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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콰르텟 엑스’ 클래식 반란

    보수적인 클래식 음악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준 현악4중주단 ‘콰르텟 엑스(Quartet X)’가 또 한번의 ‘반란’을 꿈꾼다.2006년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과 쇼스타코비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이 두 천재 작곡가의 현악4중주를 모두 연주하기로 한 것. 공연은 27일 오후 8시 서초동 DS홀에서의 첫 공연을 시작으로 12월까지 매달 한 차례씩 12회에 걸쳐 이뤄진다. 모차르트의 23개 현악4중주, 쇼스타코비치의 15개 현악4중주 등 모두 38곡을 연주하는 대형 프로젝트다. 한 작곡가의 특정 작품 전곡을 연주하는 경우는 많이 있지만, 이번처럼 두 작곡가를 동시에 그것도 수십곡이나 되는 작품을 한꺼번에 연주하는 것은 드문 일. 일부에서는 음악적 완성도에 의문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정통클래식을 대중에게 가장 완벽하게 전달한다.”는 평가를 들어온 단체인 만큼 기대를 모으는 공연임에는 틀림없다. 모차르트는 모두 23개의 현악4중주와 ‘아다지오와 푸가’를 썼다. 현악4중주 장르에서 하이든의 뒤를 잇고 베토벤의 다리를 놓아준 역할을 한 인물이 바로 모차르트, 이들을 계승한 작곡가가 쇼스타코비치다. 쇼스타코비치는 15개의 번호가 붙은 현악4중주곡을 작곡했으며 한 곡의 엘레지 그리고 발레모음곡 ‘골든 에이지’ 가운데 유명한 폴카를 4중주 버전으로 남겼다. 모차르트의 생일이기도 한 27일에 열리는 첫 공연에서는 모차르트의 현악4중주 1번 ‘로디’와 19번 ‘불협화음’, 쇼스타코비치의 현악4중주 1번 ‘소나티네’와 현악4중주를 위한 소품 ‘엘레지&폴카’를 들려준다. 공연은 매달 넷째주 금요일 DS홀에서 열리며, 매회 모차르트 2곡과 쇼스타코비치 1곡을 연주할 예정이다. 20대 젊은 연주자 네 명으로 구성된 콰르텟 엑스는 2002년 ‘거친바람 성난파도’라는 파격적인 공연과 함께 등장한 실내악단. 연주자 프로필을 내세우지 않고 베토벤 현악4중주 전곡 중 가장 개성있는 9개의 악장을 모은 ‘비나인(B9)’,‘로키 호러 픽처쇼’에 빗댄 ‘콰르텟 엑스 픽처쇼’ 등 기발하고 도발적인 기획연주를 통해 독특한 음악세계를 구축해왔다. 전석 4만원(패키지 할인 있음).(02)3473-2500.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선생님과 함께하는 초등논술](6)고학년 논술형 평가 준비

    초등학교 고학년은 아동 발달 단계상 형식적 조작기에 해당되는 시기로 추상적·논리적 사고가 가능하며 자신의 주관이 뚜렷해진다. 따라서 지금까지 습득된 다양한 지식과 정보를 바탕으로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정리하고 종합·비판할 수 있는 고등사고 능력을 길러주어야 할 때다. 이를 위해 논술의 기초 기능을 습득하고 자신의 생각을 바로 세우며 주장을 펴는 데 타당한 근거를 들 수 있도록 다양한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6학년 2학기 ‘말하기·듣기·쓰기’ 영역의 넷째마당 학습제재 중 ‘토의를 하고 문제와 해결의 짜임으로 글을 써보자’는 텔레비전 시청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생각하여 토의하고 글로 표현하는 활동이다. 텔레비전 시청의 좋은 점으로는 ‘다양한 지식이나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다’,‘상상력이 풍부해진다’,‘여가 시간을 즐길 수 있다’와 같은 사실을 생각할 수 있다. 또한 텔레비전 시청의 나쁜 점으로 ‘성인 프로그램이나 상업성 광고로 어린이의 정서를 해칠 수 있다’,‘운동 부족으로 비만을 초래할 수 있다’,‘가족간의 대화 시간이 줄어든다’ 등을 들 수 있다. 텔레비전의 장단점을 묻는 평가 문항이라면 서술형 평가에 해당된다. 이에 대한 대비방안으로 평소 생활 주변에서 다양한 논제를 정하여 그에 대한 문제점 등을 생각해 보는 경험이 필요하다. ‘텔레비전을 유익하게 시청하기 위한 방안을 글로 쓰시오’라는 논술형 문제를 해결하려면 먼저 자신의 생각을 바로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텔레비전의 장단점을 바로 알아 유익하게 활용해야 한다’와 같이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해결 방안을 ‘텔레비전 시청시간이나 프로그램을 조절한다’,‘가족이 함께 텔레비전을 시청한다’처럼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이렇게 주장과 실천 방안이 결정되면 글의 개요를 짜보도록 한다. 예를 들어 서론 부분에서 ‘텔레비전 시청의 장단점’을 제시하고 ‘요즘 초등학생들의 텔레비전 시청 시간에 대한 현황’을 제시함으로써 문제를 제기한다. 본론에서 나의 주장과 그에 따른 실천 방안을 제시한다. 그리고 마지막 결론에서 주장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실천을 결의하거나 촉구한다. 그런데 글을 완성하고 난 후 고쳐 쓰기의 과정이 꼭 필요하다. 이 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주장이 주제에 알맞은가?’,‘근거는 타당한가?’,‘문단 구성이 바른가?’,‘맞춤법이나 어법에 맞게 썼나?’ 등을 살펴보아야 한다. 이러한 서술형·논술형 평가에 대비하기 위해서 가정에서 가장 중시해야 할 것은 독서이다. 꾸준한 독서를 통해 ‘어휘력’이 길러지고 글의 뜻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독해력’이 논술의 기초 능력이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에는 학년 수준에 맞는 필독도서가 많이 소개되어 있다. 이를 기준으로 아동의 흥미를 고려하여 학부모와 아동이 서점을 직접 찾아가서 책을 선택하는 것을 권하고 싶다. 그리고 책을 읽고 난 후에 짧은 메모라도 남기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그리고 신문이나 뉴스를 통해 시사성을 기르도록 한다. 신문자료를 스크랩하는 활동은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고등학생에 이르기까지 강조되어야 할 사항이다. 사회 변화와 흐름에 민감한 사람이 되려면 일단 많이 알고 있어야 하고 알기 위해서는 정보를 접하고 그에 대한 나의 생각을 한 줄이라도 적어두는 습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옛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노력을 기울여야 비로소 서술형·논술형 평가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질 것이다.서울교육대학교 부설 초등학교 교사 유경미
  • “루브르 명화등 올 8차례 특별전”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소장 명품회화전을 개최하는 등 다양한 볼거리 제공을 위해 특별전을 강화하겠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이건무 관장은 19일 신년 기자간담회를 갖고, 유료화 첫해인 올해 역점 추진과제를 밝혔다. 눈에 띄는 것은 8차례에 걸친 특별전시회.3월 ‘가고 싶은 우리 땅, 독도전’을 시작으로,10월부터 5개월간 열리는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명화전까지 다양하다. 한불 수교 120주년을 기념, 마련한 루브르박물관 명화전에는 고야 등 16∼18세기 화가들의 명화 70여점이 전시될 예정이다. 이와 함께 폴 쟈쿨레 판화전(4.21∼6.4)▲불사리전(5.2∼5.21)▲발굴성과전(6.13∼7.16)▲고려시대 사람들전(6.27∼8.13) ▲찬란한 천년의 빛-나전칠기전(8.8∼9.24)▲김정희의 삶과 예술세계전(10.3∼11.19)이 열린다. 김정희 특별전은 올해 그의 사거(死去) 150주년을 맞아 마련된 것이다. 이 관장은 “개관 이후 제기된 관람객 불편이나 건의사항 등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고객 중심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이달 중 ‘고객서비스팀’을 가동할 예정”이라면서 “학교 교육과정과 연계한 프로그램, 가족·어린이와 소외계층을 위한 프로그램 등 27개 교육프로그램을 150회에 걸쳐 마련하는 등 관람객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중앙박물관은 3월부터 월2회 주5일 수업과 연계, 초·중·고생 등 18세 이하 청소년에게 매월 둘째, 넷째 토요일을 무료로 개방한다.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서울 이야기] (35) 보육시설

    [서울 이야기] (35) 보육시설

    서울이야기는 34회 ‘도시마케팅’을 끝으로 문화분야 이야기를 마무리했다.35회부터는 보육시설을 시작으로 서울의 보건복지분야를 다룬다. 산후 휴직기간이 끝나는 3월부터 직장에 복귀해야 하는 K(29세)씨에게 가장 큰 고민은 아이 맡길 곳을 찾는 것이다. 이제 갓 돌을 넘긴 아이를 돌봐줄 곳을 찾는 것은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어려운 일이다. 먼저 집으로 와서 아이를 돌봐줄 사람을 구하는 것을 고려해보았지만 월급의 절반 이상을 비용으로 감당할 수 있는 형편은 아니다. 시부모님이나 친정부모님께 아이를 맡기고 홀가분하게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는 친구들이나 동료들을 바라보자니 몸이 불편하셔서 아이를 돌봐달라고 부탁드릴 수 없는 친정부모님과 지방에 계신 시부모님이 원망스럽기조차 하다. 바라 보고 있자면 한없이 소중해서 도무지 눈을 뗄 수가 없는 내 아이. 도대체 이 아이를 어디에, 누구의 손에 맡길 수 있을까.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K씨는 1년의 산후휴가를 받을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회사측의 매우 특별한 배려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보육시설을 찾느라 이리저리 다니는 동안 K씨는 직장 내에 혹은 직장과 가까운 곳에 회사에서 운영하는 보육시설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아이와 함께 출·퇴근하고 혹시라도 급한 일이 생겼을 때 언제라도 아이에게 달려갈 수 있는 거리에 아이를 두고 있다면 안심하고 일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아쉬움을 접으면서 K씨는 먼저 집근처의 놀이방과 어린이집을 수소문해보았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웃들로부터 괜찮다고 소문이 나 있는 어린이집과 놀이방을 몇군데 방문해보았지만 딱히 마음 편하게 아이를 맡길 수 있을 곳을 발견하지 못했다. ●어린이집 실태 ‘00 어린이집’이라고 불리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보육시설은 설립주체에 따라 국공립보육시설, 법인 및 민간보육시설, 직장보육시설, 가정보육시설과 부모협동보육시설로 구분된다. 일반적으로 어린이집은 오전 7시 반부터 오후 7시 반까지 아이들을 돌보지만 오후 9시 반 이후까지 운영되는 어린이집(시간연장형 시설)과 일요일 및 공휴일에도 운영되는 어린이집(휴일보육시설)이 있다. 또한 0세부터 36개월 미만의 영아만을 보육하는 영아전담보육시설과 장애아동을 보육하는 장애아전담보육시설, 그리고 3명 이상의 장애아를 비장애아동과 통합하여 보육서비스를 제공하는 장애아통합 보육시설 등 부모와 아동의 필요와 여건에 따라 다양한 유형의 보육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다. 2005년 6월 현재 서울시에는 총 5,323개의 보육시설이 있다. 시설유형별로는 민간 개인어린이집이 2364개로 가장 많아서 서울시 전체 보육시설의 44%가량을 차지한다. 다음으로 많은 것은 가정보육시설(놀이방)로 총 2079개이며, 국공립시설은 전체 시설수의 약 10%에 해당하는 544개이다. 전체 보육시설을 숫자상으로 보았을 때 적은 숫자는 아니다. 실제로 정원을 채우지 못한 채 운영되는 시설(특히, 민간시설의 경우)이 다수이기도 하다. 그런데 왜 많은 부모들이 입을 모아서 아이 맡길 곳이 없다고 호소하고 있는 것일까. ●내 아이를 맡길 만한 곳이 없다? 아이가 태어난 직후부터 아이를 어디엔가 맡겨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서인지 신문이나 TV에서 ‘어린이집’에 관련한 뉴스가 나올 때마다 K씨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곤 했다. 일부 어린이집의 비위생적이고 불량한 급식, 안전사고, 영유아 학대 등 일련의 사건들이 떠오르면서 불안과 의심에 가득찬 시선으로 시설들을 돌아보는 K씨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하다. 정말로 안심하고 아이를 맡길 만한 시설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K씨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집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구립어린이집이다. 젖먹이 아이들을 돌보는 영아반이 있고 시간연장형 보육시설로 지정된 곳이어서 퇴근시간이 늦은 K씨에겐 반가운 소식이었지만 지금은 정원이 다 채워져 있다는 말에 아이의 이름을 대기자 명단에 올려놓으며 돌아와야만 했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민간시설보다는 국공립어린이집을 선호한다. 국공립어린이집이 민간어린이집에 비해 보육료가 저렴하기도 하지만 정부에서 관리·감독하는 시설이기 때문에 보육의 질이 더 나으리라는 기대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국공립시설의 숫자는 시설에 대한 수요를 감당하기에 턱없이 모자라는 실정이다. 때문에 부모의 입장에서 다음으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만족할 만한 수준의 보육서비스를 제공하는 민간시설을 찾는 것이다. 서울시에는 다양한 규모의 다양한 보육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민간보육시설이 있다. 때문에 한마디로 민간보육시설을 특징지어 말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최근 서울시 민간어린이집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에서 조사대상 민간시설의 45%가 보육환경으로 적합하지 않은 상가건물에 위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서울시정개발연구원,2005). 더욱이 조사대상 시설 중 60%가 임대시설이었고,40%가량이 시설설치, 운영과 관련하여 부채가 있다고 응답하였다. 이러한 여러 가지 요인들로 인해 민간보육시설에서 질적으로 수준 높은 보육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장애가 되고 있다. 서울시에서는 이에 따라 보육서비스의 질적인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 부모가 참여하는 보육서비스 평가를 실시하여 전체적인 보육의 질을 높이고 우수 보육프로그램을 발굴하여 보급하고 있다.2004년부터 실시되고 있는 서울시 보육시설 서비스 평가는 2006년을 마지막으로 서울시에 소재한 전체 보육시설 5000여개에 대한 서비스 평가가 완료된다. 특히 서울시 평가는 건강관리와 안전에 대한 집중적인 질관리에 노력하고 있다. 또한 보육의 질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할 수 있는 보육교사의 근무환경을 개선하고 보육교사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보육교사 처우수당을 지급하고 우수보육교사를 선발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민간보육시설에 대해 환경개선비도 지원하고 있다. ●어린이집 선택은? 보육시설은 아이가 안전하고, 행복하고, 사랑받으며 생활할 수 있는 곳, 아동이 재미있게 학습하는 곳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보육시설은 어떻게 선택해야 할까. 중앙보육센터는 좋은 어린이집을 선택하는 요령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첫째 정보를 수집한다. 좋은 보육시설을 찾는 것은 숙제를 하는 것과 같다. 가능하다면, 보육시설을 선택하기 전에 여러달에 기본적인 정보를 얻도록 한다. 우선 보육정보센터에서 집에서 가까운 보육시설의 명단을 알아본 후 그 중에서 동료나 주위사람들로부터 추천을 받는 것도 요긴한 방법이다. 둘째, 추천을 받은 보육시설이나 집주변의 보육시설 중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최소한 3곳 이상의 보육시설에 연락을 취해서 방문 일정을 잡는다. 셋째, 전화로 연락을 취한 보육시설을 직접 방문하도록 한다. 보육시설을 방문해 따뜻하게 맞아주는지, 아이와 부모에게 보육시설에 대한 짧은 소개를 하는지, 보육료와 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을 하는지를 눈여겨보도록 한다. 원장님과 면담 시에는 아이들의 생활지도는 어떻게 하는지, 어떤 활동들을 하는지, 식단은 어떻게 되어 있는지, 차량은 운행하는지 등을 물어보도록 한다. 넷째, 참고할 만한 사람을 알아본다. 아이의 선생님을 선택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각 시설의 보육교사에게 그 곳에 아이를 보내는 부모님의 연락처를 최소한 두 군데 이상 부탁한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다른 부모들과 정보를 공유하는 것을 좋아하므로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다섯째, 수집한 정보를 다시 한번 검토하고 질문이 생기면 다시 연락을 해서 알아본 후 결정한다. 만약 보육시설에 오고자 하는 아이들이 많으면 입소대기자 명단에 아이의 이름과 연락처를 적어둔다. ●보육료, 얼마나 내나 어렵게 어린이집을 선택했다 하더라도 매달 시설에 내야 하는 보육료에 대해 다시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재 서울시의 보육료 수납한도액은 연령별, 시설유형별로 산정돼 있다.3세 이상 아동의 경우 국고보조시설 15만 3000원, 민간보육시설 19만 8000원, 가정보육시설은 22만 5000원으로 상한선이 정해져 있으며 보육시설의 시설장은 수납한도액 범위 내에서 부모와의 협의하에 수납액을 자율적으로 결정하여 신고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부모가 기대하는 양질의 보육을 제공하기 위해 필요한 적절한 수준의 보육료 산정방식과 보육료 자율화에 대한 논의 등 보육료를 둘러싼 논쟁이 최근 계속되고 있다. 현재 정부에서는 저소득층 가구에 대한 차등보육료 지원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형태의 보육료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저소득층 가구에 대한 보육료 지원은 도시근로자 평균소득의 60% 이하인 가정의 아동에 대해 부모의 소득에 따라 연령별 정부지원단가를 기준으로 100%,80%,60%,30%로 차등 지원하고 부모는 그 차액을 납부하도록 한다. 이외에도 도시근로자가구의 평균소득 이하인 가정에서 두 자녀 이상을 보육시설에 보내는 경우 보육료의 일정부분을 정부로부터 지원받을 수 있다. 즉, 연령별로 각각 20%에 해당하는 보육료를 지원받고 나머지 차액만을 시설에 납부한다. 또한 도시근로자가구 평균소득 80%수준 이하인 가정의 만 5세아가 보육시설을 이용하는 경우 정부지원단가인 15만 3000원을 100% 지원받는다. 장애아의 경우는 부모의 소득이나 장애의 정도와 관계없이 정부지원단가를 100% 지원받을 수 있다. 이에 더하여 서울시에서는 서울시민의 셋째 이후 자녀(2002년 3월1일 이후 출생자)의 보육료를 전액 지원하고 있다. ●보육, 누구와 이야기할 수 있을까 보육에 관한 정보를 찾기 위해 인터넷을 서핑하던 K씨는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서울시보육정보센터 홈페이지(http://children.seoul.go.kr/)를 발견했다. 원하는 지역 내에서 원하는 유형의 보육시설을 찾아주는 맞춤형 보육시설 검색서비스인 인포맵(Info-Map)서비스를 발견하고 가까운 곳의 영아전담시설을 찾아 먼저 살펴보고 몇 개 시설의 전화번호를 메모해두었다. 서울시보육정보센터는 서울시의 보육시설을 지원하고 부모들의 육아를 지원하기 위해 설립됐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해 교육과 상담, 보육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서울시보육정보센터에서 운영하는 녹색장난감도서관은 아동발달에 적합한 장난감 및 교재교구를 각 가정에 무료로 대여해 주고 있다. 또한 놀이프로그램과 함께 실시하는 부모모임과 부모상담을 통해 자녀양육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가족상담을 통한 부모역할을 지원하고 있다. 많은 젊은 부모들이 아이를 양육하면서 정확한 정보, 전문적인 정보의 부재로 불안함을 느끼기도 하는데 이러한 경우 보육정보센터의 부모상담은 매우 유용한 서비스가 될 수 있다. 2005년 현재 서울시에는 서울시보육정보센터와 관악구보육정보센터가 운영되고 있으며 최근 성동구보육정보센터가 문을 열었다. 온라인을 통한 정보제공뿐 아니라 지역사회차원의 육아지원으로 그 기능을 확대해가는 보육정보센터는 부모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에 설치돼 이용할 수 있게 되어야 할 것이다. ●부모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가 퓰요하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부모들은 영유아의 교육이나 학습에 대한 관심은 지나친 반면 아이들이 어린이집에서 무엇을 어떻게 먹고 있는지, 연령별 교사 대 아동 비율은 얼마인지, 아동 1인당 어느 정도의 공간을 확보해야 하는지, 어린이집에서 부모와 아동의 권리와 의무는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부모의 참여와 관심은 보육의 질을 끌어올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2004년 개정된 영유아보육법은 개별 보육시설 내에 부모와 교사가 함께 참여하는 운영위원회의를 구성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여성부가 발표한 전국보육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어린이집 중 운영위원회를 설치하고 있는 경우는 16.4%에 불과하다.‘향후 설치하겠다.’는 의사 또한 35.4%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믿을 수 있는 시설에 아이를 맡기는 순간 부모의 역할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부터 부모에게는 시설의 보육서비스에 대한 새로운 역할과 책임이 생기는 것이다. 우리의 아이들이 행복하고 건강하게 잘 키우는 것은 정부와 지역사회 그리고 부모가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임을 다시 한번 기억해두자. 김선자 서울시정개발연구원 도시사회부 부연구위원
  • [기고] ‘자유교원조합’ 출범에 거는 기대/한병선 교육평론가·문학박사

    광복 이후 우리교육은 곡절을 거듭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한결같이 좋은 교육을 말하면서도 이땅에 펼쳐졌던 교육활동은 이와는 거리가 먼 경우가 많았다. 특히 전교조의 이념 편향적 교육과 정치 집단화에 따른 교육현장의 휘둘림 문제는 많은 국민들의 우려와 염려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이에 그동안 침묵해왔던 많은 교사들과 학부모들은 이런 문제들로부터 학교와 학생들을 지킬 필요가 있다는 내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밖에 없었다. 이와 관련, 최근 탈이념·탈정치를 목표로 출범한 ‘자유교원조합’(이하 자유교조)은 시의적절한 것이며, 여기에 거는 국민들의 기대 또한 클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전교조의 운동논리에 염증을 느낀 많은 교사들과 학부모들의 참여가 기대된다는 점에서 그 교육적 영향력은 매우 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자유교조’가 전교조의 대안적인 운동조직이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사항들을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첫째 자유교조는 반드시 중도(中道) 교육을 지향해야 한다. 이는 지금까지 우리교육에서 좌우이념의 소모적 논쟁 속에서 침묵했던 다수의 학부모, 교사, 학생들을 대변해야 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념적 극단을 배격하며 항상 균형 잡힌 교육과 실천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또한 지금까지 일부 교사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이념적 편향성을 바로잡는 데도 주력해야 할 것이다. 특정 이념교육은 사회의 통합을 저해함은 물론 극단적 투쟁을 부추긴다는 점에서는 사회적 갈등과 혼란의 씨앗이 되고 있음을 우리는 지금까지 봐왔다. 이에 자유교조는 반드시 균형 잡힌 교육을 추구해 나가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기서 균형잡힌 교육이란 단순히 좌와 우, 혹은 진보와 보수의 중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좌와 우의 주장들을 대승적으로 포용하면서 이들의 상대적 가치를 인정하고, 이를 교육발전으로 우려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것이 자유교조의 지향점이며 되어야 하며,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교육적 통합을 이룰 수 있는 대융합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 둘째 자유교조는 범국민적 교육운동을 지향해야 한다. 범국민적 지지를 받지 못하는 운동은 한계적 집단운동에 머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교사, 학부모 등 중도통합에 뜻을 같이하는 각계각층의 모든 사회 구성원들의 지지를 이끌어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합리적이며 정당성을 갖는 방법으로 운동을 펼쳐 나가야 한다. 셋째 자유교조는 순수한 교육운동을 지향해야 한다. 정치단체나 이익단체가 아닌 순수한 교육단체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된다는 것이다. 과거 전교조가 참교육을 표방하고 출범하였지만 현재는 그렇지 못한 전철을 같이 밟아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탈정치·탈이념이 교육운동의 모토가 되어야 함은 당연하다. 넷째 자유교조는 실용적이며 현실적인 대안제시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비판을 위한 비판,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닌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운동단체로서의 역할을 다할 필요가 있다. 이는 대안적 운동은 물론 책임 있는 운동을 지향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세계는 무한경쟁 체제로 치닫고 있다. 이런 국제질서의 변화는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미 상당부분 체계화되었고 이에 대한 우리의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낡은 이념을 두고 싸울 시간이 없으며, 교육현장을 투쟁의 장으로 만들어서도 안 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이제 학교에서도 건강한 중도가 교육의 중심점에 있어야 하며 균형 잡힌 교육이 화두가 돼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이번 새롭게 출범하는 자유교조에 거는 국민들의 기대와 희망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한병선 교육평론가·문학박사
  • [CEO칼럼] 2006년 새 화두 ‘행복경영’/서영길 TU미디어 사장

    [CEO칼럼] 2006년 새 화두 ‘행복경영’/서영길 TU미디어 사장

    2006병술년, 새해 들어 신문과 방송을 보면 자주 눈에 띄는 단어가 있다. 바로 ‘행복’이다. 많은 기업이 새해 목표나 회사의 새로운 비전으로 행복 추구를 내세우고 있다. 언론에서도 우리 사회의 새로운 추구 가치로 ‘행복’을 제시하고 나선다. 실제로 한 방송사는 ‘이제는 행복이다’라는 구호 아래 올해의 어젠다로 행복을 내세우고 있다. 기업과 언론뿐만 아니다. 정부 부처들도 ‘국민의 행복한 삶 추구 돕기’ 등의 표어를 홍보하며 ‘행복’을 행정의 중요 원칙 중 하나로 꼽고 있다. 새로운 개념도 아니고 늘 써오던 단어인 ‘행복’이라는 말이 갑자기 주목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들어 더욱 각박해진 사회상 때문인 듯하다. 개인들은 취업, 승진, 사업의 성공을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며 살아간다. 기업들도 생존을 위해 내부 경쟁을 강화하고, 상대를 이기기 위해 총력을 기울인다. 하지만 개인이건, 기업이건 그렇게도 치열하게 경쟁하는 궁극적인 목표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답은 ‘행복’이다. 그러나 요즘 사회나 기업이 돌아가는 것을 보면 그 목표는 잊은 채 ‘경쟁에서의 승리’에만 치중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럴수록 세상은 더욱 각박해지고 비인간적인 모습으로 비춰진다. 하지만 우리가 최종 목적이 ‘행복’임을 기억하고 살아간다면 좀더 따뜻하고 바람직한 사회가 될 것이다. 기업의 목적 역시 궁극적으로 행복해지는 데 있다. 기업의 행복추구는 고객, 구성원, 주주, 사회 등 이해 관계자의 그것과 일치한다. 먼저, 기업은 고객 행복에 기여해야 한다. 기업은 품질 좋은 상품과 서비스를 개발하여 공급해야 한다. 고객은 이런 제품과 서비스를 이용함으로써 행복을 얻을 수 있다. 둘째로 기업은 구성원들에게 행복감을 느낄 수 있도록 제반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고객을 만족시켜 이윤을 창출하고 이를 구성원들에게 복지, 성과급 등 다양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구성원 개개인이 자기계발을 통해 자아실현을 이룰 수 있는 장을 마련해야 한다. 셋째, 기업은 위험을 감수하고 투자한 주주들의 행복에도 책임져야 한다. 기업은 투명하고 합리적인 경영을 펼쳐야 하며 또한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 즉 회사의 가치를 제고해 주주들에게 그 이익이 되돌아가도록 해야 한다. 넷째, 기업은 사회의 행복에도 기여해야 한다. 기업 성장의 토양인 우리 이웃과 함께 행복하기 위해 기업은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을 펼치는 것이다. 기업이 이해 관계자의 행복 추구 때문에 이윤 추구를 등한시하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최대한의 이윤 창출을 통해 합리적인 방법으로 이해 관계자에 나누어 줄 때, 우리 모두가 행복해지는 것이다. 즉 이윤추구도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행복을 만들어 내는 방식 중의 하나라는 것. 필자의 회사 역시 고객, 구성원, 주주, 사회의 행복을 염두에 두고 사업을 펼치고 있다. 위성DMB라는 이동방송 서비스를 현실에 구현함으로써 고객들이 언제, 어디서나 방송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도록 돕는다. 또한 자연재해시에 재난 방송을 실시해 가입자들의 안전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게 한다. 이렇게 고객이 만족하고 행복함으로써 기업의 가치는 증가하고, 이는 곧 내부 구성원과 주주 모두에게 다양한 혜택으로 돌아갈 것이다. 또 폭넓고 알찬 방송 서비스를 통해 사회의 공익에 기여하고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을 통해 우리 이웃들의 행복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도록 할 것이다. 2006년에는 정부는 물론 모든 기업들이 궁극적인 목표가 행복임을 인식하고, 각자 분야의 행복경영을 통해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 나가기를 기원한다. 서영길 TU미디어 사장
  • [선생님과 함께하는 초등논술] (5) 고학년 논술형 평가 준비

    ‘창의적 인간의 육성’이라는 7차 교육과정의 정신을 구현하는 데 논술 교육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논술이 단순한 글쓰기가 아닌 개인의 사전 지식과 다양한 정보가 총동원되는 총체적 산물이라는 점에서다. 6학년 학생들에게 제시될 만한 평가 문제를 예시로 출제 의도나 논술의 주안점, 가정에서 대비할 수 있는 방법 등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6학년 1학기 말하기·듣기·쓰기 영역의 넷째마당 학습제재 중 ‘책을 빌려주세요’는 초등학생 수지가 교장선생님께 요구사항을 담아 쓴 편지글이다. 이 글을 읽고 ‘글에 담긴 수지의 주장을 쓰시오.’라고 출제하면 서술형 평가가 된다. 이때 정답을 찾기 위해서는 주어진 글을 중심 문장과 뒷받침 문장으로 구분하여 본다. 그러면 ‘도서실 이용 시간을 좀 더 늘리고 책을 집으로 빌려 갈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이라는 수지의 주장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수지가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제시하고 있는 근거가 적절한지 자신의 생각을 글로 쓰시오.’라고 출제된다면 논술형 문제가 된다. 논술형 문제에서는 정형화된 정답은 없지만 다음의 요소를 갖추어 글을 써야 한다. 첫째, 자신의 주장이 담겨야 한다. 예를 들어 ‘수지의 근거는 적절하다/ 수지의 근거는 적절하지 않다’ 등 자신의 생각이 정확히 나타나 있어야 한다. 둘째, 주장에 대한 타당한 근거가 제시되어야 한다.‘수지의 근거는 적절하다. 수업이 늦게 끝나는 6학년이 4시 30분까지 운영하는 도서실을 제대로 이용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라든가 또는 ‘수지의 근거는 적절하지 않다. 왜냐하면, 요즈음 각 가정마다 컴퓨터도 많고 집에도 책이 있고 다른 도서실도 있는데 굳이 학교 도서실을 이용해야 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와 같이 근거를 들 수 있다. 이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이유나 근거가 타당한 논리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근거가 타당한 근거인지 알아 둘 필요가 있다. 타당한 근거는 믿을 수 있는 자료,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 여러 사람의 의견을 종합한 설문 결과, 통계 자료나 도표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타당한 근거를 들어 자신의 주장을 글로 표현하기란 쉽지 않다. 가정에서 논술 평가에 대비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해 보면, 먼저 가족회의를 권장하고 싶다.‘방학 중 여행지의 결정’이나 ‘아동의 진로 결정’과 같은 대소사를 결정할 때, 온 가족이 모여 함께 의논하는 경험은 아동으로 하여금 입장에 따라 다양한 의사가 있을 수 있음을 깨닫게 하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의 체험을 가능하게 한다. 이때, 자신의 주장만 내세울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한 타당한 근거를 이야기할 수 있도록 부모의 대화기술이 필요하다.“왜 그렇게 생각하지?”,“음, 좋은 생각인데, 그 이유는 뭐지?”와 같이 자연스런 대화 속에서 자신의 주장을 바르게 세우는 능력이 길러지기 때문이다. 또한 독서 노트의 활용을 권장한다. 책이나 신문, 잡지 등에서 좋은 글귀나 새롭게 알게 된 흥미로운 자료, 도표나 그래프 등을 영역별로(예를 들어 환경, 인권, 건강, 진로 등) 평소 정리해 두는 습관을 기른다면 타당한 근거를 세우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논술 능력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평범한 진리를 새기고 정보수집에 게을리 하지 않아야 비로소 논술형 평가에 대한 두려움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서울교육대학교 부설초등학교 교사 유경미
  • [발언대] 농업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김재수 주미 대사관 농무관

    지난해부터 금년 초까지 우리 농업 부문은 참으로 어려운 시기를 지나왔다. 생활이 어려워 자살하는 농민이 생기고, 쌀 협상 비준을 반대하는 시위가 이어졌다. 올해는 그러한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하면서 농업문제 해결을 위한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 농업문제의 핵심을 제대로 보아야 한다. 일부에서는 농업구조 조정이 안돼 어렵다고 한다. 참으로 순진하고 단순한 상황 인식이다. 우리 경제가 다른 나라보다 4∼5배 빠르게 압축성장하는 바람에 한국 농업은 구조조정이 너무 빠르게 일어났다.50세 이상의 고령인구가 거의 60%를 차지하는데 구조조정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구조조정은 과거의 실패 사례로 충분하며 구조조정만으로 농업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둘째 선진국 농업은 문제가 없는데 우리나라만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지극히 잘못된 인식이다. 세계 최대의 농업국가인 미국도 농업문제로 어려움이 많다. 농업보조금을 대폭 감축하고 수출보조도 제한하라는 압력을 국제적으로 받고 있다. 그러나 막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가진 농민단체나 의회가 반대한다. 특히 농업투자의 효율성을 높이고 농업정책을 개혁하라는 요구가 국내적으로 제기된다. 엄청난 규모의 농업 지원에도 불구하고 농촌 생활이나 교육 및 복지수준은 나아지지 않아 농민 불만은 증대된다. 다국적 기업이나 대규모 농가만 살찌우고 미국 농촌과 농업의 뿌리가 되는 가족농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몇가지 대책이나 단기 처방으로는 현재의 농업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미국 스스로도 평가한다. 셋째 개방화의 세계적인 추세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농민의 주체적인 인식 전환이 가장 중요하다. 틈새를 찾으면 희망과 비전이 보인다. 한국산 파프리카에 2억불에 이르는 미국의 파프리카 시장이 지난해 열렸다. 지난 주 미국 최대의 농민단체인 미국 농업연합(AFBF)의 밥 스톨먼 회장은 “수십년간 미국 농업을 지켜주던 튼튼한 다리가 내려 앉기 시작했다.”고 하면서 이제는 과거의 정책에 안주하지 말고 변화하자고 주장하였다. 농민단체의 주체적인 인식 변화가 매우 인상적이다. 넷째 미국의 링컨 대통령은 1862년 농무부를 창설하면서 부처의 이름을 농무부라 하지 않고 ‘국민의 부처(people’s department)’라고 하였다. 농민뿐만 아니라 전체 국민을 위하여 일하는 부처이며 국민 모두의 부처라는 생각과 사상이 담겨 있다. 우리도 농림부를 전체 국민의 부처로 인식해야 한다. 농업을 보는 인식전환이 필요하며 선택은 국민의 몫이다. 김재수 주미 대사관 농무관
  • [옴부즈맨 칼럼] 볼거리 속에 아쉬움 배어 있는 신년호/황용석 건국대 신문방송학 교수

    신문은 1년 365일 언제나 새로운 내용으로 채워지지만 신년호를 읽는 즐거움은 남다르다. 서울신문의 2006년 신년호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볼거리를 제공한 것 같다. 기획기사의 종류나 양이 풍부해서 이틀의 연휴를 메워 주는 읽을거리를 제공했다. 특히 ‘소프트 파워시대’는 주제의 시의성이나 독창성 면에서 가장 두드러진 기획이었다. 그 가운데 세계 석학들과의 인터뷰기사가 눈에 띈다. 이 기사는 비록 대중성은 낮지만 신문의 소스원을 세계적 석학들로 확대하고 해외에 나가 있는 서울신문 특파원들을 효과적으로 활용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선정된 석학들의 면면과 그 내용도 전체 주제를 뒷받침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이와 더불어 ‘실버 재테크’,‘양극화’,‘저출산’ 역시 좋은 기획이었다. 그러나 서울신문의 신년호는 한편으로 허기도 느끼게 한다. 첫째 신년호에서 서울신문의 편집정책을 읽을 수 없었다는 점이다.2005년은 한국 신문의 산업적 위기와 신뢰도 저하, 취재윤리문제 부각 그리고 타 매체와의 속도와 질적 경쟁에서 많은 문제점을 보여주었다. 한국의 그 어떤 신문도 이런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렇기에 필자는 신문들이 새해에 독자들에게 어떤 서비스를 강화하고 어떤 편집정책을 공표할지 내심 궁금했었다. 지면개편 시기가 아니기는 하지만 적어도 신문사의 새해 목표나 다짐은 필요하지 않았을까? 신년사설은 ‘국민 통합의 시대’를 이야기하면서 ‘국민’과 ‘유권자’를 향한 이야기는 하지만 ‘독자’에게 건네는 다짐과 말은 찾기 힘들다. 둘째 여전히 대통령선거라는 ‘빅 게임’에 주목하는 대선 여론조사 보도는 가장 유감스러운 기획이다. 지방자치단체장 선거가 있는 해이지만 서울신문을 비롯한 많은 언론들이 대통령 선거에 주목하고 예비후보를 놓고 가상 시나리오 조사를 수행했다. 당내 경선후보도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연초부터 이 같은 큰 선거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우리 언론의 오래된 관행이 돼 버렸다. 이는 ‘작은 정치’ 또는 ‘생활정치’를 묻히게 하고 정치를 게임화시키는 부작용을 낳는다. 이런 기사가 대중에게 가장 인기 있다는 점을 부정하지 않지만 결과적으로 이 기사가 다른 신문사의 신년기획과 비교해서 차별화된 우위를 차지했는지 그리고 독자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했는지를 묻고 싶다. 셋째 ‘한류’나 ‘월드컵’과 같은 기획은 주제나 기사의 구성이 다소 평면적이고 예측가능해서 끝까지 읽히지 않았다. 다른 언론도 많이 다룬 주제이기 때문이다. 조금 다른 접근을 시도했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언제나 등장하는 ‘월드컵 스타’ 특집 대신에 산골마을 어린이 축구단을 다루었다면 더 신선했을 것 같다. 넷째 서울신문의 2006년 캠페인 ‘세이프코리아-안전한 나라를 만듭시다’는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안전의식 캠페인’으로서 1년 동안 역점을 두어 다룰 만한 가치가 있는 주제이다. 신년호에서는 안전의식에 대한 전화여론조사 결과보도와 공동으로 캠페인에 참여하는 소방방재청과 한국재난안전네트워크를 소개하는 기사를 담고 있다. 이 가운데 소방방재청장 인터뷰 기사를 보면 이 기획이 ‘안전 캠페인’인지 아니면 신설된 ‘소방방재청에 대한 캠페인’인지 잠깐 혼란도 생긴다. 정부기관과 공동으로 캠페인을 수행함으로써 생기는 효율성과 효과도 크지만 이것이 자칫 국가의 ‘재난방재시스템’을 관장하는 소방방재청에 대한 비판적 보도를 무디게 할지 모른다는 걱정도 앞선다. 또 캠페인의 주제가 국민개인의 ‘의식전환’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제도적 문제나 정부 주무부처의 정책에 대한 문제가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루어질까 우려스럽다. 이 문제는 서울신문이 신년호기사에서 제도나 정책문제를 중요하게 다루겠다고 공표했기에 독자로서 계속 관심 있게 지켜보겠다. 황용석 건국대 신문방송학 교수
  • [열린세상] 국민건강 증진대책을 보고 싶다/ 이태복 전 보건복지부 장관

    새해에 가장 많이 건네는 덕담이 건강하시라는 인사다. 젊은이들을 제외하고 건강에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이 없지만 그래도 나이를 먹을수록 걱정이 앞서기 마련이다. 이 경우는 현재 건강한 노인에 속한다. 하지만 65세 이상 노인층의 80%가 한 개의 질병을 갖고 있고 65% 이상이 2개의 질병을 앓고 있다는 통계가 나올 정도로 대다수 노인들은 ‘건강 이상’에 빠져 있다. 65세 이상의 고령 노인이 지난해 말로 약 470만 명에 달했다고 하니 400만 명 이상의 노인이 만성질환을 앓고 있다고 봐야 한다. 수명이 늘어날수록 노인층의 만성 질환자도 증가한다. 그러나 이들의 문제만은 아니다. 만성질환자 문제는 노인층뿐 아니라 국민 일반의 문제로 되고 있다. 소년 당뇨환자나 고혈압 환자가 늘어나고 있다. 이제는 이런 만성 질환들이 나이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인간의 육체를 갉아먹고 있는 것이다. 의료비의 폭증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건강이 개선되고 있지 않다면 문제가 심각하다. 이에 비해 정부와 국민들의 대처는 안이하기만 하다. 정부는 2002년에 고혈압, 당뇨, 뇌졸중, 심혈관, 관절 등 5대 질환에 대해 특별연구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수준이다. 국민들은 병을 키우고 난 뒤에야 투병생활과 치료비 때문에 고생을 하고 있다. 정부의 무능력과 무사안일한 보건행정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렇다면 어떤 대책이 필요한가. 첫째 정부는 만성 질환자에 대한 특별대책을 세워야 한다. 지난 2002년에 수립된 대책도 있는데, 장관 교체로 아직까지 먼지만 쌓이고 있다. 그때의 대책도 기존 의료제도만을 전제로 한 것으로 한계가 분명하다. 만성 질환자들은 365일을 의사와 약을 벗 삼아 살아야 하는데 이들이 이 병원 저 의사를 찾아다니며 낭비하는 의료비가 적지 않다. 만성질환자에 대한 치료표준과 엄격한 예방적 조치와 과정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둘째는 국민건강증진사업을 획기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담배에 부과한 국민건강증진기금이 제 목적대로 쓰이지 못하고 건강보험의 적자를 메우는 데 쓰이는 것은 한심한 일이다. 건강보험운영을 개혁해서 자체해결의 방법을 찾고 건강증진기금은 본래 계획대로 국민들의 건강증진사업에 투자돼야 한다. 국민들이 일상 생활에서 건강을 관리할 수 있는 스포츠센터와 동네공원, 건강프로그램 등을 구체화해야 한다. 전국의 수만 개에 달하는 경로당에 건강증진프로그램을 체계적으로 운영해도 상당한 성과를 거둘 것이다. 셋째는 공공보건지소를 확대해야 한다. 경제부처와 의료계의 반대 때문에 공공보건지소 확대사업이 지지부진한 것은 참여정부도 마찬가지다. 경제부처는 대통령의 지시사항까지 거부할 정도로 신자유주의적 사고방식을 고수하고 있고 의료계는 이해관계 때문에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국민들의 건강증진 사업과 빈곤층의 의료비 폭증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공공의료를 30% 수준까지 끌어올려야 한다. 의료계도 단기적 이해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의료의 사회적 기능과 존재방식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넷째는 제도의료 밖에 있는 전통의료를 제도화할 수 있는 방안을 이제는 내놓아야 한다. 이 사업은 인화성이 강한 폭발물일지 모른다. 하지만 언제까지 외면할 수는 없다. 전통의료 역시 만능이 아니며 부작용 또한 적지 않으므로 공론화의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할 것이다. 2006년 한해 국민 모두 별 탈 없이 생활할 수 있도록 투병생활을 하고 계시는 분들에게는 정말 기쁜 소식이 많았으면 좋겠다. 이태복 전 보건복지부 장관
  • 2006년엔 이런일이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나노 기술(테크놀로지)이 쓰레기를 음식물로 바꿀 정도로 발전할 것이다.” 미래의 사회 현상을 연구하는 세계미래회의(World Future Society)는 나노 기술 발전과 미국 공교육 위기 등 2006년에 전세계에서 발생할 10가지 현상을 예견하는 보고서를 2일 발표했다.1966년 창설된 세계미래회의는 워싱턴에 본부를 두고 있으며 그동안 냉전 종식과 인터넷의 도래, 가상 현실 등을 정확하게 예견한 바 있다. 세계미래회의가 예견한 올해의 10대 현상은 다음과 같다. 첫째 나노 테크놀로지의 응용 분야가 확대될 것이다. 전장에 나가 있는 병사들의 건강을 검진하고, 쓰레기를 음식물로 전환하는 것도 나노 테크를 통해 가능해질 것이다. 특히 의료 분야에서 나노 기술의 활용이 본격화돼 2025년까지는 극소형 기계가 동맥에서 콜레스테롤 혈소판을 없애고 암세포가 종양이 되기 전에 파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둘째 미국의 공교육이 생존을 위한 투쟁에 직면할 것이다. 전미교육협회에 따르면 미국의 노후된 학교 시설을 현대화하기 위해 필요한 예산은 무려 3220억달러(약 322조원)에 이른다. 이는 현재 미 정부가 교육에 투입하는 예산의 10배에 해당하는 규모다. 셋째 올해부터 5년 동안 바람과 조수를 이용한 전력 생산이 크게 늘어날 것이다.2008년까지 세계적으로 5800메가와트의 전력을 생산하는 풍력 및 조력 발전소가 해변에 건설될 것이다. 풍력 발전 시장의 규모는 2008년까지 3억달러에 이를 것이다. 넷째 많은 병원과 의사들이 무선 인터넷의 활용을 늘려갈 것이다. 환자를 위해 입을 수 있는 컴퓨터나 센서가 내장된 침대 매트리스가 실용화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간호사들은 환자들이 심전도 장치에 연결돼 있는가를 계속 확인하지 않아도 된다. 다섯째 ‘디지털 비서’가 등장할 것이다. 인터넷 검색엔진의 발달로 몇 가지 키워드만 맞춰 놓으면 컴퓨터가 알아서 필요한 정보를 모두 찾아 놓을 것이다. 여섯째 알츠하이머 증후군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늘어날 것이다. 평균 연령이 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선진국에서는 전 인구의 2%가 알츠하이머 증세를 안고 산다. 일곱째 지구온난화로 인한 사망자도 늘어날 것이다. 여름철 오존 관련 사망자, 온실효과로 인한 사망자, 도심의 열섬현상으로 인한 피해자가 계속 늘고 있다. 여덟째 라틴아메리카의 과학이 급속도 발전할 것이다.1988년 이후 라틴아메리카 출신자의 과학 및 공학 연구논문 인용은 200%나 늘었다. 다른 비개발 지역을 압도한다. 아홉째 태양열 발전이 고용을 창출할 것이다. 올해부터 앞으로 10년간 미국에서는 태양열 산업이 340억달러 규모의 투자를 유발할 것이다. 열째 정보의 공개 확대가 고용에 변화를 줄 것이다. 그것은 마치 블로그가 기존의 미디어와 저널리즘에 변화를 가져온 것과 마찬가지다. dawn@seoul.co.kr
  • 한진家 ‘유산배분 불만’ 폭발한 듯

    한진家 ‘유산배분 불만’ 폭발한 듯

    한진가(家)의 4형제가 편을 나눠 진흙탕 싸움을 시작했다. 그동안 무성했던 소문이 사실로 확인됐다. 겉으로 드러난 것은 3억 4500만원(액면가 5000원 기준)어치의 주식(정석기업 6만 9000주)을 놓고 ‘내 것이다’,‘아니다’의 다툼이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유산 배분에 불만을 품은 형제들이 법정 소송으로 악감정을 표출한 것으로 보인다. 돈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형제간 불화설이 불거질 때마다 일축했던 대한항공으로서는 매우 곤혹스럽다는 반응이다. 특히 연초 조양호 회장 장남의 교통사고로 구설수에 오른 데 이어 연말엔 ‘형제 싸움’까지 터지면서 이래저래 심기가 편치 않다는 후문이다. ●한진가 4형제 예고된 갈등 장남인 조양호 회장과 3남인 조수호 한진해운 회장, 차남인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과 4남인 조정호 메리츠증권 회장이 각각 편을 이뤄 불화를 겪고 있다는 소문은 그동안 끊임없이 나돌았다. 한진그룹 계열사 중 대한항공과 한진해운 등 ‘노른자’를 상속받은 양호-수호 회장쪽과 상대적으로 비주력 계열사였던 중공업과 금융 부문을 차지한 남호-정호 회장 사이에 갈등이 심각하다는 것이다. 중공업과 금융 부문이 올해 그룹에서 계열분리됐지만 경영 현장에선 이미 ‘다른 식구’라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실제로 조양호 회장의 대한항공은 지난해 조남호 회장 소유의 한일CC 골프장에서 광고판을 모두 철수했다. 대한항공은 또 조정호 회장이 소유한 메리츠화재와 5000만달러에 달하는 운송보험 계약도 해지하고, 영국 로이드 보험사와 계약을 했다. 조수호 회장이 경영하는 한진해운도 메리츠화재와의 계약을 축소하고,LG화재와 선박과 상해보험 관련 계약을 맺었다. 이에 맞서 조정호 회장도 한불종합금융의 사무실을 한진그룹 소유의 해운센터 빌딩에서 서울 중구의 파이낸스센터로 이전했다. 반면 ‘동맹’ 관계인 형제간에는 공동 보조를 맞추고 있다. 첫째-셋째의 대한항공과 한진해운은 중국 물류시장에 함께 진출해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넷째 소유의 메리츠화재 서울 강남 신축 사옥은 둘째의 한진중공업이 시공을 맡는 등 든든한 협력관계를 보여주고 있어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갈등 해결 쉽지 않을듯 재계에선 한진가 4형제가 꼬인 실타래를 풀기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첫째와 셋째에게 ‘공개 망신’을 주기 위해 둘째와 넷째가 일을 벌인 만큼 납득할 수준이 아니면 합의가 쉽게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부친인 고 조중훈 회장의 유언장 조작설까지 떠오르면서 두산가의 ‘형제의 난’처럼 한진가의 4형제도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2003년 형제간 재산 싸움을 막기 위해 만든 합의서도 깨진 만큼 4형제가 이제는 ‘제 갈길’로 가겠다는 포석으로 받아들여진다. 이 때문에 4형제의 돌출 발언 가능성도 엿보인다. 한진가 갈등의 도화선이 된 정석기업은 빌딩종합관리 전문업체로 자본금 104억원, 매출액 250억원 규모의 작은 회사다. 정석기업은 고 조중훈 회장의 호인 ‘정석’을 본뜬 회사이다. 지분구조는 조양호 회장이 25.0%, 대한항공이 24.4%를 갖고 있으며, 조중건 전 부회장과 김성배 고문도 각각 7.9%,3.3%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조남호 회장과 조정호 회장은 지분이 없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儒林(501)-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23)

    儒林(501)-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23)

    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23) 성주를 떠난 율곡은 정처 없이 북행하고 있었다. 목적지는 강릉의 외갓집. 그로서는 실로 3년만의 귀향이었다. 19세 되던 해 3월. 율곡은 불교에 귀의하고 금강산에 입산하였으나 1년 만에 하산한 후 한때 강릉의 오죽헌에 머물며 와신상담하고 있었다. 이때 율곡이 얼마나 노심초사하고 있었던가는 이 무렵 율곡의 머리가 너무나 길어서 머리를 빗을 때면 선 채로 빗을 만큼 봉두난발이었다고 한다. 이처럼 율곡은 그 무렵 자신의 행색에 대해서 무신경할 만큼 정신적으로 방황하고 있었던 듯 보인다. 다행히 20세의 청년 율곡의 곁에서 마음의 안식처가 되어준 사람은 외할머니 이씨.4년 전 사랑하는 딸 신사임당을 여의고 시름에 잠겨있던 외할머니는 어느 날 홀연히 종적을 감추었다가 1년 만에 나타난 외손자를 보자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온 것만큼 반겨 맞았다. 외할머니 이씨는 이미 76세였고, 오죽헌에는 율곡의 넷째이모부였던 권화(權和)가 안팎살림을 도맡아 하고 있었다. 권화는 원래 강릉사람으로 아들이 없는 이 가문에 데릴사위로 들어와 장모를 모시고 가장노릇을 하고 있는 셈이었는데, 그는 율곡을 자신의 친아들처럼 사랑하였다. 질풍노도의 청년 이율곡에게 외할머니와 이모부 권화만은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각별한 사람들이었다. 훗날 이조좌랑이었던 33세의 율곡이 11월 외할머니가 위급하다는 전갈을 받자마자 벼슬을 버리고 강릉으로 달려간 것과 외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상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올 때에는 권화가 대관령 아래에까지 배웅하며 작별을 아쉬워했다는 기록을 보면 이 두 사람이 율곡의 생애에서 차지한 비중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미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율곡은 이처럼 지극히 아끼고 사랑하는 외할머니와 따뜻이 대해주는 이모부의 배려 속에서 모처럼 마음의 평화를 누리며 자신의 나아갈 방향과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목표를 심사숙고하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이때 율곡은 그 유명한 ‘자경문(自警文)’을 짓는다. ‘자경문’이란 문자 그대로 ‘스스로 경계하여 조심하는 글’이란 뜻으로 전문은 11조로 구성되어 있다. 율곡의 인생에서 커다란 삶의 전환을 의미하며 그의 사상은 그 이후에 다방면으로 전개되어 더욱 깊고 심화되었으니, 자경문은 그의 일생의 이정표를 스스로 정립한 일종의 소크라테스적 아폴로기(Apology:변명)였던 것이다. 원래 ‘자경문’이란 불가에서 초발심문(初發心文)과 함께 사미승이 맨 처음 공부하는 기본서로, 승려 야운(野雲)이 지은 책이었다. 그러므로 방금 금강산에서 하산하였던 율곡이 스스로 경계하는 글을 지었다는 것은 아직도 불교적 영향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뜻하고 있지만 그 내용은 오히려 한때 불교교리에 심취하였던 자신의 마음을 추스르고 유학으로 나아가고자하는 입지를 결연하게 드러내 보인 문장으로, 이는 율곡이 평생 동안 지켜나간 인생의 좌우명이 되었던 것이다.
  • [대입 정시모집 지원 전략] 내점수 맞는 포트폴리오 짜라

    올해 대입 정시모집 원서접수가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 그동안 막연히 망설이며 고민하던 대학·학부를 이제 구체적으로 결정해야 한다. 올해는 언어 영역을 제외한 수능 대부분의 영역이 비교적 어렵게 출제된 것으로 알려져 수험생들의 고민이 적지 않다. 그러나 올해 입시의 특징을 바탕으로 지원하려는 대학·학부의 전형 요강을 꼼꼼히 살핀다면 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14∼15일 두 차례에 걸쳐 올해 정시모집 지원전략을 살펴본다. 정시모집에 지원하기에 앞서 올해의 특징을 파악한 뒤 이에 따른 지원 전략을 세우는 것이 바람직하다. 올해 정시모집의 특징은 우선 정원이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지난해에는 22만 1746명을 모집했지만 올해에는 2만 1000여명이 줄어 20만 773명을 선발한다. 특히 상위 20개 대학의 정원이 3000명 정도 줄어 경쟁률이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둘째 올해 수능에서는 언어 영역을 제외하고 전반적으로 어렵게 출제됐다. 이 때문에 대학별 합격 가능한 표준점수가 지난해보다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 또 수리 ‘가’형이 어렵게 출제돼 수리 ‘나’형과의 표준점수 차이가 좁혀지면서 수리 ‘나’형 응시자가 자연계열로 교차지원할 때 유리한 정도가 줄어들 것이다. 셋째, 탐구 영역은 과목별 배점은 적으면서 상대적으로 점수대별 동점자가 많다. 따라서 한 문항을 틀리더라도 표준점수나 백분위의 차이가 상당히 커져 실제 입시에서의 영향력은 언어, 수리, 외국어 영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커질 가능성이 있다. 넷째, 최근 몇 년 동안 취업 및 자격증 취득 때문에 강세를 보였던 의학관련 학과(의예, 치의예, 한의예, 약학, 수의예) 및 교육대학의 강세가 올해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이러한 특징을 감안해 지원전략을 세우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의 수능 성적부터 세밀하게 분석해야 한다. 어떤 영역이 유리하고 불리한지, 표준점수가 유리한지 백분위가 유리한지,3+1 영역이 유리한지 2+1 영역이 유리한지 등을 객관적으로 분석하여 자신에게 유리한 부분을 최대한 활용하고, 불리한 부분을 최소화할 수 있는 대학·학부를 선택해야 한다. 둘째, 수험생 스스로 지원 가능한 대학·학부의 입시요강 분석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대학마다 전형 방법이 다르고, 수능과 학생부 반영 방법 등이 모두 다르다. 따라서 지원을 검토하는 대학·학부의 수능과 학생부 반영 방법, 대학별고사 실시 여부, 교차지원 가감점 여부 등을 꼼꼼하게 비교 분석해야 한다. 셋째, 합격 가능성 여부는 종합적으로 판단하되, 필요하면 학교 선생님 등 전문가의 조언을 들어야 한다. 개별 전형 자료별로 유리한지 불리한지를 분석했다면 모든 전형 자료를 종합적으로 비교 분석해 합격 가능성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넷째, 자신에게 맞는 지원전략 포트폴리오를 작성해야 한다. 입시 군별로 2∼3개 대학·학부를 선택하여 우선순위를 정한 다음에는, 수험생 개개인의 지원 성향(‘꼭 합격한다.’,‘재수도 할 수 있다.’ 등)에 따라 입시 군별 대학·학부의 조합을 만들어본다. 다섯째, 최종 결정은 반드시 수험생 자신이 해야 한다. 힘든 과정을 거쳐 선택한 대학에 최종 합격을 하고도 대학이나 전공이 자신의 적성에 맞지 않아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지금 선택하는 대학·학부가 앞으로의 삶과 연관하여 자신이 원하는 선택이 되어야 한다. 자칫 점수와 대학에 연연해 지원하다 보면 머지않아 후회하게 되고 진로 전체를 수정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신중하고 깊이 있는 고민과 선택을 해야 한다. 김영일 중앙학원 원장·김영일교육컨설팅 소장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대림산업-이준용 회장家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대림산업-이준용 회장家

    대림산업은 지난 1976년 상장 이후 주주들에게 기업 이익을 돌려주고 있다. 건설업체 가운데 오랫동안 빠지지 않고 배당을 한 기업을 찾기란 여간 쉽지 않다.30여년 동안 배당을 거르지 않았다는 것은 부침이 심한 건설업계에서 대림이 오랜 전통을 지켜온 명실상부한 전문 건설업체라는 것을 의미한다. 비슷한 시기에 같은 업종으로 출발했던 현대건설이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늘린 것과 사뭇 다르다. 특히 단순 제조업에는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대림산업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보수적인 기업 이미지를 떠올린다. 대림 스스로도 이를 인정한다. 그러나 변화를 거부하는 수구는 아니다. 단지 정통 건설 기업에서 벗어나지 않고 조용하게 기업을 일구겠다는 것이 대림산업의 문화라고 할 수 있다. ●1세대, 정미소에서 건설 명가로 성장 고 이재준(수암) 대림산업 창업주는 경기도 시흥(현재 산본 신도시 일대)에서 부친 이규응 옹과 모친 양남옥 여사의 5남4녀 가운데 차남(넷째)으로 태어났다. 고 이재형 전 국회의장이 이 창업주의 바로 손위 형이며 이재연(74) 아시안스타 회장이 막내 동생이다. 부친은 장남에게는 공부를 시켰지만, 사업 기질이 보였던 차남에게는 장사를 배우라면서 보통학교만 졸업시킨 뒤 자기 밑에 두었다. 수암은 이 때부터 부친이 경영하던 서울 서대문 한일정미소에서 경영수업을 받았다. 이것이 오늘날의 대림을 키우는 원동력이 됐다. 대림의 태동은 1939년 부평에서 목재와 건자재상으로 문을 연 부림(富林)상회에서 출발했다. 초기 부림상회를 이끈 주인공은 3명. 이재준 창업주와 그의 고종 사촌형인 이석구 전 대림산업 사장, 이석구의 매제 원장희로 알려졌다. 사촌지간은 각각 1만 5000원씩 출자했고, 원장희씨는 1만원을 출자했다는 것이다. 이석구는 풍림산업 이필웅 회장의 부친. 결국 대림과 풍림의 뿌리는 부림상회로 같다. 부림상회는 원목을 개발, 사세를 키웠고 광복 이후 군정청으로부터 원목을 값싸게 인수해 교실을 짓는데 들어가는 목재 등을 만들어 팔기도 했다. 이후 사업이 번창해 1947년 건설업에 진출하면서 상호를 대림산업으로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부평경찰서 신축 공사 수주는 건설업체로서 첫 걸음을 내딛는 계기였다. 주한미군 공사를 수주하기도 했다. 이즈음부터 우리나라 건설업이 시작됐다고 보면 된다. 당시 국내 건설업계를 대표하는 기업으로는 대림산업·현대건설·삼환기업 등이었다. 49년부터는 건설업이 목재업을 앞질러 주력업종으로 자리잡았다. 한국전쟁 중에는 피란민 수용소를 짓는 등 군 시설 공사를 맡았고, 한국경제 재건기를 거치면서 굵직한 공사를 따냈다.58년 시작된 청계천 복구공사와 청계고가도로 건설, 경부고속도로, 소양강댐건설 등 굵직한 사회간접자본시설 현장마다 대림의 깃발이 나부꼈다. 60년에는 풍림산업을 인수, 자회사 형태로 두었다. 서울 영동·잠실·반포지구 개발과 광진교, 영동대교, 양화교 등 한강 다리 공사에도 대림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지하철 시대를 여는데도 대림은 처음부터 참여했다. 동시에 해외공사 수주를 늘리는 등 사세를 키웠다. 54년에 설립한 서울증권은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99년 구조조정차원에서 소로스에 매각했다. 지금은 지분을 전혀 소유하지 않고 있다. 대림통상은 아예 동생 재우씨에게 떼어줘 형제간 사업 분리를 마무리지었다. 대림요업 역시 98년 매각하면서 지분을 대림통상에 넘겼다. 창업주가 생전 계열 분리를 통해 경영권 분쟁의 씨앗을 남기지 않았다. ●난형난제(難兄難弟)…운경 이재형 대림산업을 말할 때 흔히 고 운경 이재형 전 국회의장을 끌어들인다. 수암 이재준 창업자와 비교하기도 한다. 정계와 재계에서 각각 독특한 개성으로 주목받으며 거목으로 우뚝 섰던 인물이다.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고집스러운 면모, 흐트러짐 없는 자세와 말을 아끼는 점에서 같았다. 운경은 자유당·공화당 시절 내내 골수 야당을 했다. 그래서 동생이 운영하는 대림은 자주 곤욕을 치렀다. 대림에서 정치자금을 대주지 않나 하는 의심과 함께 야당 정치인에 대한 압박 수단으로 대림은 수시로 세무사찰을 받아야 했다. 민정당 시절에도 운경과 수암, 그리고 이준용(67) 회장은 형과 동생, 백부와 조카라는 혈연 빼고는 아무런 관계를 맺지 않았다. 운경이 정치한다고 자금을 요구하지 않았고, 대림 역시 운경에게 베풀거나 받지도 않았다. 서로 철저하게 독립된 길을 걸어온 것이다. ●2세대, 건설업에 유화부문 키워 양대축 형성 수암 이재준은 열아홉 되던 해 수원지역 대지주의 딸인 이경숙과 결혼했다. 이 여사는 그러나 장남 준용(현 대림산업 회장)을 낳은지 4년만에 세상을 떴다. 창업주는 박영복 여사와 재혼, 차남 부용(전 대림산업 부회장·61)을 얻었다. 단출하게 두 아들만 두어 경영권 이양 등에서 큰 불협화음이 없었다. 이 회장은 부친과 달리 정규 교육 혜택을 입고 착실히 경영 수업을 받았다. 경기고, 서울대 상대를 졸업한 뒤 미국 덴버대에서 통계학을 전공하고 귀국했다. 귀국 후에도 영남대와 숭실대에서 잠시 강의를 맡는 등 학자풍의 엘리트였다. 그러면서 한경진 여사와 결혼하고 66년부터 대림산업 사무실에 출근했다. 경영 참여와 관련, 이 회장은 “본격적으로 해외 건설시장을 개척할 시기였는데 해외감각과 국제업무에 정통한 사람이 필요했고, 명예 회장의 강력한 요청도 있었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국내외 공사를 막론하고 창업주를 도왔다. 유창한 영어는 해외공사 수주는 물론 각종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됐다. 국내에서는 내실을 다지는데 주력했다.78년 당시 부사장이었던 그는 건설업계 최초로 업무 전산화 작업을 추진하는 등 경영정보시스템 구축에 앞장섰다. 업계는 이 회장이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을 가진 인물로 평가하고 있다. 79년에는 사장에 오르면서 색깔을 내기 시작한다. 동생 부용씨는 상무로 승진했다. 건설과 양대 축을 이루는 유화부문의 틀도 이때 마련됐다. 창업주가 목재상을 건설업으로 키웠다면, 이 회장은 여기에 유화부문을 더해 건설과 석유화학의 양대 사업을 구축해 안정과 성장을 이룰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대림산업은 66년 베트남 진출로 국내 최초 해외건설시장을 개척한 이래 중동건설붐의 주도적 역할을 하면서 지금까지 해외건설 맥을 유지하고 있다. 잠실 종합운동장 주경기장, 포항제철 3,4호기 건설공사 등도 대림의 손을 거친 건축물이다.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대림은 국내외에서 뜻하지 않은 사고로 이미지가 실추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86년 개관 11일을 앞두고 독립기념관에서 화재가 발생, 국민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하지만 87년 8월까지 당초보다 더 완벽한 복구공사로 전화위복의 계기를 삼는 저력을 보여주기도 했다.88년에는 이란-이라크 전쟁의 피해를 보기도 했다. 이란 캉간가스정제공장 현장에서 이라크 공군기의 무차별 폭격으로 13명이 죽고 19명이 부상을 당했다. 가장 큰 피해자는 대림이었다. 그런데도 대림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속죄양으로 몰리기도 했다. 대림 역사상 최대 위기였다. 대림은 그 뒤 국내 아파트 공사, 관공서 건물, 평화의 댐공사 등 굵직한 일감을 따내면서 덩치를 키웠으나, 사업 다각화 등으로 몸집을 불린 다른 업체와 달리 한 우물만 고집, 업계 순위에서 상대적으로 밀렸다. ●3세대, 건설·유화 오가면서 경영 보폭 확대중 이 회장의 장남인 이해욱(37) 대림산업 부사장은 건설과 유화부문을 오가면서 경영 수업을 쌓고 지난 7월 전무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미국 덴버대 경제학과를 나와 부친과 동문을 이룬다. 컬럼비아대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고 95년 대림엔지니어링에 입사했다.2000년 건설부문 기획실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 2004년부터 전무를 맡았다. 지난 5월에는 대림산업 지분의 21%를 보유하고 있는 사실상 지주회사인 대림코퍼레이션의 공동 대표이사에도 취임했다. 대림산업은 계열사 12개를 거느린 재계 27위 규모의 대림그룹 모기업이다. 이 부사장은 현재 대림산업 0.47%, 삼호 1.85%, 비상장 종합물류 회사 대림H&L의 주식을 100% 소유하고 있다. 그러나 지분 움직임이 없어 본격적인 경영권 승계라기보다 다양한 경험 축적 과정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혼맥 1세대는 평범,2·3세대는 화려 이재준 창업자는 조선 선조대왕 7번째 왕자인 인성군(仁城君)의 9대손이다. 가문이 번창했기 때문에 수암의 집안은 늘 북적댔다. 생가가 서울로 향하는 길목이라서 오고 가는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500여섬지기 자작농 겸 지주였고 서울에서 큰 정미소를 운영하면서 경영의 덕목을 키워나갔다. 창업주 세대는 대부분 평범한 가정과 연을 맺었다. 큰 누이는 평범한 가정으로 출가했고, 둘째 누이도 작은 사업가에 시집을 갔다. 형님 이재형 전 국회의장 역시 평범한 집안의 류갑경 여사를 아내로 맞았다. 수암도 예외는 아니다. 평범한 가정에서 배필을 맞았다. 아래 동생들도 일반적인 가문과 결혼을 올렸다. 하지만 막내 이재연 아시안스타 회장의 결혼에서는 국내 굴지의 재계와 혼인을 맺는다.LG그룹 구인회 창업주의 차녀 구자혜(68)여사와 결혼하면서 대림과 LG는 사돈의 연을 맺는다. 이를 계기로 이 회장은 줄곧 LG그룹 경영에만 참여하고 있다. 자녀들도 명문가문과 연을 맺었다.LG카드 부회장을 지냈으며 LG그룹 고문으로 활동했다. 이 회장은 장인이 강세원 전 희성금속 사장과, 박동복 전 금호전기 회장과 사돈관계를 맺고 있어 이들과는 한다리 건너 사돈지간이다. 이준용 회장의 형제로 이어진 2세부터는 본격적으로 정·관계, 재계 혼맥이 형성된다. 이 회장은 1965년 연애끝에 이화여대 출신의 한경진 여사와 혼인했다. 장인인 한순성씨는 천안 사업가 집안 출신이었다. 처음에 양가에서 두 사람의 연애결혼을 반대하는 바람에 결혼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차남 이부용 전 대림산업부회장도 경희대 출신의 이선희 여사와 결혼, 재계 인맥을 쌓는다.1970년 집안 어른의 중매로 만났으며 장인이 서울주철회장과 헌정회 이사를 지낸 이종수씨다. 이 회장의 백부인 이재형 전 국회의장은 은행간부 출신인 배상준씨 집안에서 큰 며느리를 맞았다. 이어 큰 딸은 원용덕 전 헌병사령관 아들에게 시집을 보냈다. 작은 사업가와 결혼했던 둘째 고모 고 이임출의 딸은 윤용구 일동제약 회장 아들과 혼인을 맺었다. 숙부 이재연 아시안스타회장은 오세중 세방회장과 추경석 전 건설교통부장관 집안에서 며느리를 얻었다. 3세에 들어서 재계 혼맥은 더욱 두터워진다. 이 회장의 장남인 이해욱 대림산업 부사장은 LG그룹 구자경 명예회장의 외손녀인 김선혜(34) 여사와 결혼했다. 장모가 구자경 회장의 큰 딸 구훤미 여사, 장인은 희성금속 회장을 지낸 고김화중씨다. 이들은 친지의 소개로 만나 연애결혼했다. 이로써 대림산업은 LG가와 두번째 혼맥을 만들었다. 차남 이해승씨의 부인 김경애 여사는 전 미국 미주리대 김현영 박사의 딸이다. 3남 이해창(34)씨의 부인 최영윤(30) 여사는 같은 건설업종인 삼환기업 최용권 회장의 큰딸이다. 초창기 우리나라 토목 건설산업을 일군 두 집안이 사돈을 맺게 된 것이다. 아는 사람이 소개해 연애결혼했다. 결혼 당시 양가 부모들은 청첩장에 결혼 일자만 표시하고 장소, 시간은 넣지 않았다. 친지들에게 두 사람의 결혼 사실만 알리고 식장 참석과 축의금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였다. 막내딸 윤영(33)씨 남편은 외국계 금융사에 근무하고 있으며 현재 일본에 체류 중이다. 가족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일요일마다 이 회장 집에서 모인다. 이 회장은 손자들이 보고 싶을 땐 아침 일찍 자식들 집을 찾곤 한다. ●전문 경영인, 업계 최장수 베테랑 대림산업㈜ 이용구(59) 사장은 6년 가까이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71년 대림에 입사, 해외·주택 영업 담당 임원, 기획조정실장, 행정본부장, 사우디 사업본부장, 공사본부장 등 주요 보직을 거친 정통 건설맨. 몇 안되는 해외건설 전문가로, 국제감각이 탁월한 국제신사로 알려져 있다.35년간 이 회장과 함께 하면서 임직원들의 맏형 역할을 하는 등 이 회장의 신임이 두텁다. 대림산업의 한 축인 유화사업부문을 이끌고 있는 CEO는 한주희(53) 대표이사 부사장.80년 입사해 관리, 기술기획 및 영업 핵심 업무를 맡았다. 대림 코퍼레이션 기획 담당 임원, 대림 H&L초대 대표이사를 지냈다. 중국 전문가로 바이어 협상에 있어 귀재로 평가받는다. 고려개발㈜ 오풍영(63) 사장은 95년 관리인 사장으로 임명돼 10년 넘게 장수하는 최고경영자.ROTC중앙회 부회장을 역임하는 등 대외활동도 활발하다. 대림산업에 근무하다가 87년 법정관리에 들어간 회사로 옮겨 기획·재무부문을 담당했다. 관리인 취임과 동시에 경영혁신에 드라이브를 거는 등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 당초 2007년까지 계획됐던 법정관리를 9년 앞당겼다. ㈜삼호 신일철(56) 사장은 현장중심 경영자.2001년부터 최고경영자를 맡고 있다.81년 입사하기 전 금융기관과 제조업체에서 근무한 경력으로 기획, 예산, 재경 등을 담당하다가 임원 승진 이후 인사, 자재, 안전 등 전분야에서 경험을 쌓았다. 업계 최상위 수준의 안전경영을 하고 있다. ㈜대림코퍼레이션과 대림 H&L을 동시에 맡고있는 박준형(53) 사장은 76년 대림 석유화학에 입사한 여천 석유화학단지 건설의 역군. 유화 부문 공장장, 구조조정 담당 임원, 석유화학사업부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대림코퍼레이션은 석유화학 주력 무역회사, 대림H&L은 유화 부문 물류 회사. 석유화학 산업 위기를 구조조정을 통해 슬기롭게 극복했다. 대림콩크리트공업㈜ 서봉삼(61) 사장도 장수 CEO.2000년부터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70년 대림산업 입사 이후 주요 건설 현장을 누볐다. 상·하 구분없이 조직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합리적인 경영을 하는 CEO로 평가받는다. 지시와 통제보다 자율과 협력을 강조한다. 오라관광㈜ 김부경(57) 사장은 국내 최대 관광지인 제주에서 512실 규모의 특급호텔과 국제적 수준인 36홀 규모의 골프장을 운영하는 최고경영자.83년 오라관광에 입사, 국내·외 판촉, 객실 운영 등 회사의 주요 업무를 두루 거쳤다. 제주도 관광업계의 산증인. 제주관광협회 부회장, 제주지역골프협회장으로 활동중이다. 대림 I&S 김영복(46) 사장은 38세에 임원,40세 대표이사 등 대림그룹내 최연소 기록을 두루 갖고 있다. 늘 새로운 발상으로 주위를 놀라게 해 ‘아이디어 뱅크’로 소문났다.81년 대림산업에 입사,4년 6개월간 쿠웨이트 현장에서 전산업무를 담당한 것이 인연이 돼 대림그룹의 디지털 경영을 주도하고 있다. 대림자동차공업㈜ 박노균(57) 사장도 2000년부터 한 자리를 지키고 있다.73년 대림산업에 입사, 사우디아라비아 현장과 대림엔지니어링 재무담당 이사 및 행정본부장을 역임했다. 현장경영을 중시해 수시로 지방 사업장을 둘러본다. 외환위기 이후 이륜차 산업의 극심한 침체로 인한 경영위기를 슬기롭게 이겨냈다. 웹텍 창업투자 이대영(50) 사장은 금융 전문가.79년부터 94년까지 은행, 레이니어은행, 한미은행,JP모건, 한국신용정보에서 근무하고 화동창업투자 대표이사를 지내기도 했다.95년 대림엔지니어링 국제금융 이사로 인연을 맺어 대림산업 구조조정 담당 상무로 있다가 99년부터 웹텍 경영을 책임지고 있다. chani@seoul.co.kr ■ ’닮은꼴’ 창업주 父子 대림산업 창업주 이재준 명예회장과 이준용 회장은 여러 면에서 닮은 기업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곁눈질하지 않고 한 우물을 파는 고집쟁이라는 점에서 같다.66년 된 회사지만 건설에서 벗어난 적이 한번도 없다. 건설이 제자리를 잡을 즈음해서 확장한 분야라고 해봤자 유화 부문 정도다. 덩치를 키우는 것을 자제한 것도 닮았다.‘돌다리를 두드리고 건너라.’는 말이 있지만 대림은 돌다리를 두드려보고도 건너지 않는 회사다. 하지만 옳다싶으면 금방 정상 궤도에 올려놓을 정도로 강한 추진력을 발휘하는 장점도 지녔다. 청탁을 하지도 않고 받을 줄도 몰랐다. 창업주는 인사 청탁에 있어서는 매우 완곡해 부모님이 살아 돌아와 청탁해도 들어줄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다.‘빽’이나 동창생을 찾아다니면 아예 사람 취급을 하지 않았다. 고 박정희 대통령 생전에 청와대에서 들어온 인사 청탁을 거절한 일화도 있다. 그는 대통령의 부탁을 감히 거절할 수는 없겠지만, 본인이 경영일선에서 물러서 있을 때면 몰라도 당시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명예회장과 현 회장 모두 쉽게 권력을 이용할 수 있었지만 사업가로서 자기 일에만 매달렸다. 이런 분위기는 지금도 이어져 형제간 독립된 사업을 일구거나 아예 발을 들여놓지 않는다. 친인척이 배제된 전문 경영인 체제로 움직인다. 그래서 친인척들로부터는 ‘남남만도 못한 회사’라는 얘기를 듣기도 한다. 이 회장은 “대림은 대주주라고 무조건 경영에 참여하지 않는다. 본인의 의지와 그에 합당한 능력이 뒤따라야 경영에 참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친인척 경영에 있어서 창업주와 똑같은 모습이다. 이 회장의 동생 부용씨는 대림산업 부회장을 지냈지만 지금은 대림산업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이 전 부회장은 대림통상 지분을 놓고 숙부와 싸움을 벌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지금은 일선에서 물러났다. chani@seoul.co.kr ■ 李회장 부부 ‘남다른 문화사랑’ 서울 종로구 통의동 경복궁 옆에 위치한 대림미술관. 화려하지 않지만 멋스러운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다. 대림미술관은 유난히 직장인들이 많이 찾는다. 대림산업 임직원들은 물론 점심 때는 주변 사무실 직장인과 공무원들이 단골 관람객이다. 대림 관련 업체들은 단체로 다녀간다. 회사 차원에서 직원들에게 문화활동을 적극 장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림이 문화예술에 각별한 관심을 갖는 것은 이준용 회장 부부가 문화예술에 갖는 관심의 크기와 비례한다. 이 회장은 94년 한국기업메세나협의회가 탄생할 때부터 부회장으로서 활발한 문화예술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대외 직함을 좀처럼 갖지 않으려는 이 회장이지만 10년넘게 이 단체의 부회장직을 맡고 있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여기에는 문화예술에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는 한경진 여사의 역할도 크다. 한 여사는 대림미술관을 맡아 대림의 문화공헌 사업을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다. 대림미술관은 대림이 120억여원을 출연해 문을 연 사진매체 전문 미술관.93년부터 대전에서 운영해 온 한림미술관이 모태인데 2003년 서울로 옮겨 한 단계 발전시켰다. 이 미술관은 프랑스의 미술관 전문 건축가인 뱅상 코르뉘와 루브르 미술학교의 장 폴 미당 교수가 설계했다. 대지 253평에 지상4층, 연면적 366평 규모다. 대부분의 기업은 미술관 설립 때 한번 출연하는 것으로 끝나지만 대림은 운영에도 적극적이다. 문화에 대한 인식 수준이 낮은 현실에서 미술관이 자립운영을 해나가기에는 아직 어려운 실정이기 때문이다. 대림은 전시가 바뀔 때마다 직원들에게 전시를 관람토록 장려하고 경영전략회의나 송년회 등 사내 각종 모임을 미술관에서 열기도 한다. 예술에 대한 친숙도는 직원들의 창의적 사고를 키워주고 제품의 경쟁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대림이 개발한 아파트 외벽 디자인은 미술저작권 등록을 통해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건축조형물들이 건축분야의 저작권에 등록되는데 비해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미술분야의 저작권을 얻기는 쉽지 않다. 이 외벽디자인이 적용된 역삼 e-편한세상의 경우 외관의 차별화로 주변 다른 아파트들에 비해 가격에서 우위를 보이고 있다. 직원들은 문화적 소양과 미적 안목이 결국 다른 업체와 다른 품질 경쟁력을 가져오고 있는 것이다. chani@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 차를 알 수 있는 책들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 차를 알 수 있는 책들

    산이 오랜만에 조용히 쉬고 있다. 마치 구멍이 뚫린 듯 퍼붓던 눈발이 뚝 끊기자 세상은 어마어마한 적막속에 잠겨 있다. 길이 끊어지자 인적도 함께 끊긴 탓이다. 오랜만에 산속의 살림살이도 쉰다. 지난 가을 모아두었던 바짝 마른 장작 몇 개를 아궁이에 넣는다. 그리고 눈을 한 움큼 떠서 돌솥에 넣는다. 이른바 ‘설차’를 마시기 위함이다. 돌솥이 달아오르자 눈을 한 움큼씩 집어 넣는다. 마치 만년설이 허공으로 녹아들 듯 돌솥 속에서 녹아든다. 찻물이 끓고 하이얀 백자찻잔에 붓는다. 이른바 ‘눈백차’다. 부처님과 삼라만상에 그 첫잔을 아련한 그리움으로 바친다. 물이 끓는 소리 그리고 백차 한잔. 삶이란 아주 가끔식 나를 멈추는 행복속에서 사는 것이다. 나를 멈추면 그속에 비로소 완벽한 행복이 존재한다. 그러나 일상을 사는 현대인들이 과연 나를 멈출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현재 우리 곁에는 차를 공부할 수 있는 제대로 된 다서(茶書)들이 존재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최근들어 차에 관해 다양한 책들이 우리들에게 선보이고 있는 것은 매우 긍정적인 일이다. 다구에 관한 것, 차에 관한 것, 중국·일본차에 관한 것. 그뿐만 아니다. 차에 관한 잡지들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차의 대중화가 불러들인 문화적인 현상이다. 차문화는 현재 급속하게 복원 중이다. 또한 다양한 문화적 경계에 접근중이다. 웰빙 그리고 명상·요가 등 다양한 영역으로 급속하게 확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차에 관한 출발은 육우의 (다경)(茶經)으로부터다. 전문(全文) 약 7000자(字)로 육우가 편찬한 (다경)(780년쯤)은 당대(唐代)와 당대이전의 차에 관한 과학적 지식과 실천경험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중국 차문화의 기초를 확립했다.1200년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져온 (다경)은 단순히 차의 종류나 마시는 방법을 말한 표면적인 사항을 정리한 책이라기 보다는 ‘차의 정신’을 중요시하고 있다. 육우가 확립한 다학(茶學), 다예(茶藝), 다도(茶道)의 사상과 그것을 정리한 (다경)은 시대를 초월한 차의 명작으로 널리 사랑받고 있다. (다경)은 3권 10장규모로 1장에는 차의 근원,2장에는 차의 연장,3장에는 차 만들기,4장 찻그릇,5장 차 달이기,6장 차 마시기,7장 차의 옛일,8장 차의 산출,9장 차의 생략,10장 차의 그림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3차례 정도의 수정을 거쳐 교연스님과 안진경의 후원으로 간행된 (다경)은 당의 피일휴, 소의 진사도, 명의 노팽, 진문촉, 장예경(발문), 동승서(육우찬), 이유정, 서동기, 청대에는 증원매, 민국시대에는 상락스님등이 후대에 서문을 썼다. 현존하는 (다경)은 4종이 있다. 주(注)가 있는 것으로 이른 것이 남송대 좌규본(左圭本:백천학해본)이고, 주가 없는 것으로는 (백권(百倦)의 설부본)이며 하나의 증본으로 다기권(茶器卷)을 다구도찬(茶具圖讚)에서 추가한 명의 (정화은본(鄭火恩本))(선화당본(宣和堂本))이 있다. 넷째는 원문을 가감한 삭절본(削節本)으로 명대의 (왕기본(王圻本))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다경)이 전해졌거나 간행되었겠지만 그 흔적은 아직까지 없는 상태다.(다경)역시 고대 다서들의 전철을 밟고 있다. 중국에서 발견된 최초의 (다경)간본은 1273년 좌규가 (백천학해(百川學海))의 (임집(任集))에서 다른 다서와 함께 (다경)을 판각한 (백천학해본)이 있는데 주가 첨부되고 있다. 명대의 간본도 있다. 다경선화당본(宣和堂本)은 명대(1368~1644)에는 세종 가정 연간에서 신종만력 연간에 걸쳐 (다경)에 관한 첨삭이 있었다. 원본에 기타자료를 부가한 (다경외편)중 하나로 다기권을 (다구도찬)에서 추가하여 마치 정문(正文)인 것처럼 만든 것이 바로 (선화당본)이다. 육자다경(陸子茶經)과 건안다록 역시 눈여겨볼 만한 다서중 하나다. 청말 서탑사의 주지인 상락스님이 간행한 가장 완비된 (다경)이다.1792년 (당인설회본)에 (다경)이 함께 수록된다. 건륭연간에 경릉서호의 왕자한이 음운을 교정한 (다경)을 증각했다. 건안다록(建安茶錄)은 송나라 정위(962~1033)가 지은 책인데 총 3권으로 되어 있으며 ‘건안 공다소’의 차밭, 차공자, 기구, 차따기, 제다법을 기록해 놓았다. 중국 지배계층과 일반 서민들의 차생활을 알 수 있는 다서들도 있다. 황제의 다도를 자세히 그린 (다록)과 (다소)가 그것이다. 먼저 다록은 송나라때 복건성 건안동쪽에 있는 봉황산의 산록에 ‘북원’이라 부른 차밭을 관리하던 채양에 의해 저술된 것이다. 당시 황제는 차에 관한 의문을 채양에게 하문했다. 채양은 황제의 하문에 답하기 위해 차에 관한 여러 가지 일들을 정리하여 책으로 묶어 바쳤다. 그 책자가 바로 (다록)이다. 채양은 당시 차제법과, 차의 품평 그리고 황제의 다도를 상세하게 저술했다 이에 비해 다소(茶疏)는 명나라 사람 허차서가 17세기 저술한 자신의 차 체험기 성격을 띤 책이다.(다소)에 대해서는 기록된 것이 없어 관련된 이야기가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다소)의 서문을 쓴 요소현 글에서 그 기록의 편린들을 엿볼 수 있다. “병신년(1596년)에 나는 허차서(연명)와 함께 용정을 여행하며 약 열흘간 송사에서 침식을 함께 했다. 그때 승사에서 제공해주는 신차(新茶)를 즐기면서 고담(古談)을 나누었다. 몇해가 지나 허차서가 나를 찾아 그가 저술한 (다소)를 보여주었다. 나는 그것을 어보고 허차서에게 말했다. 육우의 (다경)이후 그 뒤를 이어받는 것 없이 세월이 흘렀는데 이것이면 육우의 익우(益友)가 되겠다. 군의 문장이 한위의 문장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이어서 육우가 고개를 숙일 것이다. 허차서가 말을 받아 제멋대로 사는 놈이 자기 멋대로 적어 놓은 것인데 육우의 제자라도 되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고 말했다.” (다소)의 가치는 자신이 체험한 차에 관해 논(論)한 것이라는 데 있다. 초의스님의 (다신전)과 깊은 연관을 갖고 있는 만보전서(萬寶全書)도 있다.(만보전서)는 청나라 모환문이 엮은 백과사전으로 초의스님은 1828년 칠불암에서 (만보전서)의 채다론(採茶論)을 필사해 (다신전)이라 붙였다. 만보전서의 채다론은 명나라때 장원이 지은 (다록)을 인용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옛 다서들도 존재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초의스님의 (동다송)(다신전), 한재 이목의 (다부),(고려도경)등이 그것이다. (고려도경)(高麗圖經)은 고려 인종원년인 1123년 6월13일 송사 노윤적, 부사 부묵향을 따라 고려에 온 서긍이 한달 동안 고려에 머물면서 지은 견문기행문이다. 서긍은 (고려도경)에서 고려의 갖가지 풍물을 그림과 문장으로 엮어 냈다. 총28문 3백여항으로 분류되어 있는 (고려도경)은 1226년 금나라가 송나라 수도를 함락시켰을때 정본이 불타 없어졌으나 인하 조씨 소산당에서 인각해 간직한 것이 오늘날까지 이르고 있다.(고려도경) 목록 31권 ‘다조’(茶俎)라는 절목에 당시 우리나라 차에 대한 기록이 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차는 맛이 쓰고 떫어서 구미에 당기지 않으며, 중국의 납차(臘茶)와 용봉사단차(龍鳳賜團茶)는 중국에서 진상받은 것과 상인이 수입해서 판 것들이 있었는데 차를 좋아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중국의 차들을 즐겨마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차 도구 중 찻잔은 천목(天目)찻잔과 청자찻잔을 쓰고 있는데 청자 찻잔은 비취색과 같다. 또한 은으로 만든 차 화로 등은 중국 것과 비슷하다. 고려 사람들이 차를 어떻게 마시고 사용했는가에 대해서도 기록하고 있다. 먼저 잔치를 할 때다. 먼저 정원에 차를 달여놓는다. 그리고 연꽃모양의 큰 주전자에 차를 담아 손님들에게 “차를 고루 고루 잡수시오. 지금 마시지 않으면 차가 식어 냉차(冷茶)가 됩니다.”라고 안내방송까지 했다. 또한 방안에서 잔치를 할 적에는 홍사포(紅沙布)위에 다구를 놓은 다음 붉은 보로 덮어놓는다. 하루에 세 번씩 차를 마시게 하되 사람이 많아 차가 떨어지면 차관에 탕수만 부어서 차를 마시게 했다는 세밀한 기록도 보이고 있다. 이밖에도 제6권에 연영각에서 잔치를 베풀 때는 차와 정자와 청자 찻잔을 갖추었고, 제26권 관회(館會)절목에는 왕궁사연(私宴)에 골동품과 고완·법서·명화·이화와 좋은 차등을 벌여놓게 했다, 제27권 ‘향림정’(香林亭) 절목에는 무더운 여름 향림정에 소풍을 가 갈증을 해소하기위해 달여온 차를 마시고 놀았다는 기록 등이 있다.(고려도경)은 고려시대 우리 차 문화의 일단을 볼 수 있는 희귀한 자료이기도 하다. 이밖에도 다산 정약용의 저서로 알려진 (동다기)등이 있다. 현대에 들어서는 효당 최범술스님의 (한국의 차도), 금당 최규용 선생의 (금당다화), 김운학선생의 (한국의 차문화), 응송 박영희스님의 (동다정통고)등이 있다. 우리 차인들은 모두 다예, 즉 다도에 얽매이는 경향이 있다. 먼저 차에 대한 정확한 공부가 필요하다. 책을 통해, 강의를 통해 차에 대한 개괄적인 인식을 갖춰야 한다. 그리고 그 체(體)에 맞는 용(用)으로써 차의 진정한 길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일지암 암주 ■ 심안노인의 다구도찬 차를 마시는 행위는 마치 마음과 몸이 하나가 된 종합예술 같은 것이다. 한잔의 차를 마시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매우 많다. 정갈한 마음과 움직임으로 차를 준비하며 행할 때는 마치 바람이 산을 타고 강을 건너듯 완만하고 원융해야 한다. 그럴때 그 찻자리는 훈훈한 향기를 느끼게 한다. 옛날부터 차를 사랑했던 차인들은 많다. 그중 특이한 차인이 있다. 바로 송나라때 심안노인이다.(다구도찬)을 쓴 심안노인은 당시의 점다법에 근거해 12점의 다구를 의인화해 노래하고 있다. 다구 12점을 그림과 함께 그려넣은 특이한 다서를 만든 것이다. 심안노인은 각 다구의 성격에 따라 의인화했을 뿐만 아니라 그에 걸맞은 관직과 이름, 자·호까지 명기하고 있다. 먼저 차를 보관하는 배로(焙爐)다. 배로의 관직은 위홍려, 이름은 성인이 쓰는 솥인 문정, 호는 사창한사다. 심안노인은 “위홍려를 찬양하여 가로되/축융은 여름을 관장하는데/만물을 모두 태운다/그 화염은 곤강의 옥석을 모두 태워 아무도 없게 한다/만약 위홍려를 사용하지 않으면/산과 골짜기의 차는 모두 도탄에 빠지고 말 것이다/도탄에 빠지지 않는 것은/위홍려의 공로다”라고 적고 있다. 탕속의 찻가루를 휘젓는 찻솔은 축부수. 축부수의 이름은 선조, 자는 희점, 호는 눈같이 흰 파도와 같은 공자라는 설도공자라고 했다. 특히 찻솔을 정절을 지키는 의로운 다기로 여겨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있다. “수양산의 백이 숙제는/주무왕이 상나라를 토벌하며/전쟁이 한창일때도 과감하게 간언하였는데/전쟁과 같이 솥에 물이 펄펄 끓을때/그 뜨거움을 가늠하여 간언한 자가 몇 명이나 될까/나는 자네의 청절을 우러러 보며/오직 너만이 홀로이 몸소 실천할 수 있다/이러한 일은 위급에 처하여도/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아니한 자라야 하는데/누가 능히 이루어 낼 수 있는가”라고 칭찬하고 있다. 찻잔에 대해서는 위풍당당한 군자에 비유하고 있다. 찻잔은 검은 독수리가 사는 신비한 누각인 칠조비각이라 했고, 이름은 승지, 자는 하늘을 담고 있다는 역지, 호는 옛 누마루 높은 곳에 앉은 노인이라 하여 고대노인이라고 했다. 물을 따르는 찻주전자에 대해서는 따뜻한 골짜기에 늙음을 버린다는 온곡유노라고 표현했다. 주전자의 이름은 새로운 것을 내놓는다는 발신, 자는 한번 운다, 혹은 소리낸다는 일명이다. “호연지기를 기르고 물 끓는 소리를 내/능히 중용의 도를 지킨다/그는 탕왕을 보필한 덕을 지녀/주객 사이에서 잔을 주고 받으며/주인을 섬기는 공로는 중숙어를 능가한다/그러나 밖으로 뜨거움에 대한 근심이 있고/안으로는 열의 우환이 있으니 어찌하랴”라고 중용의 뜻을 전하고 있다. 말차가루를 곱게 치는 체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체는 나추밀로 이름은 고약, 자는 전사, 호는 사은장료다. 나추밀에 대해서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일을 함에 있어 세밀하지 못하면 해로움이 되나니/큰 것은 골라내고 작은 것은 흩뿌려지게 하는데는/정밀함과 조잡함이 일치하지 않으면 혼란스러워지나니/사람은 그 모든 것이 어려운 것/어찌 섬세함에 옳고 그름을 아끼겠는가” 이밖에도 찻종지는 도보문으로 칭했고(이름은 거월, 자는 자후, 호는 면위상객), 물을 뜨는 표주박은 호원외(이름은 유일, 자는 종허, 호는 달을 긷는 신선인 저월선옹), 차를 가는 맷돌은 석전운으로(이름은 착치, 자는 매행, 호는 언제나 차를 갈아 차향 가득한 누옥에 은거한다는 향옥은거), 떡차를 으깨는 다듬잇돌과 방망이는 목대제(이름은 이제, 자는 망기, 호는 격죽거인), 찻잎을 으깨 가루를 내는 약연은 금법조(이름은 연고, 자는 원개, 호는 화금선생)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8)정치적 야심가들과 ‘정감록-허균과 유효립’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8)정치적 야심가들과 ‘정감록-허균과 유효립’

    한국의 정치적 예언서는 권력에 도전하는 사람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 대부분이다.‘정감록’은 그 대표적인 경우인데, 그 기원은 실로 오래됐다. 신라 말 풍수예언의 대가 도선국사가 고려태조의 아버지에게 바쳤다는 ‘봉서’(封書)가 그것이다. 도선은 하늘의 명을 받아 송악에서 왕이 배출될 줄을 미리 알았다. 그는 한 편의 예언서를 밀봉한 다음, 왕건의 아버지에게 바쳤다. 훗날 고려 태조는 예언서를 펼쳐 보고 자신에게 천명이 있는 줄 알게 되었다 한다. 이것은 고려 초기 최유청이 지은 글에 자세히 나와 있다. 도선이 전해준 ‘봉서’에 힘입어 왕건이 고려의 성립을 쉽게 정당화할 수 있었다. 역사상 왕건만큼 운이 좋은 경우는 드물었다. 후세에 많은 사람들이 예언을 내세워 대권에 도전했지만 결과는 실패로 끝났다. 허균(許筠·1569~1618)과 유효립(柳孝立·1579~1628)의 경우도 그랬다. 그들 두 사람은 거사에 앞서 각기 자신들에게 유리한 예언을 조작해 널리 유포했다. 역사상의 야심가들이 예언을 어떻게 이용했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게다가 그들이 퍼뜨린 예언은 직접 간접으로 ‘정감록’에 스며들어 있다는 점에서 많은 관심을 끈다. ●허균과 유효립 허균은 우참찬(정2품)이란 고위직에 오르기까지 했으나 세평은 별로 좋지 않았다.“허균은 천지 사이의 한 괴물입니다.” 광해 10년(1618) 대간(臺諫)들이 허균을 탄핵할 때 나온 말이다. 상소문에는 허균이 평소에 저지른 온갖 악행이 고발되었다. 그는 상중(喪中)에도 창기를 끼고 놀았으며, 예언을 조작하고, 난리를 꾸미느라 혈안이 돼 있었다는 비난이다. 과장된 점이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통용되던 도덕 기준을 가지고 보면 그에게 문제가 있긴 했다. 그는 본래 조정의 실권자 이이첨과 사이가 멀었다. 소문에 따르면, 이이첨의 집엔 머리가 큰 뱀이 하나 있다 했다. 허균은 그 뱀이 이이첨에게 죽임을 당한 최영경과 김직재의 귀신이라고 풀이했다. 허균은 이이첨을 저주했던 것인데 광해군 5년(1613) 이른바 ‘칠서(七庶·7명의 서자)사건’이 일어나 자기의 처신이 어렵게 되었다. 그래서 이이첨에게 매달렸다. 허균이 높은 벼슬을 하게 된 것은 변절의 대가였다. ‘칠서사건’에는 평소 허균이 가까이 하던 서울 양반의 서자들이 모두 관련되었다. 그들은 광해군에게 서얼 차별을 없애 달라고 호소했으나 뜻이 이뤄지지 않자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도적질을 하였다. 그러다 경상도 문경새재에서 상인을 죽이고 수백 냥의 은을 약탈한 사실이 적발돼 모두 사형을 당했다. 대북파는 이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해 정권을 독점하려 했다. 서인과 남인이 서자들을 앞세워 광해군의 이복동생 영창대군을 옹립하려 했다며 사건을 조작해 정적들을 처단했다.‘칠서’와 가까웠던 허균은 신변의 위기를 느낀 나머지 이이첨에게 붙었다. 허균의 벼슬길은 트였다. 그러나 선비들은 허균의 처사를 비루하게 여겨 틈만 나면 공격해댔다. 약점을 잡힌 허균은 늘 우울하게 지냈다(실록 광해 6년(1614) 10월10일 기축). 그러나 그만한 처지도 유효립과 같은 사람이 보기엔 부럽기 그지없었을 테다. 허균이 처단되고 한참 지나 1623년, 인조반정이 일어났다. 광해군이 축출되고 그 아래서 최고 실권자로 행세하던 이이첨, 박승종 및 유희분이 일거에 숙청되었다. 유효립은 바로 그 유희분의 친조카였기 때문에 연좌되어 충청도 제천으로 유배되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별로 남부러울 것이 없었는데 하루아침에 비참한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울분을 참지 못한 유효립은 인조반정 자체를 부당한 역적행위로 규정하고, 유배지에서 역 쿠데타를 준비하였다. 그는 이미 폐위된 광해군을 상왕으로 모시고 인조의 숙부인 인성군공(仁城君珙)을 새 왕으로 추대할 계획이었다. 대북파의 복권을 위해서였다. ●유효립이 조작한 예언과 ‘정감록’ 예로부터 야심가들은 자기들의 필요에 따라 예언을 조작하곤 했다. 인조 초년에 발생한 유효립 역모사건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유포된 예언 중에는 ‘정감록’과 일맥상통하는 대목이 적지 않았다. 유효립은 강원도 원주 치악산에 담화(曇華)라는 승려와 무척 친했다. 유효립의 사주를 받은 담화는 옛날 도선국사가 창건한 전남 광양의 옥룡사(玉龍寺)로 가서 “개해(戌年)와 돼지해(亥年)에 사람이 상하는 화가 발생한다. 그러면 범해(寅年)와 토끼해(卯年)에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구절을 비석에 남몰래 새겨 넣었다. 인심을 선동하기 위해서였다. 그밖에도 담화는 예언서를 조작해 “쥐해(子年)와 소해(丑年)에는 안정되지 않다가 범해(寅年)와 토끼해(卯年)에 패한다.”라든가 “용해(辰年)와 뱀해(巳年)에 인성(仁城)을 얻는다.”는 대목을 삽입했다. 담화가 즐겨 이용한 편년체 예언방식은 18세기 이후 예언서의 기본형이 되었으며, 현재 남아 있는 ‘정감록’에도 자주 발견된다. 그런데 담화가 ‘인성´을 인성군 이공으로 해석하였던 관계로, 강원도 원주 지방 사람들은 머지않아 인성군이 즉위할 것으로 믿고 큰 기대를 걸었다 한다. 유효립과 담화 등이 퍼뜨린 예언 중에는 새 임금이 등극할 시기를 “계룡산의 돌들이 흰색으로 변하고 거친 개펄에 배가 다닐” 때라고 했다. 신기하게도 이 구절은 현재 ‘정감록´의 ‘감결’에 그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계룡산의 돌들이 흰색으로 변하고 청포 죽이 흰색으로 변한다. 거친 개펄에 조수가 일어 배가 다니며 누런 안개와 검은 구름이 일고 붉은 기운이 삼일 동안 감싼다.”는 구절이다. 역시 ‘정감록’의 일부인 ‘징비록’에도 “진인이 남해에서 계룡으로 오면 창업을 알 수 있다. 말세가 되면 계룡산의 돌들이 흰색으로 변하고, 거친 개펄에 배가 다니며, 목멱산의 소나무가 붉게 변하고 삼각산의 모양이 변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이미 여러 차례 강조했듯,‘정감록’은 역사상 등장한 한국의 수많은 예언들이 모여서 이뤄진 호수다. 그 일부는 결과적으로 유효립 등이 목숨과 맞바꿔 조작한 예언들이다. 사실 계룡산의 돌이니, 개펄의 배 또는 용의 해 따위는 ‘정감록’ 가운데서 핵심적인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앞의 두 가지는 앞으로 세상이 바뀔 조짐을 보여주며, 마지막 것은 진인이 나오는 시기를 점치는 것이라서 중요하다. ●허균이 조작한 예언과 ‘정감록’ 그의 반대파들이 보기에도 허균의 문재(文才)는 뛰어났다. 그는 붓만 손에 들면 수천 마디의 글을 막힘없이 써 내려갔다 한다. 특히 위서(僞書·가짜 책) 짓는데 취미가 있어 산수참설(山水讖說)과 선불이적(仙佛異迹·신선과 부처의 기이한 행적) 등을 멋대로 꾸몄다 한다. 허균의 위작은 그가 평상시 지은 글보다 뛰어났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그런 사실을 조금도 눈치 채지 못했다는 것이다. 허균은 ‘산수비기’(山水秘記)라는 예언서를 읽다가 거기에 본래 없던 내용을 보태 썼다. 조선의 첫째 수도는 한(漢), 둘째는 하(河), 셋째는 강(江), 넷째는 해(海)라고 조작해 넣었다 한다.‘한’은 두말 할 나위 없이 한양이었다. 그리고 ‘하’는 경기도 교하(交河)를 가리켰다.‘강’과 ‘해’는 어디에도 밝혀져 있지 않으나 ‘강’은 아마도 계룡산이 있는 금강을 뜻하지 않았을까.‘정감록’의 ‘감결’을 보더라도 한국의 수도는 한양, 계룡산, 가야산, 전주, 개성 등으로 몇 차례 더 바뀐다고 되어 있다. 허균은 예언서를 조작해 우선 인심을 뒤흔든 다음, 영창대군의 외척인 김제남과 공모해 서울을 교하로 옮기려 했다. 이것은 ‘칠서사건’이 일어나기 전이었다. 그러나 허균은 그에게 씌워진 이런 혐의를 강력히 부정한다.‘산수비기’를 읽은 것은 사실이었으나 법률상 엄격히 금지돼 있어 집안에 들여놓지도 않았다고 했다. 그 뒤에도 허균은 도성의 인심을 동요시키기 위하여 매일 밤 부하를 시켜 남산에 올라가 고함을 지르게 했다.“서쪽의 도적이 이미 압록강을 건넜다.” “유구(琉球) 사람들이 바다 가운데 섬에 숨어 있다.”는 식이었다. 남북 양면에서 외적이 쳐들어올 기세란 거짓 소문이었다. 특히 유구는 조선에 쌓인 원한이 있어 군대를 보내 섬 속에 숨겨둔 채 기회를 엿보고 있다는 주장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허균은 조선을 멸망시킬 군대가 섬에 있다는 예언을 조작해 널리 퍼뜨렸던 것인데,‘정감록’에도 비슷한 내용이 발견된다. 오랑캐인지 왜적인지 구분할 수 없는 사람들이 바다에서 쳐들어 온다고도 했고, 새 나라를 일으킬 진인이 섬에서 군사를 이끌고 나온다고도 했다. 그밖에도 그는 다른 예언을 지어 전파시켰다.“성은 들만 같지 못하고 들은 멀리 도망가는 것만 못하다.”는 식이었다. 이 역시 ‘정감록’ 에 약간 변형된 형태로 남아 있다. 활활(活活 또는 闊闊), 궁궁(弓弓), 밭(田) 또는 소나무(松)가 난세에 가장 유리하다는 구절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허균은 부하들을 시켜 남산의 소나무 사이에 등불을 걸어 놓고 “살고 싶은 자는 피난을 가라.”고 소리쳤다 한다. 이런 소동으로 인해 도성 인심은 몹시 어지러워졌고 실제 도성을 떠나 피난을 가려는 인파가 길을 메웠다고 한다. 당시 한양 주민은 이미 임진왜란을 직접 경험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허균이 조작한 외침 예언에 심리적으로 크게 동요를 일으켰다. 아닌 게 아니라 광해 8년(1616)부터 북방이 어수선했다. 만주의 여진족들이 청나라를 일으켜 중국 대륙의 정세가 급변하고 있었다. 여진족들은 건주까지 밀려들어 국내 인심이 흉흉하였다. 바로 그때 허균은 변방이 위급하다며 거짓 예언을 조작했고, 익명으로 된 글을 지어 어느 해 어느 곳에서 역적이 반란을 일으킨다는 등 실로 터무니없는 예언을 퍼뜨렸다. 반란에 관한 허균의 예언은 18세기 이후 ‘정감록’에 여러 차례 기록된 ‘삼국분국설’ 즉 특정한 시기에 나라가 세 토막이 나고 만다는 예언과 유사하다.‘분국설’의 기원이 허균에게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그가 끼친 영향이 결코 적지는 않았을 것이다. ●반역자의 동지들 허균이든 유효립이든 그들이 일으킨 반역사건에는 다종다양한 여러 인사들이 관련되었다. 유효립 사건의 경우는 처형된 공범 수가 무려 50명을 헤아렸다. 그 가운데는 전 현직 관리는 물론 궁중의 내시와 화원(畵員)까지도 끼여 있었다. 이런 사건엔 늘 약방의 감초처럼 빠지지 않는 승려들도 상당수 포함되었다. 그 점에서는 허균의 역모사건도 비슷한 양상을 띠었다. 위에 말한 부류 외에도 무사와 하인들도 다수 가담했다. 허균의 경우엔 한두 가지 이색적인 취향이 도드라져 보인다. 그는 평소 정도전(鄭道傳)을 흠모하여 “현인(賢人)”이라 칭찬했다 한다. 정도전은 왕자의 난 때 태종 이방원에게 희생된 고관이었다. 그는 명실 공히 조선왕조의 기틀을 마련한 공신이었으나 권력투쟁에서 실패해 역사에 오명을 남긴 불우한 인물이다. 허균은 바로 그 정도전을 사모해 ‘동인시문(東人詩文)’을 정리할 때 그의 시를 가장 먼저 실었다. 혹시 허균은 정도전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또 하나, 허균은 재주가 비상한 서자들과 가까웠다. 특히 처조카인 서자 심우영(沈友英)을 몹시 아꼈다. 심우영과 함께 ‘칠서사건’의 주범이던 서양갑과도 무척 친했다. 허균은 서양갑에게 석선(石仙)이란 자를 지어 주기도 했는데, 전설에 등장하는 신선 황초평(黃初平)이 돌을 양으로 둔갑시켰다는 고사에서 비롯되었다. 평소 허균은 주장하기를,“오늘날 영웅은 서석선(徐石仙)뿐이다.”라고 했다. 물론 허균이 친하게 지냈던 서자들은 글재주가 탁월해 장안의 명망가로 통하던 인물들이었고, 서울의 양반들 중에는 그들 서자와 사귀는 사람들이 많았다. 허균만 그들과 친했던 것은 아니다. 그렇다 해도, 현실세계에서 버림을 받은 재주 있는 서자들, 그리고 비명에 죽은 정도전 같은 인물을 허균은 유달리 좋아한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그는 반대파들로부터 많은 공격을 당하게 되었다. 허균은 자신의 신변안전을 위해 ‘칠서사건’ 이후 서자들을 비롯한 비제도권 인사들을 별로 가까이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광해군 때 승려들이 난리를 일으키려고 모의한다는 소문이 들리자 많은 사람들은 입을 모아, 허균이 꾸민 일이라고 비난했다. ●허균이 정말 반역을 꾀했을지는 의문 앞에서 예로 든 허균과 유효립은 서로 정치적 노선이 달랐다. 허균은 광해군과 대북파를 몰아내고 자신이 직접 왕이 될 생각이었다 한다. 그에 비해 유효립은 대북파의 재집권을 노렸다. 인조를 쫓아내고 광해군을 상왕으로 복권시킬 생각이었던 것이다. 주모자인 유효립은 자신의 ‘역모’가 정당하다고 굳게 믿었으므로, 체포된 뒤에도 떳떳했다. 그 태도에 놀란 조정 대신들은 “효립의 진술은 언사가 매우 흉악하고 버릇이 없어 차마 읽을 수가 없을 지경입니다. 먼저 목을 베게 하소서.”라고 우선 처형부터 하자고 인조를 졸라댔다. 왕은 그 제안을 선뜻 받아들였고, 유효립이 펼친 주장이 후세에 그대로 전해지는 것이 두려워 “그가 진술한 내용을 불살라 버려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허균의 역모사건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실록’에 나오는 여러 기록을 정리해 보면 그가 은밀히 무사를 모은 것과 승군(僧軍)을 동원한 일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목적은 뚜렷하지 않다. 당시 허균은 군사를 이끌고 인목대비의 처소로 쳐들어가 먼저 대비를 제거한 다음 광해군에게 아뢸 계획이었다 한다. 왕도 이미 그 계획을 허락하였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이때 갑자기 조정의 실권자인 삼창(三昌·이이첨, 박승종 및 유희분)이 왕에게 허균이 반역을 꾀한다고 밀고했다. 대비를 없앤다는 구실 아래 허균이 역모를 일으킬 거라는 주장이었다. 그 말에 놀란 인조는 사건을 엄히 조사하게 했다. 아무리 보아도 허균이 역모를 꾸몄다는 증거는 명백하지 않다. 그는 대북파의 우두머리 이이첨을 상대로 인목대비의 폐모를 누가 먼저 할 것인가를 둘러싼 경쟁을 벌였다. 이이첨은 공을 빼앗길까봐 두려움을 느꼈고, 허균에게 반역죄를 씌워 반전을 도모한 것으로 짐작되기도 한다(실록 광해10년 8월21일 정축). 그때 허균을 궁지로 몰아넣는데 크게 조력한 이는 허균의 제자였던 기준격이었다. 기준격의 아버지 기자헌은 애초 허균의 친구였다. 그런데 인목대비에 관한 문제로 그들의 우정은 금이 갔다. 허균은 기자헌을 죽이려 들었고, 분노한 기준격은 허균의 과거 언행 가운데 문제 삼을 만한 부분을 꼬투리 삼아 공격했다(광해 9년 12월26일 정사). ●예언을 통한 집권의 정당화는 오랜 전통 어쨌거나 허균과 유효립에게는 한 가지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예언을 통해 기성의 정치세력에 반항하다 실패했던 것이다. 만일 그들이 원하는 대로 성사되었더라면 어찌 되었을지는 빤하다. 때로 예언은 사람의 운명을 바꾼다. 그러나 사람의 운명이 예언을 바꾸는 경우는 더욱 많다. 푸른역사연구소장
  • 인기 여자탤런트 신상백과

    인기 여자탤런트 신상백과

    ◇ 김난영(金蘭暎) 1943년 1월 16일 생. 군산여고, 서라벌예대 졸업 <이력> KBS-TV 1기. 현재『임자있었네』『그림자』『사람나고 돈났지』에 출연 중. <단골>「보그」미용실,「아미」의상실 <취미> 음악 (듣는 것만) <월수> 10만원 <신상> 무남독녀. KBS-TV에 들어가자마자「프로듀서」이남섭(36·『임자있었네』작·연출)씨와 결혼. 6살·2살 딸을 데리고 시집살이. 시부모, 시동생, 시누이 거느리는 맏며느리. 큰 살림살이라『돈 모을 새 없죠』 <소문> 한때 이혼설까지 번졌던 부부 사이가 원만해져 이제는 싸움 한번 않는 원앙부부가 됐다. 돌아오는 5월 2일(예정일)이면 셋째 아이가 탄생한다. 2주치를 당겨 녹화도 끝내놓고 분만 준비 중. ◇ 강부자(姜富子) 1941년 2월 8일 생. 충남대 국문과 졸업 <이력> KBS-TV 2기. 현재『시거든 떫지나 말지』『춘하추동』에 출연 중. <단골>「센추리」미용실,「트로아·조」의상실 <취미>「빌딩」을 지었다 허물었다에서 저녁거리 시장보기까지의 공상 <월수> 10만원 <신상> 4남 2녀 중 넷째. KBS-TV 동기생이었던 이묵원(32)씨와 4년 연애 끝에 결혼.『시거든…』에서는 부부가 출연 중. 남편은 말이 없고 착해서 사랑한단다. 돌 지난 아들이 하나. <소문> 그럴싸해서 그런지 시집살이를 기막히게 잘하고 있다는 소문인데 실은『친정어머니가 아기 때문에 같이 살아 주시는 딴 살림을 하고 있죠』 ◇ 안은숙(安恩淑) 1943년 6월 29일 생. 마산산(産), 마산여고, 성균관대학 영문과 졸업 <이력> TBC-TV 1기. 현재『124군 부대』『춘하추동』에 출연 중. TV「탤런트」의 이름에만 그치지 않고 연극, 영화에서도 이따금 볼 수 있는 얼굴. 본인은「스크린」이나 무대에서 제값을 하고 싶어하고. 아닌게 아니라 그런 야심을 보인다. <단골>「보그」미용실,「샤넬」의상실 <취미> 연극하는 것 <월수> 10만원 <신상> 3남 3녀 중 막내딸. 결혼할 마음이 아직은 안 잡혀 있단다. <소문> 땠는지 안땠는지는 몰라도 심심치 않게 굴뚝에 난 연기는 재벌 일색이었다. 따라서 남편감은『생활력이 강하고 지성있고 건실한 남성』을 원한다. ◇ 김민자(金敏子) 1943년 7월 27일 생. 서울산(産), 정신여고 졸업 <이력> KBS-TV 3기. 현재『팔판동 새아씨』『배덕자』에 출연 중. <단골>「센추리」미용실,「아미」의상실 <취미> 그림보기, 음악듣기 <월수> 10만원 <신상> 2남 3녀 중 셋째. 언니가 성우 김소원(金素媛)씨, 동생은「패션·살롱」「가야」를 정릉에서 경영. 형제 모두가 주체성이 강한 집안. <소문> 그간 약혼설이 파다하던 TV「탤런트」최불암씨와는 별 진전없이 동료로 지내는 사이. 결혼 말이 나오면 언제나『좋은 기회에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면 결혼하죠. 입에 맞는 떡이 있습니까』 ◇ 김혜자(金惠子) 1941년 10월 25일 생. 서울산(産), 경기여고, 이대 미대 중퇴 <이력> KBS-TV 1기. 현재『그림자』『여고 동창생』에 출연 중. <단골>「센추리」미용실,「이사벨라」의상실 <취미> 무취미, 책 읽기 정도 <월수> 8만원 <신상> 무남독녀. 회사 경영을 하는 임종찬(40)씨와 3년의 연애 끝에 대학 3년 재학시절에 결혼을 했다. 6살 난 아들이 하나. 시집살이를 하고 있다. <소문> 나돌아 다니는 부인을 탐탁지 않아하는 남편과 아들이 학교에 입학하게 될 때를 대비해서 서서히「탤런트」생활을 그만 둘 예비운동 중.『마음이 어떻게 변할지는 몰라도 지금은 그만 둘 마음이 크죠』 ◇ 여운계(呂運計) 1940년 2월 25일 생. 고대 국문과 졸업 <이력> 64년부터 연극에 출연. 현재『시거든 떫지나 말지』『팔판동 새아씨』『124군 부대』에 출연 중. <단골>「로즈」미용실,「비너스」의상실 <취미> 배우 본명 알아보기, 남의 머리 빗기기,「패션」잡지 정독하기 <월수> 6만원 <신상> 3남 1녀 중 둘째. 대학 재학 시에 차상훈(31)씨와 열렬히 3년 연애. 결혼한 지 7년째. 6살 된 딸과 2살짜리 아들이 남편보다 중하단다. <소문>「유네스코」에 근무하는 남편이 10월에 불란서에 갈 예정이라 즐거운 준비를 서두르는 중. 양장점 주인이라는 소문은『15일간 양재를 배우러 다닌 적이 있을 때 난 소문이겠죠』 ◇ 사미자(史美子) 1940년 5월 6일 생. 파주산(産), 이화여고 졸업 <이력> 동아방송 성우 1기. 연극 이력 6년, 실험극장 단원. 현재『화조』『124군 부대』『팔판동 새아씨』『배덕자』에 출연 중. <단골>「사다」미용실, 최윤정 의상실 <취미> 아들 딸과 집에서 노는 것 <월수> 10만원 <신상> KBS-TV 1기「탤런트」김관수(33)씨와 연애 결혼한 지 7년. 7살 딸이 하나, 5살 아들이 하나. 남편과는『화조』에서 공연 중. TBC-TV 편성부「프로듀서」사상아(史相兒)씨가 오빠. <소문> 갈현동에 집을 사서 이사간지 한 달이 채 못된다. 얼마 전부터는 영화출연 편수도 많아져 더욱 바빠졌다고. ◇ 정혜선(鄭惠先) 1942년 2월 21일 생. 수도여고 졸업 <이력> KBS-TV 1기. 현재『그림자』『사람나고 돈났지』『여고 동창생』『열풍지대』에 출연 중. <단골>「센추리」·「보그」미용실,「노라노」의상실 <취미> 음식 만들기 <월수> 7만원 <신상> 무남독녀. KBS-TV 1기 동기생인 박병호(32)씨와 3년 연애를 계속, 결혼에「골인」했다. 6살 딸, 4살 된 아들이 있다. <소문> 요즈음 주로 영화 출연과 제작에 바쁜 남편과 더불어 시간과 경비를 절약하기 위해 차를 샀다. 곤색「코로나」(2-6356번). 그런데 얼마 전부터는 부군 박병호씨의 영화제작을 함께 걱정하고 있다. ◇ 선우용녀(鮮于龍女) 본명 정용례(鄭龍禮), 1945년 8월 15일 생. 서울산(産), 상명여고, 서라벌예대 졸업 <이력> TBC-TV 1기. 현재『시거든 떫지나 말지』『춘하추동』『김유신』에 출연 중. <단골>「센추리」미용실, 강숙희 의상실 <취미> 옷 만들기 <월수> 12만원 <신상> 3남 4녀 중 셋째. 아버지가 서울신문, 오빠가 동아일보에 근무 중. 남자와의「스캔들」운운에는 신물이 난다면서『결혼은 아주 안할래요』한때는 영화계에서도 각광을 받았지만 요즈음은 뜸하고 TV에만 주력하는 편. <소문> 재일교포 야구선수 장훈(張勳)씨와는 별 연락 없고 옆에「태우고 다녔다」로 소문났던 빨간색『퍼블리카』는 즉각 팔아 처분했다. ◇ 조영일(趙玲一) 본명 조희자(趙姬子), 1943년 8월 9일 생. 덕성여고, 중앙대학 연극영화과 졸업 <이력> KBS-TV 1기. 현재『시거든 떫지나 말지』『김유신』에 출연 중. <단골>「센추리」미용실,「아미」의상실 <취미> 가리는 것 없이 마구 먹기 <월수>「세금도 면제된 주제」라는데 동료들이 옆에서 정말이라고 동정을 표한다. <신상> 4남 3녀 중 맏딸. KBS-TV「탤런트」전성기 시절 김현철(KBS-TV 교육계)씨와 연애 결혼. 4살 된 아들이 있었다. 지난해에 오지명(32)씨와의 염문으로 KBS-TV측으로부터 이 두 연인은 퇴거 처분을 받았다. <소문> 남편과 아들을 버리고 결합된 오지명씨와는 지난해 10월 2일 정식으로 결혼. 지금 임신 5개월. [ 선데이서울 69년 4/27 제2권 17호 통권 제31호 ]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교보생명-故신용호 창립자家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교보생명-故신용호 창립자家

    “이 사통팔달, 한국 제일의 목에 방황하는 청소년을 위한 멍석을 깔아줍시다. 와서 사람과 만나고, 책과 만나고, 지혜와 만나고, 희망과 만나게 합시다. 이곳에 와서 책을 서서 보려면 서서 보고, 기대서 보려면 기대서 보고, 앉아서 보려면 앉아서 보고, 베껴 가려면 베껴 가고, 반나절 보고 가려면 반나절 보고, 하루종일 보고 싶으면 하루종일 보고, 그리고 다시 제자리에 꽂아 놓고 사지 않아도 되고, 사고 싶으면 사 들고 가도 좋습니다.” 고 신용호 교보생명 창립자는 ‘대산(大山) 신용호’라는 평전에서 당시 세인의 반대를 무릅쓰고 금싸라기 땅인 종로 1가 1번지 교보빌딩 지하에 교보문고를 세운 일에 대해 이같은 논리로 동의를 이끌어냈다고 밝혔다. 한국의 미래를 모토로 만든 교육보험에도 청소년들의 지적 수준과 나라의 성장은 비례한다는 확신이 담겨 있다. 창업 이념도 국민교육진흥과 민족자본 형성이다. ●독립운동 집안에서 태어난 다섯째 아들 신 창립자는 1917년 8월 전남 영암군 덕진면 노송리 솔안 마을에서 부친 신예범 선생과 모친 유매순 여사의 6남 중 5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하며 잦은 옥살이를 하는 바람에 어머니가 가장 노릇을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일곱살 때는 폐병에 걸려 죽는다는 선고도 받았다. 열살 즈음 병이 나았지만 학교를 가진 못했다. 형편이 어려운 데다 형들이 각종 애국 운동으로 집안을 돌보지 않아 어린 마음에도 그가 살림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낮에는 밭에서 일하는 대신 ‘책속에 길이 있다.’는 어머니의 가르침에 따라 밤에는 책을 읽었다. 동생의 책은 물론 주변에 보이는 책은 닥치는 대로 가져다 보았다. 겨울엔 잠과 싸우기 위해 방에 불도 때지 않고 책을 읽다 동상에 걸리기 일쑤였다. 당시 ‘천일독서’를 목표로 각종 위인전, 철학서, 고전, 사서를 섭렵했다. 비록 학교 문턱에는 가지 못했지만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독서철학으로 스스로 내실을 다졌다. 함께 교보생명 창업을 도운 막내 동생 신용희(83) 전 회장을 제외하고 다른 형제들은 대부분 애국운동에 몸담았다. 큰형인 고 신용국옹은 일제시대에 항일운동을, 광복 후에는 청년 노동운동을 했다. 그 큰아들인 신동재씨가 2000년까지 교보의 부동산관리 전문 자회사인 교보리얼코의 회장을 지냈다. 둘째 형 고 신용율씨도 항일운동에 몸담았으며, 그의 둘째 아들 신평재(67)씨가 현재 교보생명 교육문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한일은행 상무로 재직하다 1991년 제의를 받고 교보생명 사장 등을 역임했다. 셋째 형 신용원옹은 도쿄 음악학교를 졸업한 뒤 항일음악가로 활동하다 납북했다. 넷째 형 고 신용복옹은 일제 당시 조선생명지사장을 지냈다. 막내 동생 신용희 전 회장은 목포상고를 나와 산업은행에서 일하다 한국전쟁 이후 줄곧 신 창립자를 도와 함께 일했다.1967년 교보생명 창립 이후에는 30년간 교보에 몸담으며 부사장, 회장 등을 지냈다. 그의 아들인 신인재(39) 보드웰 인베스트먼트 사장(8%)과 함께 교보생명 지분을 13.25% 갖고 있다. 신 사장은 고 신 창립자로부터 경영권을 승계받은 큰아들 신창재(52) 교보생명 회장으로부터 함께 일하자는 제의를 받기도 했지만 자신의 길을 고집했다. 신 사장은 최근 이동통신사에 솔루션을 공급하는 코스닥 상장업체 무선인터넷솔루션 회사인 필링크의 대표이사 직함도 얻게 됐다. ●교육열을 사업으로 연결한 기지…교육보험의 탄생 문학가를 꿈꿨지만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사업에 뜻을 세웠다. 약관이 되던 해에 서울로 갔고 이어 1936년 중국에서 양곡 수송 사업을 벌였지만 광복과 함께 10년간 닦은 기반을 버리고 빈손으로 귀국했다.1946년. 귀국후 첫 사업으로 전북 군산에 ‘민주문화사’란 출판사를 냈으나 외상 책값이 회수되지 않아 간판을 내렸다. 그렇게 몇 차례 사업에 실패한 뒤 문득 중국에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지만 한국에서는 논 한 뙈기 없어도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강한 교육열이 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한국 부모들의 교육열은 무형원자재인 것이다.‘생·로·병·사’중 유일하게 보험이 빠져 있는 ‘생’ 부문에 교육보험을 끼워넣어 상품화하기로 했다. 당시 보험에 대한 인식은 형편 없었다. 일제시대 보험은 수탈 방식이자 보신(保身) 방편이었다. 더욱이 당시 1인당 국민소득이 50달러도 미치지 못해 보험에 들 여유가 없었다.1954년 정부가 보험업을 재개시켰으나 기존 생명보험 회사들이 대부분 휴면상태에 있을 만큼 보험업은 쑥대밭이었다. 그러나 세상이 험난해서인지 국민의 80%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때 그의 재기가 번뜩였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을 찾아가 “담배를 끊고 그 돈으로 보험을 들면 아들을 대학에 보낼 수 있다.”고 설득한 것이다. 창업 당시에는 ‘교육보험’이란 이름을 넣지 못했다.1958년 종로1가 60번지 2층짜리 건물에서 직원 46명과 함께 먼저 ‘태양생명보험주식회사’를 설립했다. 교육보험이란 업종상 생명보험으로 분류돼 상호에 교육보험이란 이름을 넣을 수 없었다. 교육열을 자원으로 만든 상품이었고 당시 생명보험에 대한 인식도 열악해 ‘교육보험’이란 이름을 포기하지 않았다.1958년 1월 창업한 뒤 관계 공무원을 끊임없이 설득, 같은 해 7월 상호변경 승인을 얻어 ‘대한교육보험’(현 교보생명)을 출범시켰다. ●슬하 2남2녀의 혼맥 1943년. 중국에서 한창 양곡수송 사업을 크게 벌이던 신 창립자는 당시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고 급히 귀국했다. 도착해 보니 아버지는 건강한 모습으로 그를 맞아주셨다. 더욱 놀라운 것은 “내일 모레가 네 장가가는 날이다.”는 아버지의 한마디. 결혼을 시키려고 거짓 소식을 보낸 것이다. 당시 남자 26세는 혼기를 놓친 나이였지만 그는 벌인 사업 때문에 아직 결혼할 때가 아니라고 여겼다. 도망칠 마음까지 먹었다고 고백하며 배려를 바랐으나 아버지가 식음을 전폐하고 드러눕는 바람에 결혼식을 치렀다. 부인 유순이(81)씨는 당시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2년제 전수학교까지 마친 명문가 출신 규수. 사업에 전력을 쏟느라 가정에 소홀했던 남편을 탓하지 않고 어려운 형편 속에서 묵묵히 2남2녀를 길러냈다. 자녀들의 혼사도 그와 비슷하다. 막내 아들을 제외하고 모두 중매 결혼이다. 명문 대가와의 정략 결혼은 눈에 띄지 않는다. 큰딸 신영애(56)씨는 전 서울대학교 의과대 의학과 마취과학교실 교수 함병문(58)씨와의 사이에 현진(32), 지훈(31), 세훈(25) 등 2남 1녀를 두었다. 신영애씨는 아버지로부터 상속받은 지분 평가로 지난 2004년부터 단번에 350억원대 자산을 보유, 연말마다 언론에서 선정하는 여성 부호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둘째 딸 신경애(54)씨는 법조인에게 시집가 1남1녀를 낳았다. 남편 박용상(61)씨는 서울대 법대에서 박사까지 마친 뒤 사법시험에 합격, 서울고등법원 등에서 판사로 활약한 뒤 방송위원회 위원, 헌법재판소 사무처장, 국회 공직자윤리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변호사박용상법률사무소를 운영중이다. 박용상씨의 큰형 용설씨는 내외빌딩관리㈜ 대표, 동생 용삼씨는 내외엔지니어링 대표다. 고 신 창립자의 자리를 이어받은 큰 아들 신창재(52) 교보생명 회장은 부인 정혜원(48) 봄빛여성재단 이사장과의 사이에 중하(24)·중현(22) 두 아들을 두고 있다. 서울대 의대 교수 출신인 신 회장은 불혹이던 지난 1993년 교보에 발을 들여놓은 뒤 현재 직계 중 유일하게 교보에서 일하고 있다. 정 이사장은 이화여대 영문과를 나왔다. 막내 신문재(44)씨는 이정숙(44)씨와의 사이에 딸 혜진(18)을 두고 있다. 형제들 중 유일한 연애 결혼이다. 미국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1991년부터 2005년 8월까지 광화문 교보문고내 문구 액세서리 음반 팬시용품 등을 판매하는 400여평 매장의 문보장을 비롯해 전국 6개 교보문보장을 운영해 왔다. 교보문고가 직접 문보장을 운영하기 위해 신씨로부터 지난 8월 문보장 사업권을 회수했다. 현재 새 사업을 구상중이다. ●지독한 완벽주의와 파격 인사 고 신용호 창립자는 지독하다 싶을 만큼 완벽하고 집요하다는 평을 받는다. 땅을 고를 때도 좋은 날, 궂은 날, 비온 다음날 등 두루 살피는 완벽주의자다.77년 명예회장,85년 창립자 등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에도 1990년대 후반까지 신입사원 면접에 직접 들어왔다. 사업을 시작한 지 3년이 지나도 실적이 저조해 본사 부장, 실장, 중역까지 나서 손을 들라고 권하자 그들을 나가게 한 뒤 ‘급료는 후불로 주겠다.’는 광고를 통해 간부 사원을 다시 구한 일화는 아직도 회자된다. 창업 10년 만인 1967년 회장으로 물러난 뒤 2000년 아들 신창재씨가 교보생명 회장에 취임하기까지 33년간 무려 사장이 19번이나 바뀌었다. 평균 수명이 1.7년이었다. 경영 안정을 위해 최고경영진을 쉽게 바꾸지 않는 업계의 관행과는 다른 것이다. 교보의 임원 인사는 상식을 뛰어넘어 기발하고 파격적이란 평이 나오는 이유다. 신창재 회장의 인사 스타일도 재계 안팎의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2002년 5월 취임한 장형덕 대표이사 사장의 경우 사장직을 폐지하는 형식으로 취임 10개월 만에 퇴임시켰다. 단일 지도체제가 더 효과적이라며 사장을 없애고 대신 부사장 3명을 임명해 집단경영체제로 개편했던 것. 그때부터 ‘대표이사 회장’ 밑에 ‘대표이사 사장’ 없이 ‘대표이사 부사장’ 체제로 가고 있다. 이어 지난 2004년 2월 박성규 부사장을 선임,‘집단경영체제’는 다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맨손으로 생나무를 뚫어라’ 고 신용호 창립자는 ‘죽고 나면 손해’란 보험에 대한 당시 인식을 바꾸는데 초점을 맞춰 교육보험 1호인 ‘진학보험’을 세계 처음 내놓았다. 죽어야 혜택을 주는 게 아니라 부모가 돈을 적립해 자녀가 초·중·고등학교를 진학할 때마다 학자금을 주는 상품이다. 먼저 단체들을 공략했다. 군인 단체 저축성 보험인 일명 ‘화랑계약’을 고안했다. 잦은 군의 이동에 탈락계약이 늘어 성과는 없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군 이동에도 추적·관리되는 시스템을 도입,1967년 육군과 170억원의 단체 계약을 맺었다. 파죽지세로 해군·한전 등 대형 단체들과 꾸준히 계약하는 개가를 올리며 승승장구했다. 판매 창구도 강화했다. 종로기독청년회관(YMCA)에서 대학생을 모아 보험강좌를 실시한 것을 계기로 대학지부를 설치, 대학생도 판매 채널로 끌어들였다. 지방유지를 직접 찾아다니며 기관장으로 영입하기도 했다. 상품에도 그의 기지가 엿보인다. 암 상품은 그가 처음 개발했다. 뿐만 아니라 보편적인 성인병도 하나씩 보험상품으로 만들었다. 보험업계 전산화 발상을 추진한 최초의 인물도 바로 그였다.1974년 학자금 선지급 업무를 처음 전산화했고 “컴퓨터를 모르면 간부가 될 수 없다.”며 전 사원을 상대로 ‘컴퓨터 활용능력 자격인증제’도 실시했다. 그가 인생을 이야기할 때 전반은 ‘맨손가락으로 생나무를 뚫는 과정’이고 후반은 ‘생나무 뚫는 것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보인 과정’이라 비유했다. 인생은 장애의 연속이지만 강한 정신력만 있다면 아무리 높고 힘든 목표라도 달성할 수 있다는 게 그만의 철학이다. 이같은 열성과 집념으로 1958년 당시 6대 생보사 중 막둥이로 태어난 교보생명은 창립 5년 만에 보유계약 56억원으로 업계 3위,1964년엔 보유계약 100억원 돌파로 업계 2위에 오른 뒤 1967년 설립 9년 만에 업계 정상에 섰다.‘맨손가락으로 생나무를 뚫은’ 쾌거가 아닐 수 없다. ●인생의 다른 한 축…교보문고 교육 보험은 대세가 아니었다.80년 들어 경제성장과 함께 늘어나는 사교육비를 감당할 수 없는 시절이 오면서 보험만으로 교육비를 해결할 수 없게 됐다. 변하는 고객 욕구에 따라 양로보험, 종합보장생활보험 등 일반 생명보험 상품의 비중이 커졌다. 교육보험만으로 경쟁력이 떨어지자 1995년 ‘교보생명’으로 사명을 바꾸었다. 삼성생명의 약진으로 교보는 1974년부터 업계 1위에서 2위로 밀려났다. 자산이 늘어나면서 관련 계열사도 속속 설립했으나 모두 보험으로 맡긴 고객의 돈을 운용하기 위한 금융 계열사였다. 부동산관리 전문회사인 교보리얼코(1979), 교보증권(1994) 등 총 9개 자회사를 세우면서 교보를 오늘날 35조원 규모의 금융 자본으로 성장시켰다. 그 중 금융과 동떨어진 업종이 하나 있다. 바로 교보문고(1980)다. 교육을 통한 민족부흥을 창업 이념으로 삼고 있는 만큼 따지고 보면 업종의 본질은 같다는 설명이다. 1980년 종로 1가 1번지에 사옥 교보빌딩이 세워지자 그는 지하에 서점 설립을 제안했다. 온갖 연줄을 동원하며 지하아케이드 자리 쟁탈전이 벌어지던 때였다. 간부들은 채산성이 약하다며 서점이 들어서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는 의견을 냈고, 손해가 나면 보험회사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당시 허가관청인 재무부도 반대하고 나섰다. “우리 회사가 돈벌이를 목적으로 한다면 이 자리에는 당연히 으리으리한 고급상가를 들여야 합니다. 하지만 이 값진 땅에 책방을 크게 열어 청소년과 시민이 자유롭게 이용토록 한다면 그 효과가 어느 정도나 될지 상상해 보시오.” 손해가 나더라도 청소년의 정신역량을 키우는 일인 만큼 자신이 떠맡겠다고 설득했다.1985년에는 일반 독자뿐 아니라 학자들을 위해 80만종의 세계 논문도 공급했다. 지방사옥이 세워질 때마다 학생과 시민들이 교보문고 지점 설치를 요구했을 정도다. 대전, 성남, 대구, 부산, 부천, 강남 등에 속속 지점을 열었다. 광화문에 있는 교보문고를 찾는 고객 수는 일평균 4만 5000여명, 연간 1500만명에 달한다. 삶의 두 축이 교보생명과 교보문고라고 지적했을 정도로 애착도 컸다. 그러나 말년을 맞아 또다시 병마가 찾아 왔다.77세가 되던 1993년. 회사 정기건강 검진에서 간 기능에 석연치 않은 증후가 발견됐다. 담도암이었다. 의사들은 그에게 맛있는 음식 많이 먹고, 기운 있을 때 여행을 다녀오라는 처방을 내렸다. 사형 선고였던 셈이다. 그는 암과 싸우며 여생을 보내느니 살든 죽든 결판을 내겠다고 마음먹고 불가능하다는 담도암 수술을 감행했다. 수술후 그는 중환자실에서 목에 구멍을 뚫고 2개월이나 암흑 속에서 지내야 했다. 중환자실에서 나온 뒤 재활물리치료 반년 만에 골프장에 다시 나갈 수 있었다. 근력운동과 식이요법으로 건강을 유지하면서 90년대 후반까지 업무를 보고받는 등 경영에 관여했다. 그러나 8년 뒤 암이 간으로 전이되면서 몸이 약해졌다. 결국 2003년 9월 19일 오후 6시1분 서울대병원에서 노환으로 숨을 거두었다. 그의 나이 86세였다. jhj@seoul.co.kr ■ 신창재회장과 정혜원 여사 “내조만 하며 살아온 탓에 사회공헌 사업은 꿈도 꿔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남편의 제의로 사회공헌 사업을 시작하게 됐지요. 내조와 아이들 뒷바라지에도 벅차지만 소명으로 여기며 열심히 하고 있어요.” 신창재(52) 교보생명 회장의 부인 정혜원(48)씨는 요즘 사회활동에 바쁘다. 그는 남편과 두 아들을 돌보는 일에 전념해온 전업 주부였다. 남편 신 회장으로부터 사회공헌 사업을 해보라는 제의를 받고 2004년 4월 성매매 피해여성 보호단체를 지원하는 봄빛여성재단을 창립,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순전히 남편 신 회장의 사재로 시작한 사회공헌 사업이다. 서울 종로구 적선동 사무실로 매일 출근하면서도 아이들이 완전히 홀로서기할 때까지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며 걱정이 많다. 그는 한사코 취재를 거부했다. 사회 활동은 하고 있지만 언론 대응 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화여대 영문과 출신인 그는 소탈하면서도 적극적인 성격으로 책임감이 강하다는 평을 받는다. 중매를 통해 남편을 만났다고 밝혔다. 평범한 집안에서 데려온 며느리라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고 신용호 창립자의 수수함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그는 남편 신 회장이 양복도 맞추러 갈 시간이 없을 만큼 바쁘다고 했다. 실제로 신 회장은 아버지의 유업인 교보문고와 교보생명을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을지 고민이 많다. 아버지만큼 골프를 좋아하지만 교보로 옮긴 이후 거의 필드에 나가지 못할 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다. 교보생명은 지난 2000년 5월 신 회장 취임과 함께 ‘질´경쟁을 선언하면서 업계 2위에서 3위로 밀려난 뒤 여전히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먼저 교보문고는 교보생명이 증자해 전자책 등 문화 콘텐츠를 생산하는 지식문화 전문회사로 거듭나도록 하겠다는 포부다. 출판업이 사양산업으로 전락하다 보니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교보문고는 현재 부채비율이 416%로 은행으로부터 신규 여신이 어려운 처지다. 교보생명은 기존 주주가 여력이 없어 제3자 배정 방식으로 5000억원을 증자할 계획이다. 다른 생보사보다 상대적으로 지급여력비율(160%)이 낮다. 자기자본 확대가 이유다. 그러나 2대 주주인 자산관리공사가 난색을 표명하고 있어 문제다. 자산관리공사 소유·관리지분(41.26%)의 가치가 희석되지 않는 상태에서 잘 팔릴 수 있도록 협조해야 증자에 동의한다는 조건을 내세우고 있다. 업계는 신 회장이 과연 이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할 수 있을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교보생명의 한 임원은 신 회장에 대해 “아버지를 닮은 완벽주의자”라고 말했다. 경기고, 서울대 의대를 나와 서울대 의대 산부인과 교수로 살아오다 불혹이던 지난 1993년 아버지 고 신용호 창립자의 뜻에 따라 그간 배운 의학 공부를 포기하고 대산문화재단 이사장으로 교보생명에 발을 들여놓았다.1996년 11월 교보생명 부회장,2000년 5월 교보생명 회장으로 취임한 뒤 변화와 혁신을 기치로 삼고 전력 질주 중이다. 박성규 교보생명 부사장은 “과연 의사 출신이 기업을 어떻게 경영할지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를 보면 답이 나온다.”고 전했다. 의사 출신답게 깊은 통찰력과 분석력을 갖춘 데다 책을 많이 읽는 덕분에 멀리, 넓게 보는 안목이 있다고 평가했다. jhj@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여담여담] 신춘문예 ‘샛별’을 기다리며/이순녀 문화부 기자

    최근 나온 계간 ‘대산문화’겨울호에서 재밌는 글을 읽었다. 소설가 조경란씨가 쓴 단상이다. 내용은 이렇다. 이번 학기에 일주일에 한번씩 대학에서 ‘소설쓰기’를 가르쳤는데 문학을 하겠다는 학생들이 생각만큼 책을 많이 읽지 않더란다. 한국 소설은 물론이고 외국소설도 일본 소설을 빼곤 거의 읽지 않는다는 사실에 실망한 필자는 ‘그렇게들 안 읽고 어떻게 글을 쓰나, 어디 소설 한번 보자.’고 단단히 별렀다. 그런데 학기가 끝날 무렵 학생들이 제출한 소설을 읽고 깜짝 놀랐단다.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 수준의 글을 보면서 ‘책을 읽으라고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난감했다는 일화다. 출판 시장, 그중에서도 문학 분야의 독자 감소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특히 한국 소설의 쇠퇴는 심각하다. 오죽하면 문화예술위원회가 침체된 한국 문학을 회생시키겠다며 올 들어 분기마다 우수문학도서와 문예지 게재 우수작품을 선정해 지원할까 싶다. 단적으로 지난달 넷째주 교보문고 종합 베스트셀러 10위권에 오른 소설은 ‘해리포터와 혼혈왕자’(1위),‘도쿄 타워’(4위),‘모모’(8위)등 모두 번역소설이다. 그런데 앞서 필자가 지적한 것처럼 이렇게 소설을 읽지 않는 세대인데도 신기하게 재능있는 작가들은 해마다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다. 올해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한 1980년생 김애란과 문학동네 신인상을 받은 1981년생 안보윤이 대표적이다.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한 20대 중반 신인작가들은 한국 소설을 읽지 않는 또래집단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문학 관계자가 아니라도 누구나 다 아는 구문을 새삼스럽게 끄집어낸 까닭은 바야흐로 신춘문예의 계절이 돌아와서다. 독서량은 적어도 개성이 강한 글을 쓸 줄 아는 20대 문학지망생부터 열정만은 이들 못지않은 늦깎이 ‘문학청년’들까지 단체로 열병을 앓는 달이다. 문학이 죽네사네 해도 매년 신문사에 투고되는 작품 수에 크게 변화가 없는 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신춘문예 마감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눈이 번쩍 뜨일 만한 좋은 작가들이 새벽 하늘을 밝히는 샛별처럼 새해 첫날 각 일간지를 장식하길 기대해 본다. 이순녀 문화부 기자 cora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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