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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PECIAL | 장날] 부산 기장군 월내장

    [SPECIAL | 장날] 부산 기장군 월내장

    이슬비가 촉촉하게 내린다. 벌써 봄을 재촉하듯 삼라만상이 부산스럽다. 봄비 속의 아침장터는 아직 한산하다. 그래서 느긋하고 평화로워 보인다. 부산 기장군 월내장. 월내(月內)마을의 포구에서 펼쳐지는 5일장이다. 아름다운 해안선과 바다풍광이 좋고, 그 위로 뜬 달이 밝고 선명한 곳. 그래서 마치 달 안에 있는 신선의 마을 같다하여 붙여진 월내. 이 월내포구의 바닷길에 전이 펼쳐지는 장터가 바로 월내장이다. 장터로 들어서자 갯내음이 물씬 풍긴다. 뒤이어 싱그러운 봄 바다가 펼쳐지고, 파도소리도 찰박찰박 들려온다. 늦은 장꾼은 아직도 전을 펴느라 손길이 바쁘고, 전을 편 장꾼들은 급하게 국밥 한 그릇 후룩후룩 털어 마신다. 아직까지는 이른 아침의 갯바람이 차다. 장터 한 귀퉁이에 모닥불이 토닥토닥 타오르고 있다. 포구에는 배들이 물결 따라 일렁이고, 뒤늦게 귀항한 어선은 잡아 온 해산물 거두기에 여념이 없다. 예로부터 기장은 바다 특산물이 많이 나는 곳. 바닷물이 맑고 깨끗하여 전국적으로 유명한 ‘기장미역’ 등 해조류나 ‘대변멸치’ 그리고 갈치, 오징어 등 맛있는 수산물이 사시사철 풍성했었다. 지금도 철마다 갖가지 수산물이 흘러넘치는 것은 여전하다. 제철 횟감을 가장 싸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곳으로, 망설임 없이 ‘기장’을 꼽는 이유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월내장도 기장의 장터답게 해산물전이 올망졸망 열리는 ‘해산물 전문 장’이다. 100m의 장터를 휘휘~ 둘러본다. 기장특산의 해조류들이 가득 가득하다. 싱싱하다 못해 윤이 반짝반짝 난다. 원래 기장 앞바다는 조류가 차고 거칠기 때문에 모든 해조류들이 쫄깃쫄깃하고 맛이 깊다. 임금께 진상했다는 ‘기장미역’과 몇 년 전 양식에 성공한 쇠미역, 오동통한 톳, 끝물의 몰에 이르기까지 총망라했다. 과연 바다 해초의 고장답다.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미역에서 정제되지 않은 바다 냄새가 격렬하다. 해초전 옆에는 ‘해녀 할매’가 직접 잡은 ‘앙장구(말똥성게)’를 쌓아놓고 까고 있다. 어느새 노오란 앙장구 알이 대접에 가득하다. 이 앙장구는 질리도록 고소하고 바다의 아련한 향이 그윽해 최고의 바다요리 재료로 쓰인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고슬고슬한 밥에 갖은 해초와 앙장구 알을 얹은 뒤 기름 한 방울 똑 떨어뜨려 비벼먹는 앙장구밥을 즐겨먹는다. 그래야 비로소 봄을 맞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곳 해녀들이 잡아서 파는 것 중 군소도 빠지면 섭섭하다. 군소는 바다 연체동물로 달팽이 모양을 하고 있다. 이것을 삶아서 말려 초장에 찍어 먹는다. 소주 한 잔에 군소 한 점 입에 넣으면, 입 안 가득 감도는 쌉사름함이 입맛 없는 봄을 아주 개운하게 한다. 자연산 전복과 소라, 코고둥, 문어 등도 해녀의 고무대야에서 꼬물거린다. 월내장은 봄 바다 장이 제격이지만, 그렇다고 해산물전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기장의 산과 들은 착하고 넉넉해서, 각양각색의 ‘산 것’과 ‘들 것’이 지천이다. 나물전에는 벌써 봄나물의 향연이 절정이다. 파릇파릇 취나물, 원추리, 방풍나물을 비롯해서 ‘아시 정구지(첫물 부추)’ ‘머구 싹(머위 어린 잎)’들이 앙증스레 풋풋하다. 쑥, 냉이, 달래도 있고 겨우내 잘 자라준 겨울초, 미나리, 시금치 등도 좋다. 그 옆의 닭똥 묻은 토종계란이 생뚱맞으면서도 우습다. “할매요, 미역 한 줄기만 맛보입시더”라는 말에, 미역전의 촌로는 군소리 없이 미역 두어 줄기를 집어준다. 한 입 ‘으적’ 씹어 먹는다. 코끝으로 살짝 바다 바람이 스친다. 짭조름한 갯내가 몸조차 싱그럽게 한다. 미역 1천 원치 산다. 비닐봉지 한 가득 꾸역꾸역 넣어주신다. ‘그래, 오늘 장 본 김에 해초 파티나 하자’는 심산으로 쇠미역도 사고, 톳과 몰도 조금씩 산다. 쌈도 싸먹고 나물도 조물조물 무쳐 먹으리라. 벌써 몸은 봄에 물들고 따뜻한 바닷물에 젖는다. 바야흐로 봄기운이 완연하다. 돌아오는 길 산기슭에는 매화가 한창 꽃망울을 터트리고, 완만히 흐르는 좌광천변 왕버들은 푸릇푸릇 물이 오른 채 휘휘 느린 손짓을 해댄다. 이제 곧 봄볕에 개나리도 호들갑스레 노란 봉오리를 터트릴 것이다. 일광 앞바다도 생명의 푸른 기운으로 아른아른 피어오르기 시작할 것이고. 글 · 사진 최원준 시인
  • [엄마와 읽는 동화] 우리 함께 별을 만들자/임나라

    [엄마와 읽는 동화] 우리 함께 별을 만들자/임나라

    새벽 6시30분. 깜깜한 성당 마당에 버스 한 대가 공룡처럼 버티고 서 있었다. “미래야, 얼른 올라타자. 날씨가 매섭네.” 엄마가 손을 잡았다. 미래는 살짝 손을 빼낸 채, 성큼 버스에 올랐다. 그러곤 운전기사 바로 뒷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며 모자를 푹 눌러써 버렸다. 엄마가 옆자리에 앉는 듯했으나 곁눈도 주지 않았다. 두툼한 겨울옷을 잔뜩 껴입고서도 추위에 발을 구르고 서 있던 사람들이 단숨에 모두 타자 버스는 이내 출발하였다. 맨 나중에 탄 아저씨가 마이크를 잡았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이 섣달그믐에 태안 바다를 덮쳐버린 기름을 닦으러 새벽 추위를 무릅쓰고 달려오신 교우 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 일이 마치 바닷물을 숟가락으로 퍼 담는 것과도 같겠습니다만….” 아저씨의 인사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뒤에서 한 아줌마가 앞으로 나오더니 랩에 싼 주먹밥과 우유 한 봉지씩을 나눠주기 시작했다. 엄마가 두 몫을 받아 한 몫을 미래의 손에 쥐어 주었다. “아직 따뜻하네. 우유 한 모금 먼저 마시고 나서 천천히 먹어.” 엄마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엄마 몫은 앞좌석 뒤에 매달린 그물망에 모두 넣어 두었다. ‘엄만 먹지도 않을 거면서 왜 나만 먹으래?’ 그냥 짜증이 났다. 풍선처럼 팽팽해진 가슴이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아이는 너뿐인 거 같구나? 몇 학년이야?” 버스 통로를 오가던 아줌마가 이제 서서히 동이 터 오는 동쪽 하늘만 뚫어져라 창밖으로 내다보고 있는 미래에게 물었다. 5학년요, 하려 하는데 말이 되어 나오질 않았다. 어젯밤부터 한마디도 말을 해 보질 않았기 때문에 입이 굳어 버린 걸까. “5학년인데, 몹시 추워하네요.” 엄마가 변명하듯 대신 말했다. “이렇게 모녀가 남을 위해 봉사를 떠나니 얼마나 보기 좋아요? 추워도 보람된 일이죠. 이 주먹밥 아줌마가 밤새 만든 거야, 먹어 봐.” 아줌마는 미래의 무릎에 놓인 주먹밥을 들더니 랩을 벗기곤 한 조각 떼어내어 미래 입에 넣어 주었다. 얼결에 입을 우물거렸다. “빈속이라 더 추울 거야. 우유도 마시고.” 우울한 기분과는 달리 새콤달콤한 주먹밥은 아주 맛이 있었다. “딸에게 나눔에 대한 추억을 심어주고 싶었어요.” 엄마도 그물망에서 우유를 꺼내 한 모금 마시며 이미 뒷자리로 가고 있는 아줌마에게랄 것도 없이 혼잣말처럼 말했다. 캑, 캑. 갑자기 사래가 들려 주먹밥이 목에서 넘어가질 않았다. 엄마가 황급히 등을 두드려 주었다. 하지만 미래는 아직도 숨을 고르지 못해 핵핵대면서도 엄마 손을 차갑게 밀어냈다. 엄마 손은 힘없이 무릎 위에 얹혀졌다. ‘뭐, 추억? 꽁꽁 얼어붙은 겨울 바다로 기름 닦으러 가는 게 추억이 될 거라고? 나를 먼먼 땅으로 내쫓고서 엄마 혼자 추억을 곱씹어 보시겠다는 거지?’ 미래의 속마음을 다 알고 있는지 엄마가 손바닥으로 가슴을 살살 두드리며 큰 숨을 몰아쉬었다. 미래는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씩씩거렸다. 아저씨가 백미러로 미래를 넘겨다보며 말했다. 아마 미래를 달래보려는 것 같았다. “엄마가 싫다는 너를 억지로 데리고 온 모양이구나? 기왕 온 거 참고 가 봐. 푸른 바다에 온통 기름덩이가 산처럼 둥둥 떠다니고, 해안의 바위와 수없이 깔린 돌들이 검은 기름으로 뒤덮여 있는 걸 보면 너도 그게 바로 인류의 재앙이라는 걸 느낄 수 있을 게다.” ‘인류의 엄청난 재앙이라는 것쯤 나도 안다고요. 그런데 지금 나는 그곳에 가기 싫어 화가 난 게 아니라고요.’ 미래는 답답한 마음에 의자 깊이 몸을 묻고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바닷가 모래사장엔 외계인 같은 사람들로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자루같이 큰 노란 방수복, 파란 마스크, 빨간 고무장갑, 색색의 털모자와 챙 달린 모자를 제멋대로 삐뚤빼뚤 쓴 사람들이 옷을 있는 대로 껴입어 부풀어진 몸을 천천히 움직이며 콜타르 같은 기름덩이를 걸레로 닦아내고 있었다. 걸레의 종류도 가지가지였다. 수건, 내의, 마대포, 이불홑청, 두루마리째 돌 위에 산더미처럼 부려 놓은 하얀 무명천, 기름이 닦일 것 같지도 않은 나일론 의류 등 집집마다 쓸모없다고 생각되는 천들은 모두 모아진 듯했다. 커다란 바위에 매달려 기름을 닦아내는 사람들, 크고 작은 조약돌을 들고 하나하나 반짝반짝 닦아내는 사람들, 웅덩이를 파서 고여 든 기름을 플라스틱 바가지로 끝도 없이 퍼내는 사람들, 말할 시간도 아끼며 모두 묵묵히 자기들이 맡은 일들을 정신없이 해 나가느라 바빠 보였다. 행렬은 멀리 가물가물한 수평선 끝 해안에까지 길게 이어져 있었다. 미래도 얼굴에 땀방울이 송송 맺히도록 온 힘을 기울여 기름때를 닦았다. 미래보다 더 어린아이들도 많이 와 있었다. 한참 열중하다 문득 눈이 마주치면 고무장갑 낀 손을 높이 흔들며 서로 파이팅을 하기도 했다. “땀 좀 닦자. 여기 깨끗한 수건도 있네.” 엄마가 미래에게 다가와 수건을 몇 겹으로 접어 얼굴에 맺힌 땀방울을 꼭꼭 찍어내 주었다. 미래는 화들짝 놀라 뒷걸음을 치면서 짧고 매몰차게 말했다. “싫어. 손대지 마.” 팽 돌아서며 미래는 엄마의 슬픈 눈을 보았다. 얇은 칼날에 살을 베일 때처럼 가슴이 섬뜩해졌으나 미래는 짐짓 모른 체 저만치 달음질쳐 엄마와 멀어졌다. 파도가 천둥 같은 소리를 내며 바위를 덮치고 나선 까르르 멀어져 갔다. 사람들은 손놀림을 멈추지 않으면서도 잠깐씩 파도가 펼쳐내는 장관들을 구경하며 미소를 짓기도 하였다. “멀쩡한 바다에 기름을 쏟아 순식간에 물고기들을 떼죽음시키고…, 바다가 죽어 가네…, 온갖 해초들이 다 죽어가네에. 이런 참변이 어디 있을꼬? 두 번 다시 일어나선 안 될 악몽이여, 악몽. 조금만 조심했더라면….” 한 할아버지의 탄식 소리는 바위와 바위가 맞붙어 동굴처럼 파인 곳에 온 몸을 굽혀 검은 기름덩이를 한 움큼씩 파서 양동이에 옮겨 담을 때마다 끊겼다 이어졌다 반복되곤 하였다. “미래야, 어젯밤엔 네게 자세한 얘길 할 수가 없었단다. 사실은 엄마가….” 어느 결에 엄마가 다가와 옆에 서 있었다. “많이 아파. 너도 조금 짐작은 하고 있겠지만.” “아주 많이?” “응. 그래서 아빠에게 널 뉴질랜드로 데려가 달라고 부탁한 거야. 다행히 아빠도 이제 정신을 차려서 목수 일도 열심히 하고 계신대. 그곳엔 목조건축 일이 많아서 열심히만 하면 빌더로 인정받을 수도 있어 살기는 괜찮다는구나. 새엄마가 될 그 아줌마에게도 널 반갑게 맞아달라고 했어.” “누가 간댔어? 누가 부탁하랬어? 그럼 엄만 누구랑 살고 치료는 어떻게 할 건데?” 숨 가쁘게 쏘아대던 미래는 사람들이 쳐다보는 듯해서 둑방으로 올라왔다. 엄마도 숨을 할딱이며 따라 올라왔다. “수술을 해 봐야 안대. 엄마가 만약 살아서, 살아서 건강해지면 다시 널 꼭 데려올게. 지금은 너라도 가서 편하게 살아야지.” 미래는 야속한 엄마가 불쌍해 목이 메었다. 더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오후가 되자, 바다는 점점 더 짙은 회색빛으로 변해 갔다. 확성기의 소리가 들려왔다. “오늘은 이만 작업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만조 때까지 하려 했으나 곧 눈이 쏟아질 것 같으니 서둘러 마무리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먼 길, 안녕히 가십시오.” 그러더니 5분도 채 안 되어 눈발이 마구 흩날리기 시작했다. 버스에 올라타자마자 잠이 들었다. 자면서도 울었던지 가끔 흐느끼다가 놀라 깨기도 한 것 같았다. 그럴 때마다 따뜻한 엄마의 손길이 느껴졌다. 태안에 기름 유출 사건이 생긴 것만큼이나 미래에겐 아픈 엄마와 헤어져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견딜 수가 없었다. 어렴풋이 잠에서 깨어나면서부터 미래의 가슴은 또다시 방망이질을 해댔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기지개를 켜는지 끄응, 끄으응, 소리를 내며 버스 안이 부산스러워졌다. 추위에 일하느라 고단했던지 모두 미래처럼 버스에 오르자마자 잠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운전기사 아저씨가 텔레비전을 켰다. 미래는 창가에 앉은 엄마 쪽을 슬며시 돌아다보았다. 엄마는 잠도 자지 않은 듯 두 손을 맞잡은 채 입술을 달싹이고 있었다. 엄마는 무슨 기도를 하고 있는 걸까. 텔레비전에선 다큐멘터리가 방영되기 시작했다. 기후온난화로 인해 뉴질랜드와 가까운 조그만 섬나라가 해수면이 점점 높아져서 몇십 년 후엔 물속으로 가라앉게 되리란 내용이었다. 사람들은 수면이 높아진 파도가 갑자기 덮쳐들 것을 걱정하며 집 앞을 돌로 쌓기도 하고, 아예 해안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사를 가기도 하였다. 모두 근심에 싸인 표정들이었다. 스텔라라는 여자아이가 화면에 나타나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막엔 이런 문구가 쓰여 있었다. ‘우리를 도와주세요. 세계의 선진국 모든 사람들이 연료를 덜 사용해 주시고, 자동차를 줄여 주세요. 매연을 줄여 주세요.’ 그리고 이어 순박해 보이는 스텔라 엄마의 모습이 비쳐지며 울음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갈는지는 몰라요. 하지만 스텔라는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슬프지만 뉴질랜드로 이민 보내려고 해요.’ 스텔라의 눈이 푸른 별처럼 크고 참 맑아 보였다. ‘스텔라야. 나도 뉴질랜드로 가게 될 거 같아. 그곳에서 널 만날 수도 있겠지? 우리 함께 별을 만들자. 그 별을 하늘 높이 띄워 보자. 그리움의 별을 말이야.’ 미래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울고 있는 엄마의 손을 꼭 잡았다. ●작가의 말 태안 앞바다에 기름 유출사건이 났을 때 두 번에 걸쳐 기름을 닦으러 간 적이 있었다. 차마 맑은 눈으로는 바라볼 수 없는 처참한 환경파괴의 장이었다. 또 한편 지구 저쪽, 지구온난화로 인해 점점 바닷물에 잠겨가고 있는 조그만 섬나라를 기억하고 싶었고, 이런 소용돌이 시대 속에서도 묵묵히 변화를 받아들이며 살아가야 하는 아이들의 아픔을 그려보고자 하였다. ●약력 ▲대전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하늘마을의 사랑) ▲서울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파랑이의 구름마차) ▲동화집 : 하늘마을의 사랑, 무화과나무집 ▲현재, 한국조형예술원 근무
  • “면목없습니다” 노 전대통령 오전 8시2분 사저 출발

    ”국민여러분께 면목 없습니다.실망시켜 드려서 죄송합니다.가서…잘 다녀오겠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30일 오전 8시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사저를 떠나기 전에 이같이 말했다.오전 7시57분 사저 밖으로 얼굴을 잠시 비췄던 노 전대통령은 무슨 일 때문인지 사저 안으로 잠깐 안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와 문재인 전 비서실장과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을 비롯한 여러 측근들과 함께 사저 안마당으로 나와 승합차에 탑승,지지자들과 취재진이 기다리고 있는 앞으로 이동했다.노 전대통령은 승합차에 오르기 전,활짝 웃음을 짓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당초 알려진 대국민성명보다는 검찰에 소환되게 된 자신의 소회를 짤막하게 밝혔다.발언 도중에 감정이 복받친 듯 2~3초 정도 머뭇거리기도 했다.이어 8시1분쯤 청와대 경호실에서 제공한 것으로 추정되는 버스 쪽으로 이동해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인 뒤 버스에 올랐다. 노란 스카프를 두르고 노란 옷을 입은 채 노란 풍선을 든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 회원 등은 노 전 대통령의 소회 발표 도중 “노무현”을 연호했다. 노 전 대통령이 탑승한 버스는 동밀양과 동대구와 김천 나들목을 통해 중부내륙고속국도로 진입한 다음 영동고속국도로 여주까지 북상한 뒤 영동고속국도를 이용해 신갈 IC에서 경부고속국도로 서초 IC로 나와 서울 반포로의 대검찰청 청사에 도착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버스에는 문 전 비서실장, 전해철 전 민정수석,김경수 비서관 등 4~5명이 동승했다. 오후 1시30분쯤 대검 청사에 도착할 예정인 노 전대통령은 포토라인에서 언론에 자신의 심경을 밝힌 다음 이인규 중앙수사부장실에 올라가 이 검사장과 차 한 잔을 마신 뒤 1120호 특별조사실로 향한다. 조사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주도해 온 우병우 중수1과장과 100만달러,500만달러,12억 5000만원 등 각 혐의별로 수사를 전담해 온 검사들이 각각 맡을 예정이다. 조사는 자정을 넘겨 새달 1일 새벽 2~3시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노 전 대통령은 조사를 마친 뒤 다시 한 번 플래시·질문 세례를 받고 봉하마을로 귀향할 것으로 알려졌다. 글 /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영상 / 멀티미디어기자협회 공동취재단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면목없습니다” 노 전대통령 오후 1시20분 대검 도착

    ”국민여러분께 면목 없습니다.실망시켜 드려서 죄송합니다.가서…잘 다녀오겠습니다.” 단 세 마디를 남기고 30일 오전 8시2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사저를 떠났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탑승한 차량이 오후 1시에 궁내동 경부고속도로 서울요금소를 통과한 뒤 1시19분 서울 서초구 반포로 대검찰청 청사 앞에 주차했다.당초 약속했던 오후 1시30분보다 10분 정도 먼저 도착했다.이 차량은 현관 정문 앞에서 잠시 정차해있었다. 노 전 대통령은 김 비서관 등이 먼저 내린 뒤 1시 21분쯤 차에서 내렸다. 노 전 대통령이 그냥 들어가버렸기 때문에 취재진이 공동으로 준비한 7가지 질문(100만달러 용처 못 밝히는 이유,포괄적 뇌물죄 인정하는가,박연차 회장과 대질 원하나 등)에 대한 답을 들을 수 없었다. 왜 면목이 없다고 말했느냐는 질문에만 “면목 없는 일이지요….” 정도로 답했을 뿐,심경 등을 묻는 질문에는 “다음에 하죠.”라며 말을 아끼고 바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노 전 대통령은 이인규 대검 중수부장실로 올라가 이 중수부장과 차 한 잔을 마셨다.이 중수부장은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돼 있으니 정확한 실체가 규명될 수 있도록 협조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했고 노 전 대통령은 이에 대해 “잘 알겠습니다.”라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 뒤 노 전 대통령은 1120호 특별조사실로 옮겨 자신에 대한 수사를 주도해온 우병우 중수1과장과 100만달러,500만달러,12억 5000만원 등 자신에게 주어진 혐의 별로 수사를 전담해온 검사들이 돌아가며 300여개에 이르는 질문을 쏟아내고 노 전 대통령은 준비해온 답변을 하게 된다. 조사는 자정을 넘겨 새달 1일 새벽 2~3시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노 전 대통령은 조사를 마친 뒤 다시 한 번 플래시·질문 세례를 받고 봉하마을로 귀향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청사 안에는 취재진과 경호팀들이 모여 북새통을 이뤘다.청사 정문 출입구 주변에서는 진보 보수 단체 회원들이 몰려들어 집회를 벌였다.보수 단체 회원 200여명과 노사모 회원 200명 정도가 각각 집회를 열었다.이 과정에서 보수단체 회원들이 노 전대통령 차량 쪽을 향해 던진 계란 5개와 신발 한 개가 노사모 회원들 쪽으로 날아간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노 전 대통령을 태운 청와대 경호실 제공 의전차량은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타고 오다 낙동분기점에서 청원~상주간 고속도로로 빠진 뒤 경부고속도로로 바꿔 타고 천안분기점을 지나 낮 12시20분쯤 천안 입장휴게소에 잠깐 들러 휴식을 취했다.노 전 대통령은 버스에서 하차하지 않고 김밥으로 점심을 때운 것으로 알려졌다.문재인 전 비서실장과 김경수 비서관 등 수행원들만 하차했다. 문 전 실장은 “어제까지 검찰 소환 조사에 관한 준비를 모두 마쳤기 때문에 사는 얘기 등 가벼운 얘기만 차 안에서 나눴다.”고 소개했다. 노 전 대통령은 앞서 오전 7시57분 사저 밖으로 얼굴을 잠시 비췄다가 무슨 일 때문인지 사저 안으로 잠깐 안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와 문 전 실장과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을 비롯한 여러 측근들과 함께 사저 안마당으로 나와 승합차에 탑승,지지자들과 취재진이 기다리고 있는 앞으로 이동했다.노 전대통령은 승합차에 오르기 전,활짝 웃음을 짓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당초 알려진 대국민성명보다는 검찰에 소환되게 된 자신의 소회를 짤막하게 밝혔다.발언 도중에 감정이 복받친 듯 2~3초 정도 머뭇거리기도 했다.이어 8시1분쯤 청와대 경호실에서 제공한 것으로 추정되는 버스 쪽으로 이동해 지지자들에게 손을 들어 보인 뒤 버스에 올랐다. 노란 스카프를 두르고 노란 옷을 입은 채 노란 풍선을 든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 회원 등은 노 전 대통령의 소회 발표 도중 “노무현”을 연호했다. 버스에는 문 전 실장, 전해철 전 민정수석,김경수 비서관 등 4~5명이 동승했다. 글 /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영상 / 멀티미디어기자협회 공동취재단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2009 녹색성장 비전]국내 유일 전기차 양산업체 CT&T 당진공장을 가다

    [2009 녹색성장 비전]국내 유일 전기차 양산업체 CT&T 당진공장을 가다

    “CT&T는 이미 단거리 저속 전기차(NEV) 분야에서는 세계 1위입니다. 우리는 이 분야에만 집중할 계획입니다. 최고급 전기차는 테슬라 같은 회사에, 장거리 고속 전기차(FSEV)는 대기업에 맡기겠습니다.” 우리나라의 유일한 전기차 양산업체인 CT&T의 김호성 상무는 회사의 경영전략을 간단하고 명확하게 밝혔다. 김 상무는 “최근의 라이프 사이클을 분석하면 연금생활자나 맞벌이 부부, 주부, 자영업자가 동네 주변을 다니며 실생활에 이용하는 차량을 원하는 수요가 점차 늘고 있다.”면서 “한 달에 1만원이라는 저렴한 운영비가 이들을 계속 전기차 시장으로 끌어들이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NEV 시장에서는 현대나 도요타와 같은 글로벌 자동차 업체가 CT&T와 같은 중소업체와는 가격 경쟁력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계속 승자로 남을 수 있다고 김 상무는 말했다. 김 상무는 또 “하이브리드 자동차나, 연료전지차는 모두 기본 기술이 전기차에서 나온 것”이라면서 전기차가 이른바 ‘그린 카’의 대세가 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지난달 10일 방문한 CT&T 본사와 생산공장은 충남 당진의 한적한 야산 지역에 자리잡고 있었다. 김 상무는 CT&T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을 마치자 “직접 차를 타보고 얘기하자.”며 시험주행소로 안내했다. 주행소에 가지런히 주차된 CT&T의 전기차 가운데 노란색 e-ZONE에 올라탔다. 첫 느낌은 경차와 골프 카트의 중간쯤이라는 것이었다. 작은 열쇠를 돌려 (시동을 거는 대신) 전원을 켜고, ‘전진-중립-후진’ 스위치를 전진에 맞춘 뒤, 액셀러레이터를 밟으니 차가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속도는 꽤 빨랐다. 최고속도는 시속 60㎞, 최고주행거리는 70~110㎞다. ●최고시속 60㎞, 주행거리 70~110㎞ 언덕을 내려간 뒤 27도의 경사로를 오르다가 차를 멈췄다. 브레이크 패드에서 발을 떼고 천천히 가속 패드를 밟았지만 차는 뒤로 밀리지 않았다. 산지가 많은 한국의 지형에 맞게 개발한 튜닝 기술 덕분이다. 쉽게 말하면 바퀴에 밀림 방지 장치가 내장된 것이다. e-ZONE의 차체는 철강이 아니라 플라스틱이다. 김 상무는 “전기차의 요체는 경량화”라고 플라스틱을 사용한 이유를 설명했다. 실제로 도로에 나가 덩치 큰 트럭이라도 지나가면 공포감이 들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를 눈치챈 김 상무는 e-ZONE이 NEV로서는 처음으로 국제 충돌안전기준을 통과했다고 강조하면서 충돌 테스트를 녹화한 DVD를 틀어줬다. DVD 영상에는 이른바 ‘짝퉁’ 전기차들의 충돌장면도 포함돼 있었다. 이들이 충돌 때 휴지조각처럼 구겨지는 것에 비해 CT&T의 전기차들은 찌그러짐이 차체 전면에만 집중됐다. CT&T의 전기차들은 세방전지 등에서 공급하는 납축전지와 EIG 등에서 납품하는 리튬 폴리머배터리를 사용하고 있다. 리튬 폴리머배터리가 납축전지보다 4.5배 (600만원) 정도 비싸다고 한다. 그러나 차 값의 50% 정도를 차지하는 배터리도 양산 체제에 들어가면 3~5년 안에 성능은 좋아지고, 가격은 훨씬 떨어질 것으로 김 상무는 예측했다. 자동차를 구동하는 모터는 미국과 이탈리아 제품을 수입해 왔지만 국산을 개발중이다. CT&T의 차별화된 경쟁력 가운데 하나는 ‘In Wheel Motor’ 시스템. 모터를 아예 바퀴에 달아 추진력과 제어력을 높이는 기술이다. 김공식 공장장과 함께 생산라인으로 들어갔다. 연간 1만대를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은 로봇의 현란한 동작과 기계음으로 가득찬 기존의 자동차 생산라인과 비교할 때 매우 한산한 편이었다. 김 공장장은 “전기차 부품의 90%를 협력업체가 제조해 오며, 이곳에서는 조립만 하는 것으로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생산라인 뒷문으로 나가자 연구소가 자리잡고 있었다. 40명의 연구원이 디자인, 설계, 부품개발을 연구하고 있다. 70%는 경력이 5년 이상인 베테랑들이다. 김 공장장은 “연구소에서 각종 실험과 테스트를 위해 지금까지 200대가 넘는 전기차를 부쉈다.”고 말했다. ●8월 법개정 땐 소비자 부담 1000만원선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전기차가 도로를 달릴 수가 없다. 관련법에 자동차가 배기량으로만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식경제부와 국회에서 법률을 손질하고 있기 때문에 오는 8월에는 전기차의 주행이 가능할 것으로 CT&T는 기대하고 있다. 법이 통과되면 CT&T는 1350만원 정도에 전기차를 판매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환경 관련 보조금 300만원 정도를 제하면 소비자가 부담할 가격은 1000만원 안팎으로 예상된다. 올해 목표는 판매 2만대, 매출 규모 1000억원이다. CT&T는 2011년까지 두바이, 카자흐스탄, 터키, 뉴질랜드, 인도네시아 등에서 조인트 벤처를 통한 조립 생산에 들어가는 등 모두 10개국에서 16만대의 전기차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당진 이도운기자 dawn@seoul.co.kr
  • 산수유 활짝 핀 전남 구례 3색 매력

    산수유 활짝 핀 전남 구례 3색 매력

    소설가 정지아(44)는 전남 구례에서 나고 자랐다. 그는 1990년 부모의 뜨거웠던 청춘을 고스란히 옮겨 지리산을 배경으로 한 소설 ‘빨치산의 딸’을 쓴 뒤 공안당국에 오랫동안 수배됐고, 책은 판금되는 등 모진 고초를 겪어야 했다.섬진강을 끼고 있는 지리산 자락의 전남 구례가 이렇듯 아픈 현대사의 한복판 무대에서 내려와 단지 뛰어난 자연의 아름다움만으로 칭송받기까지는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까마득해진 50여년 전, 골골마다 조심스럽게 서려있는 빨치산 혹은 토벌군을 애써 기억하기 위해 구례를 찾는 이는 이제 거의 없다. 그저 봄이면 온 산하에 만발하는 노란 산수유와 분홍빛 벚꽃의 향연을 만끽하기 위해, 가을이면 붉은 피아골의 단풍과 함께 루비처럼 점점이 맺힌 산수유 열매를 보기 위해 몰려드는 관광객이 있을 뿐이다. 이렇듯 잊혀짐으로써 구례와 지리산에 얽힌 역사의 화해가 이뤄지고 있다. 1. 산수유 - 현천·상위 마을 꽃천지…오늘부터 축제 지난 13일 지리산 자락 일대에는 비가 흩뿌렸다. 귀한 비다. 지리산은 더욱 푸르러졌고, 섬진강은 촉촉함을 더했다. 사람들에게는 더욱 반갑다. 서기동 군수는 “올 들어 20㎜, 10㎜, 3㎜ 온 것에 이어 고작 네 번째로, 지난해 강수량과 비교하면 3분의1도 안 된다.”면서 심각한 봄가뭄을 걱정했다. 그러면서도 “아주 조금이지만 비 맞은 뒤 더욱 풍성해진 산수유를 보니 훨씬 아름답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산수유 마을로 더 잘 알려진 구례군 산동면 위안리 상위마을과 현천마을의 산수유는 수줍게 움을 틔웠다. 두 번 꽃을 피운다는 엄지손톱만 한 산수유는 이달 초순 수줍게 첫 노랑 방울을 내밀었다. 이달 하순, 4월 초순이면 꽃받침에서 왕관처럼 튀어나온 20여개의 꽃봉오리가 활짝 벌어지고 5~6개 수술까지 모두 아우성을 치며 피어날 것이다. 그리고 한 달 남짓, 시들지도 않고 지리산 자락에 노란색의 향연을 펼칠 것이다. 이 마을에는 중국 산둥지방에서 시집온 처녀가 산수유를 가져온 것으로 전해진다. 지리산 온천지구를 내려와 19번 국도를 타고 남원쪽으로 5분 남짓 가다 보면 산동면 위안리 계척마을에 산수유 시목지(始木地)가 있다. 약간 생뚱맞다는 생각도 없지 않지만 만리장성의 동쪽 끝인 산둥성 산해관의 모형까지 만들어 놓아 그 뜻을 기리고 있다. 산수유는 익히 알려졌듯 신장기능을 좋게 한다. 남정네들이 의미심장한 웃음 지으며 내밀히 찾아올 수밖에 없는 곳이다. 물론 마음만은 여전히 10대인 여인네들 역시 노란색의 더미 앞에서 연방 감탄사를 쏟아낸다. 산수유 축제 기간은 19일부터 22일까지다. 2. 문학의 향기 - 소설가 황석영 등 문인들 즐겨 찾는 곳 광의면, 문척면, 마산면, 반내골, 질매재, 피아골 등 구례의 골골이 실명으로 등장하는 ‘빨치산의 딸’과 같은 아픈 한국 현대사의 흔적 외에도 지리산의 맑은 정기와 섬진강의 유려함은 많은 시와 소설을 쏟아냈다. 구한말의 애국지사 매천 황현(1855~1910년)은 굳은 의기와 대쪽같은 선비혼을 ‘매천야록’, ‘오하기문’ 등 작품집에 고스란히 남겼다. 친일파, 부패한 왕실과 고위관료, 백성을 수탈하는 지방 수령 등이 그의 준엄한 꾸짖음의 대상이었다. 황현은 1910년 한일합병 이후 절명시(絶命詩) 4수를 남기고 자결했다. 구례는 넉넉함과 불꽃같음을 함께 품고 있기에 문인들이 절로 찾아든다. 소설가 황석영은 ‘문인마을’을 만들겠다며 지난해 구례군 산동면 둔기마을에 4만 5000여평의 널찍한 땅을 샀다. 아직은 제대로 된 진입로도 없는 두메산골이지만 직접 찾아보면 옛시절 ‘산사람들’이 누비고 다녔을 반야봉과 노고단, 만복대까지 지리산 능선이 한눈에 쏙 들어오는 곳이다. 3. 화엄사 - 구층암 수백년된 나무 기둥 숨은 볼거리 구례를 찾는 이들이 빼놓지 않는 곳의 하나가 화엄사다. 불교에서는 ‘불(佛)·법(法)·승(僧)’을 삼보(三寶)라고 하여 통도사, 해인사, 송광사를 각각 대표 사찰로 꼽고 있다. 구례군 문화관광해설가 박미연(36)씨는 “화엄사는 부처의 진신사리를 갖고 있어 불보, 80권의 대방광불 화엄경을 갖고 있어 법보, 수행하는 스님이 100명을 넘어서니 승보 등 삼보를 모두 아우른 사찰로도 손색이 없다.”고 자랑했다. 이른 아침의 화엄사는 고즈넉하다. 댓잎들이 서로 비벼대며 사그락거리는 바람소리는 간간이 울리는 풍경 소리와 어우러져 산문에 들어선 객의 마음을 정화시켜주는 듯하다. 국보 67호인 각황전은 물론, 국내에서 가장 큰 각황전 앞 석등, 그리고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셔 적멸보궁이 된 4사자삼층석탑 등 문화재를 찬찬히 둘러보려면 한두 시간은 벅차다. 대웅전 오른쪽으로 돌아가 100m 남짓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면 수백년 된 아름드리 모과나무 두 그루를 다듬거나 가공하지 않고 기둥으로 쓴 구층암을 만날 수 있다. 이 곳을 봐야 한다. 천불전을 왼쪽으로 둔 구층암의 기둥 2주는 훤칠하게 뻗어오르는가 싶더니 군살없는 근육처럼 굵직하게 뒤틀려서 버티고 있다. 찾는 이 누구나 남북으로 시원하게 뚫린 차방에 앉아 암주(庵主)인 덕제스님이 직접 가꾸고 만든 발효차를 맛보며 지리산의 주인된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천불(千佛)’이 있으니 삼배(三拜)만 해도 삼천배의 효과가 있다는 너스레도 함께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내친걸음을 여기에서 멈출 수 없다. 50m쯤 더 올라가면 만나는 봉천암도 반갑다. 세월에 허물어진 석탑이 애써 손대지 않은 채 암자 앞에 그대로 놓여 있다. 아궁이에 장작불을 지피며, 옛 그대로인 해우소, 장독 항아리 등을 엿볼 수 있어 수행하는 스님들의 질박한 삶을 엿보는 듯 하다. 글 사진 구례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가는 길 서울 남부고속버스터미널에서 2시간 간격으로 있는 구례행 버스를 타면 3시간40분 걸린다. 첫차 7시30분. 기차는 서울역에서 구례구역까지 새마을호(하루 2회)와 무궁화호(하루 12회)가 운행한다. 승용차로는 천안~논산고속도로를 이용하면 빠르다. 부산에서는 고속버스로 구례까지 2시간 정도 걸린다. 대구에서는 남원을 지나오면 2시간20분에 닿는다. 구례터미널에서 군내버스가 어지간한 구례군 여행 명소를 다 데려다준다. ▲맛집 구례는 웰빙 맛여행의 천국이다. 전라도 하고도 구례니 밑반찬만으로도 80점 이상 먹고 들어간다. 어느 식당문을 열고 들어서도 지리산에서 나는 더덕, 곤드레, 고사리, 두릅, 도라지 등이 풍성하다. 이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자연산 송이와 섬진강 참게, 그리고 흑염소다. 1만원에 향긋한 자연산 송이전골 정식을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강남가든(061-782-7644)은 정갈한 밑반찬이 특히 인상적이다. 산동면 좌사리 산골짜기에 있는 양미한옥가든(061-783-7079)은 산닭과 흑염소, 멧돼지 구이를 낸다. 놓아먹인 것들이라 무엇을 골라도 인공 아닌, 자연의 맛을 느끼게 한다. 참게와 보리새우, 지리산 바람에 말린 시래기가 어우러진 참게매운탕은 큰 것(5만원)을 시키면 4~5명이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 천수식당(061-782-7738)은 섬진강 바로 곁에 붙어있어 눈의 호강은 덤이다. ▲묵을 곳 화엄사에서 1㎞도 떨어지지 않은 지리산 한화리조트(061-782-2171)가 있다. 1984년에 지어져서 시설은 조금 낡았다. 하지만 고즈넉하게 아침 구름 걸어놓고있는 지리산과 화엄사의 새소리, 바람소리, 계곡소리를 들으며 아이들 손잡고 아침 산책 하기에 딱 제격인 곳이다. 송원리조트(061-783-8200)는 산수유마을 바로 곁이면서도 지리산 온천지구에 있어 몸과 눈이 모두 호강할 수 있다. 봄이면 송원리조트나 한화리조트 모두 고로쇠 수액을 판매한다.
  • 가짜 미네르바 K는 대북사업가 권씨의 작품?

    월간 신동아를 통해 인터넷 경제논객 ’미네르바’ 행세를 해온 K씨가 가짜 행세를 계속한 데에는 대북사업가로 알려진 권모 씨의 강한 압박이 작용했던 것으로 동아일보사의 자체 진상 조사 결과 드러났다. 권씨가 어떤 이유로 이런 역할을 했는지 검찰이 규명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동아일보사는 18일 1면에 ‘거듭 사과드립니다’란 제목으로 사과문을 싣고 지난 2월17일 첫 번째 사과문에서 독자들에게 약속했던 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 보고서를 요약해 1개 면에 실었다.진상조사위는 송문홍 신동아 편집장 등을 비롯한 신동아 기자들로부터 K씨가 진짜 미네르바라고 믿었던 경위를 여러 차례에 걸쳐 장시간 조사한 것은 물론,대북사업가로 K씨의 기고문과 인터뷰 게재 과정에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진 권씨와 K씨,누리꾼 3명 등을 심층적이고 다면적으로 조사했다고 밝혔다.편집장은 물론,기자들 실명까지 공개해 조사 결과의 신뢰성을 높이려 한 점이 돋보인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신동아 취재진이 K씨의 신원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을 간과했다고 시인했다. 진상조사위의 활동 기간에 출판편집인이 회사를 떠났고 출판국장과 신동아 편집장에게 오보 사태의 책임을 물어 정직하는 등 엄중 문책을 단행했다고도 밝혔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주목되는 것은 권씨가 K씨에게 신체적 위해를 가했다는 점.18일자 동아일보 29면 한 면에 게재된 보고서 요약본에 따르면 신동아팀이 지난 2월12일 심야와 13일 새벽에 걸쳐 서울의 한 호텔 객실에서 K씨에게 가짜가 아니냐고 계속 추궁하자 K씨는 “기고문을 보낸 것도, 인터뷰를 한 것도 내 의지가 아니었다. 하도 심하게 압박이 들어와 거절하지 못하고 그렇게 됐다. 박대성이 구속됐을 때는 죽고 싶었다.”고 털어놓았다는 것. 13일 새벽 3시쯤 권씨가 “K씨랑 좀 더 이야기해 보겠다.”고 제안했고 K씨도 “담담당당(권씨의 다음 아고라 필명) 선생이랑 더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해 두 사람만 남겨놓고 신동아팀은 객실에서 나왔는데 이 과정에서 권씨가 K씨의 신체에 물리적으로 위해를 가하는 행동을 했다는 진술을 양 측으로부터 확인했다고 보고서는 전했다. 신동아팀은 이날 오후 충정로 사옥 인근 카페에서 K씨를 다시 만나 왜 미네르바를 사칭했느냐고 재확인하자 K씨는 “독서클럽 멤버 중에 50대 K 씨가 있다. 그가 진짜 미네르바다. 이름은 모르지만 50대 K 씨를 찾을 수 있다. 만난 적이 있다.”고 답변했다고 보고서는 덧붙였다.K씨는 신동아팀의 거듭된 추궁에 “포털사이트 다음이 아닌 네이버에서 ‘미네르바’란 필명으로 활동한 적 있었다.미네르바가 유명해진 이후 사람들이 나를 자꾸 미네르바라고 단정했다.내가 아니라고 하는데도 믿어주지 않아 그냥 미네르바 행세를 했다.”고 털어놓았다. 조사결과 신동아측이 K씨에게 건낸 원고료는 K씨에게 건재지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이 부분은 권씨가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신동아로부터 원고료를 받아 K씨에게 전달했다.”는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밝힌 것이다.신동아는 K씨의 원고료 88만원은 그와 같은 인터넷 독서클럽 멤버의 은행 계좌로 송금했고,K씨는 진상조사 과정에서 “돈을 받지 않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이 독서클럽 멤버 역시 K씨가 돈을 받으려 하지 않아 자신이 사용했다고 말했다고 신동아는 전했다. 동아일보사의 진상 조사는 이 대목에서 멈춰 있다.왜 권씨가 K씨에게 위해를 가할 정도로 가짜 미네르바 행세에 강한 집착을 보였는지,K씨는 (’이날 처음 만난) 권씨로부터 어떤 약점을 잡혔길래 이런 수모를 감수하고 있었는지 등은 앞으로 규명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어차피 동아일보사의 진상조사로는 더 이상 진전되기 어려운 대목일 수도 있다.기왕 검찰은 진짜 미네르바 박대성(31)씨를 구속해 현재 공판이 진행 중이다.권씨가 K씨로 하여금 완력을 행사한 경위가 명확히 규명되어야만 여전히 진짜 미네르바는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는 일부 누리꾼의 주장을 잠재울 수 있을 것이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다음은 동아일보가 18일자 29면에 게재한 동아일보사 진상조사단의 진상조사 보고서 요약본이다.신동아 3월호에 전문이 실렸다. 1. 진상조사위원회 구성 및 활동 동아일보사는 2009년 2월 16일 자매지인 ‘신동아’에 기고문(2008년 12월호)을 싣고 인터뷰(2009년 2월호)를 한 K 씨가 미네르바를 사칭했다는 출판국의 보고를 받고, 당일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했다. 조사위는 신동아의 편집장과 기자들에게 각자 K 씨 보도 관련 경위서를 제출받았으며 조사위원들이 이를 토대로 1명씩 면담을 실시했고 필요 시 추가 면담했다. 송문홍 편집장과 K 씨 보도에 관여한 기자들의 동의하에 당사자들의 e메일 내용도 확인했다. 면담 및 조사 활동과는 별개로 진상조사에 필요한 관련 자료를 확보해 분석했다. 정성진 전 법무부 장관과 이민웅 한양대 언론정보대 명예교수를 외부 자문위원으로 위촉해 3차례에 걸쳐 조사위 활동 전 과정과 조사 내용 및 결과를 설명하고 보고서에 대해 자문 및 검증을 받았다. 최용원 출판편집인은 사표를 제출하고 회사를 떠났다. 황의봉 출판국장은 2차례 6시간 40분 동안, 송문홍 편집장은 4차례 22시간 반 동안 면담 조사했다. 신동아팀 윤영호 편집위원, 조성식, 정현상 기자는 1차례씩 각각 1시간 반, 1시간 반, 1시간 45분 동안 면담했다. 허만섭 기자는 2차례 5시간 반 동안, 송홍근 기자는 3차례에 걸쳐 13시간 40분 동안 면담했다. 황일도 기자는 1차례 3시간 동안 면담했으며, 한상진 기자는 2차례 3시간 45분 동안 면담했다. 면담 외에도 필요할 때마다 전화와 e메일 등을 통해 사실관계에 대한 확인 작업을 했다. K 씨는 2차례 만나 7시간 40분 동안 조사했다. K 씨는 이후 잠적해 추가 조사를 할 수 없었다. 대북사업가로 알려진 권모 씨에 대해서는 3차례 만나 19시간 10분 동안 조사를 실시했다. 누리꾼 M은 1차례 만나 2시간 10분가량, 누리꾼 I는 1차례 2시간 반가량 면담 조사에 응했다. 누리꾼 S는 면담 조사를 거부한 대신 1시간 반가량 1차례 조사위원과 e메일 및 인터넷 채팅을 통해 질문에 답했다. S는 이후 조사위에 e메일을 보내 자신의 입장을 추가로 밝혔다. Ⅱ. 2008년 12월호 K 씨 기고문 게재 경위 송문홍 편집장은 2008년 11월 8일경 권 씨로부터 “미네르바 기사를 만들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전화로 받았다. 송 편집장은 11월 10일 다시 권 씨의 전화를 받고 신동아 12월호에 K 씨와의 인터뷰를 추진하려 했다. 권 씨가 송 편집장에게 보낸 인터넷 채팅록을 분석한 결과, 권 씨는 11월 11일 한 인터넷의 ‘경제독서모임’에서 활동하는 누리꾼 ‘M’의 주선으로 K 씨와 처음으로 인터넷 채팅을 했다. K 씨는 채팅 기록에서 권 씨에게 자신을 계속 ‘늙은이’라고 표현하며 “늙은이가 경고한 대로 문제(가) 터지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저번에 외신에 대한민국 외환위기설 기사제보 외국계 지인에게 늙은이가 터뜨렸습니다.”“심적 고통이 몸까지 상하게 합디다. 그래서 절필을 선언했습니다.” 등을 언급했다. 권 씨는 K 씨에게 신동아와의 인터뷰를 여러 차례 권했다. 송 편집장은 11월 12일 권 씨와의 통화에서 “미네르바가 인터뷰를 꺼린다.”는 말을 듣고 13일 K 씨의 기고문을 싣기로 결정했다. K 씨는 11월 13일 밤부터 11월 14일 새벽까지 기고문을 작성했으며 다음 아고라에 올라 있는 미네르바 박대성 씨의 글과 자신의 이전 글을 섞어 기고문을 작성해 M을 통해 신동아팀에 전했다고 조사위에 밝혔다. 누리꾼 M은 K 씨 기고문을 11월 14일 오전 송 편집장의 e메일로 발송했다. 송 편집장은 신동아팀 황일도 기자에게 e메일로 받은 기고문을 정리하라고 지시했다. 황 기자는 기고문을 읽어본 뒤 “최소한 필자의 신원을 밝혀야 한다.”고 건의했으며, 송 편집장은 기고자의 신원 자체를 밝히는 것은 어렵다고 판단해 몇 가지 질문을 11월 14일 오후 e메일로 M에게 전달했다. ‘노란 토끼’란 무엇인지, ‘미네르바는 50대 초반, 증권사 근무와 해외체류 경력이 있는 인물’이라는 보도가 맞는지 등이었다. M은 같은 날 오후 송 편집장에게 e메일로 답장을 보내 “(원고가) 중구난방이니 일관성 유지 측면에서 손을 좀 봐 달라. 영감님이 담담당당(권 씨의 아고라 필명) 선생님께서 보시고 오케이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하신다.”고 밝혔다. M은 답장 e메일에서 “노란 토끼는 환투기세력을 언급한 것이고, 증권사 근무 경력이 있고 해외 체류경험이 있다. 나이는 노코멘트” 등이라고 답변했다. 황 기자는 원고를 정리한 뒤 송 편집장에게 “앞뒤 문체가 확연히 다르고, 내용상 중복되는 대목이 몇 군데 눈에 띈다. 원고를 정리한 사람이 여러 명인 것 같다.”고 말했다. M은 11월 15일 오후 송 편집장에게 e메일을 보내 “영감님께서 ‘꼭 미네르바라고 (기고문에 적시)해야 하느냐, 사이버경제논객 장사꾼 정도로 하면 안 되겠느냐’고 여쭤봤다. 지금도 글을 안 싣고 싶은 게 솔직한 마음이라고 한다.”고 전했다. Ⅲ. 2009년 2월호 K 씨 인터뷰 게재 경위 권 씨는 신동아 12월호가 발매된 날인 11월 18일 K 씨와 다시 인터넷 채팅을 하면서 “조선하고도 연락하는 중입니다. 그쪽이 쉽게 나오기는 어렵습니다. 송편(송 편집장)이 이미 데스크 한 자리를 가지고 이번 방향으로 갔기 때문에 동아의 방향이 가장 극악한데… 그걸 이제는 못하는 겁니다. 한 번 정하면 부인 못하는 곳, 그래서 조선을 일단 눌러두고 동아부터 때린 겁니다. (중략) 그리고 이진법 내에도 혼란은 생깁니다.”라고 주장했다. 검찰이 2009년 1월 8일 박대성 씨가 미네르바라며 박 씨를 구속했다. 1월 12일 오전 본사 임원들과 일부 실·국장들이 참석하는 월요 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은 신동아 미네르바 보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정밀한 확인 취재를 최용원 출판편집인에게 주문했다. 송 편집장은 월요 간담회에서 제기된 문제점 등을 13일 권 씨에게 e메일로 보냈다. 송 편집장은 1월 14일 다시 M에게 e메일을 보내 K 씨 인터뷰를 요청해 이날 20:00경 지하철 아현역에서 K 씨를 만나 인근 카페에서 1시간 반 정도 대화를 나눴다. 송 편집장은 22:00경 K 씨에게 “차라리 우리 회사로 가자.”고 설득해 그를 출판국 회의실로 데리고 갔다. 인터뷰는 1월 15일 03:30경까지 진행됐다. 실명을 밝히라는 요구에 K 씨는 망설이다 자신의 이름은 ○○○이며, 한 외국 언론사의 정부 부처 출입기자를 안다고도 말했다. 허만섭 기자는 1월 15일 K 씨의 발언을 확인하기 위해 해당 언론사에 근무하는 지인을 통해 정부 부처 출입기자인 Y 씨가 K 씨를 아는지 문의했다. 허 기자는 다음 날인 1월 16일 그 지인으로부터 ‘Y 씨가 △△은행에 다니는 ○○○(K씨 실명)을 안다고 하더라’는 답변을 받았다고 조사 과정에서 말했다. 신동아 기자 대부분은 당시 K 씨를 미네르바라고 생각했다고 조사 과정에서 진술했다. 황의봉 출판국장은 1월 15일 오후 발행인에게 K 씨와의 인터뷰 사실을 처음으로 보고했다. 이에 따라 15일, 16일 주요 간부회의가 잇따라 열렸다. 대부분 회의 참석자들은 K 씨가 미네르바인지 진위를 가릴 수 있는 객관적 증거가 부족하므로 IP, ID 문제 등에 대한 의혹을 명쾌하게 규명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Ⅳ. K 씨 자백 경위 1월 28일경 허만섭 기자는 외국 언론사 Y 씨를 직접 만나 신동아 2월호 인터뷰 과정에서 촬영한 K 씨 사진을 보여주며 아는 사람인지 다시 확인을 시도했다. 이에 Y 씨는 “나는 모르는 사람”이라고 밝혔다. 송 편집장은 2월 6일 M에게 e메일을 보내고 전화를 걸어 K 씨와의 만남을 주선해 줄 것을 거듭 요청했다. K 씨가 M을 통해 인터뷰 요청을 거절하자, 송 편집장은 “인터뷰에 응하지 않으면 1월 14일 인터뷰 당시 찍은 K 씨의 사진과 녹취한 음성 파일을 인터넷에 공개하겠다.”고 M에게 말했다. K 씨는 2월 12일 오후 “오늘 저녁에 만나겠다. 담담당당님(권 씨)을 인터뷰 장소로 데리고 오라.”고 제안했다. 일부 기자는 “신동아의 취재 공간에 제3자인 권 씨를 데리고 가는 게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제시했으나 수용되지 않은 것으로 조사 과정에서 밝혀졌다. 2월 12일 20:00경 송 편집장, 권 씨, K 씨, M 등 4명이 지하철 당산역 인근에서 만났다. 22:00경 송 편집장, 송홍근 기자, 한상진 기자와 권 씨, K 씨 등 모두 5명은 S 호텔 객실로 자리를 옮겼다. 신동아팀은 가장 먼저 K 씨에게 주민등록증을 보여 달라고 요구해 K 씨의 성명과 주소, 생년월일 등을 확인했다. 이어 K 씨에게 “미네르바가 맞다면 그동안 글을 올린 ID와 패스워드를 밝히라.”고 요구했고, K 씨는 “사실 글은 내가 직접 올리지 않아서 ID와 패스워드는 모른다.”고 말했다. 2월 13일 01:00경 ID 문제 등을 계속 질문하던 한상진 기자가 K 씨에게 “당신 미네르바 아니지?”라고 물었고 K 씨는 한동안 망설이다가 “네”라고 답했다. K 씨는 또 “기고문을 보낸 것도, 인터뷰를 한 것도 내 의지가 아니었다. 하도 심하게 압박이 들어와 거절하지 못하고 그렇게 됐다. 박대성이 구속됐을 때는 죽고 싶었다.”고 말했다. 03:00경 신동아팀은 K 씨에게 “그만 가라.”고 했으나 K 씨는 가지 않았다. 이에 권 씨가 “내가 K 씨랑 좀 더 이야기해 보겠다.”고 제안했고 K 씨도 “담담당당 선생이랑 더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해 두 사람만 남겨놓고 신동아팀은 객실에서 나왔다. 신동아팀은 호텔 1층 로비에서 30여 분간 회의를 했다. 이 자리에서 일부 기자 등이 “객실에 권 씨와 K 씨 둘만 남겨둬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제기했다. 03:30분경 신동아팀은 호텔을 나왔고 권 씨와 K 씨는 객실에 함께 있다가 07:00경 귀가했다고 조사위에 밝혔다. 조사위는 이 과정에서 권 씨가 객실에서 K 씨의 신체에 물리적으로 위해를 가하는 행동을 했다는 진술을 양 측으로부터 확인했다. 황의봉 출판국장은 이날 11:00경 출근한 송 편집장으로부터 K 씨의 자백 사실을 처음으로 보고받았다. 신동아팀은 진위를 재확인하기 위해 이날 오후 충정로 사옥 인근 카페에서 K 씨를 만났다. K 씨는 왜 미네르바를 사칭했느냐는 질문에 “독서클럽 멤버 중에 50대 K 씨가 있다. 그가 진짜 미네르바다. 이름은 모르지만 50대 K 씨를 찾을 수 있다. 만난 적이 있다.”고 답변했다. 신동아팀은 통상의 원고 마감일을 하루 앞둔 2월 14일 오후 출판국에서 전체 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신동아 기자들은 K 씨가 가짜 미네르바라고 최종 결론 냈다. 황 국장은 회의를 마친 뒤 전화로 최용원 출판편집인에게 K 씨 자백 상황을 처음으로 보고했다. Ⅴ. K 씨와 권 씨 K 씨는 1976년생으로 출생지는 ○○이며 지방 도시의 S고를 졸업한 것으로 확인됐다. K 씨는 지방의 모 대학을 졸업했다고 말했으나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K 씨는 자신이 2000년 H 창투를 시작으로, C 투자증권의 한 지점에서 영업 활동을 했다고 주장했다가 H 창투를 다녔다고 말한 적이 없다고 말을 바꿨다. K 씨가 C 투자증권에 다녔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권 씨의 진술에 따르면 권 씨는 1963년생으로 출생지는 ○○이다. 조사 과정에서 대학을 중간에 그만두었다고 했으나 확인 결과 1982년 지방의 K대에 입학해 1989년 졸업했으며, 1989∼1995년 KOTRA 특수사업과에서 근무했다. 송문홍 편집장은 1997년 미국 연수 후 권 씨를 처음 만나 10여년간 만남을 지속하며 외교안보 분야의 정보를 제공받아 왔다고 조사에서 밝혔다. 권 씨는 다음 아고라 경제토론방에 ‘담담당당’이란 필명으로 글을 게재하고 있다. Ⅵ. 문제점 ① 검증의 부재 신동아는 2008년 12월호 K 씨의 기고문을 게재하는 과정에서 필자에 대한 신원과 경력을 확인하지 않았다. 송 편집장은 K 씨를 소개한 권 씨의 얘기만을 믿고 K 씨를 미네르바라고 속단했다. 기고도 K 씨에게 직접 받은 것이 아니라 누리꾼 M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달받았다. 신동아가 2009년 2월호 K 씨와의 인터뷰를 기사화할 때도 신원 검증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인터뷰 게재 당시 신동아가 알고 있는 것은 K 씨의 성명뿐이었다. 검찰이 박대성 씨를 미네르바로 특정한 가장 중요한 근거였던 IP와 ID 문제에 대해서도 신동아팀은 엄밀하게 검증하지 못한 채 기사를 게재했다. ② 게이트키핑 시스템 미작동 K 씨와 관련한 일련의 보도를 제작 책임자인 송 편집장이 주도하면서 사실상 게이트키핑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다. 신동아팀 기자들은 기고문의 게재 경위나 인터뷰 성사 과정을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 송 편집장의 판단과 결정에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③ 윤리적 문제 송 편집장은 M으로부터 K 씨의 기고문을 받은 뒤 글의 내용에 관한 몇 가지 추가 질문을 M에게 전달했다. 신동아 2008년 12월호의 <편집자주>는 M과 주고받은 질문과 답변을 토대로 작성했다. 그럼에도 ‘K 씨를 여러 차례 접촉했다’는 모호한 표현을 씀으로써 K 씨를 직접 만났거나 그와 전화 인터뷰를 한 듯한 인상을 줘 결과적으로 사실과 다르게 보도했다. 신동아팀은 2월 13일 03:00경 권 씨와 K 씨만을 호텔방에 남겨두고 현장을 떠났으나 두 사람은 이날 처음 만난 데다 K 씨에게 신동아 기고를 수차례 요구한 사람이 권 씨였던 만큼 K 씨가 집에 돌아갈 때까지 신동아팀 관계자가 현장을 지켰어야 한다는 것이 조사위의 판단이다. 송 편집장은 사내 정보를 제3자인 권 씨에게 지속적으로 유출했다. Ⅶ. 개선 대책 동아일보사는 이번 신동아의 미네르바 오보를 계기로 유사사건의 재발을 막고, 독자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대책을 마련했다. 빠른 시일 내에 구체적인 내용을 확정해 시행할 방침이다. ① 취재 및 보도 원칙 재정립과 교육 강화 사실의 검증, 익명 취재원 처리, 인용, 정정, 반론, 표절금지, 사진 및 영상물의 사용 등에 관한 기준을 재정립한다. 이 같은 원칙과 기준을 데스크와 기자들에게 교육을 통해 실천토록 한다. ② 인터넷 정보 활용 원칙 마련 인터넷에서 유통되는 정보에 대한 사실 확인, 내용 검증, 인용 기준, 정정보도 등에 관한 원칙을 마련해 시행한다. ③ 게이트키핑(단계별 기사 검증) 강화 기사 관련 정보의 정확성과 기사 가치 판단에 대한 보도·논평·편집 간부들의 역할과 책임을 강화하고 단계별로 충실한 게이트키핑이 이뤄질 수 있는 체계를 갖춘다. 취재 내용에 관해 기자들과 데스크 간의 의견 교환을 활성화한다. ④ ‘스탠더드 에디터’ 제도 도입 스탠더드 에디터는 보도 준칙의 실행 여부를 확인하는 한편 정확한 보도와 취재 윤리를 실천하기 위한 관련 교육을 담당한다. ⑤ 내부 심의 강화 신문 기사 위주로 이뤄졌던 회사 차원의 내부 심의 기능을 잡지, 인터넷 기사까지 확대한다. ⑥ 독자위원회(가칭) 설립 동아일보사는 사회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한 독자인권위원회를 2001년부터 운영해 왔다. 이를 ‘독자위원회’로 확대 개편한다. 독자위원회는 독자의 인권보호는 물론 취재 및 보도 과정에서 저널리즘의 원칙을 정확히 준수했는지 심의한다. 독자위원회의 심의 대상에는 신문뿐 아니라 잡지, 온라인 기사까지 포함한다. 동아일보 진상조사위원회 [다른기사 보러가기] ”신인 여배우 12명 돌아가며 만나는 재벌” 연 8만명 중동여행…여행사들 생계수단 체육활동중 부상자도… 도넘은 유공자 남발 결국 법정 가는 고교등급제 의혹 ’녹색기획관’은 자리 늘리기? 의사·경찰·‘나이트 삐끼’까지 “코끼리 주사 한 방만…” 애원
  • 3월 ‘금융 꽃샘추위’

    3월 ‘금융 꽃샘추위’

    환율이 두 달 만에 다시 1400원대까지 뛰어오르고, 우리나라 신용위험도를 나타내는 해외채권의 가산금리도 다시 상승곡선을 타고 있다. 특히 3월에는 은행들이 외환시장에서 빌린 돈의 만기까지 몰려 있어 국내 금융시장이 또다시 불안에 휩싸이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퍼져나온다. ●두달만에 1400원대 재돌파 최근 가장 불안한 것은 환율이다. 지난해 11월 말 1500원대로 치솟았던 원·달러 환율은 지난해 말 1200원대로 떨어졌다가 올 들어 상승세로 돌아선 뒤 지난 12일 1404원을 기록했다. 작년 12월9일 이후 두 달 만의 1400원대 진입이다. 전통적인 신용도 위험지수인 외국환평형기금채권 가산금리나 은행권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도 들썩거린다. 한국이 발행하는 외화채권의 신용위험도를 나타내는 지수인 외평채 5년물의 가산금리는 지난해 말 3.40%에서 지난 12일 3.55%를 나타냈다. 기업의 부도 위험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얘기다. 지난해 10월 7.91%까지 급등했던 것과 비교하면 반에도 못 미치는 수치지만 상승세가 유지되면 그만큼 외화조달이 어려워지고 비용도 커진다는 것을 나타낸다. ●시중銀 프리미엄 금리도 올라 시중은행의 신용도에도 노란불이 들어왔다. 우리은행의 CDS프리미엄은 지난 12일 기준 5.80%로 9일의 5.16%에 비해 0.64%포인트 뛰었다. 국민은행은 4.06%에서 4.57%로, 신한은행은 4.65%에서 5.13%로, 하나은행은 4.73%에서 5.12%로 각각 올랐다. CDS 프리미엄이란 신용파생거래를 할 때 붙는 보험성 수수료로, 높을수록 신용위험이 크다는 뜻이다. 한 시중은행 자금부장은 “사실 한·미 통화스와프 등에 힘입어 국가로부터 외화가 들어오는 문은 열려 있지만 자체적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라고 귀띔했다. 특히 올해 안에 갚아야 하는 은행권의 순수 대외채무 350억달러(해외점포 차입 제외) 중 다음 달 만기가 도래하는 규모만 100억달러 안팎이다. 박희찬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다음 달 만기도래 국채규모는 위기설이 불거졌던 작년 9월의 3분의1 수준이지만 은행권 차입금 상환이 불안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LG경제연구원은 15일 ‘국내 외국자본의 흐름 진단’ 보고서에서 “채권과 주식, 은행의 해외차입 등 금융시장 전체로 볼 때 앞으로 최대 773억달러의 외국자본이 추가 이탈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여기에 3월 결산인 일본의 금융기관이 대규모 자금회수를 벌일 것이라는 비관적인 시나리오까지 뒤섞이면서 일부에선 ‘3월 위기설’이 솔솔 고개를 드는 형편이다. ●“외화유동성 충분… 기우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기우’라고 일축한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지난해 12월 말 기준 3개월 외화유동성 비율은 100% 수준이고, 올해 들어 만기 1개월 이상 대외차입도 100억달러에 이른다.”라고 말했다. 외화유동성은 관리 가능한 수준인데다 대외차입이 사실상 막혀 있던 지난해 4·4분기와 상황이 전혀 다르다는 의견이다. 또 다음 달에 만기인 일본차임금도 10억~20억달러 정도로 예상돼 은행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으로 보고 있다. 안병찬 한은 국제국장은 “최근 외화 유동성이 다소 어려움을 겪는 것은 사실이지만 3월 위기설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작다.”고 말했다. LG경제연구원 신민영 연구위원은 “리먼 브러더스 사태 수준의 악재가 또다시 나올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면서 “다만 돌발 변수들이 시장에 심리적인 악영향을 주지 않도록 미리 단속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 위원은 “자금이탈이 많은 3~4월만 잘 넘기면 이후 금융시장이 빠르게 안정될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버스에도 짐 놓는 선반 설치를”

    “버스에도 짐 놓는 선반 설치를”

    서울신문과 서울시의회가 함께하는 2009년 1월 의정모니터에는 시정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의견도 많았다. ‘버스 정류장에 있는 노선도가 복잡하다.’ ‘정류장에 붙어 있는 무분별한 광고를 없애자.’ 등 특히 지난달에는 시민들의 발인 시내버스에 관한 의견들이 쏟아졌다. 1월 한 달 동안 79건의 의견이 제시됐고, 세 차례의 엄정한 심사를 거쳐 11건을 우수의견으로 뽑았다. ●“버스정류장 노선도 보기 쉽게” 버스 중앙차로 정류장이 광고판으로 변했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서복심(54·서대문구 북가좌2동)씨는 “현대적 디자인의 정류장에 난잡한 광고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면서 “어떻게 공공시설물에 시민을 위한 정보보다 수익을 위한 광고가 판칠 수 있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서씨는 “광고보다 서울시 정책을 알리는 홍보판이나 서울이나 지역 명소를 알리는 지도 등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김기선(55·동대문구 답십리4동)씨는 버스 정류소에 있는 노선안내도의 위치가 행정편의적으로 설치돼 불편하다고 지적했다. 김씨는 “노선안내도가 너무 앞쪽에 있고 위치도 높아 어린이나 노인에게 불편하다.“면서 “정류장 의자 등이 있는 곳에서 쉽게 볼 수 있도록 위치를 변경하자.”고 주장했다. 실제로 많은 노선의 버스들이 거치는 정류장에는 노선도가 복잡하게 붙어 있다. 편리하게 목적지의 버스번호를 알려주는 시스템 도입이 시급하다. 버스 하차벨이나 선반 등을 만들자는 의견도 있었다. 오혜선(35·강남구 도곡동)씨는 “버스에 짐을 놓을 수 있는 공간이 하나도 없다.”면서 “바닥에 내려놓으면 다른 사람들이 불편하고 무거워 들고 있을 수도 없다.”고 말했다. 지하철처럼 선반을 만들어 놓든지 아니면 의자 밑을 개조해 짐을 넣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또 하차벨이 앉아서 누르기 힘든 곳에 있다고 꼬집은 서미경(42·서대문구 북가좌동)씨는 “노약자석에는 앉아서 벨을 누를 수 있는 위치로 변경하고 버스카드 인식기에 벨소리 기능을 추가하면 편리할 것”이라면서 “이런 작은 배려가 대중교통 이용객을 늘리고 환경·교통문제 해결의 열쇠”라고 강조했다. ●중고품 활용하는 녹색 장난감도서관 이밖에 살림이 어려운 서민을 위해 동사무소나 구청에 녹색 장난감 도서관을 만들자는 제안도 돋보인다. 정유경(38·성북구 삼선동)씨는 “어린이 장난감 하나에 4만~5만원이 넘어 가정에 부담이 된다.”면서 “구청이나 동 주민센터에 중고 장난감을 기증받고 함께 나눠 쓰는 녹색 장난감 도서관을 만들자.”고 말했다. 또 도심의 액화석유가스(LPG) 판매업소에 대한 안전교육을 강화하자고 제안한 이연숙(44·강서구 화곡5동)씨, 공공 건물의 계단 끝을 노란색으로 칠해 안전사고를 예방하자는 오명순(51·동작구 흑석동)씨 등의 의견도 선정됐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30일 TV 하이라이트]

    ●낭독의 발견(KBS1 밤 12시) 1975년, 충남 예산에는 아주 특별한 영어선생님이 있었다. 큰 키에 노란 머리를 가진 심은경 선생님. 30여 년 후 선생님이 돌아왔다. ‘주한 미국 대사’라는 이름을 달고서. 한국어를 구사하는 첫 미국 대사이자 미국과 수교 이래 첫 여성대사, 한글과 한국의 문화를 사랑하는 스티븐스 대사가 낭독무대에 오른다. ●사랑과 전쟁(KBS2 오후 11시5분) 일류대를 나와 대기업에 다니지만 내성적인 남편 윤철. 외향적인 아내 혜영은 회사와 집만 아는 남편을 답답해하며, 펀드매니저로 성공한 윤철의 친구 경호와 비교하기 일쑤다. 경호 집에 식사초대를 받은 날, 도우미 아주머니까지 두며 호화롭게 사는 경호네가 부러운 혜영은 경호에게서 주식을 추천받는데…. ●일일시트콤 그분이 오신다(MBC 오후 7시45분) 집안의 어른 윤소정 여사의 숙적, 소정의 사촌언니가 왔다. 그녀가 머무는 동안 거짓으로 포장된 소정의 부끄러운 과거가 낱낱이 파헤쳐진다. 한편 손님은 왕! 고객사랑 감동 배달맨 창희 때문에 비교를 당하는 성진은 창희에게 치킨을 배달시키며 창희의 고객사랑 정신을 끝까지 시험해 본다. ●있다! 없다?(SBS 오후 8시50분) 사람이 타면 십리도 못 가 함몰될 것 같은 얇은 종이배. 사람을 태운 종이배가 한강에 떴다. 최초 한강에서 펼쳐지는 유람선과 종이배와의 경주!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실험의 결과는? 250억원짜리 물이 있는지 없는지, 한 끼 100원짜리 식사가 있는지 없는지, 세숫대야 버스가 있는지 없는지도 살펴본다. ●로봇파워(EBS 오후 7시50분) 로봇을 만나고, 배우고 싶지만 여건이 되지 않는 어린이들에게 로봇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로봇특공대의 목적지는 강원도 철원 강포초등학교 어린이들. 방학임에도 불구하고, 방과후 수업을 위해 등교한 어린이들에게 깜짝 선물을 한다. 서울산업대의 휴머노이드 로봇을 본 어린이들의 반응은 어떨까? ●주말ⓝ(YTN 오후 8시35분) 도심 속 박물관들을 소개한다. 소띠 해를 기념하는 전시, 태극기 만들기 체험, 기상천외한 발명품을 모두 모아 놓은 이색 전시까지, 재밌고 유익한 박물관들을 찾아가 본다. 태권도와 영어를 접목시킨 ‘태클리시’. 태권도 수련을 하면서 영어까지 술술 말하게 되는 태클리시를 배우는 초등학생들을 만나본다.
  • 세계 금융위기 불러 온 ‘사악한 화폐’ 달러의 실체

    세계 금융위기 불러 온 ‘사악한 화폐’ 달러의 실체

    미국의 저널리스트 프랭크 바움은 1900년 판타지 동화책 ‘오즈의 마법사’로 ‘진짜 미국적인 첫번째 동화’를 쓴 소설가로 대접받았다. 그의 작품은 전세계로 퍼져 현재까지도 읽히고 있다. 잘 알려진 대로 토네이도에 휘말려 마법의 나라에 떨어진 도로시가 지혜가 없는 허수아비와 인간성을 잃어가는 양철 나무꾼, 겁쟁이 사자와 함께 위대한 마법사 오즈를 찾아가면서 겪는 모험을 다뤘다. ‘더 달러’(이재황 옮김, AK 펴냄)의 저자 엘렌 H 브라운은 사실 바움이 신문 사설에 쓰지 못했던 당시 ‘통화와 재정’의 문제점을 ‘오즈의 마법사’ 안에 숨겨 놓았다고 말한다. 바움이 1890년대 초 20%를 웃도는 실업률로 고통받는 미국 국민을 구하기 위해서는 금융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허수아비는 농부, 양철 나무꾼은 공장노동자, 사자는 당시 화폐개혁을 주장하던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이라는 불운한 정치인를 상징한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도로시와 일행은 월스트리트의 탐욕스러운 은행가와 이를 지지하는 정치인들을 상징하는 동부의 나쁜 마녀를 죽이고, 노란 벽돌(금본위제)을 따라 녹색 안경을 쓰는 에메랄드 시티(금본위에 갇힌 녹색의 달러)를 찾아가 마지막으로 커튼 뒤에서 위대한 마법사 행사를 한 오즈(JP모건 등 세계적인 은행 금융집단)의 음모를 폭로한다. 마법처럼 보이는 은행가들의 금융기법이 사실상 사기행위라는 것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그럼 오즈(OZ)는 무엇일까? 그것은 은화운동가들이 은 16온스(OZ)를 금 1온스(OZ)로 바꾸자고 주장했는데, 온스의 약자가 ‘OZ’라는 것이다. 장황하게 오즈의 마법사를 거론한 것은 저자가 오즈의 마법사의 코드를 중심으로 47장을 구성해 709쪽을 써 내려갔기 때문이다. 109년전 바움의 주장이 현재 금융위기에서 필요하다는 것이다.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장은 한마디로 민간독립기구인 연방준비은행과 같은 중앙은행이 통화 발행권을 갖게 하지 말고, 미국 정부가 직접 화폐를 발행하라는 것이다. 연방준비은행은 원가 40센트로 100달러를 찍어서 정부에 빌려주고 이자까지 쳐서 110달러를 돌려받으려고 하는데, 원금은커녕 이자 갚기에도 힘든 미국 정부는 2007년 현재 누적 부채가 7조달러에 이르렀다고 지적한다. 정부가 직접 발권을 하면 이자가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원금을 갚아 나갈 여력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브라운은 현재의 중앙은행 시스템이 은행의 배만 불린다고 지적한다. 금본위제가 무너진 후 중앙은행 시스템이 도입되자 중앙은행들은 지불준비금 제도를 만들었다. 예컨대 갑돌이가 100달러를 요구불 예금 등에 넣어두면 은행은 이중 10달러만 은행이나 중앙은행에 맡겨 놓고 90달러는 다시 대출할 수 있다. 지불준비금 제도 아래서 갑돌이의 100달러는 이런 과정을 거쳐 1000달러의 통화로 불어난다. 그런데 이렇게 늘어난 통화로 이윤을 챙기는 것은 원래 100달러를 가지고 있던 갑돌이가 아니라 은행이다. 은행들의 이윤창출이 ‘도깨비 방망이’를 가지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커튼 뒤에 숨어서 위대한 마술사처럼 굴었던 오즈의 사기와 뭐가 다르냐는 것이다. 문제는 미국의 은행들은 자본주의의 정점에 놓여있는 전세계 은행의 역할을 하면서, 특히 가난한 제3세계에 엄청난 대출을 해줬기 때문에 전세계적으로 이익을 챙기는 데 있다. 중앙은행이 발권하는 시스템에서 정부와 국민은 빚에 허덕이고, 세계적인 은행들만 돈을 버는 상태가 지속된다는 것이다. 보통 정부가 발권력을 가지면, 제멋대로 통화를 찍어내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이 불가피하다는 정설을 감안하면 헷갈린다. 그러나 저자는 통화량 증발의 책임은 본원통화(갑돌이의 100달러)를 예금인출사태(뱅크런)에 대처할 수 없도록 대출을 1000달러까지 늘리는 탐욕스러운 은행에 있는 것이 아니냐고 되묻고 있다. 브라운은 최근 미국발 위기를 미국 소비자들의 탐욕스러운 소비와 집 소유 욕심 탓으로 돌리는 분위기에도 따끔하게 한마디한다. 미국 정부가 1971년 달러를 금으로 교환해 주는 금태환 시스템(브레턴우즈 선언)을 포기하고 전세계에 변동환율제를 도입한 업보라는 것이다. 즉 미국 정부는 전세계에 대한 경제적 지배가 달러의 환류 과정에 달려 있기 때문에 전세계 상품의 최후의 수입자로서, 자국민을 최종 소비자로 만들어 놓았다는 것이다. 이것이 미국 적자의 실체이고 미국인의 불운이라고 주장한다. 2007년에 발간됐고, 2008년 3개정판을 번역했다. 처음 20쪽은 이해가 쉽지 않지만 이후엔 쭉쭉 재밌게 읽힌다. 2만 5000원.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별빛 쏟아지는 정원 추억도 사랑도

    별빛 쏟아지는 정원 추억도 사랑도

    겨울이면 초목은 무채색의 깊은 잠을 자야 하는 것이 상식일 터다. 그런데 경기도 가평의 아침고요수목원과 포천의 평강식물원은 겨울잠에 빠지길 거부하며 상식의 틀을 깨고 있다. 오색별빛정원전과 체험학습 프로그램 등으로 여름만큼이나 뜨거운 겨울을 보내는 중이다. 내방객들도 긴 명상에 잠겨 있는 초목들에 행여 방해가 될세라 차분하게 발걸음을 옮기며 나직한 목소리로 대화를 나눈다. 겨울 정원 특유의 적막감 속에 산새소리만 간간이 들리는 겨울 수목원에 다녀 왔다. 오색별빛정원전은 아침고요수목원 전체(33만㎡)의 절반에 이르는 면적에 흰색·노란색·빨간색·파란색·녹색 등 다섯가지 빛깔로 주제에 맞춰 장식하고 있는 야간 조명행사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꽃처럼 아름다운 겨울밤을 만들기 위해 나무들에 발광다이오드(LED) 옷을 입혔다는 게 수목원 관계자의 설명이다. 특히 이번 축제에는 ‘달빛정원’이 새로운 빛의 풍경으로 추가되면서, 연인과 가족단위 방문객을 즐겁게 하고 있다. 나무의 생장에는 별 문제가 없을까. 수목원 관계자는 “LED는 열이 없고 전력소모도 극히 적어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전했다. 하지만 겨울을 나기 위해 수액의 통로까지 동면 상태로 만들곤 하는 나무들이 스스로에게 덧씌워진 LED를 어떻게 생각할지는 그들만이 알 터다. 사용된 LED는 대략 100만개쯤 된다. 최근 유행하는 ‘루체비스타’ 등 도심의 조형물들이 건물과 도로 등을 기반으로 했다면, 오색별빛정원전은 수목과 화단, 곡선 산책로를 따라 자연과 인공이 조화를 이룬 빛의 축제를 테마로 삼았다. 정형화된 도심의 가로수 조명에 견줘 고저장단의 운율과 형태의 다양함 등이 한 수 위다. 오색별빛정원전은 빛의 정원과 추억의 정원, 사랑의 정원 등 세 가지 테마로 조성됐다. 각각의 테마는 또 하경정원을 비롯해 고향집정원, 분재정원, 달빛정원 등으로 세분화했다. 매표소를 지나면서 첫번째 테마인 빛의 정원이 시작된다. 고향집정원과 능수정원 등 빛으로 치장한 다양한 나무들과 화단이 방문객의 정신을 쏙 빼놓는다. 다양한 별빛 꽃들이 곳곳의 정원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노란 융단을 덮은 듯 빛으로 수 놓은 대형 아치는 한겨울의 차가움을 잊기에 충분하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각각 초록색과 주황색 LED로 장식된 소나무와 능수버들. 수목원내 어디서 보든 풍경의 주인이 된다. 빛의 다리를 건너면 두번째 테마 추억의 정원이다. 초가집과 장독대 등으로 시골마을의 정취를 한껏 표현하고 있다. 곳곳에 자리잡은 호박마차와 아기사슴, 해, 달, 별 등 장식물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는 관람객들의 가슴에 빛나는 추억이 새겨지는 듯하다. 추억의 정원에 있는 하경정원은 축제의 하이라이트. 산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본다는 뜻을 담은 하경정원은 축제장 전체를 통틀어 가장 빼어난 풍경을 선보인다. 다양한 색상의 조명이 초목들의 특성과 조화를 이루며 낮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현란한 밤의 정원으로 다시 태어난다. 리듬을 타며 고저장단의 곡선을 이루고 있는 조명들은 내나라의 산하를 축소해 놓은 듯하다. 세번째 테마인 사랑의 정원은 추억의 정원 위쪽 산자락이다. 새롭게 꾸며진 달빛정원은 작은 교회와 새하얀 꽃들로 낭만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낙엽송 가로수 끝자락의 하얀 교회는 연인에게 사랑을 고백하면 이루어진다 해서 ‘사랑의 교회’로 불린다. 연인들의 잦은 발걸음이 이어지는 곳. 공식 예배가 열리지는 않지만, 개인적인 예배나 명상은 가능하다. 46번 경춘국도→청평 검문소 좌회전→수목원, 혹은 47번국도→서파검문소 우회전→현리→수목원. 개장시간은 오전 9시~오후 8시30분, 점등시간은 오후 5시30분~오후 8시30분이다. 입장료는 어른 4000원, 청소년 3000원, 초등학생 이하 2000원. 정문 안에 펜션이 있다.7만~22만원. www.morningcalm.co.kr, 1544-6703. 평강식물원은 겨울이면 또 다른 모습으로 탈바꿈한다. 서울시교육청이 공인한 체험학습장이다. 겨울방학 체험학습 프로그램으로 각종 약재와 허브를 이용한 평강 쿠키 만들기, 전통 가오리연 만들기, 모닥불에 고구마 구워 먹기 등으로 새롭게 구성했다. 또 한방비누 만들기(유치원), 솔방울 거북이 만들기 (초등학생), 씨앗그림 그리기(중·고등학생) 등 연령대별로 프로그램을 구분했다. 생태복원의 산실인 고층습원과 살아 있는 작은 생태계 습지원 등 12 테마 가든 체험은 평강식물원 의 핵심이다. 특히 눈이 소복이 쌓인 잔디광장과 습지원의 나무데크를 걷는 즐거움은 겨울에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한 추억이다. 잔디광장 위 작은 연못에서는 썰매도 탈 수 있다.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퇴계원 나들목→47번 국도 일동방면→수입교차로 좌회전→387번 지방도→삼팔삼거리 우회전→노곡 2리 좌회전→78번국도→낭유고개→평강식물원. 인근에 겨울 정취 가득한 산정 호수와 동장군 축제가 열리고 있는 백운계곡 등이 있어 볼거리를 더한다. 어른 3000원, 어린이 2000원. 체험행사 비용 1만~2만원(식사 포함). www.peacelandkorea.com, (031)531-7751. 글 사진 가평·포천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디즈니 ‘곰돌이 푸’ 상표등록 승소

    미국 디즈니의 캐릭터 ‘곰돌이 푸’의 영문명 ‘WINNIE THE POOH(위니 더 푸)’를 출원상표로 등록할 수 있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빨간 티셔츠를 입은 노란 곰돌이 푸는 말수가 적지만 화도 내지 않고 항상 도움을 주는 착한 디즈니 캐릭터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푸’라고만 알려져 있지만,곰돌이의 본명은 ‘위니(Winnie)’이다.위니는 실존한 새끼 흑곰인데,제1차 세계대전 때 엄마를 잃고 런던동물원에 맡겨졌다.네 살배기 로빈은 동물원에서 만난 위니를 끔찍이 사랑했고,동화 작가였던 아빠 앨런 알렉산더 밀른이 아들을 위해 곰돌이를 소재로 한 그림책 ‘Winnie-The-Pooh(아기곰 푸)’를 출간했다.영어 원재는 ‘Winne the Pooh’였다.2007년 1월 디즈니는 ‘WINNIE TH E POOh’를 상표로 등록해달라고 우리나라 특허청에 출원했다. 그러나 특허청은 등록을 받을 수 없다고 거절했다.이미 등록된 이랜드의 곰 캐릭터 패션 브랜드 ‘티니위니(TEENIE WEEIE)’와 위니가 반복된다는 이유에서였다.디즈니는 이에 불복,소송을 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초겨울 생각나는 ‘연탄시인’ 안도현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초겨울 생각나는 ‘연탄시인’ 안도현

    삼라만상이 침묵하고 쉬는 요즘이다. 잠시 추억의 창고 속으로 유영을 해본다. 어릴 적, 철부지 꼬마였다. 추운 겨울날, 내리는 눈이 마냥 좋아 동네 아이들과 연탄재를 발로 차며 놀았다. 그렇게 떠들며 정신없이 시간이 지나 어둠이 등을 떠밀었을 때야 겨우 집에 들어갔다. 몸은 어느새 꽁꽁 얼어버렸다. 기다리던 어머니는 야단 대신 얼음장처럼 찬 손을 어루만지며 “얘야, 연탄불에 고구마 올려놨다.”고 하셨다. 연탄이 생각나는 계절이다. 춥고 배고픈 사람들에게 연탄 한 장은 어떤 보석보다 값지다. 그들에게 추위란 뼛속까지 에기에 연탄 한 장이 삶과 죽음을 갈라놓을 수도 있다. 불쑥 화두 하나 던져보자. 인생은 연탄이라고. 왜? 답을 구하려고 한 시인을 만난다. 그랬더니 돌아온 답이 눈을 비비게 한다.‘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 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것이라네, 온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누구에게 연탄 한장도 되지 못하였지,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네.’ 또 있다.‘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아, 느낌이 묵직하다! ‘연탄시인’으로 유명한 안도현(48)씨.‘연탄 한장’과 ‘너에게 묻는다’에 나오는 시구다. 낮은 목소리로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삶의 구석진 진실을 조근조근 얘기해주기에 가슴 ‘찐하게’ 다가온다. 그는 1981년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낙동강’과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서울로 가는 전봉준’으로 당선됐으니 올해로 문단 데뷔 27년을 맞는 셈. 문학 나이 서른을 바라보는 그가 요즘 동시세계에 푹 빠져 있다.1996년 ‘연어’ 이후 ‘어린 왕자’같은 어른을 위한 동화를 꾸준히 써왔고 얼마 전부터는 동시의 ‘맑음터치’로 독자들과 새롭게 만나고 있다.‘맨처음 마당가에 매화가 혼자서 꽃을 피우더니, 마을회관 앞에서 산수유나무가 노란 기침을 해댄다∼’(순서), 쾅쾅쾅쾅 뛰어가면, 그렇지, 일곱살짜리일 거야, 콩콩콩콩 뛰어가면, 그렇지, 네살짜리일 거야(위층아기) 등의 동시가 담긴 ‘나무잎사귀 뒤쪽마을’을 펴낸 데 이어 최근 ‘문학동네’에서 동시시리즈 발간 편집위원이 돼 동시 부흥에 앞장서고 있는 것. 전주에 살면서 행사 참석차 잠시 서울 온 그와 지난 주 만났다. ▶요즘에는 어떤 일로 바쁘신지요. “강연이 많습니다. 편한 마음으로 독자들과 만나는 것은 좋은데 여기저기 불려다니느라…, 책 읽고 글 쓰는 일이 소홀해지고 있습니다. 용어 반복의 괴로움도 있고 한 달에 절반정도는 그렇게 살고 있지요.” ▶동시쪽으로 방향을 바꾸셨나요. “대학(우석대)에서 시와 동시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또 몇년 전부터 동시를 공부했고요. 같은 문학판 속에서도 아동문학이 약간 소외감 같은 걸 느끼는 것 같아요.(아동문학가들이)열심히 글을 쓰는데 선뜻 책을 내려는 출판사는 별로 없고, 가교 역할을 하고 싶었습니다. 좋은 동시를 쓰시는 분들이 많거든요.” ▶동시시리즈 편집위원인데 앞으로 어떤 결과가 이어지나요. “이번 주에 세 사람의 동시집이 출간되고,. 또 내년부터는 한 달에 한 번꼴로 동시집이 나오게 됩니다. 기성 문학가들에게도 동시 쓰는 기회를 부여하고, 아동문학의 영역을 넓히는 역할이지요.” ▶시와 동시, 문학계에서는 구분을 짓는 것이 관행으로 돼 있습니다. “장르란 세월이 지나오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식사할 때 깍두기나 겉절이도 먹고 싶은 것처럼 다 같은 김치가 아니겠습니까. 굳이 시다 동시다 나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겨울이면 대표적으로 생각나는 시가 ‘연탄한장’과 ‘너에게 묻는다’인데 이 시를 쓸 당시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요. “이리중학교 국어교사로 있다가 해직됐던 1990년대 초반에 쓴 시입니다. 그때도 겨울이었습니다. 제가 교직에 있을 때 학생들에게 가을과 관련된 시를 써보라고 했지요. 다들 단풍, 귀뚜라미, 낙엽을 소재로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쓸쓸한 가을이면 연탄을 소재로 할 수도 있지 않으냐고 했어요. 그 생각이 나서 ‘연탄한장’을 썼습니다. 또 궁핍한 내 자신에게 질문과 채찍을 던지기 위해 ‘너에게 묻는다’를 쓰게 됐지요. 성찰의 기회를 갖기 위한 몸부림이라고나 할까요.” ▶어쨌거나 두 시는 ‘안도현’ 하면 떠오르는 대표성이 됐습니다. “본의 아니게 (출판계에서)선점하게 돼 영광스러운 일이지요. 사람들이 조금 더 연탄과 친해졌다면 고마운 일이고요. 겨울날 한번쯤 사람의 마음을 건드려주는 시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연탄에 대한 추억이 있습니까. “많지요. 제가 13살 때 경북 안동에서 대구로 4촌형을 따라 이사해 자취방 생활을 했습니다. 연탄불에 고구마 구워먹고 라면 끓여 먹고 했지요. 물 데워 세수하고…, 결혼 이후까지 연탄생활을 했습니다.4촌형과 자취할 땐 연탄가스에 중독돼 죽을 뻔했던 적도 있지요. 또 빙판에 연탄재 뿌려 어린 아이들이 미끄러지지 않게 하는 이웃집 아저씨를 보면서 참 고마운 분이라는 추억도 있습니다.” ▶경북에서 태어나 호남으로 갔습니다. 까닭이 있었나요. “당시 원광대에서는 신춘문예에 등단했을 경우 4년 장학생의 혜택을 주었습니다. 윤흥길, 박범신, 양귀자 선생 등도 원광대 출신이지요. 이런 이유들이 저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습니다.” ▶1996년인가요, 교사직을 버리고 전업작가로 돌아섰습니다. 그때 밥 걱정이 안 되던가요. “당시 쓴 동화집 ‘연어’가 저를 부추겼습니다. 글만 써서도 살아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지요. 또 해직됐다가 복직했더니 (학교에)변한 것이 별로 없어 곤혹스럽게 한 부분도 있습니다. 뭔가 하나를 포기하자는 생각에 이르렀고 결국 교직을 그만두게 됐습니다. 또 마흔 넘으면 안정기조를 택하기 때문에 결단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있었고요.” ▶원래는 화가가 꿈이었지요. “중학교까지는 그랬습니다. 수채화 그리는 것을 아주 좋아했지요.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탐독한 책이라곤 만화가게에서 본 무협지와 몇 권의 소설뿐이었습니다. 고교 입학을 앞두고 친구집에 놀러갔다가 가지런히 꽂힌 삼중당 문고를 접하면서 독서에 빠졌지요. 고등학교 문예반 활동을 하면서 시인이 되려고 생각했습니다.” ▶첫시집이 ‘서울로 간 전봉준’입니다. 왜 하필이면 전봉준인가요. “대학 1학년 때 캠퍼스에서 새우깡 먹으면서 소주를 마시다가 갑자기 들이닥친 계엄군에게 거의 죽도록 맞았습니다. 아무 이유가 없었지요. 그때만 해도 골방에서 낭만문학이나 생각했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세상 밖으로 나왔다고나 할까요. 시와 역사의 관계를 생각했고 마침 사귀던 지금의 아내가 국사학과를 다녔습니다. 한국근현대사 책을 빌려 읽었습니다. 그 책 뒤편에 서울로 압송되는 전봉준 사진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지요. 실패한 전봉준과 광주의 좌절이 오버랩됐습니다.” ▶동화집 ‘연어’는 100쇄가 넘었습니다. “13년째 매년 5만부 이상 팔리는 효자입니다. 국내를 떠나 타이완과 중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에서도 번역출간됐지요.” ▶시 쓰는 일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저에겐 삶의 자극입니다. 독자들한테는 따뜻한 라면국물이라고나 할까요. 쇠고기 국물이 아닌…, 또 문학하는 일은 연애하는 일과 비슷합니다. 삶을 집중시킬 수 있는 최대의 배려이기 때문이지요.” ▶시를 잘 쓰려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우선 술을 많이 마셔야 합니다. 소주 100잔 마신 다음에 한 편의 시를 쓰고, 두번째는 연애를 많이 해야 돼요. 그래야 사물에 대한 감정이 생기거든요. 세번째는 시집 열권 정도 읽고 나서 시 한편을 써야 합니다. 시 쓰는 일은 단순한 기교가 아닌 세상 보는 눈입니다. 언어가 아니라 언어를 감싸는 정신의 힘이지요.” ▶앞으로 희망이 있다면. “빈둥거리며 사는 것입니다. 느림과 게으름의 시간을 갖고 나면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나겠지요.” 그러면서 강연 등 외부활동을 대폭 줄이겠다고 했다. 내년 초 발간될 ‘연어’ 속편의 원고를 마무리하고 나서 동시 공부를 계속하겠다고 덧붙인다. 다음 주에는 북한에 가서 장수군에서 제공한 사과나무를 심을 예정이라고 귀띔했다. 평양에 다섯번 정도 다녀왔다는 그는 내년까지 10㏊ 면적에 1만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 작업에 동참하고 있다. 존경하는 사람으로는 ‘적막강산’의 백석(1912~1995) 시인을 꼽았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안도현은 누구 1961년 경북 예천에서 4형제 중 맏이로 태어났다. 경북대 사범대 부속중학교와 대구 대건고를 졸업했다.1981년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시 ‘낙동강’이,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서울로 가는 전봉준’이 당선됐다. 원광대 국문학과를 나온 그는 1985년 2월 이리중학교 국어교사로 부임하면서 교직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1989년 8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해직됐다.1994년 3월 전라북도 장수 산서고등학교로 복직됐으나 2년 뒤 교사직을 그만두고 전업작가로 돌아섰다. 현재는 우석대 문창과 교수로 있다.1996년 제1회 시와 시학 젊은 시인상,1998년 제13회 소월시문학상,2000년 원광문학상,2002년 제1회 노작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주요 작품으로 ‘서울로 가는 전봉준’(1985),‘모닥불’(1989),‘그대에게 가고 싶다’(1991),‘외롭고 높고 쓸쓸한’(1994),‘그리운 여우’(1997),‘바닷가 우체국’(1999),‘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2001) 등의 시집과 ‘연어’(1996),‘짜장면’ 등 어른을 위한 동화집, 산문집 ‘외로울 때는 외로워하자’(1998), 동시집 ‘나무잎사귀 뒤쪽마을’(2007년) 등이 있다.
  • ‘미네르바 정체 암시’ 글 전문

     21일 인터넷 경제 대통령 ‘미네르바’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네티즌의 글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날 새벽 2시쯤 포털사이트 다음의 논쟁 사이트인 아고라에 ‘read me’란 필명의 네티즌은 “‘미네르바’는 이름이 널리 알려진 기업인 K씨”라고 글을 올렸다.  ●다음은 read me가 다음 아고라에 남긴 글의 전문  오늘같은 밤,  겨울의 입구에서 불어오는 시린 바람은  런던의 워털루역 앞 길고 어둡고 지린내나는 지하보도의 벽에  낙서처럼 남겨진 이름 모를 시(詩)를 생각나게 한다.  I am not afraid as I descend,  step by step, leaving behind the salt wind  blowing up the corrugated river...  (우리는 저 암흑으로 내려간다 하더라도 두려워 않으리...) 사실 미네르바 개인에 대해서는 더 이상 글을 안 쓰려 했다.  그런데...  어떤 누구에게서 한밤중 전화가 걸려왔다.  다짜고짜 K란 이름을 아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왜?  극비사항인데... K가 바로 아고라의 미네르바 라는군...    K... 01001011...    모교 동기 중에 그런 이름의 희미한 얼굴이 스쳐갔다.  삼십년도 훨씬 넘은 오래 전의 추억이다.  내 자신 이십여년 넘게 외국생활을 했고,  K 또한 오랫동안 해외에서 일했다는 말을 얼핏 들었다.  아마 런던 시티 어디에선가 마주칠 기회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점심 때면 외로운 이방인이 영란은행 앞 킹 윌리암 거리를 따라 내려와  캐논 거리 코너에 있는 맥도날드에서 다이어트 코크를 빨대로 마시며  진로 소주를 병 째 빨아대던 그 겁없던 시절을 그리워했는지도 모른다.  근처 다이와 보험회사에서 쏟아져 나오는 일본인 젊은 무리들을  동경 반 경멸 반 흘려보며 한국인으로서의 소외감을 잊으려고  로이터 터미널에 빠져들려 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샌드위치 하나 싸들고 런던 브릿지 위에서  남쪽 강변의 미네르바 하우스를 바라보며 미래를 꿈꿨는지도...  내가 워털루 다리 밑 사우드 뱅크의 노점에서 헌 책을 뒤적이고 있을때  K는 사우드와크 다리 양쪽 LIFFE와 FT에서  텔렉스와 컴퓨터와 마이크로필름과 싸우고 있었을 것이다.  런던의 두 에트랑제가 아마 그 시간 테임즈 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십 수년이 또 지나고...  나는 아직도 부(富)란 무엇이냐는 형이상학의 질문에서  수도원의 늙은 유폐자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K는 그동안 대한민국 재계의 유명인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막대한 재력과 그에 걸맞는 막강한 영향력을 휘두를 수 있는  그런 자리에 그가 올라가 있다고 했다.  또 그는 훌륭한 사회활동도 많이 하여 존경받는 기업인이라고 했다.  나는 그를 만나지 못했고 그러지도 않았다.  구태여 그래야 할 이유나 핑계도 없었다.  동창이란 것 외에 우리의 관심이나 특히 처지는 너무나 달랐다.  나는 옛 친구들과 만날 기회를 일부러 피하며 살았지만,  그는 옛 친구들을 만날 시간도 없이 그렇게 쫒기며 살았을 것이다.    그러던 날들...  아고라에서 미네르바의 화신을 만난다.  십 수년 전...  테임즈 강변 사우드와크의 미네르바 하우스를 떠올린다.  아테나의 파르테논을 연상시키기에는  너무나 소비에트적인 현대식 건물과 우중충한 거리.  의미도 모른 채 예쁜 이름이 참 안 어울리는구나 생각했다.  마치 낡은 화력발전소 속에 숨어있는 테이트 모던 미술관처럼  무엇인가 어울리지 않는 것들의 갈등과 타협이 이해할 수 없이 얽혀진  그런 모순의, 그런 도시의, 그런 건축의, 그런 이름 이구나...  라는 느낌을 흘려 버리고 지나갔다.  그런 불가사이의 미네르바를 여기 아고라에서 다시 만난다.  좌절과 희망과 평화와 복수와 수학과 역사가 동시에, 모두,  엄청난 파괴력으로 폭발하는 그의 글을.    K는 이제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 지혜와 용기의 수호신이었다.    삼십여년전 그의 모습을 떠올리려 애써본다.  어린 시절 6년의 긴 시간을 같이 부대끼며 지냈겠지만,  말 한마디 나눠본 기억도 별로 없다.  이른바 명문학교의 얼마 안되는 수의 학생들 사이에서도  그는 너무나 얌전하고 조용한 아이였다.  아마 다른 아이들보다는 나이가 좀 더 많았던지,  좀 더 촌구석에 살았던지,  좀 더 생활이 어려웠던지 (당시는 모두 못살았지만), 아뭏든...  무척 어른스러운 아이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가 아는 K를 미네르바의 암호에서 해독한다.  토끼처럼 유순했던 아이가 어느날 외로운 늑대가 되어 돌아왔다.  비밀의 가면 뒤에서 그러나 화려한 조명 아래서  현란한 검술을 뽐내는 몽테 크리스토 백작...  또는 고탐 시의 억만장자 흑기사 뱃트맨이 어울릴까.  무엇이 그를 정의의 분노에 불타게 했을까.  지금 그 나이와 그 명성에...  뭇 사람들이 선망과 질시를 함께 느껴야 할  지금 그처럼 높은 사회적 경제적 지위에서...  그가 속한 하이 소사이어티의 남들은  탐욕의 절정에서 더 많은 돈 더 많은 힘을 가지기 위해  금력과 권력을 휘둘러 힘없는 자를 탄압하며 갈취하고 있는데,  그는 그 모든 풍요와 안락의 유혹을 내던지고,  그가 말하는 저 아래 천민의 편에 서서 저 아래 천민을 위하여  자기가 그 정점에 앉아 있는 자기 발 아래의 피라미드를 부수고 있다.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정열과 노력으로...  왜?  모든 것을 가져본 자의 한낱 변덕일까?  청년 시절 하지 못한 초로의 때늦은 반항일까?  아니면...  - 슘페터가 말했듯이 -  자본주의 시장경제 진화의 극대점에서 드디어  마르크스적 사회주의의 이상치에 도달했기 때문일까?  체제 내적 모순의 변증법적 완성일까?  자기 자신을 불살라 없애는 생산적 에로스의 충동일까?  생명의 원죄를 드디어 깨달은 종교적 속죄 의식일까?  아니면... 저 멀리 아마존 숲 속 한 마리 나비의 날개 짓이 슈퍼 컴퓨터 미네르바의 프로그램에 삑. 삑.. 삑...치명적인 버그를 일으키기라도 했단 말일까?    왜 K는 자기가 있는 이너서클의 고리를 스스로 끊으려 할까?    70년대 폭압과 혼돈의 대학시절,  민주와 자유의 선구적 외침 속에서 나는 K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다.  아마 그의 이상주의는 철저한 현실주의 밑에 가려져 있었을 것이다.  아마 그는 나와 같이 영원히 무능한 회색인은 아니었을 것이다.  삼십여년의 세월이 지난 후 이제, 우리의 아이들이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나이가 된 이제, K는 미네르바가 되어 돌아왔다.    우리는 중학입시를 경험한 세대이다.    나는 국민학생의 - 당시에는 국민학교라 불렀다 - 어린 나이에  밤 12시까지 중학교 입학시험 준비에 시달리는 내 또래 소녀의 어두운 포토 리포르타쥬를, 어른들이 보는 신동아에서 읽은 적이 있다...  때는 바야흐로 비틀즈와 월남전과 두브체크와 꽁방디를 거쳐 오일쇼크와 검은구월단과 아라파트와 바더 마인호프와 그리고 딥퍼플과 마리화나가 대변하는 해방의 시대였다.  그러나 대한민국이라는 식민주의 사회의 이른바 자유경쟁은 우리를 능력 껏 뛰게 해주는 자유가 아니라 발을 얽맨 노예의 사슬이었고 시험은 우리에게서 상상과 비판을 박탈하는 강제노동이었다.  차라리 군사교육 교련은 운동장에 나와 공기를 마시고 동무들과 장난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감옥은 오히려 자유에의 투지를 키우는 장소이며 전체주의는 내일에의 희망을 지울 수 없다.  우리들의 작은 꿈, 커서 어른이 되면 좋은 나라 만들거야...  우리의 아이들이 이런 지옥같은 세상에서 살게 하지 않을 거라고.  전쟁도 없고 독재도 없는 나라,  미군 트럭 뒤를 쫒아 뛰며 지아이에게 기브 미 껌,  쵸콜렛 냠냠 손 내밀지 않는 나라,  저 하늘에도 슬픔이 영화 속의 이윤복 같은 어린이가 없는 나라,  언젠가 우리는 그런 나라 만들어 행복하게 살거야 라고.    우리 세대가 지난 삼십여년간 이룬 것은 그러나 어린 시절의 꿈나라가 아니었다.  더 살벌한 경쟁과 더 잔인한 교육과, 더 오만하고 더 탐욕스런 부자들과,  더 가난하고 더 불쌍해진 아이들과 노인들이, 아파트라 불리우는 콩크리트와 플라스틱의 쓰레기 속에서 생존의 무자비한 쳇바퀴를 돌리고 있는 변태의 사회.  정치인들은 더 추해졌으며, 공직자들은 더 썩었으며,그 부정과 부패를 교활히 감추기 위해 온갖 위선적이고 기만적인 법과 규제와 관습과 편견이  도저히 풀 수 없는 고르디아스의 매듭처럼 인간적인 사회의 발전을 얽어맨 그런 세상.  어느날 삼십년간 잊어왔던 내 모습을 봤을 때 거울 앞에 서있는 것은 비겁하고 무식한 돼지였다.    누구를 위해서 우리는 살아왔나... 과연 무엇을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좋은 세상을 남겨주겠다는 거짓 희망과 거짓 지식으로 우리 자신을 속여왔다.  현실주의의 미명 아래 힘을 휘두르는 자에게 아부하고 높은 자에게 가까이 붙기 위해 그들에게 조공을 바치며 그들의 권위와 폭정을 강화시키는 것이  우리 모두를 노예사회에 종속시킴을 뻔히 알면서도, 마치 그것이 나라 사랑이요 나라 발전에 이바지함이며 장차 우리 아이들에게 남겨줄 유산이라 믿으려 해왔다.  그러나 나의 애국은 나의 가장 탐욕스런 이기일 뿐이었다.  나라의 성장은 내 신분상승과 재산형성의 핑계였을 뿐이었다.  우리가 만들었노라고 자랑스러이 보이고 싶어한 이 사회는 결국 거대한 분뇨 덩어리였다.    불행하게도 개인의 부의 총합은 국가의 부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개인의 부란 더해질 수 있는 어떤 스칼라 량(量)이 아니며, 그것을 더하려는 행위 자체가 궤변이다.  - 플라톤, 데카르트, 로크, 케네 -    미네르바는 오늘 나를 거울 앞에 서게 한다.  거울 앞에 서있는 모습은 미네르바이다.  나는 삼십년전으로 돌아가 그의 이름을 불러본다.    K...  넌 2반이었지, 이과반.  담임이 오래 전 돌아가신 수학 선생님...  난 문과반이었지만 제일 좋아하던 분이었지.  제일 좋아하던 과목이었고...  넌 기억나니, 그 시절이?  * * *  이것이 내가 아는 미네르바이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가장 비밀한 곳에서 들려오는 소문이다.  미네르바가 노란 토끼의 미래를 이곳에 예언해야 했듯이  나는 미네르바의 과거를 이곳에 증언한다.  왜?  미네르바의 현재는 판도라의 상자임을 알려주기 위해서.    만일 미네르바의 신분이 이 정권에 의해 폭로된다면, 그것은 바로 이명박 강만수와 그 수하 한나라당이 내세워왔던 모든 정치 경제 사회 데올로기가 그 순간 몰락하며,이 정권 자체가 파멸의 헤어날 수 없는 소용돌이에 빠져버리게 된다는 사실을 말한다.  왜?  K는 이 정권의 존립이유와 권력유지의 동인으로 삼았던 1% 상위층 중의 상위에 속하는 0.1% 극상위층이기 때문이다.  극상위층의 대표적인 인물 K가 미네르바의 필명으로 일부 상위층에게 특혜를 줌으로써 경제를 살리겠다는 수탈주의 정책은 정책이 아니라 완전한 개.사기이며 날.강도질임을 증명하고 있다.  따라서 그런 이데올로기의 정강 위에 세워진 한나라당 세력의 정치적 존재 자체는 허구일 뿐 아니라 국민 전체와 국가에 대한 죄악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절대왕조와 중금주의의 야합에 불과한 소위 공급주의 친기업정책,  무한경쟁 약탈경제를 내세운 시대착오적 신자유주의,  교육의 상업화와 룸펜 부르조아지들의 천박한 귀족화,  복지와 후생과 군비의 감소,  그에 따른 국론의 분열과 국력과 국방의 쇠퇴,  실용주의를 빙자한 맹목적이고 고립적인 사대주의,  게다가 오만한 독재와 언론의 독점...  이 모든 것은 국가 파괴를 구성하는 죄목일 뿐이다.    소망교회 장로정권이 절대 충성과 복종을 맹세했던 돈의 신(神)들 중에서도  가장 풍요하고 가장 지혜로운 신 미네르바가 나를 향한 너희의 거짓 예배는 신성모독일 뿐이라며 분노한다.  너희의 주인인 0.1% 부자는 너희들 아랫 것 0.9% 졸부들의 패악한 정치를 부정한다.  너희가 경제를 빙자하여 국민에게서 강탈한 장물들을 나에게 뇌물로 바치려들지 말라. 그것은 나를 위함이 아니며, 기업가를 위함도 노동자를 위함도 국부를 위함도 국민을 위함도 아니며, 다만 국가를 욕되게 함이라.    기회주의 기득권자들이 국민을 경쟁의 구렁텅이로 몰아가서 그들이 영구독점하는 시장의 노예로 만들기 위해 내세울 그 누구보다도 완벽하며 이상적인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얼굴 K,  일류학교 일류직장 일류기업의 일류코스를 모두 밟은 초글로벌 리더 최고선진 CEO의 얼굴인 K는 이제 기생충 계급의 일류선진국 데마고지가 숨기고 있는 음모를 폭로하기 위해 얼굴 없는 미네르바로 돌아왔다.  이 정권이 미네르바의 가면을 벗기려 함은 이 정권 스스로의 손으로 아포칼립스 제7의 봉인을 뜯어 한 때 마리 앙뜨와네트의 가증스런 무식을 단두했던 그 시퍼런 날이 정권의 목 위에 떨어지도록 자초하는 짓이다.    그러므로 이 정권이 택할 길은 오직 하나...  미네르바와 국민들 앞에서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는 것이다.  무조건 잘못했으니 살려만 달라고 무릎 꿇고 애원하는 것이다.  오만과 아집이 과연 목숨보다도 소중하지는 않겠지.  국민의 안녕과 따라서 정권의 생명이라도 부지하려면  이명박과 강만수는 국가의 부도를 맞기 전에 정권의 부도를 자백해야 한다.  숙주(宿主)가 죽는다면 기생충도 따라 죽어야 된다는 상식 쯤은 물론 알고 있겠지.  이 정권의 추종자들이 자기 생존의 본능까지 버릴 정도로 최소한의 이성 마저 잃고, 감히 미네르바와 국민들에게 대항하리라고 상상할 수 없지만...  그래도 소망교회 이명박 강만수 광신장로들이 성서의 억지해석을 바탕으로 패륜목사들의 꾐에 혹하여 운명을 그르칠까봐 조금 염려스럽기는 하다.    그러나 나는 이 사악하고 탐욕한 장로정권의 자멸에의 충동을 구태여 막으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A Dieu!    출처 - 다음 아고라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396246&hisBbsId=best&pageIndex=7&sortKey=regDate&limitDate=-30&lastLimitDate= 인터넷서울신문 최영훈기자 taiji@seoul.co.kr
  • 시행 두달 성범죄예방 전자발찌 관제센터 가보니…

    시행 두달 성범죄예방 전자발찌 관제센터 가보니…

    지난 10일 오전 11시41분. 서울 휘경동에 있는 서울보호관찰소 위치추적 중앙관제센터의 위치추적장치(전자발찌) 관제 모니터에 경보 창이 뜨면서 노란 불이 들어왔다. 김모씨의 전자발찌가 휴대용 추적장치의 추적가능 거리를 벗어난 것. 관제요원이 즉시 전화를 걸자 김씨의 여동생이 받아 김씨가 슈퍼마켓에 갔다고 했고, 관제센터는 김씨의 전담 보호관찰관에게 이를 알렸다. 다행히 전자발찌에 진동 경고음이 울린 사실을 알아챈 김씨는 곧 집에 돌아왔다. 11일 찾은 관제센터의 대형 모니터에는 전자발찌를 부착한 성범죄 전과자 72명의 현재 위치가 2~3분 간격으로 점으로 표시됐다. 전자발찌에서 전파를 쏘아올리고 위성에서 이를 받아 다시 관제센터로 보내는 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45초. 오차 범위도 10m 이내인 데다 지하나 건물 안 등 위성 전파가 잘 닿지 않는 곳에서는 다른 위치추적방식으로 자동전환되기 때문에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이 고스란히 감시망에 잡혔다. 박준재 관제센터장은 “지도를 1000배까지 확대해 위치를 정확히 확인할 수 있고, 특정 지역과 시간대를 정해 집중적으로 위치 이동을 확인하는 것도 가능하다.”면서 “요일별로 이동경로 색깔을 다르게 하는 등 위치추적 자료를 축적해 이들의 행동 양태를 분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72명 위치 2~3분 간격으로 파악 관제센터에서는 전자발찌 부착자들의 이동경로를 24시간 추적하는 동시에 준수사항 위반에 대해서도 1차적으로 조치한다. 부착자들이 준수사항을 어기면 울리는 위치추적 경보는 모두 63종으로 경보 수위는 위험·주의·참고·기타 순으로 높다. 출입 및 접근금지 조치를 어기면 가장 높은 위험 경보가 울리는데, 출입금지 지역은 법원이 범죄자의 범행 대상 및 수법 등을 감안해 정하고 접근금지 지역은 주로 피해자의 집, 학교, 직장 등이다. 출입·접근금지 구역 주변 수십m안으로만 진입해도 위험 경보가 울린다. 관제센터 및 담당 보호관찰관이 제재해도 준수사항을 계속 위반할 경우에는 가석방이나 집행유예 취소를 신청하게 된다. ●출동기동성 떨어져 사전예방 어려워 실제 안산에 사는 A씨는 수차례 휴대용 추적장치를 놓고 외출하고, 배터리가 다 돼 꺼지도록 방치하는 등 준수사항을 지속적으로 위반해 관찰관이 소환조사하기에 이르렀다. 담당 관찰관은 지적 장애를 가지고 있는 A씨가 전자발찌 부착 상태를 유지하기 힘들다고 보고 보호관찰심사위원회에 가석방 취소를 신청했고, 심사위가 이를 받아들여 A씨는 다시 수감됐다. 전자발찌 부착 불과 1주일만의 일이었다. 최근에는 전자발찌를 차고서도 또다시 성범죄를 저지른 배모(29)씨의 범행을 밝혀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등 위치추적장치가 일부 효과를 보고 있지만, 출동 기동성 등 측면에서는 아직 보완할 부분이 많다. 전담 보호관찰관이 평소 부착자들의 행태를 보고 위험이 감지될 경우에는 사전에 경찰 지구대에 협조 요청을 해놓지만, 아직 공식적인 협조체계는 구축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위치추적 경보가 울리고 보호관찰관이 직접 출동하거나 이를 다시 경찰에 알려 도움을 청하기까지 다소 시간이 소요돼 불과 몇 분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성폭력 범죄를 막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박 센터장은 “위험 경보가 울렸을 때 인근 지구대 경찰이 곧바로 출동하게 하는 등 조만간 경찰과 협조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현진오의 꽃따라 산따라] (37) 전남 신안군 가거도

    [현진오의 꽃따라 산따라] (37) 전남 신안군 가거도

    가거도는 태평양 물결이 가장 먼저 닿는 국토의 최서남단에 자리잡은 섬이다. 목포에서 직선거리로 145㎞, 뱃길로 230여㎞나 떨어져 있어 쾌속선으로도 4시간이나 걸린다. 섬 중앙에서 북쪽으로 조금 벗어난 곳에 독실산이 솟아 있는데 해발 639m로 신안군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해안 대부분은 바위벼랑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민 500여명이 세 마을에 나뉘어 살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인들이 제멋대로 소흑산도라고 바꿔 부르기도 했다. 행정구역은 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면 가거도리다. ●굴거리나무·구실잣밤나무 등 700여종 자생 가거도에는 700여 종류의 식물이 산다. 따뜻한 기온 덕에 굴거리나무, 구실잣밤나무, 동백나무, 붉가시나무, 생달나무, 센달나무, 참식나무, 황칠나무, 후박나무 같은 상록 큰키나무들이 많이 자란다. 특히 후박나무는 한약재로 사용되는 껍질을 채취하기 위해 재배까지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후박나무 껍질의 70%쯤이 이곳에서 난다. 가거도의 상록수들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끌 만한 것은 푸른가막살나무다. 식물을 전공하는 이들에게도 이름조차 생소할 정도로 귀한 나무다. 일본에만 자생하는 나무로 알려져 오다 근래에 이곳에서 발견됐다. 우리나라에 자라는 가막살나무속(屬) 식물들 가운데 유일한 상록수로 키가 2~4m 높이로 자란다. 상록수이기 때문에 푸른가막살나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맘 때 광택이 나는 둥근 잎 사이에서 새빨간 열매들이 익어 간다. 참식나무도 이맘 때 열매가 익어 가는 상록수다. 제주도와 남해안에 흔하게 자라는 큰키나무다. 봄철에 아래로 처친 채 돋는 누런 새싹이 예쁘다. 이 나무의 열매는 보통 빨갛게 익지만 가거도에서는 드물게 노란 열매를 단 것들도 발견된다. 참식나무 열매의 변이인 셈인데, 우리나라에서는 기록된 적이 없다. 상록 큰키나무인 황칠나무의 열매도 익어 가는 시기인데, 이 나무의 수액은 노란 색깔 칠의 재료가 된다. 이밖에도 남오미자, 댕댕이덩굴, 인동, 청미래덩굴 같은 덩굴나무들에 달린 열매들도 볼 수 있다. 며느리배꼽, 배풍등, 알꽈리 같은 풀들도 꽃보다 아름다운 열매를 달고 있다. 아직까지 꽃이 핀 식물들도 많다. 감국, 갯괴불주머니, 갯쑥부쟁이, 괭이밥, 산국, 이고들빼기가 피어 있다. 갯괴불주머니는 4월부터 꽃이 피는 봄꽃식물이지만 11월 하순에도 꽃을 피운 개체들을 만날 수 있다. 나무에 핀 꽃들도 있는데, 상록성 덩굴나무인 보리밥나무와 송악이 한창 꽃을 피우고 있다. 겨울딸기는 이맘 때 꽃과 열매를 함께 볼 수 있다. 꽃이 핀 개체가 있는가 하면 이미 빨간 열매를 달고 있는 것도 있다. 겨울에 열매가 익는 습성에서 우리말 이름이 붙여졌는데,9~10월에 꽃이 펴 11월부터 열매가 익기 시작한다. 풀처럼 작은 나무이므로 눈여겨 찾아야 하는 식물이지만 워낙 많아서 쉽게 눈에 띈다. 가거도에서 자라는 특별한 식물 가운데 하나가 곤달비다. 곰취와 비슷하지만 꽃차례에 달리는 혀 모양 꽃의 수가 적은 특징으로 구분된다. 이곳과 흑산도에서만 자라는 희귀식물이다. 몇 해 전에 이곳에서 나도생강, 섬다래, 섬사철란, 수정란풀, 자리공, 호자나무 등을 발견해 기뻐한 적이 있다. 이들 모두 이전까지는 가거도에서 발견되지 않았던 것들로 가거도 식물목록에 추가될 귀한 것들이다. 섬다래는 그동안 제주도에만 드물게 자라는 것으로 알려져 온 희귀 덩굴나무이지만 이곳에서도 큰 군락을 지어 자라고 있다. 자생 자리공의 발견도 의의가 있는데, 몇몇 학자들이 귀화식물로 취급하기도 하는 식물의 자생지를 발견한 것이기 때문이다. ●청정바다·무공해 섬 이런 희귀식물들보다 더욱 진귀한 가거도 식물은 나도풍란이다. 대엽풍란이라고도 부르는 여러해살이풀로 여름에 아름다운 꽃이 핀다. 꽃이아름답고 잎도 상록성으로 관상가치가 높기 때문에 자생지에서 무차별 채취돼 절멸상태에 이른 대표적인 멸종위기 식물이다. 환경부가 법으로 보호하고 있는 8종의 멸종위기 야생식물 1급 가운데 하나다.2000년대 초에 우여곡절 끝에 이곳에서 발견하여 몇해 동안 모니터링을 하며 연구해 왔는데, 결국 불법채취에 의해 사라지고 말았다. 가거도 바다는 말 그대로 청정바다다. 오염원이 없고 양식장도 없으므로 이곳에서 맛보는 생선회는 모두 무공해 자연산이다. 이맘 때 꽃도 좋고, 열매도 좋고, 횟감도 좋은 곳이 가거도 외에 또 어디 있으랴. 동북아식물연구소장
  •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42) 조선의 대표술집, 선술집과 색주가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42) 조선의 대표술집, 선술집과 색주가

    술은 유쾌한 것이다. 아마 인류의 발명품 중 최대의 발명품을 꼽으라면, 술이 반드시 들어갈 것이다. 이런 술이니만큼 술에 대한 문헌은 적지 않다. 한데 여기에도 구멍은 있다. 술은 집에서도 마시지만, 대개는 술집에서 마신다. 술집은 오로지 술 마시는 데 집중하기 위한 음주의 전용공간인 것이다. 술집에 대한 문헌은 참으로 드물다. 우리가 만약 고려시대의 술집이나 조선시대의 술집에 대해 무언가 알고자 한다면, 막막함을 느낄 것이다. 그러니 신윤복의 ‘선술집’(그림1)과 같은 눈으로 술집을 보여주는 그림이야말로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조선시대 술집 그림으로 단 하나 남은 것이니, 그만큼 소중한 것이다. 어디 그림을 감상해 보자. 그림의 정중앙의 붉은 옷에다 노란 초립을 쓴 사내는 젓가락을 들고 무언가를 집으려 하고 있다. 이 사람은 별감이다. 별감은 전에 설명한 바 있는데, 액정서란 관청에 소속되어 궁중의 열쇠, 임금의 심부름 따위를 맡는 사람이다. 이들이 조선후기 기방의 운영자인 기부(妓夫)가 되고, 또 서울의 연예인과 유흥계를 장악한 사람이라는 것도 말한 바 있다. 별감이 술집에 나타난 것도 그들이 먹고 마시고 놀고 하는 계통을 장악한 축이기 때문이다. 별감 옆에 사내 둘이 있는데, 이들의 복색만으로는 어떤 사람인지 알 길이 없다. 그림 맨 오른쪽의 사내는 약간 별스러운 옷을 입고 있는데, 이 사람은 의금부 나장이다. 이 사내가 걸치고 있는 검은 색 옷은 까치등거리 또는 더그레라고 하고, 쓰고 있는 뾰족한 모자는 깔때기라고 한다. 더그레와 깔때기는 오직 의금부 나장만이 입는 옷이다. 의금부는 왕명을 받아 형장(刑杖)을 써서 국사범을 문초하는 권력기관이었다. 나장은 다른 관청에도 물론 있지만, 의금부가 원래 권세 있는 곳이라, 의금부 나장만은 특별한 대우를 받았던 것이다. 별감을 위시한 다섯 사내는 모두 술을 마시러 온 술꾼들이다. 그런데 그림 맨 왼쪽의 맨상투 차림의 총각은 술꾼이 아니다. ‘중노미’라 부르는 술집에서 일하는 젊은 남자다. 술잔을 나르거나 아궁이에 불을 때거나 하는 허드렛일을 한다. ●조선 정조시대 금주령 풀리자 술집 번창 이 술집 그림에서 희한한 것은 술을 따르는 주모만 앉아 있을 뿐, 아무도 앉아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서서 마시는 집을 선술집이라고 한다. 요즘 선술집이라면, 대개 부담없이 마실 수 있는 싼 술집이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 선술집에서는 모두 서서 마시기에 선술집인 것이다. 조선시대 문화에 대해 해박했던 김화진 선생은 ‘한국의 풍토와 인물’이란 책에서 선술집에 대해 소상하게 언급하고 있는데, 이에 의하면 선술집에서는 백 잔을 마셔도 꼭 서서 마시고 앉지 못하였다고 한다. 만약 앉아서 마시는 사람이 있다면, 다른 술꾼들이 “점잖은 여러 손님이 서서 마시는데, 버르장머리 없이 주저앉았담. 그 발칙한 놈을 집어내라.”고 시비를 걸었고, 큰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고 한다. 이런 까닭에 위 그림에는 아무도 앉아 있지 않다. 선술집에서는 술 한 잔을 사면 안주 하나를 끼워준다. 요사이 술집은 술과 안주를 각각 셈하지만 조선시대 선술집은 술값에 안주가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해가 서산에 기울면 술꾼들은 목이 마르다. 선술집을 찾아 들면서 젓가락 통에서 젓가락을 집어 들고 너비아니·날돼지고기·삶은 돼지고기·편육 따위의 진안주를 집어 석쇠 위에 놓고 주모가 앉아 있는 목로 앞으로 와서 ‘두 잔 주어’ 하면, 주모는 술단지에서 국이(국자 비슷하게 생긴 것)로 잔수대로 떠서 양푼에 붓는다. 그리고 그 양푼을 물이 끓고 있는 솥에 넣어 찬기운을 없앤다. 냉기를 사라지게 한다고 하여 이것을 ‘거냉(去冷)’이라고 한다. 술값 계산은 술꾼이 잔을 입에서 뗄 때에 중노미가 안주접시를 목로에 놓으면서, “몇 잔 안주요.” 하고 잔 수를 계산해 준다. 이런 술집이 생긴 것은 조선조 정조 때부터다. 그 이전에도 술집이 없었던 것이 아닌데, 정조 때부터 생겼다고 하는 것은 왜인가. 정조 바로 앞의 임금인 영조는 1724년에 즉위하여 1776년까지 무려 53년 동안 왕위에 있었다. 올해가 2008년이니까 1956년부터 왕위에 있었다고 생각해 보라. 장구한 세월이 아닌가. 한데 반세기를 넘도록 영조가 양보 없이 지켜온 정책이 금주정책이었다. 아무도 반세기 동안 술을 마실 수 없었고, 술집은 모두 문을 닫아야했다. 이 혹독한 금주령은 정조가 왕이 되면서 비로소 풀렸고, 서울 시내에 술집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던 것이니, 선술집 역시 정조 시대 이후 번창하게 된 것이다. 정조가 믿고 의지했던 좌의정 채제공은 이 술집의 번창에 대해 이렇게 증언했다. 비록 수십 년 전의 일을 말하더라도, 술집의 술안주는 김치와 자반에 불과할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근래에 백성의 습속이 점차 교묘해지면서, 현방(懸房)의 쇠고기나 시전(市廛)의 생선은 태반이 술안주로 소비됩니다. 맛난 안주와 국이 술단지 사이에 어지러이 널려 있으니,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젊은 사람도 안주를 탐하느라, 삼삼오오 어울려 술을 사서 마시니, 이 때문에 빚을 지고 자신을 망치는 자가 부지기수입니다. 시전의 반찬거리의 값이 날이 갈수록 뛰어오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술집에서 안주를 경쟁하듯 개발하여 내 놓는 바람에 시전에서 파는 쇠고기와 생선의 태반이 술안주가 되고, 술안주를 탐하느라 젊은이들이 빚을 지는 경우까지 있다고 하니, 정조 시대 술집의 성황을 알 만하다. 술집은 선술집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외주점이란 것도 있었다. 이 술집은 술손님이 찾아가면 주인 여자는 손님을 직접 만나지 않고, 말로 주문을 하고 술상을 내보내고 하여 주인과 손님이 내외를 하기에 ‘내외주점’이란 이름이 붙은 것이다. 선술집보다는 조금 고급한 집이다. ●색주가는 손님들에게 바가지 씌우기 일쑤 이보다 낮은 수준의 술집이 있는데, 색주가(色酒家)가 그것이다. 색주가는 여자가 나와서 노래를 하고 아양을 떨고 술을 파는 곳이다. 그림(2)는 김준근의 ‘색주가 모양’이다. 술상 앞에 짧은 갓을 쓴 남자 셋이 앉아 있고, 젊은 여자가 잔에 술을 따르고 있다. 이 그림만으로는 색주가의 특징이 드러나지 않는다. 아마 그림에 ‘색주가 모양’이라는 제목이 없다면 색주가인지 아닌지 모를 것이다. 색주가의 여자는 기생이 아니다. 기생은 기방에 있는 법이고, 기방은 제일 고급 술집이었다. 기생은 가곡이나 시조를 부르지만, 색주가의 여자는 오직 잡가만 부른다. 색주가는 여자가 있다 뿐이지 안주도 술도 맛없는 곳으로 손님들에게 바가지를 씌우기 일쑤였다고 한다. 색주가는 홍제원에 집단적으로 있었고, 뒤에 이것을 본떠 남대문 밖 잰배(紫巖)와 서울 파고다 공원 뒤와 동구안(授恩洞) 서편 뒷골목에 집단으로 있었다고 한다. 물론 잰배 등의 곳은 언제 생겼는지는 미상이다. 김화진에 의하면, 색주가는 밖에서 보면 금방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색주가의 문 앞에는 술을 거르는 도구인 용수에 갓모(비가 올 때 갓 위에 걸어 쓰는 모자)를 씌워 긴 나무에 꽂아 세우고, 그 옆에 자그마한 등을 달아놓는다. 낮에는 나무에 용수 씌운 것으로 표시를 한다. 집집이 긴 나무를 세운 것과 등불을 꽂아두었으니, 색주가가 있는 동네는 밤이 되면 반짝반짝 빛이 나는 독특한 분위기의 동네가 되었던 것이다. 해가 지고 거리에 등불이 하나 둘 켜지면 화장을 짙게 한 여자들이 나와서 잡가를 부르면서 지나는 행인을 붙잡는다. “이 집은 술맛도 좋고 색시도 예쁘니 한 잔 잡숫고 가시지요.” 하기도 하고, 혹 손을 끌어 잡기도 하였다. 술을 좋아하는 분들은 알리라. 이 풍경은 불과 십 수 년 전까지 서울과 부산 대구 등 대도시의 밤에도 볼 수 있었다는 것을. 없어져서 아쉽냐고? 아니, 그 여성들의 신산(辛酸)했을 삶을 생각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한국의 미래-위기를 희망으로] 히라노의 키위 성공신화

    [한국의 미래-위기를 희망으로] 히라노의 키위 성공신화

    일본농업은 그간 한국농업의 발전모델 역할을 톡톡히 했다. 특히 시즈오카현은 일본에서도 농가소득이 가장 높은 지역으로 꼽힌다. 최근 한국 벤처농업인단 51명은 한국벤처농업대학과 자매결연한 시즈오카현의 선진 농가들을 탐방해 미래 한국농업의 돌파구를 모색했다. 서울신문 취재팀은 이 일본농업 벤치마킹 프로그램에 동행, 일본농업 경쟁력의 원천과 실상을 살펴 봤다. |가케가와(일본 시즈오카현) 류지영특파원|도쿄에서 서쪽으로 220㎞ 떨어진 시즈오카현의 작은 시골마을 가케가와. 우리네 농촌마을과 비슷한 이 곳에 일본 최초의 키위농 히라노 마사토시(54)의 ‘키위 푸르츠 재팬’ 농장(10㏊ 규모)이 자리잡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 80여종의 신품종 키위를 개발해 세계 키위 농업의 ‘교과서’로 불린다. 벗겨진 머리에 헐렁한 청바지 차림의 평범해 보이는 ‘촌부’인 그가 어떻게 ‘키위 신화’를 써 갈 수 있었을까. ●수많은 품종교배로 ‘단맛 키위’ 개발 만약 하라노가 없었다면 세상은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지금처럼 저렴한 가격으로 다양한 종류의 키위를 맛보기 어려웠을 것이다. 더 나아가 키위라는 과일 자체가 대중화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과일 중 하나인 ‘골드 키위’는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1975년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농업 연수를 받던 때였어요. 당시 미국에 뉴질랜드산 키위가 처음 선을 보였어요. 그 때 일본에서는 키위가 무엇인지도 모르던 시절이었지요. 연수 중 우연히 키위를 맛본 뒤 ‘이것이 세계 과수농업의 미래가 될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어 귀국하자마자 곧바로 농사를 시작했죠.” 하라노가 본격적인 키위 개량에 나선 것은 1980년대 후반. 키위라고는 뉴질랜드산 그린 키위(과육이 초록색인 키위)가 전부라고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그린 키위의 단점인 신맛을 보완하고자 혼자서 육종학·식물학 등을 공부하다 뜻밖의 단서를 찾았다. “세계 여러 나라의 육종학 서적을 읽다 보니 키위의 조상인 개다래가 쥐라기(1억 9000만년 전부터 5000만년가량 존재했던 시기)부터 시베리아 이남 지역에 광범위하게 분포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베트남과 미얀마는 물론, 중국, 한국, 일본에도 뿌리내리고 있었죠. 이 사실을 알고는 아시아 각국에서 구할 수 있는 품종들을 모두 모은 뒤 하나씩 교배해 신품종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과육이 노란 중국산 키위와 교배한 종들에서 공통적으로 단맛이 강해졌다는 사실을 알아 냈죠.” 노란색 키위가 개발됐다는 소문은 당시 그린 키위의 경쟁력 강화 방안을 고민하던 뉴질랜드에도 알려졌다. 곧바로 농무부에서 1990년 그의 농장을 방문해 신품종 개발 방식을 벤치마킹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태어난 것이 바로 골드 키위. 히라노는 신품종 탄생의 1등 공신이었다. ●1개당 1만 7000원짜리 없어 못팔아 “그 때가 인연이 돼 지금도 뉴질랜드 연구진들과는 키위 관련 교류를 계속하고 있어요. 재미있게도 그 뒤부터 세계 각국에서 농장의 신품종 씨앗을 훔쳐 가려는 ‘종자 사냥꾼’들이 이곳을 찾고 있어요. 보통은 관광객으로 위장해 ‘한 번 맛보겠다.’며 신품종 키위를 입 속에 넣은 뒤 과육을 씹지 않고 곧바로 농장을 빠져 나가요. 씨를 가져 가려는 심산이죠. 저한테 부탁하면 그냥 받아갈 수도 있는데 말이죠.” “최근에 새로 개발한 키위인데요. 다른 키위와 달리 이 키위는 과육이 빨갛습니다. 수량이 적어 인터넷 판매만 하고 있는데 맛이 참 개운해요.” 그가 새로 건네 준 알이 작은 키위를 먹어 보니 맛이 달면서도 신선했다. 과육이 붉은색을 띤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홍선’(紅鮮). 앞으로 ‘레드 키위’로 불리게 될 수도 있는 이 품종의 개당 가격은 1600엔(약 1만 7200원)이다. 그런데도 수요가 몰려 인터넷에서 한정 판매하고 있다. 현재 이런 식으로 그가 개발한 키위 품종만 해도 80종이 넘는다. 상업화에 성공한 10여종은 현재 전 세계를 상대로 특허를 출원 중이다. “30년 넘게 ‘이게 내 천직’이라고 생각하고 꾸준히 일본 실정에 맞는 품종을 찾기 위해 연구하다 보니 지금처럼 된 것이죠. 자기 일에 주체성을 갖고 연구하는 자세야말로 고부가가치 농업의 기본이 아닐까 합니다.” superryu@seoul.co.kr
  • 선앤문 분수광장 23일 개장

    선앤문 분수광장 23일 개장

    양천구에 해와 달을 재미있게 표현한 조각과 초대형 분수대가 들어선다. 22일 양천구에 따르면 제물포로 경인지하차도 상부 녹지대(목1동 919의1)에 조성된 ‘선앤문(SUN&MOON)분수광장’이 23일 첫선을 보인다. 이는 주민들을 위한 조각 분수공원으로 쉼터와 자연체험장 역할을 하게 된다.10억원을 들여 4870㎡(1475평)에 분수 길이만 140m에 이른다. 특히 분수광장의 동쪽에는 ‘태양’을 형상화한 빨간 조형물, 서쪽에는 달을 형상화한 노란 조형물이 자리해 분수의 아름다움을 더했다. 또 가운데에는 해바라기를 의인화한, 양천구의 캐릭터인 ‘해누리’ 조형물 2개가 나란히 들어서 편리함과 사랑이 가득한 아름다운 도시를 표현했다. 이밖에 동쪽에서 서쪽을 가로지르는 140m의 실개천을 조성, 여름철에는 어린이들이 간단한 물놀이를 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몄다. 추재엽 구청장은 “눈으로만 즐기고 활용하지 못하고 있던 녹지대를 주민들이 자연과 같이 어울리며 활용할 수 있도록 아름다운 분수대를 만들었다.”면서 “앞으로 많은 주민들이 편안히 쉴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잡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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