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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무원노조 5급 사무관도 가입’ 개정안 발의

    ‘5급 사무관들이 공무원 노조원이 되면 처우 개선에 도움이 될까, 아니면 정치적 중립을 해치는 이익집단으로 변질될까.’ 지난달 14일 전순옥 민주당 의원이 공무원 노조의 가입 대상을 현행 6급이하에서 5급이하로 확대하는 법률 개정안을 발의하자 중간 관리자인 5급 공무원(사무관)의 역할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할지는 불투명하지만 일단 개정안을 찬성하는 쪽에서는 중앙행정부처의 실무를 맡은 사무관들이 노조의 일원으로 흡수돼 대표성을 강화하고 근무 환경 등의 처우 개선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공무원들이 정치 단체로 변질되는 게 아니냐는 반론도 제기된다. ‘공무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노조에 가입할 수 있는 공무원의 범위는 현재 6급 이하의 일반직 공무원과 일부 특정직 공무원으로 제한된다. 노조의 조직과 단체교섭은 인정되지만 파업과 같은 단체 행동은 금지된다. 전 의원실 관계자는 4일 “행정부 공무원 중 5급이 11% 이상이고 5급 공무원들의 담당 업무도 실무적인 내용이라 노조 가입 범위를 상향 조정해 기본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안전행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중앙부처 일반직 공무원 11만 2970명 중 6~9급 공무원은 8만 8300명이고 5급은 1만 2779명이다. 하지만 기획재정부의 경우 6~9급이 1040명 중 217명(20%)이고, 국무총리실은 406명 중 64명(15.7%)에 그치는 등 5급 사무관이 실무자 역할을 하는 부처가 많다. 경제부처의 한 5년차 사무관은 “더위에 에어컨도 제대로 못 켜는 열악한 근무 여건 속에서도 공무원이라는 이유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면서 “유명무실한 공무원노조의 발언권이 강화될 것으로 봐서 찬성한다”고 밝혔다. 박희준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인사권자도 아닌 5급 공무원까지 노조 가입을 제한한 것은 민간 기업과의 형평성 측면에서 맞지 않는다”면서 “공무원들이 파업을 못 하는 등 노동3권의 현실적 제약을 고려하면 가입을 허용해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공직사회에서는 5급이 노조에 편입되면 공무원들이 정치적 이익집단으로 변질되고 간부의 리더십을 제약할 것이라는 우려도 만만찮다. 외교안보부처의 한 과장(4급)은 “사무관은 여전히 정책을 기획하고 입안하는 중추”라면서 “관리자 입장에서는 이들이 집단화돼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공무원들이 국익에 반하는 주장을 펼칠 것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선우 방송통신대 행정학과 교수는 “지방에서는 5급이 부서장을 맡는 등 사무관은 여전히 중간 관리자”라면서 “국민에 대한 봉사자라는 입장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권혁 변호사의 행정법 판례 강의] 연가 결재 없이 총파업 참석 공무원 징계 최고 수위 파면 처분 정당한가

    공무원의 징계에 관한 대판 2006두19211판결을 소개하고자 한다. 공무원인 A는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의 결의에 따라 총파업 참가를 위해 소속 기관장에게 연가 신청을 하였으나 소속 기관장이 연가 신청을 불허하였다. A는 총파업 참가를 위해 직장을 결근했고, 이에 A에 대해 무단직장이탈행위를 이유로 징계 처분이 내려졌다. A는 위 징계 처분에 불복하여 그 취소를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다. 이 사건에서 ①A는 연가 신청을 했고 학교장이 이를 허가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무단이탈에 해당하는가, ②공무원이 가지는 노동3권의 행사를 이유로 징계를 하는 것이 가능한가, ③공무원에 대한 징계 양정이 적법하였는가에 대해 다뤄졌다. 먼저, 국가공무원법과 지방공무원법에는 법정 연가 일수가 보장돼 있고 그 범위 내에서 연가 신청을 하면 행정기관의 장은 특별한 지장이 없는 한 이를 허가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문언의 규정상 기관장의 연가 신청에 대한 허가는 재량이 없거나 재량이 축소돼 있는 것으로 보이기는 한다. 하지만 대법원 판례에서는 일관되게 소속 행정기관 장의 허가가 있기 전에 근무지를 이탈한 행위는 연가 신청을 했다고 하더라도 ‘근무지의 무단이탈’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대판 96누2521판결). 공무원도 헌법상 규정된 노동3권 중에서 단결권, 단체조직권은 인정되고 있다. 하지만 국가공무원법 제66조 제1항, 지방공무원법 제58조 제1항에서는 공무원의 집단행위를 금지하고 있고, 대판 90다8916판결 등에서 이를 합헌으로 보고 있다. 공무원의 단체행동권을 제한한 법률에 대해서 위헌 여부가 지금도 논의되고는 있으나 공무원에게 단체행동권은 여전히 그의 권리 밖에 있는 것이다.(다만, 사실상 노무에 종사하는 공무원과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일부 공무원들은 법률이 정한 범위 내에서 노동운동을 할 수 있다.) ☞<정책·고시·취업>최신 뉴스 보러가기 우리 법원은 공무원의 집단적 행위에 대해 엄격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지방공무원 복무조례 개정안에 대한 의견을 표명하기 위해 시장의 사택을 방문한 노동조합 시지부 사무국장에게 집단행위 금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파면을 한 것을 정당하다고 보거나(대판 2006두16786판결), 연가 신청을 냈으나 불허받고도 전국기관차협의회의 투쟁활동에 동조한 자에 대한 파면을 정당하다고 보기도 했고(대판96누2521판결), 전교조 교사들이 시국선언을 하고 시국선언 탄압 규탄대회를 개최한 경우 형사판결에서 유죄를 선고하기도 하였다(대판 2010도6388판결). 근대에는 공무원과 국가 사이의 법률관계는 특별권력관계로 보아 법원이 판단할 수 없는 것으로 보기도 했다. 지금에 와서는 공무원도 자연인으로서 헌법상 기본권을 누린다는 데 이론이 없고 공무원에 대한 징계 처분에 대해서는 항고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는 특별행정법관계로 보는 데 이론이 없다. 공무원에 대해 집단행동을 금지시키고 복종의무, 직무전념의무, 정치적 중립의무 등을 공무원의 노동3권 중 단체행동권보다 우선하여 두는 것은 타당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 위반 행위에 대한 징계 중 최고 수위인 파면 처분이 과연 정당한가. 지금까지 대법원 판결들은 대체로 파면이 정당하다고 보고 있으나 해임이나 정직 등으로도 징계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고 노동3권이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인 점 등을 고려하면 징계 양정에 대해서는 법원이 달리 볼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 [책꽂이]

    파워 오브 아트(사이먼 사먀 지음, 김진실 옮김, 아트북스 펴냄) 미술사학자인 저자가 BBC와 손잡고 만든 방송프로그램을 EBS가 8부작 프로그램으로 방영하면서 크게 화제를 모았던 책이다. 카라바조, 베르니니, 렘브란트, 다비드, 터너, 반 고흐, 피카소, 로스코 등 위대한 예술가 8명의 삶과 작품 세계를 담았다. 2008년 출간된 책의 개정판이다. 2만 6000원. 한국인이 좋아하는 밥상(이밥차요리연구소 지음, 그리고책 펴냄) 이밥차, 2000원으로 밥상 차리기라는 말의 줄임말이다. 진짜 2000원이라기보다 그만큼 부담 없이 편안한 재료로 손쉽게 따라 만들 수 있는 요리를 지향한다는 의미다. 이번 책에서는 가장 흔히 이용하는 메뉴들을 엄선했다. 1만 8800원. 웃음만이 우리를 구원하리라(박성호 등 지음, 예담 펴냄) 요즘 가장 잘나간다는 KBS 개그콘서트의 다섯 개그맨인 박성호, 김준호, 김원효, 최효종, 신보라의 얘기를 인터뷰 형식으로 정리했다. 끝에 붙은 서수민 PD의 평이 재밌다. 재밌다 싶으면 망설이지 않는 박성호, 선후배가 함께할 수 있는 코너를 만드는 김준호, 럭비공 같은 의외성에다 진득함까지 갖춘 김원효, 감이 오면 막 달려 나가는 폭주기관차 최효종, 노래에다 연기, ‘똘기’까지 갖춘 완벽한 개그맨 신보라. 1만 3000원. 일과 인생에 불가능은 없다(마쓰시타 고노스케 지음, 김정환 옮김, 청림출판 펴냄) 가난했기에 열심히 살았고, 몸이 약했기에 남에게 일을 부탁하는 법을 배웠고, 못 배웠기에 누구에게나 배우려고 했다는 일본 경영의 신 마쓰시다 고노스케의 어록집이다. 노동자 정리해고를 반대하고, 주5일 근무제를 앞장서서 도입하고, 마쓰시다정경숙을 설립해 인재를 양성하는 등 고집스러운 경영을 해 온 그의 면모가 드러난다. 모두 3권으로 2권은 ‘사업에 불가능은 없다’, 3권은 ‘경영에 불가능은 없다’다. 각권 1만 3000원. 책인시공(정수복 지음, 문학동네 펴냄) 책을 펴자마자 맞닥뜨리는, 17개 조항으로 이뤄진 ‘독자권리장전’에서부터 웃음이 나온다. 제목대로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책을 읽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얘기다. 자신의 경험에다 국내외 책 좋아하는 사람들의 경험을 다 버무려 놨다. 1만 4000원.
  • “국민과 소통 위해 야당과 먼저 소통해야”

    “국민과 소통 위해 야당과 먼저 소통해야”

    민주통합당 등 야당은 25일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을 축하하면서도 국민과 야당과의 소통, 실질적인 경제민주화와 복지 구현을 주문하는 등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취임식 전날까지 줄곧 박 대통령을 향해 날을 세웠던 것에 비하면 수위는 낮아졌지만 최근 정부조직개편안 협상 등으로 냉각된 기류가 가시지 않아 덕담 속에도 가시가 돋쳤다. 정성호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벌써부터 박 대통령이 공약한 경제민주화와 복지 확대가 철회 또는 축소되는 것을 우려하는 여론이 있다”면서 “이는 국민이 박 대통령을 선택한 이유가 원칙과 신뢰였다는 점에서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국민과 소통하기 위해 국회와 소통해야 하고 무엇보다 야당과 소통해야 한다. 야당과의 소통은 야당을 국정 운영의 파트너로 인정하고 신뢰를 얻을 때 가능하다”고 당부했다. 정 대변인은 박 대통령이 지켜야 할 원칙으로 국민과의 신뢰를 최우선으로 하는 ‘무신불립’(無信不立·믿음이 없으면 일어설 수 없다)을 강조하며 “무신불립은 북한 핵실험이라는 안보 위협과 세계 경제 위기라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 취임하는 박 대통령이 향후 5년간 반드시 기억해야 할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부디 국민의 신뢰를 얻어 성공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되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박원석 진보정의당 원내대변인도 “대통령 취임식이 국회에서 열리는 것은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입법부를 존중하고 국정 운영에 있어 협력의 대상으로 여겨야 함을 의미한다”며 “향후 여당 의원들을 거수기로 여기고 야당을 무시하는 처사를 보이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고 지적했다. 또 “그동안 원칙과 신뢰를 강조해 온 박 대통령의 취임 전 인사는 많은 국민에게 적지 않은 실망을 안겼다”면서 “새롭게 출범한 정부의 향후 공직 인선 과정에서는 이 같은 모습이 반복되지 않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박 대통령이 국민과 소통하고 야당을 존중하는 자세로 경제민주화와 복지 실현을 이행해 나간다면 진보정의당은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위해 적극적으로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자당 의원들이 1심 재판에서 줄줄이 당선무효형을 받은 통합진보당은 박 대통령을 향해 “신냉전 종북 논리로 진보진영을 배제, 고립시키는 것은 구시대적인 발상”이라고 각을 세웠다. 민병렬 대변인은 “무엇보다 정치 쇄신, 남북관계 발전, 노동3권 보장 공약을 이행하기 바란다”며 “평화가 안정, 통일이 복지라는 인식으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진행하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야당들은 취임 축하 논평 외에 별도 논평을 통한 공세를 자제하고 차분한 분위기 속에 취임식을 지켜봤다. 각 당 지도부도 오전 회의 말고는 공개 일정을 잡지 않고 취임식 축하 일정 참가로 하루를 보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책꽂이]

    자본주의의 기원과 서양의 발흥(에릭 밀란츠 지음, 김병순 옮김, 글항아리 펴냄) 부제가 ‘세계체제론과 리오리엔트를 재검토한다’다. 이매뉴얼 월러스틴과 안드레 군더 프랑크 양측 모두 비판하면서 넘어서겠다는 것인데, 그렇게 해서 가닿은 지점은 중세의 복권이다. 중세는 암흑기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토대를 형성한 시기였다는 것이다. 도시국가와 시민권 문제의 뿌리가 중세에 있어서다. 자본주의의 핵심은 거대 자본이 아니라 그 자본을 움직일 수 있는 정치적 권력의 문제이고. 그 뿌리는 12세기 서유럽 사회에까지 소급해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2만원. 고사성어 대사전(김성일 지음, 시대의창 펴냄) 고사성어를 총정리했다. 봉건왕조시대 정치상황에서 생성된 낡은 말글자 놀이, 괜히 있어 보이려 치장해대는 속물적 교양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고사성어는 압축적인 맛 때문에 여전히 널리 쓰인다. 단순히 한자 뜻풀이만 한 게 아니라, 다양한 출전과 역사문화적 배경설명, 용례까지 곁들였다. 8만 5000원. 존재의 충만, 간극의 현존 1·2(조광제 지음, 그린비 펴냄)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의 대표작 ‘존재와 무’에 대한 2년간의 강의 기록을 한데 모았다. 저자는 실존주의 대신 현존주의라는 표현을 제안한다. 두 가지 이유에서인데 하나는 그냥 실존주의라 부르면 실존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와 사르트르 간의 입장 차이가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실존주의라는 단어가 도시, 개인주의, 자폐, 낭만 이런 표현들에 너무 침식되어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1권 3만 2000원, 2권 3만 3000원. 세계노동운동사 1·2·3(김금수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 한국노총, 민주노총, 한국노동사회연구소,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노사정위원회 등 평생 노동운동에 몸 바쳐 온 저자가 그간의 강의록을 총정리해 3권의 두꺼운 책으로 묶어냈다. 1·3권 3만원, 2권 2만 5000원. 식민지 유산, 국가 형성, 한국민주주의1·2(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기획, 정근식·이병천 엮음, 책세상 펴냄) 민족주의적 수탈론과 극우적 식민지근대화론의 대립으로 상징되는 식민지 유산 문제를 집중 논의한 결과물이다. 23명의 학자가 참가해 다양한 분야에 대해 논의했다. 1권 2만 3000원, 2권 2만 5000원.
  • 열심히 살아도 불안한 중산층의 암울한 현실

    ‘배신’에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다. ‘사랑의 배신’도 있고 ‘의리의 배신’도 있다. 또 ‘계약의 배신’도 있고 ‘조직의 배신’도 있다. 그만큼 배신은 우리 곁에 항상 도사리고 있다. 다니던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만큼 배신은 성역이 없기 때문에 언제든 배신의 늪에 빠질 수 있다. 어쩌면 자신도 남을 배신하고 있는지 모른다. 하여 늘 조심하며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2009년 10월 미국에서 ‘긍정의 배신’(한국은 2011년 4월)이라는 책이 출간됐다. 자기계발서 등 긍정주의가 사람들을 체제에 순응하게 만드는 신자유주의의 도구이자 신념체계로 작동하고 있음을 파헤쳐 출간되자마자 ‘아마존’ 사회 부문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며 독자들 사이에 격렬한 찬반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어 출간된 ‘노동의 배신’에서는 ‘게으르기 때문에 가난하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렸다. 이 책은 여러 주 정부에서 최저 임금 인상까지 이끌어 냈다. 신간 ‘희망의 배신’(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전미영 옮김, 부키 펴냄)은 ‘배신 시리즈’의 3권이자 완결편이다. 부제가 ‘화이트칼라의 꿈은 어떻게 무너지고 있는가’인 것처럼 화이트칼라의 구직현장에 뛰어들어 ‘열심히 일하면 잘살 수 있다’는 소박한 희망마저 배신당하고 일자리 불안과 과다 노동에 지쳐가는 신자유주의 시대 중산층의 암울한 현실을 고발한다. 저자는 취업 박람회를 쫓아다니면서 화장은 물론 성격까지 고분고분하게 바꾸며 화이트칼라 세계에 진입하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10개월 동안 마주친 것은 능력과 경력보다는 쾌활하고 복종하는 태도를 더 중시하는 기업문화, 실직자를 볼모로 삼는 코칭산업, 미끼 상술이 판치는 프랜차이즈 영업직 등 비표준적 일자리, 밀려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슬픈 노동의 현실을 다룬다. 결국 해고되거나 취직을 못하는 것은 기업에 맞추지 못한 ‘내 탓’이며 실직과 정리해고는 사회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문제로 축소되고 불평등은 정당화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1만8400원. 김문 선임기자 km@seoul.co.kr
  • 그의 숨결·호흡 그대로 ‘현대사 질곡’ 투영하다

    그의 숨결·호흡 그대로 ‘현대사 질곡’ 투영하다

    20대에 연좌제에 좌초돼 한국 사회를 쓸쓸하게 또는 필사적으로 떠돌아다닌 그는 소영웅주의자일까, 아웃사이더일까. 한국의 대표적인 번역자, 저자, 소설가로 살다간 이윤기(1947~2010)의 이야기다. 그는 ‘그리스 로마 신화’ 시리즈(2000년)의 저자로,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1986년)과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1981년)의 번역자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의 삶은 유명세만큼이나 화려(?)하다. 그는 별스러운 사람이었다. 경북 군위 출신인 그는 대구 칠성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경북중에 이어 경북고에 진학했으나 들어간 지 3개월 만에 그만뒀다. 이후 검정고시로 대학 진학 자격을 얻어 1967년 신학대학에 진학하지만 역시 도중에 그만뒀다. 그 후 유학 자격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기회를 얻었지만, 재일교포였던 그의 큰아버지가 조총련계로 재일교포 북송단 모집책이었던 탓에 연좌제에 걸려 포기해야만 했다. 연간 1만 5000장을 번역하는 고달픈 번역 노동자로 생계를 꾸려나가야 했던 이유이자, ‘온갖 똥폼을 다 잡는 스타일리스트’였지만 죽는 날까지 학력 콤플렉스에 시달렸던 이유였다. 2010년 8월 27일 심장마비로 사망한 이윤기 사후 2주기를 맞아 그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던 출판사 열린책들이 그의 첫 소설 ‘하늘의 문’을 재출간했다. 원래 3권으로 나왔던 책인데, 읽다가 졸리면 목침으로도 쓸 만한 1085쪽 두께의 한 권으로 내놨다. 1994년 펴낸 이 책은 권당 5500원으로 3권이면 액면가가 1만 6500원이지만, 중고책 시장에서 7만 5000원의 고가에 거래된다. 이번 신간은 2만 8000원이니, 더이상 중고책을 구하려 애쓰지 않아도 되겠다. 이윤기의 첫 소설을 재출간하려고 애쓴 책 디자이너이자 이윤기의 경북고 3년 선배인 정병규(66)는 지난 22일 기자간담회에서 “소설처럼 윤색됐으나 그의 삶을 아는 나로서는 이 책이 소설로 읽히지는 않는다. 다만, 그의 삶을 잘 모르는 독자들에게는 한국 현대사의 묘한 얼룩이 삶에 스며든 근대인의 삶으로 이 소설이 읽힐 것이므로, 이른바 ‘한국 현대사 교양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다.”고 재출간의 이유를 말했다. 가난한 어린 시절과 철저한 양반의식, 연좌제로 좌절된 유학, 베트남 파병 군인의 삶과 공사판을 전전하며 노동자로 살아간 이윤기의 이야기들이 들어 있다. 이어 정병규는 “이 소설에는 사전에 안 나오는 말들이 많은데, 노동자들의 현장의 목소리, 지방의 사투리 등이 고스란히 들어 있어 한국 밑바닥의 진솔한 삶을 직접 만날 수 있다.”고 했다. 친구이자 문학평론가였던 황현산 고려대 불문과 명예교수도 이날 “이윤기가 서사가 뛰어난 작가라고 할 수는 없지만, 문장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고, 이 소설은 ‘자기 자신을 번역했다’고 할 만한 책”이라고 말했다. 이윤기는 197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서 단편 ‘하얀 헬리콥터’로 등단했지만 번역일에 휘둘리다가 이 책을 내놓고서야 비로소 본격적인 소설가의 길로 들어섰다. 문단 데뷔 20년 만의 ‘중고 신인작가’였던 셈이다. 정병규는 “자신의 속살을 다 드러낸 뒤에야 스스로 본격 소설가로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고 했다. 이런 의미들이 부여된 까닭에 재출간된 ‘하늘의 문’은 원본을 그대로 살렸다. 강무성 열린책들 편집주간은 “출판 당시의 오자만 바로잡았지, 사전에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새로 교정하거나 국문법상으로 쉼표가 올 수 없는 부분에 놓여 있는 쉼표라고 해서 없애거나 하지 않고, 이윤기의 숨결과 호흡 그대로 살려 놓았다.”고 말했다. 180㎝ 가까운 키에 터무니없이 큰 발, 그리고 큰 체구를 지닌 이윤기는 건강이 나빠진 말년에도 하루에 조니워커 레드를 2병씩 마실 정도로 술도 셌다. 심장마비를 일으키기 전에 몸이 비쩍 말라갔지만, 병원에 다니며 병명을 찾고 몸에 주삿바늘을 꼽는 것은 인위적인 삶이라며 거부한 이가 이윤기다. 정병규는 “파커 만년필의 촉이 닳아 날카로운 칼처럼 돼 수북이 꽂혀 있고, 손바닥에 굳은살이 박일 것 같아 손가락 부분을 잘라낸 골프장갑을 낀 채 번역하는 그의 모습이 징그러우면서도 그립다.”면서 “문학적 감수성을 가지고 삶을 기록한 이윤기의 모습과 느낌을 ‘하늘의 문’ 표지를 통해 고스란히 살리고 싶었다.”고 했다. 이번 책표지를 그가 디자인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중국집 ‘철가방’서 ‘조리명장’으로

    중국집 ‘철가방’서 ‘조리명장’으로

    “요리 외길 인생이 좋은 결과로 나타난 것 같아 보람을 느낍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대학 진학을 포기했던 중국 음식점 배달원이 조리 분야의 마에스트로인 조리명장이 됐다. 영산대 동양조리학과 겸임교수인 서정희(45)씨는 28일 고용노동부가 주관하는 ‘올해의 조리 명장’으로 선정됐다. 현재 조리 명장은 서씨를 포함해 8명뿐이다. 그가 중국 음식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1986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동네 중국 음식점에서 배달원으로 일하면서부터다. 이때부터 3년간 철가방을 들면서 조리 기술을 배웠고,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자 중국 요리 전문점으로 자리를 옮겨 4년간 기술을 더 익혔다. 1991년 창업한 서씨는 본격적으로 요리 개발에 나서 2005년에 조리 기능장이 됐다. 또 학업의 꿈을 버리지 않았던 서씨는 2006년 영산대 조리학과에 늦깎이 학생으로 입학, 학사학위를 딴 뒤 곧바로 이 대학 관광대학원 조리예술 과정을 밟아 지난 2월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서씨는 그 사이 중국 요리책 3권을 펴냈고 ‘팔보 오리탕’, ‘새우 녹즙면 말이 칠리’, ‘참마 튀김’ 등의 요리 특허도 취득했다. 지난해 6월에는 중국 요리사 최초로 신지식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현재 부산 동래구 온천동에서 중식당을 운영하는 서씨는 봉사활동에도 열심이다. 1998년 결식아동을 위한 ‘중식봉사협회’를 결성해 동료 요리사들과 함께 4년째 꾸준히 봉사활동을 해오고 있으며 군 장병과 노년층을 대상으로 한 ‘자장면 나누기’ 행사도 정기적으로 해 오고 있다. 이제 그는 또 다른 꿈을 꾸고 있다. 후진 양성과 함께 체계적인 요리교육과 기술을 전수할 수 있도록 요리박물관을 건립하는 것. 서씨는 “요리실력 향상과 후배 양성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임금체불·부당해고 상담하세요

    앞으로 강북구에서는 임금 체불, 부당 해고, 열악한 노동 환경 등으로 고통받는 노동자들이 노동 전문가의 도움을 통해 헌법이 보장한 노동3권을 찾을 수 있게 됐다. 노동3권이란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가리킨다. 구는 영세사업장 노동자와 비정규직 등 취약 노동자의 애로사항 청취 및 권리 구제를 위해 ‘시민명예노동옴부즈맨 제도’를 본격 운영한다고 16일 밝혔다. 시민명예노동옴부즈맨 제도는 취약 노동자와 노동 전문가 간 상담을 통해 일할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실시하는 것이다. 구는 제도 활성화를 위해 현직 노동위원회 국선노무사이자 서울강북구상공회의소 이사인 조월출 노무법인 신명 대표를 강북구 시민명예노동옴부즈맨으로 위촉했다. 시민명예노동옴부즈맨은 ▲10인 미만 영세사업장 및 비정규직 등 취약 노동자의 애로사항과 건의사항 청취 ▲권익 침해 등의 사건에 대해 신속·공정한 구제를 받을 수 있도록 권리 구제 절차 안내 ▲기타 근로자 복지 향상을 위한 법령제도 안내와 개선사항 건의 등의 역할을 담당한다. 시민명예노동옴부즈맨 연락처는 120 다산콜센터 혹은 강북구청 생활보장과(901-6664)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선택! 역사를 갈랐다} (20) 다산 정약용과 풍석 서유구

    [선택! 역사를 갈랐다} (20) 다산 정약용과 풍석 서유구

    다산 정약용(1762~1836)은 조선 최고의 스타다. 풍석 서유구(1764~1845)는 조선의 무명스타다. 서로 두 살 터울. 다산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조명했다. 풍석은 너무했다 싶을 정도로 관심을 받지 못했다. 정조의 총애를 받았고, 당대 최고의 엘리트였고, 18년이라는 정치적 유폐기를 거쳤고, 유폐기에 대작을 저술했고, 조선의 융성을 위해 노심초사했고, 남양주에서 생을 마감했으며, 사후 많은 사대부가 추앙했다. 다산만의 얘기라 생각하는가. 풍석도 꼭 그랬다. 그럼에도, 두 위인의 학문적 지향은 전혀 달랐다. 후생들은 결국 다산에게 마음을 기울였고, 풍석은 거의 뒷전이었다. 다산은 풍석의 과거 선배다. 요샛말로 다산은 1789년에 급제한 89학번으로 60명 중 2등, 풍석은 1790년에 급제한 90학번으로 46명 중 24등이었다. 두 사람 모두 직부전시(直赴殿試) 명을 받았다. 이는 여러 절차를 생략하고 곧장 최종 과거에 응시하라는 왕명이다. 이러면 급제는 따 놓은 당상이다. 급제 후 곧장 초계문신이 되었다는 점도 같다. 초계문신은 정조의 최측근 문신 집단이다. 다산의 승진 속도는 풍석보다 빨랐다. 고위직인 정3품 당상관 품계를 5년 먼저 받은 것이다. 정조가 군주이자 학문적 스승을 자처하며 왕권을 강고하게 행사할 때까지, 둘은 겉으로 보기에 같은 쪽을 향하는 듯했다. 다산은 한미한 집안 출신이다. 천주교에 관심을 가지면서 고초를 겪기도 했으나, 정조의 두터운 신임은 여전했다. 이에 반해 풍석은 최대 문벌 중 하나인 대구(달성) 서씨의 후예다. 게다가 진퇴에 신중했기에 큰 반대에 부딪힌 적이 없다. 다산이 ‘문제적 범생’이라면 풍석은 ‘범생’ 그 자체다. ●정약용·서유구 정치적 공백기 18년 정조는 집권 초부터 젊은 문신 양성의 일환으로 ‘경사강의’(經史講義)라는 재교육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이 중 시경(詩經)을 분석하는 ‘시경강의’에 두 사람이 동시에 참여한다. 이 시경강의는 16년 동안 25회에 걸쳐 실시했던 경사강의 중 가장 큰 규모였다. 정조는 590문제를 출제했고, 초계문신에게 40일이 주어졌다. 이로도 모자라 20일을 연장했다는 다산의 고백에서 얼마나 힘든 테스트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정조의 문집 ‘홍재전서’에는 이 중 579개의 문제와 답을 적어두었다. 수험자가 18명이니, 1인당 32문제꼴로 답안이 채택되어야 평균이다. 누구 답변이 가장 많이 채택되었겠는가. 우리의 영웅 다산일 거라 짐작한 독자에게는 미안하다. 풍석이 독보적이다. 풍석의 답안은 총 181개로, 전체의 31.3%다. 시작과 끝 문제의 답안 역시 풍석의 것이었다. 다산의 답안은 117개가 실렸으며 총 20.2%를 차지한다. 다산의 것도 결코 적은 비중은 아니나 풍석의 월등함에 빛이 바랬다. 시경강의는 두 사람에게 큰 이력이었다. 다산은 인생에서 가장 큰 영광의 추억으로 이 시경강의를 들었다. 다음과 같은 정조의 어평(御評)을 두고두고 써먹었다. “백가(百家)의 말을 두루 인용하여 그 출처가 무궁하니, 진실로 평소의 온축이 깊고 넓지 않다면 어찌 이와 같을 수 있으랴.” 자신이 남긴 ‘시경강의’ 서문에는 물론이고, 스스로 쓴 묘지명에도, 가장 존경했던 형 정약전에게도, 아들에게도 그날의 기억을 되풀이했다. 또 자신의 답안이 최고였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압도적 수석인 풍석은 이 기억을 되새기지 않았다. “책을 열자 바로 개안하는 느낌이다.”라거나 “근거가 분명하고 충분하며 언어가 알맞고 정연하여 고도의 전문성을 갖춘 이에게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다.”는 등 총 6군데서 어평을 받았으면서 말이다. 그래도 젊은 시절 풍석은 분명히 경학의 당대 최고 실력자 중 한 사람이었다. 다산은 정조 사후 천주학 타도 바람에 휘말려 귀양살이를 시작한다(1801년). 풍석은 이 바람과 무관하게 승승장구했다. 그러다 5년 뒤 김달순 옥사를 계기로 풍석의 탄탄대로에 탈이 났다. 작은아버지 경기감사 서형수는 유배형을 받고, 재종숙부 영의정 서매수가 정계에서 축출되면서 가세는 급격히 쇠락한다. 연좌의 공포에 휩싸인 풍석의 선택은 귀향이었다. ●정약용, 이상적 통치 목표 ´경학·경세학´ 몰두 억울하게 유배지에 갇힌 다산과 죄 없이 죄인을 자처하며 낙향한 풍석. 과정이 어쨌든 불우한 처지이기는 피차일반이었다. 정치적 공백기 18년. 그러나 여기서부터 이들의 길은 판이하게 갈린다. 다산은 유학의 정통 분야인 경학과 경세학(經世學)에 몰두했다. 조선 유자의 지향점을 요약하면 수기(修己)와 치인(治人). 수기는 자신의 몸과 덕성을 수양하는 일이요, 치인은 백성을 다스리는 일이다. 수기는 치인을 위한 인문학적 토양이고, 치인은 자기 수양의 경세론적 확장이다. 다산은 61세에 자신의 학문을 이렇게 정리했다. “육경(六經)과 사서(四書)로 자기 몸을 닦고 1표(表)와 2서(書)로 천하·국가를 다스리니, 본말을 갖추었다.” 육경과 사서는 경학이고, 수기의 세계다. 경세유표·목민심서·흠흠심서는 경세학이고, 치인의 영역이다. 저술은 경집(經集) 232권, 1표2서를 포함한 문집 260여 권으로 총 500권이 다 된다. 다산의 지향은 조선 제도를 개혁하는 일이었다. 반면 풍석은 파주 장단으로 귀농하고서 경학과 경세학을 철저히 외면했다. 경학을 해봐야 옛 사람의 중언부언이고, 경세학을 해봐야 결국 ‘흙 국’이나 ‘종이 떡’처럼 공허한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서 ‘잡학’ 마니아가 된다. 풍석의 잡학은 ‘임원경제지’(林園經濟誌)에 질서 있게 배열되었다. 농학, 천문학, 공학, 수학, 요리학, 의학, 어업, 예술, 상업 등 총 16분야다. 경학과 경세학의 언어를 빌리지 않고서 113권으로 마무리했다. 종류는 다양하지만 주제는 하나다. 시골에서의 자립적인 삶을 위한 지식 체계. 풍석의 지향은 사대부 일상을 개혁하는 일이었다. 풍석은 18년 공백 후 정계에 복귀해 15년간 고위직을 두루 거쳤다. 그 와중에도 시골생활 백과사전 정리를 그치지 않았다. 임원 생활을 대비했고 임원을 동경하기도 했다. 반면 다산은 해배 후 야인으로 머물러야 했다. 그래도 여전히 경학, 경세학 정리와 심화에 몰두했다. 국정 참여의 뜻을 꺾지 않은 듯하다. 묘한 대비가 아닐 수 없다. 다산과 풍석은 일생을 어떻게 정리했을까. 다산은 ‘자찬 묘지명’(1822년, 61세)을, 풍석은 ‘오비거사 생광 자표’(1842년, 79세)라는 다소 긴 이름으로 자신의 묘지명을 썼다. 환갑 때 쓴 다산의 묘지명은 분량이 아주 많다. 주요 개인사를 모두 적었고 저술 체계도 매우 상세히 서술했다. 글자 수가 자그마치 1만 2316자! 내가 아는 자기 묘지명 중 가장 길다. 1000자 내외가 대부분이다. 가슴에 묻어둔 한이 많았던 걸까. 이와 대조적으로 풍석은 평생을 다섯 시기로 구분하여, 그 시기를 모두 허비했다며 반성으로 일관한다. 심지어 40년 가까이 공 들인 ‘임원경제지’ 저술도 인쇄할 뒷심이 없어 낭비였다고 회고한다. 자신을 오비거사(五費居士)로 칭한 이유이기도 하다. 다산의 묘지명은 828자인 풍석의 것보다 무려 15배나 많다. 파란만장으로 말하면 누군들 할 말이 없을까마는, 다산은 거의 회고록 콘셉트이었고, 풍석은 반성문 콘셉트였다. ●서유구, 현실에서 적용되지 않는 지식 외면 다산은 농사를 짓지 않고 농업 원론만 얘기했다. 풍석은 논두렁 밭두렁을 돌아다닌 체험으로 구체적인 농사 기술을 제안했다. 두 사람의 차이는 여기서 비롯된다. 풍석은 입으로만 농사를 짓지 않았고, 글로만 물고기를 잡지 않았다. 그리고 온갖 정보를 조직적으로 정리했다. 그뿐만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실행되거나 실행되어야 할 선진 기술을 전달하려는 노력이 역력하다. 다산은 스스로 말한다. 자신의 경세학은 “지금의 쓰임에 구애되지 않고 기준을 제시해 우리나라를 새롭게 하려는 연구다.”라고. 당대의 활용보다는 이상적 통치 기준을 만들겠다는 포부다. 하지만, 풍석이 흙으로 끓인 국 즉 토갱(土羹)이요, 종이로 만든 떡 즉 지병(紙餠)이라 비판했던 저술은 바로 이런 거였다. 풍석은 이상을 추구하되 반드시 이 땅의 현실에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강박에 가까울 정도의 철저한 현실론을 견지했다. 실현할 수 없는 지식은 ‘토갱지병’이다! 이상적 기준을 제시하고서 현실을 이상으로 밀고가려 했던 다산의 방법론과는 대조적이다. 풍석의 이용후생론은 바로 이런 실용학이었다. 다산 탄신 250주기를 맞아 여기저기서 다산에 대한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조선의 다빈치’라는 평가도 나온다. 그럼에도, 그의 위대성을 유학사상과 정치철학에서 찾으려는 경향은 여전하다. 다산의 저작을 폄하하려는 마음은 없다. 그러나 다산에게서 조선의 모든 잠재성과 가능성을 찾으려는 경향은 지나치다. 풍석의 평생 역작 ‘임원경제지’는 제도적 개혁을 주장하지 않는다. 개혁은 일상에서 일어나야 한다는 게 풍석의 신념이었다. 풍석은 ‘놈팡이 선비’를 제일 혐오했다. “곡식만 축내며 보탬이 안 되는 자 중에 저술하는 선비가 으뜸이다!” 선비들이여, 농업·공업·상업 알기를 똥으로 아는 그 엘리트 의식부터 싹 뜯어고쳐라. 버러지처럼 놀고먹지 마라. 경서를 공부하되 제 식구 먹을거리, 입을거리, 살 곳은 유지하면서 하라. 방 안에 틀어 앉아 공맹과 성리를 논할 시간에 밖에서 바지 걷어붙이고 쟁기질하라! 그물 던져 물고기 잡아라! 짐 지고 나가 장사하라! 몸놀림을 혁신하라. 땀 흘려 일해서 벌어먹는 일을 점점 기피하고, 종일 컴퓨터로 하루를 보내는 일이 사람다운 노동이라고 여기는 우리가 여기서 얻을 힌트는 과연 없는 것일까. 정명현(임원경제연구소 소장)
  • [씨줄날줄] ‘의원 무노동 무임금’ /구본영 논설위원

    지난 2001년 봄. 이만섭 당시 국회의장과 여야 원내대표단의 북유럽국 방문을 취재할 때였다. 의회정치의 모범국인 핀란드·노르웨이의 의회 건물은 뜻밖에 수수했다. 웅장하기 그지없는 여의도 의사당에 익숙했던 기자에겐 퍽 인상적이었다. 19대 국회가 법정 개원일(6월 5일)을 넘기고도 언제 열릴지 감감무소식이다. 호화판 시비 속에 제2의원회관까지 지어놓고 의원들은 하릴없이 세월만 보내고 있는 꼴이다. 그래도 한가닥 염치는 남아 있는가 싶었다. 여당이 ‘의원 무노동 무임금’ 원칙 도입을 공언할 때까지는. 그러나 이마저도 자칫 구두선으로 끝날 판이다. 새누리당이 6대 쇄신안 중의 하나로 내놓은 이 방안에 대해 야권은 물론 여당 내에서도 반론이 제기되면서다. 사실 우리 의원들의 특권은 선진국 기준으로도 과도하다. 헌법상 3권분립 취지에 따른 면책특권이나 불체포특권은 그렇다 치자. 국유 철도 및 비행기·선박 무료 이용 등 크고 작은 특혜가 200가지가 넘는다. 한 의회 전문가가 “선진국 중에서도 한국처럼 의원에게 운전기사 역할을 하는 비서관까지 지원되는 나라는 거의 없다.”고 했을 때 기자는 반신반의했다. 며칠 전 미국 상무부 장관이 손수 운전 중 교통사고를 냈다는 소식을 접할 때까지는…. 물론 의정활동을 제대로만 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국민 입장에서도 의원 1인당 연간 최소 5억원이라는 예산이 아깝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법안 발의권을 의회가 쥐고 있는 미국 다음으로 많은 7명의 보좌진을 거느린 우리 의원들의 평균 입법 건수를 보라. 내각제 요소를 가미한 상황에서 정부 발의 안건을 감안해도 생산성은 바닥이다. 더욱이 정기국회 이외에 짝수 달마다 임시국회를 열도록 돼 있으나 헛바퀴만 돌리기 일쑤다. 그런데도 여당의 ‘무노동 무임금’ 추진을 민주통합당 당직자들이 “인기영합적 구호”라고 폄훼하며 낯 두꺼운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은 논외로 치자. 새누리당의 일부 의원들이 반대 논거로 내놓은 ‘강의 준비론’도 가관이다. 즉, “교수의 강의만 노동이 아니라 강의를 준비하는 시간도 노동시간”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의정활동 준비는 비회기인 홀수 달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회기 중에도 외유나 골프 등으로 ‘날건달 체질’을 버리지 못하는 의원들을 숱하게 보아온 터다. 19대 의원들은 선량(選良)이 아니라 한량(閑良)이란 말을 듣지 않으려면 의정활동을 제대로 하든지, 국민의 혈세를 반납하든지 택일해야 한다.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 노동·민법 최근 2~3년 쟁점판례 숙지를

    노동·민법 최근 2~3년 쟁점판례 숙지를

    다음 달 9일 올 공인노무사 1차 필기시험이 서울·부산·대구·광주·대전에서 치러진다. 응시자는 3280명으로 지난해(3275명) 수준이다. 올해도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최저 선발인원이 250명으로 결정됐다. 30일 서울신문이 합격의법학원과 함께 1차시험 주요 과목 마무리 대비법을 알아봤다. 노동법 시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법조문이다. 홍춘희(노무사) 노동법 강사는 “자주 출제되는 법조문을 미리 체크, 시험 전날 반드시 읽고 시험장에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노동법Ⅰ에서는 관련 법령이 6~7문제 정도 매년 반드시 출제되므로 시험 보기 전에 한 번 더 정리해야 한다. 해고 등 근로관계 종료나 임금 부분에서도 매년 각각 3문제씩 출제되고 있다. ●‘파견근로자 보호’ 판례 출제 유력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과 이와 관련해 대법원에서 2010년 7월 22일 선고한 판례(2008두4367 판결)가 출제 가능성이 매우 커 확실한 정리가 필요하다. 또, 근로기준법 제17조 근로조건 명시의무 부분은 2012년 1월 1일 시행, 이번에 출제될 가능성이 크다. 근로시간과 연차휴가 부분도 최근 개정되어 근로기준법이 시행될 예정으로, 개정 조문과 현행법을 비교하며 공부해 둬야 한다. 노동법Ⅱ에서는 단결권 등 노동조합에 관한 문제도 5~6문제씩 출제되고 있다. 노동3권·단체협약·쟁의행위·조정·부당노동행위·노동위원회에 관한 문제도 각각 2~3문제씩 출제되고 있다. 특히 노조 설립과 관련해 2011년 9월 8일 대법원에서 선고한 판결(2008두13873)이 출제될 가능성이 크다. 또 올해 전면 시행된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 및 근로시간 면제제도를 꼭 살펴야 한다. 헌법 제33조와 국제노동기구(ILO)도 시험에 나올 수 있는 부분이다. 최근 판례가 많이 나오는 경향이 있다는 것도 알아둬야 한다. 최근 2~3년간 쟁점이 되었던 판례를 충분히 정리하면 된다. 민법은 25문제 가운데 민법총칙에서 12문제가, 채권법에서 13문제가 출제되고 있다. 형식별로는 조문 관련 문제가 6문제, 나머지 19문제는 판례문제다. 이런 판례 비중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민법총칙 부분에서는 지난해 출제되지 않은 의사표시와 대리 부분을 꼭 살펴야 한다. 노무사시험 특성상 그해 출제되지 않은 중요부분은 그 다음해 꼭 출제되기 때문이다. 법인은 매년 한 문제는 꼭 출제되는 부분인데, 지난해 이사의 대표권 제한의 조문 문제가 출제되었으므로 올해는 법인의 불법행위책임(제35조)에 관한 문제가 예상된다. 또 물건의 객체에서 지난해 원물과 과실이 출제되었으므로 올해는 종물이 출제될 가능성이 크다. ☞<정책·고시·취업>최신 뉴스 보러가기 법률행위는 민법총칙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지난해 출제되지 않은 의사표시가 중요하다. 제108조의 통정허위표시에서 선의의 제삼자에 해당하는 경우의 판례 정리가 필요하다. 또 제109조 착오 의사표시의 동기 착오, 해제의 의사표시 후에 착오를 이유로 취소할 수 있다는 판례 문제가 출제될 가능성이 크다. 채권법 부분 중 총칙에서는 이행지체의 문제가 올해 출제될 가능성이 크다. 이행 지체되는 시점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며, 채무불이행 부분에서는 과실상계가 중요한 문제다. 또 손해배상 범위와 관련한 통상손해와 특별손해의 구별문제가 예상된다. 채권자대위권 문제도 중요하다. 채권자취소권은 최근 판례까지 정리해 두는 것이 좋다. 연대채무 문제는 올해도 출제가 예상되며 절대효 인정범위를 사례형으로 연습하고, 부진정연대채무와 관련한 문제를 정리해야 한다. ●산업재해보상법 매년 7~8문제 나와 채권각칙에서는 동시이행항변권의 출제가 예상된다. 인정되는 경우와 부정되는 판례들을 구별하여 정리해야 한다. 제삼자를 위한 계약은 기출문제 중심으로 정리하면 된다. 사회보험법은 6개 법령에서 문제가 출제된다. 전체적인 사회보험의 과정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세부적인 숫자와 표현도 정확히 암기해야 한다. 법령별로 사회보장기본법에서는 3~4문제가 출제되는데 ▲사회보장제도의 개념▲사회보장 수급권▲사회보장제도의 운영에서 한 문제씩 출제될 가능성이 큰다. 국민건강보험법·국민연금법에서는 4~5문제씩 출제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법은 임신·출산 진료비, 건강검진, 보험료 부분에서, 국민연금법은 가입기간 관련 부분과 각 노령연금의 내용을 정리하는 것이 좋다. 역대 시험에서 고용보험법 중 실업급여 문제의 출제율이 80% 수준이다. 특히 구직급여 부분은 가장 중요하다. 이번에 새로 도입된 자영업자의 구직급여 부분은 꼭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대비해야 한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서는 7~8문제씩 출제되는데 ▲업무상 재해 해당 여부▲각 보험급여의 내용▲다른 보상과의 관계▲제3자에 대한 구상권 등이 주로 출제된다. 이 법과 관련해서는 판례문제도 출제되고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오세웅(노무사) 강사는 “사회보험법 출제의 새로운 트렌드가 개정 법령의 출제다.”면서 “지난해 시험 이후 시행된 사회보험 관련 법령 개정 내용은 반드시 알아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8월 2차시험 9시30분 시작 한편 8월 4~5일 치러지는 올 2차 시험 시간이 30분 늦춰진다. 각각 1~2일차 오전 9시에 시작되던 노동법Ⅰ과 행정쟁송법 시험이 9시 30분에 시작된다. 3차시험은 10월 13~14일, 최종합격자는 10월 24일 발표된다. 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 [저자와 차 한 잔] 한 달 만에 1만 8000부 판매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 전민식

    [저자와 차 한 잔] 한 달 만에 1만 8000부 판매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 전민식

    소설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은행나무 펴냄)가 서점에 깔린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는데도 1만 8000부를 팔아치우는 성공을 거두고 있다. 1억원 문학상(제8회 세계문학상) 수상작이라는 프리미엄을 감안해도 판매는 그 이상의 호조란다. 전민식에게 마흔일곱의 ‘소설가’ 데뷔는 그동안의 고생을 보상해 주는 인생사적 대사건이다. 수상 소식을 들은 게 설 연휴 마지막 날(1월 24일)이었다니 3개월쯤 됐다. 소설가로 변신한 그 3개월, 참 바쁘게 지냈을 법하다. “이틀 걸러 한 곳씩 인터뷰를 하러 다니며 술도 자주 마셨다.”는 그는 아직도 방송 출연 같은 인터뷰 의뢰가 적잖이 들어온다고 한다. ‘전민식’이란 단어를 검색하면 ‘대필’이 꼭 따라다닌다. 그의 인터뷰 내용의 절반도 대필 이력에 관한 것이다. 대중의 관심은 조폭 두목의 자서전까지 써줬다는 이색 경험에 쏠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표현대로 “작가들 열명 중에 아홉은 숨길” 대필은 사실 그의 궁핍한 생을 버티게 해준 어엿한 직업이었다. 그래서 작가 된 그에게 “대필인생 60%, 사는 거 40%를 물어봐도 전혀 섭섭하지 않았다.”는 전민식이다. →문학상 수상 전과 후 뭐가 달라졌나. -피부로 느끼는 건 대필 담당자의 180도 달라진 태도다. 과거에는 ‘대필이나 하는 주제에’란 눈길, 말투, 요구가 있었다. 수상 후에는 ‘선생님’ 대접을 해주고, 메일을 하나 보내 와도 다르다. 엄마 아빠가 글쓰는 일 하는 걸 아는 여섯살 난 아들이 동네(경기도 파주)에서 “우리 아빠 상 받았다.”고 자랑도 한다. 다만 상금 1억원 받아 빚 청산하고 얼마 남지 않아 지금의 임대아파트에서 전세로 이사갈 생각은 꿈도 못 꾼다. →부친상 때 발인날에 노트북을 켜서 대필 마감을 했다는 인터뷰가 나와 가족들이 불평을 했다던데. -대필도 먹고살아가기 위한 노동인데, 하위개념의 싸구려 노동으로 인식하는 게 잘못이다. 대필로 얻은 간접경험, 공부는 내 소설 곳곳에 녹아 있다. →대필을 계속할 건가. -수상 전 계약한 3개를 마무리지어야 한다. 그게 끝나면 최종심에서 떨어진 9개 작품을 끄집어내서 다듬고 하려면 그것만으로도 시간이 모자랄 것이다. 후속작이 더 중요하다. →어떤 작품들인가. -출판사에서 계약하자는 게 있다. 3권 정도 있는데 당장 1권을 달라고 한다. 국가와 기업들이 개인을 감시하는 세계에 대한 얘기다. 소설은 25년 전쯤 국가가 새로운 자연생태계 논리에 따라 우수한 종자만 살려 남기는 실험을 했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수많은 개인들을 감시하는 시스템이 그때부터 만들어졌다는 전제인데 현대사회가 그런 시스템으로 굴러가고 있다고 본다. →데뷔작과 다른 테마인데. -하나의 색깔만 갖고 가기엔 현대가 너무 다양하다. 하나의 색깔만 고집하면, 결국에는 독자가 외면하더라. 내가 써놓은 소설에는 탄광촌 얘기도 있고, 종 만드는 사람 얘기도 있다.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에서 하고 싶었던 말은. -시간나면 블로그 들어가서 서평을 보는데 ‘책을 보고, 희망을 얻었다.’ 그런 식의 글귀가 많더라. 책에는 대비되는 인물이 등장한다. 살기 어려워서 자살을 선택하는 은주가 있고, 피차일반 힘들지만 주인공 도랑은 살아내기를 선택한다. 살아낸다는 건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것이라고 본다. 존엄을 지키는 자기 자신이 다른 사람의 존엄을 지키는 바탕이 된다고 본다. 글 황성기기자 marry04@seoul.co.kr 사진 손형준기자 boltagoo@seoul.co.kr
  • “한·미 FTA 재재협상 추진 필요시 국민합의 거쳐 폐기”

    “한·미 FTA 재재협상 추진 필요시 국민합의 거쳐 폐기”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이 8일 접점을 이룬 ‘4·11 총선 범야권 공동정책’의 핵심 고리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대응 방안이었다. 실무협상단은 한·미FTA 재협상을 해야 한다는 민주당 안과 폐기를 해야 한다는 통합진보당 안을 놓고 줄다리기를 하다 ‘재재협상후 필요시 폐기’에서 접점을 찾았다. 서로의 주장을 병렬로 연결한 것이다. 민주당 신경민 대변인은 “정책 협상을 미세한 부분까지 똑같이 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양당의 입장을 순차적으로 담긴 했지만, 목표는 분명히 다르다. 19대 국회에서 정책 연합을 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의견 충돌이 예상된다.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은 지난해 한·미 FTA 대응에 협동하기로 했지만 민주당이 먼저 등원하는 바람에 정책 공조에 금이 갔다. 민주당은 노무현 정부 때 추진한 한·미 FTA와 이명박 정부의 한·미 FTA는 다르다고 선을 그었어도, 참여정부의 핵심 정책을 아예 무효화하는 데 대해서는 부담을 느끼는 모습이다. 다만 참여정부 때 추진했던 제주 해군기지는 비판 여론을 중시하고, 반대 입장을 명확히 했다. 일자리 정책에선 최저임금을 평균임금의 50% 이상으로 상향조정하는 내용이 담겼다. 아울러 산업별 단체교섭을 법제화하고 복수노조의 자율적 단체교섭을 보장하는 등 노동3권의 실질적 보장을 위한 방안이 포함됐다. 또 군 복무기간 단축과 양심적 병역 거부자를 위한 대체복무제 신설, 공공임대주택 및 전세주택 10% 확대, 국공립 보육시설을 30% 이상으로 확대하는 등 청년 취업 및 주거·보육 정책도 함께 추진하기로 했다. 이명박 정부가 완화했던 종합부동산세는 강화, 부자감세는 철회할 예정이다. 양당이 추진했던 대기업 불공정행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집단소송제도 전면 도입할 계획이다. 기업 활동과 관련된 범죄에도 엄격히 법을 집행하기로 했다. 교육 분야에서는 국립대학 법인화 추진 중단, 부실 대학의 국공립화를 추진하고, 대학 등록금 후불제와 상한제를 도입해 등록금을 ‘반값등록금’ 이하로 낮춘다는 계획이다. 특히 고등학교까지 의무교육을 확대하고 모든 의무교육 기간에는 무상급식을 실시하는 방안도 함께 추진하기로 했다. 아울러 ‘입시학원’으로 변질된 외국어 고등학교는 어학 인재 양성이라는 본래 목적으로 전환하고 일반계 고교의 학교 간 격차를 줄여 가는 한편 전문계 고교를 강화하기로 했다. 양당은 원전 추가 건설을 중단하고 원전 정책도 전면 재검토하기로 했다. 댐 건설 역시 전면 재검토할 계획이다. 대신 물과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재생 가능 에너지의 생산을 대폭 확대하는 한편 대기업의 전기료는 인상하기로 했다. 4대강 사업은 국정조사 등을 통해 철저히 평가하기로 했다. 특혜 논란이 일었던 종합편성 채널 정책도 재정립할 계획이다.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은 종합편성 방송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나타난 위법·반칙·특혜 사례에 대한 국정조사를 하고 특혜와 관련 정책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또 종편 방송사를 포함한 모든 방송사의 제작·편성과 광고영업이 철저하게 분리되는 방향으로 미디어렙법을 전면 개정한다는 방침이다. 검찰 개혁도 양당이 함께 추진한다. 한명숙 대표는 대표 취임 이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검찰 개혁 의지를 표시해 왔다. 개혁 대상은 검찰·경찰, 국가정보원, 군 공안기구, 국세청 등이며 18대 국회에서 못한 국가보안법 폐지도 추진할 계획이다. 이현정기자 hjlee@seoul.co.kr
  • [어린이 책꽂이]

    ●우리 천문학 이야기(정지현 글, 장선환 그림, 문중양 감수, 문학동네 펴냄) 별자리가 새겨진 선사시대의 고인돌, 세계 최초의 천문대인 신라 첨성대, 고려의 오로라 기록, 조선의 혼천의 등 전통 천문기구와 이야기들. 1만 2000원. ●철학고양이 요루바(전3권)(김용규 글·그림, 주니어김영사 펴냄) 호랑이 훈장 호랑 말코가 들려주는 어린이 철학 입문서. 저자의 청소년 철학 도서를 아동용으로 전환. 애완고양이 요루바는 왜 사람이 되고 싶을까? 각권 9500원. ●나는 어린이 노동자(국제 앰네스티 일본 지부 글, 황미숙 옮김, 현암사 펴냄) 세계 65억명의 인구 중 2억 1800만명의 어린이들은 저임금의 노동을 하며 살고 있다.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한 채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해줄 것인가. 1만 3000원. ●독수리의 겨울나기(황헌만 글, 소년한길 펴냄) 독수리가 맹수지만 먹을 것 앞에서 까치와 까마귀는 겁먹지 않는다. 먹지 않으면 얼어 죽거나 굶어 죽기 때문이다. 까마귀 등과 경쟁하는 독수리는 건강하게 봄을 맞이할 수 있을까? 1만 2000원.
  • [저자와 차 한 잔] ‘명대(明代)의 운하길을 걷다’ 펴낸 서인범 교수

    [저자와 차 한 잔] ‘명대(明代)의 운하길을 걷다’ 펴낸 서인범 교수

    ●‘표해록’ 저자… 해로·기후·민속 등 담아 조선시대의 최부(崔溥)를 아시나요. ‘표해록’의 저자이다. 최부는 1487년 9월 추쇄경차관(推刷敬差官·나라에서 시키는 노동이나 병역을 거부하고 도망간 사람을 찾아내 잡아오는 관리)으로 임명돼 제주에 갔다. 하지만 다음 해 부친상을 당해 돌아오던 중 풍랑을 만나 14일동안 표류한 끝에 명나라 태주부 임해현에 도착했다. 그러는 동안 도적을 만나고 왜구로 오인받아 죽을 고비를 넘기는 등 고초를 겪었고 관가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해 북경으로 호송됐다. 이후 귀국길에 올라 압록강을 거쳐 한양 청파역에 도착한 뒤 성종 임금의 명을 받아 ‘금남표해록’(3권)을 기록했다. 금남은 자신의 호이며 ‘표해록’에는 중국 연안의 해로와 기후, 산천, 도로, 관부, 풍속, 민요 등을 상세히 소개했다. 하여 최부를 가리켜 ‘조선의 마르코폴로’라고 한다. 동국대 사학과 서인범(52) 교수는 2009년 연구년을 맞아 최부의 ‘표해록’을 고스란히 답사했다. 중국 유학생 곽로씨와 함께 항주에서 최부가 표착했던 태주 삼문만 쪽으로 내려가, 다시 항주로 거슬러 올라오는 당시의 루트를 그대로 따랐다. ●꼬박 한 달간 700만원으로 답사 서 교수는 이를 바탕으로 최근 ‘명대(明代)의 운하길을 걷다’라는 제목으로 한길사에서 책을 펴냈다. 부제 ‘항주에서 북경 2500㎞ 최부의 표해록 답사기’에서 보듯 항주에서 명대의 조운로(漕運路)를 따라 북경의 적수담(積水潭)까지 총 30박 31일의 일정으로 도보, 인력거, 고철덩어리 버스, 택시, 기차 등을 이용해 총 경비 700만원으로 답사했다. 최부와 조운로에 집중시켜 서술하고 있지만 역사성과 여러 유적지의 문화, 인물, 음식, 현대 중국인의 일상들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최부가 호송당한 경로는 사람과 곡물을 운반하며 내륙을 종(縱)으로 관통하던 이른바 조운로였습니다. 최부는 폭풍우를 만나 중국 남쪽 절강성 태주부에 표착하게 됐고 조선인이라는 신분이 밝혀져 명나라 장교의 보호를 받으며 조운로를 따라 북경에 도착하게 됩니다. 그뒤 요동을 거쳐 압록강을 건너게 됩니다. 이번에 낸 책은 북경까지의 루트를 직접 답사한 것이지요.” 그가 최부와 만난 것은 1999년. 일본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자 은사 조영록 선생이 한 권의 책을 건네주었고 대학원생들과 3년반에 걸친 역주 작업을 거쳐 ‘표해록’을 펴내면서였다. ●내년 2차 ‘최부의 길’ 떠나 “명대를 전공하는 저에게 ‘표해록’은 보물이나 다름없습니다. 중국 어느 사료보다도 당대의 시대 상황과 조운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료가 없기 때문이죠. 어느 순간 이 길을 따라가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하는 욕망이 솟구쳐 올랐지요.” 520여 년 전의 최부로 변신한 그는 시간을 거꾸로 돌려 무엇을 보고 느꼈는지를 직접 체험하기에 이르렀다. 최부의 숨결이 배어 있는 조운로나 그가 견문한 곳을 온전히 더듬어 이번에 또 다른 기록의 결실을 맺었다. 내년에는 북경에서 압록강으로 이어지는 2차 ‘최부의 길’을 떠날 예정이다. 김문 선임기자 km@seoul.co.kr
  • 재벌개혁 루스벨트·이슈 선점은 메르켈처럼

    재벌개혁 루스벨트·이슈 선점은 메르켈처럼

    ‘공정경제’를 핵심으로 하는 경제 민주화 카드를 뽑아든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의 경제정책 기저에는 시어도어 루스벨트(왼쪽·1858~1919년) 전 미국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오른쪽) 독일 총리가 어른거린다. 그의 정책 멘토라 할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이 각종 인터뷰 등에서 일종의 ‘롤 모델’로 거명해 온 인물들이 바로 이 두 사람이다. 1900년대 초 루스벨트 당시 대통령은 공화당 출신임에도 독과점 횡포가 극에 달했던 대기업에 과감히 메스를 들이댔다. 석유업의 록펠러, 철강업의 카네기, 금융업의 모건 등 기업집단은 당대 대기업 황금시대를 일궜다. 하지만 독점제한법, 노동3권도 없던 시대에 경제력 집중에 따른 빈부격차, 환경파괴 등으로 이들 기업은 ‘강도 귀족’이라는 비난을 샀다. 이에 루스벨트는 리베이트 관행을 저지하는 엘킨스법(1903), 철도회사 운임의 독점을 막는 헵번법(1906) 등을 입법했다. 스탠더드 오일 소송전에선 당대 최대 기업연합을 해체하는 등 재벌과의 싸움에서 성공을 거뒀다. 최근 박근혜 비대위가 대기업 출자총액제한제도를 보완하고 공정거래법을 개정하기로 방침을 정한 것은 루스벨트식 개혁의 일환이라는 분석이다. 보수정당임에도 경제민주화를 당 정책 전면에 내세우는 등 성장보다 공유에 치중하는 과감성은 메르켈식 이슈선점을 떠올리게 한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은 17대 국회 때인 2006년 독일을 방문했던 박 비대위원장에게 “이번에 가면 메르켈을 보고 벤치마킹하시오.”라고 조언한 적이 있다고 한다. 메르켈은 국회의원이 된 지 15년 만에 통일 독일의 총리가 됐다. 특히 우파노선인 기민당 소속이면서 중도좌파정당인 사민당 정책까지 추월해 정작 사민당의 입지를 좁혀버린 주인공이다. 그의 취임 당시 독일은 막대한 복지비용 지출, 실업자 증가, 경직된 노사관계 등으로 골치를 앓았다. 하지만 시장친화적 정책을 추진하면서 사회정책도 강조한 메르켈은 독일을 세계금융위기를 극복한 유럽 국가로 자리매김시켰다. 박 비대위원장이 최근 양적인 성장률보다 고용확대를, 과다한 복지 지출보다 생애 전반에 걸친 복지를 강조하는 것 역시 경제·복지정책 담론에서 야당을 주도하겠다는 속내로 해석된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28) ‘자본론’ 칼 마르크스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28) ‘자본론’ 칼 마르크스

    “지배계급들로 하여금 공산주의 혁명 앞에 전율케 하라. 프롤레타리아들은 공산주의 혁명 속에서 족쇄 이외에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다. 그들에게는 얻어야 할 세계가 있다.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 (공산당선언)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의 말대로 “탁월하고 폭발적인 창의력이 써내려 간, 정치적 입장을 초월해 마치 스스로 불후의 명언이 되어버린 것 같은 간결한” 저 문장을 읽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전율했던 적이 있었다. 두려움 또는 희망의 이름, 칼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 마르크스가 살았던 당시는 산업혁명과 기술의 발전으로 사람들이 진보를 체감하던 시기였다. 철로가 놓이고 교역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대도시가 생겨났으며, 프랑스에서는 노동자와 산업자본가가 새로운 사회세력으로 등장하고 있었다. 1848년 2월, 노동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은 보수적이고 억압적인 제2공화정을 무너뜨리는 혁명을 일으킨다. 새로운 사회관계가 형성되는 역사의 한복판에서 탄생한 것이 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이다. 마르크스가 분석한 부르주아들은 혁명적인 존재였다. 그들은 “처음으로 인간의 활동이 무엇을 이룩할 수 있는가를 증명”했다. 이전의 모든 봉건적 관계를 끊어내고 현금관계 외에는 어떤 끈도 남기지 않은 계급과 부를 축적하기 위해 새로운 욕구를 창출해내고, 생산과 소비를 범세계적으로 확장시켰던 그들은 ‘자신의 모습대로’ 세계를 창조하고 있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봉건제 안에서 부르주아의 태동을 보았고 부르주아의 성립에서 프롤레타리아의 싹을 본다. 그가 보기에 프롤레타리아의 도래는 ‘필연적’이었다. 마르크스는 그 무렵 신문에 “부르주아 지배가 무너질 것”이라고 예견했고, 아버지가 물려주신 유산 6000 프랑을 기꺼이 체제 전복을 위해 써버린다. ●“철학은 세계 해석이 아니라 변혁” 마르크스는 부르주아지의 소멸을 확신했지만, 정작 그 자신은 부르주아 출신이었다. 그는 1818년 프로이센 라인란트 지방의 트리어 시에서 존경받는 유대인 변호사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젊은 시절 마르크스는 논쟁을 즐기고 명석했지만, 쉽게 흥분하는 편이었다고 한다. 공격적이고 거만한 이미지에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를 가진 청년 마르크스. 술에 취해 패싸움도 불사하는 문제적 아들에게 아버지 하인리히 마르크스는 “너의 광기를 잠재우라.”고 애원하며 제발 부모의 희망을 저버리지 말라고 당부한다. 마르크스도 처음에는 가족의 바람대로 법학을 공부하고자 했다. 그러나 사회의 급격한 변화에 대해 법은 아무 설명을 하지 못했다. 사회 변화의 원동력은 무엇인가? 이것에 대한 답을 찾아 지적 탐구를 하던 와중에 마르크스는 청년헤겔주의자들을 만나 헤겔을 공부하기 시작한다. 헤겔의 변증법은 역사 발전의 법칙을, 부르주아의 필연적 몰락과 프롤레타리아의 승리를 설명해줄 수 있는 무기로 보였다. 마르크스는 사람들이 모두 헤겔을 ‘죽은 개’ 취급할 때 공개적으로 헤겔의 사상적 제자임을 공언했다. 이때를 그는 “인생의 한 시기를 완성하고 새로운 방향을 가리키는 변경의 초소와 같은 순간”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이내 헤겔을 떠나게 된다. 헤겔은 역사의 추동력을 변증법적 ‘이성’에서 찾았고, 19세기 당대 유럽의 놀라운 진보는 모두 이성의 힘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검열과 비밀 경찰의 힘으로 유지되는 절대 왕정을 이성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마르크스는 스승 헤겔의 논리를 뒤집는다. 절대이성이 현실을 만들어 낸 게 아니라 현실 사회의 생산력이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변증법의 운동은 바로 현실세계에 내재해 있었던 것이다. 철학을 통해 현실을 이해해서는 안 되고, 현실을 통해 철학이 새롭게 정초되어야 한다. 마르크스가 보기에 철학은 지금까지 세계를 설명하고 해석하기만 해왔다. 하지만 이제 철학은 현실 속에서, 현실을 변혁할 수 있는 무기가 되어야 한다. ●대영박물관 열람실의 혁명가 세계를 바꾸기를 원했던 혁명가 마르크스를 사람들은 ‘요람에 누운 아기를 잡아먹는 신사’ 쯤으로 생각했다. 죄 없는 부르주아들을 잡아먹는, 말끔한 지적 테러리스트. 그러나 마르크스는 비밀주의와 음모를 싫어했다. 그는 공공연하게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자신의 목적과 자신의 지향을 표명했다. 공산주의는 충동과 정열만으로는 불가능하며, 냉철하게 현실을 분석하는 데서 시작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공산주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마르크스의 말과 글을 통해 새롭게 개념화되었다. 2월 혁명이 실패한 후, 마르크스는 파리에서 추방당한다. 영국으로 이주한 그는 대영박물관 열람실에서 정치경제학 공부에 매진한다. 그가 처음으로 계급, 개인소유, 국가의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1842년 ‘라인신문’ 편집장 시절 ‘농민들의 목재 절도 사건’ 이다. 이때 그는 공산주의에 대해서도, 정치경제학도 잘 몰랐기 때문에 보수적인 귀족이 쓴 글에 대해 재치 있는 답변을 했을 뿐이었다. 이 사건을 통해 마르크스는 현실을 변혁하기 위해서는 현실을 더 치밀하게,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사유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자기반성에 이른다. 그리고 유럽을 휩쓴 혁명의 분위기가 가라앉은 후에, 세상의 함성에서 동떨어진 도서관에서 마르크스는 계급과 소유, 국가의 문제를 파고들기 시작한다. 그 결과 탄생한 역작이 ‘자본론’이다. 마르크스의 혁명은 도서관에서 시작됐다. 마르크스에게 혁명은 꿈이 아니었다. 빈부 격차가 극심해지고 불황이 반복되는 현실을 타개할 방법은 근검을 외치는 것도 아니고 부르주아의 동정을 바라는 것도 아니었다. 부르주아를 증오하는 것은 더더군다나 아니었다. 마르크스는 상품경제가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현실을 분석해냈다. 그는 그로부터 거대한 자본주의 기계 안에 왜소해진 인간의 모습을, 소외된 노동을 이끌어 냈으며, ‘자본’이라는 거대한 기계의 작동을 보았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경제학 저술이지만, 그보다 근본적으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의 존재론을 탐구한 철학서였다. ●마르크스의 또 다른 이름 엥겔스 “어떻게 천재를 질투할 수 있는지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네. 천재란 아주 특별한 것이기 때문에, 그런 재주가 없는 우리는 처음부터 그것이 얻을 수 없는 권리임을 알 수 있지. 그런 것을 질투하는 사람은 자신이 엄청나게 속 좁은 사람임을 보여주는 꼴밖에 안되네.”(엥겔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생리는 정확하게 간파했지만, 정작 자기 가계를 꾸리는 능력은 ‘제로’였다. 귀족과 결혼한 것을 자랑스러워했던 마르크스였지만 아내의 집안에서 물려받은 가보는 늘 전당포에 맡겨야 했고, 대문 앞에는 청구서를 든 사람들이 떠나지 않았다. 이런 마르크스의 생활을 구원한 사람은 그의 영원한 동지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 1820~1895)였다. 마르크스의 ‘도서관에서의 혁명’에 엥겔스가 끼친 영향력은 간단히 말하기 어렵다. 물질적 지원도 지원이거니와 아버지의 공장에서 직접 경영을 체험한 엥겔스는 마르크스에게 부족한 실물경제의 원리를 알려줄 수 있었다. ‘자본론’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저라고 봐도 좋다.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1권만 저술하고 세상을 뜨자, 마르크스의 악필을 독해하고 단편적 메모들을 모아 하나의 이론으로 완성해 2권, 3권을 출판한 사람도 엥겔스였다. 그 자신은 아버지 회사에서 “비굴한 장사, 증오스러운 장사”를 한다고 자신을 혐오했지만 그 덕에 마르크스는 생계난 속에서도 비굴해지지 않을 수 있었다. 마르크스가 가장 좋아했던 경구는 ‘인간적인 것 가운데 나와 무관한 것은 없다.’였다. 그는 부인 예니와 딸들을 무척 사랑했지만 결혼하지 않은 엥겔스를 부러워했고, 저속한 농담을 주고 받았지만 매우 세련된 신사이기도 했다. 실제로 그는 속되면서 귀족적이었고, 차가우면서도 감상적이었다. 이런 마르크스의 모습은 종종 적들에게 비난의 표적이 되곤 했다. 그의 저서도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부분들이 많다. 그는 자신의 삶 자체도 일관성 있게 포장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이론에 대해서도 개방적이었다. 그는 자기 이론을 이상화하지도, 완성이라 하지도 않았다. 언제나 자기가 보지 못한 부분이 있음을, 자기 분석이 틀렸을 수도 있음을 인정하며, 그의 이론을 영원한 ‘과정’ 속에 던져 놓았다. 사회주의 붕괴 이후, 한때 마르크시즘은 오류로 단언되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예언자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살아가는 그때 필요한 것들을 해나갔을 뿐이다. 현실 분석이 철학을 바꾸고 철학이 현실을 변혁할 수도 있음을 보여준 혁명가이자 철학자. 은행이 파산하고, 정리해고를 당하고, 물가가 폭등할 때마다, 이른바 ‘자본주의의 경제시스템’에 대한 환멸을 느낄 때마다 우리는 마르크스의 이름을 기억한다. 자본주의를 살고 있는 자들은 모두가, 얼마간은 ‘마르크시스트’가 아닐까. 홍숙연 남산강학원 연구원
  • 치열하게 살았는데 화려하진 않네요, 괜찮죠?

    치열하게 살았는데 화려하진 않네요, 괜찮죠?

    요즘 출판계를 비롯한 한국 사회의 화두 가운데 하나는 ‘88만원 세대’ ‘삼포세대’(연애·결혼·출산 포기) 등으로 불리는 20~30대 젊은이들이다. 한때는 ‘신세대’ ‘N세대’ ‘X세대’ 등 찬란한 수식어가 붙었는데 지금 젊은이들은 규정하는 단어조차도 칙칙하다. 이런 젊은이들에게 가장 힘이 되는 글은 무엇일까. 위인의 삶은 너무 무겁고, 유명인이 내는 수필 속의 삶은 너무 가볍다. ‘우리 시대 젊은 만인보’(텍스트 펴냄) 시리즈는 이 시대, 다양한 젊은이들의 목소리를 담은‘ 20~30대가 직접 쓴 자서전이다. 일기라고 하기에는 저자들이 그동안 살아온 삶이 저마다 치열하고, 성공담이라고 하기에는 이들의 삶이 화려하지만은 않다. 2009년 시작된 시리즈의 6차분 3권의 책이 동시에 나왔다. 아나키스트인 조약골의 ‘운동권, 셀레브리티’, 김자현 KBS PD의 ‘마트료시카, 모래섬에 왈츠를!’, 출판인 김류미의 ‘은근 리얼 버라이어티 강남소녀’다. 지금까지 19권이 발행됐는데, 출판사 측은 “1만 1명까지 책을 내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조약골은 오늘도 투쟁하며 생활 속의 혁명을 실천하는 운동가다. 주거침입죄, 건조물침입죄, 업무방해죄, 공무집행방해죄, 일반도로교통방해죄, 집시법위반죄, 심지어 폭행죄까지, 세상은 그에게 존재 자체가 불법이라고 단죄한다. 남자지만 대안 생리대 강의 등을 하는 ‘피자매연대’ 활동도 한다. 채식을 하고 자전거를 타며 천성산, 이라크, 새만금, 대추리, 용산참사 현장, 두리반 등에서 비폭력 평화활동가로 운동해 왔다. 각 책의 마지막 장은 릴레이 인터뷰로 채워졌는데, 다음 편 시리즈의 저자가 인터뷰어가 된다. 조약골은 ‘NGO에서 일하는 친구가 우리도 인권착취를 많이 당한다고 하더라.’는 질문에 “아직은 현실이 더 야만적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앞으로는 더 야만적인 상황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거죠.”라고 답한다. 김자현(32) PD는 노문학을 전공한 인문학도였다. 학창 시절 대부분을 얌전하고 조용한 모범생으로 지냈으며, 고등학교 때 영화 ‘닥터 지바고’를 우연히 보고 노문학을 전공하기로 한다. 그가 쓴 ‘마트료시카’는 러시아 교환학생 시절 이야기와 PD로 일하며 ‘시청자칼럼 우리 사는 세상’ ‘러브 인 아시아’ ‘박중훈 쇼’ 등을 제작한 경험담이 담겨 있다. 김 PD는 대학 시절 국문과의 노()교수가 “볼품없는, 실없는 소리나 지껄이는 인문학은 차남들이나 선택하는 학문이다. 그 어느 집안에서도 집안의 기둥이 될 장남에게는 인문학을 공부하라고 권하지 않는다. 그리고 여기 모인 여러분과 나는 쓸데없는 인문학을 공부하는 ‘차남’들이다.”라고 한 말을 기억한다. 대학 4년 동안 알 수 없는 ‘패배감’을 느꼈던 저자는 인문학자의 길을 포기하고, PD가 됐다. PD가 되어서는 일을 그만두라는 남편과 다투고, 카메라 앞에서 솔직하지 않은 출연자들의 모습에 힘들어한다. 김 PD는 “지금 하는 ‘PD’라는 일 자체는 커다란 틀에서 하나의 인문학이 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서울 강남에서 태어나 20여년을 내리 강남에서 산 ‘은근 리얼 버라이어티 강남소녀’의 저자 김류미(27)씨는 ‘88만원 세대’의 전형이라 할 만한 삶을 살았다. 김씨는 공장 부지의 가건물, 공무원들이 가건물이라며 종종 부수던 집 등에서 살았다. 강남의 아웃사이더로 살았던 저자는 여러 사교육을 받아 ‘다양한 녹색으로 붓질을 해서 하얀 도화지 위에 점박이로 나무를 만들어 내는 경이로운 스킬’을 보여주는 옆자리 친구를 보며 ‘문화자본’을 체감한다. ‘강남거지’가 별명이었던 김씨는 대학 졸업 후 편의점, 패스트푸드점, 전단 돌리기, 동대문 옷가게 등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한다. 가장 갖지 못했던 문화자본의 궁극을 ‘글을 쓰는 지적인 노동을 직장생활로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 저자는 현재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우리 시대 젊은 만인보’를 쓴 젊은이들의 삶이 조금은 특별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자들은 솔직하게 지나온 삶을 이야기하고, 그들의 이야기가 모여 에너지를 발산하는 하나의 거대한 초록 이야기 숲을 만들어 낸다. 각 권 9000원.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구청장들의 남다른 책 사랑

    구청장들의 남다른 책 사랑

    “요즘 책 읽느라 잠을 못 잔다.” 성북구 직원 L씨는 9일 이렇게 하소연했다. 책 읽는 구청 공무원이 부쩍 늘고 있다. ‘동네 왕’인 구청장이 일주일에 많게는 2~3권씩 책을 읽기 때문이다. 몇몇 민선 5기 구청장은 직접 과장·팀장들과 그룹회의 등을 많이 하는데 그 자리에서 자신이 최근에 책을 읽으며 얻은 아이디어를 제시한다든지, 직원들에게 ‘친절하게’ 편지를 보내면서 책 읽기를 권한다. 자투리 시간이 생기면 무조건 책을 읽는 김성환 노원구청장은 ‘따가운 시선’을 의식했는지 “구청장이 일도 많이 시키는데 책까지 읽으라고 하다니 못 참겠다, 하지 마시고 책 속에 삶의 지혜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 달라.”고 애교를 부리기도 한다. 술 취해 새벽에 들어와도 거의 매일 1시간 정도 책을 읽는다는 김영배 성북구청장은 교육과 복지, 문화 등 5개 부문의 과장들과 생활구정회의를 1주일에 한 차례씩 하는데 그때마다 책을 읽어 알게 된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사회적기업과 관련해서는 박원순 변호사가 쓴 ‘올리버는 어떻게 세상을 요리할까’의 한 대목을, 요즘 공동체사회 복원 등 마을 만들기와 관련해서는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 등의 한 구절을 이야기한다. 그저 실용서만 읽는 게 아니라 역사, 경제, 사회, 철학 분야 등으로 독서 폭이 넓어 직원들은 쫓아가기 바쁘다며 혀를 내두른다. 김성환 노원구청장은 거의 매달 한 권씩 직간접적으로 책 읽기를 권한다. 매달 한 번씩 직원들에게 편지를 보내는데 여기에는 꼭 책 한 권이 소개돼 있다. 지난해 8월 김두식 경북대 교수가 쓴 ‘불편해도 괜찮아’라는 책인데, 청소년과 장애인 동성애 노동자에 얽힌 국내외 영화를 소재로 한 것이라 편견을 버리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김 교수가 쓴 ‘헌법의 풍경’은 덤으로 소개했다. 9월에는 박시백 화백의 역사 만화 ‘조선왕조실록’과 역시 샌델의 ‘정의~’를 추천하고 직접 쓴 독후감도 남겼다. ‘공감의 시대’와 관련해서는 “750쪽이나 돼 읽기를 권하기는 너무 부담스럽지만 새로운 시대는 확실히 경쟁과 적자생존에서 협력과 평등으로 넘어가는 것”이라는 자신의 정치철학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는 또 독일 하랄트 슈만과 크리스티아네 그레페가 쓴 ‘글로벌 카운트 다운’을 지난 6월 직원들에게 읽기를 권유했는데 금융위기의 불안이 찾아온 지금 시점에서 다시 훑어볼 만하다. 장하준 교수의 ‘그들이 말하지 않은 23가지’나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운명’은 성북구청장과 노원구청장 모두가 권유한 책이다. 특히 문 전 실장의 ‘운명’은 두 구청장이 청와대에서 같이 일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고 있다. 유종필 관악구청장은 누군가 읽을 책을 찾으면 “고전(古典)을 읽어라.”라고 조언하고, 딱 집어서 한 권을 추천해 달라고 하면 ‘논어’를 권유한다. 유 구청장은 “고전은 짧게는 수백년, 길게는 2000년 이상 많은 사람에게 널리 읽힌 책으로, 기성의 사고방식과 양식에서 탈피해 비약적인 혁신을 이뤄낸 천재들의 저작”이라며 “이 책들이 오래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만큼 시대를 뛰어넘는 통찰력과 사고력 등 지혜를 갖춘 덕분”이라고 설명한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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