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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산 8경 폭포와 어우러진 천성산 홍롱사

    양산 8경 폭포와 어우러진 천성산 홍롱사

    경남 양산을 세로로 가르고 있는 것이 천성산(922m)입니다. 고속철도(KTX) 터널 공사 문제로 진통을 겪으면서 ‘도롱뇽 소송’으로 널리 알려진 산이지요. 천성산 기슭에 홍롱사(虹瀧寺)라는 사찰이 있습니다. 그리 요족한 절집은 아닙니다. 주지와 도감 등 스님 몇 분과 절집 살림을 돕는 보살 몇 명이 고작이지요. 사찰의 규모 또한 1000년을 헤아리는 연혁에 비춰보면 매우 옹색한 편입니다. 그러나 홍롱사는 어느 대가람에 견줘도 뒤지지 않을 풍경의 보물을 숨겨두고 있습니다. 바로 양산 8경의 하나인 홍롱폭포입니다. 홍롱폭포의 첫인상은 사람의 손을 많이 탔다는 것입니다. 주변 계단이며 폭포수를 가둬두기 위한 웅덩이 등에 시멘트로 덧댄 흔적이 역력합니다. 또 매끈하게 조각한 약사여래불좌상을 폭포 옆의 거친 절벽 아래 세워둔 것도 다소 어색해 보입니다. 이처럼 따로 떼어놓고 보면 볼품없는 것들인데도 폭포와 함께 보면 참 절묘하게 어우러 집니다. 이국적인 느낌마저 듭니다. 필경 폭포가 넉넉한 품으로 주변을 아우르고 있는 것이겠지요. ●홍롱사가 홍룡사로 불리는 까닭 절집 초입 안내판에 따르면 홍롱사는 신라 문무왕 때인 673년 원효 대사가 자신을 흠모하던 당나라 승려 1000명에게 화엄경을 설법하기 위해 세웠다. 창건 당시엔 승려들이 절집 옆에 있는 폭포에서 몸을 씻고 설법을 들었다 해서 이름을 낙수사(水寺)라 했다. 산 이름 또한 원적산이었으나, 1000명의 승려 모두가 도를 깨우치고 성인이 됐다 해서 천성산(千聖山)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절집 이름인 홍롱사는 폭포에서 유래한다. 무지개 홍(虹)자에 젖을 롱(瀧)자를 쓴다. 그런데 절집 사람들이나 관광 안내책자, 교통표지판 등은 한결같이 한글로 ‘홍룡’이라 쓰고 있다. ‘무지개에 젖은 절집’이란 고운 뜻의 이름을 두고, 굳이 홍룡이라 부르는 까닭은 뭘까. ‘홍롱’보다는 ‘홍룡’이 발음하기 편하기 때문이다. 옛날 폭포 아래 살던 용이 무지개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이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있지만, 아무래도 기복신앙을 염두에 두고 후대에 만들어졌다는 느낌이 짙다. 홍롱사는 천성산 남쪽 기슭에 숨어 있다. 작은 도량이지만 ‘무지개에 젖은 절집’이란 뜻의 이름에서 풍기는 느낌처럼 입구부터 예사롭지 않다. 가파른 계곡 위에 축대를 쌓아 대웅전을 만들고, 산신각을 세웠다. 새단장을 마친 요사채 앞에는 굵은 대나무가 푸름을 자랑하고 있다. 계곡 아래로는 맑은 계곡물이 이끼 낀 바위를 타고 쉼없이 흘러 내린다. 수량이 풍부하고 곳곳에 쉬어 갈 만한 너럭바위가 널려 있는 데다, 숲도 우거져 한여름엔 더위를 피하려는 현지 주민들이 즐겨 찾는다. 계곡을 건너 절집으로 들어서는 반야교에 서있자면 꼭 선계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3단 홍롱폭포 물줄기 장관 하지만 홍롱사의 진면목은 이제부터다. 반야교 오른쪽의 수정문(守正門)을 지나 산신각 뒤로 이어지는 계단을 따라 오르면 홍롱사가 안배한 절정의 풍경이 숨어 있다. 호리병처럼 둥그렇게 파인 절벽 사이로 폭포수가 떨어지고 있다. 홍롱폭포다. 높이는 15m가량. 천성산 골골을 휘돌아 온 맑은 물이 줄기차게 떨어진다. 수량이 많을 때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자세히 보면 3단 형태로 되어 있다. 폭포수가 튀어나온 바위에 부딪치며 작은 물방울로 비산되는데, 이때 무지개가 형성된다. 마침 많은 비가 내린 뒤끝. 폭포는 물보라를 날리며 쏟아져 내리고 있다. 깎아 세운 듯한 절벽의 풍모 또한 당당하다. 비록 날씨가 심술을 부려 폭포에 무지개가 걸리는 장관은 볼 수 없었지만, 폭설처럼 쏟아지는 물줄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묵은 체증이 시원스레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다. 폭포 왼쪽에는 자그마한 관음전이 조용히 앉아 있다. 오랜 세월 물보라와 폭포의 진동에 시달렸을 터. 하지만 단아한 자태는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다. 관음전 안에서 밖을 보면 그대로 선 굵은 산수화다. 하얀 물보라와 진초록 이끼, 절벽에 붙은 나무들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그림을 펼쳐낸다. 폭포의 물줄기가 모여 작은 소를 이룬 곳엔 약사여래불상을 세웠다. 중생의 질병을 치료해 주고 재앙을 소멸시켜 주는 ‘약왕(藥王)’이다. 이처럼 물소리 요란한 곳에서 기도인들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그러나 홍롱사 주지 용은 스님은 “기도발은 바위발”이라며 일축했다. 스님은 “명산의 기도처는 모두 바위, 혹은 폭포 주변에 세워져 있어요. 바위에서 나오는 자력과 폭포수에서 나오는 음이온이 피를 원활하게 하고, 지치지 않고 수행할 수 있도록 돕기 때문이지요.”라고 설명했다. ●절집 한켠에 물레방아 세운 뜻은 경내 범종각 아래엔 물레방아가 설치돼 있다. 여느 절집에서도 쉬 보기 어려운 풍경이다. 절집 뒷산의 불타 죽은 나무를 모아 물레방아를 만든 이는 사찰의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처사 윤도하(53)씨다. 운전경력 40년의 버스 운전기사인 그는 우리 인생살이도 자동차 바퀴처럼, 또 물레방아처럼 둥글게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뜻에서 세웠다고 했다. “사람들이 하심(下心·자기 자신을 낮춤)을 되찾았으면 좋겠어요. 하루 400~500명의 승객들을 상대하다 보면,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남 탓만 하는 경우가 많아요. 내가 조금 손해보고 산다고 생각하면 좋을 텐데요.”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둔 그의 단상이다. 홍롱사 초입에도 범종 모양을 한 특이한 형태의 화장실이 있다. 불가에서 범종 소리는 잡귀를 물리치고 일체의 번뇌와 근심을 더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절집에서 화장실을 일컫는 해우소 또한 지극히 근본적인 근심을 덜어내는 곳이니, 둘은 서로 뜻을 같이하는 셈이다. 범종 화장실 앞에는 또 자동차 세차장에서 흔히 쓰이는 공기청소기가 마련돼 있다. 센 바람으로 먼지를 날리는 도구다. 근심을 덜어냈으니 이제 세속의 티끌을 털어낼 차례라는 심모원려(深謀遠慮·깊게 생각하고 멀리 내다봄)일까. 양산 글 사진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55) →가는 길 서울에서 갈 경우 경부고속도로 양산나들목을 나와 우회전, 언양 방면으로 2㎞쯤 가면 홍롱사 이정표를 만난다. 이정표에서 우회전, 4㎞쯤 가면 대석마을을 지나 절집 주차장이다. 버스는 동서울종합터미널과 남부터미널 등에서 각각 하루 4회 양산까지 운행한다. 양산에서 대석마을까지는 시내버스가 1시간마다 운행한다. 대석마을에서 홍롱사까지는 1시간 남짓 소요된다. 홍롱사 375-4177. →주변 관광지 영축산의 대가람 통도사와 계곡 풍광이 빼어난 내원사가 지척이다. 특히 내원사 노전암은 공양 때 맛깔스러운 20여가지 반찬이 나오는 것으로 유명하다. 천연기념물 제234호인 신전리 이팝나무는 요즘이 절정. 하얀 꽃이 나무 전체를 뒤덮은 자태가 꼭 밥그릇에 흰쌀밥을 고봉으로 퍼담은 듯하다. →맛집 민물매운탕은 양산의 향토음식. 물소리민물매운탕(381-0035), 두동민물매운탕(384-3395) 등이 그 중 손꼽힌다. 산채정식집은 통도사 인근에 몰려 있다. 경기식당(382-7772)과 부산식당(382-6426) 등이 현지 주민들이 즐겨 찾는 집이다. 산채정식이 7000원. →잘 곳 홍롱사에서 2~3일 정도는 숙박과 공양이 가능하다. 조용한 절집에서 하룻밤 묵는 것도 좋겠다. 비용은 불전함에 성의 표시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67) 장흥 제암산 철쭉평원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67) 장흥 제암산 철쭉평원

    5월이 오면 빼먹지 않고 찾는 곳이 있다. 산 좋고 바다 맑은 전남 장흥의 제암산(帝岩山, 778.5m)이다. 5월의 시작과 함께 축포처럼 피는 철쭉이 반갑고, 산행 후 수문항에서 키조개 안주에 술 한 잔 기울이는 맛도 즐겁다. 제암산은 옆 고을 보성 일림산과 더불어 국내 최고의 철쭉 명산으로 유명하다. 일림산이 부드럽다면, 제암산은 웅장하다. 5월에 제암산을 찾는다면 놓치지 말아야 할 곳이 1㎞가량 환상적인 철쭉밭이 펼쳐지는 곰재산 능선이다. 여기에 임금바위라 불리는 帝(제)자 형상의 정상 암봉을 넣어 코스를 잡으면 제암산의 아름다운 풍광을 거의 둘러볼 수 있겠다. 산행 코스는 금산리 신기 마을을 들머리로 간재에서 철쭉평원을 거쳐 임금바위까지 올랐다가 곰재로 내려오는 길이다. 특히 간재~곰재의 철쭉평원은 초등학생도 깔깔거리며 소풍 가는 순하고 좋은 길이다. 철쭉의 개화 시기는 작년에는 5월5일쯤 만개했지만, 올해는 꽃샘추위로 일주일가량 늦어져 5월12일 전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산행 들머리는 장흥 시내에서 10여분 떨어진 금산리 신기 마을. 버스 종점에서 500m쯤 걸으면 장흥 공설 공원묘지 주차장이 나온다. 이곳에서 비포장 임도를 따라 산행이 시작된다. 10분쯤 휘파람을 불며 걷다 보면 갈림길. 왼쪽으로 곰재로 가는 산길이 보이는데, 그곳으로 하산하게 된다. 다시 임도를 따르면 기다렸다는 듯 약수터가 나온다. 여기서 목을 축이면서 물통을 가득 채운다. 약수터를 지나 만나는 갈림길에서 왼쪽 간재 방향으로 들어선다. 이제 길은 임도와 산길을 번갈아 가다가 은근슬쩍 간재에 올라붙는다. 간재는 사자산(666m)과 제암산 사이의 고갯마루다. 간재에서 왼쪽이 곰재산 능선인데, 소나무 사이로 듬성듬성 보이는 철쭉들이 눈에 들어온다. 여기서 곰재산을 넘어 곰재까지 1㎞ 구간에 50여년생 철쭉나무가 10여만그루 자생한다. 철쭉은 산철쭉과 철쭉으로 구분된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많이 보는 빨갛고 흰 꽃이 산철쭉이고, 나무가 크게 자라며 연분홍색 큰 꽃을 피우는 것이 철쭉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두 종류 모두 그냥 철쭉이라고 부른다. 제암산의 꽃은 산철쭉으로 흰 꽃이 없고 오직 붉은색만 있어 더욱 화려하다. 철쭉은 기다림의 미덕을 간직한 꽃이다. 봄이 왔다고 성급하게 피지도 않고, 진달래가 피고 지기를 느긋하게 기다렸다가 봄의 대미를 화려하게 장식한다. 철쭉밭 사이로 뻗은 완만한 오르막을 따르면 점점 철쭉이 많아지고 빛깔도 한층 붉어진다. 길은 평지에 가까워지면서 곰재산 정상 일대는 철쭉의 물결로 일렁거린다. 철쭉평원으로 알려진 이곳에서 매년 철쭉제가 열린다. 곰재산을 넘어서면 철쭉은 더욱 많아지고, 그 뒤로 제암산 정상의 임금바위가 우뚝하다. 능선 왼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10m 높이의 암봉이 보인다. 사람들은 뭐가 바쁜지 그냥 지나치기 일쑤다. 이곳에 올라 보자. 능선에서 얼마 높지 않지만, 철쭉평원 일대와 그 너머로 보성의 들녘이 어울린 멋진 조망을 선사한다. 널찍한 암반에 앉아 쉬기도 좋다. 암봉에서 내려와 좀더 걸으면 곰재에 닿으면서 철쭉 군락지는 끝이 난다. 이제는 제암산 정상인 임금바위에 오를 차례다. 곰재에서 가파른 숲길을 20분쯤 오르면 형제바위 삼거리다. 삼거리 앞에서 넓은 초원 뒤로 웅장하게 버티고 선 임금바위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형제바위 삼거리에서 둔덕을 넘어 억새밭을 지나면 드디어 임금바위 앞이다. 임금바위는 거대한 바위절벽으로, 오르기가 만만치 않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그 앞에서 만족하는 것이 좋겠다. 천천히 바위벽을 살펴보면 잡고 디딜 만한 턱이 눈에 띈다. 그곳을 잡아 조심조심 올라서면 드넓은 너럭바위가 펼쳐지고, 시원한 바람과 함께 일망무제의 조망이 펼쳐진다. 동쪽의 풍요로운 웅치 들판은 호남정맥 산줄기로 둘러싸여 아늑하고, 남쪽 장흥 들판은 남해 너른 바다를 품고 있다. 하산은 다시 곰재까지 내려와 공원묘지로 향하는 것이 좋다. 형제바위 삼거리에서도 공원묘지로 내려올 수 있지만, 급경사 길이라 좋지 않다. 곰재로 내려오면 철쭉평원이 오후 햇살을 받아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다. 글 사진 여행전문작가 mtswamp@naver.com ■ 산길 가이드 신기 마을 공원묘지를 들머리로 간재~곰재산 철쭉평원~곰재~임금바위 정상~곰재~공원묘지 원점회귀 코스는 약 9㎞, 5시간쯤 걸린다. 곰재에서 임금바위까지가 좀 힘들고, 나머지 구간은 쉽다. 가족 산행이거나 체력이 떨어졌으면 곰재에서 하산하는 것이 좋겠다. ■ 가는길&맛집 서울에서 장흥행 버스는 센트럴터미널에서 08:50, 15:40, 16:50에 있다. 광주에서 장흥행은 05:35~21:05까지 30분~1시간 간격으로 있다. 장흥에서 신기 마을 가는 버스는 공용터미널에서 1일 6회(07:20, 09:00, 10:50, 13:30, 16:00, 18:35) 운행한다. 신기에서 장흥행 막차는 18:50. 장흥교통 061-863-0636. 철쭉이 만개할 때는 수문항에서 키조개가 절정이다. 바다하우스(061-862-1021), 정남진회타운(061-862-6700) 등에서 키조개 구이·무침·탕 등을 먹을 수 있다.
  • ‘이청준 문학자리’ 만든다

    ‘이청준 문학자리’ 만든다

    올해 2주기를 맞는 소설가 이청준(1939~2008)의 묘소 옆에 문학비를 포함한 ‘이청준 문학자리’(조감도)가 세워진다. 이청준추모사업회(회장 김병익)는 2일 이청준의 삶과 문학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전남 장흥 회진면에 위치한 고인 묘소에 7×7m 크기 돌판과 문학비를 설치해 2주기가 되는 오는 7월31일 개원식을 가진다고 밝혔다. ‘이청준 문학자리’에는 이청준의 문학 작품과 즐겨 사용했던 인장, 서명, 캐리커처, 문인들의 추모 글이 새겨진다. 문학비에는 고인의 문학적 발자취가 기록된다. 추모사업회는 “넓은 돌판을 너럭바위처럼 바닥에 놓아 방문자들이 그곳에 앉아 이청준을 기리고 사색에 잠길 수 있도록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노무현 전대통령 49재] 노 전대통령 묘역 지상·지하

    [노무현 전대통령 49재] 노 전대통령 묘역 지상·지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은 지하에 안장시설을 하고, 그 위에 돌을 얹은 청동기 시대 무덤인 고인돌 방식으로 조성됐다. 지하 안장은 유골이 담긴 토기를 석합(石盒)에 넣는 통일신라 시대 방식과 대리석 석함(石函)을 사용한 고려시대 방식이 함께 동원됐다. ‘노 전 대통령의 아주작은 비석 건립위원회’ 유홍준 위원장(전 문화재청장)은 “‘화장하고 아주 작은 비석 하나 세워라.’라는 노 전 대통령 유언과 ‘화장한 유골을 매장하고 봉분은 하지 않겠다.’는 유족의 뜻을 함께 따라 이 같은 안장 방식과 너럭바위 비석을 선택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비석 지하 콘크리트로 된 바닥에 가로 1.24m, 세로 0.68m, 높이 0.79m 크기의 검은색 대리석 석함을 설치했다. 석함 안에는 지름과 높이가 각 50㎝쯤 되는 연꽃 모양의 석합 2개가 들어 있다. 왼쪽 석합 안에는 노 전 대통령의 유골이 담긴 백자로 된 지름 30㎝, 높이 25㎝ 크기의 둥그런 그릇 모양의 도자기합이 들어 있다. 다른 1개의 석합은 권양숙 여사 사후에 대비해 미리 준비해 놓은 것이어서 안이 비어 있다. 석함에는 두께 66㎝인 덮개가 덮여 있고, 덮개 위에는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노무현’과 ‘1946-2009’를 한자와 아라비아 숫자로 새겼다. 석함과 연꽃 석합 사이에는 습기방지 등을 위해 참숮과 노 전 대통령이 생전에 좋아했던 봉하마을 근처 화포천의 모래가 들어 있다. 안장시설 지상에는 석함 크기에 맞추어 중간에 사각 구멍이 뚫린 가로 2.5m, 세로 4m 크기의 강판으로 된 받침대가 설치됐다. 받침대 앞에는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라는 노 전 대통령의 어록이 새겨졌다. 김해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씨줄날줄] 너럭바위/노주석 논설위원

    500년 묵은 선운사 동백꽃을 구경하려면 전북 고창 상갑리를 지나야 한다. 매산마을 남쪽 기슭을 따라 상갑리와 죽림리 2.5㎞에 걸쳐 고인돌 447기가 널려 있다. BC 4~BC 5세기쯤 조성된 동북아시아 최대규모의 고인돌 떼다. 지난 2000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받침돌 위에 놓인 덮개돌이나, 무덤의 뚜껑 구실을 하는 덮개돌처럼 북방식과 남방식 고인돌의 특징을 두루 볼 수 있는 곳이다. 고인돌은 큰 돌을 받치고 있는 돌이다. 굄돌, 괸돌이라고도 쓴다. 한자로는 지석묘(支石墓), 영어는 테이블 스톤(Table Stone)이다. 고대 켈트어로는 돌멘(Dolmen)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안장식이 어제 엄수됐다. 김해 봉하마을에 노 전 대통령이 유언했던 ‘아주 작은 비석’이 안치됐다. 너럭바위였다. ‘대통령 노무현’이라는 여섯글자가 새겨진 너럭바위가 비석과 봉분 역할을 한다. 비석건립위원장을 맡은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의 설명이 흥미롭다. “지하에 안장시설을 하고 그 위에 돌을 얹는다면 고인돌이라고 생각했고, 아주 작아야 한다면 북방식이 아니라 남방식이어야 하기에 메주덩이 바위가 아닌 너럭바위 모양의 상갑리 고인돌을 떠올렸다.”고 했다. 그는 자장면을 먹다가 이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털어놓았다. 안장식이 끝난 뒤 묘역에 놓여진 너럭바위는 충남 부여의 돌산에서 캐왔다. 가로 2m, 세로 2.5m가량의 화강암 재질이다. 작지 않지만 두께는 40cm로 나지막해 보는 사람이 부담스럽지 않다. 화장한 유골을 뿌리지 않고 매장을 하되 봉분은 쓰지 않겠다는 유족의 뜻이 담겼다.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은(儉而不陋, 華而不侈)’ 묘역조성의 철학이다. 너럭바위는 넓고 펑퍼짐한 바위를 뜻하는 순수 우리말. 겸재 정선(1676~1759년)의 ‘금강산 만폭동도’에서 동자를 거느린 선비가 산을 가리키며 서 있던 바로 그 바위다. 크기는 다르지만 동네 뒷산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너른 바위일 뿐이다. 전직 대통령의 무덤이 ‘봉분 없는 너럭바위’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우리 장묘문화에 의미있는 변화의 단초를 제공할지도 모르겠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사설] 노 전 대통령 안장, 이젠 편히 쉬길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어제 영면할 장소에 들었다. 고향인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 마련된 묘역에 고인의 유골이 안장되었다. 안장식에 앞서 유가족과 참여정부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49재를 올리는 의식이 있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고향마을에서 평안히 영면하기 바란다. 노 전 대통령이 자살이라는 충격적인 방법으로 생을 마감한 뒤 고인을 추모하는 국민적 열기가 대단히 뜨거웠다. 정치를 하는 동안 공과가 있겠지만 고인이 줄곧 추구했던 민주주의와 탈(脫)권위 정신을 기린 때문이라고 본다. 고인이 묻힌 곳은 삶과 죽음이 교차했던 고향마을이다. 고인의 유지에 따라 너럭바위를 비석 겸 봉분으로 삼았다. 국립묘지에 안장되지 않고 소박한 묘역을 조성한 것 역시 많은 국민들에게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갈 것이다. 이제 고인이 남긴 정신을 어떻게 이어갈지는 살아 남은 사람들의 몫이다. 현 정부는 이전 정부와의 차별화에만 너무 골몰해 권위주의 쪽으로 나아가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참여정부가 시행착오를 겪긴 했으나 민주화, 분권화 노력을 기울였고 서민을 위하려 했음을 인정해야 한다. 어떤 이념 지향의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지켜야 할 가치들이다. 민주당과 노 전 대통령의 측근들, 일부 진보단체들은 차분해지기 바란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고인의 뜻에 어긋난다. 고인을 내세워 정치결사를 만드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 용서와 화해를 당부했던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평화와 국민통합을 추구해야 한다. 안장식을 위한 봉하 전례위측도 “슬픔, 미안함, 원망을 내려놓자.” 고 강조했다. 고인의 평화로운 안식을 거듭 빌고, 유가족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보내면서 노 전 대통령이 남긴 가치가 올바르게 계승되기를 기원한다.
  • 노 前대통령 ‘작은 비석’ 자연석으로

    노 前대통령 ‘작은 비석’ 자연석으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지에 세워질 ‘아주 작은 비석’은 높이 40㎝, 가로·세로 각 2m 크기의 평평한 너럭바위 모양의 자연석으로 건립된다. 노 전 대통령의 아주 작은 비석 건립위원회(위원장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는 29일 화장한 노 전 대통령의 유골을 지하에 석곽을 만들어 안장한 뒤 그 위에 강판으로 된 받침대를 설치하고 받침대 위에 널따랗고 평평한 자연석을 얹어 봉분 겸 비석으로 삼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녹슨 것처럼 보이는 옅은 붉은색 강판으로 된 받침대는 가로 2.5m, 세로 4m, 두께 9㎜ 크기다. 받침대 중앙에 가로 1.5m, 세로 1.2m 크기의 사각 구멍을 뚫어 비석 아래 지하에 석곽을 설치하고 유골을 안장할 수 있도록 한다. 비석 건립위 측은 노 전 대통령의 유골이 안장되는 석곽은 권양숙 여사 사후에 합장도 감안해 설치된다고 덧붙였다. 비석에는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이 글씨를 쓴 ‘대통령 노무현’ 6자를 새긴다. 또 비석 받침대 앞쪽에는 노 전 대통령의 어록 가운데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라는 문장을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글씨를 써 새기기로 했다. 비석 건립위는 비문으로 새기는 문장은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기 직전까지 포기하지 않은 믿음 가운데 하나이며 민주주의를 언급할 때 자주 강조한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비석 주변 사방에는 박석(얇은 돌)을 깔아 관광객 등이 지나다닐 수 있도록 한다. 건립위는 비석으로 알맞은 자연석을 구하기 위해 전국 20여곳 채석장에 주문을 해 놓았다고 밝혔다. 김해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서울신문 다른기사 보러가기] 사무기능직 5000명 일반직 된다 10·11월 상장 ‘알짜’ 공기업 3곳은? 내년 공무원 임금격차 더 커진다 한국은행 속여 85억 챙긴 간 큰 조폐공사 1초에 17음절 ‘아웃사이더’ 미 주지사와 불륜 아르헨 여인 “누군가 이메일 해킹” 입 연 미네르바 “올 하반기도 불황 지속”
  • [Let’s Go] 동해안 품은 양양 암자 3곳

    [Let’s Go] 동해안 품은 양양 암자 3곳

    ‘조고각하(照顧脚下). 이 길을 걷는 자는 네 발밑을 살피라’. 강원도 양양의 바닷가 절집 홍련암 들어가는 절벽길 팻말에 써 있는 글귀다. 단순히 산길이 험하니 조심해서 건너오라는 충고에 그치지 않는다. 불가에서는 순간순간 스스로가 어떻게 처신하고 있는지 뒤돌아보라는 가르침으로 쓴다. 그래서 법당이나 승방의 댓돌 위에서도 간혹 볼 수 있다. 7번국도를 따라 강원도 양양 땅을 주유하다 보면 이처럼 파도 소리를 들으며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암자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하나같이 관음신앙의 성지로 각광받고 있다. 불경에서 관음보살이 흰꽃이 만발한 바닷가의 산에 상주하고 있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 바로 그렇게 돌아서면 바다, 돌아서면 절집이다. 귀와 눈 그리고 폐부를 씻기에 맞춤한 곳. 입춘도 지났고 봄은 이미 멀잖은 곳에 와 있다. 바닷바람이 차긴 하나 한겨울의 매서운 맛은 사라졌다. 새봄을 준비하는 당신, 이 바람에 겨우내 묵은 기운을 훌훌 털어내시라. 대가람 낙산사의 산내 암자인 홍련암(紅蓮庵)은 의상대에서도 북쪽으로 300m 정도 더 걸어가면 만날 수 있다. 암자 옆자락으로 철책선이 필요할 정도로 바다와 맞닿아 있다. 남해 금산의 보리암, 강화 석모도의 보문사와 더불어 3대 관음도량이라 일컬어진다. 여기에 여수 향일암을 더하는 이도 있는데, 숫자야 어찌 됐건 바닷가 절벽을 주춧돌 삼아 선 홍련암의 자태가 더없이 신비하다. 홍련암은 신라 문무왕 16년(676년)에 의상대사가 세웠다고 전해진다. 낙산사 창건에 앞서 관음보살의 진신(眞身)을 친견하려 했던 의상대사가 이곳에서 밤낮으로 7일 동안 기도하자, 바다 위에서 관음보살이 탄 붉은 연꽃이 솟아났다고 해서 홍련암이라 이름 지어졌다. 바다에 접해 있던 덕에 2005년 낙산사 화재 당시 화마를 피할 수 있었다. 법당으로 들어가는 문이 앞이 아닌 옆에 달려 있는 것이 독특하다. 절벽 위에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언뜻 봐서는 기암절벽 위에 세워진 것 같지만, 실은 파도가 들이쳤다가 나오는 바닷가의 자연동굴 위에 서 있다. 법당 마루에는 8㎝ 크기의 사각 구멍이 뚫려 있다. 이 구멍으로 바다와 절벽 그리고 해조음을 보고 들을 수 있다. 이런 까닭에 창건 이래 수많은 보수공사를 벌이면서도 이 구멍만은 손대지 않았다고 절집 관계자는 전했다. 양양8경의 하나인 의상대를 거쳐 홍련암에 이르는 구간은 내 나라 안에서 절경으로 손꼽히는 곳. 더할 나위 없이 시원하고 상쾌한 바닷가 풍경을 펼쳐 보인다. 특히 의상대는 일출 감상 명소로 새해 첫날이면 5000명의 해맞이 인파가 몰려들곤 한다. 겨울철만 되면 임연수어 낚시터로 유명세를 떨치는 동산항과 인구항 사이에 죽도라는 섬이 있다. 둘레 1㎞, 높이 54m로 섬이라고 부르기 민망한 크기다. 예전에는 뭍에서 떨어져 있었지만, 지금은 잇닿아 있다. 이름대로 장죽(대지팡이)으로 쓰이는 대나무가 사시사철 울창하다. 죽도암(竹島庵)은 섬 뒤편에 있는 듯 없는 듯 숨어 있다. 일부러 찾아가지 않는다면 절집이 있을 거라 생각하기 어려운 곳에 덩그러니 자리잡고 있다. 주지 도경 스님과 비구니 우성 스님 그리고 젖먹이 때부터 키웠다는 동자 셋이 가족처럼 어울려 산다. 죽도암 옆으로는 죽도해수욕장이 넓게 펼쳐져 있다. 세찬 바람이 불 때면 파도가 멍석처럼 둘둘 말린 채 밀려오는 멋진 풍경을 연출한다. 죽도암에 건물이라고는 관음전과 요사채뿐이다. 해수욕장에서 섬으로 난 좁은 길을 따라 들어가면 요사채가 먼저 눈에 띈다. 관음전은 오른쪽 커다란 바위 위에 터를 잡았다. 요사채 앞마당은 곧바로 검푸른 바다. 간혹 큰바람 불 때면 요사채까지 파도가 들이친다. 건물 자체로야 대단할 것 없지만 앞마당만큼은 세상 어느 부호의 저택과 견줘도 부럽지 않을 크기와 경관을 가졌다. 관음전의 문을 열면 동해 만경창파가 법당 안을 가득 채운다. 파도소리, 갈매기 울음소리와 어우러진 청아한 독경소리는 외지인의 가슴을 청량하게 씻어낸다. 암자 주변 바닷가에 늘어선 다양한 형태의 갯바위들은 풍취를 보태기에 모자람이 없다. 7번국도를 따라 주문진 방향으로 가다 남애 못미처 인구해수욕장 표지판을 따라 들어가면 죽도암이 나온다. 표지판이 작아 눈에 잘 띄지 않으니 주의해서 찾아가야 한다. 죽도암 주변 갯바위에 올라 남쪽을 향해 서면 거대한 불입상이 눈에 띈다. 휴휴암(休休庵)에서 조성 중인 관음보살상으로, 낙산사 해수관음상에 견줄 만한 크기다. 휴휴암은 죽도암에서 7번국도를 타고 남쪽으로 1㎞쯤 내려가다 만날 수 있다. 온갖 번민일랑 바다에 떨궈 버리고, 쉬고 또 쉬어 가라는 뜻에서 절집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1997년 묘적전이라는 법당 하나로 창건된 휴휴암은 바닷가에 누워 있는 듯한 와불 형상의 바위가 세인들의 관심을 모으면서 관광객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후 불사가 크게 일어 비룡관음전과 요사채 등의 건물이 들어섰고, 이젠 제법 번듯한 가람의 형태를 갖춰가고 있다. 더불어 고즈넉했던 풍경도 요족하고 번다한 풍경으로 바뀌었으니, 여행자들이 예전처럼 편히 숨 한자락 내려놓고 쉬어 가기란 쉽지 않게 됐다. 절벽 위에 세워진 ‘비룡관음전’을 내려서면 커다란 너럭바위에 닿는다. 연화법당이라 불리는 곳으로 휴휴암의 가장 큰 볼거리다. 너럭바위 20m 앞 오른쪽 해변에 있는 긴 바위가 해수관음보살이 감로수병을 들고 연꽃 위에 누워 있는 형상이란 게 이 절집 사람들의 설명이다. 너럭바위 주변의 와불, 발가락 바위 등도 이채롭다. 저마다 사연을 감추고 있는 바위들이어서 흥미를 더한다. 묘적전 옆의 동굴 법당에서는 대다라니경에 등장하는 85보살상과 만날 수 있다. 범종각 오른쪽에 세워지고 있는 16m짜리 관음보살상도 마무리 단계에 있다. ●여행수첩(지역번호 033) ▲가는 길 : 경기도 양평에서 44번국도를 타고 강원도 홍천, 인제 등을 지나 미시령과 한계령 갈림길에서 한계령 방향을 따른다. 한계령을 내려서면 양양이다. 양양 시내에서 속초방향으로 좌회전하면 낙산사, 우회전하면 죽도암, 휴휴암으로 향한다. 영동고속도로→현남 나들목→속초방향 7번국도→양양 등 역순으로 갈 수도 있다. ▲맛집 : 양양군 손양면 수산리 수산항 수산횟집(671-1580)은 사골국물로 육수를 낸 물회(1만원)가 일품이다. 휴휴암 인근 갑산메밀국수(671-1833)는 쫄깃한 막국수가 별미. 6000원. 서면 송천리 떡마을(673-7020)에선 장작불로 떡쌀을 삶고 떡메로 쳐 만드는 전통 떡을 맛볼 수 있다. ▲잘 곳 : 쏠비치 호텔&리조트(1588-4888)는 비수기에도 투숙객들이 몰리는 곳. 오산해수욕장을 품고 있는 ‘아쿠아월드’에서 동해의 만경창파를 바라보며 노천 온천을 즐길 수 있다. ▲인근 관광지 : 일출 명소로 유명한 하조대는 반드시 찾아야 한다. 기암괴석 사이로 솟아오르는 일출이 장관이다. 아름다운 항구로 손꼽히는 남애항도 찾을 만하다. 글ㆍ사진 양양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길섶에서] 겨울바다/함혜리 논설위원

    지인 한 분이 최근 큰 수술을 받았다. 쉬는 것도 익숙지 않은 탓에 집에서 있으려니 답답하다고 함께 바람 좀 쐬러 가자고 연락이 왔다.아직 회복이 완전히 안된 때여서 먼길 운전하기가 겁이 난다고 동행을 요청했다. 어디로 갈지 고민하다 안면도로 방향을 정했다.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서산IC로 나가서 간월도에서 굴밥 먹고,천수만에서 철새가 비상하는 것을 본 뒤 안면도에 가서 석양을 보고 올라오는 코스였다.길만 안 막히면 크게 무리가 없을 것 같았다. 천수만 철새는 이미 날아가고 없었지만 겨울바다와 석양은 기대 이상으로 근사했다.바람은 차가웠지만 겨울바다의 참맛이 바로 그거 아닌가.땀 흘리면서 산 위에 올라 너럭바위에 누워서 쐬는 바람도 좋지만 겨울바다에서 쐬는 바람은 더욱 좋다. 견디기 힘든 고통 앞에서 한없이 나약한 인간의 존재를 절감했다는 지인은 “가슴 밑바닥에 쌓였던 응어리가 풀어지는 것 같다.”고 했다.혼자 운전하는 것이 좀 힘들었지만 위로가 됐다는 말에 피로가 싹 가셨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오월’/송찬호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오월’/송찬호

    냇물에 떠내려오는 저 난분분 꽃잎들 술 자욱 얼룩진 너럭바위들, 사슴들은 놀다 벌써 돌아들 갔다 그들이 버리고 간 관(冠)을 쓰고 논들 이제 무슨 흥이 있을까 춘절(春節)은 이미 지나가버렸다 염소와 물푸레나무와의 질긴 연애도 끝났다 염소의 고삐는 수없이 물푸레나무를 친친 감았고 뿔은 또 그걸 들이받았다 지친 물푸레나무는 물푸레나무 숲으로 돌아가고 염소는 고삐를 끊은 채 집을 찾아 돌아왔다 (……) 지금은 청보리 한 톨에 바람의 말씀을 더 새겨넣어야 할 때 둠벙은 수위를 높여 소금쟁이 학교를 열어야 할 때 살찐 붕어들이 버드나무 가랭이 사이 수초를 들락날락해야 할 때!
  •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장혼이 한평생 설계했던 행복한 집 이이엄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장혼이 한평생 설계했던 행복한 집 이이엄

    중인들이 인왕산 언저리에 모여 살자, 아들들도 어려서부터 서당에서 같이 글공부를 하며 친구가 되었고, 장성해서 전문직을 얻은 뒤에도 함께 모여 시를 짓거나 인생을 이야기했다. 그 가운데 많은 친구들은 집도 이웃에 지어 한평생을 같이 살았다. 인왕산에서 중인 자제들을 가르쳤던 장혼은 오랫동안 집터를 물색하다가, 마음에 드는 위치에 헌집이 나오자 일단 구입해 놓았다. 그리고나서 다시 오랫동안 비용을 마련해 집을 지었다. 크지는 않지만 작지도 않은 집, 마음맞는 친구들이 함께 있으면 초가 삼간도 넓은 집이었다. 면앙정 송순도 “십년을 경영하여 초가삼간 지어내니”라고 시조를 읊었는데, 집터를 장만해 놓고 아침 저녁 마음 속으로 설계하는 동안 그는 너무나 행복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헌 집을 사다 인왕산에는 골짜기가 많아 무계동에는 안평대군이 무계정사를 지어 왕자와 사대부들이 모여 시와 그림을 즐겼고, 청풍계에는 김상용이 태고정을 지어 그의 후손인 노론 학자와 문인들이 모여 나라를 걱정했으며, 옥류동에는 중인 천수경이 송석원을 지어 위항시인들이 모여들었다. 천수경의 친구 장혼도 친구 따라 인왕산 자락에 집을 지으려고 대지를 물색하다가, 옥류천에서 멀지 않은 곳에 버려진 헌집을 찾아냈다. 그는 인왕산 옥류동의 모습을 이렇게 설명했다. “등 뒤로는 푸른 절벽의 늙은 소나무가 멀리 바라보이고, 앞쪽으로는 도성의 즐비한 집들이 빼곡하게 내려다보인다. 그 가운데로 맑은 시내물이 흘러가는데, 꼬리는 큰 시내에 서려 있고, 머리는 산골짜기에 닿아 있다. 졸졸졸 맑게 흐르는 물소리가 옥구슬이 울리고 거문고와 축(?)을 울리는 듯하다가, 비라도 올라치면 백 갈래로 물길이 나뉘어 내달려서 제법 볼 만하다. 물줄기가 모인 곳을 젖히고 들어가면 좌우의 숲이 빽빽하게 모여 있고, 그 위에 개와 닭이 숨어 살며, 그 사이에 사람들이 집을 짓고 살았다. 옥류동은 넓지만 수레가 지나다닐 정도는 아니고, 깊숙하지만 낮거나 습하지 않았다. 고요하면서 상쾌하였다. 그런데 그 땅이 성곽 사이에 끼여 있고 시장바닥에 섞여 있어,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별로 아끼지는 않았다.” 그가 말한 옥류동은 명승지이면서도 시장바닥에 가까워,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동네이다. 경복궁 옆에 있어 장안을 굽어보면서도 숲으로 가리워진 동네, 옥류동(玉流洞)이라는 이름 그대로 물 흐르는 소리가 옥구슬 구르는 소리같이 들리는 골짜기지만 개와 닭 소리가 들리는 동네이다. 낮거나 습하지 않아 사람이 집 짓고 살기에 알맞았지만, 일부러 대지를 구입해 집을 지을 정도로 애착을 가지지는 않았던 동네이다. 지금은 옥류천이 복개되어 옛모습을 찾을 수 없지만, 옥인동 자락의 형세는 그대로이다. “옥류동의 길이 끝나가는 산발치에 오래 전부터 버려진 아무개의 집이 있었다. 집은 비좁고 누추했지만, 옥류동의 아름다움이 이곳에 모여 있었다. 잡초를 뽑아내고 막힌 곳을 없애자, 집터가 10무(畝·300여평) 남짓 되었다. 집 앞에는 지름이 한 자 반 되는 우물이 있는데, 깊이도 한 자 반이고, 둘레는 그의 세 갑절쯤 되었다. 바위를 갈라 샘을 뚫자, 갈라진 틈으로 샘물이 솟아났다. 물맛은 달고도 차가웠으며,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았다. 우물에서 너댓 걸음 떨어진 곳에 평평한 너럭바위가 있어, 여러 사람이 앉을 만했다.” 중인들은 전문직을 지녔기에 도심에서 멀리 떨어져 살 수 없었다. 도심에 가까우면서도 아름다운 바위 사이로 시냇물이 흐르는 옥류동은 시인이 살기에 가장 알맞은 곳이었다. 그곳에는 영의정 김수항이 지은 청휘각을 비롯한 여러 누각들이 세워져 있었지만, 한쪽에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헌 집도 있었다. 집터는 10무 밖에 안되었지만 주변의 경치를 한눈에 즐길 수 있는 곳인데다, 열댓 명이 앉을 만한 너럭바위까지 있어 시 짓는 친구들이 모여 놀기에도 좋았다. ●여러 해 동안 마음 속으로 설계하고 꽃과 나무를 심다 “집값을 물으니 겨우 50관(貫)이라 그 땅부터 사 놓고는, 지형을 따라 몇 개의 담을 두른 집을 그려보기 시작했다. 기와와 백토 장식을 하지 않고, 기둥과 용마루를 크게 하지 않는다. 푸른 홰나무 한 그루를 문 앞에 심어 그늘을 드리우게 하고, 벽오동 한 그루를 사랑채에 심어 서쪽으로 달빛을 받아들이며, 포도넝쿨이 사랑채의 옆을 덮어 햇볕을 가리게 한다.(줄임) 앵두나무는 안채의 서남쪽 모퉁이를 빙 둘러 심으며, 그 너머에 복숭아나무와 살구나무를 심는다. 햇볕이 잘 드는 곳에 사과나무와 능금나무, 잣나무, 밤나무를 차례로 심고, 옥수수는 마른 땅에 심는다. 오이 한 뙈기, 동과 한 뙈기, 파 한 고랑을 동쪽 담장의 동편에 섞어 가꾸고, 아욱과 갓, 차조기는 집 남쪽에 구획을 지어 가로 세로로 심는다. 무와 배추는 집의 서쪽에 심되, 두둑을 만들어 양쪽을 갈라 놓는다. 가지는 채마밭 곁에 모종을 내어 심는데 자줏빛이다. 참외와 호박은 사방 울타리에 뻗어, 여러 나무들을 타고 오르게 한다.” 그가 그린 집은 호화주택이 아니라 작은 집이다. 기와도 얹지 않고, 백토도 바르지 않았다. 그 대신에 자기가 좋아하는 꽃과 채소를 심었으며, 햇볕과 달빛, 비와 바람이 차례로 그의 집을 찾아들게 하였다. 그가 짓는 집은 남에게 팔려고 짓는 집이 아니라, 자신이 평생 살려고 짓는 집이다. 그는 집을 짓기 전부터 마음속으로는 이미 그 집에 들어가 살았다.“꽃이 피면 그 꽃을 보고, 나무가 무성해지면 그 아래서 쉬었으며, 열매가 달리면 따 먹고, 채소가 익으면 삶아 먹었다.” 그는 마음속으로 집을 다 짓고 나자, 그 집에서 즐길 계획까지 구체적으로 세웠다. ●책 읽고 노래 부르며 천명을 따르면 그만인 것을 “손님이 오면 술상을 차리게 하고 시를 읊으면 그만이다. 흥이 도도해지면 휘파람 불고 노래를 부르면 그만이다. 배가 고프면 내 밥을 먹으면 그만이고, 목이 마르면 내 우물의 물을 마시면 그만이다. 추위와 더위에 따라 내 옷을 입으면 그만이고, 해가 지면 내 집에서 쉬면 그만이다. 비오는 아침과 눈 내리는 낮, 저녁의 석양과 새벽의 달빛, 이같이 그윽한 삶의 신선 같은 정취를 바깥세상 사람들에게 말해주기 어렵고, 말해주어도 그들은 이해하지 못할 뿐이다.” 그는 계속 “그만(而已)”이라는 표현을 즐겨 쓰더니,“나의 천명을 따르면 그만이다. 그래서 내 집 편액을 이이엄(而已)이라 했다(聽吾天而已,故扁吾以而已)”고 설명했다. 그의 집 이름이 ‘이이엄’이 된 것은 당나라 시인 한퇴지의 시에서 “허물어진 집 세 칸이면 그만(破屋三間而已)”에서 따온 것이기도 하다. 그는 꿈속의 집을 짓는 비용으로 300관을 계산했는데,“자나깨나 고심한 지 십년이 되었건만 아직도 이루지 못했다”고 했다.‘평생지(平生志)´라는 제목의 이 글을 쓸 때까지 그는 이 집을 짓지 못했지만, 그 집에서 살 계획은 여러 차례 밝혔다. 오래 된 거문고에서 옥도장과 인주에 이르기까지 “맑은 소용품 80종(淸供八十種)”을 선정해 놓았고, 사서삼경, 역사서, 이야기책, 시집, 의서, 연애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맑은 책 100부(淸寶一百部)”를 선정해 놓았다. ●인왕산을 백배로 즐기다 인왕산은 하나이고, 그가 사들인 땅은 10무 밖에 안되었지만, 그는 인왕산을 백배로 즐겼다. 그가 꼽은 “맑은 경치 열가지(淸景十段)”는 지난주에 소개한 옥계십경(玉溪十景)과 대부분 겹치니, 자신이 인왕산에서 찾아낸 열 가지 아름다움을 옥계사 동인들과 공유한 셈이다.“작은 언덕의 닭과 개” “골짜기 안의 채마밭”에서 사람 사는 모습을 찾아냈고,“밤낮 쉬지 않고 흐르는 샘물” “흐렸다 맑았다 하는 산기운”에서 자연의 움직임을 찾아냈다.“벼랑에 어린 가벼운 이내”에서 아침의 아름다움을,“푸른 봉우리에 비치는 저녁노을”에서 저녁의 아름다움을 찾아냈다. 우리나라 어느 마을에서나 눈에 띄는 모습이지만, 그 가운데서 아름다움을 찾아내며 즐겁게 살았다. 30세 이전에 ‘평생지´를 써서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집을 설계했던 그는 자기 뜻대로 삼간 집에 만족하며 살았다.“그의 집이 비바람을 가리지 못했으므로 남들은 그가 가진 것 없음을 비웃었지만” 그 자신은 69세 되던 해 입춘절에 “굶주림과 배부름, 추위와 더위, 죽음과 삶, 재앙과 복은 운명을 따르면 그만이다(聽之命而已)”라고 자부한 뒤, 이듬해에 세상을 떠났다.‘오양생(悟養生)´이라는 글 마지막 줄에 “이이엄주인이 스스로 짓다.”고 끝맺었으니, 서른이 되기 전에 인생계획을 세운 그대로, 인왕산 자락에서 늘 만족하며 살았음을 알 수 있다. 중인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이렇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허경진 연세대 국문과 교수
  • [산이 좋아 산으로] 전남 고흥 천등산

    [산이 좋아 산으로] 전남 고흥 천등산

    전라남도 동남단에 위치한 한반도 속 또 하나의 반도 고흥.172개의 작은 부속섬을 가진 고흥에서 세 번째로 높은 천등산(天燈山·553.5m)은 남쪽 바다를 향해 활짝 열린 바위산이다.‘봉우리가 하늘에 닿을 듯하다.’ 혹은 ‘스님들이 정상에 자주 올라 밤이면 수많은 등불이 켜져 있었다.’ 하여 ‘천등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천등산 정상에는 마복산과 연락을 주고받던 봉수대와 가뭄 때 기우제를 지냈다는 제단이 있다. 정상 아래 금탑사가 내려다보이는 너럭바위는 먼 옛날 신선이 내려와 바둑을 두었다는 전설이 깃들어 신선대(선인대)라 불린다. 바위에 새겨진 바둑판 모양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만큼 주변 경관이 뛰어나다는 의미일 것이다. 천등산과 임도로 갈린 남쪽의 딸각산(429m)은 바위를 밟고 오를 때마다 ‘딸각딸각’ 소리가 난다 하여 붙은 이름인데 월각산이라는 다른 이름도 있다. 천등산과 딸각산은 겨우 2㎞ 거리, 천등산 산행 코스를 잡을 때 딸각산과 이어보는 것도 좋다. 온통 바위더미로 이뤄진 딸각산에 서면 한적한 풍남항과 성벽처럼 견고한 천등산의 바위벽들이 잘 보인다. 두 산을 잇는 대표적인 코스는 송정마을∼딸각산∼천등산∼임도∼천등마을로 3시간쯤 걸린다. 두 산 사이 임도가 있어 차량 접근은 쉽지만 산행의 재미는 그만큼 덜하다는 단점이 있다. 임도를 거치지 않으려면 사동마을∼천등산∼헬기장∼딸각산∼송정마을 코스를 택하면 된다. 자가용을 가지고 갈 경우 원점회귀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사동마을에서 출발해 천등산과 딸각산을 거쳐 다시 사동마을로 내려오는 코스가 적당하다. 대신 딸각산 갈림길에서 사동마을까지 약 4.5㎞의 임도를 지루하게 내려서야 한다. ‘뱀처럼 생긴 계곡’ 사동마을의 사동저수지에서 산행이 시작된다. 저수지를 지나면 바로 천등산 산행 안내판이 나오고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왼쪽의 좁은 흙길은 안지재를 거쳐 정상으로 향하는 코스, 오른쪽 시멘트 도로는 정상 턱밑까지 이어지는 임도다. 어떻게든 정상에만 가겠다는 목적이 아니라면 임도로 갈 이유는 없다. 사실 퍽퍽하게 임도를 따라 걷는 일도 그리 녹록하지만은 않다. 등 뒤로 따라오는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산길을 걷노라면 산행 초입부터 높고 우거진 수풀이 앞을 가로막지만, 그쯤은 기꺼이 즐거운 푸념으로 넘겨야 한다. 인적 드문 천등산, 자연이 주는 천혜의 선물이니 말이다.30분 남짓 오르면 안지재에 닿고 이제 길은 나긋해진다. 안지재 지나 얼마 안 가 숨이 멎을 거처럼 빼곡한 숲에서 모처럼 시야가 트이고 뒤돌아보면 사동저수지 곁으로 벼락산(343.8m)이 보인다. 덩굴 무성한 암봉을 왼쪽으로 돌아서면 펼쳐지는 본격적인 바윗길. 정상까지 이어지는 바위 능선에 올라서면 온통 초록으로 뒤덮인 선계가 따로 없다. 특히 정상에서 5분 거리 신선대에 서면 동쪽 비자나무숲 아래 금탑사와 남쪽으로 이어지는 안장바위능선이 장관이다. 딸각산으로 선을 잇기 위해서는 철쭉공원을 지나 내려선 임도를 20여분 따라 걷는 방법과 헬기장 방향으로 능선을 따라 양천잇재 임도에서 곧바로 올라가는 방법이 있다. 임도에서 겨우 15분, 딸각딸각 바위를 딛고 다다른 딸각산 정상은 자칫 다녀가지 않았으면 크게 후회할 만큼 주변 경관이 아름답다. 사방으로 펼쳐진 신록의 세상, 삐죽삐죽 솟은 바위와 남쪽으로 활짝 열린 남해바다 정경에 한여름 더위도, 일상의 시름도 싹 잊게 된다. 글 정수정 사진 진우석(월간 MOUNTAIN 기자) # 가볼 만한 곳 나로도 우주센터를 건립 중인 고흥에서는 7월28일∼8월6일 10일 동안 ‘2007 고흥우주항공체험전’을 연다. 블랙홀 체험, 우주인 훈련코스, 남극체험 등 우주항공 관련 체험행사와 자연사박물관 전시, 우주곤충 전시 등 다양한 전시가 마련된다. 우주캠프, 물로켓 발사대회 등 청소년 관련 행사가 많으니 자녀들과 함께 산행 후 들러보면 제격이다(www.spacegoheung.co.kr). 고흥에는 19개의 해수욕장이 있어 여름철 피서지로도 적당하다.
  • ‘내금강’ 시범관광 동행기

    ‘내금강’ 시범관광 동행기

    금강산의 진수라 할 내금강이 지난달 말 시범관광을 갖고 6월부터 일반인들에게 개방됐다. 지난 1998년 시작된 금강산 관광이 9년 만에 외금강, 해금강에 이어 내금강으로까지 외연이 확대된 것이다. 한국관광공사가 마련한 2박3일 일정의 내금강 시범관광에 동행했다. 금강산 임태순기자 stslim @seoul.co.kr 사진 금강산 공동취재단 내금강과 외금강은 말 그대로 안과 밖이다. 동해를 바라보고 있는 바깥쪽이 외금강이고 내륙으로 면한 안쪽이 내금강이다. 유홍준은 ‘나의 북한문화유산답사기’에서 예부터 금강산을 유람한다는 것은 바로 내금강을 의미한다고 했다. 신라의 최치원, 고려의 이제현, 조선의 퇴계와 율곡, 근대의 이광수 최남선 등 당대의 쟁쟁한 문인들이 내금강을 노래했다. 내금강 계곡의 폭포와 못, 기암괴석엔 전설이 서려 있다. 나옹화상과 불상제작 경쟁을 벌였던 금동거사는 지는 바람에 내금강 울소바위에서 목숨을 끊었다. 방랑시인 김삿갓은 표훈사에서 ‘청산아 나는 안으로 들어가는데 녹수야 너는 왜 밖으로 나오느냐.’(我向靑山去 錄水爾何來)라고 읊었다. 일제시대에는 서울에서 경원선 열차를 타고 내금강으로 들어갔지만 지금은 멀리 강원도로 돌아가야 한다. 최근 남북철도 연결로 주목을 받았던 화진포 북단의 제진역 남북출입사무소에서 출경수속을 받고 버스는 북측 감호역으로 향했다. 온정리에서 북측 교예공연을 관람한 뒤 첫날 여장을 풀었다. 이튿날 아침 7시20분쯤 호텔 앞에서 인원점검을 마치자 버스는 북측 관리사무소로 이동했다. 잠시후 북측 안내원 2명이 올라탔다. 남자와 여자였다. 리남송이라는 남자 안내원은 자신의 이름은 ‘남산의 소나무(南松)’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며 ‘반갑습니다’라는 노래로 분위기를 풀어갔다. 버스는 외금강 만물상을 끼고 굽이굽이 힘겹게 올라간다. 온정령 정상까지는 고개가 106개나 있다고 한다. 차창 밖으로는 중국의 장가계를 연상시키는 만물상이 있지만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버스는 온정령 정상에서 가쁜 숨을 토해내고 내리막길로 들어선다. 마의태자의 묘, 장안사, 울소바위를 뒤로하고 2시간을 달려 버스는 표훈사에 도착했다. 경내의 능파루, 반야보전, 칠성각 등의 전각이 모두 단아하고 정갈하다. 오른쪽 길을 따라가자 잠시후 두 개의 바위로 이루어진 금강문이 나온다. 이제 속세를 떠나 신선세계로 들어오라고 하는 듯하다. 소나무 2개가 사이 좋게 맞붙은 부부소나무가 눈길을 끌더니 만폭동 계곡이 나온다. 원통골에서 흘러나온 물이 널찍한 바위를 타고 흐르며 못과 폭포를 형성해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 계곡에서 눈을 돌려 전후좌우를 바라보면 기암괴석과 울창한 수목이 반긴다. 갑자기 눈이 바빠진다. 조선시대 봉래 양사언은 금강대 너럭바위에 ‘만폭동(萬瀑洞)’과 ‘봉래풍악 원화동천(蓬來楓嶽 元化洞天)’이라는 글을 초서로 남겼다. 신선이 바둑을 둔 바둑판도 새겨져 있다. 비파담, 벽파담, 분설담을 지나면 오른쪽으로 깎아지른 바위에 조그만 암자가 밧줄을 생명줄로 해 위태위태하게 걸려 있다. 보덕암이다. 안내원은 하산길에 보라며 갈길을 재촉한다. 진주담, 구담, 선담이 풍부한 수량을 자랑하며 산행길의 더위를 식혀 준다. 마하연으로 가는 이정표가 있는 곳에는 세 개의 비석이 세워져 있다.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200여m 오르면 불교교리를 가르쳤던 마하연터가 나오지만 가볼 수 없다. 최종 목적지인 묘길상(妙吉祥)은 계곡 옆으로 난 외길을 한참 올라가야 한다. 두 사람이 간신히 서로 교행할 수 있을 정도다. 마침내 다다른 묘길상은 산행의 대미를 장식한다. 높이 15m, 좌우 폭 9.4m의 바위벽에 가부좌한 부처가 새겨져 있다. 불상 옆에는 묘길상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상호의 입초리에는 웃을 듯 말 듯한 미소가 머금어 있어 보는 이에게 온갖 추측을 불러일으킨다. 안내원은 조금 더 올라가면 비로봉이 나온다고 설명하지만 더 이상 갈 수 없다. 하산길에 구름다리를 건너 보덕암으로 향했다. 계단이 가팔라 땀을 뻘뻘 흘려야 했다. 몇백미터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번 산행에서 가장 힘든 코스였다. 왜 하산길에 구경하라고 했는지 이해가 갔다. 보덕암 뒷마당에 이르자 만폭동 계곡에선 잘보이지 않던 금강대, 무선대, 대·소 향로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안내원은 소 향로봉 위에 있는 작은 바위는 중 회정을 수도의 길로 이끈 보덕각시가 파랑새로 변한 것이라고 귀띔했다. 전망은 좋지만 바위마다 새겨진 글귀가 마음을 개운치 않게 한다. 표훈사로 내려와 뷔페로 점심식사를 하고 난 뒤 버스에서 설명으로만 들었던 울소바위, 장안사터를 여유있게 둘러볼 수 있다. ■ 이것만은 꼭 챙기세요!! 표훈사에서 묘길상에 이르는 3㎞ 남짓의 산길은 평탄하고 완만하다. 일정에는 왕복 2시간30분이라고 했지만 건장한 성인의 걸음걸이로는 여유있게 다녀오고도 남는다. 만폭동, 보덕암, 마하연, 묘길상 등에 북측 안내원이 배치돼 설명을 해준다. 하지만 미리 금강산과 관련된 책을 읽고 가는 것이 좋다. 등산화는 필수. 바위가 많아 비 오는 날에는 미끄러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계곡을 잇는 구름다리가 있지만 조금 불안하다. 더 많은 보조안전장치가 마련돼야 할 것 같다. 온정리∼표훈사 간은 40여㎞에 불과하지만 비포장이어서 두 시간가량 걸린다. 또 이동 중에는 화장실을 이용할 수 없어 미리 용변을 해결해야 한다. 표훈사∼묘길상 산길에는 마하연에 화장실이 있지만 시설이 충분치 않다. 하산후 온천욕도 피로를 풀기에 족했으며 옥류관에서 맛본 소천엽, 쏘가리즙 튀김, 더덕철판, 돼지죽순볶음, 지짐, 냉면은 양도 적당했으며 조미료를 많이 쓰지 않아 담백했다.
  • 고암 이응로 화백 머물던 예산 ‘수덕여관’ 7월 복원 마무리… 작품 전시장으로

    한국 현대 미술계의 거장 고암 이응로(1904∼1989) 화백이 머물던 충남 예산 수덕사 앞 ‘수덕여관’이 해체 복원돼 새롭게 선보인다. 1일 충남 예산군에 따르면 오는 7월 덕산면 사천리 ‘수덕여관’의 복원작업이 마무리돼 일반인에게 개방된다. 충남도기념물 제103호로 부지 300여평에 건평 80평 규모인 이 여관은 지난해 10월 군비 등 4억여원을 들여 복원작업이 착수됐다. 예산군은 기둥과 대들보만 남기고 모두 교체하고 있다. 초가지붕을 새로 입히고 썩은 서까래 등도 갈았다. 옛 정취를 되살리기 위해 ㄷ자형 집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했다. 여관에는 10여개 방과 부엌 등을 갖추고 있다. 군은 복원작업이 끝나면 템플스테이(사찰문화 체험)와 이 화백의 전시장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유가족과 유품 및 작품기증 문제를 논의 중이다. 고암은 40년대초 선배 화가인 나혜석을 만나러 갔다 수덕여관과 인연을 맺었다. 고암은 1944년 나혜석이 이곳을 떠나자 여관을 사들인 뒤 정착, 수덕사 주변 풍광을 그리다가 후배인 박인경(81)씨와 함께 58년 프랑스로 떠났다. 고암은 1967년 ‘동베를린 사건’에 연루돼 2년반의 옥고를 치르고 몸을 추스르기 위해 69년 2개월 동안 이곳에서 머물렀다. 이 때 새긴 추상문자 암각화가 뒤뜰의 너럭바위 두 곳에 남아 있다. 여관 현판도 고암이 직접 쓴 것이다. 수덕사는 2005년 말 고암의 큰조카로부터 이 여관을 사들였다. 예산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산이좋아 산으로] 강화 마니산

    [산이좋아 산으로] 강화 마니산

    한반도 최북단의 백두산과 최남단의 한라산의 중간에 자리잡고 있는 강화 마니산(469m). 단군왕검이 제사를 올리던 참성단을 품고 있는 마니산은 그렇게 한반도의 중심이 된다. 화도면 상방리 마니산국민관광지에서는 917개의 계단길로 겨우 1시간도 채 안 걸려 참성단에 닿을 수 있어 언제나 남녀노소의 발길이 북적인다. 쉽게 내어주는 길은 그만큼 느낌도 짧은 법. 들끓는 인파에 섞이지 않고 에둘러 가는 길을 택하는 것이 좋다. 산 들머리를 마니산국민관광지 대신 한적한 정수사 입구로 삼은 이유다. 서울에서 강화행 버스를 타고, 다시 터미널에서 한참을 기다려 시내버스를 달리는 동안에도 하늘은 내내 흐릿했다. 함허동천을 지나 정수사 입구에 닿았을 때 먼지를 일으키며 버스가 떠난 자리에 덩그러니 남겨진 우리 앞에 잘 포장된 아스팔트길이 놓여 있다. 얼마간 오르막을 걷다 뒤돌아보니 멀찍이 바다와 하늘이 맞닿고, 잠시 걸음을 멈추고 자세를 낮추니 길가 이름 모를 풀꽃들이 반가이 눈을 맞춰온다. 전등사, 석모도 보문사와 함께 강화 3대 사찰인 정수사를 살짝 비껴 오른쪽으로 난 등산로를 짚어간다. 와르르 무너진 듯 크고 작은 돌무더기가 듬성듬성 박힌 오르막이 꽤나 가파르다. 소나무와 참나무의 적절한 조화 사이 살짝 열린 하늘, 잠시 오솔길이 이어지다가 갑자기 덩치 큰 너럭바위가 나타난다. 풀썩 바위에 올라 정상까지 쭉 뻗은 암릉 초입에 서니 어느새 먹빛 구름이 말끔히 걷히고 동막리 장전마을 쪽으로 바다가 퍼런 속살을 드러낸다. 섬 산행의 묘미다. 산길은 이제 바윗길이 된다. 오르다 문득 뒤를 돌아보니 바다는 끝 간 데 없이 아득히 물러나고, 온몸으로 태양을 품은 갯벌은 캔버스 위 덜 마른 유화 같다. 소사나무 군락을 지나 여전히 이어지는 바윗길. 암릉은 오랜 세월 견고하게 쌓은 성곽처럼 산을 남북으로 갈라놓고 있다. 바위와 바위를 이어 건너는 사이, 지도에 정상이라 표시된 지점에 이르렀지만 정상 표지석이나 이정표는 없다. 지도와는 별개로 사람들이나 강화군에서는 참성단을 정상으로 여겨 제단 옆 헬기장에 정상 표지석을 세웠다고 한다. 지도상 정상에서 헬기장까지는 1.2㎞.20분 정도 지나 숲속으로 살짝 내려선 곳에서 참성단 중수비를 만나고 계속 남동쪽에서 북서쪽으로 이어지는 바윗길을 오르내리다 보면 실질적인 정상, 헬기장에 이르게 된다. 푸른 하늘과 푸른 바다를 배경삼아 서 있는 단군왕검의 제단 참성단은 그저 바라보고 우러러볼 뿐 들어갈 수는 없다. 하산은 참성단을 살짝 돌아 917개의 계단길로 곧바로 내려가면 30분 만에 마리산기도원에 닿고, 동쪽 능선을 따라 좀 더 가서 단군로로 내려가면 1시간30분쯤 걸린다. # 여행정보 강화에서의 먹을거리는 뭐니뭐니해도 신선한 바다회. 선수포구어판장(032-937-8702)에서 지금 전어 굽는 고소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또한 마니산관광단지 입구 단골식당(032-937-1131)의 꽁보리 산채비빔밥도 유명하다. 글 정수정 사진 남영호(월간 MOUNTAIN 기자) www.emountain.co.kr
  • [길섶에서] 벌초 가는 길/이호준 뉴미디어국장

    올해도 아버지 산소로 가는 길은 철조망을 넘는 범법행위로 시작한다. 새로 두른 철조망 가시가 흰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린다. 살아서 땅 한 평 갖지 못한 이는 죽어서도 묻힐 땅이 없다. 묘지 터를 찾아 자꾸 나라산(國有林)으로 몰려드니 철조망이라도 쳐서 막겠다는 것일 게다. 산을 오르는 길은 험하기 그지없다.1년에 한두 번 찾아오는 처지에 평탄한 길을 바라는 것도 염치없는 일이다. 발길이 끊어진 산은, 품고 있던 오솔길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저기가 으름을 따러 다니던 곳, 저 너럭바위는…. 어릴 적 놀던 곳을 찾아보지만 어림짐작일 뿐이다. 봉분의 잔디를 깎다 말고 그예 속울음을 터트린다.“아버지, 죄송합니다. 아직도 여기 계시게 해서….” 작년 추석에는 형제들이 모여 수목장을 해드리자고 뜻을 모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올해도 꽁지 빠진 장닭처럼 헐어 가는 잔디를 덮고 깊은 골에 누워있다. 망인의 거처야 살아있는 자들의 형편대로라지만, 가시철망 안에 모신 게 어찌 곤궁 때문만이랴…. 이호준 뉴미디어국장 sagang@seoul.co.kr
  • 상큼한 재충전 맛봐…추천 산 30곳

    상큼한 재충전 맛봐…추천 산 30곳

    올 여름 물 맑고 깊은 계곡을 찾아 신선놀음을 해보자. 울창한 나무가 하늘을 가리고 파란 이끼가 낀 바위틈을 이리저리 흐르는 투명한 옥수와 우렁찬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폭포의 장쾌함에 무더위는 씻은 듯 사라진다. 유명 휴양지처럼 변변한 편의시설 하나 없지만 자연을 벗하며 지내는 깊은 산속의 휴가는 지친 우리를 재충전시켜 줄 것이다. 전국에서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산과 계곡을 소개한다. 돗자리와 간단한 도시락을 가지고 한적한 계곡에 자리잡고 발이라도 씻으면 ‘어이구 좋아라.’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올 것이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31)신선도 반해버렸다! 무릉계곡 신선들이 사는 별천지인 무릉도원. 그곳에 가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아름답고 신비한 강원도 동해의 무릉계곡을 권한다. 계곡 입구부터 여느 계곡과는 다르다. 약 1500평 하얀 너럭바위가 계곡 전체를 이루고 휘감아도는 맑은 물이 옥구술처럼 흐른다. 사람 1000여명이 앉을 수 있는 커다란 반석 위에 조선 4대 명필로 꼽히는 봉래 양사언이 쓴 ‘무릉선원 중대천석 두타동천’(武陵仙源 中台泉石 頭陀洞天)이란 글씨뿐 아니라 여러 양반네들의 이름이 여기저기 적혀있다. 이런 바위에 걸터 앉아 즐기는 신선놀음에 도끼 자루 썩는지 모를 정도로 여유롭고 편안하다. 동해시 서남쪽의 두타산(1353m)과 청옥산(1404m)이 만든 이 계곡은 입구의 무릉반석에 취해 주저앉기 일쑤이지만 올라갈수록 깎아지른 듯한 벼랑과 계곡의 모습에 놀라게 된다. 무릉반석을 지나면 ‘학소대’가 나온다.4단 폭포의 모습이 흡사 학이 노는 모습과 같다고 붙여진 이름.20분을 더 올라가면 세월을 이야기하듯 켜켜이 쌓인 바위 주름을 타고 쏟아져 내리는 두줄기 폭포인 ‘쌍폭’, 거대한 화강암 바위 사이로 흐르는 하얀 물줄기가 여인의 섬섬옥수 같다는 ‘용추폭포’의 자태는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손꼽힌다. 이밖에 하늘문은 무릉계곡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전망대로 하얀 구름 모자를 눌러쓴 청옥산과 두타산의 모습에 넋을 잃는다. ■ 찾아가는길:영동고속도로→종점 바로 직전 갈림길 좌회전→강릉 나들목→동해고속도→7번국도→동해시 효가 사거리 우회전→40여분을 달리면 무릉계곡 ■ 여행정보:동해시에는 동해관광호텔(033-533-9215), 이스턴관광호텔(033-533-9700) 등이 있다. 현지에 무릉프라자(033-534-8855), 청옥장여관(033-534-8866) 등이 있으며 여름에는 계곡 상가에서 민박도 할 수 있다. 무릉계곡관리사무소(033-534-7306) (32)반갑다, 조경동 계곡 열목어야~ 인제군 기린면 방동리에 자리 잡은 조경동계곡은 여름에 잘 어울리는 곳이다. 구룡덕봉, 응복산, 가칠봉, 갈전곡봉 등 해발 1200m가 넘는 준봉들이 둘러싸고 있는 강원도 오지 계곡으로 열목어가 살고 있을 정도로 깨끗하다. 계곡산행의 참맛을 보려면 굳이 길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반바지 차림으로 물 가운데로 거슬러 오르는 여름 산행의 재미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 찾아가는길:44번 국도→홍천을 지나 철정검문소에서 우회전→451번 지방도로 고석평→31번 국도로 상남, 현리교, 진동2교→진동2교 앞의 보호수면지정 안내판 뒤로 돌아 농수로→계곡이 초입이다. ■ 여행정보:방태산 자연휴양림(033-463-8590)의 산림휴양관은 휴가철이라 예약이 어렵고 인근의 민박집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방태산민박(033-463-5488), 꽃피는 산골(033-463-7397), 대골민박(033-463-5791) 등이 있다. (33)발 담그기 미안한(?) 내리계곡 강원도 영월군 하동면 내리에 있는 내리계곡은 우리나라에서 몇개 남지 않은 생태계의 마지막 보루.7년째 자연휴식년제로 묶여 있는 곳으로 상류쪽으로는 사람들이 접근할 수 없는 곳이다. 다만 계곡 입구에서 4㎞정도 구간은 일반인에게 개방되고 있다. 물이 너무 맑고 깨끗해서 몸을 담그기가 민망할 정도. 계곡물도 비교적 잔잔하고 수심이 깊지 않아 어린이들이 물놀이 하기 좋다. ■ 찾아가는길:영동고속도로 만종분기점(중앙)→원주, 제천방향→신림IC(지방도88)→주천→영월→고씨동굴→하동-김삿갓 휴게소→칠룡교를 건너-와룡초등학교 내리분교를 지나면 내리계곡. ■ 여행정보:계곡에 야영을 해도 좋고 내리산촌(033-378-0515), 소나물골(033-378-0180) 등에서 잠을 잘 수 있다. 각종 나물에 된장을 섞어 보리밥이 유명한 장릉보리밥집(033-374-3986), 영월의 대표적인 먹을거리인 곤드레밥이 유명한 청산회관(031-374-3030)등에 가보자. (34)태고의 신비 궁금하다면 미산계곡 인제군 상남면 미산리에 있는 미산계곡은 아직 사람들의 발길이 많지 않아 자연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개인산 자락을 따라 형성된 계곡 주위에는 가문비나무 등 숲이 우거지고 큰 여울이 많다. 어름치, 쉬리, 버들치 등 1급 어종들이 모여 사는 생태의 보고다. 홍천군 율전에서 흘러온 물줄기와 미산계곡이 만나는 양지말 합수지점은 모래톱과 자갈밭이 넓어 아이들이 놀기에 그만이다. ■ 찾아가는길:홍천∼인제 44번 국도를 타고 가다 철정검문소에서 우회전→451번 지방도→상남 슈퍼 앞에서 446번 지방도로 우회전→미산계곡 ■ 여행정보:미산자락 펜션(033-463-7661), 예지나펜션(033-463-1920), 그린황토민박(033-463-6825). 강원도 손두부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미산민박식당(033-463-6921)에서도 음식과 숙박을 할 수 있다. (35)하얀 포말의 추억, 중원계곡 서울과 가까운 지리적 이점이 있는 경기도에도 태곳적 자연을 그대로 간직한 산과 계곡이 의외로 많다. 너무나 깨끗한 물과 하늘을 뒤덮은 아름드리 나무, 각종 새와 곤충들이 가득한 자연의 천국이다. 경기도 양평의 중원 계곡은 용문산 동쪽의 중원산과 도일봉 사이에 숨어 있어 사람의 흔적을 느낄 수 없다. 약 6㎞에 달하는 계곡에는 깨끗하고 맑은 물이 만드는 폭포와 소(沼)·담(潭)은 물론이고 바위에 가득한 이끼의 모습에 보기만해도 무더위가 사라진다. 마음에 드는 곳 어디에나 자리를 깔고 앉으면 그야말로 신선이 되는 그런 곳이다. 또 중원계곡을 따라 도일봉까지 산행을 할 수 있어 더욱 좋다. 입구부터 계곡 끝인 싸리재까지 자연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사방을 뒤덮은 울창한 나무 아래 햇볕 한점 쬐지 않고 물소리, 새소리를 노래 삼아 하는 계곡산행은 별미다. 버스 종점인 중원2리 매표소를 지나면 커다란 주차장이 나온다. 보통 여름에는 여기에 주차를 하고 걸어 올라간다. 하지만 위쪽으로 더 차를 몰면 승용차 20여대를 세울 수 있는 마지막 주차장이 나온다. 여기서부터 계곡이 시작된다. 나무로 만든 터널을 따라 20여분을 걷다 보면 물소리가 우렁찬 중원폭포가 나온다. 비록 작지만 3단 폭포로 주변의 깍아지른 듯한 절벽과 잘 어울린다. 피서철에는 여기까지 사람들이 찾아온다. 여기저기 삐쭉삐쭉 고개를 내민 바위를 조심하며 산길을 따라 오르다보면 몇번의 냇가를 건너고 울창한 나무숲을 헤치고 간다. 시원한 계곡물에 얼굴이라도 씻으려고 손을 담그면 시원함에 깜짝 놀란다. 여기서부터 적당한 장소에 앉아서 쉬면 된다. 파랗게 바위에 낀 이끼를 보니 정말 여기는 청정지역임에 틀림없다. 정말 여름 더위가 느껴지지 않는 그런 곳이다. 여름에는 중원산 정상보다 계곡을 따라가는 도일봉쪽이 인기다. 울퉁불퉁한 계곡길을 따라 걷다 보면 물줄기가 바위에 부딪치면서 생긴 하얀 포말이 치마처럼 펼쳐진다. 이른바 치마폭포다.20분 정도 걸으면 도일봉 갈림길이 있는 삼거리에 닿는다. 치마폭포 아래 삼거리에서 도일봉으로 오른 경우 대부분이 싸리재로 가다가 이곳으로 하산한다. 도일봉 정상까지는 40여분. ■ 찾아가는 길:서울에서 홍천으로 가는 6번국도→양수리, 양평→홍천 방향으로 직진→용문휴게소 지나 마룡교차로에서 용문사 방면 331국도→덕촌교에서 우회전 후 직진→조현초등학교를 지나 중원계곡. ■ 여행정보:쌍둥이민박(031-773-2188), 중원산장민박(031-774-4745), 도일봉먹거리민박(031-773-3998), 쉼터집민박(031-772-0516). 특별한 먹거리는 없지만 도일봉 먹을거리민박의 토종닭백숙과 오리백숙이 유명하다. (36)사나사 계곡은 마르지 않는다 사나사 계곡에 들어서면 서울 근교에 이렇게 조용하고 깨끗한 곳이 숨어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게 된다. 용문산에서 흘러내린 계곡 물이 맑고 풍부해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사나사 계곡은 길을 따라 만들어져 있어 걷다가 적당한 곳에 자리를 깔고 하루를 보내면 된다.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고려시대 고찰 사나사가 기다린다. 깊은 산속에 위치한 사나사는 작고 아담하지만 오랜 역사을 지닌 유서 깊은 절이다. ■ 찾아가는 길:6번 국도를 타고 양평 못미쳐 옥천에서 한화콘도→옥천 읍내→37번 국도와 만나는 막다른 삼거리에서 우회전→5분 정도 가다가 용천리 방면으로 좌회전→첫번째 다리를 건너 계속 직진하면 된다. 다른 방법은 용천리 방면 이정표를 지나쳐 200m정도 더 가면 양평 유기농마을이나 양평종합건설이란 간판이 나온다. 좌회전을 해서 계속 길을 따라 가면 사나사 계곡을 만날 수 있다. ■ 여행정보:선우산장(031-772-7665), 옥천타운(031-771-0067), 훼미리파크(031-771-1866)에서는 닭백숙, 오리탕 등을 팔고 있다. (37)알프스 뺨치는 어비계곡 어비계곡은 아는 사람들만 찾았던 청정계곡이다. 풀냄새와 맑은 물로 가득하다. 어비계곡을 따라 자동차로 오르면 마을이 나타난다. 여기가 양평의 오지인 갈현부락. 파란 산을 배경으로 들어선 예쁜 펜션에 마치 알프스의 마을에 온 듯한 착각에 빠져든다. 이름 모를 새들의 노래에 맞춰 하얀 들꽃이 바람에 춤추는 마을. 밤이면 은가루를 뿌려놓은 듯한 별들이 가득한 곳. 이런 곳에서의 하룻밤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든다. ■ 찾아가는 길:양평으로 가는 6번 국도→옥천에서 한화콘도 방향으로 좌회전→37번 국도와 만나는 막다른 삼거리에서 좌회전→농다치 고개를 올라 끝에서 유명산 자연휴양림 방향으로 우회전→200m정도 가다가 어비계곡쪽으로 좌회전. ■ 여행정보:밤나무펜션(031-772-5246), 어비계곡자연산장(031-771-0904), 개울가의 성(031-772-5491), 목소리펜션(031-774-1266), 아일랜드펜션(011-361-9118) (38)조무락골엔 골뱅이가 산다? 조용한 계곡이 많은 경기도 가평에서도 조무락골은 비교적 사람들에게 덜 알려져 1급수의 깨끗한 물과 원시림이 잘 보존되어 있는 곳이다.‘숲이 우거지고 늘 새들이 조잘거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 조무락골은 적목리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개울이다. 6㎞정도 계곡이 형성되어 있는데 폭포·소·담이 줄줄이 이어져 아름답다.30분쯤 가면 ‘무주채폭포’를 만난다. 또 물이 똬리를 틀듯 흐르며 돌아서 떨어지는 ‘골뱅이 소’, 호랑이가 웅크린 모습을 하고 있는 ‘복호폭포’ 등 볼거리가 많다. ■ 찾아가는 길:46번 경춘국도로 타고 마석, 대성리, 청평→가평군청 표지를 보고 좌회전→363번 도로→가평읍내를 지나 목동삼거리에서 좌회전→명지계곡과 익근리계곡을 지나면 오른쪽으로 음식점과 38교가 나온다. 우측 계곡이 조물락골의 시작이다. ■ 여행정보:훼미리하우스(031-582-6891), 조무락(031-582-6060) (39)청룡·황룡의 보금자리, 쌍룡계곡 경북 문경의 쌍룡계곡은 소백산맥이 마지막 힘을 모아 빚어 놓은 비경으로 도장산과 불일산의 기암괴석과 층암절벽 등 조물주의 걸작들이 즐비하다. 청룡·황룡이 살았다고 해 쌍룡계곡이라 불린다. 달밝은 밤이면 하늘나라 선녀들이 내려와 목욕을 하였다는 선녀탕, 용이 놀다 간 흔적도 바닥에 새겨져 있다. 물가에 세워진 자그마한 정자인 ‘사우정(四友亭)’에서 계곡이 시작된다. 길을 따라 절경이 펼쳐지고 쌍룡터널 부근에서 절정을 이룬다. 계곡 입구에서 왼쪽 길을 택해 다리를 건너면 깨끗한 물이 샘솟는 쌍용약수가 있고 2㎞ 남짓 계곡 길을 계속 오르면 다락골 수련관에 이르게 된다. ■ 찾아가는 길:영동고속도로→중부내륙고속도로→문경새재 나들목→함창→농암을 거쳐 쌍룡터널로 가면 된다. ■ 여행정보:계곡 주변 민박은 서형석(054-571-3690), 유복만(054-571-1946) 등이 있고 문경시내에는 IMT모텔(054-555-9890)과 관광호텔 등이 있다. 도토리묵·도토리손칼국수로 이름난 새재 ‘초곡관’(054-571-2320), 토종닭백숙과 두부전골로 맛있는 ´김용운달식당’(054-552-6644)은 김룡사 들머리에 있다. (40)20리 환상적 비경, 보경사계곡 경북 포항 보경사계곡은 굽이굽이 20리 골짜기로 온갖 비경을 다 보여준다. 보경사를 지나자마자 깎아지른 듯한 기암절벽이 골짜기 양옆에 우뚝 서 있고, 상생폭·보현폭·삼보폭 등 기묘한 형상의 크고 작은 폭포가 이어진다. 젊은 남녀의 애틋한 사랑 얘기가 전하는 비하대를 지나 관음폭과 연산폭의 장쾌한 물줄기는 시원함을 더해준다. 널찍한 암반과 협곡 사이로 옥수가 흐르고 또 다시 기묘한 폭포가 이어지는 멋진 계곡이다. ■ 찾아가는 길:경부고속도로→영천나들목→포항으로 가는 28번국도→포항입구인 안강에서 925번 지방도→안강에서 신광을 걸쳐 송라면→보경사 표지를 보고 가면 된다. ■ 여행정보:보경사 입구의 연산온천파크(054-262-5200), 영일식당(054-262-1130), 삼보가든(054-262-2224), 삼지봉식당(054261-6679) 등 민박을 겸하는 음식점이나 슈퍼마켓들이 많다. (41)화림동 계곡은 정자 문화의 메카 남덕유산(1508m)에서 시작하는 물줄기가 만든 경남 함양 화림동계곡은 기이한 바위와 담·소를 만들고 ‘농월정’에 이르러서는 맑고 푸른 물과 소나무가 어우러져 ‘무릉도원’을 만들었다. 장장 60리에 이르는 이곳은 우리 정자 문화의 메카라고 불린다. 계곡 전체의 넓은 암반 위에 수많은 정자들과 기암괴석이 어우러진다. 아름다운 주변의 풍경 속에 농월정(弄月亭) 정자가 그럴 듯하게 눈에 띈다. 정유재란 때 황석산 산성에서 순직한 인근의 주민들과 관군들의 넋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황암사’·경모정·동호정·거연정 등 아름다운 정자들이 곳곳에 있다. ■ 찾아가는 길:대전~통영간 고속도로 지곡나들목→안의→농월정. 아니면 서상나들목→26번국도→거연정부터 먼저 돌아볼 수도 있다 ■ 여행정보:동원가든(055-962-4400), 군자가든(055-962-9525), 메기찜이 일품인 농월정 한쪽편의 거창식당(055-962-4498), 갈비찜과 탕이 별미인 안의갈비탕(055-962-2848) (42)고선계곡의 아름다운 물줄기 험준한 준봉들이 즐비한 봉화에서도 가장 깊은 오지로 불리는 지역이 소천면이고, 여기에서 가장 깊숙한 골짜기가 바로 고선계곡이다. 태백산에서 시작하는 고선계곡의 물줄기는 시원하며 깨끗하다.50리에 이르는 계곡의 물에 어른거리는 산그림자가 너무 아름다워 살아 있는 그림을 보는 듯하다. 길고도 깊은 이 계곡의 곳곳에는 자갈과 모래가 알맞게 섞인 캠핑 사이트가 널려 있어 야영지로도 아주 제격이다. ■ 찾아가는 길:중앙고속도로 서제천나들목(5번 국도)→영주(36번 국도)→봉화→현동(31,35번 국도 병행구간)→고선리 마을 입구에 도착한다. ■ 여행정보:박창덕(054-672-7367), 이완교(054-672-7365) 등이 민박을 운영하며 고선리 명산랜드(054-673-9966)는 여관·식당·사우나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휴게소. 맛있는 소고기로 이름 높은 봉화한약우 본점이(054-672-1091) 인근에 있다. (43)살아있는 작은 정글, 물한계곡 해발 1000m가 훌쩍 넘는 삼도봉, 석기봉, 각호산, 민주지산에 둘러싸여 있는 충북 영동군 상촌면 물한계곡은 그야말로 생태계의 보고. 계곡을 덮고 있는 숲엔 꾀꼬리, 노랑할미새 등 수십 종의 새들이, 물속엔 쉬리, 버들치, 동사리 등이 어우러져 산다. 황룡사에서부터 용소(일명 무지개소)에 이르는 구간이 가장 아름답다. 물한리에서 삼도봉으로 오르는 길은 옥소폭포·의용골폭포·음주암폭포·장군바위 등 폭포와 숲 등이 어우러져 그야말로 정글을 연상케 한다. ■ 찾아가는 길:경부고속도로 황간나들목→49번 도로→매곡→상촌면 방향으로 30분 정도 달리면 상촌초등학교→물한계곡 이정표 ■ 여행정보:진수암민박집(043-744-1350), 밤골민박집(043-745-6333), 호도나무민박집(043-744-3675) 등이 있다. 선희식당(043-745-9450)의 어죽(4000원)이 유명하다. 또 황간읍의 안성식당(043-742-4203)의 올갱이국(5000원)도 별미. (44)용하구곡의 아홉 가지 매력 월악산 남쪽의 만수봉과 동남쪽의 문수봉이 만들어내는 용하구곡은 무려 16㎞에 걸쳐 비경이 이어지는 계곡이다. 아름다움을 아홉가지로 압축시켜 놓았다고 해 용하구곡이라 부른다. 약 높이 35m, 길이 100m의 폭포가 천연동굴 위로 쏟아져 내리는 장쾌함이 느껴지는 수문동폭포, 다섯개의 큰 바위가 층계를 이루고 맑은 물이 소를 이룬 청벽대, 집채만 한 바위 위로 흘러내리는 폭포가 장관인 수렴선대, 수곡용담, 관폭대, 선미대, 수룡담 등이 장관이다. 아름드리 나무들과 이끼가 끼지 않는 맑은 물, 바위가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절경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계곡물에 손을 담그면 시원함이 뼛속까지 스며든다. ■ 찾아가는 길:영동고속도로→중앙고속도로 단양나들목→충주방면 36번국도→ 덕산면 용하구곡 ■ 여행정보:억수휴게소(043-653-0295), 용하휴게소(043-651-6555), 용하수민박(043-653-3829)이 있다. 이밖에 도원가든(043-651-9755), 큰덕골가든(043-651-1164), 삼룡매운탕(043-651-1933) 등 식당도 추천한다. 월악산 국립공원 관리사무소 (043-653-1205) (45)용현계곡에서 조약돌셈 내기를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에 위치한 용현계곡은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계곡물은 바닥에 깔린 조약돌을 셀 수 있을 정도로 맑고, 숲에서 내뿜는 솔내음은 가슴까지 상쾌하게 만든다. 가야산 기슭에서 시작된 물줄기는 계곡마다 솟아난 바위들을 예쁘게 다듬어 놓아 아이들과 물놀이 하기에 ‘딱’이다. ■ 찾아가는 길:서해안고속도로 서산 IC→32번국도→운산→고풍리→서산마애삼존불상→보원사지에서 용현계곡 표지가 나온다. ■ 여행정보:서울민박(041-664-3663), 푸른산장민박(041-664-1715)이 있고 산수가든(041-663-4567)의 토종닭이 맛있다. (46)인적 드문 마을의 갈론 계곡 괴산댐을 지나 굽이굽이 고갯길을 30분 정도 달려 길이 끝나면 마주치는 갈론마을. 이 마을 뒤쪽에 있는 것이 갈론계곡이다. 편의점, 음식점, 심지어 주차장도 없다. 모든 준비물을 직접 가지고 가야 한다. 물 속에서 노니는 물고기가 눈에 들어올 정도로 물이 맑고 깨끗하다. 계곡을 따라 걷다 보면 군데군데 자투리 땅에 1∼2평 남짓한 자그마한 논과 감자와 고추, 산딸기, 청개구리까지 만날 수 있다. ■ 찾아가는 길:영동고속도로 여주분기점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괴산나들목→34번 국도를 타고 괴산→괴산수력발전소 표지를 보고 좌회전 ■ 여행정보:식당도 여관도 없다. 마을에 3∼4곳의 민박집이 있다. 여기에서 된장과 산나물로 지은 백반(4000원)을 맛볼 수 있다. 강완수(043-832-5614)씨에게 문의하면 연결을 해준다. 괴산의 맛집으로는 호산죽염된장집(043-832-1388)이 있다. 된장 양념한 돼지숯불구이와 한정식을 포함해 1만원. (47)내변산이 바다를 만났을 때 전북 부안의 변산반도는 남서부 산악지를 내변산, 그 바깥쪽 바다를 끼고 도는 지역을 외변산이라고 할 정도로 두 얼굴을 가진 지역이다. 변산해수욕장, 채석강 등에 비해 그 안쪽 내변산의 절경은 잘 알려져있지 않다. 내변산은 해발 508m로 높지 않은 산이지만 호남의 5대 명산 중 하나. 쌍선봉 옥녀봉 관음봉 선인봉 등 400m 높이의 봉우리들이 계속 이어지고 골도 깊다. 내변산에는 높이 20m의 시원한 물줄기를 뿜어 내리는 직소폭포,30∼40m의 커다란 바위로 된 울금바위, 우금산성 외에 가마소·봉래구곡·분옥담·선녀당 등이 아름다운 비경을 간직하고 있다. 또 잣나무가 가지런히 심어져 있는 천년 고찰인 내소사, 서해를 붉게 물들이는 ‘월명낙조’로 이름난 낙조대의 월명암을 품고 있다. ■ 찾아가는 길:서해안 고속도로→부안나들목→30번 국도→섶못삼거리에서 우회전→736번 지방도→부안호를 지나면 봉래구곡으로 좌회전하면 내변산의 시작이다. ■ 여행정보:내변산 주변에 관광휴게소(063-583-2722)에서는 식사와 민박을 겸할 수 있고 산고을가든민박(063-583-3003), 남여치가든(063-581-7577) 등이 있다. (48)옛 풍류가 머무는 곳, 가마골 전라남도 담양군 용면 용연리에 있는 용추산(523m)을 중심으로 사방 4㎞에 이르는 골짜기가 가마골이다. 깊은 계곡 사이로 쏟아지는 용연폭포와 갖가지 기암괴석들이 즐비해 경관이 수려하다. 또 약 900명이 야영할 수 있는 야영장을 비롯해 각종 편의시설이 갖추어져 가족과 함께 더위를 피하기는 그만이다. 가마골은 소설과 영화로 잘 알려진 ‘남부군’의 배경으로도 유명하다. ■ 찾아가는 길:호남고속도로 백양사 나들목 빠져 약수리 삼거리에서 좌회전→1번 국도로 담양방면→894번 지방도로 담양→향교교→용면 삼거리 우회전해서 29번 국도→용면 삼거리→792번 지방도로 가다보면 가마골 이정표가 나온다. ■ 여행정보:에버그린(061-383-9200), 추월산장(061-383-0816), 베스트여관(061-383-8800) 등 숙소가 있고 소문난 떡갈비집인 신식당(061-82-9901)과 한정식이 푸짐하고 맛있는 전통식당(061-82-3111)도 권할 만하다. (49)빨치산의 아픔 녹아있는 백운동 계곡 지리산 자락에 안긴 산청 웅석봉(1099m)이 만들어 낸 곳이 전북 진안 백운동계곡이다. 규모가 크지 않지만 깨끗하고 거센 물줄기가 구름처럼 널린 희디 흰 바윗자락을 타고 굽이쳐 쏟아지는 모습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길고 짧고 넓고 좁은 폭포들과 깊고 얕고 짙푸르고 맑은 소와 담이 줄줄이 이어져 마치 잘 그린 동양화 한 폭을 보는 듯하다. 나라가 어려울 때 상소를 올려 직언을 서슴지 않았던 대쪽같은 성품을 지닌 조선 중기 성리학의 대가인 남명 조식이 제자들과 풍류를 즐기기도 하고 나라 걱정에 눈물을 흘렸던 곳이 바로 백운동계곡이다. ■ 찾아가는 길:대전 통영간고속도로의 장수IC로 나와 장계에서 26번 국도→천천면→진안→30번 국도→마이산도립공원을 돌아 마령→운교리→백운초등학교 좌회전→백운동계곡 ■ 여행정보:백운관광농원(063-432-4589), 백운 산촌마을(063-432-5188), 동신체험마을(063-432-3008) 등에서는 숙박과 자연체험이 가능하다.25가지 반찬이 나오는 금복회관(063-432-0651)의 한정식이 유명하며 아기돼지의 애저찜이 유명한 진안관(063-433-2629) 등은 소문난 맛집이다. (50)호남의 금강 강천사 계곡 전남 순창 강천산은 그 빼어난 아름다움에 ‘호남의 금강’으로 불릴 만큼 산세가 빼어나다. 산자락 병풍바위에서 쏟아지는 시원한 물줄기에 더위가 사라진다. 사람이 인공적으로 만든 폭포라 좀 씁쓸한 감은 있지만 그래도 장관이다. 강천사 계곡은 아이들과 더위를 피하기에 좋다. 물이 깊지 않고 둥근 자갈돌이 바닥에 깔려 있어 계곡치고는 사고의 위험이 없이 물놀이를 즐길 수 있다. 등산로를 따라 선녀계곡 지적골 분통골 등 작은 계곡이 계속 이어져 여름철 산행지로도 그만이다. 강천사 팔각정 옆으로 지상 50m에 아슬아슬 달려 있는 구름다리 또한 이곳의 명물. 발을 내디딜 때마다 흔들려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흐른다. 구름다리 건너 신선봉 전망대에 오르면 발아래로 산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 찾아가는 길:호남고속도로 정읍IC→29번국도→21번국도→93번 지방도→강천산 주차장, 호남·영남권에선 88고속도로 순창IC→24번국도→793번 지방도→강천산 ■ 여행정보:구룡파크장(063-652-6767), 영빈장(063-652-6060), 이화장(063-653-8000) 등 숙박시설은 많다. 반찬이 20가지 정도 나오는 충장로식당(063-652-5388)의 백반(6000원)은 맛깔스럽다.
  • [부산에서 서울까지 다시 걷는 옛길] (2) 양산길

    [부산에서 서울까지 다시 걷는 옛길] (2) 양산길

    부산 동래 하정마을에서 경부고속도로를 따라 올라온 옛길은 지금의 부산시와 경남 양산시의 경계지점인 사배고개를 넘어 양산지역으로 이어진다. 일명 지경(地境)고개로 불리는 이 고개는 높고 험준해 괴나리봇짐을 싸든 과거길의 선비와 보부상 등 양반·상놈 가릴 것 없이 몇번씩 쉬지 않고서는 오르지 못했다는 얘기다. 196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동래와 양산의 신랑·신부들은 사배고개를 넘나들지 않았다. 험한 고개를 넘어 시집·장가를 가면 ‘팔자가 세다.’는 속설이 전해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 지역에서 혼례를 치른 신혼부부들은 누구나 울산 방면으로 10여리를 돌아가곤 했다. 나중에 이 고갯길은 인근에 경부고속도로가 나고 왕복 6차선 도로로 넓혀지면서 정상 일대가 20m 이상 낮아져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지금도 사배고개에 올라서면 부산·양산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 온다. ●쉬어 넘는 사배고개 옛길은 사배고개에서 1017호 지방도와 만난 후 옛 양산읍성의 남문(현 양산시 중앙동 269 노인회관 인근)으로 올라온다. 임진왜란 이후 다시 축조됐다는 양산읍성(길이 약 800m, 높이 6∼7m)은 흔적조차 없다. 양산문화원 이종관(73) 원장은 “70년대 들어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주민들이 성벽을 무너뜨리는 등 성터에 마구잡이로 민가를 지었다.”고 말했다. 다만, 읍성의 동문(현 양산문화원) 자리에 있는 수령 800년이 넘은 느티나무만이 읍성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일제 때 왜군 관헌들이 동헌(東軒·조선시대 지방관들이 정무를 집행하던 관아건물)의 문서를 모두 꺼내 이 나무 아래에 쌓아 불을 질렀다. 당시 나무도 함께 불탔으나, 불가사의하게도 광복 이듬해부터 다시 새싹이 돋기 시작해 지금의 무성함을 자랑하고 있다. 양산읍성의 남문을 돌아 나온 옛길은 양산천을 가로지른 현재의 강서동 영대교(옛 읍포교)를 지난다. 이 다리는 조선시대 한양으로 향하는 영남대로상의 유일한 다리였다. 일제가 돌다리를 놓기 이전까지만 해도 우마차가 겨우 다닐 정도의 좁은 나무다리였다. 이 지방 토박이들은 이 다리를 ‘국계(國界)다리’라 한다. 박봉문(73·양산시 강서동)씨는 “‘국계’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신라와 가야가 황산강(낙동강)을 사이에 놓고 치열한 전투를 벌이던 중 퇴각하던 신라군이 양산천에 이르자 ‘여기가 국계’라고 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머지 않아 국계라는 명칭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강서동사무소 이상한(43) 주무는 “연세가 드신 토박이들 외에는 국계에 대해 모른다.”며 1800여년 동안 전해 내려온 국계의 명맥이 사라질까 걱정했다. 옛길은 영대교를 지나서 강서동 양산향교 앞에서 좌측으로 물금길, 우측으로 언양 기장길로 갈라진다. 낙동강의 범람으로 옛길이 물에 잠기면 한양으로 통하는 대체 구실을 했던 언양길을 따라 조선시대 대동여지도상의 양산지역 첫번째 역인 윤산역을 찾아 본다. 영대교에서 서북쪽으로 2㎞ 위쪽에 자리한 유산동 양산공단 내 ㈜화승화학 인근이 바로 윤산역으로 확인됐다. 이씨는 “윤산은 지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유산으로 지명이 개편됐다.”고 말했다. ●옮겨간 황산 찰방역 본도인 물금길을 따라 가면 영남역지상의 황산 찰방역(현 물금읍 서부리 일대)이 나온다. 윤산역에서 황산 찰방역까지의 옛길은 1022호 지방도와 거의 일치하나, 택지개발이 한창인 물금읍 범어리 일대는 곳곳이 잘려 있다. 황산 찰방역은 조선 세조 때 만든 40개 찰방역 가운데 하나. 윤산·소산·덕천·간곡·아월역 등 동래·언양·밀양 등지의 16개역을 관할했다고 영남역지에 기록돼 있다. 이곳에는 역리 7638명과 남·여 노비 1176명 등 총 8814명이 소속됐었다. 큰 말 7마리를 비롯해 중마 29마리, 짐 싣는 말(卜馬) 10마리 등 모두 46마리가 배치됐다. 조선시대 찰방역은 찰방(종6품) 1명이 관장했고, 역리들이 역의 관리와 공무를 담당했다. 특히 중앙직속기관이었던 찰방은 역정(驛政)의 최고책임자였으며, 세력 또한 막강했다. 어사가 순찰을 돌 때 보필했을 뿐아니라 군수(종3품)의 치정을 견제하는 역할까지 했기 때문이다. 황산 찰방역은 철종 8년(1857) 낙동강의 범람으로 물에 잠기자 양산시 상북면 상삼리 439번지 일대로 옮겨져 1895년 역원제가 폐지될 때까지 40여년간 존속했다. 그러나 지금의 상삼리 일대는 거의 밭으로 변해 황산역터는 흔적도 없다. ●벼랑 끝의 황산잔도 물금읍 서부리 물금초교에서 지방도와 옛길은 서로 갈라진다. 지방도는 철도 오른쪽 절벽 위로 굽어 있고, 옛길은 낙동강변 절벽 아래로 난 경부선 철로 왼쪽으로 향한다. 이 길이 바로 대동여지도상의 황산도(黃山道)이자 황산잔도(黃山棧道)이다. 황산잔도는 말 그대로 예나 지금이나 험난하기 그지없다. 서부리 촌로들은 “잔도는 워낙 험해 동래부사가 피해 갔으며, 과거길에 오른 선비들이 황산장에서 한잔 걸치고 가다 부지기수로 빠져 죽은 곳”이라고 말했다. 지금도 철로 왼쪽은 수풀이 무성한 채 곳곳이 허물어지고, 오른쪽은 잡목이 우거진 험로다. 잔도 바로 위쪽 황산강변 서북쪽에는 신라말 고운(孤雲) 최치원이 노닌 임경대(臨鏡臺)가 자리하고 있다. 잔도를 아슬아슬하게 빠져 나와 낙동강변을 따라 철길처럼 나란히 난 옛길은 줄달음쳐 어느새 용이 자주 출몰했다는 전설을 간직한 원동면 용당리에 다다른다. 용당리에는 삼한시대부터 국태민안과 낙동강의 수운을 순조롭게 하기 위해 국가의식으로 제사를 지냈던 가야진사(伽倻津祠·지방민속자료 제7호)가 있다. 지금도 매년 음력 3월 첫번째 정(丁)일에 기우제를 지내고 있다. 가야진사 인근 낙동강변에는 신라와 가야의 교역로이자 눌지왕이 가야를 정벌하면서 왕래했던 가야진나루가 있었으나 현재 남아 있지 않다. 가야진보존회 이희명(57·원동면 내포리) 이사장은 “가야진나루를 복원하기 위해 최근 부지를 매입한 데 이어 추가예산을 확보 중에 있다.”고 말했다. 양산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낙동강 굽어보던 명당 ‘임경대’ 복원 계획 烟巒簇簇水溶溶(연만족족수용용·내 끼인 산봉우리 빽빽하고 물은 질펀히 흐르고)/鏡裏人家對碧峰(경리인가대벽봉·거울 속에 비친 인가가 푸른 봉우리를 대하고 있네)/何處孤帆飽風去(하처고범포풍거·어느 곳에서 온 외로운 배가 바람을 가득 안고 어데로 가느뇨)/瞥然飛鳥杳無(별연비조묘무종·별안간 날아가는 새는 아득히 자취가 없네) 신라말 고운 최치원이 임경대에 올라 읊은 ‘황산강임경대(黃山江臨鏡臺)’라는 시이다. 낙동강을 중심으로 산수화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풍광과 자신의 감회를 읊조린 것이다.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해석서인 대동지지는 ‘임경대’가 황산역 서쪽 황산강변에 있다고 적고 있다. 양산시지에는 양산시 원동면 화제리 산 72번지로 기록돼 있다. 임경대는 고운 자신이 돌을 직접 쌓아서 만든 뒤 노닐었다 해서 최공대라고도 한다. 이곳은 예부터 거울처럼 맑은 황산강(낙동강)물과 양산∼화제의 취서산을 비롯한 크고 작은 산봉우리들이 어우러져 산자수명한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현재는 ‘양산팔경’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고문헌은 임경대는 경상좌도의 최고 명승지로 신라 4선(영랑·술랑·남랑·안상)이 노닐었던 관동의 ‘사선정(四仙亭)’에 비길 만한 기상이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또 고운이 이곳의 절벽에 ‘황산강임경대’를 새겼다고 전하나, 사라진지 이미 오래다. 임경대의 본래 모습도 찾을 길이 없다. 물금읍에서 지방도 1022호를 따라 원동 방면으로 가다 보면 도로 왼쪽변에 6각형의 목조 정자가 나온다. 정자에는 음각으로 새긴 ‘임경대’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양산시가 지난 1999년 임경대 인근에 길손 등에게 휴식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임시방편으로 지은 것이다. 이런 임경대가 뒤늦게나마 복원될 예정이다. 양산시는 내년까지 옛 임경대 자리인 낙동강변 자연석 너럭바위 위 20∼30여평에 전통 양식의 정자를 지을 계획이다. 임경대가 복원과 함께 후대의 고운이 탄생하길 기대해 본다. 양산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조용섭의 산으路] 경기 가평 명지산(1276m)

    [조용섭의 산으路] 경기 가평 명지산(1276m)

    경기도 북단, 한북정맥에서 남으로 가지친 2개의 산줄기(오뚜기고개→귀목봉, 도마치고개→화악산)는 한북정맥과 더불어 조종천과 가평천이라는 큰 물길을 만들어 북한강으로 흘려보낸다. 이 거대한 산군(山群)의 중심에 우뚝 서서 ‘밝은 지혜(明智)’라는 예사롭지 않은 이름으로 가평 땅을 굽어보는 곳이 바로 명지산(1276m)이다. 산길은 경기 가평군 북면 익근리 주차장을 출발, 오른쪽의 능선으로 붙어 683.8m봉∼사향봉(1013m)∼제 4봉(1079봉)을 거쳐 정상에 오른 뒤, 다시 4봉 갈림길로 되돌아와 익근리계곡으로 내려서서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원점회귀 코스로 잡았다. 이번 코스의 주요 경유지인 사향봉 오름길은 주차장에서 물레방아를 지나면 만나게 되는 오른쪽 산사면 연두색 철망 시설이 있는 곳의 전방 10여m 지점을 들머리로 삼았다. 식수 구할 곳이 마땅치 않으므로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다. 리본을 따라 숲으로 들어서면 이내 오른쪽으로 길이 꺾이고 무덤이 나온다. 여기서는 길 찾기가 조금 혼란스러우나 당황할 필요는 없다. 무덤 왼쪽, 능선으로 이어지는 사면을 잠시 치고 오르면 아래에서부터 올라오는 능선을 만나게 된다. 이후의 산길은 뚜렷하다. 낙엽송 숲, 잎이 말라버린 생강나무 군락, 서걱거리는 낙엽으로 호젓한 산길은 낭만이라는 생각을 미처 떠올리기도 전에 된비탈로 바뀌며 숨을 가쁘게 한다. 이제 고도를 무려 1000m 가까이 올려야 하는 오름길의 시작이니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약 1시간10분 힘들게 진행하면 삼각점이 있는 683.8m봉이 나오고,40분 정도 올라서면 거대한 바위지대를 만나게 된다. 왼쪽 급사면 산자락을 우회하며 길이 이어진다. 사향봉 옆 휴식하기 좋은 너럭바위까지는 30여분 더 땀을 흘려야 한다. 사향봉은 봉우리 표시가 없어 애매하나 너럭바위 옆의 전망 막힌 봉우리를 일컫는 듯하다. 고도 1000m를 넘어선 산길은 비로소 수월하게 이어지며 고사목 등이 어우러진 숲은 적요하다. 바위지대를 우회하여 4봉(1079m)에 닿으면 길림길이 나오는데, 이정표의 익근리 방향은 나중에 하산할 길이다. 약 30분 가파른 길을 올라서면 정상에 닿는다. 사방으로 트인 이 곳의 조망은 막힘이 없다. 동북방향의 화악산이 가깝고, 서북방향으로는 한북정맥의 연봉들도 늠름하다. 하산은 4봉∼익근리계곡 길 외에,1250봉(2봉)으로 이동한 뒤 백둔봉∼익근리로 내려서거나, 정상에서 2봉쪽으로 100여m 진행하다가 왼쪽 급경사 길 계곡으로 곧장 내려서는 길도 있다. 또 2봉에서 귀목고개나 아재비고개를 거쳐, 하면 상판리로 넘어가는 잘 알려진 횡단코스도 있다.4봉으로 되돌아가 급경사 내리막길로 익근리계곡 갈림길에 닿은 후 계곡 옆 길을 따라 승천사를 지나 주차장에 이르며 산행을 마친다. 하산시간 약 2시간20분. ■ 교통 자가용:서울 46번 국도(서울∼춘천) 이용, 청평을 지나 가평에서 75번 국도(김화, 화천 방면)로 바꾸어 타고 접근. 대중교통:서울 동서울터미널(일 75회 운행), 상봉터미널(52회)에서 춘천 혹은 화천 행 직행버스 이용해 가평 하차. 기차:청량리∼가평(경춘선 무궁화호 일 19회). 가평∼익근리:가평터미널에서 적목리 용수목 행 군내버스(5회) 이용(터미널 031-582-2308). ■ 숙박 익근리 주차장 인근에 식당과 매점을 겸한 민박집이 많다. 아래촌민박(582-0506)등 ■ 참고 늦가을 산자락은 어둠이 빨리 온다. 식사와 휴식시간 등을 감안해 적어도 오전 5시까지는 하산하는 것이 좋다. 야간산행의 경우에 대비해 랜턴을 반드시 준비하도록 한다.
  • 설악·금강산등 전국방방곡곡

    설악·금강산등 전국방방곡곡

    푸른 산하에 붉은 가을 빛이 살포시 내려 앉았습니다. 상쾌한 가을 바람을 타고 단풍 향기가 시나브로 코끝을 간지릅니다. 그래서 가을이면 사람들이 무작정 단풍산에 몸을 맡기나 봅니다. 올해는 단풍이 평년보다 5∼6일 늦게 시작한다고 합니다. 때문에 설악산에서 시작된 오색단풍의 화무(火舞)는 예년보다 조금 늦게 남으로 질주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가장 빠른 강원지역은 이번 주말부터 붉은 기운을 띤 뒤 이달 중·하순쯤 절정을 이루고, 충청·영·호남지역은 10월 말이나 11월 초에 최고조에 이를 전망입니다. 단풍이 찾아와 행복한 가을. 올가을엔 가족들과 함께 단풍의 우아한 자태에 취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단풍명소를 찾아 황홀하게∼ 철마다 형형색색의 옷을 갈아입는 ‘산중미인’ 설악산에는 지난달 말 남한에서 가장 먼저 단풍이 시작됐다. 단풍은 해발 1500m 고지의 대청·중청·소청봉을 물들이고 한계령, 마등령, 대승령, 공룡능선을 거쳐 서북주능, 미시령, 흘림골로 빠르게 하산하고 있다. 이달 중순에는 천불동, 수렴동,12선녀탕까지 단풍이 내려온 뒤 비선대, 비룡폭포, 백담계곡, 주전골, 용소폭포, 장수대 등에서 마무리한다. 노약자들은 케이블카(sorakcablecar.co.kr·033-636-4300)를 타고 권금성에 오르면 단풍으로 물든 설악산 절경은 감상할 수 있다. 권금성은 높이 800m로 걸어서는 1시간 30분 정도 걸리지만, 케이블카로는 10분 남짓이면 오를 수 있다. 아침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행하며 요금은 왕복 7000원(중학생 이상)이다. 국립공원관리사무소(033)636-7700. 오대산은 울창한 숲에서 나오는 은은한 가을 단풍을 즐길 수 있다. 설악산이 남성적인 웅장함을 지녔다면, 오대산은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여성에 비유된다. 등산코스는 상원사∼적멸보궁∼비로봉∼상원사 코스(6.2㎞·3시간)와 상원사∼비로봉∼상왕봉 코스(12.7㎞·5시간), 진고개∼노인봉∼소금강 코스(13.4㎞·6시간)가 있다. 입장료는 어른 3400원. 국립공원관리사무소(033)332-6417. 한반도 최남단 국립공원인 월출산은 단풍이 밑으로 내려가면서 마지막으로 불꽃을 태우는 곳이다. 기암괴석들이 봉우리마다 솟아 있는 바위산으로 동서남북 어느쪽에서든 색다른 정취를 느낄 수 있다. 관리사무소에서 천황봉쪽으로 뻗은 계곡이 단풍이 아름답다. 등산코스로는 천황사지∼구름다리∼천황봉∼구정봉∼억새밭∼도갑사 코스가 좋다. 관리사무소(061)473-5210. 금강산은 금강산의 가을 이름은 풍악산(楓嶽山). 이름에 단풍 풍(楓)자가 들어갈 정도로 단풍이 아름답다. 붉은 단풍이 온갖 만물형상의 바위에 물들이는 만물상 코스와 수림과 폭포가 어우러진 구룡연 코스, 호수와 해안절경으로 이루어진 해금강 삼일포 코스가 있다. 지난달 1일부터 시행된 북측의 관광객 일일 600명 제한조치로 예약이 쉽지 않은 것이 흠이다. 문의 현대아산(02)3669-3000. 교통이 편리한 근교에서∼ 서울·수도권 주민들의 녹색 허파인 북한산의 단풍은 오는 18일 정상인 백운대에서 시작된다. 북한산에는 삼각산으로 불리는 인수봉, 만경대, 백운대 등 3개의 봉우리를 포함해 20여개의 봉우리가 이어져 있다. 교통이 편리해 수도권 어디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으며,10여개의 등산코스가 있어 다양한 가을 정취를 맛볼 수 있다. 이 중 우이동∼북한산장∼백운대 코스(8.1㎞)는 최고의 단풍 산행코스다. 다소 한가한 단풍코스는 정릉∼보국문∼용암샘터∼노적봉∼백운대(8.5㎞)코스가 좋다. 입장료는 어른 1600원. 국립공원관리사무소(02)909-0497. 용문산은 용문사의 1000년 넘은 은행나무가 단풍철이 되면 노랗게 물든다. 정상에서 뻗어내린 수많은 바위 사이에서 발달한 계곡은 놓치지 말아야 할 볼거리다. 주차장에서 용문사∼상원사∼윤필암터 코스가 2시간 10분 걸린다. 관리사무소(031)773-0088. 명지산은 북한강 굽이따라 경춘국도를 달리면 만날수 있다. 명지산의 곳곳에는 너럭바위와 소가 적절하게 배치돼있어 작은 천불동계곡으로 불린다. 익근리 입구에서 승천사∼명지폭포으로 오르는 길은 단풍이 일품이다. 가평군청(031)582-0088.명성산은 산정호수를 끼고 있는 아름다운 산이다. 궁예가 왕건에게 나라를 잃자 망국의 슬픔에 산도 따라 울었다고 해서 붙여졌다. 등산로 가든에서 비선폭포∼등룡폭포∼자인사로 돌아내려오는 길이 특히 추천할 만하다. 억새물결도 장관이다. 산정호수 관광지부(031)532-6135. 정겨운 단풍축제와 함께∼지리산의 가을은 피아골 단풍으로 대표된다. 붉다 못해 강렬한 핏빛이다. 단풍은 직전마을에서 피아골 대피소까지의 왕복코스, 또는 연곡사∼임걸령∼노고단의 코스가 좋다. 매년 전남 구례군 토지면 외곡리 기촌솔밭 일대에서 ‘피아골 단풍제’가 10월말 열리는데 남도국악공연과 등반대회를 즐길 수 있다. 구례군청 문화관광과 (061)780-2224. 속리산은 화양·선유·쌍곡계곡 등 이 만산홍엽과 어우려져 장관을 이룬다. 매표소에서 법주사 입구인 금강문에 이르는 숲길이 좋다. 오는 21∼23일 충북 보은군 속리산 잔디공원 일대에서는 ‘2005 속리산 단풍축제’가 열린다. 보은군청 문화관광과 (043)540-3391 전남 장성군 백암산에 위치한 백양사에서는 10월말 ‘백양 단풍축제’가 열린다. 장성군청(061-390-7224). 또 경기 동두천시 소요산은 산이 높지 않고 평탄해 가족 산행지로 적합하다. 관리사무소 (031)860-2065. 단풍열차타고 즐겁고 편하게∼ 단풍열차 안에서는 각종 이벤트가 펼쳐져 오가는 길이 즐겁다. 한국철도공사(www.barota.com·1544-7788)는 지역별 단풍시기에 맞춰 다양한 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단풍열차 여행지인 내장산은 가을이면 온통 선홍빛으로 물든다. 불타는 단풍터널과 도덕폭포, 금선폭포은 황홀경에 빠지게 한다. 무궁화는 14일에서 11월4일까지 매주 용산역에서 금, 토요일에,KTX는 용산역에서 20일에서 11월 6일까지 주중 1차례, 주말 2차례 운행한다.5만4900∼5만9000원. 선운산은 선운사 숲길따라 울긋불긋한 단풍이 이어진다.10월21일에서 11월13일까지 매일 아침 6시35분 용산역을 출발한다.5만9000∼6만3000원. 가야산은 산 어귀에서 해인사에 이르는 4㎞의 홍류동 계곡은 단풍이 계곡에 비쳐 물이 붉게 보인다.14일에서 11월6일까지 매일 서울역에서 8시15분에 출발한다.7만5000∼8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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