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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억대 목돈 미끼 ´장기 적출´ 조직 적발

     급전이 필요한 사람을 상대로 장기매매를 알선한 장기밀매조직이 경찰에 붙잡혔다. 또 장기적출 목적으로 10대 3명을 유인해 인신매매까지 공모한 것으로 드러났다.  부산 해운대경찰서는 19일 장기매매를 알선한 장기밀매조직 총책 노모(43)씨와 김모(42)씨 등 12명을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하고 장기매매 대상자 등 35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노씨 등은 5월 신장상담 등 장기매매를 암시하는 전화번호가 있는 스티커를 전국 터미널 등에 부착한 뒤 이를 보고 연락을 시도한 사람과 주변 지인에게 장기매매를 권유하는 등 23차례에 걸쳐 장기매매를 알선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중간 연결책과 알선책, 모집책 등으로 나눠 대포폰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은밀히 연락을 하는 점조직 형태로 운영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신용불량자나 돈이 급하게 필요한 사람들에게 장기밀매를 하면 목돈이 바로 나온다고 권유했고, 특정장기에 대해 1억 5000만원, 2억원 등 구체적인 거래가격과 진행절차 등을 알려줬다.  장기매매 대상자들은 수술날짜를 정해놓고 대기하고 있었으나 경찰에 적발되는 바람에 실제 장기밀매는 이뤄지지는 않았다. 이 과정에서 알선책 김모(28)씨 등 6명은 부모가 없고 일정한 거주지가 없는 10대 3명을 유인한 뒤 장기적출 목적으로 인신매매하기로 공모한 것으로 경찰조사에서 드러났다.  경찰은 돈이 필요한 신용불량자 등에게 중국 보이스피싱 조직원을 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고 밀항을 권유한 것을 확인하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길섶에서] 장한 어머니/송한수 정책뉴스부 차장

    “좋은 사람 다 돌아가시고 못난 나만 남았네.” 106세 ‘국민 어머니’는 이렇게 되뇐다. 그리고 “아버지, 우리 오라버니, 어머니, 어디로 가셨나요”라며 땅을 친다. 당신에 얽힌 기억은 거의 못 찾는다. 머릿속에 지우개가 있어서다. 초기 치매란다. 그러나 장하기 그지없다. 정신력은 젊은이에 처지지 않는다. ‘1700고지’ 한라산 윗세오름을 오르며 하는 말씀이 그렇다. 모친을 홀로 모시고 사는 장남(53)이 농담을 건넨다. 더 늦둥이인 둘째이자 막내아들(48) 중 누가 좋으냐며 묻고는 살짝 눈치를 살핀다. 어머니는 나지막이 화를 낸다. “물어도 못된 걸 묻는다”는 대꾸다. 장남이 어머니의 지팡이를 빼앗아 자기 종아리를 친다. “맞아야 싸다”며 웃는다. 노모는 또 나무란다. “입으로도 (인간을) 잘 만들 수 있어. 어린애라고 이유도 없이 때리면 안 돼.” 이어 “나도 슬픈 일을 당하면 울지만 조금만 울고 만다. 잊히는 게 있으니 괜찮다. 자꾸 울면 못쓴다. 바보도 아니고”라고 말끝을 흐린다. 106세 어머니 앞에 하늘 아래 누가 자신을 뽐낼까 싶다. 이런 TV 다큐멘터리는 자꾸자꾸 틀어도 좋다. 송한수 정책뉴스부 차장 onekor@seoul.co.kr
  • 가사도우미 체크카드 훔쳐 유흥비 쓴 ‘남녀’

     사실혼 관계의 남녀가 가사도우미의 체크카드를 훔쳐 쓰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김모(43·신체장애 1급)씨와 노모(39·여)씨는 지난 6월 17일 오후 부산 사상구 집에서 가사도우미 방모(65·여)씨의 가방을 뒤져 체크카드 1장을 훔쳤다.  이들은 장애수당 등 매달 100만원 정도의 수입이 있었지만 방씨의 통장에 많은 든 것을 알고 이를 노렸다. 통장에는 2년 전 입국한 재중동포인 방씨가 새터민인 남편과 모은 전 재산 2500만원이 있었다.  방씨는 지역주민센터에서 장애인에게 지원하는 가사도우미였는데 2개월 전인 4월부터 김씨 집에서 일했다. 일주일에 2∼3번 방문해 집안일은 하는 것은 물론 자신의 집에서 만든 반찬도 가져다주며 이들을 돌봤다.  그런데 지난 9월 중순 은행에서 통장을 정리하던 방씨는 잔액이 절반으로 준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남편과 함께 어렵게 모은 돈인데 감쪽같이 사라졌다. 방씨는 국적 취득에 필요한 3000만원 이상의 예금잔고 증명을 위해 돈을 모으고 있었다.  방씨는 곧바로 경찰에 신고를 했다. 은행 폐쇄회로(CC)TV에 자신이 자식처럼 돌보던 김씨와 노씨의 모습이 보였다. 경찰 조사결과 두 사람은 두 달간 6차례에 걸쳐 방씨의 계좌에서 모두 1100만원을 인출해 대부분을 술값 등 유흥비로 쓴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체크카드 비밀번호를 알고 있었다. 방씨와 은행에 동행해 다른 통장을 개설해 준 적이 있었는데 당시 설정한 비밀번호가 훔친 체크카드 비밀번호와 같았다.  경찰 관계자는 “국내 정착을 목표로 성실하게 가사도우미 일을 하던 피해자가 큰 충격을 받았다”고 안타까워했다. 부산 사상경찰서는 김씨와 노씨를 절도 등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시세 60% 가격” 광고...대포차 3만여대 판 조폭 등 244명 검거

     중고차 거래 사이트인 것처럼 위장해 ‘대포차’ 3만여대를 시중에 유통시킨 조폭 등이 경찰에 붙잡혔다. 경기경찰청 광역수사대는 대포차량을 대규모로 유통해 부당 이득을 챙긴 인터넷 거래 사이트 운영자 박모(30)씨 등 8명을 자동차관리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하고, 이 사이트를 통해 개별적으로 대포차를 불법 거래해 온 최모(44)씨 등 247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또 판매에 조직적으로 가담한 혐의로 김모(24)씨 등 조직폭력배 10명을 구속했다.  이들은 대포차 거래 사이트를 중고차 직거래 사이트인 것처럼 속인 뒤 중고차시세보다 최대 40% 저렴하다고 광고해 구매자들을 끌어들였다. 경찰은 이 사이트에서 불법 유통된 대포차가 5년간 3만여대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경찰에 따르면 박씨 등은 2011년부터 올해 5월까지 대포차 거래사이트를 운영 관리하면서 600억원(중고차 시세 기준) 상당의 대포차 2700여대를 유통시켰다. 특히 대포차 거래사이트 원조격인 자신들의 이름을 딴 사이트들이 우후죽순 생겨나자 지난해 11월 2000만원을 들여 해커들을 고용, 다른 유사 사이트를 디도스 공격해 이용자들의 접속을 방해한 혐의도 받고 있다.  함께 입건된 개인판매자 노모(33)씨 등 228명도 2012년부터 최근까지 사이트에서 매입한 대포차량을 다시 매물로 내놓는 수법으로 1000여대를 팔아 20억원 상당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 가운데 최모(44)씨 등 10명은 매입한 대포차를 불법 폐차해 부품을 유통시키고, 경매로 낙찰받은 사고 차량의 차대 번호판을 대포차에 부착해 재판매하거나 밀수출하기도 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공포영화처럼...걸핏하면 전기톱 휘두르는 남자

    공포영화처럼...걸핏하면 전기톱 휘두르는 남자

    걸핏하면 전기톱을 들고 이웃을 공포에 떨게 한 남자가 경찰에 붙잡혔다. 이름이 공개되지 않은 문제의 남자는 올해 40대로 아르헨티나의 유명한 휴양도시 피나마르의 주민이다. 남자는 동네에선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총기를 들고 이웃을 위협하는가 하면 도끼로 자신의 집 울타리를 박살내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주민들은 극도의 공포에 떨어야 했다. 남자로부터 협박을 받았다는 한 이웃주민은 "4년 전부터 남자가 이유없이 시비를 걸고 총이나 도끼로 이웃을 위협했다."면서 "감정통제가 되지 않는 사람 같았다."고 말했다. 그랬던 남자가 전기톱을 손에 든 건 최근이었다. 남자는 한밤중에 전기톱을 들고 나타나 뜬금없이 수십 년 된 가로수를 베어버렸다. 에드문도라는 이름의 이웃주민은 당시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천둥이 치는 것처럼 큰 소리가 나 밖을 보니 거목(가로수)이 쓰러져 있었다."고 말했다. 가로수를 쓰러뜨린 남자는 난데없이 한 이웃집으로 달려가 대문을 전기톱으로 부수기 시작했다. 다행히 문은 나무와 철로 만들져 전기톱 공격을 견디었지만 남자가 대문을 부수고 들어갔다면 무슨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지 모른다. 견디다 못한 이웃주민들은 최근에야 사건을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CCTV를 통해 남자가 전기톱을 들고 밤에 길을 거니는 모습을 확인하고 그를 긴급체포했다. 경찰 관계자는 "남자가 그야말로 동네의 무법자처럼 행동했다."면서 "남자 때문에 외출을 꺼리는 이웃이 많았다."고 말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남자는 90세가 넘은 노모와 단 둘이 살고 있다. 경찰은 남자가 정신병을 앓고 있는 게 아닌지 정신감정을 받도록 할 예정이다. 사진=CCTV캡처 서울신문 나우뉴스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 ‘방화 살인 재심 결정’ 재일동포 무기수 20년 만에 석방

    ‘방화 살인 재심 결정’ 재일동포 무기수 20년 만에 석방

    동거녀의 딸을 방화 살해한 혐의로 동거녀와 함께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20년째 복역 중이던 재일동포 박용호(49)씨가 26일 법원의 재심 및 형집행정지 결정에 따라 석방됐다. 박씨와 그의 동거녀였던 아오키 게이코(51)는 일본 오사카고법의 결정에 따라 이날 오이타 형무소와 와카야마 형무소에서 각각 석방됐다. 오사카고법은 “재심 인정 판단에 불합리한 점이 보이지 않아 재심에서 두 사람에게 무죄가 선고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며 오사카고검의 이의 제기를 기각했다. 박씨는 오이타 형무소를 나오며 NHK에 “자유의 몸이 돼 감개무량하다. 20년 만의 일이라 먼 외국 땅에 선 듯 아직 현실감이 없다. 꿈처럼 경치가 빛나고 있다. 팽팽한 마음을 누그러뜨리는 데는 그만한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아오키도 “20년 만에 겨우, 당연한 세계에 돌아올 수 있었다. (사망한) 딸이 푸른 하늘 어디에선가 ‘엄마 잘됐어요’라고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들은 생명보험금 1500만엔(약 1억 4000만원)을 노리고 1995년 7월 22일 공모해 오사카 히가시스미요시에 있던 집 차고에 불을 질러 아오키의 딸 아오키 메구미(당시 11세)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돼 2006년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박씨가 수사 단계에서 “차고에 가솔린 약 7.3ℓ를 뿌리고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고 자백한 것이 유죄 판결에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두 피고인은 2009년 “불을 지른 게 아니라 무슨 이유에서인가 불이 난 것이고, 강압 수사로 자백을 강요당했다”며 재심을 청구했다. 이후 방화 재연 실험 결과 박씨의 최초 자백이 현실성이 없는 것으로 나타나자 2012년 오사카지법과 고법은 “자연 발화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다”며 잇달아 재심을 결정했다. 재심 결정이 이뤄지기까지 박씨의 노모가 끈질기게 아들의 무죄를 호소해 왔고 이에 호응한 일본 시민들도 오랜 기간 지원 활동을 벌였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의정 포커스] 이동주 마포구의회 행정건설위원장

    [의정 포커스] 이동주 마포구의회 행정건설위원장

    “청년 실업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미래도 없습니다.” 이동주 마포구의회 행정건설위원장은 26일 최근 구의회가 제정한 ‘청년 일자리 창출 촉진에 관한 조례’가 청년들의 삶의 질을 크게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했다. 조례에 따라 구는 청년실업대책반을 구성하고 청년 일자리 취업 전산망 등을 구축하여 서비스업 일자리를 창출하게 된다. 이 위원장은 초등학교 5년+중등학교 5년으로 학제를 조정하는 것도 빨리 진로를 개척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또다시 ‘스펙’을 쌓기 위해 노력해야만 하는 청년들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그는 지난 20일 80대 노모가 입원한 사이 사망한 지적장애인에 대해 “정신지체 여성 26명이 모여 단순노동, 자급자족 생활을 하는 마포구의 ‘맑음터’와 같은 공동생활 시설이 더욱 확대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정에서는 돌보기 어렵고 집단 시설에서 지내는 것은 꺼리는 이들이 함께 모여 살 수 있는 시설이 더 생겨야 한다는 것이다. 구에는 현재 1인 가구가 7만여 가구로 전체 구민의 41%이며 이 중 65세 이상 독거노인은 8776명이다. “공무원들이 서비스직의 마음가짐으로 주민을 대하고 있지만 고독사는 언제라도 생길 수 있는 만큼 거실과 주방은 공동으로 쓰고 방은 혼자 쓰는 노인 복지시설이 더 늘어나야 합니다.” ‘뼛속까지 마포인’으로 살아온 이 위원장은 이제는 일률적으로 기초노령연금 20만원을 지급하기보다는 필요한 사람에게 더 주는 ‘선 택적 복지’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이산가족 상봉 마지막날] 다시 아들 알아본 치매 노모 “이 반지라도 가져가라” 오열

    [이산가족 상봉 마지막날] 다시 아들 알아본 치매 노모 “이 반지라도 가져가라” 오열

    “코트 주고 싶어.” 아흔여덟의 아버지는 감기에 걸렸는지 기침하는 아들에게 코트도, 목도리도 다 내줬다. 다행히도 아버지와 키가 비슷한 아들에게 검은색 코트는 꼭 맞았다. 이산가족 상봉 마지막 날인 26일 오전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작별 상봉에서 이석주(98) 할아버지는 60여년 만에 만난 아들 리동욱(70)씨에게 따뜻한 옷을 주면서도 더 줄 것이 없는지 찾았다. 아들은 아버지의 한없는 사랑에 “아버지 130세까지 살아야지. 나는 100살까지 살게. 자식들이 봉양 잘하면 130세까지 충분히 살아”라고 말하며 웃었다. 이 할아버지는 “말은 고맙지만 그렇게까지 될지 모르겠다”면서도 아들과 다시 함께하고픈 마음에 “오래오래 살아야지”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반지 가져가라. 갖다 버리더라도 가져가라.” 치매로 앞에 앉은 아들조차 인식하지 못해 주위의 안타까움을 샀던 김월순(93) 할머니는 작별 상봉에서 다시 아들을 알아보고는 눈물을 흘렸다. 김 할머니는 오랜 시간 손가락에 끼고 있던 반지를 빼서 북측에 두고 온 장남 주재은(72)씨에게 건넸다. 재은씨는 한사코 사양했으나 김 할머니는 어쩌면 마지막으로 주는 선물일 수도 있는 반지를 아들의 손에 꼭 쥐여 줬다. 김 할머니는 상봉 첫날인 지난 24일 재은씨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다 25일 개별 상봉 때 잠시 알아보기도 했지만 이후 열린 공동 중식과 단체 상봉에서는 “이이는 누구야?”라며 다시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다 상봉 마지막 날인 이날 아들과 기나긴 이별을 준비하려는 듯 다시 정신이 돌아온 것이다. “살아 있는 거 알았으니 원 없어. 생일날 미역국 계속 떠 놓을게. 걱정 말고 잘 가슈.” 65년 만에 만난 남편과의 작별 상봉에서 한음전(87) 할머니가 눈물을 보이며 한 말이다. 만남 내내 담담해 보였던 남편 전규명(86) 할아버지도 끝내 무너졌다. 황해북도 개풍군이 고향인 전 할아버지는 6·25전쟁 당시 북한군에 끌려갔다가 남쪽에서 포로로 붙잡혔다. 결혼한 지 2년 된 곱디고운 아내와 뱃속의 아들을 북에 두고 온 채였다. 어느덧 주름이 깊게 팬 아내가 “나 시집올 때 기억나?” 하고 묻자 남편은 “예뻤지. 그러니까 결혼했지”라며 꿈같은 과거를 회상했다. 하지만 전 할아버지도 이내 회한에 찬 목소리로 읊조렸다. “차라리 안 만나는 게 더 좋았던 게 아닌가 싶어. 만나질 않았으면 이렇게 금방 헤어지지 않는 건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최형진(95) 할아버지도 북측의 딸에게 주려고 메모지에 짧은 글을 쓰다가 헤어져야 한다는 생각에 왈칵 눈물을 쏟았다. 양강도 혜산이 고향인 최 할아버지는 1·4 후퇴 때 피난을 오면서 어쩔 수 없이 딸과 헤어졌다. 최 할아버지는 옛날 생각에 ‘어머니한테 내가 왔다가 가구(가고), 또 미안하다고 꼭’이라고 쓰려다 ‘꼭’이라고 마무리하지 못하고 ‘꼬’라고만 쓴 채 이내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오대양호’ 납북 어부인 아들 정건목(64)씨와 기약 없는 이별을 앞둔 이복순(88) 할머니 역시 계속 눈물을 흘렸다. 대기 중이던 의료진이 걱정돼 다가가 상태를 살펴보기도 했다. 남측 배순옥(55)씨는 북측의 조카 배은희(32)씨에게 “고모가 선물 줄게. 우리는 많아”라며 금반지를 끼워 주고 목걸이도 걸어 줬다. 이때 지켜보던 순옥씨의 남측 오빠 상석(60)씨가 “만나게 해 주세요. 서로 편지 주고받게 해 주세요”라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자 북측 행사지원 요원들이 몰려들어 “그만하시라”며 만류하는 소동이 빚어지기도 했다. 2시간에 불과한 상봉이 “작별 상봉을 끝마치겠습니다”라는 북측의 안내방송과 함께 끝나자 울음은 결국 오열로 변했다. 특히 북측 가족들을 남겨 둔 채 버스에 오르는 남쪽 가족들은 쉽사리 발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이번 상봉단의 남측 최고령자인 이석주(98) 할아버지를 태운 구급차가 출발하자 북측 가족 한 명은 창문에 붙은 채 울기도 했다. 금강산 공동취재단·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아들 아닌 동생에게 재산…” 치매 노인 유언장 효력 있을까

    2012년 3월, A씨는 한 달 전 관절염으로 입원했던 70대 노모와 갑자기 연락이 두절되자 병원에 문의를 했다. 노모가 치매 증상으로 4년 넘게 통원치료를 받고 있었기에 A씨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별다른 설명도 없이 “갑자기 퇴원하셨다”고만 말했다. 노모의 행방을 수소문했던 A씨는 결국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다. 그런데 경찰수사를 통해 노모가 동생의 집, 즉 A씨의 외삼촌 집에 있다는 황당한 사실을 알게 됐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외삼촌은 A씨와 노모가 통화도 못하게 막았다. A씨는 비록 양자였지만 1972년부터 노모와 함께 살았고, 결혼에 따른 분가 뒤에도 주기적으로 노모와 연락을 주고받았다. 영문도 모른 채 노모와 생이별한 A씨는 1년이 지나서야 외삼촌이 어머니의 재산을 가로채기 위해 이 같은 일을 꾸몄음을 알게 됐다. 노모는 월세 650만원인 20억원짜리 건물을 가지고 있었는데, 외삼촌은 노모가 퇴원한 두 달 뒤 자신과 여동생에게 모든 부동산과 예금에 관한 관리와 처분을 위임한다는 노모의 약정서와 유언장을 받아냈던 것이다. 이에 A씨는 2013년 6월 정신질환에 따른 판단력 상실을 이유로 노모를 ‘금치산자’로 선고해 달라고 법원에 청구했다. 금치산자가 되면 법원이 선임한 후견인이 노모의 법률행위를 취소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A씨의 청구를 받아들인 법원은 그해 9월 전문 임시후견인을 선임하고, 후견인의 동의 없이 노모의 재산처분을 금지한다고 외삼촌에게 통보했다. 하지만 외삼촌은 통보를 받은 당일 건물을 급매하고 소유권 이전 등기까지 마쳐버렸다. 이에 법원은 지난해 1월 정식 성년후견인을 선임했고, 후견인은 노모의 재산을 원상복구하라며 소송을 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6부(부장 윤강열)는 후견인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어머니가 의사무능력 상태였으므로 남동생에게 작성해준 위임장은 무효”라면서 “건물 매매는 취소하고 새로 한 소유권등기도 말소하라”고 판결했다고 25일 밝혔다. 재판부는 “노모가 2012년 3월 병원에서 급히 퇴원했을 당시 A씨와 연락이 두절된 점 등에 비추어 이미 치매 증상이 상당한 정도로 진행된 것으로 인정된다”며 “임대수입이 유지돼야 장기간 안정적인 치매 치료를 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들인 A씨를 배제하고 모든 재산을 남동생에게 위임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치매 노모, 아들에게 “누구야?”… 그리운 얼굴 삼킨 야속한 세월

    치매 노모, 아들에게 “누구야?”… 그리운 얼굴 삼킨 야속한 세월

    “이이는 누구야?” 구순이 넘은 노모의 한마디에 아들 주재은(72)씨는 억장이 무너졌다. 오전에는 자신을 알아보고 “왜 나를 안 보러 왔니?”라고 물었던 어머니가 고작 몇 시간 뒤 다시 자신을 낯설어하는 모습에 문안 인사조차 하지 못했던 긴 세월이 야속했기 때문이다. “어머니, 내가 맏아들.” 재은씨는 옆에 앉아 자신의 얼굴을 어루만지는 그리웠던 어머니를 가만히 바라봤다. 25일 오후 금강산호텔에서 진행된 이산가족 공동 중식 시간에 김월순(93) 할머니가 치매로 60여년 만에 겨우 만난 아들을 알아보지 못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이날 오전 남측 이산가족의 숙소인 외금강호텔에서 열린 개별 상봉 때는 잠시 재은씨를 알아보기도 했으나 이내 다시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65년 만에 두 딸과의 약속을 지켰습니다.” 구상연(98) 할아버지는 외금강호텔에서 열린 개별 상봉에서 북측의 딸들에게 준비해 온 꽃신을 전달했다. 구 할아버지와 동행한 둘째 아들 강서(40)씨는 “꽃신을 개별 상봉 때 전달했다”고 밝혔다. 헤어질 때 각각 6살, 3살이던 북측의 딸 송옥·선옥씨는 어느덧 71세와 68세의 할머니가 돼 있었다. 구 할아버지는 65년 전 헤어질 때 두 딸에게 “고추를 팔아 예쁜 꽃신을 사 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갑자기 북한군에 징집되는 바람에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이후 그는 미군에게 포로로 잡혀 거제포로수용소로 보내졌고 남측에 남았다. 두 딸은 전날 단체 상봉 때 이뤄진 첫 만남에서 아버지에게 나란히 큰절을 올렸다. 남측 김현욱(61)씨는 갑자기 자신의 양복 주머니에서 갈색 체크무늬 손수건을 꺼내 북측의 누이 김영심(71)씨의 분홍색 줄무늬 손수건과 맞바꾸면서 “누님, 이렇게 바꿉시다. 누님 냄새라도 맡게…”라고 말했다. 앞서 전날 ‘오대양호 사건’ 납북 어부 정건목(64)씨는 이산가족 단체 상봉 행사가 열린 금강산호텔에서 휠체어에 앉은 남측의 어머니 이복순(88) 할머니를 보자마자 그대로 달려가 “엄마”를 외치며 품에 안고는 눈물을 터트렸다. 또 남측의 누나 정매(66)씨와 여동생 정향(54)씨를 끌어안고 한참을 울었다. 감정을 추스른 건목씨는 주머니에서 수건을 꺼내 어머니의 안경을 살짝 들고 눈물을 닦아 드리며 “어머니가 살아 계셔서 좋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전쟁 통에 이산가족이 된 다른 가족들과 달리 이들은 건목씨가 1972년 서해상에서 조업하던 중 납북되면서 이별하게 됐다. 하지만 일부 남측 가족은 북측 가족이 북한 체제의 우월성을 선전하기에 여념이 없었다며 씁쓸하다는 반응을 보이도 했다. 한 할머니는 “조카가 여기(북한)는 다 무상이다, 자신들은 잘산다며 자랑을 계속 늘어놓더라”고 전했다. 납북 어부인 건목씨의 아내 박미옥(58)씨도 남에서 온 시어머니 이복순 할머니에게 “행복하게 살고 있다”면서 “우리 당이 오빠(건목씨)를 조선노동당원도 시켜 주고 공장 혁신자도 되고 아무런 걱정할 것 없다. 남편이 남조선 출신이라고 차별받지 않는다”고 했다. 북측의 한 보장성원은 “(남측 가족이) 주는 선물을 받고 나면 우리 가족들이 기분이 나쁘단 말이오. ‘선물이 아니라 오물’이라고 그러오”라며 기자들에게 불만을 표시했다. 이 보장성원은 “오랜만에 만났으니 내의까진 알겠단 말이오. 근데 치약, 칫솔, 라면을 가득해서 넣었습디다. 북에는 라면이 없겠소? 그러니 북측 가족들이 받아도 기분이 나쁘지 않겠소. 받고 나서 다 욕한단 말이오”라고 덧붙였다. 리충복 북한 적십자중앙위원회 위원장은 이날 남측 기자들에게 “이번 상봉 행사가 끝나면 상시 접촉(정례화) 문제와 편지 교환 문제 등 이산가족 관련 문제를 남측과 협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금강산 공동취재단·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함께 살던 정신지체 형제… 동생의 죽음

    함께 살던 정신지체 형제… 동생의 죽음

    50대 정신지체 장애인 형제 둘이 살던 집에서 동생이 숨진 채 발견됐다. 같이 살던 80대 노모가 병원에 입원하면서 돌봄에 공백이 생기자 구청 등에서 도움을 주려 했지만 형제는 이를 거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20일 오전 9시 50분쯤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한 주택에서 박모(50)씨가 숨져 있는 것을 박씨의 어머니(81)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박씨의 시신에서 싸운 흔적 등 외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이 출동했을 당시 박씨의 형(52)은 혼자 옆방에 앉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 형제는 모두 정신지체 2급 판정을 받은 지적 장애인으로, 기초생활수급 대상자였다. 두 아들과 함께 살던 어머니는 관절 수술로 병원에서 한 달 이상 입원 치료를 받고 이날 퇴원해 집으로 돌아왔다가 아들이 숨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들의 집 대문 앞과 방 곳곳에는 종이상자, 유리병, 페트병, 플라스틱 등 쓰레기 더미가 쌓여 있었고 악취가 진동했다. 물과 전기는 들어왔지만 싱크대에는 설거지가 안 된 식기들이 가득했다. 이들의 집 주변에는 무허가 건물 40여 가구가 모여 있다. 마포구청은 어머니가 입원해 있는 동안 형제에 대한 도시락 배달 서비스를 권유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정신지체가 있기는 해도 전기밥솥으로 밥은 해 먹을 줄 안다”며 거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송남영 한국지적발달장애인복지협회 정책연구실장은 “중증 지적 장애인을 자녀로 두고 있는 부모들은 ‘내가 자식들을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인식이 강한 편”이라면서 “박씨 형제 어머니도 그런 마음에서 아들들에 대한 외부 음식 배달을 거부했을 수 있다”고 해석했다. 동생 박씨는 평소 위험한 행동을 많이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주민 양모(40)씨는 “김치를 주기 위해 지난 16일 집을 방문했지만 동생이 문을 열어주지 않고 위협해 전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구청 관계자는 “기초생활 수급자로 사례 관리 대상이어서 형제의 집을 정기적으로 방문했지만 그때마다 동생이 소리를 지르고 욕설을 퍼부어 관리가 어려웠다”고 전했다. 숨진 박씨는 2013년 8월쯤 형을 흉기로 위협하는 등 증상이 심각해져 병원에 입원을 하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인근 주민들은 동생 박씨가 최근 눈에 띄게 마른 모습으로 다녔다면서 굶어 죽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러나 경찰 관계자는 “집 안에 음식이 있었던 점으로 미뤄 굶주려 숨진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면서 “숨진 박씨가 평소 병치레가 많았다는 주변인 진술이 있어 정확한 사망 원인은 추가로 조사해 봐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영화 ´추격자´ 주인공, 마약 유혹 못 이겨 또 철창행

     희대의 연쇄 살인마 유영철을 잡는 데 기여해 영화 ‘추격자’ 주인공의 모티브가 된 보도방 업주가 마약 중독자가 돼 법원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유영철 사건에서 겪은 트라우마와 마약 조직을 제보한 이후 보복을 받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마약을 끊지 못했다고 읍소했지만 선처를 받지 못했다.  서울북부지법 형사13부(부장 이효두)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노모(42)씨에 대해 징역 3년을 선고했다고 15일 밝혔다.  노씨는 올해 3월 중순 필로폰 8g을 구입해 4월 0.1g을 투약하는 등 필로폰과 대마를 수차례 구입 및 투약한 혐의로 기소됐다.  마약에 손을 댔다가 징역 1년 6월의 형기를 마치고 지난해 10월 말 출소한 지 5개월 만이었다.  13일 국민참여재판이 열린 법정에서 노씨의 기구한 인생이 드러났다.  변호인은 그가 한때 경찰을 꿈꿨으나 청소년기 때 방황한 나머지 스무 살이 넘자마자 보도방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2004년 유영철 사건을 겪으면서 그의 인생은 송두리째 흔들렸다.자신의 업소 여성이 실종되자 경찰에 신고하고 자신도 추적에 나섰다. 노씨는 그 해 7월 서울 모처에서 다른 업주들과 함께 유영철을 때려잡아 경찰에 넘겼다. 그는 2500만원의 포상금을 받기도 했다.  그는 훗날 영화 ‘추격자’에서 연쇄살인마를 때려잡는 경찰 출신 보도방 업주 ‘엄중호’의 모티브가 됐다.  그러나 노씨는 유영철 현장검증에서 끔찍한 사체를 너무 많이 본 탓에 악몽을 꾸기 시작했다.  법정에서 변호인은 ”노씨가 지금껏 당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고 주장했다.그는 유영철 사건 이전에도 가끔 마약에 손을 댔지만 그 이후 완전히 중독자가 됐다.  2010년 또 다시 마약 밀매 혐의로 구속된 그는 선처를 받을 요량으로 중국 폭력조직 흑사파가 국내 조직에 엄청난 양의 마약을 건넨다는 정보를 제공했다.  이듬해 초 검찰은 약 200억원 상당의 필로폰을 밀수한 흑사파 조직과 국내 폭력조직배들을 일망타진했다. 검찰은 노씨에게 정착금 등 증인 보호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안전가옥도 마련해줬다.  그러나 노씨는 안전가옥에서 나온 지 한 달 만에 두려움에 떨다 자살을 시도했다.그나마 곁을 지키던 아내도 그즈음 그를 떠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노씨는 더욱 마약에 의존했고,상습범인 탓에 수사망에도 쉽게 걸려 수차례 교도소 생활을 반복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시민 배심원단은 모두 노씨에게 실형을 평결했다. 재판부는 배심원 다수 의견인 징역 3년형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노씨가 과거 살인범과 마약 조직 검거에 기여한 경력이 있고 이것이 마약 투약 범행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인정된다고 해도 출소 5개월 만에 또 범행을 저지르고도 국가기관 탓만 하는 등 반성의 기미가 없다“고 판시했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이광식의 천문학+] 우주 구조 밝힌 ‘가난한 수학자’...100년 난제 풀고도 100만弗 거절

    [이광식의 천문학+] 우주 구조 밝힌 ‘가난한 수학자’...100년 난제 풀고도 100만弗 거절

    우주의 구조를 밝히는 데 중요한 이론 중의 하나인 수학 난제를 100년 만에 푼 수학자가 화제가 된 것이 지난 2010년이었는데, 이 수학자가 여전히 갖가지 기행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올해로 49살인 그레고리 페렐만이라는 러시아 수학자다. 그는 이른바 밀레니엄 문제를 푼 업적으로 100만 달러 상금의 수여자로 지명되었을 때부터 그 기이한 면모를 드러냈다. 무려 100만 달러에 달하는 거액의 상금을 헌신짝 차듯이 뻥 차버렸던 것이다. 이유는 '상 받으러 밖에 나가기 싫다'는 거였다. 한화로 12억 원이나 되는 돈이라면 결코 작은 돈이 아니다. 그렇다고 12억을 필요없다고 차버린 그 친구가 무슨 재벌이나 억만장자도 아니다. 재벌은커녕, 바퀴벌레 기어다니는 콧구멍만한 아파트에 사는 노총각 수학자이다. 그런데, 그 아파트도 자기 것이 아니다. 교사를 하다가 퇴직한 후 쥐꼬리만한 연금으로 살아가는 노모의 아파트에 얹혀살고 있는 주제인 것이다. -노모 집에 얹혀사는 러시아 49세 페럴만 이런 인물이 12억이나 되는 돈을 받게 된 사연은 무엇이고, 또 그 돈을 뻥 걷어차버린 연유는 또 무엇일까? 먼저, 그에게 12억 원을 주겠다고 인심 후한 결정을 한 주체는 미국의 한 연구소다. 미국의 부호 랜던 클레이가 세운 클레이 수학연구소(CMI)는 2000년 수학 분야에서 이른바 밀레니엄 문제라고 불리는 중요한 미해결 문제 7개를 내걸고, 학력이나 경력도 상관없으니, 누구든 풀기만 하면 한 문제당 100만 달러씩의 상금을 주겠다고 공언한 것이다. 밀레니엄 문제 중 페렐만이 푼 '푸앵카레 추측'을 제외한 6개 난제는 아직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으니, 당신도 머리에 자신만 있다면 그 문제들에 한번 도전해볼 수 있다. 누가 알겠는가, 당신이 그 문제들을 풀지? 초야에 고수 있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어쨌든, 그 일곱 문제 중 우리가 사는 이 우주의 구조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되는 ‘푸앵카레의 추측’이란 문제가 있는데, 이것은 프랑스가 낳은 불세출의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인 앙리 푸앵카레(1854-1912)가 1904년에 세상에 툭 내던진 것이었다. 그가 문제를 제기한 이래 100년간 수많은 수학자들이 매달려 씨름했지만 아무도 풀지 못한 난제 중의 난제였다. 도대체 무슨 문제길래 지구상의 기라성 같은 수학 천재들이 한 세기 동안 끙끙거리면서도 못 풀었단 말인가? 인간 지성의 무기력함에 한숨이 나올 법도 하다. 문제는 단 한 줄짜리다. 하지만 그 뜻은 심오하다. 이런 내용이다. "단일연결인 3차원 다양체는 3차원 구와 위상동형이다"라는 것이다. '다양체'란 임의의 점 근처의 공간은 유클리드 공간과 비슷하지만, 다양체의 전체적인 구조는 유클리드 공간과 다른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을 일컫는다. 예를 들어, 구면은 충분히 가까이에서 보면 평면(2차원 유클리드 공간)처럼 보이지만, 전체는 구면이다. -"단일연결인 3차원 다양체는 3차원 구와 위상동형이다"...'푸앵카레 추측' 이른바 위상 기하학의 얘기인데, 좀더 풀어서 말하면, "어떤 닫힌 3차원 공간에서 모든 폐곡선(닫힌곡선)이 수축되어 한 점이 될 수 있다면, 이 공간은 반드시 3차원 구로 변형될 수 있다"는 뜻이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면, 만약 광속의 우주선 꽁무니에 무한 길이로 풀리는 끈을 하나 매달고 전 우주를 헤매고 다닌 후 지구로 귀환했다고 칠 때, 그 꽁무니 끈이 무엇에도 걸리지 않고 모두 회수될 수 있다면 우주선이 헤매다닌 공간은 3차원 구와 같다는 뜻이다. 이런 공간의 우주는 유한하지만 경계는 없다고 한다. 잘 이해가 안 가면 구면을 생각해보면 된다. 구면은 유한하나 경계가 없다. 개미가 한없이 그 위를 기어가도 끝에 다다를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4차원 시공간은 이보다 2차원 높은 것이기는 하지만, 유한하나 끝이 없는 공간인 것이다. '뫼비우스 띠의 4차원 버전'이라고 보면 된다. 이런 내용의 푸앵카레 추측을 증명해내면 12억 원을 주겠다는 것이고, 그것을 페렐만이 증명함으로써 클레이 수학연구소가 2010년 3월, 밀레니엄 상과 더불어 상금 수여 대상자를 페렐만으로 결정했던 것이다. 그런데 막상 당사자인 페렐만은 수상 소식을 들고 집을 찾아온 기자들을 향해 현관문도 열지 않은 채 "나는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가졌다"고 외침으로써 상받기를 거부했다. 이 은둔의 천재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허름한 아파트 문 밖에 대고 기자들을 향해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나는 돈을 원치 않는다. 증명이 옳다면 남들의 인정은 불필요하다. 나는 아무것도 필요없다." 원래 천재 중에는 괴짜 아닌 사람이 드물다고는 하지만, 그 모든 등급을 뛰어넘는 그레고리 페렐만이란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1966년 구소련의 레닌그라드에서 태어난 페렐만은 1982년 레닌그라드 중등학교 때 국제 수학 올림피아드에 국가대표로 출전해 만점으로 금메달을 받았다. 이후 레닌그라드 대학교에 진학하여 수학 및 역학 학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페렐만은 러시아 일간신문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와 인터뷰를 가진 적이 있는데, 그는 학창 시절 ‘물 위를 걷는 예수’ 같은 성경 속 기적을 수학적으로 풀이하곤 했다고 회상하며, “예수가 물에 빠지지 않으려면 얼마나 빨리 걸어야 하는지 계산했다. 까다롭긴 했지만 풀 수 없는 문제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스테클로프 연구소에서 연구활동을 시작한 그는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까지 미국의 여러 대학을 방문, 연구하다, 1995년 스탠퍼드 대학과 프린스턴 대학을 포함한 미국 유수 대학들의 교수 영입 요청을 거절하고, 자기가 처음 연구를 시작한 스테클로프 연구소로 돌아갔다. 연구원이던 2003년, 페렐만은 푸앵카레 추측을 증명한 논문을 인터넷에 올린 결과, 국제적으로 엄청난 주목을 받았고, 복수의 연구팀이 검증한 결과, 그 증명이 참으로 밝혀지면서 세계적인 천재 수학자의 반열에 올랐다. 당시 연구팀은 페렐만이 단 3쪽으로 정리한 풀이법을 검증하기 위해 수백 쪽이 넘는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페렐만의 기행은 밀레니엄 상 거부 이전부터 있었다. 2006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수학 분야의 노벨 상이라고 불리는 필즈 메달 시상식에도 수상자인 그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것이다. 불참의 변은 이랬다. "나는 돈과 명예에 관심이 없다. 동물원의 동물처럼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고 싶지 않다." -"상금이나 상 보다 버섯 따는게 좋아" 그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시상식에 참석하는 대신 고향인 상트페테르부르크 외곽 집 근처의 숲으로 버섯을 따러 갔다. 그러면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아직도 상트페테르부르크 남부의 지저분하고 허름한 방 2칸짜리 아파트에서 77세의 노모와 단둘이 살고 있다. 그의 좁은 아파트는 바퀴벌레들이 우글거리고, 때에 절은 매트리스와 식탁 외에는 가재도구라고는 거의 없으며, 바깥 출입 하는 것을 보기 힘들다고 이웃들이 전한다. 페렐만은 2003년 스테클로프 연구소에서 해고된 후 현재까지 무직으로 지내며, 수학 연구도 완전히 접은 것으로 알려졌다. "수학은 논의하기에 고통스러운 주제라는 걸 문득 깨닫게 됐다"는 게 친구들의 전언이지만, 자신의 업적을 폄하하려는 수학계 일부의 알력에 크게 상처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고정적인 직장이 없는 페렐만이 가끔 개인 과외로 버는 많지 않은 돈과 노모의 연금으로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페렐만이 가장 행복해하는 일은 숲속을 거닐며 버섯을 따는 것이라고 한다. 지난 2011년에는 과학자로서는 최고 영예인 러시아 과학 아카데미 정회원 추대를 거부해 또다시 세인의 주목을 받은 페렐만은 요즘도 가끔 근교의 숲으로 버섯을 따러 다니는 것 외에는 외출을 거의 하지 않는 은둔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마치 중세 고행 수도사의 DNA를 지닌 듯 은둔의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수학사 속에 괴짜 수학자들이 수두룩하지만,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초월수 파이(π) 같은 기인 그레고리 페렐만-. 그런 아들을 보는 엄마의 속은 어떨까 궁금하기는 하지만, 그가 행복하게 그리고 침해받지 않은 고요한 삶을 이어가길 바랄 뿐이다. 이광식 통신원 joand999@naver.com
  • 낙향해서 터 잡고 세상과 소통하는 ‘전국구’ 예술인들

    낙향해서 터 잡고 세상과 소통하는 ‘전국구’ 예술인들

    지난 4월 말 충남 논산시 탑정호 호숫가에 있는 2층짜리 집 뜰에서 올해 세 번째인 ‘와초문학제’가 열렸다. 와초(臥草)는 영화 ‘은교’의 원작 소설가 박범신의 호. 박 작가가 낙향한 곳이 가야곡면 조정리 집필관이다. 축제가 열리면 작가는 수백명의 방문자와 함께 문학과 고향 얘기를 오랫동안 나눈다. 탑정호의 아름다운 풍치 속에서 사람들은 온종일 문학의 향기에 취했다. ‘전국구’ 예술가들이 지역 문화를 이끄는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이름값을 무기로 낙후된 지역의 문화에 활력을 불어넣을 뿐 아니라 관광객이 늘어나 지역경제에도 도움이 된다.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읊으며 세속과의 절연을 선언한 중국 도연명과 달리 세상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지역문화의 내·외연을 넓히는 덕분이다. 자발적이든, 자치단체가 유치하든 그들의 낙향은 은둔이 목적이 아니다. 과감한 낙향에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눈부신 통신의 발전도 한몫한다. ●박범신, 나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 논산일기 박범신은 29일 “고향은 내 생명과 문학이 태어난 모태”라며 “원래 논산은 기호학의 본산이고 문화도 유서 깊은 곳인데 논산훈련소 등으로 이미지가 삭막해졌다. 고향을 ‘문화논산’으로 되살리고 싶다”면서 “‘작가 아무개가 산다’는 것만으로 문화적 업그레이드가 됐다. 요즘은 전국적 관광지가 돼 소설을 쓰려면 거꾸로 서울로 피난(?) 갈 지경”이라고 웃었다. 그는 10월 24~26일 세 번째 인문학 탐방도 연다. ‘소풍’을 타이틀로 참가자들과 탑정호 둘레길을 돈다. 수백명의 독자들이 소풍 올 것을 기대한다. 그는 지난해 시에서 처음 주최한 황산벌 청년문학상 심사위원장을 맡는 등 2011년 말 낙향 후 지역문화 고급화에 온 힘을 쏟고 있다. 낙향 덕분에 그 지역이 작품에서 숨쉬게 된다. 박 작가는 “소설 ‘소금’의 배경이 당초 부산이었는데 낙향하면서 논산 강경으로 바꿨다”고 귀띔했다. 논산생활을 담은 에세이 ‘나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 논산일기’도 썼다. 다음 작품인 ‘당신’도 배경을 특정하지 않았지만, 논산을 연상시킬 것이라고 작가는 설명했다. ●‘객주’ 작가 김주영, 청송에 머물며 청송 관련 소설 집필 중 서울신문에 ‘객주’를 연재했던 작가 김주영(76)은 1년 전부터 고향인 경북 청송에서 거의 살다시피 한다. 1년 전 문을 연 ‘객주문학관’을 찾는 관람객을 맞기 위해서다. 도우미 역할에 직접 강의도 한다. 관람객이 두 번, 세 번 다시 찾는 이유다. 질펀한 장이 섰던 작가의 고향은 벌써 고품격 문학 명소로 바뀌고 있다. 청송군은 지난해 6월까지 75억원을 들여 진보시장 인근에 문학관을 짓고 김 작가의 집필실 ‘여송헌’을 두었다. 작가 스스로 문학관을 이끌게 한 것이다. 김 작가를 찾는 문인과 문학 청소년들이 머물도록 카페와 숙박시설도 지었다. 낙향했다고 해서 창작열이 식지 않는다. 김주영도 최근 청송에 머물면서 청송과 관련된 소설을 집필하고 있다. ‘트위터 대통령’으로 불리는 작가 이외수(70)가 춘천에서 강원 화천 감성마을로 옮겨 둥지를 튼 지 10년째다. 지난해 암 투병으로 팬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지만, 씩씩하게 견뎌내고 있다. 작가는 산천어축제는 물론 동계올림픽 홍보대사로 활동한다. 산천어축제 하이라이트인 선등(仙燈)문화제 이름을 직접 지어 홍보하는 등 곳곳에 작가의 열정이 묻어 있다. 전국 꿈나무 문인을 위해 ‘세계 평화·안보 문학축전’를 열고, ‘이외수문학상’을 제정해 첫 수상작도 냈다. 배추, 멜론, 옥수수 등 마을 농산물 판매에도 팔을 걷어붙여 왔다. ●‘섬진강변살이 하는’ 전북 임실군의 김용택 ‘섬진강 시인’ 김용택(68)은 요즘 전북 임실군 덕치면 장산리 고향에 집을 짓느라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2008년 8월 교직을 떠나 전주의 아파트에 살았지만 도무지 정도 안 들고 도시 삶이 사는 것 같지 않아서다. 오는 11월쯤 이사한다. 그는 “집을 지으면서 느티나무 아래에 앉아 유유자적하다 보니 다시 삶의 의미를 찾은 것 같아 기쁘기 그지 없다”면서 “공사가 끝나면 새 집에 노모를 모시고 시작 활동에도 힘을 더 쏟겠다”고 전했다. 시인 이진우(50)는 올해 초 세 번째 시집 ‘보통씨의 특권’을 냈다. 이씨는 “시집을 찬찬히 읽어 보면 내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198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한 이 시인은 잘 나가던 서울생활을 접고 2000년 경남 거제시 남부면 저구리로 낙향해 15년째 살고 있다. 이씨는 통영이 고향이다. ●‘마음이 닿는 곳이 고향이다‘ 추리작가 김성종, 시인 박남준 추리문학의 대부 김성종(74)은 고향이 전남 구례지만 부산으로 낙향했다. 서울에서 집필에 몰두하다 머리를 식히러 가끔 내려온 해운대 앞바다와 안개에 반해 1981년 둥지를 옮겼다. 1992년 해운대 달맞이언덕에 추리문학관을 지었다. 국내 사설문학관 1호다. 작가는 이곳에서 여전히 집필 활동이 왕성하다. 창작교실을 열어 후진도 양성한다. 관람객이 하루 30~40명씩 찾는다. 부산을 추리문학의 ‘메카’로 키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산생활 중 10여권의 장편 추리소설을 쓴 김성종은 “작가의 상상력은 끝이 없고, 때와 장소를 초월한다”고 했다. 그는 장편 ‘계엄령의 밤’, ‘도망 간 여자’, ‘1973년 여름, 베를린 안개’ 등 세 편을 동시에 쓰고 있다 시인 박남준(58)도 고향인 전남 영광 법성포가 아닌 지리산 자락으로 내려와 ‘지리산 시인’이 됐다. 2003년 9월 경남 하동군 악양면 동매마을에서 13년째 살고 있다. 평사리 끝 마을, 끝 집이다. 양철지붕이 덮인 10평 남짓한 작은 토담집에서 살지만 많은 지역 문학행사에서 강의를 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 7번째 시집 ‘중독자’도 “지역에 사는 예술인들이 지역문화 발전에 힘을 보태야 한다”며 지역 출판사에서 출간했다. ●제천에 판화가 이철수, ‘서귀포 작가’ 이왈종 대중적 인기에서 앞서는 작가와 시인 외에도 낙향한 예술가는 많다.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목판 화가 이철수(61)는 1987년 충북 제천시 백운면 평동리로 내려왔다. ‘울고 넘는 박달재’ 아랫마을이다. 아내와 농사를 지으며 판화를 새기는 반(半)농사꾼으로 살다 지난해 새 직업(?)이 생겼다. 제천참여연대 공동대표다. 1980년대 판화로 시대와 맞섰던 그로서는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화가는 “지역사회에서 시민들의 작은 목소리는 매우 소중하다. 나도 시민의 한 사람이다”고 소회를 밝혔다. 화가는 지난해 11월 지역에서 판화전을 열어 수익금을 제천참여연대에 기부했다. 서울은 물론 독일, 스위스 등에서 개인전을 열어온 것과 비교해 성에 안 찰 수 있지만, 그는 정성을 쏟았다. 2007년에는 주민 대표로 마을에 들어서는 리조트 반대운동을 벌이는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삶은 낙향 이후에도 여전하다. 그는 매일 아침 일상과 생각들을 담은 ‘나뭇잎 편지’에서도 치솟는 집값과 전·월세에 걱정하는 집 없는 자들을 위로했다. 회원이 무려 8만여명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화가 이왈종은 고향인 경기도 화성을 떠나 서귀포시에 거주한 지 오래됐다. 경기도 출신이지만, 이제 ‘제주도의 화가=이왈종’을 연상한다. 제주도 출신으로 제주도에서 활동한 서양화가 강요배와 함께 서울화단을 좌지우지하는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이 화백은 지난 15일 서귀포시청에 유니세프 후원금 3000만원을 기탁하기도 했다. ●완주에 막사발 작가 김용문, 부여에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막사발 작가로 유명한 도예가 김용문(60)은 2013년 전북 완주군 삼례읍에 둥지를 틀었다. 전라선 이설로 폐쇄된 옛 삼례역에서 세계막사발미술관을 운영한다. 임정엽 전 군수가 그의 작품 세계를 인정해 미술관, 창작실, 장작 가마를 제공하겠다고 한 것이 계기가 됐다. 작가는 그해 8월 완주 세계 막사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자신이 교수로 있는 터키 하제테페국립대 제자들과 함께 전시회를 했고, 지역 작가 도예전도 열었다. 요즘에는 방학 때 도예체험 교육을 한다. 관광객들의 발길도 꾸준히 이어진다. 일제강점기 때 쌀 수탈의 기지 역할을 했던 삼례역이 소박한 서민들의 전통 도자기를 세계에 알리는 문화공간으로 거듭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쓴 전 문화재청장 유홍준(66)은 충남 부여군 외산면 반교리 청년회원이다. 집 ‘휴휴당’을 지어 놓고 ‘5도 2촌’ 생활을 하지만 유 전 청장 덕에 마을이 유명해졌다. 유 전 청장은 수년 전부터 서울에서 관람객을 이끌고 부여로 역사탐방을 온다. 정림사지 5층석탑 등 부여의 백제유적을 직접 미학적으로 설명해 인기가 높다. 유 전 청장과 역사탐방을 왔던 김용택 시인이 ‘껍데기는 가라’의 시인 신동엽 생가 등 부여 문학탐방을 하고, 민중화가 임옥상 등이 자신의 특기와 연관시켜 역사탐방에 나서면서 연쇄 효과를 낳고 있다. 이미영 부여문화원 팀장은 “이 때문에 백마강 유람선 이용객이 많이 늘었다고 선장이 말하더라”고 전했다. 논산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제천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정신질환 딸, 숨진 노모와 3개월 함께 생활

    정신질환 딸, 숨진 노모와 3개월 함께 생활

    숨진 엄마를 정성껏 돌보며 함께 생활한 여자의 사연이 언론에 소개돼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주의 하우레기에서 벌어진 일이다. 아나라고 이름만 알려진 여자는 80세가 넘은 노모와 단둘이 살아왔다. 노모는 약간 몸이 불편한 듯했지만 거동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길에서 마주치는 이웃들과도 언제나 웃는 얼굴로 인사를 나누는 등 대인관계도 원만했다. 하지만 약 언제부턴가 노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따금 길에서 딸과 마주칠 때면 이웃들은 노모의 안부를 물었다. 그때마다 딸은 "어머니가 잘 계신다."며 안부를 전하겠다고 했다. 이렇게 흐른 시간이 약 3개월. 이웃들은 "할머니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 "아무 일도 없다면 분명 가끔 나오실 텐데."라며 고개를 갸우뚱하기 시작했다. 이웃들이 경찰에 도움을 요청한 건 이런 이유에서였다. 한 주민은 "할머니에게 꼭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경찰이 할머니의 집 초인종을 누르자 여느 때처럼 딸은 반갑게 문을 열었다. "어머니는 잘 계시냐."고 묻자 딸은 밝은 얼굴로 "방에서 쉬고 계신다."고 답했다.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살짝 방을 들여다본 경찰은 깜짝 놀랐다. 이미 오래 전 숨이 끊어진 할머니의 시신은 침대에 누운 채 부패하고 있었다. 경찰은 "시신의 상태를 볼 때 할머니가 최소한 3개월 전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딸은 왜 사망한 노모의 시신을 침대에 모셔둔 것일까? 알고 보니 딸은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다. 엄마가 사망한 사실을 알지 못한 딸은 침대에 누워 있는 노모의 시신을 정성껏 닦아주며 함께 생활했다. 경찰은 "어머니는 숨을 거둔 지 이미 오래였지만 딸은 그런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면서 "안타까운 일이지만 여자는 누워 있는 엄마를 정성껏 돌본 효녀였다."고 말했다. 사진=디아리오우노 서울신문 나우뉴스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 “그 아픔 잘 알기에…” 범죄 피해자 보듬는 또 다른 피해자들

    “그 아픔 잘 알기에…” 범죄 피해자 보듬는 또 다른 피해자들

    “5년 전 그날 이후 집안이 완전히 결딴났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망가졌는데, 범인은 두 팔 흔들며 거리를 활보하고 다닐 걸 생각하면 정말 참을 수가 없어요.” 반백의 노모는 무표정한 얼굴로 환자복을 입고 휠체어에 앉은 딸 조모(51·지적장애 1급)씨 옆에서 하소연을 토해냈다. 이혼 후 세 자녀를 혼자 키우며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가던 조씨가 나락으로 떨어진 것은 2010년 9월의 어느 날 밤이었다. 여느 날처럼 식당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밤길에 괴한의 습격을 받고 머리를 크게 다쳤다. 피습 현장 주변의 폐쇄회로(CC)TV가 고장 나 있던 바람에 범인 검거에 끝내 실패했다. 조씨는 지난 5년을 가족들의 헌신으로 버텨 왔다. 언니(58)는 “식물인간에서 깨어나 이제는 간단한 의사 표현도 하고 휠체어에도 앉을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라고 말했다. 변변찮은 살림살이에 간병비로만 매월 100만원 이상이 들었다. 지금 살고 있는 서울 광진구 자양동의 반지하 집도 법무부의 주거 지원을 받아 마련했다. 이런 조씨의 가족이 추석을 앞두고 작은 선물을 받았다. 서울동부범죄피해자지원센터가 16일 김치냉장고와 쌀, 과일 등을 들고 범죄 피해자 가족들을 찾았다. 50여 가구에 3000만원어치의 지원품을 전달했다. 이지호 피해자지원센터 이사장은 “대부분 경제 사정도 좋지 않은데, 김치냉장고를 갖고 싶다는 요청이 많았다”고 전했다. 함께 방문한 박민표 서울동부지검장은 “가족들과 힘을 모아서 잘 지내는 게 중요하다. 저희도 다시 한 번 사건을 수사하겠다”며 피해자 가족들을 위로했다. 이날 지원은 피해자지원센터가 설립한 사회적기업 ‘스마일화원’의 수익금이 종잣돈이 됐다. 스마일화원의 종업원들은 모두 범죄 피해자 가족들이다. 범죄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경제적 자립을 목표로 2011년 출범했다. 사업 초기에는 적자를 면치 못했지만 2013년부터 수익을 내면서 매년 240만원을 범죄 피해자 지원에 쓰고 있다. 정재훈(31)씨는 아버지가 전 직장 동료에게 살해당한 아픔을 딛고 4년째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 정씨는 “나와 비슷한 아픔을 겪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라고 말했다.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 김무성 사위 집에서 나온 ‘17개 마약 주사기’ 미스터리

    2년여에 걸쳐 15차례 마약을 투약하고도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아 ‘봐주기’ 의혹이 일었던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사위 이모(38)씨 사건에 대해 부실수사 논란이 커지고 있다. 발단은 서울동부지검이 지난해 이씨의 집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주사기 17개를 누가 사용했느냐는 부분이다. 검찰은 이씨와 함께 수사선상에 올랐던 공범 5명을 주사기에서 채취한 DNA와 대조했지만, 일부 주사기의 경우 일치하는 인물을 찾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주사기 사용자의 신원을 모두 밝히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수사를 사실상 종결했다. 검찰 관계자는 13일 “주사기 17개 전부를 감정했지만 용의점을 둘 만한 사람들과 일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주사기의 사용 장소도 의혹을 키우고 있다. 이씨에 대한 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마약 투약 장소는 강남의 클럽과 지방 리조트, 본인 자동차 등 모두 집 밖이다. 판결문을 본 변호사는 “상습적으로 마약을 한 이씨가 자기 집에서는 하지 않았다는 것인데, 그럼 집에서 나온 17개의 주사기가 설명이 되지 않는다”며 “주사기 사용자들이 모두 밝혀지지 않았다는 건 이씨가 수사에 협조하지 않은 증거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씨가 범행을 인정하고 반성하고 있는 점을 고려해 양형 기준의 하한(징역 4년)을 이탈해 집행유예를 선고한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 10일 국회 법무부 국감장에서는 법무부가 이씨 사건 공범들의 마약 전과를 누락한 자료를 제출해 논란이 됐다. 법무부가 임내현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이씨와 함께 기소돼 각각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 벌금 1000만원을 선고받은 배모씨와 노모씨가 마약 전과가 없다고 기재됐다. 그러나 노씨는 2013년 8월 29일 대마 흡연으로 벌금 1000만원을 선고받았고 지난해에는 코카인, 엑스터시 등을 투약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배씨 역시 2014년 마약 혐의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전과가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두 사람 모두 이번 재판에서 문제가 된 범행 당시를 기준으로 했을 때는 확정된 전과가 없다는 의미”라고 해명했다.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한줄영상] 부자 탄 스노모빌 공격하는 화난 무스

    [한줄영상] 부자 탄 스노모빌 공격하는 화난 무스

    말코손바닥사슴인 무스(moose)가 스노모빌을 공격하는 영상이 무섭네요. 외국의 한 남성이 자신의 아들과 설원 위에서 스노모빌을 타고 달리다 무스와 맞닥뜨립니다. 남성은 위협을 하듯 소리를 내며 무스를 내쫓기 시작합니다. 몹시 화난 454kg에 달하는 거대 무스가 제 갈길을 가는 듯 하더니 발길을 돌려 스노모빌에 탄 남성을 두 발 들어 공격합니다. 한편 남성은 연이은 무스 공격에 4발의 경고사격으로 무스를 내쫓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영상= Whatsnew247 youtube 영상팀 seoultv@seoul.co.kr
  • [김경운 기자의 맛있는 스토리텔링1] 원조 평양냉면 맛을 지키고 있는 곳은?

    [김경운 기자의 맛있는 스토리텔링1] 원조 평양냉면 맛을 지키고 있는 곳은?

    고소한 메밀국수에 깊은 맛을 내는 찬 고기 육수를 부은 뒤 국수에 무 몇 조각을 얹어 먹는 평양냉면은 여름철에 빼놓을 수 없는 별미다. 보통 국수는 메밀과 전분 가루를 6대4 또는 5대5 등으로 섞어 부드러운 식감을 더했다. 육수는 쇠고기나 꿩고기를 쓰는데, 때론 닭 뼈 또는 돼지고기도 함께 넣어 더 깊은 맛을 우려내기도 한다. 평양냉면은 본래 평북 지방에선 그냥 냉면으로 불린다. 조선 시대부터 육수가 아닌 차가운 동치미 국물에 국수를 말아 한겨울에 먹었으니 차가운 냉면이라고 했을 것이다. 메밀에는 일부 유해 성분이 있기 때문에 해독 작용이 탁월한 무는 궁합이 꼭 맞는 고명이다. 냉면의 육수 맛은 짠맛, 신맛, 단맛, 쓴맛에 이어 이른바 5번째 맛이라고 하는 감칠맛이 중요한 요소이다. 이 구수한 맛은 L-글루타민산나트륨이 함유된 MSG 계열의 조미료로도 풍부하게 낼 수 있다. MSG 조미료를 넣지 않은 냉면을 전국적으로 수소문하는 방송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이 ‘화학조미료’를 넣지 않은 냉면집이 어딘가 있기는 하겠지만 왠지 우리가 아는 냉면 맛이 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냉면에는 인체에 해롭지 않은 소량의 MSG가 들어가야 한다. 겨울철 동치미 국물에 먹던 냉면이 여름철 육수 냉면으로 자연스럽게 바뀐 것은 한 일본인 덕분이었다. 1907년 도쿄대 교수는 다시마 등을 농축해 ‘우마미’(감칠맛)를 발견했다. 이를 화학 성분으로 처리해 최초의 화학조미료 ‘아지노모토’를 개발했다. 쇠고기, 다시마, 멸치 등을 넣고 몇 시간씩 푹 끓이지 않아도 되는 혁신적 발명이었다. 음식점 등에서 반응이 더 뜨거웠던 곳은 조선이었다. 일본인보다 국물 문화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특히 당시 한양에 있던 평양식 냉면집은 값싸고 편하게 육수를 만들 수 있던 아지노모토 조미료를 넣었고, 이 맛에 길들여진 식객들의 입소문을 통해 냉면집이 우후죽순처럼 생겼다. 냉면의 본고장인 평양에도 퍼졌다. 6·25전쟁 이후 서울에 다시 평양 냉면집이 하나둘 문을 열었다. 지금은 많은 평양냉면 전문점이 있지만, 역사성을 따져 분류하자면 3종으로 보인다. 을지로 충무로길의 ‘Y점’ 등은 냉면에 고춧가루를 살짝 넣는 게 묘한 특징이다. 필동 서애로의 ‘P점’도 Y점과 마찬가지로 돼지고기를 잘게 썰은 (제육)편육을 평양냉면 외의 대표 메뉴로 한다. 다른 하나는 장충동 장충단로의 ‘P점’과 마포 숭문길의 ‘Y점’을 꼽을 수 있다. 처음 먹어본 식객들에겐 너무 심심한 육수에다 만두가 특징이다. 나머지 한 맥은 중부시장 근처의 ‘W점’이다. 화려한 고명과 불고기, 누구나 좋아하는 맛을 특징으로 한다. 평양냉면이 서울식으로 진화해 최고 절정에 오른 맛이다. 그럼 왜 3종으로 분류된 것일까. 우선 충무로길 Y점 등은 평양 시내의 큰 음식점에서만 맛볼 수 있었던 냉면이다. 북쪽 지방에선 귀했던 고춧가루를 사용했고, 또 접대용으로 돼지 편육을 쓰기 때문이다. 쇠고기는 산세가 험한 북한에 거의 없었다. 따라서 실향민이나 탈북자들은 Y점 등에 가면 “북한 냉면에 가깝다”며 극찬한다. 두 번째 맛인 P점 등의 냉면은 부유한 양반 집에서 즐기던 맛이다. 일종의 가정식 냉면이어서 맛이나 모양이 그리 화려하지 않다. 특유한 맛을 좋아하는 식객들은 “중독성이 있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마지막 W점은 이 모두를 합쳐 외국인의 입맛까지 넘볼 수 있는 맛이다. 그런데 지금 평양에서도 서울과 똑같은 현상이 펼쳐지고 있다. 평양을 다녀온 지인들의 평가를 종합한 결과 북한 측이 남한 고위 인사들을 데려가거나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권하는 대동강변의 ‘옥류관’ 냉면 맛은 서울 중부시장 근처의 W점처럼 화려한 맛의 극치를 자랑한다. 고명에 쇠고기 수육도 쓴다. 보통강변의 ‘청류관’은 고명으로 빨간 김치나 심지어 고추장까지 등장한다. 청류관 냉면은 충무로길 Y점 등 냉면의 변형으로 여겨지는데, 결국 그 원형은 본고장을 떠난 Y점 등이 지키고 있는 셈이다.  <국수> 시인 백석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쩡하니 익은 동티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김경운 전문기자 kkwoon@seoul.co.kr
  • .004 남았다… MLB 3할 타자 강정호

    강정호(28·피츠버그)가 3할대 진입을 눈앞에 뒀다. 강정호는 13일 부시스타디움에서 벌어진 미프로야구 세인트루이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5번 타자, 유격수로 선발 출전해 3타수 2안타 1볼넷을 기록했다. 2안타 모두 에이스 마이클 와카를 상대로 빼냈다. 이로써 강정호는 지난 6일 시카고 컵스전부터 6경기 연속 안타 행진을 이어가며 4경기 만에 ‘멀티 히트’를 작성했다. 시즌 타율을 .293에서 .296으로 끌어올리며 3할 타율에 바짝 다가섰다. 하지만 내셔널리그 중부지구 2위 피츠버그는 선두 세인트루이스에 2-4로 져 승차는 7경기로 벌어졌다. 강정호는 이날 시원한 2루타로 출발했다. 첫 타석인 2회 1사에서 와카와 풀카운트 접전 끝에 8구째 직구를 밀어쳐 원바운드로 우중간 담장을 때리는 2루타를 터뜨렸다. 1-2로 뒤진 4회 무사 1루에서는 와카의 7구째 체인지업을 받아쳐 3루선상으로 흐르는 내야 안타를 만들었다. 이후 5회 볼넷을 얻었고 7회에는 3구 삼진으로 돌아섰다. 이날 추신수(33·텍사스)는 타깃필드에서 열린 미네소타와의 원정 경기에서 3타수 2안타 1볼넷으로 세 차례 출루했다. 10경기 만에 멀티 히트로 타율을 .237에서 .241로 높였다. 추신수가 타율 ‘2할 4푼대’에 오른 것은 지난 6월 19일 LA 다저스전 이후 무려 55일 만이다. 하지만 팀은 1-11로 대패했다. 한편 일본인 투수 이와쿠마 히사시(34·시애틀)는 이날 볼티모어와의 홈경기에서 9이닝 동안 3개의 볼넷만을 내주며 생애 첫 노히트노런(3-0 완봉승)을 일궜다. 노히트노런은 올 시즌 4번째이며 아시아 선수로는 일본인 노모 히데오의 두 차례에 이어 통산 3번째다. 김민수 선임기자 kimm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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