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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물·바람이 머무는 곳…충북 제천 옥순봉

    산·물·바람이 머무는 곳…충북 제천 옥순봉

    옹골차다. 속이 꽉차서 건실하다는 뜻입니다. 충북 제천의 옥순봉에 서면 이런 비유가 대단히 적절하다는 느낌을 단박에 갖게 됩니다. 금수산과 가은산 등 충북의 명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쳤고, 그 사이로 연둣빛 남한강이 유장하게 흘러갑니다. 어디 하나 덧대고 뺄 것 없는, 그야말로 옹골찬 풍경입니다. 높아야 빼어난 전망대는 아닐 겁니다. 얼마나 다양하게 풍경의 정수를 수렴하고 있느냐가 보다 중요한 거겠지요. 286m 낮은 키의 옥순봉이지만 청풍호(충주호) 최고의 전망대란 헌사를 붙일 수 있겠다는 확신은 그래서 생겼습니다. 높다고 빼어난 전망대일까…낮지만 옹골찬 봉우리 제천과 단양 지역 주민들에게 ‘충주호’는 없다. ‘청풍호’만 있을 뿐이다. 이기석 단양군 문화관광해설사가 전하는 사연은 이렇다. 충주댐이 조성되기 전, 강원 정선에서 흘러온 남한강물이 도담(삼봉)과 구담 등을 거쳐 현 청풍문화재단지 앞에서 큰 호수를 이뤘다. 당시 호수의 이름도 청풍호였다는 것. 이는 호수 인근의 옛 지명이 청풍이었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그런데 청풍에서 좀 더 하류 쪽, 그러니까 현재의 충주 지역에 댐이 생기면서 호수의 이름도 충주호로 굳어졌다는 것이다. 댐 조성으로 생긴 담수호라서 단순하게 충주호라 부르기보다는 옛 이름을 살리는 것이 옳지 않겠냐는 게 그의 주장이다. 사람이 정한 이름이 무엇이든, 호수에 산과 물 그리고 바람이 잘 어울려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특히 상류 쪽의 옥순봉과 구담봉 일대는 청풍호 가운데서도 으뜸가는 경승지로 꼽힌다. 옥순봉은 주로 눈요기의 대상이다. 대부분 유람선을 타고 가며 아래서 완상하길 즐긴다는 뜻이다. 이름의 연원만 봐도 그렇다. 퇴계 이황(1501~1570)이 ‘비온 뒤 솟아나는 옥빛(玉)의 대나무 순(荀)을 닮았다.’고 한 이래 여태 ‘옥순봉’이라고 불린다. 즉 아래서 올려다본 천길단애가 옥순봉이란 얘기다. 그런데 아마도 퇴계는 옥순봉 위에까지 오르지는 않은 듯하다. 그가 옥순봉 정상에서 사방을 굽어보았다면 다른 이름을 지었을 게 분명하다. 그만큼 옥순봉은 청풍호의 첫손 꼽히는 볼거리이면서, 최고의 전망대 노릇까지 겸하고 있다. 옥순봉과 구담봉은 이웃하고 있다. 떨어져 있되 한 몸이나 다름없다. 굳이 구분을 하자면 옥순봉은 제천, 구담봉(330m)은 단양에 속해 있다. 각각 등산하자면 옥순봉은 2시간 남짓, 구담봉은 3시간이 족히 걸린다. 대개는 둘을 묶어 돌아본다. 난이도는 구담봉 코스가 훨씬 높다. 따라서 구담봉을 먼저 본 뒤 옥순봉 나들이에 나서는 게 좋다. 들머리는 계란재다. 36번 국도변 국립공원탐방지원센터가 있는 곳이다. 농장터~갈림길(공원지킴터)~옥순봉~갈림길~구담봉~지원센터까지 되돌아오는 데 6.3㎞쯤 된다. 전체적인 난이도가 낮다고 알려져 있으나 얕보다간 큰코다친다. 산행시간도 5~6시간은 족히 걸린다. 단양 8경 적시는 퇴계와 기생 두향의 사랑이야기 옥순봉과 구담봉은 저 유명한 ‘단양 8경’의 4경과 3경이다. 그런데 제천에 속한 옥순봉이 단양8경의 하나가 된 사연이 재밌다. 그 과정에 퇴계가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은 물론이다. 퇴계는 48세 때인 명종 3년(1548년)에 단양군수를 자원해 내려온다. 단양의 풍수를 아낀 퇴계는 도담삼봉, 사인암 등 단양의 명소들에 이름을 지어 주다 옥순봉에 이르게 된다. 그가 단박에 옥순봉의 자태에 매료된 것은 당연한 수순. 그런데 아쉽게도 옥순봉이 속한 곳은 청풍이었다. 퇴계는 곧바로 청풍부사를 찾아가 옥순봉이 있는 괴곡리를 단양에 양보해 달라고 청원했으나 거절당하고 만다. 빈손으로 돌아오던 퇴계는 옥순봉 석벽에 ‘단구동문’(丹丘洞門)이라고 새겨 넣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랜다. 풀자면 ‘신선으로 통하는 문’<서울신문 2005년 2월 15일 자 ‘유림’ 참조>이란 뜻이다. 훗날 청풍부사가 이를 보고는 옥순봉을 단양에 양보, 마침내 ‘단양8경’이 완결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녹록지 않은 산길을 이러구러 돌아 구담봉에 선다. 멀리 장회나루 맞은편 산자락 아래는 강선대다. 갈수기 때에만 드러나는 바위로, 퇴계와 두향의 절절한 로맨스가 전해오는 바위다. 서울신문에 2004년 1월 5일~2006년 12월 30일 연재됐던 최인호 작가의 역사소설 ‘유림’ 가운데 이들의 로맨스를 묘사하는 대목이 나온다. 요약하면 이렇다. 단양군수에서 풍기군수로 발령난 퇴계가 두향과 보내는 마지막 밤, 두향은 퇴계에게 은장도를 주며 자신의 젖꼭지 하나를 베어 달라 청한다. 이는 강원도 오대산 상원사 동종에 얽힌 고사를 인용한 것으로, 고향을 떠나 오대산 상원사로 향하던 동종이 죽령 고개에 이르러 도무지 꿈쩍도 하지 않자, 운반 책임자가 동종의 핵심 울림 도구인 36개 젖꼭지(뉴·?) 가운데 하나를 잘라 안동 도호부 남문루에 묻어 줬고, 그제서야 동종이 미련을 버리고 움직였다는 이야기다. 결국 두향의 ‘발칙한’ 제의는 자신의 젖꼭지 하나를 정표로 잘라 줘야 퇴계를 보내주겠다는 앙탈이자 간청이었던 셈이다. 차마 젖꼭지를 잘라낼 수 없었던 퇴계는 두향의 저고리 깃을 잘라 이별의 정표로 준다. ‘할급휴서’(割給休書)다. 잘라낸 세모꼴의 옷섶이 나비를 닮았다 해서 ‘나비’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당시 서민사회에선 일종의 이혼증서로 쓰여졌다고. 두 사람에겐 연분을 끊는 이연장(離緣狀)이었을 터다. 나비를 받아든 두향은 퇴계의 복잡한 심경을 알아채고는, 자신이 죽은 뒤 옷섶을 둘의 추억이 깃든 강선대에 함께 묻겠다는 말과 함께 이별을 받아들인다. 훗날 퇴계의 요청으로 기적(妓籍)에서 지워진 두향은 멀리서 퇴계를 받들며 수절했다. 그러다 퇴계가 죽자 자신도 강선대에 투신, 임의 뒤를 따르고 만다. 강선대에서 수십m 떨어진 산자락에 지금도 두향의 묘지가 있다. 원래 더 아래쪽에 있었으나 충주댐 조성 당시 수몰될 뻔한 것을 현재의 장소로 이장했다. 두향의 묘는 남한강을 격하고 보더라도 제법 번듯하게 정비돼 있다. 이기석 해설사는 “원래 두향의 성은 안씨였던 것으로 전해진다.”며 “안씨 문중에선 그를 가문의 수치로 여겨 돌보지 않았는데, 퇴계의 학문을 잇는 영남학파 사람들이 해마다 두향제를 지내는 등 관리하고 있다.”고 전했다. 너럭바위 너머 금수산·남한강이 그려낸 수채화 구담봉에서 옥순봉까지 가는 방법은 두 가지다. 온 길을 되짚어 가거나 천길단애를 내려간 뒤 강변을 따라 걷다 옥순봉에 오른다. 산꾼들은 대체로 후자를 택하지만 고되고 험하다. 전문 가이드가 없거나 가족 단위 등반객이라면 온 길을 되짚어 가길 권한다. 공원지킴터에서 옥순봉까지는 급한 내리막과 오르막이 번갈아 이어진다. 예서 정상까지는 30~40분이면 충분하다. 옥순봉 정상에서 만나는 풍경이 실로 장하다. 너럭바위 너머 금수산과 남한강 물줄기가 멋들어지게 펼쳐져 있다. 금수산의 옛 이름은 백암산이다. 흰색(白)의 거대한 바위(岩)들이 절경을 펼쳐 내는 산이란 뜻이다. 훗날 퇴계가 비단(錦) 위에 수(繡)를 놓은 것처럼 아름답다며 금수산이라고 개칭했다. 옥순봉 정상 아래 있는 너럭바위의 자태도 여간 빼어나지 않다. 영화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2011)에서 인상적인 엔딩 장면을 선보였던 너럭바위로, 폭은 좁되 아래로 길게 낭떠러지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이곳은 엄연히 제천시에 속한 땅. 먼 옛날 퇴계와 청풍부사가 그랬듯, 오늘날 제천시장과 단양군수 간에도 ‘통 큰 합의’가 필요하지 않을까. 옥에 티 하나. 옥순봉 정상 표지석엔 높이가 286m라고 표기돼 있다. 하지만 등산안내도 등은 283m라고 적고 있다. 서둘러 산의 높이를 통일하는 게 좋겠다. 옥순봉에서 바라본 청풍호 전경. 옥빛 호수와 우람한 산들, 그리고 파란 하늘이 어우러진 풍경이 일품이다. 남성의 ‘알통’처럼 불퉁 솟은 왼쪽의 암봉은 단양의 진산 금수산이다. 글 사진 제천·단양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 (지역번호 043) ▶가는 길: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영동고속도로→만종 분기점→중앙고속도로→북단양 나들목→5번 국도 충주방향→북하삼거리에서 36번 국도→장회나루. 단양 관광안내소 422-1146. ▶맛집:얼음골맛집(422-6315)은 매운탕과 묵밥이 유명하다. 장회나루에서 단양 쪽으로 3㎞ 정도 떨어져 있다. 장다리식당(423-3960)은 마늘솥밥을 잘한다. 쌈밥정식을 내는 돌집식당(422-2842), 더덕주물럭을 내는 자연식당(422-1806), 올갱이국의 경주식당(423-0504)도 입소문 난 집들이다. ▶잘 곳:가족이나 친구끼리 여행길에 나섰다면 대명리조트 단양이 제격이다. 객실과 아쿠아월드(2명)로 구성된 ‘아쿠아월드2’ 패키지를 5월 31일까지 판매한다. 패밀리타입은 주중 11만 2000원(토요일 15만 7000원)이다. 1588-4888. 단양읍 별곡리 리버텔(421-5600), 단성면 팔경모텔(421-2900) 등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지정한 ‘굿스테이’ 업소들이다.
  • “의회권력 쟁취 실패… 죄송하다”

    “의회권력 쟁취 실패… 죄송하다”

    민주통합당 문성근 대표 대행이 20일 국회의원 당선자 32명과 경남 김해 봉하마을의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찾아 “의회권력을 쟁취하는 데 실패했다.”고 머리를 숙였다. 문재인 상임고문, 박지원 최고위원과 함께 노 전 대통령이 안장돼 있는 너럭바위 앞에 선 그는 “그렇게 응원해 주셨는데 실패했다. 죄송하다.”고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12월에 기쁜 마음으로 다시 뵙겠다” 다만 문 대행은 “비록 의석 수는 뒤졌으나 두 야당의 정당득표율은 1% 포인트가량 앞섰고 부산·경남 지역에선 민주진보진영 정당 지지도가 3당 합당 이래 처음으로 40%를 넘어섰다.”고 일부 성과도 보고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힘을 모아 반드시 12월 대선에서 민주진보 정부를 세우고 기쁜 마음으로 다시 뵙겠다.”고 작별 인사를 건넸다. ●전날 이희호 이어 권양숙 여사 예방 문 대행과 당선자들은 이후 노 전 대통령의 사저로 자리를 옮겨 권양숙 여사와 이야기를 나눴다. 권 여사는 “희망적인 민주당으로 거듭나는 데 여러분들의 공로가 있길 기대한다.”고 덕담을 건넸고 박 최고위원은 “12월 정권교체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답했다. 문 대행이 전날 이희호 여사를 예방하고 이날 권 여사를 만난 것은 총선 최종 보고를 통해 패배감을 씻고 당의 전열을 가다듬어 대선 채비를 서두르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이현정기자 hjlee@seoul.co.kr
  • [NATE 검색어로 본 e세상 톡톡] 진보당 여론조사 조작 와글 9년간 속고 먹은 라면 부글

    [NATE 검색어로 본 e세상 톡톡] 진보당 여론조사 조작 와글 9년간 속고 먹은 라면 부글

    정치의 계절이다. 4·11 총선을 3주 앞둔 3월 넷째 주 검색어에는 정치 관련 이슈가 절반 가까이 된다. 지난 한 주 동안 통합진보당 이정희 공동대표의 보좌관이 저지른 여론조작 사건이 뜨거운 관심을 끌었다. 지난 20일 보좌관이 여론조작을 지시한 내용을 담아 보낸 문자 메시지 캡처 화면이 인터넷에 공개되면서 야권은 도덕성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다. 급기야 23일 이 대표가 “이유와 경위를 불문하고 사과드린다.”면서 서울 관악을 야권 단일후보에서 사퇴하겠다고 발표하자, 순식간에 검색어 1위에 올라섰다. 이어 ‘국민 음식’ 라면을 두고 라면 제조·판매사가 가격을 담합한 것으로 나타나 과징금을 물게 됐다는 소식이 2위를 차지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2010년까지 9년간 농심과 삼양식품, 오뚜기, 한국야쿠르트 등 4개 회사가 6차례에 걸쳐 라면 제품 가격 정보를 교환하고 공동으로 인상한 것을 적발해 이들 회사에 시정명령을 내리고 과징금 1354억원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3위는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의 은폐를 지시한 것으로 지목된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의 기자회견이다. 이 비서관은 지난 20일 기자회견을 자청해 “자료 삭제를 지시했고 이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면서 “감춰야 할 자료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구럼비 너럭 바위 발파’는 4위에 올랐다. 19일 오후 해군이 서귀포시 강정마을 구럼비 해안 너럭바위에서 8차례 기습 발파를 했다는 내용이다. 5위는 ‘김재철 MBC 사장’으로, MBC 최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의 야당 측 이사 3인이 김 사장의 편파왜곡방송 조장과 법인카드의 사용 내역 등을 이유로 정기이사회에 해임안을 제출했다. 봄 소식과 함께 황사 소식도 어김없이 찾아와 검색어 6위에 올랐다. 19일 중국 신장에서 발생한 올해 첫 황사는 지난해보다 불순물 함도가 더 높고 바람이 강해서 한반도로 날아올 가능성도 있다고 전해졌다. 7위는 미국 콜로라도에서 일어난 ‘아이폰4 폭발사고’, 8위는 ‘김용 세계은행 총재’다. 김용 다트머스대 총장은 아시아인으로는 처음으로 아이비리그 총장에 선출된 인물로, 역시 아시아인 최초로 세계은행 총재 후보에 지명됐다. 9위는 16살 연하남과의 열애로 화제가 됐던 ‘김지수 열애’, 10위는 밴드 허밍어반스테레오의 객원 보컬로 참여했던 이진화가 갑작스럽게 심장병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이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해군기지 구럼비 발파 재개

    해군기지 공유수면 매립 공사 정지 처분에 따른 2차 청문 절차를 하루 앞둔 21일 해군 측이 서귀포시 강정마을 제주기지 내 구럼비 해안에서 발파를 다시 강행, 부지 평탄화 작업을 이어 갔다. 해군 측은 이날 오후 4시 47분 강정항 동쪽 구럼비 너럭바위에서 첫 발파를 한 후 10분 사이에 4차례 연속 발파했다. 오후 4시쯤에는 강정항 동쪽 100m 지점에서 열 차례 발파해 평탄화 작업도 진행했다. 이날 발파는 지난 20일 일시 중단한 후 이틀 만이다.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강정마을회와 시민사회단체들은 카약을 타거나 펜스를 뚫어 기지 안으로 진입하려다가 경찰에 저지됐고 전모(37)씨 등 3명이 경찰에 연행됐다. 한편 이에 앞서 이날 오전 우근민 제주지사와 비공개 면담을 가진 최윤희 해군참모총장은 “지난 청문을 통해 해군의 입장을 충분히 설명드린 것으로 안다. 중단없이 계속 공사를 진행하겠다.”고 강행 의지를 밝힌 바 있다. 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r
  • 해군기지 청문회 하루전 구럼비 기습발파

    해군기지 청문회 하루전 구럼비 기습발파

    19일 해군 측이 서귀포시 강정마을 제주해군기지 부지 내 구럼비 해안의 노출암(너럭바위)을 기습적으로 발파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과 단체들의 큰 반발이 예상된다. 해군기지 시공사 측은 이날 오후 6시 5분쯤 기지 부지 1공구 지역인 강정항 동쪽 100m 지점의 너럭바위에서 첫 발파를 시작했다. 앞서 오후 5시 55분쯤에는 1공구 적출장 부근의 수중에서도 2차례 발파가 이뤄졌다. 해군 측은 항만공사 시 필요한 자재나 장비를 해상으로 적재, 운반할 수 있도록 만든 구조물인 적출장과 케이슨 제작장 조성 등을 위해 해군기지 부지 내 구럼비 노출암 일부를 발파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해군 측이 조성을 추진 중인 1공구 적출장은 가로 24m, 세로 78m이며 2공구 케이슨 제작장은 가로 70m, 세로 100m 규모다. 군사기지저지 범도민대책위는 “해군이 공사 정지 명령 청문회를 앞두고 보란 듯이 구럼비 바위를 발파한 것은 제주도민에 대한 정면 도전”이라며 “앞으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구럼비 바위 추가 발파를 저지하겠다.”고 밝혔다. 우근민 제주지사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제주도가 해군기지(민군복합형 관광미항) 건설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며 “크루즈선 입·출항 재검증을 통해 문제가 없다고 결론이 나면 도민들과 힘을 합쳐서 해군기지 건설을 발전적으로 지원한다는 게 제주도의 기본 입장”이라며 재검증 요청을 수용해 줄 것을 정부에 거듭 촉구했다. 한편 해군기지 건설 공유수면 매립공사 정지처분에 따른 청문회가 20일 제주도청에서 열린다. 이날 청문회에서는 지난달 정부가 크루즈선의 원활한 입·출항을 위해 항만 내 서측 돌제부두를 고정식에서 가변식으로 조정키로 한 것이 공유수면 매립공사 실시 계획 변경이 수반될 수 있는지 여부 등에 대한 해군 측의 의견을 들을 예정이다. 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해군 “구럼비 노출암 이번주 발파” 주민 “모든 수단·방법 동원해 저지”

    해군이 제주기지 사업 부지 내 구럼비 해안 노출암에 대한 발파 작업도 조만간 실시하기로 해 강정마을 주민들의 큰 반발이 우려된다. 해군 제주기지사업단은 13일 “이번주 중 선착장 설치 등을 위해 구럼비 노출암에 대한 발파 작업을 실시할 예정”이라며 “당초 오늘 실시하기로 한 노출암 발파 작업은 기상 상태가 나빠 잠시 연기하고 있다.”고 밝혔다. 구럼비 해안 바위는 강정마을 주민들과 반대 단체 등이 환경적 보전 가치가 있다며 해군의 발파에 크게 반발하고 있는 곳이다. 강정마을회 강동균 회장은 “해군의 구럼비 바위 발파는 강정마을과 제주도민에 대한 도전”이라며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구럼비 바위 발파 작업을 저지하겠다.”고 밝혔다. 해군은 그동안 구럼비 해안 노출암 인근 육상에서 케이슨 작업장 확보 등 기지 평탄화 기반 공사를 위해 발파 작업을 벌여 왔다. 구럼비 해안 바위의 가치에 대한 논란도 이어졌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은 구럼비 바위에 대한 문화재청 조사가 엉터리라는 자신의 주장을 반박한 문화재청에 대해 “구럼비 바위는 일반적 가치가 아닌 특수한 가치”라며 재반박했다. 황 소장은 “제주에서 넓은 너럭바위에서 사람들과 어울린 민속이 있는 형태는 구럼비 바위가 유일무이하다.”면서 “즉시 공사를 중단, 재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문화재청은 황 소장의 주장에 대해 “소중하다는 일반적 가치 판단으로 모든 것을 다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할 수 없다.”며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할 만한 가치를 찾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한편 제주도의회는 해군 측의 “선거 기간이어서 정치인의 공사장 방문을 사절한다.”는 입장에도 불구하고 이날 오후 해군기지공사 현장 방문을 강행, 해군 측과 실랑이를 벌였다. 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제주 해군기지 충돌] 해군기지 건설 둘러싼 세가지 쟁점

    제주 해군기지 건설 논란은 크게 세 가지 쟁점으로 압축된다. 해군이 발파 작업에 나선 구럼비 바위 해안의 환경적 가치와 2007년 참여정부가 추진한 민·군 복합 관광 미항이 현 정부에서 해군기지로 변질돼 추진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 그리고 지난해 삭감된 예산 등 공사 계획의 실효성 논란이다. 구럼비 해안의 바위는 길이 1.2㎞, 너비 150m에 이르는 거대한 용암 너럭바위다. 크고 작은 돌덩이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하나로 이뤄졌다. 지질 전문가들은 오래전 제주도가 형성되던 시기에 바다로 흘러간 용암과 바다에서 솟은 바위가 한 덩어리가 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특히 이곳은 용천수가 솟아나 국내 유일의 바위 습지를 형성하고 있다. 이 바위와 인근 해안에는 천연기념물인 연산호 군락과 붉은발말똥개, 맹꽁이 등 멸종 위기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공사에 반대하는 시민단체 ‘나눔문화’의 이상훈(28) 연구원은 “구럼비 바위 앞 범섬 일대는 유네스코 자연유산으로 지정된 곳으로, 공사를 강행하면 생태계 파괴는 불가피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국방부 측은 “구럼비 바위는 제주 전역 해안선 195㎞에서 볼 수 있는 현무암질 해안 노출암으로, 지난해 10월 문화재청 현지 조사 결과 국가 문화재로 지정할 만한 특별한 비교 우위가 발견되지 않은 곳”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붉은발말똥개 등 사업 부지 내 멸종 위기종은 전문가 조사 등을 거쳐 대체 서식지로 옮기는 등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둘째 문제는 항구의 성격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해군기지의 불가피성을 강조했던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 측은 “2007년 해군기지 건설 추진 당시에는 민과 군이 공동으로 사용하기로 했었으나 현재는 해군기지 위주로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참여정부 시절엔 민·군 복합 관광 미항으로 개발하려 했는데 현 정부가 해군기지로 항구의 성격을 바꿨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국방부 관계자는 “당초 강정마을 기지는 해군만 사용할 예정이었으나 그 이후 지속된 도민들의 지역 경제 활성화 요청을 수용한 것”이라며 “2008년 9월 최대 15만t급 크루즈 선박이 기항할 수 있는 민·군 복합형 관광 미항으로 건설키로 확정했다.”고 반박했다. 셋째 문제는 예산이다. 국회는 지난해 12월 31일 새해 예산안을 처리하면서 제주 해군기지 건설 예산을 정부 원안인 1327억원 가운데 49억원만 남기고 1278억원을 삭감했다. 항만 등 기지 시설 공사 1065억원, 토지보상비 196억원, 설계 조사비 38억원 등을 삭감한 것이다. 이에 따라 당장 정부가 공사에 착수한다 해도 무슨 돈으로 이를 집행해 나갈 것이냐는 의문이 따른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지난해 반대 측의 현장 점거 등으로 공사가 지연돼 미집행된 이월예산 1084억원을 감안해 국회가 감액한 것으로 알고 있다. 올해 예산 49억원과 합쳐 차질 없이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방부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제주 해군기지는 제반 인허가 과정, 부지 매입 및 어업 보상이 완료된 상태로 항만공사 진도율은 약 13%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올해는 수중 평탄화 작업과 케이슨 제작장 부지 조성 등 항만공사에 1075억원을 투입해 2015년 12월 완공 목표에 차질이 없도록 진행할 전망이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강원 철원 한탄강 얼음 트레킹

    강원 철원 한탄강 얼음 트레킹

    용암이 식으며 만든 주상절리 협곡 앞에 서보셨는지요. 혹은 물과 시간이 조탁한 화강암 절벽에 손을 대본 경험은 있으신가요. 빼어난 풍경을 바로 곁에서 지켜보기란 쉽지 않지요. 예컨대 강원도 철원의 한탄강이 그렇습니다. 강 양쪽에 멋들어진 협곡이 줄곧 이어지지만, 강물 탓에 멀리서 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겨울은 놀라운 선물을 선사합니다. 얼음입니다. 매섭도록 차가운 겨울이 강물을 꽁꽁 얼리고, 좀체 다가갈 수 없었던 풍경 속으로 다리가 놓여집니다. ‘추가령구조곡’이라 불리는 한탄강 협곡은 그제야 스스로의 나신을 아낌없이 사람들에게 드러냅니다. 그 기간은 길어야 1개월 남짓. 스릴 넘치는 ‘한탄강 얼음 트레킹’ 또한 그 기간에만 가능하지요. ●강물을 거슬러 오르다 출발 전 발목과 다리, 그리고 허리 스트레칭으로 꼼꼼하게 몸을 푼다.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출발지는 장흥리 대교천 협곡이다. 동호회 중심으로 이뤄지는 얼음 트레킹이 직탕폭포에서 시작해 한탄강을 따라 곧장 순담계곡까지 가는, 혹은 그 반대인 것과 대비된다. 정경해 DMZ철원평화관광 대표는 “대교천은 북한 오리산에서 분출된 용암이 맨처음 흘러간 곳”이라며 “한탄강의 이름값에 가려 있지만, 실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곳은 대교천 협곡”이라고 강조했다. 대교천을 돌아보지 않는다면 온전히 얼음 트레킹을 즐긴 게 아니란 뜻이다. 안내판은 ‘대교천 현무암 협곡’을 천연기념물 436호라 적고 있다. 협곡 초입의 현무암 주상절리 절벽들이 눈길을 끈다. 여러 차례 철원을 찾았지만, 한 번도 보지 못한 장면이다. 한여름, 무성한 나뭇잎에 가려졌을 현무암 주상절리들의 자태가 또렷하다. 강폭은 25~40m, 높이는 30m쯤 된다. 협곡 건너편은 경기 포천 관인면이다. 이런 이유로 포천에서는 대교천 협곡을 관내 ‘한탄강 8경’ 가운데 제 1경으로 올려놓기도 했다. 얼음 트레킹을 안전하게 즐기려면, 신경 써야 할 게 많다. 먼저 숨구멍이다. 물이 어는 과정에서 부피가 커지며 봉긋하게 솟아오른다. 숨구멍과 만났을 땐 우회하는 게 좋다. 여울 지대도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얼지 않은 곳이 많기 때문. 대부분 가이드가 안전하게 이끌긴 하지만, 개별 행동은 금물이다. 아이젠은 지참하되, 필요한 경우에만 착용하는 게 낫다. 얇게 눈이 덮여 미끄럽지 않은 데다, 바위를 오르내리려면 외려 불편할 때가 많다. 반면 등산 스틱은 필수품이다. ●수억년의 시간과 마주하다 검은 현무암들이 늘어선 대교천을 1.5㎞가량 걸어 내려가면 양합소다. 한탄강이 금강산에서 발원한 금성천 등과 합쳐진 뒤, 또한번 대교천과 몸을 섞는 곳이다. 이때부터 한탄강은 한껏 몸피를 키우기 시작한다. 도보꾼의 눈이 놀란 토끼눈처럼 커지고, 입에서 나지막한 탄성이 터져나오는 것도 바로 이쯤에서다. 대교천 너머로 근육질의 남성적인 풍경이 떠억하니 버티고 섰는데, 여간 장엄하지 않다. 너른 한탄강은 꽁꽁 얼어붙었고, 양안의 절벽들은 힘줄 튀어나온 거인의 팔뚝처럼 불끈 솟았다. 여기서부터 한탄강 중심을 따라 거꾸로 올라간다. 얕은 대교천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품이 넓은 강. 얼음 아래는 대략 5m 깊이의 물길이다. 머리카락이 곤두서고, 오금이 저릴 지경이다. 눈이 덮여 아래가 안 보이는 게 차라리 다행이다. 종종걸음으로, 하지만 시선만은 주변 풍경에 고정시킨 채 가이드를 따라 걷는다. 목적지인 고석정에 이르는 동안 강 양쪽 절벽은 그야말로 천변만화의 풍경을 내어준다. 잉어바위와 거북바위, 선녀탕 등 명소들을 굴비 두름 엮듯 줄줄이 꿰고 있다. 여름철 래프팅을 즐기며 주‘주’간산(走舟看山) 했다고 만족하지 말길. 거북바위의 콧날을 만져보고, 선녀탕 안쪽까지 들어가 물의 침식을 받아 둥글둥글 해진 바위에 앉아 보는 건 이 계절만의 호사다. ●주상절리가 커튼처럼 둘러친 송대소 고석정에선 다시 뭍으로 올라온다. 고석정부터 승일교까지 얼지 않은 여울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이승만과 김일성의 가운데 글자를 따 이름 지어졌다는 승일교 아래에서 다시 얼음 트레킹이 시작된다. 목적지는 상류의 송대소다. 거리는 4㎞ 남짓. 송대소에서 더 위쪽의 직탕폭포까지 다녀오는 도보꾼들도 적지 않다. 작은 여울 위로 물새들이 ‘차르르~’ 소리를 내며 날아든다. 낭만적인 풍경이다. 이 코스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명소는 마당바위다. 일종의 너럭바위인데, 여인네의 허리께를 연상시키는 부드러운 곡선이 일품이다. 종종 바위 위에서 누드사진 촬영대회도 열린다니, 제대로 장소를 고른 셈이다. 마당바위에서 30분가량 거슬러 오르면 물소리가 굉음처럼 들리는 큰 여울에 닿는다. 송대소의 대문 역할을 하는 곳. 여울 주변은 온통 너덜들이다. 경남 밀양의 만어석(萬魚石) 너덜지대를 닮았다. 너덜지대 너머가 송대소다. 낭만적이던 풍경은 마지막 너덜을 넘자마자 묵직한 풍경으로 돌변한다. 거인들이 어깨를 맞댄 채 얼어붙은 땅에 무엇하러 왔느냐며 윽박지르는 듯하다. 토박이 가이드 박종선씨에 따르면 송대소의 수심은 가장 깊은 곳이 30m가량 된다. 강 가운데엔 강가의 절벽 크기와 견줄 만한 수중 절벽이 있다고 한다. 수심도 절벽을 기준으로 2단 구조를 이룬다. 박씨는 “어렸을 때 이곳에서 자주 수영을 즐겼는데, 상류에서 내려오다 수중 절벽 근처에 이르면 배에 닿는 물이 차게 느껴질 만큼 섬찟한 느낌이 들었다.”고 전했다. 송대소는 넓다. 무엇보다 주변을 커튼처럼 둘러친 주상절리 절벽들이 압권이다. 오로라에서 초록빛이 쏟아져 내리듯, 형광등 형태의 주상절리 기둥들이 아래로 쏟아져 내리고 있다. 송대소는 위에서 볼 때 새삼 크기와 깊이가 넓고 깊다는 걸 깨닫게 된다. 검푸른 얼음 위로 수백개의 발자국이 찍혀 있다. 그만큼 많은 도보꾼들이 알음알음 다녀갔다는 뜻. 하지만 입춘이 지나면 송대소 쪽 루트는 안전상 출입하지 않는 게 좋다. 박씨 또한 추위가 맹위를 떨치지 않는 이상, 입춘 이후 송대소 루트는 안내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니 꼭 봐야겠거들랑 부디 내년을 기약하시라. 글 사진 철원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33) 가는 길: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동부간선도로나 43번 국도 의정부·포천방면→운천→신철원, 또는 올림픽대로→구리요금소→외곽순환고속도로→퇴계원·일동방면→43번 국도 포천·운천방면→신철원 순으로 간다. 민통선은 동절기(11∼2월) 09:30,10:30,13:00,14:00 4회 출입이 가능하다. 신분증은 반드시 지참할 것. 매주 화요일은 쉰다. 철새 탐조는 토교저수지, 평화전망대, 아이스크림고지, 철원두루미관 월정역사에서 할 수 있다. 철원군청 관광문화과 450-5365. 전적지관광사업소 450-5558. 얼음 트레킹: 안전을 위해 반드시 가이드와 동행해야 한다. DMZ철원평화관광에서 패키지 상품을 운용하고 있다. 한탄리버스파호텔 온천욕 포함 2만 7000원. 455-8275. 주변 볼거리:소이산 생태숲 녹색길이 일반에 개방됐다. 오래전 궁예와 왕건이 터를 잡았고, 일제 강점기엔 신사가, 군사정권 시절엔 이른바 ‘삼청대’가 세워졌던 사연 많은 산이다. 정상에서 서면 북한 평강고원과 오리산, 피의 능선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노동당사 맞은 편에 있다. 3월이면 철원 지역 일부 민통선 초소들이 현재 위치보다 더 북쪽으로 물러선다. 따라서 양지리나 토교·강산저수지 등 별도 절차를 거쳐야 출입할 수 있던 곳들도 아무 제재 없이 오갈 수 있게 될 전망이다. 맛집:삼정콩마을두부집은 콩음식 전문점이다. 별미 콩비지 5000원, 두부전골(2인) 1만원. 고석정 인근에 있다. 455-9284. 폭포가든은 메기매운탕으로 유명하다. 직탕폭포 옆에 있다. 455-3546.
  • 충남 서산 황금산에 오르다

    충남 서산 황금산에 오르다

    숲에 이슬을 더해 주는 바다. 가로림만(加露林灣)입니다. 예쁜 이름에 견줘 물살은 여간 사납지 않지요. 가로림만이 품은 여러 절경 가운데 비교적 덜 알려진 곳이 충남 서산의 황금산입니다. 해거름이면 황금빛으로 빛난다는 산. 비록, 체구는 작아도 바다와 만나는 해안가 절벽에 ‘국립공원급’ 절경을 숨겨두고 있지요. 황금산의 자랑은 저물녘 풍경입니다. 보다 정확히는 바닷가 절벽들이 그려내는 적벽도(赤壁圖)입니다. 저물녘 햇살에 바닷가 절벽들이 활활 타오르는 듯한 모습은 어디서도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닙니다. 이제 달력도 달랑 한 장 남았습니다. 산정에서 저무는 해 망연히 바라보고 싶다면 황금산이 좋은 대안이 되겠습니다. 황홀한 해넘이 풍경과 만난 뒤 되짚어 올 때를 대비해 손전등 준비하는 것도 잊지 마시고요. ●봉우리가 아닌 바다를 보러 가는 산 지도를 펴고 가로림만에 초점을 맞추면 꼭 게가 두 집게발을 치켜세운 듯한 지형이 보인다. 아래쪽 집게발은 벌천포(벌말), 위쪽 집게발은 황금산(156m)이 있는 대산읍 독곶리다. 독곶리는 서산의 오지로 꼽히는 대산에서도 끝자락에 있다. 예전엔 독곶리에서 하루 두어 번 오가는 완행버스로 한 시간 이상 걸려 서산으로 나가는 것보다 인근 삼길포에서 뱃길로 인천을 오가는 게 더 편했을 정도였다. ‘독곶’이라는 이름도 ‘외따로 떨어져 있는 곶’(串·바다를 향해 돌출한 지형)이란 의미다. 황금산은 그 외진 땅이 숨겨둔 풍경의 보고다. 산이라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높이는 낮지만, 풍채만큼은 제법 당당하다. 쉬엄쉬엄 걸어도 4시간이면 둘러볼 수 있다. 황금산 들머리는 이름조차 없는 작은 포구다. 바다 인근의 산을 오르는 길이니 갯마을을 지나는 게 당연할 터. 하지만 일반적인 산행 기점과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황금산을 기준으로 한쪽은 풍요로운 가로림만 갯벌, 다른 쪽은 수많은 굴뚝이 서 있는 공업단지다. 포구 앞바다는 더없이 잔잔하다. 바닷가 사람들 표현대로 ‘장판’을 깐 듯하다. 그러나 포구에서 조금만 나가도 물살은 곧 사나워진다. 물살이 갯바위를 찢으며 울부짖는 듯한, 딱 그 느낌이다. 산행은 대부분 황금산 주차장에서 오른쪽 산사면을 따라 이어진 등산로를 따른다. 하지만 등산로 나무계단이 끝나는 곳에서 좌회전, 먼저 황금산사(黃山祠)가 있는 정상을 오르는 편이 낫다. 원래 등산 코스를 따르면 온 길을 다시 되짚어 내려가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르기 때문이다. 황금산은 능선으로 이어진 3개의 작은 봉우리가 남북으로 길게 늘어선 형태를 하고 있다. 정상까지는 20분쯤 걸린다. 다소 된비알이지만, 숨이 턱에 찰 정도는 아니다. 황금산사는 임경업 장군을 모신 사당. 바로 뒤편엔 정상을 알리는 돌탑이 이정표처럼 서 있다. 여기까지는 다소 밋밋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섣부른 실망은 금물이다. 황금산의 진수는 정상의 봉우리들이 아니라 바닷가 절경들에 있다. 일반적인 산행과 다른 점이다. 황금산을 바다를 보는 산이라고 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정상에서 자박자박 내려오면 길은 네 갈래로 갈린다. 오른쪽은 원래 등산로에서 올라오는 길, 아래쪽은 금굴과 코끼리 바위 등 해안 절벽으로 내려가는 길, 곧장 가면 헬기장이다. 여기서 해안절벽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금이 있던 산’이 ‘금쪽 같은 풍경의 산’이 되다 푹신푹신한 흙길. 게다가 힘들 것 없는 내리막길이다.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대략 유행가 두어 곡쯤 부를 시간, 두 번째 교차로와 만난다. 왼쪽은 코끼리바위, 가운데는 ‘등산로 끝’, 오른쪽은 금굴(堀)로 내려가는 길이다. 여기서부터 풍경이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그리 높지도, 크지도 않은 산이니 둘러보는 방향을 잘 잡아야 한다. 황금산은 위에서 보고 아래에서 느끼는 게 순서다. 먼저 절벽과 똑같은 높이에서 전경을 휘휘 굽어본 뒤, 아래로 내려가 바닷가 트레킹을 즐기는 게 좋다는 얘기다. 산행의 대미인 해넘이 풍경과 마주할 곳은 코끼리바위가 있는 곳이다. 예서 금굴이 있는 해안까지는 20분이면 닿는다. 금굴은 절벽 아래 뻥 뚫린 해식동굴을 말한다. 금굴해변은 날물 때 가야 제맛이다. 김영숙(51) 서산시 문화관광해설사는 “물 빠진 자리에 드러난 다양한 형태의 갯바위들이 산수화 같은 절경을 펼쳐낸다.”고 전했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금굴 너머 끝골까지 해안트레킹을 즐겨도 좋겠다. 금굴해변에서 왼쪽으로 난 산길을 따라 오르면 코끼리바위 해변으로 이어진다. 황금산은 이곳부터 숨겨둔 속살을 아낌없이 드러내기 시작한다. 산굽이를 돌 때마다 색다른 풍경들이 펼쳐진다. 기골이 장대한 절벽들이 해안을 굳건하게 감싸고, 이른바 ‘말 근육’ 같은 절벽 사이사이로 소나무들이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다. 낮은 산이란 선입견은 그 자리에서 산산조각 난다. 바다는 또 어떤가. 물색은 푸르고, 갯내는 없다. 파도가 몽돌 사이를 빠져나갈 때마다 ‘차르르’ 소리를 내는데, 듣고만 있어도 마음이 잔잔해진다. ●코끼리 바위 넘어가면 푸른바다·기암·노송이 삼중주 밧줄 타고 코끼리바위를 넘어가면 풍경은 보다 다이내믹해진다. 맑고 푸른 바다와 기암, 노송이 삼중주를 펼쳐낸다. 윽박지르는 듯 서 있는 암벽은 누런 빛깔과 옅은 자줏빛이 뒤섞였다. 해안가 돌들도 마찬가지. 이곳의 풍경은 그야말로 천변만화다. 날씨와 계절, 시간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바뀐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엄지손가락 곧추세우는 풍경은 해거름에야 드러난다. 저물녘, 햇살이 암벽에 부딪치며 황금빛으로 산란한다. 해안 절벽들이 기다렸다는 듯 한껏 자신의 세포를 부풀리는 게다. 짜릿한 풍경이다. 이를 보는 탐승객의 세포도 소름끼치듯 반응한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산, 황금산(黃金山)의 실체다. 예부터 금(金)이 있는 산이라 해서 황금산이라 불렸다던데, 금이 사라진 요즘엔 금쪽 같은 풍경을 캐는 산이란 뜻이겠다. ●‘용유대’(龍遊臺)엔 용의 알(?)이 있다 서산 지역 명소 가운데 외부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곳이 용유대(龍遊臺)다. 광해군 때 벼슬을 버리고 낙향한 단구자 김적이 자주 뱃놀이를 즐기던 곳. 음암면 유계리 정순왕후 생가에서 용유천변 길을 따라 몇 백m 올라가면 단구대(丹丘臺)다. 붉은 언덕이란 뜻의 너럭바위다. 용유대는 여기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다. 갈대 무성한 용유천을 거슬러 오르다 보면 둥그런 바위 7~8개가 몰려 있는 희한한 풍경과 만난다. 말 그대로 용이 놀았다는 곳으로, 둥근 바위는 용의 알이란다. 어찌나 심한 풍화를 겪었던지 모난 곳 하나 없이 달걀처럼 둥글둥글하다. ‘알’들을 감싸고 있는 건 노송(松)들이다. 고아한 풍취의 소나무들이 바위 위에 자라고 있는데, 제법 독특한 정취를 풍긴다. 용의 해인 새해에 여행을 계획한다면 한번쯤 둘러보는 것도 좋겠다. 글 사진 서산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41) 가는 길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서해안고속도로→송악 나들목→38번 국도 대산·석문 방면→지하차도(북부산업로)→가곡 교차로→대산·성구미 방면 우회전→성구미 삼거리→대산·석문방조제 방면 좌회전→대호방조제 방면 우회전→초락2로 방면 우회전→서산·대산 방면 좌회전→화곡교차로 우회전(29번 국도)→황금산 순으로 간다. 서해안 고속도로 서산 나들목에서 대산 읍내를 거쳐 독곶리로 가는 방법도 있다. 맛집 해미읍성 맞은편 읍성뚝배기(688-2101)는 조미료를 쓰지 않은 소머리곰탕(8000원)과 사골설렁탕(700 0원)이 맛있다. 서산시청 뒤 진국집(664-4994)은 토속음식 ‘게국지’로 소문났다. 1인분 6000원. 향토(668-0040)에서는 서산의 전통음식인 우럭젓국과 꽃게장, 게국지를 한자리에서 즐길 수 있다. 주변 볼거리 천수만 버드랜드에서 다양한 겨울 철새와 만날 수 있다. 간월암도 지척이다. 삼길포에선 배 위에서 갓 잡아 파는 생선회를 맛볼 수 있다. 포구 뒤 삼길산에 오르면 다도해 같은 서해 풍경과 마주할 수 있다.
  • 강원도 철원 폭포기행

    강원도 철원 폭포기행

    두 동강 난 이 땅의 과거를 오롯이 기억하고 있는 곳 중 하나가 강원도 철원입니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긴장감이 흐르는 ‘접적지역’이었지요. 그러나 철원에 ‘분단’이란 무거운 주제만 있지는 않습니다. 특히 용암이 흘러가며 만들어 놓은 한탄강 주변 풍경은 정말 빼어납니다. 고석정이 맨 앞줄에 서고, 주상절리 위로 한탄강이 넘실대는 직탕폭포며, 추가령 구조곡의 백미인 순담계곡 등이 숨가쁘게 뒤를 잇습니다. 그 틈바구니에서 어여쁜 매월대폭포를 발견한 것은 행운이었습니다. 매월대폭포는 으뜸을 다투기보다 둘째의 온화한 이미지를 가졌습니다. 폭포를 품은 계곡을 오르다 보면 거창한 상차림보다, 작은 술병에 안주 두엇 올린 소반이 훨씬 더 잘 어울린다는 걸 단박에 알게 됩니다. 남들에게 보여주기보다, 나만 품고 조금씩 꺼내 보고 싶은, 그런 곳인 게지요. ●철원엔 철원이 세 개다? 철원을 방문하는 사람은 늘 헷갈린다. 철원의 정확한 위치가 도대체 어디인지 불분명해서다. 지명은 있되, 실체는 불분명하다. 거기엔 까닭이 있다. 철원은 한국전쟁 전까지만 해도 서울에서 북녘땅을 연결하는 강원 북부의 교통 중심지였다. 그러다 휴전선이 그어지며 철원시가지도 남북으로 갈라졌고, 남측의 철원 땅 또한 민간인통제선 안에 갇혀 버리고 말았다. 동송읍과 갈말읍에 각각 새 시가지가 세워졌다. 한 발짝이라도 더 ‘남쪽’으로 내려가고 싶었던 군청 등 관공서들은 갈말읍에 터를 잡아 ‘신철원’을 이뤘다. 행정의 중심지다. 옛 철원 땅과 가까웠던 동송읍은 ‘구철원’이 됐다. 민통선 이북, 보다 정확히는 북녘에 자기 땅이 있는 ‘철원 주민’들이 주로 모여 산다. 지역 경제의 중심지이자 사실상의 ‘철원’이다. 김미숙 철원군청 문화관광해설사는 “공무원 등 외지인들이 많이 사는 신철원에 견줘 엇비슷한 심정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모여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다.”고 했다. 요즘 TV 프로그램에 빗댄다면 ‘나는 철원사람이다.’쯤의 심정이겠다. ‘원철원’은 동송에서 북쪽으로 더 들어간, 민통선 너머의 땅을 이른다. 철원이 내주는 풍경엔 특징이 있다. 계곡이 평지에, 즉 발 아래 있다는 것이다. 들판 한가운데를 칼로 파낸 듯, 땅에서 푹 꺼져 높이 20~30m의 협곡을 이루고 있다. 화산에서 분출된 용암이 평지를 파고 흐르며 주상절리로 가득찬 계곡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주로 산사면을 따라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형성되는 여느 계곡들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그 덕에 자신이 딛고 선 발 아래로 거대한 계곡이 흐르는 묘한 쾌감을 맛볼 수 있다. 용암이 흐른 흔적 가운데 첫손 꼽히는 경승지는 고석정이다. 고석정은 계곡 한쪽의 정자만 일컫는 표현이 아니다. 신라시대 진평왕이 “누각과 순담계곡 등 주변 계곡을 묶어 고석정이라 부르라.”는 ‘영’을 내린 이래 여태 그 의미로 통용되고 있다. 고석정 앞의 물빛은 한 해에 네 번 바뀐다고 한다. 물 빛깔만이 아니다. 강변 풍경도 어제가 다르고, 내일이 또 다르다. 한탄강이 쉼 없이 지형을 깎아 새로운 풍경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철원은 한국전쟁을 통해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체제를 모두 경험했다. 그 역사의 산증거가 한탄강을 가로지르는 승일교다. 길이는 120m. 김 해설사는 “1948년 북한에서 공사가 시작됐으나 절반가량 짓다 한국전쟁으로 중단됐고, 전후 땅 주인이 바뀌면서 1958년 나머지 절반가량이 한국 정부에 의해 완성됐다.”고 전했다. 원했든, 그러지 않았든 남과 북이 함께 만든 다리인 셈이다. ●화산이 빚고 시간이 조탁한 풍경 승일교는 최근 조성된 트레킹로 ‘한여울길’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직탕폭포까지 4.88㎞ 구간을 돌아본다. 주상절리 등 용암이 흐른 흔적을 가까운 거리에서 만날 수 있는 길이다. 고석정에서 자전거를 무료로 빌려 주기도 한다. 직탕폭포는 ‘한국의 나이아가라’라고도 불린다. 하지만 이 별명에서 얼마간의 조롱과 자조가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여행객 가운데 열에 여덟아홉은 ‘한국의 나이아가라’를 본 뒤 ‘애걔’ 또는 ‘그럼 그렇지.’라며 실망감을 표시한다. 규모로 풍경의 깊이를 가늠하려 하기 때문이다. 직탕폭포는 거대하고 위압적인 폭포의 자태와 만나는 곳이 아니다. 용암이 만든 주상절리가 그대로 폭포가 된 지형을 봐야 한다. 강물이 육각형의 주상절리 위를 넘실대며 넘어간다. 강변을 이루고 있는 돌들도 여느 곳과는 달리 거개가 주상절리들이다. 화산이 빚고, 시간이 조탁한 풍경이다. 철원의 관광지 가운데 거의 알려지지 않은 곳이 매월대폭포다. 근남면 잠곡리 복계산 자락에 있는 전형적인 계곡형 폭포다. 매월대는 복계산 정상의 40m짜리 층암절벽을 일컫는다. 세조의 왕위찬탈에 비통해하며 전국을 떠돌았던 매월당 김시습이 은거했다고 전해지는 곳이다.매월대와 사선으로 마주한 매월대폭포는 등산로 입구에서 500m쯤 떨어져 있다. 천천히 걸어도 30~40분이면 넉넉히 닿는다. 폭포로 난 계곡은 작고 소담하다. 고만고만한 돌들 위로 초록 이끼가 내려앉았고, 그 사이로 수정처럼 맑은 물이 ‘또르륵’ 굴러간다. 개다리소반에 맑은 약주 한 잔이 어울릴, 그런 풍경이다. 계곡에 들면 진한 초목의 향기가 풍겨 나온다. 이런 향기라면 세상 그 어느 유명 향수와도 바꾸지 않겠다. 폭포는 계곡을 닮았다. 작고 소담하다. 이리저리 물줄기를 휘돌리는 모양새가 앙증맞다. 폭포 앞 너럭바위는 앉아 쉬며 주변 풍경을 눈에 담기 맞춤한 곳이다. 머리 위 진초록 나뭇잎 사이로 암봉 하나가 옹골찬 자태를 드러낸다. 좀처럼 보이지 않던 매월대다. 뒤집어 보면 매월대에 서야 폭포 전경이 한층 또렷하게 보인다는 뜻일 터. 폭포와 암봉은 그렇게 서로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글 사진 철원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 ▲가는 길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43번 국도→신철원사거리→고석정 순으로 간다. 차량 정체를 피하려면 파주와 전곡으로 우회하는 방법도 고려할 만하다. 매월대폭포는 서면에서 신술터널을 지나 사곡리 쪽으로 가다가 오른편에 있다. 철원군청 관광문화과 (033)450-5365. ▲주변 볼거리 철원엔 평화전망대와 승리전망대 등 두 곳의 전망대가 있다. 남측 휴전선을 따라 만들어진 참호와 초소들이 만리장성처럼 능선을 넘는다. 월정리역과 제2땅굴, 노동당사 등 남북 대치의 상흔도 만나보는 게 좋겠다. 월정리역사 옆으로는 저 유명한 ‘철마는 달리고 싶다’의 주인공이 서 있다.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34) 경남 하동 축지리 문암송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34) 경남 하동 축지리 문암송

    한 톨의 솔씨가 바람을 타고 섬진강을 따라 지리산 자락으로 올랐다. 수백 년을 살아가야 할 아늑한 보금자리를 찾느라 기력을 다한 솔씨는 햇살 따스하게 내리쬐는 양지 바른 곳에 내려앉았다. 한 줌의 포근한 흙에 묻혀 솔씨는 천년의 영화를 꿈꾸며 평안한 잠에 들었다. 그러나 그가 오랜 망설임 끝에 겨우 찾아내 잠든 곳은 얄궂게도 큰 바위 위에 포슬포슬 얹힌 한 줌의 흙이었다. 이미 1000년을 살아온 바위 위의 한줌 흙만으로 산다는 건, 애당초 견디기 힘든 고통이 뒤따르거나 불가능한 일일 수밖에 없었다. 어린 솔씨는 애면글면 바위 틈을 파고들어 뿌리를 내렸고 가끔은 강철같이 단단한 바위를 쪼개기도 했다. ●물 한 모금 없는 곳에 터 잡은 나무 씨앗이 뿌리를 내리고 큰 소나무로 자라는 고난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산 아래에는 사람들이 들어왔다. 어린 솔씨처럼 사람들도 황무지 위에 논밭을 일구고 생명을 키우며 풍요로운 농촌을 이뤘다. 경상남도 하동 악양면 축지리 대축마을이다. “그 큰 바위 덩어리 위에서 나무가 어떻게 그리 오래도록 크게 자랐는지. 만날 보는 나무지만 볼 때마다 신기하다니까. 그런 거 보면, 나무가 힘이 좋은 거야. 바위까지 뚫고 자랐으니 말이야.” 마을 입구의 한적한 버스 정류장 앞 점방을 지키는 조분수(77) 노파는 뒷동산 큰 바위 위에 서 있는 한 그루의 소나무를 바위보다 강한 나무라고 이야기한다. 나무를 ‘문암송’이라고 부르고 나무를 떠받치고 있는 바위는 문암, 혹은 문바위라고 부른다. 나무와 바위는 모두 대축마을 사람들에게 경외의 대상이다. 누구는 이 소나무의 나이를 300년이 됐다고 하고, 또 누구는 600년도 넘었다고 한다. 나무의 나이를 정확히 가늠하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나무로서 생명을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물 한 모금 스며들지 않는 바위 위는 문암송에게 최악의 조건이다. 문암송의 나이를 비옥한 땅에 터 잡은 여느 소나무들의 크기와 비교해 짐작할 수 없는 이유다. 나무가 자라려면 어쩔 수 없이 바위를 쪼개고 뿌리를 내릴 수밖에 없는데, 바위가 쪼개지면 나무는 보금자리를 잃게 된다. 문암송이 여느 나무들처럼 자랐다면 바위는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나무도 생명을 잃었을지 모른다. 하여 문암송은 사람도 바위도 전혀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조금씩 그것도 아주 천천히 자랐다. 그게 애당초 문암송에게 주어진 숙명이었다. ●지리산 선비들 음풍농월 즐기던 곳 “내가 시집온 게 열일곱 살 땐데,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아. 더 자라지도 않고, 부러지거나 시들지도 않고, 그때 그대로야. 외려 나무 밑에 있는 바위가 조금 더 갈라졌지. 그건 알 수 있어.” 조 할머니는 처음 시집왔을 때 보았던 나무를 또렷이 기억할 수 있다고 말한다. 나무도 자람의 숙명을 받아들여야 하는 생명이거늘 어찌 60년 동안 변하지 않았겠는가. 다만 사람들의 눈으로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천천히 자란 것이다. 문암송도 봄이면 송홧가루를 날리고 가을에는 솔방울을 맺으면서, 차갑고 견고한 바위 위에서 제 몸을 키웠다. 12m의 키, 줄기 둘레 3m의 훤칠한 소나무가 됐다. 살아남기 위해 나무는 바위를 파고들었지만, 바위가 바스라지지 않도록 조금씩 자라야 했다. 다른 소나무가 한 아름 자라는 동안 이 나무는 고작 한 뼘쯤 자라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또 나무의 보금자리인 바위가 부서지지 않도록 나무는 바깥으로 낸 뿌리로 바위를 감싸 안았다. 가운데에서는 바위를 쪼개고 바깥에서는 더 이상 쪼개지지 않도록 붙들어 안으며 나무는 긴 세월 동안 변증의 생명을 살았다. “우리 마을에는 문암계라는 게 있어. 대축마을하고, 저 아래 소축마을 사람들이 함께 하는 계야. 해마다 7월 백중에 계원들이 문암송 앞에 모여서 잔치를 벌이지. 나무 앞에 정자 있잖아. 그게 문암정이야. 그래서 그 나무도 문암송이라고 불러. 우리는 그냥 ‘문바위 나무’ 라고 부르곤 해.” 문암송이 자리 잡은 곳은 멀리 악양들녘이 한눈에 내다보이는 경관 좋은 자리여서, 옛날에는 문인들이 모여 자주 시회(詩會)를 열곤 했다. 사람이 지은 정자는 필요 없었다. 바위를 뚫고 솟아오른 신비로운 나무 한 그루가 드리우는 상큼한 그늘이면 너끈했다. 문암송이 드리우는 그늘은 곧 하늘이 지은 정자였다. 천연의 소나무 정자에는 오랫동안 지리산 자락에 흩어져 사는 문인 선비들이 모여들어 호연지기를 익히며 음풍농월의 흥취를 즐겼다. 맑은 바람 밝은 달을 노래하기에 나무 그늘만큼 알맞춤한 자리가 또 어디 있겠는가. ●고통·풍요 조화 이룬 생명의 변증법 “문암송 곁에 있는 한 그루 나무 또 봤수? 그건 서어나문데, 기가 막히게 그 나무도 바위에 뿌리를 내렸잖아. 큰 바위는 아니지만, 쪼개고 감싸면서 자라 오르는 건 똑같아. 우리 동네 나무들이 죄다 힘이 좋다는 이야기지 뭐. 허허.” 나무가 바위 위에서도 잘 자랄 수 있을 만큼 건강하고 활기찬 마을이라는 게 조 할머니의 자랑이다. 한평생 농촌 마을에서 잔뼈가 굵은 조 할머니의 건강한 웃음에는 간단없이 부닥쳐 온 농촌 살림의 모든 고통을 감내한 관록이 배어 있다. 이곳 사람들이 조 할머니처럼 건강하고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건 어쩌면 사람보다 먼저 바위를 뚫고 생명을 키운 한 그루의 소나무가 있는 탓인지도 모른다. 살림살이가 어려울 때마다 사람들은 마을 뒷동산에 서 있는 문암송의 고통과 강인한 생명력을 바라보며 스스로를 격려했던 것이다. 바위를 뚫고 솟아오른 문암송! 그는 지금 이 순간에도 거친 바위 표면에 생살이 찢기는 아픔을 삼키며 바위 틈을 조금씩 벌리면서 뿌리를 밀어 넣는다. 뿌리가 파고들수록 차츰 벌어지는 바위를 꽁꽁 붙들어 안아야 하는 바깥쪽 뿌리의 아픔은 더 커지기만 한다. 애처로운 운명의 문암송이 펼쳐 보이는 생명의 변증법이다. 글 사진 하동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가는 길 경남 하동군 악양면 축지리 산83-1. 하동에 가려면, 섬진강을 따라 이어지는 아름다운 국도 17호선을 타고 가는 맛이 일품이지만, 최근 개통한 순천~완주 간 고속국도를 이용하면 빠르게 갈 수 있다. 속도를 얻을 것인가, 풍경을 즐길 것인가에 대한 선택이리라. 어느 길을 선택하든 하동 축지리에 가려면 구례를 거쳐야 한다. 구례에서 하동 방면으로 20여㎞를 가면 악양면에 이른다. 악양면 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1.5㎞를 더 가면 대축마을 버스정류장이 나오는데 여기에서 오른쪽으로 난 마을 길을 따라 800m쯤 산으로 올라가면 마을 끝에서 문암송을 볼 수 있다.
  • 봄맞이 풍류 여행 경북 영덕 침수정

    봄맞이 풍류 여행 경북 영덕 침수정

    우리나라 내로라하는 계곡이면 어김없이 정자 하나쯤 세워져 있기 마련입니다. 예전처럼 선비들이 모여 시회를 여는 등 풍류를 즐기는 일이 없으니 정자 자체야 거개가 쇠락했지만, 정자가 들어앉은 계곡 치고 풍경이 빼어나지 않은 곳은 없습니다. 경북 영덕의 침수정도 그렇습니다. 시루떡을 쌓은 듯한 절벽을 병풍처럼 두르고, 너른 너럭바위를 타고앉아 비췻빛 옥계계곡을 조용히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원래 이름인 옥계계곡보다 침수정계곡으로 더 많이 알려진 것도 그런 까닭이지요. 침수정을 품은 달산면은 영덕에서도 이름난 복사꽃밭입니다. 머지않아 만개한 복사꽃이 봄바람에 흩날릴 테고, 계곡물에 실려 오는 복사꽃잎을 따라 위로 오르다 보면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의 무릉도원도 열리지 않을까요. ●청송·영덕·포항 물길이 만나는 옥계리 계곡의 주인은 여름뿐만이 아니다. 버들강아지가 복슬복슬하고, 얼었던 계곡물이 졸졸 흐르는 봄 또한 화사하기 그지없다. 여기에 노오란 생강나무꽃과 산수유꽃이 다투어 피어 화사함을 더해 준다. 청송과 영덕, 그리고 포항의 끝자락이 한데 만나는 곳이 옥계리다. 옥처럼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을 끼고 있다는 뜻이다. 청송 주왕산 남쪽 자락에서 발원한 물이 옥계리 어름에서 저 유명한 포항의 하옥계곡에서 흘러나온 물과 합쳐진 뒤 영덕의 젖줄인 오십천으로 흘러간다. 이름에 걸맞은 맑고 깨끗한 계류가 갖가지 모양의 기암괴석과 부딪치며 돌아드는 자태가 절로 감탄을 자아낸다. 옥계계곡은 찾아가는 길부터 범상치 않다. 마을 개천들을 유심히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주응리와 흥기리 등 고즈넉한 마을들을 지나는데, 여느 시골마을 실개천들과 달리 기묘하고 기골이 장대한 바위들이 줄이어 펼쳐진다. 옥계계곡에 들면 알싸한 향기가 나는 듯하다. 혹 침수정 주변의 생강나무로 인한 ‘파블로프의 조건반사’는 아닐지. 생강나무는 가지를 꺾어 문지르면 생강 냄새가 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해마다 이맘때 꽃을 틔우는데, 노오란 빛깔이 영락없이 산수유꽃과 닮았다. 누군가 생강나무를 꺾어 놓은 것도 아닌데, 알싸한 향기를 좇느라 애꿎은 코만 바쁘다. 침수정(枕漱亭)은 생강나무꽃과 산수유꽃이 노랗게 물들기 시작한 옥계계곡의 합수머리에 터를 잡았다. 경북도 문화재 제45호. 한자로는 ‘베개 침’(枕)자와 ‘양치질할 수’(漱)자를 쓴다. ‘흐르는 물을 베개 삼고 돌로 양치질을 한다.’는 뜻으로 중국의 역사서 진서 손초전에 나오는 ‘침류수석’(枕流漱石)에서 따온 이름이란다. ●옥계 37경 위로 봄이 가만히 내려앉다 정자를 지은 이는 1607년 조선 광해군 때 손성을이란 선비다. 정자 건너편 바위 벼랑에 문패 삼아 ‘산수주인 손성을’(山水主人 孫星乙)이라고 또렷이 음각해 놓았다. 너럭바위 위에 당당하게 선 침수정 주변으로 옥계 37경이 벌여 있다. 정자 오른편엔 병풍암이 둘러치고, 바로 앞엔 촛대암과 향로봉의 자태가 장하다. 구정담 푸른 물은 사자암과 삼귀암을 돌아 나가고, 멀리 삼층대와 구슬바위는 진경산수화를 그려내고 있다. 푸르디푸른 계곡물을 바라보면 빼어난 물색에 잠시 정신이 몽롱해진다. 계곡물을 손으로 내리치면 쨍하며 깨질 듯하다. 어디가 그림이고, 어디가 자연인가. 산수의 주인은 그 자리에 서서 풍경을 가슴에 담는 이일 터다. 전 영덕군 의원으로, ‘내고장 역사마을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용대씨는 “옥계 37경 중 귀남연, 둔세굴 등 여섯 곳은 포항시 죽장면 하옥계곡에, 나머지 서른한 곳은 옥계계곡에 산재해 있다.”며 “다만 정자의 주인 손성을이 ‘달기가 젖과 같은 맑은 샘이 흐른다.’고 극찬했던 다조연과 마음을 씻는 세심대 등 네 곳은 종적이 묘연하다.”고 일러 준다. 옥계계곡의 또 다른 볼거리는 계곡 곳곳의 소와 폭포. 수백만년을 쉼 없이 흐른 물길은 암반을 파 8개의 소와 15m 높이의 옥계폭포 등을 만들었다. 침수정에서 청송 얼음골 방면의 학소대와 영덕 방면의 ‘하늘 부엌’ 천조(天竈) 등도 멋들어지다. ●출렁다리 너머 산성계곡 달산면 소재지에서 침수정 방향으로 가다 보면 오른쪽 대서천 위로 느닷없이 70m짜리 철제 출렁다리가 나타난다. 한적한 시골마을에 까닭 없이 관광용 다리가 들어섰을 리는 없을 터. 다리는 산성계곡으로 들어가는 입구이자, 팔각산 산행길의 날머리 구실을 한다. 다리를 건너면 전국의 산악회에서 내건 형형색색의 리본들이 나무마다 빼곡하다. 이미 많은 산꾼들이 산성계곡을 오갔다는 증표다. 산성계곡은 팔각산 뒤편 산자락에 형성된 조그마한 계곡이다. 옥계계곡에서 흘러나오는 물과 옥산리에서 합류한다. 산성계곡은 지역 주민과 일부 산꾼들 외에는 아는 이가 드물다. 그 덕에 수정같이 맑고 깨끗한 물을 쉼 없이 영덕으로 흘려보낸다. 옥계계곡의 현란함에 견준다면 산성계곡의 자태는 소박하기 짝이 없다. 불국사의 다보탑과 석가탑의 차이쯤 될까. 하지만 작은 계곡 치고는 제법 묵직하고 웅숭깊다. 계곡길은 경사를 느끼지 못할 만큼 평탄하다. 거리는 2㎞ 남짓. 왕복 두 시간이면 족하다. 산책 삼아 자분자분 걷다 오기 딱 좋은 코스다. 소수의 사람들만 찾다 보니 여느 산책로처럼 잘 정비되지는 않았다. 많은 돌다리와 냇물을 가로지르며 가야 하는데, 외려 그 덕에 장식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제2목교 주변의 웅장한 암릉과 삼국시대 병사들이 뚫었다고 전해지는 바위구멍 ‘개선문’, 파란빛 감도는 청석바위 등이 볼거리다. 옥산리 유성모텔을 끼고 우회전하면 출렁다리다. 팔각산 등산로의 급경사가 시작되는 독가촌이 사실상 계곡의 끝이다. 글·사진 영덕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54) ▲가는 길 중앙고속도로 서안동나들목으로 나와 안동 시내를 지나 영덕방면 34번 국도로 갈아탄다. 영덕 읍내 못 미쳐 신양리에서 69번 지방도 옥계계곡 이정표를 보고 우회전한 뒤 곧장 가면 된다. 영덕군청 문화관광과 734-2121. ▲잘 곳 영덕군이 풍력발전단지 안에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영덕군해맞이캠핑장을 조성했다. 인터넷(camping.yd.go.kr)을 통해 예약할 수 있다. 4만원. 730-6337. 침수정 인근에서는 팔각산장이 깨끗하다. 3만∼7만원. 732-3920. ▲맛집 강구항 인근에 대게종가(733-4147) 등 대게 전문점들이 몰려 있다. 오십천 인근 화림산 가든(733-1077)은 은어요리로 입소문이 난 집. 창수면 현대식당(732-6033)은 메밀묵을 잘한다. 예약을 해야 맛볼 수 있다. ▲인근 볼거리 풍력발전단지와 삼사해상공원, 어촌민속전시관, 해맞이공원 등이 영덕 읍내에서 10∼20분 거리에 있다.
  • 통영 매물도… 봄이 오는 길목 호젓한 나들이

    통영 매물도… 봄이 오는 길목 호젓한 나들이

    경남 통영에서 뱃길로 1시간 20분 남짓. 매물도는 그렇게 먼바다 위에 고절한 자태로 떠 있었습니다. 유명하기로야 등대섬을 품은 소매물도가 단연 앞섭니다. 해마다 40만명 가까운 관광객들이 등대섬과 소매물도를 찾습니다. 반면 매물도는 유명세에서 한발 물러서 있습니다. 보다 정확히는 소매물도로 가는 도중 잠시 들렀다 가는 곳 정도에 머문다고 보는 게 맞겠습니다. 하지만 가려져 있다고 풍경이 없는 건 아니지요. 어린 시절 소풍 가서 보물찾기 놀이를 하다 뜻하지 않은 곳에서 보물을 찾았을 때의 그 기쁨, 딱 그만큼의 풍경을 매물도는 숨겨 두고 있습니다. 특히 장군봉에서 마주한 장쾌한 풍경은 쉬 잊혀지지 않을 만큼 강렬했습니다. ●섬, 문화의 옷으로 갈아입다 매물도에 들면 적요하다. 이곳이 ‘전국구 관광 명소’ 소매물도를 지척에 둔 섬인가 의아할 정도다. 음식점이 없고 펜션이 없는 데다 자동차도 없다. 3무(無)의 섬이다. 소란의 근원이 될 곳들이 없으니 당연히 소란스러울 까닭도 없다. 선착장에 섬사람과 뭍사람들이 들고 날 때 잠깐 인기척이 느껴졌다가 이내 절해고도 특유의 적막감에 젖어든다. 매물도는 통영에서 26㎞쯤 떨어져 있다. 본섬과 소매물도, 등대섬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흔히 소매물도와 구분 짓느라 ‘대매물도’로 부르지만, 공식 명칭은 매물도다. 주민들도 대매물도라 불리는 걸 달가워하지 않는다. 매물도가 최근 문화의 옷으로 갈아입었다. 단초는 2007년 문화체육관광부의 ‘가고 싶은 섬’ 사업이었다. 시범 사업지로 선정된 이후 매물도 주민과 다움문화예술기획연구회가 함께 새로운 관광 패러다임을 모색했고, 그 결과물이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매물도 특유의 생활과 문화를 녹여 낸 공공미술 예술 작품들이 설치됐고, 섬을 한 바퀴 돌아볼 수 있는 탐방로 등의 시설도 정비됐다. ‘어부 밥상’ 등 섬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 콘텐츠도 개발됐다. 다행스러운 건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섬 고유의 경관을 잃지 않도록 각별히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 섬 주민들의 편의를 위한 ‘재정비’와 관광객을 위한 ‘보존’ 사이에서 최대공약수를 찾은 셈이다. 매물도를 한 바퀴 돌아보는 탐방로는 그중 가장 앞세울 만하다. 전체 길이는 5.2㎞. 다 둘러보는 데 세 시간이면 족하다. 당금, 대항 등 매물도의 두 마을 주변을 에둘러 돌아간다. 물론 새로 난 길은 아니다. 예전 마을 사람들이 나무하러 가던 길, 옆 마을로 마실 가던 길 등을 잇고 다듬어 걷기 좋은 산책로로 만들었다. ●매물도의 아틀리에, 장군봉 탐방로의 최고 풍경 포인트는 장군봉이다. 매물도 어디서든 풍경이 주인이 된다. 장군봉은 당금마을보다 대항마을에서 가깝다. 선착장에서 채 1㎞가 못 된다. 높이는 210m. 섬 산행이 늘 그렇듯 대항마을 선착장에 들어선 순간부터 산행은 시작된다. 매물도엔 장군봉이 두곳이다. 첫 번째 장군봉은 선착장에서 30분 남짓 올라가야 만난다. 예전부터 주민들이 장군봉이라 부르던 곳이니 앞에 ‘원조’를 붙여도 무방하겠다. 산 중턱에 너럭바위가 펼쳐져 있고, 까마득한 발아래로는 대항마을과 선착장이 아련하다. 주변을 둘러치고 있는 다도해의 섬들은 그대로 병풍이 된다. 매물도의 아틀리에라 불러도 손색 없을 풍경. 통영항 출발 전 이 지역의 관광업체 대표가 꼭 장군봉에 오르라 중언부언한 까닭이 그제야 가슴에 와닿는다. ‘원조’ 장군봉에서 20분 남짓 오르면 산 정상이다. 두 번째 장군봉이다. 몇 년 전만 해도 폐쇄된 군 레이더 기지와 막사, 병기고 등으로 살풍경한 몰골을 하고 있던 곳이다. 2007년 말 철거 작업이 마무리됐고, 그제야 장군봉도 제 모습을 찾았다. 산 정상에서 천천히 한 바퀴 돌아보시라. 거칠 것 없이 탁 트인 한려해상국립공원이 360도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무인도인 등가도가 혈혈단신 바다 위에 떠 있고, 소매물도와 등대섬은 서수(瑞獸)의 뿔처럼 불쑥 솟았다. 내 나라 안 어디서고 쉬 마주하기 어려운 풍경이다. 맹장(猛將) 아래 약졸(弱卒) 없다. 장군봉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이토록 장한데 그 아래 풍경인들 뒤질까. 억새 무성한 탐방로를 따라 곳곳에 풍경의 보고를 숨겨 뒀다. 해안에서 소매물도 쪽으로 불쑥 튀어나온 ‘꼬돌개’는 낙조 감상 일 번지다. 마을을 지키는 당산목 후박나무도 빼놓으면 섭섭한 볼거리. 장군봉 아래에선 일본군들이 파놓은 진지 동굴들도 볼 수 있다. ●생활의 거리에서 마음을 데우다 당금마을은 매물도의 ‘명동’이다. 대항마을에 견줘 겨우 몇 명 더 살 뿐이지만 섬 주민들은 그렇게 농을 던지며 적적한 섬 생활을 위로한다. 외형상 매물도의 변화를 이끌고 있는 건 ‘생활의 거리’다. 골목길을 따라 마을 곳곳에 미술 작품들을 설치했다. 골목길 민박집엔 주인을 닮은 이름들도 붙였다. 물때와 고기 종류 등을 잘 아는 아저씨가 사는 ‘고기 잡는 집’이 있고, 화초 기르기를 좋아하는 ‘꽃 짓는 할머니의 집’도 있다. 생활의 거리는 이처럼 주민들의 정서가 듬뿍 담긴 골목길을 따라 펼쳐진다. 골목길은 주민 저마다의 삶을 담아내는 한편, 그를 통해 공동체성을 하나로 묶어 낸다. 골목길이 소곤대는 이야기를 따라 한발한발 내딛다 보면 외지인들은 어느 결엔가 주민들의 일상에 꼼짝없이 빠져들고 만다. ‘바다 마당을 가진 집’에서 잠시 다리쉼도 해야 하고 ‘제주 해녀를 데려온 할머니 집’에 들러 속사정도 들어 봐야 한다. 골목길이 들쑥날쑥 굽이치며 이어지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어느 길로 가도 마을은 통하고 누구네 집이건 한번은 지나친다. 그 길에서 서로를 보듬고 살피며 살아온 골목의 정서를 느낄 수 있다. 풍경과 먹을거리, 그리고 특유의 정서가 온전한 섬. 매물도를 돌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데워진다. 글 사진 통영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여행 수첩(지역번호 055) →가는 길: 통영항 여객터미널에서 오전 7시·11시, 오후 2시에 운항한다. 매물도 출항 시간은 오전 8시 15분, 낮 12시 20분, 오후 3시 45분. 주말에는 증편된다. 왕복 2만 7300원. 645-3727. 거제시 저구항에서도 하루 4차례 여객선이 운항한다. 등대섬 물때는 한솔해운 홈페이지(www.nmmd.c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맛집: 매물도에는 음식점이 없어 민박집에서 식사를 해결해야 한다. 1인 6000원. “회 5만원어치만 썰어 주세요.” 하면 주민들이 물고기를 잡아다 회도 쳐 준다. 석화와 볼락구이, 성게알쌈, 방풍나물 등으로 구성된 ‘어부 밥상’은 올여름부터 선보일 예정이다. →잘 곳: 당금·대항마을 주민 대부분이 민박을 운영한다. 당금마을 박성배 이장(010-8929-0706)·김인옥 어촌계장(010-3844-9853), 대항마을 이규열 이장(010-4847-9696)·김정동 어촌계장(010-6340-1514), 소매물도 이석재 이장(010-2810-7704).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16) 경기 이천 도립리 반룡송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16) 경기 이천 도립리 반룡송

    달력 하나 바꾸었을 뿐이지만 새해가 되면 누구나 자못 비장한 마음으로 갖가지 희망의 다짐을 하게 마련이다. 더불어 스스로 이루기 어려운 일이라면 하늘을 향해서든 바람을 향해서든 소원 하나씩을 바라곤 한다. 내용이야 다르겠지만, 누구에게나 그 희망과 소원이 한해 동안의 삶을 애면글면 이어가게 하는 힘의 근원인 것만은 틀림없다. 사람의 소원을 적어도 한 가지씩은 꼭 들어주는 나무가 있다. 새해를 맞아 찾아가 봄 직한 나무다. 1000년 전인 통일 신라 때 풍수지리를 정립한 도선 스님이 손수 심은 천연기념물 제381호 이천 도립리 반룡송이다. ●천연기념물 381호… 통일 신라때 도선국사가 심어 “물론이지. 소원 하나씩은 꼭 들어주고 말고. 우리 마을 사람들은 아무 때나 그 나무를 찾아가서 맑은 물 한 대접 올리고 소원을 빌곤 했어. 당연히 사람들은 소원을 다 이뤘지. 요즘 좀 뜸해졌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여전해.” 51년째 이 마을에서 살아온 경안댁(73) 아주머니의 이야기다. 도대체 무슨 소원을 빌었고, 그 소원이 어떻게 이뤄졌기에 그리 확신을 갖고 이야기할까. 사람의 소원을 이루어주는 나무의 영험함은 지금도 여전할까. 그러나 터무니없는 욕망으로 가득한 이 시대에 사람들이 품은 소원이라면 제 아무리 영험한 나무라 해도 애시당초 글러먹은 소원일지 모른다. 반룡송이란 이름의 이 소나무는 봄이면 산수유 꽃잔치로 유명한 경기 이천시 백사면 도립리 마을 벌판에서 지난 1000년 동안 마을의 평화와 안녕을 지켜온 수호목이다. 나무는 너른 들판 한가운데에 기이한 모습으로 웅크리고 앉아 있다. 키가 작은 데다 나뭇가지가 비틀리고 꼬인 채로 자란 까닭에 서 있다기보다 웅크리고 있다는 표현이 잘 어울린다. 가까이 다가서는 사람에게 서서히 드러내는 기기묘묘한 나뭇가지의 꿈틀거림은 참으로 신묘하다. 뱀처럼 길다란 몸을 가진 짐승이 몸을 웅크리고 있다는 뜻의 생소한 한자 반(蟠)을 넣어 이름을 붙인 것도 그래서다. 쓰기도, 발음하기도 어려운 탓에 그냥 용송이라고도 부르고 1만년을 살아갈 나무라는 뜻에서 만년송이라고도 부르지만, 이 나무에 가장 알맞춤한 이름은 반룡송이다. 나무에 전설 속의 짐승인 용을 빗대어 이름 붙이는 게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도립리 반룡송만큼 용틀임 직전의 꿈틀거림이 생동감 있게 느껴지는 신비로운 나무는 흔치 않다. 반룡송이라는 이름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다. ●옛 모습 사라졌어도 나무는 여전 반룡송이 들판에서 마을 바깥을 지켜주는 나무라면, 6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 안쪽을 지켜주는 건 육괴정이라는 아담한 정자 주변의 여섯 느티나무다. 육괴정은 조선 중종 때 기묘사화를 피해 낙향한 선비 엄용순을 비롯한 여섯 선비가 제가끔 한 그루의 느티나무를 심고, 마을의 중심으로 삼은 곳이다. 예의 경안댁 아주머니의 집은 바로 육괴정에 잇닿아 있는 뒷집이다. 마침 이 댁에 마실 온 옆집 아주머니는 반룡송을 이야기하면서 옛 모습이 사라졌다는 게 아쉽다는 이야기부터 꺼낸다. “20년 전만 해도 반룡송은 지금과 달랐어요. 반룡송 앞으로 작은 소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고 그 바깥으로는 도토리나무가 울창했지요. 게다가 반룡송 주변에는 어디에서 온 건지, 산 위에서나 볼 수 있을 만한 커다란 바윗돌이 놓여 있어서, 걸터앉아 쉬기에 십상이었어요. 한마디로 아주 좋은 마을 숲이었죠.” 반룡송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것은 1996년이다. 지금 반룡송은 들판 한가운데에서 쓸쓸히 겨울 바람을 맞고 있지만, 그 전에는 나무 주위에 서너 채의 살림집이 있었다고 한다. 그 앞의 밭에서는 고추 농사를 크게 지었고, 가을에는 마을 사람들이 고추 갈무리 울력에 나서곤 했다. 일을 하다가 땀을 식히던 곳은 어김없이 반룡송 앞의 너럭바위들이었다. 도시락을 펼쳐 놓고 둘러앉아 새참을 먹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그늘을 깊게 드리우는 우거진 숲도 마을 사람들을 반룡송 앞으로 끌어들이는 요인이었다고. “나무 줄기가 축축 늘어져서 땅에 닿아 있었지. 괴이쩍은 짐승처럼 울퉁불퉁해서 어떻게 보면 무섭기까지 했다니까. 지금은 늘어진 나뭇가지들을 보호하느라 그랬는지, 지지대를 세워 놓아서 옛날 그 모습은 없어.” 옆집 아주머니 이야기에 경안댁도 오래 전 울창했던 마을 숲을 헤치고 들어가 반룡송 앞에 막걸리를 바치고, 소원을 빌던 때를 떠올렸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되던 때부터, 살아있는 수호신이라는 마을 사람들만의 살가운 의미보다, 볼거리로서의 의미로 바뀐다는 게 아쉽다는 이야기다. ●참 평화를 찾는 사람들의 참 지혜 반룡송은 도선국사가 함흥, 서울 등 전국의 풍수 좋은 다섯 곳을 표시하기 위해 심은 나무 중에 살아남은 한 그루다. 당시 도선 국사는 나무를 심으며 장차 이곳에서 큰 인물이 태어날 것을 예언했다고 한다. 그러면 도립리에서 훌륭한 인물이 얼마나 나왔는지 궁금했다. “훌륭하다는 기준이 뭔데? 돈 많이 벌고, 정치하는 사람 돼서 텔레비전에 나오는 거? 우린 그거 하나 부럽지 않거든. 자식 잘 키우고, 정직하게 사는 게 제일 훌륭한 거야. 소원도 그래. 우리네는 대단한 욕심 없어. 남 속이지 않고 화평하게 잘 사는 게 제일 큰 소원이야. 우리 반룡송이 그걸 다 이뤄준 거야. 그래서 우리 마을엔 허리 굽은 노인도 없이 다 건강하고 내남 없이 잘 지내지. 그게 최고지 뭐.” 얼마나 훌륭한 사람이 많이 나왔느냐는 질문에 끼어든 속물 근성을 부끄럽게 하는 칠순 노인의 지혜로운 대답이다. 훌륭한 나무의 덕을 입은 마을에서 살아가는 삶의 지혜가 바로 이것이지 싶다. 순백의 눈이 소복이 덮인 반룡송 마을 뒷산으로 저무는 붉은 노을이 한없이 평화롭게만 느껴지는 겨울 저녁이다. 글 사진 이천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가는 길 경기 이천시 백사면 도립리 201-11. 중부고속국도 서이천나들목으로 나가서 좌회전한다. 3㎞쯤 가면 나오는 삼거리에서 좌회전해 300m 남짓 가면 신둔교차로가 나온다. 우회전하여 5㎞ 가면 나오는 증포교차로에서 다시 이포 백사 방면으로 좌회전하여 5.5㎞ 가면 자동차 정비공장들을 지나면서 사거리에 이른다. 좌회전하여 1㎞쯤 가면 오른편으로 반룡송 주차장이 나온다. 나무는 주차장 반대편 들판으로 200m쯤 걸어가면 볼 수 있다.
  • 경남 함양 지리산둘레길 4구간 중 폐쇄된 벽송사~세진대 6km

    경남 함양 지리산둘레길 4구간 중 폐쇄된 벽송사~세진대 6km

    그 길을 보고도 경탄하지 않은 채, 내처 발걸음만 재촉할 ‘강심장’은 없지 싶습니다. 앞에서 마주하고도 또다시 뒤돌아 보게 하는, 한 굽이 돌면 또 어떤 풍경이 기다리고 있을까 기대치를 한껏 높여주는, 그런 길입니다. 길과 지리산이 만든 경이로운 풍경 앞에 서면 인간이 만든 그 어떤 경관 조명도 자연이 빚어낸 색을 대신할 수 없다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지리산 둘레길 4구간(금계~동강) 중 지금은 끊겨 있는 ‘산사람 길’입니다. 보다 정확히는 경남 함양군 마천면 벽송사에서 송대마을을 지나 휴천면 송전리 ‘소나무쉼터’ 세진대(洗塵臺)까지, 약 6㎞ 구간이지요. 그 길이 끊어진 사연이 영 개운치 않습니다. 주민과 주민, 그리고 주민과 ‘둘레길 도보꾼’ 간의 서운한 사연들이 실타래처럼 얽혀 있지요. 그럼에도 그 길을 소개하는 까닭은, 반드시 길은 다시 열려야 하고, 그날이 그리 머지 않은 듯 보이기 때문입니다. 또 기왕 열릴 바에야 만추가 절정에 달한 지금, 많은 사람들이 서둘러 접했으면 하는 바람도 없지 않습니다. 서로가 조금씩 양보하고 이해해야 온전히 열리게 될 그 길. 그리 된다면,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한 우리의 너른 가슴에 대해 자긍심을 갖게 되지 않겠습니까. ●지리산 둘레길의 그늘 지리산 둘레길을 찾는 이유는 저마다 다를 터다. 다만 대개의 도보꾼들이 둘레길을 걸으며 거대한 풍경이나 대단한 이야깃거리를 기대하지는 않을 거란 생각이다. 서로의 살아가는 모습을 주고 받는 과정을 통해 농촌과 도시가 소통하고, 조금이나마 간극을 줄이려는 노력의 하나로 보는 것이 온당할 듯싶다. 금계~동강 구간은 2008년 4월 지리산 둘레길이 일반에 공개될 당시 첫선을 보였다. 여느 지리산 둘레길 구간에 견줘 단연 빼어난 풍광으로 인기를 모았다. 하지만 그뿐. 산사람 길은 1년가량 운영되다 폐쇄되는 비운을 맞았다. 길은 곧 다른 루트로 교체됐다. ‘교류와 소통’이 지리산 둘레길의 본령이라 한다면, ‘단절과 경색’이 1년 넘게 이 길을 지배하고 있는 셈이다. 사연은 이렇다. 길은 ‘지리산 빨치산 루트’라는 이름의 등산로와 일정부분 코스를 공유하고 있다. 단지 ‘등산로’였을 때는 한산했던 길이 ‘지리산 둘레길’이란 이름으로 세상에 나왔을 때는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많은 도보꾼들이 오가다 보니 자연히 주민들과 마찰도 생겼다. “한번은 등산객이 내려오는데 손에 두릅 두어개를 쥐고 있는 기라. 왜 남의 밭에서 두릅을 캐냐고 하니까 되레 ‘겨우 몇개 갖고 뭘 그러느냐’며 타박을 하더라꼬. 주말에만 수천명의 사람들이 오는데, 한 사람이 두릅을 하나씩만 캐가도 그기 도대체 얼마고? 아무데나 용변 보고, 쓰레기 버리는 건 일도 아이라.” 송대마을 한 주민의 하소연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구간 일부가 이 주민의 사유지를 통과한다. 매번 도보꾼과 이 주민 간에 실랑이가 벌어졌고, 급기야 길은 폐쇄되고 만다. 그러다 최근 길을 다시 열자는 주민들의 논의가 급물살을 탄다. ‘산골 사람들의 경제적 문제’ 때문이다. “서울 사람들이 많이 오면서 돈을 떨구고 간다꼬. 그네들에겐 작지만, 산중에서 그기 어데고. 쓰레기야 우리가 치우면 되는 거 아이가. 개인적인 문제가 주민 전체의 이익을 막고 있는 기 서운한 기라.” 신수철 송전리 이장의 말이다. 결국 주민과 도보꾼의 다툼은 주민과 주민 간 불화로 번졌고, 현재 주민 한 사람과 다른 여러 주민들이 얼굴을 붉혀야 하는 형국에까지 이르게 됐다. ●경탄과 경외가 교차하는 ‘산사람 길’ 길의 들머리는 벽송사다. 지리산 칠선계곡 초입에 터를 잡은 절집이다. 현재 4구간(11㎞)은 금계마을에서 출발, 벽송사 못 미쳐 의중마을에서 좌회전한 뒤 송전마을을 거쳐 동강리까지 이어진다. 엄천강과 용류담을 따라 걷는 맛도 각별하지만, 풍경으로만 보자면 도무지 산사람 길에 비할 바가 못된다. 일부 등산객이 주민과의 마찰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산사람 길에 오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벽송사 오른편, ‘빨치산 루트’를 표시한 안내판에서 길은 시작된다. 예서 송전마을까지는 7.3㎞쯤 된다. 풍경이 빼어난 송대마을까지는 트레킹이라기보다 산행에 가까울 정도로 고된 길을 지나야 한다. 800m 고지에 오르기까지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된비알이 이어진다. 하지만 일단 고지를 딛고 나면 이후는 얕은 오르막 내리막이 반복되는 능선길이다. 길의 역사를 돌아볼 때 빨치산을 빼놓을 수는 없다. 산사람 길이라 불리게 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우선 벽송사가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의 야전병원으로 사용됐다. 송대·송전마을은 빨치산 주둔지로 이용됐다. ‘마지막 빨치산’ 정순덕(1933~ 2004)이 머물던 선녀굴도 동네 뒤편, 이른바 ‘와불산’(臥佛山)의 부처님 발 부분에 있다. 송대마을 못 미쳐 ‘문제의’ 사유지가 나온다. 길 주변은 밭이다. 극히 일부일망정 도보꾼이 작물에 손을 댄다면 밭 주인으로서 분통이 터질 노릇. 신 이장은 이에 “조만간 100m쯤 돌아가는 길을 만들 것”이라고 전했다. 송대마을부터는 임도를 따른다. 산사람 길 최고의 풍광과 마주하는 구간이다. 길에 오르니 볕에 덥혀진 포근한 바람이 볼을 간질인다. 주민들은 이를 ‘고춧가루 바람’이라 부른다. 고춧가루에서 열이 나듯, 바람이 온기를 품었다는 뜻이다. 두어 굽이 임도를 돌면 와불산 품에 안긴 송대마을 전경이 펼쳐진다. 삐죽 솟은 마을 주변의 낙엽송은 노랗게 물들었고, 단풍나무는 한없이 붉다. 좁은 가슴으로는 담기 벅찬, 참으로 큰 풍경이다. 흑염소목장 어름에서 풍경은 절정을 이룬다. 목장의 산사면을 따라 소나무 몇 그루가 서 있고, 뒤로 단풍 들어 얼굴 붉힌 작은 봉우리들이 계란판 속 계란들처럼 봉긋봉긋 솟았다. 봉우리마다 “모름지기 만추의 풍경이란 이런 것”이라 외치는 듯하다. 하지만 이 구간 역시 재개방 논란에 휩싸여 있다. 흑염소목장 주인이 다시 길을 여는 것에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임도인 만큼 길을 막을 명분은 없다. 쓰레기 투기 금지 입간판을 세우는 등 지자체의 주민 보호대책이 절실한 대목이다. 길은 ‘소나무 쉼터’ 세진대를 지나 송전마을로 이어진다. 특히 세진대 가운데엔 400년을 산 소나무 ‘마적송’이 너럭바위를 뚫고 서 있는데, 그 기상이 자못 장하다. 송전마을에서는 공식 4구간을 되짚어 의중마을로 갈 수도, 동강리까지 내처 갈 수도 있다. ■여행수첩(지역번호 055) ▲가는 길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대전~통영간고속도로→함양 분기점→88고속도로→함양 나들목→24번 국도 남원·인월방면→1023번 지방도 마천방면→오도재→의중마을 순으로 간다. 함양버스터미널에서 금계까지 30분 간격으로 버스가 다닌다. 45분 소요. 함양지리산고속 963-3745. 스마트폰 소지자라면 경남도에서 발행한 안내책자 등의 ‘QR코드’를 이용하는 것도 좋겠다. 전국의 지자체 중 가장 앞서 QR코드를 도입해 성공적으로 정착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경남의 여행지와 맛집 30선이 주메뉴다. 각 메뉴를 클릭하면 경남도 내 여행지와 맛집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빠르게 검색할 수 있다. 아울러 일본어 번역 솔루션을 활용, 일본인 여행객들이 자신의 휴대전화로 검색이 가능하게 했다. 안드로이드 기반의 스마트폰은 아직 사용할 수 없다. ▲주변 볼거리 신라 최치원이 조성한 상림은 반드시 찾을 것. 2만여 그루의 수목 사이로 낙엽과 단풍이 어우러지며 절정을 이루고 있다. 지안재와 오도재에서 이어지는 ‘지리산가는길’도 낙엽송 등 단풍이 최고조에 달했다. ▲잘 곳 지리산 둘레길 4구간 끝자락인 송전산촌생태마을(www.songjunri.com)에서 민박과 식사가 가능하다. 형제 간 우애를 깨지 않기 위해 주웠던 황금을 다시 버렸다는 고려말 이억년·조년 형제의 전설이 서린 엄천강변에 있다. 숙박 3만원. 1인 추가시 1만원. 식사 5000원. 963-7949. 글 사진 함양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60대 남성, 노 前대통령 묘소에 오물 투척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에 60대 남자가 오물을 투척하는 사건이 발생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14일 오후 1시 9분쯤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에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에 정모(62·무직·경북 경산시)씨가 미리 준비한 오물을 투척했다. 당시 현장에 있던 관광객 김모(49)씨는 “정씨가 손에 들고 있던 종이가방 속에서 플라스틱 통을 꺼내 갑자기 노 전 대통령의 묘소 너럭바위 쪽으로 2차례 오물을 뿌렸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정씨는 노 전 대통령 묘역과 사저에서 경비 중이던 전경에 의해 현장에서 붙잡혔다. 정씨가 뿌린 오물은 인분으로 확인됐다. 정씨가 현장에 뿌린 유인물에는 “노 전 대통령이 전교조·전공노·민주노총 등 좌파세력을 도와 국민을 불안에 떨게 하고 국가 정체성을 혼돈에 빠뜨렸다.’는 내용 등이 적혀 있었다. 김해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도시탈출 산촌유람…강릉 대기리 생태마을

    도시탈출 산촌유람…강릉 대기리 생태마을

    가족, 그리고 체험. 최근 여행 트렌드를 설명하는 중요한 두 화두입니다. 가족이 함께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을 여행 목적지로 고려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는 것이지요. 여름방학을 맞아 시골에서 농민들과 밤낮을 함께 지내며 농촌 생활을 체험하는 농산체험여행이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낮에는 물가에서 물고기를 잡거나 감자, 옥수수 등 농작물을 수확합니다. 밤엔들 그냥 있으려고요. 모깃불 피워 놓고 마을 할아버지의 구수한 옛이야기를 듣거나, 천체 망원경으로 별자리를 관측하며 밤하늘의 별꽃을 따기도 합니다. 강원도 강릉 대기리마을이 그렇습니다. 해발 700m 고원지대에 터를 잡았으니 열대야가 있을 리 없지요. 게다가 고랭지 채소밭인 안반덕, 노추산 등 천혜의 자연경관까지 품고 있습니다. 2008년엔 산림청 선정 산촌생태마을 경영부문 전국 최우수 마을에 뽑혔을 만큼 잘 짜여진 체험 프로그램과 맑고 깨끗한 환경으로 도회지 가족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도시여 안녕! 우리는 오늘 숲으로 간다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에 전기가 들어온 것은 1975년께다. 강릉 사람들조차 대기리에 산다고 하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만큼 ‘오지중의 오지’였다. 차가 드나들 수 있는 도로가 생긴 것도 불과 30여년 전. 비포장 언덕길을 오르다 힘에 부치면 승객들이 버스에서 내려 뒤를 밀어야 겨우 올라갔을 정도로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자연이 재산이고 참살이가 트렌드인 시대다. 마을 발전의 걸림돌이라 생각했던 궁벽한 환경이 되레 마을 살림을 풍요롭게 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강릉에서 대기리마을로 가려면 닭목령을 넘어야 한다. 예전에 도시와의 소통을 방해했던, 바로 그 고개다. ‘닭 모가지를 비틀 듯’ 산자락을 에둘러 돌아가야 하는데, 성능 좋은 요즘 자동차조차 ‘그렁그렁’하며 힘에 겨운 소리를 낼 정도로 제법 험하다. 대기리마을은 닭목령과 비슷한 높이에 평탄하게 펼쳐져 있다. 좌우의 산사면을 따라 감자꽃이 무성하고, 한 굽이 돌 때마다 울창한 숲이 펼쳐진다. ‘도시여 안녕! 우리는 오늘 숲으로 갑니다.’라는 마을의 홍보 문구가 허언은 아닌 듯하다. 체험 프로그램은 1박2일이 주를 이룬다. 관동대 미래콘텐츠 개발팀의 조언을 받아 만들어졌다. 감자·옥수수 등 수확체험, 대기리의 관광명소이자 고랭지 채소밭인 안반덕 체험 등은 ‘옵션’으로 운용된다. 올해처럼 봄에 날씨가 추울 경우, 농작물의 수확시기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상황에 따라 프로그램 진행에도 변동이 생기긴 하지만, 무더운 날씨 탓에 첫날 프로그램은 대체로 물놀이 체험부터 시작한다. 체험장은 용수골과 대기천, 두 곳이다. 이동은 ‘나래피오’란 트랙터 마차를 이용한다. 트랙터 뒤에 네 바퀴 달린 수레를 연결한 형태다. 용수골은 대기리 주민들이 즐겨 찾는 물놀이 장소다. 인적이 뜸한 곳에 제법 너른 계곡이 펼쳐져 있다. 주변의 시선이 부담스러운 마을 선남선녀들이 몰래 정분께나 나눴을 법한 곳이다. 체험 참가자들은 이곳 너럭바위 위에서 비료 포대 등을 타고 내려오며 더위를 쫓는다. 슬라이더 등 유명 워터파크 놀이시설의 ‘대기리 버전’인 셈이다. 대기천에서는 물고기 잡기 체험을 한다. 중장년층에게는 ‘천렵’이란 단어로 더 익숙한, 여름철 대표 놀이다. 대기천은 정선 아우라지의 상류. 그만큼 물색이 맑고 깨끗하다. 마침 강릉의 관동중학교에서 체험여행을 온 학생들이 대기천을 독차지하고 ‘천렵’을 즐기고 있다. 어쩌다 족대에 송사리 한 마리라도 걸리면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지른다. 생명체를 잡아본 적이 없는 아이들에게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신기한 경험일 게다. ●숲 끝자락엔 3000개 돌탑 쌓는 할머니 저녁에는 별자리 관찰 프로그램이 준비돼 있다. 강릉대 천체동아리 회원들이 강사로 나선다. 30분 강의, 1시간 관찰 순서로 진행된다. 하지만 프로그램이 제 시간에 끝난 적은 거의 없다. 좀더 많은 별을 보려는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과 마주하고도 서둘러 강의를 끝낼 ‘독한’ 강사는 없기 때문이다. 이튿날은 노추산 숲체험으로 시작한다. 설총과 율곡 이이가 입산 수학했다는 산이다. 3시간 남짓 걸리는 숲체험에는 숲해설가가 동행한다. 대기리마을은 이처럼 외부 강사가 필요한 경우 일정한 보수를 주고 초빙한다. 그래야 좀 더 풍성한 체험 프로그램을 유지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노추산 끝자락에서 프로그램 참가자들은 3000개의 돌탑을 쌓는 할머니(64)와 만난다. 스스로를 ‘탑돌이 할머니’라 밝힐 뿐, 이름은 누구에게도 알려주는 법이 없다. 스물 셋 나이에 서울에서 강릉으로 시집온 할머니가 노추산에 돌탑을 쌓기 시작한 건 25년 전쯤이다. 자식 넷 중 둘을 잃고 남편은 정신질환을, 자신도 무릎 등에 신경성 질환을 앓는 등 끊임없이 우환에 시달리던 할머니는 어느날 희한한 꿈을 꾼다. “키가 조그맣고, 하얀 도포에 갓 쓴 산신님이 나타나 ‘노추산에 돌탑 3000개를 쌓으라.’고 지시하더라.”는 것. 그때부터 할머니는 가누기조차 어려운 몸을 이끌고 탑을 쌓기 시작했다. 한 달에 20일 정도는 강릉집을 나와 산속에서 기거했다. 장정들도 들기 힘든 큰 돌로 탑 아래쪽을 다지고, 위로 갈수록 돌의 크기를 줄여 나갔다. 시작한 이유야 어찌됐건, 할머니가 하루에 홀수로만 쌓아 올린 돌탑의 규모는 정말 방대하다. 노추산 ‘치유의 숲’ 초입에서 시작된 돌탑길이 산속 움막까지 길게 이어져 있다. 움막 주변은 마치 돌탑으로 만든 성(城)처럼 보인다. 대기리 주민들은 돌탑 수를 2600개 정도로 추정하지만, 할머니는 정확한 개수를 알려주지 않는다. 꼭 3000개를 채운 뒤라야 말할 수 있단다. 다만 “앞으로 5년이면 끝내게 될 것”이란 귀띔은 잊지 않았다. ●클릭 한 번에 농산체험 정보가 주르륵 농·산·어촌 체험여행이 더욱 다채롭고 편리해졌다. 한국농어촌공사는 농림수산식품부와 농촌진흥청, 산림청, 농협 등으로 분산되어 있던 농·산·어촌 체험마을(834개) 및 여행 관련 정보를 통합해 웰촌포털(www.welchon.com) 사이트를 통해 제공한다. 농·산·어촌 체험여행을 원하는 사람은 웰촌포털의 ‘여행’코너 ‘체험마을’ 메뉴를 클릭하면 가족의 여행 패턴에 맞는 유형·지역·지형·계절·교통수단별 맞춤식 정보검색이 가능하다. 한국관광공사 또한 전문 여행작가와 함께 농어촌 체험마을의 주변 볼거리와 먹거리, 숙박 등 여행정보를 웰촌 포털사이트에 제공하고 있다. 또 지난해 30개 체험마을 100개의 체험여행상품을 개발한 데 이어, 올해에도 40개 체험마을과 주변관광자원을 연계한 100개의 체험여행상품을 개발할 방침이다. 글 사진 강릉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33) ▲가는 길 영동고속도로→강릉 나들목→35번 국도 성산·왕산방면→오봉저수지→왕산교→415번 지방도 대기리 방면→닭목령→벌마을(대기2리). daegiri.invil.org, 647-2540. 김경래 산골체험학교장 016-648-8322. ▲잘 곳 단체의 경우 옛 대기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한 산촌체험학교를 이용할 수 있다. 가족 단위 참가자는 주로 펜션을 이용한다. 1박2일에 어른 5만 5000원, 어린이 5만 2000원. 옥수수, 감자 등 수확 체험은 3.3㎡(한 평)당 7000원을 받는다. ▲맛집 정선 방향으로 30분쯤 가다 보면 고단리다. 고만고만한 막국수집들이 모여 있다. 고단막국수가 그중 유명하다. 막국수 5000원. 648-3955. ▲주변 볼거리 마을에서 20분 거리에 정선 구절리 레일바이크 체험장이 있다. 넉넉한 시골 인심과 만날 수 있는 정선5일장이나 봉평허브나라, 강릉 등은 40분 남짓 걸린다.
  •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69〉괴산 화양계곡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69〉괴산 화양계곡

    화양계곡(화양동계곡)은 울창한 숲, 맑은 물과 너른 반석들이 어울린 별천지다. 백두대간 늘재에서 발원한 계류가 달천에 몸을 섞기 직전 빚어낸 곳이 화양계곡이다. 수량이 풍부하고 모래가 많아 물놀이하기 좋다. 하지만 물장구만 치고 돌아서기에는 좀 아쉽다. 우암 송시열(1607~1689)이 손수 고르고 이름붙인 9곡을 찾아보며 숲, 물, 바위가 어울린 그윽한 산수미를 즐겨보자. ●송시열이 이름지어 아꼈던 아홉가지 풍광 백두대간 속리산에서 대야산에 이르는 구간은 산세가 빼어나고 골이 깊어 구석구석 절경을 품고 있다. 그중에서 화양계곡은 호탕한 기운이 넘치고, 옛길을 따라 2~3시간쯤 풍경을 음미하며 걸을 수 있다. 화양계곡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우암 송시열이다. 성리학의 대가였던 우암은 화양계곡을 무척이나 사랑하고 아꼈다. 심지어 자신을 화양동주(華陽洞主)라고 부를 정도였다. 화양계곡의 대표 경치로 꼽히는 화양구곡(경천벽·운영담·읍궁암·금사담·첨성대·능운대·와룡암·학소대·파천)은 정계에서 은퇴하고 이곳에 은거하던 우암이 손수 고르고 이름도 지었다. 그래서 화양계곡 걷기는 9곡을 둘러보는 것에 초점이 맞춰진다. 화양동 버스정류장에 내려 주차장 쪽으로 걷다 보면 1곡 경천벽(擎天壁)이 자리잡고 있다. 기암이 가파르게 솟은 모습이 마치 하늘을 떠받친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주차장을 지나면 자연학습관찰로가 시작되는데, 아름드리 느티나무들이 풍성한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수백 년 묵은 나무들은 말년의 송시열이 노구를 이끌고 산책하는 모습을 지켜봤을지 모른다. 작은 다리를 건너면 2곡인 운영담(雲影潭). 기암과 잔잔한 옥빛 물결이 일품인 곳으로 화양계곡 최고의 물놀이 장소다. MT 온 대학생들과 아이들이 신나게 물장구를 친다. 운영담을 지나면 길 양쪽으로 사람 키만 한 돌기둥 두 개가 보인다. 조선시대에 화양서원을 찾은 지체 높은 양반들이 말에서 내리던 하마비다. 조선 말기 한량으로 전국을 떠돌던 대원군 이하응도 말에서 내리지 않고 이곳을 지나가다가 묘지기에게 봉변을 당했다고 한다. 화양서원 안의 만동묘(萬東廟) 까지는 약 30개의 가파른 돌계단을 올라야 한다. 화양서원의 권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건축 구조다. ●정치 건달의 소굴이 된 화양서원 화양서원은 조선 팔도에서도 가장 위세가 당당한 서원이었다. 서인 노론의 영수인 송시열이 은거하던 곳에 세워진 사액서원으로 명나라 두 임금의 위패가 봉안된 만동묘를 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위세는 ‘화양묵패(華陽墨牌)’를 발행하여 관리와 백성들을 수탈하기까지 이르렀다. 오죽했으면 매천 황현(1855~1910)이 화양서원의 정치 건달들을 일컬어 ‘서민들의 가죽을 뚫고 골수를 빨아먹는 남방의 좀’이라고 했을까. 서원 앞 물가엔 3곡 읍궁암(泣弓巖)이 있다. 북벌을 꿈꾸던 효종이 승하하자 우암이 새벽마다 올라가 활처럼 웅크려 절하며 울었다는 사연이 전한다. 금빛 모래가 펼쳐져 있는 4곡 금사담(沙潭)은 화양계곡 최고의 절경이다. 옥빛 청수 너머의 큼직한 바위엔 우암이 제자를 가르치던 아담한 암서재가 깃들어 있다. 암서재에 머물던 때가 우암에게는 ‘화양연화’(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와 같은 시기였을지 모른다. 불행하게도 우암은 당쟁에 휘말려 83세의 나이에 사약을 마시고 죽는다. ●인적 없는 숲길 따라 9곡 파천으로 별 보기 좋은 바위라는 5곡 첨성대(瞻星臺) 앞에서 다리를 건넌다. 뭉게구름처럼 생긴 6곡 능운대(雲臺)를 올려다보고 마지막 매점을 지나면 인적이 눈에 띄게 줄어든다. 물소리는 더욱 크게 울리지만 길에는 적막이 가득하다. 길게 누운 용이 꿈틀거리는 듯한 7곡 와룡암(臥龍巖)을 지나면 8곡 학소대(鶴巢臺). 학소대는 도명산의 입구인 철다리에서 잘 보인다. 옛날에는 백학이 이곳에 집을 짓고 새끼를 쳤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학소대부터는 인적이 뚝 끊긴다. 하지만 마지막 9곡인 파천(巴川)까지 이어진 호젓한 숲길을 빼놓을 수 없다. 완만한 오르막으로 이어진 숲길을 15분쯤 걸으면 새하얀 너럭바위가 깔린 파천이다. 옥빛을 담은 잔잔한 물결과 용의 비늘처럼 반질반질한 바위가 어울린 모습이 금사암 못지않은 비경이다. 너럭바위에 주저앉아 시원하게 세수를 했다. 잔잔한 수면으로 하늘이 바람이 구름이 내려와 앉는다. ‘내 인생의 화양연화는 언제일까.’ 불현듯 질문 하나가 맴돈다. ●산길 가이드 1곡 경천벽에서 9곡 파천까지 약 4㎞, 1시간 20분쯤 걸린다. 아이와 함께 천천히 걷는다 해도 왕복 3시간 정도면 넉넉하다. 차를 가져왔으면 파천에서 되돌아가야 하고, 대중교통으로 왔으면 파천을 지나 32번 도로와 만나는 학습원 버스정류장까지 15분쯤 더 걸을 수 있다. 화양계곡 입구에는 화양동오토캠핑장이 있다. 이곳에서 하룻밤 묵는 여정도 훌륭하다. 속리산국립공원 화양동 분소 (043)832-4347. ●가는 길과 맛집 자가용은 중부고속도로 증평 나들목으로 나와 증평 읍내~592번 지방도(청안 방면)~부흥사거리~금평삼거리(좌회전)~화양동. 청주시외버스터미널(가경동, 1688-4321))에서 화양계곡행 버스는 07:20 09:20 11:20 12:20 14:00 15:00 16:40 17:40. 화양계곡에서 청주행 버스는 07:00 08:50 10:40 13:00 15:20 16:40 18:10 19:30. 괴산의 대표 음식은 올갱이(다슬기의 사투리) 요리다. 화양계곡 안의 음식점보다는 청천면 근처의 신토불이가든(043-832-5376)과 괴산 시내의 기사식당(043-833-5794)의 올갱이 요리가 유명하다.
  • 양산 8경 폭포와 어우러진 천성산 홍롱사

    양산 8경 폭포와 어우러진 천성산 홍롱사

    경남 양산을 세로로 가르고 있는 것이 천성산(922m)입니다. 고속철도(KTX) 터널 공사 문제로 진통을 겪으면서 ‘도롱뇽 소송’으로 널리 알려진 산이지요. 천성산 기슭에 홍롱사(虹瀧寺)라는 사찰이 있습니다. 그리 요족한 절집은 아닙니다. 주지와 도감 등 스님 몇 분과 절집 살림을 돕는 보살 몇 명이 고작이지요. 사찰의 규모 또한 1000년을 헤아리는 연혁에 비춰보면 매우 옹색한 편입니다. 그러나 홍롱사는 어느 대가람에 견줘도 뒤지지 않을 풍경의 보물을 숨겨두고 있습니다. 바로 양산 8경의 하나인 홍롱폭포입니다. 홍롱폭포의 첫인상은 사람의 손을 많이 탔다는 것입니다. 주변 계단이며 폭포수를 가둬두기 위한 웅덩이 등에 시멘트로 덧댄 흔적이 역력합니다. 또 매끈하게 조각한 약사여래불좌상을 폭포 옆의 거친 절벽 아래 세워둔 것도 다소 어색해 보입니다. 이처럼 따로 떼어놓고 보면 볼품없는 것들인데도 폭포와 함께 보면 참 절묘하게 어우러 집니다. 이국적인 느낌마저 듭니다. 필경 폭포가 넉넉한 품으로 주변을 아우르고 있는 것이겠지요. ●홍롱사가 홍룡사로 불리는 까닭 절집 초입 안내판에 따르면 홍롱사는 신라 문무왕 때인 673년 원효 대사가 자신을 흠모하던 당나라 승려 1000명에게 화엄경을 설법하기 위해 세웠다. 창건 당시엔 승려들이 절집 옆에 있는 폭포에서 몸을 씻고 설법을 들었다 해서 이름을 낙수사(水寺)라 했다. 산 이름 또한 원적산이었으나, 1000명의 승려 모두가 도를 깨우치고 성인이 됐다 해서 천성산(千聖山)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절집 이름인 홍롱사는 폭포에서 유래한다. 무지개 홍(虹)자에 젖을 롱(瀧)자를 쓴다. 그런데 절집 사람들이나 관광 안내책자, 교통표지판 등은 한결같이 한글로 ‘홍룡’이라 쓰고 있다. ‘무지개에 젖은 절집’이란 고운 뜻의 이름을 두고, 굳이 홍룡이라 부르는 까닭은 뭘까. ‘홍롱’보다는 ‘홍룡’이 발음하기 편하기 때문이다. 옛날 폭포 아래 살던 용이 무지개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이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있지만, 아무래도 기복신앙을 염두에 두고 후대에 만들어졌다는 느낌이 짙다. 홍롱사는 천성산 남쪽 기슭에 숨어 있다. 작은 도량이지만 ‘무지개에 젖은 절집’이란 뜻의 이름에서 풍기는 느낌처럼 입구부터 예사롭지 않다. 가파른 계곡 위에 축대를 쌓아 대웅전을 만들고, 산신각을 세웠다. 새단장을 마친 요사채 앞에는 굵은 대나무가 푸름을 자랑하고 있다. 계곡 아래로는 맑은 계곡물이 이끼 낀 바위를 타고 쉼없이 흘러 내린다. 수량이 풍부하고 곳곳에 쉬어 갈 만한 너럭바위가 널려 있는 데다, 숲도 우거져 한여름엔 더위를 피하려는 현지 주민들이 즐겨 찾는다. 계곡을 건너 절집으로 들어서는 반야교에 서있자면 꼭 선계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3단 홍롱폭포 물줄기 장관 하지만 홍롱사의 진면목은 이제부터다. 반야교 오른쪽의 수정문(守正門)을 지나 산신각 뒤로 이어지는 계단을 따라 오르면 홍롱사가 안배한 절정의 풍경이 숨어 있다. 호리병처럼 둥그렇게 파인 절벽 사이로 폭포수가 떨어지고 있다. 홍롱폭포다. 높이는 15m가량. 천성산 골골을 휘돌아 온 맑은 물이 줄기차게 떨어진다. 수량이 많을 때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자세히 보면 3단 형태로 되어 있다. 폭포수가 튀어나온 바위에 부딪치며 작은 물방울로 비산되는데, 이때 무지개가 형성된다. 마침 많은 비가 내린 뒤끝. 폭포는 물보라를 날리며 쏟아져 내리고 있다. 깎아 세운 듯한 절벽의 풍모 또한 당당하다. 비록 날씨가 심술을 부려 폭포에 무지개가 걸리는 장관은 볼 수 없었지만, 폭설처럼 쏟아지는 물줄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묵은 체증이 시원스레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다. 폭포 왼쪽에는 자그마한 관음전이 조용히 앉아 있다. 오랜 세월 물보라와 폭포의 진동에 시달렸을 터. 하지만 단아한 자태는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다. 관음전 안에서 밖을 보면 그대로 선 굵은 산수화다. 하얀 물보라와 진초록 이끼, 절벽에 붙은 나무들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그림을 펼쳐낸다. 폭포의 물줄기가 모여 작은 소를 이룬 곳엔 약사여래불상을 세웠다. 중생의 질병을 치료해 주고 재앙을 소멸시켜 주는 ‘약왕(藥王)’이다. 이처럼 물소리 요란한 곳에서 기도인들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그러나 홍롱사 주지 용은 스님은 “기도발은 바위발”이라며 일축했다. 스님은 “명산의 기도처는 모두 바위, 혹은 폭포 주변에 세워져 있어요. 바위에서 나오는 자력과 폭포수에서 나오는 음이온이 피를 원활하게 하고, 지치지 않고 수행할 수 있도록 돕기 때문이지요.”라고 설명했다. ●절집 한켠에 물레방아 세운 뜻은 경내 범종각 아래엔 물레방아가 설치돼 있다. 여느 절집에서도 쉬 보기 어려운 풍경이다. 절집 뒷산의 불타 죽은 나무를 모아 물레방아를 만든 이는 사찰의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처사 윤도하(53)씨다. 운전경력 40년의 버스 운전기사인 그는 우리 인생살이도 자동차 바퀴처럼, 또 물레방아처럼 둥글게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뜻에서 세웠다고 했다. “사람들이 하심(下心·자기 자신을 낮춤)을 되찾았으면 좋겠어요. 하루 400~500명의 승객들을 상대하다 보면,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남 탓만 하는 경우가 많아요. 내가 조금 손해보고 산다고 생각하면 좋을 텐데요.”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둔 그의 단상이다. 홍롱사 초입에도 범종 모양을 한 특이한 형태의 화장실이 있다. 불가에서 범종 소리는 잡귀를 물리치고 일체의 번뇌와 근심을 더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절집에서 화장실을 일컫는 해우소 또한 지극히 근본적인 근심을 덜어내는 곳이니, 둘은 서로 뜻을 같이하는 셈이다. 범종 화장실 앞에는 또 자동차 세차장에서 흔히 쓰이는 공기청소기가 마련돼 있다. 센 바람으로 먼지를 날리는 도구다. 근심을 덜어냈으니 이제 세속의 티끌을 털어낼 차례라는 심모원려(深謀遠慮·깊게 생각하고 멀리 내다봄)일까. 양산 글 사진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55) →가는 길 서울에서 갈 경우 경부고속도로 양산나들목을 나와 우회전, 언양 방면으로 2㎞쯤 가면 홍롱사 이정표를 만난다. 이정표에서 우회전, 4㎞쯤 가면 대석마을을 지나 절집 주차장이다. 버스는 동서울종합터미널과 남부터미널 등에서 각각 하루 4회 양산까지 운행한다. 양산에서 대석마을까지는 시내버스가 1시간마다 운행한다. 대석마을에서 홍롱사까지는 1시간 남짓 소요된다. 홍롱사 375-4177. →주변 관광지 영축산의 대가람 통도사와 계곡 풍광이 빼어난 내원사가 지척이다. 특히 내원사 노전암은 공양 때 맛깔스러운 20여가지 반찬이 나오는 것으로 유명하다. 천연기념물 제234호인 신전리 이팝나무는 요즘이 절정. 하얀 꽃이 나무 전체를 뒤덮은 자태가 꼭 밥그릇에 흰쌀밥을 고봉으로 퍼담은 듯하다. →맛집 민물매운탕은 양산의 향토음식. 물소리민물매운탕(381-0035), 두동민물매운탕(384-3395) 등이 그 중 손꼽힌다. 산채정식집은 통도사 인근에 몰려 있다. 경기식당(382-7772)과 부산식당(382-6426) 등이 현지 주민들이 즐겨 찾는 집이다. 산채정식이 7000원. →잘 곳 홍롱사에서 2~3일 정도는 숙박과 공양이 가능하다. 조용한 절집에서 하룻밤 묵는 것도 좋겠다. 비용은 불전함에 성의 표시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67) 장흥 제암산 철쭉평원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67) 장흥 제암산 철쭉평원

    5월이 오면 빼먹지 않고 찾는 곳이 있다. 산 좋고 바다 맑은 전남 장흥의 제암산(帝岩山, 778.5m)이다. 5월의 시작과 함께 축포처럼 피는 철쭉이 반갑고, 산행 후 수문항에서 키조개 안주에 술 한 잔 기울이는 맛도 즐겁다. 제암산은 옆 고을 보성 일림산과 더불어 국내 최고의 철쭉 명산으로 유명하다. 일림산이 부드럽다면, 제암산은 웅장하다. 5월에 제암산을 찾는다면 놓치지 말아야 할 곳이 1㎞가량 환상적인 철쭉밭이 펼쳐지는 곰재산 능선이다. 여기에 임금바위라 불리는 帝(제)자 형상의 정상 암봉을 넣어 코스를 잡으면 제암산의 아름다운 풍광을 거의 둘러볼 수 있겠다. 산행 코스는 금산리 신기 마을을 들머리로 간재에서 철쭉평원을 거쳐 임금바위까지 올랐다가 곰재로 내려오는 길이다. 특히 간재~곰재의 철쭉평원은 초등학생도 깔깔거리며 소풍 가는 순하고 좋은 길이다. 철쭉의 개화 시기는 작년에는 5월5일쯤 만개했지만, 올해는 꽃샘추위로 일주일가량 늦어져 5월12일 전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산행 들머리는 장흥 시내에서 10여분 떨어진 금산리 신기 마을. 버스 종점에서 500m쯤 걸으면 장흥 공설 공원묘지 주차장이 나온다. 이곳에서 비포장 임도를 따라 산행이 시작된다. 10분쯤 휘파람을 불며 걷다 보면 갈림길. 왼쪽으로 곰재로 가는 산길이 보이는데, 그곳으로 하산하게 된다. 다시 임도를 따르면 기다렸다는 듯 약수터가 나온다. 여기서 목을 축이면서 물통을 가득 채운다. 약수터를 지나 만나는 갈림길에서 왼쪽 간재 방향으로 들어선다. 이제 길은 임도와 산길을 번갈아 가다가 은근슬쩍 간재에 올라붙는다. 간재는 사자산(666m)과 제암산 사이의 고갯마루다. 간재에서 왼쪽이 곰재산 능선인데, 소나무 사이로 듬성듬성 보이는 철쭉들이 눈에 들어온다. 여기서 곰재산을 넘어 곰재까지 1㎞ 구간에 50여년생 철쭉나무가 10여만그루 자생한다. 철쭉은 산철쭉과 철쭉으로 구분된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많이 보는 빨갛고 흰 꽃이 산철쭉이고, 나무가 크게 자라며 연분홍색 큰 꽃을 피우는 것이 철쭉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두 종류 모두 그냥 철쭉이라고 부른다. 제암산의 꽃은 산철쭉으로 흰 꽃이 없고 오직 붉은색만 있어 더욱 화려하다. 철쭉은 기다림의 미덕을 간직한 꽃이다. 봄이 왔다고 성급하게 피지도 않고, 진달래가 피고 지기를 느긋하게 기다렸다가 봄의 대미를 화려하게 장식한다. 철쭉밭 사이로 뻗은 완만한 오르막을 따르면 점점 철쭉이 많아지고 빛깔도 한층 붉어진다. 길은 평지에 가까워지면서 곰재산 정상 일대는 철쭉의 물결로 일렁거린다. 철쭉평원으로 알려진 이곳에서 매년 철쭉제가 열린다. 곰재산을 넘어서면 철쭉은 더욱 많아지고, 그 뒤로 제암산 정상의 임금바위가 우뚝하다. 능선 왼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10m 높이의 암봉이 보인다. 사람들은 뭐가 바쁜지 그냥 지나치기 일쑤다. 이곳에 올라 보자. 능선에서 얼마 높지 않지만, 철쭉평원 일대와 그 너머로 보성의 들녘이 어울린 멋진 조망을 선사한다. 널찍한 암반에 앉아 쉬기도 좋다. 암봉에서 내려와 좀더 걸으면 곰재에 닿으면서 철쭉 군락지는 끝이 난다. 이제는 제암산 정상인 임금바위에 오를 차례다. 곰재에서 가파른 숲길을 20분쯤 오르면 형제바위 삼거리다. 삼거리 앞에서 넓은 초원 뒤로 웅장하게 버티고 선 임금바위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형제바위 삼거리에서 둔덕을 넘어 억새밭을 지나면 드디어 임금바위 앞이다. 임금바위는 거대한 바위절벽으로, 오르기가 만만치 않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그 앞에서 만족하는 것이 좋겠다. 천천히 바위벽을 살펴보면 잡고 디딜 만한 턱이 눈에 띈다. 그곳을 잡아 조심조심 올라서면 드넓은 너럭바위가 펼쳐지고, 시원한 바람과 함께 일망무제의 조망이 펼쳐진다. 동쪽의 풍요로운 웅치 들판은 호남정맥 산줄기로 둘러싸여 아늑하고, 남쪽 장흥 들판은 남해 너른 바다를 품고 있다. 하산은 다시 곰재까지 내려와 공원묘지로 향하는 것이 좋다. 형제바위 삼거리에서도 공원묘지로 내려올 수 있지만, 급경사 길이라 좋지 않다. 곰재로 내려오면 철쭉평원이 오후 햇살을 받아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다. 글 사진 여행전문작가 mtswamp@naver.com ■ 산길 가이드 신기 마을 공원묘지를 들머리로 간재~곰재산 철쭉평원~곰재~임금바위 정상~곰재~공원묘지 원점회귀 코스는 약 9㎞, 5시간쯤 걸린다. 곰재에서 임금바위까지가 좀 힘들고, 나머지 구간은 쉽다. 가족 산행이거나 체력이 떨어졌으면 곰재에서 하산하는 것이 좋겠다. ■ 가는길&맛집 서울에서 장흥행 버스는 센트럴터미널에서 08:50, 15:40, 16:50에 있다. 광주에서 장흥행은 05:35~21:05까지 30분~1시간 간격으로 있다. 장흥에서 신기 마을 가는 버스는 공용터미널에서 1일 6회(07:20, 09:00, 10:50, 13:30, 16:00, 18:35) 운행한다. 신기에서 장흥행 막차는 18:50. 장흥교통 061-863-0636. 철쭉이 만개할 때는 수문항에서 키조개가 절정이다. 바다하우스(061-862-1021), 정남진회타운(061-862-6700) 등에서 키조개 구이·무침·탕 등을 먹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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