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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 폭스콘, 생산라인 로봇투입 초읽기”

    애플의 최대 하청업체인 중국 폭스콘 공장 생산라인에 조만간 노동자 대신 로봇이 본격 투입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낮은 임금의 풍부한 노동력’이라는 중국의 최대 경쟁력이 시들해지고 있다는 전망이어서 주목된다. 폭스콘이 올 들어 예년과 달리 춘제(春節·설) 이후 신규 인력 채용을 동결한 것이 폭스콘 공장의 전면 자동화 계획과 관련이 있다고 베이징에서 발행되는 신경보가 22일 보도했다. 신문은 폭스콘 모기업인 타이완 훙하이(鴻海)그룹의 궈타이밍(郭臺銘) 회장이 자동화 계획을 앞당기기 위해 신규 채용을 꺼리고 있다고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전했다. 폭스콘은 광둥(廣東)성 선전, 허난(河南)성 정저우(鄭州), 쓰촨(四川)성 청두(成都) 등 중국 전역 32개 도시에 생산라인을 갖추고 있으며, 전체 직원은 100만명이 넘는다. 매년 춘제 이후 고향에 남아 일터로 돌아오지 않는 농민공들을 대신할 신규 인력을 모집해 왔다. 지난해 춘제 직후에도 아이폰·아이패드 조립 라인이 있는 선전 공장은 5000여명, 아이폰을 생산하는 정저우 공장은 4000여명의 인력을 새로 채용했다. 신규 인력 모집이 중단된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이후 올해가 처음이다. 궈 회장은 여러 차례 공장 자동화 의지를 밝혔다. 2011년 “향후 3년간 100만대의 로봇을 투입해 반복 작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을 대체하겠다”고 밝힌 바 있으며, 올 초에는 “중국 내 각 지역 공장에 자동화 설비 도입을 앞당기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5~10년 안에 노동자가 한 명도 없는 전면 자동화 공장을 완성하겠다”고 공언했다. 폭스콘은 2007년부터 노동자를 로봇으로 대체하는 자동화 방안을 연구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폭스콘이 자동화를 서두르는 것은 중국의 노동인구가 점차 감소하면서 인건비 상승 압력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일부 전문가들은 현재 중국 노동시장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아서 루이스가 제기한 이른바 ‘루이스 전환점’을 맞았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더 이상 농촌의 잉여 노동력을 확보할 수 없어 임금이 오르기 시작하고 고성장도 둔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하청업체인 폭스콘 역시 급등하는 임금을 감당하기 어려워 자동화를 모색하고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 폭스콘은 최근 몇 년간 노동자들의 투신자살 사태가 이어졌고, 노동자들에 대한 비인간적인 대우와 살인적인 노동 강도를 규탄하는 비난까지 쏟아져 회사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다. 중국 노동관계학원 법학과 장잉(姜潁) 주임은 “인력난, 임금상승, 부정적 보도에 따른 이미지 실추 등이 겹쳐 폭스콘이 전면 자동화 속도를 내고 있다”면서 “올해를 기점으로 중국의 노동인구가 감소세로 돌아서기 때문에 제2, 제3의 폭스콘이 속출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각에서는 폭스콘의 인력채용 중단이 판매가 부진한 아이폰5 주문량 감소와 관련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소사업체 지원·비정규 축소·취업관행 바꿔라

    소사업체 지원·비정규 축소·취업관행 바꿔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이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이어가려면 사회통합이 필수라고 지적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과 5일 공동으로 내놓은 ‘한국의 사회통합을 위한 제언’ 보고서에는 구체적인 해법이 담겨 있다. 우선 소사업체 육성을 꼽았다. OECD는 법인들이 커지면서 자영업이 쇠퇴하고 이로 인해 고용이 줄면서 가계소득이 줄어 소득 불균형이 심화됐다고 지적했다. 실제 1995년 사업소득은 전체 가계소득의 32%를 차지했지만 2010년에는 23%로 크게 줄어들었다. 1993~2000년 1~4인 규모의 영세 사업체 고용은 111만 3000명 늘었지만 2000~2010년에는 42만 4000명으로 반토막났다. 최경수 KDI 선임연구위원은 “소득 분배를 위해서는 다소 비효율적이고 많은 노동이 소요되더라도 소규모 자영업을 더 키우고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도 주문했다. 알레산드로 고글리오 OECD 고용노동사회국 참사관은 “정규직 전환이 이뤄지면 소득불평등 완화뿐 아니라 근로자에게 더 많은 훈련기회를 제공할 수 있고, 근로의욕을 고취해 경제성장에도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완화도 숙제다. 고글리오 참사관은 “상당수 비정규직이 퇴직금에서 배제되는 만큼 퇴직금 제도를 기업연금으로 대체하고 근로감독 및 세무행정 연계 등을 통해 비정규직의 사회보험 가입률을 높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을 높이고 공공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2009년 기준 국내총생산 대비 9.6% 수준인 복지지출 비중을 OECD 평균인 22%로 끌어올리라는 주문이다. 취업 관행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많았다. 공공부문 채용 때 입사시험을 폐지하고 취업 경력에 가산점을 부여하는 등 경력자를 우대해야 한다는 제안이다. 황수경 KDI 연구위원은 “대학 진학률 상승 등으로 고학력 청년층이 늘고 있고 이는 다시 ‘스펙쌓기’로 이어져 (노동력 공급과 일자리 구조가 맞지 않는) 미스매칭이 발생하고 있다”며 “경쟁력 없는 대학은 구조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크 피어슨 OECD 고용노동국 보건의료분과 담당관은 “한국의 ‘불필요한 입원율’이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높다”며 예방의료 강화를 통한 의료비 부담 경감을 주문했다. 큰 병원 중심의 의료시스템은 높은 본인 부담률 때문에 저소득층이나 고령층의 병원 이용을 어렵게 하는 만큼 집단진료가 가능한 1차 의료센터를 늘려야 한다는 게 담당관의 조언이다. 의과대학에도 이런 진료센터 설립을 허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양진 기자 ky0295@seoul.co.kr
  • 중국, 인터넷예매 시작했지만… 농민공 “컴퓨터 해본 적 없어” 환불표 기다리며 사흘째 쪽잠

    중국, 인터넷예매 시작했지만… 농민공 “컴퓨터 해본 적 없어” 환불표 기다리며 사흘째 쪽잠

    “환불표가 나올 수 있으니 조금 있다가 다시 와 보세요.” 중국 베이징 차오양(朝陽)구의 건설현장에서 막노동을 하는 농민공(농촌 출신 도시 일용직 노동자) 류다푸(劉大福·34)는 5일로 사흘째 베이징 서역의 매표소 창구 직원으로부터 이 말만 반복해서 듣고 있다. 중국 최대 명절인 춘제(春節·설)를 앞두고 그는 역사에서 쪽잠을 자며 귀성 기차 표를 구하는 중이다. 베이징에서 687㎞ 떨어진 고향 허난(河南)성 상추(商邱)를 떠나온 지 5년, 그는 고향에 갈 수 있다는 희망에 고단함도 잊고 하염없이 표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이날 오전 7시, 연건평 70만㎡로 아시아 최대 규모인 베이징 서역의 40개 매표 창구에서는 예년과 달리 기차 표를 구하기 위한 장사진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당국이 올해부터 인터넷과 전화 예매를 시작하면서 수백m에 이르던 구매행렬이 사라졌다. 하지만 인터넷 이용이 어려운 농민공들은 귀성표 구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역사 창구에는 인터넷과 전화로 팔고 남은 표만 팔기 때문이다. 역사 외곽에 임시로 설치됐던 60여개의 임시 매표 창구는 지난달 말 일찌감치 철거됐다. 허난성 안양(安陽)이 고향인 농민공 왕후셴(王虎先·38)은 ‘왜 인터넷으로 표를 사지 않았느냐. 전화 예매도 쉽지 않는냐’는 질문에 “인터넷은 한번도 접속해본 적 없고, 전화도 거의 받기만 한다”며 힘없게 웃었다. 올해 중국의 공식적인 춘제 연휴는 9일부터 15일까지 일주일간이다. 당국은 지난해보다 2억여명 늘어나 연인원 34억명으로 추산되는 귀성객들을 위해 지난달 26일부터 3월 6일까지 40일간을 ‘춘제특별수송기간’으로 정해 귀향 및 귀경길을 돕고 있다. 많은 농민공들이 통상적으로 2주에서 한 달, 길게는 두 달까지 고향에 머물기 때문이다. 문제는 춘제 때만 되면 표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렵다는 점이다. 베이징 서역의 매표창구 직원은 “농민공들은 환불표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농민공 배출이 많은 허난성, 산시(陝西)성, 쓰촨(四川)성 등으로 향하는 기차표는 이미 입석도 동이 났다. 값싼 노동력으로 중국의 경제성장을 이끈 견인차인 농민공은 정부 발표로는 지난해 말 현재 2억 5000만명이지만 실제로는 4억명을 상회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微博)에는 “농민공들은 귀향길조차 차별당하고 있다”는 비판과 푸념이 쏟아지고 있다. 암표 방지와 구매 편의를 위해 인터넷과 전화 예매를 시작했지만 오히려 농민공들은 표 구하기가 더욱 어려워져 귀향을 포기하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한편 광둥(廣東)성 등 비교적 따뜻한 남부지방에서는 기차표를 구하는 대신 오토바이를 타고 며칠씩 걸리는 귀향길에 오르는 농민공들의 행렬이 잇따르면서 ‘오토바이 귀향’이 새로운 춘제 풍경으로 자리 잡았다. 광둥성에서 ‘오토바이 귀향’에 나서는 농민공은 2010년 10만명에서 지난해 40만명으로 늘었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명사가 걸어온 길] 3. 한국 경제의 산증인, 박승 前 한국은행 총재(상)

    [명사가 걸어온 길] 3. 한국 경제의 산증인, 박승 前 한국은행 총재(상)

    한국은행 총재, 건설부 장관 등을 지낸 박승 중앙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여전히 젊다. 공정 사회에 대한 갈망이 그 누구보다 강하다. 이메일·전자파일 등 정보기술기기를 다루는 데도 능숙하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도 여전히 많아 천문학과 사진을 배우고 싶어한다. 그의 회고록 ‘하늘을 보고 별을 보고’는 이 같은 소망을 담은 책 제목이다. 1936년 전북 김제에서 태어난 박 교수의 집은 가난했다. 소작농이었지만 아버지는 한글 초서 개발에 매진한 학자였다. 아버지가 농촌에서 농사에 전념하지 않는 “반거충이”다 보니 어머니가 농사일을 전담했다. 아버지는 박 교수의 모교인 백석초등학교 설립을 주도했다. 아버지의 한글 초서연구 결과인 ‘한글씨’는 독립기념관에 보존돼 있다. 소년… 수업료 못 내 시험도 못 봐 하루에 14㎞를 걷고, 기차를 타고 이리공업중고등학교를 다녔지만 수업료를 제때 내지는 못했다. 중간·기말고사 때는 교문 앞에서 수업료 납부 여부를 체크해 수업료를 낸 사람만 시험을 볼 수 있게 했다. “내가 공부를 못해서 성적이 나쁜 것은 내 잘못이지만 수업료를 못내 시험을 못 봐서 성적이 나쁜 것은 누구의 책임인가 고민했지요. 이때의 고민이 나를 성숙시켰습니다.” 지난달 초 태국으로 출국하기 전 서울신문기자와 만난 박 교수는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계층 간 유동성을 보장하는 것이 교육이기 때문에 교육은 빈부와 관계없이 사회가 공동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은 그때 경험이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기차 통학을 같이한 사람들은 10여명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박 교수보다 나이가 1∼2살 많았던 6명은 공산군 점령하에 청년대로 차출됐다. 수복이 되고 난 뒤에 그들은 빨치산이 돼 경찰서 습격사건을 벌이다 죽었다. 2명은 국군, 1명은 인민의용군으로 나가 전사했다. 박 교수는 “나는 나이가 어려서 살아 남았으니 이 또한 운명”이라면서도 “한국전쟁은 동족끼리 서로 죽인 가장 더러운 전쟁”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매일 일기를 썼다. 일기장은 갈색 종이를 사서 직접 만들어 썼다. 그중 일부는 아직도 보관하고 있다. “일기가 내 일생의 성장에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이 그의 평가다. 일기에는 그날그날 일어난 일도 썼지만 느끼고 반성해야 할 일도 담았다. 그래서 일기는 매일매일 뉘우치고 기도하는 장소였다. “어려울 때 용기를 주고 잘나갈 때는 겸손을 줬다”며 “어려운 환경 속에서 내가 나름대로 성장할 수 있는 데는 일기의 힘이 컸다”고 회고했다. 박 교수는 지금도 간략하게 그날의 일과를 기록한다. 어머니… 베틀북, 개똥 옆에 떨어진 감 박 교수가 어렸을 때 그의 집안에 감나무 두 그루가 있었다. 가난한 집안에 먹을 것도 귀했던 시절인지라 그는 일어나면 감나무 밑으로 뛰어가 떨어진 감을 주워 먹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주 맛있게 생긴 감이 개똥 바로 옆에 떨어졌다. ‘맛있게 보이기는 한데 먹자니 찜찜하고 그렇다고 버리자니 아깝고….’ 이런 고민 끝에 그는 감을 어머니에게 줬다. “이렇게 좋은 감은 너가 먹어라”는 어머니 말씀에 자초지종을 얘기했더니 어머니는 파안대소하더란다.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내가 부모를 나처럼 모신 것이 아니고 개똥 옆에 떨어진 감처럼 대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부모가 돌아가신 뒤 더욱 그 느낌이 강했다. 지금도 그의 서재에는 어머니가 쓰던 유품을 모아놓은 궤짝이 있다. 서재 곳곳에는 작은 유품들도 놓여 있다. 사진 촬영을 위해 각종 기념품이 있는 서가에서 물건을 하나 들어달라는 사진기자의 부탁에 그는 망설임 없이 베틀북을 들었다. 어머니가 길쌈할 때 쓰던 도구다. 어머니가 짠 베를 염색한 뒤 그걸 교복으로 만들어 입고 다녔단다. 박 교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해군사관학교에 진학했다. 어려서부터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경제학을 공부하기를 원했지만 가난하기에 공부할 수 없는 처지였다. 해사를 고른 이유는 학비가 없어도 공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당시 병약한 부모와 나이 어린 여동생이 농사를 지어야 하는 문제로 이어졌다. 결국 가족회의를 거쳐 1년간 농사를 짓고 공부하면서 서울대 상대 진학시험을 보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대학생… 한 손엔 책, 한 손엔 농기구 1년 뒤인 1955년 서울 상대로 시험보러 가던 길에 대한 기억이 지금도 뚜렷하다. 서울 역전과 남대문 일대는 전쟁으로 여전히 폐허 상태였다. 종로 네거리를 지날 때 눈에 띈 간판은 곰탕집, 복덕방 등이었다. “곰탕집은 곰고기를 파는 곳, 복덕방은 무슨 떡집”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그의 점심은 어머니가 싸준 찐 고구마 다섯 개였다. 합격은 했지만 공부만 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었다. 결국 평소에는 농사를 짓고 시험 볼 때만 학교에 나타나는 학생이 되었다. 서울에 머무는 동안은 고모집 신세를 졌다. 농사를 지으러 내려갈 때는 도서관에서 10여권의 책을 빌려가고, 학교에 있을 때는 친구의 공책을 보면서 경제학을 배웠다. 그래도 대학 4학년 때 동아일보에 매주 실렸던 대학생 논단에 환율, 농촌 개발 등 경제 현안에 대해 3차례나 칼럼을 썼다. 주경야독이었지만 실력은 뒤지지 않았던 것이다. 어느 날은 집에 내려갈 차비가 없었다. 김제까지 걸어갈 수도 없고. 이런저런 궁리 끝에 서울역에서 개찰을 담당하는 사람을 찾아가서 사정 이야기를 했다. 개찰 담당 직원인 김진성씨는 그를 여객 전무한테 데려가서 설명을 하고 인계했다. 그 뒤로 여객 전무의 도움을 받아 몇 번 기차를 타고 왔다. 박 교수는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그분을 찾으러 서울역에 갔으나 행방을 찾지 못해 아직도 감사의 말씀을 전하지 못하고 있다”며 아쉬워했다. 한국은행… 새 인생을 열다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경제학을 배웠고 이를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싶었다. 그러려면 교수가 돼야 하고 유학이 필요했다. 가정 형편상 유학을 갈 수 없었던 박 교수는 공부를 계속할 수 있는 곳으로 한국은행을 선택했다. 1961년 한국은행 입행으로 박 교수는 안정과 도약의 기회를 얻었다고 했다. “한은에 들어오면서 직장에서 열심히 노력하고 공부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게 됐지요.” 한은에 합격한 기쁨에 일기장에 ‘쾌재!’라는 단어를 세 번이나 썼다. 한은에서 국민소득추계의 정확성을 높인 공로를 인정받아 1967년 상을 받기도 했다. 그러던 1968년 박 교수는 중앙정보부에 끌려갔다. 당시 서봉균 재무부 장관을 초청해 환율을 크게 올려야 한다는 정책 건의를 했는데 이것이 다음 날 아침 동아일보 1면에 환율이 큰 폭으로 오르는 것처럼 보도가 됐다. 발설자를 찾기 위해 한은 부총재를 포함해 10여명이 끌려들어가 심문을 당했다. 그러나 발설자는 나오지 않았다. 결국 자료를 만들고 보고한 박 교수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발설한 셈이 된다고 해서 그가 징계를 받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그러나 나중에 발설자가 드러나면서 한은 내부에서는 그에게 뭔가 보상을 해줘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그러던 1970년 한은에 해외 학술연수제도가 생기면서 박 교수에게 기회가 주어졌다. 당시 36세였다. 2년 동안 석사를 취득하는 조건이었으나 그는 박사까지 따기로 마음먹었다. “내 인생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라고 생각한 박 교수는 “전쟁하듯이” 공부를 했다. 보통 박사학위 취득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 부분은 논문 작성이다. 박 교수는 한은 조사부에서 근무한 경력을 살려 ‘노동력 과잉 경제에 있어서 외국자본의 경제개발 효과’라는 논문을 썼다. 논문 작성에 걸린 시간은 6개월. 하지만 이 같은 방법을 다른 사람에게는 권하지는 않는다. 박 교수는 “그건 나처럼 시간이 한정된 사람이 어쩔 수 없이 하는 선택”이라며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고 깊이 있는 공부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경제학 교수… 나의 꿈, 나의 길 경제학 박사가 돼 한국은행에 복귀하니 두 군데에서 일자리 요청이 왔다. 대통령 경제수석실에서 같이 일하자는 제안과 경제기획원이 제안한 사우디아라비아 경제개발자문단이었다. 우리나라와 반대 조건인 나라가 궁금했던 박 교수는 사우디아라비아를 선택했다. 한국에 어머니와 세 자녀가 남고, 사우디아라비아에 아내와 두 자녀가 동행하는 이산가족 신세가 1년간 계속됐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돌아온 뒤 한은에 잠시 머물다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가 됐다. 평생의 꿈을 이룬 것이다. “꿈을 실현했으니 굿판의 무당처럼” 신나게 가르쳤다. 대학 교수로 일한 시간은 총 26년. 학기가 끝날 때마다 학생들의 평가를 받았다. 지금은 보편화돼 있지만 30여년 전에는 낯선 시도를 한 것이다. 시험 채점도 조교에게 맡기지 않고 두번씩 직접 점검해서 점수를 매겼다. 신문에 글을 쓰고 방송에 나가 강연하는 활동도 열심히 했다. 서울신문 비상임 논설위원으로 1977년부터 3년간 경제 관련 사설을 쓰기도 했다. 당시는 유신 말기라 정치나 사회 쪽 사설은 쓰기가 어려웠다. 경제로 관심이 쏠리면서 매주 4∼5회 사설을 썼다. 박 교수는 ‘서울신문 100년사’에 “신문 사설을 쓰기 전에는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실감하지 못했다”며 “내가 쓴 사설에 정부, 기업, 경제단체들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을 보고 그 중요성을 점차 깨달았고 이 때문에 큰 보람과 함께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다”고 적었다. 1986년에는 한은 금융통화위원으로 임명돼 활동했다. 당시 금통위원은 비상임이라 매주 목요일에만 한은으로 출근했다. <하편에 계속> 전경하 기자 lark3@seoul.co.kr ■박승 前 한은 총재는 1936년 전북 김제 출생 1942~1948년 김제 백석초등학교 1948~1954년 이리공업중고등학교 1955~61년 서울대 상과대학 경제학과 1961~1976년 한국은행 조사부 근무 1972~1974년 미국 뉴욕주립대 경제학 석사 및 박사 1974~1975년 사우디아라비아 경제개발자문단장 1976년 9월~2001년 2월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 1977~1979년 서울신문 논설위원 1986년 1월~1988년 2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1988년 2~12월 대통령실 경제수석비서관 1988년 12월~1989년 7월 건설부 장관 1993~1996년 주택공사 이사장 1997~1998년 교통개발연구원 이사장 2001년 2월~2002년 3월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민간위원장 2001년 3월~ 중앙대 명예교수 2002년 4월~2006년 3월 한국은행 총재
  • 美 하원, 北·中 기술유출 원천봉쇄법 추진

    미국이 에너지 관련 기업 등 연방정부 자금을 지원받는 회사의 기술이나 지적재산권 등이 북한이나 중국 등으로 흘러가는 것을 원천 봉쇄하는 법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2일(현지시간) 알려졌다. 마샤 블랙번(공화) 연방 하원의원은 최근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한 ‘미국 노동력과 기업 활동이 제공된 기업의 인수·합병 및 위험한 경영권 매수 방지 법안’(약칭 스마트 세일 법안)을 발의했다. 법안은 혁신적인 연구·개발을 위해 에너지부 등 연방기관으로부터 세금을 지원받는 기업이 비동맹 국가의 개인이나 회사 등으로부터 인수 제의가 들어오면 반드시 보고하도록 했다. 또 에너지부 장관은 해당 기업 매수가 미국에 위협이 되는지 평가해 의회에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규정했다. 법안은 이처럼 미국의 에너지 관련 기술이나 지적재산권 이전이 금지되는 국가로 중국, 북한, 테러지원국(쿠바, 이란, 수단, 시리아) 등을 명시했다. 공화당 소속인 케빈 크래머, 스티븐 리 핀처, 빌 하이징가, 월터 존스 하원의원이 법안 공동 발의에 참여했다. 블랙번 의원은 “지금 미국의 나빠진 경제 사정으로 세금이 투입된 미국 기술이 중국 정부 등에 넘어가고 있다”면서 “이 법안은 미국 납세자들의 돈이 들어간 회사의 기술과 지적재산권이 결과적으로 비동맹국에 팔려나가는 것을 막아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워싱턴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 [DB를 열다] 1963년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

    [DB를 열다] 1963년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

    평화시장은 6·25 때 남쪽으로 내려온 북한 피란민들이 청계천 옆에 판자촌을 이루고 옷을 만들어 판 데서 출발했다. 평화라는 이름도 그런 배경에서 나왔다. 실향민들은 재봉틀을 한두 대 놓고 미군복을 수선하고 염색해서 팔거나 ‘몸뻬’라고 불리는 여성용 일바지를 만들어 판매했다. 1958년 청계천 판자촌에서 큰불이 나고 이듬해 청계천이 복개되면서 평화시장은 새롭게 탄생한다. 지금과 비슷한 건물은 1962년 2월 완공되었다. ‘서울피복사’ ‘일광피복사’ 같은 간판이 보이는 사진은 1963년 1월 찍은 것이다. 그런데 왠지 새 건물 느낌이 나지 않고 주변 풍경도 을씨년스럽다. 길가에서는 얼음 위로 아이들이 썰매를 타고 있다. 평화시장에는 영세 의류 제조업체가 밀집해 도시 빈민의 값싼 노동력으로 저렴한 옷을 만들었다. 이런 노동력 착취는 청계피복노조원이었던 전태일이 1970년 11월 13일 분신한 사건의 원인이 되었다. 아픈 역사를 갖고 있지만 다양하고 저렴한 옷을 파는 대규모 의류상가인 평화시장은 1980년대까지도 호황을 누렸고 주변에는 신평화시장, 청평화시장, 동평화시장, 남평화시장 등 유사한 이름을 가진 시장들이 들어섰다. 평화시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헌책방이다. 1층에는 지금도 20여곳의 헌책방이 있다. 돈 없는 대학생들이 중고서적을 구할 수 있는 소중한 곳이다. 손성진 국장 sonsj@seoul.co.kr
  • 경남도 해외사무소 ‘기업지원’ 강화

    경남도는 10일 일본·중국 등에 설치, 운영하는 해외사무소를 기업지원 기능을 강화하는 쪽으로 혁신한다고 밝혔다. 해외사무소 운영이 방만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도는 일본 도쿄와 중국 산둥·상하이 사무소장을 코트라(KOTRA)에서 파견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해당 사무소도 KOTRA 현지 무역관 안에 마련하기 위해 협의를 하고 있다. KOTRA의 무역·통상 관련 네트워크와 노하우를 적극 활용하기 위해서다. 새로운 투자시장으로 부각되는 미얀마에 진출하는 도내 기업들을 지원하기 위해 전국 지자체 가운데 처음으로 오는 10월 양곤에 해외사무소를 신설하고 양곤구와 우호교류를 추진한다.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판단된 중국 베이징 지소는 이달 1일자로 폐쇄했다. 도는 미얀마가 최근 민주정부 출범 뒤 중립적인 독립자주외교를 추진하는 가운데 풍부한 지하자원과 노동력을 보유해 신흥투자처로 세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으며 대한민국 기업 진출도 활발하다고 밝혔다. 최근 경남도는 해외사무소 운영을 보다 엄격하게 하기 위해 전국 자치단체 가운데 처음으로 ‘해외사무소 회계 등 업무처리 지침’을 만들었다. 이 지침은 현지인 채용을 2명 이내로 제한하고 직원들의 여비·업무추진비 등 회계 운영에 통일된 기준을 만들었다. 또 차량은 필요할 때마다 임차하고 되도록이면 국산차를 이용하도록 했다. 도는 회계업무처리 지침에 따라 올해부터 해외사무소에 대해 현지 감사를 하는 등 해외사무소의 기업지원 기능을 강화해 기업을 위한 해외사무소가 되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창원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2년간 노숙인 60명의 삶 추적

    한국에서 노숙자(Homeless)들이 문제가 된 시점은 1997년 외환위기 때부터다. 그전에 흔히 부랑자라고 부르는 노숙인(Rough sleeper)들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한국사회가 경제적으로 붕괴되면서 대량 양산된 노숙인은 사회적 이슈가 됐다. ‘한국의 노숙인’(구인회·정근식·신명호 편저,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펴냄)은 등장한 지 15년이 된 노숙인 문제에 대해 학술적으로 접근했다. 2차대전 이후 양산되기 시작해 60여년이 된 영국, 미국의 노숙인들과 달리 한국의 노숙인 역사가 일천한 탓에, 서울대에서 언론정보학, 사회학, 인류학, 사회복지학과 등 사회과학 연구진들이 2009년 정부의 지원을 받아 ‘노숙인 생애사 아카이브 구축사업’을 시작했다. 약 2년에 걸쳐 60명의 노숙인을 1·2차 심층 인터뷰하고 노숙에 이르게 된 경로를 추적했다. 한국 노숙의 범주에는 거리뿐 아니라 찜질방, 만화방, 쪽방, 고시원, 노숙인 쉼터 등도 포함된다. 한국의 노숙인은 첫째 고용의 악화와 자영업의 실패, 둘째는 경제적 몰락으로 인한 이혼 등 가족의 해체, 셋째 선천적·후천적 질환에 따른 노동력 상실 등이 원인이었다. 현재 노숙인 정책은 영국의 ‘새정설’(2000년)이 수용되는 상황이다. 노숙인 발생에 따른 위생과 치안 문제 등 위기 관리보다 노숙인 발생을 예방하는 쪽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노숙의 원인보다 노숙을 촉발하는 요인를 찾아보고자 하는 것이다. 한국 노숙인의 노숙 경로를 보면 근로 빈곤층에 불리한 사회·경제적 구조가 노숙인을 양산하지만, 노숙을 촉발할 만한 불운에 맞닥뜨렸을 때 극복할 수 있는 자체 역량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경향을 보인다. 즉 어린 시절 부모의 학대나 이혼 등으로 정신적 불안을 겪었거나, 사생아, 조부모 슬하의 방치된 어린 시절, 또는 도박이나 알코올 등에 취약하다든지, 재산이나 인간관계에서 계속 사기를 당한다든지 하는 관리능력의 미흡 등이다. 개인적인 성향이 구조적으로 엮이기도 한다. 인쇄업이나 봉제업과 같이 사양 사업에 종사하다가 퇴직한 후 동료와 사업을 시작했는데 관리 능력이 부족해 사기를 당하는 형태다. 느닷없는 불운을 극복하는 능력은 물질적·경제적 차원의 일시적 지원이 아닌, 자존감의 회복이나 성찰을 통한 자립과 자활 의지를 일깨우는 것이 중요하다. 때문에 지방자치단체들이 대학들과 연계해 진행하는 ‘인문학 과정’이 중요하다. IMF와 같은 전환기에 세상을 바라볼 안목이 없었던 사람들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주고, 인간의 가치를 회복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문소영 기자 symun@seoul.co.kr
  • [9일 TV 하이라이트]

    ■교실이야기(KBS1 오전 11시) 태어나자마자 만취한 아버지가 바닥에 던져 척추 손상을 입고, 그로 인해 평생 장애를 갖고 살아가야 했던 김해영씨. 13살에 남의 집살이를 시작한 그는 직업전문학교에 입학해 기계편물 기술을 배웠고, 하루 종일 기술을 연마하여 실력을 쌓았다. 1983년 전국장애인기능대회에서 금메달을 따게 되는데…. ■오감만족 세상은 맛있다(KBS2 밤 8시 20분) 중국에서도 두부의 본고장이라 불리는 스핑은 중국 전역에 두부를 공급할 만큼 두부에 관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마을 구석구석에 특별한 두부 맛의 비밀을 찾아 우승민이 나섰다. 우여곡절 끝에 발견한 것은 다름 아닌 우물이었다. 집집마다 하나씩 있다는 우물에는 어떤 비밀이 숨어 있을까. ■코이카의 꿈(MBC 오후 6시 20분) 가수 김조한, 배우 이천희, 조윤희, 정경호가 분쟁국가인 팔레스타인을 다녀왔다. 이들의 팔레스타인 봉사는 의료 봉사와 교육 봉사로 이루어졌다. 열악한 이곳의 의료 현실로 인해 많은 고통을 겪고 있는 다양한 환자를 돌본다. 또한 아이들에게 예체능 수업도 펼치며 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한다. ■짝(SBS 밤 11시 15분)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왜 이혼을 했는지 중요하지 않다. 그저 이혼남, 이혼녀라는 사실만 중요할 뿐이다. 10년째 딸을 혼자 키우고 있는 남자는 미혼부다. 또한 결혼을 준비하다 파혼한 여자. 다섯 살이 된 딸이 하나 있는 서른살의 미혼모. 프로그램에서는 각기 다른 아픔을 갖고, 애정촌을 찾아온 돌아온 싱글 12명과 함께한다. ■다큐10+(EBS 밤 11시 15분) 몸길이 1.15m, 날개를 폈을 때 양 날개 길이 2.7m, 몸무게 5~7㎏인 수염수리는 알프스산맥에 서식하는 새 중에서 가장 덩치가 크다. 멸종위기에 놓였던 맹금류는 30년 전 시작된 야생 복원프로젝트 덕분에 차츰 수가 늘어나고 있다. 국립공원 직원, 야생동물 전문가, 사진작가 등과 함께 알프스의 수염수리를 만나보자. ■HD 다큐월드(OBS 오후 6시 10분) 경제적으로 부유해지면서 인류는 지나친 소비를 하고 있다. 더 많은 소비를 위해서 자연과 노동력을 착취하며 환경파괴가 초래되고, 이는 곧 인류가 대가를 치러야 할 재앙이 되고 있다. 콩 재배를 위해 무분별하게 파괴되고 있는 브라질의 열대우림과 식량 낭비와 빈곤이 공존하는 일본의 모습을 살펴본다.
  • [박근혜 정부 대한민국의 과제] (2)잠재성장률을 올려라

    [박근혜 정부 대한민국의 과제] (2)잠재성장률을 올려라

    우리 속담에 ‘3대 가는 부자 없다’라는 말이 있다. 바꿔 말하면 물려받은 재산을 제대로 관리해야만 상당 기간 먹고살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국가 경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각종 자원이 풍부하거나 내수시장이 큰 부자 국가는 위기가 몇 년 지속돼도 큰 문제 없이 굴러간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물려받은 재산이 변변찮은 ‘자수성가형’ 국가는 위기 대응이 매우 중요하다. ‘달리는 자전거’처럼 끊임없이 페달을 밟아야 일정 정도의 성장을 유지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2.1%(추정치) ‘저성장’을 기록한 데 이어 올해도 자칫 2% 성장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잠재성장률을 계속 밑도는 수준이다. 1일 기획재정부와 국내 연구기관 등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은 3% 중후반이라는 게 대체적인 공감대다. 2011년부터 2020년까지의 연평균 잠재성장률에 대해 한국개발연구원(KDI)과 현대경제연구원은 3.8%, 삼성경제연구소는 3.6%를 제시하고 있다. LG경제연구원 추산치는 3.4%로 가장 낮다. 한국은행과 KDI, 현대연 등의 분석에 따르면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은 고도성장기였던 1970년대 10% 정도에서 1980년대 8~9%로 하락했다. 1990년대 들어 6~7%로 다시 떨어졌다가 1997년 환란을 계기로 4%대 후반으로 급락한 것으로 추정된다. 2008년 금융 위기를 거치며 3% 후반대로 더 쪼그라들었다. 잠재성장률 하락은 앞으로도 지속될 전망이다. KDI는 2021년부터 2030년까지 2.9%, 2031년부터 2040년까지 1.9%로 떨어질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삼성연은 같은 기간 각각 2.8%, 2.2%, LG연은 2.8%, 2.5%를 제시했다. 해외 시각은 더 비관적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이 2011년부터 2030년까지 2.7%를 기록한 뒤 2030년 이후 30년간 1.0%로 처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1.0%의 잠재성장률은 국가 부도 상태인 그리스(1.1%)보다 낮은 수준이다. 미국(2.1%), 영국(2.2%)과 비교해도 절반 수준이다. 더 큰 문제는 잠재성장률 하락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것이다. 2031년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은 2001년 대비 3.4% 포인트나 떨어질 것으로 OECD는 예측하고 있다. 이는 룩셈부르크와 더불어 34개 OECD 회원국 중 가장 가파르다. 우리와 경제 규모가 비슷한 스페인(-2.0% 포인트), 호주(-1.0% 포인트) 등보다도 감소 폭이 크다. 멕시코(0.6% 포인트), 일본(0.7% 포인트) 등은 되레 잠재성장률이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기관차(국가)의 속도(잠재성장률)를 높이려면 더 많은 땔감(노동, 자본 등 생산요소)을 넣는 동시에 엔진(생산성) 효율을 높여야 한다. 생산성을 단기간에 높이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생산요소 투입이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하지만 최근 우리 경제는 생산요소 투입 감소 방향으로 흘러가면서 잠재성장률 하락이라는 ‘비극’에 직면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투자 부문은 외환 위기 이후 급격한 침체 국면에 진입했다. 실질 고정투자 증가율은 1970년대 연평균 17.8%에서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1.3%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해 8월 이후부터는 설비투자가 아예 감소세로 돌아섰다. 국내 자본의 해외 투자 비율 역시 1980년대 1% 미만에서 2010년에는 8% 안팎까지 뛰어올랐다. 인구 고령화에 따른 노동력 약화도 심각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3656만명인 국내 생산가능인구(15~64세)는 2017년부터 감소세로 전환돼 2060년에는 2187만명으로 뚝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교역 조건 악화에 따라 수출로 인한 실질 이익도 감소하고 있다. 여기에 우리의 성장 동력인 정보기술(IT) 산업의 수출 비중이 2000년 이후 점차 낮아지고 있어 신성장 산업 모색이 절실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잠재성장률 하락 속도를 늦추려면 지금까지 주춤했던 자본 축적 확대를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임희정 현대경제연구원 거시경제실장은 “기업들이 투자 활성화에 나설 수 있도록 정부가 실효성 있는 투자 인센티브 패키지를 제공해야 한다”면서 “정부와 기업이 함께 중장기 투자 계획을 짜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고용과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고부가가치 지식서비스 업종의 육성도 과제로 꼽힌다. 제조업으로 고용과 성장률을 늘리기에는 우리 경제가 한계에 봉착했기 때문이다. 오정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1인당 국민소득이 5만 달러에 육박하는 싱가포르의 전례처럼 투자 대비 실적이 높으면서도 고용 효과가 큰 금융과 교육, 의료, 관광 등의 서비스 업종 발전을 통해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남북 통일도 잠재성장률 확충에 도움이 될 변수로 꼽힌다. 우리나라 잠재성장률 하락의 가장 큰 요인인 고령화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재정부에 따르면 2050년 기준으로 통일이 될 경우 생산가능인구 비중은 67.9%에서 70.2%로 증가한다. 반면 노인인구 비중은 22.1%에서 17.2%로 크게 감소한다. 대북 설비투자 증가와 분단 비용 감소 등도 이점으로 지적된다. 최광해 재정부 장기전략국장은 “2030년대에 통일이 된다고 가정하면 통일 비용에 따른 재정 부담에도 불구하고 잠재성장률이 0.86∼1.34% 포인트 정도 상승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 이두걸 기자 douzirl@seoul.co.kr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용어클릭] 잠재성장률 노동과 자본 등 동원 가능한 생산요소를 모두 투입해 한 나라의 경제가 물가 상승 등의 부작용 없이 성장할 수 있는 최대의 생산 능력. 경제 규모가 커질수록 어느 정도의 잠재성장률 하락은 불가피하지만 우리나라는 속도가 가파르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 노인기준 70~75세로…고교 문·이과 통합 ‘성실실패제’ 도입

    노인기준 70~75세로…고교 문·이과 통합 ‘성실실패제’ 도입

    정부가 노인 연령 기준을 70~75세로 높이는 방안을 추진한다. 대입 전형에 맞춰 쪼개져 있는 고등학교 문·이과 과정은 통합한다. 연금저축 등에 대한 소득 공제는 세금 감면 대신 감면액만큼 매칭펀드로 지원하는 방안이 검토된다. 정부의 연구개발(R&D) 과제를 용역받아 실적이 좋지 않더라도 성실히 연구한 사실이 인정되면 불이익을 주지 않는 성실 실패 제도 도입한다. 기획재정부는 26일 이런 내용 등을 담은 ‘중장기 정책과제’를 발표했다. 30년 이상 미래를 내다보고 책정된 과제들이다. 큰 방향은 ‘포용적 성장’이다. 최광해 재정부 장기전략국장은 “정부 대책에 저성장 기조가 처음 공식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금저축 소득공제 매칭펀드로 지원 고령자 기준을 현행 65세에서 70~75세로 높이려는 것은 ‘100세 시대’에 대비한 조치다. 선진국에 비해 훨씬 빠른 고령화 속도를 의식해 부족한 노동력을 확보하려는 포석도 깔려 있다. 국민연금·고용보험·연금저축 등에 대한 소득공제는 공제 금액만큼 지원해 주는 매칭펀드 방식으로 바뀐다. 정규직에 대한 과도한 보호는 줄이고 비정규직의 임금·근로조건 등은 개선한다. 장시간 근로 관행이나 야근문화를 개선해 정규직·비정규직 구분 없이 출산과 일을 병행할 수 있도록 지원할 방침이다. 남성 육아 휴직 확대도 유도한다. 전문인력의 질은 훨씬 까다롭게 관리된다. 경쟁력이 낮은 대학·대학원은 상시 퇴출시킬 방침이다. 고교 문·이과 계열 구분은 7차 교육과정(1997년)부터 없어졌으나 칸막이식 교과과정은 여전한 상태다. 앞으로는 일부 필수과목을 제외하고 학생들이 자유롭게 과목을 선택해 들을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학문·분야 간 경계를 없애고 고졸 취업 등을 활성화하려는 취지이지만 정부의 중장기 보고서에 해마다 등장하는 ‘단골 메뉴’라 이행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한국어와 중국어로 수업하는 ‘한·중 연합 학교’ 설립 방안도 내놓았다. ●경쟁력 낮은 대학·대학원 상시 퇴출 정부 R&D사업의 수행결과가 안 좋더라도 성실히 연구한 사실이 인정되면 불이익 조치를 면제해 주는 ‘성실 실패 제도’도 도입한다. 연구과제에 대한 평가를 질적 지표 중심으로 개선해 나가려는 것이다. 대기업·은행·중소기업 간의 협력을 위해 중소기업이 발행한 우선주를 대기업이 적극적으로 살 수 있도록 제도화하는 방안도 모색한다. 경영권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서 중소기업의 자금력을 키우려는 의도다. 소액주주 집중투표제도 활성화된다. 세종 김양진 기자 ky0295@seoul.co.kr
  • [한국·베트남 수교 20주년 특집] 세계 최대 휴대전화 생산기지 육성

    [한국·베트남 수교 20주년 특집] 세계 최대 휴대전화 생산기지 육성

    삼성전자는 베트남을 ‘제2의 중국’으로 여기고 본격적인 투자 확대에 나서고 있다. 스마트폰 등 모바일기기의 생산을 크게 늘려 세계 최대 규모의 휴대전화 생산기지로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삼성전자에 따르면 이건희 회장은 지난 10월 호앙쭝하이 부총리 등 베트남 정부 고위 관계자를 만나 투자확대 등 사업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이 회장은 호앙쭝하이 부총리 등에게 “지난 1989년 하노이에 첫 지점을 설립한 이래 지금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베트남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덕분”이라고 밝혔다. 현재 삼성전자 베트남 법인은 휴대전화와 TV·생활가전 공장 등을 가동하고 있으며, 향후 8억 달러가량을 추가로 투자할 계획이다. 이 회장은 2005년 베트남 현지로 삼성전자 사장단을 불러 전략회의를 열기도 했다. 베트남 하노이에는 현재 연구·개발(R&D) 센터를 건립하고 있고, 옌퐁에는 삼성전자 휴대전화 생산량의 40%인 연간 1억 5000만대를 생산할 수 있는 생산라인이 있다. 삼성전자가 베트남 투자를 늘리는 것은 양질의 노동력이 풍부하고 베트남 정부가 법인세 인하 등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보장해 기업 환경이 우수하기 때문이다. 특히 베트남에서 생산되는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대부분 유럽으로 수출되고 있다. 삼성전자가 유럽 스마트폰 시장 1위에 오르면서 베트남 생산기지의 중요성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삼성전자 베트남법인은 새 스마트폰 공장을 짓기로 하고 공장 설립에 7억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박닌성에 자리잡은 기존 휴대전화 생산공장 시설투자와 부지도 확대하는 등 2020년까지 전체 투자규모를 15억달러로 늘릴 방침이다. 이런 노력을 통해 삼성전자는 베트남을 연간 100억 달러 이상의 수출을 담당하는 세계 최대 휴대폰 생산기지로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한국·베트남 수교 20주년 특집] 총부리 겨눴던 사이에서 든든한 ‘경제 동반자’ 관계로

    [한국·베트남 수교 20주년 특집] 총부리 겨눴던 사이에서 든든한 ‘경제 동반자’ 관계로

    22일로 한국과 베트남이 수교 20주년을 맞았다. 1960~1970년 베트남 전쟁 당시 서로 총부리를 겨눴던 두 나라는 1992년 수교 이후 ‘동반자 관계’로 발전하면서 경제, 문화, 사회 등 모든 부문에서 눈부신 발전을 거듭했다. 특히 섬성전자 등 국내 업체들의 잇따른 진출로 한국은 베트남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자리잡았다. 또 ‘한류’를 타고 우리 노래와 문화 등이 베트남 구석구석에 전파되고 있다. 아울러 베트남 여성과 결혼하는 한국 남성들이 늘면서 이른바 ‘사돈의 나라’라는 각별한 관계도 형성됐다. 20년 동안 쌓은 ‘신뢰’를 바탕으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는 한국과 베트남의 발전상과 과제를 짚어봤다. 경제 분야가 수교 20년 동안 가장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올해 한국과 베트남의 교역 규모는 200억 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기대된다. 1992년 5억여 달러와 비교하면 무려 40배 성장한 것이다. 현재 베트남에 진출한 국내 기업은 3000여개. 이들이 고용한 베트남 현지 인력은 60여만명에 이른다. 1996년 10여개 정도였던 베트남의 한국 기업은 수교 10년 만인 2002년에 300여개로 늘었고 그후 10년 동안 10배가 늘었다. 특히 올해 8월부터 시작한 양국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급물살을 타면서 교역 규모가 더욱 가파르게 늘 것이라는 것이 업계의 관측이다. 올해 한국 기업들의 베트남 투자는 250억 달러(누계 기준)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투자 프로젝트만 하더라도 3180건에 이를 만큼 한국 업체들의 베트남 진출은 대세를 이루고 있다. ●경쟁력 있는 임금·풍부한 인력 강점 베트남에 많은 외국계 기업이 몰려드는 이유는 경쟁력 있는 임금과 풍부한 인력이다. 지난해 베트남인 생산직의 초임은 150달러(약 16만원)로 중국의 3분의2 수준이다. 또 인구의 60%가 35세 미만인 젊은 인력이다. 실제로 한국 기업의 활발한 베트남 진출도 이 때문이다. 베트남의 한국 기업 절반가량은 현지의 풍부한 저임금 노동력을 활용하는 노동집약적 중소 제조기업이다. 최근엔 베트남에 진출하는 한국 기업의 성격이 달라지고 있다. 전자·화학·에너지 등 대기업들의 진출도 눈에 띄게 늘었다. 조영태 지식경제부 수출입과장은 “한국은 오토바이 헬멧부터 이불, 휴대전화, 빵집까지 베트남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깊이 자리잡고 있다.”면서 “한국 기업들이 일자리 창출과 인프라 건설부터 각종 사회 공헌 활동에 이르기까지 한국을 알리는 민간 외교 대사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베트남에 진출한 3000여개의 한국 기업들은 남부 동나이, 서북부 선라, 동북부 닌빈 등 거의 모든 지역에 골고루 포진해 있다. 자영업체들이 많이 진출한 하노이와 호찌민시 등 대도시는 물론 중소도시에서도 한국인 상점 간판이 쉽게 눈에 들어올 정도다. 북부 박닌성 옌퐁공단에 세계 최대 규모의 휴대전화 단말기 공장을 운영하는 삼성전자 베트남 생산법인(SEV)은 올해 120억 달러의 수출을 달성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는 베트남의 올해 전체 수출 1150억 달러의 10% 선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액수다. 특히 SEV는 지난해 베트남 수출 1위인 국영기업 ‘페트로베트남’을 추월하면서 베트남 최대의 수출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내수시장 잠재력에 유통기업 진출 가속화 섬유와 의류 등의 업체 역시 수출이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다. 대부분 베트남 외곽지역에 진출한 한국 의류·섬유업체들은 수천명씩을 고용해 베트남 일자리 창출의 1등 공신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내 분양시장 침체로 고전하는 건설업계에서도 대우건설을 비롯해 부영, 경남, 포스코건설 등 대형업체를 중심으로 약 25개 기업이 진출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대우건설은 지난달 수도 하노이에서 총 63만평 규모의 ‘스타레이크시티 신도시 개발사업’ 1단계 공사를 시작했다. 베트남 내수 시장의 잠재력을 본 유통 기업들의 진출도 활발해지고 있다. 롯데는 지난달 베트남에 롯데마트 3호점 문을 열었고 롯데리아는 하노이와 호찌민, 하이퐁 등 전국에 130개 점포를 개설했다. CJ의 빵집 뚜레쥬르는 베트남 28호점을 운영 중이다. 또 롯데호텔은 올해 호찌민의 5성급 레전드호텔을 약 1억 달러에 인수하는 등 베트남 진출을 가속화하고 있다. 경제교류가 큰 폭으로 늘면서 해결해야 할 과제도 생겨났다. 만성적인 무역 불균형과 불법체류 근로자 문제 등은 당장 양국 정부가 머리를 맞대야 할 현안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올 1~10월 베트남의 한국 수출은 47억 1200만 달러, 수입은 129억 3300만 달러로 82억 2000만 달러의 무역적자가 발생했다. 무역적자는 1992년 수교 첫해부터 올해까지 20년간 이어졌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양국의 무역 불균형 문제를 버려두면 지난 8월 개시한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며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실제 베트남 언론과 일부 업계에서 2009년 9월 발효된 한국·아세안 FTA로 인해 무역 불균형이 극도로 심화했다며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김종상 코트라 신흥시장팀 과장은 “무역 불균형을 없애기 위해 베트남의 농산물 일부를 수입하는 방안이 좋다.”면서 “이미 칠레산 포도나 미국산 오렌지 등 과일이 수입되고 있기 때문에 국내 영향도 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즉, 쌀 등 민감 품목은 개방 대상에서 제외하더라도 국내에서 생산되지 않는 열대 과일은 과감히 수입규제를 푼다면 고질적인 무역 불균형을 어느 정도 없앨 수 있다는 것이다. ●“농산물 수입 등으로 무역 불균형에 도움을” 또 국내 취업 중인 베트남 불법체류 근로자 문제도 서둘러 처리해야 할 당면과제다. 올해 우리 정부는 불법체류율 증가를 이유로 베트남 인력 수입을 금지했다. 또 베트남에서 매년 실시되던 한국어능력시험도 올해 처음으로 중단했다. 베트남 근로자의 불법체류율은 지난 10월 말 기준으로 27.6%로 전체 외국인력의 평균치 23.1%보다 다소 높은 편이다. 그러나 베트남 출신이 다른 국적 근로자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1만 6576명인 점을 고려할 경우 결코 가벼이 넘길 사안이 아니라는 게 우리 정부의 생각이다. 정부 관계자는 “불법 체류자 관련 사안은 법무부 등 치안 당국까지 얽혀 있는 문제라 풀기가 쉽지 않다.”면서 “베트남 정부와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그래픽 이혜선기자 okong@seoul.co.kr
  • 이념·지역 갈등 치유… 경제·민생회복에 머리 맞대야

    이념·지역 갈등 치유… 경제·민생회복에 머리 맞대야

    18대 대선이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승리로 끝났다. 이제부터는 정부와 정치권, 국민들이 힘을 모아 대선 기간 깊어진 지역, 세대, 이념에 따른 분열을 치유하고 깊이 주름진 민생을 회복시켜야 한다. 새누리당 박근혜,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간 승부가 막판까지 치열한 선거전이 됐기 때문이다. 그만큼 후유증도 크고 치유해야 할 일도 많다. 정치, 외교, 경제, 사회 분야의 과제가 첩첩산중 격이다. 특히 이번 선거는 이례적으로 ‘범보수연합’과 ‘범진보연합’이 총결집해 세 대결을 펼치면서 양측은 상대를 칭찬하고 배려하기보다는 서로 흠집 내기 위한 비난전을 선거 당일까지 치열하게 벌였다. 전문가들은 19일 서둘러 냉정을 찾고 일상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주문했다. 새 정부는 심화된 양극화를 치유하고 국회와 대화를 통해 성장 잠재력을 높일 방안을 찾으라고 촉구했다. 사회적 분열상을 봉합하는 과정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대선 후유증을 최소화해 사회 통합을 이루려는 노력이 우선 필요하다. 반대 진영에 있는 사람들만 끌어안는 좁은 의미의 통합이 아니라 국민 모두를 아우르는 통합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면서 “경제적 양극화가 최대 과제다. 당선자가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번 대선에서는 20~40대와 50대 이후가 대결을 펼치며 세대 간 갈등의 골도 깊어졌다. 이러한 세대 간 대결의 상처와 문제점에 대해서도 당선자가 서둘러 치유책을 모색해야 할 상황이다. 대선 기간 주요 화두였던 경제민주화 해법 마련도 중요하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경제민주화가 중요할 것이다. 경제민주화는 경쟁 세력과 소통하고 협력하면서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의 정치 불신이 탄생시킨 ‘안철수 현상’에서 보듯이 정치권의 신뢰 회복도 최우선 과제 중 하나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정치에 대한 신뢰, 정권에 대한 신뢰부터 회복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치 개혁이 중요하다. 대통령의 권력을 분산시키기 위한 개헌 등 정치 개혁이 임기 초에 이뤄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치권 스스로의 개혁을 통해 사회적 과제 해결에 나서라고도 요구했다. 정치권은 새 정치 비전도 서둘러 내놓아야 한다. 대선 기간 최대 화두였던 안철수 현상은 기성 정치에 대한 국민의 준엄한 경고였다. 제1당인 새누리당이나 2당인 민주통합당 양측 모두 국민의 압박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기득권 내려놓기 등의 개혁 조치를 서둘러 단행해야 할 때다. 가상준 단국대 교수는 “정당은 공천 등 여러 가지 특권을 내려놓아야 한다. 정권이 국회를 장악하려 한 것도 문제였다. 정권이 국회를 잘 설득해 국민의 실망을 줄여 가야 한다.”고 대화 정치 복원을 강조했다.세계 경제 위기에도 효율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당면 과제는 일자리 창출과 가계 부채 해결이다. 특히 대외 경제 환경이 좋지 않다. 수출 환경 악화를 잘 관리하면서 잠재성장률을 높일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성장 담론 회복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신광영 중앙대 교수는 “저출산과 고령화는 시급히 대응책을 마련해야 하는 문제다. 이대로는 노동력 공급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진단했다. 남북 문제 등 대외 환경 변화에도 주목해야 한다.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한반도 주변 4강 모두 올해 정권 교체가 있었기 때문에 새해에는 새 정부에 의해 펼쳐질 외교 전략이 충돌할 개연성도 적지 않다. 이춘규 선임기자 taein@seoul.co.kr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글로벌 시대] 중국 새지도부의 당면과제/류진즈 베이징대학 교수

    [글로벌 시대] 중국 새지도부의 당면과제/류진즈 베이징대학 교수

    지난 11월 중국 공산당 제18차 대회에서 이뤄진 리더십 교체를 계기로 새 중국 지도부와 중국의 행보에 세계적인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력의 급신장 속에서 중국은 성공적인 경제성장의 모델로 글로벌 사회의 벤치마킹 모델이 됐고, 경계와 두려움의 대상으로 변했다. 새로운 중국 지도부는 어떤 과제와 문제들에 직면해 있고, 어떤 목표와 능력을 갖고 있을까. 새 지도부는 국내외적으로 심각한 어려움과 도전에 맞닥뜨려 있다. 글로벌 경제위기로 세계 경제는 부진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채 경제를 옥죄며 성장 동력을 떨어뜨리는 상황이다. 미국과의 관계도 미묘한 갈등 상황으로 접어들고 있다. 아·태지역으로의 귀환을 외치며 주변 상황에 개입하면서 중국을 압박하고 있는 미국을 어떻게 설득하여 갈등의 폭과 깊이를 줄여나갈 수 있을까. 새로운 관계의 플랫폼을 만들고 상호 이익의 지혜와 먼 앞날을 내다보는 비전이 필요한 시점이다. 국내적으로도 산 넘어 산이다. 새 지도부는 분출하는 국민들의 요구와 높아진 기대 의식을 만족시켜 줘야 하는 압박 속에 있다. ‘빈부 차이를 줄이고, 평등하고 공정한 분배 구조와 사회를 만들라’는 국민적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 새 지도부의 최우선적인 당면과제다. 2012년 여러 여론조사나 신화사가 전국인민대표대회 및 정치협상회의에서 실시한 최우선 과제 조사도 이를 보여준다. 2010년 통계로 도시 주민의 소득은 일인당 1만 9109위안인 데 비해 농촌은 5919위안에 불과했다. 나라가 부유해지고, 경제적 실력이 늘어나는 만큼 도리어 빈부격차는 더 벌어지면서 사회정의를 손상시키고, 저소득층의 노동 의욕과 사회적 일체감을 심각하게 깎아 먹고 있다. 사회안정을 흔들고 집권세력의 정당성이 약화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국가 발전에 공헌한 노동 인민과 국민들은 그 혜택을 충분하게 누리지 못하는 역설 속에 살고 있다. 제18차 당대회에서 국민소득을 2020년까지 두 배로 늘리고, 전면적인 ‘소강사회’(小康社會)를 건설해 나가겠다는 목표를 세운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세계 두 번째 경제체제라지만 연해 지역을 제외한 대부분은 아직 저개발 지역이다. 소외된 저개발 지역이 수두룩하다. 이들의 소득을 끌어올리려면 앞으로도 지속적인 고속성장이 필요하다. 중국의 개혁개방은 끝난 것이 아니라 지속되어야 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중국 경제가 고속성장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발전 방식을 바꿔야 한다. 생산요소의 과다한 투자, 낮은 효율성, 환경과 노동력의 희생 등이 그동안 경제성장의 특징이었다. 이런 방식으로는 지속 성장이 불가능하다. 수출주도의 성장에서 내수와 국내소비를 촉진하는 방향으로의 전환이 시급하다. 중국인들의 싹쓸이 쇼핑이 전 세계적으로 화제라 중국인들 모두의 씀씀이가 클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대다수 중국인의 소비 행태는 그렇지 않다. 시장화의 진전 속에 사회보장제도를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대부분은 소득이 높지도 못해 가처분 소득은 한정적이다. 폭등하는 의료비 등 사회보장 비용, 퇴직 후 준비, 자녀교육비 등 일반 중국인들의 어깨는 무겁기만 하다. 소득 예측도 불안정해 미래에 대한 자신감과 소비지수 등도 낮은 수준이다. 지속적인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공평한 분배와 조화로운 국내환경이 필수적이다. 사회적 모순과 갈등이 경제발전의 발목을 잡는 것은 당연하다. 사회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지불하는 비용이 이미 국방비를 넘어서고 있다. ‘부패가 사회화됐다’고 할 정도로 심각하게 뿌리 내린 부패 고리를 끊어야 하는 것도 절박한 과제이다. 부패는 정치 체제와 사회 안정을 흔드는 암적 존재이다. 중국은 ‘돈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사회로 되어가고 있는 걸까. 이를 막고, 대부분이 의식주의 고민에서 벗어난 ‘소강사회’라는 국가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비장한 각오와 엄숙한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다.
  • 패전국 일본의 피해망상, 극우 망령을 낳다

    패전국 일본의 피해망상, 극우 망령을 낳다

    “패전 후 북한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한 대표적인 놀이 중에 ‘마담 다바이’와 ‘야미부네곳코’가 있다. 마담 다바이는 러시아어로 ‘부녀자를 내놓으라.’는 뜻으로 소련군이 일본인을 협박할 때 항상 내뱉던 말인데, 이것이 어느새 아이들의 놀이 소재가 됐다. 놀이 방식을 보면 사내아이들이 나무로 깎은 권총을 쥐고 ‘마담 다바이, 다바이.’라고 외치며 여자아이들을 쫓아가 둘러싸는 것이다. ‘야미부네곳코’는 일종의 촌극놀이로, 직역하면 도둑배놀이라는 뜻이다. 일본인이 몰래 배낭을 메고 도둑배에 올라타면, 이내 사이렌이 울리고 조선인 보안대원이 나타나 배를 둘러싸고 밀항자를 체포하는 모습을 흉내낸 놀이였다.” “남한의 일본인보다 불쌍한 북한의 일본인, 북한의 일본인 중에서도 제일 불쌍한 만주 피란민이라는 등식은 일본 귀환항에 도착하는 순간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다. 단적인 예로 해외 일본인들은 점령군으로부터 ‘선량한 처자’를 지키기 위해 게이샤와 창기들로 위안대를 삼고자 했으나 본토에 도착한 순간 결국 모든 부녀자는 외지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똑같은 취급을 받았다. 사춘기 소녀부터 폐경기의 부녀자까지 귀환항 트랩에 올라 부인과 검사대에 눕는 순간, 이들은 동포로부터 받는 멸시와 차별이 얼마나 깊은 상처로 자리잡는지 절감했다.” 이 문제는 곤혹스러운 점이 있다. 결국 지배, 억압, 통치, 전쟁은 그것으로 이득을 누리는 몇몇을 제외하고는 그 어느 누구에게도 행복한 기억일 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일본의 문제라면 달라진다. ‘일본인 역시 피해자’라고 하는 순간 ‘아니, 그놈들이 한 짓이 있는데 그까짓 몇 가지 예외적인 것 때문에 징징댄단 말인가?’라는 반론이 툭 튀어 나온다. ‘화냥년’을 떠올리게 하는 ‘히키아게샤’(引揚者·전후 일본으로 돌아온 귀환자)의 처지건만, 이런 고민에 대한 반론 역시 박근혜식 한마디면 끝이다. “위안부는요?” 이러니 2차대전 말 일본 국내외의 비참한 풍경을 묘사한 일본 애니메이션 ‘반딧물의 묘’, 미국 영화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같은 작품들이 한국에선 친일이라 비판받고 개봉을 못하기도 한다. 만약 다른 시대, 다른 나라, 다른 전쟁 이야기였다면 어땠을까. 이미 1980년대부터 유통됐음에도 역사교과서 왜곡 파동 와중에 이슈로 적극 부각된 ‘요코 이야기’도 매한가지다. 그래서 1945년 8·15 ‘패전’ 이후 일본으로 귀환하는 사람들의 얘기를 담은 ‘조선을 떠나며’(이연식 지음, 역사비평사 펴냄)도 ‘역사 논픽션’임을 내세워 1차적인 담담한 서술에 주안점을 뒀다. 패망의 설움(?) 속에서 살아 남아야 했던 그들의 상황과 기억을 고스란히 쫓아갔다. 세 가지 점이 흥미롭다. 첫째, 늘 성가신 일본 우경화에 대한 조금 다른 각도의 대응법이다. 한일관계사 전문가인 저자도 일본인의 책임을 캐묻는다. 자기들의 피해만 과대포장하고 평화주의 운운하는 것은 위선적이라는 얘기다. 이 부분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해방 당시 원산중학교 학생이었던 가사이 히사요시라는 사람이 남긴 회고록이다. 가사이는 이 책에다 자기가 살았던 원산의 지도를 그려 뒀는데, 일본인들이 살던 원산부는 건물의 모양, 위치, 골목 이름 등이 상세히 묘사되어 있지만 한국인들이 살던 원산리는 그냥 먼 풍경으로 지붕 몇 개 대충 그리다 말았다. 해방 이전 일본인에게 조선인은 있지만 없는 존재였다는 의미다. 요즘 유행어로 번역하자면 일본인의 심상지도 속에서 조선인은 서발턴(subaltern·하위주체)이었다. 그러니까 일본인의 고통은, 눈 깔고 굽신대며 소리없이 오가던 조선인들이 어느 순간부터 허리를 쭉 펴고 똑바로 쳐다보고 자기 목소리를 내는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던 때부터 시작됐다. 지배와 가해에 직접 가담하지 않았더라도 지배와 가해로 인한 이득의 기반 위에 서 있던 일본인 개개인이 가진 기억은 어쩌면 이런 일정한 한계 속에 갇혀 있기도 하지만, 그래서 더더욱 충격적이었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분명 일본인의 피해와 한국인의 피해는 수준과 차원이 다른 문제지만, 그럼에도 일본의 우경화를 막기 위해 한국의 피해를 강조한 것 못지않게 일본인 너희 자신에게조차 결코 이로울 바가 없다는 것을 명백히 알려줄 필요가 있다.” 일본의 일자만 나와도 분개하는 한국인들이 흔히 내놓는 누구 피해가 더 큰가, 누구의 피해가 더 본질적인가라는 논점에 대한 비판으로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조선인의 피해가 더 본질적이었다고 연신 강조해두는 저자가 마지막 장 제목을 ‘가해와 피해의 이분법을 넘어서’로 붙인 까닭이 여기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두번째는 지금 현재 일본 우익의 내면풍경이다. 2차대전 당시 미국과 소련의 국력 차이는 점령군으로서의 태도 또한 차이나게 만들었다. 부유했던 미국은 일본인들의 조용한 원상복귀만 추진했던 반면 후진국이었던 소련은 만주와 북한에 있는 일본인 고급 노동력과 산업시설을 활용할 욕심에 사로잡혔다. 지금도 시베리아에는 이들의 강제노역으로 지어진 시설물들이 있다. 이때 동원된 이들은 지금 일본 우익 세력의 할아버지뻘 되는데, 지금 일본 우익 세습 정치인에게 러시아, 공산주의, 북한이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을는지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마지막으론 제국의 영광을 내걸었던 이들의 남루한 뒷모습이다. 이는 패전 직후 조선 내 일본사회 지도층의 구질구질한 행적에 대한 묘사에서 아낌없이 드러나 있다. 여기서 그치는 게 아니다. 저자는 책 후반부에 1962년 20만통의 항의 편지가 일본 총리실에 날아들면서 벌어지는, 해외 귀환자 배상문제를 둘러싼 일본 국내의 법적 논쟁을 다뤘다. 역시 국가와 민족의 이름을 강하게 내걸수록, 엉터리 사기극일 가능성은 더 높아진다. 1만 48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서울광장] 과거 부정과 세대 갈등/오승호 논설위원

    [서울광장] 과거 부정과 세대 갈등/오승호 논설위원

    다수 2030세대들이 안철수 전 후보에게 열광했던 것은 사회학적으로 보면 세대 간의 갈등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정권교체’ 같은 구호에 별 관심이 없다. 새누리당이든 민주통합당이든 기성 정치인은 무조건 싫어하는 이유는 간명하다. 부모 세대에 비해 좋은 환경에서 공부도 많이 했는데 왜 취직이 안 되느냐는 것이다. 그가 대통령이 되면 직장 구하기가 지금보다는 쉬워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갖고 있는 것이다. 과거 굴뚝산업이 노동력을 많이 필요로 했던 것과는 달리 정보사회에서는 소수의 핵심 고급 인재 위주로 노동시장이 재편되면서 일자리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4년제 대학의 평균 취업률이 55.9%이니, 두 명 중 한 명은 백수가 되기 쉽다. 우리의 진정한 미래인 젊은이들은 세대 간 불평등으로 화가 잔뜩 나 있다. 대통령 선거일을 불과 보름 남겨놓고도 후보들이 너나없이 과거 부정에 몰입해 걱정이다. 젊은 세대들이 이 나라를 이끌어 가겠다는 후보들의 ‘과거 싸움’을 보면서 무엇을 배울 것인지 후보들은 가슴에 손을 얹고 곰곰 생각해 봐야 한다. 사회 경험이 없는 자식 세대에게 미래에 나아갈 길을 제시하지는 못할망정 과거는 잘못됐다고 폄하만 한다. 이런 행태가 세대 갈등만 더 키울 뿐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듯하다. 과거 싸움만 하다가 미래를 설계할 공약집 하나 내놓지 못해서야 될 말인가. 일자리 문제가 아니라도 기성세대와 미래세대 간 충돌이 불가피한 사안들이 적지 않다. 저출산 고령화로 인해 올해는 생산가능인구(15~64세) 6.2명당 노인 1명을 부양하고 있지만, 오는 2040년에는 1.7명당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때 가서 미래세대들은 무엇이라고 할 것인가. 과거세대가 아무 생각 없이 살다가 후손들에게 무거운 짐만 물려줬다고 원망할 것이다. 저출산 고령화 대책은 1990년대에 이미 추진했어야 했는데 때를 놓쳤다는 지적이 나올 만큼 화급하다. 국민연금 고갈을 막기 위한 연금 개혁이 실패라도 한다면 차세대들의 고통은 말할 수 없이 클 것이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것은 자연적인 현상이고, 자녀가 부모를 사랑하는 것은 인간적인 현상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치매에 걸린 부모의 기저귀를 갈아주면서 느끼는 연민이란다. 이런 아름다운 사랑은 후손들에게도 이어져야 한다. 로런스 J 코틀리코프와 스콧 번스는 공저 ‘세대충돌’(CLASH OF GENERATIONS)의 ‘몰려 오는 세대폭풍’ 편에서 미국 행정부와 의회가 앞으로 10년간 부자 증세 등으로 세수를 2조 5000억 달러 늘려 재정 적자를 줄이는 데 쓰기로 합의한 것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미국이 필요로 하는 것은 세대 간 균형이고 지금 세대와 훗날 세대 사이의 평화인데, 이는 재정 적자를 더 줄여야 이룰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2조 5000억 달러가 아닌 20조 달러 정도 재정을 조정해야 하는데 미래 세대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하게 하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는 것이다. 미국의 기성세대들이 자신들과 자식들에게 한 일을 생각하면 미국은 통째로 나사가 빠졌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도 생산가능인구가 2016년을 정점으로 줄어들게 되면 성장률이 떨어질 여지가 많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내놓은 복지공약을 시행하려면 5년간 220조~340조원의 예산이 필요하다고 한다. 미래 세대의 재정 부담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표만 의식한 나머지 무턱대고 과거를 부정해 신구세대 간 갈등을 조장하는 정치권의 행태는 달라져야 한다. 보수세력이든 진보세력이든 나라의 미래를 위해 견지할 가치가 있는 정책은 인정하고 칭찬해야 한다. 우리가 본받아야 할 선조들의 삶의 지혜가 얼마나 많은가. 폐족(廢族)의 실세니, 빵점 정부의 공동책임자니 같은 과거부정형 헐뜯기를 하면서 소통이나 사회통합을 외치는 정치권에 2030세대들이 화나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보기 바란다. osh@seoul.co.kr
  • [사설] 무역 2조달러 새 이정표 세우려면

    우리나라가 작년에 이어 올해도 연간 무역규모 1조 달러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장기 침체돼 있던 수출이 10, 11월 두 달 연속 증가한 데다, 11월 수출 규모가 477억 9500만 달러로 올들어 최고치를 기록한 데 힘입은 것이다. 올해는 이탈리아를 제치고 처음으로 세계 무역 8강 진입이 예상된다. 글로벌 경제위기와 불황 속에서 일궜기에 더욱 값진 실적으로 여겨진다. 다만 화려한 외형적 기록 속에 무역구조의 질을 찬찬히 뜯어 보면 그리 튼실하지 않다. 과거에 비해 우리 기업 경쟁력이 개선된 분야도 적지 않지만 무역 호조세가 일부 품목에 편중돼 있는 점은 한계다. 지난달 수출은 전기전자·석유제품·자동차에 집중돼 있고, 전통적 수출효자인 선박 수출은 무려 27% 감소했다. 휴대전화 수출도 해외생산이 늘면서 23.7%나 줄었다. 수출 증가율은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28.6%, 중국 10.7% 등 주로 아시아 지역에서 높았고 미국과 유럽연합(EU), 중남미 지역 수출은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자동차 등에서 중국 등과의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최근 불황 탓에 성장 유지 전망도 녹록지 않은 실정이다. 세계 무역 8강 진입은 우리가 잘한 점도 반영됐겠지만 이탈리아를 비롯한 다른 나라들의 무역실적이 저조한 영향도 크다. 최근 들어 심해지고 있는 보호무역주의 경향을 보면 우리 수출여건이 갈수록 악화될 것 같다. 2020년 무역규모 2조 달러 목표를 달성하려면 우리 경제가 근본적인 변화를 도모해야 한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하고 중소기업의 수출 기여를 더욱 높여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2조 달러 달성의 걸림돌로는 노동력 고령화, 빈부 격차, 대기업 의존도가 꼽히고 있다. 대선과정에서 과열되기도 했으나, 경제민주화는 성장과 조화를 이루면서 추진해야 할 우리의 당면 과제임은 분명하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 중소기업의 인력 부족 현상 극복 등에도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 [열린세상] 인생 100세 시대에서의 행복 방정식/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열린세상] 인생 100세 시대에서의 행복 방정식/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복지문제와 관련해 해외출장이 잦은 필자가 최근 들어 느끼는 점은 10여년 전에 비해 복지 선진국들이 우리를 대하는 태도가 많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자국 내의 복지 논란과 관련해 ‘한국 너희는 지금 어떻게 하고 있고 전망은 어떠하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과거의 무시 대상에서 관심의 대상으로 우리가 올라선 것만은 틀림 없어 보인다. 신흥국 중 유례를 찾기 어려운 높은 경제성장과 민주화 달성이 이런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배경인 것 같다. 그러나 밖에서는 이처럼 우리를 부러워하며 따라오려 하는데, 정작 우리는 예전만큼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그리고 국민의 행복도가 낮다 보니 더욱더 복지문제가 시대적 화두가 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요즘 화두로 등장하는 선진국형(스칸디나비아 유형) 복지제도를 도입하면 우리 국민들의 낮은 행복도가 획기적으로 올라갈 수 있을까. 참고로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국가부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50% 내외다. 이들 국가의 공통점은 고복지 제도를 운영하지만, 당대 세대가 그만큼 부담하면서 제도를 이끌어 나간다는 점이다. 2000년대 초까지 우리의 롤 모델이었던 일본은 어떠한가. 장기간의 경기침체와 노인인구 급증으로 일본의 국가부채는 이미 GDP 대비 200%를 넘었다. 1990년대 초만 해도 30% 초반이던 것이 20년 사이에 6배 이상으로 급증한 것이다. 웬만한 국가라면 이미 국가부도 위기를 여러 번 겪었을 규모지만, 일본은 그나마 전 세계 경제를 호령하면서 쌓아놓은 막대한 자산이 있어 버티고 있다. 많은 부분에서 일본과 유사한 우리나라의 20년 후는 어떠할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등에서 식은땀이 난다. 지금 우리는 역사상 최대의 인구 보너스 기간을 누리고 있다. 1955년부터 1963년 사이에 출생한 약 760만명의 양질 노동력이 은퇴를 앞두고 마지막 몸부림을 치고 있는 시점이다. 이들이 노동시장에서 모두 떠나갈 때 우리는 끔찍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로 대표되는 적은 부양인구가 우리 역사상 최대 규모의 노인집단을 부양해야 하기 때문이다. 2040년 우리나라 전체 인구 중 38%가 65세 이상 노인이 될 것이라는 전망은 국가의 존립 차원에서도 심각한 상황이다. 우리 역사상 최대 인구 보너스 기간인 지금도 65세 이상 노인 500여만명을 제대로 부양하지 못해 쩔쩔매는 상황에서 65세 이상 인구가 3∼4배 늘어나는 미래에는 어찌할 것인가. 우리가 서구식의 복지국가 모형을 도입하면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까. 일본처럼 되지 않기 위해 지금보다 두 배 이상의 세금 부담을 전제로 높은 수준의 복지를 하면 국민들의 행복도가 획기적으로 올라갈 수 있을까. 우리 역사상 나라의 위상은 가장 좋아 보이지만 국민의 삶의 만족도는 가장 낮은 이 상황에서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은 어디인가. 갈수록 심화되는 소득 양극화 문제가 정부의 정책적인 노력으로 어느 정도 해소된다 할지라도, 그것이 과연 국민의 낮은 행복도를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을까. 그럴 가능성이 낮다는 쪽에 한 표를 던지고 싶다. 무엇보다 경제적으로 상당히 풍족한 사람들도 이런저런 이유로 삶의 만족도가 높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개인이 느끼는 행복도가 ‘물질적 소비수준’과 ‘행복에 대한 주관적인 기대치’에 좌우된다고 할 때, 지금까지 우리는 ‘행복에 대한 높은 기대치’를 달성하기 위해 물질적인 소비를 늘리는 방향으로 전력을 다해온 것 같다. 그러나 인생 100세 시대를 조만간 맞게 될 지금 행복에 대한 우리의 가치기준을 조금은 바꿔야 할 때가 된 듯하다. 물질적 소비수준을 높이려는 노력만큼이나 ‘행복에 대한 높은 기대치’를 낮추는 쪽으로 우리의 행복방정식을 바꿔 나가야 하는 것이다. 물론 최소한의 전제조건이 있다. 제 아무리 노력해도 최소한의 생활 유지조차 어려운 사람은 정부가 적극적인 정책 노력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개개인이 노력한 만큼은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수 있도록 사회적 합의를 통해 갈등을 치유할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 귀국선은 오지 않았다…조국은 사할린을 버렸다

    귀국선은 오지 않았다…조국은 사할린을 버렸다

    “귀국선은 오지 않았다. 1945년 전쟁이 끝난 뒤 사할린에는 ‘이제 곧 귀국한다’, ‘조선인이 먼저 떠난다’는 소문이 퍼져 있었다. 그러나 모든 것은 속임수에 지나지 않았다. 1949년 7월 23일 마지막 일본인들을 태우고 간 귀국선 ‘운센마루’는 돌아오지 않았다.” 파란 수평선 너머로 사라진 귀국선을 하염없이 기다리던 열여덟 살 청년. 그는 이제 팔순의 노인이 됐다. 경기 안산시 고향마을 영주귀국노인회의 고문 성점모(81)씨는 “일본에 가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말에 속아 러시아 사할린(당시 일본령)으로 끌려간 강제동원 피해자 1세대의 후손이었다. 2010년 12월 가까스로 아버지의 나라에 돌아왔지만 망향의 설움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일본은 “1965년 한·일 협정에 따라 사할린 동원자의 재산권은 소멸했다.”며 보상을 거부했다. 우리 정부는 일본의 버티기에 별다른 힘을 쓰지 못했다. 참다 못한 사할린 강제동원 피해자와 유족 2295명은 지난 23일 “국가가 사할린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배상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성씨는 이 자리에서 사할린 동포들의 수난사를 기록한 수기 ‘망향의 반세기, 사할린 동포의 눈물 젖은 과거’를 서울신문에 제공했다. 성씨의 아버지는 하루 12시간 넘게 도로 건설에 노동력을 착취당했지만 우편저금 등의 명목으로 빼앗긴 임금을 돌려받지 못했다. 수기에는 한인들의 고통과 분노가 생생하게 기록돼 있다. “하루 한 줌도 안 되는 콩밥과 간한 청어 한 토막으로 2년을 버텼다. 분노를 참지 못해 반항하면 아이구… 때리고 또 때리고 죽도록 얻어맞았다.”(사할린 탄광에서 일했던 이기복) “어렸을 때 그물로 멸치를 잡던 일이 어제 같다. 그 멸치를 삶은 국물에 국수를 말아 먹으면 왜 그렇게 맛이 있던지.… 한 번이라도 가봤으면 한다.”(노동에 시달리다 현지에서 사망한 울산 출신 김길용) 광복 이후에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황국신민화정책’을 통해 일왕에 충성을 강요했던 일제는 전쟁이 끝나자 사할린 동포들의 국적을 박탈한 뒤 모르쇠로 일관했다. 소련은 노동력 확보를 위해 이들을 억류했다. 그들의 모국은 힘이 없었다. 동포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소련 국적을 취득하거나 무국적자로 남았다.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배상의 길이 열리는가 했지만 사할린 문제는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성씨는 “그때 ‘조선이라는 것은 잊어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제서야 모국에 대한 그리움을 잠시 접고 러시아어를 배워 모스크바 법과대학에 들어갔다. 그러나 모국 대신 생존을 택한 이들을 새롭게 가로막은 것은 이념 갈등이었다. 북한과 소련은 한국 정부와 교류가 없었다. 사할린 동포들은 일본과 소련에서 귀향 운동을 시작했다. 경기도 출신 도만삼씨는 1977년 소련 공산당위원회 앞에 가서 “한국으로 보내 달라.”고 외쳤다. 소련은 어쩐 일인지 “귀국 준비를 하라.”고 답했다. 그러나 배를 타고 도착한 곳은 두만강 기슭이었다. 북한 장교가 ‘환영 인사’를 건넸을 때 도씨는 충격에 휩싸여 기절했다. 성씨는 “도씨 등 조선인 40명이 북한으로 추방된 뒤 한인사회는 공포에 휩싸여 귀향에 대한 말은 입 밖에도 낼 수 없었다.”고 적었다. 귀향의 꿈은 1980년대 고르바초프가 소련 사회를 개방한 뒤에야 찾아왔다. 1990년 6월 제주도에서 사상 처음으로 한국과 소련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있었다. 그해 한국 가수들이 찾아와 사할린에서 위문 공연을 가졌다. 성씨는 “너무 늦었지만 드디어 잃었던 모국을 찾았다.”면서 “백발이 성성한 노인들이 눈시울을 적셨다.”고 회고했다. 1992년부터 영주귀국 사업이 시작돼 지난 3월까지 4000여명의 동포 및 배우자, 장애 자녀가 귀국했지만 망향의 한은 지워지지 않았다. “남한 노인들이 말하더군요. ‘사할린 동포들은 사할린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나랏돈을 받는다’고. 나라를 잃고 설움 속에 헤맨 우리들의 고통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배경헌기자 bae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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