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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에 이런일이] 자살 하려다 살자?

    바다에 투신한 30대 남자를 찾기 위해 해경이 10시간 넘게 수색작업을 폈으나 정작 이 남자는 스스로 헤엄쳐 나와 집에서 자고 있었다. 25일 오전 4시50분쯤 전남 목포해양경찰서에 노모(34)씨가 만취해 부두에서 바다로 뛰어들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목격자 강모(25)씨는 “노씨가 ‘카드 빚 때문에 죽겠다.’며 시계와 구두를 벗어놓고 바다에 뛰어들었다.”고 해경에 알려줬다. 해경은 즉각 경비정 3척을 띄우고 특공대 등 30여명을 동원해 수색작업에 나섰다. 경비정은 반경 3∼4㎞의 해상을 순찰했고 특공대 잠수부원은 바닷속까지 수색했다. 투신자가 해안에 밀려올 것에 대비, 해안 순찰도 강화했다. 수색이 한창이던 오후 2시쯤 해경은 다시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밤새 집나간 아들이 젖은 옷을 입은 채 자고 있는데 방송에서 투신했다는 남자의 이름과 비슷하다는 내용이었다. 조사결과 바다에 뛰어든 노씨는 “찬 바닷물에 들어가자 정신이 번쩍 들어 자살할 마음도 사라져 허우적거리다 물 밖으로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곧바로 집으로 돌아가 곤히 잠들어 있었는데 해경은 엉뚱하게 바다만 뒤지고 있었던 것이다. 목포해경 관계자는 “수십명의 경비인력이 헛고생했지만 노씨가 살았다니 다행”이라고 말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해경 물먹인 ‘바다 투신男’

    해경이 바다에 투신한 남자를 찾기 위해 10여시간 수색작업을 폈으나 정작 이 남자는 헤엄쳐 나온 뒤 집에서 자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전남 목포해양경찰서는 25일 새벽 4시50분쯤 목포에 사는 노모(34)씨가 만취한 채 목포해양대 부두에서 바다에 뛰어들었다는 신고를 받고 수색작업을 벌였다. 이때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밤새 집나간 아들이 옷이 젖은 채 자고 있는데 방송에서 투신했다는 남자의 이름과 비슷했다.”는 내용이었다. 확인 결과 바다에 뛰어든 노씨는 찬 바닷물에 정신이 든 데다 자살할 마음도 없어 허우적거리다 물 밖으로 나온 뒤 귀가한 것으로 드러났다.목포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77) 대마도에서 이키까지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77) 대마도에서 이키까지

    너무 가까우면 상대를 깊게 알 수도 있지만 뜻밖에 전혀 모를 수도 있다. 대마도(‘쓰시마’라는 현지 표기 대신 용어의 역사성을 고려해 대마도로 쓴다.)와 한국의 관계가 그렇다. 누구나 아침 6시 서울역에서 KTX를 타면 8시40분에 부산역에 내려 10시30분에 출발하는 대마도행 페리를 탈 수 있다. 불과 1시간30분이면 하타가쓰항에 도착해 점심을 먹을 수 있으니 서울에서 흑산도 가는 것보다도 빠르다. 날씨만 맑으면 당연히 대마도가 육안으로 보이며, 반대로 대마도 최북단 와니우라에서는 불야성을 이룬 한국의 남해안이 지척에 보인다. 거리만 가까운 것일까? 역사적으로나, 심정적으로나 대마도는 우리와 ‘하나’가 아닐까. ●부산서 1시간30분… 너무도 가까운 섬 많은 사람들이 대마도는 알지만 이키(壹岐)에 관해서는 거의 무관심하다. 이키는 한반도에서 대마도를 거쳐 규슈로 가는 징검다리였으며, 일본 입장에서 보자면 한반도는 물론 중국 대륙으로 들어가는 관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문화의 흔적이 강력하게 남아 있는 섬들임에도 두 섬의 정체성이 어쩌면 이리도 다른지! 대마도가 한반도에 밀착되어 있다면 이키는 보다 일본적인 곳이다. 대마도 스스로도 조선과 일본 양쪽에 모두 걸친 속국, 혹은 일본 본토와는 전혀 다른 독립적인 존재로 인식하고 있었다. 문화사적으로 대마도가 비일본적이라는 사실은 역사적 정체성이 한반도에도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대마도에서 한반도 문화를 모두 걸러낸다면 남는 게 거의 없을 것이다. 대마도가 오늘처럼 확고하게 일본 본토에 속하게 된 것은 메이지 정부가 대한(對韓)외교권을 중앙 정부로 가져가 이를 일본 정부에 편입시킨 결과일 뿐이다. 대마도는 국제법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일본 땅이다. 그러나 문화적으로나 심정적으로는 우리와 더욱 가깝다. 대마도 서쪽 해안은 가히 한국 쓰레기들의 종합 전시장이다. 우리나라의 바다에 버려진 쓰레기가 이곳 서쪽으로 모인다는 사실은 옛적 표류민 표착의 단서가 된다. 한반도 동남부에서 표류를 해도 자연스럽게 대마도에 닿곤 했으니 신라인 박제상이 이곳에서 죽은 것도 실은 이같은 교류사의 내역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백제나 신라식 산성이 존재함은 대마도의 선주민들 다수가 한반도에서 건너간 사람들이었음을 뜻한다. 그래서 동국여지승람에 ‘대마도는 옛날에 우리 계림에 속해 있었는데 언제부터 왜인들의 소굴이 되었는지 모르겠다.’고 하지 않았는가. 조선에서는 대마도가 우리 주권 하에 복속된 섬은 아닐지라도 조선 영토의 일부로 보기도 했다. 지방에 내려보내는 경차관을 대마도에 파견했는가 하면 대마도 사람들이 수직왜인이 되어 조선의 벼슬과 녹봉도 받았다. 일찍이 고려 조정은 대마도주에게 구당관(勾當官)과 만호(萬戶), 즉 변방과 수상교통의 요충지를 책임진 관직을 내렸다. ●주민들 다수가 한반도에서 건너가 일본 본토인들 입장에서는 대마도가 한반도에 가깝다는 주장에 대해 거북스러움을 느낄 터이지만, 정작 역사시대의 일본인들 스스로가 대마도를 별종의 섬으로 간주하여 본토와는 전혀 다른 곳으로 보았다. 오늘날도 대마도는 ‘국경의 섬’식으로 인식돼 대륙에 맞서는 자위대 기지가 곳곳에 위치하는 전략적 가치만 인정받을 뿐 대단히 낙후되어 있다. 그래서 뜻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나가사키현에 붙어서 소외받을 바에는 차라리 부산시 영도구에 붙어서 잘 살아보자는 농담도 나온다. 그 농담이 농담으로만 여겨지지 않음은 웬일일까.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이키 관광상품을 개척한 범주항공의 신우진 차장은 “이키에는 주로 후쿠오카에서 일본인 관광객들이 많이 오지만 대마도는 일본인보다 한국인 관광객들로 생계를 꾸려 간다.”고 통계 수치까지 제시한다. 대마도 사람들은 대부분 한국어 기본 단어를 구사할 수 있으니 이는 근래의 일이 아니다. 대마도 역사자료관에는 외국에서 만들어진 본격 한국어 교재가 있다. 한국문화를 흡수하기 위한 방책으로 한국어를 전문적으로 학습했다는 사실을 말하는 증거다. 대마도는 남북이 81㎞에 이른다. 작은 섬이라고 여기는 일반의 인식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미국 밑에 쿠바가 있듯이 한반도 코밑에 거대한 섬이 버티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한·일간 절묘한 곳에 자리잡은 대마도에 왜구가 득실거리기라도 할라치면 한반도는 밤잠을 못이루었던 것이다. ●만성적 식량부족으로 왜구들 극성 대마도는 한마디로 ‘먹고살기 힘든 섬’이다. 북쪽 히타카쓰항에서 남쪽 이즈하라까지 근 2시간여 거리를 달려 보지만 보이는 것은 산뿐이다. 섬이라기보다는 그냥 바다에 산들이 떠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만성적인 식량부족에 시달리던 배고픈 사람들이라 눈 앞에 건너다 보이는 조선을 바라보며 해적질을 꿈꾸었던 게 무리는 아니다. 대마도의 이름난 사찰마다 조선에서 얻어온, 정확하게 말해 약탈해 온 불상이나 범종들이 한두 개씩은 놓여 있다. 이키의 안국사에는 한반도에서 전래한 팔만대장경 초판본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약탈품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섬이라는 고립된 조건 속에서 고귀한 문화유산들이 멸실되지 않고 남아 전하는 것이다. 조선 정부는 대마도에 일정한 식량을 공급하고, 무역을 허락하며, 왜관을 열어 회유함으로써 왜구의 고통을 덜고자 했다. 대마도는 부족한 식량을 조선을 통해 해결하는 반면 일본 본토와 조선 사이에서 조정능력을 발휘하여 자신들의 생존권을 유지했다. 오랫동안 대마도는 에도 바쿠후를 대리하여 대한 외교를 수행했다. 대리인이라고는 하나 사실상 막중한 권한을 가지고 바쿠후와 한반도 사이에서 능수능란한 중재 역할을 하면서 자신들의 이득을 챙겼다. 일종의 생존전략인바, 그들은 양자 사이의 중개무역으로 이윤을 냈으며, 그 수입으로 먹고살았다. 이런 탓에 임진왜란 이후에 일시적으로 한·일간 국교가 단절되어 가장 심각한 타격을 받은 이들도 대마도민들이었다. 현재 나가사키현에 속한 대마도와 이키는 히라도(平戶)와 더불어 왜구의 본거지였다. 태종 때 대마도정벌에 나선 이종무 장군의 아소만 소탕작전도 왜구를 청소하지 않고는 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소만을 바라보니 왜 이 장군이 한달여 동안 그토록 많은 피해를 입어가면서도 왜구를 소탕하지 못했던가가 자명해진다. 한마디로 천혜의 요새다. 섬들이 은하수의 별처럼 흩어져 있어 섬 사이로 신출귀몰한다면 강력한 대군도 왜구 몇을 감당하기 어려운 요충지다. 이키와 히라도에서 출발한 왜구들은 이곳 대마도 왜구와 연합작전을 펼치기도 하며 끊임없이 한반도의 해안을 침탈해 댔으니 고려와 명나라가 왜구 때문에 망했다는 말도 절반은 진실에 가깝다. ●전쟁과 평화 교차하는 ‘국경의 섬´ 그런데 일본의 후소샤판 교과서에는 ‘왜구란 조선반도 및 중국 대륙 연안에 출몰했던 해적집단을 뜻한다. 그들 중에는 일본인 외에 조선인도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왜곡하고 있다. 왜구는 대마도, 이키제도와 히라도 등을 포함해 세토나이카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의 해적 및 악당들로 이뤄졌다고 봐야 한다. 최근 들어 왜구의 구성을 국적이나 민족을 넘어선 차원의 인간집단으로 파악하려는 시각은 당시의 현실과 동떨어진 가공된 역사상일 뿐이다. 여기에는 왜구 근거지는 북규슈 지역의 도서 연안이고, 발생 원인도 일본 내의 정치적 혼란에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회피하려는 의도가 숨겨져 있다. 왜구의 시대에 이어 이번에는 임진왜란의 주역으로 다시금 대마도와 이키가 등장한다. 강항은 간양록에서 ‘이번 전란의 꼬투리는 대마도주 소오(宗義智)의 수작에서 나온 것’이라고 했다. 고니시 유키나카(少西行長)의 딸 마리아가 바로 이 소오의 아내였다. 조선 침략의 선봉장이 된 고니시의 출병에는 조선말을 잘하는 대마도 사람 8000여명이 동원된다. 웬만한 남자들은 전부 동원됐다.‘전쟁이 끝나자 남자는 없고 과부들만 들끓어 대를 이을 수 없었다.’는 말이 우스갯소리만은 아니다. 이키도 대규모 병사를 내어 한반도에 출병했다. 과거의 왜구들이 왜군으로 변신한 것이다. ●조선통신사 맞이하는 기착지… 친선의 가교로 전쟁이 끝나고 조선통신사의 왕래가 재개되자 다시금 대마도와 이키는 한반도에서 오는 귀한 문화사절단을 맞이하는 기착지로 변신한다. 수백명에 이르는 조선통신사는 그 자체가 한반도의 선진문물을 전하는 통로였다. 조선정부는 성심성의껏 사신을 조직하였으며, 대마도와 이키 등지의 번주들도 최선을 다해 이들을 맞았다. 대마도와 이키는 조선통신사를 통한 친선과 교류의 장이었지만 때로는 왜구의 본거지로 역사의 굴절을 계속했다. 이키의 아름다운 ‘원숭이바위’가 있는 곳에는 2차대전 당시의 포대가 있으며, 대마도에도 거대한 지하포대가 있다.1905년 러일전쟁 당시 일본 해군은 아소만 일대에 군함을 잠복시켜 놓고 반세키(万關)운하를 통해 러시아함대를 기습·괴멸시켰다. 근래 대마도에서는 러일전쟁 100주년을 기념한답시고 곳곳에 러일 친선을 기원하는 전승비를 세웠다. 명분은 친선이겠지만 본래 목적은 딴 곳에 있다는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니 이처럼 일본은 대마도인들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대마도를 자국 본토와는 달리 오로지 ‘국경의 섬’으로 만들어가는 중이다. 대마도와 이키는 한·일 간의 친선을 돋우는 징검다리도, 침략의 가교도 될 수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최익현 선생이 단식 끝에 절명했을 때, 대마도 사람들은 선생의 유해를 지극정성으로 이즈하라의 슈젠지(修善寺)에 모셨다. 이키에는 해방되던 해, 꿈에 그리던 조국을 향해 귀환선에 몸을 실었다가 집단 수장된 우리 동포 160명을 애도하는 비가 한국쪽 바다를 향해 서 있다. 또 와니우라 포구의 팔각정 형태의 한국 전망대에는 1703년 무려 112명의 역관사들이 조난당해 생을 마친 사실을 기록한 비석도 서 있다.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딛고 바다가 국제교류의 장으로 연결되었던 것이다. ●진실된 한일교류의 징검다리되어야 17세기 대(代)의 외교관으로 한국말에 능통했던 아메노모리 효슈의 말처럼 대마도와 이키는 진정한 ‘친선교류’의 징검다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임진왜란으로 한반도의 수많은 백성들이 죽어 가고, 문화재가 불타 버렸지만, 강제 동원되어 이 전쟁에 참가해야 했던 대마도나 이키의 백성들도 운명은 비슷했다. 조선통신사가 오고 갔듯이 이제 한·일간의 해양 네트워크는 더이상 침탈의 역사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러일전쟁 100주년,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대국을 꺾었다.’는 자부심과 승리의 기분을 지금껏 향유하려고 드는 한 국제사회에서 그들이 ‘소인배’라는 비난과 지탄을 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21년 전인 1984년. 당시 서울신문사에서 대마도와 이키의 역사·고고·미술·민속·언어·물질문화 등을 망라한 보고서를 냈던 사실을 기억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바다를 통해 일본을 제대로 알고자 하는 목적의 대마도·이키 답사가 21년 만에 다시 서울신문 지면에서 재현된 셈이다. 일본인들에게는 발틱함대를 괴멸시킨 러일전쟁 승전 100주년 기념의 해이겠지만 우리에게는 ‘을사늑약’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친선의 바다인가, 침탈의 바다인가.’ 그 난해한 화두를 대마도와 이키에서 다시 곱씹어 본다.
  • 뚝섬 상업용지 매각가 타워팰리스 부지의 4배

    서울시내 마지막 ‘노른자위’땅으로 손꼽혔던 뚝섬 상업용지 3필지 1만 6500여평이 1조 1200억여원에 팔렸다. 예정가격보다 2배 이상 높은 것은 물론, 역대 매각된 공공용지 가운데 가장 높은 금액이다. 서울시는 옛 경마장 부지인 성동구 성수동 1가 685의 700번지 일대 뚝섬 제1종 지구단위계획구역내 1만 6537평 상업용지의 일반경쟁입찰에서 1구역은 2998억원,3구역 3842억원,4구역은 4440억원 모두 1조 1262억원에 낙찰이 결정됐다고 17일 밝혔다. 전체 평균 입찰 경쟁률은 9.3대 1, 평당가는 6808만원이었다. 지난 1995년 매각된 타워팰리스 부지의 3000억원보다 4배 가까이 높은 가격이다. 이번에 매각한 토지는 4개 특별계획 구역 가운데 성동구민체육센터가 위치한 2구역을 제외한 1,3,4구역이다.1구역은 용적률 400%,3,4구역은 600% 적용을 받는다. 1구역 5200여평은 주택 개발업자 노모씨에게 2990억여원에 넘어갔다. 공동주택과 대형 유통센터 등이 들어설 전망이다. 업무중심 지구로 개발될 3구역 5500여평은 대림산업이 7대1의 경쟁률을 뚫고 3820억여원에 낙찰받았다. 당초 예정가인 2050억여원의 186%에 해당하는 가격이다. 예정가보다 가장 높은 낙찰가가 형성된 지역은 4구역이다. 부동산개발업체인 피앤디홀딩스가 예정가인 1830억여원의 242%나 되는 4440억여원에 5700여평을 사들였다. 숙박 시설이 주로 들어설 예정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4구역보다 3구역의 가격이 높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S,F사 등 외국계 대형 호텔이 낙찰에 뛰어들면서 가격이 급등했다.”고 설명했다. 낙찰가의 10%를 입찰보증금으로 낸 낙찰자들은 오는 30일까지 계약을 체결하고,8월말까지 잔금을 모두 내야 한다. 이들은 설계를 끝내고 건축 허가를 받은 뒤 내년 초에 착공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하프타임] 노모, 美·日 통산 200승 달성

    ‘풍운아’ 노모 히데오(37·탬파베이 데블레이스)가 16일 트로피카나필드에서 열린 미국프로야구 밀워키 브루어스와의 홈경기에 선발 등판,7이닝 동안 삼진 2개를 곁들이며 4안타 2볼넷 2실점으로 막고 5-3으로 승리, 미-일 통산 200승을 달성했다.LA 다저스 소속이던 지난 2003년 4월21일 샌프란시스코전에서 아시아 투수로는 처음으로 메이저리그 100승을 달성한 노모는 현재 빅리그에서만 통산 122승째를 거뒀다.
  • 20년친구 초등생 딸 사업원한 납치살해

    사업을 망하게 했다며 초등학교 동창의 딸을 납치, 살해한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그러나 피해자가 살해되기 전 이들 중 한 명이 검문에서 적발돼 경찰조사를 받았던 것으로 드러나 수사에 허점이 있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서울 강동경찰서는 13일 주유소를 운영하는 김모(34)씨의 딸(8·초등학교 1년)을 살해한 노모(33)·정모(33)씨에 대해 강도살인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들은 지난 10일 오후 3시30분쯤 강동구 상일동에서 음악학원에 가는 김양에게 접근,“아버지 주유소에서 함께 일하는 삼촌”이라며 차에 태워 납치했다. 노씨는 김양을 경기도 이천시로 데려가 목졸라 살해했으며 정씨는 김양 부모에게 9차례 협박전화를 걸어 1억 5000만원을 몸값으로 요구했다. 노씨는 김양 아버지와 초등학교 동창으로 3년 전 김씨로부터 5000만원을 빌려 조명기기 판매점을 열었다 빚을 지고 도피했으며 “김씨 때문에 사업이 망했다.”고 원망해오다 이런 일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노씨는 경찰에서 “김씨가 가게를 빼앗다시피 해 아버지가 이를 수습하다가 결국 돌아가셨다.”고 진술했다. 노씨와 정씨는 2년 전 전북 익산에서 인터넷게임을 하다 친해졌으며 지난달 초 범행을 모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공중전화 발신지 근처 은행 현금지급기 폐쇄회로(CC)TV에서 이들의 인상 착의를 확인, 인천의 한 PC방에서 붙잡았다. 한편 경찰이 용의자를 찾기 위해 탐문수사를 하는 과정에서 정씨를 경찰서까지 임의동행한 사실이 확인됐다. 당시 정씨는 경찰에서 “친구와 술 약속이 있어 가는 길”이라고 둘러댔고 이를 증명하겠다며 경찰 앞에서 노씨에게 전화를 해 상황을 암시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전화를 받은 노씨가 발각된 것으로 알고 김양을 살해한 것으로 밝혀졌다. 노씨는 “전화를 받은 직후 정씨가 경찰에 붙잡혔다고 직감, 휴대전화를 끄고 이천시의 모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숨어 있다 소리를 지르며 우는 김양을 살해했다.”고 말했다. 특히 정씨는 “공중전화를 찾아다니다 주차된 자동차에서 정복 경찰관이 사복으로 갈아 입고 내려 공중전화 부스를 주시하는 것을 보고 이상한 낌새를 챘다.”고도 말해 수사에 허점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애초 노씨는 김양의 부모가 지목한 용의자에 포함돼 있지 않았다.”면서 “김양을 구하지는 못했지만, 정씨의 인적사항을 기록해 놓은 것이 노씨 등을 검거하는 단초가 됐다.”고 설명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독도 새 미생물 5종 국제공인

    ‘독도 한국’,‘독도 동해’ 등 독도에서 발견된 새 미생물 5개에 독도 이름이 붙여졌다. 이는 세계적으로 공인된 이름으로 독도가 한국 땅임을 알리는 데 기여할 수 있을 전망이다. 9일 과학기술부에 따르면 미생물유전체활용기술개발사업단장 오태광 박사와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윤정훈 박사는 독도에서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미생물 박테리아 5종을 발견, 독도 이름을 붙여서 세계적으로 인증을 받았다. 국제세균분류위원회의 인증을 받은 미생물은 ‘독도 한국’과 ‘독도 동해’ 2속(genus),‘버지바실러스 독도’,‘마리박터 독도’,‘마리노모나스 독도’ 등 3종이다. 오 단장은 “속은 생물분류상 종의 상위 단계로, 집성촌을 의미하는 셈”이라며 “해당 속에 속하는 미생물을 발견하면 무조건 독도라는 이름을 붙이게 된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지난 2004년 4월 독도를 방문, 독도 땅과 바닷물을 일부 채취해 왔다. 이를 1년간 분석한 결과 새로운 미생물을 발견,5종은 국제학회의 공인을 받았고 3종은 국제 학계 등록을 위해 심사 중이다.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MLB] 찬호 ‘가을잔치’ 꿈꾼다

    “생애 처음으로 포스트시즌 마운드에 오르겠다.” 박찬호(32·텍사스 레인저스)는 5일 빅리그 통산 100승을 달성한 뒤 다음 목표를 담담하게 밝혔다. 빅리거의 꿈인 ‘가을잔치’에서 나서고 싶다는 것. 박찬호는 그동안 포스트시즌과 인연이 없었다.1996년(당시 LA 다저스) 내셔널리그 디비전시리즈 엔트리에 포함됐지만, 애틀랜타에 3전전패로 무너져 마운드를 밟지 못했다. 이후 팀 전력 저하로 ‘가을의 전설’을 TV로 지켜봐야 했다. 텍사스도 포스트시즌에 목마르기는 마찬가지.1961년 창단 뒤 3차례(96·98·99년)에 올랐지만 뉴욕 양키스에 발목을 잡혀 모두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페넌트레이스 3분의1을 소화한 6일 현재 텍사스는 투타의 안정 속에 32승23패(승률 .582)를 기록, 강호 LA 에인절스에 반게임차로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 선두다. 6년만에 플레이오프 진출을 꿈꾸고 있다. 시즌 전부터 텍사스의 운명을 좌우할 변수로 선발투수진이 꼽혔다. 확실한 에이스가 없어 베테랑 케니 로저스(41)와 박찬호의 활약이 관건이었다. 텍사스 선발진은 기대에 한껏 부응했다. 특히 박찬호는 시즌 6승1패, 방어율 5.09로 부활해 통산 100승의 위업을 이뤘다. 로저스도 6일 켄자스시티전에서 7이닝 1실점으로 승리,8연승(다승 2위)을 질주했다. 세대교체를 끝낸 타선은 87홈런(1위), 팀타율 .275(5위)로 리그 최강의 파괴력을 과시했다. 송재우 Xports 해설위원은 “로저스와 크리스 영이 막판까지 페이스를 유지할지가 관건”이라면서 “트레이드 마감시한(7월31일)까지 에인절스와 박빙이라면 텍사스는 확실한 선발을 영입하는 승부수를 띄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아시아 출신 빅리그 최다승(121승)의 주인공 노모 히데오(37·탬파베이 데블레이스)는 이날 시애틀전에서 6이닝 5실점한 뒤 4-5인 7회 내려와 일본(78승)과 미국 통산 200승 달성이 뒤로 미뤄졌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박찬호 100승] 150승 “동양인 최다승 ‘꿈’을 던진다”

    [박찬호 100승] 150승 “동양인 최다승 ‘꿈’을 던진다”

    ‘신화는 계속된다.’ ‘코리안 특급’ 박찬호(32·텍사스 레인저스)가 5일 한국인 투수로는 전인미답의 메이저리그 100승 고지에 올라섰다. 이제 그를 바라보는 눈길은 언제까지, 그리고 얼마만큼 승수를 더 쌓을지에 모아져 있다. 동양인 최다승(121승)을 보유하고 있는 노모 히데오(37·탬파베이 데블레이스)를 따라잡는 것은 물론,150승까지도 바라볼 수 있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철저한 체력관리와 되살아난 구위, 메이저리그 입문 이후 가장 깊은 슬럼프를 헤쳐나온 ‘근성’까지 감안한다면 동양인 최다승 기록 경신의 신화는 그저 꿈에 그치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박찬호와 노모는 ‘닮은 꼴’이자 ‘라이벌’이다. 조언을 주고 받을 만큼 친한 사이인 데다 똑같이 슬럼프를 겪으며 ‘동병상련’을 나눴지만 메이저리그에서 한·일 양국의 자존심을 대표한다는 점에서 끊임없이 비교돼 왔다. 2001년까지 박찬호가 80승을 거두고 노모가 82승으로 약간 앞질렀다. 노모가 이전 5년 동안 시즌 평균 8승에 못미친데 견줘 박찬호는 두 배 가까운 15승을 올려 추월은 시간문제였다. 그러나 2002년을 고비로 둘의 희비가 엇갈렸다. 텍사스 레인저스로 옮긴 박찬호는 부상과 부진에 시달리다 2년간 10승을 올리는 데 그쳤고, 반면 다저스로 돌아온 노모는 2년간 32승을 올리며 동양인 투수 최초로 통산 100승을 돌파했다. 하지만 지난해 마지막 선발 등판에서 7이닝 무실점 호투를 보인 박찬호는 올시즌 3선발을 보장받아 6승째를 거뒀고,37세의 노모는 체력과 스피드가 떨어져 겨우 3승(1패)으로 급격한 하향세다. 박찬호의 호투가 최근대로만 이어진다면 내년 말쯤 “노모를 넘어선다.”는 낙관론에 무게가 실린다. 빅리그에 입문한 지 꼭 12년 만에 100승을 일궈낸 박찬호는 메이저리그 통산 150승 대기록의 기대도 부풀린다. 체력 관리가 워낙 철저한 데다 예전의 구위도 되살아나 자유계약선수(FA)로 풀리는 2007년 이후에도 텍사스와의 재계약을 포함, 빅리거로서의 입지를 이어갈 확률이 높다. 산술적으로 따진다면 현재 노모의 나이쯤 되는 2010년 이전에 기록 달성이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향후 4년간 평균 14승만 올리면 2008년 목표에 도달하게 된다. 박찬호는 지난 1997년부터 2001년까지 5년간 평균 15승을 기록한 적이 있다.‘150승의 신화’는 꿈이 아니라는 걸 일깨우는 수치다. 또 30대 후반의 성숙함도 희망을 주는 대목이다. 알 라이터(38·155승) 존 스몰츠(37·163승) 케니 로저스(39·176승) 등 쟁쟁한 어깨들도 40줄을 바라보며 150승을 넘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끝까지 포기할 줄 모르는 현재의 모습이다. 그의 그칠 줄 모르는 ‘신화’에 기대를 거는 이유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박찬호 데뷔 12년만에 ML 100승 위업달성

    박찬호 데뷔 12년만에 ML 100승 위업달성

    ‘코리안특급’ 박찬호(32·텍사스 레인저스)가 대망의 통산 100승 고지에 우뚝 섰다. 박찬호는 5일 카우프먼스타디움에서 벌어진 미국프로야구 캔자스시티 로열스와의 원정경기에 선발 등판,5이닝 동안 무려 11안타를 얻어맞고 6실점했지만, 타선의 도움으로 승리를 거뒀다. 1994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박찬호는 이로써 파죽의 5연승으로 시즌 6승(1패·방어율 5.09)째를 따내며 12년 만에 한국인 첫 메이저리그 통산 100승(73패·방어율 4.22)을 일궈냈다. 개인통산 100승은 메이저리그 통산 542번째이며, 아시아인으로서는 일본인 투수 노모 히데오(37·121승106패·탬파베이 데블레이스)에 이어 두 번째. 박찬호는 이날 2회까지 8안타를 얻어 맞고 4실점해 통산 100승 달성이 뒤로 미뤄지는 듯했지만, 팀 타선이 장단 19안타를 폭죽처럼 터뜨려 14-9로 승리했다. 김민수기자 kimms@seoul.co.kr
  • 사립 K고 교사비리 복마전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현직 교사들이 시험문제를 빼돌려 특정 학생에게 알려주거나 자기 자녀를 위장전입시키고 학부모로부터 금품을 걷는 등 ‘백화점식’ 비리가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올초 서울 B고 교사가 검사 아들의 답안지를 대리 작성하고 M고에서 교장과 교감까지 동원돼 금품을 받고 학생의 성적조작을 해준 사실이 적발된 지 넉 달도 안돼 또 다시 현직 교사들의 비리가 드러났다. 서울 동작구 K고 교사들의 비리를 수사해온 방배경찰서는 1일 2003년부터 담당과목의 시험문제를 유출, 특정 학생에게 알려준 수학교사 이모(59)씨, 국어교사 이모(62)씨와 음악교사 이모(48)씨 등 교사 3명에 대해 업무방해 등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하기로 했다. 또 자기 아들을 위장전입시키고 학생회장 선거에 개입해 압력을 넣는 한편 학부모들로부터 금품을 걷어온 1학년 부장 고모(53)씨 등 교사 7명을 배임수재 혐의로 입건했다. 이와 함께 자기 아들을 학생회장에 당선시키기 위해 다른 학부모들에게 향응을 제공한 박모(43·여)씨를 배임증재 혐의로 입건하고 국어교사 이씨의 알선으로 학생들을 모아 과외를 하다 수사가 시작되자 달아난 과외선생 이모(58)씨를 수배했다. 수학교사 이씨는 지난해 1학기 기말고사를 앞두고 특정 학생에게 문제를 찍어주는 방법으로 문제를 유출한 혐의를, 국어교사 이씨는 2003년 1학기 중간고사를 앞두고 국어시험지 원안을 복사해 빼돌린 혐의를 각각 받고 있다. 특히 국어교사 이씨는 2003년 학생 3명에게 영어·과학 과목 과외를 알선하고, 과외선생 이씨로부터 1인당 40만원씩을 받아 챙긴 혐의도 받고 있다. 음악교사 이씨는 2003년부터 2년간 학부모 4명에게 음악회 입장권 40장(80만원 어치)을 팔고 학생의 실기점수를 올려주었으며 수행평가를 명목으로 1학년 학생 400여명에게 무료 초대권을 8000원씩 받고 팔았다. 또 1학년 부장 고씨 등 교사 5명은 2003년부터 학부모회로부터 교무실 운영비, 수학여행비 등 명목으로 23차례에 걸쳐 3600만원어치의 금품 및 향응을 받았다. 노모(55)씨 등 교사 2명은 학생회장 경력이 대학 수시전형에 가산점이 된다는 점을 이용, 지난해 6월 학생회장 선거를 앞두고 특정 학생이 당선되도록 다른 학생의 입후보를 방해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국어교사 이씨로부터 학생들을 소개받은 과외선생 이씨는 2003년 2학기 중간고사를 앞두고 학생들에게 예상문제를 알려줬으며 실제 중간고사에서 19문제 중 15문제가 똑같이 출제됐던 것으로 밝혀져 출제경위에 의구심을 갖게 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그동안 학교 내신비리는 시험지 유출 등이었지만 이번 사건은 교사들의 비리가 거미줄처럼 서로 얽혀 있는 것이 특징”이라며 “앞으로 추가 수사를 통해 또 다른 시험문제 유출 여부 등을 조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준석기자 hermes@seoul.co.kr
  • ‘장욱진미술관’ 행정도시 유탄

    ‘장욱진미술관’ 행정도시 유탄

    일제의 압제와 분단, 동족상잔의 아픔속에서도 동화처럼 천진난만한 그림으로 세상을 감쌌던 장욱진(1918∼90) 화백. 장욱진 미술관 건립계획이 암초에 부딪혔다. 미술관 터를 제공하겠다던 기증자 가족들이 최근 난색을 표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술관 건립예정 터는 고향인 충남 연기다. 행정수도건설 계획이 구체화되면서 땅값이 급등한 것이 빌미가 됐다. 장 화백의 친인척과 연기지역 주민들은 2003년 4월 ‘장욱진화백선양사업회’를 만들고 미술관 건립을 추진했다. 부지는 장 화백의 친척 장 모(63)씨가 기증하기로 했다. 연기군 동면 송용리에 있는 나대지 2800여평이다. 화백의 생가와 가까워 미술관 터로는 적격이다. 생가에는 현재 장 화백의 큰어머니가 산다. 하지만 최근 기증자 가족들이 말리고 나섰다. 올해 88세인 그의 노모 역시 “작년에 에미(며느리)도 교직을 그만뒀는데. 변변한 재산도 없으면서 노후를 생각해야지.”라며 기증 반대의 뜻을 밝혔다. 행정수도와 행정도시건립 예정지로 지정되면서 평당 6만∼7만원이던 이 땅은 현재 30만∼40만원을 호가한다. 26일 송용리에서 만난 기증자 노모는 “장 화백이 6·25 때 피란와 자식이 다니는 근처 연동초등학교에 정성스럽게 그림을 그려 주었다.”고 회고했다. 노모는 “사람이 참 착했다.”면서 속마음은 갈등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장 화백은 7살 때 고향을 떠났다가 한국전쟁 당시 가족과 함께 고향으로 피란왔다. 학교에 기증한 ‘연동풍경’이란 대작은 그때의 작품이다. 기증자는 “가족을 설득할 테니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말한다. 장 화백의 큰딸 경수(61)씨는 “땅을 기증하겠다는 일가 보기가 민망해 시골을 가기가 겁난다.”고 난처해 했다. 그는 “어머니(사학자 이병도의 딸)가 돌아가시기 전에 아버지 미술관이 완공된 것을 보여드리고 싶다.”며 “고향인 연기지역이면 어디든 괜찮다.”고 군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을 바랐다. 터가 기증되면 연기군은 국비와 도·군비 등 50억원을 들여 지상 2층짜리 미술관을 건립할 계획이다. 군 관계자는 “관내에 그렇게 큰 군유지가 없다.”며 “터가 제공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한 대책은 없다.”고 말했다. ■ 장욱진 화백 ‘나는 심플하다.’를 모토로 향토성과 서정성이 짙은 화풍을 일군 미술 근대화의 선봉이었다. 동양화적인 수법에 동양적인 철학, 사상을 담았다는 평을 받았다. 그의 그림은 동화 같은 순수함 속에서도 사회의식이 명료했다. 김환기, 유영국 화백등과 함께 신사실파 동인으로 참여했다. 그는 서울대 교수(1954∼1960) 자리를 6년만에 버리고 자연에서 삶을 위로 받아야 한다며 덕소, 수안보, 신갈 등 외진 산골의 화실에서 타협을 모르고 오로지 그림에 매진했다. 연기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우리 가슴속에 평화롭게 안식하소서

    이별은 만남의 예정된 수순이라고 합니다. 박성용 금호아시아나그룹 명예회장님이 별세하셨습니다. 사별은 영원한 이별이기에, 이제 그 분과의 만남을 정리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박회장님에 대한 수많은 상념과 기억들로 인해 정리가 쉽지 않습니다. 박 회장님과 저는 ‘실력있고 자상한 스승’과 ‘지적 호기심이 많은 청강생 제자’로 첫 대면을 하였습니다.1970년 봄 서울대를 갓 나와 한국은행에 다니던 저는, 캘리포니아(버클리)대학에서 경제학교수를 역임한 그 분의 ‘경제성장론’ 강의를 청강하였던 것입니다. 강의 내용은 어려웠습니다만, 고대하던 지적 도전이었습니다. 게다가 선생님은 강의 끝나고 근무지로 가시는 길에 저를 한은까지 차로 데려다 주시는 친절마저 베푸셨습니다. 이 때부터 박 회장님은 제게 ‘둥근 삼각형’으로 각인되었습니다.‘삼각형의 예리한 각과 원의 원만한 곡선’, 즉 ‘위대한 능력과 따뜻한 인간미’를 갖추신 분이라는 말씀입니다. 박 회장님은 여러 분야에 대한 관심과 능력을 함께 겸비하셨습니다. 세계적인 대학의 교수, 대통령 경제비서관, 한·중우호협회 회장, 금호아시아나라는 재벌기업의 총수, 죽호학원 이사장, 예술의전당 이사장, 광주과학기술원 이사장 등을 역임하셨습니다. 그는 학계ㆍ관계ㆍ재계ㆍ교육계ㆍ문화계ㆍ과학기술계 및 민간외교의 전 분야에서 통달하여 활약하셨습니다. 저는 그 가운데서도 문화적 업적에 특히 주목합니다.‘음악감상실을 드나들며 쇼팽ㆍ바흐ㆍ모짜르트에 매료되었던 중학생이, 재벌총수로 변신해, 세계적인 문화도시 건설에 헌신하였다.’는 사실은 크나큰 감동을 안겨줍니다. 박 회장께서는 방배동의 한 까페에서 “문화는 한 국가의 경쟁력이며 기업의 자산이기도 하다.”는 소신을 제게 열정적으로 피력하곤 하셨습니다. 그의 이 선각자적 깨달음은 각종 후원활동을 통해,“영재는 기르고, 문화는 가꾸어야 한다.”는 실천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분은 문화와 경제의 균형발전을 추구하며, 노블리스 오블리제 정신으로 생을 사셨습니다. 이 척박한 세상에서 박 회장님의 따뜻한 인간미는 더욱 빛이 났습니다. 임직원들의 건강을 위해 완전 금연제를 실시하셨던 일, 신입사원에게 꿈나무라며 무등을 태워주시던 장면, 소년원ㆍ교도소ㆍ어린이병동ㆍ독거노인시설ㆍ장애인시설ㆍ외국인노동자시설 등 소외지역에서 벌인 메세나 문화활동, 연극 막간 휴식시간에 90세가 넘은 노모에게 줄거리를 설명하시던 회장님의 모습 등을 기억합니다. 당신은 감수성에 기초한 사랑의 행위를 통해, 인간은 “사랑하고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귀한 존재”임을 환기시켜 주셨습니다. 박 회장님에 대한 추억들을 들추어 가면서, 저의 슬픔은 이제 부러움으로 변해 갑니다. 당신에게는 좋아하는 일들이 유독 많았습니다. 다양한 분야에 올인 하셨습니다. 하시는 일마다 놀라운 성과를 거두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사랑했고, 사랑받았습니다. 박 회장님, 당신은 행복한 분입니다. 저희들도 덩달아 행복해졌습니다. 좋아하고 존경하는 기업인을 우리의 가슴 속에 묻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당신은 저희들과 이별하지 않습니다. 저희들의 가슴 속에서 평화롭게 안식하시게 되었습니다.
  • [임해리의 色色남녀]

    내가 보기에 대한민국 남자들은 연령을 초월하여 ‘정력에 살고 정력 때문에 죽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정력(精力)은 쌀(米)과 푸르다(靑)가 합쳐진 말로 쌀 중에서도 가장 맑은 부분으로 에너지원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정력과 같은 의미로 쓰는 스테미나(stamina)의 뜻도 에센스(essence)이며 집중된 고도의 정신능력이라고 한다. 미국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스테미나가 높은 집단은 끊임없이 인격적 성장을 추구하고 사회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새로운 정보를 수집하는데 능동적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정력을 성 기능에만 집중하다 보니 한국남성에게 성 기능 감퇴는 인생의 ‘빨간신호등’이 되고도 남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한국의 180만명이 넘는 발기부전 남성들에게 ‘홍해의 기적’ 같은 뉴스가 전해졌다.1999년 10월부터 시판된 비아그라(Viagra)의 등장이었다. 비아그라는 미국의 파이저사가 개발한 발기부전 치료제인데 원래는 협심증 치료제로 개발되었다가 임상실험 과정에서 발기부전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한다. 비아그라는 정력(vigor)과 나이애가라(Niagara)의 합성어로 나이애가라 폭포처럼 샘솟는 정력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중국식으로 발음하면 웨이거(偉哥)가 되어 ‘위대한 오빠’라는 뜻이 된다. 비아그라로 약국은 호떡집 불난 꼴이 되고 ‘일 나그라’ ‘서그라’ ‘누에그라’ ‘살리그라’‘동초그라’ 등 유사상표가 등장하였다. 이후 처방전이 있어야 구입할 수 있게 되었지만 수요자들의 뜨거운 성원에 힘입어 중국산 가짜 비아그라까지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에서도 오렌지카운티나 플러싱 같이 교민이 많은 지역에서는 한국 남성의 50%가 성 불구자로 등록이 되어 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한국에서 귀한 손님이 가면 비아그라를 선물한다는 것이다. 얼마 전 오랜 지인 몇몇이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장어구이 집에 갔는데 40대 독신인 한 남자의 ‘이바구’에 다들 박장대소를 하였다. 어버이날 하루 전에 자기 친구가 쌀 60㎏을 갖고 집으로 찾아왔다는 것이다. 팔순 넘은 노모가 아들녀석보다도 낫다고 그렇게 흐뭇해하는데 자기 얼굴은 죽 됐다는 것이다. 나중에 전화를 걸어 “야! 갑자기 쌀은 왜 들고 왔었냐? 아, 그리고 이왕 갖고 오려면 80㎏ 한 가마니도 아니고….” 그랬더니 그 쌀은 자기 단골 고객이 보내왔는데 남아서 벽제(그 독신남 거주지)까지 간 것이라고 하더란다. 그 친구는 의약분업이 안 되는 동네에서 약국을 운영하는데 어느 날 동네 방앗간 주인인 60대 아저씨가 40대 과부와 바람이 나면서 비아그라를 열심히 구입하였다고 한다. 그러다 한 달 전에 와서 그 아저씨가 하는 말이 “저기 그 약값 말인데… 쌀로 대치하면 안 될까? 내 약값을 더 쳐 드릴 테니…” 그래서 그 친구는 사람 살리는 일인데 하면서 쾌히 승낙했다 한다. 그런데 점점 쌀이 많아져서 처리가 곤란해졌다 한다. 비아그라 외에도 최대 36시간 지속시킨다는 시알리스, 발기의 강직도가 가장 뛰어나다는 레비트라 등이 점유율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예전에는 비아그라 찾는 남자들을 사시로 보았는데 요즘은 짠한 마음이 드는 것은 한국에서 남성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이해가 되기 때문일까?
  • 마광수의 섹스토리 새달2일 연재

    “이 사건이 10년 후만 돼도 우스꽝스러운 사건으로 치부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재판부는 알고 있다.” 1993년 이른바 ‘즐거운 사라’ 사건의 2심 재판장이었던 어느 부장판사가 했던 말이다. 그의 예측대로,10여년이 지난 지금 소설 ‘즐거운 사라’에 음란물의 멍에를 씌워 단죄한다면 한편의 난센스 코미디가 될 것이다. 논란의 주인공 마광수(55)는 이제 연세대 국문과 교수로 돌아왔지만, 그의 붓끝은 아직도 그 시절 악몽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내가 정말 섹스 얘기를 써도 될까요. 신문에 사랑과 성에 대해 연재한다니까 팔순 노모께서 눈물을 흘리며 말리셨습니다. 또 무서운 고초를 당하면 어쩔 거냐고….” 하지만 마광수는 서울신문 주말매거진 We의 새 연재 ‘마광수의 섹스토리’에 임하며 결연한 의지를 내비쳤다.“한다하는 작가들이 나이 오십만 넘으면 너나없이 ‘민족소설’‘역사소설’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이런 ‘교양주의’가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요. 미국 작가 헨리 밀러는 여든 아홉에 죽을 때까지 섹스소설만 썼습니다. 나 또한 죽는 날까지 연애소설만 쓸 작정입니다.” 6월2일부터 시작하는 ‘마광수의 섹스토리’는 에세이, 콩트, 옴니버스 소설 등 다양한 장르를 시도한다. 마 교수는 요즘 10권으로 된 중국 기서 ‘금병매’를 통독하며 새로운 연재물을 구상하고 있다.“콩트 쓰기가 특히 어려운 것 같아요. 콩트는 ‘서프라이즈 엔딩’, 즉 끝에 가서 독자들이 무릎을 탁 치도록 만들어야 하는데 걱정입니다. 나의 글은 한마디로 관능적 풍경화가 될 것입니다. 수위조절이 문제예요.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본때 보이기’라는 게 있어서….” ‘시대를 앞서 간 죄’로 40대를 온통 잃어버린 그는 지금 다시 한번 지쳐버린 몸과 마음을 추스르며 ‘야한’ 글로 승부를 보려 한다. 최근 펴낸 철학에세이 ‘비켜라 운명아, 내가 간다!’의 제목처럼 자신의 선구자적 운명을 글쓰기로써 열어가려는 의지가 대단하다.‘마광수의 섹스토리’는 첫 시험대다. “문화가 발전하려면 ‘창조적인 변태’가 사회에서 용납받아야 한다.”고 광야에서 홀로 외치는 파리한 지성. 마광수는 과연 이번 서울신문 연재를 통해 어떤 섹스 스토리 혹은 섹스 히스토리를 풀어낼까. 수많은 저서와 강연 등을 통해 당신의 성담론은 이미 바닥난 것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반복적 집착’이란 화두를 내밀며 응수한다.“화가 김창열은 한결같이 물방물만 그리고, 이대원은 지금도 꽃나무만 그리고 있지 않나요. 나의 ‘성적’ 글쓰기 작업도 미술처럼 봐주면 안되나요. 문학은 억울합니다.” 그런 말을 물론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순 없다. 그의 관능적 상상력이 숨쉬고 있는 한 마광수식 성애론은 늘 오색영롱한 빛깔로 변주될 것이기 때문이다.“국내 문단엔 여전히 쉽게 쓰면 우습게 보는 모종의 엄숙주의가 힘을 발휘하고 있어요. 많은 작가들이 아직도 문어체 글을 쓰고, 또 그런 걸 우러러보는 풍토가 엄존합니다. 나는 무슨 글이든 술술 읽히게 쓸 것입니다.” ‘마광수의 섹스토리’에는 마 교수가 직접 그리는 ‘색깔있는’ 삽화도 곁들여진다. 그는 그동안 수차례의 전시를 통해 화가로서도 결코 손색없는 감각을 과시해 왔다. 그의 초감각적인 글과 그림을 함께 읽는 것은 ‘마광수 독자’만의 또 다른 행복이다.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청계천 보상 언질’ 또 있었다

    양윤재(56·구속) 행정2부시장에게 청계천 복원 아이디어 제공 대가로 60억원 또는 부시장직을 제의했다는 의혹에 대해 이명박 서울시장이 강력히 부인하고 있는 가운데 이 시장이 연세대 노모(52) 교수에게도 ‘물질적 보상’을 하려 했다는 내용이 최근 발간된 서적에 담겨 있는 사실이 20일 확인됐다. 노 교수는 서울대 교수이던 양 부시장 등과 함께 ‘청계천살리기 연구회’를 이끌면서 이 시장에게 청계천 복원 사업을 건의한 인물로, 이 시장이 당선된 뒤 서울시정인수위원회 위원과 청계천복원시민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냈다. 노 교수에 대한 ‘물질적 보상’과 관련된 내용은 서울시 산하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의 황모(47) 선임연구위원 등이 저술한 ‘프로젝트 청계천:갈등관리 전략’ 185쪽에 나온다. 해당 쪽 하단에 주석 형태로 “취임식을 마치고 국장급 공무원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이 시장은 노 교수에게 ‘사업이 잘만 되면 뭔가 해주겠다.’며 거듭 도움을 부탁했다. 노 교수는 당시 무슨 뜻인지 잘 몰랐었는데 나중에 그 의중을 생각해보니, 이 시장이 무언가 ‘물질적 보상’을 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고 돼 있다. 황씨는 지난해 가을쯤 노 교수에 대한 다면인터뷰를 통해 해당 내용을 파악해 기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황씨는 “노 교수가 인터뷰 당시 ‘물질적으로 전혀 아쉬울 게 없었고, 뭔가 보상을 받게 되면 정치적 역학구도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1원도 받지 않겠다는 입장이었다.’는 내용을 밝혔다.”고 전했다.2003년 7월까지의 청계천 복원사업 과정을 담은 이 책은 양 부시장이 구속되기 일주일 전인 지난달 28일 발간됐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노 교수에 대한 보상은 청계천 복원 관련 공로를 인정해 주겠다는 것으로, 노 교수가 ‘2003서울정책 대상’(상금 500만원)을 수상함으로써 끝난 셈”이라고 해명했다. 이 시장은 전날 서울시의회 임시회 본회의 시정질의에서 “복원 아이디어는 미국 보스턴 유학 시절 스스로 생각한 것으로 양 부시장 등과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검찰조서는 코미디”라고 일축한 바 있다. 한편 청계천변 재개발 특혜의혹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유재만)는 이날 양 부시장이 설립한 도시설계용역 벤처업체인 U사와 거래한 업체 한 곳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어떻게 지내세요] 前 WBA밴텀급 챔프 ‘돌주먹’ 김태식

    [어떻게 지내세요] 前 WBA밴텀급 챔프 ‘돌주먹’ 김태식

    “요즘 서민경제가 안 좋은 것 같아요. 장사도 잘 안 됩니다.” 왕년의 돌주먹 김태식(50)씨.20전 17승(13KO승) 3패가 말해주듯 일발필도의 펀치로 1980년대 초반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그의 복싱 경력은 짧지만 매우 강한 인상을 남겼다. 홍수환 전 세계복싱협회(WBA) 밴텀급 챔피언을 키운 명트레이너 김준호씨에 의해 1977년 입문했다. 데뷔 2년여만인 80년 2월 WBA 플라이급 챔피언 파나마의 루이스 이바라를 2회 1분11초만에 KO로 눕혀 세상을 놀라게 했다. 82년 9월 현역은퇴 후에는 사기극에 휘말리는 등 우여곡절을 겪으며 힘든 생활의 연속이었다. 그러던 6년 전 서울 면목동 동부시장 한편에 음식점 ‘불타는 돼지껍데기’를 운영하면서 뒤늦게마나 평범한 가장으로 열심히 살고 있다. 그곳에서 김씨를 만났다. 부인 양미선(36)씨와 함께 앞치마를 두르고 맞았다. “시장손님들 상대로 장사를 하는데 갈수록 어려워지는 것 같다.”며 최근의 주변 경제상황을 전했다. 아울러 “돼지껍데기 장사는 올해로 6년째다. 돼지껍데기를 숙성시키는 여덟가지 비법을 터득할 정도로 나름대로의 노하우가 생겨났다.”고 자신감을 피력했다. 이어 선수생활을 그만둔 뒤 무역회사와 갈비집 등을 운영했으나 사회적응을 잘 하지 못해 실패와 방황을 거듭했다고 털어놨다.80년 한해에만 하더라도 4억여원을 벌어들일 정도였지만 지금은 돈과 사람을 모두 잃었다고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강원도 묵호에서 태어난 김씨는 어릴 적부터 천부적인 싸움꾼으로 통했다. 김씨 역시 “동네 아줌마들이 복싱선수로 키우라고 할 만큼 싸움이 팔자였다.”고 회고했다. 중학 때인 68년 서울 가리봉동으로 이사 온 그는 영등포 일대를 전전하다가 22살 나이에 복싱을 하게 된다. 데뷔전부터 혈투였다.1,2라운드를 실컷 두들겨 맞더라도 3,4라운드에서 왼손 훅으로 승부를 결정짓는 경우가 많았다.“복싱은 대개 잽과 원투스트레이트로 하지만 어릴적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다쳐 훅 한방에 의존했다.”고 토로했다.13KO승을 거둔 것도 대부분 왼손이었다. 지금도 시비 거는 건달을 만나면 반사적으로 왼손을 뻗을 때가 더러 있다고 귀띔했다. “복싱 얘기는 밤새도록 해도 모자랍니다. 시합 때 초반 탐색전을 치르고 4라운드부터 승부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많이 맞아도 충격을 가진 한방을 날리면 된다고 생각했죠.” 결혼 후 아이 우유값이 없어 선후배들에게 손을 벌린 적도 많았다고 고백했다. 자식을 키우다 보니 돈의 소중함을 뒤늦게 깨달았다는 것. 살림집은 현재 경기도 역곡이지만 새벽까지 일을 하는 처지여서 인근에 임시 거처를 마련, 부인과 둘이 지내고 있다. 역곡집에는 80세된 노모, 중학과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이가 살고 있단다.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하루 14시간 연탄가스를 맡으며 장사를 해도 피곤한 줄 모른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직이 통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그의 눈빛이 뭉클하게 다가왔다. 글 김문기자 km@seoul.co.kr 사진 강성남기자 snk@seoul.co.kr
  • [교정 대상 수상자]

    ■ 대상수상 대전교도소 보안과 이정옥 교위 “죄가 미울 뿐이지 마음은 여린 사람들입니다.” 제23회 교정대상 수상자로 선정된 대전교도소 보안과 이정옥(54·여) 교위는 수형자들을 이렇게 표현했다.1971년 교도관으로 임용된 후 33년 7개월 동안 근무한 이 교위는 여성 재소자들의 교정(矯正)을 담당하고 있다. 항상 온화한 성품으로 재소자들을 대하는 이 교위는 그들의 대모로 통한다. 다른 직업을 마다하고 굳이 교도관의 길을 택한 것은 먼저 교도관의 길을 걸었던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에서였다. 올해 여든넷이 된 아버지의 당시 직업은 어린 그에게 이상적이고 매력적으로 비쳐졌다. 대전여고를 졸업했지만 나이가 응시 기준에 미달돼 교도관 시험을 보지 못했다.1년을 기다려 ‘교도(9급)’ 계급장을 달았다. 이 교위가 교도관이 되었던 그해 3월 아버지는 공교롭게도 만 50세로 정년퇴직을 했다. 이 교위는 “처음에는 (재소자들이) 무서워서 똑바로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면서 “지금은 자식같고 동생같은 생각이 들어 안쓰러운 맘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교도관을 희망을 꿈꾸며 살아가는 직업이라고 했다. 그 사람의 죄를 연결시키면 마음을 나눌 수 없을 뿐 아니라 인격적인 대우를 하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사회에서 버림받아 감옥에서 연을 맺은 생면부지의 그들이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도록, 부모나 가족이 못한 일을 하는 것을 사명이자 보람으로 여기고 있다. 살인죄로 복역하다 가석방된 유모(여)씨와의 인연은 동료들 사이에서는 잘 알려진 사실.1986년 교도소에서 만난 유씨는 고향뿐 아니라 나이도 비슷했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거친 유씨는 무서운 범죄자로 전락하면서 삶을 자포자기한 상태였다. 이 교위는 수차례 상담을 하면서 마음을 열게 해 미용기술과 뜨개질을 가르쳤고 청소 담당 책임자의 역할도 맡겼다. 가장 마음을 썼던 것은 그에게 가족의 정을 되살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다행히 유씨는 목포의 복지가와 자매결연을 한 것이 계기가 돼 1993년 출소 후 결혼도 했다. 유씨가 첫 아이를 낳아 1995년 아이 돌이라며 연락이 와 참석했을 때는 너무나 가슴이 벅차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고 한다. 이 교위의 동료들은 그를 천성적으로 정이 많은 사람이라고 했다. 정부에서 출소자 옷을 준비해주지 않던 시절 자비로 옷을 사 주거나 자기 옷을 갖다 주는 일이 다반사였고 수감자들의 수술비나 치료비도 지원해주는 등의 선행을 베풀어왔다. 이 교위는 “관공서나 복지시설, 독지가 등이 많은 도움을 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공을 돌렸다. 그러면서 “교도복을 벗을 때가 얼마 남지 않았지만 사무실보다는 현장에 머물고 싶다.”면서 “작은 힘이나마 재소자들이 재활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대전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본상 ■ 교화상 서홍석 원주교도소 직업훈련교사 91년 원주교도소 제29공공직업 훈련소 직업훈련교사로 임용돼 13년 동안 수용자들의 직업훈련을 담당한 모범 교정 공무원이다. 건축시공산업기사 취득자 5명에게 취업을 알선해 주는 등 출소자 30명에게 자립기반을 마련해 줬다. 또 수용자 108명이 각종 경기대회에서 입상, 총 1억 2000만원을 상금으로 받는 데 도움을 줬다. 2002년에는 봉사단체인 한국기능선수회를 세워 소년소녀 가장과 독거노인들의 집을 고쳐주는 봉사활동도 하고 있다. ■ 공로상 최한기 천안소년교도소 교화위원 중학교 권투부 코치로 활약하다 87년부터 인천소년교도소에 자원해 18년 동안 스포츠를 통해 소년수용자들을 교화해 왔다. 지금까지 55차례에 걸쳐 199명의 수용자들이 각종 아마·프로 권투대회에 출전해 우수한 성적을 거둘 수 있도록 지도했으며, 지난해에는 한국슈퍼페더급 챔피언까지 배출해 냈다. 또 기증운동을 벌여 스포츠계 인사 등으로부터 20종에 이르는 1780만원어치의 각종 훈련장비를 받아 소년 수용자들이 효율적인 훈련을 할 수 있도록 기여했다. ■ 창의상 구우진 마산교도소 교위 80년 교도관으로 임용돼 24년 4개월 동안 일하면서 창의적인 근무 자세로 출소자 취업 알선, 직장 화합 분위기 조성 등에 기여한 바 크다. 83∼86년 4년 동안 의무과에 근무할 때에는 전국에서 집금 수용된 정신·결핵 환자 350명을 관리하는데 최선을 다했다.85년부터는 출소자 30여명을 마산시 소재 기업체에 취업을 알선해 이들이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왔다. 청렴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교도관일 뿐만 아니라 팔순 노모를 극진히 모시는 효자이기도 하다. ■ 자애상 신동민 원주교도소 종교위원 10년 가까이 종교활동을 하고 생활지원을 하는 등 수용자 교화활동에 참여했다. 돌볼 사람이 없는 수용자의 자녀를 보호 시설에 연계시켜 주는 일을 해 왔으며, 갈 곳 없는 수용자들이 출소 뒤 쉼터에 머물 수 있도록 지원했다. 95년 10월부터 176차례의 종파교회와 10차례의 영세식을 실시하는 등 수용자들의 정서적 안정을 위한 신앙지도를 실시해 왔다. 또 10번에 걸쳐 수용자 300여명에게 원주가톨릭 사회복지관에서 사회봉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했다. ■ 성실상 김재중 영등포구치소 교위 75년 교도관으로 임용돼 30년 1개월 동안 장기 근속하면서 불우수용자들의 벌금을 대신 내주거나 그들의 가족을 돌봐 주는 등 교정행정 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크다. 88년 아내와 아들을 죽이고 징역 20년을 선고받은 김모씨를 비롯해 지금까지 197명의 수용자에게 545만원의 영치금을 지원했다. 부인과 함께 출소자 선교를 위한 참사랑교회를 세워 출소자에게 애정과 관심을 기울이며 재범을 방지하는데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 자비상 황용주 전주교도소 종교위원 정읍 일광사 주지로 1986년부터 불교 독지방문위원으로 활동하다 97년 교정위원으로 위촉됐다. 지금까지 매월 3차례 이상 총 818회 14만여명의 종파 집회를 집전하고 수용자 1종교 갖기 운동을 이끌었다. 96년부터 매월 20명씩 총 2830여명을 ‘이달의 불자’로 선정, 상담하고 영치금 등으로 1930만원을 후원했다. 이밖에 수용자 사회체험 및 봉사활동을 후원하고 교화용 기자재를 지원하는 등 수용자 정서순화와 교정교화를 위해 애써 왔다. ■ 면려상 김성봉 목포교도소 교감 75년 교도관으로 임용돼 29년 6개월 동안 장기근속하면서 수용자들의 정신교육기법 개발과 직업훈련 강화에 남다른 신경을 써왔다. 살인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수용자에게 양복 기능사 1급 자격증을 받도록 도와 가석방 후 새 삶을 살도록 이끌었다.1994년에는 문제수 51명을 대상으로 1220여차례 상담을 실시해 이들의 심성 순화를 도왔다.2000년부터 4년 동안 목포교도소 중대장으로 근무할 때는 전 경비교도대원에게 태권도를 가르쳐 888명의 유단자를 양성해냈다. ■ 박애상 박상영 경주교도소 종교위원 포항 성결교회 목사로 수용자들의 종교활동을 지원하고 생활용품 제공, 교육실·도서실 보수, 이동도서함 설치, 정보화교육 기자재 기증, 무의탁자 지원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해 왔다. 지금까지 1만 6500여명을 상대로 238차례에 걸쳐 기독교 집회를 주관했으며 39차례 1160명에게 생일행사를 열어 주면서 1500만원어치의 생활필수품 등을 제공했다. 수용자 교육용 TV수리, 방송기자재 교체 등에 필요한 자금 2800여만원을 지원하기도 했다. 특별상 ■ 면려상 손윤규 공주교도소 교위 1992년 민원실을 교정기관 최초로 은행창구식으로 개조하고 미결수용자 영치금 반환절차를 간소화했다.1999년 불우수용자 가족을 돕는 모임인 ‘나눔회’를 결성해 회장으로 봉사하면서 수용자 451명에게 영치금과 생필품 등 1800여만원어치를 지원했다.2001년 12월 경비교도 후원회를 결성,1134만원을 지원했다. ■ 창의상 정기수 대구교도소 교위 2000년 10월부터 직업훈련담당으로 기능사 등 810명에게 각종 기술자격을 취득하게 했다.2003년 가석방으로 출소한 재소자의 생활이 어려운 것을 알고 성금을 지원받아 세탁소를 개업하도록 도와 줬다.2004년에는 한 수용자의 벌금 30만원을 자비로 대납하여 조기 출소하도록 도와 줬다. 불우수용자에게 영치금도 지원해 줬다. ■ 교화상 손기운 청송보호감호소 교회사 1986년 출소자 3명의 벌금 55만원을 대납해 줬다.1988년부터 피아노,TV, 도서 등 3560만원어치의 교화기자재를 수증하였고 김천소년교도소 재직 때는 한자교재 500여권을 확보해 소년수용자들을 가르쳤다.1991년에는 무연고 수용자를 벽돌공장에 취업시키고 무의탁 수용자를 자매결연자와 연계시켜 주었다. ■ 박애상 이숙경 영등포교도소 종교위원 동현교회 집사로 수용자 합창단 및 성가대 지도, 기독교 집회 피아노연주 및 성가대 지휘, 수형자 자매결연, 체육대회 지원, 불우수용자 영치금 제공 등 활동을 해 왔다. 지금까지 수형자 184명과 자매결연해 연간 80여차례 총 1614회에 걸쳐 7420여만원어치의 음식 등을 지원했다. ■ 공로상 심재왕 군산교도소 교화위원 16년 가까이 무의탁 수용자의 벌금을 대신 내고 학용품과 교재를 기증하는 등 교화를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지난 91년부터 매년 10명씩 총 140여명의 불우수용자와 자매결연해 도왔다. 현재 군산교도소 교정협의회장을 맡고 있으며, 두차례에 걸쳐 법무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 자애상 홍승순 울산구치소 종교위원 96년부터 128차례에 걸쳐 3840여명의 수용자에게 천주교 집회를 주관하고,27차례에 걸쳐 405명의 예비신자에게 천주교 교리를 지도했다. 체육대회 주관과 교양도서·서화 및 생활용품 기증 등을 통해 복지향상에 기여해 왔다. 수용자들의 심성을 순화하기 위한 교정 미술공간 조성 사업에도 동참했다. ■ 자비상 윤여진 여주교도소 종교위원 봉림사 주지로 1988년 수원교도소와 인연을 맺은 뒤 93년 종교위원으로 위촉됐다. 불교종파 교회를 170차례 3만 5000여명에게 실시했다.99년 충남 천안에 장애인·소년소녀 가장·독거노인 등 소외계층을 위한 복지시설 ‘부처님 마을’을 운영하는 한편 군인과 전경을 위문하는 봉사 활동을 해왔다. ■ 성실상 김동수 여주교도소 교위 1994년부터 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환자들의 수용시설인 의왕호스피스선교회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불우이웃을 도왔다.2000년 1월 거처할 곳이 없는 불우수형자 3명을 의정부 영농협동조합에 취업시켜 주었다.2001년 이후 의지할 곳 없는 병든 수용자들에게 사회복지시설과 연계시켜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 ‘서울시 특별상’ 받은 이건상씨네

    ‘서울시 특별상’ 받은 이건상씨네

    100세 된 증조 할머니부터 26세 대학생까지 4대가 화목하게 살아가는 가족이 있어 화제다. 서울 성동구 하왕십리동 이건상(76)씨네는 가족 7명의 나이를 모두 합치면 427세나 된다. ●100세 증조모에서 26세 증손자까지 7명 100세 증조모를 필두로 이씨와 부인(74),3대인 이씨 맏아들(54)과 부인(52), 그리고 증손자(26)까지 한데 어울렸다. 올해로 45세인 이씨 셋째아들도 함께 산다. 이씨는 가정을 화목하게 꾸려나가고 사회봉사활동 등으로 주변에 귀감이 된 점이 높이 평가돼 12일 서울시 특별상을 받았다. 가정의 달을 맞아 뜻이 더욱 깊다. 특히 하왕십리 한 동네에만 61년째 살아온 ‘왕십리 토박이’로 지역에서는 잘 알려져 있다. 노모를 모셔오며 느낀 소감에 대해 묻자 이씨는 “그런 것 자꾸 캐묻지 말라.”면서 “장사를 해가며 아들 둘을 이렇게 키워주신 것만으로도 당연히 잘 모셔야 한다.”고 말했다. 주변에서는 자신도 역시 노인인 형편에 눈물이 겨울 정도로 노모를 극진히 보살핀다고 칭찬이 대단하다.100세 된 어머니는 지난해 11월 방바닥에서 넘어진 뒤로 노환이 덧나 거동이 아주 어렵게 됐다. 그러나 이씨는 손수 기저귀를 갈아채우고 식사를 챙겨드리는 등 노모 수발을 다른 가족에게 절대 맡기지 않고 있다. 젊은이라 하더라도 결코 쉽지 않은 정성이다. 경기도 안산에서 광복 뒤 서울로 올라와 왕십리에 정착한 선친은 71세로 작고했다. 아들 둘을 남겼으나 이씨는 “아버지에게 등록금 받아본 기억이 없다.”고 귀띔했다. 어머니 덕분에 어렵게 초·중·고교를 나왔다. 또 한번 “어릴 적 일을 뒤돌아보면 슬퍼질까 해서 그러니 부모님에 얽힌 옛 얘기를 묻지 말라.”고 다짐을 받았다. ●60여년 왕십리 토박이… 환갑넘어 ‘만학’ 한양공고를 나와 ‘배움’에 목말라 1995년부터 한양대 경영대학원, 연세대 행정대학원, 고려대 정책대학원을 잇달아 졸업하는 노익장을 보였다. 자영업을 하던 이씨는 지방의회가 출범한 91년 초대 성동구의회 의원으로 일하게 된다. 그는 그해 4월부터 95년 6월까지 재임하며 후반기 재무위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98년부터 2002년엔 서울시의회 의원으로 활약했다. 그는 “2001년 예산·결산특별위원으로 지내며 38세금기동대 창설을 뒷받침하도록 예산을 통과시키고 시각장애인 점자사전을 펴내는 돈도 따내도록 도운 일이 가장 큰 보람으로 남아 있다.”고 회고했다. ●장학회·경로당 설립등 남다른 사회봉사 앞서 84년엔 왕십리2동 일심경로당을 설립해 회장을 맡아 쓸쓸하게 지내는 노인들에게 위안을 심어줬으며 “늙을수록 사회를 위해 뭔가 해야 한다.”며 함께 뒷골목 청소, 거리질서 캠페인도 펼쳤다. 지난해 이맘때에는 기금을 내놓고, 지역 유지들의 성금을 모아 성동구 장학회를 만들었다. 올 3월 관내 20개 동마다 1명씩, 모두 20명에게 처음으로 결실이 돌아갔다. 그가 사회에서 은퇴한 뒤 어머니를 모시며 지난날을 되돌아보고 후손들에게 교훈으로 남기려는 뜻으로 꾸며놓은 방에 가면 거친 세파 속에서 70평생 자신에게 얼마나 ‘깐깐하게’ 살아왔는지 금방 알 수 있다. 각종 직능단체에 참여해 받은 표창장만 130여장인 데다 그동안 찍은 사진만 앨범으로 146권이나 된다. 이씨는 “지금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젊었을 때부터 사진에 취미를 들여 40년 가까이 된다.”고 설명했다. 지금은 모친 돌보는 일 때문에 짬을 내기 어렵지만 고급 카메라와 간단하게 찍을 수 있는 카메라를 몇대 지니며 촬영해, 행사에 참가한 이들에게 나눠준다.“이건상 하면 별난 사람이라는 식으로 모르는 이들이 없을 정도”라면서도 “대학원 동기회 등에서 고맙다는 뜻으로 감사패를 전해와 또 다른 보람을 느낀다.”고 되뇌었다. “첫째도 정직, 둘째도 정직입니다. 있는 얘기를 하기에도 인생은 길지 않은데 왜 거짓말로 허송세월을 합니까. 자식들이 잘 자라준 것 이상 욕심은 없어요. 자랑하는 것 같아 쑥스럽지만 손주들이 전화받을 때 ‘효심’이라고 한답니다. 구호같지만 기특하잖아요. 최근 청계천 걷기 행사에 가족 10명이 참가해서도 이 구호를 외쳤죠.”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高1 촛불’ 불상사 없었다

    ‘高1 촛불’ 불상사 없었다

    2008학년도부터 도입되는 내신 위주 대학입시에 반대하는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의 촛불집회가 지난 주말 서울 광화문에서 열렸으나 우려했던 교사와 학생의 충돌사태는 빚어지지 않았다. 부산, 대구, 대전 등에서 있을 것이라던 집회는 아예 열리지 않았다. 그러나 오는 14일 두발 제한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촛불집회가 광화문에서 예정돼 있어 학생들의 집단행동을 둘러싼 긴장은 계속될 전망이다. 사단법인 ‘21세기 청소년 공동체 희망’ 주최로 7일 오후 7시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서 열린 ‘고교생 촛불집회 및 자살학생 추모제’에는 학생 400여명과 일반시민 50여명 등 450여명이 참가했다. 교육당국과 경찰은 당초 최대 1만명까지 참석할 것이라고 예상한 바 있다. 집회에 나온 서울 H고 1학년 김모(17)양은 “학교에서 강하게 말려 참가를 포기한 친구들이 많다.”면서 “특히 참가자를 징계하겠다는 방침이 전달되면서 학생들이 크게 동요한 것 같다.”고 전했다. 참가 학생들은 “친구들끼리 소모적인 경쟁을 유발하는 대입제도를 우리 손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기도 안산시 K고 1학년 노모(17)군은 “내신 등급제를 도입하려면 고교 등급제를 실시하든지 전국 고교를 통합해 평준화한 뒤에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최측은 참가학생 설문조사를 통해 입시제도에 관한 의견을 받은 뒤 이를 교육부에 전달하고 다음달 7일까지 답변을 기다리겠다고 밝혔다. 서울시교육청은 집회 시작 2시간 전부터 교사와 장학사 등 760여명을 주변 지하철역 등에 배치해 학생들을 설득했으며 경찰도 ‘1만명 운집설’에 따라 60개 중대를 배치했다. 참여학생 가운데 상당수는 전단지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으며 주최측도 학생들의 신원이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언론사 현장취재를 차단했다. 그러나 정작 관련 인터넷사이트는 참가학생들의 얼굴이 그대로 드러난 집회사진을 4시간 동안 올려 말썽을 빚기도 했다. 교육당국은 안도 속에 후속대책 마련에 나섰다. 교육부 관계자는 “그동안 약속했던 학습부담 경감대책 마련, 대학 입시전형 조기 발표 등을 차질없이 해나가겠다. 고 밝혔다. 서울시교육청은 “집회참가 학생에 대한 처벌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현장을 지키던 교육청 관계자는 “이 정도 집회라면 처벌할 이유가 없으며 오히려 건전한 의사 개진 등 긍정적 측면도 보였다.”고 말했다. 이효용 김준석기자 utility@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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