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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론] 문제는 대통령제가 아니라 공직사회다/임승빈 한국지방자치학회장·명지대 교수

    [시론] 문제는 대통령제가 아니라 공직사회다/임승빈 한국지방자치학회장·명지대 교수

    역사에 가정이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인 이상 ‘그때 그렇게 안 했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쉬이 든다. 시계 태엽을 거꾸로 돌려 보자. 한일병탄, 을사늑약, 을미사변, 청일전쟁, 강화도수교조약?. 그때 조선의 공직자들이 제대로 된 국가관과 세계관을 가졌더라면 일제 지배와 민족의 비극이었던 한국전쟁, 지금의 남북 대치도 없었을 것이다. 과거만의 일도 아니다. 청와대의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임명된 주일본 대한민국 외교관의 최근 언행을 보면 ‘강화도수교조약은 정당하며 지켜지는 것이 국제법상 옳다’고 주장하는 조선의 어떤 공직자를 보는 듯하다. 물론 조약은 지키는 것이 맞다. 그러나 상대가 교과서 문제 등 일방적으로 잘못하고 있는 것조차도 제대로 지적하지 못하는 외교관이 공직에 있으면서 우리를 대변하고 있다는 점이 통탄스럽다. 역량 부족을 사죄하고 책임을 지고 공관장을 스스로 사퇴하는 것이 옳다. 그렇지 않다면 외교부 장관이나 대통령 권한대행은 그를 소환시키는 것이 옳다. 이것이 제대로 된 공직관의 확립을 위해 정부가 할 일이다. 요즘 개헌이 필요하다고 요구하는 논자들의 주장을 보면 한결같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가 헌법에 기인한다고 지적한다. 헌법이 사람이라면 억울해서 죽을 지경일 것이다.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의 상징인 인사권을 제한하기 위해 ‘국민의 정부’에서 설립해 노무현 정부까지도 존치됐던 중앙인사위원회가 없어진 것은 이명박 정부 때다. 고위직 공무원에 대한 인사 권한을 청와대의 비서실장으로 가져간 것이 바로 박근혜 정부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극도의 공직 문란에 의해 정권이 무너지는 비극을 맞게 된 것도 박근혜 정부의 인사 난맥 때문이다. 현행 헌법 그 어디에도 대통령에게 인사 권한을 전횡하라는 조항은 없다. 대통령과 국회가 법제도를 악용하는 행위가 문제다. 권력은 형식 논리가 아닌 기능 논리다. 권력은 운용하는 자의 몫이다. 지금의 정국 혼란은 국가 권력을 사유화했다는 데 있는 것이지 대통령제 헌법 때문이 아니다. 그러나 최근의 개헌 논의를 들어 보면 국민의 기본권을 신장하기 위한 것이나 권력을 분권화하려는 것이 아니라 의회와 대통령의 권한을 나눠 먹자는 식으로 들린다. 필자만의 생각일까. 앞서 외교관 사례나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처럼 문제는 청와대와 중앙정부에 쏠린 과다한 권한 집중이다. 제왕적 대통령제는 공안권력기구의 막강한 권한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헌법의 문제가 아니라 법률의 문제이며 법원과 헌재는 이를 견제하는 데 소홀했다. 그러므로 공직자가 정권이 아닌 국민을 바라보게 하려면 국가 공안기관의 분권화와 입법 권한에 대한 민주적·법적 통제를 강화하고 공무원 조직 내부의 분권적?법적 견제 장치가 필요하다. 필자는 새 정부가 무너진 공직사회뿐 아니라 대한민국을 이끌어 가는 공무원제도를 개혁할 수 있는 세 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현재의 고위공무원단에 대한 임명 권한을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주지 말고 인사와 조직을 통합한 합의제 형태의 독립된 조직에 부여할 것을 제안한다. 동시에 공안 권력의 분권화를 위한 조직 신설이 필요하다고 본다. 둘째, 중앙정부는 폐쇄적인 형태에서 정책을 수립하고 지방정부는 정책을 집행한다는 수직적 사고가 최근의 불행한 사태로 이어졌다. 이제는 집단지성의 시대다. 중앙과 지방은 수평적인 관계로 바뀌어야 하고 권력에 대한 통제를 국민과 주민이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과감하게 중앙의 권한을 지방정부로 이양하고 분권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셋째, 공무원 임용시험 방법을 바꿔야 한다. 젊은이들의 유일한 희망이 공무원이 되는 것이라면 이 나라의 미래는 없다. 현 시험 제도는 당일 단 한 번의 시험 성적으로 당락이 결정되는 것에서 문제 은행을 통한 자격제로 바뀌어야 한다. 또한 고시제도를 폐지하고 공직사회가 창조적인 학습 사회로 변화하도록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 [데스크 시각] 산신령과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어떤’ 확신/문소영 사회2부장

    [데스크 시각] 산신령과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어떤’ 확신/문소영 사회2부장

    주말에 ‘농심마니’ 행사에 참석했다. 농심마니는 전국의 산에 산삼을 심는 모임이다. 1987년 봄 전남 화순군 모후산에서 처음으로 어린 산삼을 심고, 산삼씨를 뿌렸다. 올봄이 30주년이다. 원래 심마니는 산삼을 캐는 사람들이라 농심마니는 심마니 앞에 농사짓는다는 농(農) 자를 붙여서 차별성을 부여했다. 산삼은 북위 34~36도에서 자생하는 식물이다. 중국에서도 산삼은 자란다. 개화기에는 ‘고려인삼’의 인기를 타고 미국 산삼이 주목받았다. 중국 황실이 왜 ‘고려 산삼’을 조공하라고 했을까. 고려 산삼의 약효 덕분이다. 그러다 조선 후기에 산삼의 씨가 마른 탓에 산삼을 인공으로 재배했다. 그게 고려 인삼이다. 조공품이 산삼에서 인삼으로 바뀌면서 조선 왕실은 산삼을 캐오라고 비탈진 험한 산으로 백성을 내몰지 않아도 됐다. 농번기에 시작되는 산삼 공출에 대한 백성의 원성은 상당히 심각한 수준이었다. 농심마니들은 왜 산삼을 심을까. 산악인이자 소설가인 박인식 농심마니 회장이 작사한 ‘농심마니의 아침’ 노래에 살짝 그 이유가 나온다. 산신령이 지난밤 꿈속에서 “산삼은 이 땅의 뿌리요, 배달의 정기, 조선은 산삼 밭 산삼을 심자”라고 말씀하신다는 것이다. 시인과 소설가, 화가, 가수, 방송인들로 구성된 회원들은 “우리는 풍류도를 구현하는 것”이라고도 강조했다. 산삼씨를 심는 장뇌삼과 차이가 있나? 박 회장은 “지금은 장뇌삼과 비슷하다. 하지만 어느 날인가 새가 산삼 열매를 먹고 그 씨를 배설한 자리에서 산삼이 자라면 조복삼(鳥腹蔘)이 되고, 조복삼이 스스로 개체를 늘리면 하늘이 내린 천종(天種)이라는 최상급이 되지 않느냐”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왜 다시 산삼밭으로 되돌리려는 것인가. 산삼은 산신령의 주식인데, 산삼이 고갈돼 산신령들이 떠났단다. 농심마니가 산마다 산삼밭을 가꾸면 산신령도 산으로 되돌아오고 나라의 정기를 되찾는 것이다. 근대 과학 교육을 받은 사람으로 이런 도교적 상상력을 코웃음쳐야 하지만, 뭔가 그럴싸한 대목이 없지 않았다. 믿음과 인식은 ‘사실’ 관계를 뛰어넘는 것 아닌가. 광고·마케팅에 휘둘리는 소비자에게 각성을 촉구한 영화 ‘시럽’은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어떻게 인식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인간의 뇌는 ‘믿음’ 앞에서 논리적으로 기능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특히 현재의 인식을 강화하는 방향으로만 정보를 소비하는 ‘확증편향’의 사람은 진실을 접해도 오류를 바로잡지 않는다. ‘아무개는 빨갱이’라는 인식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아무리 증명해도 그 증명을 믿음으로 무력화한다. 인간의 뇌가 범하는 오류다. 개헌으로 제왕적 대통령제를 해소하자고 한다. 1987년 헌법으로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을 뽑았다. 제왕적 대통령제가 거론된 시점은 권위주의 정부인 노태우 정부가 아니라 표현의 자유가 더 존재하던 김대중(DJ) 정부다. 노태우 정부보다 DJ 정부가 더 제왕적이었을까 하는 의문을 품어야 하지만 사람들은 그러지 않는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는 대통령이 제왕은커녕 동네북 수준이었다. 박근혜 정부에서 다시 제왕적 대통령제를 탓한다. 똑같은 헌법 체제에서 대통령제가 운용됐는데, 누구는 동네북이고, 누구는 제왕적이었다. 이정미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지적했듯이 “국회와 언론이 감시와 견제”를 제대로 못 한 잘못은 간과한 채 ‘87년 헌법’을 탓한다. 산신령이나 제왕적 대통령제의 공통점은 ‘부존재에 대한 믿음’이라고 나는 주장한다. 그러나 이 주장은 ‘너의 믿음일 뿐이야’라는 또 다른 주장에 부서질 것이다. symun@seoul.co.kr
  •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 “저출산율은 삶의 질 낮은 탓…청년 미래 불확실성 해소해야”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 “저출산율은 삶의 질 낮은 탓…청년 미래 불확실성 해소해야”

    인류는 오랫동안 ‘국내총생산’(GDP), ‘국민총소득’(GNI) 등 거시경제 지표를 국부(國富)의 척도로 활용해 왔다. ‘1인당 GDP’나 ‘1인당 GNI’가 높은 나라 국민들은 행복하고, 그렇지 않은 나라의 국민들은 불행하다고 여기는 기계적인 사고에 길들여져 왔다. ‘1인당 GNI 3만 달러’ 달성을 우리나라 선진국 진입의 필수 요건처럼 여기는 것도 이런 경제규모 지상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GDP 등이 말해주는 경제 수준과 개인이 느끼는 삶의 질 격차가 점차 커지면서 거시 지표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들이 커졌다. 이를테면 1인당 GNI가 3000달러도 안 되는 부탄 같은 나라 국민들이 체감 행복지수 세계 1위를 다투는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2000년대 들어 국내에서도 우리가 얼마나 잘살고 있는지 보여주는 이른바 ‘웰빙 지표’의 필요성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그 첫 결실이 지난달 16일 발표된 ‘국민 삶의 질 종합지수’다. 교육, 안전 등 일부 지표가 현실 체감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 있으나 질적인 삶의 수준을 평가해 보려는 첫걸음이라는 면에서 의미가 크다. 삶의 질 종합지수 개발·측정의 주역인 유경준 통계청장과 한준 한국삶의질학회장(연세대 사회학과 교수)을 지난달 30일 서울 강남구 언주로 통계청 나라셈도서관에서 김태균 서울신문 경제정책부장이 만났다. 삶의 질이 주목받게 된 시기는참여정부 때부터 성장·분배에 관심 유 청장 삶의 질 종합지수가 발표된 뒤로 많이 바빠지셨죠? 한 교수 중앙부처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면담이나 자료 요청이 많이 들어오고 있어요. 지난해 11월 삶의질학회 창립총회를 열었을 때 회원 수가 30명 정도였는데 종합지수 발표하고 나서 여기저기서 참여하고 싶다는 의사를 많이 밝혀주셔서 학회 규모가 꽤 커질 것 같습니다. 삶의 질이란 게 건강, 가족, 소득·소비, 문화여가 등 다양한 삶의 영역을 포괄하는 종합적인 사회과학 아니겠습니까. 그렇다 보니 주축은 사회학자이지만 심리학, 경제학, 행정학 다양한 학계에서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유 청장 맞습니다. 저도 국내에서 삶의 질에 대한 관심이 이렇게 뜨거울 줄 미처 몰랐습니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미국의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가 2008년 니콜라 사르코지 당시 프랑스 대통령의 요청으로 GDP를 대신해 행복을 측정할 수 있는 경제지표 개발에 나서면서 전 세계적으로 삶의 질이 조명받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양극화가 사회문제로 대두했던 참여정부 때부터 삶의 질을 논의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김대중 정부 때까지만 해도 외환위기 해결이 시급해 분배보다는 성장이 더 큰 과제였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성장과 분배에 대한 논쟁이 본격화했습니다. 수출주도형 경제성장으로 성장의 과실이 골고루 나뉘던 시절에는 분배도 개선됐는데, 1990년대 초부터 소득 불평등이 확대되기 시작했고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눈에 띄게 커졌습니다. 나라는 부강해지는데 왜 개인은 그에 비례해 부유해지지 않는지에 대한 불만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소득이 일정수준 높아져서 먹고살 만큼 되니 노동의 질, 환경 등 다른 주제에 눈을 돌리게 된 것이지요. 한국인들은 왜 자기 행복감이 낮은가타인과 비교 잘해 상대적 박탈감 커 한 교수 그렇습니다. 2000년대 초중반을 전환점으로 볼 수 있습니다. 국민소득이 2만 달러대에 접어든 시점이지요. GDP가 늘어도 삶의 만족도가 크게 오르지 않는 이른바 ‘이스털린의 역설’이 시작된 때이기도 합니다. 경제적으로는 발전을 계속하는데 사회에 대한 불만이나 요구는 다양해집니다. 비단 촛불시위뿐만 아니라 환경, 교육 등 여러 주제에 걸쳐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경제적 총량은 커졌는데 이를 대하는 개인의 가치와 의식이 바뀐 겁니다. 국제적인 환경 변화도 적잖은 영향으로 작용했습니다. 국제연합(UN)이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기구에서 나라별 삶의 질과 행복지수를 비교해 발표하니까 우리는 왜 삶의 질 순위가 낮은지 궁금해진 겁니다. 한 교수 삶의 질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지표 대신 행복감, 즉 주관적인 웰빙(안녕)으로 측정하는 유엔 세계 행복보고서를 보면 경제 수준에 비해 행복감이 낮은 대표적인 나라가 한국, 일본, 대만 등 아시아 국가들입니다. 집단주의 문화가 강해서 남과 비교하는 성향이 강한 것 등이 영향을 주는 것 같습니다. 유 청장 경제성장률, 기대수명처럼 객관적 지표는 한국이 높은데 주관적 행복감이 낮은 이유는 아무래도 상대적 박탈감이 작용해서 그렇다고 봐야 될 겁니다. 내가 스스로 느끼는 행복도 중요한데 다른 사람의 눈에 비쳐진 내 모습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특히 인터넷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발달하면서 상대적 행복감이라는 개념은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GDP나 월급봉투에 찍히는 숫자는 객관적인 소득 수준만을 나타내는 데 머물고 있습니다. 한 교수 우리나라는 압축적인 경제성장을 했습니다. 짧은 시간에 선진국을 따라잡으려다 보니 정부 정책은 공급자 중심이었습니다. 어느 정도 성장하면 욕구와 관심이 다양해지기 때문에 공급자 중심의 정책 마인드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압축성장을 한 만큼 삶의 질에 대한 기대치가 계속 상승해왔기 때문에 기대가 충족되는 속도가 조금만 느려져도 불만이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유 청장 우리와 정반대 사례가 동남아시아의 부탄입니다. 이 나라는 경제 수준은 180개국 가운데 140~150등으로 하위권이지만 삶의 질 만족도는 아시아에서 1, 2위를 다툽니다. 종교적 만족도와 명상을 정책목표로 삼아 삶의 질을 향상시키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선진국에서도 삶의 질 향상을 경제 성장과 함께 주요 정책 과제로 추진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막 시작한 셈입니다. 삶의 질과 경제발전과의 관계는GDP 영향 크지만 보완할 부분 많아 유 청장 이번에 발표한 삶의 질 종합지수가 인간의 행복을 측정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라고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GDP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삶의 질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누가 뭐래도 소득수준 아닙니까. 그러한 GDP를 넘어선다는 뜻으로 ‘비욘드(beyond·넘어서) GDP’라는 말이 나왔죠. 그러다가 GDP도 중요하고 이를 보완할 수 있는 개념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GDP 플러스 비욘드’ 등이 공감을 얻고 있습니다. 가사노동이나 공유경제처럼 GDP가 포괄하지 못하는 영역에 주목하면서 사회적 이동성과 같이 삶의 질을 좌우할 수 있는 지표의 개발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 교수 그렇게 되려면 삶의 질 종합지수가 사회현상을 더 잘 반영할 수 있도록 계속 수정·보완하는 과정이 뒤따라야 합니다. 사실 이번에 발표하고 나서 외부에서 욕을 참 많이 먹었습니다. “나는 불행한데 삶의 질이 왜 개선됐다고 하느냐”는 등 불만이 많았습니다. 삶의 질 종합지수는 12개 영역 80개 지표로 작성됩니다. 국민 대다수가 공감하는 지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80개 지표 가운데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는 개개인마다 다릅니다. 전문가 입장에서는 한국적 특수성을 잘 반영한 지표라고 생각하는데 국민들은 그렇게 느끼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회적 계층 이동성 지표, 이른바 ‘흙수저’가 ‘금수저’와 동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도 담고 싶었지만 관련 통계가 없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통계 자체는 유용하지만 비교적 최근 자료라 과거와 비교할 수 없는 지표도 있었고요. 결국 통계가 쌓이다 보면 삶의 질 종합지수도 완성도가 높아지는 방향으로 진화할 것입니다. 삶의 질을 결정하는 요소는 최근엔 미세먼지 같은 환경도 중요 유 청장 맞습니다. 최근에는 환경이 삶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습니다. 특히 미세먼지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미세먼지 통계를 삶의 질 측정에 반영하는 건 꽤나 복잡한 작업입니다. 미세먼지도 입자 크기에 따라 다양하고, 이마저도 최근 통계밖에 없기 때문에 시계열 비교가 어렵습니다. 개인의 체감과 숫자의 간극은 통계청 입장에서도 참 난감한 문제입니다. 실업률이 3.5%라고 해도 내가 실업자이면 자신의 실업률은 100%이니까요. 정책지표로서 삶의 질 지수가 잘 활용될 수 있도록 삶의 질 종합지수 산정에 반영되는 지표를 좀 더 체계적으로 선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남녀, 연령, 지역, 학력, 소득수준 등 각각의 지표를 집단별로 구분해서 볼 수 있도록 제시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전문적인 용어로 ‘데이터 분산’이라고 하는데요. 이른바 ‘평균의 함정’을 줄일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데이터 분산이 가능하려면 모집단이 커지고 기반 통계가 풍부해야 합니다. 결국 비용의 문제이지요. 한 교수 지표 작성 과정이 전문가 중심의 하향식(톱다운)으로 추진되어서 국민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못했다는 지적이 개인적으로는 제일 와 닿았는데요. 보완할 방법이 없을까요. 유 청장 안 그래도 올 하반기에 삶의 질 지표 보완을 추진하려고 합니다. 포털사이트나 통계청 사이트에서 삶의 질 측정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지표는 무엇인지 국민 의견을 받을 예정입니다. 국제적으로 삶의 질과 웰빙 측정이 확산되고 있는 만큼 캐나다, 호주, 이탈리아, 일본, 부탄 등 해외 사례를 검토해서 필요한 지표를 추가할 생각입니다. 지표 개선안이 마련되면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지표검토위원회에 올려서 확정할 예정입니다.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필요한 것은다양한 욕구 충족·사회 문제 해결해야 한 교수 많은 비판을 감수하면서도 통계청과 함께 삶의 질 지수를 발표한 이유는 암울해 보이는 우리 사회에 하나의 이정표가 되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출산율이 낮은 배경을 따져 보면 젊은이들의 낮은 삶의 질과 연결돼 있습니다. 결혼은 미래를 기약하고 과감히 투자하는 것인데 불확실성이 크니 자꾸 꺼리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삶의 질이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 외에도 사회 갈등, 인구 문제 등 다양한 사회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삶의 질은 신뢰, 자원봉사, 기부행위, 사회적 지지와도 관련이 깊습니다. 단지 물질적 삶의 수준만이 아니라 라이프 스타일과 인생관, 가치관을 아우른다는 뜻입니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 장기불황을 겪은 일본도 우리처럼 젊은 세대의 불만이 폭증하면서 ‘모든 사람이 똑같은 방향으로 성공해야 한다’는 의식의 변화를 겪었습니다. 정부 정책도 그에 맞게 많이 바뀌었습니다. 서구와 일본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나라도 각자 자기만족을 위한 삶을 추구한다면 사회 갈등이 완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학회에서 만난 경제학자들과 얘기해보면 잠재성장률을 높이려면 결국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합니다. 방향 전환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사회적 변화입니다. 유 청장 한국 사회가 어떻게 나아가야 하느냐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 중 하나가 삶의 질 지수 작성의 계기였습니다. 주관적 행복감은 개인마다 다릅니다. 누구는 소득이 중요하고, 다른 누구는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에서 행복을 찾기도 합니다. 건강을 최우선 가치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다양한 욕구를 취합해서 올바른 정책지표로 삼는 데 삶의 질 종합지수가 하나의 단서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이것이 정부만의 과제는 아닙니다. 시민사회와 학계의 광범위한 참여가 절실합니다. 답을 찾는 과정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주시길 기대합니다. 정리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유경준 통계청장은 ▲ 서울대 경제학과 학사, 고려대 경제학과 석사, 미국 코넬대 노동경제학 박사 ▲한국개발연구원(KDI) 수석이코노미스트, 고용노동부 장관 자문관, 중앙노동위원회 공익위원,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교수 ■한준 교수는 ▲서울대 사회학과 학사·석사, 미국 스탠퍼드대 사회학 박사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미국 하버드 옌칭연구소 방문교수, 국민경제자문회의 균형경제분과 위원, 한국삶의질학회장
  • 제주 4·3사건 69주년 추념식…文 “내년 대통령 자격 참석” 安 “능력 다해 평화의 길로”

    제주 4·3사건 69주년인 3일, 야권은 한목소리로 철저한 진상규명으로 피해자 명예를 회복하고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제주 4·3평화공원 위령제단에서 열린 추념식에서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들어서서 국민과 분리하면서 과거로 회귀시키려는 시도가 있었다”며 “새로운 민주정부가 탄생하면 미완의 4·3 진상규명을 제대로 마무리 짓겠다”고 말했다. 막판까지 제주 방문을 검토했던 문재인 전 대표는 페이스북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통령 자격으로 최초로 사과하면서 진실과 명예회복을 향한 첫걸음을 뗐다”며 “추념식에 참석하지 못하지만, 마음은 희생자, 유가족들과 함께 있다. 내년 추념일에는 대통령 자격으로 기념일에 참석하겠다”고 말했다. 반면 국민의당 후보로 사실상 확정된 안철수 전 대표는 직접 참석해 “꼭 추념식에 참석해야 한다고 생각해 경선 일정을 조정했다”며 “4·3은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우리의 산 역사다. 모든 능력을 다해서 평화로 가는 길을 열겠다“고 말했다. 그는 “5년 전 대선 당시 4·3평화공원에 왔을 때 이름 없는 위패를 보면서 눈물 흘렸던 기억이 난다. 대통령이 되면 내년 70주년 추념식 행사에 반드시 참석하겠다”고 약속했다. 안 전 대표의 행보는 최근 ‘반문(반문재인) 연대’ 논란을 불식시키고 야권에 정체성을 둔 대선주자임을 강조하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필승전략 키워드는 대세 vs 분열 vs 흡수… 대선구도 보인다

    필승전략 키워드는 대세 vs 분열 vs 흡수… 대선구도 보인다

    민주당 ‘again 2007’ 부동층 쏠리는 ‘밴드왜건’ 기대 한국당 ‘again 1987’ 진보진영 다자구도에 승부수 국민의당 ‘again 2002’ 중도·보수층 전략 투표 유도‘5·9 대선’의 대진표가 윤곽을 드러내는 가운데 각 진영은 ‘필승 시나리오’ 구상에 돌입했다. 표면적으로 원내 5개 정당을 축으로 한 ‘5자 구도’가 형성됐으나 역대 대선 구도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새판 짜기’에 골몰하고 있다. 준비 기간이 짧은 조기 대선인 만큼 정책과 공약보다 선거 구도와 프레임이 당락의 주요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에서다. 3일 정치권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대세론’에 방점을 찍고 있다. 아직 표심을 정하지 못한 유권자들이 유력 후보 쪽으로 쏠리는 ‘밴드왜건 효과’가 노림수다. 같은 맥락에서 이명박(MB) 전 대통령이 압승을 거둔 2007년 대선이 ‘모범 답안’이다. 당시 이 전 대통령은 48.7%의 득표율로 26.1%에 그친 정동영 후보를 큰 격차로 따돌렸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당선된 1992년 대선 구도도 차선책일 수 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다자 구도를 승부수로 보고 있다. “좌파에서 2명, 얼치기 좌파에서 1명, 우파에서 홍준표가 나간다”는 홍 후보의 최근 발언과도 맥을 같이한다. 이는 ‘야권 분열’로 득표율 30%대 대통령이 탄생한 1987년 대선 구도를 염두에 둔 것이다. ‘보수 분열’과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으로 대권을 거머쥔 1997년 대선 모델도 홍 후보에겐 역전 시나리오다. 당시 DJ는 40.3%로 당선됐고, 보수 표는 이회창(38.7%) 후보와 이인제(19.2%) 후보로 갈렸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이회창 대세론’을 뒤집은 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례를 염두에 두고 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이 정몽준 전 의원과 손 잡으면서 중도와 보수표를 흡수했듯, 홍 후보를 지지하는 중도·보수층이 안 후보에게 ‘전략 투표’할 경우 당선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문 후보와 안 후보 간 양자 대결에서 안 후보가 앞선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이날 공개되기도 했다.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의 구상도 안 후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유 후보도 문 후보를 맞상대하려면 일단 안 후보를 비롯해 중도·보수 진영을 아우르는 ‘비문(비문재인) 연대’가 성사돼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48.9%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46.6%의 이회창 후보를 2.3% 포인트 차이로 꺾었다. 다만 안 후보의 지지율 상승세가 지속돼 다자 구도에서 자력으로 문 후보의 대세론에 맞설 수 있다면 선거 구도는 또다시 요동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盧 꼬리표’ 떼고 ‘정치근육’ 붙인 文…“두번 패배 없다”

    ‘盧 꼬리표’ 떼고 ‘정치근육’ 붙인 文…“두번 패배 없다”

    문재인(64)의 두 번째 도전이 시작됐다. 이번에는 고 노무현(1946~2009) 전 대통령의 그늘에서 벗어나 오롯이 ‘정치인 문재인’으로 승부를 겨루려고 한다. 오랜 세월 그를 지켜본 이들은 “눈빛이 달라졌다”고 말한다. 정치인에게 꼭 필요한 절실함과 권력의지, ‘정치 근육’이 생겼다는 의미일 게다.5년 전 운명에 떠밀리듯 대선 무대에 강제 소환됐지만, 2017년의 문재인은 더는 ‘운명’을 담지 않는다. 2011년 자전에세이 ‘문재인의 운명’의 마지막 페이지에 “당신(노무현)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고 한탄하듯 말했다. 하지만 노무현의 ‘친구’(실제로는 문 전 대표가 여섯 살 적다. 다만 노 전 대통령이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고,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이자 참여정부 마지막 비서실장이란 꼬리표는 더이상 문재인의 전부가 아니다. 대신 ‘왜 대통령이 되려는가’란 물음에 “재조산하(再造山河)”라고 답한다. 폐허가 된 나라를 다시 만든다는 의미다. 그 기반은 ‘노무현의 자산’이 아닌 ‘문재인의 자산’이다.여전히 노무현을 언급하지 않고 문 후보를 온전히 설명할 수는 없다. 1982년 첫 만남 이후, 둘은 인권변호사의 길을 함께 걸었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청와대로 들어가 민정수석, 시민사회수석, 비서실장 등을 역임하며 참여정부의 성공과 좌절을 함께 경험했다. 노 전 대통령 탄핵 때는 대리인단 간사 변호인을 맡았고, 퇴임 후에도 양산 자택과 봉하마을을 오가며 곁을 지켰다. 노무현은 그의 가장 큰 정치적 자산인 동시에 아킬레스건이다. 2012년 대선 당시 “참여정부는 모든 면에서 큰 성취가 있었던, 총체적으로 성공한 정부였다”고 강변하다 직격탄을 맞기도 했다. 문 후보를 소환해 미완의 참여정부를 완성하고, 정치적 복권을 하려는 친노(친노무현)의 욕망이 외려 ‘정치인 문재인’의 성장을 가로막은 셈이다. 문 후보의 지갑에는 여전히 노 전 대통령의 유서가 있다. ‘운명’에서 그는 “별 이유는 없다. 그냥 버릴 수가 없어서 그럴 뿐”이라고 썼다. 문 후보의 측근은 “지금도 그때처럼 버리지 못해 넣어둔 것뿐”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문 후보는 5년 전처럼 참여정부에 대한 강박적 옹호를 펴지 않는다. 지난달 24일 광주에서 열린 대선 경선 토론회에선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호남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것은 호남의 인사차별을 뿌리 뽑지 못했고, 일자리 문제 등 삶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자성하기도 했다. 정치인 문재인으로 홀로 서기를 한 이후 얻은 건 세력이다. 친문(친문재인) 진영은 당 지도부를 장악했고, 소위 ‘문빠’란 말이 생길 정도로 충성도 높은 지지층도 있다. 물론 세력의 또 다른 얼굴은 ‘패권’이다. 문 후보 측이 항변하듯 경쟁자들이 만든 근거 없는 프레임이든, 실제 권력에 도취한 ‘패거리 권력’이든 문 후보에게는 양날의 칼이다. 한솥밥을 먹었던 안철수, 김한길, 박지원, 김종인 등은 패권주의를 지목하며 당을 떠났다. 자연인 문재인은 구여권과 반문(반문재인) 인사들도 인정할 정도로 소탈한 사람이다. 여전히 연필을 즐겨 쓰는 문 후보는 양복 주머니에 고무지우개를 넣고 다니기도 한다. 진지한 설득형으로, 법조인 출신답게 논리에 진정성을 담아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래서 그의 화법은 어눌하지만 담백하고 설득력 있다. 대충 얼버무리면 될 것도 기자들이 질문하면 모범답안으로 답하려고 노력한다. 겸손과 배려, 외유내강, 원칙주의자 등은 문 전 대표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단어들이다. 부산에서 변호사를 하던 시절 부인이 청약 저축에 가입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청약저축은 집 없는 사람들에게 우선 분양권을 주기 위한 제도니, 우리처럼 집 있는 사람들은 가입해선 안 된다”며 크게 화를 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문 전 대표는 청와대에 있으면서 출입기자들과 단 한 차례도 식사 자리를 갖지 않았고, 동창회에는 물론, 친구들과도 연락을 끊었다. 그런 그도 경남중·고교 시절에는 공부만 하는 모범생과는 거리가 멀었다. 싸움에 말려 친구와 의리를 지키려다 정학을 당했고, 술과 담배도 하는 ‘문제아’(실제 경남고 시절 별명)였다. 1·4 후퇴 흥남철수 작전 당시 고향(함경남도 흥남)을 떠난 실향민 부모를 둔 문 후보는 1953년 경남 거제에서 피란살이 중 태어났다. 역사학자가 되고 싶었지만, 부모와 교사의 설득으로 꿈을 포기하고 재수 끝에 경희대 법대에 4년 전액장학생으로 입학했다. 심리학자 김태형씨는 ‘대통령 선택의 심리학’에서 ‘기대를 저버리지 못했던 착한 아이 콤플렉스’라고 표현했다. 문 후보는 유신 반대시위가 최고조에 이르렀던 1975년 시위를 주도하다 구속, 제적됐고 강제징집을 받아 특전사로 배치됐다. 특전사 경력은 안보관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그의 방패막이가 됐다. 1980년 복학한 문 후보는 복학생 대표를 맡아 ‘서울의 봄’의 복판에 나섰다. 5·17 확대 계엄조치가 발동되면서 또 구속됐다. 1982년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졸업했지만, 시위 전력 탓에 판사로 임용되지 못했다. 덕분에 노 전 대통령과의 운명적 만남이 이뤄졌다. 종종 극우·보수진영에서 ‘좌파’, ‘안보관이 불안하다’는 공격을 받지만 그의 정치적 성향은 ‘진보’보다는 ‘중도개혁’에 가깝다. 특히 경제 정책에서는 균형과 안정을 중시한다. 재벌개혁을 주장하나 법인세 증세는 증세의 후순위에 뒀다. 이런 이유로 이재명 성남시장에게 ‘친재벌’이란 비판도 받았다. 문 후보 측 관계자는 “이념적 진보가 아니라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민생진보”라고 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정권 교체” 문재인의 두번째 도전

    “정권 교체” 문재인의 두번째 도전

    57% 득표… 결선없이 본선행 “세대·지역·국민 통합 대통령” 安·李측과 용광로 선대위 추진“바꾸고 싶은 겁니다. 대한민국 정치를 바꾸고 싶은 거지요… 기존 정치에 맡겨놓아서는 이 황무지 같은 세상이 바뀌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대담집 ‘대한민국이 묻는다’ 중) 문재인(64) 전 대표가 3일 더불어민주당의 19대 대통령선거 후보자로 선출됐다. 그가 정치에 뛰어든 이유이기도 한 한국 정치의 혁신은 물론, 입버릇처럼 말하는 ‘재조산하’(再造山河·폐허가 된 나라를 다시 만드는 일)를 위해 5월 9일 대선에서 두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국민의 선택 앞에 놓이게 됐다.문 후보는 이날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마지막 순회경선(수도권·강원·제주)에서 60.4%를 획득, 4차례 순회경선 누적 득표율 57.0%(93만 6419표)로 결선투표 없이 후보로 확정됐다. 안희정 충남지사와 이재명 성남시장은 각각 17.3%, 22.0%를 얻었지만, 누적 득표율 합계 42.7%(안 21.5%+이 21.2%)로 문 후보의 과반을 저지하는 데 실패했다. ‘본선 같은 예선’ ‘사실상의 본선’으로 관심을 모은 경선에서 한때 여론조사에서 20%를 웃돌았던 안 지사와 이 시장을 압도하며 과반 득표를 함으로써 문 후보는 36일 앞으로 다가온 ‘5월 대선’에서도 탄력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문 후보는 수락연설에서 “이 땅에서 좌우를 나누고 보수·진보를 나누는 분열의 이분법을 이제 쓰레기통으로 보내야 한다”면서 “분열의 시대와 단호히 결별하고 정의로운 통합의 시대로 나아가겠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대선은 보수 대 진보의 대결이 아닌 정의냐 불의냐, 상식이냐 몰상식이냐, 과거 적폐세력이냐 미래 개혁세력이냐의 선택”이라면서 “적폐연대의 정권 연장을 막고 위대한 국민의 나라로 가야 한다”고 밝혔다.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 바른정당을 놓고 거론되는 중도, 또는 중도보수 후보 단일화를 ‘적폐연대’로 규정한 것이다. 그는 또한 “안희정의 통합 정신, 이재명의 정의로운 가치는 저의 공약이며 우리의 기치(旗幟)”라며 ‘하나의 팀’을 강조했다. 2012년 대선 당시 손학규·김두관 후보 등을 보듬지 못하고, 친노(친노무현) 중심의 경선캠프와 당의 유기적 결합에 실패한 탓에 정권교체를 이루지 못했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다. 이를 위해 문 후보는 당 지도부는 물론, 안희정·이재명 경선 후보 측과의 조율을 통해 ‘용광로 선대위’를 구성할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19대 대선은 유승민(바른정당), 홍준표(한국당), 4일 확정되는 안철수(국민의당), 심상정(정의당) 후보 간 5자 구도로 레이스를 시작하게 됐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민주당 대선후보 문재인…인권변호사에서 ‘적폐청산 선봉’으로

    민주당 대선후보 문재인…인권변호사에서 ‘적폐청산 선봉’으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로 문재인 후보가 3일 확정됐다. 2012년에 이어 두 번째 대권에 도전하는 ‘대선 재수생’이다. 이날 대선후보 수락연설에서 문 후보는 “이제 우리 대한민국에서 분열과 갈등의 시대는 끝나야 한다고 선언한다”며 “이번 대선은 보수 대 진보의 대결이 아니라 정의와 불의, 상식과 몰상식, 공정과 불공정, 미래개혁세력과 과거 적폐세력에 대한 선택이다. 적폐연대의 정권연장을 막고 위대한 국민의 나라로 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과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했던 인권변호사의 길, 정치 신인에서 ‘적폐청산 선봉’을 자임하는 현재까지 문 후보의 여정을 되짚어 봤다. ◆ 어머니 연탄배달 돕던 소년, ‘반유신’ 운동권으로 문 후보는 1953년 1월 경남 거제에서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함경도 흥남이 고향이었던 부모는 1950년 12월 ‘흥남철수’ 때 미군 함정에 몸을 실으며 남한으로 정착했다. 초등학교 입학 무렵 부산 영도로 이사했다. 가난은 여전했다. 문 후보는 모친의 연탄 배달일을 돕다 리어카 채로 길가에 처박힌 일이 지금까지도 생생하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공부만 했다. 명문 경남중·고에 입학했다. 중학교 때 부유한 친구들을 보며 세상의 불공평을 느꼈다고 한다. 고3때는 술을 마시고 담배도 배웠다. 이름 탓에 ‘문제아’ 별명이 붙여졌다. 재수로 입학한 경희대 법대 시절에는 ‘반유신’ 운동권이었다. 1975년 인혁당 사건 관계자들의 사형을 계기로 대규모 시위를 이끌다 구속됐고, 결국 학교에서 제적됐다. 석방과 동시에 강제징집돼 특전사에서 군 생활을 했다. 상병 때는 북한이 일으킨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대응작전에 투입되기도 했다. 문 후보는 제대 직후 부친을 잃은 회한으로 전남 해남 대흥사에서 고시공부에 매달렸다. 1979년 사시 1차에 합격했다. 그러나 부마항쟁과 10·26, 12·12 쿠데타의 소용돌이 속에서 또다시 구속됐다. 그는 유치장 속에서 2차시험 합격 소식을 들었다. ◆ 시위 전력으로 판사 지망 ‘좌절’…노무현과 운명적 만남 사시 합격으로 ‘평탄한 길’로 들어섰다. 7년 연애 끝에 부인 김정숙씨와도 결혼해 1남 1녀를 뒀다. 고 조영래 변호사·박원순 서울시장·박시환 대법관·송두환 헌법재판관·고승덕 변호사 등 걸출한 동기들이 즐비한 가운데 차석으로 사법연수원을 수료했다. 문 후보는 판사를 지망했다. 그러나 시위전력으로 이룰 수 없는 꿈이었다. 그는 대형로펌 스카우트를 거절하고 부산행을 택했다. 이는 1982년 노무현 전 대통령과 운명적 만남의 시작이 됐다. 의기투합한 노 전 대통령과 문 후보 두 사람에게 각종 인권·시국·노동 사건이 몰렸다. 문 후보는 ‘대한민국이 묻는다’ 저서를 통해 “인권변호사의 길을 간 이유는 변호사가 단순히 밥벌이 수단이 되어선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했다. 6월 항쟁 때인 1987년, 부산국본(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결성 시 노 전 대통령이 상임집행위원장을 문 후보가 상임집행위원을 맡으며 부산 민주화운동을 주도했다. 노 전 대통령은 1988년 13대 총선에 출마하며 정치권에 들어섰다. 반면 문 후보는 노동문제 변호사 길을 이어갔다. 2002년 대선 경선에서 문 후보는 노 전 대통령의 부산선대본부장을 맡으며 두 사람은 재결합했다. ◆ 참여정부 ‘왕수석’…노 전 대통령 곁 지킨 ‘친노적자’로 문 후보는 참여정부 시작과 끝을 함께했다. 이빨을 10개나 뽑을 정도로 격무에 시달렸다. 그러나 총선에 출마하라는 당의 요구를 거절하며 불편함이 커진 탓에 청와대 민정수석을 1년도 못하고 물러났다. 문 후보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향했던 히말라야 트래킹에서 노 대통령 탄핵 소식을 들었다. 중도 귀국한 그는 변호인단을 꾸렸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기각 후 시민사회수석으로 청와대에 복귀했던 문 후보는 이후 민정수석으로 옮겼다. 참여정부 마지막 해인 2007년 비서실장을 맡으며 ‘동지 노무현’과 흥망성쇠를 같이 했다. 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김해 봉하마을로 가면서 문재인도 인근 양산에 거처를 마련했다. 가끔 들르자고 했지만, 이명박 정권은 이를 그냥 두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이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게서 뇌물을 받았다는 의혹이 불거지자 문 후보는 변호인 겸 대변인으로 적극 방어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때 국민장의위원회 운영위원장으로 장례를 도맡았고, 이후 노무현재단을 설립해 이사장을 했다. ◆ ‘정치신인’ 대선후보에서 ‘적폐청산 기수’로 재도전 문 후보는 노 전 대통령 서거 후 2009년 경남 양산 국회의원 재보선과 이듬해 부산시장 후보로 거론됐지만 현실정치와 선을 그었다. 그럼에도 그를 향한 정치참여 압박은 거셌다. 결국 문 후보는 정권교체라는 대의명분 속에서 야권대통합 과정에 뛰어들었다. 2012년 4·11 총선에서 부산 사상구에서 당선된 뒤 대선후보로 나섰다. 안철수 후보와의 우여곡절 끝 단일화로 48.02%라는 역대 야권 대선후보 최고 득표율을 기록했지만, 박근혜 후보에게 무릎을 꿇고 말았다. 인고와 침잠의 세월을 보내던 그는 2014년 12월 당 대표에 출마했다. 당 대표가 되면서 쇄신을 거듭했지만 친문(친문재인) 프레임에 갇혔고, 이듬해 안 후보가 탈당하는 분당 사태로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 김종인 전 민주당 비대위 대표를 영입하며 지난해 4·13 총선을 승리로 이끌었지만 문 후보를 향한 ‘패권주의’ 공세는 계속됐다. 작년 하반기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고, 문 후보가 적폐청산의 최적임자로 거론되면서 ‘문재인 대세론’이 바람을 타고 있다. 경선에서는 승리했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은 많다. 라이벌이던 안희정 충남도지사와 이재명 성남시장을 보듬으며 그들로 향한 지지율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김종인 전 대표 등 문 전 대표와 한 때 당을 같이 했던 정치인들이 모두 등을 돌린 만큼 포용력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당장 반(反)문재인을 기저로 한 정치권의 연대 움직임도 돌파해야 한다. 반년 가까이 이어온 ‘대세론’을 문 후보가 대선 끝까지 계속 이어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홍준표 “나는 HJP”

    홍준표 “나는 HJP”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는 3일 “나는 HJP(홍준표)다”라고 했다. 홍 후보는 이날 김종필(JP) 전 국무총리를 예방한 뒤 기자들과 만나 “내 이니셜도 (JP와) 똑같다”면서 “그래서 나는 H자를 하나 더 붙인다”고 말했다.홍 후보가 김영삼(YS) 전 대통령과 김대중(DJ) 전 대통령 등 과거 거물급 정치인들처럼 이니셜로 대표되려고 해도, 김 전 총리의 ‘JP’의 상징성이 워낙 강하다보니 자신을 ‘HJP’라고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이니셜만으로도 통하는 정치인으로는 이명박(MB) 전 대통령, 정몽준(MJ) 전 새누리당 의원, 손학규(HQ) 전 민주당 대표, 정동영(DY) 국민의당 의원, 고 김근태(GT) 전 의원 등이 있다. 김무성 바른정당 의원과 김문수 전 경기지사는 ‘MS’라는 이니셜의 소유주를 확실히 구분짓지 못했다. 이니셜이 아닌 성(姓)만으로 존재감을 과시하는 정치인들도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두 사람은 ‘GH’, ‘MH’로 불리지 않고 ‘박(朴)’, ‘노(盧)’라는 성만으로도 통한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변희재 “봉하마을 집회 못한다? 200m 바깥에서라도 분명히 할 것”

    변희재 “봉하마을 집회 못한다? 200m 바깥에서라도 분명히 할 것”

    변희재 전 미디어워치 대표가 3일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이 있는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이번주 일요일(9일) 오후 2시 분명히 집회한다”고 말했다. 변희재 전 대표는 이날 자신의 SNS에 “박근혜 지지 단체, 한 달간 봉하마을 집회 못해”라는 제목의 기사를 공유하며 이같이 밝혔다. 변 전 대표가 공유한 기사에 따르면 김해서부경찰서는 “봉하마을 주민들이 한 달 가량 집회신고를 내서 접수한 상태”라고 밝혔다. 봉하마을 주민들이 먼저 집회신고를 했기 때문에 친박 단체들이 집회를 열지 못한다는 것. 봉하마을 주민들은 태극기 집회의 ‘소음’ 등을 이유로 집회 신고를 냈다. 이에 변 전 대표는 “(봉하마을) 200미터 바깥에서라도 이번주 일요일 오후 2시 분명히 집회한다”고 예고했다. 이어 변 전 대표는 다른 게시글에서 “노사모들의 방해공작으로 이번 9일 오후 2시, 집회는 권양숙이 사는 아파트 바로 앞, 서의지 공원에서 열고, 봉하마을로 행진, 거기서 30분 집회를 더 한다”며 “어제(2일) 순서와 반대”라고 밝혔다. 앞서 전날 오후 봉하마을에서 열린 친박 집회에 나온 변 전 대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은 10원 하나 받은 게 없다”고 주장하면서 “박 전 대통령에게 뇌물죄를 적용한다면 노 전 대통령 가족도 640만달러 뇌물을 받은 것에 대해 수사를 하라”고 촉구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문재인 “제주 4·3 추념일, 내년엔 대통령 자격으로 참석할 것”

    문재인 “제주 4·3 추념일, 내년엔 대통령 자격으로 참석할 것”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3일 내년 제주 4·3희생자 추념일 기념식에는 대통령이 돼 참석하겠다고 말했다. 문 전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날 수도권·강원·제주 선출대회로 인해 추념일에 참석하지 못한 데 대해 안타까움을 표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문 전 대표는 “제주도민의 분노와 고통, 그리고 강요당한 침묵의 역사는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 자격으로 최초로 사과하고 추모제에 참석함으로써 진실과 명예회복을 향한 첫걸음을 뗐다”며 “저는 오늘 참석하지 못하지만 마음은 희생자 유가족들과 함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권교체를 이루고 내년 추념일에는 대통령의 자격으로 기념식에 참석하겠다”며 “제주4·3의 희생과 고통을 기억하고 인권과 평화를 향한 제주도민들의 마음과 함께 하겠다”고 강조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봉하마을서 태극기 집회 처음 열려…집회 참가자-노사모 승강이 벌어져

    봉하마을서 태극기 집회 처음 열려…집회 참가자-노사모 승강이 벌어져

    지난 2일 친박(친박근혜) 단체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인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태극기 집회를 개최했다. 집회 참석자들은 박 전 대통령 탄핵 및 구속이 무효라고 주장했다. 태극기 집회가 봉하마을에서 열린 것은 처음으로 집회 참가자들과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 회원 등이 집회 과정에서 승강이를 벌이기도 했다. ‘대통령 탄핵무효 국민저항총궐기 운동본부’(이하 국민저항본부)는 이날 오후 2시쯤 봉하마을 주차장 앞 도로에서 500여명(경찰 추산)이 참석한 가운데 박 전 대통령 구속을 비판하고 석방을 촉구하는 집회를 개최했다. 이정진 국민저항본부 경남본부장은 광화문 촛불 집회를 ‘바보들의 행진’으로 비유하며 “종북 세력이 국가를 뒤흔들고 대통령까지 구속시켰다”며 “이번 탄핵도 헌법 제84조를 위반한 불법 탄핵인 만큼 원천무효”라고 비판했다. 변희재 미디어워치 전 대표는 “박 전 대통령에게 뇌물죄를 적용한다면 노 전 대통령 가족도 640만달러 뇌물을 받았다”며 “이로 인해 노 전 대통령이 수사를 받다 투신자살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 가족은 뇌물로 받은 돈과 호화 사저를 즉각 국가에 반환하고 스스로 구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손에 태극기 등을 흔들며 박 전 대통령 석방과 탄핵무효를 외쳤다. 노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는 이날 봉하마을 자택에 머물렀다. 경찰은 만약에 사태에 대비해 봉하마을 노 전 대통령 묘역 주변과 사저 경비를 강화했다. 태극기집회는 이날 1시간가량 열렸다. 부산과 대구·경북,수도권 등지에서 모인 참가자들은 집회장소에서 진영읍 서의지공원까지 4㎞를 행진했다. 집회 참가자들과 노사모 회원 등은 집회 과정에서 일부 승강이를 벌이기도 했지만 양측 간 충돌사태는 빚어지지 않았다. 일부 노사모 회원은 “봉하마을은 대통령 묘역이 있는 경건한 장소이고 참배객들이 방문하는 곳인데 경찰이 집회 신고를 내준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특파원 칼럼] 한·미 동맹의 트라우마 해소법/김미경 워싱턴 특파원

    [특파원 칼럼] 한·미 동맹의 트라우마 해소법/김미경 워싱턴 특파원

    “‘미국에 노(No)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문재인 후보의 인터뷰를 읽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님 뒤에 숨지 않겠다’는 발언이 떠올랐다.”(미 국무부 동아태국 출신 전직 관리) “문재인 후보가 우리와 상의 없이 방북하면 어떡하냐.”(미 싱크탱크 아시아 전문가) 트라우마. 2017년 겨울을 지나 봄을 맞이하면서 미국 워싱턴DC 한반도 정책 관련 조야에서 읽을 수 있는 분위기를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가 아닐까 싶다. ‘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가 결국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구속으로 이어지면서 오는 5월 9일 한국 역사상 초유의 조기 대선이 치러지게 됐고, 이 과정에서 야당 후보들이 선전하면서 한·미 관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 때문이다. 특히 선두주자인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노무현 전 대통령 비서실장 출신으로 노 전 대통령의 정책을 상당수 이어받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면서 워싱턴 조야는 노 전 대통령 때처럼 한·미 관계가 순탄치 않을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최강의 동맹’이라는 한·미 관계가 어쩌다가 이렇게 ‘불신’과 ‘불안’의 관계가 됐을까. 문 후보의 ‘미국에 노’ 발언은 뉴욕타임스가 결국 자사 인터뷰에서 한 것이 아니라 책에서 한 말이라는 정정보도까지 냈지만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지난 한두 달간 열린 싱크탱크의 한반도 관련 세미나에서 가장 많이 나온 질문은 “문 후보가 되면 한·미 동맹이 약화되는 게 아니냐”였다. 세미나 참석자들은 문 후보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는 물론 한·일 위안부 합의와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을 뒤집고, 취임 후 곧바로 방북할 것이며, 개성공단을 재가동하고, 전작권 환수와 주한미군 관련 협상에 나설 수 있다고 조목조목 지적했다. 이 같은 지적의 배경을 묻자 “문 후보의 그동안 발언과 노 전 대통령 때를 생각하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것들”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60여년간 적지 않은 우여곡절을 겪어온 한·미 관계는 특히 한·미 각 정권이 진보에서 보수로 바뀌기를 거듭하면서 롤러코스터를 타 왔다. 미국 정권은 주로 8년씩 이어지는데 한국 정권은 5년마다 바뀌기 때문에 한국 정권은 진보든 보수든 대부분 말년에는 성향이 다른 미국 정권을 만나 ‘소기의 협업’을 마무리하지 못한 채 떠나기 일쑤였다. 특히 미 조야가 ‘최악의 한·미 관계’로 기억하는 노 전 대통령 집권 5년은 극보수 성향의 조지 W 부시 정권과 만나 불협화음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물론 이 시기에 한국 정부의 이라크 파병과 주한미군 기지 이전이 결정됐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된 것을 언급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노 전 대통령이 부시 전 대통령 측과 상의하지 않고 2007년 10월 남북 정상회담을 무리하게 추진했다는 씁쓸한 기억만 언급될 뿐이다. 최강의 동맹은 손바닥도 부딪쳐야 소리가 나듯, 동맹국 간 손발을 맞추는 부단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 특히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이 고조되고 중국·일본·러시아 등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가 심각한 상황에서 동맹 간 갈등의 소지를 줄이고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난 1월 출범한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방위비 분담금 인상과 한·미 FTA 재협상 등을 언급하고, 5월 출범할 한국의 차기 정권이 한·미 관계에 도전하더라도 국익과 안보를 위해 무엇이 옳은 길인지 한·미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결정해야 할 것이다. chaplin7@seoul.co.kr
  • 서울대 시흥캠 강행 “공공성 강화해 계속 추진”

    서울대 시흥캠 강행 “공공성 강화해 계속 추진”

    총장후보 평가 때 교수 전체 참여 확대… 정시 확대보다 수시로 인재 발굴해야 성낙인 서울대 총장이 취임 후 첫 공식 기자간담회를 열고 시흥캠퍼스를 둘러싼 충돌과 소통 부재 등 학내 논란에 대해 거듭 사과했다. 시흥캠퍼스는 공공성을 강화하되 예정대로 강행할 뜻을 전했다.성 총장은 31일 서울 관악구 본교 본관 4층 대회의실에서 담화문을 발표하고 행정관 점거 학생을 끌어내는 과정에서 교직원과 물리적 충돌이 발생한 데 대해 “행정 책임자인 총장으로서 참담한 심정이다. 이번 사태로 마음의 상처를 입은 교직원과 학생들께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며 두 차례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시흥캠퍼스에 대해서는 “서울대의 공적책무를 다하는 모범 사례로 만들겠다”며 “시흥캠퍼스는 4차 산업혁명시대를 대비하는 국제적 융·복합 연구개발 클러스터로 조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공공성 강화를 위해 국가재난병원, 감염치료병원 등의 설립을 추진하겠다고도 설명했다. 그는 이번 학내 갈등의 원인을 대학 거버넌스(지배) 구조 탓으로 보고 총장 선출 과정에서 구성원들의 의사를 확대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우선 무작위로 선정한 교수 10%가 맡았던 ‘총장 후보 정책평가 과정’에 전임 교수 전체를 참여시킨다. 정책평가는 총장을 최종 낙점하는 이사회에 보낼 총장 후보 3명을 정하는 관문이다. 그는 또 “대학 최고 심의기구인 평의원회는 물론 기획위원회와 재경위원회 등에 학생 대표가 참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이사회에도 참관인 자격으로 참석할 수 있게 할 예정”이라고 했다. 본관 점거 농성을 고수한 학생 9명의 징계에 대해서는 “징계도 교육의 일환”이라면서도 “다만 징계는 그 자체로 학생들의 교육에는 큰 도움이 안 되기 때문에 최소한의 수준으로 진행하겠다”고 언급했다. 한편 대학입시에서 수시모집보다 정시모집을 늘려야 한다는 일부 대선주자들의 주장에 대해 성 총장은 “정시 확대가 아니라 수시로 잠재력 있는 인재를 발굴하는 것이 정답”이라고 말했다. 지역·기회균형선발제를 강화·확대해야 한다는 뜻도 내비쳤다. 최근 불거진 ‘서울대 폐지론’에 대해서는 “나는 생각이 다르다”며 노무현 정권 때도 폐지론이 나왔다가 사그라들었다고 설명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洪 “국민의당과 단일화 어렵다… 유승민, 우리에게 와야”

    洪 “국민의당과 단일화 어렵다… 유승민, 우리에게 와야”

    “좌파 둘·얼치기 좌파 한명·우파선 나… 절대 불리한 구도 아니다” 자신감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는 31일 기자회견에서 “좌파에서 두 명, 얼치기 좌파에서 한 명, 그리고 우파에서 홍준표가 나간다. 절대 불리한 구도가 아니다”라면서 “국민의당 후보와의 단일화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얼치기 좌파’는 국민의당 유력 후보인 안철수 전 대표를 지목한 것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바른정당과의 연대에 대한 당내 반발은 어떻게 해결하나. -이제 계파는 없다. 5월 9일까지는 내가 대장이다. 분당 원인이 탄핵인데 대통령이 구속되면서 원인이 없어졌다. 그러면 합치는 게 정답이다. 조건은 필요 없다. →유승민 후보와의 단일화는 어떻게. -단일화하기보다 유 후보가 우리(한국당) 안으로 들어오는 게 맞다.→국민의당과의 연대 구상은. -2002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는 정몽준이 무소속이어서 가능했다. 각 당의 대표가 되면 후보 단일화는 여론조사가 아니라 정치 협상으로 한다. 국민의당은 떨어져 나온 작은 집이고, 한국당이 큰 집이다. 일단은 4당 구도로 간다. →세월호를 정치에 이용하지 말라고 했는데. -세월호는 이미 수사했고 재판했고 보상했다.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또 조사했다. 이제 남은 게 뭐가 있나. →선거대책위원회 구성은 어떻게.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을 모실 것이다. 그리고 당 내외 공동 선대위원장 체제로 꾸리고, 중앙보다 지역 선대위 중심으로 해 나갈 것이다. →정부 조직 개편 구상은. -야당과 협의해 누가 집권해도 바꾸지 않도록, 오래 유지되도록 짜겠다. 정권 입맛에 맞게 부처를 이리저리 붙이는 건 옳지 않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권력 감시의 틀부터 바로 세워라”

    檢에 독립권… 정치·사정 상호 견제 靑·정부 부처 간 위상 재정립 필요관료 조직 위계문화 혁신 서둘러야 31일 새벽 대한민국을 또 한 번 흔든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속은 비단 ‘정치인 박근혜’ 개인에 대한 사법처리 차원을 넘어 중병에 걸린 대통령 중심 권력구조와 정치 행태가 시대적 단죄의 무대에 올랐음을 뜻한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까지 6개 정권은 지난 30년 어느 한 번의 예외도 없이 대통령 자신이나 가족, 친인척의 비위로 얼룩졌다. “대통령중심제가 잉태한 절대권력의 필연적 비극”이라며 권력구조 개편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으나 그에 앞서 대통령과 그 주변을 감시하고 견제할 장치들만이라도 바로 세우는 일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더 설득력을 갖는다. 이번 국정농단 사태만 해도 박근혜 정부 출범과 함께 시작된 최순실씨의 농단 앞에서 모두가 눈을 감고 입을 닫은 결과에 다름 아니다. 대통령 주변을 감시해야 할 민정수석 등 청와대 참모들과 검찰, 대통령의 권력을 견제할 국회와 언론 모두 휘슬 블로어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 이른바 실세라는 정치인들은 권력의 곁불을 쬐며 호가호위했고, 관료사회는 영혼 부재의 집단임을 입증하듯 국정농단의 들러리를 섰다. 지식인이라는 교수와 문화예술인들이 가세했고, 재계의 많은 인사들은 가해와 피해의 영역을 넘나들며 줄을 탔다. 박 전 대통령을 필두로 한 국정농단의 ‘공범’ 수십 명이 사법적 심판의 문 앞에 섰으나, 국정농단의 토양이 된 이 광범위한 정치적·역사적 공범은 대체 어떤 심판대 위에 세워야 하는지 대한민국이 통렬한 질문을 던져야 할 시점이다. 전문가들은 권력 감시의 틀부터라도 다시 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먼저 검찰의 바로 서기를 주문하는 목소리가 높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역대 대통령들은 검찰을 이용해 정적을 제거해 왔고 검찰은 정권에 아부하기에 바빴다. 정치권은 검찰에 독립권을 주고, 독립된 검찰이 제대로 하는지만 견제하면 된다”며 정치권력과 사정권력의 상호견제를 주문했다. 청와대와 정부 부처의 위상 재정립을 당부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부영 전 새정치민주연합 고문은 “이번 국정농단은 청와대 경제수석, 민정수석 등이 장관 위에서 좌지우지하다 벌어진 일”이라며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회의를 없애고 비서진도 단출하게 구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관료조직의 혁신도 주문했다. 이향수 건국대 행정학과 교수는 “정부 부처의 존폐마저 대통령 한 사람에 의해 결정되는 구조에서 관료들이 정치권력에 휘둘리는 건 당연한 현상”이라며 “관료조직의 위계문화를 혁신하고 장·차관들에게 실질적인 책임과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진경호 사회부장 jade@seoul.co.kr
  • 한국당 대선후보 홍준표…모래시계 검사→4선 의원→도지사→우파 스트롱맨

    한국당 대선후보 홍준표…모래시계 검사→4선 의원→도지사→우파 스트롱맨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자유한국당 대선후보로 공식 선출됐다. 모래시계 검사에서 우파의 스트롱맨을 추구하게 됐다. 한국당은 31일 오후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제1차 전당대회를 열고 제19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대선후보로 홍 지사를 선출했다. 전당대회에서 홍 지사는 책임당원 현장투표(50%)와 일반국민 여론조사(50%)에서 1위에 올랐다. 홍 후보는 책임당원 투표에서 61.9%, 국민 여론조사에서 46.7%를 각각 얻어 합계 54.2%의 과반 득표를 얻으면서 김진태 의원(19.3%), 이인제 전 최고위원(14.9%), 김관용 경상북도지사(11.8%) 등 경쟁자를 따돌렸다. 원내교섭단체 가운데 대선 후보를 확정한 것은 지난 28일 유승민 후보를 선출한 바른정당에 이어 한국당이 두 번째다. 홍 후보는 어린시절 가난과 싸웠다. 홍 후보는 부친은 학교에 다니지 않은 무학(無學), 모친은 글자도 모르는 문맹(文盲)이었다고 말했다. 7살 때 가세가 기울자 홍 후보 가족은 고향인 경남 창녕을 떠나 대구로 이사했다. 손수레에 세간을 싣고 이틀 동안 걸었다. 월세가 싼 곳으로 옮겨 다니느라 초등학생 때 5차례 전학했다. 도시락을 싸지 못해 수돗물로 허기를 달랜 때가 많았다. 장마에 낙동강이 범람, 강 옆에 일구던 땅콩밭과 집이 물에 잠기기도 했다. “고리 사채로 머리채가 잡혀 끌려다니던 어머니”를 봤다고 기억하는 장소는 지난 18일 대선 출마를 선언한 대구 서문시장이다. 직물공장에 취직한 작은누나의 월세방에 얹혀 지낸 중학생 시절을 보냈다. 밤 10시 전 무조건 소등하라는 집주인의 눈을 피해 이불 속에서 공부했다. 그는 의사가 되려 했지만, 돈이 덜 드는 육군사관학교 시험에 합격했다. 부친이 누명을 쓴 사건을 목격하고 검사로 진로를 바꿨다. 빚을 내 마련한 등록금을 들고 무작정 상경했다. 홍 후보는 전북 부안에서 방위 복무를 마치고 1982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울산 조선소 바닷가에서 일당 800원을 받고 야간 경비원으로 일하던 부친이 합격 소식을 듣지 못하고 암으로 별세한 뒤였다. 검사가 된 그는 자신의 인생을 바꾼 사건을 1993년 서울중앙지검에서 맡았다. 슬롯머신 사건이다. 당시 ‘6공화국 황태자’로 불렸던 박철언 의원을 비롯해 고검장 등 검찰 간부들과 경찰청장, 병무청장까지 줄줄이 구속됐다. 조직폭력배도 등장한 이 사건은 드라마 ‘모래시계’로 제작됐다. 드라마 속 강우석 검사의 모델이 바로 홍 후보였다. 검찰 조직이 뿌리째 흔들렸다. 조직의 ‘이단아’ 취급을 받던 그는 버티지 못하고 사직했다. 변호사로 개업한 홍 후보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연락을 받았다. 1996년 제15대 총선에서 신한국당의 ‘개혁공천’ 사례로 초선 의원이 됐다. 그는 “광주지검 강력부 때 잡아넣었던 깡패들이 출소해서 검사 그만둔 나와 가족을 슬렁슬렁 겁주더라”며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 가족 보호를 위해 정치판에 들어왔다”고 털어놨다. 홍 후보는 제18대 총선까지 서울에서 내리 4차례 당선됐다. 2011년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예상을 깨고 당 대표에 선출됐다. 그는 계파가 없었다. 스스로 “친이(친이명박)도 친박(친박근혜)도 아니었다”고 말했다. 자신이 계파 정치를 혐오한 측면도 있었지만, 계파에서도 그를 부담스러워했다. 계파가 없으니 혼자였고, 정치적 입지가 튼튼하지 못했다. ‘디도스 사태’와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의 책임론에 휩싸여 5개월 만에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그 자리는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몫이 됐다. 2009년 펴낸 자서전 제목은 ‘변방’이다. 늘 ‘변방의 검사’였고, ‘변방의 정치인’이었다는 의미다. 길들이기 쉬운 성격이 아닌 탓이다. 그러다 보니 견제를 받았다. 성완종 리스트 의혹에 연루돼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을 때만 해도 “홍준표는 끝났다”는 게 정치권의 평가였다. 그는 “검사 시절 남을 처벌하며 저지른 업보”라고 고개를 떨궜다. 그러나 지난달 2심에서 무죄로 반전됐다. 법률심인 3심에서 무죄 판결이 뒤집힐 가능성은 작다. 자신의 무죄 판결과 박근혜 정권의 몰락이 시기적으로 공교롭게 일치한다고 홍 후보는 여긴다. 홍 후보에 붙는 수식어는 ‘막말’이다. 실제로 그의 표현은 거침없다. 정치인은 말로 먹고사는 직업이라 말을 많이 한다. 거친 말이 그의 입에서 쏟아졌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향해 “뇌물 먹고 자살한 사람”이라고 한 최근 사례를 비롯해 예전에도 “이화여대 계집애들 싫어한다”고 하거나 야당 도의원을 ‘쓰레기’로 비유해 구설에 휘말렸다. 자신은 숨김없이 솔직하게 말할 뿐이라고 항변한다. 막말보다 그를 어렵게 만들 요인은 이번 대선의 구도다. 박 전 대통령 탄핵과 구속으로 어느 때보다 ‘정권교체’의 열망이 높은 시기다. 자신은 성완종 리스트의 위기를 벗어났지만, 후보로 나선 당은 대선 참패의 위기에 놓여 있다. 실제로 각종 여론조사에서 홍 후보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주자들의 지지율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뛰어야 하는 자신에게도 가장 힘든 선거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이번 선거를 좌우의 대결 구도로 보면서 ‘우파 스트롱맨’을 자처했다. 강력한 리더십과 추진력으로 국정을 장악하겠다는 의지인 셈이다. 과연 그의 바람대로 얼마나 ‘강력한 동남풍’이 불어줄지 주목된다.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하야와 망명, 피살과 자살, 비리와 구속…역대 대통령 ‘마지막’ 모습은

    하야와 망명, 피살과 자살, 비리와 구속…역대 대통령 ‘마지막’ 모습은

    청와대를 향한 ‘장미대선’이 한창인 가운데 박근혜 전 대통령이 31일 구속됐다. 이날 법원의 구속영장 발부로 박 전 대통령은 헌정 사상 헌법재판소에서 파면당한 첫 대통령이란 이름에 이어 세 번째 ‘구속 전직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지난 2013년 2월 박 전 대통령은 “희망의 새 시대를 열겠다”며 청와대에 입성했다. 취임사에서 ‘국민’이란 단어를 가장 많이 사용했던 그는 역설적이게도 ‘국민의 뜻’에 따라 대통령직에서 내려오게 됐다. 그러나 한국 대통령사에서 이처럼 ‘끝’이 불명예스러운 전직 대통령은 비단 박 전 대통령만은 아니었다. “우리 민족의 복리를 위해서 내 성심과 능력을 다하겠다”(이승만), “가난을 몰아내고 통일조국을 건설하겠다”(박정희), “구시대의 잔재를 추방하고 참다운 민주복지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기초작업에 착수하겠다”(전두환), “정직과 진실의 수범을 보이겠다. 국민과의 약속은 반드시 지키겠다”(노태우), “정의와 화해로 새 시대의 문을 활짝 열어 나가겠다”(김영삼), “국난극복과 재도약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겠다”(김대중), “원칙을 바로 세워 신뢰사회를 만들자”(노무현), “한강의 기적을 넘어 한반도의 새로운 신화를 향해 우리 모두 함께 나아가자”(이명박) 등 역대 대통령들의 취임사는 늘 당당했다. 그리고 이러한 취임사에 비해 이들은 대체로 비극적 말로를 맞았다. 초대 대통령으로 정부 수립을 주도했던 이승만 전 대통령은 끝은 하야와 망명이었다. 사사오입 개헌과 부정선거 등으로 4·19혁명이 일어나자 1960년 반강제로 하야한 그는 곧바로 미국 망명을 택했다. 윤보선 전 대통령도 하야로 대통령직을 사임했다. 1961년 박정희 전 대통령 주도의 5·16 군사 정변이 발생하자 윤 전 대통령은 5월 19일 하야를 선언했다. 군부 요청으로 하루 만에 이를 번복하기도 했지만, 이로부터 10개월 뒤인 3월 22일 두 번째 하야 성명을 발표했다. 1963~1979년까지 18년간 장기집권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9년 10월 26일 부하에게 피살당했다. 당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서울 종로구 궁정동 만찬 자리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과 차지철 경호실장을 권총으로 사살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망 이후 대통령직에 오른 최규하 전 대통령은 역대 최단기 대통령으로 기록됐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신군부 세력의 반란에 힘을 쓰지 못했던 최 전 대통령은 취임 8개월 만인 1980년 8월 하야했다. 세 번째 하야 대통령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 제13대 노태우 전 대통령은 나란히 구속됐다. 노 전 대통령은 1995년 11월 16일 거액 수뢰혐의로, 전 전 대통령은 같은 해 12월 3일 12·12군사반란과 비자금 혐의 등으로 구속 수감됐다. 김영삼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 이명박 전 대통령은 모두 가족 비리에 휘말렸다. 이로 인해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과 이명박 전 대통령의 친형이 구속됐다. 일가가 거액의 뇌물을 수수했다는 의혹을 받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9년 5월 23일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5월 10일부터 업무를 시작하게 될 차기 대통령은 이런 불행의 전철에서 벗어났으면 하는 기대를 걸어본다. 저렇게 뒤끝이 좋지 않은 대통령 자리에 기를 쓰고 갈려고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사람들도 많다. 김서연 기자 wk@seoul.co.kr
  • “가짜뉴스 엄단… 국민 승복할 정책선거 유도 역점”

    “가짜뉴스 엄단… 국민 승복할 정책선거 유도 역점”

    김대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은 30일 “이번 대선은 헌법기관인 국회가 탄핵 소추를 의결하고 헌법기관인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인용해서 역시 헌법기관인 선관위가 마침표를 찍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며 “정책선거를 통해 후보자의 자질과 능력이 검증될 수 있도록 독립 헌법기관으로서 심판 역할을 충실히 하겠다”고 밝혔다. 김 사무총장은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사태에 따른 조기 대선을 맞아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실에서 가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국가적으로 상당히 어려운 상황에 국론도 분열돼 있는데 선거는 국민 대표자를 뽑는 기능 못지않게 사회통합의 기능도 있다”며 “이번 대선을 기회로 갈등을 봉합하고 통합과 화합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으로 인해 조기 대선을 치르게 됐다. 선거 관리 중 어떤 부분에 가장 중점을 두나. -정책선거다. 네거티브나 이미지 선거 또는 가짜 뉴스에 의해 표를 도둑맞았다고 생각하면 결과에 승복 안 할 것이다. 국민들이 승복하지 않으면 또다시 분열되고 새로운 대통령은 임기 내내 광장정치에 휩쓸릴 수 있다. 정책으로 후보자의 자질과 능력이 검증돼야 한다. →가짜 뉴스를 100% 규제할 수 있나. -미국, 프랑스 대선에서의 가짜 뉴스 사례가 있어 걱정하시는데 그 나라들은 허위사실공표죄가 없고, 우리같이 선거법이 많지 않다. 우리나라는 이전부터 허위사실공표죄라는 엄중한 법이 있어 규제를 해 왔고 실제로 이번 선거에서 가짜 뉴스가 적발된 것은 3건밖에 없다. 과도하게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선거 직전 ‘치고 빠지기’ 등 어떤 양상으로 나타날지 모르지만 선관위가 단속하고 예방하는 노하우가 있고 지금도 250명이 계속 모니터하고 있다. →요즘 선거는 여론조사 선거나 다름없다. 하지만 여론조사를 과연 믿을 수 있는 것인지 의심도 많다. -여론조사 부분은 상당히 개선됐다. 여론조사심의위원회에서 여론조사 기관에 대한 전수조사를 한다. 5월 9일부터는 등록제를 시행하고 일정 규모 이상의 업체만 선거 여론조사를 할 수 있다. 정당 후보자 측에서 실시하는 여론조사는 공표를 못하게 했다. 선관위도 불법 선거여론조사 특별전담팀을 구성해 신속하게 심의·조치를 취하고 있다. →사전투표가 5월 4~5일 치러져 투표율이 낮을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국민들이 투표를 할 것 같다. 재외국민투표 신청자 수가 30일 오전 7시 기준 26만 4125명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18대 대선에서는 명부 등재자 수가 22만 2389명이었다. 당시엔 91일이었던 재외국민투표 신청기간이 이번 선거에선 21일로 줄어들었음에도 참여가 늘어난 것은 조기 대선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것을 나타낸다고 본다. 그런 열기를 보면 투표율이 높을 것이라 생각한다. →각 정당이 한창 경선을 하고 있어 복잡한 구도다. 관리에 어려운 점이 있나. -12월 대선과 조기 대선 두 가지를 모두 준비했지만 조기 대선은 드러내놓을 수 없어 깊숙이 준비하지 못했다. 각 정당에 선거일 44일 전(3월 26일)까지만 경선관리를 위탁한다고 지난 1월 이미 통보했다. 선관위의 경선관리 혜택을 받은 정당도 있고 절반만 받은 정당도 있다. →후보 간 단일화나 연대에도 선관위가 관여하나. -단일화도 선거법 테두리 안에서 해야 하기 때문에 관여하지만 단일화하지 않는 정당과의 형평성 문제가 있다. 2002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의 경우 TV토론을 한 번 허용해 줬다. 선례와 선거법 판례를 모아 다음달 4일 전체회의에서 결정할 예정이다. →유례없이 짧은 기간에 대선을 치르는데 인력은 어떻게 운영되나. -선관위 직원이 2800여명인데 선거관리 인력이 총 48만명 필요하다. 인력이 많이 부족하고 이들에 대한 교육·훈련 시간이 부족하다. 공무원과 농협, 각종 단체, 일반 국민까지 다양한 인력의 협조가 필요하다. 선거는 온 국민이 참여하는 유일한 국가적 행사다. 숙련된 인력들을 확보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가짜 정책에 대한 법적 처벌은 어렵지 않나. -그건 후보자들의 양심에 맡기는 것이지만 선관위로선 이번 선거가 무엇보다 가짜 정책, 가짜 뉴스, 가짜 여론조사와의 싸움이다. 짧은 시간에 국민의 화합을 이뤄야 하는 선거이기 때문이다. 가짜 정책을 걸러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실 언론사와 시민사회단체에서 정책 검증을 하고 서열화하는 것이지만 서열화는 법으로 금지돼 있다. 또 일정 규모 이상의 예산이 수반되는 공약에는 반드시 조달 방안 추계 내용을 첨부하도록 하는 ‘페이고’ 법안이 도입돼야 한다. 지금의 선거법으로는 한계가 있다. →최근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아들의 특채 의혹, 신연희 강남구청장 고발 등 본격적으로 당과 후보 간 고소·고발전이 늘고 있다. 선관위 입장에서 공정성 논란이 있을 수도 있는데. -문 전 대표 아들 관련 사안은 지금도 상대 당에서 자료를 요구하고 있다. 민감한 사안인 만큼 선관위도 상대 당에서 제출한 자료들을 검토하고 있다. 신 구청장 건은 명백하게 잘못한 것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반복적으로 비방 문자를 올렸고 지방자치단체장의 지위가 엄중하기 때문에 파급력이 크다. 특히 공무원의 조직적 선거에 대해선 엄중하게 대처할 것이다. →선거연령 하향, 대통령 궐위 시 선거 기간 연장 등 이번 선거를 계기로 경험한 선거법상 바뀌어야 할 부분이 있나. -표현의 자유가 완성되는 것이 선거인데 우리는 규제가 너무 많다. 선관위가 누차 벽을 두드리지만 잘 안 된다. 선거연령 하향은 대선 이후 개정 의견을 다시 낼 것이다. 또 개헌을 하게 된다면 ‘보통·평등·직접·비밀선거’의 원칙에 ‘자유선거’를 추가하도록 의견을 낼 것이다. 그러면 선거법에도 자유로운 선거문화가 가능하도록 반영될 것으로 본다. →조기 대선을 치르는 각 당과 후보들, 국민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이번 대선의 모토는 ‘아름다운 선거, 행복한 대한민국’이다. 후보자와 정당은 정책으로 정정당당하게 아름다운 승부를 해야 하고 유권자는 그런 정책을 꼼꼼히 살펴서 후보자의 자질과 능력을 제대로 검증해서 한 표를 행사해 화합을 이루는 아름다운 선거가 되길 바란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한국당 후보 오늘 선출… 보수 대진표 확정

    자유한국당은 31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전당대회를 열어 당 대선 후보를 선출한다. 이로써 범보수 진영의 대진표가 확정된다. 앞서 바른정당은 유승민 의원을 후보로 선출했다. ●洪 “식수댐 건설” vs 金 “방사청 폐지” 한국당 주자들은 막판까지 열띤 호소를 했다. 홍준표 경남지사는 30일 여의도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한민국은 페트병에 든 식수 전용물이 휘발유보다 비싸다”면서 “전국에 식수 전용 댐을 건설해 국민에게 먹는 물을 1급수로 공급하겠다”고 공약했다. 이어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으로 풍부한 수량이 확보돼 1년에 수십조원이 들어가는 국가적 재난인 홍수와 가뭄이 없어졌다”면서 “4대강 사업은 잘한 사업”이라고 평가했다. 홍 지사는 유 후보를 향해 “2012년 대선 때 이정희(전 통합진보당 대표)를 연상시킨다”면서 “주적은 문재인이니 내게 시비 걸지 말고 공격 방향을 돌리라는 뜻”이라며 신경전을 벌였다. 김진태 의원은 기자간담회에서 홍 지사를 향해 “이몽룡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방자였다”며 공세를 펼쳤다. 홍 지사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 “춘향이인 줄 알고 뽑았더니 향단이였다”고 말한 것을 빗댄 것이다. 김 의원은 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적폐인 방위사업청을 폐지하고 그 업무를 국방부에서 담당하도록 하겠다”고 공약했다. 아울러 “마마보이 군대는 없어져야 한다”면서 “내무반 휴대전화와 자대 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 병사 부모를 대상으로 한 급식 평가제도 등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현아 출연 ‘무한도전’ 방송금지 신청 한편 한국당은 이날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에 대해 법원에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자당에 ‘해당 행위’를 한 김현아 의원이 한국당 대표로 섭외돼 촬영한 것이 부적절하다는 취지에서다. 다음달 1일 방송 예정인 무한도전은 ‘국민의원’ 특집을 주제로, 5개 정당에서 1명씩 국회의원을 섭외했다. 한국당은 바른정당과 뜻을 같이하는 김 의원이 당 대표로 출연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입장이다. 앞서 한국당은 김 의원이 해당 행위를 했다며 ‘당원권 정지 3년’이란 중징계를 내렸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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