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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듀 짱]‘숲속 교실’ 5년째 운영하는 홍연초등학교

    [에듀 짱]‘숲속 교실’ 5년째 운영하는 홍연초등학교

    맨드라미,별꽃아재비,앵초….서대문구 홍은3동 홍연초등학교 2학년 예은(9)이는 ‘꽃 이름 알아맞히기’가 취미다.식물도감에나 나올 듯한 야생화 이름을 ‘척척’ 맞힐 정도로 식물박사다.2학년 승주(9)는 ‘누에엄마’다.보통 아이들 같으면 징그럽다고 도망부터 칠텐데 승주는 누에가 뽕잎을 사각사각 갉아먹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 딸 삼기로 했다. 지난 9일 금요일 오전 10시30분 서울 백령산 남쪽 끝자락에 자리잡은 홍연초등학교 뒷산 자연학습장.학생 80여명이 자연학습 수업에 푹 빠져 있었다.“개울가에∼올챙이 한 마리∼ 꾸물꾸물 올챙이가∼” 1학년은 올챙이송을 부르며 춤을 추고,리코더를 들고 나온 5학년은 지난 시간에 배운 곡을 연습하느라 바쁘다.2·4학년은 식물관찰 시간이다.가지,고추 등 한 주 동안 얼마나 자랐는지 관찰일기를 쓴다.이 학교 학생들은 모두 채송화,달팽이,금붕어 등 동·식물들과 하나씩 친구로 삼고 있다.지난 2000년부터 시작한 이 학교만의 독특한 자연 체험학습 덕분이다. ‘모든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것이 최고의 인성교육’이라고 생각하는 이봉수(61)교장은 5년 전 이 학교에 부임하자마자 뒷산 소유자인 힐튼호텔에 부탁,뒷산 300여평에 장미 50만원 어치를 심고 자연학습장을 꾸몄다.교사들은 과목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학습장을 수업에 활용했다.지난 2002년 서대문구청 수도사업소에서 이 학습장 부지에 배수지 공사를 시작하자 이 교장은 야외 체험학습의 중요성을 구청에 설명,1억원의 지원을 받아 배수지 위에 새롭게 자연학습장을 꾸밀 수 있었다. 이 교장은 매년 씨앗을 사는데 40만∼50만원,비료값 20만∼30만원의 예산을 책정했다.매일 아침 6시에 등교해 손수 물을 주며 숲속 교실을 꾸몄다.자연학습장은 이젠 개미취,꽈리,노루오줌 등 한국 야생화 30여종,토마토,오이 채소류 등 100여종,철쭉,대나무,아카시아,향나무 등 60여종의 나무를 관찰할 수 있는 도심의 ‘숲속 교실’로 탈바꿈했다. 운동장 귀퉁이의 연못 역시 이 곳의 자랑거리.지난 2000년 100만원을 들여 120㎡ 규모로 꾸몄다.5년 전 한 마리 2500원에 사왔던 어린고기 30여 마리는 이제 몸 길이가 30∼40㎝로 자라 김모(10)군의 친구가 돼 주고 있다.발달장애아 2급인 김군은 올 초까지만 해도 학교생활에 적응하기 어려운 특수학급 학생이었다.그러나 요즘은 매일 아침 연못에 들어가 물고기 밥 주는 재미에 쏙 빠졌다. 각 교실에서 매일 이뤄지는 체험학습도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다.지난달에는 각 반에서 누에를 쳤다.부화한지 20일이 지난 누에를 반마다 8마리씩 나눠주고 매일 아침 학생들이 직접 뽕잎을 먹였다.전교 48개반 1750명의 학생들은 누에가 고치를 틀고 실을 뽑아내는 과정을 생생하게 관찰할 수 있었다. 이에 드는 비용은 한 반에 누에 8마리와 뽕잎 2400원씩 총 12만원이 채 들지 않았다.누에와 뽕잎은 요즘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과학 체험학습 교재 전문업체에서 구했다. 5학년 전용재(12)군은 “누에가 얼마나 컸을까 궁금해서 매일 아침 등교를 서둘렀을 정도”라며 활짝 웃었다.이 교장은 “풀과 나무,곤충의 성장과정을 직접 눈으로 보고 느껴야만 자연의 소중함을 알 수 있다.”면서 “꽃이름 외우기,나무에 편지쓰기,달팽이 기르기 등 이벤트와 학습을 접목시킨 프로그램은 인성교육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 [토요일 아침에] 묵상과 투쟁/박기호 천주교 서울서교동 성당 주임신부

    미처 넘기지 못한 달력을 뜯어낸다.2004년 새해를 시작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반년이 어물어물 지나 7월이 시작되고 있다. 돌이켜보는 한해의 절반은 뭔가 어수선함뿐인 듯이 느껴진다.까닭 없이 바쁘기야 했겠는가마는 지나간 여섯 달이 유독 힘들게 느껴졌던 것은 아무래도 사회적 이슈의 역동성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독신으로 살아가는 자의 생활이 그렇거니와,하물며 직장생활에 가족도 챙겨야 하는 이들은 아마 더욱 정신없는 세월이었을지 모른다.한해의 중간 지점,성찰의 주말로 삼고 싶다. 쏟아지는 뉴스는 홍수처럼 범람하고,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 초하루에서 월말까지 해뜨고 달 져도 하늘 한번 쳐다 볼 일 없이 분주하다. 껌벅거리는 컴퓨터 앞에,공장 설비 라인의 소음에 동료 얼굴 한번 바라다 볼 이유 없이 살아간다.벙커 한 귀퉁이에 소총을 들고 보초 서고 있는 병사의 모습처럼 처연하다. 패배하면 포로가 될 것 같은 긴장과 절박감의 현장 속에 내가 있기 때문에,나의 처지가 곧 내 가족의 기쁨과 슬픔이기에,그래서 나는 꼭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가 충분하기에,감사와 의미로 충만해야 할 일상이 전투처럼 느껴지는 비장함도 감당해 내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그럴수록 성찰의 삶이 요청된다.묵상 없는 투쟁은 목표와 방향을 놓치게 한다.전투에는 이기고도 전쟁은 패배할 수 있다.자기 전공 분야의 사회적 지위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식 농사는 망쳐버린 경우를 많이 보았다. 토인비의 역사관을 부정하는 건 아니지만,대응으로 쫓기는 숨가쁜 생활은 도전의 정체를 제대로 보지 못하여 진실한 응전이 될 수 없게 한다.“노루를 쫓는 자 숲을 보지 못하고,구름에 취한 자 돌부리에 넘어진다.”고 했다.자기 손으로 빚어내고 있는 문제들의 성찰과 주변 세계에 대한 관조는 발아래 돌부리와 먼 강을 함께 볼 수 있게 한다. 농부는 아침저녁 논을 살피기에 물꼬를 틀 때인지 돌릴 때인지,호미로 막을 일인지 가래로 막을 일인지를 안다.삶의 이유와 의미를 얻기 위해서는 뒷산에 올라 내 마을을 살펴보듯 한걸음 물러서 자신의 삶을 관조함이 필요하다.나의 오늘이 무엇으로 인하여 치열한지,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예수의 생애와 가르침을 전해주는 기록을 ‘복음서’라고 한다.예수께서 가는 곳마다 수많은 환자들이 치유 받고자 몰려 인산인해를 이룬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식사를 걸러야 할 만큼 분주했던 예수님은 그날 밤이면 꼭 홀로 있는 시간을 가졌다.‘밀려드는 군중을 피해 제자들과 함께 한적한 곳으로 가서 쉬셨다.’는 기록도 여러 곳에 등장한다.일손을 놓고 일상을 성찰함도 일의 한 부분이다. 무엇으로 인하여 늘 바쁜가? 분주한 만큼 효과적이었는가? 도끼날 가는 시간이 아깝다며 하루 종일 무딘 도끼질만 하고 있음은 어리석은 일이다. 깊은 묵상 속에서 샘처럼 솟아나는 지혜의 에너지야말로 효과적인 투쟁의 능력이다. 세상이 무척 어수선하고 혼란스럽다.성찰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징표다.사회의 수상함이 클수록 성찰의 시간도 넓이도 깊이도 함께 커져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우리 시대의 진로를 얻는 길이 거기에 있다. 해 저문 들녘 지게를 지고 무심히 돌아오는 농부의 발걸음은 농부의 명상이다. 박기호 천주교 서울서교동 성당 주임신부 ˝
  • [나의 창업노트] (4) 버섯요리점 ‘남북통일’ 황을용 사장

    직장을 그만둔 사람,집에만 있던 사람이 창업하려고 할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게 음식점이다. 큰 손해를 보지 않을 것 같고,낯익은 업종이라 만만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음식점을 차려보면 준비 부족과 판단 잘못으로 후회하는 일이 적지 않다. 이런 점에서 경기도 남양주시 오남읍 양지리 서일대학교 사회교육원 1층에 있는 버섯전문 요리점 ‘남북통일’(사장 황을용·50)은 음식점을 시작하려는 사람에게는 벤치마킹 사례가 될 만하다. ●“광우병 끄떡없어요” 이색적인 간판을 내건 이곳을 찾은 때는 지난 8일 오후 5시30분쯤.음식점 앞에는 시외버스가 다니는 왕복 2차로가 있고,주변에는 허름한 농가 주택들이 눈에 띈다.3∼4㎞ 떨어진 곳에 아파트촌이 들어서 있다. 주인의 안내를 받아 구석진 테이블에 앉은 지 30여분쯤 지나자 저녁 손님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가족단위나 단체 손님들이 대부분이었다.100평 남짓에 4명씩 앉는 테이블 42개 중 절반가량이 순식간에 꽉찼다. 하루 손님은 600여명,매출은 350만원쯤 된다고 황 사장은 말한다.하루 테이블당 회전수는 세번(점심 한번,저녁 두번)가량 된다는 얘기다.황 사장은 “하루도 쉬는 날이 없어 한달 매출액은 1억원,순이익은 매출의 30%(3000만원)쯤 된다.”고 했다.주방장,종업원 등 15명의 인건비(1인당 140만∼200만원)와 재료비,임대료(보증금 7000만원,월세 400만원) 등을 뺀 나머지다.한때 광우병 파동으로 어려움이 있었지만,최근 종전 수준으로 회복됐다고 한다. 메뉴는 버섯을 주재료로 한 모듬버섯전골을 비롯해 모듬버섯차돌박이,모듬버섯생불고기,모듬버섯삼겹편채 등이 있다.가격은 4인가족 기준 2만원으로 모두 같다.주 메뉴를 다 먹으면 야채볶음밥과 얼큰한 칼국수가 나온다.밥과 칼국수는 돈을 받지 않고 먹고 싶은 만큼 준다.모듬버섯은 느타리·팽이·표고·송이·총각·노루궁뎅이 등으로 다른 음식점보다 종류가 훨씬 많고,생산지에서 배달된 뒤 3일간 숙성시켜 사용하기 때문에 신선도가 뛰어나다. 이런 촌동네에서 유별나지도 않은 메뉴로 매월 수천만원대의 수입을 올릴 수 있느냐는 질문에 황 사장은 “싸면서 맛있고,정성스레 대하면 그만”이라며 비결 아닌 비결을 털어놨다. ●예비 정치인에서 식당주인으로 전남 광주에서 태어난 황 사장은 원래 꿈이 정치인이었다.1980년대 초 고려대를 졸업한 뒤 정치판을 기웃거리다 87년부터는 당시 민정당 출신의 김중위 의원 보좌관으로 일했다.장애인신문 부사장도 지냈고,무역회사도 경영해 목에 힘깨나 주고 다녔다.하지만 90년대 들어 경기침체 등의 여파로 사업이 잇따라 실패했다.그러다 98년 우연히 다른 길로 들어서게 됐다.건강식을 즐기는 현대인들의 기호를 살려 버섯요리점을 차리면 잘 될 것 같다는 남동생의 권유에서였다.외환위기 당시여서 ‘값싸고 맛있으면’ 대박이 터질 것 같은 예감도 들었다.이 때부터 음식점을 차리는 데 매달렸고,창업 관련 책만 수십권을 읽었다.음식과 관련된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다녔다. ●‘라면수프’ 맛을 배운다 버섯과 고기를 끓인 국물에 넣어 살짝 데쳐 먹는 전골 메뉴는 국물맛이 제대로 나야 한다.이곳저곳 다녀봤지만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했다.그러던 중 우리나라 사람에게 가장 와닿는 국물맛은 구수하면서도 익숙한 라면국물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스쳤다.무릎을 쳤다.육수를 만들기로 했다.라면수프의 재료를 완전 분해해 벤치마킹했다.소뼈에다 닭발(구수함),무·파(개운함),후추(매콤함),다시다(은은함) 등을 적절히 배합한 ‘황을용식 육수’를 개발해냈다.손님들의 반응은 의외로 폭발적이었고,매출도 급성장했다.입소문이 퍼져 지금은 퇴계원,의정부,광릉 등에서도 온다.남양주 본점을 비롯해 친·인척들에게 서울,강원도,경기도 지역 등 20여곳에 분점 형태로 내주었다.성업 중이다. ●간판·장소도 경쟁력이다. 간판 이름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란 노래 가사에서 착안해냈다.남북통일이 대중성이나 상징성에서 안성맞춤이라고 판단했다. 음식점 장소는 그만의 독특한 판단으로 이뤄졌다.남양주 인근을 뒤지다 현재의 음식점 공간이 임대로 나와 있다는 말을 들었다.대학교의 외딴 부설 건물인 데다 인근에 유동인구가 많지 않아 주위에서 극구 말렸다.지역 여건이 상권과 분리돼 있다는 것이었다.건물을 지은 지 6년이 지나도록 입주자가 없었다. 하지만 강행했다.남들에게 보이지 않는 이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건물 2층에는 학원,3층에는 헬스클럽,4층에는 수영장이 있는 것이 큰 장점이었다.유동인구가 적지만 한번 손님이 몰리면 장사가 제대로 될 것으로 봤다. 차량으로 10분쯤 거리에 아파트단지가 많이 들어서 있는 점도 매력적이었다.맛만 있으면 차량으로 20분거리에 있는 고객까지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자신했다.예상대로 구전(口傳) 마케팅 등에 힘입어 월 1억원대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식당 내의 주방 등 시설 설비도 시공업자들과의 직거래로 비용을 적게(6000만원) 들였다.관련업체에 맡길 때보다 2000만원이 덜 들었다. ●베푼다는 생각 가지면 손님은 저절로 ‘(아줌마)예쁘십니다.(애들이)참 착합니다.어머님(노인들) 또 오셨어요(손을 꼭 잡으며).’ 그는 손님들로부터 ‘서비스가 예술’이라는 말을 곧잘 듣는다.어린이,주부,노인 등을 망라해 이곳을 찾는 사람치고 그의 칭찬을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한번 온 손님이 또 올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스킨십(대화)이 더없는 무기”라며 “돈만 버는 장사꾼이 되기보다는 남들한테 베푼다는 생각을 가지면 절로 손님이 오게 돼 있다.”며 영업방침을 소개했다.이어 “앞으로 여유가 생기면 창업을 원하는 사람에게 창업준비,상권분석,음식비법과 경영노하우 등을 지원해줄 생각”이라고 말했다. 주병철기자 bcjoo@seoul.co.kr ˝
  • [이 주일의 어린이 책] 멸종위기 우리 동식물 43종 이야기

    외국산 애완견이나 고양이를 가족처럼 끔찍이 여기는 아이들은 많아도 정작 우리 땅에서 서식하는 야생동물의 이름을 아는 아이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마실 나갔다 우연히 노루와 마주치거나 논둑에서 황새를 만나는 일들일랑은 이제 할머니 할아버지의 어릴 적 추억에서나 존재하는 까마득한 옛날 이야기가 돼버린 지 오래. 그런 점에서 야생 동식물,그중에서도 멸종위기에 처한 43종의 동물과 식물에 관한 정보를 담은 이 책은 반갑다.털가죽을 노린 사냥 때문에 사라지게 된 호랑이,숲의 파괴로 살 곳을 잃은 장수하늘소,함부로 난초를 캐가는 사람들로 인해 멸종위기를 맞은 나도풍란 등의 사례를 읽다 보면 저절로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되새기게 된다. 털 한올한올,잎맥 하나하나까지 세세하게 묘사한 동식물 그림 70여장을 삽입해 도감으로서의 역할에도 충실했다.학명·크기·산란기 등 기초자료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생태표와 분포도,그리고 재미있는 상식까지 풍부한 정보가 돋보인다. 어린이책 전문기획집단인 ‘햇살과 나무꾼’이 글을 썼고,생태 세밀화에 능숙한 김태련 화가가 그림을 그렸다.구어체 문장으로 쉽게 풀어쓰려 애쓴 노력에도 불구하고 군데군데 어려운 용어가 튀어나오는 것이 흠.어린이용으로 나왔지만 어른에게도 흥미로운 책이다.초등학생용.3만원. 이순녀기자 coral@˝
  • 비너스의 슬픔/호주오픈서 레이먼드에 완패 16강 좌절

    세계랭킹 30위 리사 레이먼드(31·미국)가 24일 호주 멜버른 로드레이버 어레나에서 열린 2004 호주오픈테니스 대회 여자단식 3라운드(대회 5일째)에서 우승후보 비너스 윌리엄스(사진·24·미국)를 2-0((6-4 7-6(7-5))으로 격파하고 16강에 오르는 파란을 일으켰다. 25번시드의 레이먼드는 이날 6개월 만에 메이저대회에 복귀한 비너스(3번시드)를 맞아 접전 끝에 1세트를 따냈으며 2세트에서도 타이브레이크까지 가는 등 고비를 맞았으나 비너스가 그때마다 실수하는 틈을 타 승리를 낚아챘다.이 대회에서 6차례나 출전해 한번도 4강에서 밀려난 적이 없던 비너스는 더블폴트 7개와 실책 44개를 범하며 무너졌다.레이먼드는 안나 스마시노바-피스톨레시(이스라엘·14번시드)와 리나 크라스노루츠카야(러시아·15번시드)를 연파하며 ‘16세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타티아나 골로빈(프랑스)과 16강에서 격돌한다.
  • 산양 찾아 산속 헤매지만 행복/12년째 설악산 산양 보살피는 박그림 씨

    설악산에 ‘산양의 똥을 먹는 남자’가 있다.환경운동가이자 설악산 산양의 ‘대부’인 박그림(56)씨.서울 토박이였던 그가 설악산에 터를 잡고 산양의 뒤를 보살펴온 지 어느새 12년째. 사냥과 등산객들의 등살에 점점 산양들의 보금자리가 사라져 가는 것이 안타까워 아예 설악산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 그는 지금도 침낭 하나 둘러메고 며칠씩 산양의 흔적을 찾아 산속을 헤맨다. 남부럽지 않은 기업체 사장을 그만두고 입산해 산양과 각종 들짐승과 더불어 살고 있지만 한순간도 후회한 적이 없다. 그와 며칠동안 연락되지 않으면 어김없이 산양을 찾아 나선 날이다. ●산양과 함께 노숙생활도 산양은 천연기념물 제217호로 백두대간에 얼마 남지 않은 야생동물 가운데 하나다.박씨가 추정하는 설악산 내 산양은 100마리 이내.설악산이 오염되면서 산양의 서식처도 급속히 파괴돼 이나마 언제 자취를 감출지 모를 일이라고 한탄한다. 그는 스스로를 설악산의 노숙자라고 말한다.산양을 찾아 나서면 바위동굴이나 나뭇잎 위에서 잠을 잔다.산양이 음식냄새를 싫어할까봐 아예 주식도 생식으로 바꿨다. 배낭 짐도 줄일 겸 음식냄새를 풍기지 않는 분말형 생식 한 줌을 털어넣고 물마시면 식사가 끝난다. 서울 토박이인 그가 설악산에 보금자리를 꾸린 것은 1992년부터.이전까지만 해도 20여년 동안 의류에 부착하는 각종 ‘라벨’과 불순물을 걸러내는 ‘여과기’ 생산업체 사장님으로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했다. 65년 고교 시절 설악산을 처음 찾은 뒤 70년초 한국산악회 회원으로 등록하면서 발길이 더욱 잦아졌다. 찾을 때마다 달라져 가는 설악산은 그의 마음을 흔들었고 고민 끝에 가족들을 설득해 아예 설악산으로 터전을 옮겨버렸다. ●어머니 품속 같은 설악산 사업까지 내팽개쳤어야 했느냐는 질문에 “설악산은 제게 꿈과 희망을 준 어머니와 같은 존재였습니다.어머니가 병들어 신음하고 있다면 자식으로서 당연히 곁에서 지켜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설악산 가까이서 산다고 해서 크게 달라진 것은 없지만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는 것이다. 당시 설악산에 내려와 함께 일할 사람들을모으는 것이 시급했다.그래서 이듬해 직접 ‘설악녹색연합’이란 단체를 만들어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설악산을 지키는 일을 시작했다. 산양에 대해 매달리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부터다.지금도 설악산에는 멧돼지,노루,고라니,오소리,산토끼 등 보호해야 할 많은 들짐승들이 살아가고 있다. 그중 산양은 멧돼지 다음으로 덩치가 큰 포유동물.그가 산양에 대해 애착을 갖게 된 이유는 이렇다. 95년 정부는 유네스코에 설악산을 야생동물의 보고인 세계자연유산으로 등록신청을 했다.당시 캐나다 조사관이 설악산을 찾았을 때 박씨가 가이드를 맡았다고 한다.조사관은 현장을 둘러보고 ‘보고서에 나와 있는 야생동물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결국 유네스코 자연 유산지정은 물거품이 돼버렸다. 그 일이 있은 뒤 박씨는 야생동물 보호에 나서기 시작했다.제일 먼저 개체 수가 적은 종부터 보호에 나섰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산양이었다. ●자연은 간섭말고 버려둬야 “산양똥을 먹기 시작한 건 먼저 그들을 좀 더 세밀하게 관찰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지금도 산속을 돌아다니다 윤기가 흐르는 산양의 배설물을 볼 때는 마음이 즐거워집니다.산양들이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산양을 쫓아다니며 찍은 사진만도 1만여점에 달한다.산양에 관한 책도 냈다.최근엔 150여장의 슬라이드를 이용해 각급 학교 학생을 비롯,공무원교육원 생태학습 강의에 나서기도 한다.슬라이드를 한장한장 넘기며 설명하는 그의 강의를 듣다 보면 어느새 자연에 대한 숙연함마저 느끼게 된다. 그는 학교강의 등에서 받는 강의료,일년에 두 차례의 설악산 생태조사 참여비 등이 수입의 전부다.겨우 생활을 꾸려갈 정도지만,산양을 가까이서 돌볼 수 있어 마음은 언제나 평온하다. “때로는 제가 서있던 곳에 산양이 서성대다 간 발자국을 보기도 합니다.산양은 늘 자기가 살던 구역안에서만 사는데,워낙 똑같은 길을 자주 다니다 보니 산양도 저를 적으로 보지 않고 지켜보았다는 증거입니다.” 환경보호란 간섭하지 않고 내버려두고 야생동물도 그냥 저희들끼리 알아서 살도록 하는 것이라고 강변한다. 환약처럼 생긴 산양똥을 늘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는 박씨는 올무에 걸려 울부짖는 산양의 몸부림치는 모습이 눈에 거슬려 틈만 나면 설악산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닌다고 말했다. 설악산 유진상기자 jsr@
  • 한라산에서 휴전선까지 산야 누비는 ‘들꽃 아줌마’/ 야생화 전문가 나문심 씨

    “거창한 명분이나 철학을 갖고 시작한 일은 아니에요.우리 산하에 널브러진 이름모를 들꽃에 관심을 갖다 보니 야생화를 가꾸는 게 생활의 전부가 돼버렸어요.” 야생화 연구가 나문심(羅文心·41·전남 담양군 대덕면 문학리)씨는 틈만 나면 전국의 산야를 누빈다.낯선 품종이라도 발견하면 종자를 채취하고 카메라에 정성스레 담는다.철따라 한라산에서 휴전선 부근까지 발이 닳도록 돌아다녔다. “새로운 들꽃을 찾아 산야를 탐방할 때면 언제나 설렌다.”는 그는 한 때 흑산도 인근 작은 섬에서 ‘노랑 땅나리’를 발견했다.이 꽃은 원래 주황색이지만 노란색을 띤 변이종으로 확인됐다.또 전북의 한 습지에서 본래 자색인 ‘흰 물봉선’을 만나기도 했다. 지방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프리랜서로 활동하던 그가 들꽃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지난 86년.한 잡지사로부터 들꽃에 관한 글을 써달라는 원고 청탁을 받은 게 계기였다.독자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글을 쓰겠다고 맘먹었다.식물도감과 관련 서적을 찾고 자료를 수집하면서 야생화에 푹 빠졌다.사진찍기가 취미인 그는 자연스레 동호인들과 어울리며 이산 저산을 돌며 들꽃을 관찰하고 생태도 연구했다.종자를 채취하고 아름다운 것들은 화분에 옮겨 정성스레 가꿨다.이렇게 모은 야생화는 모두 400여종에 이른다. 그의 보금자리가 있는 산골마을에 이르면 ‘한백 꽃뜨락’이란 야생화 농장이 한눈에 들어온다.이 마을 산기슭에 꽃뜨락을 이루고 있다.그의 정성과 땀이 밴 농장에 들어서면 어디서 많이 봄직한 꽃들이 수줍은 꽃망울을 터트린다. 원추리·부처꽃·이질풀·동자꽃·비비루·노루오줌 등 여름꽃들이 수줍은 자태로 바람에 살랑인다.한 편에는 새우란·둥굴레·할미꽃·금낭화·붓꽃·꽃창포·수련·매발톱꽃·은방울꽃·며느리밥풀꽃 등이 제철을 기다린다.이름만 들어도 정겨운 꽃들이다.꽃에 얽힌 얘기도 흥미롭다.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올릴 밥을 짓다가 솥뚜껑을 열고 밥알 두 개를 입에 넣었다.그걸 본 시어머니가 먼저 밥을 먹었다고 괘씸하게 여겨 며느리를 때렸다.그 며느리 무덤에 피어난 꽃이 며느리밥풀꽃이다.이 꽃은 영락없이 입술에 밥알 두 개가 묻어 있는 모습이다. 어렵던 시절 슬픈 사연을 간직한 며느리밥풀꽃이나 할미꽃 등에 대한 꽃이름의 유래와 생태,특징을 줄줄이 꿰고 있다.그의 야생화에 대한 애정과 천착이 얼마나 깊은 지를 엿볼 수 있다. 올 봄에는 광주시 북구 ‘문화의 집’에서 열린 ‘이야기와 시(詩)가 있는 우리 꽃 전시회’를 열어 야생화 보급과 일반인의 관심을 끄는 데도 몫을 톡톡히 했다. 지난해에는 농장 한 편에 공방을 차렸다.그리고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야생화 생태 체험장’을 운영하기 시작했다.어린이들이 직접 화분을 구워 만들고 그곳에 야생화 한 뿌리를 심어 가져가기도 한다.어릴적 우리꽃을 한번 가꿔본 경험이 정서함양에 도움이 될거란 생각에서 시작한 일이다.지금은 대도시 어린이와 학부모들로부터 호응을 얻으면서 고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수많은 꽃들에 파묻혀 사니까 아름답게 보일지 몰라도 이를 가꾸고 관리하는 데는 강한 노동이 필요하다.”며 거칠어진 손바닥을 펴 보인다. 그는 “같은 꽃도 나라마다 지역마다 생김새와 이름이 조금씩 다르며 서양 원예종 화훼도 그 나라 고유의 들꽃을 개량한 것들이 많다.”며 우리 들꽃의 ‘산업화’ 기대에 부풀어 있다. 자원으로도 충분히 활용 가치가 있다는 생각에서다.환경오염과 기후변화 등으로 점차 사라져가는 고유의 수종을 지켜내고,이를 개량해 사시사철 곁에 두고 볼 수 있는 ‘우리꽃’으로 만들어 가는 게 꿈이란다. 담양 최치봉기자 cbchoi@
  • 해방둥이 기업 명암 외길경영이 갈랐다/한진·태평양등 승승장구

    광복절을 맞지만 ‘해방둥이’ 기업들의 명암은 크게 엇갈리고 있다. 해방정국의 어려운 시기에 회사를 세워 조국 근대화의 ‘주춧돌’을 놓기도 했지만 동아건설,해태제과,삼립식품 등 다수의 기업이 외환위기라는 파도를 넘지 못하고 쓰러졌다.하지만 한진,태평양,디피아이(옛 노루표페인트),중외제약 등은 58년간 한 우물만 파며 우량기업으로 우리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영광과 좌절…재기의 몸부림 한때 20여개의 계열사를 거느리며 호남기업의 대표 주자였던 해태그룹은 1997년 외환위기로 쓰러진 후 계열사별로 제각각 독자 생존을 모색중이다.최근 들어 옛 전성기의 위용을 급격히 회복하고 있다.2001년 10월 스위스의 UBS컨소시엄이 인수한 뒤 해태제과는 우량기업으로 환골탈태했다.지난해 매출액이 7500억원으로 부도 직전보다 10%가량 늘어났다.시장 점유율도 24%로 옛 수준(27%)에 거의 근접했다.관계자는 “주5일 근무제 정착,연봉제 및 스톡옵션 실시,해외 어학연수제 도입 등 지난 2년간 너무나 많은 변화가 있었다.”면서 “우리가 부도기업인지 모를 정도다.”고 밝혔다. 제빵업계의 ‘명가’ 삼립식품은 1997년부터 5년간의 법정관리 끝에 지난해 10월 파리크라상 컨소시엄에 인수됐다.올 상반기에는 12년만에 흑자(4억 4000만원)를 기록,옛 명성을 점차 회복중이다.관계자는 “품질을 보강하고 R&D(연구개발),시설보수 등에 투자를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1960∼1970년대 젊은 세대의 만남의 장소로 유명한 고려당도 1997년 부도후 법정관리중에 있다. 반면 동아건설은 지난해 최원석 회장 복귀 이후 ‘권토중래’를 노렸지만 현재 청산절차를 밟고 있다. ●외길 경영으로 승부 중외제약은 해방을 일주일 앞두고 서울 충무로에서 조선중외제약소로 문을 열었다.58년간 ‘한우물 경영’에 매진한 결과 순환기용제,항암제,수액제 등 340여종의 국내 최다 치료의약품을 공급하며 국민 건강을 책임지고 있다.노루표페인트로 널리 알려진 디피아이도 8개의 계열사를 거느리는 탄탄한 중견 기업으로 성장했다.화장품산업의 성장사와 궤를 같이하는 태평양도 업계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한진은해방둥이 기업 가운데 가장 큰 기업으로 성장했다. 김경두기자 golders@
  • 경제 플러스 / PBEC 서울총회 새달 개최

    전국경제인연합회는 다음달 22∼26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불확실성의 시대:기업리더십의 도전과 기회’를 주제로 제 36차 PBEC(태평양경제협의회) 총회를 연다고 15일 밝혔다.PBEC은 아·태지역 최대의 기업 및 민간기구로 역내 1100여개의 주요 기업들이 가입(회원 기업들의 연간 총매출액 약 10조달러)해 있다.다음달 서울 총회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이 기조연설을 하고 김진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한국경제설명회를 개최한다.이와 함께 아마드 바다위 말레이시아 부총리,콘 답바란시 태국 부총리,라피다 아지즈 말레이시아 통상장관,제임스 울시 전 미국 CIA 국장,모리스 스트롱 UN사무총장 특보,돈 오버도프 SAIS 교수,테오 좀머 디 차이트지 편집국장,미노루 무로후시 일본 이토추 회장 등이 연사로 참가한다.
  • 강렬한 ‘J-퓨전’ 느껴보자/日 퓨전재즈그룹 ‘카시오페아’ 새달 9일 내한무대

    일본 최고의 퓨전재즈그룹 카시오페아(Casiopea)가 새달 9일 오후 7시30분 경희대 평화의전당에서 내한무대를 갖는다. 이들의 내한공연은 이번이 세번째.정통 퓨전재즈 무대를 기다려온 팬들에게는 더없이 반가울 무대다. 그룹이 결성된 것은 지난 1979년.강렬한 기타 사운드,현란하면서도 정교한 연주가 주특기인 이들은 ‘J-퓨전’이라는 독특한 스타일로 일본 퓨전재즈계를 주도해왔다.지금은 기타의 이세이 노로,키보드의 미노루 무카이야,베이스의 요시히로 나루세 등이 함께 호흡하고 있다. 이번 공연에는 일본의 정상급 드러머이자,지난 89년까지 10년동안 그룹의 일원이기도 했던 아키라 짐보가 합류한다. 공연에 즈음해 이들의 35번째 앨범 ‘Inspire’도 국내에 선보일 예정.일본에서는 지난해 여름 발매된 앨범으로,시원한 파도소리가 인상적인 ‘Windy sunshine’을 비롯해 모두 12곡이 담겼다.(02)751-9606. 황수정기자
  • 세계인 - 우리는 이렇게 산다 / 장기불황 日샐러리맨의 점심시간

    |도쿄 황성기특파원|“800엔을 넘으면 좀 비싸다고 생각하죠.” 공무원인 가토(35)는 정보수집이라는 업무 성격상 바깥에서 1000엔이 넘는 식사를 하는 일이 잦다.하지만 동료들과 어울릴 땐 식사비가 800엔을 넘지 않도록 한다.300∼500엔짜리 구내식당이 아닌 직장 주변의 음식점에 가면 가격에 눈길이 먼저 간다.“아무리 맛나게 보이더라도 1000엔 전후라면 포기해 버린다.” 점심을 고르는 기준은 그날그날 다르지만 가토는 대개 가격→양→좋아하는 음식 순으로 정한다. ●점심값의 심리적 저항선은 800엔 도쿄의 남성 샐러리맨들은 “비싸지도 싸지도 않은 적당한 점심값”의 기준을 700∼800엔에 두고 있다.급여체계가 다른 직장여성들은 400∼600엔에 선을 그어두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마이코(27·여)도 가끔씩 친구들과 어울려 1000엔을 넘는 이탈리안 요리를 즐기지만 “여간 큰 마음을 먹지 않고서는 힘들다.”는 것이 속내다. 지방 출신들이 도쿄에서 느끼는 점심값 마지노선은 고향보다 턱없이 높다.구마모토현의 소도시에서 2년 예정으로 도쿄로파견나와 있는 히라오(30)는 “고향에서는 400∼600엔 정도였으나 도쿄는 두배 가깝다.”고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그래서 히라오는 도쿄 사무소가 입주해 있는 건물의 구내식당 단골이 됐다.“월급도 적은 젊은 사람이 점심값으로 월 2만엔씩 지출한다는 것은 무리”라고 덧붙인다. 거품경제가 한창이던 십수년 전만 해도 점심값 마지노선은 지금보다 다소 높아서 “그때가 좋았다.”는 40∼50대 샐러리맨들도 많다. 신문사 부장급인 다시마(52)는 “10여년 전에는 900∼1000엔 정도가 이른바 심리적 저항선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웃는다.연봉 1000만엔인 그이지만 대학생인 두 아들의 학비 때문에 부인으로부터 받는 한달 용돈은 5만엔 정도.독서가 취미인 그는 도서 구입에 적지않은 지출을 하고 있어 “점심식사에 들일 돈이 제한돼 있다.”고 설명했다. ●불황이 바꾼 점심 사정 GE 소비자크레디트 조사에 따르면 일본 샐러리맨의 용돈은 월 평균 4만 2000엔.800∼1000엔짜리 점심을 주 5회 사 먹으면 점심값만으로 월 1만 6000∼2만엔이 든다는 계산이다.빌딩가에서 240∼500엔짜리 쇠고기덮밥 가게 앞에 낮 12시 전부터 직장인들이 줄을 서는 광경을 보기란 어렵지 않다. 점심값이 용돈의 절반쯤 되면 애연가·애주가에게는 상당한 압박이 아닐 수 없다.점심값을 줄이는 대신 저녁에 친구나 직장 동료들과 어울리는 비용을 충당하는 샐러리맨들도 적지않다. 니시카와(39·회사원)는 1년반 전부터 부인이 만들어 주는 도시락으로 점심을 때운다.3년 전 구입한 주택의 은행빚 상환에다 회사의 급여삭감으로 용돈을 줄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스스로 도시락을 싸 달라.”고 부인에게 부탁했던 그는 점심값을 쓰지 않아 여유가 생긴 용돈은 술친구와 어울리는 데 돌리고 있다. 도쿄 인근의 지바현에서 도쿄로 통근하는 무라카미(35)도 ‘사랑하는 부인의 도시락’을 지난 4월부터 지참하기 시작했다.“보육원에 들어간 아들(3)의 도시락을 싸는 김에”라는 이유가 붙었지만 실은 생활비를 줄이기 위한 대책의 하나였다.그는 매일 아침 부인에게서 도시락을 받으면 식탁에 놓인 저금통에 도시락값으로 200엔을 넣는다.이렇게 모인 돈으로 무라카미의 부인은 그가 좋아하는 반찬을 준비하기도 한다. 불황이 드리운 그림자는 일본 샐러리맨들의 점심 사정에도 역력히 나타난다.농림수산성의 2002년 조사를 보면 점심 때 외식하는 사람은 2001년 43.5%에서 2002년 37.4%로 줄어든 반면 도시락 지참자는 9.4%에서 12.5%로 늘었다. 도시락 지참률은 한창 일할 연령인 30대(13.0%),40대(13.8%)가 평균치보다 높다.교육비·주택비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은 20,50대보다 점심값을 줄이려는 노력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도심의 공원은 샐러리맨들의 점심 집결지 도쿄 중심가에서 가장 규모가 큰 히비야 공원.중앙관청과 오피스 빌딩으로 둘러싸인 이곳은 점심 때만 되면 ‘도시락 공원’으로 바뀐다. ‘나홀로’이거나 삼삼오오 모여 도시락을 먹는 넥타이 부대와 직장여성들로 낮 12시가 되기 전부터 벤치는 앉을 자리가 없어 바닥에 주저앉은 사람들도 적지 않다. 공원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의 회사에 근무한다는 후쿠다(41)는 부인이 싸준 도시락을 먹으러 왔다.비가 오락가락 하는장마철이라 요즘은 절반은 사무실,나머지는 운동삼아 공원에 와서 점심을 먹고는 공원을 한 바퀴 돌고 회사로 들어간다. 다니가키(41)도 나홀로 도시락족이다.1주일에 1∼2차례 히비야 공원에서 점심을 먹는다는 그는 야채 사라다가 딸린 550엔짜리 돈가스 도시락을 편의점에서 샀다.150엔짜리 음료수까지 하면 700엔 정도가 그의 점심값이다. 같은 직장의 동료 2명과 함께 공원을 찾은 미사코(22·여)는 “구내식당의 맛없는 400엔짜리 정식보다 싸고 맛있고,공원의 정취도 즐길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주 한차례는 편의점 도시락을 사서 공원에 온다.”고 말했다.미사코는 380엔짜리 볶음밥,선배인 도모코(28)는 400엔짜리 볶음라면,마리(29)는 600엔짜리 돈가스를 먹었다. ●부인이 싼 도시락은 자랑스러운 애정의 표현 부인이 정성껏 만든 ‘사랑의 도시락족’끼리 공원을 찾는 사람도 있다. 4년 전 결혼한 후지모리(39)는 6개월 전부터 ‘히비야 점심모임’을 결성해 직장 동료 3∼4명과 함께 공원을 찾는 도시락족이다.날씨가 춥거나 비가 내리는 날이면 회사 회의실에서 모이지만 가급적 공원을 찾는다.“비싸기만 하고 영양 밸런스나 몸에도 좋지 않은 외식보다는 마누라가 싸준 도시락이 훨씬 건강에도 좋다.”고 자랑한다. 불만이 없는 것도 아니다.‘히비야 점심모임’의 한 회원은 “전날 남은 반찬을 다시 도시락에 싸주거나 아침 마누라의 기분에 따라 내용물이 달라지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고 귀띔한다. marry01@ ■500엔 서민 도시락 회사원에 ‘히트상품' |도쿄 황성기특파원|일본 샐러리맨들의 무거운 어깨를 덜어주는 소중한 존재,도시락. 그러나 맞벌이로 부인이 도시락을 싸줄 수 없거나 수제(手製) 도시락 지참을 귀찮아하는 샐러리맨에게는 회사 근처에서 성업하는 도시락 판매점이 더할 나위없이 고맙기만 하다. 싸면서 따끈따근하고 맛있는 500엔 전후의 도시락이 날개 돋친 듯 팔리고 도시락 하나만으로 한해 53억엔(약 530억원)의 매상을 올리는 초우량 기업마저 나왔다. ●연매출 530억원 도시락업체도 거품경제 붕괴가 본격화되기 시작한 1994년 “도시락이 일본 샐러리맨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을 예견해 도시락 제조업에 뛰어든 ‘비바스’의 가토 미노루(38) 사장.그는 규모는 작지만 올해 1억엔 매상을 목표로 착실히 전진하고 있다. “창업 초기에는 1000∼3500엔짜리 고급 도시락을 주로 만들다가 최근 들어 손님들 성화로 500엔짜리 도시락을 내기 시작했다.”는 그는 도시락 수요로 일본 경제의 상황을 가늠할 수 있다고 한다. 거품이 걷히고도 한동안은 웬만한 기업들이 사원에게 잔업을 시키면 800엔 정도 나오던 야식비가 최근에는 거의 사라졌다고 귀띔한다.“500엔짜리 도시락은 샐러리맨들의 홀쭉해진 주머니 사정을 반영하는 것 같다.”는 것이 가토의 분석. ●도심 사무실까지 배달 큰 호응 직원 20명을 두고 자신도 도시락 영업에 나서는 가토는 “이윤이 적은 500엔짜리보다는 고급 도시락을 많이 파는 편이 낫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덧붙인다.반경 2㎞ 이내의 긴자나 우에노를 영업지역으로 삼고 있는 그는 ‘따끈한 도시락을 사무실까지 배달한다.’는 장점으로 샐러리맨들에게 파고들었다. 주·월 단위 계약 손님 외에도매일 아침 전화로 예약을 받는 그는 500엔짜리는 200여개,고급 도시락은 100개 정도 팔고 있다. 50엔짜리 햄버거,240엔짜리 쇠고기 덮밥의 출현으로 타격도 받았지만 “도시락 재료로 첨가물이 들어간 식품이나 냉동품은 쓰지 않는다는 점이 손님들의 지속적인 신뢰를 얻어 매출이 증가하고 있다.”고 자랑한다. 지난해 7000만엔 매출에 500만엔 적자를 낸 이 회사는 직원을 오히려 늘려 영업에 힘쓴 결과,올해는 불과 4개월 만에 3500만엔의 매출을 올리는 등 호조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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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롯데월드 27일부터 9월 7일까지 정문 앞에서 ‘야생화 대축제’를 연다.부처꽃,노루오줌,동자꽃,,초롱꽃,벌개미취,층층이꽃,청하국,우산나물 등 깊은 산이나 식물원에 가야 볼 수 있는 야생화 100여종 10만그루를 선보인다.관람료는 무료.(02)411-2000. ●아산 스파비스 지중해풍 정원을 벤치마킹해 꾸민 야외수영장을 2000여평 규모로 확장해 7월 5일 개장한다.섭씨 29∼32도의 게르마늄 온천수를 사용해 기온이 떨어지는 장마철에도 아이들과 물놀이를 즐길 수 있다.수영장엔 40m 길이의 성인풀과 유아풀,어린이형 놀이공간인 ‘플레이 그라운드’,개구리형 슬라이드,전용 선탠장 등이 갖춰져 있다.(041)539-2000. ●캐세이패시픽항공 홍콩의 17개 호텔이 참여하는 ‘캐세이패시픽-비지트 홍콩’ 패키지를 판매한다.인천-홍콩 왕복 항공권,호텔 1박,공항-호텔 왕복 교통 및 참여 호텔이 별도로 제공하는 부가 혜택을 포함하고 있다.요금은 호텔 등급에 따라 29만9000원(3성급)부터 54만3000원(5성급)까지.단 성수기(7월19일∼8월14일,9월8일부터 13일까지)엔 5만원이 추가된다.(02)3112-800. ●한국관광공사 7월 1일부터 내·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종합관광안내전화 ‘1330’을 24시간 연중 무휴 체제로 개편 운영한다.관광객이 이 번호를 누르면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전국의 종합안내소중 가까운 곳에서 정보를 제공하고,이후엔 관광공사 안내소로 자동 연결돼 24시간 서비스를 제공하게 된다.특히 외국인이 현지에서 공사의 영·일·중어권 인터넷 홈페이지를 열어 ‘1330’을 클릭하면,인터넷폰을 통해 실시간으로 정보를 제공받게 된다.(02)729-9636. ●한국레저협회 주말을 이용해 스쿠버다이버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설,운영한다.금요일 이론교육,토요일 잠수풀 실무교육,일요일 바다 수중 탐험 등 3차례로 나누어 진행되며,교육비는 총 30만원.(02)522-5677.
  • 자연을 거울삼아 곱씹는 삶 / 최두석 시인 새 작품집 ‘꽃에게‘

    80년대 ‘이야기 시(詩)’라는 독특한 담론으로 ‘리얼리즘 시론’을 펼쳤던 시인 최두석(48)이 새 시집 ‘꽃에게 길을 묻는다’(문학과지성사)를 내놓았다. 최두석은 이미 ‘임진강’‘대꽃’ 같은 시집에서 서정과 서사의 절묘한 접점찾기를 시도했으며,꽃과 나무 등 자연을 소재로 한 이번 시집에서도 그 정조는 여전하다.서정과 서사를 접착한 채 쉬운 언어로 현실을 따끔하게 들추어낸다. 시인은 먼저 마라도 바다국화,달롱개,엄나무,민들레,호박꽃,노루귀,찔레,매화 등 여러 가지 꽃이나 나무를 자신의 시심(詩心)속에 불러온다. 이어 특유의 감성으로 그 꽃들의 이미지를 단아하게 묘사한다.그리곤 그 모습에 시인의 자화상을 투영시킨다. 시 ‘엄나무’를 보자.먼저 시인은 가시투성이의 엄나무가 “가시를 떨구면서 늠름해진다”고 노래한다.왜냐하면 “가시로 세상에 맞서는 일이 부질없는 걸 깨우친 까닭”이라며.이 이치는 다음 연에서 바로 시인에게 되돌아온다.“…정겨운 시골마을의/정자나무고 되고 싶은 시인이여/네가 온몸에 달고 있다가/떨군 가시는 무려 몇가마인가.”라고. 이처럼 시인은 꽃이나 나무를 노래하되 그들을 그저 묘사의 대상으로 내버려두지 않는다.자연을 거울 삼아 끊임없이 삶을 곱씹는다.‘느티나무와 민들레’에서는 크고 우람한 일만 열망한 나머지 작고 가벼운 일을 소홀히 한 지난날을 떠올린다.또 ‘냉잇국’에선 추운 겨울을 물리치고 봄을 불러온 냉이의 생태를 음미하면서 어머니의 주름진 손을 바라보기도 한다. 시인 최두석이 열망하는 시인의 모습은 ‘시인과 꽃’에 그대로 담겨 있다.“말이 씨가 된다고 믿고/씨앗의 발아를 신뢰하는 농부처럼/마음 속 묵정밭 일구어/꽃씨를 뿌리는 이가 있다/가뭄과 장마를 견디고/꽃나무가 잘 자라/환하게 꽃술을 내미는 날/그는 나비가 되어 날아오르는 꿈을 꾸었다” 이종수기자
  • 국보강탈 용의자2명 검거 / 부산서…문화재 4점 행방은 묘연

    국립 공주박물관 국보 강탈사건의 용의자 2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경찰청 기동수사대와 충남 공주경찰서는 22일 오후 2시50분쯤 부산 사상구 삼락동 공구제작업소인 K정밀 2층 사무실에서 황모(44·무직·부산 사상구)·오모(36·무직·전북 익산시)씨 등 2명을 이 사건의 용의자로 붙잡아 범행전모를 캐고 있다.황씨는 문화재 절도전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들이 부산에서 임대한 것으로 드러난 리오 승용차 뒷자석에서 과도 1개와 검정색 운동복 2벌,망치,노루발톱못뽑기(일명 빠루) 2개,청색테이프 등을 발견했다.이들이 타고 다닌 리오승용차와 전북 차량번호를 단 마티즈 승용차는 K정밀 주변에 있었다. 경찰은 범행 당시 공주박물관 당직근무자인 박모(34·학예연구사)씨와 용의자들을 대조,박씨로부터 “오씨가 나를 흉기로 위협했던 사람이다.”는 진술을 얻어냈다.박물관의 한 직원은 “황씨 등이 타고 다닌 연두색 마티즈 승용차를 범행 전날인 지난 14일 공주박물관 주차장에서 보았다.”고 진술했다.이 차는 오씨 소유다. 경찰이 용의자들의 휴대전화 통화내역을 분석한 결과,범행 이전인 지난 2일과 11일 공주시 반포면과 산성동 등 박물관 주변,서울 인사동 등에서 통화를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그러나 황씨 등은 “공주에 온 적이 한번도 없었다.”며 범행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사라진 국보 등 문화재 4점의 행방도 묘연하다. 경찰은 이번 범행에 황씨와 오씨 외에 김모(43)·성모(42)씨 등 2명이 더 가담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서울 인사동의 한 골동품상으로부터 “공주박물관에서 강탈당한 금동불상으로 보이는 문화재를 거래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제보를 받아 황씨 등을 붙잡았다. 검거 당시 용의자들은 흉기를 휘두르며 경찰에 격렬하게 저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공주박물관측은 지난 15일 출입문을 통해 침입한 괴한 2명에게 국보 247호 ‘금동관음보살입상’과 고려시대 상감청자,접시,잔 등 문화재 3점을 강탈당했었다. 경찰은 황씨 등을 상대로 사라진 국보 등 문화재의 행방을 캐묻는 한편 성씨 등 공범들의 행방을 뒤쫓고 있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
  • 장애 딛고 외식업체 근무 김미희씨

    “위생개념부터 차근차근 이젠 어엿한 사회인예요” 김미희(21)씨는 하루하루가 즐겁다.정신지체 2급인 그녀는 자기 몸 하나도 제대로 건사하기 힘들지만 역경을 딛고 외식업체에서 일하고 있다.미희씨는 ‘정신질환자’가 아니다.단지 ‘정신지체 장애인’일 뿐이다.그러나 비장애인들은 정신지체 장애인을 정신질환자 취급한다.장애인에 대한 몰이해 때문이다. 그녀는 여동생으로부터 복장점검을 받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한다.고3인 여동생 금녀(18)는 언니가 양치질은 제대로 했는지,손톱은 짧게 잘랐는지,머리는 예쁘게 빗었는지를 일일이 챙긴다.잔소리를 해대는 동생이 밉지 않다.홀어머니와 세 자매가 살고 있는 가족 중에서 유일한 비장애인이기 때문이다.엄마(57)와 언니 미화(27)·미희씨 모두 정신지체 장애인이다. 미희씨는 강원도 삼척의 산골에서 태어났다.찢어지게 가난했다.논밭 한 뙈기 없었던 아버지는 꿩이나 노루 등을 잡아 생계를 유지했다.그러나 술로 세월을 보낸 탓에 위암으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미희씨가 8세 때였다. 미희씨는 10세가돼서야 초등학교에 입학했다.정신지체 장애 때문이었다.초등학교 5학년 때에는 경기 부천으로 이사했다.오빠가 부천에서 공장생활을 하면서 가족들을 불러들였다.그러나 오빠 역시 1998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가족들을 먹여살려야 한다는 스트레스를 소주로 달래다 끝내 세상을 떴다.오빠가 매일 소주 2∼3병씩을 마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미희씨는 2000년 부천정보산업고등학교 사무자동화과에 입학했다.특수학급에서 컴퓨터를 공부했다.3학년 때인 지난해 여름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의 도움으로 취업의 길에 나서기로 했다. 장애인고용촉진공단은 정신지체 장애인들을 외식업체에 취업시키기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6명을 선발,교육에 들어갔다.그녀는 6개월 동안 기숙사 생활을 하며 교육을 받았다.그녀는 청결개념은 물론 위생개념도 없었다.서비스 정신은 더욱 없었다.그러나 6개월만에 혼자서 몸을 씻는 등 청결에 대한 개념을 익혔다.접시 닦는 법,요리하는 법,서빙하는 법 등도 배웠다. 자포자기할 때도 많았다.실습나간 피자헛 매장에서는 점장에게대들기도 했고 거짓말도 자주 했다.집에 가겠다고 떼를 쓴 적도 한 두번이 아니었다. 그녀를 담당했던 직업훈련교사 조윤희(41)씨가 그때마다 딸처럼 달랬다.조씨의 정성으로 그녀는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조씨는 지금도 틈만 나면 미희씨를 찾아 사후지도를 하고 있다. 미희씨는 지난 2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외식업체 ‘코코스’의 부천점에서 일하고 있다.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까지 하루 4시간씩 주방보조 일을 하고 있다.한때 PC방 등을 전전하며 무의미한 생활을 했던 그녀는 이제 보람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그녀는 간단한 메뉴는 직접 만들기도 한다.또 양식 메뉴에 들어가는 콩과 당근 등도 직접 조리한다. 기초생활보호대상자 보조금과 장애수당,가족들이 매달려 부업으로 버는 20만원을 합치면 약 70만원의 생활비가 전부다.미희씨가 버는 돈은 한달에 20만원 정도.전셋집이 오는 6월 만기가 돼 더 좁은 곳으로 이사해야 한다. 미희씨는 아직 한번도 지각하지 않았다.코코스 부천점 트레이너 매니저 허미연(25)씨는 “미희씨가 열심히 일한다.”면서 “농담도 자주 해 매장을 웃음바다로 만든다.”고 말했다. 김용수기자 dragon@
  • 별천지? 꽃천지!

    사철 각기 제 색깔을 내는 게 우리 의 산과 들이지만 봄,그중에서도 이맘 때만큼 다양한 색깔을 내는 때도 없다.우리의 자연을 축약해놓은 수목원이나 식물원의 봄도 지금이 절정이다. 험한 태백준령을 찾지 않고도 심산계곡에나 사는 토종 꽃들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식물원이 주는 커다란 기쁨이다.쉬는 날이 유독 많은 5월.아이들과 함께 ‘꽃대궐’을 이룬 남양주 석화촌이나 한국의 자연미를 울타리안에 옮겨놓았다는 가평 ‘아침고요 수목원’을 찾아보자. ●석화촌(남양주시 진건면 사능리) ‘석화촌’(石花村)이란 이름이 보여주듯 돌과 꽃으로 이루어진 자그마한 동산.입간판을 보고 들어가기 전까지는 ‘도대체 무엇이 있길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오나?’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입구가 초라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입구를 지나 조금 걸어들어가면 눈 앞에 그야말로 ‘별천지’가 펼쳐진다.요즘은 석화촌이 가장 화려한 옷을 입은 시기.야산 자락의 1만2000여평엔 붉은 철쭉과 진홍색 영산홍이 가득 피어 있고,군데군데 하얀 영산백과 수선화가 고운 자태를 뽐낸다. 영산홍은 예부터 대갓집에서 기르던 정원수.석화촌엔 오렌지에 붉은색을 섞은 것 같은 원조 영산홍은 물론,진자색이 도는 자산홍,흰 빛의 백영산 등 2만여 그루의 영산홍이 각양 각색의 석물(石物)과 어우러져 황홀경을 연출한다. 영산홍은 날씨 영향을 받아 만개한 풍경을 보기가 쉽지 않아,자칫 실망할 수도 있다.하지만 석화촌엔 철쭉이 4월 말부터 6월 말까지 종별로 번갈아 피고지며,갖가지 야생화도 볼 수 있기 때문에 서운해할 필요는 없다.군데군데 놓인 돌조각 400여점도 운치를 더한다.산책로를 따라 석불이나 석탑,각종 동물 모양,피리부는 목동이나 가야금 타는 여인 등이 꽃과 어우러져 분위기를 띄운다. 서울 태릉에서 47번 도로를 타고 가다가 390번 도로를 갈아타고 5분 정도 가면 길 오른쪽에 ‘석화촌’이란 입간판이 보인다.또 판교∼구리 고속도로 퇴계원 종점∼일동 방면 47번 국도∼390번 도로 코스를 따라가도 된다.입장료 1000원.(031)574-8002. ●아침고요수목원(경기도 가평군 상면 행현리) “한국 자연의 아름다움,즉 곡선과 비대칭의 균형을 울타리 안으로 옮겨왔다.” 한상경 교수(삼육대 원예학과)는 아침고요수목원의 컨셉트를 이렇게 정의한다.경기도 가평군 축령산(879m) 자락에 고즈넉하게 자리잡은 이 수목원은 한 교수가 단순히 식물 수집 차원을 넘어 원예미학적으로 한국의 미를 최대한 반영하여 계절별,주제별로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도록 설계하고 가꾸어왔다. 테마별로 9개의 정원과 전망대,‘아침광장’‘아침계곡’ 등으로 꾸며져 있다.수목원 매표소를 지나자마자 우측에 있는 ‘고향집 정원’은 항상 우리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는 고향집 풍경을 연출한 곳.초가와 함께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조팝나무,능소화,매화,벚나무,자귀나무,꽃잔디 등을 심었다.매화,벚꽃은 지고 지금은 자목련이 한창이다. 하경정원은 아래 하(下),경치 경(景)의 이름 그대로 아래로 경치를 내려다보는 정원.한국적인 선과 색채가 가장 화려하게 조화된 정원으로 우리나라 지도모양으로 설계됐다.‘하경전망대’에 올라가야 정원의 진면목을 감상할 수 있다. 야생화 정원에 들어서면은은하면서도 소담스러운 우리 꽃들이 친근하게 다가온다.요즘엔 노루귀,복수초,금낭화,매발톱,깽깽이풀 등이 꽃을 피우고 있다.여름엔 까치수염,하늘말나리,참나리,꽃창포가,가을엔 개미취가 정원을 덮는다.수목원엔 이밖에도 옛 어른들의 삶의 터전을 모은 ‘한국정원’과 ‘아이리스 정원’‘분재정원’ 등이 있다. 기왕이면 일찍 길을 서둘러 오전에 둘러보아야 상큼하면서도 조용한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서울에서 가려면 46번 경춘국도를 타고 가야 한다.청평검문소에서 현리 방면으로 좌회전(37번 국도)해 7㎞쯤 달리면 상면초등학교가 나오고,학교 앞 신호등 왼편으로 ‘축령산 아침고요 수목원’이란 이정표가 있다.(031)584-6702∼3. 남양주 글·사진 임창용기자 sdargon@
  • [임영숙 칼럼] ‘나무를 심은 사람2’

    천리포 수목원은 지금 천국이다.앙증맞은 복수초와 노루귀 얼레지 삼지구엽초가 수줍게 꽃망울을 피운 한편에서 수선화와 크로커스 헬레보러스 등 이국적인 초화류가 군락을 이루며 자태를 뽐낸다.한국에만 산다는 천연기념물 미선나무와 히어리 개나리 산수유 생강나무가 각기 다른 농도의 노란색 꽃과 향기로 봄날을 더욱 따스하게 만들고 후박나무 너른 잎새에서는 햇빛이 미끄러져 내린다. 무엇보다 눈부신 것은 꽃등처럼 빛나는 목련이다.백목련 자목련은 물론이고 연분홍 꽃분홍 노란색 목련도 보인다.400여종에 이른다는 각양각색의 목련이 피어나려고 꽃봉오리를 한껏 부풀리며 4월의 수목원을 꿈의 정원으로 만들고 있다. 이 수목원을 설립한 민병갈(미국이름 칼 페리스 밀러·1921∼2002)씨는 장 지오노의 소설 ‘나무를 심은 사람’의 주인공 엘제아르 부피에에 비유되기도 한다.부피에가 프로방스 지방의 황량한 산에 혼자 묵묵히 나무를 심어서 온갖 새와 짐승과 사람이 깃들어 사는 낙원으로 변하게 했듯이 민씨도 천리포의 척박한 야산 18만평을 홀로꿈의 정원으로 일구어 냈기 때문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웨스트피츠턴에서 태어나 2차대전 때 미군장교로 한국에 온 그는 57년동안 이땅에 살며 한국사랑과 나무사랑에 헌신했다.그가 일군 천리포 수목원에는 1만종에 가까운 나무들이 아름답게 자라고 있다.특히 외국에서 들여 온 수종은 국립임업시험연구원의 보유 규모를 훨씬 능가할 정도라고 한다.국제수목협회로부터 지난 2000년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이라는 인증패를 받기도 했는데 아시아 최초,세계 12번째의 인증패였다.세계 최다 목련 수집 수목원으로서 세계목련학회,호랑가시나무학회,국제수목협회 총회가 이곳에서 열리기도 했다. 스스로 ‘전생에 한국인이었다.’고 믿었던 그는 1979년 한국인으로 귀화했다.김치 없이는 밥을 못 먹을 정도였고 밤참으로 라면을 안주 삼아 소주를 마시면서 수입품인 커피는 너무 비싸다고 자주 마시지 않았다.개발연대에 헐리는 한옥들이 아까워 수목원으로 옮겨 오기도 했다.독신이었던 그는 한국은행과 증권사 등에서 일하며 평생 번 돈을 쏟아부어 만든 수목원을 공익법인화하고 자신이 살던 집을 포함한 개인재산을 모두 수목원에 기증한다는 유언을 남기고 지난해 봄 타계했다. 엊그제 8일은 그의 1주기였다.수목원에서 열린 추모행사에는 국내외에서 100여명이 모여들어 성황을 이루었다.추모객들은 그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토로했다.또 이날 제막된 묘비의 묘비명처럼 “푸른 눈의 영원한 한국인 민병갈이 남긴 천리포 수목원은 앞으로 천년을 더 푸르러 갈 것이다.”라고 믿으며 그렇게 되도록 뒷받침할 것을 한마음으로 다짐했다. 몇번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생전의 그를 만나지 못하고 뒤늦게 천리포 수목원을 찾은 나는 이곳에서 장 지오노의 소설이 현실화됐음을 느꼈다.공교롭게도 소설속의 주인공 부피에 노인처럼 천리포의 ‘나무 할아버지’도 꼬박 32년 동안 나무를 심고 가꾸었다.30년이란 세월동안 한 인간이 얼마나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는가를 이 수목원도 눈부시게 보여준다. 마음이 스산해질 때 나는 ‘나무를 심은 사람’을 읽었다.세상 돌아가는 게 너무 어지러울 때,알 수 없는 무력감에 빠져들 때도 이 책을 집어 들었다.그러나 이제는 천리포 수목원,‘나무를 심은 사람 2’를 찾으면 될 듯싶다. ‘나무를 심은 사람’을 애니메이션 영화로 만들어 아카데미상 단편상을 받은 프레데릭 바크는 이렇게 말했다.“나는 자신을 바쳐 일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 영화를 바칩니다.그리고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이나 절망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이 작품이 큰 격려가 되기를 바랍니다.” 천리포 수목원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고단한 삶에 지친 영혼을 위로 받고 새로운 활력과 희망을 찾아가게 될 것 같다. 미디어연구소장 ysi@
  • 붓제작 기능보유자 문상호씨 남산골 한옥마을서 붓전시회“아이들 손잡고 전통붓 구경오세요”

    “서예인구는 갈수록 줄어드는데도,붓은 엄청나게 수입되고 있어요.붓 만드는 사람들에게는 힘든 세월입니다.” 전통 붓 제작자 문상호(文相晧·사진·61)씨는 어려움을 토로하면서도 “그럴수록 최고를 만들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최고’에 가까운 붓을 만들고 있다는 자부심의 표현이기도 하다. 문씨는 현재 서울 필동 남산골 한옥마을에서 붓 전시회를 갖고 있다.‘한국의 문방문화전’이라는 이름으로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주최한다. 전시회를 둘러보면 흔히 좋은 붓으로 알려진 노루가슴털이나 족제비꼬리털 말고도 대나무(竹筆)와 닭털(鷄毛筆),칡(葛筆),볏짚(藁筆) 등 재료의 다양함에 놀라게 된다.그 다음으로는 수천년 동안 문자생활의 동반자였음에도 불구하고,붓에 대해 별로 아는 것이 없었음을 깨닫게 된다. 문씨는 “죽필은 대나무를 가늘게 다듬어 만든 것으로 힘있는 글씨를 쓸 때 유용하고,볏짚붓은 2㎜만 닳아도 수명이 다하는 털붓과는 달리 10년 이상 쓸 수 있다.”고 설명하고 “그럼에도 서예가들조차 죽필이라면 대나무 자루를 붙인 붓으로 아는 사람이 적지 않다.”며 웃었다. 문씨는 전남 장흥에서 태어났지만,17살 때 붓공방이 30여개나 모여 있던 광주 백운동으로 이사하면서 붓만들기에 입문했다. 지난 1일 시작된 문씨의 붓 전시회는 새달 28일까지 계속된다. 서동철기자 dcsuh@
  • [공직자 에세이] 바람꽃이 손내미는 제주의 ‘오름’

    제주의 서점 어디를 가더라도 지난 1995년 출간된 이후 줄곧 스테디셀러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며 독자의 손을 기다리는 책을 발견할 수 있다.‘오름나그네’라는 제목의 이 책은 원로 언론인이자 산악인인 고 김종철 선생이 도내 330여 오름을 일일이 답사한 순례기를 모은 책이다. ‘오름’은 제주섬 전역에 옹기종기 몰려 있는 기생화산을 일컫는 제주어.그 속에는 온갖 식물이 다투어 피어 있고,말과 노루가 뛰놀며,샘과 계곡이 숨어 있는가 하면,‘제주는 신들의 고향’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1만 8000신(神)들의 이야기가 있다. 올림포스 언덕이 그리스신화의 신의 거처라면 한라산을 비롯한 오름들은 제주 신들의 거처다.외적이 침입할 때마다 통신망 구실을 했다.때로는 항쟁의 거점이 되기도 했다.수려한 풍광에 넋을 잃은 많은 문객들이 시로 화답했으며 목축의 근거지임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이렇게 오름은 저마다 제주섬 사람들의 숨결을 가슴 깊이 끌어안고 수만년의 세월을 건너왔다. 해마다 이맘 때면 사람들은 제주에서 전하는 화신을 보기 위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찾아온다.섬 곳곳에 피어 있는 동백을 보며 동백보다 더 붉은 사랑을 약속하기도 하고 알싸한 향기를 피어내는 수선화에 코끝을 묻기도 한다.온통 노랗게 흐드러진 유채꽃밭에 들러 한껏 웃음을 지어보기도 하고 한라산 중턱에 지천으로 핀 진달래 밭에서 잠시 정신을 놓기도 한다. 하지만 제주에는 이런 꽃들만 있는 게 아니다.새싹이 트자마자 또는 새싹이 트기도 전에 꽃을 피우는 식물들이 있다.높은 산정에 하얀 눈이 쌓여 있고 계곡에도 아직 잔설이 남아 있을 무렵 온 몸으로 겨울을 밀어내며 인간 세계에 봄소식을 알리는 전령들이 있다. 노루귀·바람꽃 그리고 ‘얼음새꽃’이라 불리는 복수초….이름만 들어도 벌써 봄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이 꽃들은 어쩌면 사람보다 더 봄을 그리워했기에 먼저 피는지 모른다. 제주 사람들이 언제나 자연과 이웃되어 살아 왔던 모습을 보여주는 예로 ‘코시’라는 것이 있다.이것은 밖에서 술을 마시거나 식사를 하게 될 경우 토속신과 조상 그리고 자연과 음식을 나누는 의미에서 술과음식을 먼저 뿌리는 ‘의식’을 말한다. 인간의 모든 삶을 결코 자연과 분리해 생각하지 않았던 제주 선인들의 덕목을 우리는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간혹 제주를 찾는 관광객들로부터 바닷가 풍경을 감상하고 나면 더 볼 것 없다는 얘기를 듣는다.하지만 그것은 모르고 하는 말이다.제주의 오름과 들녘 곳곳에는 아직도 사람의 발길이 좀체 닫지 않은 비경이 숨어 있으며 태고적 신비를 간직한 곳이 결코 한둘이 아니다.얼마 전부터 제주를 다녀가는 분들 사이에서 오름트래킹이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고 한다.무척 반가운 소식이다.새 봄의 기운이 섬 곳곳에 가득한 이 계절,제주를 방문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 분들이 계시다면 잠시 시간을 내어 오름에 올라 원시의 바람속에 몸과 영혼을 맡겨볼 것을 권한다. 그것이야말로 제주의 참모습과 그에 얽힌 오래된 이야기들을 아름다운 자연과 더불어 진정으로 누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 [녹색공간] 동고비와 함께 나눈 설경

    어느새 동고비와 한가족 되어… 자연의 순수함에 몰입된 순간 발등까지 빠지는 눈길을 헤치면서 숲을 찾는 기분은 새로웠다.‘마음이 속되지 않고,게으르지 않고,그리고 평화로울 때,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비로소 아름다워진다.’는 글귀를 음미하면서 눈 쌓인 숲길을 걸었다. 정릉 골짝과 북악 골짝의 갈림길을 잇는 능선 마루금은 언제나 거친 숨을 가라앉히고 흘린 땀을 식히는 나만의 쉼터이다.그러나 나만의 쉼터를 이미 다른 객들이 차지하고 있었다.동고비 가족이 그들이었다.보통 때면 경계심을 나타내고,조금만 소리를 내거나 가까이 다가가는 시늉을 하면 멀어지는 것이 이들이지만,눈 내린 날은 달랐다.아마 하얀 세상으로 변한 겨울 풍경을 가슴에 담고자 속된 마음을 버리고,또 부지런을 떨면서 나선 내 모습이 혹 평화롭게 보여서 낯을 가리는 동고비들조차 쉽게 마음을 허락했는지 모르겠다. 그 순간 나 자신은 가지에 앉아 있는 새가 되어본다.새들의 지저귐을 듣고,내 몸 깊은 곳에서 그들의 소리를 느껴본다.공기를 가로지르면서 산마루를넘고,마침내 창공으로 솟구쳐 본다.자연의 모든 소리와 움직임을 오관으로 느껴본다.어느 틈에 나 자신도 동고비 가족이 되었다. 그런 느낌 덕분일까.동고비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꽤 오랫동안 지속되었다.이방인인 나를 동료인 양 받아들이면서,먹이를 먹고 재잘거리는 모습을 지척에서 지켜보는 것은 행복한 경험이었다. 산을 자주 찾았던 어린 시절의 경험 덕분에 산토끼,다람쥐,노루나 어치,박새,산비둘기 같은 작은 야생동물은 익숙한 존재이다.그러나 어릴 적의 호기심은 이런 야생동물들과 교감을 나누면서 얻는 정신적 기쁨보다는 오히려 이들을 쫓거나 잡는 물질적 욕심이 앞서 있었다.야생동물들과의 교감을 나눌 수 있는 기회는 오히려 근래의 일이다. 오대산 상원사에서 적멸보궁에 이르는 가을 숲길은 아름다웠다.새벽같이 나선 걸음이었기에 산을 찾는 인파도 없었다.한적하다 못해 오히려 사람이 그리울 지경이었다.서대사를 지나 능선에 이르는 가파른 경사길은 자주 걸음을 멈추게 만들었다.숨을 가다듬고 있을 때,한가하게 놀고 있는 다람쥐가바로 지척에 있었다.인적이라곤 없는 산길에서 만난 다람쥐는 반가웠다.다람쥐도 나의 존재를 괘념치 않는 기색이었다.재주를 넘고,양식을 모으는 모습이 유난히 평화스러워 보였다.몇 장의 사진을 담고,다시 걸음을 시작했다.다람쥐도 걸음을 시작했다.내 주변을 맴도는 모습이 호기심 많은 장난꾸러기 같았다.제풀에 지쳐서 곧 사라지리라 생각했다.그러나 다람쥐와의 동행은 적멸보궁까지 이어졌다. 무엇을 열렬히 사랑한다면,어떤 것들도 당신과 함께 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적멸보궁에 참배한 후 비로봉을 향한 걸음에는 다람쥐와의 동행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다람쥐와 나 사이에 싹튼 튼튼한 신뢰 관계는 아쉽게도 관광회사에서 몰려온 떼거리 등산객들의 소음 때문에 더 이상 지속되지 못했다. 동고비 가족과 함께 나눈 설경이나 다람쥐와 함께 거닐었던 단풍 숲을 오래 동안 잊지 못하고 있다.‘더 높이,더 많이,더 빨리.’를 요구하는 일상의 삶에 우리를 구속하는 시간,명예,부를 잠시 접어두고 자연의 순수함에 몰입되어 본 그 순간을 떠올릴 때면 나는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편집자주: 동고비는 청회색의 작은새 전 영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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