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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롯데가 (2)-농심 등 형제기업들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롯데가 (2)-농심 등 형제기업들

    “형님, 새로운 사업으로 라면을 해볼라카는데 형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1960년대 초 젊은 춘호씨는 조심스럽게 큰형(신격호)의 기색을 살폈다.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라면이라 캤나. 그거 누가 사서 묵을 끼라고 만들라카는데. 치아라마.” 형의 조언을 잔뜩 기대하고 일본땅을 찾았던 춘호씨는 머쓱해져 돌아나와야 했다. “그래. 형이 안된다고 하는 사업을 내가 반드시 성공시켜 보이겠다.” 라면으로 2조원대의 중견그룹을 일군 농심 신춘호(75) 회장은 ‘철학을 가진 장이는 행복하다.’라는 제목의 자서전(비매품)에서 라면사업의 시작을 이렇듯 생생하게 되짚었다.“신적인 존재나 마찬가지였던 큰형이 반대하자 일종의 오기가 생겼다.”는 회고도 덧붙였다. 그렇게 해서 신 회장은 당초 시계공장을 차리려고 마련해 두었던 서울 영등포구 신대방동 370번지 지금의 농심사옥 부지에 라면 뽑는 기계를 들여놓았다. 롯데공업사라는 간판도 내걸었다. 자본금은 단돈 500만원이었다. 그가 큰형과 둘째형(신철호)의 그늘을 벗어나 창업가로 변신하는 순간이었다.1965년 9월18일의 일이다. 그의 나이 서른다섯. “누가 밥 놔두고 사먹겠느냐.”고 했던 라면은 소고기라면, 너구리, 안성탕면, 신라면 등 숱한 히트상품을 탄생시키며 그룹 매출액을 지난해 2조 8620억원으로 끌어올렸다. 물론 새우깡 등 스낵시장 매출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 달에는 미국에 라면공장을 세우기까지 했다. 올해로 창립 40년을 맞는 농심-78년 사명 변경-은 이제 롯데가(家)에서 맏형 사업체 다음으로 튼실한 기업군을 이루고 있다. 혼맥은 10형제 가운데 가장 화려하다. ●신 회장,“장이가 돼라” 신 회장은 임직원들에게 ‘장이’를 강조한다. 스스로도 자신을 “라면장이” “스낵장이”라고 부른다. 실속없는 겉치레를 매우 싫어한다. 그래서 언뜻 봐서는 대기업 총수라기 보다는 영낙없는 촌로(村老)다. 지방공장을 둘러볼 때도 “일하는 사람들에게 방해된다.”며 웬만해서는 공장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한번은 새벽녘에 경기도 안양공장에 도착했다. 아무도 없길래 살짝 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어느새 직원이 뛰쳐나와 “아저씨, 함부로 들어오시면 안돼요.”하며 제지했다. 신 회장은 할 수 없이 “내가 회장입니다.”하고 신분을 밝혀야 했다. 임직원들 사이에 회자되는 유명한 일화다. 그를 오랫동안 보좌한 한 임원은 “역발상의 대가”라고 말한다.“남들이 무심코 지나치는 것도 반드시 한번씩 뒤틀어 보신다. 젊은 사람들도 그분의 창의력을 따라가지 못한다.” 대표적인 예가 ‘새우깡’이다.1971년 당시 세 살짜리 어린 딸이 ‘아리랑’을 ‘아리깡’으로 잘못 발음하는 것을 듣고 신 회장은 “이거다.”며 무릎을 쳤다. 말문이 갓 트인 어린아이들조차 쉽게 발음하는 ‘깡’을 과자 이름으로 착안한 것. 새우깡, 고구마깡, 감자깡, 이른바 깡 시리즈의 시작이었다. 회의 도중에 갑자기 “교남동 도가니탕 맛이 좋으니 그런 맛이 나는 라면을 개발해 보라.”고 지시해 소고기라면을 탄생시킨 것이나,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롯데쥬스가 키스보다 좋아’라는 ‘야한’ 광고 문구를 선보인 것도 그의 기발함을 보여주는 예다. 언론에 나오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것은 큰형과 매우 닮은 점이다. ●실질적 가장 역할-“신라면 개발때는 성씨 팔아먹는다.” 힐난도 10남매의 다섯째인 그는 일찍이 일본으로 건너간 큰형과 몸이 약한 둘째형을 대신해 집안의 실질적 가장 역할을 했다고 훗날 자서전에서 털어놓았다. 몇년전 아버지(신진수)의 유해가 증발했을 때, 도굴범에게서 되찾아온 유해를 모셔간 사람도 신 회장이었다. 그는 자서전에 이렇게 적고 있다. “어릴 때부터 무슨 벼슬같은 것을 해보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 못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책상머리에 앉아서 머리 싸매고 하는 일보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새로운 것이 있으면 손으로 만져보고 입으로 맛을 봐서 좋으면 직접 한번 만들어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미였다.” 신라면을 처음 개발했을 때의 일이다. 실무자들은 ‘매울 辛’을 라면 이름으로 염두에 두고도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오너의 성씨를 함부로 상품화했다가 ‘불경죄’에 걸릴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신 회장은 “아주 좋다.”며 흔쾌히 수용했다. 막상 제품이 나오자 이번엔 문중에서 난리가 났다.“라면장사 하려고 성까지 팔아먹는다.”는 힐난이었다. 그러나 신 회장은 꿈쩍조차 하지 않았다. 한번 옳다고 믿으면 끝까지 밀어붙이는 이가 그였다. 당시 식품위생법상 라면봉지에 한글(신)보다 한자(辛)를 더 크게 쓸 수 없게 되자 부당한 규제라며 끝까지 싸워 법개정(88년)을 끌어냈을 정도다. ●경영에 참여하는 2세들 신 회장은 두 살 아래의-원래 신 회장은 1930년생이지만 호적에는 1932년생으로 2년 늦게 올라갔다-고향처녀(김낙양)와 결혼했다. 같은 경남 울주군 출신이지만 면(面)이 달라 서로 일면식은 없었다고 한다. 김 여사는 다소 깐깐하다는 평이다. 사이에 3남 2녀를 두었다. 막내딸을 제외하고는 4남매가 모두 그룹 계열사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큰딸 현주(50)씨는 광고회사인 농심기획의 부사장을 맡고 있다. 전업주부에서 10년전쯤 출근을 시작했다. 큰아들 동원(47)씨는 그룹의 중추인 농심 대표이사 부회장이다. 쌍둥이 둘째아들 동윤(47)씨는 포장재를 납품하는 율촌화학의 사장이다. 율촌은 신 회장의 호다. 셋째아들 동익(45)씨는 할인점 메가마트(옛 농심가)와 골프장 일동레이크를 운영하는 농심개발의 부회장이다. 신 회장은 그룹의 큰 방향이나 핵심전략만 직접 챙긴다. 나머지는 자식들에게 맡기고, 사냥이나 골프 등 여가를 즐긴다. 골프는 핸디 7의 싱글 실력이다. 일주일에 네번 라운딩을 나가는 주사파(週四派)다. 그만큼 건강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하지만 밑바닥에서 기업을 일군 창업총수들이 으레 그렇듯 실질적으로는 일을 놓지 못한다. 한 아들이 웃으면서 전하는 얘기다.“말씀으로는 너네가 다 알아서 하라고 하시면서도 소소한 것까지 꼼꼼히 챙기신다. 골프를 치시다가도 전화를 걸어 이것저것 물어보곤 하신다.” ●1·2세 매주 월요 점심회동 신 회장은 매주 월요일마다 그룹 구내식당에서 2세들과 점심을 함께 한다.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4남매가 정규 멤버다. 밥값은 물론 아버지가 낸다. 그룹 전략회의겸 가족 친목모임인 셈이다. 이화여대 서양미술학과를 나온 큰딸만 빼고는 4남매가 모두 고려대 동문이다. 동원씨는 화학공학과, 동윤씨는 산업공학과, 동익씨는 경영학과, 윤경씨는 심리학과다. 신 회장은 동아대 법학과를 나왔다. 아버지를 닮아 세 아들 모두 운동을 잘한다. 큰아들 동원씨는 어렸을 때 축구선수로도 활약했다. 5남매가 모두 서울 한남동의 신 회장 자택 주위에 모여 살아 ‘농심 타운’을 형성하고 있다. 바로 옆은 잘 알려진 대로 ‘삼성 타운’이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부녀가 새로 이사를 오면서 이웃사촌이 됐다. 한때 공사 소음 등을 둘러싸고 갈등도 있었지만 지금은 깨끗이 화해했다. ●쌍둥이 형제에 얽힌 일화 동원씨와 동윤씨는 일란성 쌍둥이다.10분 차이로 태어났다. 대학 1학년때, 동윤씨가 태권도 승단 시험을 봐야하는데 마침 대학시험과 날짜가 겹쳤다. 형인 동원씨가 대신 시험장에 들어갔다. 그런데 하필이면 동원씨의 학과 조교가 시험감독으로 들어왔다. 시험지의 이름이 틀린 것을 보고 조교는 “너, 화공과 신동원 아니야?” 하고 의심했다. 동원씨는 내심 당황했지만 “신동원은 내 쌍둥이 형이다. 나는 동생 동윤이다.”라고 뚝 잡아뗐다. 쌍둥이라는데 어쩔 것인가. 조교의 의심은 더이상 뻗어가지 못했다. 임원들은 쌍둥이 형제의 느낌이 달라 알아보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다고 한다. 성격도 다소 다르다. 한 임원은 “동원 부회장은 큰 방향만 맞으면 아랫사람들에게 일을 맡기는 스타일이다. 반면 동윤 사장은 매우 꼼꼼하고 세심하다.”고 전했다. ●조양상선·동부·태평양…화려한 혼맥 신 회장의 5남매는 하나같이 내로라하는 집안에, 모두 중매로 결혼했다. 큰딸 현주씨는 79년 박남규(작고) 조양상선 회장의 넷째아들 재준(53)씨와 결혼했다. 재준씨는 한때 조양상선그룹 부회장을 지냈으나 그룹 부도 이후 지금은 개인사업을 하고 있다. 조양상선은 김치열 전 내무·법무장관과도 사돈사이다. 김 전 장관은 다시 효성·동방유량 등과 사돈을 맺고 있어 혼맥 고리가 끝이 없다. 낯가림이 심한 현주씨와 달리 박 부회장은 “술 좋아하고 풍채 좋고 성격도 좋다.”는 게 공통된 평이다. 딸만 둘을 두었다. 큰딸 혜성(24)씨는 일본 성심여대를 나와 와세다대학원에 다니고 있다. 어머니가 설립한 그룹 계열사 ‘쓰리에스포유’(시설관리전문)의 등기이사이기도 하다. 역시 쓰리에스포유의 주주인 둘째딸 혜정(20)씨는 가을학기부터 미국 대학에 입학한다. ●송복 교수가 맏며느리 중매 큰아들 동원씨는 연세대 영어영문과를 나온 민선영(43)씨와 결혼했다. 선영씨는 민철호 전 동양창업투자 사장의 큰딸이다. 친구 사이인 율촌화학 한규상 부회장과 연세대 송복 교수가 각자 아끼는 총각처녀를 소개시킨 것이 인연이 됐다. 맞선은 86년 5월초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이뤄졌다. 동원씨가 훗날 사석에서 털어놓은 얘기다.“커피를 시켰는데 그 사람 앞쪽에 있던 설탕과 크림통을 내쪽으로 먼저 밀어주는 것을 보고 이정도면 됐다 싶었다.” 그주 주말 볼링장으로 맞선본 아가씨를 불러낸 그는 혜화동 집앞까지 바래다준다는 핑계 아래 붙잡고 있다가 새벽 3∼4시쯤에야 집으로 들여보냈다. 은근히 걱정이 돼 전화를 걸었다가 예비 장인어른에게 엄청나게 혼났다고 한다. 이때부터 당사자들보다 집안에서 더 서둘러 선본 지 3주만에 약혼하고 두달반만에 결혼(86년 5월26일)했다. 중·고등학생인 두 딸(수정·수현)은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다. 초등학생인 외아들(상열)은 올 가을에 미국으로 유학간다. ●사돈통해 정계·언론계와도 연결 둘째아들 동윤씨는 국회 부의장을 지낸 김진만 민족중흥회장의 딸 희선(44)씨와 결혼했다. 희선씨의 큰오빠는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 둘째오빠는 김택기 전 국회의원이다. 김 회장은 삼양사의, 김 의원은 이철승 전 신민당 총재의 사위이기도 하다. 농심은 동부를 통해 삼양사는 물론 정계 인맥과도 맞닿아 있는 셈이다. 사조산업과도 다리 건너 사돈 사이다. 희선씨는 이화여대 음대를 나왔다. 성격이 매우 적극적이다. 셋째아들 동익씨는 노창희 전 영국 대사의 조카인 재경(41)씨와 결혼했다. 노홍희 전 신명전기 사장의 큰딸이다. 큰동서(민선영)의 연대 영문학과 후배다. 말수가 적고 조용한 편이다. ‘아리깡’ 일화의 주인공인 막내딸 윤경(37)씨는 서성환 태평양그룹 회장의 둘째아들 경배(42)씨와 결혼했다. 경배씨는 ㈜태평양 사장이다. 성격이 수더분해 처남들이 좋아한다. 경배씨의 형인 영배(태평양그룹 회장)씨는 방우영 조선일보 명예회장의 사위여서 농심은 또다시 언론계와도 연결된다. 일각에서는 “신 회장이 보란듯이 세도가를 골라 사돈을 맺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당사자들을 펄쩍 뛴다.“혼사가 화려하다보니 남들은 우리가 의도적으로 집안을 따져 결혼한 줄 아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부모님이 옛날분들이다보니 연애결혼을 싫어하셔서 평범하게 선을 봤을 뿐이다. 정략적으로 집안을 따져 결혼한 사람은 한 명도 없다.” ●한진·KCC…형제들의 혼맥도 화려 신 회장의 둘째형인 철호(작고)씨는 유난히 법조인과 사돈을 많이 맺었다.8명의 사위 며느리 가운데 법조인이 4명이나 된다. 큰딸 혜경(58)씨는 서울고등법원장과 공적자금관리위원을 지낸 조용완(60) 변호사와 결혼했다. 법무법인 송백 소속이다. 셋째딸 미진(47)씨와 넷째딸 혜승(41)씨의 남편도 장대규(48)·정경언 변호사다. 정 변호사는 터키에서 개인사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큰아들 동림(43)씨의 부인은 정승원(41) 서울가정법원 판사이다. 철호씨는 1960년대초 동생인 춘호씨와 함께 서울 갈월동에서 껌 공장을 함께 운영하기도 했으나 경영방식에서 이견을 보여 각자 사업체를 차렸다. 10남매의 일곱째인 신선호(72) 일본 산사스㈜ 사장은 큰형을 도와 롯데에 몸담던 시절, 롯데리아를 일군 주역이다. 지금은 일본에서 면발 제조업체인 산사스를 독자 경영하고 있다. 심정섭 전 민국일보 편집국장의 큰딸 정자씨와 결혼해 2남2녀를 두었다. 큰아들 동우(40)씨가 산사스 전무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큰딸 유나(41)씨는 이호진(43) 태광산업 회장과 결혼했다. 10남매의 아홉째인 신준호(64) 롯데햄·우유 부회장은 한순용 전 한대산업 회장의 딸 일랑(58)씨와 결혼했다.‘프라이드 사건’ 등으로 적잖이 속을 끓였던 큰아들 동학씨가 얼마전 서른여섯의 젊은 나이에 태국 방콕의 한 호텔에서 추락사하는 바람에 통한의 눈물을 흘려야 했다. 둘째아들 동환씨는 대선주조 집안의 딸과 결혼한 것으로 알려졌다. ●막내여동생 동화면세점 경영 여자형제들 가운데는 경숙(72)·정숙(68)·정희(59)씨의 혼사가 눈에 띈다. 경숙씨는 박성황(작고) 한일향료 사장과 결혼해 1남1녀를 두었다. 다산(多産)인 롯데가에서는 단촐한 자식 농사다. 딸 기(51)씨는 개인사업을 하는 김영대(59)씨와, 국민대 교수인 아들 기택(47)씨는 정일영 전 국민대 총장의 딸 형은(45)씨와 결혼했다. 정숙씨는 NK(남경)그룹과 인연을 맺었다. 최두열 전 치안국장의 동생인 최현열 전 남경그룹 회장이 남편이다. 사이에 1남 3녀를 두었는데 사위들의 면면이 만만치 않다. 큰딸 은영(43)씨는 조중훈 한진그룹 회장의 3남 수호(51·한진해운 부회장)씨와, 둘째딸 은정(42)씨는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막내동생인 정상영 KCC그룹 명예회장의 둘째아들 몽익(43·KCC 부사장)씨와, 셋째딸 은진(37)씨는 동갑내기인 김유진 재원테크 사장과 각각 결혼했다. 맏이인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과 스물네살이나 차이나는 막내 정희씨는 여자형제들 가운데 유일하게 경영 활동을 하고 있다. 동화면세점 사장이다. 남편은 경제관료 출신의 김기병(57) 롯데관광그룹 회장이다. 김 회장의 형은 김기형 전 과학기술처 장관으로, 정통 관료 집안이다. 롯데관광은 이름만 같을 뿐, 롯데그룹과는 무관하다. 동화면세점도 이곳 계열사다. 큰아들 한성(35)씨가 동화면세점 상무이다. 둘째아들 한준(33)씨는 롯데관광 이사로, 미혼이다. hyun@seoul.co.kr ■ ‘농심 맏형’ 신동원 부회장 롯데가는 형제간에 크고 작은 송사를 치렀다. 물론 지금이야 모두 ‘옛날 얘기’가 됐지만 생채기가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다. 이런 점을 의식, 젊은 2세들이 주축이 돼 모임을 만들었다. 집안의 화해를 도모하기 위해서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영산 신씨 초당공파 28대손 모임’이다. 몇년전 이 모임을 앞장서 만든 이가 신동원 농심 부회장이다.‘동(東)’자 돌림들이 주된 멤버다.27대손인 ‘호(浩)’자 돌림들이 아직 거리가 있는 것과 달리,28대손들은 수시로 뭉치며 허물없이 지낸다. 이들은 “영산 신씨는 경상도에서 남신북권(南辛北權)이라 불릴 만큼 명문가였다.”며 자랑도 빼놓지 않았다. 신 부회장은 모임을 결성하면서 초대 총무를 쌍둥이 동생(신동윤)에게 맡겼다. 그만큼 집안일에 적극적이다. 지금은 사촌동생인 우탁(신격호 회장의 셋째동생인 신경애 여사의 외아들) 휴네시스 사장이 총무를 맡고 있다. 얼마전 사촌형인 신동빈 롯데그룹 부회장(신격호 회장의 아들)도 모임에 참석하겠다는 뜻을 밝혀왔다고 한다. 신 부회장은 전문경영인으로서도 입지를 확실하게 굳혔다. 대학 2학년 여름방학때인 77년,“놀면 뭐하느냐.”는 아버지(신춘호)의 한마디에 대신공장(대방동 옛 자동차학원 자리)에서 호되게 신입사원 교육을 미리 받았다.79년 12월에 농심 평사원으로 입사, 이듬해 3월부터 정식 출근을 시작했다. 경영을 맡고부터는 매년 봄 전국 5개 생산공장을 돌아본다.10년 가까이 계속해온 연례행사다. 순례가 끝나면 ‘올해의 공장’을 뽑아 상을 준다. 그러다보니 서로 경쟁이 붙어 자체 혁신 활동이 치열하다. 일본 도요타의 가이젠(개선)을 능가한다는 게 자체 평가다. 이어 가을에는 전국 영업지점을 돈다. 직원들과 폭탄주도 곧잘 한다. 그가 즐겨 제조하는 방식은 ‘회오리주’. 짧은 시간에 분위기를 빨리 띄울 수 있어서다.90년대 중반, 그룹내의 생산·영업·관리 등 전산정보 시스템을 한꺼번에 뜯어고쳐 칭찬에 인색한 아버지에게서 “고생했다.”는 얘기를 끌어내기도 했다. 부드러운 인상과 달리 추진력이 강하다. hyun@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한국 개그계 대부 김웅래 인덕대 교수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한국 개그계 대부 김웅래 인덕대 교수

    ‘그분의 시대’가 왔다. 만병(萬病)을 통치한다. 설명할 수 없는 묘약, 웃음이다. 고종 황제 때였다. 유성기(留聲機)가 황실에 처음 나타났다. 이를 본 고종 황제는 매우 신기하게 여겼다. 시험해보려고 소리꾼 박춘재를 불렀다. 영문도 모르는 박춘재는 황제의 거듭된 독촉에 목소리를 가다듬고 판소리 춘향가의 한 대목을 기계 가까이에 입술을 대고 부른다.‘쑥대머리 귀신형용 적막옥방의 찬자리에∼’ 이어 고종은 유성기 기술자를 불러 기계 작동을 재촉했다. 그러자 기계에서 갑자기 귀신(?)이 나타난다. 박춘재의 목소리가 그대로 재현된 것. 자신의 목소리가 이상한 물체를 통해 흘러나오자 박춘재는 깜짝 놀라 거의 까무러쳤다. 이를 본 고종 황제가 “수명이 십년은 줄었겠구나. 자네의 정기를 기계에 빼앗겼으니.”라고 했다. 이때부터 ‘십년감수’란 말이 생겨났다. 박춘재는 당시 소문난 소리꾼이기도 했지만 임금의 심사(心思)를 즐겁게 해주는 공인된 재담가였다. 팔도의 온갖 장사꾼 흉내를 기가 막히게 잘도 냈다. 자료에 의하면 당시 가무별감(歌舞別監)의 직책까지 얻었다. 이런 까닭에 학계에서는 박춘재를 현대 코미디언의 효시로 해석한다. 구한말의 박춘재 재담에서 오늘날의 만담가-코미디언-개그맨 등으로 변천돼 왔다는 것이다. 김웅래(60) 인덕대 방송연예과 교수. 우리나라 개그계의 대부로 일컬어진다. 한국 코미디 역사를 한달음에 관통할 만큼 많은 연구와 발품을 통해 내로라하는 이 시대의 ‘웃음스타’들을 배출했다. 임성훈 최미나 고영수 정광태 곽규호 김학래 임하룡 심형래 전유성 김형곤 김미화 김한국 이봉원 김국진 이창훈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지금도 김 교수를 ‘형님’ ‘스승’ 으로 깍듯이 모신다. 김 교수를 더욱 주목케 하는 것은 그가 최근 국내 처음으로 ‘웃음문화학회’를 만든 일. 웃음이 인간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지금이라도 진지한 연구를 통해 더욱 많은 웃음을 창출해보자는 취지로 학회 창립을 선언했다. 학자와 개그맨들이 함께 뭉쳤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회장은 서대석 서울대 국문과 교수가 맡았고, 김 교수는 수석 부회장. 전유성 김성녀씨가 부회장단에 합류했다. 오는 27일 첫 임원 회의를 통해 구체적인 일정과 향후 계획을 논의한다. 이뿐만 아니다. 김 교수는 강원도 평창에 200여평 규모의 ‘코미디박물관’ 건립을 추진 중에 있다. 내년 4월 완공 예정으로 현재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이쯤되면 김 교수의 ‘웃음 열정’이 궁금해지지 않을까.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김 교수를 만났다.33년동안 방송에서 개그프로 연출만 전문적으로 맡아오다 지난해 3월 정년 퇴임한 뒤 인덕대를 비롯, 몇몇 대학에 출강하고 있다. 방학이었지만 방송국을 오가며 개그맨 오디션 심사위원을 맡으랴, 대학로 모 극장에서 개그맨 조련을 하랴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었다.KBS개그프로인 ‘개그콘서트’와 ‘폭소클럽’에 최근 두 팀씩을 투입해 웃음작전을 지휘 중이다. 먼저 국내 코미디 역사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박춘재에 이어 ‘신불출’을 거론했다. 구한말의 박춘재를 거친 재담은 일제시대의 신불출을 만나 ‘만담’으로 자리잡았다는 것. 신불출은 월북한 문예인 중 무용가 최승희와 함께 유일무이하게 별도의 연구소가 생길 만큼 북한 내에서도 최고의 만담가로 명성을 날렸다. 자료에 따르면 신불출은 월북 후 1957년 조선문학예술총동맹(문예총) 중앙위원,1961년 국립만담연구소 소장,66년 중앙방송위원회 만담가로 활동했다. 서울의 전력난을 풍자한 ‘서울의 전기세’, 미국을 비난한 ‘승냥이’ 만담은 주민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고 전해진다. 남한에서는 장소팔 고춘자 부부, 김영운씨 부부, 김뻑국씨 등으로 대표되는 만담이 TV가 생기면서 코미디를 이어주는 웃음사(史)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게 됐다고 김 교수는 말했다. 웃음문화학회 출범과 관련,“현장에 있는 연기자들과 여러 학자, 교수들이 만나 머리를 맞대고, 가슴을 맞대고, 무릎을 맞대고 얘기할 수 있어야 좋은 결과물이 생겨난다.”고 했다.“PD 활동을 하면서 가장 듣기 싫었던 소리가 ‘코미디가 저질이다.’ ‘소재가 한정돼 있다.’라는 말이었다.”면서 “앞으로 웃음 연구를 통해 이 두가지 문제를 극복하겠다.”고 다짐했다. 또한 “방송프로 ‘웃찾사’ ‘웃으면 복이 와요’ ‘개그콘서트’ 등도 사랑받아야 하지만, 잊혀져 가는 만담을 되살려야 한다.”면서 “조선시대의 ‘앙천대소’ ‘소천소지’ 등 과거의 유머를 알리고 미래의 웃음을 창조하기 위해 격월간지를 발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연기자와 학자들이 상호협력할 경우 극대화된 효과를 낼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웃음도 패션이듯, 복고풍도 있고 시대에 맞는 웃음도 있게 마련이 아니냐는 반문도 한다. 80년대 들어서면서 코미디는 쇠퇴하고 대신 개그가 살아났다는 그는 웃음 발전을 위해 매년 ‘올해의 웃음대상’을 제정하겠단다. 올 연말부터 사회 전반에 걸쳐 가장 웃긴 사람을 선정, 신선한 충격을 주겠다는 것. 국내 처음 개관될 코미디 박물관에는 대한민국 웃음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하겠단다. 고 서영춘씨의 유물도 처음 공개하며, 고구려 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30여년 동안 PD 활동을 하면서 수집한 각종 자료 1000여점을 전시할 예정이다. 왕년의 코미디언 구봉서 배삼룡, 개그맨 전유성 심형래 등이 박물관 추진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학창시절 서울 YMCA에서 레크리에이션 진행방법과 포크댄스도 배웠지요. 학교 시험이 있던 전날에도 이기동 서영춘씨가 등장하는 ‘웃으면 복이와요’ 프로그램을 꼭 봐야 직성이 풀렸습니다. 학교 수업 빼먹고 서울 명동의 시공관 극장의 연극관람도 자주 했지요.” 김 교수는 민통선 지역인 경기도 파주 대성동 자유의 마을에서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6·25전쟁으로 서울로 피신해 수색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대성동이 낳은 인물이 아니냐고 하자 웃을 뿐이다. 이곳엔 아직도 친척들이 살고 있다고 귀띔했다. 어릴 때부터 유머에 많은 관심을 가졌던 그는 대학을 졸업하면서 73년 동양TV에 입사했다. 면접 때 코미디프로를 맡고 싶다고 해 ‘코미디전망대’의 고 김경태 PD와 사수-조수로 만났다. 이어 양훈-양석천 콤비 프로그램인 ‘좋았군 좋았어’를 처음으로 맡았다.75년에는 ‘살짜기 웃어예’라는 최초의 개그프로를 연출했다. 외국잡지를 들여다보고 대학 축제 현장을 다니며 꾸준히 개그 아이디어를 모았다. 대학 다닐 때 다 외우다시피했던 ‘세계 해학전집’(정음사刊) 등의 자료도 많은 참고가 됐다. 밤이면 서울 무교동 일대를 뒤지며 DJ쇼에 출연했던 임하룡 김학래 주병진 등을 만나 방송에 출연시키는 등 웃음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동서고금 어디를 가나 웃음처럼 좋은 보약은 없습니다. 지나온 세월도 그랬듯이 앞으로도 웃음 연구를 위해 평생을 바칠 생각입니다.” 내친김에 서울 대학로에 개그 전용극장을 짓고 있다.160석 규모로 이달 말 간판을 내걸 예정이다. 그동안 거쳐간 수백명의 후배와 제자, 여러 개그맨들이 드나들 것으로 보여 ‘웃음의 메카’가 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다. ■ 그가 걸어온 길 ▲1946년 경기 파주 대성리 출생 ▲66년 배재고 졸업 ▲73년 고려대 영문학과 졸업 ▲73년 동양방송PD ▲80년 한국방송공사PD ▲93년 중앙대 신문방송학 석사 ▲94년 제34회 골든로즈상 심사위원(이후 4회) ▲98∼2000년 한국방송공사 코미디프로그램 담당 전문프로듀서 ▲2002년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겸임교수 ▲2004년∼현재 인덕대 방송연예과 교수 ■ 주요 작품 최초 개그프로 ‘살짜기 웃어예’ 연출(75년),‘유머1번지’연출(82∼92년), 시트콤 ‘아무도 못말려’ 연출(97년)시카고 코미디페스티벌 참가(2000년) ■ 주요 저서 유머개그야사(91년), 입술터진 하마도 노래방 가냐(92년), 웃음은 국민의 기본권이다(93년), 훔쳐보는 공포(94년), 김웅래PD폭소카세트북(96년), 한국을 웃긴 250가지 이야기(96년), 잡담으로 성공하기(98년) km@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평화재향군인회’ 주도 표명렬씨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평화재향군인회’ 주도 표명렬씨

    과연 ‘제2의 향군’으로 자리잡을까. 요즘 색다른 ‘색깔론’ 공방이 한창이다. 무대가 정치권이 아닌 전통 보수성향의 제대군인단체라는 점에서 초미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재향군인회(향군)와 가칭 평화재향군인회(평군). 향군은 50여년 역사를 간직한 700만 회원의 거대 조직이다. 반면 평군은 현재 인터넷상에서 회원을 모집 중이며 아직 공식적인 출범식은 하지 않은 상태. 향군은 최근 평군의 움직임에 대해 “반미·친북성향의 불법단체”로 규정하고 법적 대응까지 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그러자 평군은 향군을 향해 “친일·군부독재에 의해 왜곡된 이권단체에 불과하다.”며 헌법소원까지 불사하겠다고 맞서고 있다. 아울러 우리나라의 군대는 일제 때의 시스템을 답습하고 있다며 개혁의 필요성을 대의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두 단체의 대립은 색깔론 시비로 이어지면서 점입가경이다. 향군은 최근 “불법단체 평군에 현혹되지 맙시다.”라는 호소문을 통해 “평군의 주장은 반미·친북성향의 허무맹랑한 논리에 불과하다.”며 (평군의)‘군비축소론’ 주장은 북한의 적화통일론에 동조하는 것이라고 색깔을 칠했다. 특히 평군 설립자인 표명렬(67·육사 18기) 예비역 준장의 선친이 남로당 간부와 빨치산 전력이 있다고 정면으로 비판했다. 평군측은 이를 마녀사냥이라며 오히려 향군이 평군의 탄생을 자초했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이상훈(육사 11기·예비역 대장) 현 향군회장과 표씨는 육사 선·후배이기도 하지만 현역시절 지휘관과 참모로 동고동락을 해 더욱 눈길을 끈다. 발화의 주인공인 표씨는 과연 어떤 인물일까. 지난주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도곡리 자택에서 표씨를 만났다. 평군은 오는 8월15일 광복 60주년에 맞춰 출정식을 갖고,9월17일(광복군 창설일)에 공식 출범할 예정이다. 준비상황을 물었다.“홈페이지에 매일 1000여명이 방문할 정도로 날로 반응이 좋아지고 있다. 두고 보라.”며 자신했다. 출정식 때에는 전국적으로 수만명이 참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현재의 향군이나 성우회 등은 사실상 극우라면서, 평군의 이념은 ‘건전보수’를 지향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우리 군은 일제의 잔재를 하루빨리 벗어던지고 정체성과 자부심을 새로이 가져야 할 때라고 역설했다. “향군은 냉전체제하에서 해왔던, 아직도 시대착오적인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군사정권의 이권에서 출발한 태생적 한계도 있지요. 그동안 누려온 기득권을 잃을까봐 걱정도 많이 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결국 향군은 국민의 혈세를 지원받고 있지 않습니까. 독점적 권리는 헌법에도 위배되는 것입니다.” 평군의 주요 지향점에 대해 ▲친일·군부독재 세력에 의해 왜곡 형성된 군대문화를 개혁하는 일에 앞장서고 ▲자주적 안보관을 국민의식 속에 확산시켜 동북아의 평화와 조국의 평화통일에 기여하며 ▲세계의 평화단체와 협력, 남북 제대군인간의 화해증진·군비축소 종용 등 평화정착 운동을 전개한다는 것 등이라고 역설했다. 이쯤에 이르러 그는 “군개혁의 핵심은 사관학교의 개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군 간부 양성의 요람인 사관학교의 훈육이 ‘일제의 굴레’에서 아직도 못 벗어나고 있다는 것. 육사의 경우 5·16 때 쿠데타를 찬성하는 시가행진에 가담한 뒤 오히려 일제화된 경향이 뚜렷해졌다고 지적했다. 뿐만 아니라 12·12 쿠데타 후 육사는 ‘하나회’로 인해 개혁이 더욱 후퇴했으며, 김영삼 정권 때에는 이같은 하나회를 치는 것을 군 개혁으로 착각하는 오류를 범했다고 지적했다. 또한 육사를 개혁하려고 해도 그동안 붙박이 교수들의 반발,2년마다 다른 부대로 전출가는 간부들의 냉소적 분위기, 동창생들의 반대 등으로 사실상 개혁은 어림도 없는 일로 간주돼 왔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육사 출신 장교들은 오로지 진급에만 관심을 갖는, 이른바 정치장교·정치군인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순수성을 잃은 지 오래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최근 전방 GP소초 총기난사 사건도 따지고 보면 일제식 교육풍토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했다. 한 예로 사병들간에는 병장(분대장)이 유일한 공적인 명령을 내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간 사병끼리 서로 존비어를 써가며 욕지거리가 오고 가는 군대는 우리나라밖에 없다는 것. 이등병, 일병, 상병 등은 전쟁에 대비해 편의상 서열을 정해놓은 것이지 평상시에는 계급 구분이 없다는 논리를 폈다. 미국의 경우도 장교와 사병간에 서로 장난질까지 할 만큼 얼핏 보기엔 무질서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세계를 움직이는 합리적인 군대가 아니냐고 반문했다. 게다가 우리나라 사병들은 상급 지휘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사역작업에 자주 동원되다 보니 사병들의 불만이 늘 상존해 있다는 것이다. 화제를 바꿔 문제가 된 선친의 남로당 전력에 대해 물었다.“아버지는 일제 때 중앙고보에 다니던 중 사회주의운동에 가담했다가 종로경찰서에 붙잡혀 퇴학을 당했다.”고 털어놨다. 그래서 중앙고보에서 경성전기학교로 옮겨 졸업한 뒤 한국전력의 전신인 ‘남선전기’(남전)에 취업했다는 것. 남전의 군산지점에서 일하던 선친은 차별대우의 부당함을 알리는 데 앞장서다가 수배대상이 되자 만주로 도망을 갔다. 광복 직후 선친은 다시 남한으로 돌아와 남전 광주지점에서 근무하게 됐고, 이때부터 본격적인 남로당 활동에 가담했다. 이때 표씨는 광주 대성초등 3학년이었다. 6·25전쟁이 나자 선친은 전남지역 노동조합 책임자로 부역을 하게 된다.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인민군이 퇴각하자 선친 역시 백두대간을 따라 숨어서 월북길에 올랐다. 그러나 충북 영동경찰서에 붙잡혔다. 이어 대전형무소로 이감되던 중 영어실력을 인정받아 미군 고문관 역할을 하게 되면서 겨우 목숨을 유지한다.6·25가 끝나자 부역활동이 들통날까봐 표씨 선친은 고향인 완도로 내려가지 못하고 거지나 다름없이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된다. 표씨가 아버지를 오랜만에 만난 것은 고등학교에 진학할 무렵. 아버지한테 6·25 당시 부역했던 기록이 분실돼 고향에서는 그저 ‘사상가’로만 인식돼 있다고 귀띔해주자 그때서야 고향에 내려와 농사지으며 살았다고 회고했다. 특히 박정희 전 대통령보다 먼저 새마을운동을 펼칠 정도로 고향생각을 많이 했다고 부연했다. 표씨 선친은 90년 4월 9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떴다. 표씨는 전남 완도 출신. 사범학교에 진학하라는 어머니의 권유를 뿌리치고 육사에 들어갔다. 생도시절 대대장 생도를 맡아 5·16 때 선배들의 강압에 못이겨 후배들과 함께 서울시청앞 시위에 가담했다.65년에는 맹호사단 기갑연대 11중대 부중대장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귀국 후에는 군개혁을 위해 나름대로 헌신하고자 전투병과에서 정훈으로 변경했다. 5·18 때에는 국방부 정신전력 연구팀장(대령)으로 광주파견 요원으로 차출됐다. 하지만 이때 신군부의 주문대로 보고서를 작성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3군단 정훈참모(중령 직급)로 좌천됐다. 이때 3군단장은 현 향군회장인 이상훈 중장이었다. 이어 표씨는 2군사령부 정훈참모로 자리를 옮겼고, 곧 이어 육본 정훈감으로 장군 진급을 했다. 표씨는 이때 군개혁과 관련된 로드맵을 작성하는 등 남다른 열의를 보이기도 했다.87년 전역 후에도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는 저서를 통해 군 개혁을 설파했다. “남북한 제대군인이 만날 수 있도록 하고, 또 남북 합동으로 ‘6·25진혼곡’도 만들 생각입니다. 평군은 회비로 운영되며 이권사업과 정치적인 일체의 행위를 철저히 배제합니다. 평군의 목적은 뭐니뭐니해도 군 개혁이지요. 더 이상 ‘까라면 깔 것이지.’하는 식의 군대는 안됩니다.” 슬하의 1남1녀가 모두 결혼했으며, 아들 정훈씨는 현재 출판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표씨는 ‘맷돌에서 나온 온보리’ 철학을 거론하며 평군을 통해 군 개혁이 이루어지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는 지론을 거듭 강조했다. 글 김문기자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38년 전남 완도 출생 ▲58년 광주고 졸업, 육군사관학교에 입학. ▲62년 육사 18기 임관. ▲65년 중위 시절 베트남전 참전. ▲67년 전투병과에서 정훈병과로 변경. ▲79년 타이완 국방부 정치작전학교 수료. ▲80년 5월 국방부 정신전력 연구팀장으로 광주항쟁 현장 파견,3군단 정훈참모. ▲85년 2군 정훈참모에서 장성 진급. ▲87년 육군본부 정훈감으로 예편. ▲2003년 평화재향군인회 준비. ▲2005년 6월 평화재향군인회 발기 선언. ▲현재 군사평론가, 천주교인권위원회 위원, 민족문제연구소 지도위원 ■ 저서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2003년) 등.
  • [사설] 수도권 종합대책 제대로 세워라

    노무현 정부는 당초 행정수도 및 공공기관 지방 이전과 수도권 규제 완화를 통해 지방의 균형 발전을 도모하고 수도권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176개 공공기관 지방 이전 발표 사흘만에 내놓은 수도권 발전대책은 여당에서조차 ‘알맹이 없는 졸속대책’이라는 혹평을 받을 정도로 수준 이하였다고 한다.‘균형 개발’이나 ‘삶의 질 향상’이라는 정책 목표와 구체적인 실행계획이 따로 놀아난 결과다. 각 지자체가 발표했거나 이미 시행 중인 사업을 한데 쓸어담은 종합선물세트라는 비아냥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공공기관 지방 이전 당시에도 지적했지만 이번 수도권 발전대책에도 ‘마스터 플랜’이 없다. 그동안 수도권 주민들의 가장 큰 불만이었던 수도권 집중억제라는 규제를 어떤 방식으로 완화해 삶의 질과 함께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것인지 기본 철학이 빠져 있다는 뜻이다. 그러다 보니 메뉴는 수없이 나열했는지 모르지만 수요자인 수도권 주민들에게는 뒤죽박죽식 잡탕 정도로 비친다. 예산의 뒷받침도 없는 발전대책을 내놓기만 하면 공공기관 이전 발표로 허탈해진 수도권의 민심을 잡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말인가. 이는 국민을 얕잡아보는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여당의 반발에 부딪혀 준비한 57개 주요사업의 발표를 미루고 연말쯤 구체적인 대책을 내놓기로 했다고 한다. 여당뿐 아니라 서울과 인천, 경기도 등 지자체의 여론도 충분히 수렴해 수도권 주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정부가 먼저 정치적인 고려에서 벗어나야 한다.‘무한한’ 정부가 ‘유한한’ 정권의 입맛에 맞추려고 하다 보면 정책은 실패하기 마련이다. 이번에야말로 제대로된 대책을 세워야 한다.
  • 儒林(376)-제4부 百花齊放 제1장 浩然之氣(2)

    儒林(376)-제4부 百花齊放 제1장 浩然之氣(2)

    제4부 百花齊放 제1장 浩然之氣(2) 사마천은 공자가 죽은 지 얼마 안 되어 왕도에서조차 학교의 수업을 존중하는 풍조가 사라졌음을 탄식하고 있었다. 사마천은 ‘유림열전(儒林列傳)’을 지어 사기에 넣음으로써 바로 이러한 경박한 시대를 향해 준엄한 경종을 울리고 있는 것이다. ‘유림열전’은 이렇게 시작된다. “나 태사공은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공령(功令)을 읽으면서 국립학교의 교관(敎官)을 장려, 확대하는 대목에 이르게 되면 언제나 책을 내던지고 탄식하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 참으로 슬픈 일이었다.…” 공자의 사후 학교 수업을 존중하는 학풍이 사라지고 학문을 장려하는 학교 교육용의 공령을 읽을 때면 견딜 수 없어 언제나 책을 던져 버리고 탄식하였던 사마천. 사마천은 공자로부터 시작된 유가의 학문이 끊기지 않고 유림의 숲을 이뤄 영원히 울울창창 뻗어 나가기를 바라면서 다음과 같이 유림열전을 이어간다. “주왕조가 쇠퇴해지자 관저(關雎:시경의 권두시)가 나타나고 유왕(幽王:BC 781∼771 재위), 여왕(王:BC 878∼828 재위)이 무도했던 탓으로 예악이 파괴되었으니 제후들이 제멋대로 행동하는 바람에 정권은 강국으로 옮아 갔다. 그래서 공자는 왕도(王道)가 쇠퇴하고 사도(邪道)가 일어나는 것을 슬퍼하는 나머지 ‘서경’과 ‘시경’을 정리해 예악의 부흥에 힘썼다. 공자는 제나라로 가서 성왕 순(舜)이 작곡한 소(韶)라는 음악을 듣고 감동한 나머지 석 달 동안이나 고기맛을 몰랐으며, 위나라에서 노나라로 돌아와 음악을 바로잡아 비로소 아(雅:정악)와 송(頌:조상의 공덕을 기리는 노래)이 제자리를 찾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세상이 워낙 혼탁 타락해 있었으므로 그를 알고 써 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공자는 몸소 70여명의 제후들을 방문해 보았으나 제대로 알고 예우해 주는 자도 없었다. 공자는 탄식하며 ‘나를 채용해 주는 군주가 있다면 반드시 한 해 안에 예악을 일으키겠다.’라고 말하였고, 노나라의 애공이 서쪽으로 사냥이나 나가서 기린을 잡자 ‘나의 도는 다했다.’고 한탄하였다. 노나라 사관의 기록에 의하면 공자는 결국 ‘춘추’를 저술해 왕자의 도를 보여 주었다.‘춘추’의 언사(言辭)는 미묘해서 그 함축성이 원대하다. 후세 학자들은 이것을 주석(註釋)하고 해설한 사람들이 많다.…” 사마천은 이처럼 공자의 생애를 압축하여 공자가 역사서인 춘추를 쓰게 된 배경을 간단하게 약술하고 있다. 그러고 나서 사마천은 공자가 죽은 후의 상황을 부연설명하고 있다. “…공자가 사거한 뒤 70여명의 제자들은 천하로 흩어져 각국의 제후들을 방문했다. 그때 크게 된 사람들은 제후의 스승이나 재상이 되었고, 작게는 사대부의 선생이나 벗이 되었다. 혹은 숨어 버린 제자들도 많았다. 그리하여 자로(子路)는 위나라에 있었고, 자장(子張)은 진나라에 있었으며, 담대자우(澹臺子羽)는 초나라에 있었고, 자하(子夏)는 서하(西河)에 있었고, 자공(子貢)은 제나라에서 생애를 마쳤다. 전자방(田子方), 단간목(段干木), 오기(吳起), 금활리(禽滑釐)와 같은 인물들은 모두 자하나 혹은 그 동문한테서 학문을 배워 왕자의 스승이 되었다. 그 무렵 학문의 애호가로서는 위(魏)나라 문후(文侯)밖에 없었다. 그 이후 학문은 점차 쇠퇴해지더니 마침내 진나라 시황제에 이르렀던 것이다.…”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훈장 변신 ‘배추머리’ 개그맨 김병조씨

    누군가 그랬다.‘어느날 눈을 떠보니 세상에 내던져졌고, 살아가는 매뉴얼은 보이지 않았다.’고 투정을 부렸다. 인생의 매뉴얼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 무미건조? 허망? 수많은 오류와 잘못을 과연 피해나갈 수 있을까. 문득 명심보감(明心寶鑑)의 첫 구절이 생각난다.‘착한 일을 한 사람에게는 하늘이 복을 내리고 악한 일을 한 사람에게는 하늘이 재앙을 내린다.’ 명심보감, 글자 그대로 마음을 밝히는 보배로운 거울이다. 중국의 경전 사서 문집류 등에서 좌우명으로 활용할 수 있는 삶의 지혜와 처세훈을 추려 놓았다. 세월이 지난 오늘날에도 마음의 수양서로 여전히 으뜸이다. 한 코미디언이 있었다.‘지구를 떠나거라∼’‘나가 놀아라∼’로 전국민을 웃음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밑빠진 항아리는 막을 수 있어도 코밑의 입은 막을 수 없다는 말처럼 거침이 없었다. 뱉어내는 얘기마다 배꼽을 겨냥하면서 ‘유행어’를 만들어냈다. 주변에서는 ‘배추머리’라고 했다. 그러던 어느날 ‘∼떠나거라’를 실천하듯 코미디계를 훌쩍 떠나버렸다. 왜그랬을까. 알고 보니 어엿한 훈장이 됐다.‘명심보감’이라는 간단치 않은 등짐을 지고 전국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제주 탐라대서 강원 한림대까지 서울 마포에 위치한 불교방송국 건물 17층에서 그를 만났다. 순간 ‘앗’하는 놀라움을 느꼈다. 왕년의 ‘배추머리’와는 영 딴판이었다. 말쑥한 머리모양에 전통한복 차림이 왠지 낯설어보였다. 하지만 특유의 큰 웃음소리는 여전했다. 근황부터 들었다. 우선 매주 수요일이면 광주에 내려간다. 조선대학 초빙교수 자격이다. 오전에는 평생교육원(3시간)에서, 오후에는 학부(4시간)에서 강의를 한다. 학생수만 600여명에 이를 정도로 폭발적 인기를 끌고 있다. 월·금요일에는 불교방송(BBS) 라디오 프로그램 ‘다시 듣고 싶은 노래’의 진행을 맡고 있다. 화·목요일에는 중앙부처 기업체 대학 등에서 명심보감을 강의한다. 이날도 서울 구로구청 관내 통·반장을 모아놓고 일장연설을 했단다. 강연을 들은 구민들은 감동을 받아서인지 관내 고등학교에서도 강의를 해달라는 제의를 받았다고 자랑했다. “제주 탐라대에서 강원도 한림대까지 정신없이 다닙니다. 코미디언으로 방송했을 때보다 더 살맛이 나요. 어려움을 통해 얻은 지혜도 있지만 옛 어른들의 밥상머리 교육을 생각해 보세요. 전통이 단절됐습니다. 이어야 하지요.” 김씨의 목소리는 높아진다.“부모가 자식에게 교육을 시키려면 부모 자신이 엄한 자세가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예를 들어 밤 9시에 집에 들어온 아버지가 밤 12시에 귀가한 아들·딸을 혼낼 수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 엄격해야 집안을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명심보감의 참뜻은 ‘니나 잘해.’라며 껄껄 웃는다. ●한학자 선친 뒤이은게 큰보람 또 “부모는 자식을 잠자리에 재워놓고 사랑한다는 말이 있다.”면서 이불을 덮어주던 아버지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고 회고한다. 김씨는 결혼 후 10년 동안 아버지의 빚을 갚아드렸다고 말꼬리를 흐린다. 논 네마지기로 입에 풀칠하며 여기저기 빚을 얻어가며 자식 5남매를 키워낸 아버지, 그러면서도 자식들한테는 매우 엄하게 대했던 아버지의 진심을 돌아가신 다음에야 알았다며 창밖을 응시한다. “코미디언인 제가 명심보감을 강의한다고 하자 처음에는 ‘웃기고 있네.’하면서 놀리더군요. 그러나 강의를 듣고 나서는 ‘울리고 있네.’라고 합디다. 저는 그래요. 중간고사같은 거 안봐요. 대신 학생들에게 아버지한테 양말 사다드리라고 숙제를 줍니다. 효도는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이를 실행하는 것이라고 강조하지요.” 김씨가 명심보감 전도사로 나선 것은 방송활동을 중단한 1998년부터. 그는 어릴 때부터 두가지의 꿈이 있었다. 첫번째는 세상만사 영원이란 없다는 말을 늘 떠올리면서 인기가 쇠약해지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특히 방송계는 인기를 먹고 사는 직업이라 더욱 절실했다. 그래서 한학자였던 선친의 뒤를 이어 훈장이 되고자 했다. 두번째는 고향(전남 장성)에서 방송활동을 해보는 것. 다행히 지인을 통해 지난 97년 지역방송인 광주방송(KBC)에서 ‘열창무대’라는 프로그램을 맡았다. 이때 조선대 평생교육원에서 연극과 영화, 한국 코디미사 등에 대해 강의해달라는 요청이 왔다. 처용가도 코미디요 판소리도 코미디가 아닌가 생각하면서 선뜻 승낙했다. 하지만 서울로 올라오는 열차 안에서 ‘황금 만냥이 있다한들 자식 하나 올바르게 가르치는 것보다 못하다’는 명심보감의 한 구절이 문득 생각났다. 대학측과 논의 끝에 ‘명심보감’으로 주제를 바꿨다. 김씨는 75년 MBC-TV ‘뽀뽀뽀’로 데뷔했지만 ‘일요일밤에 대행진’ 등을 맡으면서 평소 갈고 닦은 ‘명심보감’을 자주 인용했다. 유행어 ‘지구를 떠나거라∼’‘나가 놀아라∼’도 여기에서 얻은 아이디어라고 고백했다. 코미디계를 떠난 그의 강의솜씨는 어느 정도일까. 한 예가 있다. 하루는 조선대에서 강의하던 중 이공대 김모 교수가 수강을 했다는 것. 그래서 ‘교수님 왜 그러십니까’라고 했다. 그러자 김 교수는 ‘(김씨의)강의평가가 최고로 나왔는데 한 수 배우려고요.’라고 대답했다. ●명심보감 1인자 되고 싶어 “마음의 부자가 진짜 행복입니다. 옛날 ‘뽀뽀뽀’를 보던 학생들이 오늘날 제 강의를 듣고 있습니다. 부모님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들 하더군요. 다시 부자가 됐습니다.” 그는 스스로 짠돌이라고 한다. 저축 잘하고, 가정에 충실하고 한문공부를 많이 한다는 세가지 연유로 명심보감을 강의하게 됐다고 했다. 그는 한학자인 아버지와 행상을 하는 어머니 슬하에 5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특히 7대장손이어서 할아버지 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할아버지의 별명은 ‘움직이는 옥편’일 정도로 한학에 조예가 깊었다. 덕분에 김씨는 초등학교때부터 천자문과 명심보감을 접했다. 붓글씨도 함께 연마했다. 족보에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기억력이 뛰어나 집안에서는 천재소리를 들으며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집이 가난해 광주고에 진학하면서 육군사관학교반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성균관대 유학과를 생각했다. 하지만 학생들을 웃기는 일을 워낙 잘해 담임선생 등 주변에서는 한결같이 연극영화과를 권했다. 결국 중앙대 연극영화과로 방향을 바꿔 코미디언으로 명성을 날리게 됐다. 부인 얘기가 나오자 “목포교대를 나왔다.”면서 “빚도 많고 형제도 많은 장손 집안의 장남을 선뜻 택해준 아내가 늘 고맙다.”고 했다. 부인은 여러번 중매를 봤지만 김씨의 솔직한 자세에 반려자로 택했단다.1978년 70만원 월셋방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이어 200만원 지하 전셋방을 거쳐 결혼 5년 만에 세를 떠안고 2300만원짜리 집을 장만했다. 이후 부모가 진 빚을 다 갚은 뒤 84년 고향에 스물네마지기 논을 사서 부모한테 효도선물로 드렸다. 부친은 88년 작고하기 전까지 매일같이 논두렁을 걸어다닐 정도로 무척 좋아했다. 또한 서울로 떠난 아들에게 ‘자가용을 타고 오기 전까지는 고향에 내려오지 말라.’는 약속도 지켰다. 모친은 현재 82세로 서울 노원구 월계동에서 함께 살고 있다. “명심보감의 1인자가 되고 싶습니다. 옛것들이 다 버려지고 있습니다. 전통의 아름다움을 누군가는 반드시 이야기해야 합니다.” ‘김병조의 명심보감’이라는 책을 펴내기 위해 5년전부터 틈틈이 원고정리를 해왔다. 현대에 맞게 재해석한 것이다. 술과 담배를 전혀 안하는 그는 요즘 걷기와 등산으로 건강을 다진다. 명심보감 한 구절을 들려준다.‘글을 읽는 것은 집안을 일으키는 근본이요, 도리를 따르는 것은 집안을 보존하는 근본이다. 근검은 집안을 다스리고, 온화는 집안을 정제하는 근본이다.’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50년 4월 전남 장성 출생 ▲67년 광주고 졸업 ▲72년 중앙대 연극영화과 졸업 ▲72∼75년 육군복무 ▲75년 MBC‘뽀뽀뽀’ 진행 ▲76∼96년 MBC‘일요일 일요일밤의 대행진’ ‘사랑의 공개홀’‘우리가락 한마당’‘세월따라 노래따라’‘김병조의 생활한자’ 진행 ▲96년 4월 SBS 코미디 전망대 진행.11월 MBC‘우정의 무대’ 진행. ▲98년∼현재 조선대 초빙교수 ▲상훈 전국대학생화술경연대회 최우수상(70년), 우리들의 스타상(코미디부문), 국무총리표창(저축유공·84년),MBC연기대상(코미디 개그부문,85·88년) ▲주요 작품 수필집 ‘종가집 배추’ 영화 ‘자기 난 이렇게 산다우’ 등
  • [사설] 재보선 따라다니는 중앙당 흉하다

    열린우리당이 어제 경기 포천에서 상임중앙위원 회의를 가졌다. 오는 30일 실시되는 포천·연천 국회의원 재선거를 겨냥한 조치다. 앞서 한나라당은 역시 재·보선 지역인 경북 영천 등에서 대표, 총장, 정책위의장을 비롯한 당직자가 대거 참여한 대책위원회를 열었다. 여야가 지원유세를 넘어 중앙당을 지역으로 옮겨놓은 듯 법석을 떨고 있다. 지금 임시국회가 열리고 있다. 비정규직법, 국민연금법 등 국가 명운을 가를 수 있는 경제·민생입법이 표류중이다. 핵심당직자들이 국회를 지키며 협상하고, 의원들을 독려해도 처리가 쉽지 않은 안건들인데 몸과 마음이 콩밭에 가 있으니 민생현안이 제대로 챙겨질 리가 없다. 상임위를 열어도 의원들이 자리를 비우기 일쑤고, 여야 대변인 논평은 선거를 의식한 상대당 헐뜯기에 몰두하고 있다. 집권당인 열린우리당이 먼저 반성해야 한다. 공천 때부터 무리한 영입을 시도하다가 실패를 맛봤다. 그리고 지역선거라면 그에 걸맞은 공약을 내놓아야지, 수조원이 소요되는 선심성 약속을 남발해선 안 된다. 세간에서 “재·보선 지역에 땅을 사면 떼부자될 것”이라는 비아냥이 나오는 실정을 알아야 한다. 아무리 과반의석 유지가 걸린 선거라지만 여당이 앞장서 재·보선을 이렇듯 과열시켜서야 되겠는가. 한나라당이 제시한 공약 또한 실현가능성이 의심되는 내용이 많다. 한나라당은 여론조사 결과 텃밭이라고 여기던 영남지역 선거구에서 여당이 선전하는 것으로 나타나자 다시 지역감정에 호소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무슨 짓을 하건 이기면 된다는 무모함을 이제는 버릴 때가 됐다. 이전 선거에 비해 흑색선전, 금품살포가 줄었다는 점이 그나마 위안이었다. 그러나 선거가 종반으로 가면서 박빙 양상이 거듭되자 금품제공 고발이 잇따르고, 상대후보 비방의 강도가 높아지고 있다. 이런 식이라면 정치불신은 더 심해지고, 정치개혁은 멀어진다. 선거가 며칠 안 남았지만, 지금부터라도 절제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
  • 北승냥이 南으로

    남북한 동물원의 동물 교환이 14일 북한 개성공단에서 처음 이뤄졌다. 한인규 서울대공원장과 사육사, 수의사 등 16명으로 구성된 우리측 동물 교환단은 이날 수송차량에 동물을 싣고 북한으로 들어가 개성공단에서 평양 중앙동물원측과 동물을 교환했다. 서울대공원은 하마, 붉은 캥거루, 왈라루 등 5종,10마리의 동물을 북한측에 넘겨주고 승냥이, 아프리카 포니, 스라소니, 족제비 각 1쌍과 반달가슴곰 4쌍 등 5종,16마리를 넘겨받았다. 이번 동물 교환은 근친 번식을 방지하고 국내에 없거나 멸종 위기에 처한 희귀종 동물을 보존하기 위해 이뤄졌다. 북한으로부터 넘겨받은 승냥이와 아프리카 포니는 국내에 없는 종이다. 이들 동물들은 오는 19일부터 서울대공원 특별전시관에서 일반에 공개된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남북 동물원 26마리 맞바꾼다

    남북 분단 뒤 처음으로 서울과 평양을 대표하는 두 동물원의 야생동물이 맞교환된다. 서울대공원은 오는 14일 북측 개성공업지구에서 북한의 평양 중앙동물원과 모두 10종 26마리의 야생동물을 맞교환한다고 12일 밝혔다. 지난해 서울대공원측이 호랑이 암수 한쌍을 육로를 통해 평양 중앙동물원측에 기증한 사례는 있었지만 남북한 동물원간 보유동물을 서로 맞바꾸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대공원관리사업소 이원효 소장은 “이번 동물원간 동물교류의 목적은 사육되는 동물들의 근친상간을 방지하고 남한에서는 멸종위기로 확보가 어려운 반달가슴곰 등의 토종동물을 증식·복원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교류를 통해 서울대공원측은 평양측이 보유하기 어려운 하마·붉은캥거루·왈라루·과나코·라마 암수 한쌍씩 모두 10마리를 넘겨주는 대신 평양 중앙동물원이 보유한 반달가슴곰 암수 4쌍과 스라소니·승냥이·족제비·아프리카포니 암수 한쌍씩 모두 16마리를 받는다. 이번에 반입되는 반달가슴곰은 곧바로 환경부에 기증, 전남 구례에서 지리산에 방사할 예정이며 나머지 동물들은 검역절차를 거쳐 19일부터 서울대공원에 마련되는 ‘평양 중앙동물특별전시관’에서 일반에 공개된다. 고금석기자 kskoh@seoul.co.kr
  • [日 교과서 왜곡 파문] 이라크戰도 美배려 왜곡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의 식민지 침략을 정당화하고 미화, 왜곡한 역사교과서 검정작업에 일본 정부가 깊숙이 개입한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관여할 수 없다.’고 호언했던 일본 정부의 주장이 거짓으로 판명된 것이다. 이에 따라 일본의 교과서 왜곡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막후에서 감독하고, 나카야마 나리아키 문부과학상이 현장을 지휘·감독해, 검정교과서가 아니라 국정교과서라는 인상을 주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6일 일본 언론에 따르면 ‘한국이 독도를 불법 점거하고 있다.’고 기술한 후소샤판 공민교과서는 문부과학성의 검정 의견에 따라 수정된 것으로 확인됐다. 신청본에 ‘한국과 우리나라가 영유권을 둘러싸고 대립하고 있는 다케시마(독도)’로 돼 있었으나 문부성이 “영유권이 애매하게 표현됐다.”며 수정을 요구했다. 특히 문부성은 후소샤가 ‘한국이 점령하고 있는 다케시마’라고 수정안을 내자 ‘불법점거’가 정부 견해라며 이를 반영하지 않으면 검정을 통과시키지 않겠다고 압박, 극우적인 후소샤마저 곤혹스러워 했다고 마이니치신문이 보도했다. 문부성측은 정부 견해에 맞지 않는다는 검정 의견을 제시했을 뿐 “표현을 어떻게 하라는 지시는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지만 설득력이 약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라크전 발발이나 자위대의 이라크 파견, 부부 별성제(결혼하면 여성이 남편의 성을 따르는 걸 고치는) 기술 등도 정부측이 압박, 여러 대목이 수정된 것으로 드러났다. 도쿄신문에 따르면 문부성은 일본서적신사의 공민교과서 내용 중 미국의 이라크 공격을 기술한 대목에서 ‘대량살상무기는 없었다.’는 표현은 안 된다며 구두로 출판사측에 정정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라크전 개전 명분이었던 대량살상무기는 미국 정부의 조사 결과에서도 없었던 것으로 확인된 바 있다. 특히 검정 의견은 문서로 반드시 통보하도록 규정돼 있으나 구두로 통보했다. 이에 대해 문부성측은 “수정 과정에 대해서는 밝힐 수 없다.”고만 밝혔다. 문부성은 이라크전 발발에 대해서도 신청본의 ‘유엔결의 없이’라는 부분을 삭제한 뒤에야 검정을 통과시켰다. 그래서 “근린제국조항 대신 미국 배려조항이 적용됐다.”는 비아냥이 나올 정도다. 일본서적신사의 경우 지난해 2월 자위대가 파견된 이라크를 본문에 전지(戰地·전투지역)라고 신청본에 기술했으나 문부성이 ‘비전투지역’으로 바꾸도록 지시, 이를 수정한 뒤에야 통과됐다고 마이니치신문이 보도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비전투지역이라고 주장한 것을 뒷받침한 검정 지침이었다. taein@seoul.co.kr
  • [15일 TV 하이라이트]

    ●현장르포 제3지대(KBS1 밤 12시) 뚜렷한 노인복지 정책도, 보호 장치도 없는 현실 속에서 자식들에게 버림받거나 학대받는 노인들이 늘고 있다. 급증하는 노인문제에 대한 우리 사회의 대책은 무엇인지, 그리고 노인학대의 실상과 노인안전을 위해 힘쓰고 있는 노인학대방지센터 관계자들의 활동을 밀착 취재했다. ●체인징 유(SBS 오후 7시5분) 열두 살의 나이차를 극복할 만큼 서로를 사랑하는 띠동갑 커플인 주인공. 하지만 여자 주인공의 부모는 나이차 때문에 결혼을 반대한다. 부모에게 인정받아 당당하게 사랑하고 싶은 두 사람. 과연 미녀특공대의 도움을 받은 두 주인공은 부모에게 진심을 전하고 결혼허락을 받을 수 있을까? ●세계 세계인(YTN 오후 5시10분) 사냥개를 앞세워 여우를 기진맥진하게 만든 다음에 사냥하는 잔인한 방식 때문에 여우 사냥 금지법이 통과됐지만 반대도 만만치 않다. 반대자들은 “여우 사냥이 부자들을 위한 스포츠가 아니라 영국의 전통적 가치”라고 주장한다. 여우 사냥 금지법에 대한 논란의 실체를 들여다본다. ●문화센터(EBS 오전 11시) 폐품의 변신으로 줄인형이 탄생한다. 요구르트병과 우유팩을 모아서 실에 연결하면 멋진 줄인형이 완성된다. 또 흔히 쓰는 스카프와 옷걸이를 활용하면 독특한 줄인형을 만들 수 있다. 재활용품을 활용해 다양한 줄인형을 만들어 보자. 마술을 부리는 줄인형의 특별한 공연은 덤. ●굳세어라 금순아(MBC 오후 8시20분) 자신의 몸 상태가 의심스러웠던 금순은 마스크를 하고 약국으로 들어가 어렵게 임신테스트 약을 구입한다. 자신의 임신 사실을 알고 얼이 빠져 있던 금순은 숙모와 할머니에게 이 사실을 들키고 만다. 서울로 올라가기 전, 정심은 정완과 작별인사를 하면서 금순과 어떤 사이냐고 묻는다. ●쾌걸춘향(KBS2 오후 9시55분) 마침내 결혼식을 준비하는 몽룡과 춘향. 채린으로부터 청첩장을 전해 받은 학도는 결단을 내리고 몽룡을 찾아가 최후통첩을 한다. 몽룡을 벼랑 끝으로 내몰 치밀한 시나리오를 꾸미는 학도. 몽룡은 성추행범으로 몰려 경찰을 피해 도망치게 되고 몽룡의 휴대전화는 현장증거물로 경찰에 건네진다.
  • 홍상수 ‘극장전’ 극장앞 촬영현장

    홍상수 ‘극장전’ 극장앞 촬영현장

    서울 종로의 시네코아 극장 앞에 촬영팀이 세팅을 끝내자, 구경꾼 수십명이 에워싼다.“어, 엄지원이다. 김상경이다.” 저마다 카메라폰을 들고 찍어대니 스태프들은 이들을 막느라 분주하다.“슛 들어갑니다. 조용 조용. 후레쉬 터트리시면 안 됩니다.” ] 홍상수 감독의 여섯번째 영화 ‘극장전’의 촬영현장.10년째 영화감독을 준비중인 주인공 동수(김상경)가 선배 감독의 영화를 보고 나온 뒤 영화속 여배우 영실(엄지원)을 따라나서는 장면이다. 극장 문이 열리자 주황색 선글라스를 쓴 엄지원이 총총히 걸어나온다. 스산한 겨울 바람을 느꼈는지 가방에서 장갑을 꺼내 끼고 옷깃을 여민 뒤 뒤도 안 돌아보고 인파 속으로 사라진다. 파란 파카에 머플러를 맨 김상경은 몇걸음 뒤에서 잔뜩 움츠린 채 걷는다. 찌든 표정은 지금껏 홍 감독의 영화에서 많이 보아온 인물 군상들과 닮았다.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더니 이내 담배가 없는 걸 확인하고는 엄지원과 다른 방향으로 걸어간다. “컷.” 두 배우와 홍 감독이 모니터를 보더니 뭐가 맘에 안 들었는지 NG를 낸다. 다시 걸어나오고 뒤따라나오고…. 간단한 촬영이지만 영화의 2부를 시작하는 중요한 장면이어서인지 7∼8번이나 반복 촬영이 이어졌다.“표정이 좋아.”라며 “OK”를 내는 홍 감독.‘까다로웠던’ 이유를 묻자 “장면마다 달라서 말로 설명할 수 없다.”고 말한다.‘직감’에 의존하는 감독다운 대답이다. 영화 ‘극장전’은 고교를 막 졸업한 남녀가 우연히 만나 불꽃같은 사랑을 나누는 영화 속 영화인 1부와, 그 영화를 보고 나온 감독 지망생과 영화속 여주인공의 우연한 만남을 그린 2부로 나뉜다.1부에선 엄지원과 ‘클래식’‘돌려차기’의 이기우가,2부에선 엄지원과 김상경이 주연을 맡았다. 이날 촬영현장에서 처음으로 함께 카메라 앞에 선 배우 김상경과 엄지원은 “편하고 재미있었다.”고 첫 소감을 밝혔다.‘생활의 발견’에 이어 두번째로 홍 감독의 영화에 출연하는 김상경은 “첫 영화를 찍을 때는 좋아하는 것이나 사물에 대한 느낌이 비슷해 놀랐는데, 이젠 서로의 기분까지 빨리 알아채는 단계에 이르렀다.”며 감독과의 호흡을 자랑했다. 영화 속 의상인 파란 파카와 머플러도 홍 감독의 것. 감독 역시 김상경에게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는 듯했다. “원래 많이 준비하는 꼼꼼형”이라는 엄지원은 홍 감독의 ‘즉석 대본’에 처음에는 “신기하고 불안했다.”고 말했다.“‘촬영전까지 계속 놀아라.’고 해서 막연했지만 첫 촬영이 끝나고 새로운 것을 담을 수 있는 에너지를 느꼈어요. 놀라운 경험이었죠. 지금은 더없이 행복하게 연기하고 있어요.” 김상경도 “‘어떤 사람인가.’‘어떤 행동을 하는가.’라는 큰 틀만 잡은 채 순간에, 하늘에, 내 감정에 모두 맡긴다.”고 연기 방식을 설명했다. “제작비를 현실화하고 총괄적으로 책임지기 위해” 홍 감독이 직접 차린 영화사인 전원사에서 제작한 첫 작품이기도 한 ‘극장전’은 순제작비로 9억원이 들었고, 프랑스의 MK2사가 공동제작 형태로 참여해 20만달러를 투자했다. 국내에서는 오는 5월 개봉할 예정이다.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 홍상수 감독의 ‘내 새영화’ ‘극장전’은 영화속 영화와 그 영화를 닮은 현실을 대칭적으로 배치한 작품.“어렸을 때 마초가 나오는 영화를 본 뒤 길거리에서 인상 쓰고 담배를 피우는 내 모습을 보고 웃기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이런 행동이 반복되다 보니 하나의 곱씹어보고 싶은 재료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게 모티브에 대한 홍상수(44)감독의 설명이다. ‘극장전’의 ‘전’은 앞과 이야기라는 두 의미를 모두 내포하고 있어 ‘극장 앞에서 일어난 일’을 표현하는 제목이란다. 액자구조로 영화속에 들어가있는 또 다른 영화의 제목도 ‘극장전’이다. 평행선을 달리는 영화와 현실이 부딪치며 빚는 역학관계를 그릴 예정이다. 1부에 해당하는 영화속 영화에서는 홍 감독이 처음으로 10대들에게 포커스를 맞췄다.“어린애들이니까 전작들에서 보여준 비아냥이나 비판이 덜할 수밖에 없죠. 비난받기에는 어린 나이니까요.” 내레이션이 삽입되고 줌을 활용하는 등 형식도 많이 달라졌다.“의도했다기보다는 나름대로 성장하고 있다.”는 게 그의 해석이다. 김상경은 처음부터 염두에 두었던 배우고, 엄지원은 벽에 사진을 붙여둔 여러 여배우 가운데 가장 ‘느낌’이 좋아서 선택했다고 했다. 이기우는 영화 ‘클래식’을 본 뒤 어울리는 배우라고 생각했다. 홍 감독은 술마시는 장면에서 배우에게 술을 ‘진짜로’ 먹이는 걸로 유명하다. 이번 작품에서도 김상경이 리허설때 술을 마시고 쓰러져서 촬영을 못했을 정도다.“술을 이용한 연기의 일종”이라는 그의 주장처럼 그는 삶과 가장 밀착한 연기와 풍경을 보여주는 걸 좋아하는 감독이다. 그래서 구질구질해 보이기도 하지만 오래도록 가슴 깊은 곳을 아프게 찌른다. 이번 영화에는 “보다 따듯한 시선이 담겼다.”고 하니 한번 그의 변화를 기대해보자.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 탕! 탕! 스트레스 해소 사냥체험

    탕! 탕! 스트레스 해소 사냥체험

    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지난 13일, 헌터 인요한(46·연세대 의과대교수)씨와 ‘자연과 사냥’ 대표 이종익 회장, 안면토 토박이 헌터 박창윤(53)씨가 한조를 이뤄 사냥에 나섰다. 목적지는 충남 태안군 안면읍 중장리 지루저수지 뒷산. 억새와 잡목림 사이로 잔설이 연연하다. 야트막한 산이지만 몇개째를 넘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며 가빴다. 바닷가에서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추위가 살갗을 에는 듯했다. 냄새를 맡으며 끊임없이 움직이던 사냥개 포인터가 갑자기 멈춰선 채 한쪽 다리를 치켜들고, 주둥이로 한 방향을 가리켰다. 전방에 뭔가 있다는 신호다. 총을 어깨에 붙인 인교수가 ‘캐리, 고!’라고 명령하자 사냥개 캐리가 덤불속으로 뛰어들었다. 곧이어 억새처럼 짙은 갈색의 고라니 한마리가 펄쩍 뛰었다. 탕, 탕, 탕. 총성이 울렸다. 일순, 숲속에 정적이 흘렀다. 바람도 숨을 죽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한참 뒤에 조금 위쪽에서 다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이번에 박씨가 휘파람으로 사냥개를 불러들이더니 2발을 쐈다. 잡목 덤불이 너무나 짙게 우거진 숲속이어서 사냥개도 쉽게 파고들지 못했다. 맞았는지, 벌써 달아났는지 구분조차 할 수가 없었다. 숲속으로 들어간 사냥개도 보이지 않았다. 고라니와 ‘꾼’의 1시간 가까운 숨바꼭질 대결. 더 이상 움직임도 없었다. 수신호와 조금씩 앞으로 헤쳐나가는 헌터들, 바다에서 불어오던 바람도 숨을 죽였다. “놓친 것 같습니다, 나갑시다.”라며 인교수가 정적을 깨자, 박씨도 “고라니가 아닌가봐….”라며 맞장구를 쳤다. 허탕쳤다는 분위기가 역력했다.‘땡포’(사냥을 잘 못하는 포수를 일컫는 은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어걸음 떼놓는 순간 고라니가 맞은편 언덕으로 뛰쳐올랐다. 그때까지 꿈쩍하지않고 길목을 지키고 있던 이 회장이 탕탕탕, 연발 총소리를 울렸다. 언덕을 넘어서던 고라니가 퍽 쓰러졌다. 꾼 3명의 완벽한 작전이었다. 수십년 사냥터를 누빈 명포수였다. 인교수는 “40년 가까이 사냥을 해왔지만 사냥감을 발견할 때의 팽팽한 긴장감은 매번 새롭지요.”라고 말했다. 그는 실탄을 제거한 총을 넘겨줬다. 고라니를 어깨에 둘러멨던 그는 “고라니 사냥 모습을 직접 본 이기자는 운이 무척 좋아요, 수년간 사냥해도 고라니는 잘 못잡거든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이에 앞서 이날 6시20분, 인 교수는 충남 태안군 안면도파출소에서 총기를 찾았다. 어둠 속에서 총을 인수하고 나오던 인교수,“총을 ‘애인’으로 표현하잖아요, 애인을 밤마다 남의 집에 맡기는 심정 이해하겠어요?”라며 동행 취재에 나선 기자에게 묻는다. 사냥꾼 3명을 태운 갤로퍼는 주황색 가로등이 빛나는 마을을 지났다. 그는 “총을 살 때 정부가 보조한 것도 아닌데, 개인 재산을 왜 정부가 보관하는지 모르겠다.”며 “총기를 영치하는 국가는 세계에서 대한민국이 유일하다.”고 흥분했다. 그러곤 꼭 써달라고 주문했다. 마을도 멀어지고 배추밭이 나타났다.“이 시각엔 고라니나 노루가 먹이를 찾아 내려오지요. 밝아지면 산으로 올라가 숲속에서 잡니다.”라며 서치라이트로 산기슭 사이의 밭을 살피던 그는 갑자기 탕하고 한 발을 쐈다. 안내하던 박씨는 “달리는 차안에서 어떻게 맞히느냐?”며 핀잔한다. 이에 개의치 않고 차문을 박차고 나가 뛰었다. 논밭과 고랑을 몇개 건넜다.30여분만에 “분명히 송아지만한 노루였는데….”라며 허탈한 표정의 인교수가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힌 채 차로 돌아왔다. 오전 7시쯤되자 어둠이 걷히고 나무와 숲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수지가 나타나자 인교수가 살금살금 기어올랐다. 오리가 많다는 신호로 한손으로 크게 원을 그렸다. 이어 박씨와 이회장도 차에서 내렸다. 저수지를 한참이나 우회하던 인교수는 주황색 조끼를 벗었다. 오리 눈에 띄지 않기 위해서다. 살금살금 발소리도 죽여 다가갔다. 하지만 오리 한마리가 꺽꺽하며 날아오르자 나머지 모두 날았다. 수백마리가 날아오르던 장관이었다. 인교수와 박씨가 방아쇠를 몇번 당겼다. 뒤늦게 날아오르던 몇마리가 저수지에 떨어졌다. 인교수는 “털이 긴 사냥개는 모두 물고 나올 텐테, 이놈은 엄살이 심해 물에 안 들어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의 사냥개 캐리가 비교적 가에 떨어진 것을 물고 나왔다.30여분 달려 인근 야산,“이 산에는 장씨(장끼)가 많아요.”박씨의 설명에 따라 장끼 사냥에 들어갔다. 몇개의 야산을 넘었다가 다시 차로 돌아오면서 푸드득거리는 몇마리에 총질을 했다. 총을 쏴보고 싶던 동행 기자는 박씨에게 총을 빌려달라고 했다.“안 되는데, 오프 더 레코드입니다.”라며 빌려줬다. 날아가는 꿩과 산비둘기를 향해 총질을 했다. 비웃기라도 하듯 머리위를 선회하면서 날아갔다. 하지만 탕 소리에 막혔던 체증이 뚫리는 듯 스트레스가 날아갔다. 청량감마저 들었다. 박씨가 총을 되가져갔다. 허탈했다. 배도 고팠다. 추위가 몰려왔다. 하지만 꾼들은 오기가 돋은 듯했다. 지루저수지에서 오리 몇마리를 더 잡았다. 돌아오는 길에 들른 야산에서 장끼를 잡자며 들어갔다. 뜻밖의 고라니를 잡고는 하산했다. 글 사진 안면도 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 헌터가족 유진이네 꾼들에겐 ‘한국말이 유창한 미국인 헌터’로 널리 알려진 인교수는 헌터가족이다. 외할아버지 유진벨은 오지 조선에서의 외로움을 달래고 조선의 산천을 살펴보기 위해 사냥을 취미로 삼았다. 인교수는 연세대 설립자인 언더우드 박사와 최초로 조선을 찾은 외국인 선교사의 후손이다.5살때 외할아버지로부터 엽총을 선물받은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사냥터를 누볐다. 덕분에 한국의 지리와 산천은 그 누구보다도 꿰뚫고 있다.4대째 한국에서 봉사하는 그의 가족 내력 외에도 한국 사랑이 유별나다. 부인 이지나(이지나 치과원장)씨도 열혈헌터. 남편을 따라 총포소지 및 수렵면허 허가까지 땄다. 아들 유진(5)군도 간간이 엽장을 찾는다. 인교수는 “지난 시즌에 아들이 ‘나도 사냥가겠다.’고 조르는 통에 어쩔 수 없이 아들을 안고 거총연습과 사격을 했지요. 폭발음에 놀란 아들이 일단 총을 내려놓았어요.”라고 말했다.“외할아버지로부터 받은 총을 아들에게 물려줄 거예요.”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이번은 주중이라 인교수 혼자만 나섰다. “말보다 수신호가 더 많은 사냥터에선 부부가 한조가 되면 호흡이 잘 맞습니다. 인생처럼 길없는 산을 오르다 보면 정도 깊어지고요. 돈도 생각만큼 많이 들지는 않습니다.”사냥 입문 20년째인 박씨는 중학생 아들과 함께 오리 사냥에 종종 나선단다.“수칙만 지키면 안전합니다. 오히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어릴 때부터 생기죠.” ■ 어떤 동물 잡을수 있나 이번 시즌에는 멧돼지와 고라니가 풍작으로 예상된다. 또 꿩은 평년작으로, 오리와 멧토끼는 예측 불허로 조사됐다. 이는 사냥 전문잡지 ‘자연과 사냥’이 이번 시즌에 해제된 전국 21개 시·군 수렵장의 실태를 조사한 결과다. 수렵허가를 받았다고 해서 모든 동물을 사냥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잡을 수 있는 동물들은 사냥터마다 종류와 마릿수까지 엄격하게 제한된다. 길짐승으론 멧돼지·고라니·멧토끼·청설모가 있고, 날짐승으론 수꿩·멧비둘기·까마귀류·오리류·까치·어치·참새 등이다. 하지만 허가된 조수가 다르기 때문에 유심히 살펴봐야 한다. 이를테면 보은군에선 흰뺨검둥오리를 잡으면 안 되지만 원주시에선 1000여마리 이상을 포획할 수 있다. 또 사냥 허가권마다 잡을 수 있는 조수도 다르다. 적색포획승인증은 허가된 모든 조수를 잡을 수 있지만 황색은 멧돼지를 제외한 것, 청색은 멧돼지와 고라니를 제외한 조수를 잡을 수 있다. 자신의 허가권에 맞게 잡아야 한다. 한편 도단위로 허용되던 순환수렵제가 지난 시즌부터 시·군 단위로 실시되면서 수렵인들의 볼멘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종익 ‘자연과 사냥’ 대표는 “전국 1만여명이 넘는 수렵인들이 군단위의 좁은 땅에 몰려 위험하면서도 조수의 씨를 말릴까 걱정된다.”며 “예전처럼 엽장을 넓게 사용할 수 있는 도단위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 이래서 사냥마니아 “어떤 사람들은 왜 사냥을 하느냐고 묻습니다. 단지, 카메라를 들고 가서 아름다운 풍경들을 담아오는 게 낫지 않으냐고 말합니다. 내 대답은 간단하지요. 사진가는 단지 관찰자일 뿐이며, 헌터는 드라마의 주인공이라고.” 인요한교수는 미국 아웃도어라이프 편집장을 지냈던 짐 점보의 말로 대신했다. 인교수는 “사람이 미쳐 빠지는 취미는 마작과 사냥”이라고 주장했다.“마작은 어머니까지 팔아먹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사냥은 건전합니다.” 사냥은 자연친화적이며 사냥꾼은 주색잡기에 빠져들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사냥은 똑같은 상황이 한번도 없어 스토리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또 산을 많이 걷기 때문에 건강에는 그만이라고 덧붙였다. 단점이라면 주말 사냥을 위해선 거짓말로 핑계를 꾸며대고 빠져나와야 한다는 것이란다. 산을 간다는 점에선 등산과 비슷하다. 하지만 등산은 정해진 길로만 가는 ‘기차 여행’이라면 사냥은 가고 싶은 곳으로 가는 ‘자가용 여행’이라고 비유했다. 사냥은 나무와 풀 한 포기까지 세밀하게 관찰하면서 간다. 걷고 뛰고 매복하는 등 가장 야성적인 레포츠가 사냥이란 것이 그의 지론이다. 사냥이 동물을 잡기 때문에 자연을 훼손하고 잔인하다고 생각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고 주장했다. 먹이가 부족한 겨울 야생동물을 적절히 구제하지 않으면 자체적으로 도태된다. 또 채식주의자를 빼곤 모두 고기를 먹는데 동물을 잡기 때문에 잔인하다고 하는 것은 단견이라고 일축했다.“헌터는 동물을 잡기 때문에 생명을 귀하게 여기고 휴머니즘적으로 바뀐다.”며 최고의 자연주의자가 사냥꾼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사냥터는 세계적으로 손색이 없다고 주장했다.“미국에선 인적이 없는 외지에서 쓸쓸하게 사냥을 하지만 한국은 논밭과 산간마을 주변에서 농부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사냥할 수 있어 좋아요.”한국 사냥터를 예찬했다. 동료 의사들이 많이 하는 골프를 그는 초등학생 시절에 손을 뗀 구슬치기로 비하했다.“말끔하게 다듬어진 공원에서 공을 때려 구멍안에 집어넣고 기뻐하는 일에 도무지 흥미를 느끼지 못했어요. 그래서 골프는 안 치고 8개월은 실력을 갈고닦는 사격,4개월은 사냥만 한다.”고 말했다. ■ 수렵절차 알아볼까
  • [길섶에서] 대한 무렵/심재억 문화부 차장

    소문난 제사 먹을 것 없더라고, 말이 대한(大寒)이지 살 떨리는 추위로 보자면 소한(小寒)에 한참 못 미칩니다. 근거가 뭐냐고요? 원래 절기의식은 요즘처럼 통계로 말하는 게 아니고 살면서 겪은 경험으로 말합니다. 그러니 근거를 대라면 할 말은 없지만 ‘대한이 소한 집에 갔다가 얼어 죽었다.’는 말이 그냥이야 생겼겠습니까? 어느 해. 폭설 앞세우고 온 소한추위가 독해도 너무 독해 마을이 온통 쥐죽은 듯한 날, 아침밥 지으러 부엌에 나선 어머니가 화들짝 놀라 방으로 뛰어들었습니다. 부엌에 ‘숭칙한 짐승’이 들었다는 겁니다. 호기심에 부엌문을 빠꼼 열고 보니 혹한에 반나마 얼이 빠진 노루 한마리가 나뭇간에 퍼질러 앉아 천연덕스럽게 마른 볏짚을 새기고 있었습니다. “저 겁많은 놈이 사람 거처로 찾아든 걸 보니 새끼 밴 모양”이라며 아버지는 금세 사연을 읽어냅니다.“주린 배 얼요기라도 하고 한기가 가시면 지가 알아서 갈 것”이라며 아예 부엌문을 닫아두라십니다. 덕분에 아침을 한 낮에 먹었지만 뭔가를 배려했다는 생각에 온 몸이 더워지는 걸 느꼈습니다. 그 노루, 요새 그랬단 아마 몇 발 못가 총맞지 않을까요. 심재억 문화부 차장 jeshim@seoul.co.kr
  • [눈에 띄네~ 이 얼굴]‘내셔널 트레져’의 저스틴 바사

    [눈에 띄네~ 이 얼굴]‘내셔널 트레져’의 저스틴 바사

    잘난 영웅 혼자서 모든 걸 일사천리로 해결해 나간다면 얼마나 심심하겠는가.‘내셔널 트레져’는 분명 벤저민(니컬러스 케이지)의 보물사냥이 주축을 이루는 영화지만, 그의 오른팔인 친구 라일리가 있기 때문에 더 풍성하고 현실감있는 스토리로 가지를 뻗었다. 라일리 역의 저스틴 바사는 현대를 살아가는 전형적인 미국 젊은이의 모습을 연기한다. 발로 뛰는 것보단 책상 앞 컴퓨터가 더 익숙한 청년. 그러다 보니 테크놀로지와 컴퓨터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도 해박하지만, 몸으로 부딪치는 모험 앞에서는 쑥맥일 수밖에 없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위험천만한 어드벤처의 세계로 빠져드는 그는, 우왕좌왕하는 듯 보이지만 곧 실력을 발휘해 벤저민을 돕는다. 모든 단서를 척척 알아내는 벤저민에게 약간의 열등감을 갖고 있기에 늘 투덜대지만, 그래서 더 사랑스러운 인물이다. 얼마전 제작진과 함께 한국을 찾은 바사는 “라일리는 가장 현실감각이 있는 캐릭터”라면서 “연기하면서 관객을 염두에 뒀다.”고 말했다. 항상 ‘관객이라면 이런 반응을 보일 텐데‘라는 생각으로 연기에 임했다는 것. 그래서인지 극중에서 대담무쌍하게 행동하는 벤저민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라일리의 행동은, 관객에게 가장 친숙하고도 재미있게 다가온다. 저스틴 바사는 할리우드의 신예 배우다.‘스튜디오 54’‘갱스터 러버’ 등에 조연으로 출연했던 그는, 이번 영화의 라일리 역을 오디션을 통해 따냈다. 하지만 그의 꿈은 배우에 그치지 않는다. 단편영화의 각본과 감독을 맡은 적이 있는 그는 “연출, 시나리오 집필, 편집까지 두루 관심이 있다.”면서 “언젠가 제리 브룩하이머와 함께 영화를 만들게 될지 누가 알겠느냐.”며 당찬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 트리플캐스팅 황솔·문슬예·이진주

    트리플캐스팅 황솔·문슬예·이진주

    “너무너무 기뻤는데요, 옆에서 우는 친구들 달래주고 표정 관리하느라고 혼났어요.” 새달 4일부터 서울 정동극장에서 공연되는 가족극 ‘몽실언니’에서 주인공 ‘몽실이’를 맡게 된 아역 배우들은 앳되지만 어른스러웠다. 황솔(신천초6·13), 문슬예(중계초4·10), 이진주(구성초4·10). 오디션을 통해 연극에 투입된 아이들은 트리플 캐스팅으로, 한 명이 몽실이를 하면 나머지 두명은 극중 다른 배역으로 무대에 선다.8월말부터 하루 7시간 이상 강도 높은 연습을 하고 있지만 “연기가 너무 재미있어 하나도 힘들지 않다.”고 또박또박 말한다. 연기에 대한 끼를 스스로 발견하고 부모님을 졸라 연기학원에 다닌 아이들이니 오죽할까. ●새달 4일부터 정동극장 공연 솔이는 이번 연극이 데뷔 무대.TV와 영화에 얼굴을 비쳤던 슬예, 진주에게도 본격 연기는 이번이 처음이다.‘몽실언니’는 TV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던 동화작가 권정생의 작품이 원작이다. 가난과 배고픔 때문에 남편을 버린 어머니가 만난 새 아버지의 학대로 절름발이가 된 몽실이가 6·25 전쟁통에 부모를 한꺼번에 잃고 식모살이, 구걸을 하면서도 배다른 동생들과 이웃을 돌보며 꿋꿋하게 살아간다는 내용이다. 풍요로움을 누리고 살아온 아이들이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의 이야기를 온몸으로 풀어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 “땅바닥에 떨어진 밥을 주워담는 장면에서 밥을 허겁지겁 주워 담아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됐어요. 그래서 엄마가 ‘동냥이라도 나가 봐라.’한 적도 있어요.” 평소 엉뚱한 말을 잘한다는 슬예의 솔직한 말.“연기에 대해 눈을 뜨게 됐어요.”라고 제법 진지하게 말하는 슬예는 “저는요, 힘도 세졌어요.”라며 수줍게 웃는다. 동생 난남이를 업고 나뭇짐까지 하는 몽실이로 살게 되니 얼마 전 엄마도 업을 수 있었단다. 현재 TV 어린이 프로그램에 단역으로 출연 중인 진주는 자타가 공인하는 ‘눈물의 여왕’.“(연극계가)인간적이어서 너무 좋아요.”“감정도 더 풍부해졌고요.”라고 진주가 말하자 이에 질세라 “관객들과 나의 감정을 나눠주고 함께 느낀다는 점이 너무 좋아요.”라고 솔이가 언니답게 이어받는다. 아이들이 부쩍 자란 건 몽실이 덕이다. ●하루 7시간이상 강도높은 연습 사슴처럼 맑은 아이들은 작은 몸뚱이에 두둑한 배짱과 에너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90분 동안 이어지는 무대가 하나도 떨리지 않았다. 요동치는 가슴을 부여잡아야 했던 쪽은 오히려 무대 아래의 엄마들. 지난 10월 과천에서 열렸던 프리뷰 때 막이 내려가자마자 엄마들은 너나할 것 없이 눈물을 쏟아내고 말았다. 목소리가 너무 고와서 자꾸 예쁜 몽실이가 된다는 솔이. 아직 힘이 부족하다는 진주. 마음으로 우는 게 힘들었다는 슬예. 어리다고 열정이 없을까. 자신들의 단점을 얘기하는 아이들은 심각했다. 겉모습뿐 아니라 속내까지 진짜 몽실이가 되고 싶은 아이들이 꾸미는 무대는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다. 공연계 대목인 연말, 화려한 볼거리로 치장한 대규모 공연들의 위세가 아무리 대단해도 말이다.31일까지.2만∼3만원.(02)751-1500.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기획] 욕, 난세의 ‘문화코드’로…TV·문학 ‘점령’

    [기획] 욕, 난세의 ‘문화코드’로…TV·문학 ‘점령’

    ‘욕’. 그것은 저급한 소통수단인가, 필요악인가-. 우리사회의 정치권과 뒷골목에서 욕설이 난무하는 것 못지않게 문화예술계에서도 온갖 욕과 쌍소리가 넘쳐난다. 그 때문인지 극장 가기도,TV 보기도, 라디오 켜기도, 소설을 들추기도 겁이 난다. 말 그대로 욕의 홍수다. 아무리 문화가 당대의 시대상을 반영한다고 해도 이건 너무하다 싶다. 하지만 문화예술 각 장르에 만연한 이같은 욕들은 우리시대의 한 코드로 통용되고 있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나게’ 스크린은 욕설 경연장? “내 입술 부빈 ×은 니가 처음이야.”“×나게 좋아한다.” 10대 청소년 대상의 영화 ‘그놈은 멋있었다’의 대사중 일부다. 인터넷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은 동명의 소설을 스크린으로 옮긴 이 영화에서 욕은 분노나 위협 등의 격한 감정을 표현하는 특수한 용어가 아니라 10대들의 일상어로 등장한다. 새달 3일 개봉하는 ‘발레교습소’(15세)에서도 주인공 민재가 감정이 격해지면서 ‘18’이라는 말을 쓰고, 양아치들은 ‘×만한 게’‘×발년’같은 욕을 예사로 내뱉는다. 영화 ‘말죽거리잔혹사’(15세)에서는 “대한민국 학교 ×까라 그래!”라고 외치고,‘위대한 유산’(15세)에서는 ‘미친년아’‘변태 또라이 새끼’등 거친 표현이 쉴새없이 쏟아진다. 중년층을 겨냥한 ‘고독이 몸부림칠 때’(15세)에서도 ‘염병할 놈’‘우라질 놈’‘뭔 지랄이여’등이, 전쟁영화인 ‘태극기 휘날리며’(15세)에서도 ‘×팔’‘×나게’라는 표현이 수도 없이 나온다. 현실이 이렇다보니 ‘보리울의 여름’‘달마야, 서울가자’‘신부수업’등의 몇몇 영화는 욕설이 없는 무공해표 영화라는 점을 홍보문구로 내세웠을 정도다. 한국 영화에서 ‘이 자식’‘이 새끼’를 넘어서는 욕이 등장한 것은 90년대 초반부터. 욕설 표현의 금기를 깬 선구자는 여균동 감독의 ‘세상밖으로’(94년)다.‘×만아’같은 욕설을 무려 250회에 걸쳐 쏟아놓았다. 이후 송능한 감독의 ‘넘버3’를 시작으로 ‘친구’‘피도 눈물도 없이’등 잇단 조폭영화를 거치며 욕은 코믹한 수준을 넘어섰다. 폭력, 노출과 함께 욕설이 3대 심의 기준의 하나인 미국과 달리 국내 심의에서 욕설은 18세 관람가에서는 아예 문제시되지 않을 뿐더러 15세 이상 관람가에서도 관대한 편이다. ●안방까지 침범한 욕설 최근 방영된 MBC 드라마 ‘아일랜드’에서 에로배우 시연(김민정)은 ‘지랄’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이 상대적으로 엄격한 탓에 영화에서처럼 적나라한 욕설은 등장하지 않지만 비속어나 은어의 사용은 빈번해졌다.MBC FM 신해철의 고스트네이션(3월10일 방송)은 ‘맞장을 까고’‘쪽팔리는 얼빵함’‘지들이 구라치거나’등의 비속어를 사용해 방송위원회로부터 주의 조치를 받았다. 대중가요에서의 욕설도 점차 강도가 세지는 추세다.SBS 심의팀이 올 11월까지 심의한 4675곡 가운데 방송불가 판정을 받은 가요는 총 143곡. 이 가운데 욕설을 포함한 비속어 사용이 문제가 된 경우는 70곡이었다. 조pd의 ‘SHOW MUST GO ON’은 ‘띨빡한’‘까발려진 개수작’‘fucker’‘god damn’ 등의 표현 사용으로 불가 판정을 받았다. 올해 나온 서태지의 노래 ‘F.M Business’에서는 ‘fucking’이 사용돼 방송불가 판정을 받았고, 힙합그룹 에픽하이의 2집에 수록된 ‘뒷담화’는 무려 35초 동안 온갖 욕설이 이어진 뒤 노래가 시작된다. 저항을 사명으로 하는 힙합 가수들의 경우 욕설은 거의 필수항목이나 마찬가지다. ●문학속의 욕 한국소설 속에서의 욕설은 오랫동안 ‘갖은 양념’ 같은 것이었다. 이문구 김주영 윤흥길 조정래 등 문단을 이끈 중진작가들은 주요 작품들 속의 등장인물들에게 거의 예외없이 질펀한 욕을 쏟아내게 해 독특한 작가적 질감을 일궈냈다. 예컨대 이문구의 대표작 ‘우리동네’같은 작품은 쉴새없이 끼어드는 욕설이 줄거리보다 더 선명하게 기억될 정도. 사정없이 내다꽂는 욕설이 주요한 문학적 장치가 되는 추세는 서사가 강한 중진작가들의 작품활동이 뜸해지면서 거의 사그라든 형편이다. 그러나 10대가 점령한 인터넷 소설쪽은 사정이 다르다. 아예 ‘욕설의 바다’ 수준이다.10대의 폭발적인 호응을 업고 문학시장 깊숙이 침투한 인터넷 소설은 거침없는 욕설과 원색적 비아냥이 이야기를 엮는 필수 소재가 돼버렸다. 최근 그 경향은 초등학생들쪽으로까지 침투해 내려갔다. 또래끼리 문화층을 갖춘 이들은 나름대로의 변형된 욕 글들을 주고받는다. 한글 자체의 글꼴을 변형하는가 하면 알 듯 모를 듯한 욕설을 일삼는다. 팍팍한 삶에 윤활유가 돼 주었던 욕이, 인터넷 소설판에서는 이제 특별히 감동적일 것도 없는 일상용어로 돌변해버린 셈이다. 연극에서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최근 막을 내린 뒤 앙코르 공연예정인 ‘청춘예찬’만 보더라도 극중 불우한 환경 속에 고등학교를 4년째 다니고 있는 22살의 청년과 친구들의 대화 속에는 “X발, 개새끼”는 양념 격으로 등장하기 일쑤다. 그런가 하면 “중삐리 관중 X나게 많은데서”“물레 돌리지마 이 X새끼야”“씨박 새끼 넌 술이 들어가냐?”같은 욕과 비속어가 즐비하다. 순수예술의 꽃인 연극의 이름이 무색할 정도다. 문화부 종합 coral@seoul.co.kr
  • [데스크 시각] 도롱뇽과 ‘당랑거철’/김용수 공공정책부 차장

    당랑거철(螳螂拒轍)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사마귀가 수레를 막겠다고 나섰으니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뜻이다. 하지만 수레를 막겠다고 나선 그 용기만큼은 가상하다고 하겠다. 중국 고전 ‘회남자(淮南子)’에 나오는 이야기다. 춘추시대 때 제(齊) 나라 장공(莊公)이 수레를 타고 사냥터로 가고 있었다. 도중에 갑자기 사마귀 한 마리가 앞발을 도끼처럼 휘두르며 수레를 쳐부술 듯이 덤벼드는 것을 보았다. 장공은 “저 사마귀가 사람이라면 천하의 영웅이 될 것이다.”라며 수레를 돌려 피해갔다고 한다. 21세기인 요즘 당랑거철보다 더 용기있고 가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도롱뇽이 시속 300㎞로 질주하는 경부고속철을 막겠다고 나선 것이다. 경부고속철은 이 도롱뇽 때문에 오도가도 못하는 처지가 돼 있다. ‘단군 이래 최대의 국책사업’이라는 경부고속철은 지난 4월 1차 개통에 이어 2010년 완전 개통이 예정돼 있다. 그러나 2단계 구간인 동대구∼부산 구간은 착공조차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바로 ‘도롱뇽 소송’ 때문이다. 한국철도시설공단이 도롱뇽의 서식처인 천성산에 터널을 뚫겠다고 하자 천성산 내원사의 비구니인 지율스님을 비롯한 ‘도롱뇽의 친구들’은 지난해 10월15일 도롱뇽을 원고로 ‘천성산 고속철 터널 착공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그러나 올봄 1심에서 기각되자 곧바로 항고했다. 현재 부산고법에서 2심이 진행 중이다. 지율스님은 지난 6월30일부터 57일간 청와대 앞에서 단식농성을 벌였다.‘정말 죽을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 속에 8월25일 당시 문재인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이 중재에 나섰다. 중재 결과 지율스님은 단식을 중단하고 법원재판 결과에 승복할 것과 철도시설공단은 판결 때까지 천성산구간 공사를 중단한다는 데 합의했다. 그 항고심 판결이 이달 말 나온다. 지율스님이 목숨까지 내건 천성산 일대는 세계적으로 희귀한 고층 늪지대이다. 지율스님측은 해발 922m의 천성산에 터널을 뚫을 경우 늪지의 물이 빠지게 되고, 도롱뇽의 서식지인 늪지의 생태계가 파괴된다고 주장한다. 사실 환경단체가 없으면 우리 국토의 난개발은 불을 보듯 뻔하다. 정부, 지자체, 개발사업자 등 모두가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승냥이처럼 온 나라를 뜯어먹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나 이번 건은 여느 개발사업과 다르다. 단군 이래 최대의 국책사업이다. 특히 고속철은 그 특성상 노선의 곡선화나 기울기에 있어서 한계치를 넘으면 안 된다. 시속 300㎞를 내기 위해서는 곡선 노선의 지름이 7㎞를 넘어야 하고, 상하 기울기도 길이 1000m당 높이 25m 이하여야 한다. 철도시설공단측이 천성산 노선 외엔 대안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어쨌든 이번 논란은 이달 말쯤 종지부를 찍게 될 전망이다. 법원 판결이 ‘공사금지’로 나오면 천성산 도롱뇽은 고사에 나오는 사마귀보다 “더 용기 있었노라.”고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도롱뇽이 1편성에 400억원이나 하는 고속철을 멈춰세웠기 때문이다. 반대로 ‘공사허용’으로 판결이 난다 해도 ‘도롱뇽의 친구들’은 후손들에게 “천성산의 자연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노라.”고 자랑할 수 있다.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다. 철도시설공단이나 ‘도롱뇽의 친구들’ 모두 법원의 판결에 따라야 한다. 이는 법적인 문제 이전에 사회적인 합의이다. 김용수 공공정책부 차장 dragon@seoul.co.kr
  • 中기업 해외기업사냥 본격화

    중국 기업들의 본격적인 해외기업 사냥이 시작됐다. 이번 주 시행된 중국정부의 자국기업의 해외투자 규제완화 조치로 중국기업들의 해외기업에 대한 인수·합병(M&A) 행보가 더욱 빨라지게 된 것이다. 19일자 파이낸셜 타임스는 올해 중국기업의 해외기업 인수·합병이 지난해보다 30% 늘어난 44건에 이른다고 전했다. 건당 평균 투자규모가 아직 1억달러 미만이지만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기업사냥’이 보다 대형화되고 본격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예는 중국 최대 자동차 제조업체인 상하이자동차그룹(SAIC). 영국 부품업체 MG 로버와 함께 폴란드의 대우자동차를 사들이기 위해 힘을 쏟고 있다.SAIC는 3억 5900만달러로 쌍용자동차 지분 49%도 확보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SAIC가 대우 및 쌍용의 인수에 성공하면 쌍용의 스포츠유틸리티(SUV) 및 대형차 생산기술과 대우의 중소형 차량관련 디자인 및 생산기술을 단숨에 확보할 수 있게 돼 미국과 일본의 경쟁업체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항저우지역 자동차부품업체인 완샹은 최근 미국 일리노이주에 있는 부품업체를 사들였다. 완샹의 기업사냥 최대 목표 역시 SAIC와 마찬가지로 기술력 확보다. 중국의 급속한 발전에 따른 선진국들의 경계심과 기술장벽이 높아지면서 이를 돌파하기 위해 기업을 통째로 사들여 ‘노하우’를 전수받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연구·개발기술의 확보외에 해외에서 제조업체를 사들이려는 이유에는 새로운 시장개척과 원가 절감도 포함돼 있다.SAIC는 동유럽에서 지명도가 있는 대우의 상표로 시장 석권의 야심을 불태우고 있다. 제조업체 말고도 자원과 중간재에 목마른 중국기업들은 세계 각지에서 유전 및 광산 매입과 각종 금속분야 기업들에 대한 지분참여도 시도하고 있다. 세계 시장진출에 앞서 각지에 하청기업군을 만들어나가고 있는 셈이다. 이 덕에 세계적인 M&A 전문가들은 미국과 유럽지역의 사냥 대상을 물색하며 ‘차이나 특수’를 누리고 있다. 한 전문가는 중국경영자들이 아직 인수·합병에 대한 경험이 적어 협상 막바지에 불발되는 경우가 많은 편이지만 중국정부의 암묵적인 지원에 힘입은 초대형 국영기업들의 해외기업 사들이기가 곧 세계기업 판도를 흔들어놓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편 중국 상무부는 이번 주 국내기업들의 해외투자에 대한 적격성 평가를 철폐하는 등 투자완화 조치를 시행했다. 이석우기자 swlee@seoul.co.kr
  • [차이나 리포트 2004] (38)한·중 인터넷기업 합작

    [차이나 리포트 2004] (38)한·중 인터넷기업 합작

    한국과 중국 인터넷 업체간 짝짓기가 한창이다.특히 온라인게임 등 양국의 닷컴기업간 제휴가 본 궤도에 올랐다.폭발적인 성장세인 중국의 인터넷 시장과 온라인게임을 중심으로 수익모델이 정착된 한국의 닷컴업계가 일단은 ‘찰떡 궁합’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베이징·상하이 구본영특파원| 이미 베이징이나 상하이 등 대륙의 온라인 게임시장은 한국 업체들이 장악한 지 오래다.모영주(牟榮宙)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 베이징사무소장은 “정보기술(IT)분야에서 현재 중국에 비교우위를 확실히 지키고 있는 분야가 온라인게임 분야”라고 귀띔했다. ●대륙 사로잡은 한국 온라인게임 한국 온라인게임 개발업체들이 게임 개발력과 중국시장 친화적인 서비스 지원 능력 등에서 중국기업은 물론 유럽과 미국·일본 등을 앞지르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중국 온라인게임시장을 주도하는 한국 게임은 총량에서 여전히 60%를 차지한다.유료 사용자 확보 등 비교적 성공한 게임에서 한국제품이 차지하는 비중도 3분의2에 이른다고한다. 엑토즈소프트의 ‘미르의 전설(Mir2)’,웹젠의 ‘뮤(Mu)’,그라비티의 ‘라그나로크’,CCR&CV의 ‘포트리스2’,엔씨소프트의 ‘리니지’ 등이 중국 게임시장에 안착한 사례들이다. 올 들어서는 인터넷 포털업체 NHN이 중국 최대 게임업체 하이훙(海紅)과 손잡기로 하는 등 한국 게임개발업체들의 중국진출이 가속화하고 있다. 역으로 중국업체들의 한국 진출도 두드러지는 추세다.올 들어 중국업체들의 한국 게임기업 인수나 합병 등 기업사냥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BBMF와 차이나닷컴의 자회사인 차이나닷컴모바일인터렉티브(CMIC) 등이 국내 게임개발회사 인수를 모색하고 있다는 소식이다.상하이샨다가 국내 게임인 미르의 전설을 중국에 서비스하는 등 종전의 한·중 제휴 패턴보다 훨씬 적극적인 방식이다. 완성된 게임 소프트웨어의 중국 판권을 확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이제 ▲국내 게임개발사에 초기에 투자해 지분을 확보하는 방안 ▲국내 게임업체를 통째로 인수하는 방안 ▲합작법인을 중국에 설립해 공동개발하는 방안 등으로 중국업체의 한국 게임업계 제휴 및 공략 방식이 다양해지고 있는 셈이다.중국의 스모(世模)사와 한국의 조이맥스사가 ‘실크로드’를 공동개발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한·중 닷컴기업 윈·윈의 길 이같은 현상은 적어도 단기적으로 한국업계에는 호재다.2004년 현재 4조원 규모인 국내 온라인게임 시장은 총량적 측면에서 다소간 정체 조짐을 보이고 있다.게임 인구가 1400여만명에서 별로 늘어날 기미가 없기 때문이다. 반면 중국의 온라인게임 인구는 현재 2347만명(유료이용자수는 1190만명)으로 추산되나,2006년에는 남한 인구와 맞먹는 4490만명(유료이용자수는 2227만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중국 게임시장은 한국업체들에 황금을 캐는 엘도라도는 아닐지언정 개척해야 할 ‘서부’임엔 틀림없다. 이와 관련,베이징에서 만난 리밍청(李明成) 전 중국 국가경제무역위 처장은 “한국이 산업공동화를 우려할 필요없이 어차피 국내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는 제조업은 빨리 중국으로 과감히 이전하고,IT나 금융서비스산업 등을 육성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충고했다.한국측 전문가들의 시각도 엇비슷하다.즉 “중국과의 새로운 형태의 분업구조를 이뤄나가는 방향으로 노력해야 한다.”(한갑수 한국산업경제연구원 회장)는 것이다.한마디로 제조업은 중국에 내주더라도 고부가가치인 소프트웨어개발 등 IT시장은 한국이 선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머잖아 한·중간 온라인게임 소프트웨어 개발 등의 기술력 격차가 평준화되면 얘기가 달라진다는 관측도 나온다.중국이 막대한 자본과 저렴하지만 비교적 양질의 풍부한 인력을 바탕으로 인해전술식 연구개발(R&D) 투자를 퍼붓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한·중 양국 업계가 공동으로 게임을 개발해 중국시장에 출시하는 것은 불가피한 선택인지도 모른다.그 과정에서 양국 회사가 그래픽이나 서버 등 기술력이나 게임 콘텐츠 현지화에서 각각의 비교우위를 바탕으로 함께 경쟁력있는 제품을 개발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한국으로선 게임 소프트웨어 개발요원을 대량으로 육성하려고 하는 중국의 교육시장을 선점할 필요성도 있다는 지적이다. 중국정부는 현재 관련 주요 대학에 게임관련 학과를 개설하고,민간 관련 교육센터 설립을 추진중이다.이를 계기로 한국 교육단체가 여기에 진출하는 것은 기왕에 선점한 중국의 게임시장의 맥을 새로 짚어내는 일에 다름 아니다.한국은 교육협력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한편 중국에 한국 게임 개발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소비시장을 확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물론 이에 앞서 “규제일변도의 ‘게임물 등급분류제도’등을 친시장적으로 개선하는 등 세계 최강 한국 온라인게임의 경쟁력을 안에서부터 좀먹게 하는 제도의 개선이 선행되어야 한다.”(국내 게임업체 J사 대표)는 지적이다. kby7@seoul.co.kr ■[기고] 해외투자 활로 찾기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후 중국의 국내시장은 더욱 개방되고 있고,중국기업 역시 격렬한 국제경쟁 시기에 접어들었다.시장이 개방됨에 따라 거대 다국적 기업들이 중국 본토에서 생산하고 본국에서 판매하는 방식으로 중국의 저렴한 노동력을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기업들이 국제분업 구조 속에서 최하 단계인 제조업의 비교우위에 만족한다면 국제경쟁에서 위험한 지위에 빠지게 될 것이다.이 때문에 국제 경쟁력을 갖춘 중국 다국적 기업을 육성하는 게 기업생존의 절실한 요구조건이다. 중국정부에서는 2000년에 “쩌우추취(走出去·해외로 나가자)’ 전략을 세웠고 2003년 공산당 16전회에서 중국 다국적 기업들의 해외투자를 촉진시키기로 결정했다. 현재 일부 중국기업은 해외로 나갈 수 있는 실력을 갖췄다.상무부 통계에 따르면 올 5월말까지 상무부에서 비준한 해외 중국기업(누계)은 160여개 국가에 7720개로,이들이 해외에 직접투자한 규모는 300억위안(4조 5000억원)을 초과했다.지난해 중국에서 새로 설립된 외국투자기업(境外企業)은 510개로 전년보다 50%가 늘었다. 중국 해외투자는 거의 절반이 홍콩과 마카오에 집중돼있고 북미,호주,유럽 순이다.무역형 기업이 다수를 차지하고 투자영역은 자원개발과 해외가공무역,농업 및 농산품 개발,관광,상업,자문 서비스 등을 포함한다.부가가치가 낮고 노동집약형 업종이 주류이다. 자원개발형 프로젝트를 제외하고는 대다수가 중소 프로젝트이다.기업 평균 자본규모는 198만위안(약 3억원)이다.자금·경험 부족으로 중국 해외투자는 대다수가 독자·합자기업 방식을 취하고 있다.총체적으로 중국기업의 해외투자는 시작단계에 있다.규모는 작고 업종은 다양하다. 중국정부는 향후 대외투자 규모를 점차 확대하고 해외가공무역·조립을 크게 발전시킨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다국적 합병·인수(빙거우·幷購) 등의 투자방법도 적극적으로 모색할 예정이다. 해외자원의 합작개발을 강화,석유·가스와 광물 등 자원영역의 탐사·개발·가공합작을 통해 중국의 실용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이외에 ▲해외농업 합작 ▲해외 과학기술자원 밀집지역에서의 연구개발(R&D)센터 건립 ▲서비스 무역 합작 등도 주요 분야다. 해외기업 합작을 위한 국제환경 조성을 위해 지난 1일부터 새로운 ‘대외무역법’이 발효됐다.외환관리제도도 기업의 해외투자를 제약하고 있지만 국가외환관리국에서는 조건을 갖춘 다국적 기업 자체 소유의 외화자금을 해외 운영에 사용토록 개정할 방침이다. 국가외환관리국은 우선 2002년 10월부터 저장(浙江)·광둥(廣東)성 등의 14개 도시를 해외투자 외환관리개혁 실험도시로 지정,외화심사 금액·권리 제한을 풀어주었다.종합 국력을 높이기 위해 대기업과 그룹을 양성·발전시켜 그들로 하여금 다국적 기업으로 성장하게 함으로써 중국 공업화를 추진한다는 중대한 전략이다.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에서는 체제 개혁·구조개혁을 강화,대기업 발전을 위한 견고한 기초를 마련했다.앞으로 행정심사 절차를 간소화하고 기업의 투자주체 지위를 확립,다국적 경영을 위한 최적의 환경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루퉁(魯桐) 中사회과학원 세계경제정치硏 다국기업연구실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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