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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갑수 작가의 문장으로 떠나는 여행] 율리시스와 걷다… 펍의 성지 악사의 땅

    [최갑수 작가의 문장으로 떠나는 여행] 율리시스와 걷다… 펍의 성지 악사의 땅

    “더블린의 핵심에 도달할 수 있다면 세계 모든 도시의 핵심에 도달할 수 있다.”아일랜드 더블린. 여행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꼭 가 보고 싶어 하는 이 도시는 아이리시해(海)를 사이에 두고 영국 리버풀과 마주하고 있다. 음악팬들에겐 세계적인 록밴드 U2를 배출한 도시, 영화팬이라면 음악영화 ‘원스’의 배경이었던 도시, 문학 애호가들에겐 노벨상 수상작가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율리시스’의 무대가 됐던 도시로 알려졌다. 아 참, 주당들에게는 흑맥주 ‘기네스‘의 고향으로도 알려져 있다.●세상에서 가장 난해한 소설 먼저 제임스 조이스를 이야기하자. 1882년 2월 2일 더블린에서 출생한 제임스 조이스는 20세기 모더니즘 문학의 금자탑을 이룩한 작가로 평가받는다. ‘20세기의 셰익스피어’라고도 불리는 그를 빼놓고는 20세기 문학을 이야기하기 어려울 정도다. ‘의식의 흐름’이나 ‘현현’(顯現: epiphany) 같은 말들은 조이스를 통해 문학용어사전에 새로 등재됐다. 그의 책은 아일랜드 가정마다 한 권씩은 비치돼 있다고 하니 아일랜드 국민들의 제임스 조이스 사랑이 어떤지 짐작할 수 있다. 제임스 조이스의 대표작은 ‘율리시스’다. 신문사 광고 판매인인 주인공 레오폴드 블룸의 하루 일상을 따라가는 소설이다. 정확히 말하면 1904년 6월 16일 아침 8시부터 다음날 새벽 2시까지 18시간 동안 블룸에게 일어난 일을 묘사한다. 블룸은 에클레스가 7번지에 있는 그의 집에서 아침 8시에 나와 아침거리를 사서 아내에게 식사를 차려 주고 9시 45분에 집을 나서 우체국과 약국, 묘지, 신문사, 주점, 도서관, 식당과 호텔 바 그리고 해변 모래사장과 병원, 사창가, 오두막 주점을 하루 종일 돌아다니다가 이튿날 새벽 2시에 집에 돌아온다. 그가 종일 다닌 거리가 18마일(약 30㎞), 발로 걸어 다닌 거리가 8마일(약 13㎞)이다. 그가 들른 곳들은 모두 소설 속에 손에 잡힐 듯 자세하게 묘사돼 있다. 줄거리는 간단하지만 ‘의식의 흐름’을 따라 묘사한 까닭에 내용을 파악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이 소설에 사용된 약 3만개 어휘와 수많은 인용, 은유는 독자를 진저리 치게 한다. ‘이 작품을 연구한 문학박사가 일반 독자 수보다 많다’는 농담이 전해질 만큼 어렵고 재미없다. 제임스 조이스 스스로도 1922년 출간된 ‘율리시스’의 서문에 “나는 이 작품 속에 너무나 많은 수수께끼와 퀴즈를 감춰 뒀기에, 앞으로 수세기 동안 대학교수들은 내가 뜻하는 바를 거론하기에 분주할 것이다. 이것은 나 자신의 불멸을 보장하는 유일한 길이다”라고 적어 놓기도 했다. 메릴린 먼로는 이 책을 읽고 있는 사진을 찍으며 “철학적인 시인 같은 지성파 배우”의 이미지를 만들려고 했다고 한다.●블룸의 발자취를 따라서 제임스 조이스의 흔적을 가장 잘 엿볼 수 있는 곳은 더블린 시내에서 남쪽 해안 쪽으로 8마일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는 제임스 조이스 센터다. 제임스 조이스의 서한과 사진, 작품 초판본과 희귀본, 개인 집기 그리고 소설 ‘율리시스’와 연관된 전시품들을 보관하고 있다. ‘블룸스 데이’(Bloomsday) 라는 기념일도 있다. ‘율리시스’에 블룸이 등장한 6월 16일이다. 이날 더블린에서는 ‘율리시스’의 의미를 되새기는 다채로운 행사들이 마련된다. 제임스 조이스 센터에서 ‘블룸스 데이 브렉퍼스트’를 먹는 것을 시작으로 조이스 마니아들이 참가하는 ‘율리시스’ 낭독회와 연주회, 뮤지컬 등의 행사가 펼쳐진다.하이라이트는 워킹 투어다. 주인공 블룸의 발길을 따라 데이비 번스 펍, 스웨니 약국, 올먼드 호텔 바, 오코넬 다리, 그라스네빈 묘지, 마텔로 탑(조이스 탑), 벅 멀리건 찻집, 아일랜드 국립도서관 등 소설에 등장한 장소를 방문한다. 전 세계에서 몰려온 조이스의 열혈팬들이 줄지어 걷는 행렬은 또 다른 장관을 연출한다. 제임스 조이스 센터 가까운 곳에 더블린 작가 박물관도 있다. 조이스 외에도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라는 묘비명으로 유명한 조지 버나드 쇼, 자신이 천재인 것 말고는 신고할 게 없다고 한 ‘진짜 천재’ 오스카 와일드, ‘걸리버 여행기’를 쓴 조너선 스위프트,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희대의 부조리극을 쓴 사뮈엘 베케트, 1995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시인 셰이머스 히니 등을 만날 수 있는 이곳에서는 더블린이 왜 ‘유럽 문화의 수도, 세계 문학의 심장’으로 군림하는지 절로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조이스 마니아라면 데이비 번스도 빼놓을 수 없다. 듀크가 21번지에 있는 이 펍은 블룸이 소설 속에서 점심을 들었던 곳으로 건너편에 있는 베일리 식당과 함께 조이스가 실제로 즐겨 찾았던 펍이기도 하다. ‘율리시스’ 때문에 장사가 잘돼 돈을 번 주인은 사례의 뜻으로 ‘데이비 번스 아일랜드 창작상’을 제정한 후 매년 2만 유로의 상금을 지원, 유능한 젊은 작가들을 발굴하고 있다. 템플바에서 멀지 않은 곳에 조이스의 또 다른 단골 펍이었던 스태그스 헤드도 있다. 22살에 노라 바너클을 만나 사랑의 도피를 떠난 제임스 조이스는 이탈리아 로마와 프랑스 파리, 스위스 취리히 등을 떠돌며 살았다. 하지만 그는 한순간도 “사랑하는 더러운 더블린”을 떠난 적이 없다. 그는 “나는 언제나 더블린에 대해 쓴다. 더블린의 핵심에 도달할 수 있다면 세계 모든 도시의 핵심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더블린의 중심가에는 더블린에 대한 그의 사랑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제임스 조이스의 청동 입상이 서 있다. 비쩍 마른 몸으로 지팡이를 짚은 채 턱을 들고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는 그의 표정은 고집스러우면서도 수수께끼처럼 보인다. 동상 뒤에는 그의 단골 카페였던 킬모어가 있다.●펍 명소 ‘템플바’ 더블린 여행에서 꼭 가 봐야 할 곳이 템플바 거리다. 파리가 ‘카페 문화’로 유명하다면 더블린은 ‘펍(pub) 문화’로 유명하다. 제임스 조이스는 “펍을 피해서 더블린을 걷는다는 것은 마치 퍼즐게임을 벌이는 것과 같다”고 했을 정도다. 인구 100만의 도시 더블린에 펍이 무려 1000개가 넘는다. 템플바 거리는 더블린을 관통하는 리피 강 남쪽 웨스트모얼랜드 거리와 피샘블가 사이의 세 개 블록을 일컫는데 이곳에 아이리시 펍이 잔뜩 몰려 있다. 한때 버스터미널로 재개발될 뻔했지만 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됐고 대신 예술가들이 몰려들었다. 저녁 무렵이면 사람들은 템플바 거리로 모여들어 기네스 맥주를 마신다. 펍은 곧 아일랜드 사람의 생활공간이다. 낮에는 점심을 팔기도 하고, 밤이면 친구들과 맥주 마시며 떠들썩하게 이야기를 나누거나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댄다.템플바 거리에서도 가장 유명한 펍은 템플바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서거나 앉아서 다들 기네스 맥주를 한 잔씩 앞에 놓고 이야기를 나누느라 와글와글하는 모습에 놀란다. 펍 한쪽에 마련된 무대에서는 밴드가 통기타 반주에 맞춰 아일랜드 민요를 부르고 있다. 노랫가락에 맞춰 낯선 이들도 금세 친구가 된 듯 이리저리 몸을 흔들며 맥주잔을 기울이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펍에서 반드시 마셔 봐야 할 술은 기네스다. 창업자 아서 기네스는 1755년 더블린의 북동쪽에 위치한 레이크스리프에서 처음 양조장을 시작했다. 대부(代父)가 유산으로 남겨 놓은 100파운드를 가지고 시작한 사업이 자리를 잡자 그는 공장을 동생에게 맡기고 더블린으로 온다. 더블린에 도착한 아서 기네스는 더블린의 세인트 제임스 게이트에 방치돼 있던 낡고 허름한 양조장을 매년 45파운드의 임대료에 계약한다. 그런데 임대 기간이 무려 9000년이다. 기네스는 당시 영국에서 노동자들에게 인기 높았던 포터(Porter)를 발전시켜 스타우트(Stout)를 탄생시켰는데 맥아에 세금을 매겼던 조세 제도를 피하기 위해 볶은 보리를 사용했다는 설과 기네스가 맥아를 볶던 중 깜빡 졸다가 맥아를 까맣게 태운 것이 계기가 됐다는 설이 있다. 기네스는 51개국에서 생산되고 있으며, 전 세계 150개 국가에서 매일 1000만잔씩 팔리고 있다고 한다.더블린 북쪽에 위치한 기네스 스토어 하우스는 기네스의 역사 및 제조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방문객들은 입장료를 내고 기네스 맥주의 역사를 보여 주는 시청각 자료와 거대한 기네스 박물관을 둘러볼 수 있다. 이곳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게 기네스 따르는 법’을 배울 수도 있다. 전용 잔에 2번 나눠 기네스를 따르는 것이 포인트. 먼저 45도로 기울인 잔에 80% 정도 기네스를 따른 후 질소가 충분히 섞이게 테이블에 놓은 뒤 약 2분(119.5초)을 가만히 두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고는 나머지 부분을 보드라운 거품으로 촘촘하게 채우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완벽한 한 잔’이 완성된다. 기네스를 즐기는 사이 아카데미에서 발급해 주는 ‘기네스 교육 인증서’도 맥주 마니아에게는 잊지 못할 선물이다. ●거리의 악사로 가득한 더블린의 저녁 문학도 문학이지만 음악을 이야기할 때도 아일랜드는 빠질 수 없다. 더블린은 1976년 이곳에서 결성돼 지금까지 전 세계의 사랑을 받고 있는 록밴드 U2의 도시다. 멤버 보노, 디 에지, 래리 멀린, 애덤 클레이턴은 모두 더블린에서 나고 자란, 그야말로 뼛속까지 더블리너다. 벤 모리슨, 크랜베리스, 에냐, 시네이드 오코너 등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가수들도 모두 아일랜드 출신이다. 우리에겐 예능 프로그램 ‘비긴 어게인’을 통해 친숙해졌다. 그보다 먼저 더블린의 음악을 알렸던 영화는 2006년 개봉한 ‘원스’다. 길거리 악사인 청소기 수리공과 그의 음악에 매료된 한 여인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로 거리 음악가들의 도시, 더블린의 분위기가 그대로 담겨 있다. 영화 속 남자 주인공이 버스킹(길거리 연주)을 하던 그래프턴 거리와 악기점은 이미 유명한 관광지가 됐고 거리에서는 수많은 ‘원스’의 주인공들이 1년 365일 노래를 한다.더블린의 저녁 풍경은 영화 그대로다. 더블린 거리는 저녁 무렵이면 술렁이기 시작한다. 하루 일과를 마친 직장인들과 젊은이들이 몰려들고 세계 각지에서 온 여행자들이 합류한다. 그리고 하나둘씩 등장하는 거리의 악사들. 이들은 거리 곳곳에 자리를 잡고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른다. 이 모퉁이에서는 록이 흘러나오고 저 거리에서는 통기타 연주가 들려온다. 어느 모퉁이에서는 재즈가 연주되고 반대편 모퉁이에서는 타악기 소리가 흘러나온다. 색소폰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행인들은 걸음을 멈추고 그들의 노래에 귀를 기울인다. 여행자들은 마음에 드는 음악을 연주하는 밴드 앞으로 가 몸을 흔든다. 어떤 이는 눈을 지그시 감고, 또 어떤 이는 연인의 팔짱을 끼고, 또 어떤 이는 기네스 캔맥주를 홀짝거리며 악사들의 노래를 듣는다. 이 모든 풍경이 영화에서 봐 왔던 모습 그대로다. 간혹 경찰관들이 밴드 앞으로 가 다른 곳에서 연주할 것을 ‘권유’하기도 했지만 관객들의 야유에 어깨를 으쓱하고는 돌아가고 만다. 연주가 끝날 때마다 관람객들은 “We want more”(한 곡 더)라고 외친다.■여행수첩 런던, 파리, 프랑크푸르트 등 유럽의 주요 도시들을 거쳐 더블린으로 갈 수 있다. 시간은 한국보다 9시간 늦다. 오코넬 거리와 템플바 지구는 시내 중심부답게 숙박시설이 풍부한 편인데, 유명 펍들이 몰려 있는 템플바 지구의 숙소는 밤이 깊어도 좀 시끄러울 수가 있다. 트리니티 칼리지는 아일랜드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교로 아일랜드의 자랑이기도 하다. 1592년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 때 설립됐다.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도서관 관람은 필수.
  • 정년연장만이 유일한 해법? 초고령사회 어떻게 대비해야 하나

    정년연장만이 유일한 해법? 초고령사회 어떻게 대비해야 하나

    한국노동연구원 주최 고령시대 고용시스템 세미나전 세계에서 유례없는 급속한 고령화 속도 보이지만앞으로 20년간 노동시장의 총량은 줄어들지 않아재취업 강화, 경력단절여성 고용 확대, 재취업 활성화 등노동자들이 노동시장에 오래 남을 수 있도록 하는 것 필요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둔 우리나라 노동시장에 가장 적합한 고용시스템은 무엇일까. 정년을 연장해서 노동자들이 더 오래 일하도록 하는 방안을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이는 한국 노동시장의 특수성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한 해법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연공성이 강한 임금 체계를 개편하고 노동자들이 노동시장에 오래 남을 수 있도록 재취업과 이직을 활성화하는 한편, 경력단절여성 등의 고용을 확대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주장이 나온다. 26일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노동연구원(KLI) 주최로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고령시대, 적합한 고용시스템의 모색’ 세미나에서는 인구구조의 벼화가 앞으로 국내 노동시장에 기칠 영향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정책 대안이 제시됐다. 이날 세미나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일제히 “정년을 연장하는 것만이 초고령사회에 대비하는 능사가 아니다”라고 입을 모았다. 한국의 고령화 속도는 전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빠르다. 지난해 ‘고령사회’로 진입한 우리나라는 7년 뒤인 2025년이면 ‘초고령사회’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세미나에서 기조발표를 맡은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젊은 노동력’이 감소하는 문제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앞으로 20년간 경제활동인구 자체는 줄어들지 않는다. 다만, 35세 미만 청년취업자의 수는 빠르게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지난 5년 상대적으로 성장한 산업일수록, 고임금 산업일수록, 평균적인 교육수준이 높을수록 청년취업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감소하는 속도가 빠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앞으로 폭발적인 성장이 예상되는 신산업 분야에서 탄력적인 노동인력 공급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징후로도 풀이될 수 있다. 단순히 정년을 연장해서 노동시장의 규모를 유지하는 것만으로 초고령사회에 대비할 수 없는 이유다. 이 교수는 “고령노동이 청년노동을 대신할 수는 없다. 생산성이 낮은 고령노동인력이 생계를 위해 질 낮은 일자리에서 일하고 있는 여건에서는 정년연장이나 고용연장을 위한 정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면서 “경력단절문제가 심한 30~40대 여성의 고용 확대, 이직이나 전직 등 노동시장에서의 이동성을 활성화하기 위한 직업 훈련,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실직 등에 대비한 사회안전망 강화 등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년을 연장했더니 오히려 정리해고나 명예퇴직 등 조기퇴직이 늘어나는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했다. 남재량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제시한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 고령층 부가조사’에 따르면 노동자의 고령화에도 불구하고 2016년 35만 5000명까지 꾸준히 증가하던 정년퇴직자는 이후 오히려 감소했다. 올해 35만명으로 다소 증가했지만 정점이었던 2016년에는 미치지 못했다. 반면 권고사직, 명예퇴직, 정리해고 등 조기퇴직자는 최근 늘었다. 2106년 41만 4000명이었던 조기퇴직자 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해 올해 60만 2000명을 기록했다. 2016년은 ‘정년 60세 연장법’이 시행된 해이기도 하다. 정년연장이 오히려 고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남 연구위원은 “정년연장은 노동시장의 양극화가 심한 한국의 상황에서 수혜자가 일부 공공부문과 대기업유노조가 있는 곳에만 국한될 수 있고 취약 근로자들이 오히려 조기퇴직 등 위험에 처할 수 있다”면서 “중고령인력이 가급적 노동시장에 오랫동안 머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초고령사회에 ‘지속가능한’ 임금 체계를 구축하려면 강한 연공성을 해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임금의 연공성이란 직무의 내용이나 역량 변화와 무관하게 근속연수에 따라서 임금이 오르는 것을 뜻한다. 근속에 따라 자동적으로 임금이 오르는 호봉제가 대표적으로 연공성을 가진 임금제도다. 연공성이 높은 임금 체계는 고성장 시대에 직원들의 장기근속을 촉진하고 조직을 빠르게 성장시킬 수 있는 효율적인 제도였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동력이 사라진 저성장 시대에는 유지하기 어려운 제도다. 박우성 경희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고령시대에는 승진이나 승격의 엄격화, 고과승급의 강화 등 점진적으로 임금의 연공성을 완화하는 동시에 근본적으로는 ‘일 중심’의 임금 체계를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 [열린세상] 서울대 무용론/남시훈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열린세상] 서울대 무용론/남시훈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2001년 1월이었다. 눈보라를 헤치면서 논술과 면접을 마치고, 갓 설치된 인터넷으로 서울대 최종 합격을 확인했던 순간이었다.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던 부모님의 모습을 지금도 기억한다. 반지하집에 20년 넘게 살아온 부모님이나, 고등학생으로 입시만 바라보던 나 자신 모두 서울대가 목표였다. 그다음 일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지 않았다. 기쁨은 그다지 길지 않았다. 서울대에 오기 전에 느끼고 있던 서울대라는 이름이 갖는 위압감은 막상 서울대에 들어오니 그렇게 커 보이지 않았다. 졸업 이후의 진로를 위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했으며, 다 같은 학부생들이라고 생각했던 친구들은 아버지의 부유함, 어머니의 인맥에 따라 다르게 기회를 받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른바 명문대생의 좌절과 불만은 여기서 출발한다. 고등학생 때는 대학과 입시만 눈에 보였고 입시 성공의 보상을 과대평가한다. 그러나 들어와 보면 돈과 인맥의 장벽은 대학교 이름값보다 더 높다. 취업도 생각보다 어렵고 내가 입시를 위해 들인 노력이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내가 학부생이던 시절에 비해 이러한 어려움이 지금은 더 심해졌을 것이다. 명문대생은 일정한 이득도 누리게 된다. 상대적으로 더 나은 교육을 받고 더 좋은 취업의 결과를 얻는다. 기대보다 낮아도 이득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이득은 당연한가. 요즘 상당수의 학생들은 노력해서 얻은 이득이니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 중 일부는 부모님에게 받은 유전자 덕분이고, 일부는 공부에 더 집중할 수 있었던 좋은 환경 덕분이기도 하다. 명문대에 들어와서 얻는 이득 역시 일부는 국가가 지원하는 지원금의 혜택이기도 하다. 정시는 순수한 개인 노력의 결과이고 학종은 부모님의 도움으로 입학하는 것이라고 간단하게 나눌 수 없는 것이다. 즉 명문대에 입학하고 그로 인해 이득을 얻는 것은 능력, 노력, 운, 환경, 사회적 영향이 모두 관련돼 있다. 명문대생의 이득을 모두 포기하자는 것이 아니다. 가난하고 소외받는 사람을 위해 일생을 투자하는 수준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본인의 지위와 이득이 다양한 외적 요인에서 왔다는 것을 인지하고, 최소한의 사회적 의무를 생각하며, 사회에 관심을 가지고 더 나은 공론을 만들어 내는 일에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에 서울대에서 있었던 조국 법무부 장관을 반대하는 시위를 생각한다. 이 시위 초반에는 긍정적인 부분과 부정적인 부분이 혼재했다. 서울대생들이 학내 문제에 더 관심을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서울대 법대 교수인 조 장관에게 제기된 여러 가지 의혹에 대해 항의하는 것은 좋은 출발점일 수 있었다. 그러나 본인들도 결국 입시 제도의 수혜자라는 점에서 공정성을 주장하려면 스스로 성찰하는 자세가 더 우선돼야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그리고 이 시위는 비슷하거나 혹은 더 심각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아들에게 특혜를 제공한 서울대 의대 교수에 대해 침묵했다. 또 서울대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 요구 및 파업도 함께하지도 못했다. 시위 초반에 젊은이들의 용기를 응원하던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수준이다. 최근 대학입시가 이슈가 되면서 사람들 사이에서 서울대를 폐지하거나, 다른 지방 거점 국립대학교들과 통합하자는 주장도 있었다. 나는 서울대를 폐지하거나 서울대의 위상을 낮춰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현재 한국에서는 여러 대학교가 철저하게 서열화돼 있고, 이런 가운데 서울대만 없애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다. 서울대가 폐지된다면 다른 명문대가 서울대의 자리를 대체하게 되고, 달라지는 것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서울대가 사회적으로 필요하다고 주장하려면 재학생들이 사회에 대한 최소한의 관심과 책임을 가져야 한다. 서울대생이 본인의 노력을 과대평가하고, 약자는 무시하며, 정치적 편향성을 대의로 포장한다면 무관심과 조롱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현재 나타나는 선택적 분노는 잘못됐다. 젊은이들이니 틀려도 괜찮고 더 격려해 줘야 한다는 주장은 뒤집어서 말하면 맘껏 떠들어도 수용하지는 않겠다는 무책임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철저한 성찰과 비판이다. 그것이 ‘서울대 무용론’을 극복하는 일이다.
  • [글로벌 In&Out] 한국을 조국으로 사랑한 외국인들이 섭섭해한다/알파고 시나씨 아시아엔 편집장

    [글로벌 In&Out] 한국을 조국으로 사랑한 외국인들이 섭섭해한다/알파고 시나씨 아시아엔 편집장

    이 칼럼을 맡은 지 거의 1년 지나갔다. 칼럼에서 매번 한국 사회의 문제들에 대해 색다른 해결 방안을 제시하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설렘으로 글을 썼다. 이번에는 설렘보다 얽히고설킨 마음으로 글을 썼다. 한국 사회에서 열심히 활동한 외국인 여성의 페이스북 포스팅에 마음이 아팠던 탓이다. “정말 오랫동안 한국 사회에 속하려고 노력을 아주 많이 했다. 한국말도 아주 열심히 배워서 내가 봐도 외국인으로서 이루기 힘든 레벨까지 올라왔고, 사회활동, 교회활동, 알바, 봉사활동 등도 최대한 많이 했다. 한국에 대한 좋은 인식을 계속 유지하고 싶었지만, 내가 노력하는 만큼 한국 사회에서 멀어진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중략) 왜냐하면 사람으로서 나를 인정해 주는 것이 아니었다. 한국어를 배운 외국인이 신기해서였다는 것이 느껴졌고, ‘나´를 궁금해하지 않는 것이 상처가 됐다. 오늘의 나는 한국이 나의 제1의 집이 될 정도로 잘 적응했지만 내 인생을 바친 이 한국이란 나라가 나에게 1도 익숙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뼛속까지 느끼고 있다. 매일 아침 운동 삼아 자전거를 타러 나갈 때 사람들이 고개 돌리면서까지 나를 쳐다보는 모든 순간이 내 가슴을 화살로 찌르는 듯이 힘들다. 스펙이 보통이 아닌 내가 알바든 직장이든 이력서 100개를 넣고 한두 곳에서라도 답장 오면 긍정이든 부정이든 상관없이 다행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무시당하는 것이 나의 현실이다.” 이 포스팅에 공감하면서도 동의하지는 못했다. 이 칼럼에서 한국 사회와 그 친구에게 각각 하고 싶은 말을 독자 여러분과 같이 공유하고 싶다. 현대 한국의 탄생 과정을 살펴보려면 약 150년 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신미양요, 병인양요 사건 이후에 흥선대원군의 지시로 척화비들이 잇따라 세워지면서 한국인들의 머릿속에 현대적인 ‘우리와 타인’의 개념이 생겼다. 옛적 구도인 왕조ㆍ양반ㆍ백성으로 구성된 한국 사회는 점점 ‘우리’만으로 단순화돼 갔다. ‘우리와 타인’이라는 개념은 특히 일본의 침략 이후에 더 뚜렷해졌다. 다시 말하자면 민족주의는 독립의 키포인트였고, 독립의 문을 열어 준 신의 한 수 역할을 했다. 광복을 맞이한 한국 사람들은 1948년 출범한 대한민국으로 주권을 얻었지만, 직후에 북한에 세워진 공산권 정부, 그리고 1950년에 발발한 6·25전쟁으로 민족 분단이라는 비극을 겪었다. 38선 이남에 있는 한국인들은 그동안 외세의 내정간섭으로 받은 트라우마가 컸다. 하지만 그것보다 민족 통일을 위한 민족주의 의식의 강화가 다시 어젠다에서 제1순위가 됐다. 지난 100년간 한국 사회의 번영과 자유에 핵심적 역할을 했던 민족주의가 이제 한국에는 부담이 되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의 민족주의 정의는 수정돼야 한다. ‘진정한 한국인은 단군 할아버지의 자손이다’라는 신화는 버려야 한다. 민족 통일을 지향하면서도, 한국의 안보를 자신의 안전으로 일치화하면서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사람이라면 한국인으로 봐야 한다. 한국을 조국으로 삼고, 자기 인생을 한국에 바칠 정도라면 그 사람을 더는 외국인으로 보면 안 될 것 같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민족주의에 섭섭해하는 페이스북의 외국인 친구들에게 한마디하고 싶다. 조금 전에 필자가 언급하고 바랐던 그 사회적 분위기는 아직 없지만, 형성되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불과 120년 전에 미국에 노동하러 갔던 중국인 철도 노동자들은 큰 차별을 당했고,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은 지적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뚜렷했다. 그러나 오늘날 그런 문제들은 거의 사라졌다. 미국 같은 ‘이민자가 만든 나라’에서도 천천히 사회가 개방됐다. 마찬가지로 세계 각국에 자동차나 스마트폰을 파는 한국에 아주 짧은 기간에 너무 많은 변화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아닌가 싶다.
  • 한국어는 권력… “시험 준비에 200만원, 한국 못 가면 빚더미”

    한국어는 권력… “시험 준비에 200만원, 한국 못 가면 빚더미”

    [2019 이주민 리포트-코리안드림의 배신] (2) 두 얼굴의 한국네팔에서 한국어는 ‘권력’이다. 올해 한국어능력시험(TOPIK)을 보겠다며 접수증을 끊은 네팔인은 모두 9만 2376명. 이 시험에서 고득점을 얻어야 한국의 공장, 농장 등에서 고된 일이라도 할 자격을 얻을 수 있다. 올해 한국 국가직 7급 공채 필기시험 접수자(3만 5238명)보다 약 2.5배 많다. 꿈마저 포기한 한국의 ‘N포세대’ 청춘들이 공무원증에 목숨 걸 듯 가난한 삶에 지친 네팔 청년들은 한국행 티켓을 얻기 위해 젊음을 바친다. 하지만 이들은 한국어만 배울 뿐 정작 일하다 다치거나 억울한 일을 겪을 때 대처법 등은 잘 모른 채 한국에 온다고 말한다. 서울신문은 지난달 27일 네팔 수도 카트만두의 한 한국어 학원에서 네팔 청년 10명을 만나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여긴(네팔) 공장도 없고 일자리도 없어요. 사우디아라비아나 카타르에 가면 월 30만~40만원 벌지만 한국에서는 170만원 정도는 벌 수 있대요.” 카트만두 뉴바네쇼 거리에 있는 ‘바사 번다르’(네팔어로 ‘언어의 창고’라는 뜻) 한국어 학원에서 만난 칼키 어닐(22)은 네팔 청년층의 ‘코리안드림’을 이렇게 설명했다. 어닐과 같이 공부하는 수문 마탕(21)은 “원래는 네팔 공무원이 되고 싶었지만 ‘빽’이 없으면 어렵다는 걸 알고 포기했다”면서 “고교 졸업 뒤 한국어 공부하는 친구들이 많다”고 말했다.한국은 ‘이주노동의 나라’인 네팔에서 꽤 특별한 위치에 있다. 24일 한국산업인력공단에 따르면 네팔에서 한국어능력시험에 원서를 접수한 인원은 2008년 3만 1530명에서 올해 9만 2376명으로 약 3배 늘었다. 이주노동지역 중 한국을 선호하는 네팔 청년층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네팔 주간지인 ‘네팔리 타임스’에 따르면 네팔에서는 네 가정 중 한 가정꼴로 해외에서 일하는 가족 구성원이 있다. ‘기회의 땅’으로 알려지다 보니 카트만두에는 한국어 학원이 성업 중이다. 카트만두의 한국 고용허가센터(EPS)에 따르면 이 도시의 한국어 학원은 816곳이나 된다. 가장 큰 한국어 학원 ‘신화’의 수강생은 1000여명이다. 시험 준비를 하는 모습은 우리 취업준비생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네팔 제2의 도시인 포카라에서 한국어 학원을 하는 슈만 타파(28) 원장은 “수업은 오전 7~10시나 오후 4~5시쯤 진행한다”면서 “수강생들이 대부분 아르바이트를 하다 보니 이른 아침에 공부하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1년에 1만 7000루피(약 18만원)에 달하는 학원비를 감당하려면 책상 앞에만 앉아 있을 수 없다. 한국어를 가르치는 바지르 부다토키(41)는 “제조업 분야로 이주노동을 가려면 1~2문제, 농업 분야는 3문제 넘게 틀리면 탈락한다”면서 “제조업이 돈을 더 주기에 커트라인이 높다”고 설명했다. 한국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빚을 지는 청년도 많다. “1년간 시험 준비에 120만~200만원쯤 들다 보니 가족이나 친척에게 손을 벌리게 된다”는 하소연이 적지 않았다. 한국행에 실패하면 빚더미에 앉아 인생이 꼬인다. 네팔 청년들에게 이주노동 도전이 큰 모험인 이유다. 이들은 “한국에서 일하게 된다면 20만원 안팎의 생활비만 빼고 번 돈 대부분을 가족에게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1960~1970년대 ‘가족을 먹여살려야 한다’는 일념으로 독일행을 택했던 우리 파독광부나 간호사들과 비슷하다. 어렵게 시험에 합격해도 바로 한국에 갈 수 있는 건 아니다. 한국 사업주가 고용센터의 추천(3배수)을 받아 적합한 자를 선택하기 때문에 합격했더라도 하염없이 기다릴 수 있다. 시험 성적의 유효기간은 2년이다. 금쪽같은 20대 초반에 기다리기만 하다가 자격이 사라지는 청년들도 있다. 2년 전 한국어시험에 합격한 시리지나 구릉(24·여)과 은지니 구릉(23·여)은 “사람들은 ‘언제 한국에 가느냐’고 묻는데 초조하다. 시간을 허비했다는 생각이 들어 괴롭다”고 말했다.근로계약을 체결하고 한국행을 확정지은 노동자들은 네팔 EPS 트레이닝센터에서 1주일간 교육을 받는다. 트레이닝센터에서는 한국어와 한국 문화 교육(38시간), 보험 및 산업안전 보건, 근로자의 심리적 피해와 방안(7시간) 등을 배운다. 그러나 서선영 연세대 사회학과 전임연구원은 “한국 문화를 배울 때 작업장에서 얼마나 위계질서를 잘 따라야 하는지 등을 중점 학습하며 노동권이나 인권에 대한 교육은 거의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사전 교육 과정을 다시 짜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예컨대 교육 때 네팔 내 노조나 인권단체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한국어 학원장인 닐 컨터 시레스타(45)는 “트레이닝센터에서는 ‘노조에 가입하지 말라’, ‘데모하지 말라’고 배운다”고 전했다. 한국산업인력공단 관계자는 “필수 교육시간(45시간)은 양 국가 간 양해각서(MOU)를 맺어 진행한다”면서도 “현지에서 현지 강사들이 교육하는 부분까지 산업인력공단에서 개입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제주도 돼지농장으로 일하러 가는 고클 샤마(23)는 지난 2일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 직전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걱정도 된다. 그래도 잘 배우며 일하고 오겠다”고 말했다. 이를 전해 들은 그의 한국어 선생님은 “한 달 뒤 힘들어서 못하겠다며 전화가 올 것”이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카트만두·포카라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제보 부탁드립니다 서울신문은 이주노동자와 결혼이주여성, 이주아동이 겪는 각종 문제를 집중적으로 취재해 보도할 예정입니다. 이주노동자로서 임금체불, 산업재해 은폐 강요, 폭언과 폭행 등 부조리를 직접 경험했거나 이를 목격했다면 제보(key5088@seoul.co.kr) 부탁드립니다. 또 결혼이주여성이나 이주아동을 향한 폭언·폭행, 따돌림 등 혐오와 폭력에 대한 취재도 이어갈 예정입니다. 제보해주신 내용은 철저히 익명과 비밀에 부쳐집니다. 끝까지 취재해 보도하겠습니다.
  • 첫 일터서 들은 첫 한국어는 “야, X새끼”… “한국은 기회의 땅이지만 자유는 없었어요”

    첫 일터서 들은 첫 한국어는 “야, X새끼”… “한국은 기회의 땅이지만 자유는 없었어요”

    [2019 이주민 리포트-코리안드림의 배신] (2) 두 얼굴의 한국 별다른 교육 없이 일감만 주고 윽박질러언어 소통 잘 안되고 생경한 문화에 위축회식하며 친분 쌓는 情 많은 문화는 좋아“한국은 기회의 땅이지만 자유의 땅은 아니었어요.” 지난달 27일 네팔 카트만두의 뉴바네쇼 거리에서 만난 네팔 남성 5명은 자신들이 경험한 한국을 이렇게 평가했다. 한국에서 짧게는 4년, 길게는 13년까지 이주노동을 한 푸르너 스레스터(41)와 유벅 라즈 갈레(49), 바라카레 샤칼(51)과 수만(46) 형제, 비노드 스레스터(29)다. 그들은 “한국을 좋아한다”고 전제하면서도 “욕설에 시달리고 극단적 업무 스트레스를 받아도 일터를 옮기는 게 너무 어려워 괴로움도 컸다”고 털어놨다. ●“3개월만 친절히 대해 주세요” 유벅의 한국 생활 7년은 파란만장했다. 2009년 비전문취업비자(E9)를 받아 한국에 온 그의 첫 일터는 김 양식장이었다. ‘일이 고될 것’이라는 건 각오한 터였다. 하지만 가장 견디기 힘든 건 따로 있었다. 노골적인 폭언과 무시 등 마치 ‘계급’이 다른 사람처럼 대하는 동료들의 태도였다. 입국 뒤 여독이 풀리기도 전 배를 탔는데 한국인 동료로부터 들은 첫마디가 아직도 귓전을 맴돈다. “야, X새끼야, 줄 잡아. 줄!”배를 타지 않는 날에는 김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했다. 공식 업무가 오전 6시부터 밤 10시까지 이어졌다. 점심·저녁 시간을 빼고도 하루 14시간씩 일했다. 퇴근 시간이 돼도 “들어가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매달 손에 쥔 월급은 84만원. 주말수당이나 잔업수당은 말 꺼내기도 어려웠다. 유벅은 한국에 온 지 13일째 되는 날 새벽 택시를 타고 도망쳤다. 그렇게 불법 체류자가 됐다. 반면 비노드는 비교적 운이 좋았다. 이주노동자로는 드물게 사업장을 옮길 기회를 얻어서다. 2012년 E9 비자를 받아 대구의 프레스 공장(알루미늄 제품 생산 공장)에 배정됐다. 비노드는 “육중한 프레스 기계가 너무 무서웠다. 아침마다 회사 가는 게 두려워 우울증에 걸릴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그는 한 달을 견디다 대구 성서공단 내 노조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당시 비노드를 도왔던 노조 관계자는 “우리가 사장에게 ‘그냥 두면 사고 날 수도 있다’고 경고해 어렵게 사업장 변경을 허락받았던 기억이 난다”고 전했다. 실제 비노드의 동료 중 일부는 프레스 공장 일을 견디다 못해 고향으로 돌아갔고, 한 명은 끝까지 견디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이후 대구 이불공장으로 사업장을 옮긴 비노드는 잘 적응했다. 이주노동자들은 “외국인 동료가 공장에 오면 업주와 동료들이 딱 3개월만 적응을 도우며 기다려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수만은 “문화가 다른 곳에 와서 처음 일을 배우는데 동료들이 지나치게 몰아붙이면 정말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전했다. 실제 한국 공장이나 농장 등에 배치되면 별다른 교육 없이 첫날부터 일감을 던지고 “처리하라”고 윽박지르는 경우가 흔하다. 잘 통하지 않는 언어, 생경한 문화 탓에 위축돼 있는데 무작정 일처리를 지시하면 업무 효율은 떨어진다. ●“짧게라도 가족을 초대할 수 있었으면…” “한국 사람들은 일할 때 빼고 다 좋다.” 유벅이 한국인의 ‘정’에 대해 말하자 다른 네팔인들이 “맞다”며 호응했다. 비노드는 동료들과 함께하던 회식이 여전히 그립다고 했다. “일할 때는 서로 얼굴 볼 여유조차 없는데 회식 땐 삼겹살 구워 먹으며 피로도 풀고, 친분도 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한국에서 일하며 종잣돈을 마련했다며 고마움을 숨기지 않았다. 수만과 푸르너는 한국에서 10년 넘게 하루도 쉬지 않고 12시간씩 일해서 꼬박 모은 1억원으로 카트만두에 3층짜리 건물을 올렸다고 한다. 다만 임대료로 매달 300달러(약 35만원) 버는 게 고작이다. 샤칼, 수만 형제는 간담회가 끝날 때쯤 가슴속 이야기를 조심스레 꺼냈다. 샤칼은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기 위해 한국행을 택했지만 정작 노동자들은 휴가를 마음대로 쓰기도 어렵고 가족들을 한국에 초청할 수도 없다”면서 “장기간 가족을 못 봐 우울증에 걸린 이주노동자들이 적지 않은 만큼 일정 기간 가족을 초대할 수 있게 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카트만두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제보 부탁드립니다 서울신문은 이주노동자와 결혼이주여성, 이주아동이 겪는 각종 문제를 집중적으로 취재해 보도할 예정입니다. 이주노동자로서 임금체불, 산업재해 은폐 강요, 폭언과 폭행 등 부조리를 직접 경험했거나 이를 목격했다면 제보(key5088@seoul.co.kr) 부탁드립니다. 또 결혼이주여성이나 이주아동을 향한 폭언·폭행, 따돌림 등 혐오와 폭력에 대한 취재도 이어갈 예정입니다. 제보해주신 내용은 철저히 익명과 비밀에 부쳐집니다. 끝까지 취재해 보도하겠습니다.
  • “한국인 일자리 뺏는다고요? 이 친구들 없으면 공장 문 닫아야”

    “한국인 일자리 뺏는다고요? 이 친구들 없으면 공장 문 닫아야”

    [2019 이주민 리포트-코리안드림의 배신] (2) 두 얼굴의 한국이주노동자는 공장과 농장, 어선과 식당 등 일손이 부족한 곳이면 어디든 존재한다. 취업비자를 받아 현재 국내 체류하는 외국인은 모두 104만 58명(재외동포 포함). 여기에 정부 추산 불법 체류자 수(36만 2931명)를 더하면 전체 이주노동자 규모는 130만여명에 달한다. 외국인들은 국내 영세 업계의 구애와 “한국인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혐오 시선 사이에 서서 이미 우리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이 친구들 없으면 공장 문 닫아야 해요.” 지난 17일 경기 김포시 하성면의 침대 매트리스 공장에서 만난 고광윤 대표는 단호하게 말했다. 이 회사 전체 직원 16명 중 6명은 스리랑카인이다. 1997년 공장 문을 연 고 대표가 이주노동자를 고용하기 시작한 건 2007년부터다. 채용공고를 몇 번씩 내도 일하겠다는 사람이 오지 않아 고민하던 차에 김포의 한 병원에서 만난 스리랑카 노동자에게 “같이 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고 대표는 “당시 사정이 너무 급해 뽑아 쓴 건데 생각보다 적응이 빨랐다”며 “만족스러워서 이후 이주노동자를 계속 쓰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게 12년간 이 공장을 거쳐 간 스리랑카 노동자만 17명이다. 1명을 빼고는 모두 비전문취업비자(E9) 기간(현재 4년 10월)을 꽉 채워 일하고 고국으로 돌아갔다. 고 대표도 편견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동남아 노동자들은 게으르다”, “일을 하다가 힘들면 도망간다”, “업무 역량이 한국인의 절반도 안 된다”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많이 들었다. 하지만 선입견은 며칠 일해본 뒤 깨졌다. 지금은 매트리스 제조 공정의 시작인 스프링 작업부터 누비기, 봉합 작업은 물론 포장과 출고까지 이주노동자들의 손이 닿지 않는 과정이 없다.2000년대 초반만 해도 중소기업이 외국인을 쓰는 주요 이유는 낮은 인건비 때문이었다. 김포 매트리스 공장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의 월급여는 2007년 80만원 정도였고, 현재 190만원 수준이다. 보통 월 최저임금(174만 5150원)을 약간 웃도는 수준에서 임금이 결정된다. 잔업·주말근무 등 초과근무를 하면 매달 250만~300만원까지 받는다. 고 대표는 “인건비는 둘째치고, 일단 사람을 써야 공장이 돌아가지 않겠느냐”고 했다. 내국인이 오지 않는 험한 일자리를 이주노동자들이 메우고 있다는 의미다. 중소기업중앙회의 ‘2018 외국인력 고용 관련 종합 애로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이주노동자 고용 사유는 ‘내국인을 구할 수 없어서’라는 응답이 80%로 가장 많았다. 외국인 근로자 고용법에서도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려면 우선 내국인 채용 노력을 1~2주간 해봐야 한다. 고용·이주민 전문가들도 “외국인 노동자가 한국인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일각의 시선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분석한다. 우리나라는 정부가 이주노동자 수를 직접 관리하는 ‘고용허가제’를 2004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네팔·인도네시아·베트남 등 16개 참여국별로 데려올 이주노동자 수를 매년 정하는데, 주로 영세 제조업과 농축산·어업, 건설업 등에서 부족한 인력을 반영한다. 불법 체류자 일부가 건설업이나 서비스업 등에서 일자리를 두고 한국인과 경쟁할 수 있지만 제한적이다. 강동관 이민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주노동자가 내국인 일자리를 대체하는 수준은 미미하다”고 말했다. “고향에 돌아갈 이주노동자들에게 기술을 가르치면 제조업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도 중소업체가 겪는 만성적 구인난 앞에선 설득력을 잃는다. 직원의 약 25%가 외국인인 공조기 제조업체 ‘서진공조’의 한창열 전무는 “이주노동자만 쓰면 금형, 용접 등 뿌리산업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를 알지만, 이 힘든 일을 하려는 사람은 이 친구들밖에 없다”고 말했다. 중기중앙회에 따르면 뿌리산업 종사자 중 40대 이상은 전체의 61.2%, 이주노동자는 7.9%를 차지한다. 도시보다 빠르게 인구절벽을 맞이한 농촌은 이주노동자 없는 논밭과 농장을 상상할 수 없다. 전북 완주군에서 축산업을 하는 임용현씨는 “수도권의 제조업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라면서 “젊은 사람이 아예 없는 이곳에서는 외국인마저 없다면 농사를 접어야 한다”고 했다. 농가에서 이주노동자들이 맡는 일은 단순하지만 힘들고 지루하다. 소에게 여물 주고, 정리정돈이나 청소를 하고, 축사 퇴비를 처리하다 보면 하루가 다 간다. 임씨는 “한국인도 써봤지만 일이 워낙 고되다 보니 갑자기 안 나오거나 한 달 일하고 그만두는 경우가 많았다”고 토로했다. 2013년부터는 네팔 출신 노동자 3명만 뽑아 함께 일한다. 경남 밀양시에서 깻잎 농사를 짓는 이설희씨도 캄보디아 출신 노동자 2명을 고용했다. 두 사람은 다른 농가에 비해 사정이 나은 편이다. 정식 비자를 받은 이주노동자들을 고용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고용허가제 인원 중 농축산업 할당 인원은 5820명에 불과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농축산업 분야에서 필요한 이주노동자 인력은 2만 6299명으로 추산된다. 이러한 불균형 탓에 농가 다수가 불법 체류자를 고용하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고 대표는 “결국은 똑같은 사람”이라며 “특별히 잘해주는 건 없지만, 절대 욕하거나 고함치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회사와 이주노동자 간 이해관계가 맞아 고용하긴 했지만, 아무도 안 오려는 자리를 메워주는 것이 고맙다”고 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제보 부탁드립니다 서울신문은 이주노동자와 결혼이주여성, 이주아동이 겪는 각종 문제를 집중적으로 취재해 보도할 예정입니다. 이주노동자로서 임금체불, 산업재해 은폐 강요, 폭언과 폭행 등 부조리를 직접 경험했거나 이를 목격했다면 제보(key5088@seoul.co.kr) 부탁드립니다. 또 결혼이주여성이나 이주아동을 향한 폭언·폭행, 따돌림 등 혐오와 폭력에 대한 취재도 이어갈 예정입니다. 제보해주신 내용은 철저히 익명과 비밀에 부쳐집니다. 끝까지 취재해 보도하겠습니다.
  • 허울뿐인 노동권 교육·근로감독… 노동착취·산재·임금체불에 무방비 노출

    허울뿐인 노동권 교육·근로감독… 노동착취·산재·임금체불에 무방비 노출

    [2019 이주민 리포트-코리안드림의 배신] (2) 두 얼굴의 한국사망 최대 2점 감점… 대수롭지 않게 여겨 정부 “사실상 고용 못하도록 점수제 개편” 산재 대처법 등 내실 있는 교육 이뤄져야 가족 동반 입국… 고용허가제 폐지 주장도 정부가 직접 이주노동자 수를 관리하는 고용허가제가 올해로 도입 15년을 맞았다. 이후 한국에서 일자리를 구한 외국인은 꾸준히 증가해 100만명을 넘겼다. 하지만 이주노동자는 노동시간, 임금체불, 산업재해 등 대부분의 노동 영역에서 여전히 온전히 보호받지 못한다. 서울신문은 인권 활동가, 변호사, 연구자 등 이주노동 전문가 11명에게 외국인 노동자가 겪는 고질적 차별과 갑질, 홀대 등을 해결하기 위한 정책 대안을 물어 도입하기 쉬운 순서대로 정리했다. 고용허가제 사업장 평가 점수제 개편 이주노동자를 뽑아 쓰는 고용허가제 사업장들은 지속적으로 평가받는다. 이를 토대로 채용 가능한 외국인 수 등이 정해진다. 하지만 평가 기준이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 평가 점수제에 따르면 최근 2년간 사업장에서 사망재해가 발생해 1명이 숨지면 1점, 2명 이상이면 2점 감점된다. 이주노동자가 직장 내 성희롱이나 폭행을 당해 사업장을 옮기면 5점 감점되고, 숙소가 정해진 기준을 못 갖추면 1~3점 감점된다는 점과 비교할 때 산재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고 볼 수 있다. 노동권(인권·안전) 교육 강화 이주노동자들이 국내에서 일하다가 노동권 침해를 겪을 때 실질적인 대응이 가능하도록 교육 프로그램이 개선돼야 한다. 외국인들은 한국에 오기 전 1~2주 정도 사전 취업교육을 받고, 입국 이후 2박 3일(16시간)간 교육을 더 받는다. 이주민센터 ‘친구’의 이진혜 변호사는 “형식적 교육이 아니라 산재 발생 때 대처 방법, 휴식권, 사업장에서의 안전장비 착용 등 내실 있는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한숙 이주인권연구소 소장은 “영세 사업장이 통역을 써가며 안전·노동 교육을 하기는 어려운 만큼 노동당국이 전담 인력을 지정해 순회 교육하는 등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영세사업장 근로감독 강화 지난 10일 이주노동자 4명이 질식사한 경북 영덕군 오징어 가공업체는 유해·위험 요인을 개선했다는 이유로 고용노동부로부터 ‘클린 사업장’ 인증을 받았던 곳이다. 이주노동자 고용 사업장들이 일반적으로 영세하다 보니 산재나 임금체불 관련 근로감독을 잘 받지 않아 발생한 황당한 상황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외국인 취업자 중 79.3%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한다. 이주연 녹색병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연구원은 “가장 적은 비용으로 산재를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이 근로감독 강화”라고 강조했다. 52시간제 예외 조항 삭제 현행 근로기준법 63조에 따라 농업 종사자, 경비원 등 일부 노동자는 휴일 등에 초과근무를 해도 수당을 받지 못한다. 52시간제 특례업종이기 때문이다. 우삼열 아산이주노동자센터 소장은 “농축수산업 분야에는 많은 이주노동자가 종사하고 있다”며 “법을 개정하거나 폐지해 사각지대의 노동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가족 동반 입국 제도 신설 이주노동자들은 고용허가제로 최대 9년 8개월까지 한국에서 일할 수 있다. 하지만 가족과 함께 살 권리는 없다. 인권 침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영섭 이주공동행동 집행위원은 “짧은 기간(3개월)이라도 가족을 초청해 함께 지낼 수 있도록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다만, 가족 동반 입국(초청)제 도입 때는 우려도 따른다. 서선영 연세대 사회학과 전임연구원은 “가족들이 제한된 기간만 체류하다가 다시 본국으로 돌아가야 하기에 어린 자녀들은 적응에 문제를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고용허가제 폐지 시민사회단체들은 궁극적으로 고용허가제가 폐지돼야 이주노동자의 인권 문제가 풀린다고 주장한다. 우선 ‘독소조항’으로 불리는 사업장 이동 금지 제도를 폐지하거나 개선하고, 장기 체류를 허용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설동훈 전북대 교수는 “고용허가제를 운영하는 나라 중 직업 선택의 자유를 부여한 나라는 없다”고 지적했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도움 주신 분들 김철효(전북대 강사), 박혜영(노동건강연대 활동가), 서선영(연세대 사회학과 전임연구원), 우삼열(아산이주노동센터 소장), 이경재(변호사), 이주연(노동환경건강연구소 연구원), 이진우(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부장), 이진혜(변호사), 이한숙(이주인권연구소장), 정영섭(이주공동행동 집행위원), 최정규(변호사) ●제보 부탁드립니다 서울신문은 이주노동자와 결혼이주여성, 이주아동이 겪는 각종 문제를 집중적으로 취재해 보도할 예정입니다. 이주노동자로서 임금체불, 산업재해 은폐 강요, 폭언과 폭행 등 부조리를 직접 경험했거나 이를 목격했다면 제보(key5088@seoul.co.kr) 부탁드립니다. 또 결혼이주여성이나 이주아동을 향한 폭언·폭행, 따돌림 등 혐오와 폭력에 대한 취재도 이어갈 예정입니다. 제보해주신 내용은 철저히 익명과 비밀에 부쳐집니다. 끝까지 취재해 보도하겠습니다.
  • [단독] 이주민 산재 사망자 年 100명… 차별의 그늘 ‘위험의 이주화’

    [단독] 이주민 산재 사망자 年 100명… 차별의 그늘 ‘위험의 이주화’

    하루 평균 18.4명 일터서 죽거나 다쳐 전체 재해율 0.54%… 외국인 0.86% 제도 모르는 사람·불법체류 등 감안 땐 실제 죽거나 다치는 사람 훨씬 많을 듯 국내 산업 현장에서 일하다가 사고나 질병으로 숨지는 이주노동자가 매년 100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료나 유족 등이 끈질기게 다퉈 산업재해로 인정받은 인원만 이 정도다. 이들은 대부분 내국인 노동자가 일하기 꺼리는 제조업, 농업 등 ‘3D’ 업종에서 일한다. 위험을 이주노동자에게 떠넘기는 ‘죽음의 이주화’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서울신문이 24일 이정미 정의당 의원실과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신청 자료를 종합 분석한 결과 최근 3년(2016~2018년) 간 산재 승인을 받은 외국인 사망자는 모두 305명이었다. 특히 2016년 71명, 2017년 108명, 2018년 126명으로 매년 늘고 있다. 국적별로 보면 한국계 중국인(174명), 중국인(37명), 네팔인(15명) 등이 많았다. 산재 인정을 받은 부상자까지 합치면 하루 평균 18.4명의 이주노동자가 일터에서 죽거나 다쳤다. 2016년 6560건에서 2018년 7314건으로 11.5% 늘었다. 또 지난해 우리나라 전체 노동자의 산업재해율은 0.54%였는데, 외국인 임금노동자 재해율(산재 승인자 기준)은 0.86%로 더 높았다. 일터에서 위험에 더 쉽게 노출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업종별로는 건축건설공사에서 발생한 산재가 24.2%(4864건)로 가장 많았고, 음식 및 숙박업 11.4%(2299건), 기타건설공사 6.7%(1350건) 순이었다. 이어 플라스틱가공제품 제조업(5.3%), 기타 금속제품 제조업(4.8%) 등 제조업 분야도 산재 다발 업종이었다.최근 노동 현장에서 발생한 중대 사고만 살펴봐도 이주민을 둘러싼 살벌한 풍경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6월 광주 서구의 한 호텔 공사장 13층에서 베트남 노동자가 추락해 숨졌고, 지난 10일에는 경북 영덕의 오징어젓갈공장 폐기물 지하 탱크에서 이주노동자 4명이 질식사했다. 하지만 이주노동자가 사망하는 산재가 발생해도 해당 업체는 고용허가제 사업장 평가 때 미미한 수준인 1~2점만 감점될 뿐이다. 이 같은 위험에도 한국에서 일하려는 외국인은 매년 늘고 있다는 모순적인 현상이 나타난다. 몇 년간 일해 목돈을 마련하려는 개발도상국 이주노동자들과 구인난을 겪는 영세 자영업 및 농업 고용주 간의 이해관계가 맞았기 때문이다. 한국산업인력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네팔·베트남 등 16개국에서 비전문취업비자(E9) 취득의 필수 요건인 한국어능력시험에 응시한 사람은 28만 5459명으로 2년 전보다 2만 1000명 늘었다. 박경태 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 사회의 인구절벽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특정 산업들은 노동력 공백을 겪을 수밖에 없다”며 “이주민을 ‘혜택받은 대상’으로 바라보거나 내국인의 하위 파트너 정도로만 치부하는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제보 부탁드립니다 서울신문은 이주노동자와 결혼이주여성, 이주아동이 겪는 각종 문제를 집중적으로 취재해 보도할 예정입니다. 이주노동자로서 임금체불, 산업재해 은폐 강요, 폭언과 폭행 등 부조리를 직접 경험했거나 이를 목격했다면 제보(key5088@seoul.co.kr) 부탁드립니다. 또 결혼이주여성이나 이주아동을 향한 폭언·폭행, 따돌림 등 혐오와 폭력에 대한 취재도 이어갈 예정입니다. 제보해주신 내용은 철저히 익명과 비밀에 부쳐집니다. 끝까지 취재해 보도하겠습니다.
  • 서울대 비정규직 노동자들 천막농성…처우 개선·차별 철폐 요구

    서울대 비정규직 노동자들 천막농성…처우 개선·차별 철폐 요구

    서울대학교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처우 개선과 차별 철폐를 촉구하며 천막농성에 나섰다. 서울대학교 청소·경비, 기계·전기, 생활협동조합 노동자들 350여명은 24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 행정관 앞에서 집회를 열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하고 차별을 철폐해 달라”고 밝혔다. 집회에는 총학생회를 비롯해 서울대 학생들, 지역 단체 인사 등도 함께했다. 이날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서울대 기계전기분회 임민형 분회장은 “학교 측의 노동자 무시와 탄압에 분노한다”며 무기한 단식 농성을 선언했다. 임 분회장은 기계·전기 노동자들과 함께 서울대 행정관 앞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이어갈 계획이다. 이들은 “지난해 3월 학교는 760여명의 청소, 경비, 기계, 전기 노동자들을 직고용으로 전환했지만, 임금과 노동조건은 용역 시절만도 못한 처우를 강요하며 수십 년의 용역 생활을 청산하지 않고 있다”고 말하며 “얼마 전 열악한 휴게실 안에서 돌아가신 청소 노동자의 죽음은 이를 가장 비극적으로 보여준 사례”라고 강조했다. 지난달 9일 서울대 제2공학관 건물에서 근무하던 청소 노동자 A(67)씨가 열악한 환경의 휴게실에서 쉬던 중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다. 면적이 3.52㎡(1.06평)에 불과할 정도로 비좁은 휴게실에는 창문도 없었으며 에어컨도 설치돼 있지 않았다. 도정근 서울대 총학생회장은 “파업이 이어지면 학생들이 불편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그만큼 노동자분들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뜻”이라며 “그들의 권리가 지켜지길 함께하겠다. 학교는 이들의 문제를 외면하지 말고 책임질 수 있는 자세를 보여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계·전기 노동자들은 시중 단가 수준의 임금과 명절휴가비 등을 지급하고, 노조 전임자에 대한 무급 탄압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청소·경비 노동자들도 천막농성에 동참해 65세 이상 고령 노동자 퇴직 중단과 정년 연장, 최저임금보다 낮은 기본급 인상 등을 요구했다. 지난 23일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무기한 파업에 나선 식당·카페 노동자들 역시 천막농성에 돌입했다. 이들은 기본급 3% 인상, 명절휴가비 지급, 임금제도 개선, 휴게시설 및 근무 환경 개선 등을 요구했다. 곽혜진 기자 demian@seoul.co.kr
  • “찜통 주방서 살 짓물러… 설거지통 옆 고무대야 놓고 씻어”

    “찜통 주방서 살 짓물러… 설거지통 옆 고무대야 놓고 씻어”

    “10년 근속도 월 200만원… 최저임금 수준 에어컨 없는 조리실에 돗자리 깔고 휴식” 생협측 “학교와 논의 통해 환경개선 예정”“찜통 같은 조리실에서 몸이 짓무르도록 밥을 짓지만 제대로 된 휴게실도 없습니다. 이제 인간 대접받으며 살고 싶습니다.” 서울대 학생식당에서 조리원으로 일하는 박승미(51)씨는 생활협동조합 소속 조리원들의 열악한 노동 현실을 이렇게 설명했다. 민주노총 전국대학노조 서울대지부 소속 생협 노동자들은 23일 서울대 관악캠퍼스 행정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임금 인상과 노동 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무기한 파업을 선언했다. 서울대 학생식당과 카페를 운영하는 생협 소속 노동자들의 파업은 1989년 이후 30년 만이며 115명이 참가한다. 노동자들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학교와 생협 사무처는 학내 구성원들을 위해 묵묵히 일해 온 노동자들의 저임금 해소, 노동 환경 개선에 관심이 없다”고 규탄했다. 그러면서 “우리도 서울대 구성원이다. 이렇게 열악한 곳에서 골병들어가며 휴게 시설 하나 없이 일해야 하는 사람은 없다”며 “인간답게 임금을 받아 같이 살아가는 학교를 만들어 달라”고 외쳤다. 서울대 총학생회 등 학생들도 파업에 연대 의사를 드러냈다.앞서 노조는 ▲기본급 3% 인상 ▲명절 휴가비 지급 ▲휴게 시설 및 근무환경 개선 ▲호봉체계 개선 등을 요구하며 지난 19~20일 파업을 진행했다. 이후 20일 오후 생협 측과 교섭에 나섰으나 명절 휴가비 등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해 파업을 무기한 연장했다. 생협 소속 노동자들은 최저임금 수준의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노조에 따르면 이들의 1호봉 기본급은 171만 5000원으로 특근 수당 없이는 최저임금을 밑돈다. 이창수 대학노조 서울대지부 부지부장은 “10년 이상 일해도 월급이 200만원 남짓이고, 80여명이 월급 200만원 이하를 받고 있다”면서 “생협이 경영난을 이유로 시간외 수당을 억제하면서 임금 총액이 줄어 조정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근무 환경도 매우 열악하다고 호소한다. 하루 종일 고온의 조리실에서 고된 노동에 시달리지만 냉방 시설과 제대로 된 휴게실도 없다는 것이다. 경영대 동원관 식당의 경우 1평이 안 되는 면적(2.48㎡)을 8명이 사용하고 있다. 공간이 부족한 조리원들은 조리실 바닥에 돗자리를 펴고 눕는 형편이다. 농업생명과학대 식당 조리원 조성자(55)씨는 “여름이면 에어컨도 없는 주방에서 근무하다 온몸이 젖어 살 닿는 곳들이 모두 짓무른다”면서 “샤워는 설거지하는 공간 한쪽 구석에 빨간 고무 대야를 놓고 씻는다”고 토로했다. 생협 직영 식당 6곳은 파업 이후 운영이 전면 중단되거나 일부만 운영되고 있다. 생협 관계자는 “단기적으로 환경을 고칠 수 있는 것은 이야기를 듣고 해결하려 하고 있다”면서 “휴게 공간 등 자체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은 앞으로 학교와 논의를 통해 개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고혜지 기자 hjko@seoul.co.kr
  • 톨게이트 직고용 거세지는 압박…을지로위원회도 중재 나서

    톨게이트 직고용 거세지는 압박…을지로위원회도 중재 나서

    민주노총, 김천 도로공사서 대의원대회“1500명 정규직 출근 해야 투쟁 끝날 것”민주당 을지로위원회, 노사 설득 나서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한국도로공사 톨게이트 요금 수납 노동자들의 직접고용을 위한 투쟁에 총력을 기울이기로 하는 등 도로공사와 정부에 대한 압박을 높여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도 노사 대화를 위한 설득에 나선 것으로 알려지면서 노사가 수납원 직접고용 문제 해결을 위한 교섭에 나설지 주목된다. 민주노총은 23일 조합원 250여명이 보름째 농성중인 경북 김천 도로공사 본사 앞에서 69차 임시 대의원대회를 열고 11∼12월 비정규직 철폐를 전면에 내건 총파업을 하기로 결의했다. 민주노총은 특별 결의문에서 “톨게이트 요금 수납 노동자들의 직접고용 쟁취 투쟁이 오늘날 비정규직 철폐 투쟁의 마중물이자 최전선에 있음을 자각하고 투쟁 승리를 위해 전 조직이 강력한 투쟁을 전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정부가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농성장을 침탈할 경우 민주노총은 도로공사 본사에 전 간부가 집결해 규탄 투쟁을 전개하고 전면적 노정관계 중단 및 강도 높은 정부 여당 규탄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명환 위원장은 대회사에서 “문재인 정부가 반(反)노동 정책으로 폭주하고 있다”며 “이 싸움은 (요금 수납 노동자) 1500명 전원이 도로공사 정규직으로 출근하는 것을 확인해야 끝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노총은 11월 9일 10만명 규모의 전국 노동자대회를 열고 11∼12월 중 총파업을 한다는 계획을 확정했다. 수납원 직고용 갈등이 장기화 기미를 보이자 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노사 설득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을지로위원회 관계자는 “을지로위원회 위원장인 박홍근 의원과 그동안 톨게이트 수납원 문제에 관심을 가져 온 우원식 의원이 지난주부터 노사 이해관계자들의 입장을 듣고 있다”면서 “이달 말까지 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목표로 양측을 만나는 중”이라고 밝혔다. 한편 도로공사는 이날부터 경기도 화성 인재개발원에서 직접고용 대상자에게 직무교육을 시작했다. 도로공사는 “대법원 승소 판결을 받은 톨게이트 요금 수납원 499명 중 자회사 희망자와 근무 비희망자를 제외하고 총 328명이 교육에 참석했다”고 밝혔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사설] 경기 정점 찍었다는데, ‘거꾸로 정책’ 놔둘 건가

    국가통계위원회는 지난 20일 한국 경제가 2017년 9월을 정점으로 지금까지 24개월째 하락하고 있다고 공식 발표했다. 2017년 9월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4개월 된 시점으로 정부는 이후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법인세율 인상, 부동산 규제 등 경제가 과열될 때 시행하는 정책을 폈다. 상승기와 하강기 등으로 구성된 경기 순환 주기에 맞춰 경제정책을 펴야 하는 정부가 상황에 맞지 않는 ‘거꾸로 정책’을 한 것이다. 한국은행 또한 2017년 11월과 2018년 11월 각각 기준금리를 올리는 판단 오류를 범했다. 정부의 상황 인식은 매우 우려스럽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우리 경제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20일 ‘더민주 정책페스티벌’에서 “국제적 환경이 굉장히 나빠지고 있어 모처럼 회복되는 우리 경제가 빨리 진전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각각 말했다. 경제 현실 진단이 국민 체감과 동떨어지니 지지도가 하락하고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 20일 발표한 문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긍정평가는 40%로 문 대통령 취임 이후 가장 낮은 데다 대선 당시 득표율 41.1%를 밑돈다. 조국 법무부 장관 사태가 가장 큰 이유겠지만 이제라도 경제정책 전반을 점검하고 보완하지 않으면 조국 사태와 상호작용해 더욱 내려갈 수 있다. 앞으로 5개월 안에 경기가 반등하지 못하면 경기 하강 기간이 30개월이라는 최장 기록이 된다. 정부는 고령화, 해외 변수 등만 탓하지 말고 산업 구조조정, 서비스산업 활성화, 노동시장과 규제 개혁 등 전문가들이 꾸준히 지적해 온 시장 중심의 정책을 빠르게 제대로 집행해야 한다. 그래야 빠르게 낮아지는 경제성장률은 물론 잠재성장률을 높일 수 있다. 당장 내년 1월 도입될 50인 이상 300인 미만 사업장의 주52시간 근로제 시행에 앞서 탄력근로 단위기간 확대, 유연근로제 요건 완화 등 중소기업이 요구하는 보완책을 마련하라. 300인 이상 기업의 시행 과정에서 봤듯이 기업도 힘들지만 당장 노동자들 소득도 줄어든다. ‘소득주도성장’과 맞지 않는다.
  • 하청 노동자 또 비극… 매일 1명씩 사라진다

    하청 노동자 또 비극… 매일 1명씩 사라진다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고 김용균씨처럼 일터에서 목숨을 잃는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최근 3년간 1000명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22일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2016∼2018년 산재로 숨진 하청 노동자는 모두 1011명이었다. 2016년 355명, 2017년 344명, 2018년 312명으로 집계됐다. 전체 산재 사망자 10명 중 4명은 하청 노동자였다. 2016년과 2017년은 전체 산재 사망 노동자 중 40.2%, 2018년에는 38.8%가 하청 노동자로 나타났다. 이 의원은 “산업 현장에서는 위험의 외주화가 여전하다”며 “원청이 산재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고용노동부가 적극적으로 지도·감독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올 1월 발표한 간접고용 노동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하청 노동자 가운데 37.8%가 업무상 재해를 경험했다. 이는 원청업체 소속 노동자(20.6%)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특히 산재를 경험한 하청 노동자 가운데 38.2%는 산재보험이 아닌 본인 부담으로 치료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위험한 업무를 하청업체를 비롯한 간접고용 노동자에게 맡기는 이른바 ‘위험의 외주화’을 막고자 정부는 지난해 말 산업안전보건법을 전면 개정했다. 하지만 산업현장에서의 사고는 끊이지 않고 있다. 올해 2월에는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에서 철광석을 이송하는 컨베이어벨트 부품 교체작업 중 외주업체 소속 노동자 이모(50)씨가 숨졌다. 6월에는 포스코 광양제철소에서 배관 보수업무를 하던 하청노동자 서모(62)씨가 폭발사고로 목숨을 잃기도 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에 따르면 지난 20일 울산 현대중공업에서 하청 노동자 박모(60)씨가 절단 작업을 하던 중 구조물에 몸이 끼여 사망했다. 노조는 “표준작업을 무시한 채 작업지시를 했고 해제 작업 중 튕김이나 추락 또는 낙하 등 위험요소 예방을 위한 위험감시자를 배치하지 않아 발생한 사고”라고 주장했다. 노조는 긴급 간부회의를 열어 사고현장에 긴급 작업중지권을 발동하고 노동부에 이를 신고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톨게이트 투쟁 승리”… 민주노총, 오늘 김천서 대의원대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경북 김천 한국도로공사 앞에서 대의원대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도로공사 본사 로비와 서울요금소 캐노피 위에서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싸우고 있는 톨게이트 요금 수납 노동자들에게 힘을 보태 정부와 도로공사를 압박하는 모양새다. 22일 민주노총에 따르면 이 단체는 지난 19일 중앙집행위원회를 열어 23일 제69차 임시 대의원대회 장소를 서울 강서구 KBS 아레나홀에서 김천으로 변경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전날 민주노총은 도로공사 본사 앞에서 200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톨게이트 투쟁 승리 결의대회를 개최했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이날 “대의원대회에서 하반기 총파업 총력투쟁뿐 아니라 톨게이트 투쟁을 승리로 만들고 민주노총이 함께 싸우겠다는 결의를 이끌어 내겠다”고 밝혔다. 국제노동단체와 정의당도 정부와 도로공사를 상대로 문제 해결에 나서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제노총(ITUC) 섀런 버로우 사무총장은 지난 18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도로공사가 대법원 판결에 따라 톨게이트 요금 수납원들을 전원 직접고용하라고 촉구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이튿날 도로공사 앞에서 현장 상무위원회를 열고 “정의당은 이번 국정감사에 이강래 사장을 증인으로 채택하는 등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직접고용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한국도 네팔도 외면한 청년의 죽음…“아이 두고 왜” 아내의 통곡

    한국도 네팔도 외면한 청년의 죽음…“아이 두고 왜” 아내의 통곡

    자살 네팔 이주노동자들의 이야기 최근 10년(2009~2018년)간 한국에서 일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네팔 노동자는 모두 43명. 더 큰 비극은 죽음 뒤에서 기다린다. 사람이 죽었는데 한국이나 네팔 정부 어느 곳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통계표에 건조하게 적힌 사망자수 외에 이들이 왜 죽음에 내몰렸는지는 누구도 따져 보려 하지 않았다. 비전문취업비자(E9)로 한국에 들어오는 16개 국가 중 네팔은 지난해 가장 많은 이주노동자(8404명)를 보냈다. 네팔 노동자의 죽음은 우리 곁의 모든 이주 노동자의 얘기일 수 있다. 그들에게 한국은 왜 죽음의 땅이 됐을까. 서울신문은 네팔 카트만두와 동카르카, 포카라 등에서 유가족 등 40여명을 만나 그들의 사연을 들었다. 이 가운데 여전히 죽음의 이유를 찾아 헤매는 세 노동자 가족의 이야기를 정리했다.#28세 게다르 디말시나 유리 테이프가 성의없이 나붙은 사람 키 높이만 한 관이 공항 밖으로 빠져나왔다. 볼품없는 관에는 겨우 스물여덟 된 앳된 남성이 들어 있었다. 네팔 청년 게다르 디말시나였다. 그는 지난달 21일 오전 9시쯤 부산 사하구의 한 수산식품 공장 창고에서 목을 맨 채 발견됐다. 닷새가 흐른 지난달 26일 시신은 여객기 화물칸에 짐짝처럼 실려 네팔 카트만두 트리부반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공항 밖에서 기다리던 친척들은 한국 경찰이 보내준 단출한 서류를 넘겨보다가 수군거렸다. “아무리 봐도 자살한 이유가 없어.” 가족들은 게다르가 왜 극단적 선택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게다르에게는 오히려 생의 의지를 다잡을 만한 축복만 있었다. 아내 번더나 디말시나(28)가 불과 25일 전 아빠와 똑 닮은 아이를 낳은 것이다. 번더나의 큰오빠는 “게다르가 아이 출산 나흘 뒤 친구들을 불러 파티할 만큼 기뻐했다”면서 “그런 사람이 왜 20일 후에 느닷없이 자살하겠느냐”며 갑갑해했다. 환갑을 맞은 어머니를 남겨둔 채 먼저 갈 무심한 아들도 아니었다. 가족들을 더 답답하게 만든 건 두 나라 관계기관의 태도였다. 게다르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 어떤 일이 있었는지 누구도 제대로 설명해 주지 않았다. 주한 네팔대사관이나 한국 경찰은 시신을 돌려보내 준 것만으로 역할을 다했다고 믿는 듯했다. 경찰은 “외관상 타살 흔적이 없고 자살 동기가 명확하다”며 사고 현장의 폐쇄회로(CC)TV를 살피거나 휴대전화 포렌식을 하지 않았다. 번더나의 큰오빠는 취재진에 “어떻게 CCTV와 휴대전화 확인도 하지 않을 수 있느냐. 한국에서는 이래도 되느냐”고 반문했다.경찰이 파악한 ‘명백한 자살 동기’는 가족을 탓하는 내용이었다. 게다르가 아내를 통해 땅을 샀는데 이 과정에서 사기를 당해 힘들어했다는 동료 진술이 있었다는 것이다. 취재진으로부터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번더나와 가족들은 “거짓말”이라며 흥분했다. “땅은 1년 전에 샀는데 290만 루피(약 3000만원)였던 토지가 435만 루피(약 4500만원)까지 뛰었다”고 주장했다. 가족들은 게다르의 유품조차 돌려받지 못했다. 한국 경찰 관계자는 이유를 묻는 취재진에 “주한 네팔대사관에 물어보니 유가족들이 물품 받길 원치 않는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가족 얘기는 달랐다. 유품 문제를 두고 대사관과 통화한 적이 없다고 했다. 이에 대해 주한 네팔대사관 관계자는 “시신과 사망 진단서를 확실하고 빠르게 네팔로 보내는 게 우리 역할”이라면서 “대사관은 중요한 물건이 아니면 보낼 수 없다”고 답했다. 게다르의 시신은 도착 당일 갠지스강 상류의 바그마티강으로 옮겨졌다. 관 뚜껑을 열어 남편을 확인한 번더나는 얼굴을 만지며 통곡했다. “아이를 두고 어떻게….” 가족들은 강물로 게다르의 입을 적신 뒤 불을 입속에 넣어 화장했다. 코리안드림을 꿈꾸며 떠났다가 죽은 채 고국에 돌아온 그는 4시간 만에 불과 함께 사라졌다.#32세 발 바하두르 “아이들을 정말 사랑하던 사람이었어요.” 지난달 30일 네팔 포카라에서 만난 리리 마야 구릉(28·여)은 선글라스 안으로 휴지를 밀어 넣으며 말했다. “매일 아이들을 볼 때마다 남편이 떠오른다”고 했다. 남편 발 바하두르 구릉(당시 32세)은 지난해 6월 12일 서울 중랑구 월릉교에서 몸을 던졌다. 당시 CCTV 화면에는 발 바하두르가 다리 위를 수차례 오가며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 담겼다. 끝까지 망설였지만 이틀 전 불법체류자 신분이 된 그는 ‘한국에서 쫓겨날 수 있다’는 불안감 탓에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을 했다. 발 바하두르는 원래 허가받은 노동자로 한국땅을 밟았다. 2017년 10월 E9 비자를 받고 입국한 그는 이듬해 3월 일하던 사업장에서 나와 고용노동부에 구직등록을 했다. 이주노동자들이 구직등록 후 3개월 안에 직장을 못 구하면 체류자격을 상실한다. 잠시 네팔에 돌아와 가족과 보낸 시간을 빼고는 한국에서 일자리를 찾아 헤맸지만 맞는 곳을 발견하지 못했다. 시간은 매몰차게 흘렀다. 3개월이 지났고 불법체류자가 됐다. 리리 마야는 한국에 와 남편의 시신을 수습했다. 당시 그를 도왔던 네팔인 라마 다와 파상(43)은 “한국에서 일하다 숨진 이주노동자의 가족들은 사망 소식을 듣고도 형편 탓에 대부분 한국에 오지 못한다”면서 “대사관이 하는 건 없다”고 털어놨다. 발 바하두르는 사망 두 달 전 네팔에서 아내와 즐겁게 데이트를 했다. 그 모습을 지켜봤던 동네 사람들은 리리 미야에게 “그렇게 행복했던 사람이 한국에 가서 왜 그렇게 됐느냐”고 곧잘 묻는다. 군인이었던 발 바하두르의 아버지는 삼 형제 중 막내인 아들의 사망소식을 듣고 기억상실증에 걸렸다. 네팔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집에 영정사진을 두고 아침저녁으로 향을 피운다. 일곱 살인 딸이 “이건 죽은 사람한테만 하는 거잖아. 아빠 죽은 거야”라고 물었다. 리리 마야는 “아빠는 외국에 있다”고 답했다. 그러곤 참았던 눈물을 쏟았다. “저도 죽고 싶었지만 아이를 생각하면 그럴 수 없어요.”#40세 던 라즈 갈레 “나는 결백합니다. 회사가 나를 속였어요. 나는 미치지 않았어요. 회사가 나에게 서명을 받았습니다. 반드시 진실을 밝혀 주세요.” 2011년 6월 대구 달서구의 한 이불공장에서 일하다 스스로 목을 맨 네팔 이주노동자 던 라즈 갈레(당시 40세)가 남긴 영어 유서 중 일부다. 2010년 9월 한국에 온 그는 네팔행 티켓까지 예매해 놓고 비극적 선택을 했다. 지난달 31일 포카라 집에서 만난 그의 아내 만 마야 갈레(48)와 동생 빔 라즈 갈레(36)는 어렵게 8년 전 이야기를 털어놨다. 동생 빔 라즈는 형이 자살한 이유를 모른 채 보낼 수 없다며 한국에 갔다. 아이를 정말 사랑하고 성실했던 형이었기에 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형이 남긴 유서를 보고서야 “회사에서 괴롭힘을 당했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형은 뭔지 모르는 문서에 사인한 후 회사가 나쁜 짓을 한다고 생각하고, 걱정돼 우울증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던 라즈는 네팔어로 된 짧은 유서도 남겼다. “나는 잘못이 없다. 회사에서 몽골 사람과 싸운 적이 있다. 몽골 친구가 한국 사람한테 무슨 말을 했는지 (회사가) 나를 속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던 라즈의 이런 주장을 회사는 모두 부정했다. 괴롭힘이나 따돌림은 없었고, 서류에 서명한 적도 없다는 것이다. 던 라즈는 한국에서의 주·야간 교대 근무를 힘들어했다. 특히 사망 두 달 전인 4월 중순부터는 야간 근무만 했다. 만 마야는 “남편이 야간 근무를 하면서 잠을 아예 못 잤다”고 말했다. 당시 대책위 활동을 했던 노조 관계자는 “야간 근무를 하면서 따돌림까지 겹치자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은 것 같다”면서 “나중에는 회사가 사실상 해고할 것처럼 나오자 스트레스를 더 받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네팔에는 외국에서 일하고 온 이웃이 선물을 사와 앞집, 옆집과 나누는 문화가 있다. 만 마야는 “아이가 이웃으로부터 선물을 받았을 때 아빠 생각이 났는지 얼굴빛이 안 좋았다”며 눈물을 쏟았다. 이제 중학생이 된 아들은 아빠의 부재를 자각할 무렵 “그렇게 만든 사람을 가만두지 않겠다”고 했다. 대학생이 된 딸은 여전히 “죽어도 외국은 가지말자”고 말한다. 그래도 만 마야와 빔 라즈는 한국인이 밉지 않다고 했다. “한국에도 네팔처럼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있고 남편은 나쁜 사람을 만났을 뿐이라고 생각해요. 그 사람 때문에 한국인을 싸잡아 비난하는 건 맞지 않죠. 그래도 나쁜 사람은 꼭 처벌받았으면 좋겠어요.” 카트만두·포카라·동카르카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제보 부탁드립니다 서울신문은 이주노동자와 결혼이주여성, 이주아동이 겪는 각종 문제를 집중적으로 취재해 보도할 예정입니다. 이주노동자로서 임금체불, 산업재해 은폐 강요, 폭언과 폭행 등 부조리를 직접 경험했거나 이를 목격했다면 제보(key5088@seoul.co.kr) 부탁드립니다. 또 결혼이주여성이나 이주아동을 향한 폭언·폭행, 따돌림 등 혐오와 폭력에 대한 취재도 이어갈 예정입니다. 제보해주신 내용은 철저히 익명과 비밀에 부쳐지며 끝까지 취재해 보도하겠습니다.
  • 이주노동자 실태조사 어떻게 했나

    <2019 이주민 리포트 : 코리안드림의 배신> ‘네팔 이주노동자 스트레스 및 정신건강 실태조사’는 지난 7월 28일부터 8월 18일까지 서울·경기·울산·대구·청주 등에서 네팔인 141명을 상대로 진행됐다. 불성실한 응답지 1부를 뺀 140부를 약 3주간 분석했다. 응답자는 남성이 121명, 여성이 19명이었으며 평균연령은 31.9세, 학력은 대학 입학 이상이 56.7%였다. 이번 조사는 서울신문과 원진재단부설 녹색병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이주노조가 함께했다. 조사는 애초 설계 단계에서 ‘잇달아 극단적 선택을 하는 네팔 이주노동자들에겐 자살 또는 우울 성향이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이를 학술적으로 입증하려고 했다. 하지만 연구에서 유의미한 결과치를 얻지 못해 한계가 있었다. 이는 응답자들이 솔직히 답하지 않았거나 응답 대상자 선정 때 ‘선택 편향’(이주민단체와 평소 접촉하는 등 사회적 관계를 잘 유지하는 노동자들이 주로 답변)이 있었기 때문일 수 있다. 조사와 분석을 이끈 이주연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연구원은 “이번 설문조사는 이주노동자들의 자살 과정 파악을 시도한 첫 번째 조사였고 고용허가제 탓에 이주노동자가 겪는 고충을 충분히 파악한 조사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기민도 기자 key@seoul.co.kr ●제보 부탁드립니다 서울신문은 이주노동자와 결혼이주여성, 이주아동이 겪는 각종 문제를 집중적으로 취재해 보도할 예정입니다. 이주노동자로서 임금체불, 산업재해 은폐 강요, 폭언과 폭행 등 부조리를 직접 경험했거나 이를 목격했다면 제보(key5088@seoul.co.kr) 부탁드립니다. 또 결혼이주여성이나 이주아동을 향한 폭언·폭행, 따돌림 등 혐오와 폭력에 대한 취재도 이어갈 예정입니다. 제보해주신 내용은 철저히 익명과 비밀에 부쳐지며 끝까지 취재해 보도하겠습니다.
  • 月300만원 기대감 뒤엔… 탈출구 없는 ‘주60시간 노동’ 절망감

    月300만원 기대감 뒤엔… 탈출구 없는 ‘주60시간 노동’ 절망감

    이주노동자 벼랑끝 내몬 ‘네 가지 방아쇠’ 무엇이 네팔 노동자들을 벼랑 아래로 떠밀었을까. 지난 10년간 국내 공장·농장 등에서 일하던 네팔 이주노동자의 자살이 끊이지 않자 국내외 노동·의학단체들은 그 이유를 두고 머리를 싸맸다. 정영섭 이주공동행동 집행위원은 “한 가지 동기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서울신문은 자살의 ‘방아쇠’를 찾기 위해 원진재단부설 녹색병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이주노조와 함께 국내 네팔 이주노동자의 ‘스트레스 및 정신건강 실태조사’를 했다. 국내 언론사 최초의 시도다. 지난 8월 네팔 출신 141명이 참여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놨다. 또 네팔 정부의 ‘2018년 이주 노동 현황 보고서’와 국제노동기구(ILO)의 ‘네팔 노동자의 실패’ 보고서(2016년), 주한 베트남·네팔·태국·미얀마 등 대사관 등에서 입수한 자국 노동자 사망·자살 통계 등도 분석했다. 연구·취재 결과 네팔인들을 극단적 선택으로 내모는 방아쇠는 모두 4가지였다. ▲기대감의 상실 ▲닫혀 버린 탈출구 ▲주변의 기대 ▲무너진 가족·연인 등이다. 네 원인은 서로 뒤엉켜 이주노동자를 흔들다가 삼켜 버린다. 그들의 죽음은 사회적 타살일 수 있다는 얘기다.# 기대의 상실 네팔 노동자들에게 한국은 기회의 땅이다. 고국에서 손에 쥐는 임금의 5~8배를 벌 수 있고 생활환경도 편하다. 명문대 졸업자 등 고학력자까지 한국행 비전문취업비자(E9)를 따려고 애쓰는 이유다. 그러나 정작 좁은 문을 통과해 한국 땅을 밟으면 쉼 없이 자신을 갈아 넣어야 하는 노동환경과 적지 않은 차별 앞에 상실감을 느끼게 된다. 네팔 노동자를 극단으로 몰아넣는 첫 번째 방아쇠다.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네팔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에서 일하고 생활할 때 가장 힘든 일로 ‘한국 입국 전 생각했던 노동환경과 너무 달라 느낀 실망 또는 절망감’(28.0%·복수응답)을 꼽았다. 또 25.1%의 응답자는 ‘가족 또는 연인, 음식 등 네팔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힘겹다고 했다. 돈을 벌기 위해 타국으로 떠나와 고향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잔뜩 쌓였는데 기대와 달리 가혹한 노동환경을 경험하면서 절망하게 된다는 얘기다. 실제 서울신문 인터뷰에 응한 네팔 이주노동자들은 격무에 지친 경험을 털어놨다. 네팔 최고 국립종합대학인 트리부반대에 다니다 한국으로 와 버섯농장 등에서 3년째 일하는 수렌드라 보가티(28·가명)는 “네팔에 있을 때는 ‘한국에 가면 월 200만~300만원은 벌 수 있다’는 기대감에 들떴을 뿐 노동자들이 어떤 생활을 하는지는 누구도 알려 주지 않았다”며 “직접 와 보면 일이 고되고 문화가 달라 힘들다고 하소연하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한국의 장시간 노동 문화에 적응하기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제대로 된 휴식 시간도 없이 매일 12시간씩 일했는데 네팔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노동환경이라는 것이다. 보가티는 또 “그 과정에서 기술이라도 배운다면 견디겠는데 대부분 단순 수작업이었다”고 말했다. 실제 실태조사에 참여한 응답자 중 법이 정한 주당 노동시간 한계치인 52시간을 넘겨 일한다는 사람은 45.6%나 됐다. 또 과로 산재 인정 기준인 주 60시간 이상 근무한다고 답한 노동자도 19.1%였다. 주5일제를 보장받는 노동자는 10명 중 2~3명(26.1%)뿐이었다. # 닫혀 버린 탈출구 네팔 이주노동자 케서브 스레스터(당시 27세)는 한국에 온 지 1년 4개월 만인 2017년 6월 어느 날 새벽 회사 기숙사 옥상에서 몸을 던져 사망했다. 밤낮을 바꿔 가며 하루 12시간씩 일하는 노동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심한 불면증에 시달린 게 화근이었다. “견디기 힘들면 회사를 옮기면 될 것 아니냐”는 흔한 반문은 스레스터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이주노동자가 일터를 바꾸는 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스레스터는 유서에 “건강 문제와 불면 탓에 치료를 받았지만 나아지지 않았고, 스트레스가 심해 다른 공장에 가고 싶어도 허락되지 않았다. 네팔에 잠시 돌아가 치료받고 싶어도 안 됐다”고 적었다. 이 같은 현실은 실태조사에서도 확인됐다. 조사 참여 노동자들에게 ‘사업장 변경을 시도한 적이 있느냐’고 물어보니 71.1%가 ‘있다’고 답했다. 응답자 중 최대 10번까지 사업장 변경을 요구한 이도 있었는데, 평균적으로 2.7번 시도했다. 일터를 바꾸려 한 이유는 스레스터와 비슷했다. ‘긴 노동시간과 위험한 사업장 등 노동환경 때문’이라는 응답이 36.4%로 가장 많았다. 고용허가제를 통해 한국에 들어온 노동자들은 3년간 최대 3번까지 사업장을 바꿀 수 있다. 하지만 사업주의 허락이 필수적이다. 최정규 변호사는 “업체 사장들과 통화를 해 보면 한 명을 바꿔 주면 다른 이들도 바꿔 줘야 한다고 말한다”면서 “소규모 사업장들이기 때문에 이주노동자가 하루라도 없으면 공장이나 농장이 운영되지 않는다며 변경을 거의 허락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사업주가 임금을 체불하거나 성폭력 등을 저질러 노조나 이주민단체가 함께 싸워 주지 않으면 이주노동자들의 사업장 변경은 사실상 어렵다. # 주변의 기대감 견디기 힘든 격무에 내몰린 노동자에겐 ‘귀향’이라는 선택지가 있을 법하다. 그러나 이주노동자들은 “노동환경이 가혹하고 사업장을 바꿀 수 없어도 네팔로 돌아가긴 힘들다”고 말한다. 어렵게 한국행 티켓을 손에 쥔 자신에게 거는 가족들의 기대와 주변 시선을 알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들을 자살로 모는 세 번째 방아쇠다. 네팔 출신인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은 “한국에 가서 일하면 300만원을 벌 수 있다는 식으로만 알려져 있기 때문에 사업주가 노동자를 때린다거나 임금 체불 등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며 “이렇게 ‘좋은 나라’에서 그냥 돌아왔다고 하면 주변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따돌림을 당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10년 동안 청주네팔쉼터를 운영 중인 수니타(41·여)는 “돈을 빌려 한국어능력시험까지 쳐서 떠났는데 힘들다는 이유로 돌아오면 ‘일도 못하고 힘없는 남자’라고 소문이 나 괴로워하는 사람이 많다”면서 “네팔인들이 일이 힘들어도 한국에서 안간힘을 쓰며 버티다 결국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고 말했다. 실제 네팔 정부 보고서에 기록된 17명의 자살자(2008~2014년)는 모두 가정 내 부양 의무를 무겁게 진 남성들이었다. # 무너진 가족·연인 악조건 속에서도 가족이나 연인을 생각하며 가까스로 견디던 이주노동자들은 마지막 버팀목마저 흔들리면 스스로 무너진다. 네팔 카트만두에서 만난 라메시 타파(29·가명)는 “내가 일했던 한국 공장에서도 젊은 친구 2명이 자살했다”며 “한 명은 집안 문제, 다른 한 명은 애인 문제였다. 귀국하려고 비행기표까지 준비했는데 그 전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전했다. 한국에서 일한 적 있는 크리시나 스레스터(45·가명)도 “한국에서 제대로 쉬지도 못하면서 힘들게 일하는데 가족 문제까지 터져 정말 힘들었던 적이 있다”며 “휴가도 제대로 쓰기 어려운 형편에 잠시 귀국해 문제를 해결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나이가 어리고 사회 경험이 없는 이들이 이런 스트레스를 이겨 내기는 더 어렵다. 카필 달 네팔 트리부반대 인류학과 교수는 지난달 29일 카트만두 자택에서 서울신문과 만나 “고등학교 졸업 후 첫 사회생활을 가족 없이 외국에서 혼자 시작하는 것은 힘든 일”이라면서 “가족을 위해 일하며 자기 미래까지 고민해야 해 여러 압박감을 한번에 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렇지만 한국은 물론 네팔 정부조차 자살 동기 등을 연구한 적이 없다. 민간 연구도 전무하다. 달 교수는 “한국만큼은 아니지만 중동과 유럽으로 나가 자살하는 네팔 노동자도 있다”며 “그런데도 정부나 정치권은 대책을 세우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주노동을 외화벌이 수단으로 생각하며 정작 노동자들의 건강이나 자살 문제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한 네팔대사관 관계자는 “(네팔) 정부에 연구를 위한 지원금을 요청해 봤지만 진전이 없다”면서도 “네팔 이주민을 대상으로 정신건강 상담도 하며 자살자를 줄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라이 위원장은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은 집 밖으로 잘 나오지 않는다”면서 “사람이 죽어 주한 네팔대사관 등에 신고하면 한국으로 올 수 있는 고용허가제 인원수가 줄어들까 봐 쉬쉬하며 시신을 본국에 보내기 바쁘다”고 비판했다. 카트만두·포카라·동카르카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위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서울신문과 베트남 국영통신사 VNA가 공동 취재해 작성한 기사입니다. ●제보 부탁드립니다 서울신문은 이주노동자와 결혼이주여성, 이주아동이 겪는 각종 문제를 집중적으로 취재해 보도할 예정입니다. 이주노동자로서 임금체불, 산업재해 은폐 강요, 폭언과 폭행 등 부조리를 직접 경험했거나 이를 목격했다면 제보(key5088@seoul.co.kr) 부탁드립니다. 또 결혼이주여성이나 이주아동을 향한 폭언·폭행, 따돌림 등 혐오와 폭력에 대한 취재도 이어갈 예정입니다. 제보해주신 내용은 철저히 익명과 비밀에 부쳐지며 끝까지 취재해 보도하겠습니다.
  • 잊혀진 교훈, 반복되는 비극…코리안드림은 그렇게 스러졌다

    잊혀진 교훈, 반복되는 비극…코리안드림은 그렇게 스러졌다

    8월 한달 간 네팔·베트남 현장 취재…23일부터 보도“내 동생처럼 시신으로 돌아오는 사람이 더는 없었으면 좋겠어요. 한국과 네팔 정부가 막아줬으면 해요.” 2017년 경북 군위의 돼지 농장에서 분뇨를 치우다가 황화수소에 질식사한 태즈 바하두르 구릉(당시 25세)의 형 발 바하두르 구릉(31)은 지난달 31일 네팔 포카라에서 만난 서울신문 취재진을 붙잡고 이렇게 호소했습니다. 동생은 3년간 농장에서 일하면서 단 한번도 작업 안전수칙을 설명들은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전형적인 인재(人災)였습니다. 너무 이른 나이의 가족을 떠나보내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 알기에 형 구릉은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수차례 강조했습니다.하지만 우리 사회는 아픔에서 얻은 교훈을 금새 잊었고, 비극이 반복됐습니다. 한국에서 일하던 이주노동자가 사고로 숨지는 일이 올해에도 수차례 벌어졌습니다. 지난 10일 경북 영덕의 오징어젓갈공장 폐기물 지하 탱크에서 이주노동자 4명이 질식사한 것은, 태즈 구릉 사건과 꼭 닮은 ‘쌍둥이 참사’였습니다. 당시 노동자들은 안전장비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이같은 현실은 통계에도 어렴풋이 드러납니다. 20일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법무부의 ‘비전문취업(E-9)자격자 국내 체류 중 사망 현황’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9년 8월까지 비숙련취업(E-9) 이주노동자 1137명이 숨졌습니다. 이 가운데는 장시간 노동이나 차별 등 환경을 견디다 못해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노동자도 적지 않게 있습니다. 코리안 드림을 꿈꿨던 이들의 꿈도 생을 마감하면서 함께 꺾입니다. 무엇이 잘못된 걸까요? 답을 얻기 위해 서울신문은 지난달 아시아의 대표적 인력송출국인 네팔과 베트남 등을 찾아 한국에서 일하다 사망한 이주노동자들의 유족을 만났습니다. 또, 한국에서 일한 경험이 있거나 한국행을 꿈꾸는 네팔인에게도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들의 꿈이 꺾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그 해법을 오는 23일부터 지면과 온라인 기사를 통해 공개합니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사설] 이강래 도공 사장, 대법원 판결 즉각 수용하라

    고속도로 요금 수납 노동자들이 경북 김천 한국도로공사(이하 도공)에서 농성한 지 오늘로 12일째다. 추석 연휴에도 이들은 농성을 풀지 못했다. 지난달 29일 대법원은 도공이 이들을 직접 고용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의 판결은 12년 만에 정든 일터로 돌아가라는 결정이었다. 그러나 이강래 도공 사장은 대법원 판결 이후에도 불구하고 지난 9일 이들에게 자회사 근무를 하거나 환경미화 업무 전환 배치를 하겠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노조의 거듭된 대화 제의를 일축하더니 노사관계를 파탄 낸 것이다. 12년 동안 해고와 송사에 고통받던 노동자에 대한 최소한의 인간적 배려도 없었고, 노동 존중이나 상생적 노사관계 복원에 대한 의지도 찾아볼 수 없다. 노조원들은 도공 본사 농성 중 도공 측에 5차례 교섭 요청서를 보냈으나 ‘입장 변화가 없다’는 답변만 반복하고 있다. 해결의 실마리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국제노동단체인 국제노총(ITUC)까지 나서 그제 문재인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 “도공이 대법원 판결에 따라 모든 요금 수납 노동자들을 직접고용으로 정규직화하길 촉구한다”면서 “단체교섭과 사회적 대화를 촉진하는 것은 ILO 회원국 정부가 지니는 의무”라고 밝혔다. 물론 톨게이트 업무가 무인화되는 추세 속에서 인력 운용에 대한 도공 측의 고민도 이해 못할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법원의 권위마저 거부하는 도공의 태도는 법치주의를 부정하는 옳지 못한 태도다. 어렵더라도 합리적인 방안을 도출해 내는 것이 이 사장의 책무다. 도공 차원에서 문제 해결이 안 된다면 관련 부처들이 나서서 해법을 제시할 수밖에 없다. 국토교통부, 노동부, 법무부 등 관련 부처에서 도공 측의 위법성이나 부당노동행위가 있는지 살펴보고 시정 요구를 해야 한다. 이 사장은 일방통행식 노사관계에서 벗어나 대법원 판결을 이행할 방안을 대화로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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