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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포토]세브란스병원 원하청 노동범죄 규탄 및 투쟁 선포 기자회견

    [서울포토]세브란스병원 원하청 노동범죄 규탄 및 투쟁 선포 기자회견

    18일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앞에서 ‘청소노동자 노조파괴‘세브란스병원 원하청 노동범죄 규탄 및 투쟁 선포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2021.5.18 오장환 기자 5zzang@seoul.co.kr
  • [데스크 시각] 300㎏ 쇳덩이가 드러낸 청년 산재의 현실/안동환 탐사기획부장

    [데스크 시각] 300㎏ 쇳덩이가 드러낸 청년 산재의 현실/안동환 탐사기획부장

    경기 평택항에서 일하는 이재훈(62)씨는 지난 4월 22일 아들 선호(23)씨가 돌아오지 않자 자전거를 타고 터미널 부두로 찾아 나섰다. 이씨는 수출입 화물 보관 창고 앞에 자는 듯 엎드려 있는 아들을 봤다. 그는 “이거 뭐고, 죽은 기가. 죽었나”라고 중얼거리다 까무라쳤다. 2019년 해군 병장으로 만기 제대한 선호씨는 지난해 1월부터 아버지의 일터인 평택항 하역장에서 동식물 검역 아르바이트를 했다. 선호씨는 이날 오후 4시 10분 개방형컨테이너(FRC) 바닥에 있던 나뭇조각들을 줍다 300㎏ 무게의 컨테이너 상판에 깔렸다. 참사 징후는 여럿 있었다. 2019년 평택항 노동자 2명이 산재로 숨졌다. 그해 확인된 지게차 사고만 4건이다. 소설가 김훈이 태안화력발전소 노동자 김용균의 죽음에 “동료가 죽은 자리에서 다시 일하다가 죽는다. 이것이 일터인가”라고 했던 탄식이 평택항의 현실이다. 선호씨의 사고 영상을 보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인다. FRC 해체와 같은 지게차 작업 시 필수적으로 배치해야 할 지휘자와 유도자 등 안전 관리 인력이 보이지 않고, 안전모를 쓴 작업자도 보이지 않는다. 사고 8일 전 시행한 검사에서 해당 컨테이너가 정상 판정을 받은 건 응당 봤어야 할 노후 불량을 눈감은 것 아닐까. 원청업체 동방과 중간 하청업체, 말단 하도급 업체에 이르기까지 정기적으로 안전 교육을 실시한 정황은 없다. 만연한 안전 불감증과 부실한 산재 예방 책임의 정점에는 국가기간시설인 평택항과 상급 기관들이 있다. 평택항의 감독 주체인 해양수산청은 상급 기관인 해양수산부에 컨테이너 상판이 바람에 접혀 선호씨를 쳤다고 허위 보고를 했다. 정의당 강은미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2016~2020년 연령별 산업재해 현황을 보면 만 30세 미만(18세 미만 포함) 재해자 수는 2016년 8668명에서 2018년 1만 181명, 지난해 1만 1109명으로 매년 늘어나고 있다. 10·20대 산재 사망자는 2016년 45명, 2017년 44명, 2018년 63명, 2019년 51명, 지난해 42명이었다. 청년 노동자들은 선호씨처럼 현장에 갑자기 투입된다. 작업의 위험성을 알 길이 없다. 청년 산재의 96%가 사고 재해인 건 노동 계급의 밑단인 청년 노동자들에 대한 실효적인 안전 교육과 예방 조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운다. 2016년 5월 28일 서울지하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 수리 중 열차에 치여 숨진 김모(당시 19세)군, 2017년 11월 19일 특성화고 현장 실습 중 프레스에 눌려 숨진 이민호(당시 18세)군, 2018년 12월 11일 발전소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김용균(당시 24세)씨가 언제 산재가 발생해도 이상하지 않을 잘못된 노동 환경의 희생자다. 아버지의 휴대폰에 저장된 선호씨 이름은 ‘삶의 희망’이었다. 투사가 된 가족에게 남은 희망은 선호씨와 같은 죽음이 다시 일어나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내년 1월 27일부터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은 책임(처벌)의 실효성을 높여 산재를 예방하는 게 방점이다. 원청·하청 공동책임 명기에 가려진 불명확한 안전 관리 주체부터 전체 산재의 50%가 발생하는 50명 미만 사업장에 대한 3년간 유예 조치, 3분의1을 점하는 5명 미만 사업장이 중대재해 보호 대상에서 빠진 건 중대한 사각지대를 방치한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이 보완해야 하는 대목이다. 장기적으론 사업주들이 안전과 관련된 예산 투입을 비용 지출이 아닌 투자로 여기도록 변화시키는 게 관건이다. 청년들의 산재 현실은 300㎏ 쇳덩이처럼 무겁고 열악하다. ipsofacto@seoul.co.kr
  • 하얼빈 日영사관 습격… 잊혀진 사회주의 계열 ‘백마 탄 여장군’

    하얼빈 日영사관 습격… 잊혀진 사회주의 계열 ‘백마 탄 여장군’

    경남 마산(창원시 마산합포구) 출신 여성 독립운동가 김명시의 흔적을 찾기는 어려웠다. 생가가 있던 곳은 문화광장으로 바뀌었고 시민단체가 중심이 돼 시민들이 묘소를 찾고자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언니와 여동생의 후손들이 경기 이천과 경북 상주에 살고 있음이 최근 확인됐다. 김명시가 우리의 기억에 남아 있지 않고 독립운동가로 인정을 받지 못한 것은 사회주의 계열, 즉 좌익이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독립유공자 서훈을 수차례 거부했다. 친인척들은 숨어 지내다시피 했다. 취업과 해외여행에도 제약을 받았다고 한다.김명시는 일제강점기에 중국 공산당과 조선의용군에서 활약했고 광복 후에는 부녀운동에 앞장섰다. 마산에서 김명시를 기리는 사업을 시작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김명시의 생가에서 그가 다녔던 성호초등학교로 가는 오동동 골목길을 벽화로 단장한 것도 그 일환이다. 김명시와 관련해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이 정도밖에 없다.조용한 아침에 찾은 오동동 골목은 도심인데도 인적이 드물었다. 그라피티 작가가 그렸다는 벽화에서 김명시는 경찰복을 입고 진돗개를 붙들고 있어 엉뚱하고 생경하게 느껴졌다. ‘백마 탄 여장군’이라는 별명을 가진 김명시의 모습을 재현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벽화의 뜻이 백마 대신 경찰 오토바이를 타고 시민들을 지켜 준다는 것이라고 하니 그러려니 할 수밖에 없다. 생가가 있었다는 오동동 문화광장(실제로는 동성동)에는 표지판만이 한 모퉁이에 서 있었다. 시멘트와 보도블록으로 덮어 버린 광장에서 김명시가 나고 자란 곳임을 느낄 수는 없었다. 표지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백마 탄 여장군으로 불린 김명시는 중국 대륙에서 대일 항전에 참전해 총을 들고 싸운 독립운동가이며 혁명가이다.” ●오빠·남동생도 좌익 항일투사로 옥살이 김명시는 1907년 창원시 마산합포구 동성동 189번지에서 다섯 남매의 셋째로 태어났다. 아버지 김봉권은 일찍이 사망했고 어머니 김인석이 자식들을 키웠다. 어머니는 생선 장사를 했지만, 마산 3·1 만세운동에 앞장서다 붙잡혀 고문을 당할 정도로 민족의식이 강했다. 오빠 김형선과 남동생 김형윤도 사회주의 계열 항일투사로 모두 옥살이를 했다. 김형선은 1924년 마산 지역에 공산당 지부를 세웠고, 김형윤은 1930년대에 부산과 진해에서 적색노동조합운동을 이끌었다. 1924년 3월 김명시는 마산공립보통학교(현 성호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더 큰 세상에서 견문을 넓히고자 서울로 갔다. 배화고등보통여학교에 입학했지만 학비가 없어 중퇴할 수밖에 없었다. 김명시를 사회주의의 길로 이끈 건 오빠 김형선이었다. 조선공산당이 결성되기 한 해 전 마산에서 공산당을 조직한 김형선은 사회주의 혁명가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인물이었다. 김명시는 이듬해 7월 김형선이 활동하던 고려공산청년회(고려공청)에 들어가 마산 제1야체이카(사회주의의 세포 조직)에 배속됐다. 더 공부할 기회가 찾아왔다. 고려공청의 모스크바 유학생으로 뽑힌 것이다. 그해 10월 모스크바 동방노력자공산대학에 입학했다. 코민테른(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이 공산주의 지도자를 양성할 목적으로 설립한 교육기관이었다. 유학 동기생은 모두 21명이었는데 조봉암의 부인인 김조이, 조봉암의 동생 조용암, 조선공산당 여성 트로이카 중의 1명인 고명자가 있었다. ● 친인척들 숨어 지내고 취업·해외여행 제약 1927년 6월 김명시는 공산대학을 중퇴하고 중국 상하이로 갔다. 중국공산청년단 상하이한인지부 결성이라는 지령을 받았기 때문이다. 상하이 거리는 장제스의 쿠데타로 공산주의자들의 시체가 즐비했다.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김명시는 조봉암과 홍남표를 도우며 지부를 만들었다. 김명시는 항일투쟁도 병행했다. 1928년 6월 각국 식민지 민족과 중국인 운동가 300여명과 피압박민족반제동맹을 조직했다. 이듬해 10월에는 홍남표와 만주의 길림성 아성현으로 가서 한인 당원들을 중국공산당에 가입시켰다. 반일동맹을 조직하고 기관지 ‘반일전선’을 제작하는 것도 김명시의 몫이었다. ●일제 만주 침략하자 한인반제동맹 조직 1930년 5월 30일 밤 12시. 김명시가 이끄는 300여명의 한인 무장대가 하얼빈 일본영사관과 경찰서 등을 습격했다. 독립운동가 탄압으로 악명이 높았던 영사관이었다. 김명시는 일제의 추적을 뿌리치고 홍남표와 함께 천신만고 끝에 흑룡강을 넘고 치치하얼과 톈진을 거쳐 상하이로 귀환, 활동을 이어 갔다. 1931년 9월 일제가 만주를 침략하자 한인반제동맹을 조직하기도 했다. 무대는 국내로 옮겨졌다. 국내 노동 현장 잠입 지시가 떨어진 것이다. 김명시는 1932년 3월 중국공산당 본부의 지령을 받아 여성 노동자 조직 결성을 위해 인천으로 숨어들었다. 전단을 비밀리에 배포하고 여성노동자들을 교육했다. 그러나 몇 달 후 일제의 감시망에 걸려들고 말았다. 고명자에게서 40원을 얻어 밤낮을 걸어 신의주로 탈출했지만 그곳에서 체포됐다. 동지의 배신 때문이었다.김명시는 조선공산당 재건 사건 주모자로 혹독한 심문을 받은 뒤 기소돼 미결 기간까지 합쳐 7년의 옥살이를 한 뒤 1939년 출옥했다. 스물다섯에서 서른두 살까지 꽃다운 나이를 옥중에서 보냈다. 조선공산당 재건 총책이었던 오빠 김형선은 1933년 7월 서울 영등포에서 체포돼 징역 8년을 선고받아 광복이 돼서야 감옥에서 나올 수 있었다. 출옥 후에도 일제의 사상범 감시는 엄중했다. 이를 뚫고 김명시는 수만 리 길을 헤쳐 김원봉의 조선의용대 화북지대를 찾았다. 부녀복무대의 지휘관으로 일본군을 상대로 선전활동을 펼치고 톈진과 베이징 등 일본 점령 지구에 파견돼 항일투쟁을 벌였다. 이때 김명시는 ‘백마 탄 여장군’으로 불렸다. 진짜 백마를 탔다기보다는 김명시를 흠모했던 사람들이 붙여 준 별명이었을 것이다. 어느 신문은 김명시를 ‘조선의 잔다르크’라고 추켜세우기도 했다. ●광복 후 무정과 종로 거리 개선행렬 광복이 되자 김명시는 북으로 가지 않고 오빠 김형선과 박헌영, 홍남표 등 ‘화요계’가 활동하고 있는 서울로 왔다. 조선의용군 총사령 무정과 함께 1945년 11월 조선국군준비대 전국대표자대회에 참석하며 이름을 알렸다. 종로 거리 개선 행렬에서 김명시가 무정의 뒤를 따라 말을 타고 지나갈 때 시민들이 “김명시 장군 만세”라고 외쳤다고 한다. 1946년 11월 21일자 독립신보에 실린 김명시 인터뷰 기사 서두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크지 않은 키, 검은 얼굴, 야무지고 끝을 매섭게 맺는 말씨, 항시 무엇을 주시하는 눈매, 온몸이 혁명에 젖고 혁명 그것인 듯 대담해 보였다.”김명시의 국내 활동도 활발했다. 12월 22일 개최된 조선부녀총동맹 결성대회에 참가하고 조선부녀총동맹의 선전부 위원으로 선출됐다. 1947년 6월 전라도에서 발생한 우익테러사건과 관련해 민주주의민족전선의 조사단원 일원으로 활동했고 민주여성동맹 대표로 미군정청을 방문, 미군정 사령관 하지 중장에게 반탁시위 항의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김명시는 1949년 9월 16일 서울 경찰에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됐다. 이후 한 달도 안 된 10월 11일자 신문에 ‘북로당 정치위원 김명시, 부평서 유치장서 자살’이란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10월 10일 오전 5시 50분쯤 자기의 겉저고리를 찢어 유치장 안에 있는 약 3척 높이의 수도관에 목을 매고 죽었다”는 게 당국의 발표였다. 하지만 고문치사인지 자살인지, 사인을 확인할 만한 자료는 발견되지 않았다. 나이는 겨우 42살이었다. 외롭고도 비극적인 최후였다. 오빠 김형선은 건국준비위원회 교통부 위원, 남로당 중앙감찰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아 활동했고 1950년 9월 북으로 올라가다 미군 폭격으로 사망했다. 글 사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산재 많은 현대중공업 본사·현장 동시 특별감독

    산재 많은 현대중공업 본사·현장 동시 특별감독

    올해 들어 벌써 2건이나 노동자 사망사고가 발생한 현대중공업이 정부로부터 특별감독을 받는다. 현장뿐만 아니라 본사까지 점검을 받는 것은 제조업에서는 이번이 첫 사례다. 고용노동부는 17~28일 현대중공업을 대상으로 중대재해 원인 규명과 사고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감독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특별감독은 부산지방고용노동청이 주관하며, 산업안전감독관과 안전보건공단 전문가 등 46명이 본사와 현장 전반의 안전관리 실태를 점검한다. 현대중공업에서는 지난 2월 작업 중이던 노동자가 철판에 부딪혀 숨진 데 이어 이달 8일 원유운반선 용접 작업을 하던 노동자가 추락사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최근 5년간 현대중공업에서 발생한 중대재해가 20건에 이른다. 이번 감독은 내년 1월부터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과도 연계돼 있다. 중대재해법은 중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경영책임자가 안전보건관리 의무를 위반했는지 따지고, 위반이 확인되면 처벌할 수 있도록 한 법이다. 노동부는 이번 점검에서 대표이사와 경영진의 안전보건관리 인식, 안전관리 목표, 인력·조직, 예산 집행체계, 위험요인 관리체계, 종사자 의견 수렴, 협력업체의 안전보건관리 역량 등 6가지를 살피기로 했다. 6가지 핵심 점검 사항은 향후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할 때 경영책임자의 의무 이행 여부를 따지는 기준이 될 전망이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노동법, 일하는 사람 포괄해 개정… 플랫폼 종사자도 법으로 보호해야”

    “노동법, 일하는 사람 포괄해 개정… 플랫폼 종사자도 법으로 보호해야”

    배달앱 기사와 같은 ‘플랫폼 종사자’도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현행 노동법을 ‘일하는 모든 사람’을 포괄하는 방향으로 개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분출하고 있다. 17일 고용노동부가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주최한 ‘플랫폼 전문가 간담회’에서 권오성 성신여대 법과대학 교수는 기조발제에서 “노동법 적용을 받는 전통적인 근로자, 타인을 위해 노무를 제공하면서도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일하는 사람 간의 격차를 줄이려면 고용상 지위나 계약의 형태와 무관하게 일정한 노동법적 보호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플랫폼 종사자’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과 같은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계약을 맺고 일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배달, 대리운전 등 갈수록 그 수가 늘면서 현재 플랫폼 종사자는 179만명에 이른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아 권익을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종속 관계가 명확치 않은 플랫폼 종사자의 특성상 이들을 노동자로 봐야 할지, 개인사업자로 봐야 할지 현재로선 명확한 구분이 어렵기 때문이다. 권 교수는 “플랫폼 종사자를 사업자로 보고 이들에 대한 법적 보호를 경제법의 영역에 맡겨 두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경제법은 자유로운 경쟁이나 거래의 공정성 보장을 목적으로 하는 법으로, 플랫폼 종사자의 경제적 지위 개선이나 사회적 위험으로부터의 보호는 경제법의 직접적인 관심사가 아니다”고 덧붙였다. 근로기준법 등 노동관계법은 사용주와 종속 관계에 있는 노동자에게 적용되기 때문에 플랫폼 종사자들은 노동법, 경제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제3지대에 놓여 있는 실정이다. 권 교수는 “종래 노동법이 다양한 기준으로 노동자를 분절하고 일부를 배제해 온 것과는 반대로, 모든 일하는 사람을 하나의 범주로 통합하고 포괄하는 방향의 (일반법 성격의) 노동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사용자에게 의무를 부과하는 노동법의 전통적인 문법으로 법률을 설계하면, 그러한 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를 누구로 볼 것인가라는 문제에 다시 봉착하게 될 것”이라며 “사용자의 의무 체계가 아니라 ‘일하는 사람’의 권리 체계로 법률 내용을 설계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영국 대법원은 우버 기사를, 프랑스와 스페인은 배달 기사를 개인사업자가 아닌 노동자로 인정하는 등 유럽에선 플랫폼 종사자의 노동자 성격을 인정하는 판결이 속속 나오고 있다. 최근 국회에도 기본적 노무제공 여건 보호에 관한 사항을 담은 ‘플랫폼 종사자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 등이 제출됐다. 박화진 고용부 차관은 “(플랫폼 종사자에 대한) 법·제도적 보호를 미룰 수 없다”며 “조속히 보호입법이 이뤄지도록 국회와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건강친화기업 인증제’ 시범사업 참여 기업 모집

    보건복지부와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은 오는 20일부터 다음달 4일까지 ‘2021년 건강친화기업 인증제 시범사업’에 참여할 민간 기업을 모집한다고 17일 밝혔다. 건강친화기업 인증제는 건강 친화적인 일터를 만들고, 노동자가 적극적으로 건강 관리에 힘쓸 수 있도록 지원하는 기업에 인증을 부여하는 제도다. 주요 심사 지표는 경영진의 의지나 직원 관리 등을 평가하는 ‘건강친화경영’, 노동시간과 휴가 제도를 포함한 ‘건강친화제도’, 기업이 운용하는 건강증진 프로그램 등을 평가하는 ‘건강친화활동’ 등이다. 복지부는 내년 본사업 시행에 앞서 올해 시범사업을 통해 인증 체계를 점검할 계획이다. 대기업과 중견·중소기업 등 10∼15곳을 시범사업 대상으로 최종 선정하며, 모집 기간에 건강친화기업 인증제에 관심이 있는 기업·학계·국민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명회도 진행한다. 이번 시범사업에 선정된 기업은 이후 본사업 시행 시 가산점을 부여할 수 있으며, 우수 사례로 뽑힐 경우 장관 표창 등도 수여한다. 참여를 원하는 기업은 건강친화기업 인증 누리집(www.건강친화기업인증.kr) 또는 한국건강증진개발원 누리집에서 신청서를 받아 제출하면 된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콜센터도 재택근무하라는데… 현실에선 ‘그림의 떡’

    정부가 코로나19 집단감염 취약 업종인 콜센터에 특화해 예방지침을 내놨지만 오히려 콜센터 노동자들의 노동환경만 악화시켰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지난 1월부터 4월까지 은행, 카드, 항공사, 공단, 케이블방송, 보험, 배달앱 등에서 일하는 콜센터 상담사 13명에 대한 심층 면접조사 결과를 17일 발표했다. 지난해 3월 서울 구로구 에이스손해보험 콜센터에서 166명의 상담사가 코로나19에 집단 감염된 이후 고용노동부는 세 차례에 걸처 ‘코로나19 콜센터 예방지침’을 내놨다. 재택근무와 휴가를 권장하고 물리적인 거리두기를 준수하라는 내용이다. 그러나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재택근무를 시행한 콜센터 사업장은 3곳에 그쳤다. 콜센터 집단감염 사례도 계속 발생해 지난달 6일까지 23건 총 636명의 노동자가 코로나19에 감염됐다. 노동자들은 정부의 방역지침이 노동현장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고객의 개인정보를 회사 내부 서버에서만 관리하는 콜센터 특성상 재택근무가 쉽지 않고 하청업체 콜센터 상담사들은 재택근무에서 제외되는 사례가 많았다. 한 노동자는 “재택근무를 하더라도 근태 확인을 위해 수시로 사진을 찍어 올리라는 부당한 요구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재택근무 시행 이후 업무량이 더 과중해져 하루 10시간 이상 일하다 허리디스크로 병원에 입원한 노동자도 있다고 단체는 밝혔다. 직장갑질119는 “정부가 불시에 방역 점검을 나오는 등 사업장 관리를 강화하고, 안전보건에 대한 원청의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면서 “노동자에게는 정보요구권, 업무형태조정권, 휴식청구권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최영권 기자 story@seoul.co.kr
  • 美·EU “무역교란 지지국 中에 책임 물을 것”

    미국과 유럽연합(EU)이 17일 공동성명을 내고 “중국처럼 무역 왜곡 정책을 지지하는 국가들에 책임을 지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 미국의 유럽산 철강·알루미늄에 대한 관세 부과로부터 시작된 양자 간 무역분쟁 해소에 착수했다. 동시에 철강과 알루미늄 초과 생산 문제를 해결하는 논의를 시작한다. 철강과 알루미늄 초과 생산 문제 논의는 명백히 중국을 겨냥한 것으로, 양자 간 갈등을 해소하고 대중국 대응에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셈이다. 미국과 EU는 그 의지를 성명에 담았다. “미국과 EU 회원국들은 동맹이자 파트너인 시장경제 민주국가로서 국가안보 측면에서 유사한 이해관계를 공유하며 중국과 같이 무역교란(trade-distorting) 정책을 지지하는 국가에 책임을 묻는 데 협력할 수 있다고 합의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대부분 제삼자가 일으킨 전 세계적 철강과 알루미늄 초과생산에 산업계가 받은 영향을 인정한다. 이러한 왜곡이 미국과 EU의 관련 산업계와 노동자들에게 심각한 위협을 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번 합의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첫 외국 방문 일정으로 다음달 중순 유럽을 방문하는 일정을 앞두고 이뤄진 것이다. 워싱턴 이경주 특파원 kdlrudwn@seoul.co.kr
  • “광주처럼, 미얀마는 언제 죽음의땅 벗어날까요”

    “광주처럼, 미얀마는 언제 죽음의땅 벗어날까요”

    군인의 총부리가 시민들을 향했다. 전남 나주·화순·담양·장성 사람들이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에 맞서려고 광주에 모인다. 1980년이 아닌 2021년 오늘의 이야기다. 저마다의 이유로 한국에 머무는 미얀마인들은 매주 토요일 저녁이면 종합터미널이 있는 광주 서구 유스퀘어 광장에서 촛불을 켠다. 본국 미얀마에서 군부의 탄압에 신음하는 친구와 가족들에게 보탬이 되기 위해서다. 촛불 시위의 물꼬를 튼 것은 묘네자(38)다. 2006년 취업을 위해 한국에 왔다가 한국인과 결혼해 광주에 정착한 그는 미얀마에서 쿠데타가 일어난 지난 2월 초부터 홀로 피켓을 들고 1인 시위에 나섰다. 묘네자의 소식이 인근 공장과 농장에서 일하는 미얀마 노동자들과 유학생들에게 전해지면서 300여명이 모였고 ‘광주미얀마네트워크’가 결성됐다. 이제 매주 50명이 넘는 미얀마인이 촛불을 들고 광장을 지킨다. 5·18민주화운동을 겪은 광주 시민들의 지지는 이들에게 큰 용기를 줬다. 전남대에서 공부 중인 미얀마 유학생 A(26)는 “다른 외국인 친구들은 미얀마 상황의 심각성을 얘기해도 실감이 잘 안 난다고 하는데, 비슷한 경험이 있는 광주 사람들은 깊이 공감하고 도울 방법이 없느냐고 묻는다”면서 “고등학교 시설 선생님의 아들은 군인이 쏜 총에 맞아 숨졌고, 친구의 가족들도 체포됐다. 고국으로 돌아가면 체포될까 두렵지만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광주미얀마네트워크 대표인 묘네자는 국립 5·18민주묘지를 찾아 참배하고 5·18 관련 도서를 읽었다. 그는 “41년 전 광주 시민들이 그랬듯 미얀마 시민들이 함께 음료수와 라면 등 먹을거리를 나누며 투쟁하고 있다”면서 “한국에서 미얀마 노동자들의 비자 연장이 수월해졌고 유학생들의 학비도 지원해 주고 있어 정말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군부의 무력 진압이 거세지고 시위가 장기화하면서 미얀마 시민들은 지쳐 가고 있다. 묘네자는 “5·18 진압 작전 때 시민을 총으로 쏴 숨지게 한 공수부대원이 지난 3월 유족에게 무릎 꿇고 사죄하고 화해의 포옹을 하는 모습을 봤다”면서 “미얀마에선 41년이 지나도 이런 모습을 보기 어려울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이어 그는 “포스코 등 외국 기업과 중국이 미얀마 군부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끊는다면 미얀마인들을 하루빨리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더에에자(57)는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언젠가 광주처럼 죽음의 땅을 벗어나 민주화가 올 것”이라고 오늘도 되뇐다. 군부가 은행을 장악해 돈줄이 끊겼지만 여전히 투쟁 중인 현지 친구들을 돕기 위해 십시일반으로 모은 돈을 태국 등 국경을 거쳐 송금한다. 더에에자는 “88년만 해도 지금처럼 군부가 민간인의 집을 습격해 영아를 데려가는 일은 없었다”면서 “지금의 상황이 훨씬 어렵지만 젊은 미얀마 세대는 강하고 슬기롭다. 광주가 이겨 냈듯 그들이 우리의 미래이자 희망”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광주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 이스타항공 다시 난다… ‘555억원 횡령’ 창업주 이상직은 법 심판대

    이스타항공 다시 난다… ‘555억원 횡령’ 창업주 이상직은 법 심판대

    기업회생 절차를 밟고 있는 이스타항공이 매각 공고를 내고 재운항 준비에 나섰다. 이스타항공 창업주 이상직 무소속(전북 전주을) 의원은 회삿돈 총 555억원을 횡령·배임한 혐의로 법의 심판을 앞두고 있다. 이스타항공은 “이달 31일까지 공개경쟁 방식의 입찰을 진행해 예비 인수자의 인수 의향서를 받을 예정”이라고 17일 밝혔다. 앞서 이스타항공은 지난 14일 한 중견기업과 인수합병을 위한 조건부 투자 계약을 체결했다. 이처럼 인수 예정자가 있는 상태에서 공개 매각을 진행하는 것을 업계에서는 ‘스토킹 호스’(Stalking Horse)라 부른다. 공개 입찰이 무산되면 기존 인수 예정자에게 매수권을 주는 방식이다. 인수 예정자는 새로운 입찰자보다 더 유리한 인수내용으로 우선 청약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게 되며, 새로운 입찰자가 인수 예정자의 계약보다 낮은 조건을 제시하면 기존 인수계약이 자동으로 확정된다. 이스타항공과 조건부 투자 계약을 체결한 곳은 전략적 투자자(SI)나 컨소시엄이 아닌 중견기업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스타항공은 인수의향서를 제출한 예비 입찰자를 대상으로 다음달 1일부터 7일까지 예비 실사를 진행한다. 이어 같은 달 14일까지 입찰 서류를 접수해 최종 인수자를 확정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이스타항공은 서울회생법원에 이달 20일까지로 정해진 회생계획안 제출기한을 연장해달라고 요청할 예정이다. 아울러 매각 공고와 함께 국토교통부 항공운항증명(AOC) 재발급 등의 운항 준비에도 나선다. 이스타항공은 이상직 의원이 2007년 10월 설립한 저비용항공사(LCC)로, 심각한 경영난을 겪으면서 제주항공에 매각을 추진했으나 노동자 임금체불 문제 등으로 무산됐고, 올해 2월 기업회생절차에 돌입했다. 이스타항공 조종사 노조는 이 의원이 회삿돈을 빼돌렸다고 검찰에 고발했고, 전주지검은 지난 14일 이 의원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횡령, 업무상 횡령, 정당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검찰은 이 의원이 자녀가 대주주로 있는 계열사에 이스타항공 주식을 저가에 팔고, 가족을 이스타항공 계열사 직원으로 허위 등재해 급여를 빼돌리는 방식으로 회사에 재산상 손해를 끼쳤다고 보고 있다. 이영준 기자 the@seoul.co.kr
  • “미얀마엔 언제쯤 광주처럼 민주화 올까요”

    “미얀마엔 언제쯤 광주처럼 민주화 올까요”

    미얀마가 광주에게 군인의 총부리가 시민들을 향했다. 전남 나주·화순·담양·장성 사람들이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에 맞서려고 광주에 모인다. 1980년이 아닌 2021년 오늘의 이야기다. 저마다의 이유로 한국에 머무는 미얀마인들은 매주 토요일 저녁이면 종합터미널이 있는 광주 서구 유스퀘어 광장에서 촛불을 켠다. 본국 미얀마에서 군부의 탄압에 신음하는 친구와 가족들에게 보탬이 되기 위해서다. 촛불 시위의 물꼬를 튼 것은 묘네자(38)다. 지난 2006년 취업을 위해 한국에 왔다가 한국인과 결혼해 광주에 정착한 그는 미얀마에서 쿠데타가 일어난 지난 2월 초부터 홀로 피켓을 들고 1인 시위에 나섰다. 묘네자의 소식이 공장과 농장에서 일하는 미얀마 노동자들과 유학생들에게 전해지면서 300여명이 모였고 ‘광주미얀마네트워크’가 결성됐다. 매주 적어도 50명이 넘는 미얀마인이 국민통합정부(NUG)를 지지하는 팻말과 촛불을 들고 광장을 지킨다. 그렇게 3300㎞ 떨어진 미얀마에서 군부가 저항하는 시민들을 학살하는 장면은 모두의 마음속에 41년 전 5월 광주의 풍경을 소환 중이다. 5·18민주화운동을 겪은 광주 시민들의 지지는 이들에게 큰 용기를 줬다. 전남대에서 공부 중인 양곤 출신 미얀마 유학생 A(26)는 “다른 외국인 친구들은 미얀마 상황의 심각성을 얘기하면 실감이 잘 안 난다고 하는데, 비슷한 경험이 있는 광주 사람들은 깊이 공감하고 도울 방법이 없느냐고 묻는다”면서 “고등학교 시절 선생님의 아들은 얼마 전 군인이 쏜 총에 맞아 숨졌고, 친구의 가족들은 체포됐다. 나도 고국으로 돌아가면 체포될까 두렵지만 자유를 위해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광주미얀마네트워크 대표인 묘네자는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아 참배하고 5·18 관련 도서를 읽었다. 그는 “광주 시민들이 연대의 의미로 주먹밥을 나눴듯 미얀마에서도 경제활동이 어려워진 시민들이 함께 버티기 위해 음료수와 라면 등 먹을거리를 나누고 있다”면서 “한국에서 미얀마 노동자들의 비자 연장이 수월해졌고, 유학생들의 학비도 지원해 주고 있어 정말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군부의 무력 진압이 거세지고 시위가 장기화하면서 미얀마 시민들은 지쳐 가고 있다. 묘네자는 “5·18 진압 작전 때 시민을 총으로 쏴 숨지게 한 공수부대원이 지난 3월 유족에게 무릎 꿇고 사죄하고 화해의 포옹을 하는 모습을 봤다”면서 “미얀마에선 41년이 지나도 이런 모습을 보기 어려울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이어 그는 “포스코 등 외국 기업과 중국이 미얀마 군부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끊는다면 미얀마인들을 하루빨리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더에에자(57)는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언젠가 광주처럼 민주화가 올 것”이라고 오늘도 되뇐다. 양곤대학교에 다니던 그와 함께 8888항쟁(1988년 8월 8일)에 참여했던 친구들은 교수와 교사가 됐고, 지금은 시민불복종 운동에 동참해 도피생활 중이다. 군부가 은행을 장악해 돈줄이 끊긴 친구들을 돕기 위해 촛불시위에 참여하는 미얀마인들은 십시일반으로 모은 돈을 태국 등 국경을 거쳐 송금한다. 더에에자는 “88년만 해도 지금처럼 군부가 민간인의 집을 습격해 영아를 데려가는 일은 없었다”면서 “지금의 상황이 훨씬 어렵지만 젊은 미얀마 세대는 강하고 슬기롭다. 광주가 이겨냈듯 그들이 우리의 미래이자 희망”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광주가 미얀마에게…“같이 싸우고픈 마음 담은 주먹밥 보냅니다”1980년 5·18민주화운동 이후 광주 사람들에게 주먹밥은 ‘연대와 나눔의 상징’이 됐다. 5·18 41돌인 올해는 군부에 맞서 민주화 투쟁에 나선 미얀마인들을 위한 주먹밥이 빚어졌다.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와 오월어머니회 등 오월단체는 광주 시민들과 함께 재한 미얀마인들에게 연대의 뜻을 담아 주먹밥을 보냈다. 17일 서울신문와 인터뷰한 박행순(71)씨는 지난 2일 광주 서구 유스퀘어 광장에서 열린 미얀마 군부 규탄 집회에 참석해 미얀마인들에게 따뜻한 주먹밥을 건넸다. 그는 1980년 전남대 총학생회장이던 고 박관현 열사의 셋째 누나다. 옥중 고문을 견디며 단식투쟁을 하던 동생이 1982년 숨지자 비슷한 아픔을 가진 어머니들과 함께 거리로 나섰던 그는 2014년 미얀마를 찾기도 했다. 그 곳에서 미얀마 민주화운동 역사에 기록된 1988년 8월 8일 ‘8888항쟁’ 유가족들을 부둥켜안고 함께 울었다. 박씨는 최근의 미얀마 상황에 “남 일 같지 않아 마음이 아리다”고 말했다. 그는 “자식을 잃은 미얀마 어머니들은 마냥 슬퍼하지 않았다. 아이들 사진을 어루만지며 ‘너를 대신해 민주화를 이루겠다’고 다짐하던 강인한 여성들이었다”면서 “광주 어머니들이 전두환의 사과를 촉구하고 정부에 진상 규명을 요구했던 모습과 꼭 닮았다고 느꼈는데, 또 쿠데타가 일어나 아까운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박씨를 비롯한 오월어머니회 회원들은 미얀마 시민에 연대하는 성명을 내고, 쌈짓돈을 모아 100만원을 광주 미얀마인들이 모인 ‘광주 미얀마 네트워크’에 기부했다. 광주 시민들의 지지와 응원은 5·18기념재단 등 광주 시민단체들이 모인 미얀마 광주연대 발족으로 이어졌다. 이명자(71) 오월어머니회 관장은 “미얀마 민주화 운동이 석달째 이어지고 있어 걱정이 크다”면서 “마음 같아서는 미얀마로 같이 가서 싸우고 싶다”고 전했다. 오월 단체들은 오는 23일 광주에서 회의를 여는 재한미얀마인들에게도 주먹밥 도시락을 전할 예정이다. 버스기사였던 남편을 계엄군의 무자비한 구타로 잃은 정성희(67)씨도 “미얀마 군인들이 시민을 폭행하는 장면을 보면 애기 아빠가 생각이 나서 가슴이 떨린다”면서 “주먹밥이라도 보내 그들의 아픈 마음을 위로하고 싶다”고 말했다.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는 이날 5·18민주광장에서 시민들에게 미얀마 민주화 운동을 알리는 주먹밥을 나눠주기도 했다. 부상자를 옮기다가 계엄군의 조준 사격을 복부에 맞은 뒤 기적처럼 살아난 김광호(61)씨도 소매를 걷어붙였다. 김씨는 “1980년 광주 경찰들은 시민들을 지키려고 노력하기도 했다”면서 “미얀마 군인들도 군인의 본분이 ‘나라와 국민을 지키는 것’이라는 점을 깨닫고 시민들을 위해 ‘불복종 운동’에 동참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위드 미얀마…“예술로 미얀마를 지지합니다”군홧발에 짓밟힌 채 피를 흘리는 청년, 쓰러진 사람을 품에 안고 군부에 맞서는 시민들…. 이처럼 1980년 5월의 광주와 2021년 5월의 미얀마가 공유하는 참상과 저항정신을 그려낸 전시와 공연이 광주에서 열린다. 광주 전남대에서 진행되는 ‘위드 미얀마’ 전시회가 그중 하나다. 미얀마 작가 20명을 포함해 국내 작가 43명, 영국·말레이시아·태국·베트남 등 해외 작가 7명을 포함해 73명의 작가가 작품 98점을 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노정숙(58) 작가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위에 합류한 오빠를 찾으러 집 밖으로 나섰다가 계엄군을 피해 골목으로 뛰어든 순간이 생생하다. 계엄군이 전남도청을 진압하기 전날 스피커에서 나오던 “죽어가고 있다. 살려 달라”는 어느 소녀의 외침은 고등학생이던 그에게 깊은 부채감을 남겼다. ‘상처 속에 핀 꽃-민주화’처럼 5·18을 주제로 작품 활동을 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미얀마 예술가들이 작품을 통해 민주화 운동을 기록한다는 소식을 접한 노 작가는 지난 3월부터 전시 준비를 시작했다. 그새 미얀마 군부의 탄압이 심해지면서 수배를 받거나 연락이 끊긴 작가도 생겼다. 한국의 작가들은 그들이 무사하기를 바라며 작품 전시에 매달렸다.작가들은 시민들의 연대와 예술의 힘이 총칼보다 강하다고 믿는다. 노 작가는 “한 미얀마 작가는 민주화 운동의 피가 다음 세대의 물방울로 바뀌는 작품으로 미래에 대한 희망과 굳센 의지를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고경일 작가는 고 이한열 열사와 세 손가락을 들고 있는 미얀마 시위자를 연결해 ‘한열이를 살려내라’를 ‘미얀마를 살려내라’로 재탄생시켰다. 주최 측은 미얀마를 응원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온라인 아카이브로 남길 계획이다. 올해 5·18 전야제도 미얀마에 대한 연대 메시지를 보냈다. 1부에는 광주가 아닌 도움이 절실한 미얀마의 이야기를 배치했고, 유튜브로 중계되는 공연에는 미얀마어 자막이 달린다. 총연출을 맡은 남유진(48) 감독은 “1980년 광주가 해외 교포나 외신 기자들의 도움으로 고립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다”면서 “미얀마 시민들이 외롭지 않도록 광주에서, 한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싸움을 응원하고 있음을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익명으로 이번 전시에 참여한 한 미얀마 작가는 노 작가를 통해 하고픈 말을 전해 왔다. “우리 작품들은 매우 어렵게 전시됐고, 우리는 안전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미래 세대를 위해 한국을 포함한 국제 사회가 계속 지지해 주기를 바랍니다.” 광주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 콜센터 상담사들, 지난해 3월 이후 23번 코로나19 집단 감염

    콜센터 상담사들, 지난해 3월 이후 23번 코로나19 집단 감염

    정부가 코로나19 집단감염 취약 업종인 콜센터에 특화해 예방지침을 내놨지만 오히려 콜센터 노동자들의 노동환경만 악화시켰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지난 1월부터 4월까지 은행, 카드, 항공사, 공단, 케이블방송, 보험, 배달어플 등에서 일하는 콜센터 상담사 13명에 대한 심층 면접조사 결과를 17일 발표했다. 지난해 3월 서울 구로구 에이스손해보험 산하 콜센터에서 166명이 집단 감염된 이후 고용노동부는 세 차례 ‘코로나19 콜센터 예방지침’을 발표했다. 그러나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2.5단계 방역이 이뤄지고 있는 시점에 재택근무를 시행한 사업장은 3곳에 불과했다. 그 결과 콜센터 코로나19 집단감염은 지난달 6일까지 23건, 총 636명에 이르렀다. 고객의 개인정보를 회사 내부 서버에서만 관리하는 콜센터 특성상 재택근무를 할 수 없었고, 원청에서 재택근무를 해도 하청업체 콜센터 상담사들은 제외하는 사례가 많았다. 재택근무를 하는 일부 콜센터는 근태 확인을 위해 수시로 사진을 찍어 올리라고 요구했다. 한 노동자는 재택근무 시행 이후 업무량이 더 과중해져 하루 10시간 이상 일하다 허리디스크로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감정노동 비중이 높은 상담사들은 코로나19로 불안감과 우울감도 많이 경험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회사가 확진자 숫자 등 코로나와 관련된 기본적인 정보조차 공유하지 않고, 악성 민원이 증가하며 감정노동의 난이도 역시 높아진 탓이다. 직장갑질119는 “정부가 불시에 방역 점검을 나오는 등 사업장 관리를 강화하고, 집단감염 발생을 중대재해로 규정하고 등 안전보건에 대한 원청의 책임 강화해야 한다”면서 “노동자에게는 정보요구권, 업무형태조정권, 휴식청구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영권 기자 story@seoul.co.kr
  • ‘큰 정부’ 외치는 바이든, 레이건 넘어 ‘복지여왕’까지 깰 수 있을까

    ‘큰 정부’ 외치는 바이든, 레이건 넘어 ‘복지여왕’까지 깰 수 있을까

    ‘바이든은 레이거니즘에 선전포고를 했다. 그는 복지여왕(Welfare Queen)과의 싸움에서도 이길까.’ 취임 뒤 넉달 동안 2조 5000억원 규모의 인프라 투자 정책을 발표하며 ‘큰 정부의 귀환’을 선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정책과 관련해 CNN의 조 블레이크 선임기자 16일(현지시간) 제기한 질문이다. 블레이크 선임기자는 “바이든의 복지 확대 정책이 의회를 통과하고, 여론의 지지를 얻기 위해선 ‘복지여왕 이야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총평했다. 복지여왕은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1976년 대선 유세에서 창조해낸 인물이다. 당시 레이건은 “죽은 남편 4명의 명의로 연금을 수령하고, 12개의 사회보장 카드를 갖고 있고, 80명의 가짜 이름으로 복지수당과 푸드 스탬프(식료품 지원)를 받는 흑인 여성이 있다”며 이 여성을 복지여왕이라고 칭했다. 무분별한 복지 확대 정책 때문에 일하기 보다 각종 복지혜택을 부정한 방법으로 수급하는 시도가 늘고 있다는 취지의 연설이었지만, 레이건이 말한 이 여성은 실존하지 않는 가공의 인물로 밝혀졌다. 시카고에서 각종 복지 혜택을 부정수급했다 적발된 흑인 여성 때문에 퍼진 이야기이긴 했지만, 4명의 남편이라거나 80명의 가짜이름 같은 대목은 레이건이 발명한 가짜 뉴스였다. 결국 복지여왕은 ‘도시괴담’ 급의 허무맹랑한 이야기였지만, 정부가 복지를 늘리면 복지여왕 같은 파렴치한 이들이 수혜를 입을 것이란 공포에 힘입어 이야기는 계속 퍼져 나갔다. 이후 공화당은 복지여왕을 예로 들며, 정부가 불가피한 복지정책만 펴며 자유시장을 장려해야 한다는 ‘작은정부론’을 설파했다. 공공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고 믿는 민주당 진영에서도 복지여왕이 등장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빈곤층에 현금성 복지를 제공하는 일을 꺼리는 자기검열이 이어졌다. 블레이크 선임기자는 “민주당 소속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임기 중 부정수급을 막기 위해 복지개혁법에 서명했고,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푸드 스탬프 대통령’이란 공화당의 비난에 굴복해 결국 사회보장 삭감을 시도했다”며 이들이 복지여왕 담론을 극복하지 못했다고 했다. 바이든 스스로도 상원의원 시절 “고급차를 타면서 정부 지원금을 받는 이가 있다”며 복지여왕의 등장을 경계한 바 있다. 그러나 코로나19는 복지여왕 이야기에서 벗어날 기회가 됐다고 블레이크 선임기자는 진단했다. 사람들에게 현금을 직접지원 하는 방식을 꺼려하던 공화당이지만, 코로나19 이후 재난지원금 지급에 반대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 복지여왕 극복 가능성을 시사한다는 것이다. 코로나19 봉쇄 중 배달인력을 비롯해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유색인종 필수 노동자들의 헌신이 부각된 점 역시 ‘가난한 이들은 게을러서 복지가 제공되면 일을 하지 않는다’는 편견을 깨는데 도움이 됐다고 블레이크 선임기자는 기대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중국서 ‘복제 타이타닉’ 만든다…숙박비는 35만원

    중국서 ‘복제 타이타닉’ 만든다…숙박비는 35만원

    문손잡이까지 그대로 복제中 1753억짜리 ‘복제 타이타닉’ 중국에서 ‘복제 타이타닉호’가 만들어진다. 16일 AFP통신에 따르면 중국 쓰촨 성에서 타이타닉호가 관광지로 재현돼 선보일 예정이다. 현재 중국 쓰촨 성에서 건설 중인 타이타닉호는 2만3000t의 강철과 100명 이상의 노동자가 동원된 10억 위안(1753억원)규모의 프로젝트다. ‘복제 타이타닉호’는 타이타닉의 실물을 그대로 구현해 지어지고, 5성급 크루즈 서비스도 제공될 예정이다. AFP통신은 “쓰촨에 건설되는 복제 타이타닉은 호화로운 선실 내부 식당과 풀장, 심지어 문손잡이까지 모든 것이 타이타닉의 원형을 본땄다”고 전했다.5성급 크루즈 서비스, 숙박료는 35만원 숙박이 가능한 이곳에서는 5성급 크루즈 서비스도 제공될 예정이다. 숙박료는 2000위안(한화 약 35만원)이다. 이 프로젝트에 투자한 쑤샤오쥔은 “타이타닉호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자금을 댔다”며 “연간 200만명~500만명의 방문객이 타이타닉호를 보러 올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테마파크를 여는 날, 영화 타이타닉을 만든 제임스 캐머런 감독과 주연을 맡았던 두 배우를 초청하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타이타닉호는 지난 1912년 빙산에 부딪혀 1500명 이상의 사망자를 냈다. 타이타닉호는 영화 ‘타이타닉(1997)’이 개봉되면서 재조명됐다.중국에서도 영화 ‘타이타닉’은 흥행 기록을 갈아치우며 큰 인기를 누렸다. 최근 중국 내에서는 타이타닉이 침몰할 때 배에 타고 있던 중국인 여행자 가운데 살아남은 6명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식스(6)’가 방영되면서 타이타닉에 대한 관심이 다시금 높아진 상황이다.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사설] 중대재해처벌법 명료한 시행령, 노동자 산재사망 막는다

    평택항에서 일하다 사망한 ‘청년 노동자’ 이선호씨에 대한 추모 열기가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빈소를 찾은 데 이어 여야 의원들과 각계의 조문이 이어지고 있다. 각종 사회관계망, 온라인 카페, 커뮤니티 등에는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추모글이 확산되면서 재발 방지를 위한 법적 보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선호씨는 지난달 21일 평택항 컨테이너에서 내부 작업을 하던 중 300㎏이 넘는 개방형컨테이너(FRC) 날개에 깔려 사망했다. 등록금 마련을 위해 아르바이트 도중 숨진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였다. 당시 현장에는 산업안전보건법에 적시돼 있는 안전관리자와 수신호 담당자도 없었다. 안전교육도 안전장비도 지급받지 못했다. 이런 작업 환경은 연 2400명 이상이 산재로 사망하고 있는 현실과 무관치 않다. 노동자들의 산재사망을 막고자 제정된 중대재해처벌법은 내년 1월 27일 시행되지만, 여야가 협의하는 과정에서 거의 누더기를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모호한 규정이 많다. 이 법에 앞서 산업안전법 개정안에서 노동자의 안전규율을 적용하지만, 이선호씨 사망 이후에도 현대제철, 현대중공업 등에서 노동자의 사망사고가 계속되니 참으로 안타깝다. 고용노동부가 이르면 이달 말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정안을 입법예고한다는데 역시 모호한 규정들이 문제다. 마음만 먹으면 법 처벌을 피해 갈 틈새들이 적지 않다. 대부분 중대재해가 50인 미만의 소규모 사업장에서 집중되고 있지만 3년간 유예된 상태다. 가장 중요한 책임자 처벌 문제도 마찬가지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산업 현장에서 노동자가 1명 이상 사망할 경우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이 책임지도록 규정하고 있다. 노동계는 최종적으로 안전보건 관리체계를 확립할 책임을 실질적 대표에게 물어야 한다고 보는 반면 경영계는 인사·노무 등에서 독립성을 지닌 사업장은 별도의 책임자에게 물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안경덕 고용부 장관은 국회청문회를 통해 이 모호한 규정과 관련해 “최대한 구체화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으니, 노사 간의 불필요한 논란을 줄이고, 노동자의 산재사망을 줄일 수 있도록 구체화할 1차적 책임이 있다. 기업들은 비용 최소화와 경영 책임자의 면피가 가능한 시행령을 요청하겠지만, 노동자의 생명과 맞바꾸는 위험한 작업 환경을 계속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의 입법 취지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 [부희령의 다초점 렌즈] 그들의 차이

    [부희령의 다초점 렌즈] 그들의 차이

    눈앞으로 하얀 비둘기 한 마리가 날아갔다. 카트만두의 국내선 공항 대합실에 앉아 있을 때였다. 실내에서 날아다니는 비둘기라니 헛것을 봤나 싶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천장이 높은 허름한 청사 건물의 2층 창문턱에 마치 빨랫줄에 앉아 있는 참새들처럼 비둘기들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잠깐 사이에 서너 마리가 또 푸드덕 날아올랐다. 당시에는 신형이던 내 스마트폰을 빤히 바라보는 옆자리 네팔 여성을 의식하면서 관광객들과 네팔 현지 사람들이 북적이는 공간에서 나는 조금 복잡한 기분에 잠겨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비교적 가난한 편인 내가 값비싼 비행기 삯을 지불하고 날아와 이 자리에 앉아 있고, 이 나라에서는 상위 중산층임이 분명한 사람의 시선을 빼앗는 기계를 들고 있다니. 아무도 마음대로 선택하지 못하는 ‘태어난 자리’의 차이가 삶에 미치는 영향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이십여 일 뒤에 나는 카트만두의 그린라인 버스 주차장에서 넋을 잃고 서성이고 있었다. 귀국하는 날이라 호텔 객실에서 짐을 싸고 있었는데, 갑자기 지진이 일어났다. 진도 7.8의 강도 높은 지진이었다. 허겁지겁 배낭만 메고 일행과 함께 호텔을 빠져나와 몰려가는 사람들 뒤를 따라 넓은 공터까지 갔다. 본진 때는 놀라서 무서울 새도 없었다. 그러나 20~30분 간격으로 땅이 흔들리고 울부짖는 사람, 불안한 표정으로 여기저기 통화를 시도하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다 보니 죽음의 공포가 몰려왔다. 태어난 곳이 아닌 다른 나라 땅에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주위를 둘러보았다. 두어 달 함께 여행했을 뿐 여전히 속내를 잘 알지 못하는 일행뿐 아니라 이름도 국적도 모르는 타인들 모두 아주 가깝게 느껴졌다. 홀로 불안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사람에게 짙은 연민이 일기까지 했다. 이상하고도 낯선 감정이었다. 그날 저녁 비행기를 타야 했기에 공항까지 걸어갈 각오를 하고 거리로 나갔다. 무너진 벽돌이 흩어져 있는 거리의 상점들 대부분은 셔터가 내려져 있었는데, 어떤 가게 앞에 뜯지도 않은 생수병 상자들이 쌓여 있는 게 눈에 띄었다. 물이 필요한 사람들은 그냥 가져가라는 것일까? 상황이 다급해서 가게 안으로 미처 들여놓지 못한 것일까? 해답을 찾을 여유는 없었다. 우왕좌왕 끝에 운 좋게 택시를 잡았다. 어느 정도 불안이 가라앉자 마음은 간사하게도 택시비를 얼마나 내야 할지를 가늠하고 있었다. 평소에도 관광객들에게는 웃돈을 요구하는데, 막힌 도로를 이리저리 우회하는 상황에서 얼마나 큰 돈을 달라고 할지 걱정스러웠다. 공항에 도착하자 기사는 뜻밖에도 미터대로 요금을 내라고 했다. 나는 거스름돈을 받지 않겠다고 손사래까지 쳐야 했다. 택시 기사가 원래 정직한 사람이어서였을까. 아니면 엄청난 자연재해 같은 불행을 함께 겪을 때 사람들 사이에는 잠시, 아주 잠시 긴밀한 연결이 이루어지는 걸까. 사라지는 택시를 바라보면서 길가에 쌓여 있던 생수병 상자들을 떠올렸다. 여섯 해 전의 기억이 문득 떠오른 것은 지난 4월 22일 평택항에서 숨진 이선호씨 사고 관련 기사를 읽은 뒤였다. 그날 현장에서 같이 일하던 외국인 노동자는 이선호씨를 덮친 무거운 철판을 들어 올리려 애쓰며 빨리 구조대를 불러 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한국인 관리자들은 119가 아니라 상부에 먼저 연락했다. 이것은 외국인과 한국인의 차이일까? 노동자와 관리자의 차이일까? 스스로 가난하다고 믿는 내가 먼 나라의 풍광을 구경하러 가는 사치를 누릴 수 있도록 해준 바로 그 시스템 속에서 오래 살아남고 적응한 힘의 차이일까? 해답을 찾고 분석할 능력은 나에게 없다. 다만 재앙 같은 불행 앞에서는 아주 잠시라도 사람들 사이에 긴밀한 연결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믿음이 이제 이곳에서는 유효하지 않은 것 같아 막막하고 서글플 따름이다.
  • [자치광장] 한예종 이전, 누구를 위한 것인가/이승로 서울 성북구청장

    [자치광장] 한예종 이전, 누구를 위한 것인가/이승로 서울 성북구청장

    서울 성북구에 소재한 대학은 8개다. 서울시 자치구 중 최다이다. 지난 3년 지방정부 수장으로서 대학과 지역의 성장을 고민해 왔지만 유독 아픈 손가락은 한국예술종합대학교(한예종) 석관동캠퍼스다. 최근 의릉 복원계획으로 석관동캠퍼스 이전이 이슈다. 한예종 이전은 지역공동화와 직결되는 생사여탈의 문제로 구청장으로서의 고뇌는 더욱 깊다.  해법은 존재한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유펜)가 위치한 필라델피아 서쪽 지역은 제조업 노동자의 밀집 지역이었으나 1990년대 제조업이 쇠퇴하자 급속한 인구 감소, 지역경제 붕괴, 범죄율 증가 등 전형적인 도심 쇠퇴를 겪게 된다. 고심 끝에 정부의 재생사업과 유펜의 재정적·인적ㆍ지식 자원의 협력으로 범죄 감소, 지역상권 활성화, 양질의 교육 제공 등 폭넓은 도시재생 성과를 거두게 된다. 이제 대학의 역할이 전통적 교육에서 진화해 제3의 임무인 사회적 기여까지 확장된 것이다.  유펜의 모습, 낯설지 않다. 지속적 인구 감소와 함께 사업체의 94%가 영세업자인 석관동은 마치 1990년대 필라델피아와 흡사하다. 전형적인 베드타운으로 발전 동력이 미약한 성북구에서 약 25년간 함께해 온 한예종은 지역의 경제 활력 거점이다. 뿐만 아니라 성북구의 풍부한 역사문화예술자원을 기반으로 동북권 문화예술 거점도시로의 성장을 이끌어 갈 자원이다.  대학은 지역 경제·사회·문화 발전의 기초가 되는 인적·물적 자원의 집약체이기에 대학이 지역에 미치는 영향과 지역의 성장 가능성을 등한시한 대학의 맹목적 이전은 지역공동화, 도시쇠퇴를 초래할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한예종 캠퍼스 용역 결과 건축비만 약 6000억원이 들 것으로 예상된다. 20만㎡ 규모의 통합캠퍼스라면 약 1조원의 국가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예산의 효용적 사용, 지역균형발전, 지역과 대학의 상호 성장 가능성 등 무엇으로 보나 한예종 석관동캠퍼스는 현재의 기능 확장만으로도 충분히 신한류를 이끌어 갈 세계적인 국립예술종합대학으로 거듭날 수 있다.  대학이 도시와 함께 성장하는 선순환적 협력을 보여 준 유펜의 해법은 비단 태평양 건너 ‘먼 나라, 이웃 나라 이야기’가 아닌, 성북구에서 한예종과 함께 ‘우리 동네 이야기’로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
  • 4월 단순노무직 역대 최대폭… 절반이 60세 이상

    지난달 단순노무직 근로자가 통계 작성 이래 가장 큰 폭으로 증가했다. 늘어난 단순노무직 가운데 절반 이상은 60세 이상 고령층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단순노무직은 건설 현장 노동자나 음식 배달원, 건물 청소원, 경비원, 가사 도우미처럼 몇 시간의 직업훈련만으로도 업무수행이 가능한 단순하고 일상적인 업무를 말한다. 16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 등에 따르면 지난달 단순노무 종사자는 397만명으로 1년 전보다 47만 6000명 증가했다. 이는 관련 통계를 확인할 수 있는 2013년 1월 이후 최대 증가폭이다. 지난달 늘어난 취업자(65만 2000명) 가운데 대부분은 단순노무 종사자였다고 볼 수 있다. 증감률 기준으로도 단순노무 종사자 증가율(13.6%)이 전체 직업 가운데 가장 높았다. 성별로 보면 남성 단순노무직이 1년 새 24만 3000명 늘었다. 여성은 23만 4000명 증가해 역시나 최대 증가폭을 기록했다. 연령별로는 60세 이상 단순노무직이 168만 9000명으로 1년 새 27만 5000명 늘면서 가장 큰 폭으로 증가했다. 지난달 늘어난 단순노무직(47만 6000명) 가운데 57.8%는 60세 이상 고령층이었다. 50대 단순노무직이 8만 2000명, 20대가 8만 1000명 늘면서 뒤를 이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지난달 취업자 수가 양적으로 많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고령층이나 단순노무직 위주로 취업자가 늘면서 고용의 질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은 상황”이라고 했다. 이어 “상대적으로 양질의 일자리인 제조업을 중심으로 30∼40대 취업자가 늘어나야 고용이 개선됐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세종 나상현 기자 greentea@seoul.co.kr
  • 죽어도 안 바꾼 공장… 2년 만에 또 죽었다

    한국이 ‘산재공화국’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전국 곳곳의 산업현장에서 사망사고가 끊이질 않고 있다. 16일 동해경찰서와 강원도소방본부 등에 따르면 지난 14일 오후 11시 42분쯤 강원 동해시 삼화동 쌍용양회 시멘트공장에서 천장 크레인이 10m 높이에서 추락, 크레인 기사 김모(63)씨가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이 공장에서는 2019년 12월에도 건물 지붕에서 크레인 수신호 작업을 하던 60대 협력업체 직원이 떨어져 숨졌다. 협력업체 소속이던 김씨는 크레인으로 부원료를 컨테이너벨트로 옮기는 작업 중 사고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동료 3명과 함께 1개 조를 이뤄 3교대 근무를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추락한 크레인 감식을 의뢰하고, 17일 고용노동부 등 관계기관과 사고원인 합동조사에 나설 예정이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지난달 22일 평택항의 이선호씨, 지난 8일 현대중공업 하청업체 40대 직원, 현대제철 충남 당진 제철소의 직원 사망 사고 등 노동자의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면서 “또 다른 희생자가 나오지 않도록 사망사고 발생 시 철저한 원인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한편 국내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고용부가 지난달 발표한 ‘2020년 산업재해사고 사망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산재 사고 사망자는 882명이다. 전년보다 27명(3.2%) 증가한 수치다. 동해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中, 코로나19 발원지 우한 등에서 회오리바람…200여명 사상

    中, 코로나19 발원지 우한 등에서 회오리바람…200여명 사상

    중국 첫 코로나19 집단발병지인 후베이성 우한 등에서 회오리바람을 동반한 악천후로 10여명이 숨지고 400명 가까이 다쳤다. 16일 후베이TV에 따르면 14일 오후 8시 40분쯤부터 우한 일부 지역에서 시속 178~217㎞의 회오리바람이 불어 8명이 숨지고 230명이 다쳤다. 가옥 28채가 무너지고 130채는 파손됐다. 당시 우한에는 폭우와 함께 번개가 치고 우박까지 쏟아졌다. 가설건물이 무너지고 타워크레인·가로수가 쓰러지기도 했다. 장쑤성 쑤저우에서도 14일 오후 7시쯤 시속 218~266km에 달하는 회오리바람이 불어 4명이 숨지고 149명이 다쳤다고 중국중앙(CC)TV가 보도했다. 앞서 우한에서는 지난 10일 곤돌라를 타고 고층건물 외벽 청소작업을 하던 노동자 2명이 갑자기 불어온 강풍으로 건물에 부딪혀 숨졌다. 이와 관련, 우한에 갑자기 불어닥친 비바람에도 장사를 접지 못하는 한 노점상의 영상이 공개돼 안타까움을 샀다. 전날 중국 매체 란신원은 자사 웨이보(중국판 트위터)에 폭우와 바람이 몰아치는 상황에서도 포장마차를 지키고자 고군분투하는 노점상 주인의 모습을 담은 영상을 올렸다. 14일 밤 우한에는 회오리바람을 동반한 엄청난 폭우가 쏟아졌는데, 거리에서 노점상을 하던 이 남성은 갑자기 쏟아진 비에 당황스러워하면서도 끝까지 포장마차를 접지 않았다. 바람까지 거세져 포장마차가 무너지려고 했지만 한 사람의 고객이라도 찾아올까봐 끝까지 버티며 포기하지 않았다. 영상을 접한 누리꾼들은 “마음이 너무 아프다”, “어디서나 먹고사는 건 쉽지 않은 일인 것 같다”, “악천후에도 장사를 포기하지 못하는 아저씨가 안쓰럽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베이징 류지영 특파원 superryu@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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