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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를린 장벽 무너진 그날 “내 인생 최악의 밤이었다”

    베를린 장벽 무너진 그날 “내 인생 최악의 밤이었다”

    “내 인생 최악의 날이었다.” 독일 통일과 동서 냉전 와해의 기폭제가 된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을 모두가 축하할 때 쓰라린 기억을 떠올린 이가 있었다. 바로 장벽이 무너지기 직전까지 동독을 이끌었던 에곤 크렌츠(82) 전 공산당 서기장이다. 서기장 임기는 딱 한달이었다. 영국 BBC의 스티브 로젠버그 기자가 역사적인 날을 맞아 만나자고 했더니 발트해 바닷가에서 조용히 말년을 보내고 있는 그가 흔쾌히 응해 자동차로 베를린시를 돌아보며 소회를 들어봤다고 10일 동영상과 함께 보도했다. 로젠버그 기자는 “내가 해본 가이드 투어 가운데 가장 괴이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독일어에 서투르고 크렌츠는 영어를 못해 둘다 아는 러시아어로 대화했다. “예전에 스탈린거리였잖아!”라고 웃으며 대화가 시작됐다. 지금의 칼마르크스 거리로 향하면서였다. 그는 이어 “스탈린이 죽은 뒤 이름을 바꿨다. 그리고 저 너머 레닌 광장이 있었다. 커다란 동상이 서 있었는데 그들이 끄집어내렸다”고 말하며 미소지었다. 한때 이끌었던 나라보다 훨씬 정정해 보이는 그는 “독일민주공화국(GDR)이 이 모든 걸 세웠다”고 자랑스러워 했다. 이어 “난 러시아를 사랑하고 옛 소련(USSR)도 사랑했다. 지금도 많은 인연을 갖고 있다. GDR은 옛 소련의 자식이었다. USSR은 GDR이란 요람 곁에 서 있었는데 지금은 무덤 곁에 있다”고 말했다. 당시 동독에는 소련군 병사 50만명이 800개 기지에 주둔하고 있어 그야말로 전방 참호 같았다. 크렌츠는 “점령군 지위 여부와 상관 없이 우리는 소련 군대를 친구로 봤다. ‘소련 제국의 일부’란 전형적인 서구식 말투였는데 바르샤바 조약에 따라 우리는 스스로를 파트너로 여겼다. 물론 우리나라로 얘기하자면 소련이 결정적 발언권을 쥐었다”고 말했다. 1937년 재단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엄청 빠르게 출세한 것으로 유명한데 “젊은 개척자였다. 자유독일청년에 가맹한 뒤 사회통일당에 합류한 지 얼마 안돼 당수가 됐다. 이 모든 걸 해냈다”고 자랑했다. 에리히 호네커 서기장의 승계자로 일찌감치 낙점됐다. 하지만 그가 30년 전 10월에 서기장에 올랐을 때는 이미 집권당은 급속히 세력을 잃고 있었다. 폴란드부터 불가리아까지 시민봉기가 휩쓸고 있었고, 동독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장벽이 붕괴되기 일주일 전 크렌츠는 모스크바로 가 미하일 고르바초프 서기장을 만났다. “그는 내게 소련 인민들이 동독을 여전히 친구로 여기고 있다고 말하더라”며 “내가 ‘여전히 GDR를 아버지처럼 돌보겠다는 거냐’고 묻자 ‘물론이지, 에곤’이라고 답하더라. 또 ‘독일 통일이 가능한지 힌트를 달라고 한다면 의제가 아니다’라고 분명히 말했다. 그 순간 그는 진심이었다고 생각했다. 그게 내 실수였다.” 소련이 배신했다고 생각하느냐고 로젠버그가 묻자 “그렇다”고 답했다. 크렌츠는 “그런 경험을 다시 하고 싶지 않다. 서구 정치인들은 인민의 축제였다고 말한다. 이해된다. 그러나 난 모든 책임을 어깨에 지고 있었다. 감정의 소용돌이 같은 순간이었다. 누군가 그날 밤 죽기라도 했다면 강대국끼리 군사적 충돌이 빚어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고르바초프 역시 2013년 인터뷰를 통해 “종종 내가 중부와 동부 유럽을 내줬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누가 그런 걸 주고 말고 하겠는가? 예를 들어 폴란드를 줬다면 그 국민들에게 돌려줬다는 의미다. 누구 다른 이의 소유일 수 있겠는가“라고 되물었다. 1997년 그는 장벽을 넘으려는 동독 사람들을 학살했다는 이유로 기소돼 4년을 복역했다. 여전히 정치에 관심 많고 러시아를 지지한다고 했다. “고르바초프와 보리스 옐친 같은 유약한 지도자들 이후 러시아는 운 좋아 블라디미르 푸틴을 맞았다”고 말했다. 이어 냉전은 결코 끝나지 않았으며 대신 “다른 방법으로 싸우고 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크렌츠는 “지금도 GDR 시민들의 손주들로부터 많은 편지와 전화를 받으며 내가 그들의 생일을 축하하면 조부모들이 많이 좋아할 것이라고 한다. 때때로 사람들이 서명이나 셀피를 찍자고 한다”고 했다. 로젠버그 기자와 크렌츠가 자동차에서 내리자 함부르크에서 중학생들을 데리고 현장 탐방을 온 역사 교사와 마주쳤다. 얼굴을 알아본 교사가 “역사의 산 증인을 뵙다니 대단하다. 장벽이 무너졌을 때 어떤 기분이었느냐”고 묻자 “카니발은 아니었다. 아주 극적인 밤이었다”고 잘라 말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2030 세대] 일본의 ‘포스트 전후’ 30년을 맞이하여/임명묵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4학년

    [2030 세대] 일본의 ‘포스트 전후’ 30년을 맞이하여/임명묵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4학년

    ‘전후’, 현대 일본에서 이 단어가 뜻하는 바는 단순한 사전적 의미를 뛰어넘는다. 그저 전쟁이 끝난 직후의 일정 시점이 아니라 수십년에 걸친 하나의 시대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전후 시대’는 일본이 파멸적 전쟁을 일으킨 군국주의 과거와 단절하고, 민주주의를 운영하며 고도 성장을 이루어 낸 호시절이었다. 특히 경제가 그러했다. 한국전쟁 특수로 폐허에서 일어서기 시작한 일본 경제는 1960년대부터 세계를 놀라게 한 고도 성장을 이룩하며 서방 세계 최강의 경제로 발돋움했다. 미국으로부터 철을 공급받지 못해 중일전쟁에서 쩔쩔매던 미숙한 공업 국가였던 일본은 철강, 조선, 자동차, 화학 가릴 것 없이 모든 분야에서 압도적인 성장을 이룩했다. 이 같은 경제 번영의 결과로 급증한 도시민들 대부분이 에어컨, 세탁기, TV 같은 가전제품에 접근하면서 일본은 전기, 전자 영역의 강국으로도 도약했다. 하지만 전후의 번영은 멈춰 섰다. 미국의 역사학자 존 다우어는 일본의 전후가 1989년에 끝났다고 이야기했다. 일본이 미국에 안보를 전적으로 기댔던 냉전 체제가 무너졌고, 전후 경제 기적은 버블 붕괴와 함께 어두운 터널로 들어갔다. 시대 변화를 예시하듯 그해 1월 64년 동안 재위했던 히로히토 천황도 죽었다. 1989년 이후로 세계 속 일본의 위상은 결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경제는 활력을 잃었고 정치는 혼란했다. 헤이세이 30년 동안 중국은 일본을 규모로 압도했고 한국은 일본을 질적으로 따라잡으며 ‘아시아 1등’이라는 일본의 자아 정체성마저 흔들렸다. 그래서 비전을 잃은 이 시대를 일각에서는 ‘포스트 전후 시대’라고 부른다. 과거는 끝났지만 새로운 미래가 다가오지 않았기에 이런 우스우면서도 씁쓸한 명칭이 붙은 것이리라. 하지만 전후에서 포스트 전후로의 전환은 아직 많은 사람에게 와닿지 않았던 것 같다. 군국주의 부활을 아직도 우려한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일본이 미국에 도전했던 1940년대나 1980년대는 일본의 국력이 팽창일로를 걸었던 시대였다. 포스트 전후는 그와 정반대의 시대, 수축의 시대다. 아시아의 세력균형이 전면적으로 뒤집힌 상황에서 수축 중인 사회가 다시 팽창을 선택할 능력과 의지가 남아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런 인식의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는 아마 식민지의 기억, 직접적으로는 전후 일본의 거대한 번영에 대한 기억이 여전히 많은 사람에게 생생하기 때문일 것이다. 포스트 전후 30년이 된 지금, 변화한 일본의 현실을 바라볼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일본은 여전히 배울 것이 많은 나라다. 다만 방향이 달라졌을 뿐이다. 실체 없는 군국주의 위협에 벌벌 떠는 것보다는, 정치 리더십이 방향을 잃지 않기 위해서, 산업과 문화가 활력을 상실하지 않기 위해서 일본을 들여다보는 것이 훨씬 생산적이다. 바로 그것이 이제 과거가 되어 버린 ‘전후 일본’이 아닌 ‘포스트 전후의 일본’과 동거하는 현명한 방법이리라 믿는다.
  • 자국 중심주의 경쟁에 손 놓는 美·유럽…‘신냉전’만 남은 베를린 장벽 붕괴 30년

    텔레그래프 “러시아, 유럽인 행복 위협” 獨, 유럽 방어보다 러와 가스관 사업 관심 ‘中 견제’ 트럼프, 푸틴과 협력 가능성도 30년 전 11월 9일은 동서 냉전의 상징인 독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날이다. 베를린은 축제를 준비하고 있지만 냉전 시대를 끝냈던 강대국 정상들은 기념식에 참석하지 않는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6일 독일을 방문해 8일 출국할 뿐이다. 6일(현지시간) 영자매체 ‘더 로컬’ 등 유럽 주요 매체들은 자국 중심주의를 내세운 각국의 경쟁, 러시아 부상에 맞설 유럽의 단결력 약화 등으로 장벽이 무너진 이후의 민주주의가 위협을 받고 있다고 우려했다. 민주주의 세계가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를 기념하는 것은 소련이 유럽의 삶을 통제하는 시대의 종말을 상징하는 중대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텔레그래프는 30년이 지난 오늘날 크렘린(러시아 정부)은 소련이 그랬던 것처럼 유럽인의 행복을 위협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올해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장기 집권하며 모았던 권력을 본격적으로 이용한 해로 평가된다. 차세대 탄도미사일 개발 등 군비경쟁에 속도를 낸 것은 물론이며 사이버 공격 등 새로운 기술로 무장한 정보기관이 전 세계를 감시하고 위협한다. 중동과 아프리카 등 세계 전역에서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다. 텔레그래프는 지난 9월 체첸 반군 사령관이 대낮에 베를린 도심에서 살해당한 사건을 예로 들며 러시아는 부인하지만 아직도 냉전시대 방식을 좋아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과거 이런 소련에 승리했던 ‘서구’ 세력이 30년 전처럼 단결된 의견과 통일된 전선을 형성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와의 거래로 인해 강도 높은 조사를 받고 있으며, 시리아 북동부 터키 국경지대에서 스스로 자리를 비워 줬다. 중국에 대응하기 위해 트럼프가 푸틴과 손잡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영국은 자국 ‘브렉시트’ 사태로 러시아를 견제할 여력이 없다. 덴마크는 미국의 제재 위협에도 러시아 ‘노르드스트림2’ 가스관 공사를 허가했다. 특히 이번 기념일의 주인공 독일도 유럽을 방어하기보다는 러시아와 독일을 잇는 가스관 사업인 노르드스트림 완공에 관심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여권 소지자가 자국 수도에서 체첸 반군 출신 인사를 살해했는데도 침묵했다. “당장 장벽을 허물어야 한다”고 사자후를 토했던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 동상을 베를린 시내에 세우려던 사업은 독일 내 반발 때문에 수년간 표류하다가 30주년을 맞은 8일 미 대사관에서 제막식이 열린다. 트럼프의 미국과 독일이 더는 과거의 맹방이 아니라는 걸 잘 보여 준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비핵화 성과 창출이 국정동력 좌우… 한일관계 복원은 ‘발등의 불’

    비핵화 성과 창출이 국정동력 좌우… 한일관계 복원은 ‘발등의 불’

    2018년, 보수정권 9년간 얼어붙었던 남북 관계에 해빙이 왔다. 분단 이후 남북 정상 간 신뢰가 이만큼 두터웠던 적은 없었다. 1년간 3차례의 남북 정상회담, 특히 15만명 북한 주민 앞에서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70년 적대의 역사를 완전히 청산한다”고 선언한 문재인 대통령의 9·19 능라도 연설은 ‘한반도의 봄’의 상징적 장면이다.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 또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전례 없는 ‘케미’가 빚어낸 성과지만, 문 대통령의 촉진자 역할이 없었다면 애초에 불가능했다. 하지만 지난 2월 ‘하노이 노딜’ 이후 ‘한반도의 봄’은 실종됐다. 남북 관계 선순환으로 북미 대화를 끌어냈지만, 역설적으로 비핵화 협상이 막히자 남북 대화도 얼어붙었다. 문 대통령의 중재로 지난 6월 30일 판문점 남북미 회동을 끌어냈지만, 거기까지였다. 비핵화와 상응 조치를 둘러싼 북미 간 이견은 지난달 스웨덴 실무협상에서도 좁혀지지 않았고, ‘협상 데드라인’은 두 달도 채 남지 않았다. ‘통미봉남’ 우려가 제기되는 상황이 장기화되면 문 대통령의 운신 폭은 더 좁아질 가능성이 크다. 최악의 경우 연말까지 구체적 결과를 얻지 못한다면 한반도의 시계는 2017년 이전으로 회귀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다. 집권 전반기 남북 관계 등 외교·안보 성과에 힘입어 지지율 고공행진을 펼쳤던 점을 감안하면, 후반기 국정동력의 최대 위험이 될 가능성이 작지 않다는 의미다. 남북 관계에 정통한 여권 관계자는 “냉전 이후 70년간 한반도에 가장 급속한 변화가 있었던 2018년에 국민 눈높이가 맞춰져 있어 남북 관계가 후퇴한 것처럼 비치지만 비핵화는 애초부터 긴 호흡과 인내가 필요한 과정”이라면서 “‘한미 워킹그룹’의 틀에 남북 협력의 너무 많은 부분이 속박된 상황이지만, 과감하고 창의적으로 빈틈을 찾아야 한다. 북한으로 하여금 남측이 북미 사이에서 ‘중립’이라고 느껴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메시지를 발산해야 한다”고 말했다.한일 관계 복원은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이후 일본의 무역보복, 이에 맞선 한국의 지소미아(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 결정까지 최악으로 치달은 양국 관계는 미국의 동북아 전략의 핵심축인 한미일 안보협력과 촘촘하게 엮여 있다는 점에서 마냥 시간을 끌 수가 없다. 지난 4일 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13개월 만의 ‘단독 환담’에서 “이대로는 안 된다”는 공감대를 확인하는 등 반전의 계기는 마련된 상황이다. 다만 오는 23일 0시 지소미아가 예정대로 종료된다면 또 한 번의 변곡점을 맞을 수도 있다. 다음달로 예정된 한중일 정상회의와 이를 계기로 추진될 것으로 보이는 한일 정상회담 전까지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의 해결을 위한 접점을 찾는 게 시급한 과제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강제징용 문제로 인한 갈등이 장기화되지 않도록 하는 한편, 수출 규제와 화이트리스트 배제가 빨리 철회되도록 해야 한다”며 “한일 갈등을 조속히 수습하지 않으면 한미 관계에도 여파가 불가피하다”고 했다. 위성락 전 주러시아 대사는 “북핵은 정상외교라는 초유의 상황을 열었지만, 실질 진전이 이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기로에 서 있고 남북 관계도 현재로서는 단절될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이라며 “한일 관계는 아주 나빠졌고 한중 관계 역시 미중 대립관계 속에 끼여 운신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는 집권 전 구상을 토대로 이행했다면 반환점을 도는 현시점에서 그 계획을 어떻게 수정·보완할지 현실과 교감을 토대로 원점에서 다시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 ‘냉전의 상징’ 베를린 찰리 검문소 미군 배우들 돈 요구해 해고돼

    ‘냉전의 상징’ 베를린 찰리 검문소 미군 배우들 돈 요구해 해고돼

    독일 베를린의 찰리 검문소는 동서 냉전을 상징하는 곳이다. 베를린은 1961년부터 동서로 분리됐는데 미군과 옛 소련군 탱크가 그 해 10월에 찰리 검문소 일대에서 대치한 뒤부터 장벽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장벽이 붕괴되기 전까지 외국인과 연합군 병사들만 자유로이 이곳을 지나 동서 베를린을 오갈 수 있었다. 찰리 검문소에서 미군 복장을 한 채 근무하는 이들을 보는 것은 관광 거리다. 오는 9일은 베를린 장벽 30주년이 된다. 이제 요란한 축제가 이어질 전망이다. 그런데 이곳에서 미군 차림으로 출연하는 현지인 배우들이 사진 촬영에 응하는 조건으로 관광객들에게 돈을 요구해 해고됐다고 영국 BBC가 현지 일간 빌트의 보도를 인용해 4일(현지시간) 전했다. ‘댄스 팩토리’ 극단 소속의 이 연기자들은 베를린시 미테 지구와 계약을 맺고 일종의 공연 행위를 20년 가까이 해왔는데 이제는 더 할 수 없게 됐다. 배우들은 카메라 앞에서 함께 포즈를 취하거나 엽서에 도장을 찍어주고 자발적인 헌금을 챙겼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경찰이 잠복해 지켜보니 사진 찍는 대가로 4유로(약 5100원)의 요금을 요구하고 이를 거절하는 관광객들에게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원래 이렇게 공연한 대가로 돈을 받으려면 미리 시의 특별 허가를 얻어야 한다. 많은 베를린 시민들은 옛 소련군의 털모자, 가스 마스크, 베를린 장벽 조각들이 판매되는 식으로 역사의 현장이 “디즈니 공원처럼” 되는 일을 마뜩치 않아 하고 있다고 방송은 전했다. 이번 조치와 비슷한 사례는 2015년 이탈리아 로마에서도 있었다. 고대 로마 병사로 분장한 이들이 콜로세움과, 포럼 등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에서 티켓을 강매하는 등의 행위를 벌여 금지시킨 것이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어느덧 88 고르바초프 “지금 총체적 위기, 모든 나라가 핵 폐기 선언해야”

    어느덧 88 고르바초프 “지금 총체적 위기, 모든 나라가 핵 폐기 선언해야”

    미하일 고르바초프(88) 옛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현재의 세계가 “총체적 위험”에 직면해 있다고 말했다. 1985년부터 1991년까지 서기장으로 일하며 페레스트로이카 기치를 내걸어 독일 통일은 물론, 소련 해체를 불러오고 동서 간의 긴장을 녹이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고르바초프는 4일 공개된 영국 BBC 스티브 로젠버그 기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모든 나라들이 핵무기를 폐기하겠다고 선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순을 앞에 둔 그는 “그래야 우리 스스로는 물론 이 행성을 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건강이 썩 좋지 않은 듯 의자에 앉는 데도 한참이 걸렸고, 카메라를 향해 “벌써 찍고 있는 거냐”고 묻기도 했다. 로젠버그 기자는 영어로 물었고, 고르바초프는 러시아어로 답했지만 영어 자막이 달려 있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는 베를린 장벽 붕괴 당시를 돌아보며 “38만명의 소련 군인들이 동독에 주둔해 있었지만 군병력 이동 명령은 없었다. (통일이라는) 매우 복잡한 과정이 유혈사태 없이 지나갔고 이에 대해 내가 공헌한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로젠버그가 브렉시티(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혼란을 막는 해법을 조언해달라고 주문하자 “똑똑한 영국인들이 알아서 잘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앞서 오는 9일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을 앞두고 지난달 31일 로이터 통신에 기고문을 보내 엄중한 동서 관계에 대해 우려하며 특히 핵무기와 관련해 미국과 러시아의 대화가 부족하다는 우려를 표명했다. 특히 지난 8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987년 체결된 ‘중거리핵전략(INF) 조약’에서 탈퇴한 것에 대해 “위대한 마음( great mind)에서 나온 결과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1987년 12월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함께 INF조약을 체결해 냉전 종식을 이끌었다. INF 조약은 사거리 500~5500㎞의 지상 발사형 미사일의 생산·시험·배치를 전면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고르바초프는 현재 미국의 외교정책에 대해서도 동-서(East-West) 차이를 공식화한 베를린 장벽과 같은 냉전 스타일로 실재하는, 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장벽을 세워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장벽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실재하는 문제를 감추기 위한 시도이고 그래서 나는 장벽에 반대한다. 유럽에서 어떤 철의 장막도 반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의 상황이 위험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냉전이 다시 발생했다고 보지 않는다”며 “현재 러시아와 서방 사이에 이데올로기 투쟁이 없고 경제적인 연결고리와 문화적 융합이 있다”고 평가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日 의원연맹 “한일관계 최대위기, 韓대법 판결·韓정부 대응 탓”

    日 의원연맹 “한일관계 최대위기, 韓대법 판결·韓정부 대응 탓”

    1일 열린 한일·일한의원연맹 합동총회에서 일본 측이 1965년 체결된 한일청구권협정을 근거로 한국 측에 징용 배상 문제를 해결하라고 다시 촉구했다. 누카가 후쿠시로 일한의원연맹 회장은 이날 도쿄 일본 중의원회관에서 열린 제42차 합동총회 인사말에서 “현재 두 나라 관계가 최대의 위기라고 일컬어지는 이유는 ‘구 한반도 출신 노동자’인 이른바 ‘징용공’ 문제를 둘러싼 한국대법원 판결과 지금까지의 정부 대응이 청구권협정에 저촉되는 내용으로,일한 관계의 법적 기반을 무너뜨릴 수 있는 사태를 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누카가 회장은 이어 “과거 한국 역대 정권은 일한기본조약과 청구권 협정을 준수했다”면서 “우리는 문재인 정권에서도 선인들의 경험과 교훈을 통해 배우고 국가와 국가 간 약속을 지키며 양국이 미래를 향해 전진하고자 대립이 아닌 협조 체제를 구축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그는 또 “두 나라 간 안전보장 및 경제 분야의 혼란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 양국 발전과 국민 생활 안정을 훼손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고 지적했다. 일본 측 기조연설에 나선 가와무라 다케오 일한의원연맹 간사장도 “한국대법원의 징용 판결은 일한 관계의 법적 기반을 흔들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이 문제(개인배상)는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된 것이다. 한국의 사법판단이 있었다고 해도 한국의 내정을 통해 해결했어야 한다”면서 “이대로 가면 국제조약을 위반한다고 지적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문제 해법의 방향성을 제시해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가와무라 간사장의 발언은 지난 7월부터 일본 정부가 불화수소 등 반도체 소재 3개 품목의 한국 수출을 규제한 것이 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 조치임을 시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강창일 한일의원연맹 회장은 “강제동원 배·보상 등 역사 문제를 해결하려면 꾸준히 대화를 이어나가야 한다”며 “피해당사자들이 입은 상처와 결부된 민감한 사안인 만큼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대응했다. 강 회장은 “오해와 불신에서 비롯된 날 선 반응은 양국관계의 미래와 역사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대화 테이블에서 역지사지의 지혜를 발휘해 양국 간 입장차를 좁혀야 한다”고 말했다. 강 회장은 이어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심화하는 등 동북아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신냉전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 있는 지금 한일 양국 협력은 필수적”이라며 북한 비핵화 논의 과정에서 일본이 건설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적지 않다고 일본의 태도 변화를 촉구했다. 강 의장은 또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 등 자유무역질서를 앞장서 흔드는 행위는 국제사회로부터 지지를 얻기 어렵다”며 이번 총회를 통해 우호 협력의 틀을 다지는 계기를 만들어나가자고 제안했다. 강 의장은 내년 7월 시작되는 도쿄 올림픽·패럴림픽에 대해 “인류의 화합과 세계평화 증진에 이바지하는 축제가 되기를 기원하고,이를 위해 이번 총회에서 양국 의원 사이의 긴밀한 논의가 이어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날 행사에 문희상 국회 의장은 ‘2020년 도쿄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응원하는 축사를 보냈다. 이낙연 총리도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라는 독일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의 말을 인용하면서 “한일 양국 정부와 의원연맹이 이번에 가능성의 예술을 함께 창조하기를 기대한다‘는 축사를 보냈다. 그러나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축사를 보내지 않았다. 한일의원연맹과 일한의원연맹은 한국과 일본 국회의원들의 초당파적인 교류단체로,매년 양국에서 번갈아 합동총회를 열고 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남아공에 전략폭격기 보낸 ‘푸틴의 야심’

    남아공에 전략폭격기 보낸 ‘푸틴의 야심’

    무기 수출로 아프리카까지 세력 확장 국가 부채 200억 달러 탕감에도 서명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아프리카에서의 영향력 강화를 노리고 있다. 사상 처음으로 아프리카 국가 지도자들을 초청한 ‘러시아·아프리카 정상회의’가 23일(현지시간)부터 이틀간 휴양도시 소치에서 열린다고 AP통신이 전했다. 이 자리에는 압둘팟타흐 시시 이집트·시릴 라마포사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등 아프리카 정부 수반과 지도자 등 45명이 참석했다고 러시아 측이 밝혔다. 이에 맞춰 러시아의 대표적 전략폭격기 투폴례프(Tu)160 두 대가 이날 1만 1000㎞ 거리를 비행해 남아공 워터루프 공항에 도착했다고 타스통신이 전했다. 러시아 전략폭격기가 아프리카를 찾은 건 이번이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폭격기들은 러시아를 출발해 남아공까지 13시간 동안 공중 급유를 받으면서 쉬지 않고 비행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남아공과의) 양자 군사협력 발전과 양국 공군 간 협력 강화를 위한 방문”이라고 밝혔다. 러시아는 이미 아프리카 최대 무기 공급 국가의 위치를 굳혀 가고 있다. 지난 5년 동안 최소 28개국과 군사협조 합의에 서명했다. 러시아 전투기와 군함이 아프리카 국가들의 기지와 항만 사용 가능성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특히 러시아는 냉전시대 소련이 정치 이념과 무기를 수출하고 지원했던 국가들과의 관계 복원을 시도하고 있다고 AP가 분석했다. 소련이 영향력을 행사했던 국가들에 러시아가 주춤한 사이 중국이 사회간접시설에 수천억 달러를 투자하면서 영향 확대를 꾀해 왔다. 포스탱 아르샹제 투아데레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에게 무기 제공에 감사하면서 다이아몬드와 황금, 우라늄을 무장세력으로부터 지켜내기 위한 군사 지원을 요청했다. 하게 게인고브 나미비아 대통령은 러시아 군사 자문단 파견을 환영한다고 밝혔고, 요웨리 무세베니 우간다 대통령은 “러시아가 전투기와 탱크 등 다른 무기를 공급한 것에 감사하다”면서 “러시아가 대출을 제공하면 더 많이 사고 싶다”고 말했다. 러시아 지질조사 기관은 남수단·르완다·적도기니와는 탄소자원 탐색에 합의했다. 러시아 최대 석유기업 로즈네프는 모잠비크 연안에서 석유 탐사를 준비한다고 발표했다. 앙골라는 러시아 다이아몬드 기업 알로사와의 협력 확대를 논의했다. 러시아가 이처럼 아프리카에 공을 들이는 것은 2014년 크림반도 합병 이후 서방의 제재를 돌파할 활로로 보기 때문이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아프리카 국가들을 지원하고자 부채 200억 달러 탕감에 서명했다. 크렘린 외교담당 보좌관 유리 유샤코프는 “러시아·아프리카 정상회의는 3년마다, 외교장관 회의는 해마다 개최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김정은·트럼프 친분 굳건…美, 연말 지혜롭게 넘기길”

    “김정은·트럼프 친분 굳건…美, 연말 지혜롭게 넘기길”

    북한이 24일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친분를 강조하며 자신들이 비핵화 협상 시한으로 제시한 연말까지 트럼프 대통령이 전향적인 협상안을 제시할 것을 압박했다. ●연말까지 전향적 협상안 제시 압박 북한 김계관 외무성 고문은 이날 담화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공식석상에서 조미 수뇌(북미 정상)들이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언급한 보도를 읽었다”며 “내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우리 국무위원회 위원장 동지와 트럼프 대통령 사이의 친분관계가 굳건하며 서로에 대한 신뢰심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며칠 전 내가 (김정은) 국무위원장 동지를 만나뵙고 현안을 보고했을 때 위원장 동지는 자신과 트럼프 대통령 사이의 관계가 각별하다고 말했다”고 김 위원장의 말을 전했다. 김 위원장이 대미외교 베테랑이자 고위급인 김 고문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친분을 강조한 셈이다. ●“의지 있으면 길은 열리기 마련” 김 고문은 “이러한 친분관계에 기초해 북미 사이에 가로놓인 장애물을 극복할 동력이 마련되기를 바란다”며 “문제는 워싱턴 정가와 미 행정부의 대조선 정책작성자들이 아직도 냉전식 사고에 사로잡혀 우리를 적대시하는 것”이라고 했다. 김 위원장에게 우호적인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정부·정치권의 대북 강경파를 분리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대북 제재 해제 등 ‘새로운 해법’을 갖고 나오라고 톱다운 방식의 결단을 촉구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 고문은 “의지가 있으면 길은 열리기 마련”이라며 “우리는 미국이 어떻게 이번 연말을 지혜롭게 넘기는가를 보고 싶다”고 했다. 한편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이날 배포한 ‘최근 북한정세 브리핑’ 자료에서 올해 말까지 1~2차례 북한 비핵화 실무협상이 개최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 기후변화 대응, 성장 포기 아닌 새로운 성장 찾는 과정이다

    기후변화 대응, 성장 포기 아닌 새로운 성장 찾는 과정이다

    지난 9월 23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어린 얼굴의 학생이 연단에 올랐다. 스웨덴 출신의 16세 청소년 환경운동가인 그레타 툰베리였다. 툰베리는 기후변화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소극적 태도를 비판하면서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전 세계 차원의 적극적인 노력을 촉구했다. 기후변화가 가져올 결과에 대해 미래를 살아가야 하는 세대로서 느끼는 두려움, 기성세대의 무책임에 대한 솔직한 분노와 강한 질타는 새삼 세계 주요 언론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2018년 8월 ‘기후를 위한 학교파업’이라는 푯말을 들고 스웨덴 의회 건물 앞에 혼자 앉아서 시작한 툰베리의 1인시위는 순식간에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기후변화 대응촉구 집회로 확산됐다.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기에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동참하는 시위로 발전한 것일까?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몇백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지구 평균기온 상승으로 기상이변 속출 석탄을 사용하는 증기기관으로 대표되는 산업혁명은 인간에게 그 이전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막대한 에너지와 힘을 가져다주었다. 석탄과 석유와 같은 화석연료는 수억년의 세월 동안 형성된 시간의 결과물이며, 이를 연소시키는 것은 오랜 시간 동안 축적돼 온 에너지를 일시에 방출시키는 것이었다. 화석연료에 포함된 탄소들은 연소 과정을 거치면서 산소와 결합해 이산화탄소로 변화하고, 대기 중에 방출된 이산화탄소는 100~300년 동안 대기 중에 머무른다. 이산화탄소는 태양에서 지구로 쏟아져 들어오는 복사에너지를 흡수해 지구의 온도를 높이는 역할을 한다. 온실가스가 없다면 지구의 평균온도는 영하 18℃까지 낮아지기 때문에 온실가스는 지구상에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필수요소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농도가 인간에 의해 급속히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 문제가 되고 있다. 대기 중의 온실가스는 1800년대에 280 수준이었으나 1958년 315, 2000년에는 367으로 증가하고 있으며(그림 1), 2018년을 기준으로 지구의 평균기온은 1850~1900년에 비해 약 1℃ 증가했다. 이러한 온도 변화는 작아 보이지만 극지방 빙하의 축소를 가져와 전 세계적인 해수면 상승과 더불어 바닷물 온도의 상승으로 인해 더 강력하며 잦은 태풍, 허리케인이 발생하도록 하고 있으며, 많은 지역에 과거에 경험하지 못했던 기상이변을 초래하고 있다. 온실가스 농도의 상승으로 인한 기후변화는 느리지만 확실하게 우리의 문명과 삶에 점점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간이 배출하는 온실가스가 기후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증명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 들어서였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패널(IPCC)을 통한 과학적 논의가 진행되면서 국제사회의 공동 대응 필요성이 제기됐다. 냉전 종식으로 인한 국제협력 강화 흐름 속에서 국제사회는 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개최된 유엔환경개발회의(UNCED)에서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을 체결했다. 이후 3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유엔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는 매년 개최되는 당사국총회(COP)를 통해 교토의정서(Kyoto Protocol)를 비롯해 발리행동계획, 코펜하겐합의, 그리고 2015년 파리협정에 이르는 일련의 합의를 통해 기후변화의 원인이 되는 온실가스 감축에 나섰다. 그러나 당초 예상과 달리 온실가스 감축은 쉽지 않았으며, 특히 2000년대 초반부터 중국으로 대표되는 개도국의 급속한 경제성장은 온실가스 배출의 급속한 확대를 가져왔다. 기후변화로 인한 영향이 점차 가시화됨에 따라 변화된 환경에 대한 적응 필요성이 개도국과 빈곤국가들을 중심으로 제기됐지만 여기에 필요한 재원을 누가, 얼마나,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를 둘러싼 선진국과 개도국 간의 갈등은 점차 심화되고 있다. 개도국은 선진국의 역사적 책임과 더불어 더 많은 역할 분담을 요구하는 데 비해 선진국은 개도국 역시 온실가스 배출 감축에 대한 의무를 짊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대립하고 있다. 앞으로 지구 평균온도가 1.5℃ 이상 상승한다면 파멸적인 결과가 찾아올 것이라는 IPCC의 경고에 따라 전 세계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적어도 45% 이상 감축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2020년까지는 각 국가들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하기 위한 방안들이 나와야 하지만 국제사회의 움직임은 느리기만 하다. 이 와중에 기후변화는 가속화되고 있으며, 이러한 상황이 가져올 미래의 모습에 대한 두려움과 불만이 툰베리를 통해 터져 나왔고,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모두가 인류의 미래 문제가 달려 있다고 하는 이 문제에 대해 왜 뚜렷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을까?●특정 국가 향해 ‘온실가스 악당’ 지목? 온실가스는 다른 오염물질과 달리 인간의 기본적인 활동 과정에서 발생하고, 발생 과정 역시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선진국들은 중국 등 개도국에 대해 절대배출량 증가를 들어 감축에 동참하라고 압박하지만 이들 국가들은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을 들어 반박하고 있으며, 산업혁명 이후 지금까지의 역사적 배출량으로 따져 보면 선진국의 책임이 더 크다는 논리를 제기하고 있다. 국가 간의 이러한 다툼은 국가라는 단위로 온실가스 배출을 산정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라는 질문으로 확대된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 제조된 철근을 수입해 건물을 짓는다면 우리나라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는 철근의 운반 과정 및 건물 건축 과정으로 국한되지만 과연 이것이 정확한 계산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해 볼 수 있다. 실제로 우리나2를 포함한 많은 선진국가들은 해외 개도국에서 제조된 물건을 수입해 사용하는데 이 과정에서 국가별 온실가스 배출량이 선진국은 적게, 제품을 생산한 개도국은 과도하게 산정되게 된다. 이러한 요소들을 모두 최종 소비지로 환산해 다시 계산하게 되면 변화하게 되는데, 영국의 경우 생산 과정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의 양은 40%가 증가하게 되며, 유럽연합(EU) 전체적으로는 19%가 증가한다. 이러한 연구를 수행하는 글로벌 카본 프로젝트(GCP)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경우도 약 10% 수준에서의 상승이 나타나는 반면 중국의 경우 15% 이상 배출량이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특정한 국가를 악당으로 간주해 비난하는 것은 쉽지만 그 이면에는 복잡하게 얽힌 네트워크가 존재하고 있다.(그림 2) ●한국, 2016년 온실가스 배출량 전 세계 11위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2016년 기준으로 전 세계에서 11위(그림 3), 국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는 6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2017년 온실가스 배출량은 약 709.100만tCO2eq로 1990년 대비 142.7% 증가했다.(그림 4) 1990년부터 2016년까지의 기간 동안 미국은 1.9%, 일본은 2.8% 증가에 그쳤으며, 독일의 경우 27.2% 감소 추세를 보인 것과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의 137% 증가는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인구를 기준으로 볼 때도 1인당 13.8tCO2eq로 나타났는데 이는 1990년 대비 103% 증가한 것이다. 이러한 통계만 놓고 보면 대한민국은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의지나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는 국가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국내총생산(GDP) 10억원당 배출량의 경우 2017년 456tCO2eq/10억원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1990년 대비 35% 감소한 것이다.(그림 5) 우리나라의 경우 1990년 초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던 시기였으며, 그 결과로 인해 온실가스 배출량은 증가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단위생산량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음을 놓고 볼 때 우리나라 역시 산업구조의 고도화에 따른 효율화가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각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대한민국은 기후변화 악당은 아닌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에너지 분야로 전체 배출량의 86.8%를 차지하고 있다. 에너지 분야는 발전을 포함해 제조·건설 및 수송 등을 포괄하는 분야로서 에너지 분야 내부적으로는 발전(44%), 제조·건설업(30.3%), 수송(16%) 등의 순서로 나타나고 있다. 결국 우리나라 온실가스 배출의 문제는 전력 생산방식과 산업 및 도시의 문제로 귀결된다. 대량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석탄화력발전은 미세먼지를 포함한 대기오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적극적으로 감소시켜야 하지만 그 대안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은 답하기 어렵다.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가 필요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것은 최근 몇 년 동안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알게 됐다. 재생에너지 생산설비를 설치할 지역을 확보하는 것도 쉽지 않으며,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극복할 수 있는 에너지저장시스템(ESS)은 원인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화재의 위협에 노출돼 있다. 온실가스 배출이라는 문제에서 자유로운 원자력발전은 탈원전이라는 흐름 속에서 제대로 된 역할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제조업 역시 중후장대형 산업에서 탈피해 저에너지 산업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비판을 오랫동안 받아 왔지만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산업이 전 세계적으로 등장하지 않는 상황 속에서 무조건적인 변화를 주장하는 것은 고용을 비롯한 더 큰 사회적 문제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자동차의 경우 내연기관에서 탈피해 배터리전기차(EV)나 수소연료전지차(FCEV)로의 이행 흐름이 이어지고 있지만 여기에 사용되는 전기와 수소의 생산방식을 고려해 보면 이것이 진정한 대책일까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한국, 배출권거래제 등 거의 모든 제도 운영 대한민국은 기후변화와 관련해 배출권거래제를 비롯한 거의 모든 대책을 도입해 운영하고 있으며, 세계 어느 나라보다 법률을 비롯한 다양한 제도를 완비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기후변화를 그 자체의 문제로 바라보기보다는 그로 인해 발생하는 국제적 압력에 대처하기 위한 ‘대응’의 차원에서 바라보면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생산방식과 사회의 근본적인 개선과 변화를 고려하지는 않았다.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은 단순히 생산공정을 효율적으로 바꾸고, 전기차 보급을 늘리며, 석탄화력발전을 줄이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익숙했던 과거의 경험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걸어야 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기후변화에 대한 투자는 단순한 비용의 증가가 아니라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미래에 대한 투자이기도 하다. 기후변화라는 문제에 맞서는 것은 성장을 포기하고 축소 지향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으로 어떻게 성장할 것인지를 찾아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기후변화 문제는 개별적인 요소의 해결로 극복할 수 없으며 사회의 근본적인 해결, 그리고 전지구적인 협력을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동안 인류가 경험해 온 어떠한 문제보다도 해결이 어렵다. 그렇지만 기후변화 문제는 당장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뿐만 아니라 우리의 미래세대에게는 생존의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 기후변화는 눈앞의 문제에 빠져 있는 우리에게 미래세대에게 어떠한 미래를 물려줄 것인지를 고민하도록 만들고 있다. 툰베리를 비롯한 어린 학생들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이러한 변화일 것이다.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 김계관 北외무성 “미국이 어떻게 연말을 지혜롭게 넘기는가 보고 싶다“

    김계관 北외무성 “미국이 어떻게 연말을 지혜롭게 넘기는가 보고 싶다“

    조선중앙통신, 김계관 담화문 24일 발표“김정은, 트럼프와 관계 각별하다 말해” 김계관 북한 외무성 고문이 24일 담화문을 발표, “우리는 미국이 어떻게 이번 연말을 지혜롭게 넘기는가를 보고 싶다”고 말했다. 조선중앙통신은 김계관 고문이 “의지가 있으면 길은 열리기 마련”이라며 이같이 말했다고 이날 보도했다. 김계관 고문은 “나는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공식석상에서 조미(북미) 수뇌들이 서로 존중하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또다시 언급하였다는 보도를 주의 깊게 읽어보았다”면서 “내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우리 국무위원회 위원장 동지와 트럼프 대통령 사이의 친분 관계가 굳건하며 서로에 대한 신뢰심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며칠 전 내가 국무위원회 위원장 동지를 만나뵙고 조미 관계 문제를 비롯하여 대외사업에서 제기되는 현안들을 보고드리었을 때 국무위원회 위원장 동지께서는 자신과 트럼프 대통령 사이의 관계가 각별하다는 데 대하여 말씀하시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나는 이러한 친분 관계에 기초하여 조미 사이에 가로놓인 모든 장애물들을 극복하고 두 나라 관계를 보다 좋은 방향으로 전진시킬 수 있는 동력이 마련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식견과 의사와는 거리가 멀게 워싱턴 정가와 미 행정부의 대조선 정책작성자들이 아직도 냉전식 사고와 이데올로기적 편견에 사로잡혀 우리를 덮어놓고 적대시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달에 착륙한 최초의 비글 ‘스누피’, 한국 현대미술 작가들과 터치다운

    달에 착륙한 최초의 비글 ‘스누피’, 한국 현대미술 작가들과 터치다운

    냉전체제 당시 미국과 소련이 군사적으로 양립한 동시에 우주개발 전쟁도 벌였다. 1969년 5월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기술력을 과시하며 달 탐사선 아폴로 10호를 쏘아 올린 장면을 전 세계에 생중계했을 때, 세계인들은 친숙한 이름을 들었다. ‘찰리 브라운’과 ‘스누피’. 우리에겐 ‘스누피와 친구들’로 널리 알려진 미국 인기 만화 ‘피너츠’(Peanuts)의 주요 캐릭터다. NASA는 경쟁 국가들도 지켜보는 중요한 우주 비행을 하면서 달 착륙선 이름은 스누피, 사령선은 찰리 브라운으로 지었다. 달 착륙선에는 우주 비행사와 함께 스누피 인형도 함께 탑승했다. 그렇게 스누피는 최초로 달을 탐사한 비글이 됐다.50년 전 달 탐사를 마친 스누피가 이번에는 친구들과 함께 서울을 찾았다. 롯데뮤지엄이 인류의 달 탐사 50주년과 스누피 탄생 70주년을 맞아 기획한 특별전 ‘투 더 문 위드 스누피’를 통해서다. 17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롯데뮤지엄에서 개막한 특별전은 ‘피너츠’의 ‘아버지’ 찰스 먼로 슐츠(1922~2000) 뮤지엄 특별전을 비롯해 미국 팝아티스트 케니 샤프와 프랑스 그래픽아티스트 앙드레 사라이바가 제작한 ‘피너츠’ 관련 작품도 포함됐다. 만화가 슐츠가 1950년 미국 7개 지역신문에 4컷 만화를 연재하면서 시작된 ‘피너츠’는 곧 미국 전역을 넘어 세계 각국으로 뻗어나갔다.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신문 매체에 연재된 만화라는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NASA와의 인연은 1968년 NASA 측이 아폴로 프로젝트의 안전성을 홍보하는 동시에 국민 관심을 이끌기 위해 ‘피너츠’ 제작사 측에 먼저 요청하면서 시작됐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찰리 브라운의 애완견이자 친구인 스누피가 우주비행사와 NASA의 ‘안전 마스코트’가 되기까지 과정을 다양한 그림과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권오상, 김정기, 노상호, 박승모, 신모래 등 한국 현대미술 작가 19명이 참여한 작품도 보는 재미를 더한다. 이들은 각각 회화와 조각, 설치, 미디어아트, 스트리트아트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스누피와 그의 친구들을 표현했다. 또 윤춘호(YCH), 젠틀몬스터, 한현민 등 13명의 패션디자이너가 ‘피너츠’ 캐릭터에서 받은 영감을 살려 제작한 인형 의상을 선보이는 ‘스누피 런웨이’와 아트피규어 경매를 통한 판매수익금 전액을 월드비전에 기부하는 자선 이벤트 등도 열린다. 롯데뮤지엄 측은 “반세기 전 달 착륙의 순간을 함께한 스누피를 매개로, 인류의 원대한 꿈이 펼쳐지는 우주에 대한 특별 전시를 기획했다”면서 “스누피를 재해석한 예술가들의 시선을 통해 우주를 향한 인류의 꿈을 함께 공유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2020년 3월 1일까지 계속된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서울광장] 신중국 70주년과 동북아 신냉전체제/오일만 편집국 부국장

    [서울광장] 신중국 70주년과 동북아 신냉전체제/오일만 편집국 부국장

    중국의 건국 70주년 기념식은 동북아 신냉전(新冷戰) 체제가 엄습하고 있다는 상징적 행사였다. 역대 최대 규모의 열병식은 패권국 미국과 맞짱 뜰 수 있다는 G2의 군사굴기 선언이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이날 톈안먼 망루에 올라 70년 전 “중국인이 일어섰다”고 외친 마오쩌둥처럼 ‘중화민국의 위대한 부흥’을 선언했다. 아편전쟁 이후 100년간의 굴욕과 치욕을 딛고 1949년 10월 1일 신중국을 건설한 중국 공산당이 세계 최강 미국을 뛰어넘겠다는 일종의 출사표인 것이다. 시 주석이 밝힌 것처럼 신중국 70주년을 맞은 중국의 길은 명확하다. 중국식 사회주의, 즉 정치적으로 마오쩌둥 사상을 기반으로 하는 공산당 영도와 경제적으로 사회주의 시장경제로 귀결되는 국가자본주의라는 양대 축은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갈수록 증폭되는 미중 무역전쟁과 최근의 홍콩 사태,그리고 경제침체·빈부격차 등 대내외적 난제에 직면한 상황에서 정치적으로 단합된 힘을 보여 주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에 열광하는 중국인들의 함성과 비례해 이웃 나라들의 우려는 높아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1978년 개혁개방 정책 이후 중국의 민족주의는 덩샤오핑의 유언(도광양회)을 받들어 은인자중하는 측면이 컸다. 때론 유연하고 때론 포용적인 측면이 강조되면서 주변 이웃 국들과 그리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하지만 2011년 미국의 아시아 회귀전략과 대중 포위전략이 본격화되면서 중국의 민족주의 역시 호전적인 성격으로 변해 갔다. 미중 무역전쟁 이후 중화민족주의는 더욱 거칠어졌다. 이 시기에 일어난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가 대표적이다. 힘을 통해 주변 국가들을 복속시키려는 패권주의적 본질도 서슴없이 드러냈다. 작금의 호전적 중국 민족주의의 뿌리는 마오쩌둥에 맥이 닿는다. 미중 패권 전쟁 개시와 함께 중국인들은 미국과 소련에 맞서 당당하게 ‘노’라고 말한 마오를 그리워한다. ‘동풍이 서풍을 제압한다’(東風壓倒西風)는 1960년대의 문화대혁명 당시 슬로건이 2019년 지금 중국 곳곳에서 나부끼는 이유다. 하지만 중국 지도부가 새겨야 할 대목이 있다. 글로벌 세계에서 자유, 평화, 인권 등 인류 보편의 가치를 중시하지 않고는 선진국으로 존경받기 어렵다는 점이다. 경제대국으로 성공하고 군사대국으로 근육질을 자랑한다고 해서 ‘중국 모델’이 세계인들의 박수 갈채를 받을 것이란 생각은 오산이다. 전후 경제적 성공 모델로 주목을 받았던 일본이었지만 그들의 추한 탐욕 때문에 ‘이코노믹 애니멀’(경제 동물)로 지탄을 받았지 않았던가. 세계의 리더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경제와 군사 측면의 하드웨어 이외에 보다 매력적인 정치적 이념과 문화 등의 소프트 파워가 필수적이다. 이런 측면에서 중국의 경제·군사적 성공은 하루아침에 국제사회의 역풍을 잉태한 대국주의로 변질될 소지가 많다. 개인이나 국가를 막론하고 이웃이나 남의 나라를 무시하거나 교만해지면 결국 퇴락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이 역사적 교훈이다. 최근 유혈사태로 번지고 있는 홍콩 사태를 보면서 우려의 목소리를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미중 무역전쟁이 패권경쟁으로 확대되면서 대한민국 역시 지정학적 딜레마에 처했다. 미중 간 패권 싸움은 단기에 끝날 성질의 것이 아니다. 향후 10년 이상 이어질 수도 있는 장기전에 대비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한미동맹은 중국의 부상에 따른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는 장치이지만, 중국을 포위하는 식으로 동맹을 확대해선 안 된다고 조언한다. 북한을 상대로 하는 한미동맹은 중국이 간섭할 수 없지만, 중국을 겨냥한 인도·태평양 전략은 중국의 거센 반발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계 10위권의 경제강국이자 동북아 중견국으로서 숙명적인 지정학적 딜레마를 극복하려는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 역사적 경험에 비춰 우리의 국익 극대화 법칙은 자명하다. 우리가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면 한반도는 미중 대립을 완화하는 완충·중립지대로 발전할 수 있다. 우리의 국익은 미국이나 일본과 다르다. 군사동맹국인 미국과 전략적 동반자이자 최대 경제협력국인 중국 사이에서 있는 만큼 편을 가르는 이분법적 시각은 위험하다. 미국이든 중국이든 한쪽을 골라 잡는 식의 편승외교는 스스로 운신의 폭을 좁히면서 영구 분단을 자초하는 길이다. oilman@seoul.co.kr
  • 키신저 미중 외교수장 잇따라 접견…미중 갈등 조율?

    키신저 미중 외교수장 잇따라 접견…미중 갈등 조율?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이 길어지는 상황에서 미 외교 거장으로 불리는 헨리 키신저(96) 전 미 국무장관이 최근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을 잇따라 만나 관심을 모은다. 두 나라 외교의 책임자가 거의 동시에 그를 찾았다는 사실 자체가 이례적이다. 곧 100세가 되는 그가 미중 간 갈등을 직접 조율한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다. 3일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유엔총회에 참석한 왕 국무위원은 지난달 27일 뉴욕에서 키신저 전 장관을 만나 두 나라의 관계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왕 국무위원은 “중국은 미국과 분쟁이나 적대를 피하고 상호존중하며 협력을 추구한다”면서 “미국이 중국을 적대시하고 심지어 관계를 단절하려 하는 것은 미국에도 위험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키신저 전 장관에게 양국 관계를 푸는 데 다시 한번 협력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차이나데일리가 보도했다. 이에 키신저 전 장관은 “미중은 서로 단절될 수 없고 피할 수도 없는 관계”라며 “미중 관계 회복을 위해 개인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키신저 전 장관은 냉전시대 때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을 국제사회로 이끌어 낸 주인공이다. 리처드 닉슨 미 대통령 시절인 1971년 베이징을 극비리에 방문해 저우언라이 총리와 만나 ‘핑퐁외교’로 두 나라 간 수교를 이끌어 냈다. ‘하나의 중국’ 원칙도 수용해 중국이 1971년 대만을 몰아내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에 오를 수 있게 도왔다. 중국 입장에서는 나라의 운명을 바꿔 준 ‘은인’으로 볼 수 있다.폼페이오 장관도 지난달 29일 트위터를 통해 “전날 키신저 전 장관을 만났다”고 소개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논의가 오고 갔는지 공개되지 않았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스캔들’에 연루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을 둘러싼 문제와 함께 중국 관련 이슈도 공유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세계 외교지형이 크게 바뀌었지만 여전히 많은 정치인과 정부 관계자들은 키신저 전 장관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는 듯 하다. 다만 세계를 쥐락펴락하던 그의 영향력이 이미 소멸됐다는 주장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키신저 전 장관은 지난해 9월에도 뉴욕에서 왕 국무위원을 만났고 두 달 뒤에는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국가주석 등 지도부에게서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중국 굴기에 큰 역할을 한 원로에 대한 예우이자 미국 측에 무역전쟁 타결을 종용하기 위한 제스처였다. 하지만 “미중 무역갈등을 대화로 풀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공허한 외침에 머물고 있다. 그의 개입에도 양국 관계는 계속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내년 미 대선에 도전하는 버니 샌더스 민주당 경선후보는 폼페이오 장관과 키신저 전 장관과의 회동을 비난했다. 그가 미국의 베트남전 확전과 캄보디아 내전 개입, 칠레 정권 전복 등을 지휘한 ‘민주주의 파괴자’라는 것이다. 샌더스 의원은 “내가 대통령이 되면 키신저의 조언을 더 이상 듣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공연시장 양적·질적 성장했는데… ‘극장 공공성’은 어디 갔나

    공연시장 양적·질적 성장했는데… ‘극장 공공성’은 어디 갔나

    한국 공연시장 규모는 2017년 12월 기준 8132억원을 기록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07년 관련 조사를 시작한 이후 처음 8000억원대를 넘어섰다. 공연시설 매출액은 3500억원으로 전년보다 1.9% 증가했고, 공연단체 매출액은 4632억원으로 14.5% 늘었다. 전체 공연시장 성장과 맞물려 공연시설 또한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지난해 말 기준 문체부에 등록된 공공 공연시설만 529곳에 달한다. 롯데콘서트홀, LG아트센터 등 민간 공연시설까지 포함하면 전국에 826개 공연 시설이 있다. 시설 증가와 시장 성장은 질적 성장으로도 이어졌다. 선우예권, 손열음, 조성진 등 클래식계에서는 젊은 연주자들이 끊임없이 세계무대로 나아가고 있고, 국내 제작 뮤지컬과 연극의 해외 시장 공략도 계속되고 있다. 이처럼 양적·질적 성장을 이룬 국내 공연계에서 ‘극장의 공공성’을 묻는 움직임도 도드라졌다. 성장 중심의 기존 극장 운영 관행을 돌아보는가 하면, 순수예술과 예술인들의 생존이 달린 극장도 있다.●‘정체성 찾기’ 토론회 연 중구문화재단 서울 충무아트센터를 운영하는 중구문화재단은 지난 2월 21일 제6대 사장으로 윤진호 전 서울주택도시공사 미래전략실장이 취임했다. 윤 사장은 취임 7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다른 기관장들이 관례적으로 여는 ‘취임 언론 간담회’는 열지 않고, 충무아트센터의 방향성과 운영계획을 점검하기 위한 장기 라운드 테이블 진행을 지시했다. 비교적 안정적 수익이 보장되는 인기 뮤지컬 공연 중심으로 운영해온 충무아트센터의 공공성을 재정립하고, 지역사회 공헌과 문화·예술인 지원 방안 모색이 라운드 테이블의 주요 목표다. 중구문화재단은 7월부터 지난 19일까지 3차례에 걸쳐 토론회를 진행하면서 각계 공연·예술 전문가 외에 해당 주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토론회에 참여할 수 있게 했다.극장의 ‘성장’이 아닌 ‘공공성’을 논하는 자리가 마련되자 격론이 쏟아졌다. 논쟁의 포문은 첫 토론이 열린 7월 5일 손상원 정동극장장이 열었다. 손 극장장은 수익성 경쟁에 내몰려 민간극장과 구분이 흐려진 공공극장의 현실을 꼬집었다. 그는 “많은 공공극장이 자신들의 예술적 정체성과 공연장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지만, 큰 노력과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며 우수한 결과를 내놓은 곳은 많지 않다”면서 “공공극장의 역할에 대한 사회적인 요구가 커지는 상황에서, 지역 거점 공간으로서 역할 정립과 방안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대학로에서 바라본 공공극장의 공공성 문제’를 주제로 발표한 김세환 극장 혜화당 대표는 전국 지방자치단체별 공공극장이 놓인 현실을 더욱 비판적으로 접근했다. 김 대표는 “공공극장은 공연장 대관을 통해 수익창출을 목표로 만들어진 극장이 아닌데도, 현재 국내 공공극장들은 독립적인 예술단을 보유한 극소수의 극장을 제외하면 대관을 핵심 업무로 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김 대표는 이어 “대학로의 민간극장 1일 공연 대관료가 평균 20만~40만원 수준이라면, 공공극장에서 공연 시 1일 대관료는 부대설비 항목까지 포함하면 100만원에 육박하거나 그 이상을 지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현실을 극복할 대안으로 프랑스식 공공극장 운영 사례를 제시하면서 “예술가와 지역주민, 극장행정가가 함께 참여해 극장 공공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구문화재단은 충무아트센터의 공공성 회복을 위해 크게 ▲소극장 ‘블루’ 전면 무료개방 및 제작지원 ▲중극장 ‘블랙’ 시즌제 공연시리즈 공동기획 ▲대극장 자체기획 공연 강화 등을 제시했다. 국가가 운영하는 국립극장과 예술의전당, 서울시가 운영하는 세종문화회관과 달리 예산 확보와 지원이 어려운 지자체 공공극장 현실을 감안해 상업성과 공공성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절충안으로 이런 방안을 검토 중이다.●친일 재산 사유화 논란 남산예술센터 국내 유일 창작극 중심 공공극장인 남산예술센터(옛 드라마센터)는 당장 폐관 위기에 내몰리면서 연극인들이 행동에 나섰다. 1962년 4월 개관해 원형대로 보존된 가장 오래된 현대식 공연장인 남산예술센터는 2009년부터 10년간 서울시가 극장 소유주인 서울예대(학교법인 동랑예술원)로부터 임차해 서울문화재단이 공공극장으로 위탁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1월 서울예대가 서울시에 일방적으로 임대계약 종료를 통보하면서 연극계 안팎에서 극장의 공공성이 훼손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서울예대가 현재 입장을 유지하면 서울시와의 계약은 2020년 12월 종료된다. 이에 연극계에서는 공공극장 정상화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가 조직됐고 관련 연구를 엮은 책 ‘유치진과 드라마센터-친일과 냉전의 유산’도 발간했다.비대위 조사 내용에 따르면 남산예술센터 건립 당시 이를 주도한 인물은 ‘남한 연극의 아버지’로 추앙받았지만, 문화계 대표적인 친일 인사로 확인된 극작가 유치진이다. 유치진은 미국 록펠러재단으로부터 4만 5000달러를 지원받아 현 부지에 극장을 조성했다. 이 부지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땅으로 해방 후 한국 정부가 소유했다. 개관 당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특별명예회원으로 특별운영비를 주는 등 냉전시대 한미 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비대위는 “냉전체제에서 미국은 남한에 문화정책을 통한 이데올로기 주입이 필요했고, ‘민족연극’을 내세운 유치진은 2·3공화국 정치 실력자와 결탁해 설립 당시 국유재산이던 남산예술센터를 사유화했다”고 주장했다. 실제 유치진은 1966년 한 일간지 인터뷰를 통해 “드라마센터(남산예술센터)는 절대로 사유화되지 않는다. 우선 법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라고 당시에도 연극계에서 일었던 사유화 의혹을 해명하는 데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유치진은 남산예술센터를 자신이 세운 학교법인 한국연극연구원(동랑예술원의 전신)에 기부했다.●연극무대에 오른 ‘극장의 과거와 미래’ 비대위는 그간 미국과 한국 정부에서 확인한 과거 기록물을 바탕으로 서울예대와 협상 당사자인 박원순 서울시장 면담을 추진하는 한편, 이 문제를 널리 알리기 위해 연극으로 제작해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남산예술센터가 극단 산수유와 공동제작한 연극 ‘오만한 후손들’은 앞서 출간한 책 내용을 압축적으로 담았다. 작품은 남산예술센터의 역사를 추적해 부조리함을 재연하는 데 그치지 않고, ‘무엇을 기준으로 가치를 판단할 것인지’를 묻는다. ‘민족문화의 화합’을 위한 극장이 현재에 이르러 어떻게 ‘불공정한 합법’으로 사유화됐는지를 법의 논리가 아닌 공공의 정의로 이 문제를 다뤘다. 연출을 맡은 류주연 연출은 지난 1월 남산예술센터 시즌프로그램 발표 당시 “드라마센터 사유화 문제는 연극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이번 공연을 통해 보여주고자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서울시는 연극계의 우려와 달리 낙관적인 분위기를 전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현재 서울예대 측과 임대차 관련 논의를 하고 있는데, 학교 측도 2021년 1월부터 재계약과 관련해 남산예술센터의 장기적 공연 기획을 보장하기 위해 현재 3년 단위 계약기간을 조금 더 장기로 맺는 등 공공극장으로서 안정적 운영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구체적인 조건에 대해서는 “아직 계약 기간이 1년 남았기 때문에 추후 협의를 계속 이어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대만 대학가서 중국·홍콩 유학생 정면 충돌

    대만 대학가서 중국·홍콩 유학생 정면 충돌

    홍콩 반정부 시위를 둘러싼 갈등이 대만 대학 캠퍼스로 확산됐다. 대만 대학의 곳곳에서 중국인 유학생들이 홍콩 반정부 시위 지지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홍콩 유학생들이나 대만 대학생들에게 공격적인 행동을 하는 사건이 잇따르고 있는 것이다. 대만 중국시보(中國時報),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대만 교육부는 26일 대만 내 대학 4곳에서 중국 유학생들이 ‘존 레넌의 벽’에 홍콩 반정부 시위 지지 메시지를 붙이려는 홍콩 유학생과 대만 대학생들을 공격하는 사건이 일어났다고 밝혔다. ‘존 레넌의 벽’(John Lennon Wall)은 홍콩과 대만 등에서 홍콩 시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지지하는 의견을 포스트잇에 써 붙인 것을 일컫는다. 원래 영국 밴드 비틀스의 멤버 존 레넌이 1980년 12월 미국에서 암살된 후 체코슬로바키아 수도 프라하에서 그를 추모하면서 이 벽이 생겨났다. 당시 체코는 공산 정권의 ‘철의 장막’에 억압돼 있는 상태였다. 냉전 시대에 평화를 외치며 반전쟁 운동가로 활동한 레넌은 서구 음악이 금지됐던 체코에서 반전·반공산주의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레넌이 사망하자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한 예술가가 프라하에 있는 프랑스 대사관 근처의 외딴 벽에 레넌의 얼굴을 그렸다. 이후 레넌을 기리는 글뿐 아니라 체코와 소련 공산주의를 비판하는 글들이 끊임없이 벽에 새겨졌다. 1989년 ‘벨벳 혁명’으로 공산 정권이 무너지자 존 레넌 벽은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2014년 우산 혁명 당시 홍콩섬 애드미럴티역에서 홍콩 정부청사로 이어지는 외부 계단에 처음 포스트잇이 붙기 시작해 등장한 존 레넌 벽은 이제 홍콩 민주화 시위의 상징 중 하나다. 존 레넌의 벽을 둘러싼 대만 대학 캠퍼스 내 첫 충돌은 지난 20일 남부 가오슝(高雄)시 이서우(義守·I-SHOU)대학에서 발생했다. 기숙사 내에 설치된 존 레넌의 벽에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포스트잇을 붙이려던 한 홍콩 유학생을 중국 본토에서 온 유학생이 공격한 것이다. 중국 출신 유학생은 홍콩 출신 유학생에 물을 뿌리고 소리를 지르는 등 공격적 행동을 했다고 대만 교육부는 밝혔다. 이어 25일에는 타이베이(臺北)시에 있는 중국 문화대학을 비롯한 3곳의 대학에서도 중국에서 온 유학생들이 존 레넌의 벽에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포스트잇을 붙이려던 홍콩 출신 유학생이나 현지 대만 학생들을 공격하는 사태가 발생했다.이에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까지 나서 “대만은 전체주의 권력의 토대 위에 세워진 나라가 아니라 민주주의 국가“라면서 중국 유학생들의 폭력행위를 규탄했다. 차이 총통은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올린 글을 통해 “폭력이 캠퍼스 안에서 일어났건 밖에서 일어났건, 폭력을 저지른 사람들이 누구건 간에 우리는 그런 행위를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관용을 베풀지 않을 것”이라고 엄중 경고했다. 홍콩 반정부 시위를 지지해온 차이 총통은 대학생들은 자신들의 견해를 표시할 권리가 있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지지할 권리가 있다면서 이번 사건에 대한 엄중한 조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판원충(潘文忠) 대만 교육부장은 자유 민주 사회는 법의 지배를 받는다면서 “우리는 전 세계 학생들이 대만에 유학 오는 것을 환영한다. 하지만 그들은 이곳의 법을 준수하고 따라야 한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에 대해 공정하게 조사할 것이라고 판 부장은 덧붙였다. 이서우대는 이미 이번 사건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앞서 호주와 캐나다, 미국 등의 대학에서도 친중파 학생과 홍콩 반정부 시위를 지지하는 학생들 간 출동이 빚어진 바 있다. 지난 6월부터 4개월째 계속되고 있는 홍콩의 ‘범죄인 인도법안’(송환법) 반대 시위는 홍콩 행정수반인 캐리 람 행정장관의 송환법 철회 선언에도 불구하고 다른 민주화 조치를 요구하며 장기화하고 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66년간 대통령 8명에 안보 전략 제공한 ‘펜타곤 추기경’

    66년간 대통령 8명에 안보 전략 제공한 ‘펜타곤 추기경’

    제국의 전략가/앤드루 크레피네비치·배리 와츠 지음/이동훈 옮김/452쪽/2만원무기 대신 냉철한 이성으로 싸운 마셜 中 ‘은둔 제갈량’ 日 ‘전설의 전략가’ 불려 현대 군사전략 탄생·굴곡진 역사 더듬어중국 고전을 읽다 보면 수많은 책사를 만난다. 삼국지 유비에겐 제갈량이, 손권에겐 주유가 있었고, 초한지의 유방에겐 장량, 항우에겐 범증이란 비범한 책사가 있었다. 한신처럼 탁월한 전략가이면서 직접 전장을 누볐던 장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무려 육십갑자(60년) 동안 한 나라의 최고 전략가 지위를 이어가지는 못했다. 그런데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미국에 그런 인물이 있다. 음지에서 미국의 실질적인 안보 전략을 설계했다는 ‘국방 설계자’ 앤드루 마셜(1921~2019)이 바로 그다. 책은 무기 대신 냉철한 이성으로 싸운 한 인물의 발자취를 통해 현대 군사전략의 탄생과 그 굴곡진 역사를 서술한다. 냉전 시대에서 출발해 이슬람 테러리즘의 발호를 거쳐 중국의 부상에 이르는 현대사의 중요한 국면에서 그가 어떤 역할을 수행했고, 그에 따라 세계의 군사지도는 어떻게 변화됐는지를 살피고 있다.마셜이 내놓은 핵심 개념은 ‘총괄평가’다. 미국의 무기체계와 전력, 군수 등 국방의 모든 영역을 경쟁국과 철저히 비교해 군비 경쟁에서 미국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파악하고, 미래의 문제와 전략적 이점을 예견하는 것이 평가의 목표였다. 이런 총괄평가의 개념 구조는 1970년대 초반 냉전체제 때 처음 등장했지만 정밀 유도무기와 중국의 급부상, 핵무장 국가의 증가 등 과거와 크게 변한 전쟁 상황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마셜은 1973년 국방장관 직속의 싱크탱크인 총괄평가국(ONA) 초대 국장에 취임한 후 2015년 93세 때 공직에서 은퇴할 때까지 42년간 이 조직의 리더 역할을 수행했다. 1949년에 들어간 국책기관 랜드연구소(RAND) 재직 기간을 포함하면 무려 66년에 달하는 시간이다. 그동안 그는 대통령 8명, 국방장관 13명에게 각종 안보 전략을 제공했다. 그의 경력을 두고 미국과 유럽에선 영화 ‘스타워즈’의 제다이 마스터 ‘요다’에 비유했고, 옛 소련에선 ‘펜타곤의 추기경’, 중국에선 ‘은둔의 제갈량’, 일본에선 ‘전설의 전략가’로 불렀다.마셜의 공적은 베일에 싸여 있다가 이제야 조금씩 드러난다. 대표적인 업적 하나는 냉전시대 소련을 대상으로 세운 ‘경쟁전략’이다. 1970~80년대 미국의 가장 큰 고민은 소련의 군사비 규모에 대한 정확한 정보였다. 당시 중앙정보국(CIA)은 소련이 GNP의 6~7%를 군비로 쓰고 있다고 주장했으나, 마셜은 30%를 초과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는 과도한 군비 지출이 소련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고 판단한 뒤, 계속해서 과잉 투자하도록 유도해 소련 붕괴를 재촉하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용 강요 전략’이라고도 불리는 이 경쟁전략은 결국 소련 해체의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 소련 해체 후엔 미군의 군사혁신 논쟁을 주도했고, 향후 안보환경의 변화를 누구보다 정확하게 예측했다. 중국의 패권주의를 견제하기 위해 ‘아시아 회귀 정책’을 제시했는데, 이 역시 중국으로 하여금 천문학적 비용이 소모되는 해군력 증강으로 출혈을 강요하려는 전략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인재 양성도 주요 공적 중 하나다. 마셜은 ‘예정된 전쟁’의 저자 그레이엄 엘리슨, 새뮤얼 헌팅턴 등 얼추 120명에 이르는 기라성 같은 인재를 키워내 국방부 등에 포진시켰다. 마셜의 제자들로 이뤄진 이 집단 지성은 훗날 ‘성 앤드루 학당 동창회’라고 불리게 된다. 미국의 외교·정책의 발자취를 엿볼 수 있는 마셜의 삶은, 단순히 ‘미국 전략 노장’의 전기가 아니라 세계 강대국의 이익 셈법과 더욱 복잡해지는 국제관제를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한국의 마셜’을 향한 갈증을 불러일으킨다는 게 단점이랄까. 손원천 선임기자 angler@seoul.co.kr
  • “외계인 보자”…해프닝으로 끝난 소리만 요란했던 ‘51 구역’ 습격

    “외계인 보자”…해프닝으로 끝난 소리만 요란했던 ‘51 구역’ 습격

    미국의 비밀 군사기지로 유명한 ‘51 구역’(Area 51)에 단체로 침입하자는 거창한 이벤트가 결국 극히 일부 사람들만 참여한 해프닝으로 끝났다. 지난 20일(현지시간) 미국 AP통신, USA투데이 등 현지언론은 채 100명도 되지 않는 사람들이 51 구역 습격 이벤트에 참여했다고 보도했다. 세계적인 화제를 모은 이 이벤트는 네바다주 남부 넬리스 공군기지를 일컫는 51구역에 20일 새벽 3시~6시 모두 함께 들어가자는 페이스북 이벤트가 발단이었다.그 목적은 황당하게도 ‘외계인을 보기 위해서’ 인데 주최 측은 “우리가 나루토처럼 달리면 그들의 탄환보다 더 빨리 움직일 수 있다”며 참가를 호소했다. 황당한 이 이벤트에 놀랍게도 무려 200만명 이상이 참가의사를 밝혔고 이에 미 당국도 긴장감을 감추지 못했다. 실제로 습격일인 20일을 앞두고 미 전역에서 약 1500여 명의 사람들이 기지 인근 마을에 짐을 풀며 전운이 감돌았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실제 51 구역을 향해 행진하는 습격이벤트에는 100명도 참가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USA투데이 보도에 따르면 이날 이벤트에 참여했다 체포된 사람은 단 한 명으로 흥미롭게도 공군 기지 문에 소변을 보다가 수갑을 찼다. 결과적으로 소리만 요란했던 이벤트였던 셈.화제를 모은 51구역은 미 정보기관들이 외계인 또는 외계 비행체를 비밀리에 연구하는 곳이라는 음모론의 진원지다. 이곳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계기는 로스웰사건 때문이다. 1947년 미국 뉴멕시코주의 한 시골마을인 로스웰에 UFO가 추락했지만 미국 정부가 이를 수습해 51구역에 옮기고 비밀에 부쳤다는 바로 그 소문이다. 그간 미 정부는 51구역의 존재에 대해 무응답으로 일관해오다 지난 2013년에서야 기밀문서가 공개되면서 이 지역의 실체가 세상에 드러났다. 당시 비영리 조직인 내셔널 시큐리티 아카이브(NSA)의 정보공개 요청을 통해 공개된 중앙정보국(CIA)의 보고서를 보면 51구역은 냉전시대에 구 소련의 공중 감시를 담당했던 U-2 정찰기 시험 장소라고 언급되어 있다. 그러나 정작 보고서에는 외계인과 미확인 비행물체(UFO)를 은폐했을 것이라는 내용은 없어 UFO 신봉자들의 기대는 빗나갔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다음달 미중 무역협상 초점은 농산물 관세 철회

    다음달 미중 무역협상 초점은 농산물 관세 철회

    1년 넘게 무역전쟁을 벌이는 미국과 중국이 다음달 초 13차 무역 협상을 갖기에 앞서 19일(현지시간) 실무 협상에 나섰다. 이날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랴오민 중앙재경위원회 판공실 부주임 겸 재정부 부부장(차관)은 약 30명의 실무진과 함께 오전 9시 백악관 인근 미 무역대표부(USTR)에서 협상에 들어갔다. 미국 측에서는 제프리 게리시 무역대표부(USTR) 부대표가 협상팀을 이끈다. 실무 협상은 이틀간 진행된다. 농업 문제와 중국의 지식재산권 보호 강화, 중국 기업에 대한 기술 강제이전 문제 등을 다룰 것으로 알려졌다. 고위급 협상은 다음달 초 워싱턴DC에서 열린다. 미국에서는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USTR 대표와 스티브 므누신 미 재무장관 등이, 중국에서는 류허 부총리 등이 참석한다. 이번 실무협상은 농업 문제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는 협상에 대해 잘 아는 소식통을 인용해 “중국이 미국산 대두와 기타 농산물 구매를 늘려야 한다는 미국 측 요구를 포함해 농업 분야에 집중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이 마약성 진통제인 펜타닐 수출을 중단하라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요구도 반영될 것이라고 소식통은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중국이 농산물 보복 관세를 빠른 시일 안에 철회해 주기를 원한다. 자신의 주요 지지층이자 핵심 유권자인 농민들의 표를 지키기 위해서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협상 소식통을 인용해 중국 농업부 관료가 다음주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USTR 대표와 함께 대표적 곡창 지대인 중서부 네브래스카주와 몬태나주의 농가를 방문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미국이 중국 대표단에 농민들의 상황을 직접 보여줘 농산물 관세 철회를 설득하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다만 미국이 농산물 추가 구매 만으로 이번 협상을 마무리할 것 같지는 않다. 윌버 로스 미 상무장관은 폭스비즈니스 네트워크와 인터뷰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현재의 무역 적자뿐만 아니라 큰 불균형을 바로잡는 것이다. 단지 중국이 대두를 좀 더 사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다“고 강조했다. 므누신 장관은 “고위급 협상에 위안화 환율 문제가 테이블에 오를 것”이라고 전했다고 로이터는 덧붙였다. 이번 협상에서 소기의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곧바로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 전쟁을 확대할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보수 성향 허드슨연구소 소속으로 대통령에게 통상 문제를 조언하는 마이클 필즈버리는 SCMP와 인터뷰에서 ”관세는 50%나 100%까지도 올라갈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필즈버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전쟁 목적이 미중 무역관계를 해치려는 것이 아니라 무역적자 문제를 근본적으로 바로잡으려는 데 있다. 그가 ‘신냉전’이나 ‘중국 봉쇄’를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올해 5월 양국 무역협상이 결렬된 데 대해 중국 내 강경파들에 책임을 돌리면서 “그들은 150페이지에 달하는 합의 내용을 잘 알지 못하고 있었다. 중국이 당시 합의로 되돌아간다면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고위급 협상이 중국 경제의 구조개혁 내용을 담지 못한 채 ‘스몰딜’로 끝날 것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대통령의 적들이 퍼뜨린 가짜 뉴스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그는 ”큰 합의는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대면 회담에서 이뤄질 것이다. 두 사람은 지금까지 30번 가까이 통화를 했다. 가끔은 1시간씩도 통화하는 친밀한 사이“라고 강조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씨줄날줄] 북일 접근/황성기 논설위원

    [씨줄날줄] 북일 접근/황성기 논설위원

    공교롭게도 9월 한 달간 두 개의 일본 방문단이 북한에 가 있거나 갈 예정이다. 하나는 80년대 일본 정계의 실력자 고(故) 가네마루 신 전 자민당 부총재의 차남 가네마루 신고(74)가 이끄는 방북단(14~19일)이고, 다른 하나는 일본의사회(9월 24일~10월 3일)의 그것이다. 그래서 경찰 출신 기타무라 시게루 국가안전보장국(NSS) 신임 국장 체제 들어 북일 접근이 가시화하는 것 아닌가 하는 추측이 나온다. 더군다나 일본의사회 회장이 아베 신조 총리와 가깝다는 이유를 들어 일본 정부의 대북 메시지를 전달하는 ‘기획 방북’설도 나돌지만, 사정은 반드시 그런 것 같지 않다. 가네마루 신은 1990년 고 김일성 주석과 만나 북일 교섭의 길을 튼 인물이다. 아들 신고는 평양에 두터운 인맥을 가진 아버지 덕택에 아버지 생일(9월 17일)을 전후해 최근 거의 매년 평양을 찾고 있다. 가네마루 신의 탄생 100주년인 2014년에도 방북했으며, 탄생 105주년인 올해에는 아버지 지역구인 야마나시현 주민 60여명으로 방북단을 꾸렸다. 가네마루 신고는 평양에 갈 때마다 30년 지기 송일호 북일 국교정상화 담당대사와 만나 환대를 받는다. 이번에도 송 대사는 물론 최룡해 노동당 부위원장도 만날 것으로 점쳐진다. 가네마루 신고 측은 아베 총리나 자민당으로부터 어떠한 대북 메시지도 받지 않았다고 한다. 역으로 대일 메시지를 갖고 올 가능성은 있다. 일본의사회의 방북은 이전부터 계획된 것이다. 일본 전직 참의원들이 방북하기로 뜻을 모았는데 중심 인물이 미야자키 히데키 전 의사회 부회장이었다. 이들이 평양에 가면 북한 당국자와 만나 현안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는 한편 의료 지원을 위한 의료 현장 시찰도 예정돼 있다고 한다. 마침 요코쿠라 요시타케 의사회장이 아베 총리와 친하다는 것인데, 정식 창구도 아닌 방북단이 어떤 성과를 올릴지는 미지수다. 냉전시대에 한국은 북일이 남북보다 앞서가지 못하도록 견제했는데, 김대중 정부 이후 북일 접근을 장려하는 쪽으로 돌아섰다. 문재인 정부도 지난해 북일 교섭을 권했다. 그러나 판세를 못 읽고 올해 초까지도 대북 압박만을 노래하던 아베 정권이었다. 그러다 2차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실패로 돌아가고 남북이 소원해지자 그 틈새를 비집고 아베 총리는 ‘조건 없는 북일 정상회담’을 제안했지만, 북한은 콧방귀만 뀌고 있다. 연내 북미 3차 정상회담에 집중하려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으로선 아베 총리와의 만남에 신경쓸 여력은 없어 보인다. 다만 당국 간 대화는 물론 민간단체의 방북마저 끊긴 남북 관계에 비춰 볼 때 이들 두 방북단의 움직임이 신경쓰이는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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