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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설가 이문구(작가를 찾아:4)

    ◎“사회밑바닥 경험이 내 문학의 바탕”/9살때 남로당출신 부친­형들 잇따라 피살/고아로 무작정 상경­행상·막노동 닥치는대로/김동리 선생이 「노가다판 문장」 인정해줘/중학때 떠난 고향 72년 「관촌수필」통해 귀향 「그녀는 별쭝맞게도 눈치가 빨라 무슨 일에건 사내 볼 쥐어지르게 빤드름했고 귀뚜라미 알듯 잘도 씨월거리곤 했는데,남좋은 일에는 개미허리로 웃어주고,이웃의 안된 일엔 눈물도 싸게 먼저 울어댔으며,욕을 하려 들면 안팎 동네 구정물은 혼자 다 마신듯이 걸고 상스러웠다」(연작소설 「관촌수필」중 「녹수청산」에서) 작가 이문구(55)씨의 글은 누가 봐도 이문구답다.능수버들처럼 척척 늘어지고 휘감기는 문장,어지러울 정도로 넘쳐나는 토박이말과 사투리.마치 판소리 사설을 되살린 듯한 이문구 소설의 생명력은 무엇에서 나올까. 그 비밀을 찾아나선 날은 꽃샘추위로 바람이 거칠고 하늘은 잔뜩 찌푸린 3월 중순이었다.작가는 마침 고향인 충남 보령시 청라면 장산리 그의 「작업실」에 있었다.청라저수지를 낀 언덕배기 빨간 벽돌집에는 어엿한 당호는 커녕 문패조차 없었다.주인을 암시하는 건 「문학의 해」를 알리는 스티커뿐이었다. ○판소리 사설 문제 이씨는 『한달에 20일쯤은 작업실에 있어야 글을 좀 쓰게 된다』면서 『지난 겨울엔 거의 들르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문학의 해」집행위원회 홍보·출판 분과위원장,계간 「한국소설」편집위원장 등 맡은 일이 많아 수시로 불려다니기 때문이라는 것.문단의 공식행사건,문인들이 초상을 치루는 사사로운 자리건 남들은 으레 그가 끼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고 본인도 즐겨 뒤치다꺼리를 맡는다. 그는 지난 89년 고향에 작업실을 마련했다.10년 넘게 앓던 위궤양에 간염까지 겹쳐 심신이 만신창이가 된 상태였다.가족을 서울에 남기고 요양하러 혼자 내려온 지 3∼4년만에 건강을 완전 회복해 이제는 글쓸 때만 이곳에서 보낸다.그가 태어나고 「관촌수필」의 무대가 된 관촌(갈머리,지금의 보령시 대관동)마을하고는 산하나 너머 거리로,원래 일가붙이가 비우고 간 오두막을 친구들이 개조해 주었다고 한다. 그의 귀향은 여느 사람들의 그것과는 의미가 전혀 다르다.고향이라면 흔히 어머니의 품처럼 여기지만 이씨에게 고향이란 「견딜 수 없어 도망쳐 나온 끔찍한 곳」에 불과하다. 이씨는 대대로 벼슬을 한 집안의 넷째 아들로 태어난다.8순인 할아버지는 「조선조 마지막 유생」같은 분,아버지는 신식 지식인으로 남로당 보령군 총책을 맡고 있었다.그가 아홉살 때 「6·25」가 터지자 아버지는 예비검속돼 피살되고,형들도 「빨갱이 자식」이란 이유로 살해당한다.할아버지·어머니도 잇따라 세상을 떠나 이씨는 고아가 된다. ○서양식 작법 무시 중학을 마치고 농사를 짓던 이씨는 59년 무작정 상경한다.그는 당시를 『가족을 빼앗아간 저주스러운 땅에서,「빨갱이 자식」이라는 주위의 눈총을 받아내기가 어려웠다』고 회상했다.서울에서는 좌판·행상·막노동을 닥치는대로 했다.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선비기질,농촌과 도시 밑바닥생활에서 얻은 경험,거기에 「6·25」에 대한 참혹한 기억은 이후 이문구문학의 바탕이 된다.이씨가 문학에 뜻을 둔 계기도 독특하다.중학생 때 그는신문에서 희한한 기사를 발견한다.대구 시인 이모씨가 「6·25」때 부역한 것이 드러나 처형당하게 되자 문인들이 구명활동을 벌인다는 내용이었다.『그때는 빨갱이 자식으로서 언젠가 화를 입지 않을까 늘 걱정했다』면서 그 기사를 보자 「문학을 하면 쉽게 죽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말했다. 이씨는 61년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에 입학해 스승이자 아버지같은 김동리 선생을 만난다.「노가다판 문장」을 쓰는 그를 동리는 『앞으로 한국문단에 아주 희귀한 스타일리스트가 될 것』이라고 격찬했고,그의 습작을 논하라는 시험문제를 내기도 했다.예언대로 그는 누구도 흉내내지 못할 문체와 문학세계를 개척했다.67년에 발표한 두번째 작품 「백결」에서 이미 이문구다운 글이 등장한다. 그는 한동안 고향을 찾지 않는다.그러다 72년 「관촌수필」연작을 시작함으로써 스스로 고향을 되살린다.그때쯤에는 고향·고향사람에 대한 참혹한 기억을 잊은 것일까.아니면 용서하기로 마음먹은 것일까. 이씨는 그때 사정을 자세히 밝히려 들지 않았다.다만 귀향후 생활을 이야기하면서 『땅에다 무엇을 심든지,아니면 가축을 길러도 다 잘된다』고 고향땅에서 받은 은혜를 강조했다. 그를 특징짓는 문체와 어휘 구사를 평단에서는 대부분 「시골 밭둑의 싱싱한 수풀 같다」는 식으로 긍정한다.많은 문인들이 술자리에서는 『이문구처럼 우리말을 자유자재로 구사하지 못한다는데 콤플렉스를 느낀다』고 고백하기도 한다.반면 「그의 문체가 산문의식을 약화시키고 주제를 모호하게 만든다」는 비판도 있다. ○「섬」 소재 작품 구상 작가는 그같은 비판을 전혀 개의치 않는 듯 했다.그는 『지금 우리 사회가 쓰는 문체가 대부분 일본식·서양식인 판에 우리 전통양식을 고수하는 작가도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아울러 자신은 『기승전결이니,사건의 배경·인물을 정교하게 설정해야 하느니를 따지는 서양식 소설작법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섬과 섬사람을 소재로 한 작품을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바닷가 마을에서 성장했지만 그동안 섬이야기는 한번도 쓰지 않았다.보령 앞바다에만 섬이 78개떠 있는데 이를 소재로 전혀 다루지 않은 것에 이씨는 『미안하고』『왠지 책임감이 느껴진다』고 말했다.그래서 뜻맞는 고향사람들과 함께 섬을 연구하고 사랑하는 모임을 만들어 섬을 알게 된 다음 작품화할 생각을 갖고 있다. 또 90년대 농촌을 그리는 작품과,「매월당 김시습」이후 관심을 갖게 된 역사소설도 쓴다는 것이 그의 장기계획이다.〈이용원 기자〉 □약력 ▲1941년 충남 보령군 대천면 대천리 관촌마을(지금의 보령시 대관동)에서 태어남 ▲50년 「6·25」발발후 부친과 형들 피살,본인은 외가로 피해 모면 ▲조부는 51년,어머니는 56년 별세,고아됨 ▲중학 졸업후 농사짓다 59년 무작정 상경 ▲61년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 입학 ▲65년 단편 「다갈라 불망비」,66년 단편 「백결」로 「현대문학」에 추천 완료 ▲74년 자유실천문인협회 발족 주도,실무간사 맡음 ▲77∼80년 경기도 화성군 향남면 행정리(발안 쇠면마을)서 생활 ▲80년 콩트집 「누구는 누구만 못해서 못허나」판금당함,이어 문인으론 유일하게 정치활동규제자로 지정됨 ▲주요작 「장한몽」「해벽」「관촌수필」「우리 동네」「매월당 김시습」등 ▲「월간문학」·「한국문학」·한진출판사 편집장,실천문학사 발행인 등 역임 ▲78년 한국문학작가상 등 문학상 8가지 수상.
  • 한국에선…/일본어 잔재(한국속의 일본,일본속의 한국:16)

    ◎왜색 말 공사장·음식점 등 곳곳 난무/가꾸목·시다·시마이 모르면 일 못해­공사장/사시미·야끼만두·사라 일상용어로­음식점/조사 「의」자·수동태 함부로 쓰는것도 일본 말투 『히야시 잘된 맥주 있어요』 동네구멍 가게 등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히야시」는 「차게」라는 일본어다. ○생활속 뿌리내려 광복 50주년 행사가 전국 곳곳에서 치러지고 있지만 우리의 입가에는 일본의 냄새가 여전하다. 「곤색」이 「감청색」보다 자연스럽고 「기지」(옷감)라고 해야 더 잘 알 수 있다고 양복전문가들은 말한다. 「사시미(생선회) 2인분」,「야끼(군)만두」,「와리바시(소독저·나무저)」,「다마(알·구슬)」,「가라(가짜·헛)」,「요지」(이쑤시개),「우동」(가락국수)과 「다꾸앙」(단무지),「사라」(접시),「지라시」(낱장·광고)….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몰아낼 수 있는 일본말들이 일상용어에 헤아릴 수 없이 남아있다. ○지식인도 즐겨써 공사판 용어들은 더하다.「가꾸목」(각목·각재),「가다밥」(틀밥·찍은밥),「가다와꾸」(거푸집),「가도기레」(모서리천),「겐치석」(축댓돌),「노가다」(공사판 노동자),「데모도」(허드레꾼·조수),「마도와꾸」(문틀),「시다」(밑일꾼·보조원),「시마이」(마감),「십장」(감독·반장·조장),「쓰미」(벽돌공) 한참듣고 있노라면 우리말에는 없는 고유명사의 나열처럼 들린다. 『처음엔 거부감도 일었지만 이런 말을 모르고는 제대로 일을 할 수가 없어 무의식중에 일본말을 배우게 됐습니다』 여름 방학동안 공사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대학생 김승경군(20)에게 이제 일본말은 전혀 낯설지 않다고 말한다. 공사판 뿐만이 아니다.그가 들었다는 한 운전사의 넋두리는 차라리 희화적이다.『기름을 「만땅꾸」(가득) 넣고 「빠꾸」(물러나다)하다가 벽에 부딪쳐 차에 「기스」(흠)가 났다』 그는 이표현을 소개하면서 씁쓸하다 못해 울화가 치민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전히 지식인이나 문인들이 「예삿일」이나 「흔한일」대신 「다반사」를 즐겨 쓰고 「담합」(짜다)과 「부지」(터)가 신문지면에 남아있는 현실에서 완전한 우리말 찾기는 결코 쉽지않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쓰메끼리」(손톱깎이),「아다리」(수·적중),「오야봉」(우두머리),「와꾸」(틀·테두리),「쿠사리」(면박),「기도」(문지기),「파지」(종이부스러기),「히키」(끌기) 등도 이미 회사원의 하루 일과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일본식 발음 못지않게 우리말을 병들게 하는 것이 일본말법이다. 『1922∼1925년에 지어진 이 건물은…』 서울역사를 소개하는 역앞 표지판에 쓰인 글귀다.하지만 「지어진」은 「지은」으로 고쳐야 우리 어법에 맞는 표현이다.행동의 주체를 드러내길 꺼려 「지다,되다,되어지다,불리다」 등 수동태를 함부로 쓰는 것은 대표적인 일본말법이다.「교육악법도 반드시 개정되어야」와 「유망주에게 기대가 모아집니다」는 「개정해야」,「모입니다」로 고치는 것이 바른 말법이다. 조사(토씨) 「의」를 마구잡이로 쓰는 습관도 우리 언어감각을 마비시키고 있다.「만남의 광장」은 「만나는 자리·곳」이 옳은 쓰임이다.「나의 살던 고향」은 내가살던으로 고쳐야 한다.「헌혈의 집」은 「헌혈하는 집」으로 바로 잡아야 한다. 이처럼 일제 식민지시대가 남긴 일본말의 찌꺼기는 우리가 느끼는 것보다 훨씬 깊숙하게 일상생활속에 자리잡고 있다.심지어 일본 영화나 대중가요 수입을 반대하는 지식인들조차 왜색 언어에서는 쉽사리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나랏말은 곧 정신 부산시 부산진구 당감1동에 있는 순수 민간단체 「한국글쓰기연구회」는 지난 83년 창립된뒤 달마다 「우리말과 삶을 가꾸는 글쓰기」라는 회보를 내고 있다.교사·학부모·대학생 등 회원은 7백여명에 이른다.알음알음으로 연구회를 찾는 이가 많아 회원은 갈수록 늘고 있다.어린이와 어른 모두에게 살아있는 우리말로 정직하고 가치있는 글을 써서 참된 삶을 가꾸게 하자는 것이 연구회의 목적이다.93년부터 경기도 과천에서 「우리말 살리는 모임」을 이끌어온 이오덕(70)옹은 지난 3월 효과적인 활동을 위해 모임을 이 연구회에 합쳤다.하루빨리 아이들에게 살아있는 우리말을 이어줘야 한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다.지난 44년 이후 주로 농촌지역의 국민학교에 근무하면서보고 느낀 점을 바탕으로 글쓰기를 통한 교육을 연구·실천해온 이옹은 바른 글쓰기를 위한 책자를 여러 권 펴내기도 했다.그는 『지난 반세기동안 정신없이 남의 흉내만 내면서 겉치레에 몰두하다 보니 다리와 집·길·배·차들이 다 무너지고 불타고 가라앉고 떨어지고 하는 판이 됐습니다』며 『우리가 쓰는 말과 글도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말이 곧 정신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우리말은 병들고 『무엇보다 문인이나 지식인들이 퍼뜨리고 있는 어려운 일본말·말법은 마치 암세포 같이 우리말을 잡아먹고 우리말의 뿌리를 말려 죽이고 있습니다.딱하고 답답한 노릇이지요』 식민지시대를 체험한 구세대 뿐만 아니라 해방이후 세대인 소장학자나 대학생들사이에서도 일본말의 잔재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교과서와 참고서,외국번역서적을 접하면서 미처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일본말과 말법에 물들고 마는 것이다. 물론 일부에서는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를 정립해 나가는 과정에서 이미 우리말처럼 굳어 버린 일본말 한·두마디를 바꾸는 것이현실적으로 무슨 이득이 있느냐고 반문한다.그러나 한 민족의 언어가 정신 생활의 토양이 된다는 점에서 광복 50주년이 되도록 떨쳐 버리지 못하는 일본말의 유령이야말로 바로 우리의 자화상이라는 주장도 만만찮다.
  • 일본… 상처낸 자리 쑤시고 되후비고(박갑천 칼럼)

    『누에와 같다』는 일본말이 있다.「누에」는 딱새과에 속하는 호랑지빠귀를 이르는 한편으로 전설상의 괴상한 동물을 뜻하기도 한다.『누에같다』고 할때는 후자쪽이다. 「헤이케모노가다리」(평가물어:권4)에 무장이며 가인인 미나모토노요리마사(원뢰정)가 누에를 쏘아죽였다는 얘기가 나온다.이 괴물의 모습은 이렇다. 즉,머리는 원숭이요 몸뚱이는 너구리이며 꼬리는 뱀이고 손발은 호랑이인바 우는소리가 호랑지빠귀 비슷했다.이괴물 따라 정체불명인 사람,아리송한 태도를 취하는 사람,기이한 느낌을 주는 사람을 『누에같다』며 빗대었다. 그말그대로 누에같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려운 나라가 일본이다.아리송하게 처신해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그들에게는 또 「우미센 야마센」(해천산천)이란말도 있다.뱀이 『바다에 천년,산에천년』살면 용이 된다는 말을 줄여서 쓰는 것인데 그렇게 풍상을 겪는사이 교지가 발달했음을 이른다.그 「우미센 야마센」의 나라가 일본아닌가 한다. 「망언」으로 표현되는 「소리」를 한두번 나달거린 것이 아니다.구보다(구보전관일낭)로부터 치자면 정부요로의 사람이 한 것만도 열번은 넘는 것 아닐는지.그들이 낸 상처를 헤집는 살똥스런 화살이다.아프고 분해서 소리치면 「그래?그럼 약을 주지」 하는양 「사과」한다.그러고서 조금있다가 또후벼댄다.이짓을 몇십년 계속해온다.당하는 우리의 대응은 어떤가.그들이 들쑤시면 왁자하게 단세포적 반응을 일으키다가 이내 사그라든다. 이웃나라끼리는 침략하고 침략당하고 하는게 대체적인 세계사의 흐름이다.하건만 한일관계는 좀 유별나다.한국은 일방적으로 당해만 오는 것이니 말이다.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한국은 그들을 그느르며 은혜를 베푼 나라.그 은혜를 원수로 갚아내려오는 일본이다.그맥락 따라 시나리오라도 써놓은 듯이 침략합리화발언을 뜨문뜨문 내뱉는다.「누에」낯짝이다. 며칠전 같은날짜 신문에 난 독일 콜총리의 나치학살에 대한 발언과 일본연립여당의 「전후결의안」표현의 차이는 엄청나다.전자의 솔직함에 비겨 후자는「우미센 야마센」의 말재주.이웃집이 고약할때 내가 떠나면 되지만 이웃나라 보기싫다고 나라가 떠날 수도 없다.그들 속담대로 『독사새끼는 독사(마무시노고와 마무시)』.그런 독사의 용골대질을 당하며 살아가야 할 처지가 괴롭다. 「헤이케모노가다리」 첫머리에는 노자의 말을 빈 『오만한 헤이케(평가)는 오래 못간다』는 대목이 있다.이말을 천지신명 앞에서 곱씹어봐야 할 일본이다.
  • 우리말 다듬기 차원서 널리 써야/고쳐진 행정용어 무엇이 있나

    ◎수사→기절·가인→추가 날인/노가다→인부·익년→다음해/감주→단술·개비하다→갈다 정부가 25일 8천7백9개의 행정용어를 순화해 사용키로 한 것은 국민들의 행정용어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 관공서와 관련된 일을 손쉽게 할수 있도록 하고 국어의 자주정신및 권위를 높이기 위한 것이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 각부처간에 혼선이 빚어졌던 행정용어가 모두 단일용어로 통일되게 되었고 업무시행과정에서도 적극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 행정용어 순화조치에는 불쾌감을 주거나 강압적인 용어로서 「내청 바람」이 「나오시기 바랍니다」로,「엄중문채」이 「책임을 묻다」로 바뀐것이 눈에 띈다. 또 일제시대의 잔재어인 「조상배정」을 「당겨배정」으로,낡은 한자어인 「간헐적」을 「이따금」으로,「몽리」를 「혜택입는」으로 고쳤다. 고쳐쓰여질 주요 행정용어는 다음과 같다. ▲가두선전→거리선전 ▲가드레일→보호난간 ▲가봉→시침질 ▲가불금→우선 지급금,미리 받은·준 돈 ▲가사→기절 ▲가부동수→찬반 같음 ▲가소롭다→우습다 ▲가압→압력 높임 ▲가용자원→쓸 수 있는 자원 ▲가이드→안내,길잡이 ▲가인→추가 날인 ▲가인(가인)→가족 ▲가필→고쳐씀 ▲가해자→해친 이 ▲간담회→대화모임 ▲간척지→개막은 땅 ▲감주→단술 ▲감옥→교도소 ▲감모율→닳은,줄어든 비율 ▲강수량→물 양 ▲강우량→비온 양 ▲개비하다→갈다 ▲개서하다→고쳐쓰다 ▲개체하다→바꾸다 ▲객장→영업장 ▲갱내→굴안 ▲거치한→설치한 ▲거한→지난 ▲거수자→수상한 사람 ▲검침원→조사원,계량기 조사원 ▲견책→주의 ▲결의대회→다짐대회 ▲경색→막힘 ▲경일→지난번 ▲경전→밭·논갈이 ▲계기→기회 ▲계출→신고 ▲소견→좋은 생각 ▲고용 노동→품일 ▲고정→불만,괴로움 ▲고지의무→알릴 의무 ▲곰장어→먹장어 ▲골자→핵심,골갱이,요점 ▲곤색→검남색 ▲곡간→짚 ▲공과→잘잘못 ▲공무소→관계기관,관공서 ▲공유지분→차지몫 ▲공장도가격→공장에서 내는 값 ▲공제→뺌,빼다 ▲공판정→공판법정 ▲공포→널리 알림 ▲공탁하다→맡기다 ▲과징금→징수한 돈 ▲관리→공무원 ▲구거→도랑 ▲교통수기→교통깃발 ▲그리스펜→색연필 ▲금회→이번 ▲금비→화학비료 ▲길어깨→갓길 ▲열석자→참석자 ▲염서→불볕더위 ▲엽신→잎새 ▲영달→내려보냄 ▲영어→감옥 ▲오너드라이버→손수운전자 ▲오수→구정물 ▲오퍼상→판매알선업자 ▲와사비(산채)→고추냉이 ▲왕왕→가끔,이따금 ▲외포심→두려운 마음 ▲용건→볼일 ▲용수로→물대는 길 ▲우수무지→오른 엄지 ▲위계→속임수 ▲유산균→젖산균 ▲육교→구름다리 ▲은닉(은정)하다→감추다,숨기다 ▲음용수→마시는 물 ▲의료수가→진료비,치료비 ▲이면도로→뒷길 ▲이앙기→모심개 ▲익년→다음해,이듬해 ▲인지→그리여김 ▲일견→언뜻(보기에) ▲일용잡급→일용직 ▲임차→세냄 ▲입회→참여 ▲자모회→어머니회 ▲자부→며느리 ▲자의로→제멋대로,마음대로 ▲자 지→(…)부터(…)까지 ▲작태→짓 ▲장물→훔친 물건 ▲재가→결재 ▲재중→안에 있음 ▲적출→뽑아 냄 ▲전자유기장→전자오락실 ▲전조등→앞등 ▲전향적→진취적,적극적 ▲접객부→종업원▲정지→땅고르기 ▲제스처→몸짓 ▲조깅→건강달리기
  • 행정용어 8,709개 순화/일제잔재·불쾌감주는 단어 대상

    ◎내년초 각의상정 의결키로/사무감사 통해 활용여부 점검 정부는 25일 이해하기 어렵거나 불쾌감을 주는 행정용어 8천7백9개를 쉽고 아름다운 우리말로 바로잡았다. 정부는 총무처·문화부·법제처등 3개 관련부처로 구성된 행정용어순화위원회(위원장 정문화총무처차관)를 개최,각급 행정기관에서 사용하고 있는 고쳐야할 용어 1만3천여개를 최종 심의해 이같이 결정했다. 정부는 이날 확정된 행정용어순화안을 내년초 국무회의에 상정,의결할 예정이다. 정부가 이번에 순화한 행정용어대상은 「가석방」등 일제잔재용어및 필요이상의 외래어,이해하기 어렵거나 낡은 투의 한자어,국민에게 불쾌감을 주거나 강압적인 것 등이다. 이번에 바뀐 용어중 눈길을 끄는 것은 일제잔재어인 「개찰구」가 「표 보이는 곳」으로,「노가다」가 「인부」로 고쳐진 것등이다. 또 신문·방송등 언론기관에서 널리 사용하는 「철야조사」가 「밤샘조사」로,「데스크」는 「책임자」로 바뀌었고 보건·환경분야에서 흔히 사용되는 「음용수」는 「마시는 물」로 고쳐졌다. 정부는 이와함께 각급 행정기관이 순화된 행정용어를 널리 사용하도록 순화된 행정용어검색프로그램및 행정용어정리프로그램을 개발,행정편의를 도모했다. 정부는 또 각급행정기관의 행정용어사용에 대한 사무감사를 더욱 강화,순화된 행정용어의 활용빈도에 대해 사무관리·점검을 철저히 하기로 했다. 이밖에도 중앙교육공무원을 비롯,각부처의 교육기관을 통해 이들 용어의 적극적 활용에 대한 직장교육을 강화키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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