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뚱한 사람들의 세상/문용린 서울대교수·교육심리학(시론)
세상이 너무 부산스럽다.온 나라가 뒤숭숭하고,흔들리는 배위에서 멀미를 하듯이 어지럽고 짜증스러우며 화가 난다.
작년 연말 이래 연이어 벌어지는 해프닝들이 하나같이 모두 멀미를 부추겨 왔다.안기부법과 노동관련법개정의 절차상의 미숙함도 문제였지만,노와 사간에 당연히 있어야 할 국제규범성의 균형성을 심각하게 헤아리지 못한 여권의 단견과 이 법안의 의미를 제대로 읽지 않고,대권과 연계시켜서 여권 흠집내기의 기회로만 활용해온 야권의 욕심이 더 큰 문제였다.
○정치권 정치적 효과만 노려
안기부법과 노동법의 개정안이 절대선과 절대악의 대립인 것은 물론 아니다.이 두 법안은 시각에 따라 찬성과 반대의 논거를 각각 제나름대로 충분히 가지고 있었다.그래서 이 문제는 정치적 전략의 일환으로서 보다는 이 법안이 갖는 장단점과 예견되는 효과 및 부작용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와 판단을 토대로 열띤 토론과 대화가 있어야 했고,국회가 이런 토론과 대화를 국민들에게 보여주었어야 했다.대화와 토론을 통해서 국민들의 정확한 판단을 유도하고,범국민적 컨센서스를 형성하도록 국회가 여야간에 노력했어야 했다.
그러나 어디 그랬는가? 국민들의 판단과는 상관없이 찬성과 반대를 미리 당론으로 정해 놓고,한쪽은 통과쪽으로 밀어 붙였고,다른 한쪽은 무조건 반대로 밀어 붙이지 않았는가? 그래서 국회에서 여야는 토론 한 번 못했고,법안들은 통과된 것처럼 간주되었으며,이제 야당에서 그 통과가 변칙이라고 고함치고 있다.
두 개정법안이 가져올 실제적인 영향력에 국민들은 관심이 크지만,국회는 엉뚱하게 이 법안의 처리로 얻게될 정치적 효과에 더 큰 관심이 있어 보였고,또 그렇게 행동해 왔다.국민이 바라는 일에 보다는 엉뚱한 일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그곳에 많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두 개정법안을 둘러싼 논의가 2월의 임시국회로 넘어가 한달간의 여유가 생기자 그 새를 못참고 한보사태가 발생했다.국회내에서 국민이 바라는 일을 하지 못하고 엉뚱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증거가 더욱 확실히 드러난 것이다.
엉뚱한 사람들이 어디 그들만인가? 한보라는 기업을 에워싸고,엉뚱한사람들의 행진이 볼만했다.은행장들이 은행일은 하지 않고 엉뚱한 일에 몰두했고,기업을 해야할 사람들이 기업은 하지 않고 엉뚱하게 대출받아서,엉뚱한 일에 써 버리고 말았다.엉뚱한 일을 하는 사람이 많아지만,그 일 때문에 기회를 잃고 손해보는 사람이 많아진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이른바 기회비용의 상실이 엄청나게 크다는 점이다.
엉뚱한 일의 극치는 정작 북경에서 벌어졌다.김정일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꽃구입으로 북경의 꽃시장이 동이 났다는 외신보도를 읽으면서,엉뚱한 사람이 북쪽에도 엄청나다는 생각이 든다.
황장엽 비서의 망명사건으로 남쪽의 우리는 지금 얼마나 긴장해 있는가? 김정일의 친척이었던 이한영씨의 피습사건으로 우리는 지금 남북긴장의 클라이막스를 얼마나 실감나게 느끼고 있는가? 북한 주민의 반 이상이 굶주림에 고통받는 상황에서,주체사상의 한계를 목도하게 되자 망명을 결심했다는 황장엽 비서의 비장감 어린 결행을 보는 우리에게 있어서,북경 꽃시장의 매진 이야기는 엉뚱한 일 중의 엉뚱한 일로 보인다.
○북한 김정일 생일잔치 법석
남과 북에서 엉뚱한 사람들의 행진이 이젠 그쳐야 한다.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엉뚱한 사람중의 하나라는 자각이 필요한데,그렇게 되기가 어렵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외국에서 보기엔 한국인 모두가 엉뚱한 사람들일지 모른다.
북쪽 주민을 동포라고 부르면서,그들 중의 반이상이 기아에 허덕이고 있는 줄 번연히 알면서도 사치성 소비재 수입에 열을 올리고 있는 남쪽 사람들을 어찌 엉뚱한 사람이라고 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