전설, 백기완, 황석영과 함께 조선의 3대 구라”라고. 본명 방동규, 아니 ‘방 배추’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하다. 1935년 개성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각종 운동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중·고교 시절, 뜻하지 않게 여러 가지 사건을 겪으면서 ‘시라소니 이후 최고의 주먹’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1954년 체육특기생으로 홍익대 법학과에 입학했고 백기완(통일문제연구소장), 구중서(문학평론가) 등과 함께 나무를 심고 계몽운동을 펼쳤다. 30살에 독일에서의 광부생활, 4년 동안 파리에서의 유랑생활, 양장학교 수업, 중동 파견, 긴급조치와 ‘말지’사건으로 구속수감 등 실로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을 겪었다. 2006년 경복궁 관람안내 지도위원으로 있다가 잠시 그만둔 뒤 2011년 다시 경복궁으로 돌아와 야간지킴이 일을 하고 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낭만 협객이 80살을 바라보는 나이에 우리 민족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인 경복궁의 파수꾼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지난달 22일 저녁 경복궁에서 방씨를 만나 사진 촬영을 한 다음 인근 막걸리 집으로 장소를 옮겼다. 등산복 점퍼에다 청바지 차림이었다. 백발이긴 한데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걸음걸이가 경쾌하다. 말할 때는 “이봐, 이 사람” 등을 섞어가면서 자신감을 나타냈다. 자리에 앉으면서 “내가 2003년 서울시장배 보디빌딩 대회(장년부)에서 6등을 했거든, 나이 80 되는 내년에는 꼭 우승하려고 그래. 그런 각오로 하루 1시간씩 꼭 운동을 하고 있지. 허허허”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단단한 팔뚝 근육을 잠깐 보여준다. 요즘 근무하고 있는 경복궁 야간지킴이 활동에 대해 먼저 물었다. “말 그대로 야간에 경복궁을 지키고 경비하는 일이여. 물어볼 것도 없어. 경복궁에는 오랫동안 내려오는 정기 같은 것이 있잖아. 그런 정기를 받고자 하는 사람도 있고 또 무작정 담을 넘어오는 사람도 더러 있어. 참 내원. 거 머시기야. 남대문에 불을 지른 사람도 창경궁에 불을 지르려다가 붙잡혔잖아. 당시 초범이고 노인이어서 풀어줬는데 결국 남대문에서 사고 쳤거든. 야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신경을 바짝 곤두세워야 해.” 경복궁 주변에서 막무가내로 버티는 사람도 많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친절하게 대해 주다가 정 안 되면 강제로라도 끌고 나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런 힘은 어디서 나올까. 방씨는 아직은 괜찮다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방씨는 오후 5시 30분에 출근해서 그 다음 날 아침 8시 30분에 퇴근한다. 15시간을 근무하는 셈이다. 어떤 인연으로 경복궁에서 일하게 됐을까. “유홍준씨와 각별히 친하지. 긴급조치법 2호 때 독방에 있었어. 유홍준씨가 학생들과 데모하다가 감옥 옆방에 들어왔어. 통방이라고 하거든. 벽을 똑똑 두드리면 옆방에서 반응을 해. 귀에다 대고 말을 하면 서로 통화가 잘돼. 그때부터 형·동생으로 지내게 됐고 감옥에서 나와 같이 술 마시면서 아주 친해졌어. 또 이때 같이 수감된 이호철, 임헌영, 장준하, 백기완 등과 인연을 맺었어. 아주 각별하지.” 이후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고 유홍준씨가 문화재청장으로 재직 시 방씨에게 경북궁에서 일하도록 배려를 해 줬다. 이에 대해 방씨는 “아마 왕년의 주먹이자 몸짱 할아버지라는 이미지와 ‘경복궁 지킴이’의 역할이 썩 잘 어울렸는지 이곳저곳에서 인터뷰를 해 화제의 인물로 부각됐다”고 했다. 그는 지인들에게 사발통문을 날려 인사동에서 송년회를 겸해 ‘배추 취직 축하연’ 자리를 가졌다. 이때 임재경 전 한겨레신문 부사장, 시인 신경림, 정치인 김태홍과 이부영, 춤꾼 이애주, 불문학자 최권행 등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이 또한 언론에 보도돼 또 한번 화제가 됐다. 그렇다면,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과 인연이 된 긴급조치법 2호와는 어떤 사연이 있을까. 큰딸 이름은 방그레, 둘째는 방시레이다. 웃는 행렬로 지었단다. 방씨가 강원 철원 노느메기밭에서 일할 때였다. 둘째 딸 출산을 위해 서울 어머니네 집에 들러 병원을 가기로 돼 있었다. 그런데 점퍼 차림의 두 사람이 느닷없이 나타나 권총을 들이대면서 철원에서 대구 경찰서 대공분실로 연행했다. 이유는 서울에 아는 사람이 많고 정치와 문화계통에 모르는 사람이 없으니 취조를 해야 겠다는 것이었다. “당시 심문 내용은 이런 것이었어. 뭐, 다짜고짜 김일성과 무전 친 암호를 대라고 했어. 나는 무전기도 만질 줄 모르고 집에 그런 것도 없다고 했지. 그때 산에서 농사를 지을 때 아는 사람이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하나 줬어. 그걸로 트집을 잡는데 참 황당하더라고. 그렇게 6개월 동안 고문받으며 지내다가 나왔어.” 1986년 ‘말지’ 사건 때도 수감됐다. 김태홍 전 국회의원과 형·동생하면서 지냈다. 제5공화국 시절 언론 보도지침이 나왔을 때 김 전 의원이 수배 대상이 돼 고향인 광주로 피신해야 했다. 방씨는 그런 사정을 알고 김 전 의원과 함께 광주로 동행했다. 이런 이유가 나중에 밝혀져 서울 용산구 남영동 대공분실에 가서 고문을 받았던 것. “그때 고문기술자 이근안씨를 만났어. 고문실에 들어가면 옆방이나 옆옆방 정도에서 비명 같은 것이 들려. 진짜 고문해서 나는 비명인지 하여간 그런 소리 들리면 맥이 쫙 풀려. 그런데 이근안씨는 때리지는 않고 아주 상당한 기술이 있더구먼(웃음).” 화제를 돌렸다. 왜 ‘배추’라는 별명이 붙었을까. 6·25전쟁 혼란기 때였다. 방씨는 당시 경신·대광고와 정신여고 등 기독교 계열의 학교들이 합쳐진 전시 연합학교에 다녔다. 전쟁 혼란기라는 분위기도 있었지만, 평소 자유분방한 성격이라 군복 등 입을 수 있는 것이라면 아무거나 걸쳐 입고 다녔다. 특히 방씨는 6·25 때 부산과 호남에서 장사하던 옷차림 그대로였다. 여학생들은 이런 방씨의 모습을 보고 ‘쟤가 싸움 잘하는 배추장수’라고 했고, 결국 ‘배추’로 굳어졌다. ‘시라소니 이후의 최고의 주먹’이라는 별명은 어떻게 얻었을까. 방씨는 1950년대 학생 주먹으로 유명했다. 고등학생 때 대학가의 주먹들과 붙는 일이 자주 있었다. 1953년과 1954년에는 대학생 건달로 악명을 떨치던 ‘춘하’의 패거리들과 싸웠고 전국 씨름왕의 도전을 받아들여 이기기도 했다. 창경원에서 특수부대 군인 출신인 깡패들과 맞짱을 뜨면서 ‘양배추’의 이름이 장안에 알려졌다. 당시 신문기사 제목이 ‘군인 깡패, 학생에게 혼쭐나다’였다. ‘시라소니 이후 최고의 주먹’이라는 근원지는 소설가 황석영이었다. 그럴 것이 1960년대를 거쳐 1990년대까지 잊을 만하면 한두 번씩 ‘맞짱의 전설’을 만들어냈다. 국내뿐만 아니라 파리와 스페인 등 해외에서도 그랬다. 문단의 화제였고 술자리의 단골 주인공이었다. 특히 방씨는 재야 세력의 주먹으로 반독재 민주화를 기치로 내건 문화운동패의 문인, 화가, 그리고 지식인들과 두루 친했다. “내가 말야. 한창 주먹으로 이름을 날릴 무렵 이정재가 제3자를 보내 은근히 영입의사를 밝힌 적이 있어. 당시 이정재는 유지광을 전면에 내세워 동대문시장과 평화시장 일대를 주무대로 하는 ‘화랑동지회’라는 단체를 조직했거든. 이 조직의 후신인 반공청년단 등을 만들어 사회적 이권과 정치세계에까지 개입하고 있었지.” 그러나 방씨는 이정재의 제안을 단호하게 뿌리쳤다. 이유는 간단했다. ‘중국무협사’에 주가(朱家)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그는 첫째, 가난하고 빈천한 사람부터 도왔다. 둘째, 의협을 행하면서도 남이 알게 되는 것을 두려워해 굳이 대가를 바라지 않았다. 셋째, 가난하고 청빈하여 집에 재물이 없었다. 적어도 사나이라면 이러한 의기는 지녀야 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하면 정치깡패들과 한통속이 된다는 것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방씨는 운동가 집안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육상 등 각종 운동을 했고 막내 삼촌은 승마, 고모는 스피드 스케이트 선수였다. 방씨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 육상과 높이뛰기, 넓이뛰기, 수영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선수로 발탁됐다. 고등학교 때에는 역도와 합기도를 했다. 그는 독일과 프랑스, 스페인, 중국, 중동 국가 등에서 생활했던 경험이 있어 지금도 6개 국어를 구사한다. ‘조선의 3대 구라’라는 말 또한 여기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다시 지나온 세월을 반추한다. “돌이켜보면 가난하더라도 ‘마음 부자’에 ‘친구 부자’로 지냈어. 비록 별 볼 일 없이 살았지만, 친구들은 하나같이 모두 멋진 사람들이야. 정말 복 받은 사람이지. 그 복을 보디빌딩 장년부 우승으로 갚아 주려고 해. 세상이 뭐라 하든 나의 길을 가는 것이 원칙이야.” 너털웃음과 함께 ‘배추의 호방함’이 향기롭다. 헤어지면서 “앞으로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좋은 친구가 되면 어떠하겠는가?”라고 말했다. “세상은 좋은 친구들이 많아야 해”라며 다시 웃는다. 선임기자 km@seoul.co.kr ■방동규씨는 누구 1935년 황해도 개성에서 태어났다. 1948년 월남 후 경신고와 대광고, 정신여고 등이 합쳐진 기독교 계통의 연합학교를 나왔다. 중학교 시절부터 ‘시라소니 이후 최고의 주먹’으로 유명했다. 1954년 체육특기생으로 홍익대 법학과에 입학했다. 이때 백기완, 구중서, 김태선 등과 함께 나무를 심고 계몽운동을 펼쳤다. 30세에 독일에서 광부생활을 했고 4년여 동안 파리에서 유랑생활을 했다. 고국으로 돌아와서 양장점 ‘살롱드방’을 운영했고 1973년에는 강원도 철원의 ‘노느메기밭’에서 공동체 생활을 했다. 이때 간첩 혐의로 수감되기도 했다. 1979년부터 2년 동안 중동 아랍에미리트연합에서 건설노동자로 근무했고 1986년 ‘말지’ 사건에 연루돼 구속됐다. 1991년 서해화성 경영자(CEO)로 취임했고 3년 뒤에는 중국 공장 대표이사를 지냈다. 2001년에는 헬스클럽 강사로 깜짝 변신했다. 2006년부터 경복궁 관람 안내 지도위원으로 활동하다 2008년 그만둔 뒤 2011년부터 경복궁 야간 지킴이로 근무하고 있다.
  • 건축가 정기용의 개성 넘치는 드로잉展

    건축가 정기용의 개성 넘치는 드로잉展

    건축에 대한 높은 관심을 반영해 국립현대미술관도 처음으로 건축가를 위한 전시를 준비했다. 첫 전시 대상은 바로 정기용(1945~2011)이다. 정기용은 전국 곳곳 기적의 도서관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저를 지은 것으로 널리 알려진 건축가다. 정기용은 숨지기 전 미술관 측에 2만여점의 소장 자료를 기증했고 미술관은 1년여 동안의 연구 끝에 그 가운데 2000여점을 추려내 아카이브를 구축했다. 이 2000여점의 아카이브를 선별적으로 공개하는 ‘그림일기 - 정기용의 건축 아카이브’전이다. ‘그림일기’라는 표현은 정기용이 생전에 남긴 책 ‘감응의 건축’에서 쓰인 말로, 일상적으로 늘 걸어다니는 통로가 누적돼 길이 되고 그 길이 우리 발걸음을 안내하는 지표가 돼 간다는 뜻에서 쓰인 용어다. 그림일기는 그런 뜻에서 인류학자들이 쓰는 용어다. 이는 흙에 대한 감수성과도 연결된다. 전시 기획을 맡은 정다영 학예연구사는 “공부 자체는 도예에서 건축으로, 건축에서 도시설계 쪽으로 넓어져 갔지만, 출발이 흙에 대한 관심이었던 만큼 오랜 세월 누적되는 건축에 대한 남다른 감수성이 있었다”고 말했다. 미대 출신이라 누구보다도 많은 건축 드로잉을 남겼는데 이 개성적인 드로잉을 다 만나 볼 수 있다. 전시는 9월 22일까지 미술관 과천 본관. 무료. (02)2188-6000.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출마선언 하루만에… 野, 安에 맹공

    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가 오는 4월 24일 서울 노원병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키로 한 것과 관련해 민주통합당과 진보정의당이 야당 세(勢)가 강한 노원병 대신 새누리당 텃밭인 부산 영도에서 출마하라고 압박했다. 노원병 출신인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는 4일 라디오에 잇따라 출연, “가난한 집 가장이 밖에 나가서 돈 벌 생각을 해야지 집안에 있는 식구들 음식을 나눠먹느냐”며 안 전 교수의 노원병 출마 의사를 비판했다. 설훈 민주당 비상대책위원도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회의에서 “노원병으로 출마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성급했다”며 부산 영도 출마를 촉구했다. 노원병의 이동섭 민주당 지역위원장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당은 속히 노원병 지역구의 보궐선거 후보자를 공천하라”고 주장했다. 안 전 교수와 야권 단일화 의사가 없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이런 가운데 안 전 교수가 영도가 아닌 노원병을 택한 데에는 ‘야권 후보 단일화 트라우마’가 작용했다는 주장이 안 전 교수 측에서 나왔다. 대선 당시 안철수 캠프 측에서는 안 전 교수가 야권 후보 단일화에 실패한 이유로 ‘친노(친노무현) 패권주의’를 꼽은 바 있다. 이번 재보궐 선거에서 안 전 교수가 다시 친노 진영의 본거지인 부산에 출마하면 친노세력과 어떻게든 힘을 합쳐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민주통합당과 ‘제2의 야권단일화’ 과정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얘기다. 지난 대선에서 안철수 캠프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이날 “부산은 문재인 의원의 영역 아니냐”면서 “안 전 교수가 부산 영도에 출마하면 부산에서 철옹성을 구축하고 있는 문 의원 라인과 합쳐야 한다. 친노와 손을 잡을 수밖에 없지 않겠냐”라고 말했다. 민주당이 대선 패배 책임론 등을 둘러싼 계파 갈등을 깨끗이 씻어내지 못한 상태에서 안 전 교수가 친노 세력과 연대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마땅치 않다고 판단한 것으로 분석된다. 또 부산은 안 전 교수의 고향으로 지역주의를 조장한다는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안 전 교수 측은 서울 노원병은 ‘기득권과의 싸움, 정의 회복’이라는 정치적 명분을 잡을 수 있는 선거구로 여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박근혜정부 국정과제 이렇게 풀자] 중공업·통신·벤처 등 정권별 육성산업 뚜렷

    반세기에 걸쳐 역대 정권은 국가 정책적으로 집중한 산업 분야가 뚜렷한 편이다. 이것이 비교적 빠른 시간에 ‘한강의 기적’을 낳았지만,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엇갈린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국가의 기간이 될 중공업에 집중하면서 특히 토목에 애착을 가졌다. 고속도로와 댐은 다른 산업의 기초일 뿐만 아니라 신생 국가의 겉모습을 그럴듯하게 바꾸기 때문이다. 토목과 건축은 대표적인 고용창출 산업이어서 내수 진작에 효과적이라는 점도 작용했다. 아울러 전후 일본의 전례를 받아들여 재벌 육성 정책을 편다. 대표 기업을 키우면 조직의 향도처럼 선도 역할을 할 것으로 믿었다. 이때 타이완은 중소기업 우선 정책으로 갔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재벌 정책을 이어받으면서 통신 분야에 관심을 갖는다. 당시 정보통신산업은 세계적으로 신생 분야였지만, 한국은 거리에 공중전화가 가장 많은 개발도상국이 됐고 이후 무선통신 기술력도 확보할 수 있는 토대를 갖춘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신도시를 조성하면서 200만호 아파트 건설에 몰두한다. 그러나 이는 나중에 수도권 인구밀집 현상의 원인이 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원·달러 환율을 낮게 유지하면서 국내 소비가 흥청망청할 정도로 내수 산업을 키운다. 해외여행도 피크를 이룬다. 재벌 기업은 문어발식 확장을 한다. 급기야 외환위기를 맞게 된다. 외환위기 와중에 취임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국가 성장에 한계를 느낀다. 그래서 내세운 것이 정보기술(IT)과 벤처기업 육성이다. 오늘날 한국이 IT 강국이 되는 토대가 됐지만, 그 과정에서 증시에 벤처사기 등의 부작용을 낳는다. 다만 환율이 급등하면서 수출은 탄력을 받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토의 균형 발전을 내세워 지역별 산업을 키우려고 했으나,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4대강 사업과 녹색성장 등에 집중했으나 성과와는 별개로 논란을 초래했다. 강태진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연구팀 위원장(재료공학부 교수)는 “역대 정권은 IT, 녹색성장 등 특정 분야를 고르는 데만 관심을 가졌지 중소기업의 몰락 등 우리 산업계의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경운 기자 kkwoo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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