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냉전
    2026-04-10
    검색기록 지우기
  • 발단
    2026-04-10
    검색기록 지우기
  • 주의
    2026-04-10
    검색기록 지우기
  • 밥맛
    2026-04-10
    검색기록 지우기
  • 총리
    2026-04-10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8,796
  • 文 “日 앞선 건 경제규모·내수뿐”… 남북 평화경제로 추월 구상

    文 “日 앞선 건 경제규모·내수뿐”… 남북 평화경제로 추월 구상

    5일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 경협에 기초한 ‘평화경제’를 일본의 경제 우위를 극복할 수 있는 근본적 카드로 처음 언급했다. 남한이 일본의 경제력을 바짝 추격한 상황에서 북한과 경제적 힘을 합치면 일본을 따라잡을 수 있다는 극일 구상을 천명한 셈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문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그간 평화경제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 맞물려 남북이 함께 잘사는 경제공동체를 지향한다는 측면에서 언급됐지만, 일본 무역보복 대책으로 단기 처방에 해당하는 산업 경쟁력 확보를 넘어 근본적으로 일본을 뛰어넘는 경제강국이 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의 의미도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저성장이 고착화된 한국 경제의 돌파구가 남북 경협이라는 점은 그동안 학계·경제계에서 꾸준히 제기됐다. 문 대통령의 발언은 더 나아가 1965년 국교정상화 이후 누적 무역적자가 700조원에 이를 만큼 극심한 대일본 경제의존도를 탈피하기 위한 ‘극일’ 해법으로 평화경제를 제시한 것이다. 지난 6월 말 판문점 남북미 회동 이후에도 북미 비핵화 대화와 남북 관계가 복원되지 않은 상황에서 최근 북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 등으로 우려가 커졌지만, 일관되게 추진해 온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 측면도 있다. 이는 아베 신조 총리를 비롯한 일본의 보수세력이 ‘한반도의 봄’으로 상징되는 동북아 냉전구도 해체를 극도로 경계한다는 점과도 맞물린 것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은 지난 2일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전략물자 수출심사 우대국) 배제 결정이 나온 직후 긴급 국무회의에서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일본 정부의 조치가 우리 경제를 공격하고 우리 경제의 미래성장을 가로막아 타격을 가하겠다는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했다. 이후 당정청은 대책을 쏟아냈지만, ‘결정적 한 방’이 없다는 평가도 적지 않았다. 한국 경제 및 수출구조의 일본 의존도가 심각한 탓이다. 이날 문 대통령의 언급대로 “일본 경제가 우리보다 우위에 있는 경제 규모와 내수시장”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하기 위한 해법이 ‘평화경제’인 셈이다. 앞서 문 대통령은 지난해 8·15 경축사에서 처음 ‘평화경제’를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평화경제·경제공동체의 꿈을 실현시킬 때 우리 경제는 새롭게 도약할 수 있다”며 “향후 30년간 남북 경협에 따른 경제적 효과는 최소한 170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고 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이해영의 쿠이 보노] 역사전쟁, 경제전쟁 그리고 외교전쟁

    [이해영의 쿠이 보노] 역사전쟁, 경제전쟁 그리고 외교전쟁

    역사전쟁, 경제전쟁이란다. 역사 한 토막에서 시작해 보자. 1951년 4월 23일 당시 미국 국무부 고문인 덜레스가 방일했다. 당시 일본 총리 요시다 시게루는 그에게 ‘한국과 강화조약’이란 문건을 제시했다. “미국은 강화조약의 서명국으로 참가시키기 위해 한국을 초대한다는 의향을 시사해 왔습니다. 일본 정부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미국 정부가 이 문제를 재고할 것을 희망합니다. (중략) 이 나라(한국)는 일본과 전쟁 혹은 교전상태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연합국으로 간주할 수 없습니다. 한국이 만약 강화조약의 서명국이 되면 일본에 있는 한국민은 재산과 배상 등에서 연합 국민으로서 자신들의 권리를 획득하고 주장하게 됩니다. 아직까지 100만명(전쟁 종료 시는 거의 150만명) 가깝게 거주하고 있는데, 이들 한국인이 터무니없는 배상을 청구해 일본 정부는 거동도 할 수 없을 겁니다.” 미국이 전후 처리를 위한 샌프란시스코 강화회의에 한국을 초청할 의사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큰 그림이 바뀌고 있었다. 1949년 중국의 공산화 그리고 그 뒤를 이은 1950년 한국전쟁, 무엇보다 대소 봉쇄 전략이 미국 외교의 핵심으로 등장했다. 1947년 봉쇄 전략과 더불어 미국의 대일 점령정책의 축은 ‘과거의 적을 민주화하는 데에서 미래 냉전의 동맹국으로 재건하는 데’로 이동한다. 미국의 점령정책이 급변침하고 있었다. 이때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난다. 사실 미국도 대일 강화회의를 앞두고 분열돼 있던 때다. 이 대일 협정의 시기와 내용 그리고 조건에서 백악관도, 미 국무부와 국방부도 갈라져 있었다. 하지만 한반도 전쟁과 더불어 분위기는 변했고, 일단 미일 간의 전략적 결속이 우선 과제가 됐다. 일본이 미국의 핵심적인 군사동맹이자 경제동맹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그 일본이 재일 한인들의 일본 정부에 대한 ‘터무니없는 배상 청구’ 가능성을 제기했다. 결과적으로 일본의 주장이 관철됐다. 미 국무부의 최종 방침은 이렇다. “한국 정부가 과거 임시정부가 일본과 교전했다고 하나, 미국 및 주요국은 임시정부의 승인을 회피했으며, 임시정부가 일본에 선전포고하고 일부의 한국인이 일본에 항쟁했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는다.” 그렇다. 이 말이다. 우리는 일본과 전쟁을 수행한 교전국이 아니며 따라서 이 전쟁에서 승리한 승전국도 아니다. 그래서 승전국의 잔치인 샌프란시스코 강화회의에 입장권을 받지 못했다. 우리는 여기, 즉 전후 처리 과정에 들어가 근 40년에 달하는 일본의 불법적 식민지배에 대한 국가 배상과 위안부, 강제징병 및 징용 피해자 등 개인의 배·보상을 처리하지 못했다. 독도와 같은 영토 문제도 마찬가지다. 1941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대일 선전포고는 그냥 우리만의 말잔치였다. 왜냐하면 임정은 잘해야 독립운동단체이지 승인된 정부가 아니었기에 이들의 선언은 하등의 국제법적 구속력을 가지지 못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태평양전쟁 발발 초기부터 한반도를 신탁통치 대상으로 설정했기에 임정을 결코 승인하지 않았다. 전후에는 일본을 반소 봉쇄 전략의 축으로 삼았기에 한국인의 배상청구권에 의해 일본 재건이 위태롭게 되는 것을 전혀 원치 않았다. 여기가 모든 문제의 출발처다. 역사적 동어반복이다. 미국은 1965년 박정희 정권일 때는 반소련 봉쇄를 위해 한일협정을, 2015년 박근혜 정권일 때는 대중국 고립을 위해 위안부 합의를 종용했다. 미일 합의에 의해 전후 처리 과정에서 배제된 대한민국은 1965년 어설픈 식민 과거사 정리에 합의했다. 소위 ‘1965년 체제’다. 이 부실 합의는 반세기 뒤 또 다른 부실을 낳았으니 그것이 위안부 협상이었다. 그것은 화해도 치유도 아니었다. 이른바 1965년 체제는 남북 분단과 전쟁을 전제로 한 설계도였다. 결코 지금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 지금 한일 간의 격렬한 파열음은 거대한 빙하가 뜨거운 태양열에 가라앉으면서 내는 신음소리 같은 거다. 이 체제는 더이상 미래를 담보하지 못한다. 현상 변경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전혀 다른 목적, 곧 일본의 패권을 위한 현상 변경에 먼저 시동을 건 것은 전적으로 아베 정권이다. 한일 간, 아니 동아시아에 ‘긴 21세기’가 시작됐다. 무력전이 아니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외교전쟁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실력이 답해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 [이지운의 시시콜콜] 미-러 중거리핵전력(INF) 조약

    [이지운의 시시콜콜] 미-러 중거리핵전력(INF) 조약

    세월이 지나고 보니, ‘미하일 고르바초프’라는 인물의 등장이 탈냉전의 시작점이었다.1985년 소련 공산당 제8대 서기장에 오르더니 1986년 10월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에서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만나 중거리미사일 전력 감축을 논의했다. 1987년 12월에는 백악관에서 중거리핵전력(INF) 조약에 서명했다. 이후 1991년 6월까지 500∼5,500km의 중·단거리 미사일 2692기가 폐기됐다. 1970년대 중반 소련이 서유럽을 사정권으로 하는 신형 중거리탄도미사일 SS-20을 집중 배치하고, 미국은 중거리탄도미사일 퍼싱-2를 유럽에 맞배치하며 펼쳐온 미사일 개발 및 배치 경쟁을 되돌아보면, ‘급제동’이었다. 제거 절차와 사찰 방식을 상세히 규정하고 엄격하게 적용한 것이 조약이 성공적으로 수행된 비결로 꼽힌다. 이 성과를 바탕으로 1991년 7월에는 양국간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이 체결된다. 핵탄두와 대륙간탄도미사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등의 감축을 다룬 협정이다. 주한미군에 배치됐던 전술핵무기가 철수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1991년 12월에는 핵무기의 시험·제조·생산·접수·보유·저장·배비·사용을 하지 않는다는 남북간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으로 이어졌다. INF조약에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한 것은 소련 붕괴 이후 INF조약 이행을 승계한 러시아가 조약을 이행하지 않는다고 미국이 불만을 터뜨리면서다. 버락 오바마 정부는 2014년 연례적으로 작성하는 준수보고서에서 러시아의 조약 위반을 지적하며 경고했다. 러시아는 이를 부인했고,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국가이익에 대한 지대한 위협이 있을 때 6개월 전 탈퇴를 통보하도록 돼 있는 규정을 내세워 지난 2월 탈퇴를 선언하며 러시아를 압박했지만,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결국 8월2일부로 조약은 공식 파기됐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이미 지난달 3일 관련 법령에 서명해놓았었다. 냉전 해체의 상징이 해체된만큼 신(新)냉전에 대한 우려가 이미 시작됐다. 중단거리 미사일이 고도화되는 등 주요국 간 군비경쟁이 촉발될 것으로 외신들은 우려하고 있다. 중거리핵전력(INF) 조약과 함께 핵통제 질서를 떠받쳐온 또 하나의 기둥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도 위태롭다. 2010년 신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으로 명맥을 이은 이 협정은 2021년 만료 예정이다. 기한 연장이 필요한데,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최근 부정적 시각을 드러냈다. 미국이 조약을 탈퇴한 데에는 그간 아무 제약 없이 중거리 미사일을 개발해온 중국을 견제하려는 의도도 깔려있다. 2017년 4월 미 태평양사령관이었던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 대사는 의회 증언에서 “중국이 배치한 탄도·순항미사일의 95%가 INF 조약 가입국 위반 사안”이라고 했었다. 세계는 핵 규율의 진공상태로 다시 진입했다. 조약 파기 소식에 고르바초프는 “모두의 운명이 불확실해졌다” 했다 한다. 앞서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조약을, ‘핵전쟁의 브레이크’로 비유했었다. 이지운 논설위원 jj@seoul.co.kr
  • 미·러 중거리핵전력조약 사실상 폐기, 중국까지 ‘新냉전‘ 시작?

    미·러 중거리핵전력조약 사실상 폐기, 중국까지 ‘新냉전‘ 시작?

    미국이 1987년 러시아와 체결한 중거리핵전력(INF) 조약에서 공식 탈퇴하고 새로운 조약 체결을 2일 다짐했다. 러시아 역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이미 지난달 3일 미국이 조약 이행을 다시 결정할 때까지 INF 조약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법령에 서명한 상태라 냉전 시대 군비 경쟁 억제를 위해 만들어진 군축 조약이 사실상 백지가 됐다. INF 조약의 무력화는 주요국의 군비 경쟁을 촉발해 신(新) 냉전의 흐름으로 세계를 몰아넣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AP통신은 이날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과 소련 지도자였던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30여년 전 서명한 역사적인 군축 협정이 죽었다”며 새로운 군비 경쟁의 우려를 촉발하고 있다고 전했다. 앞서 미국 국무부는 탈퇴 시점에 대한 연합뉴스의 서면 질의에 “미국 동부시간 기준으로 2일 0시부터”라고 답변했다. 칼러 글리슨 국방부 대변인도 지난달 31일 정치 전문매체 더힐에 “러시아는 의무사항의 검증 가능한 준수로 되돌아가려는 어떤 의미 있는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며 “조약이 다음달 2일 종료되면 미국은 더이상 INF상 금지 조항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말한 바 있다. 연초에 미국과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는 러시아가 새로운 형태의 크루즈 미사일을 배치함으로써 조약을 위반했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물론 러시아는 이를 부인했다. 미국은 증거로 러시아가 9M729 미사일(NATO에는 SSC-8로 알려짐)을 배치한 것을 들었는데 NATO 동맹국들도 미국의 주장에 동조하고 있다.INF 조약은 미소 냉전이 한창이던 1987년 12월 체결해 1991년 6월까지 500∼5500㎞의 중·단거리 미사일 2692기를 없애고, 그 뒤 두 나라의 미사일 개발 경쟁을 억제하는 기능을 했는데 사실상 사라져 미국은 중단거리 미사일 개발 내지 고도화를 본격화하고, 러시아도 이에 대응한 신무기 개발과 배치에 나설 것이란 외신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특히 미국이 조약 탈퇴라는 강수를 둔 이면에는 그동안 아무런 제약 없이 중거리 미사일을 개발해 온 중국을 견제하려는 목적도 있어 한국이 자리한 동북아 안보를 불안하게 만들 수도 있다. 미국과 러시아는 나아가 핵탄두 수를 제한하기 위해 2010년 합의한 ‘신전략무기감축협정(뉴 스타트·New START)’ 역시 파기 수순에 들어갈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어차피 장거리 핵무기 개발을 제한한 이 협정 역시 2021년 2월 폐기될 운명이었다. 미국과 러시아의 핵 경쟁을 제한해온 두 기둥이 모두 사라지는 셈이지만, 규율의 진공 상태를 해소하고 새로운 질서를 찾기 위한 움직임이 본격화할 것이라는 반론도 나온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미국의 조약 탈퇴 발표에 앞서 1일 “핵전쟁의 브레이크를 잃게 된다”며 INF 조약의 폐기에 강한 우려를 드러냈다. 그는 “INF는 유럽의 안정과 냉전 종식을 도운 획기적인 합의”라며 “조약이 폐기되면 세계가 핵전쟁을 막는 귀중한 브레이크를 잃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한 뒤 “당사국들은 국제적인 군비 통제를 위한 합의를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너선 마커스 BBC 안보 전문기자는 “군축의 중요성은 소련 붕괴 후 긴장이 낮아지면서 오히려 덜 중요해 보이는 역설이 존재한다”며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군축 협정이 더 중요한 대목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나아가 인공지능(AI) 기술이 가미된 무기나 초음속 미사일 등 새로운 무기 경쟁을 제한하는 것이 중요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美 오늘 INF 탈퇴 강행 전망…러, 핵미사일 이동 배치 맞불

    미국이 냉전 시절 군비 경쟁을 억제하기 위해 러시아(소련)와 체결한 중거리핵전력(INF) 조약 탈퇴를 2일 강행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전운이 감돌고 있다. 러시아도 미국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수 있다며 ‘맞불’을 놓은 상태라 핵 군비 경쟁을 수반하는 신냉전 시대가 열리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커졌다. ●美, 유럽에 러 겨냥 핵 미사일 배치 시사 31일(현지시간) 미 정치전문매체 더힐에 따르면 미 국방부 칼러 글리슨 대변인은 “러시아는 의무사항의 검증 가능한 준수로 되돌아가려는 어떤 의미 있는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조약이 오는 2일 종료되면 미국은 더이상 INF상 금지 조항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면서 INF조약 탈퇴를 기정사실화했다. 유럽 지역에 러시아를 겨냥한 중·단거리 핵 미사일 배치에 들어갈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INF는 냉전이 한창이던 1987년 12월 당시 로널드 레이건 미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체결해 이듬해 6월 발효된 핵 군축 조약으로 미소 군비 경쟁을 종식하는 토대가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양국은 조약 발효 후 3년 내 사정거리 500~5500㎞ 중·단거리 핵 미사일을 폐기하기로 하고 1991년 6월까지 중·단거리 미사일 2692기를 없앴다. ●나토, 러시아에 “협정 준수” 촉구 그러나 미 정부는 올 초 러시아가 지상 발사형 순항 미사일인 9M729(사거리 2000~5000㎞)를 개발·배치함으로써 INF 조약을 위반했다며 러시아의 조약 미준수를 이유로 2일 조약을 탈퇴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에 러시아는 미국이 INF 조약을 탈퇴하면 러시아도 탈퇴하겠다고 맞서왔다. 이와 관련 오는 5일 러시아 측의 기자회견이 예정된 가운데 세르게이 랴브코프 외무차관은 “미국이 유럽에 있는 지상 발사 (핵) 미사일을 이동시킨다면 그러한 상응 조치가 이뤄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고 인테르팍스 통신이 보도했다. 옌스 스톨텐베르크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사무총장은 이날 “우리는 INF 조약이 폐기되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우리는 이 조약을 살리도록 러시아가 이를 준수할 것을 여전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트럼프만 그런 것 아님, 레이건도 탄자니아 대표단에 “원숭이들”

    트럼프만 그런 것 아님, 레이건도 탄자니아 대표단에 “원숭이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만 인종주의적 편견을 드러낸 것은 아니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1971년 유엔 본부에서 아프리카 탄자니아 대표단을 가리켜 “원숭이들”이라고 표현했다고 미국 잡지가 최근 폭로했다. 레이건 당시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중국을 회원국으로 받아들이고 대만을 축출하는 안건에 대한 표결 때 아프리카 대표단들이 미국을 따돌리고 찬성 표를 던지는 데 격분했다. 특히 탄자니아 대표단 멤버들이 춤을 추기 시작하자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었다. 대만을 응원했던 레이건은 다음날 리처드 닉슨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이 사람들 좀 봐요.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온 원숭이들 말이요. 빌어먹을 놈들, 그들은 아직도 신발 신는 것을 불편해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1974년 하야한 닉슨은 웃음을 터뜨렸다고 영국 BBC가 지난 3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물론 공석에서 의도적으로 인종차별적 언사를 남발하는 트럼프와 당시 대통령에게 전화 통화를 통해 흉을 본 레이건은 많이 다르다. 녹취록을 발굴한 이는 2007년부터 2011년까지 닉슨 대통령 박물관 관장을 지낸 뉴욕 대학 역사학과의 팀 나프탈리 부교수로 잡지 ‘더 애틀랜틱’에 기고한 논문을 통해 이같은 발언 내용을 밝혀냈다. 이들 테이프는 레이건이 살아 있던 2000년 국립문서보관소에 의해 전체가 공개됐다가 2004년 레이건이 사망하자 법원 명령을 좇아 프라이버시 보호를 이유로 문제가 된 대목들이 제거됐다. 나프탈리 부교수는 “로널드 레이건과 관련된 대화를 재검토할 수 있도록 요청했고 2주 전 국립문서보관소는 완벽한 버전을 배포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레이건은 원래 유엔 탈퇴를 압박하려고 전화를 걸었는데 나중에 닉슨 대통령은 “아프리카인들에 대한 불만을 터뜨린 것이 전화를 건 목적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나중에 닉슨은 레이건이 탄자니아 대표단을 신발도 신지 않고 카니발을 즐겼다고 말했다고 국무장관에게 전했다. 레이건 전 대통령은 또 1970년 로데지아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 격리 정책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다는 사실을 새로 발굴된 녹음들이 보여주고 있다고 나프탈리 부교수는 덧붙였다. 레이건은 1981년부터 1989년까지 집권했는데 냉전이 클라이맥스에 이르렀고 소비에트 공산 체제가 무너지기 시작하던 시점이었다. 그는 치매와 오래 투병하다 93세를 일기로 2004년 세상을 떠났다. 한편 AP통신에 따르면 조지 워싱턴(초대)부터 재커리 테일러(12대)까지 미국의 초기 대통령 대다수는 흑인 노예를 소유했으며, 원주민(인디언)과 아프리카계, 라틴계 사람들이 투표권이나 배심원 자격을 갖지 못하던 시절 권력을 장악했다.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독립선언문에서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저서에는 흑인이 “매우 강하고 기분 나쁜 냄새로” 저주받았으며, 예술이나 시를 창작할 능력이 없다고 썼다. 또 저서에 흑인 노예들이 해방되면 그들을 추방해야 한다고 적었다. 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도 남부의 노예 소유주였으며, 대통령이 되기 전인 1804년엔 도망친 노예 한 명당 50달러를 줄 것이며, 노예에게 매질을 하면 300대까지 100대당 10달러씩 더 준다는 광고를 냈다. 그는 노예 150명 가운데 누구도 해방시키지 말라는 유언까지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우드로 윌슨(28대) 대통령은 버지니아 태생으로 프린스턴대학 총장 재직 당시 흑인의 입학을 금지했다. 윌슨은 1915년 백악관에서 KKK를 영웅시하는 인종차별 영화 ‘국가의 탄생’을 상영해 논란을 빚었다. 닉슨(37대)은 재임 중 사적인 대화에서 인종차별적 비방을 자주 했다. 그는 “우리는 ‘하찮은 검둥이 녀석들’(little Negro bastards)을 가구당 2400달러에 달하는 복지 대상자 명부에 더 많이 올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난 세상에서 가장 덜 인종주의적인 사람”이라고 떠벌였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사설] 북한, 지금 남한에 미사일 쏠 때인가

    북한이 어제 새벽 원산 호도반도에서 미사일 두 발을 발사했다. 미사일은 약 30㎞ 고도로 250㎞가량을 비행했다. ‘북한판 이스칸데르’로 불리는 KN23 두 발을 지난 25일에 발사한 지 엿새 만이다. 25일 발사된 미사일과 달리 이번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다음달 5일부터 시작되는 ‘19-2 동맹’ 한미훈련과 스텔스 전투기 도입에 대한 반발로 파악된다. 지난 5월 4일과 7월 25일 신형유도무기 발사는 한국과 미국, 일본을 모두 겨냥했지만, 어제의 미사일 발사는 사정거리를 따져 볼 때 명확히 남한에 보란 듯이 도발한 군사행위다. 하지만 한미훈련은 이미 지난해부터 메이저급은 중단된 상태다. 이번 훈련은 전시작전통제권 이양을 앞둔 첫 점검이다. 한미 당국이 대규모 합동 훈련을 없애거나 줄인 가운데 이번에 컴퓨터 시뮬레이션 위주로 훈련하겠다고 밝힌 상황에서 북한의 이런 도발은 유감이다. 스텔스 전투기에 대한 북한의 공포심은 이해할 수 있으나 이 역시 한국의 방위정책에 따라 수년 전부터 도입이 결정된 사안이다. 그렇지 않아도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노력해 온 남한에 대한 미사일 발사는 적대행위나 다름없다. 정경두 국방장관도 어제 ‘제61회 KIDA 국방포럼’ 기조연설에서 “우리를 위협하고 도발한다면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당연히 ‘적’ 개념에 포함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연이은 미사일 도발은 북미 사이에서 대화를 촉진하는 문재인 대통령과 한국 정부의 입지를 좁히고, 한반도 화해협력을 지지하는 남측의 여론을 밀어내며 보수냉전주의자의 명분만 키워 주게 된다. 최근 한일 갈등까지 겹쳐 안보불안이 심화하자 미 국방부 산하 국방대학이 전술핵 재배치를 제안하는 실정이다. 한국은 핵확산금지조약 국가로서 이런 제안에 귀 기울이지 않겠지만, 미국이 한일의 안보불안을 심각하게 고려한다는 방증으로는 볼 수 있다.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당국자가 지난 23~24일 판문점에서 북측과 만나는 등 북미 대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만큼 북한은 남한에 대한 위협적 군사행동을 멈추고 미국과의 대화 재개에 힘을 쏟아야 한다.
  • 미국에서 때아닌 ‘매키시즘 논쟁’ 이유…“러시아 자산” 칼럼에

    미국에서 때아닌 ‘매키시즘 논쟁’ 이유…“러시아 자산” 칼럼에

    미국 유력 정치인인 미치 맥코넬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가 29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 칼럼니스트 다나 밀뱅크가 오피니언면을 통해 자신을 “러시아 자산(Russian asset)”이라고 칭한 것에 대해 당당히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밀뱅크는 2016년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미 대통령에 당선되면 이 칼럼이 실린 종이를 먹겠다’고 큰소리쳤다가 결국 ‘신문지 요리’를 실제로 먹은 칼럼니스트다. 밀뱅크는 지난 26일 WP에 “미치 맥코넬은 러시아 자산’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민주당이 제안하고 하원에서 통과한 선거법안을 맥코넬 대표가 폐기한 것을 비판했다. 이후 MSNBC ‘모닝 조’ 진행자 조 스카버러가 29일 아침 방송에서 맥코넬 대표를 미 선거를 뒤집으려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방조하고 있다며 “모스크바 미치”라고 반복적으로 불렀다.이에 맥코넬 대표는 “현대판 매카시즘이 거대 매체를 통해 나왔다. 내가 러시아 자산이라는 조롱이 WP 오피니언면에 실렸다. 내가 비(非)미국적이라는 비난이 MSNBC에 방송됐다. 이것이 2019년 좌익 정치의 현주소다”고 맞받아쳤다. 그는 이어 “나는 언론에서 근거 없이 헐뜨는 것에 반응하지 않지만 현대판 매카시즘은 공개담론을 왜곡하기 때문에 유독하고 해롭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20세기 중반에 원래의 매카시즘은 미국의 힘을 손상시켰고 우리들을 분열시킴으로서 냉전시대 우리 위치를 훼손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WP 오피니언면 편집장인 프레드 히아트는 폭스뉴스에 “밀뱅크의 칼럼은 맥코넬 대표가 선거보안법 입법을 막음으로써 미국을 해칠 것이고, 러시아에 이로울 것이라는 논평은 정당한 활동”이라면서도 “맥코넬 대표가 반대 의견을 표명하는 것도 똑같이 정당하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밀뱅크 주장의 논점은 매카시즘과는 관련이 없다”고 덧붙였다.맥코넬 대표는 “선거관리에 연방정부 개입을 오래 전부터 반대해왔다”는 뉴욕타임스의 27일 사설을 인용하면서 자신의 소신임을 강조했다. 그는 특히 문제의 선거법에서 선거보안기금을 조성하는 조항과 관련해 공화당은 벌써 그런 목적으로 예산이 배정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선거보안기금안에서 3억 8000만 달러를 배정했으며 이 예산은 사이버보안을 강화하고 투표 장비를 현대화하며 선거 후 회계를 개선하는데 쓰인다는 것이다. 그는 또 선거운동 기간 외국인 개인과 접촉한 모든 사람은 FBI에 신고하도록 한 법안 조항은 수정헌법 위반 우려를 낳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주 단위 선거에 연방정부의 전례없이 과도한 개입”이라고 비판했다. 이 법안은 하원에서 통과했다. 그러나 맥코넬 대표는 만장일치로 상원에서 그 법안을 깔아뭉갰다. 그는 “민주당은 그 법안이 상원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 당파적 책략”이라고 비난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사설] 한미일, 외교적 협의로 한일 갈등 해결책 찾아라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 파장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어 한일 간 갈등이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이 양국 모두에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대처해 나갈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혀 주목된다. 미 국무부 고위 당국자는 그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참석하는 다음달 2일 태국 방콕에서 열리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 회담과 관련해 “미국과 한국, 일본이 같은 장소에 있게 될 때마다 함께 모이고 싶은 바람이 있게 될 것”이라며 ARF를 계기로 한미일 간 3자 협의 재추진 가능성을 시사했다. 앞서 미국은 최근 데이비드 스틸웰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의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 순방에 맞춰 한미일 차관보급 간 3자 협의를 제안했으나 일본 측이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중재 노력과 별개로 한일 간 외교 채널도 가동되고 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고노 다로 일본 외상이 지난 26일 통화하며 대화와 소통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한일 외교장관이 접촉에 성공했다는 것은 양측의 소통 의지가 강해졌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한일이 외교적 해법 모색에 공감대를 이뤄 가며 ‘출구전략’을 찾기 시작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확산되고 있는 이유다. 앞서 이낙연 국무총리도 지난 25일 “사태를 더이상 악화시키지 말고 외교적 협의를 통해 해결책을 찾자”면서 “우리는 외교적 협의 준비를 갖고 있다. 일본 정부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부 내 최고 ‘일본통’인 이 총리의 제안은 우리 정부의 공식적인 메시지로 일본 정부도 이를 진지하게 경청해야 한다. 이 총리 특사 카드 등으로 양국 간의 앙금을 풀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양국 간 외교적 협의가 무르익고 있는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의 일본경제침략대책특별위원회가 2020년 도쿄올림픽 불참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고 한다. 올림픽이 정치적 문제로 회원국이 불참하는 사례는 과거 미소 분쟁이 격렬했던 1980년대 냉전시대에 있었다. 하지만 같은 민주주의의 가치를 추구하는 국가끼리 스포츠를 정치 도구로 사용하자는 발상은 안 될 일이다.
  • 1930년대 역사 속 전쟁·부패·정경 유착… 현재 진행형이다

    1930년대 역사 속 전쟁·부패·정경 유착… 현재 진행형이다

    그날의 비밀/에리크 뷔야르 지음/이재룡 옮김/열린책들/176쪽/1만 2800원 프랑스 최고 권위의 문학상 공쿠르상 수상작. 제2차 세계 대전의 전운이 감도는 1930년대 유럽을 배경으로 역사서에나 등장할 법한 권력자들의 짤막한 이야기 16편을 담았다. 그들의 행동거지 하나하나를 보여주는 한편, 작가는 불쑥불쑥 난입해 그들의 작태를 논평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소설인 듯 소설이 아닌 것 같은 이야기, 에리크 뷔야르의 ‘그날의 비밀’이다. 소설은 1933년 2월 20일, 독일 대기업의 총수 24명이 모인 비밀 회동 이야기로 시작한다. 아돌프 히틀러와 헤르만 괴링을 만나는 자리인 이곳에는 오펠, 지멘스, 바이엘, 알리안츠 등 익숙한 이름들이 등장한다. 이어 희대의 독재자 히틀러를 시종장으로 착각한 영국 추밀원 의장 로드 핼리팩스, 히틀러 앞에서 비굴하기 짝이 없는 오스트리아의 작은 독재자 쿠르트 폰 슈슈니크 등 역사의 한 장면을 장식했지만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인물들의 면면이 이어진다. 책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히틀러나 괴링 같은 정치인들의 뻔뻔스러움에 더해 구스타프 크루프 같은 기업가들의 무덤덤함이다. 정치인, 군인들이 노골적으로 돈을 요구해도 기업가들은 놀라지 않는다. ‘그들은 뇌물과 뒷거래에 이골이 난 사람들’이며 ‘부패는 대기업의 회계 장부에서 긴축 불가 항목’이기 때문이다. ‘기업은 사람과 달라 죽지도 않으며, 결코 늙지 않는 신비한 육체’(15쪽)이다. 전쟁이 끝나고 히틀러가 죽고 다른 전범들이 처형당한 후에도 그들은 살아남았다. 나치당원의 금배지가 있던 자리에 독일 연방 공로 훈장을 달고서 말이다. 일상화된 부패, 정경 유착, 거대한 경제 권력의 위험성을 생각하게 되는 지점이다. 책의 마지막장은 크루프가 별장에서 자신의 아내, 아들과 식사하는 것으로 끝난다. 2차 대전 당시 강제 수용소에서 노동력을 빌려썼던 독일 철강 군수업체 프리드리히 크루프사를 이끌었던 크루프는 치매에 걸렸다는 이유로 제대로 된 재판을 받지 않았다. 냉전 속에서 아들 알프레트는 경영을 재개했다. 뷔야르는 말했다. ‘한순간이라도 이 모든 것이 먼 과거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마라’고. 포인트는 달라도, 일본 기업 제품 불매 운동이 들불처럼 일어나는 현시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많은 책이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집중 분석] ‘사면초가’ 한국 외교안보, 전략적 한미협력으로 돌파구 찾아야

    日 경제보복 이어 중러 영공 침범 도발 北 탄도미사일, 북미 대화 국면에 ‘찬물’ 美 호르무즈 파병 압박까지 곳곳 ‘지뢰밭’ 북미 협상 교착 땐 한반도 프로세스 위기 자칫 ‘한미일 vs 북중러’ 구도 형성 우려 한국 외교가 사면초가에 빠진 형국이다. 일본의 수출 규제로 촉발된 한일 갈등이 해소되지 않는 가운데 지난 23일 중러 군용기의 한국 영공·방공식별구역(KADIZ) 침범 사태가 일어나고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23~24일 방한해 한국에 호르무즈 해협 파병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설상가상 북한이 25일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면서 지난달 판문점 남북미 정상회동으로 숨통이 트이는 듯했던 비핵화 대화 국면에도 찬물이 끼얹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구상과 한국 외교는 복잡다단한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하는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중러가 미국을 겨냥해 동해 상공에서 한국과 일본의 방공식별구역(ADIZ)을 침범하며 연합훈련을 하면서 중러와 미국이 대립하는 신냉전 구도에 한국이 말려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미국은 반(反)이란 전선 구축의 일환으로 호르무즈 해협 호위 연합체를 구상하고 우방인 한국과 일본의 참여를 요구하는 반면 이란의 우방인 러시아와 중국은 미국의 반이란 전선에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 볼턴 보좌관이 한국을 방문한 직후인 25일 청와대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열고 “호르무즈 해협에서 우리 민간 선박들의 안전한 항해를 보장하기 위한 방안들을 검토했다”며 미국의 요구에 호응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중러가 동해 상공에서 사상 첫 연합훈련을 한 것은 반이란 전선은 물론 인도·태평양 전략을 내세우며 중러를 압박하는 미국에 대응하고 한미일 공조를 견제하는 차원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문제는 북한이 비핵화 실무 협상에 응하지 않고 남북·북미 접촉을 꺼리며 탄도미사일 발사 등 무력시위에 나서는 상황에서 자칫 ‘한미일 vs 북중러’의 구도가 형성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4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지난달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하면서 북한의 체제 안전보장 필요성을 확인받았다. 지난달 30일 판문점 북미 정상회동 이후에도 좀처럼 실무 협상이 재개되지 않는 가운데 북미 협상 교착이 장기화된다면 북한이 체제 보장을 매개로 중러에 접근하면서 남북미가 추동했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좌초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가 대화와 협상국면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점에 대해 깊이 우려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한일 갈등과 중러 도발, 북한의 ‘통미봉남’식 행태를 돌파하려면 우선적으로 미국과의 협력이 중요하다고 봤다. 물론 한미 동맹, 한미일 협력, 중국과의 경제 파트너십, 북한에 대한 중러의 지렛대 역할 등을 배타적으로 한두 개 선택하기보다는 유연하게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은 “일본의 강경 노선을 변화시키고, 북한을 협상장으로 유도하고, 중러의 도발을 방지·견제하는 문제에는 모두 미국이 걸려 있다”며 “미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관리하고 개선할 것인가가 관건”이라고 밝혔다. 김정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현재로선 한일 갈등 해소를 전제로 한미일 협력을 복원하는 게 중요하다”면서도 “예전처럼 미국을 추종하는 한미 동맹, 한미일 협력이 아니라 국익을 고려해 전통적 동맹과의 협력 관계도 조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 인류의 달 도착 50년… 달 소유권은 어떻게 되나

    인류의 달 도착 50년… 달 소유권은 어떻게 되나

    달 표면 지적도 팔던 호프...과연 봉이 김선달일까달 희귀자원 채굴 가능성...‘선점자 우위’ 적용되나1967년 합의된 OST...우주, 어떤 국가도 못 가져OST, 강제성 없어....인간의 우주 탐욕 감당 못해지구촌 물들인 ‘핏빛’ 제국주의, 달에도 적용되나1980년대로 돌아가면, 전직 복화술자이자 자동차 외판원인 데니스 호프는 이혼 소송 중이며, 실직 상태로 입에 겨우 풀칠하고 있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는 돈을 벌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를 고민하면서 운전하다 차창을 통해 달을 보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곳에 상당한 부동산이 있군.” 달 표면의 땅을 파는 것은 봉이 김선달의 대동강물 팔기와 같은 것일까. 인간이 달에 갔다가 되돌아오는 시대가 되면서 지구에는 극히 희귀한 광물을 달에서 채굴하고, 지구로 가져오는 것이 상상이 아니라 임박한 현실이 되는 시대로 가고 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아르테미스 계획으로 2024년까지 남녀 우주인 두명을 달 남극에 두는 새로운 영역에 들어간다고 발표한 바 있다. 아르테미스 계획은 달에 인류의 지속적인 존재 가능성과 함께 화성에 인간을 보내는 우주 여행의 첫 걸음으로 여겨진다고 포브스가 평했다. 인도는 22일(현지시간) 자국 첫 달 탐사선 찬드라얀 2호를 발사했다. 달 남극을 탐사하는 것이지만 헬륨3의 매장과 채굴, 지구로의 운반 가능성을 확인하는 것이란 견해가 지배적이다. 헬륨3은 t당 50억달러에 이르는 초고가 희귀 광물이다.달을 본 호프는 대학 도서관을 찾아가 검색한 끝에 1967년 ‘외기권 조약(OST)’을 찾아냈다. 그 조약은 미국을 포함한 십여개국이 서명한 것으로, 지구를 제외하고 달을 포함한 우주 천체의 처리와 관련한 기본적인 법률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고 있다. 호프는 이 조약에서 허점을 찾아냈다고 생각했다. 조약은 어떤 국가도 달에 대한 주권을 주장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개인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올해 71세가 된 호프는 유엔에 달 뿐만 아니라 태양계의 다른 행성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는 편지를 보냈다. 그로부터 수년 후에 달과 다른 천체의 지적도 상의 땅을 팔면서 돈을 만졌다. 그가 여태까지 달을 팔아 챙긴 수익은 1200만달러(141억원 상당)로 추정된다고 폴리티코가 전했다. 달의 1에이커(1224평 남짓) 가격은 24.99달러(약 2만 5000원)다. 이를 대입하면 명왕성 전체 가격은 25만달러다. 가격은 좋지만 가보기가 쉽지 않은 거래다. 그가 운영하는 루나엠비시닷컴에 따르면 조지 H.W 부시, 지미 카터,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을 비롯해 675명이 달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여러분은 캘리포니아주 리오 비스타에 사는 한 남성이, 대다수 전문가는 동의하지 않지만 달을 소유하고 있다는 그 생각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을지 모르겠다. 이 남성의 돈키호테와 같은 이런 행보는 지구라면 발생하지 않았을 것같은 부동산 문제와 관련된 법률 공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외교 전문기자 나할 투시가 폴리티코에서 말했다. 달 표면의 채굴에서부터 과학적 연구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노리는 기업과 국가, 개인들이 늘어날수록 소유권을 둘러싼 논쟁이 복잡해질 것으로 예상된다.우주법 전문가들은 호프가 주장하는 법률 허점은 논쟁적이고, 유엔은 그의 소유권 주장을 인정한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호프는 당황하지 않고 “나는 유엔의 허락을 요청한 것이 아니라 단지 내가 하고 있는 것을 알렸을 뿐”이라고 말했다.우주의 지배와 관련된 주요 법률 구조가 컴퓨터가 버스 크기만하던 52년 전의 냉전시대에 협상으로 탄생했다. 오늘날, 우주는 합법적인 상업 표적이 되었고, 강제성이 없는 외기권 조약이 이런 탐욕을 감당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늘어가고 있다. 미국의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하기 2년 전에 서명된 1967년의 이 조약은 한 국가가 비록 국기를 꽂았다할지라도 우주 영토를 “소유”할 가능성을 배제하는 이상적인 문서이다. 또 지구 국가는 달과 다른 천체를 단지 평화적인 목적으로만 이용할 수 있고, 우주에 군사기지 설치와 대량파괴 무기의 배치를 금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2200여자로 구성된 상대적으로 단순한 이 조약은 인간과 기업, 국가들이 우주에서 어떻게 “운영”할 수 있을지에 관한 문제에는 해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1960년대 이 조약에 서명한 외교관들이 상상이라고만 생각했을 이슈인 우주에서 물에서부터 가스와 광물과 같은 자원의 탐색과 획득에 관한 문제들을 포함하고 있다. 어떤 국가가 주도하고, 어떤 국가는 따를 것인가?, 어떤 종류의 군사적 장비와 활동이 허용될 것인가?, 누가 규칙을 정하고, 분쟁은 누가 조정할 것인가? 조금 더 나간다면, 만약 우리가 외계인과 조우하게 되고, 그 외계인들이 그 나름대로 소유권 개념과 관습이 있다면?.인류가 달에 갔다가 되돌올 시기가 점점 더 임박함에 따라 우주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문제들에 시급성이 있으며, 몇몇은 그 조약을 확장하거나 완전히 재검토하는 것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간단하게 아무도 닿지 않은 곳에 처음 도착하는 사람이 다가올 수십년, 수세대, 수백년간 독점하는 규칙인 ‘선점자 우위’의 원칙에 있다는 해답에도 우려가 스며있다. 그러면 우주여행을 상업적으로 시작하겠다는 제프 베조스와 같은 억만장자가 우주에서의 천문학적 자원을 독점하게 될 우려가 높다. 지난해 여름 일본 우주선 하야부사2호는 3년반가량의 여정 끝에 류규라는 소행성에 도착했다. 행성 표면의 파편들을 채집해 지구로 가져오기 위해 작은 구멍에 폭발을 일으켰다. 나사도 벤뉴라는 소행성의 샘플을 2023년 지구로 가져오기 위해 비슷한 우주비행을 수행하고 있다. 이 두 개의 우주 비행은 영국의 애스토리이드 마이닝이라는 기업이 세심하게 관찰하고 있다. 2015년 미국의 ‘상업적 우주발사 경쟁력법(CSLSA)’ 덕분에 어떤 기업이든 그들이 목적으로 하는 천체에 도달하면 그들이 발견한 광물로 원하는 것을 할 수 있게 허용했다. 2015년의 이 법은 달과 우주에 경제적 개발을 노리는 미국 민간 기업들에게 법률적 보증을 제공하는 큰 선물이 되었다. 룩셈부르크 역시 유사한 법률을 통과시켰다. 이는 우주 작업에서 법률적 보증을 추구하는 많은 유럽 기업에게 선물이 되었다. 그러나 성공의 열쇠는 적어도 서방의 시각에서는 “소유는 법률의 9할”이라는 말과 매우 일치한다. 광물을 처음 갖는 자가 원하는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데니스 호프는 그 자신은 소유권을 주장하지만 달을 소유하지 못했다. 그러나 호프나 그가 보낸 기계가 먼저 도착해 달을 탐사한다면 그 자원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이런 견해에 대한 반대도 많다. 과거 역사를 돌이켜보면 스페인, 포르투갈,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 등이 비(非)유럽인의 땅을 유럽인의 습관대로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거대한 식민제국을 건설했다. 제국주의가 난무한 지구촌은 16세기부터 선혈이 낭자한 그 모습이 우주에서도 되풀이될까. 깃발을 꽂으면 된다는 서구 중심의 태도는 많은 나라에서 받아들여졌지만 우주는 이보다 훨씬 더 복잡한 문제가 많다. 미국이 50주년 행사를 요란스럽게 해도, 버즈 올드린(89)이 달에 꽂은 성조기 옆에 서 있는 사진이 전세계에 방송되어도 달이 미국이나 나사 소유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OST 규정 대로 이런 주장을 펴는 가장 대표적인 나라가 러시아다. 그러나 OST가 달이나 다른 천체에서 개인 기업의 상업적 약탈 활동과 지배권 주장을 규제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은 여전하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특파원 칼럼] ‘고노 담화’ 시대는 다시 오지 않는다/김태균 도쿄 특파원

    [특파원 칼럼] ‘고노 담화’ 시대는 다시 오지 않는다/김태균 도쿄 특파원

    지난 15일 일본 마이니치신문에 ‘한국에 노(NO)라고 말하는 의미’라는 제목의 기명 칼럼이 실렸다. 40년 넘게 이 신문에 몸담아 온 야마다 다카오 특별편집위원이 자신의 연재 코너에 쓴 이 글은 “예전에는 미국에 ‘NO’라고 할 수 있는 일본. 지금은 한국에 ‘NO’라고 할 수 있는 일본”으로 시작한다. 칼럼의 요지는 마지막 부분에 나온다. “많은 일본인은 문재인 정권에 불신을 갖고 있다. 화해를 서두르지 않고 (문재인 정권을) 불신하고 있음을 명확히 전해 관계 정립을 다시 하는 것. 그 첫걸음이라고 한다면 (이번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는 의미가 있다.” 왜 하필 극우파인 이시하라 신타로 전 도쿄도지사의 책 제목(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을 패러디했을까 하는 건 둘째치고라도 “일본은 이제 역사문제로 한국에 양보를 거듭하는 흐름에 종지부를 찍지 않으면 안 된다”는 자국 정부의 주장을 상대적으로 진보 성향인 마이니치의 고참 칼럼니스트가 그대로 대변한 것은 실망스러웠다. 그러나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다음날이었다. 점심 때 만난 일본인 중견 기자가 그 칼럼 얘기를 먼저 꺼냈다. “그 글이 현재 일본 국민들의 정서를 꽤 정확하게 나타낸 것 같다”고 했다. 그는 한국에서 근무한 적은 없지만 한국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깊은 편이고 특히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장기 집권에 비판적인 사람이다. 우리는 해방 후 수십년 동안 일본에 대해서만큼은 우리가 믿고 싶은 대로 믿고,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려는 경향이 강했던 게 사실이다. ‘식민지배라는 막대한 역사적 부채를 지고 있으면서 진실된 반성의 빛을 보이지 않고, 그 빚을 제대로 갚으려 노력하지도 않는 존재’라는 거대하고 공통된 인식틀 안에서 일본을 바라봐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 수십년에 걸쳐 장기화되고 만성화되다 보니 일본의 변화를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일본은 우리에게 어느 정도 수준 이상으로는 못 할 것’이라든지, ‘일본이 저렇게 하는 것은 선거와 같은 자국 내 이유 때문이어서 곧 원래 자리로 돌아갈 것’이라든지, ‘아베 총리에게 비판적인 사람은 한국에 대해서는 우호적일 것’이라든지 하는 것이다. 일본은 변해도 정말 많이 변했다. 1993년 8월 15일 공영방송 NHK가 전쟁 패망 48주년 기념일에 내보낸 스페셜 다큐멘터리 ‘태평양전쟁’ 시리즈 최종회의 마지막 부분은 그때와 지금의 변화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동서 냉전 구도가 끝나고 세계의 정치·경제 흐름이 크게 바뀌면서 (각국으로부터) 일본에 대한 기대와 함께 불만과 비판이 팽배하고 있다. 그것은 일본이 전쟁에서 범한 잘못을 전후에 충분히 반성하지 않고 청산하지 않은 채 경제력만을 살찌워 왔다는 생각이 밑바탕에 자리잡고 있어서다. 일본이 태평양전쟁의 잘못을 적극적으로 속죄하려는 자세가 없다면 일본은 앞으로도 아시아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얻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하지만 현재 일본에 과거와 비슷한 대국의식의 우월감, 이기주의가 또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렇게 비장한 반성의 결의를 안방에 송출할 수 있었던 NHK는 이제 없다. 다만 ‘아베 장기집권의 홍위병’으로서 NHK가 있을 뿐이다. 아베 총리가 자위대를 명기하는 헌법 개정을 말하고 막대한 군비확장에 열을 올리는 것을 바라보면서도 일본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여전히 ‘고노 담화’, ‘무라야마 담화’,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의 언저리에서만 맴돌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일본의 이번 경제제재 공세를 그들의 변화를 직시해 우리의 바람직한 대응 방법을 찾아내는 발전적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 windsea@seoul.co.kr
  • 200만발 지뢰 제거 최소 200년… ‘냉전의 역사’로 남겨도 좋을 것

    생태계 파괴·예산·위치 파악 어려움 개발지 외엔 문화재 가치 부여도 가능 비무장지대(DMZ)의 평화지대화에 앞서 늘 제기되는 우려는 ‘지뢰’다. DMZ에 200만발가량의 지뢰가 묻힌 것으로 추정된다. DMZ를 생태·관광·역사 현장으로 개발하는 방안에 대해 전면 이용은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21일 국방부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유해발굴 작업을 위해 진행한 DMZ 내 화살머리고지 남측 지역(0.16㎢)의 지뢰 제거엔 20일이 걸렸다. DMZ 전체 면적(907㎢)은 이곳의 약 5668배이니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300년 이상이 걸린다. 실제 민간 지뢰제거업자들은 11개 공병부대를 전부 투입하는 경우에도 200년이 걸릴 것으로 추정한다. 물론 무인 지뢰제거차를 대거 투입하면 속도는 빨라질 수 있다. 하지만 DMZ 내 거목이나 바위를 배제한다 해도 모든 땅을 뒤집으며 지뢰를 폭파시키면 생태계는 극심하게 황폐해진다. 또 막대한 예산도 든다. 기존 장비인 리노는 한 대당 28억원, 마인 브레이커는 17억 5000만원 정도다. 지난해 국제 민간기구 ‘국제지뢰금지운동’(ICBL)은 DMZ에 1㎡당 2.3개꼴로 지뢰가 매설됐으며 이는 세계 최고 수준의 지뢰 밀도라고 분석했다. 게다가 DMZ 내 전체 지뢰 지대 중 기확인지대의 비율은 2.7%뿐으로 사실상 모든 지역이 미확인지대다. 대전차지뢰는 100㎏ 이상의 압력을 받아야 터지지만 대인지뢰는 밟기만 해도 폭발한다. 6·25전쟁부터 1980년대까지 DMZ 인근에 묻은 대인지뢰만 90만발로 추정된다. 특히 이 중 약 40만발이 묻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발목지뢰(M14)는 플라스틱 재질로 무게가 9.4g에 불과해 폭우가 오면 유실되기 일쑤다. 북한의 대표적 지뢰인 목함지뢰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기확인지대마저 지뢰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기는 불가능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금으로서는 DMZ 내 개발 지역에 대해 그때마다 군이 나서 해당 지역에 국한해 지뢰를 제거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 지역의 안전만 확실하게 확보된다면 지뢰 역시 역사적 산물로서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판문점을 지키는 캠프 보니파스 내 한 홀짜리 파3 골프 코스는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코스’로 유명하다. 지금은 운영이 중단됐지만 잊을 만하면 세계적인 스포츠 잡지에 소개된다. 휴전선 인근 남북 감시초소(GP)도 가장 위험한 문화재로 등극할지 모른다. 이 외 지뢰를 포함한 냉전의 역사박물관 등도 아이디어로 제시된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문 대통령 “군 기강·경계태세 문제, 국군통수권자로서 책임 느껴”

    문 대통령 “군 기강·경계태세 문제, 국군통수권자로서 책임 느껴”

    최근 북한 목선이 강원 삼척항에 입항하고 해군 2함대 사령부 안에서 장교가 병사에게 허위 자백을 강요한 사건 등으로 군 경계 실패, 기강 해이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자 문재인 대통령이 “국군통수권자로서 책임을 느끼고 있다”면서 고개를 숙였다. 문 대통령은 지난 19일 청와대 인왕실에서 열린 예비역 군 원로들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최근 벌어진 몇 가지 일로 우리 군의 기강과 경계태세에 대해 국민들께서 우려를 하고 있다”면서 “국군통수권자로서 책임을 느끼며 국방부 장관과 합참의장을 중심으로 엄중하게 대응해나가고 있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차질 없이 추진해 나가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와 동북아 역내 평화와 안정의 핵심축인 한미동맹은 지구상 마지막 남은 한반도의 냉전체제를 해체하고 항구적 평화를 만드는 원동력”이라면서 “정부는 굳건한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자주국방은 독립된 국가라면 이뤄야 할 목표”라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또 지난해 두 차례 열렸던 남북정상회담을 언급하며 “지난해 남북은 판문점 선언(4월)과 평양 선언(9월)을 통해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정착의 기틀을 마련했고, 특히 (지난해) 9·19 남북 군사합의를 통해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을 크게 완화시켰다”면서 “우발적 군사 충돌의 가능성이 획기적으로 줄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지난달 북미 정상의) 판문점 회동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정착이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만큼 정부는 한반도 운영의 주인으로서 남북미가 함께 한반도 평화를 이룰 수 있도록 주도적 역할을 다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한반도에서 평화와 번영의 선순환이 이뤄진다면 남과 북은 물론, 동북아 역내에 새로운 협력질서가 창출 되고 또 동아시아의 공동 번영에 크게 이바지하게 될 것”이라며 “두 번 다시 전쟁 걱정 없는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드는 것이 우리 군 선배 또 원로 여러분들의 희생과 헌신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그냥 장난이었는데”…美 51구역 침입 이벤트 개설자 ‘당황’

    “그냥 장난이었는데”…美 51구역 침입 이벤트 개설자 ‘당황’

    "그냥 재미있자고 한 장난이었는데…"  미국의 비밀 군사기지로 유명한 ‘51 구역’(Area 51)에 단체로 침입하자는 이벤트를 처음 제안한 사람이 최근 벌어진 반응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지난 18일(이하 현지시간) CNN 등 현지언론은 페이스북 페이지를 개설해 이번 이벤트를 개최한 캘리포니아 출신의 매티 로버츠의 인터뷰를 전했다. 그가 처음 51 구역 침입 이벤트 페이지를 개설한 것은 지난달 27일로 그 목적은 황당하게도 ‘외계인을 보기 위해서’다. 개설 이후 3일 동안에는 40명이 반응했을 뿐 별다른 호응이 없었으나 이후 참가인원은 폭발적으로 늘었다. 라스베이거스 지역 방송인 KLAS-TV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그는 최근 벌어진 사태(?)에 대한 당황함을 숨기지 못했다. 로버츠는 "사실 이번 이벤트는 장남삼아 벌인 일"이라면서 "수백 만 명의 사람들이 반응을 보일 지는 정말 몰랐다"며 놀라워했다. 이어 "언론의 관심이 치솟았지만 인터뷰를 거절해왔다"면서 "내 신분을 밝히면 연방수사국(FBI) 요원이 우리집에 나타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오는 9월 20일 새벽 51 구역에 침입하자는 그의 이벤트는 현재(19일)까지 무려 172만명이 참가하겠다고 나섰다. 이에 미 공군 대변인 로라 맥앤드류스는 “현재 페이스북에 벌어지고 있는 이 이벤트를 주시하고 있다”면서 “51구역은 공군이 전투기를 시험 훈련하는 지역으로 불법적으로 접근하려는 시도는 위험하다”고 공개적으로 경고하기도 했다. 이처럼 장난이 장난이 아닌 이벤트가 되자 로버츠도 대책을 내놨다. 그는 "9월 20일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지는 모르겠다"면서 "다만 더 안전한 행사를 위해 몇몇 사람들과 꾸준히 연락을 취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51구역은 미 정보기관들이 외계인 또는 외계 비행체를 비밀리에 연구하는 곳이라는 음모론의 진원지다. 이곳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계기는 로스웰사건 때문이다. 1947년 미국 뉴멕시코주의 한 시골마을인 로스웰에 UFO가 추락했지만 미국 정부가 이를 수습해 51구역에 옮기고 비밀에 부쳤다는 바로 그 소문이다. 그간 미 정부는 51구역의 존재에 대해 무응답으로 일관해오다 지난 2013년에서야 기밀문서가 공개되면서 이 지역의 실체가 세상에 드러났다. 당시 비영리 조직인 내셔널 시큐리티 아카이브(NSA)의 정보공개 요청을 통해 공개된 중앙정보국(CIA)의 보고서를 보면 51구역은 냉전시대에 구 소련의 공중 감시를 담당했던 U-2 정찰기 시험 장소라고 언급되어 있다. 그러나 정작 보고서에는 외계인과 미확인 비행물체(UFO)를 은폐했을 것이라는 내용은 없어 UFO 신봉자들의 기대는 빗나갔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정치포커스] 한일, 맞대응이냐 시간끌기냐 극적 화해냐

    [정치포커스] 한일, 맞대응이냐 시간끌기냐 극적 화해냐

    日, 주일한국대사 초치, 중재위 불응에 “매우 유감”대응시간 위해 중재위 필요 vs 日 일방 요구일 뿐 日 추가보복, 韓 GSOMIA 카드 나올땐 ‘안보 갈등’볼턴 미 보좌관 방한 등 미국의 관여 여부가 변수한국 정부가 지난 18일 일본의 ‘제3국 중재위원회’ 설치 요구에 최종적으로 응하지 않은 가운데 일본의 일방적 요구에 끌려가면 안된다는 지적과 조금 늦었지만 중재위 구성에 응하자는 상반된 주장이 동시에 나온다. 외교부 관계자는 19일 “일본이 일방적으로 그리고 또 자의적으로 설정한 일자에 우리가 따라야 하나”라며 “강제징용 피해자 대법원 판결을 존중하고 피해자들의 고통과 상처의 실질적 치유, 한일관계 등을 고려해 신중하게 다뤄야 할 사안”이라고 밝혔다. 일본 정부은 그간 1965년 청구권 협정상 갈등 해결 방안 1단계인 외교적 협상, 2단계인 중재위 설치, 3단계인 제3국 중재위 설치 등에 대해 한국 정부의 답변 없이 일방적으로 나아갔다. 게다가 지난 1월초에 1단계인 외교적 협상을 요청할 때도 청구권 협정에 없는 30일간의 답변시한을 둬 외교적 결례를 범했다. 또 두 차례의 중재위원회 설립 요청부터 수출제한 강화하는 경제적 보복 조치의 경우 한국 정부와 사전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한국 정부는 이에 대해 지난달 19일 제시한 한국의 제안을 받아들일 경우 1단계인 외교적 협상에 응할지 검토해보겠다고 밝혔다. 반면, 전문가들은 중재위나 일본이 요구할 수 있는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응하자는 견해를 전했다. 지난 18일 한국언론재단이 연 ‘일본의 경제보복과 한일관계’ 포럼에서 유의상 식민과냉전연구회 이사는 “중재위 구성에는 시간도 걸리고 한국어와 일본어로만 작성돼 있는 관련 자료들을 제3국가 위원이 검토할 수 있도록 하려면 시간이 더 걸린다”며 “차분하게 대응할 시간이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원덕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는 “양국 기업이 기금을 마련하는 방안도 있지만 국제사법재판소(ICJ)에서 다퉈보는 것도 방법이 될수 있다”며 “양 정부가 공동제소하는 방식인데, 이는 역사전쟁을 본격화하자는 게 아니라 휴전하자는 의미다. 최종판결까지 4년이 필요하니 시간을 벌수 있다”고 설명했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대법원 판결에 따라 일본전범기업의 국내 자산 현금화를 마무리하면 돌이킬 수 없이 한일 관계가 악화될 수밖에 없으니 이 시점을 늦추는 식이다. 그간 한일 정부가 머리를 맞대고 합리적인 방안을 찾자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외교적 공세의 수위를 높이는 형세다.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은 19일 오전 10시 10분쯤 남관표 주일한국대사를 초치해 일본 측이 정한 제3국 의뢰 방식의 중재위 설치 요구 시한(18일)까지 한국 정부가 답변을 주지 않은 것에 항의했다. 고노 외무상은 한국이 중재위 개최에 응하지 않아 “매우 유감”이라며 “(한국이) 국제법 위반 상태를 방치하고 있는 것은 문제”라고 시정 조치를 요구했다. 하지만 한일 관계의 악화 속도가 다소 늦춰질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 4일부터 시작된 한국 수출규제 강화 조치가 한국에 너무 직접적인 경제보복으로 각인된 것이 일본으로서는 부담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인의 일본 관광 취소 등 일본 경제에 직접적 피해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전날 요미우리신문은 “일본 정부는 한국에 긍정적인 대응을 계속 요구할 것”이라면서 “제3국 중재위 설치의 다음 조치로 거론했던 ICJ 제소는 일단 미루되 한국의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의 자산을 현금화하면 그때 대항조치를 취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한일이 극적 화해를 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커보이지 않는다. 변수는 역시 미국의 개입 여부다. 전날 한일 언론 보도처럼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이 다음주 한일 양국을 연쇄 방문할 경우 한미일 안보실장의 협의가 이뤄질 수 있다. 일본이 추가보복 조치를 할 경우 한국이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의 연장 여부를 카드로 꺼낼지도 관건이다. 이 경우 심각한 안보갈등이 펼쳐질 수 있다. GSOMIA는 한국 정부가 군사정보 분야에서 일본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 역할을 하고 있다. 일본과 유일한 군사분야에 관한 협정이라는 점에서 상징성도 있다. 미국 국무부 대변인실 관계자는 미국의소리(VOA) 방송의 이메일 질문에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은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고, 북한의 ‘최종적이고 완전하며 검증 가능한 비핵화’(FFVD)를 달성하기 위한 공동 노력에서 중요한 수단”이라며 “연장을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밝혔다. 미국의 한일관계 관여 필요성이 커지는 모양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2030 세대] 현대음악 기원 1979년/임명묵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4학년

    [2030 세대] 현대음악 기원 1979년/임명묵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4학년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바꿀 변화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경우가 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지난 칼럼들에서 종종 언급했던 1979년이 바로 그런 해였다. 중국의 개혁개방, 정보기술의 발전, 이란 이슬람 혁명과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영국에서 대처 수상의 취임 등 굵직한 사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하지만 1979년은 그런 ‘무겁고 굵직한’ 정치, 경제, 기술에 관한 이야기들로만 가득찬 해는 아니었다. 대신 가볍고, 톡톡 튀고, 말랑말랑한 일들도 많이 일어났다. 물론 이런 일들의 중요성마저도 가볍지는 않았다. 결국 향후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의 세계를 만드는 데 엄청난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그래서 1979년 음악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한다. 1979년은 음악을 듣는 양식에 있어서 큰 변화를 예고한 해였다. 먼저 7월, 소니가 워크맨을 발매했다. 워크맨은 다들 라디오 앞에 모여서 들어야만 했던 음악을 철저히 개인화시켰고, 안 그래도 쪼개지고 있던 ‘국민 문화’를 더욱 파편화시켰다. 그다음 9월에는, 영국의 버글스가 ‘Video Killed the Radio Star’(라디오스타를 죽인 비디오)를 발표했는데, 라디오 중심의 듣는 음악이 뮤직비디오 중심의 보는 음악으로 전환될 것을 예견한 음악이었다. 3년 뒤 개국한 음악 전문 채널 MTV가 최초로 송출한 노래도 바로 이 노래였다. 현대 음악의 필수적인 요소라 할 흑인 음악도 이 해에 약진했다. 8월에는 랩 그룹 슈가 힐 갱이 최초로 세계적 규모로 인기를 끈 힙합 음악인 ‘Rapper’s Delight’(래퍼의 기쁨)를 발표했다. 힙합이 세계를 정복하기까지는 그 뒤에도 시간이 걸리게 되지만, 효시로는 손색이 없는 출발이었다. 또 마이클 잭슨이 최초의 성인 솔로 앨범인 ‘Off the Wall’(제정신이 아닌)을 발표한 것도 1979년이었다. 마이클 잭슨은 다양한 장르를 혼합한, 직관적 박자와 중독성 있는 후크를 갖춘 음악을 선보였고, 엄청난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다. 물론 이들 이외에도 다양한 혁신과 스타들이 나오면서, 지난 40년간 현대 메인스트림 음악은 점점 모습을 갖추어 갔다. 워크맨은 MP3와 아이팟을 거쳐 스마트폰으로 나아갔다. MTV는 이제 유튜브가 됐다. 랩은 음악에서 빠지면 안 될 요소가 됐으며, 마이클 잭슨이 이후 선보인 서사 있는 뮤직비디오와 화려한 군무는 한국의 아이돌 그룹의 세계적 흥행으로 계승됐다. 사실 ‘80년대’라는 말이 그렇게 좋은 느낌으로 다가왔던 적은 별로 없던 것 같다. 연상되는 것도 맨 앞에서 언급한 무거운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 시대는 냉전과 엄혹한 군부독재만 있던 시대는 분명 아니었다. 이후 30년, 40년의 문화적 흐름을 형성할 혁신들이 있던 시대였다. 누군가가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를 통해 뮤직비디오를 재생시켜 케이팝 아이돌의 랩을 듣는다면, 그도 1979년의 유산 위에 있는 사람인 것이다. 과거는 생각보다 가깝고, 현재는 생각보다 오래되었다.
  • ‘DMZ 미래’ 獨그뤼네스반트·에콰도르-페루 평화공원서 배운다

    ‘DMZ 미래’ 獨그뤼네스반트·에콰도르-페루 평화공원서 배운다

    지난달 30일 남북미 정상의 역사상 첫 판문점 회동으로 비무장지대(DMZ)의 평화지대화를 위한 제언이 늘면서 해외 DMZ의 이용 사례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이미 평화·생태·역사·문화의 보고가 된 곳은 ‘보전과 개발 중에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를 한국의 DMZ에 물었다. 10여곳의 DMZ 중 독일의 ‘그뤼네스반트’는 한국 DMZ의 미래를 위해 가장 바람직한 모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곳은 30년간 죽음의 지대로 불리던 동서독의 국경 ‘철의장막’이었다. 1990년 통일 후 민간환경단체 분트(BUND)가 정부 지원으로 보전사업을 시작했다. 폭은 불과 50~200m에 불과해 남북이 각각 2㎞인 DMZ보다 상당히 좁지만 정찰로, 감시탑 등 냉전시대의 역사 유물을 보전해 박물관 등 관광자원으로 사용 중이다. 산책길과 생태체험프로그램도 있다. 2003년에는 이곳을 모태로 철의장막 8500㎞를 따라 유럽 그린벨트가 생겼다. 지역마다 관리인이 있는데 대부분이 인근 태생이어서 생태, 문화, 역사에 살아 있는 경험을 갖고 있다. 분트는 그뤼네스반트 보존지역 중 사유지를 성금을 모아 매입했다.DMZ 평화지대화를 위해 접경지역의 경제적 공동 이익도 중요한 요소다. 에콰도르와 페루는 1820년대 스페인에서 독립할 때 확정된 국경선에 대해 반목을 거듭하다 1998년 국경을 콘도르 산맥 접경지로 정하고 1만 6425㎢ 규모의 접경 평화공원을 조성했다. 하지만 이런 합의의 기반은 경제적 공동이익이었다. 에콰도르가 불리한 국경선 안을 받아들인 이유는 물류 이동을 위해 절실했던 아마존강의 항해권에 대해 재산권을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남북으로 분단된 키프로스는 지자체의 작은 교류로 경험을 축적하는 게 소통의 축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이곳의 DMZ는 1964년 설치된 그린라인으로 수도인 니코시아에서 2008년 철거됐다. 남북 니코시아 시장이 1978년부터 하수처리 사업에 합의해 비정치적 협력의 문을 열었고 저어새·두루미 등 멸종위기종 보호, 접경지역 병충해 방제 등 작은 소통을 지속하며 신뢰를 쌓은 결과다. 이양주 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18일 “한국의 경우 경제에서 중요한 도로·철도는 남북 방향이고 생태의 보고인 DMZ는 동서 방향이어서 충돌지점이 발생한다”며 “DMZ에 포장도로를 놓은 다른 나라의 사례를 넘어 조금은 불편하고 속도도 다소 느리고 흙길이 포함된다 해도 자연 생태와 가장 맞는 통행로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日 규제조치는 경제 넘어선 ‘복합전술’…평화 프로세스·수소경제 저해 가능성”

    “일본의 보복적 규제 조치를 고강도 단일전술로 오독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는 저강도 복합전술입니다.”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부교수는 18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연 ‘일본의 경제보복과 한일관계’ 포럼에서 “상징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일본의 보복 조치는 경제적 조치보다는 군사·안보·정치 등 복합적 의미를 갖는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일본이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려는 이유로 한국이 안전보장에 대한 다자적 협력시스템을 위해 노력을 안 했다고 주장하는 것을 볼 때 대북제재 유지를 강요하는 수법으로 볼 수 있다”며 “문재인 정권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일본이 개입하고 한국 국내 정치에 개입하려는 의도가 숨겨져 있는 것 아닌가 싶다”고 했다. 남 교수는 “최근 출판된 일본의 전략보고서에는 역사문제가 냉각돼도 어쩔 수 없이 남북이 너무 앞서 나가면 미일이 속도조절에 나서야 한다는 식의 내용이 담겨 있다”고 덧붙였다. 또 이번 보복 조치가 참의원 선거에 부수적인 효과를 거둘 수는 있지만 ‘선거용’이라는 분석은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남 교수는 “향후 일본의 추가 조치도 복합전술 형태로 전개될 수 있다. 탄소섬유, 태양광 등에서 압박할 수 있고 더 나아가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재개를 방해하는 국제여론전에 나서거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저해할 가능성도 있다”고 예측했다. 그는 이런 복잡한 사안을 고강도 단일전술로 잘못 이해해 국내 정권 비판이나 일본 때리기로 흐르지 말고 차분히 해결책을 찾자고 제안했다. 우선 일본이 ‘국제법 위반’이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국제여론전으로 맞대응을 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남 교수는 “일본이 한국 정부에 대해 삼권분립을 부정하는 듯한 발언을 하는 것이 내정 간섭이며 국제법 위반”이라고 했다.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과 관련해서는 정부가 지난달 19일 제안한 ‘한일 기업의 자발적인 기금 마련안’과 일본이 주장하는 ‘한국 정부 및 한국 기업의 책임론’ 사이에서 절충점을 언급했다. 그는 “한일 기업이 민간 수준에서 자발적 노력을 하고 한국 정부는 대법원 판결의 이행과 별도로 대응할 것을 제안하고 싶다”고 했다. 남 교수의 발제 후 토론에 나선 이원덕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는 “확대 해석은 경계해야 하겠지만 일본의 보복 조치는 동북아 6개국의 지정학적 시대가 재도래했다는 설명을 하고 있다”며 “최근 20~30년간 한국은 상대적으로 성장했고 일본은 줄었으며 중국은 슈퍼파워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화이트리스트가 조정된 뒤에는 문제를 풀기가 지금보다 10배는 더 힘들어질 것이기 때문에 정부가 외교적으로 빨리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유의상 식민과냉전연구회 이사는 “우선 정부가 배상에 나서고 청구권 협정으로 수혜를 받았던 국내 기업이 기금을 내야 한다”며 “일본 기업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기회를 개방하면 대법원의 판결이 해소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