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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문수 “MB 감옥 간 이유? 노 전 대통령 자살 때문”

    김문수 “MB 감옥 간 이유? 노 전 대통령 자살 때문”

    자유한국당 김문수 서울시장 후보는 19일 “이명박(MB) 전 대통령이 감옥에 간 가장 큰 이유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김 후보는 이날 MBC TV와 라디오로 방송된 정강·정책 방송연설에서 현 정부의 정치보복을 주장하며 이같이 밝혔다. 김 후보는 또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정말 징역 24년을 받을 만큼 큰 잘못을 했나”라고 반문하면서 “우리 모두 솔직해지자. 이것이 정치보복이 아니면 무엇이겠나”라고 덧붙였다. 그는 “두 전직 대통령에게 씌운 혐의가 서른 가지가 넘는다. 정말 해도 너무한다”며 “먼지털기식 표적수사와 피의사실 공표에 법치주의 훼손, 여론재판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인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의원이 지난 대선 때 대규모 댓글공작에 연루됐다고 한다”며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 봐도 엄청난 국기 문란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경찰은 스스로 범인들과 밀접한 관계라고 인정한 김 의원을 조사조차 하지 않고 사건을 덮으려고 했다”며 “김 의원이 댓글조작 범인들과 주고받은 문자 내용과 금융거래 내역을 즉각 공개해야 하고, 특검과 국정조사를 즉각 실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전시행정 vs 역사성 복원…질곡의 광장개발 역사

    전시행정 vs 역사성 복원…질곡의 광장개발 역사

    “전시성 사업에 1000억대 시민 혈세를 들이겠다고 한다. 오세훈 시장 때 700억에 이어 또 1000억, 광장이 시장 홍보 무대가 돼서는 안 된다” 안철수 바른미래당 서울시장 예비후보가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지난 10일 박원순 시장이 발표한 ‘새로운 광화문광장 조성 기본계획’을 정면으로 비판한 내용이었다. 광화문광장을 3.7배(1만 8840㎡→6만 9300㎡)로 확장하려는 박 시장의 계획이 3선 연임을 위한 홍보 사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안 후보 역시 지난 대선 당시 ‘광화문광장 확장’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정치인과 행정가들의 ‘광장 집착’의 배경에는 결국 선거와 맞물려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상징적인 대형 건축 공사는 이를 결정한 사람의 업적처럼 평가되기 때문이다. 이런 흐름은 과거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쭉 이어질 전망이다. ● 불도저 김현옥의 유산…체제선전의 장 여의도광장직장인들의 쉼터로 자리 잡은 여의도공원은 1916년 일제가 건설한 여의도 비행장과 활주로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여의도 비행장은 광복 이후에도 유지됐고, 이곳에서 대한민국 공군이 창설되기도 했다. 서울의 복판에 위치한 덕에 20년에 가까운 기간 공군의 최대 기지로 자리했다. 비행장으로만 쓰던 공간의 성격을 통째로 바꾼 건 ‘불도저 시장’으로 불리던 김현옥 전 서울시장(1966.3.31.~1970.4.15 재임)이다. ‘토목’과 ‘건축’을 지상 목표로 삼았던 김 시장은 ‘여의도 개발계획’을 밀어붙였다. 홍수가 잦던 여의도의 제방을 쌓을 재료를 마련하기 위해 밤섬을 폭파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그런데 김 시장이 추진하던 마포 와우아파트가 1970년 4월 8일 붕괴되며 사직했고, 여의도 개발은 다음 시장에게로 넘어갔다. 와우아파트 붕괴로 대책을 마련하던 서울시는 여의도를 개발할 자금이 크게 부족한 상태였고, 후임 양택식 전 시장(1970.4.16.~1974.9.1 재임)은 여의도 개발을 민간에게 맡겼다. 이 과정에서 여의도 비행장의 거대한 활주로는 ‘5·16 광장’이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한다. 이후 5·16광장은 국가가 주도한 다양한 관변 행사의 무대가 됐다. 5공화국 당시 5.18 민주화 운동 1주년 행사 및 민중들의 반정부 운동 차단 목적으로 치러진 ‘국풍81’이 대표적이다. 체제 선전의 장이었던 여의도광장은 김영삼 정부에 이르러 변화를 모색했고, 1999년 2월 서울특별시 시립공원인 여의도공원으로 재탄생하며 지금의 틀을 갖췄다. ● 헬게이트 교차로에서 시민 휴식터로…서울광장조선 후기 고종의 강제퇴위를 요구하는 일제를 반대하는 ‘고종 반대시위’부터 4.19 혁명, 6월 민주항쟁, 2002년 월드컵 거리응원 그리고 촛불 혁명에 이르기까지. 시청 앞 광장의 역사는 늘 민중과 함께했다. 그러나 2004년 ‘서울광장’으로 재탄생하기 전까지 시청 앞 광장은 ‘아스팔트 도로’에 지나지 않았다. 시청 앞 광장은 광장보다는 ‘교차로’로서의 기능이 강했다. 세 네 겹으로 뒤엉킨 도로는 늘 교통체증을 유발했고, 평상시 보행자가 광장에 들어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시청 앞 광장은 복잡한 교통 체계 탓에 ‘사고 다발 지역’으로 악명이 높았다. 이명박 전 시장(2002.7.1.~2006.6.30 재임)은 시청 앞 광장에 서울광장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서울시는 광장의 명칭을 공모해 ‘서울광장’으로 이름을 정했다. 마침내 2004년 5월 1일 서울광장 개장식이 열리며 서울광장이 탄생했다. 그러나 서울광장 역시 탄생과 함께 ‘전시행정’이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서울광장 ‘디자인 공모전’에서 시멘트 바닥을 기초로 한 구조가 1위에 올랐음에도 사람들에 의해 쉽게 망가질 수 있는 잔디광장을 채택했고, 시의회가 ‘광장 조성목적에 위배되는 경우에 사용 불허’하는 내용을 담은 조례안을 통과시켜 시민들의 광장 사용에 제약을 가했기 때문이다. 이에 반발한 시민단체들은 서울광장이 개장한 2004년 4월 직후 ‘집회·시위의 자유를 허하라!’라는 주제로 문화행사를 열어 ‘서울광장’이 온전한 광장의 역할을 수행할 것을 요구했다. 각계의 단체와 인사들이 끊임없이 요구한 끝에 시의회는 2010년 서울광장에서의 집회를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꾸는 내용으로 골자로 한 ‘서울광장조례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를 바탕으로 서울광장에서는 2006년 남아공 월드컵과 2010년 독일 월드컵 거리응원이 이어졌고, 2009년 5월 서거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제와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집회가 벌어졌다. ● 거대 중앙분리대 오명도…광화문광장 이명박 전 시장은 서울광장의 완공과 함께 ‘광화문광장’의 재탄생을 추진했다. 이 전 시장은 ‘시민광장 조성 기본계획’을 통해 도로 양측에 나눠 광장을 배치하는 방안을 제시했고, 문화재청은 2005년 세종문화회관 쪽으로 치우쳐 광장을 조성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같은 해 서울시는 ‘시민광장 조성계획’을 통해 중앙 배치안을 확정했다.공사는 오세훈 전 시장(2006.7.1.~2010.6.30. 재임) 기간에 완료됐다. 2006년 광화문 철거 공사를 시작으로 광화문 광장 조성 사업이 시작됐고 2009년 완공됐다. 공사에 투입된 예산은 총 722억원이었다. 그런데 새로 만들어진 광화문광장은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중앙분리대’라는 오명을 안고 시작했다. 세종대로 사이에 갇혀 시민들이 광장을 온전히 이용할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전시행정’이라는 비난 역시 뒤따랐다.광화문광장의 세종문화회관 방면 이전이나 세종로의 전면 지하화 같은 주장도 이어졌다. 여기에 3선 연임 도전에 나선 박원순 시장의 카드 역시 ‘광화문광장’이다. 광장 확장을 골자로 한 박 시장의 ‘새로운 광화문광장 조성 기본계획’ 또한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서울시는 광화문광장 확장에 따른 교통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차량통행을 우회도로로 분산시키고 도심외곽 안내체계를 개선하는 등 개편 방안을 마련했지만 교통체증 악화를 우려는 여전하다. 또한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와 신분당선의 광화문역 설치를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성사여부는 불투명하다. 신형철 기자 hsdori@seoul.co.kr
  • 북한 주민들, 남북 정상 간 만남을 생중계로 볼수 있을까?

    북한 주민들, 남북 정상 간 만남을 생중계로 볼수 있을까?

    남북 정상이 만나는 27일 역사의 현장을 북한 주민들도 생생하게 볼 수 있을까. 이에 대해 가능은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어 전체 주민들이 시청하기에는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게 일부 전문가들의 지적이다.이번 남북정상회담은 분단 이후 세 번째 열리는 것으로 2000년 1차 때와 2007년 2차 남북정상회담 당시 북한 조선중앙TV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대한민국 대통령의 만남을 생중계하지 않았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의 방북 카퍼레이드를 평양 현장에서 지켜 본 한 탈북민는 “김정일은 자신의 동선이 노출되는 것에 소극적인 데다 방송 사고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으로 안다”며 “이 때문에 북한 TV는 김정일의 외교행사는 물론 대내 공개 활동도 생중계가 아닌 녹화중계로 보도했다”고 전했다. 또 다른 탈북민도 “생중계는 돌발 상황을 여과 없이 보여주기 때문에 최고 존엄의 우상화에 흠이 되는 어떤 것도 그대로 내보 낼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은둔형’ 지도자였던 부친과 달리 ‘과시형’ 스타일인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판문점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만나는 장면을 북한 주민들에게 TV 생중계로 보여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김정은 위원장은 나이도 젊은 데다 적극적이고 활달한 성격이어서 생중계를 선호할 것으로 보인다”라며 “특히 북한 최고지도자가 처음으로 분계선을 넘어 남쪽 땅을 밟는 역사적인 순간을 주민들에게 실시간 공개함으로써 담대하고 결단력 있는 지도자라는 면을 부각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실제로 북한 조선중앙TV는 열병식을 비롯해 김 위원장이 참석하는 공식행사를 동선이 공개되는 부담을 무릅쓰고 여러 차례 생중계로 보도했다. 앞서 중앙TV는 지난해 4월 15일 김 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김일성 주석 생일 105주년 열병식을 생중계했다. 당시 김 위원장이 자신이 타고 온 리무진에서 내려 육해공군 의장대를 사열하고 광장 주석단에 입장하는 모습 등이 실시간으로 공개됐다. 또 2015년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70주년 기념 열병식과 군중시위가 열렸을 때는 오후 3시께 행사 예고도 없이 곧바로 생중계로 보도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북한 TV의 생중계 패턴은 김정은 집권 초기부터 나타났다. 중앙TV는 김정일 사망 직후인 2011년 12월 28일 평양에서 진행된 김정일 영결식과 다음날 열린 중앙추도대회를 생중계했다. 당시 영결식을 생중계하면서 중앙TV는 김정은 위원장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 평양 주민들의 표정, 김기남 당시 노동당 비서가 영결식 폐막을 선언하자 탄식하는 군중의 목소리 등을 여과 없이 방영했다.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이 북한이 보통국가임을 보여주려고 일부러 TV 생중계를 지시할 수도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렇지만 현재 북한의 전력 사정상 북한 주민들 전체가 TV를 볼 수 있는 여건이 어렵다는 반응도 있다. 평양과 남포, 평성 등 대도시들을 제외하고 낙후한 지방의 주민들에게 전기를 공급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다는 설명이다.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소장은 “생중계를 한다고 해도 현재 북한 전력 사정상 전국의 모든 곳에 전력을 공급하기는 물리적으로 부담이 가는 것이 사실”이라며 “전력을 거기에 돌리려면 그 시간 동안 상시 전기로 운영되던 공장과 기업소 등을 중단해야 하는 데 그것은 현재 북한 경제위기에서 회복할 수 없는 손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정은 위원장 입장에서는 남북 정상 간 만남을 북한 주민들에게도 생생히 보여주고 싶겠지만, 생방송은 예측할 수 없는 돌발변수가 많다”며 “더욱이 남북이 만나는 것은 더욱 고려할 것이 많기에 무리수를 두지는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양김과 각별’ 6선 김상현 前의원 별세

    ‘양김과 각별’ 6선 김상현 前의원 별세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였던 후농 김상현 전 국회의원이 노환으로 18일 별세했다. 83세. 김 전 의원 측 관계자는 “김 전 의원이 노환으로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에서 작고했다”고 말했다.1935년 12월 전남 장성에서 태어난 김 전 의원은 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 등 ‘3김’이 정치를 이끌어갈 당시 이들 양김 계파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6선을 지낸 고인은 생전에 재치 있는 연설과 지략, 폭넓은 인맥으로 특히 잘 알려져 있다. 그는 김대중이 정치인 지망생 시절 운영하던 웅변학원에서 처음으로 만나 인연을 맺었다. 두 사람은 호형호제하는 사이였으며 김대중을 따라 정계에 입문했다. 김 전 의원은 1965년 한일기본조약에 반대하는 국회의원의 사퇴로 치러진 재보궐 선거에서 민중당 후보로 서울 서대문 갑에 출마해 당선됐다. 신군부가 꾸민 김대중 내란 음모 조작사건에 연루돼 투옥된 그는 1984년 미국에 망명 중이던 김대중을 대리해 김영삼 전 대통령과 함께 민주화추진협의회를 창립하고 공동의장권한대행을 맡기도 했다. 그는 1985년 선명야당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신한민주당 창당에 앞장섰다.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야권이 분열하면서 김 전 의원은 김대중의 평화민주당 대신 통일민주당의 김영삼 후보를 지지했다. 김 전 의원은 1995년 김대중이 정계복귀해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자 참여했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 때는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으나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에서는 탄핵소추에 찬성했다. 탄핵 찬성으로 인해 2004년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한 뒤 정계은퇴했다. 민주당 김영호 의원이 그의 아들이다. 자타가 인정하는 대표 마당발로 평가받던 김 전 의원은 타협과 절충을 잘하는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정희원씨, 아들 윤호(우림FMG 대표이사)·준호(우림FMG 전무)·영호씨와 딸 현주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12호, 발인은 22일, 장지는 경기 파주시 나자렛묘원이다.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 ‘좌불안석’ 황창규 KT 회장

    ‘좌불안석’ 황창규 KT 회장

    권오준 포스코 회장 사퇴 이후 ‘다음 수순은 KT’라는 관측 속에 황창규 KT 회장의 거취에도 관심이 쏠린다.지난 17일 황 회장의 경찰 소환이 권 회장 사퇴 시점과 맞물리며 안팎에서 사퇴 압박이 커지고 있어서다. 경찰은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KT가 법인자금으로 국회의원 90여명에게 총 4억 3000만원을 불법 후원한 혐의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된 황 회장은 이날 경찰청에 출석해 18일 새벽 5시까지 20시간 가까이 조사를 받았다. 황 회장이 이를 직접 지시하거나 보고받고 묵인했는지가 핵심이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4년 3월 3년 임기 회장에 취임한 황 회장은 지난해 3월 연임에 성공했다. 앞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연루 의혹이 불거지며 황 회장에 대한 사퇴 압박이 본격화됐지만 그는 정면돌파를 택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평창동계올림픽 개최, 5세대(5G) 이동통신 상용화에 집중하는 등 임기 완료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KT의 ‘최고경영자(CEO) 리스크’는 정권 교체기 때마다 도돌이표처럼 되풀이됐다. 2002년 민영화 이후 정권 교체기마다 수장이 갈렸다. 김대중 정부 때 이용경 전 사장은 노무현 정부 들어 연임을 스스로 포기했다. 이후 남중수 전 사장은 이명박 정부 집권 이후 납품비리 혐의로 압수수색을 받자 중도 사임했다. 이 전 대통령 시절 취임한 이석채 전 회장도 박근혜 정부에서 배임·횡령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서 물러났다. 정보기술(IT) 업계 관계자는 “KT CEO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치적 흥정의 대상으로 전락했다”면서 “IT 글로벌 경쟁을 총지휘하는 자리인 만큼 정치적 외풍에서 보호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평화 로드맵 그린 靑… “3자 또는 4자 합의도 가능”

    평화 로드맵 그린 靑… “3자 또는 4자 합의도 가능”

    정의용 “세계사적 합의 도출 기대” 시간표만 잘 맞추면 文 임기 내 비핵화·정전체제 종식 가능할 듯 청와대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오는 27일 판문점에서 열릴 남북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로 정전체제를 종식할 종전 선언을 거론했다. 남북 정상회담에서 65년간 지속된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방안을 논의하겠다는 것이다.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에서 ‘종전에서 평화체제로’를 선언한 뒤로 가다 서다를 반복했던 종전 선언 논의가 2007년 ‘10·4 남북정상선언’을 거쳐 2018년 남북 정상회담에서 본격화할 전망이다.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18일 기자들과 만나 종전 선언과 관련해 “남북 간 어떤 형식이든 합의가 이뤄지길 기대한다”며 “정전체제의 평화체제 전환에 대해 또 다른 의견이 필요하다면 3자(남·북·미) 간에, 더 나아가 4자(남·북·미·중) 간 합의도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남북 정상이 만나 주도적으로 종전 선언 추진 의지를 밝히고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을 거쳐 남·북·미 정상회담이나 4자 회담에서 종전을 선언하는 평화체제 로드맵을 그린 것으로 보인다. 종전 선언 추진은 1991년 12월 서울에서 열린 5차 남북 고위급회담, 2007년 10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에서도 합의한 바 있지만 현실화되진 못했다. 이번에 트럼프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나는 이 논의(종전 선언)를 정말로 축복한다”고 공개적으로 지지 의사를 밝히면서 실현 가능성이 더 커졌다는 평가다. 남북은 2007년 정상회담에서도 ‘정전체제를 종식하고 항구적인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해 나가기로 한다’고 합의했다. 하지만 북한의 비핵화 이행이 불발돼 남북 정상의 의지만 확인한 선언적 수준의 합의에 그치고 말았다. 청와대는 2007년과 달리 북한이 비핵화에 상당히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데다 한·미 공조 또한 긴밀하다는 점에서 종전 선언 실현 가능성을 크게 보고 있다.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이 꼭 성공적으로 개최되리라고 낙관만 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그러나 정부는 두 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개최해 세계사적 합의가 도출될 수 있도록 하겠다”며 자신감을 피력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남은 임기를 고려할 때 시간표만 잘 맞춘다면 비핵화와 정전체제 종식을 동시에 이루는 게 가능할 것이란 기대도 나온다. 1991년 남북한은 ‘현 정전 상태를 남북한 사이의 공고한 평화 상태로 전환하기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한다’는 기본합의서를 도출하고도 이행하지 못했다. 2007년 10·4 남북정상선언도 노무현 정부 임기 말에 이뤄졌다. 청와대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남북 상호 불가침 합의도 이룰 방침이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달 방북한 대북특사단에 핵무기는 물론 재래식 무기를 남측을 향해 사용하지 않겠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1991년 채택한 남북기본합의서의 ‘남북 불가침’ 합의를 북한에 상기시키고 군사적 적대행위 중단을 구체적으로 확약받는 데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평화 로드맵 그린 靑… “3자 또는 4자 합의도 가능”

    청와대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오는 27일 판문점에서 열릴 남북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로 정전체제를 종식할 종전 선언을 거론했다. 남북 정상회담에서 65년간 지속된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방안을 논의하겠다는 것이다.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에서 ‘종전에서 평화체제로’를 선언한 뒤로 가다 서다를 반복했던 종전 선언 논의가 2007년 ‘10·4 남북정상선언’을 거쳐 2018년 남북 정상회담에서 본격화할 전망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18일 기자들과 만나 종전 선언과 관련해 “남북 간 어떤 형식이든 합의가 이뤄지길 기대한다”며 “정전체제의 평화체제 전환에 대해 또 다른 의견이 필요하다면 3자(남·북·미) 간에, 더 나아가 4자(남·북·미·중) 간 합의도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남북 정상이 만나 주도적으로 종전 선언 추진 의지를 밝히고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을 거쳐 남·북·미 정상회담이나 4자 회담에서 종전을 선언하는 평화체제 로드맵을 그린 것으로 보인다.  종전 선언 추진은 1991년 12월 서울에서 열린 5차 남북 고위급회담, 2007년 10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에서도 합의한 바 있지만 현실화되진 못했다.  이번에 트럼프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나는 이 논의(종전 선언)를 정말로 축복한다”고 공개적으로 지지 의사를 밝히면서 실현 가능성이 더 커졌다는 평가다. 종전 선언은 당사자인 남북뿐 아니라 미·중 등 관련국 간의 합의가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남북은 2007년 정상회담에서도 ‘정전체제를 종식하고 항구적인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해 나가기로 한다’고 합의했다. 하지만 북한의 비핵화 이행이 불발돼 남북 정상의 의지만 확인한 선언적 수준의 합의에 그치고 말았다.  청와대는 2007년과 달리 북한이 비핵화에 상당히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데다 한·미 공조 또한 긴밀하다는 점에서 종전 선언 실현 가능성을 크게 보고 있다.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이 꼭 성공적으로 개최되리라고 낙관만 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그러나 정부는 두 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개최해 세계사적 합의가 도출될 수 있도록 하겠다”며 자신감을 피력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남은 임기를 고려할 때 시간표만 잘 맞춘다면 비핵화와 정전체제 종식을 동시에 이루는 게 가능할 것이란 기대도 나온다.  1991년 남북한은 ‘현 정전 상태를 남북한 사이의 공고한 평화 상태로 전환하기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한다’는 기본합의서를 도출하고도 이행하지 못했다. 이미 노태우 정부 후반기에 들어서서 남북 관계 동력이 약화한 탓이 컸다. 2007년 10·4 남북정상선언도 노무현 정부 임기 말에 이뤄졌다.  청와대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남북 상호 불가침 합의도 이룰 방침이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달 방북한 대북특사단에 핵무기는 물론 재래식 무기를 남측을 향해 사용하지 않겠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1991년 채택한 남북기본합의서의 ‘남북 불가침’ 합의를 북한에 상기시키고 군사적 적대행위 중단을 구체적으로 확약받는 데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노무현과 그의 사람들 이야기…다큐멘터리 ‘바보, 농부’ 촬영 중

    노무현과 그의 사람들 이야기…다큐멘터리 ‘바보, 농부’ 촬영 중

    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를 맞아 다큐멘터리 영화 ‘바보, 농부’(가제) 제작 소식이 전해져 기대를 모은다. ‘바보, 농부’는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 후 고향 봉하마을로 돌아간 2008년부터 지금까지 그와 함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2008년 고향을 다시 찾으며 시작한 화포천 청소부터 봉하산 가꾸기, 친환경 쌀 재배까지 참여정부 마지막 기록관리비서관 김정호를 비롯해 서거 이후에도 그의 유업을 이어가는 이들의 삶을 기록 중이다. 영화는 2017년 최고의 다양성 영화로 인정받은 ‘꿈의 제인’ 프로듀서 백재호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또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다룬 최초의 다큐멘터리 ‘무현, 두 도시 이야기’ 연출자인 전인환 감독이 프로듀서를 맡아 더욱 기대를 모은다. 서거 10주기를 맞이해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전하고 싶던 이야기와 여전히 그와 함께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바보, 농부’는 2019년 상반기 극장개봉을 목표로 박차를 가하고 있다.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포스코의 ‘수난’…정권 바뀔 때마다 회장 교체

    포스코의 ‘수난’…정권 바뀔 때마다 회장 교체

    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18일 사임할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최고경영자(CEO)가 교체되는 민영기업 포스코의 ‘수난’이 주목을 받고 있다.포스코는 국영기업으로 출발했지만 지난 2000년 9월 정부 지분을 모두 팔면서 민영화됐다. 그러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총수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나는 행태가 반복됐다. 전임 회장들이 공식적으로 밝힌 사임 이유는 다양했지만, 정권 교체와 관련이 있다는 시각이 적지 않았다. 권 회장의 전임인 정준양 전 회장(2009년 1월∼2014년 3월)은 권 회장과 비슷한 전철을 밟다 사임했다. 정 전 회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방문 때 국빈만찬과 10대 그룹 총수 청와대 오찬, 베트남 국빈방문 사절단 등 대통령이 참석한 주요 행사에서 배제됐다. 또 국세청이 서울 포스코센터, 포항 본사, 광양제철소 등에 대한 동시다발적 세무조사에 착수하면서 사퇴 압박용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정 전 회장은 사임 결정에 외압이나 외풍은 없다고 밝혔지만, 재계에서는 이런 해명에 강한 의구심을 드러냈다. 정 전 회장도 2013년 11월 이사회에 사의를 표명할 당시 연임에 성공해 임기를 1년 4개월가량 남겨둔 상태였다.이후 정 전 회장은 포스코의 민원을 해결해 주는 대가로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기소됐지만, 작년 11월 2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이구택 전 회장(2003년 3월∼2009년 1월)은 2007년 봄 한차례 연임했으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1년 뒤인 2009년 초 정치권 외압 논란 와중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 전 회장은 2008년 말부터 검찰이 이주성 전 국세청장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포스코가 세무조사 무마 로비를 했다는 혐의를 잡고 수사에 나섬에 따라 결국 사퇴 수순을 밟았다. 이 전 회장은 “외압이나 외풍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전문경영인과 사외이사제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불식시키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고 해명했지만, 정권 차원의 외압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포스코의 민영화 전에는 고(故) 박태준 초대회장(1968년 4월∼1992년 10월)이 김영삼 당시 대통령과의 불화로 사임한 것을 비롯해 1992∼1994년 사이 황경로(1992년 10월∼1993년 3월)·정명식(1993년 3월∼1994년 3월)·김만제(1994년 3월∼1998년 3월) 등 무려 4명의 회장이 잇달아 바뀌었다. 김만제 전 회장은 김대중 정부 출범 직후, 그의 후임인 유상부(1998년 3월∼2003년 3월) 전 회장은 노무현 정부 출범 직후에 사퇴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판문점서 360회 만난 남북…‘한반도 항구적 평화’ 역사 쓸까

    판문점서 360회 만난 남북…‘한반도 항구적 평화’ 역사 쓸까

    1971년 첫 판문점내 남북회담 정상회담 준비회담은 17회 열려 노무현 정부 169회 가장 많아 27일 ‘허심탄회’ 정상회담 목표 의전·경호·보도 등 꼼꼼히 점검68년 분단의 역사를 상징하는 판문점이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여는 대전환의 시작점이 된다. 오는 27일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기까지 남북 당국은 여기서 360차례 만났다. 이 만남들을 포함해 전체 남북 회담은 무려 655회가 열렸다. 정상회담 준비를 위한 의전·경호·보도 실무회담과 고위급회담이 각각 한 번씩 남았으니 이번 남북 정상회담은 658번째 만남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통상 비핵화의 진입로로서 이번 남북 정상회담의 역할과 의미가 강조되고 있지만, 종착점은 한반도와 전 세계에 평화를 구현하는 것이다. 통일부 관계자는 17일 “고위급회담(일정)은 남북 간 협의 중으로 남북 정상회담(준비상황)을 고위급 차원에서 최종 마무리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고 밝혔다. 고위급회담은 의전·경호·보도 실무회담(18일) 직후인 오는 20일 열릴 것으로 전망된다. 회담 1주일 전까지 의제, 보도, 의전 등 남북 간 조율이 사실상 마무리되는 것이다. 비핵화가 주된 의제임에도 남북은 두 정상 간 ‘허심탄회한 대화’가 우선이라며 의제의 범위를 열어 뒀다. 반면 의전과 경호는 지나칠 만큼 꼼꼼하게 점검하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분단 후 북한 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군사분계선(MDL) 이남인 판문점 평화의집으로 이동하고, 부인 리설주 여사를 동반할 수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판문점 군사분계선에서 김 위원장을 맞는 역사적 장면이 연출된다면, 이 순간부터 청와대 경호처와 북한 조선노동당 중앙당조직부 소속 974부대가 공동 경호를 맡을 것으로 보인다. 두 정상이 ‘평화’를 주제로 회담을 진행할 판문점은 굴곡의 역사를 안고 있다. 북한군과 국제연합군은 1951년 10월 22일 널문리 주막마을에 천막을 치고 첫 연락장교 접촉을 시작했고, 중국측이 이곳에 ‘판문점’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전까지 765회의 휴전회담이 이곳에서 열렸고, 남북 당국 회담은 ‘남북 적십자 파견원 제1차 접촉’(1971년)을 시작으로 360회가 개최됐다. 이 밖에 김일성 전 주석의 사망으로 실현되지 못한 1994년 남북 정상회담, 2000년·2018년 남북 정상회담 준비를 위해 17번의 준비회담이 판문점에서 있었다. 1976년 판문점에서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감독하던 미군 장교 2명을 북한군이 도끼로 살해한 ‘도끼만행사건’이나 지난해 11월 북한 군인 오청성의 귀순 등은 양측의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켰던 사건이다. 판문점은 또 1994년 지미 카터 전 미 대통령의 방북과 1998년 정주영 전 현대 회장의 ‘소떼몰이 방북’에 통로로 이용되면서 잠시나마 화해의 공간이 되기도 했다. 정권별로는 노무현 정부 때 169번의 남북 회담이 열려 가장 많았고, 노태우 정부(164회), 김대중 정부(87회) 순이었다. 이명박 정부가 16회로 가장 적었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유엔군과 현 정전체제를 관리·감독 및 협의하는 판문점에서 정상회담이 열리는 것은 정전체제를 넘어서는 길을 모색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강윤혁 기자 yse@seoul.co.kr
  • ‘외로운 늑대’인가 민주당과 연계됐나…법정서 가린다

    ‘외로운 늑대’인가 민주당과 연계됐나…법정서 가린다

    與 “경공모 자생적·독자적 조직” 野 “민주당과 긴밀한 공조 활동” 선거운동·인사청탁·운영자금 등 재판 과정서 사건 전모 드러날 듯더불어민주당원 댓글 조작 사건으로 구속된 김모(49·필명 드루킹)씨를 두고 독자적으로 활동한 ‘외로운 늑대’(자생적 범행)라는 여권의 해석과 “민주당과 긴밀하게 연계됐다”는 야권의 주장이 첨예하게 맞선 가운데 17일 검찰이 김씨를 재판에 넘겼다. 검찰이 적용한 혐의는 지난 1월 평창동계올림픽 관련 기사에 매크로 프로그램을 활용해 댓글을 조작한 단일 사안이다. 김씨와 김경수 의원과의 텔레그램 대화, 인사청탁 경위 등에 대한 사실 확인은 재판의 쟁점이 돼 밝혀질 전망이다. 댓글 조작을 저지른 김씨 등 3명이 소속된 ‘경제적 공진화 모임’(경공모)를 자생적, 독자적 활동 조직으로 규정한 여권은 이번 사건에 대해 “우리 당도 피해자”(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라고 주장했다. 대선과 같은 큰 선거를 치르다 보면 자발적으로 돕겠다고 연락하는 모임이나 조직이 수백곳인데, 김씨와 경공모도 그 무리 중 하나라는 것이다. 김 의원이 김씨를 만난 이유에 대해서도 민주당은 “선거 때 조직을 맡았던 김 의원이 당시 문재인 후보를 돕겠다는 조직이나 사람을 만난 것은 당연한 것”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오랜 기간 ‘친노’(친노무현), ‘친문’(친문재인) 성향으로 활동하던 김씨 등이 돌연 현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방향으로 댓글 조작을 감행했고, 민주당 측 고발로 수사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보상을 노린 정치 브로커의 음해 공작이라는 주장이다. 또 사건이 불거진 뒤 민주당이 김씨를 즉각 출당 조치한 점도 근거로 들었다. 정당과의 교감 없이 김씨가 독립적으로 댓글 조작을 했다고 규명되는 상황은 형사 재판에 임하는 김씨에게도 유리한 측면이 있다. 김씨에겐 현재 업무방해죄가 적용됐지만, 만일 김씨가 민주당 선거 조직과 교감하며 댓글을 조작했다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도 보태질 수 있다. 반면 야권은 김씨와 경공모가 민주당과 긴밀하게 연결된 조직이라는 프레임을 짜고 공세를 이어 가고 있다. 김씨가 일본 오사카 총영사로 추천한 대형 로펌 A변호사를 김 의원이 청와대에 소개한 데 이어 백원우 민정비서관이 A변호사를 직접 만나는 등 김씨의 영향력이 ‘오프라인’에서 작동했기 때문이다. 김씨가 휴대전화 170여대와 연간 약 11억원에 달하는 적지 않은 비용을 썼다는 점, 특히 월 450만원에 달하는 월세를 밀리지 않고 낸 정황도 배후세력의 존재를 의심하게 만드는 요소로 꼽힌다. 야권은 특히 온라인 여론 조작을 시도한 이번 범행이 지난 정권의 국가정보원 정치 댓글 수사를 연상시킨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에 김 의원과 민주당은 “국정원과 같은 국가기관이 아닌 시민의 정치적 참여는 범죄가 아니다”라고 반박하고 있는데, 이 반박 논리를 깨려면 김씨와 민주당 간 연계 고리를 찾아야 한다. 기소 이후에도 김씨에 대한 수사가 이어질 예정이다. 문무일 검찰총장은 김씨의 파주 느릅나무 출판사 사무소가 불법 선거사무소인지,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난 5월 수사의뢰한 사건을 지난해 11월 무혐의 처분한 검찰의 지휘가 적절했는지 점검을 지시했다. 문 총장은 또 수사점검위원회 개최를 검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전해철·이재명, ‘혜경궁김씨’ 놓고 설전

    전해철·이재명, ‘혜경궁김씨’ 놓고 설전

    더불어민주당 경기도지사 예비후보인 전해철 의원과 이재명 전 성남시장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 등을 비방한 트위터 계정, 이른바 ‘혜경궁김씨’ 논란을 놓고 설전을 벌였다.전 의원은 17일 오후 열린 민주당 경기도지사 후보자 토론회에서 트위터 계정 @hkkim에 대한 이 전 시장의 입장을 물었다. 전 의원은 “해당 계정은 나에 대한 모욕적인 비방은 물론 노 전 대통령과 문 대통령을 향해서도 심한 패륜적 발언을 했다”면서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이 전 시장에) 함께 수사 의뢰를 하자고 제안했는데 응하지 않아 단독으로 고발했다”고 말했다. 전 의원은 이어 “고발 이후에도 당원들이 문제제기를 해서 해당 계정이 이 후보 가족과 연관이 있다는 증거를 제시했다”면서 “이 후보도 피해자가 될 수 있으니 함께 고발하고 의혹을 해소하는 것이 어떻겠나”라고 물었다. 이 전 시장은 “이미 2번이나 공개적으로 입장을 표명한 문제”라고 받아쳤다. 그는 “전 후보도 변호사이고 인권운동과 시민운동도 했던 분인데, 제가 계정에 의한 법률상 피해자인가”라면서 “저도 계정의 내용에 동의할 수 없고 나쁘다고 생각하지만 정치적으로 나쁜 것과 법률적으로 문제 삼는 것은 다른 것이다. 오히려 공권력 남용일 수 있다”면서 고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전 의원은 “형식적인 법률 논리로 의혹이 해소될 수 없다”고 맞섰다. 그는 “정보통신망법은 도용되거나 공개된 정보라도 정보를 훼손하면 위반으로 간주한다”면서 “지금 확인된 바에 다르면 이 후보 가족 중 한명의 아이디, 이메일, 전화번호가 도용된 것인데 피해자가 아니어서 고발하지 않겠다는 것은 본질을 흐리는 얘기”라고 꼬집었다. 이 전 시장은 “(전 의원이) 고발을 했으니 당연히 수사하고 밝혀질 것”이라면서 “경기 도민의 삶, 연간 1만 5000명이 자살하는 나라에서 더 나은 삶을 얘기해야 한다. 수사기관이 조속히 수사한다고 하니 기다려보시는 게 정답일 것”이라고 말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지관근 “이재명, 8년간 겪어보니 지도자로서 부적합”

    지관근 “이재명, 8년간 겪어보니 지도자로서 부적합”

    더불어민주당 성남시장 예비후보인 지관근 성남시의원은 17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이재명 경기도지사 예비후보의 사퇴를 촉구했다.지관근 예비후보는 이날 경기 성남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저는 참담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다”면서 “이재명 예비후보와 8년을 함께 했다. 함께 하면서 느낀 점은 이재명 예비후보가 개인기와 카리스마는 뛰어나지만 자치분권 시대에 적합하지 않은 지도자”라고 말했다. 지 예비후보는 “지난 8년간 더불어민주당 의원들도 시정을 언론보도를 통해서 접하는 등 자당간에도 당정협의나 업무소통이 두절되다시피한 이 예비후보의 시정운영방식은 ‘선당후사’의 심정으로 용인해왔다”며 “‘혜경궁 김씨’로 불리는 계정에 대한 해명과 드루킹 사태를 악용하여 상대 후보인 전해철 의원을 비방하는 행태, 그리고 성남시 공무원을 사적으로 이용하였다는 정보를 입수한 뒤에는 이 예비후보는 정치적 책임을 지고 사퇴를 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기자회견을 열게 된 배경을 밝혔다. 특히 최근 ‘혜경궁 김씨’ 논란과 관련, 그는 “그 계정에 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모욕,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모욕, 문재인 대통령님에 대한 모욕이 담겨 있음에도 (이재명 전 성남시장은) 분노하고 있지 않다”면서 “혜경궁 김씨 계정을 김혜경 씨가 운영한 것으로 드러나면 이재명 후보는 후보 사퇴는 물론이고 제명을 포함한 당 차원의 징계와 사법적 처벌을 받아야 하는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논란의 핵심은 해당 계정의 이메일 아이디, 핸드폰 번호 등의 정보가 김혜경씨의 개인 정보와 일치한다는 것이다. 이재명 예비후보의 주장은 ‘제3자가 김혜경씨의 개인정보를 도용하여 5년간 계정을 운영하였고 이 예비후보는 그 사실을 모른 채 그 계정과 지속적이고 긴밀하게 소통을 해왔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더더욱 전해철 후보의 공동조사 요구에 응해야 할 명분이 있었음에도 이 예비후보는 응하지 않았다”며 “오히려 계정이 본인을 비난하거나 피해를 준 일이 없어서 고발 또는 고소를 할 수 없다고 말하는 동시에 전해철 후보의 고발은 고발 사유도 되지 않는다고 폄하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끝으로 지 예비후보는 “이번 이재명 사퇴 긴급 기자회견은 나의 철학과 판단에 따라 기자회견을 요청한 것일 뿐 전해철 후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면서 “경기도지사 TV토론이 임박해 발표하게 된 것은 증거자료 수집이 어제 도달되어 검토하고 발표하게 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문 대통령 정상회담 전문가 자문단과 차담회

    문 대통령 정상회담 전문가 자문단과 차담회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을 열흘 앞두고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오후 청와대 경내에서 전문가 자문단과 간담회를 갖는다.앞서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는 임동원 한반도평화포럼 명예이사장 등 원로 자문단 21명과 고유환 동국대학교 교수 등 전문가 자문단 25명을 확정, 발표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2일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1·2차 남북 정상회담을 이끈 원로 자문단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간담회를 갖고, 이들의 경험담 등 구체적인 조언을 청취했다. 임동원 원로자문단 좌장은 이 자리에서 “지난 2000년 6·15의 경험으로 미뤄봤을 때 정상회담 전의 예비회담은 꼭 필요하다”며 “합의문을 초안을 예비회담 때 북에 미리 전달했더니 북으로부터 회담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다는 말을 들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이에 이날도 전문가 자문단에게 의제와 전략 등에 대한 의견을 듣고, 함께 논의할 것으로 관측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인물 플러스] “남 속이지 않고 선하게 살면 반드시 좋은 일이 생깁니다”

    [인물 플러스] “남 속이지 않고 선하게 살면 반드시 좋은 일이 생깁니다”

    “인간은 반드시 뿌리가 있고, 뿌리에서 나무가 자라 마디가 생기고 열매가 열립니다. 운명은 뿌리에서 나무가 자라듯 바꿀 수는 없지만 ‘남을 속이지 않고 선하게 살면 반드시 좋은 일이 생길 것’입니다.” 평생동안 외길을 걸어오며 당대를 대표하는 수경학(壽鏡學)의 대가(大家)인 백파카운셀러상담원(한국수경학연구원) 백파 원장의 이야기다. 수경학은 운명을 통찰하는 학문으로 동양철학의 정수가 담긴 학문이다. 수경학의 창시자이자 불세출의 명인인 윤대현 백파 원장은 남다른 ‘통찰력과 선견지명’으로 심오한 수경학의 경지를 터득, 국내의 유일무이한 수경학 대가로 평가된다. 관록(貫祿)과 통찰력을 바탕으로 ‘희망’을 쏘고 있는 백파 원장은 ‘상담활동’ 외에도 봉사, 나눔활동을 통해 사회 공공의 발전에 앞장서고 있는 인물이다. 본지는 ‘세종시’ 사랑에 빠진 수경학의 명인 백파 원장을 만나 지난 생애와 앞으로의 활동에 대해 들어보았다. 편집자 주현재 백파 원장의 충북 청주 제1사무실과 서울 종로구 제2사무실에는 예약 없이는 상담이 어려울 정도로 상담자가 끊이지 않는다. 그의 통찰력이 신통하기 때문이다. 수경학은 풍수지리와 사업, 직업, 상호명, 가정문제, 작명, 운세 등 많은 분야의 상담이 가능하기 때문에 다양한 사람들이 백파 원장을 찾고 있다. 백파 선생은 지난 1960년대 기업들이 태동하던 시기에는 기업인들과의 인맥을 이어오면서 우리나라 산업계의 발전은 물론, 지리학을 통한 도로, 도시개발 등 국가 기반시설 기획에도 많은 기여를 해 온 인물이다. 사주는 물론, 태어난 시에도 초시, 중시, 말시로 세분화하여 판단하고 상담자 집안의 본과 지역까지 감안해 운명을 통찰하는 백파 선생은 상담자가 모든 것을 허물없이 털어놓고 상담하며 운명과 새로운 희망을 얻을 수 있는 카운셀링으로 정평이 나 있다. “행정중심복합도시 세종에 국운이 걸려 있다” 백파 선생의 통찰력과 예지력은 참으로 신기할 정도다. 해외에서도 백파 선생의 명성이 알려지면서 지난 2002년부터 미국의 한인방송과 CBS 방송 등에서 5년간 재미교포와 현지인을 대상으로 수경학 상담활동을 펼친 바 있다. 매일 진행된 ‘즉문즉답’을 통해 명쾌한 운세판단과 가이드를 제시해 인기를 누렸으며 이러한 영향으로 미국, 중국 등 세계 39개국으로 특별 초청되어 국운과 글로벌기업의 장래를 카운셀링하는 유명인사가 되었다. 백파 선생은 최근 세종시의 발전을 통한 국가 융성 전략을 강조하고 있기도 하다. 세종시를 가장 사랑한다고 말한다. 백 원장은 박정희 대통령 당시 책사를 역임하면서 세종시로 행정수도 이전을 최초설계했던 전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행정수도 이전을 준비했던 풍수지리 및 명리학의 대가로 평가받고 있다. 백 원장은 이미 1973년도부터 국가 수뇌부에 현재의 세종시 자리인 당시 공주군 장기면, 의상면, 연기군 금남면, 남면 등 일대에 나라의 수도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의견을 전달한 바 있다. 당시 정부 차원에서도 백파 원장의 의견을 신뢰하여 큰 관심을 가지고 본격적인 수도 건설을 위한 실사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수도 이전은 미뤄졌지만 백파 원장의 제언에 힘입어 금남면 일대는 항상 수도 이전 최적지로 정치권의 관심을 받았고,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권에 이르러 본격적인 세종시 건설로 이어지게 되었다. “1970년대 초 지금의 세종시 지역에 큰 사고가 있었고 그때 나는 국가 수뇌부의 요청으로 그 지역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지금의 세종시 지역을 면밀히 살펴보고 지형이 너무나 좋아서 나라의 수도 자리로 국가 수뇌부에 건의했고 이를 계기로 정부에서도 큰 관심을 받는 곳이 되었습니다. 당시 일부 사람들은 쓸데없는 소리를 한다고 비판하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오늘날 세종시의 탄생을 볼 때 제 예견이 맞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1973년부터 국가 수뇌부에 현재의 세종시 위치로 수도가 옮겨져야만 나라가 편안해진다고 재차 강조했습니다. 실제로 가보시면 세종시의 지형적 구조가 굉장히 잘 갖추어져 있습니다. 풍수적으로 판단하면 계룡산, 갑하산과 대전 동학사, 마곡사 줄기를 볼 때에 현 세종시의 운기는 바람이 불어 내려와서 쉬었다 가는 형국입니다. 즉 하늘이 내린 땅이라는 뜻입니다. 이 땅은 일반인 중에서도 잠을 못 자거나 피로하거나 정신이 어지러울 때 이곳으로 거처를 옮기면 몸이 회복되는 명당 중의 명당입니다. 그만큼 대단한 지형이고 그래서 이미 40여년 전부터 국가 수뇌부에서도 수도 이전자리로 기획해 왔던 곳입니다.” 백파 원장의 지론이다. 세종시의 현재 위치는 하늘이 내린 자연환경과 지리적 여건으로 과거에도 수차례 국가 융성을 이끌 도시 건설의 최적지로 꼽혀왔던 곳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세종시의 위치는 1500년 전 삼국시대 백제의 두 번째 수도였으며, 조선 건국기에는 서울보다 유력한 왕도의 후보지로 거론됐던 곳이기도 하다. 수경학의 창시자이자 불세출의 명인 수경학은 목숨 ‘수’, 거울 ‘경’자로 동양철학의 정수가 담긴 학문이며 백파 원장은 수경학의 창시자이자 불세출의 명인이다. 백파 원장이 태어난 고향은 옛날 경상남도 동래군 장안면 좌천리 187번지이고, 아버지 윤만갑과 어머니 조재현의 장남으로 1941년 12월 24일 태어났다. 그는 확실히는 모르나 주위 분들이 말하기로 그 당시 어려운 시대였지만, 나름대로 먹고사는 것은 별다른 문제 없이 살아왔다고 한다. 그는 당시 시절은 잘 모르고 주위 사람들 말로 들은 것뿐이다. 백파 아버지는 삼남매로, 누님 한 분과 남동생 한 분이 계셨는데, 누님은 일찍 세상을 떠나 남동생 한 분만 계셨다고 한다. “아버지는 당시 제가 태어난 지 8개월만에 호열자라는 전염병으로 돌아가셨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9일 만에 어머니마저 돌아가셔서 저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 삼촌댁에 가게 되어, 그곳에서 1년 정도 지냈다”고 한다. 당시 너무 어려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삼촌은 건달로 삼촌과 함께 생활하던 부인은 정식 결혼도 하지 않고 술집에 종사하는 여자였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됐다고 한다. 그 후 제 나이 돌이 막 지났을 때 도저히 삼촌댁에서 생활할 수가 없는 처지가 되었던 모양으로 먼 친척의 도움으로 자라던 동네 인근 옥정사라는 절의 비구니 스님이 저를 키워주었다고 한다. 백파 원장의 소회다. 어린 시절 백파 원장은 경남 합천 해인사에서 송파 큰스님의 가르침을 받으며 당대 수경학의 대가(大家)로 성장했다. 그는 남다른 통찰력과 예지력을 가진 인물로 심오한 수경학의 경지를 터득하여 국내 유일무이한 수경학 대가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이후 “해인사 송파 큰스님이 자식처럼 키워주셨고, 스님께서 수경학과 지리학을 집중적으로 공부시켜주셔서 오늘날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던 중 큰스님이 타계하시고 큰스님과 인연이 있던 고마우신 동명목재 강석진 회장과 국제그룹 양정모 회장의 도움으로 거처를 마련하여 큰스님이 가르쳐주신 수경학을 통한 상담업을 부산에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백 원장의 소회는 계속되었다. 그 당시 속칭 ‘총각도사’라는 소문이 부산지역은 물론 전국에 자자했고, 백 원장을 만나려면 3~4일은 걸려야 상담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정도로 이름이 났다. 심지어 백 원장의 상담소 주위에 조그마한 여인숙과 여관이 있었는데 그에게 상담을 받기 위해 손님들이 기다리는 기간에는 주위 숙박업소들이 방이 없을 정도로 손님이 많았다고 한다. “당시 국가 수뇌부의 높은 분들은 물론, 지금은 굴지의 재벌이 된 많은 기업의 창업 회장들의 운명을 상담해 주기도 했습니다. 사실 그때까지도 저는 절에서만 자라서 돈의 개념을 제대로 알지 못했고, 부모의 얼굴도 모르고 형제 하나 없는 단신으로 생활해왔기 때문에 사리사욕을 취하지 않으며 살아왔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시절의 나는 왜 돈과 세상 물정을 모르고 오로지 상담과 수경학 공부에만 집중했는지 아쉬울 때도 있습니다.” 그는 서민부터 국가 최고위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접해왔다. 특히 60년대 우리나라 기업들이 태동하던 시절 기업인들과 인맥을 이어오면서 우리나라 산업계 발전은 물론 지리학을 통한 도로, 도시개발 등 국가 기반시설 기획에도 많은 기여를 했다. “그 당시는 산업발전의 태동기였기 때문에 지금처럼 기업집단을 ‘그룹’이라는 말로 부르지도 않았고, 지금은 누구나 아는 세계적인 기업들도 당시엔 이름조차 생소한 시절이었습니다. 저는 기업들이 사업상 새로운 성장을 시작할 때 또 사업전략을 수립할 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고, 우리나라 굴지의 기업이 형성되는 것을 보며 보람을 느꼈습니다.” 백파 원장은 한국 현대사의 산증인으로서 정계 수뇌부와 국내 굴지의 그룹 총수들의 곁에서 도움을 주며, 국운은 물론 사업 방향과 인재 등용 등 중요한 결정에서 상담활동을 해왔다. 김우중 대우그룹 전 회장의 저서와 정태수 한보그룹 전 회장의 증언에서도 백파 선생이 언급된 바 있기도 하다. 백파 선생은 고 박정희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으로부터, 財界(재계)에는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 최순영 신동아그룹 회장, 양정모 국제그룹 회장, 강석진 동명목재 회장, 한보 정태수 회장, 럭키 구본은 회장, 두산 박용성 회장 등 이루 다 말할 수 없이 많은 인사와 교류했다. 오해와 억울함으로 굴곡진 세월 호사다마(好事多魔)일까. 백파 원장은 어처구니없게 구설수에 휘말리고, 불필요한 고생까지 하게 되는 굴곡을 겪게 된 일도 있다. “지금도 제게 피해를 줬던 얌체 같은 정치인들을 생각하면 정말 치를 떨 정도입니다. 너무나 억울하게 많이 당하고 금전적인 손실도 많았어요. 백 원장은 말한다. 예를 들어볼까요? 제 상담객 중에는 사업적으로 어려운 일을 겪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들은 납품, 사업 인허가 등 여러 가지 애로점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돈만 밝히는 얌체 같은 정치인들은 저를 통해 접근해 애로사항을 해결하겠다고 장담하고 정치후원금을 원했고, 저는 순진하게 남을 도울 수 있다는 마음에 그 말을 믿고 상담객에게 정치후원금을 받아 정치인에게 전달하면 그 뒤로 정치인은 나 몰라라 하기 일쑤였습니다. 그리고 일이 처리되지 않으니 상담객은 나를 사기로 고소합니다.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정치인에게 경찰이 전화하면 정치인들은 그런 일 없다고 발뺌하여 나만 억울하게 당한 것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검사, 경찰 등 사법기관에서 편파적으로 저를 처벌하여 억울했던 울분의 세월을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겠습니까.” 백파 원장의 입장에서는 억울하고 기가 찰 노릇이지만 일개 개인이 힘을 가진 고위공직자를 당해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현실에서 모든 누명을 백파 원장이 뒤집어쓸 수밖에 없었다. 당시 법조계에서는 무조건 전과가 있다 하여 전후 충분한 조사 없이 백 원장에게 벌을 주기도 했고, 심지어 조사관은 백 원장의 말은 듣지도 않고 고위직의 말만 믿고 사건을 처리하기도 했다. 백파 원장은 금전적인 이익만을 챙긴 고위직 대신 자신이 죄를 뒤집어쓰고, 이후 자신을 언제 보았냐는 듯 하는 그들을 보며 사회의 비정함과 비열함을 느꼈다고 한다. 배신과 모함으로 얼룩진 고난의 세월을 견디며 오늘을 버티어 왔다. 봉사와 나눔의 대부(代父) 그러나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수경학의 대가인 백파 원장의 명성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여러 가지 기부활동 외에도 ‘희망과 용기를 주는 밥차’ 활동, 지역 봉사활동, 나눔활동을 통해 사회 공공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남을 속인 적이 없고, 단 십원도 남에게 손해를 끼친 적도 없습니다. 하지만 정치인 때문에 억울한 누명을 쓰고 범법자 취급을 받으며 재산까지 다 빼앗긴 것이 지금도 말할 수 없이 억울합니다. 정치인의 모략에 빠져 전과가 생겼고, 또 전과가 있다 하여 이후 사건에서도 일방적으로 누명을 쓴 것이 가슴에 사무칠 정도로 억울합니다. 그렇지만 인간의 운명을 바꿀 수는 없지만 남을 속이지 않고 선하게 살면 반드시 좋은 일이 생기기 때문에 앞으로 더 베풀고 나누며 살려고 합니다. 경제적 형편이 어려워 상담을 받고 싶어도 오지 못하는 분들은, 망설이지 마시고 방문해 주시면 성심성의껏 상담해 드리겠습니다. 똑같은 상담을 정성껏 진행하더라도 형편이 어려우신 분들께는 절대 사례금도 받지 않고 언제든 무료로 상담해드리고 있습니다. 제 나이 팔십이 넘고 보니 언제 이 세상을 떠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제가 할 수 있는 능력으로 주위 여러분들을 최대한 도우며 살고 싶습니다.” 백파 원장의 ‘사랑과 정’이 담긴 뜻이다. 백파 원장의 선견지명의 카운셀링은 그의 관록(貫祿)과 통찰력이 더해져 상담자들에게 ‘희망’으로 전해지고 있다. 백파 원장은 지금도 상담이 맞지 않을 경우 일절 상담료를 받지 않는다. 백파 선생은 오직 누굴 도우면 도왔지 피해나 주고 신세 지지는 않고 오늘날까지 살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만일 제가 돈을 벌자는 마음을 먹었다면 재벌 회장쯤 되었을 것입니다만 그런 미련은 없고 그저 그동안 잘 먹고 잘 살고 ‘지금도 늘 누굴 무엇을 도와드릴까’만 생각한다는 원장. 그는 굴곡진 인생에서 배운 ‘지혜와 통찰력으로 사회에 봉사한다’는 신념으로 상담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세종을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 한다는 백파 원장. ‘봉사와 나눔의 대부(代父)’ 백파 원장의 향후가 기대된다. 홍의석 객원기자 hong5960@seoul.co.kr
  • 이재명 “혜경궁김씨, 아내 계정 아닌 이유는…” 반박근거 공개

    이재명 “혜경궁김씨, 아내 계정 아닌 이유는…” 반박근거 공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경기지사 예비후보측이 혐오표현·허위사실 유포 등으로 논란이 된 트위터 계정 ‘정의를 위하여(08__hkkim)’가 아내의 계정이 아니라는 장문의 반박자료를 발표했다.이재명 예비후보는 16일 SNS에 ‘트위터 김 씨 계정 사건의 팩트와 결론’이라는 제목으로 A4용지 5장 분량의 글을 올렸다. 이 예비후보는 “김씨는 카카오스토리(이하 카스)를 잠깐 운영하다 중단한 외에 SNS 계정이 없고 하지도 않는다. 김씨의 인스타그램 계정은 2017년 대선 경선 때 캠프에서 시험용으로 만들었지만 사용은 하지 않았고 김씨의 SNS 활동도 이 예비후보의 페이스북 댓글과 기사 댓글을 보고 모니터링해준 수준이었다”고 강조했다. 문제의 계정 주인이 이 예비후보가 어머니와 찍은 대학입학 사진을 어떻게 이 예비후보보다 10분 먼저 올릴 수 있었냐는 의혹에 대해 법률 자문단은 △2014년 1월 15일 오후 10시 40분 김혜경 씨가 카카오스토리(일명 카스)에 ‘이재명 대학입학 사진’을 올렸고 △오후 10시 50분 08__hkkim이 김혜경 씨의 카스 계정에 있던 ‘이재명 대학입학 사진’을 다운받아 올렸고 △오후 11시와 11시 16분에 이 예비후보가 본인의 카스 계정과 트위터 계정에 ‘이재명 대학입학 사진’을 각각 올렸다고 적었다. 자문단은 김혜경씨의 생일 8월과 이 계정 아이디가 연관이 있다는 지적에는 “SBS 동상이몽 ‘아내 생일편’은 2017년 9월이지만 제작 사정 상 8월 말에 촬영을 한 후 다시 선물을 주는 장면을 9월 초에 찍고 실제 생일에 맞춰 방영한 것”이라며 “김혜경 씨의 실제 생일은 9월 1*이다.실제 생일이 9월로 밝혀지자 음력 생일이 8월이라는 주장도 나왔는데, 음력생일은 7월 2*”이라고 밝혔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인식과 태도에서도 억울함을 표했다. 자문단은 “김혜경씨는 노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를 존경하고 자주 만나며 권 여사도 김혜경씨를 아껴줬다”면서 김혜경씨가 노 대통령 서거 당시 성남의 야탑분향소를 지켰고, 수 년 동안 매해 노무현 대통령 참배와 권양숙 여사 예방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법률자문단은 ‘08__hkkim’이 김혜경씨의 카스를 받아보는 사람이고, 이재명 예비후보에게 관심이 많은 사람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또 이번 의혹에 대해 고소·고발하지 않고 소극적이었던 이유로 “선거 상황에서 내부를 향한 과잉대응으로 비춰질 우려 때문이었다”고 해명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이재명 “내 아내, 혜경궁 김씨 100% 아냐…‘노빠’에 가깝다”

    이재명 “내 아내, 혜경궁 김씨 100% 아냐…‘노빠’에 가깝다”

    이재명 전 성남시장이 ‘혜경궁 김씨(@08_hkkim)’라는 트위터 계정이 부인 김혜경 여사가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 “100% 아니다”라고 밝혔다.이 전 시장은 16일 오전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저나 제 아내는 매년 노무현 대통령님 참배도 가고 권양숙 여사도 찾아뵙고 한다”면서 “아내는 대단히 노무현 대통령을 존경하고 정말로 오랫동안 분향소에서 며칠 밤을 새울 정도로 그야말로 ‘노빠’에 가까운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논란의 계정에 대해 “이니셜 ‘hkkim’으로 문제를 제기하는데 아내는 카카오스토리를 잠깐 한 뒤로는 SNS를 전혀 하지 않는다”면서 “네거티브한 주장에 대해 일일이 반응하는 것 자체가 네거티브다. 오늘 늦게 쯤 모든 팩트들을 다 정리해서 논리적으로 밝히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제의 계정은 2012년에서 2013년에 만들어진 것 같은데, 당시 트위터 계정의 방침은 이메일 주소나 전화번호 등록 같은 인증절차 없이 가능했을 때였다”면서 “네거티브하게 보자면 가수 김흥국씨의 아이디도 ‘hkkim’ 아니겠냐”고 덧붙였다. 이재명은 “일각에서는 그 계정이 부인의 것이라면 사퇴를 말할 정도로 확신이 있냐고 물어 달라는 질문도 들어온다”는 사회자의 말에 “제 가족이고 제가 집안의 가장이기에 제 가족 구성원 중에 누군가 그런 부도덕한 행위를 했다면 책임을 지는 것은 맞는데 공직을 걸고 사퇴니 마니 하는 것들은 좀 오버라는 생각이 든다”고 답했다. 이어 “(혜경궁 김씨 계정에 대해)오해를 할 수 있는 것은 인정한다. 그런데 그렇다고 단정하면 안 되는 것 아니냐”면서 “오늘 늦게나 하나하나 팩트들을 정리해서 (혜경궁 김씨가 김혜경씨가) 아닌 이유를, 그들의 주장이 잘못된 것을 논리적으로 증거에 의해서 다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08_hkkim’ 계정의 트위터 이용자는 지난 3일 전 의원을 향해 “전해철 때문에 경기 선거판이 아주 똥물이 됐다”라는 글을 올렸다. 이를 두고 이 계정의 주인이 이 후보의 아내인 김혜경 씨와 영문 이니셜이 같다는 점 등의 이유로 김씨가 아니냐는 의혹이 인터넷상에서 제기됐다. 이에 대해 이 후보는 지난 5일 페이스북 글에서 “지금 인터넷과 SNS상에서 제 아내를 향한 허위사실에 근거한 인신공격과 마녀사냥이 벌어지고 있다”면서 “아내는 SNS 계정이 없고 하지도 않는다. 아내에 대한 인신공격을 멈춰달라”고 반박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드루킹은 왜 오사카 총영사 자리를 요구했나?

    드루킹은 왜 오사카 총영사 자리를 요구했나?

    네이버에 실린 기사의 댓글 추천 수를 인위적으로 늘려 지난달 25일 구속된 민주당원 김모(49·인터넷 필명 ‘드루킹’)씨 사건으로 정치권이 술렁이고 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 이어 문재인 정부에서도 댓글조작 논란이 제기된 상황이기때문이다. 제1야당인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인터넷 댓글 조작 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과 관련해 16일 “문 정권 실세들의 민낯이 드러나기 시작했다”고 비난했다. 반면 여권은 이번 사건을 댓글활동 및 지지세력 과시를 통해 청탁하고, 청탁이 거절당하자 정권을 사이버 테러한 사건으로 규정하면서도 사건의 파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민주당은 이날 국회에서 가진 최고위원회에서 드루킹 등 댓글조작연루가 확인된 당원 2명에 대한 제명을 의결했다. 드루킹 사건을 둘러싼 궁금증을 정리했다. 매크로는 뭐고 드루킹 댓글 조작은 대선에 영향을 줬나? 매크로는 한꺼번에 여러 댓글을 달거나, 댓글 추천수를 급증하게 만드는 프로그램이다. 네이버에 실린 기사의 댓글 추천 수를 인위적으로 늘려 지난달 25일 구속된 민주당원 김씨가 이 프로그램을 구입한 시기는 지난 1월 15일이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을 처음 사용한 것은 이틀 뒤인 같은달 17일로 알려졌다. 따라서 드루킹이 매크로를 활용한 댓글 조작으로 지난해 치뤄진 대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고는 보기 어렵다. 다만 드루킹이 만여명에 달하는 회원수를 둔 파워블로거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의 글이 어떤 식으로든 정치적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드루킹은 자신이 만든 인터넷 카페 경제적 공진화 모임(경공모) 의 회원에 따르면 드루킹은 ‘프리메이슨이나 일루미나티가 청와대를 장악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문 대통령이 관여했거나 방기의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일반인이 댓글다면 문제가 되나? 공무원 신분이 아닌 일반 국민 신분에서 자유로운 의사표현으로 특정 정치인을 지지하거나 비판하는 것은 선거기간 여부에 관계없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매크로를 활용한다든지 불법적인 방법을 사용했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 드루킹은 무슨 뜻인가? 온라인 게임인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W·와우)’에 나오는 ‘드루이드(고대 유럽의 마법사)’에서 따온 것이다. 드루킹은 ‘드루이드의 왕(king)’이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민주당원인 김씨의 트위터 계정은 ‘D_ruking’으로 개설돼 있다. 김씨는 2010년 7월 지인에게 보낸 트위터 메시지에서 “와우를 안 한 지 십만 년인데 어떤 캐릭터로 하시나요. 저는 사냥꾼과 드루이드(를 합니다). 그러니 드루킹”이라고 언급했다. 드루킹은 누구? 포털에 시사 블로그 ‘드루킹의 자료창고’를 운영하던 사람이다. 그는 2000년대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지지해 온 인터넷 파워블로거다. 국내 정치상황과 국제 정세를 다룬 블로그 ‘드루킹의 자료창고’를 방문자 누적 통계는 980만명에 이른다. 2009, 2010년 시사·인문·경제 분야 ‘파워블로그’로 선정되기도 했다. 드루킹은 왜 오사카 총영사 자리를 달라고 했나? 드루킹은 자신이 만든 인터넷 카페 경제적 공진화 모임(경공모) 대화방에서 지난 1월 회원들에게 “우리가 1년 4개월 간 문재인 정부를 도우면서 김경수 의원과 관계를 맺은 건 다 아실 것”이라면서 “김 의원에게 제가 대선 승리 전 두어번 부탁을 한 게 회원분들을 일본 대사로, 또 오사카 총영사 자리로 요청을 했다”고 밝혔다. 또 “김 의원이 그 자리는 외교경력이 풍부한 사람이 해야 돼서 못준다고 했다”고 전했다. 오사카 총영사에는 한겨레 신문논설위원실 출신인 오태규씨가 지난 9일 임명됐다. 이에 대해 김씨는 “오사카 총영사 자리에 외교경력이 없는 인사가 발령받으면 행동에 들어가겠다. 날려줘야죠”라고 덧붙였다. 김씨는 “우리가 성장해 아무도 무시 못하는 조직이 됐다. 네이버를 들었다 놨다 한다”고 하기도 했다. 드루킹이 오사카 총영사 자리를 왜 달라고 했는지에 대해 구체적 이유는 파악되지않고 있다. 다만 추측은 해볼 수 있다. 경공모의 한 회원은 16일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세계 대공황 예언이 빗나간 이후 그가 회원들에게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송하비결 재해석, 일본 침몰 등을 이야기하고 이 과정에서 정치인들의 영향을 얻으려 진보정당의 유력정치인들을 접촉한 것 같다”고 추측했다. 이 회원은 “드루킹이 진보정치인 두 명을 접했는데 그 중 한 명은 현재 유모작가로 알려진 분이고 다른 한 분은 회원활동을 하다 국회의원에 당선된 후 관계가 멀어졌다”며 이같이 밝혔다. 경찰 수사는? 경찰은 이 사건의 배후와 공범 여부, 여죄 등을 캐기 위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김씨가 김 의원에게 보낸 온라인 메신저 텔레그램 메시지 등에 대한 분석을 통해 김 의원의 사건 연관성 여부를 파악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해외에서 온 편지] ‘문화 외교관’ 한국드라마… 스페인 안방 ‘심쿵주의’

    [해외에서 온 편지] ‘문화 외교관’ 한국드라마… 스페인 안방 ‘심쿵주의’

    이종률 駐스페인 한국문화원장 2000년대 초반 스페인 아스나르 총리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을 만나러 미국을 방문했다. 텍사스 목장에서 만나기로 한 부시가 예정시간에 나타나지 않자, 다소 무료한 표정을 짓던 아스나르 총리에게 백악관 보좌관이 묻는다.“스페인이 가장 많이 수출하는 것이 무엇인지요?”(보좌관) “자동차입니다.”(총리) “아니요, 스페인에서 가장 많이 생산하는 것 말입니다.”(보좌관) “자동차입니다.”(총리) “아니요, 스페인에서 가장 많이 생산해서, 가장 많이 해외로 수출하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한 건데요!”(보좌관) “네! 그게 바로 자동차라니까요!”(총리) 대부분 사람들은 스페인하면 ‘태양’, ‘축구’, ‘플라멩코’, ‘투우’, ‘피카소’, ‘돈키호테’ 등을 연상하지만 스페인은 세계 8위의 자동차 생산국이자, 2017년 기준 세계 14위 규모의 경제 대국이다. 당시 백악관 보좌관은 아마도 와인이나 올리브가 스페인의 으뜸 수출품일 것으로 예상하고 물어본 것이다. 필자는 지난해 9월 주스페인 한국문화원장으로 부임한 뒤 이곳 스페인 사람들 또한 중국, 일본, 인도를 아는 것에 비해 한국을 너무 많이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깝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 한국 알리려면 한국 드라마를 보여 줘라 2002년 한일월드컵 직후 주멕시코대사관에 1등 서기관으로 부임했을 때가 떠올랐다. 당시 필자는 멕시코에서 처음으로 지상파 방송을 통해 한국 드라마 ‘이브의 모든 것’과 ‘별은 내 가슴에’가 방영되도록 했고, 이때부터 한국은 멕시코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후 대사관으로 한국 드라마 OST를 구해 달라는 현지인들의 요청이 빗발쳐 “드라마별로 그룹을 만들어 공식적으로 요청하면, 한국의 방송사에 여러분들의 사연을 소개해서 구해주겠다”고 했고, 그 약속을 지켰다. 당시 조직된 장동건 팬클럽, 안재욱 팬클럽은 중남미 최초의 한류 팬클럽이다. 이들은 2005년 노무현 대통령의 멕시코 방문 당시 ‘대통령님, 장동건, 안재욱 보내주세요’라고 쓰인 피켓을 들고 숙소를 나서는 대통령을 향해 기습시위를 벌였다. 처음엔 다소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상황을 파악하고 웃으며 승용차에 오르던 노 대통령이 기억 난다. 기자들도 한류 팬클럽의 기습시위를 비중있게 다뤘다. 나중에 필자가 정부 온라인 매체에 기고한 글에서 ‘기습시위가 사실은 대사관과 사전협의된 이벤트였다”고 고백하자, 노 대통령이 직접 “이 홍보관이 미리 귀띔해주었더라면, 내가 ‘알았다!’라고 시원스레 말했을텐데”라고 댓글을 달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 멕시코·아르헨서 한국드라마 브로커(?)로 중남미의 지성으로 평가받는 카를로스 푸엔테스가 언급한 것처럼 아즈텍, 마야 등 원주민 문명이 근원을 이루는 멕시코와는 판이하게 다른 아르헨티나에 2009년 한국문화원장으로 부임했을 때 필자는 현지 동포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드라마 방영을 첫 번째 목표로 삼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한류 사각지대’로 불리던 아르헨티나는 백인 중심의 인종 구성, 유럽 지향적 국민 정서로 인해 한국을 비롯한 일본, 중국 등 아시아 드라마가 방영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PPT까지 만들어 각 방송사 프로그램 구매 및 편성 담당자를 찾아다니며 설득했지만 늘 마지막 대답은 “한국 드라마 콘텐츠는 참 좋다. 하지만 만약 시청률이 나쁘면 광고가 줄어들고 나는 목이 날아간다. 나는 내 목까지 걸고 모험을 할 만큼 용기 있는 사람이 못된다. 이해해 달라”였다. 그래서 착안한 것이 한국 드라마 방영 청원 운동이었다. 최소한의 고정 시청률만 담보된다면, 방송사에서 긍정 검토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현지 한류 팬클럽과 함께 SNS를 통해 ‘우리는 ‘시크릿 가든’을 보고 싶어요’라는 홍보 활동을 전개했다. 2014년 9월 한 달간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페이스북에서 ‘좋아요’를 눌렀고, 이 결과를 가지고 현지 최대 미디어그룹인 끌라린(Clarin)의 방송 편성 책임자를 설득했다. 마침내 ‘시크릿 가든’은 황금시간대인 토요일 밤 8시에 마가진(Magazine) TV를 통해 방영됐다. 아르헨티나에 부임한 지 꼭 7년 만의 일이었다. 그렇게 힘들었던 한국 드라마 방영은 ‘천국의 계단’, ‘별에서 온 그대’로 봇물 터지듯 이어졌다. # 이젠 마드리드 지상파에 한드 방영할 날 성큼 이제 멕시코를 거쳐 아르헨티나를 지나 스페인 안방극장에서도 한국 드라마를 볼 날을 기대해 본다. 드라마에는 젊은이들의 우정, 사랑, 가족, 역사, 문화, 음식 등 모든 것이 녹아 있다. 한국 드라마 방영은 한국의 국가 브랜드는 물론이고, 현지 진출 한국 기업과 한인 동포의 이미지 상승에도 결정적이다. 한 나라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친밀감을 제고하는 데 이만큼 효과가 있는 도구는 없다. 미리 살짝 귀띔하면, 외화 프로그램 편성 비율이 높은 지상파 텔레마드리드 방송이 처음 한국 드라마를 방영할 가능성이 높을 것 같아 물밑 접촉 중이다!
  • 경찰, 댓글 그룹 5~6개 더 포착… 지난 대선 활동 여부도 수사

    경찰, 댓글 그룹 5~6개 더 포착… 지난 대선 활동 여부도 수사

    金의원과의 텔레그램 복원 주력 진보 댓글도 수차례 조작 확인 8년간 출간 안 한 출판사 운영“공범 가능성… 숫자 특정 못해”‘더불어민주당원 댓글 조작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이 파워블로거 ‘드루킹’으로 활동해 온 김모(49·구속)씨의 범행 배후와 공범, 여죄 등을 규명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김씨 일당 외에도 댓글 추천 수를 조작한 그룹이 5~6개 더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들이 수많은 댓글을 조작해 온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15일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에 따르면 경찰은 지난달 22일 김씨의 경기 파주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에서 확보한 각종 자료를 분석하고 있다. 또 김경수 민주당 의원이 김씨 일당의 범행에 연루됐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김씨가 김 의원과 메신저 ‘텔레그램’을 통해 주고받은 메시지를 복원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김씨 일당은 현 정부를 비판하는 ‘보수 성향’의 댓글 2건을 조작하기 이전에 ‘진보 성향’의 댓글도 수차례 조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기사를 띄우기 위해 편향적인 댓글을 다는가 하면 조회 수와 추천 수를 늘리는 방법을 동원했다. 경찰은 이들의 추가 범행에 대해 확인에 나서는 한편 지난 대선 과정에서 댓글 조작이 있었는지도 확인할 계획이다. 경찰 관계자는 “공범이 더 있다고 보고 있지만, 아직은 공범 수를 특정할 수 없다”면서 “김씨 등이 매크로 프로그램을 테스트하는 차원에서 한 차례만 이용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씨 일당 3명은 지난 1월 17일 밤 자동화 프로그램 ‘매크로’를 사용해 네이버 기사 댓글 2개에 600여 차례씩 ‘공감’을 누른 혐의(업무방해)를 받고 있다. 이들은 이동식저장장치(USB)를 변기에 버리는 등 증거 인멸을 시도해 구속됐다. 김씨는 친노무현·친문재인 성향의 유명 논객으로, 국내외 주요 인사들을 초청해 강연을 하면서 영향력을 과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내에서도 이미 영향력이 상당한 인물로 통했다고 한다. 한 여권 관계자는 “국회의원이라고 해도 한번에 200명씩 사람을 부르기 어려운데 김씨는 그런 모습을 자주 보여 의원들로서는 무시하기 어려운 인물이었다”고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김씨가 대선을 앞두고 지나친 행동(세력 과시 등)을 보여 조심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었다”고 귀띔했다. 김씨는 최근 8년간 펴낸 책이 한 권도 없는 유령출판사인 ‘느릅나무’의 공동대표를 지난 2월까지 맡았다. 함께 구속된 우모(32)·양모(35)씨도 김씨와 함께 이 출판사에서 근무한 것으로 알려졌다. 댓글 추천 수 조작도 이 출판사에서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는 2000년대 초반 ‘서프라이즈’라는 진보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뽀띠’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며 노무현 정부 외교정책을 치켜세우기도 했다. 2010년에는 ‘드루킹의 차트혁명’이라는 주식 전문서를 펴내기도 했다. 김씨는 또 자신을 ‘경제적공진화모임(경공모)의 매니저’로 소개했다. 경공모는 김씨가 2014년 소액주주 운동을 목표로 연 인터넷 카페로 회원 수는 2500여명이다. 김씨는 2016년 1월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이 블로그를 운영하는 주체는 드루킹 한 개인이 아니라 적어도 1000명이 넘는 네트워크로 이뤄진 조직”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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