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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文대통령, 외부와의 소통에 문제… 직언하는 참모 있어야”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文대통령, 외부와의 소통에 문제… 직언하는 참모 있어야”

    “소득주도성장의 성과가 안 나오는 건 최저임금만 가파르게 올렸기 때문입니다. 지금이라도 확장적 재정정책과 복지 증세 정책을 펼쳐야 합니다.” ‘84%(2017년 6월 2일)와 45%(2018년 12월 11일).’ 문재인 정부 지지율의 최고치와 최저치다. 집권 1년 반 만에 절반 가까이 빠졌다. 이는 상당 부분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충격과 고용 악화, 경기 하락 등 경제정책의 실패에 따른 결과다. 이에 야당 등에서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참여정부의 첫 정책실장을 지낸 국내의 대표적인 진보 경제학자 이정우(68) 한국장학재단 이사장은 지난 17일 서울 남대문 한국장학재단 서울사무소 이사장 집무실에서 가진 인터뷰 등에서 “정부가 당장의 실적에 일희일비하는 대신 조급증을 버리고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제대로 펼쳐야 한다”고 역설했다.→최근 경기 하락은 산업 경쟁력 약화라는 구조적 요인과 더불어 정부 정책의 실책도 원인으로 꼽히는데. -우리 경제가 직면한 문제로는 부동산 폭등 등 불평등 심화와 불로소득 팽창에 따라 혁신성장이 이뤄지지 못하고, 대·중소기업 간의 공정경제 구조가 미흡하며, 증세 등을 통한 적극적 재정정책이 부족하다는 걸 꼽을 수 있다. 이를 위한 처방으로 소득주도성장과 공정경제라는 정책 방향을 설정했고, 이는 잘 잡았다고 본다. 그러나 의사의 진단은 옳았는데 처방 약을 너무 약하게 썼다. 그래서 환자가 병원에 입원했는데도 계속 고통을 받고 병은 낫지 않는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특히 토지 보유세 강화와 복지 증세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게 결정적이었다. 앞서 밝혔던 세 가지 문제를 해결했다면 중산층 서민의 소비 진작 효과가 커지면서 지난해 우리 경제는 3~4% 성장도 가능했을 것이다(실제로는 2.7% 기록). 국가 경제정책의 핵심인 성장과 분배, 고용이 살아나려면 순서가 중요하다. 분배가 잘되면 성장이 일어나고 고용이 따라오게 돼 있다. 정권 초반에 “마차(일자리)를 말(경제성장) 앞에 둘 수 없다고 지적한 까닭이다.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평가는. -적정 수준은 5~10% 인상 정도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실질국내총생산(GDP) 성장률에 물가상승률을 합친 명목GDP 성장률보다는 조금 높은 수준이 바람직했다. 무엇보다 최저임금 인상 충격을 보완하기 위한 일자리 안정자금 제도가 정부의 ‘실적 쌓기’용으로 변질되고, 정작 저임금 노동자에게는 돌아가지 않는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비슷한 사례가 영국이 1795년 저임금 농업 노동자의 빈곤을 보전해 주기 위해 마련한 스피넘랜드(Speenhamland) 제도다. 자본가는 최저임금 이하로 임금을 주면서 부족액은 보조금으로 메우려 했고, 노동자는 최저임금이 보장되니 노동생산성이 급속히 떨어졌다. 생산성이 하락하자 자본가는 임금을 올리지 않는 악순환이 계속됐다. 200년이 지난 뒤 한국에서 스피넘랜드 제도와 유사한 정책이 시행됐다는 건 잘못된 일이다. 한국의 시간당 임금이 다른 선진국과 비교해도 이젠 중간 정도는 되는데도 과도한 인상으로 몰아갔다. 대선 공약 중 하필 1만원 공약만 너무 충실했다. 선거 과정에서는 일부 지나친 공약을 내놨어도 선거 이후에는 냉정을 되찾았어야 했다. →정권 초반에 소극적인 재정정책으로 일관한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균형재정은 굉장히 중요하지만 장기적인 목표에 해당한다. 경기가 바닥일 때는 적자 재정정책을 쓰고, 경기가 좋아질 때는 흑자 정책을 써야 한다. 그러나 기획재정부는 계속 흑자가 나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것 같다. 지금과 같은 불황기에 두 해 연속 대규모 흑자가 발생한 것은 다소 실책이 아닌가 싶다. 한국 경제의 문제는 투자, 수출, 재정이 아니라 소비의 저조이고, 그것은 분배의 불평등에 기인한다. 이 문제를 타개하는 유효한 수단이 소득주도성장이다. 정부 재정이 소득주도성장을 뒷받침하는 적극적 역할을 했어야 한다고 본다. 기재부는 대단히 유능한 관료 집단이다. 그럼에도 새로운 아이디어는 드물고 늘 비슷한 대책만 갖고 온다. 대표적인 게 예산의 조기 집행이다. 예산을 앞당겨 쓴다고 무슨 큰 효과가 있나. 그보다는 부동산 보유세 강화, 복지를 위한 증세, 대기업 갑질 근절 등 근본 처방이 필요하다. 그러나 기재부는 수술실에 들어온 중환자에게 환부에 소독약 바르는 정도만 하고 있으니 답답하다. 참여정부 때 근로장려세제 도입 직전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회의를 직접 주재했다. 그 자리에서 당시 모 경제 부처 장관이 ‘사회주의적 발상’이라고 엉뚱한 시비를 걸고 나왔다. 이미 오래전에 미국이나 영국에서 성공한 근로장려세제에 대한 이해조차 없던 거다. →문 대통령이 경제 면에서 편향된 정보만 보고받아 잘못된 판단을 한다는 관측도 있다. -문 대통령은 경청하는 열린 귀를 갖고 있는 건 확실하다. 노 전 대통령과 비슷한 점이다. 다만 최근에는 외부와의 소통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노 전 대통령은 외부와의 소통을 굉장히 많이 했다. 참여정부 당시에는 청와대 안이 외부의 학자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학자들의 발길이 끊긴 것 같다. 청와대에 다녀왔다는 학자를 거의 본 적이 없다. 경제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대통령이 (외부에) 전화라도 해서 자문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 게 아쉬운 점이다. 현재 청와대 비서진 중에서는 유능하면서도 선량한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직언하는 참모가 있어야 한다. 당장은 옳은 말을 하는 게 어렵지만, 지나고 보면 누군가 이야기를 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악화된 경제지표를 올리기 위해 조바심을 낸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재인 정부는 기로에 서 있다. 그러나 성과가 안 나오는 건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존 기조를 버리고 경제활성화나 투자 촉진, 기업 기 살리기 등으로 돌아갈까봐 걱정이다. 이는 지난 10년간 줄곧 봐 오던 모습이 아닌가. 혁신성장은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중요하다. 소득주도성장은 한국처럼 불평등이 심해서 중산층 서민의 소비 수준이 낮은 나라에서만 잘 듣는 약이라 강조하는 것이다. 어느 정도 불평등이 해소되고 소비가 올라가고 경제가 살아나면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약이 안 들을 것이다. 그때는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엔진은 필요 없고, 혁신성장 한 개의 엔진만으로도 갈 수 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에 대한 평가는. -참여정부 직후 한 심포지엄에서 당시 김상조 교수는 “재벌 개혁과 관련해 참여정부가 한 게 하나도 없다”고 혹독하게 비판하더라. 이에 대해 참여정부 첫 공정위원장이던 강철규 서울시립대 명예교수가 “아마 맞는 말이겠지요”라며 더이상 변명을 하지 않았다. 몇 년 뒤 젊은 학자가 김 위원장을 향해 “문재인 정부는 재벌 개혁에 관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공격할까봐 걱정이다. 본인은 열심히 재벌 개혁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왜 아무것도 안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입법권을 가진 국회의 반발로 못 한다고 이야기하는데 법을 고치지 않고도 할 수 있는 게 많다. →청년 실업 문제는 해결이 쉽지 않아 보이는데. -청년 실업은 세계적 문제이자 한국의 문제다. 과거에 비해 청년의 구직이 매우 어려워졌다. 제조업의 고용탄력성이 하락한 것도 있지만, 산업구조 변동에 때맞춰 적응하지 못한 면도 있다. 제조업을 대체할 서비스업에서 일자리를 만들어 내야 한다. 구조 변동에 따른 이직을 촉진하되 새 일자리의 구직과 훈련을 강화해 일자리 전환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하는 사회안전망을 조속히 갖춰야 한다. 최근 이슈가 된 택시 카풀 문제도 먼 장래를 내다보는 국가의 적절한 개입,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새 기술은 적극 받아들이되 그늘은 보살피는 국가의 역할이 요구된다. →기업의 안정적인 경영과 투자 보장을 위해 차등의결권이나 가중의결권 등을 인정하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 등이 가중의결권 등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다만 우리 상황에서 총수 일가에게 면죄부를 주는 결과를 낳을 수 있어 동의하기 어렵다. 재벌 개혁 중 외부 개혁이 대기업의 갑질 근절이라면 내부 개혁은 지배구조 개혁이고, 그 수단으로 노동이사제도 고려해 봄직하다. 외환위기 이후 사외이사제도가 도입된 지 20년이 지났지만, 한국에서는 외부 교수들이 용돈을 타 쓰는 대신 99.9% 찬성하는 거수기로 왜곡됐다. 미 코닝사나 사우스웨스트항공 등 기업들은 노동자의 경영 참여를 보장하면서 혁신을 이룬 성공 사례다. →민주노총이 오는 28일 대의원대회에서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참여를 결정할지 관심이 쏠린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강경파들의 바다 위에 떠 있는 외로운 섬이다. 김 위원장은 사회적 대화를 내걸고 등장한 지도부다. 정부가 노동계를 자극할 수 있는 발언을 하는 건 전혀 도움이 안 된다. 대통령은 노동에 대한 이해가 높지만, 청와대 안에 노동을 아는 이가 별로 없다는 게 문제다. →지금까지 고향인 대구를 거의 떠나지 않은 게 눈에 띈다. 성향이 보수적인 대구와 맞지 않는 것 같은데. -대구에서만 50년을 살았다. 서울(서울대 경제학과 등)에서 12년, 미국 보스턴(하버드대 경제학과 박사과정)에서 6년 지낸 게 타지 생활로는 유일하다. 유학을 끝낸 뒤에도 의리를 지키기 위해 그 전에 교편을 잡던 경북대로 다시 돌아왔다. 원래 대구는 혁신적인 움직임이 활발했던 도시다. 해방 직후에는 ‘조선의 모스크바’로 불리었다. 초등학교 5학년 담임 선생님도 4·19혁명 이후 교원노조 활동에 적극적이었고, 수업 시간마다 사회 부조리에 대해 자주 이야기했던 게 기억난다. 부친(고 이종하 영남대 법대 학장)도 노동법을 전공해 진보 성향에 가까웠고, 그 때문에 고초도 겪으셨다. 그런 분위기에서 성장한 덕분에 분배 문제 등에 관심을 갖게 된 것 같다. 대구 사람들이 정치적으로는 보수적이지만 인간적으로 상당한 매력이 있다. 의리와 체면을 중시하고 파렴치한 행동을 지탄하는, 일종의 선비 문화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러한 문화는 우리가 보전해야 할 가치라고 생각한다. 이두걸 논설위원 douzirl@seoul.co.kr
  • “주민의 입장에서 삶의 질 혁신… ‘소확행’ 노원의 길 가겠다”

    “주민의 입장에서 삶의 질 혁신… ‘소확행’ 노원의 길 가겠다”

    “소확행으로 구민들의 삶을 바꾸고 미래 성장동력을 만들어 가는 노원구를 만들겠습니다.” 오승록 서울 노원구청장이 22일 서울신문과 가진 신년 인터뷰에서 주민들의 소소한 행복에 천착하는 따뜻한 행정, 미래 성장동력의 토대를 만드는 성과를 만드는 행정 두 가지를 임기 2년차 구정 목표로 제시했다. 폭염 대책과 한파 대책 등에서 재기 넘치는 역량을 보여 준 오 구청장은 주민들에게 다가가는 정책을 구상하기 위해 신문을 꼼꼼히 챙기고 구청 직원과 주민들을 쉴 새 없이 만나겠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지난해 임기를 시작하고 나서 이제 2년차를 맞는다. 새해 각오는. -올해 구정 슬로건을 ‘오늘이 행복하고 내일이 기대되는 노원’이다. 소확행을 통해 구민들의 삶을 바꿔 나가는 노원구를 만들자는 뜻을 담았다. 아울러 미래 성장동력을 만들어 가는 가시적인 성과를 만드는 한 해가 되자는 의지를 표현했다. 그렇게 현재와 미래를 함께 만들어 가는 구정을 추구하고 싶다.→지난 한 해를 되돌아볼 때 가장 큰 성과로 무엇을 꼽고 싶나. -주민들이 기뻐하고 행복을 느끼는 게 멀리 있는 대단한 사업이 아니라는 걸 몸으로 느꼈다. 폭염과 한파에 힘들어할 어르신들을 위한 대책에 기뻐하고 예쁘게 심은 꽃과 그늘막 디자인을 좋아하신다. 6개월 동안 가장 보람 있었던 걸 꼽으라면 구청 직원들과 소통하며 호흡을 맞춰 나간 것이다. 구청장과 구청 직원들이 서로 생각을 이해하고 보조를 맞춰 가고 있다. 남은 임기 동안 더 잘해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동주민센터 업무보고를 비롯해 주민들을 계속 만나면서 노원의 미래를 함께 고민했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 →지난해 가장 아쉬웠던 건 어떤 것인가. -노원구의 오랜 숙원 사업인 창동차량기지와 도봉면허시험장 이전 부지 확정을 마무리 짓지 못했다. 노원구로선 10년 넘게 노력해 왔는데 아직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안타깝다. 올해 반드시 이뤄야 할 숙제라고 생각한다. 올해는 이전 기지를 확정해 노원구의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겠다.→올해 주력하려는 핵심 사업 목표는 무엇인가. -창동차량기지와 도봉면허시험장을 이전하고 나서 개발 청사진을 만들어야 한다. 청사진이 있어야 어떤 시설을 포함하고 어떤 기업이 입주할지 결정할 수 있다. 서울시에서 추진하는 강서구 마곡지구나 상암DMC 선례는 물론이고 해외 사례도 많이 연구하고 장점을 배우려고 생각 중이다. 광운대 역세권에 있는 시멘트 공장을 옮긴 뒤 어떤 방향으로 개발할 것인지도 중요한 과제다. →올해 예산안에서 가장 초점을 맞춘 것은 무엇인가. -자연·문화·복지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자연은 수락산 자연휴양림이나 불암산 힐링타운 등 주민들이 서너 시간 동안 맘 편히 놀 수 있는 녹지를 만들자는 뜻을 예산에 담았다. 영축산에는 무장애숲길을 조성하고 화랑대 철도공원에는 박물관과 야간경관 조명을 조성한다. 문화예술회관은 공연의 수준을 더 높일 예정이다. 특히 북서울미술관에서 천경자·이중섭 전시회도 열 계획이다. 주민들이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돕는 문화재단도 설립하려고 한다. 공동육아방이나 초등돌봄센터, 고교 무상급식. 어린이집 보육교사 처우 개선도 중요한 과제다. 어르신 쉼터와 청소년 공간도 권역별로 추가하려 한다.→노원구는 다양한 주민 맞춤형 정책이 인상적이다. 참신한 아이디어가 많이 나오는 비결은. -주민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가장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유심히 보고 놓치지 않고, 주민 입장에서 생각하는 게 핵심이다. 왜 낮에만 무더위 쉼터를 운영할까 밤에도 더운데 선풍기로만 열대야를 보내려면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다가 무더위 쉼터라는 폭염 대책이 나올 수 있었다. 겨울에 24시간 따뜻하게 지낼 수 있는 공간을 고민하다가 찜질방을 생각하게 되면서 한파 쉼터를 구상했다. 반려견 1000만 시대라고 하는데 반려견 걱정에 명절 귀향길을 망설인다는 신문 기사를 보다가 반려견 돌봄서비스를 내놓게 됐다. 구청장이 되니까 기사를 더 꼼꼼히 보면서 아이디어도 얻고 다른 지역 사례도 연구하게 된다. →구청장으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구정 원칙은 무엇인가. -결국 관계가 핵심이다. 내가 최종 책임자이고 결정권자이지만 혼자 할 수 없다는 생각이 확고하게 있다. 노원구청 직원이 약 1500명이다. 과장만 40여명이다. 각 분야에서 직원들이 신나게, 자기가 구청장인 것처럼 일하도록 하면 구정은 자연스럽게 굴러간다. 구청장 혼자서는 결코 40개 부서 업무를 다 할 수가 없다. 권한을 많이 나눠주려고 노력한다. 일 잘하는 직원에겐 인센티브도 주고 휴가도 보내 주는 식으로 상벌제도를 명확하게 해야 한다. 사람과 사람으로서 친하게 지내는 것도 중요하다. 호프타임도 하고 산도 같이 오르면서 인간적인 교류에 신경 쓴다. →서울시에 제안하고 싶은 게 있다면. -서울시가 일자리 정책을 많이 하고 있다. 하지만 어르신 일자리 센터는 서울 전체에 하나밖에 없다. 장애인일자리센터도 하나뿐이다. 장애인일자리센터는 강남구, 노인일자리센터는 종로구에 있다. 노원구에서 가려면 몇 시간 걸린다. 여성발전센터가 서울시에 5개 있고 여성인력개발센터가 25개로 구마다 있는데, 장애인·노인 일자리도 여성 일자리 지원 기관 정도의 수준은 갖춰야 한다. 그러려면 장애인·노인 일자리지원센터를 권역별로 확대하는 게 필요하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형 복지를 많이 강조하는데 좀더 과감한 투자가 아쉽다. 특히 고교 무상급식은 발표만 놓고 보면 서울시가 전액 책임지는 것처럼 돼 있지만 실제로는 시비보조사업이다. 논란 끝에 서울시가 70%, 구청이 30%를 부담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오승록 구청장은…노무현 前 대통령 도보 방북 기획한 靑 의전행정관 오승록 서울 노원구청장은 학생운동과 국회, 청와대, 지방의회를 두루 거치며 경험을 쌓은 끝에 지난해 6·13 지방선거에서 당선됐다. 연세대 부총학생회장을 역임했으며, 2003년 2월부터 2008년 2월까지 참여정부 당시 청와대 의전담당 행정관으로 일하면서 비외교관 출신으론 최초로 대통령 해외 순방 행사를 총괄했다.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을 방문할 당시 노란색 군사분계선을 직접 건너는 행사를 기획한 공로로 훈장을 받았다.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서울시의원으로 일했다. 현장·주민 중심 행정으로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소확행)을 실천하는 게 구정 목표다.
  • “수도권 반도체 클러스터 구상 백지화하라”

    “수도권 반도체 클러스터 구상 백지화하라”

    균형발전지방분권 충북본부는 23일 세종시 산업통상자원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수도권 반도체클러스터 구상을 강력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문재인 대통령은 노무현정부보다 더 강력한 국가균형발전정책을 추진하겠다고 천명해 국민들의 균형발전 기대가 매우 크다”며 “그러나 수도권을 입지로 한 반도체클러스터는 문 대통령의 국가균형발전 의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산자부는 지난해 11월 충북 혁신도시 일원 6개 시·군에 충북반도체융복합타운을 지정고시했다”며 “정부정책의 일관성과 신뢰성을 위해 반도체클러스터는 충북반도체타운에 구축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충북반도체타운은 2027년까지 충북혁신도시 반경 20㎞, 1133만2000㎡에 반도체, 소자, 제조장비, 소재 기업 등을 입주시킨다는 게 사업의 골자다.충북본부는 “입지만 다를 뿐 차이가 없는 반도체클러스터가 수도권에 동시 구축된다면, 충북반도체타운은 차질을 빚을수 밖에 없다”며 “충북반도체타운이 성공적으로 조성되면 평택~이천~청주를 잇는 삼각클러스터가 구축된다”고 강조했다. 현재 산자부는 결정된 게 하나도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충북본부는 산자부가 대통령 업무보고 과정에서 수도권 반도체 클러스터를 언급해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충북시장군수협의회도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협의회는 비수도권에 반도체 클러스터를 구축해 달라는 내용의 건의문을 채택했다. 협의회는 건의문에서 “지난해 12월 산자부가 발표한 ‘대·중소 반도체 상생 클러스터’ 구축 계획이 수도권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국가균형발전에 역행하는 것”이라며 “지방 소멸 위기에 빠진 충북 등 비수도권을 입지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논란이 되고 있는 반도체클러스터는 올해부터 2028년까지 120조원이 투자되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SK하이닉스가 구체적인 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경기 용인과 이천, 경북 구미, 청주 등이 유치운동을 벌이고있다. 청주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공무원들 “회의방식 바뀌지 않는 한 장관 ‘세종 지키기’는 모순”

    “靑·국회-행정부로 기능 쪼개져 있는 상황 총리 주재 회의까지 서울 개최 이해 안가 국회 일정 잦은 변경도 ‘서울 상주’ 일조 국회가 세종으로 오면 문제 쉽게 해결돼”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정부 부처 장관들에게 “세종에서 근무하는 노력을 더 보여달라”고 주문한 것에 대해 관가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말이지만 지금 구조에서는 지키기가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지금처럼 서울(청와대·국회)과 세종(행정부)으로 기능이 쪼개져 있는 상황에서는 장관들의 ‘세종 공동화’ 현상을 막을 묘수가 없다는 것이다. 세종청사에서 일하는 한 공무원은 “정부 부처마다 ‘우리 장관 얼굴을 TV에서나 볼 수 있다’고 푸념하는 이들이 많다”며 “대통령과 언론까지 나서서 이 문제를 비판하지만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 정부 주요 회의가 대부분 서울에서 열리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국무회의는 물론이고 관계장관회의와 주요 기자회견까지 여간해서는 세종에서 하지 않는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정부서울청사 고위공무원도 “정기적으로 열리는 회의에만 참석하려고 해도 일주일의 절반 이상을 서울에서 보내야 한다”며 “회의 운영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대통령이 ‘세종을 지키라’고 요청해도 따를 수가 없다. 장관들이 잠시 따르는 척 할 수는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원위치로 돌아가게 된다”고 안타까워했다. 경제부처의 경우 장관이 세종에 내려오기가 더욱 어렵다. 대부분 경제 관련 인물과 이슈가 서울에 모여 있어서다. 실제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화요일 국무회의와 수요일 경제활력대책회의, 목요일 국무총리 주재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 등에 참석하려면 사실상 한 주 내내 서울에 있어야 한다. 부정기적으로 열리는 경제인 모임까지 챙기려면 세종에서 업무를 보기가 더 어려워진다. 기재부 관계자는 “그래도 홍 장관은 이전 장관들보다는 세종에서 업무를 보려고 노력하는 편”이라고 귀띔했다. 사회부처 한 사무관은 국무회의부터 세종 개최를 원칙으로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대통령이나 국무총리가 서울에서 회의를 하면서 장관에게 세종을 지키라고 하는 것은 모순”이라며 “국가안보상 대통령 주재 회의는 서울에서 연다고 해도 국무총리 주재 회의까지 서울에서 하는 것은 이해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국회 일정이 지나치게 자주 바뀌는 것도 장관들이 서울을 떠나지 못하게 하는 데 일조한다. 국회의원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보고 일정을 변경해 장관이 세종에 있으면 이에 대응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정부서울청사 한 관계자는 “청와대만 해도 공무원들을 자주 부르지는 않는다. 문제는 국회다. 직원들과 업무를 논의해야 할 장관들이 국회의원들과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낸다. 장관들이 세종에 있고 싶어도 의원들 호출 때문에 수시로 서울로 가야 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부처의 핵심인 실·국장 역시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국회를 방문할 때 장관을 직접 보좌해야 하는 데다 직접 참석하는 회의도 많다. 자녀 교육 문제까지 겹치다보니 세종으로 거주지를 옮긴 실·국장은 많지 않다. 실·국장 상당수는 세종에서 자는 날을 대비해 아파트나 원룸을 임대해 놨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정부세종청사에는 ‘5급 사무관은 닷새, 3급 부이사관은 사흘, 1급 실장은 하루만 세종에 있다’는 농담이 있다”며 “평소 실·국장들은 정부서울청사나 국회에 가 있다”고 말했다. 적잖은 공무원들이 “이참에 개헌을 해서라도 청와대와 국회를 세종으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서울 출장은 대부분 국회 관련 업무다. 국회가 세종으로 내려오면 자연스럽게 해결된다”고 피력했다. 행정안전부 고위 공무원 역시 “결국 노무현 정부가 처음 구상했던 행정수도 모델로 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부처종합·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유시민 “2017년 자영업자 폐업통계에 2018년 최저임금 영향?”

    유시민 “2017년 자영업자 폐업통계에 2018년 최저임금 영향?”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천호선 재단 이사는 22일 팟캐스트 ‘고칠레오’를 통해 문재인정부의 최저임금 인상 때문에 자영업자들이 대거 폐업했다는 보도가 ‘가짜뉴스’인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유시민 이사장은 ‘2017년 자영업자 10곳 중 9곳이 폐업했다’는 국세통계연보를 인용한 보도를 언급하고 “아무리 봐도 제목도, 내용도 이해가 안 된다”고 말문을 열었다. 유시민 이사장은 “원래 있던 식당이 70만 개 쯤 되고, 18만 개가 (2017년 한 해 동안) 생겼다가 전체 중 16만 개가 문을 닫았고 남은 게 72만 개 정도라는 것인데 마치 모든 식당 10개 중 9개가 망한 것처럼 보도됐다”고 말했다. 천호선 이사는 전체 음식점을 분모로 폐업한 업체 수를 나누는 방식을 사용해야 하는데 단지 창업한 업체 수와 폐업 수만으로 성공률을 계산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그는 “10곳이 창업하면 그 중 9곳은 영업부진으로 실패하는 것으로 착각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심각하게 잘못된 제목이다. 전형적인 왜곡보도”라고 지적했다. 유시민 이사장은 “2017년이 최악이었다고 치더라도 그 원인이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인상 때문이라는 주장은 성립하지 않는다. 통계는 2017년도 통계고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 정책 시행은 2018년도”라고 강조했다. 이어 유 이사장은 “2018년에 이뤄진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음식점에 미친 영향을 확인하려면 통계가 나오는 금년 8월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천호선 이사 역시 “문재인 정부 들어 최저임금 인상은 2018년부터 시작됐기 때문에 2018년 통계를 놓고 분석을 해야 하는 것으로 (기사 내용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성립할 수 없는 이야기”라며 “자영업자들이 아무리 힘들다지만 이런 식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는 선동적인 보도일 뿐”이라고 유감을 표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사설] 집값 폭등 막아야 하지만 경착륙도 경계해야 한다

    부동산 시장이 하향 안정세에 접어든 가운데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이 그제 기자간담회에서 ‘집값 상승세가 꺾였다’는 평가에 대해 “그렇게 보지만, 서민에게 집값이 여전히 소득보다 높다”면서 “지금의 안정은 이 자체가 최종적으로 기대하는 것은 아니며, 조금이라도 불안한 추가 현상이 있으면 지체 없이 추가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에 이어 문재인 정부에서도 부동산 정책에 깊숙하게 관여한 만큼 간담회의 상당 시간을 부동산 문제에 할애했다고 한다. 정부의 금융 규제를 포함한 전방위적 대책과 보유세·양도소득세 등의 강화로 서울을 중심으로 집값은 내림세를 보이고 있다. 물론 강남권과 새롭게 집값 상승 대열에 합류한 마포, 용산, 성동 등지의 집값이 꺾인 것은 맞지만, 폭등에 가깝게 올랐던 높은 가격대가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즉 시장에 변수가 생기면 다시 상승세로 돌아설 여지도 충분하다. 따라서 김 실장의 지적처럼 집값 불안 조짐이 엿보이면 “지체 없이 추가 대책”을 내놓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고 할 것이다. 다만 우리는 몇 가지 우려를 전하고자 한다. 김 실장의 ‘집값 기대치’ 발언을 놓고 일부 언론에서 ‘문재인 정부 초기 수준’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정부가 대책을 내놓는다고 오름세를 탄 집값이 의도한 선에서 멈추지 않듯이 하락도 목표를 정했다고 원하는 지점에서 잡히지 않는 게 시장이다. 그러니 가격을 중심으로 부동산 정책을 언급하는 것은 다소 부적절한 측면이 있다. 서울 등에서 공시지가 현실화 등으로 보유세 부담이 커지고 있다. 급매물이 쏟아지면 주택시장의 경착륙도 우려된다. 알다시피 집값은 상승도 문제지만, 급락도 주택담보대출 부실화나 ‘깡통 전세’, 경제 활성화 등에 부담을 줄 수 있어 우려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지방의 주택시장은 미분양으로 이미 한겨울로 접어들었다. 시장의 공급과 수요로 형성되는 가격 대신 김 실장이 인위적인 선을 정해선 안 된다. 아울러 주택시장의 경착륙에 대한 대비도 필요하다. 전년 대비 수출이 14.6%나 감소하고 올해 성장률도 2% 중반 수준일 텐데, 부동산 연착륙도 중요하다.
  • [관가 블로그] 총리 의전비서관 ‘금녀의 벽’ 깨졌네

    [관가 블로그] 총리 의전비서관 ‘금녀의 벽’ 깨졌네

    “李 총리, 여성 챙기는 메시지 담은 것” 차관급 4명이나 배출 ‘승진코스’ 선망총리실에서 처음으로 첫 여성 의전비서관이 나오자 관가 안팎에서 ‘의외의 발탁’ 인사로 보고 있습니다. 장상 전 총리 서리, 한명숙 전 총리 모두 여성이었지만 여성 의전비서관을 두지 않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의전비서관은 ‘금녀’의 자리로 인식돼 왔기 때문입니다. 의전비서관은 총리가 참석하는 대내외 행사와 일정, 경호, 의전 등을 총괄 지휘하는 자리입니다. 주인공은 윤순희(48) 국장입니다. 행시 38회인 윤 국장은 이미 총리실 첫 여성 국장이라는 타이틀을 가질 정도로 업무능력을 인정받았습니다. 총리실 관계자는 21일 “이 총리가 총리 이후를 내다보는 만큼 ‘여성을 챙긴다’는 정치적 메시지를 인사에 담은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과거 1980년대까지 총리의 의전비서관은 업무 성격상 외교부 출신들이 주로 맡았습니다. 노신영 전 총리가 외교부에서 반기문 의전비서관을 데려온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1990년대 이후 정치인 출신 총리들이 등장했는데, 그들은 주로 정치권에서 자기 사람을 데려오는 경우가 많았지요.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 시절 이해찬 전 총리는 총리 비서실장 등에 측근들을 포진시키면서도 의전비서관만큼은 총리실 출신을 임명했습니다. 자신과 ‘총리실맨’들의 가교 역할을 해 줄 것을 염두에 둔 인사였습니다. 그 이후 의전비서관은 총리실 내부 인사 기용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의전비서관이 되려면 실력과 성품 등에서 두루 세평이 좋아야 합니다. 특히 총리를 가까이서 모시는 만큼 ‘무거운 입’도 중요한 덕목입니다. 총리실에서 3~4명의 후보자를 추천하면 총리가 이들을 직접 만나보고 한 명을 낙점한다고 합니다. 의전비서관은 ‘승진 코스’로 통합니다. 반기문 전 의전비서관은 외교부 장관에 이어 유엔사무총장까지 올랐습니다. 참여정부 이후 현재까지 총리실 출신으로 의전비서관을 지내고 차관급까지 간 이들만도 김석민 전 사무차장(이해찬 총리 시절)과 오균 전 국무1차장(한승수 총리), 이호영 전 총리비서실장(정운찬 총리), 최병환 현 국무1차장(김황식 총리) 등 4명이나 됩니다. 윤 비서관도 이들 선배의 길을 따라가려면 여성 프리미엄이 아니라 진짜 실력으로 승부를 걸어야겠지요. 최광숙 선임기자 bori@seoul.co.kr
  • UAE 특임으로 돌아온 ‘왕특보’ 임종석

    UAE 특임으로 돌아온 ‘왕특보’ 임종석

    文대통령 신뢰 방증… 내년 총선 나올 듯 한병도 前수석은 이라크 특임 외교특보 김영배 민정비서관 등 4명 후속인사도문재인 대통령은 21일 아랍에미리트(UAE) 특임 외교특별보좌관(특보)을 신설하고 임종석(54)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위촉했다. 임 특보는 일단 ‘UAE 특임’으로 발탁됐지만 여권 잠룡이라는 정치적 체급을 감안하면 향후 무게감을 더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가 퇴임한 지 불과 13일 만에 없던 자리를 만들어 ‘대통령의 조언자’ 성격인 특보를 맡긴 것과 관련, 문 대통령의 신뢰가 여전하다는 방증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비서실장 재직 시 UAE에 대통령 특사로 방문하는 등 특임 외교 특보로서 양국 신뢰와 협력관계를 공고히 해 국익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임 특보는 20개월간 문재인 정부의 초대 비서실장을 지내면서 인수위원회 없이 출범한 현 정부의 연착륙에 공헌했다. UAE와 비밀 군사양해각서(MOU) 논란이 불거진 2017년 12월 대통령 특사로 UAE를 방문해 논란을 일단락 짓는 과정에서 UAE 최상층부와 돈독한 관계를 맺었다. 비서실장 재임 시 남북정상회담 준비·이행을 총괄했기에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진전 과정에서 역할이 확대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정치권에서는 그가 내년 총선에서 정치적 상징성이 큰 서울 종로나 중구에 출마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병도(53) 전 정무수석은 이라크 특임 외교특보로 위촉됐다. 김 대변인은 “2009년부터 한·이라크 우호재단 이사장을 맡아 이라크 내 인적 네트워크를 갖춘 적임자”라고 말했다. 한 특보는 아델 압둘 마디 이라크 총리와 10여년간 인연을 이어왔다. 그는 27일부터 외교부 등 관계부처 및 현지 진출 기업 관계자로 꾸려진 특사단과 이라크를 방문한다. 비서관 후속 인선도 단행됐다. 김영배(52) 전 정책조정비서관이 대통령 친인척 및 측근을 관리하는 민정비서관으로 임명됐다. 백원우 전 비서관은 2020년 총선 준비를 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 비서관은 서울 성북구청장 등을 거쳐 지난해 8월부터 정책조정비서관으로 일했다. 정책조정비서관에는 이진석(48) 전 사회정책비서관이 이동했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조정실장을 거쳤고 2017년 대선 때 ‘문재인 캠프’ 공약 입안에 참여했다. 사회정책비서관에는 민형배(58) 전 자치발전비서관이 임명됐다. 노무현 정부 사회조정3비서관, 광주 광산구청장을 거쳤다. 자치발전비서관에는 은평구청장을 지낸 김우영(50) 전 제도개혁비서관이 임명됐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유시민 “대선주자에서 빼달라” 여론심의위에 공문

    유시민 “대선주자에서 빼달라” 여론심의위에 공문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차기 대선주자 여론조사 등에서 자신을 제외해 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에 보낸 것으로 21일 알려졌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여론조사심의위가 지난 14일 유 이사장이 보낸 공문을 접수했다”며 “대선주자 조사 등에서 본인을 포함하지 말아 달라는 내용의 통지를 심의위 차원에서 언론기관과 여론조사기관에 해달라는 요청이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과거 여론조사심의위가 언론사 등을 상대로 이런 종류의 통지를 한 적은 없는 것으로 안다”며 “내부적으로 유 이사장의 요청을 어떻게 처리할지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유 이사장은 노무현재단 행사에서도 “저를 대선 후보 연론조사에 넣지 말아 달라고 강력히 요청하는 공문을 보내려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또 팟캐스트 방송 ‘유시민의 고칠레오’를 통해 정계복귀설과 대선출마설에 대해 “선거에 나가기 싫다. 그렇게 무거운 책임을 안 맡고 싶다”고 밝혔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무죄받은 제주 4·3] “재판이 뭐야, 그냥 쏴죽일 땐데… 앞줄 15년, 뒷줄은 무기 이랬지”

    [무죄받은 제주 4·3] “재판이 뭐야, 그냥 쏴죽일 땐데… 앞줄 15년, 뒷줄은 무기 이랬지”

    제주 4·3사건은 한국 근대사의 ‘대학살극’이다. 2003년 발표된 ‘제주 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에 따른 공식 희생자(사망, 행방불명 등)만 1만 4000여명이다. 추정되는 희생자는 그 두 배가 넘는다. 세상이 이승을 떠난 수많은 넋을 기리는 동안, 억울하게 전과자가 돼 몸을 낮추고 살아야 했던 불법 군사재판의 피해자들은 71년을 더 살아왔다. 이름도 불리지 않고 형량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전국 각지 형무소에 흩어져 청춘을 허망하게 보내버린 18명의 피해자들이다. 육체에 남은 크고 작은 흉터만큼, 이들에게 남겨진 전과기록도 수십 년 동안 끈질기게 몸과 마음을 괴롭혔다. 서울신문은 구순이 다 돼서야 공권력이 찍은 낙인을 떨치게 된 이들의 한 맺힌 삶을 들었다. 인터뷰는 제주 4·3 생존 수형인 18명이 청구한 ‘불법 군사재판 재심’ 선고를 하루 앞둔 지난 16일 피해자들의 자택에서 진행됐다.●“그냥 살았는데 내란죄래… 따지지도 못했어” 4·3이 극으로 치닫던 1948년 10월. 군경 토벌대는 제주도 해안에서 5㎞ 이상 떨어진 중산간 지역에 사는 사람들을 폭도로 간주해 총살하기로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토벌 작전으로 희생됐다. 미처 해안가로 이주하지 못해 사살된 주민들도 있었고, 뒤늦게 내려온 주민들도 ‘폭도들을 지원했던 것 아니냐’며 무차별적으로 끌려갔다.양근방(86) 할아버지도 군경 작전으로 부모님과 떨어지고 형제도 잃었다. 중산간 마을에 혼자 남아 총살될 위기에 처했던 양 할아버지는 겨울이 되자 산에서 버틸 수 없어 헌병대에 자수했다. 곧바로 군사재판에 넘겨져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어디 가는지도 모르고 배에 실려갔더니 인천형무소였어. 마당에 줄줄이 앉혀 놓더니 ‘이 열은 7년, 이 열은 15년, 이 열은 무기(징역)’ 이러더라고….” 6·25 전쟁이 발발해 인민군에 의해 풀려난 양 할아버지는 광주까지 갔다가 다시 붙잡혀 형이 추가됐다. “광주고법에서 재판을 받았는데 ‘넌 북한군이 풀어줬으니 도피자다’라면서 징역 10년을 더 때리더라고. 그땐 10년인 줄도 몰랐어. 최근에 광주형무소에 신원조회해서 알았지.”부원휴(90) 할아버지도 학교에 다니던 19세 때 집에 들이닥친 계엄군에게 체포돼 군사재판을 받았다. 지금도 봉투에 싸서 고이 간직하고 있는 ‘제주공립농업중학교 학생증’을 황급히 내밀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군 막사에 붙잡혀 갔는데 ‘너 삐라 같은 거 안 뿌렸냐. 산사람들한테 쌀 갖다주지 않았느냐’ 하더라고. ‘학생이어서 그럴 시간도 없었다’고 하니까 봉으로 마구 팼어.” 전주형무소로 갔다가 인천형무소로 이감된 부 할아버지는 1948년 12월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이유는 ‘내란죄’라고 했다. 왜 내란죄냐고 미처 따지지도 못했다. “다른 사람들은 7년, 15년 선고받았는데 ‘난 살았다’고 생각했지. 그땐 재판 없이 가두고 쏴 죽이고 아주 무법천지였어.” 형무소 시설이 좁고 수형자 관리가 엉망이어서 부 할아버지가 있던 전주형무소에는 전염병이 돌았다. “세면장에 가면 피고름이 섞인 똥이랑 온갖 이물질이 쌓여 있었어. 제대로 먹질 못해서 이질(설사병)도 걸리고 많이 죽어나갔지.” 1949년 7월 열여섯 살이던 김순화(86) 할머니도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전주형무소에 갇혔다. 변론할 기회도 없었고, 몇 년 형인지도 몰랐다. 당시 상황을 묻는 질문에 김 할머니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아직도 모르겠어, 이유가 뭔지. 재판도 안 받고 붙잡혀 있다가 배 타고 형무소로 갔어. 아무 잘못도 안 했는데…. (토벌대가) 부모님을 왜 죽였는지도 모르겠어.”●“전과자 낙인 찍히니 육지로 돌아다녔지” 형을 마치고 살아 나왔지만 흉터는 진하게 남았다. 김 할머니는 왼쪽 팔에 있는 콩알만 하고 동그란 초록색 문신을 보여 줬다. “형무소에 같이 수감됐던 분이랑 각자 왼팔에 바늘로 이렇게 새겼지. 나중에 만나서 알아보게.” 함께 문신을 새긴 김경인(87) 할머니와는 69년 뒤 같이 재심을 청구하는 동지로 다시 만났다. 작은 문신은 71년 세월을 버텼고, 김 할머니의 아픈 기억도 마찬가지였다. “빨리 다 끝났으면 좋겠어. 피곤해. 그냥 묻어버리고 싶어. 생각만 하면 너무너무 속상해.” 양 할아버지는 “지금까지도 가장 한이 맺힌 일이 있다”며 눈물을 펑펑 쏟았다. 1960년 10월 출소해 고향으로 돌아오자 불과 7개월 전에 부친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1960년 3월에 아버님이 형무소로 면회를 오셨어. 내가 나갈 시한이 정해지지 않았다고 하니까 아버님이 ‘너를 두고 어떻게 제주로 가느냐’ 하시고, 돌아서서 막 눈물을 흘려. (나도) 감옥에 돌아가서 한참 울었어.” 양 할아버지의 부친은 제주로 돌아온 뒤 일주일 만에 숨졌다. 마을 사람들 말로는 면회를 다녀온 뒤 식사를 하지 않고 줄곧 피를 쏟아내더니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고향에 돌아온 양 할아버지는 10년 만에 육지로 발걸음을 돌렸다. 4·3으로 10년 가까운 형을 산 양 할아버지는 경찰의 ‘요시찰 인물’이 돼 있었다. 일을 해 모은 돈으로 밭을 살 때도 조총련과 연통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아야 했다. 결국 연고도 없는 경기도 파주로 거처를 옮겨 목장 일을 하며 20년을 살았다. 그렇다고 정부의 감시망에서 완전히 벗어난 건 아니었다. “전과자가 신고도 안 하고 제주도에서 없어지니까 ‘북한으로 가려는 거 아니냐’면서 제주도로 다시 잡아가더라고. 남의 목장에서 월급 받고 산다고 말해서 하룻밤 조사받고 풀려났어.” 양 할아버지가 다시 제주로 돌아온 건 1990년이었다. 전과기록 탓에 자꾸만 찾아와 감시하는 경찰들 때문에 부 할아버지는 본적도 바꿨다. “원래 본적이 화북리였는데 이도1동으로 옮겼어. 옮겨도 얼마간은 찾아오더라고.” 부 할아버지는 이후 19년간 공직에 몸을 담았지만 전과 기록 때문에 하마터면 운명이 달라질 뻔했다. “공무원도 전과가 있어서 못할 뻔했어. 아는 사람한테 부탁해서 된 거야. 제주 사람들은 4·3으로 억울하게 형무소 갔다 왔다는 걸 다 아니까.” ●“만시지탄… 그래도 새로 태어난 기분” 재심이 시작될 수 있었던 토대가 된 ‘수형인 명부’는 1999년 추미애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의원이 처음 발견했다. 이후 진상조사위원회가 꾸려졌고, 진상보고서는 2003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4·3사건에 대해 직접 사과하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불법재판의 피해자들이 유죄의 낙인을 지우는 데는 그로부터 15년이 더 걸렸다. 재심 당사자 중 두 번째로 나이가 많은 정기성(97) 할아버지는 치매가 악화돼 재심 개시 결정이 내려진 후부터 공판에 출석하지 못했다. 형사재판은 피고인 출석이 원칙이지만 재판부는 정 할아버지의 상태를 고려해 진단서로 대신하면서 공판을 진행했다. 부 할아버지는 인터뷰 도중 거듭 “만시지탄”이라고 되뇌었다. 소감이 어떠냐는 질문에 양 할아버지는 연방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목소리를 높였다. “험하고 험한 가시밭길을 걸어 오늘에 왔어. 새로 태어나는 기분이야.” “이제 우는 것도 귀찮다”던 김 할머니도 기뻐했다. 김 할머니는 4·3이 세상에 알려지기 전까지 자식들에게까지 함구한 채 살았다고 한다. “내가 형무소에 갔다 왔다는 기록만 없어졌으면, 아이들에게도 그(형무소에 갔다 왔다는) 기억만 없어졌으면 좋겠어.” 글 사진 제주 유영재 기자 young@seoul.co.kr
  • 노정렬, 전직 대통령 성대모사로 ‘시선 정렬‘

    노정렬, 전직 대통령 성대모사로 ‘시선 정렬‘

    개그맨 노정렬씨가 박정희·전두환·노무현·이명박·박근혜 등 전직 대통령들의 성대모사 퍼레이드로 ‘원맨쇼’를 펼쳤다.노씨는 17일 서울신문 팟캐스트 ‘노정렬의 시사정렬’에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 농단 의혹’에 대해 성대모사 풍자를 선보였다. 여기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성대모사를 더해 눈길을 끌었다. 노 씨가 이날 성대모사를 한 인물은 14명에 달한다. 노씨는 “각계각층의 대통령급 인사들의 성대모사를 통해 시대의 이슈를 꿰뚫는 재미를 드리고 싶다”면서 “격주 화요일 선보이는 ‘만통작설’을 애청해 달라”고 말했다. ‘만통작설’은 전직 대통령들의 성대모사를 통해 현안을 짚어 보는 코너다. ‘노정렬의 시사정렬’은 매주 화요일 오전 8시 팟캐스트(바로가기)에서 새로운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영상은 유튜브 채널 ‘서울살롱’에서 공개된다. 소셜미디어랩 iseoul@seoul.co.kr
  • “文정부 부동산 정책, 참여정부 때보다 못 미쳐”

    “文정부 부동산 정책, 참여정부 때보다 못 미쳐”

    문재인 대통령의 부동산 정책이 노무현 전 대통령 때보다 훨씬 못 미친다고 비판한 신간이 눈길을 끈다. 노 전 대통령이 ‘부동산은 한국사회의 근본 문제’라는 인식 아래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했지만, 문 대통령은 부동산 문제 해결 의지조차 제대로 피력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토지주택위원장, 토지정의시민연대 정책위원장 등을 지낸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경제통상학부 교수의 신간 ‘부동산 공화국 경제사’(여문책)는 해방 이후 정권별 부동산 정책을 분석한다. 전 교수는 “해방 후 농지개혁을 시행해 ‘평등지권’(모든 사회 구성원이 토지에 평등한 권리를 가짐)을 실현해 대한민국이 고도성장할 수 있었다”면서 “박정희 정권이 시행한 강남 개발 등 잘못된 부동산 정책이 불로소득만 바라보는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전 교수는 역대 정부 가운데 노무현 정부 부동산 정책에 가장 높은 평가를 내렸다. 전 교수는 “보유세 강화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불황에도 부동산 경기부양책을 쓰지 않았으며, 부동산 과다보유자에 대해 양도소득세를 중과하고 실거래 제도를 도입해 부동산 거래의 투명성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등 혁신적인 제도와 이를 임기 말까지 추진한 의지가 돋보인다”고 설명했다. 반면 문 대통령의 정책에 관해서는 “2018년 10월까지 10차례 발표한 정책들은 단기시장 조정과 주거복지 정책이 전부”라고 평가했다. 특히 참여정부의 보유세 정책이 지금까지 유지됐을 때와 비교할 때 보유세가 3분의1 미만 수준이라는 통계를 들어 지적한다. 전 교수는 이와 관련, “문 대통령이 부동산 문제를 잡으려면 부동산을 주거권 관점에서 접근하고, 과도한 불로소득주의자에 관한 제도개혁을 임기 내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이해찬 “20년 집권도 짧다… 할 수 있으면 더 해야”

    정치 선그은 유시민엔 “눙치는 분 아닌데” 더불어민주당의 ‘20년 집권론’을 설파했던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6일에는 “민주당 20년 집권도 짧다. 더 할 수 있으면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민주당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국민의 정부 땐 교육부 장관, 참여정부 때는 국무총리를 했는데 우리가 집권 10년을 하며 만든 정책이 무너질 땐 1~2년밖에 안 걸렸다”고 말했다. 이어 “이명박 정부 때는 금강산 관광 중단, 박근혜 정부 때는 개성공단 폐쇄했다. 이 두 개가 우리가 얼마나 어렵게 만든 건데 몇 년 만에 부서지는 걸 보니 10년 가지곤 안 되겠다”며 “20년을 억지로 하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장기집권이 아니라 연속해서 20년 집권해야 정책을 뿌리내릴 수 있다”고 했다. 이 대표는 차기 대선 출마에 대해 “저는 그런 깜냥이 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이 대표는 과거 자신의 보좌관을 했던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정계 복귀 가능성을 일축한 데 대해 “눙치거나 하는 분이 아니라 솔직한 분”이라고 말했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문재인 부동산 정책, 노무현 정부 비해 효과 없고 의지도 약해

    문재인 부동산 정책, 노무현 정부 비해 효과 없고 의지도 약해

    문재인 대통령의 부동산 정책이 노무현 대통령 때에 훨씬 못 미친다고 비판한 신간이 나왔다. 노 전 대통령이 ‘부동산은 한국사회의 근본 문제’라는 인식 아래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했지만, 문 대통령은 부동산 문제 해결 의지조차 제대로 피력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토지주택위원장, 토지정의시민연대 정책위원장 등을 지낸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경제통상학부 교수의 신간 ‘부동산 공화국 경제사’(여문책)는 해방 이후 정권별 부동산 정책을 분석한다. 전 교수는 “해방 후 농지개혁을 시행해 ‘평등지권(모든 사회 구성원이 토지에 평등한 권리를 가짐)’을 실현하면서 대한민국이 고도성장할 수 있었다”며 “박정희 정권이 시행한 강남 개발 등 잘못된 부동산 정책이 불로소득만 바라보는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전 교수는 강남 개발에 관해 “국토개발의 청사진을 구현한다고 내세웠지만, 실은 경부고속도로 용지 확보와 정치자금 마련이라는 엉뚱한 목적을 위해 추진한 것”이라며 “강남 지역을 아파트 밀집 지역으로 만들면서 지가 폭등을 불러왔다”고 설명했다. 이때 본격적으로 시작한 부동산 투기가 이후 10년을 주기로 계속 일어났으며, 강남개발 이후 한국 사회가 ‘불로소득을 좇는 사회’로 전락했다는 지적이다. 역대 정부 가운데에는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가장 높은 평가를 내렸다. 특히 보유세를 대폭 강화하기 위한 노력에 주목했다. 전 교수는 “노 전 대통령은 보유세 강화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불황에도 부동산 경기부양책을 쓰지 않았으며, 부동산 과다보유자에 대해 양도소득세를 중과하고, 실거래 제도를 도입해 부동산 거래의 투명성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등 혁신적인 제도와 이를 임기 말까지 추진하는 등 의지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노 전 대통령의 부동산 정책 실패를 주장하는 이들에게는 “집값을 못 잡았다는 비판이 나왔지만, 당시 유례없는 유동성 확대로 전 세계에서 부동산 값이 폭등했다. 한국은 상대적으로 가격 상승 폭이 낮았는데, 이를 고려하지 않은 비판”이라고 반박했다. 여기에 2005년 8·31 부동산정책에 관해 ‘세금폭탄’이라며 깎아내리는 데에 혈안이 된 보수 일간지의 공세, 당시 이헌재 경제부총리와 여당이 종합부동산세 원안을 약화하는 데에 열을 올린 점도 문제로 거론했다. 반면 문 대통령의 부동산 정책에 관해서는 “노무현 정부 정책과 유사한 점이 많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반박하고 “2018년 10월까지 10차례 발표한 정책들은 단기 시장 조정과 주거복지 정책 정도가 전부”라고 평가했다. 노 전 대통령의 보유세 정책이 지금까지 유지됐다고 가정할 때, 문 대통령의 정책으로는 보유세가 3분의 1 미만 수준으로 떨어진다는 통계도 들었다. 또 지난해 발표한 9·13 부동산정책에 관해서는 “단기 시장 조절 측면에서 보더라도 대책이 대부분 투기 지역, 투기 과열지역, 조정대상지역과 같은 규제지역 중심으로 적용되기 때문에 비규제지역으로 투기 불길이 옮겨 붙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 교수는 이와 관련 “문 대통령이 부동산 문제를 잡으려면 부동산을 주거권 관점에서 접근하고, 과도한 불로소득주의자에 관한 강력한 제도개혁을 임기 내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시장친화적 토지공개념을 헌법에 명시하고, 국토 보유세와 기본 소득을 결합하는 새로운 방안으로 보유세를 강화하는 방안 등을 들었다. 나아가 보유세의 원리를 모든 종류의 특권으로 확장하는 ‘특권과세’ 강화도 제안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서울광장] 노영민 실장이 성과를 내려면/이종락 논설위원

    [서울광장] 노영민 실장이 성과를 내려면/이종락 논설위원

    노영민 신임 대통령 비서실장이 임명 하루 만인 지난 9일 자신이 지휘할 청와대 비서실의 3대 원칙으로 ‘성과·경청·규율’을 제시했다. 노 실장은 청와대 전 직원에게 발송한 서신에서 “성과를 내는 청와대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연초부터 경제·민생 정책에서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성과를 내는 것을 가장 큰 과제로 제시한 상황에서 비서진도 이를 최우선 순위에 두어야 한다는 점을 환기시킨 셈이다.그러나 비서실장이 취임 일성으로 성과를 내야 한다는 포부를 밝히자 기대감에 앞서 우려 섞인 반응도 적지 않다. 임종석 비서실장과 장하성 정책실장 재임 시 청와대가 정부 부처 위에 군림하고, 국회를 경시하는 풍조가 만연했다는 평가 때문이다. 이번 2기 청와대 비서실은 부처에 최대한 자율권을 보장하고, 국회와의 소통에 적극 나섰으면 하는 바람이 많았다. 그런데 노 실장이 취임하자마자 “성과를 내야 한다”고 말하니 곱게 들릴 수가 없었을 테다. 특히 노 실장은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비서실장을 맡았을 정도로 최측근이어서 친정체제를 구축한 셈이다. 친정체제는 대통령이 편하게 지시하고 기댈 수 있다는 점에서 청와대 그립이 더 강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상존한다. 다행히 노 실장이 취임 직후 국회를 찾아 소통 강화 의지를 전한 것은 기대할 만하다. 문제는 부처와의 관계 설정이다. 청와대는 노 실장 취임 전부터 홍남기 경제부총리의 ‘원톱’을 강조하고 있지만 아직 시장은 반신반의하고 있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천거한 홍 부총리가 문 대통령의 공약 수립뿐 아니라 현 정부 정책을 설계하고 추진해 온 김수현 정책실장에 밀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불식되지 않은 게 현실이다. “성과를 내야 한다”는 노 실장의 절박한 메시지는 정책실장뿐만 아니라 비서실장까지 부처 위에 군림할 수 있다는 잘못된 메시지로 들릴 수도 있다. 서둘러 청와대와 부처 관계를 확실하게 정리해 줘야 한다. 문 대통령은 노 실장에게 임명장을 준 뒤 “비서실장도 경제계 인사를 만나야 한다”고 당부했다. 문 대통령의 주문에 노 실장이 성과를 낼 수 있는 답이 있다. 기업이 투자를 늘리고, 일자리를 늘리도록 경제활력을 내는 데 노 실장이 온몸을 던지는 길이다. 우리 경제는 연초부터 적신호가 켜졌다. 관세청 집계에 따르면 이달 10일까지 수출이 전년 같은 기간 대비 7.6% 급감했다. 장기간 실업 상태에 있거나 일감 찾기를 아예 포기한 인구가 지난해 250만명을 넘어섰다. 부정적인 기업관을 가졌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해외 순방을 다니면서 우리 기업에 대한 인식을 달리했다. 노 전 대통령은 취임 1년 9개월 만인 2004년 11월 남미 순방 중에 브라질 교민 간담회에서 “한국이 발전한 진짜 이유를 브라질에서 새삼 깨달았다”면서 “한국 기업에 대해 다시 한번 평가하고 싶다”고 말한 뒤 적대적 기업 정책을 수정했다. 실제로 기업 관계자들은 “역대 정권 중 노무현 정권 때가 기업 하기가 제일 편했다”고 회고한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로 임기초 지지율이 20%대로 급전직하했다. 하지만 MB 정부는 ‘공생발전’ 등 친서민 정책을 추진하며 지지율을 단숨에 50%대까지 끌어올렸다. 정책 기조 변화를 통한 국정 운영에 성공한 사례다. 경제의 대기업 과잉 의존 체질을 바꿔 나가는 정책은 필요하다. 대기업의 갑질 행태와 재벌 3, 4세들의 철부지 일탈도 일벌백계해야 한다. 하지만 대기업을 제쳐 놓고선 경제 운영을 제대로 할 수 없다. 대부분의 선진국 정부가 대기업을 협력 파트너로 삼아 법인세 인하 등의 당근책을 던져 주며 내수 진작과 수출을 독려하고 있다. 이런 외국기업들과 피말리는 ‘외로운 경쟁’을 하고 있는 우리 기업들에 기를 불어넣어 줘야 한다. 바로 그 역할을 노 실장이 맡아야 한다. 노 실장은 3선의 의정 활동 기간에 산업통상자원위원만 6년을 했다. 19대 국회에서는 산업통상자원위원장도 맡았다. 국회 내 대표적인 ‘산업통’, ‘기업통’으로 통한다. 어제 가졌던 ‘기업인과의 대화’를 보여 주기식 이벤트로 끝내선 안 된다. 기업 애로를 누구보다 잘 아는 노 실장이 진솔한 마음으로 기업의 목소리를 듣고 이를 정책에 반영해 대기업이 투자와 일자리 창출로 화답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대기업의 얼어붙은 마음을 열어젖혀야 취임 일성으로 강조한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점을 노 실장은 명심했으면 한다. jrlee@seoul.co.kr
  • 한반도 긴장 완화 반영… 적의 개념, 北 대신 위협 세력으로 확대

    한반도 긴장 완화 반영… 적의 개념, 北 대신 위협 세력으로 확대

    2004년 盧정부때 남북회담 뒤 빠졌다가 2010년 MB때 연평도 포격 이후 敵 명시 보수층 “북핵·미사일 위협 여전” 비판에 국방부 “개념만 뺀 것… 北 충분히 대비”국방부가 15일 문재인 정부 들어 첫 발간한 국방백서는 북한 정권과 북한군을 적이라고 규정한 부분을 삭제했다. 이는 지난해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군사적 긴장완화 조치가 이뤄지는 등 변화된 한반도 정세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국방부 관계자는 15일 “과거 국방백서에서 북한에 대한 표현은 그 당시의 남북 관계 상황 등을 반영한 측면이 있었다”며 “이번 국방백서는 외부의 군사적 위협과 침략이 비단 북한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는 판단에서 포괄적 개념으로 기술한 것”이라고 했다. 그동안 군사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북한만을 한정해 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적의 개념을 지나치게 축소한 것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예컨대 특정 국가뿐 아니라 사이버 위협, 테러단체 등도 우리에게 위해가 되면 적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외국 국방백서에서 특정 국가를 적으로 규정한 사례가 없다는 점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미국은 국가안보전략(NSS)에서 중국과 러시아를 적이 아닌 ‘수정주의 세력’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동안 북한에 대한 적 개념은 남북관계와 한반도 상황에 따라 변천해왔다. 국방백서에 ‘주적’ 표현이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1995년 김영삼 정부 때다. 1994년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문제를 놓고 남북 실무접촉을 할 당시 박영수 북한 대표가 ‘서울 불바다’ 발언을 하자, 그것을 이유로 김영삼 정부는 북한을 주적으로 규정했다. 김대중 정부 들어서도 ‘주적’ 개념을 유지하다가 2000년 첫 남북정상회담을 한 이후 2001년부터 국방백서 발간을 중단했다. 이어 노무현 정부에서는 2004년 국방백서에서 ‘북한의 재래식 군사력, 대량살상무기, 군사력 전방배치 등은 직접적 군사위협’으로 표기했다. 이후 북한이 1차 핵실험을 하자 2006년 국방백서에는 북한을 ‘우리 안보의 심각한 위협’으로 기술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 2010년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이 발생한 이후 2010년 국방백서는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으로 표현했고 이 표현이 2016년 국방백서까지 이어졌다. 보수강경층 등 일각에서는 북한 핵·미사일 위협이 건재한 상황에서 ‘북한=적’ 표현 삭제는 시기상조라는 비판도 나온다. 그러나 국방부는 적 개념만 삭제했을 뿐, 북한의 오발 유형과 대응 방안을 국방백서에 기술하는 등 내용적으로는 충분히 대비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20대 남성이 ‘반문 정서’ 갖게 된 이유 색다른 분석…“아버지 재산 뺏겨서”

    20대 남성이 ‘반문 정서’ 갖게 된 이유 색다른 분석…“아버지 재산 뺏겨서”

    이근형 노무현 청와대 여론조사 담당 비서관 분석“청년 정책으로 얻은 혜택보다 부모 손해 더 큰 탓”“지켜낸 아버지 재산, 나중에 자신에게 돌아올 것”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 핵심 지지층이었던 20대 남성이 여론조사 결과 고개를 돌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반문(反文)’ 정서를 갖게 된 이유에 대해 김대중 정부때 청와대 여론조사 담담 행정관, 노무현 정부때 청와대 여론조사 담당 비서관을 지낸 이의 색다른 분석이 눈길을 끈다. 정치컨설팅을 하고 있는 이근형 윈지코리아컨설팅 대표는 14일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출연, 20대 남성의 반문 정서와 관련해 “아버지 재산을 빼앗기는 것”이라는 취지로 진단했다. 이근형 대표는 “대한민국 사회를 남성 중심사회라고 얘기하는데, 살짝 뒤집어보면 남성 책임 중심사회라고 볼 수 있다”며 “가장 역할, 부모에 대한 부양 책임 등 여러 부담이 전체적으로 남성에게 쏠리다 보니 여성보다 훨씬 현실적으로 될 수밖에 없다. 그 때문에 경제적인 이슈에 굉장히 민감해진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사회에 신규로 진입하는 젊은 층 입장에선 기회가 없고, 가장 큰 피해자는 20대 남성이다. 이들 입장에서 보면 가장 효과적인 경제방책이라는 게 자기 아버지 재산을 물려받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서울 집값을 예로 들었다. 이 대표는 “지금 서울의 아파트 중위 가격이 한 7억에서 8억 정도 사이인 걸로 나온다. 예를 들어 서울에서 한 3억~4억짜리 전셋집에 사는 50~60대 가장은 부자라고 볼 수 없지만, 그 아들 입장에서는 부자다. 만져볼 수도 없는 돈”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그래서 자기 아버지의 재산을 어떻게 지키느냐, 결과적으로 나중에 자기에게 어떻게 돌아오게 하느냐”라며 “겉으로 드러내놓고 말을 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내면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고 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어떤 정책이 본인에게 미치는 영향 못지않게 아버지의 자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 이게 굉장히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과거에는 젊은이들이 부모보다 더 잘 살 수 있다고 하는 희망을 품을 수 있었지만 점점 줄어들었다. IMF 이후로 우리 사회가 근본적으로 체질이 바뀌었고, 금융위기 이후로도 더 계속 가속화된 걸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에 진행자인 정관용은 “부동산 보유세 강화 등을 통한 재원 마련으로 청년층에 대한 일자리 창출 및 여러 혜택을 주는 것이 20대 남성한테 좋은 것 아니냐”고 물었다. 이에 이 대표는 “자기가 얻는 직접적인 혜택보다 그에 못지않게 정책이 자기 부모 세대한테 주는 부정적인 영향이 오히려 더 크다고 볼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최저임금 인상해 자기 알바비가 올라가는데 자영업 하시는 자기 아버지는 힘들어진다”는 사회자의 말에 이 대표는 “아들이 아버지 편을 드는 게 자신에게 더 큰 이득”이라고 말했다. 또 양심적 병역거부와 페미니스트 등에 대해서는 이 대표는 “(20대 남성의 반문 정서와 관련해) 본질적으로 아주 큰 문제로 작동한다고 보지 않는다”고 답했다. 문재인 정부가 20대 남성의 지지도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이 대표는 “젊은이답게 사고하고 진취적으로 행동할 수 있게끔, 젊은이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사회로 만들어야 한다”고 전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족보도서관 설립, 시장 바뀔 때마다 달라집니다…우리 핏줄의 역사 문제 아닙니까”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족보도서관 설립, 시장 바뀔 때마다 달라집니다…우리 핏줄의 역사 문제 아닙니까”

    65년 족보 인쇄 외길 회상사 박병호 대표가 말하는 ‘족보’“6층에 보관하고 있는 족보 책이 한 3만~4만 권이 될 겁니다. 그리고 필름으로도 그만큼 보관하고 있습니다. 웬만한 문중의 족보는 여기에 다 있습니다. 그런데 족보 인쇄가 사양길에 접어들다 보니 이걸 어찌하면 좋을까 하고 고민하고 있습니다. 제가 보관하는 족보는 개인 재산 차원을 넘어 한국인의 핏줄 역사가 담긴 문화재입니다. 대전시가 족보도서관 만들어 영구보관한다고 이야기 나온 게 십수년이 됐지만, 여전히 답보 상태입니다.” 6층 회상문보원 서가엔 900여가문 족보 빼곡히 꽂혀 65년째 족보 인쇄의 외길을 걷는 대전시 동구 중동 회상사(回想社)가 족보 보관에 애로를 겪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지난 11일 박병호(73) 대표를 찾았다. 회상사 겉모습은 출판사라기보다는 창고와 같아 보였다. 건물 1층 사무실에 석유난로를 켜고 직원 몇 사람이 일하는 모습이 보이기에 ‘박병호 대표를 만나러 왔다.’라고 했더니 한쪽 책상에 앉아있던 ‘내가 박병호입니다.’라며 일어나 기자를 맞았다. 1층 사무실을 둘러보니 벽에는 철제 캐비닛이 몇 개 서 있고, 책상만 몇 개 놓여 있었다. 박 대표는 한쪽에 있는 소파에 앉으라고 권하더니 석유난로를 옮겨왔다. 족보 책은 보이지 않았다. 족보 전문 출판사가 맞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족보를 얼마나 갖고 있느냐?”라고 물었더니 그는 대답 대신 나가자고 했다. 그를 따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6층에 올라갔다.6층엔 회상문보원(回想文譜院)이란 간판 아래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고서화 냄새가 어우러진 특유의 냄새가 진동했다. 그 안에는 금천 강씨(衿川 姜氏)부터 900여 가문의 족보가 가나다순으로 서가에 꽂혀 있었다. 한쪽 벽면엔 각종 문집과 향교지 등도 보관하고 있었다. “1991년 설립된 국내 최초의 족보도서관인 여기에 보관된 족보가 한 3만~4만 권쯤 될 겁니다. 2007년 제가 취임한 후로 대동보(大同譜) 500여종, 세보(世譜·일명 파보) 1500여종, 가승보(家乘譜) 900여종 등 모두 600만 부 이상 발간했습니다.” 역대 대통령 휘호도…윤보선부터 김대중 대통령까지납 활자본도 고스란히…희귀 벽자 700여개도 보관“하루 족보 35쪽 입력…족보 한권은 통상 800쪽”5층엔 선친 박홍구의 아호를 딴 춘전(春田)기념관이 있다. 여기에는 족보를 받은 문중에서 기념으로 선물한 고서화, 병풍 등이 가득했다. 1975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 휘호 ‘화친(和親)’도 보였다. 1983년 윤보선 전 대통령의 해평윤씨 대동보 발간 기념 친필 휘호, 1990년 김영삼 전 대통령의 대도무문(大道無門) 백자 도자기, 1992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회상사 방문 및 친필 실사구시(實事求是) 휘호도 받아 별도로 보관하고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이후 역대 대통령들은 따로 연락이 없었다고 말한다. 4층엔 납으로 인쇄하던 시절의 활자본이 보관돼 있었다. “중국에서 넘어온 사람은 옥편에도 안 나오는 한자를 이름으로 쓰는 경우가 있습니다. 읽는 법은 당사자에게 물어야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 한자로 짜잡기해서 글자를 만든 벽자(僻字)도 700개 남짓 있습니다.” 다른 한쪽에선 족보를 만들기 위한 인쇄 작업이 한창이었다. 한 여성직원이 기존의 족보 책을 뜯어내 하나하나 컴퓨터로 입력하고 있었다. “몇십 년 전에 납 활자로 인쇄한 족보는 컴퓨터 데이터가 없어 이렇게 일일이 손으로 입력합니다. 하루 8시간 작업하면 35~40페이지 정도 입력합니다. 족보 만들 때 가장 힘든 부분입니다.” 보통 족보 한 권이 800페이지 전후이니 수작업의 번거로움이 짐작된다. 창문 너머 건물 하나를 가리키며 “저곳엔 족보 필름이 책으로 환산하면 3만~4만 권이 보관돼 있지요.”그가 5층과 6층의 족보도서관과 기념관을 보여주고 나서 문을 자물쇠로 굳게 잠그고 나서 다시 확인했다. “도서관이라면서 왜 이렇게 잠그느냐”라고 물었다. “도둑이 들어서…. 과거엔 사람들이 와서 열람도 하고 했는데 이젠 인력이 부족해 관리가 소홀하니 족보도 훔쳐가고 고서화도 훔쳐가고 해서…. 도난당한 족보만 해도 수천 권에 이를 갑니다.” 잠시 머뭇거리다 다시 말을 이었다. “아까 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 휘호도 도둑맞은 겁니다. 모사품을 새로 걸어둔 것이지요.” 그리고 보니 박 전 대통령의 휘호가 아무렇게나 관리되고 있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낙관도 어쩐지 흑백이더라. 체계적 보관과 관리가 시급해 보였다. “도난당한 족보 수천권…박정희 대통령 휘호도 도난당해체계적 관리, 영구보존 대책 시급…시장 박뀌면 백지화”“이렇게 관리상에 어려움이 많아도 이 자료들이 나름대로 귀중한 문화재 아닙니까. 소멸하면 혈족에 관한 국가적 문화재가 사라지는 것이니 출판에 필요한 최소한의 자료를 빼고 모든 자료를 대전시에 기증하기로 했습니다. 영구보존하려는 것이죠. 회상사가 설립된 1954년부터 출판한 450문중의 대동보와 14문중의 인터넷 족보, 600문중의 전자족보, 800여 권의 한문 서적 등을 기증하기로 한 것입니다.” 대전시가 족보도서관을 만든다고 이야기가 나온 지 십수년이 됐습니다만 확약서를 쓰지 않은 탓인지 여태까지 잘 안 되고 있단다. “우리 회상사가 대전시에 기증할 족보와 고서화 등의 자료를 보관할 장소가 500~600평 정도 필요하지만 대전시문화원이 제공하려는 공간은 260평 정도로 협소하고, 관리·보존이나 재원 마련 계획도 없습니다. 그리고 시장이 바뀌면 이런 계획마저도 백지화됩니다.” 다시 1층으로 내려왔다. 요즘 일거리가 많은지 물었다. “1970~80년대 족보 만들기가 붐이었지요. 전쟁통에 불타거나 잃어버린 집안이 많아서…. 그때는 집성촌을 찾아가 남아있는 족보를 모아서 복원하곤 했지요. 족보 인쇄를 시작하면 문중에서 개판식(開版式)을 성대히 치렀습니다. 특수(特需)를 톡톡히 누렸지요. 그런데 요즘엔 누가 족보 만들려고 하나요. 그래도 제대로 족보 만드는 기업이 하나쯤은 있어야 할텐데….” 최근에 한글을 병기한 족보에 조상의 사진도 넣는다고 한다. 일부 문중은 전자족보, 인터넷 족보를 운영한다고 귀띔했다. “한때는 디스크나 CD롬으로 족보를 만드는 것이 유행이었지만, 요즘 컴퓨터엔 CD플레이어가 부착돼 있지 않으니 보려면 불편합니다. 첨단기술이라는 게 언제 사라질지 몰라서. 종이 족보는 보관만 잘하면 수백 년 흘러도 볼 수 있고 편리합니다. 일본에서는 여전히 납 활자로 족보를 만드는 기업, 200년 역사의 회사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일부 문중 전자족보, 인터넷 족보 운영종이 족보 보관 잘하면 수백년 문제 없어”요즘 또 다른 고민은 가업인 족보 인쇄를 맡아갈 아들을 찾는 것이다. “사양 산업으로 돈벌이가 잘되지도 않으니, 아들들이 서로 맡지 않으려 합니다. 아들이 넷이 있는데 서로 상의하고 있겠지요.” 그도 1954년 설립된 회상사를 2007년에서야 맡았다. “선친이 장남인 제게 이 일을 물려줄 생각에 공고에 가라고 해서 대전공고에 들어갔죠. 그때만 해도 족보 만드는 일을 계승할까 했는데, 어느 날 경쟁업체 사람들이 도끼를 들고 쳐들어와서 큰 싸움이 나기도 했습니다. 이걸 보고 오만 정이 다 떨어져, 선친의 뜻을 어기고 약대로 진학했습니다. 도립 충남홍성병원에서 약제과장을 지내다 약국 개업도 했지요. 그때도 선친이 회사에 들어오라고 했지만 저는 뿌리치고 시의원과 초대 및 3대 대전 동구청장을 지내며 제 길을 갔습니다.” “구청장 임기 끝나고부터 회상사 일을 맡았습니다. 선친이 많이 편찮으셨거든요. 그때가 2007년 1월이었습니다. 직원들 퇴직금도 밀린 상태였죠.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한창 때는 직원이 150명도 넘었는데 …. 이 일대가 한창때 우리가 일거리를 주면서 생겨난 업소들 거리였습니다. 이젠 어엿한 ‘인쇄 골목’이 됐지만.” 족보를 만들면서 봤거나 겪었던 특이하거나 재미난 성씨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하자 박 대표는 “그 문중을 부끄럽게 하는 일이”라며 한사코 말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이런 이야기를 전했다. “어떤 문중에서는 족보가 발간되자마자 이를 받아들고 회상사 건물 앞 계단에서 조상님들께 고하는 고유제를 지냈습니다. 또 직원들 한명 한명 붙잡고 감사하다고도 인사했지요.” “한창 시절, 경쟁업체가 도끼 들고 쳐들어와만정 떨어져, 가업 계승 대신 구청장 길 걸어발간된 족보 들고 제사 지내는 문중도 있어”회상사엔 세가지 불문율이 있다. 먼저 족보 내용이 인쇄된 파지는 함부로 버리지 않는다. 또 인쇄된 용지는 밟고 다니지 않는다. 그리고 족보는 ‘모신다.’라는 말을 쓴다는 것이다. 족보 유래는 중국 한나라 시대의 왕실의 제왕년표(帝王年表)에서 비롯됐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중기 의종 때 김관의가 지은 왕대종록(王代宗錄)이 시초다. 민간 족보는 1423년(세종 5년)에 나온 문화류씨(文化柳氏)의 영락보(永樂譜)인데 기록만 전한다. “회상사에는 선친의 피눈물이 들어있습니다. 이를 가업으로 잘 넘겨주는 것이 제 마지막 소원입니다. 선친은 충북 제천에서 ‘권학사’라는 서점을 운영하며 돈을 좀 만졌습니다. 6·25때 총부리를 겨누고 협박하는 인민군에게 돈을 빼앗겼고, 다시 방첩대는 인민군에게 돈 줬다고 선친을 불러다 엄청나게 때리고 재산을 다 빼앗아 갔습니다. 전쟁 이후 권력 기관에 의해 괴롭힘을 무척 많이 당했습니다. 선친이 한번은 어린 저를 붙잡고 치욕적이라며 부들부들 떨며 우시기도 했습니다. 그리곤 맨손으로 아무도 모르는 대전으로 나왔던 거죠. 인쇄소에 1년 남짓 다니시다가 족보를 인쇄할 생각을 하셨던 거죠. 그리곤 전국 최대의 족보 인쇄 회사를 일구셨습니다.” 가짜 족보 문제도 많다고 얘기를 꺼냈다. “우리는 족보를 출판하는 인쇄업자입니다. 족보 내용은 문중의 종친회장인 발행인의 승낙 없이는 손대지 못합니다. 문중의 어르신들이 와서 돋보기를 들고 하나하나 다 교정을 봅니다. 족보는 정확성입니다. 그것이 신뢰이고, 우리의 철칙입니다. 요즘 가짜족보 문제는 문중 재산 즉 조상 땅 싸움 때문에 발생합니다. 문중에서 법정 소송이 벌어지면 족보가 증거로 채택됩니다. 검찰에서 우리가 보관한 족보를 복사해 간 적이 몇번 있습니다. 자신의 할아버지를 족보에 끼워달라는 부탁을 몇 차례나 받았습니다만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최근 가짜 족보 문제는 문중 재산 싸움 탓우린 출판업자, 발행인 승낙 없이 수정 못해족보는 과거 아닌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그에겐 족보를 만드는 것은 단순히 가업을 승계하는 차원을 넘었다. “고리타분한 핏줄, 즉 혈연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나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알아보자는 것입니다. 족보는 그런 면에서 현재의 나와 조상을 이어주는 네트워크인 셈입니다.” 한편, 2015년 통계청 조사결과 한국인의 성씨는 모두 5582개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5인 이상인 성씨는 530여개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2000년대의 270여개 성씨와 비교하면 급증한 것이다. 다문화의 영향으로 외래 성씨가 급격히 늘어났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인은 삼국시대부터 일부 계층이 성을 갖게 되었다. 한국인 모두 성을 갖게 된 것은 110년 전인 1909년 민적법이 시행되면서부터다. 대전 글·사진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유시민의 고칠레오, 홍준표 대북 퍼주기 주장 정면 반박

    유시민의 고칠레오, 홍준표 대북 퍼주기 주장 정면 반박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유튜브·팟캐스트 채널 ‘고칠레오’가 DJ·노무현 정부의 ‘대북 퍼주기’가 북한 핵무기 개발의 자금으로 쓰였다는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의 주장을 정면 반박했다. 유 이사장은 지난 연말 북한에 보낸 귤 박스에 “귤만 들었겠느냐”며 대북 불법송금 의혹을 제기한 홍 전 대표의 발언에 대해서도 평가절하했다. 최근 여론이 유 이사장과 유튜브 채널 ‘홍카콜라TV’로 보수 진영 ‘스피커’로 나선 홍 전 대표의 경쟁 구도에 주목하는 가운데 두 사람의 정면 대결이 본격화한 모양새다. 노무현재단은 14일 ‘유시민의 고칠레오 2회’에서 ‘북한 핵개발 자금 출처가 DJ·노무현 정부’라는 가짜 뉴스를 팩트체크를 통해 반박했다. 천호선 노무현재단 이사는 지난 2017년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당시 홍준표 한국당 후보가 이런 주장을 편 것에 대해 “대북 퍼주기설은 대북 지원이 시작된 2001년부터 등장한 지긋지긋한 이야기”라며 “70억 달러(약 7조 8400억원)를 현금으로 북한에 줬고, 이것으로 북한이 핵개발을 했기 때문에 북핵 개발 책임이 DJ·노무현 정부에 있다는 주장은 완전한 거짓”이라고 주장했다.고칠레오의 팩트체크에 따르면 DJ·노무현 정부 당시 현금 39억 달러와 현물 29억 달러 등 총 68억 달러가 북한에 건너갔다. 현금 39억 달러의 99.99%는 남북 민간 교역에 쓰인 것으로 남측의 이익을 위한 거래였다. 개성공단 사용료, 노동자 임금 등 대가가 명확한 자금 거래였다는 게 천호선 이사의 설명이다. 나머지 현금 0.01%인 40만 달러(약 4억 5000만원)는 북한 5개 지역에 이산가족 화상상봉센터를 설치하는 사업에 쓰였다. 그 덕에 2005년부터 2년간 센터를 통해 3700명이 화산상봉을 할 수 있었다고 천 이사는 설명했다. 현물 29억 달러는 옥수수, 밀가루, 의약품 등 인도적 지원과 쌀, 철도 및 도로 자재, 경공업 원자재 등의 정부 차관으로 전달됐다. 이런 현물이 핵개발에 사용되려면 북한 밖에서 되팔아 달러로 만들어야 하는데 국제사회에 들키지 않고 대규모 거래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게 유 이사장의 논리다.약 10억 달러 규모의 차관 상환에 대해 천 이사는 “보통 10년 거치, 20년 상환이 국제사회에 통용되는 관행이라는 점에서 2012년부터 차관 상환이 시작됐어야하는데 남북관계가 경색돼 그럴 수 없었다”며 “앞으로 남북관계 개선에 따라 북한 광물자원으로 돌려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청와대가, 북한의 송이버섯 선물에 대한 답례로 제주산 감귤 200t을 보낸 것에 대해 홍 전 대표는 “귤 상자에 귤만 들었겠느냐”며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유 이사장은 “과일상자에 딴거(돈다발) 담는 것은 그분들(보수당)이 많이 하신 것 아니냐”며 “역시 해본 사람이 잘 안다. 옛말에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는다고 그러지 않나”라고 꼬집었다. DJ 정부 시절 불법 대북송금 사건의 팩트는 현대그룹 측이 북한의 7대 사업(전력, 통신, 철도, 통천비행장, 임진강댐, 금강산, 명승지)에 대한 30년 독점사업권을 확보한 것에 대한 선투자 개념으로 4억 5000만 달러를 송금한 것이며 국민 세금이 들어간 것은 아니라고 천 이사는 설명했다. 다만 이 과정에 DJ 정부가 산업은행 대출 및 송금 과정에서 편의를 봐 준 것은 노무현 정부 당시 특검을 통해 사실로 밝혀졌다고 유 이사장은 짚었다. 천 이사는 “당시 민정수석으로 대북특검을 지켜본 문 대통령이 북한에 가는 귤 상자에 현금을 보낼 리가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유 이사장은 “보수진영이 북한에 들어간 현금은 무조건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쓰인다고 전제하는 것 같다”며 “그런 의심을 해소하려고 북한과 어떤 거래도 하지 말고 대결하면서 항구적인 분단상태로 살아가자는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다음과 같은 연설의 한 대목을 인용했다. “설사 밑지는 장사이면 북한을 그대로 두어야 합니까. 그럴 순 없습니다. 이웃에 아주 가난한 나라, 가난한 국민이 산다는 것은 그 자체가 안보의 위협요인입니다. 그래서 설사 수지가 맞지 않더라도 우리는 평화를 위해서 우리 안전을 위해 투자해야 합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이해찬 “김태우·신재민은 조직에 적응 못한 사람들”

    이해찬 “김태우·신재민은 조직에 적응 못한 사람들”

    김, 언론플레이… 신, 자기 합리화 특별법 주장 한국당 더 수렁에 빠져 10년간 이어진 보수정권 실험 실패 소상공인법 등이 올 주요 입법과제 유시민 정계 복귀할 생각 별로 없어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13일 불법사찰 의혹과 적자국채 의혹 등을 각각 폭로한 김태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실 특별감찰반원과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에 대해 “조직에 적응 못한 사람들”이라고 평가했다. 이 대표는 신년기자간담회에서 김 전 감찰반원에 대해 “대검찰청 징계위에서 징계가 확정됐고, 여러 가지 조사를 세게 받아야 한다”며 “직분에 맞지 않는 행동 후 자기 방어를 위해 언론플레이를 했다”고 지적했다. 신 전 사무관에 대해선 “비위는 아니지만 공무원으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했기 때문에, 그만두고 6개월 동안 아무 소리를 안 하다 김태우 건이 터지니 연달아 자기 합리화를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저도 총리, 교육부 장관을 했지만 3, 4년짜리 사무관이 보는 시야하고 고위 공무원 시야는 다를 수밖에 없다”며 “결정은 장관이나 대통령, 최종 결정권자가 하는 것이다. 관점이 다르다고 잘못됐다고 하는 건 공무원 사회에서 좋은 태도는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김태우·신재민 특별검사법’을 발의한 자유한국당을 향해 “그런 것을 갖고 특별법을 만든다는 것은 한국당이 더 수렁에 빠지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 대표는 이어진 기자단 오찬에서 팟캐스트 ‘알릴레오’로 흥행몰이에 성공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정계 복귀 가능성에 대해 “본인은 별로 할 생각이 없다”고 전했다. 최근 민주당의 20대 남성 지지율 하락에는 “군대까지 다녀왔는데 인센티브는 없고 여성을 오히려 우대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 데서 오는 소외감이 작용한 것 같다”는 분석을 내놨다. 이어 “당 청년위와 대학생위에 젠더 문제 등에 대해 토론회를 해 보라고 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21대 총선에서 청년 의원 확충 필요성을 강조하며 “한국당의 공개오디션도 좋은 방식 중 하나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노회찬 전 정의당 의원 사망으로 치러지는 4·3 경남 창원성산 보궐선거와 관련해선 “단일화를 안 하면 그 지역에선 어려울 것”이라며 정의당 후보와의 단일화 필요성을 언급했다. 손지은 기자 sso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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