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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어머니’ 이소선/허남주 특임논설위원

    러시아의 작가 막심 고리키는 1900년대 초 민중을 각성시키고, 힘없고 무지한 민중이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대표작 ‘어머니’를 썼다. 자식이 배 부르고, 편안한 세상을 바라던 평범한 어머니가 아들을 통해 혁명을 이해하고 동참해 가는 과정을 통해 민중이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사실, 바꿀 수 있다는 힘을 보여준 것이다. 아들로 인해 불붙은 혁명의식은 투박했기에 강했고 계산이 없었기에 더욱 힘이 있었다. 데자뷔일까. 고리키의 ‘어머니’ 현생일까. 고(故) 이소선(1929~2011) 여사. 아들을 가슴에 묻고 산 40년 세월의 아픔에 ‘어머니’는 나날이 강해졌고, 위대해졌다. 당초 고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였으나 지난 40년을 지나오면서 누구의 어머니라 한정할 것도 없이 그냥 ‘어머니’가 됐다. 그래서 10년씩 더 나이가 많았던 고 문익환 목사도, 고 김대중 전 대통령도 ‘어머니’라 불렀다 한다. 그럴 때마다 나이 어린 ‘어머니’는 몸둘 바를 모르고 부끄러워했다. 자신의 영향력과 힘을 미처 모르는 듯 겸손한 부끄러움은 어떤 말보다 더 강력한 힘을 갖고 있었다. 봉제공장에서 일하던 착하고, 우스개도 잘하던 22살의 꽃 같던 큰아들이 스스로 몸에 불을 붙여 죽어가면서 원했던 세상을 마흔 남짓의 어머니가 그리 잘 알았을까. “내가 못다한 일, 엄마가 꼭 이뤄줘요…. 엄마가 다니면서 ‘학생과 노동자들이 힘을 합쳐야 한다’, 그렇게 외쳐주세요….” 구술한 자서전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에서 40년 전 죽어가던 아들과의 약속을 어머니는 어제 일처럼 기억한다. “엄마, 엄마 내가 부탁하는 것 다 들어주겠다고 크게 한 번 대답해줘.” “걱정마라. 내 몸이 가루가 되어도 니가 원하는 것, 끝까지 할 거다.”어머니는 아들과의 약속을 지켜냈다. 그를 ‘노동계의 대모’ ‘노동자의 어머니’라고 부르는 것에는 과장이 없다. 아들과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을 모두 내 아들처럼 챙기고, 먹인 이야기는 익히 알려졌다. 많은 사람들은 전태일을 전태일 열사로 만든 것은 그의 어머니라고 한다. 또한 가난한 이웃에 대한 사랑과 나눔을 가진 전태일 열사의 정신은 어머니의 대물림이라고도 한다. 노동운동으로 바빠도 자신의 처소에 몸을 의탁한 약한 사람들의 끼니를 챙기는 일에 소홀하지 않았던 일상은 그가 왜 ‘어머니’로 불렸는지를 보여준다. 지혜는 지식에 뿌리내리지 않음을 보여주듯 신념대로 살다 간 한 어머니의 삶은 슬프지만, 아름답다. 아들 곁에서 편히 영면하소서. 허남주 특임논설위원 hhj@seoul.co.kr
  • 보이지 않는 일꾼, 유령을 거부하다

    보이지 않는 일꾼, 유령을 거부하다

    화장실에 서서 일 보는 남자들의 가랑이 사이로 청소 노동자들이 밀대를 쓱쓱 밀어 넣어가며 청소를 할 수 있는 이유는 뭘까. 청소 노동자들이 ‘남성도 여성도 아닌 제3의 성인 아줌마라서’란 설이 그동안 우세했다. 하지만 ‘유령 세상을 향해 주먹을 뻗다’(아고라 펴냄)는 청소 노동자들이 다름 아닌 유령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저자 홍명교(28)씨는 요즘엔 ‘거의 씨가 말랐다’는 학생 운동권 출신이다. 2003년 고려대 경영학과에 입학해 2005년 경영대 학생회장을 지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명예 철학박사 학위 수여 반대 시위를 주도하다 징계를 받기도 했다. 홍씨는 지난달 31일 서울 중구 예장동 문학의 집에서 “첫 강의 시간에 교수가 ‘우리 학교 왔으면 벤츠 정도는 타 줘야지, 안 그래?’라고 말해 너무 충격 먹었다. 그 뒤로 수업에 잘 안 들어가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최고경영자(CEO)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친구들이 주위에 너무 많았다. 경영대란 공간에서 살아남기 위해 모든 술자리와 모임에 빠지지 않았더니 어느새 학생회장이 되어 있더라.”며 웃었다. ‘이명박 라운지’(고대 출신인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기부한 돈으로 조성한 공간)에서 공부하다가도 한 발짝만 벗어나면 마주치게 되는 노동자들의 삶에 괴로웠다는 그는 결국 4학년 때 학교를 도망쳐 나왔다. 지금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서 공부 중이다. ‘자발적 퇴교’ 선언을 했던 김예슬씨는 그의 대학 후배. 홍씨는 신문에서 김씨의 대자보 내용을 읽고 눈물을 흘렸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청소 노동자와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야말로 대학생 자신, 20대 자신의 문제라고 강조한다. 홍씨가 청소 노동자 문제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는 새내기이던 2003년 ‘뼈 빠지게 일했더니 월급 54만원 웬말이냐’는 내용의 교내 플래카드를 보고서였다. 플래카드를 건 측은 ‘불철주야’(불안정노동 철폐를 주도할 거야)란 학생모임이었다. ‘불철주야’에 참여하면서 홍씨는 ‘유령’이 아니라 내 주변의 할아버지, 할머니인 청소 노동자들과 진심 어린 대화를 나누게 된다. 이후 학교 내의 시설관리 노동자들과 학생들의 연대 활동을 폈다. 대학교 청소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이 없는 상태에서 최저임금도 제대로 못 받으며 불안정한 노동 조건에 시달리는 사실이 사회적으로 반향을 일으킨 것은 홍익대 청소 노동자 170여명이 집단 해고를 당한 사건 때문이었다. 트위터와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확산된 홍익대 사건은 ‘김여진과 날라리 외부 세력’으로 더욱 주목받게 된다. 영화배우 김여진씨는 “평소 마주쳤던 청소노동자들의 울분을 가슴속 어딘가에 담고 있다가 홍대 사태를 보고 ‘빵 터졌다’”며 농성에 가세했다. 이를 계기로 ‘소셜테이너’(socialtainer·사회참여 연예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생겨났다. 홍씨는 소셜테이너에 대해 “침묵하고 지켜보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면서 “앞으로 노동자운동이 어떻게 대중적 지지를 얻어낼 수 있는지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새롭고 대단한 대안이 되기는 어려우며 한계지점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생이란 위치에서 바라본 비정규직 노동자들과의 연대의 기억인 자신의 책 ‘유령 ’이 작은 희망이 되기를 기대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책에는 홍씨의 글뿐 아니라 박건웅, 심흥아, 전지은씨의 단편만화 3편이 같이 실려 불안정한 21세기 청춘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담아냈다. 한때 ‘실천하는 젊은 지성’으로 불렸던 대학생은 이제 ‘스펙쌓기의 노예’로 폄하된다. ‘유령’은 각 세대의 불행을 전제로 오히려 갈등을 조장하는 ‘세대론’을 경계한다. 그리고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라 아파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동시에 아프지 않은 것이 바로 청춘이라고 말한다. 1만 3800원.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볼일 보는 남자 옆에서 아줌마가 쓱쓱 청소한다. 왜? 유령이기 때문!

    볼일 보는 남자 옆에서 아줌마가 쓱쓱 청소한다. 왜? 유령이기 때문!

     화장실에 서서 일보는 남자들의 가랑이 사이로 청소 노동자들이 밀대를 쓱쓱 밀어 넣어가며 청소를 할 수 있는 이유는 뭘까. 청소 노동자들이 ‘남성도 여성도 아닌 제3의 성인 아줌마라서’란 설이 그동안 우세했다. 하지만 ‘유령 세상을 향해 주먹을 뻗다’(아고라 펴냄)는 청소 노동자들이 다름 아닌 유령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저자 홍명교(28)씨는 요즘엔 ‘거의 씨가 말랐다’는 학생 운동권 출신이다. 2003년 고려대 경영학과에 입학해 2005년 경영대 학생회장을 지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명예 철학박사 학위 수여 반대 시위를 주도하다 징계를 받기도 했다.  홍씨는 지난 31일 서울 예장동 문학의 집에서 “첫 강의 시간에 교수가 ‘우리 학교 왔으면 벤츠 정도는 타줘야지, 안 그래?’라고 말해 너무 충격먹었다. 그 뒤로 수업에 잘 안 들어가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최고경영자(CEO)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친구들이 주위에 너무 많았다. 경영대란 공간에서 살아남기 위해 모든 술자리와 모임에 빠지지 않았더니 어느새 학생회장이 되어 있더라.”며 웃었다.  ‘이명박 라운지’(고대 출신인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기부한 돈으로 조성한 공간)에서 공부하다가도 한발짝만 벗어나면 마주치게 되는 노동자들의 삶에 괴로웠다는 그는 결국 4학년 때 학교를 도망쳐 나왔다. 지금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서 공부 중이다.  ‘자발적 퇴교’ 선언을 했던 김예슬씨는 그의 대학 후배. 홍씨는 신문에서 김씨의 대자보 내용을 읽고 눈물을 흘렸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청소 노동자와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야말로 대학생 자신, 20대 자신의 문제라고 강조한다.  홍씨가 청소 노동자 문제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는 새내기이던 2003년 ‘뼈 빠지게 일했더니 월급 54만원 웬말이냐’는 내용의 교내 플래카드를 보고서였다. 플래카드를 건 측은 ‘불철주야’(불안정노동 철폐를 주도할 거야)란 학생모임이었다. ‘불철주야’에 참여하면서 홍씨는 ‘유령’이 아니라 내 주변의 할아버지, 할머니인 청소 노동자들과 진심 어린 대화를 나누게 된다. 이후 학교 내의 시설관리 노동자들과 학생들의 연대 활동을 폈다.  대학교 청소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이 없는 상태에서 최저임금도 제대로 못 받으며 불안정한 노동 조건에 시달리는 사실이 사회적으로 반향을 일으킨 것은 홍익대 청소 노동자 170여명이 집단 해고를 당한 사건 때문이었다. 트위터와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확산된 홍익대 사건은 ‘김여진과 날라리 외부 세력’으로 더욱 주목받게 된다.  영화배우 김여진씨는 “평소 마주쳤던 청소노동자들의 울분을 가슴속 어딘가에 담고 있다가 홍대 사태를 보고 ‘빵 터졌다.’”며 농성에 가세했다. 이를 계기로 ‘소셜테이너’(socialtainer·사회참여 연예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생겨났다.  홍씨는 소셜테이너에 대해 “침묵하고 지켜보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면서 “앞으로 노동자운동이 어떻게 대중적 지지를 얻어낼 수 있는지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새롭고 대단한 대안이 되기는 어려우며 한계지점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생이란 위치에서 바라본 비정규직 노동자들과의 연대의 기억인 자신의 책 ‘유령 ?’이 작은 희망이 되기를 기대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책에는 홍씨의 글뿐 아니라 박건웅, 심흥아, 전지은씨의 단편만화 3편이 같이 실려 불안정한 21세기 청춘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담아냈다.  한때 ‘실천하는 젊은 지성’으로 불렸던 대학생은 이제 ‘스펙쌓기의 노예’로 폄하된다. ‘유령?’은 각 세대의 불행을 전제로 오히려 갈등을 조장하는 ‘세대론’을 경계한다. 그리고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라 아파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동시에 아프지 않은 것이 바로 청춘이라고 말한다. 1만 3800원.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대구세계육상 D-1] 스타디움 지하쇼핑몰은 아직도 공사중

    [대구세계육상 D-1] 스타디움 지하쇼핑몰은 아직도 공사중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열리는 대구스타디움의 지하 쇼핑몰이 개회 이틀 전인 25일까지 완공되지 못했다. 이날 대구시와 몰 입주업체, 시공사 관계자들이 현장 마무리와 안전점검 등을 했으나 아직 개회 전까지 문을 열지는 결정하지 못했다. 문을 열지 못하면 관람객들의 불편은 물론 대구의 대외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대구스타디움 서편 주차장 지하 공간에 위치한 대구스타디움 몰에는 대형마트와 전문매장 154개가 들어서고, 복합영화관과 다목적 공연장이 입주한다. 대구시는 5월 말까지 공사를 끝내고 7월 말부터 입점 업체의 영업이 가능할 것으로 장담했다. 하지만 공사 도중 잦은 설계변경과 시행사의 자금문제, 노동자들의 파업 등이 얽히면서 준공 목표일을 훨씬 넘겼다. 대구시는 이날까지는 공사를 완료하고 문을 열겠다고 배수진을 쳤으나 이마저도 지키지 못했다. 지하 공간 개발사업이 진행 중인 대구스타디움 서편 주차장 앞에는 공사자재와 대형 크레인, 현장사무소 가건물 등으로 가득 차 있다. 공사장 바로 옆 미디어주차장에는 대형 크레인이 작업을 하는 와중에 차들이 드나들었다. 월드컵 대로와 연결되는 왕복 4차선 도로에는 3중, 4중으로 공사차량과 화물차가 뒤엉켜 있다. 몰 내부로 들어가면 커피전문점과 제과점 등 입점 예정 업체의 간판만 붙어있을 뿐 개점이 완료된 매장은 보이지 않았다. 공사업체 관계자는 “외부공사는 거의 끝났고 내부공사가 진행 중인데 아직 덜 끝난 곳이 있다.”고 말했다. 대구시 관계자는 “안전문제 등을 고려하면 개회식 전까지 모든 입주업체가 문을 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나폴리 박물관에 여자어린이 유령 출몰?

    이탈리아의 한 박물관에서 유령이 카메라에 잡혔다. 유령을 직접 봤다는 목격자도 여럿 나오면서 박물관은 발칵 뒤집혔다. 심령사진이 공개되면서 공포의 유령소문에 휘말린 곳은 유명한 나폴리 박물관이다. 외신에 따르면 박물관은 최근 부분적인 보수공사를 하다 공사를 중단했다. 노동자들이 “유령이 무서워 일을 못하겠다.”고 일손을 놓은 탓이다. 노동자들은 공사를 하면서 이상한 일을 많이 겪었다. 손도 대지 않은 물건이 자리를 옮겨가거나 빈 양동이에 갑자기 물이 차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아무래도 귀신이 있는 것 같다.”고 노동자들이 하소연하자 공사책임을 맡은 건축사가 현장을 카메라로 찍었다. 사진을 컴퓨터로 옮겨 확인하다 건축사는 한 여자어린이를 발견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노동자들은 손사래를 치며 일을 거부했다. 유령이 사진에 잡힌 곳은 고대 무덤이 발견된 곳이다. 한편 사태가 언론에 보도되면서 화제가 되자 박물관 측은 유령 출몰설을 전면 부인하며 꾸며낸 얘기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관계자는 “건축사가 찍었다는 심령사진은 이미 1년 전부터 나돌고 있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소문이 퍼지면서 벌써부터 나폴리 박물관에는 심령연구가 등이 몰려들고 있다. 이탈리아 현지 언론은 “내달부터 초자연적 현상을 연구하는 대학 연구팀 등이 박물관에서 유령의 존재를 확인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해외통신원 손영식 voniss@naver.com
  • 美 역사 중심에 ‘마틴 루터 킹’ 서다

    미국의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기념관이 사업 추진 43년 만에 완공돼 22일 오전(현지시간) 일반인에게 공개됐다. 킹 목사 기념관은 워싱턴DC의 링컨 기념관과 제퍼슨 기념관, 루즈벨트 기념관 등 쟁쟁한 전직 백인 대통령 기념관들에 둘러싸인 요지에 세워졌다. 미국 역사·정치의 한복판인 ‘내셔널몰’ 지역에 기념관을 갖게 된 흑인은 킹 목사가 처음이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 탄생에 이어 최초의 내셔널몰 흑인 기념관 완공으로, 미국 역사에서 ‘2등 시민’으로 차별받았던 흑인들의 숙원이 하나둘씩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흑인 인권단체들은 킹 목사가 암살당한 1968년부터 기념관 설립을 정치권에 호소했지만, 1996년에야 비로소 의회는 기념관의 워싱턴DC 내 설립을 허가했다. 1998년 의회는 ‘킹 목사 국립기념관 사업기금’이 기념관 설립을 주관하는 것을 승인했다. 1999년에 구체적인 기념관 위치가 정해졌고 2000년부터 모금운동이 시작됐으며 2006년 기공식이 열렸다. 처음엔 건립 기금 모금이 쉽지 않을 것이란 비관론도 있었으나 보잉과 포드, 코카콜라 등 굴지의 대기업과 유명인사들이 후원에 나서면서 목표치인 1억 2000만 달러(약 1300억원)를 거의 채웠다. 4에이커(약 1만6000㎡) 면적에 달하는 기념관의 백미는 9.14m 높이의 킹 목사 석상(石像)이다. 미국에서는 보기 드물게 큰 석상으로 킹 목사가 팔짱을 끼고 서서 단호한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이다. 링컨 기념관의 좌상 높이가 5.8m인 점과 비교하면 킹 목사의 석상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다. 흑인인 킹 목사 석상을 검은색이 아닌 밝은 화강암으로 만든 것은 밤에도 잘 보이게 하기 위해서라고 사업기금 측은 설명했다. 석상을 완성하기까지 논란도 많았다. 석상이 지나치게 크고 표정이 엄숙하며 킹 목사를 닮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가장 큰 논란은 중국인 조각가 레이이신에게 조각을 맡긴 것이다. 사업기금 측은 레이이신이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대형 화강암 조각가라고 이유를 설명했지만, 미국 인권단체는 마오쩌둥 동상을 조각한 그가 인권운동가인 킹 목사 석상 제작에 어울리지 않는다며 반발했다. 또 건설작업에 중국 노동자들이 고용돼 ‘메이드 인 차이나’라는 비난이 가시지 않았다. 이 기념관의 헌정식은 킹 목사의 ‘나는 꿈이 있습니다’ 연설 48주년인 오는 28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조남호 때리기’… 목청 높인 정동영

    ‘조남호 때리기’… 목청 높인 정동영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 국회에 그리 나오기 싫으셨습니까.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 아닙니다. →국회를 무시하고 민주주의를 능멸했습니다. 투표권 있으시죠. 민주주의의 권리, 재벌의 권리는 누리면서 민의의 전당은 무시해도 됩니까. -아닙니다. →건성으로 대답하지 말고 절 똑바로 보세요(호통). 18일 국회에서 열린 한진중공업 청문회에 조남호 회장이 증인으로 출석해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으로부터 집중 포화를 맞았다. 조 회장은 무리한 정리해고의 장본인으로, 해외 출장을 이유로 50여일이나 국회 출석을 피했다. 괘씸죄, 청문회 회피용 거짓 출장 변명까지 의원들의 뭇매는 어느 정도 예고돼 있었다. 결국 조 회장은 청문회에서 정리해고의 불가피성을 호소하면서도 “해고된 노동자들의 복직 일정을 단축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날 조 회장을 가장 집요하게 몰아세운 이는 정 최고위원이었다. 한진중공업 조합원 장례식 동영상에 이어 고공농성 중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부 지도위원과의 휴대전화 연결까지 불사하며 조 회장을 작심한 듯 몰아붙였다. 정 최고위원의 질의에 청문회장은 때론 숙연해졌고 때론 여야 의원들 간에 고성이 오가며 정회되는 소동도 빚어졌다. 3차에 걸친 희망버스에 모두 동승하며 한진중공업 해결사를 자처해 온 정 최고위원도 그러나 조 회장에게서 속시원한 해결책을 듣지는 못했다. 오전 질의 순서에서 정 최고위원은 조 회장에게 “이분들을 기억하느냐.”며 다큐멘터리 동영상을 들이밀었다. 한진중공업 구조조정으로 복직투쟁 끝에 자살한 김주익 노조 지회장, 곽재규 조합원의 장례식 화면이었다. 정 최고위원은 “이들은 조 회장이 죽인 사람들이다. 살인하지 말라. 해고는 살인이다.”라며 울먹이다 말을 잇지 못했다. 고인의 딸들이 흐느끼며 조사를 읽는 장면에서 청문회장에는 순간 정적이 흘렀다. 정 최고위원이 “회장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한 말씀하라.”고 요구하자 조 회장은 “드릴 말씀이 아무것도 없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사과드리고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며 고개를 떨궜다. 오후에는 참고인으로 채택됐지만 출석을 거부한 김 지도위원과의 전화 연결을 놓고 청문회가 10여분간 정회되기도 했다. 역시 주인공은 정 최고위원이었다. 그가 김씨를 휴대전화로 연결한 뒤 “김 지도위원, 조 회장이 제 앞에 있는데 말해 보세요.”라고 하자 김씨는 전화를 통해 “제가 크레인에서 225일 있는 게…”라며 입을 열었다. 그러나 여당석에서 곧바로 반대하는 고성이 터져 나왔고 청문회장은 금세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장제원 한나라당 의원은 “부산 시민들은 김씨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다른 여당 의원들도 “지금 쇼하는 것이냐.”, “그럴 거면 청문회장에 불러내라.”고 고함을 질렀다. 이에 정 최고위원은 “목숨 걸고 노동자들의 아픔과 고통을 대변하고 있는 사람이다. 한나라당은 왜 김진숙을 두려워하느냐.”고 맞섰다. 10여분 정회한 동안에도 여당 의원과 정 최고위원은 옥신각신했다. 결국 정 최고위원이 전화연결을 양보하며 청문회는 속개됐다. 다른 의원들도 조 회장의 부도덕한 기업인 행태를 공격하는 데 집중했다. 민주당 이미경 의원은 “주주들에겐 2009년부터 3년간 440억원을 현금배당하고, 정리해고 발표 다음 날 주식 배당을 시가로 174억원이나 했다.”며 “회사의 위기는 조 회장이 조작한 위기”라고 비난했다. 한나라당 손범규 의원은 “정리해고 직후 주주 배당, 이사 봉급 인상이 법적 문제가 없다고 해도 안방에선 불났는데 건넌방에서 갈비 먹고 라면 끓여 잔치 벌인 것”이라면서 “노동자들에게 상생의 기회를 찾으려는 모습을 보였다면 이렇게 비난받지 않았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같은 당 이범관 의원은 “한진중공업홀딩스 지배주주로서 받은 현금배당을 내놓는 등 경영 합리화에 기여하겠다는 자세를 가질 수 있느냐.”고 다그쳤다. 조 회장은 이에 대해 “그런 의견을 검토해 곧 발표를 하든지 하겠다.”고 답변했다. 조 회장은 또 정리해고를 단행한 직후 주주 및 한진중공업홀딩스에 주식·현금 배당을 한 데 대해 “배당은 공시했던 사항으로, 날짜가 우연히 겹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징용 조선인 恨 오롯이

    “자유와 평화는 노력하는 자의 것이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렇고, 미래에도 그럴 것이다. 몸을 움직이고 현장을 다니면서 기본적인 문제를 인식함과 동시에 자신이 꿈꾸는 세상에 한 걸음 더 다가가야 할 일이다. 조금 늦어질 수도 있겠지만 그러다 보면 역시 답은 ‘길 위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가 길을 간다는 것은, 아니 길을 걷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앞으로의 길이기도 하고 과거의 길이기도 할 터. 결코 사라지지 않는 유령처럼 우리 곁을 떠도는 식민지의 잔영과 일제 강점기에 일본으로 강제 징용된 조선인들의 삶의 흔적을 찾아 이 시대의 대표 사진작가 중 한 사람인 이제갑씨는 걷고 또 걸었다. 15년 동안 맨발로 일제 강점기의 조선인 잔혹사를 찾아 나선 것이다. 그는 1996년 2월부터 한국 내 일본 잔재 중 근대 건축물을 찾는 작업을 시작했고, 그 뒤 일본 내 조선인 강제징용과 그와 관련된 건축물에 대한 작업으로 범위를 넓혔다. 그래서 나온 작품이 ‘한국사 100년의 기억을 찾아 일본을 걷다’(살림 펴냄)이다. 저자는 일본의 후쿠오카, 나가사키, 히로시마, 오사카, 오키나와를 중심으로 일본 열도 곳곳을 답사했다. 군부대 진지, 탄광, 광업소, 댐, 해저탄광, 지하터널, 비행장, 통신시설 등 조선인 강제징용 노동자들의 한이 서린 역사의 흔적을 상세하게 밝히고 있다. 후쿠오카 지역 41개 광업소에 배치돼 강제노역에 시달린 사람만 해도 11만명. 이 가운데 조선인 징용자에 대한 노동 착취가 가장 심했던 아소 탄광의 참혹상은 저자 특유의 관찰력과 감각적 렌즈로 세밀하게 담았다. 저자는 오랫동안 다큐멘터리 사진을 지향해 왔다.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사진을 전공했으며 1989년 군 제대 이후 본격적인 사진활동을 시작했다. 1991년 개인전 ‘무대 뒤의 차가운 풍경’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다섯 차례 개인전을 열었고 뉴욕 현대미술관센터 별관에서 열린 ‘영속하는 순간들-한국과 오키나와, 그 내부에서의 시선들’ 등 다수의 초대전에 참여했다. 현재는 인하대와 계명대에서 사진을 가르치고 있다. 1만 4800원. 김문 편집위원 km@seoul.co.kr
  • [데스크 시각] 연리지 사회를 기다리며/황수정 정책뉴스부 차장

    [데스크 시각] 연리지 사회를 기다리며/황수정 정책뉴스부 차장

    몇달 전 몽골 출신의 한 결혼이민자와 인터뷰 끝에 이런저런 사담을 나눴다. 결혼해서 남편 따라 한국에 들어온 지 11년째로 우리말이 유창했다. 남편 성씨를 딴 한국 이름으로 살고 있는 그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도 둘 뒀다. 몽골에서 손꼽히는 대학의 경영학과를 나온 덕분에 그나마 한국 적응은 순탄한 편이라고 했다. 한국어 능력시험(TOPIK)도 독학으로 4급 이상 따서 여기저기 지원서도 낼 수 있고, 지난해는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까지 땄다. 그의 직장은 경기도 외곽 시의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이쯤 되면 한국에서는 성공한 귀화인으로 부러움을 산다.”는 농담까지 더했다. 하지만 이야기가 무르익으면서 뼈 있는 속말이 나왔다. 그저 한국사람으로 살고 싶을 뿐인데도 한국사회는 아직 받아줄 마음이 없는 것 같다, 몽골에서는 교육수준이 아주 높은 이들이 한국행을 많이 하는데도 제대로 인정을 받을 수가 없다, 그나마 수도권 지역에서는 결혼이민자들에 대한 정책적 배려가 감지되지만 조금만 지방 쪽으로 벗어나면 지원을 체감하기가 어렵다…. “실현 가능성은 없을 것 같다.”면서 작은 바람도 얘기했다. 결혼이민자들의 어린 자녀들이 엄마 나라 말도 할 수 있게 정책 지원이 있으면 좋겠다는 거였다. 아이들이 엄마 나라 말을 할 수 있으면 자연스럽게 이(異)문화에 대한 관심이 생기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다문화 사회는 절로 성숙되는 게 아니겠냐고 했다. 그를 만난 이후로 결혼이민자, 다문화 가족 얘기를 접할 때면 생각이 많아졌다. 자기네 나라에서 고등교육까지 받은 똑똑한 이가 저럴진대 음지의 외국인 노동자들은 어떤 좌절을 겪고 있을지 넘겨짚어졌다. 통계에 따르면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120만명을 넘어섰다. 전체 인구 4900만명 가운데 약 2.3%가 외국인인 셈이다. 국내에 보금자리를 튼 결혼이민자만 따져도 사회동력으로 유의미한 수치다. 지난 2월 기준으로 집계된 결혼이민자 수는 14만 2300여명. 거기에 배우자, 자녀 등 관계 가족까지 합하면 줄잡아도 100만명이 다문화가족으로 살아간다는 계산이다. 이들의 ‘한국살이’ 토양은 그러나 여전히 척박하다. 얼마 전 결혼이민자 고용지원센터에서 일하는 직업상담사에게서 외국인이면 무조건 불법체류자로 내몰리는 분위기가 아직 가시지 않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남편이 한국인이며 정상취업을 하고 있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일터에서 범죄인 취급을 받는 여성 결혼이민자들이 많다는 이야기였다. ‘100만 다문화가정 시대’라는 선언적 구호가 곳곳에서 나부끼고 있는 이즈음,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이민자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쪽으로 실질적인 생활정책 제안들이 잇따르고 있다는 대목이다. 낯설고 물선 땅에 뿌리 내리려 안간힘을 쓰는 정착 초기 이민자들에게 정부가 앞질러 정책 서비스를 해준다는 건 무엇보다 좋은 소식이다. 여성가족부 통계에 따르면, 전체 결혼이민자 중 정부의 다문화가족 지원 서비스를 받아본 이는 고작 21%. 최근 국민권익위원회는 법무부에서만 통제했던 결혼이민자 정보를 다른 기관에서도 접할 수 있게 함으로써 이민자 서비스가 향상되도록 제도를 개선했다. 앞으로 이민자가 동의하면 개인정보가 여성가족부 등 다문화가족 지원사업을 주관하는 기관들에도 제공돼 다양한 정책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미국 뉴욕 시내 한복판에서 ‘공짜’ 피자에 즐거웠던 기억이 새롭다. 미국 연수 중이던 지난해 봄, 이주 멕시칸이 운영하는 피자집에서 초등학생 딸아이가 그곳 학교에서 배운 짧은 스페인어로 주인과 몇 마디 주고받은 게 전부였다. 그 멕시칸의 진심을 움직였던 건 별 게 아니다. 팍팍한 이국살이에서 문득 확인한 관심과 성의. 다문화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추동이 이와 다를까. ‘연리지’(連理枝)가 있다. 뿌리는 다른데도 가지들이 뒤엉키다 결국 한 그루처럼 자라는 나무다. ‘연리지 사회’의 문을 우리가 열 때다. sjh@seoul.co.kr
  •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16) 피살 20대女, 전날 쓴 데스노트에 범인이름이…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16) 피살 20대女, 전날 쓴 데스노트에 범인이름이…

    2003년 12월 6일 오후 9시 30분 서울 용산구 이태원2동. 갑작스러운 한 통의 전화가 겨울밤 파출소의 한적함을 깨운다. “사…사람이 죽었어요. 도와주세요.” 신고인은 외국인이었다. 한국인 여자 친구 A(당시 24세)씨의 주검과 마주친 그는 떨고 있었다. A씨는 엎드린 채 숨져 있었다. 칼에 찔린 복부에서 난 피가 바닥에 흥건했다. 자상의 크기는 1.7㎝로 작은 편이었지만 대동맥을 관통할 정도로 깊게 찔린 것이 치명적이었다. 첫 번째 칼부림은 바로 옆 탁자 아래에서 시작된 듯했다. 탁자 아래엔 비산(飛散·튀어 흩어짐) 혈흔과 적하(滴下·방울져 떨어짐) 혈흔이 섞여 있었다. A씨의 목에는 손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칼로 배를 공격한 후 범인은 확인사살을 하듯 A씨의 목을 다시 누른 것이다. 방어흔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만큼 범행은 순식간에 이뤄졌고 피해자는 반항 한번 못한 채 숨을 거뒀다. ●찢어진 장부… 과학이 뒷장을 드러내다 사건이 발생한 곳은 일반 주택 2층을 개조해 만든 옷 도매가게였다. 주로 아프리카 쪽 바이어를 상대하는 매장은 흔한 입간판 하나 없어 일반인은 전혀 상점이라고 상상할 수 없었다. 탁자엔 바로 전까지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눈 듯 음료수 캔과 비스킷, 거래장부가 놓여 있었다. 선풍기형 난로도 탁자를 향해 있었다. 피해자의 가방과 지갑은 모두 열려 있었고 책상서랍 안에 있던 260만원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문이나 창에 외부 침입 흔적이 전혀 없다는 점 등을 고려해 경찰은 손님을 가장한 강도일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범인이 외국인이라면 수사 과정에서 곤란한 점이 적지 않다. 우선 한국 경찰의 가장 강력한 무기로 꼽히는 지문 자동검색 시스템(AFIS)을 이용할 수 없다. 불법 체류자라면 소재 파악도 쉽지 않다. 그렇게 고민만 깊어갈 즈음 지문 감식을 위해 거래 장부를 조사하던 수사관이 의문을 제기했다. “반장님, 장부 한 장이 비는데요. 5일 자가 없어요.” 더욱 의심스러운 것은 앞장의 글자와 뒷장에 남아 있는 자국이 좀 달라 보인다는 점이었다. 누군가 자신의 흔적이 남은 장부를 찢어버린 것이라는 판단에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필흔(筆痕) 재생을 의뢰했다. 필흔 재생이란 볼펜이나 연필 등 필기구를 사용할 때 원본 뒤 종이의 눌린 자국을 통해 앞장의 글자를 복원하는 작업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글씨를 쓰면 필기구의 압력이 종이 뒷장에 고스란히 전달된다. 글씨를 쓴 사람이 펜을 얼마나 힘껏 눌렀는지, 필기구가 무엇인지에 따라 다음, 그다음 장까지도 필흔이 남을 수 있다. 통상 볼펜이나 연필은 원본 뒤 셋째 장까지 자국이 남는다. 하지만 사인펜으로 쓴 글씨는 다음 장에서도 흔적을 찾기가 만만치 않다. 사실 자국이라고 말하지만 육안이나 현미경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정도여서 이를 확인하는 데는 고가(3000만원가량)의 특수장비가 필요하다. 국내에서는 주로 영국제 ‘ESDA2’가 쓰인다. 사용 방법은 간단하다. 증거물(눌린 종이)을 기계에 넣은 후 그 위에 랩과 같은 특수필름을 평평하게 깐다. 진공상태에서 기계가 정전기를 발생시키면 필름에는 자연스럽게 글자 모양에 따라 요철이 생긴다. 필름을 15~20도 정도 기울인 상태에서 특수 처리된 흑연가루를 뿌려주면 필름 위에 앞장에 썼던 글자들이 고스란히 나타난다. 다시 사건으로 돌아가 보자. 국과수가 복원한 페이지는 ‘제이’(Jay)라는 손님의 거래 내역서였다. 티셔츠와 바지, 점퍼 등 도합 640만원어치의 물품을 제이가 주문한 것으로 나와 있었다. 수사팀 입장에서 뜻밖의 횡재는 제이의 전화번호였다. 01×-8××-××××. 경찰은 유력한 용의자인 제이를 찾아 나섰다. ●장부 속 고객 ‘제이’를 잡아라 휴대전화 개통자는 나이지리아인 저스틴(당시 31세)이었다. 이태원 나이지리아인 밀집 지역을 탐문 조사한 결과 장부 속 제이는 저스틴과 동일 인물이었다. 제이란 이름은 위조 여권 속 가명이었다. 범인은 불안한 듯했다. 사건 뒤 저스틴의 휴대전화 신호는 이태원 녹사평역에 나타났다가 다시 한남동과 경기 동두천시로 옮겨갔다. 마지막 위치는 나이지리아인 밀집 지역인 안산시의 주택가로 확인됐다. 영장도 없는 상태에서 드넓은 주택가를 모두 뒤질 수는 없는 노릇. 특히 나이지리아인 지역 사회에 잘못 들이닥치면 오히려 경찰이 떴다는 것을 저스틴에게 알려주는 꼴이 될 게 뻔했다. 경찰은 비용 때문에 휴대전화보다는 공중전화를 자주 이용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전화 이용 유형에 착안했다. 인근 공중전화 10군데를 골라 잠복에 나섰다. 그렇게 한 지 3일. 저스틴은 전화를 걸고 나오다 공중전화 앞에서 검거됐다. 저스틴은 묵비권을 행사하며 입을 굳게 닫았다. 하지만 범행을 부인하기에는 증거나 정황이 너무나 분명했다. 우선 현장에 남은 음료수 캔의 지문이 그의 것과 일치했다. 특히 자취방에서 찾아낸 비닐봉지에서 숨진 A씨의 혈흔이 발견되자 그는 죄를 벗기 위한 노력을 완전히 포기했다.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저스틴은 범행을 저지르기 14개월 전 코리안 드림을 품고 한국에 들어왔다. 하지만 비자 유효 기간이 만료돼 불법 체류자가 되면서 일자리 찾기가 극도로 어려워졌다. 먹고사는 것 자체가 막막해지자 그는 범행을 결심했다. 맨 먼저 머리에 떠오른 곳은 전에 친구와 들렀던 A씨의 가게였다. 인적이 뜸한 데다 여자들만 있어 강도를 하기도 쉬울 것이라고 판단했다. 저스틴은 자신을 나이지리아에서 온 바이어라고 속이고 범행 전날인 12월 5일 옷가게에 들렀다. 모처럼 온 큰 손님에 반가워하며 A씨가 장부를 적어 나가는 동안 그는 내부구조와 현금의 위치, 도주 경로 등을 살폈다.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서 범행에 쓸 과도도 구입했다. 범행 당일인 6일, A씨가 3시간에 걸쳐 옷에 대해 설명하는 동안 저스틴은 칼을 쓸 타이밍을 노렸다. 그리고 무참하게 범행을 실행에 옮겼다. 가게를 나오는 순간 저스틴의 머리에 불안이 엄습했다. 자기의 전화번호와 이름이 적힌 장부가 떠올랐다. 그는 장부의 마지막 장을 깔끔히 찢어내는 용의주도함으로 범행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그 마지막 장은 끝내 그를 스스로 옭아매는 증거가 됐다. 불안은 그렇게 범인의 영혼을 잠식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엄청 비싼 커피값… 재배농민은 왜 가난할까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요즘 커피값을 보며 누구나 한번쯤 생각하거나, 내뱉는 말이다. 점심값 1만원 시대가 되면서 다소 수정할 필요가 생기긴 했어도, 커피값이 예전에 비해 엄청나게 비싼 건 사실이다. 이 대목에서 퍼뜩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커피를 재배하는 농민들은 얼마나 큰 부자가 됐을까. 그들이 흘린 땀방울은 모두 고스란히 돈으로 변해 곳간을 풍성하게 채우고 있겠지. 하지만 누구나 직감적으로 절대 그렇지 않을 거란 걸 안다. 도시에서는 채소값 폭등이 단골 뉴스가 되는데도, 벼락부자가 됐다는 농민 얘기는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게 우리가 여태 질리도록 봐온 ‘유통의 현실’이다. ‘커피밭 사람들’(임수진 지음, 그린비 펴냄)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지구 반대편에서도 벼락부자가 된 농민은 없다는 ‘진리’를 몸으로 보여주는 책이다. 지리학자인 저자가 2년여 동안 라틴아메리카의 커피밭 노동자로 살면서 보고 듣고 느낀 그들의 삶에 대한 단상을 풀어냈다. 멕시코 콜리마주립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저자는 2001~2003년 코스타리카 타라수 지역과 페레스 셀레동 지역에서 커피열매를 따며 지리학 박사 연구를 병행했다. 저자는 단지 연구자로 머물지 않고, 그들과 똑같은 일용노동자 생활을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현지 노동자들과의 우정도 싹 트게 됐을 터. 저자는 하루 종일 일해도 커피 한 잔 값 정도의 일당밖에 벌지 못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과거와, 한국 이주노동자들의 현재와, 아직 자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의 내일을 본다. 책의 출간 목적이 다소 불분명한 건 아쉬운 대목. 공정무역을 말하려는 것인지, 자본과 착취에 관한 것을 말하려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다만 저자가 머리말에서 밝혔듯 “커피의 유행과 더불어 그에 대한 온갖 책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정작 커피를 생산하는 사람들에 대한 책은 거의 없는 현실에서 책이 ‘유행’ 이면에 감추어진 지식과 정보를 전달해 줄 것”은 분명해 보인다. 예컨대 유명 커피 브랜드의 5000원대 커피 한 잔에 담긴 현지 노동자들의 땀에 대해, 공정무역으로도 해소되지 않을 이 전지구적 빈부격차에 대해, 그리고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부(富)가 얼마만큼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1만 5000원.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죽은 여성이 범인에게 남긴 데스노트가 살인자를 지목하다

    죽은 여성이 범인에게 남긴 데스노트가 살인자를 지목하다

      2003년 12월 6일 오후 9시 30분 서울 용산구 이태원2동. 갑작스런 한통의 전화가 겨울밤 파출소의 한적함을 깨운다.  “사, 사람이 죽었어요. 도와주세요.”  신고인은 외국인이었다. 한국인 여자친구 A(당시 24세)의 주검과 마주친 그는 떨고 있었다.  A씨는 엎드린 채 숨져 있었다. 칼에 찔린 복부에서 난 피가 바닥에 흥건했다. 자상의 크기는 1.7㎝로 작은 편이었지만 대동맥을 관통할 정도로 깊게 찔린 것이 치명적이었다. 첫번째 칼부림은 바로 옆 탁자에 아래에서 시작된 듯했다. 탁자 아래엔 비산(飛散·튀어 흩어짐) 혈흔과 적하(滴下·방울져 떨어짐) 혈흔이 섞여 있었다. A씨의 목에는 손자국이 선명히 남아 있었다. 칼로 배를 공격한 후 범인은 확인사살을 하듯 A씨의 목을 다시 누른 것이다. 방어흔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만큼 범행은 순식간이었고 피해자는 반항 한번 못한 채 숨을 거뒀다.   찢어진 장부, 과학이 뒷장을 드러내다  사건이 발생한 곳은 일반주택 2층을 개조해 만든 옷 도매가게. 주로 아프리카쪽 바이어를 상대하는 매장은 흔한 입간판 하나 없어 일반인은 전혀 상점이라고 상상할 수 없었다. 탁자엔 바로 전까지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눈 듯 음료수 캔과 비스킷, 거래장부가 놓여 있었다. 선풍기형 난로도 탁자를 향해 있었다. 피해자의 가방과 지갑은 모두 열렸고 책상서랍 안에 있던 260만원은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문이나 창에 외부 침입의 흔적이 전혀 없다는 점 등을 고려해 경찰은 손님을 가장한 강도일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범인이 외국인이라면 수사과정에 곤란한 점이 적지않다. 우선 한국경찰의 가장 강력한 무기로 꼽히는 지문자동검색시스템(AFIS)를 이용할 수 없다. 불법체류자라면 소재 파악도 쉽지 않다. 그렇게 고민만 깊어갈 즈음 지문 감식을 위해 거래장부를 조사하던 수사관이 의문을 제기했다.  “반장님, 장부 페이지가 한장이 비는데요. 5일자가 없어요.”  더욱 의심스러운 것은 앞장의 글자와 뒷장에 남아 있는 자국이 좀 달라 보인다는 점이었다. 누군가 자신의 흔적이 남은 장부를 찢어버린 것이라는 판단에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필흔(筆痕) 재생을 의뢰했다.  필흔 재생이란 볼펜이나 연필 등 필기구를 사용할 때 원본 뒤 종이의 눌린 자국을 통해 앞장의 글자를 복원하는 작업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글씨를 쓰면 필기구의 압력이 종이 뒷장에 고스란히 전달된다. 글씨를 쓴 사람이 펜을 얼마나 힘껏 눌렀느냐, 필기구가 무엇이냐에 따라 2번째와 3번째 페이지까지도 필흔이 남을 수있다. 통상 볼펜이나 연필은 원본 뒤 3번째 장까지 자국이 남는다. 하지만 사인펜으로 쓴 글씨는 다음 장에서도 흔적을 찾기가 만만치 않다.  사실 자국이라고 말하지만, 육안이나 현미경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정도여서 이를 확인하는 데는 고가(3000만원가량)의 특수장비가 필요하다. 국내에서는 주로 영국제 ‘ESDA2’가 쓰인다. 사용방법은 간단하다. 증거물(눌린 종이)을 기계에 넣은 후 그 위에 랩과 같은 특수필름을 평평하게 깐다. 진공상태에서 기계가 정전기를 발생시키면 필름은 자연스럽게 글자모양에 따라 요철이 생긴다. 필름을 15~20도 정도 기울인 상태에서 특수처리된 흑연가루를 뿌려주면 필름 위에 앞장에 썼던 글자들이 고스란히 나타난다.  다시 사건으로 돌아가 보자. 국과원이 복원한 페이지는 ‘제이’(Jay)라는 손님의 거래내역서였다. 티셔츠와 바지, 점퍼 등 도합 640만원어치의 물품을 제이가 주문한 것으로 나와 있었다. 수사팀 입장에서 뜻밖의 횡재는 제이의 전화번호였다. 01×-8××-××××. 경찰은 유력한 용의자인 제이를 찾아 나섰다. 장부 속 고객 ‘제이’를 잡아라  휴대전화 개통자는 나이지리안인 저스틴(당시 31세)이었다. 이태원 나이지리아인 밀집지역을 탐문조사한 결과 장부 속 제이는 저스틴과 동일인물이었다. 제이란 이름은 위조여권 속 가명이였다.  범인은 불안한듯 했다. 사건 뒤 저스틴의 휴대전화 신호는 이태원 녹사평역에 나타났다가 다시 한남동과 경기 동두천시로 옮겨갔다. 마지막 위치는 나이지리아인 밀집지역인 안산시의 주택가로 확인됐다.  영장도 없는 상태에서 드넓은 주택가를 모두 뒤질 수는 없는 노릇. 특히 나이지리아인 지역사회에 잘못 들이닥치면 오히려 경찰이 떴다는 것을 저스틴에게 알려주는 꼴이 될 게 뻔했다. 경찰은 비용 때문에 휴대전화보다는 공중전화를 자주 이용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전화이용 패턴에 착안했다. 인근 공중전화 10군데를 골라 잠복에 나섰다. 그렇게 한지 3일. 저스틴은 전화를 걸러 슬리퍼를 끌고 나오다 공중전화 앞에서 검거됐다.  저스틴은 묵비권을 행사하며 입을 굳게 닫았다. 하지만 범행을 부인하기에는 증거나 정황이 너무나 분명했다. 우선 현장에 남은 음료수 캔의 지문이 그의 것과 일치했다. 특히 자취방에서 찾아낸 비닐봉지에서 숨진 A씨의 혈흔이 발견되자 그는 죄를 벗기 위한 노력을 완전히 포기했다.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저스틴은 범행을 저지르기 14개월 전 코리안 드림을 품고 한국에 들어왔다. 하지만 비자 유효기간이 만료돼 불법 체류자가 되면서 일자리 찾기가 극도로 어려워졌다. 먹고사는 것 자체가 막막해지자 그는 범행을 결심했다. 맨 먼저 머리에 떠오른 곳은 전에 친구와 들렀던 A씨의 가게였다. 인적이 뜸한 데다 여자들만 있어 강도를 하기도 쉬우리라 판단했다.  저스틴은 자기를 나이지리아에서 온 바이어라고 속이고 범행 전날인 12월 5일 옷가게에 들렀다. 모처럼 큰 손님에 반가워 A씨가 장부를 적어 나가는 동안 그는 내부구조와 현금의 위치, 도주경로 등을 살폈다.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서 범행에 쓸 과도도 구입했다.  범행 당일인 6일, A씨가 3시간에 걸쳐 옷에 대해 설명하는 동안 저스틴은 칼을 쓸 타이밍을 노렸다. 그리고 무참하게 범행을 실행에 옮겼다. 가게를 나오는 순간 저스틴의 머리에 불안이 엄습했다. 자기의 전화번호와 이름이 적힌 장부가 떠올랐다. 그는 장부의 마지막 장을 깔끔히 찢어내는 용의주도함으로 범행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그 마지막 장은 끝내 그를 스스로 옭아매는 증거가 됐다. 불안은 그렇게 범인의 영혼을 잠식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서울신문의 주간연재 기획물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에 보내주시는 독자 여러분의 성원과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지난 4월 16일 시작된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시리즈는 굵직한 사건현장을 누빈 베테랑 현장기자의 생생한 경험과 법의학 전문가들의 자문을 바탕으로 구성하는 서울신문의 특화기사입니다. 그동안 연재돼 온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의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크랩해 두시면 한편의 현장 과학수사의 사례집으로 활용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1) 데이트 강간을 위한 ‘악마의 술잔’ 한모금에 블랙아웃…24시간내 검사 못하면 미제사건 2) 죽음의 性도착증 ‘자기 색정사’ 혼절직전의 성적 쾌감 탐닉…‘질식에 중독되다’ 3) 부인을 죽인 건 오열했던 남편 사고로 위장한 최악의 선택…죽거나 혹은 더 나빠지거나 4) 목졸려 죽은 시신의 ‘마지막 증언’ 운전석 아내 목졸라 살해하고 차는 낭떠러지로… 5) 강간 후 살해된 여성, 그리고 부검의 반전 죽을 때까지 여성이고 싶었던 남성의 사연 6) 긴장한 범인이 현장에 남긴 대변이 결정적 증거를… 초미니 흔적 ‘미세증거물’ 7) 여성 유린 위해 정관수술까지 한 연쇄 성폭행범 ‘씨없는 발바리’ 과학수사 얕봤다가… 8) 핏자국 속 엽기 살인범의 족보 혈흔 속 性염색체로 ‘악마의 姓’ 찾아내다 9) “왜 그날 조폭은 남진의 허벅지를 찔렀나?”… 칼잡이는 당신의 ‘치명적 급소’를 노린다 10) 급성 수분중독으로인한 사망사건 사람의 능력 이상으로 물 많이 마시면 생명 잃는다 11) “너무나 깨끗한 자살현장이 타살을 증명했다” 생활반응은 진실을 알고 있다 12) 불탄 시신의 마지막 호흡…그녀가 아들을 지목하다 화재사망 속 숨어있는 타살흔적 찾기 13) 車 운전석에서 질식해 숨진 그녀의 주먹쥔 양팔 14) “그녀가 성형수술만 안했더라도…” 광대뼈 축소술, 동거男에 목졸린 백골의 한 풀다 15) 연쇄살인범에 당한 20대女…6년만의 대반전 연쇄살인 택시기사, 274만개의 눈 CCTV가… 16) 죽은 여성이 남긴 데스노트…살인자를 지목하다 찢어진 장부가 범인을 증언하다
  • [씨줄날줄] 크레인 시위/주병철 논설위원

    인권 발전은 인류의 세금 투쟁 성과라는 말이 있다. 영국의 대헌장과 권리청원, 명예혁명, 미국의 건국, 프랑스 대혁명 등 역사상 중요한 인권 투쟁 기록은 결국 세금 투쟁의 기록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사 속 세금’ 얘기를 할 때 11세기 영국 중부지방의 코벤트리(Coventry) 레오프릭 영주의 부인 고디바(Godiva)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남편이자 영국 4개 백작령 중 하나인 머시어의 통수권자인 레오프릭에게 농노들의 고통을 덜기 위해 세금을 낮춰 달라고 간청했다. 바이킹계 왕인 커누트의 ‘무리한’ 세금징수 명령을 거부할 수 없는 레오프릭은 부인의 닦달에 “당신이 알몸으로 거리를 활보한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응수했다. 그런데 고디바 부인이 진짜 알몸시위에 나선 것이다. 당시 농노들은 고디바의 마음에 감동해 그가 영지를 돌 때 집집마다 문과 창을 걸어잠그고 커튼을 내려 부인의 희생에 경의를 표했단다. 이후 남의 이목을 끄는 강렬한 항의의 수단인 알몸시위는 모피 반대 시위, 석유 의존 반대 자전거 시위, 일자리 요구 시위, 낙태 합법화 지지 시위, 반세계화 시위 등 여성이 참가하는 시위에 적잖이 등장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섬뜩한 게 골리앗 크레인 시위다. 힘없는 자가 힘있는 자와 싸워서 이겼을 때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고 말하는 데서 따왔다. 수치심을 느끼는 알몸시위와 달리 극단의 생명을 담보로 하기 때문에 시위자의 절박함 못지않게 지켜보는 이들의 간담이 서늘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알몸시위보다는 크레인 시위가 많았고 효과도 컸다. 지난 3월 대우조선 비정규직이 송전탑에 올라 88일을 살았고, 2008년에는 기륭전자 유모씨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16m 높이의 서울시청 조명탑에 올랐다. 1990년에는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이 100m 골리앗 크레인에 올랐다. 대부분 시위는 성과를 얻고 끝났다. 지금까지 크레인 시위자는 100명가량 된다고 한다. 민주노총 부산지부 지도위원 김진숙씨가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크레인 시위를 벌인 지 어제로 206일째가 됐다.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를 외치고, 지난해 주요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치러 국제무대에 우뚝 섰다는 우리에게는 참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노사가 결자해지의 자세로 빨리 문제를 매듭지었으면 한다. 국민의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하는 크레인 시위도, 해외로 떠난 사측 대표자의 시위 아닌 시위도 보기가 안쓰럽다. 언제쯤이면 이런 모습을 보지 않아도 될까. 주병철 논설위원 bcjoo@seoul.co.kr
  • 지친 영혼의 평화 어떻게 찾지?

    지친 영혼의 평화 어떻게 찾지?

    출판계는 지난 20년간 ‘영혼을 잠식하는 불안’을 확산시키면서 무수한 자기계발서를 쏟아내 배를 불렸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의 스티븐 코비, ‘네 안의 잠든 거인을 깨워라’의 앤서니 로빈스, ‘당당하고 지적인 여성이 꼭 알아야 할 99가지 지혜’의 헬렌 걸리 브라운 등 미국의 대표적인 자기계발서 저자들은 태평양이 내려다보이는 식민지시대 스페인풍의 대저택을 사들일 정도로 엄청난 수입을 거뒀다. 2000년 뉴스위크지는 책, 세미나 등을 포괄한 미국의 자기계발 산업 규모가 연간 24억 8000만 달러(약 2조 6000억원)라고 추산했다. ‘당당하고’의 저자 헬렌 브라운은 “직장에서 성욕은 육성되어야 한다.” “나는 어디에서도 누군가와 성적으로 연관되지 않고서는 일해보지 않았다.”고 주장해 악명을 떨치기도 했다. ‘자기계발의 덫’(미키 맥기 지음, 김상화 옮김, 모요사 펴냄)은 이런 자기계발서가 노동자들의 임금 정체 및 고용 불안 현상과 궤를 같이하며, 노동자들을 새로운 유형의 노예로 이끈다고 지적한다. 저자인 맥기는 사회학자이자 문화비평가. 그는 자신이 쓴 책대로 살지 않아 파산한 스티븐 코비의 모순부터 지적한다. 코비는 ‘소중한 것을 먼저 하라’는 책에서 셋째 아이를 출산하고 육아 때문에 아무 일도 하지 못해 좌절에 빠진 딸에게 “육아를 즐겨라.”라고 조언한다. 이를 두고 맥기는 “전업주부인 아내의 내조에 기댄 아홉 자녀의 아버지 코비는 성분업적이고 사적인 역할분담론으로 후퇴했다.”고 비난한다. 아울러 자기계발서 시장에서는 ‘개인 경제’나 ‘와인 맛보기’ 정도였을 책이 ‘바보들을 위한 개인 금융’ 혹은 ‘촌놈, 와인 마시기’와 같은 제목으로 출간되어 해결사를 자처한다고 꼬집는다. 이런 책들은 독자를 뭔가 모자란 불완전한 존재로 취급한다. 실상 자기계발서는 인간에게 ‘원죄’가 있다고 가르치는 성경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복지 프로그램은 해체되고, 평생직업과 평생반려자가 시대착오적인 것이 된 시대에 자기계발서는 언제라도 결혼할 수 있고, 항상 취직될 수 있도록 만반의 태세를 갖추라고 외친다. ‘자기계발’의 저자는 전통적인 미국의 자수성가한 남성 신화는 아내, 어머니 또는 누이의 노동을 착취하고 멸시해서 얻어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슈퍼마켓에 진열된 신의 계시’ ‘영혼을 관리하는 새로운 수단’으로 주목받았던 자기계발서가 제시한 것은 결국 흉내 내기에 불과하며 수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도 보상받을 길 없는 허구적인 자아의 미래상이란 게 맥기의 결론이다. 위인전을 읽으며 꿈을 키울 나이도 지난 성인들이 누군가의 경험담이나 일방적인 조언을 삶의 지침으로 삼는 것도 위험한 발상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자기계발이란 어떻게 가능할까. 맥기는 아무리 노력해도 누구도 혼자서 자신을 창조할 수는 없다고 강조한다. 즉 진정한 자신을 형성하고 실현하려면 타인의 노동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점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인다. 그리고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신이 될 수 있는 모든 것 되기’는 모두의 사회적 책임이라고 이야기한다. ‘혼자 사는 즐거움’(사라 밴 브레스낙 지음, 신승미 옮김, 토네이도 펴냄)은 맥기가 비판했던 자기계발서와는 다른 방향에서 진정한 자기계발법을 일러준다. 워싱턴포스트를 비롯해 25년간 미국 일간지 기자로 일했던 저자 브레스낙은 자신 안의 갈증을 외면하지 못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남편과 아이, 직장과 이웃을 위해 헌신해도 영혼이 목마를 때, 갈증을 채워 줄 79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그 방법이란 오래된 묘지 산책하기, 소중한 추억 수집하기, 정지하는 법 배우기, 완벽하고 싶은 충동 버리기, 벼룩시장 구경하기, 완전히 소진하기 전에 피로 깨닫기 등이다. 현대인이 느끼는 불안의 가장 큰 원인인 돈 문제에서도 저자는 색다른 방법으로 마음의 풍요로움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완전한 자신만의 돈을 만들고, 원할 때마다 만져 보거나 세어 보는 것이다. 물론 이 돈의 존재는 다른 사람에게는 비밀이고, 피자 값으로 써서도 안 된다. 외출할 때도 따로 100달러짜리 지폐 한 장을 챙기면, 굳이 돈을 쓰지 않고도 늘 풍요를 느낄 수 있다. 두 책은 모두 진정한 영혼의 부름은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볼 때 찾아온다고 이야기한다. ‘자기계발’ 1만 7000원, ‘혼자 사는’ 1만 5000원.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브레스낙이 제시하는 영혼의 갈증을 채우는 법 10가지 ① 오래된 묘지 산책하기 ② 소중한 추억 수집하기 ③ 정지하는 법 배우기 ④ 완벽하고 싶은 충동 버리기 ⑤ 벼룩시장 구경하기 ⑥ 완전히 소진하기 전에 피로 깨닫기 ⑦ 위안을 주는 동물과 살기 ⑧ 헌책방에서 옛날 책 고르기 ⑨ ‘안 돼요.’라고 말하기 ⑩ 살고 싶은 집 만들기
  • 한국건설산업硏 ‘최저가 낙찰제’ 부작용 조사해 보니

    한국건설산업硏 ‘최저가 낙찰제’ 부작용 조사해 보니

    정부의 최저가 낙찰제 대상 공사 확대가 동반성장정책이나 친서민정책에 역행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정부는 최저가 낙찰제 확대로 세금 낭비를 줄일 수 있다고 하지만 저가수주로 인한 하도급업체 팔목 비틀기, 저임금 외국인근로자 고용 확대로 인한 산업재해 증가 등 여러 가지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건설업계뿐 아니라 정치권까지 최저가 낙찰제 확대를 반대하고 있지만 정부는 내년 1월 100억원 이상의 모든 공공부문 발주 공사까지 확대 시행할 예정이다. 현재는 300억원 이상의 공공부문 발주 공사만 최저가 입찰제를 시행하고 있다. 24일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조사 결과에 따르면 최근 건설업 취업자 수가 급감하는 것은 건설경기 침체로 인한 요인도 있지만 최저가 낙찰제로 인한 저가낙찰 때문이다. 공사예정 가격의 70% 미만의 저가수주가 이어지면서 비용절감을 위해 내국인 숙련공보다 값싼 외국인 노동자의 고용을 늘리기 때문이다. ●저가 수주후 하도급업체 쥐어짜기 최근 최저가 입찰을 한 부산 북항대교와 동명 오거리를 잇는 공사 낙착률이 66.6%였고, 가락시장 현대화 공사 낙찰률도 66.5%이다. 즉 해당 건설사는 공사 예정금액보다 35% 이상 싸게 공사를 낙찰받았다. 정부는 쉽게 싼값에 발주했으니 세금을 아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먼저 35%의 공사비를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 그 답은 명확하다. 첫 번째는 인건비다. 두 번째는 저가 하도급, 세 번째는 저급한 공사자재 사용이다. ●인건비 줄이려 외국인노동자 고용 실제 건설업 취업자 수는 올 1분기 164만 1000여명, 2분기 177만 4000여명으로 전년 같은 기간 대비 각각 0.2%, 2.3% 감소했다. 또 전체 취업자 가운데 건설업이 차지하는 비중도 2006년 7.91%(183만 3000여명)에서 2009년 7.31%(172만여명), 지난해는 7.35%(175만 3000여명)로 줄었다. 올 1분기는 6.99%에 불과했다. 이 같은 현상은 대한건설협회 직무교육을 받은 외국인 근로자들이 취업한 공사현장을 비교해 보면 쉽게 나타난다. 지난해 외국인 노동자들이 취업한 공사현장의 63%가 최저가 낙찰 공사 현장인 것. 이렇게 숙련되지 않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공사를 하다 보니 당연히 공사의 품질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사고도 잦았다. 2009년 산업재해 사고 다발 공사현장 상위 10%를 분석해 보면 90% 이상이 최저가 낙찰 공사현장이었다. 심규범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주요 국책사업 현장조차 외국인 노동자 비율이 80%를 넘어서고 있다.”면서 “최저가 낙찰제로 인한 덤핑 공사수주로 저가 하도급이 남발하고, 공사현장이 저임금 노동자 위주로 꾸려지고 있다.”고 말했다. ●“기술·예산절감 평가시스템 필요” 심 위원은 “정부는 동반성장과 친서민정책이 최저가 낙찰제 확대로 인한 예산절감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간과하는 것 같다.”면서 “무조건 가격만 가지고 평가할 것이 아니라 기술과 예산절감 노력 등도 함께 평가하는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건설업계 관계자도 “내년부터 100억원 미만의 공사까지 최저가 낙찰제를 도입할 경우 중견업체가 참여하는 입찰에서 50~60%대 저가낙찰이 속출할 것”이라면서 “여기서 빚어지는 폐해로 정부가 강조하는 ‘동반성장’ ‘공정사회’ 구현은 더욱 멀어질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깔깔깔]

    ●3명의 노동자 공산주의 국가 유머 중 베스트 1으로 꼽히는 유머다. 감옥에 갇혀 옥살이를 하는 3명의 노동자들이 어쩌다 끌려왔는지 얘기하게 되었다. A:나는 매일 아침 5분씩 지각하며 출근했더니 ‘사보타주’ 한다고 붙잡혀 왔지요. B:나는 반대로 매일 10분씩 일찍 출근했더니 ‘스파이’ 활동 한다고 붙잡혀 왔지요. C:나는 매일 정시에 출근했는데 왜, 자유 서방 세계의 시계를 사용하느냐며 끌고 오데요. ●병원 이름 ‘이’ 편한 치과, ‘속’ 편한 내과. 신경정신과 개업의가 어떤 이름을 지어야 인기가 있을까 고민했다. 그중 위와 같은 병원 간판을 본 기억이 나서 다음과 같이 지었다. ‘골’ 편한 정신과.
  • 이재오 특임장관 이소선 여사 병문안

    이재오 특임장관이 21일 오전 심장 이상으로 쓰러진 고(故)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를 찾아 쾌유를 빌었다. 이 장관은 장기표 전태일재단 이사장과 함께 서울대병원에 입원한 이 여사의 병문안을 하고 전태일 열사의 여동생 전순옥씨 등 가족들을 위로했다. 이 장관은 병문안을 마친 뒤 기자들에게 “아직 의식을 회복하지 못해 알아보지는 못했지만 원체 강단 있는 분이라 금방 회복될 것으로 믿는다.”고 전했다. 그는 “예전부터 어머니처럼 모시던 분”이라면서 “얼마 전에도 전화가 왔었고 가끔 안부 전화를 주고받았다.”고 말했다. 이 장관이 민주화운동 시절 전태일 야학에 강사로 여러 차례 나가는 등 이 여사와 꾸준히 인연을 맺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장관은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도 “사셔서 수많은 노동자들의 행복한 삶을 보셔야 한다.”는 말로 이 여사의 쾌차를 기원했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열린세상] 잘사는 나라의 조건/문흥술 서울여대 교수·국문과 문학평론가

    [열린세상] 잘사는 나라의 조건/문흥술 서울여대 교수·국문과 문학평론가

    한국 문학에서 소외 계층을 대표하는 두명의 난쟁이가 있다. 1970년대 조세희의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난쟁이는 ‘부익부 빈익빈’의 사회에서 억압받다 굴뚝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 세월이 흘러 1990년대 최수철의 ‘고래 뱃속에서’의 난쟁이는 진공에서 정상인과 함께 어울려 자유로운 삶을 영위한다. 두 난쟁이를 연속선상에 놓고 보면 한국 사회가 나아갈 올바른 방향성이 무엇인지를 파악할 수 있다. ‘고래뱃속’ 같은 닫힌 공간이 부자와 빈자, 정상인과 비정상인, 인간과 자연, 남성과 여성의 이항 대립에 기초해 전자가 후자를 억압하는 사회라면, ‘진공’ 같은 열린 공간은 양자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사회이다. 차별과 배제, 억압과 착취 없이 모두 하나가 되는 사회야말로 한국 사회의 올바른 지향점이 아니겠는가. 1970년대 열악한 노동 조건에 항거해 일어난 전태일 분신 사건 이후 한국은 이제 세계 10대 경제 대국으로 우뚝 서고 있다. 그런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국제 스포츠 대회 4대 그랜드슬램을 달성하는 눈부신 성과를 올리고 있다. 더불어 K팝처럼 문화 분야에서도 세계적으로 화려한 조명을 받고 있다. 물론 지금 이러한 성과를 부정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한 사회를 이끌어가는 가치 척도가 편향되어서는 안 된다. 김재영의 소설 ‘코끼리’는 네팔에서 천문학을 전공하다 코리안 드림을 이루기 위해 한국에서 불법 체류 노동자가 된 가족의 고통스러운 삶을 다루고 있다. 그들은 돼지 축사를 개조한 집에 살면서 한국인들로부터 온갖 착취와 멸시를 당한다. 마치 1970년대 전태일이 당한 것처럼. 주인공의 그 비참한 모습에서 독일에 광부로 간 우리의 아버지와 일본 병원에서 온갖 허드렛일을 하던 우리 어머니의 거친 손과 한숨이 겹쳐지는 것은 왜일까. 한국은 더 이상 원조 받는 나라가 아니다. 원조를 해 줄 만큼 잘사는 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물질적으로 계량화된 지표만으로 잘사는 나라를 판가름하는 것은 지극히 편향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코끼리’에 등장하는 까만 피부를 가진 아들은 백인을 무조건적으로 찬양하는 한국 사회의 속성을 알고 자신의 피부를 탈색하기 위해 표백제로 얼굴을 문지르다 얼굴 껍질이 벗겨진다. 이를 소설적 허구로만 치부할 수 없는 까닭은 현실이 이보다 더 처참하기 때문이다. 서구 제국주의자들은 그들의 부를 창출하기 위해 가난한 한국을 비롯한 식민지 아시아인들을 소나 말과 같은 짐승으로 취급하였다. 전쟁의 폐허 더미에서 한국은 그런 멸시를 극복하기 위해 물질적 가치만을 최우선시하면서 쉬지 않고 달려와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현재의 한국이 한국보다 경제력이 낮은 아시아 노동자들에 대해 서구의 물질 만능주의와 제국주의적 인종 차별 의식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욕하면서 닮는다더니 우리가 꼭 그런 셈이다. 중국의 패권주의와 일본의 역사 왜곡을 보면서 그들이 ‘잘사는’ 나라는 될지언정 ‘존경받는’ 나라는 될 수 없다는 생각을 한다. 한국이 ‘잘살면서 존경받는’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물질적 풍요로움만이 아닌 정신적 풍요로움도 함께 추구해야 한다. 박범신의 ‘나마스테’를 보면 히말라야에서는 모두가 ‘나마스테’라는 인사를 나눈다. 여기에는 인종 차별 의식도, 서구 보편주의도, 제국주의적 우월성도 없다. 모두가 하나라는 인류애. 그것이 ‘나마스테’라는 인사에 담겨 있다. 중국에서 교사를 하던 조선족 어머니가 한국에서 식당일을 하면서 자식이 그리워 눈물짓고 차별 대우에 피눈물을 흘리던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이들 모든 소외된 난쟁이들이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진공 같은 사회로 나아갈 때 한국은 잘살면서 존경받는 나라가 될 수 있다. 한국에서 일하던 외국인 노동자 중 대다수가 만신창이가 되어 고국으로 돌아가서 “삼년 겪은 일, 삼십년 동안 악몽으로 남아” 괴로운 삶을 살아간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외국인도시 길을 묻다] “한국문화 익숙한 조선족 재입국 보장해야”

    [외국인도시 길을 묻다] “한국문화 익숙한 조선족 재입국 보장해야”

    지난 15일 경기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 ‘국경없는 마을’ 먹자골목 뒤편의 비루하고 허름한 빌딩. 이곳에 다문화가족들과 외국인 노동자들의 쉼터인 안산 외국인 노동자의 집이 있다. 페인트가 벗겨진 간판에는 ‘중국동포의 집’이라고 쓰여 있다. ‘모든 사람은 인종과 언어, 국가를 초월해 존엄성을 갖는다’는 기치로 1994년 4월에 문을 열었다. 비좁고 가파른 계단을 따라 3층까지 올라가니 가정집을 사무실과 상담실로 개조한 쉼터가 나왔다. 이곳에서 남자 20명, 여자 5명의 외국인들과 동고동락하는 이정혁(46) 목사를 만났다. ●‘허가기간 만료자’ 15만명 도달 “아직도 외국인 근로자들을 일회용 ‘땜빵’, 쓰고 버리는 타이어쯤으로 생각합니다. 외국인 근로자 126만명 시대라지만 대부분은 그들에게 관심도 없고, 그들을 향한 편견은 여전합니다. 함께 다문화사회를 이룰 것인지, 임시방편으로 쓰고 돌려보내는 차원에서 끝낼 것인지를 한국사회가 선택해야 할 기로에 놓였습니다.” 이 목사는 적절한 시점에 방문해줘서 고맙다고 반기면서 단호한 어조로 외국인 근로자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가장 큰 이유는 2004년 8월에 도입된 고용허가제(EPS)에 따라 올 하반기부터 ‘허가 기간 만료자’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 수가 15만명에 이른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중국동포의 경우 ‘방문취업비자’(H2)도 5년 만기가 도래하고 있다. 그는 현재 H2 체류 자격으로 국내에 거주하는 중국동포만 30만여명에 이른다고 했다. 이들이 즉시 출국하지 않으면 수십만명의 불법체류자가 발생하는 셈이다. ●불법체류자 대량 양산 우려도 이 목사는 “새 인력으로 새 수요를 창출하는 것보다 기업 입장에서는 한국문화와 기술에 익숙한 이들을 다시 쓰는 게 낫지 않느냐.”고 반문한 뒤 연장이나 재입국이 보장되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제도적 모순도 간과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기업은 기껏 기술을 가르쳐 놔도 5~6년 살다가 돌아갈 사람들로 생각하고, 외국인 근로자들은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는 딜레마가 문제다. 그러나 이 목사는 “정부가 중국동포를 동남아시아인들과는 달리 민족적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면서 이들에 대한 포용정책을 기대하고 있다. 이어 “고용허가제가 만료되는 이들의 10명 중 3명은 고향에 가지 않겠다고 말한다.”면서 “자칫 이들을 방치하면 범죄와 사고로 이어질 게 뻔하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 [외국인도시 길을 묻다] “한국말 서툴러 취업 어려워… 임금체불·차별 여전해요”

    [외국인도시 길을 묻다] “한국말 서툴러 취업 어려워… 임금체불·차별 여전해요”

    “한쿡 생활 쉽지 않아요~.” 결혼 이민자와 외국인 근로자 등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은 저마다 한국 생활의 애환을 털어놓는다. 숨은 사연은 각기 달라도 낯선 이국땅에서 겪는 어려움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의사소통 문제 가장 힘들어” 17일 오후 4시 서울 성동구 홍익동 ‘성동 다문화가족지원센터’. 네 살배기 아이와 함께 아동극 프로그램에 참여해 ‘아기돼지 삼형제’ 대본을 연습 중이던 서수분(30·여·중국)씨는 서툰 한국말로 “남편은 귀화시험을 통과해 국적을 취득했는데 저와 아이는 아직도 중국인”이라며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3년 전 조선족 남편을 따라 한국에 온 서씨는 “우리 아이는 한국에서 태어났는데도 국적을 취득하려면 중국에 가서 가족증명서를 떼 와야 하고, 이를 제출해도 1년 넘게 기다려야 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특히 서씨는 결혼 이민자에게 주는 보육비 지원 등 각종 혜택도 받지 못한다. 다문화가족이라고 하더라도 한쪽 부모가 한국에서 출생해야만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현행 ‘다문화가족지원법’ 때문이다. 서씨는 “가뜩이나 어려운 살림에 보육비가 한 달에 40만원이나 드는데, 지원이 정말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한국인 남편을 따라 1993년 한국에 온 유세프타(33·여·우즈베키스탄)씨는 “한국말을 체계적으로 교육받기 쉽지 않고, 육아와 아이 교육에 대한 걱정도 크다.”고 말했다. 한국말이 서툴러 취업을 하고 싶어도 못한다고 했다. 구청을 통해 다문화지원센터에 취업해 9월까지 프로그램 지원 업무를 하고 있는 응옥티마이(24·여·베트남)씨는 “다문화 가족들을 위한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성동구에서 결혼 이민자를 대상으로 한국생활의 힘든 점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언어 문제가 66%로 가장 많았고, 이어 자녀 양육과 경제적 어려움, 외로움 등의 순이었다. 경기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 ‘안산 외국인노동자의 집’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위즈(39·나이지리아)씨는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언어와 문화적 차이로 고생을 많이 했는데 한국인 친구들이 도움을 많이 줬다.”면서도 “하지만 불법체류라는 신분 때문에 임금 차별을 받고 억울한 일을 당하는 안타까운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고 했다. 그는 “피부색이 다르고, 언어도 다르지만 똑같은 사람으로 대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불법체류자 약점 탓에 돈 못받아” 중국 헤이룽장성에서 온 김모(43)씨는 “양계 농장에서 5년간 일했지만 불법체류자라는 약점 탓에 돈 한 푼 받지 못했다.”며 “노동부에 신고하는 것을 도와주겠다던 사람이 나타나 그를 믿었는데 갑자기 사건이 종결됐다며 종적을 감춰 버렸다.”고 울분을 토했다. 그는 “우리는 한국인도, 중국인도 아닌 사생아 같은 존재”라고 꼬집었다. 그러나 같은 고향 출신인 장길성(73)씨는 “몸이 아파 고생하자 ‘중국동포의 집’ 직원들이 입원비를 마련해줬다.”고 고마워했다. 부인과 사별한 뒤 한국에 온 그는 “고향에 돌아갈 생각이 없다.”며 “같은 민족이고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글을 쓰는 동포의 나라에 정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상담과 통역일을 하고 있는 임옥(38·여·베트남)씨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지만 아직도 임금체불과 산업재해로 고통받고 가정폭력, 차별, 폭행 등으로 억울한 일을 당하는 외국인들의 상담이 줄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의 대표적인 외국인 마을인 서초구 반포4동 서래마을에 사는 외국인들도 어려운 점이 있다. 쾌적한 분위기의 고급 빌라가 밀집된 부촌에 살고 있지만 일상생활에서는 넘지 못할 벽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 동네에서 주민센터 역할을 하고 있는 ‘서래 글로벌빌리지센터’는 외국인 거주자들이 겪는 생활관련 불편사항을 해결하고, 의사소통을 돕고 있다. 서래마을에는 주민 1만 3000명 중 718명이 외국인이고, 또 이 가운데 400여명이 프랑스인이다. 한국인 남편을 따라온 알리홀 마리피에(40) 센터장은 “서래마을에 사는 외국인 상당수가 비자 발급과 변경 절차가 복잡하다고 말하고 있으며, 각종 예약 시스템이 영어로 돼 있지 않아 공연과 여행 등을 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관공서 서류에 영어 표기를 병기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조현석·강동삼기자 hyun68@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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