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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각제 개헌」싸고 계파간 입씨름/“현안조율”… 민자 의총 스케치

    ◎민정계,당운영방식 성토… 몸싸움 일보 직전에/지자제 정당공천,수용여부 논란도 ○당론수렴에 실패 22일 국회 본회의에서 네번째 휴회결의에 앞서 열린 민자당 의총은 정국정상화의 최대 쟁점인 지자제 문제에 대해 소속의원들의 의견을 수렴하려 했으나 이견이 많아 당론결집에 실패했다. 이날 의총에서는 3당통합 이후 당내 갈등의 불씨가 돼온 내각제 개헌문제를 둘러싸고 민정계와 민주계가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으며 특히 민정계측이 김영삼 대표최고위원의 당 및 정국운영 방식을 집중적으로 성토함에 따라 계파간에 몸싸움 일보직전까지 가는 격앙된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다수결 원칙 위배” ○…이날 처음부터 비공개로 1시간45분 동안 진행된 의총에서 김윤환 총무는 원내보고를 통해 기초자치단체의 정당공천제 도입문제를 놓고 답보상태를 거듭하고 있는 여야협상 진행과정을 설명하면서 『당의 입장은 내년 상반기까지 지방자치단체의회선거,92년부터 대선 전까지 자치단체장선거를 치르되 기초자치단체에는 정당참여를 배제하는 것』이라고강조. 이어 열린 자유토론에서 첫 발언자로 나선 이치호 의원은 내각제 개헌과 관련,전당대회에서 내각제 개헌을 시사하는 내용의 강령변경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야당이 반대하면 개헌추진을 포기하겠다는 것은 다수결 원칙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야당이 요구하면 정권도 내주겠다는 발상』이라고 김 대표측을 겨냥. 그러자 민주계의 박관용 의원이 『전당대회를 앞두고 열린 당무회의에서 강령 개정문제가 상정됐을 때 논란이 분분했으나 명확한 입장정리는 유보하자는 쪽으로 결론이 난 바 있다』면서 강령개정을 제안했던 김용환 전 정책위의장이 당시 상황을 밝힐 것을 요구. 내각제 문제가 계파간 논쟁으로 치닫자 김 총무는 『연내에 논의하지 말자는 것이 당수뇌부의 생각인 만큼 이 정도에서 마치자』면서 서둘러 일단락. 그러자 당내 지자제 특위간사 등을 담당해온 강우혁 의원은 내무관료출신으로서 지자제의 정당공천을 반대하는 소신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힌 뒤 『그러나 광역에는 정당참여를 배제하는 방식은 세계에 유례가 없을 뿐만 아니라 법체계상,실무면에서도 혼란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며 정당공천을 전면 도입하여 정면대결을 벌이자고 촉구. 이에 대해 역시 내무관료출신인 이해구 의원은 『범죄에 대한 전쟁을 선포한 비상국면에서 지자제 단체장선거 합의가 공표될 경우 국가의 안정을 지탱하는 공무원 사회에 큰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면서 지자제 협상에 앞서 그 대안으로 ▲공무원의 철저한 중립화 방안 ▲공명선거 등을 제시. ○“평민에 굴복한 셈” 이어 3당통합이래 김 대표의 당운영방식에 계속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온 김중위 의원은 김 대표측이 「용단」이라고 자평한 지난 11일의 김대중 평민당 총재 방문사실을 『단식현장에 찾아가 무릎을 꿇는 꼴』이라고 매도하면서 『국민여론을 이끌고 지도해야 할 책임이 있는 집권여당이 즉흥적으로 나라를 이끌어 어떻게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으냐』고 김 대표를 성토. 그러자 민주계의 김봉조 의원이 당내 단합을 위해 자제해 줄 것을 촉구했으며 석준규 의원은 『봉황의 깊은 뜻을 알고나 하는 소리냐』며 김중위 의원을 통박.이에 김 총무가 『싸우려고 통합했느냐』고 힐난하면서 토론을 종결시킨 가운데 김 대표 등 당지도부는 상기된 표정으로 회의장을 나섰다.
  • 평양총리회담을 보고/정용석 단국대교수ㆍ국제정치

    ◎“남북 한 발짝 물러서야 실마리 풀린다”/북은 구속자 석방 등 내정간섭 중지/남은 「실체인정」에 매달리지 말아야/평양 변화의 징후 없어 지나치게 낙관해선 안돼 평양에서 10월16∼19일 사이 열린 제2차 「남북고위급회담은 냉랭한 분위기와 억지 웃음 속에 열렸다. 초가을 드높은 북녘하늘 아래 3박4일간 개최된 남북고위급회담 특성은 다음 다섯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로는 남북한 양측이 각기 자기측의 입장을 굽히지 않고 되풀이 주장하였다는 점이다. 서울측은 지난 9월의 1차회담에 이어 이번 2차회담에서도 상대방 실체인정을 되풀이 강조하였으며 선교류ㆍ협력­후군사ㆍ정치 조정의 공식을 역설하였다. 이에 반해 평양측은 선군사ㆍ정치해결­후교류ㆍ협력 순서를 거듭 촉구하고 나섰다. 평양측은 2차회담에서도 정치ㆍ군사문제 우선처리 원칙을 고수함은 물론이려니와 계속해서 내정간섭의 발언을 멈추지 않았다. 구속자 석방,팀스피리트 중지,유엔가입 반대 등이 그것이다. 저와 같은 남북한의 좁혀지지 않는 입장을 지켜보면서 양측의 통일접근이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를 새삼 통감했다. 발상의 대전환이 없이는 남북고위급회담에서 실질적 진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인상을 씻을 수 없다. 북한의 통일노선은 명백하다. 북한은 자신의 체제를 폐쇄시킨 채 남한사회만을 개방시켜 「온사회의 주체사상화」 기반을 조성하자는 데 있다. 그같은 북한의 책략은 남북대화에 임하면서 남한의 보안법 철폐,팀스피리트 중지,미군철수,구속자 석방 등을 의제의 우선순위로 올려 놓자고 우기는 데서 알 수 있다. 북한이 자신의 체제는 폐쇄시킨 채 남한만을 혁명전략전술에 따라 개방하라고 요구하는 한 남북대화의 진전을 기대할 수는 없다. 국가와 사회안전을 불안케 하는 요구에 남한쪽은 응할 턱이 없기 때문이다. 한편 남한은 북한의 사회적 개방을 촉구하고 있다. 1차에 이어 2차회담에서도 서울측은 통신 통상 통행의 3통 협정체결을 비롯,물자 및 인적 교류를 거듭 요구하고 있다. 남북한 사회를 동시에 개방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으로서는 남한의 요구대로 그들의 사회를 개방할 수 없다. 북한은 보통인간처럼 걸어다니는 김일성을 신으로 받들 정도로 우상화시켜 놓고 있다. 북한은 북경아시안게임에서도 남한을 제치고 2위를 차지한 것으로 주민들을 왜곡시킬 정도로 폐쇄시켜 놓고 있다. 서울측이 저같은 북한체제를 개방하라는 것은 김일성 권력구조의 붕괴를 간접으로 요구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북한이 펄쩍 뛸 것은 그쪽 논리로 보아 당연하다. 여기에 남북한고위급회담은 합리적 절충안을 찾아야 한다. 북한은 남한 내정에 간섭하는 요구를 중단해야 하고 남한은 북한체제 개방을 촉구하는 것을 유보하며 상호 쉬운 데서부터 합의점을 찾아내야 한다. 예컨대 60세 이상 이산가족의 고향방문 우선실시,남북정상회담,남북 총리 및 군사당국간의 직통전화 가설,상호비방 중지,비무장지대의 비무장화,단계적 군비감축 등을 차분하게 실현시켜 가는 것이다. 동시에 한국측으로서는 북한체제의 개방과 그들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의 경제지원 방법도 모색해가야 한다. 그러면서도 한국은 북한 사회의 민주화와 개방화만이 통일의 기본요체라는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동서독의 통일에서도 확인된 바와 같이 공산체제의 민주화와 개방화 없이 평화통일은 결코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북한체제의 개방화와 민주화도 북한동포들의 자유로운 삶과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조성이 선결요건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한국에 의한 북한사회의 민주화와 개방화 요구는 동족으로서의 당연한 권리요 의무이며 북한주민들의 인권을 위한 인도적인 조치다. 또 북한도 언젠가는 대부분의 공산국들이 그렇게 하고 있는 바와 같이 민주화되고 개방화되지 않을 수 없으리라 믿는다. 따라서 한국은 남북고위급회담의 최종목표는 북한사회의 개방과 민주화에 두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측이 교류ㆍ협력을 계속 주장하고 나서는 것은 옳다고 믿는다. 그러면서도 북한의 형편이 당장 그것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할 때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서로 체제적 안정을 건드리지 않는 부분부터 풀어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두번째로 2차회담에서 드러난 특색은 서로 상대편 주장을 정면으로공격하고 나섰다는 데 있다. 1차회담의 경우만 해도 강영훈 총리는 처음 남북 총리간의 회동인만큼 되도록 상대편을 불편하게 몰아붙이는 언행을 삼갔었다. 그러나 연형묵 북한 총리를 비롯한 북한측 대표단은 처음부터 보안법 철폐니 구속자 석방이니 하는 따위의 내정간섭 발언을 서슴지 않고 나섰다. 그런데 이번 2차회담에 임하는 강 총리의 자세는 달랐다. 그는 북한이 『남조선 혁명』 노선을 포기치 않는다면 남북고위급회담의 『원만한 진전』을 기대할 수 없고 『화해협력도 결코 이룩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그밖에도 강 총리는 북한이 통일을 명분으로 『범법자 석방 운운하는 내정간섭적인 요구를 한다면 우리측도 귀측의 내부문제에 대해서 할말이 많다』고 맞섰다. 한편 북한의 연 총리도 남측 제안의 모순성을 장황하게 열거하고 나섰다. 특히 그는 『체육선수들과 음악가들이 판문점을 넘나들게 된 오늘날에 와서까지 방북인사들을 감옥에 가둘 수는 없을 것』이라고 역설하였다. 또한 2차회담에서는 남북한이 서로 상대편 제안들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섬으로써 양측의 기본입장을 명백하게 노출시켰다. 서울측은 평양측의 「남조선 혁명」노선 포기를 직선적으로 요구하면서 상호 「실체인정」을 촉구하였다. 여기에 반해 연 총리는 『서구라파식의 통일과정이나 동서독식의 통일과정을 모방하려는 것은 매우 비현실적인 것』이라고 강변하였다. 이어 그는 서울측의 실체인정 요구는 『분열을 지속시킬 뿐』이라고 비난했다. 세번째로 평양회담에 관해 특기할 사항은 북한의 국가주석 겸 노동당 총비서인 김일성과의 만남이다. 강 총리를 비롯한 한국측 대표단과 김이 10월18일 대좌,악수를 교환한 것이다. 강 총리는 김 주석에게 정상회담을 조속히 실현하자고 제안하였고 김 주석은 총리회담 진전의 성과에 따라 가능할 수도 있다고 답변하는 데 그쳤다. 18일 저녁 TV를 통해 김일성과 강 총리 일행과의 대화장면을 지켜보는 한국인들의 마음은 착잡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바로 김일성 그 사람이 6ㆍ25를 저지른 장본인이라는 데서 어딘가 섬뜩한 느낌을 금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한국 총리와 북한의 국가주석이 만나 통일문제를 얘기했다는 것은 진일보의 새로운 국면으로 보아 무방하다. 네번째로 빼놓을 수 없는 2차회담의 특성으로서는 남한쪽의 「현실인정」 「실체인정」 「체제인정」 등의 되풀이 요구이다. 남북고위급회담에서의 문제점은 북한이 남한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데 있지 않음을 직시해야 한다. 북한은 고위급회담에 임하고 있으며 북한 총리가 남한 대통령과 면담했고 남한 총리 또한 북한 국가주석과 회담하였다. 이같은 공식회담 진행과 상대편에 대한 공식 명칭ㆍ호칭은 국제법상 「사실상의 인정」 행위이다. 그런데도 한국측은 회담도중 연거푸 「실체인정」을 주장하고 나섬으로써 북한의 재가를 받아내려 애쓰는 인상을 금치 못하게 하였다. 사실 실체인정을 받아야 할 쪽은 남한이 아니라 북한이다. 북한은 6ㆍ25 남침을 자행한 침략자요,남한은 국력에 있어서나 수교국수에 있어서나 북한에 훨씬 앞서 있는 국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북한측에 실체를 인정하라고 졸라댄다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행위가 아닐 수 없다. 남북고위급회담의 본질적 문제점은 실체 불인정이 아니라 북한의 남한 내정간섭에 있다. 보안법 철폐로부터 미군철수 등에 이르는 요구가 그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은 실체인정을 북한에 요구할 것이 아니라 내정불간섭을 강력히 촉구했어야 옳다. 다음 3차회담에 이점 유의하기 바란다. 다섯번째로 2차 고위급회담과 관련,지적되지 않을 수 없는 항목으로서는 회담성과에 대한 지나친 낙관적 해석이다. 평양에서 17일 1차회담이 끝난 뒤 한국측 대표단은 북측의 자세가 전진적 변화를 보였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직 그같은 변화징후는 찾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측이 회담결과를 긍정적으로 해석하려든다는 것은 국민적 기대감에 부응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그러나 회담결과에 대한 평가는 문자 그대로 실체평가로 그쳐야 한다. 실체 이상 장미빛으로 분석할 때 그것은 진실에 관한 왜곡이요,결과는 국민적 좌절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 “올 최저” 「5백70선」왜 무너졌나(해설)

    ◎「강제처분」악재로 내림세 가속/「4ㆍ30」이후 최악… 「증안기금」투입 힘못써/「88년 1월」수준… 주가 받쳐줄 재료 없어 주춤해지는가 싶던 주식값이 다시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주초인 17일에는 미수금정리ㆍ수해여파 등 장내외의 모든 악재들이 고개를 들어 대폭락사태를 연출했다. 투매양상이 빚어지면서 홍수처럼 밀려드는 매물을 소화해낼 만한 세력이 없었다. 증시안정기금이 사력을 다해 개입했지만 흐트러진 시장기조를 되돌려 놓지 못했다. 투자자들도 파랗게 변한 전광시세판을 멍하니 바라볼 뿐 무표정한 모습들이었다. 하오2시쯤 서울 명동에서 일부 투자자들이 정책담당자들을 규탄하는 유인물을 돌리기도 했다. 그러나 격렬한 행동들은 별로 없었다. 이날은 주가가 무려 24포인트이상 하강하면서 종합주가지수 5백90,5백80,5백70선이 하룻동안 차례로 무너져내린 기록적인 날이었다. 증시사상 네번째의 대폭락이며 지난 4월30일이후 최대의 주가내림이었다. 이로써 주식값은 88년 1월로 되돌아갔다. 2년 8개월만의 일이며 지수상으로 6공이전으로 회귀한 셈이다. 연초에 1백만원을 투자한 사람은 이자한푼 건지지 못한채 71만원으로 원금이 줄어들게 됐다. 그러나 문제는 주식값이 현수준에서 머무르거나 재반등할 소지가 거의 없다는데 있다. 떨어지는 주가를 받쳐줄만한 재료가 전무하다시피하고 기존악재들이 강도 높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새로운 악재들도 튀어나오고 있다. 주가상승의 걸림돌로 여겨져온 미수금이나 신용융자미상환금의 정리문제만해도 그렇다. 증권당국은 이들 악성매물이 정리되지 않고는 주식값이 반등하기 어렵다고 보고 강제정리에 들어갔다. 당국의 강제 정리방침과 증권사들의 「행동개시」로 이날에도 해당계좌의 투자자들이 팔자에 나섬으로써 주가상승은 커녕 주가내림을 부채질했다. 주가상승의 걸림돌 처분작업이 주가하락을 가속화시킨 꼴이 됐다. 이런 추세로라면 5백선붕괴도 어렵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다. 일부 증권관계자들은 악성 매물이 걷히고 나면 주가가 재반등할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점치고 있기는 하다. 이미 나올만한 악재는 다 나왔고 더이상 지친 투자심리에 영향을 주지는 않으리라는 분석이다. 더구나 최근 한소무역협정등 동구진출이 본격화되면서 침체경제에 돌파구가 마련되리라는 희망섞인 기대마저 내비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기대와 달리 지수 1천돌파때와 같은 힘찬 모습의 증시를 보기는 이제 어렵게 된 것 같다. 증권시장,특히 주식투자가 한물갔다는 표현이 적절한 상황이다. 「3저호황」덕분에 눈덩이처럼 불어난 흑자로 시중유동성이 풍부해지면서 불이 붙었던 증시는 국제수지가 적자기조로 돌아서면서부터 분명한 하향곡선을 그려오고 있다. 수출부진ㆍ수입증대 등 생산성은 떨어지고 씀씀이가 헤퍼지면서 우리경제의 적자규모가 늘고 있다. 기업들의 상품개발노력이 개선되지 않는 가운데 선진국의 시장개방압력 등으로 경쟁력이 갈수록 떨어져 흑자기조로의 급전환은 어렵게 됐다. 한마디로 경제전망이 불투명해 무엇이고 투자하고 싶은 마음들이 없어지게 됐다. 경제가 회복될 징후를 보이지 않아 「경제체온계」라 하는 증시도 영하의 기온을 보이고 있다.
  • 주가 올 최저…「570선」도 붕괴/24포인트 빠져 「5백66」기록

    ◎“사자” 실종… 하한가 6백28개 주가가 32개월만에 6공출범이전인 88년 1월 수준으로 대폭락했다. 주초인 17일 증시는 종합주가지수가 지난 토요일보다 무려 24.35포인트가 빠진 5백66.27을 기록했다. 주가하락률은 4.12%이다. 이는 지난 86년 4월24일 통화환수조치때 나타난 사상최고 하락률 4.52%와 지난 4월30일의 4.40% 및 79년 10월27일 10ㆍ26사태로 인한 하락률 4.36%에 이어 네번째의 폭락기록이다. 이날 증시에서는 담보부족계좌에 대한 반대매매로 투자심리가 극도로 위축된데다 추석을 앞둔 자금부족과 수해로 인한 물가불안 우려가 페르시아만사태의 악화와 맞물려 내내 하락세가 지속됐다. 종합주가지수 5백90.62에서 출발한 전장은 10분만에 올들어 최저치인 지난달 25일의 5백87.38아래로 곤두박질한뒤 20분만에 5백80대가 힘없이 무너졌다. 전장에서 지수 5백71.91까지 하락,지난 88년 1월12일의 5백71.29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증안기금만으로 악성매물을 소화하기에는 증시가 너무 무기력,후장들어서는 하락세가 이어져 지수 5백70대마저 붕괴됐다. 종가 5백66.27은 사상최고치였던 지난해 4월1일 1천7.77에 비해 43.8%,올해 최고치인 1월4일의 9백28.82에 비해 39%가 각각 하락한 것이다. 전종목이 크게 내린 가운데 하락종목은 8백35개로 올들어 최대치인 지난 4월30일 7백50개를 경신했으며 하한가는 6백28개였다. 거래량은 7백17만주에 거래대금은 7백60억원이었다. 특히 사자주문이 전무하다시피해 소량의 팔자주문으로도 주가가 하한가까지 밀리는 양상을 보였다. 은행주가 4.9%로 가장 높은 하락률을 기록한데 이어 증권ㆍ보험ㆍ무역ㆍ전기기계ㆍ제1차금속ㆍ화학 등의 업종들도 평균하락률을 웃돌았다. 일부투자자들은 명동지역에서 유인물을 뿌리며 증권당국을 규탄하기도 했다.
  • 핵금조약 회의 폐막/결의안 채택엔 실패

    【제네바 AFP 연합】 핵확산 금지협정(NPT)을 검토하기 위해 지난달 20일부터 속개돼온 NPT조사회의가 15일 핵실험에 대한 의견 대립으로 최종 결의안을 채택하지 못한채 폐막됐다. NPT조사회의는 핵확산 금지협정이 조인된 지난 1970년 이후 5년마다 열려왔으며 이번 회의가 네번째이다.
  • 군축실현의 방안과 전망(“새 전개” 남과 북:5 끝)

    ◎「군사공동위」 설치가 군비통제의 첫발/핫라인 가동ㆍ정보 공개로 신뢰구축/균형감축속에 방어체제 전환 필요 남북 총리회담에서 가장 큰 현안의 하나였던 남북한의 군축문제는 예상했던대로 구체적인 합의에는 이르지 못하고 양측의 입장만 서로 확인하는 선에서 2차 평양회담을 맞게됐다. 비록 합의사항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휴전이후 계속되어온 군사적 대결상태를 더 이상 유지해서는 안된다는 것과 제2의 전쟁을 막기 위해 남북한이 군축논의를 공식적으로 시작했다는 것 자체가 큰 성과로 평가된다. 앞으로 회의진전에 따라 남북한의 「군사공동위원회」를 설치,군축을 포함한 광범위한 군사문제를 통의할 가능성을 보였다는 것이 큰 발전인 셈이다. 북한은 군축을 이번 서울회담의 가장 중요한 의제로 삼고 김광진 인민무력부 부부장과 김영철 소장 등 2명의 고위장성급 대표와 3명의 영관급보좌관을 파견했으며 연형묵 총리의 기조연설중 3분의 2가 군사와 군비감축에 관한 부분이었다. 그러나 양측은 평화정착과 군축실현을 위한 원칙과 접근방법에큰 차이가 있어 앞으로 기본적인 의견차이를 어떻게 조정해 나가느냐가 군축실현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 한국측의 군축전략과 남북교류원칙은 정치적 신뢰조성→군사적 신뢰구축→군축실행의 3단계이며 세부 5원칙에서 진행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한국측은 군사적인 신뢰구축방안으로 ▲군인사 상호방문 ▲정보 상호공개 교환 ▲훈련 사전통보 ▲국방장관과 인민무력부장간의 직통전화설치 ▲비무장지대의 비무장화 실현 등을 들고 있으나 북한은 ▲외국군대와의 모든 합동연습과 훈련금지 ▲외국군대의 군사연습중지 ▲군사분계선 일대에서의 군사연습중지 ▲비무장지대의 병력과 장비철수 ▲쌍방 고위당국자사이의 직통전화 설치운영 등으로 남북한이 구체적인 합의에 이르기까지는 상당한 세월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군비감축진행을 위한 5개 원칙과 북한의 3대원칙도 수많은 장애요인이 가로놓여있어 군축문제가 합의에 이르기까지는 다른 어떤 문제보다도 어려움이 많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우리측의 첫째 원칙은 공격전력을 방어전력으로 바꾸어 나가며 쌍방이 보유하고 있는 공격형 전력부터 먼저 감축하자는 것으로 공격과 방어는 동전의 양면과 같아 구분하기가 힘들며 전투병력과 비전투병력도 해석하기 나름이어서 구체적으로 적시하기 어려운 점이 많다. 두번째 원칙은 상호동수보유원칙을 적용하여 군사력을 많이 보유한 쪽이 적게 보유한 쪽의 수준으로 먼저 감축하고 동수가 되었을때 균형감축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북한은 이에 대해 군축안이 합의된 때부터 3∼4년동안에 첫단계에 30만명,둘째단계에 20만명,셋째단계에 10만명 수준으로 병력을 줄여 나가자고 주장하고 있으나 현실성이 없는 주장이다. 현재 북한은 1백만명선의 병력을 유지하고 있으며 남한은 65만명 정도인데 갑자기 30만명으로 상호동수 감축하자는 것은 실현성이 결여된 발상이다. 또 현재 세계각국은 상비군의 규모를 인구의 1% 정도로 유지하고 있는데 착안하면 북한병력의 적정규모는 28만명,한국병력은 42만명 수준이 되어야 하며 통일이 된뒤에도 70만명의 병력은 유지해야 할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세계10대 무역국인 한국의 상선대를 보호하고 해운선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해군과 공군은 남ㆍ북한 공히 상당한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 군사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세번째는 무기감축에 따라 병력을 감축해나가되 상비전력 감축에 상응하여 예비전력과 유사군사조직도 함께 감축하자는 것이다. 이에 대해 북한측은 단계적 병력감축에 따라 군사장비도 축소폐기하여 새로운 장비도입과 개발을 중지하고 외국기술과 장비반입을 금지하는 안을 제시하고 있다. 병력을 먼저 줄이느냐 장비를 먼저 폐기하느냐는 각국의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으로 유럽의 경우 노후한 장비를 폐기처분하고 새로운 선진무기를 도입,병력은 줄었으나 전투력과 화력은 오히려 증가하는 역효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네번째는 현장검증장치인데 한국은 개방사회여서 병력이 감축되면 언론을 통해 공개되며 전세계에 즉각 알려지게되나 폐쇄사회인 북한에서는 10만명의 병력을 줄여 이를 건설현장이나 광산 등에 투입한다면 군축합의 이행상태를 검증하기가 어렵게 된다. 다섯번째는 쌍방 군사력의 최종유지수준은 통일국가의 군사력 소요를 감안하여 쌍방협의하에 결정한다는 원칙으로 합의 이후 상태를 설정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측은 본격적인 군축논의에 앞서 팀스피리트 훈련중지,유엔가입,구속자석방 등 3개안을 군축회담이전 선결과제로 내세우고 있으며 주한 미군철수와 핵무기철거,비무장지대의 장비ㆍ병력철수를 주장하고 있어 우리측 군축제의와는 커다란 시각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북한측은 이번 회담에서 주한미군과 핵무기의 즉각철수 및 팀스피리트훈련의 즉시중지 등 종래 주장에서 한 걸음 후퇴하여 주한 미군을 남북무력감축에 상응하게 단계적으로 철수할 것을 주장,주한 미군전력을 북한에 비해 부족한 한국의 전투력에 포함시키는듯한 인상을 주었으며 팀스피리트훈련도 앞으로 2∼3년 동안만이라도 중지할 것을 제의,과거보다 유연한 입장을 보였다. 군축문제에 관한한 남북간에 현격한 의견차이가 있긴 하지만 이번 회담에서 남ㆍ북 양측의 군사대표들이 군사분계선을 왕복하며 서로 상대방의 군축방안에 대한입장을 확인하고 이를 바탕으로 앞으로 계속 협의를 해가기로 합의한 것이 벌써 군축으로 가기위한 전제단계인 상호신뢰구축의 첫걸음으로 큰 의의를 갖는다고 평가할 수 있다.
  • 일 증시도 폭락/하락률 사상 4번째

    【도쿄 로이터 AFP 연합】 도쿄 증시의 니케이(일경)주가지수가 23일 전일 대비 5.84% 하락,사상 네번째의 폭락세를 보였다. 이날 2백25개 주력업종의 평균주가지수는 전날보다 1천4백73.28엔 떨어진 2만3천7백37.63엔으로 폐장,지난 88년초 이후 처음으로 2만4천엔선 이하로 곤두박질쳤다. 니케이지수는 이로써 금년초이후 39%가 하락했다.
  • 장마뒤끝 북태평양 고기압 한반도로/「불볕더위」 8월 중순까지

    ◎엘니뇨현상ㆍ태양흑점 상승작용 영향/30도이상 고온 20여일 계속/어제 대구 34.9도… 중부내륙 더 심할 듯 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인 불볕더위가 시작됐다. 유난히 비가 많이 오고 기간도 길었던 장마뒤에 들이닥친 무더위 또한 그 어느 해보다 기승을 부릴 전망이다. 중앙기상대는 27일 『앞으로 전국의 낮 기온이 섭씨 30도를 훨씬 웃도는 무더위가 8월 중순까지 계속 되겠다』고 예보하고 『이는 예년보다 평균 1∼3도 높은 기온으로 특히 여름철 돌림병등 건강관리에 유의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27일의 낮 최고기온은 대구지방이 섭씨 34.9도를 보인 것을 비롯해 남해ㆍ거제ㆍ정읍 33.8도,고흥 34.5도,충주ㆍ거창ㆍ장흥 34.4도,합천 34.3도,영천 33.7도 등 대부분지방이 33∼34도의 분포로 무더웠고 서울은 구름이 다소 끼어 29.3도였다. 기상대는 『올 여름은 이같이 불볕더위가 계속되는 가운데 일기변화가 잦아 3∼4일 주기로 천둥ㆍ번개를 동반한 소나기가 내리는 날이 많겠다』고 내다봤다. 기상대는 올 여름 날씨가 특히 무더운 것은 적도지방의해수면온도가 1∼3도 높아지는 엘니뇨현상이 두드러진 데다 태양의 흑점이 가장 발달하는 때를 만나 유난히 고온다습한 북태평양 고기압이 우리나라를 감싸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 때문에 남부에서 점진적으로 북상하던 장마도 올해는 중부에서부터 시작됐으며 장마전선이 이 고기압대에 막혀 남부지방으로 내려가지 못해 중북부지역에 엄청난 비를 퍼붓게 했다는 것이다. 기상대는 따라서 영덕을 중심으로 한 경북내륙지방과 중부내륙지방에서 극심한 무더위가 맹위를 떨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영덕지방은 지난 9일과 10일 이미 35.2도와 34.9도를 기록,우리나라에서 가장 무더운 지방으로 새로이 등장했다고 밝히고 이는 이 지방이 북태평양 고기압이 북상하는 길목에 놓인 탓이라고 설명했다. 영덕지방은 장마기간동안에도 강수량이 1백97㎜밖에 안돼 비가 가장 적게 내린 곳으로 기록돼 상대적으로 가장 더운 곳이 됐다. 기상대는 올해 이상기온으로 영덕지방에서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것과 함께 지난 겨울 가장 추운 곳으로 지목됐던 양평지방의 지난 장마기간에 9백10㎜의 강수량을 기록,비가 많이 오는 곳으로 새로 등장했다고 밝혔다. 한편 올해 중부지방에서 지속된 39일간의 장마기간은 1904년 기상대가 관측을 시작한 이래 지난 63년과 80년의 45일,69년의 41일 다음으로 네번째 긴 장마로 기록됐다. 비가 내린 날만을 집계한 강수일수도 중부지방이 33일,남부지방은 30일로 나타났으며 장마기간동안 내린 강수량은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특히 서울의 경우 모두 9백9.1㎜로 4백43.9㎜였던 예년치보다 갑절을 기록하면서 1년동안의 평균강수량을 넘었으며 대전에도 6백32.2㎜의 비가 내려 예년의 1.8배에 이르렀다. 가장 많은 비가 내린 곳은 강화지역으로 사상최대인 9백49㎜의 강수량을 기록했다. ○전력사용량 급증 한편 무더위가 본격적으로 기승을 부리면서 27일 순간 최대전력사용량이 1천6백85만4천㎾로 나타났다. 26일에는 1천6백91만2천㎾로 지금까지 최고기록이었다.
  • 외언내언

    삼복 더위의 계절을 이르는 영어가 도그데이즈(dogdays). 「개의 날들」이다. 까닭은 잘 모르겠지만 사람(인)과 개(견)가 합쳐진 「복」자와 인연이 닿는 것 같기도 하다. 오늘이 대서고 내일이 중복. 개들의 비명소리가 들리는 양하다. ◆하지후 세번째의 경일이 초복. 중복은 네번째이다. 그리고 말복은 입추후의 첫째 경일. 간격은 각 10일씩이지만 중복으로부터 10일이 지나서 입추가 들면 중복과 말복 사이는 20일이 된다. 그것이 월복. 올해의 입추는 8월8일이므로 중복에서 10일을 넘는다. 그래서 월복으로 말복은 8월13일. 무더위는 여느 여름보다 더 오래가게 되어 있다. ◆유난히도 비가 많은 해이다. 지겹다는 말이 절로 나오게 하는 비. 전국적으로 예년보다 평균 4백㎜쯤 더 많이 내린 것으로 집계된다. 도시 사람들이야 짜증스러운 채 불편만 느끼면 되지만 농촌은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니다. 농사를 망치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비가 안온다 해도 하늘이 찡그리고 있는 날이 많으니 일조량이 턱없이 모자라다. 지금쯤 한낮의 무논 물은 발을 들여놓기가어려울 정도로 뜨거워야 한다. 밤에는 그것이 다시 식고. 벼는 그 냉온의 교차 속에서 영글어 가는 법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날씨가 습하니 병충해까지 극성을 떨고 있다. ◆벼 뿐이 아니다. 밭 작물도 햇볕 못보아 서러운 것은 마찬가지. 열매를 못맺고 썩어간다. 설사 열매까진 맺었다 해도 제대로 자라나지 못한 형편. 그것은 각종 나무 열매의 경우라 해서 다를 것이 없다. 하지만 어쩌랴. 인위가 대자연의 영위를 제어할 수는 없는 것을. 실의에 빠진 농민들의 한숨 소리가 비에 섞여 땅속으로 스며든다. ◆앞으로나마 고른 날씨를 보인다면 좀 좋으랴. 하건만 엘니뇨현상하며 태양 흑점폭발설 등이 낙관을 못하게 한다. 제발 태풍이나 비켜 지나갔으면. 문득 불쾌한 듯 찌푸린 하늘을 바라본다.
  • 한ㆍ소 우편물 직접 오간다/내일부터/송달기간 1주일이상 단축

    체신부는 소련과의 우편물 직접교환방법에 합의,오는 15일부터 소련행 국제항공우편물 행낭을 한국명의로 직접 발송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소련행 국제항공 우편물을 일본ㆍ홍콩 등 제3국의 교환우체국에서 각각 중계,제3국 명의의 우편행낭으로 옮겨져 발송돼왔다. 이에따라 소련까지의 송달기간이 종전보다 1주일이상 단축돼 모스크바행 우편물은 1주일 이내에 배달이 가능해졌다. 우리나라와 공산권과의 국제우편물 교환국은 헝가리ㆍ유고슬라비아ㆍ중국에 이어 소련이 네번째이다.
  • 「통석」과 「괜찮아」/임춘웅 국제부장(서울칼럼)

    『우리나라에 의해 초래된 이 불행했던 시기에 귀국 국민들이 겪었던 고통을 생각하고 본인은 통석의 염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이 한마디를 듣는 일이 왜 그렇게도 어려웠는지 실로 통석의 염을 금할 길이 없다. 아키히토(명인) 일본왕이 24일밤 궁성에서 베푼 노태우대통령을 위한 공식만찬에서 한 이 만찬사는 전후 일본이 한국에 한 첫 사과다운 사과라는 점에서 사뭇 감개가 크다. 실로 45년만의 일이다. 이 한마디를 얻어내기 위해 현해탄에는 천둥번개가 그토록 요란했는지도 모른다. 어찌보면 하찮기도 한 이같은 명분싸움을 양국은 반세기에 걸쳐 해온 것이다. 24일 일왕의 공식사과는 우리나라 뿐 아니라 그들이 상대로 싸웠던 세계 어느 나라에도 한 일이 없던 수준의 것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 하긴 1945년 9월 맥아더사령부를 방문한 당시의 히로히토(유인)일왕이 맥아더 사령관에게 한 말이 없었던건 아니다. 『나는 전쟁중에 내린 모든 결정과 일본군이 자행한 행위에 대해서 일체의 책임을 지겠다』는 표현은 자못 자책적이고 회한마저서려있다. 그러나 이때는 항복직후이고 패전 일본의 천황이 점령군사령관을 스스로 찾아가 사죄하는 그런 상황이었다. 일본정부가 재구성되고 새 일본의 국왕으로서는 사과다운 사과는 한 일이 없다. 74년 미국의 포드대통령이 방일했을 때는 『일시 진실로 불행한 시대를 가졌던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었고 우리와 함께 피해를 가장 많이 입었던 중국의 등소평이 78년 방일했을 때는 『양국사이에는 매우 오랜 역사가 있으며 그 사이에는 한때 불행한 일도 있었지만 그러한 일은 과거로 돌리고 지금부터는 오랜 양국 친선의 역사가 진행될 것을 기대함』이었다. 그러니까 지난 84년 히로히토 일왕의 전두환 당시 대통령에게 한 『근세기의 한 시기에 있어서 양국간에 불행한 과거가 있었던 것은 진실로 유감이며 또다시 반복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함』은 그나마 정중한 언급이었던 셈이다. 우리 정부는 이날 이같은 일본의 사과에 대해 『일본이 지난날의 잘못된 과거가 일본의 행위에 의해 초래되었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하고 우리 국민이 겪은 고통과 슬픔에 대해서도 분명히 사죄하고 반성한 것』으로 평가했다. 이로써 한일간의 지루하고 힘들었던 명분싸움은 이제 겨우 역사의 한장을 넘긴 셈이다. 이번 일본의 태도는 상당히 진전된 것이고 우리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왜 일본의 태도가 이토록 변했는지는 아직 분명치 않다. 우선은 우리의 요구가 워낙 강력했었다. 일본으로서는 침략 일본의 망령을 벗고 새 일본의 이미지를 심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웃 한국과의 새로운 관계정립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법하다. 다른 하나는 함께 2차대전을 일으켰던 독일 이탈리아와는 달리 일본의 전후처리방식이 잘못됐다는 자성의 소리가 일본내에서도 없었던게 아니다. 사과문안 내용을 놓고 한일간 특사외교가 한참이던 지난 21일 유럽에서는 「역사와 지리교육용 지침서」라는게 발표됐다. 프랑스와 서독학자 60여명이 7년여동안 공동노력끝에 내놓은 이 지침서는 양국이 그들의 후세대에 역사를 바로 가르치려는 것. 이 지침서에서 프랑스측은 서독교과서가 나치 치하의 프랑스 비시정권에 대해 너무 소홀히 취급하고 있는데 비시정권이 나치에 철저히 협력한 사실을 상세히 기록하고 이와 함께 당시의 레지스탕스운동도 비중있게 다루어 주길 권고하고 있다. 반면 서독측은 나치의 잔인한 유대인 학살과 나치하에서 독일국민이 겪은 고통과 나치즘에 대한 독일국민 스스로의 투쟁내용도 담아 나치즘의 폐해를 후세대에 정확히 인식시켜줄 것을 건의하고 있다. 이처럼 독일은 잘못된 역사를 철저히 반성하고 그것을 교훈으로 삼으려한 반면 일본은 침략사를 은폐하고 철저히 호도하려 해왔다. 23일자 일본의 매일신문은 사설에서 일본은 한국에 반드시 사과를 해야하며 일본이 불성실하다는 인식을 한국인에 심어줘서는 안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네번째로는 자신감의 표현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할만큼 여유가 생긴 것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모든게 끝난것은 아니다. 사과 한마디로 켜켜이 쌓인 응어리들이 다 쓸려나간다면 세상은 얼마나 편리하겠는가. 지금 50대 이상의 한국인들은 일본의 잔학상을 몸소 겪고 보아온 사람들이다. 그렇다고 어찌 하겠는가. 지난 일에 영원히 매달려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이제는 우리가 용서할 차례다. 얼마전 일본을 방문했던 한 한국기자가 일본의 저명한 저술가이자 경제이론가인 하세가와 게이타로(장곡천경태랑)씨를 만나 물었다고 한다. 한국이 꽤 발전을 하다 주춤해졌는데 충고를 해 달라는 주문이었다. 한국을 잘 알고 있는 하세가와씨는 대뜸 한국이 계속 발전하려면 무엇보다 「괜찮아 사고」부터 고치지 않으면 안된다고 나무라더란 것이다. 괜찮지 않은 것도 대충대충 넘어가는 한국인의 「괜찮아 사고」로는 곤란하다는 얘기다. 일본인이면 못 지나갈 일이지만 우리는 이번일도 『그만하면 괜찮아』하고 넘어갈 참이다. 새 시대를 함께 열어가기 위해서다. 이만하면 한국인의 「괜찮아」도 괜찮은 편이다.
  • 과거사 매듭… 한일 새협력관계 정립/노대통령 방일의 함축

    ◎첨단과기 이전등 경제실리 추구/교포1ㆍ2세 지위개선에도 성과기대 노태우대통령의 오는 24일부터 2박3일간에 걸친 방일은 한마디로 양국간의 불행했던 과거를 청산하고 미래지향적인 한일 우호협력관계를 정립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노대통령은 당초 일본 뿐만 아니라 캐나다 미국 멕시코 등 4개국을 순방하려 했으나 「총체적 난국」으로 규정되고 있는 국내사정을 감안,나머지 3국 방문을 연기했던 것이다. 그러면 왜 유독 일본방문만은 그대로 실행하기로 했느냐는데는 대충 4가지의 이유를 들 수 있다. 첫째는 과거의 불행했던 앙금을 씻어내는 대일협상의 지렛대로 방일카드를 구사했기 때문에 이제 양국 외상회담등을 통해 상당한 진전을 본이상 일본을 가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둘째는 우리경제의 활로를 개척하기 위해서는 첨단과학 기술분야에서 일본과의 실질협력관계를 강화,기술이전을 통한 실리를 확보할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셋째는 국제환경적인 요소를 감안,우리의 북방외교추진,일본의 대북한관계등 한반도 주변정세에 대비한 양국간의 긴밀한 협조관계 구축이 요구된 것이다. 특히 다가오는 21세기는 세계의 중심이 아시아ㆍ태평양지역으로 옮겨 올 것으로 예견되는 상황에서 한일 두나라는 아태협력의 선도적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서로를 필요로 하는 실정에 있다. 네번째는 노대통령의 취임이후 일본총리(다케시타 총리재임시)가 두번(취임식,서울올림픽 개막식)에 걸쳐 방한했고 노대통령의 방일계획이 두번(88년 11월 히로히토 일왕 위독,89년 5월 일 정계가 리크루트사건으로 혼란)이나 일본측 사정으로 연기된 점을 고려한 때문이다. 지난 84년 9월 5공당시 전두환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한이래 6년가까이 한국 대통령의 방일이 이뤄지지 않은 것은 대외적으로 한일 관계가 원만하지 못한 인상을 줄 우려가 있고 이는 우리의 국제무대에서의 활동에 지장을 초래할 수도 있는 것이다. 노대통령의 방일이 반드시 구체적인 현안의 타결을 위한 것은 아니라 해도 「과거문제」에 대한 상당한 성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이미 의견접근을 본 재일한국인 3세이하 협정영주권 자동부여,이들에 대한 지문날인제 폐지,외국인등록증 미소지 처벌조항 배제,그리고 재입국기간의 3년에서 5년 연장,강제추방요건을 7년이상의 실형에서 내란 외환죄의 국사범 경우로 한정한 것등은 완전타결을 볼 것으로 보인다. 또 교포1ㆍ2세에 대한 지문날인이나 외국인등록증 휴대문제.지방자치단체 공무원및 교사채용문제,재일한국인 교육문제에 대해서도 일본정부가 전향적인 조치를 해줄 것을 요청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밖에 원폭피해자 지원기금설치,사할린교포 모국자유왕래 지원확대도 아울러 요청,일본측의 성의를 끌어낼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청산문제와 관련,아키히토 일왕의 사과발언도 전 전대통령의 방일 당시의 『한일 양국간에 불행한 과거가 있었던 것은 진심으로 유감이며 다시는 되풀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는 수준보다 다소 강도가 높은 내용으로 끌어내 「과거」 매듭의 상징으로 역사에 기록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양국간의 미래지향적인 협력관계 구축문제에 대해서도 몇가지 가시적인 결실이 예상은 되고 있으나 아직 단정하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 양국의 공동번영을 대외적으로 과시하는 협력사업이 구체화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첨단기술의 신소재,기초과학분야에서의 상징적인 공동협력 프로젝트가 추진될 것 같고 양국간 인적교류가 연간 2백만명에 이르는 점을 감안,상호장기복수비자 발급을 위한 각서교환이 이번 방일을 계기로 이뤄질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노대통령이 방일 이틀째인 25일 일본국회에서 연설을 하고 이 자리에서 새로운 한일 협력동반자관계의 출발을 선언할 예정인데 이는 한일 관계가 과거매듭위에서 새로운 역사전개의 장으로 넘어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 「경고시간」단축과 안보(사설)

    유럽을 중심무대로 하는 세계적인 화해와 군축의 바람이 드디어 중국과 소련간 국경군감축 협정체결을 계기로 아시아에까지 밀려들고 있다. 지난 20세기의 세계를 풍미했던 이념과 전쟁과 혁명은 이제 확연히 그 기세를 잃고 희미해져 가는 것이다. 그것을 두고 역사는 흐르고 시대는 변한다고 하지만 21세기에는 또 어떤 변화와 추세가 닥쳐 올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그러나 지금 우리 한반도는 어떠한가. 화해와 군축의 산들바람은 저쪽에 멎어 있고 한반도에는 아직 이르지 못하고 있다. 모두가 원하는 평화는 정착되지 못한 채 긴장이 흐르고 때로는 전쟁의 그림자마저 어른거리고 있다. 부분적인 대화와 교류에도 불구하고 남북한간의 첨예한 대립과 군사적 대결은 그 상황이 조금도 변하지 않은 채로 있다. 우리는 한반도에 이같은 전쟁적 요소와 긴장요인이 상존하는 것은 북한이 변함없이 추구하고 있는 비평화적 통일전략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사실을 거듭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결론부터 말해 한반도에는 아직 전쟁의 위협과 위험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한반도 안팎의 여러정세와 분위기요인도 그러하거니와 근본적으로는 세계적인 군축추세에 역행하는 북한의 군비현실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미국이 이 단계에서 주한미군이 심각한 위협에 직면해 있다는 전략적 판단아래 휴전선으로부터의 북한남침 경고시간을 종래의 48시간에서 24시간으로 단축했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한반도 전쟁 가능성에 관한한 그것은 「조기경보체제의 단축」이라는 긍정적 측면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 조치는 다시 말해 북한의 공격가능성이 조금도 줄어들지 않고 있다는 객관적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실 그런 점에서 지상의 휴전선을 비롯한 해ㆍ공전역에 걸쳐 상대방 공격에 대한 사전 조기경보체제를 우리 군이 독자ㆍ자율적으로 확보 운영하는 문제는 한미간의 주한미군 감축협상에 있어 가장 큰 전제조건의 하나인 것이다. 미국은 최근 그들의 대 유럽전략과 관련하여 바르샤바조약기구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침공에 대한 경고시간을 3개월로 늘린 바 있다. 동서화해와 군축의 상징적 조치임과 아울러 실질적인 평화의지의 공표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나 한반도는 다르다. 북한의 경우 지상군 93만 가운데 70%가 휴전선 비무장지대 북방한계선 15∼20마일내의 벙커와 땅굴에서 영구전 태세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게다가 멀지 않아 핵폭탄을 제조 보유하리라는 사실이 국제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그렇게 되면 언젠가 한미양국이 동시에 판단했던 대로 한반도의 군사적 정세는 「심각한 위협」을 넘어서는 국면에 이를지 모른다. 「전쟁의 위험」을 정권안보나 체제유지의 한 수단으로 삼았던 때는 지났다. 이제 그렇게 할 수도 없다. 명백하고도 객관적이며 현실적인 전쟁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주한미군 감축이 현실로 나타남과 거의 같은 시기에 북한이 파놓은 네번째 땅굴이 발견됐다. 그것이 오늘날 우리 안보의 현실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는 자명한 일이다.
  • 소,리투아공 경제제재 강화/원유공급 중단… 천연가스도 80%감축

    【모스크바 로이터 AFP AP 연합】 소련당국이 리투아니아공화국에 대한 원유 공급을 중단한데 이어 19일 천연가스 공급도 80%감축했다고 리투아니아 최고 평의회(의회)공보실이 밝혔다. 리투아니아공화국 의회공보실은 이날 성명을 통해 파이프라인을 통한 리투아니아에 대한 천연가스 공급이 19일 상오 상당한 수준 줄어들었다고 말하고 리투아니아공화국으로 향하는 4개의 천연가스 공급 파이프라인중 백러시아 공화국 민스크로부터 오는 것과 라트비아공화국으로부터 오는 2개의 파이프라인등 3개가 이날 정오 (한국시간 하오6시)를 기해 공급이 중단됐다고 밝혔다. 리투아니아 관리들와 공보실 성명은 또 이같은 천연가스 공급중단은 소련 각료회의의 승인을 받은 것으로 1일 3백50만㎥(전체 공급량의 약16%)의 가스를 공급하는 백러시아의 슬로닌 네번째 파이프 라인은 계속 가동중이라고 말하고 리투아니아공화국의 하루 천연가스 소비량은 1천8백만㎥라고 덧붙였다. 이 성명은 이어 제노나스비스티니스 리투아니아 가스사업 총국장이 이날 소련 각료회의로부터 『소련 각료회의의 명령에 따라 리투아니아 공화국소비자에 대한 천연가스 공급이 리투아니아 주민및 각 지방의 자체 사용을 위한 통상 공급량을 보장하는 수준인 1일 3백50만㎥로 감축됐으며 이같은 공급감축조치는 19일 정오부터 시작될 것』이라는 전문을 받았다고 밝혔다.
  • 90년대 동북아의 정치기류 예진/일 전문가 특별기고

    ◎한반도정세 「한ㆍ소관계」를 축으로 진전/소 경제실리 앞세워 대한접근 가속화/중 동구변혁 여파,대북유대 강화주력/한­중,당분간 간접교류… 북한­소는 불협화음속에 지난 3월12일부터 30일까지 중국 장춘의 길림성 사회과학원과 상해 평화발전연구소의 초청으로 처음으로 중국방문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중국에는 2주일동안 체재하며 북경ㆍ장춘ㆍ연길ㆍ상해의 대학 및 연구소를 둘러 보았다. 최근의 소련ㆍ동구제국의 변화에 따라 세계에서는 동아시아의 군축문제 및 경제교류의 가능성이 논의되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보다 큰 파문속에 국제관계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라고 하는 견해를 가져왔다. 도쿄와 서울만을 왕복한데서야 어딘가 1990년대의 동아시아 국제흐름의 구도가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작년 1월부터 중국방문을 계획,이번에 실현을 본 것이다. 중국에서는 최근의 유럽정세의 변화가 아시아에 어떻게 파급되고 있다고 보고 있는가. 한국과 소련의 관계를 중국은 어떻게 받아 들이고 있는가. 한국과 중국의 관계는 어디까지 진전될것인가 등에 관해 중국의 학자들과 개인적으로 의견을 교환해 보겠다는 것이 목적이었다. ○중,한­소 접근에 느긋 중국학자와 의견교환을 했을때 느꼈던 점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첫째로 중국은 대 한반도정책을 장기적 관점에서 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은 1백년을 주기로 외교정책을 입안하고 있다고 지적하는 학자도 있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우리들이 중국의 외부에서 부터 「한반도 정세의 변화」라고 보는 것을 중국은 변화라고 보지 않는 경우도 생겨나는 이유이다. 두번째는 한국과 소련의 관계개선에 대해서이다. 소련이 한반도에의 영향을 강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중국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은 틀림없다. 그리고 소련의 동향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도 틀림없으나 소련의 한반도에의 적극자세가 그다지 중국에 있어 위협이 된다고는 보지 않는 것 같다. 그것은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문화적 측면에서 한반도에 더욱 영향력을 갖고 있었던 것은 중국이며 한반도와의 교류의 역사는 중국이 가장 길다라는 중국의 자신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 한ㆍ소관계개선에 관해서는 중국은 크로스관계의 진전이 한반도에 있어서 안정의 기초가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한ㆍ소관계와 병행해서 미국과 일본이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해 나간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다. 셋째로 한ㆍ중관계에 대해 중국의 학자들은 북한ㆍ중국관계를 고려할 때 한계가 있다는 견해가 많았다. 중국의 가장 중요한 국가는 북한이며 그것은 변할 수 없다. 소련ㆍ동구의 변혁 이후 북한은 여전히 고립의 방향을 취하고 있고 북한에 대해 중국의 책임이 더욱 커지고 있다고 중국은 보고 있는 것 같다. 또 중국은 한국과도 1백년이 걸리더라도 좋은 관계를 구축하고 싶으나 한국은 1주간 또는 2주간의 폭으로 한중관계를 개선해 정치적관계를 맺고 싶다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보임으로써 의견의 불일치가 생긴다고 지적하는 학자도 있었다. 따라서 한ㆍ중 관계가 때로는 정체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경우도 있으나 실제로는 중국은 「북한과의 우호제일,한국과의 간접교류 추진」이라는 원칙을 계속 견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었다. 내가 보는 바로는 한ㆍ중교류에는 중국은 4개의 원칙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즉 정치적 관계를 맺지 않고 경제적 교류는 크게 늘린다. 스포츠교류도 계속하지만 문화면에서는 간접교류에 멈춘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한ㆍ중간의 중요한 연구소의 자매관계 결연은 하지 않는다는 기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4원칙은 이전부터 있어왔으며 당분간은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넷째로 북한체제의 혼란 및 불안정설에는 중국학자는 부정적이었다. 한국내의 김일성체제의 보도는 홍콩의 등소평보도와 마찬가지로 흥미본위라고 지적하는 학자도 있었다. 이상으로 중국의 인상과 중국의 한반도에의 견해를 소개했으나 이제부터 내자신의 견해를 말하고자 한다. 첫째로 한ㆍ소관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 최근 주목을 끄는 것은 한ㆍ소양국의 급속한 접근이다. 국교수립은 시간문제로 되어 있으며 그 속도는 예상이상이었다. 최근 소련의 한반도에 대한 자세는 4개의 단계로 변화해 온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지난 84년5월의 김일성주석의 소련방문으로부터 86년10월의 방소까지의 시기,소련은 군사협력을 중심으로 북한에 적극적으로 접근했다. 86년10월부터 88년9월의 서울 올림픽때까지는 소련은 북한의 입장을 지지하면서도 동시에 한국과의 관계개선을 모색했던 시기이다. 88년9월부터 89년9월 서울올림픽 1주년까지 소련은 북한을 지지하며 한국과의 관계를 진척시켰다. 그러나 때로는 북한을 자극하는 정책(서울올림픽 참가등)을 취해 양쪽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법을 취했다. 북한에 대한 「한국카드」를 소련이 사용했던 시기이다. 89년9월 이후 고르바초프 정권의 유력한 브레인들이 잇달아 한국을 방문했다. 한국과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진전시켜,때로는 북한을 자극함으로써 소ㆍ북한관계가 악화되더라도 어쩔 수 없다는 대담한 한반도정책을 편 것이다. 바꾸어 말한다면 지난 9월 이후 북한ㆍ소련관계에의 배려보다 한ㆍ소관계에의 배려를 우선시켰다고 말할 수 있다. 그 배경에는 국내정세의 변화에 의해 개혁을 서두를 필요가 생긴 소련이 한국의 협력으로 시베리아 개발을 진척시키고 무역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을 들 수 있다. 또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일본방문을 앞두고 대일관계 타결을 위해서도 긴밀한 한ㆍ소관계는 소련에 있어서 유리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한­중관계 개선 한계 둘째,한ㆍ중관계는 어떻게 볼 것인가. 중국은 북한과의 관계를 보다 강화하고 있다. 이붕총리는 88년3월 이후 3차례에 걸친 정치활동보고를 했다. 88년3월에는 『북한은 중국의 친밀한 인국이며,중국은 북한의 자주적 평화통일의 합리적 주장과 한반도의 긴장완화의 노력을 지지하고 있다』고 부추겼다. 그러나 89년3월에는 『중국과 한국 사이에는 정부관계는 존재하지 않지만 민간의 경제무역은 하고 있다』며 한국과의 경제관계에 처음으로 언급했다. 이와 함께 남북대화의 진전을 기대했다. 이것은 중국이 한국과의 간접교류에 의욕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3월의 보고에서는 이붕총리가 한국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고 『최근 1년 중국과 많은 국가 특히 주변의 인국과의 관계는 한층 더 개선,강화됐다. 중국과 북한의우의는 더 돈독해졌다』고 말했다. 그 표현은 지난해 보다도 강한 것이었다. 중국의 전기침 외교부장이 3월말 기자회견에서 말한 『대만과 한반도의 통일은 동일 방식으로 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중국이 한반도는 2개의 정부라도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대만 문제와 한반도 문제에는 차라리 다른 점이 많다. 같이 분단된 지역이라 하더라도 중국으로 본다면 대만은 국내이며 한반도는 외국이다. 한반도에는 한국이라는 존재가 있으며 한중간접교섭의 필요는 중국도 인정하고 있는 터이다. 또 한반도에는 소련의 영향이 있으며,주한미군이 있어 한반도의 긴장완화책과 주한미군의 유지를 둘러싸고는 주변 제국사이의 의견이 엇갈려 있는 지역이다. 그런 점에서 한반도는 대만과는 다른 복잡한 국제적 이해가 교차한다. 중국 동북부에 접하는 한반도가 갖는 지정학적 중요성은 대만의 그것과는 다르다. 따라서 중국에 있어서 대북한관계가 갖는 가치는 중국ㆍ대만관계가 갖는 가치와는 이질적인 것이며,중국에 있어서 북한ㆍ중국관계의유지는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그 때문에 중국은 북한의 연방제 제안을 전면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따라서 이 통일방식은 대만문제해결과는 기본적으로 다르다. 이 「다른 방식」이라는 것은 차라리 지금까지의 정책의 확인이다. 북한에 있어서의 중국은 고민을 해결해 줄 수 있는 힘이며 중국자신도 북한에 대한 역할을 통감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의 관계는 더욱 긴밀해 질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80년대초의 중ㆍ북한관계로 돌아가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소,북한에 쇼크요법 셋째로 소련ㆍ북한관계이다. 소련은 북한에 대해 쇼크요법을 시험중이며,그 때문에 북한이 소련으로부터 다소 멀어지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보고 있다. 북한과 소련 사이에 불협화음이 나와서는 곤란하다는 시기는 지났다는 것이다. 당장 앞으로 소련의 대북한 무기공급 템포는 둔화될 것이다. 북한은 한국에 접근하고 있는 소련에 대해 동구제국에 대해 그랬던 것처럼 「배신행위」라고 비난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소ㆍ북한관계는 표면상으로는 조용하다. 그러나 수면하에서는 북한의 불만이 팽배하고 있으며 마침내는 불협화음이 나올 것이다. 네번째로 북한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의 문제이다. 올 들어서 부터 북한에서는 김정일비서의 신격화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김정일의 문헌을 주석의 것과 동격으로 학습하게 된 것. 김정일이 태어났다는 백두산 밀영지의 혁명사적화 사업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또 소련ㆍ동구에 파견된 유학생의 귀환명령 및 동구제국에의 비판을 보면 북한은 더 한층 폐쇄적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것이 북한에 있어서는 체제를 온존하는 길이라고 지도부는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북한이 그렇게 함에 따라 한국에 대해 우위를 견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낙관주의자가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은 마침내 북한이 한국에 대해 양보함으로써 정책전환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낙관주의자이기 때문에 남북대화는 「통일과 긴장완화」라는 총론에서는 일치하지만 각론에 이르면 대화가 중단돼 버리고 만다. 1990년대는 한반도에서는 한ㆍ소관계의 진전을 축으로 일부에서는 냉전구조를 남겨두면서 복잡한 정치적 양상이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다케사다 히데시
  • 3월한달 1.3% 상승의 안팎(해설)

    ◎물가 “위험수위”…스태그플레이션 현상/오름세 지속땐 연말 억제선 돌파/총통화 24%증가도 상승 부채질 물가가 고율의 상승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올들어 소비자물가는 1월중 1% 올랐고 2월에 0.9%오른데 이어 다시 3월에 1.3%나 오르는등 월평균 1%이상의 높은 오름세를 지속했다. 이런 추세라면 연말 물가를 5∼7%선에서 억제한다는 당초의 목표달성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지난 82년이래 고도성장 속에 물가안정기반을 유지해온 우리경제가 이제는 저상장속의 고물가시대로 접어드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을 낳게 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같은 상황변화에 대해 스태그플레이션(불황하의지속적인 물가상승)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3월중 소비자물가는 올랐고 월별로 1.3%가 올랐고 1월부터 3월까지의 누계로는 3.2%가 올랐다. 이같은 수치는 1개월 단위로 볼 때 이례적으로 높은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고율의 물가상승이 한달에 그치지 않고 1월부터 3월까지 고른 수준으로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데서 물가관리 측면에서의 심각성이 제기되고 있다. 경제전문가들은 80년대 들어 물가가 안정기조에 돌입한 시점을 82년으로 잡고 있다. 3월중 소비자 물가상승률 1.3%는 1개월 상승폭으로는 82년이후 87년 5월(1.5%상승)과 87년 8월(1.4%상승),88년 3월(1.4%상승)에 이어 네번째로 높은 수치이다. 또 1월부터 3월까지의 누계물가(90년 3.2%)로는 88년의 3.7%에 이어 두번째로 높은 것이다. 3월중 소비자물가 1.3% 상승에 대한 품목별 기여도를 보면 공공요금이 0.73%포인트로 가장 높고 개인서비스요금(0.31%포인트),집세(0.14%포인트),축산물(0.14%포인트),공산품(0.11%포인트)의 순으로 물가상승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농산물과 수산물의 가격은 하락해 각각 0.01%포인트와 0.07%포인트씩 상승폭을 둔화시키는 쪽으로 작용했다. 따라서 3월중 물가상승을 부채질한 주범은 공공요금임을 알 수 있다. 공공요금 인상내역을 보면 각급학교 납입금이 평균 11.1%,시내전화요금이 시·분제실시의 영향으로 14.8%씩 올라 각각 0.54%포인트와 0.18%포인트의 기여도를 보였다. 공공요금 인상이 전체물가상승의 주요한 요인이 되고 있는 현상은 지금까지의 물가관리대책이 한계에 도달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즉 여타부문에 가격 상승요인이 발생하더라도 정부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공공요금부문의 인상억제를 통해 일반물가의 인상자제 분위기를 유도해 온 것이 지금까지 정부가 주로 의존해온 물가관리 수단이었다. 그러나 지난 3년간 공공요금 인상이 억제돼왔고 이에따른 정부의 재정보조 등이 한계에 도달,더이상 인상을 억제할 수 없는 선까지 왔으며 특히 지난 3년간의 누적효과가 한꺼번에 나타남으로써 전체물가 상승을 선도하고 있는 셈이다. 두번째로 높은 기여도를 보인 개인서비스요금의 경우 인건비와 임대료의 상승이 주된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특히 개인서비스요금의 상승률은 3.6%로 상승률의 절대치로는 공공요금(3.5%)을 앞질렀다. 집세는 평균 1.2%가 올라 전체물가상승에 0.14%포인트만큼 기여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전·월세 파동에도 불구하고 통계상 집세가 안정적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은 소비자물가 통계가갖는 허점을 잘 나타내주는 부분이다. 즉 부동산 중개시장에서 형성되고 있는 주택의 전·월세 가격이 아무리 크게 올라도 소비자 물가통계에는 잡히지 않는다. 소비자물가의 통계구조상 지불행위가 이루어졌을때,다시 말해 집주인과 세입자간에 전·월세를 인상하는 재계약이 이루어지고 이에따라 인상분이 지급됐을 때에만 소비자 물가로 잡히게 된다. 따라서 집세 인상은 앞으로 연말까지 계약시기에 따라 월별로 나뉘어 소비자물가에 반영될 것이기 때문에 지속적인 소비자물가 상승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전망이다. 공산품은 0.4%가 올랐으며 기여도면에서 0.11%포인트의 영향을 미치는데 그쳐 비교적 안정세를 유지했다. 이밖에 주택및 아파트 가격은 국민의 소비생활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분중 하나인 주거생활의 기초가 되고 있지만 소비자 물가통계에는 반영되지 않고 있다. 최근 주택및 아파트가격의 폭등세를 감안한다면 소비자가 피부로 느끼는 감각물가는 지수물가보다 훨씬 심각한 수준일 것이라는 점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물가가 위험수위를 향해 치솟고 있음에도 이를 적정수위로 낮출 수 있도록 하는 물가관리 수단은 마땅치가 않다. 물가관리 여건이 지난 82년이래 최악의 상태라는 것이 물가당국의 지적이다. 즉 총통화 증가율이 24%를 넘고 있는 상황에서 지난연말 풀린 7조원 가량의 각종 정책자금이 투기의 기회를 기다리는 대기성자금화돼 잠재적인 물가불안 요인이 되고 있다. 그럼에도 침체된 경기를 소생시키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물가 불안은 감수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기획원측의 판단인 것 같다. 정부는 수출부진등 경기침체를 벗어나도록 조만간 경기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그러나 이같은 경기대책으로 경기는 회복될 수 있을지 모르나 물가에는 오히려 악영향을 줄 우려가 없지 않다. 경기가 되 살아나도 물가가 치솟는다면 그것은 경제에 결코 도움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유의해야 한다.
  • “한국무역장벽 크게낮아졌다”/미무역대표부 발표’90해외교역보고서

    ◎89년 대미흑자 88년보다 26억불 감소/관세·통관·정부 지원등엔 불만 여전/슈퍼301조 우선 협상국 지정않을듯 【워싱턴 연합】미무역대표부(USTR)는 30일 1990년 해외무역 장벽보고서를 통해 한국을 일본·유럽공동체·캐나다에 이어 네번째로 무역장벽이 많은 나라로 발표했으나 한국의 무역장벽이 88년에 비해 많이 개선된 것으로 평가함으로써 올해 우리나라는 무역법 슈퍼301조에 의한 우선협상대상국지정을 우려하지 않아도 될 것으로 보인다. 무역장벽 보고서는 89년 한국의 대미무역흑자는 전년에 비해 26억 달러가 줄어든 63억달러에 그쳤다고 지적하고 한국의 수입정책,표준,검사,정부구매,수출보조금,지적소유권,서비스,투자부문의 수입장벽이 상당히 개선됐다고 말했다. 주미대사관의 통상관계자들은 지난해에는 무역장벽보고서가 발표되기 전 무역대표부측의 요청으로 우리측과 몇차례의 통상협상을 가졌으나 올해는 쇠고기 수입문제와 통신시장 개방문제가 타결되고 농산물의 단계적 개방일정표가 제시됐기 때문인지 슈퍼301조에 따른 우선협상국 지정문제와 관련,협상을 갖자는 제의가 없다고 말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수입정책 분야에서 우리나라는 89년의 평균관세율 12.7%를 93년에 7.9%로 끌어내리기 위해 5개년계획을 추진하고 있지만 아직도 신선한 과일과 주스 등의 일부 농산물 분야에 서는 최고 50%에 이르러 이로인한 대한수출피해액이 1천5백만달러에 이른다. 한국은 수입승인제를 통해 수입물량을 규제하고 있는데 95%정도는 자동승인되고 있으나 5%정도는 쿼타제도로 운영되거나 수입금지되고 있다. 세관의 통관절차가 너무 느리거나 독단적이라는 불평이 끊이지 않고 있다. 법상 아무런 규제를 받지 않게 돼있는 아몬드가 세관을 통과하는데 3주이상 걸리고 있다. 표준·검사·인증분야에서는 수입농산물의 질적 기준 및 안전기준에 관해 심각한 문제가 남아있다. 농산물의 검역작업이 국제기준에 부합되지 않은채 너무 까다로워 수입장벽이 되고 있다. 의료장비,전기제품,그리고 통신장비 등에 대한 분명하지 않은 표준제도가 대한수출에 지장을 주고 있다.정부 구매부문 에서는 88년12월 국산화율 조항을 철폐시켜 외국인들에 대한 형식적 장애를 제거했으나 한국정부 당국은 아직도 국산제품을 구매하도록 조장하고 있다. 정부 보조부문에서는 민간 조선업체에 보조금이나 다른 형태의 지원이 있다고 지적하면서 그 예로 대우조선에 대한구제금융 및 세제혜택을 들었다. 한국은 지적소유권 보호를 위해 중요한 조치들을 취했으나 비디오와 교과서의 무단복제,모조상품 제조에서는 아직도 문제가 남아있다. 한편 이 보고서는 장벽제거를 위한 집중적 협상을 벌일 사전절차로 발표되는 것인데 무역법안 「슈퍼301조」가 요구하고 있는 우선협상 대상국 명단작성의 첫단계로써 명단은 오는 4월30일 공개될 예정이다.
  • 한­체코 수교 서명/불가리아와는 오늘 조인

    ◎양국외무,대사관 교환 개설키로 우리나라와 체코슬로바키아간의 대사급 외교관계가 22일 수립됐다. 체코를 공식방문 중인 최호중외무부장관은 이날 상오 9시(한국시간 하오 5시) 체코 수도 프라하에서 딘스트비에르 체코외무장관과 한­체코 외교관계 수립의정서에 서명했다. 한­체코간 수교는 지난해 2월 헝가리,11월 폴란드,12월 유고에 이어 동구권국가로는 네번째이다. 이날 서명된 수교의정서는 『한국과 체코정부는 상호존중과 유엔의 원칙및 목적에 따라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90년 3월22일 대사급외교 관계수립에 합의했다』고 밝히고 『이 의정서는 서명하는 날부터 발효한다』고 선언했다.〈관련기사3면〉 정부는 이와함께 23일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에서 한­불가리아 수교 공동선언문에도 서명,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할 예정이다.
  • 북한 기습남침 저의 다시 입증/제4땅굴발견 계기로본 속전속결 전략

    ◎시간당 수만명 후방 침투 가능/거의 대규모… 20여개 모두 DMZ에 판 듯 동부전선에서 북한이 판 남침용 땅굴이 또하나 발견돼 우리 국민은 물론,온세계에 다시한번 큰 충격과 놀라움을 안겨주고 있다. 북한은 그동안 잇단 무장공비의 침투,휴전선에서의 충격,푸에불로호의 납치,판문점에서의 도끼 만행 등 갖가지 도발을 일삼았고 그들이 판 땅굴 또한 이미 3개나 발견돼 우리들의 감각을 상당히 무디게 해온게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6∼7년동안은 눈에 두드러진 도발 행위가 별로 없었고 때마침 공산권의 개혁바람을 타고 동서 화해분위기가 무르익고 우리 또한 북방정책의 성공적 진전으로 남북의 긴장을 완화시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던 터에 엉뚱하게도 제4땅굴이 발견된 것이다. 이번에 발견된 북한의 제4땅굴은 지금까지의 3개와 마찬가지로 병력과 장비 이동을 위한 남침용 땅굴로 북한군의 기습 침략 작전을 추측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국방당국은 이같은 북한의 남침용 땅굴이 1백55마일에 걸친 휴전선 남쪽 2㎞ 안에 모두 20여개가있는 것으로 추정,그동안 탐색작업을 꾸준히 벌여오다 이번에 하나를 찾아냈다. 군사 전문가들은 북한의 남침용 땅굴은 남방 한계선까지 비교적 큰 규모로 판다음 그곳에서 여러갈래로 분산시켜 비무장지대 남쪽으로 대규모 병력과 장비를 투입할 수 있도록 설계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 땅굴은 차량ㆍ탱크ㆍ야포 등 중장비까지도 통과시킬 수 있으며 중무장한 전투병력이 3∼4열로 행군할 수 있는 규모이다. 특히 철원의 제2땅굴은 한시간에 3만명의 무장병력을 침투시킬 수 있는 가공할 만한 규모이다. 북한이 휴전선 일대에 남침용 땅굴을 파기 시작한 것은 남북적십자회담 등 남북대화가 시작될 무렵부터였다. 71년 9월 김일성은 노동당 대남공작 총책 김중린과 북한군 총참모장 오진우에게 기습 남침용 땅굴을 파도록 지시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김일성은 이른바 「9ㆍ25교시」를 통해 『남조선을 조속히 해방하기 위한 속전속결법을 도입하여 기습공격을 감행할 수 있게하라』고 지시,1대에 40억∼1백억원에 이르는 스웨덴제 고성능 암반굴착기 16대를도입,72년 5월부터 각 군단별로 2∼3개의 땅굴을 파도록 했다는 것이다. 북한군은 남침용 땅굴을 파면서 지하에서 폭발음이 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소리가 나지 않는 중국산 고성능 폭약을 사용하기도 하고 콤프레셔 등으로 바위를 깨뜨려가며 굴을 뚫었다고 한다. 땅굴을 파면서 나온 흙과 바위 등은 야간에 포장트럭으로 운반,아군측의 SR71이나 U2기 등 고공정찰기나 인공위성의 감시망을 교묘하게 피한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땅굴의 정체가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지난 74년 초 전방의 일산ㆍ문산ㆍ판문점ㆍ철원 부근에서 근무하던 병사들이나 민통선 북쪽에서 일하던 농부들이 『땅속에서 대포소리가 나며 화약연기와 안개 등이 피어오르는 등 비무장지대안 땅속에서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같다』고 전하면서 였다. 이때부터 우리군은 북한군측과 지상및 지하의 숨바꼭질을 벌이면서 그 정체를 밝히는데 온 힘을 다했다. 그때만해도 우리 군에는 굴착기나 착암기 등 제대로 된 장비가 없었기 때문에 국군장병들은 파이프를 가지고 다니며땅에 대고 소리를 듣는 원시적인 방법으로 탐지할 수밖에 없었다. 남침용 제1땅굴이 처음 발견된 것은 74년 11월15일 상오 7시35분 경기도 고랑포 동북쪽 8㎞ 지점에서 였다. 휴전선 군사분계선 남쪽을 정기적으로 순찰하던 국군 민경대원들이 지상의 공기구멍에서 증기가 새어나는 것을 보고 구멍을 통해 46m 아래 지하에 거대한 땅굴이 있음을 찾아낸 것이다. 이어 제2ㆍ제3의 땅굴이 잇따라 발견됐고 마침내는 3일 네번째 땅굴이,그것도 내외신기자들이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그 정체를 드러냄으로써 북한측의 기습남침 의도가 다시한번 폭로되기에 이른 것이다.〈김원홍기자〉 □남침용 땅굴 관계 일지 ▲74년11월15일=중서부 전선 고랑포 동북쪽 8㎞ 군사분계선 남쪽 비무장지대에서 제1땅굴 발견 ▲74년11월19일=국회,비무장지대 땅굴발견과 관련 북한의 격화된 침략행위에 대한 결의문과 대유엔 메시지를 만장일치로 채택. ▲74년11월20일=유엔군,비무장지대 감시조가 북한 터널 정밀탐색중 북한이 매설한 부비트랩이 폭발. 김학철해병소령과 벨린저미해군중령 사망 ▲75년3월19일=중부전선 철원 북쪽 13㎞ 군사분계선 남쪽 비무장지대에서 제2땅굴 발견 ▲75년3월21일=귀순용사 김부성씨(전 남파간첩 호송원)와 류대윤씨(전 북한군 소위)가 육군회관 기자회견에서 북한 땅굴공사 전반에 걸친 진상 폭로 ▲75년4월1일=제2땅굴 내부전모 내외보도진에 첫 공개 ▲78년10월17일=판문점 남쪽 4㎞에서 제3땅굴 발견 ▲88년9월8일=한미합동 탐사팀이 7개 지역에서 땅굴 징후를 발견 시추를 했으나 자연동굴로 밝혀짐 ▲90년1월=동부전선 양구지역에 땅굴 징후 발견 ▲90년3월3일=국내외 보도진 참관아래 제4땅굴 발견
  • 정주영씨 4차 방소 3월3일∼11일까지

    정주영 현대그룹명예회장은 오는 3월3일부터 11일까지 9일동안 소련을 방문할 것이라고 정부당국자가 20일 밝혔다. 정회장의 이번 소련방문은 지난해 1월이후 네번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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