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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철이 죽음 헛되지 않도록 남영동 대공분실 원형 복구해야”

    “종철이 죽음 헛되지 않도록 남영동 대공분실 원형 복구해야”

    박종철 열사의 죽음은 묻힐 뻔했다.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쓰러졌다는 경찰의 어이없는 설명에도 대꾸할 수 없는 게 당시 분위기였다. 그렇게 의문사로 남을 수도 있었던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건 전적으로 우연들이 만들어 낸 힘 때문이었다. 만약 1987년 1월 당시 최환 부장검사가 경찰의 은폐 조작을 저지하지 않았다면? 일부 언론이 서슬 퍼런 5공화국의 보도지침 검열에 저항하지 않았다면? 열사의 친형이자 현재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 청년회장을 맡고 있는 박종부(61)씨는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고 했다. 그는 “하나의 우연이 또 하나의 우연과 연결되고 결국 6월 민주항쟁으로 이어졌다고 본다”면서 “역사의 엄중한 무게가 느껴진다”고 말했다. 동생과 아버지를 떠나보낸 뒤 그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오늘도 새벽을 깨우는 박씨를 지난 19일 서울 용산의 박종철기념사업회 사무실에서 만났다.-지난해 문무일 검찰총장이 세 차례에 걸쳐 부친을 찾았다. 검찰은 무슨 잘못을 했나. “대다수 국민들은 검찰이 당시 어떤 잘못을 했는지 의아해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미 2009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검찰도 사건의 축소·은폐 조작에 깊이 관여한 점을 밝히고 유족과 국민에게 사과할 것을 권고했다. 10년이 흐른 지금도 당시 수사 검사(박상옥 대법관)를 포함해 수사 라인에 있던 검사 3명 모두 잘못을 인정하거나 사과를 한 적 없다. 물론 검찰이든 경찰이든 자기 허물을 드러내기는 쉽지 않았겠지.” -문 총장 방문은 어떻게 이뤄졌나. “지난해 초에 종철이 고등학교 친구(김기동 부산지검장)한테 연락이 왔다. 총장이 아버지(고 박정기씨)를 찾아뵙고 싶다고. 그때는 아버지께서 의식이 또렷하셨을 때였다. 아버지께서도 반대하시지 않아 만남이 성사됐다. 2월 3일 오후 3시. 정확히 날짜도 기억한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과 함께 와서 아버지께 사과를 했다.” -부친이 뭐라 하셨나. “아버지가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사과를 받아주겠습니다. 그런데 오늘보다 어제가 더 좋았을걸 그랬습니다’라고 말씀하시더라. 왜 조금 더 일찍 오지 않았느냐는 의미 아닐까. 그 말씀을 하시는데 울컥하더라. 당시 병상을 둘러 서 있던 저와 아내, 여동생 모두 뒤돌아서서 눈시울을 붉혔던 기억이 난다.” -총장의 사과에서 진정성이 느껴졌나. “총장이 종철이와 아버지의 삶을 다룬 책 ‘유월의 아버지’를 읽고 왔다고 들었다. 그전에는 아버지에 대해 잘 몰랐던 것 같고. 형식적으로 사과를 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한 달 뒤 공식 방문을 했고, 아버지 돌아가시기 직전 또 한 번 찾아왔다.” -옆에서 지켜본 아버지의 삶은 어땠나. “종철이가 3년 동안 민주화운동을 했다면 아버지는 30년을 했다. 외롭고 힘든 일도 많았을 거다. 어떤 날은 경찰 방패에 맞아 피멍이 들어 밤새 끙끙 앓으시다가도 새벽같이 일어나 유가협 사무실에 청소하러 가셨다. 제 아버지이지만 참 큰 어른이셨다.” -아버지가 동생을 떠나보내며 하신 말씀 ‘이 아부지는 아무 할 말이 없데이’가 지금도 회자된다. “왜 할 말이 없었겠나. 아들이 죄 없이 죽은 게 힘없고 못난 아비 때문이라고 생각하신 거지. 아버지는 1987년 11월 30일부터 거의 30년 동안 일기를 써내려갔다. 이 일기를 기록물로 남겨 놓는 작업도 하려고 한다.” 1994년 4월 26일 고인의 일기장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막내야, 다음에도 나는, 이 아버지는 민주화운동을 할 거야/ 역사에 없어도 나는 네가 하다 간 그것 할 거야!’ 3년 뒤인 1997년 5월 8일 일기장에는 아들을 떠나보냈을 때의 심정을 10년 만에 글로 담았다. ‘처절한 심정으로 이 넓고 큰 지구에서/ 나 혼자 변을 당하는 외로움/ 사지가 마비되는 고독감/ 당하고 마는구나 하는 마음이 바로 이날이었다.’ -문재인 대통령도 부친이 돌아가셨을 때 조의를 표했다. 어떤 인연이 있나. “종철이가 그렇게 되고 나서 나흘 만인가 당시 부산에서 변호사로 활동한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 대통령이 집으로 찾아와 부모님을 위로해 줬다. 이후 아버지와 가깝게 지내셨다. 그런데 두 분 다 대통령이 되면서 예전같이 자주 만날 기회는 없어지더라(웃음).” -동생이 고문당한 남영동 대공분실이 드디어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아버지 생전에 이뤄내지 못한 것이 아직도 가슴 아프다. 1999년 아버지가 유가협 회원들과 고령의 몸을 이끌고 국회 앞에서 422일간 천막농성을 벌인 적이 있다. 그 당시 민주화 과정에서의 희생자를 위한 특별법이 제정되고 보상심의위원회, 과거사위원회 등이 꾸려졌다. 그때 남영동 분실을 넘겨받았어야 했는데 사회운동권 단체의 역량이 부족했던 것 같다. 그 기회를 한번 놓치니 20년이 흘러 버렸다.”-분실을 경찰이 관리하면서 원형이 훼손됐다고 하던데. “원형 보존과 복구 과정이 쉽지 않겠지만 역사 왜곡을 막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일이다. 이곳을 어떻게 만들어 나갈지도 우리 모두에게 남겨진 과제다. 우리가 지켜낸 민주주의와 인권은 후대에 물려줄 소중한 자산이기 때문이다. 2022년 개관(민주인권기념관)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의문사 가족들과 연대 활동을 많이 하는 것은 세상에 안 알려진 제2의 박종철 열사를 기리기 위함인가. “문영수, 김두황, 한영현, 기혁, 한희철, 허원근, 우종원, 신호수, 김성수, 최우혁, 안치웅, 김용권…. 밤을 새워도 모자랄 정도로 너무 많다. 1988년 행방불명돼 시신도 못 찾은 안치웅의 경우, 행여 돌아올까 문도 못 잠그고 지내다 23년이 지나서야 시신 없는 장례식을 치러야 했다. 전태일, 박종철, 이한열뿐 아니라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목숨 바친 수많은 열사들, 그들의 뒤를 이어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수십년을 헌신한 유가족들, 그들이 국가유공자가 아니면 누가 유공자이겠나.” -이제는 국가가 나서야 할 때라는 뜻인가. “그렇다. 그들은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로 언제나 약자였다.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여전히 죄책감에 시달리는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 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거다. 너무 늦어 많은 분들이 한 많은 가슴을 부여안고 돌아가시는 현실이 안타깝다. 의문사는 누구든지 당할 수 있다. 불행한 과거가 다시 오지 말기를 바랄 뿐이다.” 박씨는 인터뷰를 마칠 즈음, 2005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설치됐을 때 위원회 명칭이 거북했다고 털어놨다. 피해자들의 동의가 없는 상태에서 ‘화해’라는 단어가 들어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이처럼 꼭 필요한 말도 없다고 했다. 지금도 진행 중인 과거사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는 길도 화해에 달려 있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세상에 안 알려진 종철이가 너무 많다…의문사 가족에도 관심을”

    “세상에 안 알려진 종철이가 너무 많다…의문사 가족에도 관심을”

    묻힐 뻔한 죽음, 지금 생각해도 아찔…역사적 우연 연결되며 민주항쟁 이어져아버지 병상에서 문무일 검찰총장 만나 “오늘보다 어제 왔으면 더 좋았을걸…”아버지, 30년간 힘든 싸움 일기에 남겨…의문사 유가족에 손만 내밀어도 위로박종철 열사의 죽음은 묻힐 뻔했다.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쓰러졌다는 경찰의 어이없는 설명에도 대꾸할 수 없는 게 그 당시 분위기였다. 그렇게 의문사로 남을 수밖에 없었던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건 전적으로 우연들이 만들어 낸 힘 때문이었다. 만약에 1987년 1월 당시 최환 부장검사가 경찰의 은폐 조작을 저지하지 않았다면? 일부 언론이 서슬 퍼런 5공화국의 보도지침 검열에 저항하지 않았다면? 열사의 친형이자 현재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 청년회장을 맡고 있는 박종부(61)씨는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고 했다. 그는 “하나의 우연이 또 하나의 우연과 연결되고 결국 6월 민주 항쟁으로 이어졌다고 본다”면서 “역사의 엄중한 무게가 느껴진다”고 말했다. 동생과 아버지를 떠나 보낸 뒤 그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오늘도 새벽을 깨우는 박씨를 지난 19일 서울 용산의 박종철기념사업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우리 사회 민주화를 앞당긴 1987년은 현대사의 한 획을 긋는 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힘든 한 해였을 것 같다. “그해 4월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당시 공무원이셨던 아버지(고 박정기씨)는 6월 정년퇴직이 예정돼 있었고. 그런데 갑작스런 동생의 사망 소식에 우리 가족은 몹시도 힘들었다. 아버지는 기관으로부터 회유와 압박에 시달렸다. 그때 어머니가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아버지가 많이 흔들리시는 것 같아 자주 부산에 내려갔다. 조금만 버텨보자고 아버지를 설득했다. 그후로 부모님과 여동생은 시민사회단체에 소속돼 전혀 다른 삶을 살았다.” -가족들과 달리 회사 생활을 했다고 들었다. “현실적인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두 아들을 키워야 했으니까. 2001년 아버지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사람 뽑는다고 슬쩍 권유를 하시더라. 그때도 조심스럽게 거절했다. 그래도 마음은 늘 사회운동단체에 닿아 있었다. 틈나는 대로 연대 활동도 했고. 그러다 2010년 퇴직하고 난 뒤 아버지 활동도 뜸해지면서 바통을 이어받은 거지.” -지난해 문무일 검찰총장이 세 차례에 걸쳐 부친을 찾았다. 검찰은 무슨 잘못을 했나. “대다수 국민들은 검찰이 당시 어떤 잘못을 했는지 의아해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미 2009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검찰도 사건의 축소·은폐 조작에 깊이 관여한 점을 밝히고 유족과 국민에게 사과할 것을 권고했다. 10년이 흐른 지금도 당시 수사 검사(박상옥 현 대법관)를 포함해 수사 라인에 있던 검사 3명 모두 잘못을 인정하거나 사과를 한 적 없다. 물론 검찰이든 경찰이든 자기 허물을 드러내기는 쉽지 않았겠지.” 지난해 10월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수사한 검찰이 정권 안정이라는 정치적 고려를 우선해 치안본부에 사건을 축소·조작할 기회를 줬고, 치안본부 간부들의 범인 도피 행위를 의도적으로 방조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과거사위는 당시 검찰의 수사를 ‘졸속 수사’, ‘늦장 수사’, ‘부실 수사’였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문 총장 방문은 어떻게 이뤄졌나. “지난해 초에 종철이 고등학교 친구(김기동 현 부산지검장)한테 연락이 왔다. 총장이 아버지를 찾아뵙고 싶다고. 그때는 아버지께서 의식이 또렷하셨을 때였다. 아버지께서도 반대하시지 않아 만남이 성사됐다. 2월 3일 오후 3시. 정확히 날짜도 기억한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과 함께 와서 아버지께 사과를 했다.” -부친이 뭐라 하셨나. “아버지가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사과를 받아주겠습니다. 그런데 오늘보다 어제가 더 좋을 걸 그랬습니다’라고 말씀하시더라. 왜 조금 더 일찍 오지 않았느냐는 의미 아닐까. 그 말씀을 하시는데 울컥하더라. 당시 병상을 둘러 서 있던 저와 아내, 여동생 모두 뒤돌아서서 눈시울을 붉혔던 기억이 난다.” -총장의 사과에서 진정성이 느껴졌나. “총장이 종철이와 아버지의 삶을 다룬 책 ‘유월의 아버지’를 읽고 왔다고 들었다. 그전에는 아버지에 대해 잘 몰랐던 것 같고. 형식적으로 사과를 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한 달 뒤 공식 방문을 했고, 아버지 돌아가시기 직전 또 한 번 찾아 왔다.” -옆에서 지켜본 아버지의 삶은 어땠나. “종철이가 3년 동안 민주화운동을 했다면 아버지는 30년을 했다. 외롭고 힘든 일도 많았을 거다. 어떤 날은 경찰 방패에 맞아 피멍이 들어 밤새 끙끙 앓으시다가도 새벽같이 일어나 유가협 사무실에 청소하러 가셨다. 제 아버지이지만 참 큰 어른이셨다.” -아버지가 동생을 떠나보내며 하신 말씀 ‘이 아부지는 아무 할 말이 없데이’가 지금도 회자된다. “왜 할 말이 없었겠나. 아들이 죄 없이 죽은 게 힘없고 못난 아비 때문이라고 생각하신 거지. 아버지는 1987년 11월 30일부터 거의 30년 동안 일기를 써내려갔다. 이 일기를 기록물로 남겨놓는 작업도 하려고 한다.” 1994년 4월 26일 고인의 일기장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막내야, 다음에도 나는, 이 아버지는 민주화 운동을 할 거야/ 역사에 없어도 나는 네가 하다 간 그것 할 거야!’. 3년 뒤인 1997년 5월 8일 일기장에는 아들을 떠나보냈을 때의 심정을 10년 만에 글로 담았다. ‘처절한 심정으로 이 넓고 큰 지구에서/ 나 혼자 변을 당하는 외로움/ 사지가 마비되는 고독감/ 당하고 마는구나 하는 마음이 바로 이날이었다.’ -문재인 대통령도 부친이 돌아가셨을 때 조의를 표했다. 어떤 인연이 있나. “종철이가 그렇게 되고 나서 나흘 만인가 당시 부산에서 변호사로 활동한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 대통령이 집으로 찾아와 부모님을 위로해 줬다. 이후 아버지와 가깝게 지내셨다. 그런데 두 분 다 대통령이 되면서 예전같이 자주 만날 기회는 없어지더라(웃음).”-동생이 고문당한 남영동 대공분실이 드디어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아버지 생전에 이뤄내지 못한 것이 아직도 가슴 아프다. 1999년 아버지가 유가협 회원들과 고령의 몸을 이끌고 국회 앞에서 422일간 천막농성을 벌인 적이 있다. 그 당시 민주화 과정에서의 희생자를 위한 특별법이 제정되고 보상심의위원회, 과거사위원회 등이 꾸려졌다. 그때 남영동 분실을 넘겨받았어야 했는데 사회운동권 단체의 역량이 부족했던 것 같다. 그 기회를 한 번 놓치니 20년이 흘러 버렸다.” -분실을 경찰이 관리하면서 원형이 훼손됐다고 하던데. “원형 보존과 복구 과정이 쉽지 않겠지만 역사 왜곡을 막아내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일이다. 나아가 이곳을 어떻게 만들어 나갈지도 우리 모두에게 남겨진 과제다. 우리가 지켜낸 민주주의와 인권을 후대에 물려줄 소중한 자산이기 때문이다. 2022년 개관(민주인권기념관)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의문사 가족과의 연대 활동도 많이 한다고 들었다. “문영수, 김두황, 한영현, 기혁, 한희철, 허원근, 우종원, 신호수, 김성수, 최우혁, 안치웅, 김용권…밤을 새워도 모자랄 정도로 너무 많다. 1988년 행방불명돼 시신도 못찾은 안치웅의 경우, 행여 돌아올까 문도 못 잠그고 지내다 23년이 지나서야 시신 없는 장례식을 치러야 했다. 전태일, 박종철, 이한열뿐 아니라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목숨 바친 수 많은 열사들, 그들의 뒤를 이어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수 십년을 헌신한 유가족들, 그들이 국가유공자가 아니면 누가 유공자이겠나.” -이제는 국가가 나서야 할 때라는 뜻인가. “그렇다. 그들은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로 언제나 약자였다.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여전히 죄책감에 시달리는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 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거다. 너무 늦어 많은 분들이 한 많은 가슴을 부여 안고 돌아가시는 현실이 안타깝다. 의문사는 누구든지 당할 수 있다. 불행한 과거가 다시 오지 말기를 바랄 뿐이다.” 박씨는 인터뷰를 마칠 즈음, 2005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설치됐을 때 위원회 명칭이 거북했다고 털어놨다. 피해자들 동의가 없는 상태에서 ‘화해’라는 단어가 들어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이처럼 꼭 필요한 말도 없다고 했다. 지금도 진행 중인 과거사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는 길도 화해에 달려 있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중국 청와대 점퍼번호 ‘615104427919’ 집중 보도

    중국 청와대 점퍼번호 ‘615104427919’ 집중 보도

    중국 언론이 청와대 직원의 옷에 새겨진 숫자 ‘615104427919’의 의미에 대해 2차 북미회담을 앞두고 집중적으로 보도했다.중국 관영 중앙(CC)TV는 22일 ‘615104427919’란 청와대 국가안보실 직원들의 겨울 점퍼에 새겨진 숫자는 한반도의 평화를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청와대 여민관에서 근무하는 각 비서관실 직원들은 겨울철 보온을 위해 외투를 자체 제작해 입는 경우가 많은데 국가안보실 산하 통일정책비서관실 점퍼엔 ‘615104427919’란 숫자가 등 뒤에 로고처럼 박혀 있다. CCTV는 한국 언론에 보도된 점퍼 사진과 함께 그동안 남북정상회담 날짜를 새겨 넣은 숫자의 의미를 자료 화면을 통해 자세히 전했다. ‘615’는 2000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남북 정상 회담을 한 뒤 공동 선언을 발표한 날이다. ‘104’는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김 국방위원장 간에 성사됐던 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남북공동선언을 발표한 날짜다. ‘427’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발표한 남북정상회담 합의문을 뜻한다. ‘919’는 2018년 9월 19일 북한 평양에서 열린 3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과 김 국무위원장이 합의해 발표한 공동 선언을 가리킨다. 청와대 안보실 직원의 점퍼는 남북공동선언문이 발표된 날짜만을 표기했다. 겅솽(耿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1일 정례브리핑에서 대북 제재 완화를 주장했다. 그는 2차 북미회담에 대해 “중국은 항상 북한과 미국이 대화를 유지하고 만나는 것을 지지한다”며 “2차 북미회담이 성공적으로 열려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할 수 있는 긍정적 결과를 낳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어 “중국은 유엔의 북한에 대한 제재를 준수해야 한다고 믿지만, 제제와 함께 정치적 해결도 똑같이 이행되어야 한다”며 “현 시점에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정치적 해결을 위해 대북 제재 수정을 논의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김 위원장이 열차로 중국을 이동해 2차 북미회담 장소인 베트남으로 갈 수도 있다는 보도에 대해서는 관련 정보가 없다고 밝혔다.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균형발전 쉽지 않다… 수도권 규제 풀어 얻는 이익, 지역에 나누자”

    “균형발전 쉽지 않다… 수도권 규제 풀어 얻는 이익, 지역에 나누자”

    지난 1월 29일 정부가 약 24조원 규모의 ‘2019 국가균형발전 프로젝트’를 발표하면서 지역균형발전을 둘러싼 논란이 불거졌다. 많은 이들에게 ‘균형발전’은 반드시 달성해야만 하는 과제이며, 현재 수도권과 지역 간 불균형은 정부의 투자 및 의지부족에 따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정부가 더 많은 노력과 투자를 기울이면 지역 간 불균형이 해소되고 균형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가정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를 진단하고 역발상적인 제안을 해 보고자 한다. ●수도권과 지역 불균형 상황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수도권의 경제력 집중도가 가장 큰 국가는 대한민국이며, 시간이 갈수록 집중도는 더 커지고 있다<그림 1>. 한 국가의 지역별 경제력을 비교하는 지표인 지역내총생산(GRDP)을 살펴보면 2011년 48.2%였던 수도권의 비중은 지속적으로 상승하여 2017년 50.3%에 이르게 되었다. GRDP 성장률 역시 수도권의 경우 2015년 3.4%, 2016년 3.7%, 2017년 4%로 계속 높아지는데 비해 비수도권의 경우 같은 시기 2.3%, 2.2%, 2.4%로 답보 상태를 보이고 있다. 상장기업의 72.3%가 수도권에 소재하고 있으며, 연구개발(R&D) 투자 비중은 수도권이 64.4%로 절대적으로 높다 보니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경제력 격차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향후 지방의 미래를 책임질 청년층의 수도권으로의 유출이 2013년 4만 5000명에서 2016년에는 5만 6000명으로, 2017년에는 5만 9000명으로 더 커지고 있다. 이 상황에 이를 때까지 우리 사회와 정부는 과연 무엇을 하였을까? 손을 놓고 그냥 방치하고 있었을까. ●박정희 정권서 시작한 국토균형발전 1960년 이후 모든 정권은 지역균형발전이 반드시 달성해야 하는 목표였다. 그중에서도 서울을 중심으로 한 개발억제는 시급한 과제였다. 1969년 12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은 도시인구집중을 억제하고 도시와 농촌의 균형발전을 촉진하기 위한 조처를 수립하라고 지시하였다. 이에 따라 1970년 1월 30일 청와대 비서실은 지방으로의 행정권한의 대폭 이양, 농림부와 상공부(현 산업통상자원부) 등 주요 정부기관의 한강이남 이전, 수도권의 공업시설 억제안을 보고했다. 1970년 9월 정부는 수도권 인구의 과밀집중 억제 종합대책도 마련하였다. 여기에는 수도권개발억제와 지방이전 기업에 대한 각종 세제혜택 부여, 지방대학의 정원 확대 등 현재도 유지되는 다양한 수단이 포함되었다. 이후 모든 정권에서 수도권억제와 국가균형발전 정책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일관되게 추진되었다. 전두환 대통령 시기 수도권개발억제를 핵심으로 하는 ‘수도권정비법’이 제정되었으며, 노태우 대통령은 청와대에 지역균형발전기획단을 설치하고 대규모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을 시작하였다. 김영삼 대통령은 ‘지역균형개발 및 지방중소기업육성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였다. 김대중 대통령은 SOC 투자 확대 이외에 인재 지역할당제 도입을 추진하였다. 노무현 대통령 때는 ‘국가균형발전특별법’을 제정하고 행정기관을 세종시로 이전(행정중심복합도시), 공공기관 지방이전을 통한 14곳의 혁신도시 건설을 추진하는 등 파격적이며 강력한 정책을 추진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도 이어져 문재인 정부에 이르렀다. 50년 동안 수도권 억제와 지역균형발전 정책을 추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지역 간 격차는 오히려 커지고 있다. 우리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해결이 불가능한 문제에 무모하게 도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더 뾰족해지고 있는 세계 세계적으로 수도와 일부 대도시의 급속한 성장과 다른 지역의 쇠퇴와 몰락은 광범위하게 발생하고 있다. 미국은 동·서 해안지역에 위치한 대도시는 급속히 발전하고 북부와 중부내륙 지방의 쇠퇴가 지속되면서 지역 간 경제력의 차이가 그 어느 때보다 확대되고 있다<그림 2>. 영국도 수도인 런던의 급속한 성장과 다른 지역의 정체로 인해 지역 간 격차가 커지고 있다<그림 3>. 강소기업들이 자리잡고 있어 중소규모 도시가 잘 발달하여 균형발전의 상징처럼 꼽히는 독일도 중소도시의 인구감소와 대도시로의 인구집중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덴마크와 같은 복지국가도 신규 일자리의 70%는 수도인 코펜하겐을 중심으로 한 지역에서 생겨나고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전 세계 거의 모든 국가에서 대도시로의 집중현상과 지방의 몰락현상은 가속화되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ICT 혁명과 세계화 확대의 역효과 20세기 후반 정보통신기술(ICT)의 발전이 본격화하면서 대도시와 특정지역의 집중현상은 완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현실은 특정 대도시에 더 많은 집중과 쏠림이 나타났다. 경제구조와 산업적 특성이 변화한 덕분이다. 정보통신산업을 비롯한 고부가가치 산업은 소수의 우수한 고학력 인적자원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고급 인적자원들의 직접적인 접촉과 작용 속에서 생겨나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혁신을 통한 성취의 규모는 매우 크기 때문에 우수한 인력들은 특정한 곳으로 더 몰리고, 기업들 역시 이러한 인력을 찾아 집중되고 있다. 5G를 비롯한 각종 정보통신 기술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새로운 아이디어와 혁신은 서로 얼굴을 맞대고, 오고 가며 쉽게 만나는 관계 속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그래서 구글, 애플 등 세계적인 ICT 기업들은 우수한 인력들이 더 많은 상호교류를 할 수 있도록 실리콘밸리에 새로운 사옥을 짓고, 이 때문에 전 세계 인력은 실리콘밸리로 몰려든다. 직업학교와 마이스터로 대표되는 숙련된 기술인력을 자랑하는 독일에서도 최근 젊은이들은 전통적인 도제 시스템보다는 대학에 진학하여 대도시에 정착하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고, 이로 인해 독일의 7대 주요도시 주택가격과 임대료는 급등했다. 여기에 세계화의 추세가 더해졌다. 기업들은 과거와 같이 특정 국가의 경계 안에서 투자 및 경영활동을 하지 않고 전 세계 어디에나 조건이 유리한 곳을 찾아 움직이고 있다. 미국 중서부 디트로이트와 같은 러스트벨트를 포함한 전통적인 제조업 중심지 상당수가 쇠락하는 이유다. 대한민국의 지역 간 불균형은 우리의 노력과 의지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분석하는 게 맞을 것이다. ●국토균형발전의 환상 발전은 필연적으로 집중과 집적에서 시작된다. 인구와 자본, 지식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집적된 곳에서 발전이 나타나며, 이렇게 시작된 발전은 새로운 발전을 스스로 더 가속화한다. 이런 추세를 억지로 뒤집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설령 그렇게 할 경우 발전의 동력은 약화될 뿐이다. 우리는 그동안 수도권을 억누르면 그곳에 몰려 있는 일자리와 사람들이 다른 곳으로 이동할 것이라 생각했다. 수도권에 위치한 공기업 등을 지방으로 이전하면 큰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대도시는 하나의 유기체처럼 내부적으로 긴밀하게 상호작용하며 움직이는 존재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치우치지 않고 모두가 동등하게 발전하는 이상적인 균형발전은 상상 속에서나 존재하지,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발전은 본질적으로 쏠림과 집중을 전제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새로운 실험을 시작하자 균형발전은 달성하기 어려운 이상이지만, 과도한 지역 격차를 방치한다면 사회적 양극화와 극단적 갈등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프랑스의 ‘노란조끼 시위’의 원인 중 하나는 파리로의 집중과 이로 인한 지방의 몰락에 있다. 영국의 브렉시트 역시 런던에 집중된 경제력과 격차확대에 따른 지방의 반발에서 촉발된 측면이 없지 않다. 이러한 측면을 고려하면 정부가 추구해야 할 목표는 수도권을 눌러 지방을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수도권과 지역의 현실적 격차를 인정하되 그 격차가 사회적 갈등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다. 지방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수도권에서 살 때 누릴 수 있는 충분한 수준의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하며, 지방이 미래를 도모할 수 있도록 잠재력을 유지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 현실적일 것이다. ●역발상, 무엇을 할 것인가 기존의 전제와 관념을 뛰어넘는 새로운 접근을 시도할 때가 되었다. 첫째 수도권에 대한 족쇄를 풀어 주자. 수도권에 대한 인력과 경제력 집중은 수도권이 그만큼 직업과 새로운 기회를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수도권을 억제한다고 다른 지역이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지난 50년 동안의 실험을 통해 충분히 알게 되었다. 차라리 수도권이 자유롭게 성장해 세계적인 입지가 될 수 있도록, 그래서 대한민국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리는 기관차 역할을 충실히 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수도권에서 창출된 재원을 대한민국을 위해 활용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기업이 원하는 곳에 투자하고, 원하는 인재를 채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그로 인해 얻어지는 이익을 지역에 배분하는 체계를 만들자. 둘째 지역 거주자에 대한 직접적인 소득지원을 강화하자. 지역발전을 위해 오랫동안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여 사업을 진행해 왔지만, 사업의 효과는 제한적이었다. 지역 거주자들이 체감하는 효과는 크지 않았다. 지역균형발전의 예산 일부를 해당 지역의 거주자에게 직접 현금으로 지원하는 ‘지방기본소득’(가칭)을 도입하는 것이다. 2019년 현재 지역 거주자는 노령화하고 있고, 그 숫자도 줄고 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친 이분들이 국민의 일원으로서 충분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수도권의 규제완화를 통해 얻어지는 추가적인 경제적 이득을 활용한다면 재원 마련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셋째 공공부문을 통한 지방형 일자리를 확보하자. 기업 유치를 통한 고용창출과 지역발전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라면 공공부문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어느 지역에 거주하더라도 보건, 교육, 안전 등의 서비스가 안정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이런 인력의 확보는 현재의 획일적인 지방공무원 충원방식으로는 곤란하다. 모든 지방자치단체의 지방공무원들이 ‘지방공무원 급여규정’에 따른 동일한 급여를 받는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 ´광주형 일자리´처럼 현재의 급여수준보다 낮지만, 안정적인 공공부문 일자리를 많이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 새로운 관점으로 현실을 직시하고, 가 보지 않은 길을 가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해 보자. 식민지와 전쟁을 겪은 뒤에도 맨주먹으로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을 건설한 한국 시민들의 저력을 믿어 보자.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최준영 전문위원은 서울대를 졸업하고 문화체육관광부, 국회입법조사처를 거쳐 현재 법무법인 율촌에서 근무하고 있다. 도시, 지역개발, 환경 및 에너지 등 폭넓은 분야에서 새로운 관점을 대안적 정책으로 제시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 시민·환경단체 출신까지… ‘내 사람’ 챙기려다 화 자초한 환경부

    시민·환경단체 출신까지… ‘내 사람’ 챙기려다 화 자초한 환경부

    “김은경 전 장관, ‘외풍’에 전혀 대응 못해” 임원까지 낙하산 내려오면서 내부 반발 환경공단 임원 7명 중 5명 외부서 임명 일부인사 자격 논란·특정인 지원설 돌기도 “보고받은 적 없다→장관이 감독권 행사” 청와대 안이한 리스트 대응도 논란 키워환경부 산하기관의 임원 동향을 분석한 ‘환경부 리스트’에 청와대와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의 관여 의혹이 제기되면서 후폭풍이 거세다. 관가에서는 환경부의 과유불급이 화를 자초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21일 부처 관계자들에 따르면 산하기관 임원 현황을 파악하고 관리하는 것은 직무에 가깝다고 한다. 더욱이 정권이 바뀌면 전 정권에서 임명된 임원들을 교체하는 것은 관행이었고, 이는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서도 다르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그러다보니 종종 교체 과정에서 불협화음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그럼에도 지난해 말 김태우 전 수사관의 폭로 이후 환경부만 논란이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청와대 인사수석실이 인사 과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적폐 청산을 내세운 현 정부의 도덕성이 도마에 올랐다. 과거 정권의 행태와 달라진 것이 없고 오히려 수위가 강해졌다는 비판마저 나온다. 환경산업계 관계자는 “블랙리스트가 ‘비정상의 정상화’ 수단이 됐다면 칭찬받을 일이지만 자신들의 ‘자리 챙기기’ 자료로 활용돼 논란이 커지게 됐다”며 “현 정부 들어 시민단체와 환경단체 출신까지 챙겨야 하는 부담마저 생겼다”고 토로했다. 장차관에 시민단체 출신이 임명되면서 예견됐던 ‘인재’라는 지적도 있다. 특히 김 전 장관이 환경부 공무원에겐 가혹했지만 ‘외풍’에는 전혀 대응하지 않아 내·외부에서 불만이 끊이지 않았다. 환경부 산하기관에서는 기관장뿐 아니라 임원 자리에도 낙하산 인사가 내려오면서 노조와 내부 반발이 거셌다. 이런 상황에서 환경부 퇴직자는 산하기관 취업이 배제됐다. 규모가 큰 한국환경공단은 이사장을 포함한 임원 7명 중 5명이 외부에서 임명됐다. 정준영 이사장은 시민단체, 유성찬 감사는 정치권 인사로 분류된다. 조강희 기후대기본부장은 인천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를 역임했다. 내부 인사로는 최익훈 물환경본부장이 유일하다. 환경부 리스트에 ‘반발’로 표기된 자유한국당 출신 감사와 경영기획본부장 후임에는 노무현재단과 환경부장관 정책보좌관 출신이 각각 임명됐다. 또 환경단체 출신인 서주원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사장 임명 때에는 자격 논란이 제기됐고, 국립생태원장 공모에서도 특정인 지원설이 나돌기도 했다. 한 관계자는 “예전엔 공단 이사장만 ‘윗선’에서 관심을 가졌는데 지금은 자리를 가리지 않는 것 같다”며 “전문성은 차치하고 조용히 임기를 마치기만을 바라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청와대의 안이한 대응도 논란을 키웠다. 지난해 12월 환경부 리스트가 불거지자 “누구도 자료를 보거나 보고받은 적이 없다”고 해명했지만, 김 전 장관이 출국 금지된 19일에는 “산하 공공기관 관리와 감독 차원에서 작성된 각종 문서는 통상 업무의 일환으로 진행한 ‘체크리스트’”라면서 “장관은 산하기관 인사와 업무 등 경영 전체에 대한 포괄적 관리·감독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청와대 설명과 달리 김 전 장관은 지난해 8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산하기관 임원들의 사표 수리에 대한 질문에 “임명 권한이 없다”고 답한 바 있다. 지난해 4월 산하기관 임원 공모엔 김 전 장관과 친분이 있는 시민단체 출신이 유력하게 거론됐지만, 인사 검증에서 탈락했다. 또 다른 공기업 임원 공모에서도 낙하산 인사가 점수 미달로 탈락하자 공모 자체가 무산됐다. 되레 임원추천위원회에 들어간 환경부 공무원들이 눈 밖에 나 고초를 겪었다는 후문이다. 세종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못생겨 천대받던 아귀? 머리부터 꼬리끝까지 귀한 몸!

    못생겨 천대받던 아귀? 머리부터 꼬리끝까지 귀한 몸!

    인천에서는 아구(표준어 아귀)를 ‘물텀벙’이라고 부른다. 예전에 인천의 어부들이 조업하다 그물에 모양이 워낙 흉측하고 살이 적은 아귀가 그물에 걸리면 재수 없다며 곧바로 물에 ‘텀벙’ 소리 나게 던져 버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하지만 지금은 버리기커녕 없어서 못 먹을 정도로 귀하고 비싼 음식으로 변해 식도락가들에게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인천과 서울, 마산 등지에는 아귀 음식거리가 형성돼 있을 정도다. 겉모습만 보고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말은 아귀에도 해당되는 것 같다. 아귀는 못생긴 모습과는 달리 다양한 맛을 내는 살을 가졌고 아가미, 지느러미, 알집, 간, 꼬리, 껍질까지 먹을 수 있는 생선이다.●저열량·저지방·고단백 식품… 인천 ‘물텀벙’ 유명 아귀는 다소 깊은 바다에서 사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남해와 서해에서 주로 잡힌다. 아귀는 몸에 비해 머리가 크고 입 주변에 살이 많다. 배의 절반가량은 내장인데 특이한 맛이 있어 버릴 게 많지 않다. 아귀는 보통 탕과 찜으로 만들어 먹는데 인천에서는 생물 아귀로 만드는 탕이 유명하고, 마산에서는 주로 말려 찜을 한다. 아귀는 저열량, 저지방, 고단백 식품으로 100g당 칼로리는 60㎉, 지방 함량은 0.6g, 단백질 함량은 14,4g에 달한다. 아귀는 주독을 해소하는 데 좋고 당뇨병·동맥경화증 예방에도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드러우면서도 탱글한 살에는 타우린이 풍부하고 비타민D도 다량 들어 있다. 쫄깃쫄깃한 껍질에는 비타민B2와 콜라젠이 풍부해 피부미용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인천의 물텀벙이 유명해진 데는 사연이 있다. 우씨(82) 할머니가 1972년 인천항에서 가까운 남구 용현동에 조그만 음식점을 차려 남들이 거들떠보지 않는 물텀벙에 미나리와 콩나물 등을 넣고 푹 끓여 팔았는데 얼큰하면서도 담백해 부두 노동자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값이 당시 다른 생선에 비해 싼 데다 국물은 진하고 시원해 소주 안주로는 그만이었다. 이 때문에 값싼 술국에 불과했던 물텀벙은 이때부터 인천의 별미로 떠올랐다. 우씨 할머니가 운영하는 ‘성진물텀벙’이 유명세를 타자 인근에 물텀벙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음식점이 10여곳 늘어나면서 1980년대에 인천 남구에 의해 ‘물텀벙 특화음식거리’로 지정됐다. 성진물텀벙이 1997년 이름을 ‘성진아구탕’으로 바꾸고 가게를 크게 키워 연수구 옥련동으로 이전한 뒤 다른 음식점들도 줄어들기 시작해 지금은 4곳만 남았다. 대신 물텀벙 거리 음식점들과 비슷한 맛을 내는 식당들이 인천지역 곳곳에 생겨났다. 인천의 아귀 음식점들은 까다롭게 요리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생물만 고집할 뿐 아니라 가장 맛있다는 4∼5㎏짜리 아귀를 주로 쓴다. 또 냉동된 아귀를 취급하는 곳에서는 구경할 수 없는 내장 부분의 밥주머니와 간, 이리(정액 덩어리) 등을 골고루 섞어 준다. 다른 지역 아귀 음식점들이 찜을 주종으로 하는 것과는 달리 인천에서는 탕이 주류를 이룬다. 아귀에 미나리·콩나물·미더덕·쑥갓·깻잎·냉이·호박 등 10여 가지 재료를 듬뿍 넣고 끓이면 쫀듯하고 개운한 맛이 우러난다. 고기보다 먼저 익는 미나리와 콩나물을 간장에 겨자를 섞은 양념장에 찍어 먹으면 훌륭한 애피타이저가 된다. 탕에 들어가는 육수는 아귀뼈를 우려낸 물에다 멸치·새우 등을 고아 만들기 때문에 맛과 영양이 풍부하다. 고기를 다 먹은 뒤 남은 국물에 쫄면사리를 넣어 끓여 먹거나 밥을 볶아 먹는 것도 별미다. 아귀탕은 주로 남성들이 술안주로 즐기는 데 비해 아귀찜은 대체로 여성들이 선호한다. 깨끗하게 다듬은 콩나물·미더덕·새우 등을 고추와 마늘양념에 비벼 아귀살과 함께 쪄 내는데 매콤하면서도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먹다 보면 콧등에 땀이 맺힐 정도로 맛있게 매운맛에 빠지게 된다. 아귀찜에는 콩나물이 유달리 많이 들어가는데 아귀와 아삭한 콩나물의 조화가 관건이다. 찜 자체가 반찬이다 보니 다른 반찬에는 손이 잘 가지 않는다. 아귀는 특이하게 생겼듯이 부위도 잘 골라 먹어야 참맛을 느낄 수 있다. 우선 순살보다는 뼈에 붙은 살이 맛있다. 물렁뼈에 붙어 있는 부드럽고 쫄깃한 속살을 입에 넣으면 씹히는 맛이 특이하다. 아귀뼈는 굵어 마치 소갈비를 연상시킨다. 유별나게 큰 아귀 입 주변 볼살과 꼬리, 껍질도 맛이 좋다. 이리는 고소한 맛에 술꾼들이 즐겨 찾는데 특수부위인 만큼 아주 적은 양만 제공된다.●아귀찜 원조 경남 마산… 마산어시장 인근 아귀찜거리도 경남 마산은 아귀찜 원조라고 할 수 있다. 1960년대 마산 바닷가 한 갯장어 식당에서 최초로 찜으로 만들어 먹기 시작한 게 시초라고 전해진다. 당시 마산항을 드나들던 어부들은 주변 식당에 아귀를 공짜로 갖다 줄 테니 요리해 보라고 권했지만 식당마다 가치 없는 생선이라고 거들떠보질 않았다. 그러던 중 갯장어 식당 주인이 바닷가 담장 위에 마른 상태로 버려져 있던 아귀에 된장과 고추장, 콩나물, 미나리, 파 등을 넣고 찜으로 만들어 어부들 술상에 안주로 올렸더니 반응이 좋자 아귀를 다루는 음식점이 하나둘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현재 마산어시장 근처 오동동 일대에 있는 아귀찜거리에는 전문 식당 20여곳이 길 양쪽에 쭉 늘어서 있다. 창원시는 이곳을 ‘마산 아구찜거리’라고 이름 붙이고 입구에 간판 조형물을 세워 놨다. 아귀찜거리 음식점들은 찜을 비롯해 탕, 수육, 불고기, 포 등 아귀를 재료로 다양한 요리를 한다. 전국적으로도 상호에 ‘마산’을 넣은 아귀찜 식당들이 많이 생겨났다. 마산 아귀찜은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갓 잡은 아귀를 바람이 잘 통하는 바닷가에서 말려서 쓴다. 아귀를 20∼30일간 수시로 뒤집어 가며 골고루 말려야 일년 내내 신선한 상태로 보관할 수 있고 고유의 맛도 유지된다.마산 아귀찜거리에서 ‘오동동 아구할매집’은 원조 식당으로 꼽힌다. 시할머니(안소락) 때 시작해 시어머니(김삼연)를 거쳐 현재 며느리(한유선)에 이르기까지 3대째 이어 가고 있다. 지난해 12월 문재인 대통령이 창원을 방문했을 때 수행원들과 이곳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김삼연(73)씨는 “대통령께서 ‘아귀 요리를 개발하고 지역의 대표 음식으로 전국에 알리는 데 노고가 많았다’며 격려해 줬다”고 말했다. 인천의 아귀 요리 원조인 ‘성진아구탕’에는 2005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다녀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창원시는 2009년 마산 향토음식인 아귀찜을 세계적인 음식으로 널리 알리기 위해 5월 9일을 ‘아구데이’로 선포하고 해마다 이날을 전후로 아동동 일대에서 ‘아구데이축제’를 개최한다. 글 사진 인천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글 사진 창원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고등교육의 위기… 담론의 장 구성” 국가교육위 설립 시동

    “고등교육의 위기… 담론의 장 구성” 국가교육위 설립 시동

    “정권 차원을 넘어서 실행력을 담보하는 (교육) 기구가 필요하다.” 대통령직속 자문기구인 국가교육회의는 20일 서울중앙우체국 스카이홀에서 고등교육 9개 단체와 이 같은 내용의 공동합의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합의문에서 “현 단계의 고등(대학 이상)교육은 혁신성장, 균형발전 등에 기여하는 데 한계가 있다”면서 “고등교육의 위기를 국가와 사회발전의 기회로 삼기 위해 담론의 장을 구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한 ‘국가교육위원회’ 설립에 본격적으로 나서겠다는 의미다. 김진경 국가교육회의 의장은 “올 상반기 안에 국가교육위원회 설립을 위한 특별법의 국회 입법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가교육회의는 이달 말 국회 토론회 등을 통해 법안의 밑그림을 제시할 예정이다. 국가교육위원회는 정부와 별개의 의사결정 과정과 결정권을 갖춘 교육기관이다. 교육 분야는 10년 이상의 장기적 정책이 필요한데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방향성이 바뀐다는 문제와 함께 설립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문 대통령은 2017년 자문기구로서 국가교육회의를 출범시키고 국가교육위원회 설립을 위한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지난 1년 동안 국가교육회의가 한 것은 2022학년도 대입개편 권고안을 교육부에 낸 것이 전부다. 그 과정에서 김영란 전 대법관을 위원장으로 한 공론화위를 구성해 의견수렴 과정도 거쳤다. 결국 문재인 정부의 교육공약이었던 수능 절대평가와 정반대 방향인 정시 확대를 결론으로 내놓았다. 정부가 교육철학을 보여주지 못하고 여론에 끌려다닌 셈이다. 올 상반기에 특별법 통과가 이뤄질지도 미지수다. 교육계 의견수렴과 법안 통과 등에 앞서 국가교육위원회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이끌어 내는 것이 먼저라는 지적도 나온다. 2004년 노무현 정부에서 국가교육회의와 비슷한 목적으로 구성한 ‘혁신위원회’도 수능 절대평가 등을 추진하다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해 별다른 성과 없이 정권교체와 함께 폐지됐다. 김영식 좋은교사운동 공동대표는 “국가교육위원회가 제대로 기능을 하기 위해선 먼저 장기적 교육 정책 비전과 구체적인 정책 방향을 함께 제시해 사회적 공감대를 이끌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 정부 ‘KAL 858기 폭파사건’ 유해 수습·잔해 인양 수색 검토

    정부 ‘KAL 858기 폭파사건’ 유해 수습·잔해 인양 수색 검토

    정부가 1987년 115명이 사망한 ‘KAL 858기 폭파사건’의 희생자 유해 수습과 비행기 잔해 인양을 위한 추가 수색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참사는 1987년 11월 29일 이라크 바그다드를 출발해 서울로 향하던 대한항공(KAL) 858편 항공기가 미얀마 안다만 해역 상공에서 폭파한 사건이다. 헤럴드경제는 국무총리실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정부가 KAL 858기 잔해 수색 및 희생자 유해 수습 작업을 위한 수색 방안을 관계부처끼리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동안 유족들은 사고 해역을 수색해 사망자 115명의 유해와 유품을 찾아줄 것을 정부에 줄곧 요구해왔다. 전날에도 기자회견을 통해 정부에 수색 작업을 촉구했다. 유족들은 기자회견 때 지난 17일 스텔라데이지호의 선체 일부와 항해자료기록장치(VDR)가 침몰 사고 발생 후 약 2년 만에 발견된 일을 언급하면서 “KAL 858기 사고 해역은 32년 동안 한 번도 수색을 한 적이 없다”고 토로했다. 앞서 국무총리실은 지난달 KAL 858기 폭파사건 희생자 유족들을 면담했다. 이후 국토교통부, 기획재정부 등 관계부처와 함께 수색 작업 논의를 진행 중이다.이 사건은 사건 발생 당시 국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의 전신) 수사 결과와 노무현정부 시절 재조사 결과 모두 북한에 의한 공중폭파 테러 사건으로 결론이 났다. 폭파 주범으로 지목됐던 북한의 대남공작조직 공작원 출신 김현희는 1990년 사형 선고를 받았다가 같은 해 사면됐다. 하지만 유족들은 이 사건 배후에는 전두환 정권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의 공작이 있었다면서 국정원 서버에 담긴 테러범 김현희와 관련한 자료까지 낱낱이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버닝썬이 불씨 댕긴 ‘피의사실 공표죄’

    버닝썬이 불씨 댕긴 ‘피의사실 공표죄’

    김씨, 버닝썬 성추행 의혹 발표 경찰 고소 사실상 사문화…2010년부터 기소 ‘0’ 박상기 장관도 “공표행위 없애겠다”법령에 있지만 현실에서는 적용되지 않아 사문화된 피의사실 공표죄가 재조명되고 있다. 서울 강남의 유명 클럽 ‘버닝썬’에서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해 이른바 버닝썬 사건을 촉발시킨 김모(28)씨가 자신의 추가 성추행 의혹을 공개한 경찰관을 피의사실 공표 혐의로 검찰에 고소하면서다. 김씨 측 변호인인 박성진 변호사는 19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국민의 알 권리, 공익적인 사유 등 정당한 근거 없이 경찰이 김씨의 추가 피의사실(성추행 의혹)을 언론에 알렸다”면서 “어제 서울중앙지검에 강남서 형사과장을 피의사실 공표,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고 말했다. 피의사실 공표죄는 검찰, 경찰 등 수사 담당자가 공소 제기 전에 피의사실을 외부에 알렸을 때 성립한다. 위반 시 3년 이하의 징역, 5년 이하의 자격 정지 등 처벌 수위도 높다. 공소 제기 전 피의사실을 알렸다고 해서 무조건 처벌받지는 않는다. 대검찰청의 ‘인권보호를 위한 수사공보준칙’에 따르면 사건 관계인의 인권을 침해하거나 수사에 지장을 주는 중대한 오보나 추측성 보도 방지, 범죄로 인한 급속한 피해의 확산, 범인 검거 등 국민 협조가 필수적인 경우 등 일부 사정이 있으면 공소 전에도 수사 내용을 공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실제 2010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피의사실 공표 금지 위반 혐의로 301건의 사건이 접수됐지만 재판에 넘겨진 경우는 없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일부 변화가 감지된다. 지난해 8월 법원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형 건평씨가 고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 특별사면 과정에서 돈을 받았다는 검찰 수사 발표로 명예훼손을 당했다고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대해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검찰이 수사 결과를 발표할 때 명확한 증거에 의해 혐의가 입증된 사실만 다뤄야 한다는 취지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도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피의사실 공표 행위는 포토라인과 마찬가지로 없애자는 게 내 지론”이라고 말했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피의사실 공표와 관련한 예외 규정 자체를 없애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문재인 대통령이 영업사원이셨죠”, 유석영 아지오 대표의 ‘다시 서기’

    “문재인 대통령이 영업사원이셨죠”, 유석영 아지오 대표의 ‘다시 서기’

    지난 12일 청와대 연풍문에 한 구두매장이 ‘입성’했다. 김정숙 여사도 사회적 가치확산을 위해 구두 한 켤레를 흔쾌히 구입했다. 대한민국 건국이래 청와대 첫 구두매장의 영광스런 주인공은 2016년 5월 18일 당시 문재인 민주당 대표가 광주 5.18 묘지 참배시 낡은 구두 밑창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큰 관심을 받았던, 그 구두를 만든 아지오란 회사다. 1급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유석영 대표는 청각장애인들의 일자리를 통한 자활을 위해 2010년 야심차게 구두공장을 시작했지만 2013년 8월 31일 폐업하는 아픔을 겪었다. 그해 5월엔 어머니마저 세상을 뜨셨다. 변변한 판로가 없었을 뿐더러 장애인이 만든 ‘장애투성이 구두’란 사회적 편견 탓에, 행상 중 천 원짜리 한 장 받으며 거지 취급까지 받았다. 하지만 사람일은 모르는 법, 2016년 ‘문재인 구두’가 문템으로 급부상 하게 되면서 오래전에 폐업한 아지오란 회사가 다시금 대중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부활’이 시작된 것이다. 시즌1에 제작한 문재인 구두는 청각장애인들의 피와 땀이 섞인 제품은 두 말할 필요 없는 터. 구두 밑창이 금일 갈 정도로 오랫동안 신고 있었던 문재인 대통령이 모습을 본 후, 살아오면서 가장 많은 눈물을 흘렸다는 유대표. 하지만 당시 유력한 대통령 후보였던 든든한 ‘영업사원 문재인’의 호기를 등에 업었지만 시즌2의 시작을 권했던 주위 많은 사람들의 권유에도 섣불리 시작할 수 없었다. 청각장애인분들께 또 다시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공장 문을 다시 열게 만든 원동력은 다름아닌 늘 그와 함께 했던 청각장애인들이었다. 그는 “구두사업을 하면서 천국과 지옥을 하루에도 몇 번씩 왔다갔다 한다. 하지만 이분들이 일터로 출근하는 모습은, 비록 내가 보이진 않지만 그들의 따뜻한 말과 촉감으로 충분히 느껴진다”며 “그분들이 발산하는 에너지가 시즌 1때부터 이미 내 몸 속에 깊이 중독돼 있던 거 같다”고 말했다. 삼고초려 아니 십고초려를 해도 ‘이건 아니다’라는 자기 결정을 내리고 30년 간 연을 맺고 있었던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찾아갔다. 하지만 ‘나도 도울테니 다시 한 번 해봅시다’란 유이사장의 말에 희망을 얻게 됐다는 유대표. 아지오 시즌 2는 그렇게 시작됐다. 지난 14일 성남시 중원구 실리콘밸리 회사를 찾아가 그와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와의 만남을 정리했다.(Q) 지난 12일 청와대 연풍문에 판매장이 마련됐다. 감회가 남다를 거 같은데아지오란 이름 하나 남김 없이 모두 다 증발해 버렸었다. 문재인 대통령께서 저희가 만든 신발을 구두밑창이 갈라지기까지 신으신 것이 이슈가 되서 부활하는 동기를 마련했다. 다시 시즌2를 시작해서 1년이란 시간이 지난 동안안 회사를 다듬고 소비자들에게 판매를 시작했다. 그 와중에 청와대에서 사회적가치 확산이라는 차원에서 김정숙 여사께서 직접 오셔서 발도 재주시고 신발도 구입해 주셔서 저희한테는 큰 힘이 됐다. 특히 우리나라는 청각장애인들이 일터가 굉장히 편협한데 여기에 힘을 보태주셨다는 것은 앞으로 장애인들의 일자리도 늘어나고,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나 행복해지는 삶에 있어서 똑같이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Q) 구두 만드는 회사를 설립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80년대 라디오 취재를 갔을 때 우리나라 구두 3사에서 청각장애인들이 생산부서에서 많이 일하는 걸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구두 제조업이 해외에서 도입된 시스템으로 바뀌어 가고 그로인해 청각장애인들이 전부 실직했다. 저는 그분들의 솜씨가 너무나 아까워 시장동향이나 여러 가지 사회적 환경을 고려치 않고 이분들의 일자리만 구축해야겠다는 마음으로 2010년도에 문을 열게 된 거다. (Q) 문재인 대통령이 폐업한 아지오 구두를 4년 넘게 신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펑펑 울었다고 했는데처음에 구두공장 시작할 때는 야심차게 청각장애인분들과 ‘열심히 일해 돈 많이 벌어서 부자가 되어보자’라고 약속하고 시작했던 건데 제가 경영을 변변치 못하게 해서 결국 문을 닫게 됐다. 어머니가 페업한 그해 5월 돌아가셨고 3개월 후인 8월 31일에 문을 닫았다. 그때도 말도 못할 정도로 많이 울었는데 문대통령께서 우리 구두를 4년 이상 신으셨다라는 소리를 듣고 어머니 돌아가셨을 때 보다 더 많이 울었던 거 같다. (Q) 문재인 대통령의 신발 구입배경은구두를 팔 데가 따로 없었다. 결국은 행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급여를 줘야 되고 집세를 내야 했기 때문에 찬밥 더운밥 가릴 겨를이 없었다. 결국 국회에 가서 구두를 팔아보자는 계획을 세우고 국회에 문을 두드렸다. 당시 지역구 국회의원이었던 윤후덕 의원이 문을 열어주셔서 장을 열게 된 것이다. 2011년도에 1/3이상의 국회의원들이 사주셨고 그 다음해에 또 다시 국회로 구두를 팔러 갔다. 그때 선거를 앞두고 바쁜 와중에도 문재인 후보께서 와주셔서 “나도 열심히 뛸 테니깐 여러분도 꼭 성공해 주시기 바래요. 신발이 참 편합니다”라고 말씀해 주셨다. (Q) 당시 유대표에겐 문재인이란 사람은 어떤 분으로 기억하고 있는지저는 굉장히 사람들의 인위적인 따스함과 겉치레 등에 대한 느낌을 그 사람들이 말하는 것과 악수를 할 때 많이 느낀다. 당시 문대표께서는 제 손을 꼭 잡아주시면서 다정하게 진심어린 마음을 주셨고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나중에 대통령 취임하시고 다시 직접 뵀을 때도 그 느낌은 한결 같았던 걸로 기억한다. (Q) 폐업하게 된 이유는솔직히 말하면 대표인 저의 영업능력이나 경영 추진이 부족했다. 대기업 구두 메이커들이 성업하고 있었고 그런 상황 속에 우리가 뛰어들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상당히 무모했던 거 같다. 또한 장애인분들에 대한 편견도 매우 컸던 거 같다. 신체적, 정신적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여러 측면에서 능력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회적 편견이 회사가 문을 닫게 되는 데 있어 조금은 작용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Q) 본인도 시각장애인 1급이다. 같은 장애인으로서 직원을 바라보는 심정이 남다를 거 같은데저 역시 시력을 잃었을 뿐이지 그 외의 기능은 아주 건강하다. 나머지 잔존기능으로 여러 기회가 제공된다면 할 수 있는 일이 충분히 많다. 저는 운보 김기창 선생님을 늘 생각한다. 귀가 안 들렸기 때문에 더욱 몰입해서 그림을 그렸듯이 구두를 제작하는 일도 청각장애인들의 탁월한 집중력을 통해 일을 더욱 잘 할 수 있다고 생각에는 늘 변함이 없다.(Q) 청와대에서 문재인 구두를 다시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는데대통령이 취임 하시고 구두를 다시 만들어 달라는 요청이 왔다. 그때가 2017년도 5월14일이었다. 하지만 이미 망한 상태였기 때문에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이라도 우선 와서 발 사이즈를 잰 후 다시 만들면 안 되겠냐고 해서 “시즌 1때 함께 일했던 청각장애인들은 이미 다 뿔뿔이 흩어졌고 아지오의 정신은 그들의 손을 거치지 않는 구두는 아지오로 인정할 수 없기 때문에 할 수 없다”고 말할 수 밖에 없었다. (Q) 유시민 이사장에게 시즌 2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그와 어떤 인연인가노무현재단 이사장님은 저와 30년이 넘게 가깝게 지내던 사이다. 젊은 시절에 장애인 문제를 가지고 서로 만나서 의논하고 장애인들의 진로를 많이 열어줬던 분이다. 문재인 구두가 이슈화 되면서 한창 막 붐이 올랐지만 함부로 다시 구두공장을 열 수 없었다. 저는 한 번 망했다. 망한 건 괜찮은데 큰 상처를 줬기 때문이다. 수도 없이 고민을 하다가 유시민 이사장님을 찾아갔다. “이거 브랜드도 좋고 대통령께서 영업도 해주셨다. 나도 도울테니깐 같이 한 번 해보자”라고 말씀 하셔서 시즌 2의 문을 열게 됐다. (Q) 아지오 시즌1때 함께 했던 올해 안승문 구두장인(현 공장장)도 다시 함께 하셨는데안승문 구두장인도 어머니가 청각장애인이시다. 그러한 걸 계기로 제가 줄기차게 요구했다. 아마 그분은 십고초려 이상은 하셨을 거다. 제가 시즌2 시작할 때 “이거 하다가 우리 죽어도 좋다. 같이 해보자” 그랬더니 하던 망치 던져놓고 여기 와서 시작하게 됐다. (Q) 역대급 모델들이 참여하셨는데사회적 협동조합을 만들면서 뜻 있는 분을 모시려고 노력했는데 정말 좋은 분들이 많이 동참해 주셨다. 유시민 이사장님 뿐 아니라 가수 유희열씨, 저랑 형동생하는 강원래씨.도 참여하셨다. 또 여성화를 출시할 무렵 모델이 필요하다고 유시민 이사장님께 말씀을 드렸더니 유희열씨를 통해 전화 한 통화로 이효리씨를 ‘쉽게’섭외할 수 있었다. (Q) 직원들의 기술 습득 능력은 어떤 편인지구두제작 실력이 하루 아침에 쉽게 습득할 수는 없다. 하지만 청각장애인분들이 일에 대한 응집력이 있기 때문에 다른 분들에 비해 습득 속도가 빠르다. 물론 구두 장인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하다. 청각장애인분들도 지금 정도면 어떻게 하면 제품을 우수하게 만들지, 어떻게 하면 소비자들에게 좋은 느낌을 줄 수 있을지를 인지하고 있다. 조금 더 노력하면 4~5년 후엔 제2, 제3의 공장을 지휘할 수 있는 그런 장인들도 나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Q) 시각장애인 사장과 청각장애인 사원간의 ‘케미’가 대단하다고 들었는데사람들은 괜한 걱정들을 한다. ‘안 보이니깐, 안 들리니깐 이 결합체는 정말 불편할 것이다’라고. 불편한 건 맞다. 청각장애인과 둘이만 있으면 몇 가지 정도의 대화는 하지만 그 이상의 대화는 진도는 못나간다. 하지만 서로 배려를 해요. 제가 안 보인다는 걸 그분들이 인정 해주고, 저도 그 분들이 안 들린다는 잘 인지하고 있다. 중요한 얘기를 할 때는 반드시 통역사와 함께 한다. (Q) ‘자신감보다 기대감이 조금 앞선다’라는 건 어떤 의미신지사람들은 ‘대통령이 계시고 이슈화가 돼있고 많은 모델들이 뒷받침을 하니깐 잘 될 것이다’라고 생각하지만 결코 아니다. 잘한다고 박수를 쳐줄 수는 있지만 상품에 대한 거래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건 그냥 거품에 불과한 부분들이기 때문이다. 거래까지 성사시키려면 저희 노력은 그 기대와 더불어 더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Q) 앞으로의 계획과 소망이 있다면아지오하면 ‘편하다’, 아지오하면 ‘품질이 참 좋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대표 모델’이란 말을 들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다. 많은 고객분들이 저희들을 아껴주시고 응원해 주신다면 이곳에서 일하는 청각장애인들의 주옥같은 솜씨를 통해 좋은 신발을 만들어 국민들의 발을 건강하게 해드리고 싶다. 글 박홍규 기자 gophk@seoul.co.kr 영상 박홍규, 문성호, 김민지 기자 sungho@seoul.co.kr
  • 5·18 모독 근절하려면… 혁명의 원천 ‘사회적 힘’을 재평가하라

    5·18 모독 근절하려면… 혁명의 원천 ‘사회적 힘’을 재평가하라

    나는 “5·18 진상규명 대국민공청회”에서 5·18 광주항쟁을 정면으로 왜곡한 지만원씨의 행동이나, 이런 식의 공청회를 개최한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정치적 자질이나, 이것이 논란이 된 상황에서 ‘역사 해석의 다양성’이라는 말로 책임을 회피한 한국당 지도부의 속내에 대해서 따로 언급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대신에 국회와 정부가 법률과 국가정책으로 국가기념일로 지정한 사안인 데다 내년이면 40주년이 되는 광주민주화운동을 폄훼하는 퇴행적 행동이 대낮에 버젓이 일어나게 되는 우리 사회의 특수한 상황과 그것을 넘어서기 위한 방안에 대해서 의견을 제시할 필요성을 느낀다.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착하고 순수한 사람들로만 구성된 지상낙원은 없었다. 빛이 있는 만큼 그림자도 있게 마련이다. 우리가 더러 목표로 삼는 유럽에도 나치주의자들이 있고 미국에도 인종주의자들이 존재한다. 문제는 착하지도 않고 순수하지도 않은 사회적 부류의 과잉 확산으로 인해 우리 사회가 지상낙원의 정반대 편에 서게 됐다는 안타까운 사실이다. 다른 나라와 달리 유독 우리 사회에서 빈발하는 역사적 퇴행성에 대해서는 별도의 해석이 필요한데 그 성격과 원인을 다음 다섯 가지 관점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첫째는 사회구조적 해석이다. 과거의 쓰라린 교훈에도 불구하고 역사를 되돌리고 싶어 하는 퇴행적 경향은 현실에서 극단적 반공주의, 배타적 지역주의, 재벌추종주의, 배금적 황금만능주의, 이기적 부동산투기, 종교적 근본주의, 지역토호, 개발주의, 냉전주의, 부패주의, 사이비 언론집단, 성적제일주의, 정치적 모리배 등 매우 다양한 양태로 폭넓게 존재한다. 일부 영역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라 정치, 경제, 종교, 교육, 언론, 공직을 막론하고 사회 전반에 만연된 구조적인 현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가 민주화되었다고 도취돼 양극화된 사회적 상황과 존재들을 간과한다면 미래로 나아갈 수 없을 것이다. 둘째는 역사적 해석이다. 우리의 근현대 200년은 고단한 역사적 과정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 시대를 살아내는 것 자체가 유일한 목표가 됐다. 생존이 유일한 목표가 되면서 생존을 위한 모든 수단과 방법이 정당화됐고 물불을 가리지 않는 생존투쟁이 절대적인 진리로 자리잡게 됐다. 당연히 생존 및 생존을 위한 수단을 제외한 모든 사회적 가치들은 무의미한 것으로 간주되어 포기됐다. 결국 살아남아 생존하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역사적 상황이 조성됐고 독재와 쿠데타와 정경유착과 부패를 거듭하면서 ‘천민 자본주의 공화국’으로 고착됐다. 그러므로 오늘의 대한민국은 식민지배의 정서와 분단의 토대 위에서 형성된 천민 자본주의가 민주주의와 결합한 기형적 결과물이다. 셋째는 엘리트주의적 해석이다. 고단한 역사에 대한 사회적 대응은 저항과 굴종의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나는데 통상 소수는 저항하고 다수는 굴종한다. 이때 저항하는 소수가 굴종하는 다수를 포용하는 정도에 따라 역사의 진로가 결정된다. 소수가 다수를 포용하기 위해서는 모범의 창출이 필요하다. 민족사 전개 과정에서 모범이 얼마나 위대한 힘을 발휘하는지는 미국의 워싱턴, 남미의 볼리바르, 터키의 케말 파샤, 유고의 티토, 베트남의 호찌민, 중국의 마오쩌둥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출애굽에서 모세나 켈트족에서 아서왕의 역할도 마찬가지였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인 것처럼 구슬로 존재하는 사람들을 보배로 단결시키는 모범의 창출이 필요한데 근현대 200년의 과정에서 저항의 지도자들은 유효한 국민적 모범을 창출하지 못했다. 넷째는 성찰적 해석이다. 우리 역사에서도 개선의 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유감스럽게도 기회를 놓쳤다. 해방이 분단과 전쟁으로 역행하는 상황에서 해방정국의 지도자들이 분단을 막고 친일파를 처단해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는 일에 민족적 역량을 결집하기보다는 권력투쟁에 매몰돼 친일파와 결탁해 외려 분단을 조장했다. 다시 1960년 4월 혁명에서는 정권을 장악한 민주당의 분열로 혁명에서 표출된 국민적 여망은 좌절됐고, 이런 경험은 10·26과 6월 항쟁에서도 거듭 되풀이됐다. 민주화의 중대한 과도기에 군부와 야합해 몰락 직전의 군부독재세력에 면죄부를 발급하고 민주화의 방향을 틀어버린 ‘3당 합당’은 실패의 극단이다. 그 결과 우리는 친일파 청산에 실패한 후 다시 군부독재 청산에 실패함으로써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역사청산을 하지 못하는 오류를 범했다. 다섯째, 분단 기원론이다. 적어도 해방 이후에는 이 모든 상황의 중심에 분단이 존재한다. 분단이 모든 문제의 원인은 아니지만 기왕에 존재하던 문제들을 포함한 모든 상황을 악화시켜 사회적 극단주의를 창출한 원천적 주범이다. 분단은 또한 전쟁과 남북대결로 확장되면서 극단주의를 유지 재생산하는 자양분이 됐다. 분단의 입장에서 분단을 위해서라면 참혹한 전쟁도 마다할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분단이 부과한 해악과 고통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상황이라면 “모든 통일은 좋은가? 그렇다. 통일 이상의 지상명령은 없다”고 말한 장준하의 발언이 가진 현재적 의미를 다시금 헤아려 보아야 할 것이다. 이 다섯 가지 해석에는 크고 작은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해석보다 중요한 것은 실천이고 모든 역사적 해석은 당대의 실천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증명되는 것이므로 결국 누가 책임질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물론 당연하게도 대통령과 정권이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 그러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고려가 없이는 불완전하다. 민주화가 국가의 민주화와 사회의 민주화를 병행하는 이중 민주화의 과정으로 진행돼야 하는 것처럼 분단을 극복하고, 사회적 극단주의를 해결하면서, 통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사회적 역할이 병행돼야 한다. 일찍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화”로 표현했던 불발된 명제를 다시금 화두로 제기하는 이유는 우리 역사에서 사회가 차지하는 위상 때문이다. 해방 전의 의병운동이나 독립운동은 말할 것도 없고 해방 후의 변화 역시 예외 없이 사회적 힘에 의해 시작됐다. 4월 혁명과 6월 항쟁은 물론 최근의 촛불혁명에 이르기까지 사회적 힘은 변화의 유일한 원천이자 동력이었다. 사회적 힘이 혁명을 가능하게 했고 그 혁명은 태풍처럼 홍수처럼 일어났다. 그러나 태풍을 구성하는 모든 바람이 한 방향으로 질서정연하게 부는 것이 아닌 것처럼 홍수를 만들어낸 모든 물줄기가 오와 열을 갖추어 흘러가는 것이 아닌 것처럼 우리 혁명 또한 크게 일어나 여러 갈래로 움직이면서 빠르게 소멸됐다. 결국 사회적 힘은 혁명의 원천이되 스스로 권력으로 승화되지 못했다. 혁명은 사회가 시작했지만, 권력은 정당의 몫이었다. 혁명은 태풍처럼 기존 권력을 붕괴시켰지만 힘의 분산으로 소진됐고, 권력의 공백은 정당이 장악했지만 이미 태풍은 아니었다. 태풍의 소진으로 정당에 대한 강제력은 상실됐고 혁명의 보조세력일 수밖에 없는 정당은 집권과 동시에 혁명의 대의에서 이탈했다. 이 과정을 반복한 것이 한국 민주화의 특징이자 본질적인 한계다.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혁명의 원천인 사회적 힘이 재평가돼야 한다. 과거에도 그랬던 것처럼 미래에도 반드시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단언컨대 대한민국에서 미래를 전망하는 작업은 역사에서 반복적으로 실천됐던 사회적 힘에 대한 창조적 재해석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될 것이다. 사회가 해야 할 일이지만 정권도 관심을 가져야 할 대목이다. 상지대 총장
  • 당청, 신공항·예산 카드로 흔들리는 PK 민심잡기

    민주, 창원서 예산협의… 지도부 총출동 野 “내년 총선위한 사전 선거운동” 반발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 부산·경남(PK)의 흔들리는 민심을 잡으려고 ‘공격적이고 노골적인’ 구애 공세를 펴고 있다. PK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역감정 타파를 위해 정치인생을 건 곳이자 문 대통령의 정치적 기반이라는 상징성이 있다. PK에서 밀리면 내년 총선이나 2022년 대선에서 승리를 장담할 수 없게 된다. 그런데 지난해 6·13 지방선거에서 사상 처음으로 PK 광역단체장을 석권했던 민주당의 지지율이 최근 자유한국당에 역전당하면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최근 두 달 사이 다섯 번이나 PK를 찾았다. 지난해 12월 경남 창원에서 열린 중소기업 스마트 제조혁신 전략 보고회를 시작으로 지역경제 투어 3회, 지난해 성탄절과 올해 설 연휴를 경남 양산 사저에서 보냈다. 문 대통령의 지역경제 일정이 PK에 집중된 것이다. 특히 문 대통령은 지난 13일 부산에서 PK 최대 현안인 가덕도 신공항 재검토를 시사했다. 부산시는 곧바로 “(대통령 발언은) 신공항과 관련해 부산시의 의도를 전적으로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며 환영했다. PK의 가덕도와 대구·경북(TK)의 밀양이 맞붙었던 동남권 신공항은 문 대통령의 당대표 시절 약속이기도 하다. 2016년 4·13총선 당시 문 대통령은 “부산 시민들이 5석을 만들어 주시면 가덕도 신공항을 반드시 유치하겠다”고 공언했고, 부산 지역 18석 중 5석을 얻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에서 가덕도도 밀양도 아닌 김해 신공항 확장으로 결론이 나면서 문 대통령은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민주당도 예산을 무기로 PK 민심잡기에 힘을 쏟고 있다. 민주당은 오는 18일 올해 첫 예산정책협의회를 겸한 현장최고위원회의를 창원에서 연다. 회의에는 이해찬 대표 등 당 지도부가 총출동한다. 야당은 총선을 겨냥한 민주당의 사전 선거운동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매년 10~11월 사이 진행해 온 예산협의를 2월부터 시작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정치 행위라는 것이다. 한국당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은 “(문 대통령의) 이 지역 지지율이 흔들리니 내년 총선을 겨냥해 선심성 선물 공세를 한다”며 “내년 총선을 위한 선거운동”이라고 했다. 이만희 원내대변인은 “TK 지지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현 정권의 영남 갈라치기”라며 “망국적인 지역감정과 국민 갈등에 기대어 세금으로 대통령 지지율이나 올려 보려는 못된 발상이 아닌지 의심된다”고 했다. 손지은 기자 sson@seoul.co.kr
  • [손성진 칼럼] 한국당과 황교안의 딜레마

    [손성진 칼럼] 한국당과 황교안의 딜레마

    정치에 무거운 발을 담근 황교안 전 총리의 미래가 궁금하다. 제2의 반기문과 지리멸렬한 자유한국당의 구세주 중에 어느 길을 걸을지 짐작하기 어렵다. 그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당권의 문을 두드린 한국당은 여전히 혼돈 상태다. 허무맹랑한 확신범 지만원을 불러 멍석을 깔아 주는 막가파 정치를 자행했다. 이종명·김순례 두 비례대표 의원은 ‘노이즈 마케팅’에 성공했지만, 당은 뻔한 자해행위를 미리 막지 못할 만큼 제어 능력을 상실했다. 한국당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망령에서도 벗어나지 못했다. 옥중정치라 부르기도 민망한 ‘책상 타령’ 같은 지극히 사적인 견제구에도 당권 도전자들은 움찔댄다. 박근혜를 내치다가는 올드팬에게서 버림받을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친박(親朴)의 굴레를 억지 춘향으로 뒤집어쓰고 있는 모양새다. 이런 한국당이나 황교안이나 외양부터 봐도 딜레마틱하다. 당이나 황이나 반발과 파문 속에서 떠밀려 마지못해 ‘5·18 북한군 개입 주장’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는 모습을 취했다. 당은 이·김 두 의원을 윤리위원회에 회부하고 유감을 표시했다. 그러나 진정한 사과는 아니었다. 광주에 간 황교안은 “광주는 민주화가 이뤄진 거룩한 성지”라는 말로 점잖게 선을 그었다. 그러나 한국당 지지자 중에는 당과 황교안의 태도에 불만이 있는 이들이 분명히 있다. 주말마다 도심에서 확성기 볼륨을 키우는 ‘태극기파’다. 한국당이 나락에 떨어질 때도 콘크리트 지지로 당의 완전한 몰락을 막은 마지막 10% 미만의 극렬한 지지자들이다. 그렇기에 그들의 목소리를 마냥 깔아뭉갤 수만은 없을 것이다. 박근혜와의 관계를 놓고서는 한국당과 황교안의 딜레마는 더 깊을 수밖에 없다. 우군인 줄 알았던 박근혜의 직공에 황교안은 적잖이 당황했다. 나름대로 보은을 했다고 생각한 황교안으로서는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국정농단 수사팀 박영수 특검의 수사 기간 연장을 허가하지 않았다’는 말로 박근혜의 손을 부여잡으려 했다. 그것이 더 큰 실수였다. 자신의 중대한 잘못을 자백한 셈이 됐다. 또한 친박에서 깨끗이 탈출할 기회를 놓쳤다. 2004년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많은 ‘구(舊)공안’ 검사들이 검찰을 떠났지만, 황교안은 검사장 승진에 연이어 탈락하면서도 자리를 지켰다. 권토중래를 노리던 황교안은 이명박 정부에서 고검장으로 부활했다. 그러나 사시 동기 한상대가 검찰총장이 되자 검사 옷을 벗었다. 그런 그를 장관과 총리로 승천시켜 준 사람이 박근혜다. 그래서 황교안은 박근혜에게 빚이 있음을 느낀다. 그럼에도 유치하고 졸렬한 ‘책상과 의자’ 일로 황교안은 유승민과 같은 ‘배박’(背朴)이 됐다. 그것이 정치다. 황교안은 원래 나쁜 의미의 정치꾼이 될 인물이 아니다. 그는 공안검사로 뼈가 굵은 사람이다. 우익이든 좌익이든 법과 원칙을 중시하는 검사와 배반과 협잡이 판치는 정치는 어울리지 않는다. 검찰총장을 생애 마지막 공직으로 삼았더라면 그를 따랐던 몇 사람한테서라도 존경한다는 소리를 들었을 김기춘의 말로가 말해 준다. 더욱이 황교안에게는 싫든 좋든 박근혜의 인물, 국정농단의 공범이라는 빨간딱지가 붙었다. 국정농단에 책임을 져야 하니 당권이든 대권이든 나설 자격이 없다는 말은 논외로 하자. 선택하고 심판할 권한과 기회가 당원과 국민에게 있기 때문이다. 한국당이나 황교안이나 극단의 무리와 친박의 올가미 속에서 진퇴양난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지층과 당권을 생각하니 두 가지를 선뜻 포기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한국당이든 황교안이든 건전한 보수의 중건을 진정 원한다면 극단, 골수 친박과는 과감하게 결별을 고해야 한다. 극우적 이미지를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황교안은 일단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 사실 한국당과 황교안의 입장에서는 지금이 절호의 찬스일지 모른다. 문재인 정부의 정치와 행정이 만사 뜻대로 잘 풀리지는 않고 있기 때문이다. 현 정부에 실망하고 갈피를 못 잡는 중도, 온건 우파적 유권자들로 넘쳐나는 지금 민심은 정치 문외한이 봐도 물 반 고기 반이다. 극렬과 친박을 옹호함으로써 당권을 쥘 수 있을지언정 대권은 어림도 없다. 민심은 그렇게 무지하거나 호락호락하지 않다. 황교안이 일부에 불과한 그들 지지층의 환상에 빠져 이를 무시한다면 정치 초보의 명찰도 떼기 전에 정치판에서 쓸쓸히 내려와야 할 것이다.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금융기관과 해외투자 정보 공유 확대… 국부 증대 힘쓰겠다”

    “금융기관과 해외투자 정보 공유 확대… 국부 증대 힘쓰겠다”

    한국투자공사(KIC)는 한국의 ‘국부펀드’다. 외환보유액 등 나랏돈을 해외 주식이나 채권, 부동산 등에 투자하고 수익을 내서 미래 세대를 위한 부(富)를 축적하는 공공기관이다. 2005년 7월 설립 당시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으로부터 200억 달러를 위탁받은 뒤 위탁금 증액과 자체 수익 등을 합쳐 2017년 말 기준 1341억 달러를 운용하는 글로벌 투자시장의 큰손이다. 지난해 3월 취임한 최희남(59) KIC 사장은 12일 서울 중구 회현동 KIC 본사에서 서울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KIC의 투자 수익률을 높이는 일은 물론 국내 금융산업 발전에도 힘쓰겠다”면서 “해외 투자 관련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은 국내 금융기관들에 해외 투자자들과 다리를 놔 주고 투자 노하우를 공유하는 역할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KIC는 노무현 정부 당시 동북아금융허브 추진의 핵심 전략으로 설립됐다. →KIC의 국제금융협의체에 대한 금융기관들의 반응이 좋다. -KIC는 글로벌 투자자라 해외 투자기관들이 새 아이디어나 상품을 갖고 먼저 찾아온다. KIC가 이들과 해외 진출한 국내 금융기관 사이에서 중요한 매개체 역할을 한다. 해외 지사가 뉴욕과 런던, 싱가포르 등에 있는데 ‘해외 지사 국제금융협의체’를 운영 중이다. 지사가 현지에 나간 은행, 증권사 등 민간 금융사와 연기금 등 공공투자기관을 초청해 KIC에 찾아오는 금융기관들의 정보를 공유한다. 뉴욕의 국제금융협의체는 2017년 11월, 런던의 국제금융협의체는 지난해 1월 출범했다. 행사가 지난해만 뉴욕에서 11회, 런던에서 2회 열렸다. 싱가포르는 올해 안에 신설할 계획이다.→국내 공공기관도 해외 투자에 관심이 많다. -KIC가 2014년 출범한 ‘공공기관 해외투자협의회’ 의장이다. 공무원연금공단과 군인공제회, 사립학교교직원연금공단 등 20개 기관이 참여한다. 협의회에서 공공 부문 투자기관들과 해외 투자 정보와 노하우를 공유한다. 공동투자도 하는 등 공공 부문의 해외 투자 성과를 높이기 위해 노력 중이다. →2005년 설립한 뒤에 얼마나 벌었나. -그동안 지켜온 KIC의 투자 원칙은 장기·분산투자다. 그 결과 연환산 수익률 4.45%, 누적 수익 341억 달러다. 원화로 치면 36조 5347억원가량 벌어들인 셈이다. 특히 2017년 수익률은 16.42%로 수익이 183억 달러다. →지난해 수익률은. -지난해는 달러 강세와 경기 급락 우려, 미국을 중심으로 한 금리 인상 및 유동성 축소, 미·중 무역전쟁 등 자본시장의 단기적 변동성이 커져 자산 가격이 많이 떨어졌다. 지난해 8월 말 기준 수익률은 1.7%로 전년에 비해 많이 떨어졌다. 지난해는 1931년 이후 국제금융시장이 가장 흔들린 해였다. 지난해는 얼마의 수익률을 냈는지보다 얼마나 방어를 잘했는지를 봐야 한다. →올해 국제금융시장 전망은. -올해도 연초부터 ‘노딜 브렉시트’(합의 없는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가능성을 비롯해 미국 정부의 셧다운이 장기간 이어졌다. 특히 미·중 무역분쟁이 해소되지 않아 글로벌 경제 전반에 부담이다. 하지만 긍정적 신호에도 주목하고 있다. 지난해 전반적인 자산 가격 하락으로 투자 매력도가 높아졌다. 미국 추가 금리 인상에 대한 우려도 완화됐다. 유럽과 중국 등 주요국의 경기 확장 정책 유지도 경기 반등에 도움을 줄 것이다. →KIC는 주로 어떤 자산에 투자하나. 최근 관심 있게 본 분야가 있다면. -해외 주식과 채권, 물가연동채, 원자재 등으로 구성된 전통 자산에 84%를 투자한다. 전통자산과 상관관계가 낮아 변동성 위험을 줄일 수 있는 헤지펀드와 부동산, 사모주식, 인프라 등 대체자산에 16%를 투자한다. 최근에는 수익률을 높이고 투자 다양성을 확대하기 위해 급변하는 글로벌 트렌드에 관심을 갖고 있다. 특히 다양한 전자상거래 시장 성장에 맞춰 물류 서비스 수요가 많아질 것으로 본다. 데이터 통신량의 빠른 증가에 대응한 광통신 네트워크, 고령화 시대를 맞아 노년층을 위한 헬스케어 및 거주시설 등에 대한 투자도 유망하다. →취임 1년이 돼 가는데 아쉬운 점이 있다면. -KIC는 기타공공기관이면서 금융투자기관이다. 근로 조건과 연봉, 정원 등을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에 따라야 한다. KIC는 다른 나라 국부펀드와 달리 지배구조가 투명하고 방만한 경영을 막을 수 있는 장치도 잘 갖춰져 있다. 금융투자기관의 특성을 일정 부분 반영할 수 있으면 좋겠다. →앞으로의 역점 사업은. -자산운용 규모가 2000억 달러 이상으로 늘어날 것에 대비해 내년을 목표로 차세대 투자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투자 데이터 관리체계를 일원화해 통합 포트폴리오 관리체계가 고도화되면 장기적으로 비용이 절감되고 시스템 효율성이 늘어날 것이다. 기재부와 한은 등 기존 위탁기관으로부터의 추가 위탁은 물론 신규 위탁기관 유치도 계획하고 있다. 각종 공공기금 및 장기투자가 가능한 정부 소유 자산 등의 위탁을 적극 추진하겠다. 대담 전경하 경제부장 정리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靑 “3·1절 특사, 위안부·세월호 집회 시국 사범 포함 검토”

    이재용·신동빈은 상고심 남아 제외 한명숙·이광재 등 복권은 어려울 듯 정부가 3·1절 특별사면 대상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집회, 세월호 집회 등 6대 집회에서 처벌받은 시국 사범을 포함하는 방안을 무게 있게 검토 중이다. ‘서민 생계형’이었던 문재인 정부 첫 특사(2017년 12월 30일)와 달리 범위가 좀 더 넓어지겠지만 한명숙 전 국무총리 등 여권 유력 정치인의 복권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한정우 청와대 부대변인은 12일 브리핑에서 “3·1절 특사와 관련해 법무부에서 실무 준비 중이며 구체적 대상·범위·명단이 민정수석에게조차 보고되지 않았다”면서 “사면 대상이 확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은 ‘뇌물, 알선수재·수뢰, 배임, 횡령 등 5대 중대 부패 범죄자에 대해 사면권을 제한한다’고 공약했다”며 “이 공약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설명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법무부가 한·일 위안부 합의 반대집회, 사드 배치 반대집회,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집회, 세월호 관련 집회,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집회, 광우병 촛불집회 등에 참석했다가 처벌받은 사람의 현황을 파악 중”이라며 “이번 사면에 적용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26일 국무회의에서 (명단을) 의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인 사면 여부에 대해 청와대는 “확인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한 전 총리, 이광재 전 강원지사, 정동채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 친노(친노무현)·친문(친문재인) 핵심 인사에 대한 여권의 복권 요구가 거셌던 점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노동계와 진보진영을 중심으로 사면 요구가 끊이지 않았던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도 불투명하다. 특히 내란음모·내란선동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 전 의원은 2015년 징역 9년을 확정받아 형기가 2년여 남아 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대법원 수뇌부가 내란음모 사건을 ‘재판거래’에 활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변호인단이 재심 청구를 준비하는 등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특별사면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기업인 중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은 상고심이 남아 있어 사면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방통대 로스쿨 ‘돈스쿨’ 오명 씻을 신의 한 수 될까

    방통대 로스쿨 ‘돈스쿨’ 오명 씻을 신의 한 수 될까

    도입 10년에도 다양한 법조인 배출 못해 전일제·800만원대 학비·학벌주의 논란 인터넷 수강시 4년제로 늘려 단점 보완 “변시로 검증 가능… 전문성 우려는 기우”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제도가 도입된 지 10년이 지났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로스쿨을 도입한 취지는 다양한 배경을 갖춘 법조인을 양성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의 바람과는 정반대였다. 비싼 등록금 탓에 ‘돈스쿨’이라는 오명을 썼고, 일부 학교에서는 비리와 입학 특혜 의혹도 불거졌다. 이에 일각에선 “미국처럼 온라인 로스쿨을 도입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원격 수업으로 운영되는 국립대인 한국방송통신대학에 로스쿨 과정을 설치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한 박준영 전 민주평화당 의원이 2017년 발의한 ‘방송통신 로스쿨 설치 특별법’에 관련 내용이 담겨 있다. 현재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논의 중이다. 지난달에는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주최로 국회 전문가 토론회도 열렸다. 과연 온라인 로스쿨은 법학전문대학원의 취지를 제대로 살릴 ‘신의 한 수’가 될 수 있을까. ●로스쿨 ‘부의 대물림’ 수단으로 전락 현행 로스쿨 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은 너무 비싼 등록금이다. 12일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로스쿨 25곳 가운데 한 학기 등록금이 가장 비싼 곳은 고려대(975만원)였다. 연세대(972만 6000원)와 성균관대(902만 5300원)도 900만원이 넘었다. 한양대(835만 5700원)와 이화여대(815만 5000원), 중앙대(808만 1600원), 영남대(803만 9000원) 등도 한 학기 등록금이 800만원을 넘겨 ‘고액 로스쿨’에 속했다. 한때 사립대 로스쿨 등록금은 1000만원이 넘기도 했지만 최근 시민단체의 지적이 잇따르자 그나마 많이 내려갔다. 상대적으로 국립대는 등록금이 저렴한 편이기는 하다. 그래도 전북대(486만 3700원)와 충남대(470만 9900원), 충북대(454만 5100원), 부산대(485만 3300원)를 빼면 모두 500만원 이상이다. 서울대 로스쿨은 664만 9000원으로 국립대 중 가장 비싼 축에 속했다. 지난해 정부가 사회 취약계층 로스쿨 재학생 1019명에게 등록금 전액을 지원했지만 일반 학생에게도 로스쿨 학비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수준이다.로스쿨이 주간 전일제 방식으로 수업을 운영하는 것도 도입 취지를 무색하게 하고 있다. 부모의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없는 학생이 로스쿨 학비를 감당하려면 일을 해야 한다. 하지만 25곳의 로스쿨 모두 주간제로 운영되다보니 일과 학업을 병행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로스쿨을 졸업하려면 3년의 교육과정 동안 오롯이 공부만 할 수 있는 경제력을 갖춰야 한다. 로스쿨이 본래 취지와 달리 ‘부의 대물림’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인 학벌주의도 얽혀 있다. 법무부가 지난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제1~7회 변호사시험 누적 합격률이 가장 높은 로스쿨 세 학교는 이른바 ‘스카이대’로 불리는 서울대·고려대·연세대였다. 이는 명문대 로스쿨에 진학해야 변호사시험에 합격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로스쿨 준비생들이 명문대를 지원하는 것은 단순히 변호사시험에 합격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졸업 뒤 유명 로펌에 입사하려면 명문대 출신 타이틀이 필수 조건이라는 것은 비밀도 아니다. 실제로 명문대 로스쿨에 진학하기 위해 재수, 삼수에 나서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 ●美 캘리포니아주 온라인 로스쿨 13곳 그렇다면 온라인 로스쿨이 이런 문제를 해결할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최정학 한국방통대 법학과 교수에 따르면 방통대 온라인 로스쿨은 일반 로스쿨(3년제)과 달리 4년제로 운영된다. 수업에 온종일 시간을 쏟을 수 없는 직장인들을 위해서다. 대신 1학년에서 2학년으로 넘어갈 때 1, 2학기 학점을 더해 기준점 이하 재학생을 떨어뜨린다. 최 교수는 250명 정원에서 50명 정도를 탈락시키는 것을 제안했다. 대부분의 정규 수업은 온라인으로 진행하되 일부 수업은 한 학기당 3회 정도 오프라인 수업을 병행한다. 헌법·민법·형법·형사소송법 등 필수과목 이외에도 사회 각 분야 경력을 쌓은 이들의 수요를 맞추고자 기업법과 노동법, 금융법 등 실무과목도 편성한다. 온라인 로스쿨은 인터넷으로 언제 어디서나 자유롭게 수업을 들을 수 있지만 부실한 학사 관리를 우려하기도 한다. 온라인 강의 특성상 학생이 제대로 수업을 듣고 있는지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학생과 교수 사이의 질의 응답이나 토론도 이뤄지기 어렵다. 온라인 로스쿨을 위한 전임교원 확보 등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들도 함께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해 최 교수는 “방통대 수업은 학습관리시스템(LMS)으로 진행되는데 학습자를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여러 기능을 갖추고 있다”면서 “출결 관리뿐 아니라 과제, 토론을 비롯해 교수와 학생이 온라인에서 상호 작용할 수 있게 돼 있다. 온라인 로스쿨 교육이 부실하다는 지적은 오해”라고 주장했다. 로스쿨 제도의 원조인 미국에선 캘리포니아주가 온라인 로스쿨 학위를 인정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변호사협회에 등록된 온라인 로스쿨은 13개 정도다. 주로 저소득층과 경력단절여성, 직장인을 위해 운영된다. 캘리포니아 남부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콩코드 로스쿨은 2002년 미국에서 최초로 온라인 수업만으로 법학전문석사(JD) 졸업생을 배출한 학교다. 콩코드 로스쿨도 일반 미국 로스쿨(3년제)과는 달리 4년제로 운영된다. 4년간 학비는 총 4만 8000달러(약 5395만원) 수준으로 한 해 등록금이 평균 6만 달러(6744만원)인 일반 로스쿨보다 훨씬 저렴하다. ●“변시 장수생 급증 ” vs “훌륭한 대안” 온라인 로스쿨 도입에 대해 로스쿨 재학생과 졸업생들 사이에 찬반양론이 팽팽했다. 로스쿨을 졸업하고 기업에서 활동하고 있는 변호사 김모(31)씨는 “결국엔 방법의 차이일 뿐”이라면서 “어차피 변호사시험을 통해 걸러질 것이기 때문에 전문성 등을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법조인 양성이라는 취지에 부합할 것”이라고 말했다. 로스쿨 재학생 정모(29)씨는 “일부 로스쿨 교수들 강의가 부실해서 지금도 변시 합격을 위해 인터넷 강의에 의존하는 상황”이라면서 “교육만 제대로 이뤄진다면 학비도 일반 로스쿨보다 훨씬 저렴해서 좋을 것”이라고 전했다. 반면 재학생 이모(28)씨는 “법학이라는 학문이 풀타임으로 공부하지 않고 완성할 수 있는 학문인지 잘 모르겠다”면서 “풀타임으로 운영되는 온라인 로스쿨이라면 현재 로스쿨 입학 정원을 늘리는 것과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재학생 조모(26)씨도 “지금도 변시 합격률이 40%대인데 온라인 로스쿨이 생기면 진입자가 더 늘어나 불합격자와 장수생이 급증할 것”이라며 “사회 인력 낭비를 막겠다는 로스쿨 도입 취지와도 배치된다”고 반박했다. 이어 “현재 변시 분량은 다른 직업과 병행하며 준비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라면서 “결국 (일반 로스쿨에 못 들어갈 학생들이) 온라인 로스쿨에 등록한 뒤 진짜 수업은 학원에서 듣는 편법이 생겨나 로스쿨 제도를 악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꼬집었다.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 [씨줄날줄] 미국산 무기 수입/박록삼 논설위원

    [씨줄날줄] 미국산 무기 수입/박록삼 논설위원

    ‘주한미군 철수하라.’ 1980~1990년대 통일운동 세력의 단골 구호 중 하나였다. 하지만 당시 정치·경제·문화적으로 미국 의존도가 높고 북한과 대치하는 상황에서 시민들의 공감을 크게 얻지 못했다. 이 구호는 2000년대 들어 자연스럽게 잠잠해졌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야당 시절은 물론 집권 이후에도 주한미군 필요성 및 한·미 동맹의 굳건함을 틈만 나면 강조했다. 안보불안으로 남남갈등이 발생할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북한 김일성·김정일 또한 ‘주한미군 주둔 인정’을 유훈으로 남겨 놓았다. 한·미 동맹 유지를 둘러싼 사안의 예민함을 드러낸 현상들이었다. 대가는 비쌌다. 미 의회조사국(CRS) ‘무기거래 보고서’에 따르면 1996∼2003년 한국은 이 기간 88억 달러의 무기를 수입했고, 이 중 62억 달러, 즉 70.4%가 미국산이었다. 미국이 한·미 동맹의 의구심을 빌미로 무기를 강매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돌기도 했다. 지난달 발간된 ‘2018 세계 방위산업시장 연감’에 따르면 한국은 2008~2017년 10년 동안 사우디아라비아, 호주에 이어 세계 3위의 미국산 무기 수입 국가였다. 약 7조 6000억원(67억 3100만 달러)에 이른다. 한국의 전체 무기 수입 규모 중 미국산 무기의 비중은 53%를 차지했다. 참고로 미국 동북아 미사일방어(MD) 시스템의 핵심 파트너인 일본의 미국산 무기 수입은 37억 5000만 달러에 불과했다. 지난해 말부터 시민들 사이에서 ‘차라리 주한미군 철수하라’는 주장이 다시 공공연히 나오기 시작했다. 미세한 균열은 미국에서 시작됐다. 미국이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9602억원에서 50%나 올린 1조 4400억원을 요구했다는 사실이 보도되던 때였다. 진통 끝에 8.2% 인상된 1조 389억원으로 정해지긴 했지만, 주한미군 규모가 3만 8000명에서 2만 8000명으로 줄어들었고, 미집행 분담금이 1조원 남은 상황이었기에 혈세 낭비라는 불만이 증폭됐다. 미국산 무기 도입에는 방산비리라는 문제도 끼어 있다. 전두환·노태우 정부 ‘율곡사업 비리’에도, 김영삼 정부 미국 로비스트인 ‘린다 김 사건’에도 미국의 전투기, 군함 등의 도입이 문제였다. 이 때문인지 ‘자주국방’을 주장한 노무현 정부는 방위사업청을 만들었다. 진짜 문제는 한국이 미국산 무기의 큰손이지만, 기술 이전은 제대로 받지 못하는 점이다. 오히려 미국은 그동안 자동차, 철강에 고율 관세를 매겨 한국 경제를 압박하기도 했다. 더불어 트럼프 미 대통령 또한 2년 전 한·미 정상회담 후 “한국이 수십억 달러에 이르는 미국산 무기를 주문할 것이며, 이미 승인된 것도 있다”면서 여전히 ‘호갱’ 취급을 한다는 점이다. 호혜적이라야 진짜 동맹이다. youngtan@seoul.co.kr
  • [데스크 시각] 유시민과 노무현/김상연 정치부장

    [데스크 시각] 유시민과 노무현/김상연 정치부장

    얼마 전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유튜브 방송에 나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신에게 정치하지 말라고 했다는 비화를 밝혀 화제가 됐다. 그런데 노 전 대통령의 발언 중 유 이사장이 빠트린 내용이 있다. 2009년 4월 당시 동석자들에 따르면 봉하마을로 찾아온 유 이사장에게 노 전 대통령은 이런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자네가 쓴 항소이유서를 읽고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이 감동을 받았네. 내가 보기에 자네는 말로써 논란을 일으키는 정치를 하기보다는 좋은 글을 써서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는 일을 하는 게 어떨까 하네.” 1985년 유 이사장이 구치소에서 수감 중 쓴 항소이유서에 대해 유 이사장의 누나인 유시춘 EBS 이사장은 “26세의 청년이 참고 문헌 하나 없이 쓴 글이라고 하기엔 믿기지 않을 정도의 미문”이라고 했다.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문장으로 끝나는 이 글은 당시 운동권 학생들의 ‘필독서’로 경찰이 가방을 뒤져 항소이유서 사본이 나오면 바로 연행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유 이사장이 노 전 대통령의 충고를 들었을 때는 정치인으로서 한창 나이인 50세였다. 정치하지 말라는 말이 귀에 들어올 리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유 이사장은 유튜브 방송에서 “그때 대통령님 말씀을 들을걸”이라며 후회를 내비쳤다. 반면 노 전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에게는 정치 입문을 권했다. 모든 것을 쏟는 ‘열정’을 높이 샀다고 한다. 문 대통령이 청와대 참모 시절 치아가 다 빠질 정도로 과로하자 노 전 대통령이 강제로 휴가를 보낸 일도 있었다. 하지만 문 대통령 역시 당시엔 노 전 대통령의 권유를 접수하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의 비극적인 죽음이 운명을 바꾼다. 문 대통령은 정치에 뛰어들었고 대통령이 됐다. 유 이사장은 2013년 돌연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전업작가로 전직(轉職)한다. 결과적으로 문 대통령과 유 이사장은 노 전 대통령의 뜻에 따라 인생을 바꾼 셈이 됐다. 노 전 대통령의 충고는 이미 정해진 운명을 알려 준 예언일까, 아니면 노 전 대통령의 권유를 뒤늦게 따르다 보니 운명이 된 걸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도 전에 운명은 다시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유 이사장의 정계 복귀설이다. 유 이사장은 부인한다. 차기 대선 주자 여론조사에서 자신의 이름을 빼달라고 선관위에 요청할 정도다. 하지만 정치를 안 하겠다고 했다가 나중에 번복했던 정치인들을 숱하게 학습한 국민들은 곧이곧대로 듣지 않는 것 같다. 만약 유 이사장이 다시 정치를 한다면 운명을 거스르는 것일까, 제 운명을 찾아가는 것일까. 나처럼 예지력이 없는 범부는 잘 모르겠다. 대신 여러 베스트셀러를 쓴 김영하 작가의 개인적 스토리 하나를 소개하고 싶다. 김 작가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진로가 고민돼 한 젊은 역술인을 찾아갔다고 한다. 그 역술인은 김 작가의 사주와 관상을 보더니 “글과 말을 써서 먹고살 운명”이라고 했다. 김 작가가 “혁명가가 되고 싶다”고 하자 역술인은 만류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운명은 앞에서 날아오는 돌이고 숙명은 뒤에서 날아오는 돌입니다. 앞에서 날아오는 돌을 피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힘이 듭니다.” 운명론 따위를 믿으라고 이 일화를 전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김 작가는 운명을 자기실현적 암시로 소화했다고 한다. 그 역술인의 말을 ‘앞에서 날아오는 돌’이라고 여기고 피하지 않고 맞았다는 것이다. carlos@seoul.co.kr
  • [열린세상] 청년실업 문제 해결이 곧 출산 대책이다/홍춘욱 키움증권 투자전략팀장

    [열린세상] 청년실업 문제 해결이 곧 출산 대책이다/홍춘욱 키움증권 투자전략팀장

    아직 최종적으로 집계되지는 않았지만, 2018년 합계출산율이 1.0명을 하회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2005년 노무현 정부가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을 제정하고, 대통령 소속으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설치해 2006년부터 2018년까지 최소 143조원의 예산이 투입됐건만 한국의 출산율은 반등할 줄 모르고 떨어지고 있다. 일단 이 대목에서 짚어 둘 것은 정부의 저출산 관련 대책이 완전히 실패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보건사회연구원에서 발간한 흥미로운 보고서 ‘저출산 대책의 효과성 평가’에 따르면 유배우 여성, 다시 말해 배우자가 있는 여성의 출산율은 꾸준히 상승하고 한다. 예를 들어 20대 후반의 유배우 여성 1000명당 출생수는 1991년 237명에서 2009년 273명으로 증가했다. 뿐만 아니라 같은 기간 30대 초반 유배우 여성 1000명당 출생수는 74에서 143으로, 30대 후반 유배우 여성 1000명당 출생수는 13에서 35로 3배 가까이 증가했다고 한다. 이 결과 유배우 여성의 출산율은 2002년 1.5명에서 2014년에는 2.2명까지 상승했다. 한마디로 신혼부부 주거 지원 및 난임 부부 지원 그리고 무상보육 및 교육 확대와 같은 다양한 지원 정책이 기혼 여성의 출산율을 크게 높이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왜 한국의 출산율은 하락했는가. 그 이유는 바로 유배우 여성의 비율 하락, 다른 말로 결혼하지 않은 여성의 비율이 급격히 증가한 데 기인한다. 보건사회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2005년까지만 해도 전체 여성 중 배우자가 있는 사람의 비율은 62%를 넘었지만, 2014년에는 그 비율이 54%까지 떨어졌다고 한다. 다시 말해 2000년의 유배우 비율(62%)이 계속 유지됐다면 한국의 출산율은 2.0명 전후를 유지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결국 한국의 출산율 하락은 배우자가 있는 여성들의 출산 기피 때문이 아니라 결혼 자체가 줄어든 데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왜 여성의 결혼율이 줄어들었을까. 여성의 연령대별 경제활동 참가율 흐름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다. 독일이나 일본 등 다른 선진국 20대나 40대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비슷했다. 대부분 70~80% 사이를 꾸준히 유지하지만, 한국은 전혀 다르다. 한국 여성들은 20대까지는 다른 선진국 여성과 비슷한 경제활동 참가율을 기록하지만, 30~40대에 급격히 낮아졌다가 이후 다시 70~80% 수준을 회복한다. 즉 한국에서는 30~40대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하락하는 이른바 ‘M커브’ 현상이 나타난다. 사회생활의 전성기인 30~40대에 경제활동 참가율이 떨어지는 이유는 한국 여성이 출산·육아 문제로 직장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정부가 아무리 출산 장려 정책을 펼쳐도 출산·육아 과정에서 일하던 직장을 그만두는 상황이 출현하면 생애 소득은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직장을 그만둔 이후 재취업할 때에는 이전보다 더 낮은 소득의 일자리를 잡을 잡을 가능성이 커 결국은 결혼·출산으로 한국 여성의 생애 소득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또한 만에 하나 이혼하는 경우에는 소득 감소의 위험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런 공포에 맞서 한국 여성들은 두 가지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첫 번째 대응은 다소 학업 기간이 길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좋은 직장을 찾는 것이다. 즉 출산·양육 이후 다시 직장으로 복귀할 수 있는 직장, 예를 들어 공사나 공무원이 되는 시험에 몰두하는 것이다. 여성들의 두 번째 대응은 아예 결혼을 회피하는 것이다. 최근 이뤄진 보건사회연구원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미혼 여성 중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답한 비율은 단 6.0%에 그쳤다. 결혼에 대해 긍정적으로 응답한 비율도 28.8%에 불과했다. 이상과 같은 현실에서 출산율을 어떻게 높일 수 있을까. 물론 유배우 여성의 육아와 출산 관련 지원 정책을 꾸준히 유지해 유배우 여성 출산율의 추가적인 상승을 유도해야 한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재정지출 확대 정책을 통해 2030세대의 취업난을 해소하는 한편 직원의 출산·육아를 적극 지원하는 이른바 ‘가족친화적’인 기업들에 세제 감면 등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 효과적인 출산율 제고 대책이 될 수 있음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 오세훈 “박근혜 극복해야 보수 부활”… 朴, 황교안 면회 거절

    오세훈 “박근혜 극복해야 보수 부활”… 朴, 황교안 면회 거절

    吳, 한국당 2·27 당대표 선거 출마 선언 黃·洪과 차별성 강조…비박 지지 노려 “국민적 심판 탄핵을 더는 부정 말아야” 보수진영 잠룡 ‘빅3’ 포함 대선 전초전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7일 2·27 자유한국당 전당대회 당대표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이로써 한국당 전대는 야권 대선주자인 오 전 시장, 홍준표 전 대표, 황교안 전 국무총리 등 ‘빅3’를 포함해 모두 8명이 나서는 대선 전초전이 됐다. 오 전 시장은 당사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정치인 박근혜’를 넘어서고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친박(친박근혜)계 후보로 분류되는 황 전 총리, 박 전 대통령 석방을 요구한 홍 전 대표와의 차별성을 강조하며 비박계의 지지를 노린 것으로 풀이된다. 오 전 시장은 “국민적 심판이었던 탄핵을 더는 부정하지 말아야 한다”며 “우리 당에 덧씌워진 ‘친박 정당’이라는 굴레에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했다. 이어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 일가가 뇌물수수 의혹을 받자 스스로 ‘나를 버리라’고 했는데 그런 결기가 없었다면 폐족으로 불렸던 그들이 지금 집권할 수 있었겠나”면서 “박 전 대통령을 극복할 수 있어야 보수정치는 부활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 “확정 판결이 나오기 전에 (박 전 대통령 사면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홍 전 대표가 자신과의 단일화 가능성을 제기한 것에 대해서는 “홍 전 대표의 정치적 감각에 개탄을 금할 수가 없다. 그건 무책임한 발언으로 생각한 바 없다”고 일축했다. 황 전 총리에 대해서는 “한 번도 검증된 적이 없는 만큼 불안요소가 있지 않나 추측할 수 있다”고 평가절하했다. 한편 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유영하 변호사는 이날 방송에 출연해 “박 전 대통령이 언젠가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만나고 싶다는 뜻을 교도소 측에 전해왔지만 대통령께서 거절했다는 말씀을 하셨다”며 “당시 거절하신 이유에 대해 말했지만, 이 자리에서 밝히지는 않겠다”고 했다. 현재 유일하게 박 전 대통령을 면회하는 인사인 유 변호사가 방송에 출연한 건 처음이어서 박 전 대통령의 의중이 실린 행보인지 주목된다. 유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 구속영장이 발부된 2017년 3월 31일부터 수차례 교도소 측에 대통령의 허리가 안 좋으니 책상과 의자를 넣어달라고 부탁했지만, 반영되지 않았다”며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인 2017년 7월 21일 책상과 의자가 반입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했다. 황 전 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 시절 수감 중인 박 전 대통령을 예우해주지 않았다는 얘기다. 유 변호사는 “황 전 총리가 친박이냐는 것은 국민들이 판단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거듭 비판적인 견해를 보였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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