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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수유 1번지’ 전남 구례

    ‘산수유 1번지’ 전남 구례

    꽃을 보면 눈이 즐겁고 마음이 화사해집니다. 입가에는 보일 듯 말 듯 미소가 번집니다. 어떤 꽃인들 그렇지 않겠습니까마는, 차디찬 겨울을 이겨내고 피어나는 봄꽃의 유혹은 도저히 뿌리칠 수가 없지요. 얼마 전 입적한 법정 스님은 ‘한 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 사람을’이란 저서를 통해 “우리가 꽃을 보고 좋아하는 것은 우리들 마음에 꽃다운 요소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라며 “일이 바쁜 사람들은 한가해서 꽃구경이나 다닌다고 하겠지만, 어딘가에 꽃이 피었다고 일부러 친구와 함께 꽃구경을 떠난다는 것은 진정 꽃다운 일”이라 했습니다. “산에 살면 산을 닮고 강에 살면 강을 닮는다. 꽃을 가까이하면 꽃 같은 삶이 된다.”고도 했지요. 봄꽃들이 흐드러지게 피고 있습니다. 특히 산수유가 그렇습니다. 매화에 내줬던 봄의 전령 자리를 올해 단단히 꿰찬 듯합니다. 섬진강 자락에 기댄 전남 구례군의 마을마다 노란 산수유가 다투어 피었습니다. 산수유 앞에 서서 고민도 털어 놓고, 세상 사는 이야기도 나눠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꽃으로부터 많은 위로와 가르침을 받게 되지 않을까요. ●앞마당·돌담길·논두렁 온통 꽃구름 산수유는 세 번 꽃을 틔운다. 먼저 꽃망울이 벌어지고, 20여개의 샛노란 꽃잎이 돋아난다. 이후 4∼5㎜ 크기의 꽃잎이 다시 터지면서 하얀 꽃술이 드러나 왕관 모양을 만든다. 열흘 붉은 꽃 없다지만, 산수유가 한 달 가까이 노란 꽃구름을 피워 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봄물에 방게 기어 나오듯, 고샅길과 개울가 곳곳에서 조금씩 얼굴을 내밀던 산수유가 산동면 반곡마을께 이르자 노란빛 선연한 군락을 이루기 시작한다. 3월로 들어서자마자 꽃망울을 터뜨린 산수유 덕에 농가 앞마당과 돌담길, 논두렁이며 산기슭이 온통 꽃구름이다. 게다가 철없이 내린 폭설이 하얀 모자까지 덧씌우며 좀처럼 보기 힘든 빼어난 풍경을 펼쳐 놓았다. 한 관광객은 “흐미, 꽃멀미 나겄소.”라며 벌어진 입을 쉬 다물지 못했다. 반곡마을 위쪽은 국내 최대의 산수유 군락지인 상위마을이다. 꽃망울이 눈과 꽃샘추위 때문에 잔뜩 웅크린 상태. 하지만 따뜻한 훈풍이 보듬기만 하면 금방이라도 팝콘처럼 터질 기세다. 주민들에 따르면 아래 반곡마을과 고도차이는 크지 않지만, 기온차는 제법 커, 이처럼 피는 시기가 다르다는 것. 상위마을 위에 있는 정자 ‘산유정’에 오르면 산수유마을 전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만복대 자락에서 부드럽게 곡선을 그리며 흘러내린 다랑논과 마을 한가운데를 흐르는 개울, 그리고 대숲과 산수유 군락이 어우러져 영락없는 풍경화를 그려낸다. ●마을마다 같고도 다른 풍경 박미연 구례군 문화관광해설사는 마을의 형상에 따라 산수유를 감상하는 맛이 다르다고 했다. “상위마을 산수유가 산 아래 옴팍하니 넓게 들어서 있다면, 현천마을은 제주도의 밭처럼 돌담 안에 빼곡히 들어서 있지요. 달전마을은 길게 옆으로 펼쳐져 있고요.” 계천리의 현천마을은 산수유마을 포스터의 배경이 된 곳이다. 그만큼 ‘사진발’을 잘 받는다. 마을 뒤 견두산은 모양새가 ‘현(玄)’자형이다. 또 마을 뒤로 옥녀봉의 옥녀가 매일 빨래를 했다는 내(川)가 흐르고 있어 현천(玄川)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마을입구의 현계정을 지나면 돌담을 두른 밭고랑마다 산수유꽃이 내려와 외지인을 반긴다. 돌담길은 미로처럼 구불구불 이어지며 시골정취를 한껏 뿜어낸다. 현천마을 산수유의 밑동은 나이가 300년을 넘겼지만, 꽃을 피운 가지의 나이는 60년이 채 안 된다. 1948년 여수·순천사건 때 토벌대가 산수유를 모두 베어버렸기 때문. 그러나 산수유는 다시 가지를 뻗고 꽃을 피우며 생을 이어왔다. 마을 최고의 풍경 포인트는 마을 공동작업장 오른쪽의 산자락. 개울 위 다리를 건너 10여분 올라야 한다. 산수유와 고즈넉한 산골 풍취가 어우러져 선경을 펼쳐낸다. 근동의 사진작가들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다. 현천마을에서 19번 국도를 타고 남원 쪽으로 5분 남짓 가다 보면 산수유 시목지(始木地)가 있는 계척마을에 닿는다. 근거는 박약하지만, ‘산동’(山洞)이란 지명은 1000년 전 중국 산둥(山東)성의 처녀가 지리산 산골로 시집오면서 가져온 산수유 묘목을 심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계척마을의 산수유 시목(始木)의 수령도 1000년쯤 됐다는 것. ‘할머니 나무’로 불리는 산수유 시목은 세월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지지대에 의지하고 있지만, 여느 젊은 나무 못지않게 해마다 꽃을 활짝 피운다. ‘할아버지 나무’가 있는 달전마을도 잊지 말고 둘러보시라. 고즈넉한 시골 풍경에 더해 아름드리 산수유들이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한껏 드러내고 있다. ●오늘부터 구례 산수유 꽃축제 구례군은 18~21일 산동면 지리산온천지구 일대에서 ‘제12회 구례산수유꽃축제’를 연다. 축제추진위원회는 지난 겨울 유난히 춥고 눈이 많이 내려 꽃봉오리가 예년에 비해 훨씬 화려하고, 선명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산수유꽃길 소달구지·마차타기, 홍염염색 장인과 함께하는 염색체험, 산수유 대형 족욕탕, 산수유꽃길 트레킹 등 산수유와 관련된 건강체험 프로그램이 대폭 확대됐다. 상금 1000만원이 걸린 산수유꽃 디카사진 콘테스트와 전국어린이 사생대회, 산수유 건강 학술세미나 등 다양한 부대행사도 곁들여진다. 디카사진 콘테스트 응모는 축제 홈페이지(www.sansuyu.go.kr)에서 받는다. 전남 영암에서 열릴 예정인 ‘2010년 F1대회’ 홍보관도 마련된다. F1대회에 출전하는 경주용 자동차, 이른바 ‘머신’(Machine)도 실제 전시될 예정이다. (061)780-2727. 글 사진 구례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61) →가는 길:서울에서 자가용을 타고 갈 경우 호남고속도로 전주나들목→17번 국도(남원 방향)→춘향터널→19번 국도(구례 방향)→밤재터널→지리산온천랜드 이정표→좌회전→2㎞ 직진→상위마을 순으로 간다. 대전통영간고속도로를 이용할 경우 함양분기점→88고속도로 남원나들목→19번 국도→상위마을. 구례행 직행버스(4시간 소요)가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하루 6회 운행한다. 기차는 하루 14회. 구례구역에서 내린다. 상위마을까지는 구례공용터미널에서 1시간 간격으로 버스가 다닌다. 구례군청 문화관광과 780-2450. →맛집:구례읍내 영실봉은 갈치조림만 40년 넘게 해 온 집이다. 1인분 8000원. 782-2833. 동아식당은 구례 주민들뿐 아니라 외지 식객들도 알음알음 찾아가는 선술집. 가오리찜과 족발탕이 유명하다. 1만원. 구례터미널 인근에 있다. 782-5474. 3·8장이 서는 날이라면 장터에서 팥칼국수 한그릇 먹어도 좋겠다. 3500원. 010-6861-0639. →잘 곳:읍내에서는 새단장한 온천각이 깔끔하다. 3만~4만원. 782-0021. 화엄사 초입의 한화리조트(1588-2299), 마산면의 전통 한옥 쌍산재(www.ssangsanje.com, 011-635-7115) 등도 ‘강추’할 만하다.
  • 오은선 대장 14좌 완등 장도

    오은선 대장 14좌 완등 장도

    “좀 설레고 긴장되긴 하지만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담담하게 오르겠다.” 여성산악인 오은선(44·블랙야크) 대장은 히말라야 14좌 완등의 마지막 목표인 안나푸르나(8091m) 등정을 위해 8일 인천국제공항에서 네팔 카트만두로 출국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번 등정에 성공하면 오씨는 세계 여성산악인 최초로 히말라야 8000m 14개 봉우리를 모두 올라, 세계 여성 등반사를 새로 쓰게 된다. 노란 개나리를 연상시키는 등산복 차림에 파란 모자를 쓴 오 대장은 “지난해 한 번 갔다 와서 자신 있고 컨디션도 좋다. 꼭 좋은 소식을 전하겠다.”고 덧붙였다. 2006년 시작해 히말라야 8000m급 13개 봉을 이미 오른 오은선은 지난해 10월 안나푸르나 등정에 나섰으나 악천후로 발길을 돌렸다. 오 대장은 오는 25일까지 안나푸르나에 딸린 타르푸출리(5663m)에서 고소 적응 훈련을 한 뒤 다음달 초 안나푸르나에 베이스캠프를 구축할 예정이다. 이어 같은 달 25일을 전후해 버트레스 루트를 통해 안나푸르나에 무산소로 오를 계획이다. 1차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2차로 5월 초, 3차로 5월 중순 재도전한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서울신문 2010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붉은 코끼리/이은선

    [서울신문 2010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붉은 코끼리/이은선

    할머니가 사라졌다. 노인정과 공판장을 지나 경찰서로 뛰어가던 엄마가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뭐라고? 할머니가, 어디? 엄마, 잘 안 들려요! 모퉁이를 돌아서자 팀장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얼결에 여자 화장실로 들어가 재빨리 칸막이를 닫았다. 어느새 전화가 끊어져 있었다. 아침 식사 시간 전부터 기숙사에 와 잔소리를 해대는 팀장과 이러저러한 일들이 겹쳐 오후 두 시가 다 되도록 한 번도 자리에 앉지 못했다. 내친김에 변기 위에 걸터앉아 엄마에게 전화를 걸려는데, 옆구리에 차고 있던 무전기가 울렸다. 곧 리허설을 시작하겠다는 팀장의 목소리였다. 그건 안 됩니다. 코끼리들 상태가 좋질 않아요. 오늘은 무조건 쉬게 해야 합니다. 내가 대답했다. 팀장은 무전기에서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당장 달려오라고 했지만 당장은 가기 싫었다. 무전기의 전원을 끄고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런데 할머니가 어디 가셨다는 거지? 몸도 안 좋으시면서. 엄마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두 시간이 지나서야 삼촌의 이름이 전광판에 떴다. 울고 있던 가족들이 황망히 수골실로 내달렸다. 나는 천천히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삼촌의 유골은 대리석 탁자 위에 새카맣게 탄 못들과 뒤엉켜 있었다. ‘냉각’을 거쳤다고는 하나 아직 열기가 식지 않은 유골이었다. 할머니가 탁자 모서리에 가슴을 짓찧었다. 망연히 서 있던 아버지가 서둘러 할머니를 일으켜 세우려 했을 때, 나는 할머니가 작은 뼛조각 하나를 움켜쥐는 것을 보았다. 탁자 옆에 서 있던 나도 얼른 새카맣게 탄 못 하나를 집어 들었다. 아무도 못 본 건가. 주위를 둘러보니 고모들은 아예 주저앉아 울고 있었다. 내내 울음을 참던 아버지도 할머니를 부둥켜안고 소리 내어 울었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못을 내 몸에 박아두기라도 할 것처럼 그러쥐었다. 출장에서 돌아온 나는 공항에서 곧바로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나를 데리러 온 사촌 동생의 차를 탈 때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었는데도 어쩐지 집으로 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장례식장 앞에서 선뜻 안으로 들어서지 못해 머뭇거리고 있는 나에게 둘째 고모가 내 몫의 상복을 내밀었다. 장례식장 안팎에 삼삼오오 모인 가족들은 삼촌이 왜 죽었을까 답답해했고 삼촌의 동료와 친구들은 경찰서를 오가고 있는 중이었다. 무당이라도 불러 알아볼 수 없을까? 사촌 동생이 불쑥 꺼낸 말이었다. 삼촌의 방에 널브러진 술병들, 불에 탄 이부자리, 종류가 다른 담배꽁초들. 어떤 추측은 가능할 테지만 진실은 아무도 몰랐다. 그날 밤 대체 어떤 일들이 일어났던 것일까.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삼촌은 각기 다른 이유들로 죽고 또 죽었다. 효원 장례식장 국화실에 놓인 영정사진 속 삼촌은 너무나 밝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무릎에 올려놓은 상복이 자꾸 무겁게 느껴졌다. 할머니는 삼촌의 죽음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바로 눈앞에서 삼촌의 시신을 보았다는데도. 거의 녹아내린 새카만 못과 유골을 분리하는 일은 아버지의 몫이었다. 뼈가 상하지 않게 하려는 아버지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누군가 내게 다가와 그만 잠에서 좀 깨어나라고 흔들어주었으면 하고 바랐다. 그런데 나는 어쩌려고 못을 집어든 것일까. 할머니가 두 주먹을 옹골차게 쥐고 있는 것이 보였다. 덩달아 나도 주먹에 힘을 주었다. 내 손이 못과 함께 타들어 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하설 조장님, 본부 운영실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원내 방송이 들려왔다. 잠깐 눈만 감고 있었던 것 같은데……. 재빨리 손목의 시계를 확인했다. 나는 그 순간 내가 숫자를 거꾸로 보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했다. 득달같이 일어나 문을 박차고 뛰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이하설 조장님, 본부 운영실로 와’달라는 방송은 계속 되었다. 운영실이 가까워질수록 방송이 더 자주 들려왔고, 느려터진 두 발은 점점 더 내 것이 아닌 것만 같았다. 내가 도착하기만 하면 저 공손한 팀장의 말투는 야수로 변해 나에게 돌진할 것이었다. 그때 가로수 사이로 한 여자가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남색 기지바지와 연두색 스웨터, 복고풍의 파마머리까지. 혹시 할머니인가 싶어 가던 방향을 바꿔 전속력으로 달려갔다가 죄송하다는 말을 하고 뒤돌아섰다. 팀장이 의자를 발로 걷어찼다. 책상 위에 놓여 있던 두루마리 휴지가 창문 쪽으로 날아갔고, 내 가슴팍에 내리꽂힌 전화기는 바닥에 떨어지면서 박살이 났다. 아무 생각도 하지 말자고 속으로 되뇌었다. 원내 방송 담당 아나운서가 시디 데크를 만지작거리는 게 보였다. 팀장이 잠시 숨을 고르는 사이, 사무실 안을 둘러보니 악단장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악단장의 발치에는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노란색 나비넥타이가 떨어져 있었다. 기어이 팀장과 한바탕 한 것 같았다. 오전에 병원으로 실려 간 러시아 무용수는 응급 수술을 해야 할 상황이라고 했다. 하혈이 심해 개복 수술을 해야 한다고. 악단장과 팀장의 관계를 가장 잘 알고, 더듬거리긴 하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러시아 말을 할 줄 알았던 내가 그 ‘중요한’ 시기에 사라졌다는 것이 팀장이 화를 내는 이유였다. 앞으로 바짝 다가온 팀장의 손이 내 뺨을 향해 날아왔다. 그때 태국인 조련사 푸앙이 운영실 안으로 들어왔다. 푸앙은 코끼리들의 상태가 좋지 않으니 퍼레이드를 취소해달라고 애원했다. 그러나 코끼리의 설사 따위는 팀장에게 먹혀들 만한 이유가 되지 못했다. 나는 푸앙의 손을 잡아끌고 코끼리 우리로 갔다. 쏘냐는 계속 설사를 했고, 아프리카 산 일 년 생 코끼리 튀라는 쏘냐의 엉덩이 쪽에 대가리를 박고 누워 있었다. 제때 검사를 하며 건강을 돌보아 주었더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야생과는 달리 동물원 우리 안에 갇혀 있는 동물들은 잔병치레가 잦았다. 그래서 예방 접종, 먹이, 변의 상태 등을 확인하여 제때 사료 혹은 건초 더미를 바꾸어 주는 것들은 무척이나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 일들이었다. 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팀장은 번번이 동물원의 재정 상태를 운운하며 우리가 올리는 건의사항들을 묵살했다. 이하설, 오늘 제대로 하지 않으면 너부터 자를 줄 알아! 나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무전기를 꺼내들었다. 팀장님, 직접 오셔서 코끼리들을 살펴보시란 말이에요! 무조건 데리고 나가는 일이 능사가 아니란 말입니다. 뭐야? 푸앙이 눈물을 흘리며 내게 말했다. 코끼리 나가지 마, 나 죽어. 푸앙, 그러기 전에 내가 먼저 어떻게 되겠어. 그러니 나한테 제발 좀 이러지 마! 그러나 푸앙은 내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삼촌이라면 이럴 때 어떻게 했을까? 내가 아는 한 삼촌은 아픈 동물은 절대로 퍼레이드에 내보내는 사람이 아니었다. 외국인 조련사들의 고충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해 주었고, 윗사람들에게도 최선을 다했다. 그 사람이 원하는 선에 맞추어. 주머니에 손을 넣고 못을 만졌다. 잠깐이지만 마음이 안정되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울고 있는 푸앙과 눈이 마주치자 다시 혼란스러워졌다. 오늘은 이틀 앞으로 다가온 퍼레이드의 리허설이 열리는 날이었다. ‘우리를 나온 동물들의 퍼포먼스’라는 이름으로 한 달 전부터 신문 및 지역 방송에 광고를 내보내고 있었다. 나날이 쇠락해가는 테마랜드의 혁신을 위해 팀장이 삼 개월 넘게 심혈을 기울인 행사였다. 만약 실패하기라도 한다면. 삼촌은 일급 코끼리 조련사이자 동물 쇼의 사회자였다. 공휴일이나 특별한 행사가 있기 한 달 전이면 삼촌의 얼굴이 실린 포스터가 동네 곳곳에 나붙었다. 지역 방송국에서는 매일 테마 랜드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났고 또 어떤 쇼가 진행 중인지 보도해 주었다. 삼촌은 방송에도 자주 나왔다. 나도 삼촌에게 꽃을 건네는 어린이 중 한 명으로 텔레비전에 나온 적이 있었다. 십 년이 지나 스무 살이 된 나도 테마 랜드에 조련사 보조로 들어왔다. 그러다 조련사가 되었지만 그 삼촌에 그 조카라는 말은 듣지 못했다. 내내 업무에 허덕이다 시간이 되면 퇴근하기에만 급급한 나날이었다. 삼촌처럼 되기를 원했지만 그를 뛰어넘을 재간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동물 구입 차 태국과 러시아에 출장을 간 사이 삼촌은 직원 기숙사 방문 손잡이에 목을 맸다.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할머니는 삼촌의 시신이 병원으로 옮겨지고 하루가 지난 뒤 실신한 채 삼촌이 있는 병원으로 실려 왔다. 어린이 날 행사를 며칠 앞두고 일어난 일이었다. 바쁘게 행사를 준비하면서 이래저래 악단장과 팀장 사이에 생긴 일들을 조율하고 동물원 곳곳의 문제들을 해결하며 별 탈 없이 생활을 했다는 진술들이 이어졌다. 내가 아는 바와 다를 것이 없었다. 장례식 도중, 나는 삼촌이 행사를 진행할 때 입던 붉은색 조련복을 챙겨두었다. 팀장은 동물원에 사람들이 오지 않는 이유가 사육사들이 동물 관리를 잘하지 못한 탓이라고 말했다. 그는 동물 구입의 명목으로 예산을 타갔지만, 그 돈이 어디에 쓰였는지는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단란주점에서 여자애들과 놀아났다는 소리가 들려왔고 어느 날에는 실내 경마장에서 누군가와 게임을 했다는 말도 들렸다. 건의서를 제출하면 가지고 있는 동물 관리나 잘하라며 번번이 우리의 의견을 무시했다. 그는 한 달에 한 번씩 동물이 죽었다는 보고서를 제출한 후 사체처리비로 외유를 떠났다. 이사장이 바뀌고 줄을 잘 섰다는 소문이 돌았다. 얼마 후 악단의 인원이 대폭 감소되었다. 게다가 이러저러한 꼬투리를 잡아 악단장의 연봉도 삼십 퍼센트나 감봉시켰다. 대부분이 계약직인 연주자들은 불만을 표시할 수가 없었다. 곧 재계약 기간이 다가오기 때문이었다. 하나 둘, 동물원을 떠나는 연주자들이 늘자 참다못한 악단장이 팀장에게 항의했지만 그는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기는 것 같았다. 악단장은 내게 불만을 털어놓았다. 나는 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소주를 마시고, 매일 두 갑의 담배를 피웠다. 테마랜드는 죽을 날만 기다리는 병든 짐승들과 관리되지 않은 채 잡풀이 번다한 식물원, 날만 흐리면 전기가 오르는 범퍼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놀이기구만 모아 놓은 부상 랜드였다. 사육조장에게선 늘 술 냄새가 났다. 비가 오면 비가 온다는 이유로, 날이 더우면 덥다는 이유로, 동물들이 발정이 나면 수컷이 없다는 이유로 그는 늘 술을 마셨다. 나도 간간이 그와 함께 술을 마시곤 했지만 어쩐지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기는 싫었다. 그는 술만 취하면 내게 삼촌의 이야기를 하려고 들었다. 삼촌의 성격과 그와의 관계, 동물들을 아끼던 마음, 은밀하게 나누곤 했던 농담들. 하지만 나도 다 아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되도록 사육조장과 함께 술을 마시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는 반쯤 마신 매실 주스에 소주를 타먹곤 하는 버릇이 있었다. 오늘도 그는 코끼리 우리를 나오면서 빈 매실 주스 병 두 개를 쓰레기통에 넣었다. 엄마의 목소리는 처음보다 많이 진정되어 있었다. 할머니는 아직도 집에 돌아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집에서 없어진 할머니를 이곳에 있는 내가 어찌해 볼 도리는 없었다. 엄마, 내가 나중에 전화할게요, 지금 좀 바빠! 통화를 끝내자마자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조장님, 홍학 우리에 고양이가 들어와 새끼들을 물어뜯고 난동을 부렸어요. 뭐라고? 홍학 한 마리가 다리를 크게 다쳤어요. 알았어, 곧 갈게. 안 그래도 행사 준비 때문에 신경이 무척 곤두서 있는 홍학무리였다. 허겁지겁 바쁘게 뛰어가다 보니 남색 기지바지가 또 눈에 띄었다. 오늘은 동물원에 남색 기지바지가 유난히 많았다. 그 바지들은 여기서도 나타났고 저기로도 지나갔다. 동물원에 온 할머니들은 대부분 남색 기지바지 혹은 검정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모두들 엇비슷한 파마머리를 한 채 손차양으로 햇빛을 가리고 느릿느릿 걷거나 그늘에 앉아 김밥을 먹었다. 납골당은 노인들이 게이트볼을 치고 있는 공원을 지나 한참 더 올라가는 산 중턱의 후미진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한적한 공터인 줄 알았던 공원도 지나가며 살펴보니 있어야 할 것들은 다 있었다. 그물이 벗겨진 하나밖에 없는 축구 골대, 녹슨 시소, 줄 끊어진 그네. 곳곳에 놓인 페인트칠이 벗겨진 벤치와 그곳에 누워 있는 사람들. 공원을 지나 한참을 걸었는데도 납골당이 나오질 않아 잘못 찾았나 하고 두리번거리는 나와는 달리 할머니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을 따름이었다. 차 한 대가 간신히 지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산길을 따라 삼십여 분쯤 더 걸어가다 보니 자그마한 분지 위에 지어 놓은 건물이 하나 보였다. 우리는 곧장 유골 안치실로 들어갔다. 삼촌의 위패에 쓰여 있는 이름이 낯설었다. 이선빈이 아닌 고(故) 이선빈은 내게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알 수 없는 수학공식 같았다. 그렇다면 그것은 저쪽 세계의 풀 수 없는 문제 같은 것인가. 돌아갔으나, 되돌아 올 수는 없다는 낙인? 오늘만큼은 할머니가 글자를 읽을 수 없다는 사실이 퍽이나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그러나 할머니는 귀신같이 아들 있는 곳을 찾아냈다. 가져간 술과 포를 놓고 준비되어 있는 향을 피웠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훌쩍이는 소리에 혹시나 싶어 뒤돌아보니 할머니는 대꾼한 두 눈을 슴벅이며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의자에 앉아 계시라 해도 한사코 일어서서 창문 쪽으로 얼굴을 돌린 채. 술이 넘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잔을 쥐고 향 위에 세 번을 돌린 후 상에 올렸다. 두 뺨이 경련이 이는 것처럼 제멋대로 움직였다. 옆 칸에서 제를 지내던 사람들이 담배에 불을 붙여 제상 위에 올려놓는 것이 보였다. 분향실의 향내에 짓눌려 있던 나는 생담배 타는 매캐한 냄새가 차라리 반가웠다. 우리도 한 대 필까, 삼촌? 부검 결과 별다른 타살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악단장과 몇몇의 연주자들, 팀장에 대한 조사가 차례대로 이루어졌다. 그 과정에서 가족들은 알지 못하던 우울증이 새로 생겨났으며, 사육조장과 함께 술을 마셨다는 이유로 알코올 중독이란 말이 덧붙여졌다. 추측성 발언들이었지만 조서에 쓰인 것들은 그대로 사인(死因)이 되었다. 분개한 가족들이 사건 수사를 계속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곧바로 장례 일정이 잡혔다. 아버지는 할머니에게 발인 날짜를 알려주지 않았다. 그러나 할머니는 발인 전날 신발도 신지 못하고 영안실로 달려왔다. 집으로 돌아가는 할머니의 발걸음이 눈에 띄게 느려졌다. 납골당 쪽을 다시 돌아보지는 않았지만 쉽게 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할머니가 저쪽의 삼촌을 아직 내려놓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까. 할머니의 어깨가 잔뜩 내려앉아 있었다. 듬성듬성하던 머리칼은 그 사이 더 빠졌는지 머릿속이 훤히 다 보일 지경이었다. 올라오는 길을 잘 찾았던 할머니가 돌아가는 길을 헷갈렸다. 납골당에 들어서는 길은 우리가 걸어온 길 하나밖에 없는데도 할머니는 분향실에서부터 출구를 찾지 못해 이리저리 헤맸다. 내가 앞장서 걸을 수도 있었지만 갈피를 잡지 못하는 할머니의 마음이 그렇게 이끌고 있는 것만 같아 가만히 뒤를 따랐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것이 지난 주말에 할머니와 내가 한 일이었다. 아버지는 할머니가 납골당에 가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했다. 내가 만약 그곳에 할머니를 모시고 간 것을 알면 크게 혼이 날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버지의 기억에는 할머니가 한 번도 삼촌에게 다녀온 적이 없다는데, 처음이라는 할머니는 삼촌의 자리를 잘도 찾았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홍학 우리 안의 소동이 잠잠해진 뒤였다. 고양이에게 물려 다리를 다친 홍학은 다행히 퍼레이드에 나갈 녀석이 아니라 두 달 전에 알에서 깬 새끼였다. 놀란 홍학들을 진정시키느라 껍질 깐 호두와 아몬드를 두 자루나 뿌려주었다. 어느샌가 팀장도 홍학 우리 앞에 와 있었다. 그는 퍼레이드에 나갈 녀석들을 좀 더 밝은 빨간색 형광 안료로 칠하라며 조련사들을 다그쳤다. 나는 홍학들에게 빨간 안료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해 보았지만 팀장은 내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는 것 같았다. 나는 물끄러미 팀장과 조련사들을 바라보다 문득 이제 여기를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삼촌을 보내고도 꿋꿋하게 나오던 곳이고, 그가 하던 일만은 내 손으로 이어받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이도저도 아니었다. 조련사들이 빨간 형광 안료 통을 들고 사육실 안으로 들어갔다. 퍼레이드는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나는 옷장에서 삼촌의 조련복을 꺼내 입었다. 오랫동안 묵혀둔 것이라 혹시 곰팡이라도 슬었으면 어쩌나 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내가 의자 위에 놓아둔 전기 총을 집어 들자 푸앙이 비명을 지르며 울어댔다. 미안해, 푸앙. 나도 어쩔 수가 없어! 우리 얼른 끝내버리자. 나는 입을 앙다문 채 쏘냐의 뒷다리에 총을 쏘았다. 쏘냐가 움찔하며 왼쪽 다리를 들었다. 재빨리 엉덩이에도 총을 갖다 댔다. 한참 만에 쏘냐가 일어섰다. 푸앙이 제자리에서 펄쩍펄쩍 뛰다 울부짖으며 내 왼팔에 매달렸다. 쏘냐의 몸에 멋을 내느라 발라놓았던 노란색 형광안료가 설사에 섞여 줄줄 흘러내렸다. 바닥에 형광 선을 긋는 것 같았다. 무전기에서는 팀장의 목소리가 쉴 새 없이 들려왔다. 무전기 소리를 무시하니 그 뜻 없는 말들은 점차 행진곡 풍으로 변해갔다.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괜찮다고, 얼른 끝내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진흙탕 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았다. 호두를 쪼아 먹고 있던 홍학들이 코끼리 우리 앞에 나와 있었다. 온몸에 빨간색 형광 안료를 잔뜩 바른 홍학 무리였다. 등에 홍학을 둘씩 태운 코끼리들이 정문으로 출발했다. 붉고 노란 머리들이 공중에다 점을 찍었다. 휴대전화와 무전기에서 팀장과 사육조장의 목소리가 동시에 들려왔다. 어차피 코끼리들이 도착하지 않으면 행렬을 완성할 수 없고 또 사회자인 내가 가지 않으면 시작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동물들의 건강을 살피는 것 역시 내가 해야 하는 일이었다. 나는 허리에 차고 있던 무전기를 뺐다. 팀장님, 지금이라도 리허설을 취소해 주세요. 뭐, 뭐야? 이대로 가단 코끼리들이 죽습니다.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얼른 데리고 나와! 시에서 사람들이 나와서 지켜보고 있단 말이야! 그런데 지금, 니가 나한테, 대든 거냐? 쏘냐와 튀라는 절뚝이고 비틀거리면서도 앞만 보고 걸었다. 푸앙이 코끼리 배에 손을 얹고 함께 걸었다. 저렇게라도 가주기만 한다면 크게 문제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쏘냐는 설사를 하고 있었다. 코끼리, 죽어. 나도 죽어. 푸앙이 울며 말했다. 푸앙, 나도 어쩔 수가 없잖아, 미안해! 니가 살려! 푸앙, 죽어가는 것들을 일으키고 이미 죽은 것도 살려낼 수만 있다면야 오죽이나 좋겠니. 푸앙이 이를 악물고 우는 소리와 코끼리들의 거친 숨소리가 마치 한 덩이처럼 느껴졌다. 정문 쪽에 노란 나비넥타이를 한 악단장의 모습이 보였다. 전보다는 풀이 죽은 모습이었지만 잘 다려진 연미복을 입은 모습을 보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였다. 심벌즈 연주자가 그만두는 바람에 탬버린을 담당했던 사람이 심벌즈를 잡고 있었다. 다섯 명이던 작은 북 담당 연주자들은 둘밖에 없었고 심지어 트럼펫 연주자는 보이지도 않았다. 행렬이라도 완성해야 한다는 팀장의 고집 때문에 음악은 녹음해둔 것으로 대체되었다. 연주자들이 항의했지만 오늘은 ‘리허설’ 날이니 그렇게 해도 된다는 악단장의 말에 조금 누그러지는 듯했다. 하지만 연주자들의 얼굴 표정은 괜찮아진 것 같지 않았다. 안 그래도 불안한 처지인데 악단장마저 번번이 자신들 앞에서 팀장에게 무시당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손에 익지도 않은 악기를 든 사람들의 얼굴이 굳어갔다. 악단장은 연신 나비넥타이만 고쳐 맸다. 동물원 곳곳에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정문으로 모여들었다. 사람들은 카메라를 꺼내들고 환호성을 지르거나 직접 코끼리를 만지려고 다가갔다. 놀란 사육사들이 그들을 말리는 사이, 나는 희뿌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 날이었다. 눅눅한 공기와 사람들이 웅성대는 소리, 동물들의 우는 소리들이 마구잡이로 내 가슴속에 맺혔다. 그 사이 ‘시’에서 나왔다는 사람들이 정문 쪽으로 다가왔다. 행사를 하는 날도 아닌데 무슨 일로 온 거지? 팀장은 ‘시’ 사람들에게 허리를 깊숙이 숙여 인사했다. ‘시’ 사람들은 악단장에게도 다가갔다. 팀장이 활짝 웃으며 악단장의 오른팔을 잡아끌었다. 팀장에게 이끌린 악단장이 지휘봉을 잡고 있지 않은 손으로 엉거주춤하게 그들과 악수를 했다. 허리를 제대로 굽히지 않은 채 인사를 하는 악단장을 바라보는 팀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팀장은 악단장에게 당장 연주를 시작하라고 지시했다. 악단장은 시디를 틀기로 되어 있지 않느냐며 반문했다. 빨리 하라니까! 팀장 자신도 모르게 나온 큰 소리에 본인이 더 놀라고 있는 사이, 악단장이 뒤돌아섰다. 그러나 내내 굽실거리거나 팀장에게 할 말을 다 못하고 돌아서던 악단장의 얼굴이 아니었다. 악단장은 맨 앞줄의 연주자가 들고 있던 바이올린을 넘겨받았다. 지휘봉을 연미복 허리춤에 찔러 넣은 악단장이 바이올린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축배의 노래였다. 멍한 얼굴의 팀장이 잠시 주춤하는 사이, 악단장의 바이올린 선율에 맞춰 다른 연주자들의 악기도 조금씩 리듬을 탔다. 때마침 비가 내렸다. 당황한 팀장이 재빨리 ‘시’에서 나온 사람들을 이끌고 자리를 벗어나는 와중에 악단이 연주하는 축배의 노래는 점점 절정으로 향해 갔다. 어느새 굵어진 빗방울들이 그곳에 모인 사람들과 원숭이와 코알라, 나뭇가지에 걸쳐 놓은 채 들고 나온 나무늘보들을 적셨다. 문제는 코끼리 등 위에 빨간 형광 안료를 덕지덕지 바르고 올라 앉아 있는 홍학들이었다. 진회색의 코끼리 등에 붉은 물이 들어갔고, 악단이 연주하는 축배의 노래는 점점 더 크게 울려 퍼졌다. 나는 열심히 연주를 하는 악단장과 ‘시’ 사람들을 서둘러 본관으로 끌고 가는 팀장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비바람이 거세지자 동물들 주변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며 작은 소란이 일었다. 그때 푸앙이 코끼리 등에 앉아 있던 홍학의 다리를 잡아챘다. 푸덕, 푸흐드덕! 홍학이 거센 날갯짓을 했지만 푸앙의 손아귀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푸앙이 정문과 반대쪽을 향해 뛰었다. 마치 홍학 연을 타기라도 한 것처럼 재빠른 속도였다. 홍학 한 마리가 사라지자 코끼리 등에 앉아 있던 다른 홍학 네 마리도 푸앙이 사라진 쪽을 향해 날아갔다. 푸앙은 홍학의 습성도 잘 알았다. 아마도 어미를 데려갔을 거였다. 홍학이 날아가면 코끼리들은 그 자리에 앉아 무릎을 굽혀 반쯤 앉거나 선 채 왼발을 들어 쇼의 시작을 알리게끔 훈련되어 있었다. 내가 말려볼 틈도 없이 정문에서가 아니라 정문으로 가는 도중에 코끼리 퍼레이드가 시작되었다. 붉은 꽃 한 송이를 등에 얹은 코끼리들이 추는 군무가 악단이 연주하는 축배의 노래와 함께 어우러졌다. 그때까지도 정문 앞을 떠나지 않고 남아 있던 사람들은 박수를 치거나 사진을 찍어댔다. 쏘냐와 튀라는 설사를 좍좍 갈기면서도 춤을 추었다. 코를 양 옆으로 흔들면서 왼발과 오른발을 차례대로 접고 자리에 앉았다 일어나며 엉덩이춤을 추었다. 코를 하늘 위로 높게 치켜세웠다가 쿵쿵 땅을 울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다시 왼쪽 오른쪽으로 두 차례씩 긴 코를 하늘로 들어올렸다. 빗줄기를 쏟아붓는 하늘을 향해 코를 쏘아 올리기라도 할 것 같은 모습이었다. 한 번 쇼를 시작하면 끝이 날 때까지 절대로 멈추지 않게 훈련된 코끼리들이었다. 홍학과 함께 한 군무가 오 분, 코끼리만 하는 쇼가 십오 분이었다. 나는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드는 코끼리들 옆에 전기 총을 든 채 무력하게 서 있었다. 코끼리의 군무가 점점 더 활기를 띠기 시작할 때쯤 다시 축배의 노래가 들려왔다. 악단장은 마치 무한 반복이라도 할 것 같은 완강한 표정이었다. 코끼리들은 덜렁덜렁 코를 흔들며 리듬에 맞춰 춤을 추었다. 차례대로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한 후 푸앙이 쏘냐의 어깨 위에 올라가 커다란 횃불을 치켜세우는 것으로 끝이 날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푸앙이 없다. 그는 어디로 간 것일까. 홍학들은 왜 하나도 돌아오지 않는 거지? 본관으로 갔던 팀장이 호루라기를 불며 이쪽으로 뛰어오고 있었다. 정문을 가로지르는 팀장의 뒤쪽으로 익숙한 남색 기지바지가 지나갔다. ……할머니? 축배의 노래에 맞춰 자박자박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우리 할머니였다. 나는 재빨리 할머니를 향해 뛰었다. 할머니, 할머니이! 그러나 할머니는 멈춰 서지 않았다. 내 등 뒤에서 악단장이 연주하고 있던 바이올린이 바닥에 내팽개쳐지는 둔탁한 소리가 났다. 뒤따라 전기 총을 쏘는 소리도 들려왔다. 코끼리들이 거세게 날뛰며 질러대는 울음과 구경하던 사람들의 비명이 뒤섞였다. 돌아서서 잠시 주춤하던 나는 다시 있는 힘껏 할머니 쪽을 향해 뛰어갔다. 빗물이 자꾸 눈 속으로 흘러 들어왔다. 삼촌의 뼛조각을 손에 쥔 할머니를 바라보고 있어서인가. 내 손은 자꾸만 할머니의 몸을 움켜쥐려고 했다. 아버지가 못을 골라내자 화장장 직원은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바로 삼촌의 뼈를 유골함에 넣어주었다. 고모들은 자신의 혈육이 그렇게 되었다는 사실이 기막힌 듯 바닥에 주저앉아 통곡했다. 촉망받던 조련사였으며, 사람 좋던 막내 삼촌은 그렇게 몇 줌의 유골이 되었다. 옥색 유골함 위에는 삼촌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이제 삼촌은 옥함 겉면의 금박 이름으로만 남게 될 모양이었다. 할머니가 움켜쥐고 있던 손을 입으로 가져갔다. 크게 우시려는가 싶어 나는 고개를 돌려 유골함 쪽을 쳐다보았다. 할머니의 울음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나는 다시 할머니를 쳐다보았다. 단단히 쥐고 있던 두 주먹이 텅 비어 있었다. 나는 할머니의 두 손을 자세히 살폈다. 그러는 사이 할머니는 천천히 입을 우물거리기 시작했다. 수골실의 모든 것이 잠깐 멈춘 것 같았다. 할머니는 나와 눈이 마주쳤는데도 하던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할머니가 갑자기 상체를 숙였다. 입 속의 것이 제대로 넘어가지 않는가. 나는 의자에 걸터앉아 오랫동안 할머니 뒤쪽의 흰 벽을 바라보았다. 집으로 돌아온 할머니는 잘 움직이지 않았고 무엇을 먹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할머니를 병원으로 모셔가려고 했지만 한사코 거절했다. 그러지 말고, 동물원에 가보자. 집으로 돌아온 후 할머니가 우리들에게 처음으로 한 부탁이었다. 나는 내가 잘못 들었나 했지만 그것은 분명 동물원이라는 말이었다. 아버지가 동물원에 데려다주지 않자 할머니는 살아 있는 사람이 해야 하는 모든 행위들을 다시 거부하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기세와 할머니의 고집 사이에서 가족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나는 밤마다 할머니 방으로 가서 할머니의 몸을 쓰다듬었다. 여기 어디쯤 삼촌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갑자기 할머니의 몸이 무척 단단하게 느껴졌다. 삼촌은 할머니의 쇄골 위에 올라 있었다. 할머니가 들이쉬고 내쉬는 숨 속에서도 삼촌의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어느 날엔가 삼촌은 할머니의 팔목을 그러쥔 채 죽이 담긴 숟가락을 할머니의 입 속으로 밀어 넣어주기도 했다. 먹은 음식이 어쩌다 얹히기라도 하면 조용히 할머니의 등을 쓸어주었다. 나는 삼촌이 그렇게라도 여기서 할머니와 함께 있다는 것이 참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삼촌, 좋아? 나는 탄 못과 할머니의 무릎을 번갈아가며 만졌다. 할머니는 오래 울었다. 가족들 모두 마음을 진정시키고 일상으로 돌아간 다음에도 할머니는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새벽에 홀로 깨어 화장실에 다녀올 때도, 물에 만 밥 한 그릇을 다 먹고 난 뒤에도 삼촌의 베개를 쓰다듬으며 울었다. 어쩌다 밥상에 삼촌이 좋아하던 창란젓이라도 올라오면 그걸 바라보며 오래 울었다. 눕거나 앉거나 간신히 일어서거나 벽에 등을 기대거나. 언제 어디에서건 어떤 자세로든 할머니는 울고 있었다. 소리가 나지 않게 속으로 울고 있었지만 나는 할머니가 울고 있다는 것을 잘 알았다. 어쩌면 울다 지쳐 손으로 몸을 짚기라도 하면 어디에서건 삼촌이 만져져 도저히 견딜 수 없어 그러는 것인지도 몰랐다. 살아 있는 유골함이 되는 일은 무척 힘겨워 보였다. 그래도 할머니는 식구들 앞에서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고, 소리 내어 울지 않았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난 오늘 할머니는 혼자서 동물원에 온 거였다. 우리가 걸음을 멈춘 곳은 식물원 입구였다. 할머니를 막 따라잡으려다가 도대체 왜 동물원에 왔고 또 어디로 가려는 것인지 궁금해 뒤를 따랐던 참이었다. 할머니의 남색 기지바지 속에서 끊임없이 휴대전화 벨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원내 방송이 나왔다. 이하설 조장님, 운영실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식물원 뒤쪽에는 고사한 나무들이 즐비했다. 희귀한 꽃이나 과실수들은 이미 다른 곳으로 팔려가거나 누군가가 빼돌린 뒤였다. 테마 랜드를 재정비한다면 가장 먼저 손을 대야 할 곳도 여기였다. 할머니는 왜 하필 이곳으로 온 것일까. 마침내 할머니가 걸음을 멈추고 단풍나무 둥치에 기대앉았다. 집에서 동물원까지 걸어왔다면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을 텐데……. 나는 천천히 할머니에게로 다가갔다. 집으로 모셔 갈 작정이었다. 그때 할머니가 손을 뻗어 땅바닥에 흩어져 있는 나뭇조각 하나를 집어 들었다. 내 새끼손가락만 한 나뭇조각이었다. 주저할 새도 없이 할머니는 그것을 입에 넣은 후 가슴을 쳤다. 그러다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크으헉, 으흑. 그것은 그동안 가슴에 쌓였던 울음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듯한 소리였다. 나는 다가가 말리지 않았다. 할머니도 얼마간은 큰 소리로 울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할머니는 주먹으로 툭툭 땅을 쳤고, 나무 둥치에 등을 짓찧었다. 돌로 만든 조형물에 얼굴을 갖다 박았고 두 손으로 머리채를 쥐어뜯었다. 할머니는 그동안 속으로만 쌓였던 울음들을 모조리 뱉어내려는 것 같았다. 그때 식물원 어디선가 커다란 새의 날갯짓 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푸앙? 그는 나에게 다른 한국인들과 구별되는 나만의 향기가 있다고 말하곤 했다. 내가 자기를 찾는 거라 여기고 또 달아나버리면 어떡하지? 푸드덕거리는 새소리와 할머니의 울음이 식물원 안을 가득 채웠다. 죽은 나무들도 잔잔한 바람을 타며 울음소리와 박자를 맞췄다. 나는 할머니가 울고, 푸앙이 새들과 함께 마음을 삭이고 있는 여기가 아주 잠깐 동안만이라도 누군가에게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다. 눈물을 그친 할머니가 다시 걸었다. 나는 할머니를 뒤따라갔다. 할머니는 여전히 뒤에 있는 나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한참 동안 동물원 곳곳을 걷던 할머니는 코닥 필름 사진관 앞에서 멈춰 섰다. 우두커니 서서 문 닫힌 사진관의 창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다. 거기에는 코끼리 등에 올라 탄 삼촌이 붉은 조련복을 입고 활짝 웃는 사진이 붙어 있었다. 테마랜드 30년의 모습을 한꺼번에 볼 수 있도록 전시된 사진들이었다. 오래되어 빛이 바랬을 뿐, 사진 속의 모든 것들은 충분히 식별이 가능했다. 할머니는 손을 뻗은 채로 창가에 바짝 다가섰다. 삼촌의 사진이 언제부터 저곳에 걸려 있었던 걸까. 테마랜드의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저 사진을 그곳에 걸어 놓지는 못했을 것이다. 할머니! 그제야 내가 큰소리로 할머니를 불렀지만 할머니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나는 멀찍이 떨어져서 코끼리 등 위에 앉아 밝게 웃고 있는 삼촌과 그것을 향해 말 없이 손을 뻗는 여인을 찍은 한 장의 사진을 쓸쓸히 바라보았다. 내가 보고 있는 이 사진 속으로도 빗방울들이 쏟아져 내렸다. 정적을 깬 것은 다름 아닌 푸앙이 우는 소리였다. 푸앙은 팀장에게 멱살을 잡힌 채 이쪽으로 끌려오는 중이었다. 여전히 홍학 한 마리를 품에 안고 있었다. 야, 이하설! 나는 갑작스러운 그들의 등장에 놀라 나도 모르게 할머니! 하고 큰소리로 외쳤다. 내내 그렇게 멈춰 있을 것만 같던 사진 속 초로의 여인이 나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러나 여인의 핏발 선 두 눈이 멈춘 곳은 내가 입고 있는 삼촌의 조련복이었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단추를 달고 솔기를 여며준 이 옷을 할머니는 단번에 알아차린 것 같았다. 어느새 창틀에서 떼어 낸 삼촌의 사진을 안고 있는 할머니가 다른 한 손으로 내 옷을 가리키며 다가왔다. 팀장과 푸앙도 이쪽으로 바짝 다가섰다. 그들의 발걸음 소리가 코끼리 울음소리보다 더 크게 느껴졌다. 쏘냐와 튀라는 우리로 돌아갔을까.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나는 주머니 속에 있던 못을 꺼내 쥐었다. 나는 어느 쪽으로도 가지 못했다. 누군가 먼저 잡아당기지 않는다면 나는 언제까지라도 그렇게 서 있을 것만 같았다. <끝> ■ 당선소감 - “기꺼이, 조금 더 말랑해지겠습니다” 타슈켄트 동물원에는 코끼리 두 마리가 살고 있습니다. 초원을 훑어야 할 우묵한 눈들이 녹슨 푸슈킨 동상을 바라보고 있지요. 어느 날 저도 모르게 코끼리 우리 안으로 들어가 버리고야 말았습니다. 늙고 병든 코끼리의 두툼하고 너덜너덜한 귓불을 한참 동안 쓰다듬어 주었어요. 그 코끼리들이 저와 함께 아랄 해를 지나 여기까지 왔습니다. 우리 할머니는 요즘 노인정에서 한글을 배우고 계십니다. 손녀가 쓴 글을 읽겠다고 약속을 하셨어요. 저는 아주 오랫동안 천천히 글을 써나갈 작정이므로 할머니는 기필코 200세 장수하셔야 합니다. 기꺼이, 조금 더 말랑해지겠습니다. 이 소식을 누구보다도 기뻐해주신 ‘동인, 그 섬’의 대장 임철우 선생님(‘그 섬에 가고 싶다’를 필사하던 그 순간이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잘 견디고 천천히 나아가겠습니다.), 치열하고 엄중한 소설쓰기가 일상의 진부함을 뛰어넘을 수 있도록 그 방향을 제시해주신 최수철 선생님(선생님의 조언과 응원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 마음에 누가 되지 않도록 살고, 쓰겠습니다.), 검룡소에서 풀솜대를 뜯어주신 최두석 선생님(돌아가지 못하는 시의 자리가 아직도 제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글 쓰는 손가락은 절대적으로 겸손해야 함을 일깨워주신 서영채 선생님(밤새 꺼지지 않던 선생님 연구실의 불빛을 바라보며 술 취한 저는 도서관에서 잠들곤 했지요.), 사물을 객관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법을 가르쳐주신 주인석 선생님(아, 이제 오디오 튜닝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10년 전 홍성여고 문예반 수업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제가 없었을 겁니다, 이정록 선생님. 좋은 선생님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저의 행운입니다. 그 운명을 결정지어주신 어머니, 아버지께 이 영광을 돌립니다. 제가 무너지려 할 때마다 옆에서 바로잡아주고 격려해준 권오영 시인께는 미처 다 갚을 수도 없는 마음들을 받았습니다. 함께 공부하는 동안 내내 소설 쓰기의 치열함을 온몸으로 가르쳐주던 김도연 선배께 맥주 한 잔 사드리고 싶습니다. 철없는 저를 뒤치다꺼리해 주느라 고생한, 제일 먼저 축하해준 이진희 시인. 정말 고맙습니다. 부족한 작품을 끝까지 손에 들고 계셨던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고개 숙여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것같이 힘들어도 조금 더 기운을 낼 수 있는 뚝심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얼른 ‘리보통(Ly-botong)’으로 달려가 그곳에 계신 분들과 커피 한 잔 내려 마시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 약력 -본명:이미선. 1983년 충남 보령 출생 -한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한신대학교 문예창작대학원 소설전공 수료 -한국국제협력단(KOICA) 단원으로 우즈베키스탄 세계언어대학 한국어 강사 역임 ■ 심사평 - ‘현대인 삶의 축도’ 동물원… 상징적 압축미 탁월 예심을 거쳐 올라온 작품은 모두 열 편. 이 가운데 다시 세 편의 작품을 어렵게 추려 놓고 생각했다. 신춘문예가 필요로 하는 소설은 어떤 소설인가? 우리 소설은 어디로 가야 하나? 단편소설은 산문 양식임에도 언어의 경제성을 문제 삼지 않을 수 없는 영역이다. 우리는 이 짧은 언어로는 ‘모든 것’을 쓸 수 없다. 그럼에도 이 양식은 이 ‘모든 것’을 내놓으라고 한다. 어떻게? 수사학, 즉 기교가 우리를 지상적인 삶에서 초월적 의미의 세계로 순간이동시켜 준다. 그러니 기교가 모든 것이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답할 수도 있다. 상징적 깊이나 환유적 지시 체계를 갖추지 못한 훌륭한 단편소설이란 일종의 형용모순과도 같다. 하이준씨의 ‘은행나무가 있는 풍경’은 현대적 일상을 사건으로 만들어 가는 문체가 돋보였다. 강남의 한 미장원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조그만 사건은, 일상의 소소함이 그 한계 내에만 머무르지 않도록 만든 장점도 갖추었다. 김명진씨의 ‘뷰티플 원데이’는 베트남에서 온 아버지와 아버지의 젊은 여인과 ‘나’의 이야기를 그린 것이다. ‘나’의 내면의 섬세함이 다문화라는 문제를 사회성 이상의 차원으로 끌어 올렸다. 그러나 ‘은행나무가 있는 풍경’은 의미를 구성하는 사건이 너무 희박하고, ‘뷰티플 원데이’는 사건을 보편적인 의미로 상승시키는 힘이 부족하다. 이은선씨의 ‘붉은 코끼리’는 상징적 압축미가 뛰어나다. 동물원 코끼리 조련사의 이야기 안에 많은 것을 담았다. 동물원이라는 배경 자체가 어떤 상징성을 띤, 현대인의 삶의 축도로 이해하게 한다. 여기서 동물원을 지배하는 어떤 메커니즘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세계의 어떤 축도와도 같다. 이 작품은 쓴 것 이상의 의미를 함축하면서 독자에게 시적인 울림을 선사한다. 재능과 생각을 겸비한 이은선씨에게 축하의 말씀과 함께 정진을 당부 드린다.
  • “섹시한 노란드레스 여인 보여줄게요”

    “섹시한 노란드레스 여인 보여줄게요”

    16일 서울 남산창작센터 연습실에서 만난 발레리나 김주원(31)은 발레복 대신 노란 원피스를, 토슈즈 대신 구두를 신고 있었다.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인 그는 2006년 무용계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를 수상한 국내 발레계의 간판스타다. 그는 내년 1월 개막하는 댄스 뮤지컬 ‘컨택트’에서 배우라는 타이틀을 달고 처음으로 뮤지컬 무대에 오른다. “해마다 연말이면 ‘호두까기 인형’ 발레 무대에 섰는데, 12년 만에 처음으로 뮤지컬 무대에 서게 됐어요. 늘 납작한 토슈즈를 신다가 7~8㎝ 굽의 구두를 신고 스윙, 자이브, 탭댄스 등을 배우려니 힘들지만 새로운 경험을 통해 제 몸의 언어가 깊이 있고 다양해지는 걸 느낍니다.” ‘컨택트’는 무용과 뮤지컬이 결합된 ‘댄스뮤지컬’이다. 대사와 춤으로만 모든 것을 표현한다. 노래가 없다는 점 때문에 뮤지컬로 분류하는 것에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2000년 토니상 최우수뮤지컬상, 안무상, 남녀조연상 등 4개 부문을 휩쓸었다. “이제 전 세계적으로 공연예술계의 장르 파괴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흐름이에요. 이번에 제가 뮤지컬에 도전한다고 할 때 최태지 국립발레단장을 비롯한 발레계에서는 오히려 이번 기회에 발레 대중화를 위해 힘써 달라며 격려하는 분들이 더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댄스 음악에 맞춰 농염한 춤을 추는 발레리나 김주원의 모습은 쉽게 상상하기 힘들다. 그녀는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된 이 작품에서 세 번째 에피소드의 노란 드레스 여인 역을 맡았다. 성공했지만, 내면의 외로움과 상실감에 젖어 있던 남자 주인공 마이클 와일리(장현성)에게 첫눈에 반하는 역이다. “전 세계적으로 노란드레스 여인의 색깔은 모두가 달랐지만, 저는 발레리나로서 우아함을 기본으로 섹시하면서도 귀여운 매력을 동시에 표현하려고 했어요. 이런 색다른 경험들이 다른 작품을 할 때도 묻어 나오리라고 생각해요.” 뮤지컬 도전을 앞둔 김주원의 가장 큰 고민은 무대 위에서 대사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분량이 많지는 않지만, 한번도 춤 외에 다른 것으로 표현해 본적 없는 그에게는 생소한 경험이다. 다행히 이번엔 상대역인 장현성이 탤런트이자 영화배우인 덕분에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예전에 ‘카르멘’이라는 작품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지르는 장면이 있었는데, 도저히 입이 안 떨어져서 혼난 적이 있어요. 그땐 벽을 보고 소리 지르는 연습을 따로 했었죠. 이번엔 연출가가 자연스러운 발성을 원해 편하지만, 여전히 부담스럽긴 해요.” 내년 초 뮤지컬이 끝난 뒤에 바로 발레 무대에 오르는 김주원은 요즘 두 곳의 연습실을 오가느라 눈코뜰 새 없이 바쁘다. 특히 최근 고급예술로 알려진 발레는 서커스, 오페라, 뮤지컬 장르와 다양하게 결합하며 대중화를 시도 중이다. 이를 바라보는 그의 생각은 어떨까. “무용에서도 크로스오버가 활발하지만, 현대 예술에서 장르의 벽을 나눈다는 것 자체가 어색하다고 생각합니다. 고급스러운 발레는 그대로 계속 발전하고, 장르 결합 시도는 이 분야대로 꾸준히 계속돼야 합니다. 많은 분들이 발레가 어렵다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으신데, 모든 춤의 기본인 발레는 가장 대중적인 장르이기도 해요.” 재작년 패션지에 상반신 누드 사진을 실어 홍역을 치르기도 했던 그는 이번 뮤지컬 데뷔 때도 “또 뭐야?”라는 식의 냉소와 우려 섞인 반응이 많았다고 전했다. “그때는 사진도 예술이라는 생각으로 새로운 시도를 해 보고 싶었어요. 서구에서는 발레극에 주인공이 알몸으로 등장하는 장면도 있거든요. 제 춤을 한번 보시면 이런 새로운 시도와 경험이 제게 어떤 영감을 줬는지 그대로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프로축구] 챔프전 골가뭄

    “왜 자꾸 우리가 유리하다고 써요. 절대 아니라니깐~.” 2일 경기 전 성남종합운동장에서 만난 전북 최강희 감독은 장난스럽게 기자들을 꾸짖었다. 1994년 창단 후 첫 우승을 노리는 만큼 열망도 뜨겁고 어깨도 무거운 듯했다. 전북으로선 지난달 1일 정규리그 1위로 챔피언결정전에 직행한 뒤 무려 한 달만의 실전경기. 경기감각이 떨어지지 않겠느냐고 묻자 “10년 만에 큐대 잡아도 기술 있는 (당구) 선수는 문제 안 되는 거 아닌가요.”라며 여유를 보였다. 실전을 방불케 하는 연습을 해왔다는 자신감이 배어 있었다. 성남 신태용 감독은 “마음을 비웠다. 우승하겠다는 조급한 마음보다 리그 때처럼 편안하게 하겠다.”고 웃었다. 홈에서 1차전이 열리긴 하지만 주전인 라돈치치·이호·장학영이 경고누적으로 빠진 터. 내심 2차전에서 승부를 걸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양팀 감독의 출사표와 경기는 미묘하게 어긋났다. 리그 최강의 공격력(59골·경기당 2.1골)을 지닌 전북이 전반 4개의 슈팅에 그친 것. 그나마 유효슈팅도 없었다. 전반 43분 이동국의 슈팅이 세차게 골망을 흔들었지만, 어시스트를 한 루이스의 핸드볼 파울로 판정됐다. 이번 챔피언십부터 골대 옆에 자리잡은 최명용 제4 부심의 판단이었다. 성남이 오히려 앞섰다. 체력적으로 밀릴 것으로 예상됐던 성남은 인천·전남을 연파한 ‘상승 분위기’가 가득했다. 입대한 ‘캡틴’ 김정우의 노란 유니폼을 벤치에 걸어 놓은 선수들의 눈빛은 결의로 가득 찼다. ‘키 플레이어’ 파브리시오가 시작 휘슬 1분만에 슈팅을 날린 것을 시작으로 전반에만 7개의 슈팅을 날렸다. 미드필더와 포백라인은 유기적인 움직임으로 전북의 화력을 막아냈다. 플레이오프를 거치며 ‘무전기 매직’의 재미를 톡톡히 본 신태용 감독은 벤치에 앉을 수 있었던 이날도 전반 40분까지 관중석에서 원격지휘를 했다. 선수들의 움직임을 더 정확하고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다는 설명. 25분간이라던 당초 계획보다 15분이나 더 선수들을 내려다봤다. 답답해진 전북은 후반 8분 브라질리아 대신 에닝요를 투입하며 승부수를 띄웠다. 이동국·에닝요·루이스·최태욱으로 이어지는 ‘판타스틱4’가 가동된 것. 하지만 골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후반 28분엔 이동국이, 3분 뒤엔 파브리시오가 골이나 다름없는 슈팅을 주고받는 등 양보없는 공방전이 이어졌다. 경기가 종반으로 치달을수록 전북은 조급하게 뛰어다녔고, 성남은 여유있고 자신있게 패스를 주고받았다. 무심한 종료 휘슬이 울렸고 경기는 득점 없이 무승부. K-리그 챔피언은 6일 전주에서 열리는 2차전에서 정해진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어린이 책꽂이]

    ●노란우체통(봉현주 지음·국선희 그림, 처음주니어 펴냄) 세상을 떠난 아빠와 열세살 딸 솜이를 이어주는 노란 우체통의 가슴 훈훈한 이야기다. 세상을 떠나기 전 당당하고 행복한 아이로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수많은 편지를 써놓은 아빠와 하늘나라의 아빠, 그리고 미래의 나에게 편지를 쓰는 솜이의 모습이 사랑스럽다. 노란 우체통은 실제로 경북 봉화군에 있다. 9500원. ●모하메드의 운동화(원유순 지음·김병하 그림, 봄봄 펴냄) 전쟁과 테러의 한복판인 중동 어느 지역에 사는 소년 모하메드는 한국의 식이가 내다버린 운동화를 소중하게 간직한다. 축구 선수를 꿈꾸던 모하메드는 어느날 고철을 줍다가 폭탄이 터지는 바람에 한쪽 다리를 잃고 만다. 한국과 중동땅을 오간 운동화의 눈높이에서 얘기하는 평화의 가치는 조용하지만 선명하고 감동적이다. 8500원. ●당산 할매와 나(윤구병 지음·이담 그림, 휴먼어린이 펴냄) 대학교수를 그만두고 농사꾼이 되어 ‘변산 공동체’를 가꾸어 온, 수많은 어린이 그림책의 저자 윤구병이 처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은 책이다. 변산으로 살 곳을 찾아 내려오면서 만난 당산나무(당산 할매)와의 교감을 일러스트레이터 이담의 사실주의적 그림과 함께 포근하게 들려준다. 1만 2000원. ●괴물 길들이기(김진경 지음·송희진 그림, 비룡소 펴냄) 아이들은 늘 “왜?”, “돼!”를 말한다. “안 돼.”를 입에 달고 사는 어른들이 곤혹스러워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주인공 민수와 함께 생활하고 있는 ‘왜?’, ‘돼!’라고 이름붙은 괴물들은 어른들 눈에는 보이지 않으며, 민수의 심리적 성장통을 상징한다. 판타지 동화라는 새로운 장르를 열어가는 김진경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7500원. ●너울가지(박경태 지음·임연기 그림, 나비 펴냄) 네 가지 가슴 먹먹해지는 얘기로 묶여 있다. 서먹했던 아버지를 뒤늦게 이해하는 해미의 이야기 ‘해미의 결혼식’,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 시뿌 아저씨와의 가슴 아픈 헤어짐을 담은 ‘시뿌의 낡은 수첩’, 순박한 시골 소년 달호가 갈래머리 소녀와 나누는 애틋한 우정과 사랑 이야기 ‘알고도 모른 척’은 황순원의 ‘소나기’를 연상케 한다. 8500원. ●괜찮아 괜찮아 두려워도 괜찮아(제임스J 크라이스트 지음·홍성미 옮김, 길벗스쿨 펴냄) 아이들의 우울증은 자각하기 어려워 어른들의 관찰이 없다면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 수업 시간의 발표, 동네 골목의 무서운 개, 친구 문제 등 걱정과 무서움, 불안을 떨치고 마음을 건강하게 다스리는 법을 소개하고 있다. 시각화, 체계적 둔감법, 생각지도 만들기 등 전문 심리치료법이 제시된다. 1만원.
  • [HAPPY KOREA] 경북 의성 산수유마을 꽃길

    [HAPPY KOREA] 경북 의성 산수유마을 꽃길

    매년 3월이면 봄바람을 타고 온 노란빛 구름이 한 달 동안 머물렀다 떠나간다. 가을에는 탐스러운 붉은빛 열매가 관광객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마치 한 폭의 수채화 같은 곳, 경북 의성군 사곡면 화전 2·3리 ‘산수유 마을’이다. 아직 도회지의 때가 묻지 않은 듯 옛 정취를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마을 입구의 할매·할배바위에 새끼줄로 엮은 고추와 숯이 그러했다. 산수유로 유명한 또 다른 지역인 전남 구례군 산동면에 비하면 의성 산수유 마을에서는 가꿔지지 않은 야생의 멋마저 느껴졌다. 산수유 마을은 숲실마을(화전2리)과 전풍마을(화전3리) 둘로 나뉜다. ‘숲실’은 숲으로 둘러싸인 골짜기라는 뜻의 순 우리말 이름이다. 조선 임진왜란 때부터 마을에 다래와 머루 넝쿨이 어우러져 넓은 숲을 이뤄 붙여진 이름이라고 했다. ‘전풍’은 마을에 중풍에 효과가 있는 산수유 나무가 많고 산 좋고 물이 좋아 끊임없이 풍년이 든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라고. 산수유 마을 입구로부터 10리(4㎞)가 넘는 산수유 길이 조성돼 있다. 봄철 산수유 꽃이 피면 마을은 노란 눈이 내린 듯한 고즈넉한 풍경이 연출된다고 한다. 산수유 나무는 무려 3만여 그루에 달했다. 그 나이도 짧게는 30년부터 길게는 300년이 넘는다고 했다. 산수유 나무가 화전리를 온통 뒤덮을 수 있었던 것은 마을의 가난 때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화전리 마을 주민들은 먹고살기 힘든 시절 가난을 이겨내기 위해 한약재로 쓰이는 붉은 산수유 열매를 길러 내다팔기로 마음먹고 마을에 산수유 나무를 하나 둘 씩 심기 시작한 것이다. 가난을 이겨내기 위한 마을 주민들의 염원이 현재 화전리를 전국 최고의 산수유 마을로 우뚝 설 수 있게 한 원동력이었던 셈이다. 산수유 열매는 가을인 8~10월에 붉게 익는다. 맛은 단맛, 떫은맛, 신맛이 동시에 난다. 열매에는 동맥경화 예방에 좋은 불포화지방산인 리놀산과 체내의 불필요한 수분 배출을 촉진하는 사포닌 등이 다량 함유돼 있다. 산수유 열매는 보통 한약재료로 쓰인다. 몸의 장기를 보호하는 효과가 있어 내과질환에 좋으며, 원기 회복에 효능이 있다. 또한 눈을 밝게 하고, 특히 머리카락이 희어지지 않게 하는 데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무릎이 시큰거릴 때, 어지럽거나 귀가 잘 들리지 않을 때, 식은땀이 날 때도 효능이 있다고 전해진다. 산수유의 화려한 꽃망울로 매년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산수유 마을이지만 지방도에서 20분 정도 차를 타고 들어가야 할 만큼 접근성이 취약하다는 아쉬운 점도 있다. 게다가 마을까지의 진입로가 꼬불꼬불해 관광객들이 쉽게 찾기 힘들며 주차여건도 좋지 않다는 평이 많았다. 이에 행정안전부와 의성군청은 ‘살기좋은 지역만들기’ 사업의 일환으로 화전 2·3리에 걸친 산수유 마을에 넓은 주차공간과 부대시설을 마련하기 위한 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와 함께 산수유 꽃길 20리를 조성하기 위한 사업도 한창이다. 마을 입구에서부터 산수유 꽃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자연친화적인 탐방로가 올해 안으로 들어설 계획이다. 그 길이만도 약 20리(8㎞)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친환경적인 꽃길 조성을 위해 도로 포장은 하지 않으며, 농사철에는 경운기 통행도 겸하게 해 농사를 짓는 마을 주민들의 생업과도 연계된 꽃길로 탄생할 전망이다. 지난 3월 산수유 마을에서는 ‘노란 꿈망울 향연’이라는 이름으로 산수유 꽃 축제가 열렸다. 23일부터 4월10일까지 19일간 열린 행사 기간 동안 3만여명의 관광객이 찾은 것으로 집계됐다. 축제기간에는 산수유 꽃길걷기 체험, 산수유 차·와인 시음, 산수유 찰떡 만들기, 알쏭달쏭 산수유 퀴즈 등 산수유 관련 행사뿐만 아니라 KBS 전국 노래자랑, 벨리댄스, 시화전, 시골장터 등의 다채로운 행사도 열렸다. 행사기간 동안 열린 토속음식장터에서는 산수유 국수, 산수유 동동주, 산수유 두부 등이 높은 인기를 끌었다. 김학수 의성군청 새마을문화과 계장은 “산수유 꽃길 20리 조성 사업으로 의성 산수유 마을이 환경 친화적인 휴양지로 거듭날 것”이라고 말했다. 의성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 시간 지나면 글씨가 절로 지워져?

    시간 지나면 글씨가 절로 지워져?

    보이지 않는 잉크는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예수와 동시대를 호흡했던 유대인 저술가 ‘노인 플리니(Pliny the Elder)’는 줄기나 잎에 수분이 많이 함유된 다육식물에서 추출한 잉크로 호기심 많은 눈들에 잘 띄지 않는 글을 썼다.요즘 학교 다니는 아이들도 레몬주스를 이용해 비밀스런 메시지를 남기면 촛불에 비추면 글씨가 드러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지난해 이슬람 테러조직 알 카에다의 영국 지부를 조직한 혐의로 기소된 랑지에브 아흐메드는 보이지 않는 잉크로 적힌 협력자들의 전화와 주소책을 갖고 있었다. 앞선 예들은 잘 보이지 않다가 특정한 방법을 동원하면 글씨가 읽히는 공통점이 있다.그러면 반대 경우는? 예를 들어 몇 시간이나 몇 달 동안 사람들로 하여금 읽을 수 있게 했다가 나중에 글씨가 스스로 희미해져 사라지게 되면 어떨까.마찬가지로 비밀스럽게 주고받고 싶은 사연을 사람들은 간직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미국 일리노이주 에반스턴에 있는 노스웨스턴 대학의 바르토츠 그리지보프스키 교수가 거의 그런 류의 잉크,더 정확히 말하면 그런 류의 플래스틱 재질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고 이코노미스트 닷컴이 최근 보도했다.  그리지보프스키 교수팀은 흔히 방풍유리로 불리는 퍼스펙스(Perspex)의 원료인 메타크릴산 메틸(Methyl Methacrylate) 젤에 5나노미터(1나노미터는 1m의 10억분의1) 크기의 금과 은 입자를 주입했다.입자에는 빛에 민감한 아조벤젠(니트로벤젠을 염기성 환원제로 환원한 등적색(橙赤色)의 결정 물)을 코팅시켰다.  자외선에 노출되자 아조벤젠 분자는 재배열됐고 새 이성체(isome)들은 원래 것보다 훨씬 더 전기적 극성을 띠게 돼 다른 분자들을 끌어들여 덩이를 이루게 된다.입자 크기에 따라 색깔이 달라지게 된다.금빛 입자는 붉게 비치고 은빛 입자는 노란색으로 비쳤는데 입자가 덩이로 모이게 되면 금빛 입자는 푸른색으로,은빛 입자는 보라색으로 바뀐다.  그 결과 이 종이 위에 자외선 빛이 발산되는 펜을 사용해 글씨를 쓸 수 있고 같은 빛이 쪼여지는 특정 패턴의 마스크를 이용하게 되면 프린트가 가능하게 된다.이성체 배열은 1000분의 1초 단위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우리가 보통 쓰는 속도로 글씨를 쓸 수 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이성체 배열이 흐트러지거나 강한 빛이나 열에 쪼이게 되면 글씨가 스스로 사라지게 된다.이 과정은 몇 시간이 걸릴 수도 있고 몇 개월이 걸릴 수도 있다.  사실 그리지보프스키 교수가 절로 지워지는 종이를 처음 개발한 것은 아니다.지난 2006년 제록스사는 16~24시간 뒤에 지워지는 빛에 민감한 종이를 시연한 바 있다.그러나 그리지보프스키 교수팀의 방식은 훨씬 활용 가능성이 높다.글씨는 훨씬 더 오래 가고 질적으로 떨어지지 않은 가운데 수백번이라도 재활용할 수 있다.  그는 다른 크기의 입자를 선택하면 훨씬 다양한 색깔의 글씨를 쓸 수 있다며 다른 재질로 만들어진 입자를 더 많이 개발함으로써 글씨 색깔을 다양하게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고 이 매체는 덧붙였다.  인터넷서울신문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신종플루 비상] 공항직원 피로증… 검역 구멍 우려

    7일 오전 인천공항. 신종플루 위험지역인 태국에서 온 비행기의 문이 열리자 탑승객들이 출구로 쏟아져 나왔다. 곧바로 노란 조끼를 입은 검역요원들이 비행기 안에서 작성한 검역카드를 수거하고 열탐지 모니터를 살피기 시작했다. 입국장은 순식간에 혼잡해졌다. 검역카드를 내지 않은 내국인도, 검역카드를 제대로 작성하지 않은 태국인들도 별다른 제지를 받지 않았다. 한 검역요원은 “처음에는 한국 주소지를 제대로 적지 않는 경우까지 꼼꼼하게 체크했지만 갈수록 느슨해지고 있다.”면서 “최근 공항에서 감염자가 발견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털어놓았다. 신종플루 확진을 둘러싼 파문이 계속되면서 공항직원들이 무기력증에 시달리고 있다. 몇달째 계속된 검역작업으로 파김치가 된 지 오래고, 상주인력들도 극심한 피로를 호소하고 있다. 이 상태로 가다간 공항검역에 커다란 구멍이 뚫릴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여름휴가에 푸껫을 다녀온 직장인 유모(30·여)씨는 “검역요원들이 외국인들에게는 말도 걸지 않고 그냥 보내더라.”면서 “공항이 너무 허술하게 관리되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공항 관계자는 “전례 없이 여러 달 동안 검역이 이어지다 보니 직원들이 많이 지쳐 있다.”면서 “현장에서 규칙이 완벽하게 적용되기 힘든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공항 상주인력들도 육체적·정신적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있다. 정복을 입고 촉각을 곤두세우는 보안인력이나 고강도 육체노동을 해야 하는 운송·세관인력 사이에서 이같은 현상이 두드러진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기교보다 깊이 있는 음악 꾸준히 할래요”

    “기교보다 깊이 있는 음악 꾸준히 할래요”

    국내에서 젊은 바이올린 연주자 중 요즘 가장 자주 이름이 거론된다. 몇몇 지휘자는 협연하고 싶은 연주자로 주저하지 않고 꼽는다. 드라마틱한 표현을 잘 하는 차세대 선두주자로, 클래식 음악계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이가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연(22·뮌헨 음대 전문연주자 박사과정)이다. ●“모차르트와는 인연이 남달라요” 2003년 레오폴트 모차르트 콩쿠르 우승, 2006년 하노버 콩쿠르 우승, 지난 5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4위 등 자신의 이력을 화려하게 채워 가는 김수연이 최근 눈에 띄는 경력을 또 하나 추가했다. 유니버설뮤직과 3년 간 전속계약을 맺은 뒤 내놓은 첫 음반 ‘모차르티아나(Mozartiana·작은 사진)’에 세계적인 클래식 음반사인 ‘도이치 그라모폰(DG)’의 레이블을 달았다. 음악가 선정이 까다로운 DG의 ‘노란 딱지’가 붙었다는 것은 그의 연주가 세계 수준으로 인정받았다는 의미다. 한국 음악가로는 정명훈(지휘), 정경화·김영욱·강동석(바이올린), 리처드 용재 오닐(비올라), 조수미(성악), 성민제(더블베이스)에 이어 여덟번째다. “모차르트와는 인연이 남달라요. 처음 연주한 협주곡도, 처음 나간 콩쿠르도 모두 모차르트죠. 모차르트 작품은 듣기에는 편안하고 어렵지 않지만, 연주자에게는 기교적으로 쉬운 음악은 아니에요. 해석에 따라 다른 의미를 전달할 수 있고, 다른 표현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모차르트 작품의 매력이랄까요.” 서울 신사동 유니버설뮤직 본사에서 24일 만난 그는 첫 음반에 이런 의미를 부여했다. 음반에는 불가리아 피아니스트 에프게니 보자노프와 협연한 바이올린소나타 세 곡(K304, K378, K454)과 리처드 용재 오닐이 함께 한 ‘어머니께 말씀드리죠’ 변주곡,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위한 듀오’ 등 다섯곡이 담겨 있다. “음반을 들으면서 음악의 순수함과 재미를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다.”는 그는 “378번과 454번은 굉장히 밝은 느낌이고, 304번(특히 2악장)은 가슴이 저리고, 심지어 무너져 내리는 듯하다. 변주곡은 재미있다.”면서 조곤조곤 설명했다. 첫 앨범인 만큼 자신의 기량과 기교를 한껏 발휘하고픈 욕심도 있지 않았을까. 그는 “기교를 과시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꾸준히 깊이 있고, 진지한 음악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을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 두번째 음반은 바흐 녹음할 계획 두 번째 음반 작업에서는 바흐를 파고들 계획이다. 내년 봄에 ‘무반주 소나타’, ‘파르티타’ 전곡을 녹음할 예정이다. 새달 6일에는 LG아트센터에서 DG 데뷔 앨범 발매를 기념한 독주회를 갖는다. 보자노프와 브람스, 라벨,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들려 준다. “아직 제 자신의 음악이 어떻게 변화했고, 어떤 것을 추구한다고 말하기는 이른 것 같아요. 지금은 좀 더 다양한 색깔과 모습을 보여 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독주회에서 보여 드리고 싶은 모습이기도 하고요.”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조각이야? 그림이야? 정통 틀을 깬 신기한 사진들

    조각이야? 그림이야? 정통 틀을 깬 신기한 사진들

    1839년 사진술이 발명되자 수천년간 기록자로서의 역할을 하던 화가들은 살아남기 위해 방향을 전환해야 했다. 1874년 공식적으로 등장한 ‘인상파’나 피카소의 ‘입체파’, 놀테 등의 ‘표현주의’, 칸딘스키의 ‘추상화’ 등의 탄생은 사진 발명이 원인이었다. 사물을 똑같이 표현하고 기록하는 일은 더 이상 그림이 아닌 사진의 몫이었다. 그로부터 170년 흐른 뒤 현대 사진가들은 사물의 재현을 거부하고, 예술의 영역으로 파고들고 있다. 사진은 컴퓨터 아트워크와 디지털 프린트, 디지털 카메라의 등장으로 더 이상 사실이 아닌, 작가의 감성과 아이디어를 표현하는 현대미술로 영역을 넓혔다. 서울 방이동 한미약품 건물 19~20층에 자리잡은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열리는 ‘요술·이미지’전은 그런 의미로 현대미술의 한 영역으로서의 사진전시인 것이다. 사물을 그대로 담아놓은 스트레이트 사진은 없었다. 자세히 봐도 사진인지, 그림인지, 조각인지 구별하는 것이 쉽지 않다. 2003년 국내 1호 사진전문미술관으로 개관한 한미사진미술관이 6년여 만에 처음으로 외부 큐레이터에게 기획을 맡기고 이른바 ‘정통 사진’에서 벗어난 사진전을 열고 있는 것. ●정연두 등 작가 14명 작품 50여점 전시 송영숙 한미사진미술관 관장은 “한국 사진들은 그동안 ‘사진은 사진다워야 한다.’는 정통 사진에 무게를 두어왔지만, 세계적인 추세는 사진 자체뿐 아니라 영상과 조각 등과도 결합하고 있다.”면서 “이제는 그 흐름과 같이 가야 한다는 생각에 외부에 문호를 개방하면서 젊은 작가들의 사진을 소개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에는 정연두를 비롯해 배준성, 유현미, 이명호, 조병왕, 강영민, 권정준, 장승효, 김준, 이준택, 임권, 정소정 등 14명의 작품 50여점이 선보인다. 이들에게 사진은 사진 그 자체가 아니라 미디어, 즉 세상과 소통하는 수단일 뿐이다. 영상, 조각, 회화 등과 결합하고 있다. 강영민과 권정준, 홍성철은 입체와 결합했다. 우선 40~50개의 PVC 파이프에 사람의 얼굴을 찍은 사진들을 하나하나 붙이고 전체 파이프를 모으면 한 사람의 얼굴이 나오도록 하는 강영민의 작업은 평면적 입체를 구현했다. 사진을 프린트해 철망에 하나씩 연결해 입체감을 주는 작업도 인상적이다. 사람의 얼굴이나 눈, 손 등을 찍어서 프린트를 하고 그것을 긴 줄에 감아 앞뒤로 여러 겹을 설치한 작업은 깊이감과 입체감을 부여하고, 관객이 이동할 때는 속도감까지 전달한다. 사과를 여섯 각도에서 찍은 뒤 인화하고 각도대로 육면체에 붙여 사과모양을 만들어내는 권정준의 작업도 눈길을 끈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이중근의 작업은 웃음이 절로 난다. 고대 신상이 가득한 건물, 그 신상의 얼굴에다 재미난 표정의 작가 얼굴을 따 붙였다. 또 피라미드를 이루며 반복되는 오스카상의 얼굴들은 이름만 대면 다 아는 국내외 유명 정치인들이다. 동심원으로 표현된 ‘나 잡아봐라’라는 작품에 나타난 남자의 얼굴도 작가다. 배준성은 렌티큘러 작업으로 보는 각도에 따라서 옷을 입기도 하고, 완전 누드가 되기도 하는 작품과 누드 모델의 사진 위에 그린색 비닐 의상을 올려놓고 관람객이 들춰볼 수 있도록 한 작품을 선보였다. 관음증을 유발하는 등 선정적인 느낌이지만 아이디어 자체는 참신하다. 나무 뒤에 커다란 사각 천을 설치한 뒤 사진을 찍어 ‘나무 초상화’를 전시한 이명호의 ‘트리’ 연작도 신선하다. 동양화가 출신인 임택은 설치 작업을 한 뒤 그것을 사진으로 찍고 컴퓨터 작업으로 디테일한 부분을 합성한 작업을 보여주는데 소나무와 달이 걸려 있는 풍경사진은 여전히 동양화를 연상시킨다. 초록 공룡과 파란 전화기가 있는 노란 실내나 귀가 달린 벽과 핑크 의자의 실내, 복숭아 두 알이 허공에 떠 있는 사진 등을 보여주는 유현미의 작업은 동화 같다. ●사진 활용한 매직쇼·체험프로그램 마련 사진을 활용한 마술을 선보이는 매직쇼와 어린이 체험 교육 프로그램, 어린이를 위한 우리말·영어 전시 설명 등도 마련돼 있어 방학을 맞은 아이들과 함께 봐도 좋다. 9월5일과 19일에는 김준과 배준성, 강영민, 조병왕 작가가 직접 작품 제작과정 등을 설명하는 ‘작가와의 대화’가 열린다. 10월1일까지. 관람료 성인 5000원.(02)418-1315.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다른기사 보러가기] 축구 보여주다 여자 ‘볼일’ 장면 수시1차 논술 이렇게 DJ “전두환 신앙적 용서” 박지성,호날두 단골임무 맡나 수리점 시계가 늘 10시10분을 가리키는 이유 국내 인터넷 뱅킹 뚫은 조선족 해커 22조원 투입 38조원 효과…강따라 돈이 흐른다
  • [도시와 산] (19) 인천 계양산

    [도시와 산] (19) 인천 계양산

    계양산(해발 395m)은 오랫동안 ‘인천의 진산(鎭山)’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생태’, ‘환경’이라는 말이 가슴에 와닿는다. 인천 시민들은 계양산 보존 운동을 10년 넘게 이어오고 있다. 인천에서 가장 높은 계양산의 뒷자락 개발이 추진되자 210일간 나무 위 시위, 삼보일배, 촛불집회, 두 차례에 걸친 100일 릴레이 농성 등 환경운동사를 새로 쓰게 할 만한 시민운동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역사성과 유서도 깊어 인천시민들은 계양산에 대한 애정이 더 극진할 수밖에 없다. ●이규보 ‘망해지’서 계양지경 칭송 한강과 주변이 한눈에 들어와 예전에는 군사적으로 중요한 요새 역할을 한 산이었다. 양산 동쪽 기슭 능선에 자리잡은 계양산성(인천시기념물 제10호)은 삼국시대에 축조됐으며 돌로 쌓은 최초의 성이다. 오랜 역사 때문인지 ‘고산성(古山城)’으로도 불린다. 부평도호부(부평의 옛 행정명칭)의 성곽 역할을 해 왔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관방성곽조’에 둘레가 1937보(步)에 달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성 안이 사방으로 노출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지금은 성벽 일부만 남아 있다. 서쪽으로는 조선 고종 20년(1883년) 해안 방비를 위해 부평고을 주민들이 참여해 축조한 중심성(衆心城)이 징매이고개(景明峴) 능선을 따라 걸쳐져 있다. 생태와 환경 외에 역사성도 가미돼 있는 셈이다. 고려시대 대학자이자 문인인 이규보(1168~1241년)가 거처했던 자오당터와 초정지는 유서가 깊은 곳으로 학생들의 훌륭한 교육장소가 되고 있다. 이규보는 ‘망해지’라는 책에서 “길이 사면으로 계양지경에 났는데 오직 한면만이 육지로 통하고 삼 면은 물이다.”라고 계양산을 예찬한 구절이 나온다. 또 백제 초기부터는 현재의 공촌동 지역에서 생산된 소금을 징매이고개를 넘어 서울 신정동 토성을 거쳐 지나던 소금통로 구실도 했다고 한다. 계양산에는 고라니, 너구리, 족제비, 두더지, 도롱뇽, 두꺼비 등의 포유동물과 파충류가 살고 있다. 환경부 조사에 따르면 노린재, 딱정벌레 등 곤충 36종과 황조롱이, 오색딱따구리 등 조류 61종도 서식하고 있다. 인천시는 이들 동물이 계양산과 인근 철마산을 드나드는 것을 돕기 위해 징매이고개에 생태통로(길이 100m,폭 80m)를 만들었다. 이 산에는 또한 이삭귀개, 삼지구엽초, 서어나무 등 진귀한 식물들이 서식하고 있어 도시 속의 원시림이라는 느낌을 준다. 때문에 도시생활에 지친 시민들은 이 산을 즐겨 찾는다. 매일 1만명 이상이 방문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계양산은 가현산-계양산-원적산-만월산-거마산-문학산-청량산을 잇는 인천의 ‘S자 녹지축’의 중심이며, 충북 속리산에서 김포 문수산까지 이어지는 한남금북정맥과 한남정맥의 핵심 축이다. 1988년 인천 시공원 제1호로 출발한 계양산을 중심으로 한 계양공원은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도시민들의 휴식과 생태체험의 장소로 널리 이용된 지 오래다. ●시민들은 개발 방지 파수꾼 도심 속에 있다 보니 계양산은 늘 개발 논란에 휩싸여 왔다. 시민들이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는 덕에 계양산은 여전히 푸름을 자랑한다. 앞서 롯데건설은 목상·다남동 일대 244만㎡에 골프장과 위락시설 등을 갖춘 수도권 최대의 테마파크를 건립한다는 구상을 세웠다. 1990년대 후반부터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지역업체도 1980년대 후반에 계양산 내 29만㎡에 위락단지를 조성하려 했다가 주민들의 반발로 무산된 바 있다. 주민들은 개발이 이뤄질 경우 자연 생태계의 질이 크게 악화될 것을 우려한다. 또 인천의 ‘허파’라 할 수 있는 계양산에 특정인들을 위한 골프장 건설은 시민환경권을 박탈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인천지역 45개 시민·사회단체는 2006년 6월 ‘계양산 골프장 저지 및 자연공원추진 인천시민위원회’를 발족시킨 뒤 지금까지 조직적인 반대운동을 펴고 있다. 시민들의 반발이 거세자 롯데 측은 골프장 면적을 95만㎡에서 71만 7000㎡로 줄여 한강유역환경청으로부터 조건부 동의를 받아냈다. 하지만 예정지 3분의1가량이 군사시설보호구역이기 때문에 군부대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군은 거듭 부동의 입장을 밝히고 있어 지난 6월에는 계양산을 사랑하는 시민들이 모여 계양산 골프장을 저지하기 위한 축제한마당을 열었다. 어떤 이들은 가면에 글씨와 그림을 그려서 왔고, 어느 마을모임은 계양산에 살고 있는 생명체들을 노란 천에 그렸다. 시민들은 또 ‘계양산 1평 사기운동’을 펼쳐 ‘내셔널 트러스트’(환경파괴 우려가 있는 지역을 주민들이 사들여 보존하는 운동)의 모범 사례가 되고 있다.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사통팔달 계양산 계산역서 500m 수도권 어디서든 OK 인천 계양산은 서울 인근 산 가운데 접근성이 가장 뛰어나다. 지하철과 고속도로, 공항철도 등 입체적으로 사통팔달의 교통망을 갖춰 시민들이 찾기에 부담이 없다. 인천지하철을 이용할 경우 계산역에서 계산고 방향으로 500m가량 가면 등산로가 나온다. 여기서 조금 더 가면 경인여대 입구인데 이곳에도 등산로가 있다. 산을 제대로 타려면 아예 400m쯤 더 가 계양문화회관 뒤편으로 형성돼 있는 등산로를 이용해야 한다. 다른 코스가 산 동쪽 능선을 타고 정상을 향하는 데 비해 이 코스는 산 정면을 그대로 치고 올라간다. 정상에 이르면 인천시내는 물론 영종도를 비롯한 인천 앞바다 섬들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또한 서울, 김포, 부천, 과천 등 인근 도시들도 넓게 시야에 들어온다. 서울에서 경인전철을 타고 올 때에는 부평역에서 인천지하철로 환승해야 한다. 고속도로의 경우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계양IC에서 빠지면 계양산까지 1㎞ 남짓한 거리다. 경인고속도로를 탔을 경우에는 서운JC에서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로 빠져 일산 방면으로 3㎞ 정도 가면 계양IC가 나온다. 제2경인고속도로는 안현JC에서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로 빠져 마찬가지로 일산 쪽으로 가야 한다. 공항철도를 이용할 수도 있는데 계양역에서 내려 2㎞가량 걸으면 등산로 입구에 도달한다. 산 뒤편인 다남·목상동 쪽에서 올라가는 코스로 계양산 특징인 생태계가 잘 보존돼 있는 현장을 보면서 산을 오를 수 있다.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서울신문 다른기사 보러가기] 퇴근하라고 컴퓨터 끄는 사장님 北 “김정운 지략으로 클린턴 방북” 먹는 조루 치료제 프릴리지 약효는 잭슨자녀 대부 마크 레스터 “패리스는 내 친딸” 탈모 예방하려면 머리 감은뒤 수건 두드려 말려
  • [엄마와 읽는 동화] 귀신 거울/조영희

    [엄마와 읽는 동화] 귀신 거울/조영희

    대형 슈퍼마켓 통조림 코너의 한쪽 기둥에는 길쭉한 거울이 붙어 있습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비춰 볼 수 있는 멋진 거울입니다. 멋내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통조림을 고르다가도 거울 앞에 우뚝 멈춰 섭니다. 그러고 자신의 모습을 이리저리 비춰 보다가 흐뭇한 얼굴로 돌아섭니다. 엄마를 따라온 아기들은 거울을 때리며 장난치는 걸 좋아합니다. 늦은 오후, 소은이가 슈퍼마켓에 들어옵니다. 소은이는 묵직한 책가방을 어깨에 메고 있습니다. 피아노 학원에 수학 학원, 영어 학원, 미술 학원, 논술 학원, 그리고 다시 영어회화 학원에 갔다가 한자 학원까지 모두 들르려면 책만 해도 예닐곱 권은 가지고 다녀야 합니다. 소은이는 빵과 과자가 있는 선반에 즐겨 갑니다. 크림이 잔뜩 든 빵이나 부드러운 초코 과자를 고릅니다. 저녁밥 대신입니다. 여러 학원을 도느라 저녁밥을 따로 챙겨 먹을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색다른 걸 먹어 볼까?” 그래서 고른 것이 땅콩크림빵입니다. 냉장고에선 땅콩크림빵에 잘 어울리는 콜라를 꺼냈습니다. “으악!” 통조림 선반 쪽에서 비명소리가 들렸습니다.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갔습니다. 소은이도 빵과 콜라를 양 손에 들고 뛰어갔습니다. 길쭉한 거울 앞에 운동복 차림의 아저씨가 주저앉아 있었습니다. “왜 그러세요?” 귤색 제복을 입은 직원들이 뛰어왔습니다. “심장마비인가?” 사람들이 멀찍이 떨어져서 수군거렸습니다. 소은이는 잠자코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저기, 거울에, 귀, 귀, 귀신이…….” 아저씨는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습니다. “거울이 어쨌다고요? 귀신, 뭐라고요?” 직원이 아저씨의 입에 귀를 바싹 갖다 댔습니다. “거울 속에 귀신이 나타났어요.” 아저씨는 바들바들 떨고 있었습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요?” 직원이 피식 웃었습니다. “정신 나간 사람이구먼.” 사람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떴습니다. “저걸 보란 말이오!” 참다못한 아저씨가 직원의 얼굴을 양 손으로 잡아 거울 쪽으로 돌려 주었습니다. 주변에 모인 사람들도 모두 거울을 봤습니다. 거울 속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무것도! 운동복 아저씨의 모습도, 직원의 모습도, 주변에 모인 그 어떤 사람의 모습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슈퍼마켓 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비명을 지르는 사람, 가게 밖으로 뛰어나가는 사람, 경찰서에 전화를 거는 사람, 귀신이 나타났어도 필요한 건 사야 한다며 계산대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들로 정신이 없었습니다. 소은이가 서 있는 쪽에서는 거울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도대체 무엇 때문에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는 건지 궁금했습니다. ‘귀신이라고?’ 소은이는 슬금슬금 거울 쪽으로 가까이 가 보았습니다. 마음을 굳게 먹고 거울 앞에 선 순간, 소은이의 눈에 낯선 아이가 보였습니다. 보라색 옷에 보라색 화장을 한 아이였습니다. 소은이는 보라색 아이의 눈을 보았고, 보라색 아이는 소은이의 눈을 보았습니다. “얘야, 위험해.” 처음 보는 아주머니가 소은이의 손을 잡아끌었습니다. 소은이는 이때 빵과 콜라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하룻밤이 지났습니다. 슈퍼마켓 정문에는 못 보던 안내문이 붙어 있습니다. ‘안전하고 깨끗한 우리 슈퍼마켓을 앞으로도 많이 이용해 달라.’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가게 안은 무척 한가합니다. 손님보다 직원이 많아 보일 정도입니다. 소은이는 오늘도 빵을 사기 위해 가게에 들어섭니다. 하지만 빵은 핑계에 불과합니다. 소은이는 보라색 아이를 다시 보고 싶었습니다. 처음 보는 아이였지만 눈빛이 낯설지 않았습니다. 저 멀리 거울이 보입니다. 지금 소은이에겐 거울의 옆면만 보일 뿐입니다. 소은이는 가방을 고쳐 멥니다. 그러고 거울로 성큼성큼 걸어갑니다. 지금까지는 모든 것이 좋습니다. 아직은 거울 앞면이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소은이는 딱 한 걸음을 남겨두고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어제는 얼른 피해서 괜찮았지만 나쁜 귀신이면 어떡하지?’ 가슴이 콩닥콩닥 뜁니다. 귤색 제복을 입은 직원들이 계산대 주위에 몰려 있습니다. ‘무슨 일이 생겼을 땐 계산대로 뛰어가면 될 거야.’ 소은이는 가방 끈을 꽉 쥐고 숨을 크게 들이켭니다. 눈을 꼭 감고 발을 크게 내딛습니다. 왼쪽으로 몸을 돌리고 슬며시 눈을 뜹니다. 거울 속에 있는 것은 보라색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소은이가 보인 것도 아니었습니다. 거울 속엔 노란 스웨터를 입은 할머니가 서 있었습니다. 무섭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소은이는 오른손을 들어 손가락을 접었습니다. 거울 속의 할머니도 똑같이 했습니다. 소은이는 거울에 좀 더 가까이 갔습니다. 할머니도 소은이에게 다가왔습니다. “할머닌 누구예요?” 할머니는 소은이의 입 모양을 따라할 뿐, 소리를 내지는 않았습니다. 소은이는 손을 뻗어 거울을 만졌습니다. 그저 차가운 거울일 뿐이었습니다. 소은이는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미래를 보여주는 거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할머니의 얼굴이 어딘가 소은이를 닮은 것 같기도 했습니다. 소은이와 닮은 얼굴이라 무섭지 않았나 봅니다. 거울을 톡톡 두드려 보았습니다. 거울 속의 할머니도 거울을 톡톡 두드렸습니다. 그러자 할머니의 모습이 흐려지더니 다른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이번엔 젊은 남자가 보였습니다. 이 남자도 소은이를 그대로 따라했습니다. 소은이의 얼굴이 발그레해졌습니다. 미래의 남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다음엔 어떤 것을 보여줄 건가?’ 다시 한 번 거울을 톡톡 두드렸습니다. 이번엔 어제 소은이를 가게 밖으로 끌고나갔던 아주머니가 보였습니다. 거울은 소은이의 미래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소은이의 머릿속이 복잡해졌습니다. 다시 톡톡. 아주머니의 모습이 사라지고, 거울엔 아무것도 비치지 않았습니다. 톡톡. 변하는 것이 없었습니다. 톡톡. 그대로였습니다. 톡톡. “그만 좀 해!”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피곤하다고. 피곤해.” 거울 속에 보라색 아이가 나타났습니다. “아!” 소은이는 짧은 비명을 질렀습니다. 하지만 아직 달아날 정도로 나쁜 일이 일어난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도대체 이곳은 왜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거야. 정말 마음에 안 들어.” 보라색 아이가 퉁명스럽게 말했습니다. 서 있는 폼도 매우 삐딱했습니다. “너 같은 장난꾸러기 때문에 더 피곤하고 말이야. 어제는 요만한 아기가 두들겨대더니 오늘은 너니?” 소은이는 발을 움찔했습니다. 보라색 아이가 가까이 올 땐 심장이 멎는 줄 알았습니다. “하긴 네가 무슨 잘못이 있겠니. 이런 곳에 걸린 나의 운명을 탓해야지.” 보라색 아이는 팔짱을 낀 채 통조림 선반에 기댔습니다. 그러고 한동안 말이 없었습니다. “궁금한 게 있어.” 소은이가 오랜 침묵을 깼습니다. 겨우 용기를 냈지만 목소리는 모기 소리보다 작았습니다. 뭔가 잘못 말하면 마구 혼이 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뭔데?” “넌 누구야?” 보라색 아이가 피식 웃었습니다. “보고도 몰라? 거울이야.” “그런데 왜 이상한 걸 보여줘? 거울이면 나를 보여줘야지.” “피곤해서 그래. 용량 초과라고. 누가 누군지 기억하지 못하겠어.” 보라색 아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습니다. “아까 보여준 건 뭐야? 내 앞날이야?” “아까 뭐?” 보라색 아이는 눈을 한 번 치켜뜨고는 크게 웃기 시작했습니다. “하하하! 너의 앞날이냐고?” 소은이는 기도하는 사람처럼 두 손을 모았습니다. “처음 보았던 할머니는 윗동네에 사는 할머니야. 보통은 일주일에 한 번씩 오는데, 요즘은 통 보이지 않아서 걱정하고 있던 참이었어. 그때 마침 네가 나타나서 잘못 보여준 거지. 실수한 거야.” “그래…….” 소은이는 왠지 시무룩해졌습니다. “두 번째의 젊은 남자는 이곳 직원이야. 저길 봐.” 보라색 아이가 가리키는 곳엔 정말 그 남자가 있었습니다. 남자는 손님이 없어서 매우 따분해하고 있었습니다. “세 번째로 본 사람은…….” “나도 알아.” “그래, 그뿐만이 아니야. 하루에도 수 천 명이 내 앞을 지나가. 나는 그 사람들을 일일이 기억했다가 다시 보여주는 거야.” 보라색 아이의 얼굴이 어두워졌습니다. 잿빛이 섞인 보라는 더욱 슬퍼 보였습니다. “이젠 지쳤어. 새로운 얼굴을 기억하기는커녕 이미 알고 있던 사람들조차 헷갈릴 지경이야.” 보라색 아이는 거울 속에 있는 통조림 선반 위에 사뿐히 올라앉았습니다. 소은이는 보라색 아이의 기분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소은이도 날마다 새로운 것을 머릿속에 집어넣느라 바빴기 때문입니다. “도와주고 싶어.” “네가 어떻게?” 보라색 아이가 코웃음을 쳤습니다. 솔직히 소은이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전부 다 잊어버리면 되잖아. 컴퓨터를 포맷하듯이.” 겨우 생각해낸 방법이었습니다. “네 눈엔 내가 컴퓨터로 보이니?” 보라색 아이는 소은이의 말이 우습기만 했습니다. “기억을 털어낼 만한 방법이 없을까?” 소은이는 보라색 아이를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털어낸다……, 털어낸다…….” 골똘히 생각하던 소은이가 갑자기 청소도구를 파는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소은이는 그곳에서 가장 큰 총채를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그걸로 뭘 어쩌려고?” “잘될지 모르겠어.” 소은이는 양손으로 총채를 잡고 먼지를 털듯 거울을 두드렸습니다. 그러자 수많은 사람들이 거울 속에 나타났다 사라졌습니다. 마치 먼지가 되어 거울 밖으로 떨어져 나오는 것 같았습니다. 담임선생님도 보이고, 가장 좋아하는 친구도 보이고, 이 근처에 산다는 유명한 연예인의 모습도 보였습니다. 엄마도 보이고, 마침내 소은이의 모습도 보였습니다. 소은이의 모습은 총채로 아무리 두드려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여보세요?” 거울을 톡톡 두드려 봅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습니다. 보라색 아이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습니다. “인사라도 해둘걸.” 소은이는 조금 섭섭한 마음이 듭니다. 하지만 기억을 모두 털어내고 즐거워할 보라색 아이를 생각하니 기분이 조금 나아집니다. 학원 시간이 많이 지났습니다. 오늘은 왠지 학원을 모두 빼먹어야 할 것 같습니다. ●작가의 말 학원을 아홉 군데나 다니는 아이를 보았습니다. 아이의 작은 머릿속이 견딜 수 없을 만큼 복잡해지진 않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아이에겐 비어있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비어있는 시간은 창조를 위한 시간입니다. 아이가 빈 시간을 충분히 갖길 바라며 이 글을 썼습니다. ●작가약력 대학교에서 건축공학, 시각디자인 전공. 2004년 중랑구 사이버 신춘문예 ‘풍선 잃은 아이’로 당선. 200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책을 돌려주세요’로 당선. 대전일보 신춘문예 ‘강에 사는 고래’ 로 당선. 단편모음집 ‘수선된 아이’, ‘지난밤 학교에서 생긴 일’ 등.
  • 카악~ 괴물이다… 야만성·무질서·무지 속 내면의 야수 환상 속 이미지·쾌락을 불러내는 존재

    카악~ 괴물이다… 야만성·무질서·무지 속 내면의 야수 환상 속 이미지·쾌락을 불러내는 존재

    괴물이 각광받는 시대다. 어린이가 공룡을 좋아하는 것처럼 말이다. 현대인들은 괴물을 쿨(cool)하다고 느끼기도 한다. 우주에서 방사선에 노출돼 DNA가 변형된 사람들을 그린 영화 ‘판타스틱 4’나 슈퍼맨의 어린시절을 그린 TV미니시리즈 ‘스몰빌’, 늑대인간과 뱀파이어가 활약하는 영화 ‘반헬싱’과 그 연작 시리즈들이 꾸준히 인기를 모으는 것을 보면 그렇다. 괴물은 비록 외모가 괴기스럽고 혐오스럽지만 자신의 뜻하는 대로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어서, 직장 스트레스와 억압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은 끊임없이 금기의 세상을 상상하고 꿈꾸는지도 모르겠다. ●새달 30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 ‘괴물시대’ 서울 서소문동 서울시립미술관이 8월30일까지 ‘괴물시대’라는 제목의 전시를 연다. 괴물(monster)의 서양적 어원을 찾아가면, 라틴어로 ‘가리키다(monstrare)’와 ‘경고하다(monere)’라고 한다. 19세기까지 괴물은 광기, 악덕, 비이성, 위반 등 정신적이고 도덕적인 일탈을 공중 앞에 드러내 경고로 삼아야 하는 사람들을 의미했다고 한다. 이번 서울시립미술관의 괴물시대 전시기획은 공포스러운 그림과 추한 그림, 조각, 사진 등을 통해 시대와 불화할 수밖에 없는 작가들의 예민한 정신세계와 인류와 불화하는 현대사회의 불협화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현대인들이 괴기스러운 것을 발견하면 ‘괴물이다.’라고 손가락질하지만, 그 손가락질이 사실은 자신들을 향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한다. 폭력성과 야만성, 무질서, 무지 속에서 내면의 야수, 괴물을 찾아볼 수 있다. 이를테면 전시장 입구에 위치한 1980년대 민주화 운동과 군부독재의 실상을 그려낸 안창홍의 불사조, 신학철의 ‘한국근대사’ 시리즈, 박불똥의 ‘사령관 각하의 부스럼’ 등은 낯익으면서도 낯선 그림이다. 2009년을 사는 사람들 중에는 1970~80년대 처절한 민주화 운동을 이미 잊은 채 민주화된 세상을 누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불사조 한 마리가 화살에 맞아 죽어가면서 수백만마리의 불사조를 탄생시키는 안창홍의 1985년작 불사조를 보면, 민주화의 새벽은 1960~70년대의 산업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찾아오지 않았다는 것을 새삼 자각하게 된다. 군부독재 사회에서 부의 축적이 어떻게 진행됐는지를 보여주는 신학철의 작품도 오랜만에 본다. 가나아트의 이호재 회장이 2002년에 80년대 민중미술 컬렉션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했는데, 그 안에 있던 작품들이다. 당시 기증작품 중에 오치균의 ‘인체’도 들어 있었다. 오 작가가 80년대 말 미국 유학시절에 그린 작품으로, 미국인들과 소통하지 못하는 고통과 재정적인 궁핍으로 절규하던 자신의 모습을 그렸다. 오 작가는 현재 한국현대미술에서 가장 잘나가는 작가 중 하나이고, 당시 민중미술계열도 아니었는데, 어떻게 기증 작품 목록에 끼어들어갔는지 모르겠다. 이 전시의 세 번째 섹션인 ‘내 안의 괴물’에서 볼 수 있다. 폐타이어로 대형 조각품을 만든 지용호의 ‘재규어5’는 쓰레기를 지속적으로 양산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고통을 공허한 재규어의 눈빛으로 보여준다. 스테인리스로 만든 칼과 나이프도 먹어치우는 탐욕스러운 검은 악어와 아름다운 꽃처럼 보이는 소가죽의 악취를 통해 현대사회를 비판하는 김혜숙의 작업도 인상적이다. 아름다운 크리스털 원형 볼에 오줌을 담아 놓은 장지아의 설치작업 ‘P-tree’는 사회의 금기를 거부하며 새로운 생명을 키우는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한다. 불결하거나 더러운 것은 오줌이 아니라, 그것을 그렇게 인식하는 인간의 차별화된 마음이 아닐는지. ‘착하고 인간에게 도움을 주는 굉장한 힘을 가진’ 괴물을 그려온 이승애의 아름다운 괴물 벽화와 곤충표본 상자에 모아 놓은 ‘미이라’ 연작도 볼 만하다. 연필만으로 그려 놀라운 표현력을 보여준다. 타투 작가로 잘 알려진 김준의 초기 작품 ‘지옥도’, 한꺼풀만 안으로 들어가면 붉은 살덩이뿐인 인간의 실체와 허위의식에 접근하고자 한 한효석의 ‘감추어져 있어야만 했는데 드러나고만 어떤 것들에 대하여 10’ 등은 충격적일 수 있다. 이 밖에 임영선, 류승환, 이한수, 김남표, 심승욱, 송명진, 호야, 전민수, 이완, 이재현 등 21명의 작가가 전시에 참여했다. 관람료 700원. (02)2124-8941. ●새달 22일까지 사비나미술관 ‘더블 액트’ 서울 안국동 사비나미술관의 ‘더블액트(Double Act)’ 전시에도 괴물은 존재한다. 눈으로 바로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은 1층에 전시된 서정국과 김미인의 ‘신종생물’ 시리즈다. 공룡이 빨간 날개를 달고 있는가 하면, 공룡의 얼굴은 사라지고 노란 꽃이 활짝 피어 있다. 황제펭귄에게는 진짜 날개가 달려 있기도 하다. 괴물은 2층에도 있다. 이 괴물은 ‘바나나맛 우유’ 시리즈란 이름을 가지고 있다. 중고등학교 책상 위에 작은 트랜스포머들이 있는데, 로봇들과 전투기들이다. 수류탄 형상을 한 바나나맛 우유로 만든 작품들로, 강압적으로 우유를 마시게 했던 초등학교 시절과 몸에 그 우유를 소화할 수 있는 효소가 없어 배앓이를 했던 시절을 회상하며 김과현(김원화+ 현창민)이 공동작업한 것이다. 작가 박진아와 이재현이 작업한 ‘도킹’과 ‘남자와 소년’ 등의 작업은 구상작품일 때와 경계선만 남겨 놓고 구체성을 없애버린 작품의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모호할 때 관객이 느끼게 될 공포는 상상 이상이다. 지하 1층에 전시된 작가 최현주와 이종호의 작업 ‘감각과 지각’에는 인간의 환상 속에 숨어 있는 이미지와 쾌락을 불러내는 괴물이 도사리고 있다. 다름아닌 ‘소파’다. 이 괴물은 유쾌하고 거부할 수 없을 만큼 유혹적이다. 앉고 싶은 욕망에 휩싸이더라도 그러면 안 된다. 작품이기 때문이다. 해외 이주민 노동자들에 대해 고민할 수 있도록 하는 그룹 ‘믹스라이스’ 작업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제 순혈주의의 허위의식을 깰 때가 됐다. 8월22일까지. 관람료:1000원. (02)736-4371.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노무현 전대통령 49재] “잘 가오, 그대” 수만개 노란·검은 풍선물결

    [노무현 전대통령 49재] “잘 가오, 그대” 수만개 노란·검은 풍선물결

    “노무현 영가(靈駕)는 이런 좋은 의지와 업을 간직해 내생에는 부디 좋은 곳에 다시 오기를 바라며, 다시 정치를 하게 된다면 좋은 업적을 남기길 바랍니다.” 10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화산 사자바위 아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안장식장. 고인의 극락왕생을 비는 설법이 이어졌다. 대형 스크린을 통해 노 전 대통령이 생전에 기타를 치며 ‘상록수’를 부르는 영상이 나오자 숙연했던 식장은 흐느낌과 눈물바다로 변했다. ●49재 및 추모문화제 열려 국민장 장의위원회는 이날 오전 9시 봉화산 정토원 법당에서 권양숙 여사, 노건호씨와 정연씨 부부 등 유가족, 한명숙·이해찬 전 국무총리, 정세균 민주당 대표, 문재인·이병완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 참여정부 인사 3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49재를 올렸다. 49재는 천수경과 지장경 독송 등 의식으로 2시간10분 동안 진행됐고, 조계사 주지인 세민 스님이 설법을 통해 극락왕생을 기원했다. 같은 시간 해인사도 49재를 열고 조계종 종정 법전 스님이 법문을 했다. 또 오전 10시30분부터 1시간 동안 봉하마을 광장에 설치된 특설무대에서는 추모문화제 ‘잘 가오, 그대’가 열렸다. 정태춘·박은옥, 노래를 찾는 사람들, 전경옥의 노래를 비롯해 하림(하모니카), 신지아(아코디언), 금관5중주의 연주 및 백무산 시인의 시와 배우 오지혜·권해효의 내레이션이 이어지며 고인을 기렸다. 안장식은 낮 12시 사자바위 아래에 조성된 묘역에서 진행됐다. 유골이 담긴 백자합이 납골묘에 안장되자 추모객들의 흐느낌이 터졌다. 안장식에는 노 전 대통령 생전에 각별한 인연을 맺었던 ‘자갈치 아지매’ 이일순씨 등 시민대표 14명도 나와 고인을 추억했다. 추모객들이 노 전 대통령의 유골함을 보기 위해 식장 내부 진입을 시도하면서 이를 막아선 행사진행 요원들이 진땀을 흘렸다. 행사장 출입이 초청인사 등 일부에 한해 허용되자 이모(63·여)씨는 “광주에서 관광버스를 타고 아침부터 왔다.”면서 “정토원도 막아서 못 갔는데, 대통령을 보내는 늙은이의 안타까운 심정을 봐서라도 들여보내 달라.”고 말했다. 이날 봉하마을에는 수만개의 노란색과 검은색 풍선들이 물결을 이뤘다. 추모객들도 티셔츠나 모자, 손수건, 머플러 등을 대부분 노란색으로 착용해 조의를 표했다. ●전국 사찰과 시민분향소 추모 행렬 인터넷 카페 회원들이 고인의 추모사진집을 배포해 눈길을 끌었다. 다음 카페 회원들은 모금을 통해 ‘사랑해요 고마워요 미안해요’라는 제목의 추모사진집을 펴내 안장식에 참석한 추모객들에게 나눠 줬다. 75쪽 분량으로 CD 케이스 크기의 이 추모사진집에는 노 전 대통령의 유년 시절을 비롯해 대통령 재임 및 퇴임 이후 생활 등을 담은 사진 100여장이 담겨 있다. 조계사와 화계사 등 서울시내 주요 사찰에서도 마지막 재가 봉행됐다. 또 부산, 청주, 제주 등 전국 곳곳에 임시로 설치된 시민 분향소에서도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수유동 화계사의 주지 수경 스님은 추도사를 통해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은 우리 사회의 비극성을 극적으로 드러냈다.”면서 “이제 우리는 인욕(고통과 번뇌를 참는 불교 수행법)을 통해 번뇌를 지혜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인의 서거 직후부터 지난달 23일까지 시민분향소가 차려졌던 서울 정동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는 촛불시민연석회의 관계자 등 600여명(경찰 추산)이 모인 가운데 오후 3시부터 49재를 열었다. 충북에서는 청주시 상당공원에 고인의 추모 표지석을 건립하려는 것을 놓고 시민단체와 청주시 간에 갈등을 빚었다. 이날 추모 분위기는 밤새 반정부 시위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찰의 우려와 달리, 조문객들은 차분하게 고인의 넋을 기린 뒤 귀가했다. 전국종합 김해 박정훈기자 jhp@seoul.co.kr
  • [2009 상반기 히트상품] 한국야쿠르트 ‘유산균이 살아있는… ’

    [2009 상반기 히트상품] 한국야쿠르트 ‘유산균이 살아있는… ’

    하루야채 시리즈인 ‘유산균이 살아있는 호박과 유자’(이하 호박과 유자)와 ‘유산균이 살아있는 보라당근과 포도’(이하 보라당근과 포도) 2종은 체내환경 균형에 도움을 주는 기능성 야채 음료다. ‘호박과 유자’는 호박·노란당근 등 야채 15종과 유자·사과 등 과일 5종을 함유했으며 ‘보라당근과 포도’는 보라당근·토마토 등 야채 10종과 콩코드포도·파인애플 등 과일 3종이 들어 있다. 이들 제품은 기존 하루야채 제품에 유산균과 맛을 더한 것으로 한 병당 60억 마리 이상의 유산균을 함유하고 있다. 30~40대 직장인의 체내 환경의 균형을 맞춰 주는 데 적합하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한국야쿠르트는 다음 달 20일까지 제품 신청 고객 1만 3145명에게 삼성 파브 LED TV, 올림푸스 DSLR 등을 추첨을 통해 준다.
  • [엄마와 읽는 동화] 새들이 나는 하늘/김용택

    [엄마와 읽는 동화] 새들이 나는 하늘/김용택

    비가 옵니다. 오랜만에 비가 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비비꼬이며 쓰러질 것 같던 풀잎들이 싱싱하게 살아납니다. 시들거리던 운동장 가 벚나무 잎들도 다시 활짝 펴져 비를 맞으며 수런거립니다. 나뭇잎과 풀잎과 곡식들이 두 손을 쫙 펴고 모두 씩씩하게 일어서서 신나게 내리는 빗줄기로 시원한 목욕을 합니다. 산과 들이 다시 싱그럽게 살아납니다. 유치원 아이들도 형아들도 선생님들도 모두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시원하게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어떤 아이들은 비를 맞으며 운동장을 신나게 뛰어다니기도 합니다. 땡땡땡 들어 갈 종을 치자 비를 맞던 아이들은 교실로 뛰어 들어가고 비를 바라보고 있던 아이들의 얼굴들도 창가에서 사라졌습니다. 학교가 아주 조용해졌습니다. 빗줄기도 가늘어졌습니다. 아이들이 교실에 앉아 공부를 시작하자 엄마 박새가 아이들을 불렀습니다. “애들아, 아이들이 교실로 다 들어갔다. 얼른 나와 날기 연습을 하자꾸나.“ “네, 네, 네….” 아기 박새들이 어리고 예쁜 날개를 파닥이며 좋아합니다. “자, 그럼 지금부터 밖으로 나간다. 그런데 말이야, 저쪽 유치원 교실을 벗어나면 안 돼 알았지.” “네, 네, 네, 네.” “자, 그럼 너부터 날아가 봐” “엄마, 그런데 비가 와요 날개가 젖으면 어떻게 해요,” “이슬비라 괜찮아, 그리고 우리 날개는 물이 잘 묻지 않는다.” 아기 박새들이 박새의 집인 홈통에서 한 마리씩 포롱포롱 살구나무 가지로 날아가 앉습니다. 풋살구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살구나무 가지가 흔들거렸습니다. 푸른 살구에 걸려 대롱거리던 물방울들이 후두둑 땅으로 덜어졌습니다. 살구가 말했습니다. “야, 너 누군데 내 허락도 없이 내 가지에 앉니? 무거운데.” “으응, 미안해 살구야! 안녕, 나는 박새야. 지금 날기 연습을 하는 중이거든.” “어? 너 내가 살군지 어떻게 알았어?” “우리 엄마가 그랬거든 살구나무를 벗어나면 안 된댔어.” 어린 박새들이 비를 맞으며 이 살구나무 가지에서 저 살구나무 가지로 포롱포롱 날아다녔습니다. 형아가 먼저 저쪽 살구나무 가지로 날아 건넙니다. 다음은 둘째 형아, 그 다음은, 그 다음은… 마지막으로 막둥이가 포로롱 날아갑니다. 어떤 새는 살구나무 잎 밑에 숨어서 이슬비를 피하기도 합니다. 살구만 한 작은 새들이 비비거리며 날아다니는 모습은 낙엽 위에 떨어지는 이슬비 소리와 함께 아름다운 음악소리를 냅니다. 살구나무에서 몇 발 떨어진 곳은 2학년 교실입니다. 교실에서는 아이들이 선생님을 따라 책을 읽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책을 다 읽은 선생님이 칠판에다가 동시를 써 놓고 외우라고 해 놓고 선생님은 가만가만 내리는 이슬비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수선스러운 새들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립니다. ‘어? 어디서 저렇게 많은 새들이 날아왔지?’ 선생님은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창밖으로 더 내밀고 밖을 내다봅니다. 그때였습니다. 선생님은 무엇이 유리창에 탁 탁 탁 부딪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선생님은 살금살금 걸어 탁탁 소리가 나는 곳으로 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어미 박새가 유리창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려고 유리창에 자기 몸을 부딪치며 울고 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어? 왜 저러지?” 이게 웬일입니까 아주 작은 박새 새끼 한 마리가 교실 복도로 날아들어 왔지 뭡니까. 언제 보았는지, 아이들이 “우와! 새다 새! 새!” 하며 새를 잡으러 뛰어옵니다. 그러자 선생님이 “쉿 조용히 해, 조용히.” 어린 박새가 밖으로 나가려고 또 유리창에 머리를 부딪칩니다. 유리창 밖은 너무나 소란했습니다. 엄마 새가 복도 안을 날아다니는 새끼 새를 보고 유리창에 몸을 부딪치는 소리, 살구나무 가지에서 가지로 어린 새들이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우는 소리, 다른 교실에서 아이들이 책 읽는 소리, 선생님은 아이들을 교실로 들여보내고 살며시 복도로 다시 나갔습니다. 복도 유리 창문이 열린 곳으로 어린 박새가 잘못 날아들어 온 모양입니다. 복도로 날아들어 온 어린 박새는 유리 창문으로 나가려고 했지만 창문은 모두 닫혀 있었습니다. 어린 박새가 밖으로 나가려고 유리창에 머리를 부딪치면 밖에 있는 엄마 새도 안타깝게 유리창에 머리를 부딪치며 울부짖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얼른 유리창 틀로 올라가 창문 몇 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저쪽에서 퍼덕이고 있는 어린 박새에게 가만가만 다가가 휘휘 하며 열린 유리창 쪽으로 어린 박새를 몰았습니다. 그렇지만 어린 박새는 열린 유리창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꾸만 닫힌 유리창에 머리를 들이받고 있었습니다. 밖에 있는 엄마 새는 더 안타까운지 온몸을 유리창에 부딪치며 울었습니다. 선생님도 안타까워하며 훌쩍훌쩍 뛰며 어린 박새를 열린 유리창 쪽으로 몰았지만 어린 박새는 계속 닫힌 유리창에 머리를 부딪치며 퍼덕거렸습니다. 나중에는 지쳤는지 유리창 틀에 가만히 앉아 숨을 할딱거리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얼른 뛰어올라 어린 새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얼른 새를 밖으로 날려 보냈습니다. 새는 포로롱 날아갔습니다. 그때 새들의 울음소리가 더욱 요란했습니다. 새가 밖으로 날아가자 세상이 온통 환호 소리로 들뜨는 것 같았습니다. 아! 어린 새는 참으로 따뜻했습니다. 새를 잡았던 그 짧은 순간 손끝에 전해 온 그 온기를 선생님은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몇 번인가 자기 손에 전해 오던 그 새의 심장 뛰던 느낌이 너무나 선명해서, 뛰던 심장이 느껴지던 자기 손가락 끝을 가만히 내려다보았습니다. 까만 눈을 뜨고 선생님을 쳐다보던 그 불안한 아기 새의 눈빛이 자꾸 어른거립니다. 밖에서는 교실에서 빠져 나온 어린 새를 둘러싼 새 가족들이 모여들어 비비거리며 울고 있었습니다. “엄마, 선생님이 나를 잡을 땐 너무 놀랐다니까.” “아냐, 그 선생님은 새, 나무, 꽃, 강, 아이들을 사랑하는 선생님이야. 내가 여기 태어나기 훨씬 전에도 이 학교에 있었대. 돌아가신 할머니 말씀에 의하면 선생님은 이 학교를 졸업했대. 그러니 이 학교에서 산 지가 몇십 년이 된 거지.” “선생님의 손은 정말 따뜻했어요.” 새들은 다시 살구나무와 살구나무 사이를 포롱포롱 날아다니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아이들과 공부를 하는지 선생님의 까만 머리통이 유리창 너머로 보였습니다. 한 아이가 말을 듣지 않은지 선생님의 큰 소리가 유리창 밖까지 들렸습니다. 그때 비 그친 하늘을 날던 꾀꼬리가 뻐꾸기에게 말했습니다. “야, 꾀꼬리야, 저 선생님은 시인이래.” “시인 선생님도 화를 내나봐.” 살구나무에도, 새들이 나는 하늘에도 비가 그치고 맑은 햇살이 퍼지고 있었습니다. 새는 포로롱 날아갔습니다. 그때 새들의 울음소리가 더욱 요란했습니다. 새가 밖으로 날아가자 세상이 온통 환호 소리로 들뜨는 것 같았습니다. ●작가의 말 봄이 되면 학교 홈통에 박새가 날아 와 집을 짓고 알을 낳고 새끼를 기릅니다. 마른 풀잎이나 새털을 물고 홈통을 드나들던 박새가 어느덧 벌레들을 입에 물고 집을 드나듭니다. 새끼들은 보이지 않고 재재거리는 소리만 들리다가 조금 지나면 새끼들이 노란 주둥이를 집 밖으로 드러내 놓고 먹이를 받아 먹습니다. 그리고 조금 더 지나면 새들이 집을 나와 나는 연습을 합니다. 풋살구가 달린 살구나무를 차례차례 날아가는 모습은 신비롭습니다. 아이들과 창가에서 새들이 나는 연습을 하는 것을 바라보곤 했지요. 그러다가 어린 새끼가 잘못해서 열어 놓은 창문을 통해 교실 안으로 날아들 때도 있지요. 그러면 아이들이 새를 잡으려고 난리지요. 우리들은 유리 창문을 열어놓고 새가 그 유리창으로 날아가기를 바랍니다. 새가 유리 창문을 통해 푸른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을 보면 마음이 후련하지요. 어느 날 그런 어린 새를 잡아 밖으로 날려 보낸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그 새의 다사로운 몸과 뛰는 심장의 그 감각이 살아 난 듯합니다. ●약력 1948년 임실에서 태어나 1968년 순창농림고를 졸업했다. 1970년 청웅초등학교 교사로 교단에 들어섰으며 이후 1971년 덕치초등학교 교사, 1997~2002년 운암초등학교 마암분교 교사, 20 02년부터 지난해까지 덕치초등학교 교사로 몸담았다. 1982년 창작과 비평사 ‘21인 신작시집’에 작품을 발표하며 문단에 데뷔했다. 2002 제11회 소충사선문화상, 1997 제12회 소월시문학상, 1986 제6회 김수영문학상 등을 받았다. 주요 작품으로는 ‘콩 너는 죽었다’(동시집), ‘풍경일기’(산문집) 등과 함께 시집 ‘섬진강’ ‘맑은날’ ‘꽃산 가는 길’ ‘누이야 날이 저문다’ ‘그리운 꽃편지’ ‘그 여자네집’ ‘강같은 세월’ 외 다수가 있다.
  • 서울광장은 온통 노란 물결

    29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열리는 서울 경복궁 일대와 노제가 치러질 서울광장 일대가 오전 11시쯤 온통 노란색 물결로 뒤덮혔다.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가는 길을 추모하기 위해 나선 시민들은 이날 오전부터 손에 노란색 풍선을 들거나 노란색 스카프를 두르고서 아침 일찍부터 하나둘씩 몰려들기 시작했다.일부 시민들은 근조(謹弔) 리본을 가슴에 달았고,노 전 대통령의 얼굴이 그려진 선캡(햇빛 가림용 모자)을 쓴채 고인을 애도했다.  노제가 진행될 서울광장을 차단했던 경찰버스 수십대도 오전 8시쯤 모두 철수했다.당초 오전 7시에 철수하기로 했지만 예정보다 늦어지면서 시민들과 마찰이 빚어지기도 했다.  정부는 노제가 끝난 뒤에도 질서가 유지된다면 이날 하루종일 서울광장을 개방할 것이라고 밝혔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노 前대통령 국민장] “꽃잎처럼 흘러가시라”… 줄지 않는 흰국화 행렬

    [노 前대통령 국민장] “꽃잎처럼 흘러가시라”… 줄지 않는 흰국화 행렬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5일째인 27일에도 김해 봉하마을 빈소를 찾는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뙤약볕 아래에서도 3㎞쯤 늘어선 ‘흰국화 행렬’은 좀처럼 줄어들 줄 몰랐다. ●끊임없는 조문객 행렬 29일이 영결식이어서 문상 기간이 내일 하루밖에 남지않아서 인지 오후 들어서부터 직장인과 중장년층의 조문이 부쩍 늘었다. 이날 25만여명 등 5일간 누적 조문객은 90만명을 돌파했다. 부산에서 왔다는 이모(57)씨는 “생전에는 노 전 대통령을 미워했는데 이렇게 돌아가시니 그분의 명복이라도 빌려는 생각에 일을 끝내고 급히 달려왔다.”면서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부디 좋은 곳으로 가시길 빈다.”고 애도했다. 공동 장례위원장인 한명숙 전 국무총리는 이날 “권양숙 여사가 빈소 자원봉사자와 분향소를 찾은 국민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고 말했다. 한 위원장은 “권 여사가 ‘무더운 날씨에도 본업을 뒤로한 채 슬픔을 같이하고 도움을 주신 자원봉사자 여러분께 깊이 감사한다는 말을 대신 전해 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역사 희생자 보듬었던 고인 이날 오전 제주시 4·3항쟁 유족 대표 20여명이 조문했다. 이중흥(63) 회장은 두 차례에 걸쳐 사저를 방문했던 기억을 되살리며 “방문 당시 사저 정원이 너무 허술해 나무 하나 심으면 좋겠다는 뜻을 피력하니 ‘제주 수종으로 심어달라.’고 하셔서 산딸기나무를 심었다.”고 소회했다. 일본군 위안부 출신 이용수(81) 할머니도 고인의 영정 앞에서 흐느끼며 “큰 별이 떨어져서 달려왔다.”면서 “명절마다 권 여사가 술·과일을 챙겨주셔서 꼭 방문하고 싶었다.”며 눈가를 훔쳤다. 봉하마을 진입로 양쪽에는 1700개의 만장이 내걸렸다. 부산민족예술인총연합회 회원들이 인터넷 다음 ‘아고라’에 오른 노 전 대통령 추모글을 적은 만장은 빈소까지 2㎞ 구간에 설치됐다. 만장에는 ‘돌아와 주세요. 노 통장님. 꽃잎처럼 흘러흘러 그대 잘 가라. 울어도 울어도 보고 싶다.’라며 애도와 그리움을 나타내거나 ‘우리 갈 길 멀고 험해도 끝내 이기리라.’라는 민중가요 가사 등 다양한 내용이 담겼다. ●경남지방경찰청장 물병 세례 일부 조문객들이 이날 오전 빈소를 찾은 이운우 경남지방경찰청장과 경찰간부 40여명에게 물을 뿌리고 야유를 퍼부었다. 이 경남경찰청장 등 일행이 봉변을 당한 까닭은 승용차에서 내리자마자 길게 늘어선 조문객들을 제치고 맨 앞으로 나아가 ‘새치기 조문’을 했기 때문이다. 이 청장이 조문하는 동안 먼저 차례를 기다리던 일부 조문객들은 경찰간부 일행에게 물을 뿌리고 울먹이면서 “경호(청와대 경호를 오해)도 못하고 자살경위 수사도 제대로 못한 주제에 무슨 얼굴로 왔느냐, 경찰이 왜 조문 순서를 지키지 않느냐.”며 거세게 항의했다. 화가 난 일부 조문객은 경찰 일행이 벗어놓은 신발을 발로 걷어차기도 했다. 경찰간부 일행은 입을 굳게 다문 채 흩어진 신발을 집어와 신은 뒤 황급히 자리를 떴다. 김해 김정한 이재연기자 jhkim@seoul.co.kr ■ 식지 않는 추모열기 서울광장 추모제 끝내 불허 한낮에 30도를 넘나드는 무더위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뜨거운 추모 열기에는 미치지 못했다. 서울역사박물관 등 전국 93개 공식분향소를 비롯한 300여개 민간 분향소에는 고인의 서거 5일째인 27일에도 추모 행렬이 길게 이어졌다. 정부는 노 전 대통령 추모 행사를 위해 신청한 서울광장 사용을 이날 결국 불허했다.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은 정부중앙청사 접견실에서 김민영 참여연대 사무처장과 이대영 경실련 사무총장 등 시민추모위원회 관계자 4명을 만난 자리에서 이 같은 입장을 전달했다. 추모위는 이날 오후 7시부터 서울광장에서 추모문화제를 개최하기로 하고 서울시에 허가를 신청했었다. 이에 대해 오세훈 서울시장은 “서울광장 사용규정에 따라 비정치적 행사만 보장되면 개방을 정부에 건의하겠다.”고 말했다. 추모위는 이날 오후 8시30분 정동교회 앞 광장에서 20개 시민단체가 참여한 가운데 약식 추모제를 열었다. ●유시민 “영결식 때 노란넥타이 맬 것” 이해찬 전 국무총리와 임채정 전 국회의장은 이날 서울역 정부 분향소를 찾았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장관은 분향소에서 지은 ‘넥타이를 고르며’라는 글을 통해 “꼭 검은 넥타이어야 할까, 악어의 눈물을 흘리는 자들과 같은 것을 맬 수 없다.”면서 “5월29일 서울광장 노제에서 노란 풍선 백만개가 하늘 높이 오르는 꿈을 꾼다….”며 영결식 당일 노란 넥타이를 매고 가겠다고 말했다. 관공서와 기업들이 회식 등 각종 여흥 행사를 국민장 이후로 미루는 등 전국이 ‘엄숙 모드’에 들어갔다. ●재계 줄지어 분향… 진도에선 씻김굿 서울역사박물관에는 이날도 정·재계 인사들의 분향 추모가 이어졌다. 이건희 전 삼성 회장과 부인 홍라희씨는 오후 8시30분 서울역사박물관에 마련된 정부 분향소를 찾아 고인을 애도했다. 앞서 오전 7시40분 이백순 신한은행장을 선두로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 이웅열 코오롱 회장,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 등이 분향했다. 삼성그룹 사장단은 회사 버스 편으로 도착해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 등 30여명이 단체 분향을 했다. 오후 1시쯤 분향소를 찾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전직 대통령의 서거는 모두의 비극”이라면서 “생전에 고인을 대전야구장에서 뵌 적이 있는데 매우 인간적인 분이었다.”고 인연을 소개했다. 신동빈 부회장을 비롯한 롯데그룹 사장단과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등도 분향소를 찾았다. 충북지역 시민추모위는 28일 오후 7시30분 청주시 상당공원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서 시민추모제를 개최한다. 또 전남 진도군은 진도 씻김굿 주최로 28일 오후 8시 진도읍 철마광장에서 인간문화재와 씻김굿 기능 보유자가 고인의 명복을 비는 씻김굿을 한다. 전국종합 김해 강원식 서울 김성수 김민희기자 kws@seoul.co.kr ■휴가내고… 지방서… 자원봉사 물결 서울에 사는 정모(45)씨는 지난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을 들은 뒤 곧바로 김해행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정씨는 음식점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지만, 휴가를 내고 27일까지 5일째 자원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정씨는 “저에게는 유일한 대통령이었던 노 전 대통령을 위해 무작정 봉하마을로 내려와 국밥 끓이기, 설거지, 청소, 자원봉사 모집, 물나르기 등 닥치는 대로 일하고 있다.”면서 “여기서(봉하마을)는 딱 정해진 일이 없어 그때 그때 필요한 일을 돕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이모(여·33·여수)씨도 지난 23일 노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을 접하자마자 여수에서 경남 양산 부산대학병원을 거쳐 5일째 봉하마을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이씨는 “양산에서 집으로 돌아갈까 했는데, 봉하마을에 가면 할 일이 있을 것 같아 찾아왔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 빈소가 마련된 봉하마을에는 하루 400~500명의 자원봉사자들이 투입된다. 이들은 대부분 새마을단체나 녹색회 등 단체 소속이지만, 상당수는 스스로 일손을 자청하고 있다. 봉사자들은 조문객 질서유지, 리본 및 조화 나눠주기, 국밥 끓이기, 쓰레기 줍기, 설거지, 간이화장실 청소 등 수십가지 활동을 하고 있다. 정씨와 이씨처럼 스스로 자원봉사 활동을 하겠다고 찾아오는 사람도 하루 300명 이상에 이른다. 하루 몇 만명의 조문객을 맞아야 하는 봉하마을에서는 자원봉사자들이 큰 힘이 되고 있다. 조문객으로 왔다가 일손을 도와달라는 안내 방송을 듣고 자원봉사자로 남은 사람들도 많다. 김모(55·부산·식당업)씨는 25일 오전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기 위해 봉하마을을 찾았다가 밤늦게까지 국밥에 들어갈 무를 종일 썰고 이튿날 귀가했다. 김해 박정훈기자 jhp@seoul.co.kr ■ 방명록 수놓은 조문객 글들 “당신의 빈자리 이렇게 클 줄…” “6년 전 당신을 알았습니다. 앞으로 60년 당신을 기억하며, 가슴에 담고 살아가겠습니다.”(경기 부천시 배항섭) 김해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빈소를 찾는 조문객들은 고인을 잊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방명록에 옮기고 있다. 초등학생부터 노인까지 저마다 노 전 대통령을 추억하는 마음을 햐얀 종이에 쏟아내고 있다. 초등학생 정지은양은 “대통령 할아버지의 웃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국화 놓고 갈게요.”라고 썼고, 김명규씨는 “정작 가야 할 사람은 나이 많은 나인데, 아직 할 일이 많은 당신을 먼저 보내 가슴이 미어집니다.”며 애끊는 마음을 옮겼다. 이진희씨는 “말이 안 나옵니다. 그냥 멍하네요. 멍했다, 슬펐다, 다시 멍해집니다. 살면서 흔들릴 때마다 대통령님을 생각하겠습니다.”고 적었다. 송민호씨는 “주름진 이마와 희끗한 머리를 보면 ‘할아버지’, 막걸리 잔을 기울일 땐 ‘이웃집 아저씨’, 밀집모자를 쓰고 들녘에 나선 모습을 볼 때면 ‘삼촌’이라고 부르고 싶었습니다. 당신의 빈 자리가 이렇게 클줄 몰랐습니다.”며 생전을 추억했다. 한권, 한권 맺어지는 방명록에는 권양숙 여사를 걱정하는 마음도 담았다. 연옥이라는 추모객은 “권 여사님, 기운 차리세요. 대통령님은 가셨지만, 여사님은 우리 곁에 남아 우리를 지켜주세요.”라고 걱정하는 마음을 담았다. 김해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다른기사 보러가기] ‘공시족’에게 공직이란?…달라진 의식들 “비정규직 차별 임금 차액 전액 지급하라” 유학생 입국 시즌… 신종플루 금주가 고비 서울대 주요학과 합격자 출신고 분석하니 올 지방직 9급 시험문제 분석해보니 경호관은 은폐 시도… 경찰은 부실 수사
  • 돌아온 심슨가족의 좌충우돌 일상

    돌아온 심슨가족의 좌충우돌 일상

    못 말리는 가족의 좌충우돌 일상, 매력적인 노란 피부 ‘심슨 가족’들의 열 번째 이야기가 시작된다. 애니메이션 채널 투니버스는 25일부터 매주 월~목 오후 11시30분에 ‘심슨네 가족 시즌10’(원제·The Si mpsons)을 방송한다. ‘심슨네 가족’ 시리즈는 미국 스프링필드에 사는 심슨 가족의 일상을 재치 있는 유머로 그려내면서 미국사회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한 인기 장수프로그램이다. 엉뚱하고 낙천적인 가장 호머 심슨과 높은 파마머리의 아내 마지, 악동 바트와 똑순이 리사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캐릭터들. 이들은 ‘맷 그로닝’(Matt Groening)의 원작 만화를 미국 FOX TV가 1989년 처음 ‘크리스마스 스페셜’로 방송한 이래 20년 가까이 사랑받고 있다. 심슨 시리즈는 현재까지 미국에서 총 20개 시즌, 440개 에피소드가 방송됐다. 2010년쯤에는 시즌21도 제작·방송될 예정. 이번 시즌은 미국 FOX TV에서 1999~2000년 제작·방송한 것으로 미국에서는 시즌11로 전파를 탔으나, 투니버스에서는 국내 소개된 순서에 따라 시즌10으로 제목을 붙였다. 국내에는 한 번도 소개된 적이 없는 시즌이다. 투니버스 관계자에 따르면 심슨 시리즈 에피소드 중 일부는 국내 정서와 맞지 않거나 ‘15세 이상’이란 등급에 맞지 않아 방영에 제한을 두다보니 한·미 간 시즌 방송 순서가 틀어진 것이다. 25일 방송하는 1화 ‘최악의 영화’편은 할리우드에 초청된 호머 심슨의 이야기다. 호머는 멜깁슨의 새영화 시사회에 참석해 아내 마지가 그를 칭찬하자 질투심에 영화를 혹평한다. 이를 들은 멜깁슨은 영화 개선에 도움을 달라며 할리우드 영화제작 현장으로 호머를 초청한다. 26일 2화 ‘개과천선한 바트’편은 착해지는 약을 먹은 바트 이야기. 매일 말썽만 피우는 악동 바트를 보다못한 교장은 호머와 마지를 호출해 바트에게 새로 나온 약을 먹여보라고 권한다. 제약회사까지 직접 달려가 약효를 본 부부는 이를 당장 실행에 옮긴다. 27일 3화는 ‘핼러윈 특집’편. 안개가 자욱한 밤 운전을 하던 마지가 옆집에 사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 네드 플랜더스를 친다. 심슨 가족은 이 사고를 숨기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아무도 자기들을 의심하지 않자 기뻐한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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