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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 2억弗짜리 AU컨벤션 ‘선물’

    29일(현지시간) 아프리카 북동부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 제18차 아프리카연합(AU) 정상회의가 이곳에 새로 건설된 AU컨벤션센터에서 열렸다. 113m 높이의 이 복합 건물은 사무실 및 대형 회의장 등을 갖춰 AU 본부 건물로 손색이 없다. 아디스아바바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기도 하다. 에티오피아 정부가 제공한 11만㎡의 부지 위에 5만 2000㎡ 크기로 지어졌다. 하지만 ‘아프리카의 전당’을 건설한 주체는 아프리카가 아닌 중국이다. 중국이 건설비 2억 달러(약 2240억원)를 모두 부담했고, 중국인 노동자들이 대거 건설에 참여했으며 주요 자재와 실내 장식품 등도 모두 중국에서 공수했다. 중국은 이 건물을 2009년 1월 착공해 3년여 만에 완공한 뒤 기증했다. 지난 28일 거행된 준공식 겸 기증식에는 중국 권력서열 4위인 자칭린(賈慶林)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주석이 참석해 “AU는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중요한 협력 파트너이자 중국의 핵심 이익과 관심사를 지지해준 친구”라며 아프리카와 중국의 연대감을 과시했다. 장 팽 AU집행위원회 의장은 “양측이 사회기반시설, 농업, 제조업 등의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해 가기를 희망한다.”고 화답했다. 자 주석은 장 팽 의장과의 회담에서 또 다른 ‘통 큰’ 원조 계획도 밝혔다. 양측이 합의한 대로 중국이 3년 동안 6억 위안(약 1080억원)을 아프리카에 무상원조하기로 했다. 1950년대부터 비동맹외교를 통해 아프리카를 공략해 온 중국은 최근 들어 막대한 자금을 바탕으로 아프리카 국가들을 ‘친중국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일각에선 석유 등 아프리카의 풍부한 자원을 노린 ‘신식민주의’라는 비난도 제기된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고단한 ‘새벽 열차’ ‘희망’ 안고 달린다

    고단한 ‘새벽 열차’ ‘희망’ 안고 달린다

    “첫차 출발합니다.” 25일 오전 4시 50분 서울 구로발 의정부행 1호선 기관사의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털모자를 눌러쓰고 배낭을 등에 멘 50대 후반~60대 5명이 승강장으로 향하는 계단을 황급히 내려가 1호선 첫차에 몸을 실었다. 저마다 멀리 떨어져 앉은 채 눈을 감았다. ●65세이상 41% “경제난 힘들어” 광장시장에서 조그만 노점상을 하는 김모(57)씨는 1년 가까이 1호선 첫차를 탄다. 김씨는 “요즘은 젊은이보다 노인들이 더 열심히 일을 한다.”며 객차 안을 둘러봤다. “지금 열차 안에 젊은이가 어디 있나. 첫차를 타고 나서는 사람들은 죄다 노인들뿐이야.” 검정색 정장 바지에 검정색 재킷을 입은 김씨는 멍하니 앞 창문을 바라봤다. 첫차를 타는 남성은 건설현장에서 막일을, 여성은 건물 청소를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모(64)씨는 월곡역으로 향했다. 월곡역에서 다른 일용직 노동자들과 함께 대전에 있는 건설현장으로 가기 위해서다. 이렇게 일한 지 10년이 넘었다. “현장에서는 아침 7시에 시작해 오후 5시 30분에 일을 마쳐요. 일이 힘들고 피곤하기는 하지만, 건설 일이 다 그렇지 않나요.” 검정색 야구모자를 눌러쓴 이씨는 “허허.” 소리를 내며 웃었다. ●“최저임금 못 받지만 할 일 없어” 새벽 첫차를 탈 수밖에 없는 건 그만큼 노후의 안정된 삶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009년 65세 이상 노인들이 겪는 가장 큰 문제로 41.4%가 경제적 어려움를 꼽았다. 40.3%의 건강을 앞질러 1위를 차지했다. 통계청의 2010년 조사에서도 노인들의 취업하는 가장 큰 이유는 생활비에 보태기 위해서(54.3%)로 파악됐다. 고용노동부의 2009년 통계를 보면 전체 취업자의 평균 급여를 100으로 봤을 때 60세 이상 남성의 평균급여는 86.4, 여성은 56.2에 그쳤다. 신도림역에서 만난 김선호(68)씨는 “새벽 6시에 출근해 빌딩 청소를 하고 오후 4시 퇴근하면서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고 있지만 이게 아니면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면서 “일은 열심히 해도 그에 맞는 돈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태반인 현실이 슬프다.”고 토로했다. 첫차를 타는 이들은 고달픔 속에서도 기대와 희망을 숨기지 않았다. 빌딩 청소를 하는 김모(64·여)씨는 “다른 것 없이 올해는 그저 건강하기만을 바란다.”면서 “올 한해 별다른 일 없이 지나간다면… 그것 말고 다른 큰 소망은 없다.”고 말했다. 장상원(58)씨는 “돈을 좀 모았으면 좋겠고, 가족들 모두 건강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혼기가 찬 자녀들이 서둘러 결혼해 단란한 가정을 꾸렸으면 좋겠어요. 아이들이 잘되는 것을 보면 저도 올 한 해 쌩쌩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장씨는 껄껄 웃었다. 김소라기자 sora@seoul.co.kr
  • “임시직은 미봉책일 뿐 평생의 터전 만들어야 한국의 실업난 극복될 것”

    “임시직은 미봉책일 뿐 평생의 터전 만들어야 한국의 실업난 극복될 것”

    “임시직은 그만 양산하고, ‘삶의 터전’이 되어줄 일자리를 청년들에게 만들어줘야 합니다.” 재정위기의 파고에도 유럽에서 가장 낮은 청년실업률을 지키고 있는 독일. 요하네스 레겐브레히트(53) 주한 독일 부대사에게 청년 일자리 해법을 물었다. 지난 20일 서울 동빙고동 독일대사관에서 만난 그는 2010년 8월 한국에 부임한 25년차 베테랑 외교관으로 독일 경제·정치를 담당하고 있다. →최근 독일이 유럽에서 가장 낮은 청년실업률을 기록했다. 비결이 뭔가. -독일의 청년실업률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8년 4월 10.7%에서 2010년 10월 9.1%, 지난해 11월 8.1% 등 놀랍게도 계속 떨어지는 추세다. 아우스빌둥(이원 직업교육 시스템·Ausbildung) 때문이다. 2004년 독일의 교육기관과 기업들은 함께 직업교육에 관한 협의서를 채택했다. 산업분야별 협회와 연방정부가 맺은 계약으로, 직업학교에서 이론을 배우는 동시에 기업에서 기술을 실습하는 아우스빌둥을 통해 모든 청소년에게 기업현장에서 반드시 직업교육을 제공해야 된다는 내용이다. →직업교육은 어떻게 이뤄지나. -보통학교인 하우프트슐레, 실업학교인 레알슐레를 마친 5~10학년(대략 10~16살) 학생들은 3년간 직업교육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일과 직접 연결되는 기술훈련은 회사나 공장에서 일주일에 3~4일, 2일은 이론만 가르치는 직업학교(베루프스슐레)에서 수학, 경영학 등 필요한 교육을 받는다. 직업별로 각각 회사, 학교에서 가르쳐야 할 학습내용이 법적으로 세세하게 정해져 있다. 상공회의소가 기업과 직접 직업교육 내용을 조율하고 합의한다. →직업교육을 받으면서 학생들이 월급도 받는다는 게 흥미롭다. -기업에서 교육을 해주는 데 학생이 수업료를 냈으면 냈지 돈도 주느냐고 놀라겠지만 16살짜리 학생들도 재정적으로 독립할 수 있게 돈을 받으며 직업교육을 받는다. 2010년 헤어디자이너 교육을 받은 학생은 월 451유로(약 67만원), 운송·물류업에 종사하는 학생은 월 978유로(약 145만원)를 받았다. 평균 매월 688유로(약 102만원)를 받는다. 이 돈은 기업이 부담한다. →유럽 경제상황도 안 좋은데 왜 기업들이 돈을 써가면서 직업교육에 힘쓰나. -첫째, 독일에서는 기업이 필요한 인력은 직접 양성하는 게 오랜 전통이다. 인력 육성이 당연한 것으로 체화돼 있다. 둘째, 요즘 젊은이들은 대부분 화이트칼라 직업을 원하기 때문에 공장일 등 3D 업종에는 (정부나 기업의) 추가 지원이 없으면 뛰어들려 하지 않는다. 그러면 왜 단순인력을 쓰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요즘은 생산시설에도 높은 전문지식이 요구되기 때문에 이공계 분야의 능력 있는 젊은이들을 유치하려는 것이다. 직업교육을 받는 학생들 가운데 능력이 뛰어난 학생들은 바로 생산라인에 투입해 능력을 제고한다. →직업교육 외에 청년 일자리를 늘리는 다른 방안이 있다면. -독일에서는 2008~2009년 금융위기 당시 정규직 노동자들의 근무량과 근무시간을 줄이고 월급을 덜 받는 ‘단축근무’를 실시해 기존 근로자를 해고하지 않으면서 청년 실습생 규모도 유지할 수 있었다. 일종의 고통분담이었다. 기존 임금의 100%까지는 못 받더라도 70~80%까지는 받을 수 있도록 차액을 국가가 지원해 줬다. 독일이 위기 이후인 2010년부터 유로존 내에서 독보적인 성장세를 보인 것도 이때 근로자들을 해고하지 않아 위기 이후 생산력을 100% 재가동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학 진학률이 36%에 불과하다. 고급인력 부족으로 발생하는 문제는 없나. -노동시장의 현실에 비춰봤을 때 오히려 요즘은 대학졸업자가 너무 많다. 기계공학, 화학 등 이공대생들은 졸업 뒤에도 노동시장에서 수요가 많기 때문에 구직이 쉽다. 하지만 대졸자들은 대부분 법학이나 의학 등 일부 분야에만 몰려 수요·공급 간에 불균형이 심하다. 노동시장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대학생들의 전공 선택이 문제다. →한국 청년들의 체감실업률도 22%에 이를 정도로 심각하다. 조언을 준다면. -미봉책으로 임시직 만들기에 급급하다 보면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않는 일자리, 기업 입장에서는 싼값에 돌리는 일자리 등 ‘회색 일자리’만 잔뜩 생겨날 수 있다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건전한 국가경제를 일구려면 개인이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자기 삶의 터전이 될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들어줘야 한다. 인턴십만 양산 말고 인턴십이 정규직으로 이어질 수 있는 기본원칙부터 세워야 한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일자리 강국 서유럽의 해법

    일자리 강국 서유럽의 해법

    청년실업이 전 세계의 고민으로 떠오르면서 독일, 네덜란드 등 유럽의 주요 일자리 강국들의 해법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실업률 50% 스페인 노동자 獨취직 추진 유럽에서는 일자리 양극화가 극명하다. 이달 유럽연합(EU)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독일은 지난해 11월 8.1%로 가장 낮은 청년 실업률을 기록했다. 오스트리아(8.3%), 네덜란드(8.6%)가 뒤를 이었다. 반면 스페인은 49.6%로, 청년층의 절반가량이 실업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EU 27개국 평균(9.8%)의 5배에 이른다. 그리스도 46.6%로 꼴찌에서 두번째다. ‘두 개의 유럽’이라 불릴 만큼 사정이 악화되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최근 국가 간 노동력 이동을 자유롭게 하는 방안을 구상 중이다. 예를 들면, 실업률이 50%에 육박하는 스페인 청년들이 기업의 3분의1이 숙련노동자 부족을 호소하는 독일에서 일자리를 구하기 쉽도록 하는 것이다. 국경을 넘어선 직업훈련 제도 도입도 방안 중 하나로 검토되고 있다. 직업학교에서는 이론을 배우고, 회사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직종의 기술을 실습하는 독일의 ‘아우스빌둥’(이원 직업교육 시스템)을 본 뜬 것으로, 전문가들도 이들 국가의 안정적인 고용 창출은 성공적인 직업훈련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클라우스 짐머만 독일 본대학교 경제학 교수는 “독일의 낮은 실업률과 숙련 노동자들이 받는 탄탄한 임금 전망은 아우스빌둥이 장래의 일자리를 보장하는 기술을 제공한다는 걸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獨 ‘아우스빌둥’ 345개 직종 체험 가능 독일이 아우스빌둥에 들이는 비용은 연간 108억 유로(약 15조 8000억원·2007년 기준).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0.4%에 해당한다. 아우스빌둥에서 다루는 직종은 지난해 기준으로 모두 345개. 이렇게 직업교육을 받은 학생수는 한 해 150만명(2010년 기준)에 이른다. 22세 이하 청년의 3분의2가 참여하는 셈이다. 통상 3년간 직업교육을 받고 나면 상공회의소에서 관리하는 졸업시험을 치르고 직종별로 발행하는 공인 증서 ‘게젤레’(전문가) 자격증을 받게 된다. 이후 공부를 계속하면 ‘마이스터’(장인) 증서를 받는데, 창업을 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는 것이다. 네덜란드 정부는 청년들이 강제적으로 일하게 하는 ‘당근’을 쓴다. 1992년 도입된 청년보장법에 따라 6개월 이상 실직 상태에 있는 21세 이하 청년들은 정부가 보증하는 일자리를 최소 6개월 이상 제공받는다. 하지만 이 일자리를 한 번 거부하면 3개월간 실직급여 지급이 중단된다. 독일과 같은 견습제도를 운영 중인 오스트리아는 직업훈련의 사각지대에 있는 청년들도 배려한다. 2008년에는 정부가 3억 4000유로의 도제 지원금을 기업에 투입, 청년들의 직업훈련을 지원했다. 이서원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경기가 악화돼 기업들이 실습생 인원을 줄이면서 훈련을 받지 못하게 되거나 실습 과정에서 자격증을 취득하지 못한 학생들을 구제해주는 장치”라고 말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자살 물의’ 팍스콘 이번엔 ‘직원비하’ 구설수

    2년전 중국공장에서 직원 10여명이 잇따라 투신자살을 시도해 화제에 올랐던 세계 최대 전자부품 회사인 타이완의 팍스콘이 연초부터 구설에 올랐다. 궈타이밍(郭台銘) 회장이 춘제(春節·설)연휴를 앞두고 지난 15일 타이베이에서 열린 직원 야유회에서 “100만명의 동물을 매일 관리하느라 골치 아파 죽겠다”라고 말했다는 것. 24일 현지 언론매체에 따르면 궈 회장의 발언 내용이 알려지자 중국 네티즌들은 “팍스콘이 노동자들을 노예나 돈 버는 기계로 여기고 있다” 등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효율적 인사관리를 강조한 취지였다는 해명에도 불구하고 파장이 확산되자 궈 회장은 “직원들을 멸시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는 사과성명을 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열린세상] ‘이종욱 - 서울프로젝트’에 거는 기대/강대희 서울대 의대 학장

    [열린세상] ‘이종욱 - 서울프로젝트’에 거는 기대/강대희 서울대 의대 학장

    지난 9일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는 ‘이종욱-서울 프로젝트’ 2기 환영식이 있었다. 서울 의대에 기초의학 및 치료기술을 배우러 온 라오스 국립의대 교수 8명을 환영하는 행사였다. ‘이종욱-서울 프로젝트’는 고(故) 이종욱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을 기리고 우리나라가 받았던 원조 중에 의학 분야 발전의 초석이 된 미네소타 플랜을 벤치마킹해서 만들어졌다. 미네소타 플랜은 1955년부터 7년간 226명의 서울대 교수들이 미국 미네소타 대학에 연수를 다녀온 국제 원조 프로그램의 별칭이다. 국가 예산으로 국제 원조가 시작된 것은 2차 대전 이후의 일이다. 초기에는 세계평화와 경제성장을 내세웠지만 이념과 체제안정 수단으로 군사 지원과 함께 수행되었다. 1960년대부터 선진국들이 본격적인 관심을 가졌고 그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가 설치되었다. 1970년대 이후 원조전략이 경제성장에서 인간의 기본욕구 충족으로 전환되면서 가장 핵심적인 이슈는 ‘원조 효과성’이다. 이를 위해 2000년 유엔이 새천년개발목표(MDGs)를 만들었고, 2005년 파리선언을 통해 효과적인 원조를 위한 원칙에 합의했다. 지난해 부산에서 열린 세계 개발원조 고위급 회의에서는 원조 패러다임을 ‘원조 효과성’에서 ‘개발 효과성’으로 바꾸었다. 이런 국제사회의 변화과정 속에서 유난히 돋보이는 것이 바로 한국의 성공 경험이다. 그중 하나가 한국 의료분야의 성공사(史)다. 지표를 보면 왜 세계가 우리에게 주목하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여성의 평균수명은 1950년대 51세로 선진국의 69세에 비해 20년쯤 짧았던 것이 2010년에는 여성의 기대수명이 84세로 OECD 국가 중 6위까지 상승했다. 영아사망률은 1950년대 통계를 찾을 수 없다. 1985년에 1000명당 32.6명이던 것이 2011년에는 3.2명으로 26년 사이에 10분의1로 줄었고 OECD 평균보다 낮다. 이런 성공의 뒤에는 우리 교수들에게 제공되었던 미네소타 대학의 원조가 있다. 당시 미네소타 플랜은 단순한 초청 연수가 아니었다. 초청 연수자 총 77명 중 33명만이 당시 무급 조교로 근무하던 젊은 의사들이었고 그중 3명은 박사학위를, 8명은 석사학위를 받았다. 연수 기간도 보직 교수들은 단기로, 선임 교수들은 1년, 젊은 교수들은 2년 이상이었다. 또한 11명의 자문관이 파견돼 의학 분야 전반에 관여하였다. 이들은 교육과정의 개편과 학교 발전을 위한 컨설팅을 주도했고, 이 성과는 훗날 한국의학교육 발전의 큰 기반이 되기도 했다. 이와 함께 병원 시설 개선을 위한 자금도 지원되었다. 6년 8개월 동안 미국이 1000만 달러를, 우리 정부가 690만 달러를 지원했다. 단순히 미국이나 국제사회의 원조만으로 한국의학이 오늘날의 발전을 이룩한 것은 결코 아니다. 우리나라 의료계 선배들의 혼신의 노력이 함께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제 막 2기를 시작한 이종욱-서울 프로젝트는 우리의 이런 경험과 국제사회에 대한 보은의 차원에서 기획돼 추진되고 있다. 우리 프로젝트는 초청 연수, 방문 컨설팅, 장비 지원, 지속교류 인프라 구축이라는 네 축으로 구성돼 있다. 우리나라의 의학 수준뿐 아니라 정보기술(IT) 등의 기술발전을 접목시키는 지원 방안을 모색해 오고 있다. 초청 연수를 온 교수들은 단순히 의학지식과 기술뿐 아니라 리더십, 의학연구, 의료정책, 지역사회의학 등도 배울 수 있다. 지난 1년간의 경험으로 보면 이런 프로그램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장점은 우리가 그들의 현재를 과거에 경험했다는 것이며 그래서 그들과 공감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이 있다. 당시 미네소타에 갔던 선배들은 1등석 비행기를 타고 갔고 급여도 미국의 전공의들보다 더 많이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코노미석에 이주 노동자들 정도의 생활비를 지원한다. 우리 프로그램의 관심과 내용만큼은 미네소타보다 충실하고 발전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직 세밀한 돌봄과 감동은 부족하다. 이미 선진국 문턱에 와 있는 우리 정부의 원조가 우리의 과거를 기억하며 세계사 속에서 나눔과 보은의 모범이 될 수 있도록 그 품격과 진심이 더해지기를 기대한다.
  • 영세업체 직원 무료검진센터 창원·대구성서 공단에 설치

    경남도는 16일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이 무료로 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는 근로자건강센터를 다음 달 창원에 설치한다고 밝혔다. 근로자건강센터는 종업원 50인 미만의 영세사업장 근로자들의 건강보호를 위해 고용노동부가 지난해부터 1곳마다 10억원씩 예산을 지원해 전국 공단지역에 시범적으로 설치·운영하는 종합건강서비스 기관이다. 근골격계질환 예방 및 상담, 작업관련 뇌·심혈관질환 예방 및 상담, 고혈압·고지혈증·당뇨·비만을 비롯한 기초질환관리, 금연·절주·운동 등 생활습관 개선, 직무스트레스 해소 상담 등 건강진단을 무료로 해 준다. 지난해 인천공단 등 3개 지역에 이어 올해는 창원공단지역과 대구성서공단에 설치된다. 산업의학전문인력을 보유하고 있는 ㈜터 산업의학센터가 위탁 운영한다. 창원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中 연초부터 잇단 “임금인상” 파업

    중국에서 새해 벽두부터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공장 노동자의 파업이 잇따르고 있다. 각 지방 정부가 올해도 최저임금을 잇따라 인상하고 있지만 노동자의 불만을 잠재우기는 역부족인 양상이다. 이와 관련, 서부 쓰촨성 청두(成都)시의 한 철강 공장에서 4일 공장노동자 수천명이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다고 홍콩 명보가 5일 보도했다. 판강(攀鋼)그룹 산하 청두강판 노동자들은 1인당 1200위안의 월급이 몇년째 오르지 않아 생활이 어렵다며 이날 작업을 거부했다. 파업 현장에는 진압병력 수천명이 배치돼 몇 시간 동안 노동자들과 대치하다 강제 해산에 나섰으며 이 과정에서 공장 노동자들이 부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지난달 30일에는 국영기업인 촨화(川化)그룹 청두공장 직원 수천명이 파업을 벌였다. 이들은 지난 4년간 월급이 1000위안 정도에 불과해 생계유지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400위안의 월급 인상과 연말 상여금 3000위안 지급 약속을 받아낸 뒤 파업을 풀었다. 노동자들의 반발을 사전에 막기 위한 임금인상도 잇따르고 있다. 베이징시가 1일부터 월 최저임금을 1260위안으로 8.6% 인상한 가운데 광둥성 선전시도 다음 달 1일부터 현재보다 13.6% 올린 1500위안으로 최저임금을 상향 조정할 방침이다. 선전시의 최저임금은 전국 최고 수준이다. 중국 31개 성·시·자치구의 지난해 최저임금 인상률은 평균 21.7%에 달했다. 지방정부뿐 아니라 국영기업도 임금을 인상하고 있다. 철도부가 최근 철도관련 기업들에 이달부터 임금을 직급에 따라 최고 460위안 인상토록 지시했다고 신경보가 전했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2011 키워드로 본 인물] 올해 사라진 국내 인물들

    ‘산 사나이’ 박영석 / 히말라야 꿈에 영원히 잠들다 ‘산 사나이’ 박영석 대장이 히말라야에 영원히 묻혔다. 안나푸르나(8091m)를 등반하던 박 대장은 지난 10월 18일 베이스캠프와 연락이 끊겼다. 열흘간 끈질긴 수색작업을 펼쳤지만 끝내 아무런 흔적도 발견하지 못했다. 안나푸르나 남벽에 ‘코리안 루트’를 개척하려던 꿈도 함께 묻혔다. 고(故) 박 대장은 세계 최단기간에 히말라야 8000m급 14개 봉우리를 완등했고, 지구 최고봉인 에베레스트와 남극점·북극점을 탐사하는 ‘탐험 그랜드슬램’도 세계 최초로 이뤘다. ‘철강왕’ 박태준 / ‘짧은 인생을 영원 조국에’ 지난 13일 타계한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은 ‘철의 사나이’, ‘철강왕’ 등으로 통한다.철강불모지에 사상 처음으로 일관제철소를 건설, 철강왕국의 입지를 다졌기 때문. 대일차관으로 제철소를 짓는 만큼 실패하면 모두 우향우(右向右)해 포항 앞바다에 빠져 죽자는 박 명예회장의 ‘우향우 정신’은 포스코 창업 정신의 밑거름이 됐다. 단 1주의 포스코 주식도 보유하지 않았고, 2000년에는 40년간 살던 서울 아현동 집도 사회에 환원했다. 고인의 좌우명은 ‘짧은 인생을 영원 조국에’였다. 불세출 투수 최동원 / 암과의 사투에 무릎 꿇다 그가 던졌던 불 같은 강속구는 그의 인생과 닮았다. 7전4승제 한국시리즈에서 전무후무한 4승을 거두며 1984년 프로야구 롯데의 우승을 일궈 낸 날카로운 추억. 지난 9월 14일 대장암으로 별세한 고(故) 최동원. 1984년부터 1987년까지 매년 200이닝 이상 던지며 10승 이상씩 거둔 고인은 1988년 선수협의회 결성을 시도하다 삼성으로 트레이드되는 시련을 겪었다. 32살에 은퇴했지만 꿈은 지도자로 마운드에 서는 것이었다. 한화 2군 감독으로 꿈을 이뤘던 2007년 암 선고를 받았고, 생애 마지막 승부에서는 무릎을 꿇었다. ‘노동운동 대모’ 이소선 / 마지막까지 한진重 농성 격려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이자 ‘노동운동의 대모’인 이소선 여사가 지난 9월 3일 8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이 여사는 죽은 아들의 뜻을 이어 남은 삶을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 헌신하면서 민주화의 싹을 틔웠다. 노동운동을 하면서 옥살이를 하는 등 숱한 어려움을 겪었지만 한번도 뜻을 꺾지 않았다. 이 여사는 마지막으로 병상에 누워서도 한진중공업 고공 크레인에서 농성 중이던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을 격려하기도 했다.
  • 노동운동가 故이춘자씨 영결식 거행

    지난 17일 뇌출혈로 별세한 노동운동가 이춘자(51·여) 서울노동광장 대표의 영결식이 20일 오전 11시 서울 구로역 북부광장에서 30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민주사회장으로 열렸다.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은 추도사를 통해 “이춘자 동지는 2001년 민주철도 건설 투쟁 이전부터 묵묵히 헌신해 왔다.”면서 “서슬퍼런 전두환 독재 치하에서 엘리트 대학생의 기득권을 버리고 노동현장에 투신한 모습 그대로 노동자의 벗으로 함께해 줬다.”고 말했다.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은 “동지가 못다 이룬 뜻은 남은 이들이 기필코 이어 가겠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지난 16일 오후 귀가길에 뇌출혈로 쓰러져 17일 오후 8시 25분쯤 가톨릭대 부천성모병원에서 타계했다. 이 대표는 서울대 국문학과 81학번으로, 대학 시절이던 1984년부터 노동운동에 투신해 한평생을 노동자들의 교육과 연대 활동에 바쳤다. 김소라기자 sora@seoul.co.kr
  • “코리안 드림요? 오늘도 잘곳 없어 막막합니다”

    “코리안 드림요? 오늘도 잘곳 없어 막막합니다”

    지난 2009년 어업취업비자로 제주도의 양식장에 취업한 네팔인 다이아 딤(29). 3년간 열심히 일해 목돈을 모아 귀국, 개인 사업을 차리는 꿈을 갖고 있다. 그러나 1년 6개월 동안 일한 양식장과의 계약이 끝나 최근 기숙사를 나왔다. 재취업까지 머물 곳이 마땅찮았다. 따로 방을 구할 수도 없었다. 겨울 추위를 몸으로 맞다 수소문 끝에 전남 여수에 있는 외국인 노동자 쉼터를 찾았다. 가까스로 한뎃잠을 면할 수 있었다. 딤은 “외국인 노동자들은 직장을 잃으면 집도 동시에 잃는 경우가 많아 직장을 구하는 동안 갈 곳이 없다.”면서 “다른 친구들의 공장 기숙사에 숨어들어 잠만 자고 나오거나 모아둔 돈을 쪼개 값싼 모텔방을 전전한다.”고 말했다. 박용환 쉼터 소장은 “최근 쉼터에 부산, 목포 등에서 생활하다 잠잘 곳을 찾아 여수까지 온 네팔, 말레이시아, 태국 출신 외국인 노동자들이 몰리고 있다.”고 전했다.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에 왔지만 노숙자 신세로 떠도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적지 않다. 불안정한 주거 환경 속에서 지인의 집에 머물거나 간혹 노숙인 시설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정부가 외국인 노동자의 주거문제를 외면하는 사이 교회, 시민단체 등에서 쉼터를 마련해 두고 있지만, 이마저도 전국 20~30곳에 불과하다. 노숙인상담보호센터인 영등포햇살보금자리 관계자는 “중국동포와 외국인들이 가끔 와서 잠시 머물다 가곤 한다.”고 말했다. 다문화 시대에 등장한 ‘다문화 홈리스’다. 중국동포 박동춘(49·가명)씨는 전국을 떠돌며 공장일을 하다 지난해 9월 뇌출혈로 쓰러졌다. 8개월간 병원 신세를 지다 교회 쉼터와 친구집 등에 신세를 졌지만 마음이 무겁다. 노숙인 쉼터의 문도 두드렸지만 ‘외국인이라 받아줄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천신만고 끝에 지난달 가리봉동 중국동포교회 쉼터에 자리 잡은 박씨는 “여기에서도 나가야 한다면 난 그저 죽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해성 목사는 “이따금 경찰이나 공무원 등이 갈 곳 없는 중국동포를 데려오기도 하고, 이주노동자 지원단체 등에서 이곳을 소개해 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상당수 외국인 노동자들이 홈리스로 전락하는 것은 저임금과 고용불안, 제도상의 허점 때문이다. 이재산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 사무처장은 “이직을 3회로 제한하고 이를 초과하면 체류자격을 박탈하는 고용허가제는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를 양산시키고 빈곤을 심화시킨다.”고 지적했다. 산업재해를 당하면 보험혜택도 받지 못해 고용주로부터 외면받는 실정이다. 정부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주거문제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이주 노동자들의 주거는 노사가 해결할 문제”라고 선을 분명히 그었다. 지자체나 민간에서 운영하는 외국인 노동자 쉼터에 재정을 지원하는 수준이다. 노숙인 쉼터 등 노숙인 지원시설도 외국인에 대한 지원 근거가 없다. 때문에 산업재해를 당해 치료와 요양이 필요하거나 돈이 없어 집을 마련하지 못하는 이들이 갈 수 있는 곳은 교회나 시민단체 등에서 운영하는 쉼터뿐이다. 김해성 목사는 “고용허가제를 통해 ‘노동력’을 수입했을 뿐 ‘사람’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서 “갈 곳 없는 이주 노동자들의 주거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지원을 늘려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오는 18일은 세계 이주민의 날이다. 윤샘이나·김소라기자 sora@seoul.co.kr
  • 인권위 “외국인노동자 재취업 절차 간소화해야”

    국가인권위원회는 16일 고용허가제 기간이 끝난 외국인 노동자들의 재취업 절차가 길고 복잡해 불법 체류하는 사례가 많다며 관련 제도 개선을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권고하기로 했다. 현행 고용허가제는 3년(연장 시 4년 10개월)의 고용허가 기간이 만료된 노동자들을 자국으로 돌려보내 한국어능력시험, 취업교육을 마친 뒤 최소 6개월이 지나야 재취업을 허용하고 있다. 때문에 미등록 상태로 국내에 머무는 경우가 많은 만큼 재입국 절차를 간소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인권위는 “올해와 내년에 허가 기간이 끝나는 외국인 노동자 10만여명 가운데 약 4만명이 국내에 체류할 것”이라고 추산한 뒤 “불법체류자가 늘수록 인권보호 수준은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인권위에 따르면 지난 9월 기준 국내에 체류 중인 외국인 142만명 가운데 49만여명만 고용허가제로 입국했다. 인권위는 또 외국인 노동자의 사업장 변경 사유와 횟수에 대한 통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함께 제시했다. 외국인 노동자는 3년 동안 최대 3차례 사업장을 옮길 수 있다. 인권위는 “노동자 귀책사유가 없다면 횟수에 포함하지 않아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인권위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퇴직금과 임금을 제대로 받을 수 있도록 고용주가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는 출국만기보험과 보증보험의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인권위는 “노동자들이 고용주의 보험 가입 및 보험금 납부 여부를 확인하기 어렵다.”면서 “관련 내용을 다국어로 안내하고, 보험금 청구절차를 간소화 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34) 토막시신 전철역 화장실 유기 사건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34) 토막시신 전철역 화장실 유기 사건

    “아저씨! 아저씨!” 2007년 1월 24일 오후 3시 30분 수도권의 한 전철역 플랫폼. 역무원이 큰 소리로 불러도 사내는 못 들은 척 가던 길을 계속 간다. “아유~, 몇 번을 불러도 참….” 답답해 달려온 역무원이 검은 여행용 가방을 끌고 가던 30대 남자를 멈춰 세웠다. “이봐요, 가방에서 피 떨어지잖아요.” 남자는 무표정하게 힐끗 가방을 내려다보더니 다시 아무 말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싸구려 가방에선 여전히 피가 뚝뚝 떨어졌다. “거기 대체 뭐가 들었어요?” “이거 아무것도 아닌데, 그냥…, 돼지고기 40㎏요.” 퉁명스러운 듯 어눌한 말씨. 중국동포든 한족이든 중국인이 분명해 보였다. 역무원이 가방을 열어 보라고하자 남자는 순순히 따랐다. 몇 겹의 비닐을 젖히자 하얀 돼지의 살갗이 나왔다. “죄송하지만 쇠고기건 돼지고기건 핏물 떨어지는 가방을 갖고 전철을 탈 수는 없어요.” 남자는 곤란한 표정을 짓더니 잠시 후 발길을 뒤로 돌렸다. 그로부터 한 시간가량 지났을 때 순찰하던 역무원이 1층 남자화장실 장애인용 변기 옆에서 그 가방을 발견했다. 바닥에는 피가 흥건했다. 가방을 열어 본 역무원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것은 돼지고기가 아니라 벌거벗은 여자의 시신이었다. ●몸통뿐인 여성의 신원을 찾아라 경찰이 출동하고, 토막 시신 발견 사실이 삽시간에 전철역 구내에 퍼지면서 화장실 주변은 행인과 기자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범인은 장애인용 변기 쪽에 가방을 버리면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벌 수 있다고 계산한 듯했다. 왼쪽 바퀴가 떨어져 나가고 아래에 구멍이 났지만 가방은 새것이었다. 상표와 손잡이 부분 비닐이 그대로였다. 범행 후 시신을 옮기기 위해 급히 구입한 듯했다. 시신은 모두 세 토막이었다. 머리와 사지가 잘린 몸통, 그리고 손이 없는 양쪽 팔이었다. 옷가지, 이불, 쓰레기 봉투 등으로 싸여 있었다. 하지만 여성의 몸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극히 제한적이었다. 숨진 여인이 누구인지, 어디에서 어떻게 살해됐는지 등을 알아야 수사의 첫 단추를 끼울 수 있지만 얼굴과 손이 없으니 몽타주도 지문도 확인할 수가 없었다. 몸에 남은 힌트는 여인의 혈액형이 A형이고, 몸통에 특이하게 생긴 사마귀가 5개 있다는 것 정도였다. 하지만 특이한 점이 있었다. 몸이 돌처럼 굳는 사후 강직도, 시신의 반점도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시체 유기를 위해 시신을 해체하는 데 걸렸을 시간 등을 고려하면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죽으면 몸이 곧바로 굳어질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서서히 굳기 시작해 12시간이 지났을 때 강직도가 최고조에 달한다. 그 이후 강직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하는데 몸이 완전히 이완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기온 등 계절적 요인에 영향받는다. 여름에는 24~36시간, 봄·가을에는 48~60시간, 겨울에는 3~7일 정도 걸리는 것으로 연구돼 있다. 사람이 죽으면 근육의 수축·이완에 에너지원 노릇을 하는 아데노신트리포스페이트(ATP) 성분이 줄어드는데 이 때문에 몸이 굳는다는 게 정설이다. 이후 굳었던 근육이 다시 풀어지는 것은 부패의 과정으로 해석된다. 시신의 얼룩인 시반(屍斑)은 혈액 성분 중 비교적 무게가 많이 나가는 적혈구가 가라앉으면서 생기는 현상이다. 심장이 뛸 때 적혈구는 백혈구 등과 함께 섞여 있지만, 심장박동이 멈추면 피는 비중에 따라 서로 다른 층을 이루게 된다. ●토막 살인의 장소는 바로 근처 옥탑방 “시반이 나타나지 않은 건 출혈량이 워낙 많은 데다 시신 훼손이나 유기 과정에서 몸이 자꾸 움직여져서 그런 것으로 보입니다. 사후 강직이 일어나지 않은 것은 여성이 살해된 지 얼마 안 됐음을 알려 주는 것이고요.” 수사진의 이런 초기 예측은 정확한 것이었다. 강직이나 시반이 생기기도 전에 시신을 처리했다면 범행 장소는 전철역 인근일 것으로 경찰은 추정했다. “수십㎏에 이르는 여행용 가방을 끌고 전철역으로 향한 점, 또 이 지역 종량제 쓰레기봉투를 이용한 점으로 봤을 때 살인범은 자기 차가 없는 이쪽 지역 거주자가 틀림없다.” 경찰은 이례적으로 공개수사를 결정하고 CCTV 화면에 담긴 가방을 버린 중국인 남자의 모습을 공개했다. 이제 남은 것은 혈흔에 반응하는 루미놀 시약을 들고 1700여 가구에 이르는 인근 외국인 밀집 지역을 빠짐없이 뒤지는 것. 과학의 힘보다는 은근과 끈기가 필요한 작업이었다. 하지만 수사는 처음부터 난항의 연속이었다. 불법체류 노동자들이 많다 보니 다들 숨어들기 바빴다. 불법체류자가 아닌 사람들도 문을 걸어 잠그고 나오려 하지 않았다. 한국 공무원들은 아예 만나지 않는 게 상책이라는 것이었다. 당연히 제보도 빈약할 수밖에 없었다. 범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지문도 수사에 활용할 수 없었다. 외국인 지문을 확인하는 제도는 있지만, 대상이 범법자 등에 한정돼 있기 때문이었다. 사건 발생 6일째. 드디어 현장에 나간 형사로부터 “옥탑 지붕에서 잘린 두 다리가 발견됐다.”는 긴급 보고가 들어왔다. 안쪽 화장실에서 상당한 양의 혈흔 반응도 나타났다. 부러진 칼날 조각과 피 묻은 옷, 정체를 알 수 없는 뼛조각들도 발견됐다. 옥탑방 거주자는 한국인 여성 A(당시 34세)씨와 그녀의 동거남 손모(당시 35세·한족)씨였다. 여성의 가족들은 몸에 난 5개의 사마귀로 시신의 주인을 확인했다. 하지만 이미 손씨는 여성의 카드 등으로 현금 569만원을 인출해 도주한 상황이었다. 경찰은 서울과 부산, 진주, 동두천 등지를 돌며 도망치던 손씨를 붙잡았다. 경찰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집 주변을 맴돌다 꼬리를 잡혔다. 그는 시신유기 당일 아침 중국술 3병을 마신 뒤 동거녀와 남자관계에 대해 다투다 결국 머리를 둔기로 때려 살해했다. 2008년 2월 손씨는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완벽한 범행 은닉을 위해 시신을 조각낸 엽기 행위가 스스로 형량을 늘리는 족쇄가 됐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30대 중국인 남성, 사랑했던 여인을 가방에 담아…

    30대 중국인 남성, 사랑했던 여인을 가방에 담아…

    “아저씨! 아저씨!” 2007년 1월 24일 오후 3시 30분 수도권의 한 전철역 플랫폼. 역무원이 큰 소리로 불러도 사내는 못들은 척 가던 길을 계속간다. “아유~, 몇번을 불러도 참….” 답답해 달려온 역무원이 검은 여행용 가방을 끌고가던 30대 남자를 멈춰 세웠다. “이봐요, 가방에서 피 떨어지잖아요.” 남자는 무표정으로 힐끗 가방을 내려다 보더니 다시 아무말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싸구려 가방에선 여전히 피가 뚝뚝 떨어졌다. “거기 대체 뭐가 들었어요.” “이거 아무것도 아닌데, 그냥…, 돼지고기 40㎏이요.” 퉁명스러운듯 어눌한 말씨. 조선족이든 한족이든 분명히 중국인이었다. 역무원이 가방을 열어보라고 하자, 남자는 순순히 따랐다. 몇겹의 비닐을 제치자 하얀 돼지의 살갗이 나왔다. “죄송하지만, 쇠고기건 돼지고기건 핏물 떨어지는 가방을 갖고 전철을 탈 수는 없어요.” 남자는 곤란한 표정을 짓더니 잠시 후 말없이 발길을 뒤로 돌렸다. 그로부터 1시간가량이 지났을 때, 순찰하던 역무원이 1층 남자화장실 장애인용 변기 옆에서 그 가방을 발견했다. 화장실 바닥에는 피가 흥건했다. 가방을 열어본 역무원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것은 돼지고기가 아니라 벌거벗은 여자의 시신이었다.   몸통뿐인 여성의 신원을 찾아라 경찰이 출동하고, 토막시신 발견 사실이 삽시간에 전철역 구내에 퍼지면서 화장실 주변은 행인과 기자들로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범인은 장애인용 변기 쪽에 가방을 버리면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벌 수 있다고 계산한듯 했다. 왼쪽 바퀴가 떨어져 나가고 아래에 구멍이 났지만 가방은 새 것이었다. 상표와 손잡이 부분 비닐이 그대로였다. 범행 후 시신을 옮기기 위해 급히 구입한듯 했다. 시신은 모두 세 토막이었다. 머리와 사지가 잘린 몸통, 그리고 손이 없는 양쪽 팔이었다. 옷가지, 이불, 쓰레기 봉투 등으로 싸여 있었다. 하지만 여성의 몸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극히 제한적이었다. 숨진 여인이 누구인지, 어디에서 어떻게 살해됐는지 등을 알아야 수사의 첫 단추를 끼울 수 있지만 얼굴과 손이 없으니 몽타주도 지문도 확인할 수가 없었다. 몸에 남은 힌트는 여인의 혈액형이 A형이고, 몸통에 특이하게 생긴 사마귀가 5개 있다는 것 정도였다. 하지만 특이한 점이 있었다. 몸이 돌처럼 굳는 시신강직도, 시신의 반점도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사체 유기를 위해 시신을 해체하는 데 걸렸을 시간 등을 고려하면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죽으면 몸이 곧바로 굳어질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서서히 굳어지지 시작해 12시간이 지났을 때 강직도가 최고조에 달한다. 그 이후에 강직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하는데 몸이 완전히 이완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기온 등 계절적 요인에 영향받는다. 여름에는 24~36시간, 봄·가을에는 48~60시간, 겨울에는 3~7일 정도가 걸리는 것으로 연구돼 있다. 사람이 죽으면 근육의 수축·이완에 에너지원 노릇을 하는 ATP(아데노신 트리포스페이트) 성분이 줄어드는데 이 때문에 몸이 굳는다는 게 정설이다. 이후 굳었던 근육이 다시 풀어지는 것은 부패의 과정으로 해석된다. 시신의 얼룩인 시반(屍斑)은 혈액성분 중 비교적 무게가 많이 나가는 적혈구가 가라앉으면서 생기는 현상이다. 심장이 뛸 때 적혈구는 백혈구 등과 함께 섞여 있지만, 심장박동이 멈추면 피는 비중에 따라 서로 다른 층을 이루게 된다.   토막살인의 장소는 사체 발견장소 근처 옥탑방 “시반이 나타나지 않은 건 출혈량이 워낙 많은데다 시신 훼손이나 유기 과정에서 몸이 자꾸 움직여져서 그런 것으로 보입니다. 사후강직이 일어나지 않은 것은 여성이 살해된 지 얼마 안됐음을 알려주는 것이고요.” 수사진의 이런 초기 예측은 정확한 것이었다. 경찰은 강직이나 시반이 생기기도 전에 시신을 처리했다면 범행장소는 전철역 인근일 것으로 추정했다. “수십㎏에 이르는 여행용 가방을 끌고 전철역으로 향한 점, 또 이 지역 종량제 쓰레기봉투를 이용한 점으로 봤을 때 살인범은 자기 차가 없는 이쪽 지역 거주자임이 틀림없다.” 경찰은 이례적으로 공개수사를 결정하고 CCTV 화면에 담긴 가방을 버린 중국인 남자의 모습을 공개했다. 이제 남은 것은 혈흔에 반응하는 루미놀 시약을 들고 1700여 세대에 이르는 인근 외국인 밀집지역을 빠짐없이 뒤지는 것. 과학의 힘보다는 은근과 끈기가 필요한 작업이었다. 하지만 수사는 처음부터 난항의 연속이었다. 불법체류 노동자들이 많다보니 다들 숨어들기 바빴다. 불법체류자가 아닌 사람들도 문을 걸어 잠그고 나오려하지 않았다. 한국 공무원들은 아예 만나지 않는 게 상책이라는 것이었다. 당연히 제보도 빈약할 수 밖에 없었다. 범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지문도 수사에 활용할 수 없었다. 외국인 지문을 확인하는 제도는 있지만, 대상이 범법자 등에 한정돼 있기 때문이었다. 사건발생 6일째. 드디어 현장에 나간 형사로부터 “옥탑 지붕에서 잘린 두 다리가 발견됐다.”는 긴급보고가 들어왔다. 안쪽 화장실에서 상당한 양의 혈흔 반응도 나타났다. 부러진 칼날 조각과 피묻은 옷, 정체를 알 수 없는 뼛조각들도 발견됐다. 옥탑방 거주자는 한국인 여성 A씨(당시 34세)와 그녀의 동거남 손씨(당시 35세·한족)였다. 여성의 가족들은 몸에 난 5개의 사마귀로 시신의 주인을 확인했다. 하지만 이미 손씨는 여성의 카드 등으로 현금 569만원을 인출해 도주한 상황이었다. 경찰은 서울과 부산, 진주, 동두천 등지를 돌며 도망치던 손씨를 붙잡았다. 경찰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집 주변을 맴돌다 꼬리를 잡혔다. 그는 경찰에서 중국술 3병을 마신 뒤 동거녀와 남자관계에 대해 다투다 결국 머리를 둔기로 때려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2008년 2월, 손씨는 범행 후 1년여만에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완벽한 범행은닉을 위해 시신을 조각낸 엽기행위가 스스로 형량을 늘리는 족쇄가 됐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멕시코인의 비애

    미국인들이 쓰고 버린 배터리를 멕시코에서 재활용하면서 멕시코 국민들의 건강에 치명타가 되고 있다. 납을 폐건전지에서 추출하는 과정에서 공장 노동자들과 지역 주민들이 위태로운 수준의 유독성 중금속에 노출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40파운드(약 18㎏)가량의 납이 함유된 배터리를 사용하면 어른들은 고혈압, 간 손상, 복통 등을 겪을 수 있다. 어린이들에겐 더욱 치명적이다. 신경발달에 방해를 받아 발육지연, 행동장애 등을 일으킬 수 있다. 뉴욕타임스 분석 결과 올해 미국 내 차량용 배터리와 산업용 배터리의 20%가 멕시코로 수출됐다. 한 해 동안 2000만개의 배터리가 국경을 넘었다. 4년 전인 2007년 6%에서 3배 이상 급증했다. 멕시코로 유입되는 건전지가 급증하면서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더욱 엄격한 납오염 기준을 마련했으나 국내에서의 재활용만 막을 뿐 기업들의 수출을 막을 규제가 없는 상태다. 과거에는 저렴한 가격에 쉽게 구할 수 있었던 납이 최근에는 글로벌 수요가 폭증해 가격이 10년 사이 10배 이상 치솟았다. 때문에 납건전지 밀수가 끊이지 않고 있다. 미국에서는 밀폐된 공간에서 고도의 기계 설비를 갖춘 공장에서 건전지 재활용이 이뤄진다. 공장 굴뚝에는 집진기가, 주변에는 납 오염도를 측정할 수 있는 장치가 설치돼 있을 정도로 철저하게 중금속 피해를 차단하고 있다. 반면 멕시코에서는 사람이 직접 망치로 건전지를 해체하고 아무 여과장치 없이 가스가 배출되는 용광로에 납을 녹인다. 건전지 재활용 허가를 받은 공장도 미국보다 20배나 많다. 미국 환경보호단체들은 “수출을 할 거면 국내와 같은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라.”고 비판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中서 공사중 다리 붕괴하자 당국하는 말이…

    최근 중국에서 공사 중인 다리가 붕괴하자 당국이 말도 안 되는 해명으로 수습하려 해 논란을 사고 있다. 6일 중국광파망 등 현지 매체 보도를 따르면 지난 5일 오전 7시께 중국 안후이성 허페이시 바오허구의 한 고가다리 건설 현장에서 다리 일부가 붕괴해 일반인을 포함한 6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이에 허페이 건설 당국은 다음날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기자 회견을 열고 “이번 다리 붕괴는 사고가 아니라 ‘파괴성 실험’이었다.”면서 “현장 노동자들에게 사전에 통보했다.”고 해명했다. 그러자 현장 담당자는 “그런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면서 당국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에 대해 중국 네티즌들은 “어이가 없다.” “그 실험이란 게 대체 뭐냐?” “부상자들도 나왔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나?” 등의 댓글을 통해 분노를 감추지 않고 있다. 즉 중국 건설 당국의 ‘파괴성 실험’ 발언이 중국 내에서도 전대미문의 변명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한편 이번 허페이 고가다리 붕괴 사고에서 다행히 사망자는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윤태희기자 th20022@seoul.co.kr
  • 中 WTO 가입 10주년… 어떻게 달라졌나

    中 WTO 가입 10주년… 어떻게 달라졌나

    오는 11일로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10주년을 맞는다. 중국은 1986년부터 15년간에 걸친 협상 끝에 2001년 12월 11일 143번째 WTO 회원국이 됐다. WTO 가입 이후 연평균 10%대 안팎의 폭발적인 경제성장률을 이룩하며 2001년 세계 6위이던 경제 규모가 2010년에는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로 도약하는 등 눈부신 성장을 기록했다. 세계 경제의 ‘견습생’이라는 우려를 씻고 ‘우등생’으로 성장한 셈이다. WTO 가입 이후 중국의 변화상을 짚어본다. WTO 가입은 중국을 후진적인 농업대국에서 신흥 공업대국으로 한 단계 도약시켰다. 세계은행(WB)에 따르면 중국은 WTO 가입 이후 10년 동안 연간 400억 달러(약 45조 2200억 원)의 경제적 이익을 얻었으며, 세계적으로도 750억 달러 실질소득을 끌어올리는 효과를 냈다고 분석했다. 시장개방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한 덕분이다. 중국은 외국자본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생산기지를 구축, ‘세계의 공장’으로 우뚝 섰다.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 규모는 연평균 9.5%씩 늘어나며 2001년 세계 6위에서 2010년 세계 2위로 올라섰다. 2010년 중국의 외국인 투자유치 규모는 1088억 달러로, 2001년보다 2.32배나 증가했다. ‘세계의 공장’으로 떠오르면서 중국 제조업이 전 세계 생산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19.8%를 기록, 미국(19.4%)을 추월했다. 산업구조 역시 WTO 가입 초기 단순 임가공무역 제품에서 전기전자 및 첨단·고급 제품 생산으로 변모, 독일을 제치고 세계 1위 수출국으로 도약했다. 중국 상무부에 따르면 수출액은 2001년 2661억 달러에서 2010년에는 1조 5497억 달러를 기록했다. 전 세계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01년 7.3%에서 2010년 9.6%로 끌어올렸다. 덕분에 경제규모도 지난해엔 일본마저 제치고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대국, 이른바 주요 2개국(G2) 반열에 올라섰다. 2008년 하반기 미국에서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 과정에서 막대한 외환보유고와 미국채를 보유해 영향력이 커짐에 따라 중국은 ‘세계 경제의 구원투수’라는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중국은 WTO 가입 이후 국내 법률을 국제 기준에 맞게 손질해 시장의 문턱을 낮췄다. 3000여개의 법률 조항을 뜯어고쳤으며, 수입할당제 폐지·수입관리절차 간소화를 추진했다. 이에 따라 중국의 평균 관세율은 2001년 15.3%에서 지난해 9.8%로 떨어졌다. 인구 13억명의 거대 시장을 노린 글로벌 기업들이 앞다퉈 중국으로 몰려들 수밖에 없는 이유다. 세계 1위의 맥주업체인 미국의 버드와이저와 생활용품업체인 P&G가 중국에 진출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중국 기업들은 고도성장에 따라 풍부해진 자금력을 바탕으로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2010년 중국 기업의 해외직접투자 규모는 전 세계 해외직접투자액의 5.2%인 688억 달러로 2001년보다 무려 9.8배나 늘었다. 해외 직접투자 규모도 일본을 제치고 세계 5위로 부상했다. WTO 가입의 그늘도 있다. 중국 사회에 빈부 격차가 커지며 노동자들의 항의시위가 잇따르고 있다. 세계은행은 “중국의 도시와 농촌 간 이익 분배가 공평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면서 “균형 잡힌 배분을 위한 정책변화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국제사회에서는 ‘중국 위협론’도 재부상하고 있다.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교수는 “소련은 전성기 때 GDP가 미국의 3분의1 수준이고 인구도 미국보다 조금 더 많았을 뿐인데도 위협적이었는데, 현재 중국은 GDP가 미국을 곧 따라잡을 기세이고 인구는 4배가 넘는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유일 강대국’의 입지가 흔들리자 인권·환율 등을 무기 삼아 중국을 압박하고 있고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인도를 비롯해 남중국 분쟁 당사국인 일본과 베트남 등 동남아 국가들이 적극적으로 중국 견제에 나서고 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기획]최고경영자=⑤신진(新進)「그룹」 김창원(金昌源)씨

    [기획]최고경영자=⑤신진(新進)「그룹」 김창원(金昌源)씨

     총알처럼 날아오는 탁구공을 빠른 속도로 반격하는 자세와 정신으로 일해 왔다.「코로나」에서「시보레」1700으로 제품을 바꾼 신진(新進)「그룹」의 김창원(金昌源·56) 사장은『탁구 선수의 정확성과 기민성 그리고 예리한 판단력이야말로 기업인이 지녀야 할 필수요건』이라고 했다. 72년 6월 일본(日本)측과의 제휴를 끊고 미국(美國)「제너럴·모터즈」와 합작 투자로「지엠·코리어」를 새로 설립한 김(金)사장은 언제나 탁구선수처럼 부산한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는 지도 모른다. 충남(忠南) 공주(公州)가 고향인 김(金)사장은 어린 시절을 어두운 공장 속에서 탁한 공기와 요란한 기계의 소음과 함께 보냈다.  『누구나 다 겪어본 고생이지요. 인간의 성장 과정에는 반드시 역경이라고 하는 비료가 있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지금은 자본금 2백억원의 대 회사「지엠·코리어」를 비롯 신진(新進)자동차공업, 신진(新進)자동차판매, 한국기계, 대원(大元)강철,「코리어·스파이서」(前 現代기아), 하동환(河東煥)자동차, 한국「카이저·알루미늄」, 신원개발, 신진(新進)학원, 경향신문 등 방대한 기업을 총괄하고 있는 최고경영자 김창원(金昌源)씨에게도 역경과 슬픔은 수없이 많았다고 한다.  홀몸으로 일본에 건너가 화가산현(和歌山縣)에 있는 현립상업학교를 나올 때까지, 그리고 6·25때 사업체를 버리고 대전(大田)에서 부산(釜山)으로 내려가 피난 생활을 하는 동안 김(金)사장은 견디기 어려운 역경을 몇번이고 겪어야 했다.  『왜놈들에게 조금이라도 지기 싫어서 유도, 탁구, 축구 등 운동이란 운동은 다했지요』  지금도 유단자의 유도 실력과 도(道)「챔피언」의 탁구 실력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는 김(金)사장은 학생 시절의 역경을 뚫는 방법으로 운동을 택했었다고 한다.  강인한 체력과 뛰어난「테크닉」으로 맞설때 아무리 오만불손하던 강자도 결국은 무릎을 꿇고 말더라는 그의 생활 철학이 최고경영자의 오늘을 만들어 주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또한 부산(釜山) 피난 시절을 잊지 못하고 있다.  『모든 사람이 실의와 불안 속에서 허덕일때 나는 일했읍(습)니다』  미군(美軍)부대에서 쏟아져 나오는 자동차 부품(폐품)들을 정성스레 수집해서 다시 조립해 놓으면 훌륭한 승용차가 될 수 있었다.  전쟁 중이었기 때문에 미군(美軍)의 군수품은 풍부했고 그들이 쓰다 버리는 폐품들은 말이 폐품이지 얼마든지 재생해 쓸 수 있는 값있는 물품이었다.  그것을 다시 손질해 만들어 낸 승용차가「신진호」.  전쟁 직후까지 서울과 부산(釜山)일대에서 한동안 많이 눈에 띄던「새나라」차 모양의 납작한「택시」가 바로 김(金)사장이 만들어낸「신진호」그것이었다.  『인간의 생명을 좌우하는 자동차. 나는 그것을 직접 내 손으로 만들고 내 손으로 운전하면서 어떻게 하면 보다 안전하게, 보다 빠르게 그리고 즐겁게 달릴 수 있을까 연구하고 또 연구했읍(습)니다 』  자동차 공업의 선구자 김(金)사장은 누구보다도 자동차를 잘 알고 자동차와 가깝다고 말하고 있다.  55년 2월 신진(新進)공업주식회사를 설립한 뒤에도 김(金)사장은 꾸준히 자동차와 함께 살았으며 어린 시절과 다름없이 더운 공장 속에서 탁한 공기를 마시고 돌아가는 기계소리를 흥겨운 음악으로 듣곤 했다.  그래서 부실 운영으로 새나라 자동차가 문을 닫고 새주인을 맞아들일 때 관계 당국에서 선뜻 김(金)사장을 지목했던 것이다.  당시 새나라 자동차의 관리권을 맡고 있던 한일(韓一)은행에서는 많은 희망자를 모두 물리치고 자동차 공업에 경험이 많고 절대적인 실력을 지니고 있는 김(金)사장에게 관리권을 넘겼었다.  『사실 처음에는 무척 당황했읍(습)니다. 자금과 시설이 불충분한 데다가 세상에서들 말을 오죽 해야지요』  특혜다 뭐다 말들이 많은 가운데 그는 의욕과 경험만을 믿고「새나라」를 인수했다고 한다.  『아마 내 평생에 그때만큼 밤잠을 못 자고 일해 보기는 처음이었을 거예요』  그러니까 65년 겨울부터 66년초까지의 일이었다.  일본(日本)「도요다」자동차와의 제휴 조건도 처음 얘기와는 달리 자꾸 바뀌고 필요한 자금을 동원하는 일도 뜻과 같지 않았다.  하루에 잠자는 시간은 단 2시간 뿐.  일에 쫓겨 시간도 없거니와 잠을 자려고 아무리 애써도 머릿 속에는 수없는 자동차가 오락가락할뿐 잠은 오지 않았다고 한다.  『내 생애에서 세번째로 겪은 역경이었던 셈이지요. 결국 그 역경을 뜷고 나오는 동안 나라고 하는 하나의 인간이 그리고 한국의 자동차공업이 성장을 하게 된 겁니다』  그 뒤 한달 동안 3천대를 돌파하고「코로나」가 완전히 국내 시장을 석권했을 때도 김(金)사장은 흡족한 잠을 잘 수가 없었다고 한다. 한(韓)·일(日)간의 미묘한 관계에서 비롯되는 경쟁 의식, 그리고 자기가 생산해 내는 자동차가 완전 국산이 아니라는 불만과 초조 그런 것이 지금까지도 김(金) 사장의 잠자리를 괴롭히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당시의 신진(新進)제품 자동차 국산화율은 승용차가 32.8%,「버스」가 77.4%,「트럭」이 23.37%- 중요 부품은 모두 일제(日製)로 돼 있었다.  『물론 지금도 완전 국산화는 못하고 있읍(습)니다만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초조하고 마음이 아프다니까요』  그러나 완전 국산화의 날은 멀지 않았다고 김(金)사장은 장담하고 있다.  『물줄기는 높은 데서 얕은 데로 흐르기 마련인듯 경제를 바탕으로 하는 국제 사회의 흐름도 선진국에서 후진국으로 흐르게 된다고 나는 믿고 있읍(습)니다』  후진국 사람들은 그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하고 잡힌 기회는 유효하게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냉전 체제가 무너지고 화해「무드」가 조성되면서부터 일본(日本)은 별안간 중공(中共)에 근접하고 있으며 따라서 한국으로 흐르던 일본(日本) 경제의 흐름은 그 방향을 바꾸었다는 것이다.  『나는 일본사람들을 조금도 나쁘다고 나무라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들이 우리를 쳐다보지 않고 외면만 한다면 우리도 또한 새로운 물줄기를 우리 쪽으로 돌리도록 노력해야 할 것 아니겠어요』  그래서 일본(日本)과의 제휴를 끊고 세계적인 자동차「메이커」인 미국(美國)의「제너럴·모터즈」와 합작 투자를 했다는 것이다. 자본금은 50%씩 4천8백만불.  그러나 자본금을 반밖에 안 냈다 해서 회사 운영의 방침이나 제도를 미국(美國)측에 양보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어디까지나 한국이 주체고 김창원(金昌源)씨의 운영 방침이 우선합니다』 8천명의 대식구를 거느린 신진(新進)「그룹」으로서는 성실하고 근면한 종업원이 주인라는 얘기다. 『미국이나「유럽」같은 선진국에서는 공장 직공들이 1주일에 몇시간씩이나 일하는 지 아세요. 겨우 32시간만 일하면 그들은 그만이에요. 그 이상은 더하려고 하지도 않고 또 시키려고 생각지도 않아요. 그런데 우리 나라는 보십시오.1주일에 70시간 이상씩 일을 합니다. 나도 그들과 같이 일합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일 많이 하는 사람들이 회사의 주도권을 쥔다는 게 당연하지 않습니까』 날품팔이 노동자들로부터 대 회사 사장에 이르기까지 이 땅에 태어난 사람이면 누구나 하루 10시간 이상 일해야 한다는 것이 김(金)사장의 주장이다.  『경영철학이요? 나는 그런 어려운 얘기는 모릅니다. 다만 정확한 판단에 의해 계획이 수립되면 지체없이 집행하라는 것이 내 지론입니다』 정확한 판단·민첩한 행동, 그것은 역시 경기에 임한 탁구선수의 자세를 그대로 본받으라는 말인 것 같았다. 이(李)에리사 양의 세계 제패도 어쩌면 대한탁구협회 회장이기도 한 김(金)사장의 그런 정신과 자세를 본 받은 결과인지 모르겠다. 『나는 미국이라는 나라를 대단히 존경합니다. 그 젊음에 찬 패기와 과단성이 있는 결단력, 그게 무척 마음에 든단 말이에요』  자동차와 일반기계 부품공장인 현대(現代)「기아」를「코리어·스파이서」란 이름으로 개칭하고 미국의「데이나」회사와 제휴하면서 자주 미국에 가보고 다시금 미국의 힘을 재인식했다는 것이다.  「데이나」라고 하면 미국에서도 손꼽는 재벌급 회사다.  그「데이나」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모두 30대의 젊은이들뿐이라는 점에서 놀랐고, 30대의 젊은이들이 해내는 일이 세계 경제를 좌우하는데 조금도 손색이 없는 것을 보고 또 한번 놀랐다고 한다.  『물론 풍부한 자원과 우수한 시설 이런 것들이 모두 갖추어져 있으니까 이루어지는 힘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그 자원과 시설을 이용하는 인간의 자세와 정신이라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한국의 장래를 낙관한다고 했다.  신진(新進)「그룹」의 장래도 몹시 희망적이라고 했다.  약동하는 젊은이들의 의욕적인 활동이 눈부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탁구공은 쉴새없이 날아옵니다. 잠시도 제자리에 서 있을 수는 없지요. 움직여야 합니다. 움직여야지, 민첩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말입니다』  아직 결근을 해본 적이 없다는 신진(新進)「그룹」의 총수.  『자동차공업 육성만이 내 의무요 목적』이라는 그의 모습에서 바로 그가 반했다는 미국(美國)의 젊은 패기와 과단성 있는 결단력이 보이는 것 같았다. <이의재(李義宰) 기자>   ◇김창원(金昌源)씨 약력◇  ▲1917년 8월 충남(忠南) 공주(公州)에서 출생  ▲1953년 일본 화가산현입(和歌山縣立) 상업학교 졸업  ▲1955년 신진공업 대표이사  ▲1966년 신진(新進)자동차공업 대표이사  ▲1969년 대한탁구협회 회장  ▲ “ 한국기계공업 대표이사  ▲ “ 주한「튜니지아」 명예영사  ▲1971년 경향신문사 회장  ▲1972년「제너럴·모터즈·코리어」대표이사   [선데이서울 73년 2월4일 제6권 5호 통권 제225호] ●이 기사는 ‘공전의 히트’를 친 연예주간지 ‘선데이서울’에 38년전 실렸던 기사 내용입니다. 기사 내용과 광고 카피 등 당시의 사회상을 지금과 비교하면서 보시면 더욱 재미있습니다. 한권에 얼마냐고요? 50원이었습니다.
  • 보수신문사 종편 개국에 들끓는 여론

    보수신문사 종편 개국에 들끓는 여론

     이명박 정부의 비상식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보수신문들이 만든 종합편성 채널 4개사가 1일 개국했다. 양식 있는 언론인과 언론매체, 시민사회, 정치권은 한목소리로 ‘미디어 대재앙’을 우려하며 종편사업권 철회를 요구했다. 종편을 환영한 곳은 해당 언론사와 청와대·방통위·여당뿐이었다. 정부 안에서조차 보수진영에 의한 미디어 독점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이날 총파업에 돌입했다. 조·중·동(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 방송 특혜 반대, 미디어렙법 제정 촉구, MB정권 언론 장악 심판을 내걸었다. 언론노조는 “이번 총파업에 신문, 방송, 출판, 유관단체 등 112개 사업장이 참여했다.”고 밝혔다.  오후 3시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총파업 결의대회에는 1500여명이 참가했다. 이강택 언론노조 위원장은 “미디어 악법으로 잉태된 종편 채널들이 국민의 눈과 귀를 어지럽히고 여론을 왜곡할 것”이라면서 “언론 노동자들은 민주주의를 짓밟고 언론 현실에 재앙을 초래한 세력들에 맞서 싸우겠다.”고 다짐했다. 이들은 오후 5시 종편 4개사 공동 개국쇼가 열리는 광화문으로 이동해 집회 및 기자회견을 가졌다.  앞서 경향신문과 한겨레, 국제신문과 경남도민일보는 종편 방송 특혜에 대한 항의 표시로 이날 아침 1면 하단 광고를 백지로 냈다. 한국일보는 2면 하단에 백지광고를 실었다.  정치권에서도 비판이 봇물을 이뤘다. 노영민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국회 고위정책회의에서 “종편 개국으로 언론시장이 공익성과 공공성이 무시된 약육강식의 정글로 전락할 수 있는 만큼 그대로 방치할 수 없다.”면서 “한나라당이 이달 중 미디어렙 법안 처리에 협조해야 그나마 최악의 상황을 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우위영 민주노동당 대변인은 “재벌 언론일 뿐인 종편은 우리 국민과 언론민주화의 독(毒)”이라면서 “국민의 언로를 왜곡하고 재벌·대기업의 이해만 대변하는 언론독재나 다름없는 종합편성채널 사업권은 반드시 회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부 종편은 첫날부터 무리한 홍보로 빈축을 샀다. ‘피겨퀸’ 김연아´를 활용해 과도한 홍보 마케팅을 펼친 게 대표적이다. 조선일보는 이날 1면에 김연아 사진을 게재하며 “‘TV조선’에서 김연아는 피겨스케이트를 벗고 말쑥한 정장 차림으로 뉴스를 진행한다.”고 표현했다. 그러자 네티즌 사이에서 김연아가 종편 홍보에 들러리를 섰다는 실망과 비난의 목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김연아 소속사인 올댓스포츠는 보도자료를 내고 “어이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올댓스포츠는 “개국 축하 인터뷰 도입 부분에서 잠깐 앵커 흉내를 냈던 것”이라면서 “종편 4개사와 모두 인터뷰를 했는데, 깜짝 앵커로 표현한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다.  한편 종편 4사는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과 안암동 고려대 화정체육관에서 공동 개국쇼를 열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1분짜리 축하 메시지를 보냈고, 내년 총선·대선 등을 의식한 여당 인사들이 ‘보수진영의 잔치’에 대거 얼굴을 내밀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30년 달려온 지하철 2호선 어제와 오늘

    30년 달려온 지하철 2호선 어제와 오늘

    총구간 48.8㎞의 서울 지하철 2호선, 30년간 쉬지 않고 달려온 2호선은 서울 대중교통의 심장이다. 2호선을 타고 가면 어느 쪽으로든 45분이면 목적지에 도착한다. KBS 1TV ‘수요기획’은 30일 밤 11시 40분에 지하철 2호선의 어제와 오늘을 돌아보는 ‘지하철 2호선, 30년의 연가’를 방송한다. 2호선은 강북도 가고 강남도 간다. 가난하고 고된 삶이지만 꿈을 안고 살았던 봉천동과 구로 공단, 망각 속으로 사라진 80년대 스포츠의 메카 동대문 운동장, 허허벌판에서 한국형 부르주아의 도시로 탈바꿈한 강남, 그리고 민주화를 외치던 80년대 청춘들과 자유와 예술의 거리 홍대입구까지 30년간 쉬지 않고 달려왔다. ‘을지로 순환선’이라는 작품을 통해 도시민의 삶과 풍경을 그림에 담아낸 만화가 최호철에게 봉천동은 특별한 장소다. 프로그램은 크로키북 하나 달랑 메고 봉천동 골목을 누비는 그를 따라 가난했지만 웃음을 잃지 않던 그때를 떠올린다. 노동운동가 심상정 전 국회의원은 80년대 노동운동의 상징인 구로공단에서 20대 청춘을 보냈다. 이제 공단이 있던 자리에는 공장 굴뚝보다 더 높은 첨단 빌딩들이 들어섰다. 구로공단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공장의 불빛들. 우리 현대사에서 잊혀져간 노동자들의 삶과 이야기를 조명한다. 서울에서 가장 많은 유동인구를 자랑하는 강남, 2호선 강남역 근처는 온통 거대한 랜드마크다. 먹고 입고 소비하는 모든 것이 그 안에서 소비되고 유행처럼 번진다. 우리는 강남에 대한 불편함을 감추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것을 욕망한다. 30년 전 논과 밭이 주를 이루던 한강 근처에 살던 평범한 소년은 이제 너무나 변해 버린 강남을 이야기하는 작가가 되었다. 강남 토박이인 ‘오렌지 리퍼블릭’의 노희준 작가와 함께 현대 자본주의의 상징이자 욕망의 청사진이 된 강남에 대해 생각해 본다. 소설가 성석제는 만추의 끝자락에서 그가 20대를 보낸 신촌을 찾았다. 1987년 민주화를 외치는 뜨거운 함성이 이어졌던 그때와 달리 25년이 지난 지금의 젊은이들은 어떤 고민을 갖고 살고 있을까. 그리고 청춘들이 내뿜는 열정을 느낄 수 있는 곳 2호선 홍대가 있다. 그곳의 상징인 클럽 문화와 쇠락해 가는 지금의 모습까지 청춘의 공간을 따라가 본다. 사람들은 지하철을 타고 지하철은 저마다의 사연을 실어 나른다. 만남과 헤어짐이 교차하면서 우리 곁을 스쳐간 30년의 시간들. 그 기억들 위로 오늘도 지하철 2호선은 달려간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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