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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선주자들 잇달아 대기업 공개 저격…“시의적절” vs “경영개입” 엇갈린 반응

    대선주자들 잇달아 대기업 공개 저격…“시의적절” vs “경영개입” 엇갈린 반응

    LG·SK 배터리 소송엔 정세균 “합의해라”재계선 “지재권 중요성 간과… 정치 발언”최근 대기업을 겨냥한 유력 정치인들의 날 선 공개 발언에 재계가 전전긍긍하고 있다. 노동자와 국익 보호를 위한 시의적절한 발언이라는 긍정적인 반응과 함께 차기 대권을 염두에 둔 ‘훈수’라는 부정적인 반응이 동시에 나온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5일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포스코 포항제철소와 광양제철소에서 5년 동안 42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었다”면서 “세계적 철강기업 포스코에서 사고가 반복되는데도 안전조치를 취하기는커녕 무책임한 태도가 계속되는 데 대해 분노를 금할 수 없다. 포스코 최고경영자가 책임지고 조치를 취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여당의 대표가 당 최고기구 회의에서 기업의 실명을 거론하며 공개 저격한 건 이례적이다. 재계 관계자는 “지금까지 정치인들은 산업재해 전반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해야 할 부분을 원론적으로 언급했었는데, 이날 이 대표의 발언은 포스코를 조준하고 작심하고 비판한 것이어서 놀랐다”고 했다. 이 대표의 이날 작심 발언은 오는 2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산업재해 청문회를 앞두고 노동계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차원이란 해석이 나온다. 포스코그룹에선 포스코와 포스코건설 대표가 동시에 증인으로 채택돼 최정우 포스코 회장과 한성희 포스코건설 대표가 나란히 출석한다. GS건설, 현대건설, 현대중공업, LG디스플레이, CJ대한통운 등 9개 대기업도 증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번 산재 청문회는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의 제안으로 성사됐기 때문에 노동 현장 사망사고에 대한 질타는 여야 할 것 없이 쏟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 대표가 유독 포스코만 정조준한 것은 최근 제철소 사망사고가 잇따랐기 때문으로 보인다. 가장 최근에는 지난 8일 포항제철소에서 35세의 하청업체 노동자가 롤러 교체 작업 중 변을 당했다. 금속노조 포스코지회는 “최 회장 취임 이후 14명의 근로자가 목숨을 잃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정치인의 공개 비판을 ‘대기업 길들이기’로 해석한다. 중견·중소 건설사 노동자의 사망 사고도 적지 않았는데 대형 건설사 대표만 증인으로 채택했다는 이유에서다. 일각에서는 차기 대권과 지지율을 의식한 영향력 과시로 연결짓는 시선도 있다. 이재명 경기지사에게 지지율에서 뒤처진 이 대표가 민주당 표밭인 노동계의 표심을 얻고자 포스코를 정면 겨냥한 것이란 관측이다. 대권 경쟁자인 정세균 국무총리도 앞서 LG화학에서 분사한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소송전’에 대해 “부끄럽다”고 비판하며 합의를 촉구했다. 당시 재계에서는 “기업의 지적재산권의 중요성을 간과한 정치적 발언”이라며 정치인의 기업 경영 개입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잇따랐다. 하지만 기업들은 공개적으로 반박하지 못하고 바짝 엎드린 모양새다. 재계 관계자는 “정치권에 밉보였다가 중대재해처벌법을 위반한 ‘1호 기업’이 될까 봐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고 말했다. 이영준 기자 the@seoul.co.kr
  • 쿠팡 이사 12명 중 10명… 외국인이 점령한 이커머스

    쿠팡 이사 12명 중 10명… 외국인이 점령한 이커머스

    배달앱 1위 ‘우아한형제들’ 獨 매각 등한국 비대면 플랫폼에 해외 관심 계속미 뉴욕 상장을 추진하는 쿠팡의 경영진 대다수가 외국 국적자인 것으로 확인되면서 글로벌 ‘확장성’을 염두에 둔 이커머스 업계의 인재 영입과 선택에 이목이 쏠린다. 15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쿠팡이 제출한 증권신고서에 따르면 쿠팡 INC의 이사회 구성원 12명(사내이사 6명, 기타비상무이사 4명, 사외이사 2명) 가운데 한국 국적 소유자는 강한승·박대준 쿠팡 대표 등 2명에 불과하다. 쿠팡 INC는 쿠팡을 100% 소유한 미국 법인이다. 먼저 김범석 쿠팡 INC 최고경영자(CEO) 및 쿠팡 이사회 의장이 한국계 미국인이다. 그는 일찌감치 미국으로 조기 유학을 떠나 하버드대에서 학부와 대학원 과정을 마치고 미국에서 활동했다. 우버 출신 최고기술책임자인 투안 팸과 아마존 출신 최고재무책임자인 고라브 아난드도 미국 출신이다. 기타비상무이사는 투자자들이 차지하고 있다. 소프트뱅크 비전펀드를 운영하는 쿠팡 담당 펀드매니저인 리디아 제트를 비롯해 벤처캐피털사인 로즈파크어드바이저, 그린옥스, 프라이머리벤처파트너스의 주요 경영진도 이사회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경영고문 역할인 사외이사에는 케빈 워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전 이사와 미국 소프트웨어 회사인 GTY 테크놀로지 홀딩스 부회장인 해리 유가 있다. 이 같은 구성 때문에 쿠팡은 한국계 미국인이 창업한 사실상 미국 기업이라는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애초에 ‘글로벌 확장성’을 염두에 둔 인재 영입의 결과라는 시각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커머스 업체는 애초에 확장성을 고려하지 않고 경쟁할 수 없다”면서 “한국 안에서만 경쟁해서는 살아남기 어렵다”고 했다. 다른 관계자는 “쿠팡은 미국 이커머스 시장의 50% 수준을 과점하고 있는 아마존을 벤치마킹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특히 외국계 벤처 캐피털 투자가 많은 스타트업일수록 외국계 주주나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기 위한 외국계 경영진의 영입이 필수”라고 했다. 앞서 국내 배달 애플리케이션(앱) 1위로 꼽히는 배달의민족 운영사인 ‘우아한형제들’도 독일 딜리버리히어로(DH)에 인수돼 외국계가 됐다. 지난 연말 딜리버리히어로는 우아한형제들의 지분 88%를 40억 달러(약 4조 3600억원)에 사들이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우아한형제들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인 김봉진 비전 CEO는 최근 설립이 완료된 우아DH아시아에서 의장 겸 집행이사에 내정됐다. 우아DH아시아는 DH와 우아한형제들이 5대5 지분구조로 세운 합작법인으로 한국은 물론 방글라데시, 홍콩, 일본 등 아시아 15개 지역 사업을 총괄하는 아시아 본부다. 다만 외국계 경영진의 ‘한국 정서’ 몰이해는 극복해야 할 숙제라는 지적이다. 쿠팡은 지난해 경기 부천 물류센터 근무자가 코로나 확진자라는 통보를 받고도 이를 즉각 공개하지 않거나 쿠팡 사망 노동자 발생에 대해 즉각 사과하는 대신 관련 규정을 거론하면서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편 쿠팡은 이날 배송직원(쿠팡친구) 등 현장 인원을 포함해 직원 1인당 200만원 상당의 주식(양도제한조건부)을 부여하겠다고 밝혔다. 상장 신고 서류를 통해 밝힌 총액이 1000억원 규모인 것을 감안하면 단순 계산해 약 5만명에게 혜택이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꿈 많던 25세 일용직 산재사…2심 선고 이틀 앞두고서야 678일 만에 속 보인 사과

    꿈 많던 25세 일용직 산재사…2심 선고 이틀 앞두고서야 678일 만에 속 보인 사과

    건설 현장 승강기에서 추락해 스물다섯의 나이로 숨진 청년 일용직 노동자 고 김태규씨의 유가족이 678일 만에 하청업체 대표의 공식 사과를 받았다. ●건설 현장 승강기서 추락사한 김태규씨 김상욱 은하종합건설 대표는 15일 김씨가 사망한 장소인 경기 수원 권선구 ACN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현장에서 안전 예방에 최선을 다하지 못해 소중한 생명이 희생되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책임을 통감하고 계속 반성하고 있다”며 “고인이 사망한 지 22개월이 지나서야 사과를 드린 점에 대해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김씨는 2019년 4월 10일 건설현장 5층에서 건축 폐기물을 옮기는 작업을 하다 화물용 승강기에서 추락해 숨졌다. 일용직인 김씨에게 안전화, 안전모 등 안전장비가 지급되지 않았다. 법원은 지난해 6월 1심 재판에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기소된 은하종합건설과 승강기 관리 업체 이조엔지니어링에 각각 700만원과 5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안전총괄책임자인 현장소장과 현장반장은 업무상과실치사죄 등으로 각각 징역 1년과 10개월을 선고받았다. 김씨의 누나 도현씨 등 유족들이 증거를 수집해 경찰에 재수사를 요구한 끝에 이끌어낸 유죄 판결이었지만 결국 원청업체엔 책임을 묻지 못했다. 오는 17일에는 항소심이 열린다. ●유족들, 하청 유죄 이끌어… 대표 사죄 수용 싸움이 길어지면서 유가족들은 몸과 마음의 병을 얻었다. 도현씨는 공황장애 치료를 받고 있고, 김씨의 어머니 신현숙씨는 당뇨합병증이 악화했고 담낭절제술 수술을 앞두고 있다. 도현씨는 “비록 늦었지만 다른 건설 업체들에게 본보기가 될 수 있고 가족들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려고 사과를 받기로 했다”고 말했다. 최영권 기자 story@seoul.co.kr
  • 대권 주자의 잇단 저격에 바짝 엎드린 대기업

    대권 주자의 잇단 저격에 바짝 엎드린 대기업

    최근 대기업을 겨냥한 유력 정치인들의 날 선 공개 발언에 재계가 전전긍긍하고 있다. 노동자와 국익 보호를 위한 시의적절한 발언이라는 긍정적인 반응과 함께 차기 대권을 염두에 둔 ‘훈수’라는 부정적인 반응이 동시에 나온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5일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포스코 포항제철소와 광양제철소에서 5년 동안 42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었다”면서 “세계적 철강기업 포스코에서 사고가 반복되는데도 안전조치를 취하기는커녕 무책임한 태도가 계속되는 데 대해 분노를 금할 수 없다. 포스코 최고경영자가 책임지고 조치를 취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여당의 대표가 당 최고기구 회의에서 기업의 실명을 거론하며 공개 저격한 건 이례적이다. 재계 관계자는 “지금까지 정치인들은 산업재해 전반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해야 할 부분을 원론적으로 언급했었는데, 이날 이 대표의 발언은 포스코를 조준해 작심하고 비판한 것이어서 놀랐다”고 했다. 이 대표의 이날 작심 발언은 오는 2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산업재해 청문회를 앞두고 노동계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차원이란 해석이 나온다. 포스코그룹에선 포스코와 포스코건설 대표가 동시에 증인으로 채택돼 최정우 포스코 회장과 한성희 포스코건설 대표가 나란히 출석한다. GS건설, 현대건설, 현대중공업, LG디스플레이, CJ대한통운 등 9개 대기업도 증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번 산재 청문회는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의 제안으로 성사됐기 때문에 노동 현장 사망사고에 대한 질타는 여야 할 것 없이 쏟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 대표가 유독 포스코만 정조준한 것은 최근 제철소 사망사고가 잇따랐기 때문으로 보인다. 가장 최근에는 지난 8일 포항제철소에서 35세의 하청업체 노동자가 롤러 교체 작업 중 변을 당했다. 금속노조 포스코지회는 “최 회장 취임 이후 14명의 근로자가 목숨을 잃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정치인의 공개 비판을 ‘대기업 길들이기’로 해석한다. 중견·중소 건설사 노동자의 사망 사고도 적지 않았는데 대형 건설사 대표만 증인으로 채택했다는 이유에서다. 일각에서는 차기 대권과 지지율을 의식한 영향력 과시로 연결짓는 시선도 있다. 이재명 경기지사에게 지지율에서 뒤처진 이 대표가 민주당 표밭인 노동계의 표심을 얻고자 포스코를 정면 겨냥한 것이란 관측이다. 대권 경쟁자인 정세균 국무총리도 앞서 LG화학에서 분사한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소송전’에 대해 “부끄럽다”고 비판하며 합의를 촉구했다. 당시 재계에서는 “기업의 지적재산권의 중요성을 간과한 정치적 발언”이라며 정치인의 기업 경영 개입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잇따랐다. 하지만 기업들은 공개적으로 반박하지 못하고 바짝 엎드린 모양새다. 재계 관계자는 “정치권에 밉보였다가 중대재해처벌법을 위반한 ‘1호 기업’이 될까 봐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고 말했다. 이영준 기자 the@seoul.co.kr
  • 쿠팡은 미국 회사?…외국계가 점령하는 국내 이커머스 시장

    쿠팡은 미국 회사?…외국계가 점령하는 국내 이커머스 시장

    미 뉴욕 상장을 추진하는 쿠팡의 경영진 대다수가 외국 국적자인 것으로 확인되면서 글로벌 ‘확장성’을 염두에 둔 이커머스 업계의 인재 영입과 선택에 이목이 쏠린다. 15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쿠팡이 제출한 증권신고서에 따르면 쿠팡 INC의 이사회 구성원 12명(사내이사 6명, 기타비상무이사 4명, 사외이사 2명) 가운데 한국 국적 소유자는 강한승·박대준 쿠팡 대표 2명에 불과하다. 쿠팡 INC는 쿠팡을 100% 소유한 미국 법인이다. 먼저 김범석 쿠팡 INC 최고경영자(CEO) 및 쿠팡 이사회 의장이 한국계 미국인이다. 그는 일찌감치 미국으로 조기 유학을 떠나 하버드대에서 학부와 대학원 과정을 마치고 미국에서 활동했다. 우버 출신 최고기술책임자인 투안 팸과 아마존 출신 최고재무책임자인 고라브 아난드도 미국 출신이다.기타비상무이사는 투자자들이 차지하고 있다. 소프트뱅크 비전펀드를 운영하는 쿠팡 담당 펀드매니저인 리디아 제트를 비롯해 벤처캐피털사인 로즈파크어드바이저, 그린옥스, 프라이머리벤처파트너스의 주요 경영진도 이사회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경영고문 역할인 사외이사에는 케빈 워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전 이사와 미국 소프트웨어 회사인 GTY 테크놀로지 홀딩스 부회장인 해리 유가 있다. 이 같은 구성 때문에 쿠팡은 한국계 미국인이 창업한 사실상 미국 기업이라는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애초에 ‘글로벌 확장성’을 염두에 둔 인재 영입의 결과라는 시각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커머스 업체는 애초에 확장성을 고려하지 않고 경쟁할 수 없다”면서 “한국 안에서만 경쟁해서는 살아남기 어렵다”고 했다. 다른 관계자는 경영진 면면이 미국 상장과 해외진출을 염두에 둔 구성이라고 했다. 그는“쿠팡은 미국 이커머스 시장의 50% 수준을 과점하고 있는 아마존을 벤치마킹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특히 외국계 벤처 캐피탈 투자가 많은 스타트업 일수록 외국계 주주나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기 위한 외국계 경영진의 영입이 필수”라고 했다. 앞서 국내 배달 애플리케이션(앱) 1위로 꼽히는 배달의민족 운영사인 ‘우아한형제들’도 독일 딜리버리히어로(DH)에 인수돼 외국계가 됐다. 지난 연말 딜리버리히어로는 우아한형제들의 지분 88%를 40억 달러(약 4조 3600억원)에 사들이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우아한형제들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인 김봉진 비전 CEO는 최근 설립이 완료된 우아DH아시아에서 의장 겸 집행 이사에 내정됐다. 우아DH아시아는 DH와 우아한형제들이 5:5 지분구조로 세운 합작법인으로 한국은 물론 방글라데시, 홍콩, 일본 등 아시아 15개 지역 사업을 총괄하는 아시아 본부다. 다만 외국계 경영진의 ‘한국 정서’ 몰이해는 극복해야 할 숙제라는 지적이다. 쿠팡은 지난해 경기 부천 물류센터 근무자가 코로나 확진자라는 통보를 받고도 이를 즉각 공개하지 않거나 쿠팡 사망 노동자 발생에 대해 즉각 사과하는 대신 관련 규정을 거론하면서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스물다섯 일용직 청년 김태규 추락사 뒤 678일만에 업체 대표 사과

    스물다섯 일용직 청년 김태규 추락사 뒤 678일만에 업체 대표 사과

    건설 현장 승강기에서 추락해 사망한 스물다섯 청년 일용직 노동자 고 김태규 씨의 유가족이 사망 678일이 지난 뒤에야 부실한 현장 안전 관리를 한 하청업체 대표에게 공식 사과를 받았다. 김상욱 은하종합건설 대표는 15일 오전 지난 2019년 4월 10일 사망 사고가 일어난 곳인 경기 수원시 권선구 고색동 ACN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유족에게 사과했다. 이번 사과는 이틀 뒤 선고될 항소심 판결에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김 대표는 이날 “고인이 사망한지 22개월이 지나서야 사과를 드린 점에 대해 죄송하다”며 “현장에서 안전 예방에 최선을 다하지 못해 소중한 생명이 희생되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책임을 통감하고 계속 반성하고 있다”며 유가족에 고개 숙여 사과했다. 유가족들은 사건 초기 업체 대표가 정식 사과를 하지 않았고 경찰과 노동청의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음을 지적했다. 결국 유가족이 직접 증거를 수집하는 등 발로 뛰며 업체와 관계자들의 유죄 판결을 이끌어냈다. 은하종합건설은 지난해 6월 19일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재판에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7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승강기 관리 업체 이조엔지니어링도 500만원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안전총괄책임자인 현장소장과 현장반장은 업무상과실치사죄, 산안법 위반 등으로 각각 징역 1년과 10개월을 선고받았다. 1심 재판부 수원지법 이원석 판사는 “아직 설치가 완료되지 않아 출입문 자동 닫힘 등의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 승강기를 무리하게 운행한 점, 승강기 외측 출입문과 건물 외벽 사이의 개구부로 인해 탑승자의 추락 위험이 있음에도 작업 편의를 위해 승강기 외측 출입문을 열어 둔 채로 운행한 점, 승강기 내부에 조명도 제대로 설치하지 않아 타승자들이 쉽게 인지하기 어려운 상태로 방치한 점 등을 비추어볼 때 현장소장과 현장반장 피고인들의 주의의무 위반 정도는 매우 중하다고 할 것이고, 그로 인해 피해자의 사망이라는 중한 결과가 발생한 점에서 처벌을 가볍게 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싸움이 길어지면서 유가족들은 몸과 마음의 병을 얻었다. 누나 도현 씨는 공황장애 치료를 받고 있고, 할아버지는 심장 부정맥, 어머니 신현숙 씨도 당뇨합병증이 악화되었고 담낭절제술 수술을 앞두고 있다.  누나 도현 씨는 비록 늦었지만 다른 업체들에 본보기가 될 수 있고 가족들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사과를 받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날 현장에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야간에 홀로 점검을 하다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숨진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 재단 이사장, tvN 이한빛 PD의 아버지 이용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장 등 비정규직 산재사망 사고 유가족들이 함께 자리를 지켰다. 수원 최영권 기자 story@seoul.co.kr
  • 작년 중대재해 80%, 처벌법 유예 ‘50인 미만 사업장’서 발생

    작년 중대재해 80%, 처벌법 유예 ‘50인 미만 사업장’서 발생

    지난해 노동자 사망 사고를 포함한 중대재해가 발생한 사업장이 671곳으로 나타났다. 이 중 50인 미만 사업장이 80%를 차지했다. 고용노동부가 10일 산업재해 예방 조치 의무 등을 위반해 명단을 공개한 사업장은 지난해(1420곳)보다 46곳 늘어난 총 1466곳이며 이 중 중대재해 발생 사업장은 671곳이다. 산업안전보건법상 중대재해는 사망자 1명 이상, 3개월 이상 요양이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부상자나 직업성 질환자가 10명 이상인 재해 등이다. 중대재해 1명 발생 사업장이 전체의 94%(632곳)였고 업종별로는 건설업이 56%(369곳)나 됐다. 사업장 규모별로는 50인 미만이 539곳으로 80%에 달했다. 이어 100~299인(56곳), 50~99인(52곳), 300~499인(16곳), 1000인 이상(5곳), 500~999인(3곳) 순이다. 중대재해 발생 사업장 10곳 중 8곳이 소규모 사업장이라는 점에서 내년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의 실효성이 의문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중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대표이사를 포함한 경영 책임자도 처벌할 수 있도록 했지만 50인 미만 사업장은 공포 이후 3년간 법 적용을 유예했다. 더욱이 5인 미만 사업장은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다. 공개된 사업장 중 연간 사망자가 2명 이상 발생한 사업장은 8곳으로 전년(20곳) 대비 감소했다. 8곳 모두 건설업에 속했고 50인 미만 사업장은 3곳이었다. 또 산재 발생 사실을 은폐한 사업장은 6곳으로 중흥토건, 정남기업, 세크닉스, 대흥건설, 칠성건설, 우미개발 등이다. 포스코와 한국지엠 창원공장 등 116곳은 최근 3년 이내 2회 이상 산재 발생을 보고하지 않았다. 하청 노동자 비율이 높아 사고 사망 비중이 높은 5개 원청사업장은 LS-Nikko제련, 고려아연 온산제련소, 동국제강 인천공장, 현대제철 당진공장, 삼성중공업 등이다. 박영만 고용부 산재예방보상정책국장은 “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명단 공표는 산재 발생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예방 조치 의무 이행을 유도하기 위한 조치”라며 “공표 대상이 된 사업장은 향후 3년간 각종 정부 포상이 제한되고 최고경영자 안전 교육도 실시된다”고 밝혔다. 세종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김태년 “포스코 또 산재사망… 특별근로감독 요청”

    김태년 “포스코 또 산재사망… 특별근로감독 요청”

    10일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8일 포스코 포항제철소에서 발생한 노동자 사망 사고와 관련, 고용노동부에 “특별근로감독 실시를 적극 검토해 줄 것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노동부는 이번 사고의 발생 원인을 철저하게 조사하고 책임자는 엄중하게 처벌하기 바란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지난해 12월에도 포항제철소에서 두 분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고, 포스코 광양제철소에서는 지난해 11월 발생한 산재로 세 분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며 “그런데 또 다시 사망사고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되는 등 사회적 논의와 대책 마련에도 불구하고 대기업에서 산재사고가 반복되는 현상에 실망을 넘어 분노를 느낀다”고 덧붙였다. 김 원내대표는 이어 포스코를 향해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철강회사라는 명성에 부끄럽지 않게 최고경영자가 책임지고 안전대책 마련에 최선을 다해달라”고도 했다.포스코 산재 등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해온 노웅래 최고위원도 관련 발언을 했다. 노 최고위원은 “지난주 금요일 현대중공업에서는 41세 근로자가 철판에 깔려 목숨을 잃었다. 이틀 전에는 포스코에서 30대 청년이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숨졌다”며 “중대재해법이 제정됐지만 상황은 전혀 달라지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노 최고위원은 해고노동자와 임금체불 문제에 대한 지적도 이어갔다. 그는 “우리 주변에는 부당하게 해고를 당했음에도 복직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며 “지난해만 해도 타다 드라이버 1만 2000명이 문자로 달랑 해고통보를 받고는 아직 소송 중”이라고 말했다. 또 “우리나라 임금체불 노동자는 41만명, 금액은 1조 6000억원 수준”이라며 부당해고와 임금체불 방지를 위한 특별법 제정 및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 등 필요성을 주장했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영상을 통해 만나볼 수 있습니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인천 공사장서 협력업체 60대 노동자 끼임 사고로 사망

    인천 공사장서 협력업체 60대 노동자 끼임 사고로 사망

    인천 한 아파트 공사장에서 천공기를 수리하던 시공사의 협력업체 노동자가 기계 내부에 끼여 숨졌다. 9일 인천경찰청 광역수사대에 따르면 전날 오후 4시 10분쯤 인천시 미추홀구 한 아파트 신축 공사장에서 시공사 협력업체 소속 노동자 A(61)씨가 천공기 내부 와이어에 끼였다. 천공기는 공사장에서 철제 파일을 박기 위해 지면에 구멍을 뚫는 중장비다. 이 사고로 크게 다친 A씨는 동료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 구급대에 의해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결국 숨졌다. 당시 A씨는 천공기가 멈추자 내부에 들어가 수리 작업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멈췄던 천공기가 갑자기 작동하면서 기계 내부의 와이어가 감기는 부분에 끼인 것으로 파악됐다. 수리 작업은 A씨 혼자 하고 있었다. 경찰은 천공기가 알 수 없는 원인으로 급작스럽게 작동하면서 사고가 난 것으로 보고 정확한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A씨가 천공기를 이용한 작업 공정의 책임자인 것으로 추정되나 정확한 직책과 업무 내용을 추가로 파악하고 있다”며 “원청업체와 협력업체 관계자들을 상대로 안전수칙 준수 여부를 조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곽혜진 기자 demian@seoul.co.kr
  • 포스코 안전관리대책 발표 5일 만에 포항제철소 협력업체 직원 사망사고

    포스코 안전관리대책 발표 5일 만에 포항제철소 협력업체 직원 사망사고

    포스코가 중점 안전관리 대책을 발표한 지 5일 만에 포항제철소에서 협력업체 직원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해 12월 협력업체 직원이 집진 배관 수리 도중 난간에서 떨어져 숨지는 등 지난 두 달 사이 협력업체 직원 3명이 숨졌다. 8일 오전 9시 40분쯤 포스코 포항제철소 원료부두에서 언로더를 정비하던 협력업체 직원 A(35)씨의 몸이 설비에 끼였다. A씨는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오전 11시쯤 숨졌다. 언로더는 항만 등지에서 석탄이나 철광석 등 원료를 육지로 옮기는 데 사용하는 크레인이다. 경찰과 고용노동부 등은 포스코와 A씨 소속사 등을 대상으로 사고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앞서 지난해 12월 9일 포스코 포항제철소 내 3소결공장에서 공기를 흡입하는 설비인 블로어 덕트를 수리하던 협력사 하청업체 직원 B(62)씨가 5m 아래로 떨어져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또 같은 달 23일에는 포항제철소 협력업체 소속 노동자 1명이 자신의 오토바이를 타고 야간근무를 위해 출근하던 도중 제철소 내 도로에서 25t 덤프트럭과 충돌해 사망했다. 포항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신지예 “서울시장 선거에 소외된 다수 대표 시민후보 나와야”

    신지예 “서울시장 선거에 소외된 다수 대표 시민후보 나와야”

    2018년 6월 서울시장 선거에 ‘페미니스트 서울시장’을 슬로건으로 당찬 출사표를 던졌던 여성 정치인. 신지예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는 그렇게 사람들 기억에 박혀 있다. 그는 지난해 총선에서 서울 서대문갑에 무소속으로 출마, 3위를 차지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폭력 사건이 불거진 이후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한여넷)라는 단체를 만들어 피해자 지원 및 여성 정치에 대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김종철 전 정의당 대표의 성추행 사건이 수면 위로 올랐을 때 누구보다 빨리 ‘장 의원의 용기에 찬사를 보낸다’고 지지했다. 행동하는 정당인, 정치인, 활동가로 ‘살아 있는’ 신 대표를 최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만났다. -요즘 어떻게 지냈나. “한꺼번에 많은 일이 돌아가서 정신이 없다. 개인적으로는 성폭력 사건 1심이 끝났고, 피의자와 검사가 모두 항소해 2심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를 맡으면서 그 안에서 정치 세력화를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이다. 정치권 성폭력 사건이 계속 터지는데 예방도 중요하지만, 사후 우리 사회가 이를 제대로 처벌하느냐 또한 중요하다. 박원순 전 시장 성폭력 사건 관련해서는 진상 규명 활동 및 공론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여성신문 젠더폴리틱스연구소에서 매주 글을 쓰며 여성 재산권 보장을 위한 특별법 제정 관련 정책을 구상하고 있다.” -정치권 성폭력 문제가 계속 불거지고 있다. 가장 최근엔 김종철 전 정의당 대표의 성추행 사건이 있었다. 정의당의 조처를 어떻게 봤나. “정의당이 기존에 조직이 보여주지 못했던 ‘공동체적 해결’을 시민들에게 인식시켜줬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피해자가 그곳에서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 사건에 대해 다른 구성원들도 2차 가해를 하지 않고 더 이상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구조적 해결에 천착하는 것이 필요한데, 거기까지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사건 해결을 맡은 배복주 부대표의 강단 있는 결정, 장혜영 의원의 용기가 시작을 잘 열어줬다. 다음 몫은 정의당 당원들의 힘에 달렸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장 의원에 대한 지지 발언을 올렸다. “작년 2월 같은 당 당직자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 사건 직후 바로 고소했고, 조사를 받았다. 이후 21대 총선에 출마하면서 지지자들에게 왜 녹색당을 떠나 무소속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지 설명해야 했다. 정치인은 국민의 권리를 위해 싸워야 하고 피해를 받는 게 아니라 피해당한 사람을 구제하고 도와줘야 하는 존재다. 그런 사람이 ‘내가 피해자’라고 나서면서 출마하는 걸, 유권자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걱정이 됐다. 이번에 장 의원을 보면서 그때 생각이 떠올랐다. 성폭력 피해자들은 피해 사실을 밝힐 때 주홍글씨가 될까 봐 두렵다. 그런데 장 의원은 용감하게 자기 목소리를 냈다. 이게 윗세대들이랑 다른 지점이다. 수많은 여성이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에 고통을 속으로 삭이지 않고, 이것이 개인적 문제가 아닌 사회적·정치적 문제라고 밝히며 사건 해결을 요구하고 있다. 신지예라는 개인도, 장혜영이라는 국회의원도 마찬가지다. 지금의 젊은 여성들은 완전히 다른 사회를 만들기 위한 ‘야망’을 넘어, ‘투철함’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 -본인 사건으로 넘어가 보자. 지난달 부산지법에서 나온 1심 판결에서 피의자는 준강간치상 혐의가 인정돼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치상 혐의를 인정한 재판부에 감사드리지만 죄질에 비해 형량이 낮다고 생각한다. 상해 정도가 미미하다는 것과 가해자가 반성한다는 점, 가해자 가족들이 쓴 탄원서 등을 감경 요인으로 꼽았다. 가해자의 어린 딸도 탄원서를 썼는데, 그 사실 자체로 가슴 아팠다. 또 다른 폭력 아닌가. 가해자 측 변호인은 내가 약속된 한 행사에 축사를 하러 참석한 것을 근거로 ‘상해가 미비하다’고 주장한다. 상해가 심했으면 축사를 할 수 있었겠느냐는 논리다. 그렇다면 성폭력 피해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정해진 업무를 다 취소하고 집안에 틀어박혀야만 피해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말인가. 성폭력 피해를 입고도 아픈 몸과 마음을 이끌고 다음날 출근해야 하는 여성들이 부지기수다. 전형적인 피해자다움 요구다. 이것이 반성하는 가해자의 태도인지 묻고 싶다.” -사건 발생 1년 만에 나온 녹색당의 입장문에 대해 SNS에 쓴 글을 봤다. 진상조사단을 꾸려 달라는 요청에 수개월 묵묵부답하다 이제 와 안전망 구축과 제도개선 교육을 얘기한다는 내용이었다. “박 전 시장 성폭력 사건 이후 서울시가 내놓은 입장도 ‘시스템 정비’였다. 그러나 제도 개선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것이기 때문에 누구도 책임지지 않아도 될 이야기다. 사건이 제대로 해결되려면 제도 개선뿐 아니라 처벌이 필수적이다. 내부에서 제대로 조사하고 기록해야 한다. 녹색당도 그걸 제대로 하지 않고 사건의 맥락을 제대로 해석하지 않았다. 성폭력 사건은 구조적이고 정치적인 문제였다. 당시 녹색당에 비례위성정당을 준비하는 집단이 있었다. 나는 당 공동 운영위원장임에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당내 가부장 권력을 중심으로 한 모든 논의에서 일방적으로 배제됐다. 나는 ‘녹색당’ 차원의 선거 준비를 제안했으나 오히려 ‘신지예 때문에 선거를 치를 수 없다’며 개인에 대한 인신공격이 시작됐다. 이 상황에서 가해자는 나에 대한 허위 소문을 없애는데 도움을 주겠다며 유인해 성폭력을 저질렀다. 어느 날 갑작스럽게 성폭력이 벌어진 게 아니라 위성정당 합류의 흐름 속에서 당 내부에서 자행됐던 마녀사냥의 끝이 성폭력이었다. 한국 위성정당의 흐름, 특히 비례대표 후보 공천 등이 매우 가부장적으로 진행되었는데 이 가부장적 정치가 개인에게는 성폭력이라는 사건으로 발생한 것이다. 사건 이후 당에 진상조사단을 만들 것을 요구했는데, 아직까지도 꾸려지지 않았다. 작년 3월, 당이 위성정당 참여 결정을 내릴 때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겠다는 생각으로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서울 서대문갑에 출마했다.”신 대표는 중학교 2학년 때 두발자유화운동을 하며 ‘한국청소년모임’이라는 온라인 카페를 만들었다. 이후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대안학교(하자작업장학교)에 입학했다. 사회적 기업, 시민단체, 정당활동과 세 번의 선거에 출마(2016년 총선 녹색당 비례대표 후보, 2018년 서울시장 선거, 2020년 총선 서울 서대문갑)했다. 그가 끊임없이 세상을 바꾸겠다고 나서는 이유와 동력이 궁금했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왜 두발자유화운동에 나섰나. 당시 많은 중·고등학생이 두발 제한 규정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했어도 선생님한테 반항하는 것 이상의 용기를 내는 일은 드물었다. “‘중2병’이었던 것 같다.(웃음) 세상에 반항하고 싶고, 아빠랑 사이가 안 좋았다. 학교는 ‘늙은 아버지’ 같았다. 선생님 중에 왜 두발단속을 해야 하는지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해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파마, 염색을 하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헌법에 ‘모두에게 신체의 자유가 있다’고 써놓고 학교는 그걸 왜 안 지키는지 얘기해주지 않았다. 당시 막 생겨난 ‘다음 아고라’에 이런 얘기를 올리면 “학생은 공부나 할 것이지” 같은 답을 들었다. 화가 났고, 많이 분노했다.” -왜 정치를 하고 싶었는지 궁금하다. “정치를 할 거라고 생각 못했고, 정치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지 않는 편이었다. 두발자유화운동을 하면서 정당에 일찍 발을 들였는데, 당시 치고받고 싸우는 어른들을 보면서 ‘저렇게는 세상을 바꿀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대안을 찾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대안학교에 가고, 사회적 기업·시민단체 회원으로 일했다. 하지만, 사회적 기업도 기업이라 이윤 창출이 제1 목표더라. 시민단체에서는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서 월세 8만원짜리 쪽방촌에 들어가 어르신들과 함께 사는 프로젝트를 했다. 그런데 재개발, 재건축 바람이 불며 망원동이 갑자기 ‘망리단길’이 되었다. 여든, 아흔 되는 어르신들이 쫓겨났다. 3평짜리 방에서 할머니들이 이웃과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게 큰 꿈도 아닌데 그걸 사회는 못 지켜보는구나, 결국은 법과 정치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등을 보면서 탈핵, 기후 생태에 대한 정치적 목소리가 필요하다고 여겼고, 전원 추첨제 대의원 제도를 가진 녹색당이 민주주의적 권력 분배에 관심이 많은 정당 같아 2012년 가입했다. 당에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건 2015년이다.” -신지예 하면 사람들은 2018년 지방선거 당시 ‘페미니스트 서울시장’ 슬로건을 기억할 것이다. “부끄럽지만 당시 나올 사람이 없었다. 서울시당 위원장이었는데, 후보자를 못 만들어내 직접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페미니스트’라는 슬로건에 부담감은 없었다. 사회적 기업이나 대안학교처럼 성인지 감수성이 높은 분들과 일하며 ‘온실 속 화초’처럼 산 것인지, 포스터 훼손 등 구체적 공격이 현실에서 일어날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 -2018년 서울시장 선거를 돌아본다면. “여성의 정치적 열망을 구체적으로 권력화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다. 8만 표를 얻었는데, 그 사람들이 희망을 찾을 수 있는 정치지형이 만들어졌느냐, 미래를 같이 그릴 수 있는 정치적 동료 혹은 느슨한 형태의 연대체라도 만들어졌느냐는 점에서 많이 부족했다. 페미니즘 정치라는 게 의회에 더 많은 여성을 보내는 것, 질적인 능력을 높이는 것 등 많은 게 있겠지만 이를 구현할 수 있는 정치적 조직을 만들어내는 게 중요한데 그걸 못했다. 그러나 페미니즘을 중심으로 한 사회가 필요하다는 열망을 가진 사람이 8만 명 이상이라는 걸 확인한 건 나에게도 사회적으로도 큰 의미였다.” -2016년 20대 총선부터 2018년 서울시장 선거, 2020년 총선까지 세 번의 선거를 치렀다. 힘들지 않았나. “미래에 대한 희망을 찾기 어려운 세상이다. 옛날처럼 결혼하고 아이 낳고 은퇴해 노후를 즐긴다는 삶의 노선이 더 이상 모두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길이 됐다. 한국에서 살 방법은 ‘영끌’해서 주식투자하고 부동산 투자해서 시세 차익 노리고, 연봉 높이는 것이다. 여기서도 여성은 유리천장 때문에 더 어렵다. 정치가 아직까지도 굉장히 구리고, 재미없는 영역이긴 해도 바꿔낼 수만 있다면 그 어떤 기술보다 빠르게 내 삶을 바꿀 수 있는 영역이라 생각해 계속 하고 있다. 하다 하다 안 되면 어쩔 수 없고.”-한여넷 얘기를 해보자. 박 전 시장의 성폭력 사건 이후 발족한 것으로 안다.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떤 활동을 하나. “박 전 시장 사망 이후 뜻을 같이하는 이들과 긴급회의를 했다. 단체를 만들어 반복되는 정치권 성폭력을 막고, 해결책을 내놓고, 더 많은 여성이 정치적인 존재로 거듭날 수 있도록 교두보 역할을 하자는데 뜻이 모였다. 녹색당에서 활동했던 사람, 선거 때 활동했던 분들, 여성단체 활동가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 -지난달 25일,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박 전 시장 사건 직권조사 결과에 아쉬움을 많이 토로했다. “인권위 결과에 매우 박한 평을 주고 싶다. 예전에 서울대 신 교수 사건(1993년) 때 성희롱·성추행에 관한 얘기가 나와 어떤 것이 성희롱인지 명징하게 밝혔는데, 최영애 인권위원장이 쓴 보고서와 수십 년 전에 나온 보고서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느낀다. 2021년 다운 보고서라면 더 나아가 2차 가해가 무엇인지 밝혀야 한다. 피해자한테 2차 가해를 하거나 묵인해온 서정협 서울시장 권한대행을 포함한 전·현직 비서실장, 젠더특보, 오성규, 김민웅 같은 인물이 대표적이다. 또한 피해자에게 박 전 시장이 서울대병원에 처방전을 갖고 가 약을 타오라고 한 의료법 위반 의혹, 업무추진비 법인카드를 이용해 개인적 용도로 물품을 구매하도록 지시한 부분 등에 대해서도 조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한여넷에서 감사원에 국민감사청구를 제출했다.” -4월 재보궐은 성평등 선거가 되어야 한다는 취지로 지난달 15일 ‘줌’(ZOOM)으로 ‘미투선거 시국회의’를 열었다.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정치적 전망을 내부에서부터 만들어나가자는 취지로 각계각층의 사람을 초대해 방법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130명 정도는 두 시간 반 내내 참석해 여성들의 의지가 높음을 알 수 있었다. 오는 10일 저녁 8시30분 2차 회의를 열 예정이다.” -재보궐선거가 성평등 선거가 되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출마할 계획은 없나. “시민연합후보를 내자는 제안을 금태섭 후보와 권수정 정의당 후보께 제안했었다. 금 후보께는 시민연합선거의 판을 만들자고 제안 드렸다. 여성뿐 아니라 성소수자, 동물, 장애인, 세입자, 자영업자, 노동자, 노인 등을 대변할 새로운 정치지형을 만들 수 있지 않겠느냐, 선거 이후에는 새로운 정치의 판을 열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숙고 끝에 거절하시더라. (금 후보는 안철수 후보와 단일화 의지를 밝혔고, 정의당은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후보 무공천 결정을 내렸다.) 아직 시간은 있다고 생각한다. 선거에서 조금이라도 반향을 일으킬 수 있다면, 어떤 일이라도 할 것이다. 서울시장에 출마한 후보들 정책을 보면 미래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적은 듯하다.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후보는 강을 메워 주택을 짓겠다고 하는데 후대에 죄를 짓는 범죄다. 박영선 후보는 ‘콤팩트 시티’의 개념을 잘못 차용해 갖고 왔다. 서울은 이미 ‘메가 시티’인데 이 도시를 어떻게 더 밀집시킨다는 건지 모르겠다. 국민의힘, 안철수 후보도 개발을 외치고 있는데, 서울을 끝없이 개발하는 정책으로는 한국 사회의 산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서울 집중의 문제는 결국 일자리, 부의 재분배, 풀뿌리 민주주의, 낮은 에너지 자립도 등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50년 후, 100년 후를 바라보고 큰 비전 아래 도시 계획이 세워져야 한다. 여성과 성소수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성평등도시,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생태도시, 빈틈없는 사회 안전망을 갖춘 돌봄 도시를 지향해야 한다.” -페미니스트로서 자신을 지키며 살기 쉽지 않다. 어떻게 자신을 지키고, 세상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으며 사는가. “요즘에는 기를 모아 SNS에 글을 쓰고, 마이크를 들고 기자회견을 한다. 힘들지 않느냐고 묻는데 나는 ‘무엇이 문제인지 말하고 설득하면서’ 분노가 삭여지는 것 같다. 또래 여성들로부터 큰 힘을 받는다. ‘2030’ 여성들은 무슨 일이 터지면 자기 일처럼 분노하고, 댓글이라도 달면서 움직인다. ‘나 혼자만 고군분투하는 게 아니구나’라고 느낄 때 버틸 수 있다. 현 민주당 집권 세력, ‘586’도 운동하던 시절의 그 자신만만한 열망을 바탕으로 지금까지 온 것 같다. 정권을 창출하고, 180석이라고 하는 유례없는 의석을 만들어냈다. 페미니스트라고 그러면 안 될까. 페미니스트들이 ‘나라 한 번 뒤집어 봐’하는 작정으로 일상 속 실천과 사회적 싸움을 계속해나가며 느슨하고도 너른 정치적 연대체를 꾸린다면 10년 안에는 결실을 볼 수 있지 않을까.” -‘10년 안에 결실’이라는 건? “평등한 한국을 만들 진정한 페미니스트 정권창출이다.” 젠더연구소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이춘재 누명 쓴 동생 매질 또 매질… 결국 암 생겨 27세에 떠나”

    “이춘재 누명 쓴 동생 매질 또 매질… 결국 암 생겨 27세에 떠나”

    1990년 12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악기 공장에서 성실히 일하던 동생이 갑자기 사라졌다. 일주일 뒤 동생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얼마 전 벌어진 화성 여중생 살인사건(이춘재 9차 살인사건)의 용의자가 체포됐다는 뉴스에서였다. 영상 속 윤모(당시 20세)군은 모자이크 된 채였지만 영락없는 동생이었다. “그때 충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일주일 동안 사라졌던 동생이 TV에 살인범으로 나오고 있었었으니까. 부모님이나 저나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싶었죠.” 지난 2일 경기 화성의 한 카페에서 서울신문과 만난 윤씨의 형 윤동기(57)씨에겐 30년 전 그날의 일이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했다.가족들이 동생을 찾을 수 없었던 이유는 명백했다. 동생을 범인으로 지목한 경찰이 5일 동안 동생을 감금한 채 거짓 조서를 쓰게 했기 때문이다. “수사관들이 여럿 붙어서 겁박하고 마대자루에 넣어 때리는데 무슨 수로 버티겠어요. 가족한테서도 아무 연락이 없으니 ‘가족마저 나를 버렸구나’ 싶어 자포자기한 거였죠.” 동생은 밤낮없이 이어진 경찰의 가혹행위에 27차례나 거짓 진술서를 썼다. 남은 건 경찰이 불러준 대로 현장 검증을 하는 것뿐이었다. 이대로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윤씨는 곧장 변호사를 선임해 현장 검증이 이뤄지던 곳으로 향했다. “동생을 처음 딱 봤는데 덩치도 있던 녀석이 잔뜩 주눅이 들어선 고개를 들질 못하더라고요. 그래서 동생한테 가서 말했어요. “○○아 형이 왔다. 변호사도 사서 왔다. 담임선생님, 친구들, 동네 사람들 아무도 네가 했다고 생각 안 한다. 그러니까 이제 바른 대로 말해라”라고요. 그제서야 동생이 저를 보면서 “나는 범인 아닙니다” 하는 거예요. 그대로 검증이고 뭐고 전부 철수했죠.” 이튿날 동생은 전날보다 부은 얼굴에 반질반질한 연고를 잔뜩 바른 모습으로 면회실에 나타났다. ‘혐의를 부인한다며 경찰들이 또 매질을 한 거구나’라고 윤씨는 생각했다. 동생은 수사기관이 일본에 의뢰한 유전자 검사 결과가 도착해서야 겨우 살인 혐의를 벗었다. 그러나 강제추행 혐의로 재판에서 집행유예를 받기까지 3개월 동안 독방에 구금됐다. ●강제 추행 누명 씌워 집유… 3개월 독방 수감 윤씨는 경찰이 동생을 흉악범으로 만들기 위해 강제추행이라는 ‘누명’을 씌웠다고 보고 있다. 당시 피해자의 아버지였던 이발소 주인은 10여년 뒤 윤씨에게 ‘그땐 미안했다. 증거도 없고 범인이 누구라고 지목하지도 않았는데 경찰이 도와 달라고 해서 어쩔 수가 없었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동생이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을 시간에 일어난 여러 건의 강제추행 혐의를 뚜렷한 증거 없이 엮으려 한 정황도 훗날 드러났다고 윤씨는 말했다. 집으로 돌아온 동생은 다시 일터로 돌아갔지만 평범한 삶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범인으로 몰려 고초를 겪은 탓일까. 동생의 몸에서 악성 종양이 발견됐다. 첫 수술에서만 4개의 갈비뼈를 제거했다. 가장 역할을 하던 윤씨는 동생과 부모님이 충격을 받을까 봐 암이란 단어조차 꺼낼 수가 없었다. 얼마 뒤 동생의 병이 재발하면서 그마저도 소용없게 됐다. 가세는 급격히 기울었다. 아버지는 생전 땅을 사기 위해 모아 뒀던 돈을 5000원짜리 뭉치로 보자기에 고이 싸뒀었는데, 그 돈마저 동생의 변호사 선임비나 병원비에 전부 들어갔다. 강력한 진통제 없이는 버틸 수 없게 된 동생을 집으로 데려온 것도 입원비를 댈 형편이 못 돼서였다. “몸에 주먹보다 커다란 욕창까지 생겨 매분 매초가 고통스러웠을 텐데 어떻게 집에서 버티겠습니까. 견디기 어려웠던 동생이 어머니한테 ‘뭐 좀 사다 달라’고 부탁해 어머니가 자릴 비웠을 때 직접 119에 연락해서 병원에 갔을 정도니까요.” 7살 터울의 하나밖에 없는 동생은 1997년 결국 스물일곱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재발 이후 5년간 투병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동생은 용의자로 몰려 경찰에서 당한 일들에 대해 더이상 말하지 않았다. 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진범의 혈액형으로 알려졌던 B형(실제 이춘재의 혈액형은 O형)이기만 해도 잡혀 가던 시절이어서였는지, 가족들 모두 이미 고통 속에 살고 있어서였는지 윤씨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아직 진범이 잡히지 않은 때였고, 사람들의 관심도 서서히 멀어지고 있었다. 그로부터 5년 뒤 이춘재 연쇄 살인사건(당시 화성 연쇄 살인사건)을 다룬 영화 ‘살인의 추억’이 나왔다. 감독은 이듬해 한 인터뷰에서 영화 속에 용의자로 등장한 박현규(배우 박해일 분)의 모델이 1997년 병으로 사망한 공장노동자였다는 사실을 처음 언급했다. 경찰에서 가혹 행위를 당했다는 점, 외국(미국)에서 온 유전자 검사 결과가 일치하지 않아 결국 풀려 났다는 점 등 동생과 닮은 점이 많았다. 정작 윤씨는 이 영화를 보지도 않았고 동생을 모델로 한 인물이 등장한 것도 몰랐다고 말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시절을 그린 건데 어떻게 그걸 보겠습니까. 개봉 전에 동생에 대해 묻는 사람도 없었고, 거기 용의자로 나온 사람은 다 허구의 인물이라고 생각했어요.” 진범이 잡히기 전에 개봉한 영화라 당시엔 박현규가 진범일 수도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다른 출연 배우도 시나리오상 박현규가 범인인 것으로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2019년 사건 발생 30여년 만에 경찰은 화성 연쇄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이춘재를 지목했다. 1994년 처제를 강간한 후 살해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부산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그는 그해 10월 자신이 처제 살해 외에도 14건의 살인과 34건의 성범죄를 저질렀다고 자백했다.●윤씨, 진범 이춘재 중학교 급우로 기억해 윤씨는 ‘이춘재’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았다. 중학교를 함께 다니며 매일같이 얼굴을 보던 급우였다. “설마설마했어요. 같은 중학교에 남학생이 120명밖에 없었는데 그중 하나였으니까.” 이춘재로 인해 억울한 일을 겪은 동생을 안타까워하던 윤씨는 동시에 과거 어머니가 당했던 일이 떠올랐다. 어머니는 1980년대 중반 동네에서 칼에 13차례나 찔린 채로 발견됐다. 중환자실로 옮겨진 어머니는 다행히 목숨을 건졌지만 범인은 끝내 찾지 못했다. 윤씨는 해당 범행이 이춘재의 소위 1차 연쇄 강간 사건(1986)보다 앞서 벌어진 것이긴 하나 이춘재의 범행 수법과 유사한 점이 많다고 봤다. “당시 어머니가 40대였는데 이춘재는 나이를 가리지 않았잖아요. 범행 도중에 입에 흙을 집어넣고 ‘서방은 뭘 하냐, 아들은 뭘 하느냐’라는 말을 했다고 해요.” 어머니를 공격한 범인이 만일 이춘재라면, 그때 이춘재가 잡혔다면 가족들의 삶이 많이 달라졌을 거라고 윤씨는 생각했다. ●어머니 동네서 13차례 칼에 찔려… 수법 유사 윤씨의 어머니는 지난해 세상을 떠났다. 홀로 남은 윤씨는 진범이 드러나자 동생이 입은 피해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수사기관에 동생의 수사 자료에 대한 정보 공개 청구도 했다. A4 용지 6상자에 달하는 서류가 있는 것으로 나왔지만 실제 받은 건 일부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당시 수사에 참여했던 조사관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알아볼 수 있었다. 지난달 25일엔 이춘재 8차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20년이나 옥살이를 했던 윤성여씨, ‘초등생 살인사건’ 피해자 고 김현정양의 아버지 김용복씨와 함께 ‘이춘재 피해자들’을 대표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를 찾았다. 과거 공권력의 반인권적인 행위에 대한 진상을 규명해 달라는 요청을 하기 위해서였다. 이춘재가 자백한 살인 범죄는 모두 그가 저지른 것으로 결론이 났지만, 성폭행·강도 범행 34건 중 25건은 증거 부족이나 피해자 진술 부족 등을 이유로 범죄 혐의에서 빠진 상태다. 이춘재 사건이 아직 끝나지 않은 이유다. 그때 당시 진범으로 몰려 옥고를 치렀던 피해자 외에도 수사기관의 무리한 수사를 받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례도 있었다. 피해자의 가족도 그만큼 고통받았다. “사람들이 물어봐요. 소송 생각은 안 해봤냐고. 지금까진 정말 먹고살기가 너무 힘들어서 그럴 여력이 없었어요. 여길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다 그런 이유였고요. 근데 이제 저희를 돕겠다고 나서 준 변호사들이 있으니 적극적으로 해보려고 합니다. 동생의 억울한 마음도 풀고, 어머니 사건의 진상도 캤으면 좋겠습니다. 그때 혈안이 돼 가지고 많은 사람들을 다치게 했던 나쁜 사람들 전부 책임을 져야지요.”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이춘재 대신 범인으로 몰려 고초 겪은 동생…암으로 27살에 세상 떠나”

    “이춘재 대신 범인으로 몰려 고초 겪은 동생…암으로 27살에 세상 떠나”

    이춘재 사건 범인으로 몰린 동생경찰 가혹행위에 27차례 거짓 진술유전자 불일치로 결국 무혐의 판정석방 후 원인불명 악성 종양 발견중학교 동창이던 이춘재 자백에피습 당한 어머니 사연 떠올라1990년 12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악기 공장에서 성실히 일하던 동생이 갑자기 사라졌다. 일주일 뒤, 동생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얼마 전 벌어진 화성 여중생 살인사건(이춘재 9차 살인사건)의 용의자가 체포됐다는 뉴스에서였다. 영상 속 윤모군(당시 20세)은 모자이크 된 채였지만 영락 없는 동생이었다. “그 때 충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일주일 동안 사라졌던 동생이 TV에 살인범으로 나오고 있었었으니까. 부모님이나 저나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싶었죠.” 지난 2일 경기 화성의 한 카페에서 서울신문과 만난 윤씨의 형 윤동기(57)씨에겐 30년 전 그날의 일이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했다. 가족들이 동생을 찾을 수 없었던 이유는 명백했다. 동생을 범인으로 지목한 경찰이 5일 동안 동생을 감금한 채 거짓 조서를 쓰게 했기 때문이다. “수사관들이 여럿 붙어서 겁박하고 마대자루에 넣어 때리는데 무슨 수로 버티겠어요. 가족한테서도 아무 연락이 없으니 ‘가족마저 나를 버렸구나’ 싶어 자포자기 한 거였죠.” 동생은 밤낮없이 이어진 경찰의 가혹행위에 27차례나 거짓 진술서를 썼다. 남은 건 경찰이 불러준 대로 현장 검증을 하는 것 뿐이었다. 이대로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윤씨는 곧장 변호사를 선임해 현장 검증이 이뤄지던 곳으로 향했다. “동생을 처음 딱 봤는데 덩치도 있던 녀석이 잔뜩 주눅이 들어선 고개를 들질 못하더라고요. 그래서 동생한테 가서 말했어요. “○○아 형이 왔다. 변호사도 사서 왔다. 담임 선생님, 친구들, 동네 사람들 아무도 네가 했다고 생각 안 한다. 그러니까 이제 바른대로 말해라”라고요. 그제서야 동생이 저를 보면서 “나는 범인 아닙니다”하는 거에요. 그대로 검증이고 뭐고 전부 철수했죠.” 이튿날 동생은 전날보다 부은 얼굴에 반질반질한 연고를 잔뜩 바른 모습으로 면회실에 나타났다. ‘혐의를 부인한다며 경찰들이 또 매질을 한 거구나’라고 윤씨는 생각했다. 동생은 수사기관이 일본에 의뢰한 유전자 검사 결과가 도착해서야 겨우 살인 혐의를 벗었다. 그러나 강제추행 혐의로 재판에서 집행유예를 받기까지 3개월 동안 독방에 구금됐다. 윤씨는 경찰이 동생을 흉악범으로 만들기 위해 강제추행이라는 ‘누명’을 씌웠다고 보고 있다. 당시 피해자의 아버지였던 이발소 주인은 10여년 뒤 윤씨에게 ‘그 땐 미안했다. 증거도 없고 범인이 누구라고 지목하지도 않았는데 경찰이 도와달라고 해서 어쩔 수가 없었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동생이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을 시간에 일어난 여러 건의 강제추행 혐의를 뚜렷한 증거 없이 엮으려 한 정황도 훗날 드러났다고 윤씨는 말했다. “억울하게 죽어 간 하나뿐인 동생” 집으로 돌아온 동생은 다시 일터로 돌아갔지만 평범한 삶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범인으로 몰려 고초를 겪은 탓일까. 동생의 몸에서 악성 종양이 발견됐다. 첫 수술에서만 4개의 갈비뼈를 제거했다. 가장 역할을 하던 윤씨는 동생과 부모님이 충격을 받을까봐 암이란 단어조차 꺼낼 수가 없었다. 얼마 뒤 동생의 병이 재발하면서 그마저도 소용없게 됐다. 가세는 급격히 기울었다. 아버지는 생전 땅을 사기 위해 모아뒀던 돈을 5000원짜리 뭉치로 보자기에 고이 싸뒀었는데, 그 돈마저 동생의 변호사 선임비나 병원비에 전부 들어갔다. 강력한 진통제 없이는 버틸 수 없게 된 동생을 집으로 데려온 것도 입원비를 댈 형편이 못 돼서였다. “몸에 주먹보다 커다란 욕창까지 생겨 매분 매초가 고통스러웠을텐데 어떻게 집에서 버티겠습니까. 견디기 어려웠던 동생이 어머니한테 ‘뭐 좀 사다달라’고 부탁해 어머니가 자릴 비웠을 때 직접 119에 연락해서 병원에 갔을 정도니까요.” 7살 터울의 하나밖에 없는 동생은 1997년 결국 스물 일곱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재발 이후 5년간 투병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동생은 용의자로 몰려 경찰에서 당한 일들에 대해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진범의 혈액형으로 알려졌던 B형(실제 이춘재의 혈액형은 O형)이기만 해도 잡혀가던 시절이어서였는지, 가족들 모두 이미 고통 속에 살고있어서였는지 윤씨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아직 진범이 잡히지 않은 때였고, 사람들의 관심도 서서히 멀어지고 있었다. “살인의 추억, 어떻게 보겠나” 그로부터 5년 뒤, 이춘재 연쇄 살인사건(당시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을 다룬 영화 ‘살인의 추억’이 나왔다. 감독은 이듬해 한 인터뷰에서 영화 속에 용의자로 등장한 박현규(배우 박해일)의 모델이 1997년 병으로 사망한 공장노동자였다는 사실을 처음 언급했다. 경찰에서 가혹 행위를 당했다는 점, 외국(미국)에서 온 유전자 검사 결과가 일치하지 않아 결국 풀려났다는 점 등 동생과 닮은 점이 많았다. 정작 윤씨는 이 영화를 보지도 않았고 동생을 모델로 한 인물이 등장한 것도 몰랐다고 말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시절을 그린 건데 어떻게 그걸 보겠습니까. 개봉 전에 동생에 대해 묻는 사람도 없었고, 거기 용의자로 나온 사람은 다 허구의 인물이라고 생각했어요.” 진범이 잡히기 전에 개봉한 영화라 당시엔 박현규가 진범일 수도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다른 출연 배우도 시나리오 상 박현규가 범인인 것으로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2019년, 사건 발생 30여년 만에 경찰은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이춘재를 지목했다. 1994년 처제를 강간 후 살해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부산교도소에 수감중이던 그는 그해 10월 자신이 처제 살해 외에도 14건의 살인과 34건의 성범죄를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피습 당한 어머니 사건 해결됐더라면” 윤씨는 ‘이춘재’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았다. 중학교를 함께 다니며 매일같이 얼굴을 보던 급우였다. “설마설마 했어요. 같은 중학교에 남학생이 120명 밖에 없었는데 그 중 하나였으니까.” 이춘재로 인해 억울한 일을 겪은 동생을 안타까워하던 윤씨는 동시에 과거 어머니가 당했던 일이 떠올랐다. 어머니는 1980년대 중반 동네에서 칼에 13차례나 찔린 채로 발견됐다. 중환자실로 옮겨진 어머니는 다행히 목숨을 건졌지만 범인은 끝내 찾지 못했다. 윤씨는 해당 범행이 이춘재의 소위 1차 연쇄 강간 사건(1986)보다 앞서 벌어진 것이긴 하나 이춘재의 범행 수법과 유사한 점이 많다고 봤다. “당시 어머니가 40대였는데 이춘재는 나이를 가리지 않았잖아요. 범행 도중에 입에 흙을 집어 넣고 ‘서방은 뭘 하냐, 아들은 뭘 하느냐’라는 말을 했다고 해요.” 어머니를 공격한 범인이 만일 이춘재라면, 그 때 이춘재가 잡혔다면 가족들의 삶이 많이 달라졌을 거라고 윤씨는 생각했다. 윤씨의 어머니는 지난해 세상을 떠났다. 홀로 남은 윤씨는 진범이 드러나자 동생이 입은 피해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수사기관에 동생의 수사자료에 대한 정보 공개 청구도 했다. A4용지 6상자에 달하는 서류가 있는 것으로 나왔지만 실제 받은 건 일부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당시 수사에 참여했던 조사관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알아볼 수 있었다. 지난달 25일엔 이춘재 8차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20년이나 옥살이를 했던 윤성여씨, ‘초등생 살인 사건’ 피해자 고 김현정 양의 아버지 김용복씨와 함께 ‘이춘재 피해자들’을 대표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를 찾았다. 과거 공권력의 반인권적인 행위에 대한 진상을 규명해달라는 요청을 하기 위해서였다. 이춘재가 자백한 살인 범죄는 모두 그가 저지른 것으로 결론이 났지만, 성폭행·강도 범행 34건 중 25건은 증거 부족이나 피해자 진술 부족 등을 이유로 범죄 혐의에서 빠진 상태다. 이춘재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은 이유다. 그 때 당시 진범으로 몰려 옥고를 치렀던 피해자 외에도 수사 기관의 무리한 수사를 받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례도 있었다. 피해자의 가족도 그만큼 고통받았다. “사람들이 물어봐요. 소송 생각은 안해봤냐고. 지금까진 정말 먹고 살기가 너무 힘들어서 그럴 여력이 없었어요. 여길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다 그런 이유였고요. 근데 이제 저희를 돕겠다고 나서준 변호사들이 있으니 적극적으로 해보려고 합니다. 동생의 억울한 마음도 풀고, 어머니 사건의 진상도 캤으면 좋겠습니다. 그 때 혈안이 되가지고 많은 사람들을 다치게 했던 나쁜 사람들 전부 책임을 져야지요.” 화성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설 연휴 맞아 코로나19 방역에 총력 대응 나선 자치구들…방역 아이디어 봇물

    설 연휴 맞아 코로나19 방역에 총력 대응 나선 자치구들…방역 아이디어 봇물

    다가오는 설 연휴를 맞아 서울 자치구들이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재확산을 막기 위해 다양한 방역 아이디어를 내놓고 있다.강북구는 설 연휴 기간 동안 코로나19 재확산 방지를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 동참 캠페인’을 펼친다. 캠페인은 코로나19에 취약한 노년층의 감염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추진된다. 구 관계자는 “강북구의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전체 인구수의 20%를 웃돈다”면서 “이에 따라 설 명절 동안 부모님 댁을 방문하는 자녀들과의 가족 간 거리두기 실천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캠페인 추진 취지를 밝혔다. 구는 오는 14일까지 ▲가족방문 자제하기▲명절인사는 영상통화로 ▲개인위생 준수 철저 등의 내용을 집중 홍보한다. 구는 온라인, 오프라인 매체를 광범위하게 활용해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 모두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계획이다. 우선 구는 유동인구 밀집지역에 ‘집에서 보내는 설 명절, 만나지 않아도 마음은 전해집니다’ 등의 문구가 담긴 현수막을 내걸고 관내 지하철 4호선 역사 및 우이신설선 경전철, 공동주택과 다중이용시설에 포스터를 부착했다. 또한 대한노인회 강북구지회 회원과 직능단체 등 약 8700여명을 대상으로 3회에 걸쳐 문자를 전송한다. 공동주택 93개소와 13개 동 주민센터에서도 하루 2회 안내방송을 실시할 예정이다. 아울러 구는 강북구 인터넷방송국과 유튜브 채널에 자체제작 영상물을 게재한다. 구 청사, 동 주민센터 등에 설치된 IPTV와 구청 전광판, 디지털게시대 등을 이용해 관련 영상 및 이미지를 송출하고 블로그와 페이스북 등 사회관계망 서비스(SNS)에서도 홍보를 전개한다. 박겸수 강북구청장은 “감염증의 지속적인 유행으로 지난 추석에 이어 또 한번 가족과 함께할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에 직면했지만, 안전한 한 해를 위해 방문 자제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광진구는 이번 설 연휴 기간 동안 코로나19 지역사회 감염 방지를 위해 명절에 더욱 바쁜 필수·특수노동자들을 위해 마스크 지원에 발벗고 나섰다. 먼저 구는 지난 3일 동서울우편집중국과 광진우체국 직원들을 위해 KF94 마스크 4만 7000여매를 전달했다. 구 관계자는 “이번 마스크 지원은 코로나19 감염 예방과 함께 설 명절을 앞두고 급격히 증가한 택배물량을 배송·처리해야 하는 우체국 택배기사와 직원들을 격려하기 위해 마련됐다”고 전했다. 더불어 구는 전통시장 상인과 개인택시 운전자, 환경미화원 등 다수의 사람과 접촉하는 경우가 많은 종사자를 대상으로 총 9만 6000여매의 마스크를 지급했다. 또 힘든 작업 환경에 놓인 폐지수집 노인에게도 안전한 명절을 보낼 수 있도록 마스크를 전달했다. 김선갑 광진구청장은 “명절임에도 불구하고 택배 배송, 전통시장 운영 등 주민 편의를 위해 애쓰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린다”며 “각 분야별로 촘촘한 설 명절 종합대책을 추진하고 코로나19 재난안전대책본부 운영에 만전을 기해 연휴기간 동안 행정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노원구는 설 연휴 기간 반려견 쉼터를 운영한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귀성을 자제하는 분위기지만 부득이한 사정으로 집을 비워야 하거나, 반려견 돌봄이 필요한 가구를 위한 조치다.구는 구청 2층 대강당에 반려견 쉼터를 마련해 오는 11일 오전 9시부터 13일 오후 6시까지 운영한다. 이용 대상은 출생 후 6개월 이상인 소형견(8kg 이하)이며, 동물등록 및 광견병 예방접종을 완료한 반려견만 쉼터 이용이 가능하다.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준수하기 위한 방문자 명부 작성, 발열 체크도 실시한다. 근무자와 방문자는 반드시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해 구민과 반려견의 안전을 우선토록 했다. 오승록 노원구청장은 “설 연휴 기간 부득이하게 반려견을 맡길 곳이 필요한 구민들이 안심하고 편히 명절을 보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한편 노원구는 지난 1일부터 52만명의 전 노원구민에게 구민 안심보험을 자동 가입토록 조치했다. 올해 코로나19 감염병으로 인한 사망 시 300만원을 보장하는 내용을 추가한 점이 특징이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본지 경제부 ‘2020 부동산 대해부’ 한국기자상 수상

    본지 경제부 ‘2020 부동산 대해부’ 한국기자상 수상

    서울신문 경제부가 지난해 5회에 걸쳐 보도한 ‘2020 부동산 대해부- 계급이 된 집’이 한국기자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한국기자협회가 주관하는 한국기자상 심사위원회는 1일 제52회 한국기자상 수상작을 발표했다. 경제보도 부문에는 서울신문 경제부(김동현·임주형·하종훈·장은석·홍인기·강윤혁·나상현 기자)의 ‘2020 부동산 대해부- 계급이 된 집’을 선정했다. 강남3구로 상징되는 한국 부동산의 현실과 문제점을 조명한 이 보도는 앞서 심사위원회로부터 “단발성 이슈에 매몰되기 쉬운 경제보도의 전범을 제시한 수작”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대상에는 ‘n번방 사건과 그 후’를 보도한 한겨레와 국민일보가 공동으로 선정됐다. 부문별로는 취재보도 부문에서 JTBC ‘택배노동자 과로사 추정 사망’이, 기획보도 부문 수상작은 경향신문 ‘검찰·법무부 비공개 내규를 공개합니다’와 KBS ‘존엄한 노후, 가능한가’가 차지했다. 시상식은 오는 19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린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허탕친 날 과속에 벨트 안 매고… ‘안전 불감’에 부서진 코리안드림

    허탕친 날 과속에 벨트 안 매고… ‘안전 불감’에 부서진 코리안드림

    7명 사망… 부상 5명 중 2명 중상대부분 40~50대에 10명 중국 국적안전벨트 착용 안 해 피해 커진 듯공사현장 일이 취소돼 귀가하던 중국 국적 근로자들이 탑승한 차량이 뒤집혀 7명이 숨지고 운전자 등 5명이 다쳤다. 과속과 안전벨트 미착용이 인명 피해를 키운 것으로 추정된다. 1일 오전 8시 21분쯤 세종 금남면 당진~영덕고속도로 당진 방향 남세종IC 진입(당진 기점 85㎞) 직전 곡선주로에서 스타렉스 승합차가 넘어지면서 뒤집혔다. 이 사고로 7명이 숨지고 운전자 김모(46)씨 등 동승자 5명이 크게 다쳐 인근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이 중 2명은 중상인 것으로 전해졌다. 40~50대인 사상자들은 대부분 건설현장 일용직 근로자로 확인됐다. 사고는 전북 남원시 공사현장으로 일을 하러 가다가 현장에 비가 와 일이 취소됐다는 연락을 받고 차를 돌려 세종에 있는 숙소로 돌아오던 길에 발생했다. 이 차량 탑승자는 운전자 김씨 등 2명을 제외한 10명이 모두 중국 국적이다. 경찰은 나들목으로 진입하던 승합차가 앞차를 추월하기 위해 빗길에 곡선 도로를 과속으로 달리다 전복된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졸음운전 등 다른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사고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승합차는 사고 당시 제한속도 40㎞인 나들목 구간 직전 추월을 위해 과속으로 달린 것으로 파악됐다. 고속도로 본선과 나들목 도로 사이 안전지대(노면에 빗금이 그려진 곳)를 통해 나들목에 들어서야 할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제때 감속하지 못한 차량은 오른쪽으로 휘어지는 나들목을 급하게 돌다가 시설물을 충격한 후 전복됐다. 정원 초과는 아니었지만 탑승자 대부분이 안전벨트를 착용하지 않아 피해가 더 컸던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사상자는 차량 밖으로 튕겨 나온 상태로 발견되기도 했다. 사고 지점은 가파르면서 휘어지는 구간인 데다 새벽에 내린 비로 노면도 젖어 있던 것으로 조사됐다. 사고 현장은 처참했다. 견인된 스타렉스 승합차 상단은 종잇장처럼 찌그러진 채 바퀴가 하늘을 향해 있었다. 차량의 모든 창문이 떨어져 나갔고, 좌석 일부와 파편들이 도로변에 나뒹굴었다. 승합차 주변에는 일용직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착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안전모, 장갑 등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현장에 가장 먼저 출동한 소방관은 “승합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대부분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세종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데스크 시각] 그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 사람은 없다/유영규 사회부장

    [데스크 시각] 그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 사람은 없다/유영규 사회부장

    “자존심 상하고 모멸감도 들죠. 알아서 나갔으면 하는 생각에 회사가 닥치는 대로 허드렛일을 모아 준다는 걸 모두가 잘 알거든요.” K는 출근 도장을 찍으면 곧바로 봉고차에 올라탄다. 8개월째다. 직접고용을 외치며 전국 52개 고속도로에서 어깨걸이를 했던 톨게이트 요금수납원들은 더이상 요금수납원이 아니다. 2019년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군 7개월간의 투쟁 끝에 요금수납원 노동자들은 전원 직접고용으로 현장에 복귀했다. 하지만 회사가 준비해 둔 건 ‘현장지원직’이란 낯선 직함뿐이었다. 말이 좋아 현장 지원이지 현장 청소였다. 매일 그들을 태운 승합차가 멈춰서는 고속도로 위가 그날의 일터다. 기자와 통화한 날엔 경인고속도로 상하행선 졸음쉼터 4곳을 청소하고 쓰레기를 모으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때론 고속도로 갓길의 잡풀을 뽑고, 방음벽을 타고 오르는 담쟁이넝쿨을 걷어내야 한다. “시속 100㎞를 넘는 속도로 내달리는 대형 화물트럭이 지나가기라도 하면 몸이 휘청해요. 아차 하면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지요. 빌미를 주지 않으려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어요.” 그렇게 한 달을 버티면 200만원이 채 못 되는 월급이 통장에 꽂힌다. 노조 간부였던 L의 상황은 더 암담하다. 회사는 그를 집에서 290㎞나 떨어진 경북 영천으로 발령 냈다. 차로 쉼 없이 달려도 3시간 반 거리니 주중엔 집에 갈 생각을 못 한다. 고3 수험생인 아이의 밥을 챙겨 줄 수도 없다. 그나마 2주 전부턴 청소일에서도 배제됐다. 농성 과정에 형사사건으로 기소됐다는 이유로 회사는 L과 노조 관계자 16명을 직위해제했다. 사규를 그대로 적용했을 뿐이라는 설명 뒤에는 직위해제자에게 업무를 맡길 수는 없으니 기본급을 30% 깎겠다는 통보가 따라붙었다. 1억 3000만원이 넘는 손해배상 소송에도 휘말렸다. 노조원들은 사측의 조치가 사실상 해고 절차를 위한 수순이라 보고 있다. “사규엔 형사재판에서 금고형 이상을 받으면 해고할 수 있다는 내용도 있거든요.” 한숨짓는 L의 이야기를 들으며 차라리 민간 기업에서 벌어지는 일이었다면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유독 이번 정부는 노동자들에게 갚아야 할 ‘말빚’이 많다. 대통령 스스로 ‘노동 존중’이란 공약을 내걸었던 만큼 지난 4년간 청와대와 정부는 노동권에 희망적인 구호들을 던졌다. 하지만 화려한 구호와 수사는 결과적으로 용두사미가 됐다. 스물네 살 청년 김용균이 사망한 후 2년여 만에 어렵게 세상에 등장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아무도 처벌하지 못한다는 비아냥을 듣는다. 심지어 영세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보호 대상에서 제외됐다. 대한민국은 목숨값조차 같지 않다는 현실을 법이 일깨워 준 셈이다. 여전히 투쟁 중인 톨게이트 노동자와 코레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상황을 생각하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를 달성하겠다는 대통령의 약속이 공허하게 느껴질 정도다. 지금도 현장엔 공공기관이라는 허울 좋은 간판에 가려진 채 저임금과 고용불안정에 고통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너무많다. “날 때부터 비정규직이 어디 있겠어요. 세상에 그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 사람은 없어요. 그런 대접을 받는 사람들만 있을 뿐이죠.” 덤덤하게 말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말이 가슴을 친다. 아이러니하게도 도로공사 홈페이지 메인 화면에는 ‘고속도로에서는 사람이 우선입니다’라는 문구가 떡하니 걸려 있다. ‘사람이 먼저다’라는 대통령의 구호를 차용한 듯하다. 스스로 뱉은 말을 곱씹어 줬으면 한다. 당신 말이 옳다. 누가 어느 곳에 서 있건 사람이 먼저다. whoami@seoul.co.kr
  • 김용균 사고 2년 만에… 책임자들 첫 공판

    김용균 사고 2년 만에… 책임자들 첫 공판

    김용균(당시 24)씨 태안화력 사망사고 책임자 첫 공판이 26일 사망 후 2년여 만에 열렸다. 대전지법 서산지원 형사2단독 박상권 판사의 심리로 열린 이날 공판에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김병숙 사장을 비롯한 한국서부발전 8명과 백남호 전 사장을 비롯한 한국발전기술 6명 등 피고인 14명이 모두 출석했다. 검찰은 공판에서 “태안화력 작업환경이 좋지 않아 중대 재해로 이어질 개연성이 큰데도 피고인들이 업무를 소홀히 해 김씨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며 엄벌을 요청했다. 김씨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대표는 “애지중지 키운 아들 용균이가 사회에 나온 지 3개월도 채 안 돼 처참하게 죽음으로 내몰렸다”며 “지금까지 판례를 깨고 잘못한 원·하청 기업주를 강력히 처벌하는 재판이 돼달라”고 호소했다. 공판에 앞서 김용균재단은 서산지원 앞에서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에 대한 책임자 원·하청 대표이사를 처벌하라’고 쓴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반면 피고 측 변호인은 “일터에서 사망해 안타깝지만 많은 혐의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 법리적 판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국발전기술 비정규직 노동자인 김씨는 2018년 12월 11일 태안군 원북면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혼자 석탄 운송 컨베이어벨트 밑에서 떨어진 석탄을 치우다 벨트에 끼여 목숨을 잃었다. 이날 공판은 김씨가 숨진 지 2년 1개월, 검찰이 지난해 8월 3일 피고 14명을 재판에 넘긴 지 5개월여 만이다. 다음 공판은 오는 3월 9일 오후 2시에 열린다. 서산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김용균 사고 책임자들 첫 공판, 검찰 “안전관리 소홀히 해 김씨가 숨졌다”

    김용균 사고 책임자들 첫 공판, 검찰 “안전관리 소홀히 해 김씨가 숨졌다”

    김용균(당시 24)씨 태안화력 사망사고 책임자 첫 공판이 26일 사망 후 2년여 만에 열렸다. 대전지법 서산지원 형사2단독 박상권 판사의 심리로 열린 이날 공판에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김병숙 사장을 비롯한 한국서부발전 8명과 백남호 전 사장을 비롯한 한국발전기술 6명 등 피고 14명이 모두 출석했다. 검찰은 공판에서 “태안화력 작업환경이 좋지 않아 중대 재해로 이어질 개연성이 큰데도 피고인들이 업무를 소홀히 해 김씨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며 엄벌을 요청했다. 김씨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대표는 “애지중지 키운 아들 용균이가 사회에 나온 지 3개월도 채 안 돼 처참하게 죽음으로 내몰렸다”며 “용균이 재판 만큼은 지금까지 판례를 깨고 잘못한 원·하청 기업주를 강력히 처벌해 달라”고 호소했다. 공판에 앞서 김용균재단은 서산지원 앞에서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에 대한 책임자 원·하청 대표이사를 처벌하라’고 쓴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반면 피고 측 변호인은 “일터에서 사망해 안타깝지만 많은 혐의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 법리적 판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국발전기술 비정규직 노동자인 김씨는 2018년 12월 11일 태안군 원북면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혼자 석탄 운송 컨베이어벨트 밑에서 석탄재를 치우다 벨트에 끼어 목숨을 잃었다. 이날 공판은 김씨가 숨진 지 2년 1개월, 검찰이 지난해 8월 3일 피고 14명을 재판에 넘긴지 5개월여 만이다. 다음 공판은 오는 3월 9일 오후 2시에 열린다. 서산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대구 조선은행에 폭탄… 일제 손에 죽는 치욕 대신 ‘옥중 자결’

    대구 조선은행에 폭탄… 일제 손에 죽는 치욕 대신 ‘옥중 자결’

    1929년 12월 28일자 신문 1면에 “근래에 보지 못한 대음모”, “미증유의 대사건” 등의 부정적인 수식어를 단 큰 사건이 대서특필됐다. 바로 장진홍 의사의 대구 폭탄 투척 의거이다. 일제는 사건이 발생한 뒤 2년 2개월이 넘도록 보도를 통제하다 장 의사를 비롯한 관련 인물들을 검거한 뒤에야 공개했다. 폭탄을 던져 일제 기관들을 폭파하기로 계획한 장 의사는 1927년 6월 일본인 고바야시로부터 다이너마이트 30개와 뇌관 30개, 도화선 등을 15원을 주고 구입해 폭탄을 만들기로 했다. 폭탄 투척 대상으로 삼은 곳은 경북도청, 경북경찰부, 조선은행 대구지점, 조선식산은행 대구지점 등이었다. 의사는 냄비와 솥 등 쇠붙이를 부수어 파편을 만들고 다이너마이트를 사용해 폭탄을 제조했다. 동지를 규합하려 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단독으로 거사를 치르기로 하고 경북 칠곡군 봉화산 골짜기에서 폭탄 성능 실험에 성공했다.1927년 10월 18일 아침. 대구 덕흥여관에 투숙한 의사는 나무상자 4개에 폭탄을 넣어 도화선에 불을 붙이고 신문지로 포장했다. 11시 30분쯤 여관 종업원에게 소포 4개를 주면서 “나는 몸을 다쳐 걸을 수 없으니 이 벌꿀 선물 상자를 조선은행, 도청, 식산은행의 순서대로 급히 배달해 달라”고 부탁했다. 종업원은 친절한 의사의 말에 의심하지 않고 소포를 받아 먼저 조선은행으로 가서 4개 중 1개를 전달했다. ●안동·영천경찰서 폭파 제2 거사는 실행 못 해 바로 이때 포병 출신 일본인 은행원이 화약 냄새가 나는 것 같다며 나무 상자를 열었다. 은행원들은 화들짝 놀라며 두려움으로 얼굴이 창백해졌다. 벌꿀 선물이라던 상자 속에는 불이 붙은 도화선이 2㎝밖에 남지 않은 폭탄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당황한 은행원들은 상자의 도화선을 끊고 다른 상자 3개는 건물 앞 공터에 갖다 놓고는 경찰에 연락했다. 대구경찰서 일경 10여명이 출동해 폭탄 3개를 은행 옆 길에 옮겨 놓았다. 채 2분이 지나지 않은 11시 50분쯤 폭탄이 굉음과 함께 잇따라 폭발했다. 현장에 있던 은행원과 일경 등 5명이 파편에 맞아 중상을 입었고 은행 창문 70여개가 부서졌다. 유리 파편이 대구역까지 날아갈 정도로 폭탄의 위력은 엄청났다. 장 의사는 1895년 6월 6일 칠곡군 인동면 문림리(현 구미시 인동)에서 태어났다. ‘충효’를 가훈으로 하는 집안 분위기 속에서 의사는 애국심과 효심을 중히 여기며 성장했다. 1907년 인명학교(현 인동초등학교)에 입학해 의사의 독립운동에 큰 영향을 미친 장지필 선생의 가르침을 받고 졸업했다. 장지필은 청년들에게 항일의식을 심어 주는 애국계몽운동에 일생을 바칠 것을 결심하고는 인명, 협성 등의 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제자들에게 민족의식을 깨우쳐 준 우국지사였다. 의사는 1914년 3월 조선보병대에 들어갔다. 1910년 한일병합 후 대한제국 친위대를 개편한 부대였다. 조선보병대 입대는 독립운동을 위한 군사지식을 습득하기 위한 목적이었을 것이다. 중도에 보병대를 그만두고 광복단에서 활동하던 의사는 일경의 감시가 심해지자 1918년 만주 봉천(현 선양)으로 갔다. 만주에서 의사는 조선광복단 이국필, 김정묵 등을 만나 과감한 무장투쟁을 벌이기로 뜻을 모았다. 이를 위해 러시아 하바롭스크로 넘어간 의사는 한인 100여명을 규합해 조선보병대 경험을 살려 ‘보병조전’(步兵操典)을 설치하고 군사훈련을 시켰다. 당시 러시아에서는 적군(赤軍)과 백군(白軍)의 내전이 격화되고 있었는데 하바롭스크가 백군에 점령되고 일본 관동군이 출병하자 귀국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귀국 후 의사가 착수한 일은 3·1운동 과정에서 일제가 저지른 만행을 세계에 알리는 것이었다. 집안의 전 재산인 전답 5두락(약 1000평)을 몽땅 팔아 조사 비용을 마련했다. 의사는 서적 행상으로 가장, 전국을 돌아다니며 일제가 자행한 학살, 방화, 고문 등을 상세히 조사해 문건으로 만들었다. 마침 1919년 7월 미국 군함이 인천항에 입항했는데 함대에는 경북 출신 승무원 하사관 김상철이 있었다. 의사는 김상철에게 조사서를 전달하고 세계 각국에 배포해 달라고 요청했다. 의사는 일제에 항거할 최종 수단으로 폭탄 투척을 생각하고 있었다. 1927년 4월 무렵 일본인이면서도 한국의 독립을 염원하는 폭탄 전문가 호리키리를 만난 것은 의사의 의지를 불태우게 된 계기가 됐다. 호리키리는 의사에게 다이너마이트와 철편 등을 이용한 폭탄 제조법을 가르쳐 주었다. ●일경의 혹독한 고문에도 동지 이름 발설 안 해 의사는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 후 인상착의를 바꾸고 도피해 경북 선산에 은신했다. 폭파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의사는 경북 안동과 영천에서 경찰서 등 주요 기관을 폭파하는 제2의 거사를 계획했지만 일경의 감시망이 좁혀지는 바람에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신변의 위험을 느끼자 의사는 1928년 2월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경시청과 중의원에 폭탄을 던질 계획을 세우면서 오사카에서 안경점을 하는 동생집에 머물렀다. 한편 일제는 의사의 폭탄 투척을 중대 사건으로 규정하고 수사망을 좁혀 갔다. 수사 과정에서 관련이 없는 이정기 등 8명을 검거해 악독한 고문으로 자백하게 만든 뒤 진범으로 꾸며 재판에 넘기기도 했고, 폭탄 상자에 쓰인 글씨체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민족저항 시인인 이육사를 투옥시키기도 했다. 일경은 이런 엉뚱한 수사 끝에 마침내 의사가 벌인 일임을 알아내고는 체포에 혈안이 됐다. 그러다 일본에서 귀국한 노동자로부터 의사를 오사카에서 본 적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결국 동생집에 숨어 있던 의사는 일본으로 급파된 일제 형사들의 간교한 계략에 체포되고 말았다. 1928년 2월 19일 의사는 대구로 압송됐다. 의사는 “일본이 멸망할 날도 그리 멀지 않을 것이며 이번 거사는 야만 일본을 타도하기 위하여 정의의 폭탄을 던진 것인데 성공하지 못하고 너희들의 손에 붙들린 것이 천추의 유한이다”라고 일경들을 호통쳤다. 또 조선인 경관들에게는 “한민족의 피를 받고도 일제 경찰의 주구가 되어 동족의 해방운동을 이다지도 방해하는 악질 조선인 경관의 죄상이야말로 나의 죽은 혼이라도 용서할 수 없다”고 질타했다. 일제는 공범을 대라며 혹독한 고문을 했지만, 의사는 어느 누구의 이름도 대지 않고 혼자서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1930년 2월 17일 1심에 이어 4월 24일 복심에서도 사형이 선고됐다. 의사는 하늘을 쳐다보고 크게 웃은 다음 주먹만 한 돌을 주머니에서 꺼내 재판장에게 던지고 큰소리로 “대한독립만세”를 삼창한 다음 다시 의자를 집어던지며 항거했다. ●張의사 자결에 재소자 1300명 만세·단식투쟁 최종심에서도 사형이 확정되자 의사는 일제의 손에 치욕스런 죽음을 당하느니 깨끗이 죽기로 결심했다. 1930년 6월 5일(음) 무더운 밤 11시쯤 의사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 순국했다. 의사의 나이 35세였다. 의사의 자결 사실을 안 대구형무소 재소자 1300여명은 만세를 부르고 단식투쟁을 하며 농성을 벌였다. 의사의 부모는 충격을 받고 세상을 떴다. 일경은 의사의 장례도 방해했다. 의사의 시신은 제대로 장례식을 치르지도 못하고 칠곡 석적면 남율의 언덕에 쓸쓸히 묻혔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의사는 순국하기 전 옥중에서 간수를 통해 조선 총독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너희들 일본제국이 한국을 빨리 독립시켜 주지 않으면 멸망할 날도 멀지 않을 것이다. 내 육체는 네놈들의 손에 죽는다 하더라도 나의 영혼은 한국의 독립과 일본 제국주의 타도를 위하여 지하에 가서라도 싸우고야 말겠다.” 논설고문 sonsj@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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