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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5억짜리 남산 산책로 4년만에 ‘누더기’

    15억짜리 남산 산책로 4년만에 ‘누더기’

    서울시의 대표적 도심 휴식처인 남산공원 산책길이 바닥에 깐 탄성포장재(우레탄)가 곳곳에서 뜯기고 갈라지면서 ‘누더기 산책로’를 방불케 하고 있다. 2009년 우레탄 산책로를 조성할 당시 친환경과 거리가 먼 전시 행정이라는 지적이 4년여 만에 현실로 나타난 셈이다. 현재 통화품질 개선을 명목으로 이를 전부 걷어내고 케이블 공사를 실시하고 있다. 서울시는 2009년 1월 15억원을 들여 남산순환로 남쪽에 길이 3.2㎞ 폭 2.1m의 우레탄 산책로를 완공했다. 서울신문이 20일 남산공원 산책로를 확인한 결과 서울 남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남쪽 전망대 순환로 곳곳에서 우레탄이 갈라지고 뜯겨 시커먼 아스팔트 노면을 그대로 노출시켰다. 순환로의 시작 지점인 남산도서관부터 오르막길 500m 구간은 아예 우레탄을 걷어내는 보수 공사가 한창이다. 관광버스가 지나가는 아스팔트 도로도 곳곳이 갈라지고 아스팔트가 벗겨져 하얀 콘크리트 바닥을 드러내는 등 훼손 정도가 심각했다. 오랜만에 남산 산책길을 찾았다는 이모(34·대학원생)씨는 “지나가는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부끄러울 지경”이라면서 “몇 해 전 서울시가 대대적으로 홍보한 것에 비하면 사후 관리가 엉망”이라고 꼬집었다. 서울시는 지난 6월부터 순환로 정비공사를 한다는 명목으로 자전거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우레탄 훼손은 지나가는 버스가 종종 우레탄이 깔린 인도를 침범해 지나가기 때문”이라면서 “도로와 인도 사이에 턱이 높은 경계석을 설치해 이를 방지할 것”이라고 해명했다. 또 우레탄을 걷어내는 공사에 대해서는 “남산에서 휴대전화가 잘 터지지 않는다는 민원이 들어와 한국전파기지국이 10억원을 들여 통화 품질 개선을 위한 케이블 공사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서울시 소관이 아님을 강조했다. 한국전파기지국 관계자는 “2009년부터 통화 품질이 좋지 않다는 민원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추진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남산공원 운영을 맡은 서울 중부공원녹지사업소는 지난해 6월 700만원을 들여 우레탄 보수 공사를 실시하기도 해 자체적으로 산책로 부실의 심각성을 인지해 왔음이 드러났다. 서울시가 친환경 산책로를 조성하는 데 우레탄을 사용하는 것이 적합하냐는 지적도 제기됐다. 서울시는 2007년부터 2011년까지 343억원을 들여 놀이터와 공원 산책로 등에 828건의 우레탄 포장 공사를 해왔다. 하지만 서울시 감사실은 지난해 9월 자체 감사를 통해 2011년 이후 시행한 공사 현장 144곳 가운데 96.5%인 139곳에 사용된 우레탄이 품질 기준에 못 미친다고 지적했다. 안건혁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는 “친환경 산책길을 만들면서 자연 그대로가 아닌 인공소재인 우레탄으로 포장할 이유가 없다”면서 “무엇보다 시각적으로 눈에 띄기 좋아 성과가 바로 나타난다는 점을 노린 전시성 행정”이라고 비판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⑧ 1950~60년대 : 파괴와 재건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⑧ 1950~60년대 : 파괴와 재건

    “도시는 기억으로 살아간다”(The city lives by remembering)고 미국의 시인 랠프 왈도 에머슨은 읊었지만, 서울은 600년 고도의 기억이 별로 없다. 마치 신흥도시 같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통에 불타고 약탈당했으며, 일제강점기 도읍에 대한 자취는 강제적으로 지워졌다. 조선총독부-경성시청-남산 조선 신궁을 상징 축선으로 하는 식민 도시로 치장됐다. 한국 전쟁통에 그나마 남은 것 대부분이 파괴됐다. 1960년대 이후 개발독재시대의 무지막지한 개발 광풍을 타고 또 한 번 뭉개졌다. 역사의 향기는 흩어졌다. 한강 이남으로 영역을 확대한 서울은 사실상 한국전쟁 이후 새로 건설된 신도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대문 안에는 표지석만 어지럽게 남았을 뿐이다. 전쟁과 대사건은 도시를 재건한다. 한국전쟁 당시 서울 폭격을 앞둔 맥아더는 “원래 도시란 천재지변이나 전쟁을 겪고 나면 그전에 비해 몇 곱절 더 크고 좋은 새 도시로 부흥된다. 미국이 재건을 도울 것이니 서울은 앞으로 이상적인 현대 도시로 탈바꿈할 것”이라고 큰소리쳤다. 실제 1644년 대화재로 도시의 80%가 타 버린 영국 런던은 옥스퍼드대 건축가 크리스토퍼 렌 교수에 의해 오늘의 런던으로 재건됐다. 일본 도쿄도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잿더미가 됐지만 탁월한 도시계획가 고토 신페이(後藤新平) 도쿄시장의 주도로 세계 도시계획 사상 유례가 없는 시가지 개조를 통해 새로 태어났다. 런던과 도쿄는 세계대전으로 또 한 번 타격을 입었지만, 옛 도시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서울의 재건은 성공작일까? 서울을 역동적인 현대 도시로 평가할 수는 있지만, 역사 도시로 평가하기엔 머쓱하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서울이라는 도시의 정체성은 꽤 혼란스럽다. 서울은 네 번 결정적인 상처를 입었다. 16세기 일본과 중국 군대에 의해 약탈당했으며, 근대 일제강점기엔 성곽을 허물고, 상징 축을 강제로 바꾸는 방법으로 도시 형태가 조작됐다. 한국전쟁기 유엔군과 한국군의 청야(淸野)작전(적이 이용하지 못하도록 농작물이나 건물 등 지상에 있는 것들을 말끔히 없애는 작전)을 통해 철저하게 파괴됐다. 1960~70년대 우리 손으로 남은 문화재를 헐어서 치워 버렸다. 맥아더의 말처럼 기회는 있었다. 1952년 전후 복구 차원의 첫 도시계획안을 마련하면서 세종로 등 39개의 큰길을 확장하거나 신설하고, 광화문광장·서울시청광장·남대문광장 등 19개의 광장을 만드는 과감한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재정부족 등을 이유로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유럽의 오래된 도시처럼 구도심(사대문 안)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사대문 밖이나 강남 신시가지를 개발하겠다는 코페르니쿠스적인 발상의 전환이 없었다. 한국전쟁 이후 ‘광적’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서울 집중이 기회를 날려 버렸다. 집중을 막으려고 온갖 정책을 동원했지만 약효가 듣지 않았다. 해방 전후 100만명대였던 서울 인구는 1966년 380만명, 1970년 540만명을 넘어서더니 1990년 1000만명을 돌파해 버렸다. 수도 서울 행정은 집 지을 땅을 확보하고, 도로를 넓히고, 교통수단을 늘리고, 수돗물을 공급하고, 쓰레기를 치우는 것에 매달렸다. 만약 그때 인구의 서울 집중을 막을 수 있었더라면 서울은 한가롭게 전차가 다니며, 꼬불꼬불한 골목길이 정겨운 기와집이 빼곡한 도시로 남았을 것이다. 한강과 북한산이 주는 자연의 세례를 맘껏 누리는, 풍광이 뛰어난 성곽 도시로 유지됐을 것이다. 1950년대 서울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손정목 전 시립대 교수의 ‘서울도시계획이야기’를 기본으로 사대문 밖 풍경을 상상해 보자. 동쪽으로 동대문을 나서면 신설동 큰 길가까지 집이 들어 차 있지만, 바깥은 논밭 천지다. 신당동에 집이 드문드문했을 뿐 금호동·옥수동 일대는 산이었다. 왕십리를 지나 한양대 일대는 미나리꽝이었고 성동교의 나무다리가 삐꺽거렸다. 남쪽 한강대교에 이르는 동빙고동과 서빙고동 주민은 1000명 안팎이었고, 원효로 일대는 대부분 논밭이었다. 노량진, 상도동, 대방동, 영등포는 큰 길가조차 목가적인 전원 풍경을 연출했다. 서쪽으로 신촌을 지나 마포 전차 종점을 벗어나면 벌거숭이 산과 논밭이 펼쳐졌다. 동북쪽은 미아리고개, 서북쪽은 독립문과 현저동이 경계였다. 지금의 강남·서초·송파·강동·강서·관악·구로·금천·도봉·노원·은평구 등은 모두 경기도였다. 서울의 고층 건물은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최고층 건물은 지금의 롯데호텔 자리에 있던 8층짜리 반도호텔이었다. 이웃 조선호텔과 한국은행 모두 일제가 남긴 건물이었다. 1955년에 종로 사거리에 2층짜리 신신백화점이 신축됐고, 1957년 광화문 사거리와 을지로 1가에 3층짜리 국제극장과 5층짜리 개풍빌딩이 각각 들어섰다. 1958년 남대문에 7층짜리 그랜드호텔이 문을 열자 구경 인파가 몰렸다. 당시 서울 도심부의 평균 층 높이는 2층이 채 되지 않았다. 도심부를 고층화하려고 주요 간선도로변의 건물 높이를 3~5층 이상으로 정할 정도였다. ‘한강의 기적’은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된 1962년부터 약 20년간의 고도성장기를 일컫는다. 이 기간 서울은 경천동지할 변화를 겪는다. 서울의 공간 변화는 1966년부터 1980년까지 15년간 거의 이뤄졌다. 주택지·도로·상하수도·지하철 등 현대 서울의 하부구조가 이때 거의 갖춰졌다. 박정희 대통령이라는 절대권력자의 ‘분부’를 이행한 김현옥·양택식·구자춘이라는 3명의 ‘충복’ 서울시장이 재직한 기간과 일치한다. 서울의 얼개는 박 대통령의 구상과 지시에 의해 거의 결정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66년 서울도시기본계획안이 세워졌다. 서울의 균형 발전을 꾀하려고 사대문 안에 집중된 입법·사법·행정부의 기능을 분산시키려는 계획이 눈에 띈다. 입법부는 남서울(강남·서초구), 사법부는 영등포, 행정부는 용산 일대, 세종로 지역은 대통령 관저 및 직속기관 배치 지역으로 정했다. 지금 와서 보면 입법부와 사법부의 입지가 맞교환됐고, 서울시청이 용산으로 옮겨가지 못한 것을 알 수 있다. 교통계획을 보면 서울역~청량리(1호선), 서소문~을지로~성동(2호선), 갈현동~종로2가~을지로2가~퇴계로~천호동(3호선), 우이동~종로4가~퇴계로~말죽거리(4호선) 등의 지하철 4개 노선 건설계획이 잡혀 있다. 10년 뒤 구자춘 시장에 의해 2호선이 을지로와 영등포~영동을 잇는 순환선으로 변경되는 등 엄청난 노선 변화가 일어났지만, 지하철 4개 노선에 대한 기본 구상이었다. 이 밖에 4개 순환선과 14개 방사선을 간선도로망으로 7개의 고속도로를 건설한다는 계획과 노면 전차는 철거하고 광화문 사거리와 시청 앞 광장에는 지하차도를 만들고, 시청 앞 광장 지하는 지하도시화한다는 계획도 포함돼 있다. 도심 재개발과 강남·송파 등 남서울개발, 뚝섬·창동·망우 등 동서울개발, 불광·성산·김포·시흥지구의 서서울개발 등 신시가지개발 계획이 들어 있다. 1년 예산이 170억원에 불과한 서울시가 20년 앞을 내다보고 인구 500만명을 예상해 3235억원의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한다는 야심 찬 계획이었다. 언론으로부터 ‘즉흥계획’ ‘실현성 없는 독단’ ‘재무계획 없는 무지개’ 등등 융단폭격을 맞았다. 그러나 격변의 15년 중 7년을 서울시 도시계획국장, 기획관리실장 등을 지내며 계획을 수립하고 집행한 손정목 전 교수는 “꿈도 환상도 아니었다. 최초의 기본계획이었다는 점, 도심부 재개발이니 고도지구, 미관지구 개념이 도입돼 일반에 공개됐다는 점, 70~80년대 전국 모든 도시가 수립한 도시계획의 모델이 됐다는 점 등에서 의미가 있다”고 회고했다. 불완전하나마 서울시 장기계획의 틀이 된 것이 사실이다. 일제 말기인 1940년부터 1965년까지 서울은 잠자는 도시였다. 1937년 중·일 전쟁과 1941년 태평양전쟁이 터져 건축자재를 구할 수 없었고, 한국전쟁이 이어지면서 건축 행위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부분 건물이 목조건물 수명 30년을 다한 상태였다. 장충동, 신당동 일대와 남대문로, 충무로, 을지로 등 일본인 주거지에 정원이 딸린 일본식 저택과 주택이 밀집해 있었다. 가회동·명륜동·동숭동·북아현동 일대에는 한옥촌이 빼곡하게 형성돼 있었다. 마포, 왕십리, 동대문을 벗어난 지역은 논밭이었다. 사대문 안과 독립문, 신촌, 신설동, 돈암동, 신당동, 용산이 서울의 전부였다. 노면 전차 노선을 기준으로 보면 동쪽으로 청량리·왕십리, 남쪽으로 노량진·신길동·영등포, 서쪽으로 마포·신촌, 서북쪽으로 독립문, 동북쪽으로 돈암동 전차 종점까지가 서울이었다. 지방에서 무작정 상경한 사람들의 주거인 무허가 판잣집이 도심에서 가까운 하천변이나 산비탈을 차지했다. 1966년 당시 13만여채의 판잣집이 서울 곳곳에 달동네를 이루고 있었다. 서울은 개발행 특급 열차가 출발하기 직전의 폭풍전야였다. joo@seoul.co.kr
  • 서울 경전철 9개 노선 2025년까지 건설

    서울 경전철 9개 노선 2025년까지 건설

    서울의 경전철 사업이 재추진된다. 요금은 지하철과 똑같은 1050원이다. 서울시는 24일 9개 노선, 총연장 85.41㎞의 경전철을 내년부터 2025년까지 8조 5533억원을 조달해 단계적으로 추진한다는 내용의 ‘서울시 도시철도 종합발전방안’을 확정, 발표했다. 전임 오세훈 시장 시절이던 2007년 마련된 ‘10개년 도시철도 기본계획’에서 정해진 7개 노선을 수정하고, 위례신도시 건설에 따른 2개 노선을 추가하는 방식이다. 여기에다 지하철 9호선 3.8㎞ 연장(보훈병원~고덕강일1지구) 방안까지 담았다. 이번에 확정된 9개 노선은 ▲신림선(여의도~서울대앞) ▲동북선(왕십리역~상계역) ▲면목선(청량리~신내동) ▲서부선(새절~서울대입구역) ▲우이~신설 연장선(우이동~방학동) ▲목동선(신월동~당산역) ▲난곡선(보라매공원~난향동) 등 7개 노선에다 ▲위례~신사선(위례신도시~신사역) ▲위례선(복정역~마천역) 등 2개 노선이다. 이 가운데 위례선은 해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트램(Tram·노면전차)으로 만들어진다. 2007년 기본계획과 크게 차이가 나는 부분은 ▲신림선을 여의도에서 서부선과 연결 ▲서부선에서 장승배기~서울대입구역 구간 연장 ▲상암 DMC선 제외 ▲난곡선 추가 등이다. 이날 발표에 나선 박원순 시장은 재정부담을 이유로 난색을 표했던 경전철 사업을 왜 다시 추진하는가에 대해 집중적으로 설명했다. 박 시장은 “왜 하필 경전철이냐, 과도한 수요예측을 통한 부실덩어리가 되는 것 아니냐는 부분에 대한 우려가 가장 컸다”면서 “그럼에도 대중교통 취약지역의 단거리 구간에 빨리 부설할 수 있는 것으로는 경전철이 가장 효율적이고, 또 수요예측을 민간예측의 60~70% 수준으로 낮춰서 보수적으로 재검토해 봐도 1일 1㎞당 1만명 이상이 이용하는 것으로 나오기 때문에 경제성이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강조했다. 동시에 경전철 요금도 1050원으로 기존 지하철 요금과 동일하게 책정하기로 했다. 오 전 시장 때는 차등요금 얘기가 나왔었다. 박 시장은 “교통 소외 지역에다 짓는 것인데 요금을 더 내라고 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경전철 사업비 8조 5533억원은 국비 1조 1723억원, 시비 3조 550억원, 민간사업비 3조 9494억원 등으로 충당한다. 보전금 부담도 만만찮다. 서울시는 연간 300억~500억원의 보전금을 부담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윤준병 도시교통본부장은 “중기재정예산을 헤아려 10년간의 장기계획을 잡았기 때문에 한 해 소요 예산이 5000억원 수준으로 기존의 4700억원에서 300억원 정도 더 드는 방향으로 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반대로 사업 전체가 탄력받기는 어려운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민간사업자가 사업비의 절반을 대는 구조인데 수익을 확보할 방안은 마땅치 않고 사업기간은 길다는 것이다. 그런 측면이 있지만 서울시는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투자처라는 점에서 여전히 매력적인 사업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한편 서울시는 도심, 강남, 여의도를 삼각형으로 연결할 수 있는 ▲신분당선 서북부 연장(동빙고~삼송) ▲남부급행철도(당아래~잠실) ▲KTX동북부 연장(수서~의정부) 등 광역철도 3개 노선 건설도 정부에 건의하기로 했다.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서울광장] 포퓰러리즘이 불러낸 저주의 레퀴엠/진경호 논설위원

    [서울광장] 포퓰러리즘이 불러낸 저주의 레퀴엠/진경호 논설위원

    다시 저주의 계절이다. 10년 전 노무현 대통령을 ‘개구리’라 부르고, 5년 전 이명박 대통령을 ‘쥐박이’로 부르던 저주의 레퀴엠이 이번엔 ‘귀태(鬼胎)의 후손’으로 돌아왔다. 정권을 잃은, 정권을 되찾지 못한 패자의 상실감은 지난 10년 늘 이렇듯 어김없이 이런저런 구실을 제단에 올린 저주의 굿판을 펼쳐 냈다. “미국이 없었으면 난 북한 정치범 수용소에 있었을 것”과 같은 노 대통령의 정제되지 않은 말들이 2003년 여름 울고 싶은 이들의 뺨을 때렸다. 반노(反) 세력들은 금세 ‘노무현과 개구리의 공통점 다섯 가지’를 만들어 냈고, 한나라당 고위 당직자들은 이 패러디로 아침회의 상을 차리고 키득거렸다. 5년 뒤 여름엔 이 대통령이 미국의 광우병 소고기를 국민 식탁에 올리려 한다는 논란이 서울광장을 삽시간에 촛불로 덮어 버렸다. 대선 전 ‘2MB’ ‘땅박이’였던 이 대통령은 ‘쥐박이’가 됐다. 인터넷에선 ‘이 대통령’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만으로도 말을 섞을 수 없는 ‘수꼴’(수구꼴통)이 됐다. 반미 사대주의 발언이든, 광우병 소고기든, 그 공방의 소재와 경중이 어떠하든 에누리 없는 대선의 승패는 늘 이렇게 반 년도 못 가 우리를 앓게 했다. ‘귀태’라는, 나름 공 들여 꺼냈을 괴이한 저주에 도리어 제 발이 걸려 넘어진 친노(親) 성향의 민주당 초선 의원 홍익표의 경우는 치기 어린 초보 운전자의 과속 사고쯤으로 넘길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초보 운전자를 제 멋대로 내달리다 미끄러지게 만든 노면(面), 내 편 아니면 네 편밖에 없는 강퍅한 정치적 양극화와 그 속에 담긴 적의(敵意), 그리고 더 자극적인 선동으로 적을 공격하지 못해 안달하는 척박한 정치 토양은 이 나라 정치에 대한 불안한 시선을 거두지 못하게 한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사이버 시대의 포퓰러리즘(popularism)이 오늘날의 절대 이데올로기로 자리 잡고 있다고 개탄한 바 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가 정치인들을 경조부박(輕?浮薄)의 포퓰러리스트로 만들어 버리고 있다고 질타했다. 정치인들로 하여금 SNS에 몇 자 끄적여 그 반응을 살피게 하고, 대중을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대중에 끌려가도록 하고 있다고 했다. ‘삐삐’, 즉 페이저도 없던 시절 정치를 시작해 산전수전 다 겪은 여야 중진들마저 하루에도 너댓 건씩 끄적이며 SNS를 끼고 사는 걸 보면 사이버 중독은 청소년들만의 문제가 아닌 게다. 정치에 관한 한 진작 진영네트워크서비스(CNS·Camp Network Service)나 사회편가르기서비스(SSS·Social Separation Service)로 이름을 바꿨어야 할 SNS에 그 책임을 물을 수 없다면, 답은 하나다. 팔로잉(following)만 알지 리딩(leading)은 모르는, 눈앞의 시류에 얹혀 갈 줄만 알지 시대를 끌고 갈 줄은 모르는 여의도의 포퓰러리스트들이 유죄다. 포퓰러리즘의 정점을 본다. 한 줌의 극렬 지지자, 팬덤에 빌붙은 포퓰러리스트들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헤집기 시작했다. 뭘 보고, 뭘 말할 것인가. 노무현은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사수했다고 새누리당이 말할 것인가. 아니라고, 그가 NLL을 포기하려 했다고 민주당이 말할 것인가. 뻔한 결론을 놓고 무슨 쇼를 하고 있는가. 그 곁에서 펼쳐지고 있는 막말의 경연은 또 뭔가. 그런 막말로 뭘 얻을 셈인가. 저 너머 어느 나라 정치가 어떻다고 말할 것도 없다. 사색당쟁으로 나라의 쇠망을 자초한 조선 중후기 선조들조차도 조탁(彫琢)의 시로 싸웠다. 각(角)을 세웠으나 격(格)을 놓지 않았다. 전직 총리까지 뛰어든 저주의 굿판, 바닥을 훤히 드러낸 포퓰러리즘이 슬프다. 당장 트위터를 끄고 페이스북을 닫으라. 액정화면 위에서 필부(匹夫)처럼 재잘대지 말고, 마이크를 잡고 맑은 소리로 시대의 담론을 말하라. 당당하게 정치하라. jade@seoul.co.kr
  • 수원 친환경 노면전차 건설 속도 올린다

    수원 친환경 노면전차 건설 속도 올린다

    노면전차 도입을 위한 수원시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염태영 수원시장은 15일 “현재 수원역에 집중된 심각한 교통 문제를 해소하고 새로운 교통 체계를 확보하기 위해 2017년 운행을 목표로 무가선 노면전차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염 시장은 “오는 9월 수원 행궁동에서 자치단체국제환경협의회(ICLEI) 및 유엔 인간주거계획(HABITAT) 등의 국제기구와 공동으로 ‘생태 교통 페스티벌 2013’을 개최할 예정이어서 이후 노면전차를 개통하면 수원은 친환경 교통 문화의 중심지로 발돋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노면전차 노선은 수원역~화성행궁~장안문~수원야구장~장안구청 간 6.049㎞에 건설된다. 노면전차는 최신형 ‘무가선 트램’으로 버스 중앙차로처럼 기존 도로 위에 궤도를 설치해 3~5량을 동시에 운행한다. 전기로 움직여 매연이 없고 진동과 소음이 적다. 유럽 등 전 세계 150여개 도시 400개 노선이 운행 중이다. 건설비는 총 1677억원이 투입되며 60%인 997억여원은 국비로, 2%인 33억여원은 도비에서 부담하고 시는 647억여원을 투자한다. 수원시의 노면전차 사업은 지난 1월 기획재정부의 예비타당성 조사 대상 사업으로 선정돼 다음 달까지 조사가 이뤄진다. 시는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시는 예비타당성 조사가 끝나는 대로 기본 계획을 수립한 후 2015년 공사에 들어가 2017년 완공할 계획이다. 박래헌 수원시 교통행정과장은 “노면전차가 운행되면 하루 33만명이 이용하는 국철 1호선 수원역 및 분당선, 수인선 등과도 연결돼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분당선은 2013년, 수인선은 2015년에 모든 구간이 개통하는 등 수도권 남부 순환 철도망 구축으로 노면전차와 연계되는 환승 수요가 매우 클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수원역과 수원 화성 구간을 운행하는 50~60여개의 버스 노선을 노면전차가 대체하고 다른 버스 노선과의 연계·환승 운행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임삼진 한국철도협회 부회장은 “대중교통의 녹색화와 고급화, 시민의 교통권 증진, 비용 절감 등의 측면에서 볼 때 노면전차를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특히 경전철과 비교할 때 도심 경관을 해치지 않을 뿐 아니라 관광 자원으로 활용할 수도 있어 교통수단 이상의 가치를 창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⑤광화문광장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⑤광화문광장

    >>광화문의 어제:육조거리의 부활을 기다리며 조선시대 국가의례·행사 열린 정치·행정·문화의 중심광장 세종로는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심장에 해당하는 국가 중심도로다. 시대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조선시대 사료에는 육조대로, 주작대로라는 이름이 기록돼 있다. 주요 행정관청인 이조, 호조, 예조, 병조, 형조, 공조 등 6개 관청이 있는 거리라는 뜻에서 육조(六曹)거리라고 불린 듯하다. 흔히 어가(御街)라고 지칭됐으며 일반인들은 육조거리, 육조 앞, 해태 앞이라는 지명을 주로 썼다. 관청가인 육조대로가 세종로의 본디 이름인 셈이다.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을 중심으로 의정부와 삼군부, 육조, 한성부, 사헌부 등 주요 관청이 좌우로 길게 늘어서 있었다. 육조거리에는 광장의 개념까지 포함됐다. 국가의례나 문화행사가 열리는 정치·행정·문화의 중심 광장이었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보기 어려운 폭 58m, 길이 200m의 큰길이었다. 노면이 고르고 배수가 잘 됐으며 바람이 불어도 먼지가 날리지 않는 멋진 길이었다. 중국, 일본의 사신이나 개항 이후 방문한 백인 외교관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다. 조선팔도고금총람도, 수선전도, 조선경성도 등을 보면 육조거리의 관아는 위계에 따라 배치됐다. 의정부가 광화문 왼쪽 맨 앞자리인 현재의 광화문 열린 광장 자리에 있었고 이조, 한성부, 호조가 뒤를 이었다. 반대쪽 정부서울청사 쪽에는 삼군부, 예조, 사헌부, 병조, 형조, 공조가 차례로 터를 잡았다. 서울역사문화연구소 이상협 소장의 논문 ‘조선시대 육조거리에 대한 고찰’을 보면 의정부와 예조 등 모든 관아가 육조거리에 직각 방향으로 있으며 육조거리의 공간 구성과 관아 배치는 경복궁에서 임금과 신하가 한자리에 있는 공간 구성의 틀과 일치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건물 조성 당시의 배치 구조와 규모를 확인할 수 있는 건물이 한 채도 남아 있지 않은 것이 아쉽다. 다만 1900년대 전후에 촬영한 사진과 관아 그림 등으로 유추해 볼 때 양쪽의 긴 담장이 도로를 따라 이어져 있었다. 긴 행랑 때문에 육조를 흔히 육조장랑(六曹長廊)이라고도 지칭할 정도였다. 일제는 조선의 행정관청인 육조라는 명칭을 소멸시킬 목적으로 거리 이름을 광화문통으로 바꿨다. 육조장랑은 뜯겨 나갔고 그 이름을 사용하는 것은 금기시됐다. 1926년 경복궁 근정전 앞에 총독부 신청사를 짓자마자 앞을 가리는 광화문을 해체해 건춘문 옆으로 옮겨 버리고 나서는 총독부 광장이라고 호칭했다. 어용 군중집회가 주로 이곳에서 열렸다. 미 군정기에는 군정청이 입주하면서 군정청 광장이라고 불렸다. 정부 수립 기념식이 개최됐다. 해방을 맞았지만, 육조거리로 복권되지 못하고 세종로라는 이름이 붙여져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나 우리는 이 거리를 광화문이나 광화문광장이라고 즐겨 부른다. 세종로라는 작위적 지명보다 현존 구조물인 광화문이 더 친숙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게다가 세 번이나 옮겨지고, 두 번이나 불탄 광화문 수난사가 마음속에 새겨진 탓인지도 모른다. 이름 하나가 역사적 사고를 지배하기도 한다. 1946년 해방 직후 구성된 지명위원회는 국가 중심가로의 역사성을 간과했다. 일제가 붙인 광화문통을 세종로로 바꾸는 데 급급했다. 육조대로라는 지명을 원상회복할 기회를 놓쳤다. 세종로가 100m의 도로폭을 갖게 된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맥아더의 호언장담처럼 종전 후 서울도 이상적인 도시계획의 기회를 잡았다. 1945년부터 1956년까지 11년 동안 서울시 도시계획과장을 맡은 한국인 1호 도시계획가 장훈씨가 1952년 고시된 최초의 서울 도시계획에서 광화문사거리~중앙청까지 500m 길이 도로의 폭을 기존 53m에서 100m로 확장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폭 12m에 길이 2750m이던 청계천을 폭 50m의 도로 부지로 확장해 오늘의 청계천을 있게 했다. 광화문광장, 시청 앞 광장, 숭례문광장 등 주요 광장 부지도 확보했다. 대담한 도시계획에 맞춰 건물과 토지를 매수하고 수용해야 했지만 서울시의 재정 형편은 말이 아니었다. 내버려둘 수도 없고 매수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민원이 빗발치자 가건축 허가를 내줘 가건물을 짓도록 했다. 도로 확장은 1966~1979년 계획대로 실행했지만, 광장 부지는 확보하지 못했다. 손정목 전 서울시립대 명예교수는 “세종로사거리를 기점으로 반지름 150m의 광장이 계획대로 실현됐다면 현재의 동아일보 사옥과 광화문 우체국, 교보빌딩과 KT빌딩은 들어서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1962년 건설부고시에 따라 광화문광장계획선은 반으로 쪼그라들었다. 그러나 세종로와 태평로를 연결하는 광장계획선 안에 일부 건물이 건재하다. >>광화문의 오늘:주요 건물의 부침사 정부서울청사 옛 삼군부·예조 자리에… 개인건물은 4채뿐 광화문을 중심으로 왼쪽에 광화문시민열린마당·대한민국역사박물관·주한미국대사관·KT빌딩·교보빌딩·비각이 차례로 서 있다. 오른쪽으로는 정부서울청사와 별관·세종로공원·세종문화회관·삼보빌딩·현대해상화재·세광빌딩 등이 자리 잡았다. 폭 100m, 길이 500m의 광장구조 거리에 공공건물 5채와 대기업 건물 3채, 개인건물 4채, 문화재 1개, 공원 2곳뿐인 쾌적한 구조다. 해방 이후 육조거리를 복원하지 않은 탓에 건물들의 격렬한 부침(浮沈)이 이곳에서 벌어졌다. 세종로를 폭 100m로 확장하는 과정에서 많은 건물이 헐렸다. 먼저 1967년 의정부 자리를 꿰차고 있던 경기도청과 국제전신전화국 일부가 철거됐다. ‘서울 한복판에 웬 경기도청’이냐고 하겠지만, 옛 경기도청은 행정구역 개편을 통해 경성부(서울)를 경기도의 일개 지방도시화한 일제가 의정부를 헐어 내고 지은 건물이었다. 조선이라는 나라를 기억에서 지우기 위한 식민통치의 음모였다. 한 때 치안본부 등으로 쓰였다. 정부는 이 자리에 정부 제2종합청사를 지으려고 계획을 세웠지만 1995년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에 고무된 이원종 당시 서울시장이 ‘국가 중심가로 구상안’을 김영삼 대통령에게 보고하면서 백지화됐다. 서울시는 이 부지를 정부로부터 매입해 광화문 시민열린 마당을 조성했다. 부지를 지킨 것은 잘한 일이지만 명칭을 의정부 광장이나 육조마당, 육조광장으로 붙이지 못한 것은 두고두고 질책받을 일이다. 서울의 면모를 일신한다는 방침에 따라 대대적인 도시 개조 사업이 벌어졌다. 이른바 ‘서울재건’이라는 이름 아래 정부가 외국 원조 자본을 끌어들이거나 민간 자본이 속속 건물을 지었다. 1961년 10월 완공된 현재의 대한민국역사박물관과 주한 미국대사관은 쌍둥이 건물이다. 역사박물관은 이조, 미국대사관은 한성부 터다. 이 건물은 미국대외경제원조처(USOM)가 500만 달러의 원조자금을 대고 필리핀에 건축을 의뢰해 지어졌다. 정부청사용 건물을 짓고도 280만 달러가 남자 건물을 한 채 더 지었는데 여기에 대사관이 입주한 것이다. 역사박물관 건물은 5·16 이후 국가재건최고위원회 건물로 사용됐다. 경제기획원과 재무부 청사로 쓰이다가 문화공보부, 문화체육부, 문화체육관광부를 거쳐 지난해 448억원의 예산을 들여 역사박물관으로 리모델링했다. 전시 내용과 건물의 구조 등이 박물관으로 맞지 않는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KT 광화문 빌딩은 1981년 국제전신전화국 자리에 세워졌고 체신부와 함께 입주했다. 이후 잦은 정부 조직 개편으로 소관 부처가 체신부, 정보통신부, 방송통신위원회로 바뀔 때마다 간판을 변경했다. 1998년 한국전기통신공사가 체신청으로부터 분리, 공사가 된 이후 2002년 민영화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개관 당시 체신부가 갖고 있던 이 건물의 12~14층까지 3개 층의 소유권도 방통위에서 기획재정부로 넘어갔다. 교보빌딩은 호불호가 엇갈리는 대표적인 건물이다. 건축가 등 전문가 그룹은 ‘짝퉁’ 건물이라고 깎아내리고, 일반인들은 건물 외관의 대형 걸개 글판과 시내 한복판 책방인 교보문고의 존재를 달가워한다. 왜 그렇까? 이 건물의 정체성 때문이다. 일본 도쿄 주일미국대사관 건물의 디자인을 빼닮았다는 이유다. 미국 건축가 시저 펠리에게 같은 건물을 지어 달라고 부탁했고 이 디자인을 교보의 전국 지사 건물로 복제했다. 최근 한 건축 잡지는 해방 이후 최악의 건물 리스트에 올렸다. 층수와 용도를 둘러싸고 뒤탈도 많았다. 설계 당시 40층을 계획했지만 23층에 그쳤다. 완공 단계에서 정부청사보다 낮은 17층 이하로 지으라고 행정 당국이 종용하자 당시 신용호 회장은 박정희 대통령에게 “완공 단계의 건물을 자르라면…. 내가 광화문 복판에서 배를 자르겠다”는 격한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또 용도를 호텔로 변경하라고 권하자 “정부청사 앞에 술과 밥을 파는 숙박업소를 짓는다는 것은 나라 체면을 먹칠하는 것”이라고 거절한 사연도 자서전에 남아 있다. 교보빌딩은 2009년부터 2년 동안 건물의 뼈대만 남겨 두고 건물 옆면 일본식 다다미 모양을 유리로 교체하는 등 리모델링했다. 짝퉁 논란에서 벗어날지 두고 볼 일이다. 정부서울청사는 1970년 옛 삼군부와 예조 자리에 들어섰고, 별관인 외교부청사는 2002년 옛 교통방송국 터에 자리 잡았다. 1966년에 정부서울청사 자리에 있던 서울전신저금보험관리국, 경찰기동대 순찰반이 헐렸고, 지금의 세종문화회관인 시민회관 자리에 있던 종로보건소와 광화문전화국이 철거됐다. 시민회관은 이승만 대통령의 아호를 따 우남회관으로 지어졌지만 4·19혁명 이후 시민회관으로 이름을 바꿔 1961년 개관했다. 1972년 불타 버리는 바람에 1978년 현재의 모습으로 신축했다. 세종문화회관 옆 17층짜리 현대해상화재빌딩은 현대그룹의 성장사를 상징하는 건물이다. 1976년 현대건설 본사로 지어져 1983년 현대건설이 계동으로 옮겨 가기 전까지 현대그룹 본사 건물이었다. 고 정주영 회장은 중동특수를 누린 이 건물에 애착이 강했다. 1992년 대선에 출마하면서 국민당 당사로 썼다. 현대해상은 그룹 계열에서 분리되기 직전인 1999년 이 건물을 현대건설로부터 인수했고, 2004년 대대적으로 개보수했다. 대한민국 심장부에 빌딩을 보유하고 있는 회사는 KT와 교보, 현대해상화재뿐이다. 그보다 엄청난 격랑을 헤치고 최고의 요지에 끝까지 살아남은 개인 빌딩 4채의 존재감이 더 빛난다. joo@seoul.co.kr
  • [우리 아이 교통안전, 우리 區가 지킨다] 양천구 스쿨존 환경대책반 어린이 교통사고 ‘0’ 도전

    양천구는 지역 내 30개 초등학교의 학교별 특성에 맞는 교통안전대책을 운영한다고 1일 밝혔다. 구는 건설교통국장을 중심으로 교통개선팀과 주차단속팀, 가로환경팀, 도로개선팀, 현장행정팀을 활용하는 ‘학교주변 교통체계 개선 대책반’을 꾸렸다. 대책반은 양천경찰서, 동주민센터 등과 함께 학교 주변에서 우려되는 교통사고와 보행 장애 원인 등 문제점을 분석하고 개선책을 마련한다. 지난달 교통안전 시범 학교로 지정된 양화초등학교 통학로 현장 조사를 실시하는 한편 학교의 건의사항 등을 들었다. 주통학로인 학교 정문~달마을길 구간의 보행로 불법 주차와 교차로 마을버스 정류소 위치, 어린이보호구역 노면 표시 재도색 및 안전시설 추가 필요성 등이 제기됐다. 구는 양천경찰서와 오는 9월까지 제기된 문제점을 협의할 방침이다. 또 2016년까지 나머지 29개교에 대해서도 연차별 시행 계획을 수립해 등하교 시간대 사고 위험 요인 제거 등 교통 체계 개선을 진행한다. 내년부터는 실질적으로 사업이 시행되도록 담당 팀별 예산을 확보한다. 최규송 교통행정과장은 “생활밀착형 교통 문제 지점 개선 사업도 동시에 추진하는 등 교통사고 없는 통학로를 확보하기 위해 애쓰겠다”고 말했다.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 더 뉴 K5 타보니

    더 뉴 K5 타보니

    K5의 부분변경(페이스 리프트) 모델인 ‘더 뉴 K5’는 현대기아차가 중형 세단 시장에서 수입차 공세를 방어하기 위해 내놓은 야심작이다. 출시 행사에서 관계자들은 엔저를 등에 업고 할인 공세에 나서고 있는 토요타 캠리 2.5 등과 비교해 모든 면에서 경쟁력이 월등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디자인에 대한 자신감도 여전해 더 뉴 K5는 외형상 크게 변한 것은 없다. 전면 라디에이터그릴이 세련돼졌고, LED(발광다이오드) 램프 4구를 사각형으로 배치한 아이스큐브 안개등과 연비 향상을 노리고 리어콤비네이션 램프에 변화를 준 것이 가장 눈에 띈다. 완벽한 외관에 맞춰 실내를 고급스럽게 만드는 데 주력했다. 일단 4.3인치 슈퍼비전 클러스터를 적용해 한층 커진 계기판이 시원하고, 운전 중 오디오 등 조작을 쉽게 하기 위해 버튼 배치를 달리했다. 몸을 감싸 지지 기능을 높인 시트도 커브길에서 안정감을 줘 만족스러웠다. 더 뉴 K5에서 특히 주안점을 둔 것은 소음 감소다. 이전보다 1인치 늘어난 18인치 알로이 휠과 타이어, 넓어진 브레이크 디스크로 주행 시 노면 소음이 크게 줄었고 승차감도 부드러웠다. 시속 80~100㎞에선 엔진 배기음도 거의 들리지 않았고 실내 잡음도 없었다. 작은 소음 하나도 잡아내기 위해 바닥재와 이중접합 유리를 사용한 효과가 톡톡했다. 제동력 또한 보강돼 급제동을 해도 부드러운 편이다. 다만 순간적으로 가속 페달을 밟을 때 속도가 올라가는 반응이 다소 느리고 힘에 부치는 듯 엔진 배기음도 커졌다. 특히 오르막길에서 가속 페달을 밟아도 쭉 뻗어 올라가는 맛은 떨어졌다. 공인 연비는 2.0 가솔린 자동변속을 기준으로 ℓ당 11.9㎞로 이전보다 개선됐다. 자동변속기 기준 가솔린 2.0이 2195만~2785만원, 터보 2.0 GDi가 2795만~2995만원이다. 박상숙 기자 alex@seoul.co.kr
  • ‘자동차금지령’ 내리고 사람이 주인 된 도시들

    ‘자동차금지령’ 내리고 사람이 주인 된 도시들

    지난해 기준으로 우리나라에 등록된 자동차는 총 1887만대다. 인구가 5000만명이 조금 넘는 것을 고려하면 약 2.6명당 자동차 1대가 있는 셈이다. 특히 전체의 3분의2에 해당하는 1236만대는 서울과 경기 등 수도권과 대도시에 몰려 있다. 가히 자동차가 도시의 주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기오염과 소음, 잦은 사고의 원인을 껴안고 사는 것이다. 20일 밤 1시 15분 MBC ‘다큐프라임’은 자동차를 버리고 ‘착한 도시’로의 변화를 시도한 세 도시를 소개한다. 제작진은 먼저 프랑스 ‘제1의 환경도시’로 꼽히는 스트라스부르를 찾는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건축가 로랑은 자동차 대신 노면전차로 출퇴근을 한다. 산업혁명 이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교통량 탓에 한때 심각한 오염 지역으로 손꼽혔던 스트라스부르는 현재 ‘자동차 통행금지령’을 시행하고 있다. 도시는 노면전차를 도입하면서 자동차를 시내 바깥으로 빼내고 보행자 도로와 자전거 전용도로를 발달시켰다. 직업적 특성상 자가용이 생활필수품이었던 로랑은 “예상과는 달리 노면전차를 타면서 삶의 여유를 되찾았다”고 예찬한다. 제작진은 이어 아시아 최대의 산악 관광명소로 꼽히는 일본의 도야마를 방문한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쇠락해 가던 도야마는 노면전차와 관광상품을 연계하면서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40년째 관광가이드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이시오도 노면전차를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마지막으로 소개되는 곳은 경기 수원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화성을 보유한 수원은 뛰어난 역사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200여개의 노선버스가 엉켜 매일 교통 대란을 치른다. 시는 교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민들과 머리를 싸맨다.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 [이슈&이슈] 대전도시철도 2호선 건설방식 갈등

    [이슈&이슈] 대전도시철도 2호선 건설방식 갈등

    ‘노면(面)’과 ‘고가(高架)’. 요즘 대전도시철도 2호선 건설방식을 놓고 벌어지고 있는 갈등의 핵심이다. 대전시는 도로 위에 고가 철로를 설치해 자기부상열차를, 시민단체는 기존 시내 도로에 레일을 깔아 트램(전차)을 운행하자고 맞서고 있다. 정부가 재정부담을 들어 지하철을 허용하지 않는 상태에서 양쪽은 한 치의 양보도 없다. 대전시는 고가의 장점으로 건설 시에만 도로를 점유하고 완공 후에는 도로 점유가 없다고 주장한다. 버스 등 다른 교통수단의 방해를 받지 않아 정시성이 좋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평균 열차 속도가 44㎞를 유지할 수 있어 18~20㎞로 들쭉날쭉한 노면 트램보다 빠르다고 덧붙였다. 자기부상열차는 무인으로 운전해 인건비가 크게 절약된다는 점도 강조했다. 시 용역을 수행한 동일기술공사 강유정 상무는 “고가 철로를 달리는 자기부상열차는 소음과 진동이 적고, 악천후에도 안정적인 운행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이에 대해 반론을 펴고 있다. 고가가 도시미관을 크게 해친다는 것이다. 지상에서 10~11m 높이로 교각을 세워 철로를 깔기 때문이다. 정거장이 높게 설치돼 승하차가 불편하고, 열차 사고 시 대피가 어려워 많은 인명 피해를 낳을 수 있다고 반박했다. 금홍섭 대전참여연대 정책위원장은 “고가는 접근성이 떨어져 수요자인 시민들이 외면하면서 적자가 쌓이고, 결국 시민 부담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전 5개 자치구 중 4개 구청장도 같은 논리로 대전시의 고가 건설 방식에 반대하고 있는 상태다. 이들은 노면 트램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도시미관을 해치지 않으면서 승하차가 편리한 점을 노면의 장점으로 꼽았다. ㎞ 건설비가 420억원이 드는 고가보다 200억원밖에 들지 않는 부분도 큰 이점이라고 했다. 곡선이나 급경사 주행이 가능하고 주변 주택 사생활 침해가 없다. 금 정책위원장은 “부산은 고가 이용률이 지하철보다 45%, 대구는 75%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시철도의 최대 목표가 대중교통 수단으로 제 몫을 해야 한다는 점인데 수요가 부족하다는 것은 치명적”이라며 “노면은 버스 등 대중교통과도 연계성이 뛰어나다”고 강조했다. 반면 대전시는 노면에 대해 왕복 철로와 정류장을 설치하면 최소 2개 차도를 점유해 버스 등 다른 교통수단 운행에 지장을 준다고 반박했다. 극심한 체증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소음과 진동도 있다고 설명했다. 폭설이나 폭우 등 악천후 때는 운행이 중단되거나 교통 혼란에 빠진다고 덧붙였다. 이 문제는 2호선이 2006년 정부의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탈락했다가 지난해 11월 ‘대전의 인구 증가로 수요량이 늘고 있다’는 이유로 통과되면서 불거졌다. 시가 이를 신청할 때 제시한 건설 방식은 고가에 자기부상열차다. 이후 시민단체에서 반대하자 시는 동일기술공사에 용역을 의뢰했다. 이 과정에서 지하 5m 깊이로 지나는 저심도 방식도 검토됐으나 ‘대전은 통신시설 등 지하 장애물이 많고 건설비가 정부지원 한도를 넘는다’는 이유로 제외됐다. 동일은 지난 3월 용역결과를 발표하고 고가에 자기부상열차가 최선이라고 밝혔다. 노선은 정부대전청사 등 현재 운행 중인 1호선의 4개 역을 만나면서 엑스포과학공원과 충남대 등을 거치는 36㎞의 순환형이다. 이 중 유성네거리~진잠 간 2단계 7.4㎞는 도시여건 변화를 보면서 추진된다. 앞서 1단계 진잠~유성네거리 간 28.6㎞ 사업비는 모두 1조 3617억원으로 60%가 국비로 지원된다. 3호선은 충남 논산~계룡~서대전네거리~신탄진~세종시~조치원~청주공항으로 이어지는 106.9㎞의 국가 전철인 충청권 철도 중 대전 구간에 몇개 역을 설치하는 방식으로 추진된다. 3호선 착수시기는 2016~2019년 사이. 대전시는 이에 맞춰 내년 말까지 설계를 끝낸 뒤 착공해 2019년부터 2호선을 운행한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양쪽 주장이 팽팽히 맞서면서 사업 추진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일부에선 차기 민선에서 결정하도록 하자는 주장도 내놓고 있다. 금홍섭 정책위원장은 “결정이 차기 민선으로 넘어갈 수도 있지만 일단 (대전시의 태도 변화를) 지켜보고 있다”면서 “이번 2호선 문제에서 중요한 것은 시민들이 전례 없이 큰 관심을 갖고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자체로도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대전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이슈&이슈] “2호선 개통 땐 승용차 이용 10% 감소 건설방식 결정 차기로 넘기지 않을 것”

    [이슈&이슈] “2호선 개통 땐 승용차 이용 10% 감소 건설방식 결정 차기로 넘기지 않을 것”

    윤기호 대전시 도시철도기획단장은 2일 “어떤 방식이든 시민들이 반대하면 안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윤 단장은 반대 단체를 설득하는 일에 힘을 쏟을 각오다. 그는 “6~7월 사이에 시민단체 관계자와 5개 구청 실무자들을 충북 오송 트램 시험선과 인천 고가 자기부상열차 시험운행장으로 데려가 견학시키겠다”고 말했다. 또 양쪽(노면과 고가) 주장을 대변하는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토론회를 연다는 계획도 내놨다. 도시미관 저해와 관련한 우려에 대해 윤 단장은 “디자인협회에 용역을 의뢰해 경관 저해 요소를 최소화하겠다”면서 “고가로 운행하거나 추진 중인 국내외 도시 사례를 참조하겠다”고도 했다. 윤 단장은 “노면 트램은 유럽처럼 땅이 넓고 인구는 적은 곳에 좋다”면서 “하지만 인구 밀도가 높은 데는 고가 방식이 유리하다”고 강조했다. 일본과 호주 등도 고가 방식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전 세계에서 노면 트램을 운행하는 도시는 400여곳, 고가를 선택한 곳은 180곳에 이르지만 고가 열차 운행에서 나타나는 문제는 없는 것으로 안다”면서 “전주와 울산이 2005년과 2008년 각각 노면으로 예비타당성 조사에 통과하고도 보류한 일을 되새겨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 단장은 “2호선이 개통되면 승용차 이용률이 10% 떨어지면서 연간 1조 2000억원에 이르는 대전의 사회적 비용이 크게 줄어든다”면서 “(건설 방식 갈등으로) 사업 착수가 6개월쯤 늦어졌다”고 아쉬워했다. 물가가 오르면서 사업비가 늘어나는 부작용이 있다는 것이다. 윤 단장은 “행정을 멈출 수는 없다”면서 2호선 건설 방식을 일부러 차기 민선 시장 때로 넘기는 일은 없을 것임을 강조했다. 대전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중국 선전서 또 싱크홀…5명 사망

    중국 광둥(廣東)성 선전(深천<土+川>)에서 지난 3월에 이어 또다시 갑자기 땅이 꺼지는 이른바 ‘싱크홀’(sinkhole) 현상이 발생하면서 5명이 숨졌다고 홍콩 언론들이 중국 매체를 인용해 22일 보도했다. 싱크홀은 지난 20일 밤 선전 룽강(龍崗)구에 있는 화마오(華茂) 공업단지 앞에서 발생했다. 한 목격자는 “오후 9시10분께 퇴근하던 중에 ‘펑’하는 소리가 난 뒤 노면이 꺼졌다”라고 말했다. 인근 상인은 “마침 그 때가 퇴근 시간이라 도로에 사람이 많았는데 갑자기 땅이 꺼지면서 다섯 명이 구멍으로 떨어졌다”고 전했다. 이번에 발생한 싱크홀은 지름 10m, 깊이 4m 크기로 몇 명이 구멍 안으로 떨어졌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사건 발생 후 구조대가 한 명을 구조했으며 수색 작업이 계속되고 있지만 비가 내리면서 수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선전에서는 지난 3월에도 싱크홀이 발생해 한 명이 숨졌다. 중국 외에도 지난 3월 미국 플로리다에서는 지름 6m, 깊이 6m의 싱크홀이 발생하면서 잠을 자던 남성이 땅속에 함몰돼 숨지는 사고도 있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경차 스파크S 출시

    경차 스파크S 출시

    한국지엠은 엔진과 변속기, 디자인 등을 개선한 ‘스파크S’를 16일부터 정식 판매한다고 8일 밝혔다. 스파크S는 1ℓ 휘발유 GEN2 엔진이 탑재되면서 최대출력이 기존 70마력에서 75마력으로 높아졌다. 또 차세대 무단변속기 C-TECH를 적용하면서 연비가 14.8㎞/ℓ(AT 기준)에서 15.3㎞/ℓ로 높아졌다. 차량 전복방지 장치(ARP)와 미끄러운 노면에서 구동력을 제어하는 통합 미끄럼 방지장치(FTCS), 언덕길 밀림방지 장치(HSA)도 탑재했다. 가격은 908만~1373만원이다.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 벌써 여름 수해 대비하는 동작구

    동작구가 사당1동 지역의 수해를 예방하기 위해 3일 지하철 2·4호선 사당역 인근 친수공원에서 ‘수해대비 실전 종합훈련’을 갖는다. 동작구는 상습 침수 구역으로 인식됐던 사당1동에서 해마다 유비무환의 자세로 4~5월에 수해대비 종합훈련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 태풍 볼라벤과 덴빈의 내습과 여러 차례 폭우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에 침수피해가 발생하지 않은 것도 이런 철저한 대비 때문으로 평가받고 있다. 수해대비 훈련에는 구청 직원과 민방위 대원, 소방관, 해당 지역 통장 등 100여명이 참여한다. 집중 호우 시 노면수 유입차단 훈련과 건물별 물막이판 설치 훈련은 실제 상황을 가정해 이뤄진다. 평소에는 화단으로 이용하는 폭 1m, 높이 70㎝의 이동식 화단을 이용해 물을 막고 침수 피해가 예상되는 도로 현장에 즉각 모래주머니를 쌓는 훈련도 진행한다. 지하에 빗물이 찼을 때를 가정해 직접 양수기를 이용해 피해지역에 고인 물을 퍼내고 소방차를 동원해 상가 지하에 유입된 빗물을 배출하는 가상훈련도 실시한다. 이후 오물을 수거하고 수인성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 방역 차량으로 기동방역 훈련을 실시하는 모습도 선보인다. 구는 야간 상황을 가정해 이달 말 같은 형식으로 야간 종합훈련도 펼친다. 구는 과거 침수피해를 교훈 삼아 이후 전 직원이 주민과 1대1 결연하는 ‘수해 돌보미 제도’를 도입하고, 사당1동에 있는 물막이용 고원식 횡단보도(보도험프) 13곳에 담당부서를 지정해 신속한 대응체계를 갖췄다. 대방동과 상도동, 노량진동 등에서 하수관거 정비사업을 펼쳐 빗물 역류로 인한 침수피해 예방 대책도 마련했다. 문충실 구청장은 “집중호우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구청, 유관기관, 주민이 힘을 모아 매년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면서 “올해도 수해 제로 도시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DB를 열다] 1967년 파업으로 운행이 중단돼 멈춰 선 전차들

    [DB를 열다] 1967년 파업으로 운행이 중단돼 멈춰 선 전차들

    자동차가 드문드문 다닐 때 노면 전차는 서울 시민의 발이었다. 종로·을지로·세종로·태평로·남대문로·한강로 등 서울의 주요 간선도로에는 전차 레일이 깔렸었고 돈암동·청량리·마포·영천·효자동·원효로·영등포·왕십리 등 서울의 동서남북 웬만한 동네에까지 전차가 다녔다. 뚝섬까지는 세 칸짜리 기동차가 운행했다. 자동차나 행인이 지나가면 운전사는 페달을 밟아 ‘땡땡땡’ 하는 종소리를 냈다. 그 소리가 마치 ‘냉냉냉’처럼 들려 서울 전차에는 ‘냉냉이 전차’라는 별명이 붙었다. 전차는 학생들이나 직장인들에게 꼭 필요한 통학·통근 수단이었다. 창경원에 나들이 인파가 몰리는 봄철이 되면 돈암동 노선은 초만원이 되었다. 시골 사람들이 서울에 오면 전차는 반드시 타보는 관광 상품이었다. 이 노선, 저 노선을 타고 다니며 시내 구경을 했다. 서울에서 전차가 개통된 것은 1899년 5월 17일이었는데 동양의 도시로서는 두 번째였다. 이어 1914년에는 부산, 1923년에는 평양에서도 개통된다. 1895년 명성황후가 일본인들에게 시해되자 고종 황제는 신하들을 이끌고 황후가 묻힌 청량리 홍릉을 자주 찾았다. 번거롭고 비용도 많이 드는 임금의 행차를 지켜보던 미국인 사업가 콜브란은 청량리까지 전차 선로를 놓자고 고종을 설득했다. 그렇게 해서 서대문에서 청량리까지 운행하는 전차가 개통되었다. 전차는 처음 등장했을 때 쇠로 된 것이 사람을 태우고 다닌다고 해서 ‘쇠당나귀’로 불렸다. 광복 후에도 전차는 대중교통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러나 전차는 신속성에 한계가 있었다. 시속이 7㎞밖에 안 될 정도로 느렸다. 1960년대 중반 이후 자동차가 급격히 늘면서 자동차 통행에도 방해가 되었고 충돌 사고도 속출했다. 전차는 결국 퇴출의 운명을 맞았다. 전차는 1968년 11월 29일 밤 완전히 멈춰 섰다. ‘밤 깊은 마포종점 갈 곳 없는 밤 전차 비에 젖어 너도 섰고 갈 곳 없는 나도 섰다.’ 이즈음 발표된 은방울 자매의 ‘마포종점’은 운행이 중단된 전차에 대한 추억과 아쉬움을 담고 있다. 현재 퇴역한 전차 중에 3대가 서울역사박물관과 국립서울과학관, 부산 동아대 부민캠퍼스에 보존, 전시되고 있다. 사진은 1967년 8월 26일 임금인상 이행을 요구하는 전차 승무원들의 파업으로 멈춰 있는 전차들. 손성진 국장 sonsj@seoul.co.kr
  • 車실내 고풍스런 느낌 주행성능은 ‘스포츠카’

    車실내 고풍스런 느낌 주행성능은 ‘스포츠카’

    최근 재규어의 돌풍이 심상치 않다.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BMW와 벤츠가 흔해지자 ‘남들과 다른 것’을 즐기는 부유층에게 1억원을 훌쩍 넘는 재규어가 눈에 들어온 것이다. 올해 재규어가 좀 더 많은 고객을 끌어안기 위해 선보인 차종이 바로 XF 2.0이다. 일단 가격을 6590만원대로 낮추면서 BMW와 벤츠 등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특유의 디자인과 고급스러운 실내 인테리어로 승부하는 재규어 XF 2.0을 타 보았다. 운전석에 앉자 가장 먼저 영국 귀족 문화가 느껴진다. 수작업을 통해 가죽과 원목으로 마감 처리한 실내가 고급스러운 느낌을 더해준다. 마치 고풍스러운 성의 응접실 분위기다. 시동을 걸었지만 엔진 소음은 거의 들리지 않았다. 스티어링 휠(핸들)은 약간 묵직한 느낌이다. 가속 페달을 밟자 큰 덩치에 맞게 묵직하게 움직인다. 하지만 가속력은 탁월했다. 앞차를 추월하기 위해서 가속 페달을 깊게 밟았다. 마치 웅크린 재규어가 치고 나가듯 ‘부웅~’ 포효를 내며 가볍게 튀어 나간다. XF 2.0 모델은 6기통에서 4기통 엔진으로 다운사이징을 했지만 성능에서는 손색이 없었다. 8단 자동변속기를 탑재한 데다 가속력의 척도인 최대 토크가 2000~4000rpm 영역에서 34.7㎏·m로 높아 가속 성능은 뒤떨어지지 않는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7.9초에 불과하다. 최고 안전 속도도 시속 210㎞에 달한다. 거의 스포츠카 수준이다. 고속도로에서 주행 능력은 유감없이 발휘됐다. 순식간에 시속 180㎞까지 치고 올라갔다. 다만, 아쉬운 점은 시속 100㎞ 이상에서 바람소리(풍절음)가 생각보다 크게 들렸다. 음악을 듣는 데 지장이 있을 정도는 아니지만 아쉬웠다. 또 단단한 서스펜션이 코너링에는 만족감을 주지만 과속방지턱이나 요철 등에서는 노면 충격이 그대로 전해지는 단점이 있었다. 차량 성능에 재규어의 품격을 더한다면 6500만원대 XF 2.0은 비싸다고만 할 순 없을 듯했다.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 끊긴 구로 거리공원 잇는다

    끊긴 구로 거리공원 잇는다

    구로구는 동서로 분단된 구로5동의 거리공원을 하나로 잇는 횡단보도 공사를 진행한다고 27일 밝혔다. 거리공원은 폭 36m, 총길이 720m로 1982년 조성된 공원이다. 도로 한가운데 조성돼 있지만 산책로와 운동시설이 갖춰져 있어 주민들이 즐겨 찾는 지역이다. 현재는 동측 1구역과 서측 2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특히 1구역과 2구역 사이에 교차로가 형성돼 있어 두 구역을 왕래하기 위해서는 우회 횡단보도를 3번이나 건너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주민들은 10여년 전부터 구청에 두 구역을 이어 달라는 민원을 제기했다. 구는 주민 불편을 해소하고 거리공원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수년 전부터 서울지방경찰청에 횡단보도 설치를 통한 교통 운영 체계 개선 방안을 제시했다. 최근 교통안전시설심의를 통과해 공사 허가가 내려졌다. 횡단보도로 양측을 잇는 공사는 다음 달 10일 완료할 예정이다. 구는 횡단보도 완공과 벚꽃이 절정에 이르는 시기에 맞춰 다음 달 13~14일 벚꽃과 문화가 어우러진 ‘벚꽃과 함께하는 봄나들이’ 행사를 개최한다. 행사에서는 각종 문화 공연을 펼칠 예정이다. 행사 기간 동안 거리공원 곳곳에서 벼룩시장도 연다. 또 각종 체험 행사, 놀이시설, 먹거리 장터도 운영한다. 구는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깨끗하고 안전한 거리공원을 만들기 위해 노후시설을 정비하고 배드민턴장 노면, 산책로, 노후 체육시설 등을 새롭게 단장하기도 했다. 구 관계자는 “거리공원 연결 공사가 진행돼 주민들의 숙원을 풀게 됐다”면서 “보다 쾌적한 도시 환경을 조성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한국지엠 신차 ‘트랙스’ 타보니

    한국지엠 신차 ‘트랙스’ 타보니

    한국지엠의 올해 유일한 신차인 ‘트랙스’를 타 봤다. 공개 전부터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란 점으로 관심을 끌었다. 생김새부터 좀 달랐다. 소형차 아베오를 기반으로 했지만 전고(차체 높이)를 높이면서 실내공간을 극대화했다. 차고를 경쟁 차종인 기아차 스포티지R보다 높은 1670㎜까지 끌어올렸다. 즉 길이는 짧고 높이를 키운 것이다. 키가 큰 남성이 운전석에 앉아도 머리 위로 주먹 하나만큼의 여유가 있었다. 실내가 높아져서 가장 좋은 점은 시트 배치의 여유로움이다. 소형차에서는 보기 드물게 6대4 폴딩 시트(뒷좌석 의자가 90도 접히는 방식)로 뒷좌석이 완벽하게 포개지는 게 장점이다. 뒷좌석을 접으면 트렁크 용량이 최대 1370ℓ까지 늘어나 큰 짐을 실을 수 있다. 소형 SUV지만 아이들이 있는 가족형 고객들에게도 무리가 없어 보였다. 주행성능은 만족스러웠다. 시동을 걸자 디젤 SUV와는 달리 조용하고 진동이 느껴지지 않았다. 1400㏄ 터보 휘발유 엔진은 디젤과 확실한 차이가 느껴졌다. 가속페달을 깊게 밟자 거친 엔진음이 귀를 시끄럽게 했다. 터보 엔진을 장착했지만 배기량이 낮아 힘이 부치는 느낌이었다. 직선으로 길게 뻗은 도로에서 가속페달을 밟자 속도가 서서히 올라갔다. 가속력이 평균이다. 120㎞ 이상을 밟아도 안정감이 느껴진다. 코너링도 나쁘지 않았다. 차체 상부와 하부 프레임을 연결한 ‘통합형 보디 프레임’을 적용해 안정감 있는 고속주행과 코너링이 가능하다는 회사 측의 설명이 이해가 갔다. 또 전륜의 맥퍼슨 스트럿 서스펜션(노면충격 흡수장치)은 충격 저감 스프링과 결합해 노면 마찰과 진동을 감소시키고 울퉁불퉁한 길이나 과속방지턱을 넘을 때도 안락함을 느끼게 했다. 스티어링휠(핸들)에 따른 반응도 민감했다. 운전자가 원하는 대로 한치의 오차 없이 차량이 움직였다. 국내 소비자를 고려한 소음·진동에 대한 대비도 눈에 띄었고 콘티넨털의 고급 타이어를 기본으로 장착하는 등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도 신경을 썼다. 도심에 어울리는 주행성능과 크기, 디자인을 가지는 트랙스의 가장 큰 단점은 ‘가격’이다. 1940만~2289만원으로 출시 전 소문으로 들리던 가격보다 높다. 트랙스는 한 체급이 큰 기아차 스포티지R이나 현대차 투싼ix보다 고작 100만원밖에 싸지 않아 아쉬움이 크다.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 세종로 550m ‘차 없는 날’ 3월부터 셋째 일요일마다

    광화문 삼거리~세종로 사거리 남대문시장 방면 550m 구간엔 3월부터 매월 셋째 일요일 차가 다닐 수 없게 된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21일 ‘보행친화도시 서울 비전’ 발표 브리핑에서 “대규모 도시계획 사업에도 반영해 차에 중독된 도시를 보행친화 도시로 바꾸겠다”면서 “그러나 도심 진입 터널의 혼잡통행료 인상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시는 세종로 보행전용거리 운영 성과를 분석해 올 하반기부터 주 1회로, 2014년 이후에는 양방향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할 방침이다. 외국인 문화거리인 이태원로, ‘강남스타일’의 상징거리인 강남대로, 전통문화 상가 밀집 거리인 돈화문로도 해당 구, 주민 등과 협의를 마치고 이르면 상반기부터 주말형 보행전용거리로 시범 운영한다. 세계음식거리가 있는 이태원길, 패션거리인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젊음의 거리인 홍대 앞 어울마당로는 연중 전일형 보행전용거리로 지정한다. 보도 확장, 안전시설물 설치 등 보행환경 개선이 수반되는 보행친화구역도 첫 대중교통전용지구인 연세로, 역사문화탐방 지역인 성북동길, 보행 인구가 많은 강변로(광진구), 영중로(영등포구), 대학로를 대상으로 지정한다. 보행량이 많고 교통사고 위험이 큰 너비 10m 안팎의 도로에 차량 시속을 30㎞ 이하로 묶는 생활권 보행자 우선도로도 올해 해방촌길, 국회단지길, 개봉동길, 능동길, 무교동길 중 2곳에서 시범사업을 벌인다. 교통안전 노면표시, 폐쇄회로(CC) TV 확충 등 시설 개선뿐 아니라 등하교 시간대에 학교 앞 도로의 차량 통제가 이뤄지는 어린이 보행전용거리도 올해 강북구 미아동 화계, 광진구 중곡동 용마, 성북구 보문동 대광초등학교 등 10개교 앞 도로에 시범 운영한다. 아이들이 마음대로 다니는 공간이라는 의미의 ‘아마존’도 2014년까지 은평, 동대문, 노원, 성북, 구로구 7곳에서 시범 운영한다. 시는 2014년까지 630억원을 투입해 현재 16%인 보행수단 분담률을 2020년 20%로 끌어올릴 방침이다. 송한수 기자 onekor@seoul.co.kr
  • 개통후 한달에 두번꼴 STOP… 의정부경전철 ‘사고鐵’ 오명

    개통후 한달에 두번꼴 STOP… 의정부경전철 ‘사고鐵’ 오명

    지난해 7월 1일 수도권에서 가장 먼저 운행 개시한 경기 의정부경전철이 ‘툭’ 하면 고장나 ‘사고철’이라는 오명을 받고 있다. 의정부경전철㈜에 따르면 8일 현재 지난 6개월 동안 12차례나 고장으로 열차운행이 중단됐다. 시와 의정부경전철㈜은 1일 평균 이용객이 예측수요의 15% 수준을 밑도는 가운데 고장이 잦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사고 유형은 크게 두 가지다. 전동차에 전기 공급이 안 돼 멈추거나, 전동차가 선로에서 미끄러져 승강장 제 위치에 서지 않아 발생한다. 최근 6회 중 5회는 폭설로 전원공급장치에 오류가 발생하면서 빚어졌다. 전동차 고무바퀴가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선로에서 눈에 미끄러져 승강장 제 위치에 서지 않아 발생했다. 의정부경전철㈜ 최석준 부장은 “주행노면이 콘크리트이고, 전동차 바퀴는 고무로 만들어져 아주 춥거나 노면에 눈이 쌓이면 미끄러짐 현상이 발생한다. 이런 현상을 예방하기 위해 콘크리트 속에 열선을 깔아 눈을 녹이는 등의 역할을 하도록 했지만 일부 구간에서 열선이 고장나 작동하지 않거나 관제실에서 눈이 녹도록 미리 작동을 시키지 않아 전동차 운행이 중단됐다”고 밝혔다. 전동차가 선로에서 미끄러지고 지나면서 튄 눈이 승강장 아래 전기공급장치에 얼어붙어 전기공급이 일시 중단된 경우도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과거 6회는 대부분 신호장치 이상이다. 무인 역사에 무인 운전방식이라, 관제실에서 시스템 에러가 나면 알람신호가 뜨고 자동 브레이크가 작동한다. ‘시스템 에러’라고 하지만 구체적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최 부장은 “처음 몇 건은 특별한 원인보다 시스템이 안정돼 가는 상황에서 발생한 단순한 에러이며, 이제 보완을 어느 정도 해서 눈이나 날씨 때문에 운행이 중단되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해명과는 달리 일부에서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어 큰 규모의 보완공사가 필요한 것 아니냐’고 우려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선로에 심은 열선은 영하 2.95도에서 눈이 시간당 10㎜ 내린 상황을 가정해 검토한 기준이 적용됐으나 최근의 기온과 적설량은 이 기준을 초과한다”고 밝혔다. 때문에 열 전도 효율을 높일 수 있는 보완공사가 필요하고, 전기공급 장치에 눈이 얼어붙어 정전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추가공사를 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최 부장은 “집전장치에 눈이 얼어붙지 않도록 방지액을 뿌려주고 안전박스를 설치했으며 열선 문제는 전동차 앞에 눈을 치우는 브러시를 달아 해결했다”고 해명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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