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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성룡·심세중의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 200년 전 英산골 도시계획 실험… 노동자 운명 바꿨다

    [조성룡·심세중의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 200년 전 英산골 도시계획 실험… 노동자 운명 바꿨다

    이모가 남긴 사진첩을 정리하다가 반세기 전 한 가족의 출발을 보게 되었다. 잘 가꾸어진 잔디밭 뒤로 드문드문 들어선 새하얀 양옥 주택, 젊은 부부와 두 어린 아이가 함빡 웃는다. 1970년대 초 울산의 대한석유공사(유공, 현 SK) 사택이다. 막내의 가슴에는 유공유치원 이름표가 달랑거린다.울산에 정유공장을 중심으로 한 석유화학단지와 조선소가 들어서면서 사택 단지나 사원 아파트가 함께 조성되었다. 서구에서 온 엔지니어들은 공장과 함께 사택과 클럽을 조성하고, 유치원과 볼링장, 실내 수영장도 운영했다. 도심의 사원 아파트에는 무료 셔틀버스가 시간마다 운행되었다. 사택이라고 하면 탄광촌이나 철도 관사 등이 쉽게 떠오르지만, 노동자들의 살림집으로 회사에서 공급하는 주택(社宅)도 있다. 앞서 소개한 옥타비아 힐의 아버지가 추종했던 200년 전 영국 사람 로버트 오언(초상화·1771~1858)은 대개 공상적 사회주의자이자 협동조합 운동의 선구자로 알려져 있는데, 그 이전에 산업혁명 시대에 노동자들의 주거를 기업의 주된 과제로 여기고 적극적으로 풀어내는 최초의 실험을 한 인물이다. 스코틀랜드 클라이드 계곡 골짜기의 뉴 래나크에서 말이다. “오언은 그전에 맨체스터에 있었어요. 같은 산업혁명 상황이라고 해도, 맨체스터를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후에 엥겔스(1820~1895)가 나쁜 주거 환경을 묘사해서 보고서를 낸 곳이죠. 소셜리스트라는 말로 워낙 알려졌지만, 오언은 도시를 만드는 것, 타운 플래닝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한 사람이에요. 도시 계획 자체가 오언에게는 자신의 사회적 이념을 적용한 것입니다. 오언은 한 사람의 운명을 바꾸려고 하면 그 사람이 처한 환경 문제로 들어가서 그것부터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어요.”오언은 웨일스 대장장이의 아들로, 9살 때 런던으로 상경해 포목점 종업원으로 일을 시작했다. 그러다 면 방적 산업이 폭발적으로 커지던 맨체스터로 옮겼고, 20대 초에는 작은 공장을 인수할 만큼 실력을 인정받았다. 맨체스터에서 철학과 문학 클럽을 드나들면서 세상을 보는 안목도 키워 나갔다. 20대 말인 1800년엔 북쪽으로 한참 떨어진 스코틀랜드의 산골로 들어가 뉴 래나크 면 방적 공장을 인수했다. 당시 발명된 리처드 아크라이트(1732~1792)의 수방적기를 도입해 데이비드 데일(1739~1806)이라는 기업가가 차린 공장이었다. 산업혁명 초기 영국의 여러 공장이나 탄광이 그렇듯, 수력을 기계 동력으로 이용했기 때문에 낙차가 큰 물 근처에 공장을 두어야 했고, 클라이드 강의 수려한 계곡이 바로 그랬다. “맨체스터에서 왜 래나크로 갔을까. 맨체스터에서 스스로 일하면서 노동자들 현실을 봤겠죠. 산업 혁명에 따른 문제를 풀지 못할 문제라고 보느냐, 아니면 풀 수 있느냐, 거기에서 두 길이 나뉘는 거예요.” 오언이 래나크로 간 것은 사랑에 빠져서였다. 데이비드 데일의 딸을 좋아하게 되었는데, 출신의 격차가 컸다. 장인의 환심을 사려고 기업의 주주가 된 것이다. 공장을 인수하고 보니, 운영이 문제였다. 인근 주민들은 전통적인 안정된 생활을 버리고 공장에 출퇴근을 할 생각이 없었고, 기술자들은 먼 도시에 살았다. 공장에는 교회 구빈원에서 노동력이랍시고 보낸 수백 명의 어린 아이들과 일에 별 의욕이 없는 떠돌이 임시 노동자들뿐이었다. 돈만 생기면 술 마시고 뻗어 버리는 노동자들을 구타하거나, 적게 먹는 아이들을 초과 노동시키면서 영국은 위대한 산업화를 이루어 내는 중이었다. 몸집이 작고 손가락이 가는 아이들은 거대한 방적기 아래를 드나들며 실오라기를 줍고 실을 잇는 데 동원되었다.오언은 맨체스터 생활을 접고 뉴 래나크로 이사를 갔다. 그는 뉴 래나크에서 일하려고 먼 곳에서 온 노동자들에게 반듯한 집과 더 많은 월급을 먼저 주기로 했다. 공장 곁에 사택을 조성해 한 가족이 한집에서 살게 했다. 아이들은 부모와 떨어지지 않아도 되었고, 노동자들은 출퇴근에 고생하지 않아도 되었다. 아동 노동을 금지하고, 일이 줄어도 월급을 주고, 하루에 8시간만 노동하게 했다. 마을 안에 매점을 조성해 생필품을 저렴하게 구입하도록 했는데, 월급은 적게 주면서 공산품은 턱없이 비싸게 팔아 두 배의 이익을 취하는 것은 식민지에서나 모국에서나 제국의 기업가들이 꾀한 기본 모델이었다. 1817년에 오언은 뉴 래나크에 노동자 자녀와 고아들을 위해서 영국 최초로 초등학교를 두었다. 오언의 경영 방식은 해마다 더 높은 수익률로 되돌아왔지만, 다른 주주들은 노동자를 위하느라 기업주의 이익을 줄인다며 투자에 훼방을 놓았다. 오언은 1813년에 반대자들의 주식을 몽땅 사 버렸다. 이후 10여 년간 이 산골 공장 마을은 유럽 곳곳의 정치가, 왕족의 방문 행차를 맞았다. 방문객들은 청결하고 쾌적한 작업 환경에 만족한 활기찬 노동자들이 사업성을 높이고 수익 목표를 달성한다는, 세 가지 목표를 한번에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실제로 목도하고 대단히 놀랐다.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기록하고 소개한 글이 1817년에 발표한 ‘사회에 관한 새로운 의견’이다. “오언의 상상도는 뉴 래나크를 그린 그림이 아니에요. 처음에는 글로 썼는데, 나중에 그림으로 알기 쉽게 정리한 거죠.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증기 기관이 발명되고, 엄청 빠른 속도로 사람들이 몰려드는데, 도시가 그 상황을 따라가지 못하는 거야. 자기가 그걸 직접 해결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 아닌가. 가난한 노동자에게 베풀어야겠다는 수준을 넘어서서 달라진 사회가 제대로 돌아갈 구체적인 실현 방법을 찾은 거지요. 물론 이상 도시 계획은 그전에 르네상스 때도 있었어요. 그런데 오언이 다른 점은 당시에 가장 중요하게 대두된 산업, 기계 시대에 먹고사는 문제하고 연결한 거죠. 그리고 권력자의 도움을 받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렇게 해 냈어요.” 오언은 실업의 원인을 기업주들의 잘못된 수익 목표에 두었다. 나폴레옹 전쟁(1804~1813)을 거치면서 영국의 공장은 기계화되어 엄청난 공산품을 생산했지만 전쟁이 끝나고서도 생산량을 줄이지 않아 결국 불황이 닥쳤다. 그러자 기업주들은 노동자부터 대량 해고해 버렸다. 경기에 따라 해고되고 취업되는 노동자들은 결코 기술을 쌓거나 기계를 이기지 못한다. 오언의 대안은 인구 1000명 안팎의 작은 일자리 공동체를 많이 만들자는 것이었다. 이 제안은 언론에 실리면서 환영과 함께 맹렬한 비난도 받았는데, 먹고살 만한 노동자들이 아이를 더 많이 낳아서 결과적으로는 실업 빈민 수가 더 급증할 것이라는 위협이었다.아무리 수익성으로 증명해 보여도 기업주들의 욕심이 멈추지 않는 데 질린 오언은 1925년에 큰 이익을 본 뉴 래나크를 매각했다. 그 돈으로 한 건축가와 함께 만든 도면과 모형을 들고 아이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향했다. 워싱턴 하원에서 모형을 전시하고, 마침내 인디애나주의 개신교 정착촌 뉴 하모니에서 공동체를 실현하고자 했다.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어중이떠중이 몰려든 사기꾼과 알코올 중독자들은 월급만 받고 일하려 들지 않았다. 뉴 래나크에서 25년 동안 모은 재산을 2년 만에 날리고 고국으로 돌아온 오언에게 공상가라느니, 협동주의 운동가라는 이름이 붙었다. 미국 하원에서 발표한 오언의 개념도는 이렇다. 네 방향의 반듯한 도로와 텃밭에 둘러싸인 블록이 있다. 블록 한가운데에는 공공시설과 어린이집, 각급 학교, 공동 부엌, 강당, 클럽, 도서관과 종교 시설이 들어간다. 야외는 녹지로 조성되어 운동과 여가 장소로 이용된다. 블록의 세 변에는 노동자를 포함한 4인 가족마다 방 4개짜리 주택들이 계획된다. 나머지 한 변은 독신자와 고아 숙소, 먼 곳에서 놀러 온 친지나 가족들을 위한 손님방, 교사나 의사의 관사, 공동 창고가 들어선다. 한쪽 도로 건너편에는 이들이 노동할 공장이나 회사가, 반대쪽 건너편에는 입주민들에게 식량으로 공급될 논밭과 과수원이 배치된다. 공장과 주거, 곧 사택 단지 사이에는 키 큰 나무를 심어 적절히 분리한다. “그 그림이 당시 사람들이 보기에 공상적이었는지 몰라도 객관적으로 보면 현실적인 거죠. 오언은 미봉책으로 조금조금 해결하자는 것이 아니라, 도시 전체를 새로 만들어서 해결해 보자는 식이었어요. 그런데 나는 이런 내용을 예전에는 구체적으로 잘 몰랐어요. 우리가 사회주의라는 말을 언제부터 쓸 수가 있었느냐고요. 설사 알고 있다고 해도 서로 얘기를 못했잖아요.” 오언의 계획은 이후 여러 추종자들을 거쳐 20세기 미국과 일본, 수많은 근대 국가에서 실현되었다. 그를 ‘공상적 사회주의자’라고 가르쳤던 우리의 학교도 바로 그렇게 조성된 사택 단지나 아파트 안에 들어선 것이었다. 그러나 오언은 공상을 먼저 한 것이 아니라 뉴 래나크라는 공장에서, 동시대 현실에서 직접 마주친 문제를 해결해 보았던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새로운 시도를 해 나갔을 뿐이다. “우리가 1960년대 농촌에서 도시로 사람들이 몰려왔기 때문에 도시 주택 문제가 생겼다는 분석도 어떻게 보면 피상적이에요. 서구 사례에서 대응하기 쉬운 짝을 찾아서 사지선다형처럼 고르려고 한 거지 문제의 본질에 들어가지 않은 것 같아요. 결과물로 나온 도시의 모양은 비슷한데, 근본적인 해결이 나오지는 않아요.”사택 살던 아이들이 그렇듯 이모네 가족도 이모부의 전근에 따라 몇 년 후 서울로 이사를 갔다. 그들의 주소는 사택이 아니라 강남의 아파트가 되었다. 오언의 개념도가 착실하게 실현된 200년 후 대한민국의 귀결은 협동조합이나 화폐 없는 공동체 따위와는 거리가 멀다. 안정된 직장에 취직하면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사서 월급보다 더 큰 재미를 보았다. 프라이버시가 더 중요한 시대가 되었고, 오언을 따른다며 사택을 짓고 특정 종교나 생활 방식을 강요하려 든 기업주도 역사상 많았다. 강점기 일제 관료의 사택은 문화재가 될지언정, 우리 노동자의 공단 사택과 클럽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고층 아파트로 재건축됐다. 주택 청약권이 아니라 노동자가 이사하지 않고 일터 가까이에 거주할 권리, 회사에서 아이를 키울 권리를 따질 수는 없었을까. 새벽 5시부터 30도를 오가는 날, 아득하게 펼쳐진 아파트 숲 사이를 매일 1시간 넘게 땀 흘리며 출근해야 하는 신도시 노동자들은 벌써 피곤하다.
  • 이재명 “공용차 내년엔 쌍용차 우선 구매“

    이재명 “공용차 내년엔 쌍용차 우선 구매“

    경기도는 내년에 구매하는 공용차량 50대 가운데 54%인 27대를 쌍용자동차 정상화를 위해 우선 구매할 계획이라고 6일 밝혔다. RV차량 8대, 화물차 12대, 승합차 7대 등으로 전체 구매액수는 9억2500만원에 달한다. 현재 경기도 공용차량은 모두 2057대이며 이 가운데 쌍용자동차는 59대로 3%에 불과하다. 도는 또 31개 시·군과 산하기관에도 내년도 공용차량 구매 시 쌍용자동차를 우선 구매할 것을 협조 요청했다. 이재명 지사는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사측의 구조조정 계획에 반대해 점거농성을 하던 쌍용차 노동자들이 강제 진압으로 해산된 지 9년째지만 투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라며 “쌍용차 정상화를 위해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In&Out] 최저임금 악영향의 실체는/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

    [In&Out] 최저임금 악영향의 실체는/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

    최저임금은 나날이 늘어가는 ‘일을 해도 가난한 사람들’의 문제를 푸는 가장 효과적인 방안이다. 저임금 불안정 노동자가 넘쳐 나지만, 복지제도나 노동조합의 단체교섭으로 이를 풀 수 없는 나라에서 주목하는 정책방안이다. 미국, 영국, 중국, 일본, 최근의 독일 등은 노동빈곤과 양극화 심화의 숙제를 풀기 위해 최저임금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 나라의 대표적인 예다. 그 가운데 한국이 있다. 문제는 정책 시행의 양지가 있으면 음지도 있다는 점이다. 늘어나는 인건비 부담은 기업들에는 어떻게 작용할까?최저임금의 높은 인상에 기업이 대처하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다. 첫째 가격 전가 방식이다. 임금이 영업총비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높은 곳도 20% 수준이다. 최저임금이 올해 16.4% 인상되면서 인건비는 평균 3.28% 올라간다. 가격설정권이 있는 기업체는 가격인상으로 인건비 증가를 상쇄하고 더 많은 이윤을 거둔다. 줄어드는 건 소비자 효용이다. 둘째 비용 전가 방식이다. 대기업이 하청업체나 프랜차이즈업체에 비용 증가분을 전가하는 방법으로, 대기업 중심 구조인 우리 사회에서 가장 흔한 방식이다. 원청과 하청, 프랜차이즈 본사와 가맹점 사이의 상생 구조를 제도를 통해 강화해서 제어해야 할 과제이다. 셋째 이윤감소 방식이다. 이윤을 줄여 노동자의 몫인 임금 비중을 높이는 것으로, 정부가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면서 기대하는 방향이기도 하다. 기업의 초과 이윤의 몫을 임금으로 돌리라는 것이다. 최저임금의 충격에 또 다른 취약 집단이 자영업자다. 최저임금 논란의 와중에 자영업의 존폐 위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은 바람직하다. 자영업은 전체 취업자의 25.4%를 차지하는 우리 경제활동의 주요 구성원임에도 불구하고 정책적 배려는 매우 부족했다. 프랜차이즈 본사나 재벌 대기업은 최저임금과 무관하지 않은 게 아니라, 핵심 이해 당사자다. 상시 고용 3000인 이상 대기업들이 직접 고용해야 하나 사내 하청업체에 고용책임을 미루는 파견, 용역, 도급 등 소속외 노동자 비율은 올해 23.6%에 달한다. 이들은 최저임금이 곧 자기 임금인 사람들이다. 아울러 납품계약 관계로 맺어진 1차, 2차, 3차 하청의 노동자들도 최저임금 영향권에 있기 때문에 납품 단가를 조정해 주지 않는다면 최저임금 인상의 부담을 중소 하청업체가 감당해야 한다. 대기업은 고용책임의 부담을 전가한 것처럼 최저임금의 부담도 중소업체에 전가한다. 프랜차이즈는 이런 비용전가 구조를 잘 보여 주는 사례다. 최저임금 인상 논란이 뜨거운 이유는 이윤과 임금의 몫을 재설정하기 때문이다. 비용전가 구조를 제어할 장치 마련 및 가격 전가 감독체계 구축과 함께 적정 임금 배분을 통한 경제 활력을 도모하는 길에는 과거 익숙했던 기득권 체계와 이별하는 진통이 따른다. 저임금 불안정 노동의 해소를 위해 감수할 만한 수준이고 또 감수해야 할 일이다.
  • 폭염·매연에 ‘갑질’까지...3중고에 시달리는 지하주차장 관리노동자

    폭염·매연에 ‘갑질’까지...3중고에 시달리는 지하주차장 관리노동자

    “폭염만큼 갑질도 고통스럽습니다.” 지난 2일 오후 서울 시내의 한 백화점 지하주차장에서 만난 이지훈(20·가명)씨는 서울 역사상 가장 더운 날이었던 전날 있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이씨는 “한 손님이 주차를 하려던 곳에 다른 차량이 들어가자 왜 막지 않았냐며 버럭버럭 소리를 질렀다”면서 “컴플레인까지 들어와 다시 찾아가 또 고개를 숙였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씨 옆에서 이야기를 들은 지 10분 만에 숨이 턱턱 막혀올 정도로 지하주차장 3층 공기는 뜨겁고 매캐했다. 옆으로 차가 한 대 지나갈 때마다 올라오는 열기와 매연은 근무자에게 그대로 전달됐다. 이씨는 “공기가 좋지 않아서 피부가 완전 뒤집혔다”면서 “놀러 가고 싶지만 방학 때 일해서 생활비와 등록금을 벌어야 한다”고 씁쓸하게 웃었다. 주차관리 아르바이트생들이 폭염과 매연, 갑질을 견디면 근무하고 받는 일당은 5만원이다. 창문을 닫고 들어오는 차를 향해 이씨는 연신 “고객님 이쪽으로 오세요”라고 크게 외쳤다. 안내를 무시하고 반대방향으로 가는 차량을 따라잡으려고 드넓은 주차장을 분주히 뛰어다니기도 했다. 이씨는 “본인이 가고 싶은 곳으로 가려는 손님들이 많고, 특히 매장입구 가까운 자리는 만석이라고 해도 기다려서 대겠다는 분들도 종종 있다”고 설명했다. 3일 찾은 대형마트와 복합쇼핑몰의 주차장도 상황은 비슷했다. 동대문구에 있는 한 대형마트에서 주차관리를 하는 이모(17)군은 얼음물 하나에 의지한 채 더위를 버텨내고 있었다. 이군이 안내하는 동안 반말로 용건만 묻고 지나가는 손님이 있는가 하면 차량정리를 위해 진입차량을 잠시 통제하자 자기 앞에서 막는다며 삿대질을 하는 손님도 있었다. 이군은 “더위에 갑질까지 견뎌야 하는 극한 직업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토로했다. 은평구 복합쇼핑몰 주차장에서 근무하는 이모(20)씨도 “역주행하는 손님에게 그러시면 안 된다고 했더니, 버럭 화를 내면서 역주행 좀 할 수도 있지 뭘 그렇게 대응하느냐고해서 황당했던 적이 있다”고 전했다.이날 송파구의 한 쇼핑몰에서 만난 주차관리원 두 명도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실내 공기를 쾌적한 상태로 유지하게 하는 장치인 공기조화기는 돌아가지 않았다. 이동식 에어컨도 없어 노동자들은 손바닥만 한 미니 선풍기로 폭염을 견디고 있었다. 주차관리원 김명순(57·가명)씨는 “올해처럼 더운 날에 공기조화기도 안 틀면 어쩌란 말이냐”면서 “제발 공기조화기를 좀 틀어달라”고 호소했다. 공회전을 돌려두는 손님들도 있고, 차량이 계속 다니는 곳이기 때문에 공기 순환이 정말 필요하다는 것이다. 스스로를 ‘하루살이’라 부르는 김씨는 “우리 같은 계약직들은 공기조화기를 틀어달라고 말하기도 어렵고, 말해도 듣지를 않는다”고 토로했다. 이어 “구청에 말해봐도 사기업에서 알아서 해야 할 일이라는 답변만 돌아온다”면서 “노동자들의 건강보다 전기료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는 목에 두른 수건으로 연신 땀을 훔쳤다. 전문가들은 지하주차장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이 개선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선웅 작업환경의학전문의는 “화물차량이나 좀 오래된 차가 모여 있는 지하공간에서는 1급 발암물질인 디젤차 연소물질이 나올 수 있다”면서 “발암물질이 아니더래도 다른 위험물질인 일산화탄소 등이 계속 뿜어져 나오기 때문에 공기조화기 등으로 환기를 잘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은 “이런 폭염에 지하주차장에서 유령처럼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에어컨이나 공기조화기는 인권의 문제일 수 있다”면서 “지하주차장 근무자에게 휴게실이나 에어컨을 제공하지 않는 문제를 개선하는 ‘갑질금지법’을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유영재 기자 young@seoul.co.kr
  • 폭염 속 쓰러지는 노동자, “작업중지권이 필요해”

    폭염 속 쓰러지는 노동자, “작업중지권이 필요해”

    폭염으로 전국이 펄펄 끓으면서 건설노동자, 택배노동자, 배달 노동자 등 더위에 취약한 노동자들이 쓰러지고 있다. 3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들어 작업 중 열사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노동자는 5명에 달한다. 기상청에 따르면 전날 오후 1시 37분 경북 의성의 기온은 39.8도, 충북 충주, 강원 북춘천(이상 39.3도), 강원 영월과 홍천(이상 39.2도) 등 5곳이 40도에 육박했다. 서울의 최고 기온도 1일 39.6도, 2일 37.9도, 3일 오전 5시 30.5도를 기록하는 등 재난 수준의 폭염이 그칠 줄 모르고 있다. 폭염이 이어지면서 지난달 17일 전북 전주 인근의 한 건설현장에서 의식을 잃은 노동자가 추락했고, 경기도 안산의 아파트 공사장에서도 탈진 증세로 노동자가 쓰러지기도 했다. 정부가 낮 시간대 작업중지, 열사병 예방 기본수칙에 대한 관리·감독에 나섰지만, 현장에서 제대로 적용될지는 미지수다.실제로 지난달 24일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건설노조)가 발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1시간 일하면 10~15분씩 휴식 시간이 주어진다’고 응답한 노동자는 전체의 8.5%(18명)에 그쳤다. ‘재량껏 쉬고있다’는 응답이 45.3%(96명), ‘별도로 쉬는 시간 없이 일한다’는 응답은 46.2%(98명)에 달했다. 산업안전보건 규칙과 고용부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사용자는 노동자들이 쉴 수 있는 휴게 장소를 마련하고, 폭염특보 발령 시 1시간당 10∼15분의 휴식시간을 줘야 한다. 폭염경보가 발령되면 오후 2∼5시 작업은 가급적 중단하고 시원한 물 등을 제공해야 한다. 하지만 응답자의 73.7%(157명)는 햇볕이 차단된 휴식 공간이 아닌 ‘아무데서나 쉰다’고 답했으며, ‘그늘지거나 햇볕이 완전 차단된 곳에서 쉰다’는 응답은 26.3%(56명)에 그쳤다. 시원한 물조차 주지 않는 경우도 29.6%(64명)로 나타났고, 폭염경보 발령으로 오후 2~5시 작업이 중단된 적이 있다고 응답한 경우는 14.5%(31명)에 그쳤다.고용부의 온열질환 산업재해 발생현황에 따르면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간 폭염으로 인한 산업재해자는 35명이고 이 가운데 사망자는 4명이다. 재해비율은 건설업이 65.7%(23명)로 가장 높았다. 건설현장 노동자 뿐 아니라 도시가스 검침원들도 검침, 가스 점검, 고지서 전달 등의 업무를 하느라 폭염을 감당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지역공공서비스지부는 지난 2일 서울시청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폭염 상황에 노출된 도시가스 검침원들의 노동환경 개선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지난 1일에는 SBS 월화드라마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 제작 스태프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언론노조에 따르면 외주제작사 소속 프리랜서 노동자 김모(30)씨는 지난달 25일부터 29일까지 5일간 야외에서 76시간이나 일했다. 노조는 “사망원인이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지만, 특별한 지병도 없던 30세 건강한 노동자가 갑작스럽게 사망한 원인으로 드라마 현장의 악명 높은 장시간 노동 문제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며 “40도에 육박하는 폭염이 계속된 점을 고려하면 실제 노동조건은 더 가혹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직업환경의학 의사회는 이날 성명서를 통해 “노사정 모두 폭염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하고, 건설현장뿐 아니라 폭염에 노출되는 사각지대의 모든 노동자까지 보호해야 한다”며 권고사항을 발표했다. 이들은 “폭염으로 인해 산업재해까지 이어지는 상황에서는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수 있는 작업중지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의사회는 “정부가 공공부분의 건설현장에서 낮 시간대 작업중지를 지시했지만 민간부문은 자율에 맡겨져 있다”며 “폭염시 옥외작업이나 조리작업 등을 고열작업으로 규정하고, 노동자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어 “집배원, 택배노동자, 주차요원, 거리 환경미화원, 옥외 미화노동자, 퀵서비스 노동자, 검침원, 공항 활주로 지상조업이나 항만 노동자, 인터넷 에어컨 설치기사 등 서비스업종 옥외작업자들, 농어업 작업자, 조리작업, 비행기 청소작업 등 실내에서 일하지만 고온 환경에 처해있는 노동자들에 대한 보호조치가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김영주 고용부 장관은 이날 전국기관장회의에서 “열사병 사망 재해가 발생한 사업장에 대해 작업을 중지하고, 사업장 전반에 대한 감독을 실시해 완전히 개선된 후 작업을 재개할 수 있도록 조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저녁 있는 삶 한 달… 대리기사 뛰는 ‘김대리’ 늘었다

    저녁 있는 삶 한 달… 대리기사 뛰는 ‘김대리’ 늘었다

    저임금 노동자, 줄어든 수입 메우려 ‘투잡’ 대리기사 月 10% 증가… 내부경쟁 치열휴가반납자 유입에 최근 문의 40% 급증 엔터테인먼트업계 등 사각지대도 여전 “퇴근 후 취미생활은 꿈” 상대적 박탈감#디자인 회사에 다니는 이모(31·여)씨는 7월부터 퇴근 후 평소 하고 싶어 했던 그림수업에 등록해 다니고 있다. 150여명이 다니는 사업장임에도 주 52시간제를 시행해 취미 생활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됐다. 이씨는 “퇴근 후 2시간을 나만을 위해 보내는 것이 뿌듯하다”고 말했다. #승강기 제조회사에 다니는 안모(28·여)씨는 주 52시간 시행 후 걱정이 생겼다. 300인 이상 사업장에 다녀 근무시간이 단축됐지만 한 달 만에 시간 외 근무 수당 55만원도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결혼 자금 마련에 차질이 생긴 안씨는 주말에 대학생 때 하던 번역 아르바이트를 다시 시작했다. 주 52시간제 도입 이후 문화생활을 즐기거나 자기 계발을 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지만 수당이 줄거나 저임금을 벗어나지 못하는 직장인들은 아르바이트 등 ‘투잡’을 찾고 있다. 한편에서는 삶의 질이 올라가도 다른 한편에서는 오히려 노동시간이 길어지는 역설이 나타나는 것이다. 부족한 수입을 메우려는 직장인들은 주말과 저녁 시간을 활용할 수 있는 대리운전 등에 문을 두드리고 있다. 대리기사 업계에 따르면 주 5일제 정착과 52시간제 시행 후 대리기사 유입이 부쩍 늘었다. 김종영 전국대리기사협회장은 “단기간 통계는 낼 수 없지만 현장에서 7월 이후 대리기사가 늘어난 것을 체감한다”면서 “올해 들어 월평균 10%씩 기사가 늘고 있다”고 밝혔다. 한 대리기사 업체에 따르면 7월 마지막 주에 문의가 40% 증가했다. 휴가를 포기하고 일하는 사람까지 유입됐기 때문이다. 최근 대리기사를 다시 시작한 김정철씨는 “경쟁이 치열해 수입은 줄었다”면서 “저녁이 있는 삶은 꿈에서 가능한 삶”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2일 잡코리아에 따르면 직장인 아르바이트는 편의점 등 매장 관리가 35%로 가장 많았고 보조 출연이나 주차 관리, 대리운전이 뒤를 이었다. 구내식당에서 조리를 맡는 노동자들도 급여가 줄어 고민이다. 서울의 한 병원 식당의 경우 근무시간 조정으로 근로자 월급이 30만~40만원 감소했다. 대다수가 생계 유지를 위해 일하는 50~60대 여성이어서 타격이 크다. 급여가 줄면서 다른 일을 알아보는 사람도 늘었다. 계도 기간이라고는 하지만 주 52시간제가 완전히 무시되는 사각지대도 여전히 많다.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52시간 근무는 프로젝트 단위로 진행되는 업무 특성상 불가능하다”면서 “한 달 내내 하루 12시간 근무하는 일은 다반사고 대휴도 쓸 수 없다”고 전했다. 대기시간이 긴 연예인 매니저들에게도 52시간 근무는 딴 세상 이야기다.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일하는 김모(26)씨는 “일은 많아지는데 인력은 충원되지 않는 실정”이라면서 “명목상으로는 야근을 시키면 안 되니까 이전에 주던 야근 식비를 안 주는 식으로 눈속임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300인 이하 사업장의 근로자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 사회적 분위기 탓에 회사가 말로는 야근을 지양하라고 하지만, 회사나 고객의 요구에 응대하다 보면 주 52시간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광고홍보대행사에 다니는 이모(27·여)씨는 “클라이언트가 밤낮으로 무리한 요구를 할 때가 많아 아직도 주 70시간을 일한다”면서 “남들이 주 52시간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한숨만 난다”고 토로했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고혜지 기자 hjko@seoul.co.kr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SBS 드라마 촬영 보조 스탭 사망…언론노조 “장시간 노동 의심”

    SBS 드라마 촬영 보조 스탭 사망…언론노조 “장시간 노동 의심”

    SBS 드라마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의 스태프로 일하던 30대 남성이 사망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언론노조)은 성명을 통해 “드라마 현장의 악명 높은 장시간 노동 문제가 의심된다”면서 과로를 막기 위한 대책을 마련할 것을 정부에 촉구했다. 2일 언론노조와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 등에 따르면 고인은 이 드라마에서 카메라 포커스풀러로 일했다. 카메라 포커스풀러는 촬영감독이 카메라에 눈을 대고 촬영할 때 렌즈의 초점 링을 잡고 있는 촬영 보조 스탭이다. 고인은 전날 자택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 고인의 사망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언론노조는 성명을 통해 “고인의 사망 원인이 아직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지만, 평소에 특별한 지병도 없던 30세 건강한 노동자가 갑작스럽게 사망한 원인으로 드라마 현장의 악명 높은 장시간 노동 문제가 의심된다”라고 밝혔다. 실제로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가 확인한 SBS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의 지난달 25~29일 촬영 스케줄을 보면 ▲25일 08:00~22:30(14시간 30분/야외) ▲26일 08:00~21:10(13시간 10분/야외) ▲27일 07:50~22:20(15시간/야외) ▲28일 08:00~새벽 1:50(20시간/경기 파주) ▲29일 11:00~새벽 1:00(13시간/경기 파주) 등으로 나타났다. 고인은 이 촬영 스케줄을 모두 소화한 것으로 확인됐다. 언론노조는 “드라마 제작은 늘 쫓기며 일이 진행되고 대기 시간이 길며 제대로 몸을 기대 쉴 수 있는 공간조차 마련되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위험한 구조물과 환경 속에서 제대로 된 안전장치도 없이 일하고 있다”면서 “살인적인 초과노동 중단, 점심시간과 휴게 시간 보장, 야간 촬영 종료 시 교통비와 숙박비 지급, 불공정한 도급계약 관행 타파, 근로계약서 작성 등이 방송 제작현장 노동자들의 주된 요구”라고 강조했다. 이어 “지난달 주 최대 68시간 동안 일할 수 있었던 법이 52시간으로 바뀌었고 방송업은 시행시기가 1년 더 늦춰졌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버젓이 노동시간을 지키지 않고 있다”면서 “방송사는 외주제작사의 노동 실태를 파악하고 제작현장 근로자 보호를 위해 폭염 등 무리한 야외 노동에 대한 지침을 마련하고 감독해야 한다. 정부는 유예를 철회하고 주 52시간 노동시간 준수에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SBS는 스태프 사망 사건에 대해 “현재 경찰 조사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을 아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40분간 36곳 배달… 일 시작한 뒤 12㎏ 빠져, 폭염 절정일 땐 솔직히 일 나서기가 두렵다”

    “40분간 36곳 배달… 일 시작한 뒤 12㎏ 빠져, 폭염 절정일 땐 솔직히 일 나서기가 두렵다”

    사상 최악의 폭염이 덮친 1일 택배 노동자들은 극한의 고통을 맛봤다. 15년차 택배기사 류모(57)씨는 이날 오전 10시 서울 구로구의 한 물류센터에서 웃통을 벗은 채 물건을 차로 옮겨 싣고 있었다. 류씨의 얼굴에는 땀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 뚝뚝 떨어졌다. 벗은 상체는 마치 기름을 바른 듯 빛이 났다. 물건 분류 및 상차(물건 싣기) 작업은 오전 7시부터 오후 1시까지 이어졌다. 류씨는 “택배 기사는 날씨에 민감한데, 이런 더위는 택배 일을 시작한 이후 처음 경험해 본다”고 말했다. 지난해 택배 일을 시작한 이모(34)씨는 이날 오후 1시 50분부터 2시 30분까지 40분간 평소 때와 똑같이 36곳에 물품을 배달했다. 일을 시작한 지 30분도 안 돼 이씨는 물에 풍덩 빠진 것처럼 땀에 흠뻑 젖었다. 이씨는 차량으로 돌아오자마자 페트병에 든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하지만 물도 이미 뜨끈뜨끈해진 뒤였다. 차량 에어컨 바람은 훈훈하기 짝이 없었다. 오히려 차 안보다 밖이 더 시원할 정도였다. 이씨는 이날 240개의 물품을 배달했다. 휴가철이다 보니 업무량은 평소보다 적었지만, 폭염 탓에 체감 노동량은 훨씬 더 컸다. 이씨는 “내가 7월에 태어나 더위를 잘 안 타는데 올해 날씨는 정말 상상을 초월한다”면서 “내일은 더 덥다고 해 벌써 두려움이 앞선다”고 말했다. 이어 “원래 몸무게가 70㎏이었는데, 택배 일을 시작하고 나서 12㎏이나 빠졌다”면서 “날씨가 더워진 뒤로 장갑 낀 손에 땀띠가 났다”고 했다. 맨손으로 작업하면 미끄러워 물건이 파손될 수 있기 때문에 장갑을 벗지도 못한다. 하필 이날 골목길에서 다른 차량끼리 접촉사고가 발생했다. 이씨는 “택배는 시간이 생명인데, 늦어지겠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 이씨는 “물건 배달은 ‘시간당 50개’ 속도로 하루 평균 5시간 정도 나른다”면서 “배달을 마치면 인터넷 쇼핑몰 등 개인사업자들이 보내는 택배 100여개를 수거해 물류센터에 전달한 뒤 오후 8시쯤 퇴근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배달 도중에 주민들이 건네는 주스와 비타민 음료를 받아 마시기도 했다. 그는 “처음 보는 분들인데도 더운 날에 고생한다며 물 한 잔씩을 줄 때면 힘이 나고 아직 세상이 살 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동대문구에 있는 한 마트에서 배달 일을 하는 김모(57)씨는 “최근 폭염 때문인지 평소보다 배달량이 20~30% 늘었다”면서 “하루에 30~40건 정도 배달하는데 엘리베이터가 없는 4~5층으로 생수나 소주 박스를 나를 때면 혼이 빠질 정도”라고 토로했다. 배달 대행업체 아르바이트생 정모(20)씨도 “요즘 더위 때문에 사람들이 배달 음식을 많이 시켜 먹는다”면서 “헬멧을 쓴 채 한 시간 배달을 다녀오면 땀으로 샤워를 하게 된다”고 말했다. 유영재 기자 young@seoul.co.kr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 “전교조 법외노조 취소”… 합법화 길 열린다

    “현대기아차 비정규직 직접 고용 11곳 노조 파괴 부당 개입 근절” 김영주 고용 장관 “충분히 검토”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을 합법화하고, 현대·기아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직접고용 명령을 내릴 것을 고용노동부에 권고했다. 개혁위는 지난달 31일 회의를 열어 불법파견, 노동조합 무력화, 단결권 제한 등 11개 과제에 대한 조사 결과를 의결하고 활동을 마무리한다고 1일 밝혔다. 개혁위는 지난해 11월 고용부 장관 자문기구로 출범해 내부 적폐 청산을 위한 활동을 해 왔다. 우선 개혁위는 전교조 문제에 대해 ‘법외노조’ 통보를 한 노동조합법 시행령 9조 2항을 삭제하거나 법외노조 통보를 직권 취소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라고 권고했다. 고용부는 2013년 10월 전교조가 해직교사 9명을 조합원으로 두는 등 교원노조법을 위반하고도 이를 시정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전교조에 ‘노조 아님’을 통보했다. 14년 만에 합법적인 노조 지위를 상실한 전교조는 곧바로 처분 취소 행정소송을 냈고 현재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다. 개혁위는 “법외노조 통보 처분은 부담스러웠으나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담당 국장의 진술과 “장·차관에게서 법외노조 처분에 대한 검토를 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는 내부 진술 등을 근거로 부당한 압력이 가해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김영주 고용부 장관은 “행정조치보다는 법 개정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며 “시행령을 삭제하는 것은 노사관계법제도 전문가위원회에서 논의하고 있기 때문에 이와 연계해 충분히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개혁위는 14년간 방치된 현대·기아차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도 고용부와 검찰이 사건 처리를 미루거나 제대로 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현대·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직접고용 명령이나 당사자 간 협의·중재 등 적극적 조치를 취하라고 고용부에 권고했다. 불법파견에 대한 늑장 수사가 없도록 관련 지침이나 사업장 점검요령, 판단 기준을 마련하라고도 했다. 현재 검찰이 수사 중인 삼성전자서비스를 비롯해 유성기업 등 11개 사업장의 노조 파괴 과정에서도 검사의 부당한 수사지휘와 노무사·변호사와의 공모, 고용부 공무원과의 유착 등으로 부실 수사가 이뤄진 정황이 포착됐다. 개혁위는 고용부 장관이 그동안의 수사관행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고, 부당노동행위 근절을 위한 법률 개정과 정기적인 실태조사를 실시할 것을 권고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정의당 권수정 서울시의원, 서울시 공공부문 노동현안에 대한 간담회 진행

    정의당 권수정 서울시의원은 7월 30일 오후 4시 의원회관 의원연구실 822호에서 공공부문 상시지속업무 고용 현황에 대해 민주노총 서울공무직분회, 서울시농수산물시장분회, 서울시혁신파크시설관리분회 당사자들과 간담회를 진행했다. 간담회에는 정의당 권수정 서울시의원과 민주노총 서울일반노동조합 서울공무직분회 김종욱 분회장, 서울시농수산물시장분회 김성상 분회장, 서울시혁신파크시설관리분회 김명숙 분회장이 참석했다. 이들은 △박원순 서울시장은 겉으로 노동존중을 말하면서, 서울시 지역 비정규직 기간제를 여전히 사용하고 있고, △서울시가 정책적으로 비정규직-정규직 전환을 언론에 홍보하고 있지만, 서울시 산하 32개 사업소의 현장에서는 8개월 비정규직 기간제와 뉴딜일자리 계약으로 노동자들이 고용불안에 노출되고 있음을 언급하였다. 세부적으로 서울시혁신파크의 민간위탁, 서울시농수산물시장의 자회사로 하청의 재하청 형태의 고용구조를 만들어 무늬만 정규직 실상은 비정규직을 만들고 있는 노동현실을 증언하였다. 또한 서울시 산하 사업소인 서울대공원이 수익성을 이유로 교통약자인 노인과 어린이들이 이용하는 무료순환버스를 없애고 유료화 카트를 도입하여 서울시민을 위한 이동서비스를 중지하는 등 공공성을 훼손하고 있는 현실을 언급하였다. 권수정 서울시의원은 서울시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현안에 대해 논의한 후 비정규직-정규직 전환과 관련하여 꼼꼼히 살펴보고 문제점을 파악한 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함께 모색해보겠다고 하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공공서비스 업그레이드 1.0] 작년 임금체불액 1조 3811억 ‘눈덩이’… 철 지난 행정시스템 개선 시급

    소액체당금 제도 해마다 지급액 늘어 文공약 ‘청년·알바체당금제’ 논의 없어 체불임금 받아내는 ‘원스톱 기구’ 절실 31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진정이 접수된 임금체불 총액은 1조 3811억원이다. 2011년 1조 874억원이었던 임금체불 규모는 해마다 증가해 2016년에는 1조 4286억원으로 사상 최대액을 기록했다. 임금체불 규모는 증가하고 있지만 체불된 임금을 돌려받는 절차는 지금도 변화가 없다. 정부도 이러한 문제점을 알고 조금이나마 제도를 개선해 왔다. 우선 체불임금으로 생활고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을 위해 체불임금 가운데 일부(최대 400만원)를 국가가 먼저 지급하고 나중에 회사에 구상권을 청구하는 소액체당금 제도를 2015년 7월 신설했다. 소액체당금은 2016년 1279억원, 2017년 1396억원으로 제도 시행 이후 지급 규모가 늘고 있다. 대검찰청도 지난해 임금을 3회 이상 체불하는 사용자는 반드시 재판에 넘기는 ‘임금체불 삼진아웃제’를 도입하는 등 제도 개선방안을 마련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으로, 국가가 먼저 아르바이트생에게 밀린 임금을 주고 이후 사용자에게 구상권을 청구해 돌려받는 ‘청년·알바체당금제’는 정부 출범 1년이 지난 지금도 논의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 매년 1조원이 넘는 임금체불 규모, 턱없이 부족한 근로감독관 숫자, ‘고용부 조사→검찰 조사→민사소송’으로 이어지는 지난한 절차 등을 고려하면 현행 제도의 근본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고용부 의뢰로 2016년 작성된 ‘임금체불 행정 시스템 개편 방안 연구’ 보고서는 국가가 체불된 임금채권을 대신 내주고, 사용자에게 구상권을 행사하는 공적기구 설립이 필요하다고 봤다. 또 현재 조사를 담당하는 고용부, 민사소송을 지원하는 법무부 산하 대한법률구조공단, 체당금 업무를 담당하는 근로복지공단 등으로 흩어진 기능을 공적기구에서 한번에 처리할 것을 제안했다. 이승욱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체불임금을 민사소송으로 개인적으로 받아내도록 하는 현행 제도는 임금의 특수성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것”이라며 “일반적인 행정절차나 민사소송 절차가 아니라 좀더 신속하고 비용이 들어가지 않는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고용부 조사 과정에서 돈을 떼먹은 사장의 고의적인 불출석을 막을 수 없고, 모든 입증 자료를 돈을 떼인 노동자가 준비해야 하는 것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용자와 노동자가 합의하면 처벌을 피하는 ‘반의사불벌죄’ 규정 폐지와 체불임금 지연이자 지급 확대, 징벌적 부가금 도입 등으로 임금체불한 사용자에 대한 처벌과 제재를 강화하는 방안도 대책으로 거론된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올해 8명 사망’ 포스코건설 총체적인 관리 부실 드러나

    올해 5건의 사망 사고(8명 사망)가 발생한 포스코건설이 현장에서의 총체적인 관리 부실로 노동자들을 위험으로 내몬 것으로 조사됐다. 고용노동부는 31일 포스코건설 현장소장 16명과 본사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사법처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앞서 고용부는 지난 6월 18일부터 7월 20일까지 포스코건설 본사와 건설현장 24곳에 대한 특별감독을 실시했다. 특별감독 결과 포스코건설의 모든 건설현장(24곳)에서 안전보건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고, 관련 서류를 보관하지 않는 등 법 위반 사안 165건이 적발됐다. 특히 형사처벌 대상이 된 16곳에서는 추락예방 조치를 하지 않는 등 안전과 직결된 법 위반 사안 149건이 적발됐다. 또 본사도 안전·보건관리자 선임 위반 등 55건의 법규를 위반한 것으로 조사됐다. 아울러 포스코건설의 안전관리자 315명 가운데 정규직은 56명으로 17.8%에 불과했다. 시공능력 평가액 기준 100대 건설사의 정규직 비율(37.2%)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또 포스코건설은 협력업체에 대한 지원 프로그램과 위험성 평가도 형식적으로 운용하는 등 안전보건관리시스템 전반이 부실한 것으로 조사됐다. 고용부는 포스코건설의 현장 24곳에 모두 2억 3681만원, 본사에 2억 9658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할 방침이다. 건설현장 1곳에 대해서는 안전시설 불량 등을 적발해 작업중지 조치를 했고, 건설현장 24곳의 법규 위반 197건에 대해 시정 조치 명령을 내렸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야, 다문화”… 담임쌤은 내 친구를 이렇게 불러요

    “야, 다문화”… 담임쌤은 내 친구를 이렇게 불러요

    ‘대한민국은 단일 민족’이라는 말은 옛말이 된 지 오래다. 2000년대 이후 외국인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다문화 사회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이주민들은 여전히 ‘우리’가 아닌 ‘그들’이다. ‘다문화’라는 용어는 또 다른 ‘낙인’이자 ‘차별’로 인식되고 있다. 서양인과의 결혼은 ‘글로벌 가정’으로, 아시아인과의 결혼은 ‘다문화 가정’으로 부르기도 한다. 다문화라는 테두리 안에서 살고 있는 이주민들은 “제도적인 차별보다 더 무서운 게 인식의 차별”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무심결에 던진 편견과 차별은 송곳이 되어 그들의 가슴을 후벼 판다. ●학교는 차별 조장…어린이집은 문전박대 “야, 다문화!” 중학교 국어교사 A씨는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큰 소리로 얼마 전 전학 온 베트남 학생을 찾았다. 베트남 출신의 어머니를 둔 이 학생의 이름은 ‘김전일’이었지만 A교사는 항상 ‘다문화’라고 불렀다. 한국어가 서툴러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한 채 책상에 엎드려 있던 이 학생은 이유도 모른 채 앞으로 나갔다. A교사는 한국인 학생들 앞에서 “숙제를 엉터리로 해 오면 어떡하느냐”며 공개적으로 망신을 줬다. 아버지는 한국인, 어머니는 일본인인 김진영(15·가명)군은 역사 수업 시간마다 괴롭다고 했다. 역사 선생님이 ‘우리나라’, ‘우리 민족’을 얘기하는데 김군에게는 ‘아빠 나라’, ‘엄마 나라’만 있을 뿐이어서다.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노래를 부를 때는 같은 반 친구들의 눈치를 봤다. 친구들이 평소 “넌 한국 사람이냐, 일본 사람이냐”고 묻는 것도 남모를 괴로움이다. 이정은 아시아인권문화연대 사무국장은 “화합과 공동체성을 강조하는 ‘우리’라는 표현이 누군가에게는 소외감을 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외국인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을 바로잡아 줘야 할 학교 등 교육기관에서 오히려 차별을 조장하는 경우가 많다. 학부모에게 보내는 가정통신문이 한글로만 쓰여 한국어가 서툰 외국인 학부모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흔하다. 교사들이 다문화 가정 아이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학생 어머니의 출신 국가를 공개하며 “서로 사이 좋게 지내라”고 했다가 오히려 아이를 놀림감으로 만들어 버리는 경우도 많다. 다문화 가정과의 ‘만남의 장’이 ‘갈등의 장’이 돼 버리기도 한다. 충남 홍성 등 일부 지역에서는 최근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에서 온 ‘고려인’이 부쩍 늘자 좋은 취지로 이들과 함께 어울릴 기회를 만들었다. 하지만 한국인 학부모들은 이주민 가정을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호응하지 않았다. 자녀에게 “외국에서 온 친구랑 가까이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거나 학부모끼리 정보를 공유하는 단체 메신저 방에 외국인 학부모를 초대하지 않는 사례도 비일비재했다. 유치원, 어린이집 등 보육 시설도 마찬가지였다. 이주민들은 보육교사와 한국인 자녀들에게 차별을 당해 자녀가 상처를 입을까 봐 어린이집에 선뜻 보내지 못하고 있다. 한국인 아이와 싸움이 나면 한국인 학부모들이 집단대응에 나서는 때도 있다고 한다. 캄보디아에서 온 초은레이(26)는 “어린이집에 모인 학부모들이 나를 곁눈질로 보더니 아예 말도 안 걸고 인사도 안 한다”고 호소했다.●병보다 의사 불친절에 더 아프다 우즈베키스탄 출신 에리카(32·가명)는 최근 몸이 아파 병원에 갔다가 의사의 불친절한 행동에 몸서리를 쳤다. 서툰 한국어로 증상을 얘기한 뒤 의사의 설명을 귀 기울여 듣던 중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어 “다시 한 번 설명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랬더니 의사는 다짜고짜 “다음요. 나가서 간호사한테 물어보세요”라며 진료실 밖으로 내쫓았다. 중국 출신 결혼 이주여성 이모씨는 장기간의 불임 끝에 산부인과를 찾아 시험관 아기 시술이 가능한지를 물었다. 어눌한 한국어 탓에 전달이 잘 안 됐는지 병원 직원은 “한국어 되는 사람 데리고 와”라고 쏘아붙였다. 이씨는 ‘시험관 시술이 가능하냐’는 질문을 종이에 적어 다시 보여 줬다. 이에 직원은 “시험관 엄청 비싸요. 당신 돈 있어?”라고 말했다. 직원의 목소리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다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컸다. 외국인 차별 실태를 조사한 이경숙 경기외국인인권지원센터 팀장은 “병원에서 이주민에 대한 모욕과 불친절한 행위가 자주 발생한다”면서 “일상에서 외국인에 대한 차별을 막을 법, 제도 정비가 급선무”라고 말했다. 한국건강가정진흥원에 따르면 한국인과 결혼한 뒤 혼인신고까지 했는데도 건강보험 혜택을 못 받는 이주여성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인 남성들이 외국인 부인을 결혼비자 대신 관광비자로 한국에 데려오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국내 체류 기간(3개월 이상)에 관계없이 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결혼비자와 달리 관광비자(C3)는 아예 건강보험 가입이 안 된다. 불법체류자 등 건강보험 자격에서 제외된 이주노동자들은 라파엘클리닉 등 무료 진료 봉사 단체 등을 찾아다니며 진료를 받기도 한다. 김창덕 라파엘클리닉 대표는 “이주노동자들이 육체적인 노동을 많이 하다 보니 어깨, 허리 통증을 주로 호소한다”면서 “동남아에서 온 환자들은 과일을 많이 먹어서인지 당뇨도 꽤 많다”고 말했다.●비수로 꽂히는 말 “돈 때문에 결혼했냐” “형진이가 욕설을 많이 하고 친구들을 자주 때려요.” 9년 전 한국인 남성과 결혼하면서 베트남에서 온 쯔엉(29)은 얼마 전 학교에서 “아들이 폭력적인 성향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쯔엉도 집에서 남편과 시어머니에게 구타당하며 살았기에 더더욱 놀랐다. 아들이 아빠와 할머니의 폭력성을 물려받은 것으로 보였다. 쯔엉은 술에 찌든 남편에게 머리채를 잡히고 주먹으로 맞는 일이 다반사였고 시어머니도 “너 돈 때문에 한국 왔지. 가난한 나라에서 왔으면 잔말 말고 내가 하라는 대로 해”라며 쯔엉을 하인처럼 여겼다. 쯔엉이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집에 돌아오면 “직장 다니는 것 맞느냐. 바람피우는 것 아니냐”며 근거 없는 의심을 보내기도 했다. 쯔엉은 결국 지난해 남편과 갈라섰다. 그는 “형진이의 장래 꿈이 경찰관이래요. 할머니, 아빠 같은 사람들을 잡고 싶다고 하네요”라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인 남성, 외국인 여성’의 혼인 신고 건수는 1만 4869건으로 집계됐다. 2000년 6945건에 비해 2배 이상 늘었다. ‘중매’ 역할을 하는 국제결혼 중개업체 수가 증가하면서 국제결혼 커플도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한국인 남성들이 중개업체에 돈을 내고 개발도상국 등에서 부인을 데려오다 보니 그들을 ‘배우자’로 바라보기보다 ‘시부모를 모시면서 애를 낳고 키우는 여성’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점이다. 결혼 이주여성들은 임신했을 때 그 서운함이 극에 달한다고 한다. “고향 음식이 먹고 싶다”, “과일이 당긴다”고 아무리 말해도 남편이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유일한 안식처는 이주민 친구나 유튜브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뿐이다. ●외국인들은 왜 3D 업종에서만 일하나 세네갈 출신인 삼(40)은 모국에서 사업을 했지만 4개월 전 한국에 온 뒤로는 사무실 청소를 하고 있다. 하루 11시간 일하고 월 170만원을 번다. 리본 제작 공장에서 일하는 필리핀 출신의 제릴린(34)은 월수입이 130만원에 불과하다. 그는 “모국에서 교육을 많이 받고 전문직으로 일했던 사람도 한국에만 오면 꿈을 펼칠 기회가 없어 일용직을 전전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주노조에 따르면 이주노동자는 하루 평균 10시간 이상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일해도 연장근로수당이나 휴일근로수당을 제대로 받는 이주노동자는 많지 않다. 경기도의 한 농장에서 4년 10개월 동안 단 하루도 쉬지 않고 12시간씩 일한 이주노동자 B씨는 퇴직금을 못 받아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냈다. 고용주의 불만도 만만찮다. 일을 제대로 하는 이들이 드물고 일 좀 할 만하면 떠난다는 것이다. 우다야라이 이주노동조합 위원장은 “이주노동자들은 ‘이주’라는 특수한 환경 속에서 생활과 노동 두 가지에 적응해야 한다”면서 “고용허가제 안에서 허락된 4년 10개월 동안 생활과 노동에 동시에 적응하기는 힘들다”고 주장했다. 베트남 출신 한가은(본명 레티마이투)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사무국장은 “직장에서 결정권을 지닌 이주민이 많지 않다 보니 한국인 팀장과 함께 밖에 나가면 한국인들은 일단 팀장하고만 얘기한다”면서 “이주민은 보조 역할만 할 것이라는 인식이 깔렸음을 보여 주는 장면”이라고 말했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거리에서 노회찬의 마지막 길을 함께 한 국회 청소노동자들

    거리에서 노회찬의 마지막 길을 함께 한 국회 청소노동자들

    지난 27일 고 노회찬 국회의원의 국회장 영결식이 엄수됐다. 영결식에는 시민들과 동료 의원, 각계 인사 등 2000여명이 모여 고인과 마지막 작별 의식을 치렀다. 그런데 이날 국회도서관 앞 도로변에서 19명의 노동자들이 땡볕에서 서 있었다. 국회 청소노동자들이었다. 이들은 국회의사당 정현관 앞으로 들어올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 민주노총(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국회 청소노동자들이 고인의 운구 행렬을 지켜보기 위해 국회 앞 도로변에 나와 있는 모습을 사진에 담아 페이스북에 공개했다. 국회 청소노동자들은 고인이 그들을 보듬었던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2016년 당시 국회사무처는 본청 내 공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휴게실과 노동조합 사무실을 비워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사무실과 휴게실을 내주면 청소노동자들이 쉴 공간이 없었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고인은 청소노동자들을 만나 “혹 일이 잘 안 되면, 저희 (정의당) 사무실을 같이 쓰자”고 말했다고 한다. 이후 다행히 국회의원회관 9층으로 휴게실과 사무실을 옮겼지만 청소노동자들은 고인의 한마디를 잊을 수 없었다.고인의 과거 ‘명연설’에 등장한 ‘6411번 버스’가 요즘 화제가 되고 있다. “6411번 버스는 매일 새벽 같은 시각, 같은 정류소에서 같은 사람이 탑니다. 누가 어느 정류소에서 타고 어디서 내릴지 모두가 알고 있는 매우 특이한 버스입니다. (중략) 이분들은 이름이 있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습니다다. 그냥 아주머니, 청소하는 미화원일 뿐입니다. (중략) 한 달에 85만원 받는 이분들은 투명인간입다. 존재하되 우리가 존재를 느끼지 못하고 함께 살아가는 분들입니다.” 지하철이 다니지 않는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나 첫 버스를 타고 서울 구로구 구로동에서 강남으로 가는 청소노동자의 삶을 보듬어 줘야 한다는 호소였다. 그 호소가 국회 청소노동자들에게도 전해진 것이다. 민주노총은 “고인이 생전에 함께 해왔고 일구고자했던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바로 세우고, 진보정치의 승리를 만들겠다는 약속을 고인의 영전에 드립니다”라면서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애통한 죽음에 다시 한 번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평안히 영면하소서”라고 애도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전문] 문희상·이정미·심상정·김호규 노회찬 의원 영결식 조사

    노회찬 정의당 의원의 영결식이 27일 오전 국회 본청 앞에서 국회장으로 엄수됐다. 영결식에서는 국회장 장의위원장인 문희상 국회의장이 영결사를 맡았으며, 이정미 정의당 대표와 심상정 의원, 김호규 금속노동자가 조사를 낭독했다. 다음은 영결사와 조사 전문. 문희상 의장 “어떻게 하다가 이 자리에서 노회찬 의원님을 떠나보내는 영결사를 읽고 있는 것입니까?” 노회찬 의원님! 이곳 국회에는 한여름 처연한 매미 울음만 가득합니다. 제가 왜 이 자리에 서있는 것입니까? 어떻게 하다가 이 자리에서 노회찬 의원님을 떠나보내는 영결사를 읽고 있는 것입니까? 태양빛 가득한 계절이건만 우리 모두는 어두운 터널에 들어선 듯 참담한 심정으로 모여 있습니다. 둘러보면 의원회관 입구에서 본청입구에서 노회찬 의원님의 모습이 보일 듯합니다. 삶에 대한 치열한 고민 속에서도 여유 가득한 표정의 우리 동료, 노 의원님을 만날 것만 같습니다.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믿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이 현실이라는 것에 황망함과 비통함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깊은 슬픔입니다. 설명할 수 없는 엄청난 충격이 가시질 않습니다. 노회찬 의원님! 당신은 정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당신은 항상 시대를 선구했고 진보정치의 상징이었습니다. 정의를 위해서라면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만류에도 거대 권력과의 싸움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남긴 메시지에서도 노동자의 삶을 함께 아파했고 사회적 약자의 승리를 함께 기뻐했습니다. 정치의 본질이 못가진자, 없는 자, 슬픈 자, 억압받는 자 편에 늘 서야 한다고 생각했던당신은 정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노회찬 의원님! 당신의 삶은 많은 이들의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 경기고등학교 재학시절부터 서슬 퍼렇던 유신에 항거했습니다. 보장된 주류의 편안한 삶 대신 민주주의와 노동현장에서 온몸을 던져 투쟁했습니다. 낡은 구두, 오래된 셔츠와 넥타이가 말해주는 대중정치인의 검소함과 청렴함은 젊은 세대에게 귀감이 되었습니다. 한국 정치사에 진보정치와 생활정치의 깃발을 세워 사회적 약자와 노동자, 서민의 버팀목이 돼주었습니다.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함부로 걷지 마라. 오늘 내가 가는 이 발자취는 뒷사람의 이정표가 된다. 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답설야중거 불수호난행) 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 (금일아행적 수작후인정)」 마치 이 말씀을 온 몸으로 실천하듯 불의와 타협하지 않았고 권력에 굴복하지 않았으며, 명예를 중시하고 신중했던 삶이었습니다. 당신의 삶은 많은 이들의 이정표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노회찬 의원님! 당신은 22일 저녁 병상의 어머님을 찾아뵙고 동생의 집을 들렀지만, 만나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그 누구도 꿈속에서조차 상상하지 못했을 마지막 밤을 보내고 우리 곁을 떠나갔습니다. 차마 이 길을 선택한 노회찬 의원님의 고뇌와 번민, 회한과 고통을 생각하면 주체할 수 없는눈물만 흐를 뿐입니다. 당신은 여기서 멈췄지만 추구하던 가치와 정신은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우리 모두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노회찬 의원님! 지난 닷새 동안 당신을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수많은 이들이 눈물 속에서 꽃을 건넸습니다. 흐드러지게 꽃피었어야 할 거인과의 갑작스런 작별을 온 국민이 애도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마지막을 동료들과 함께 국회장을 치를 수 있도록 허락해주신 유가족 여러분께 가슴 깊이 우러나오는 감사의 말씀과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노회찬 의원님, 이제 평생을 짊어졌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영원한 평안을 누리십시오. 당신이 한국정치사에 남긴 발자취와 정신은 우리 국회와 대한민국의 역사 속에서 길이 빛날 것입니다. 부디 영면하소서. 이정미 대표 “‘여기서 멈추겠다’고 했던 노회찬은 결코 멈추지 않고 우리와 함께 ‘당당히 나아갈 것’입니다.” 사랑하는 대표님! 수만의 시민들이 전국 곳곳에서 대표님을 추모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초등학생부터 구순 어르신까지. 막 일을 마치고 땀자국이 선연한 티셔츠를 입고 온 일용직 노동자부터 검은 정장을 정중히 입은 기업 대표까지. 남녀노소 각계각층의 많은 분들이 오셔서 원내대표님의 마지막 가는 길에 함께 했습니다. 나이도 성별도 하는 일도 다르지만 이 분들이 저의 손을 잡고 울먹이며 하시는 말씀은 모두 같습니다. “대한민국에 꼭 필요한 사람이었다.” ‘꼭 필요한 사람’. 이보다 노회찬을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말은 없을 것입니다. 노회찬 원내대표가 세상을 떠나자 많은 단체가 추모 성명을 냈습니다. 그들은 해고 노동자이고, 산재로 자식을 잃은 어미이자 아비였으며, 장애인, 여성, 성소수자였습니다. 노회찬이 우리 정치에 없었다면 ?간절한 외침을 전할 길이 없었던 약자들이 노회찬의 죽음에 누구보다 슬퍼하고 있습니다. 노회찬의 정치 이력은 바로 이들을 대변하고, 이들의 삶을 바꾸는 길이었습니다. 대학생 노회찬은 노동 해방을 위해 용접공이 되어 인천으로 향했고, 일하는 사람을 대변하는 진보정당을 만들기 위해, 이제는 이름조차 기억하기 힘든 진보정치 단체들을 두루 이끌며 청춘을 바쳤습니다. 진보정당 탄생 후에는 그 성공에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생의 마지막 순간, 그가 만들고 키워 온 정의당을 위해 그의 삶을 통째로 바쳤습니다. 그래서 노회찬을 잃은 것은 그저 정치인 한명을 잃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약자들의 삶을 바꿀 수 있는 민주주의의 가능성 하나를 상실했습니다. 노회찬, 당신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치인은 아닐지라도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되는 단 한 사람이었습니다. 2013년 2월 14일 삼성 X파일 대법원 선고로 의원직을 상실한 날, 억장이 무너진 당직자들에게 당신이 처음 했던 말이 “물의를 일으켜 죄송합니다”였습니다. 분노의 눈물을 삼킨 동료들에게 오히려 웃음과 유머를 보였습니다. 당신은 하늘이 주신 이 재능으로 시민들에게 정치의 통쾌함과 즐거움을 안겼습니다. 그 유쾌함은, 위기와 역경을 낙관으로 이겨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내면의 단단함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나 노회찬은 불같은 분노와 강직함을 함께 갖고 있었습니다. 2013년 의원직 상실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다시 그날로 돌아가도 삼성 X파일을 공개 하겠다”고 말하는 지독한 고집쟁이였습니다. 마지막 유품인 10년이 넘은 양복 두벌과 낡디 낡은 구두 한 켤레에서, 스스로에게 엄격했지만 너무도 소박했던 노회찬을 봅니다. 우리 정치를 이상적이고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노회찬을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국민들은 이런 노회찬을 보며 저기 국회에도 자기 편이 한명 쯤은 있다고 안심할 수 있었습니다. 한결 같은 노회찬을 보며, 많은 정치인들은 정당과 정견은 다르더라도 그를 존중했습니다. 이처럼 소중한 노회찬이, 무겁고 무거운 양심의 무게에 힘겨워 할 때 저는 그 짐을 함께 나눠지지 못했습니다. 당신이 오직 진보정치의 승리만을 염원하며 스스로가 디딤돌이 되겠다는 선택을 할 때도 그 곁에 있어주지 못했습니다. 당원들과 국민들께 너무나 죄송합니다. 정의당은 약속드립니다. 조문 기간 백발이 성성한 어른께서 저의 손을 잡고 “정의당 안에서 노회찬을 반드시 부활시키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저와 정의당은 그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노회찬의 정신은 정의당의 정신이 될 것이며, 노회찬의 간절한 꿈이었던 진보집권의 꿈은 이제 정의당의 꿈이 될 것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문희상 의장님과 선배 동료 의원 여러분! 노회찬 대표의 2012년 정의당 창당대회 연설을 기억합니다. 노 대표는 투명인간들에 대해 말했습니다. 매일 새벽 4시 서울 구로구에서 6411버스를 타고 강남의 빌딩으로 출근하는 여성노동자들은 진보정당에서조차 투명인간이었다고, 그는 반성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분들이 냄새 맡을 수 있고, 손에 잡을 수 있는 곳으로, 이 당을 함께 가져가자”고 했습니다. 노회찬의 이 다짐이 정의당만의 다짐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한국 정치가 너나 ?없이 투명 인간으로 취급해 온 일하는 사람들, 소수자들, 약자들을 향해 이제 함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되도록 정치개혁과 시민의 삶을 바꾸는 개혁에 나서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여기서 멈추겠다.”고 했던 노회찬은 결코 멈추지 않고 우리와 함께 “당당히 나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한국 정치 변화의 상징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우리의 벗, 존경하는 나의 선배 노회찬 이시여. 부디 영면하십시오. 먼 훗날 다시 만나면, 수많은 노회찬의 부활로 진보정치의 큰 꿈을 이루고 이 나라가 평등 평화의 새로운 대한민국이 됐다고 기쁘게 이야기 나눌 것입니다. 심상정 의원 “노회찬이 있었기에 심상정이 있었습니다. 가장 든든한 선배이자 버팀목이었습니다.” 노회찬 대표님! 나의 동지, 사랑하는 동지, 영원한 동지여! 지금 제가 왜? 왜? 대표님께 조사를 올려야 한단 말입니까? 저는 싫습니다. 꿈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저 뒤로 숨고만 싶습니다. 생각할수록 자책감에 서러움이 밀려옵니다. 쉬운 길 놔두고 풍찬노숙의 길을 자임한 우리들이었기에, 수많은 고뇌와 상처들을 기꺼이 감당해왔던 믿음직한 당신이었기에, 우리 사이의 침묵은 이심전심이고 믿음이며 위로였기에, 지금껏 그래왔듯 그저 침묵으로 기도하면 될 줄 알았습니다. 저의 아둔함에 가슴을 칩니다. 칠흑 같은 고독 속에 수 없는 번민의 밤을 지새웠을 당신을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집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노회찬 동지여! 돌아보니 우리가 함께 한 세월이 30년이 되었습니다. 당신은 인천에서, 저는 구로공단에서 노동운동가로 알게 되어 이후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통합진보당 그리고 정의당에 이르기까지 노회찬, 심상정은 늘 진보정치의 험준한 능선을 걸어 왔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패배로 점철되었던 진보정치의 역사에서 함께 좌절하고, 함께 일어섰습니다. 그 간난신고의 길,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던 시간이었습니다. 당신이 열어주셨기에 함께할 수 있었고 당신과 함께였기에 견딜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역사와 국민의 부름 앞에서 주저 없이 고난의 길을 마다하지 않고 여기까지 왔지 않습니까? 이제 우리의 뜻을 국민들께서도 널리 공감해주시기 시작한 이 때, 이렇게 황망하게 홀로 떠나시니 원통합니다. 당신 없이 그 많은 숙제를 어찌 감당해야 합니까? 그러나 이제 슬픔을 접으려 합니다. 당신을 잃은 오늘, 우리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깨끗하고 정의로운 정치를 위해 당신이 감당했던 천근만근 책임감을 온몸으로 받아 안을 것입니다. 저와 정의당이 그 유지를 가슴깊이 아로새기겠습니다. 당신이 목숨보다 아꼈던 진보정치, 정의당은 더 강해지겠습니다.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아름답고 품격 있는 정당으로 발돋움 하여 국민의 더 큰 사랑 받겠습니다.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당은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고 당부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럴 수 없습니다. 노회찬 없는 진보정당, 상상할 수 없습니다. 가능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노회찬과 함께 할 것입니다. 당신이 끝끝내 지켜내고자 했던 진보정치의 꿈, 정의로운 복지국가, 저와 정의당 당원들이 함께 기필코 이뤄낼 것입니다. 사랑하는 노회찬 동지여! 나의 동지여! 마지막으로 생전에 드리지 못한 말을 전합니다. 노회찬이 있었기에 심상정이 있었습니다. 가장 든든한 선배이자 버팀목이었습니다. 늘 지켜보고 계실 것이기에 ‘보고싶다’는 말은 아끼겠습니다. 대신 더 단단해지겠습니다. 두려움 없이 당당하게,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2011년 대한문 앞에서 함께 단식농성하며 약속했던 그 말, ‘함께 진보정치의 끝을 보자’던 그 약속, 꼭 지켜낼 것입니다. 정의당이 노회찬과 함께 기필코 세상을 바꿔낼 것입니다. 노회찬 대표님, 이제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편히 쉬소서. 국민들과 함께 소탈하고 아름다운 정치인 노회찬을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영원히 사랑할 것입니다. 김호규 금속노동자 “진보정당운동과 노동운동의 후배로서 선배의 유지를 받아안고 산 자의 결기로 나아가겠습니다.” 노회찬 선배께 “노동자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너무나도 소박한 요구를 밤새 가르방으로 긁어 유인물로 만들고 새벽찬 어둠을 뚫고 잰걸음으로 인천, 부천지역 공단 주변 집집마다 돌리고 먼 길을 돌아 출근했던 노동자 생활이 떠오릅니다. 서로 얼굴도 모른 채 가명으로 활동한 1986년 늦가을이 생각납니다. 벅찬 가슴안고 뚜벅뚜벅 걸었던 노동자의 길을 기억 합니다. 그 길에서 만난 노회찬 선배. 30년이 지난 오늘 영원한 안식의 길에서 만나게 되는군요. 제가 부족했습니다. 노동운동의 노선과 조직이름이 바뀌어도, 함께했던 선배였기에, 노동자 정치세력화와 산별노조 양날개론을 증명해보고자 실천한 선배였기에, 온갖 시련과 갈등이 혼재된 진보정당운동에서 대중적인 정치인으로 우뚝 선 선배였기에, 그저 믿었습니다. 저희가 안일했습니다. 예전 조직활동을 했던 때처럼 분명하게 비판하고 조직적으로 결정했다면 이렇게 허망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제가 필요할 때만 전화했던 이기심이 부끄럽습니다. 바쁘다는 이유로 선배의 고민을 함께하지 못했던 얄팍함을 반성합니다. 그래도 노동자 민중의 정치를 위해 희망을 만들었던 선배를 존경합니다. 푸근한 호빵맨으로, 적절한 비유로 비판의 경지를 한 단계 높여 대중적인 진보정치의 새로운 길을 열어낸 선배의 열정을 사랑합니다. 낮은 울림이 큰 첼로를 연주할 수 있는 정치인으로, 온 국민이 악기 하나쯤은 연주 할 수 있는 나라를 꿈꿨던 선배의 감성을 배우겠습니다. 1986년 부천에서 노동자의 길을 시작한 저에게 지난 30여 년 동안 선배와의 인연은 일선의 현장활동가로서 가까웠지만 사안에 따라 다소 멀기도 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울산에서의 다양한 활동에 대한 선배의 지도는 늘 좋았고 명쾌했습니다. 갈등했던 기억은 잠시 뒤로 미루고, 울산 바닷가에서 의기투합했던 도원결의는 간직하겠습니다. 선배를 보내는 이 자리는 회한과 슬픔이 앞서지만 넋 놓지 않고 다시 한 번, 진보정당운동과 노동운동의 후배로서 선배의 유지를 받아안고 산 자의 결기로 나아가겠습니다. 더 이상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는 선배를 통해 체득한 실사구시(實事求是)를 활동하는 동안 놓치지 않고, 노동자의 길로 나아가는 발걸음마다 나지막이 퍼져가도록 하겠습니다. 장례기간 동안 선배를 추모하는 긴 추모행렬을 보았고, 다양한 국민들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이제 노동자의 길을 걸었던 노동운동가에서 진정한 정치인으로 우뚝 선 선배이기에 영원한 안식의 공간에서 하고 싶은 것을 하고, 가고 싶은 곳을 자유롭게 가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광화문 정동길 금속노조 사무실 옥상에서 선배를 기억하며 서성이는데 붉은 고추잠자리가 제 주위를 맴도네요. 추억과 동심의 잠자리 모습에서 씨익 웃는 선배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 번뜩 내려와 ‘귀로’라는 노래를 들으며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노래 중에 이런 대목이 다가옵니다. “무지개가 뜨는 언덕을 찾아 넓은 세상 멀리 헤매 다녔네 그 무지개 어디로 사라지고 높던 해는 기울어가네 새털구름 머문 파란 하늘 아래 푸른 숨을 쉬며 천천히 걸어서 나 그리운 그 곳에 간다네 먼 길을 돌아 처음으로” 엄혹했던 노동운동가에서, 치열한 진보적 대중 정치인으로. 이제는 자유로운 인간으로 국민들의 가슴 속에 첼로의 운율을 남긴 만큼 먼 길 돌아왔습니다. 처음처럼, 아가처럼 편히 쉬십시오.
  • ‘표밭’ 돌며 셀프홍보 나선 트럼프…EU와의 전쟁 승리·북한 문제 평화적 해결 부각

    ‘표밭’ 돌며 셀프홍보 나선 트럼프…EU와의 전쟁 승리·북한 문제 평화적 해결 부각

    유럽연합(EU)과 무역전쟁 돌파구를 마련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부터 ‘표밭’을 돌며 대대적인 셀프 홍보에 나섰다. 또 취임 후 북한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해 왔다며 자신의 대북정책 성과를 강조했다. 전 세계를 상대로 무역전쟁을 벌여온 트럼프 대통령이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악화된 민심과 우려하는 목소리를 잠재우기 위해 지지층이 몰려 있는 ‘러스트벨트’(쇠락한 공업지대)와 중서부 ‘팜벨트’(농업지대) 등을 찾은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과 백악관에서 무역분쟁 해결을 위한 양자회담을 해 EU가 미국산 콩(대두)과 액화천연가스(LNG) 수입을 확대하고 관세 인하에 힘쓴다는 합의를 끌어냈다. 그는 콘 벨트(옥수수지대)인 아이오와주 소도시 피오스타에서 농민들을 상대로 한 연설에서“우리가 여러분 농민들을 위해 막 유럽(시장)의 문을 열었다”며 “이러한 합의는 전례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AFP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EU와의 무역분쟁의 휴전을 이끌어낸 뒤 미 농민을 위한 승리를 선언했다”며 “오는 11월 어려운 중간선거를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은 농업주인 아이오와 주로 달려가 EU와의 무역전쟁이 휴전됐다는 사실을 홍보했다”고 전했다. 역대 선거의 경합주로 꼽히는 아이오와 주의 콩 생산농가들은 이미 중국과의 보복관세 무역전쟁 탓에 타격을 받은 계층들이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그래닛시티에서 철강 노동자들을 향해 “미국은 절대 항복하지 않는다. 우리는 백기를 흔들지 않는다”라며 “우리 철강 도시들이 유령도시들이 됐다. 역대 행정부가 역사상 최악의 무역협정을 맺었지만 나는 더 좋은 조건으로 협상해왔다”고 주장했다. 러스트벨트의 노동자들 역시 트럼프 행정부의 유럽산 철강·알루미늄 ‘관세폭탄’에 맞선 EU의 보복조치로 타격을 받고 있다. EU는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와 청바지 등 28억유로(약 3조 6500억원) 규모의 미국산 제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이 연설에서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이 엄청난 진전을 이뤄내고 있다”면서 대북정책 성과를 부각시켰다. 그러면서 그는 전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비판하며 “오바마 대통령을 만났을 때 그는 마치 북한과 전쟁할 준비가 돼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 같았다”며 “나는 북한과 대화하라고 했으나 그는 아니라고 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가 ‘리틀 로켓맨’ 같은 용어를 사용했을 때 언론들은 내가 전쟁을 하려고 하고, 내가 끔찍하고 불안정하다고 말했지만 솔직히 지금 나는 김정은 위원장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면서 “(리틀 로켓맨 같은 공격적인)수사가 없었더라면, 또 제재가 없었더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과거 자신의 공격적 언행이 의도된 것이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손님에게 9시간이나 갇혀 있었다”...일본서 고객갑질 대응 움직임 확산

    “손님에게 9시간이나 갇혀 있었다”...일본서 고객갑질 대응 움직임 확산

    “손님에게 사과하기 위해 집으로 방문했다가 9시간을 갇혀 있었다.”(백화점 직원) “손님은 신이니까 모든 것을 들어주어야 한다는 훈계를 7시간이나 들어야 했다.”(가전회사 직원) 일본을 설명하는 여러 키워드 중 ‘오모테나시’가 있다. 온 정성을 다해 손님을 대접한다는 뜻이다. ‘서비스 천국’으로 불리는 일본 고객응대 정신을 함축하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일본에서도 최근 손님들의 불합리한 요구나 욕설, 폭력 등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려는 움직임이 노동자나 기업 측에 확산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중요한 문제로 부각된 ‘감정노동자’의 인권이 일본에서도 본격적으로 이슈화하고 있는 것이다. 27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다양한 고객 직접응대 업종의 기업 노조가 모여 있는 UA젠센(전국섬유화학식품유통서비스일반노조동맹)은 ‘고객 갑질의 추방을 위해 필요한 대책을 강구하자’는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달 중순까지 약 170만명의 노동자들이 서명에 참여했다. 대부분 소매, 외식, 호텔, 의료·개호 등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니혼게이자이는 “서비스를 중시하는 일본에서 고객을 ‘악질’로 간주하는 것을 망설이는 기업이 많지만, 그대로 방치했다가는 국내총생산(GDP)의 70%를 차지하는 서비스업에서 일손 부족이 심화할 수 있어 대응을 모색하는 움직임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일부 악덕 소비자의 갑질에 양보하고 굴복하는 것이야말로 전체 소비자의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인식도 확산하고 있다. 일본 서비스업계는 ‘마음’을 팔아야 하는 감정노동의 부담이 가뜩이나 일손 부족이 심각한 상황에서 인력 조달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고객 갑질로부터 직원을 보호함으로써 휴가나 퇴사 등을 막기 위해 다양한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150개 제과업체가 가입해 있는 일본과자BB협회는 지난해 처음으로 ‘블랙 컨슈머’에 대응하는 지침을 만들었다. 손님이 자기가 구입한 상품이 불량품이다고 주장하더라도 실제로 해당 제품을 가져오지 않을 경우 원칙적으로 대응을 하지 않도록 규정했다. 그동안 제과업계는 불량이라는 주장만으로도 물건을 바꿔주거나 사과 물품을 보내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이를 악용하는 사람들이 다른 업종보다 더 많았다. JR 등 철도회사들은 공동으로 승무원, 역무원에 대한 손님들의 폭력 추방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후생노동성은 요양서비스 등 현장에서 요양사에 대한 성추행 등을 막기 위한 대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한 대형마트 노조는 올 봄 노사협상에서 고객 갑질에 대한 대책을 마련할 것을 사측에 요구해 관철시키기도 했다. 유럽연합(EU)은 직장내 학대와 폭력 등에 대응하는 절차를 정비하도록 기업에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는 직장상사나 동료뿐 아니라 고객이나 거래처 등도 해당된다. 니혼게이자이는 “일손 부족으로 편의점 등에서의 외국인 직원이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손님들의 횡포로부터 직원들을 지킬 수 있는지 여부가 앞으로 일본의 오모테나시의 질을 좌우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정부 “8월 둘째 주까지 최소 100만㎾ 전력 추가 확보”

    건설현장 1000여곳 일사병 특별점검 무더위 쉼터 오후 9시까지 연장 운영 연일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는 가운데 정부가 8월 둘째 주까지 최소 100만㎾ 규모의 전력 공급 능력을 추가로 확충하기로 했다. 정부는 2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폭염 관련 추가 대책회의를 열고 전력수급대책 점검과 무더위 쉼터 확대 방안 등을 논의했다. 다음달 초까지 33도 이상의 폭염이 유지될 것이라는 기상청 전망에 따라 전력수급 대책을 재점검한다. 최소 100만㎾ 전력 공급 능력을 추가로 확충하고 유사시에 대비해 화력발전소 출력을 늘리는 방식 등으로 680만㎾까지 활용활 수 있도록 했다. 폭염으로 인한 정전 사고를 줄이기 위해 한국전력을 중심으로 취약지구 집중 점검을 실시하고 사고 발생 때 신속한 복구를 위한 비상 대응체계도 가동한다. 고용노동부는 1시간 노동 후 10~15분 휴식 등 열사병 예방을 위한 기본 수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지적에 따라 건설현장 1000여곳에 대한 자체 점검과 특별 점검을 실시한다. 야외 노동자들에게는 아이스 조끼나 아이스 팩 등 보냉장구를 산업안전관리비로 구입해 지급하도록 했다. 행정안전부와 각 지방자치단체는 무더위 쉼터 4만 5000곳의 운영 시간을 기존 오후 6시에서 오후 9시로 3시간 늘리고, 주말에도 개방한다. 보건복지부는 기존에 진행하던 독거노인 안전 수시 확인, 경로당 냉방비 지원, 노숙인·쪽방주민 집중보호 방안을 추진하면서 대구 북구 등 폭염 빈도가 높은 10개 지자체에 대해서는 현장점검을 시행한다. 아울러 폭염으로 인한 가축 피해가 지난 25일 기준으로 234만 마리에 달하는 만큼 피해 발생 때 재해보험금 지급 소요 기간을 기존 30일에서 10일로 단축한다. 수산 분야에서는 어업인들의 양식수산물 조기 출하를 유도하면서 액화산소공급기 등 대응장비 구입을 위한 긴급예산 10억원을 지자체에 추가 지원한다. 폭염으로 레일 온도가 오르면서 열차가 느려져 지연되는 현상을 최소화하기 위해 레일 온도 측정 인원을 투입해 서행 구간을 단축하고 레일 온도가 63.5도 이상이면 ‘살수트로리’를 상·하선에 동시 투입한다. 행안부는 폭염대책 지원 명목의 특별교부세 100억원이 조기 집행되도록 유도하고 폭염도 자연재난에 포함되도록 ‘재난안전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노 의원, 우리 같은 꼴찌 위해 버티지”…6411번 버스는 웁니다

    “노 의원, 우리 같은 꼴찌 위해 버티지”…6411번 버스는 웁니다

    노회찬 2012년 정의당 대표 수락 연설때 ‘6411번 버스’ 청소 노동자들의 삶 언급 그 후 6년…魯는 없지만 승객들 그대로 새벽 4시 첫 차… 출발 15분 만에 만석 서로 가방 들어주며 매일 출근길 눈인사 “노동자 살기 좋았던 때 있었나” 한탄도“6411번 버스를 아십니까.” 고(故) 노회찬 정의당 의원의 ‘명연설’에 언급됐던 ‘6411번 버스’가 새삼 화제가 되고 있다. 2012년 10월 진보정의당 대표 수락 연설에서 노 의원은 “6411번 버스는 매일 새벽 같은 시각, 같은 정류소에서 같은 사람이 탑니다. 누가 어느 정류소에서 타고 어디서 내릴지 모두가 알고 있는 매우 특이한 버스”라고 소개했다. 그는 “이 분들은 이름이 있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는다. 그냥 아주머니, 청소하는 미화원일 뿐”이라며 “한 달에 85만원 받는 이 분들은 ‘투명인간’이다. 존재하되 우리가 존재를 느끼지 못하고 함께 살아가는 분들”이라고 지적했다. 지하철이 다니지 않는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나 첫 버스를 타고 서울 구로구 구로동에서 강남으로 가는 청소노동자의 삶을 보듬어 줘야 한다는 간절한 내용이었다.●“누가 노 의원만큼 우리 대변해줄지 걱정” 노 의원이 지난 23일 안타깝게 생을 마감하면서 버스 안 ‘투명인간들’도 깊은 슬픔에 잠겼다. 서울신문은 26일 새벽 4시 정각 구로동 영업소에서 출발하는 ‘6411번’ 첫 차와 3분 뒤 출발한 두 번째 버스에 올라 노 의원이 품으려 했던 청소노동자들을 만났다. 그들은 노 의원을 “우리 편에 섰던 사람”으로 기억했다. 실제 버스에서 만난 승객 대부분은 노 의원의 연설대로 여성 청소노동자들이었다. 노 의원이 말한 것처럼 신기하게도 출발한 지 15분 만에 버스는 꽉 찼다. 구로동 영업소를 출발한 첫 버스는 첫 정류장인 거리공원에서 7명을 태웠다. 이 중 한 명인 강모(64)씨는 강남에서 빌딩을 청소한다. 강씨는 “노동자들이 새벽부터 치열하게 살고 있다는 것을 아는 정치인은 노 의원이 유일했다”며 “노동자들이 이렇게 힘들게 살지 않고도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정치를 하셨다”고 말했다. 같은 시간 구로구 남구로역 정류장에서 6411번 버스를 기다리던 서모(72)씨는 ‘노회찬’이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금세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최근 5년 동안 강남구 선릉역 주변 빌딩을 청소하고 있는 서씨는 “노동자들 편에 섰던 좋은 분”이라면서 “노 의원은 하늘나라에서도 우리 같은 사람들을 위한 정치를 할 거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남구로역에 도착하니 남은 좌석이 없었다. 앞쪽에 앉아 있던 김모(65)씨도 강남의 한 빌딩을 청소하는 노동자였다. 김씨는 “매일 아침에 첫 차를 탄다”면서 “오전 6시까지 출근하게 돼 있지만 5시 20분까지는 도착해야 여유 있게 일을 끝낼 수 있다”고 말했다. 김씨와 함께 근무하는 21명의 동료는 노 의원의 비보를 접하고 “‘아무리 어려워도 죽으면 끝인데 왜 돌아가셨을까’라며 가슴 아파했다”며 안타까워했다. 김씨는 “약자 편에 서서 법도 많이 만들었는데, 하늘나라에서는 평안하길 바란다”고 명복을 빌었다. 버스 기사 윤모(56)씨는 “정치적인 적(敵)이 없는 것만 봐도 노 의원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 수 있지 않느냐”면서 “앞으로 누가 노 의원처럼 노동자들을 속시원하게 대변해 주고 우리를 위해 힘써 줄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첫 번째 버스보다 3분 늦게 출발한 두 번째 버스에 탄 첫 승객도 강남구 학동에 있는 빌딩을 청소하는 노동자였다. 구로구 신도림역 정류장에서 탑승한 정모(54)씨는 “점점 살기가 절박해지는 것 같다”며 “최저임금이 올라도 용역회사는 오히려 식대를 줄여 임금이 지난해와 2만~3만원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강남구 선정릉역 인근의 빌딩 청소를 한 지 3개월 됐다는 김모(60)씨도 “오래 일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최저임금이 오르자 용역회사에서 일하는 시간과 월급도 같이 줄였다고 한다”고 말했다. 2년 정도 강남 빌딩에서 청소 일을 한 신모(68)씨는 “청소하는 사람들은 편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한탄했다. 이어 “남편이 아파서 몇 년째 쉬고 있기 때문에 청소 일을 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청소하는 사람들이 만날 하는 소리가 ‘허리 아프다’, ‘손목 저린다’, ‘몸이 찌릿찌릿하다’ 이런 말들이다”고 덧붙였다. 6411번 버스 승객들 사이에는 자리에 앉은 사람이 서 있는 사람의 가방을 들어 준다. 모르는 사람인데도 서로 대화를 하고 내릴 때에는 눈인사를 하기도 했다. 10년 넘게 이 버스를 탔다는 신모(68)씨는 “다 똑같은 일을 하고, 매일 같은 버스를 타니까 서로 모르면서도 잘 안다”면서 “나이가 비슷하면 친구가 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 버스의 좌석도 출발한 지 20분이 지나자 꽉 찼다. 뒷문으로 오르는 계단은 또 다른 의자가 됐다. 승객 4명은 미리 준비했다는 듯 가방에서 비닐 깔개를 꺼내 뒷문 계단에 깔더니 그 위에 앉았다. 그렇게 앉은 네 명의 승객은 두 명씩 짝을 지어 이야기를 나눴다. 곧이어 발 디딜 틈 없이 사람이 찼고 앞문도 제대로 닫히지 않을 정도가 됐다. 청소노동자들은 동작구 노들역 정류장에서 5명 정도씩 내리기 시작했다. 강남구 구반포역 정류장에서부터는 10여명씩 한꺼번에 내렸다. 1시간 10여분이 지나 선릉역 정류장에 도착하자 승객 대부분이 하차했다. 오전 5시 10분, 이들은 인사를 나누고 각자의 빌딩으로 들어갔다. ●“형! 다음 생에서 만나요”… 울먹인 유시민 “회찬이 형! 형! 형! 다음 생에서 또 만나요.” 공동장례위원장으로 노 의원과 2012년 진보정의당을 창당하고 함께 팟캐스트에 출연하는 등 각별한 인연을 이어 왔던 유시민(58) 작가는 연세대 대강당에서 열린 노 의원 추도식에서 추도사를 낭독하다가 울먹였다. 유 작가는 “생전에 한 번도 형이라고 부르지 못하다 오늘 처음 형이라고 부른다”며 “완벽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좋은 사람이어서 형을 좋아했다”고 말했다. 그는 “다음 생에는 더 좋은 곳에서 태어나 더 자주, 멋지게 첼로를 켜고 아름다운 글을 더 많이 쓰고 (부인) 김지선님을 만나 더 크고 깊은 사랑을 나누세요”라며 “가끔은 물 맑은 호수로 저와 단둘이 낚시를 가자, 형과 함께한 모든 시간이 좋았다”고 덧붙였다. 노 의원의 넋을 기리기 위한 추모문화제는 연세대 이외에 노 의원 지역구인 경남 창원에서도 열렸다. 서울 서대문구 연세장례식장에 차려진 빈소에는 26일 오후까지 2만 8800여명의 추모객이 다녀간 것으로 알려졌다. 노 의원의 장례는 26일부터 국회장으로 승격됐다. 장례 마지막 날인 27일 오전 10시 국회에서 영결식이 엄수된다. 이후 고인은 서초구에 있는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돼 장지인 경기 남양주 마석 모란공원에 안치된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유영재 기자 young@seoul.co.kr
  • 문 대통령, 퇴근길 시민들과 ‘깜짝 만남’…맥주 마시며 고충 들어

    문 대통령, 퇴근길 시민들과 ‘깜짝 만남’…맥주 마시며 고충 들어

    문재인 대통령이 26일 오후 호프집을 들러 시민들고 ‘퇴근길 맥주 모임’을 가졌다. 장소는 서울 종로구청 인근 ‘쌍쌍호프’, 이 자리에는 청년구직자, 편의점 점주, 식당 자영업자, 아파트 관리인, 서점 주인, 도시락업체 사장, 중소기업 사장 등의 시민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만 고용노동부 장관을 만나 ‘경제 현안과 관련된 의견을 밝히는 자리’로 알고 있었을 뿐, 대통령이 온다는 사실은 문 대통령이 도착하기 직전 알게 됐다. 이 때문에 문 대통령,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 김의겸 대변인,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등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청와대는 페이스북을 통해 이날 약 100분간 이어진 문 대통령과 시민들의 만남을 자세히 전했다. 문 대통령은 “깜짝 놀라셨죠?”라고 인사를 건넨 뒤 “처음에는 퇴근하는 직장인들을 만나서 편하게 맥주 한 잔 하면서 세상 사는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는데, 최저임금, 노동시간, 또 자영업 그리고 고용 문제들에 대해 심각하게 이야기 되는 상황이어서 그런 말씀들 듣고자 자리를 마련했다”면서 참석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오늘 아무런 메시지를 준비하지 않고 왔다. 그냥 오로지 듣는 자리로 생각하고 왔다. 편하게 말씀해주시면 된다”면서 참석자들이 주도적으로 이야기를 하고, 문 대통령은 주로 듣는 과정이 이어졌다.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기 앞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이종환씨가 건배를 제의하며 “대한민국 사람들 다 대통령께서 아끼고 사랑해달라. ‘아싸’라고 (건배사를) 하겠다”고 했고, 참석자들은 다같이 “아싸”를 외쳤다. 이종환씨는 23년간 음식점을 운영해 왔다고 했다. 그는 “정부에서 정책을 세울 때 생업과 사업을 구분해주셨으면 좋겠다. 대부분이 생계형 자영업자이다. 근로시간 단축, 시간외 수당, 주휴수당 등 정책에 대한 불만이 굉장히 많다. 최저임금 같은 경우에 좀 성장해서 주면 되는데, 속으로 정말 최저 근로자만도 못한 실적이라서 될 수 있으면 가족끼리 하려고 한다. 종업원 안 쓰고... 그러다보니 일자리 창출도 국민들이 봤을 때는 안 되는 거다. 앞으로도 그렇게 될 거다”라고 영세 자영업자로서 힘든 점을 전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최저임금의 경우에는 상당 부분을 정부가 일자리 안정자금으로 지원을 하고 있는데 (어려움이) 해결되지 못하는 건가요“라고 질문했다. 이에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는 이태희씨가 “4대보험을 100만원씩 매달 넣고 있는데, 일자리 안정자금 신청을 하니 20만~30만원 나오더라. 그거 받으려면 4대보험 100만원 정도를 매달 내야 한다”면서 사업주의 부담이 여전히 크다는 점을 설명했다. 또 가맹점 불공정 계약 문제를 언급하며 “심야영업만 안 하게 해달라”고 건의했다. 문 대통령은 “가맹점에 운영시간이 (계약으로) 묶여있나”라고 물었고, 임종석 비서실장은 “자영업비서관을 신설했으니, 종합적인 대안을 만들어보겠다”고 약속했다. 취업준비생인 이찬희씨는 “취업 준비에 돈이 많이 든다”고 호소했다. 이에 문 대통령이 “취업 준비에 돈이 얼마나 드느냐”고 묻자 이찬희씨는 “토익, 오픽 등 취업을 위한 시험과 자격증 취득 비용이 한달에 25만원 정도 든다”고 답했다. 또 정부의 취업성공패키지 정책으로 지원을 받고 있지만 많이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이 자리에는 지난해 3월, 당시 대통령 후보 시절 빨래방에서 만나 삼겹살 데이트를 했던 배준씨도 함께 했다. 배준씨는 “그 동안 공무원 준비 3년 했는데, 과감하게 고시를 접고 다음 학기에 복학해 새로운 출발을 하려고 한다”고 근황을 밝혔다. 이에 문 대통령은 “공백이 아깝겠다”고 위로하면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나”라고 물었다. 배준씨는 지난주부터 어렵게 구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고 전했다. 도시락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변양희씨는 “열심히 해봐야 학교 근처라 상가비가 많이 나간다. 아르바이트비 주고 나면 제가 가져가는 돈이 없다”면서 “정부가 근로시간 단축제를 발표한 이후로 저녁에 배달이 없다. 퇴근을 빨리 하고 야근을 안 하니 도시락 배달이 줄어들었다. 마음 고생이 너무 심하다”며 고충을 털어놓았다. 언어치료사로 일하다가 출산으로 경력단절이 된 안현주씨는 “쌍둥이 낳고 일을 그만둔 지 4년, 부모님이 도움을 주시지 않으면 여성은 일을 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파트타임을 구해도 보모에게 최저임금에 맞춰서 돈을 드려야 하고, 아이 참 기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에 문 대통령이 보육에 대한 지원이 어떤지 물었고, 안현주씨는 어린이집은 전액 지원이 되지만 그래도 부모님 손을 빌릴 수밖에 없다며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힘들다. 수시로 휴가를 낼 수도 없고, 아이 기르기가 참 어렵다. 꿈을 펼치고 싶었는데 아무리 열심히 한들 (잘 안된다)”고 말하며 울먹이기도 했다. 또 아이를 돌보며 할 수 있는 일자리를 찾다보니 파트타임을 찾게 되는데, 급여가 불안정해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문 대통령이 “정부가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라고 묻자 안현주씨는 “아동수당 지원도 좋지만 보육교사 처우도 늘려주면 좋겠다. 힘든 만큼 대가를 못 받으니 열악한 것 같다”고 답했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정광천 사장은 “주 52시간제와 최저임금 인상으로 생산직 기업들은 굉장히 고통스러워 한다. 최저임금 인상을 업종과 지역별로 속도 조절을 할 필요가 있다”고 건의했다. 문 대통령은 이에 대해 “최저임금 문제의 경우 서울 물가와 지역 물가도 다르고, 지역별·업종별로 다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 고용 규모도 다를 수 있다”면서 “그에 따른 논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한편으로는 임금을 제대로 못 받아 어려움을 겪는 분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최저임금인데, 직종에 차별을 가하면 취지에 맞지 않는다”라면서 “쉬운 문제는 아니다. 앞으로 이런 논의를 많이 하겠다”고 답했다. 정광천씨는 “중소기업은 구직도 어렵지만, 구인도 어렵다”며 관심을 가져줄 것을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그래도 대통령에게 얘기하니 시원하시겠다”고 웃음을 보였다. 아파트 경비원인 김종섭씨는 “은행이 폭리를 취한다”며 고민을 호소하기도 했다. 26년째 서점을 운영하는 은종복씨는 “남북 평화로 가는 길로 가기 때문에 책방이 힘들어도 기쁘다”면서 돈은 없지만 행복하다고 말했다. 이어 “근처 대학생이 오면 책을 공짜로도 주고, 외상으로도 주고, 밥도 같이 먹는다”고 전했다. 이날 미리 참석이 예정된 시민들뿐만 아니라 호프집 통유리 너머로 모임을 지켜보던 시민 6명도 즉석에서 자리에 합류했다. 문 대통령은 “주 52시간제 근무제를 시행하니 뭐가 좋나, 육아는 할 만 한가”라고 묻자 한 남자 직장인은 “집에서 설거지만 한다. 제 얼굴을 낯설어하던 아이가 저를 많이 찾고 좋다”고 답했다. 문 대통령은 “노동시간이 짧아져 급여나 수당이 줄어든 것에 대한 불만은 없나”라고 묻기도 했다. 박용만 상의 회장은 대화 내용을 듣다가 “대기업들이 잘하겠다”면서 “소위 임금이 낮은 분들의 임금을 올리는 것은 좋은데, 다른 정책도 같이 가면 좋지 않겠나. 직접적 분배정책도 같은 효과가 나오는 것 아닌가 싶고, 다양한 정책이 있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내기도 했다. 자리에 합류한 시민들 중에는 지방에서 서울에 올라와 청와대 관람을 하려다 인터넷 예약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돌아가야했다는 중학교 교사도 있었다. 이에 문 대통령이 “이 분들을 고려해 줄 수 없나”라고 묻자, 임종석 비서실장은 “저 분들만 새치기해서는 안 된다”고 답했고, 김의겸 대변인도 “대통령 ‘빽’으로도 안 됩니다”라고 거들어 웃음바다가 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구조적 개혁은 참 힘들다. 하는 정부도 어렵고, 그래도 시간 지나 정착이 되면 우리 전체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다. 과거에 주 5일 근무제 했을 때 기업이 감당할 수 있겠냐 호소했지만 그런 어려움들을 딛고 결국은 우리 사회에 다 도움이 되지 않았나”라면서 “지지도 해 주시고, 고충을 이해해 주시고, 대안도 제시해 주셔서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다. 또 “자영업자의 어려움을 도와주는 여러 제도와 대책들이, 카드 수수료라든지 가맹점 수수료 문제라든지, 상가 임대료 문제와 함께 강구되어야 한다. 노동자들에게도 일자리안정자금뿐 아니라 고용시장에서 밀려나는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책이 쭉 연결되면 그나마 개혁을 감당하기 쉬울 텐데, 정부가 주도해서 할 수 있는 과제들은 속도 있게 할 수 있지만 국회 입법을 펼쳐야 하는 과제들은 시간차가 나 늦어진다. 그래서 자영업 문제, 고용 밀려나는 분도 생기고, 그렇게 해서 자영업에 대한 사회안전망 모색하고, 여러 문제에 대해서 굉장히 무겁게 생각한다. 그런 부분 적극적으로 보완해 나갈 거고, 국회에서도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며 정책 시행의 어려움에 대해 이해를 구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오늘 정말 많은 이야기 듣고 싶어서 왔는데 경력단절, 취준생, 자영업자 등 여러분들의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어서 앞으로 큰 도움이 될 것 같다”면서 감사인사를 전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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