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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BS 드라마 촬영 보조 스탭 사망…언론노조 “장시간 노동 의심”

    SBS 드라마 촬영 보조 스탭 사망…언론노조 “장시간 노동 의심”

    SBS 드라마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의 스태프로 일하던 30대 남성이 사망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언론노조)은 성명을 통해 “드라마 현장의 악명 높은 장시간 노동 문제가 의심된다”면서 과로를 막기 위한 대책을 마련할 것을 정부에 촉구했다. 2일 언론노조와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 등에 따르면 고인은 이 드라마에서 카메라 포커스풀러로 일했다. 카메라 포커스풀러는 촬영감독이 카메라에 눈을 대고 촬영할 때 렌즈의 초점 링을 잡고 있는 촬영 보조 스탭이다. 고인은 전날 자택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 고인의 사망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언론노조는 성명을 통해 “고인의 사망 원인이 아직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지만, 평소에 특별한 지병도 없던 30세 건강한 노동자가 갑작스럽게 사망한 원인으로 드라마 현장의 악명 높은 장시간 노동 문제가 의심된다”라고 밝혔다. 실제로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가 확인한 SBS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의 지난달 25~29일 촬영 스케줄을 보면 ▲25일 08:00~22:30(14시간 30분/야외) ▲26일 08:00~21:10(13시간 10분/야외) ▲27일 07:50~22:20(15시간/야외) ▲28일 08:00~새벽 1:50(20시간/경기 파주) ▲29일 11:00~새벽 1:00(13시간/경기 파주) 등으로 나타났다. 고인은 이 촬영 스케줄을 모두 소화한 것으로 확인됐다. 언론노조는 “드라마 제작은 늘 쫓기며 일이 진행되고 대기 시간이 길며 제대로 몸을 기대 쉴 수 있는 공간조차 마련되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위험한 구조물과 환경 속에서 제대로 된 안전장치도 없이 일하고 있다”면서 “살인적인 초과노동 중단, 점심시간과 휴게 시간 보장, 야간 촬영 종료 시 교통비와 숙박비 지급, 불공정한 도급계약 관행 타파, 근로계약서 작성 등이 방송 제작현장 노동자들의 주된 요구”라고 강조했다. 이어 “지난달 주 최대 68시간 동안 일할 수 있었던 법이 52시간으로 바뀌었고 방송업은 시행시기가 1년 더 늦춰졌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버젓이 노동시간을 지키지 않고 있다”면서 “방송사는 외주제작사의 노동 실태를 파악하고 제작현장 근로자 보호를 위해 폭염 등 무리한 야외 노동에 대한 지침을 마련하고 감독해야 한다. 정부는 유예를 철회하고 주 52시간 노동시간 준수에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SBS는 스태프 사망 사건에 대해 “현재 경찰 조사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을 아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최강욱의 법과 사람 사이] 삶과 죽음, 진실과 예의

    [최강욱의 법과 사람 사이] 삶과 죽음, 진실과 예의

    많은 이들이 세상을 떠났다. 그만큼 많은 우주가 사라지고 그만큼 많은 역사가 생겨났다. 그들을 보내고 우리는 여전히 그렇게 살아간다. 그만큼 많은 사실과 거짓이 또 그렇게 세상을 휘젓는다. 노회찬 의원과의 뜻하지 못한 이별에 많은 이들이 울었다. 곧바로 박종철 열사의 부친 박정기님이 그 신산한 삶을 마치셨다는 소식에 다시 먹먹해졌다.약 한달 전 박종철 고문 치사를 은폐한 주역 강민창이 떠났다. 그와 박처원이 뱉어 낸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말이 영화 ‘1987’로 소환되고 1년 반이 지난 뒤였다. 그 차가운 강가에서 “종철아 잘 가그래이, 아부지는 아무 할 말이 없데이”라고 오열을 삼키던 아버지에게 끝내 사과하지 않은 채였다. 하지만 고문은폐 수사검사 박상옥은 지금 대법관이다. 주임검사 신창언도 그보다 훨씬 전에 헌법재판관을 마쳤다. 우리의 모든 삶과 관련된 사건의 최종심을 대한민국 현대사 최악의 인권유린 사건 은폐와 관련된 검사들에게 맡긴 것이다. 끝내 사과도 조문도 없던 신창언과 박상옥은 훗날 어떤 모습으로 세상에 기억될까. 검찰 출신 국회의원 곽상도는 노회찬 의원을 애도한다면서 “이중성을 드러내도 무방한 그곳에서 영면하시길 바란다”고 썼다. 역시 그 검찰 출신 홍준표는 “그 어떤 경우라도 자살이 미화되는 세상은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라고 썼다. 그뿐인가. 노회찬 의원의 비보에 어떤 이들은 잔치국수를 먹으며 욕설까지 해 댔다. 한 사람의 죽음을 두고 모두가 부채감이나 죄책감을 느낄 수는 없다. 그렇지만 죽음 앞에서 갖추어야 할 예의는 그리 어렵거나 무리한 게 아니다. 슬픔에 공감하기 어렵다 해도 폄하하는 짓을 참는 인내심 정도는 갖추어야 사람이다. 하지만 우리는 자칭 ‘우파’라는 이들의 모습에서 벌써 여러 차례 짐승만도 못한 악마성을 발견한다. 노회찬은 사법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법은 만인에게 평등한 게 아니라 만명한테만 평등하다”면서 “(차떼기 사건에서 돈 심부름을 한) 변호사의 경우에는 감형 사유가 ‘피고인이 오랫동안 법조인으로 사회에 기여했다’는 겁니다. (대선 때 불법 정치자금을 건넨) 대한항공 부회장의 경우 ‘전문 경영인으로서 한 직장에서 수십년간 성실하게 재직해 온 점’이 감형 사유입니다. 저는 많은 재판을 보지 못했습니다만 ‘수십 년간 땀 흘려서 농사를 지으면서 우리 사회에 기여한 점을 감안하여 감형한다’거나 ‘산업재해와 저임금에도 불구하고 수십 년간 땀 흘려 일하면서 이 나라 산업을 이만큼 발전시키는 데 기여한 공로가 있는 노동자이므로 감형한다’고 판결한 예를 본 적이 없습니다. (법관들은) 혹시 보신 적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재판과 수사의 대상이 된 시민들에게 경찰관과 검사, 법관들은 늘 진실을 말하라 호통치며 거짓을 가려내는 직업의 신산함을 토로했다. 진실과 정의가 갖는 그 엄중함을 알기에 우리는 특히 법관들에게 법정의 권위와 독립을 선사했다. 그런 그들이 조직의 이익과 자리를 놓고 권력과 재판을 거래하는 사이 어린 아이를 두고 스스로 세상을 버린 엄마의 이야기가 또 우리를 울렸다. 그 사법농단의 주역으로 지목된 이들은 언론을 통해 ‘정통 법관’ ‘엘리트 판사’라 불려 왔다. 군부 독재 시절 무고한 이들을 간첩으로 만들고 권력에 면죄부를 준 법관들은 저항할 수 없는 협박이나 고문이 없었어도 공소장을 베낀 ‘정찰제 판결’을 남발하며 독재에 철저히 부역했다. 하지만 시민들은 그렇게 당하면서 민주화를 이루고도 법관들을 벌하지 않았다. 아니, 법관들의 부역보다 검경의 굴종을 질타하며 사법 독립을 지켜 줬다. 그런데도 이젠 소위 ‘정통 법관’들에 의한 재판거래와 사법유린이 벌어진 것이다. 노회찬과 박정기, 그리고 박종철의 삶과 죽음 앞에 우리는 어떤 진실과 정의를 선물할 수 있을까. 훗날 그들의 영전에 법 앞에 ‘만명’만 평등한 나라는 이제 완전히 끝났다고 고할 수 있을까. 법과 재판은 상식에 입각해야 하고, 상식을 배신하거나 저버릴 수 없다는 사실을 더이상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고 자랑할 수 있을까. 다시 고인의 명복을 빌며 사법농단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처벌을 요구한다. 포기할 수 없다.
  • [어떻게 사법이 그래요] 사회적 이슈·원심 결과 따라… 하고 싶은 재판만 골라 하는 상고심

    [어떻게 사법이 그래요] 사회적 이슈·원심 결과 따라… 하고 싶은 재판만 골라 하는 상고심

    KTX·쌍용차 사건 등 심불 원칙 어겨 ‘법리’ 아닌 ‘사실’ 판단해 파기환송도 “채증법칙 위반·심리미진 논리 동원 땐 사실상 사실심, 법률심으로 포장 쉬워”#1.2009년 정리해고된 쌍용차 해고노동자 153명은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해고 무효 소송 2심에서 승소했지만 2014년 대법원은 “사측 해고가 정당하다”며 결론을 뒤집었다. 대법원은 “주력 차종인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의 인기가 떨어져 매출이 감소하는 과정에서 글로벌 금융위기가 겹치는 등 쌍용차의 긴박한 경영 위기가 인정된다”며 사측의 구조조정이 정당하다고 했다. 재무제표, SUV 선호도, 세계 금융위기 및 유가 등은 상고심이 심리할 대상인 ‘법리’가 아닌 실제 벌어진 ‘사실’에 가깝다. #2. 2011년 15세이던 여중생을 임신시켜 성폭행 혐의로 2심에서 징역 9년의 판결을 받았던 40대 연예기획사 대표는 2014년 대법원 판결 뒤 풀려났다. 여중생의 진술이 오락가락한 점을 근거로 대법원이 피고인의 행동을 성폭력 대신 “진정한 사랑”이라며 무죄로 봐서다. 법률심인 대법원에서 돌연 진정 사랑했는지, 안 했는지 ‘사실’을 판단한 사례다. 대법원에서 심리 없이 사건을 기각하는 심리불속행(심불) 처리 비율이 지난해 77.4%로 과도하게 높다는 지적이 나오자 법원은 “법 적용이 적절한지 보는 법률심인 상고심에 사실관계를 다투겠다는 청구가 남발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변호사들은 대법원의 심불 처리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몇 주간 공을 들인 상고 이유서를 써도 단번에 심불 처리되는 이유를 알지 못할뿐더러 역으로 왜 사회적으로 이슈가 됐거나 대법원이 원심을 바꾸고 싶어 할 만한 사건들은 심불 처리되지 않는지 기준을 모르겠다고 항변했다. 사법농단 국면에서 재판 개입 의혹이 제기된 상고심들은 사실관계를 심리한 뒤 원심을 파기한 대표 사례로 꼽힌다. 쌍용차 해고노동자 해고 무효 청구 사건뿐 아니라 KTX 승무원 복직 소송, 갑을오토텍 해고 무효 사건 상고심 등에서도 대법원은 사실관계를 들여다봤다. 법원이 내세우는 원칙대로라면 원심 그대로 심불 처리했어야 할 사건이란 뜻이다. 강신업 변호사는 “상고심에서 ‘채증법칙 위반’과 ‘판단 누락’ 논리를 꺼내 들면 대법원이 실제 사실심 재판을 하면서 마치 법률심인 것처럼 꾸미기 쉽다”고 설명했다. 만일 원·피고가 제출한 증거 중 한쪽 증거의 신빙성을 더 높게 본 부분이 잘못됐다고 지적하며 결과를 바꾸고 싶다면 ‘채증법칙 위반’이란 논리가 동원되고, 하급심이 여러 주장 중 배제시킨 증거를 되살리고 싶을 땐 하급심 판결에 ‘판단 누락’(심리 미진)이 있다고 꾸짖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정확한 법 조항을 잘 적용해서 판단한 2심 결과에 대해서도 대법원이 ‘몇 가지 증거를 주의 깊게 보지 않았으니 잘못된 법리 적용’이라며 마치 법률심을 한 듯 분식할 수 있기 때문에 이 두 가지 논리는 상고심에서 원하는 사건을 모두 취급할 ‘만능키’로 불린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대 국회에서 당시 정의당 의원이던 서기호 변호사는 ‘원심의 채증법칙 위반, 심리 미진 등을 이유로 상고심 파기를 금지’하는 내용의 민사소송법 개정안을 냈지만 폐기됐다. 서 변호사는 “서민들에게 중요한 사건은 심불 처리해 버리고, 대법원에서 관심 있는 사건은 채증법칙 위반 등을 이유로 어떻게든 대법관 재판에 맡겨 원심을 깨버리니 하급심 재판이 힘을 잃는 점을 개선하고자 발의했던 법안”이라고 설명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현대·기아차 불법파견 9800명”… 직접고용 등 해법 찾을지 주목

    “현대·기아차 불법파견 9800명”… 직접고용 등 해법 찾을지 주목

    정부는 14년간 방치·檢은 부당지휘 비정규직지회 “즉각 시정명령해야” 전교조 ‘노조 아님 통보’ 문제 해결 제시 김영주 장관 “법 개정 우선” 유보적 태도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가 1일 현대·기아자동차 비정규직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조치를 취할 것을 고용노동부에 권고하면서 해묵은 노동 난제들이 해법을 찾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개혁위는 2004년 이후 논란이 돼 온 현대·기아차 사내 하청의 정규직 전환 문제에 대해 “법원 판결 기준에 따라 당사자 확정을 위한 조사를 토대로 직접고용 명령, 당사자 간 협의·중재 등 적극적인 조치를 조속히 취하라”고 권고했다. 앞서 법원은 2007년부터 줄곧 현대·기아차 사내하청에 대해 불법 파견이라고 인정하고,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고용부는 시정명령이나 과태료, 근로감독 등 행정처분은 미뤄 왔다. 개혁위는 “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고용부는 불법 파견을 방치했고, 확정판결 이후에도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특히 불법 파견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고용부와 검찰은 사건 처리를 지연하는 방식으로 사안을 뭉갠 것으로 조사됐다. 개혁위는 “2010년 8월 접수한 사건이 2015년 10월에야 검찰에 송치되고, 2015년 7월 접수한 사건은 현재까지 수사 중”이라면서 “근로감독관이 불법 파견이라 판단한 사안도 검사의 수사지휘에 의해 적법도급으로 결론 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금속노조 현대·기아차 비정규직지회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고용부의 직무유기와 검찰의 부당 수사지휘는 명백한 ‘재벌 봐주기’이며 불법을 방치한 것”이라며 “현대차 6000명, 기아차 3800명 등 비정규직 노동자의 불법 파견에 대해 즉각 시정명령을 내려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현대차는 “고용부의 입장이 확정된 이후 조치 방안을 강구할 것”이라며 “이미 중재를 통해 지난해까지 6000명을 정규직으로 채용했고, 2021년까지 3500명을 추가로 채용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박근혜 정부가 2013년 10월 전교조에 법외노조 통보를 내린 것에 대해서는 “해고자·실직자의 조합원 자격을 부정하는 법률 조항 등을 단결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개정하고, 전교조에 대한 ‘노조 아님 통보’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라”는 권고안이 제시됐다. 다만 김영주 고용부 장관이 개혁위 권고와 관련해 유보적 태도를 보여 대법원 판결 이전에 문제가 해결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김 장관은 “행정조치를 취소하는 것보다 법령상 문제가 되는 조항을 개정하는 것이 근본적 해결책”이라고 밝혔다. 전교조는 기자회견을 열고 “법외노조 통보 부당성과 이를 취소할 당위성이 확인됐다”며 법외노조 통보에 대한 직권 취소를 요구했다. 아울러 개혁위는 노동조합 파괴 공작에서도 기업과 고용부 공무원, 검사, 노무사, 변호사들의 유착 관계로 인해 부실 수사가 이뤄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특히 노무법인 창조컨설팅은 2011년 유성기업 노조 파괴 행위를 돕는 과정에서 고용부, 국가정보원, 경찰을 상대로 대응 전략을 세운 것으로 조사됐다. 개혁위는 “권한의 한계로 인해 창조컨설팅에 대한 조사를 더이상 진행하지 못했다”며 고용부 차원의 진상조사를 권고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40분간 36곳 배달… 일 시작한 뒤 12㎏ 빠져, 폭염 절정일 땐 솔직히 일 나서기가 두렵다”

    “40분간 36곳 배달… 일 시작한 뒤 12㎏ 빠져, 폭염 절정일 땐 솔직히 일 나서기가 두렵다”

    사상 최악의 폭염이 덮친 1일 택배 노동자들은 극한의 고통을 맛봤다. 15년차 택배기사 류모(57)씨는 이날 오전 10시 서울 구로구의 한 물류센터에서 웃통을 벗은 채 물건을 차로 옮겨 싣고 있었다. 류씨의 얼굴에는 땀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 뚝뚝 떨어졌다. 벗은 상체는 마치 기름을 바른 듯 빛이 났다. 물건 분류 및 상차(물건 싣기) 작업은 오전 7시부터 오후 1시까지 이어졌다. 류씨는 “택배 기사는 날씨에 민감한데, 이런 더위는 택배 일을 시작한 이후 처음 경험해 본다”고 말했다. 지난해 택배 일을 시작한 이모(34)씨는 이날 오후 1시 50분부터 2시 30분까지 40분간 평소 때와 똑같이 36곳에 물품을 배달했다. 일을 시작한 지 30분도 안 돼 이씨는 물에 풍덩 빠진 것처럼 땀에 흠뻑 젖었다. 이씨는 차량으로 돌아오자마자 페트병에 든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하지만 물도 이미 뜨끈뜨끈해진 뒤였다. 차량 에어컨 바람은 훈훈하기 짝이 없었다. 오히려 차 안보다 밖이 더 시원할 정도였다. 이씨는 이날 240개의 물품을 배달했다. 휴가철이다 보니 업무량은 평소보다 적었지만, 폭염 탓에 체감 노동량은 훨씬 더 컸다. 이씨는 “내가 7월에 태어나 더위를 잘 안 타는데 올해 날씨는 정말 상상을 초월한다”면서 “내일은 더 덥다고 해 벌써 두려움이 앞선다”고 말했다. 이어 “원래 몸무게가 70㎏이었는데, 택배 일을 시작하고 나서 12㎏이나 빠졌다”면서 “날씨가 더워진 뒤로 장갑 낀 손에 땀띠가 났다”고 했다. 맨손으로 작업하면 미끄러워 물건이 파손될 수 있기 때문에 장갑을 벗지도 못한다. 하필 이날 골목길에서 다른 차량끼리 접촉사고가 발생했다. 이씨는 “택배는 시간이 생명인데, 늦어지겠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 이씨는 “물건 배달은 ‘시간당 50개’ 속도로 하루 평균 5시간 정도 나른다”면서 “배달을 마치면 인터넷 쇼핑몰 등 개인사업자들이 보내는 택배 100여개를 수거해 물류센터에 전달한 뒤 오후 8시쯤 퇴근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배달 도중에 주민들이 건네는 주스와 비타민 음료를 받아 마시기도 했다. 그는 “처음 보는 분들인데도 더운 날에 고생한다며 물 한 잔씩을 줄 때면 힘이 나고 아직 세상이 살 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동대문구에 있는 한 마트에서 배달 일을 하는 김모(57)씨는 “최근 폭염 때문인지 평소보다 배달량이 20~30% 늘었다”면서 “하루에 30~40건 정도 배달하는데 엘리베이터가 없는 4~5층으로 생수나 소주 박스를 나를 때면 혼이 빠질 정도”라고 토로했다. 배달 대행업체 아르바이트생 정모(20)씨도 “요즘 더위 때문에 사람들이 배달 음식을 많이 시켜 먹는다”면서 “헬멧을 쓴 채 한 시간 배달을 다녀오면 땀으로 샤워를 하게 된다”고 말했다. 유영재 기자 young@seoul.co.kr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 “전교조 법외노조 취소”… 합법화 길 열린다

    “현대기아차 비정규직 직접 고용 11곳 노조 파괴 부당 개입 근절” 김영주 고용 장관 “충분히 검토”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을 합법화하고, 현대·기아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직접고용 명령을 내릴 것을 고용노동부에 권고했다. 개혁위는 지난달 31일 회의를 열어 불법파견, 노동조합 무력화, 단결권 제한 등 11개 과제에 대한 조사 결과를 의결하고 활동을 마무리한다고 1일 밝혔다. 개혁위는 지난해 11월 고용부 장관 자문기구로 출범해 내부 적폐 청산을 위한 활동을 해 왔다. 우선 개혁위는 전교조 문제에 대해 ‘법외노조’ 통보를 한 노동조합법 시행령 9조 2항을 삭제하거나 법외노조 통보를 직권 취소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라고 권고했다. 고용부는 2013년 10월 전교조가 해직교사 9명을 조합원으로 두는 등 교원노조법을 위반하고도 이를 시정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전교조에 ‘노조 아님’을 통보했다. 14년 만에 합법적인 노조 지위를 상실한 전교조는 곧바로 처분 취소 행정소송을 냈고 현재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다. 개혁위는 “법외노조 통보 처분은 부담스러웠으나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담당 국장의 진술과 “장·차관에게서 법외노조 처분에 대한 검토를 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는 내부 진술 등을 근거로 부당한 압력이 가해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김영주 고용부 장관은 “행정조치보다는 법 개정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며 “시행령을 삭제하는 것은 노사관계법제도 전문가위원회에서 논의하고 있기 때문에 이와 연계해 충분히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개혁위는 14년간 방치된 현대·기아차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도 고용부와 검찰이 사건 처리를 미루거나 제대로 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현대·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직접고용 명령이나 당사자 간 협의·중재 등 적극적 조치를 취하라고 고용부에 권고했다. 불법파견에 대한 늑장 수사가 없도록 관련 지침이나 사업장 점검요령, 판단 기준을 마련하라고도 했다. 현재 검찰이 수사 중인 삼성전자서비스를 비롯해 유성기업 등 11개 사업장의 노조 파괴 과정에서도 검사의 부당한 수사지휘와 노무사·변호사와의 공모, 고용부 공무원과의 유착 등으로 부실 수사가 이뤄진 정황이 포착됐다. 개혁위는 고용부 장관이 그동안의 수사관행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고, 부당노동행위 근절을 위한 법률 개정과 정기적인 실태조사를 실시할 것을 권고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정의당 권수정 서울시의원, 서울시 공공부문 노동현안에 대한 간담회 진행

    정의당 권수정 서울시의원은 7월 30일 오후 4시 의원회관 의원연구실 822호에서 공공부문 상시지속업무 고용 현황에 대해 민주노총 서울공무직분회, 서울시농수산물시장분회, 서울시혁신파크시설관리분회 당사자들과 간담회를 진행했다. 간담회에는 정의당 권수정 서울시의원과 민주노총 서울일반노동조합 서울공무직분회 김종욱 분회장, 서울시농수산물시장분회 김성상 분회장, 서울시혁신파크시설관리분회 김명숙 분회장이 참석했다. 이들은 △박원순 서울시장은 겉으로 노동존중을 말하면서, 서울시 지역 비정규직 기간제를 여전히 사용하고 있고, △서울시가 정책적으로 비정규직-정규직 전환을 언론에 홍보하고 있지만, 서울시 산하 32개 사업소의 현장에서는 8개월 비정규직 기간제와 뉴딜일자리 계약으로 노동자들이 고용불안에 노출되고 있음을 언급하였다. 세부적으로 서울시혁신파크의 민간위탁, 서울시농수산물시장의 자회사로 하청의 재하청 형태의 고용구조를 만들어 무늬만 정규직 실상은 비정규직을 만들고 있는 노동현실을 증언하였다. 또한 서울시 산하 사업소인 서울대공원이 수익성을 이유로 교통약자인 노인과 어린이들이 이용하는 무료순환버스를 없애고 유료화 카트를 도입하여 서울시민을 위한 이동서비스를 중지하는 등 공공성을 훼손하고 있는 현실을 언급하였다. 권수정 서울시의원은 서울시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현안에 대해 논의한 후 비정규직-정규직 전환과 관련하여 꼼꼼히 살펴보고 문제점을 파악한 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함께 모색해보겠다고 하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경제 침체 속 룰라에게 향하는 브라질 국민들의 시선

    경제 침체 속 룰라에게 향하는 브라질 국민들의 시선

    룰라밖에 없다? 대통령 선거를 두 달 앞둔 브라질에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전 대통령이 수감 중에도 선거운동 모금 실적에서 가장 앞서나가는 등 대선 돌풍을 예고하고 있다. 31일(현지시간) 브라질 언론에 따르면 각 정당이 웹사이트를 통해 모금활동을 벌이는 가운데 좌파 노동자당(PT)의 룰라 전 대통령이 4600여명으로부터 44만 헤알(약 1억 3000만원)을 모금했다. 자료를 공개한 대선주자들의 모금액을 합치면 95만 7000헤알을 약간 웃돈다. 아직 모금액이 크지는 않지만, 모금의 상당 부분이 룰라 전 대통령에게 집중된다는 사실이 그의 인기가 여전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올해 대선은 기업의 기부행위가 금지되는 첫 선거로, 대선주자들은 국고보조금과 개인 기부, 자체 조달로 선거자금을 마련해야 한다. 노동자당은 대중적 인기를 유지하는 룰라 전 대통령을 오는 4일 전당대회에서 대선 예비후보로 확정 발표할 예정이다. 전당대회에 맞춰 브라질 전역에서 룰라 전 대통령 석방을 촉구하는 단식 농성 계획도 준비돼 있다. 노동자당은 룰라 전 대통령 석방과 대선 출마 허용을 촉구하는 서명 운동도 벌이기로 했다. 룰라 전 대통령은 뇌물 수수 등 부패 행위와 돈세탁 등 혐의로 지난해 7월 1심 재판에서 9년 6개월, 올해 1월 2심 재판에서 12년 1개월 징역형을 선고받고 4월 7일 남부 쿠리치바시에 있는 연방경찰에 수감됐다. 연방대법원의 상고심이 남아 있어 룰라 전 대통령의 대선 출마 여부는 아직 확실하지 않지만 그의 지지층은 그의 대선 출마를 전제로 활동하고 있다. 각 정당은 전당대회를 열어 대선 예비후보를 속속 결정하고 있으며 각 당의 전당대회 일정은 오는 5일까지 이어진다. 15일까지 연방선거법원에 후보 등록 절차가 끝나면 곧바로 선거 캠페인과 TV·라디오 선거방송이 진행된다. 룰라에 대한 대중의 지지가 식지 않고 있는 것은 최근 브라질의 악화되고 있는 경제 사정과도 연관된다. 룰라 전 대통령은 ‘경제 대통령’이라고 불릴 정도로, 좌파 대통령이면서도 ‘경제 성장 드라이브’로 재임 기간 중 호황을 유지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브라질 경제는 지난 2015∼2016년 사상 최악의 침체 국면을 거쳤고 이후에도 회복이 더디게 이뤄지면서 제조업 위기론이 고개를 들고 있는 상황이다. 브라질 최대 경제단체인 전국산업연맹(CNI)의 보고서에 따르면 유엔산업개발기구(UNIDO) 통계를 기준으로 지난해 전 세계 제조업에서 브라질이 차지하는 비중은 1.98%에 불과했다. 중국과 미국의 제조업 비중은 각각 24.83%와 15.32%였다. 브라질 제조업 비중이 2%를 밑돈 것은 유엔산업개발기구의 조사가 시작된 1990년 이래 거의 30년 만이다. 브라질의 제조업 비중은 1990년대 중반 한때 3.43%를 기록했으며 1990년대 말 금융위기 시기에도 3% 안팎을 유지했다. 제조업 비중이 본격적으로 하락한 것은 경제 침체가 시작되기 직전인 2014년부터이며, 지난해 비중은 인도네시아(1.84%)에 앞서는 9위였다. 전국산업연맹은 인프라 부족,법적·제도적 불안정성, 과도한 관료주의, 복잡한 조세제도 등이 브라질 제조업 경쟁력을 떨어뜨린 데 이어 경제 침체가 제조업 비중 위축을 가속했다고 지적했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공공서비스 업그레이드 1.0] 작년 임금체불액 1조 3811억 ‘눈덩이’… 철 지난 행정시스템 개선 시급

    소액체당금 제도 해마다 지급액 늘어 文공약 ‘청년·알바체당금제’ 논의 없어 체불임금 받아내는 ‘원스톱 기구’ 절실 31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진정이 접수된 임금체불 총액은 1조 3811억원이다. 2011년 1조 874억원이었던 임금체불 규모는 해마다 증가해 2016년에는 1조 4286억원으로 사상 최대액을 기록했다. 임금체불 규모는 증가하고 있지만 체불된 임금을 돌려받는 절차는 지금도 변화가 없다. 정부도 이러한 문제점을 알고 조금이나마 제도를 개선해 왔다. 우선 체불임금으로 생활고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을 위해 체불임금 가운데 일부(최대 400만원)를 국가가 먼저 지급하고 나중에 회사에 구상권을 청구하는 소액체당금 제도를 2015년 7월 신설했다. 소액체당금은 2016년 1279억원, 2017년 1396억원으로 제도 시행 이후 지급 규모가 늘고 있다. 대검찰청도 지난해 임금을 3회 이상 체불하는 사용자는 반드시 재판에 넘기는 ‘임금체불 삼진아웃제’를 도입하는 등 제도 개선방안을 마련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으로, 국가가 먼저 아르바이트생에게 밀린 임금을 주고 이후 사용자에게 구상권을 청구해 돌려받는 ‘청년·알바체당금제’는 정부 출범 1년이 지난 지금도 논의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 매년 1조원이 넘는 임금체불 규모, 턱없이 부족한 근로감독관 숫자, ‘고용부 조사→검찰 조사→민사소송’으로 이어지는 지난한 절차 등을 고려하면 현행 제도의 근본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고용부 의뢰로 2016년 작성된 ‘임금체불 행정 시스템 개편 방안 연구’ 보고서는 국가가 체불된 임금채권을 대신 내주고, 사용자에게 구상권을 행사하는 공적기구 설립이 필요하다고 봤다. 또 현재 조사를 담당하는 고용부, 민사소송을 지원하는 법무부 산하 대한법률구조공단, 체당금 업무를 담당하는 근로복지공단 등으로 흩어진 기능을 공적기구에서 한번에 처리할 것을 제안했다. 이승욱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체불임금을 민사소송으로 개인적으로 받아내도록 하는 현행 제도는 임금의 특수성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것”이라며 “일반적인 행정절차나 민사소송 절차가 아니라 좀더 신속하고 비용이 들어가지 않는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고용부 조사 과정에서 돈을 떼먹은 사장의 고의적인 불출석을 막을 수 없고, 모든 입증 자료를 돈을 떼인 노동자가 준비해야 하는 것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용자와 노동자가 합의하면 처벌을 피하는 ‘반의사불벌죄’ 규정 폐지와 체불임금 지연이자 지급 확대, 징벌적 부가금 도입 등으로 임금체불한 사용자에 대한 처벌과 제재를 강화하는 방안도 대책으로 거론된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공공서비스 업그레이드 1.0] 월급 떼먹은 사장님 나빠요… 1년간 ‘행정 뺑뺑이’ 더 나빠요

    [공공서비스 업그레이드 1.0] 월급 떼먹은 사장님 나빠요… 1년간 ‘행정 뺑뺑이’ 더 나빠요

    “사장이 월급을 주지 않아서 진정을 낸 게 지난해 6월인데요. 민사소송까지 가서 지난달에야 간신히 떼인 임금을 받았습니다. 일한 대가를 받는 데 1년이 걸린 거예요.”지난해까지 대구의 한 음식점에서 일했던 안모(29)씨는 가게를 그만두면서 그간 밀린 임금을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사장은 “지금은 가게 사정이 좋지 않으니 기다려 달라”며 6개월 가까이 안씨의 요구를 무시했다. 안씨는 그동안 받은 월급 명세서와 근무시간 외에 업무지시를 내린 메시지 기록 등을 토대로 지방고용노동청에 임금체불 진정을 제기했다. 임금채권 기한인 3년간 초과근무수당과 퇴사 전 6개월간 받지 못한 임금은 모두 2800만원에 달했다. 안씨는 “처음에는 노동청에 온라인으로 사건만 신청하면 다 해결되는 줄 알았다”면서 “노동청에서 조사를 받고서 임금체불 확인서를 받았지만, 이후에도 근로복지공단과 대한법률구조공단을 왔다 갔다 하느라 꽤 많은 시간을 날렸다”고 말했다. 안씨는 1년 넘게 각 기관을 돌아다닌 끝에 소액체당금 제도로 400만원, 민사소송을 통해 2400만원을 받았다. 안씨는 “스마트행정이라고 해서 각종 민원을 휴대전화로 해결할 수 있는 세상이지만, 떼인 임금을 받으려면 온갖 서류를 싸 짊어지고 직접 각 기관들은 쫓아다녀야 했다”며 “돈을 떼먹은 사람은 가만히 앉아 있고, 돈을 떼인 사람이 행정 절차에 따른 불편함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우리나라에서 떼인 임금을 돌려받는 것은 피말리는 기다림과의 싸움이다. 우선 돈을 떼인 노동자는 고용노동부 지방고용노동관서에 진정을 제기해야 한다. 진정서는 고용부 민원마당(minwon.moel.go.kr)이나 지방고용노동관서에 직접 방문해 신청할 수 있다. 진정을 제기할 때는 임금을 떼였다는 증거자료를 확보해 함께 제출해야 한다. 이후 지방고용노동관서의 조사를 거쳐 체불임금이 확정되고, 사용자에게는 이를 지급하라는 지시가 내려진다. 고용부는 진정 접수 이후 사건 처리까지의 기한을 25일로 정하고 있다. 조사가 더 필요하면 한 차례 연장이 가능하다. 통상 조사 과정에서 돈을 떼인 노동자와 사용자 모두 1~2차례 정도 조사를 받게 된다. 하지만 진정 사건은 사업장이 있는 담당 지방고용노동관서로 넘어가다 보니 정작 돈을 떼인 노동자가 서류를 내고, 조사를 받으려고 먼 거리를 오가야 하는 상황도 발생한다. 임금체불 진정 경험이 있는 최모(27)씨는 “아르바이트를 한 곳이 서울이다 보니 집인 수원에서 서울까지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해야 했다”며 “정작 돈을 주지 않은 사장은 아예 조사를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임금체불 조사에 응하지 않으면 근로감독관은 3~5회 정도 출석요구서를 보낸다. 수도권에서 근무하는 한 근로감독관은 “출석요구서를 보내는 것 외에 강제 조사 권한은 없다”며 “처리기간이 지나 검찰로 사건을 송치하는 게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고의적인 조사 불응에도 근로감독관이 취할 수 있는 조치는 사실상 없다. 고용부 지급 지시에도 꿈쩍 않는 사용자들을 상대로 돈을 받아내는 데는 보통 10개월에서 1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고용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체 임금체불 진정사건 20만 9714건 중 시정 지시로 사건이 해결된 경우는 14만 9464건으로 전체의 71.3%이다. 고용부의 지급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미지급 임금에 대한 지급청구를 민사소송을 통해 제기해야 한다. 임금을 떼먹은 사장 10명 중 3명은 민사소송까지 가서야 밀린 임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돈을 떼인 피해자들은 무료로 소송을 지원해 주는 대한법률구조공단, 소액체당금을 받을 수 있는 근로복지공단, 민사소송이 진행되는 법원을 찾아가야 한다. 고용부에서 이미 체불된 임금이 있다는 확인을 받은 상태지만 또다시 구제 절차를 밟아야 한다. 또 각 기관 간의 시스템이 연동돼 있지 않아 각종 서류를 온라인으로 제출하는 최소한의 편리함조차도 누리지 못한다. 체불임금 확인서, 주민등록등본, 회사 법인등기부등본 등 각종 서류를 준비하는 것도 돈을 떼인 국민의 몫이다. 떼인 임금을 돌려받고자 직장을 쉬거나 별도의 비용을 들이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이 비용은 누구도 보전해 주지 않는다. 반면 임금을 지급하지 않은 사용자는 검찰 조사에 따른 형사처벌 외에 별다른 행정적인 제재를 받지 않는다. 지난해 퇴사하고 나서 체불임금 진정을 제기한 권모(36)씨는 “한 달 벌어 한 달 사는 처지에서 민사소송 판결이 나기까지의 시간은 악몽”이라며 “이미 체불된 임금이 있다는 게 확인됐는데도 사장은 이를 지급하지 않고 여유롭게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임금체불을 한 사용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하지만 대부분 시정 지시나 벌금형에 그치며, 벌금 역시 체불임금의 20~30% 수준에 불과해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올해 8명 사망’ 포스코건설 총체적인 관리 부실 드러나

    올해 5건의 사망 사고(8명 사망)가 발생한 포스코건설이 현장에서의 총체적인 관리 부실로 노동자들을 위험으로 내몬 것으로 조사됐다. 고용노동부는 31일 포스코건설 현장소장 16명과 본사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사법처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앞서 고용부는 지난 6월 18일부터 7월 20일까지 포스코건설 본사와 건설현장 24곳에 대한 특별감독을 실시했다. 특별감독 결과 포스코건설의 모든 건설현장(24곳)에서 안전보건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고, 관련 서류를 보관하지 않는 등 법 위반 사안 165건이 적발됐다. 특히 형사처벌 대상이 된 16곳에서는 추락예방 조치를 하지 않는 등 안전과 직결된 법 위반 사안 149건이 적발됐다. 또 본사도 안전·보건관리자 선임 위반 등 55건의 법규를 위반한 것으로 조사됐다. 아울러 포스코건설의 안전관리자 315명 가운데 정규직은 56명으로 17.8%에 불과했다. 시공능력 평가액 기준 100대 건설사의 정규직 비율(37.2%)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또 포스코건설은 협력업체에 대한 지원 프로그램과 위험성 평가도 형식적으로 운용하는 등 안전보건관리시스템 전반이 부실한 것으로 조사됐다. 고용부는 포스코건설의 현장 24곳에 모두 2억 3681만원, 본사에 2억 9658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할 방침이다. 건설현장 1곳에 대해서는 안전시설 불량 등을 적발해 작업중지 조치를 했고, 건설현장 24곳의 법규 위반 197건에 대해 시정 조치 명령을 내렸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데스크 시각] ‘불편함’, 한국 사회의 경쟁력/이창구 사회부장

    [데스크 시각] ‘불편함’, 한국 사회의 경쟁력/이창구 사회부장

    “중국은 어때요?”요즘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다. 3년 4개월을 중국에서 살다가 지난달 초 귀국했다. 아직 한국이 낯선 걸 보면 중국 생활의 ‘뒤끝’이 제법 오래가는 것 같다. 며칠 전에는 과일 껍질을 검정 비닐에 담아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리려다가 경비원한테 야단을 맞았다. “그렇게 버리면 어떡해요. 당장 꺼내세요.” 뭐가 문제지? 분명히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렸는데…. 한국에는 음식물을 담는 쓰레기 봉투가 따로 있다는 걸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중국도 오래전부터 분리수거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쓰레기를 분리해서 버리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쓰레기통이 한국처럼 일반, 재활용, 음식물 등으로 구분돼 있지만, 문구만 그렇게 쓰여 있을 뿐이다. 아파트 주민들이 모든 쓰레기를 아무 봉투에나 담아 ‘편하게’ 버리면 청소부가 돈 되는 재활용품만 따로 추리고 나머지는 몽땅 한 차에 싣고 간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도 한국이 훨씬 ‘불편’하다. 차가 오지도 않는데 푸른 신호등이 켜지기 전까지는 누구 하나 건널 생각을 하지 않는다. 중국에선 신호등 점멸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차가 오는지만 살펴 요령껏 건너면 된다. 가장 안전하게 도로를 횡단하는 방법은 푸른 신호등이 켜졌을 때 건너는 게 아니라 중국인들이 건널 때 같이 건너는 것이다. 운전할 때도 마찬가지다. 4차선 이상의 대로를 제외하고는 좌회전 신호가 없는 교차로가 많은데, 이는 반대편에서 직진해 오는 차량이 없으면 눈치껏 좌회전하라는 뜻이다. 지하철도 중국이 편하다. 노약자 배려석이 있긴 하지만, 역시 문구로만 지정돼 있을 뿐 아무나 먼저 앉으면 그만이다. 중국에서도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젊은이가 가끔 있다. 그러나 양보하지 않는다고 해서 누구 하나 눈치를 주지도 보지도 않는다. 한국에 와서 보니 객차 양끝의 노약자 배려석 외에 임신부를 위한 2개의 ‘핑크 카펫’ 좌석도 새로 생겼다. 세어 보니 객차 한 칸에 54개 좌석이 있는데, 이 중 배려석이 무려 14개나 됐다. 더 놀라운 것은 한국 젊은이들은 배려석 주변을 얼쩡거리기조차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사무실이 광화문 근처에 있다 보니 온갖 소음도 ‘불편’하다. 중국에 가기 전에는 노동자 집회에서 울려 퍼지는 투쟁가가 업무 집중도를 떨어뜨렸다. 정권이 바뀐 지금은 태극기 부대가 틀어 놓은 군가 때문에 괴로울 때가 많다.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는 확성기 집회는 고사하고 1인 시위조차 엄두를 낼 수 없다. 카페에서 자기가 마신 커피잔을 스스로 정리하고, 길게 늘어선 수십 대의 자동차가 텅 빈 버스 전용차로를 탐하지 않고, 공중화장실 앞에서 한 줄로 서서 지루하게 기다리는 것도 중국적 시각에서 보면 꽤 ‘불편’한 풍경이다. 눈치를 챘겠지만, 한국 생활의 불편함을 나열한 이유는 이 불편함들이 실은 우리의 경쟁력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쓰레기 분리수거는 중국이 앞으로 십수 년 동안은 따라올 수 없는 우리 사회의 약속이자 질서다. 지하철에서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노약자와 임신부에 대한 자리 양보는 우리가 쌓아 올린 배려의 문화다. 시끄러운 집회는 중국에선 절대 느낄 수 없는 자유가 공기처럼 퍼져 있다는 징표다. 중국 시장이 제아무리 크고, 중국 자본의 힘이 제아무리 막강하다고 해도 한국 사회의 질서와 배려, 자유와 민주 같은 ‘소프트 파워’는 돈으로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아직 한국은 그리 만만한 나라가 아니다. window2@seoul.co.kr
  • [정대화의 더 정치] “文, 국회에 손 내밀 때다…밥이 되고 예술이 되는 정치를 위해”

    [정대화의 더 정치] “文, 국회에 손 내밀 때다…밥이 되고 예술이 되는 정치를 위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 질문에는 사람이 밥으로만 살지 않는다는 모범 답안이 준비돼 있다. 그러나 유심론적으로는 정답이지만 유물론적으로는 오답이다. 세상에서 먹고사는 문제보다 중요한 문제가 있을까? 사람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모든 선택을 포기하며 자기와 가족의 배고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생을 건다.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모범 답안은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됐을 때만 정답이다. 물론 예외는 있지만 예외일 뿐이다.우리 사회가 근현대사 200년의 질곡에서 벗어났다는 진단에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금은 홍경래 난이나 진주민란이 일어났던 조선 후기의 혼란기가 아니다. 대한제국 말기의 망국적 위기를 맞아 동학전쟁을 벌이고 의병운동을 조직했던 풍전등화의 시기도 아니다. 참혹한 일본 제국주의 지배에서도 벗어났고 분단과 전쟁의 고통도 일부 세대의 기억으로만 남아 있다. 전후의 보릿고개도 옛말이 됐다. 그런 우리가 느닷없는 노회찬의 죽음 앞에서 망연자실하고 있다. 그는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고 원내교섭단체의 대표이고 진보정치의 아이콘이고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유명 인사였다.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성공의 반열에 오른 사람의 죽음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아직은 이 사건의 황망함과 비통함이 가시지 않아 다른 생각의 겨를이 없지만, 그의 죽음은 많은 과제를 우리에게 남겼다. 소리 없는 아우성. 이 시구가 우리 시대의 현 상황을 가장 적절하게 대변하는 단어일지도 모르겠다. 옛날 석가모니가 구중궁궐 밖에서 생로병사의 고통을 목격했던 것처럼 우리는 급속한 근대화가 가져다준 풍요의 그늘에 가려진 수많은 소리 없는 아우성을 듣고 있다. 휴전 65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60만명의 젊은이를 전장으로 내모는 휴전선의 긴장감, 하루가 멀다 않고 터져 나오는 노동전선과 교육전선의 외침, 재벌 대기업에 억눌린 중소기업가들의 고달픔, 최저임금을 둘러싼 저임금 노동자와 배고픈 자영업자들 사이의 갈등. 선진국의 문턱에 선 한강의 기적은 도처에서 아우성을 동반하고 있다. 국회도 예외가 아니다.국회는 인류 역사가 발명한 민주주의의 가장 위대한 제도다. 민의의 전당이자 주권 기관으로 불리는 이 창조적 발명품은 산업혁명과 시민혁명 이래로 인류사의 발전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군주제, 사법제, 행정관료제, 상비군 등 수많은 근대의 발명품 중에서 국회를 능가하는 아름다운 발명품은 없다. 그러나 이 위대한 발명품도 한국 땅에서는 기를 펴지 못하고 작동 불능의 상태에 빠져 있다. 인류 역사는 전쟁의 역사로 불린다. 전쟁의 역사가 파멸로 끝나지 않는 이유는 타협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인류 역사는 전쟁과 타협의 변증법적 관계의 역사다. 한때 사람들은 중국의 삼국지나 서양의 십자군처럼 싸웠다. 그 시절 전쟁은 이해관계를 해결하는 매우 효과적인 수단이었지만 근대 이후에는 총칼을 내려놓고 국회에서 말로 승부를 가르는 무기 없는 새로운 전쟁 방식으로 대체됐다. 정치적 상상력이 최고도로 발휘된 성과다. 그러나 귤이 회수를 건너 탱자가 돼 버리는 것처럼 우리나라에서는 이 발명품이 불량 수입품 취급을 받고 있다. 아픈 만큼 성숙한다는 말도 있고 싸우면서 큰다는 말도 있다. 마음에 새겨야 할 소중한 교훈이다. 그러나 성숙함을 동반하지 못하는 아픔은 고통일 뿐이며 성장을 동반하지 못하는 싸움은 파멸을 부를 뿐이다. 싸우더라도 요령 있게 싸워야 하는데 죽기 살기로 싸우는 것이 과연 누구를 위해서 울리는 종인지 의문스럽다. 혹 목적 없이 싸우는 싸움닭이 돼 버리거나 구경꾼들을 위해 싸우다 죽는 싸움개가 돼 버리지 않을지 걱정스럽다. 그러나 나는 싸움을 백안시하는 관점에는 결단코 동의하지 않는다. 사람이 신이 아니고 우리가 사는 세상이 신의 나라가 아닌 이상 싸움은 불가피하다.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신들마저 치열하게 싸우는 모습을 보면 사람들 사이의 싸움은 불가피해 보이기도 한다. 다만 싸우면서도 타협의 여유를 발휘하면서 한 번의 싸움을 또 다른 싸움을 위한 더 높은 경지로 끌어올리는 지혜는 반드시 필요하다. 죽기 살기로 싸우면 남는 것은 죽음뿐이니까 싸움의 철학과 방법론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1년하고도 2개월이 지났다. 문재인 정부의 모습은 크게 세 가지 장면으로 오버랩되고 있다. 첫째, 이 정부가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무지와 무능과 독단의 폐해를 슬기롭게 극복하면서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국정 운영의 새로운 모범을 창출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공감은 행정부 수준에서만 유효할 뿐 국회와 사법부 영역에서는 여전히 구정권의 그림자가 짙게 배어 있다. 국회는 민주주의의 처음이자 끝이고 사법부는 민주주의 보루라 할 수 있는데, 새 정부의 의지가 삼권의 영역으로까지는 확대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반쪽짜리 민주주의라는 말이다.둘째, 예정에 없던 남북 관계와 외치가 국정 운영의 방향타로 작동하면서 정부의 지지도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는 반면 내치에서는 이렇다 할 성과를 보기 어려운 정책 집행의 불균형 상태가 심화되고 있다. 구조화된 사회문제가 일거에 해결돼야 한다고 성화를 부릴 상황은 아니어서 믿음을 가지고 인내하면서 기다려야 하겠지만 기다림에는 시한이 있는 법이다. 정부 임기 5년은 별로 길지 않은 시간이고 변화를 시작할 수 있는 시간은 5년보다 더 짧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셋째, 문재인 정부는 선거로 탄생했지만, 구정권을 무너뜨린 것은 촛불이다. 헌법에도 선거법에도 없는 촛불혁명이 이 정부의 모태라는 사실을 다시금 재확인하고 이 원리가 국정 운영에 반영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대통령이 늘 강조하는 것처럼 국민을 존중하고, 국민을 중심에 놓고, 국민의 뜻에 따르고,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촛불정신이다. 촛불은 물과 같아서 물이 배를 띄우기도 하고 전복시키기도 하는 것처럼 촛불 또한 권력을 만들기도 하고 무너뜨리기도 한다. 더구나 촛불은 작은 바람에도 쉬이 꺼진다.드디어 하나의 결론에 이르게 됐다. 지금 문재인 정부에 필요한 것은 오버랩된 세 장면을 하나로 묶어 내는 일이다. 대통령이 국회로 가서 국회와 타협하는 장면이 필요하다. 그 타협이 협치든 개혁연합이든 연립정부든 무방하다. 국회가 구시대의 폐습을 전시하는 박물관이 되지 않도록 정치적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 대통령이 강한 나라는 단기적 효율성이 있고, 국회가 강한 나라는 장기적 지속성을 갖는다. 대통령은 리더십으로 강해지고 국회는 타협으로 강해진다. 정치에서 타협은 최적의 해법을 모색하는 예술과도 같은 것이다. 이 장면으로 국민에게 봉사하는 국회가 만들어지고, 부진한 내치에 돌파구가 만들어지고, 촛불이 지속된다면 다음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500년 역사의 조선은 건국 200년 만에 임진년, 병자년 양란으로 허리가 꺾인 후 영·정조 시대의 마지막 시도가 실패하면서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 후 19세기와 20세기의 역사는 나라에는 굴욕이었고 백성에게는 고통이었다. 해방 이후에 우리가 겪은 분단과 전쟁과 독재의 역사는 그 일부였다. 다행히 굴욕과 고통의 역사를 중단시키고 새로운 역사를 창조할 수 있는 역사적 전환기를 맞이했다. 면면히 이어진 민주화의 흐름이 그 동력을 제공했고, 최근의 한반도 상황이 새로운 계기를 마련해 주고 있다. 우리가 미구에 마주하게 될 역사는 민주화를 넘어 민족 통일을 완수하고 우리 민족이 다시금 세계사의 일원으로 재등장해 단절된 민족사를 복원하게 될 원대한 역사다. 그리하여 우리를 대륙으로부터 단절시켜 한반도의 남쪽 섬으로 고립시킨 70년 분단 구조를 해체하고 유라시아와 소통하는 한반도의 새로운 미래를 창조하는 구상이 가능하게 됐다. 정치가 밥이라면 이보다 풍요한 밥상이 다시 있겠는가. 미래는 준비하는 자의 몫이다. 미래는 먼 후일의 일이 아니라 후일을 내다보고 준비하는 자의 오늘의 일이다. 지금 우리에게 그 길이 열리고 있고 문재인 정부의 과제로 떠올랐다. 이 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정치적 타협이 이루어지고, 그 연장선상에서 정치가 여의도 좁은 바닥에 갇힌 이념 구도와 지역 구도에서 벗어나 한반도와 동북아의 시각을 갖게 된다면 이 타협은 예술의 경지에 이른 역사적 타협이 될 것이다. 이제 우리도 밥이 되고 예술이 되는 정치를 기대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상지대 총장직무대행
  • [자치광장] 더불어 사는 사회로 가는 길/이정훈 서울 강동구청장

    [자치광장] 더불어 사는 사회로 가는 길/이정훈 서울 강동구청장

    지난 3월 문재인 정부는 노동기본권 강화를 위한 개헌안을 발의하며 노동 존중 사회를 열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근로’를 ‘노동’으로 대체하고, ‘동일가치 노동·동일임금’의 개념을 전파하며 노동에 대한 국민적, 사회적 관심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 대한민국에서의 노동은 단순히 생계수단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더욱이 보수, 고용형태, 직종, 성별, 연령 등에 따른 공공연한 차별과 경직된 노동문화는 노동자의 자존감을 떨어뜨리고 사회적 분열을 초래했다.  그러나 진정한 노동이란 생계 유지를 위한 행위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 행하는 모든 정신적·육체적 활동을 의미한다. 때문에 노동은 자기자신을 실현하는 과정이며, 노동의 가치와 존엄은 바로 우리 자신의 가치와 존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것이 강동구가 노동에 주목하는 이유다. 노동이야말로 양극화, 물질중시화, 기업화돼 가고 있는 사회에서 스스로가 가치 있는 존재임을 확인하고, 자신의 능력과 노력으로 삶에서의 성취를 이뤄낼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강동구는 1979년 구가 생긴 이래 가장 큰 변화를 맞고 있다. 43만여명의 인구는 2022년이면 54만여명에 육박할 전망이다. 지하철 연장과 고덕상업업무복합단지 조성은 도시 전체에 근본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이러한 물결 속에서 외면받는 계층이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도록 지원하려면 노동의 권리가 보장되고 노동의 가치가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 첫걸음이 ‘강동구 노동권익센터’다. 구청장 직속으로 연내에 설치하고, 조례 제정 및 조직 개편 등 법적·제도적 근거를 마련할 예정이다. 센터는 비정규직, 영세사업자, 여성, 외국인, 청소년 등 차별의 벽에 가로막혀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는 취약계층의 권익향상에 앞장설 것이다.  노동은 정치적 이념을 실현하거나 경제적 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그 자체가 목적이자 의미가 돼야 한다. 바로 나 자신이, 우리 모두가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중심이 되는 더불어 행복한 사회, 그 핵심에 노동이 있다.
  • “야, 다문화”… 담임쌤은 내 친구를 이렇게 불러요

    “야, 다문화”… 담임쌤은 내 친구를 이렇게 불러요

    ‘대한민국은 단일 민족’이라는 말은 옛말이 된 지 오래다. 2000년대 이후 외국인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다문화 사회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이주민들은 여전히 ‘우리’가 아닌 ‘그들’이다. ‘다문화’라는 용어는 또 다른 ‘낙인’이자 ‘차별’로 인식되고 있다. 서양인과의 결혼은 ‘글로벌 가정’으로, 아시아인과의 결혼은 ‘다문화 가정’으로 부르기도 한다. 다문화라는 테두리 안에서 살고 있는 이주민들은 “제도적인 차별보다 더 무서운 게 인식의 차별”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무심결에 던진 편견과 차별은 송곳이 되어 그들의 가슴을 후벼 판다. ●학교는 차별 조장…어린이집은 문전박대 “야, 다문화!” 중학교 국어교사 A씨는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큰 소리로 얼마 전 전학 온 베트남 학생을 찾았다. 베트남 출신의 어머니를 둔 이 학생의 이름은 ‘김전일’이었지만 A교사는 항상 ‘다문화’라고 불렀다. 한국어가 서툴러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한 채 책상에 엎드려 있던 이 학생은 이유도 모른 채 앞으로 나갔다. A교사는 한국인 학생들 앞에서 “숙제를 엉터리로 해 오면 어떡하느냐”며 공개적으로 망신을 줬다. 아버지는 한국인, 어머니는 일본인인 김진영(15·가명)군은 역사 수업 시간마다 괴롭다고 했다. 역사 선생님이 ‘우리나라’, ‘우리 민족’을 얘기하는데 김군에게는 ‘아빠 나라’, ‘엄마 나라’만 있을 뿐이어서다.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노래를 부를 때는 같은 반 친구들의 눈치를 봤다. 친구들이 평소 “넌 한국 사람이냐, 일본 사람이냐”고 묻는 것도 남모를 괴로움이다. 이정은 아시아인권문화연대 사무국장은 “화합과 공동체성을 강조하는 ‘우리’라는 표현이 누군가에게는 소외감을 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외국인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을 바로잡아 줘야 할 학교 등 교육기관에서 오히려 차별을 조장하는 경우가 많다. 학부모에게 보내는 가정통신문이 한글로만 쓰여 한국어가 서툰 외국인 학부모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흔하다. 교사들이 다문화 가정 아이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학생 어머니의 출신 국가를 공개하며 “서로 사이 좋게 지내라”고 했다가 오히려 아이를 놀림감으로 만들어 버리는 경우도 많다. 다문화 가정과의 ‘만남의 장’이 ‘갈등의 장’이 돼 버리기도 한다. 충남 홍성 등 일부 지역에서는 최근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에서 온 ‘고려인’이 부쩍 늘자 좋은 취지로 이들과 함께 어울릴 기회를 만들었다. 하지만 한국인 학부모들은 이주민 가정을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호응하지 않았다. 자녀에게 “외국에서 온 친구랑 가까이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거나 학부모끼리 정보를 공유하는 단체 메신저 방에 외국인 학부모를 초대하지 않는 사례도 비일비재했다. 유치원, 어린이집 등 보육 시설도 마찬가지였다. 이주민들은 보육교사와 한국인 자녀들에게 차별을 당해 자녀가 상처를 입을까 봐 어린이집에 선뜻 보내지 못하고 있다. 한국인 아이와 싸움이 나면 한국인 학부모들이 집단대응에 나서는 때도 있다고 한다. 캄보디아에서 온 초은레이(26)는 “어린이집에 모인 학부모들이 나를 곁눈질로 보더니 아예 말도 안 걸고 인사도 안 한다”고 호소했다.●병보다 의사 불친절에 더 아프다 우즈베키스탄 출신 에리카(32·가명)는 최근 몸이 아파 병원에 갔다가 의사의 불친절한 행동에 몸서리를 쳤다. 서툰 한국어로 증상을 얘기한 뒤 의사의 설명을 귀 기울여 듣던 중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어 “다시 한 번 설명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랬더니 의사는 다짜고짜 “다음요. 나가서 간호사한테 물어보세요”라며 진료실 밖으로 내쫓았다. 중국 출신 결혼 이주여성 이모씨는 장기간의 불임 끝에 산부인과를 찾아 시험관 아기 시술이 가능한지를 물었다. 어눌한 한국어 탓에 전달이 잘 안 됐는지 병원 직원은 “한국어 되는 사람 데리고 와”라고 쏘아붙였다. 이씨는 ‘시험관 시술이 가능하냐’는 질문을 종이에 적어 다시 보여 줬다. 이에 직원은 “시험관 엄청 비싸요. 당신 돈 있어?”라고 말했다. 직원의 목소리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다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컸다. 외국인 차별 실태를 조사한 이경숙 경기외국인인권지원센터 팀장은 “병원에서 이주민에 대한 모욕과 불친절한 행위가 자주 발생한다”면서 “일상에서 외국인에 대한 차별을 막을 법, 제도 정비가 급선무”라고 말했다. 한국건강가정진흥원에 따르면 한국인과 결혼한 뒤 혼인신고까지 했는데도 건강보험 혜택을 못 받는 이주여성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인 남성들이 외국인 부인을 결혼비자 대신 관광비자로 한국에 데려오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국내 체류 기간(3개월 이상)에 관계없이 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결혼비자와 달리 관광비자(C3)는 아예 건강보험 가입이 안 된다. 불법체류자 등 건강보험 자격에서 제외된 이주노동자들은 라파엘클리닉 등 무료 진료 봉사 단체 등을 찾아다니며 진료를 받기도 한다. 김창덕 라파엘클리닉 대표는 “이주노동자들이 육체적인 노동을 많이 하다 보니 어깨, 허리 통증을 주로 호소한다”면서 “동남아에서 온 환자들은 과일을 많이 먹어서인지 당뇨도 꽤 많다”고 말했다.●비수로 꽂히는 말 “돈 때문에 결혼했냐” “형진이가 욕설을 많이 하고 친구들을 자주 때려요.” 9년 전 한국인 남성과 결혼하면서 베트남에서 온 쯔엉(29)은 얼마 전 학교에서 “아들이 폭력적인 성향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쯔엉도 집에서 남편과 시어머니에게 구타당하며 살았기에 더더욱 놀랐다. 아들이 아빠와 할머니의 폭력성을 물려받은 것으로 보였다. 쯔엉은 술에 찌든 남편에게 머리채를 잡히고 주먹으로 맞는 일이 다반사였고 시어머니도 “너 돈 때문에 한국 왔지. 가난한 나라에서 왔으면 잔말 말고 내가 하라는 대로 해”라며 쯔엉을 하인처럼 여겼다. 쯔엉이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집에 돌아오면 “직장 다니는 것 맞느냐. 바람피우는 것 아니냐”며 근거 없는 의심을 보내기도 했다. 쯔엉은 결국 지난해 남편과 갈라섰다. 그는 “형진이의 장래 꿈이 경찰관이래요. 할머니, 아빠 같은 사람들을 잡고 싶다고 하네요”라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인 남성, 외국인 여성’의 혼인 신고 건수는 1만 4869건으로 집계됐다. 2000년 6945건에 비해 2배 이상 늘었다. ‘중매’ 역할을 하는 국제결혼 중개업체 수가 증가하면서 국제결혼 커플도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한국인 남성들이 중개업체에 돈을 내고 개발도상국 등에서 부인을 데려오다 보니 그들을 ‘배우자’로 바라보기보다 ‘시부모를 모시면서 애를 낳고 키우는 여성’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점이다. 결혼 이주여성들은 임신했을 때 그 서운함이 극에 달한다고 한다. “고향 음식이 먹고 싶다”, “과일이 당긴다”고 아무리 말해도 남편이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유일한 안식처는 이주민 친구나 유튜브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뿐이다. ●외국인들은 왜 3D 업종에서만 일하나 세네갈 출신인 삼(40)은 모국에서 사업을 했지만 4개월 전 한국에 온 뒤로는 사무실 청소를 하고 있다. 하루 11시간 일하고 월 170만원을 번다. 리본 제작 공장에서 일하는 필리핀 출신의 제릴린(34)은 월수입이 130만원에 불과하다. 그는 “모국에서 교육을 많이 받고 전문직으로 일했던 사람도 한국에만 오면 꿈을 펼칠 기회가 없어 일용직을 전전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주노조에 따르면 이주노동자는 하루 평균 10시간 이상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일해도 연장근로수당이나 휴일근로수당을 제대로 받는 이주노동자는 많지 않다. 경기도의 한 농장에서 4년 10개월 동안 단 하루도 쉬지 않고 12시간씩 일한 이주노동자 B씨는 퇴직금을 못 받아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냈다. 고용주의 불만도 만만찮다. 일을 제대로 하는 이들이 드물고 일 좀 할 만하면 떠난다는 것이다. 우다야라이 이주노동조합 위원장은 “이주노동자들은 ‘이주’라는 특수한 환경 속에서 생활과 노동 두 가지에 적응해야 한다”면서 “고용허가제 안에서 허락된 4년 10개월 동안 생활과 노동에 동시에 적응하기는 힘들다”고 주장했다. 베트남 출신 한가은(본명 레티마이투)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사무국장은 “직장에서 결정권을 지닌 이주민이 많지 않다 보니 한국인 팀장과 함께 밖에 나가면 한국인들은 일단 팀장하고만 얘기한다”면서 “이주민은 보조 역할만 할 것이라는 인식이 깔렸음을 보여 주는 장면”이라고 말했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양승태 사법부 재판거래, 엘리트 법관 이권 챙기기였나

    임종헌 USB서 김기춘·이정현 접촉 정황 朴 독대 후 대법원장 특활비도 3배 급증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법관 해외 파견 확대를 위해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이정현 전 홍보수석 등 박근혜 전 대통령의 최측근과 접촉하려 한 정황이 확인됐다. 또 박 전 대통령 독대 후 양 전 대법원장의 특수활동비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나, 행정처 로비의 목적이 사법서비스 개선이 아닌 ‘잇속 챙기기’가 아니었냐는 비판도 나온다. 29일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신봉수)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PC 하드디스크와 이동식저장장치(USB) 분석을 통해 행정처가 2012년부터 ‘오스트리아 법관 파견 추진 대책’ 등 법관 해외 파견 관련 문서를 다수 생산한 것을 확인했다. 이들 문건에는 “2010년 이후 중단된 주미 대사관과 주오스트리아 대사관 파견을 되찾아야 한다”는 내용과 함께 “청와대 인사위원회 접촉을 시도해야 한다”는 구체 방안도 적시됐다. 문서에는 김 전 비서실장과 이 전 수석 등 인사위 인적구성도 담겼다. 2006년 해외 사법부와의 교류 확대를 위해 시작된 미국·오스트리아 대사관 법관 파견은 이명박 정부 때 중단됐다가 2013년 부활했다. 특히 2013년엔 전에 없던 주유엔·주제네바 대표부 파견도 생겼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당시 행정처의 전방위 로비 목적이 상고법원 도입 외에도 소수 엘리트 법관들의 이익까지 포함된 것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실제 2013년 9월 작성된 ‘(일제) 강제노동자 판결 관련 외교부와의 관계’ 문건엔 ‘판사들의 해외 공관 파견’과 ‘고위 법관의 외국 방문 시 의전’ 등을 기대하며 “외교부를 배려해 절차적 만족감을 주자”고 적혀 있다. 또 이날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가 공개한 자료를 살펴보면 대법원은 2015년 1월 특활비 예산을 처음 편성한 이후 올해 5월까지 총 9억 6480만원을 지급했다. 수령자는 대법원장, 법원행정처장, 대법관, 법원행정처 간부 등이다. 특히 양 전 대법원장은 월 400만~700만원씩 받던 특활비를 박 전 대통령을 독대한 2015년 8월 이후 한 달에 최대 1285만원까지 수령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당초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로비를 했다는데, 얻은 것은 소수 엘리트들을 위한 이익”이라면서 “사법시스템 개선을 위한 로비였는지, 소수 법관의 이권을 위한 것인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라고 꼬집었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뉴스를부탁해]옥탑방과 호프집…쇼일까, 진심일까

    [뉴스를부탁해]옥탑방과 호프집…쇼일까, 진심일까

    박원순 시장의 강북 옥탑방 한달살이문 대통령의 광화문 호프집 깜짝미팅선거철에 흔한 정치쇼와 비교되며 논란박 “보고서는 2차원 시민 삶은 3차원”시민들 “바보 아니다. 진심은 드러난다”박원순 서울시장의 옥탑방과 문재인 대통령의 광화문 호프집이 이번 주 많은 분들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언제나처럼 부정적 평가와 긍정적 평가가 엇갈렸습니다. 보여주기식 행정 아니냐는 마뜩찮은 시선도 있고, 책상을 떠나 국민들과 직접 소통하려는 의도를 높이 사는 쪽도 있습니다. 정치인의 민생행보는 서민 코스프레(흉내내기)이라는 비아냥을 듣기 쉽습니다. 선거를 앞두고 전통시장을 찾아가 꼬치어묵을 베어먹는다거나 상인이 건네주는 떡을 받아먹고 검은 봉지에 담긴 과일을 사는 일 말입니다. 지난해 대선도전을 시사했던 반기문 전 유엔(UN) 사무총장은 서민체험에 나섰다가 호된 역풍을 맞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1월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한 그는 개인차량 대신 공항철도를 타고 서울 시내로 이동했습니다. 그런데 승차권발매기의 지폐투입구에 1만원짜리 2장을 겹쳐 집어넣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히면서 국민적 비웃음을 샀습니다. 옆에 있던 측근이 지폐를 한 장씩 넣어주어 표를 살 수 있었습니다.며칠 뒤 벌어진 ‘턱받이’ 사건도 반 전 총장을 난처하게 만들었습니다. 충북 음성의 사회복지시설 꽃동네를 찾아간 반 전 총장은 누워 있는 노인에게 음식을 떠먹여줬습니다. 그런데 턱받이를 환자가 아니라 반 전 총장 부부가 하고 있었습니다. 반 전 총장 측은 꽃동네에서 앞치마 대신 내어준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대중은 정치쇼, 서민 코스프레라며 손가락질했습니다. 정치인의 민생행보가 비판받는 이유는 서민의 삶을 진정으로 이해하려 하지 않고 필요가 있을 때 형식적으로 잠깐 하고 말기 때문일 겁니다. 같은 맥락에서 박 시장의 옥탑방 한달살이도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습니다. 박 시장은 지난 22일 서울 강북구 삼양동의 옥탑방에 입주했습니다. 30㎡ 크기의 2층 옥탑방은 침실과 집무실로 이뤄져 있습니다. 선풍기는 있고 에어컨은 없습니다. 박 시장에서 한달간 옥탑방에서 출퇴근하면서 실제 살아봐야만 알 수 있는 삶의 문제를 찾아보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런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보여주기라는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무슨 옥탑방 달세가 200만원이냐’, ‘한달만 살 집을 뭐하러 수리했느냐’, ‘시민의 세금으로 정치쇼를 한다’, ‘진짜 거기에 살고 있는지 감시해야 한다’는 등 가시돋친 말들이 나왔습니다.박 시장은 이런 논란을 알고 있다면서 보여주기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습니다. 그는 지난 26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사람들이 자꾸 체험하러 왔다 그러는데 체험이 아니라 생활”이라면서 그냥 지나가면 알 수 없고 살아봐야 보이는 문제를 찾겠다고 했습니다. 박 시장은 “과거 정치인들이 (서민)체험을 했다. 잠깐 체험해보고 떠났다”면서 “하지만 서울시장이 이 지역에 온다는 것은 서울시청이 옮겨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막강한 실행력과 집행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 그냥 놀러온 게 아니다”라는 겁니다. 박 시장은 삼양동으로 이사오면서 페이스북에 이런 말도 남겼습니다. “집무실 책상 위 보고서는 2차원이지만 시민 삶은 3차원이다. 절박한 민생, 시민의 삶 속에서 문제를 찾고 해결하겠다. 오직 이것만이 제 진심이다. 강남북 균형발전을 위해 시민의 일상의 삶 속으로 깊이 들어가겠다는 제 의지는 폭염보다 더 강하다”박 시장의 옥탑방을 바라보는 차가운 시선은 뜻밖의 ‘불청객’ 덕에 한결 누그러졌습니다. 지난 26일 밤 옥탑방 밖을 서성이던 5명의 중학생이었습니다. 약속도 없이 찾아온 이들을 박 시장은 방에 들어 앉혔습니다. 자신들도 믿을 수 없다는 듯 “이거 실화냐?”라고 어리둥절해하는 소년들에게 박 시장은 “얘들아, 세상에 뭐든지 도전해야 해. (나를) 만날 줄 몰랐잖아. 오니까 딱 만났잖아. 물론 실패할 수도 있어. 내일 또 하면 되지”라고 얘기해줬습니다. ‘도전을 응원한다’는 주제로 즉석에서 붓펜으로 쓴 캘리그라피를 선물하기도 했습니다. 영상을 본 네티즌은 “일부는 쇼라고 한다. 설령 쇼라고 하더라도 이런 모습을 많이 보여줬으면 좋겠다. 우리는 바보가 아니다. 그 진심을 드러나기 마련이다”라는 댓글을 남겼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응원의 뜻을 담아 박 시장에게 선풍기 한 대를 선물했습니다. 박 시장은 “문 대통령이 무더위에 수고한다고 보내셨다. 감사드린다”면서 “시민의 삶에 큰 변화를 만드는 일에 더 집중하겠다. 신접살림에 전자제품 하나 장만한 것처럼 아내가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른다”고 전했습니다.문 대통령도 최근 ‘쇼통’이라는 비판에 직면했습니다. 쇼와 소통, 대통령을 합친 말인데요. 지난 26일 광화문 호프집에서 시민들과 맥주를 마신 일 때문입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서울 종로구청 ‘쌍쌍호프’라는 술집에서 ‘퇴근길 국민과의 대화’라는 이름으로 국민들을 만났습니다.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체 사장, 청년구직자 등 18명과 100분간 호프타임을 가졌습니다. 중소벤처기업부 관계자와 만나는 자리로만 알았던 참석자들은 행사 시작 10분 전에야 문 대통령이 온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합니다. 문 대통령은 최저임금에 대한 불만, 출산 후 경력단절, 버거운 취업비용 등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듣고 해결책을 찾아보겠다고 했습니다.그런데 참석자 중 한 명이 사전에 섭외된 인물이라는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27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문 대통령이 어젯밤 호프집에서 만난 청년은 지난 겨울 시장통에서 문 대통령과 소주잔을 기울인 바로 그 청년”이라면서 “세상이 좁은 건지, 아니면 탁현민 청와대 선임행정관의 기획력이 탁월한 건지, 문 대통령이 언제까지 이런 쇼통으로 국민들의 마음을 가져가려고 하는 건지 지켜보겠다”고 꼬집었습니다. 문 대통령은 대선후보이던 지난해 3월 노량진 고시촌 빨래방에서 군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배준씨를 만나 삼겹살에 소주를 곁들여 저녁을 먹었습니다. 문 대통령은 배씨의 합격을 바라며 즉석에서 넥타이를 풀러 선물하기도 했습니다. 청와대는 김 원내대표의 의혹 제기에 “의전비서관실이 배씨에게 연락해 호프미팅에 참석한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배씨가 대통령을 만난다는 사실을 알고 온 유일한 참석자였으며 전에 만났던 국민을 다시 만나 사연과 의견을 경청하려 했다고 덧붙였습니다.이날의 호프미팅은 시기상 적절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받았습니다. 같은 시각 연세대 대강당에서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의 추도식이 열리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소셜미디어(SNS)에는 “최소한의 예의라는 게 있는데, 타이밍과 정무적 판단 모두 미스였다”, “호프집은 좀 심했다. 5분 거리에 있는 빈소에나 한 번 들르셔야 하는 것 아닌가”, “쇼가 이제 우스워 보이기 시작한다”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이런 반박도 있었습니다. “대통령이 서민, 상인, 노동자의 생생한 얘기를 직접 듣는 자리, 생전의 노회찬 의원이 보고 싶어하던 자리였다. 나는 확신한다. 노 의원이 하늘에서 지켜보고 있었다면 문 대통령이 서민들과 마주 앉아 그들의 고충과 애환을 듣던 그 장면을 훨씬 더 기쁘게 여겼을 거라고…” 정치인의 민생행보가 ‘쇼’인지 ‘진심’인지는 목적과 결과를 헤아려야 구분할 수 있습니다. 박 시장과 문 대통령은 표를 얻어야 할 선거 후보는 아닙니다. 주어진 환경과 조건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더 잘 살게 만들겠다고 합니다. 그들이 ‘쇼’를 감행한 목적입니다. 이제 결과를 기다려야 합니다. 옥탑방 한달살이가 가난한 동네 사람들의 땀을 식혀줄지, 광화문 호프미팅이 실효성 있는 경제정책으로 이어질지 날카롭게 지켜보고 판단해도 늦지 않습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거리에서 노회찬의 마지막 길을 함께 한 국회 청소노동자들

    거리에서 노회찬의 마지막 길을 함께 한 국회 청소노동자들

    지난 27일 고 노회찬 국회의원의 국회장 영결식이 엄수됐다. 영결식에는 시민들과 동료 의원, 각계 인사 등 2000여명이 모여 고인과 마지막 작별 의식을 치렀다. 그런데 이날 국회도서관 앞 도로변에서 19명의 노동자들이 땡볕에서 서 있었다. 국회 청소노동자들이었다. 이들은 국회의사당 정현관 앞으로 들어올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 민주노총(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국회 청소노동자들이 고인의 운구 행렬을 지켜보기 위해 국회 앞 도로변에 나와 있는 모습을 사진에 담아 페이스북에 공개했다. 국회 청소노동자들은 고인이 그들을 보듬었던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2016년 당시 국회사무처는 본청 내 공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휴게실과 노동조합 사무실을 비워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사무실과 휴게실을 내주면 청소노동자들이 쉴 공간이 없었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고인은 청소노동자들을 만나 “혹 일이 잘 안 되면, 저희 (정의당) 사무실을 같이 쓰자”고 말했다고 한다. 이후 다행히 국회의원회관 9층으로 휴게실과 사무실을 옮겼지만 청소노동자들은 고인의 한마디를 잊을 수 없었다.고인의 과거 ‘명연설’에 등장한 ‘6411번 버스’가 요즘 화제가 되고 있다. “6411번 버스는 매일 새벽 같은 시각, 같은 정류소에서 같은 사람이 탑니다. 누가 어느 정류소에서 타고 어디서 내릴지 모두가 알고 있는 매우 특이한 버스입니다. (중략) 이분들은 이름이 있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습니다다. 그냥 아주머니, 청소하는 미화원일 뿐입니다. (중략) 한 달에 85만원 받는 이분들은 투명인간입다. 존재하되 우리가 존재를 느끼지 못하고 함께 살아가는 분들입니다.” 지하철이 다니지 않는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나 첫 버스를 타고 서울 구로구 구로동에서 강남으로 가는 청소노동자의 삶을 보듬어 줘야 한다는 호소였다. 그 호소가 국회 청소노동자들에게도 전해진 것이다. 민주노총은 “고인이 생전에 함께 해왔고 일구고자했던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바로 세우고, 진보정치의 승리를 만들겠다는 약속을 고인의 영전에 드립니다”라면서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애통한 죽음에 다시 한 번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평안히 영면하소서”라고 애도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노회찬이 국회에서 남긴 말 그리고 꿈…“촛불 이전의 낡은 정치를 반복하지 말자”

    노회찬이 국회에서 남긴 말 그리고 꿈…“촛불 이전의 낡은 정치를 반복하지 말자”

    노회찬 의원의 영결식이 지난 27일 국회 본청 앞에서 국회장으로 엄수됐다. 노 의원이 국회에서 활동한 기간은 2004~2008년 17대, 2012~2013년 19대, 2016~2018년 20대까지 6년여에 불과하지만 그가 국회에서 수립한 정책과 수행한 발언들은 반향이 컸다. 특히 그는 국회 본회의에서 모든 국회의원을 상대로 때로는 냉철하고 논리적으로 때로는 따뜻하고 유머러스하게 노동자와 서민의 목소리를 전달했다. 17대에선 국보법 폐지에 앞장“국가보안법은 이미 사망. 냄새나는 시체를 치우는 일만 남아” 노 의원이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에 처음 당선돼 활동했던 17대 국회의 본회의에서는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로 언급했다. 당시는 노무현 정부와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국보법 폐지를 추진하고 야당인 한나라당이 강력 반발하면서 국회 내 이념 갈등이 심각했던 때다. 2004년 9월 10일 국회 본회의에서 노 의원은 “지난 시절 국가보안법이 지킨 것은 국가안보가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독재세력의 정권안보였다”며 “실로 국가안보를 위협하고 국민화합을 저해하는 것은 바로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수백억 원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망국적인 지역감정 조장, 그리고 날로 심각해지는 빈부격차가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이 나라의 안보는 우리 일하는 국민들이 지킨다. 그리고 이 나라의 안보는 우리 국민들의 화합과 단결이 지킬 수 있다”며 “많은 국민들의 불신을 받는 이 정치가 계속되는 한 이 나라의 안보 역시 위태롭다고 아니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열린우리당의 국보법 폐지안 기습 상정을 막기 위해 한나라당 의원들이 법제사법위 회의장을 점거하고 있었던 2004년 12월 8일 본회의에서 노 의원은 한나라당 의원을 향해 “이미 역사의 심판대에서 사망선고를 받은 국가보안법을 붙잡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노 의원은 “수명이 다한 당에 계신 분들, 이제 그만 역사의 뒷골목에서 배회하지 말라”면서 “국가보안법은 이미 사망했다. 냄새나는 시체를 치우는 일만 남았다. 왜 시체를 붙들고, 시체 옆에서 무엇을 하고 있나”며 촌철살인의 화법으로 쏘아붙였다. 노 의원 특유의 풍자는 본회의에서도 빛을 발했다. 2004년 11월 12일 “노무현 정부와 정책이 좌파 편향적”이라고 한나라당 의원들이 공세를 펼치며 여야 의원 간 고성이 오가던 때 노 의원은 ‘뼈있는 농담’을 던지며 분위기를 누그러뜨렸다. 노 의원은 “이제 좌파 정당 이런 얘기 좀 하지 말라. 좌파 정당 지금 조용하게 가만히 있다”라며 “그런데 왜 좌파 아닌 사람들끼리 그런 애기를 하나”라고 반문했다. 이어 “지금 짝퉁을 가지고 명품이라고 하면 허위사실 유포죄다. 그리고 짝퉁이면서 명품인 척하는 것도 사기죄”라며 “명품은 따로 지금 조용히 있다”라고 말해 회의장 내를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땐 촌철살인의 통렬한 비유 빛나 “박근혜식 국정을 중단해야”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고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왔던 2016년 말 노 의원은 국회 최전선에서 박근혜 정부와 맞섰다. 2016년 11월 11일 최순실 게이트 등 진상규명에 대한 긴급현안질문에서 노 의원은 황교안 당시 국무총리를 상대로 박근혜 정부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황 총리가 박 대통령의 하야, 거국내각 수립 등에 대해 “국정에 중단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답을 되풀이하자 노 의원은 “국정의 중단이 아니고 실질적으로 박근혜식 국정을 중단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이어 “20만 명이 광화문에 모여도 마이동풍이라는 것이다. 대통령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게 현재 대통령의 상태다”라고 덧붙였다. 노 의원은 최순실씨가 청와대와 내각 인사에 관여했다는 의혹에 대해 “최순실이가 제청해 가지고 결국에는 대통령이 임명한 것”이라며 “실질적 제청권을 행사한 사람은 대한민국에서 최순실씨 밖에 없다. 총리도 행사 못한 권한이다”라고 황 총리를 몰아붙였다. “대한민국에 실세 총리가 있었다면 최순실”이라는 노 의원의 말에 황 총리가 “속단할 일이 아니다”라고 답하자 노 의원은 “속단이 아니라 뒤늦게 저도 깨달았다. 지단(遲斷)이다”라며 통렬한 비유로 맞받아쳤다. 마지막까지 경제적·사회적 격차 해소와 정치개혁한반도 평화 실현 강조했던 노회찬 노 의원은 20대 국회의 정의당 원내대표로서 수행한 세 번의 비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경제적·사회적 격차 해소와 정치 개혁, 그리고 한반도 평화 실현을 거듭 강조했다. 그의 마지막 본회의 연설인 지난 2월 6일 비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는 국회가 자영업자·영세자영업자를 위한 대책을 수립하고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할 것을 촉구했다. 노 의원은 “바로 1년 전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촛불시민혁명의 현장에서 우리 국민들이 가장 많이 들고 있었던 손팻말은 ‘박근혜 퇴진’ 그리고 ‘이게 나라냐’ 두 가지”였다며 “그로부터 1년여의 시간이 지난 지금 ‘박근혜 퇴진’은 불가역의 현실로 실현됐다”고 말했다. 이어 “반면 ‘이게 나라냐’라는 물음 앞에 대한민국은 아직 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노 의원은 최저임금 인상과 더불어 중소기업·영세자영업자를 위한 대책을 국회가 조속히 수립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최저임금 인상을 회피하는 것으로 자영업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중소기업에 대한 대기업의 갑질에 단호한 태도를 보여 주었나? 영세 자영업자를 위한 상가 임대차보호법은 도대체 왜 아직도 국회 법사위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것인가? 건물주의 임대료 폭리에 대해서는 무슨 조치를 취했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최저임금 인상이나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을 넘어서는 종합적이고 장기적인 로드맵의 수립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노 의원은 “공정한 사회는 공정한 정치로부터 가능하다”며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도입을 제안했다. 그는 “2016년 총선에서 저희 정의당은 7.2%의 국민 지지를 받았으나 국회 의석수는 전체의 2%밖에 차지하지 못했다”며 “그러나 소선거구제의 수혜를 온몸으로 받는 거대정당들은 자신이 받은 지지보다 훨씬 많은 국회 의석을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의 지지가 국회 의석에 정확히 반영되는 선거제도, 즉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도입이야말로 공정한 정치를 만드는 시작”이라고 주장했다. 남한 내 전술핵 배치, 북한에 대한 선제 공격 등이 언급되며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던 당시 노 의원은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 반대 결의안’을 국회가 채택할 것을 요구했다. 그는 “예전과 같이 종북몰이나 색깔론, 핵을 운운하며 표를 계산할 때가 아니다”라며 “여야와 보수 진보 모두가 평화와 공존이라는 당연한 가치를 위해 힘을 합칠 때”라고 강조했다. 노 의원이 마지막으로 국회에 제안한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안 처리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등은 5개월이 지나고 그가 떠난 현재까지 실현되지 않고 있다. 4·27 남북정상회담과 6·12 북미정상회담으로 한반도 평화의 문이 열렸지만 국회는 여전히 판문점선언 지지 결의안조차 채택하지 못하고 있다. 노 의원은 연설 말미에 “기원전, 즉 B.C 역사가 되풀이될 수 없듯이 Before Candle, 즉 촛불 이전(B.C) 시절도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며 “촛불 이전의 낡은 정치를 반복하지 말자. 정치가 스스로 개혁할 때 비로소 나라도 나라답게 바로 설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고 호소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문소영의 시시콜콜] 영면하세요! 노회찬 의원

    [문소영의 시시콜콜] 영면하세요! 노회찬 의원

    일산에서 광화문으로 출근하는 길에 연세대 장례식장이 있다. 운전기사가 “운구하나 보다”고 하는 말이 들려 버스 커튼을 열어보니 취재진과 관광버스, 검은 장례식 차량 등이 잔뜩 몰려있다. 문상을 가려고 4일째 검은 옷을 입고 다니다가, 어제 저녁에서야 겨우 조문했다.오늘, 2018년 7월 27일은 고(故) 노회찬 정의당 의원의 발인날이다. 오늘 국회 본청 앞에서 국회장(葬)도 언론으로 생방송됐다. 30도가 넘는 폭염에도 자리를 지킨 동료 국회의원들과 시민 등 2000여 명이 고인과 마지막 작별인사를 했다. 조사에서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노회찬을 잃은 것은 (중략) 우리는 약자들의 삶을 바꿀 수 있는 민주주의의 가능성 하나를 상실했다”고 애도하는데, 눈물이 핑돈다. 2004년 총선에서 많은 사람들이 처음으로 도입된 정당투표를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에 했듯이, 나 역시 그러했다. 그 덕분에 민주노동당 비례대표가 8명이 대거 국회에 처음으로 입성했고, 비례대표 8번이던 노회찬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노 의원과는 개인적 인연은 없다. 2005년 국회 출입기자일때 점심 먹으러 간 평양냉면집 을밀대에서 반가워하며 “언제 만나자”는 식의 인사가 전부였다. 2011년인가 대한문 앞에서 심상정 의원과 노 의원은 쌍용차 노동자 복직관련해 단식투쟁했는데, 그때도 그냥 천막을 지나치면서 ‘열심히 하신다’며 혼자서 좋아하던 정도였다. 물론 그는 내가 아끼는 후배의 외삼촌이었다. 2013년부터 늘 그의 활동을 더 눈여겨 봤다.노회찬 의원은 좋은 평가를 받는 정치인이었다. 진보정치를 대중화한 촌철살인의 정치인일 뿐만 아니라, 강자에 맞서고, 사회적 약자와 진보를 가치를 지켜온 ‘진보정치의 아이콘’이었다. 기자는 기사로, 판사는 판결문으로 평가받는 것처럼, 국회의원은 입법으로 그 존재를 입증한다. 고인도 그러했다. 7년의 의정활동 기간에 1029건의 법안을 발의했다. 3선 의원이지만, 17대 4년하고 18대 낙선하고, 19대 ‘삼성X파일’ 폭로가 유죄가 돼 겨우 9개월, 20대 26개월에 불과했지만, 왕성한 의정활동이었다. 2005년 호주제 폐지법를 시작으로, 차별금지법, 대체복무법, 하도급거래 공정화 개정안,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안 등 여성과 장애인, 노동자 등 소수자를 위한 입법에 앞장 섰다.‘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정의당을 아껴달라’는 노회찬의 유언은 현실화하고 있다. 국회의원 6명에서 5명으로 줄어든 정의당의 지지율을 11%까지 끌어올렸다. 이는 제1야당으로 국회의원 114명(탈당계 제출의원 2명 포함)인 자유한국당의 지지율 11%와 똑같은 지지율이다. 추모 열기가 여전할 8월 첫째 주의 여론조사는 정의당이 한국당을 제치는 골든 크로스를 기록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노 의원의 비통한 죽음에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정의당 당원에 가입하고 정치 후원금도 내고 있다. 좋은 정치인이라고 생각했지만 후원할 생각을 못했다는 한탄과 함께 ‘지·못·미’(지키지 못해 미안합니다)의 마음을 행동하는 것이다. 6·13지방선거에서 나타난 조짐처럼 수구가 몰락하고 중도와 진보가 확대하는 정치지형이 예상보다 빠르게 전개될 수도 있겠다. 현역의원과 거대정당에 유리한 현행 정치자금법의 개선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노회찬도 지키지 못한 정치자금법’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금권정치와 부정부패를 가까스로 막아온 현 제도를 개악하는 일은 피해야 한다. 2004년 1억 5000억원에 묶어놓은 후원금 한도를 14년이 지난 만큼 물가상승분이라도 반영해 상향조정해야 한다. 원외 정치인이나 정치 신인들이 정치후원금을 받을 수 있는 기간을 현행 선거 120일 전에서 1년 안팎으로 확대해 선거에서 공정한 경쟁 구도를 만들어줄 필요도 있다. 또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정당에 배분하는 국고보조금을 교섭단체(의원 20명 이상)에 50%를 지급하고 남은 50%로 의원 수 등으로 나누는 방식은 개선되어야 한다. 대신 회계를 투명성을 강화해야 한다. ‘노회찬의 비극’을 보면서, 큰일과 작은 일을 나눠 사안별로 비판의 경중을 가리는 건설적인 비판 문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고인이 2016년 경기고 동창에게 받은 4000만원은 후원회를 통하지 않은만큼 불법정치자금이 분명하다. ‘드루킹 특검’에서 이를 거론했을 때 노 의원은 ‘안받았다’며 거짓말도 했다. 삼성이 검찰에 건넨 뇌물을 폭로한 ‘삼성X파일’로 의원직까지 상실해 청렴하고 도덕적인 정치인으로 평판이 높았던 노회찬이었다. 만약 노 의원이 고백하고 사과했다면 과연 국민은 그를 용서했을까. 아니었을 것이다. 오히려 비난여론이 태풍처럼 불어 그와 정의당을 초토화했을 것이다. 경중을 가리지 않고 몰아치는 정치비판 문화에서는 양심적인 정치인을 지키지 못하고, ‘방탄국회’나 일삼는 후안무치 형 정치인만 국회에 남기게 될 것이다. 수천만원 불법정치자금에 몸을 던지는 양심적인 정치인이 있는가 하면, 수천억원의 부정부패을 비난하는 여론에도 멀쩡하게 잘 살고 있는 염치없는 정치인이 공존하는 사회가 한국이다. 잘못의 수준에 맞춰 비판하고 당사자가 감당할 수 있는 방향으로 비판문화도 개선되길 희망한다.노회찬 의원! 영면하시길. 논설실장 symu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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