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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여버리겠어” 남동생에 흉기 든 누나, 경찰은 달랐다

    “죽여버리겠어” 남동생에 흉기 든 누나, 경찰은 달랐다

    “너 죽여버릴 거야. 너만 아니었으면 나 잘살았어. 네가 태어난 게 잘못이었어.” 누나 A씨는 동생 B씨가 집에 들어오자 부엌에서 식칼을 꺼내 휘둘렀다. 동생이 누나와 말다툼을 하고 나서 집에 돌아온 직후였다. 동생은 112신고를 했고, 결국 경찰이 현장에 출동했다. 사실, 남매의 갈등은 뿌리 깊었다. 누나 A씨는 딸이라 이유만으로 아버지에게 학대를 받고 자랐다. 그렇기에 마음속 깊이 상처를 간직하며 살아야 했고, 어렸을 때부터 우등생으로 자라며 부모의 사랑과 인정을 독차지한 동생이 미웠다. 누나 B씨는 결국 도피성 유학 중 어지럼증을 호소하는 메니에르병을 앓았고 분노조절장애 증상까지 보였다. 경찰은 이 점을 파악하고, 회복적 경찰활동을 이 사건에 적용하기로 했다. 동생은 누나의 처벌을 원했지만, 꾸준한 대화를 통해 누나의 피해의식을 이해할 수 있었고, 갈등을 대화로 풀어보기로 약속했다. 결국 동생은 누나에 대한 처벌불원서를 경찰에 제출했다. 아버지도 딸 A씨에게 사과했다. 그는 회복적 경찰활동에 자진 참석해 “딸이 고집이 세 어릴 때 폭력을 행사했는데 이렇게까지 상처가 될 줄은 몰랐다”며 “미안했다, 우리 딸 사랑한다”고 말하고 안아줬다. 딸 A씨도 “아버지와 동생에 대한 서러움에 대한 감정이 조금은 보상받고 회복된 것 같다”며 “도움을 준 회복적 전문기관 전문가와 피해자 전담경찰관에 감사하다”고 말했다.설 연휴를 맞아 경찰의 ‘회복적 경찰활동’이 주목을 받고 있다. 그동안 얼굴을 보지 못했던 가족 친지들이 모여 덕담을 주고받는 명절이지만, 자칫하다간 갈등의 골이 더 깊어지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경찰의 회복적 경찰활동은 단순히 가해자를 처벌하는 데 목표를 두지 않고 재발 방지를 위해 가·피해자 간 대화를 통해 갈등의 불씨를 완전히 없애는 데 중점을 둔다. 전문가들은 불가피하게 설 연휴 가족·친지·이웃 간 다툼이 발생해 경찰 수사가 시작됐다면, 경찰의 회복적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12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회복적 경찰활동이 이뤄진 464건 중 418건(90%)에서 조정이 성립됐다. 회복적 경찰활동이란 가해자 검거·처벌에 초점을 둔 ‘응보적 사법’에 대한 비판에서 비롯된 대안으로, 범죄 피해 복구와 재발 방지 등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사건 유형을 보면 학교폭력이 159건, 폭행·협박 157건, 가정폭력 140건, 절도 54건 등 주로 이웃·가족 사이에서 발생하는 범죄가 잦다. 인천 서부경찰서는 지난해 11월 회복적 대화로 층간 소음 문제를 원만히 해결했다. 층간 소음으로 7년째 다투던 이웃이 서로 폭행해 112에 신고하자 담당 형사는 대화를 유도했다. 아래층 주민이 ‘어머니가 암에 걸려 간호 후 자야 하는데 시끄러워 힘들다’며 눈물을 흘리자 위층 주민은 ‘이렇게 힘들어하는 줄 몰랐다. 앞으로 조심하겠다’며 사과했다고 한다. 두 사람은 경찰에 처벌불원서를 제출했다. 참여자와 경찰관 대부분 회복적 경찰활동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회복적 경찰활동에 참여한 91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피해자와 가해자는 각각 90%, 94% 만족한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담당 수사관 83%는 피해 회복에 효과를 보였다고 답한 동시에 81%는 재범방지에 효과가 있다고 답했다. 실제로 회복적 경찰활동은 가정?학교?이웃간 범죄 초기에 개입해 재발 방지에 중점을 둔다. 경찰은 전국 257개 경찰서 중 작년 142곳에서 시행한 ‘회복적 대화’를 이날부터 178곳에서 확대 시행하기로 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하반기에는 200개서로 확대하는 게 목표”라면서 “설 연휴 가족, 친지, 이웃 간 갈등이 발생해 112 신고까지 됐다면, 회복적 경찰활동을 통해 서로 오해를 풀고 갈등을 해결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클래식부터 국악X인문학까지…무료 온라인 공연 ‘집콕’이 설렌다

    클래식부터 국악X인문학까지…무료 온라인 공연 ‘집콕’이 설렌다

    가족들과도 거리를 두며 ‘집콕’ 연휴를 보내야 하는 이번 설, 잠시라도 의미있는 시간을 갖고 알차게 새해를 맞고 싶은 싶다면, 안방에서 즐길 수 있는 온라인 예술 콘텐츠들을 추천한다. 영상으로 꾸며진 클래식과 국악, 무용 등 고전의 향기를 귀로는 물론 눈으로도 담으며 다양한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콘텐츠들을 무료로 만날 수 있다.●정재형X서울시향…현진건 집터를 무대로 ‘미라클 서울’ 서울시립교향악단은 11일 오후 6시부터 14일 오후 6시까지 72시간 동안 ‘미라클 서울’ 부암동 편을 유튜브 채널을 통해 다시 공개한다. 지난해 10월 9일 싱어송라이터 정재형과 서울시향 단원들이 서울 종로구 부암동 현진건 집터에서 미스트랄(Mistral), 라 메르(La Mer), 안단테(Andante), 편린 등 정재형의 피아노 앨범에 수록된 곡들을 선보이며 큰 호응을 얻었던 공연이다. 바이올린 김덕우·박진수, 비올라 안톤 강, 첼로 문태국, 더블베이스 장승호, 호른 무관중 온라인 공연으로 한 차례 공개됐다. 연주 영상 외에도 현진건 집터 일대를 탐방하는 영상과 메이킹 필름, 비하인드 스토리 등도 볼 수 있어 더욱 친근하게 야외무대를 즐길 수 있다.●국립무용단·국립국악관현악단 공연 실황 안방에서 국립극장은 11일부터 국립무용단과 국립국악관현악단 공연 영상을 국립극장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선보인다. 코로나19로 공연예술계가 침체된 이 시기에 국립무용단이 관객들에게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다 우리 춤의 매력을 더 많은 사람들이 접할 수 있기를 바라며 꾸민 ‘무용영상: 희망의 기본’ 실황 공연을 13일까지 볼 수 있다. 송범 전 국립무용단 초대 단장이 무용수의 기초 훈련과 몸풀기 목적으로 만든 전통 춤사위 모음으로, 국립무용단원들이 60여년 이어온 전통인 동시에 매일 함께하는 일상과도 같은 ‘국립기본’을 재해석한 무대다. 지난해 11월 롯데콘서트홀에서 공연한 ‘2020 마스터피스: 정치용’은 한국 창작음악에 대해 깊이 고민해온 지휘자 정치용(현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예술감독)의 시선으로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창작 작품을 재조명한 무대다. 풍성하고 웅장한 국악관현악의 화음을 14일까지 유튜브에서 만날 수 있다.●국립국악원 대표 공연 네 편… “매일 오후 3시 놓치지 마세요” 국립국악원은 11일부터 14일까지 매일 오후 3시 대표 작품 네 편을 선보이는 ‘랜선타고 설설설’을 준비했다. 처용무, 춘앵전 등 전통 무용과 성악, 국악 선율이 어우러져 궁중예술로 따뜻한 마음을 나누려 했던 효명세자의 삶과 철학을 엿볼 수 있는 ‘동궁-세자의 하루’(11일)를 시작으로 ‘꼭두’를 영화로 만든 ‘꼭두 이야기’(12일), ‘1828, 연경당-정재의 그릇에 철학을 담다’(13일), ‘종묘제례악’ 한·프랑스 수교 130주년 기념 실황 공연(13일) 등이 차례로 국립국악원 유튜브 및 네이버TV 채널에서 공개된다. 이 가운데 둘째날인 12일 ‘꼭두 이야기’는 할머니의 꽃신을 찾으러 떠난 어린 남매가 저승세계로 빠져 꼭두 4명과 함께 꽃신을 찾는 이야기가 영상으로 그려져 가족들이 함께 볼 수 있다. 김태용 감독이 연출을 맡고 방준석 감독의 음악과 국립국악원 연주로 풍성해진 영화 ‘꼭두 이야기’가 공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국악으로 꾸며진 동화…국악과 만난 인문학 ‘온통 페스티벌’ 지난달 22일부터 시작된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온통 페스티벌’도 14일까지 이어진다. 2011년부터 선보였던 베스트셀러 동화 애니메이션과 국악 라이브 연주를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음악극 ‘동화음악회’를 12~13일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유튜브 및 네이버TV 채널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 거문고 연주자 이정석 음악감독을 중심으로 대금(이아람), 피리(성시영), 타악(전계열) 등 현재 국악계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연주자들이 참여해 인물들의 심리를 국악 선율로 재미있게 표현한 ‘앵무새 돌려주기 대작전’과 최근 주목받는 그룹 상자루(권효창·남성훈·조성윤)가 순수하고 천진한 주인공의 마음을 독창적으로 그려낸 동화 ‘신고해도 되나요?’ 등 두 편이 어린이들을 기다리고 있다.국악과 함께하는 인문학 공연도 이색적이다. ‘전통음악X서양미술사’, ‘Film 정조와 햄릿’ 등 전문가들의 대담 및 강연과 함께 전통음악이 어우러져 더욱 깊이있는 인문학을 만날 수 있다. ‘전통음악X박물관’을 통해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전통 창작음악과 무용을 풀어낸 공연 영상도 준비됐다. ●홈트부터 외국어 강좌까지…110개 영상 대방출 ‘골라 보세요’ 강남문화재단은 안방에서나마 ‘슬기로운 문화생활’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영상 콘텐츠 110개를 강남문화재단 유튜브와 네이버TV에서 대방출한다. 강남심포니오케스트라와 강남합창단 공연 영상을 비롯해 강남구민들의 작품 전시회, 악기 연주, 외국어 등 취미 강좌, 어린이를 위한 구연동화, 골프, 헬스, 필라테스 등 홈트레이닝 강좌, 인문학 강연 등 다양한 주제로 남녀노소 누구나 원하는 영상을 찾아 볼 수 있도록 한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시한부 인생 마지막 길서 삶의 뜻 찾다

    시한부 인생 마지막 길서 삶의 뜻 찾다

    “빌려준 2억원 갚아” 근시안“지금의 삶은 덤” 긍정 선물“반년 남아도 결혼” 순애보2019년 전체 사망자의 27.5%가 암으로 사망했다. 한국인이 사망하는 장소의 77.1%는 병원이다. 말기암 환자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병원에서는 가족들과 함께 의사도 환자의 마지막 삶을 지켜봐야 하는 것이 숙명이다.●죽음 앞둔 암 환자 통해 인생 화두 제시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김범석 교수의 에세이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는 18년차 암 전문 의사로서 항암치료를 해 온 저자가 얻은 깨달음을 틈틈이 남긴 기록이다. 완치 목적이 아니라 생명 연장 목적의 항암치료를 받는 환자와 그 가족들이 남은 삶과 예정된 죽음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솔직하게 담았다. 암 환자들은 각자 다른 모습으로 삶의 종착역을 향해 간다. 부인과 이혼한 한 폐암 환자는 오랜만에 병문안 온 동생에게 “내가 빌려준 2억원 갚아라”는 유언을 남겨 아무도 지켜보는 이 없이 쓸쓸하게 세상을 떠났다. 죽음 직전에서 삶의 의미를 깨닫지 못한 채 막연히 10년만 더 살기를 바라는 환자도 있다. 술과 도박에 빠져 가족들을 등지고 살다 식도암으로 투병 중인 환자의 큰딸에겐 부친의 죽음이 인생의 첫 행운이다. 반면 “지금의 삶은 덤”이라며 검진 때마다 저자에게 요구르트를 선물하는 긍정적인 환자도, 인생을 반년 남긴 신부와 결혼한 신랑의 순애보도 있다. 이를 목격한 김 교수는 “사람은 누구나 주어진 삶을 얼마나 의미 있게 살아낼 것인가라는 질문을 안고 태어난다. 일종의 숙제라면 숙제”(63쪽)라고 인생의 화두를 제시한다.●‘투병 경력 불이익·공장식 진료’ 등 비판 모순된 현실에 대한 좌절도 엿보인다. 완치됐으나 암 환자라는 이유로 취업에서 불이익을 받는 젊은이를 통해 우리 사회의 냉혹함을 고발한다. 팔순 노모 연명치료를 중단하지 않겠다는 네 남매 때문에 의식을 잃은 환자의 갈비뼈가 부러진다. 하지만 심폐소생술을 멈출 수 없게 되자 ‘최선을 다하는 것이 과연 최선이었을까’를 되묻는다. 어쩔 수 없이 1시간에 환자 10명을 봐야 하는 한국의 ‘공장식 박리다매 진료’에 대해 씁쓸함을 털어놓기도 한다. 2018년 2월부터 시행된 ‘연명 의료 결정법’ 덕분에 회생 가능성이 없는 말기암 환자의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자신의 의지나 가족들의 선택으로 중단할 수 있다. 하지만 붙어 있는 숨을 내가 끊어냈다는 죄책감을 털어내기 쉽지 않아 여전히 치료를 중단하긴 쉽지 않다. 저자는 “불법과 합법의 경계가 애매할수록 현장은 혼란스럽다”며 이 시대 의사들이 지난 고민을 토로했다. 의학적 지식과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터득한 암에 대한 성찰을 나누는 데 주저함이 없는 솔직함이 묻어난다. ●“연명치료 중단 때 의사들은 번민” 저자는 “뜻하지 않게 자신이 떠나갈 때를 알게 된 사람들과 여전히 떠날 때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생각할 때 나는 그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었다”고 했다. 저자 자신이 고등학생 때 폐암으로 아버지를 잃은 개인적 아픔이 있기 때문에 이 같은 성찰이 절실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어떤 죽음이 존엄하고 최선의 죽음인지에 대해서는 뚜렷한 해답을 들려주지 않고 오롯이 독자의 몫으로 남겨 둔다. 저자가 마주한 환자와 보호자의 자리에 언젠가 우리도 앉을 수 있다. 이 책이 단순히 ‘의사’만의 것이 아닌 우리의 이야기로 느껴지기 때문에 책을 손에서 놓기가 어렵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신고하면 엄마 못 만난다” 매일 맞고도 입 다문 아이… 아동학대 뒤엔 돌봄 공백

    “신고하면 엄마 못 만난다” 매일 맞고도 입 다문 아이… 아동학대 뒤엔 돌봄 공백

    “학대로 인한 외상 징후가 뚜렷한데도 유독 입을 열지 않는 피해 아동이 있었습니다. 놀이터에서 넘어졌다는 말을 반복했던 아이는 병원 검사 결과 복부 둔상이 의심된다는 소견을 받았습니다. ‘날 신고하면 두 번 다시 네 엄마를 못 본다’는 계부의 협박이 두려웠던 아이는 어머니와 분리되지 않으려고 구타가 반복됐던 날들을 말없이 견뎠습니다.” 세 차례의 학대 의심 신고에도 양모로부터 분리되지 못해 사망에 이른 생후 16개월 입양아 정인이 사건이 공분을 사고 있다. 하지만 아동학대가 발생하는 근본 요인이나 법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낮다. 2015년부터 피해자 전담 국선변호 활동을 시작해 약 300건의 아동학대 사건을 처리해 온 김민선(39) 변호사는 지난 13일 서울 송파구 대한법률구조공단 서울동부지부 사무실에서 진행된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아동학대의 이면에는 빈곤과 가정불화로 인한 돌봄 공백이 있다”고 강조했다. 아동학대 사건의 특성상 가족이 피해 아동을 위해 법정 다툼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실제로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발표한 ‘2019 아동학대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3만 45건에 이르는 아동학대 사건의 주 학대 행위자는 부모(75.6%)였다. 피해자 전담 국선변호사가 피해 아동의 법적 조력자를 넘어 실질적인 ‘가족’이 돼 사건 전면에 나서는 이유다. 이들은 법정 대응 능력이 약하고 2차 피해 우려가 높은 피해자를 위해 수사와 재판 절차에서 피해자의 권리 보호, 법적 정보 제공, 심리적 지지 등을 지원하고 있다.●가정폭력 피해자 대부분 자녀 학대 방조 -국선 변호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법무법인에서 일한 3년간 가정폭력·이혼 사건을 접할 기회가 많았다. 의뢰인 대부분이 장기간 피해로 인해 강한 심리적 스트레스를 겪으며 열악한 지위에 있었고, 가정으로 돌아갔다가도 아동학대 사건으로 다시 찾아왔다. 가정폭력이 곧 아동학대로 이어지는 것이다. 배우자에게 오랜 기간 폭력을 당해 무기력한 상태가 된 피해자들은 자녀에 대한 학대를 방조했다. 폭력이 학대를 낳는 악순환의 굴레에 빠진 가정에 지속적인 도움을 주고 싶었다. 보호자에 의한 학대 사건은 피해 아동을 지속적으로 도와줄 역할이 필요하기 때문에 국선변호사가 선정된다. 피해 아동이 경찰에서 피해 사실을 진술할 때 출석할 뿐 아니라 학대 의견이 담긴 의료진의 소견서나 진단서 발급을 위해서도 아동보호전문기관(아보전) 직원 등과 함께 병원을 찾는다. -그간 가장 안타까웠던 사건은. “정인이 사건처럼 첫 신고 때 불기소 처분됐다가 1년 만에 학대 사실이 드러나 기소된 사건이다. 부모의 이혼 후 친할머니에게 맡겨진 3남매가 상습적인 학대를 당했지만 수사기관에선 1차 신고 때 학대 정황을 발견하지 못해 불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 친권자는 아버지였으나 생계를 위해 주중엔 집을 비워 주 양육자는 할머니였다. 수사기관에 피해 사실을 어렵게 털어놨는데도 ‘훈육을 위한 체벌’이었다며 학대 사실을 부인한 할머니가 처벌받지 않는 걸 목격한 아이들은 어른에 대한 깊은 불신과 절망감에 빠져 있었다. 1년 뒤 가정 방문을 한 복지 공무원이 아보전에 2차 신고를 했고, 학대 징후 등이 담긴 의사 소견서 제출 등을 통해 보호자와 아동을 분리하는 피해아동보호명령이 이뤄졌다. 할머니는 고령임에도 이례적으로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지만 보석으로 풀려나 아이들이 불안감에 시달렸다. 피해 상황과 처벌에 대한 의사를 재판부에 의견서로 전달했고 결국 할머니는 유죄 판결을 받았다.” ●피해 아동 심리 불안정해 진술 소극적 -‘돌봄 공백’이 결국 학대로 이어지는 사례가 많나. “크리스마스 무렵 복지 공무원이 방문한 집에 며칠째 기저귀를 갈지 못한 2살 젖먹이를 포함한 5남매가 쓰레기가 가득 찬 집에 방치돼 있었다. 곰팡이 가득한 설거지 더미가 싱크대에 쌓여 있었고, 집 곳곳에 옷가지와 빈 과자 봉지가 널브러져 있었다고 한다. 9살인 첫째 아이는 수사기관 조사에서 ‘부모님 없이 몇 밤을 지냈느냐’는 질문에 ‘몇 밤’이 무슨 말인지 모른다며 대답을 하지 못했다. 연락 두절된 아버지 없이 어머니 혼자 아이들을 돌보는 한부모 가정이었다. 주변에 돌봄을 도와줄 친인척이 전혀 없어 홀로 아이들을 돌봐야 했던 이 어머니는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사건은 가정법원으로 넘겨졌고 보호처분이 이뤄졌다. 어머니와 연령대가 다양한 아동들이 함께 머물 시설이 없어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야만 했다. 학대 사실이 드러나면 부모와 아동의 분리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많지만 실제로 현장에는 피해 아동의 상태에 따라 보호시설을 택할 수 있는 여건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친권자가 학대 행위자일 때 더 어려운 점은. “이혼소송, 양육자 변경, 가정폭력, 친족 성폭력 등 여러 복잡한 문제가 얽혀 있는 경우가 많다. 가정 내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학대 행위가 쉽게 드러나지 않는 데다 피해 아동 대부분이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라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초등학교 고학년인 아이가 아버지로부터 등부터 다리까지 피멍이 심하게 들 정도로 구타를 당해 어머니가 신고한 사건이 있었다. 어머니는 이혼소송 제기 후 아동을 면접교섭하던 중 학대 사실을 확인해 친권 및 양육자 변경을 원했다. 피해아동보호명령 신청 등의 지원을 하던 중 불과 한두 달 사이에 부모가 재결합했고, 아이도 부모와 함께 사는 걸 원해 사건을 더이상 진행하지 못했다.” -피해 아동의 구제를 위해 어떤 개선이 필요한가. “아동학대는 반복적으로 발생할 위험이 높아 지속적 개입이 필요하다. 또 아동의 연령, 피해의 정도, 위험성 등의 기준에 따른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나 권고안이 마련돼야 한다. 아동에 대한 기본적인 보호 의무를 소홀히 하는 방임 학대를 형사사건으로 처벌할 수 있을지 현장에서 판단하기가 쉽지 않은 측면이 있다. ‘기본적인 보호’의 수준을 어느 정도로 둘 것인지 기준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또 보호자가 아동을 방치한 이유가 빈곤 등 취약한 여건 탓이라면 학대 행위자를 무조건 형사처벌하는 게 맞는지 고민하게 된다.” ●처벌 강화하면 가해자에게 경각심 줄 것 -정인이의 죽음을 막지 못한 이유가 있다면. “아동학대 사건이 신고되면 피해 아동을 가정에 둔 채 보호해야 할지, 아니면 분리가 필요한지에 대한 판단이 선행돼야 한다. 분리 여부에 따라 한 가정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피해 아동이 분리될 경우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을 해야 하는데 그로 인해 아동이 우울감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현장에선 분리 보호를 위한 명확한 근거가 있어야 조치를 취하게 된다. 영아라 진술 자체가 어렵거나 아동이 여러 사정으로 진술에 소극적인 경우 수사기관은 증거가 부족하다는 판단을 내린다. 그 과정에서 정인이 사건처럼 피해 아동 보호의 공백이 발생하게 된다.” -아동학대 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을 상향해야 한다고 보나. “아동학대가 피해 아동에게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처벌 수위가 약하다. 아동이 사망에 이르지 않으면 대부분 유죄가 인정되더라도 집행유예를 선고받는다. 경미한 학대는 아동보호사건으로 송치된다. 형사재판이 아닌 가정법원으로 사건이 넘겨져 접근금지, 감호, 사회봉사 등의 보호처분을 받게 되는 것이다. 처벌이 가볍다 보니 학대 행위자들은 ‘신고할 테면 해 보라’는 식으로 수사기관이나 담당 공무원에게 대놓고 얘기한다. 처벌이 강화된다면 학대 행위자에게 경각심을 줄 수 있지 않을까. ” -다른 나라와 비교해 아동학대 관련 국내 법제도의 취약한 측면은. “미국·영국 등처럼 지방자치단체 소속 공무원이 아동학대 대응 컨트롤타워 기능을 하도록 지난해 10월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개정됐다. 현장 조사부터 복지 서비스까지 구체적 사안에 맞게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된 거다. 그동안 현장에선 이런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요구가 계속 나왔었다. 또 학대 사실을 확인하려면 가정 방문 조사가 필요한데 학대가 일어난 가정에서 조사를 회피하면 과태료 부과 외에 강제할 방법이 없었다. 개정법대로 잘 작동되려면 충분한 인력 확보는 물론 지자체 공무원과 경찰의 유기적인 협업 체계가 만들어져야 한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가슴으로 낳은 내 딸과 8년째 행복… “모두 정인이네 같진 않아요”

    가슴으로 낳은 내 딸과 8년째 행복… “모두 정인이네 같진 않아요”

    양부모의 학대로 16개월의 짧은 생을 마감한 정인이 사건을 계기로 입양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가슴으로 낳은 아이들’을 정성껏 키워 온 입양 부모들은 문제의 본질은 입양이 아니라 아동학대에 있다며 입양 가정에 대한 편견을 거둬 달라고 호소했다. 서울 강서구에 사는 입양가정 부모 이희진(41·가명)씨는 7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정인이를 살릴 기회가 여러 번 있었는데 비극을 막지 못해 안타깝고 화가 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12살 아들과 9살 딸 등 남매를 키우는 이씨는 8년 전 돌쟁이인 딸을 입양했다. 이씨는 “입양 부모 중에도 사랑으로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 있고 친자식을 학대하고 방임하는 친부모도 있지 않나”라며 “입양가정을 비난하기는 쉽지만 그런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씨는 입양가정이라는 이유만으로 학대 의심을 받기도 했다. 그는 “5년 전 입양가정 학대 사건으로 세상이 떠들썩했을 때 점검을 한다고 갑자기 공무원이 집을 찾아왔다”며 “둘째 아이가 혹여 입양아라서 다른 취급을 받는다고 느낄까 봐 걱정이 됐다”고 털어놨다. 입양 부모들은 아동학대 사건의 가해자 대다수는 친부모라고 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9년 아동학대 사건 3만 45건 가운데 입양 부모의 학대 사례는 94건으로 0.3%에 그쳤지만 친부모가 가해자인 사례는 2만 1713건(72.3%)에 달했다. 같은 해 가정 내 학대로 사망한 아동 42명 가운데 입양자는 1명(2.4%)으로 가장 적었다. 피해자의 52.4%가 친부모 가정에서 숨졌다. 정인이 사건의 여파로 입양을 기다리는 아이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지난해 1월 정인이와 같은 개월 수 첫째 딸을 입양한 최선영(40)씨는 둘째 입양 신청 취소를 고민 중이다. 최씨는 “법원이 지정한 병원에서 부부가 따로 심리검사를 받고, 범죄 경력조회서와 은행 전 계좌 등 재산 내역까지 모두 제출해 1년 만에 첫째를 품에 안았다”면서 “첫째가 외로울까 봐 힘든 입양 절차를 처음부터 다시 밟고 있지만, 절차를 더 강화하면 범죄자 취급과 다를 바 없다”고 토로했다. 보건복지부는 예비 양부모의 가정, 직장, 이웃을 방문하는 등 입양 절차를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최씨는 “보통 입양한 사실을 비밀에 부치고 싶어 하는데, 이웃에 입양 사실이 알려질 수 있다면 입양을 결심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최씨는 “사후관리 방문 횟수를 늘리는 방향은 긍정적”이라면서 “전문가가 아이 발달 상태를 살피고 조언해 주기 때문에 자녀 양육에도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 [씨줄날줄] 80세의 낸시 펠로시/임병선 논설위원

    [씨줄날줄] 80세의 낸시 펠로시/임병선 논설위원

    지난해 2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국정연설에 열을 올리는 뒤에서 원고를 북북 찢어 사람들을 깜짝 놀래킨 낸시 펠로시(80) 하원의장이 3일(현지시간) 출범한 제117대 의회에서 다시 의장에 뽑혀 2년 더 미 하원을 이끈다. 미국 최초의 여성 하원의장이었던 펠로시 의장이 네 번째 의장 임기를 마치면 민주당 일인자로 20년을 채우는 전무후무할 기록을 남기게 될 것이다. 조 바이든(78) 대통령 당선인과 함께 경륜의 정치를 펼치게 된 펠로시 의장은 미국 최초의 여성 부통령에 취임하는 카멀라 해리스(57) 당선인과 함께 미국 정치계에서 강력한 여성 정치인의 파워를 구현할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행정부가 정책을 수행하는 데 하원의장의 역할은 절대적일 수 있어 대통령의 어젠다 설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펠로시 의장은 취임 일성으로 “생명과 생계를 구하고 더 나은 삶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계속할 것”이며 늘어나는 빈부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경제 격차 및 성장의 공정성에 관한 특별위원회를 초당적으로 꾸리겠다고 다짐했다. 공화당 등에선 ‘샌프란시스코 패션 좌파’라고 공격하지만 사실 동부 메릴랜드주 볼티모어 정치인 집안의 칠남매 중 막내 외동딸로 태어났다. 부친은 볼티모어시장을 지냈다. 워싱턴 근처 대학에 진학해 뒤에 금융업자가 되는 폴 펠로시를 만나 결혼, 처음에는 주부로 살림만 했다. 6년 터울의 4녀1남을 뒀다. 뉴욕 맨해튼을 거쳐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했다. 1976년 집안과 막역한 제리 브라운 캘리포니아주지사가 메릴랜드주 대선 프라이머리를 승리하도록 도운 인연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1988년 하원의원 당선의 기쁨을 누린 뒤 18선을 기록했다. 2003년부터 민주당 원내대표를 맡아 이라크 침공에 맹렬히 반대 목소리를 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사회보장제도 보호 장치를 해제하려 하자 반대 당론을 밀어붙여 결국 무산시킨 뚝심을 자랑한다. 2007~2011년까지 민주당이 하원 다수당이 되자 하원의장에 올랐다. 여성 최초로 미국 주요 정당의 수장이자 최초의 여성 하원의장이었다. 민주당이 다수당을 내줘 의장직을 내준 뒤 2018년 중간선거를 승리하며 이듬해부터 하원을 이끌었다. 2019년 1월 트럼프 행정부가 예산안에 국경장벽 예산을 포함하자 ‘단 1달러도 줄 수 없다’며 미국 연방정부 최장 셧다운을 했다. 다만 직전 116대 의회에선 공화당보다 30여석 많았지만 이번엔 11석으로 격차가 크게 좁혀져 과거처럼 강단의 정치는 어려울 수 있다. 코로나19 국면을 헤쳐 나가자면 타협의 묘미와 경륜의 정치를 펼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 bsnim@seoul.co.kr
  • [단독] “제가 잘못했습니다” 쓰레기산에 남매 방치한 김포 엄마의 방어기제

    [단독] “제가 잘못했습니다” 쓰레기산에 남매 방치한 김포 엄마의 방어기제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제가 잘못한 게 맞습니다. 죄송합니다.” 지난 18일 경기 김포 양촌읍의 어느 빌라에서 어린 남매를 쓰레기 더미 속에 방치해 아동복지법상 방임 혐의로 김포경찰서에 불구속 입건된 40대 여성 유모씨는 25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자신의 불행한 사정을 끝까지 숨기려 했다. ‘외벌이로 홀로 두 아이를 키우는 게 힘들지 않았냐’고 묻자 유씨는 “제게 특별한 사정은 없습니다. 제가 아이들을 방임하고 유기한 것이 맞습니다”라며 잘못을 순순히 인정했다. 서울신문 취재 결과 유씨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삽니다”라면서 “두 아이 합쳐 한부모 지원 월 41만5000원씩 지원 받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친부에게 양육비를 받고 있냐’고 물었지만 끝끝내 대답하지 않았다. 지난 2017년 12월쯤 이 빌라에 입주한 유씨는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한 달에 55만원인 월세를 열 번 넘게 내지 못했다. 3개월전 쯤 보증금 500만원을 모두 소진한 뒤에도 월세를 내지 못하자 집주인은 그동안 밀린 월세 일부를 받지 않기도 했다. 이후 12월 초쯤에 집주인은 “새벽에 유씨 집에 아이 울음 소리가 계속 나서 잠을 제대로 청할 수 없다”는 옆집 세입자의 전화를 받았다. 유씨의 딱한 사정을 알고 있었던 집주인은 “12월초에 유씨를 만났는데 안색이 안좋고 몸이 아파 보였다”며 “혹시라도 읍사무소 사회복지과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전화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집주인의 신고는 쓰레기 산에 살고 있던 남매를 구출한 계기가 됐다. 지난 16일 양촌읍사무소 직원들이 집에 방문했으나 유씨는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이후 읍사무소 사회복지과 직원이 부천에 있는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연락을 취했고, 지난 18일 아동보호전문기관 직원들이 경찰을 대동해 집에 들어갔다. 열두 살 남자 아이와 여섯 살 여자 아이가 쓰레기 더미에서 방치돼 있었다. 경찰은 곧바로 김포경찰서로 유씨를 임의동행해 1차 조사를 마쳤고, 오는 26일 2차 조사에 들어간다. 유씨에게 ‘여섯 살 여자 아이가 발달장애가 있는 것을 알고 있었냐’고 묻자 “네. 하지만 언제부터 그렇게 된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라면서도 “그건(발달장애에 대한 판정) 병원에서 아직 판정을 안 받았습니다”라고 했다. 이어 “두 아이 모두 건강합니다. 굶기거나 그런 적은 없습니다”라며 “발달이 좀 늦을 뿐입니다. 발달이 늦은 건 제 잘못이 아니지 않습니까”라고도 했다. 최초 신고자인 집주인이 어린 여자아이가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건 지난 10월 27일 이 빌라 전체 인터넷·전화 회선을 KT에서 SK로 교체하는 과정에서 집 안으로 들어가게 되면서다. 집주인은 이때 집 안 거실에 앉아있던 여자아이를 처음 봤고, “갓난아이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고 했다. 같은 빌라에 살고 있는 주민들도 25일 “남자 아이 혼자서 동네 주위를 배회하는 것을 본 적은 있지만 그집에 어린 여자아이가 살고 있다는 건 뉴스를 보고 처음 알았다”며 “한번도 보지 못했다”고 입을 모았다. 유씨의 두 자녀는 지난 18일 이 집에서 구조된 뒤 부천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김포시에 있는 그룹홈(아동공동생활가정)으로 옮겨졌다. 6살 여자아이는 구조될 때 걷기는커녕 일어서지도 못했으며 바지 속에는 기저귀를 차고 있었다. 보호시설에 도착한 이후 말을 거의 하지 못했고 섭식 장애가 있어 젖병으로 음식물 섭취를 돕고 있다. 이 아이는 지난 23일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정밀검사를 진행한 뒤 뇌성마비와 지적장애 판정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현장 출동 당시 거동이 불편했다”며 “(장애 판정 사실 등은) 의료 기관에 인도되어 병원에서 진단 받은 내용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두 아이 모두 출생 신고 사실을 확인했다”며 “아동 방임과 관련된 부분 전반에 대해서 수사 중에 있다”고 했다. 김포 최영권 기자 story@seoul.co.kr
  • [김주대의 방방곡곡 삶] 소망슈퍼 할머니

    [김주대의 방방곡곡 삶] 소망슈퍼 할머니

    낮에 찍은 사진을 정리하다가 재미있는 사진 한 장을 보게 된다. 경기도 김포 월곶면에서 찍은 사진인데 ‘소망슈퍼’라는 가게의 간판이 따스하다. 할아버지 한 분이 가게 앞에서 자전거를 손보고 있다. 가게 간판에 사내아이와 계집아이가 그려져 있다. 둘 다 복코에 도톰한 입술, 굵은 눈망울이 남매처럼 닮았다. 자전거 손보는 할아버지의 손자 손녀일까, 아니면 할아버지 젊었을 적 어린 자녀분들일까? 얼마나 아이들을 귀하고 자랑스럽게 여겼으면 간판으로 삼았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큰 기대 없이 사진 속에 보이는 번호로 전화를 건다. “안녕하세요, 저어… 거기 혹시 소망슈퍼인가요?” “네, 그런데요. 소망슈퍼예요.” 서울말과 비슷한 경기도 사투리의 할머니 목소리가 들려온다. 전혀 경계하지 않고 답할 만반의 태세를 갖춘 친절한 목소리다. 할머니라고 부르려다가 어머니라고 호칭을 급히 변경해 궁금했던 것을 조심스럽게 물어본다. “어머니, 저어… 뜬금없이 전화해서 이런 거 물어봐도 실례가 안 될지 모르겠는데요….” 딱 잘라서 말하지 못하고 조금 망설이고 더듬자 할머니가 오히려 나를 안심시키며 대화를 이어 가신다. “예, 괜찮아요, 물어보세요.” “어머니, 제가 지나가다가 어머니 가게 간판에 닮은 남매가 그려져 있는 걸 봤어요. 혹시 손주들인가 싶어서요. 너무 귀엽고 예뻐서요. 어떤 사연이 담긴 간판 같아요.” “아, 가게 위 간판에 그림요? 아녜요, 아기들 없어요. 영감하고 저하고 둘이 살아요. 그림 그리는 화가들이 그려 줬어요. 우리 애기들 아녜요. 호호호, 김포대학 학생들인가 그 양반들이 오래전에 그려 준 거예요.” 묻지 않은 말까지 상세하게 답해 주신다. 친절함, 상냥함, 따스함, 고움, 낮음, 고요함. 그런 단어들이 막 귓구멍 속으로 들어오는 것 같다. “아, 네, 그렇군요. 간판이 참 따스하고 예뻐서 어떤 사연이 있나 궁금해서 전화드렸어요.” “예, 그러셨어요? 고마워요. 우리 애기들은 아닌데 참 예쁘지요? 고마워요.” 낯선 사람의 뜬금없는 전화에도 할머니는 친절하게 당신의 마음을 드러내신다. 거리낌 없이 대답하시는 목소리가 맑은 봄날처럼 투명하고 포근하다. 얼굴이 긴 할아버지가 자전거를 손질하는 모습이 무척 평화롭게 느껴졌는데 확대해서 보니 할아버지의 코가 간판에 그려진 아이들의 코와 똑 닮은 복코다. 간판을 만든 화가가 할아버지 할머니의 얼굴을 본떠 아이들 얼굴을 그렸음이 틀림없다. “어머니, 그런데요, 가게 앞에서 자전거 고치던 할아버지요….” 물음을 다 마치기도 전에 할머니께서는 친절히 대답하신다. “예, 우리 영감이에요.” “아, 네, 그런 것 같았어요. 간판에 그려진 아이들 얼굴과 할아버지 얼굴이 똑 닮았어요. 특히 복스러운 코가요.” “호호호, 그 양반 코가 복코라고 예전부터 그랬어요. 착해요. 자전거가 두 댄데 고쳐서 번갈아가며 타요. 착한 양반이에요.” “아이고, 어머니, 얘기 친절히 들려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혹시라도 나중에 지나가게 되면 한번 들를게요. 가게 앞에 함박꽃이 참 탐스럽더라고요.” “고마워요.” “네, 네, 어머니,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세요. 담에 꼭 한번 들르고 싶습니다.” “예, 그러세요.” 성품이니 품성이니 하는 걸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 편이지만, 할머니와 통화하는 동안 본래 품성이 고운 분이 있다는 걸 새삼 느낀다. 할머니의 친절과 고운 성품을 친견하고 싶다.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친구들과 함께 소망슈퍼 앞 하늘색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맥주 두어 병 하기로 한다. 그때 할머니는 처음 보는 우리들에게 어떤 말씀을 해 주실까?
  • 친문 전해철 “박원순·오거돈, 권력형 성범죄 맞다”

    친문 전해철 “박원순·오거돈, 권력형 성범죄 맞다”

    보궐선거 ‘與 책임론’ 잇단 추궁에 답변野 “내년 선거 공정하지 않을 것” 지적全 “행안부 장관이 공정성 해친적 없다”이용구 폭행 재수사 요구엔 즉답 피해강남 43평 구매·50평 전세살이도 논란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 후보자가 22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박원순·오거돈 전 시장의 성추행 사건을 권력형 성범죄라고 밝혔다. 전 후보자는 이날 국민의힘 서범수 의원이 “내년 4월 7일에는 박원순·오거돈 시장 성추행 사건으로 인한 보궐선거를 한다. 이 두 성추행 사건이 권력형 성범죄냐”고 묻자 “권력형이 가미돼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어 서 의원이 “권력형 성범죄라고 보는 거냐”고 거듭 묻자, 전 후보자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네. 권력형이 가미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 후보자는 야당이 더불어민주당 현역 의원이자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 장관이 되면 내년 보궐선거가 공정하게 치러지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에는 “역대 행안부 장관들이 공정성을 해친 사례가 없으며 그 선례를 따라 선거 중립과 공정한 선거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 박완수 의원은 “행안부 장관은 선거관리, 경찰권 감독 등을 하는 엄중한 자리인데 문재인 대통령 측근을 내정한 건 선거 관리 의도가 아닌가”라며 탈당을 촉구했다. 전 후보자는 “당장은 탈당할 의사가 없다”고 답했다. 국민의힘은 이날 전 후보자에게 이용구 법무부 차관의 택시 기사 폭행 사건을 따져 물어 ‘이용구 청문회’를 방불케 했다. 전 후보자는 이 차관 사건 재수사 지시 의향 질문에는 “후보자 입장에서 경찰의 조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답변을 피했다. 다만 국민의힘 김형동 의원이 “기사님 멱살을 잡는 행위가 고위 공직자로서 할 일이냐”고 따지자, 전 후보자는 “공직자로서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전 후보자의 부동산 문제도 거론됐다. 전 후보자는 서울 강남구 도곡동 도곡렉슬 아파트 1채(43평)를 6억 8000만원에 매입해 전세를 주고, 자신은 같은 아파트 50평짜리 전세로 이사했다. 43평 아파트는 13년이 지난 2018년 22억원에 매각했다. 앞서 전 후보자는 “어머니를 모셔야 하고 사춘기 남매에게도 독립된 방이 필요해 더 넓은 평수로 옮겼다”고 해명했다. 이에 서범수 의원은 문 대통령의 임대아파트 현장 방문 영상을 재생하며 “대통령도 13평에 4명이 살 수 있다는데 (친문) 핵심에 계신 분이 43평이 좁아서 50평으로 옮겼다는 것은 국민 정서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전 후보자는 “대통령 말씀에 대해서는 사실관계에 약간 다툼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또 “아파트값이 올라 어려움을 겪는 국민에겐 매우 송구스럽다”면서도 “거주 목적 외 구입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행안위는 23일 오전 전체회의에서 전 후보자의 청문보고서 채택 여부를 논의한다. 손지은 기자 sson@seoul.co.kr
  • 손혜원, 필리핀서 ‘도박 중독’ 사망 남동생 추모 방송(종합)

    손혜원, 필리핀서 ‘도박 중독’ 사망 남동생 추모 방송(종합)

    손혜원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자신의 SNS를 통해 필리핀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남동생에 대해 공개하며 착잡한 심정을 전했다. 손 전 의원은 전날 ‘잘가라 손현. 도박 없는 세상에서 편히 쉬길 빈다’란 제목의 유튜브 추모 방송을 한데 이어 9일 페이스북을 통해 그동안 동생의 행적을 공개했다. 손 전 의원은 “지난 2년 간 손현의 유튜브에서 열심히 활동하셨던, 저는 모르는 분의 댓글을 퍼다 올린다”며 “제 동생 손현의 그간 활동을 정확히 말씀해주고 계신다”고 밝혔다. 이 네티즌은 “대전 할머니 돈 3000만원 사기치고 필리핀 도주 후 카지노에서 오링(올인. 돈을 모두 잃었다는 뜻) 후 쓰지 말아야 할 검은 돈을 쓰고 자살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필리핀에서는 카지노로 죽음에 이르는 경우가 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죽음을 전 처는 너무도 가슴 아파하고 오열했다는 데, 손현의 유서에는 정작 처나 자식에 대한 그리움이나 미안함, 회한 등이 나타나지 않았다”면서 “손혜원 비리 추적한다고 우파에서 활동하며 꼬셨던 이의 연락처를 적어 놓고 그녀에게만 자신의 죽음을 알려 달라 부탁하며 미안함을 표시했다”고 덧붙였다. 또 필리핀 한인회에서 분명 시신 찾아가라고 연락이 갔을텐 데, 손현이 유서에 연락처를 적은 우파 활동가 역시 거부한 모양이라고 덧붙였다.고 손현씨는 지난 4일 오전 10시 30분(현지시간) 필리핀 북부 팜팡가주 앙헬레스시에 있는 한 호텔 객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고 손씨는 ‘TV손혜원 비리 추적단’이란 제목의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면서 ‘손혜원의 부동산 비리 추적’ ‘손혜원의 보훈처 反 헌법성 비리’ 등의 동영상을 올렸다. 그는 과거 유튜브 방송에서 손 전 의원을 ‘미친X’이라고 부르며 “자기의 부동산투기를 은폐하고 비리를 밝히는 사람을 매장하려는 장본인이 손혜원이란 쓰레기”라고 주장했다. 손 전 의원은 “검찰이나 언론의 모든 기사가 손현이 주동해서 나온 것”이라며 6남매인 가족 사진을 공개하며 동생에 대한 회한을 밝혔다. 이어 “동생이 필리핀에서 도박꾼을 상대로 돈을 빌려주고 험한 일을 벌이는 사람에게 돈을 또 빌리고, 이후 동생이 아마도 호텔에서 고문을 당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며 “수사 요청을 해놓은 상황”이라고 밝혔다. 손 전 의원은 “별안간 쏟아지는 손현 기사에 걔가 왜 필리핀에 있었는지 아무도 입을 열지 않네”라며 언론 보도에 대해 비판을 제기하기도 했다. 최근 손 전 의원은 주진우 전 기자가 윤석열 검찰총장 편이라며 비판하고 나선 김용민 이사장에 대해 “비 맞는 용민 곁에서 함께 비를 맞겠다”면서 지지 의사를 밝혔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사설] 후진적 운전문화 실상 노출한 광주 ‘스쿨존’ 참사

    광주광역시의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서 지난주에 일어난 화물차 사고가 담긴 영상을 보면서 참담했다. 30대 어머니와 어린 세 남매는 교통정체로 차들이 밀려 있는 횡단보도를 조심스럽게 건너고 있었다. 정체가 풀리자마자 대형 화물차는 출발했고 횡단보도 중간에 서 있던 네 사람을 순식간에 덮쳤다. 유모차에 탄 두 살배기는 목숨을 잃었고, 중상인 네 살배기 언니와 어머니는 병원치료 중이다. 갓 태어난 막내 남동생은 그나마 크게 다치지 않았다고 한다. 경찰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치사 등 혐의로 50대 운전자를 구속하고 어제 검찰로 송치했다. 사고 운전자는 ‘스쿨존’을 보호하는 이른바 ‘민식이법’의 적용을 받는다. 사실 ‘민식이법’이 지난 3월 시행되자 지나치게 운전자의 책임을 묻는 법이라는 항변이 적지 않았다. 아예 ‘스쿨존’을 피해서 길을 안내하는 내비게이션도 속속 개발됐다. 하지만 이번 사고를 보면 어린이를 보호하는 ‘스쿨존’도, 학교 앞만큼은 안전지대여야 한다는 ‘민식이법’도 ‘보행자 최우선 권리’라는 안전의식을 갖추지 않은 채 거리에 나선 운전자에게는 무용지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사고 운전자는 “가족이 트럭 앞을 지나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한국의 허술한 운전문화의 실상으로, 안전 불감증에 젖은 운전자가 모는 자동차란 ‘초대형 흉기’일 뿐이다. 이는 꼭 사고 운전자에게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다. 어떤 운전자라도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고 일시 정지를 하지 않는다면 이는 후진적 교통 문화에 물들어 있는 것이다. 잘못된 운전문화는 지금이라도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 이번 피해자는 광주의 한가족이었지만, 다음번은 내 가족이 될 수도 있다. ‘민식이법’은 완화가 아닌 보완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학교 앞 어린이 교통사고의 주범이 불법주정차라는 지적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불법 주정차 탓에 시야의 사각지대가 발생하면 돌발사태에서 대처할 수 없다. ‘스쿨존’의 불법 주정차는 뿌리를 뽑도록 ‘민식이법’을 정비하고, 보행자 최우선의 원칙도 지켜져야 한다.
  • “이 쌍둥이들을 제가 낳았다고요? 코로나로 코마 상태였는데”

    “이 쌍둥이들을 제가 낳았다고요? 코로나로 코마 상태였는데”

    코로나19에 감염돼 의학적으로 유도된 혼수(Coma) 상태에서 지난 4월 쌍둥이 남매를 낳았던 엄마는 2주 뒤 코마에서 깨어났는데 7개월이 흐른 지금도 자신이 쌍둥이들을 낳았다는 사실을 믿기 힘들어 한다고 영국 BBC가 18일(현지시간) 전했다. 화제의 주인공은 영국 버밍엄 시티 병원의 류머티즘 상담의인 퍼펙투얼 우케. 지난 3월 말부터 몸이 좋지 않았다. 나중에 중환자실에 입원해 산소호흡기를 차고 코마 상태에 들어갔다. 아기들은 다음달 10일 제왕절개 수술 끝에 생후 26주 만에 세상 밖으로 나왔다. 딸인 소치카 파머는 몸무게가 770g이었고, 아들 오시나치 파스칼은 850g 밖에 나가지 않았다. 우케는 그러고도 열엿새를 더 코마 상태로 지냈다. 남편 매슈는 “정말 무서웠다. 매일매일 아내가 죽은 사람들의 대열에 끼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를 올렸다”면서 “우리는 한 팀이다. 그녀가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은 정말 받아들이기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가족 모두가 간절히 기도한 덕으로 우케가 의식을 되찾았지만 정신이 온전히 돌아오지 않아 흔히 “중환자실(ICU) 섬망(delirium)”으로 불리는 증세를 보이며 “매우 혼동스러워” 했다. 이제 네 아이의 엄마가 된 그녀는 병원 직원들이 쌍둥이가 자기 아이들이라고 얘기를 해줘도 자신이 출산했다는 사실조차 믿지 못했다. 우케는 “직원들이 내게 사진을 보여줬는데 아주 작은 아기들이었다. 인간으로 보이지조차 않았다. 더욱이 그들이 내 아이란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쌍둥이는 병원에서 116일을 더 보낸 뒤 퇴원했다. 우케는 “날이 갈수록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면서 “난 아이들이 삶의 첫발을 그렇게 힘들게 떼지 않길 바랐다. 아이들은 2주 동안 엄마 얼굴도 보지 못했다. 그 일이 날 아주 슬프게 만드는데 중요한 것은 모든 일이 잘 돌아간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베스트셀러] ‘트렌드 코리아 2021’ 3주 연속 1위

    [베스트셀러] ‘트렌드 코리아 2021’ 3주 연속 1위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의 ‘트렌드 코리아 2021’(미래의창)이 3주 연속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교보문고가 6일 발표한 10월 다섯째 주 온·오프라인 종합 베스트셀러 집계 순위에 따르면 ‘트렌드 코리아 2021’은 1위, 코로나19 특별판으로 나온 ‘세계미래보고서 2021’은 지난주 29위에서 6계단 올라 23위, ‘포스트 코로나 2021년 경제전망’은 출간 첫 주 34위를 기록했다. 코로나19 확산 장기화로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내년을 전망하는 책들이 인기를 끄는 모습이다. 이밖에 판타지 소설 ‘달러구트 꿈 백화점’, 유튜버 흔한남매의 일상을 그린 ‘흔한남매’가 각각 2위와 3위, 방송인 유병재의 삼행시를 모은 시집 ‘말장난’은 출간하자마자 7위에 올랐다. 다음은 교보문고 10월 다섯째 주 베스트셀러 순위. 1. 트렌드 코리아 2021(미래의창) 2. 달러구트 꿈 백화점(팩토리나인) 3. 흔한남매.6(아이세움) 4. 설민석의 한국사 대모험 15(아이휴먼) 5. 나의 하루는 4시 30분에 시작된다(토네이도) 6. 어떻게 말해줘야 할까(김영사) 7. 말장난(아르테) 8. 보건교사 안은영 특별판(민음사) 9. 돈의 속성(스노우폭스북스) 10. 하루만 네가 되고 싶어 1(문학동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美 30대 부부 사남매 입양 후 인공수정 아들에 네쌍둥이 ‘0→9’

    美 30대 부부 사남매 입양 후 인공수정 아들에 네쌍둥이 ‘0→9’

    난임으로 아이가 잘 생기지 않던 미국의 30대 부부가 네 아이를 입양한 뒤 다섯 아이를 갖게 된 사연이 화제를 낳고 있다. 결혼한 지 4년 만에 아홉 자녀를 키우게 된 주인공은 펜실베이니아주 레딩에 사는 맥신 영(30)과 제이컵(32) 부부라고 ABC의 굿모닝 아메리카가 지난 13일(현지시간) 전했다. 2016년 결혼한 뒤 한동안 임신이 되지 않자 고민 끝에 아이를 입양하기로 마음먹었다. 간절히 아이를 원했던 부부는 2017년 2개월간 입양 관련 교육을 이수한 뒤 위탁보호소에 두 아이를 입양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한달쯤 지나 삼남매가 있는데 입양할 수 있겠냐는 문의가 왔다. 맥신은 당초 원했던 숫자보다 더 많은 아기를 입양할 수 있다는 기쁨에 남편과 상의도 하지 않고 무조건 좋다고 답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위탁보호소에서 먼저 입양에 동의한 삼남매의 여동생 엘리엇까지 입양할 수 있겠느냐고 다시 물어왔다. 맥신이 좋다고 해 사남매를 기르게 됐는데 모두 네 살 이하였다. 맥신은 ““엘리엇을 입양할 때도 남매들을 서로 떨어뜨려 놓고 싶지 않아서 좋다고 얘기했다”고 돌아봤다.사남매를 키우면서 부부는 큰 기대도 하지 않고 인공 수정을 통해 아들 헨리를 가졌다. 2018년 10월 헨리를 낳았을 때 전율을 느꼈다고 맥신은 털어놓았다. 그리고 자연 임신이 불가능하다고 여기던 부부에게 네쌍둥이가 생긴 것이다. 병원에서는 네쌍둥이를 분만하는 일이 위험하다고 경고했지만, 지난 7월 맥신은 무사히 출산하면서 이들 부부의 자녀는 모두 아홉으로 늘어났다. 맥신은 “사남매를 입양한 일은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었고, 네쌍둥이를 가진 것을 알게 됐을 때도 정말 흥분됐다”면서 “먼저 입양한 큰 아이들이 동생들을 잘 돌봐주고 있다. 모두 피를 나눈 사이는 아니지만, 우리 가정에는 서로를 보살펴주며 항상 사랑이 넘친다”고 말했다. 또 “아이들이 크면 쌍둥이를 빼고는 모두 나이가 달라 초등학교 1학년부터 중고교까지 학년마다 한 명씩 줄줄이 학교를 다닐 것”이라며 즐거움을 감추지 못했다. 가슴으로 낳은 에이든(8), 파커(5), 코너(4), 엘리엇(3) 사남매에 배 아파 낳은 아들 헨리(2), 3개월 된 네쌍둥이 실라스, 테오, 벡, 세실리아 등이다. 3년 만에 0에서 9가 됐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자식과 함께 살려고 죽을 각오로 삽니다

    자식과 함께 살려고 죽을 각오로 삽니다

    능력 있는 언론사 정치부장을 꿈꿨다. 퇴직 후 신문에 기고하며 오피니언 리더로 살겠다는 나름의 노후 계획까지 세웠다. 세상은 우호적이고 만만하기까지 했다. 아들 동환이가 태어나기 전까진. 장애 인권을 다룬 책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다르지만 다르지 않습니다’, ‘배려의 말들’을 펴낸 작가 류승연(44)씨는 기자에서 발달장애인 아들을 둔 엄마, 작가로 세 차례 인생 변곡점을 겪었다. 그 중심에 동환이가 있었다. 아들을 밀어내기만 하는 차가운 세상에 숨죽여 울던 엄마는 죽음의 문턱에서 ‘살기 위해’ 글을 썼다. 그렇게 책 세 권을 내면서 세상과 ‘맞짱’ 뜨는 ‘전사’가 됐다. 그는 지난 9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다른 이들은 가족과 함께 행복한 일상을 살고자 ‘잘 사는 법’을 고민하지만, 나는 자식을 살해하고 함께 죽지 않으려고 죽을 각오로 산다”고 말했다. 동환이와 수인이 남매는 2009년 가을 류 작가 부부에게 기적처럼 찾아왔다. 인공수정으로 어렵게 얻은 쌍둥이였다. 수인이는 옹알이를 하며 쑥쑥 자랐지만 동환이는 그렇지 못했다. 1년만 하려던 육아휴직이 2년으로 늘었다. 더는 육아휴직이 안 된다 해서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류 작가는 “7~8년을 아이를 치료해 세상으로 밀어 넣겠다는 생각으로 인생을 포기하고 미친 듯이 살았다”고 말했다. 세상은 이들 부부에게 절망을 줬다. 동환이가 초등학교 1학년이 되던 해 학부모들이 아이를 퇴학시키라고 요구하며 집단행동을 했다. 류 작가는 “아이를 잘 키워 당신들의 세계로 밀어 넣어 주려고 모든 것을 포기했는데, 정작 사회는 아이를 받아 주지 않았다. 그러니 살 이유가 없었다. 살아가려면 뭐든 좋으니 희망이란 동아줄이 있어야 하는데 그 동아줄이 뚝 끊겼다. 아이를 죽이고 나도 죽고자 매일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다”고 말했다. 절망의 밑바닥에서 류 작가는 결국 살기를 선택했다. 그는 당시 일을 ‘각성’이라고 표현했다. “세상에 ‘내 아들을 잘 봐 주세요’라고 해봤자 세상이 바뀌지 않는 한 아이는 받아들여지지 않겠구나. 죽기 싫으면 동환이를 바꾸는 게 아니라 죽을 각오로 세상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온라인 매체에 ‘동네 바보 형’이란 제목으로 아들의 이야기를 연재하기 시작했죠.” 그렇게 동환이는 ‘공개된 장애인’, 동환이 가족은 ‘공개된 장애 가족’이 됐다. 아들과 함께하는 세세한 일상을 공개한 글은 변화를 불러왔다. 비장애인들은 ‘그동안 잘 몰랐다’는 이메일을 보냈고 장애 부모들은 연대감을 표시했다. 류 작가는 “장애를 드러내도 괜찮네. 장애가 뭐가 나빠. 장애 가족들은 항상 고개를 숙이고 살아야 해? 함께 바꿔 보자는 공감대가 이뤄졌다”고 말했다. 다른 장애 가족들과 교감하면서 류 작가 가족의 삶도 바뀌기 시작했다. 한번은 수인이가 ‘엄마는 맨날 동생만 챙겨. 나도 장애인으로 태어났으면 좋았을걸’이라고 말한 사연을 썼더니 장애인 형제·자매를 둔 비장애인들로부터 메일이 쏟아졌다고 한다. “장애 자녀에게만 관심을 쏟으면 수인이가 커서 자기 꼴 난다고 하더라고요. 부모를 이해하면서도 어릴 적부터 쌓인 원망과 결핍이 성인이 돼서까지 자신을 괴롭힌다고 했어요. 내 양육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20년 뒤 수인이도 같은 생각을 하겠구나, 비장애 자녀도 엄마의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인데 왜 늦게 깨달았을까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류 작가는 그 뒤로 동환이와 수인이, 남편에게까지 관심을 쏟았다. 그러다 보니 ‘찬밥’ 취급했던 자신도 절로 돌보게 됐다.●늘어나는 발달장애인… 정책은 제자리걸음 보건복지부가 펴낸 ‘2019년 등록장애인 통계’를 보면 전체 장애인 중 발달장애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0년 7.0%에서 2015년 8.5%, 2019년 9.2%로 해마다 늘고 있다. 0~17세 장애 아동 가운데 64.1%가 발달장애다. 그러나 거리에서 발달장애인을 마주치는 일은 드물다. 류 작가는 “시선이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아들을 통해 처음 알았다”고 했다. 그는 “아들 손을 잡고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동정과 연민, 경멸과 혐오가 섞인 시선을 끊임없이 받는다”면서 “아무리 자존감이 강한 사람이라도 나가는 것 자체가 두려워진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 아이가 놀이터에 가면 다른 아이들이 피하고 놀이에 끼워 주지 않으니 부모들이 받는 상처가 크다. 그래서 아무도 없는 밤 10시 아이 손을 잡고 놀이터에 나가는 장애 부모들이 많다”고 전했다. 류 작가 가족은 동환이와 함께 자주 외출한다. 동환이가 특정 행동을 해도 손을 잡아끌며 제지하지 않는다. 류 작가는 “예전에는 동환이가 머리를 흔들며 뛰면 그 행동이 너무 창피해 손을 움켜쥐고 빨리 끌고 갔다. 이젠 나뿐만 아니라 가족이 모두 바뀌었다”며 “다른 이들도 수다를 떨며 걷는 것처럼 동환이에게는 이게 자연스러운 행동인데 입을 막을 이유가 없다. 다른 이들에게 아무렇지 않은 우리 모습을 보여 주고 싶다”고 말했다. 류 작가가 가장 많이 받아 봤을 법한 질문을 던졌다. 장애인을 만나면 어떻게 대해야 할까. 그는 “장애인이기에 앞서 사람으로 보아 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발달장애인이 낯설고 두려운 이유는 이해 못 할 행동을 하고 내가 생각하는 평균적인, 상식적인 정상의 범주에 있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며 “대체 정상이란 무엇인가”라고 반문했다. 비장애인들이 불안할 때 손톱을 깨물거나 다리를 떠는 것처럼 발달장애인도 불안할 때 자기 자극 행동을 한다. 갑자기 소리를 지르거나 몸을 이리저리 흔드는 등 조금 다른 방식으로 불안함을 달랠 뿐이다. 류 작가는 “나름의 이유가 있어 하는 행동이니, 그 행동을 어떻게 이해할지 고민하지 말고 그 모습 자체를 자연스러운 풍경으로 받아들여 달라”고 말했다. 비장애인과 경증의 발달장애인은 언어로 대화하지만 중증 발달장애인은 행동으로 얘기한다. 류 작가는 “그 행동 신호를 읽지 못하고 문제 행위로 규정해 교정하려 들면 발달장애인의 입을 틀어막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동환이도 집에서는 애교 많은 순한 아이인데, 학교에서는 자주 울고 소리를 질러 ‘문제아’로 낙인찍혔다. 그랬던 동환이가 바뀐 건 지난해부터다. 선생님이 동환이가 ‘행동’으로 하는 말에 관심을 기울여 주면서 학교에서도 순한 아이가 됐다고 한다. 아무도 듣지 않던 말을 누군가 들어 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네 엄마라서 행복해”… 비장애인과 잘 살아가길 올해는 동환이의 사회성이 더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코로나19 확산 이후 등교 수업이 제한되면서 류 작가 가족은 다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말을 하지 못하는 동환이에게 온라인 수업은 별 의미가 없다. 수업 첫날 교장 선생님이 등장해 인사말 하는 것을 10초 정도 본 게 전부였다고 한다. “발달장애인인 동환이에게 사회적 거리두기는 완전한 단절, 고립을 의미합니다. 오로지 가족과만 관계 맺기가 가능하죠. 평생 엄마하고만 놀고, 엄마하고만 밥 먹고, 엄마하고만 살라고 하면 살 수 있을까요. 세상으로 걸어나가지 못하고 감옥에 갇혀 버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가 다시 퇴행했습니다.” 류 작가는 어떻게든 동환이의 스트레스를 풀어 주려고 하루도 빠짐없이 외출한다. 비 오는 날 우산을 쓰고 멍하니 놀이터에 서 있다 온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는 “내가 글을 쓰는 것도 발달장애인이 자립해 비장애인과 함께 살게 하려고”라고 말했다. “동환아, 엄마 먼저 간다. 잘 살고 나중에 오너라. 네 엄마라서 너무 행복했다. 다음 생에도 다시 만나 함께 살자.” 훗날 삶의 마지막을 앞두고 이렇게 말하며 갈 수 있다면 정말 성공한 삶이라고 그는 말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백인 양아들 데리고 잡화점 갔더니 카트로 막고 노려봐요”

    “백인 양아들 데리고 잡화점 갔더니 카트로 막고 노려봐요”

    어제(24일) 우간다 출신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독신남 피터가 백인 아이들까지 위탁 양육을 하면서 겪는 어려움을 소개했다. 사실 피터는 정식 입양보다는 그 앞 단계인 위탁 양육을 통해 가출하거나 원래 가정으로 돌아갈 수 없는 아이들이 새 가정에 입양되기 전 아이들과 함께 지내며 부모와 자녀로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책임지고 가르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해서 영국 BBC 기사나 피터 본인은 ‘아이(child)’라고 표현하는데도 입양에 대한 관심을 높인다는 취지에서 ‘아들’로 옮겼다. 물론 기사 중간 피터는 아이들에게 자신을 ‘아빠’라고 부르라고 하는 등 부자 관계나 다름 없이 지내는 것으로 소개돼 있다. 방송 기사는 독신남 피터 외에 지난해 미국 언론에 소개돼 상당한 관심을 모은, 흑인 간호사 케이아 존스볼드윈의 사례를 담은 동영상을 게재했기에 소개한다. 백인 아들 프린스턴을 입양한 그녀와 남편 리카르도 역시 상당한 오해와 차별이 담긴 시선을 견디며 살아간다. 지난 6월 23일(현지시간) abc 방송의 굿모닝아메리카에 소개됐을 때의 기사를 중심으로 옮긴다.노스캐롤라이나주 커너스빌에 사는 부부는 2000년 결혼해 4년 뒤 친딸 자리야(15)를 가졌지만 동생들을 선물하지 못했다. 여러 차례 유산하고 수정관 시술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녀는 2017년부터 피터처럼 포스터링(위탁 양육)을 하게 돼 자리야의 중학교 친구인 칼레이(16)를 입양하고 일년 뒤에 그녀의 남동생 에이든(9)까지 받아들였다. 그리고 지난해 8월 29일 두 살이던 프린스턴이 네 남매의 막내로 들어왔다. 위탁양육을 부탁한 기관 직원은 심리치료 자격증을 딴 케이아가 거절하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던 듯했다. 피부색이나 성별을 문제삼지 않을 것이란 점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이제 걸음마를 뗀 프린스턴을 입양하겠다고 하자 당연히 반대가 만만찮았다. 그래도 처음 품에 안았을 때의 느낌이 너무 좋았다. 사실 이때 이미 입양을 결심했지만 동영상을 소셜미디어에 올려 사람들의 의견을 물었다. 당연히 다른 이의 시선을 어떻게 견뎌내겠느냐고 걱정해주는 이들이 많았다. 조금 시간이 지나 나아지나 싶었는데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됐고, 여기에 흑백 갈등까지 겹쳐지자 더욱 거리에 나가기가 꺼려졌다. 얼마 전 프린스턴 손을 잡고 조깅을 했는데 피터와 마찬가지로 왜 백인 아이를 끌고 가느냐고 끼어들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느꼈다. “잡화점에 들어갔는데 한 숙녀분이 쇼핑카트로 절 막더군요. 그녀가 ‘애들이 마스크 안 썼네요’라고 말해 ‘네 어린 아기잖아요’라고 답한 뒤 다음 통로로 갔더니 뒤따라왔다. 그녀는 카트로 날 밀어버리겠다는 듯이 굴었어요. 그녀의 의도를 모르겠더군요. 다른 남자에게 몸짓을 하는 것 같아 난 순간적으로 ‘잠깐 있어봐. 이거 보통 일이 아닌데, 우리 가족을 보호하려면 늘 하던 대로 단단히 조심해야겠어’라고 생각했다니까요.”해서 그녀는 어딜 가나 입양 서류를 갖고 다닌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이 보여달라고 하면 제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흑인 아이를 입양했다면 제3세계에서 왔거나, 엄마가 약물 중독자거나 갱단에서 구출해야 하는, 도움이 필요한 아이구나 생각하는데 백인 아이가 입양됐다면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아이라고 단정하는 거에요. 이거야 말로 이중잣대지요.” 자신과 마찬가지로 백인 아이를 입양한 흑인 부모들과도 연락하며 고충을 나누며 사람들의 편협한 시선을 바꿀 방법을 함께 고민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친자녀로 가정을 꾸리려는 노력이 모두 실패한 사람들만 입양해야 한다고, 그것이 신의 뜻이라고 믿고 싶어하는 것 같다고 했다. 자신에게 접근해 말을 걸어오는 여성들도 사실 다른 모든 관습적인 방법들이 실패한 여성들만 그런다고 했다. 그녀는 앞으로는 입양을 하지 않고, 포스터링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가정을 제공하는 일에는 응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BBC가 전한 2016년부터 최근까지 통계에 따르면 미국의 입양 가정 92%는 흑인 아이를 입양했고, 1%만 흑인 가정에서 백인을 받아들였다. 백인 가정에서 다인종 출신 아이들을 받아들인 비율은 11%인 반면, 흑인 자녀를 입양한 비중은 5%에 그쳤다. 지난해 영국인 커플 산딥과 리나 만더는 비아시아계 아이를 입양하려 했는데 법원이 이를 막자 12만 파운드의 손해 배상을 청구했다. 재판부는 한사코 인도와 파키스탄 아이를 입양하라고 종용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아버지 장례식 가게 ‘격리 면제’ 해달라“ 호주 퀸즐랜드주 “안돼”

    “아버지 장례식 가게 ‘격리 면제’ 해달라“ 호주 퀸즐랜드주 “안돼”

    호주 퀸즐랜드주 정부가 코로나19 방역 조치를 조금만 더 인간적으로 했더라면 좋았겠다 싶은 사례가 둘 있다고 AP통신이 10일(이하 현지시간) 전했다. 이 나라에서는 코로나19 때문에 주 경계를 넘는 일도 엄격히 금지돼 있고, 부득이하게 넘어갈 경우에는 2주 동안 호텔 등에서 격리 생활을 견뎌야 한다. 먼저 오스트레일리안 테러토리주 캔버라에 사는 사라 카이십(26)은 이날 퀸즐랜드주 브리즈번에서 예정된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할 수 있도록 자신과 11세 여동생, 어머니의 호텔 격리 면제를 간청했으나 주 정부로부터 냉랭한 답만 들었다. 사람들이 모이는 장례식에 참석하면 안되고 대신 사라 혼자만 화장 직전의 아버지 주검을 볼 수 있게 했다. 물론 그녀 가족은 아버지가 세상을 뜨기 전부터 임종이라도 하게 예외를 인정해달라고 애원했지만 아버지가 눈을 감은 이틀 뒤인 지난 4일에야 허가가 떨어져 임종하지 못했다. 스콧 모리슨 연방 총리도 어떻게든 돕고 싶어했다. 그는 시드니 라디오 2GB 인터뷰를 통해 “마음 아픈 소식들이 넘쳐나는 와중에 이런 일은 한번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며 예외를 인정해줄 것을 당부했다. 하지만 아나스타샤 팔라치죽 퀸즐랜드주 총리는 주 의회 연설을 통해 모리슨 총리가 간여하고 있으며 중상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또 자네트 영 수석 보건 담당관의 소관이라고 떠넘겼다. 영 담당관은 사라가 화장하기 전 아버지 주검을 볼 수 있도록 잠깐 호텔 객실 밖으로 나서게 허용했을 뿐이다. 사라는 객실 안에서 현지 9뉴스 방송에 “말도 못하겠다. 진짜 진짜 믿기지 않는다. 난 아빠에게 안녕이라고 인사도 하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말기 암을 앓고 있어 성탄절을 넘기기 힘든 것으로 알려진 마크 킨스(39) 가족도 얼마 전까지는 사정이 딱하기만 했다. 영국 BBC 보도에 따르면 그는 퀸즐랜드주 브리즈번의 자택에서 투병하고 있지만 세 아들과 딸은 시드니 할아버지 집에 머무르고 있다. 13세 아들, 11세 쌍둥이 남녀, 7세 아들 등이 아빠 얼굴을 마지막으로 보게 예외를 인정해달라고 할아버지 부부가 간청하자 퀸즐랜드주 정부는 처음에 한 자녀만 가능하다고 했다가 가족들이 말도 안 된다고 반발하자 네 자녀 모두 방문하도록 허용했다. 단 2주 동안 호텔 격리 비용을 모두 자비로 부담하는 데 동의하라고 했다. 또 아빠와 만날 때 개인보호장구(PPE)를 모두 갖추고서만 가능하다고 했다. 아이들의 할아버지 브루스 랭번은 현지 7뉴스 인터뷰를 통해 “아내는 거절했다. 손주들이 아들을 찾아가는 데 그렇게 많은 돈을 써버리면 장례 비용은 어디에서 구해야 하나 막막했던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딱한 사연이 알려져 온라인 모금 운동이 시작됐다. 고펀드미에서 3만 호주달러를 목표로 시작됐는데 벌써 일곱 배 가까운 20만 호주달러(약 1억 7263만원)가 답지했다. 모리슨 총리도 1000 호주달러를 쾌척했다. 물론 댓글 창에는 킨스 가족을 응원하는 글과 퀸즐랜드주 정부가 너무 가혹하다고 비난하는 글들로 도배됐다. 글 하나는 “마크의 자녀들이 죽어가는 아빠 얼굴을 보지 못했다는 이유로 남은 인생 내내 고통스럽게 지내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난 퀸즐랜드주 정부와 달리, 아픔에 공감할 줄 아는 사람이니까 기부했다”고 했다. 주 정부의 행동이 “수치스럽다”고도 했다. 물론 주 정부는 성명을 내 해명했다. “우리는 글로벌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의 와중에 있어 우리 공동체, 특히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 어떤 곳에서는 건강 지침이 매우 엄격할 수 있음을 이해한다. 하지만 그것들은 퀸즐랜드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설계됐다.” 그런데 주 정부가 격리 비용을 부담할 수 있을 만큼 유연하거나 인간적이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란 점에서 이 해명은 정곡을 벗어나 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사고뭉치 동생이 자격증 공부”… 송파구에 감사편지

    “사고뭉치 동생이 자격증 공부”… 송파구에 감사편지

    작년 7월 개소 이후 132건 맞춤형 서비스박성수 구청장 “건강한 가정되게 노력”“동생이 술을 마시고 난폭한 행동을 해도 신고하기 망설였습니다. 하지만 막상 도움을 요청하니 경찰과 구에서 도움의 손길을 보내줬습니다. 주거 문제부터 동생의 자격증 취득까지 저희 가정에 맞는 여러 사업을 연결해 줬어요. 지속적인 관심과 지지를 보내 주신 송파구 덕분에 저희 남매가 다시 희망을 찾았습니다.” 지난달 10일 서울 송파구에는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송파구가 송파경찰서와 협력 운영하고 있는 ‘위기가정통합지원센터’의 지원을 받고 있는 최모(20·여)씨가 보내온 편지였다. 최씨는 어릴 적 부모님이 이혼하고 올해 초 어머니마저 구치소에 갇히면서 네 살 터울인 남동생(16)과 함께 외할머니의 집에 얹혀살게 됐다. 가장 큰 충격을 받은 동생인 최군의 방황이 시작됐다. 최군이 술을 마시고 온 날이면 분노조절을 하지 못해 난동을 부렸고, 여러 번 출동하면서 사정을 알게 된 경찰이 지난 6월 송파구의 위기가정통합지원센터와 연결해 줬다. 최씨는 2일 서울신문과의 전화 통화에서 “아무 의욕도 없고 회피하려고만 했던 동생이 컴퓨터 관련 자격증 학원에 다니는 등 안정을 찾았다”면서 “저도 할머니와 동생을 돌봐야 하는 상황이 낯설고 버거웠는데 송파구가 버팀목이 돼 줬다”면서 밝게 웃었다. 구는 통합사례관리로 보증금 지원을 통한 전세임대주택 입주와 남동생에 대한 학습지원, 장학금 연계, 가구원 전문상담치료, 체납 공과금 해결 등의 전방위 지원에 나섰다. 지난해 7월 개소한 송파구 위기가정통합지원센터가 지역사회의 ‘등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지원센터는 구의 복지·돌봄 안전망과 경찰서의 치안역량을 결합해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위기가구를 발굴하기 위한 사업을 책임지고 있다. 구 희망복지지원단 통합사례관리사, 경찰서 학대예방경찰관(APO), 서울시 상담전문인력이 근무하며 전날 발생한 112 가정폭력·학대 신고가구 사전동의자에 대한 전수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 센터는 지난해 7월부터 지난달 말까지 약 1년 동안 112 가정폭력·학대신고 1460건을 모니터링하고 이 중 1392건에 대해 상담을 진행, 132건의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했다. 박성수 송파구청장은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가정폭력의 증가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면서 “어려움 속에서도 센터 운영을 활성화해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건강한 가정으로 리모델링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슬픕니다 아픕니다 낯섭니다…TV 가족극이 달라졌다

    슬픕니다 아픕니다 낯섭니다…TV 가족극이 달라졌다

    이혼, 졸혼, 정자 공여, 성소수자 위장 결혼. 최근 종영했거나 방영 중인 드라마들이 정면으로 다룬 주제다. 격변하는 현대 가족의 모습만큼 최근 가족극들도 낯선 주제를 통해 가족의 다양한 형태와 변화를 가감없이 담고 있다.가장 빈번한 소재는 이혼이다. 연 11만쌍의 부부가 헤어지는 현실에서 드라마 속 이혼도 흔한 일이다. 3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 중인 KBS 주말드라마 ‘한 번 다녀왔습니다’에는 네 남매가 모두 갈라선 송가네가 등장한다. 여러 커플의 사례를 통해 이혼 이후 상황과 동거 계약 등 변화된 관계를 받아들이는 세대 차이에 비중을 둔다. tvN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에는 부부가 별거하면서 법적 관계는 유지하는 졸혼이 등장한다. 드라마는 이를 이상한 일이 아닌 엄마의 납득할 만한 선택으로 묘사한다. 혼인과 이혼의 양자택일에서 벗어나, 진정한 관계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을 녹였다. 이 작품 속 게이 남편의 등장 역시 파격적이다. 사회적으로는 ‘정상적인 이성애 남성’이자 엘리트인 윤태형(김태훈 분)은 가족의 압박에서 벗어나려 결혼을 택한다. 위장 결혼이라는 생소한 소재를 통해 ‘소수자’ 틀에서 벗어나 한 인간의 선택을 이해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결혼은 하지 않고 아이만 가지려는 싱글 여성도 등장했다. 지난 2일 종영한 ‘오 마이 베이비’에서는 마흔을 목전에 둔 잡지 기자 장하리(장나라 분)가 “아이만 갖고 싶다”며 정자 기증을 받을지 진지하게 고민한다. 장하리는 결국 사랑하는 남성을 만나 출산을 하지만, 혈연 대신 자신의 행복을 고민하는 여성과 자궁 질환 등으로 불임의 불안을 겪는 30~40대의 이야기를 현실감 있게 담아냈다. 지난 6일 첫 방송한 KBS ‘그놈이 그놈이다’에도 비혼을 선언한 커리어 우먼이 등장한다. 육아 전문지 기자 출신으로 ‘오 마이 베이비’ 각본을 쓴 노선재 작가는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나도 37세쯤 장하리와 같은 생각을 했었다”며 “아이만 낳기로 결심하고 그것을 용감하게 행동에 옮긴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 했다”고 밝혔다. 이어 “정자 공여, 미혼 입양 등의 문제도 같이 생각해 보자는 취지”라고 덧붙였다. 공희정 드라마 평론가는 “최근 드라마들은 가족의 고정관념과 위계질서, 혈연 밖 가족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사회적 변화를 받아들인다”면서 “가족 이데올로기보다 주체적인 삶의 모습을 그리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빨갱이 가족이란 낙인 두려워…금정굴 쪽은 쳐다도 안 봤어요”

    “빨갱이 가족이란 낙인 두려워…금정굴 쪽은 쳐다도 안 봤어요”

    “어려서는 내가 금정굴을 하루이틀 걸러 다니면서 무섭지도 않은지 거길(굴 위를) 건너뛰고 그랬지요. 그런데 아버지 죽고 나서 한 20여년 동안 한 번도 가지를 않았어요. 그쪽은 쳐다도 안 보고 얼씬도 안 하고 싶더라고요.”(이병순 금정굴유족회 고문)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일산동 황룡산 자락에 있는 18m 깊이의 수직 폐광 ‘금정굴’. 한때 ‘금구뎅이’라고 불렸던 영광의 기억도, 동네 꼬마들이 폴짝폴짝 뛰놀던 추억도 온데간데없다. 금정굴은 이제 ‘무덤’이다. 1950년 10월 9일부터 25일까지 고양·파주 지역의 민간인 160여명이 ‘빨갱이’로 낙인찍혀 재판 한 번 받지 못하고 학살당한 채 금정굴에 버려졌다. 70년이 지났지만 희생자들은 한 몸 온전히 누일 곳 없이 떠돌이 신세다. 1995년 유족들이 발굴 작업을 벌여 153구 이상의 유해가 세상에 나왔다.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만 76명이다. 유해를 모실 곳이 마땅치 않아 지금까지 납골당만 세 차례 옮겼다.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금정굴 민간인 학살 사건을 “경찰에 의한 불법적인 집단학살”로 결론 내렸지만, 희생자들의 넋은 위로받지 못했다. 진실화해위원회가 권고했던 평화공원 설립도, 영구적인 유해 안치소 설치도 아직 이뤄지지 못했다. 유족들은 애가 끓는다. 부역 혐의자 가족이라는 낙인이 두려워 문민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금정굴 쪽은 애써 외면했다. 억울한 죽음을 애도할 권리마저 박탈당한 채 살아온 세월이 수십 년이다. 서울신문은 24일 채봉화(74) 금정굴유족회장과 이병순(87) 고문을 만났다. 1950년 10월 9일. 당시 열일곱 소년이었던 이 고문의 뇌리에는 70년 전 모습이 스틸사진처럼 남아 있다. 집 앞에서 두 사람씩 삐삐선(군용통신선)에 묶인 채 이동하는 행렬을 목격했다. 맨 뒤에 아버지 이봉린이 있었다.보리밭 갈다 끌려간 아버지… 유해안치소도 없이 ‘떠돌이 신세’ 한국전쟁이 터지고 3일 만에 수도를 빼앗긴 국군이 9월 28일 서울을 수복한 무렵 이봉린은 능곡국민학교에서 열린 유엔군 환영대회에 나갔다가 치안대에 끌려갔다. 인민군이 마을을 점령한 시기 ‘농촌위원장’을 맡아 공출량을 계산하는 부역을 했다는 이유였다. “우리 아버지가 일산리 구장(區長)을 했었거든. 동네에서 추켜세우는 사람이잖아. 주변에서 ‘형님이 일 봐야지’ 하니까 맡게 된 건데….” 어머니와 7남매는 잡혀간 아비의 끼니 걱정에 매일 번갈아 수십 킬로 걸어 밥을 날랐다. 그러던 어느 날 고양경찰서에서 “(부역 혐의자들이) 문산으로 좌익 심사를 받으러 가서 오늘은 밥을 안 받는다”고 했다. 이 고문은 “문산을 가는 줄 알았지 금정굴로 가는 줄 누가 알았겠느냐”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행렬을 몰래 뒤따랐던 다른 희생자 유족을 통해 이 고문 가족은 진실을 알게 됐다. “아이고, 심사가 뭡니까. 그 구뎅이로 가서 다 쏴죽였어요!” 장남이었던 이 고문은 그 길로 작은아버지, 마을 어른들과 함께 사다리와 밧줄을 챙겨 금정굴로 향했다. 시신이라도 수습하자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시신은 찾지 못했고 피투성이가 된 채 금정굴에 떨어져 “살려 달라”고 외치는 한 사람을 구했다. 총알을 빗맞은 덕에 목숨을 건진 동네 주민 이경선이었다. 금정굴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인 이씨는 이후 죽을 때까지 고향 땅을 밟지 않았다. 금정굴에서 학살이 처음 벌어진 이날 이봉린을 포함해 46명이 희생됐다.희생자 가족은 공포에 사로잡혀 침묵해야 했다. 그날 밤 이 고문의 집에 들이닥친 경찰은 “시체 가져왔느냐”, “빨갱이 찾으려고 금정굴에 갔다 왔느냐”고 화를 내며 장작 더미며 아궁이 구멍이며 죄다 창으로 쑤셔 댔다. “그날 금정굴에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누가 고발을 했는지 자전거를 탄 태극단 놈들이 서넛 올라오고 있더라고. 길이 엇갈려서 망정이지 거기서 마주쳤다면 우리도 다 죽는 거야. 일곱 사람이 갔었는데…. 그래서 잠자코 살았던 거지.” “이제는 시대가 달라져 말이라도 하지, 예전에는 아버지가 ‘빨갱이’로 돌아가셨다고 어디 가서 말도 못해….” 채 회장은 45년의 세월 동안 아버지의 죽음을 가슴에 묻고 살았다. 아버지 채기동은 보리밭을 갈다가 총을 멘 치안대 3명에게 끌려간 뒤 소식이 끊겼다. 그때 고작 네 살이었던 채 회장은 아버지와의 기억이 없다. 그는 졸지에 과부가 된 어머니와 금쪽같은 외아들을 잃은 할머니의 넋두리로 부친을 기억한다. “우리 엄마가 맨날 그러셨지. 봉화야, 네 아버지 금정구뎅이 가서 죽었다. 남들이 그런다.”채 회장은 금정굴과 가까운 파주에서 평생을 살았다. 그러나 아버지가 죽고 45년이 지난 1995년에서야 처음으로 금정굴을 찾았다. 뉴스로 유해 발굴 소식을 전해 듣고 동생과 함께 갔다. 채기동은 6년 동안 강제징용을 당했다가 해방 이후 돌아왔다. 채 회장은 “9척 장신에 원체 기운이 장사라 인근에서 아버지를 당해 낼 사람이 없었다더라”고 했다. “총을 멘 치안대가 당신을 찾으니 도망가라”는 말에도 채기동은 “잘못한 것이 없다”며 당당했다. ‘부역자 가족’의 삶은 매 순간 고통으로 점철돼 있었다. 채 회장은 “어머니가 생계를 위해 봇짐 장사를 하려면 도민증이 필요했는데 우리한테는 도민증 허가를 안 내줘서 어머니가 ‘꼼짝없이 죽겠다’며 우셨다”며 “핍박받으면서 세 딸을 키운 어머니를 생각하면 눈물부터 난다”고 했다. 채 회장이 끝까지 파주를 떠나지 않은 건 어머니의 유언 때문이다. 채 회장 가족은 시간이 흘러 아버지에게 부역 혐의자라는 누명을 씌운 마을 사람이 누군지 알게 됐다. 어머니는 “내가 죽어도 넌 반드시 이 동네에 살면서 남의 눈에 피눈물 흘리게 한 사람들이 어떻게 사나 두고 보라”는 말을 남겼다.“신도시 주민들은/발 밑이 저승인 사실은 모른 채/오래전 이 마을을 휩쓸고 간/역병보다도 더 고약한 숙청은 모른 채/두개골 정강뼈 쇄골 잘근잘근 밟으며/황솥밭 샛길을 오갈 뿐이다”(손세실리아, ‘뼈무덤’) 용기를 내 세상에 나온 유족들은 긴 싸움을 했다. 승리도 수차례 맛봤다. 2007년 진실화해위원회는 진실 규명을 결정하면서 “최종 책임은 국가에 있고 희생자 상당수는 도피한 부역 혐의자 가족이거나 이와 무관한 지역 주민이었다”고 했다. 2012년에는 국가 배상 소송에서 승소해 “희생자 2억원, 배우자 1억원, 부모·자식 각 500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확정됐다. 수차례 무산됐던 ‘6·25전쟁 민간인 희생자 위령사업 지원 조례안’도 2018년 고양시의회에서 통과됐다.그럼에도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희생자가 제대로 된 위령시설 없이 떠돌고 있고 유족이 겪는 고통도 여전하다. 일부 보훈단체 회원들은 아직도 희생자를 ‘토착 빨갱이’라고 부른다. 보수 정당 시의원은 조례 제정을 반대하며 “(희생자들은) 김일성 앞잡이 노릇을 했다”고 공공연하게 말했다. 금정굴 현장에 조성될 계획인 평화공원은 “납골시설이 들어오면 집값 떨어진다”는 일부 주민들의 반발에 부딪혔다. 채 회장은 “지금 희생자들을 임시 안치한 세종추모공원은 너무 멀다. 가까운 곳에 희생자들을 모시고 자주 왔다 갔다 하는 게 유족들의 소원”이라고 말했다. 이어 “죄도 없이 잡혀가 죽고, 설령 죄가 있다고 해도 재판 한 번 열지 않고 죽은 희생자들의 명예를 회복시켜 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고문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게 한 전쟁이 다시는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진선민 기자 js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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