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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文대통령, 법제처에 힘 실어준 이유는

    文대통령, 법제처에 힘 실어준 이유는

    국무회의서 이례적 ‘인원 보강’ 지시 주요정책 입법화 의지 표현 분석도최근 관가에서는 “‘진보 대통령’은 법제처를 좋아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일 국무회의에서 “범정부 차원에서 법제처를 많이 활용해야 한다. 법제처가 실제로 역할을 잘할 수 있도록 기재부 등에서 법제처의 직제나 인원도 필요하다면 보강해 주도록 하라”고 지시하면서 나온 말이지요. 문 대통령은 이날 “국가적 차원에서 최고의 법률 유권해석 기관은 대법원, 헌법은 헌법재판소이지만, 정부 내에서는 법제처가 최고의 유권해석 기구”라고 법제처를 치켜세웠습니다. 문 대통령이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질병관리본부의 청 승격을 놓고 발언한 적은 있지만 그런 논란이 있는 것도 아닌데 특정 부처를 콕 집어 직제나 인원 보강을 지시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앞서 노무현 전 대통령도 법제처 내에 ‘법령해석국’을 신설할 것을 지시하는 등 법제처에 힘을 실어 준 적이 있습니다. 이들 두 전현직 대통령의 법제처 챙기기를 놓고 두 사람 모두 법률가 출신이기에 법제처의 역할과 기능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옵니다. 사실 법제처는 정부 부처 가운데 규모도 적은 미니 부처일뿐더러 파워도 없어 힘 없는 부처 중의 하나로 꼽힙니다. 그러다 보니 법제처가 대통령들의 관심을 받는 경우는 드물었지요. 문 대통령이 법제처의 직제 강화와 법제처 활용을 강조한 것은 향후 국정 운영에서 법제처를 적극 활용하겠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우선 ‘적극행정’과 ‘규제개혁’을 위한 사전 포석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법제처가 기존 법률이나 시행령에 대한 유권해석을 더 적극적으로 한다면 공무원들이 몸사리지 않고 적극행정에 나서고 규제개혁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역대 정권을 보면 집권 후반기에 접어들면 자연스럽게 국정 운영 동력이 떨어졌지요. 하지만 문 대통령은 총선 압승과 높은 지지율로 전임 대통령들보다는 일하기 좋은 여건입니다. 문 대통령의 발언이 ‘주요 정책들의 입법화에 대한 의지 표현’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정부 소식통은 10일 “집권 후반기에는 문재인 정부가 역점을 두고 추진한 각종 정책들의 제도화가 중요한 시점”이라면서 “정책의 제도화 중심에 법제가 있다는 점에서 정부 내 입법을 총괄하는 법제처 기능을 강조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법제처 출신 인사들이 요직에 많이 기용되는 것도 문 대통령의 법제처 사랑을 보여 주지요. 김외숙(전 법제처장) 청와대 인사수석, 김형연(전 청와대 법무비서관) 법제처장, 남기명(전 법제처장) 공수처준비단장, 김기표(전 법제처 차장)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 등이 법제처 출신입니다. 최광숙 선임기자 bori@seoul.co.kr
  • “나 한열이 에미예요… 이소선 어머니, 종철이 아버지 들리세요?”

    “나 한열이 에미예요… 이소선 어머니, 종철이 아버지 들리세요?”

    배은심 여사, 서른세 번째 보내는 편지 낭독 민주화 유공자 19명에 훈장·포장·표창 처음 文, 현직 대통령 중 ‘남영동 분실’ 처음 방문 509호 욕조 보며 “철저한 고립감, 무너뜨려” “이소선 어머니, 종철이 아버지, 제 얘기 들리세요? 나 한열이 에미예요. 30년 가까이 늘 함께 다니며 싸우던 우리 유가협 식구들인데, 어머니는 전태일이 옆에 가 계시고, 종철 아버지도 아들하고 같이 있어서 나 혼자 오늘 이렇게 훈장을 받습니다.” 10일 서울 용산구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 예정지(옛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열린 6·10 민주항쟁 33주년 기념식에서 ‘서른세 번째 6월 10일에 보내는 편지’를 낭독하는 내내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명예회장) 여사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 이날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은 12명 중 유일한 생존자인 배 여사로선 1987년 8월 이후 핏줄보다 가깝게 지냈지만, 먼저 떠나 보낸 유가협 식구들이 떠올랐을 터. 배 여사는 “다시는 이 나라에서 민주주의를 위해 삶을 희생하고, 고통을 받는 가족들이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자리에 섰다”고 말했다. 1987년 6·10항쟁은 한국 민주주의의 전환점으로, 대통령 직선제가 16년 만에 부활했고 헌법이 개정되면서 제도적 민주주의의 토대가 마련됐다. 6월 항쟁의 집단 기억이 없었다면 2016~17년 촛불혁명도 어려웠다. 항쟁의 도화선이 됐던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고 박정기씨)와 이 열사의 어머니, 1970년 전태열 열사 분신 뒤 유가협을 설립해 초대회장을 지낸 고 이소선 여사 등에게 정부가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하고 역사적 평가를 한 것도 같은 이유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고 문익환 목사 등 8명이 개별적으로 사후 추서 형태로 훈장을 받았지만, 국민훈장 모란장 12명을 비롯해 민주화 유공자 19명에게 훈장·포장·표창이 주어진 것은 처음이다.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 박종철 열사가 물고문으로 숨진 옛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이곳에서 고초를 겪었던 지선 스님의 설명을 들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문 대통령은 당시 물고문이 이뤄졌던 욕조를 보며 “이 자체가 처음부터 공포감이 딱 오는 거죠. 물고문이 예정돼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니까요. 철저하게 고립감 속에서 무너뜨려 버리는 거죠”라며 안타까워했다. 문 대통령은 부인 김정숙 여사와 함께 열사 영정에 작은 꽃묶음을 헌화한 뒤 묵념했다. 문 대통령이 6·10 민주항쟁 기념식에 참석한 것은 2017년 서울광장에서 열린 30주년 행사에 이어 두 번째다. 옛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열린 기념식에 현직 대통령이 참석하고, 악명 높은 509호를 찾은 것은 처음이다. 대통령이 6·10 항쟁 기념식에 참석한 것은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2007년 20주년 기념식 때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처음이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당시 연좌농성하다 끌려가… 6·10항쟁과 각별한 文대통령

    당시 연좌농성하다 끌려가… 6·10항쟁과 각별한 文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은 10일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 현장인 옛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 조사실을 찾아 헌화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한복판에 있었던 문 대통령에게 당시 사건은 각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문 대통령은 자서전 ‘운명’에서 당시 변호사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박종철군 국민추도회 준비위원회’의 준비위원으로 참여했던 이야기를 상세히 기술하며 “나는 6월 항쟁이야말로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사에서 가장 높이 평가받아야 할 운동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추도회 장소로 예정된 부산 시내 사찰 대각사를 경찰이 원천 봉쇄하자 문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과 남포동 부산극장 앞 도로에서 약식 추도회를 열고 연좌농성을 하다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다. 이후 1만여명의 거리시위로 이어지면서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됐다고 회고했다. 문 대통령은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고 박정기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이사장을 찾아 위로하며 인연을 이어 갔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인권변호사 조영래… 길위의 목사 박형규, 유신에 맞선 지학순… 5·18 재평가 조비오

    인권변호사 조영래… 길위의 목사 박형규, 유신에 맞선 지학순… 5·18 재평가 조비오

    10일 6·10 민주항쟁 33주년 기념식에서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은 12명 중 유일한 생존자인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명예회장) 여사는 아들을 황망하게 떠나보낸 뒤 한 해 전에 만들어진 유가협에 합류해 민주화운동 희생자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활동을 펼쳤다. 1998∼99년 유가협 회장을 맡아 422일간 국회 앞 천막 농성 끝에 민주화운동보상법과 의문사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끌어냈다. 고 이소선 여사는 1970년 아들인 전태일 열사가 평화시장의 노동조건 향상을 위해 분신한 뒤 전국연합노조 청계피복지부를 결성하고 노동운동에 투신해 ‘노동자들의 어머니’로 불렸다. 1986년 민주화운동 중 희생된 사람들의 가족 모임인 유가협을 설립해 초대 회장을 지냈다. 이 여사는 별세 뒤 9년 만에 훈장을 받았다. 고 박정기 전 이사장은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된 1987년 1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이후 유가협 결성에 동참했다. 문재인 대통령과의 인연도 남다르다. 문 대통령은 “(박종철 열사가 숨진) 2∼3일 후 당시 노무현 변호사와 함께 선생 댁을 찾아가 위로를 드렸다”고 회고한 바 있다. 2018년 별세 소식이 전해지자 문 대통령은 페이스북에 “아버님의 검은 머리가 하얗게 변해 가고, 주름이 깊어지는 날들을 줄곧 보아 왔다”며 “박종철은 민주주의의 영원한 불꽃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추모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민주화 열사의 아버지, 어머니여서가 아니라 자식들을 잃고 그분들이 직접 운동에 뛰어들어 헌신한 데 대한 평가가 담긴 것”이라며 “전태일·박종철·이한열 열사에 대한 예우도 이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며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설립에 앞장선 고 조영래 변호사는 권위주의 정부에 맞서 다양한 공익소송을 통해 사회적 약자의 권익 증진에 기여했다. 검찰이 은폐하려 안간힘을 썼던 ‘부천서 성고문 사건’ 변론으로 유명하며 ‘전태일 평전’ 저자이다. 빈민선교와 인권운동에 앞장서며 ‘길 위의 목사’로 불린 고 박형규 목사, 유신 독재에 맞선 고 지학순 주교, 5·18 민주화운동 재평가에 헌신한 고 조비오(조철현 비오 몬시뇰) 신부, 언론 민주화운동을 펼친 고 성유보 전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위원장도 훈장을 받았다. 이 밖에 진보 사회학자인 고 김진균 서울대 명예교수, 신학자인 고 김찬국 전 상지대 총장, 농민운동가 고 권종대 전 전국농민회총연맹의장, 1988년 천주교인권위원회를 설립한 고 황인철 변호사도 포함됐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진중권 “문 대통령, 남이 써준 연설문 읽어”…靑 인사들 반박

    진중권 “문 대통령, 남이 써준 연설문 읽어”…靑 인사들 반박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10일 국민의당 초청 강연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남이 써준 연설문을 그냥 읽는 거고 탁현민(청와대 의전비서관)이 해준 이벤트를 하는 ‘의전 대통령’이라는 느낌이 든다”라고 말한 데 대해 청와대 출신 인사들이 일제히 반박에 나섰다. 최우규 전 청와대 연설기획비서관은 이날 오후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어디서 누구에게 확인해서 저렇게 단정적으로 이야기했는지 모르겠지만, 명백한 거짓”이라고 반박했다. 이날 진 전 교수는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민의당 ‘온(On)국민 공부방’의 첫 강연자로 나서 문 대통령에 대해 “달은 혼자 빛을 내지 못한다”며 비판했다. 그는 “사실 문 대통령은 정치할 생각이 없이 도망 다녔다”며 “친노 폐족들이 노무현 팔아먹고 있는 걸 웬만한 자기 철학이 있는 대통령이라면 막았을 텐데 그 분한테 주도권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다보니 변수가 되지 못하는 거다”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윤미향 사태와 관련해 (문 대통령이) 이야기한 걸 봤는데 읽은 게 없다”며 “그다지 대통령 비판을 잘 안 하지만 별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고, 오히려 대통령은 참모들에 의해 좀 만들어지는 게 아닌가 이런 느낌이 굉장히 강하다”고 덧붙였다.전 청와대 참모들 “문 대통령, 연설문 직접 손본다” 반박 이에 최 전 비서관은 문 대통령의 연설문 작성에 대해 “누구에게 듣거나 어깨 너머로 본 게 아니라 내가 해봐서 안다”면서 “말씀자료 초안을 올렸다가 (문 대통령) 당신이 직접 연필로 가필하거나 교정한 문안을 받아보고 어떤 때에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하고, 어떤 날은 안심도 하고 그랬다”고 했다. 이어 “두세 꼭지를 올렸는데 한 꼭지만 채택되고, 다른 한 꼭지는 당신이 직접 채택한 이슈를 연필로 적어 보낸 적도 있었다”면서 “이를 증언해 줄 이는 차고 넘친다. 청와대 현직에 있는 사람들이야 입이 있어도 말을 못 하겠지만, 국회에 가 있는 이들 중에도 이를 지켜본 이들은 꽤 있다”고 강조했다. 하승창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도 이날 페이스북 글을 통해 “문 대통령이 남이 써준 것 읽는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면서 “대체 진중권씨는 무엇을 보고 누구에게 들은 것일까”라고 반박했다. 윤영찬 더불어민주당 의원(전 대통령비서실 국민소통수석)도 페이스북을 통해 “자기가 보지 않은 사실을 상상하는 건 진중권씨 자유입니다만 그걸 확신하고 남 앞에서 떠들면 뇌피셜(근거 없이 혼자 생각해서 내린 결론)이 된다”면서 “남을 비판하고 평가할 때 꼭 참고하라. 저는 직접 지켜봤기에 말씀드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 의원은 글과 함께 과거 문 대통령이 원고를 고치는 모습과 자필로 수정한 원고를 촬영한 사진을 함께 올리기도 했다. 진중권 “문 대통령이 철학이 없다는 뜻” 재반박 이 같은 반박에 진 전 교수는 재차 “문 대통령이 철학이 없다는 뜻”이라며 재반박에 나섰다. 그는 “내 말을 앵무새처럼 남의 글을 그대로 읽는다는 뜻으로 이해한 모양”이라며 “원고 교정도 안 한다는 뜻이 아니라 애초에 연설에 자기 철학이 없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이어 “‘내 식구 철학’과 ‘양념’ 발언 빼면 기억나는 게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양념’이란 19대 대선 후보를 뽑는 더불어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문 대통령의 열성 지지자들이 다른 후보를 ‘문자폭탄’ 등으로 공격한 것에 대해 문제가 제기되자 “경쟁을 흥미롭게 만들어 주는 양념 같은 것”이라고 두둔한 것을 뜻한다. 진 전 교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노무현 전 대통령 연설문을 보면 치열한 고민의 흔적, 평생에 걸쳐 형성해 온 철학을 읽을 수 있다. 시대정신이 담겨 있다”면서 “문 대통령의 연설엔 빠져 있는 것”이라고 했다. 또 전직 참모들이 일제히 반박에 나선 것에 대해 “(문 대통령이) 친구(노 전 대통령)는 참 잘 두셨는데, 참모는 좀 잘못 두신 듯”이라고 덧붙였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정세현, 단절된 남북 통신선에 “정세 바뀌면 살아날 것”

    정세현, 단절된 남북 통신선에 “정세 바뀌면 살아날 것”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10일 북한이 대북전단(삐라) 살포에 반발하며 지난 9일 차단한 남북간 통신선에 대해 “결국에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 수석부의장은 이날 서울 마포구 창비 서교빌딩서 열린 회고록 ‘판문점의 협상가‘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서 “북한의 국내·외 정세가 변하고 남측과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어야 하는 상황이면 언제든지 (통신선이) 살아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이명박 정부 때 남북관계 악화로 북쪽에서 연락을 안받다가 2018년 평창올림픽 개막식 참가 통보와 특사파견을 알려왔다”며 “이번에도 전화선을 가위로 자른게 아니라 코드만 뽑아 놓은 것인 만큼 필요하면 받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북한이 남측에 삐라 살포의 책임을 물으며 긴장 국면을 조성하고 있는 배경에 대해선 정 수석부의장은 “북한 내부가 어렵다는 증거”라며 “코로나로 북한 내부의 생산성도 형편이 없어졌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북한이 체제 안정에 힘쓰는 상황에서 삐라에 문제를 제기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오는 10월 10일 북한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일을 앞두고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으니 짜증이 난 상황에서 김 위원장이 내치에 집중하고 외교의 부분을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에게 위임한 상태인데 내부를 결집시키기 위해 외부의 적으로 태평양 건너의 미국보다 가까운 우리에게 화살을 돌렸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정부의 대응방향에 대해선 “남북 관계가 진전되려면 결국 정부가 치고나가야 한다”며 적극적인 자세를 주문했다. 정 수석부의장은 김연철 통일부 장관을 향해 “국무위원들은 가시철망 사이로 길을 만들어야 한다. 미국이 갖가지 이유로 반대할 때도 이들을 설득 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삐라 살포 제한 법안에 대해 정 수석부의장은 “김 제1부부장의 담화에 놀라서 추진하자는 게 아니라 원래 4·27 판문점 선언과 9·19 남북군사합의로 정한 내용을 좀더 적극적으로 이행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수석부의장은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지냈다. 그는 “책의 부제가 ‘북한과 마주한 40년’인데 실은 이보다 더 오래됐다”고 출간 소감을 밝혔다.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 진중권 “586 운동권, 정치를 선악의 대결로 인식”

    진중권 “586 운동권, 정치를 선악의 대결로 인식”

    “정치란 갈등을 대화와 토론으로 해결하는 과정인데, 운동권은 정치를 기본적으로 선악의 대결로 봅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1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연 국민의당 초청 강연에 나섰다. 진 전 교수가 비판한 대상은 이날 역시 ‘조국 사태’ 핵심 관련자들이 다수 포진된 ‘586 운동권’이다. 진 전 교수는 “최근 법을 어긴 자들이 외려 검찰을 질타하는 이상한 장면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면서 ‘조국 사태’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비리를 처리하는 방식이 놀랍다”면서 “잘못한 게 없고 기준 자체가 잘못된 거라고 하면서 기준을 무너뜨려버리는 ‘꼬리가 개를 흔든다’는 현상들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사람들이 과거에 비리를 저지르면 정의의 기준에 벗어났다는 걸 사과하고 반성했다면 최근에는 이걸 이상하게 처리해버린다”고 했다. “586, 진리의 기준을 자기들이 세워버려” 진 전 교수는 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 정부 내 586 세대를 정조준했다. 그는 “아직도 사람들이 착각하는데 지금 민주당은 과거 김대중·노무현 시절 민주당이 아니다”라면서 “그 분들은 철저한 자유민주주의자였고, 철학을 가진 분들이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싸웠던 분들인 반면 지금 민주당 주류가 된 ‘386’(30대·80년대 학번·60년대생), 이제 ‘586’이 된 사람들은 다르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은 엄밀하게 말하면 자유민주주의와 거리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NL(민족해방 노선)이냐, PD(민중민주 노선)냐’ 이런 것도 아니다”라면서 “이들은 진리 자체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기준을 자기들이 세워버린다. 허위를 진리로 만드는 것, 허위를 사실로 만드는 게 그들의 진리인 양, 부도덕을 새로운 도덕으로 만드는 게 그들의 윤리관념”이라고 주장했다. 진 전 교수는 최근 기자회견을 이유로 공판 중에 떠날 것을 요청했다가 거부당한 최강욱 열린민주당 의원 등도 언급했다. 그는 “(최 의원이) 법정에 나와서 30분 만에 가야 한다고 했다. 검찰 수사 받다가 조퇴하는 건 정경심(조국 전 법무부 장관 부인) 동양대 교수 때 처음 봤다”면서 “이들이 우리나라 인권 신장에 지대한 기여를 했다”고 비꼬았다. “운동권, 자기들이 이기는 게 최고 정의라 생각” 진 전 교수는 운동권 인사들의 정치 인식이 잘못됐다고 비판했다. 그는 “정치란 이해와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들 사이의 갈등을 대화와 토론을 통해 해결하는 과정”이라면서 “그런데 운동권은 정치를 기본적으로 선악의 대결로 본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들의 정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아군을 방어하고 적군을 제압할 때 세워진다”면서 “이들이 정의의 기준을 무시하면서까지 필사적으로 아군을 방어하는 것은 그것을 자기들 고유의 정의를 세우는 길로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정의의 기준을 무시하면서까지 끝까지 자기 편을 편든다”면서 “자기들이 이겨야 되는 게 최고의 정의이고, 그걸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하며, 적은 무조건 배척하고 아군을 끌어안아야 한다는 게 조국 사태 때 나타났고, 지금도 또 나타나고 패턴처럼 계속 반복된다”고 분석했다. 진 전 교수는 여권을 향해 “법과 도덕과 윤리를 사회 보편의 이익이 아니라 지배계급(부르주아)의 특수이익을 대변하는 것으로 본다”면서 “자기들이 곧 선이요 정의요 나아가 보편이익의 진정한 대변자라 굳게 믿기에 자기들을 향한 검찰 수사나 기소는 보편적 정의를 집행하는 행위가 아니라 검찰조직의 특수이익을 지키는 행위로 간주된다”고 지적했다. 특히 “(야권 시절이던) 과거 같으면 검찰을 정권의 앞잡이라고 할 텐데, 자기들이 정권을 갖고 검찰총장을 임명했으니 이제 그렇게 못하게 된 상황”이라며 “그러니 검찰을 조직 이기주의라고 하는 것이고, 검찰이 자기들을 기소하는 건 보편적 정의를 위한 게 아니라 검찰의 특수이익을 지키기 위한 당파적 이익이라고 하면서 서초동으로 몰려가 데모하는 것이다. 황당하지만 그들 코드에서는 너무 당연한 일이 된다”고 비판했다. 진 전 교수는 “여권이 원하는 사법개혁과 검찰개혁은 자기들이 잘못했을 때 그걸 정의라고 말해줄 수 있는 조직으로, 원래 추구한 검찰개혁의 의의를 180도 뒤집은 것”이라며 “옛날엔 그들이 ‘저편’을 위해 봉사했다면 이젠 우리편을 위해 봉사하라는 프로젝트로 광범위하게 변질됐다”고 주장했다. ”조국 사태, 기득권 세습 위해 공정 훼손한 사건“ 그는 ‘조국 사태’를 “평등의 이념을 내버린 586 세대가 기득권을 제 자식들에게 세습해 주기 위해 공정의 가치까지 훼손한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진 전 교수는 “공부만 잘하면 되는 그런 기회도 빼앗아버린 것이다. 자식 세대한테 뭘 주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식한테만 기득권을 물려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진 전 교수는 “한국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젊은 세대와 함께할 장기적인 기획이 필요하다”면서 “날로 극심해질 양극화와 고령화, 그리고 고용의 불안정성이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지속적인 발전을 해나가게 해줄 전략이 필요하다. 그 발전은 당연히 사회 모든 계층을 포용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를 위해서는 다시 한번 정의라는 가치의 중요성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면서 “여기서 정의란 그저 과정의 공정성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시장경제에서는 아무리 과정이 공정해도 경쟁의 결과는 불평등하기 마련이다. 정의는 결과의 평등까지도 고려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가능한 초기 조건을 평등하게 만들어줘서 경쟁이 공정해야 하고, 그 경쟁에서 비롯되는 결과의 불평등은 어느 정도 용인해야 하지만, 그 불평등의 정도가 과도할 경우엔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게 우리의 과제다. 보수의 과제도, 진보의 과제도 아닌 모두의 과제다. 진보든 보수든 실패한 지점에서 다시금 정의와 공정을 세우는 게임을 다시 시작할 때”라고 강조했다. ”시민단체, 정부와 유착…공화국의 위기“ 진 전 교수는 최근 윤미향 민주당 의원을 둘러싼 의혹으로 불거진 시민단체의 방향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시민단체들이 아예 여권에 붙어서 더 해먹고 있다”며 “요즘 참여연대는 ‘불참연대’다. 성명 하나 못 낸다. 내는 성명도 거의 어용”이라고 질타했다. 이어 “이미 시민단체들이 착란 상태에 빠졌다. 아예 저쪽에 붙어서 그들보다 더 해먹고 있다”고 비난했다. 진 전 교수는 “시민 후원을 받다가 이제 정부 돈을 따내야 하는데, 그러다 유착이 이뤄진다”면서 “결국 중심을 잡아야 하는 시민단체가 무너졌다”고 진단했다. 또 “(여권과 시민단체 간) 거대한 블록이 형성돼 견제할 세력이 없어졌다. 그러다보니 지지자들은 굉장히 폭력적 양상으로 가고 있다”면서 “이는 공화국의 위기”라고 분석했다. ”문 대통령, 친노 폐족 부활의 카드“ 강연이 끝나고 이어진 질의 응답시간에서 진 전 교수는 문재인 대통령이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과 결이 다르다고 평가했다. 그는 “남이 써준 연설문을 그냥 읽는 거고 탁현민(청와대 의전비서관)이 해준 이벤트를 하는 의전 대통령이라는 느낌이 든다”며 “대통령은 큰 변수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사실 문 대통령은 정치할 생각이 없이 도망다녔다”며 “친문들이 노무현 팔아먹고 있는 걸 웬만한 자기 철학이 있는 대통령이라면 막았을 텐데 그 분한테 주도권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다보니 변수가 되지 못하는 거다”라고 설명했다. 또 “문 대통령은 정치할 뜻도 없는데 노무현 서거로 불려나와 ‘저들’에 의해 만들어졌다”면서 “친노 폐족이 기득권 세력으로 부활하는 데 ‘카드’가 된 측면이 있다”고 주장했다. 진 전 교수는 “오늘이 6월 10일인데, 6·10 항쟁을 주도했던 세력이 행정부, 입법부를 장악하고서 법관을 탄핵한다면서 사법부까지 장악하겠다고 한다”고 비판했다. 최근 이수진 민주당 의원을 중심으로 민주당에서 ‘판사 탄핵’이 가능하도록 법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을 거론한 것이다. 진 전 교수는 “1987년으로부터 33년이 지났는데, 자신들이 비난했던 그 자리를 차지하고 비난했던 그 짓을 하고 있다”며 “예전 어용은 부끄러운 줄은 알았는데, 이들은 부끄러움조차 모른다”고 말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나 한열이 에미에요… 이소선 어머니, 종철이 아버지 들리세요?”

    “나 한열이 에미에요… 이소선 어머니, 종철이 아버지 들리세요?”

    文, 현직 대통령 첫 박종철 열사 숨진 ‘남영동 509호’ 헌화 509호 욕조보며 “철저한 고립감 속에서 무너뜨려 버린 것”“이소선 어머니, 종철이 아버지, 제 얘기 들리세요? 나 한열이 애미예요. 30년 가까이 늘 함께 다니며 싸우던 우리 유가협 식구들인데, 어머니는 전태일이 옆에 가 계시고, 종철 아버지도 아들하고 같이 있어서 나 혼자 오늘 이렇게 훈장을 받습니다.” 10일 서울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 예정지(옛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열린 6·10 민주항쟁 33주년 기념식에서 ‘서른세 번째 6월10일에 보내는 편지’를 낭독하는 내내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전국민족민주 유가족협의회 명예회장)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은 12명 중 유일한 생존자인 배 여사로선 1987년 8월 이후 농성장과 파업현장, 그리고 창신동의 한울삶(‘한울타리의 삶’이라는 의미인 유가협 사무실 겸 주거시설)에서 핏줄보다 가깝게 지냈지만, 하나 둘 먼저 떠나보낸 유가협 식구들이 떠올랐을 터. 배 여사는 “유가협 외에 오늘 훈장을 받는 다른 수여자님들 모두 험한 세상에서 자신을 희생하고 정말 훈장을 받아 마땅하신 분들이고, 그런 분들과 함께 감히 훈장을 받아도 되는 건가 싶다”면서 “종철이 아버지, 아버지도 이런 나를 보고 ‘한열이 엄마 거기서 뭐하고 있어요’라고 하실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시는 이 나라에서 민주주의를 위해 삶을 희생하고, 고통을 받는 가족들이 생기지 않는 나라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자리에 섰다. 따뜻한 마음으로 어머니, 아버지 지켜봐 달라”라고 덧붙였다. 1987년 6·10항쟁은 한국 민주주의의 터닝포인트로, 대통령 직선제가 16년 만에 부활했고 헌법이 개정되면서 제도적 민주주의의 토대가 마련됐다. 6월 항쟁의 집단 기억이 없었다면 2016~17년 촛불혁명도 어려웠다. 항쟁의 도화선이 됐던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고 박정기 씨)와 이 열사의 어머니, 1970년 전태열 열사의 분신 뒤 유가협을 설립해 초대회장을 지낸 고 이소선 여사 등에게 정부가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하고 역사적 평가를 한 것도 같은 이유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고 문익환 목사 등 8명이 개별적으로 사후 추서 형태로 훈장을 받았지만, 국민훈장 모란장 12명을 비롯해 민주화 유공자 19명에게 훈장·포장·표창이 주어진 것은 처음이다. 기념식이 끝난 뒤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 박종철 열사가 물고문으로 숨진 옛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이곳에서 고초를 겪었던 지선 스님의 설명을 들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문 대통령은 당시 물고문이 이뤄졌던 욕조를 보며 “이 자체가 처음부터 공포감이 딱 오는 거죠. 물고문이 예정되어 있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니까요. 철저하게 고립감 속에서 무너뜨려 버리는 거죠”라며 안타까워 했다. 문 대통령은 김정숙 여사와 함께 박 열사 영정에 작은 꽃묶음을 헌화한 뒤 묵념했다. 문 대통령이 6·10 민주항쟁 기념식에 참석한 것은 2017년 서울광장에서 열린 30주년 행사에 이어 두 번째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영화 ‘남영동 1985(정지영 감독)’ ‘1987(장준환 감독)’ 등 으로도 알려졌지만, 고 김근태 민청련 의장 등 전두환 정권에 맞섰던 재야인사와 학생 등이 전기고문을 비롯해 죽음을 넘나드는 고문을 당한 곳으로 악명높다. 현직 대통령이 6·10 항쟁 기념식에 참석한 것은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2007년 20주년 기념식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처음이었다.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은 재임 중 참석하지 않았다. 독재정권 시절 잘못된 공권력에 대한 반성의 의미로 현직 경찰청장(민갑룡)이 최초로 참석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북한 잠시 코드 뽑았을 뿐…다시 전화 걸 것”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북한 잠시 코드 뽑았을 뿐…다시 전화 걸 것”

    “지금 북한은 남북 전화선을 아예 자른 게 아닙니다. 단지 코드를 뽑았을 뿐입니다. 필요하면 다시 코드를 꼽고 전화를 걸어올 겁니다.” “냉정한 대처 필요…미국에 휘둘려선 안 돼” 비방 전단살포를 이유로 북측이 돌연 남측과 연락을 모두 끊어버리고 연일 강도 높은 적대감을 표출하는 가운데,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북한에 관한 우리의 차분한 대응을 요구했다. 그는 10일 서울 망원동 창비 사옥에서 열린 ‘판문점의 협상가’(창비)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북한의 현재 상황과 태도를 주제로 설명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 때 남북 관계가 악화하면서 북한이 비슷한 태도를 보였지만, 평창올림픽 특사단을 내려 보내겠다면서 국정원을 통해 다시 연락을 해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부 보수언론에서 ‘연락을 끊을 때도 이을 때도 제 맘대로 한다. 제까짓 게 뭔데 그러느냐’ 식의 기사를 여전히 쓰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회고록은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가 정 부의장을 인터뷰한 것을 정리했다. 정 부의장은 대학 졸업 후 통일부에 들어간 뒤 김영삼 정부 때 청와대 통일비서관, 김대중 대통령 때 통일부 차관을 거쳐 장관을 역임했다. 이어 노무현 대통령 당시 초대 장관을 이어 지냈다. 40년 넘게 현장에서 뛰는 남북관계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책에는 각 정부에서 겪었던 일화 등이 상세히 담겼다. “북한 코로나로 여유 없어… 열등감에 적대감 표출” 그는 이런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남북관계는 우리 하기 나름”이라며 우리가 북한을 이해하고 소신 있게 행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이 지난 5개월 동안 이어진 대북 제재에 일언반구 하지 않다가 전단살포를 계기로 행동에 나선 것에 관해서도 이유가 있다고 했다.그는 “북한이 청정지역이라고 하면서도 초중고 개학을 늦췄고, 노동신문에도 수백명의 격리해제 기사가 나왔다. 아마 코로나19 때문에 그동안 대꾸할 정신적인 여유가 없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관해 “오는 10월 10일 북한 노동당 75주년을 앞두고 평양 종합병원 건립에 힘을 쏟고 있는데, 골조공사를 마무리했지만 외부에서 의료기기 못 들어오는 상황이다. 되는 게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무뢰한이니 위선자니 형님 죽인 살인자라는 식의 전단을 보냈으니 4·27 판문점 선언과 9·19 군사합의까지 문제 삼아 화가 폭발한 것”이라고 했다. 특히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의 수위 높은 비판 담화에 관해 “북한이 남한에 관한 열등의식 때문에 터무니없이 자존심을 보이는 사례가 많다”면서 “일부 언론보도처럼 정부가 김 부부장의 말에 벌벌 기고 있다는 식으로 생각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다만, 김 부부장에 관해서는 “최근 노동신문에 보면 김 부부장을 ‘당 중앙’이라고 한 부분이 있다. 이는 1970년대 말쯤 김일성이 김정일을 후계자로 내세우며 ‘당 중앙’으로 부른 것과 유사하다”면서 “김 국무위원장이 경제에 몰두하고, 김 부부장은 대남 활동으로 역할을 확실히 분담한 것 같다. 김 국무위원장에게 어떤 일이 생기면 김 부부장이 직접 ‘최고 존엄’에 오를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미국 눈치 보는 외교부 대신 통일부 장관이 나서야” 정 부의장은 김영삼 정부 시절 미국이 핵 문제를 들면서 남북관계에 파열음을 냈을 때를 거론하며 ‘미국의 눈치 보기’도 작심 비판했다. 그는 “김영삼 정부 시절, 미국이 한국을 통제하고자 내놓은 게 바로 ‘한미공조’라는 명분의 굴레다. 한미 간에 긴밀히 공조하겠다는 게 처음엔 좋아 보였지만, 사사건건 참견을 하면서 기가 드센 김 대통령도 미국에 끌려가는 것을 직접 체험했다”면서 “최근 한미 워킹그룹에서의 외교부의 행동이 비슷하다”고 했다. 그는 “강경화 장관은, 외교부는 습관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다고 본다”면서도 “그러나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그래선 안 된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북한과의 관계 진전과 관련 “금강산 관광은 김대중 대통령이 저질러버려서, 개성공단도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에 예외적으로 인정해줄 것을 설득해서 가능했다”면서 “통일부 장관은 일반 공무원이 아니라 국무위원이잖느냐. 김 장관이 가시철망을 뚫고 길을 만들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북한 경제적 지원으로 군사적 충돌 가능성 줄여야” 정 부의장은 이번 회고록에서 “군사적으로 남북이 충돌할 가능성을 줄이는 확실한 방법은 경제적 상호의존성을 키우는 ‘피스 메이킹’”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우리의 1인당 국민소득이 북한의 18배에 이른 시점에서, 북한을 경제적으로 도우며 남북연합을 구성할 정도의 중간 단계까지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에 관해 “현실적으로 지금은 남북이 하나의 국가로 합치기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우선은 유럽연합이나 아세안 같은 연합체제를 구성하는 게 옳다”고 했다. 그러면서 “민족과 역사가 다른 유럽도 연합을 구성해 잘 운영한다. 우리는 민족이 같아서 더 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 부의장은 40년 동안 남북 정책 현장에서 가장 실망했을 때를 1994년 7월 예정됐던 최초 정상회담이 김일성 사망으로 무산됐을 때라고 했다. “김영삼 대통령이 보안을 강조해 통일비서관으로서 잠도 자지 못하고 일했지만, 목전에 두고 김일성 사망 소식을 들었을 때에는 ‘우리 민족의 운명이 여기까지인가’생각마저 했다”고 한 그는 “반대로 2000년 6월 15일 남북정상회담이 합의됐다는 발표를 들었을 때가 가장 기뻤던 날”이라고도 덧붙였다. 가장 위기감을 느꼈을 때로는 1994년 미국의 북폭 계획을 들었을 때를 꼽았다. 그는 “북한이 6·25 때와 같은 전쟁은 다시 못 일으킨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 부시 대통령이 영변 폭격 계획을 세웠다고 했던 1994년에는 정말 전쟁이 터질 수 있다는 큰 위기감을 느꼈다”고 밝혔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구석구석 문학정신 스민 예술가들의 아지트

    구석구석 문학정신 스민 예술가들의 아지트

    서울 종로구 명륜1가 33의100 한무숙문학관은 소설가 한무숙 선생이 40년간 기거한 문학 산실이다. 골목길 하나를 사이에 둔 현대하이츠빌라 302호는 1998년 종로 보궐선거에 출마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살던 곳이다. 선생이 살던 시절 서울대 문리대가 가까워서 숱한 문인, 예술가들의 아지트 역할을 했다. 시인 천상병은 몇 년을 이곳에 기거했으며 박재삼 시인, 황동규 시인, 이어령 교수가 거의 매일 밤 모여 문학과 예술에 대해 토론했다. 한무숙문학관의 첫인상은 정원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첫눈에 들어오는 정원은 작가 본인이 직접 설계하고 철쭉, 모란, 무궁화 등 한국적인 나무들로만 꾸몄다. 소담하지만 철마다 피어오르는 꽃들과 연못 속으로 유영하는 알록달록한 물고기를 보는 것도 볼거리다. 조그마한 문학관이지만 구석구석에 이야기가 있고 작가의 문학정신, 인생철학이 스며 있다. 마치 아직도 작가가 집필실에서 글을 쓰는 듯한 느낌을 준다. 살아생전 그렸던 그림들, 일본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가와바다 야스나리 등 수많은 외국 작가들과 주고받았던 서신들, 집필했던 자료들, 식기들까지 정리돼 있다. 한무숙 작가의 장남 김호기(79) 관장은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이곳을 문학관으로 만들었지만 아마 그런 말씀이 아니었더라도 이곳을 문학관으로 만들어 어머니의 열정을 간직하고 싶었다”고 했다. 더 많은 사람이 찾아와 한무숙 작가의 열정을 확인해 주길 권했다. 선생이 세상을 떠난 1993년 은행장 출신인 남편 김진흥이 한무숙재단을 설립했다. 지난 1월에 열린 제25회 한무숙 문학상 시상식에서는 소설가 정용준이 상을 받았다. 김호기·김강옥 부부가 모친이 살던 안방에서 기거하며 문학관을 운영하고 있다. 가야금 명인 고 황병기의 부인이자 소설가인 한말숙씨가 선생의 동생이다. 김 관장은 “한무숙문학관을 공공기관에 기증할 생각”이라면서 “우리나라의 젊은 문학가들이 한무숙 작가의 문학을 향한 치열한 열정과 창의성을 배우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김희병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연구위원
  • 대학이 사라진 자리… 청춘의 고뇌가 추억 되어 켜켜이

    대학이 사라진 자리… 청춘의 고뇌가 추억 되어 켜켜이

    대학로에는 대학이 없다. 인근 성균관대생이나 방송통신대생이 들으면 크게 노할 주장이다. 그러나 대학로에는 대학로를 잉태하게 한 대학은 없다. 더 슬픈 것은 대학로에 대학이 있었다는 역사적 실체를 기억하는 사람조차 많지 않다는 것이다. 대학로, 한때 이 땅의 최고 지성들이 똬리를 틀었던 곳, 그러나 지금은 흔적조차 없다. 대학로는 현 서울시 종로구 동숭동, 혜화동, 명륜동 일대, 옛 서울대 문리대 캠퍼스 주변을 말한다. 상대나 공대가 주목을 받기 전 이른바 낭만의 시대, 사람들은 문리대가 대학의 중심인 줄 알았다. 당연히 이 땅의 젊은 수재들은 문리대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서울대 문리대가 있었다. ‘문리대’란 말은 이 땅의 지식인들에게 묘한 느낌을 주는 말이다. 몹시도 가난했던 1960, 70년대 그 시절을 주름잡았던 한국의 주역들은 대개 문리대 출신이었다. 정치인은 너무 많아 언급조차 어렵다. 문학과 지성(문지) 창간 4K로 불리던 김병익, 김현, 김치수, 김주현이 그렇고 미학과에 다녔던 김민기가 그렇다. 4·19세대의 좌절과 슬픔을 노래한 시인 김광규도 문리대 출신이다. 이처럼 당시 문리대는 곧 이 땅의 지성과 동일시되는 무게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학로를 곧 서울대 문리대의 고향 정도로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세월은 모든 것을 앗아 간다. 하지만 문리대 옛터는 이제 서울미래유산만이 화려했던 과거를 증거하고 있다. 그래서 대학로에는 이 땅의 남녀노소 누구나 한 번쯤 가 봤을 명소들이 즐비하다. 그리고 그 명소들은 이제 과거에서 문화유산이란 이름으로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누가 뭐래도 그 첫 번째는 일찌감치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된 학림다방이다. 별칭이 문리대 제3강의실이다. 서울대 문리대의 축제인 학림제가 이 다방의 이름에서 유래됐다는 그럴듯한 설이 있을 만큼 상징성이 크다. 1956년 문을 연 다방은 6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보란 듯이 남아 그 시절을 추억하고 있다. 여러 사람을 거쳐 80년대 이후 이충렬씨가 경영하다가 지금은 아들인 영우(28)씨가 다방을 지키고 있다.학림에 관한 숱한 전설은 워낙 넘쳐 지면이 부족해 보인다. 세월이 많이 흘러 이제는 ‘전설 따라 삼천리’ 같은 이야기다.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1956년, 학림다방’이라는 간판의 아우라에 사로잡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기 바쁘다. 영화 ‘강원도의 힘’, ‘번지점프를 하다’도 이곳에서 촬영됐다. 사람들은 이곳에 와 커피를 마신다기보다는 선배 세대들의 추억을 마시게 된다. 이십대 젊은 사장이 맡고 난 뒤부터 아버지 세대의 슬픔을 공감하려는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다. 그 시절에는 기쁨보다 슬픔이 많았다. 학림에는 이 땅의 정치, 문학, 예술인들의 지도가 선명하게 그려진다. 방명록에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학림은 안 잊었노라’는 홍세화의 글과 ‘그 이름 오래 이어지소서’라는 고은의 글이 눈길을 끈다. 노무현의 친필도 남아 있다. ‘오늘 또 좋은 곳에서 좋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기쁩니다.’ 역시 노무현이다. “대통령이 되기 전 가수 김민기씨와 함께 얘기하다 갔다”고 주인이 기억을 더듬었다. 속이 출출하면 가야 할 곳이 있다. 진아춘(進雅春). 그 시절 문리생들의 신입생 환영회, 종강 파티, 졸업 사은회가 단골로 열렸던 중국집, 역시 서울미래유산이다. 1925년 문을 연 진아춘은 학림과 함께 대학로를 대표하는 가게다. 100년에 가까운 오랜 세월을 대학로와 함께했다. 산둥성 출신 화상인 주인 형원호(65)씨가 30년 넘게 꾸려 가고 있다. “해가 갈수록 힘들다.” 주인장의 목소리에는 ‘우아한 봄을 선사한다’는 낭만적인 가게 이름과는 대조적으로 수심이 배어 있다. 대학로의 무게를 더하는 것은 또 있다. 바로 건축가 김수근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최고의 건축가인 김수근은 유독 대학로에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래서 건축계는 대학로를 ‘김수근밸리’라고 부른다.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부근에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대부분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됐다. 짧은 생을 살다 간 김수근은 평생 벽돌과 담쟁이를 사랑한 사람이다. 그의 많은 작품들이 벽돌과 담쟁이를 오브제로 탄생됐다. 경동교회가 그렇고, 공간 사랑(현 아라리오뮤지엄)이 그렇고, 드물게 지어진 단독주택 세검정 세이장도 벽돌과 담쟁이로 처리돼 있다.그중 대학로의 랜드마크는 당연히 공공그라운드(구 샘터 사옥)이다. 1979년 완공된 샘터 사옥은 적벽돌과 담쟁이로 처리돼 따스함과 포근함을 주는 김수근의 걸작이다. 역시 김수근의 작품인 아르코미술관(구 문예회관)의 벽면에 불규칙하게 튀어나온 벽돌은 보는 이에게 묘하게 다른 느낌을 주고 있다. 마로니에 공원이 자리한 대학로에는 60, 70년대 가난한 나라의 지성들의 슬픔이 진하게 숨겨져 있다. 허기진 배를 물로 채우며 샹송을 노래하고 민주주의를 외친 이 땅의 장년 세대들의 좌절과 슬픔, 고뇌가 녹아 있는 곳이다. “입학 당시 대학로 중간에는 개나리꽃이 무성하던 실개천이었습니다. 문리대 교정은 대학로 중간쯤에 있던 다리에서 시작됐고 당시 문리생들은 볼품없던 시멘트 다리를 미라보 다리로, 실개천을 센강이라고 부르며 파리를 동경했습니다. 아침부터 술에 취한 채 다리 밑에 떨어져 고래고래 고함지르던 문리생들도 많았습니다. 마로니에가 무성하면 그 그늘 밑에서 헤리 벨라폰테와 손시향의 노래를 불렀죠.” 대학로를 배경으로 한 시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로 널리 알려진 김광규 시인의 회고다. 시인은 “지금은 없어진 쌍과부집에 가서 막걸리를 퍼마시거나 아니면 삐걱거리는 계단을 올라 학림에 가서 죽치고 앉아 LP판을 듣는 게 유일한 낙이었다”며 “그때 들었던 베니아미노 질리의 ‘귀에 익은 그대 음성’이 지금도 귓전에 생생하다”고 덧붙인다. 대학로 중심 마로니에 공원 일대는 이제 한국의 대표적인 연극촌으로 자리매김했다. 관악 캠퍼스로 이전하기 전 서울대의 모습을 축소시켜 재현해 놓은 청동모형만 그 옛날 마로니에가 무성하던 시절을 증언해 준다.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를 귓가에 속삭여 줄 사람은 가고 어디에도 없다. 정신의 리버럴리즘을 추구하던 고단한 몸짓은 이제 더이상 이곳에서 찾기 어렵다. 별을 보고 길을 찾았던 시대는 행복했다는 루카치의 한 구절이 남루하다. 짙푸른 플라타너스는 옛사랑이 피를 흘린 곳에서 제 무게에 겨워 넓은 잎을 늘어뜨리고 있고 마로니에의 풍성한 그늘에서는 버스킹을 하는 십대들의 노랫소리만 허공에 맴돈다. 학전소극장 부조에 새겨진 요절 가객 김광석의 노래다.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에…중략…머물러 있는 사랑인 줄 알았는데…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그렇다. 머물러 있는 청춘은 없다. 우리 모두 매일 이별하며 살아가고 있다. 초여름 햇살이 마로니에 공원에 뭉텅뭉텅 쏟아지고 있다. 글 김동률 서강대 교수(매체경영)사진 김학영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연구위원
  • 한반도 평화 이끌었던 남북 통신선…끝내 차단 위기 맞나

    한반도 평화 이끌었던 남북 통신선…끝내 차단 위기 맞나

    북한이 9일 남북을 연결하는 3개의 통신선을 모두 차단한다고 밝히면서 남북 간 소통 창구가 완전히 봉쇄될 위기에 직면했다. 그동안 통신선이 한반도 평화의 결실이었다는 점에서 악화된 남북 관계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는 분석이다. 북한은 이날 대북전단 살포 문제를 들어 남북 공동연락사무소를 포함해 모든 남북 간 통신연락 채널을 완전히 차단 및 폐기하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북한은 지난 8일부터 연락사무소 통화를 받지 않고 있다. 2018년 1차 남북 정상회담의 결실로 탄생한 연락사무소는 과거 개성공단 내 남북교류협력협의사무소로 쓰이던 4층 건물에 마련됐다. 남북 간 협상과 경제협력 등에 대해 365일 항시 대면으로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남북 관계를 상징하는 것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북미 협상이 결렬되고, 그 영향으로 남북관계도 정체기를 겪으면서 연락사무소도 위기를 맞았다. 지난해 3월 22일에는 북측이 ‘북측 연락사무소는 상부 지시에 따라 철수한다’는 입장만 통보한 뒤 철수하고 사흘 뒤 복귀하기도 했다. 지난 1월 30일 코로나19 여파로 인력이 철수한 이후로는 매일 오전·오후 정기 통화로만 교신했다. 청와대와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청사를 잇는 직통전화도 2년 만에 끊어질 위기에 처했다. 남북 정상 간 핫라인은 2018년 4월 20일 개통 이후 실제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통화가 이뤄진 적이 있는지는 알려진 바 없다. 그럼에도 정상 간 직통전화의 존재 자제가 ‘톱다운’ 방식으로 이뤄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상징이자 남북 경색국면에서도 두 정상의 신뢰만큼은 변함없다는 점을 청와대가 강조했던 터라 단순히 남북관계의 단절이 아니라 인간적 관계마저 단절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 2018년 6월 핫라인 설치 당시 청와대는 여민관 3층 문 대통령의 집무실 책상 위에 전화기가 놓여졌지만 관저와 본관 집무실 등 대통령의 업무공간에서 모두 연결되도록 조치됐다고 설명했다. 설치 완료 직후에는 송인배 당시 제1부속비서관과 북측 담당자가 4분 19초 동안 시험통화를 하기도 했다.남북 군사당국을 잇는 동·서해 군 통신선도 이날부터 연락이 닿지 않았다. 동·서해지구 군 통신선은 2018년 4·27 판문점 선언 이후 남북장성급군사회담 합의로 복구됐다. 2018년 7월 서해지구를 비롯해 8월 동해지구까지 차례대로 정상화됐다. 동해지구의 경우 2010년 11월 산불로 완전히 소실된 이후 8년여만, 서해지구는 2016년 2월 개성공단 가동 중단과 함께 단절된 이후 2년여만이었다. 그동안 군은 비무장지대(DMZ)에서 산불이 발생하면 헬기를 투입하기 전 통신선을 이용해 북한에 출입을 통보하는 등 군사적 긴장감을 완화하는 차원에서 이를 이용해 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군 통신선이 아무런 기능을 하지 못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지난해 북한이 서해 창린도에서 해안포를 발사하고, 지난 3월 남측 감시초소(GP)에 총격을 가하며 군사합의를 위반했을 당시 군은 통신선을 이용해 항의했지만 북한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남북 군 통신망이 완전히 끊어진다면 보다 군사적 긴장이 높아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다만 이날 북한이 차단 대상으로 언급한 연락선 중 국정원과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통전부) 사이의 핫라인은 없어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과거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이후 연결된 핫라인은 노무현 정부까지 유지됐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강경 대북정책으로 단절됐다. 이후 2018년 북한이 평창동계올림픽 고위급 대표단으로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을 파견하는 것을 계기로 복원됐다. 3개 통신선이 중단될 경우 핫라인이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핫라인이 아직까지 정상적으로 기능을 하는 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다만 기능이 살아있어도 북한이 호응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커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故노무현 ‘정신적 후원자’ 자임, 선진규 봉화산 정토원장 별세

    故노무현 ‘정신적 후원자’ 자임, 선진규 봉화산 정토원장 별세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고향인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의 불교 지킴이 역할을 해 온 선진규 봉화산 정토원장이 8일 오후 4시쯤 별세했다. 86세. 노 전 대통령의 정신적 후원자 역할을 자임해 온 선 원장은 지난해 6월부터 혈액암 투병을 하다 이날 영면에 들었다. 학창 시절 민주화운동에 이어 불교 운동가였던 선 원장은 동국대 총학생회장이던 1958년부터 정토원에서 포교 활동에 전념해 왔다. 선 원장은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에는 매년 이곳에서 추모 법회를 봉행해 왔다. 정토원은 노 전 대통령 49재를 지낸 곳이자 위패가 안치된 곳이다. 선 원장은 2018년 더불어민주당 전국노인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빈소는 김해 진영 전문 장례식장이며 발인은 오는 11일이다. 장지는 정토원이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신라젠 10개월 수사했지만… 檢 “정·관계 로비 실체 없다”

    신라젠 10개월 수사했지만… 檢 “정·관계 로비 실체 없다”

    노무현 재단·유시민 관련 혐의 못 찾아바이오기업 신라젠의 전현직 임원들이 연루된 비리 사건을 수사한 검찰이 일각에서 제기된 신라젠 관련 정·관계 로비 의혹에 대해 “수사 과정에서 실체를 확인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노무현재단이나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과 관련된 혐의를 찾지 못했다는 뜻이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1부(부장 서정식)는 8일 ‘신라젠 사건’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해 8월 신라젠의 ‘임상시험 실패’ 미공개 정보 이용 의혹에 대해 금융위원회가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면서 검찰 수사가 시작된 지 약 10개월 만이다. 검찰은 문은상(55·구속 기소) 대표와 이용한(56) 전 대표, 곽병학(56) 전 감사, 신모(49) 전무이사 등 4명을 자본시장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신 전무는 펙사벡의 임상시험 결과가 좋지 않다는 미공개 정보를 듣고 신라젠 주식을 대량으로 팔아 64억원 상당의 손실을 회피한 혐의로 기소됐다. 반면 문 대표와 이 전 대표, 곽 전 감사의 경우 이들의 주식 매각 시기(2017년 12월~2018년 1월)와 임상시험 관련 악재성 미공개 정보가 생성된 시점(지난해 3월) 등에 비추어 “미공개 정보를 이용했다는 혐의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다. 검찰은 신라젠 대주주였던 이철 전 밸류인베스트코리아(VIK) 대표가 유 이사장 등 현 여권 인사를 대상으로 로비를 벌였다는 의혹과 관련해 혐의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신라젠 금융 계좌를 추적했지만 유 이사장, 노무현재단 등과 관련한 계좌 흐름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고, 정·관계 로비와 관련한 구체적인 단서가 발견되지 않아 이철 전 대표도 조사하지 않았다”면서 “상장 과정에서 범죄로 볼 만한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검찰 “신라젠 정·관계 로비 의혹 실체 없다” 결론

    검찰 “신라젠 정·관계 로비 의혹 실체 없다” 결론

    문은상(55·구속기소) 대표 등 신라젠 전·현직 임원들이 연루된 비리 사건을 수사한 검찰이 일각에서 제기된 신라젠 관련 정·관계 로비 의혹에 대해 “수사 과정에서 실체를 확인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1부(부장 서정식)는 8일 서울 양천구 남부지검 브리핑실에서 ‘신라젠 사건’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신라젠 사건은 항암바이러스 ‘펙사벡’ 개발을 시도한 바이오기업 신라젠의 임원들이 ‘임상 시험 실패’라는 회사 내부의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대량의 주식을 매각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사건으로, 지난해 8월 첩보를 금융위원회가 검찰에 수사의뢰를 하면서 검찰 수사가 시작됐다. 검찰은 신라젠의 문 대표와 이용한(56) 전 대표, 곽병학(56) 전 감사, 신모(49) 전무이사 등 4명을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문 대표와 이 전 대표, 곽 전 감사 등 3명은 2014년 2월 말 미국 제약회사 제네렉스를 인수하는데 사용하겠다며 주주들로부터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 결의를 받은 후, 페이퍼컴퍼니를 이용해 350억원 규모의 신라젠 BW를 인수하는 ‘자금 돌리기’ 방식으로 자기 자본 없이 신라젠 BW를 취득해 1918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자본시장법 위반) 등으로 기소됐다. 이 페이퍼컴퍼니의 실사주 조모씨는 공범으로 불구속 기소됐다.검찰은 당시 불법적인 BW 발행 구조를 설계하고 위 페이퍼컴퍼니에 자금 350억원을 빌려줬던 DB금융투자(옛 동부증권) 부사장과 상무보 등 2명도 같은 혐의를 적용해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 관계자는 “제도권 금융사가 자본시장 질서를 준수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런 불법적인 발행 구조를 설계·제안했다”면서 “금융시장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차원에서 기소했다”고 설명했다. 신 전무이사는 펙사벡의 임상 시험 결과가 좋지 않다는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신라젠 주식을 대량으로 팔아 64억원 상당의 손실을 회피한 혐의(자본시장법 위반)로 기소됐다. 그러나 검찰은 문 대표와 이 전 대표, 곽 전 감사에게는 미공개 정보를 이용했다는 혐의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검찰 관계자는 “이들의 주식 매각 시기는 2017년 12월~2018년 1월이고, 펙사벡 임상 시험 관련 악재성 미공개 정보가 생성된 시점은 지난해 3월”이라면서 “주식 매각 시기와 미공개 정보 생성 시점 등에 비추어 이들의 미공개 정보 이용 혐의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이철 전 밸류인베스트코리아(VIK) 대표가 지난 2013~2014년 약 450억원을 신라젠에 투자했고,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2015년 부산대에서 열린 신라젠 항암 기술 설명회에 참석한 사실이 전해지면서 일각에서 신라젠을 둘러싼 정·관계 로비 의혹이 제기됐다. 신라젠이 2016년 12월 코스닥 시장에 상장되는 과정에서 이철 전 대표가 현 여권 정·관계 인사들에게 로비를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검찰은 “상장 과정에서 범죄로 볼만한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다”면서 “신라젠 금융계좌를 추적했지만 유시민 이사장과 노무현재단 등과 관련한 계좌 흐름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고, 정·관계 로비와 관련한 구체적인 단서가 발견되지 않아 이철 전 대표 등도 조사하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검찰은 시민단체 투기자본감시센터가 신라젠 사건과 관련해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 등을 고발한 사건을 수사할 예정이다. 투기자본감시센터는 신라젠이 임상 시험 실패를 사전에 알고도 정부로부터 보조금 92억원을 받았다며 최 전 부총리와 임 전 위원장 등을 국고손실 등의 혐의로 지난달 14일 검찰에 고발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잊혀진 사람 되고 싶다” 문 대통령, 양산에 사저 부지 매입

    “잊혀진 사람 되고 싶다” 문 대통령, 양산에 사저 부지 매입

    2년 뒤 자연인으로 돌아갈 듯지난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잊혀진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다”던 문재인 대통령이 2022년 5월 퇴임과 함께 경남 양산으로 내려가기 위해 사저부지를 매입했다. 김해 봉하마을과 멀지 않은 곳이다. 문 대통령이 2년 뒤 실제 양산으로 내려가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어 지방에 사저를 둔 두 번째 대통령이 된다. 경호상 이유 양산 평산마을에 ‘퇴임 후 거처’ 김해 봉하마을과 50분 거리, 부·울·경 인접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5일 브리핑에서 “문 대통령이 퇴임 후 양산 평산마을에서 지내기로 했다”면서 “경호처가 현재의 양산 매곡동 사저 인근에 경호시설이 들어설 수 없다고 판단해 사저를 옮기기로 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이 사들인 부지는 경남 양산 하북면 지산리에 위치한 2630.5㎡(795.6평) 규모의 대지다. 등기부등본 등에 따르면 부지 매각은 지난 4월 29일 이뤄졌다. 경호처도 문 대통령을 경호할 시설 부지(1124㎡)를 매입했다. 노 전 대통령 묘역이 있는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양산 평산마을까지는 자가용으로 50여분 거리로 멀지 않다. 해당 지역은 행정구역상 경남이지만 울산, 부산과 모두 인접한 곳이다. 경부고속도로, KTX 울산역과도 가까워 교통도 비교적 편리하다. 국내 3대 사찰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영축산 통도사도 10여분 정도면 걸어 갈 수 있다. 마을에는 48가구, 주민 100여명이 살고 있다. 부지 매입 가격은 10억 6401만원이다. 이 비용은 문 대통령의 사비로 충당했다고 강 대변인은 전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3월 고위공직자 정기 재산변동 신고 당시 예금만 총 16억 4900만원을 갖고 있어 부지 매입에 큰 어려움은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2층짜리 단독주택 포함… 사비로 마련靑 “전직 대통령 사저보다 규모 작아”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집값은 새 사저보다 매곡동 자택이 조금 더 높을 것”이라며 매곡동 자택을 처분하면 새 사저 건물 마련을 위한 비용에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새 사저 건물 규모를 현재 경남 양산 매곡동 자택(111.15평·건물 3채)보다 크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했고, 이를 기준으로 새 사저가 준비될 것이라고 청와대는 설명했다. 강 대변인은 “새 사저는 현재의 매곡동 사저보다 면적이 줄었으며 전직 대통령들 사저에 비해서도 규모가 작다”고 강조했다. 양산시에 따르면 문 대통령과 김 여사, 대통령 경호처가 사들인 부지는 총 3860㎡ 규모이며 부지 내 2층짜리 단독주택을 포함한 총 매각 대금은 14억 7000여만원으로 알려졌다. 文 저서에 “세상과 거리두고 조용히 살고파”양산행에 “스스로 유배 보내는 심정으로” 경남 거제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자란 문 대통령은 2012년 대선 당시 거제 유세에서 “퇴임하면 제가 태어나고 지금도 제 집이 있는 경남으로 돌아오겠다”며 일찌감치 낙향할 뜻을 밝혔다. 문 대통령은 2008년 노무현 정부의 임기가 끝나자 현재 매곡동 사저로 들어갔다. 문 대통령은 저서 ‘운명’에서 “세상과 거리를 두고 조용하게 살고 싶었다”면서 “스스로를 유배 보내는 심정으로 시골에 살 곳을 찾았다”며 당시 양산을 새 거처로 택한 이유를 밝혔다. 무엇보다 매곡동 사저는 노 전 대통령의 사저가 있는 경남 김해 봉하마을과 멀지 않다. 문 대통령은 “봉하는 가끔 가보면 될 것으로 생각했다”면서도 “공식 행사 수행이나 하면 될 줄 알았는데 그토록 자주 가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대통령으로 끝나고 싶다…좋지 않은 모습 아마 없을 것” 경호상의 문제로 매곡동에서 직선거리로 10여㎞ 떨어진 평산마을로 옮겼으나 양산으로 향하겠다는 당초 계획에는 변함이 없다. 문 대통령은 임기를 마친 후 김정숙 여사와 함께 사저에 머무르면서 조용히 ‘자연인’으로 생활할 것으로 예상된다. 봉하마을로 돌아왔던 노 전 대통령의 마음고생을 누구보다 잘 아는 만큼 은퇴 후에는 현실 정치와 확실하게 거리를 두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지난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임기 후 계획에 대해 “저는 대통령 이후를 생각하지 않고, 그냥 대통령으로 끝나고 싶다”면서 “잊혀진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을 하는 동안 전력을 다할 것”이라면서 “대통령이 끝난 뒤 좋지 않은 모습은 아마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金 “4년전 내 자리” 李 “새 모습으로”… ‘32년 악연’두 남자 신경전

    金 “4년전 내 자리” 李 “새 모습으로”… ‘32년 악연’두 남자 신경전

    李, 13대 총선 4%P 차이 김종인 꺾어 20대 무소속 당선 뒤 복당·대표 꿰차 金, 20대 총선 때 ‘친노’ 이해찬 컷오프 金 “정상 개원 협력을” 李 “법 지켜야” 3차 추경 필요성 공감… 원 구성 난항“4년 전에는 내가 이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기분이 이상하다.” 3일 오전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를 예방한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이렇게 농담을 건네자 주변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 대표도 웃으면서 “비대위원장을 맡으셨으니 새로운 모습으로…”라고 기대감을 내비쳤다.이 대표와 김 위원장의 이날 만남은 3차 추가경정예산(추경)안과 원 구성을 둘러싼 현안 외에도 두 정치인의 ‘32년 악연’으로 이목을 끌었다. 두 사람은 1988년 13대 총선에서 처음 맞붙었다. 당시 두 번의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지낸 김 위원장은 민주정의당 후보로 서울 관악을에 출마, 3선을 노렸으나 평화민주당 후보인 이 대표에게 5000여표(4% 포인트) 차이로 패했다. 이후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두고는 김 위원장이 민주당의 비대위 대표로 친노(친노무현) 주류와 강경파를 타깃으로 물갈이를 했고, 친노 좌장인 이 대표도 컷오프(공천배제)됐다. 이 대표는 컷오프에 반발해 탈당, 무소속으로 세종시에 출마해 당선된 뒤 복당했고, 김 위원장은 비례대표직을 던지고 탈당해 야인으로 돌아갔다. 이런 점을 의식한 듯 민주당 대표실에서 만난 이 대표와 김 위원장은 평소보다 밝은 얼굴로 대화를 이어 나갔다. 김 위원장이 이 대표를 만나자마자 꺼낸 말은 “건강 괜찮으시냐”였고, 이 대표는 “많이 좋아졌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어 이 대표가 김 위원장에게 “어려운 일을 맡으셨다”라고 하자 김 위원장은 “그렇죠. 팔자가 그렇게 되나 봐요”라고 답하기도 했다. 두 대표는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3차 추경의 필요성에 공감하며 경제 문제를 논의했다. 김 위원장은 “정부 재정의 역할이 중요한 상황에서 국회가 정상적으로 잘 작동이 돼야 이 사태를 빨리 극복할 수 있다”며 “정부의 노력에 적극 협력할 테니 그런 식으로 (정상적으로) 해 주셨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5분가량 진행된 비공개 대화에서는 이 대표가 3차 추경에 대한 협조를 요청했고, 김 위원장은 “내용을 보고 하겠다”고 답했다고 민주당 송갑석 대변인이 전했다. 여야가 원 구성을 놓고 갈등을 빚는 상황에 대해서는 신경전도 벌어졌다. 김 위원장은 “7선으로 의회 관록이 가장 많으신 분이니까 과거의 경험을 보셔서 정상적인 개원이 될 수 있도록 협력해 달라”며 민주당의 단독 개원 추진에 우회적으로 불만을 제기했다. 이에 이 대표는 “5일에 (개원을) 하도록 돼 있다”며 “기본적인 법은 지키면서 협의할 것은 협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과 통합당의 원 구성 협상은 이날도 겉돌았다. 민주당 박성준 원내대변인은 “어제도 (두 당의) 원내대표와 수석이 만났지만 (협상이) 잘 안 됐다”면서 법사위 문제로 협상이 막혀 있다고 설명했다. 통합당 관계자는 “(민주당이) 5일 본회의를 강행하면 통합당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는 당내에도 여러 의견이 있어 4일 의원총회에서 의견을 모아볼 예정”이라면서도 “과거처럼 장외투쟁·농성·단식 등과 같은 방식을 택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32년 악연’ 마주앉은 이해찬 vs 김종인… “4년 전엔 내가 그 자리서”

    ‘32년 악연’ 마주앉은 이해찬 vs 김종인… “4년 전엔 내가 그 자리서”

    “4년 전에는 내가 이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기분이 이상하다.” 3일 오전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를 예방한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이렇게 농담을 건네자 주변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 대표도 웃으면서 “비대위원장을 맡으셨으니 새로운 모습으로…”라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이 대표와 김 위원장의 이날 만남은 3차 추가경정예산(추경)안과 원 구성을 둘러싼 현안 외에도 두 정치인의 ‘32년 악연’으로 이목을 끌었다. 두 사람은 1988년 13대 총선에서 처음 맞붙었다. 당시 두 번의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지낸 김 위원장은 민주정의당 후보로 서울 관악을에 출마, 3선을 노렸으나 평화민주당 후보인 이 대표에게 5000여표(4% 포인트) 차이로 패했다. 이후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두고는 김 위원장이 민주당의 비대위 대표로 친노(친노무현) 주류와 강경파를 타깃으로 물갈이를 했고, 친노 좌장인 이 대표도 컷오프(공천배제)됐다. 이 대표는 컷오프에 반발해 탈당, 무소속으로 세종시에 출마해 당선된 뒤 복당했고, 김 위원장은 비례대표직을 던지고 탈당해 야인으로 돌아갔다. 이런 점을 의식한 듯 민주당 대표실에서 만난 이 대표와 김 위원장은 평소보다 밝은 얼굴로 대화를 이어 나갔다. 김 위원장이 이 대표를 만나자마자 꺼낸 말은 “건강 괜찮으시냐”였고, 이 대표는 “많이 좋아졌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어 이 대표가 김 위원장에게 “어려운 일을 맡으셨다”라고 하자 김 위원장은 “그렇죠. 팔자가 그렇게 되나 봐요”라고 답하기도 했다. 두 대표는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3차 추경의 필요성에 공감하며 경제 문제를 논의했다. 김 위원장은 “정부 재정의 역할이 중요한 상황에서 국회가 정상적으로 잘 작동이 돼야 이 사태를 빨리 극복할 수 있다”며 “정부의 노력에 적극 협력할 테니 그런 식으로 (정상적으로) 해 주셨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5분가량 진행된 비공개 대화에서는 이 대표가 3차 추경에 대한 협조를 요청했고, 김 위원장은 “내용을 보고 하겠다”고 답했다고 민주당 송갑석 대변인이 전했다. 여야가 원 구성을 놓고 갈등을 빚는 상황에 대해서는 신경전도 벌어졌다. 김 위원장은 “7선으로 의회 관록이 가장 많으신 분이니까 과거의 경험을 보셔서 정상적인 개원이 될 수 있도록 협력해 달라”며 민주당의 단독 개원 추진에 우회적으로 불만을 제기했다. 이에 이 대표는 “5일에 (개원을) 하도록 돼 있다”며 “기본적인 법은 지키면서 협의할 것은 협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과 통합당의 원 구성 협상은 이날도 겉돌았다. 민주당 박성준 원내대변인은 “어제도 (두 당의) 원내대표와 수석이 만났지만 (협상이) 잘 안 됐다”면서 법사위 문제로 협상이 막혀 있다고 설명했다. 통합당 관계자는 “(민주당이) 5일 본회의를 강행하면 통합당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는 당내에도 여러 의견이 있어 4일 의원총회에서 의견을 모아볼 예정”이라면서도 “과거처럼 장외투쟁·농성·단식 등과 같은 방식을 택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文대통령이 태종?… 태종은 정치 술수·살상도 주저하지 않았다

    文대통령이 태종?… 태종은 정치 술수·살상도 주저하지 않았다

    총선에서 여당이 압승한 후 문재인 대통령은 공연한 구설에 휘말렸다. 5월 초 이광재 당선자의 영 개운치 않은 비유 탓이었다. “노무현·문재인은 기존 질서를 해체하고 새롭게 과제를 만드는 태종 같다. 이제 세종의 시대가 올 때가 됐다.” 피선거권 박탈로 10여년 만에 재기해 흥분한 탓일까? 총기는 사라지고 욕심만 넘쳤다. 3년 전 문 대통령 당선 후 20년 집권 운운했던 이해찬 대표의 언급과 다르지 않았다. 좌충우돌 독설가 진중권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이 나라가 조선 시대로 돌아간 듯”, “서로 징그럽게 얽혀 백 년은 해 드실 듯”. 욕먹어도 쌌다. 어떻게 쿠데타로 아버지(태조)와 형(정종)을 몰아내고 왕좌에 오른 태종에 비유했을까. 더 고약한 것은 ‘세종의 시대’를 언급한 부분이었다. 문 대통령은 장차 도래할 ‘성군의 치세’로 건너가는 교량이라는 것일까? 칭찬인지 가르침인지 모를 일이다. 게다가 세종이란 누구를 염두에 둔 것일까. 이광재 본인? 태종이라면 대역죄로 처단했다. 그는 ‘차기’와 관련한 확인되지도 않은 발언을 빌미 삼아 처가의 씨를 말렸다. 물론 전제왕조에서 최대 과제는 왕권의 안정과 안정적 승계였다. 이 점에서 조선의 국왕 28명 가운데 태종을 능가할 사람은 없었다. 세종의 치세는 태종의 칼끝에서 나왔다. 그는 왕권의 안정을 위해 정치 술수와 공작, 무고한 살상을 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으로선 꿈도 꾸지 못할 짓이었다. 태종은 1404년(태종4) 반정공신 이거이, 이저 부자를 숙청했고 1407년 처남 민무구, 민무질 형제를 사사했으며 이무, 윤목, 유기 등의 목을 베었다. 1416년엔 나머지 처남 민무휼, 민무회 형제를 죽였으며 같은 해 야심가 이숙번을 축출했으니 1418년 선위할 때 조정엔 왕권을 위협할 척신도 공신도 없었다. 단 하나, 세종의 장인 심온 집안이 문제였다. 심온은 신중했다. 권세를 부리거나 권력을 탐할 인물이 아니었다. 하지만 집안은 조선 최대의 권벌. 부친 심덕부는 태조 이성계와 함께 위화도에서 회군한 조선 창업 공신이었다. 그의 형 심인봉은 군사령관인 의흥삼군부 도총제를 지냈고 동생 심정은 의흥삼군부 동지총제로 군부의 실세였다. 동생 심종은 태조의 사위였으며 심온은 세종(이도)의 장인인 데다 태종의 처남 민무휼과 사돈 관계였다. 비록 권력욕은 없다 해도 그 주변엔 권력의 부나비들이 꼬였다. 1418년 6월 3일 태종은 세자(이제, 양녕대군)를 폐하고 이도(충녕)를 새로이 책봉했다. 6월 9일 명나라에 주문사를 보냈다. 8월 8일 명의 인가가 떨어지기도 전에 느닷없이 왕위를 선위하겠다고 선언했다. 승계를 청하는 주문사를 명에 파견하기로 하고 9월 3일 심온을 영의정에 앉혀 사은주문사로 임명했다. 심온은 졸지에 왕의 국구(장인)에 영의정 그리고 조선을 대표하는 사절이 됐다. 그러나 그것이 낚싯밥일 줄이야…. 9월 8일 심온 일행이 한양을 출발했다. ‘세종실록’은 그날의 모습을 이렇게 기록했다. “심온은 임금의 장인으로 나이 50이 못 되어 수상의 지위에 오르게 되니 영광과 세도가 혁혁하여 전송 나온 사람으로 장안이 거의 비게 되었다.” 이런 기록도 있었다. “심온 환송식에 나온 사람들의 말과 마차가 일으킨 먼지가 한양을 뒤덮었다.” 태종은 예의 주시했다. 얼마 전 병조참판 강상인 사건까지 있었다. 선위할 때 태종은 상왕으로서 군사 문제는 직접 주관하겠다고 밝혔다. 군령권을 상징하는 직인도 직접 보관했다. 그런데 참판 강상인이 병조의 일을 세종에게 직보한 것이다. 대관들이 벌떼처럼 일어났지만 태종은 일단 강상인이 원정공신이라는 이유로 낙향 조처로 일단락했다. 11월 병조좌랑 안헌오가 참소했다. 심온의 경쟁자인 박은이 태종의 심기를 헤아려 꾸민 일이었다. “강상인과 동지총제 심정(심온의 동생), 병조판서 박습이 사적인 자리에서 말하기를 ‘요사이 호령이 두 곳에서 나오는데 한 곳에서 나오는 것만 같지 못하다’고 했습니다.” 역린을 건드렸다. 26일 태종은 즉각 추국을 지시했고 강상인은 고문에 못 이겨 허위 자백을 했다. “병조판서 박습, 이조참판 이관, 의흥삼군부 동지총제 심정과 그런 말을 했으며 심온에게도 ‘군사는 마땅히 한 곳에서 명이 나와야 한다’고 하자 ‘옳다’고 대답했다.” 태종은 곧바로 강상인, 박습, 이관, 심정을 모반대역죄로 처형했다. 심온은 의주에 도착하자마자 체포해 12월 22일 한양으로 압송했다. 심온은 고문으로 무릎이 부서졌지만 혐의를 인정하지 않고 대질을 요구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수사 책임자인 유정현이 귀띔했다. ‘태종의 뜻이외다’, ‘자백해야 당신 선에서 끝날 것이오’. 심온은 불러 주는 대로 자백하고 사약을 받았다. 14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태종은 이미 자신의 처가를 숙청했다. 장인 민제는 태종의 스승이었고 처남 민무구와 민무질은 이른바 ‘혁명의 동지’였다. 게다가 세 왕자는 골육상쟁의 피바람 시절 외가에서 보호를 받으며 자랐으니 외삼촌들과 더 끈끈할 수밖에 없었다. 1404년 태종은 이제(양녕대군)를 세자에 책봉하면서부터 처가의 일거수일투족을 주목했다. 당시 무구, 무질 두 처남은 병권을 쥐고 있었다. 마침 일부 공신이 장인 민제를 앞세워 세자와 명나라 공주의 혼사를 추진하려 했다. “나와는 상의도 없이 세자의 혼사를 논의해?” 태종은 별렀다. 이화가 나섰다. ‘(두 처남이) 어린 조카를 끼고 권세를 잡으려 한다’는 것인데, “민씨 형제가 왕자의 난을 거론하며 ‘임금에겐 아들이 하나만 있어야 한다’고 했다”더라고 탄핵했다. 태종은 두 처남을 제주도로 유배했다. 이런 상소도 올라왔다. 태종이 신하들을 떠보기 위해 선위 파동을 일으켰는데, 그때 백관 가운데 두 처남이 히죽거렸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참소였지만 처형하라는 주청이 잇따랐다. 두 처남은 유배지에서 사사됐다. 셋째, 넷째인 무휼과 무회도 형들의 결백을 토로했다는 이유로 ‘자살’ 형식으로 죽였다. 처가를 정리하기 직전 태종은 이거이와 이저 부자를 숙청했다. 이저는 태조의 사위고 그의 동생 이백강은 태종의 사위였다. 태종의 사병 혁파 명령에 반발할 정도로 말발이 셌던 이들이었다. 이때 나선 것도 이화였다. “두 사람이 말하기를 ‘아들들을 모두 제거하고 녹록한 상왕(정종)을 모시는 게 어떤가’라고 했습니다.” 태종은 두 사람을 고향으로 내쫓았다. 총애했던 이숙번도 그렇게 숙청했다. 나이도 젊고 비상한 두뇌에 결단력과 배짱까지 갖추고 있었으니 위험한 인물이었다. 1416년 서너 달 동안 궁궐에 나타나지 않자 대관들이 불충을 이유로 처벌을 주장했다. 태종은 못 이기는 척 함양으로 유배 보냈다. 이에 비해 연로한 하륜은 수많은 비위 사실과 탄핵에도 철저하게 보호했다. 그는 태종보다 20살이나 많았으니 왕권에 위협이 될 수 없었다. 태조가 조선을 건국했다면 태종은 왕조의 기틀을 다졌다. 6조 제도를 정착하고, 전국 8도 체제를 세웠으며, 사대교린 외교로 국가 안보를 다졌고, 대간 제도 확충으로 관리들의 부패와 신권의 확장을 견제했으며, 정책 결정 과정을 모두 문서로 남기도록 했다. 게다가 왕권의 승계도 안정적으로 이뤘다. 그는 성공한 군주였다. 한 정권의 성공은 후계의 완성을 통해 이뤄진다. 그런 점에서 김대중은 성공한 대통령이었다. 그는 노무현을 세워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고 못다 한 계획도 실천에 옮길 수 있었다. 반면 노무현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하면서 김·노 10년간 이룬 성과도 물거품이 됐다. 이명박·박근혜는 견원지간이었다. 둘은 지금도 감옥에 있다. 5·18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문 대통령은 입술이 허옇게 부르터 있었다. 대통령의 건강은 최고급 비밀인데, 본인은 그런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했다. 그만큼 그는 정치적이지 않다. ‘정치적’이란 말에 담긴 술수, 모의, 기획과는 담을 쌓았다. 조선 정치 최고단수 태종과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노무현이 그랬듯이 문 대통령도 아끼는 이들에게는 ‘절대로 정치하지 말라’고 할 사람이다. 솔직히 그것이 그의 가장 큰 문제인지도 모른다. 그걸 이용해 먹을 자도 있겠지만…. 논설고문 kbc@seoul.co.kr
  • 코로나19 이후 디지털 거버넌스 모색 세미나 열려

    5개월째 계속되고 있는 코로나19 대응에서 거둔 성과의 상당 부분은 다양한 디지털 기술을 방역에 적극 활용한 것에 기인했다. 이를 바탕으로 코로나19 이후 ‘디지털 거버넌스’를 정부 혁신의 디딤돌로 만들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마침 정부에서도 디지털 뉴딜을 언급하는 속에서 디지털 거버넌스 전략과 방향을 모색하는 세미나가 29일 서울 중구 한국정보화진흥원 무교청사에서 열렸다. 이날 세미나는 코로나19에 대응하는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재난 관리시스템을 평가하고, 중앙-지방 연계도 측정을 통한 공감의 디지털 거버넌스 방향을 탐색하는 발표와 토론이 이어질 예정이다. 기존 사회안전망·재난관리 시스템과 전자정부 체계를 진단하고 감염병 등 재난대응을 위한 사회보안 체제, 디지털 거버넌스, 스마트 재난관리 전략도 제시했다. 이날 세미나는 서울신문과 인하대 산업보안e거버넌스센터가 공동주최하고 행정안전부 재난관리본부,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 서울시, 한국정보화진흥원, 한국클라우드산업협회가 후원했다. 이경상 카이스트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교수는 ‘포스트 코로나, 8대 미래 변화와 디지털 정부의 역할’이란 발표를 통해 한국판 디지털 뉴딜을 위한 전략을 “DNA-US+G”로 표현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먼저 DNA는 “인공지능과 로봇을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 구축(D), 5G망 구축과 관련 기술 응용 분야 확대(N), 인공지능 중심국가 추진을 통한 4차산업혁명 강국 추진(A)”을 의미한다. 여기에 “비대면 일자리 활성화(U)와 디지털 산업 지원 등 사회간접자본(S)” 그리고 “정부(G)”가 포함된다. 이 교수는 이를 위한 과제로 로봇을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고, 3D 업종에 기술을 넣어 양질의 일자리로 만들며, AI의 장점을 활용한 변화 등 세가지를 꼽았다. 이한경 행정안전부 사회재난대응국장은 ‘코로나19 대응과 디지털 거버넌스’ 발표에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코로나19 대응이 큰 효과를 거뒀다는 점을 강조하며 디지털 거버넌스의 실제 사례를 강조했다. 특히 그는 자가격리자 안전보호 앱, 안심밴드, 시설방문자 확인을 위한 QR코드, 안전신문고 등을 꼽았다. 이어 앞으로 효과적인 재난관리를 위해 필요한 디지털 기술 사례로 ▲챗봇, AI 콜센터 등 첨단기술 기반 자가격리자 관리 고도화 기술개발 ▲신종 감염병 유입 예측 및 지능적 차단기술 개발 ▲지능형 안면 인식기술 개발 및 접촉자 추적기술 개발 ▲격리시설 관리 소독, 물품공급, 비상대응 등 지원로봇 개발, 입소자 원격관리 기술개발 등을 꼽았다. 남태우 성균관대 국정전문대학원 교수는 ‘재난 상황에서 행정업무 폭증과 행정병목 현상’ 발표에서 “디지털 혁신을 통한 디지털 정부가 코로나19 이후 행정병목을 줄일 수 있는� 굡� 질문을 던졌다. 그는 민원접수와 상담을 예로 들며 “대부분 비슷비슷한 질문이 쏟아지는 상담과 민원접수를 지능화하는 등 기술이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기술이 하도록 하고, 진정한 스마트워크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코로나19 이후 행정혁신을 위해선 사회재난대응유형별 교육과정을 신설해 공무원 역량 교육의 새로운 틀을 모색해야 한다”면서 “공무원들이 행동경제학에 대한 이해를 높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세미나를 총괄한 명승환 인하대 산업보안e거버넌스센터장은 “사후 약방문식 처방, 행정 편의주의, 가시적 성과에 집착하는 부처별 경쟁과 이기주의를 과감히 청산하지 않는다면 코로나19 이전 과거와의 고리는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명 교수는 “IT강국 코리아와 전자정부 세계 1위라는 위치는 이 분야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던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면서 “문재인 정부에서 강조하는 ‘디지털 뉴딜’을 위해선 노무현 정부 당시 대통령 직속 전자정부특별위원회처럼 범부처 기획·조정·집행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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