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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金도 주식처럼 거래 내년초 현물시장 개설

    金도 주식처럼 거래 내년초 현물시장 개설

    오랫동안 논란이 돼 온 금거래소가 내년 1분기에 문을 여는 것으로 확정됐다. 이에 따라 내년부터 금도 주식처럼 현물시장에서 직접 거래할 수 있게 됐다. 정부는 금 거래 시장의 양성화를 통해 연간 3000억원에 이르는 부가가치세 탈루를 막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서울신문 6월 5일자 1, 4면> 정부와 새누리당은 22일 당정 협의를 통해 내년 1분기 중 한국거래소에 증권시장과 유사한 형태의 금거래소를 개설하기로 했다. 재무요건 등 일정 수준을 충족하는 금 관련 사업자와 금융기관 등이 금 현물시장 회원으로 가입해 시장에 참여할 수 있다. 가입 회원은 현물시장에서 직접 금을 사고팔거나 비회원(개인투자자 등)을 위해 현물시장의 거래를 중개할 수 있다. 매매 단위는 소량(1~10g)으로 설정하되 금 실물 인출은 소유자가 인도를 요청한 경우에 한해 1㎏ 단위로 허용하기로 했다. 정부는 금거래소 활성화를 지원하기 위해 금 현물시장에 공급되는 수입금의 관세율을 0% 수준으로 감면하기로 했다. 금 사업자에 대해 법인세(소득세) 공제 혜택을 부여하고 부가가치세 과세 체계도 현물시장의 특성에 맞게 정비한다. 시장이 정착될 때까지 한시적으로 거래 수수료와 보관 수수료를 면제하고 위탁매매 수수료도 최저 수준으로 유도할 계획이다. 또 거래되는 금 품질에 대한 신뢰 확보를 위해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금지금(화폐를 발행하는 바탕이 되는 금)만 거래가 허용된다. 이 외에도 정부는 음성적인 금 거래 차단을 위해 내년부터 금지금을 취급하는 귀금속 소매업종을 현금영수증 의무발급 대상으로 추가하는 등 과세 구조도 확충하고 세무조사도 강화할 계획이다. 그러나 실제 시장 활성화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정부가 금거래소를 만드는 이유는 그동안 금 시장이 양성화된 제련금 시장과 음성화된 정련금·밀수금 시장으로 나뉘어 운영됐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밀수금을 제외한 금의 음성거래 규모는 연간 55~57t에 이르며 현황이 파악되지 않는 밀수금을 포함할 경우 음성거래 규모는 더욱 커지게 된다. 음성적인 금 거래가 기승을 부리는 이유는 자금 노출을 꺼리는 사람들 때문이다. 금거래소 설립은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 때부터 거론돼 왔지만 법 개정 문제에 대한 부처 간 이견으로 무산됐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부만이 아니라 여당도 적극적으로 나서는 만큼 금거래소 개설이 원활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이날 당정 협의에서 “세금 탈루도 문제지만 관행적으로 만연한 음성거래가 금 시장 전체의 신뢰성을 훼손하고 있다”며 금거래소 설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광주시장 “위조본 교체… 법적 문제 없다” 문체부 “한 푼도 지원 못해” 공식수사 요청

    문화체육관광부가 22일 ‘2019년세계수영선수권대회’ 유치 과정에서 정부 보증서를 위조한 사건과 관련, 검찰에 수사를 의뢰한 가운데 광주시가 어떻게 대응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문체부는 이런 이유로 광주시에 “재정 지원을 하지 않겠다”고 밝혀 대회 차질은 물론 국제적 신인도 추락 등 파장이 만만찮을 전망이다. 당초 알려진 것과는 달리 총리실은 “정홍원 총리가 정부의 예산 지원을 약속한 적은 없다”고 밝혔다. 강운태 광주시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지난 4월 국제수영연맹(FINA)에 제출한 유치신청서 초안(PDF파일)이 위조된 사실을 발견하고, 그 이후인 같은 달 29일과 6월 27일 각각 제출한 중간본과 최종본은 정부보증서 원본으로 대체해 첨부했다”며 “그런 만큼 이번 대회 유치는 행정적, 법적, 도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강 시장은 “실무자 실수로 빚어진 이번 사건에 대해 이미 국무총리와 문체부 장관에게 각각 사과했고, 그동안 정부의 공식 승인 아래 유치 활동을 폈다”며 “정부가 대승적 차원에서 대회의 성공 개최에 앞장서 줄 것으로 기대한다”며 한발짝 물러섰다. 정부보증서 위조 수사와 관련, “필요하다면 당당히 조사받겠다”고 말했다. 강 시장은 또 “이 사안에 대해 총리실과 문체부, 자체 감사 등을 폈다”며 “결과에 따르겠다”고 밝혀 책임자 문책 등이 예상된다. 그럼에도 어떻게 정부를 설득해 재정지원을 이끌어 내고, 비용을 최소화할지가 ‘발등의 불’이다. 강 시장은 “대회를 고효율 저비용 행사로 치르겠다”고 강조했다. 우선 4000여억원이 투자될 2015년 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 시설을 최대한 활용할 방침이다. 특히 2019년 대회는 ‘챔피언십’과 ‘마스터스 대회’가 통합 운영되고, 이 가운데 마스터스 대회는 참가자에게 비용지원 없이 자부담으로 치러진다. 추가 시설은 50억~60억원이 투자되는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 하이다이빙 등으로 임시경기장으로 건립된다. 다만 2011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때 정부가 총 1700여억원을 지원한 만큼 이와 비슷한 규모의 지원을 받아 대회 후 수영붐 조성 등을 위한 시설물 확보 등에 나설 방침이다. 이번 공문서 위조는 지자체의 과도한 국제대회 유치 경쟁에서 비롯됐다. 2007년 인천시가 아시안게임을 유치할 때 ‘프레젠테이션 자료’에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평창동계올림픽 지원 의사를 담은 영상물을 그대로 첨부해 말썽을 빚기도 했다. 광주시는 앞서 지난 4월 2일 FINA에 유치신청서 초안을 제출하면서 “정부가 대구의 세계육상선수대회 때와 비슷한 1억 달러 정도를 지원한다”는 내용을 임의로 작성한 뒤 당시 김황식 국무총리와 최광식 문화부 장관의 위조 사인을 첨부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한편 문체부는 이날 브리핑을 통해 “공문서를 위조한 사실이 밝혀진 만큼 2019년 대회에 한 푼도 지원할 수 없다”고 밝히고 광주지검에 공식 수사를 요청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끝내 못찾은 회의록 ‘史草 게이트’ 본격화

    여야는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이 ‘국가기록원에 없다’는 최종 결론을 내렸다. 새누리당과 민주당 열람위원들은 이날 오후 소집된 국회 운영위원회에 이 같은 결과를 공식 보고했다. 여야는 지난 15, 17일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을 두 차례 방문해 예비열람을 한 데 이어 19일부터 이날까지 나흘간 전문가를 대동해 회의록을 추가 검색했으나 회의록을 찾지 못했다. 새누리당 열람위원 단장인 황진하 의원은 보고에서 “문건의 수, 문건 용량, 검색어 확인 등 모든 절차를 동원해 검색했으나 회의록을 찾지 못했다”면서 “현재 국가기록원에서 회의록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고 이는 여야가 합의한 사항”이라고 밝혔다. 여야는 회의록이 없다는 데는 의견이 일치했지만 ‘회의록 실종’ 경위를 놓고선 뚜렷한 입장차를 드러냈다. 새누리당은 참여정부가 애당초 회의록을 국가기록원에 이관하지 않았을 가능성에, 민주당은 이명박 정부에서 회의록이 훼손됐을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다. 민주당 열람위원 단장인 우윤근 의원은 “기록물 인수관리 시스템의 심각한 부실이 확인됐고, 그 결과 회의록이 (노무현 정부로부터) 대통령기록관에 이관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제 회의록 실종 사태는 정치권에서 사법부 수사 국면으로 넘어갈 전망이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각각 검찰 수사, 특별검사 수사를 통해 회의록 실종 경위 및 폐기 의혹의 실체를 규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가기록원에서 회의록 원본과 녹음기록물을 찾지 못하면서 국가정보원에 보관된 정상회담 녹음 파일의 공개 여부도 정국을 뒤흔들 변수로 떠오르게 됐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문재인 “NLL 논란 끝내자… ‘열람가능 기록물’들로 진실규명 가능”

    문재인 “NLL 논란 끝내자… ‘열람가능 기록물’들로 진실규명 가능”

    문재인 민주당 의원이 지난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실종과 관련해 23일 입장을 내놨다. 문 의원은 이날 오후 트위터를 통해 “이제 북방한계선(NLL) 논란은 끝내야 한다”면서 새누리당을 향해 “더 이상 질질 끌지 말고 (논란을) 끝내자. 대화록이 없다고 하는 상황의 규명은 여야가 별도로 논의하면 될 일”이라고 밝혔다. 문 의원은 국가기록원에 대화록이 존재하지 않는 데 대해서 “여야가 합의해 사실관계를 차분히 규명해 나가면 될 것”이라면서 “아직도 여러모로 부실한 국가기록관리 시스템과 법적 불비를 더 튼실하게 하는 계기로 삼는다면 오히려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되는 의미있는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대화록 유무 논란으로 인해 문제의 본질이 가려져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국회가 국가기록원의 기록을 열람하려한 목적은 NLL 논란을 조기에 종결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NLL에 대한 노무현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단호한 입장을 거듭 밝혔다. 문 의원은 “NLL은 결코 포기할 수 없고, 북한이 그렇게 주장해 오더라도 우리가 단호하게 막아야 할 일”이라면서 “그러나 새누리당이 대선과 최근 선거개입을 덮기 위해 ‘노 전 대통령이 NLL을 포기했다’는 엄청난 주장을 했고 대화록을 불법 공개하는 무모한 짓을 했다”고 꼬집었다. 문 의원은 “그 때문에 국익을 위해 국가기록원 기록을 열람해서라도 NLL 포기 주장의 진실을 밝히고 논란을 조기에 종식하자는 것이 이 문제의 본질”이라고 강조했다. 문 의원은 “새누리당에 촉구한다”면서 NLL 논란을 끝내자고 제안했다. 이어 “국정원이 공개한 대화록에 의하더라도 NLL 포기가 아니라는 것이 다수 국민의 의견이었고 열람가능한 기록물까지 살펴보면 진실이 명확하게 드러난다”면서 “새누리당은 국정원이 공개한 대화록이 진본이었다는 입장이었으니 국가기록원에서 대화록을 찾지 못했다고 해서 사실 판단에 어려움이 있을 리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물론 국가기록원의 대화록으로 NLL 포기가 아님이 더 분명해질 것으로 기대했던 우리로선 아쉬움이 있지만, 대화록이 없더라도 정상회담 전후의 기록들 만으로 진실을 규명하기에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문 의원은 당시 정상회담을 마친 뒤 노 전 대통령이 귀국 환영행사, 국무회의, 군 수뇌부 회동, 간담회 등을 통해 여러 차례 자신이 제안한 공동어로구역 및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의 취지를 설명했다는 점과 당시 남북국방장관회담 대책보고회의에서 김장수 국방부 장관이 NLL을 중심으로 남북간 등면적 수역에 공동어로구역을 설정하자는 우리 측 제안을 보고받으면서 김 장관이 사용한 해상지도 등을 ‘열람가능한 기록물’로 예를 들었다. 이 해상지도는 당시 노 전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직접 교부한 것과 같은 것이다. 문 의원은 “이 기록들은 여야 열람위원들의 검색에 의해 즉각 열람할 수 있도록 확보돼 있다”면서 “이 정도면 NLL에 관한 논란을 끝내기에 충분하지 않느냐. 우리 정치가 그 정도도 합의하지 못해서야 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문 의원은 또 “새누리당이 NLL 논란을 계속해 나간다면 도대체 누구에게 득이 되겠는가”라면서 “이제 국정원 국정조사에 속력을 내서 국정원의 정치개입과 대선개입, 대화록 불법유출을 제대로 규명하고 국정원을 국민을 위한 정보기관으로 바로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회의록 증발 논란] 끝내 못 찾으면…메가톤급 책임 공방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이 사라진 것으로 확인되면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으로 촉발된 회의록 정국은 이른바 ‘사초(史草) 게이트’로 비화될 수밖에 없다. 회의록 실종의 시기·주체 등 책임소재를 둘러싼 여야의 ‘회의록 훼손’ 공방이 장기화 되는 것은 물론 ‘회의록 찾기’ 과정에 대한 정치적 논란도 가열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새누리당은 야당이 주장하는 ‘이명박 정부 폐기설’을 일축하며 참여정부 인사들에게로 칼끝을 겨눴다. 이 대통령 당선 직후 회의록 내용 유출을 우려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청와대·국가정보원에 회의록 폐기를 지시했다는 주장이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당시 김만복 국정원장이 ‘회담 기록을 재생산해 갖고 있었다’는 정황도 이를 뒷받침한다”면서 “이 전 대통령은 회의록 공개를 주장했던 당사자여서 폐기를 지시할 이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사초를 불태운 행위’, ‘분서갱유’ 등 공세 수위를 높여온 새누리당은 회의록 실종의 사법적 책임을 가리기 위해 검찰 고발 수순을 밟을 예정이다. 김태흠 원내대변인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역사의 기록물을 ‘우주에서 바늘찾기’로 보관하는 것이 어디 있느냐”면서 “문서가 있다고 해도 못 찾는다면 그 부분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기록물 전달·보관에 대한 책임 규명까지 주장했다. 정상회담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자 대통령기록물의 국가기록원 이관을 총지휘했던 문재인 민주당 의원과 친노(친노무현) 진영은 뜻밖의 불똥을 맞게 됐다. 이들은 정치 공세를 피하기 위한 특검 주장 등 선제대응에 주력할 방침이다. 문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 진위가 논란을 빚자 지난달 21일 “정상회담 회의록은 물론 국가기록원 관련 자료 일체를 공개하자”고 제안한 당사자다. “노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이 사실이면 정치를 그만둘 것”이라고 배수진도 쳤다. 친노 진영은 이명박 정부의 회의록 훼손 의혹에 무게를 싣고 있다. 친노 핵심인사인 홍영표 의원이 이날 이(e)지원 사본 무단 접속 의혹을 제기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회의록 관련 실체를 밝히기 위해 이지원 사본이 보관됐던 봉하마을까지 손대야 하는 상황이 닥칠 수도 있다. 그러나 여야 공방 속에 사실 확인은 뒤로 밀린 채 정치적 논란만 길어질 공산이 높다. 이 과정에서 친노 계열 분화는 야권 차기구도와 맞물려 불가피하게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이미 문 의원의 회의록 공개 주장에 대해 “국민은 전임 대통령을 정쟁에 끌어들여 공격하는 일은 옳지 않다고 생각할 것”이라며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민주당 지도부에서도 “국정원의 대선 개입 의혹 국정조사에 화력을 집중해야 하는데 배가 산으로 가고 있다”는 불만이 터져나온다. 한편 이날 이지원 구동을 하지 못함에 따라 민주당이 열람기한 연장을 요구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22일 최종 결론을 낼 경우 ‘끝까지 시도해 보지도 않고 판도라의 상자를 덮어버렸다’는 의혹도 피할 수 없다. 국정원에 보관 중인 회의록 음원 파일 공개는 후속 변수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음원 파일 공개를 추진하겠다”고 했던 새누리당 소속 서상기 정보위원장은 이날 “회의록 실종은 중대범죄이기 때문에 그 책임소재를 먼저 가리고 여야가 ‘NLL 수호 공동선언’으로 출구전략을 찾아야 한다. 그 문제(음원 파일 공개)는 추후 얘기”라며 한발 물러섰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정전협정 60년] 종전 직후부터 협상…양측 입장따라 합의·결렬 되풀이

    [정전협정 60년] 종전 직후부터 협상…양측 입장따라 합의·결렬 되풀이

    ‘한국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보장하기 위해 쌍방 군 사령관은 각국 정부에 정전협정이 조인되고, 효력을 발생한 후 3개월 내에 대표를 파견해 쌍방의 한급 높은 정치회의를 소집하고 한국으로부터의 모든 외국군의 철거 및 한국 문제의 평화적 해결 등 문제들을 협의할 것을 이에 건의한다’(정전협정 제60항)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는 60년전 총성이 멈춘 직후 시작됐다. 1954년 4월 26일부터 6월 15일까지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정치회담에서 한국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논의했지만, 유엔군 측과 공산군 측의 첨예한 입장 차로 성과 없이 종료됐다. 이후 1950~1980년대 남북 대치 상황에서 평화체제 논의가 끼어들 틈은 없었다.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에 ‘통일은 서로 상대방을 반대하는 무력행사에 의거하지 않고 평화적 방법으로 실현하여야 한다’는 문구 정도만 포함됐다. 남북은 1989년 2월부터 남북 고위급회담을 준비하는 예비회담을 진행했다. 예비회담은 8차에 걸친 협상 끝에 1990년 7월 고위급회담 개최를 합의했다. 1992년 2월 18~21일 평양에서 개최된 제6차 고위급회담에서 발효된 남북기본합의서 제5조는 ‘남과 북은 현 정전상태를 남북 사이의 공고한 평화상태로 전환시키기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하며 이러한 평화 상태가 이룩될 때까지 현 군사정전협정을 준수한다’고 합의했다. 남북이 처음 정전상태의 평화상태로의 전환을 공식 언급한 것이다. 하지만 1991~1996년 북한은 공산군 측 군사정전위와 중립국감독위 대표들을 철수시키면서 정전체제를 와해시키는 조치들을 취했다. 1996년 4월 제주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김영삼 대통령과 빌 클린턴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체제를 논의할 4자회담을 열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1997년 12월부터 1999년 8월까지 6차례 남·북·미·중 4자회담이 열려 한반도 평화 체제와 긴장 완화를 협의했지만 합의 없이 결렬되고 말았다. 북한 측이 주한미군 철수를 의제로 설정할 것과 북·미 평화협정 체결을 고집한 탓이다. 2002년 10월 2차 북핵 위기가 불거지면서 남·북·미·중·일·러 6자회담이 시작됐다. 2005년 9월 북한의 모든 핵무기와 핵프로그램을 폐기해 한반도 비핵화를 이룩하기로 합의한 9·19공동성명과 성명의 1단계 조치에 합의한 2·13합의를 통해 ‘직접 관련 당사국들은 적절한 시기에 별도 포럼에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에 관한 협상을 가질 것’을 합의했다. 한반도 평화체제가 마지막으로 언급된 것은 최근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2007년 10월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서다. 10·4선언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남과 북은 현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 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한다’고 뜻을 모았다. 국가정보원이 공개한 회의록에 따르면 노무현 대통령은 김 위웡장에게 “남북 주도하에 통일지향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급선무이며 이를 위해 북·미 관계 정상화와 남북 군사적 신뢰구축을 통한 냉전체제 종식과 핵문제 해결이라는 두 가지 큰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60년간의 남북 회담 가운데 가장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평화체제를 언급한 입장표명이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회의록 증발 논란] 혹시 찾아도…끝없는 NLL 정쟁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재검색에서 회의록을 찾아내면 ‘사초(史草) 증발 정국’은 해소된다. 이후엔 애초 논란의 핵심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이 있었는지를 확인하는 작업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이 기대하는 시나리오지만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단 국가기록원은 회의록을 복사해 국회 운영위원회 소회의실로 발송하고 여야 열람위원 10명은 기존에 확보한 사본들과 함께 이 회의록을 열람해 발언 내용을 확인하게 된다. 이후 여야 열람위원이 의견 일치를 본 내용만 운영위 보고를 통해 공개 발표하고 나머지는 역사 속에 묻히게 된다. 막힌 정국엔 간신히 길이 열리게 된다. 그러나 지난주 ‘회의록이 없다’고 성급한 결론을 언급했던 국가기록원이 큰 비난을 받게 될 전망이다. 국가기록원 운영 시스템과 대통령기록물 관리체계화 등에 대한 보완책이 추진될 가능성도 있다. 여권에 책임론이 뒤따를 수도 있다. 회의록에 노 전 대통령의 NLL 포기 취지 발언이 있는 것으로 확인되면 친노(친노무현) 측은 상처가 클 것 같다. 당시 비서실장으로서 회의록 공개를 주장하고, 포기 발언 확인 시 정계은퇴의 배수진을 쳤던 문재인 의원은 정치 행보에 중대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찾은 회의록에 NLL 포기 취지 발언이 없는 것으로 확인될 경우 후폭풍은 복잡하다. 지난해 대통령 선거 정국에서 새누리당은 노 전 대통령이 정상회담 때 NLL 포기 발언을 했다며 적극적으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현 정권의 정통성에 대한 시비로 이어질 공산도 있다. 다만 이런 결과를 예측하는 전문가들은 적은 게 현실이다. 노 전 대통령의 개별 발언이나 전체적인 흐름 등은 해석에 따라 크게 취지가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끝없는 정쟁만 이어질 수 있다. 기본적으로 NLL 발언 공방이 말끔하게 해소되기는 힘든 구도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노 전 대통령의 NLL 포기 취지 발언을 놓고 자기 주장만 앞세우며 대치 국면을 이어가면 오는 9월 개회되는 정기국회의 운영에도 부담을 줄 전망이다. 이춘규 선임기자 taein@seoul.co.kr
  • [오늘의 눈] 막장 드라마에 빠진 정치권/이영준 정치부 기자

    [오늘의 눈] 막장 드라마에 빠진 정치권/이영준 정치부 기자

    서울 여의도에는 지금 ‘막장 드라마’ 한 편이 방영되고 있다. 제목은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실종사건’이다. 드라마는 “쌍둥이(회의록)를 낳은 아버지(노무현 전 대통령)가 중대한 비밀을 가진 아이를 은밀히 없앴나(폐기했나), 살려뒀나”를 비롯해 “보육시설(국가기록원)에 보내진 큰아이(회의록 원본)는 살아 있나”, “어머니(국가정보원)의 손에 키워진 작은아이(회의록 원본)의 생사는 확인되나”, “사생아(국정원이 생산·공개한 전문)는 왜 공개됐나” 등과 같은 출생의 비밀을 소재로 하고 있다. 지난주에는 잘 살고 있는 줄만 알았던 ‘큰아이’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는 의혹을 ‘보육원장’이 밝히며 끝이 났다. 22일 방영되는 다음 회 예고편에서는 ‘큰아이’의 생사 여부가 최종 확인될 것을 암시하는 듯한 내용이 짧게 보여졌다. 정치권 시청률이 치솟고 있다. 정치깨나 안다는 이들은 결말이 어떻게 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제작자이면서 직접 출연한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스토리 전개를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당력을 집중하며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고 있다. 아무래도 이번 사안을 보수와 진보의 운명을 좌우할 ‘건곤일척’의 승부로 보고 있는 것 같다. 회의록 열람은 ‘노 전 대통령이 북방한계선(NLL) 포기 취지 발언을 했나’를 확인하기 위해 시작됐다. 국정원의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발췌본 및 원문 공개 이후 NLL 포기 취지 발언 유무를 둘러싼 해석상의 싸움은 더욱 치열해졌고, 결국 여야는 국가기록원에 보관된 회의록 원문과 음성파일을 통해 진실을 밝히자는 데 합의했다. 하지만 지금은 ‘회의록이 있나 없나’로 논란이 이어졌고, 앞으로 쟁점은 회의록이 없다면 ‘누가 없앴나’로 바뀔 것으로 보인다. 논란을 잘 살펴보면 ‘모 아니면 도’이다. 발언을 했거나 안 했거나, 회의록 원본이 있거나 없거나 등 여부가 명확히 갈리는 사안이다. 진실이 둘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스포츠 경기가 아닌 ‘정치판’ 승부라는 점이 조금 꺼림칙하다. 찜찜한 결말을 예고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서로 공격·방어의 랠리가 계속되는 것은 배구 경기와 비슷하지만 정치판에서는 한쪽이 득점을 올려도 상대편이 이를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결과가 불리하다 싶으면 진실과 무관하게 억지 논리를 앞세워 네 탓 공방을 벌일 것이라는 게 세간의 시선이다. 애초에 회의록을 열기로 여야가 합의한 것이 ‘무리수’였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지 않나. 국가 기밀에 손을 댈 정도로 갈 데까지 간 ‘막장’ 상황이라면 그 결과를 속 시원히 밝히는 게 오히려 국민에 대한 도리일 것이다. 게다가 열린 결말로 끝난다면 또 다른 해석 논쟁을 부추길 우려가 높다. 또 “노 전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한 발언은 NLL 포기 취지로 해석될 수 있으나 당초 계획은 그렇지 않았고, 회담 이후에는 포기 발언을 하지 않았다”는 식의 ‘물에 물탄 듯’한 결론으로 매듭짓는다면 국민의 짜증지수는 더 높아질 것이다. NLL 논란에서도 여야가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는 모습을 보이길 기대한다. 그런데도 “여야가 합의한 거 제대로 되는 거 봤어?”라는 한 의원의 말이 계속 밟힌다. apple@seoul.co.kr
  • [회의록 증발 논란] 쫓기는 민주 “봉하 이지원 접속 흔적…국정원, 증발 미리 알았다”

    [회의록 증발 논란] 쫓기는 민주 “봉하 이지원 접속 흔적…국정원, 증발 미리 알았다”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이 보관하고 있어야 할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원본 찾기가 일요일인 21일 밤늦게까지 계속됐지만 성과는 없었다. 여야는 참여정부의 청와대 업무관리 시스템 ‘이지원’(e-知園) 구동 여부를 놓고도 온종일 신경전을 벌였다. 복구·구동에만 최소 일주일이 걸리는 탓에 결국 이지원 구동은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색 시작 얼마 후 “재검색 시한을 연장하자”는 얘기가 나왔고, 검색 상황이 만만치 않은 듯 새누리당 황진하·조명철, 민주당 전해철·박남춘 의원 등 4명의 여야 열람위원들은 수시로 회의를 열어 조율했다. 새누리당은 ‘재검색은 22일 오전까지’라는 원칙을 고수했다. 여야 열람위원들과 4명의 전문가들은 22일 오전 10시부터 다시 재검색을 시작해 존재 여부를 마지막으로 확인한 뒤 오후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그 내용을 보고할 계획이다. 이날 오후 대통령기록관 열람실에는 수시로 박스가 반입·반출됐다. 열람위원들이 추가 자료를 요청하면 기록원이 이를 찾아서 제출하고 보고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때로는 관계자들이 뭉텅이 출력 자료를 직접 들고 들어가기도 했다. 주로 민주당 측의 요구로 추가 검색된 내용인 것으로 전해졌다. 검색 범위도 늘렸다. 키워드는 당초 7개에서 19개로 늘어난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전자문서는 암호까지 풀고 검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이지원의 자료가 국가기록원이 팜스에 보관해 놓은 대통령기록물 파일이 아닌 별도 스토리지의 백업 대통령기록물 파일에 보관돼 검색이 안 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 하루종일 현장이 이렇게 은밀하고 긴박하게 돌아간 가운데 여의도에서는 각종 주장과 의혹이 제기됐다. 친노(친노무현)계인 홍영표 민주당 의원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3월 26일 노무현재단 사료팀이 대통령기록관에 보관 중인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개인 기록을 제공받기 위해 대통령기록관을 방문했을 당시 지정서고에 보관돼 있던 봉하 이지원의 봉인이 해제돼 있었고 두 건의 시스템 접속 흔적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민주당 열람위원들도 국가기록원에 로그·열람 기록, 보안감사일지, 출입 기록, 외부파견기관 공무원 근무일지, 폐쇄회로(CC) TV 기록 등을 22일 오전까지 제출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기록원 측은 ‘시스템 구동 여부 확인’과 ‘항온·항습 점검’ 등을 위해 2010년과 2011년 접속했다고 해명하는 한편 관련 자료를 민주당 측에 제공하기로 했다. 새누리당은 “열람위원도 아닌 사람이 그런 얘기를 한 것이 오히려 논란을 일으킬 수 있다”면서 “친노 인사들이 회의록 원본을 찾지 못한 다음에 이명박 정부에 책임을 전가하려는 불순한 의도가 숨겨져 있다”고 반박했다. 국정원이 회의록 원본의 ‘실종’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주장도 나왔다. 국회 국정원 국정조사특별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정청래 의원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남재준 국정원장이 지난달 25일 국회 정보위에서 당시 국정원에서 생산한 것이 진본, 원본이라고 계속 주장했으며 ‘대통령기록관에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아느냐’고 말했다”면서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국정원이 국가기록원에 회의록 문건이 없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의혹을 갖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국정원 측은 “국가기록원에 있는 각종 문건에 대해 알 수 없기 때문에 ‘모른다’고 답변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김효섭 기자 newworld@seoul.co.kr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회의록 유무 22일 발표… 후폭풍 예고

    회의록 유무 22일 발표… 후폭풍 예고

    여야는 21일 경기도 성남의 국가기록원 내 대통령기록관에서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이 존재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사흘째 재검색을 벌였지만 회의록 발견에 실패했다. 여야는 22일 오전 10시부터 마지막으로 재검색을 실시한 뒤 오후 2시 국회 운영위원회에 최종 결과를 보고한다. 이날 여야는 새롭게 합의한 방식으로 재검색을 진행했다. 제목과 본문을 모두 검색하는 방법을 동원했다. 복원·구동에 최소 일주일 정도 걸리는 것으로 알려진 참여정부의 기록물 관리시스템 ‘이(e)지원’ 구동 여부 등을 놓고 여야는 첨예하게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민주당 측은 시스템 구동상의 이유 등을 들어 재검색 기간 연장을 요구했으나 새누리당은 당초 합의대로 22일 오후 2시 국회 운영위에 보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회의록이 없는 것으로 판명 나면 ‘회의록 증발’에 대한 책임 공방으로 정국은 급속히 경색되면서 거센 후폭풍이 예상된다. 양측은 검찰수사 또는 특검 등을 거론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친노(친노무현) 핵심 인사인 홍영표 민주당 의원은 이날 “지난 3월 노무현재단 사료팀이 대통령기록관을 방문했을 때 2008년 봉인된 이지원 시스템이 해제돼 있었고, 접속 흔적(로그 기록)이 발견됐다”고 주장, 논란에 새로운 불을 지폈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진보정의당 새 당명 ‘정의당’

    진보정의당 새 당명 ‘정의당’

    진보정의당이 ‘정의당’으로 당명을 바꾸고 새 대표로 천호선 최고위원을 선출했다. 사실상 ‘제2 창당’인 셈이다. 진보정의당은 21일 경기 고양시 일산 킨텍스에서 전당대회 격인 ‘혁신당원대회’를 열어 이같이 결정했다. 단독 출마한 천 최고위원은 참석 당원 6635명 가운데 96.0%의 찬성표를 얻어 대표로 확정됐다. 이정미 최고위원, 김명미 부산시당 부위원장, 문정은 청년위원장 등이 부대표로 선출됐다. 천 신임 대표는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홍보수석, 대변인 등을 지낸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이다. 국민참여당 최고위원, 통합진보당 대변인·최고위원 등을 역임했다. 천 신임 대표는 수락연설에서 “작은 정당이지만 자기혁신을 바탕으로 양당 기득권 구도를 타파할 것”이라면서 “진보의 나라,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새 당명 투표에서는 과반인 51.8%의 지지를 받은 ‘정의당’으로 결정됐다. 당명으로 유력하게 거론됐던 ‘사회민주당’과 관련해 당 관계자는 “사민당이 대중적이긴 하지만 이른바 ‘좌파 콤플렉스’가 있는 보수층은 물론 노동운동계를 비롯한 기존 진보층 등 좌우 모두를 설득해 나가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는 지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한편 진보신당도 이날 오후 서울 관악구청 대강당에서 임시당대회를 열어 당명을 ‘노동당’으로 바꿨다. 김효섭 기자 newworld@seoul.co.kr
  • [공직사회 골프 해금 ‘뜨거운 감자’] 운동·취미보다 접대·로비 수단 변질…잘못 걸리면 ‘약’도 없다

    공직자들에 대한 ‘골프 금지령’이 조만간 풀릴 조짐이 곳곳에서 감지된다. 최근 청와대 한 회의에서 참모진이 소비 진작과 골프업계 일자리 창출 등의 이유로 골프 허용을 건의했으며 박근혜 대통령은 “알겠다. 조금만 기다려달라”라고 답했다고 한다. 청와대의 한 고위공직자도 “이번 여름휴가에 골프나 실컷 즐기겠다”는 말을 공공연하게 할 정도로 골프 해금(解禁) 분위기는 무르익고 있는 듯하다. 이번 여름 휴가철이 공직자 골프 허용 여부를 가름할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공직사회는 유독 골프 문제에서만큼은 움츠러들곤 했다. 윤리적 고삐가 강하게 채워져 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 이러한 고삐를 죌 수밖에 없는 계기도 있었다. 박 대통령은 지난 3월 11일 취임 후 처음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안보가 위중한 이 시기에 현역 군인들이 주말에 골프를 치고 그런 일이 있었다”면서 “특별히 주의를 해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주기 바란다”고 지적했다. 북한의 미사일 위협이 이어지던 상황에서 군인들이 골프를 친 것에 대한 경고성 메시지로 해석돼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전군에 골프 금지령을 내렸다. 군 골프 금지령은 남북 간 긴장이 완화된 지난 6월 1일 해제됐지만 여진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공직사회에서 골프 금지령은 김영삼 정부 시절 처음 내려졌다. 김 전 대통령이 골프를 잘 못 친 이유도 있지만 골프를 즐겼던 과거 군 출신 대통령들과 차별화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권을 거치면서 공무원들의 기강을 잡겠다며 종종 골프 금지령이 내려진 적도 있지만 접대 골프가 아니라 내 돈 내고 치는 거라면 크게 문제 삼지 않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노 전 대통령은 가끔 골프를 즐겼고, 이 전 대통령도 직접 골프를 쳐 해금을 공론화하려는 시도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박 대통령은 지금까지 직접 골프 금지령을 내린 적은 없다. 그럼에도 공직사회 내부적으로는 골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게 불문율에 가깝다. 실제 골프를 즐기는 일부 청와대 참모진 역시 야외 정규 골프장이 아닌 실내 스크린 골프장만 가끔 찾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은 지난 10일 주요 언론사 논설실장단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골프 허용 여부를 묻는 질문에 “지금 여러 가지로 생각하고 있다”면서 즉답을 피했고 지난 6월 11일 국무회의 때도 이경재 방송통신위원장의 골프 허용 요청에 박 대통령은 웃음으로 답변을 대신한 것으로 전해졌다. 공직사회에서 골프가 단순한 운동이나 취미가 아니라 접대 수단이 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골프를 해도 된다’는 메시지가 ‘접대를 눈감아 주겠다’는 오해를 불러올 수도 있다. 이는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 기조와도 배치된다. 접대 골프라는 비정상적인 관행을 합리화하는 것처럼 비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공직자 골프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타이밍’이다. 국가 위기나 비상 상황하에서의 공직자 골프는 국민 불신을 자초한다. 노무현 정부 당시 실세였던 이해찬 총리 역시 ‘3·1절 골프 파동’에 휘말려 공직에서 물러났다. 공직자들의 골프가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부적절한 처신과 맞물려 있다. 과거에도 정권이 새롭게 들어설 때마다 공직 기강을 다잡기 위해 골프장 출입 금지가 ‘단골 메뉴’로 등장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골프 금지의 실효성을 떠나 대국민 홍보 효과가 적지 않다는 점도 깔려 있다. 장세훈 기자 shjang@seoul.co.kr
  • [서울광장] 주권 국가와 ‘애치슨 선언’의 공포/문소영 논설위원

    [서울광장] 주권 국가와 ‘애치슨 선언’의 공포/문소영 논설위원

    조선 개항의 성격을 결정지은 1876년 조일수호조규(강화도 조약)의 제1조는 “조선은 독립국이다”이다. 조선과 일본, 두 독립국이 맺은 조약의 제1조가 “조선은 독립국이다”라는 점은 참 수상하지 않은가. 이 수상쩍은 적시를 ‘일본이 조선 침략을 위한 야욕을 드러냈다’고 배웠다. 미국은 1882년 조선과 조미통상조약을 맺을 때 청나라 북양대신 리훙장에게 중재를 요청했고, 협상도 청나라 톈진에서 진행했다. 조선은 5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자주독립 국가라는 우리와 세계의 인식은 이렇게 달랐다. 외국 출판사가 내놓은 세계사 책에는 조선을 병자호란을 겪은 1636년 이후에는 청의 속국이나 번국으로 처리해 놓은 경우도 더러 있다. 국사학자들은 내치에서의 독립성과 외교·국방에서의 자율성, 한반도에 대한 실효적 지배 등을 내세워 병자호란 이후에도 조선은 ‘사실상’ 독립국가였다고 주장한다. 이런 후기 조선의 지위가 영 찜찜하다. 비슷한 시기에 유럽은 베스트팔렌 조약(1648년)을 맺어 서유럽 국가에 대한 로마 교황과 신성로마제국의 내정간섭과 지배를 종식하며 근대 국가의 모태를 마련했다. 최근 한국군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환수 시기를 두고 논란이 재현됐다. 지난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한·미 국방장관회의에서 2015년 12월에 환수하기로 한 전작권 이양을 우리 측이 연기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보도가 지난 17일 나오면서다. 미국 측은 예정대로 하자며 시큰둥하다고 한다. 전작권의 정의는 “한반도 전쟁 발발 시 국군의 작전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이다. 이 권한은 한미연합사령부 사령관, 즉 주한 미군이 가지고 있는 것과 같다. 1950년 6·25전쟁이 터지자 전쟁수행 능력이 거의 전무해 미국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이승만 대통령은 그해 7월14일에 유엔군 사령관에게 ‘작전지휘권’을 이양했다. 단서조항은 “현재의 적대상태가 지속하는 동안”이었지만, 작전권은 이양된 상태로 쭉 유지됐다. 작전권 중 평시작전통제권은 1994년 12월에 한국군에 반환됐다. 좀 더 예민한 전작권 반환 논의는 2005년에 시작됐다. 주권국가에서 전작권 이양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당시 노무현 정부의 판단이었다. 2007년 2월 한·미국방장관 회담에서 2012년 4월 17일에 반환키로 결정됐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2010년 재협상을 해 이양시기를 2015년 12월로 늦췄다. 그런데 대통령 공약에서도 확인했던 반환시기를 박근혜 정부가 더 연기하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국군이 온전하게 군사작전권을 가진 시기는 국군을 창설한 1948년 8월부터 1950년 7월까지 24개월에 불과했다. 주권(主權)은 국제법상으로 다른 어떠한 국가의 권력에도 복종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전작권을 확보하지 못한 대한민국의 주권을 온전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한국이 ‘찜찜한’ 후기 조선처럼 보이지는 않을까? 유엔(UN)이나 유럽연합(EU)의 특수한 사례를 들어 베스트팔렌 조약이 규정한 ‘고전적 주권’의 시대는 지나갔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EU는 일국의 주권을 제한함으로써 주권을 전 유럽으로 확장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한국인의 잠재의식 속에 주한미군 철수를 연상시키는 전작권 이양은 공포스러운 어젠다이다. 미국의 딘 애치슨 국무장관이 1950년 l월 태평양에서 미국 극동 방위선으로 한국과 타이완을 제외한 일본-오키나와-필리핀을 연결하는 ‘애치슨 라인’을 발표한 뒤 미군이 한반도에서 철수했고, 5개월 뒤 6·25전쟁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린 시절 수영장에서 익사할 뻔했다고 해서 평생 수영을 포기할 수는 없다. 공포를 떨쳐내야 한다. 대한민국은 건국 65주년으로 환갑도 훌쩍 넘겼고, 무역규모도 세계 10위권이다. 안보 위협이라는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온전한 주권 행사를 위한 방안을 빠른 시일 내에 마련해야 한다. 미국이 연기하기 싫다는데 매달리면 값비싼 대가를 지불해야 하지 않을까. symun@seoul.co.kr
  • ‘증발 회의록 찾기’ 주말 총력전

    여야는 19일 경기 성남의 국가기록원을 방문해 행방이 묘연한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존재 여부 확인을 위한 검색 방법 등을 논의했다. 20일 오후 2시부터는 본격적인 재검색을 실시하기로 했다. 이날 열람에는 새누리당 황진하·조명철 의원, 민주당 전해철·박남춘 의원 등 4명이 참여했다. 전날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합의한 대로 여야 각 2명씩 추천한 민간 전문위원 4명도 함께했다. 새누리당은 전산·보안 전문가인 김종준 두산인프라코어 보안실장, 김요식 국가보안기술연구소 보안실장을, 민주당은 박진우 전 대통령기록관 정책운영과장과 ‘이(e)지원’ 시스템 개발자로 알려진 A씨를 선정했다. 이들은 회의록을 못 찾는 이유가 이관되지 않아서인지, 폐기됐기 때문인지, 문서 제목이 별칭으로 돼 있어서인지, 호환·변환상 시스템 문제인지 등을 밝히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황 의원은 “검색(열람) 방법에 대해 기술적인 모든 것을 동원해 논의했다”면서 “20일 오후 2시부터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주말과 휴일을 포함해 21일까지 세부 검색을 진행한 뒤 22일 10명의 여야 열람위원 전원이 대통령기록관을 방문해 최종 결과를 확인, 운영위에 결과를 보고할 방침이다. 그러나 회의록이 없는 것으로 최종 판명날 경우, 여야 모두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이어서 회의록 증발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편, 지난 19일 운영위 비공개 회의에서 새누리당 열람위원이 “예비열람 결과 정상회담록 이외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북방한계선(NLL) 포기 취지 발언이 담긴 다른 부속 회의록도 검색되지 않았다”며 추가 자료 ‘실종’ 의혹을 제기해 논란이 일고 있다. 민주당 측에서는 “신빙성 없는 일방적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회의록 증발 논란] “분명히 전자문서로 이관했다” “靑서 원본 2개 다 폐기 지시했다”

    [회의록 증발 논란] “분명히 전자문서로 이관했다” “靑서 원본 2개 다 폐기 지시했다”

    2007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이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에 없다는 이른바 ‘회의록 원본’ 증발에 대해 여러 의혹이 나오고 있다. 19일부터 여야는 전문가까지 대동하고 대통령기록관에서 재검색에 나선 상황이다. 회의록 원본 증발에 대해 풀리지 않는 의문점 등을 모아 정리해봤다. ① 자료 본문 검색 가능한가 본문 검색 안 된다면 회의록 원본 없다는 뜻 →대통령기록물관리시스템(PAMS)에서 ‘본문 검색’은 가능한가. -본문검색 여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국가기록원은 전날 국회 운영위원회 회의에서 “가능한 방법을 다 동원했지만 찾지 못했다”고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목록은 물론 자료의 본문 내용에 대해서도 검색했다는 것으로 회의록 원본 자체가 국가기록원에 없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김경수 노무현재단 봉하사업본부장은 이날 라디오인터뷰에서 “국가기록원은 그동안 대통령지정기록의 본문 검색까지 다 가능하다고 주장해 왔지만 전날 국회 운영위에 기술전문가가 출석, ‘본문 검색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전해철 민주당 의원도 이날 “대통령기록물 검색의 한계가 많다. 어제 운영위에서도 국가기록원이 검색의 한계를 인정하고 사과했다”고 덧붙였다. ② 자료 검색은 어떻게 대통령기록관장 사전승인 얻어야 PC 접근 가능 →PAMS 검색은 어떻게 하나. -PAMS는 원본자료가 들어오면 일종의 전자 꼬리표라고 할 수 있는 ‘메타 데이터’를 붙인다. 메타데이터는 데이터베이스(DB)에 저장되고 원본파일은 입수한 상태 그대로 시스템 저장소에 저장된다. 원본자료 및 메타데이터는 모두 암호화되어 있어 지정된 별도의 PC에서만 볼 수 있다. 대통령기록관장의 사전승인을 얻은 사람만 이 PC에 접근할 수 있다. 검색을 할 때는 메타데이터를 통해 확인하고 찾는 자료가 맞다면 시스템 저장소에 있는 원본파일을 불러오는 방식이다. PAMS의 검색 방식은 두 가지로 기본 검색방식인 ‘기술체계 검색’과 ‘생산기관 분류검색’이다. 기술체계 검색은 대통령기록관이 분류한 체계를 따라 큰 범주에서 작은 범주로 좁혀가며 구체적인 자료를 찾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P12’로 명명된 노무현 전 대통령기록물에서 청와대비서실(RG2)-비서실장실(RG2-1) 식으로 자료를 찾아가는 것이다. 생산기관 분류검색은 원자료가 만들어질 때 분류된 대로 기록물을 찾는 방식이다. ③ 보관방식·삭제 가능한가 원본·DB 삭제 가능하지만 로그인 기록 남아 →PAMS에서 대통령지정기록물을 삭제할 수 있나.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물을 없앨 수는 있지만 쉽지 않은 것은 물론 흔적도 남는다. PAMS에는 기본적으로 삭제기능이 없어 시스템 내에서 문서가 삭제됐을 가능성은 없다. 결국 자료를 삭제하려면 별도로 암호화시켜 저장하고 있는 원본 기록은 물론 데이터베이스에 있는 메타데이터까지 모두 서버에서 직접 삭제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대통령기록물이 보관된 서고조차 카드키와 지문 인식 시스템, 열쇠의 3중 시스템을 통과해야 하고 보안을 위해 각각 다른 사람이 관리하고 있다. 출입구도 폐쇄회로TV(CCTV)로 출입자를 감시한다. 서버에 대한 보안은 이보다 철저한 것으로 결국 삭제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또 정상적인 방식에 대해서도 로그인 기록이 남기 때문에 만약 삭제를 했다고 해도 기록으로 남는다. ④ 노 前대통령 안 넘겼나 “퇴임 후 봉하마을로 가져가” “이지원에 등록” →노무현 전 대통령이 회의록 원본을 안 넘겼나.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원본은 2개로 알려졌다. 당시 국정원은 정상회담 녹음파일을 풀어서 하나는 청와대, 다른 하나는 국정원에 보관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실종 논란이 일고 있는 회의록 원본은 청와대 보관본이다. 이에 대해 여권 일부에서는 2007~08년 초 노 전 대통령의 지시로 회의록을 폐기했거나 퇴임 이후 봉하마을로 가져갔다고 주장한다. 반면 김경수 노무현재단 봉하사업본부장은 “이지원 시스템은 최종 대화록 문서를 생산하면 모두 국가기록원으로 이관되는 시스템”이라며 “최종 문서를 이지원에 등록했다. 분명히 전자문서로 이관했다”고 말했다. ⑤ 盧 폐기지시 했다면 국정원 회의록은? 靑 지시 어겨? 또다른 사본 만들어? →노 전 대통령이 폐기 지시를 했다면 국정원이 공개한 회의록은 어떻게 된 것인가. -민주당 측은 노 전 대통령의 폐기 지시는 말이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증거로 이번에 공개된 국정원이 보관 중인 회의록을 꼽는다. 국정원에 보관 중인 것을 알고 있는데 청와대 본만 없애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지적이다. 하지만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은 “국정원 등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청와대에서 청와대 원본과 국정원 원본을 다 폐기하라고 지시했지만 국정원이 청와대 지시를 이행하지 않고, 생산된 회의록을 없애지 않고 가지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면서 “아니면 국정원에서 원래 있던 원본 외에 다른 사본을 어떤 이유를 가지고 또 만들었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⑥ 이관 목록에 원본 없나 “자료목록은 종이문서… 회의록은 전자문서” →이관 자료목록에 회의록 원본은 없다? -박경국 국가기록원장은 “이관 자료목록은 대통령기록관 지정서고에 보관되어 있는데 노 전 대통령의 재가를 거쳐 넘겨받은 자료 목록에 회의록이 없었다”고 국회 운영위에서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처음부터 참여정부가 회의록 원본을 국가기록원으로 이관하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반면 대통령기록관 초대관장을 지낸 임상경 전 기록관리비서관은 “지정서고에 있는 자료 목록은 종이문서 목록을 얘기하는 것”이라면서 “정상회담 회의록은 이지원을 통해 전자문서로 이관됐고, 이에 따라 대화록이 지정서고 목록에 없는 것은 당연한 얘기”라고 말했다. ⑦ 보안상 다른 이름 저장? “별칭 기록은 관행” “盧, 쉽게 문서 보관 지시” →회의록 원본이 보안상 다른 이름으로 되어 있어 검색하지 못했다? -임상경 전 비서관은 보안상 문서 제목에 ‘별칭’을 붙여 보관하고 있어 찾지 못할 가능성도 제기했다. 그는 “비밀문서의 경우 제목을 ‘별칭’으로 기록하는 것은 일반적인 관행”이라며 “정상회담의 경우 보안이 중요한 만큼 준비단계부터 별칭을 사용한다”고 말했다. 그는 “민감한 비밀문서는 아예 ‘별표(****) 관련’이라고 표기하거나 날짜만 표기해 보관하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하지만 별칭 논란에 대해서는 참여정부 인사끼리도 의견이 엇갈린다. 김정호 전 기록관리비서관은 “노 전 대통령은 모든 문서를 찾기 쉽게, 알아보기 쉽게 하라고 강조했다”면서 “또 이지원은 모든 업무를 전자적으로 결재·보고하고 이것이 자동으로 기록에 남기 때문에 별도의 코드명이나 별칭을 붙일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김효섭 기자 newworld@seoul.co.kr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회의록 증발 논란] 與 “책임 묻겠다” 野 “기다려 보자”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의 행방이 묘연한 상황에서 여야는 각기 다른 셈법으로 돌파구를 찾고 있다. 일단 새누리당은 회의록이 ‘없다’는 데 무게를 둔 상황에서 국가기록원으로부터 회의록 유무에 대한 최종 확인을 기다리고 있다. 최경환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주요당직자 회의에서 “회의록이 최종적으로 없다는 결론이 내려질 경우 그 경위와 책임 소재를 명명백백히 밝히고 관련자에게 상응하는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새누리당은 오는 22일 ‘없다’는 최종 판정이 내려지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회의록을 폐기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대야 파상 공세를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일부 새누리당 의원들이 특별검사를 주장하고 있는 것도 맥락이 같다. 민주당은 지도부와 친노무현계 인사들의 입장이 나뉘는 분위기다. 김한길 대표는 “회의록을 더 찾아보기로 한 만큼 기다려 보겠다”고 말했다. “회의록 정본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찾을 수 없다면 또 다른 차원의 심각한 문제”라며 새누리당과 사뭇 비슷한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친노 측에서는 이날도 “참여정부 자료를 모두 국가기록원으로 넘겼고, 훼손됐다면 이명박 정부의 책임”이라고 거듭 주장하며 강경하게 맞섰다. 한편 민주당도 ‘없음’으로 최종 결과가 날 경우에 대비, 검찰수사를 비롯해 특검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어 여야 수 싸움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주말 인사이드] 그분의 정치投, 먹먹한 감동投, 배꼽티 섹시投… 시구 속 사회

    [주말 인사이드] 그분의 정치投, 먹먹한 감동投, 배꼽티 섹시投… 시구 속 사회

    시구(始球)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경기에서 유명 인사가 던지는 공이다. 그러나 요즘은 거의 매 경기 시구를 한다. 꼭 유명 인사가 시구를 하는 것도 아니다. 이제 시구는 프로야구 경기의 일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19일 포항서 열린 올스타전에서는 시구자로 ‘다둥이 가족’ 김경헌씨의 아홉 자녀가 동시에 9명의 포수에게 공을 던져 큰 박수를 받았다. 시구에 숨어 있는 사연을 알아봤다. 잠실을 홈으로 쓰고 있는 LG. 시구자가 유명해지는 경우가 늘면서 연예인들의 문의가 쇄도한다. 시구자 중 절반 정도는 구단이 아닌 기획사에서 먼저 연락한 경우다. LG는 한 달 전에 시구자 섭외를 완료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으며, 인지도와 야구 연관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시구자를 고른다. 시구자는 경기 시작 1시간~1시간 30분 전 도착해 실내연습장에서 간단한 교육을 받는다. 당일 선발을 제외한 투수들이 번갈아가며 투구 자세와 공 던지는 법 등을 설명한다. 시구를 마치면 유니폼 상의와 모자, 프리미엄 좌석(4석)을 선물로 받는다. 엄순홍 LG 마케팅팀 과장은 “연예인이 시구를 한다고 해서 특별히 구단 가치가 높아지거나 이득을 보는 것은 아니다”라며 “팬 서비스의 일환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상대적으로 접근성이 떨어지는 지역 연고 구단은 향토기업 인사나 팬들을 시구자로 초청하는 경우가 많다. 이상욱 롯데 홍보팀장은 “연예인들이 시구를 위해 부산까지 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다양한 지역 인사로부터 시구 요청을 받는데, 공익성을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한다”고 설명했다. KIA는 네임데이 행사가 펼쳐지는 경기에서는 관계자들에게 시구를 맡기고 있다. 예를 들어 ‘전남대학교의 날’로 지정된 경기에서는 총장이나 학생회장이 시구를 하게 한다. 지역 단체장이 시구를 희망하면 소정의 기부금을 받은 뒤 연말 성금으로 활용한다. 허권 KIA 홍보팀 차장은 “시구자로 선정된 일반인들은 경기 전 1시간가량 구단과 함께하면서 우리를 이해한다”고 말했다. 사상 첫 시구는 야구의 본고장 미국이 아닌 일본에서 있었다. 오쿠마 시게노부 전 일본 총리가 1908년 고시엔 구장에서 열린 미프로야구(MLB) 연합팀과 와세다대와의 경기에서 시구를 했다는 기록이 있다. 와세다대를 설립한 그를 예우했던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서는 2년 뒤인 1910년 윌리엄 태프트 당시 대통령이 워싱턴 구장에서 첫 시구를 했다. 당시 시구는 마운드가 아닌 관중석에서 공을 던지는 것이었다. 한국 프로야구 첫 시구의 주인공도 대통령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1982년 3월 27일 동대문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원년 개막전 삼성-MBC전에서 시구자로 나섰다. ‘각하’의 경호는 삼엄했다. 야구장 화장실과 더그아웃, 그라운드에도 경호원이 배치됐고, 구심의 공 주머니까지 수색을 받았다. 전 전 대통령의 ‘행차’가 너무 요란했던 탓일까. 이후 대통령의 시구는 많지 않았다. 김영삼, 노무현 전 대통령만이 마운드에 섰다. 특히 김 전 대통령은 1995년 잠실 삼성-LG전 개막전에서 시구하는 등 세 차례나 야구장을 찾았다. 노 전 대통령은 2003년 올스타전에서 한 차례 ‘깜짝’ 시구를 했다. 참고로 미국은 태프트 전 대통령 이후 지미 카터를 제외한 모든 대통령이 개막전이나 올스타전, 월드시리즈에서 시구를 했다. 개막전이 갖는 무게감 때문인지 이후에도 시구는 ‘묵직한’ 관료와 단체장이 맡았다. 1983년 개막전(잠실 OB-MBC전)은 이원경 당시 체육부장관이 시구를 했고, 이듬해부터는 체육부차관과 서울·인천·대구·부산·광주시장 등이 돌아가며 마운드에 올랐다. 대통령이나 고위 관료가 시구한 것은 ‘프로야구 정치학’을 함축한다. 하지만 1989년부터 시구에도 변화의 바람이 분다. ‘씨받이’로 베니스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탄 강수연이 4월 8일 광주 빙그레-해태 개막전에서 연예인 최초의 여성 시구자로 나선 것. 김집 당시 체육부장관과 함께 마운드에 올라와 환호를 받았다. 같은 날 잠실에서 열린 MBC-OB전에서는 OB베어스 1호 성인 회원 이국신씨가 나서 시구자의 지평을 일반인으로 넓히는 계기가 됐다. 최근에는 연예인 시구가 대세를 이루고 있으며, 일반 팬이나 장애를 이긴 감동 사연을 가진 인물들도 종종 마운드에 오르고 있다. 반면 축제 성격이 강한 올스타전에서는 처음부터 연예인들이 시구자로 나섰다. 1982년 7월 1일과 3~4일 열린 올스타전에서는 배우 이경진과 정애리, 정윤희 등 당대의 인기 스타들이 차례로 시구를 했다. 남성 연예인 중에서는 신성일이 1984년 올스타전에서 첫 시구자의 영예를 누렸다. 한국시리즈 시구자 중 눈에 띄는 인물은 피터 오말리 LA 다저스 전 구단주다. 그는 1982년 한국시리즈 4차전과 1989년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각각 시구를 했다. 박찬호와 서재응, 최희섭, 류현진이 잇달아 입단한 다저스는 이때부터 한국 야구와 인연을 맺었던 것. 톡톡 튀는 시구자도 많다. 1984년 올스타전에는 부녀자 멀리던지기 대회 우승자인 박정일씨가 초청받았고 1989년 올스타전에는 물구나무서기 세계기록보유자 신동묵씨가 선정됐다. 2001년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는 프로야구 원년 개막일 출생자 유연희, 김인재씨가 마운드에 올랐다. 2006년 개막전(문학 현대-SK전)에서는 8살에 인하대에 입학해 화제가 됐던 송유근군이 시구를 했다. 가장 심금을 울린 시구는 2001년 잠실 두산-해태 개막전의 애덤 킹(한국명 오인호)일 것이다. 킹은 뼈가 굳고 다리가 썩는 선천적 중증장애를 갖고 태어나 부모에게 버림받고 미국으로 입양된 아홉 살 소년이었다. 그러나 티타늄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마운드에 올라온 뒤 씩씩하게 공을 뿌려 많은 사람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배우 홍수아, 모델 이수정 등은 선수 못지않은 멋진 폼으로 포수 미트에 정확히 공을 꽂아넣는 ‘개념 시구’로 인기를 끌었다. 손연재와 양학선, 신수지는 체조 기술을 응용한 동작으로 와인드업을 해 큰 갈채를 받았다. 특히 신수지의 ‘백일루션 시구’는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에 소개될 정도로 주목받았다. 최근에는 골퍼 장하나 등 다른 종목 프로 선수들의 시구가 늘고 있다. 1992년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시구를 했던 김사율 당시 감천초 야구선수는 지금 롯데에서 활약하고 있다. 여자라면, 특히 연예인이라면 예쁘게 보이고 싶은 게 당연한 심리. 그러나 몇몇은 노출이 너무 심한 의상으로 마운드에 섰다가 구설수에 올랐다. 지난 5월 3일 잠실 두산-LG전에서 가수 클라라는 배꼽이 보이도록 짧게 줄인 두산 유니폼과 하반신 각선미가 드러나는 타이트한 레깅스를 입고 마운드에 올라 남심을 흔들었다. 레이싱모델 윤승연도 2011년 핫팬츠에 상의가 절반가량 드러난 옷을 입었고, 중국 배우 장쯔이는 시구 도중 의도치 않게 속옷을 노출하고 말았다. 시구자가 결석한 경우도 있다. 2004년 한국시리즈 1차전 시구자로 예정됐던 이해찬 당시 국무총리는 경기가 임박해서 불참을 통보했다. 헌법재판소의 신행정수도 건설 특별법 위헌 결정에 따른 대책회의가 시급하다고 해명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부랴부랴 대체자를 수소문했고 전년도 한국시리즈 7차전 시구자였던 배우 박정아를 섭외했다. 덕분에 박정아는 한국시리즈 두 경기 연속으로 시구를 한 유일한 인물로 남았다.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 [‘NLL 회의록’ 미스터리] 이관 뒤 참여정부때 폐기? MB정부때 폐기?… 아예 이관 안돼?

    [‘NLL 회의록’ 미스터리] 이관 뒤 참여정부때 폐기? MB정부때 폐기?… 아예 이관 안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 시사 발언 논란을 잠재울 것으로 기대됐던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원본이 ‘증발’하면서 걷잡을 수 없는 파문이 일고 있다. 당연히 국가기록원에 보관돼 있어야 할 회의록 원본이 국가기록원에 없는 것으로 사실상 확인되면서 각종 시나리오와 음모론이 난무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참여정부가 애당초 원본을 이관하지 않았거나 이관 뒤 참여정부 말 또는 이명박 정부 때 폐기됐을 가능성도 그중 하나다.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열람위원인 새누리당 황진하 의원과 민주당 우윤근 의원이 18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국가기록원이 그런 자료(회의록)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는 입장을 확인했다”고 밝힌 가운데 여야는 마지막으로 오는 22일 국가기록원에서 회의록의 존재 여부를 최종 확인하기로 했다. ■이관 뒤 참여정부 때 폐기 가능성 국가기록원에 회의록 원본 자체가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상황이다. 새누리당 등 여권 관계자들은 참여정부가 회의록을 기록원에 이관했다가 이명박 정부 출범 이전에 정치적 파장을 우려해 서둘러 폐기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2007년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기 이전에 국가기록원으로 이관했던 회의록을 황급히 폐기했다는 것이다. 사실이라면 노 전 대통령 측은 정치적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다. 노 전 대통령 측이 단호하게 부인하는 이유다. 남북정상회담 당시 청와대 연설기획비서관이었던 김경수 노무현재단 봉하사업본부장은 이날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회의록을 폐기할 것이었다면 국정원에 보내지도 않았어야 하지 않느냐. 국가기록원에서 못 찾은 것으로 봐야 한다”고 폐기설을 일축했다. 노 전 대통령 측은 국가기록원이 공식적으로 명확한 입장을 밝히라고 요구하고 있다. 회의록 열람위원인 민주당 우윤근 의원도 이날 운영위 회의에서 “기록원 측에 ‘현재까지 찾지 못한 것이 옳은 대답이다. 모든 방법을 다하지 않은 상태에서 없음을 확인했다고 하는 것은 납득이 안 된다’라고 질책했다”고 설명했다. 봉하마을 대표를 맡고 있는 김정호 전 청와대 기록관리비서관은 국가기록원이 일부러 찾지 않고 있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김 대표는 이날 서울신문과의 전화통화 등에서 “이(e)지원 시스템의 기록물은 모두 다 그대로 컴퓨터에 저장돼 누가 중간에 조작할 수 없다. 못 찾고 있거나 고의로 회피하고 있는 게 아닌가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관 뒤 이명박 정부가 폐기 가능성 민주당 등 야권에서는 참여정부가 회의록을 국가기록원에 이관했으나 이명박 정부가 폐기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이명박 정권이 국정원 회의록 보관본을 왜곡해 전문과 발췌본을 만든 뒤 대선 국면 등 결정적일 때 노 전 대통령 측을 곤경에 빠뜨리거나 친노(친노무현) 세력에 치명타를 가하기 위해 회의록 원본을 폐기해 버렸다는 것이다. 민주당 전병헌 원내대표는 이날 당 고위정책회의에서 “추가로 찾아서라도 이 기록물이 없는 게 확인되면 이는 민간인 사찰을 은폐해 온 점이나 국정원 댓글의 폐기와 조작의 소위 경험에 비춰서 삭제와 은폐 전과가 있는 전임 이명박 정권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의 NLL 포기 취지 발언 등 중요 부분을 왜곡한 회의록만 국정원이 보관하고, 원본을 폐기해 버렸다는 취지다. 이 같은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 등 현 여권 전체가 궁지에 몰릴 수 있지만 가능성을 의심받고 있다. 회의록이 대선 정국에서 활용됐다고 민주당이 주장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현 정부의 정통성에 대한 시비가 확산될 가능성도 있다. 민주당은 기록원에서 회의록이 끝내 발견되지 않을 경우 이명박 정부 폐기설을 주장하며 장외투쟁 등 강도 높은 대여 투쟁을 벌이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새누리당이나 이 전 대통령 측, 그리고 청와대 측은 이 같은 시나리오에 대해 펄쩍 뛰며 부인한다. 청와대는 이날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며 신중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오전 기자들과 만나 “저희들도 솔직히 황당하고 당황스럽지만 지금으로서는 좀 믿기지 않기 때문에 (국회의) 공식적인 발표를 한 번 보자”고 말했다. 새누리당은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회의록을 이관하지 않았을 가능성 참여정부의 청와대가 임기를 마치고 청와대 문서를 국가기록원에 넘기면서 회의록을 누락시켰을 가능성도 여권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여권 관계자들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전에 회의록은 국가기록원으로 넘어가지 않았고, 노 전 대통령 임기 말 회의록 원본이 사라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통일비서관 출신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은 전화 통화에서 “2008년 이 전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 내용을 보고받고 크게 화를 내면서 ‘원본을 공개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고집해서 참모들이 고심을 했었다”고 전했다. 이런 측면에서 이명박 정부가 회의록 원본을 폐기하거나 은폐했을 가능성은 낮다고 주장했다. 국가기록원에 회의록이 없다면 아예 이관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취지이다. 여권 인사들은 회의록이 실무자들의 실수나 착오로 이관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의도적으로 이관되지 않았다면 노 전 대통령 측이 후일 회의록이 공개됐을 때의 후폭풍을 우려해 폐기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특히 녹음파일이 국가기록원에 남아 있지 않은 점도 노 전 대통령 측이 의도적으로 관련 기록물들을 이관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하게 하는 요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여권 일각에서는 봉하마을 은폐 의혹까지 제기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 측이 민감한 내용이 담긴 회의록을 봉하마을에 보낸 뒤 아직까지 은폐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노 전 대통령 측은 “말도 안 되는 음해”라고 펄쩍 뛰고 있다. 여권 관계자들은 봉하마을에 은폐했다면 사실상의 폐기라며 “사초를 불태운 것이나 마찬가지로 역사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기록원이 못 찾았을 가능성 정부의 복잡한 국가기록물 관리체계 때문에 원본이 있는 데도 찾지 못할 가능성도 여전히 민주당을 중심으로 제기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참여정부는 국가기록원에 대통령기록물을 이관할 때 청와대 업무관리시스템인 ‘이지원’의 자료를 컴퓨터 파일 형태로 통째로 넘겼으나, 국가기록원의 문서시스템이 이지원과 서로 달라 검색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취지다. 문서 형식을 변환하는 과정에서 파일 형태가 달라지면서 관련 자료가 유실됐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국가기록원의 한 관계자도 이날 기술적인 문제로 여야가 기존에 선별한 7개 검색어로 회의록이 검색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새누리당 유기준 최고위원도 라디오 인터뷰에서 “분류 작업을 소홀히 했거나 보안 등의 이유로 쉽게 찾을 수 없도록 하지 않았겠나”라고 말했다. 여야도 이런 상황을 감안해 22일 새로운 키워드를 추가해 마지막 예비 열람을 실시하기로 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존재 여부 자체를 확인하지 못한다면 각각의 시나리오만 무성한 채 새로운 정쟁의 단초가 되면서 ‘영구미제’로 처리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회의록이 없다는 것이 최종 확인되고 책임 소재를 가리는 단계가 된다면 특별검사 등을 통해서 책임 소재를 가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춘규 선임기자 taein@seoul.co.kr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국가기록원 “회의록 원본·녹음파일 없다”

    국가기록원 “회의록 원본·녹음파일 없다”

    국가기록원이 18일 “2007년 제2차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원본과 회의록을 녹음한 음원 파일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고 국회에 보고했다. 여야는 이날 회의록 열람위원 10명이 참여한 가운데 운영위원회 전체회의를 열었으며, 국가기록원은 “대화록의 단초인 음원 파일도 찾지 못했다”면서 이같이 보고했다고 회의 참가자들은 전했다. 열람위원인 새누리당 황진하 의원은 “지난 15일에 이어 17일 열람위원 전원이 재차 국가기록원을 방문해 추가 검색 결과를 확인했으나 해당 자료는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 열람위원인 우윤근 의원은 “현재까지 찾지 못한 것이 옳은 대답이며 모든 방법을 다하지 않은 상태에서 없음을 확인했다고 하는 것은 납득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여야는 양쪽 열람위원 2명씩, 여야가 추천하는 전문가 2명씩, 모두 8명이 대통령기록관에서 회의록을 계속 검색하고, 오는 22일 10명의 열람위원 전원이 대통령기록관을 방문해 최종 확인작업을 벌이기로 했다. 대화록이 존재하는지는 이날 최종 판가름 날 전망이다. 민주당과 노무현 정부 인사들은 참여정부의 청와대 업무관리시스템인 ‘이(e)지원’과 국가기록원 간의 시스템 차이로 검색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어 앞으로 나흘간 대화록을 찾아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반면, 대화록이 없는 것으로 최종 확인될 때는 상당한 정치적 파장이 예상된다. 국회 정보위의 서상기 위원장은 “국가정보원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의 음원 파일을 보관 중인 것을 확인했으며 차후 상황에 따라 공개를 추진하겠다”고 말했으며, 일각에서는 검찰 수사의 불가피성을 거론하고 있다. 이날도 여야는 노무현 정부 또는 이명박 정부가 회의록을 폐기했을 가능성을 서로 제기하는 등 공방을 벌였다. 참여정부의 인사는 “대화록을 왜 못 찾는지 이해할 수 없다. 회의록 관리과정에 정치적 목적이 개입됐다는 심각한 의혹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으며 이명박 정부의 관계자는 “기록물을 대통령기록관에 넘기면 변경이나 폐기는 불가능하며, 법에 따라 봉인된 것을 건드릴 수도 없다”면서 “전형적인 물 타기 수법”이라고 반박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NLL 회의록’ 미스터리] 대통령기록물 무단 파기땐

    [‘NLL 회의록’ 미스터리] 대통령기록물 무단 파기땐

    대통령기록물은 대통령이나 비서실, 자문기관, 경호실 등 업무를 수행하는 기관이 대통령 활동과 관련해 생산한 문서, 자료 등을 말한다. 현재 경기 성남시에 있는 국가기록원 산하 대통령기록관에는 총 1957만건의 대통령기록물이 있다. 그러나 2007년 4월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이 제정되기 전까지 역대 대통령들은 퇴임에 즈음해 편의적으로 없앨 자료들은 없애고, 개인이 가지고 갈 기록물들은 모두 챙겨서 청와대를 떠났다. 대통령기록관이 만들어지는 등 대통령기록물을 별도로 보관하기 시작한 것은 참여정부 때부터다. 가장 핵심적인 대통령 관련 활동을 역사의 기록으로 남겨 국정운영의 책임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다. 대통령기록관이 보관하고 있는 역대 대통령기록물을 보면 법 제정 이전 대통령들은 많아야 몇 만건 수준이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 3만 8034건, 전두환 전 대통령 4만 3078건, 김영삼 전 대통령 1만 8599건, 김대중 전 대통령 20만 2348건이었다. 법 제정 이후 처음 퇴임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825만건의 기록물을 대통령기록관에 이관했다. 대통령기록물은 누구나 볼 수 있는 공개 열람 가능 기록물, 후임 대통령 등만 볼 수 있는 비밀기록물, 그리고 15~30년 동안 기록 생산 당대의 대통령만 볼 수 있을 뿐 다른 사람들에게는 비공개되는 지정기록물로 크게 나뉜다. 이번에 논란이 된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은 지정기록물이지만, 비공개 기간에도 국회 재적 3분의2 이상 찬성이나 법원이 발부한 영장이 있으면 일정한 요건하에서 열람이 가능하다. 대통령기록물을 무단으로 파기하거나 국외로 반출했을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된다. 또 대통령기록물을 은닉, 유출하거나 손상해도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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