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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곽병찬의 역사 앞에서 묻다] 붕당정치에 빠진 집권세력의 권력욕…‘사실’과 ‘사초’를 테러하다

    [곽병찬의 역사 앞에서 묻다] 붕당정치에 빠진 집권세력의 권력욕…‘사실’과 ‘사초’를 테러하다

    진실은 언제 어디서나 불편하다. 불편하기에 언제 어디서나 수난을 당한다. 조선은 세계사에서 유례없을 정도로 방대한 왕조 실록을 남겼다. 실록 편찬의 기준도 엄정했다. 그 기준을 지키려다 조선 초 김종직은 부관참시를 당했고, 사관 김일손 등은 처형됐다.그렇다고 실록이 사실만을 기록하고 평가가 불편부당했던 것은 아니었다. 양대 왜란과 호란 이후 붕당정치로 빠져들면서 집권 세력의 입맛에 맞게 사실은 편집되고 평가는 왜곡됐다. 선조, 인조, 숙종, 경종의 실록이 잇따라 수정, 개수, 보정된 것은 그 때문이었다. 원본을 남겨 ‘지우개를 쓰지 않은 역사’로 칭송하는 이도 있지만, 그것은 사실이 얼마나 테러를 당했는지 웅변할 따름이다. 국가의 정사인 실록이 그러했으니 민간의 기록에 대한 폭력이 어떠했을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경기 광주시 낙생면 백헌 이경석의 묘로 들어가는 좁은 계곡 초입에는 두 개의 신도비가 있다. 하나는 멀쩡하지만 다른 하나는 비문을 한 글자도 볼 수 없다(‘백비’). 백비는 조선 영조 30년에 세워졌다가 누군가에 의해 비문이 인멸된 채 땅속에 묻혀 있던 것을 200여년 만에 발굴해 다시 세운 것이고, 앞엣것은 1979년에 새로 세운 신도비다. 백헌의 손자 이하성은 1703년(숙종 29년) 결국 서계 박세당에게 할아버지의 신도비에 새길 글을 청했다. 당대의 문장가였지만 같은 당파(소론)여서 ‘손이 안으로 굽었다’는 지적을 우려해 서계만은 피하려 했다. 하지만 당시 노론의 세상에서 그의 청을 들어줄 사람이 달리 없었다.서계는 비문을 짓고 이 글을 자신의 문집인 ‘사변록’에 실었다. 삽시간에 소문이 돌았다. 홍계적 등 노론 유생 180여명이 벌떼처럼 일어나 연명으로 숙종에게 상소문을 올렸다. “문자를 거두어 물과 불속에 던져 버리고, 성인을 헐뜯고 현인을 업신여긴 죄로 다스리어 선비의 취향을 바르게 하소서.” 사문난적으로 단죄하라는 것이다. 숙종은 외면할 수 없었다. “박세당이 작성한 이경석 신도문은 물론 박세당의 문집 ‘사변록’까지 모두 없애라.” 신도비 조성 작업은 진행될 수 없었다. ‘맹자’를 인용한 신도문은 과연 서두부터 심상치 않았다. “노성인을 업신여기지 마라.” “상서롭지 못한 보복은 어진 사람을 가리는 법이다.” 마무리는 이러했다. “올빼미는 봉황과 성질이 달라 성내고 꾸짖는다. 불선자가 미워해도 군자가 무엇을 상관하랴.” ‘송자’라 하여 공자·주자를 잇는 성인으로 떠받들던 송시열이었다. 그런 송시열을 ‘올빼미’에 빗댔으니 노론 유생들이 좌시할 리 없었다. ‘올빼미’ 비유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경석은 송시열보다 12살 연장으로 김상헌 문하에서 수학했으니 골수 서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같은 서인이지만 인조반정 공신들의 전횡을 막기 위해 ‘산림’(청서파)을 적극적으로 중앙 정계에 천거했다. 송시열은 1633년 최명길의 천거에 의해 경릉 참봉이 됐고, 1649년 효종 즉위 직후 이경석의 추천으로 장령이 됐다. 송시열은 그런 이경석을 존경해 ‘베옷에 짚신을 신고’ 그의 문하를 왕래했다. 그러나 이경석에게 통혼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한 뒤부터 앙심을 품기 시작했다고 한다. 특히 현종 2년(1661년) 이경석이 남인인 고산 윤선도의 해배를 주장하면서 등을 돌리고 극언을 일삼았다. 이경석이 일흔네 살 때 현종이 궤장을 하사하면서 잔치를 베풀었다. 뜻깊은 자리였던지라 여러 사람이 전례에 따라 축하의 글을 남겼다. 병을 핑계로 참례하지 않았던 송시열도 마지못해 이런 글을 보냈다. “하늘의 도움을 받아 오래 살고 건강하니(壽而康), …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 ‘수이강’(壽而康)에는 지독한 경멸이 숨겨져 있었다. 중국 송나라 흠종이 금나라에 붙잡혔을 때 항복 문서를 써 준 손적을 두고 주자가 ‘절의를 버린 대가로 건강하게 오래 살았다(壽而康)’고 비꼰 것을 이경석에게 적용한 것이다. 송시열은 현종에게 올린 상소문에서 그 뜻을 시시콜콜 알렸다. “옛날 손적이 오래 살고 강녕하기는 했지만, 그가 의리를 알고 있다고 여기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 당시에 도리어 손적 같은 사람에게 비난을 받았다면, 여러 사람이 얼마나 낮춰 보고 비웃었겠습니까. 지금 신이 당한 경우가 불행하게도 그와 같습니다.” 세론은 송시열에 비판적이었다. ‘양송’이라 하여 당시 서인의 논의를 이끌고, 그와 동문수학을 했던 동춘당 송준길마저 한탄했다. 송시열은 분노했다. “동춘까지도 ‘놀랍고 한탄스럽다’고 말하니 다른 사람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 사람(이경석)은 대체로 백성을 등치는 토호(향원)의 마음가짐으로 청의 세력을 끼는 것을 일생을 행세하는 방법으로 삼았다. … 개도 그 똥을 먹지 않을 것이다.”(‘판서 송규렴에게 보낸 편지’에서) 서인이 다시 쓴 ‘현종개수실록’마저 그런 송시열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인조의 명에 따라 삼전도 비문을 지은 것을 두고 그렇게 송시열이 언급했는데, 말이 너무 박절했으므로 논자들이 병통으로 여겼다.”병자호란이 끝나자 청은 대청황제공덕비(삼전도비)를 세우고, 비문도 조선에서 쓰도록 했다. 예조판서, 대제학 등 조정의 책임 있는 자들은 모두 발을 뺐다. 이경전은 병을 핑계로 칩거했고, 조희일은 거칠게 작성해 퇴짜를 맞았으며, 장유는 일부러 고사를 잘못 인용해 제외됐다. 남은 건 이경석이었다. 왕위가 위태로운 인조는 애가 탔다. “사직의 존망이 여기에 달려 있으니 부디 문자에 구애받지 말라.” 부제학으로 나이로나 직위로나 이경석이 맡을 일은 아니었다. 남한산성 도피 시절 외교 문서 책임자인 예조판서 김상헌이 강화 문서 작성을 거부해 대신 작성해야 했던 최명길의 신세나 마찬가지였다. 이경석은 그날의 일을 ‘수치를 등에 지고 백길 어천강에 뛰어들고 싶다’며 글을 배운 것을 후회했다. 비문 작성 후 거듭 사직을 요청했지만, 믿을 사람이 없는 인조는 그를 놓아 주지 않았다. 이후 용렬한 자들이 뒤에서 삼전도비문 운운하며 비웃고 손가락질을 했지만, 자신이 감당할 몫이라고 여겨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봉황과 올빼미 비유에는 이런 사정이 있었다. 신도문 사달이 나고 62년이 흐른 뒤(영조 30년, 1765년)에야 비석에 글이 새겨졌다. 글씨는 당시 완도의 신지도에 유배돼 있었던 원교 이광사가 썼다. 이광사는 이경석의 형 이경직의 고손으로, 동국진체의 완성자였다. 신도비는 그러나 세워지자마자 수난을 당했다. 이번에도 노론 유생들이 비석을 쓰러트리고, 비면을 모조리 깎아 한 글자도 남기지 않았고, 분이 안 풀렸는지 비석을 아예 땅속에 파묻어 버렸다. 그로부터 200여년 뒤 빛을 본 비석은 전신이 상처다. 글자 하나하나 연마석으로 갈고, 정으로 쪼았으니 성할 리 없었다. 마오쩌뚱은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했다. 그러나 총구에서 나온 권력은 짧다. 다른 총구가 기다려 주지 않는다. 조선의 권력자들은 알고 있었다. 권력은 총구가 아니라 정당성에서 나오고, 그것은 사실(史實)에서 나온다는 것을. 조선 후기 노론이 필사적으로 사실을 장악하려 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들은 조선 후기 150여년, 나아가 일제 병탄기와 해방 후에도 권세를 계속 누렸다. 민주공화정에서 사초 기록자는 언론이다. 독재 치하에서 필경사 구실이나 하던 족벌 언론은 민주화 이후 스스로 권력이 되기 위해 집요하게 사실에 폭력을 가했다. 요즘엔 사기꾼, 절도범, 부패 공직자, 노름꾼, 앵벌이, 정신질환 의심자까지 동원했다. 최근 1년 사이 UAE 특사 의혹, 드루킹 사건, 이재명 지사 ‘불륜’ 의혹, 청와대의 민간인 사찰과 블랙리스트 의혹, 손혜원 투기와 ‘김혜교’ 의혹 등이 그런 방식으로 제작됐다. 택당 이식은 선조수정실록을 편찬하면서 권력자들에게 이렇게 경고했다. “나라가 있어도 역사가 없으면 나라가 아니요, 역사가 있어도 공정치 못하면 역사가 아니다.” 권력에 도취한 자들에게 들릴 리 만무다. 사이비 기자까지 동원해 사실과 인격을 테러한 ‘홍가혜 사건’의 진실이 드러났어도 해당 매체의 더러운 폭력은 끊이지 않았다. 논설고문 kbc@seoul.co.kr
  • 김치·막국수·한천 이야기 듣고 가마솥밥·수삼 튀김·차 맛보고

    김치·막국수·한천 이야기 듣고 가마솥밥·수삼 튀김·차 맛보고

    올겨울 여러 지방의 특산물과 먹거리를 찾아 떠나보면 어떨까. 맛집 탐방에서 한발 더 나가 각 지역의 음식 박물관을 찾아가면 식재료와 요리, 식문화에 대한 지식이 쌓인다. 한국관광공사가 ‘맛있는 박물관 여행’이라는 테마로 12월 여행지를 추천했다.①서울 뮤지엄김치간 종로구 인사동의 뮤지엄김치간(間)은 국내 첫 김치박물관이다. 1986년 김치박물관이란 이름으로 문을 열었고, 2015년 삼성동에서 인사동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뮤지엄김치간으로 재개관했다. 2015년 미국 CNN이 선정한 ‘세계 11대 음식 박물관’에 이름을 올렸다. 박물관 관람은 김치의 발효처럼 조금 느린 템포가 어울린다. 김치의 유래와 종류, 담그는 도구, 보관 공간 등 관련 유물과 디지털 콘텐츠가 전시돼 있다. 김치 담그는 영상을 보며 추억에 잠길 수도 있고, 맛보고 냄새를 맡으며 직접 만들어 볼 수도 있다. 4~6층은 테마 공간이다. 커다란 항아리가 벽을 채운 ‘김치마당’에서는 4세기부터 시작된 김치의 역사가 소개된다. 올해 새 단장한 ‘김치사랑방’에서는 부엌에 담긴 김치 이야기가 있고, ‘과학자의 방’은 발효의 과학적인 원리를 알려 준다. 뮤지엄김치간 (02)6002-6456. ②경기 이천 쌀문화전시관 조선시대 임금님께 진상하던 쌀로 유명한 이천쌀의 고장 이천에는 쌀문화전시관이 있다. 국내 쌀 문화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의 쌀 문화도 살펴볼 수 있다. 15세기 말 이천 부사 복승정의 치적 자료에는 “성종이 세종릉에 성묘하고 환궁하면서 이천에 머물던 중 이천쌀로 밥을 지어 먹었는데 맛이 좋아 진상미로 올리게 됐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렇게 시작된 이천쌀의 명성은 지금까지 이어진다. 쌀알이 투명하고 밥에 윤기가 도는 추청 품종으로 생산·수확·저장 과정을 깐깐하게 관리해 품질을 고급화했다. 이천 쌀을 즉석에서 도정해 맛볼 수 있는 것은 쌀문화전시관의 자랑이다. 미리 신청하면 가마솥에 밥을 지어 먹을 수도 있다. 도자기 장인들이 모여 이룬 마을 사기막골도예촌에서는 전통과 현대를 잇는 공방과 도자기를 만날 수 있다. 쌀문화전시관 (031)632-6607. ③강원 춘천 막국수체험박물관 춘천은 막국수를 대표하는 고장이다. 예부터 메밀 요리가 발달한 강원도에서 막국수는 먹거리가 많지 않던 시절의 별미이자 겨울을 나는 음식이었다. 춘천 출신 작가 김유정의 소설에도 막국수가 자주 등장한다. 단편소설 ‘솟’에는 “저 건너 산 밑 국수집에는 아직도 마당의 불이 환하다. 아마 노름꾼들이 모여들어 국수를 눌러 먹고 있는 모양이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여기 등장하는 ‘눌러 먹는 국수’가 막국수다. 막국수를 테마로 한 춘천막국수체험박물관은 건물부터 국수틀과 가마솥을 본떴다. 춘천 막국수의 유래와 메밀 재배법, 막국수 조리 과정 등을 볼 수 있다. 문화해설사가 들려주는 막국수 이야기를 듣다 보면 흔히 여름 별미로 생각하는 막국수가 사실은 겨울 음식이라는 등 새로운 사실을 알 수 있다. 춘천막국수체험박물관 (033)244-8869. ④충남 금산 인삼관 금산은 1500년의 찬란한 역사를 자랑하는 인삼의 고장이다. 금산은 고려인삼의 종주지다. 기후와 토양, 일교차 등 인삼 재배에 최적화된 환경을 갖췄다. 단단하고 잔뿌리가 발달해 사포닌 함량이 높은 인삼을 생산한다. 금산인삼관은 인삼 문화·역사의 모든 것을 보여 준다. 금산 인삼의 역사와 재배·제조 과정, 과학적인 우수성부터 인삼을 활용한 100여 가지 음식까지 살펴볼 수 있다. 금산읍 중도리 인삼약초거리에는 전국 3대 약초시장으로 꼽히는 금산인삼약초시장이 있다. 금산 인삼과 약재 수백 종이 거래되는 약초거리는 1년 내내 북적거린다. 한 개에 1500원짜리 수삼튀김, 한잔에 1000원인 인삼먹걸리 등을 맛봐도 좋다. 금산군 문화공보관광과 (041)750-2375.⑤전남 보성 한국차박물관 차가워진 바람에 코끝이 아린 겨울이면 따스한 차 향기가 생각난다. 보성은 새잎 돋는 봄에 많이 찾는 고장이지만 겨울에도 인기가 많다. 한가해진 초록빛 차밭은 고즈넉한 분위기를 즐기기 좋다. 보성은 주변 지역보다 표고가 높아 일교차가 크고 해양성 기후 영향으로 차나무가 잘 자란다. 한국차박물관에서는 차에 대해 배우고, 차와 차로 만든 음식을 맛볼 수 있다. 녹차 천연 화장품 만들기 등 체험 프로그램도 있다. 1~2층에서는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차·다기의 역사와 재배에서 수확까지의 생산 과정을 배울 수 있다. 주말에 3층을 방문하면 다례 체험을 해볼 수 있다. 박물관 주변에는 차밭이 내려다보이는 전망대와 산책로가 있다. 오는 14일부터 내년 1월 13일까지 차밭이 빛으로 물드는 보성차밭빛축제가 열린다. 은하수터널과 빛산책로, 디지털차나무 등 빛 조형물은 겨울밤의 낭만을 더할 예정이다. 보성군 문화관광과 (061)850-5215. ⑥경남 밀양 한천박물관 밀양은 식이섬유가 많아 건강식품으로 인기 있는 한천의 본향이자 최대 생산지다. 한천은 우뭇가사리로 만든 우무를 건조한 것으로 양갱이나 젤리에 들어가는 재료로 생각하면 쉽다. 1층 460㎡ 규모의 한천박물관은 작지만 알찬 공간이다. 건강식품으로 유명하지만 제조과정 등은 생소한 한천에 대한 궁금증을 모두 해소할 수 있다. 박물관 입구에는 우뭇가사리를 세척하는 데 쓰는 세척기, 우뭇가사리를 삶을 때 쓰는 자숙용 가마솥 등이 있다. 박물관 내 체험관에서는 한천을 이용한 먹거리 만들기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박물관 건너편에는 한천레스토랑, 한천상점 등이 있어 한천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 한천박물관(밀양한천테마파크) 1577-6526.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10개월간… 아내는 죽음을 부탁했습니다”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10개월간… 아내는 죽음을 부탁했습니다”

    ② ‘끝없는 굴레’ 다중간병 아픈 가족 3명 혼자 돌보던 정현우씨다음주면 죽은 아내의 기일이다. 정현우(54·가명)씨는 오늘도 악몽 같았던 그날로 시곗바늘을 돌려본다. 3년 전 그날(2015년 9월 11일) 아내는 하루종일 죽여 달라고 매달렸고, 정씨는 차 안에 번개탄을 피워 자살을 도왔다. 시간을 되돌린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까. 자신 없다. “이상하게 들릴 테지만 또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간병의 굴레’에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유방암에 걸린 아내, 뇌졸중으로 쓰러진 어머니, 선천성 뇌병변에 걸린 딸. 정씨는 혼자 아픈 가족 3명을 돌봐야 하는 ‘다중 간병인’이었다. 막내딸은 중학교 2학년이지만 키 130㎝에 몸무게가 30㎏이 채 되지 않는다. 셋째인 막내는 2003년 태어난 날부터 가혹한 시련을 겪었다. 유독 힘들었던 분만 과정을 이겨내고 첫 울음을 터뜨렸지만 아이는 장애를 안고 태어났다. 몸과 마음 모두 발달이 더뎠고, 복합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 정씨에게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딸이다. “이게 수술을 해서 펴진 거예요. 한 3년 됐죠. 그전에는 이렇게 굽어 있었고, 걷지도 못했어요. 지금은 보조기를 풀고 힘들지만 조금씩은 걸을 수 있어요. ‘슈퍼마켓에 가서 과자 사 먹자’고 꾀면서 걷기 연습을 시키죠.” 음악치료부터 물리치료, 재활치료까지 지난 14년간 안 해 본 게 없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등·하굣길 아이를 업고 다녔다. 다행히 다리 수술이 성공하고서는 어느 정도 걸을 수 있게 돼 재활치료에 집중하고 있다. 요즘엔 매일같이 딸의 다리 근력을 길러 주기 위해 수영장에 데려가 해가 지면 집에 돌아온다. 어머니가 쓰러진 건 세월호 참사로 온 나라가 수심에 빠졌던 2014년 4월이었다. 뇌졸중이 당시 일흔여덟이었던 어머니를 덮쳤다. 수술은 성공했지만 몸을 스스로 가누지 못했다. 요양시설에 보내자 어머니가 눈물로 매달렸다. “현우야.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 제발 집에만 데려다 주라.” “어머니는 따뜻한 분이었어요. 아버지는 젊은 시절 술과 노름으로 가정을 내팽개쳤죠. 집까지 떠났는데 병이 들어서야 돌아왔죠.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기꺼이 품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3년간 성심껏 간병했어요. 막내딸 간병만으로도 벅찼지만, 제게 유일한 버팀목이자 쉼터인 어머니를 외면할 수도 없었어요.” 정씨는 직장을 그만두고 어머니 집인 전북 부안으로 내려갔다. 막내딸은 아내에게 맡겼다. 수시로 가래를 뽑아내고, 대소변을 받아야 했다. 한 달 만에 수술비와 치료비 등으로 450만원을 썼다. 어머니가 모아 놓은 돈이 있었지만 곧 바닥을 드러냈다.아내에게 연락이 온 건 정씨가 어머니 간병으로 한창 힘들었던 2014년 11월 어느 새벽이었다. “할 말 있어. 빨리 와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사실 12년 전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었기에 법적인 부부는 아니다. 하지만 둘 다 재혼하지 않았고, 따로 살면서도 자녀들을 돌보며 관계를 유지했다. 정씨가 서둘러 경기도 집으로 돌아온 날, 아내는 유방암 3기 진단을 받았다고 말했다. “아내는 자존심도 독립심도 강한 여자였어요. 가정 형편이 좋지 않자 4년 내내 장학금을 놓치지 않으려 공부에 매달렸고, 결국 친정 도움 없이 대학을 졸업했죠. 한때 잘나가던 증권맨이었던 제가 직장을 그만두고 싶다고 하자 두말 않고 직접 돈을 벌었어요. 학원강사부터 농사일까지 이리저리 일거리를 찾아다닐 땐 스스로 가장 역할을 도맡아 주기도 했죠. 하지만 그런 아내도 암 앞에선 나약해졌어요.” 아내는 치료를 거부하고 “그냥 죽어버리고 싶다”고 했다. 함께 찾아온 우울증이 더 문제였다. 남편의 설득 끝에 수술을 받았지만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다. 진통제도 소용없었다. “번개탄이랑 삼발이, 쟁반, 햇빛 가리개를 준비해 줘. 제발….” 마음의 병이 깊어진 아내는 “아프지 않게 죽을 수만 있게 도와 달라”고 떼를 썼다. 설득하고 다독여도 소용없었다. 죽을 자리를 찾겠다며 정씨에게 종일 운전을 시켰다. 이런 일이 10개월 넘게 반복됐다.그날은 지옥 같았다.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낮 1시쯤 차에 시동을 걸었다. 아내를 태우고 고속도로를 빙빙 돌며 입씨름을 시작했다. 매번 똑같았다. “죽겠다”는 아내를 정씨가 “안 된다”고 말렸다. 아내를 달래려고 강원도까지 차를 몰았다. 하지만 이날은 정씨도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요양시설에 있는 어머니는 고열이 났다. 병원에서는 보호자가 와야 한다고 독촉했다. 오랜 시간 집에 혼자 놔 둔 막내딸이 걱정됐다. 9시간 동안 운전하며 아내를 설득하던 정씨는 결국 백기를 들었다. 자포자기하는 심정이었다. 비가 세차게 내렸다. 밤 10시 인적이 드문 시골길에 차를 멈춘 정씨는 햇빛 가리개로 앞유리를 가렸다. 독한 양주와 함께 수면제를 먹은 아내는 이미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수십번을 망설이다 결국 번개탄에 불을 붙였다. 모질게 마음먹고 차 밖으로 나왔다. 손이 떨리고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내가 나올 수 있게 차 문을 열어뒀다. 도망치듯 길을 빠져나와 택시를 잡았다. ‘고통스럽진 않을까. 문을 열어뒀으니 빠져나오지 않았을까’ 오만 생각이 다 들었다. 퍼붓던 비처럼 술을 들이켜고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자 딸이 엄마를 찾았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정신없이 차 속에 있을 아내를 향해 내달렸다. 아내는 숨져 있었다. 정씨는 스스로 경찰에 신고를 했다. “아내와 집을 나 설 때까지만 해도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는데···. 그날 따라 비도 내리고 여러 가지로 복잡했어요. 날씨가 맑았더라면 달라졌을까요?” 탈상 그렇게 3년이다. 가족은 조금씩 아픔을 치유 중이다. 약은 없다. 망각에 의지할 뿐이다. 정씨는 자살 방조 혐의로 구속기소됐다가 법원에서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그간 정씨가 아내를 열심히 보살폈고, 자녀들이 선처를 호소한 게 정상참작됐다. ‘내 죽음은 내가 선택한 거다. 죽더라도 남편에게 책임을 묻지 말아 달라’고 적힌 아내의 쪽지 글도 마지막 배려가 됐다. 장례를 치르고 며칠 뒤 자녀들이 엄마의 휴대전화를 정리하다 유언이 녹음된 파일을 발견했다. “엄마는 먼저 간다. 너무 오래 슬퍼하지 말아라. 엄마 돈은 똑같이 각자 통장에 나눠 넣었다. 너희에겐 너희 인생이 있으니 즐겨라.” 가족은 다시 통곡했다. 정씨와 취재진이 마지막으로 만난 건 지난달 29일이다. 아들은 군대 가고, 큰딸은 학교로 떠나 막내딸만 집에 있었다. 그는 이제 딸만 보살피면 된다. 어머니도 올해 2월 작고했다. 그를 짓누르던 다중 간병의 짐은 벗었다. 사랑했던 두 여자를 떠나보낸 덕이다. “이제 막내딸 하나만 돌보면 되지만 사실 지금도 힘들어요. ‘너 막노동할래? 집에서 간병할래?’ 물으면 나가서 일하고 싶다고 말해요. 아이가 나아지지 않을까 봐 두렵기도 해요. 얼마 전 백내장 수술을 했는데 눈이 잘 안 보여요. 하지만 제가 좌절하고 주저앉으면 누가 막내딸을 돌보겠어요. 그래서 웃기로 했어요. 아이도 더디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믿어요. 그게 하늘에 있는 아내가 바라는 것이기도 할 테니….” 글 사진 이혜리 기자 hyerily@seoul.co.kr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 [In&Out] 미래의 희망, 금융교육에서 찾아야/박중민 금융투자교육원장

    [In&Out] 미래의 희망, 금융교육에서 찾아야/박중민 금융투자교육원장

    “투자에 무관심했던 자녀들이 내게 비트코인에 대해 물어본다. 가상화폐를 통해 아이들이 신기술과 금융에 열정이 생겼다. 우리는 사려 깊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이들의 열정에 반응해야 한다.”지난 2월 미국 의회 청문회에 출석한 크리스토퍼 장칼로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의장의 연설이 적잖은 반향을 일으켰다. ‘가상화폐에 대한 규제 당국의 감독 역할’이라는 주제로 열린 청문회에서 규제 당국의 수장이 한 말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파격적이다. 그의 발언에서 우리는 크게 두 가지를 유추할 수 있다. 신기술에 접근하는 미국 규제 당국의 태도와 자식 세대에게 금융 지식을 조금 더 알려 주고픈 아버지의 마음이다. 이는 금융교육이 강화되는 움직임과 무관하지 않다. 금융위기 이후 미국은 금융교육을 학교 경제교육의 핵심으로 삼았다. 20년 가까이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 의장으로 재임한 앨런 그린스펀은 2008년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사태 원인 중 하나로 ‘금융문맹’이 많은 현실을 꼽았다. “문맹은 생활을 불편하게 하지만 금융문맹은 생존을 불가능하게 한다”는 말도 여기서 나왔다. 이후 미국은 대통령 직속 금융교육자문위원회를 설치해 체계적인 교육을 실시했다. 교육 과정에는 소득, 금전 관리, 지출 외에 신용과 저축, 금융투자를 포함시켰다. 선진국은 금융위기를 통해 금융과 일찍 친해져야 평생 자산을 지혜롭게 관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2005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금융교육 가이드라인’을 통해 금융교육이 평생에 걸쳐 이뤄져야 한다고 권고했다. 영국도 2014년부터 중고생(만 11~16세)의 금융교육을 의무화했다. 우리 현실은 어떠한가. 최근 금융감독원 조사에서 20대의 86.4%는 평생 금융교육을 받아 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 금융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가 부족하니 대출의 무서움이나 투자의 기본 원칙에 무지하다. 한국 시장이 유독 ‘묻지마 투자’에 취약한 것도 부실한 교육 기반에 기인한다. 하지만 ‘인생은 한 방’이라고 믿으며 투자와 노름을 구별하지 못하는 자세로는 평생 궁핍함을 벗어날 수 없다. 신학용 전 의원이 2014년 발의한 ‘금융 및 기초생활소양 교육지원 법안’은 기본 교과과정에 금융교육을 반영하는 것이 골자지만 국회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더 늦기 전에 돈의 흐름을 스스로 깨우칠 수 있는 교육을 제도화해야 한다. 국제적 정합성 제고의 문제만이 아니다. 청년실업, 저출산, 가계부채 증가, 노인 빈곤 등 미래를 암울하게 하는 지표들은 하나의 담론으로 귀결된다. “내 자산을 어떻게 축적하고 관리해야 하는가”의 문제다. 우리는 젊은이들의 신기술과 금융에 대한 열정에 사려 깊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반응하고 있는가. 자식 세대가 투자와 자산 관리에 관심을 갖도록 고민하고 있는가. 다음 세대를 위한 일은 물고기를 주는 것이 아닌 낚시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미래 희망을 위한 첫걸음이 금융교육에 있다.
  • [황인숙의 해방촌에서] 딩동댕, 파라솔 아래서 파도소리 들으며 책을 읽으리

    [황인숙의 해방촌에서] 딩동댕, 파라솔 아래서 파도소리 들으며 책을 읽으리

    개미가 너무 많이 보인다. 방에서도 우리 고양이들 밥을 개미로부터 지키려면 해자(垓字)를 만들어야 한다. 접시에 물을 채우고서 중앙에 사기그릇으로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밥그릇을 놓는 것이다. 방바닥은 말할 것 없고, 식탁 위에도 책상 위에도 개미가 떼 지어 줄지어 다닌다. 내가 과자 부스러기를 많이 흘리고 살아서 그렇다는 친구도 있지만, 과자 부스러기로 산을 쌓아도 애초에 거기 개미가 없었다면 개미 세상이 될 일 없을 테다. 그러고 보니 길고양이 밥을 줄 때 가방에 묻어 우리 집으로 이주했을 개미들의 생가가 있는 풀밭도 올여름에는 개미가 유난히 성하다.나는 벌레를 싫어하지 않지만, 맞닥뜨리면 해치게 된다. 방금 랩톱 옆을 바지런히 지나가는 개미 한 마리를 눌러 죽였다. 지난밤에도 여러 마리 모기 숨이 끊어졌을 테다. 우리 고양이 란아가 옥상에 나가겠다고 해서 방충문을 열어 줬는데, 마침 놀러 와 있던 친구 말이 모기떼가 들어왔다는 것이다. 나는 모기보다 모기향을 더 싫어하지만 할 수 없이 모기향을 피웠다. 여름은 벌레들의 계절. 나날이 살생이다. 오늘은 초복, 여름의 한가운데다. 이제 하나 둘 바캉스를 떠나겠지. 별로 부럽지 않다. 거의 벌거벗고 해수욕을 즐기던 시절이었다면 바다에 가고 싶어 안달이 났을 테다. 언제부턴가 여름의 뙤약볕도 뜨거운 모래밭도 향유의 대상이기는커녕 내 몸이 당해 내지 못할 공격 같다. 이십대 끝 무렵의 여름이 생각난다. 한 사설 문학단체에서 주관하는 ‘여름해변학교’에 초대를 받았다. ‘응하마’라고 대답은 했지만,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사흘을 보내는 게 내키지 않았던 터에 출발하는 날 아침에 비가 오기도 해서 취소됐을지도 모른다고 나 좋을 대로 판단했다. 그리하여 내처 잠을 자다가 전화를 받았다. 화난 목소리였다. 나 때문에 기다리던 전세버스가 면목없는 얼굴의 나를 태운 뒤 비를 뚫고 달렸다. 날씨는 우중충했고 나는 시무룩했다. 나처럼 약속을 하고 나와 달리 끝내 오지 않은 한 남자 시인이 부럽기도 했다. 젊은 시인이었던 우리 둘은 구색 맞추기였는지 다행히도 행사에 임무를 주지 않았다.전체 참가 인원이 쉰 명 남짓이었던 것 같다. 숙소는 바닷가 집이었는데 버스에서 내려서 제법 걸었다. 넓지 않은 방 하나에 다섯 명이 묵는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그나마 시인들에게는 방이 배정됐지만, 일반 참가자는 텐트에 묵기도 한다고 했다. 그래도 다들 기대에 찬 얼굴이었다.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마당에 나가 저녁밥을 먹고 방으로 돌아갔다가 심심해서 도로 나왔는데, 한 방의 열린 문 너머 광경에 눈이 번쩍 뜨였다. 세 남자가 고스톱을 치고 있었다. 그 지방 텔레비전 방송국의 촬영 기사였던 그들은 나를 끼워 주었다. 얼마나 재밌던지. 한 시간쯤 내 독무대였는데, 잠깐 볼 일이 생겼다고 두 사람이 자리를 떴다. 그들이 빨리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내게 남은 한 사람이 소위 ‘맞고’를 치자고 했다. 오케이! 20분이나 됐을까. 순식간 그동안 딴 돈은 물론 지갑을 다 털렸다. 뭐 본전이 많지는 않았다. 한 5만원쯤이었나. 이윽고 두 사람이 돌아오고, 나는 잠시 방문 앞에 서서 그들이 노는 걸 들여다봤다. 오다가다 노름방을 흘깃거리던 캠프 주최자가 빙긋 웃으며 물었다. “돈 빌려줘요?” 몇 해 뒤 한 커피 자리에서 만난 그이가 말했다. “그때 참 보기 안 좋았어요. 젊은 여자가 핫팬츠 차림으로 남자들 사이에 앉아서 고스톱 치는 거.” 오, 아무 생각 없었는데, 그럴 수도 있었겠구나. 나는 살짝 얼굴이 달아올랐다. 다음날 아침에 한적한 바닷가를 찾아서 혼자 헤엄을 쳤다. 일행 중 수영복을 활용한 사람은 나밖에 없었을 것이다. 생각하니 교통비고 숙식비고 한 푼 내지 않고 행사에는 무심하게 바다를 즐기고 왔다. 대체 시인이 뭐기에 그런 혜택을 누렸을까. 다음주부터는 몇 해 벼르기만 했던 바캉스를 시도해야겠다. 틈틈이, 이른 오전에 영종도의 바닷가에 가서 SF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읽다가 하오가 되기 전에 돌아오는 것이다. 차 속에서도 왕복 네 시간은 읽을 수 있다. 1235페이지, 1.6㎏. 이 책을 다 읽으면 여름도 한풀 꺾이리.
  • [주말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EBS 토요일 밤 10시 55분) 올봄 극장가에는 요즘 좀처럼 보기 힘든 멜로영화 바람이 불었다. 손예진, 소지섭 주연의 ‘지금, 만나러 갑니다’가 260만 관객을 모은 것. 삶의 경계를 넘어서도 잊을 수 없는 애틋한 사랑의 감정을 되살린 영화의 원작은 일본의 동명 소설이다. 이 소설을 바탕으로 2004년 먼저 만들어진 일본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가 상영돼 국내 버전과 비교할 수 있다. 고교 육상선수 출신인 아이오 타쿠미는 혹독한 훈련 때문에 뇌의 화학물질이 원활하게 분비되지 않는 희귀병을 앓으며 아들 유지와 함께 살아간다. 아내 미오가 1년 전에 병사하면서부터다. 영화는 미오가 부자 앞에 거짓말처럼 다시 나타나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림책을 매개로 환상과 현실을 잇는 작품은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풍경, 사랑과 그리움의 서사로 관객의 마음을 끌어들인다. ■머니 트레인(OBS 일요일 밤 10시 10분) 어릴 시절 입양된 존(웨슬리 스나입스)과 찰리(우디 해럴슨) 형제는 ‘뉴욕 지하철역 범죄율 제로’를 목표로 삼는 교통 경찰이다. 형제지만 형 존은 도박에 매여 사는 동생 찰리 때문에 늘 골치를 앓는다. 어느날 연쇄적으로 지하철 매표소를 불태우는 사이코패스 범인을 잡기 위해 존과 찰리, 여경찰 그레이스(제니퍼 로페즈)가 숨가쁜 추격전을 벌인다. 범인은 빠져나가고 노름빚 갚을 돈을 빼앗긴 찰리는 분한 마음에 머니 트레인(뉴욕 지하철역에서 매일 수백만 달러의 교통 요금을 운송하는 열차)을 탈취하려고 한다. 1995년 작.
  • 성폭행 논란 하용부, 평창 올림픽 문화행사 불참

    성폭행 논란 하용부, 평창 올림픽 문화행사 불참

    성폭행 논란에 휘말린 인간문화재 하용부씨가 ‘2018 평창 문화올림픽’ 공연에 불참했다.‘2018 평창 문화올림픽’ 측은 19일 공식 SNS를 통해 하용부 씨의 공연 불참 소식을 전했다. 애초 하 씨는 이날 오후 5시부터 강원도 강릉시 교동 소개 강릉 페스티벌 파크에서 열리는 ‘2018 평창 문화올림픽’의 ‘아트 온 스테이지’에서 남사당패 김주홍과 ‘노름마치’ 공연을 할 예정이었다. 앞서 지난 18일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윤택한 패거리를 회상하며 2’란 제목으로 장문의 글이 게재됐다. 김보리라는 필명을 사용한 이 네티즌은 자신이 19세였던 2001년 여름 연극촌 근처 천막에서 하용부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남상훈의 글로벌 리더십 읽기] 정의가 환하게 빛날 때까지

    [남상훈의 글로벌 리더십 읽기] 정의가 환하게 빛날 때까지

    진정한 한국인 디디에 세스벤테스. 1931년 벨기에의 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다. 어릴 적 꿈은 우편배달부. 자전거를 실컷 타고 싶어서다. 신부가 되기로 결심하고 루뱅대 철학과에 들어간다. 한국인 유학생 둘을 만난다. 한국으로 오라고 권유한다. 그중 한 사람은 우리나라 국회의장이 된다. 내심 마음에 두고 있던 곳은 아프리카의 벨기에령 콩고. 당시 한국은 콩고보다 더 위험한 나라다. 좁은 문을 택한다. 1958년 한국에 온다. 첫 부임지는 부안. 거기서 한국 이름을 얻는다. 지정환. 언어는 물론 식사도 힘들다. 매일 청국장과 김치와 밥. 냄새 때문에 먹지 못해 여러 날 굶는다. 굶어 죽지 않으려면 먹는 수밖에 없다. 억지로 몇 번 먹으니 ‘구수하다’는 말이 이해가 된다. 습도가 높은 장마철은 지옥. 복통과 설사가 심해진다. 탈진되어 병원에 가면 링거주사 한 대를 놔주고 약이라고 주는 것은 인삼차뿐. 인삼이 맞지 않는 체질이라 오히려 증세는 더 나빠진다. 담낭 제거 수술을 받는다. 스스로 ‘쓸개 없는 놈’이라고 부른다. 가난한 주민들은 외국에서 구호물자로 온 밀가루 배급으로 살아간다. 어떻게 가난의 굴레를 끊어 낼 수 있을까 고민한다. 마침 정부에서 간척지를 개간하면 1인당 3000평의 땅을 준다고 한다. 쉬지 않고 노력해 여의도의 두 배가 넘는 땅을 개간한다. 주민들에게 나누어 준 후 건강 회복차 벨기에로 갔다가 6개월 후 돌아온다. 그사이 주민들은 고리대 노름으로 자신의 땅을 다 팔고 떠난다. 그렇게 헌신적으로 도와줬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깊은 배신감. 이제는 다시 한국인의 삶에 개입하지 않으리라. 임실로 발령이 난다. 경치는 아름답지만 몹시 척박한 땅. 자신들을 ‘원래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부르는 주민들은 환경을 탓하며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조차 않는다. 겨울로 접어들면 농작물을 팔아 마련한 돈을 술과 노름으로 탕진한다. 군수가 간곡하게 부탁한다. “떠나실 때 천주교 신자들뿐 아니라 임실군민 전체에게 뭔가 하나쯤은 꼭 남겨 주셨으면 합니다.” 다시는 개입하지 않는다 다짐했던 마음이 흔들린다. 주민들을 다독여 신용조합을 만들고 산양을 키운다. 생산된 산양유가 병원과 환자들에게 팔고도 남는다. 무엇을 할까. 치즈를 만들어 보자. 전문지식이 없이 의욕만 앞선 시도. 3년간 실패에 실패를 거듭한다. 유럽에 가서 3개월간 치즈 만드는 법을 배우고 돌아온다. 그사이 조합원 11명 중 10명이 떠난다. 실망스럽지만 포기는 없다. 하나 남은 조합원과 치즈를 만든다. 실패와 성공이 거듭된다. 치즈 판매에 나선다. 무작정 서울로 올라가 문을 두드린다. 외국인 전용상가 및 조선호텔 납품에 성공한다. 미군부대에서 불법으로 흘러나온 치즈가 전부였던 시절. 한국 최초로 만들어진 임실치즈는 서울의 특급호텔까지 유통망을 넓히며 성장한다. 누가 임실이 ‘한국 치즈의 본고장’으로 떠오를 줄 알았을까. 나라의 민주화에도 참여한다. 1970년대 유신체제에 반대하다 경찰에 잡혀간다. 강제 추방의 위기를 맞는다. 마침 농촌 발전에 관심이 많던 박정희 대통령이 ‘임실치즈로 농민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 신부’라는 것을 알고 추방 명령을 거둔다. 경찰들을 만나면 지정환이란 자신의 이름은 ‘정의가 환히 빛날 때까지 지랄한다’는 의미라고 일갈한다. 너무 무리했던 탓일까. 다발성 경화증에 걸린다. 벨기에로 가서 치료를 받고 돌아온 후 장애인들을 돌보는 일에 전념한다. 2002년 호암상을 받는다. 상금 1억원에 사재를 보태 ‘무지개장학재단’을 설립한다. 2007년부터 매년 장애인 학생 20~30명이 혜택을 받는다. 2016년 정부는 대한민국 국적을 부여한다. 한국에 온 지 어언 53년. 법적으로 한국인이 된다. 남은 생애 봉사의 여정을 다 마친 후 한국 땅에 뼈를 묻으리라. 누구를 ‘위해’ 살기보다 ‘함께’ 살았다는 정환. 그는 자신을 굴삭기에 비유한다. “세상에는 버릴 사람이 없습니다. 지금 나보다 낮은 곳에 있는 사람을 내 높이로 올려놓고, 그다음엔 더 밑에 있는 사람을 다시 그 높이로 올려놓고, 그러다 보면 세상이 달라지겠지요.” 국경을 넘어서 한국 사람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푸른 눈의 이방인. 그야말로 진정한 한국인이자 글로벌 리더다.
  • ‘마이웨이’ 이경애, 처절한 어린시절 “어머니 죽지 말라고 빌었다”

    ‘마이웨이’ 이경애, 처절한 어린시절 “어머니 죽지 말라고 빌었다”

    개그우먼 이경애가 연예인을 꿈꾸게 된 계기를 밝혔다.18일 방송된 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에서는 개그우먼 이경애의 파란만장 인생사가 공개됐다. 이날 성공하고자 하는 이유에 대해 “어머니 호강시켜 주려고 한 거다”고 말문을 연 이경애는 “부모님은 가난하셨다. 아버지가 약주를 너무 좋아해 술값이 너무 많이 들어가니까 따뜻한 법을 편안히 먹을 수 있는 조건이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 아빠는 왜 저럴까?’란 고민을 많이 했다. 생활이 안되니 엄마가 늘 장사를 했다. 아빠가 월급도 안 갖다주면서 장사도 못하게 하니 굶어죽으라는 거냐. 계절마다 다른 걸 했다. 속옷, 고기, 과일 등 안해본 장사가 없다. 엄마는 늘 먹여살리려고 했다”며 “자식들 다섯명이 전부 어머니 덕분에 타락하지 않고 있었다”고 털어놨다. 14살에 가장이 된 이경애는 학비가 없어 초등학교 졸업 후 중학교를 가지 못했다. 이경애는 “엄마가 한푼한푼 모아 그 당시 집값이 70만원이었는데 집값을 마련해놨다. 근데 아빠가 1년만에 누가 꾀어내 노름을 하신 거다. 집도 다 압류가 들어와버렸다. 엄마가 몇 년에 걸쳐 모아둔 돈으로 집이 날라가니 오갈데가 없는 거다. 엄마가 절망이 와서 그냥 맥을 놔버리면서 정신 이상이 됐다. 혼이 빠져버렸다. 그래서 미친 사람처럼 엄마가 집을 나갔다. 뒷산에 가면 나무에서 목을 매고 있는 거다. 어머니를 붙잡고 빌었다. 엄마 죽지 말라고, 성공해서 호강시켜 드릴테니까 죽지 말라고 빌었다. 엄마가 ‘너 때문에 죽지도 못한다’고 때렸다. 두들겨 맞으면서도 강제로 끌고 내려왔다”고 회상했다. 이어 이경애는 “잠깐 자고 일어났는데 엄마가 또 없어졌다. 미치는 거다. 개천가에 누가 꽃 꽂고 노래부르고 있다고 있다 해서 가서 찾아놨다. 초등학교 졸업하고 내 인생에 있어 최악이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경애는 삶을 포기한 엄마한테 희망이 되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경애는 “목매단 걸 네 번을 발견해 살려드렸고 한 번은 쥐약을 드신 거다. 그래서 내가 그걸 발견해 병원에 데려다줘 위세척하고 살아났는데 간, 위, 신장을 다 버린거다. 그 뒤부터 엄마가 아무것도 못하고 병원에 누워만 있었다. 병이 깊어진 거다. 그때 내가 깨달았다. 내가 뭘 하든 성공해야 되는구나. 공부는 안되고. 그때 내 인생을 설계한 게 ‘그래 연예인이 되자’였다. 연예인은 나이가 상관없으니까. 그때부터 연예인의 꿈을 꾼 것이다. 내가 선택한 게 아니라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고 당시 기억을 떠올렸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올 서점가 ‘주옥같은 작품 ’ 쏟아진다

    올 서점가 ‘주옥같은 작품 ’ 쏟아진다

    윤흥길·박민규·은희경·하성란·조남주…중견·여성·스타작가 신작 잇따라 선보여줄리언 반스 등 외국작가도 새 작품 출간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문학계에는 풍성한 한 상이 차려진다. 굵직한 자취를 남긴 원로·중견 작가들이 오랜만에 신작으로 독자들을 만나는가 하면 지난해 돋보였던 여성 작가들의 활약이 올해도 이어진다. 믿고 보는 외국 작가들의 작품도 대거 대기 중이다.우선 원로·중견 작가들이 오랜만에 신작을 내며 문학계에 활기를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된다. 가장 주목할 만한 작가는 올해 등단 50년을 맞은 윤흥길 작가다. 올 하반기 20년 만에 발표하는 5권짜리 대하 장편소설 ‘문신’(문학동네)에서 일제 말기 한반도를 배경으로 생존을 위해 분투하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다. 이야기꾼 성석제도 4년 만에 장편소설 ‘왕은 안녕하시다’(문학동네)를 상반기에 선보인다. 문학동네 네이버 카페에 연재한 작품으로 조선 숙종조를 배경으로 우연히 왕과 의형제를 맺게 된 주인공이 시대의 격랑 속에서 왕을 지키기 위해 종횡무진하는 모험담을 특유의 입담으로 펼쳐 낸다. 윤대녕 작가는 ‘도자기 박물관’(2013) 이후 오랜만에 새 소설집을 펴낸다. 이승우 작가는 하반기에 산문집 ‘작가일기’(은행나무)로 독자들을 만날 예정이다. 독자들에게 꾸준하게 사랑받는 스타 작가들의 작품도 반갑다. 한동안 뜸했던 박민규 작가는 위즈덤하우스의 웹소설·웹툰 플랫폼인 ‘저스툰’에서 오는 3월부터 연재하는 ‘코끼리’를 가을쯤 단행본으로 묶어 낸다. 1970년대 지방도시 노름판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장르적 성격의 장편소설이다. 입담 좋은 이기호 작가는 제17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인 ‘한정희와 나’를 비롯한 7편을 묶은 소설집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문학동네)를 상반기에 출간한다. 지난해 문학계를 강타한 여성 작가들의 목소리는 올해도 두드러질 전망이다. 은희경 작가는 ‘태연한 인생’(2012) 이후 6년 만에 장편소설 ‘빛의 과거’(문학과지성사)를 하반기에 낼 예정이다. 계간 문학과사회에 연재 중인 작품으로 1970년대 여자대학교 기숙사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8년 만에 장편소설을 내는 하성란 작가는 잃어버린 동생을 찾아 나서는 과정에서 알게 된 인간의 비밀을 담은 ‘정오의 그림자’(은행나무)를 비롯해 창비의 네이버 블로그 ‘창문’에 연재한 ‘여덟 번째 아이’, 2010년 웹진 문지에 연재한 ‘여우 여자’(문학과지성사)를 줄줄이 펴낸다. 지난해 ‘82년생 김지영’으로 신드롬을 몰고 다닌 조남주 작가는 올해 선보이는 소설집(제목 미정·다산북스)에서 10대부터 70대 여성들의 삶을 다룬다. ‘너무 한낮의 연애’,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 등 소설집으로 젊은 독자들로부터 주목받은 김금희 작가는 상반기에 첫 장편 소설 ‘경애의 마음’(창비)을, 첫 소설집 ‘쇼코의 미소’로 7만 5000부라는 판매 부수를 올리며 화제를 모은 최은영 작가는 하반기에 두 번째 소설집을 선보인다.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외국 작가들의 작품도 서점에 진열된다. 서늘한 통찰력과 지적인 위트로 유명한 영국 문학의 제왕 줄리언 반스의 적나라한 연애소설 ‘단 하나의 이야기’(가제·다산북스)가 출간된다. 현실과 환상이 뒤섞인 문학 세계로 주목받는 폴 오스터의 작품 중 가장 분량이 긴 소설이자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던 작품 ‘4 3 2 1’(열린책들)도 하반기에 출간이 예정돼 있다. 주인공 아이작 퍼거슨의 동시적이고 독립적인 4개의 삶을 다룬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최고의 소설로 꼽아 화제가 된 소설 ‘운명과 분노’의 작가 로런 그로프의 2012년 작품인 ‘아르카디아’(문학동네)도 독자들을 만난다. 1970년대 히피 문화가 득세하던 시절 뜻 맞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대안공동체 ‘아르카디아’에서 자란 ‘비트’라는 남자의 40년간의 삶을 좇는다. 2016년 별세한 움베르토 에코의 유작 ‘제0호’(열린책들)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고양이’(열린책들), 오르한 파무크의 ‘빨간 머리의 여인’(민음사)도 줄줄이 출간된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광복절 경축사] 구순의 여성 독립투사가 애국가 선창… 文대통령 ‘평화’ 20·‘촛불’ 5번 언급

    [광복절 경축사] 구순의 여성 독립투사가 애국가 선창… 文대통령 ‘평화’ 20·‘촛불’ 5번 언급

    대통령내외 위안부할머니 안아줘 징용피해자·파독광부 등 첫 초청올해 아흔한 살인 여성 독립운동가 오희옥 지사가 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72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가늘고 떨리는 목소리로 무반주에 애국가를 부르기 시작하자 장내가 조용해졌다. 애국가의 곡조는 평소 부르던 애국가와 달랐다. 오 지사가 부른 애국가는 ‘오랫동안~ 사귀었던 정~든 내 친구여’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에 애국가 1절의 가사를 붙여 부른 것이다. 지금의 애국가 곡조는 작곡가 안익태 선생이 작곡한 것으로 1948년 8월 15일 정부 수립 이후부터 불려졌다. 일제강점기 시절 독립운동가들은 올드 랭 사인의 곡조에 애국가 가사를 붙여 불러왔다. 오 지사는 독립운동가들이 불렀던 애국가 1절을 담담하게 부른 뒤 육해공군 의장대원들의 반주에 맞춰 현 애국가를 4절까지 불렀다. 문 대통령의 취임 후 처음 맞는 광복절은 이전의 광복절 경축식보다 좀 더 ‘광복’의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3000여명의 참석자 중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파독 광부·간호사 등이 새롭게 초청됐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길원옥·이용수 할머니와 강제동원 피해자인 이인우옹, 최장석옹, 오 지사는 맨 앞줄에 앉았다. 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행사장에 입장하는 모습을 본 최옹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문 대통령은 앉아 계시라고 권했다. 또 문 대통령 내외는 이용수 할머니를 안으며 반가워했다. 포상 방식도 달라졌다. 1933년 일본 도쿄에서 항일운동을 하다 체포돼 고초를 겪은 고 윤구용 선생 등 5명의 독립유공자를 포상하면서 돌아가신 애국지사에게 직접 포상한다는 의미를 살려 추서판에 훈장을 거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문 대통령은 약 30분간 기념사를 읽어 내려갔다. 문 대통령의 기념사가 끝날 때까지 역대 최다인 39차례 박수가 이어졌다. 7700여 자 분량의 기념사에서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는 ‘평화’(20번)였다. 또 역대 대통령의 기념사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국민주권(8번), 촛불(5번)이란 단어도 여러 차례 사용했다. 경축 공연은 애국지사 김용환의 실제 이야기를 다룬 특별 뮤지컬 공연이었다. 김 지사는 근대 한국의 3대 파락호(재산이나 세력이 있는 집안의 자손으로서 재산을 몽땅 털어먹는 난봉꾼)로 알려졌다. 실제로는 노름꾼으로 위장해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했다. 문 대통령과 김 여사 등은 공연을 보고 눈가를 훔치기도 했다. 광복절 노래 제창 후 문 대통령 내외는 김영관 애국지사와 독립유공자 후손인 배국희씨와 함께 무대에 올랐다. 참석자들은 모두 태극기를 든 손을 위로 번쩍 올리며 ‘만세’를 세 번 외쳤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황석영 “언어와 역사의 감옥에 갇혀 있다… 지금도”

    황석영 “언어와 역사의 감옥에 갇혀 있다… 지금도”

    “당신은 북에 가서 김일성을 여러 번 만났으니까 아무리 못 살아도 한 칠팔 년은 살아야지. 작가에겐 이런 게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찌개 백반 아닌가. 틀림없이 나가자마자 이런 얘기 다 쓸 거면서….” “이 양반들 병 주고 약 주네.”1993년 국가안전기획부에서 방북 사건으로 조사를 받던 황석영 작가가 수사관과 나눈 대화다. 옥살이를 하고 풀려난 지 20여년이 지났다. 하지만 작가는 “지금도 감옥에 있는 상황과 다르지 않다”고 했다. 현대사의 결정적 장면들과 필연으로 얽혔던 작가 개인의 생애를 기록한 자전(自傳)을 ‘수인’(囚人·전 2권, 문학동네)이라 이름 붙인 건 그 때문이다. “작가는 누구나 언어의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언어 자체가 감옥이니 거기서 놓여날 수가 없죠. 분단된 한반도란 장소도 감옥이고요. 일본 작가 오에 겐자부로나 프랑스 작가 르 클레지오를 만나면 나한테 덕담이라고 ‘서사가 많은 나라에 태어난 네가 참 부럽다’고 해요. 오에 선배가 그랬을 땐 ‘맨날 난리법석인 나라에 사니까 소설 쓸 거리가 많지?’라며 비꼬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시니컬하게 ‘나는 당신의 자유가 부럽다’고 했죠. 역사라는 엄처시하가 늘 도사리는 상황에서 사회적 요구, 책임으로부터의 자유가 가능할까요. 저는 평생 작가로서 자유를 추구해 왔지만 늘 자유롭지 않은 모순적인 삶을 살았죠. 이번 책을 내면서 비로소 석방될지는 모르겠습니다.”(웃음) ‘수인’은 5년간의 수감 생활을 가운데 놓고 유년·청년 시절, 베트남 참전 시절, 광주민주화항쟁, 방북과 망명 시절 등을 오가며 전개된다. 2004년 일간지에 연재했던 자전소설 ‘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를 대폭 손질한 것으로, 광주민주화항쟁부터 수감 생활을 끝내는 기간까지 20여년이 더해졌다. 작가는 “아마 말년까지 속박 속에서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을 늘 했다”며 “그래서 감옥을 현재 시간으로 놓고 들락날락하면서 천을 짜듯 시간을 얽어놨다”고 소개했다.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온 삶이지만 노작가는 수줍은 소년의 어투로 언제나 돌아갈 곳은 문학이라는 집이었다고 고백했다. “감옥에서 나왔을 때 문단엔 ‘쟤는 다시 글 못 쓸 거다’란 소문이 파다하게 났어요. 친한 고은 시인까지 그랬으니까요(웃음). 하지만 나는 노름꾼이 다 들어먹고 패망해서 새벽 끗발이 오길 기다리는 것처럼 평온하더라고. 15년간 글을 안 썼지만 내 지나온 삶이 문학적 삶이었다고 믿었죠. 우여곡절도, 착오도 많았지만 젊었을 때부터 저는 작품과 인생을 합치시키며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문학이 제 집이었던 거죠. 캄캄한 밤에도 저 멀리서 반짝이는 불빛처럼 언제나 저를 끌고 갔습니다.” 책은 당초 지난해 여름쯤 나올 예정이었지만 지난달 나온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기록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이하 넘어 넘어) 감수 작업과 지난해 말 촛불정국으로 늦춰졌다. 작가는 “지난 5월 광주항쟁 무렵 ‘넘어 넘어’가 나오고 6월 항쟁 30주년을 맞는 이맘때 자전이 나와 우연의 일치치곤 기묘하다”고 했다. “박정희가 일으킨 5·16쿠데타가 터졌을 때가 열아홉이었는데 그의 딸인 박근혜가 탄핵으로 물러난 올해가 일흔다섯이니 대장부 한평생이 걸렸네요. 제가 열아홉부터 일흔다섯이 될 때까지 한국 현대사는 평탄치 않았고 지금도 미지로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제 촛불 이후 새로운 출구에 와 있죠. 그러니 제 자전은 해방 이후 한국전쟁부터 지금까지 나와 동시대 사람들의 삶을 증언하고, 공유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세월은 제 몫이 아니고 다른 사람이 기록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하찮은 인생도 흔적 남지 않는 건 아니죠”

    “하찮은 인생도 흔적 남지 않는 건 아니죠”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노하거나 서러워하지 말라/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언제나 슬픈 법/모든 것은 한순간 사라지지만 가버린 것은 마음에 소중하리라.’노작가는 쪽지를 꺼내 들고 푸시킨의 시를 읊어 내려갔다. 익숙한 만큼 흘려듣기도 쉬운 구절을 낭송하고는 말했다. “이 시는 춥고 어두운 곳에 웅크린 이들에게 위로를 주는 시입니다. 중학교 때부터 암송했지만 그걸 안 지는 얼마 안 됐어요. 어두운 곳에 있는 사람, 그래서 더이상 키가 자라지 않는 사람이 받을 수 있는 위로는 어떤 걸까. 이 생각이 늘 제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아직도 글을 쓰는 거겠죠. 앞으로도 계속 그들을 위해 쓰고 싶고요.” 2013년 ‘객주’ 완간 이후 4년 만에 장편 ‘뜻밖의 생’을 들고 돌아온 소설가 김주영(78)은 이렇게 꿈을 말했다. 이번 소설은 올해 등단 47년, 여든을 눈앞에 두고도 ‘끝까지 쓰겠다’는 집념으로 서울 살림을 정리하고 객주문학관이 있는 경북 청송으로 내려가 창작에 몰두한 결과물이다.이야기는 소년 박호구와 항구에서 노숙을 하며 지내는 노인 박호구를 교차하며 풀려 나간다. 노름꾼 아버지와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려 무당에 의존하는 어머니 사이에서 자란 박호구에게 외로움, 따돌림은 덫 같은 숙명이었다. 밑바닥 인생의 전형인 그가 직조하는 희비극의 아찔한 격차는 행복과 불행이 필연적으로 맞닿아 있는 우리 생의 본질을 전해 준다. “소설에는 지리멸렬한 가정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거대한 역사의 흐름에도 소속되지 못한 한 사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울물이 흘러가도, 산그늘이라는 흔적은 남아 있다’는 게 이 사람의 철학이죠. ‘나같이 하찮은 인생이라고 흔적이 남지 않는 것은 아니다’라는 주인공의 대사처럼, 절대로 세상을 원망하지 않는 고귀한 사람이죠. 삶에는 언제나 고난보다는 그 고난을 해결할 방법이 더 많은 법이거든요.” 이번 작품은 2016년 11월부터 올해 2월까지 문학동네 네이버 카페 연재로 먼저 독자들과 만났다. 온라인에서 독자들 반응이 어땠냐는 질문에 작가는 “미리 보면 행복해질까 싶어 독자들 반응은 안 봤다. 지금까지 내가 쓴 소설 중에 가장 재미있는 소설이라 장담한다”는 특유의 너스레로 좌중을 웃기기도 했다. 최근 극심한 수면장애를 겪고 있다는 작가는 전날 밤 몽롱한 상태에서 영화를 봤다고 했다. 젊은 시절 미남에 능력자였던 영화 속 노배우의 추레한 모습이 자신의 모습으로 비춰졌다는 그는 문득 속담 하나를 건넸다. “이태리 속담에 ‘흘러간 물로 물레방아를 돌릴 순 없다’는 말이 있어요. 시골 툇마루에 앉아 해바라기나 하고 있을 나이에 글을 쓴다는 게 흘러가는 물을 끌어다 물레방아를 돌리는 억지가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듭니다. 물레방아는 축이 튼튼해야 잘 돌아갈 텐데 이 물레방아는 축이 닳고 닳아 마구 휘청이며 돌아가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놓지 않는 건 제 나이에도 꿈이 있기 때문입니다. 작품을 읽는 사람에게 위로가 되고 싶다는 꿈 말이죠.”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백발백중’ 야바위 정확히 맞추는 고양이 ‘스노우’

    ‘백발백중’ 야바위 정확히 맞추는 고양이 ‘스노우’

    야바위 천재 애완고양이 ‘스노우’ 지난 23일 허핑턴포스트코리아는 최근 유튜브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영리한 고양이 ‘스노우’에 대해 소개했다. 유튜버 ‘AJIL AJIL K J’가 올린 영상에는 야바위(교모한 수법으로 남을 속여 돈을 따는 노름의 하나)를 정확히 맞추는 ‘스노우’의 모습이 담겼다. 영상 속 ‘스노우’는 주인이 빈컵 속에 탁구공을 넣고 종이컵 세 개를 섞자 탁구공이 든 컵을 정확히 집어내는 능력을 선보였다. 또 한 차례 실험으로 주인은 ‘스노우’의 실력이 우연이 아님을 보여줬다. 이번엔 종이컵 4개. 종이컵이 늘어난 상황에도 ‘스노우’는 정확히 탁구공을 찾아낸다. ‘스노우’는 야바위 천재임이 틀림없어 보인다. 지난 21일 유튜브에 게재된 해당 영상은 현재 11만 1400여 건의 조회수를 기록 중이다. 사진·영상= AJIL AJIL K J youtube 영상팀 seoultv@seoul.co.kr
  • “야바위? 동작 그만!” 엄청 똑똑한 고양이 (영상)

    “야바위? 동작 그만!” 엄청 똑똑한 고양이 (영상)

    뛰어난 기억력을 과시하는 똑똑한 고양이 한마리가 소셜네트워크 서비스(SNS)에서 많은 사람들을 놀래키고 있다. 이번주 온라인상에 올라온 한 고양이 영상이 수천 명의 네티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바로 일본에 거주하는 고양이 ‘스노우’. 이제 1살 정도 된 스노우는 셸 게임(the Shell Game)에 능하다. 이 게임은 작은 공이 든 컵 하나를 포함해 여러 개의 컵을 엎어 놓고 여러 번 위치를 바꾸어 어느 컵 안에 공이 들어있는지 알아맞히는 놀이다. 한국에서는 특히 남을 속여 돈을 따먹는 노름인 속칭 ‘야바위’로 일컬어지지만 보통 어린 자녀의 기억력과 연상능력을 향상시키는데 좋다. 스노우의 주인은 탁구공만한 크기의 작은 공을 가져와 재미있는 게임을 시작했다. 공을 한 개의 종이컵 아래에 숨겨놓고, 이리저리 바꿔가며 교묘하게 섞었다. 그러나 고양이는 속지 않았다. 일렬로 늘어선 컵들 중 공이 어디에 숨겨져 있는지 정확하게 알아맞혔다. 그리고 매번 게임을 할때마다 정확하게 공이 들어있는 컵만을 계속 골라냈다. 영리한 고양이를 자랑스러워한 주인은 "스노우는 내게 가장 소중한 애완동물"이라며 "함께 놀고 상호작용하다 보면 그가 곧잘 알아듣는다"라고 말했다.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무대서 만나는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

    무대서 만나는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

    한국연극연출가협회가 주최하는 ‘2017 신춘문예 단막극전’이 오는 31일부터 새달 16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열린다. 새롭게 등단한 작가들의 작품을 무대에 올릴 수 있는 기회인 동시에 관객에게는 신예 작가들을 알리는 무대다. 서울신문을 비롯해 동아일보, 경상일보, 부산일보, 한국일보,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과 한국극작가협회의 신춘문예 당선작까지 총 7개 작품이 공연된다.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부문 당선작인 조현주(39) 작가의 ‘오늘만 같지 않기를’은 암에 걸린 어머니 옥화와 택시 운전사 대복, 노름을 하며 인생 한방을 꿈꾸는 아들 운수, 오토바이 배달을 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손자 만석을 둘러싼 평범한 일상사를 통해 가족 간의 유대감에 대해 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심사위원들로부터 “일상을 유지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윤리 감각과 인정, 삶을 지켜내는 온기가 소중하게 느껴진다”는 평가를 들었다. 송훈상씨가 연출을 맡았다. 동아일보 당선작 ‘루비’(김명진 작가, 정형석 연출), 경상일보 당선작 ‘명예로울지도 몰라, 퇴직’(김연민 작가, 김성노 연출), 부산일보 당선작 ‘달팽이의 더듬이’(양예준 작가, 황태선 연출), 한국일보 당선작 ‘그린피아 305동 1005호’(주수철 작가, 양흥렬 연출), 조선일보 당선작 ‘자울아배 하얘’(고군일 작가, 박정석 연출), 한국극작가협회 당선작 ‘횃불’(임진현 작가, 윤우영 연출) 등도 무대에 오른다. 공연은 오후 3시부터 10시까지 1시간씩 릴레이로 이어진다. 개별 작품은 편당 8000원, 7편 모두를 관람할 수 있는 패키지 티켓은 3만 5000원이다. (02)3668-0007.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노름꾼·건달로 저만의 연기… 광대가 되고파요”

    “노름꾼·건달로 저만의 연기… 광대가 되고파요”

    연극 ‘남자충동’(26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TOM 1관)은 가부장 사회라는 틀 속에서 강한 남자가 돼야 한다는 억압 아래 비뚤어진 폭력을 행사하는 남성들이 등장한다. 아버지 ‘이씨’를 대신해 가족을 지키기 위한 힘을 키우겠다며 자신의 조직을 이끄는 주인공 ‘장정’과 가정을 뒤로한 채 노름을 일삼으면서도 가족들에게 인정받기를 바라는 장정의 아버지 ‘이씨’의 폭력성은 매번 충돌한다. 거칠고 충동적인 남성들의 폭력과 비극을 그린 작품 내용상 자칫 무거울 수 있는 분위기 속에 눈에 띄는 배우가 한 사람 있다. 2011년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 3’에서 우승한 그룹 울랄라세션 출신 배우 박광선(27)이다. 그는 2015년 12월로 그룹 활동을 중단하고 연기자의 길을 걷고 있다.●그룹 울랄라세션 활동 중단하고 연기자로 박광선은 2015년 케이블 채널의 음악 드라마 ‘칠전팔기 구해라’를 시작으로 뮤지컬 ‘젊음의 행진’, ‘알타보이즈’ 등에 출연했다. 연극 무대는 이번이 처음. ‘남자충동’의 조광화 연출가가 지난해 8월 박광선이 출연한 ‘알타보이즈’를 보러 오면서 연극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최근 대학로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당시의 웃지 못할 일화를 털어놨다. “사실 그때 조광화 연출님이 누군지도 몰랐어요. 조 연출님이 배우들에게 저녁을 사주셨는데 저는 컨디션이 안 좋아서 그냥 집에 갔을 정도니까요. 배우, 스태프분들한테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명성을 알게 됐죠. 나중에 제가 무대에 오르는 날 작품을 보러오신 조 연출님이 ‘연극해 볼 생각 없냐’고 물으시길래 ‘시켜만 주시면 어떤 역이든 다 하겠다’고 당장 말씀드렸어요.” 그는 ‘남자충동’ 1997년 초연, 2004년 재연 당시 배우 오달수가 맡았던 조연 ‘달수’를 연기한다. ‘이씨’와 노름을 하는 노름꾼으로 등장하는가 하면 ‘장정’이 이끄는 무리의 건달로도 나온다. 연기 경력이 3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무대 위에서 제법 능청스러운 연기로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작품 배경 사투리 배우러 목포 내려가 관찰 “처음엔 부담감이 엄청 컸어요. 선배님 이름에 흠집을 내는 게 아닌가 해서요. 조금씩 마음을 내려놓으면서 저만의 ‘달수’를 연기했죠. 어느 날 초연 때부터 작품에 참여하신 정태진 조명디자이너님이 ‘젊고 새로워진 달수를 보는 것 같아서 좋다’고 했을 때 진짜 기분이 좋았어요.” 연기를 전문적으로 배운 적 없는 그는 지인 중 배우들을 찾아가 열심히 조언을 구했다. 이번 작품의 배경인 전라남도 목포의 사투리를 배우기 위해 무작정 목포에 내려가 사람들을 관찰하기도 했다. 그의 연기에 대한 이 같은 열정은 무대가 지닌 특유의 매력에서 비롯됐다. “무대 위에서 다른 사람을 연기하는 과정이 재미있어요. 무대라면 제한 없이 다 해보고 싶어요. 그래서 배우보다 오히려 ‘광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무대 위에서 트럼펫도 불다가 탭댄스도 추고 또 콩트도 할 수 있는 만능 재주꾼이요. 노력하면 제게도 그런 기회가 오겠죠?”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류승범 “왜 14년 만에 무대로 돌아왔냐고? 하고 싶었으니까”

    류승범 “왜 14년 만에 무대로 돌아왔냐고? 하고 싶었으니까”

    배우 류승범이 ‘강한 남자’ 콤플렉스에 빠진 남자로 무대에 돌아온다. 1997년 초연 당시 각종 연극상을 휩쓸며 화제를 모은 조광화 연출의 연극 ‘남자충동’에서다. 조 연출 데뷔 20주년을 기념하는 이번 무대는 류승범이 2003년 연극 ‘비언소’ 이후 14년 만에 선택한 연극이다. 류승범은 이번 연극에서 영화 ‘대부’의 마이클 콜레오네(알 파치노 분)를 롤모델로 삼는 시골 건달 ‘이장정’ 역을 맡았다. 노름에 빠져 가족은 뒷전인 아버지 ‘이씨’와 이혼을 선언하는 어머니 ‘박씨’, 섬세하고 연약한 동생 ‘유정’과 자폐증을 앓는 막내 동생 ‘달래’를 둘러싼 인물 간의 정등 속에서 자신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패밀리’(폭력조직)를 꿈꾸는 청년을 연기한다. 지난 19일 서울 대학로 CJ아지트에서 열린 연습실 공개 현장에서 만난 류승범은 연극 무대에 다시 돌아온 계기에 대해 “처음 희곡을 읽고 이 작품이 무대에 올라가는 모습을 머릿속으로 상상하면서 읽었는데 굉장히 (연기)해 보고 싶었다”면서 “함께 작업하는 여러분들을 통해 배우로서 많은 걸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가 14년간 무대를 찾지 않은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는 “최근에 연극 예술에 대한 호기심이 많이 생긴 게 사실”이라면서 “예전에 한 번 호기심에 대학로에 온 적이 있었는데 그땐 구경을 왔다면 이번에는 본격적으로 연극을 체험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데뷔 17년차 베테랑인 그에게도 무대는 여전히 어려운 곳이다. 극의 배경이 전라남도 목포인 탓에 맛깔나는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하고자 어머니 ‘박씨’ 역으로 출연하는 목포 출신의 배우 황영희로부터 조언을 얻었다. 그는 “무대에서 걷고, 뛰고, 말하는 것에 있어서 숙지해야 하는 부분들이 많아 개인적으로는 혼란스러운 시간을 겪었다”면서도 “가끔 헤맬 때 연극과 영화를 모두 경험하신 선배들께서 제가 들으면 딱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을 잘해 주셨다”고 말했다. 2004년 재연 이후 장정 역에 어울리는 배우를 찾기 쉽지 않아 그간 극을 올리기 힘들었다는 조 연출은 “장정은 강함과 부드러움이 공존하는 배우여야 한다”면서 “때로는 야생마처럼 거칠고 반항적으로, 때로는 허풍스럽지만 귀여움 가득한 배우 류승범이야말로 장정에 어울린다”고 강조했다. 배우 박해수가 장정 역에 더블 캐스팅됐다. 2010년 연극 ‘풀 포 러브’로 조 연출과 처음 인연을 맺은 이후 ‘프랑켄슈타인’, ‘됴화만발’을 거쳐 최근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푸른바다의 전설’ 등 무대와 브라운관을 넘나들며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중견 배우 손병호와 김뢰하는 도박에 중독된 무능력한 가장 ‘이씨’를, 배우 황영희와 초연 멤버 황정민이 가족의 그늘을 벗어나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나는 어머니 ‘박씨’를 연기한다. 공연은 2월 16일~3월 26일. 서울 대학로 TOM 1관. 4만~6만원. 1544-1555.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이광식의 문화유랑기] ‘우주의 내적 아름다움’을 그린 모차르트

    ​[이광식의 문화유랑기] ‘우주의 내적 아름다움’을 그린 모차르트

    하이든이 그랬다던가? 모차르트의 죽음 소식을 듣고는 '앞으로 200년 안에는 그와 같은 천재는 나타나지 않을 거'라고. 모차르트가 죽은 지 올해로 꼭 226년이 흘렀다. 그의 말처럼 모차르트를 능가하는 음악가가 나타났다는 소식은 여전히 들려오지 않았다. 200년은 하이든이 너무 짜게 잡은 거로 판명난 셈이다. 모차르트는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의 작곡가인가? 상대성이론으로 현대 우주론의 문을 활짝 연 아인슈타인은 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에게 죽음이란 더 이상 모차르트를 들을 수 없다는 의미이다." 바이올린으로 모차르트를 즐겨 연주했던 아인슈타인은 그 말로도 모자랐던지 이런 말까지 덧붙였다. "'모차르트의 음악은 너무나 순수하고 아름다워서 우주 자체의 내적 아름다움을 반영한 것 같이 보인다."​ 음악가 중에서는 차이코프스키만큼 모차르트를 사랑했던 사람도 드물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모차르트는 어떤 작곡가와도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위대한 존재였다. 그에게 있어 모차르트는 거의 종교적 숭배의 대상으로, 이런 말을 한 적도 있다. “모차르트는 너무나 천사와 같은 존재, 아이처럼 순수한 존재였다. 그의 음악에는 도달할 수 없는 숭고한 아름다움이 맺혀 있어서 예수처럼 숨 쉬는 이가 있다면 그 사람이 바로 모차르트일 것이다. 모차르트 음악에서 음악적 아름다움이 도달할 수 있는 완벽함의 최정상에 이르게 된다는 게 내 절대적인 확신이다.” 그러고 보니 예수와 모차르트는 34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같은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살아 생전 모차르트에 관한 글쓰기를 일절 거부했다. '숭배하는 존재에 대해 뭐라 말하는 것은 신성모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새해 첫날 아침 밥상머리에서 모차르트를 얘기했다. 단촐한 아침식탁 앞에 앉아 식사를 하는데 모차르트의 호른 협주곡 1번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가 죽은 해에 쓴 곡이다. 호른의 고운 음색을 타고 천의무봉한 멜로디가 감미롭게 달려간다. 때로는 기쁨이, 때로는 쓸쓸함이 느껴지는 가락. 특히 1번곡 2악장 론도 알레그로는 경쾌하게 흘러가면서도 쓸쓸한 느낌이 묻어나는 가락이다. 가을걷이 다 끝난 텅 빈 들녘 같은 쓸쓸함. 나는 그 곡을 들으면 늘 가을 들녘길을 홀로 가는 사람의 쓸쓸한 뒷모습이 떠오르곤 한다. 그 노래가 주는 위안은 다른 어떤 것도 대신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음악이란 위대한 것. 200년도 더 전에 죽은 모차르트가 20세기를 사는 한 인간에게 이런 큰 위안을 주다니. 모두 4번까지 있는 모차르트의 호른 협주곡 테이프를 리와인드로 하루종일 수십 번 듣고 또 들으며 고통스러웠던 한 시기를 보낸 적이 있다. 생각해보면 모차르트에게 큰 신세를 진 셈이다. 그런 연유로 그 호른 협주곡만 들리면 귀는 쫑긋 서고 만감이 교차함을 느끼게 된다. 식사하다가 아내에게 불쑥 말했다. "여보, 나 죽을 때 저 곡 좀 틀어주라." 경쾌해서 임종 자리에는 안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게 뭔 대수랴. 나 역시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좋아하지만, 나의 임종 자리에서 그 곡을 듣고 싶진 않다. 그런 곡은 오히려 '삶의 한가운데 있다고 자부할 때'(*) 들어야 하는 곡이 아닐까.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죽음을 기억하라) 아내가 잠시 동안 잠자코 있더니, "저 곡이 몇 분짜리였지?" 하고 묻는다. "한 8~9분. 2악장이니까." "그럼, 그동안 안 죽으면?" "4번까지 있으니까 계속 틀어. 그럼 한 시간쯤 걸릴 거야. 그 동안이면 죽겠지 뭐." "알겠어!! 꼭 틀어줄게. 그런데 나보담 먼저 죽진 마.” “흐…” 나의 임종은 아마 그런 대로 행복할 것이다. 그런데 그 뒤에 이어진 얘기는 시쳇말로 좀 깬다. "여보, 근데 저 모차르트 좀 봐. 내기 당구로 엄청 빚을 졌대." CD 상자의 모차르트 초상화를 보며 말했다. "응, 당구 못 치게 생겼어." "내 바둑 실력 정도 됐나 봐. 내가 내기 바둑 두면 엄청 깨질 수준이거든." "주제는 잘 아시네. 후후." 모차르트가 진 빚은 당시 그의 연봉 4,5년치는 됐다고 한다. 1억 넘는 연수입이었다니, 빚이 5억은 넘은 셈이다. 물론 다 노름빚은 아니었고, 개중에는 아내 콘스탄체의 사치와 모차르트의 못 말리는 과소비도 한몫을 했다고는 한다. 어쨌든 그의 만년은 늘 빚에 허덕이는 삶이었다. 실제 영화 '아마데우스'에도 그런 풍경이 더러 비친다. 나는 이걸 그의 아내 탓이 크다고 본다. 그녀는 모차르트가 하숙하던 집 둘째딸이었다. 사실 모차르트는 첫째딸을 좋아했지만, 딱지맞고, 하숙집 아줌마의 덫에 걸려 '후순위 채권'을 덜컥 물었던 것이다. 세상 풍파 다 겪은 노회한 여자가 순진한 젊은 사내 하나 요리하기란 식은죽 먹기였을 것이다. 충동구매의 후유증은 이내 나타났다. 모차르트는 아내와 금실이 별로 좋지 않았다. 당연히 아내로부터 따뜻한 사랑을 받지 못했다. 남자가 여자로부터 따뜻한 사랑과 보살핌을 제대로 못 받으면 반드시 엉뚱한 짓을 하게 마련이다. 세상에 사고 치며 돌아다니는 사내들 뒤에는 대략 그런 여자가 있다고 본다. 그 역도 성립하는 듯싶고. 모차르트의 경우 그게 도박 당구였다. 인생에 낙이 없는 사람들이 흔히 잘 빠지는 코스다. 모차르트는 34살에 죽어서 공동묘지에 묻혔는데, 콘스탄체는 아파서 남편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인류 최고의 음악천재가 어디에 묻혀 있는지 아직도 잘 모르고 있다. 지금까지 길게 말한 요지는 바로 세상의 남정네들이 아내와의 금실 강화에 매진해야 하는 이유다. 내가 이 정도나마 사람 구실 하며 사는 것도 다 아내 덕이란 걸 잘 안다. 아내가 없었다면 출판이라는 그 아비규환에서 생환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요즘도 아내를 볼 때 가끔씩 생각한다. 이 여자와 얼굴 마주보며 같이 살 날도 따져보면 그리 많이 남지 않았구나. 머지않아 어느 고요한 저녁을 아내 없이 나 혼자, 또는 나 없이 아내 혼자 맞는 날이 오겠지. "머지않아 헤어질 것들을 열렬히 사랑하라."(**) *릴케의 시 '終曲'의 한 부분. 전문은 다음과 같다. '죽음은 참으로 위대하다./ 우리들은/ 웃고 있는 그의 입./ 우리가 삶의 한가운데 있다고 자부할 때/ 그는, 갑자기/ 우리들 속에서 울기 시작한다.' **셰익스피어 소네트 73 중. 이광식 칼럼니스트 joand999@naver.com
  • [2017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 오늘만 같지 않기를 - 조현주

    [2017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 오늘만 같지 않기를 - 조현주

    >>등장인물 노대복 69세, 마을버스기사 양옥화 67세, 노대복의 아내 노운수 45세, 노대복·양옥화의 아들, 택시기사 노만석 22세, 노운수의 아들, 퀵서비스맨 때어느 가을 토요일 저녁 장소한눈에도 오래되고 허름해 보이는 집의 거실이다. 거실 벽은 얇은 나무합판으로 둘러쳐져 있다. 군데군데 칠이 벗겨지거나 나무합판이 삐져나온 곳이 보인다. 가구나 테이블, 가전제품, 주방의 싱크대 등에도 오랫동안 사용한 흔적이 역력하다. 무대 뒤쪽은 주방이다. 싱크대와 냉장고 등이 있고, 냉장고 앞에 식탁으로 사용하는 원목 탁자가 있다. 주방 오른쪽으로는 미닫이문이 있고, 이 문을 나가 좁고 긴 복도를 따라가면 현관문이 나온다(객석에서 현관문은 보이지 않는다). 미닫이문 오른쪽 벽에는 커다란 전신 거울이 걸려 있고, 그 바로 옆은 노만석의 방이다. 주방 왼쪽으로는 뒷마당으로 바로 연결되는, 스테인리스로 된 문이 있다. 뒷마당에는 양옥화가 가꾸는 텃밭이 있다. 파나 고추 같은 것들을 키운다. 바로 옆에 방문이 있고(노운수의 방), 그 옆에 또 하나의 문이 있다. 이곳은 욕실 겸 화장실이다. 그리고 그 옆으로 또 하나의 방문이 있다(노대복, 양옥화의 방). 방문이 마치 이 집 인테리어의 전부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그 외의 특별한 건 보이지 않는다. 흔한 액자조차 벽에 걸려 있지 않다. 무대 앞쪽에는 온 가족이 앉을 수 있는 패브릭 소파가 객석을 향해 디귿자로 배치되어 있고 담요 같은 것들이 걸쳐져 있다. 왼쪽 소파에는 마른 빨랫감들이 아무렇게 놓여 있다. 가운데에는 테이블이 놓여 있고 꽃병이 있다. 테이블은 나무의 밑동을 잘라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이 역시 오래돼 보인다. 무대 밝아지면 대복, 방문을 열고 등장한다. 주방을 어슬렁거리며 뭔가를 찾고 있다. 잠시 후 뭘 찾는지를 잊어버린 사람처럼 가만히 서서 생각에 잠긴다. 그러다 기억이 났는지 서랍장을 뒤져 손톱깎이를 찾아 소파 쪽으로 온다. 소파 끝에 엉덩이를 걸치고 테이블 위에 발을 올려놓는다. 자신의 발을 불만스러운 듯 이리저리 살피는 대복. 한참을 들여다보다 깎기 시작한다. 통증이 있는지 간간이 허리를 펴고 심호흡을 한다. 동작을 반복하다 신경질이 나는지 손톱깎이를 옆 소파에 던져 버린다. 대복 빌어먹을! 발가락을 뽑아내든가 해야지. 소파에 드러누웠다가 다시 일어나 손톱깎이를 찾는다. 다시 발톱을 깎기 시작하는 대복. 곧바로 미닫이문이 열리고 휘파람을 불며 운수 등장한다. 무스로 정돈한 올백 머리, 알이 큰 선글라스를 쓰고, 동선운수라고 쓰인 택시회사의 제복을 입고 있다. 거울을 보며 한껏 폼을 잡는 운수. 그런 모습을 한심한 듯 쳐다보는 대복. 잠시 후 둘의 눈이 마주친다. 과장되게 인사를 건네는 운수. 운수 그간 옥체 건강하셨습니까? 대복 누구? 운수 저는 그러니까, 아들입니다. 대복 그런 이름은 내 머릿속엔 없는데. 여긴 어떻게? 분명 문을 걸어 잠갔는데. 운수 수척해 보이십니다, 아버님. 들어가서 쉬시지요. (혼잣말처럼, 하지만 대복에게도 들릴 정도로 크게) 큰일이야, 빨리 기억이 돌아와야 할 텐데. 대복 뽑아낼 게 있는데 뽑아낼 수가 없네요. 어째야 합니까, 하나님. 운수 하나님은 바쁘셔서 그런 기도는 들어주시지 않습니다. 대복 쑤욱, 하고 뽑혀버리면 얼마나 좋을까. 운수 세상에 있는 건 다 있을 만한 이유가 있어섭니다. 마음에 평안을 찾으시지요. 대복 실수를 하셨습니다. 아주 큰 실수를 하셨어요, 하나님. (발톱에 통증을 느끼는지 인상을 찡그린다) 운수 병원엘 가세요. 왜 가만히 두고 병을 키워요? 대복 내 병을 키우는 건 네놈이다, 이 망할 자식아. 운수 또, 또 그러신다. 혈압도 높은 양반이. 대복 어디 가서 뭘 했기에 이제야 기어들어오는 거냐? 운수 뭘 하긴요, 일했죠. 대복 네놈이 야간조인 건 너만 모르고 우리 가족이 다 알아. 운수 일 끝나고 피곤해서 그냥 회사 근처에서 잤습니다. 대복 걸어서 이십 분이면 오는 너의 회사 말이냐? 운수 밤새 운전만 하면 다리가 부어요. 천근만근입니다. 대복 그래, 알지 알아. 나도 사십 년을 운전만 해서 발톱이 이 모양이지. 보이냐? (발을 들어 운수 쪽으로 내민다) 얼빠진 놈. 대체 언제 정신을 차리려고. 운수 그만하세요. 저도 낼모레면 오십이에요. 대복 아유, 그러세요. 죄송합니다, 제가 겨우 칠십밖에 처먹지 않아서. 운수 먹을 만큼 먹었다는 거죠. 대복 어디서 같잖게 나이 타령이야? 운수 조심하세요. 곧 터집니다, 제 인생에 잭팟이. 뒷일, 감당할 수 있으시겠어요? 대복 감당 못해도 좋으니 제발 좀 터져다오 그놈의 잭팟. 운수 두고 보세요. (거울을 보며 머리를 다듬는다) 대복 (그 모습을 한심하게 바라보다 발톱을 깎기 시작한다) 어디 이름 모를 강에 가서 돌 껴안고 뛰어들든가 해야지. 운수 (소파에 앉으며) 그 의사 새끼 그거 돌팔이였나봐요. 수술한 지 얼마 됐다고 또 그래요? 대복 내성발톱이란 게 원래 그렇다. 운수 원래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요즘 같은 세상에. 대복 내 자식도 내 맘처럼 안 되는데, 뭔들 되겠냐? 운수 이 자식새끼는 자나깨나 아버님, 어머님 생각뿐입니다. 대복 자나깨나 노름 생각뿐이겠지. 운수 노름이라뇨. 친, 목, 도, 모. 남들이 오해하겠어요. 대복 그래. 하룻밤에 몇 백만 원이 오가는 친목도모. 운수 전 아니에요. 그런 돈도 없고. 대복 얼마나 다행이냐, 네놈이 개털인 게. 운수 총알만 있으면. (대복의 험악한 얼굴을 보고) 농담이에요, 농담. 대복 네 엄마 한 번 더 쓰러지면 네 귓구멍에 총알을 박아주마. 운수 말씀 한번 살벌하십니다. 대복 이 집의 절반이 아직도 은행 거라는 것도 잊지 않았겠지, 응? 내가 평생을 일해 장만한 이 집 말이야,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451-23번지! 운수 조금만 더 기다려 보세요. 느낌이 와요. 운의 바람이 저한테 불어오고 있다고요. 대복 여기 죄 많은 노름꾼 하나가 정신 못 차리고 방황하고 있습니다. 회개할 수 있게 정수리에 번개라도 내리쳐 주세요. 운수 요즘엔 말이죠, 상대가 어떤 패를 들었는지가 보여요. 대복 세 치 혀로 거짓을 일삼는 죄인입니다. 지옥의 문을 잠깐 열었다 닫아주실 순 없으신가요? 그 틈으로 살짝 밀어 넣고 싶습니다만. 운수 진짜라고요. 앉아서 딱 얼굴을 보고 있으면, 저놈이 지금 땡을 쥐고 있구나, 삼팔따라지를 쥐고 구라를 치고 있구나, 하는 게 보입니다. 대복 그거 정말 놀라운 일이구나. 어찌나 놀라운지 전혀 믿기지가 않아. 운수 열에 여덟은 정확하게 맞힙니다. 이제야 빛을 보는 겁니다, 그간의 세월 동안 쌓인 경험과 그리고. 대복 돈과 빚이. 운수 네, 그렇죠. 정말 조~금만 기다리세요. 곧 터집니다, 빰빠라밤~. 대복 내 속이나 터지게 하지 마라. (사이) 그런데. 운수 네, 존경하는 아버님. 대복 상대 패가 보이는데 왜 돈을 못 따는 거냐? 운수 중요한 지적이십니다. 대복 이유가 뭐냐? 운수 제 패가 그놈들 패보다 낮아서죠. 대복 아! 그렇구나. 그렇지, 그래. 그걸 몰랐네. 내가 몰랐어. (사이) 어떤 패를 들었는지는 보이는데, 그 패를 이길 수 없는 개패만 들어온다 이거지. 그렇지? 운수 환장할 일이죠. 한 끗으로 밟히고 족보로 밟히고 땡으로도 밟히고. 대복 그러니까, 재수가 없는 놈이구나 너는. 운수 기다리세요. 아스팔트는 깔렸습니다. 달리기만 하면 됩니다. 대복 노름꾼에 거짓말쟁이에 재수까지 없는 아이입니다. 하나님 곁에 자리가 남아 있나요? 운수 정말, 미치겠다니까요. 대복 정신 빠진 놈. 발톱을 정리하고 대복이 뒷마당으로 나가자 운수는 피곤한지 소파에 깊이 몸을 묻는다. 잠시 후 안방 문을 열고 옥화 등장. 손에 쥔 기저귀를 주방 쪽에 있는 휴지통에 버린 후 소파 쪽으로 와 잠든 운수를 본다. 옆 소파에 걸쳐진 담요를 들어 운수의 몸에 덮어주는 옥화. 뒷마당에서 들어와 그 모습을 지켜보는 대복, 가만히 서 있다가 안방으로 들어간다. 옥화, 소파에 앉아 이불을 개기 시작한다. 운수 (깜짝 놀라 일어나며 잠꼬대한다) 야 이 개새끼야, 이 씨벌놈아. 내 돈이야. (허공의 한 점을 응시하며 씩씩댄다. 뜨악해하는 옥화와 눈이 마주치자 태연한 척한다) 언제 나오셨어요? 옥화 미칠 거면 저 산골 오지 같은 데 가서 미쳐다오. 내가 못 찾아갈 곳에. 운수 며칠 만에 본 아들이 조금은 반갑지 않으세요? 옥화 그럴 리가. 전~혀 반갑지가 않단다. 운수 마음에도 없는 말 하십니다 또. 옥화 네가 내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운수 별일 없었어요? 옥화 없었다. 운수 정말요? 옥화 어제도 없었고 오늘도 없었고, 내일도 없을 거다. 하긴, 그런 게 너한테 뭐 중요하겠니. 한 달에 반을 밖에서 자는 애가. 운수 저도 다 생각이 있어서 그러는 거 아니겠어요. 옥화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날 도와주는 거다. 운수 그럴까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멍청하게 손가락만 빨고 집안에 처박혀 있을까요? (사이) 빌어먹을. (일어난다) 옥화 혹시, 여자 생겼냐? 운수 무슨 소리에요? 옥화 정희 엄마가 봤다더라, 네가 어제 젊은 여자랑 시장 입구 족발집에 있는 걸. 운수 (다시 자리에 앉는다) 아, 그분. 평생을 남 얘기로 입을 털어오신 분이죠. 옥화 그래도 없는 얘긴 안 턴다. 누군데? 운수 아무 사이 아니에요. 옥화 말해봐. 어떤 사람인데? 운수 그런 거 아니라니까요. 옥화 너 갔다 온 거 알아? 운수 나 참. 그냥 아는 다방 여자애예요. 옥화 다방? 운수 (실망한 듯 보이는 옥화를 보며) 대체 뭘 생각했던 거예요? 아직도 저한테 무슨 기대 같은 걸 갖고 계세요? 옥화 그런 거 없다. (사이) 좀 제대로 된 여잘 만나면 세상이 무너지냐? 운수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해요. 옥화 알아서 하기는. 알아서 해서 이 모양 이 꼴이지. 운수 어머니! 불편한 침묵이 흐른다. 잠시 후 아기 울음소리가 방 안에서 들려온다. 울음소리 점점 커진다. 운수 저거 아직도 안 갖다 버렸어요? 옥화 말 좀 예쁘게 해라. 저거라니. 운수 만석인 어디 갔어요? 옥화 씻는다. 운수 이 자식은 대체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옥화 이따 데려다주기로 했다더라. 운수 그래요? 옥화 정말 우리가 키우면 안 되겠냐? 운수 누구요? 옥화 우리! 운수 정신 나간 소리 하지 마세요. 옥화 만석인 절대 안 된다는데, 네가 얘기 좀 잘 해봐. 운수 나도 싫어요. 그리고 그게 그럴 수가 없어요. 대복 (목소리) 여보, 이리 좀 들어와 봐. 옥화, 뭔가 더 이야기를 하려다 말고 방으로 들어간다. 방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소파에 기대서 거실을 둘러보는 운수. 욕실 문이 열리고, 바지와 러닝만 입은 만석이 머리를 털며 등장. 운수 여, 아들. (모른 체하는 만석을 향해) 인사 좀 하지. 만석 오셨어요. 운수 그래. (방으로 곧장 들어가려는 만석을 멈춰 세우며) 아들아. 이리 좀 앉아봐라. 만석 바쁩니다. 운수 나도 바빠. 딱 일 분만 얘기하자. 만석 (앉으며) 왜요? 운수 (무심하게) 너, 뭐하는 놈이야? 만석 뭐가요? 운수 (주방 쪽에 있는 종이상자를 가리키며) 저거 말이야. 만석 저게 뭐예요? 운수 저거 말이야, 저거. 벌써 며칠째야? 열흘 정도 되지 않았냐? 만석 (알아차리고) 일주일밖에 안 됐어요. 운수 밖에는 뭐가 밖에야? 그 일주일 새에 저 방 안에 뭐가 채워졌는지 모르냐? 젖병에 딸랑이에 인형에. 그것만으로도 한 살림이다. 만석 오늘 데리고 갈 겁니다. 담당자 만나기로 했어요. 운수 그런 건 바로바로 처리했어야지. 만석 제가 알아서 합니다. 운수 아니지, 아니지. 이건 우리의 문제라고. 네가 저걸 이 집 안에 들여놓았던 순간부터 말이야, 우리 가족은 모두 공범이 된 거라고. 만석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담당공무원과도 이미 다 얘기가 됐거든요. 운수 공무원? 이 자식 순진하게. 걔네들이 뒤에서 무슨 짓을 하는지 누가 알아? 다짐을 받아 놔야지 서면으로다. 만석 믿을 만한 사람들이에요. 애 있는 동안 매일 찾아와서 체크하고. 운수 (말 자르며) 확실하게 하란 말이다. (사이) 여자는? 연락은 됐고? 만석 아뇨. 전화기가 계속 꺼져 있어요. 운수 처음 몇 번은 받았잖아. 만석 받았죠. 운수 뭐라고 그랬댔지? 그 남자 애가 확실하니까 잘 키우든, 아님 고아원에 버리든 알아서 하라고? 만석 그랬죠. 운수 망통 같은 년. 애가 무슨 쓰레기야? (사이) 남자는? 만석 여전히 연락 두절. 출입국 기록을 보면 필리핀 쪽으로 간 것 같다던데. 운수 하긴 나라도 웬 여자가 네 애 낳았으니까 네가 알아서 키워 했으면 외국으로 떴을 거다. 만석 경찰이 조사하고 있으니까 곧 해결되겠죠. 운수 뭐, 하든 말든. 아무튼 요즘 젊은 것들은 이해를 못 하겠어. 대체 어떤 강심장이면 애를 박스에 담아서 퀵으로 보낼 수 있나? 대단해, 대단해. 졸라게 놀라워. 안 그러냐? 만석 전 별로. 어렸을 때부터 하도 놀라운 일을 많이 겪어서. 본인이 제일 잘 아시잖아요. 운수 넌 누굴 닮아서 그렇게 비아냥이 수준급이냐? (말이 없는 만석을 향해) 됐고. 정말 네 애 아니지? 마지막 기회다. 지금 말하면 다 용서해주마. 만석 대체 몇 번을.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돼요? 운수 근데 너도 생각을 해봐. 퀵으로 물건을 받았어. 물건을 받았는데 수취인이 없어. 수취인도 없고 돈도 착불이라 못 받고. 다시 연락을 하니까 전화기가 꺼져 있어. 하는 수 없이 집으로 가져왔는데, 짜잔. 램프의 요정처럼 아이가 튀어나왔네? 너라면 이게 이해가 가냐? 만석 이해가 안 가면 이해를 하지 마세요. 어차피 관심도 없잖아요. 운수 네가 이 애빌 가다마사, 띄엄띄엄 보는, 아주 건방진 경향이 있는데. 만석 (말 자르며) 됐어요. 내 애 아니고, 오늘 데려다줄 거고, 그걸로 끝입니다. 그러니 더는 아무 말 마세요. 운수 (곰곰이 생각하다) 그런데 말이야. 이런 경우엔, 뭔가 보상금 같은 거 안 주냐? 일주일을 먹이고 재우고 씻기고 했는데. 만석 안 줍니다. 버려진 애 돌봐주고 무슨 돈을 바래요? 양심도 없어요? 운수 멍청한 소리 하지 마라. 양심이 무슨 소용이라고. 그러다 손가락 빨고 사는 거야. 손해만 보다 빚더미에 올라앉는 거고. 만석 우리 집도 빚더미에 올라앉아 있죠. 누구 덕분에. 운수 (기분 나빠하지 않고 반색하며) 그러니까, 뭔가 탈출구가 절실한 상황이다. 아들아. 그런 의미에서, 총알 좀 있냐? 이번에야말로 빚에서 좀 벗어나보게. 만석 (어이없어하며) 없어요. 운수 갚는다, 갚아. 이번에 한꺼번에 갚는다. 얼마지 이제까지 빌린 게? 한 백만 원 되냐? 만석 이백십팔만 사천오백 원이요! 운수 거짓말하지 말고. 만석 이자 빼고 원금만! 운수 그렇게 많았냐? 사천오백원은 뭐야? 대복 지난주에 가져간 담뱃값이요. 운수 아, 그래, 백 원짜리랑 십 원짜리 말이지. 집 앞 편의점 알바애가 실실 쪼개더라. 십 원이 남네요, 하면서. 그 뒤로 내가 거길 못 가요. 만석 능력 없으면 끊으세요. 운수 담배까지 못 피우면 이 엿 같은 세상을 어떻게 견디겠냐? 만석 그래서, 얼마요? 운수, 비굴하게 웃으며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인다. 만석,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만 원짜리 지폐 두 장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다. 만석 여기요. 운수 (지폐를 보며) 뭐냐 이게? 만석 담배 네 갑은 살 수 있을 겁니다. 운수 (손가락 두 개를 힘차게 펴며) 이 두 개를 말한 거지, (손가락을 굽혀서 내보이며) 이 두 개가 아니라. 만석 없어요. 운수 그러지 말고. 이번 주말 지나면 바로 준다니까, 진짜로. 만석 없습니다. (사이) 다음주 할머니 병원 가는 거 알고 있죠? 운수 벌써 한 달이 지났냐? 만석 이번엔 몇 십만 원이라도 좀 내세요. 할아버지도 나도 이제 돈 나올 데가 없어요. 목구멍까지 찼다고요. 운수 알았어, 알았어. (혼잣말처럼) 그러니까 내가 신약으로 하자니까. 만석 할머니가 빨리 돌아가셨으면 좋겠어요? 운수 네 할머니이기 전에 내 엄마야. 어디서 돼먹지 않은 소리야? 만석 똑바로 하시라고요, 그러니까. (지갑에서 오만 원짜리 지폐를 하나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다) 이게 다예요. 운수 필요 없어, 새끼야. 보자 보자 하니까 지 애비를 허수아비 짚단으로 알아. 싸가지 없는 새끼. (자리에서 일어나 욕실로 들어간다. 잠시 후 다시 나와 지폐를 챙기고 욕실로 향한다) 두고 봐, 이자까지 톡톡히 쳐서 네놈 얼굴에 뿌려줄 테니까. 만석 이백이십오만 사천오백 원입니다. 운수, 가만히 노려보다 욕실로 들어가 문을 세차게 닫는다. 멍하니 지갑을 들여다보는 만석. 한숨을 쉬다 옆에 놓여 있는 빨랫감을 발견하고 정리하기 시작한다. 잠시 후 빈 분유통을 들고 나오는 옥화. 분유통을 싱크대에 넣은 후 소파로 와 앉는다. 옥화 저녁은 어떡할래? 만석 바로 나가봐야 해요. 옥화 뭐가 급하다고 밥도 걸러. 찌개 끓여 놓은 거 데우면 되니까 한술 뜨고 가. 만석 담당 직원이 곧 전화할 거예요. 준비하고 있다 바로 나가야 해요. 옥화 그 사람은 주말에도 일한다니? 만석 그 사람도 빨리 마무리하고 싶겠죠. 옥화 여기 있는다고 애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뭘 그리 야박하게. 전화해서 월요일에 데리러 오라 그래라. 만석 이미 끝난 일이에요. 더이상은 안 돼요. 아까 얘기드렸잖아요. 옥화 그래도 그러는 게 아니야. 애를 데려가면 재울 데는 있대? 분유는 탈 줄 알고? 이제야 겨우 적응 좀 했는데, 또 이렇게 다른 데로 보내면 애가 놀라. 월요일에 오라 그래. 만석 그 사람들은 그게 직업이에요. 버려진 애들 보살피는 거. 옥화 버려지다니. 만석 빨리 가야 적응을 하죠. 여기서 계속 살 수 없잖아요? 옥화 왜 못 살아? 그냥 살면 되지. 아버지가 아무 얘기 안 하던? 만석 (얼버무리며) 별말 없었는데요. 옥화 하여튼 도움이 안 돼요. (사이) 한 번 더 생각해봐라. 만석 뭘요? 옥화 우리가 키우는 거 말이다. 만석 (단호하게) 그건 안 된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옥화 네가 말한 그 절차라는 것만 해결하면 키울 수 있는 거잖냐. 만석 그냥 들은 걸 얘기한 거예요. 저도 잘 몰라요. 사실 알고 싶지도 않고요. 옥화 그 애 얼굴을 봐서 알잖니? 큰 눈망울, 둥근 콧잔등에 숱도 무성하고. 사랑받으며 크면 이쁘게 자랄 거야. 천벌받아, 그런 애 버리면. 만석 천벌받아야 할 사람은 따로 있어요. 애가 어떻게 되든 말든 버리고 도망간 사람들이죠. 옥화 이 할미는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겠지 싶다. 만석 자식을 버리는 게 이해가 가요 할머닌? 그래요? 옥화 (당황하며) 그건 아니다만. 그래도 이게 다 인연 아니겠나 싶고. 만석 여긴 그냥 잠시 머물다 가는 곳이에요. 길어지면 불행한 인연이 될 뿐이죠. 옥화 애 생각을 해봐라. 어디 멀리 외국에 보내져서 소젖 짜고 양털이나 벗겨내게 할 셈이냐? 만석 누가 그래요? 옥화 나도 귀가 있고 눈이 있어. 티비에서 다 봤다. 만석 팔려 가는 게 아니에요, 입양이죠. 외국 가서 더 잘 먹고 좋은 교육받고 더 사랑받고 클 거예요. 그리고 아무려면 어때요. 내 아이도 아닌데. 옥화 우리 손자가 언제부터 이렇게 인정머리가 없어졌을까. 민달팽이 집이 없다고, 불쌍하다고 울던 우리 착한 손자는 어디 갔을까. 응? (사이, 달래듯) 그러지 말자. 어디 보내지 말고 우리가 키우자. 만석 우리 형편을 좀 생각하세요. 옥화 입 하나 는다고 당장 내일 굶어 죽는다니? 제 먹을 건 타고나는 거야. 만석 다 있는 사람들 이야기에요. 옥화 네가 그렇게 나오면 나도 다 생각이 있다. 만석 무슨 생각이요? 옥화 그 절차라는 거, 내가 하면 되지. 만석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옥화 왜 말이 안 돼? 만석 할머니는 안 돼요. 옥화 내가 왜 안 돼? 만석 암 환자가 무슨 애를 키워요? 옥화 (당황하며) 그게 무슨. 암 환잔 애를 못 키운다니? 만석 입양도 못 할 거예요. 옥화 이 집에 나 혼자뿐이냐? 너도 있고, 운수도 있고, 네 할아버지도 있고. 만석 전 빼주세요. 도와 드리지 않을 거니까. 옥화 그래, 그럼 넌 빠지고. 나랑 네 애비랑, 아니 네 할아버지랑 키우지 뭐. 만석 맘대로 하세요. 근데 애는 오늘 데리고 갈 거예요. 그렇게 하기로 했고요. 얘긴 끝났습니다. 옥화 안 된다. 그렇게 안 둘 거야, 이 할미가. 만석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렇게 하셔야 해요. (방으로 향한다) 옥화 (혼잣말처럼) 커갈수록 지 애비를 닮아가는 건지. 만석, 옥화의 말을 듣고 잠시 멈춰 서 있다가 그대로 방으로 들어간다. 옥화, 멍하니 앉아 있다. 잠시 후 대복 안방에서 나온다. 검정색 양복을 입고 있다. 욕실 문을 열고 깜짝 놀라는 대복. 대복 아이고 깜짝이야. 뭔 짓이냐, 이 망할 자식아! 운수 (목소리만) 뭐가요? 대복 왜 그러고 섰냐고? 운수 (목소리만) 하루에 삼사 분씩 이렇게 물구나무를 서줘야 뇌경색에 안 걸린답니다. 대복 옷이나 처입고 해라. 운수 (목소리만) 아버지, 여긴 욕실이라고요. 신경질적으로 문을 닫는 대복. 주방으로 가 대충 손을 닦고 거실 쪽으로 나와 소파에 앉는다. 대복 애새끼가 갈수록 이상해져. (사이, 혼자 웃으며) 아, 고놈, 참 여자애라서 그런지 애교가 장난이 아니네. 눈웃음치는 게 어찌나 이쁜지. 안 그래? (옥화가 반응이 없자) 뭐해? 옥화 응? 왜요 왜? 대복 어따 정신을 팔고 있어? 옥화 뭐라고 했어요? 대복 밥 먹자고. 옥화 아, 그래요, 그래야죠. 대복 (일어서는 옥화를 말리며) 이 사람이 나사가 빠졌나. 있어 그냥. 저녁은 무슨. 연씨네 상갓집 가기로 했잖아. 옥화 어디요? 아, 그랬죠, 상갓집. 대복 약 때문에 그래? (문득 생각난 듯) 아, 애는 만석이가 보나? 옥화 (힘없이) 조금 있다 데려다주기로 했대요. 대복 (실망한 듯, 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그래. 오늘? 뭔 사람들이 주말에도 일을 하나. 옥화 만석일 잘못 키웠나 봐요. 대복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옥화 엄마 없는 손자새끼, 기 안 죽이고 번듯하게 키우려고 어르고 달래고 오냐오냐 키웠더니 어른 되더니 인정머리도 없고, 고집불통에, 저밖에 모르고. 대복 헛소리하지 마. 만석이만 한 놈이 요즘 세상에 어디 있다고. 내가 살면서 유일한 자랑거리가 있으면 만석이 놈이 내 손자라는 거야. 옥화 나도 그런 줄 알았죠. 대복 맘고생을 하면서 커서 그런지 어린놈이 어둔 구석이 있긴 하지만. 옥화 친구도 하나 없는 거 아니겠죠? 대복 헛소리 지껄일 거면 가서 옷이나 챙겨 입고 나와. 옥화 정말 우리가 키우면 안 될까요? 대복 누굴? 옥화 저 애요. 대복 어허, 이 사람. 물이나 줘. 옥화 왜요? 불가능한 일도 아니잖아요. 대복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 무책임한 일이지. 옥화 (물을 가지러 가며) 풍족하게 키우진 못해도 부족하게 안 키우면 되잖아요. 딴 집에 가서 어떻게 클지 누가 알아요. 사람 일은 아무도 모르는데. 대복 당신이 신경쓸 일 아니야 그건. 옥화 그럼 난 뭘 할까요? 왜요? 당신도 암 환자가 뭔 소릴 하나 싶은 거예요? 대복 이 사람, 할 게 왜 없어? 옥화 뭐요? 대복 (무심하게) 잘 보내줘야지. 둘 다 잠시 말이 없다. 잠시 후 물을 떠서 테이블 위에 내려놓는 옥화. 대복, 마신다. 대복 (곧바로 잔을 내려놓으며) 찬물 없어? 옥화 따뜻한 거 드세요. 대복 사십 년 동안 내가 따뜻하게 마시는 거 봤어? 옥화 배 아프다면서요. 대복 그런 적 없는데. 옥화 지난밤에도 배 붙잡고 끙끙댄 거 다 알아요. 대복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안 돼. 살던 대로 살아야지. 옥화 살던 대로 살아서 이 모양 이 꼴이잖아요. 대복 우리 꼴이 어때서? 이만하면 잘살았지. (냉장고 냉동칸에서 얼음을 꺼내 컵에 담아 휘젓는다) 옥화 거기 찬장 위에 좀 봐요. 대복 왜? 옥화 만석이가 무슨 비타민인가 사왔다고 하루에 하나씩 먹으라고 했어요. 대복 (찬장을 뒤적여 약통을 꺼내 읽는다) 아쿠알렌? 이게 뭔데? 옥화 몰라요, 몸에 좋대요. 대복 당신이나 먹어. 옥화 드세요. 대복 아, 안 먹어. 내가 평생 약이란 걸 먹고 살았던가. 당신이나 꼬박꼬박 챙겨 먹어, 까먹지 말고. (약통을 다시 찬장에 넣는다) 옥화 난 다른 약 못 먹어요. 의사가 그랬어요, 치료하는 동안 다른 약은 먹지도 말라고. 대복 (찬장 문을 닫으며) 아, 몰라. 그럼 낫고 나서 먹든가. (그냥 물만 마신다) 옥화 사람이 말을 하면 듣는 척이라도 좀 해봐요. 따뜻한 물도 싫다, 약도 싫다, 그놈의 고집은. 대복 칠십 년을 이렇게 살았어. (소파 테이블로 잔을 가져온다) 옥화 앞으로 반백년은 더 살 텐데, 지금부터라도 건강 챙겨야죠. 대복 시답지 않은 소리. 오늘내일하는데 새삼스럽게 뭔 건강 타령이야. 요즘엔 아주 귀가 따가워, 하도 몸 여기저기가 곡소리를 내서. 운전도 그만해야 할까봐. 무슨 정신으로 운전을 하는지 모르겠어. 이젠 내가 겁이 나. 차 몰고 가다 승객들 얼굴을 보면 이 사람들, 다 내 저승길에 데려가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니까. 요즘엔 정말이지 제발 곱게만 죽었으면 하는 게. (시무룩해하는 옥화를 보며) 괜찮겠어? 상갓집엔 나 혼자 가도 돼. 옥화 아니에요, 같이 가요. 연씨네가 남도 아니고. 대복 인생 참 허무하지. 그 양반이 그렇게 갈 줄 누가 알았어? 옥화 그러게요. 그렇게 시간 아깝다고, 바쁘게 살아야 한다더니 정말 바쁘게 가버렸네요. 대복 그러니까, 뭐든 적당히 하며 살아야 해. (사이) 몸은 어때? 옥화 그냥 그래요. 대복 그냥 그렇다고? 옥화 그냥 그렇다고요. 대복 그냥 그런 게 어떻다는 거야? 좋다는 거야, 나쁘다는 거야? 옥화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아요. 대복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다?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이다) 그러니까 그게 뭔 말이야? 옥화 아휴, 그냥 그런 줄 알아요. 대복 (멋쩍은 듯 주변을 둘러본다) 사람이, 자꾸, 화가 늘어. 옥화 피곤해요. 좀 누워 있다 나올게요. 대복 전기장판 켜놨어. 옥화 벌써 무슨 전기장판을 켜요, 돈 아깝게. 대복 쓸데없는 소리 말고. 자면서 오들오들 떠는 거 보기 싫어. 이불도 깔아놨으니까 가서 누워 있어. 옥화 (문득 생각난 듯) 애들 밥을 차려줘야 하는데. 대복 내가 차려줄 테니까 들어가. 옥화 당신이 무슨. 대복 어허, 들어가. 나도 다 할 줄 알아. 옥화 (머뭇거리다) 그럼, 좀만 누울게요. 대복 들어가, 들어가. 옥화 방으로 들어가고 홀로 남은 대복. 천천히 거울 앞으로 걸어간다. 양복 안주머니에서 넥타이를 꺼내 매기 시작한다. 하지만 잘되지 않는지 번번이 실패한다. 욕실 문을 나와 가만히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운수. 대복이 포기하고 소파로 걸어 나오자 헛기침을 하며 소파로 다가오는 운수. 욕실로 들어갈 때와 똑같은 모습이다. 운수 아, 개운하다. 대복 (시계를 보고, 운수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제대로 씻기나 한 거냐? 운수 진정한 신사는 항상 한결같아야 합니다. 대복 네가 한결같이 얼간이긴 하지. 운수 또 그러신다. 하나뿐인 아들이 얼간이면 퍽도 좋으시겠네요. 대복 이럴 줄 알았다면 줄줄이 낳을 걸 그랬지. 운수 그러시지 그랬어요? 대복 먹고살기가 힘들어서 그랬다. 네놈 하나 건사하기도 버거울 것 같아서. 운수 찢어지게 가난한 건 아니었잖아요, 우리가? 대복 (놀란 얼굴로) 네놈 태어났을 때 우리 전 재산이 얼마였는 줄 아냐? 수중에 칠만 원이 있었다, 칠만 원! 자장면 한 그릇에 삼십 원이었는데, 그걸 못 사먹었다, 돈이 아까워서. 운수 귀에 인이 박이겠어요 그 얘긴. 대복 부탁이니 제발 그 쓸모없는 귀에 좀 박아 놔라. 어디 구멍이라도 뚫린 거냐? 왜 맨날 듣고 흘려, 흘리긴? 운수 알았어요, 알았다고요. (사이) 어머닌요? 대복 방에 누워 있다. 운수 밥 먹고 바로 일하러 가야 하는데. 어머니! 대복 네가 차려 먹어라. 운수 왜요? 대복 내 마누라가 네놈 종이냐? 앞으론 네가 차려 먹어. 운수 나 참, 계속하실 거예요? 그만하시죠. 대복 밥솥 안에 밥 있고, 냄비 안에 찌개 있다. 그 손 노름할 때만 쓰지 말고 이젠 네 엄마 좀 도와라. 운수 아니, 밥을 나만 먹어요? 숟가락 하나만 얹자는데, 그것도 못마땅하세요 이젠? 대복 (넥타이를 살피면서) 네 엄마랑 난 초상집 갈 거다. 운수 무슨 초상집을 하루건너 하루씩 가요? 대복 난들 아냐? 줄줄이 하나님 품으로 가는 걸 내가 무슨 수로 막아? 운수 또, 또 흥분하신다. 대복 봐라. 네 애비 꼴을 봐. 나도 곧 간다. 차에 치여 가고, 산책하다 심장마비 걸려 가고, 자다 가고, 내 친구들 다 그렇게 갔어. 나도 멀지 않았다. 운수 아버진 오래 사실 겁니다. 걱정 마세요. 대복 말 나온 김에 하나만 물어보자. 운수 묻지 마세요. 대복 너, 나 가고 네 엄마 가면 뭐하고 살래? 그냥 지금처럼 하루 벌어 하루 먹고, 동네 노름판이나 기웃거리면서 주인 없는 강아지마냥 떠돌면서 살고 싶냐? 운수 퍽도 좋겠습니다. 대복 정신 좀 차려라. 네 나이가 벌써 오십이야. 운수 오십이 뭐 어때서요? 대복 뭔가 대단한 건 못 해냈어도 대단한 척은 해야 할 나이 아니냐. 내가 딱 네 나이 때 이 집을 샀다. 빚 하나 없이. 너도 기억하지? 운수 당연히 기억하죠. 제가 그때 결혼했잖아요. 대복 (당황하며) 그랬냐? 운수 말 나온 김에 저도 하나 물어볼까요? 예전부터 궁금했던 건데. 대복 (말 자르며) 묻지 마라. 운수 그 여잘 왜 그렇게 싫어하셨어요? 대복 그런 적 없다. 운수 나이가 너무 많아서? 근본도 알 수 없는 고아여서? 술집에서 니나노 하던 여자라서? 셋 중에 골라보세요. 아니면, 주관식으로 하셔도 되고요. (대답 없는 대복을 향해 채근하듯) 네, 네? 대복 이상한 아이였다. 음침하고 말도 없고 늘 남의 눈치만 살피고. 병 걸린 사람처럼. 운수 멀쩡할 리가 있습니까? 평생을 비바람 속에서 살아가보세요. 누구라도 이상해집니다. 하지만 절 사랑해줬습니다. 저도 사랑했고요. 대복 나는 네가 더 나은 사람을 만나길 바랬다. 운수 거짓말 마세요. 아버진 그냥 그 여자가 싫었던 겁니다. 아님, 제가 싫었던 건가요? 대복 그 시절 우리 대 부모들은 다 그랬다. 어떤 부모라도 그랬을 거야. 우린 옛날 사람이다. 운수 심지어 만석일 낳고 나서도 변하지 않으셨죠. 아버지도! 어머니도! 대복 그 애가 도망간 게 우리 탓이라는 거냐? 운수 (어이없어하며) 그럼, 누구 잘못일까요? 두 분 말고 그 여잘 싫어한 사람이 또 있었나요? 대복 그만하자. 이십 년도 지난 얘기. 운수 그러죠. 그러니까 쓸데없는 얘기하지 마세요, 아버지도. 대복 (분노하며) 쓸데없는 얘기? 그래서? 앞으로도 그렇게 개차반처럼, 한량처럼, 동네 사람들한테 손가락질받으면서 살겠다고? 운수 제 인생입니다. 남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 안 써요. 대복 신경써라 써. 이 지옥불에 빠질 자식아. 이 동네에서 사십 년을 살았어. 모두가 우릴 안단 말이다. 운수 아버지를 아는 거죠. 어머니를 아는 거고. 대복 너는 뭐 어디서 날아 들어왔냐? 네가 우리 집안 골칫덩이인 것도 다 알아. 운수 그렇게 부끄러우시면 나가 드릴까요? 대복 안 되지, 안 돼. 그럴 수야 없지. 나가서 또 무슨 사골 치려고. 수작 부릴 생각 마라. 운수 아, 그렇죠. 이 집이 아직까지 반은 아버지 거죠? 대복 (정색하며) 더는 안 된다. 한 번 더 사고 치면 그땐 정말 너랑 나랑 갈라서는 거다. 운수 갈라서는 게 그리 낯선 경험이 아니라서. 대복 돈은 어떡할 거냐? 운수 무슨 돈이요? (황당해하는 대복을 향해) 갚을 테니 기다리세요. 대복 원금은 바라지도 않으니 은행이자라도 내놔라. 운수 갚습니다, 원금까지 다. 십 원짜리 하나 빼놓지 않을 테니까 두고 보세요. 대복 말했다. 이자. 운수 알았다고요. 갚는다고요. 이때 방문이 열리고 만석이 거실로 나온다. 외출복 차림이다. 운수 여, 아들아. 아버지 밥 좀 차려다오. 주방으로 향하는 만석. 밥을 차리려 하는 줄 알고 득의만만해하며 대복을 향해 웃음 짓는 운수. 만석이 박스를 살펴보고 소파 쪽으로 가져오자 실망한다. 운수 아드님? 제 말 귓구멍에 들리셨어요? 만석 차려 드세요. 바로 나가봐야 돼요. 운수 뭐 어려운 일이라고. 밥 푸고 찌개 데우고 반찬 꺼내놓으면 되지. 만석 그렇게 하시면 되겠네요. 운수 캬아, 아버지. 보셨죠. 제 아들이 저렇게 자기 소신이 있고 싸가지가 없습니다. 대복 차려 먹어라 네가. 만석아, 이리 와서 이것 좀 봐라. 운수 아버지, 우리 집안에 언제부터 예의범절이란 단어가 사라진 거죠? 대복 넥타이를 못 매겠어. 만석, 대복 목에 건 채로 넥타이를 매보다가 안 되자 벗겨내 거울 앞으로 가져가 자기 목에 걸고 매듭을 맨다. 운수 하긴. 원래 대단한 집안은 아니죠 저희가. 족보도 없고. 대복 상놈의 집안이라서 미안하구나. 운수 상놈까지는 아니고. 농민이나 소작농, 그 정도 아니었을까요 우리 조상님들은. 대복 내 십이대손 할아버지께선 정오품 정량 별좌 교리셨다. 네놈의 십삼대손 할아버지 말이다. 운수 처음 듣는 얘기네요. 대복 그럴 리가. 삼십 원짜리 자장면 얘기 다음으로 많이 해줬을 텐데. 만석 (넥타이를 대복의 목에 걸어주며) 잠깐 봐요. (정리를 해준다) 됐어요. 운수 아들아, 너는 이 얘기 들어봤냐? 우리 조상 중에 정오품 정, 뭐, 아무튼, 그런 분이 계셨다는데. 만석 근데 이거 너무 낡았어요. 대복 괜찮다. 아직 쓸 만해. 운수 아주 개가 짖는구나, 개가 짖어. 내 말은 다 씹어 드셔들. 만석 이거밖에 없어요? 여기 실밥도 다 터지고. 다른 거 하세요. 대복 괜찮다니까. 운수 손자분 말 들으세요. 온 동네가 영감님을 아신다면서요. 만석 제 거 있는데 가져올게요. 대복 (만류하며) 됐다. 상갓집에 요란하게 하고 가는 거 아냐. 이 정도가 딱 좋아. 만석 할머니랑 같이 가세요? 대복 그래. 저녁 같이 챙겨 먹어라. 만석 저도 바로 나가봐야 해요. 운수 차리고 가라. 네 아버진 배고프다. 대복 밥은 먹어야지. 운수 그래, 밥은 먹어야지. 만석 약속 있어요. 대복 그러냐? 제대로 된 거 먹고 다녀라. 운수 난 약속 없다. 밥 차려줘라. 만석 할머닌요? 대복 방에. 슬슬 깨워야겠다. 만석 제가 들어갈게요. 애도 데리고 나와야 하고. 운수 찌개 데우고 들어가라. 밥 퍼놓고 데리고 나와. 반찬도 꺼내고. 만석 그만 징징대세요. 운수 뭐, 징징? 오냐오냐하니까 이 새끼가 정말. 만석 이젠 제발 철 좀 드시죠. 운수 아유, 그래요. 철이 일찍 들어서 몸이 무거우시겠어요 우리 아드님은. 만석 가족은 안중에도 없죠? 할머니, 할아버지가 고생을 하든 말든 그냥 아버지 편한 대로 살면 그만이죠? 운수 핏대 세우지 마라. 한 대 치겠다 그러다? 만석 할머니 치료비도 그렇고. 할아버지 발톱 수술 못 하는 거 돈 없어서인 거 알고나 있어요? 대출이자가 한 달에 얼만지나 알고 있냐고? 운수 다 아니까 침 튀기지 마라. 만석 아시면 아는 만큼 내놓으세요. 운수 퍽이나 많이 내놓나 보지? 오토바이 그거 타서 얼마나 버냐? 백? 이백? 만석 다른 사람한테 손 안 벌릴 정도는 버니까 걱정 마세요. 운수 아주 그거 돈 조금 빌려줬다고. 만석 모범을 좀 보이시라고요. 운수 왜? 내가 못 미덥냐? 너도 네 엄마처럼 도망갈래? 대복 (엄하게) 그 입 다물어라. 네 귀방맹이 날릴 힘은 나도 아직 있으니까. 운수 좋아요! 한번 해볼까요, 오늘? 삼대가 진하게 한번 엉켜볼까요? 만석 그만하죠. 운수 왜? 막상 하려니까 쫄려? 어이, 아들, 와 봐. 와보라고. 운수, 자리에서 일어나는 만석을 따라가며 뒤통수를 톡톡 친다. 그러다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뒤통수를 때리자 만석이 되돌아서 운수의 양손을 잡아챈다. 바닥에 떨어지는 지폐. 곧바로 만석의 멱살을 쥐는 운수. 운수의 팔목을 강하게 쥐는 만석. 대복, 테이블에 있는 컵을 그들을 향해 던진다. 대복 나가라. 내 집에서 당장 나가. 네놈들 둘 다 나가서 영원히 돌아오지 마. 적막이 흐르고, 잠시 후 옥화가 방문을 열고 등장한다. 차분한 옷차림, 손에 바구니를 들고 있다. 바구니 안엔 아이가 잠들어 있다. 운수와 만석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무심히 지나치는 옥화. 테이블 위에 바구니를 올려놓고 소파에 앉는다. 대복을 보고 이마를 찌푸리는 옥화. 옥화 아, 또 왜 그 넥타이를 했어요. 버렸어도 벌써 버렸어야 할 걸. 대복 이 사람 버리긴 왜 버려 이걸. 옥화 멀쩡한 넥타이를 두고 왜 자꾸 그것만. 대복 다 자기 몸에 맞는 게 있는 거야. 난 이게 편해. 옥화 그놈의 고집은. 이때, 전화벨이 울리고 만석 통화한다. 통화가 끝난 후 옥화에게 다가오는 만석. 옥화의 눈치를 보다가 바구니에 손을 뻗는 만석. 옥화 잠깐만. 잠깐만 기다려라. 만석 가야 해요, 할머니. 옥화 알았어. 안 보내겠다는 게 아니야. 여기, 이것만 좀 하고. (바구니를 정리한다) 대복 (바구니를 들여다보며) 거기, 거기. 바람 안 들어가게 잘 좀 욱여넣어 봐. 옥화 알겠어요, 있어 봐요. 대복 한 번 더 포대기에 싸야 하지 않겠어? 옥화 그럴까요? 바람이 차니까 아무래도. 만석 그 사람이 집 앞까지 차 가지고 오기로 했어요. 그렇게까지 안 하셔도 돼요. 대복 그렇다는데? 옥화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거 없으니까. (계속한다) 운수 (상자를 발로 툭 차며) 야, 이것도 같이 가져가. 여기다 담아왔으니 여기에 담아가야지. 옥화 저 상잔 두고 가라. 저기에 또 이 애를 가둘 수는 없어. 그럴 순 없어. 만석 알겠어요 할머니. 그렇게 할게요. 대복 어이쿠. 깼는데? 여보, 깼어. 옥화 (바구니 안을 보며) 간다고 또 인사한다고 깬 거야, 기특하게? 그런 거야? 대복 우루루루루, 까꿍. 웃는다 웃어. 고놈 참. 옥화 한 번 더 해봐요. 대복 그럴까? 우루루루루, 까꿍! 옥화 (만석을 향해) 아가, 방에 파란색 가방 하나 있어. 그거 좀 갖고 나와. 대복 뭔데? 옥화 애한테 필요한 것 좀 쌌어요. 대복 딸랑이도 넣지 그랬어. 그거 좋아하던데. 옥화 넣었어요. 대복 잘했네. 운수 (빈정거리듯) 참, 재미나게 사십니다, 두 분. 알콩달콩, 보기 좋네요. 대복 아직도 안 나갔냐? 운수 나가야지요. 이 집에 제가 있을 곳이 없는데. 대복 밖엔 있고? 운수 글쎄요. 정말 이제부터라도 찾아볼까요? (바닥에 떨어진 돈을 줍는다. 가방을 가지고 나오는 만석과 눈이 마주치지만 서로 외면한다) 돈도 생겼겠다. 옥화 밥 한 숟갈 뜨고 가. 너 좋아하는 꽃게찌개 끓여놨어. 잠시 침묵. 운수 됐어요. 약속 있어요. 옥화 그럼 냉장고에 넣어 놓을 테니까 낼 아침에 들어와서 먹어. 운수 그냥 드세요. 얼마 된다고 그걸 남겨요. 갔다 올게요. (나간다) 옥화 (밖에서 들리게 큰소리로) 냉장고에 넣어 놓는다. 알았지? 알았지? 대복 (가방을 들고 서 있는 만석에게) 왜 그러고 섰어? 앉아. 만석 집 앞에 와 있대요. 대복 벌써? 만석 네. 옥화 (바구니를 들여다보며) 잘살아라. 사는 게 제 맘처럼 되는 것도 아니니까 부모 원망 말고 운명이려니, 팔자려니, 누구 탓할 것도 없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보면 세월 가고 세월 가면 언제 이만큼 왔나 싶을 테니 하루하루 즐겁게 웃으면서 살아. 네 세상도 한세상, 내 세상도 한세상, 결국 한세상 사는 거니, 그러니까 너는 멀리멀리, (떨리는 목소리) 발길 닿는 데까지 멀리 가렴. 대복 (꽃병에서 꽃을 꺼내 바구니 옆에 감는다) 꽃바구니 타고. 옥화 그래, 꽃바구니 타고. 어디, 하루하루가 오늘만 같겠니? 대복 그래. 오늘만 같을라고. 전화벨이 울리지만 받지 않는 만석. 그런 만석을 가만히 올려다보는 옥화. 천천히 바구니를 내어준다. 만석 갔다 올게요. 늦을지도 몰라요. 먼저 주무세요. 대복 그래. 얘기 잘하고 와. 만석 네. 저 가요, 할머니. 반응 없는 옥화. 대복 손짓으로 만석을 보낸다. 만석 밖으로 나간다. 자리에서 일어나 문에 다가가 밖으로 나가는 만석을 지켜보는 대복. 잠시 후 자리로 돌아온다. 그사이 옥화 역시 일어서 서성이다가 가운데 소파에 앉아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대복 그 옆에 앉아 정면을 응시한다. 대복 갔네. 옥화 갔네요. 대복 그래. (사이) 어떡할까? 우리도 가야지? 옥화 가야죠. 대복 안 가면 안 되겠지? 옥화 안 되겠죠. 다른 사람도 아니고 연씨잖아요. 대복 그래. 가야겠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연씨니까. 옥화 네. 대복 그럼 갈까? 옥화 그래요, 가요. 대복 그래. 가자구. 옥화 가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 두 사람. 무대 서서히 어두워진다. 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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